학개 강해

학개 강해


 

 

 

 


 

 

 

 

 

학개 1:1-6  성전이 무엇인가? 

 


1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4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5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그동안 베드로전후서를 보고 이제 다시 구약의 소선지서 중에 학개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학개서의 본문이 짧기에 스가랴서까지 같이 보고 다시 신약의 서신서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구약의 선지서를 가지고 설교하는 곳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혹 설교를 하여도 필요한 부분만 따오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기피하고 싶은 내용들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선지서를 제대로 보게 되면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음의 일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다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들어온 것은 주일성수와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성전건축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구약의 율법적인 전통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선지자가 무엇을 증거하였는지를 봅시다.

 

 

 

이사야 66:1-4절을 봅니다. “봉독” 이미 구약에서 사람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지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의 의미를 모르고 드리는 것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이 살인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안식일에 성전 문 앞을 가로막고 서서 그곳에 제사하러 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지자들의 외침을 설교하려면, 최소한 본문만 제대로 읽는다고 하여도 현재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엉터리가 되는지 들통이 나기에 기피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서 중에 우리가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온 선지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말라기서와 학개서입니다. 말라기서는 십일조 때문에 자주 들었고 학개서는 성전건축 때문에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학개서를 설교하면서 오늘날 성전을 짓자고 말하는 것은 정말 엉터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건물 성전은 이미 무너지고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헐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3일 만에 일으키시겠다고 하신 것은 이제부터 건물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이며 그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성도가 성전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결코 사람이 지을 수 없는 성전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고발한 직접적인 죄목이 ‘성전을 허는 자’라는 죄목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설교하다가 돌 맞아 죽은 설교의 내용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설교를 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것입니다. 솔로몬이 건물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도 고백하기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용납하지 못할 분을 어떻게 사람의 손에 지은 이런 곳에 거하시겠습니까, 하면서 기도한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솔로몬과 이사야의 증거를 언급하면서 설교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꼭 성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독려하기 위하여 학개서를 동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판벽한 집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은 이렇게 초라하게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들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부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조금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한번 불어버리시면 한번에 다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하면서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전건축을 위하여 헌신하고 어렵게 헌금하였지만 복을 받아 부자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국적으로 수집하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불러서 간증까지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였다면 아마 아담한 건물 정도는 마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목사들이 왜 예배당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면서까지 건물에 그렇게 집착을 하는가에 대해서 두 곳의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엊그저께 노회를 하였습니다. 새로 지은 산성 교회당에서 하였는데 이 목사님이 도계동에 110평짜리 2층, 3층을 교회 건물로 구입을 하였습니다. 상당한 규모입니다. 그런데 교인이 120여명에 이르자 더 이상의 증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정체가 오자 예배당을 짓기 위하여 땅을 얼마나 오랫동안 알아보았는지 곁에서 보아서 압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땅을 700평 기증하여 멋있게 새로 지은 예배당에 이사를 하고 나니 이사하기도 전에 수십 명이 등록을 하고 5월부터 지난주까지 약 5개월 동안에 70명이 거의 자원하여 등록을 한 것입니다. 바로 뒷동네의 벧엘 교회도 대토를 받아 건물을 지어놓고 나니 벌써 수백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개척하여 수십 년을 고생해도 지하 전세를 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자나 깨나 독립된 건물 가져보는 것입니다. 저도 별수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 지역을 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예배당 건물입니다. 저 정도의 건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듭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런 생각이 바로 나의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어제 목사 안수식에서 설교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피할 것과 추구해야 할 것을 이야기 하면서 정욕에 대하여 여자와 돈을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사의 정욕은 그런 것 보다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면서 목사의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정욕이 더 큰 정욕이라고 어느 목사님과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면 우선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성전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전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게 되어야 오늘날 부동산 건물을 가지고 성전이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전이란 말 그대로 거룩한 전입니다. 왜 거룩한 곳이 필요하게 되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 에덴동산에서는 따로 거룩한 장소가 필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거니셨습니다. 그러나 범죄하여 쫓겨난 이후 이 세상은 죄악이 관영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6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 영원히 거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유예기간은 120년입니다. 이 기간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방주를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땅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 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가 끝나고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고 산봉우리가 들어나자 물이 감하였는지 여부를 알기 위하여 까마귀를 먼저 보냅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물위를 날아다니면서 방주로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무엇을 먹었을까요? 추측컨대 부패한 시신이나 동물의 사체를 먹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비둘기를 내어보냈더니 접족할 곳이 없어서 돌아왔습니다. 7일이 지나 다시 보내니 감람잎사귀를 물고 돌아왔고 다시 7일후에 보내니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비둘기가 접족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까마귀는 더러운 곳에서 접족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비둘기는 그런 곳에 접족하지 못하여 돌아왔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악이 관영한 이 땅에 접족하실 곳이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내시고 그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특별한 공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성막이며 그 성막 중에서도 지성소의 언약궤 뚜껑의 ‘속죄소’ 위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시고 말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속죄소를 ‘시은좌’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장소인 것입니다. 이 속죄소에는 아무나 나갈 수가 없고 1년에 대제사장이 단 한 번 어린 양의 피를 들고 들어가서 그곳에 피를 뿌려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게 하신 것은 그들과 만나실 때에 희생의 피 위에서 만나시는 것이지 그냥 만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성막이 이스라엘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됩니다. 물론 성막의 중심은 언약궤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성막 위에 구름이 머무르면 머물러야 하고 구름이 떠오르면 이동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성막이 사사시대를 지나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다윗이 건물 성전을 준비하고 솔로몬이 완공합니다. 솔로몬이 완공한 그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였습니다. 그때 솔로몬이 고백한 내용이 열왕기상 8장에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을 확실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집은 건물이 아니라 다윗의 왕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솔로몬이 간구한 것입니다. 이 왕위란 결국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원한 왕위가 주님에게 돌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지만 아직 구약에서는 성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솔로몬이 간구한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온갖 재앙이 올 때에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용서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날마다 희생의 피가 흘려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은 자신들의 죄가 대속되어야 한다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어떤 전염병이 돌거나 전쟁에서 지거나 포로로 잡혀가거나 이방인라고 할지라도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사하여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8:46-50절을 봅니다. “봉독” 이 간구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에 성전까지 파괴가 됩니다. 포로로 잡혀가서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게 되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또한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이제 본문을 봅니다. 1절입니다.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그날 초하루라고 합니다. 이 때는 바벨론 포로에서 1차로 돌아온 사람들이 노예까지 합하여 약 5만 명이 됩니다. 이들이 성전지대는 건축하였으나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와 자신들의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성전 건축이 약 15년간이나 중단이 된 때입니다. 이때 학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언급할 때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한 것입니다. 스룹바벨은 다윗의 후손이고 여호수아는 사독 계열 제사장의 후손입니다. 이 두 사람에게 학개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증거함으로 이들이 분발하여 성전건축을 재개하게 됩니다.

 

 

 

이 백성이’, 내 백성이라고 하지 않으시는 것이 이미 책망의 말씀입니다.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전이 황무하였는데 너희가 어렵다고 전을 건축하지 못하였다면 너희의 집도 어려운채로 두어야지 너희의 집들은 판벽하여 놓고 사느냐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의 소위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행동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많이 뿌려도 수입이 적었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고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고 일꾼이 일하여 삯을 받아도 그것이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오늘날도 성전을 건축해야 복을 받는다고 사기 치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허물어버린 성전을 누가 다시 세운다는 것입니까? 이제 건물의 성전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성전입니까? 예수님의 몸이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디를 향하여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예루살렘의 성전 터를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성전을 다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2:9절을 봅니다. 지금 재건하는 성전이 초라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합니다. 그 영광스러운 성전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영광스러운 성전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성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에서 하나도 영광스럽지 않는 성전입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영광스러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한 자들은 예수님을 영광의 성전으로 본 것입니다.

 

 

 

요한복음 1: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이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이 영광이 고난과 십자가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에게만 알리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는 세상의 영광이 전혀 없으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6절과 6:19절에 보시면 성도를 성전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임한 성도가 성전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기에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유대인들이 가짜 성전을 지키기 위하여 참된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죽인 것처럼 참된 성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를 가짜 성전을 짓느라고 배척하고 있는 현실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받은 모든 은혜는 우리의 영원한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분이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영원한 효력을 발휘하시는 그 희생의 능력임을 잊지 말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학개 1:7-15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라  2006. 10. 18.

 

 


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찌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10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13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15 때는 다리오 왕 이년 유월 이십사일이었더라.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었거나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은 학개서 그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내용이 성전을 건축하면 복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문자대로 보면 중단된 성전을 건축하자 그날부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오늘도 예배당의 건물을 지으면서 성전을 짓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지난주에 성전이 무엇인지를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신약시대는 건물의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이며 그 몸에 붙은 성도가 성전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은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성전의 개념도 보겠습니다만 왜 성전을 지어야 하는데도 짓지 아니한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라’는 말씀으로 우리 자신의 소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7절을 봅니다. 왜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는 자신의 소위를 살펴보라고 하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7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성전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성전이란 모든 것의 중심인 것입니다.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하나님의 지시대로 성막을 만듭니다. 모든 설계도는 전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 성막 안에 들어갈 기구들도 전부 하나님의 지시대로 만들었습니다.

 

 

 

출애굽기 40:34-38절입니다. “34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출애굽기 40:1-33절까지 보시면 성막이 완성되어 봉헌하는 장면입니다. 그곳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더라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내용이 성막에 대한 설계도와 그 설계도대로 짓는 모습입니다. 이 성막이 완성되고 나자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막에 충만하여 모세조차 감히 들어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성막이 이스라엘의 진 중앙에 위치하고 이 성막에 구름이 떠오르면 행진하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르면 그곳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고 싶다고 가고, 가기 싫다고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제 성막을 바라보면서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정착하게 될 때에도 이 성막은 가장 중심에 위치하게 됩니다. 사시시대에는 몇 번 이동하지만 다윗 왕 때에 성막을 예루살렘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솔로몬 때에 건물 성전을 짓습니다. 이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중심인 것은 왕궁도 있지만 성전이 있기에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북 이스라엘은 단과 벧엘에 가짜 성전을 만들어 금송아지를 섬기게 됩니다. 그 결과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합니다.

 

 

 

남 유다도 성전을 몇 번 정화하기는 하지만 온갖 우상이 가득하게 되었을 때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면서 성전도 파괴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중에 에스겔 선지자는 회복된 예루살렘과 회복된 새로운 성전을 예언하게 됩니다. 온갖 우상이 가득한 옛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성전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 가운데서도 회복될 나라와 성전을 기대하게 됩니다.

 

 

 

에스겔 48:21절입니다. “거룩히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왕에게 돌릴찌니 곧 거룩히 구별할 땅의 동향한 그 지계 앞 이만 오천 척과 서향한 그 지계 앞 이만 오천척이라 다른 분깃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왕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히 구별할 땅과 전의 성소가 그 중간에 있으리라” 마치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하듯이 다시 땅을 분배하는데 각 지파별로 분배한 후에 가장 중앙에 성소가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됨은 성전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중심이며 하나님의 임재의 현장이 되는 곳입니다. 개인적인 죄든지 민족적인 죄든지 성전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면 죄가 용서 받는 곳입니다. 범죄하여 온갖 기근과 재앙이 오고 심지어 포로로 잡혀갔을지라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은총을 더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이란 이스라엘이 죽고 사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왔으면 가장 먼저 서둘러야 할 것이 성전의 재건입니다. 처음에는 바로 시작하였지만 온갖 방해로 인하여 15년이나 늦어지게 되자 사람들은 아예 포기하고 사는 것입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기 집 짓고 가꾸는 일에 바쁜 것입니다. 이때 학개 선지자가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소위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레바논의 백향목을 수입하여 지었지만 그러나 근처의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 와서 짓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얻으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얻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전을 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재건됨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성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백향목을 수입하여 지으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저 뒷산의 나무를 베어 와서 지으라고 하셨다면 마음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돌은 무너진 성전의 돌들을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집 건축에는 빨랐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그러하기에 성전 재건이 지연되자 언약의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9-11절입니다. 많은 것을 바랐지만 하나님께 불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신명이 28장에 언약을 어기면 어떤 재앙이 온다고 하셨습니까? 하늘이 놋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가을 가뭄이 심하다고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전을 향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성전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재를 불러 땅과 산과 곡물과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육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내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재앙을 깨달아야 할 텐데 아무도 깨닫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9절에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묻습니다. 이것이 무슨 연고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황무하였는데 자기 집에는 다 빨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사람도 깨닫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8:37-40절입니다. “봉독” 38절에서 한 사람이라도 재앙을 깨닫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은 한 사람도 재앙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질문하고 하나님이 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너희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에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집에만 빨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그들의 마음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처음 성막을 지을 때에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들고 나온 여러 가지 금은 패물과 물건들을 성막을 짓는 일에 기꺼이 드렸습니다. 그들은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들의 정착금이 될 것인데, 그것을 성막을 짓는 일에 내어 놓은 것입니다.

 

 

 

출애굽기 35:20-29절입니다. “봉독”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마음에 감동을 받은 자들이 마음에 원하여 자원하여 즐거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많아서 그만 가져오라고 하는 내용이 36장에서 나옵니다. 결국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심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막을 완성하고 나서 자기가 드린 예물이 무엇이며 얼마나 된다고 자랑할 자가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공로패를 주는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니 드리는 것이 즐거움과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연보도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고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여서 하는 일들은 즐거움인 것입니다. 이제 이런 일이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2절입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그 남은 모든 백성이 학개 선지자의 말을 청종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학개를 보낸 것임을 알고 여호와를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에 그들이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4절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니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흥분’이라는 단어는 깨우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각자의 마음이 감동이 되어 하나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성전 재건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이 성전은 나중에 또 무너지지만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소위를 살펴봅시다. 우리는 이미 우리 마음에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이 성전 됨을 믿고 그 성전 된 예수님의 몸에 붙은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중심과 살고 죽는 일이 성전에 있었는데 오늘 우리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에베소서 4:1-16절입니다. “봉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한 몸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신 것입니다. 학개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한 마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지시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학개 2:1-9  나중 영광  2006. 10. 25.

 

 


1 칠월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라 3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하냐 4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찌어다 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며칠 전에 차안에서 어떤 설교를 잠시 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켜서 복을 받은 이야기를, 오늘날 우리가 문자적으로는 안식일을 그렇게 지키지 못하지만 정신만은 그렇게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고자 한 사람들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참된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을 안식일에 일한다고 하면서 배척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학개서를 말하면서 성전을 지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도 예배당 건물을 지을 때에 학개서를 인용하면서 성전을 지어서 복을 받자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학개서를 설교준비하면서 박윤선, 김희보, 랑게, 랄프 스미드, 이 네 사람의 주석서를 보았는데 단 한 사람도 오늘날의 예배당 건물을 성전으로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경을 보고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하는 베뢰아 사람들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신학을 전공한 목사님들이 전하는 말씀이고 또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말씀하시는 것이니 의례히 맞는 말씀을 하시겠지!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식일을 잘 지켜 복을 받자는 식으로 성전을 잘 지어 복을 받자는 설교에 아멘하고 재산을 바칩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참된 안식일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그림자인 날짜를 붙드는 것입니다.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지리라는 건물을 다시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16-17절입니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그림자를 붙들지 말고 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을 보아도 사도들이 구약을 본 대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약을 보는 것입니다. 구약이 있고 신약이 있다는 시간순서보다 더 중요한 원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구약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의 안식일이든 성전이든 간에 그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2:1-2절입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성전을 재건하라는 말씀이 주어지고 나서 한 달 만에 다시 주어진 말씀입니다. 이 시기는 초막절 마지막 때인데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절기를 지키는 때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만이 아니라 남은 백성들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이름이 계속 등장하는 것은 왕과 제사장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직분조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다 성취가 됨을 보게 됩니다.

 

 

 

2:3절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세 가지의 질문을 합니다.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인가? 이것이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않느냐? 이미 솔로몬의 성전을 본 사람은 비록 성전의 지대가 놓이고 공사가 재개되었지만 그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모습인 것입니다. 에스라 3:12절에 보시면 포로에서 돌아와 처음 성전의 지대를 놓을 때에 백성들은 찬송하고 즐거워하는데 첫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대성통곡을 합니다. 그 초라함에 대하여 울었던 것입니다.

 

 

 

2:4절입니다.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본 자들은 지금 재건되는 성전의 보잘것없음에 더욱 힘이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새로이 재건할 힘조차 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때에 학개 선지자는 백성들을 격려합니다. 스룹바벨에게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합니다. 여호수아에게도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합니다. 이 땅 모든 백성들에게도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없이 자기들의 힘으로 굳세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는 격려인 것입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하십니다.

 

 

 

마치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솔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격려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여호수아 1:5-9절의 말씀을 보시면, 너의 평생에 너를 당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한 것처럼 너와 함께 하고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합니다.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시종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직접 보았지만 또한 두려운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 학개 선지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격려하는 것이지 자기들 스스로 분발하고 힘을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일들은 자기들이 힘을 내어서 만들어 냅니다. 자기들이 소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들의 힘을 합하고 돕기도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면 조상에게도 빌어보고 신에게도 빌어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소원성취를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즉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소원을 이루는 일에는 빨랐습니다. 자기들이 살 집을 짓는 일에 빠르고 하나님의 성전은 뒷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힘이 빠져 있는데 스스로 분발하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에 그들이 독립운동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주신 언약을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심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나올 때에도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언약의 말과 하나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힘을 내고 굳세게 하라고 합니다. 출애굽 때에 함께 하신 하나님이 제2의 출애굽이라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 재건하는 일에도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세게 하라는 것입니다.

 

 

 

6-7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조금 있으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와 만국을 진동시키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만국의 보배가 이르게 되고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의 성취를 메시아가 오시면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세계의 보배가 예루살렘으로 몰려들 것으로 보았습니다. 다른 예언서에도 그런 말씀들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8-9절을 봅니다.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평강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약속이 과연 어떻게 성취가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본문을 해석하기를 메시아가 오시면 온 세상의 영광과 보물이 다 예루살렘으로 올 것으로 보았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성전을 잘 지으면 그런 영광이 대한민국이나 자기들이 지은 교회로 모여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의 영광과 보배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믿고 기다렸기에 그들은 헤롯이 46년간이나 보수하고 증축한 성전, 거의 재건이라고 할만한 성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시고 자신이 3일 만에 일으키시겠다고 말씀하신 주님은 참으로 초라하신 분입니다. 어떻게 만국의 보배가 될 것이며, 어떻게 나중의 영광이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기존의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성전 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3-7절을 봅니다. “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보배와 영광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이 세상 신이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으로 비추어 주셔야만 참된 보배를 알게 됩니다. 그 보배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학개서 2:7절의 보배라는 단어를 다르게 번역할 수가 있는데 ‘사모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만국이 사모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물론 여기서 만국이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온 세상에서 주의 복음의 광채를 아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성전의 건축을 말하면서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그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가 성전을 지으면 하나님께서 금도, 은도 주셔서 영광스럽게 할 것이라고 하면서 독려를 해서 무리하게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창원에서만 해도 여러 곳에서 부도가 나서 교회를 지은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고 다른 사람들이 건물을 사서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복음의 광채가 비추어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광채가 비추어진 사람은 이제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독생자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보배임을 알게 됩니다. 이 보배를 질그릇에 담은 사람은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은 날마다 약하여지고 깨어짐으로 우리 속에 있는 보배만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껍데기를 치장하느라고 보배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한번 흔들어버리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6-29절입니다.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학개 2:6절의 하늘도 흔들어버리신다는 말씀을 히브리서 기자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흔들어버리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헛된 것들을 다 흔들어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다 흔들리게 됩니다. 하늘과 땅을 흔들어버리는데 흔들리고 무너지지 아니할 것이 없습니다. 흔들고 무너뜨린 후에 불로 소멸까지 해 버리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참으로 주님께서 주신 은혜만 남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자는 것입니다. 은혜는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신 분의 공로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영광입니다.

 

 

 

 

 

학개 2:10-19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2006. 11. 1.

 

 


10 ○다리오 왕 이년 구월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1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13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 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16 그 때에는 이십 석 곡식더미에 이른즉 십 석 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 뿐이었었느니라 1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 18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19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10절 말씀에 다리오 왕 이년 구월 이십사일은 성전 재건축을 시작한지 석 달 남짓 되었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이른 비가 내려야 씨를 뿌리고 농사를 시작할 수가 있는 시기입니다. 유대 땅은 비를 흡수하는 땅이기에 비가 올 때는 강물이 흘러가다가 비만 그치면 강물이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농사의 풍작과 흉작의 결정은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달린 것입니다.

 

 

 

신명기 11:10-17절을 봅니다. “10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14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15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이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농사가 안 되고 흉년이 드는 것은 단지 성전 건축의 문제만이 아니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성전이 그 중심이 됩니다. 성전이 없으니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가 없기에 빌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은 성전의 유무보다 그들의 마음이 주님을 떠나가 버린 것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청종하고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들의 마음이 미혹을 받아 다른 신을 섬기게 됨으로 하늘이 닫히고 땅이 소산을 내지 않음으로 멸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다면 다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할 텐데 성전 건축은 뒷전이고 자기 집들 짓는 일에만 빨랐던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으니 흉년이 든 것입니다. 이때에 학개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여 그들의 마음이 각성이 일어나고 힘을 내어 성전을 재건축하기 시작한지 3개월째가 되었습니다. 이때 선지자를 통하여 다시 그들의 죄악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11-13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학개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그 말씀은 제사장에게 가서 율법에 대하여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그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람이 거룩한 고기를 옷자락에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이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고 합니다. 제사장은 율법대로 정확하게 대답을 합니다. 거룩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두 번째의 질문은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부정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제사장은 역시 율법대로 대답을 잘 합니다. 부정하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시체를 만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왜 시체가 부정한 것입니까?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그러니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부정하게 된 자가 가까이 나아오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시체를 만진 것만이 아니라 죽은 동물과 접촉되는 것도 부정한 것입니다. 부정한 벌레에 접촉한 자도 부정하고, 생리중의 여인이 앉은 자리도 부정한 것입니다.

 

 

 

특히 부정한 것은 문둥병자입니다. 그가 접촉하는 모든 것이 다 부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문둥병자는 자기 곁에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윗입술을 손으로 가리고 부정하다고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접촉하는 모든 것이 다 부정하기에 진 밖에 나가서 따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정함이란 외부적인 규례였습니다. 율법이 정하는 정함과 부정함의 규례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겉의 부정이 아니라 속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 백성이라고 합니다. 다른 백성을 부를 때 사용하시는 호칭입니다. 내 나라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 나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유대 백성들 전부가 다 부정한 것에 접촉이 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제사장들이 율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유대 백성들 전부다 부정하다고 합니다. 그들이 부정하기에 그들이 드리는 예물이나 제물들조차 다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15-19절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유대 백성들은 자신들이 부정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비록 자신들이 율법적인 규례로서 부정한 자가 아니라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부정하다고 하시면 부정한 것입니다. 그 판단의 기준은 외모만이 아니라 그들의 중심을 살피시는 주님의 판단이기에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지난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 놓이지 아니한 때를 추억하라고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에 성전이 황폐화 됩니다. 그 이후로 계속하여 황폐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돌아와서 전의 기초를 재건하고서 다시 15년이나 방치하여 놓았던 것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십 석 수확할 곳이 십 석 뿐이며, 포도즙 50그릇을 수확할 곳에는 20그릇 뿐이었으며, 그들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이와 우박을 쳤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재앙을 내려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이 전을 추억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돌이켜 보라는 것입니다.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의 열매가 맺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성전 재건축을 시작한지 3개월, 이제 이른 비가 올 때가 된 시기인데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들의 마음이 각성이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시고 그들의 마음을 흥분시키셨기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오늘부터 복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복을 주시리라는 그 복이 무슨 복일까요? 일차적으로는 비가 와서 농사가 잘 되는 것이 복입니다.

 

 

 

에스겔서 34:26절입니다. “25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서 잘찌라 26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신데 그들의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이 때를 따라 비를 주시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복된 장마비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오늘부터 복을 주신다는 것은 무엇을 주시는 것입니까? 그들의 마음이 주님께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있으니 때를 따라 비를 주어서 농사가 잘 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을 오늘날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지금도 우리가 예배당을 잘 지으면 이런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예배당도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멋있고 아름답게 지으면 우리도 복을 받아 농사가 잘되고 부자가 된다는 그런 말입니까?

 

 

 

이 본문을 설교한 어느 목사의 설교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 교회 성도들이 가난한지 부자인지를 알아보려면 그들이 섬기는 예배당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배당을 잘 짓고 아름답게 꾸며 놓고 깨끗하게 정돈된 교회 성도들은 부자로 삽니다. 반면에 예배당에 거미줄이 쳐 있고 벽에 틈이 생겨 비가 새고 바람이 들어오고 천정에 쥐들이 들락날락 하고 페인트칠이 벗겨져 얼룩덜룩한 것을 방치해 둔 교회 성도들은 가난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쓰여 있지 않습니까?”

 

 

 

이 목사의 앞부분의 설교에서는 성전을 이야기하면서 건물의 성전을 헐라는 말씀을 합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큰 건물을 잘 짓는다 하더라고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없는 성전이 되면 소용이 없다고 하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전건축에 참여하여 주님이 계시는 성전을 만들자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신다는 스데반 집사의 말씀과 바울 사도의 말씀을 모르는지, 무시하는지 구약의 자구만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배당 건물을 짓지 않은 사람은 복을 못 받는다는 말입니까? 삼성그룹 회장이 예배당을 잘 지어서 부자가 되었습니까? 그러므로 성전의 개념과 복의 개념도 그렇게 일반화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하는 복은 무엇입니까?

 

 

 

새벽기도 시간에 성경을 주제별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최초로 기도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아브라함을 보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한다는 소식 앞에 하나님께 여섯 번이나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인 열명이 없어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성입니다. 그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에 살라질 때에 그곳에서 구원받아 나온 사람이 입니다. 그때 성경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최초의 기도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복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멸망 받을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것이 복입니까? 이 악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 복입니까? 너무나 명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기 위하여 지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운명이 그렇게 끝나야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저주를 벗어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지금 새벽기도 시간에 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데 복을 이야기해도 많이 오지 않습니다만 그 복이 무엇인지 갈라디아서 3:1-14절을 봅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복입니다. 만약에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율법의 저주아래 들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복이란 예수님이 율법의 저주를 받으심으로 자기를 믿는 자들을 속량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시고 또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신 궁극적인 복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게 끊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학개 2:20-23  하늘과 땅의 진동  2006. 11. 8.

 

 


20 ○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1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22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리는 놀라운 사건을 말할 때에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라고 합니다.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인다는 말이지요! 오늘 말씀에도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납니다. 그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시는 일은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며 열방의 세력을 멸하고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고 그들이 서로서로 공격하여 엎드러질 것이라고 합니다.

 

 

 

학개서의 마지막 설교인데 여기서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신다는 말씀이 무엇인지 오늘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있지만 그 모양은 옛날 솔로몬의 성전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는 형편입니다. 그러니 옛 성전을 이미 보았던 사람들은 낙심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학개 선지자는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지금보다 더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언을 받은 사람들은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사모하여 기다렸습니다. 더 영광스러운 성전으로 세워지고 만국의 보물이 다 예루살렘으로 몰려올 것을 기대하고 기다린 것입니다.

 

 

 

2:6-9절을 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실 것이며 또한 만국을 진동시키실 것인데 그렇게 되면 만국의 보배가 이 성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영광된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요엘 3:14-16절입니다. “14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16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 17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거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요엘 선지자도 하늘과 땅이 진동되어도 예루살렘은 거룩하고 안전하게 지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는데 도대체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하늘과 땅이 진동되는 정도의 큰일들이 일어나지만 예루살렘은 보호되는 이런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난 것입니까?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이후에 페르시아 제국, 헬라 제국이 일어나지만 그들은 스스로 물고 먹으며 망하여 갔습니다.

 

 

 

이런 것이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사건이라면 그런 와중에 예루살렘을 향하여 만국의 보배가 몰려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말씀의 성취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문자대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국의 영광과 보배가 지금의 예루살렘으로 몰려올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개 선지자가 예언한 말을 들은 사람들이 살아있을 동안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전이 완공되기는 하였지만 만국의 보배가 성전으로 몰려오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후 70년에는 그나마 있던 예루살렘 성전마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만국의 보배가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몰려오는 것입니까? 여기서 성경의 해석이 유대인들의 해석과 예수 믿는 자들의 해석이 크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육적인 해석과 영적인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다 이루심’이란 구약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신 것이 새언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혈통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요 이방인 가운데서 택함을 입어 나온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만국의 보배가 예루살렘으로 온다는 것은 보배라는 말이 ‘사모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열국에서 예루살렘을 사모하여 오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한 일, 십자가의 사건을 보고서 몰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한 인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사건입니다.

 

 

 

에베소서 1:10절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셨다는 말씀과 함께 주어진 말씀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된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국의 사모함이 주님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지금의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 성전으로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슬람의 사원이 되어 있는 그곳이 회복되어 다시 성전제사가 완성이 되면 만국이 그리로 경배하러 올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을 육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런 유대인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고 하셨으니 우리나라를 또는 그렇게 하는 우리 교회를 복 주셔서 세계의 돈이 한국으로 몰려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역사를 보아도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나라가 세계의 강대국이 되었다고 하면서 만국의 보배가 주의 일을 많이 하는 우리 교회, 우리나라로 몰려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들 하고 있습니까? 이런 해석이 지금의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는 땅에 속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늘과 땅을 진동시킨다는 말씀은 단지 세상의 역사 속에 일어나는 여러 나라들의 흥망성쇠의 문제가 아니라 묵시적인 사건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보아야 하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예수님께서 이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을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에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제 심방을 하였습니다. 서울서 창원에 파견근무하기 위하여 1년간 창원으로 오신 분입니다. 심방 설교의 본문은 야고보서 4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에 어느 도시에 가서 1년간 장사하여 이익을 보려고 하는 자들아, 너희가 무엇이냐, 너희는 잠시 보이는 안개라는 말씀입니다. 서울에서 창원으로 와서 1년간 살려면 여러 가지 계획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안개라고 합니다. 안개가 무슨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까? 그러니 우리가 무슨 일을 계획하고 이루어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안개가 한 것이기에 아무 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인생이 안개이니 아무렇게나 살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도 저것도 하리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 ‘주의 뜻’이란 바로 뒤에 나오는 베드로후서 1장의 말씀을 해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게 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썩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쇠하지 아니할 나라를 상속받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을 다 흔들어버리실 뿐만 아니라 베드로후서 3장에 보시면 다 불살라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신다는 말씀이 어떻게 예언되고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보고자 합니다.

 

 

 

이사야 13:13절입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한 내용에서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바벨론이 멸망하였습니다. 역사 속에서도 그 흔적만 남을 정도로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당한 것입니다. 그 멸망의 이유는 교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높아진 것과 교만한 것을 멸하시기 위하여 온 세상을 흔들어버리실 것입니다.

 

 

 

학개서 2:23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실 것을 스룹바벨을 택하셔서 인으로 삼는다고 하십니다. 스룹바벨의 할아버지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2:24절에서 네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도 빼어서 바벨론 왕에게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반지란 장식용이지만 고대에는 문서를 작성하고 확인하는 도장으로 반지를 낀 것입니다. 그런 중요한 반지를 빼어내어 주었지만 그러나 다시 스룹바벨을 하나님의 도장으로 삼으시는 것은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약은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문제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는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의 족보에 스룹바벨이 들어갑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장 찍어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언약을 어떻게 자기 백성에게 도장을 찍어주시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보증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는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흔들려 무너지고 불에 태워져 사라질 것을 알고 보이지 아니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2:26-29절입니다.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강림하심으로 땅이 진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는 말씀이 약속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학개서 2:6절과 오늘 본문 21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왜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시는가 하면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을 나타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하늘과 땅, 그 속에 속한 모든 것들을 다 흔들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이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죄악이 관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옛 하늘과 옛 땅을 흔들어버리시면 그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주 공간에 우주선이 머무를 수 있는 우주정류소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진이 아무리 나도 안전한 곳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옛 하늘과 옛 땅에 속한 것이기에 다 흔들려 무너지고 불살라져서 흔적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것이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에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만이 진동하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 홀로 만드신 나라, 옛 하늘과 옛 땅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인간의 손길도 가미되지 아니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만들어진 나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12-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진동치 못할 나라가 무슨 나라입니까? 아들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흑암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흔들어버리심으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모든 것도 다 날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 1-8절입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알파와 오매가가 되신 분이 다 이루심의 결과로 자기 백성에서 주어집니다.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진동치 아니할 나라입니다. 22절을 봅니다.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새 예루살렘 성안에 성전이 없습니다. 누가 성전이 되십니까?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그 어린양이 성전이 되십니다. 건물이 아니라 주님이 성전이 되십니다. 그 주님을 모신 성도가 또한 성전이 되어 그와 함께 거할 것입니다.

 

 

 

학개서는 성전을 재건하라는 독려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성전의 결국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건물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 사는 것이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 곧 하늘에 간직한 성전입니다.

 

 

 

히브리서 9:11-12절입니다. “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사람이 성전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성소가 따로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어린양이 성전이 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이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지금 보이는 하늘과 땅이 큰 소리로 떠나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성도라면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주님의 약속을 믿고 오늘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