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창세기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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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장

 

창세기 강해

 

·기록한 사람 : 모세

·기록한 연대 : 주전 1450-1440년경

·기록한 장소 : 시내반도

 

제 1장  창 조

 

(대  지)

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1)

二. 제 1일의 창조(땅과 물과 빛)(2-5)

三. 제 2일의 창조(궁창)(6-8)

四. 제 3일의 창조(해륙 분리와 초목)(9-13)

五. 제 4일의 창조(일월성신)(14-19)

六. 제 5일의 창조(조류와 어류)(20-23)

七. 제 6일의 창조(동물과 사람)(24-31)

 

(본문 강해)

 

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 (1)

 

.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한 구절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증거하고 있는 참으로 귀한 말씀이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가 세계 유일의 참된 종교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다른 종교에서는 천지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여러 가지 허황된 말을 하고 있고, 과학자들은 하늘과 땅이 자연히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 구절은 창조 사역의 총론인 동시에 서론이다.  태초 요한복음 1:1에 말한 \'태초\'는\"영원한(무궁한)태초\"를 말하고 본문의 \'태초\'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한 때\"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히브리 원어로  (엘로힘)으로서 \"능력의 신\"이라는 뜻이다.

 

二. 제 1일의 창조(땅과 물과 빛)(2-5)

 

.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실 때에 단번에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6일 동안 단계적으로 창조하셨다.  처음에는 땅이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그 다음에 그것을 정리하시고 정돈하셔서 점점 완전하게 만들어 나가신 것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땅을 첫째 날 이전에 창조한 것으로 보면 안 된다.  그 이유는 2:1-2과 출애굽기 20:11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6일 동안에 창조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말씀을 총론으로 간주해서 땅이 제3일에 창조되었다고 해도 안 된다.  그 이유는 셋째 날에는 물을 한 곳으로 모으고 그 속에 있던 땅을 드러나게 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땅은 물과 함께 첫째 날 창조됐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혼돈과 흑암을 마귀라고 해석하는 것도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 혼돈이 아니고 물질적 혼돈이며 영적 흑암이 아니고 공간적 흑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 하나님은 삼위일체로서 수면에 운행하신 분은 제 2위인 성자와 제 3위인 성신(성령)을 가리키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3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고 했고, 잠언 8:30에 \"내(그리스도)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천지 만물을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창조하였으나 직접 창조에 착수하신 분은 제 2위인 성자이시다.  성자께서 성신(성령)의 능력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창조하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있고 물과 흙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을 성자 하나님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성령으로 인하여 그 물질 위에서 역사하시며 창조해 나가셨다.

 

.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여호와께서 빛을 창조하셨다.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땅과 물과 빛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첫날 창조한 땅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고(2절 참조) 점점 완전케 만들어 가셨다.

 

. 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하나님은 빛으로 모든 것을 드러내고 밝히는 것을 좋아하신다

 

. 1: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빛을 창조하니 어두움은 빛이 없는 곳으로 물러갔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창조의 첫날부터 주야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지구가 자전함을 증명한다.  

첫째 날 \"날\"이라는 히브리 원어  (욤)을 1일로 보지 않고 한 세대, 한 기간으로 해석하여 천지 창조가 몇 억 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하였으니 \"날\"을 지구의 자전(自轉)으로 생긴 24시간의 하루로 보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다. 또한 출애굽기 20:11에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을 만들고 제 7일 에 쉬었음이라고 했으므로 엿새 동안에 천지 만물을 다 만든 것이 확실하다.  어떤 과학자들은 몇 10억 년 전에 지구가 생겼다고 주장하나 과학자들 간에도 학설에 따라 몇 십억 년씩 차이가 나고, 그 학설들의 근거 또한 애매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확 무오한 성경을 그대로 믿는 것이 참된 지식을 얻는 것이요 바른. 진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어떤 과학자는 지구의 생성 연대가 46억 년 전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몇 억 년 전이라고 한다.  또 몇 억 년 전 사람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성경 역사로 보면 첫 사람 아담은 6천년 전 사람이다.  지금으로서는 천년이나 억 년을 걸려야 될 것이 초기에는 하루 동안에 변화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에 앞서 성경대로 믿어야 된다.  성경은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초과학적(趨科學的)인 것이다.  또 구약의 연대는 우리에게 구속의 도리를 가르치기 위한 연대이고 과학적인 증명을 해 주기 위한 연대가 아니다.  곧 성경은  구속의 도리를 가르쳐 주는 책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로 믿는 것이다.

이 빛의 창조는 장차 영적 빛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영적인 흑암을 다 밝혀 줄 것을 교훈해 주는 뜻이 있다.  마음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에 싸여 있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가면 심령이 밝아지고 새 생명의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三. 제 2일의 창조(궁창)(6-8)

 

. 1:6-8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둘째 날에는 첫째 날 창조된 것을 가지고 구별해서 궁창을 창조하셨다.  궁창의 히브리 원어  (라키아)는 \"넓은 공간\", \"허공\"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궁창으로 물을 갈라서 궁창 아래 물과 궁창 위의 물(구름)로 나뉘게 하시고 그 궁창을 하늘이라 하셨다.  창조할 때 처음에는 궁창에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물이 나뉘어 윗물은 위에만 있고 아랫물은 아래만 있게 하였다.  하나님은 위의 것과 아랫것을 갈라놓는 하나님이시고, 궁창은 궁창대로 드러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위엣 것을 위에다 놓고 아랫것은 아래에 놓아야 새 창조의 역사가 나타난다.  성도가 구별하는 신앙을 가지고 모든 것을 제 자리에 놓을 때에 혼돈이 없어지고, 질서와 체계가 있게 되고, 넓고 밝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四. 제 3일의 창조(해륙 분리와 초목)(9-13)

 

. 1:9-10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물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물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셋째 날은 지상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하여 뭍(陸地)이 드러나게 하시고 육지에 풀과 채소와 나무(草木)를 내셨다.  육지가 물과 흙이 섞여서 혼돈한 가운데 있었으나 천하의 물을 깊은 데로 모이게 하여 바다를 만드시고 뭍이 드러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땅이 물 속에서 나온 것이다(벧후3:5).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구별하시고 정리하시는 분이심을 보여 준다.  성도들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구별하고 정리, 정돈할 때에 귀하고 아름답고 값진 것들이 드러나서 필요하고 유익하게 이용된다.

 

. 1:11-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 땅에 풀과 채소와 열매 맺는 각종 나무를 내셨다.  물과 뭍을 갈라놓지 않았으면 이런 것들이 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갈라놓은 후 나무와 채소와 각종 과목이 나게 하셨고, 그것을 사람들이 사용하며 먹고살게 하셨다.  우리도 진리와 비진리, 영과 육을 갈라놓아야 영이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을 얻게 된다.

각기 종류대로 하나님은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풀도 종류대로, 채소도 종류대로, 열매 맺는 과목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종류대로 취급하시고 관리하시는 분이시다.  성도들도 모든 것을 종류대로 바로 알고 종류대로 갈라놓고 바로 취급하고 바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갈 수 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는 ①피조물이 하나님의 선하신 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② 피조물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③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④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피조물을 이용하여 성취하시겠기 때문이다.

 

五. 제 4일의 창조(일월성신)(14-19)

 

. 1:14-16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첫째 날 창조한 빛을 가지고 분리하여 이것들을 창조하신 것이다.  빛을 분리시켜서 큰 빛으로 태양을 만드시고, 작은 빛으로 달과 별들을 만드신 것이다.  이로 인해서 주야가 생기고 춘하추동 사시(四時)와 연한(年限)이 생겼으며 모든 초목과 생물들이 살고 자라나게 하셨다.  빛은 실로 귀중한 것이요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을 갈라서 각기 자기 위치에 있게 하고 자기 본분을 다하게 할 때에 주야와 연한과 사시가 생겨서 모든 것이 살게 되고 자라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신령한 세계에서는 그리스도가 참 빛이시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빛이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각각 자기 위치에서 자기 본분을 다할 때에 좋은 때가 오고 좋은 일이 생기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고, 소생하며 창성하여 나아간다.

 

. 1:17-19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일월 성신을 하늘의 궁창에 두었다는 말이다.

 

六. 제 5일의 창조(조류와 어류)(20-23)

 

. 1:20-23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다섯째 날에는 하나님께서 물고기와 새를 창조했다.  물고기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창조하여 그것들이 물에서 살며, 번성케 하시고, 새를 창조하여 하늘의 궁창에 날게 하셨다.  2:19에 보면 각종 들짐승과 새는 다 흙으로 만드셨다고 했다.  모든 것을 각각 종류대로 창조했고, 종류대로 모여 살게 했고, 종류대로 번성하게 했다.  사람들도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끼리 살게 하였고 한반도는 한국 사람에게 주었다.  가나안 땅은 유대인에게 주었고, 거기서 유대인은 유대인끼리 살게 했다.  아프리카는 흑인들에게 주었고, 거기서 흑인들끼리 살게 만들어 놓았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 거주의 한계도 정해 주셨다(행17:26).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든 것을 구별하여 생명을 유지하여 살도록 한 것처럼 진리 면에서는 같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끼리 교회를 세워야 되고, 진리가 같은 교회들이 연합하여 교단을 세워야 된다.  그리하여야 그 진리대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고 그 진리를 발전시켜 나갈 수가 있다.  바로 깨달은 진리대로, 교회와 신학교를 세워 그 진리를 발전시켜 나아가야 후대까지도 그 진리가 계승되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바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진리가 맞지 않는 다른  교단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 이유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깨달은 참된 진리를 세워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七. 제 6일의 창조(동물과 사람)(24-31)

 

. 1:24-25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창조하시고, 또 사람을 창조하셨다.  땅의 모든 생물과 짐승과 공중의 새가 다 흙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했으나 그 원료는 흙을 사용하셨다(2:19).  생물의 히브리 원어    (네페쉬 카야)는\"생명 있는 자\"라는 뜻이다.  이것은 모든 생명 있는 것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육축이란 소, 말, 개, 닭, 돼지, 양 등 가정에서 기르는 가축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날에 모든 짐승의 종류를 다 창조하시고, 그 종류대로 번식하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므로 번식할 때에는 종류의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사람은 사람대로, 원숭이는 원숭이대로, 개는 개대로 번식한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법은 없다.  19세기의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20세기에 와서는 다윈의 진화론이 잘못되었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예를 들면 사람과 동물과 식물들은 모두 염색체(染色體)를 가지고 있는데 염색체란 염기성 색소에 잘 염색되고 세포핵(細胞核)이 유사분열(有絲分裂)을 할 때 핵(核)속에 나타나는 실 모양의 것이다.  그 염색체는 생물의 종류에 따라 그 수(數)와 행동이 다르며 유전과 성(性)을 결정하는데 중대한 요인이 된다.  사람의 체염색체(體染色體) 수는 46이고, 원숭이의 염색체 수는 54이고, 말은 38, 개는 78, 고양이는 36이다.  아무리 많은 세대를 거친다고 해도 이 염색체 수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없고 고양이가 개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수백 대, 수천 대를 내려가도 내내 그 염색체 수는 변하지 않는다.  염색체의 변화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진화론을 주장하며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만약 진화론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지금도 원숭이가 변해서 사람이 되는 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물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사람과 짐승을 각 종류대로 낸 것이다.  한가지 실례로 암 말과 숫당나귀를 교미시켜 새끼를 낳으면 노새를 낳는데 그 노새는 새끼를 낳지 못한다.  노새가 자꾸 새끼를 낳아야 종자의 변화가 생기는데 노새가 새끼를 낳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노새의 대가 끝나는 것이다.  이것도 종의 변화가 없다는 증거이다.

 

.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말한다.  삼위의 하나님이 서로 의논하여 사람을 만드셨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영적 형상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속성을 말한다.  하나님께는 12 속성이 있는데, 특수한 속성 4가지와 보편적인 속성 8가지가 있다. 특수한 속성은 ① 독립성 ② 불변성 ③ 무한성(완전성) ④ 단일성이고, 보편적 속성은 ①지식 ②지혜 ③ 선 ④ 사랑 ⑤ 거룩 ⑥ 의 ⑦ 진실 ⑧ 주권(능력)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속성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원형이고 사람은 모형이다.  그러므로 사람 안에 내주 하셔서 당신을 다 나타내 보일 수 있고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갈 수가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당신을 다 나타낼 수 있고, 사람은 원형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독립된 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닮아갈 수가 있다.

 

.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영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육체는 흙으로 창조하여 영과 합하여 사람이 되게 하셨다.  여자는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서 창조하셨다(2:21-22).

 

.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천지만물은 하나님 자신의 계시와 사람을 위해서 창조했고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육과 번성의 축복을 주시고,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  이는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그 권세를 사용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을 때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사람의 주관을 받고 다스림을 잘 받게 되어 있었으나 사람이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릴 때에 만물이 사람을 불복종하고 멀리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면 만물이 그 사람에게 다시 복종하게 되고 그 사람은 만물을 정복하게 되며, 다스리고 주장하게 된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면 만물이 따라오게 되고 그의 주장과 다스림을 잘 받게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을 따라가면 곧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요, 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것이요, 그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되므로 만물이 즐거워서 복종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해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고, 만물은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 돌아가고 영광을 돌린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아가려면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 멀리 떠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와 신령한 교통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신앙 인격을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 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처음에 주신 식물은 모든 채소와 과일이었다.  즉 채식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도록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육식을 허락하신 것은 노아 홍수 이후이다(9:1-3).

 

. 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짐승과 새들에게는 푸른 풀을 식물로 주었다.  짐승들과 새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은 인간이 타락한 후 그것들이 악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천년 왕국 시대에는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놀며 어린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다(사 11:8-9; 65:25).  그것이 에덴동산의 회복이다.

 

.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지하신 지혜와 전능하신 능력으로 천지와 만물과 인생을 다 창조하셨으므로 모든 것이 완전하고 아름다웠다.  참으로 천지와 만물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대로 움직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대로 사용될 때 더욱 아름답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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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2장

제 2 장  에 덴.

 

(대  지)

一. 제 칠 일 안식일(1-3)

二. 천지와 인간 창조에 대한 대략(4-7)

三. 에덴 동산 창설(8-15)

四. 각종 나무와 선악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16-17)

五. 여자 장조(18-25)

 

(본문 강해)

   

一. 제 칠 일 안식일(1-3)

 

.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1장에서는 천지와 만물 창조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했고, 본 장에서는 그 창조의 내용을 다시 약술하며, 안식일과 에덴동산 창설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 2:2-3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셨고, 그 날을 사람에게 안식일로 정해 주셨다.  그러므로 이 날은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요, 하나님이 복 주시는 날이다.  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육신의 안식과 영적 안식을 주신 날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안식일에 육신의 모든 일을 쉬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영적 안식을 누려야 한다.  이 날에 세상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안식일을 범하는 큰 죄가 된다.

십계명 중 제 사 계명은 안식일에 대한 계명인데, 이 사 계명이 십계명, 가운데 중심 계명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성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날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령한 은사를 주시는 복된 날이요, 또 하나님과 더불어 즐거워하면서 영적 안식을 누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날에 받은 은혜와 말씀을 가지고 한 주간 동안 믿음으로 살아나가야 한다.  성도가 안식일에 영적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의 말씀(영의 양식 )을 받아먹는 것은 마치 자동차가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공급받는 것과 같다.  구약 시대에 제 칠 일(토요일) 안식일이 신약 시대에는 이레 중 첫 날(주일)로 바뀌었다.  히브리서 7:18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했고, 히브리서 4:7에는 하나님께서 다른 날을 정하였다고 하였다.  안식일을 주일날로 정한 이유는 이 날에 예수께서 부활하여 성도들에게 안식을 주셨고, 성부께서 주일날에 계시의 말씀을 주셨고(계 1:10), 성령께서 강림하셨고(행 2:1-3), 초대 교회 때부터 사도들이 주일을 지켰기 때문이다(행 20:7; 고전 16:2).  이사야 58:13-14에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될 젓과 해야 될 것을 말씀하셨다.  ※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될 것은

① 자기 발을 금하고, 자기 길로 행치 말아야 한다.  이것은 세상일을 하거나 사사로운 일을 하기 위해 돌아다니지 말라는 뜻이다:

② 오락을 행치 말아야 한다.

③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개인 문제라도 신앙에 관계되는 것을 의논하는 것은 괜찮다.

※ 안식일에 해야 될 것은

① 안식일을 즐거워해야 된다.  즐거운 안식일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면 말씀에서 새 생명을 얻어 성도의 영이 소생하므로 참으로 즐거운 세계에서 살게 된다.

② 안식일을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  안식일은 사람의 날이 아니고 여호와의 날이므로 존귀한 날이다.  또, 하나님을 만나고 영의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고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날이다.  성도가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이고,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하고, 야곱의 업(業)으로 그 사람을 기른다고 하였다(사58:14).

 

二. 천지와 인간 창조에 대한 대략(4-7)

 

. 2:4-6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천지 창조에 대하여 1장에서 상술(詳述)했으므로, 본 장에서는 그 창조에 대하여 총론적으로 다시 한번 약술(略述)하며, 보충 설명을 하고 에덴동산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흙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신은 흙으로 말미암았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전 3:20).  그러나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1:27)된  영적 존재이므로 영존한다.  사람이 죽으면 구속받은 성도는 그 영이 하늘 나라로 가고(전 3:21), 죄인들은 그 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가서 영벌을 받는다(마 25:46).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이것은 사람의 영을 불어넣었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진리와 영감을 사람에게 불어넣어서 영적 생명을 살려 놓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20:22에 예수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호흡이 성령이 아니고, 예수께서 진리와 성령으로 예수 자신과 성도들을 연결시켜서 영적 생명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5:45에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예수)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도 예수님이 진리와 영감으로 성도를 연결시켜 영을 살려 주어 산 영(중생)이 되게 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만약 여기 불어넣은 것이 영혼이라고 하면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속에서 나온 것이 되므로 유출설(流出說)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 속에서 유출된 것이 아니고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여기 불어넣은 생기는 진리와 영감으로 해석해야 옳다.

생령의 히브리원어    (네페쉬카야)는 \"생명 있는 자\" 라는 뜻인데 이 말이 짐승과 육축에게도 사용되었다(1:24).  이 말을 영이라고 하면, 짐승들도 영이 있다고 해야 되고 짐승이 죽게 되면 영도 죽는다고 해야 된다. : 그러므로 이 생령은 단지 생명 있는 자로만 보아야 된다.  사람이 진리와 영감을 받았으므로 생명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짐승들은 육체의 생명이 있는 자라는 뜻이고, 사람에게는 영적 생명이 있는 자(생기를 불어넣었으므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람의 생명(생령)이나 짐승의 생명(생령)이 히브리 원어로 볼 때 같은 말이므로(    네페쉬카야 ) 짐승의 생명이 죽을 때에 없어지는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그 영도 역시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악독한 이단설이다.  짐승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은 육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고,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영이 산 것을 말한다.

 

三. 에덴 동산 창설(8-15)

   

.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그곳에서 살게 하셨다.

동산의 히브리원어  (깐)는 정원, 큰 과수원, 낙원을 가리킨다.  이 에덴 동산은 창조 당시의 낙원이요 죄와 사망이 없는 곳이었다.  그 에덴동산은 이 지구상에 있었는데, 사람이 범죄함으로 그 동산을 상실했다.  지금은 그 자취를 알 수 없고, 다만 성도들의 영적인 에덴 동산(낙원)이 있을 뿐이다.  영적 에덴 동산(낙원)이란 성도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 말씀이 이루어져 나가며,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하는 그 세계가 에덴 동산이다.

 

.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에덴 동산에는 세 가지 나무가 있었는데  

첫째,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가 많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주어 그 아름다움을 누리고 먹을 수 있게 하셨다.  그 나무는 영적 생명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나무였다.  그것은 일반 은총(자연은총)의 상징으로서 실제 있었던 과수(果樹)였다.  그러나 그것들이 아무리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것이라고 해도 적당하게 먹어야 된다.  먹을 것 풍성하다고 하여 지나치게 섭취하면 잘못된다.  모든 것을 분수에 맞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자연 은총을 많이 주셨으나 그것들을 욕심으로 지나치게 취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허락한 분량만큼 적당하게 취하고 믿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생명나무가 있었다.  이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실지로 있었던 나무였다.  그런데, 아담이 이 생명나무 따먹기 전에 범죄 하였으므로 에덴 동산에서 축출 당하고 말았다(3:23).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영원한 생명이시다(요일 1:2).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믿음으로 받는다(요 11:28).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믿음으로 먹는다(요 6:54, 55).  그러므로 믿는 자는 생명나무에 접붙인 자들이다.  성도들 그 생명나무의 진액을 받아 열매를 맺어야 된다.

셋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 실과는 먹지 말라고 금하셨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 하나님의 금단(禁斷)의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이 선악과를 내신 목적은 ① 이 동산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② 이 동산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사는 동산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③ 다른 나무들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기 위함이고, ④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늘 기억시켜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상 네 가지가 선악과를 내신 목적인 동시에 십일조의 근원이 된다(14:20 참조).  그러므로 선악과는 사람에게 복 주려고 낸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이 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이 명령을 거역하면 죽는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취하지 말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성도들은 잘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사람이 하면 범죄하는 것이니 그 때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게 되고 영적 낙원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삼가 조심하여 계명을 잘 지켜야 된다.  그리고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하고 발견하여, 그 생명에 참여하여 영이 날마다 창성해 나가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 2: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강의 근원은 에덴 동산이며, 강물이 흘러 에덴 동산을 다 적시고, 동산 밖 사방으로 흘러가서 온 땅을 소성(蘇醒)시켰다.  강 생명의 역사의 상징으로 실제 있었던 강이다.  신령한 뜻은 생명의 역사를 가리킨다.  요한복음 7:38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요한복음 4:14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다.  이 생명강은 에덴에서부터 발원(發源)하여 네 강이 되어 사방으로 흘러 나갔는데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령한 에덴 동산) 곳에서부터 생명의 역사가 흘러 사방으로 퍼져 나갈 것을 가리킨다.  이 강물은 생명들을 살려나가는 일을 한다.

 

. 2: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이다.  비손은 \"창일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심령에 낙원(에덴)을 소유한 성도는 그 생명의 역사가 창일하게(넘치게) 흘러 나갈 것을 가리킨다.  그 생명의 역사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 강을 막으면 넘치고, 또 막으면 또 넘쳐서 생명의 역사가 힘있게 계속 흘러 나간다.  로마의 네로 황제가 무자비하게 기독교를 박해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막으려 했으나 결국 막지 못하였고, 그밖에 여러 세상 나라들이 그리스도의 생명 운동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막을 수 없었다.  이렇게 생명의 역사는 끊이지 않고 계속 흘러 나간다.  이 생명의 역사는 전진하고 또 전진하며, 이기고 또 이기게 된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끊임없이 하여야 생명의 역사가 항상 있고 넘쳐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흘러 나가 많은 사람을 살려 나갈 수가 있다.  \"하윌라\"는 \"모래 땅\", \"모래언덕\"이란 뜻이 있다.

 

. 2:12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베델리엄의 뜻은 \"진주\"이다.  호마노는 보석의 일종이다.  비손강이 흘러 나가는 곳은 금도 있고 진주도 있고 보석(호마노)도 있다.  영적 낙원(에덴)에서 사는 성도에게는 신령한 복과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이 가득하다.  학개 2:8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고 했다.  성도 속에서 생명의 강이 창일하게 흘러 내려가면 금은과 보석같이 귀한 것을 하나님이 다 주신다.

 

. 2: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다.  기혼은 \"유출(流出)\", 즉 \"흘러나간다\"는 뜻이다.  성도의 속에 있는 생명의 역사가 밖으로 흘러 나간다는 것이다(요 7:38, 4:14).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가만히 있지 않고 반드시 흘러 나가게 되어 있다.  흐르고 흘러서 먼데까지 퍼져 나가게 되어 있다.

 

. 2: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다.  힛데겔은 \"급류(急流)\"라는 뜻이다.  성도 속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는 급히 흘러나간다.  그 생명수가 계속해서 많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급히 흘러나가지 않을 수 없다.

넷째 강의 이름은 \"유브라데\"이다.  유브라데는 \"감미(甘味)\"라는 뜻이다.  성도 속에 있는 생명의 역사는 단맛이 있으며 꿀과 꿀 송이보다 더 달다(시 19:10).  사람들이 이 생명 강수의 맛을 보면 너무 달고 너무 좋아서 생명 강을 떠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부지런히 나눠주려고 한다.  낙원에서 흐르는 생명의 역사는 달고 급하고 창일하게 흘러 나가서 만민을 소성케 한다.  이 물이 적시는 곳은 모두 에덴 동산이 되어 낙원이 점점 확장되어 나간다.

 

.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  이것은 성도가 영적 낙원 생활을 함에 있어서 그것을 잘 다스리며 지키지 않으면 안될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좋은 에덴 동산이라도 다스리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고 마귀에게 빼앗긴다.  에덴 동산을 다스리는 법은 ① 사람과 만물을 자기 위치에 있게 해야 한다.  제 위치에서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②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이다.  ③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대로 실현되어 나가는 곳이다.  ④ 자기직분과 자기의 책임을 감당해 나가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각기 자기의 사명과 직책을 다해 나가는 나라이다.  하나님이 사람과 만물을 다스리는데 사람을 시켜서 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만물에게 미치도록 해야 한다.

또 에덴 동산을 지키는 방법은 ① 성도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것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② 마음을 잘 지켜야 된다.  마음이 하나님의 인도만 받고 다른 곳에 가지 못하도록 항상 지켜야한다.  잠언4:23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다.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생명의 근원이 된다.  마음을 붙들어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것이 에덴 동산을 지키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가 방심 부주의 할 때 마귀가 미혹했다.  ③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만 위하여야 한다.  하나님 이외(以外)에 다른 것이 주인이 되거나 다른 것을 위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잃어버리게 된다.  ④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말씀에 위반되는. 세력이나 행동을 배격해야 한다.  이와 같이 성도가 에덴 동산을 잘 다스리고 잘 지켜 나가야 낙원이 계속 유지되고 거기서 생명 강수가 사방으로 흘러 나가 만민과 만물을 소성 시켜 나가게 된다.

 

四. 각종 나무와 선악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16-17)

 

.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도록 허락하셨다.  이 실과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의 실과이다(9절).  이것은 자연 은총을 가리키는데 그것들을 임의로 먹을 수 있으나 각자의 분량대로 적당하게 먹어야 된다.  또 생명나무의 실과도 먹을 수 있게 허락하셨다. 생명나무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에게 참여케 하여 영생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기 전에 범죄하여 쫓겨났다.

 

.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지로 있었던 나무인데 그 당시의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이요 후대의 모든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을 범하면 반드시 죽게 된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를 경외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살게 하신 것이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 즉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금하신 명령을 범한 자는 반드시 죽는다.  우리가 범한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기독 신자가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면 생명의 역사가 죽어 흑암을 만나고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된다.

 

五. 여자 창조(18-25)

 

.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면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성도간의 교제도 즐거운 것이요 큰 위로가 된다.  시편16:3에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했다(빌2:1-3 참조).  그러므로 사람에게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  물론 신앙적인 일을 돕는 배필이어야 한다(빌2:22; 4:3; 몬1:13 참조).  독신으로 사는 사람도 믿음의 동역자가 필요하다.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언제나 돕는 위치를 지켜서 돕는 일을 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마음 구조를 돕는 일 하기에 알맞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남자를 앞세우고 자기는 돕는 일을 하여야만 모든 일이 잘된다.

그러나 여자가 주장을 하면 거꾸로 되어 모든 일이 잘 되지 않는다.  이 성경 말씀은 또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도와 나가야 자기도 잘 되고 모든 일이 잘 된다는 의미도 있다.

 

. 2:19-20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므로 신령한 지혜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 지혜로써 각 생물을 하나님이 지으신 그대로, 그 상태대로 적합하게 이름을 지을 수 있었다.

아담은 히브리 원어로  (아담)이며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담이나 사람이나 원어 상으로는 같은 말이다.  아담이 각 생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줄 때에는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지어 준 것이 아니고 각 생물들의 모양과 성격 상태를 따라 그것들에게 알맞은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실 때에 그 사람들의 모든 상태 곧 신앙·성품·인격을 따라서 시몬에게는 \"베드로\"라고 했고,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주셨다.  신령한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신앙상태나 인격을 따라 거기에 합당하게 알아주시고 취급해 주시고 사용하신다는 것이요 또 성도가 사람들과 만물을 바로 알고 바로 취급하고 바로 이용하며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려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 2:21-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깊이 잠들게 하시니 보통 잠이 아니고 깊은 잠을 가리키는데 수술할 때에 마취시킨 것과 비슷한 잠이었다.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이유는 ① 여자를 남자의 일부분으로 만들어 보필하게 하기 위함이요, ② 부부가 한 몸을 이루게 하기 위함이요, ③ 부부를 동등으로 하기 위함이다.  만일 팔이나 다리뼈로 지었으면 동등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④ 여자를 벼 중의 뼈로, 살 중의 살로 여겨 사랑하라는 것이요(엡 5:25 참조), ⑤ 여자는 남자를 순종하며 경외하라는 것이다(엡 5:33),  여자라 칭하리라 여자의 히브리 원어 (잇샤)는 그 어원 이 남자에게서 나온 말인데 남자와 상대되는 여성을 가리킨다.  

 

.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와 여자는 육신의 부모를 떠나서 하나님이 지어준 짝과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몸이 하나가 될 뿐 아니라 마음도 하나가 되어야 된다.  마음이 하나가 되려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된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빌립보서 2:5-8에 있다.  또 영의 일치가 되어야 한다.  영의 일치는 부부가 같은 신앙을 가지고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같이 기도 생활을 하여야 한다.  이상 세 가지가 하나가 되어야 참으로 이상적인 부부가 되는 것이다.  우리 성도는 육신적인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일치가 되어야 한다.

 

. 2: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만 알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고 하나님만 위해서 살며 다른 사람이나 자기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충만히 임재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벗었으나 부끄러운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이 참으로 에덴 동산 생활이요 복된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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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3장

제 3 장  타 락

 

(대  지)

一. 인류의 타락(1-6)

二.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심(7-10)

三.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약속(11-21)

四. 범죄한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남(22-24)

 

(본문 강해)

 

一. 인류의 타락(1-6)

 

.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표면적으로는, 사람이 뱀의 유혹을 받아 타락하였으나 이면적으로는, 마귀가 뱀을 이용하여 미혹하므로 타락하게 되었다.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하나님께서 뱀을 지으실 때에 간교하게 지은 것이 아니다.  디모데전서 4:4에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하였다.  또 1:31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뱀을 간교하게 지으셨을 리가 만무하다.  간교한 것은 순진하지 못하고, 사사로운 지혜와 정의롭지 못한 꾀를 쓰는 것이니, 그것이 마귀에게서 온 것이 분명하다.  간교한 마귀가 뱀을 이용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이간시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하여 생명에서 떠나게 하였다.  마귀는 이와 같이 짐승도 이용하고, 사람도 이용한다.  그리하여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원수 된 사람까지 이용하여 성도를 하나님과 생명의 말씀에서 떠나도록 궤계(詭計)를 꾸민다.  뱀이 여자에게 말한 첫 마디가 \"하나님이 참으로……\"라고 하였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도 참되지 못한 면이 있는 것처럼 의심나게 하는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지 못한 것처럼 미혹하는 말이다.  이와 같이 마귀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의심나게 하며 하나님과 인간을 이간시키고자 미혹하는 것이다.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말은 사람을 격동시켜 하나님께 반항하는 마음을 갖도록 선동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처럼 뱀(마귀)이 불평하는 말투로 말한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신뢰감과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도록 충동시켜 그 말씀을 떠나게 하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은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게 하여 사람을 괴롭게 하는 하나님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마귀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2:17)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오직 \'먹지 말라\'고 한 말씀만 가지고 사람을 격동시키고, 하나님과 이간시키려고 하였다.

마귀는 성경 말씀을 앞뒤는 떼어놓고 일부만 이용하여 원 뜻을 왜곡시켜 사람을 미혹한다.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이용하여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처럼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하거나 감하는 것은 큰 죄이다(신 4:2; 12:32; 계 22:18-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믿고 따라가야 마귀의 미혹에 빠지지 않는다.

뱀이 간교하게 된 것과 사탄의 이용물이 되어 자기 위치를 떠난 것을 깨달을 만한 지혜가 아담과 하와에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와가 깨닫지 못한 것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 양심을 떠나 방심 부주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도가 언제나 방심 부주의하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마귀의 미혹을 받는다.  누구나 간교하게 되고 자기 위치를 떠났으면 그는 마귀의 이용물이 된줄 알고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하와가 마귀의 종이 된 뱀과 대화함으로 미혹을 받게 되었다.  성도가 신앙과 진리 문제에 대해서는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와는 대화하면 안 된다.

 

. 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하나님 말씀에는 \"임의로 먹으라\"고 하셨으나(2:16)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라고 답변한 것은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약화시키고 변질시킨 것이다.  하와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약해졌다.

 

.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와가 뱀에게 두 번째 말한 내용이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하나님께서는 그 나무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말씀하셨으나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고쳐서 애매하게 말한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으나(2:17) 하와는 이 말씀을 고쳐서 \"죽을까 하노라\"고 하였다.  하와는 심중에 벌써 선악에 대한 관념이 없어졌고, 정녕 죽는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있었다.  하와가 이렇게 된 것은 에덴 동산의 좋은 것에만 도취되어 방심부주의 하고 말씀으로 생명을 삼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도가 일반 은총(자연 은총)이 풍성할 때에 세상의 것에 도취되고 방심 부주의하면 말씀을 떠나게 되고, 마귀에게 속는다.  그러므로 환난과 궁핍도 은혜와 복으로 주시는 줄 알아야 한다.  하와는 선악에 대한 관념이 희박해졌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관념도 희박해졌다.  하와가 믿음에서 떠나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서 떠났으므로 뱀이 찾아왔고, 미혹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에 하와가 전심전력을 기울여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여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동산을 잘 다스리고 지켰더라면 뱀이 들어올 수도 없고 만일 들어왔다고 해도 즉시 분별하고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을 시험에 들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시험에 드는 것이다.  아가4:12에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라고 하였다.  성도는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처럼 외부의 잘못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러워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빼앗기게 된다.

 

.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확신이 없는 것을 보고, 마귀는 더욱 적극적으로 미혹하여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다.  성경 말씀을 변경시키거나 뒤집어 놓는 것이 마귀의 역사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어 놓아도 하와가 깨닫지 못하였다.

이것이 하와가 깊이 잠든 증거이다.  요한복음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마귀의 독소가 뱀을 통하여 하와에게 들어오자 하나님의 말씀이 다 가리워 졌고, 하와는 뱀의 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는 마귀의 말에 사로잡히게 된다.

 

.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마귀가 하와를 또 다시 미혹시키는 말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진다고 하였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다음 눈이 밝아졌다.  이것은 자기를 위하는 눈이 밝아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 곧 악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과 같이 자기에게 맞는 것은 선이요,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악이라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22절 강해 참조).  다시 말하면 하나님 표준으로 살던 사람에게 자기 표준대로 살라는 것이요, 하나님을 위하여 살던 자에게 자기를 위하여 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큰 미혹이요 죄악의 큰 함정이다.

 

.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는 마귀의 미혹을 알지 못하고 그 마귀의 말을 받아들였다.  자기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마귀의 말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와가 뱀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하와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있었다면 자기가 감히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그 말이 얼마나 패역하고 참람된 말인가를 깨닫고 사탄의 미혹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그 말을 좋게 여겨 귀담아 듣고 있었으니 미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도 옳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과 대화하며, 그 말을 받아들이면 미혹을 받아 죄에 빠지게 된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보니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였다.  먹으면 죽을 것처럼 보여야 할 터인데 좋게 보여진 것은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 신앙에서 떠나 욕심으로 기울어진 증거이다.  먹음직해 보인 것은 물욕이며, 보암직해 보인 것은 정욕이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인 것은 사욕이다.  마귀는 언제나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가지고 사람을 미혹한다(요일 2:16).  마귀는 이 욕심을 가지고 예수님까지도 시험하였다.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은 물욕의 시험이며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받들어 주리라\"는 것은 명예욕에 대한 시험이요, \"절하면 천하 만국의 영광을 다 주겠다\"는 것은 사욕의 시험이었다.  마귀는 오늘날에도 사람 속에 있는 이 욕심을 통하여 사람을 미혹하고 타락시킨다.  그러므로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들지 않으려면 모든 욕심을 버리고 신앙 양심을 써서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하와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 마침내 금단의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 남편에게도 그 실과를 주어 먹게 하였다.  아마 아담이 잠시 없는 사이에  하와가 먼저 그 실과를 먹고 그 후에 아담이 왔을 때 실과를 주어 먹게 한 것 같다.

하와가 권하는 열매를 아담이 먹은 것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호주로서 자기의 책임을 바로 하지 못하고, 동산을 다스리지 못한 처사이다.  아담이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었더라면 아내가 권할 때에 그 실과가 무슨 실과인지 알아보고 그 일을 책망하고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하나님께서 하와만 죽이고 또 다른 배필을 주셨을 것이고 또는 하와의 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었다.  민수기 30:8에 \"그러나 그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고 경솔히 입술에서 발한 서약이 무효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아내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도 남편이 그에 동의하지 않고, 말씀대로 바로 걸어가면 아내를 바로 세울 수 있다.  반대로 남편이 잘못 나아갈 때에도 아내가 진리에 굳게 서서 바로 나아가면 남편을 구원할 수 있다(벧전 3:1; 고전 7:16).   그러므로 믿음의 호주가 신앙에 바로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믿음의 호주가 말씀에 바로 서서 나아가면 그 가정을 바로 세울 수가 있고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호주가 진리에 바로 서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치 않은 것을 따라가면 낙원을 빼앗기고, 모든 신령한 복을 다 빼앗기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된다.  2:16-17에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대표자 아담과 맺은 행위 계약이다.

행위 계약의 당사자는 하나님과 아담이요, 그 계약의 약속은 \"생명\"이다.  즉 먹지 말라는 계약을 지키면 산다는 것이다.  아담이 이 계약을 지켰다면 그와 그 후손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이 계약을 어겼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고 전 인류에겐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다.

※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내지 않았다면 인간이 범죄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저주도 임하지 않았을 텐데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내셨는가?  그 이유는  

①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선악과를 내셨다.  선악과가 없으면 먼 장래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도, 섬겨야 되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고, 에덴 동산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 동산과 먹을 과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경외하는 신앙을 갖게 된다.

② 금단의 명령을 지킴으로 영혼이 자라나게 하시려고 선악과를 내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 영혼이 자라난다.

※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내실 때에 아담과 하와가 그것을 따먹을 줄 아셨는가 아니면 모르셨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이 다 아셨다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고 내셨다면 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의 타락이 하나님의 예정에 들어있다(엡 1:3).  하나님이 인류 타락을 예정하신 목적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인류에게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해주시고 더욱 큰 은사를 주시기 위함이다.

※ 타락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가 무엇인가?

①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에덴 동산에서 쫓겨남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게 해 주셨다.

② 타락한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피 흘려 구속해 주시므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알게 해 주셨다.

③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타락 전에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4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일치가 되게 해 주셨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게 해주셨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성도는 그 가지로서 생명이 연합되었다.  성도는 이제 영원히 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  그러나 범죄하기 전 아담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지 못했고 죽을 수 있는 영혼이었으며.  범죄할 때에 그 영혼이 죽었다.  이상 네 가지 은사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성도에게 주신 복이다.  그러나 불택자는 영원히 지옥에 가야한다.  불택자는 본래 마귀에게 속했고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에 제 곳으로 갈 것뿐이다(요 8:44; 6:70). 디모데전서 4:4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하셨으므로 선악과도 선한 목적으로 내셨으며 나무자체는 선한 나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도 성도의 영이 자라나게 하며 유익되고 복이 되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이다.

 

二.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심(7-10)

 

.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의 눈이 밝아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졌다.  이것은 자기를 위하는 눈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이들이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좋아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으로만 즐거워하였으므로 자기가 보이지 않았고, 전연 자기 위할 줄 몰랐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벗은 줄도 모르는 항상 낙원생활이었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임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는 자기를 위하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만을 위하던 생활에서 자기를 위하는 생활로 돌아섰다.  그러므로 자기들의 몸이 벗은 것도 발견되었다.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할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에 거하므로 전부가 영광스러웠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자기 위하는 눈이 밝아진 다음에 자기를 보니 얼마나 보잘것없고 수치스럽고 추한 몸인가를 알게 되었고, 그 몸을 가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물질을 가지고 자기들의 수치를 가리워 보려고 한 것이다.  그것이 사람 보기에는 가리운 것 같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수치가 가려지지 않았다.  성도들도 믿음으로 살 때는 외모를 꾸미거나 단장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진리로 기뻐하는 생활을 하며 항상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 타락이 되면 외모를 꾸미고 사람 앞에 자기를 잘 보이려고 외식하기 시작한다.

 

. 3: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날이 서늘할 때에 그들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과 은총에서 떠났기 때문에 서늘해진 것이다.  이것은 쓸쓸하고 고독한 상태를 가리킨다.  은혜의 자리에서 완전히 떠났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 찬바람이 불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범죄하여 쓸쓸한 가운데 있는 그들을 사랑하여 구원하시려고 찾아가셨다.  그러나 그들은 나무 사이에 숨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의 영이 죽은 증거이다.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을 피할 줄로 안 자체가 그 영이 죽은 증거이다.  범죄한 즉시 그들의 영이 죽었고 자기들의 수치와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 했던 것이다.

동산 나무사이에 숨은지라 이것은 물질 가운데 숨으려고 한 것이다.  거기에 숨고 그것으로 살려고 한 것이다.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태는 이와 같다.  곧, 하나님보다 물질을 의뢰하고 그것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그것으로 자기 모든 수치를 가리우고 그것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한 후에는 물질이 있으면 살고 물질이 없으면 죽을 줄로 안다.  타락한 자들은 사는 것이 오직 물질에 있는 줄로 안다.

 

.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여호와 하나님이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을 찾아가서 \"아담아, 아담아\"하고 부르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이것은 삼위일체중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찾아가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음성으로 아담을 부르신 것이다.

여호와는 계약을 지키시며 그 계약대로 구원해 주시는 신이라는 뜻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것은 \"네가 왜 나를 떠나 물러갔느냐?…네가 어찌하여 거기 가서 숨었느냐?\", \"네 상태가 왜 그렇게 되었느냐?\", \"그 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러 왔으니 내 음성을 듣고 돌아 오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에도 범죄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인간(택자)을 이와 같이 부르시며 찾으신다.

 

.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범죄의 결과로 벗은 수치가 드러났고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구원하러 오셔서 부르시는데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로 오기를 주저하고 있다.  참으로 그리스도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마 9:13).

 

三.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약속(11-21)

 

. 3: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범죄의 결과로 벌거벗은 수치가 드러난 것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양심이 알고 하나님께서도 아신다.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을 범한 자는 다 이와 같다.

 

. 3:12-13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 대답은 책임을 전가하는 말이다.  아담은 자신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하와가 준 것을 먹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른 대답이 못된다.  아담에게는 여자가 주었어도 먹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먹지 않아야 옳다.  그런데 여자에게서 받아먹었으므로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어떤 이유든지 금단의 과실을 먹은 것은 죄이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내가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죄책을 하나님께 돌리며 원망하는 태도이다.  또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시켰다.  이는 하나님 앞에 악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책임을 자기가 질 줄 알아야 한다.  여자가 아무리 먹으라고 해도 자기가 먹지 않았으면 될 것이 아닌가!  또 하와는 뱀이 아무리 먹으라고 해도 자기가 안 먹었으면 될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계명을 범하고 죄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여 죄책을 면해 보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책임을 전가시키고 원망하는 것은 죄에 죄를 더하는 일이다.  비록 미혹을 받고 꾀임에 속아 시험에 넘어갔든지 환난과 핍박으로 넘어갔든지 그것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혹하는 자나 핍박하는 자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거나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불신앙의 태도요 죄에 죄를 더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모든 유혹과 시험과 환난을 이기고 영이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그 모든 것을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은사와 피할 수 있는 길(고전 10:13)을 주시고, 믿음만 쓰면 다 이길 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간 것은 전적으로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고 원망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전 10:10).

범죄하기 전에는 아담과 하와가 한 몸과 한 마음으로 낙원에서 살았으나 범죄하고 나니 서로 원망하고 소원(疎遠)해 졌다.  사람이 범죄하면 서로 멀어지고 만물과도 멀어진다.  그러나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 때에 한 마음과 한 뜻이 되고 만물도 가까워져서 바로 이용되게 된다.

 

.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나님께서 뱀에게는 심문을 하지 않고 직접 심판을 하셨다.  그 이유는 인격도 없고 하나님의 약속과 계명이 없기 때문이다.  

뱀이 받은 심판은

1 저주를 받았다.  하나님의 백성을 범죄케 한 자는 짐승이나 사람이나 다 저주와 앙화를 받는다(마 18:7).

2 배로 다니게 되었다.  다른 짐승들은 걸어다니거나 날아다니기도 하는데 뱀은 배로 다니게 되었으니 얼마나 그 처지가 비천하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백성을 범죄케 한 사람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처지가 비참하게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레미야 17:6에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땅,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했다.

3 흙을 먹게 되었다.  이것은 생활이 아주 곤궁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범죄케 한 사람도 그 생활 상태가 비참하고 곤궁 한데 빠져 사람이 가히 먹지 못할 것을 먹게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미 7:17).  탕자가 곤궁해져서 돼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게 된 것과 같다(눅 15:16).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어떤 사람은 이 성구를 해석하기를 뱀이 흙을 먹는다고 했으니 마귀가 흙으로 만든 사람의 육체에만 손해 주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영혼은 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아담 하와가 마귀의 미혹을 받아 범죄 할 때에 영과 육이 다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티끌을 핥는다는 뜻이다(미 7:17; 애 3:29; 시 72:5).  뱀이 \'이와 같이 사람을 타락시켜 범죄케 하였으므로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며 티끌을 핥는 비천한 짐승이 될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천사나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손해를 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비천한 처지로 전락되고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원수가 되게 하리니 범죄한 아담 부부는 뱀과 원수가 되었고, 서로 책임전가하며 멀어지고, 만물은 탄식하게 되었다(롬 8:22).  오늘날 우리도 범죄하면 이와 같은 결과가 온다.  여자의 후손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여자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오셔서 마귀의 머리를 깨뜨릴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복음이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마귀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십자가에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릴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류를 버리지 않고 찾아오시고 불러 주시고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마귀의 세력을 깨뜨리고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것이 복음이다.

 

.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죄한 여자에게 형벌을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해 주시되 공도(公道)로 징계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30:11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열방은 진멸한다 할지라도 너는 진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공도로 너를 정책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하나님께서 범죄한 여자에게 내린 벌이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 범죄했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범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받은 벌이 모든 사람에게 임한 것이다.  그로부터 모든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왔다.  짐승들은 고통 없이 새끼를 낳는데 인간만은 고통을 당하고야 해산을 하게 되었으니 죄 값으로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이 분명하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교훈은 성도가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만 영적 새 생명을 얻어 나아가고 영이 자라나게 될 것을 가리킨다(딤후 4:15 참조).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4:19에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했다.  이것은 성도가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만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새 생명이 자라난다는 뜻이다.  여자가 잉태하고 해산하면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 같이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 해산하는 수고를 함으로 새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영적 열매를 맺혀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쉽게 믿고자 하는 것은 해산의 수고 없이 자녀를 얻겠다는 것과 같다.  기도하는 일부터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한다.  교역자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하여 열매 맺는 성도가 되도록 해야겠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여자가 먼저 범죄한 것을 보아 여자보다 남자가 낫다.  사람은 자기보다 강하고 나은 사람을 사모하며 배우며 지도를 받아야 앞 길이 열린다.  성도가 신앙에 있어서 자기보다 진리 면과 영적 면이 앞선 사람을 사모하며 배우며 지도를 받아야 한다.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와가 먼저 범죄 했기 때문에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이 믿음이 연약하고 미혹을 잘 받는 자는 자기보다 믿음이 강하고 나은 자의 다스림을 받아야 된다.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다시 유혹에 빠져 아주 망하게 된다.

 

.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린 형벌로서 책임자가 아랫사람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일에 대한 형벌이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땅까지 저주를 받았다.  실로 책임자의 위치는 중요한 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고 사람이 땀을 흘리며 수고해야 겨우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여 가시와 엉겅퀴가 계속 나오게 하였으므로  사람이 많이 수고하며 그것을 제거해야 곡식과 채소가 자라나고 먹을 것을 얻게 되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성도가 피땀을 흘리며 죄와 더불어 싸우고 성경 연구와 기도와 말씀 순종을 하여야만 겨우 승리하며 영의 양식을 얻어먹을 수 있음을 가리킨다.  특히 교역자가 땀 흘려 수고하지 않으면 자기도 먹을 것이 없고 교인들에게 신령한 양식도 나눠 줄 수 없다.  일심전력을 기울이고 피땀을 흘려 기도하며, 성경을 배우고 연구하며 그대로 살기를 힘써야만 자기도 먹을 것을 얻어먹고 교인들에게 나눠 줄 수도 있다.  

흙으로 돌아가리니 이것은 육신이 죽을 것을 선언함이다.  육신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할 때에 영은 그 즉시 죽었다.  영이 죽은 증거는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은 것이다(8절).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을 피할 줄로 생각한 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영이 죽은 것이다.  그 후 육신도 죽었다(5:5).

 

. 3: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하와(    )는 \"생명\"이라는 뜻이다.  아담이 자기 아내를 하와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어 영적 생명이 살아났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것은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15절)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믿은 증거이다.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그리스도가 하와의 후손에서 나겠으며 그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모두 산 자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그리스도를 보내서 속죄의 죽음으로 죄인을 대속해 줄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짐승의 피를 흘려(희생시켜) 그 가죽옷을 입혀 주신 것이다.  그들이 범죄한 후에 무화과 잎을 엮어 가리운 것으로는 그 범죄의 수치를 가리우거나 죄책을 없애지 못했다.  또한 나무 사이에 숨은 것으로는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없었고 심판을 면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서 입혔다.  그 때에 그 모든 수치가 가리워 지고 그 죄가 사함을 받았다.  또한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 나갈 것을 가리킨다(롬13:14).

 

四. 범죄한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남(22-24)

 

. 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여기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어떻게 선악을 아시는가.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선이요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은 악이요, 하나님께 맞는 것은 선이요, 하나님께 맞지 않는 것은 악으로 아신다.  그런데 아담도 범죄한 후에는 자기에게 맞으면 선이고 맞지 않으면 악으로 알고, 자기를 위하는 것은 선이고, 자기를 반대하는 것은 악으로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는 말이다.  범죄하여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절대 선이신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처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교만이요 참람된 일이다.  이것이 원죄이며 모든 부패성 중에 이것이 제일 으뜸이 되는 죄이다.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생명 나무\"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이며 그 열매를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는 것을 가리킨다.  교만하여 하나님의 자리까지 올라온 그들이 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면 큰 문제이다.  그들이 징계를 받아 에덴에서 쫓겨나서 많은 고난을 받으며 회개를 하며 낮아져서 피조물의 자리, 종의 자리에 서야만 될 것이다.

 

.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들을 추방했다.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만 위하면서, 하나님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물질로만 살려고 하기 때문에 쫓겨났다.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하나님이 주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 실과를 먹지 못하게 되었고, 수고하며 땀을 흘려야만 겨우 먹고살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범죄하면 좋은 것을 빼앗기고 고난과 곤고가 오게 된다.

 

.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룹은 천사의 일종이고, 화염검은 말씀을 가리킨다.  범죄하면 낙원에서 쫓겨나는 동시에 거기에 다시 못 들어가도록 천사가 막고 하나님의 말씀이 막을 것을 가리킨다.  범죄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가책이 되어 영적 평안과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는 그 동산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으므로 지상의 에덴 동산은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적 낙원이 회복되게 하였고,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천년 왕국의 낙원을 회복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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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4장

제 4 장  가인과 아벨

 

(대  지)

一. 아담이 두 아들을 낳음(1-2)

二.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3-5)

三. 가인이 아벨을 죽임(6-8)

四. 하나님의 심판(9-15)

五. 죄악의 성장(16-24)

六. 신앙의 계대를 주심(25-26)

 

(본문 강해)

 

一. 아담이 두 아들을 낳음(1-2)

 

. 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여호와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자녀를 주셨다.  그 때에 그들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했다고 감사했다.  시편127:3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했다.  가인은 \"얻음\"이라는 뜻이다.

 

.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아벨은 \"공허(空虛)하다\"는 뜻이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서 아들을 낳고 아들에게 소망과 큰 기대를 가지고 가인(얻음)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 같다.  그러나 가인이 믿음으로 살지 않는 것을 보고, 그 아우를 낳고는 이름을 아벨(공허)이라고 지은 듯하다.  사람이 하나님께만 소망과 기대를 두어야지 사람에게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된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가 되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자가 되었다.  그 때부터 농사와 목축이 시작되었다.

 

二.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3-5)

 

. 4:3-4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은 자기가 농사한 농작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경우는 제물만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인격까지도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경우는 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그 인격까지 받으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합당한 제사를 드리면 그 사람까지 기쁘게 받으시고, 합당치 않은 제사를 드리면 그 사람까지 받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신 이유는    

① 아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아담이 범죄한 후 여호와께서 복음을 주셨고(3:15),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는데,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를 보내서 피를 흘려 구속해 주시고, 마귀의 세력을 깨뜨려 주실 것을 계시해 주신 것이다.  아담이 비록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했으나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피 흘려 희생하여 구원해 주신다고 하는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가인과 아벨에게도 그 말씀을 가르쳤을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아벨은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것이다.  

② 영적으로 제사를 드린 것이다.  히브리서 11:4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그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했다.  그 믿음이 곧 영적 믿음이다.  말씀에는 맞으나 영적 면이 없으면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가 되지 못한다.  이사야1:11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변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숫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다.  이사야 당시 사람들도 양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으나, 그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그 양의 피가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영적으로 믿지 않고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 제사는 진리와 영감이 합해져야 된다.  요한복음 4:23에 신령과 진정(진리)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를 하나님이 찾으신다고 했다.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  로마서 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다.  이러한 제사가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교통하면서 그의 말씀대로 드린 산 제사이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가 된다.

열납하셨으나 히브리서 11:4에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고 한 것을 보아 하나님이 열납 하신 것을 알 만한 외부적 증거가 나타난 것 같다.  그 제사로 인하여 아벨은 여호와께 인정받는 자가 되었고 큰 은혜를 받은 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아벨은 심령 속에 받은 그 은혜로 영이 소생함을 얻었고,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는 확실한 증거를 얻게 되었다.

 

. 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부모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생축의 피로 제사하는 것)을 순종치 않고 그저 자기의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면 될 줄 알고 농작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므로 받지 않으신 것이다.  제사에는 산 제사와 죽은 제사가 있는데 가인의 제사는 죽은 제사이고, 아벨의 제사는 산 제사이다.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기 제사를 받지 않으신데 대한 분노와, 동생 아벨에 대한 시기심으로 안색이 변했다.  안색이 변한 것은 마음속에 품은 분노와 동생을 미워함이 얼굴에까지 나타난 것이다.  이 때에 가인이 분노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찾아 회개할 기회로 알고 바로 섰더라면 복을 받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사를 왜 받지 않으셨는가를 자기 부모가 가르쳐 주신 말씀을 생각해 보거나 동생에게 물어 보았더라면 자신의 잘못됨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은 것을 보아 아벨이 드린 제사 방법대로 제사를 드렸더라면 하나님이 반드시 받으셨을 것이다.

가인이 이러한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분노하며 안색까지 변한 것은 그가 마귀의 충동을 받아 마귀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형으로서의 자존심과 교만에 사로잡혀 패망의 길로 걸어갔다.

 

三. 가인이 아벨을 죽임(6-8)

 

.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하나님께서 가인을 책망하셨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사랑하여 책망하신 것이다.  가인이 그 책망을 달게 받고 회개하였더라면 좋았을 뻔하였다.  에베소서 5:13에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고 했다.

 

.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낯을 들지 못하는 것은 선을 행치 않은 증거이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선에서 떠나면 죄와 마귀의 종이 된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마음 문에 엎드린다.  그러므로 성도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한다.  선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을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적극적으로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마음 문에 엎드려 있다가 기회를 타서 마음속에 들어와 범죄케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선한 마음을 가져야 되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하며, 선을 위해서 고난받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베드로전서 4:1에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라고 했다.  이것은 선을 행하기 위하여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죄가 조금 물러가고 선을 행할 때는 죄가 그쳐진다.  그러나 선을 행하지 않을 때 죄가 다시 들어오려고 한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죄가 좋아 보이고, 죄가 세력을 쓰고 죄 지을 소원이 네 속에 있다는 것이다.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제는 죄의 소원이 강해졌기 때문에 죄를 힘써 다스리지 않으면 죄를 범하게 되고, 죄의 종이 되게 된다.  죄를 다스리는 법은 죄와 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선을 행하면 죄가 점점 멀어진다.  이는 어두움을 물리치려면 어두움과 싸우지 말고 빛을 받아들이면 어두움이 저절로 물러가는 것과 같다.

 

. 4:8  가인의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이 하나님의 책망과 권고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나가므로  죄의 소원이 점점 커져서 아벨을 쳐죽이는 살인죄를 저질렀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가 점점 자라나서 다음 대(代)에 가서는 아들 가인이 의인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다.  의인이 악인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아벨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四. 하나님의 심판(9-15)

 

.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하신 것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죄를 뉘우치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찾아가신 것은 그 죄를 다스리시고, 범죄한 가인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기 위함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가인이 하나님께 거짓말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어주시려고 찾아가셨으나 가인은 오히려 거짓말을 하여 자기의 죄를 은폐시키고자 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이 하나님께 도리어 반발했다.  이것은 자기의 죄를 은폐하려고 반박(反駁)하는 언사이다.  이렇게 사람이 간악하여졌다.

 

. 4: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피가 소리내어 호소할 수 없다.  이 말씀은 야고보서5:4-6에 \"삯이 소리지르며\"하는 말과 같은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죄를 보시고 기억하시고 그 죄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을 하신다는 뜻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여서 피 흘린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기억하시어 그 피에 대해서 심판하시게 되었다.  아벨이 흘린 피는 의인의 피요 순교자의 피이다.  의로운자의 피와 순교자의 피를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고 기억하시고 그 피에 대하여 반드시 신원하신다.

히브리서 11:4에 아벨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오히려 말한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아벨이 순교 당했으나 산 제사를 드린 믿음, 생명있는 .믿음으로 오히려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아벨이 드린 제사가 참 제사이고 아벨의 믿음이 생명 있는 산 믿음이다.  그러한 제사를 하나님께서 열납하신다\"라고 세세토록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아벨의 제사가 산 제사요, 하나님께서 열납하는 제사요, 그 믿음이 참 믿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벨이 산 제사를 드린 까닭에 영혼이 자라나 천국에서 영광과 상급이 크고 그 의가 영원히 남아 있다.  또한, 가인이 지은 죄도 역시 없어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 되어서 반드시 심판하신다.  마태복음 23:35에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죄 값을 그 세대 사람에게 담당하도록 하신다.  이 역시 아벨의 피가 호소하는 결과이다.

 

. 4: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땅에서 피 흘린 죄 값을 땅에서 받게될 것을 가리킨다.  생명을 죽인 죄가 아주 큰 죄이다. 사람을 죽인 다음에는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다.  곧 그 생명을 다시 살릴 수 없다.

 

. 4: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사람이 범죄한즉 땅도 저주를 받고 사업에도 저주가 미친다.  그러므로 가인은 이리저리 떠돌며 유리하는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인과 같이 사람을 죽이는 자리에 서지 말고 언제나 사람을 살리는 자리에 서야 한다.  또한 실제 살인뿐만 아니라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다(요일3:15).  마태복음5:21-22에 예수께서 형제에게 노하고 \"라가\"라 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것은 살인한 죄와 같은 심판 받을 만한 죄라고 하였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든지 형제를 사랑하고 관용하고 용서해 주는 사람이 되어 항상 남을 살리는 자리에 서야겠다.  선으로써 악을 이기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 4:13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가인이 하나님의 벌을 두려워하였다.  죄는 두려움 없이 지으면서, 형벌은 두려워하는 것이 우매한 인간이다.  가인은 자기의 범한 죄에 대하여 회개하지 않고 그에 대한 형벌이 중하다고 불평을 하였다.  누구나 자기가 받는 고난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은 회개하지 않은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죄대로 다 벌하면 살 자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죄보다 가벼운 벌을 주시며 진노 중에도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다(합 3:2).

 

. 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사람이 범죄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그를 쫓아낸다.  그리하여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거친(저주받은)땅에서 살게 된다.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범죄한 가인에게 공포심이 들어왔다.  이와 같이 죄를 지으면 ① 징벌이 온다.  ②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환경을 다 빼앗기게 된다.  낙원이 쓸쓸한 곳으로 변하고 전에 좋던 곳이 찬바람 부는 비참한 곳이 된다.  ③ 공포심이 들어온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이 떠난 증거이다.  동생을 죽인 가인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죽이지나 아니할까 하고 항상 두려워하고 떨었다.  이것이 범죄자의 특징이다.

 

.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범죄한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가인에게 벌을 주셨으나 아주 멸망시키지 않으셨고. 또 다른 사람들이 가인을 죽이지 못하도록 해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  가인에게 표를 주사 무슨 표를 주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마 하나님이 용서해 주는 표, 하나님이 사랑해 주는 표를 이마에 나타나게 하여 가인을 만나서 얼굴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게 해주신 것 같다.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본문 내용으로 보아서는 부모인 아담과 하와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그 외에 어떤 사람이 또 있었기에 가인이 자기가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했는가?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 외에 또 있었던 것 같다.  성경의 내용은 구원 역사에 관계된 사건만 기록했으므로 구원 역사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여러 아들과 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제일 첫째 아들은 가인, 둘째 아들은 아벨이 분명하다.

 

五. 죄악의 성장(16-24)

 

. 4: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가인이 범죄 하였으므로 심판을 받아 하나님 앞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다.  은 \"유리한다\"는 뜻이다.  범죄자는 이렇게 안정되지 못하고 유리(流離)하는 생활을 할 것을 가리킨다.

 

. 4:17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범죄한 가인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떠났으므로 공포심이 들어왔다.  그러므로 그가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녹이라 했고, 또 성을 쌓고 그 성의 이름도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이라고 했다.  이것은 가인이 하나님의 보호 대신에 성의 보호를 받고 살려한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아들을 의지하고 살려고 한 것이다.  잠언 28:1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했다.  그에게는 그 아들이 우상이었다.  이 에녹은 승천한 에녹(5:24)이 아니다.

 

. 4:18-19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가인의 아들 에녹부터 라멕까지의 계대를 기록했는데, 라멕은 아담의 칠대손으로 아내 둘을 얻었다.  이것은 일부일처의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서 떠난 것이다.

 

. 4:20-21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라멕의 첫째 아내 아다에게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인 야발은 육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  둘째 아들인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  그 때부터 악기를 만들고 그 것을 연주하는 음악이 시작된 것이다.

 

. 4: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도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라멕의 둘째 아내인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는데, 그는 동철로 각종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다.  그 때부터 동과 철을 사용하였고, 기술이 발달하여 각종 날카로운 기계를 만든 것이다.  칼도 만들고, 화살도 만들고,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어 짐승도 잡고 싸움도 한 것 같다.  아담의 칠대손 라멕 때에 벌써 세상 문명이 많이 발달되었고 거기에 따라 죄도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 4:23-24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는다고 하나님께서 법을 제정해 주셨다.  라멕은 자기를 죽이는 자는 벌을 칠십 칠배나 받는다고 자기가 법을 정하였다.  이것은 공포심이 그만큼 커진 증거요 자기가 자기를 보호하려는 인본주의 수단이었다.  죄가 인간에게 들어온 뒤에 세대마다 점점 자라나서 그 세력이 강해지고 커지게 되었다.

 

六. 신앙의 계대를 주심(25-26)

 

. 4: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죄악이 증가하는 동시에 신앙의 씨도 자라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다시 셋이라 하는 아들을 주어서 아벨 대신에 신앙의 계대를 잇게 하였다.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이것은 신앙의 계대를 이을 씨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계통을 끊지 않고 반드시 계승자를 주어서 그 신앙을 계승케 하신다.

 

.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하나님께서 셋에게 에노스를 낳게 하여서 신앙의 계대가 계승해 내려가게 하셨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호와는 약속을 지켜 구원해 주시는 신이라는 뜻으로 에노스 때에 성도들이 많아져서 오실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고 구원의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일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유형(有形) 교회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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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5장

제 5 장  에 녹                  

 

(대  지)

一. 아담에서 야렛까지의 계도(1-20)

二. 에녹의 신앙(21-24)

三. 므두셀라에서 노아까지의 계보(25-32)

 

(본문 강해)

 

一.아담에서 야렛까지의 계보(1-20)

 

. 5:1-2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전장에서는 아담의 계보로써 가인의 후예를 기록하였고, 본 장에서는 셋의 후예를 기록하였다.

 

. 5:3  아담이 일백 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것은 아담의 타락된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말이다.  아담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1절), 타락한 후 아담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원상대로 있지 않았다.  그 후부터 인류는 아담의 타락한 형상을 유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될 것이다(엡4:24).

 

. 5:4-20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일백 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 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십 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 십 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 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은 육십 오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 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팔백 구십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야렛은 일백 육십 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육십 이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본문에는 아담으로부터 육대손까지 셋의 계보를 기록하였다.  이 계보 중에서 특별히 죽었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① 아담의 범죄한 죄 값으로 사망이 세상에 들어 왔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②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2:17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다.  ③ 죽지 않는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죽지 않는 길은 21-24절에 에녹이 믿음으로 죽지 않고 승천한 사실로 보여 주었다.

이 계보에 나타난 사람들이 보통 구백 세를 살았으나 세상에 죄악이 관영해 짐에 따라 인간의 수명이 점차 단축되었다.  특히 노아 시대 이후부터 현저히 단축되었다(11:10-26 참조).  앞으로 죄악이 없는 천년 왕국 시대에는 사람이 다시 장수하게 되어 천년 동안 죽지 않고 살게 되는데, 이것이 원상 회복이다.  요한계시록 20:4에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라고 했다(사 65:17-25 참조).

여기 기록한 자녀들 외에 다른 자녀들도 많이 있었으나 계보에는 신앙의 계대만을 기록한 것이므로 다른 자녀는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二. 에녹의 신앙(21-24)

 

. 5:21  에녹은 육십 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에녹은 셋의 계열로 아담의 칠대손이고, 라멕은 가인의 계열로서 아담 칠대손이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승천하였다.  라멕은 사람을 죽였고, 그 아들들은 세상으로 나가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고, 또 여러 가지 악기를 만들어서 연락(宴樂)을 즐기고, 싸움 받을 것을 두려워하였다(4:21- 24).

에녹과 라멕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신앙의 길로 나아간 자와 세상의 길로 나아간 자가 칠대 후에는 이렇게 큰 차이가 났다.  가인의 계통은 세상에서 세력을 잡았고, 지혜로와 기계와 악기를 발명하고 세상적으로 많이 발달했다.  누가복음 16:18에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했다.  그러나 셋의 계통은 세상적으로는 별로 내어놓을 것이 없었으나 믿음으로 살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일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서 학식이 많고 재주가 좋은 것만 귀히 여길 것이 아니라 독실한 믿음을 소유한 것이 큰복인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사는 것은 물질이나 세상 지식이나 명예나 출세에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와 동행하여 그 말씀을 순종하므로 영이 사는 데 있는 것이다.

 

.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담의 칠대손 에녹은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과 최후 심판까지 예언하였다.  유다서 1:14-15에 \"아담의 칠대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이미 에녹을 통해서 예언해 주신 것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리스도의 구속과 재림, 심판에 대한 진리를 계시해 주셨고, 에녹이 그 진리를 받아서 자기가 그 진리대로 순종하여 경건한 생활을 하였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이 진리를 전하는 생활을 하다가 승천하였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재림과 심판을 증거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 한다.  아담의 큰아들 가인의 계통은 죄악이 점점 장성하여 더 큰 죄를 지었고, 아담의 작은아들 셋의 계통은 믿음이 자라나 더 큰 신앙의 사람 에녹이 출생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녹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러므로 가정을 돌보느라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했는가?

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하면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를 힘입어 살았다.

②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대로 살았다.

③ 범사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렸다.

④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았다.

⑤ 하나님께서 상주실 것을 믿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동행하면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자녀가 많아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그러나 성도가 가정 생활에 얽매여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믿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신앙 생활도 안되고 그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게 된다.  하나님을 섬기며 그와 동행하는 것이 성도의 본업(本業)이고 세상일은 부업이다.  성도가 본업과 부업을 바꿔 놓으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  그리고 성도는 아무 것에나 사로잡히면 안 된다.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나 사업에 얽매이게 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 실패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첫째로 하고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범위 안에서 자기 책임을 다해 나가야 한다.

 

. 5:23-24  그가 삼백 육십 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삼백 육십 오 세를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하늘 나라로 옮기워 갔다.  히브리서11:5에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구약 시대에 죽지 아니하고 살아서 승천한 사람은 에녹과 엘리야뿐이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산채로 승천하게 했는가?

①모든 성도들도 나중에 부활 승천할 것을 표본으로 보여 준 것이다.

② 성도는 영생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③ 우리의 살 나라가 하늘 나라인 것을 보여 준 것이다(빌 3:20).

우리도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면 현세에서도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며 큰복을 받게 되고, 주님 재림하실 때에도 칭찬과 영광과 상급을 받게 된다.

 

三. 므두셀라에서 노아까지의 계보(25-32)

 

. 5:25-27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 구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므두셀라는 구백 육십 구 세를 향수하였는데, 그는 인류 역사상 최 장수자가 되었다.  이로써 천년 왕국 시대에는 사람들이 천년 동안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계 20:4, 사 65:17-25).  그는 그렇게 오래 세상에 살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나 구원 운동을 위해서 무슨 특별한 일을 했다는 기사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삼십 삼 세의 짧은 삶을 살았으나 하나님과 구원 사역을 위해 가장 큰 일을 하셨다.  우리도 세상에서 사는 날의 길고 짧음을 막론하고 하나님과 구원 운동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가자!

 

. 5:28-32  라멕은 일백 팔십 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 구십 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칠백 칠십 칠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노아는 아담의 십대손이다.  노아도 역시 에녹과 같이 가정 생활과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6:9).  노아가 세 아들을 낳아 자부를 데려온 후에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다(6:18).  에녹의 신앙은 노아에게로 계승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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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6장

제 6 장  탄 식

 

(대  지)

一. 범 죄(1-2)

二. 심판 결정(3-8)

三. 노아의 신앙과 그 시대의 죄악(9-13)

四. 방주 제조 명령(14-22)

 

(본문 강해)

 

一. 범 죄(1-2)

 

.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노아 홍수 전에는 사람들이 장수하였으므로 세상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되었다.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사람의 딸들이 났다는 뜻이다(2절).  사람의 딸들이란 가인의 계통에서 난 딸들을 말하는 동시에 불신자를 말한다.

 

.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하나님의 아들들 아벨의 신앙의 계통에 속한 셋의 후손들, 다시 말하면 믿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구약 시대에도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는 진리와 영감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다(요 1:12).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성도가 불신자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아내로 맞아 들였다.  이것은 믿음으로 하지 않고 육체의 소욕대로 행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외모가 아름다운 것보다 믿음으로 속사람의 만들어져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나아가는 것을 더 아름답게 보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믿음이 타락되어 육신중심으로 기울어져  외모만 보고 결혼하였다.  참 성도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성도의 신앙 인격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한다(시 16:3).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하지 않고, 외모의 아름다음을 보고, 안목의 정욕으로 아내를 취하고, 또한 세상의 것(물질이나 명예나 영광)을 욕심으로 취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성도가 결혼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신앙 중심으로 해야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들의 좋아하는 자로 아내를 삼은 것은 자기 중심이요, 육신 중심이다.  무엇이나 자기의 좋은 대로 욕심을 따라 취한 것은 큰 죄악이다.  로마서 8:5-7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분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했다.

성도가 영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가는 것은 사망의 길을 가는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다.  이것은 교회가 비진리를 용납하고 그와 타협한 것을 말한다.  세속화되고 타락한 교회는 육신적인 예능, 기술, 지식면에 치중하므로 그 방면에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진리를 세워 나가는 참 교회는 신앙적인 면에 치중하며 말씀만 따라간다.  개인이나 교회나 진리와 내적 생명의 역사가 있으면 외부적으로 보잘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신다.

 

二. 심판 결정(3-8)

 

.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으로 살지 않고 육체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이 떠나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되었다.  성도가 육신 중심으로 살면 범죄하기 마련이며 범죄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신다.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그때부터 120년 후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120수는 하나님의 만수이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면, 정한 기간이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도록 은혜 베푸시는 기간에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를 즉시 심판하시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회개할 수 있는 기간을 허락해 주시고 그 후에 회개하지 않는 자를 심판하신다.  이것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오래 참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벧후 3:8-9).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없는 줄로 알아 회개하지 않고 더욱 악을 행하기에 담대한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다.  전도서 8:11에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멸망할 뿐이다.  그러므로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에 즉시 회개하고 바로서는 자가 지혜로운 자요 복 있는 자이다.

 

. 6: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네피림(   )은 장부(丈夫),  또 힘센 자들을 의미한다.  이 단어 민수기 13:33에도 나온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낳은 자손이 네피림으로서 용사요 고대에 유명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말씀)를 받은 성도가 그 지혜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와 세상을 위해서 쓰면 외부적으로는 왕성해지고 발전이 잘된다.  그러나 그들의 날은 하나님의 세신 바 되고 심판은 정해져 있다.

 

.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육체로 기울어진 때부터 죄악은 세상에 급속히 퍼져서 죄가 세상에 관영해 졌으므로 사람들의 생각하는 것과 모든 계획하는 것이 자기 중심이요 욕심으로 하게 되었다.

 

.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사람들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한탄하셨다.  하나님께서 한탄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심이나 경영하심이 잘못되었으므로 후회하심이 아니고 사람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탄식이 크심을 이렇게 표현한 것뿐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하였다(민 23:19; 렘 4:28).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신 것을 잘못했다고 후회하신다면 전지전능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완전하시고 그 하시는 일도 완전하시기 때문에 절대로 후회함이 없으시다.  후회하셨다는 말로 표현한 것(삼상 15:11,35)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갑자기 변경되므로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이 후회하신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해가 뜬다\", \"해가 진다\"는 말과 같다.  사실은 해가 뜨거나 지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도는 것인데, 사람이 보기에 해가 떠오르므로 해가 뜬다고 하고 해가 서편으로 지므로 해가 진다고 한다.

 

. 6: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므로 하나님께서 사람과 육축과 공중의 새까지 심판하여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다.  사람의 죄 때문에 만물까지 다 심판 받게 되었다(롬 8:19-22 참조).  이것은 그 모든 짐승이나 새나 만물을 다 사람을 위하여 지었기 때문이다.

 

.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않고 의를 행하며 믿음을 지켰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신앙의 계통이 아담에게서 아벨과 셋에게 이어져 내려갔고 또 아담의 7대손인 에녹에게로 내려갔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으며, 또 아담의 10대손인 노아에게로 신앙의 계통이 내려갔다.

그 시대에 믿지 않는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믿음의 계통인 하나님의 아들들까지도 육신을 따라 정욕으로 기울어져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였다.  누가복음 17:27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라고 했다.  먹고 마신다는 것은 물질주의요,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것은 음란방탕주의를 가리킨다.  그러한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신앙의 빛을 남겨 두셔서 참된 신앙의 계대를 이어 가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인데, 노아는 그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三. 노아의 신앙과 그 시대의 죄악(9-13)

 

.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의인이요 로마서 3:10에 세상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는데, 노아는 어떻게 의인이 되고 완전한 자가 되었는가?

노아는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그 당시에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한 것이다.  욥도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다(욥 1:1).  욥도 역시 노아와 같이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 할 때에는 의인이요 완전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할 자는 세상에 하나도 없다.  욥도 속에 부패성을 지닌 죄인이었다.  그러므로 욥이 \"하나님께 회개하나이다\"라고 하였다(욥 42:6).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언제나 하나님을 모시고 그로 더불어 주장을 받는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영감으로 사는 생활을 해야한다.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생명이요 영생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육체대로 산 생활은 다 실패의 생활이요 멸망의 생활이다.

 

. 6:10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세 아들을 낳았다.  에녹도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에녹이 이렇게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가정 생활을 하면서도 육신 생활에 매이지 아니하고 힘써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들도 환경에 얽매이거나 빠지지 말고 그 환경을 이기면서 믿음의 달음박질을 잘 해야 한다.  배는 물이 있어야 하지만 그 물이 배 안에 들어오면 침몰하고 만다.  그와 같이 성도들이 세상에서 살고 있으나 세상의 물결이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된다.  오직 하나님만 따라가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고 믿는 일을 첫째로 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 6:11-12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노아 당시에 불의한 세력이 세상에 가득하여 땅에 강포가 충만케 되었다.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의 마음이 부패하여 행위가 어그러지고, 인간의 도덕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고 있었다.

 

.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 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라

강포가 땅에 가득 찬 것은 끝 날이 이른 증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하셨다.  사람이 마땅히 해야할 도리와 본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배로 하나님을 삼고 먹고 마시며, 음란 방탕하고 강포를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그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것을 노아에게 알게 해 주셨다.

 

四. 방주 제조 명령(14-22)

 

. 6: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구원할 자를 방주로써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계획하셨다.  방주는 그때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다.  이 구원의 방주는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온 세상이 심판 받아 멸망할 때에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길이 없다.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여러 종류의 금수(禽獸)를 갈라서 넣기 위함이었다.  역청 아스팔트와 같은 것이다.  이것을 배(船)에 칠한 것은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  역청으로 칠하여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처럼 성도들도 세상이 자기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의 구속을 날마다 덧입고 말씀대로 잘 무장해 나가야 한다.

방주를 잣나무로 지으라고 하셨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잣나무\"는 사철 푸른 나무로서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을 상징하고, 방주 짓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성도들이 신앙 인격을 만들어 나가는 것, 즉 그리스도 안에 살며 그리스도를 덧입어 나가는 일을 가리킨다(롬 13:14).  성도는 잣나무와 같이 사시 불변하는 생명의 말씀으로 자신의 영적 인격과 실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홍수\"는 대환난을 상징하는데, 그 환난에 쓰러지지 않고 그 환난을 발로 밟고 승리할 만한 신앙의 실력을 길러 나가야 한다.

※ 노아가 방주 지은 기간은 몇 년이나 걸렸을까?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신 때는 노아가 600세 되던 때였다(7:6,11; 8:13; 9:28-29). 또 그 때는 그의 아들들이 모두 장가들었던 때였다(6:18; 7:13).  5:32에 보면 노아가 500세 후에 세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다.  11:10에 노아의 장자 셈이 100세 되는 때는 홍수 후 2년이었다고 했으므로 홍수 때에는 셈이 98세였고 노아가 600세였으므로 노아가 셈을 502세에 낳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후에 둘째와 셋째 아들을 낳고  자부를 맞은 다음에 홍수 예고와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다(6:18).  그 때 노아의 나이는 약 530세쯤, 셈의 나이는 28세쯤 되었을 것으로 본다면 방주를 지은 연수는 대략 70년쯤 될 것 같다.  6:3에  사람들의 날이 120년이 되리라고 한 것은 그 시대에 사람들이 타락하의 육체주의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예고하신 때부터 120년 후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시고 아직 방주 지으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이었다. 그 때부터 몇 십 년이 지난 후에 노아에게 홍수가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다.  홍수가 나기 120년 전에는 노아가 480세였는데 그 때에는 장자 셈을 낳기 22년 전이다(5:32; 7:7,11).

 

. 6:15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방주의 크기는 길이가 300규빗, 폭이 50규빗, 높이가 30규빗이다.  일 규빗은 한자(尺) 반(45cm)쯤이다.  그러면 방주의 길이는 450척(약135m)이다.

 

. 6:16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상층으로 할지니라

방주의 창문은 꼭대기에서 한 규빗 내려와서 옆으로 내었다.  이것은 ① 물이 방주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요 ② 성도는 위만 쳐다보고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상·중·하 삼층으로 방주를 짓도록 한 것은 고등·중등·하등 동물들을 구별해서 넣기 위함인 것 같다.

 

. 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1다 죽으리라

인간의 죄로 인하여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홍수의 심판으로 사람뿐 아니라 땅의 생명 있는 육체를 다 멸절하시기로 작정하셨다.

 

.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노아에게는 구원의 언약을 세우시고 방주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셨다.  노아뿐 아니라 아내와 아들들과 자부들도 함께 들어가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되 성도에게는 언제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다.

 

. 6:19-20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 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노아를 통해서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들여보내어 생명을 보존케 하라고 하셨다.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종류대로 각각 둘씩 방주에 들어가게 하라고 하였다.

 

. 6:21-22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사람과 모든 육축이 먹을 식물을 방주에 저장하여 홍수 기간 동안 먹고살게 하셨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반드시 먹을 것을 주신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다 순종하는 것이 곧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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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7장

제 7 장 심 판

 

(대  지)

一. 칠일 후에 홍수가 날 것을 알려 주시고 방주로 들어가라 하심(1-4)

二. 노아의 가족과 짐승들이 방주에 들어감(5-9)

三. 홍수가 남(10-12)

四. 방주에 들어간 자들에 대한 설명(13-16)

五. 홍수의 창일함과 방주가 떠오름(17-20)

六. 홍수의 심판으로 방주 밖의 모든 생물이 멸망함(21-24)

 

(본문 강해)

 

一. 칠일 후에 홍수가 날 것을 알려 주시고 방주로 들어가라 하심(1-4)

 

. 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당시 노아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온 식구와 함께 방주에 들어가서 구원받도록 하셨다.

 

. 7:2-3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 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 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일곱씩 은 히브리어로  (쉬브아)이며 \"각각 일곱\"이라는 말이다.  즉 암 수 일곱씩이란 암컷과 수컷이 각각 일곱임을 말한다.  6장 19절에서는 암 수 한 쌍씩이라고 했고, 20절에서는 각기 둘씩이라고 했으나 쌍이라는 것이 둘을 의미하므로 차이가 없다.  일 곱씩이라고 한 것은 암 수 일곱이니까 열 네 마리이고 일곱 쌍이다.  보통 동물과 생물은 암컷과 수컷 두 마리씩 취하고 정결한 짐승은 암컷과 수컷 일곱 마리씩(일곱씩) 취하였다(7:2).

 

. 7:4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지금부터 칠일이면 7일 후에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지면을 멸하실 것을 예고하셨다.  아모스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 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무슨 큰 일을 행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 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예고하여 알게 해 주고 행하신다.  홍수에 대한 예고도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과 함께 약 70년 전에 명하셨고, 다시 7일 전에 홍수가 날 것을 알려 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을 성경에 예고해 놓으셨고 그 모든 징조를 보아 알게 하신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반드시 알게 하여 주신다.

 

二. 노아의 가족과 짐승들이 방주에 들어감(5-9)

 

. 7: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여호와의 명령을 즉시 순종하였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다.

 

. 7:6-7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홍수가 날 때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였다.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 아들과 세 자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홍수 전에 방주로 들어갔다.

 

. 7:8-9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 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모든 짐승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다.  짐승들과 새들이 방주에 들어가도록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 것이다.

 

三. 홍수가 남(10-12)

 

. 7:10-12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 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7일 후에 홍수가 나서 사십 주 사십 야를 하늘에서 물을 쏟아 붓는 것처럼 비가 내리고 땅에서는 샘이 터져 올라와서 온 세상이 다 물에 잠기게 되었다.

하늘의 창들이 열려 이 말은 비유니 창문을 열고 물을 붓는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려왔다는 뜻이다.

 

四. 방주에 들어간 자들에 대한 설명(13-16)

 

. 7:13-16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 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노아의 여덟 식구와 모든 짐승과 새들이 방주에 다 들어간 후 여호와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셨다.  이것은 구원의 문이 닫힌 것을 의미한다.  구원의 문이 열려 있을 때에 들어가지 않으면 때가 될 때 닫히고 만다.  여호와께서 문을 닫았으므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 해도 들어갈 수 없고,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해도 나올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홍수 심판을 피하기 위해 방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다 지나가 버렸다.  우리도 기회가 있을 때에 구원의 방주를 지어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에 방주 안에 들어가야 한다.  기회가 지나가면 방주를 지을 수도 없고 방주 안에 들어갈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열지 않으시면 그 문을 열 자가 없다(계 3:7).

우리는 대환난의 홍수가 나기 전에 부지런히 구원의 방주를 지어야 그 심판을 피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의 날이 덫과 같이 갑자기 임할 때에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매일 닥치는 시험 가운데서 연단을 잘 받고 진리와 영감으로 신앙 인격과 실력을 길러 나가야 한다.  우리 성도의 마음속에 세상의 물결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또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자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이 영적 실력을 기르고 자기의 신앙 인격을 잘 만든 자는 대환난이와도 능히 승리할 수 있다.

 

五. 홍수의 창일함과 방주가 떠오름(17-20)

 

. 7:17-20  홍수가 땅에 사십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비가 40일간 내리매 방주가 떠올랐고 천하의 산이 다 잠기고도 15규빗 높이까지 물이 올라갔다.  그때 방주밖에 있던 모든 짐승과 새는 다 죽었다.  \"노아 홍수 당시에 그 지역만 물에 잠겼는가?\" \"아니면 천하가 다 물에 잠겼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우리는 성경대로 천하가 다 잠겼다고 믿어야 한다.

 

六. 홍수의 심판으로 방주 밖의 모든 생물이 멸망함 (21-24)

 

. 7:21-23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홍수로 인하여 땅 위에서 코로 호흡하는 모든 생물이 다 죽었다.  홍수로 모든 산들이 물에 잠겼으므로 새들도 피할 곳이 없어 모두 죽고 땅 위의 모든 생물이 멸절되었다.  그러나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여덟 식구와 방주 안의 짐승들은 구원을 받았다.

 

. 7:24  물이 일백 오십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

노아 홍수 때 물이 150일 동안 땅에 창일하였다.  150일은 다섯 달이다.  요한계시록9:5에 다섯 달은 환난의 기간이라고 했다.  다섯 달 동안 땅이 물에 잠겨 있었고 땅 위의 모든 것을 다 심판하여 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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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8장

제 8 장  회  복

 

(대  지)

一. 물이 감함(1-5)

二.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놓아 줌(6-12)

三. 노아의 식구가 방주에서 나옴(13-19)

四. 노아가 제단을 쌓음(20-22)

 

(본문 강해)

 

一. 물이 감함(1-5)

 

.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식구들과 모든 짐승들을 살리기 위하여 물을 감하게 하셨다.

방주의 구조를 상·중·하 3층으로 만들었는데(6:16), 사람은 아마 맨 위층에 있었을 것 같다. 또한 까마귀도 정결한 짐승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에 필요했기 때문에 맨 위층에 있었을 것 같다(6,7절).  예수께서 가룟 유다 같은 사람도 복음 전도에 필요한 존재로 사용하셨다.  교회 안에 까마귀와 같은 교인이 혹 있더라도 관용하여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실 때에 쓰실 수 있게 해야 한다.

맨 밑층에는 뱀, 지렁이, 두더지, 개구리 같이 부정한 짐승들이 있었을 것 같다.  가운데층에는 상층과 하층에 들어가지 않은 것들이 들어갔을 것이다.

 

. 8:2-3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홍수가 난 지 150일이 지난 후에 물이 감하여지고 뭍이 드러났다.

 

. 8:4  칠월 곧 그 달 십 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홍수가 나기 시작하여 비가 40주야를 내리고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니 물이 땅에 창일한 기간은 5개월(150일) 동안이었다(7:24).

아라랏산은 현재의 어느 산인지 잘 알 수 없으나 배가 그 산 위에 머무른 것으로 보아 다른 꼭대기보다 높은 곳임을 증거한다.  노아의 신앙 방주는 모든 산꼭대기 위에 머물러 모든 산을 정복하였다.  우리의 신앙의 방주도 잘 지으면 모든 산들 위에서 모든 산(세상 열방과 모든 권세 )을 정복한다.

 

. 8:5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무른 날 7월 17일부터 74일을 지나 10월 1일에는 물이 더욱 많이 감하여 모든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다.

 

二.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놓아 줌(6-12)

 

. 8:6-7  사십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10월 1일부터 40일이 더 지난 후에 노아가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여 창문을 열고 제일 먼저 까마귀를 내어 보냈다.  까마귀는 비둘기보다 강하고 사체(死體)를 먹고 살 수 있는 새(鳥)이기 때문에 까마귀를 내어 보낸 것 같다.  그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고 사체들을 먹으며 날아 다녔을 것이다.  이와 같이 썩은 것을 좋아하는 자는 믿음의 방주로 돌아오지 않는다.

 

. 8:8-9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촉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노아가 두 번째로 비둘기를 내어 보냈는데, 온 지면에 물이 있어서 비둘기가 발붙일 곳이 없으므로 방주로 다시 돌아왔다.  산봉우리들과 육지가 어느 정도 드러났으나, 아직은 초목이 소성하지 못했고 시체들의 냄새가 풍기기 때문에 비둘기가 살 만한 곳을 찾지 못하였으므로 방주로 돌아왔다.

 

. 8:10-11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노아가 칠일 후에 비둘기를 다시 내어 보내니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다.  이것은 땅에 물이 감하여 져서 새 잎사귀가 나왔다는 표시이다.  심판으로 비참하여 진 땅 위에 새 잎이 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며 이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온 비둘기는 아름다웠다.  그로 인하여 노아와 그 식구들이 심히 기뻐하였다.

 

. 8:12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또 칠일을 지나서 비둘기를 내어 보내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땅 위에 비둘기가 먹고 살 만한 것이 생긴 증거이다.  이것은 사람이나 모든 짐승들도 살 수 있도록 물이 감해졌다는 증거이다.

 

 

三.  노아의 식구가 방주에서 나옴(13-19)

 

. 8:13-14  육백 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이월 이십 칠일에 땅이 말랐더라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0일에 방주에 들어간 후 7일만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 후 노아가 601세 되던 해 2월 27일에 방주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방주에 거한 날은 1년(360일) 17일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세상을 심판하셨으나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풀어주신 것이다.

 

. 8:15-19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실 때에 나왔고, 또 모든 짐승들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나오게 되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방주를 지었고, 명령에 의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명령을 순종하여 나왔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요, 명령대로 순종할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전개된다.  노아가 나온 세상은 새 하늘과 새 땅이었다.  이전 죄악의 세상은 심판 받아 멸망하였고 새로운 세계에는 구원받은 노아의 여덟 식구뿐이었다(벧전 3:20).

 

四. 노아가 제단을 쌓음(20-22)

 

. 8:20-21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여호와께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다.  이것은 노아가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이며, 하나님께 헌신과 충성하기를 다짐하는 제사이다.  정결한 짐승으로 변제를 드린 것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고 그를 상징하는 제사를 드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기뻐 받으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나오는 제사를 언제나 기뻐 받으신다.  우리도 날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세계에서 살며 구속의 피에 감격하여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선하다가 자라나면서 악해지는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악한 사람으로 태어난다(시 51:5).  아담의 자손은 날 때부터 악하고, 부패성이 가득하고, 죽은 영혼으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공로로 사죄를 받아야 되고, 물(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하여야 구원을 받는다.  인간의 악한 상태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시고 물로 생명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 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가 쉬지 않게 하겠다고 하셨다.  이는 홍수 심판 때에는 심고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상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께서 이 죄악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벧후 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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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9장

제 9 장  무 지 개

 

(대  지)

一. 득구자의 복(1-3)

二. 피를 귀중히 여길 것(4-7)

三. 언약을 세움(8-17)

四. 저주받은 자와 축복 받은 자(18-29)

 

(본문 강해)

 

一. 득구자의 복(1-3)

 

.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구원받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생명 있는 믿음의 후예들은 번성하고 창성하여 땅에 충만케 되어 나간다.  우리도 영이 자라나고 신앙 인격이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면 점점 창성하여 땅을 정복하게 된다.

 

. 9: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땅위의 모든 것을 주시고(고전 3:21-23 참조), 만물이 복종하고 두려워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 9: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하나님께서 홍수 후에 사람에게 산 동물을 식물로 주셨다.  노아 홍수 전에는 사람들이 채식을 했으나 홍수 후부터 육식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악해짐에 따라서 식물(食物)도 달라졌다.  에덴 동산에서는 과일만 먹고살았으나 범죄하여 쫓겨난 다음에는 농사하여 채소와 씨 맺는 열매를 먹도록 하셨고, 홍수 후에는 동물까지 식물(食物)로 주셨다.  사람들이 에덴 동산에서는 실과만 먹었어도 건강이 유지되었으나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는 곡식과 채소를 먹어야 건강이 유지되었고, 홍수 이후부터는 동물까지 식물로 먹어야 했다.  홍수 이후부터 사람의 마음이 더욱 악해졌고, 육체도 허약해 졌으므로 그때부터 사람의 수명이 짧아졌다.  그러므로 사람의 상태를 참작하여 하나님께서 짐승을 식물로 허락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영적 양식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신앙이 어렸을 때에는 젖(초보적 진리)을 먹다가 신앙이 자라나면 단단한 식물(깊은 진리)을 먹어야 하고, 좀더 자라나면 좀더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힘을 얻을 수 있다.  또 시대에 따라서 그 시대에 필요한 양식(진리)이 있다.  악한 세대에는 거기에 대항하여 이길 만한 진리를 먹어야 신앙이 유지된다.

초대 교회 때에는 율법주의에 대항하여 이신득구(以信得救)의 진리가 필요했고, 종교개혁 시대에는 천주교의 교권주의와 의식주의에 대항하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진리를 깨달아 그 진리 안에서 살므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단과 해방신학과 신비주의와 현실주의가 횡행하는 말세에는 거기에 대항할 만한 진리를 깨달아야 마귀의 궤계와 시험을 이기고 참 신앙을 지킬 수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마귀의 술수와 체계를 능가할 만한 진리를 붙들고 있어야 마귀를 이길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마귀의 힘과 실력을 능가 할 수 있는 영적 실력이 있어야 이긴다.  선지자 엘리야 때보다 엘리사 때는 세상이 더욱 악해졌기 때문에 갑절의 영감이 있어야만 그 시대를 이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했다.

 

二. 피를 귀중히 여길 것(4-7)

 

. 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짐승의 고기는 먹되 피채 먹지 말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이다(레 17:11,14, 신 12:23).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신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파괴하지 말라는 뜻이다.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그 생명을 먹고 마시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동물을 식물(食物: 먹을 것)로 주실 때에 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그 육체는 먹되 그 생명은 존중히 여기라는 것이며,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겨 살인하지 말라는 뜻이 있다.  또 장래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속해 주실 피를 존귀하게 여기며, 그 피에 생명이 있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 9:5-6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생명은 생명으로 갚으리라는 뜻이다.  남의 짐승을 죽인 자는 자기 짐승으로 그 주인에게 갚아 주어야 하며 사람을 죽인 자는 자기 생명으로 갚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다(마 16:26).

 

. 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번성의 복과 편만하는 복을 주셨다(1:28 참조).  마태복음 28:19-20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복음을 힘써 전파하는 교회는 창성하게 된다.

 

三. 언약을 세움(8-17)

 

. 8:8-1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지 않겠다고 언약을 세웠다.  이 언약에는 모든 짐승까지 포함시켰다.  이 언약은 사람의 협조를 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독자적으로 세우시고 독자적으로 실천하신다.  이 언약은 사랑의 언약이요 은혜의 언약이다.

이 언약은 홍수의 심판으로 다 멸망하여 두려워하는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참으로 안위와 큰 소망을 주었다.  그 때에는 이 언약을 믿고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이 필요하였다.  만일 이 은혜 언약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심판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안정된 마음으로 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언약을 주심으로 모든 사람이 믿음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9:12-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하나님께서 그 언약의 증표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셨다.  그 무지개는 홍수 후에 새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이전에 창조되어 있었던 것을 그때에 언약의 표준으로 사용하신 것뿐이다.  지금도 우리가 비 온 후에 구름 속에 무지개가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 세상을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하신 그 약속을 믿고 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류와 여러 가지 언약을 세우셨으니

첫째, 자연 계약이다.  춘하추동과 사시(四時)와 해(年)와 달과 날과 밤과 낮과 시간 이 모두 자연계약에 속한다.

둘째, 행위 계약이다.  이 계약은 인류의 대표인 아담과 세우신 언약인데 선악과를 두고 하신 것이다.  사람이 그 금단의 명령을 지키면 살고,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다(2:17).  아담은 이 계약을 어겼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계약대로 영혼을 즉시 죽이셨고, 육신도 후에 죽게 하셨다.

세째, 은혜 계약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과(3:15),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신 것과(3:21), 무지개 언약을 세우신 것과 그리스도가 와서 구속해 주시겠다는 약속은 다 은혜 계약이다.  또 모세의 율법도 행위 계약이 아니라 은혜 계약의 기초이다.  모세 율법은 사람이 죄를 깨닫게 해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역할을 한다(롬 3:20; 갈 3:24).

네째, 평화 계약이다.  이 계약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한 후에 세상을 심판하시고, 마귀를 무저갱에 가두고 천년 왕국을 건설할 것을 가리킨다(사 2:4; 65:17-25).

다섯째, 영원 계약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원한 하늘 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을 약속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계약을 세우시고 그 계약대로 실천하신다.  \"여호와\"라는 이름도 \"계약대로 구원하시는 신\"이라는 뜻이다.  천지는 없어지고 변할지언정 하나님의 언약은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닥쳐와도 그 언약의 말씀을 믿고 담대히 걸어갈 수 있다.

 

. 9:14-17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구름 속에 나타나는 무지개를 언약의 증거로 삼으신 것은

① 구름이 뜰 때마다 이 언약을 믿고 다시 홍수가 날까봐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② 사람이나 짐승이나 눈을 들어보면 잘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③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긍휼과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합 3:2).

하나님은 언제나 그때에 합당한 진리를 주시며 그 진리를 누구나 다 알 수 있게 하시며 그 말씀을 순종하여 구원받도록 하신다.  또 하나님께서 신령한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하여 보이는 물질을 이용하여 가르쳐 주시기도 한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 만드신 일과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서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신 일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 등도 다 신령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성도는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 버리고 힘있게 주의 말씀을 따라갈 수 있다.

 

四. 저주받은 자와 축복 받은 자(18-29)

 

. 9:18-19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홍수로 모든 사람이 멸절하였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세 아들들로 말미암아 후손이 땅에 퍼지기 시작했다.  장자 셈(황인종)의 자손은 동방에 거하였고, 셋째 아들 야벳(백인종)의 자손은 서방에 거하였고, 둘째 아들 함의 자손은 흑인종이 되었다.

 

. 9:20-23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홍수 후에 농사를 하였으며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자고 있었다.  이것은 노아의 큰 실수였다.  노아는 당시의 선지자로서 중대한 책임이 있는데, 술에 취하여 자신의 수치를 드러낸 것은 구원 운동에 큰 지장을 준 것이다.  그때에 둘째 아들 함이 벌거벗고 자는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형제들에게 가서 폭로하였다.  그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 쳐들어가서 아비의 하체를 덮었는데, 그 때까지 그들이 얼굴을 돌이켜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복 받을 일이다.  그들이 옷으로 아비의 하체를 덮은 것은 아버지 노아의 허물이 드러나면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는데 큰 손해가 되겠기 때문이요, 자기들도 보지 않은 것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게 되면 아버지를 통해서 은혜 받는데 손해가 나겠기 때문이다.

 

. 9:24-25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아버지가 깨어나서 그 사실을 알고 함을 저주했다.  부친이 자녀에 대해 저주하는 기도를 할 수 없으나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한 것이다.  성령의 감동과 인도대로 하는 기도가 참된 기도이다.  함이 왜 저주를 받게 되었는가?  함이 부친에 대하여 사실대로 말했으나 그것은 저주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이루어 나가는 구원운동에 큰 손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그를 통하여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중이었고 그러므로 노아는 당시의 선지자요 구원 운동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구원의 기관으로 사용하는 노아의 허물을 함이 드러냄으로 다른 사람들이 은혜 받는데 큰 손해를 주었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을 저주하게 하신 것이다.  누구나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손해를 주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저주하신다.  반대로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도움을 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

출애굽시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실 때에 아말렉이 길을 막고 통과하지 못하게 하며 싸우려고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천하에서 도말하여 기억함이 없게 하시겠다고 하셨고(출 17:14-16), 약 400년 후에 사울왕을 시켜서 아말렉을 진멸하셨다(삼상 15:2-3).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협력하고 돕는 자가 될지언정, 방해하고 손해 주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사실대로 하는 말이라 해도 구원 운동에 손해가 되면 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이라 하여 함처럼 교회에 손해 주는 말이나 일을 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고전 10:23).  잘못하고 망하는 자보다 잘하고 망하는 자가 많이 있다(교만하거나 구원 운동에 손해 주는 때).  함이 전체면을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생각지 않고, 사실대로 말하다가 그러한 죄를 범하게 되었다.  언제나 표준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 되도록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에게 비록 허물이 있더라도 진리만 바로 전하면 하나님이 그를 들어 사용하시고 구원운동을 해 나가시는 것이니 주의 사랑으로 덮어주고 가리워주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후손이 복 받는 길이다.  교역자의 잘못이나 죄를 발견하면 사랑하는 마음과 온유한 마음으로 직접 충고하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 맡기고 위해서 기도해 줄뿐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시고 처리하신다.  그러나 교역자가 성경에 어긋나는 교훈을 할 때는 용납지 말고 한 번, 두 번 충고하고 그래도 안 들으면 떠나야 한다.  진리에서 탈선된 교역자를 용납하는 것은 이세벨을 용납하는 것이며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계 2:20-23).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하나님께서 함을 저주함에 있어서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신 것은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폭로시킬 때에 그 아들 가나안과 같이 한 것 같다.  가나안이 먼저 보고 나와서 그 아버지 함에게 말하므로 함이 같이 들어가서 보고 나와서 폭로한 것 같다.  이 예언대로 함은 흑인으로서 대대손손이 종노릇하게 되었다.

 

. 9:26-27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아버지의 허물을 가리워 주고 아버지를 위해 좋은 일을 한 셈과 야벳에게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축복해 주셨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셈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셈의 후손에게서 나신다는 예언이다.  이 예언대로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택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그 후손에게서 그리스도가 나게 하셨다.  또 셈의 후손인 황인종에게서부터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야벳의 후손은 백인종이며 그들에게 하나님이 창성하는 복을 주셨다.  이 예언대로 백인종은 창성하여 셈의 장막(황인종의 나라)까지 퍼져서 살게 되었다.  야벳의 자손(백인종)이 셈의 후손(황인종)의 나라에까지 와서 황인종의 나라를 관할하고 혹은 통치하며 도와주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대륙도 본래는 인디언들(황인종)의 나라인데 백인종인 영국 사람들이 건너가 정복했기 때문에 야벳의 후예의 땅이 되었다.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의 아들 가나안 민족(흑인종)은 셈과 야벳의 종살이를 하고 살게 하셨다.  그것은 함과 가나안이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손해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예언대로 셈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족속을 멸하고 가나안땅을 차지하였다.  그때 살아남은 가나안 사람들은 종살이를 하였다.

 

. 9:28-29  홍수 후엔 노아가 삼백 오십 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구백 오십 세에 죽었더라

노아가 홍수 후에 350년을 더 살며 그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하나님을 섬기는 법과 하나님의 계약과 신앙에 대하여 많이 가르쳐 주고, 950세에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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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10장

제 10 장  계 보

 

(대  지)

一. 야벳의 계보(1-5)

二. 함의 계보(6-20)

三. 셈의 계보(21-32)

 

(본문 강해)

 

一. 야벳의 계보(1-5)

 

. 10:1-5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홍수 후에 노아의 세 아들의 자손이 온 땅에 퍼지게 되었다.  그 중에 야벳의 아들들은 창성하여 바닷가에 살았으며, 야벳의 손자 때에 가서는 여러 방언과 나라가 나뉘어졌다.  노아의 셋째 아들 야벳의 족보를 먼저 기록한 것은 노아가 예언한 대로(9:27) 야벳 자손이 제일 많이 창성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二. 함의 계보(6-20)

 

. 10:6-14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많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함의 족보를 보면 그 후손들 중에 니므롯 같은 영걸이 나왔다(8절).  니므롯( )의 뜻은 모반자, 대적자라는 뜻이며 이는 적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그는 아마 바벨탑 쌓는 주동자였을 것이다.  그는 사냥도 잘하였고(9절) 성도 많이 건축하였다(12절).  그가 세상에서 유명한 자가 되었고 그의 나라는 큰 나라가 되었으며 니느웨와 같은 큰 성도 건축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살던 나라 앗수르는(11절)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었고, 그들이 건설한 큰 성 니느웨는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시게 되었다(욘 1:2).    

 

. 10:15-20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의 조상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처하였더라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 이었더라

함의 자손 중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히위 족속 등은 가나안 땅에 살면서 하나님을 떠나 죄만 짓고 있었으므로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멸망시켰다(수 3:10 참조) .

함의 자손은 또 소돔 고모라에 살고 있었는데(19절) 그 성의 죄악이 하나님께 상달하였으므로 아브라함 때에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와 멸망되었다.  함의 자손들이 세상에서 유력하고 큰 성과 집을 잘 건축하고 사냥을 잘하며 생활이 부요하였으나 하나님 섬기는 신앙을 물려받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나갔기 때문에 그 후손들은 복을 받지 못했다.

 

三. 셈의 계보(21-32)

 

. 10:21-29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홀과 게델과 마스며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웽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목단의 아들이며

셈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협력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아를 통하여 그를 축복하였고(9:26) 그 후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계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셈의 10대 후손에는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이 태어났다(11:10-26 참조).  아브라함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 이삭과 그 손자 야곱이 나왔고 그 자손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게 되었다.  이것은 노아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9:26).

 

. 10:30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

그들이 동편 산에 거하였으며 점점 동쪽으로 이주하여 동양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시아인(황인종)들은 셈 족속이다.

 

. 10:31-32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족속과 방언과 나라가 나뉜 것은 다음 장(11장)의 바벨탑을 쌓은 때부터이다.  이것은 11장의 서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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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11장

제 11 장  바 벨 탑

 

(대  지)

一. 바벨탑을 쌓음(1-4)

二. 여호와의 심판(5-9)

三. 셈의 후예(10-26)

四. 데라의 후예(27-32)

 

(본문 강해)

 

一. 바벨탑을 쌓음(1-4)

 

. 11: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바벨탑을 쌓기 전까지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이었다.  구음은 언어(말)를 의미한다.  그 때는 노아 홍수 후 얼마 되지 않았고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인종이 퍼졌으므로 그 언어가 하나일 것은 확실하다.

 

. 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홍수가 끝날 때 방주가 머문 아라랏산 지방에서부터 그들은 점점 동진(東進)하여 살다가 넓고 비옥한 시날 평지를 만나서 거기에 정착하게 되었다.  시날 평지는 바벨론 지방이다.

 

. 11:3-4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사람들이 큰 성을 쌓고 하늘에까지 닿는 대를 쌓아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이것은 앞으로 홍수가 또 나더라도 대를 높이 쌓아 홍수의 화를 면하고 자기들의 이름도 내려고 한 것이다.

은 도시를 의미하고, 는 탑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성과 대를 쌓기 위하여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고 벽돌을 쌓기 위한 접착제로는 역청을 사용하였다.  역청은 아스팔트와 같은 물질이다.

그들이 바벨탑을 쌓은 것은 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었다.  하나님이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무지개를 두어 약속하셨으나 그 말씀을 믿지 않고 다시 홍수가 날까봐 두려워하였다.

② 인본주의이다.  \"자, 벽돌을 만들어\", \"자, .성과 대를 쌓아\",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들의 지혜와 힘으로 건설하려고 한 것은 분명히 인본주의이다.

③ 명예 영광주의이다.  이것은 \"우리 이름을 내고\"라는 말이 증명한다.  사람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할 터인데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한 것은 교만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죄이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정신과 역사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 없이 자기들의 지혜와 단결된 힘으로 문화와 문명을 건설하려고 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들의 생각대로 계획하고 처리하는 것과 인간의 공로와 이름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바벨탑을 쌓는 일이다.

바벨탑에는 정치적인 바벨탑과 과학적 바벨탑과 종교적 바벨탑이 있다.  첫째, 정치적(국가적) 바벨탑은 하나님을 떠나 정치를 잘하여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대전 후에 만든 국제연맹이나 U.N.(국제연합) 같은 것은 하나의 바벨탑이다.

둘째, 과학적 바벨탑은 과학 만능(科學 萬能)을 믿고 하나님보다 과학과 기술을 더 의지하여 과학의 힘으로 인간을 행복스럽게 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련에서 제일 처음 우주선을 우주에 쏘아 올렸을 때 그 안에 타고 있던 우주인 가가린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천당이 없다\"고 발표했었다.  이렇게 하나님보다 과학을 더 높이고 의지하는 것은 과학적 바벨탑이다.

세째, 종교적 바벨탑이란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 양심을 양보하고 종교적 연합과 단결로 큰 단체를 만들어 큰 연합 사업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단적 바벨탑이 있다.  교단적 바벨탑이란 진리를 양보하면서라도 교단만 크게 확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단은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 진리를 세워 나가는 일은 하지 않고 큰 교단 만드는 일에만 열중한다.  또 여러 교단이 진리를 양보하고 서로 연합하여 거대한 세력 단체를 만들어 큰 세력을 쓰는 것도 종교적 바벨탑이다.  신신학이나 그릇된 신비주의, 심지어 이단적인 단체까지 연합하여 세계적인 운동을 하는 W.C.C.와 같은 것이 종교적 바벨탑이다.

말세에는 모든 면에서 바벨탑을 높이 쌓는 시대가 되어 하나님과 그 말씀을 떠나 인본주의로 나아간다.  이러한 바벨탑을 높이 쌓아 정상(頂上)까지 올라가면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바벨론의 멸망이 기록되어 있다.  그 바벨론은 인본주의 세상을 가리킨다.  세상의 인본주의와 속화된 교회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을 때에 참된 신앙의 길을 걸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요한계시록 18:4에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였다.  성도가 그 안에 있으면 신앙을 지킬 수 없고 그 바벨론이 멸망할 때 같이 멸망하게 된다.  요한계시록 18:7에는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고 하였다.  바벨론에 있는 자들은 말하기를 \"나는 여황(女皇)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며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루 동안에 재앙들이 임하게 하여 모두 멸망시킨다(계 18:8).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 바벨론에서 나와 하나님과 그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二. 여호와의 심판(5-9)

 

. 11: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인생들이 성과 대를 높이 쌓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보시고 마침내 그들의 인본주의 바벨탑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강림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살펴보시고 심판하시기를 착수(着手)하셨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인본주의 바벨탑을 높이 쌓는 것만큼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떠나고 하나님 없이 살게 된다.  인본주의의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나님을 떠나고 진리를 불순종하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불가불 바벨탑을 심판하지 않을 수 없다.

 

. 11:6-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바벨탑 쌓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  그러므로, 언어가 소통되지 않아서 바벨탑 쌓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물을 가지고 오라\"하면 불을 가져오고, \"돌을 가지고 오라\"하면 나무를 가져오고, \"오라\"하면 가고, \"가라\"하면 오니 더 이상 바벨탑을 쌓을 수 없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의사 소통이 잘되어 바벨탑을 계속 쌓아 그것을 의지하고 살며 교만해져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멀리 떠나 향락주의로 기울어지고 자기들을 영화롭게 하다가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여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더 이상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하셨다.  이것이 세계 각 민족의 방언이 달라지게 된 근본 원인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는 자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신다.  오늘날 언어를 혼잡케 한다는 것은 서로 의사 소통이 안되고 의견이 서로 맞지 않고 충돌되는 것을 가리킨다.  의견이 엇갈리고 의사 소통이 안되고 충돌하여 단합이 되지 않으므로 연합된 일은 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때에는 바벨탑 쌓는 것을 중지하고 회개하여 겸손히 하나님께 돌아가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진리만 세워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세워 나가면서 창성하고 견고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커지는 것이다.

우리가 내려가서 삼위일체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 의논하신 것이다.  인간창조나 구원이나 심판에 대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공동으로 역사하신다.

 

. 11:8-9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언어가 서로 달라졌으므로 사람들이 같이 살수가 없게 되었고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었다.  바벨( )은 \"하나님의 성문\"이라는 뜻이다.

 

 

三. 셈의 후예(10-26)

 

. 11:10-26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 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 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셀라는 삼십 사 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 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벨은 삼십 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 삼십 년 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 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삼십 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 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홀은 이십 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 십 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셈의 후예를 기록함에 있어서 본 장에서는 특히 아브람(아브라함)조상들을 기록하였다.  10:21- 30에 있는 셈의 족보와 다른 점은 벨렉까지는 같으나 10장에서는 벨렉의 아우 욕단의 후예를 기록했고, 11장에서는 벨렉의 후예를 기록하여 아브람(아브라함)까지 기록한 점이다.  그러므로 본 장의 셈의 족보는 신앙 계통의 족보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며 셈의 후손이다.  이것은 노아가 셈의 하나님이라고 예언한 대로되었다.

노아 홍수 후에 사람들의 수명이 현저하게 짧아졌다.  특히 벨렉(18절) 이후에는 사람의 수명이 더욱 짧아졌다.  또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뉘어지고 족속들이 흩어졌다(10:25).  이렇게 수명이 짧아진 것은 홍수 후에 죄악이 세상에 많아졌기 때문이요, 그때부터 육식을 한데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四. 데라의 후예(27-32)

 

. 11:27-32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 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데라의 아들과 손자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아브람(아브라함)은 데라의 맏아들이며, 롯은 아브람의 아우 하란의 아들이다.  하란은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그 자부 사래와 그 손자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가던 중 하란에 거할 때에 데라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데라는 본래 우상을 섬겼으나(수 24:2-3), 가나안 땅에 가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명령한 그 말씀(12:1 참조)을 따라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데라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도중에 하란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는 우상 섬기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아브람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다가 죽었으니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신령한 가나안(하나님의 나라)에는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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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2장

제 12 장  소 명(召命)

 

(대  지)

一. 하나님의 명령과 축복 약속(1-3)

二.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감(4-8)

三. 아브람이 남방으로 옮겨 감(9-10)

四. 애굽에서의 실패(11-16)

五. 하나님의 구원(17-20)

 

(본문 강해)

 

一 . 하나님의 명령과 축복 약속(1-3)

 

.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본토는 갈대아 우르를 가리킨다(11:28참조).  본토를 떠나라는 뜻은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에서 떠나라는 것이다.  성도가 자기를 위하며 자기 중심으로 사는 생활을 떠나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생활로 돌이켜야 한다.  본토를 떠나는 것이 신앙 생활의 제일 첫째 단계이다.  본토를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없고 전진할 수 없다.

친척을 떠나라는 것은 인정을 떠나라는 뜻이다.  성도가 인정에 얽매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가 없다.  성도는 인정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생명길을 걸어 갈 수가 있다.

아비 집을 떠나 아브람의 아비 데라는 우상을 섬겼으므로(수 24:2) 아브람이 아비 집을 떠나야만 했다.  아비 집을 떠나라는 것은 세상 전통과 풍속 습관, 그리고 의지하고 살던 모든 것을 떠나라는 뜻이다(엡 2:2).  이것을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가 없다.  주님을 따라가는데 방해되는 세상의 권세나 돈이나 명예 영광을 떠나야만 성도가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아왔던 젊은 부자는 그 재물 때문에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했다(마 19:16-22).  예레미야 17:5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전에 자랑하던 종교적 전통과 의식을 다 해(害)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면서 오직 그리스도만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했다(빌 3:4-8).

성도는 아브람처럼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떠나야 할 것을 떠나지 않으면 마치 배가 닻을 내려놓고 노를 열심히 젓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힘써 노를 저어도 전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어놓으라고 말씀하실 때 내어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떠나라\"하실 때에 떠나지 않으면 아무리 나아가려고 애를 써도 나아가지 못한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목적지를 말씀해 주시지 않고 떠나가라고만 하셨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한 걸음씩 따라가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곳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어디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났다(히 11:8).  동으로 갈지, 서로 갈지, 길이 멀지, 가까울지도 모르고, 또 험한 길인지 평탄한 길인지도 전연 알지 못하고 하나님만 믿고 그 말씀만 따라갔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때에 이와 같이 나아가야 한다.  성도가 무조건 하나님만 믿고, 그 말씀만 따라가면 하나님이 생명길과 복된 자리로 인도해 주신다.

 

.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는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첫째,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하셨다.  아브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 갔으므로 하나님은 마침내 그 약속대로 아브람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고,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게 해 주셨다.  또 아브람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성도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 말씀만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 창성하게 하여 주시며, 그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사람이 많게 하여 주신다.

둘째, 이름을 창대케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름은 실상(實狀)과 인격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인격이 커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그 인격이 커지도록 축복하셔서 그 사람이 세계 만방에 뛰어나게 해 주신다(신 28:1-14).  이와 같이 커진 인격은 천국에 가서도 큰 자가 된다(마 5:19).

세째,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아브람 자체가 복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는 사람은 누구나 복 덩어리가 된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가는 곳에는 복이 있고, 그 사람을 영접하면 복을 영접하는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사도바울이 아시아로 가려고 애써도 예수님의 영이 허락지 않았고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건너오라고 바울에게 청하였다.  그때에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깨닫고 유럽으로 건너갔다.  그리하여 유럽 사람들이 큰복을 받게 되었다.  바울을 배척한 곳에는 복이 떠났고, 바울을 영접한 곳에는 복을 영접한 것이므로 복을 많이 받았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성도가 가는 곳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한다.

성도가 아브람처럼 본토·친척·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인도와 말씀을 따라가면 그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되어 황무지도 소성하게 되고 사해(死海)도 생명이 사는 곳이 된다(겔47:8).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가니 그 집에 복이 임했고, 감옥에 가니 그 감옥에 복이 임했다.  또 애굽 총리가 되니 애굽 전체가 복을 받았다.  그러므로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나아가므로 복 자체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아브람은 복 자체이다.  그러므로 아브람을 영접한 자는 복을 영접하는 것이 되므로 복을 받게 되고, 아브람을 저주한 자는 복을 저주했으므로 저주를 받게 된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따라가는 생명 있는 성도 한 사람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된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복음을 전파하면 다른 사람도 그 믿음을 본받아 말씀을 따라가게 되니 복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바른 복음의 길을 걸어가며 전하는 것은 많은 사람을 복 받게 하는 길이다.

 

二.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감(4-8)

 

. 12:4-5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에 그의 조카 롯이 아브람의 신앙을 본받아 따라갔다.  그러므로 롯도 복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믿음을 지키는 성도를 따라가면 그 사람도 복을 받는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따라감으로 복을 받았고,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 감으로 복을 받았다.  또 디모데는 바울을 따라 감으로 복을 받았다.  이와 같이 말씀대로 바른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신앙 노선에 동참하는 자는 반드시 복을 받게 된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 칠십 오 세였다.  에녹은 육십 오 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는 나이 많다고 핑계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즉시로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성도가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는 것은 연령이 많고 적음에 관계가 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즉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아브람은 지시하시는 가나안 땅으로 그 아내와 조카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들어갔다.

 

. 12: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세겜 땅 은 가나안 땅의 중심지로서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며 예루살렘 북방 48km 지점에 있다.  지금은 나브루스(Nablus)라고 불려지고 있다.  모레 상수리나무 모레는 마므레(13:18)와 같이 지방 이름인 듯하다.  그 지방에 상수리나무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또 그 땅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사람이 살고 있었으므로 아브람이 정착하기에는 여러 면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가나안 땅을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람이 그 약속의 말씀을 받고 너무 감사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 12: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브람이 세겜에서 동편 산으로 옮겨 그곳에 장막을 치고,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 드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처럼 아브람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우상이 가득한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원주민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각오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담대히 부르면서 신앙을 지켰으므로,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보호해 주셨고 큰복을 내려 주셨다.

 

三. 아브람이 남방으로 옮겨 감(9-10)

 

. 12:9-10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람이 그 땅에 기근이 심하므로 애굽을 향하여 점점 남방으로 내려갔다.  이것은 아브람이 신앙적으로 실수한 것이다.  마치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흉년으로 인하여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간 것과 같다(룻 1:1-2).

 

四. 애굽에서의 실패(11-16)

 

. 12:11-13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람이 생각하기를 애굽에 들어가면 애굽인이 사래의 미모를 탐내어 자기를 죽이고 사래를 빼앗아 가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그 아내 사래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고 했다.  물론 사래가 아브람의 이복누이(20:12)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내라고 말하지 않고 누이라고 한 것은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자기 동창생과 결혼한 자가 그를 자기 아내라고 하지 않고 동창생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또한 자기 사돈과 결혼한 후에 아내라고 하지 않고 사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아브람이 스스로 빠질 함정을 만들어 놓은 것과 같다.  아브람은 이때 신앙이 잠들어서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세례 요한도 일시적으로 신앙의 잠이 들어서 예수께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하고 물었다(마 11:2-3).  엘리야도 한 때 신앙의 잠이 들어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하였다(왕상 19:4).  이와 같이 신실한 성도라도 잠깐 동안 신앙의 잠이 드는 경우가 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사래를 자기 아내라고 사실대로 말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지켜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 아내를 빼앗기지 않고 자기도 생명의 위협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믿지 않고 죽을까봐 두려워하여 인간의 수단과 꾀를 써서 아내를 누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람을 지켜 주시지 않았고 마침내 애굽사람에게 사래를 빼앗기게 된 것이다.

 

. 12:14-15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아브람이 애굽에 들어가매 애굽 사람들이 사래의 아름다움을 보고 바로 앞에 사래의 미모를 칭찬하였으므로 바로가 사래를 아브람의 누이인 줄 알고 거리낌없이 자기 아내로 취하려고 궁으로 불러들였다.

 

. 12:16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아브람이 사래를 누이라고 했기 때문에 바로가 사래를 취하고 그 오라비 되는 아브람에게 예물로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주었다.  아브람이 아내를 누이라고 하여 물질을 많이 얻고, 생명도 보존하고, 후한 대접을 잘 받았으나 자기 아내를 빼앗긴 대가로 받은 것이 되었다.

 

五. 하나님의 구원(17-20)

 

. 12: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아브람이 아내를 바로에게 빼앗기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밤새도록 회개하며 부르짖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지 않고 죽을까봐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여 그 죄 값으로 아내를 빼앗긴 것을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하며 처음 신앙을 다시 찾았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래를 건져내려고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 12:18-19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하나님께 재앙을 받은 바로가 크게 놀라서 아브람을 불러다가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네 아내를 내가 취하게 하여 재앙을 당하게 하였느냐\"고 하면서 책망하였다.  이것을 보면 아브람이 처음부터 사래를 자기 아내라고 했더라면 바로가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가 받은 재앙이 어떤 재앙인지 알 수 없으나 바로는 자기와 자기 집안에 돌연한 큰 재앙이 임하였으므로 그것이 사래 때문인 줄 알았고, 또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임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래와 동침하지 않고 아브람에게 돌려보냈다.

 

. 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바로가 사람들에게 명하여 사래는 아브람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람에게 속한 모든 소유를 보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함께 하심을 바로가 알고 아브람의 소유를 빼앗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그 지방에서 나가도록 하였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와 모든 소유를 가지고 애굽에서 무사히 나왔으나 영적인 면에는 많은 손해를 보았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타락의 길을 걸었고, 인격적인 면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우상을 섬기는 이방 왕에게 책망을 받았다.  또 도덕적인 면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큰 부덕을 끼쳤다.  아브람의 아내가 일시적 이나마 바로의 아내가 되었던 것이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믿음으로 하지 않고 인간의 수단을 쓰면 이와 같이 손해가 막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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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3장

제 13 장  분 리

 

(대  지)

一. 아브람이 풍부하여짐(1-4)

二. 분 쟁(5-7)

三. 분 리(8-13)

四.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복 주심(14-18)

 

(본문 강해)

 

一. 아브람이 풍부하여 짐(1-4)

 

. 13:1-3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가서 신앙적으로는 큰 실패를 하였으나(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한 것과 아내를 빼앗겼던 일), 재물은 많이 얻었다.  애굽에서 그 모든 것을 다 빼앗길 뻔하였으나(12:20),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애굽에서 무사히 나오게 되었다.

남방으로 유다 남방을 가리킨다.  애굽에서 유다 남방으로 올라갔다가 거기서 다시 벧엘과 아이 사이로 옮겨갔다.

 

. 13:4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은 아브람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처음 제단을 쌓은 곳이다(12:8).  아브람이 그곳에 다시 찾아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그가 애굽에 내려가 신앙적으로 실패하고 처음 신앙을 잃어 버렸으므로 그 처음 신앙을 사모하여 다시 찾으려고 간 것 같다.  이것은 후에 야곱이 밧단아람의 타락 생활을 만회하려고 벧엘로 올라간 것과 같다.

 

二. 분 쟁(5-7)

 

. 13:5-7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룻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의 양과 소가 많고, 그의 조카 롯의 소유도 점점 많아져서 그 땅이 좁아 함께 살기에 불편하였다.  그리하여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게 되었다.  이것은 숙질간에 물질문제로 생긴 분쟁으로 아브람이 이 문제를 잘 처리하지 않으면 그 땅에 거하는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염려가 있다.  그래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물질 문제를 바르게 처리하려고 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 모든 물질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도간에도 물질 문제로 시험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언제나 물질에는 마귀가 따라다니는 줄 알고 바로 처리해야 한다.  아브람처럼 우리도 물질을 양보하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생명과 존귀와 더 많은 물질로 축복해 주신다.  그러나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는 한 물질 문제를 무조건 양보하지 말고 공정(公正)하게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三. 분 리(8-13)

 

. 13:8-9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이 조카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한 것은 최대의 양보이다.  거주지의 선택에 있어서 어느 면으로 보아도 삼촌인 아브람에게 우선권이 있다.  왜냐하면 롯은 아브람을 따라온 입장이고, 또 아브람을 따라와서 많은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조카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아브람 자신은 좋은 곳이든 나쁜 곳이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아브람이 물질을 의지하여 살지 않고 하나님으로 생명과 재산을 삼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사람의 사는 것이 물질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고 믿었다.  아무리 박토(薄土)에 가도 하나님만 같이 하시면 하나님이 반드시 창성케 해 주실 것을 믿었다.

둘째,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끼리 물질(땅) 문제로 서로 싸우고 다툰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이방 사람들 앞에 덕이 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은혜스럽게 해결하기 위하여 물질을 양보하고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셋째, 아브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생명으로 삼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초막이나, 궁궐이나, 산골이나, 빈들이나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였다.  아브람이 물질 문제로 롯과 다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세계를 잃어버리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줄로 알아 롯에게 다 양보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마 6:33).

마태복음 5:39-42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물질(옷)을 빼앗기고, 인격적인 모욕(뺨을 맞음)을 당하고, 인권 유린(강제로 5리를 끌리어 감)을 당할지언정 주님과 교통하는 산 신앙을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생명 있는 신앙이 중요한 것이며 외부적인 물질 문제나 인격 문제, 인권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과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적 성전을 지어 나가는 일과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일이다.  이것들을 빼앗기지 않으면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이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영적 성결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역사가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물질로 사는 것보다 몇 만 배나 더 중요한 것이다.  성도에게 생명의 역사만 있으면 결국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은사를 주시고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

 

. 13:10-11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이 의리를 저버리고 욕심으로 기울여져 좋은 땅인 소돔, 고모라 성과 그 부근 요단 들을 택했다.  삼촌이 마땅히 먼저 좋은 곳을 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먼저 좋은 곳을 택하여 갔다.  롯은 한 손에는 하나님을 붙들고 또한 손에는 세상을 붙들고 살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땅이 기름지고 물이 넉넉한 요단을 택하여 그곳으로 간 것이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소돔 고모라가 망하기 전에는 에덴 동산과 같이 즉, 지상 낙원과 같이 모든 자연적 조건이 좋았다.  애굽 땅과 같았더라 비옥한 옥토였다는 뜻이다.  애굽 땅은 나일강의 혜택을 받는 옥토였다.

롯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대로 사는 것은 둘째이었고, 세상이 첫째이었다.  롯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곳으로 갔고, 그곳에 가서도 하나님을 섬기며 경건한 생활을 하였다(벧후 2:6-8).  이렇게 롯은 세상도 붙잡고 하나님도 붙잡겠다는 신앙 노선이다.  그러나 아브람의 신앙 노선은 하나님 한 분만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는 것이다.

 

. 13:12-13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가나안 땅은 소돔, 고모라에 비하면 박토(薄土)이지만 그곳에 거하기로 작정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12:6-7)이기 때문이다.  그 땅은 산과 골짜기로 된 땅이요 비가 내리면 다 흡수하는 땅이므로(신 11:11) 곡식도 안되고 풀도 무성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약속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고를 믿고 거기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며 살려고 하였다.  반면에 롯은 세상의 것을 좀더 많이 얻기 위하여 장막을 옮겨 죄악의 도시 소돔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四.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복 주심(14-18)

 

. 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람과 롯이 서로 떨어져 살게 되었다.  롯은 욕심을 따라 갔고 아브람은 땅의 것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말씀만 따라 갔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의 하나님이시요, 이러한 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가나안 땅을 아브람과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네가 바라보는(소망하는) 진리의 세계를 다 네게 주겠다\"는 것이다.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진리를 넓고 깊고 멀리까지 깨달아 소망하면 그것을 다 네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리를 깊이 깨닫고, 진리의 세계를 점점 확장시켜 나가고, 그 진리의 세계를 바라보고 소망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다 이루어 주신다.  우리가 진리를 많이 배우고, 진리의 세계를 많이 발견하고, 그 진리를 확신하고, 소망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이 실상이 되게 해 주신다.  히브리서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였다.  이는 바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져서 실상이 된다는 뜻이다.

 

. 13: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땅의 티끌 같게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 창성케 해 주시겠다는 뜻이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터나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따라가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자에게는 그 후손이 창성하도록 축복해 주신다.  이것은 또한 아브람의 후손 가운데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많게 될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 13: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처음에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아야 하고(14,15절), 그 다음에는 그 땅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종과 횡으로 행해야 한다.  그리하여야 그 약속의 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가 있다.  바라만 보고 걸어가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네가 깨달은 진리, 네가 소망하는 진리를 종과 횡으로 행하면 그 안에 포함한 모든 은혜와 복을 다 네게 주겠다\"는 뜻이다.

종과 휭 종(從)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윤리(倫理)요, 횡(橫)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리(倫理)이다.  즉 하나님께 대해서 바로 하고, 사람에게 대하여 바로 하라는 것이다.  십계명도 이 두 가지 강령(綱領)으로 되어 있다.  우리도 말씀의 세계를 바라보고 살아야 되고, 그 말씀대로 행하여야 그 복을 받는다.  날마다 성경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소망하며 그 진리를 몸으로 행해야 자기의 것이 되고, 기업이 되고, 후손들까지 그 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붙들고 나아가는 롯에게는 이러한 복을 주시지 않았다.  아브람의 신앙 노선은 힘들고 고난의 길이지만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길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다.

롯은 소돔 고모라를 바라보고 살았으나 아브람은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롯은 땅위의 것을 소망하였으나 아브람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고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하면서 살았다.  로마서 5:3-4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다.

 

.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귀중하고 큰 약속을 하나님께 받은 아브람은 그 말씀의 세계만 바라보면서 즐거움으로 살았고, 세상에서는 장막 생활을 하며 나그네 생활을 하였다.  아브람이 가나안 헤브론 골짜기로 가서 장막을 치고 마므레 수풀에 이르러 제단을 쌓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아브람은 언제나 여호와를 섬기는 일이 본업이요, 하늘 나라가 본향이었으며 세상일은 부업이었고 세상 생활은 나그네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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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4장

제 14 장  멜기세덱

 

(대  지)

一. 전쟁이 일어남(1-9)

二. 롯과 그 재물이 노략 당함(10-12)

三. 아브람이 롯을 구출함(13-16)

四. 제사장의 축복과 십일조 드림(17-20)

五. 아브람이 물품을 받지 않음(21-24)

 

(본문 강해)

 

一. 전쟁이 일어남(1-9)

 

. 14:1-2  당일에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과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이 소돔왕 베라와 고모라왕 비르사와 아드마왕시납과 스보임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왕과 싸우니라

롯이 사는 소돔 고모라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 전쟁은 엘람왕 그돌라오멜을 중심한 네 왕의 연합군이 쳐들어오므로 일어났다.  그 네 왕의 연합군은 시날왕과 엘라살왕과 엘람왕과 고임왕의 군대들이었다.  그때 소돔왕을 중심으로 다섯 왕이 연합군을 편성하여 그들과 싸웠다.  그 다섯 왕은 소돔왕, 고모라왕, 아드마왕, 스보임왕, 벨라왕(소알왕)의 군대들이었다.  시날은 바벨론을 가리킨다.  엘라살은 유브라데 강 동쪽에 있다.  엘람은 바사 지방에 있다.

 

. 14:3-4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 염해에 모였더라 이들이 십 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 삼 년에 배반한지라

이 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소돔왕을 중심한 다섯 왕들이 그돌라오멜을 12년 동안 섬기다가 13년에 배반했기 때문이었다.  자기 나라에 속해 있던 나라가 배반할 때, 전쟁하는 것은 상례이다.  그들이 골짜기에서 싸웠다.  

싯딤 골짜기는 소돔, 고모라의 근처이며 지금의 염해이다.  소돔과 고모라도 멸망하여 염해가 되었다.

 

. 14:5-7   제 십 사 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은 르바 족속을 가르나임에서 치고, 수스 족속을 함에서 쳐서 이기고 엠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치고 호리 족속을 세일에서 쳐서 엘바란까지 이르렀다.  그돌라오멜과 그와 연합한 왕들이 계속하여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쳐서 모두 정복하였다.

 

. 14:8-9  소돔왕과 고모라왕과 아드마왕과 스보임왕과 벨라 곧 소알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접전하였으니 곧 그 다섯 왕이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과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 네 왕과 교전하였더라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이 싯딤 골짜기에 이르매 소돔왕의 5대 연합군이 그곳에서 싸우게 되었다.  이 전쟁은 삼촌 아브람의 은혜를 배반하교 물질을 탐하여 소돔, 고모라로 간 롯을 징계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전쟁이다.

롯이 한편으로는 세상을 붙잡고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붙들고 나아가 소돔성에서 재물도 많이 얻었고, 또 성문에 앉는 높은 벼슬도 얻었으나(19:1)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만 했다.

 

二. 롯과 그 재물이 노략 당함(10-12)

 

. 14: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왕과 고모라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두 연합군이 싸운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았으며, 소돔과 고모라왕이 그 전쟁에 패하여 도망갈 때에 많은 군사들이 역청 구덩이에 빠지고 일부는 산으로 도망하였다.  역청은 지금의 아스팔트와 같은 물질이다.

 

. 14:11-12  네 왕이 소들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이 전쟁에서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이 승리하여 소돔과 고모라와 모든 재물과 양식을 노략해 갔고, 또 소돔에 사는 아브람의 조카 롯과 그 가족도 사로잡아 갔으며 그의 재물까지 빼앗아 갔다.  롯이 삼촌 아브람의 은혜를 배반하고 세상 물질을 따라갔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그 동안 모았던 많은 재물을 다 빼앗기고, 자기 자신과 아내와 자식들까지 포로의 신세가 되어 끌려갔다.  롯이 잘 살아보려고 소돔 고모라에 갔으나 결과는 이렇게 비참한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은 롯의 신앙노선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성도가 한 손에는 하나님을 붙들고, 또 한 손에는 세상 물질을 붙들고 살려고 하면 롯과 같이 된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세상의 것을 아무리 많이 쌓아 놓았다 할지라도 순식간에 없어지고 만다(눅 12:20).

 

三. 아브람이 롯을 구출함(13-16)

 

. 14:13-14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 십 팔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찾아가서

아브람이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시킨 자 318명을 거느리고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을 추격했다.  아브람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롯을 구하러 나간 이유는 무엇인가?

① 롯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롯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이므로 그가 어려운 환난에 처해 있을 때 구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에 처해 있을 때 도와주고 위급할 때 건져 주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② 롯이 아브람의 혈육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이며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이다(딤전 5:8).  

연습한 자 삼백 십 팔인은 아브람이 양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평소에 연습시켜 두었던 사람들이다.

 

. 14:15-16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찾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더라

가신(家臣)은 히브리 원어로  (예벧)이며 \"노예\", \"종\"이라는 뜻이다.  아브람이 집에서 길러온 종 318명을 거느리고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을 좇아가서 파,(破)했다.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은 소돔 고모라의 5대 연합국을 격파한 강한 군대였으나, 아브람이 318명의 적은 숫자로 승리하였다.  아브람의 가신들은 군대가 아니며 양떼와 재산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담대히 싸우러 나갔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하고 믿음으로 나아간 것과 같다(삼상 17:45).  또 그 318명은 기드온 300명 용사들처럼 모두 신앙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하나님의 종으로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복음 운동을 하시기 때문에 아브람의 종들이 아브람을 위하여 생명을 내어놓고 싸우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깨닫고 충성되어 헌신하였다.  이 전쟁은 여호와를 위한 전쟁이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전쟁이므로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나아갔다.  아브람이 318명을 이끌고 가서 나누어 매복해 있다가 밤을 타서 갑자기 치니 그들이 혼비백산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때 아브람은 그들의 빼앗아 갔던 재물과 롯과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다.  우리도 구원 운동을 위해 아브람과 같이 생명을 내어놓고 나아가 마귀와 싸워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다 잡혀가고 망하게 되었는데 자기만 평안히 있으면 어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자기의 생명을 다 내어놓고 나가서 힘써 싸워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는 일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결코 평안하고 쉬운 것이 아니다.  때로는 원수의 적진을 향해 생명을 내어놓고 나아가야 하고, 적전 상륙을 하여 결사적으로 싸워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요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엡 6:12).

 

四. 제사장의 축복과 십일조 드림(17-20)

 

. 14: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아브람이 그돌라오멜의 사대 연합군을 격파하고 돌아올 때에 숨어 있던 소돔왕이 기뻐하며 나와서 영접하였다.

 

. 14:18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아브람이 승전하고 돌아올 때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나타나 피곤한 아브람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고 축복해 주었다.  멜기세덱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이때부터 약 1,000년 후에 다윗이 멜기세덱에 대해 기록하였고(시110:4), 약 2,000년 후에는 사도 바울이 히브리서에 기록하였다(히 6:20, 7:1-3).  살렘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데, 그 뜻은 \"평화\", \"평강\"이다.  멜기는 \"왕\"이라는 뜻이며 세덱은 \"의(義)\"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의의 왕\" 또는 \"평강의 왕\"이다.  멜기세덱은 영원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시다(마 21:5; 슥 9:9; 히 7:2).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히브리서 강해 PP. 108-123 참조.

떡과 포도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오셔서 당신의 살과 피를 모든 믿는 자에게 신령한 양식과 음료로 주실 것을 가리킨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항상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 경외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이시다(시 110:4).

 

. 14: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멜기세덱이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람에게 축복해 주었다.  이것을 보면 멜기세덱은 아브람보다 높은 분이시다(히 7:7).  믿음으로 승리할 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

 

. 14:20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람 자신의 힘으로 그 전쟁을 이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셨다.  그러므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린 것이다.  우리도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줄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드려야 한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람이 전리품 중에서 십분 일(십일조)을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바쳤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십일조를 바친 기사이다.  그러나 십일조의 근원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2:9 강해 참조).  십일조의 정신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말라기 3:8-9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했다.

 

五. 아브람이 물품을 받지 않음(21-24)

 

. 14:21-23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아브람이 소돔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소돔왕이 그돌라오멜의 사대(四大) 연합군과 싸우다가 패하여 소돔성의 재산과 백성을 다 빼앗기고 도망하여 숨어 있다가 아브람이 가서 싸워 이기고 그 모든 것을 도로 찾아 올 때에 소돔왕이 기뻐하여 아브람을 영접하고,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고 했다.  소돔왕으로서는 처자식과 백성만 찾아도 대 만족이었다.  또 아브람으로서는 자기가 승전하고 전리품으로 얻은 것이며 더구나 소돔왕이 허락했으므로 그것을 다 취해도 아무 잘못이 없다.  소돔성의 재산이 대단히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느 사람이라면 그 때에 지체하지 않고 그 재물을 취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실오라기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지금까지 아브람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아 왔는데 소돔성의 재산을 취하게 되면 하나님이 아브람을 축복해 주신 것이 가려지고, 소돔왕의 재물로 아브람이 치부(致富)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둘째, 아브람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을 상급으로 믿고 살아왔다(15:1).  그러한데 아브람이 소돔 고모라의 재산을 취하면 아브람이 물질을 의지하고 사는 자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브람이 그 많은 재산을 취하지 않았다.  셋째, 아브람은 타인의 불행을 이용하여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넷째, 아브람이 하나님을 세상의 모든 재물보다 더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다섯째, 아브람이 싸운 것은 물질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고 성도(롯)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 생명을 구원하는데 있으며 물질이나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섯째, 소들의 재산 때문에 아브람이 부요하게 되었다는 인상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만일 아브람이 소돔의 재산을 취하면 소돔왕이 말하기를 \'내가 아브람을 치부케 했다\'고 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이 생각하여 그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요하게 된 것이 가려진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소돔왕이 주는 물품을 하나도취 하지 않았다.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않는 것은 아무리 좋아도 취하지 말고 아무리 많이 주어도 받지 말아야 한다.  또 하나님의 역사가 가려지는 것들은 거저 주어도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아브람이 승리하였을 때에 넓은 길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시험이었으나, 아브람이 넓은 길로 가지 아니하고 그것을 부인하고 하나님만 위하며 좁은 길로 나아갔다.  이것이 아브람의 신앙 노선이다.

 

. 14:24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

아브람은 자기가 받을 것은 거절했으나 자기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에 대해서는 그들이 취하도록 관용을 베풀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물질을 취해도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는 아브람과 동맹한 자들이며(13절) 이번에 아브람과 같이 가서 싸운 사람들이다.  일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삯을 주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딤전 5:18).  그러므로 그들이 먹은 것과 그들의 분깃을 주는 것은 옳은 일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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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5장

제 15 장  칭의

 

(대  지)

一. 하나님은 방패요 상급임(1)

二. 행사에 대한 문답(2-4)

三. 이인득의 (以身得意)(5-7)

四. 아브람이 제사 드림(8-11)

五. 애굽에 내려갈 예언(I2-21)

 

(본문 강해)

 

一. 하나님은 방패요 상급임(1)

 

.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후에는 14장의 사건 후, 즉 아브람이 318명을 거느리고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을 격파한 일과 소돔왕이 주는 재산을 거절한 후를 말한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이유는 아브람의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브람이 두려워한 이유는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이 패하여 도망했으나 그들이 전력을 재정비하여 다시 아브람을 침공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브람이 몇 명 안 되는 군사로 자기들을 쳐서 이겼다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다시 연합군을 결성하여 아브람을 치러 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두려워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임하여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고 위로와 힘을 주신 것이다.

나는 너의 방패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적의 화전을 막아 주는 방패가 되신다고 말씀했다.  아브람이 평소에 하나님을 자기의 방패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아브람의 방패가 되어 주신 것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방패로 삼고 싸우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방패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방패로 삼는 자에게 방패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성도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을 격퇴한 것은 하나님을 자기의 방패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만약 하나님을 방패로 삼지 않았더라면 4대 연합군의 큰 세력과 싸우기 위해 318명의 적은 인원으로 감히 나갈 수도 없었을 것이며 싸움에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기의 방패로 삼고 나가서 싸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방패로 삼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그 사람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 스가랴 7:13에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라고 했다.  또 시편 18:26에는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라고 하였다.  역대하 15:2에는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고 했다.  에스겔 2:6에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라고 했다.  핍박하는 사람들이 전갈과 가시와 같이 괴롭게 할지라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이 구원해 줄 것을 믿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신다.

예레미야 1:18에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했다.  아무리 핍박하는 세력이 크고 강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해 줄 터이니 두려워말고 나아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믿지 않는 신신학자에게는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해 주지 않는다.  최 유선 선교사는 \"신신학자들의 하나님은 매우 약한 하나님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의 뜻은 신신학자들은 하나님을 매우 약한 분으로 믿고 있다는 뜻이다.  즉, 홍해를 가를 수 없는 하나님, 물위로 걸어갈 수 없는 예수님,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일 수 없는 예수님으로 그들은 믿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신자는 아브람처럼 전능한 하나님으로, 능력의 방패로 믿고 어떠한 역경에도 담대히 나아간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셨다.  이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상급으로 믿은 증거는

① 아브람이 하나님을 상급으로 삼고 갈 곳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만 따라갔다.

② 자기 목자와 롯의 목자가 싸울 때에도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믿고 세상 것을 양보하였다.

③ 소돔왕이 약탈당했던 소돔성의 모든 재산을 아브람에게 다 가지라고 할 때에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믿고 거절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셨다.  하나님을 방패로 삼고 극강 담대하게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삼고 나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큰 상급이 되어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두려워하는 것과 근심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방패와 상급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방패와 상급으로 믿으면 아무리 원수가 많고 강해도 두려울 것이 없고, 아무 것도 염려할 것이 없다.

 

二. 후사에 대한 문답(2-4)

 

. 15:2-4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아브람은 일찌기 하나님께로부터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과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다(12:2-3).  또 이 가나안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12:7, 13:15)는 약속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이 늙도록 자녀를 생산치 못했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그 말씀 성취가 어떤 방식으로 되겠는가, 양자로 인하여 그 말씀이 성취되겠는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식으로 되겠는가에 대해서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자손이 된다는 말씀을 받지 못한 때였다.  아브람은 아직까지 무자(無子)한 것만 생각하여 다메섹사람 엘리에셀을 자기 집에서 길러서 상속자로 삼고자 생각하고 있었다.

아브람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한 소치이며, ② 너무 조급한 생각이요, ③ 자기가 늙어서 생산치 못할 것만 생각한 때문이다.  이것은 아브람이 일시적으로 실족한 것이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은 아브람의 자손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늙은 아브람에게서도 능히 자녀를 생산케 해 주실 수 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이것은 아브람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방인은 너의 후사가 될 수 없고 네 몸에서 나야 되고, 네 정성과 노력과 희생을 바쳐야 된다\"는 것이다.  신앙의 후사도 이와 같이 사랑과 피땀이 들어가고 정성과 수고로 길러야 후사가 될 수 있다.

 

三. 이신득의 (以信得義)(5-7)

 

.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문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네 자손이란 장차 아브람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가리킨다.  갈라디아서 3:16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다.  아브람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자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는 의미이다.

 

.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아브람이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정식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하신 것이다.  그 전에는 여호와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서 구속해 주겠다는 약속은 하셨으나 누구의 자손 중에서 나게 하시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은 없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 비로소 네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아브람의 자손이요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롬 4:11).

누가복음 16:22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것은 나사로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고, 아브라함이 믿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뜻이다.  아브람이 오실 그리스도를 말로만 믿는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실제로 믿고 영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였다.  요한복음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곧 그를 영접하는 것이요 그에게는 생명과 권세가 있다.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아브람이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의롭게 여기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의인으로 간주(看做)하시고 인정했다는 뜻이다.  이제 아브람은 여호와 앞에 의인이 되었다.  그것은 행위로 된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된 것이다.  아브람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구속해 주실 것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와 영적 교통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가 사죄와 칭의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오늘날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믿고 심령으로 영접하여 그로 말미암아 살면 의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게 된다.

 

. 15: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그리스도를 약속해 주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이러한 은혜를 베푸신 것은 아브람이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즉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四. 아브람이 제사 드림(8-11)

 

. 15:8-9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을 증거를 여호와께 보여 달라고 했다.  그때 여호와께서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해서 제사하게 함으로 여호와께서 그 제사를 응답해 주실 것을 암시하셨다.  과연 여호와께서 그 제사를 불로 응답하셨다(17절) 여호와께서 제사를 받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가 된 증거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주실 증거이다.

삼 년 된 소가 3년이 되면 논밭을 갈 수 있고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장성한 소가 된다.  그러므로 삼 년 된 것을 잡아 제사 드리라는 뜻은 하나님께 완전한 제물을 드리라는 뜻이다.  이것은 또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예표하기도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흠 없는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  예배 시간에 늦거나 졸거나 하는 것은 흠 있는 제사가 된다.  성도가 하나님께 흠 있는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한다.

 

. 15: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아브람이 짐승들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해 놓았다.  이런 의식은 만일 계약을 위반하면 그 짐승을 쪼개는 것처럼 쪼갬을 당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하는 의식이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불로써 그 고기 사이로 지나가게 한 것은 그 계약 성취를 확증한 것이다(17절).  그 계약 내용은 그리스도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5-7절).  이것이 8절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새를 쪼개지 않았기 때문에 솔개가 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솔개는 매과에 속하는 새의 일종이며 여기서는 마귀를 상징한다.

레위기 1:17과 5:8에 새는 제물로 드릴 때 아주 쪼개지 말라고 했으므로 새를 쪼개지 않은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 아니고 도리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모든 제물은 하나님께 합당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17절).

 

. 15: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솔개가 온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마귀가 삼키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마귀가 와서 늘 방해한다.  그 때에는 마귀를 쫓아야 된다.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때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마귀를 물리쳐야 마귀에게 빼앗기지 아니하고 합당한 제사가 된다.  기도할 때도 마귀가 방해하는 생각을 넣어 준다.  이럴 때에는 즉시 그 마귀의 방해를 물리쳐야 한다.  처음에는 독수리보다 작은 솔개가 와서 방해하며 제물을 가로채려고 한다.  작은 것이 올 때는 쫓기가 쉽다.  그러나 작은 마귀의 역사(방해물)를 용납하면 나중에는 점점 큰 것들이 날아 와서 더 큰 방해를 한다.

아가 2:15에 작은 여우가 포도원을 헌다고 했다.  작은 여우나 솔개는 얼마든지 쫓을 수 있고 넉넉히 물리칠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을 용납하면 더 큰 것이 오므로 쫓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마귀의 역사를 처음부터 쫓아내야 한다.

 

五. 애굽에 내려갈 예언(12-21)

 

. 15: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해질 때 해질 무렵 아직 제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때에 아브람은 실지로 깊이 잠들었다.  이것은 또한 신앙의 잠이 든 것을 상징한다.  성도가 신앙 생활을 하다가 때로 흑암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신앙의 잠이 깊이 들고 두려움에 빠진다.  엘리야와 요나와 세례 요한도 잠깐 신앙의 잠이 들었던 때가 있다.

 

. 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할 것을 예언으로 주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흑암면인데, 이 고난을 통과해야만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예정이다.  어떤 사람은 아브람이 제사 드리다가 잠깐 졸은 죄 값으로 받은 징벌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옳은 해석이 아니다.  제사 중 한번 잠들었다고 그 자손을 400년 종살이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법에 맞지 않는다.

 

. 15:15-16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허락한 가나안 땅을 완전히 차지 하기는 먼 장래의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그것을 믿고 바라보면서 영적 가나안인 하늘 나라를 사모하며 평안히 살다가 죽어 천국에 갈 것이라고 하였다.  아브람의 자손 되는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동안 애굽에서 고난을 통과한 후에야 가나안 땅에 돌아갈 것이며, 그 동안 가나안 원주민은 악이 관영해져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사대 만에 그 400년 동안은 4대 후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4수는 고난의 수이다.  성도는 애굽과 같은 이 세상에서 4수의 고난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한 것과 광야 40년 생활과 예수님이 40일 금식 기도한 일 등은 다 고난받는 기간이었다.  성도들도 하나님이 예정한 기간 동안 고난을 받아야 연단되고 정결케 되고 자라나게 된다.  반면에 아모리 족속과 같이 악한 자는 점점 악해져서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

 

. 15: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이것은 하나님의 응답의 불이요 그 계약을 확증하는 행사요 그 제사를 받았다는 증거이다.

 

.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하나님께서 증거를 주신 다음에 다시 언약을 세우며 가나안 땅의 경계를 정해 주셨다.  애굽강에서 유브라데까지는 이스라엘의 이상적 국경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이다(왕상 8:65, 사 27:12).

 

. 15:19-21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이방 족속이 있는 땅을 다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셨다.  비록 하나님이 허락한 곳에 다른 민족이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그들을 하나님이 다 심판하고 좇아내어 하나님의 허락하신 것을 다 이루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실성과 능력으로 이루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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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6장

제 16 장  실 패

 

(대  지)

一. 아브람이 하갈을 취함(1-3)

二. 종이 주인을 멸시함(4-5)

三. 종을 학대하니 도망침(6)

四. 주인께 복종케 하여 복 받게 함(7-8)

五. 이스마엘에 대한 예언(11-16)

 

(본문 강해)

 

一. 아브람이 하갈을 취함(1-3)

 

. 16:1-3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십 년 후이었더라

아브람이 자녀를 얻기 위해 하갈을 첩으로 취한 것은, 그가 인본주의로 기울어진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날 자가 후사가 되리라고 언약하셨음에도 사래가 76세가 되도록 잉태하지 못하자 앞으로 아들을 낳을 소망이 없다고 인간의 생각대로 판단해 버렸다.  그리하여 사래가 아브람에게 자기의 여종을 취하여 아들을 낳으라고 권하였고, 아브람은 여종이라도 취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사래의 권면대로 여종 하갈을 취하였다.  그 당시 서부 아시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함무라비 법전 144-147조에, \"만약 아내가 자녀를 낳지 못하면 시녀를 남편에게 주어 자녀를 낳게 하라\"는 말이 있다.

아브람이 하갈을 취한 것은 정욕으로 취한 것이 아니고 세상의 풍속과 법을 좇은 것이다.  아브람이 믿음으로 끝까지 참으며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한 것은 잘못이다.  다시 말하면 아브람이 영적 신앙에서 육적 신앙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그 말씀을 아브람이 이루어 드리려고 하는 정신은 좋으나 그 방편이 인본주의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났다.

하나님의 일은 목적도 성경에 맞아야 되고, 방편도 성경에 맞아야 된다.  요즈음 해방신학자들은 억압받는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해도 좋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 방법이 성경을 위반한 것이요 악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였으나 꼭 사래의 몸에서 낳아야 된다고 말씀하지 않았으므로 아브람은 첩이라도 얻어 아들을 낳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원리 원칙에 어긋난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가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래를 아브람의 아내로 정해주셨으니 사래가 아무리 늙었고 경수가 끊어졌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낳게 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그릇된 방법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시지 않기 때문이다.

교역자나 신자가 교회를 부흥시키겠다는 좋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성경의 원리에 어긋나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쓰면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요,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인본주의로 얻은 교인은 아브람에게 속한 자가 아니요 육에 속한 자이다(갈 4:22-25 참조).

 

二. 종이 주인을 멸시함(4-5)

 

. 16: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여종 하갈이 잉태하매 여주인 사래를 멸시하였다.  언제나 불법의 길을 걷는 자가 정당한 길을 걷는 자를 핍박ㅎ여,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한 자를 핍박하고 멸시한다.  교회 안에도 육에 속한 목사도 있고, 장로도 있고, 집사도 있으며, 신자도 많이 있다.  그들이 영에 속한 신자를 멸시하며 핍박한다

 

. 16: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브람이 인본주의를 썼기 때문에 집안이 평안치 않았다.  아브람과 사래가 다투게 되었고, 사래와 여종이 다투게 되었다.  온 집안의 화평이 깨어지고 종이 주인의 위에 올라가서 주인을 멸시하게 되었다.

 

三. 종을 학대하니 도망침(6)

 

. 16: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가정의 질서를 회복하는 해결책은 1 정당한 아내 사래에게 권세를 주는 것과(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하라)

② 여종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갈라디아서 4:22-23에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다.  언제나 성경대로 바로 된 자에게 권세를 주고 영으로써 육체를 쳐서 복종시켜야 생명이 살고, 평안이 오고, 모든 일이 바로 된다.  로마서 8:13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9:27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고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육에 속한 것과 진리에 맞지 않는 것을 끊어버리고 진리 안에서 영의 자유와 새 생명을 얻어 나가야 한다.  종의 신분을 망각한 하갈을 엄히 다스리라고 아브람이 사래에게 권한을 부여하였다.  아브람은 가정의 질서 유지를 위해 각자의 위치를 바로하고 원리 원칙대로 그 일을 처리했다.  나이 많은 아브람이 종을 통하여 아이를 잉태하였으나 아브람이 인정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사건을 바로 처리했다.  사래는 교만해진 여종 하갈을 주인의 위치에서 바로 다스렸다.  아랫사람이 교만하면 엄히 다스려서 바른 위치에 세워 놓아야 한다.  사래가 자기의 정당한 권세를 사용하여 그 여종 하갈을 다스려 질서를 유지한 것은 잘한 것이다.

 

四. 주인께 복종케 하여 복 받게 함(7-10)

 

. 16:7-9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 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하갈이 주인의 학대를 받고 광야로 도망했다.  그때 하갈이 주인에게 순종하지 않고 광야로 도망친 것은 아주 잘못된 행동이다.  누구나 교만하여 자기 위치를 떠난 사람은 광야와 같이 쓸쓸하고 곤고한 자리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겸손하여 윗사람에게 복종하고 자기의 위치에 바로서는 것이 중요하다.  하갈이 주인의 집을 떠나 광야 생활을 하면서 고통받는 중에 회개하며 하나님께 진정으로 부르짖게 되었다.

하나님은 고통 중에서 회개하며 부르짖는 하갈을 천사를 보내어 권고해 주시고 다시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겸손히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살길을 가르쳐 주었다.  겸손과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복종하는 것이 사는 길이요 높아지는 길이다(벧전 5:5-6),

 

. 16: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크게 번성하여 하갈이 주인에게 돌아가서 복종할 때에 하나님이 잘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이 세워 놓은 위치에서 윗사람을 잘 섬기고 제도를 잘 지킬 때에 하나님께서 창성하고 잘되게 해 주신다.  가정이나 교회에서도 질서를 지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순종해야 잘되고 번성한다.

 

五. 이스마엘에 대한 예언(11-16)

 

. 16:11-12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이스마엘이 번성하고 강해질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육신에 속한 신자가 세상적인 면에서는 강하고 번창할 수 있다.  교회도 인간의 수단을 써서 종의 아들들(이스마엘)을 끌어들이면 연보도 많이 나오고, 사업도 크게 할 수 있다.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25:18에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그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 거하였더라\"고 하였다.  동방은 맞은편이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을 이삭에게서 멀리 떠나서 살게 하지 않고 그 부근에서 살도록 하여, 이삭의 영향력을 계속 받아 이삭의 자손이 어떻게 하는 것을 보고, 이스마엘 자손도 그것을 본받아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도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이다.  복음의 빛은 가까운 데서부터 비춰나가게 된다.

 

. 16: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하나님께서 하갈을 불쌍히 여겨 감찰해 주셨다.  하나님은 육에 속한 신자도 버리지 않고 감찰해 주신다.

 

. 16: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이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하갈이 샘물 곁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으므로 그 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다.  그 뜻은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 16: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의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육 세이었더라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았고, 아브람은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였다.  그 때 아브람의 나이는 86세이었다.  이 때는 아브람이 이삭을 낳기 14년 전이었다.  조급하게 인간의 생각과 수단으로 이스마엘을 얻었으나, 그 이스마엘이 결국은 참된 후사인 이삭을 핍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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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17장

제 17 장  할 례

 

(대  지)

一. 완전하라(1)

二. 언약과 축복(2-8)

三. 할례의 언약(9-14)

四. 이삭 출생의 언약(15-22)

五.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함(23-27)

 

(본문 강해)

 

一. 완전하라(1)

 

. 17:1  아브람이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람이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엘 샤다이) 즉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을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루어 나아가실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아브람이 구십 구 세이며 사라가 팔십 구 세로써 몸이 죽은 것 같이 되어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자녀를 생산할 수 없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낳게 하실 것이다.

 

二. 언약과 축복(2-8)

 

. 17: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전에 언약을 세운 바 있으나(12:2-3,15:5-7), 또 다시 언약을 세워 전에 세운 그 언약을 더욱 확실하게 하셨다.  그 언약의 내용은 아브람의 자손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크게 번성하여 열국을 얻을 것과, 아브람은 열국의 아비(믿음의 조상; 롬4:16)가 될 것과, 가나안 땅을 그와 그 자손에게 기업으로 준다는 것이다.

 

. 17: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브람이 엎드린대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은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태도이다.  이것은 또한 전에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될 것\"(15:4)이라는 언약을 하셨으나 아브람이 그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끝까지 참아 기다리지 못하고 인본주의를 써서 이스마엘을 낳은 일에 가책을 느껴 회개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 17: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아브람이 열국의 아비가 된다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다.  이것은 아브람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자가 열국에 퍼지고,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을 가리킨다.

 

. 17:5-6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쫓아 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람( : 높은 아버지라는 뜻)에게 아브라함( )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열국의 아버지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한 보증이었다.  아브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인격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새 이름을 그에게 주신 것이다.  이름은 그의 인격의 실상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은 이전 사람이 아니고 새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조상이요, 열국의 아비가 된 것이다.  또 자기만 살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살려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창성케 되고 많은 사람을 살려 내는 사람이 된다.

 

. 17:7-8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심히 번성케 해 주시고(2-6절), 열국의 아비(4,5절)가 되게 해주시고,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三. 할례의 언약(9-14)

 

. 17:9-10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를 주시겠다고 언약을 세우시고(15:5-7), 그 언약의 표로써 할례의 제도를 세우셨다.  신약의 성례가 성찬과 세례인 것처럼 구약의 성례는 유월절과 할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  할례의 양식은 남아가 출생하여 팔 일이 되면 양피(陽皮: 성기 끝의 가죽)를 조금 베어버리는 것이다.

할례의 뜻은 첫째, 정욕을 제거함이다.  예레미야 4:4에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라\"고 했다.  또 빌립보서 3:3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고 하였다.  정욕을 벗어버리고 성령으로 행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그것이 참 할례이다.  골로새서 2:11에는 육적 몸을 벗어버리는 것이 참 할례라고 했다.

둘째, 하나님께 속함이다(렘 4:4 참조).  할례를 받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뜻이다.

셋째,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함이다.  할례를 받으므로 정식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넷째, 하나님의 백성된 표이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된다(14절).  이것은 시민증과 같다.

지금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속하여 정욕을 벗어버리고 육체를 신뢰하지 말고, 성령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나가면 신령한 할례를 받는 것이 된다.

 

. 17:11-12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양피를 베어라 남자아이는 난지 팔일 만에 이 예식을 행하여야한다.  이것은 정욕을 제거한다는 뜻이 있다(9-10절 강해 참조).

 

. 17:13-14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할례는 살(육체)에 한 언약의 표인데, 오실 그리스도의 언약에 참여한 표요, 하나님께 속한 자의 표요,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이 된 표이다.

 

四. 이삭의 출생의 언약(15-22)

 

. 17:15-16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고 하셨다. \"사래\"는 \"여걸\", \"귀부인\"이라는 뜻이고, \"사라\"는 \"여주인\", \"공주\"라는 뜻이다.  사라도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운동에 이용당할 것이므로 새 이름을 주셨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며 그를 보조하는 사라는 열국의 여주인과 같은 위치에 있게 되고, 따라서 그러한 인격자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구원 사역에 잘 이용당하는 자는, 이와 같이 인격이 변하여 존귀하게 되고 큰 자가 된다(마5:19 참조).  성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으로만 받지 말고 약속 받은 대로 몸으로 행해야 한다.  성도가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면 그의 인격이 변화되어 점점 자라나고 존귀해진다.  인격이 커지고 존귀해지면 많은 사람을 구원하게 되고, 열국의 아비처럼 존귀하고 큰 자가 되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큰 자가 되고 큰 영광과 상급을 받게된다.

 

. 17:17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낳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아브라함이 웃었다.  아브라함이 왜 웃었는가?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지 못해서 웃은 것이 아니라 100세 된 자기와 90세 된 사라가 생산 할 것을 생각하니 웃을만한 일이요,  이와 같은 하나님의 큰 역사가 자기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여 웃는 웃음이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의심하고 믿지 못하여 웃었다면 하나님이 책망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책망하시지 않고 그 믿음을 더욱더 인정해 주셨다.

 

. 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 한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을 믿사오나 나이가 많고 나의 아내도 나이가 많은데, 어찌하여 이런 늙은이에게서 아이를 낳게 하려고 하십니까, 차라리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하는 뜻으로 한 말이다.

 

. 17:19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사라를 통해서 낳을 아이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지어 주었다.  

이삭( )은 \"웃음\" 이라는 뜻이다.  21:6에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말한 대로 사라가 이삭을 낳을 때에 사람들이 웃었다.  90세 된 할머니가 아이를 낳았으므로 웃을만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후사로 세우지 않고 분명히 사라로 말미암아 아들(이삭)을 낳아 후사가 되게 하실 것을 확실히 언약하셨다.

아브라함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 이스마엘은 후사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낳은 약속의 아들 이삭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고 하나님께서 그와 영원한 약속을 세우시겠다고 하였다.  약속의 자녀를 낳은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롬 4:18-21).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끝까지 믿고 소망하였다.

 

. 17:20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 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하나님께서 이스마엘도 복을 주고 번성케 하여 열 두 방백을 낳게 하고 큰 나라가 되도록 하시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 17:21-22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하나님의 약속 성취는 신령한 아들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영에 속한 신자가되어, 하나님의 참된 구원 운동을 이루어 나가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의 축복을 받도록 해야 한다.

 

五.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함(23-27)

 

. 17:23-27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생장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양피를 베었으니 아브라함이 그 양피를 벤 때는 구십 구 세이었고 그 아들 이스마엘이 그 양피를 벤 때는 십 삼 세이었더라 당일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생장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아브라함은 99세 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마엘도 할례를 받았다.  그때 이스마엘의 나이는 13세이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아브라함의 집의 모든 남자가 다 할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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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18장

제 18 장  기 도

 

(대  지)

一.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함(1-8)

二. 사라를 통해 아들 낳을 것을 예고함과 사라의 불신(9-15)

三. 아브라함에게 소돔 멸망을 예고함(16-21)

四.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기도함(22-23)

 

(본문 강해)

 

一.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함(1-8)

 

. 18:1-2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본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 있을 때에 세 사람이 맞은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영접하여 대접하였다.  히브리서13:2에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였다고 하였다.  세 사람 중 한 분은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비의적현상(秘儀的現像)으로 나타난 것이며(33절), 그 외 두 사람은 천사였다.  아브라함이 영감으로 그 세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분으로 알았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영감이 있는 신령한 신앙의 사람이었다.

 

. 18:3-5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두 천사에게 경배하며 대접하겠다고 간청했다.  아브라함의 간청에 그들이 허락하였다.  하나님은 간절히 원하는 자의 대접을 받으시고 상급을 주신다.

 

. 18: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세 스아 한 스아(Seah)는 7.33 리터이다(왕하 7:16 참조).  나그네를 위하여 속히 떡을 만들어 대접하려는 아브라함의 정성과 사랑이 매우 귀하였다.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신다.

 

. 18:7-8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아브라함이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고 급히 요리하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와 버터와 우유를 가져다가 손님들 앞에 차려놓고 대접하였다.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하나님과 천사를 영접했고, 자기 집에 모시고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서 정성껏 대접했다(딤전 3:2 참조).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하다가 천사를 대접하게 된 것이다(히 13:1-2).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하다가 하나님을 대접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복 받을 일인가!  성도가 하나님의 성도들을 잘 대접하면 하나님의 일이 잘되고 자신도 복을 받게 된다(갈 6:9-10).

특히 우리는 믿음 지키다가 환난 받는 성도를 잘 대접해야 한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알고 대접할 마음이 생겼고, 자기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 작은 방 하나를 지어서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고 엘리사가 지나갈 때에는 들러서 유(留)하게 하였다(왕하 4:8-10).  이렇게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을 대접함으로 복을 받아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대접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로만 믿고 영접하여 대접하고 보니 그분들이 하나님과 천사였다.  그들이 그 음식을 다 받으시고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주었다.

 

二. 사라를 통해 아들 낳을 것을 예고함과 사라의 불신 (9-15)

 

. 18:9-10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천사를 영접하고 잘 대접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다(갈 3:16).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은 최고의 축복이다.  이것은 그 아들 이삭을 통해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약속이며 만민이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구원받을 복음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람을 잘 대접하고 존경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대한 귀한 소식(복음)을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셨다.  오늘날도 나그네를 잘 대접하며 하나님의 종을 잘 받들어 주는 자는 복을 받는다.

 

. 18:11-12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요 사라의 나이는 89세였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고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어졌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 웃음은 사라의 불신앙에서 나온 웃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왜 사라가 웃느냐고 책망하시고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사라가 웃은 이유는 자기들 부부가 노쇠한 것만 생각하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지 못하여 웃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신앙의 호주인 아브라함이 원리원칙에 서서 믿음으로 나아갈 때 사라가 일시적으로 믿음이 없어서 실족했을지라도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앙의 호주가 원리원칙대로 굳게 서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이것은 사라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노쇠한 것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힘을 믿지 못한 연고로 이렇게 말하였다.

 

. 18:13-14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고 웃는 것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라의 불신앙을 책망하신 후에 또다시 사라에게 아들을 낳게 하실 것을 말씀해 주셨다.  이것을 보면 사라의 일시적 불신앙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본래의 구원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약한 자라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붙들어서 다시 믿음에 서게 하여 구원계획을 성취하신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이루어 가시고(이적), 또는 자연법칙을 동원해서라도(기사) 다 성취해 나가신다.

 

. 18:15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사라가 두려워서 웃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을 속인 것이 아니라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하나님은 사람의 심령 골수를 다 살피심으로 절대 속지 않으신다(잠 21:2).  이 뜻은 \"명년 이 때에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네가 아들을 낳을 때에야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회개하고 신앙의 호주 되는 남편의 신앙을 따르라\"는 말씀이다.

 

三. 아브라함에게 소돔 멸망을 예고함(16-21)

 

. 18: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아브라함에게 대접을 잘 받은 그 사람들이 소돔을 향하여 떠날 때에 아브라함이 전송하려고 함께 나갔다.  이는 아브라함이 손님을 끝까지 정성스럽게 대접한 것을 보여준다.

 

. 18: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을 영접하고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해주신다.

아브라함에게 알게 해주신 비밀은

첫째, 구원에 대한 비밀이다.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만민을 구원할 비밀을 알게 해 주셨다(10,14,18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구원의 비밀을 알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이 구원의 기관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이용당하게 하셨다.  곧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을 성취시키므로 아브라함이 복의 기관이 되게 해 주셨다.

둘째,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해 주셨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심판의 비밀을 알게 해 주셨다(20-21절).  이와 같이 하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고 영감으로 사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비밀을 미리 알게 해 주신다.  예를 들면 일정말기에 신사참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만주로 피해 갔던 성도들에게 2차 대전에서 일본이 망할 것을 미리 알게 해 주셨다고 한다.  또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도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그 멸망을 미리 알게 해주었다고 한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영감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앞으로 올 환난에 대해 성경과 영감을 통해 미리 알게 해 주신다.  아모스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 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아합왕 때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과 그 후에 비가 내릴 것을 엘리야에게 알게 해 주셨고, 노아에게도 홍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미리 알게 해 주셨다.

 

. 18:18-19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창성하게 하여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그를 통하여 복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케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기관으로 삼아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 받게 하기 위함이다.  참된 복음운동은 천하 만민이 복 받는 운동이다.  이일에 이용당하는 자는 강대한 사람이나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해 주시며 그를 통하여 세상에 의와 공도를 이루게 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를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구원의 복음에 대한 비밀과 심판의 비밀을 알게 해주신 것이다.

 

. 18:20-21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부르짖음이 크고 이것은 불의와 압제와 착취를 당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만군의 여호와에게까지 들렸다는 뜻이다.  야고보서 5:4-6에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다.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이것은 피해자의 부르짖는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고 그 사실을 자세히 살펴서 심판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 공평하시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 그 때에 음란 방탕하여 만물을 원리대로 사용하지 않고 역리로 사용하였으므로 모든 사람들과 만물이 탄식을 하였다.  만물도 죄에게 이용당할 때에 부르짖고 탄식하며(롬 8:20-22), 우리 몸도 원리대로 사용되지 않고 불의에 이용당하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롬 1:24-27; 8:23).  품꾼의 삯을 주지 않으면 그것이 하나님께 부르짖고(약 5:4-6), 핍박받는 성도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순교 당할 때에 그 피가 하나님께 호소한다(4:10).  이와 같이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고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상달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세상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신다.

 

四.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기도함(22-33)

 

. 18: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두 천사는 소돔을 향하여 갔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손님을 대접하려고 영접했으나 천사를 영접하였고 천사를 대접하고 보니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밀을 알게 해 주셨다.

 

. 18:23-25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아브라함이 여기서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즉시 응답해 주시고 아브라함은 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은 또 응답해 주셨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①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한 기도이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시는 분도 아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다(25절).

② 하나님의 뜻대로 한 기도이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거기에 맞는 기도를 해야 한다.  자기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달라는 기도가 참된 기도이다.

③ 하나님의 백성(의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한 것이다.  이것은 구원운동을 위한 기도요 하나님의 백성을 살려내기 위한 기도이다.  물론 개인문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나 좀 더 고상한 기도는 택한 백성(의인)을 위하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이다.

④ 죄인들이 망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죄로 멸망할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사랑의 기도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자기를 못 박는 무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고 스데반도 이와 같은 기도를 했다.  이것은 영의 세계에서 사는 증거이며 사랑의 발로(發露)이다.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의인을 귀히 여기고 보호하여 건져 주시는 하나님인줄 믿고 의인 오십 인을 위하여 그 성 전체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했다.

⑤ 겸손의 기도이다.  자기를 티끌과 같은 자라고 하며(27절) 기도하였다.  이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기도요 지극히 겸손한 자리에서 하는 기도요 자기는 쇠(衰)하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은 흥(興)하여야 되겠다는 기도이다.

 

. 18: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50인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고 응답하셨다.  왜냐하면 아무리 소돔성이 죄악으로 관영하더라도 의인 50명이 있다면 바로 설 소망이 있고, 또 그 의인을 불의한 자와 함께 멸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다.

 

. 18:27-28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 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생각해 보니 그 성중에 의인 오십 인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45인으로 낮추어서 하나님께 다시 말씀드렸다.  그때 하나님은 의인 45인을 위해서도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 하셨다.

 

. 18:29-31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이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이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다시 \"의인 40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고 하나님께 여쭈어 볼 때에 하나님은 의인 40인을 찾아도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때 아브라함이 다시 10명을 감하여 \"의인 30인을 찾으면 어떻게 하시겠나이까\"하고 여쭈어 보니 하나님이 의인 30인을 인하여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대답해 주셨다.  아브라함은 또 10인을 감하여 \"의인 20인을 찾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고 여쭈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 20인을 인하여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 18:32-33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27절),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30절),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31절) 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한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며 겸손한 심정과 태도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은 마지막으로 \"소돔성에서 의인 1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라고 말씀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의인 10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이 말씀은 마땅히 멸망시킬 것도 의인을 위해서 멸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로 인해 마땅히 멸망할 도성도 하나님을 섬기는 의인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사무엘상 2:8에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이 땅의 의인들이 기둥이라는 뜻이다.  시편11:3에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라고 하였는데 \"의\"가 굳건한 터가 된다.  세계가 죄악으로 멸망당하게 되어 있으나 기둥들(의인들)이 지탱하고 있어서 멸망이 연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 얼마나 있느냐가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도 죄악이 관영하여 그 죄값으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으나 의인들이 나타나서 기둥 역할을 잘 해나가면 소망이 있다.  그 의인들을 인하여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월남은 이러한 기둥(의인)이 없었기 때문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월남의 종교가 다 부패하여 세속화되고 기둥들이 무너졌으므로 망하였다.  의인들이 기둥역할을 하면 자기뿐 아니라 그 도시 전체, 그 나라 전체를 살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의인 열 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 성을 멸망시켰다.  예레미야 시대에는 예루살렘에서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의인 한 명만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 성을 사하여 주신다고 하였다(렘5:1).  또 에스겔 22:30-31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했다.  이와 같이 의인 한 사람이 많은 군대와 많은 무기보다 낫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된 자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므로 의를 이룬 자를 말한다.  베드로후서 2:7에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라고 했다.  롯의 의는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 의였다.  또 롯은 죄를 용납하지 않고 죄를 미워하고 죄로 인하여 의로운 심령이 상하였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롯을 그 멸망 중에서 구원해 냈다.  죄를 용납하고, 죄를 보고도 탄식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 속에 의가 없기 때문이다.  에스겔 9:4에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도 교회 안에서 성경 말씀을 어기는 일에 대하여 탄식해야 한다.  의는 죄를 미워하는 데서부터 세워 나가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행함으로 의를 세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핍박을 받으면서 경건하게 믿는 사람(딤후 3:12)을 하나님께서 기둥으로 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세워 나가는 교역자와 성도와 교회를 찾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다수를 기뻐하지 아니하시고(고전 10:5; 삿 7:7 참조), 몇 사람이라도 의인을 찾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돔 고모라 도시가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한 것을 전감(前鑑)으로 삼고 의를 세워 나가는데 힘을 써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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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9장

제 19 장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대  지)

一. 롯이 천사를 대접함(1-3)

二. 소돔인들의 악행(4-9)

三. 롯을 보호하고 소돔인들의 눈을 어둡게 함(10-11)

四. 천사가 롯의 가족을 구출함(12-23)

五. 소돔 멸망과 소금 기둥 된 롯의 아내(24-29)

六. 딸의 간계와 롯의 실패(30-38)

 

(본문 강해)

 

一. 롯이 천사를 대접함(1-3)

 

. 19:1-2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그 당시에는 성문을 재판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룻 4:1, 삼하 15:2).  그러므로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롯이 높은 관직에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두 천사를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하고 간청하였다.  롯이 손님 대접하는 것을 삼촌 아브라함에게 배운 것이다.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소돔 고모라는 더운 지방이었으므로 사람들이 맨발로 다니며 밖에서 돌아오면 발을 씻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므로 롯이 천사에게 발을 씻고 주무시라고 하였다.  이것은 손님을 대접하는 예의이다

 

. 19:3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롯이 천사를 영접하려 하였으나, 천사들은 거리에서 밤을 지내겠다고 사양하였다.  그러나, 롯이 재차 간청할 때에 허락하고 롯의 집으로 들어갔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그대로 지나가려고 했으나 두 제자가 간청하므로 예수님이 함께 들어가셨다(눅 24:29).  성도에게 은혜 .받는 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곧 지나 가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은혜 받을 기회가 올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해서 은혜 받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며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시고 간절히 찾는 자에게 만나 주신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간구할 때에 예수님은 ① 못 들은 체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② 상관없다고 하였고, ③ 아이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줄 수 없다고 하였으나 그 여인은 간절한 마음으로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하며 은혜를 간구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하시고 그 여인의 간구를 들어 주셨다.

천사가 한번 거절했을 때에 만일 롯이 간청하지 않았다면 그 천사들을 영접치 못했을 것이며 따라서 소돔성이 멸망할 하나님의 비밀도 알지 못했을 것이며 구원 얻는 길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롯이 천사를 대접하였으나, 아브라함이 대접한 것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브라함은 살찐 송아지를 잡고 고운 가루 세 스아로 떡을 하고 버터와 우유를 대접했으나(18:6-8), 롯은 무교병을 구워서 대접하였을 뿐이다.

이렇게 간단히 대접한 것은 롯이 가난해서도 아니고 대접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롯에게 송아지나 양 같은 짐승이 많았고, 시간적으로도 천사가 밤을 지낼 만큼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롯은 손님을 대접하는 정성이 아브라함보다 부족하였다.  아브라함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도 천사를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서 정성스럽게 귀한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도 자기 신앙에 따라 정도가 다르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연보하는 것도 재산이 많다고 많은 연보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해도 믿음이 좋으면 없는 중에도 힘써 정성스럽게 한다(막 12:41-44).

 

二. 소돔인들의 악행(4-9)

 

. 19:4-5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밤이 되어 그들이 잠자리에 눕기 전에 소돔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롯의 집을 에워싸고, 롯에게 말하기를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을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과 상관하겠다\"고 하였다.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상관\"은 히브리 원어 (야다)로서, 성적(性的)으로 관계하겠다는 것이다.  소돔 사람들이 음란 방탕(淫亂放蕩)하여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동성 음행)을 행하려고 하였다(롬1:27 참조).  유다서1:7에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하였다.  \'다른 색\'은 \"남색\"을 말한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남녀 노소 모두가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포악과 음란이 가득하여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레20:13 참조).

 

. 19:6-8  롯이 문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

롯이 하나님의 사람을 자기 딸들보다 더 귀히 여기고 아꼈다.  롯은 자기 딸들을 희생시켜서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능욕 당하는 것을 막아 보려고 하였다.  이것은 롯이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딸들을 악한 무리들에게 내어 주겠다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목적은 좋았으나 방법이 잘못되었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더라도 그릇된 방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  목적도 선하고 방법도 선해야 한다.

 

. 19:9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우거는 타향에 임시로 와서 사는 것을 말한다.  롯은 소돔의 본토인이 아니고 이주해 와서 깃들여 사는 입장이었다.  롯이 무리들에게 자기 집안에 있는 사람을 해하지 말라고 만류하자 그들은 더욱 악해져서 롯의 집에 머무는 사람들보다 롯을 더 해하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리하여 롯을 밀치고 문을 부수려고 맹렬하게 달려들었으니 소돔 사람들이 얼마나 완악하고 잔인한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소돔성의 죄악은 말세 죄악의 예표가 되었고, 그들이 받은 심판은 말세 심판의 예표가 되었다(눅17:28)

 

三. 롯을 보호하고 소돔인들의 눈을 어둡게 함(10-11)

 

. 19:10-11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으며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

천사들이 위험에 처한 롯을 구원해 주고 음란하고 포악한 무리들의 눈을 어둡게 했다.

그 눈을 어둡게 하니 하나님의 사람을 해하려고 하는 자는 눈이 어두워진다.  열왕기하6:1-8에서 아람 군대가 엘리사가 있는 도단성을 에워쌌을 때에 선지자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람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했다.  하나님의 사람을 해하는 자는 심령의 눈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바울도 성도들을 해하려고 다메섹으로 갈 때에 눈이 어두워졌으나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때 다시 눈이 밝아졌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귀히 여겨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손해 줄까봐 벌벌 떨어야 한다.

 

四. 천사가 롯의 가족을 구출함(12-23)

 

. 19:12-14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내라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천사가 롯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해 주었다.  그 비밀은 구원과 심판에 관한 것인데, 죄악이 관영한 소돔과 고모라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과, 롯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성에서 나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천사들이 롯에게 \"제게 속한 자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내라\"고 하였을 때에, 롯이 자기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찾아가서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고 하였으나 사위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길을 가르쳐 주었으나 그 말을 농담으로 여길 만큼 사위들의 마음은 강퍅하고 심령이 어두웠다.

 

. 19:15-16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 하심이었더라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두려우니 아내와 두 딸을 이끌고 빨리 이 성에서 나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롯이 재산에 대한 미련 때문에 지체하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모은 많은 재산을 다 버려두고 나가기가 너무 아까워서 주저하고 지체한 것 같다.  아직도 롯이 물질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였다.  롯이 이렇게 지체하고 있을 때에 천사들이 롯과 그의 처와 딸들의 손을 붙잡고 성밖으로 이끌어냈다.  이렇게 강권해서 끌어내야만 겨우 멸망의 자리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대로 놓아두면 멸망하겠으므로 천사가 강제로 이끌어내어 그 생명을 구원하였다.  롯은 겨우 구원받은 것이며 불 가운데서 얻은 구원과 같다(고전 3:15).

 

. 19: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천사들이 롯과 그 가족을 이끌어 낸 다음에 그들에게 세 가지를 지시했다.

첫째, 도망하라.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성도들이 세상의 죄악에서 떠나 시온산을 향하여 도망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을 향하여 도망할 때에 힘이 든다고 도중에 머무르지 말고 계속하여 산으로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말세의 성도들이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도망하여 나와 구별된 생활을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계 18:4).

둘째, 뒤를. 돌아보지 말라.  뒤를 돌아보는 것은 세상을 돌아보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세상으로 기울어 져서 세상의 것을 마음에 두면 신앙의 달음박질을 못한다.  그러므로 소돔에서 나온 다음에는 소돔에 대한 애착심을 끊고 뒤돌아보지 않아야 된다.  돌아보면 소금 기둥이 된다.

세째, 들에 머물지 말라.  성도가 신앙의 달음박질을 하다가 중단하지 말고 계속하여 전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평안할 때나 괴로울 때나 언제든지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신앙의 달음박질을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아 일체의 비결을 배웠고(빌4:12), 항상 믿음의 달음박질을 계속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이요, 자라나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령한 시온산을 향하여 달음박질하면서 뒤를 돌아보지도 말고 들에 머물지도 말고 계속하여 영적 생명이 사는 자리로 나아가야겠다.

 

. 19:18-20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 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롯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여 하나님이 지시하신 산까지 가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내려와 자기도 재앙을 만나 죽을 것 같아 두려워하였다.

 

. 19:21-22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롯이 소돔성 가까이에 있는 소알성으로 도망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였다.  하나님께서 그것까지 허락해 주셨다.  신령한 뜻은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 세상과 같고, 소알성은 오늘날 교회와 같다.  성도가 세상을 떠나서 천성을 향해 달음박질하는데, 하나님께서 교회를 피난처로 허락하셨다.  사람이 연약하여 시온산에까지 도망할 수 없을 때 소알 성에 가서 임시로 보호를 받다가 다시 도망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리의 피난처요 천성 가는 준비를 하는 곳이다.

 

. 19: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롯이 해가 돋을 때 소알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유황불이 내려오기 직전이었다.

 

五. 소돔 멸망과 소금 기둥 된 롯의 아내(24-29)

 

. 19:24-25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소돔과 고모라성에 유황불이 비같이 내려와 다 멸하였다.  소돔 고모라 성이 멸망한 자리가 지금의 사해인데, 그 바다는 사람이 들어가면 몸이 뜰 정도로 염분이 많고, 물이 너무 짜서 물고기도 살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사해의 수면은 지중해의 수면보다 392m가 낮아서 물이 사방에서 흘러들어 오기만 하고 나가는 곳은 없다.

 

. 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계속해서 달음질하여 산으로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17절)고 하였으나 그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했다.

둘째, 물질에 대한 애착심 때문이었다.  롯의 아내는 천사에 이끌려서 소돔성에서 억지로 나왔으나, 그 때까지 모아 놓은 물질과 재산에 대한 아까움과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 올 때에 그 재산들이 어찌될까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요즈음도 롯의 아내처럼 세상 물질에 미련을 두고 뒤(세상)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된 사람이 많이 있다.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성도가 믿음을 지키지 않고 물질을 따라가면 맛 잃은 소금이 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5:13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했다.  맛 잃은 소금은 ① 하나님이 내어버리고 ② 사람은 발로 밟고 ③ 자신은 신앙의 맛이 없어진다.

성도들도 롯의 처와 같이 맛 잃은 소금이 되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성도들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시온산을 향하여 계속 달음질할 때에는 성경을 보면 꿀송이보다 달고,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된다.  그러나 물질과 세상에 애착심이 있어 뒤를 돌아보면 성경을 보아도 맛이 없고 기도해도 감동이 없으며 결국 하나님이 버리고 사람에게 짓밟히게 된다.

 

. 19:27-28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것을 아브라함이 멀리서 바라보았다.  우리 성도들도 세상이 멸망할 때에 아브라함과 같이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을 준비해야겠다.

롯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다가 세상이 멸망할 때에 의지하고 살던 것이 다 없어지고 겨우 몸만 구원받았다.  롯의 사위들은 불에 타 죽고,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재산은 다 불에 타서 없어지고, 자기와 두 딸만 겨우 벌거벗은 몸으로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얻었다(고전 3:15 참조).  우리 성도들도 한 손에는 하나님을 붙들고 또 한 손에는 세상을 붙들고 살려고 하면 롯과 같이 된다.

 

. 19: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신앙과 기도를 생각하여 롯을 건져 주셨다.  그러므로 기도의 자식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는 줄 알고 자녀를 위해 부지런히 기도해야 한다.  자녀들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에서 살지라도 그 자녀를 위해 항상 기도해 주면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마침내 건져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낙심하지 말고 타락한 자나 고난 중에 있는 자를 위해 계속하여 기도해 주어야 한다.

 

六. 딸들의 간계와 롯의 실패(30-38)

 

. 19:30  롯이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였더니

롯이 소알 성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산으로 올라가 굴속에 거하였다.  하나님이 롯에게 소알 성을 피난처로 주고 거기서 살게 하였으나 그것을 믿지 않고 롯이 그 곳에서 살기를 두려워하여 산에 올라 두 딸과 함께 굴속에서 살았다.  소알 성에도 죄가 있으므로 또 하나님이 심판할까봐 두려워서 거기를 떠난 것이다.

소알 성은 교회를 상징하는 것인데, 오늘날 지상 교회 안에도 잘못된 것과 죄가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한 곳이라 할지라도 합당치 못한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지상 교회는 죄와 싸우는 곳이므로 성도들이 죄와 싸우면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곧 하나님이 피난처로 정해 주신 그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며 자기 신앙을 잘 지키고 말씀대로 달음질해야 한다.  그런데 롯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장소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 굴속에서 살다가 큰 죄를 범하게 되었다.

 

. 19:31-38  큰딸이 작은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에 큰딸이 작은딸에게 이르되 어제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이 밤에도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작은딸이 일어나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큰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작은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

롯이 딸들에게 이 도성 사람들은 다 죄인들이고 망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딸들이 이 도성 사람들은 결혼의 대상자로 삼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에 아브라함의 족속은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들과 결혼했으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롯의 딸들은 소돔 고모라 성의 악한 사람들만 생각하고 세상에는 자기들의 배필이 없는 줄 알고, 자기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녀를 생산하였다.  그리하여 맏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여 낳은 아이는 모압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작은딸이 낳은 아이는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이렇게 롯은 자기 몸을 버리고, 사위들은 죽고, 딸들은 음란하게 되었고,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어 그 가정이 비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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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20장

제 20 장  보 호

 

(대  지)

一. 그랄에서의 실패(1-2)

二. 하나님께서 사라를 보호함(3-7)

三.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책망함(8-13)

四. 사라의 수치를 풀어 줌(14-16)

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기도로 복 받음(17-18)

 

(본문 강해)

 

一. 그랄에서의 실패(1-2)

 

. 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헤브론 즉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살고 있었다(18:1).  거기서 남방으로 옮겨 가데스와 술 사이의 그랄 땅에 우거하게 되었다.  그곳은 가사 남방 8km 지점에 있다.

 

. 20:2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아브라함은 그 지방 사람들이 자기 아내를 빼앗고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했다.  사라가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였으나, 현재는 자기의 아내이므로 결국 거짓말을 한 것이다.

전에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도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여 실패한 적이 있었다(12:13).  그 때에도 애굽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까봐 아브라함이 두려워하여 누이라고 하였었다.  그러므로 ,바로 왕이 사라를 자기 궁으로 취하여 아내를 삼았을 때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브라함이 다시 데려 왔으나 이방 왕에게 책망을 받는 큰 수치를 당하였다.  아브라함이 진실하게 말했더라면 하나님께서 더욱 잘 보호해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철저히 회개하지 않고 이번에 또 아브라함이 인간의 수단을 써서 어려운 일을 피해 보려고 거짓말을 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함정이 되어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여 갔다.

 

二. 하나님께서 사라를 보호함(3-7)

 

. 20: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사라에게 범죄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셨다.  사람은 미련하여 때로 함정에 빠지고 위경에 처할 때가 있으나,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보호해 주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 주신다.

네가 죽으리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사라가 남의 아내임을 가르쳐 주시고 그 여자를 범하면 죽이겠다고 하셨다.  남의 아내를 취하는 일과 동침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벌받아 죽을 만한 죄이다 (레20:10).

 

. 20:4-5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 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아비멜렉이 그 여인(사라)을 가까이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라고 말하면서 그가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했으므로 취하였다고 하나님께 답변하였다.  아브라함이 자기와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수단을 썼으나, 그것이 도리어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실치 못하면 자기와 남을 실족케 한다.  성도는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하여야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아비멜렉이 불의한 생각으로 행했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사라를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빼앗겼을 것이다.

 

. 20: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나도 알았으므로 아비멜렉이 고의로 잘못한 일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범죄하지 못하게 막아 주시는 것이 큰 은혜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범죄하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대로 놓아주시면 그 사람은 저주받을 사람이다(잠 22:1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감동하시고 여러 가지 섭리를 통해서 범죄하지 않도록 권고해 주시는 것을 큰 은혜요 복으로 알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서 죄를 떠나 말씀대로 바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남의 아내나 물건을 취했으면 돌려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삭개오는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은 사 배나 갚겠다고 했다(눅 19:8).  남의 것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요 망하게 될 것이다.

그는 선지자라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세워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이루어 나가셨다.  그러므로 그 아내를 취하는 일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큰 손해를 주는 것이며 그 죄가 더욱 크다.  아비멜렉이 만일 사라를 보내지 않으면 아비멜렉과 그에게 속한 자를 다 죽일 것을 하나님께서 경고하셨다.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선지자가 기도해 주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심판의 칼을 거두어 주신다(대상 21:26-27).

 

三.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책망함(8-13)

 

. 20:8  아비멜렉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모든 신복을 불러 그 일을 다 말하여 들리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아비멜렉이 아침 일찍 일어나 모든 신복에게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명령하신 것을 말하였으므로 모든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심히 두려워하였다.

 

. 20:9-10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관대 네가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 책망하였다.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아비멜렉은 음행죄를 범하는 것은 자신과 자기 나라가 큰 죄에 빠지는 것인 줄 알았다.  고린도전서 6:18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 하였다.  두렵고 떨림으로 음행죄에 빠지지 않도록 힘쓰는 자를 하나님께서 범죄하지 않도록 지켜 주신다.  그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이방 사람에게 책망을 받고 수치를 당했다.

 

. 20:11-13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의 책망을 받고 대답하기를 사라는 본래 이복 누이였는데 결혼하여 아내가 되었으므로 누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이라고 한 것은 옳지 않다.  아무리 누이와 결혼했어도 일단 아내가 된 이상 아내라고 해야 한다.  아내가 된 후에 아내라는 말을 하지 않고 누이라고 한 것은 거짓말이 된다.  성도가 말과 행실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때로는 이방인에게 책망과 수치를 받게 하시고 함정에 빠지도록 하신다.

 

四. 사라의 수치를 풀어 줌(14-16)

 

. 20:14-16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라 하고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아비멜렉이 사라를 돌려보내는 동시에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또 그 땅에 좋은 대로 아브라함이 거하게 해 주었다.  아비멜렉이 비록 본의 아니게 잘못을 저 질렀으나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해 준 것이다.  우리가 본의 아니게 상대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도 거기에 상당한 보상을 해 주는 것이 옳다.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아비멜렉이 남의 아내인 줄 알고 취한 것은 아니지만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했던 것만은 사실이므로 사라에게 있어서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 앞에 그에게 수치됨이 없음을 밝혀 주고 또 아브라함이 섬기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과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브라함을 보호해 주신 것을 알게 해 주고 많은 선물을 주어서 위로해 주었다.

은 천 개는 천 세겔을 가리킨다.  한 세겔은 11.4g이다.

 

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기도로 복 받음(17-18)

 

. 20:17-18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그가 비록 이방 왕이었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잘못을 깨달았을 때 모든 일을 바로 처리하며 아브라함에게 기도를 받았다.  선지자 아브라함이 기도해 줄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모든 것을 선하게 해결하여 주셨다.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사라에게 접근치 못하게 하려고 그 집에 있는 여인들을 쳐서 무서운 병이 갑자기 들게 한 것 같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이 꿈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그 무서운 병으로 인하여 두려워서 사라를 빨리 돌려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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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21장

제 21 장  출 생

 

(대  지)

一. 이삭을 낳음(1-3)

二. 이삭을 믿음으로 양육함(4-7)

三.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함(8-9)

四.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음(10-14)

五. 이스마엘로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함(15-21)

六. 아브라함에게 아비멜렉이 와서 맹약함(22-34)

 

(본문 강해)

 

一. 이삭을 낳음(1-3)

 

. 21:1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잉태케 하시려고 성령으로 감동시키시고 섭리하셔서 여러 면으로 힘 주신 것을 말한다.  아가 2:11-12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라고 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권고하시는 역사를 나타낸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권고하셔서 모세를 택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게 하셨다.

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이 권고하셔서 고레스와 같은 좋은 왕을 세워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셨다.  50:25에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예정한 때가 되면 그 말씀대로 자기 백성을 권고하시며 그 뜻을 이루신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고가 임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겨울에 땅이 얼어붙어 있을 때에는 농사할 수 없지만 봄이 돌아와 눈이 녹고 양춘가절(陽春佳節)이 되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예정한 때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권고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반드시 말씀대로 권고하시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어느 환경, 어느 위치에서든지 그대로 순종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권고가 임할 때에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때를 주지 않으면 가만히 기다리고, 기회를 주실 때에는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만사가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전 3:1-8).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말씀대로 일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반드시 말씀대로 성취된다.  어떤 것은 빨리 성취되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더디 성취되는 것도 있으므로 말씀을 순종할 때에 한 번에 안되면 두 번하고, 두 번에 안되면 세 번하면서 계속 힘써 순종해 나아가면 마침내 하나님의 만능의 역사로 반드시 성취된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계속 순종해 나아가야 한다.

 

. 21:2-3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사라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하여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이 되매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전에 지시하신 대로(17:19)순종하여 지은 이름이다.

       

二. 이삭을 믿음으로 양육함(4-7)

 

. 21:4  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이삭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였다(17:12).  아브라함이 아들을 기르는 일에 있어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길러 신앙의 후사가 되게 하였다.

 

. 21:5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 세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에 나이가 백 세였다.  아브라함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삭을 낳게 된 것을 증거한다.

 

. 21:6-7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이 웃음은 불신앙에서 나온 웃음이 아니고 신앙에서 나온, 기쁘고 즐거운 웃음이다(18:1-12참조).  90세 된 할머니가 아이를 낳았으니 웃을 만한 일이다.  이삭은 사람의 능력과 지각을 초월하여 신적 역사(神的役事)로 출생한 것이니 놀랍고 기뻐서 사라가 웃은 것이다.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90세 된 사라 할머니가 해산했다는 말을 사람들이 들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뻐하며 웃을 만하다.  사라가 늙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으므로 사람들의 생각에는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사라가 자녀를 젖먹이겠다고 누구도 감히 아브라함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아들을 낳게 해주셨으므로 사라가 감사하여 하나님께 찬송한 것이다.

 

三.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함(8-9)

 

. 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였더라 이삭이 자라서 젖을 뗄 때에 아브라함이 잔치를 베푼 것은 육신이 자란 것을 즐거워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서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가실 터인데, 이삭이 젖을 뗄 정도로 장성했으므로 그만큼 구원 역사가 진보 한 것이므로 대연을 배설하고 즐거워하였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육신 중심으로 즐거워한 것이 아니고 이삭을 통하여 많은 사람의 구원 운동이 잘 되어 나가는 것을 감사하며 즐거워한 것이다.

구약 시대에 젖을 떼는 나이는 3-6살 정도라고 하는데(삼상 1:21-23 참조), 이삭이 젖을 떼고 단단한 식물을 먹게 되었으니 그만큼 영이 장성했고 구원 역사가 확장된 것이다.

 

. 21: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하갈의 소생은 이스마엘이며 그가 13세 때에(아브라함은 99세 때) 할례를 받았으니(17:24-25),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4세 위이다.  보통 3-6세에 젖을 떼었다고 하면 이삭이 젖을 질 때에 이스마엘의 나이는 17-20세쯤 되었을 것이다.  이스마엘이 어린 동생 이삭을 시기하여 심하게 희롱하였고 핍박하였다 (갈 4:29).  이스마엘은 활 쏘는 자였으므로(20절) 이삭에게 활을 겨누고 위협하며 희롱했을 것 같다.  사라가 그것을 보고 잘못하면 이삭이 다치거나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四.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음(10-14)

 

. 21: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고 요구했다.  갈라디아서 4:29에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했다.  이스마엘은 육에 속한 자요, 이삭은 영에 속한 자이다.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한 자를 핍박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일이다.  또 영에 속한 자와 육에 속한 자가 공존할 수도 없다(고후 6:14).  이스마엘과 이삭이 갈라진 것처럼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는 서로 갈라서야 한다(계 18:4).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육에 속한 자(이스마엘)는 약속의 자녀(이삭)와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이스마엘이 종의 소생이긴 하나 역시 자기의 아들이므로 그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21: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아브라함이 가정의 어려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을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대로 행하라고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 왔다.  오늘날도 성도들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에는 특별히 기도를 많이 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일을 바로 처리해야 한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하나님이 이삭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성취시킬 것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는 자라야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는 뜻이다.

 

. 21: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육에 속한 아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에게서 났으므로 하나님이 번성케 하여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육에 속한 신자도 번성케 해 줄 것을 의미한다.

 

. 21: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자 지체하지 않고 즉시로 순종하여 여종과 이스마엘을 내어보냈다.  즉시 순종하지 않고 지체하면 마귀의 시험이 들어오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즉시 순종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을 때에 물질을 많이 주지 않고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만 주어 보냈다.  아브라함이 신앙의 결단을 잘 내렸다.  비록 사라가 내어쫓도록 요구하고 하나님께서 명령 하셨다고 해도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내어쫓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인정을 끊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은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신앙이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더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희생하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위대한 신앙을 가졌다.  비록 아들일지라도 그 인정에 얽매이지 말고 끊을 것은 끊어버리고 내어쫓을 것은 내어쫓아야 신앙이 바로 된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따로 분가시켜 줄 수도 있고 재산과 종을 많이 나누어주어 옆에서 살도록 할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내어쫓았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영에 속한 자와 육에 속한 자가 갈라져야만 영에 속한 자가 자유스럽게 자라날 수 있다는 뜻이다.  성도가 육신의 생각, 인정, 인본주의를 내어쫓아야 영적 생명의 길을 힘있게 걸어갈 수 있다.  우리 속에 있는 육신의 소욕을 그냥 놓아두면 영의 일이 안 된다.  육신도 잘되고 영도 잘되면 좋을 것 같지만 그러나, 영의 일이 안 된다.  그러므로 담대히 육신의 모든 소욕을 끊어버려야 생명 있는 신앙으로 걸어갈 수 있다.  육신의 생각은 늘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고, 영적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일을 방해한다(롬 8:7).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생각을 내어버려야 한다.

교회에서 어떤 일을 처리해 나갈 때에도 육신에 속한 의견을 따라가게 되면 영적인 교회로 자라나지 못한다.  교회는 죄인을 구원해 내는 속죄의 구령 기관(救靈機關)이다.  그러므로 영적 구원 운동에 장애가 되는 모든 세력과 인본주의를 좇아내고 참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  개인 신앙에 있어서도 육신에 속한 생각과 인정과 욕심을 내어쫓고 영적 신앙에 서도록 해야 한다.

쫓겨난 하갈이 이스마엘과 함께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했다.  브엘세바는 헤브론 서남 55km 지점에 있다.

 

五. 이스마엘로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함(15-21)

 

. 21:15-16 가죽 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 대곡하니

하갈과 이스마엘이 가지고 간 물 한 가죽 부대를 다 마셔버렸으니 아마 며칠이 지난 것 같다. 이렇게 물이 다 떨어져 죽게 되었을 때 하갈이 차마 자식이 죽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없어 아들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아래 두었다. 왜냐하면 사막의 태양볕이 너무 뜨겁기 때문에 떨기나무 그늘에서 쉬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샘물을 찾으러 떠나가다가 살 한 바탕쯤 가서 아들과 마주보고 앉아 방성 대곡하였다.  주인을 떠난 종은 죽을 지경을 당하게된다.

살 한 바탕쯤  활을 쏘아 화살이 미치는 거리이므로 약 200m 정도일 것이다.

 

. 21:17-18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 주인을 떠나 슬피 우는 하갈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었다.  그리고  그 아들 이스마엘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 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하나님께서 하갈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눈을 밝혀 샘물을 보게 하여 하갈과 그 아들이 살도록 해 주셨다.  하나님이 살릴 자는 눈을 밝혀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생수를 발견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을 자는 눈이 어두워져서 살길을 보지 못하고 곁에 있는 샘도 보지 못하고 목말라 죽는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에게 부르짖는 것이 사는 길이다.

 

. 21: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이스마엘이 장성하고 강건해져서 광야에 살면서 활 쏘는 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육에 속한 신자가 세상일에 있어서는 지혜가 있고 힘이 있어서 모든 것을 잘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에게서 나온 열심이요 하나님의 뜻과 지식을 좇은 열심은 아니다(롬 10:2-3).

교회도 이스마엘과 같은 육에 속한 교회가 외부적으로 힘이 있고 강하여 사업도 잘하나 영적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이스마엘이 외부적으로는 건장하고 사냥도 잘하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영적인 일을 이루어 나가는데는 멀리 떠나 있었다.  하나님의 기업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영적 신앙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주어진다.

 

. 21: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이스마엘이 애굽 여인을 취한 것은 이방 결혼이므로 잘못된 것이다.  이스마엘이 애굽 여인을 취했듯이 오늘날 교회가 신신학, 해방신학, 에큐메니칼 운동, 그릇된 신비주의와 짝하여 나가는 일은 육에 속한 운동이요 땅에 속한 운동이다.  이것은 성경에 위반되는 것이다.

 

六. 아브라함에게 아비멜렉이 와서 맹약함(22-34)

 

. 21:22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을 찾아왔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것을 이방인까지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축복을 해 준 것을 보고 안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방패와 상급으로 삼고 말씀대로 믿고 나아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났고, 많은 재물과 큰 세력을 얻게 되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아브라함에게 불가침 조약 맺기를 원하여 찾아왔다.  또 헷 족속과 모든 사람들도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으로 존경하게 되었다(23:5-6).

누구나 하나님을 잘 섬기면 아브라함과 같이 창성하여 큰 세력이 된다.  성도가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인간 지각에 뛰어난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는 큰 세력이 되게 하신다.

 

. 21: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전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거짓되이 행하였으므로 아비멜렉의 집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질병으로 태(胎)가 닫혀졌고 수치를 당하고 물질적으로 손해가 있었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다시는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맹세하라고 하였다.  자기 아들과 손자에게까지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맹세하여 서로 후대하면서 공존하기를 원하였다.  이는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다시 손해를 볼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여러 가지로 후대한 것처럼 아브라함도 아비멜렉을 후대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도는 남의 신세를 진 다음에 배은망덕하지 말고 반드시 갚아 주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 21:24-25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의 말대로 맹세하겠다고 약속했다.  상대방이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면 즉시 허락하는 것이 좋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였다.  그 지방은 고원 지대이기 때문에 물이 귀하고 목축을 하는 자들에게 우물은 큰 재산이며 생명줄이었다.  그리하여 우물로 인해 가끔 분쟁이 일어났다.  전에 아브라함의 종들이 파 놓은 우물을 아비멜렉의 종들이 빼앗은 일이 있었으나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말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책망한 것이다.  이와 같이 책망은 적당한 때에 해야 효과가 난다(잠 25:11-12).

 

. 21:26  아비멜렉이 가로되 누가 그리 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아비멜렉은 그 일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고 사과하였다.  아브라함 자신이 그 사실을 아비멜렉에게 알리지 않았고 아비멜렉도 그 사실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아브라함이 우물을 빼앗기고도 직접 그들과 싸우지 않고 잠잠히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오직 하나님을 방패와 상급으로 삼아 믿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세력을 강하게 해 주시고, 모든 면에 창성하게 해 주셨다.  사람이 서로 물고 찢으면 피차 망하게 된다.

 

. 21:27-30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뇨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웠다.  그 때에 특별히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았다.  구약 시대에 양을 약조의 증거물로 주는 예가 있었다.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이 우물은 본래 아브라함의 것인데, 아비멜렉의 종들이 늑탈했다가 아브라함에게 다시 돌려주었으므로 그 증거품으로 일곱 암양 새끼를 아비멜렉에게 준 것이다.  보통 전쟁이 끝나고 평화 조약을 맺을 때에도 빼앗았던 것을 다 돌려주고 조약을 맺는다.  아비멜렉도 빼앗은 우물을 돌려주고 조약을 맺었다.

 

. 21: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이 맹세의 내용은 서로 해(害)하지 않고 서로 후대(厚待)하자는 것이었다(23절).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으로 그들이 그 우물을 증거로 삼아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삭의 때에 아비멜렉이 또 빼앗았다(26:15-22).  사람은 서로 계약을 하고도 곧 마음이 변하기 쉽다.  \"세계의 모든 조약은 대포 한 발이면 다 깨어진다\"는 말이 있다.  \"불가침 조약\"이니 \"평화 조약\"이니 하여 서로 조약을 맺어도 인간이 맺은 언약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 사람이 노력하는 데까지는 해야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했다.

 

. 21: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비멜렉과 군대 장관 비골은 브엘세바까지 찾아와 맹약을 하고 그곳을 떠나 다시 그랄로 돌아갔다.

 

.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에셀\"은 \"수풀\"이라는 뜻이 있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많은 나무를 심어 수풀을 만든 것 같다.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아브라함이 영생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생의 길을 날마다 걸어가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님은 영생의 하나님이시며 날마다 생명을 살려 나가시는 하나님이심을 아브라함이 믿었다.  또 자기 속에 새생명이 날마다 역사하였으므로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우리도 날마다 영적 생명이 소생(蘇生)하고 자라나면서 하나님을 부르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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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22장

제 22 장  시 험

 

(대  지)

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함(1-2)

二. 정성드려 하나님을 섬김(3-4)

三. 지혜를 써서 드림(5-8)

四. 독자를 바침(9-10)

五.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심(11-14)

六.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고 맹세함(15-19)

七. 나홀의 자녀들(20-24)

 

(본문 강해)

 

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함(1-2)

 

.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목적은 ① 아브라함의 심중에 있는 신앙을 드러내어 만대에 신앙의 모본을 삼고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이것은 좋은 시험이요 복된 시험이다.  ② 아브라함에게 좀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신앙 인격을 갖춘 자로 만들어 귀하게 쓰려 함이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너무 사랑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야고보서 1:13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악한 목적으로 유혹하는 시험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야고보서 1:2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다.  이것은 성도를 연단시키는 시험이며 성도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여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다(약 1:4).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셔서 큰복을 주시려고 시험하신 것이다.  예를 들면 공부 잘하여 실력 있는 사람에게 고등고시를 쳐서 그 실력을 인정해 주고 귀히 쓰려는 것과 같다.

 

.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을 시험한 문제는 가장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다.

모리아 땅으로 가서 모리아 땅은 아브라함이 사는 곳에서 3일 길쯤 되는 먼 곳이다.  아브라함이 특별한 제사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서 거리가 멀지만 하나님께서 그곳을 택해 주신 것이다.  

그를 번제로 드리라 번제(燔祭)는 제물을 완전히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서(레 1:3-9), 이 시험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어렵고 큰 시험이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자녀를 낳을 수 없었으나, 하나님의 언약으로 낳은 아들이므로, 그를 죽여서 번제물로 드리는 일은 아브라함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또 한 가지 큰 문제는 이삭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며 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다(15:4-5 참조).  이삭이 아직 어리고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 이삭의 자녀가 하늘에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겠는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을 변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믿음으로 순종했고, 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고 하신 말씀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 상반(相反)되나, 이삭을 잡아 번제로 드리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이삭을 다시 살려 전에 주신 약속(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진다는 말씀)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아브라함이 확신하며 순종하였다.  히브리서 11:17-19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 다른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겠다고 하거나 \"전에 이삭을 씨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지금은 왜 바치라고 합니까\"하고 원망하고 불평했다면 아브라함이 그 시험에서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만능의 하나님을 믿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바쳤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자는 아무리 독자와 같이 귀중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바치라고 할 때에 즉시 순종하여 바치게 된다.

 

二. 정성 드려 하나님을 섬김(3-4)

 

.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아브라함이 ① 즉시 순종하고 ② 부지런하고 ③ 충성되이 하나님을 섬긴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즉시로 순종하는 신앙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2:1)고 하실 때에도 아브라함은 즉시로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갔다.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 말씀을 즉시 순종하고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하나님을 섬겨야 된다.  게으른 것은 악이며 게으른 자는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고린도전서 4:2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였다.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이것은 정성을 기울여 제사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는 인구가 많지 않은 때이므로 모리아 산에도 나무가 많고 고목이 되어 쓰러져 있는 나무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집에 있는 깨끗한 나무를 정성껏 준비해 가지고 가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했다.  나무를 가지고 삼일 길을 가는 것이 힘들지만 아브라함은 그것을 개의치 않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데만 마음을 기울였다.  우리도 하나님을 섬길 때에 정성을 다하여 섬겨야 한다.  성도가 연보할 때에도 미리 정성스럽게 준비하였다가 바치고(고후 9:5), 예배도 미리 준비하였다가 일찍 교회에 나와 정성 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예배 시간에 늦거나 빠지는 것은 정성이 없는 증거이다.  정성 없는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은 제사 드리러 갈 때에 하나님의 지시와 인도를 따라 갔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그 땅으로 갈 때에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영적인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까지 가서 제사를 드린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께 몸을 바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를 드리며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산 제사가 된다(롬 12:1).

 

. 22:4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산을 향해 삼일 길을 걸어갔다.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이삭과 함께 삼일 길을 걸어가면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이 굳게 붙들고, 그 말씀을 새김질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갔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다음에는 사람들과 의논하거나 변경시키지 말고 즉시 순종하되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하며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방심하지 말고 전심전력을 기울여 그 뜻을 이루어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三. 지혜를 써서 드림(5-8)

 

. 22: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아브라함이 사환들을 산밑에 남겨 두고 이삭만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기로 작정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 지혜롭게 행한 것이다.  사환들과 나귀를 데리고 가면 산에 올라가기까지는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이삭을 잡아 제물로 드리려 할 때에 사환들이 한사코 만류하게 되면 제사 드리는데 큰 방해가 되어 제사 드리기에 힘들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사를 드릴 수 있을까 하여 깊이 생각하고 방해될 만한 일들을 사전에 지혜롭게 제거하였다.

막아야 할 일을 미리 막지 못하면 나중에는 아주 힘이 들고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아브라함이 산 아래에서는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 한 마디로 일이 잘 처리 될 수 있으나 사환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간 다음 그들이 제사를 방해할 때에는 아무리 힘을 써도 그 사환들의 방해를 물리칠 수 없게 된다.  우리도 하나님 섬기는 일에 모든 것을 사전에 준비하고 심사숙고(深思熟考)하여 바로 처리해야 하나님의 일을 원만히 이루어 나갈 수 있다.

 

.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번제에 쓸 나무를 지우고 자신은 한 손에 불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번제용으로 쓸 불을 집에서부터 준비하여 들고 갔다.  그 당시는 불씨 구하기가 어려웠으므로 집에서 불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가야 제단 나무에 불을 붙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22:7-8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려면 번제할 양이 있어야 할 터인데 나무와 불과 칼은 있으나 양이 없으므로 이삭이 궁금하여 부친 아브라함에게 여쭈어 본 것이다.  이삭은 평소에 양을 잡아 제사하는 것을 자주 보았으므로 이렇게 물어보았다.  이 때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 이삭이 순진하게 하는 말을 듣고도 조금도 인정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신앙에 굳게 서서 끝까지 나아갔다.

또 아브라함이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지혜롭게 답변했다.  이 말을 계획적으로 꾸며서 답변한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모든 것을 친히 해주신 하나님을 믿고 한 말이다.  그때 만일 아브라함이 인정에 끌려 이삭이 죽을 것을 애처롭게 생각하면 맥이 죽 빠져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의뢰하고 일심전력(一心專力)을 다하여 나아갈 때에 자기가 생각지도 못한 지혜로운 말을 하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신 것이다.

 

四. 독자를 바침(9-10)

 

.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산까지 갔다.  그리하여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은 다음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네가 제물이 되기를 원하시니 네가 결박당하여 제물이 되어야겠다\"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그 때에 이삭이 \"나같은 부족한 것을 하나님께서 제물로 받으시겠다고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하면서 자원하여 결박당했을 것이다.  이삭은 늙은 아버지가 결박할 때에 하나님께 몸을 바치는 것이 가장 복되고 영광스럽다는 것과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이며 더 좋은 생명을 받는 진리를 평소에 아버지께 배웠으므로 이렇게 믿음으로 한 것이다.

그러면 자원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는 이삭을 결박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리 자원해서 바치려고 할지라도 칼로 찌를 때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칼을 붙들고 몸부림치거나 뒹굴다가 계단에서 떨어지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얽매어 있어야 탈선하지 않고, 본능과 욕심의 종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잘 이루어 나아갈 수 있다.  성도가 말씀에 얽매이고 직분에 얽매어 있는 것이 탈선과 육의 본능적 행동을 방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유익이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얽매어 신앙 생활하는 것이 귀하고 좋은 것이다.  예를 들면,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고, 성경을 몇 장씩 정해 놓고 읽고, 직분과 책임을 맡아서 감당해 나가고, 교회의 제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얽매여서 사는 자가 신앙 생활을 잘할 수 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정해 놓고 기도했다(단 6:10).

 

.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여 단에 올려놓은 후 이삭을 칼로 잡으려고 하였다.

 

五.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심(11-14)

 

. 22:11-12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인정하셨다.  비록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지는 않았으나 마음으로는 이미 다 바쳐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인정하셨고, 이삭을 번제로 받으신 것이다.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전에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했으나 독자 이삭을 바치는 것을 보시고서야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셨다.  이 시험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  야고보서 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다.  시험 당할 때에 이겨서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가장 사랑하는 독자라도 바쳐야 영과 인격이 자라난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며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바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같이 가장 소중한 독자라도 바쳐야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인정받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와 부활로 구속을 성취하신 다음에야 인정받았다고 했다(롬 1:3-4).  디모데후서 2:15에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 참으로 인정받는 자는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면 그만큼 크고 귀한 그릇으로 사용된다.

 

. 22:13-14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 본 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이삭을 번제로 드리지 못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무슨 준비한 제물이 없을까 하고 사방을 살펴보니 뿔이 수풀에 걸린 수양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브라함은 그 양을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놓은 제물인 줄 알고 그 양을 잡아 그 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여호와이레(        )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이라는 뜻이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신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해 나아가는 성도에게는 언제나 여호와이레이다.

 

六.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고 맹세함(15-19)

 

. 22:15-19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독자를 바친 것이 너무 귀하고 기뻐서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 나타나서 맹세하시며 복을 주셨다.  하나님의 맹세와 축복은 절대로 변치 않는 것이다.  히브리서 6:13-14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라고 했고, 이 두 가지는 변치 못할 사실이라고 했다(히 6:18).

그 축복의 내용은 ① 큰복을 주신다.  ② 아브라함의 씨로 크게 번성케 하신다.  ③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의 문을 얻는다.  ④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그리스도가 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겠다는 것이다(13:16).  오늘날도 성도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독자라도 바치면 영이 자라나고 신앙 인격이 커져서 창성하고 번성하게 되어 그 사람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된다.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대적과 싸울 때에 그 대적을 이기고 정복하도록 해 주신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만큼 대적을 이기고 땅을 정복하는 축복을 받으며, 천국에 가서도 면류관과 상급이 크고 귀히 쓰는 영광의 그릇이 된다(약 1:12).  성도가 순교하는 것도 독자를 바치는 신앙이다.  순교자가 천국에 가면 영광스러운 특별 좌석에 앉게 된다.  순교자는 없어질 육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영원히 큰복을 받은 자이다.

 

七. 나홀의 자녀들(20-24)

 

. 22:20-24  이 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그대의 동생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무엘과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처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아브라함의 둘째 동생 하란은 롯을 낳은 후 일찍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고(11:27-28), 첫째 동생 나홀의 자녀들의 계보를 여기에 기록했다.  나홀은 그의 처 밀가에게서 여덟 아들을 낳았으며 그 여덟째 아들의 이름이 브두엘이었다.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리브가는 장차 이삭의 아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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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23장

제 23 장  사라 별세

 

(대  지)

一. 사라가 별세함(1-2)

二. 아브라함이 장지(葬地)를 구함(3-4)

三. 헷 족속이 허락함(5-6)

四. 막벨라 굴을 매입함(7-18)

五. 사라를 매장함(19-20)

 

  (본문 강해)

 

一. 사라가 별세함(1-2)

 

. 23:1-2  사라가 일백 이십 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성경에 여자로서 연령이 기록된 것은 사라뿐이다.  슬퍼하며 애통 하다가 이것은 아브라함이 그 아내를 노년에도 진정으로 사랑하여 귀히 여긴 증거이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시체 앞에서 슬퍼하며 통곡한 것도 사라를 사랑하여 귀히 여긴 증거이다.

 

二. 아브라함이 장지(葬地)를 구함(3-4)

 

. 23:3-4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아브라함이 사라를 위하여 헷 족속에게 가서 사라의 시체를 장사하기 위한 매장지를 구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으나(12:7; 17:8) 아직 아브라함은 그 땅에 우거하는 자로 묘지를 사두지 않고 장막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더 나은 본향인 하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갔다(히 11:13-16).

 

三. 헷 족속이 허락함(5-6)

 

. 23:5-6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방백의 원어(         )는 \"들림을 받은 자\", \"족속의 장(長)\"을 뜻한다.

헷 족속이 아브라함을 가리켜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했고, 자기들의 묘실 중 좋은 곳을 택하여 장사할 것과 장사함을 금할 사람이 없으리라고 한 것을 보면 그들이 아브라함을 크게 여겨 두려워하며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번성하고 창대 해져서 이방 사람들에게 크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랄 왕 아비멜렉도 아브라함의 세력과 권세를 두려워하여 군대 장관 비골을 데리고 와서 불가침 조약을 맺었었다(21:22-31).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말씀을 좇아갔고, 독자까지 바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처럼 축복해 주셨다.  믿음을 잘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창대케 해 주시며 존귀하게 해 주신다.

 

四. 막벨라 굴을 매입함(7-18)

 

. 23: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몸을 굽혔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존경하는 태도이다(12절).  아브라함은 큰 세력이 되었으나 언제나 겸손하고 상대방을 존중히 여겼다.

 

. 23:8-9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소유인 막벨라 굴을 정당한 값을 치르고 사기를 청원했다.  아브라함은 청원할 때에도 \"당신들의 뜻일진대\"하고 상대방의 뜻을 존중히 여기면서 겸손히 행하였다.

 

. 23:10-11  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에브론은 아브라함에게 굴뿐 아니라 굴이 있는 밭도 거저 주겠다고 성문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 듣는 자리에서 말했다.  그 사람이 밭과 굴을 거저 주겠다고 한 것은 아브라함에게 거저 줄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왕과 같은 권세로(하나님의 방백) 평소에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고 크게 존경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 23:12-13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밭과 굴을 거저 받지 않고 반드시 값을 주고 사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① 훗날 땅의 소유권 문제로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②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허락한 땅이므로 영구히 무덤을 두기 위함이었다.

 

. 23:14-18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대로 은 400 세겔을 그 땅 값으로 주었다.  아브라함이 여러 증인 앞에서 주인이 말한 땅 값을 다 준 것은 그 땅을 억지로 헐값에 빼앗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함인 것 같다.  로마서 13:8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했다.  거저 받으면 빚이 되고 너무 헐값으로 사도 주인에게 신세를 지은 것이 되어 빚이 된다.

아브라함이 제 값을 지불하고 산 이유는 ① 남의 것을 대가 없이 자기 것으로 삼지 않기 위해서이다.  ②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③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물질에 대하여 정당하게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④ 훗날에 그 일로 인한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⑤ 후대에 이스라엘과 헷 족속 사이에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일 아브라함이 거저 받았다고 하면 후에 에브론의 자손이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때에 분쟁이 생길 소지가 크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정당하게 그 값을 지불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대대로 그것을 소유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사람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할 수 있으므로 거저 준다고 무조건 받으면 나중에 다시 돌려 달라고 할 때 돌려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물질에 대하여 깨끗하고 정당하게 처리해야 한다.

 

五. 사라를 매장함(19-20)

 

. 23:19-20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헤브론)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고 그 밭과 굴을 영구히 아브라함의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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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24장

제 24장  혼 인

 

(대  지)

一. 종에게 이삭의 처 택할 것을 맡김(1-9)

二. 하나님께서 이삭의 처 될 자가 리브가인 것을 알게 하심(10-21)

三. 리브가에게 선물을 줌(22-27)

四. 청혼과 아브라함의 종의 설명(28-49)

五. 청혼하고 출발 작정함(50-60)

六. 리브가가 이삭에게 출가(出嫁)함(61-67)

 

(본문 강해)

 

一. 종에게 이삭의 처 택할 것을 맡김(1-9)

 

. 24:1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을 때에도 믿음을 잘 지켰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일에 복을 주셨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일생 동안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믿음을 지킨 결과이다.

 

. 24: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은 엘리에셀인 것 같다(15:2).  이 때는 이삭이 40세, 아브라함이 140세이므로 엘리에셀도 늙었을 것이다.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환도뼈는 사람에게 있어서 요긴한 뼈인데, 가장 중요한 맹세를 할 때에 이렇게 하는 것이다.

 

. 24:3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천지만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뜻한다.  가나안 족속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 섬기는 백성이었으므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불신자와 결혼시키지 않기 위해서 가나안 족속 중에서는 자부를 택하지 말라고 했다.

 

. 24: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 중에서 자부를 취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은 자기 고향, 자기 족속에게로 가서 이삭의 아내가 될 자를 택하도록 자기의 종에게 맹세시켰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메소보다미아) 지방인데 아브라함의 친척 중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종을 그 곳으로 보내려고 했다.

 

. 24:5-7  종이 가로되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종이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여자가 이 땅으로 오려고 아니하거든 이삭을 그 땅(고향)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하고 반문하였는데, 아브라함은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고 엄히 명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 땅을 떠나라고 명령하셨고, 또 지금 거하는 땅(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떠나지 않으려는 신앙이다.  불리(不利)할 때에도 말씀을 떠나지 않고 말씀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사자(천사)를 보내서 도와주신다.  이삭의 아내 될 여자가 가나안으로 오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에도 이삭이 가나안을 떠나면 안 된다.  가나안 땅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는 것이 된다.

성도가 육신의 일을 잘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안 된다.  육신의 일이 잘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더 크다.  성도는 무슨 일이든지 말씀 안에서 그 일을 처리해야 한다.  말씀을 떠나면 아무리 일을 잘했어도 실패요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고,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게 된다.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앞길을 인도해 주시고 장막 칠 곳을 찾아 주시고(신 1:30-33) 위태할 때에 보호해 주신다(시 91:11-13).

 

. 24:8-9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종이 이에 주인 아브라함의 환도뼈 아래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육신의 일이 잘 안되어도 하나님이 허락한 땅, 즉 말씀은 떠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유일의 소망과 기업으로 삼는 산 믿음의 소유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걸어가면 사람의 생각에는 되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친히 일해 주실 때가 많이 있다.  막달라 마리아가 혼자 무덤의 돌을 옮길 수 없었으나 믿음으로 예수님의 무덤에 가 보니 하나님께서 이미 천사를 보내어 무덤의 돌을 옮겨 놓았었다.

 

二. 하나님께서 이삭의 처 될 자가 리브가인 것을 알게 하심(10-21)

 

. 24:10-11  이에 종이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고 떠났는데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약대를 성 밖 우물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이었더라

아브라함의 종이 약대 열 필을 취하여 주인의 좋은 선물을 가지고 메소보다미아로 떠났다.  주인의 모든 좋은 것 이 가운데에는 반 세겔 중 금고리 한 개와 열 세겔 중 금 손목고리 한 쌍과(22절 참조) 금은 패물과 의복과 보물 등이 있었다(53절 참조).  이것은 신부와 신부의 부모와 그 형제들에게 예물로 주기 위한 것이다.  약대를 열 필이나 끌고 간 것을 보면 종을 여러 명 데리고 간 것 같다.

이렇게 약대와 종을 많이 데리고 간 것은 먼길이므로 사람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선물을 많이 가지고 가는 길이요, 올 때는 신부를 데리고 와야 하므로 보호해 줄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성도가 자기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와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지 않으면 사단의 회가 되고 만다(계 3:9).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나 자기를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느 4:16 참조).

메소보다미아 는 유브라데강 부근의  지방으로 아브라함의 고향이다.  나홀은 아브라함의 친동생이다.  나홀의 성(城)은 나홀이 살고  있는 성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의 종이 나홀의 성까지 찾아간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지혜와 노력을 다 기울인 증거이다.  자기의 힘을 다 기울이고 최선을 다한 후에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 24:12-14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아브라함의 종이 최선을 다하여 나홀의 성에 도착하였으나 누가 이삭의 아내가 될 여자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기도하는 길밖에 없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① \"이삭의 아내 될 여인을 순조롭게 만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②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③ \"하나님이 택한 여자의 증표로 여자가 나와 약대에게 물을 마시게 하여 주시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여자인 줄 알겠나이다\".

이 기도는 물론 성령의 감동으로 한 기도이며 하나님이 시켜서 한 기도이다.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처녀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희생적으로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만일 이렇게 행하는 여자라면 반드시 믿음이 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후사인 이삭의 배필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기도한 것이다.

 

. 24:15-16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에 내려가서 물을 그 물 항아리에 채워 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종이 기도하기를 마치지 못하여서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인 리브가가 물을 길러 나왔다(리브가는 이삭에게 당질녀가 된다).  그 여자는 심히 아리땁고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종이 기도하기 전에 벌써 리브가를 우물로 보내신 것이다.  기도에 앞서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사야 65:24에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라고 했다.

 

. 24:17-20  종이 마주 달려가서 가로되 청컨대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그가 가로되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 항아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우기를 다하고 가로되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에게 물을 좀 마시자고 요청했다.  행인으로서 물 좀 달라고 하는 것은 대화를 시작하는 가장 평범한 방법이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전도할 때에도 첫 마디가 물 좀 달라고 하셨다(요 4:7).  아브라함의 종은 겸손한 태도로 그 여자에게 말을 하며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를 찾아보았다.  그 때에 리브가는 \"주여 마시소서\"하고 급히 물 항아리를 내려놓고 마시게 할뿐 아니라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하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길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일이었다.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 것을 알고 감사하였을 것이다.

 

. 24:21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아브라함의 종이 묵묵히 리브가의 행동을 주목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三. 리브가에게 선물을 줌(22-27)

 

. 24:22-23  약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 중 금고리 한 개와 열 세겔 중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가로되 네가 뉘 딸이냐 청컨대 내게 고하라 네 부친의 집에 우리 유숙할 곳이 있느냐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정해 주신 것을 아브라함의 종이 확신하고 예물로 반 세겔(한 세겔은 11.4g이다) 중(重) 금고리 한 개와 열 세겔 중(重)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 여자에게 주었다.  그리고 \"네가 뉘 딸이며 네 부친의 집에 우리가 유할 곳이 있는가\"하고 물었다.

 

. 24:24-25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또 가로되 우리에게 짚과 보리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리브가는 자기가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라고 명백히 자기 신분을 밝히고 자기 집에 유숙할 곳이 있다고 반가이 말했다.  이것을 보면 리브가는 손님 대접하는 정신이 극진하였다.

 

. 24:26-27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아브라함의 종이 하나님께 머리 숙여 경배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주인 아브라함에게 인자와 성실을 항상 베푸시고 길에서 자기를 주인의 동생의 집으로 평탄히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하며 찬송했다.

 

四. 청혼과 아브라함의 종의 설명(28-49)

 

. 24:28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미 집에 고하였더니

아브라함의 종이 기도하는 것을 리브가가 듣고 집으로 달려가 모든 사실을 고하였다.  리브가는 큰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 가정이 받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하여 평소에 듣고 알았으며 흠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 24:29-30  리브가에게 오라비가 있어 이름은 라반이라 그가 우물로 달려가 그 사람에게 이르니 그가 그 누이의 고리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또 그 누이 리브가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이같이 말하더라 함을 듣고 그 사람에게로 나아감이라 때에 그가 우물가 약대 곁에 섰더라

리브가의 오라비 라반이 리브가의 말을 듣고 우물로 달려갔다.  이것은 라반이 아브라함의 종을 영접하기 위해서였다.

 

. 24:31-33  라반이 가로되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섰나이까 내가 방과 약대의 처소를 예비하였나이다 그 사람이 집으로 들어가매 라반이 약대의 짐을 부리고 짚과 보리를 약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 종자의 발 씻을 물을 주고 그 앞에 식물을 베푸니 그 사람이 가로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반이 가로되 말하소서

라반이 아브라함의 종을 잘 영접하여 발 씻을 물을 주고 약대에게도 먹을 것을 주었다.  이와 같이 나그네를 잘 영접한 그 집이 큰복을 받게 되었다.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라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의 종도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인 줄 알고 있었다.

라반이 아브라함의 종 앞에 음식을 차려 놓았으나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가 온 일에 대하여 먼저 말을 한 뒤에 먹겠다고 하였다.  사람이 먹는 것보다 먼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그 일을 제일 우선적으로 해 나아가야 한다.

 

. 24:34-36  그가 가로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나의 주인의 부인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라반이 아브라함의 종에게 말하기를 허락하자 그 종은 자신의 신분을 먼저 밝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 창성케 해주시고 아브라함의 노년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으며 아브라함은 그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주었다고 말하였다.

 

. 24:37-38  나의 주인이 나로 맹세하게 하여 가로되 너는 내 아들을 위하여 나  사는 땅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아비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하시기로

아브라함의 종이 또 말하기를 자기 주인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가나안 족속 중에서 택하지 말고 내 아비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그 아내를 택하라\"고 하며 자기에게 맹세시킨 사실에 대하여 말하였다.

 

. 24:39-40  내가 내 주인에게 말씀하되 혹 여자가 나를 좇지 아니하면 어찌하리이까 한즉 주인이 내게 이르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너는 내 족속 중 내 아비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

아브라함의 종이 자기가 주인 아브라함에게 질문한 것과 주인의 답변에 대하여 라반에게 말하였다.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섭리하시고 역사하셔서 모든 일을 평탄케 해 주실 것을 그의 종에게 말해 주었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믿었다.

 

. 24:41  네가 내 족속에게 이를 때에는 네가 내 맹세와 상관이 없으리라 설혹 그들이 네게 주지 아니할지라도 네가 내 맹세와 상관이 없으리라 하시기로

설혹 그들이 네게 주지 아니할지라도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데려오고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만 두려고 하였다.  성도가 자기의 원하는 바를 마음에 정해 놓고 꼭 그대로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야 한다.

 

. 24:42-49  내가 오늘 우물에 이르러 말씀하기를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만일 나의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 주실진대 내가 이 우물곁에 섰다가 청년 여자가 물을 길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하여 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약대를 위하여도 길으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가 되리이다 하며 내가 묵도하기를 마치지 못하여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와서 우물로 내려와 긷기로 내가 그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내게 마시우라 한즉 그가 급히 물 항아리를 어깨에서 내리며 가로되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기로 내가 마시매 그가 또 약대에게도 마시운지라 내가 그에게 묻기를 네가 뉘 딸이뇨 한즉 가로되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하기로 내가 고리를 그 코에 꿰고 손목고리를 그 손에 끼우고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이제 당신들이 인자와 진실로 나의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고하시고 그렇지 않을지라도 내게 고하여 나로 좌우간 행하게 하소서

아브라함의 종이 우물가에서 되어진 모든 일을 자세히 리브가의 식구들에게 말해 주었다.  우리도 모든 일을 상대방에게 사실대로 말해 주어 충분히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五. 정혼하고 출발 작정함(50-60)

 

. 24:50-51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라반과 브두엘이 아브라함의 종의 하는 말을 자세히 들은 후에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주는 것이 여호와의 명령인 줄 알았다.  그리고 자기들은 그 일에 대해서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고 말하고 리브가를 데리고 가서 이삭의 아내가 되게 하라고 허락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뜻이면 무조건 복종하는 신앙이었다.

라반과 브두엘이 리브가에게 의논하지 않고 그대로 허락한 것은 리브가의 의사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뜻)을 순종하기 위함이요, 리브가의 신앙은 하나님의 뜻이면 그대로 순종하는 신앙이요 부모를 공경하고 남에게 희생하며 도와주는 신앙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24:52-53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리어 여호와께 절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그때 아브라함의 종이 일이 형통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엎드리어 경배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리브가에게 주고 그 어미와 오라비에게도 보물을 주었다.

 

. 24:54-56  이에 그들 곧 종과 종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가로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리브가의 오라비와 그 어미가 가로되 소녀로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잘 되었으므로 아브라함의 종과 종자들이 그 날은 먹고 마시고 그곳에서 유숙하고, 그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자기 주인에게 돌아가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때에 리브가의 오라비와 어머니가 리브가를 적어도 열흘동안 함께 있게 하고 그 후에야 보내겠다고 하였다.  갑자기 리브가를 떠나 보내는 것이 섭섭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이 해주신 일을 사람의 인정 때문에 지체할 수가 없어서 곧 떠나기를 원했다.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실 때에 인정 때문에 지체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발견한 다음에는 그 뜻을 즉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일은 정한 때가 있고 속히 속히 실행되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다(합 2:2-3 참조).  즉시 순종하면 잘 될 수 있는 일도 지체하므로 그르치는 수가 많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으면 즉시 순종해야 한다.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 \"열\"은 인간의 만수이다.  그들은 인간의 기간 동안 리브가를 머물러 두고자 한 것이다.  갑자기 떠나 보내는 것은 너무 섭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의 명령을 즉시로 순종하기 위해 떠나야 될 것을 말했다.

. 24:57-58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리브가는 그 종과 같이 즉시로 떠나기로 작정하였다.  신랑을 보지 못했으나 종이 전하는 말을 믿고, 또 증거물로 준 예물을 보고 즉시 떠나 신랑을 맞으러 가기로 작정하였다.  성도가 신랑 되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종들이 전해주는 말씀을 믿고 주신 은사를 증거로 삼아 세상에 속한 것을 즉시 떠나 주님을 따라 가야 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

 

. 24:59-60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종자들을 보내며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리브가의 가족들이 리브가가 떠나는 것을 허락하고 축복하여 보냈다.  천만인의 어미기 될지어다 리브가의 후손을 통해 메시야가 오실 것과 메시야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이것은 리브가의 자손이 원수를 정복할 것을 가리키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가 오셔서 모든 원수를 정복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六. 리브가가 이삭에게 출가(出嫁)함(61-67)

 

. 24:61  리브가가 일어나 비자와 함께 약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리브가가 종을 따라 약대를 타고 가나안으로 향하여 떠났다.

 

. 24:62-63  때에 이삭이 브엘 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남방에 거하였었음이라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이삭이 브엘 라해로이에 거(居)하였다.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이삭이 은밀한 곳을 찾아 늘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앙 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도 항상 은밀한 곳을 찾아 묵상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 24:64-65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약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뇨 종이 가로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

리브가가 이삭이 오는 것을 보고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고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어 보았다.  그 때 아브라함의 종이 주인 이삭이라고 말해 주니 리브가가 면박으로 자신을 가리웠다.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 이것은 리브가가 이삭 앞에 예의를 갖추며 정숙하고 단정하게 행동한 태도이다.  성도가 사람 앞에서도 자기 신분을 잘 지키고 예절을 잘 지켜 하나님의 일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아름다운 행동이다.

 

. 24:66-67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고하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아브라함의 종이 주인 이삭에게 리브가를 데려오게 된 모든 일을 자세히 고하니 이삭은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 믿고 리브가를 아내로 영접하며 모친 사라의 쓰던 장막으로 인도하였다.  이삭은 모친의 별세로 말미암아 슬프던 중에 아내를 맞아 신앙에 큰 유익이 되었으며, 영적 위로와 육신의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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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25장

제 25 장  명분 매매

 

(대  지)

一. 아브라함의 후처와 서자들(1-4)

二. 서자들을 이삭과 멀리 떠나게 함(5-6)

三. 아브라함의 별세와 이삭의 복 받음(7-11)

四. 이스마엘의 후예(12-l8)

五. 이삭이 두 아들을 낳음(19-26)

六. 장자의 명분을 매매함(27-34)

 

(본문 강해)

 

一. 아브라함의 후처와 서자들(1-4)

 

. 25:1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아브라함이 그두라를 후처로 취하였다.  역대상1:32에는 그두라를 첩이라고 하였으나 사라가 죽은 후에 취한 것이다.

 

. 25: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

사라가 127세에 별세하였으므로 그때에 아브라함은 137세였을 것이다.  히브리서 11:12에는 아브라함이 100세 때에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았다고 했는데 137세 이후에 어떻게 자녀를 많이 생산하였을까 하는 것이 문제이나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이삭을 낳을 때에 하나님이 주신 정력(생산능력)이 후에도 계속되었으므로 많은 아들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주신 힘은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지 않으시므로 자기의 실력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게 하신다.  우리가 힘이 없고 부족해도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그 힘을 거두어 가지 않고 그 사람의 실력이 되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나이가 많아서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진보할 수 없다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자(빌 4:13).

 

. 25:3-4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앗수르 족속과 미디안의 자손도 아브라함의 후처의 자손들이다.

 

二. 서자들을 이삭과 멀리 떠나게 함(5-6)

 

. 25:5-6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아브라함은 서자인 이스마엘과 후처 그두라에게서 낳은 아들들이 있었으나 약속의 말씀으로 낳은 아들 이삭에게 거의 모든 소유를 주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한 것은 이삭이 다른 아들들보다 특별히 나아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이삭을 통해 이루어져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여러 가지 다른 일보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모든 물질과 정력을 사용해야 한다.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 아브라함이 서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재물을 나눠주어 자기가 살아 있을 때에 그들이 이삭을 떠나 멀리 동방으로 가게 하였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별세한 후에 그들이 이삭을 시기하거나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가나안 땅을 약속의 아들 이삭과 그 후손에게 주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리 모든 일을 잘 처리하였다.  모든 일을 미리 바로 처리하고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장차 일어날 일을 예견치 못하여 장애가 될 만한 요소를 남겨 두면 나중에 그 일을 바로 잡기는 매우 힘이 든다.  그러므로 사전에 일을 바로 처리하여 구원 운동에 손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三.  아브라함의 별세와 이삭의 복 받음(7-11)

 

. 25:7-8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 세라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아브라함이 175세에 세상을 떠나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아브라함은 사라보다 48세를 더 살았다(23:1).

 

. 25:9-10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이스마엘이 딴 곳에서 살았으나 그때에 아브라함을 장사하기 위해 와서 이삭과 함께 장사하였다.  그들이 아브라함을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그곳은 전에 사라를 장사한 곳이었다.

. 25:11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 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

부친이 별세하매 이삭이 부친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 지켰으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창성케 되었다.

 

四. 이스마엘의 후예(12-18)

 

. 25:12-16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후예는 이러하고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십 이 방백이었더라

이스마엘의 아들은 열 둘이며 그들이 각각 한 촌을 건설하였고, 열 두 방백이 되었다(17:20).  이스마엘이 세상과 육신적으로는 창성하였다.

 

. 25:17-18  이스마엘은 향년이 일백 삼십 칠 세에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 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

이스마엘이 137세에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으며 그의 후손은 애굽 동쪽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16:7)까지 이르러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다.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육에 속한 아들 이스마엘의 기록은 짧다.  별로 한 일도 없이 자녀만 낳고 137세까지 살다가 죽은 것뿐이다.  육으로 사는 사람들은 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없다.

 

五. 이삭이 두 아들을 낳음(19-26)

 

. 25:19-21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이삭이 믿음으로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리브가가 오랫동안 잉태하지 못하였으나 이삭이 아들을 낳기 위해서 첩을 얻거나 양자를 들이지 않았다.  이삭이 하나님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결혼한지 20년만에 리브가에게 두 아들을 잉태케 하셨다.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은 열 두 아들을 낳고 12방백이 되어 큰 세력이 되었으나 이삭은 60세에 비로소 두 아들을 얻게 되었다.  약속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은 육으로 낳은 아들처럼 숫자적으로는 많지 않은 것이다.

 

. 25:22-23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 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했는데, 그들이 태 안에서부터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리브가가 근심이 되어 여호와께 여쭈어 보았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두 국민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일 것이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복중에 있는 두 아이가 앞으로 장성하여 두 나라가 될 것과 하나님께서 장자인 에서는 택하지 않고 야곱을 택했다는 것을 말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한 데 대하여 몇 가지 상고하고자 한다.

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알게 해 준다.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야곱 족속이 에서 족속보다 강하여 장차 이스라엘 자손이 에서의 후손을 정복할 것을 뜻한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에서가 야곱을 섬기며 살게 될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다.  복중에 있는 아이들이 아직 나지도 않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할 줄 알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정하셨다(롬9:10-12).  국가와 민족이 나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되어지고 강하고 큰 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다.

②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동생인 야곱에게 있다는 것이다.  에서는 육신적으로 강하였으나 그것으로 잘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잘된다는 것이다.

③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축복을 주시는가?  택한 백성,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축복을 주신다.  사람이 아무리 약하고 부족해도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강하게 해 주시고 잘되게 해주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스스로 높아지거나 강한 자가 되려고 수단과 방법을 쓰지 말고 겸손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전심전력을 다하여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이 높여 주시고 형통하게 하여 주신다.

 

. 25:24-26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동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이었더라

갖옷은 \"털옷\"이란 뜻이다.  먼저 나온 아들이 털이 많은 자이므로 이름을 \"에서\"라고 지었다.  에서의 뜻은 \"털이 많다\"이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으로 야곱이 출생할 때 먼저 나오는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으므로 이름을 \"야곱\"이라고 지었다.

야곱과 에서는 모태에서도 싸웠고, 장성한 후에도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문제로 서로 대적이 되었다.  이것은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의 싸움이다.  야곱은 영에 속한 사람이고 에서는 육에 속한 사람이다.  육에 속한 사람이 육신적인 면에서는 크고 강한 면이 있으나, 최후 승리는 영에 속한 자에게 있다.

 

六. 장자의 명분을 매매함(27-34)

 

. 25:27-28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 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 고로 장막에 거하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에서는 장성하여 사냥꾼이 되었고 야곱은 종용히 장막에 거하기를 좋아하였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에서를 사랑하였고, 어머니 리브가는 집에서 자기를 잘 도와주는 야곱을 사랑하였다.  부모가 자녀를 편애하면 그로 인하여 자녀들 간에 불화가 생기기 쉽다.

 

. 25:29-30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 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에서가 들에 나갔다가 배가 고파 곤비하여 지친 몸으로 돌아 왔을 때에 동생 야곱이 팥죽 끓이는 것을 보고 그 팥죽을 조금 달라고 간청하였다.

별명은 에돔이더라 \"에돔\"은 \"붉음\"이라는 뜻인데, 에서는 붉은 팥죽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 별명이 생긴 것이다.  이것을 보면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사기 위해 계획적으로 팥죽을 쑤고 있었던 것 같다.

 

. 25:31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장자의 명분은 ① 아버지의 계대를 이어 가족을 지배하는 권리이다(27:29).  ②두 몫을 받는 권리이다(신 21:17).  ③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물려받을 권리이다(12:3; 15:5; 22:18; 26:3, 4, 24; 28:4).  즉, 장차 오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신령한 축복에 참여할 권한이다.  야곱은 이 축복에 참여하기 위해 장자의 명분을 귀중히 여겨 사모하고 그것을 자기가 받기 위하여 노력을 많이 했다. 팥 죽을 쑨 것도 그 명분을 사기 위함이었다.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받고자 애쓴 신앙은 첫째, 그리스도에 참여하고자 하는 신앙이요, 둘째, 현세의 것보다 장래의 축복을 더 귀히 여기는 신앙이요, 셋째, 물질보다 신령한 것을 귀중히 여기며 받고자 하는 신앙이다.  에서는 이렇게 귀중한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었다.  이것이 망령된 행동이다(히 12:16).

그러나 야곱이 형 에서가 배가 고파 곤비할 때에 그 약점을 이용하여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으로 산 행동은 아주 잘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① 인륜에 어긋난다.  형제지간에 형의 약점을 이용해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는 것은 아주 야비한 행동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런 야비한 방법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②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한 것이 잘못이다.  ③ 하나님의 축복을 물질로 살 줄 안 것이 잘못이다.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이 돌아간 것은 야곱의 수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팥죽으로 샀기 때문도 아니다.  그 형제가 모태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미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예정해 놓았기 때문에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팥죽으로 사지 않았어도 장자의 축복을 다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했더라면 자기 형과도 원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형을 피하여 도망가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또 평생에 양심이 편안하고 떳떳하게 살았을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는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잘 지켜 하나님의 형상을 잘 이루어 나가야 잘된다.  사람이 수단을 써서 남의 것을 빼앗고 남에게 손해 주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며 반드시 그 벌을 받는다.

 

. 25:32-34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다(34절).  에서가 왜 이러한 태도를 취하였는가?

① 신령한 것보다 물질을 더 중히 여긴 때문이다.

② 장래의 것보다 현세의 것을 더 중히 여긴 때문이다.

③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축복을 경히 여긴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축복을 받고자 하였으나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히12:17).  그는 한 그릇 식물에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되고 미련한 자가 되었다.  오늘날도 물질만 좋아하고 현재에 잘되는 것으로 만족하고 영적인 면보다 육적인 면에 관심을 갖고 힘쓰는 자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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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26장

제 26 장  창 성(昌 盛)

 

(대  지)

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에 거하면 복 받음(1-5)

二. 이삭의 실수(6-11)

三. 이삭의 장성(12-15)

四. 우물 양보와 하나님의 축복(16-25)

五. 아비멜렉이 이삭과 맹약함(26-33)

六. 에서가 아내를 취함(34-35)

 

(본문 강해)

 

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에 거하면 복 받음(1-5)

 

. 26: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가나안 땅은 본래 산과 골짜기로 되어 있어서 비가 오면 흡수하는 땅이다(신 11:11).  그러므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흉년이 들게 된다.  아브라함 때에도 첫 흉년이 있었는데(12:10), 이삭 때에 또 흉년이 들므로 이삭이 블레셋 땅인 그랄로 가서 거하였다.

 

. 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다.  애굽에는 곡식이 넉넉하고 강대한 나라로서 전쟁도 날 염려가 없어서 좋은 듯하나 이 때 애굽으로 가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므로 반드시 실패한다.

지시하는 땅은 가나안 땅을 가리키며(3절), 하나님께서 일찌기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여 주신 땅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그 땅을 떠나면 안 된다.  애굽에 내려가지 말라는 신령한 뜻은

첫째, 성도가 육신이 잘 되는 것을 위해 말씀을 떠나 세상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뜻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신 곳을 떠나지 말라는 뜻이다. 사도행전 1:4-5에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곳을 떠나면 능력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진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나아가지도 말고 덜 나아가지도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까지 가고, 머무르라고 하시는 곳에서 머물러야 한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로 가라고 하실 때에 말씀을 순종하여 가니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시켜 떡과 고기를 아침과 저녁으로 갖다 주었다(왕상 17:2-6).  또 얼마 후에 사렙다 과부의 집으로 가라 하실 때에 순종하여 갔더니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자신도 살고 과부와 그 아들도 살게 되었다.

세째, 자기의 위치를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위치가 있는데, 그 위치를 떠나면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된다.  그러므로 오늘이나 내일이나 아무 도시에 가서 장사하여 이익을 보려고 떠나지 말고(약 4:13)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것이 복 받는 길이요, 생명이 사는 길이다.

 

. 26:3-4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삭이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가나안)에 거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의 내용은

①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고 복을 주겠다.

② 가나안 땅을 네 후손에게 주겠다.

③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것을 다 이루어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해 주겠다.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을 자가 많아질 것을 뜻한다(갈 3:16).

④ 후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된다.  이것은 영적 자손, 곧 기독교 신자들에게 관한 것이다(롬 4:18).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죽을 것 같아도 살고, 망할 것 같으나 복을 받는다.

 

.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주신 약속은 과거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동일하다.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켜서 그 복을 받은 것처럼 이삭도 그 아비 아브라함처럼 순종하면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복을 다 주시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 \"명령\"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말씀이다.  \"계명\"은 특별한 법규, 즉 십계명과 같은 것이고, \"율례\"는 유월절과 같은 모든 절기에 대한 규례들이며, \"법도\"는 도덕적 의무에 대한 도리들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은 이것들을 다 지 켰다.

 

二. 이삭의 실수(6-11)

 

. 26:6-7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 그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삭이 자기 아내로 말미암아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리브가는 이삭의 당질녀(오촌 조카딸)이므로(24:15) 누이라고 할 수 없고, 또 그가 아내가 되었으므로 누이라고 할 수 없는데 누이라고 한 것은 큰 잘못이다.  부친 아브라함도 애굽에 갔을 때에 아내를 누이라고 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다(12:13).  아브라함은 이복 누이를 아내로 삼았기 때문에(20:12)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한 것이 반거짓말이 되나 이삭은 당질녀를 아내로 삼고 누이라고 한 것은 온전한 거짓말이 된다.  이삭이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실수를 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의 보호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26:8-10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정녕 네 아내여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를 인하여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아비멜렉이 가로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하기 쉬웠을 뻔 하였은즉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이삭이 블레셋 나라에 오래 거하였으나 그 아내를 다치는 자가 없었다.  이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삭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아내를 빼앗기지는 않았으나 그 거짓말한 것으로 인하여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책망을 받았다.  성도가 이방인에게까지 책망을 받았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것은 이삭이 거짓말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다.

 

. 26: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나 그 아내에게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감동시켜 백성에게 이삭과 그의 아내를 보호하는 영을 내렸다.  이는 이삭이 실수를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어 보호해 주신 것이다.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라고 정직하게 말했더라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서 아무 일 없을 뻔하였다.  성도는 언제나 진실할 때 생명이 있다(계17:14).

 

三. 이삭의 창성(12-15)

 

. 26:12-15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백 배나 얻었고 크게 창성하여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도 심히 많아 큰 부자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축복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잘 되어가는 것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가 나서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때에 팠던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버렸다.  이것은 이삭으로 그곳에서 목축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지방은 물이 아주 귀하여 우물이 없으면 양에게 물을 먹일 수 없는 곳이다.

 

四. 우물 양보와 하나님의 축복(16-25)

 

. 26:16-18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이 더욱더 창성하는 것을 보고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서 \"네가 우리보다 강성하니 이 땅에서 떠나라\"고 명령하였다.  이삭이 블레셋 왕보다 강성해 졌으니 얼마나 그 세력이 커졌는가를 알 수 있다.  그때 이삭은 그곳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랄 골짜기로 옮겨가서 장막을 치고 우거했다.  이삭이 그들과 대항하거나 싸우지 않고 순순히 다른 곳으로 옮겨 간 것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대하며 하나님의 인도대로 순종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 가서 부친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다.  그 우물들은 아브람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 버렸던 것인데, 이삭이 그 우물을 다시 파고 그 이름을 부친이 부르던 대로 불렀다.

 

. 26:19-20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새로운 샘 근원을 얻었으나 그랄 목자들이 와서 그 샘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삭의 목자와 다투었다.  그때 이삭은 그 우물을 에섹이라고 부르고 그 우물을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에섹\"은 \"다툼\"이라는 뜻이다.

 

. 26: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또 다른 우물을 팠으나 그랄 목자들이 또 와서 다투었다.  그러므로 그 우물의 이름을 싯나라 하여 양보하고 또 다른 곳으로 갔다.  \"싯나\"는 \"대적한다\"는 뜻이다.

 

.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이 다른 곳으로 가서 세 번째 우물을 팠다.  이번에는 다투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이삭이 그 우물 이름을 르호봇이라 불렀다.  \"르호봇\"은 \"장소가 넓음\"이라는 뜻이다.  이삭은 자기가 판 우물을 블레셋 사람들이 여러 번 다투고 빼앗을 때에도 대항하여 싸우지 않고 양보하여 믿음 지키는 데만 힘을 썼다.  그 결과 하나님이 더 넓고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셨다.

싸우고 다툰다고 얻는 것이 아니고(약 4:1-3)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하나님을 순종하여 믿음을 잘 지켜야 복을 받는다.

마태복음 10:23에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신앙의 갈 길이 진(盡)하기 전에 하나님의 권고가 온다는 뜻이다.  또 마태복음 5:39-41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라고 했다.  이것이 성도가 이기는 법이다.

우물이 재산이요 큰 기업이지만 이삭이 그것 때문에 싸우거나 다투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과 자기를 통해서 비추어 나가는 하나님의 빛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또 이삭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면서 계속 구원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였다.  이것들이 세상의 재물보다 크고 귀하다.  이 일만 잘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신다.  이삭이 이와 같이 믿는 일을 잘하여 영이 자라나고 인격이 커졌으므로 하나님께서 이삭이 거하는 장소를 넓혀 주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싸우고 다투면서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가 잘 살려고 하나 성도는 모든 것을 양보하더라도 믿음을 지키는데 힘써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고 축복해 주신다.

 

. 26:23-24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한 그 언약을 위하여 이삭에게 복을 주시고 그의 자손들을 번성케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

네게 복을 주어 이삭이 물질적인 것을 희생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자기를 통해서 나타나는 복음의 빛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에게 축복을 해 주셨다.  이삭이 만일 우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들과 서로 다투었더라면 우물은 빼앗기지 않았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자기를 통해 비추어 나가던 복음의 빛이 다 가려졌을 것이다.

또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면 우물이 백 개가 있은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26:25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삭이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에 하나님이 또 다른 우물을 얻게 해 주셨다.  믿음 지키는 자에게는 이렇게 형통하게 해 주신다.

 

五. 아비멜렉이 이삭과 맹약함(26-33)

 

. 26:26-29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군대장군 비골을 데리고 이삭에게 와서 서로 해하지 않도록 계약을 맺자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계셔서 범사에 창성케 해 주시는 것을 보고 아비멜렉이 두려워하여 이러한 제안을 한 것이다.  하나님이 같이 하는 자는 왕들도 두려워하게 된다.

 

. 26:30-31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이삭이 아비멜렉을 잘 대접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맹약해 주고 평안히 가게 하였다.  두려워하는 아비멜렉을 이삭이 안심시켜 평안히 돌아가게 한 것은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준 것이다.

 

. 26:32-33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의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세바는 \"맹세\"라는 뜻이며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이다.  그곳에서 아비멜렉과 맹세를 하고 우물을 얻었으므로 그 지방 이름을 브엘세바라고 불렀다.

 

六. 에서가 아내를 취함(34-35)

 

. 26:34-35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

헷 족속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는 족속이었다.  이삭과 리브가는 아들에서가 헷 족속의 딸과 결혼하여 그 자부가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며 이방 풍속을 좇아가는 것을 보고 큰 근심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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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27장

제 27 장  축 복

 

(대  지)

一. 이삭이 별미를 먹고 축복코자 함(1-4)

二. 리브가가 궤계를 꾸밈(5-17)

三. 야곱이 부친을 속임(18-25)

四.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함(26-29)

五. 에서가  축복 받기를 구함(30-36)

六. 이삭의 에서에 대한 예언(37-40)

七. 에서가 야곱을 미워함(41)

八.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려 함(42-46)

 

(본문 강해)

 

一. 이삭이 별미를 먹고 축복코자 함(1-4)

 

. 27:1-4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삭이 나이 많아 어두워 잘 보지 못할 만큼 되었으므로 죽을 날이 멀지 않은 것을 알고 죽기 전에 에서에게 축복해 주려고 들에 나가서 사냥을 해 오라고 했다.  이삭은 에서가 가져오는 별미를 먹고 축복해 주고자 하였다.  이삭이 이렇게 별미를 먹고 축복하려고 한 것은 신앙적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고 하여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이 돌아갈 것을 가르쳐 주셨음에도 이삭이 그 말씀에 착념치 않고 흘러 떠내려보냈다.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서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 운동이 이루어져 나갈 것을 가르쳐 주셨으나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에서에게 축복해 주려고 했다.

이삭이 잘못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통을 따라 갔다.  그 당시 보통 장자의 축복은 당연히 장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전통이었다.

둘째, 인정에 끌린 것이다.  이삭은 평소에 에서를 좋아했고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다.  에서는 들사람이라 사냥을 좋아하고, 사냥한 고기로 그 부친을 잘 대접하여 기쁘게 해 드렸다.  반면에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며 집안에서 어머니를 잘 도왔으므로 리브가는 에서보다 야곱을 더 좋아했다(25:27-28).  이삭은 자기가 더 좋아하는 에서에게 축복해 주고자 했다.

세째, 별미를 먹고 축복해 주겠다고 하였다.  이삭이 물질로 대접받은 후 축복해 준다고 한 것은 축복의 조건을 물질에 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금식하면서 안수를 받았다(행 13:2-3).  이와 같이 이삭이 말씀보다 전통과 인정과 물질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그의 아내 리브가와 아들 야곱이 인본주의를 쓰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앙의 호주가 말씀을 떠날 때 가족들이 인본주의로 기울어지게 된다는 것 을 명심하여야 한다.

 

二. 리브가가 궤계를 꾸밈(5-17)

 

. 27:5-7  이삭이 그 아들 예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일러 가로되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이삭이 에서에게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면 먹고 축복해 주겠다는 말을 리브가가 듣고 야곱에게 말해 주고, 야곱과 더불어 이삭을 속이기 위해 궤계를 꾸미게 되었다.  이것을 보면 은밀히 해야 할말은 다른 사람이 듣지 않게 해야 한다.

 

. 27:8-10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리브가가 장자의 축복을 야곱에게 받게 하기 위하여 야곱에게 염소의 좋은 새끼를 끌어오도록 명하고 그것으로 별미를 만들어 줄 테니 그것을 가지고 가서 부친에게 드려 잡수시게 하고 축복을 받으라고 하였다.

 

. 27:11-12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 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야곱이 리브가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털이 없고 매끈매끈하며, 형은 몸에 털이 많은 사람이므로 부친이 만져 보면 발각되어 복 대신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 27:13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부친을 속인 책임을 어머니 리브가가 지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부친을 속이면 야곱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 27:14-17  그가 가서 취하여 어미에게로 가져왔더니 그 어미가 그 아비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리브가가 집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그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매  

리브가가 야곱을 에서로 속이기 위하여 에서의 옷을 입히고 야곱의 손과 목에 염소 새끼 가죽으로 꾸며 털 사람으로 가장하고 만든 별미를 야곱에게 주어 부친에게 나아가게 하였다.

 

三. 야곱이 부친을 속임(18-25)

 

. 27:18-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야곱이 별미와 떡을 가지고 부친에게 들어갔으나 이삭이 고령으로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므로 너는 누구냐고 물어 보았다.  그 때에 야곱이 에서라고 속여 대답하고 또 염소 새끼 고기를 사냥한 고기라고 속이면서 잡수시고 마음껏 축복해 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과 부친에게 죄를 지은 것이다.

이 거짓된 계책으로 인하여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다.  야곱이 출생하기 전 모친의 복중에 있을 때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신(25:23)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으로 말미암아 장자의 복을 받았다.

그러므로 야곱이 거짓 수단을 쓰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역사하셔서 장자의 축복을 야곱이 받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에서가 사냥하러 가서 종일토록 짐승을 못 잡으면 이삭이 기다리다가 너무 시장하여 에서의 사냥한 고기와 에서에 대한 축복을 하나님이 허락지 않는 것을 깨달아 야곱에게 축복을 하실 수도 있고 또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해 준 것처럼 손을 어긋맞겨 축복하게 해줄 수도 있다.  혹은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해 주려고 할 때 말이 나오지 않게 하여 야곱에게 축복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도록 감동시킬 수도 있다.

 

. 27:20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야곱은 거짓말을 할 때 하나님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였다.  이것은 큰 잘못이다.  이것이 신자들이 범하기 쉬운 죄이다.

 

. 27:21-23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음성이 야곱의 음성이면 어떻게 손이 에서의 손이겠는가!  깨달을 만한 증거가 확실히 있었으나 이삭이 깨닫지 못하였다.  아들의 목소리를 늘 들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다.  손에 털이 있다고 해도 음성이 야곱의 음성이면 좀더 손을 자세히 살폈어야 했고 그러면 그가 야곱인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삭이 이와 같이 속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일찌기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전통을 따라 맏아들 에서에게 축복해 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 27:24-25  이삭이 가로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삭이 가로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이삭이 축복하기 전에 아무래도 의구심이 생겨서 다시 확인해 보았다.  하나님이 속게 한 것은 아무리 재확인해도 속게 된다.  이는 이삭이 속아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四.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함(26-29)

 

. 27:26-27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그 옷의 향취를 맡고 이삭이 자기 아들의 옷에서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축복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 기관이었으므로 그 앞에 향기로운 냄새를 나게 할 때에 축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축복의 기관이 하나님의 교회와 참된 교역자이다.  이 축복의 기관 앞에 더러운 냄새를 피우게 되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한다.  더러운 냄새는 하나님의 구원 기관에 욕을 끼치고, 해를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언행이다.  고린도후서 2:15-16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라고 했다(고후 3:3 참조).  성도가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고 아름다운 덕을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는 것은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  이러한 성도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 27: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늘의 이슬 신령한 영적 축복을 가리킨다.  이삭은 아들 야곱에게 신령한 축복을 해 주었다.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곡식은 영적 양식, 포도주는 은혜를 가리킨다.  이삭이 야곱에게 영적 양식과 은혜를 축복해 주었으며 여기에는 물질의 축복도 포함되어 있다.

 

. 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야곱의 자손 가운데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열국이 그리스도에게 굴복하여 구원받을 것을 예언한 것이다.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한 자는 형제들의 주가 된다.  믿음의 호주는 육신의 부자관계나 형제 관계와는 상관없이 믿음이 좋은 자가 된다.  이삭이 축복해 줄 때에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만 축복해 주었다.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것은 12:3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과 같다.  아브라함이 복의 기관이 됨으로써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야곱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계승하고 그리스도에게 참여하여 복의 기관이 될 것을 축복했다.  또 야곱이 아브라함처럼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게 하여 복의 기관이 되게 하실 축복이다.

 

五. 에서가 축복 받기를 구함(30-36)

 

. 27:30-31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비에게로 가지고 가서 가로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야곱이 축복을 다 받고 나간 뒤에 곧 그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와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아버지에게 들어가 축복해 달라고 하였다.  에서도 하나님의 축복 받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에서는 세상의 것과 물질이 첫째요 하나님의 축복은 둘째이었다.

 

. 27:32-33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심히 크게 떨며 이삭은 비로소 먼저 들어와 축복 받은 자가 에서가 아님을 알고 심히 크게 떨었다.  그 이유는 자기가 속아서 축복해 준 것과 또 자기가 축복해 준 대로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 27:34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에서가 분하여 방성대곡하며 자기에게도 축복해 달라고 애걸하였다.  그러나 그 기회가 지나갔다.  히브리서 12:17에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다.  기회를 잃어버린 에서는 아무리 큰 소리로 울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바로 할 바를 바로 해야 한다.  일단 기회가 지나가면 아무리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할 기회를 찾으려고 해도 안 된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는 망령된 행실을 했으므로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것이다.  에서는 장래의 축복보다는 현재의 것과 물질적인 것을 더 좋아한 자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장래의 축복보다 현세의 물질적인 축복을 좋아하면 에서와 같은 사람이다.

 

. 27:35  이삭이 가로되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

이삭이 에서에게 말하기를 \"야곱이 간교하게 네 복을 빼앗았도다\"라고 하였다.

 

. 27:36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야곱은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으로(25:26) 야곱이 그 이름대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에서가 동생 야곱에게 전에는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고 이번에는 장자의 축복을 빼앗겨 두 번이나 속은 것을 원통해 하였다.  야곱이 신령한 축복을 사모하고 그 축복을 받고자 애쓴 것은 귀한 일이나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여 그 축복을 빼앗듯이 한 것은 잘못하였다.  이것 때문에 야곱이 후에 많은 징계를 받았으니 외삼촌에게 열 번이나 속았고(31:41), 자기 아들들에게 여러 번 속아서(42:36) 많은 고통을 당했다(37:31-35).  우리는 선한 목적을 위해 옳지 않은 방법을 택하면 안 된다.  목적도 선하고 방법도 선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 된다.

 

六. 이삭의 에서에 대한 예언(37-40)

 

. 27: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이삭이 자기 생각대로 축복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축복한 것이 확실하다.  만일 자기의 마음대로 축복했다고 하면 다시 에서에게도 그러한 축복을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해 줄 것이 없다고 하였다.  사람이 복 받기를 원한다고 하여 자기 생각대로 함부로 축복해 주는 것은 양심을 쓰지 않는 행동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기도요, 외식하는 기도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믿음은 지키지 않고 축복 받아 세상에서 잘 살고 육신이 잘 되는 것만 좋아하는 자에게 외식으로 축복 기도해 주는 교역자가 많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하고 사람을 속이는 죄이다.

 

. 27:38  에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에서가 울면서 남은 축복이라도 해 달라고 부친에게 구하였다.

 

. 27:39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뜨고\"는 떠났다는 뜻으로 에서는 기름진 땅에서 떠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후에 에서의 자손은 박토(薄土)에서 살게 되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에서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서 떠났다는 것이다.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이슬 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에서의 자손이 우로가 풍성히 내리지 않는 박토에서 살게 될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 27: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이것은 에서 족속이 다른 족속들을 약탈하며 살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옵1:10-14 참조).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에서의 족속은 야곱 족속에게 속해 살 것을 예언한 것이다.  믿음 없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를 섬기며 살아야 잘된다.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이것은 남에게 매여 살다가 겨우 벗어나고 다시 매여 살다가 겨우 벗어나는 생활을 반복할 것을 가리킨다.

부모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좋은 축복을 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 다 있으나 이삭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기도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에서에게 좋은 축복 기도를 해 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참된 기도요 참된 축복이다.  요즈음 성도들이 기복 신앙(祈福信仰)으로 기울어지고, 교역자들은 무조건 듣기 좋은 축복기도를 해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교인들은 그것을 좋아하겠으나 마치 무당이 푸념하는 것과 같고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할뿐이다.  이처럼 사람에게 아부하고 환심을 사고자 하는 자는 거짓 선지자이다.  요즈음 어떤 부흥사는 별미 축복이라 하여 특별히 강사에게 감사 연보를 하는 사람에게만 축복을 해 주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축복해 주는 자나, 그러한 축복을 받고자 하는 자들은 다 욕심에 끌려 미혹된 자들이다.  그러한 축복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

이삭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야곱에게 축복 기도를 하였고 에서에게도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 그에게 합당한 기도를 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하는 진실한 기도이다.  이와 같이 이삭이 끝까지 하나님 앞에 양심대로 바로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삭과 같이 하시고 역사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되겠는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확실한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전통, 인정, 자기에게 잘 해주는 것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진리가 무엇이냐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했는가를 찾아 따라가야 한다.  언제나 말씀에 바로 서 있어야 마귀가 틈타지 못한다.

둘째, 신앙 양심을 써서 하나님의 인도하는 대로만 기도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들도 이삭처럼 바른 기도를 하고 자녀들에게도 바른 진리를 가르쳐 주어 생명 운동이 계승되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

 

七. 에서가 야곱을 미워 함(41 )

 

. 27:41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왔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아버지를 곡할 때는 아버지가 별세할 때를 가리킨다.  에서는 동생 야곱이 간교하게 자기의 축복을 빼앗은 것을 분하게 여겨 동생을 미워하고 기회를 보아 죽이려고 하였다.  에서는 자기가 장자의 명분을 경히 여기고 팔아먹은 죄를 회개해야 할 터인데 오히려 동생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한 것은 큰 잘못이다.  자기가 믿음으로 바로 하면 다른 사람이 복을 빼앗으려고 해도 빼앗기지 않는다.

 

八.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려 함(42-46)

 

. 27:42-45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보내어 작은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하나니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리브가는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야곱을 불러 형 에서의 분이 풀리기까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 있으면 에서의 노가 풀렸을 때 사람을 보내어 불러오겠다고 말하였다.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동생을 죽인 자는 살인자이므로 죽이는 법이었다.  그러므로 형제가 다른 사람을 죽이면 둘 다 죽게 된다(삼하 14:6-7).

 

. 27: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나의 생명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리브가가 야곱을 피난시키기 위해서 하란으로 보낼 때 이삭에게 며느리 취하는 일로 보낸다고 핑계를 하였다.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헷 사람의 딸 중에서 자기 아내를 취하였으므로 그 며느리로 인하여 마음이 상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작은아들 야곱의 처는 불신자인 헷 사람의 딸 중에서 취하지 말고 하란으로 보내어 믿는 여자를 취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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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28장

제 28 장  서 원(誓 願)

 

(대  지)

一. 이삭이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냄(1-5)

二. 에서가 이스마엘의 딸을 취함(6-9)

三. 야곱이 돌 베개 베고 잠(10-11)

四. 야곱이 벧엘에서 계시를 받음(12-15)

五. 야곱이 잠 깨어 벧엘이라 칭함(16-19)

六. 야곱의 서원(20-22)

 

(본문 강해)

 

一. 이삭이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냄(1-5)

 

. 28:1-2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이삭이 야곱을 불러 축복해 주면서 가나안 사람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밧단아람으로 가서 와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말했다.

야곱이 부모를 떠나 외삼촌댁으로 가게 된 이유는

첫째, 가나안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않고 외삼촌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다.

둘째, 에서가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제적 이유이다 (27:41-43).

세째, 장자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 때문에 핍박을 받아 밧단아람의 외삼촌댁으로 피하여 가게 된 것이다.  야곱이 인본주의를 써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것은 잘못되었으나, 그가 인본주의를 쓰지 않았다고 해도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되면 그로 인하여 에서의 미움을 받아 쫓겨나게 될 것이다.  단지 야곱이 인본주의를 쓴 까닭에 형을 더욱 격노하게 했고 핍박이 커진 것이다.  야곱이 핍박을 받지 않으려면 장자의 축복을 포기하고 양보하면 되겠지만 그것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약속이요 기업이기 때문이다.

성도들도 믿음을 지키면 핍박을 받게 되나, 그때에 진리를 양보하지 말고 믿음과 인내로써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

 

. 28:3-4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해 준 내용이다.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야곱이 번성하여 여러 족속이 될 것과 메시야의 축복이 포함되어 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신 복을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축복을 가리킨다(12:2,3; 15:7).  야곱이 에서의 핍박으로 인하여 피해 가지만 그에게는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축복이 함께 한다.

 

. 28:5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었더니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미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야곱이 그 부친의 말대로 밧단아람에 사는 외삼촌 라반에게 간 사실을 총론적으로 말했다.

 

二. 에서가 이스마엘의 딸을 취함(6-9)

 

. 28:6-9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에서가 자기 아내들이 여호와를 모르고 우상을 섬기는 일로 인하여 부모에게 근심되게 한 것을 알았고(26:34-35), 또 부모가 동생 야곱에게 가나안 여인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신자의 가정인 외삼촌 집으로 가서 아내를 취하라고 밧단아람으로 보낸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하여 본처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또 아내로 취하였다.  이것을 보면 에서의 효성이 지극하다.  야곱은 20년 동안 밧단아람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지 못했으나, 에서는 부모를 모시고 섬겼다.  이렇게 인간적인 면으로 볼 때에는 에서가 야곱보다 나은 면이 많이 있으나 불행히도 그에게는 믿음이 없었다.  반대로 야곱은 인간적인 면에서는 에서보다 못한 점이 많이 있었으나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三. 야곱이 돌 베개 베고 잠(10-11)

 

. 28:10-11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야곱이 하란으로 향하여 가는 이 길은 ① 장자의 축복을 받은 일로 인하여 육에 속한 자에게 핍박을 받아 피난 가는 길이다.  ② 부모를 작별하고 가는 길이다.  야곱이 후에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아버지는 다시 만났으나 어머니는 만나지 못한 것 같다.  ③ 전에 가 보지 못한 멀고 험난한 고난의 길이다.  ④ 외로운 길이다.  의지할 데가 없고 도와 줄 사람도 없이 홀로 가는 길이다.  ⑤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길이다.  외삼촌댁까지 무사히 도착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또 그곳에 가서도 잘 있게 될 것인가?  앞으로 언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길이다.  그러므로 이 길은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가는 길이다.  ⑥ 믿음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오늘날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걸어가는 길과 같다.  성도의 길은 육에 속한 자에게 핍박받으면서 가는 길이요 피난 가는 길이다.  베드로후서 1:4에 보면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했다.  또한 성도의 가는 길은 고난의 길, 외로운 길이다.  찬송가에도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 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라고 했다.

성도의 가는 길은 돌 베개 베고 자는 것과 같이 고달픈 길이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외로운 길이다.  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길이다.  그러나 성도가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고 기도하면 그 풍랑 인연하여 더 빨리 가게 된다.  환난 가운데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평안할 때보다 환난과 핍박이 많을 때가 오히려 신령한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은혜의 때이다.

교역자가 개척교회 하느라고 많은 시련과 고통을 당하는 때가 좋은 때이다.  그 때에 교역자가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게 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와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또 그 때에 자기의 부족한 것과 연약한 것을 찾아 많이 회개하고, 바로 고치게 되므로 큰 유익이 있다.  시편 119:67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하였다.  또 시편 119:71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고난받는 기간은 큰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실제로 일제 말기나 6·25사변과 같은 큰 환난이 올 때에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였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

 

四. 야곱이 벧엘에서 계시를 받음(12-15)

 

.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꿈에 본즉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야곱에게 계시를 주셨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꿈과 음성과 비의적현상(秘儀的現想)과 우림과 둠밈 등을 계시의 방편으로 사용하셨다.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음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사닥다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내려오는 사닥다리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사자는 천사를 가리킨다.  이는 사닥다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교통이 이루어지게 됨을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사람과 만물에게 내려오고 성도의 기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상달하게 되고 성도와 만물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 계시를 주신 것은 장자의 축복,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축복을 야곱에게 허락하여 주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야곱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축복을 다 받게 되었다.

 

. 28:13-15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여덟 가지의 축복을 약속해 주셨다.

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약속대로 반드시 야곱을 구원해 주실 것.  나는 여호와니 \"여호와\"는 약속의 말씀을 지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② 가나안 땅을 야곱과 그의 자손에게 주실 것.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야곱이 누운 땅은 루스(벧엘)이며 가나안에 속한 땅이다.  그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이다..

③ 야곱의 자손이 창성하게 해 주실 것 이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로 인하여 믿음의 자손이 많아질 것을 가리킨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약속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가 땅의 티끌과 같이 많아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또한 진리가 승리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지금은 야곱이 돌 베개 베고 자는 외롭고 미약한 존재이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으므로 그가 반드시 승리하고 복을 받을 것이다.

④ 야곱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그것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3:16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다.

⑤ 야곱과 함께 해 주실 것.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는 것은 야곱이 다른 사람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그의 믿음 때문이다.  야곱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다.  이와 같이 신앙과 말씀이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해 주신다.

⑥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지켜 주실 것.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일을 다 이루기까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

⑦ 야곱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해 주실 것.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한 땅이기 때문에 반드시 야곱을 인도하여 그 땅(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 주실 것이다.

⑧ 야곱에게 허락한 것을 이루기까지 야곱을 떠나지 아니하실 것.  하나님께서 야곱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다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야곱을 붙들고 사용하시며 일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

 

五. 야곱이 잠 깨어 벧엘이라 칭함(16-19)

 

.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야곱은 지금까지 자기 아버지 이삭이 쌓은 제단에만 하나님이 계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곳에도 계신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시고(렘 23:24), 무소부재하시므로 성도가 어디에 있든지 다 보시고 기도를 들어주시고 권고하여 주신다.

 

. 28: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하나님의 전이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므로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였다.

하늘의 문 야곱이 그 곳에서 천국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은 것을 보았으므로 그 곳을 하늘의 문이라고 했다.  야곱과 같은 신앙으로 믿음의 길을 걷는 자에게는 하늘 문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신다.  성도가 신령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곳은 어디나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그를 찾아가시고 그 예배를 받으신다(요 4:23).

 

. 28:18-19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베개 하였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었다.  기둥으로 세운 것을 보면 그 돌이 상당히 큰 것 같다.  야곱이 기름을 부은 것은 하나님의 집으로 거룩하게 구별한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기름은 구별된 곳이나 구별된 사람에게 부었다(레 8:10,30; 출 30:25 참조).

벧엘     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야곱이 돌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부은 것은 벧엘의 신앙에서 떠나지 않고 벧엘의 신앙에 굳게 서기 위한 결심을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벧엘의 신앙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겠다는 증표이다.  벧엘의 신앙이란 하나님의 집을 떠나지 않는 신앙,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약속에서 살며 그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며 이루어 나가는 신앙이다.

 

六. 야곱의 서원(20-22)

 

. 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이 잠을 깨어 큰 기쁨과 감격에 넘쳐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다.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이것은 야곱이 조건을 붙여서 서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평안히 돌아가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서원하는 것이다.

성도가 때로는 하나님께 서원하는 것이 좋다.  바울도 하나님께 일찌기 서원한 것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했다(행 18:18).  서원은 맹세와는 다르다.  성도가 서원함으로 자신의 결심이 더욱 굳어지고, 변함없이 실행하게 된다.  보통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 앞에 서원하는 일이 많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에 감사하여 서원하는 일도 있다.

성도가 서원을 하고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된다.  성도가 하나님께 한번 서원한 것은 지켜야 한다.  신명기 23:21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잘못 서원을 한 것은 그 서원을 취소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행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 육신의 유익을 위해 이기주의로 서원을 취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편15:4에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라고 하였다.  진리에 어긋난 문제가 아니면 성도가 서원한 것을 지켜야 한다.

여기서 야곱이 세 가지 서원을 했다.

첫째,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고 거기에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다.  구원 역사는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하시는 것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사람이 협력해야 한다.  특히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문제는 사람이 협력해야 한다.  사람이 협력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동행해 주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주셨으나 야곱이 제 생각과 제 뜻대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동행해 주는 축복을 받지 못한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2에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붙잡고 푯대(목표)를 향하여 가는데 바울 자신도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서 좇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 성도를 붙잡고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실 때에 나도 그 일을 하려고 힘을 써야 그 일이 성공이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다.

둘째,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야곱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증거로 돌을 기둥으로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 체험 위에다가 성전을 세운다는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허락하신 약속을 듣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가 장자의 축복을 귀히 여겨 하나님의 기업에 참여하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있던 차에 벧엘에서 계시의 말씀을 받게 된 것이다.

이 계시는 야곱이 아버지를 통하여 받은 것보다 더 깊고 더 확실하고 명백한 계시이다.  그 진리는 그 시대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진리였다.  이와 같이 귀한 진리를 야곱이 그 밤에 받고 깨달았으므로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흘러 떠내려보내지 않기 위한 증표로써 돌기둥을 세운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앙으로 체험한 것을 기념하여 깨달은 진리를 확실히 붙잡고 그 진리를 떠나지 않으려고 돌기둥을 세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는 신앙이다.  이는 마치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 고백을 할 때에 예수님이 이 반석(베드로가 깨달은 진리)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마 16:18).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고 한 말은 영적 성전을 짓겠다는 뜻이다.  보이는 성전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성전을 짓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영적 성전의 기초는 사도와 선지자의 터(하나님의 말씀)이며 (엡 2:20), 각자가 공력을 들여 금, 은, 보석, 나무, 풀과 짚으로 짓는다(고전 3:12).  우리 개인의 성전을 지어 나가는 것은 자기 영이 자라나며 신앙 인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히 5:12-14).

영이 점점 자라나서 능력이 있어야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해 나갈 수 있다.  야곱은 벧엘에서 계시를 받아 깨달은 진리를 세워 나가야 하고,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고백한 진리를 세워 나가야 한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신 진리로써 교회를 세우고 진리의 빛을 어두운 세상에 비추어 나아가도록 해야한다(딤전 3:15).

셋째,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이것은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서원이다.  십일조의 근원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선악과나무를 두어 따먹지 못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에덴 동산의 주인이신 것을 알게 하며 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허락한 것만 취하여야 되고 말씀에 금한 것을 취하면 하나님께 심판 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십일조 제도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것인지 알게 하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쳐 드려야 될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정하신 것이다.

십일조를 실제로 드린 사실은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에게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드린 것이 맨 처음이다.

말라기 3:10에는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다.  온전한 십일조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전부 다 바치는 것을 가리킨다.  시편24:1에는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하나님께 바쳐 놓고 살아야 한다. 고린도전서 6:19-20에는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요 값으로 산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소유와 우리 몸과 자녀들도 다 하나님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전부 하나님께 바쳐 놓고 사는 생활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이다.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으로 바치는 것이다.  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것은 죄이다.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셨다(마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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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29장

제 29 장  취 처(娶 妻)

 

(대  지)

一. 야곱이 하란에 도착함(1-8)

二. 라헬을 만나 인사함(9-12)

三. 라반이 야곱을 집으로 영접함(13-14)

四. 라헬을 위해 7년간 봉사함(15-20)

五. 라반이 야곱을 속이고 레아를 아내로 줌(21-26)

六.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 더 일함(27-30)

七. 레아가 네 아들을 낳음(31-35)

 

(본문 강해)

 

一. 야곱이 하란에 도착함(1-8)

 

. 29:1  야곱이 발행하여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야곱이 가는 길은 멀고 험하며 처음 가는 길이었으나 여호와께서 지켜 주셔서 목적지인 밧단아람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28:15에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하신 대로 하나님이 친히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 결과이다.  성도가 믿음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친히 인도해 주신다.

 

. 29:2-3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성에 양 세 떼가 누웠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물을 양떼에게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구를 덮었다가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양에게 물을 먹이고는 여전히 우물 아구 그 자리에 돌을 덮더라

야곱이 하란의 한 우물가에 도착하였다.  그 우물은 목자들이 양떼를 몰고 와서 물을 먹이는 곳이었다.

여전히 우물 아구 그 자리에 돌을 덮더라 그 곳은 물이 귀한 지방이므로 아무나 와서 양떼들에게 물을 먹이지 못하도록 큰 돌로 우물 아구를 덮어두었다가, 여러 목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에 그 돌을 옮겨 놓고 다 같이 물을 먹이기 위함이었다.

 

. 29: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형제여 어디로서뇨 그들이 가로되 하란에서로라

야곱이 그 지방 목자들을 향하여 \"나의 형제\"라고 친절하게 사랑으로 인사했다.  우리 성도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예의 바른 인사를 해야 한다.

 

. 29:5-6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가로되 아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가로되 평안하니라 그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야곱이 그 목자들에게 자기 외삼촌 라반이 평안하냐고 물어 볼 때에 평안하시다고 그들도 친절하게 대답해 주고,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떼를 몰고 온다\"고 가르쳐 주었다.  야곱이 마침 하란의 목자들을 만난 것과 외삼촌의 딸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걸음을 인도해 주신 것이다.  오늘날도 성도의 발걸음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해 주신다.

 

. 29:7-8  야곱이 가로되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야곱이 목자들에게 말하기를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기라고 한 것은 그들을 도와서 우물 뚜껑을 열어 주려는 생각으로 한 것 같다. 그러나 그 목자들은 여러 목자가 다 모인 다음에 다 같이 우물물을 먹인다고 하였다. 그들은 야곱의 제의를 거절할 때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신사적으로 하였다.

 

二. 라헬을 만나 인사함(9-12)

 

. 29:9-10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침이었더라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야곱이 목자들과 말하는 동안 라헬이 그 아비의 양을 몰고 왔다.  이것을 보면 라헬이 아버지의 양을 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야곱이 우물 아구의 돌을 옮기고 라헬이 몰고 온 양에게 물을 먹이도록 도와주었다.  두 세 사람이 합력하여야 여는 큰 돌을 혼자서 연 것을 보면 야곱이 평소에 힘이 강하였고, 또 라헬을 만나 반갑고 도와주려는 마음에서 단번에 그 돌을 옮긴 것 같다.

 

. 29:11-12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고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비에게 고하매

야곱이 라헬에게 자기 신분을 밝힌 후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험난한 길에서 자기를 보호하여 주시고 무사히 외삼촌의 딸을 만나게 해 주신데 대한 감격과, 오래간만에 친척을 만난 기쁨에서 나온 울음이었다.

 

三. 라반이 야곱을 집으로 영접함(13-14)

 

. 29:13-14  라반이 그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매 라반이 가로되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하더니

라반이 딸 라헬을 통해서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 나와 그를 영접하여 입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였다.  그날 야곱은 자기 부모와 자기의 당한 모든 일을 외삼촌 라반에게 고하였다.  라반은 누이 리브가를 보낸 후에 오래간만에 소식을 듣게 되었고, 또 리브가의 아들(야곱)을 만나게 되었으므로 감격에 넘쳐서 잘 영접하여 머물게 하였다.

 

四. 라헬을 위해 7년간 봉사함(15-20)

 

. 29:15-18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면서 한 달간 머물게 되었다.  그때 외삼촌 라반이 야곱에게 \"네가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일만 하겠느냐\"하면서 보수를 정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라반이 잘한 것이다.  사전에 보수나 대가를 확정해 놓아야만 후에 시험이나 분쟁의 요소가 없다.  그 때에 야곱이 라헬을 자기 아내로 취하기 위해 칠 년간 봉사하겠다고 말하자 라반이 쾌히 승락했다.

야곱이 라반의 작은딸을 택한 것은 큰 딸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였고, 작은 딸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기 때문이었다.

 

. 29:19-20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야곱이 앞으로 자기 아내가 될 라헬을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사랑했을 것이다.  칠 년 후에는 라헬을 자기 아내로 삼기로 작정하고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칠 년이 수일과 같이 지나갔다.  사랑으로 하는 일은 힘드는 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하늘 보좌를 내려놓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갖은 고난을 다 받고 희생하여 죽어 주셨다.

 

六. 라반이 야곱을 속이고 레아를 아내로 줌(21-26)

 

. 29:21-25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라반이 또 그 여종 실바를 그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외삼촌과 약속한 칠 년이 지났으므로 야곱이 라헬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라반은 그 곳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하고 약속한 라헬 대신 레아를 들여보냈다.  그때 라반이 여종 실바도 레아의 시녀로 주었다.  야곱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 아내가 라헬이 아니고 레아였다.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야곱이 결혼함에 있어서 외삼촌 라반에게 속았다.  야곱이 이렇게 속은 것은 과거에 자신이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 아버지와 형을 속였기 때문이다.

 

. 29:26  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라반의 변명이 옳지 않다.  그 지방 풍속을 구실로 하여 약속을 어긴 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이다.  성경에는 아우보다 형이 반드시 먼저 결혼해야 된다는 말이 없다.

 

六. 야곱이 라벨을 위해 7년 더 일함(27-30)

 

. 29:27  이를 위하여 칠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 년을 내게 봉사할지니라

칠일을 채우라 레아를 위하여 칠일을 채우면 라헬도 주겠으니 그 대가로 칠 년을 더 봉사하라고 라반이 야곱에게 제안했다.  라반이 작은 딸 라헬도 주겠다고 한 것은 야곱을 칠 년 더 일하게 하여 자기 유익을 보기 위함이었고 야곱에게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것을 알고 작은딸도 그에게 주는 것을 좋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야곱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같이 하시니 그가 잘될 것을 알았고, 또 야곱이 충성되이 일을 잘하므로 그에게 작은딸까지 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 남자에게 두 딸을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야곱의 집에는 질투와 시기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남일녀를 창조한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 29:28-30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라반이 또 그 여종 빌하를 그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야곱이 칠일 후에 라헬을 또 아내로 취하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했다.  야곱이 그 두 형제를 아내로 취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레위기 18:18에 \"너는 아내가 생존할 동안에 그 형제를 취하여 하체를 범하여 그로 투기케 하지 말지니라\"고 하였다.  야곱이 믿음을 썼다면 마음에 없는 사람이지만 레아만을 아내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원리원칙이다.  비록 레아가 라헬보다 외모가 아름답지 않고 안력이 부족하다 해도 믿음으로 산다면 레아와 살거나 라헬과 살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야곱이 믿음을 쓰지 않고 두 여자를 아내로 취함으로 그 가정에 많은 시험과 분쟁과 고통이 계속되었다.  야곱이 외삼촌의 궤계에 속은 것도 신앙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성도가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신앙양심을 쓰고 남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또 일단 속아서 결혼했더라도 다른 사람을 또 취하지 말고 처음 취한 아내와 살아야 옳다.

 

七. 레아가 네 아들을 낳음(31-35)

 

. 29:31-32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레아의 태를 열어서 아들을 낳게 하셨다.  야곱이 속아서 결혼을 했으나 레아가 야곱의 본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축복하여 아들을 낳게 해 주셨다.  레아가 첫 아들을 낳아 \"르우벤\"이라고 이름하였으니 그 뜻은 \"보라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잘 받지 못하므로 괴로워했으나 첫 아들을 낳은 후에는 남편이 자기를 사랑할 줄 알고 여호와께 감사하였다.

 

. 29:33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레아가 둘째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고 했다.  그 뜻은 \"들으심\"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자기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을 들어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다.

 

. 29:34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레아가 셋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레위\"라고 했는데 그 뜻은 \"연합함\"이라는 뜻이다.  이 아들로 인하여 자기가 남편과 연합하게 될 것을 바라며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였다.

 

. 29:35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

레아가 넷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는데 그 뜻은 \"찬송함\"이라는 의미이다.  레아가 넷째 아들을 낳은 다음에는 남편의 사랑 받을 것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믿음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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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30장

제 30 장  번 성 (蕃 盛)

 

(대  지)

一. 라헬의 여종(빌하)의 생남(生男)(1-8)

二. 레아의 여종(실바)의 생남(生男)(9-13)

三. 합환채(合歡菜)로 남편을 매매함(14-21)

四. 라헬이 생남함(22-24)

五. 야곱의 일 고가(雇價)를 정함(25-36)

六. 야곱이 풍부하여 짐(37-43)

 

(본문 강해)

 

一. 라헬의 여종(빌하)의 생남(生男)(1-8)

 

. 30: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라헬이 형 레아는 아들을 낳았는데, 자기는 자식이 없으므로 그 형을 투기하며 야곱에게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라헬이 하나님께서 태를 열고 닫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생각대로 한 말이다(29:31).

 

. 30:2  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야곱이 라헬에게 답변을 바로 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이 다 하나남의 주권대로 된다.  라헬을 잉태치 못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전에 사라가 잉태치 못한 것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16:2).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잉태치 못하다가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간구를 들어주시고 생산하게 해 주셨다(25:21; 삼상 1:15 참조).

 

. 30:3-4  라헬이 가로되 나의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를 인하여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그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첩으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라헬이 자기가 잉태할 수 없음을 알고 그의 여종 빌하를 자기 남편에게 첩으로 주어 아이를 낳게 했다.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아이를 낳게 하여 자기 아이로 삼는 것은 그 당시의 풍속이었다.  라헬의 행위는 신앙적인 태도가 아니고, 세상 풍속을 따라가는 인본주의의 행위이다.  야곱이 라헬의 간청을 물리치지 못하고 여종 빌하를 첩으로 취한 것도 잘못하였다.  야곱이 처음에 아내를 둘이나 취한 것도 잘못인데 거기다가 또 첩까지 얻은 것은 아주 큰 잘못이었다.

 

. 30:5-8  빌하가 잉태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라헬이 가로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잉태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라헬이 가로되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라헬의 여종 빌하가 아들을 낳으매 라헬이 그 이름을 \"단\"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억울함을 푸심\"이라는 뜻이다.  또 빌하가 둘째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납달리\"라고 하였다.  그것은 \"경쟁함\"이라는 뜻이다.  라헬은 이렇게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을 원통하게 여겼으며 형과 경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믿음에서 멀리 떠난 증거이다.  여러 아내를 둔 야곱의 가정은 이렇게 질투와 분쟁이 그치지 않았으며 믿음에서 떠난 생활을 하였다.  이는 야곱이 일남 일녀를 창조한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어겼기 때문이다.

 

二. 레아의 여종(실바)의 생남(生男)(9-13)

 

. 30:9-13  레아가 자기의 생산이 멈춤을 보고 그 시녀 실바를 취하여 야곱에게 주어 첩을 삼게 하였더니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으매 레아가 가로되 복되도다 하고 그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레아가 가로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라헬이 여종을 통하여 아이를 낳는 것을 보고 그 형 레아도 시기하여 그의 여종 실바를 남편에게 주어 아이를 낳게 했다.  실바가 낳은 첫 아들은 \"갓\"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복됨\"이라는 뜻이다.  또, 그가 둘째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아셀\"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기쁨\"이라는 뜻이다.  레아가 동생보다 아들을 많이 두게 되었으므로 \"복되다\", \"기쁘다\"고 한 것을 보면 육신 중심으로 기울어진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야곱의 가정이 신앙적으로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알 수 있다.  형제간에 남편을 빼앗으려고 아이 낳는 경쟁을 하였다.  이처럼 가정이 불화하게 된 근본적 원인은 야곱이 레아와 결혼한 후 라헬을 또 취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 일남 일녀 (一男一女)를 내시고, 일부 일처(一夫一妻)로 가정을 이루게 하셨는데 야곱이 그 원리 원칙을 어기고 아내를 많이 취했기 때문에 믿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육신 문제로 인하여 많은 고난을 당하고 세월만 허비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며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이 잘못한 그것을 이용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나아가셨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12조상을 세우셨다.

어떤 사람은 야곱이 네 아내를 취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12지파가 되었으니 잘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이 레아하고만 살았어도 12아들을 낳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야곱이 성경의 원리 원칙에 서지 않고 인정에 끌렸기 때문에 가정이 불화하게 되었으나 하나님은 그것까지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나가셨다.

 

三. 합환채(合歡菜)로 남편을 매매함(14-21)

 

. 30:14  맥추 때에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어미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형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맥추 때에 레아의 맏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레아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때 라헬이 르우벤의 합환채를 달라고 하였다.

합환채(合歡菜)는 히브리 원어로 (뚜다임)으로 우리 나라의 \"연가자(戀歌子)\"라는 풀이다.  이 풀은 임신 촉진제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라헬은 합환채를 먹으면 자녀를 생산할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청구하였다.

 

. 30:15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가로되 그러면 형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밤에 내 남편이 형과 동침하리라 하니라

내 남편 서로 내 남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아 그들간의 투기가 얼마나 심한가를 알 수 있다.  형과 동침하리라 남편을 라헬이 독점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합환채를 얻기 위해 그 밤에 남편을 형에게 팔았다.

 

. 30:16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 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야곱은 이 아내, 저 아내에게 팔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이는 야곱이 원리 원칙에 서서 가정을 세워 나가지 않고 인정에 끌려 여러 아내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정에 장자의 축복과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 가정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원리 원칙에서 벗어난 야곱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많은 징계를 하셨다.

 

. 30:17-20  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그가 잉태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가로되 내가 내 시녀를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레아가 다시 잉태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가로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하리라 하고 그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레아가 야곱과 다시 동침하여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는데, 그것은 \"값\"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레아가 시녀 실바를 남편에게 준 대가로 그 아들을 얻었다는 것이다(18절상).

내 시녀를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이것은 자기가 남편에게 여종을 준 그 희생의 대가로 하나님께서 아들(잇사갈)을 주셨다는 뜻이다.  레아가 다시 한 아들을 낳아 \"스불론\"이라고 했으니 그 뜻은 \"거함\"을 의미한다.  이는 남편과 동거하기를 희망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 30:21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그 후에 레아가 딸을 낳고 그 이름을 \"디나\"라고 하였다.  그 뜻은 \"판단함\"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한 판단으로 딸을 주었다는 뜻이다.

 

四. 라헬이 생남함(22-24)

 

. 30:22-24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 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 고로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사 맨 나중에야 아들 둘을 낳게 하셨다.  그 아들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더함\"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른 아들을 더 낳게 해 주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라헬이 이렇게 지은 것이다.  레아가 야곱에게 아들 여섯을 낳고, 또 여종 둘이 야곱에게 둘씩 낳아 모두 열 아들을 낳은 다음에야 하나님께서 라헬로 하여금 열 한 번째로 요셉을 낳게 하셨다.  만약 처음부터 아들을 낳았다면 얼굴도 아름답고 남편도 그녀를 사랑하므로 대단히 교만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라헬을 낮추시려고 라헬의 태를 닫았다가 늦게 열어 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낮추신다

 

五. 야곱의 일 고가(雇價)를 정함(25-36)

 

. 30:25-26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께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라헬이 요셉을 낳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고향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간청했다.

 

. 30:27-28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또 가로되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진리를 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자는 어디에 가나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열매가 맺힌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복 주신 줄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같이 하시고 복을 주심으로 야곱이 거하는 라반의 집도 복을 받게 되었다.  야곱이 가는 곳에는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하고 야곱이 떠나면 하나님의 복이 떠난다.  이것을 라반이 깨닫고 야곱을 떠나지 않게 하려고 그 품삯을 정하라고 했다.

 

. 30:29-30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짐승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와서 봉사하는 기간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외삼촌이 부자가 된 것을 언급하고 자기도 집을 세우도록 해달라고 간청했다.

 

. 30:31-34  라반이 가로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가로되 외삼촌께서 아무 것도 내게 주실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 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 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자나 점이 없는 자나 양 중 검지 아니한 자가 있거든 다 도적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라반이 가로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야곱이 앞으로 일할 품삯으로 새로 낳는 양과 염소 중에서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검은 것으로 정하자고 하였으며 라반은 그 제안을 좋게 여겨 받아 들였다.

 

. 30:35-36  그 날에 그가 수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양 중의 검은 자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이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떼를 치니라

라반이 자기 양떼 중에서 점 있고 아롱진 자를 갈라내어 자기 아들들에게 맡기고 야곱에게 흰 양과 염소 떼만 맡겼다.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라반의 양떼와 야곱의 양떼가 서로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흘 길(하룻길은 약 32km이다)의 거리를 두었다.

 

六. 야곱이 풍부하여 짐(37-43)

 

. 30:37-43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으로 라반의 양과 서로 대하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실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떼의 눈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으로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약한 자는 라반의 것이 되고 실한 자는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

야곱이 자기 양떼가 많아지게 하려고 계책을 꾸몄다.  그 계책은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껍질을 얼룩무늬 나게 벗겨서 물 구유에 세워 놓았다.  이렇게 한 것은 양들이 그것을 보고 새끼를 배게 하여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게 하려는 수단이었다.  그리하여 실한 양이 새끼를 밸 때는 그 가지들을 개천에다가 세우고 약한 양이 새끼를 밸 때는 가지를 놓지 않았다.  이것은 야곱이 실한 양의 새끼를 자기 것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양 앞에 나무 껍질을 무늬 있게 벗겨서 그것을 보고 양들이 새끼를 배게 함으로 아롱지고 점 있는 양들이 나올 수 있을까?  야곱이 이러한 방법을 썼기 때문에 야곱의 소유가 많아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야곱처럼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롱지고 점 있는 양을 많이 얻은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신 까닭이다(31:9-10).

사람이 아무리 수단 방법을 쓴다 해도 하나님이 되게 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야곱이 그와 같은 수단을 쓰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야곱에게 그러한 양을 많이 낳게 해 주셨을 것이다.  오히려 야곱이 그런 방법을 쓴 것은 진실치 못하며 인본주의이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졌고 야곱은 자기 양심만 속이게 되었다.  만일 이런 수단을 쓰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축복에 더욱 감사하게 되고, 장인이나 처남들 앞에서도 양심에 가책이 없고 떳떳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인본주의를 쓰지 말고 신앙 양심을 따라 믿음을 지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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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31장

제 31 장  귀 국

 

(대  지)

一. 야곱이 귀국 결정함(1-16)

二. 야곱의 가족이 출발함(17-21)

三. 라반의 추격과 수색(22-35)

四. 야곱이 라반을 책망함(36-42)

五. 언약의 증거 돌(43-55)

 

(본문 강해)

 

一. 야곱이 귀국 결정함(1-16)

 

. 31:1-2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일한 지 20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야곱이 큰 부자가 되었다.  그 때에 라반의 아들들이 말하기를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다 빼앗아 이와 같이 거부가 되었다\"고 하며 야곱을 시기하고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또,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살핀즉 전과 같지 않았다.  이것은 물질 문제로 오해와 다툼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야곱이 실제로 라반의 재산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라반의 짐승을 다 빼앗아 자기에게 주었다고 야곱이 말한 것을 보면 불과 6년 동안에 많은 재산을 하나님이 주신 것 같다(31:9 참조).

 

.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20년만에 야곱에게 임하였다.  야곱의 꿈에 가끔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난 일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야곱에게 직접 나타나셨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야곱이 20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살아왔는데 고향으로 돌아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외삼촌과 그 아들들이 시기하고 있으므로 순순히 보내 줄 것인지?  또 야곱에게 많은 가속과 가축이 있는데 무사히 먼 길을 갈 수 있을는지?  또 고향으로 돌아가도 형 에서가 잘 영접해 줄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함께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위로해 주시고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지시하셨다.  그러므로 야곱은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안심하였고, 담대히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 31:4-5  야곱이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떼 있는 들로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 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야곱이 자기 아내 레아와 라헬을 불러 장인의 안색이 좋지 않음을 말해 주었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야곱이 보호를 받았다는 말이다.

 

. 31:6-7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금하사 나를 해치 못하게 하셨으며

야곱은 정성을 다하여 장인을 섬겼으나, 장인은 야곱을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다고 말했다.  장인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으나 하나님께서 라반을 금하여 야곱을 해치지 못하게 하셨다.

 

. 31:8-10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그 양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보니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었더라

라반이 아무리 야곱에게 품삯을 주지 않으려고 열 번이나 변역하였으나 하나님께 야곱을 축복하시므로 야곱의 양떼가 점점 많아졌다.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라반이 야곱의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여 품삯을 주지 않으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야곱의 소유가 더욱 많이 늘어나게 해 주셨다.  사람이 돈을 잘 벌고, 사업이 잘되는 것도 하나님이 같이 해 주시고 축복해 주셔야 한다.

 

. 31:11-13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가라사대 네 눈을 들어 보라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야곱이 아내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서 라반이 잘못한 모든 것을 보았다고 했으며 또한 하나님이 자기를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하셨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야곱의 환난날에 벧엘에서 응답해 주시고 계시를 보여 주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 31:14-16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업이나 있으리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었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라헬과 레아가 야곱의 말을 듣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남편을 따라 남편의 출생지로 돌아가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라헬과 레아가 그 부친에 대해서 바른 도리를 지키지 못했다.  아무리 아버지 집에 분깃이 없고 자기들을 팔고 외인 취급했을지라도 자녀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부모가 그들에게 잘해준 것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자기들에게 잘해 준 것은 생각지 않고 섭섭한 것만 생각하여 인사도 안하고, 배은망덕하게 떠나겠다는 것은 자식으로서 바른 도리가 아니다.

 

二. 야곱의 가족이 출발함(17-21)

 

. 31:17-21  형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약대들에게 태우고 그 얻은바 모든 짐승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얻은 짐승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 아비 이삭에게로 가려할 새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 아비의 드라빔을 도적질하고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고하지 않고 가만히 떠났더라 그가 그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산을 향하여 도망한지

야곱이 아내들과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이끌고 20년간 살던 밧단아람을 떠났다.

가만히 떠났더라 야곱이 라반에게 거취를 고하지 않고 라반이 양털 깎으러 간 사이에 가만히 도망했다.  야곱은 혹시 라반이 가지 못하게 하거나 재산을 빼앗을까봐 이렇게 말없이 도망친 것이다.  야곱이 이렇게 도망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면 처음에는 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으나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이 떠나게 해 줄 것을 믿고 장인에게 떠나겠다고 말했어야 옳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라반으로 하여금 야곱을 보내도록 역사하셨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에서 라반에게 꿈에라도 나타나 선히 보내라고 하셨을 것이다(29절 참조).  그리하여 야곱이 외삼촌의 허락을 받아 떠났다면 떳떳한 마음과 기쁨으로 그 길을 갔을 것이다.  바로 왕이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았으나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라반은 야곱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야곱이 20년 전에 빈 손 들고 왔는데 지금은 아내가 넷, 아들이 열 하나, 딸이 하나, 그리고 가축이 심히 많게 되었다.  이것은 모두 외삼촌 집에 살면서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외삼촌을 존경하며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순종해야 하나 인륜에도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드라빔은 우상인데 그 지방에서 가정의 수호신으로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라헬이 자기 아버지 집에서 드라빔을 훔쳐내었다.  라반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드라빔도 섬긴 것처럼 라헬도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긴 것이 분명하다.  성도가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야곱의 가정도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다가 많은 실패를 한 후 우상을 버리고 벧엘로 다시 올라갔다(35:2).

 

三. 라반의 추격과 수색(22-35)

 

. 31:22-23  삼일만에 야곱의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라반이 그 형제를 거느리고 칠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산에서 그에게 미쳤더니

야곱이 도망한지 3일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을 라반이 알게 되었다.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기 때문에 야곱이 떠난 것을 사흘 동안이나 모르고 있다가 야곱이 도망한 것을 알고 몹시 화가 났을 것이다.  분노한 라반은 그 형제를 거느리고 7일 길을 좇아가 길르앗 산에서 야곱의 일행을 만났다.

 

. 31:24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가라사대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라반이 화가 나서 야곱을 쫓아 왔으나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라반에게 나타나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라반이 야곱을 해하지 않았다.  만일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현몽하지 않았다면 야곱을 해(害)하고 야곱의 소유를 모두 빼앗아 갔을 것이다.

 

. 31:25-28  라반이 야곱을 쫓아 미치니 야곱이 산에 장막을 쳤는지라 라반이 그 형제로 더불어 길르앗산에 장막을 치고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 가만히 내 딸들을 칼로 잡은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으며 나로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느냐 네 소위가 실로 어리석도다

라반이 야곱에게 한 말은 당연한 말이다.  야곱과 라반 사이는 본래부터 외삼촌과 생질 사이였고, 또 20년간이나 같이 동거하면서 라반에게 은혜도 많이 입었다.  그런데 야곱이 그의 딸들과 손자 손녀들과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게 하고 라반에게서 도망친 것은 야곱의 잘못이다.  야곱이 사실대로 말하고 양해를 구하여 떠났으면 라반이 즐거움과 북과 노래로 보내어 줄 만한 일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다음에 다시 연락할 수도 있고 서로 협력하면서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 31:29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라반에게는 야곱을 해할 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주셔서 라반이 야곱을 해하지 못했다.  사람의 생사 화복이 하나님께 있다(31:24 참조).

 

. 31:30-32  이제 네가 네 아비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가하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말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취하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적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라반이 양떼는 빼앗을지 모르지만 자기 딸들을 야곱에게서 억지로 빼앗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야곱에게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축복해 주신 것을 라반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라반이 아무리 욕심이 많고 야비한 사람일지라도 아버지의 심정으로서 자기 딸들에게 그렇게 할 리는 없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능력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생각으로 장인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도망친 것이다.  아무리 상대방이 잘못하더라도 정당하게 원리원칙대로 자기의 도리를 다하고 범사를 믿음으로 해나가면 그 사람도 후에는 깨닫고 바로 하게 된다.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이는 야곱이 경솔하게 한 말이다.  자기 아내 라헬이 그것을 도적질한 것을 모르고 이렇게 말했으나 그렇게 속단하고 극단적으로 장담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속담에 \"자식 많은 사람은 장담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자식 중에 누가 나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 31:33-35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약대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얻지 못하매 라헬이 그 아비에게 이르되 마침 경수가 나므로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얻지 못한지라

라반이 드라빔을 찾기 위하여 장막들을 수색하였다.  먼저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고, 다음에 레아의 장막과 두 여종의 장막에 가서도 찾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라헬의 장막에 들어갔다.  그때 라헬이 드라빔을 약대 안장 아래 넣고는 그 위에 올라앉고 \"마침 경수가 나므로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라고 했다.  라헬이 우상을 도적질한 것 자체가 잘못이며, 딸이 아버지에게 대한 도리를 바로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것을 도적질하고 이제는 거짓말까지 하여 아버지를 속였다.  라반이 드라빔을 두루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四. 야곱이 라반을 책망함(36-42)

 

. 31:36-37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 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적하여 가로되 나의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나를 불같이 급히 쫓나이까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가장집물 중에 무엇을 찾았나이까 여기 나의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두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도리어 야곱이 화를 내었다.  \"대척(對斥)\"은 반박하여 따지는 말로 대답하는 것이다.  야곱은 자기의 죄가 없음을 증거하면서 왜 불같이 쫓느냐고 항의하였다.

 

. 31:38-39  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 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야곱이 20년 동안 외삼촌을 섬기면서 손해 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다.  ① 외삼촌의 암양이나 암염소가 낙태하지 않았다.  ②외삼촌의 수양을 먹지 않았다.  ③물려 찢긴 것까지도 다 보충해 주고, ④밤에나 낮에 도적 맞은 것은 다 물어 주었다.

 

. 31: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야곱이 외삼촌의 양을 먹이는데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여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였고 만일 도적이나 악한 짐승이 양을 물어 가면 자신의 양으로 그 대신 보충시켜 주면서까지 외삼촌께 봉사했다.  고린도전서 4:2에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다.  외삼촌이 와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고 사흘 길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한 마리도 축내지 않고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양들을 자기 몸과 같이 아끼며 잘 먹였다.

야곱은 외삼촌의 양일지라도 정성을 다해 돌보아 키웠으니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양떼들을 충성을 다해 돌보고 길러야 하겠다.

 

. 31: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 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야곱이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해서 14년 동안 봉사하고 외삼촌의 양떼를 위해서 6년간 봉사했다.  그러나 외삼촌은 야곱의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 하였다고 했다.

 

. 31: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 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시고 이삭이 경외하던 하나님이 야곱에게 함께 하시므로 야곱이 축복을 받고 라반에게 가서도 보호를 받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라반은 야곱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려 하였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야곱을 감찰하셔서 꿈에 라반에게 나타나 야곱에 대해 서 선악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五. 언약의 증거 돌(43-55)

 

. 31:43  라반이 야곱에게 가로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떼는 나의 양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날 내 딸들과 그 낳은 자식들에게 어찌할 수 있으랴

라반이 말하기를 딸들과 자식들(라반의 손자 손녀들)은 물론이고 야곱 소유의 모든 양떼가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라반의 생각은 야곱이 20년 전에 빈손으로 왔으나 자기가 딸들을 야곱에게 주어서 자식들을 낳았고, 또 양도 자기의 양에게서 낳은 것들이니 모두 자기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야곱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수고하여 얻은 것이므로 다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제나 싸움은 \"내 것\"이라고 하는 데서 생긴다.  우리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한다.  라반과 야곱도 피차간 하나님의 말씀대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서로 싸우고 다투게 된다.

오늘날 내 딸들과 그 낳은 자식들에게 어찌할 수 있으랴 라반이 자기 딸들과 자식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악한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라반이 쫓아 온 것은 야곱을 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딸을 빼앗으려고 온 것도 아니다.  부모가 아무리 욕심이 많고 악할지라도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자녀들이 생각하기에는 미워하는 것 같고 팔고 빼앗아 가는 것 같을지라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 31:44  이제 오라 너와 내가 언약을 세워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라반이 야곱과 서로 해하지 않기로 언약을 세우자고 하였다.

 

. 31:45-46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취하여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우고, 또 그 형제들은 돌을 취하여 무더기를 이루고 서로 언약을 세우고 증거를 삼았다.

 

. 31:47-48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칭하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칭하였으니 라반의 말에 오늘날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칭하였으며

그 돌무더기를 가리켜 라반은 \"여갈사하두다\"라 했으니 이 말은 아람 방언으로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이다.  또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고 했으니 이 말 역시 히브리 방언으로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이다.

 

. 31:49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 피차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감찰하옵소서 함이라

미스바 이 말은 히브리 방언으로서 \"망대\"라는 뜻이다.

 

. 31:50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취하면 사람은 우리와 함께 할 자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너와 나 사이에 증거하시느니라 하였더라

라반이 딸을 위하는 부정(父情)이 잘 나타나 있다.  라반은 자기 딸들을 박대하지 말고 다른 아내를 취하지 말라고 야곱에게 부탁했다.

 

. 31:51-52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너와 나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않을 것이라

라반과 야곱이 그 돌무더기를 경계로 하여 서로 넘어가 해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라반은 야곱이 앞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심히 창성하여 큰 국가의 세력이 될 것을 알았다.  이것은 야곱이 믿음을 지키고 그 속에 진리가 있는 줄을 라반이 알았기 때문이다.  야곱의 세력이 지금은 숫자가 적고, 미약하지만 장차 반드시 큰 세력이 될 것을 라반이 알고 피차간에 해하지 않겠다는 불가침 조약을 맺은 것이다.  이 약속은 국가간의 불가침 조약과 같은 것이다.

 

. 31: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의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그 아비 이삭의 경외하는 이 이삭이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겼으므로 야곱도 20년 동안 밧단아람에서 생활하면서 자기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을 경외한 것을 늘 기억하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자식도 그 부모를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그 자식이 일시적 타락이 되더라도 부모가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 31:54-55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경야하고 라반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라반과 야곱이 경야(經夜)할 때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하룻밤을 믿음으로 교제한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일찍 라반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화평한 가운데 하룻밤을 지내면서 하나님을 섬긴 다음 작별하게 되니 라반과 야곱이 피차 기쁜 마음으로 헤어졌다.

라반이 처음에 올 때에는 분한 마음으로 달려왔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그 마음이 감동을 받아 이렇게 서로가 화평한 가운데서 떠나게 되었다.  잠언 16:7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했다.  믿음으로 나가면 원수라도 화목이 된다.  야곱이 외삼촌에게 미리 알리고 떠났으면 처음부터 화평하게 헤어졌을 것인데 그냥 떠났기 때문에 피차간 손해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이 다 원만하게 만들어 주셔서 서로 화평을 이루고, 도와주고 축복하는 자리에서 떠나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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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32장

제 32 장  씨 름

 

(대  지)

一. 하나님의 사자가 보호함(1-2)

二. 에서의 심리를 타진함(3-5)

三.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마주 옴(6-8)

四. 야곱이 기도함(9-l2)

五. 에서에게 예물을 보냄(13-20)

六. 가족과 소유을 건너 보냄(21-23)

七. 야곱이 천사와 씨름함(24-32)

 

(본문 강해)

 

一. 하나님의 사자가 보호함(1-2)

 

. 32:1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31:3)을 순종해 가는 야곱을 보호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들이다.

 

. 32: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하나님이 야곱을 보호해 주시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많은 천사의 무리를 보여 주셨다(수 5:13-15; 시 34:7; 욥 29:25 참조).  야곱이 그 천사의 무리를 보고, 자기를 보호해 주는 하나님의 군대인 줄 알았다.

\"마하나임\"      은 \"천사의 무리들\"이라는 뜻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보호하고 지켜 주신다(히 1:14; 시 34:7).

 

二. 에서의 심리를 타진함(3-5)

 

. 32:3-5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자기 보다 앞서 보내며 그들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는 이같이 내 주 에서에게 고하라 주의 종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에게 붙여서 지금까지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사오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더라 하라 하였더니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형 에서의 심리(心理)를 알아보기 위해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 자기가 돌아온다는 소식과 형님께 은혜 받기를 원한다고 전하게 하였다.  이것은 야곱이 형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조금 전에 천사를 보내 보호해 주는 것을 알게 해 주셨으나 야곱이 그것을 믿지 않고 에서를 두려워하여 이런 방법을 썼다.

 

三.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마주 옴(6-8)

 

. 32:6-8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가로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야곱이 보낸 사자들이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기 위해 오더이다\"라고 하였다.  그때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으니 이는 에서가 그 400명을 거느리고 와서 치면 처자와 가축들이 몰살하겠기 때문이었다.  그때에 야곱이 자기와 함께 한 종자와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어 놓았다.  그것은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다른 한 떼를 피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섭리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20년 동안 타락 생활하던 것을 회개시키려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야곱은 14년 동안 두 아내를 얻느라고 세월을 보내고 6년 동안 재산 모으느라고 세상에 빠져 세월을 보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야곱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귀향시키면 장자의 기관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회개시켜서 구원 운동에 큰 그릇으로 쓰시려고 에서와 그 400명을 동원하여 당장 야곱을 칠 것 같은 기세로 마주 오게 한 것이다.  그 때에 야곱이 회개하고 바로 서서 하나님만 의지해야 될 터인데 인간의 생각대로 위험을 피해 보려고 수단과 방법을 썼다.

   

四. 야곱이 기도함(9-12)

 

. 32:9-12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이 20년만에 처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되었다.  야곱은 20년 동안 처자와 물질에 빠져서 이렇게 간절하고 깊은 기도를 하지 못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러한 위태한 지경에 처하게 하여 강제로 기도를 시키셨다.

그때 야곱은 ①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외하던 하나님을 찾았고, ②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말씀을 가지고 기도했고(9절), ③ 20년 전에 고향을 떠나갈 때와 지금과 비교하며 하나님이 많은 은혜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권고를 의지하고 기도했고(10절), ④ 전에 하나님께서 자기 자손을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고 그 말씀을 가지고 기도했다(12절).

야곱이 이렇게 기도한 목적은 에서의 손에서 건져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곱의 기도는 아직도 하나님의 목적에 어긋났다.  야곱이 회개하며, 가족과 재산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하나님의 주권과 말씀대로 이루어 줄 것을 믿으며 두려워 말고 담대히 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야곱은 아직 자기 목숨과 가족과 재산이 우상이 되어 내어놓지 못했다.  야곱이 이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하나님과 그 말씀만 믿고 \"살든지 죽든지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믿음으로 나아갔더라면 심령이 평안하고 하나님이 만능으로 보호해 주셨을 것이다.

 

五. 에서에게 예물을 보냄(13-20)

 

. 32:13-20  야곱이 거기서 경야하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수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수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 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눠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 종들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상거가 뜨게 하라 하고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엣 것은 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고하고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함이었더라

야곱이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인간의 수단으로 형에게 드릴 예물을 많이 준비해서 보냈다.  그 선물은 암염소 200, 수염소 20, 암양 200, 수양 20, 젖나는 약대 30과 그 새끼 암소 40, 황소 10, 암나귀 20, 새끼 나귀 10으로 굉장히 많은 재산이었다.  야곱은 이것으로 형의 감정을 풀어 보려고 했다.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나누고 그 사이를 뜨게 하며 각 떼를 따라 가는 자에게 \"야곱이 에서에게 보내는 선물\"이라고 말하게 한 것도 에서의 마음을 여러 번 기쁘게 하여 감정을 풀고 형의 호의를 사려는 것이었다.  물질에 대한 애착심이 많은 야곱도 생명이 위태한 지경에 처하니 많은 재물을 내어놓게 되었다.  죽게 된 마당에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질에 대해서 애착심과 욕심이 많은 자는 큰 징계를 받아야 욕심이 깨어져 나가고 하나님만 소망하며 의뢰하게 된다.

 

六. 가족과 소유를 건너 보냄(21-23)

 

. 32:21-23  그 예물은 그의 앞서 행하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경야하다가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그날 밤 야곱은 자기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자녀들과 소유물로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하고 자기는 홀로 남았다.  아직도 안심이 안되기 때문에 기도하기 위함이었다.

얍복강은 요단강 동편 길르앗 고원에서 요단강으로 흘러 들어오는 강이다.

 

七. 야곱이 천사와 씨름함(24-32)

 

.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홀로 남았더니 야곱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어이 받고야 얍복강을 건너기로 작정하였다.  야곱이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천사이며 하나님이 비의적 현상(秘儀的現像)으로 나타나신 것이다(호 12:3-4). 비의적 현상이란 하나님이 천사를 빙자하여(천사를 통하여) 나타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천사인 동시에 하나님이시다.

씨름 육적 씨름이 아니고 영적인 씨름으로서 씨름하듯이 전심 전력을 기울여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야곱이 그 밤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면 형에게 멸망당한다는 두려움으로, 홀로 남아 날이 새도록 결사적으로 살려 달라고 기도하였다.

 

. 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야곱과 하나님이 씨름하는 내용은 야곱은 살려 달라는 것이고, 하나님은 회개하라는 것이다.  야곱은 자기의 소원을 관철시키려는 것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야곱을 회개시키는 것)을 성취하시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을 회개시켜야 하나님이 이기겠는데, 야곱이 끝내 회개하지 않으니 회개시키려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게 되었다는 뜻이다.  환도뼈를 맞고 위골될 때에 야곱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욕구와 소원도 다 내어버리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진심으로 회개하기 시작했다.  환도뼈를 친 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였다.

환도뼈 엉덩이(골반)에 연결된 뼈이다.  왜 다른 데를 치지 않고 환도뼈를 치셨겠는가?  환도뼈는 요긴한 뼈이다.  요긴한 데를 쳐야 야곱이 회개하겠는 고로 환도뼈를 치신 것이다.  성도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가장 요긴한 것을 쳐서 징계하신다.  성도가 징계 받을 때에 재산도 자녀들도 생명까지 다 내어놓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아야 한다.  야곱이 이런 징계를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다.  징계를 받아 다리를 절면서 라도 신앙의 길을 바로 걸어가게 된 것이 은혜이다.  이로 인하여 야곱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었다.

 

. 32: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날이 새려 하니 날이 밝아 온다는 뜻인데, 이것은 심령이 점점 밝아져 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정도 깨닫게 하신 다음에는 떠나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떠나가시려 할 때에 야곱은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었다.  예수께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도 어느 정도 깨닫게 해주고 지나가려고 하였다(눅 24:27-28).

 

. 32:27-28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이기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이스라엘( )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는 뜻이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겼다.  이긴 증거는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 자는 언제나 이긴 것이다.  동시에 이 씨름에서 하나님도 이기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적은 야곱을 회개시키는 것인데 이 씨름에서 야곱을 회개시켰기 때문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였으니 승리하였고 하나님은 야곱을 회개시켜 그 목적을 달성하였으니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얍복강 씨름은 하나님과 야곱 둘(양쪽)다 이긴 씨름이다.  만일 야곱이 완강하여 회개치 않고 끝까지 살려 달라고만 하여 제 뜻대로 고집하였다면 둘 다 실패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야곱이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바로 섰으므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고 승리자의 인격을 얻었다.

 

. 32:29-30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야곱이 그 사람의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했으나 그 사람은 \"어찌 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하고 야곱에게 축복하고 떠났다.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인데, 야곱은 그 사람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비의적 현상으로 나타나신 것을 알고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라고 하면서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

 

. 32:31-32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 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전과 같이 아침에 해가 돋았으나 이렇게 특별히 기록한 것은 야곱이 영적 승리자(이스라엘)가 되어서 해를 볼 때에 특별히 아름다운 해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도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서 신앙으로 만물을 바라보면 만물이 다 새롭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 만물도 성도를 위해 다 주신 것이다(고전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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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33장

제 33 장  화 목(和 睦)

 

(대  지)

一. 에서가 야곱을 환영함(1-7)

二. 야곱이 에서에게 예물을 드림(8-11)

三. 에서의 호의와 야곱의 사양(12-16)

四. 야곱이 숙곳과 세겜에 머무름(17-20)

 

(본문 강해)

 

一. 에서가 야곱을 환영함(1-7)

 

. 33:1-2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형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을 야곱이 눈을 들어보고 다시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때에 두 여종과 자녀들을 앞세우고 그 다음에 레아와 그 자식들을 두고 맨 뒤에는 라헬과 요셉을 두었으며 야곱은 맨 앞에 나아갔다.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둔 것은 그들을 제일 귀중히 여기고, 만일 에서가 죽이려 하면 먼저 도망치게 하려는 심사였다.  야곱이 이렇게 한 것은 벧엘의 하나님을 잊어버린 인본주의 수단이다.  전날 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스라엘(승리자)이라는 이름을 주셨으나 야곱이 또 다시 옛날 야곱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렇게 된 것은 야곱이 이스라엘의 신앙에 굳게 서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는 자리에 돌아간 것과 같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운 것과 같다(벧후 2:22).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 길은 하나님께서 명령한 길이요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길이다(31:3,13).  야곱이 이것을 믿었다면 인간의 유치한 수단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 33: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야곱이 형을 향하여 땅에 몸을 일곱 번 굽힌 것은 아부하는 태도이다.  이것도 너무 지나치고 간사한 행동이다.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형을 영접하였더라면 이와 같은 아첨의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에서는 전에 야곱에게 품었던 복수심을 다 버리고, 동생 야곱을 마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잃었다가 다시 얻은 것처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에서가 동생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고 환대한 것을 보면 야곱보다 인간성이 훨씬 낫다.  또 그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감동시켜 선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품게 해주신 것이다.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려고 출발할 때는 야곱을 해하려는 심정이었을지 모르나 도중에 하나님이 감동시켜 야곱을 해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징계하려고 하다가도 그 사람이 회개하고 바로 서면 그 원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여 해하지 못하도록 역사하신다(잠 16:7).  사울도 다윗을 죽이려고 3000명을 거느리고 찾아왔다가 하나님의 역사로 인하여 도리어 다윗을 축복하고 돌아갔다(삼상 24장).  또 잠언21:1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洑)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했다.

 

. 33:5-7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 때에 여종들이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레아도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야곱이 처자들을 형 에서에게 차례로 나와 절하게 하고 요셉과 라헬은 맨 나중에 나가서 절했다.  형에게 가족들을 인사시킨 것은 좋으나, 자기는 조금 전에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혀 절한 것은 너무 지나치게 아부한 것이다.

 

二. 야곱이 에서에게 예물을 드림(8-11)

 

. 33:8-11  에서가 또 가로되 나의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가로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에서가 야곱을 만나기 전에는 야곱이 선물로 보낸 짐승의 떼들을 사양했다.  그러나 야곱이 형에게 은혜를 입기 위하여 예물로 드리려는 것이라고 말하며 강권하므로 받았다.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이 말은 아첨하는 말이요, 형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는 매우 잘못된 말이다.  형 에서가 호의를 베풀어 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터인데 야곱이 하나님께는 감사하지 않고, 계속 형에게 아첨하였다.

 

三. 에서의 호의와 야곱의 사양(12-16)

 

. 33:12-13  에서가 가로되 우리가 떠나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유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은즉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에서가 야곱의 길잡이가 되어 길을 인도하겠다고 했으나, 야곱은 자식들이 유약(幼弱)하고 양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 33:14  청컨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야곱이 세일로 가서 형 에서에게 나아가겠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다.  사실 야곱은 세일로 갈 생각이 아니었다.  에서가 떠난 후에 숙곳으로 간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야곱은 형이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호의를 베풀어주었으나 여기서 또 형을 속였다.  이스라엘의 신앙(32:28)은 다 내어버리고 여전히 야곱의 옛 생활을 계속했다.

 

. 33:15-16  에서가 가로되 내가 내 종자 수인을 네게 머물리라 야곱이 가로되 어찌하여 그리 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회정하고

에서가 야곱에게 호의(好意)를 베풀어 자기 종 몇 사람을 남게 하여 야곱을 보호해 주겠다고 하였으나, 야곱이 또 거절했다.  야곱이 형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형이 떠나자마자 숙곳으로 간 것은 형을 속인 간사한 행동이었다.

 

四. 야곱이 숙곳과 세겜에 머무름(17-20)

 

. 33: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야곱이 속곳에 이르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것은 형과의 약속을 어겼을 뿐 아니라, \"가나안 땅 곧 네 조상의 땅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다(31:3, 13).  야곱의 출생지는 브엘세바였으므로(26:23, 33)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떠날 때, 그 부모가 거기 거했고, 지금은 이삭이 헤브론에 거하였다(35:27).  야곱이 그곳으로 가서 부친을 뵈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숙곳에서 집과 우릿간을 짓고 정착한 것은 그곳이 양치기에 좋은 곳이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 나아가다가 도중에 그 말씀을 어기고 세상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야곱이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 산 것이 큰 잘못이다.  조부 아브라함은 장막 생활을 하며 천성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야곱은 세상을 바라보고 집을 지었다.  야곱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 나아가다가 자기 형편에 따라 육신의 좋은 대로하였다.  이것은 롯이 소돔, 고모라 땅의 좋은 것을 보고 그곳을 택하여 간 것과 같다.

 

. 33: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로 밧단아람에서 평안히 가나안에 도착하여 장막을 쳤다.  야곱이 아마 숙곳에 있을 때에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 을 깨달았던 것 같다.  야곱이 세겜까지는 왔으나 아직도 부친이 계신 곳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리하여 34장에서 또 한번 큰 징계를 받게 된다.  잠언 29:1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다(시 49:20 참조).

 

. 33:19-20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 백 개로 사고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

야곱이 세겜성 앞에 장막을 치고 그 밭을 은 100개를 주고 산 것은 잘못이다.  그 이유는 ① 숙곳에 머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없었으며, ② 야곱이 아직도 부친이 있는 곳에 가려면 좀더 가야 되며, ③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신 바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겜은 야곱이 정착할 곳이 아니다.  야곱은 그곳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야곱은 자기가 이스라엘 생활은 하지 않으면서 이 제단 이름을 이렇게 부른 것은 알맹이 없는 피상적 명칭(皮相的名稱)이다.  야곱의 신앙 생활은 아직도 의식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 장(34장)에서 징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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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34장

제 34 장  디 나

 

(대  지)

一. 디나가 강간을 당함(1-7)

二. 세겜이 청혼함(8-12)

三. 야곱의 아들들이 속여서 대답함(13-17)

四. 세겜성 사람들이 할례를 받음(18-24)

五. 야곱의 아들들이 살인하고 약탈함(25-3l)

 

(본문 강해)

 

一. 디나가 강간을 당함(1-7)

 

. 34:1-2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야곱의 아들이 열 하나요(베냐민은 아직 출생 전이다), 딸은 디나 하나뿐이었다.  그러므로 디나가 특별히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 디나가 그 땅(세겜성) 여자들의 의복과 풍습을 보고 그들과 사귀려고 나갔다.  이것은 성도가 세상과 짝하는 생활이다.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여 벧엘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31:13) 그의 딸 디나가 세상과 짝하게 되었고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에게 강간당하는 큰 불상사가 났다.

 

. 34:3-4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그 아비 하몰에게 청하여 가로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세겜은 디나를 욕보인 후 디나를 깊이 사랑하여 디나를 위로해 주고, 자기 아비에게 디나를 자기의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 34:5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의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야곱이 딸 디나가 더럽힘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잠잠하였다.  그 이유는 ① 이 일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므로 누가 알면 더욱 수치가 되겠기 때문이다.  ② 자기 혼자서 디나를 빼앗아 올 수 없기 때문이다.  ③ 아들들이 목장에서 돌아온 다음에 의논하고 합력하여 데려오기 위함이다.  ④ 자기의 잘못한 책임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야곱이 이러한 불상사를 당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징계이다.  야곱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 이유는 하나님이 가라고 한 벧엘로 가지 않고(31:13, 35:1), 세겜 땅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야곱이 처음에 속곳에 짐을 풀고 집과 우릿간을 지은 것이 잘못이며 또한 세겜에 와서 정착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야곱이 세상을 따라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왔고 이방 세력으로부터 큰 해(害)를 받게 되었다.  성도가 믿음에서 떠나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고 내어버리신다.

 

. 34:6-7  세겜의 아비 하몰을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사람 사람이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치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야곱의 아들들이 들에서 그 소식을 듣고 들어와 모두 근심하고 격분하였다.  이는 디나가 강간당하여 자기 집안이 수치를 당하게 된 일과 세겜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다.

 

二. 세겜이 청혼함(8-12)

 

. 34:8-12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컨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취하고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세겜도 디나의 아비와 남형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청구하는 것은 내가 수응하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빙물과 예물을 청구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수응하리라

세겜은 부친 하몰과 같이 친히 야곱의 집에 와서 디나를 아내로 삼게 해 줄 것을 청하였다.  하몰은 디나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고, 서로 통혼(通婚)하여 물건도 매매하고 이 땅에서 기업을 얻으라고 말하였다.  세겜도 야곱의 아들들에게 디나만 그의 아내로 주면 아무리 큰 빙물(聘物)과 예물을 청구할지라도 다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세겜이 강간한 것은 잘못했으나 그 후 일처리는 야곱의 아들들에 비해 신사적이며 정당한 것이었다.

 

三. 야곱의 아들들이 속여서 대답함(13-17)

 

. 34:13-14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 아비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욕이 됨이니라

야곱의 아들들이 디나의 강간 사건을 바로 처리하지 않고 복수심과 분노로 말미암아 그들을 죽이려고 거짓 계책을 꾸몄다.

 

. 34:15-17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취하며 너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를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야곱의 아들들이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으면 서로 통혼하고 그렇지 않으면 디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더욱이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의식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방편으로 사용한 것은 아주 큰 죄악이다.  출애굽기 30:37-38에 \"네가 만들 향은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것이니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무릇 맡으려고 이 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고 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표요, 정욕을 제거하며 하나님께 속하는 거룩한 예식인데, 이것을 악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커다란 악행이다.

 

四. 세겜성 사람들이 할례를 받음(18-24)

 

. 34:18-19  그들의 말을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이 좋게 여기므로 이 소년이 그 일 행하기를 지체치 아니하였으니 그가 야곱의 딸을 사랑함이며 그는 그 아비 집에 가장 존귀함일러라

하몰과 세겜이 야곱의 아들들의 제안을 듣고 좋게 여겨 받아들였다.  그들은 디나를 얻기 위한 이기주의로 모든 조건을 쾌히 허락하였으니, 이는 하몰의 가정에서 그 아들 세겜이 우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34:20-24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이 성문에 이르러 그 고을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친목하고 이 땅은 비어 그들을 용납할 만하니 그들로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취하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그러나 우리 중에 모든 남자가 그들의 할례를 받음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들의 생축과 재산과 그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 말대로 하자 그리하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하리라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하몰과 세겜은 세겜 사람들을 설득시켜 할례를 받게 했다.  그들이 설득되어 할례를 받은 이유는 ① 하몰의 아들 세겜이 그 땅의 추장이었고(추장은 통치자임), ② 야곱의 아들들과 매매하여 이익을 보려 함이요, ③그들의 생축과 재산과 그 모든 짐승이 자기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23절).  그들은 자기들의 이권 문제로 인해 할례를 받았으나 세겜이 디나와 결혼하기 위한 수단에 이용당한 것이며 야곱의 아들들의 궤계에 속은 것이다.

 

五. 야곱의 아들들이 살인하고 약탈함(25-31)

 

. 34:25-26  제 삼일에 미쳐 그들이 고통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부지중에 성을 엄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할례 받은 지 제 삼일은 고통이 심할 때이다.  그 기회에 시므온과 레위가 그 성을 갑자기 쳐들어가 하몰과 세겜을 죽이고 또 그 성 모든 남자를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왔다.  이것은 큰 악행이다.  누이동생이 강간당했다고 어떻게 온 성 남자를 다 학살 할 수 있겠는가?  세겜 이외에 그 성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하여 무슨 죄가 있는가?  이것은 정당한 행동이 아니라 죄악이다.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이 디나를 더럽힌 것과 그 결과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다고 해서 잔인 무도하게 학살을 감행하였다.

 

. 34:27-29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 누이를 더럽힌 연고라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성 사람을 학살한 다음 야곱의 다른 아들들이 그 시체 있는 성으로 가서 노략하였는데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하고 그 성의 자녀들과 아내들을 사로잡았다.  이것은 사소한 일에 대하여 너무 지나치고 잔인한 보복이었다.

우리 성도는 사소한 일로 인하여 지나치게 큰 일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거룩한 종교 의식을 악용하여 사람을 속이고 학살하고 약탈하여 살인자와 강도가 되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그 가정이 이렇게 된 것은 야곱의 불신앙적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함으로 자녀들이 믿음 지키는 것을 배우지 못했고, 늘 불화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나면서 서로 싸우고 다투는 습성이 몸에 배었다가 이렇게 나타난 것 같다.  또 이러한 결과는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벧엘로 가지 않고 도중에 머물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야곱의 가정에서 레아와 라헬은 서로 시기하여 싸우기만 하고 야곱은 외삼촌의 재물을 어떻게 해서든지 많이 빼앗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쓰고, 형 에서에게는 자기가 세일로 가서 가겠다고 하고는 가지 않았으며, 벧엘로 가는 도중 세상을 따라 세겜에 머물렀기 때문에 자녀들이 이처럼 엄청난 죄를 짓게 되었다.

만일 야곱이 얍복강에서 회개한 대로 바로 서서 그 부친 이삭에게 직접 나아갔다면 그 자녀들이 할아버지 이삭의 신앙을 본받고 신앙 인격을 많이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도중에 머물렀기 때문에 얍복강에서 받은 징계(환도뼈가 위골됨)보다도 더 큰 징계를 받게 되었다.  처음 징계 받을 때에 회개하고 바로 섰으면 또 다른 징계가 없었을 텐데 징계를 받고도 바로 서지 않으므로 이와 같이 재차 징계가 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자녀들이 불신앙으로 나아갈 때에 자기들의 죄를 찾아 철저히 회개하여야 한다.

 

. 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 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야곱이 살인한 아들들을 엄히 책망하거나 또 자기의 불신앙을 회개하지도 않고, 그 살인 결과로 부근 이방 족속들이 모여서 자기를 치러 오면 자기들은 수가 적으므로 온 집이 멸망하게 될까봐 염려만 했다.  또 이방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권위가 떨어져 수치를 당하고 미움을 받을까봐 걱정만 하였다.  이것은 야곱이 깊이 타락한 증거이다.

 

. 34:31  그들이 가로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

야곱의 아들들은 디나의 사건을 들어 자기들이 행한 학살과 노략질한 것을 정당하다고 변명하였다.  야곱의 가정은 이와 같이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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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35장

제 35 장  엘 벧엘

 

(대  지)

一. 일어나 벧엘로 가라(1)

二. 벧엘로 갈 준비(2-4)

三. 야곱이 벧엘로 가서 단을 쌓음(5-8)

四. 하나님이 야곱에게 축복하심(9-15)

五. 라헬의 죽음과 르우벤의 범죄(16-22)

六. 야곱의 12 아들의 이름(23-26)

七. 이삭이 죽어 장사됨(27-29)

 

(본문 강해)

 

一. 일어나 벧엘로 가라(1)

 

.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과 그 자녀들이 세겜에서 큰 낭패를 당하여 비참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 그냥 버려 두지 아니 하시고 야곱을 다시 불러 주셨다.  일어나 벧엘로 을라가서 이것은 야곱에게 옛날 벧엘의 신앙(28:18-22)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20년 동안 세상의 것을 위해 살면서 처음 믿음, 처음 은혜, 처음 사랑을 다 잃어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얍복강에서 기도하며 회개를 하고 어느 정도 옛날의 신앙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워낙 오랜 세월 동안 타락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단번에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세겜에서 큰 실패를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와 주시고 벧엘의 신앙을 찾으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벧엘의 신앙은 어떠한 신앙인가?  형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야곱이 경험한 신앙으로 ①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며 하늘 문이 열린 신앙이다(28:12 참조).  ②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신앙이다(28:13-15).  ③ 구속의 주를 발견한 신앙이다(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  ④ 십일조 드릴 것과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로 서원한 신앙이다.  성도가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과 동행하던 처음 믿음과 처음 사랑으로, 하나님께 서원하던 그 신앙을 다시 찾아 그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  이제 야곱의 가정이 사는 길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밖에 없다.

거기서 단을 쌓으라 벧엘신앙을 찾아서 그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二. 벧엘로 갈 준비(2-4)

 

. 35: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야곱이 벧엘의 신앙을 잃어버리고 타락함으로 그 영향이 가족들에게 미쳐 가족들이 큰 낭패를 당했으므로 이제 자신이 회개하고 바로 서서 가족들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러므로 야곱이 자기 집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에게 세 가지를 행하라고 명령했다.

첫째, 이방 신상을 버리라고 했다.  야곱 자신은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겼으나, 가족이 우상 섬기는 것을 다스리지 않고 묵인해 두었던 것이다.  이것은 야곱의 신앙이 해이(解弛)해진 증거이다.  이제 야곱은 회개할 때에 먼저 우상을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라헬이 밧단아람에서 올 때에 가지고 온 드라빔(31:19) 외에도 여러 이방 신상 (4절)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이 우상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없다.  오늘날 우리도 우상을 버려야 벧엘로 올라갈 수 있다.

오늘날 성도들의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지배보다 더 지배를 받는 것,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것, 탐심(골 3:5), 고집, 완고(삼상 15:23) 등이다.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이 되고, 자식이나 남편이나 아내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 자식이나 남편이나 아내가 우상이 되고, 자기를 하나님보다 더 중하게 여기면 자기가 우상이 된다.  우상 중에 제일 큰 우상은 자기이다.  성도가 이러한 우상을 다 버려야 신령한 벧엘 곧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갈 수 있다.

둘째, 자신을 정결케 하라고 했다.  이것은 마음과 몸을 다 정결케 하라는 뜻이다.  야곱이 양심을 쓰지 않고 자기 아버지와 형과 외삼촌을 속였다.  거짓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요 8:44).  야곱과 그 가족이 세상에 속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육신의 소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깊이 빠져 있었으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유익만을 따라갔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청산하고 거짓과 욕심을 다 내어버리고 신앙 양심을 지키고 깨끗한 심령을 가져야 벧엘로 올라갈 수가 있다.

세째, 의복을 바꾸라고 했다.  의복은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거짓되고 더러운 행위와 이방인의 풍속 습관을 따라가던 모든 더러운 행위의 옷을 벗어버려야 한다(레 15:5-6; 습 1:8; 슥 3:4 참조).  성도는 언제나 깨끗하고 정결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한다(롬 13:12-13; 계 19:8).

 

. 35:3-4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야곱의 말을 들은 집사람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자가 야곱이 회개하며 믿음으로 결단하고 권하는 말을 듣고, 이방 신상과 귀고리를 미련 없이 야곱에게 주었다.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세겜에서 떠났다.

\"귀고리\"는 겉 사람을 단장하는 사치품이며 이것들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은 것은 겉 사람을 꾸미며 사치하고 향락 생활하던 것을 청산하고 신앙으로 돌아서는 행위이다.  그들이 벧엘로 올라간 것은 말씀대로 영의 길을 걸으며 속 사람을 단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三. 야곱이 벧엘로 가서 단을 쌓음(5-8)

 

. 35:5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성 사람들을 학살하고 노략하였으므로 그 부근의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들이 함께 추격해 오면 야곱의 집이 멸망할까봐 모두 두려워하였다(34:30).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면(四面) 고을들을 크게 두려워하게 하여 그들이 추격해 오지 못하게 하였다.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신 이유는 야곱과 그 집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벧엘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성도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올라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지켜 주시고, 모든 원수를 다 막아 주시고, 형통케 해 주신다.

 

. 35:6-7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 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무사히 벧엘에 올라갔다.  세겜에서 벧엘까지의 거리는 30km 정도인데,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으로 그곳에 가서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곳을 \"엘 벧엘\"이라고 불렀다.

엘 벧엘은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야곱이 전에 형 에서의 낮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곳에 나타나신 일과 그때 주신 약속의 말씀과 그때 체험한 것을 생각하며 그 신앙을 다시 찾으려는 소망과 결심에서 이렇게 부른 것이다.

 

. 35: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크게 슬퍼하며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고 하였다.  \"알론바굿\"은 \"곡함의 상수리\"라는 뜻이다.  그들이 그처럼 애곡한 것을 보면 그 여자가 야곱과 그 집을 위해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하며 도와 준 것 같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수고하며 도와 준 것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고전 15:58).

 

四. 하나님이 야곱에게 축복하심(9-15)

 

. 35:9-10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야곱이 벧엘에 돌아와 제단을 쌓으매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다시 주셨다.  야곱이 전에 이미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았으나(32:28), 세겜 생활하는 바람에 승리자의 생활을 못하고 다시 야곱의 생활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금번에 회개하고 다시 벧엘로 돌아왔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셨다.  이스라엘은 승리자라는 뜻이며 이제부터는 승리자의 인격을 계속 가지고 나아가라는  것이다.

 

. 35:11-12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벧엘에서 재차 나타나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많은 축복을 해주셨다.  그때 축복해 주신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그 약속하신 모든 복을 능력으로 이루어 가신다는 뜻이다.

그 약속하신 복은 ①생육하고 번성하게 해 준다.  ②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게 해 준다.  ③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게 해 준다.  ④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약속대로 야곱의 후손을 크게 창성케 해 주셨고 가나안 땅을 후손에게 주셨다.  그러나 궁극적인 약속은 야곱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자가 많아지고 그들에게 신령한 가나안 즉,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뜻이다.  성도가 회개하고, 벧엘로 올라가는 신앙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복을 주신다.

 

. 35:13-15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하나님이 벧엘에서 야곱에게 말씀하신 후 올라가셨다.  야곱이 그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전제물(奠祭物)을 부어 드렸다.  야곱이 20여년 전에 벧엘에서 돌 베개를 기둥으로 세우고 서원한 일이 있었으며(28:18-22) 다시 오래간만에 벧엘에 돌아왔고 벧엘 신앙을 다시 찾았으므로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 복된 말씀을 주셨다.  그러므로 야곱이 돌기둥을 다시 세운 것이다.  야곱이 돌기둥을 세운 목적은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과 받은 말씀과 감동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살려는 증거의 표로서 세운 것이었다.  돌이 견고하고 부동한 것처럼 그 신앙을 확고부동하게 파수하려는 것이었다.

전제물을 붓고 \"전제\"(奠祭)는 포도주를 붓는 제사인데 야곱이 돌기둥에 전제물로 포도주와 기름을 부었다.  야곱이 벧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포도주와 기름을 쏟아 붓듯이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전심 전력을 다하여 승리자의 생활을 하고자 하는 뜻으로 전제물을 부은 것이다.

우리도 벧엘의 신앙을 찾고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서 그 말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라고 하셨다.  하나님 안에서 그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이 벧엘(하나님의 집)에서 사는 생활이다.

 

五. 라헬의 죽음과 르우벤의 범죄(16-22)

 

. 35:16-18  그들이 벧엘에서 발행하여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 길을 격한 곳에서 라헬이 임산하여 심히 신고하더니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지금 그대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라헬이 두 번째 아들을 신고(辛苦) 끝에 낳아 이름을 \"베노니\"라고 부른 후에 죽었다.  \"베노니\"라는 뜻은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라헬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지은 것도 아니고 아들을 생각해서 지은 것도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인 야곱이 그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하였다.  \"베냐민\"이라는 뜻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성도의 가정에서 부인이 잘못했더라도 남편이 그 일을 바로 잡아야 한다(민 30:10-12 참조).  야곱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베냐민이 비록 막내아들이지만 오른손과 같이 귀중히 쓰일 것을 믿고 지은 것 같다.

 

. 35:19-20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라헬이 죽은 후에 베들레헴 길에 장사하고 그 묘비(墓碑)를 세웠다.  예수님 탄생시 헤롯왕이 베들레헴 아이들을 많이 죽였을 때 \"라헬이 위로 받기를 거절했다\"(마 2:18)고 한 것도 베들레헴에 있는 이 라헬의 무덤을 두고 시적(詩的) 표현으로 한 말이다.

 

. 35:21-22  이스라엘이 다시 발행하여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열더라 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 둘이라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이 그 서모(庶母) 빌하와 동침했다.  르우벤은 장자였으나 자기 서모와 통간한 죄 때문에 그 장자의 명분을 잃어버렸다.  49:4에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렵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고 하였다.  누구나 간음죄에 빠지면 능력이 없어지고 탁월치 못하게 된다.  르우벤의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갔다.  르우벤은 범죄하므로 자기에게 돌아올 신령한 권세와 영광과 능력을 다 빼앗기고 말았다.  죄의 결과는 이와 같이 모든 좋은 것을 다 빼앗기게 한다.

 

六. 야곱의 12아들의 이름(23-26)

 

. 35:23-26  레아의 소생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라헬의 소생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라헬의 여종 빌하의 소생은 단과 납달리요 레아의 여종 실바의 소생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야곱의 아들은 레아에게서 낳은 아들이 여섯이요, 라헬에서 낳은 아들이 둘이요, 라헬의 여종 빌하의 소생이 둘이요, 레아의 여종 실바의 소생이 둘로서, 모두 열 둘이었다.

 

七. 이삭이 죽어 장사됨(27-29)

 

. 35:27-29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 아비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거하던 헤브론이더라 이삭의 나이 일백 팔십 세라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야곱이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아버지 이삭이 거하는 기럇아르바(다른 이름은 헤브론)에 가서 아버지를 뵈었다.  야곱이 20여년만에 큰 성공을 해 가지고 돌아온 것을 볼 때에 이삭이 대단히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을 것이다.  그 후 이삭은 180세까지 살다가 기운이 다하여 세상을 떠났으며 야곱과 에서가 장사하였다.  형제가 서로 용서해 주고 화목하여 부모를 모시는 일과 세상을 떠난 후 다 모여서 장사를 지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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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36장

 

제 36 장  에 서

 

(대  지)

一. 에서의 아내들(1-5)

二. 에서가 세일산으로 이주함(6-8)

三. 에서의 자손들(9-14)

四. 에서의 자손의 족장들(15-19)

五. 세일산 원주민의 자손들과 족장들(20-30)

六. 에서의 후손인 에돔 왕들(31 -39)

七.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장들(40-43)

 

(본문 강해)

 

一. 에서의 아내들(1-5)

 

. 36:1  에서 곧 에돔의 대략이 이러하니라

본 장에서는 에서의 족속에 대한 전기가 기록되어 있다.  에서는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의 맏아들로서 야곱과는 쌍둥이 형제이다.  에서 족속의 전기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비하여 너무 간단하게 한 장만으로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고난이나 시험 당한 기록도 없고 하나님을 사모한 흔적도 없다.  또 하나님의 징계나 축복 등 하나님의 간섭이 없었으니 이것이 매우 서글픈 일이다.

에서는 세상면(육신적)으로 볼 때는 야곱보다 세력이 크고 재산도 더 많았다.  또 인품으로 볼 때에도 야곱보다 너그러워 자기를 속이고 도망간 동생을 용서해 주었으며, 이방 여자들과 결혼해서 부모의 근심이 된 것을 알고 부모에게 효도(27:41 참조)하기 위하여 이스마엘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에서는 인격면으로나 효도하는 면이나 인품이 야곱보다 더 나은 점이 많았다.

 

. 36:2-3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중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중 시브온의 딸 아나의 소생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취하고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취하였더니

에서의 아내는 모두 셋이었으니 첫째 아내는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둘째 아내는 히위족속 시브온의 딸 \"오홀리바마\"였다.  그런데 그들이 부모를 잘 공경치 않았기 때문에 에서는 부모공경을 잘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 \"바스맛\"을 취하여 세 번째 아내로 삼았다.

첫 번째 아내가 본문에는 \"아다\"인데 26:34에는 \"바스맛\"이라 했고, 두 번째 아내도 본문에는 \"오홀리바마\"인데 26:34에는 \"유딧\"이라고 하였다.  또 세 번째 아내는 본문에는 \"바스맛\"인데 28:9에 는 \"마할랏\"이라고 했다.  이렇게 이름이 다른 것은 본명을 개명(改名)한 것 같다.  즉, 이것은 그 당시 남편들이 결혼하면 아내 이름을 개명하는 풍습을 따라서 개명한 것 같다.

에서가 결혼할 때 믿음으로 하지 않고, 첫째와 둘째 아내를 우상 섬기는 이방여자 중에서 취했기 때문에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었다(26:35).  그러므로 에서가 다시 이스마엘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다.  그러나 비록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이삭처럼 약속의 아들이 아니며 신앙의 아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에서가 데려온 아내는 정통이 아닌 세속화 된 신앙계통에서 취해 온 것이다.  에서가 부모를 공경하기 위해서 이스마엘의 딸 \"바스맛\"을 데려온 것은 좋으나 그것은 믿음으로 아내를 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서 떠났다.

 

. 36:4-5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에서는 가나안 땅에서 다섯 아들을 낳았으니 첫째 아내 \"아다\"는 \"엘리바스\"를 낳았고, 둘째 아내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얄람\"과 \"고라\"를 낳았고, 셋째 아내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다.

 

二. 에서가 세일산으로 이주함(6-8)

 

. 36:6-8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의 우거한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인하여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산에 거하니라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녀들과 자기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모든 짐승과 모든 재물을 이끌고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다.  그 당시 에서의 식구들과 가축과 짐승이 많았고 또 야곱도 밧단아람에서 소, 나귀, 양 등 가축과 짐승들을 많이 이끌고 왔기 때문에 그들이 같이 우거하던 땅이 비좁게 되었다.  그리하여 에서는 세일 산으로 옮겨갔다.

세일산은 사해 남쪽에 있는 산이다.  세일산이 두 곳이 있는데 한곳은 예루살렘 서쪽이며 또 한 곳은 사해 남쪽이다.  본문에서는 후자를 가리킨다.  에서가 세 일산으로 간 것은 가나안 땅 보다도 넓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간 것이다.  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 육신이 살기 좋은 곳으로 갔다.  비록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살기가 어렵고 불편할지라도 그곳을 떠나면 하나님의 축복에서 떠나게 된다.  반면에 야곱은 가나안 땅이 비좁고 박토이므로 목축하기에 곤란한 점이 많았으나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므로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찾아가는 것은 에서의 길이고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길은 야곱의 길이 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그 말씀에 머물러야 한다.  일시적으로 살기 좋고 평안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은 에서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며 에서와 같은 결과가 된다.  에서는 본래부터 믿음을 지키지 않았다.  에서의 불신앙은

첫째,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물질을 더 중히 여기고 따라간 것이다.  어려운 일 당할 때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계통을 경히 여긴 것이고, 믿음을 쓰지 않은 것이다.

둘째, 믿음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에서가 이방여자들을 취했으므로 그들이 우상을 섬기며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세째,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 땅(약속의 땅)을 떠나 세일산으로 갔다.  이것은 장래의 축복을 버리고 세상을 따라가는 길이다.  이처럼 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 말씀을 붙들고 회개하는 것도 없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려는 신앙이 없었다.  그러므로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되고 말았다(27:39-40).

그러나 야곱은 육신적으로는 에서보다 고생을 많이 했다.  밧단아람에 가서 20년 동안 연단을 많이 받았고, 돌아올 때는 형 에서가 죽일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했고, 또 요셉이 죽은 줄 알고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베냐민을 내어놓을 때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려고 많은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이다.  성도가 연단을 많이 받는 것이 복이며 그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복이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형통하게 되는 것이 복이다.

 

三. 에서의 자손들(9-14)

 

. 36:9-14  세일산에 거한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대략이 이러하고 그 자손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아내 아다의 아들은 엘리바스요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아들은 르우엘이며 엘리바스의 아들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보와 가담과 그나스요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르우엘의 아들들은 나핫과 세라와 삼마와 미사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자손이며 시브온의 손녀 아나의 딸 에서의 아내 오홀리바마의 아들들은 이러하니 그가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예서에게 낳았더라

에서 족속이 세상적으로는 잘 번성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에서의 족속 중에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후손들이 많이 나왔다.  예를 들면 아말렉(12절)의 자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손해를 많이 주었다.  아말렉 족속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과 대적이 되었으며(삼상 15:2,3),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고 하였다(출 17:14).

에서 족속들이 이렇게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자들이 많이 나온 것은 에서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서가 우상 섬기는 이방 여자들과 결혼했고, 영적 생활을 떠나 육신과 세상중심으로 살았고 약속의 땅을 버리고 세일산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아버지의 신앙과 어머니가 이방 우상 섬기는 것을 자녀들이 보고 배워 하나님을 중심한 신앙 생활보다는 자기 중심으로 살았고, 또한 세상에서 잘 살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육신의 낙을 누리는 육신주의로 나갔다.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첫째로 하면 자녀들도 그것을 첫째로 하고 부모가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을 첫째로 하면 자녀들도 그것을 첫째로 한다.  성도들이 아무리 세상에서 방백이 되고 왕이 되었다고 해도 믿음이 없으면 저주받은 사람이고 그 사람의 가정은 적막하고 하나님의 위로가 없는 곳이 된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믿음으로 본을 보이고 믿음을 그 자손들에게 물려준다면 이것이 지극히 큰복이 된다.

시브온의 손녀 아나 본 장 2절에 아나는 시브온의 딸이라고 하였다.  계대 계승법과 양녀법에 의해서 손녀를 딸이라고 할 수 있다.

 

四. 에서의 자손의 족장들(15-19)

 

. 36:15-19  에서 자손 중 족장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의 자손에는 데만 족장, 오말 족장, 스보 족장, 그나스 족장과 고라 족장, 가담 족장, 아말렉 족장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엘리바스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요 이들은 아다의 자손이며 에서의 아들 르우엘의 자손에는 나핫 족장, 세라 족장, 삼마 족장, 미사 족장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르우엘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요 이들은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자손이며 에서의 아내 오홀리바마의 아들들은 여우스 족장, 얄람 족장, 고라 족장이니 이들은 아나의 딸이요 에서의 아내인 오홀리바마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라 에서 곧 에돔의 자손으로서 족장 된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에서 자손 중에서 나온 족장들이 기록되어 있다.  족장은 그 당시 부족의 우두머리로서 한 지역의 방백이다.  야곱의 자손들에 비해, 에서의 자손들이 육신적으로 일찍 번창했고 세상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사는 자손들이 없었다.

 

五. 세일산 원주민의 자손들과 족장들(20-30)

 

. 36:20-30  그 땅의 원거인 호리 족속 세일의 자손은 로단과 소발과 시브온과 아나와 디손과 에셀과 디산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세일의 자손 중 호리 족속으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요 로단의 자녀는 호리와 헤맘과 로단의 누이 딤나요 소발의 자녀는 알완과 마나핫과 에발과 스보와 오남이요 시브온의 자녀는 아야와 아나며 이 아나는 그 아비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에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하였고 아나의 자녀는 디손과 오홀리바마니 오홀리바마는 아나의 딸이며 디손의 자녀는 헴단과 에스반과 이드란과 그란이요 에셀의 자녀는 빌한과 사아완과 아간이요 디산의 자녀는 우스와 아란이니 호리 족속의 족장들은 곧 로단 족장, 소발 족장, 시브온 족장, 아나 족장, 디손 족장, 에셀 족장, 디산 족장이라 이들은 그 구역을 따라 세일 땅에 있는 호리 족속으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었더라

에서가 세일 산으로 이주하기 전에 그곳에서 먼저 살고 있던 세 일산 원주민은 호리 족속 세일의 자손들이었다.  에서 자손들이 이들과 통혼하였으므로 신앙적으로 타락하였다(25절).

아나는 그 아비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에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하였고 세일 자손 중 아나는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온천으로 인하여 생활이 윤택해지고 문화가 발달되고 세상에서 호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六. 에서의 후손인 에돔 왕들(31-39)

 

. 36:31-39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는 왕이 이러하니라 브올의 아들 벨라가 에돔의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의 이름은 딘하바며 벨라가 죽고 보스라 사람 세라의 아들 요밥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고 요밥이 죽고 데만 족속의 땅의 후삼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고 후삼이 죽고 브닷의 아들 곧 모압 들에서 미디안 족속을 친 하닷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 도성 이름은 아윗이며 하닷이 죽고 마스레가의 삼라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고 삼라가 죽고 유브라데 하숫가 르호봇의 사울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고 사울이 죽고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 그를 대신 하여 왕이 되고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 죽고 하달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 도성 이름은 바우며 그 처의 이름은 므헤다벨이니 마드렛의 딸이요 메사합의 손녀더라

에서 족속에서 왕이 많이 나왔다.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서 족속 중에서 먼저 왕들이 나왔다.  에서 족속은 이스라엘 족속보다 먼저 권세를 얻었고 세력도 더 컸다.  에서 족속은 이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많은 영광과 권세를 누렸다.  또 자손들이 번성했고, 방백과 왕들이 많이 나왔으며 짐승과 재산도 많았다.  에서 족속들이 비록 세상에서는 평안히 왕 노릇하면서 부귀와 큰 권세와 영광을 누렸으나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에서 떠났다.

그러나 야곱 족속은 많은 고난과 징계와 환난 가운데서 고생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떠나지 않고 믿음으로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축복해 주셨다.

성도들은 자신이 먼저 믿음으로 바로 살고 자손들에게도 믿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주고 기도해 주고, 언제나 믿음으로 살도록 지도하여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한다.  야곱이 늙어서 기운이 진하여 거동하지 못할 때에도 침상에서 겨우 일어나서 자녀들에게 축복을 해주고 세상을 떠났다(49:33).  야곱은 어떻게 하든지 자녀들에게 축복해 주려고 하였으며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살려는 신앙이 있었다.

그러나 에서에게는 그러한 신앙이 전혀 없었다.  하나님을 떠난 에서의 계통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바로 깨닫고 세상에서 잘 되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생활을 해야겠다.

 

七.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장들 (40-43)

 

. 36:40-43  에서에게서 나온 족장들의 이름은 그 종족과 거처와 이름대로 이러하니 딤나 족장, 알와 족장, 여뎃 족장 오홀리바마 족장, 엘라 족장, 비논 족장, 그나스 족장, 데만 족장, 밉살 족장, 막디엘 족장, 이람 족장이라 이들은 그 구역과 거처를 따른 에돔 족장들이며 에돔 족속의 조상은 에서더라

에서에게서 나온 족장들이 기록되었는데 에서 자손은 세상에서 잘되고 권세도 있었고 창성해 나갔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았다는 기록이나 하나님께 축복 받았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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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37장

 

제 37 장  팔 림

 

(대  지)

一. 형들이 요셉을 미워함(1-4)

二. 요셉이 꿈을 꿈(5-11)

三.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충성되이 함(12-17)

四. 요셉을 구덩이에 던짐(18-24)

五.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림(25-28)

六. 요셉의 형들이 부친을 속임(29-36)

 

(본문 강해)

 

一. 형들이 요셉을 미워함(1-4)

 

. 37: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형 에서는 가나안을 떠나 세일로 갔으나(36:6-8)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 땅 헤브론에 머물러 있었다(37:14, 35:27).  이것이 야곱의 복 받은 비결이다.

 

. 37:2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 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요셉이 형들의 과실을 그의 부친에게 고한 것은 잘한 일이다.  동생의 입장에서 형들이 바로하지 않을 때에 그들에게 직접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요셉은 그의 부친에게 말하여 부친께서 형들을 바로 세우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만일 형들의 잘못을 고하지 않았으면 아버지가 형들의 과실을 알지 못하여 바로 고쳐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요셉이 형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아버지께 고한 것이다.

 

. 37:3-4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하여 편애한 것은 잘못한 일이다.  그로 인하여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결국 요셉이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었다.  부모가 자녀를 편애하는 것은 다른 아들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모든 자녀를 공평하게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변화산이나 겟세마네동산 등에 데리고 가신 것은(마 17:1, 26:37) 편애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인격과 그릇을 보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좀더 연단시키시고 좀더 큰 일에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二. 요셉이 꿈을 꿈(5-11)

 

. 37: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까닭은 ①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께 고한 일 때문이다.  ② 아버지의 편애 때문이다.  ③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이었다.  그 꿈은 요셉에게 대한 하나님의 예정과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에 대한 요셉의 역할을 보여 주신 것이다.

 

. 37:6-7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을 둘러서서 절했다는 것은 장차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에게 절할 것을 가리킨다(42:6, 43:26).

 

. 37:8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의 형들이 요셉이 꾼 꿈의 뜻을 알고 \"네가 우리 왕이 되어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하고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다.  이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받은 핍박이다.

 

. 37:9-11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 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요셉이 또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 그것을 부형에게 말했다.  해와 달은 요셉의 부모를 뜻하고 열한 별은 요셉의 열 한 형제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요셉을 책망하면서도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요셉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형제들은 그 꿈의 뜻을 알고 더욱 요셉을 시기하여 미워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를 핍박한 것이요, 육신에 속한 형제들이 영에 속한 동생을 핍박한 것이요, 요셉이 하나님의 간섭과 계시 받은 것을 시기하여 하는 핍박이다.

육에 속한 이스마엘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난 이삭을 핍박한 것과 같고(21:9; 갈 4:29) 육신에 속한 에서가 영에 속한 야곱을 핍박한 것과 같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는 핍박을 받는다.  디모데후서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다.

 

三.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충성되이 함(12-17)

 

. 37:12-14  그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비의 양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매 이에 세겜으로 가니라

요셉의 형들이 세겜에서 양떼를 칠 때 이스라엘이 요셉을 보내어 그의 아들들의 안부를 알아보게 했다.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요셉은 부친의 명령을 즉시 순종하여 세겜으로 갔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약 80km나 되는 멀고 험하고 위태한 길이지만 17세 소년인 요셉이 단신(單身)으로 갔다.  그것은 요셉이 ① 하나님을 의뢰하고 ② 부모를 순종하여 ③ 형들에 대한 의무감으로 간 것이다.

 

. 37:15-17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나의 형들을 찾으오니 청컨대 그들의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요셉이 그 형들의 뒤를 따라가서 도단 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요셉이 세겜에 이르러서 형들을 아무리 찾아도 없으므로 들에서 방황할 때 마침 어떤 사람을 만나 형들이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는 말을 듣고 요셉이 도단까지 찾아가 형들을 만났다.  세겜에서 도단까지는 약 30km나 되는 먼길이었으나 요셉은 끝까지 자기 책임을 다 하려고 노력하였다.

 

四. 요셉을 구덩이에 던짐(18-24)

 

. 37:18-20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먼 광야길을 찾아오는 동생(요셉)을 형들이 죽이려고 계획하였다. 시기심은 이와 같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행7:9).  형들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도 모르고 아버지께 대한 효성도 잊고 형제에 대한 사랑도 내어버린 채 마음이 강퍅하여 동생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 원인은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시의 말씀(꿈) 때문이었다.  이것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시기하여 예수님을 죽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형들이 요셉에게 대하여 \"꿈꾸는 자\"라는 별명을 붙인 것을 보면 그 계시의 말씀(꿈)과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증명된다.

사실, 동생이 잘되면 형들에게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동생이 잘되면 형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동생이 잘되어 형들이 그 동생에게 머리 숙이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동생을 높여서 그에게 머리를 숙이게 하시면 머리를 숙이는 것이 복이다.  동생이 잘될 때에 형들이 협력해 나가면 서로가 잘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잘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낮아지라고 하면 낮아지고 동생을 잘 받들라고 하면 잘 받드는 것이 복 받는 길이다.  아론이 그 동생 모세의 팔을 잘 받들어 주었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출 17:12).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죽인 후 아버지를 속이려고 계획하였다.  한가지 죄를 은폐하려면 또 다른 죄를 낳게 되는 법이다.  죄는 서로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 37:21-22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더라

피를 흘리지 말라 맏형 르우벤이 동생들에게 요셉을 죽이지 말고 광야 구덩이에 던지자고 말했는데 이것은 나중에 요셉을 건져내어 부친에게 돌려보내려는 생각이었다.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결심했기 때문에(20절) 이러한 타협안을 낸 것이다.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하여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죄악을 범하였으나(35:22) 여기서는 선을 행하였다.  사람이 어떤 죄를 범했다고 해서 악한 사람으로 낙인 찍어버리는 것은 잘못이다.  그 사람도 회개하고 바로 서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 37:23-2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그들이 르우벤의 제안에 따라 요셉을 죽이지는 않고 채색옷을 벗기고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그 옷은 요셉이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것처럼 만들어 아버지께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五.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림(25-28)

 

. 37:25-27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본즉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요셉의 형제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다가 멀리 이스마엘 장사꾼이 길르앗에서 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유다가 요셉을 죽이지 말고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자고 제의했다.  유다도 요셉을 죽이지 않아야 되겠다는 좋은 생각을 가졌다.  차라리 다른 데 팔아 넘기는 것이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낫다.

 

. 37:28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미디안 사람 상고들 25절, 27절에는 \"이스마엘\"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고 했으니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스마엘 사람은 아브라함의 첩 하갈의 자손이요(16:15) 미디안 사람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자손인데(25:1-4) 그 두 족속이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마엘 사람들과 친근하며 이번에도 동행하였기 때문이다.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요셉은 은 20개에 종으로 팔려 애굽으로 가게 되었다.  그 당시 종 한 사람의 값이 은 30세겔이었다(출21:32).  그런데 요셉을 종 한 사람의 값도 못 받고 헐값에 팔았다.  42:21에 보면 요셉이 형들에게 괴로운 마음으로 애걸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형들은 듣지 않고 구덩이에서 끌어올려 종으로 팔았다.  참으로 그 형들은 잔인 무도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미워하기 때문에 마음이 어두워져서 아버지가 그 일로 인하여 고통 당할 것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도 무서운 줄 모르고 악행을 저질렀다.

 

六. 요셉의 형들이 부친을 속임(29-36)

 

. 37:29-30  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로 와서 가로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르우벤이 다른 데 갔다가 돌아와서 구덩이를 보니 요셉이 없어졌다.  르우벤은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먹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죽여 없앤 줄 알고 옷을 찢으며 심히 탄식했다.

 

. 37:31-32  그들이 요셉의 옷을 취하고 수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 채색옷을 보내어 그 아비에게로 가져다가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요셉의 입었던 채색옷을 찢고 거기에 염소의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 보이며 들에서 주웠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 37:33  아비가 그것을 알아보고 가로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야곱은 아들들에게 속아서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은 줄 알고 옷을 찢고 통곡하였다.  야곱이 이렇게 속은 것은 일찌기 자기 아버지를 속인 죄값이다.  선악간에 심은 대로 거두고 죄값은 반드시 받게 된다.

 

. 37:34-35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아버지가 극도로 슬퍼하며 애통하는 것을 보고 요셉의 형들도 마음이 괴로웠을 것이다.  그들은 부친이 이렇게 괴로워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때 부친의 마음을 아무리 위로해 주려고 해도 아들 (요셉)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했다.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야곱이 죽어서 요셉에게로 가겠다는 의미이다.  음부는 히브리 원어로 (스올)이라고 하는데 ① 죽음의 상태(욥 14:13,14; 17:13,14; 시 89:48, 호 13:14), ② 무덤(42:38; 44:29,31, 민 16:30-33), ③ 사후의 거처 (37:35; 사 14:9-10), ④ 의인들이 사후에 가는 곳(37:35), ⑤ 악인들이 벌받는 불 구렁텅이(욥 21:13; 시 9:17; 잠 5:5, 7:27, 9:18, 15:24, 23:14)를 의미한다.  본 절에는 무덤이나 의인들이 사후에 가는 곳을 가리킨 것이다.

 

. 37:36  미디안 사람이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더라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마엘 사람들과 같이 다니며 장사하였다(28절 해석 참조).  그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데리고 가서 바로의 신하인 보디발에게 팔았다.  그리하여 요셉이 그 집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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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38장

제 38 장  다 말

 

(대  지)

一. 유다가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음(1-5)

二. 유다의 자부 다말과 세 아들의 관계(6-11)

三. 다말이 유다로 인하여 잉태함(12-26)

四. 다말이 유다로 인하여 두 아들을 낳음(27-30)

 

(본문 강해)

 

一. 유다가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음(1-5)

 

. 38:1-2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가니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

그 후에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후를 말한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다.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 유다의 형제들이 요셉을 애굽에 판 후에 서로 다투다가 갈라지게 되었다.  공모하여 범죄한 자들은 얼마 안 가서 다투게 되고 서로 갈라지게 된다.  그리하여 유다는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내려가 같이 지내면서 그를 친구로 삼았던 것 같다.

아둘람은 베들레헴 서남쪽 25km지점에 있는 곳이다.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취해 결혼하였다.  성경에는 가나안 족속의 딸을 취하여 아내를 삼지 말라고 했는데(24:3), 유다가 이방인의 딸을 취해 아내로 삼은 것은 큰 잘못이었다.  이로 인하여 여러 가지 화가 미치게 되었다.

 

. 38:3-5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유다가 이방 여자인 아내 수아에게서 세 아들을 낳았다.

 

二. 유다의 자부 다말과 세 아들의 관계(6-11)

 

. 38: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가 큰아들의 아내를 취했는데 그 이름은 다말이다.  다말도 이방 여자로서 블레셋 땅 딤나 지방에 사는 여자이다.  유다가 자신도 이방 여자와 결혼하였고, 자기의 아들도 이방 여자와 결혼하게 하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신앙과 행동을 본받는다.

 

. 38: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 신지라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하나님께 징벌 받아 일찍 죽었다.  고린도전서 11:29-30에는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병든 자, 약한 자, 잠자는 자(죽은 자)가 많다고 하였다.

 

. 38: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유다의 장자 엘이 아들이 없이 죽었으므로 유다가 그 동생 오난으로 하여금 형수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 형의 계대를 잇게 하라고 했다.  율법에는 형이 아들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아내를 취해서 처음 낳은 아들을 형의 아들로 삼아 형의 계대를 잇게 하라고 했다(신 25:5-6; 마 22:24).

 

. 38:9-10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이 부친의 명령에 의해 과부 된 형수를 취하기는 했으나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땅에 설정(泄精)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그도 죽이셨다.

오난이 벌받아 죽은 이유는 ① 시기하여 형의 계대를 없이 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형제가 잘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을 바라는 죄악을 범했다.  ②조상적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형제의 계대계승법(繼代繼承法)을 이행하지 않으려는 불의한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에 부합(符合)한 좋은 전통을 세워나가야 복을 받는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불의한 일이다.  유다의 세 아들 중 둘이 죽고 이제는 하나만 남았다.  이것은 유다가 이방인과 사귀고 이방 여자와 결혼한 결과이다.

 

. 38:11  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 아비 집에 있으니라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이것은 유다가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는 표면적 이유이었다.  사실은 유다가 다말에게 계대적인 남편으로 셋째 아들 주기를 원치 않았다.  그 이유는 ① 다말과 결혼했던 첫 아들과 둘째 아들이 죽은 것은 그 여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두 아들이 죽은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고 며느리 때문이 아니었다.  유다는 자기 아들들이 하나님께 범죄한 것 때문에 죽은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마음속에 애매히 자부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것이 큰 잘못이다.  ② 셋째 아들 셀라도 죽을까봐 염려함이었다.  ③하나님의 뜻에 따른 계대 혼인법을 경히 여긴 까닭이다.

 

三. 다말이 유다로 인하여 잉태함(12-26)

 

. 38:12-14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 친구 이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혹이 다말에게 고하되 네 시부가 자기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

유다는 전에 두 아들을 잃고 또 자기의 아내까지 잃었다.  이방과 짝한 유다의 가정은 이와 같이 비참해졌다.  얼마 후 유다가 자기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로 갔다.

딤나는 예루살렘 남방 10km지점에 있는 이방 땅으로(수15:57) 다말의 고향이다.  이때 친정에 가 있던 다말은 시부가 딤나에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고 과부의 옷을 벗고 면박을 쓰고 에나임문에 앉아서 시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말이 이렇게 한 이유는 유다가 약속을 어기고 계대적 남편인 셀라가 장성했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 38:15-18  그가 얼굴을 가리웠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 자부인 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유다가 가로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약조물을 주겠느냐 유다가 가로되 무슨 약조물을 네게 주랴 그가 가로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더라

유다가 딤나 길 곁에 앉아 있는 다말이 과부의 옷을 벗고 얼굴에 면박을 썼으므로 창녀로 여겨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했다.  창녀와 동침하면 보수를 주는 법인 고로 유다가 염소 새끼를 주기로 약속했다.  다말은 그 약속을 이행할 약조물로서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 세 가지를 받았다.  \"도장\"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고, \"끈\"은 도장을 목에 걸고 다닐 때 사용했다고 한다.

\"지팡이\"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새긴다고 한다(꽃, 과일, 새, 짐승 등).  그러므로 그 조각물을 보면 쉽게 자기 것인 줄 알게 된다.

다말이 이와 같이 유다와 동침한 것은 음욕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다말이 그 때까지 과부로 수절하였고, 이 일 후에도 다른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고 수절했기 때문이다.

왜 다말이 젊은 남자들과 동침하지 않고 하필 늙은 시부와 동침했겠는가?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다말은 출가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혈통에서 그리스도가 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을 것이다.  다말은 그 말씀과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혈통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유다의 혈통을 받아서 계대를 이으려고 시부와 동침했을 것이다.  그 소원대로 그때 잉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베레스를 낳았다.  이 방법은 옳지 않으나 그리스도의 혈통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은 귀하다.  이것은 천륜과 인륜의 상충(相衝)에서 인륜을 초월하여 천륜을 이룬 것이다.  이 일은 마치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형과 부친께 옳지 않은 일을 한 것 과 같다.

 

. 38:19-21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면박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약조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그가 그곳 사람에게 물어 가로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유다가 얼마 후에 친구에게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창녀에게 주고 약조물로 주었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찾아오려고 했으나 그 친구가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그곳에는 창녀가 없다\"고 보고했다.

 

. 38:22-23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가로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고 그곳 사람도 이르기를 여기는 창녀가 없다 하더라 유다가 가로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내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당시에 창녀에게 가는 것은 큰 죄로는 여기지 않았으나 상당히 부끄러움을 당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유다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치 않기 위해 약조물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보다 그 범한 죄 자체가 하나님 앞에나 양심에 더 부끄러운 일이다.  누구나 범죄하면 부끄러움을 면할 수 없다.

 

. 38:24  석달쯤 후에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잉태하였느니라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석달쯤 후에 석달은 임신 확정 기간이다.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과부 된 자부가 잉태했으니 음행한 것이 분명하다.  구약의 율법에는 간음한 자는 돌로 쳐죽이거나 불사르라고 하였다(레 21:9; 신 22:23-24).  그 당시 가장(家長)은 그 가정의 생사권(生死權)을 가지고 있었다(31:32; 42:37 참조).

 

. 38:25-26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다말이 끌려나가면서 전에 시부 유다에게서 받아 둔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를 내어 보이면서 이 임자로 말미암아 내가 잉태하였다고 하였다.  유다가 그것을 알아보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고 하며 며느리 다말을 죽이지 않았다.  유다는 자기의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를 보고서야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였다.  즉, 셀라가 장성했음에도 계대적인 남편으로 다말에게 주지 않은 것과 또 자기가 자부 다말과 행음한 것을 회개하였다.  유다가 다말을 불사르라고 했으나 사실은 자기가 간음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다른 사람의 죄만 보지 말고 자기가 그런 죄인이 아닌가를 살펴보아야 하며, 또 마음으로 그런 죄를 짓지 않았는가 찾아서 회개해야 한다.

 

四. 다말이 유다로 인하여 두 아들을 낳음(27-30)

 

. 38:27-30  임산하여 보니 쌍태라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하고 홍사를 가져 그 손에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 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형제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그때 다말이 쌍동이를 해산하였는데 먼저 나온 아이를 \"베레스\"라 했고, 다음에 나온 아이를 \"세라\"라고 했다.

베레스는 \"터침\"이라는 뜻이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다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참여하게 되었다(마 1:3).

다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된 것은 큰 뜻이 있다.

① 아무리 도덕적으로 수치스러운 큰 죄를 범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마 9:12-13).

② 다말과 같은 이방인도 그리스도의 계통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준다.

③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이라도 자랑할 것이 없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④ 예수 그리스도의 계통에 속한 자들도 육체적으로는 아주 보잘 것이 없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그 진리와 구원받은 것만 존귀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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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39장

제 39 장  승 죄(勝 罪)

 

(대  지)

一. 종살이하는 요셉(1-6)

二. 요셉이 시험을 이김(7-l2)

三. 보디발의 처가 요셉을 무고(誣告)함(13-18)

四. 요셉의 옥중 생활 (獄中生活)(19-23)

 

 

(본문 강해)

 

一. 종살이하는 요셉(1-6)

 

. 39: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 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이스마엘 장사꾼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서 바로 왕의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았다.  요셉이 이와 같이 애굽의 권세 있는 시위 대장의 집으로 팔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하나님은 요셉과 이스라엘의 장래를 위하여 이와 같이 인도하셨다.

잠언 16:9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했다.  외부적으로 볼 때에는 사람들이 요셉을 사고 팔았으나 그 배후(背後)에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역사가 있었다(마 10:29 참조).

 

.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이것은 요셉의 형통케 된 비결 (秘訣)이다.  요셉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요셉을 형통한 길로 인도하셨다.  에녹이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한 것처럼 요셉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이란 무엇인가?  ① 하나님이 동행해 주는 것을 믿는 것이다.  ②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계속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③ 하나님과 영적 교통이 계속되는 것이다.  ④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것이다.  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요셉은 이러한 신앙을 가졌다.

 

. 39: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주인인 보디발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범사에 형통케 하시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주인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① 요셉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보고 알았을 것이다.  요셉이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② 그의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신앙과 비상한 새 힘으로 날마다 모든 난관을 돌파해 나아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고후 4:8-9 참 조).  ③ 환난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고후 6:9-10 참조).  ④ 그의 착한 행실을 보고 알았을 것이다.  ⑤ 요셉이 하는 일에 신기한 신적 능력 (神的能力)이 나타나서 형통하게 되는 것을 보고 알았을 것이다.

 

. 39:4-5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은 자기를 애굽으로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하도록 하신 분도 하나님이신 줄 믿고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형통하게 해 주셨다.

이것을 본 주인은 ①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임했다.  ② 자기의 모든 소유를 요셉의 뜻대로 주장하게 하였으며, 주인이 감독(監督)이나 감사(鑑査)도 하지 않았다.  참으로 전권을 다 맡긴 것이다.  이것은 주인이 하는 것보다 요셉이 더 잘하고 그 일이 더 잘되기 때문이다.  ③ 그 결과로 여호와께서 그 집에 복을 내리고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까지 복을 내렸다.

 

. 39: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준수(俊秀)의 히브리 원어 (에피)는 29:17의 \"곱고\"라는 말과 동일어이다.  요셉은 자기 모친을 닮아서 얼굴이 곱게 생겼고 아담(雅淡)하였다.  미안(美顔)으로 인하여 유혹이 들어왔다(7-10).  외모가 아름다우면 시험이 많다

 

二. 요셉이 시험을 이김(7-12)

 

. 39:7-8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요셉을 통하여 나타나므로 마귀가 요셉을 멸망시키기 위해 공작하면서 마귀가 보디발의 아내에게 들어가 음심(淫心)을 일으켜 요셉을 유혹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요셉에게 눈짓하고 동침하기를 요구했다.  그녀는 요셉이 젊고 준수하며 모든 일에 능하고 지혜 있게 잘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끌려 유혹하기를 계속하였다.  그때 요셉은 그 여자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이 여자의 유혹을 이긴 비결은 첫째, 신앙 양심을 쓴 것과 자기의 한계를 지킨 것이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말하기를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라고 한 것은 신앙 양심과 주인에 대한 종의 한계를 분명히 지킨 것이다.  신앙 양심을 지킬 때에 힘이 있고 생명이 있다.  디모데전서 1:19에 보면 양심을 버린 자는 믿음이 파선(破船)한 자라고 했다.  요셉은 또한 주인에 대한 종으로서 자기 한계를 잘 지켰다.

둘째, 죄악에 대해 두려워하였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한 것을 보면 죄관(罪觀)이 철저했고 간음죄를 지으면 죽을 줄로 안 것이다.  그 여자를 볼 때 자기를 죽이려고 오는 독사요 큰 뱀(사단의 사자)으로 보았을 것이다.

셋째,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앙이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말했다.  아무리 보는 사람이 없어도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이다(사 66:2; 3:8 참조).

넷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주인의 아내의 요구를 거절하면 미움을 받아 해(害)를 받게 될 줄 알면서 그 요구를 거절한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두려워한 신앙이다.  

 

. 39: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은 끈질긴 것이었다.  날마다 유혹하며 계속 동침하기를 청하였다.  그때마다 요셉은 그 여자의 청을 듣지 않았고 함께 있지도 않았다.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죄는 기회를 타서 들어오므로(롬 7:11) 요셉이 유혹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힘을 많이 썼다.  음란한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성도는 음란죄를 지을 환경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6:18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 했다.  다른 죄는 싸워 이기라고 했으나, 음행죄는 피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음행죄를 이기는 방법은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 39:11-12  그러할 때에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하루는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에 요셉과 자기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잡고 동침할 것을 강청하였다.  그때 요셉이 옷을 그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다.  옷을 버려두고 가면 오해 받을 수도 있고 그 여자가 뒤집어 씌울 수도 있으나, 자신이 오해를 받을지언정 하나님 앞에 득죄치 않고 자신의 순전함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도망친 것이다.  그 다음의 염려는 하나님께 맡긴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범죄하지 않기를 힘쓰는 자는 반드시 도와서 유익되는 길로 인도해 주신다.

 

三. 보디발의 처가 요셉을 무고(誣告)함(13-18)

 

. 39:13-15  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도다 그가 나를 겁간코자 내게로 들어오기로 내가 크게 소리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 옷을 내게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음욕적으로 사랑하다가 자기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므로 갑자기 180도 전환하여 극도로 미워하게 되었다.  이것도 역시 마귀의 역사이다.  그 여자가 이제는 요셉을 죽이려고 궤계를 꾸민 것이다.  요셉은 아무런 죄가 없으나 이제는 죄인으로 몰리게 되었다.

히브리 사람 이것은 요셉을 멸시하는 말이다.

그가 나를 겁간(劫姦)코자 내게로 들어오기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보디발의 아내가 자기는 결백하고 장한 일을 한 것처럼 온 집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자기 위신을 추락시킨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발설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 39:16-18  그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이 말로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코자 내게로 들어왔기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 옷을 내게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보디발의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자 집 사람들에게 말한 것처럼 요셉을 무고하였다.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 이것은 보디발의 아내가 자기 남편을 원망하는 말로써 \"어디서 이런 못된 종을 데려다가 이와 같이 나를 희롱(戱弄)하도록 하였느냐\"는 말이다.  그 여자는 자기 죄를 요셉에게 뒤집어씌우고, 또 남편에게 그 책임을 돌리며 원망하였다.  사람은 이와 같이 거짓으로 속이나 하나님은 거짓과 진실을 다 분간(分揀)하신다.

 

四. 요셉의 옥중 생활 (獄中生活)(19-23)

 

. 39:19-20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보디발이 자기 아내의 말을 듣고는 그대로 믿고 크게 노하여 요셉을 옥에 가두었다.  보디발이 요셉을 불러 사실을 알아보고 바로 판단했어야 될 것이나 자기 아내의 말만 듣고 무조건 요셉을 투옥시킨 것은 잘못된 처사이다.  잠언 18:17에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고 했다.  보디발이 죄 없는 요셉을 죄 있다고 정죄하여 감옥에 넣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큰 죄이다.

그러나 요셉은 변명하지 않고 감옥에 갇히었다.  이는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긴 것이요, 그 집에 더 큰 사고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온 것과 죄 없이 감옥에 갇힌 것이 인간적으로 볼 때는 매우 억울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그 가운데 역사하고 있었다.  성도들도 때로는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기도 하나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허락해서 된 일인 줄 믿고 거기에서 인내하는 믿음을 가져야겠다.

요셉이 애굽에 팔리어 가고, 종살이하고, 감옥 생활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또 사람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사람에 대해서 사랑과 선으로 나갔다.  역경이나 환난이 오히려 요셉을 잘 되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후에 요셉을 총리로 세워서 흉년 때에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내고 장차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이처럼 섭리하신 것이다.

 

. 39:21-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거기서도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므로 감옥에서도 형통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요셉은 초막이나 감옥이나 궁궐이나 그 어느 곳이라도 하늘 나라요, 또 무슨 일을 만나든지 범사에 형통하였다.  요셉이 옥중에서도 믿음을 잘 지키며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는 것을 전옥이 보고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게 되었다.

요셉의 믿음은 ①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②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로 은혜와 복을 주시려고 옥중에 오게 한 것으로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③ 옥중에서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시키는 것으로 믿고 충성되이 하였다.

이렇게 믿음 지키는 요셉의 광채를 보고 전옥은 요셉에게 옥중 제반사(諸般事)를 다 맡기면 잘 될 줄 알고 ① 요셉의 손에 죄수를 다 맡기고 제반 사무를 다 처리하게 하였다.  ② 전옥은 요셉에게 맡긴 것을 감독하거나 감사(監査)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는 것보다 더 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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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40장

제 40 장  옥중 생활

 

(대  지)

一. 바로의 두 관원장이 옥에 들어옴(1-4)

二. 요셉이 두 관원장의 꿈을 해몽함(5-19)

三. 요셉의 해몽대로 성취됨(20-23)

 

(본문 강해)

 

一. 바로의 두 관원장이 옥에 들어옴(1-4)

 

. 40:1-3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 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시위 대장의 집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의 갇힌 곳이라

그 후에 요셉이 감옥에 갇힌 후를 말한다.  그때에 애굽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두 사람을 바로가 요셉이 갇힌 감옥에 투옥시켰다.

 

. 40:4  시위 대장이 요셉으로 그들에게 수종하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지 수일이라

관원장들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 시위 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였다.  시위대장이 요셉을 옥중의 종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것을 보면 시위 대장이 요셉에 대한 노가 풀리고 동정심으로 돌아온 것 같다.  시위 대장이 자기 아내와 요셉과의 사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 결과 평소 요셉의 신앙 인격을 알고 자기 아내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은 것 같다.

 

二. 요셉이 두 관원장의 꿈을 해몽함(5-19)

 

. 40:5-7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두 관원장이 하룻밤에 꿈을 꾸었는데 각기 몽조(夢兆)가 다른 특별한 꿈이었다.  그들은 그 뜻을 몰라서 근심하고 있었다.  그 아침에 요셉이 수종들기 위해 들어가서 그들의 얼굴에 근심 빛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  요셉은 영이 깨어 있었고 그들을 사랑하며 평안하도록 해 드리려는 동정심이 있었으므로 그 눈이 예민하여 그들의 얼굴에 있는 근심 빛을 즉각 발견하였다.

이와 같이 요셉은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일을 최선을 다해 충성하였다.  아버지와 같이 있든지 형들에게 심부름 갈 때든지 종살이할 때든지 감옥에 갇혔든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대하여 충성을 다하며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신앙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꿈꾼 것을 듣고 해석해 주게 되어 후일에 그로 인하여 바로 앞에 서게 된 것이다.

 

. 40: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요셉에게 신령한 지혜와 영감이 있으므로 그 꿈을 자기가 해석할 수 있었으나 자기가 해석해 드리겠다고 하지 아니하고,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하면서 하나님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이 해 주어야 될 줄로 믿었고, 또 그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었다.

 

. 40:9-13  술 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 당신이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되리이다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  포도나무가 자라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은 것과 그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손에 드린 꿈을 꾼 것을 보면 술 맡은 관원장은 평소에 왕과 자기 직분에 대해서 충성했던 것 같다.  포도나무 세 가지는 사흘이므로 3일 후에 전직이 회복될 것을 요셉이 알게 해 주었다.

요셉이 늘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신령한 지혜를 주어서 이상과 꿈을 해석하게 하셨다.  다니엘도 믿음을 지킬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이상(異象)과 몽조(夢兆)를 깨달아 알게 하는 명철과 지혜를 주셨다(단 1:17).

 

. 40:14-15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요셉이 술 관원장에게 전직이 회복되면 바로에게 말하여 자기를 옥에서 건져 주기를 부탁했다.  그 때도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비행(非行)은 일체 언급하지 않고, 단지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라고만 했다.  이것은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구원만 바라보는 믿음이요, 또 선으로써 악을 이기는 믿음이다(롬 12:21).

 

. 40:16-19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길함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그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요셉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술 맡은 관원장의 해몽이 길(吉)함을 보고 떡 굽는 관원장이 요셉에게 자기의 꿈도 해몽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맨 윗 광주리에는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 물(食物)이 있었는데 그것을 새가 먹은 것을 보면 그 떡 맡은 관원장이 평소에 떡 광주리를 잘못 간수한 것이 나타났다.  떡 광주리를 덮지도 않았고 새가 오는 것을 쫓지도 않은 것은 바로에게와 자기 직분에 충성하지 못한 것이 증명된다.  새가 먹은 것은 바로의 떡을 도적맞혔든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도적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바로가 목을 베어 머리를 나무에 달게 될 꿈을 꾸게 되었고, 요셉은 그대로 해석해 주었다.

 

三. 요셉의 해몽대로 성취됨(20-23)

 

. 40:20-22  제 삼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 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 장으로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하니라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여 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그날부터 삼 일째 되는 날이 바로왕의 생일이므로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이 회복되었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여 달려서 사형을 받았다.  모든 것이 요셉의 해석대로 된 것이다.  이것은 보통 꿈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될 일을 알려 주신 것이었다.

 

.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이 선대(善待)한 것과 그가 부탁한 것을 다 잊어버렸다.  요셉이 옥중에서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모든 정성을 다해서 선대했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었던 것을 그는 다 잊어버렸다.  참으로 배은 망덕한 행위이다.  그후 요셉은 옥중에서 석방되기를 매일 기다렸으나 여러 날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한 달이 가고 육 개월이 가고 일 년이 가고 일 년 육 개월이 가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러나 요셉으로서는 옥중에 있는 것이 장래를 위해 유익한 것이었다.  만일 그때 술 맡은 관원장이 즉시 바로에게 고하여 석방되어서 고향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면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바로가 꿈꾸도록 까지 만 이 년 동안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가 꿈을 꾸고 그 해석을 하지 못해 모든 신하들이 번민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이 꿈 해석 잘하는 것을 바로에게 말하여 요셉이 불려 가게 되었고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고 애굽의 총리가 되고 칠 년 흉년 때에 애굽 나라와 이스라엘 족속을 구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요셉의 이 년간의 옥중 생활은 이 일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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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41장

제 41 장  바로의 꿈

 

(대  지)

一. 바로가 꿈을 꾸고 해몽하지 못함(1-8)

二. 바로가 요셉을 불러 꿈을 해몽케 함(9-32)

三. 요셉이 칠 년 흉년의 대책을 말함(33-36)

四. 바로가 요셉을 전국의 총리로 세움(37-45)

五. 요셉이 칠 년 풍년에 양식 저장과 두 아들 출생(46-52)

六. 칠 년 흉년과 양식 공급(53-57)

 

(본문 강해)

 

一. 바로가 꿈을 꾸고 해몽하지 못함(1-8)

 

. 41:1  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하숫가에 섰는데

만 이년 후 요셉이 감옥 생활을 한지 만 이년이 되었다.  술 맡은 관원장은 2년 동안이나 요셉의 부탁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40:15에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라고 한 것을 보면 요셉이 고향 땅을 늘 사모하고 있었는데 만일 술 맡은 관원장이 일찍 요셉을 기억하고 왕에게 부탁하여 건져 주었다면, 요셉이 히브리 땅으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으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수도 없었고, 요셉의 부모와 형제들도 흉년에 다 굶어 죽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요셉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2년 동안 감옥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 큰 유익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 불평하지 말고 그 가운데서 오래 참으며 자기를 만들어 나가면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 주신다.  하숫가 애굽의 나일강을 말한다.  \"나일강\"은 애굽의 상징이다.

 

. 41:2-8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하숫가에 섰더니 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아침에 그 마음이 번민하여 보내어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 꿈을 고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바로가 꿈에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있었으며 그 뒤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어버렸다.  또 다시 꿈을 꾸었는데,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왔고 그 후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이삭이 나오더니 그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켰다.

이것은 보통 꿈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장차 될 일을 알게 해 주신 특별 계시였다.  그러므로 바로는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하여 마음이 번민하여, 애굽의 모든 술객과 박사들을 불러모아 해몽하려고 했으나 해몽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특별 계시는 성령으로라야 해석할 수 있고, 사람으로는 해석 할 수 없다(고전 2:13-14 참조).

 

二. 바로가 요셉을 불러 꿈을 해몽케 함(9-32)

 

. 41:9-13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날 나의 허물을 추억하나이다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시위 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징조가 있는 꿈이라 그곳에 시위 대장의 종된 히브리 소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고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인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되어 나는 복직하고 그는 매여 달렸나이다

술 맡은 관원장이 그 때에야 요셉을 기억하고 요셉을 바로에게 소개했다.  그가 요셉에 대한 신의를 지키지 못했으나 2년이 지난 후에야 기억하고 뉘우치면서 이년 전에 자기가 경험한 일을 바로에게 고하고, 요셉이 꿈 해석을 잘하며 그 해석대로 다 응해졌다고 말했다.

 

. 41:14  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오니

이제는 요셉이 필요하였다.  요셉이 아니면 그 꿈을 해몽할 자가 없다.  그러므로 바로가 요셉을 옥중에서 불러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하신 때가 되면 옥문이 열리고 형통할 때가 온다.  요셉과 같이 모든 고난을 참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적 실력을 길러 나가는 자는 때가 되면 하나님이 불러내어 귀히 쓰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정하신 때가 이르기 전에는 성도가 가만히 묻혀서 잘 준비하여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시 105:19).

 

. 41: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바로가 요셉에게 즉시 꿈을 말하지 않고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하고 먼저 요셉의 신분과 실력을 확인하였다.

 

.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요셉은 자기가 꿈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하고 하나님이 하셔야 된다는 것을 바로에게 증거했다.  이것은 요셉이 실질적인 진리를 말한 것이요, 바로 왕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 것이다.  요셉의 이러한 태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셨음에 틀림없다.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았으며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믿었다.  성도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고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자기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흥하고 자기는 쇠하면서 자기는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용하여 자기를 나타내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한 것이므로 하나님이 내어버리신다.

 

. 41:17-2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하숫가에 서서 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하숫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같이 흉악한 것들은 애굽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파리하고 흉악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여 여전히 흉악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그 세약한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술객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보이는 자가 없느니라

요셉이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하는 말을 바로가 듣고 하나님이 잘 알게 해 주실 것을 믿고 요셉을 더욱 신임하였다.  그리하여 자기가 꾼 꿈을 요셉에게 자세히 말해 주었다.  바로가 관원들과 술객과 박사에게 꿈을 말할 때에 말하지 않았던 부분-약하고 심히 흉악하고, 그같이 흉악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19절),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여 여전히 흉악하더라(21절)-까지 말해준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해석해 줄 것을 전적으로 신임한 증거이다.

 

. 41:25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요셉은 그때 자기가 해석할 수 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하고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여 준 예언이라고 증거하였다.  요셉이 꿈을 해석하기 전에 그 출처와 목적을 말해 주었다.  출처와 목적을 바로 알지 못하면 그 내용이 아무리 좋고 그 뜻을 잘 안다고 해도 실천력이 미약하고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 41:26-32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이라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내가 바로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이 그 하실 일로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기근으로 멸망되리니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일곱 좋은 암소와 일곱 좋은 이삭은 7년 풍년이요,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소와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은 7년 흉년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7년 풍년이 든 후에 7년 흉년이 들것이며 나중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처음 풍년의 자취가 다 없어질 것이며, 또 꿈을 두 번 겹쳐 꾼 것은 하나님께서 속히 행하시려고 작정하셨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바로는 하나님이 하실 일은 틀림없이 성취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三. 요셉이 칠 년 흉년의 대책을 말함(33-36)

 

. 41:33-36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적치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

앞으로 다가올 흉년을 위하여 요셉의 제시한 대책은 명철하고 지혜 있는 관리를 세워서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고, 장차 올 풍년 때에 모든 곡물 중 오분의 일을 저장해 두었다가 그 다음에 다가올 일곱 해 흉년 때에 그 곡식을 공급하라고 했다.

오분의 일은 최대한으로 거둬들이라는 것이다.  십일조는 순 이익의 십분의 일 이지만 이 오분의 일은 총 소출의 오분의 일이므로 상당한 물량이다.  그러나 그 풍년은 너무 풍성한 때이므로 오분의 일을 저축해 두어도 먹을 양식이 부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말씀은 또한 말세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말세 대환난이 오기 전에, 풍성한 은혜의 때에 환난에 대한 준비를 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환난 때에 믿음을 지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자유와 평안과 풍성한 은혜의 때를 주어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고, 성경 말씀을 배울 수 있을 때에 영적 실력을 길러서 환난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환난 때에 믿음을 지킬 수 없다.  성도에게 배울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은혜의 문이 한번 닫히면 말씀을 배울 수도 없고 기도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다섯 처녀와 같이 미리 기름 준비를 잘해야 한다.

이 7년 풍년은 영적으로 7년 은혜 시대, 부흥 시대를 말하는 것이요, 7년 흉년은 7년 대환난 시대를 상징한다.  말세에 7년 대환난이 오기 전에 풍성한 은혜 시대가 있을 것이고, 그 은혜 시대가 지나가면 큰 환난 시대가 온다.  그 은혜 시대에 신앙 준비를 잘해야 7년 대환난 때에 멸망하지 않고 승리하게 될 것이다.  7수는 하나님의 내정수요 꼭 7년인지는 알 수 없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해 드린 다음에 자기의 사정이나 석방을 언급하지 않고 순전히 자기를 초월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거기에 대한 대책만을 말해 주었다.  이 때문에 바로와 그 신하들이 요셉의 말을 전적 신임하게 된 것이고, 그 해결책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四. 바로가 요셉을 전국의 총리로 세움(37-45)

 

. 41:37-40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요셉이 꿈 해석을 잘한 것과 앞으로 올 흉년에 대한 대책이 우수한 것을 듣고 바로 왕은 그 명철함과 지혜를 보고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세워 애굽 전국을 치리하게 했다.  내 집을 치리하라는 것은 애굽을 통치하라는 뜻이다.

 

. 41:41-44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인장 반지 당시 왕의 인(印)을 반지에 새겼다고 한다.  바로가 요셉에게 자기 도장을 맡겼다.  이 도장은 총리 대신이 왕의 법령에 인치기 위하여 보관한다(에 3:10; 8:2).

세마포 옷 세마포로 만든 옷으로 애굽의 고관들이 입는 옷이다.

금사슬 이것은 왕의 호의를 보여 주기 위하여 주는 것이며 특별히 존귀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버금수레 왕의 수레 다음 가는 수레이며, 요셉이 왕의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있음을 나타낸다.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을 백성에게 공포하기 위하여 그 수레에 태우고 시내를 행진하게 하였다.

엎드리라 모든 애굽 백성은 요셉을 존경하며 복종하라는 뜻이다.

나는 바로라 바로가 자기 왕권으로 요셉에게 전권을 맡겼다는 의미이다.

 

. 41: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바로가 요셉을 애굽 시민으로 삼기 위해 사브낫바네아로 개명해 주었다.  그 이름의 뜻은 \"비밀의 계시자\" 혹은 \"생명의 풍성함\"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이름을 지어 준 이유는 요셉이 모든 꿈의 비밀을 잘 해석하고, 또 장래에 올 풍년과 흉년의 비밀을 잘 안 것과 거기에 대한 가장 좋은 대책을 세워 애굽인의 생명을 살릴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가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였다.  \"온\"은 지방 이름인데, \"태양의 도시\"라는 뜻이다.

\"보디베라\"는 \"태양신이 준 사람\"이라는 뜻이다.  태양신의 제사장의 딸 아스낫도 태양신을 섬겼으나 그가 요셉과 결혼한 후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로 개종(改宗)했음이 분명하다. 요셉으로 인하여 바로까지 이스라엘 하나님을 찬양한 것을 보아(38,39절) 그가 이스라엘 하나님을 섬긴 것이 확실하다.

 

五. 요셉이 칠 년 풍년에 양식 저장과 두 아들 출생(46-52)

 

. 41: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세라 요셉이 가나안 땅에서 애굽에 팔려갈 때에 17세였으니(37장) 애굽에 가서 13년 동안 많은 고난을 받고 마침내 총리가 되었다.

 

. 41:47-49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축하되 각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중에 저장하매 저장한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요셉의 해몽대로 7년 풍년이 들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곡식을 저장했다.  이것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옮기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 41:50-52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을 낳되 곧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 낳은지라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요셉이 아들 둘을 낳았으며 맏아들 이름을 \"므낫세\"라고 하였다.  그 뜻은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요셉은 이제 과거의 모든 고통과 아버지의 집일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맡긴 사명에만 충성하였다.  성도가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과거의 고난을 다 잊어버리도록 은혜로 채워 주시고 상처를 싸매 주시고 위로해 주신다.

둘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하였다.  그 뜻은 \"창성함\"이라는 뜻이다.  창성케 해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뜻으로 요셉이 이러한 이름을 지은 것이다.  고난 중에서도 믿음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위로가 오고 창성하게 해 주시며 신령한 것을 풍성히 주신다.

 

六. 칠년 흉년과 양식 공급(53-57)

 

. 41:53-54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요셉의 말과 같이 7년 풍년이 지난 다음에 7년 흉년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은 항상 풍성하고 평안한 것이 아니다.  반드시 환난과 고난이 온다.  그 때에 미리 준비한 것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요셉이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아 흉년에 미리 대비했기 때문에, 많은 생명들이 흉년에도 살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과 앞으로 올 환난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 41:55-56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하라 하니라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 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흉년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바로에게 양식을 달라고 부르짖을 때에 바로는 그들을 요셉에게 보냈다.  이와 같이 아랫사람이 잘하면 윗사람이 일하기 쉽다.  그때에 요셉이 7년 풍년 동안 저장해 놓은 양식을 애굽 백성에게 쏟았다.

 

. 41: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애굽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기근이 심하므로 각국 백성들이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몰려왔다.  요셉으로 인하여 각국 백성들의 생명까지 죽음에서 건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예언을 바로 알고 예비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일을 할 수 있다.  요셉이 양식을 많이 준비해 놓았으므로 많은 사람을 살리게 되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것을 넉넉히 줄 때에 거기에 빠지지 않고, 세상의 것은 모두 뒤에다 두고 오직 구원 역사에만 전력을 다 기울여서 달음박질하는 신앙인이다.  잠언 24:27에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고 했다.  \'밖에서 다스리며\'라는 것은 밖으로 빛이 비추어 나가도록 바로 다스리라는 것이고, \'밭에서 예비하고\'한 것은 양식을 준비하라 는 뜻인데 양식을 잘 준비한 후에(살후 3:8-10) 집을 세우라는 것이다.

우리는 신령한 양식을 많이 준비하고 나눠주어 영적 기근에 허덕이는 모든 사람들을 살려 나가야겠다.  그 후에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나라를 잘 건설할 수 있다.  양식만 준비해 놓으면 모든 사람이 그 양식을 필요로 하여 사러올 날이 온다.  마태복음 10:26에 \"감추인 것은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라고 했다.  신령한 양식을 풍성히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양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몰려 올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이 양식을 구하러 몰려 올 때는 자기네만 먹겠다고 하지 말고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어 모든 생명을 살려 나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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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42장

제 42 장  회개 권유

 

(대  지)

一. 요셉의 형들이 애굽으로 곡식 사러감(1-4)

二. 형들이 요셉에게 절함(5-8)

三. 요셉의 형들이 정탐으로 몰림(9-17)

四. 형들의 뉘우침과 습관(18-23)

五. 시므온을 결박함(24-25)

六. 부친께 보고하고 돈 뭉치를 보고 놀람(26-35)

七. 야곱이 자식들로 인하여 탄식함(36-38)

 

(본문 강해)

 

一. 요셉의 형들이 애굽으로 곡식 사러 감(1-4)

 

. 42:1-2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애굽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까지 흉년으로 인한 기근이 극심했다.  그러므로 가나안에 있는 야곱의 가정도 기근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  야곱이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아들들에게 애굽에 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재촉하였다.  요셉의 형들은 전에 요셉을 애굽에 팔았으므로 애굽에 가기를 싫어했을 것이나, 애굽에 가지 않으면 온 가족이 기근으로 다 죽게 되겠으므로 부득불 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개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강권으로 애굽에 보내는 것이다.  이처럼 어려운 고난이 닥칠 때가 바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이다.

 

. 42:3-4  요셉의 형 십 인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그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이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렵다 함이었더라

야곱이 아들들을 애굽에 보내어 곡식을 사오게 할 때에 베냐민은 보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과거에 요셉을 잃어버린 슬픈 기억이 있었으므로 베냐민도 잃어버릴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다.  야곱에게 있어서는 베냐민이 우상이었다.

 

二. 형들이 요셉에게 절함(5-8)

 

. 42:5-7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모르는 체 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에 가서 총리 요셉 앞에 나아가 땅에 엎드려 절을 했다.  총리가 많은 국사(國事)를 제쳐두고 곡식을 직접 판 이유는 그때 흉년이 너무 심하여 생명에 관계되는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며, 또한 요셉의 형들이 곡식 사러 올 것을 미리 알고 그들을 만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의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요셉인 줄 전혀 알지 못하고, 단지 애굽의 총리로만 알고 절했다.  요셉을 애굽에 판지가 22년이나 되어 요셉이 장년이 되었고, 애굽 사람의 복장을 하고 애굽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므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요셉은 열 한 곡식단이 자기의 곡식단에 절했던 꿈을 생각하였다(37:5-11).  참으로 요셉의 꿈이 일호(一毫)도 틀림없이 이루어졌다.

요셉은 왜 총리가 되어 9년이 지나도록 열흘 정도면 갈 수 있는 고향집에 한번도 다녀오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요셉이 고향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 같다.

둘째, 형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동생이 애굽의 총리로 있는 줄 알면 형들이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교만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흉년이 들어 양식이 떨어지면 형들이 필연 양식을 사기 위해 올 것이니 그 때에 형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요셉이 고향에 가지 않았다.

셋째, 아브라함같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맡긴 일에만 충성하기 위함이었다(41:51).

 

. 42:8  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요셉이 애굽에 팔려와서 2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장년이 되었고 애굽의 복장을 하고 애굽 말을 하므로 형들은 요셉인 줄 알 수 없었다.  반면에 요셉은 자기 형들이 오기를 기다렸고 요셉의 형들은 외모가 별로 변함이 없으며 히브리말을 하므로 요셉이 바로 알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이 모른 체하고 그 형들에게 자기를 알리지 않은 것은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함이었다.

 

三. 요셉의 형들이 정탐으로 몰림(9-17)

 

. 42: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꾼 꿈을 생각하고 형들이 요셉에게 와서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볼 때에 전에 꾼 꿈이 생각났다는 것이다(37:5-9).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것은 요셉이 형들을 회개시킬 목적으로 한 말이다.  목적은 좋으나 거짓된 방편을 쓴 것은 잘못이다.  성도가 선한 목적을 위하여 거짓된 방편을 쓸 수 없다.  그때 형들을 정탐으로 몰지 않고 무조건 3일을 가두어 놓았어도 형들이 회개할 수 있고, 또는 3일 후에 시므온을 무조건 결박하고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 식량을 살 수 있고, 또 시므온도 석방하겠다\"고 했어도 목적대로 형들을 다 회개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 42:10-13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로서 독실한 자니 종들은 정탐이 아니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주의 종 우리들은 십 이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말째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그들은 자기 아버지와 12형제 이야기까지 자세히 말하면서 자기들의 진실함을 변명하였다.  이것은 자신들이 정탐꾼으로 몰렸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그 위경(危境)에서 빠져 나오려고 온갖 정성을 다 하여 전부 다 말한 것이다.

 

. 42:14-17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이니라 하고 그들을 다 함께 삼일을 가두었더라

요셉이 형들의 말을 듣고도 더욱더 강경한 태도로 그들을 취급하고 너희 중 한 사람을 보내서 말째 아우를 데리고 와야 진실한 것을 인정하겠다고 했다.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애굽 사람들의 어법(語法)으로써 애굽 왕 바로가 있는 한 그 맹세가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 함께 삼일을 가두었더라 요셉이 그 형제들을 3일 동안 옥에 가두었다.  요셉의 형들이 정탐으로 몰려 3일을 갇혀 있는 동안 많은 고통 가운데 지난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며 회개했을 것이다.  또 정탐으로 몰리면 생명이 위태하므로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을 것이다.  이렇게 3일 동안 가두어 놓은 것은 하나님께서 전에 지은 죄를 찾아서 회개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전혀 나갈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우리를 몰아 넣고 회개시키려고 하는 때가 때때로 있다.

 

四. 형들의 뉘우침과 습관(18-23)

 

. 42:18-20  삼일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너희가 독실한 자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리하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요셉이 형들을 옥에서 3일만에 나오게 하고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라고 하여 자기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임을 알려 주었다.  책임자인 총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데서 그들은 조금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요셉이 이 말을 한 것은 형들을 위로해 주고 유화 정책(柔和定策)을 쓰려는 것이었다.

그 유화 정책은 ① 형제 중 한 사람만 옥에 갇히게 하고, ② 다른 형제는 양식을 가지고 가서 집 사람들의 주림을 구하고, ③ 말째 아우를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모두 가두어 놓고 한 사람만 가서 아우를 데려오라고 했는데, 이젠 한 사람만 가두어 놓고 나머지는 집에 가서 말째 아우를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요셉이 이와 같이 방침을 바꾼 것은 위로도 하고 소망도 주면서 형들로 하여금 전에 자기를 팔아먹은 것을 생각하게 하여 회개시키려고 한 것이었다.

 

. 42:21-22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 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

그들은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하면서 죄를 찾아서 회개하게 되었다.  3일 동안 갇혀 있으면서 어느 정도 죄를 찾아서 회개했고 하나님의 권고가 임하여 석방되어 요셉의 앞에 설 때에 진정으로 회개하게 되었다.  즉 큰 징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고가 임할 때에 참 회개가 나온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 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고 회개한 것을 보면 형들이 구덩이에 빠쳐 죽이려 할 때에 요셉이 형들을 붙들고 애걸(哀乞)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때에 르우벤은 \"내가 너희더러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 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라고 하며 그때의 죄를 생각하며 뉘우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의 형들이 20년 전에 다른 데서 지은 죄를 오늘날 여기 와서 고난 당하는 중에 생각나게 하여 회개시키는 것이다.

 

. 42:23  피차간에 통변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그 말을 알아들은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서로 통역관을 세우고 말하므로 형들은 요셉이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줄 알았으나 요셉은 다 알아듣고 있었다.

 

五. 시므온을 결박함(24-25)

 

. 42: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취하여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고

요셉이 형들의 회개하는 말을 듣고 감정이 북받쳐서 그곳을 잠시 피하여 다른 곳에 가서 몰래 울고 왔다.  이는 형들을 완전히 돌이켜 좋은 형들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지금 반갑다고 형들에게 모든 것을 알리면 하나님의 의가 다 무너진다.  엄격하게 해야 할 때는 엄격하게 하고, 사랑해야 할 때에는 사랑해야 된다.  원칙을 세우지 못하고 동정심과 사랑만 가지고 일을 하면 그르치는 것이 많다.

시므온을 취하여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고 시므온은 성격이 난폭하여(49:5-7), 세겜에서 레위와 함께 살인한 적이 있다(34:25-26).  여기서 시므온을 결박하여 둔 것을 보면 전에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자고 할 때에도 시므온이 주장한 것 같다(37:18-20).

 

. 42:25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인의 돈은 그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요셉이 사람을 시켜 곡물을 형들에게 팔고는 그 돈을 곡식 자루 안에 도로 넣게 하고 길 양식도 주게 하여서 보냈다.  이것은 ① 요셉이 형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이요, ② 자기를 팔 때에 받은 돈을 생각나게 하려는 것 같다.

 

六. 부친께 보고하고 돈 뭉치를 보고 놀람(26-35)

 

. 42:26-28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곳을 떠났더니 한 사람이 객점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구에 있는지라 그가 그 형제에게 고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셨는고 하고

그들이 곡식을 산 후 나귀에 싣고 그곳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객점(客店)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어 보니 자루 속에 그들의 돈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혼이 나서 떨며 놀랬다.  왜냐하면 그 돈 때문에 애굽에 남아 있는 시므온이나 자기들에게 무슨 화가 미치지나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셨는고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함정과 올무에 빠뜨리려고 그렇게 하신 줄로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회개시켜 마침내 복 주시려고 한 것이다.  회개하고 믿는 일을 하는 자에게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은혜와 복이 되고, 회개치 않고 믿는 일을 하지 않는 자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염려와 걱정이 된다.

 

. 42:29-34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 아비 야곱에게 이르러 그 만난 일을 자세히 고하여 가로되 그 땅의 주 그 사람이 엄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나라 정탐자로 여기기로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독실한 자요 정탐이 아니니이다 우리는 한 아비의 아들 십 이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말째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그 땅의 주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독실한 자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중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탐이 아니요 독실한 자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그들이 가나안으로 돌아와 애굽에서 당한 모든 일을 아버지에게 고(告) 하면서 정탐으로 몰린 일과, 시므온이 볼모로 잡혀 있는 일과, 말째 아우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 시므온도 석방하고, 무역도 할 수 있다고 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사실을 자세히 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할 일을 바로 할 수가 없다.

 

. 42: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인의 돈 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 아비가 돈 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그들과 아버지가 자루 속의 돈 뭉치를 보고 두려워한 것은 그 돈 때문에 무슨 화가 미치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당하지 못하게 수입된 돈으로 인하여 고통 당하므로 전에 요셉을 팔아 정당치 못하게 돈을 얻었던 것이 생각나게 되어 회개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七. 야곱이 자식들로 인하여 탄식함(36-38)

 

. 42:36 그 아비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로 나의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야곱이 애굽에서 돌아온 아들들에게서 애굽에 갔다가 정탐으로 몰려 시므온이 애굽에 갇혀 있고, 또 다음에 갈 때에는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큰 걱정과 고통에 빠져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하며 크게 슬퍼하였다.  이것은 야곱이 전에 자기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자기 형을 속인 죄값으로 아들들에게 속아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야곱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이렇게 자식들에게 속게 만든 것이다.

 

. 42:37  르우벤이 아비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나의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 오리이다

나의 두 아들을 죽이소서 르우벤이 말을 바로 하지 못했다.  이 말은 가능성도 없는 무익한 말이다.  베냐민을 애굽에 데리고 갔다가 그를 데리고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에, 야곱이 어떻게 손자들을 죽일 수 있겠는가?  자기 아들은 아버지에게 손자가 아닌가?  손자들을 죽인다고 그 일이 해결되겠는가?

 

. 42:38  야곱이 가로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머리로 슬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야곱은 베냐민을 너무 사랑하여 우상이 되어 있었다.  이번에 그 우상을 내어놓으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러나 야곱은 내어놓을 수가 없다고 고집한다.

나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陰府)로 내려가게 음부는 죽음의 상태, 무덤, 사후의 세계 등을 의미한다.  본문의 음부는 사후의 세계(내세)를 가리킨다(37:35 해석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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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43장

제 43 장  베냐민

 

(대  지)

一.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양식을 살수 있음(1-10)

二. 이스라엘이 베냐민을 내어놓음(11-15)

三. 형제들을 요셉의 집에 인도하매 두려워함(16-24)

四. 열 한 형제가 요셉에게 엎드려 절하고 예물을 드림(25-26)

五. 요셉이 부친에 대하여 문안함(27-28)

六. 요셉이 형들을 대접함(29-34)

 

(본문 강해)

 

一.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양식을 살 수 있음(1-10)

 

. 43:1-2  땅에 기근이 심하고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비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라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므로 야곱의 가정은 지난 번 애굽에서 사온 양식을 다 먹고 다시 굶주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아들들에게 애굽에 다시 가서 양식을 사오라고 하였다.

 

. 43:3-7  유다가 아비에게 말하여 가로되 그 사람이 엄히 우리에게 경계하여 가로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않으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스라엘이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오히려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고하여 나를 해롭게 하였느냐 그들이 가로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힐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그저 살았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말을 조조(條條)이 그에게 대답한 것이라 그가 너희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아우와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양식을 사 올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때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내어놓는 것은 자기를 해롭게 하는 일이 라고 했다.  그러나 베냐민을 내어놓지 않으면 기근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었다.  이것은 그 형제들에게 동생 하나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요셉을 판 죄를 회개시키고, 야곱에게는 베냐민이 우상이 되어 있으므로 그 우상을 내어놓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 43:8-10  유다가 아비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것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다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이스라엘의 가정에 양식은 떨어지고, 그의 아들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양식을 살 수 있다고 하고, 아비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내어놓지 않겠다고 하므로 어려운 난관에 봉착(逢着)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베냐민을 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뜻이므로 그것을 거역하면 큰 해를 당하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져 나아가지 못한다.  그때 유다가 아버지께 베냐민의 몸을 담보하겠다고 말하면서 \"만일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갔다가 데리고 오지 못하면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내가 영원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유다가 동생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지면서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태도였다.

우리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먼저 자기가 책임을 지면서 상대방의 심정을 바로 알고, 또 문제에 대하여 주체(主體)와 핵심(核心)을 바로 알아야 한다.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문제에 있어서 주체는 아버지이고 핵심은 베냐민이다.  그것을 바로 알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지고 그것을 살려 나가면서 해결해 나아가야 한다.  일이 잘 안 될 때에 마음이 상하고 그 일에 대해 화풀이나 하려고 하면 일을 더욱 그르치고 만다.

비록 부친이 베냐민을 편애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유다는 부친의 입장을 세워 나아가면서 해결하려고 했고, 그 책임을 자기가 지고, 그 일이 잘못되면 영영 아버지 앞에 죄인이 되는 자리까지 낮아지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인정하면서, 일 처리를 바로 하였다.  이와 같이 유다는 말을 이치에 맞게 잘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의 자세도 바로 되었다.

 

二. 이스라엘이 베냐민을 내어놓음(11-15)

 

. 43:11  그들의 아비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을 삼을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비자와 파단행이니라

이스라엘이 아들들을 애굽에 보내 양식을 사오기로 결심하고 그들에게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예물로 가져가라고 했다.  \"유향(乳香)\"은 향품의 일종이다. \"꿀\"과 \"향품(香品)\"은 가나안에서 많이 나는 것이며 \"몰약(沒藥)\"은 유향의 일종으로 역시 향품이다.  \"비자(榧子)\"는 호도같은 적자색의 열매이다.  \"파단행(巴旦杏)\"은 살구의 일종이라고 한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다고 해도 곡식만 없을 뿐 이런 것들은 있었던 것 같다.

이스라엘이 아들들을 애굽에 보낼 때에 이러한 예물을 보낸 것은 애굽 총리의 마음을 사서 시므온과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며 양식을 사오는데 지장이 없게 하려 함이었다.  야곱은 과거에 밧단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에도 자기 형 에서에게 먼저 선물을 보내 효과를 본 경험이 있었다.

 

. 43:12  너희 손에 돈을 배나 가지고 너희 자루 아구에 도로 넣어 온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차착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이스라엘이 아들들에게 말하기를 전에 차착(差錯)이 있었을지 모르니 전에 자루 아구에 도로 넣어온 돈과 이번에 양식 살 돈을 가지고 가라고 일렀다.  이것은 정당치 못한 돈을 자기의 소유로 하지 않는 바른 정신이며 그 돈을 정당하게 곡식 값으로 지불하라는 뜻이다.

 

. 43:13-14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마침내 이스라엘이 막내아들 베냐민을 데리고 가도록 아들들에게 허락했다.  베냐민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며 진정 내어놓을 수 없는 우상적 존재였으나 그를 내어놓아야 신앙이 바로 되고 살 길이 열리고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 성도들도 베냐민과 같은 존재를 내어놓아야 신앙이 바로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앞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일이 잘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때에 이삭을 내어놓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흑암 속에 빠졌을 것이다.  성도 중에도 어떤 사람에게는 독자가 베냐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베냐민이 된 사람도 있다(눅 9:61).  그러므로 우리가 직장, 육신의 생명, 부모, 형제, 친척, 본토, 재물 등 무엇이나 베냐민과 같은 우상을 다 내어놓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야 한다.  이스라엘이 마침내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그 은혜에 모든 것을 맡기고 베냐민을 내어놓았다.  그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베냐민을 돌려보내 주시기를 이스라엘이 원하나 만일 베냐민을 잃게 되면 잃을 각오를 하고 내어놓았다.  이것은 야곱이 믿음을 바로 쓴 것이다.  참된 신앙은 \"살든지 죽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맡기는 것이다.  언제나 살려 달라고만 하는 것은 욕심이다.  잘될 때에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잘 안될 때에도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면 죽더라도 해야 하고 아무리 위태한 길이라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 주신다.  에스더도 \"죽으면 죽으리이다\"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왕 앞에 나아갔을 때에(에 4:16) 하나님이 좋은 길을 열어 주셨다.

 

. 43:15  그 사람들이 그 예물을 취하고 갑절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의 앞에 서니라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예물과 갑절 돈과 베냐민을 데리고 마침내 애굽에 내려가 요셉 앞에 섰다.

 

三. 형제들을 요셉의 집에 인도하매 두려워함(16-24)

 

. 43:16-17  요셉이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그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오정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그 사람이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요셉이 그 형들과 베냐민을 보고 청지기에게 명하여 그들을 집으로 인도하게 하고, 오찬을 준비하게 했다.

 

. 43:18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일 우리 자루에 넣여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 드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를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전에 자루에 넣여 있던 돈의 일로 자기들이 끌려드는 줄 알았다.  또 애굽 총리가 자기들을 억류하고 노예로 삼은 뒤 나귀를 빼앗으려 한다고 지나친 추측까지 하며 두려워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믿음을 쓰지 않은 증거이다.  성도가 두려워하거나 지나친 추측을 하여 의심하는 것은 믿음을 쓰지 않는 증거이다.  하나님 앞에 믿음을 쓰면 성도는 어떤 형편에서도 안심할 수 있다.  그들이 믿음을 쓰지 않았으므로 자기들을 대접하려고 하는 것을 도리어 죽이려고 하는 줄로 알고 두려워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와 주권적인 인도하심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43:19-22  그들이 요셉의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주여 우리가 전일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 가지고 객점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 본즉 각인의 돈이 본수대로 자루 아구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그들이 요셉의 청지기에게 나아가 전에 곡식 자루에 넣여 있던 돈을 도로 가져 왔다고 하면서 그 돈을 훔쳐 간 것이 아니며 누가 자루에 넣었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 43:23-24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 내고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요셉의 청지기가 그들의 말을 듣고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고 말하여 안심을 시켰다.  이 청지기가 하나님을 믿고 알았던 것 같다.  요셉을 여러 해 동안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본받은 것이다.  룻도 이방 사람이지만 나오미의 신앙을 보고 본받아 믿음으로 나오미를 따라갔다.  이와 같이 이 청지기도 요셉에게서 믿음을 본받아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너희의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그 돈을 자루에 넣어 주었다\"고 잘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시므온을 옥에서 끌어내어 그들에게로 인도하여 서로 만나게 해 주었다.  시므온을 만난 그들은 대단히 기뻐하였을 것이다.

 

四. 열 한 형제가 요셉에게 엎드려 절하고 예물을 드림(25-26)

 

. 43:25-26  그들이 여기서 먹겠다 함을 들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오정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그 집으로 들어가서 그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니

그들이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요셉이 집으로 오니 그들이 그 예물을 드리고 열 한 형제가 땅에 엎드려 절하였다.

 

五. 요셉이 부친에 대하여 문안함(27-28)

 

. 43:27-28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가로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지금까지 생존하셨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비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

요셉이 아버지가 생존해 있느냐 안녕하시냐고 안부를 물으니 그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하고 머리 숙여 절하였다.  이것은 아버지까지 다 포함해서 요셉에게 절한 것이 되었다.  요셉이 전에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절하는 꿈(37:9)을 꾼 대로 성취된 것이다.  그 꿈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

 

六. 요셉이 형들을 대접함(29-34)

 

. 43:29-31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가로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냐 그가 또 가로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요셉이 아우를 인하여 마음이 타는 듯하므로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요셉이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마음이 타는 듯하여 그 곳을 피하여 급히 안방에 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왔다.  만일 요셉이 그 형제들 앞에서 울어버리면 형제들을 회개시키기는 일이 다 틀어지고 바로 세우는 일이 낭패가 되었을 것이다.  요셉은 인정을 끊으면서 하나님의 의(義)를 이루어 나아갔다.  성도들도 인정을 억제하고 초월하여 하나님의 의만 세워 나가야 한다.

 

. 43:32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하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하고 배식하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하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요셉의 권세는 바로에게서 위임받은 권세이므로 요셉의 명령이면 애굽 사람들과 상을 따로 하지 않고 같이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죄가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모든 풍습을 존중하면서 일을 처리했다.  또 요셉의 자리를 따로 한 것은 요셉이 총리로서 위엄을 나타내며 그 형제들이 요셉을 발견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때 형들이 요셉인줄 알게 되면 회개할 기회가 없어지게 된다.

 

. 43:33  그들이 요셉의 앞에 앉되 그 장유의 차서대로 앉히운 바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장유의 차서대로 앉히운 바 되니 요셉이 청지기를 시켜서 그 열두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장유(長幼)의 차서(次序)대로 그 형제를 앉게 하고 열 한 째 자리는 비워 두었을 것 같다.  이것은 그 형제들로 하여금 요셉이 빠진 것을 생각나게 하고 그도 한 형제인 것을 인식시키며, 또 옛날에 잘못했던 것을 생각나게 하여 죄를 회개시키려는 의미에서 이렇게 했다고 볼 수 있다.

 

. 43:34  요셉이 자기 식물로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오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왜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오 배나 더 주었는가?  첫째, 아직도 그의 형제들이 시기하고 있는 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전에 아버지가 요셉을 더 사랑한다고 하여 요셉을 시기하여 팔아먹은 형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고 회개시키기 위함이었다.

둘째,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에 대하여 간섭하지 말고 자기 받은 것에 감사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 성도가 여기서 배워야 될 것은 다른 사람이 잘되고 못되는 것을 상관하지 말고 자기에게 주는 것만 감사하며 자족(自足)하는 생활을 배워 나가야 한다.  다른 형제를 아버지가 더 사랑하고 더 좋은 옷을 입히더라도 자기는 자기에게 준 것만으로 감사하며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요한복음 21:22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남의 일은 상관하지 말고 네 할 일만 하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20:10-15에 포도원에서 이른 아침부터 일한 일꾼이 나중 온 사람들과 같이 \"한 데나리온\" 받았다고 해서 불평했다.  그 때에 포도원 주인은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고 했다.  우리는 자기 할 일만 하고 남을 상관하거나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자기에게 주는 것에 대하여 족한 줄 알고 감사하며 맡은 일에만 충성하는 것이 믿음이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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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44장

제 44 장  은 잔

 

(대  지)

一. 베냐민이 은잔 도적으로 몰림(1-13)

二. 베냐민을 종으로 삼겠다고 함(14-17)

三. 유다가 대신 종이 되고 베냐민을 집으로 보내 달라고 간청함(18-34)

 

(본문 강해)

 

一. 베냐민이 은잔 도적으로 몰림(1-13)

 

. 44:1-3 요셉이 그 청지기에게 명하여 가로되 양식을 각인의 자루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인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소년의 자루 아구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개동시에 사람들과 그 나귀를 보내니라

요셉이 청지기를 시켜 각인의 자루에 양식을 채우고 각인의 돈도 그 자루에 넣고 자기의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 아구에 몰래 넣게 한 후 아침 일찍이 동틀 때에 그들을 떠나 보냈다.

 

. 44:4-5 그들이 성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미칠 때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악으로 선을 갚느냐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요셉이 형제들이 멀리 가기 전에 청지기를 뒤 따라 보내어 \"왜 은잔을 도적질해 가느냐 너희는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니 악하다\"고 책망하게 했다.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 쓰는 것 주인이 늘 아끼며 중요하게 사용하는 은잔이라는 뜻이다.  또 그 당시 애굽에서는 잔에 물을 부어 놓고 그 물의 상태를 살피거나, 그 물 위에 금, 은, 보석 조각을 떨어뜨리고 그것들이 물 속으로 내려가며 동요되는 상태를 관찰하여 점을 쳐서 가부를 판단했다고 한다.  요셉이 사실 점 친 것은 아니지만 애굽 풍속을 이용해서 이들을 시험한 것이다.

 

. 44:6-8 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 미쳐 그대로 말하니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우리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이런 일은 종들이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적질하리이까

청지기가 요셉이 지시한 대로 말하자 요셉의 형제들이 크게 놀라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전번에 자루에 있던 돈도 가나안 땅에서 도로 가져왔거늘 어찌 은, 금을 도적질하리이까\"하고 자기들의 결백을 변명했다.

 

. 44:9 종들 중 뉘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우리 주의 종이 되리이다

그들이 자기들에게는 절대로 은잔이 없는 줄 알고 그 잔이 발견되는 자는 죽이고 자기들은 종이 되겠다고 했다.  그들이 맹세하는 것처럼 말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잔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말까지는 좋으나 자기들 중 잔이 발견된 자는 죽이라는 말과 자기들은 종이 되겠다는 말은 너무 지나치게 장담한 말이다.  언제든지 성도는 감당할 수 없는 말이나 지나친 장담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기가 안 가졌어도 다른 사람이 가졌는지 알 수 없고 자기가 넣지 않았어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에도 장인인 라반이 따라와서 \"어찌 내 신(神:드라빔)을 도적질하였느냐\"고 했을 때(31:30), 야곱은 자기의 아내 라헬이 그 드라빔을 도적질해 온 줄 모르고 말하기를 \"외삼촌의 신(神)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31:32)라고 하였다.  그때 만일 라헬에게서 그것이 발견되었다면 어떻게 라헬을 죽이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너무 과신(過信)하는 말을 하면 함정에 빠지게 된다.

 

. 44:10-13 그가 가로되 그러면 너희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뉘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우리 종이 될 것이요 너희에게는 책망이 없으리라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각기 푸니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수탐하매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오니라

요셉의 청지기가 말하기를 잔이 발견된 자만 종이 되고 다른 사람들은 보내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각인의 자루를 풀어서 수색하니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었다.  그때에 그 형제들은 변명하지도 않고 베냐민을 책망하거나 베냐민만 떨어뜨려 놓고 가나안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옷을 찢으며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다시 성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동생 베냐민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게 될 것을 인하여 큰 고통에 빠졌다.

요셉은 이렇게 하여 전에 형들이 자기를 애굽에 종으로 판 죄를 생각나게 하여 회개시키려고 하였고, 또 형들로 하여금 죄 없는 사람이 이유 없이 벌받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맛보게 하여 전에 무죄한 자기에게 행한 것을 생각나게 하여 회개시키기 위함이었다.

 

二. 베냐민을 종으로 삼겠다고 함(14-17)

 

. 44:14-15 유다와 그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오히려 그곳에 있는지라 그 앞 땅에 엎드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 잘 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 열 한 형제가 다시 돌아와 요셉에게 엎드렸다.  그때에 요셉이 \"나 같은 사람이 점 잘 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하고 더욱 엄하게 말했다.  그들은 변명할 도리가 전연 없었다.  이러한 경우에는 하나님께 회개하며 부르짖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 44:16-17 유다가 가로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요셉이 가로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나의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유다는 자기들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변명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가 동생의 허물을 짊어지고 우리도 베냐민과 함께 종이 되겠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들이 회개한 증거가 잘 나타나 있다.  요셉을 팔 때에는 동생이 종살이하는 것에 무관심했고, 자기들의 책임에 대해 전연 생각지 않았으나, 이제는 동생이 종살이할 것을 안타까워하고, 공동 책임을 지고 다 같이 종이 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요셉은 \"잔이 발견된 자만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가라\"고 말했다.

요셉이 이처럼 말한 이유는 ① 동생 때문에 그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전에 요셉을 애굽에 판 것을 생각하게 하여 회개시키기 위함이다.  ②이 때 만일 그 형제들을 다 돌려보내면 앞으로 다시 오지 않게 되어 그들을 애굽으로 데려다가 양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셉은 어디까지나 형제들과 그 가족을 사랑하여 회개시켜서 자기에게로 데려다가 양육하기 위함이었다.

 

三. 유다가 대신 종이 되고 베냐민을 집으로 보내 달라고 간청함(18-34)

 

. 44:18-24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종으로 내주의 귀에 한 말씀을 고하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옵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이 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비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우리가 내 주께 고하되 우리에게 아비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 노년에 얻은 아들 소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 어미의 끼친 것은 그뿐이므로 그 아비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나로 그를 목도하게 하라 하시기로 우리가 내 주께 말씀하기를 그 아이는 아비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아비가 죽겠나이다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말째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 하리라 하시기로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고하였나이다

본 절에서부터 끝 절까지는 유다가 요셉에게 말한 내용이다.  유다가 겸손한 자세로 베냐민과 아버지에 대한 모든 사실을 차례대로 자세히 설명하며 베냐민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지고 종살이할 것과 그 대신 베냐민을 아버지께로 돌려보내 달라고 간곡히 말했다.  이것은 그들이 참으로 회개한 증거이다.  ① 그들이 아버지를 생각한 것이 회개한 증거이다.  전에 요셉을 팔 때에는 아버지가 근심하고 슬퍼할 것은 전연 생각지 않았었다.  ② 동생의 잘못을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것이 회개한 증거이다.  전에는 동생을 애굽에 팔아먹은 그들이었다.  ③ 동생이 받을 고난(종노릇하는 것)을 자기가 대신 당하겠다는 것이 회개한 증거이다.  전에는 동생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 44:25-31 그 후에 우리 아비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말째 아우가 함께 하면 내려가려니와 말째 아우가 우리와 함께 함이 아니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주의 종 우리 아비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간 고로 내가 말하기를 정녕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너희가 이도 내게서 취하여 가려한즉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요셉이 유다를 통해 자기 아버지 야곱이 자기가 짐승에게 찢겨 죽은 줄로 알고 계신 것과 형들이 베냐민을 애굽에 데려오려고 할 때 아버지가 \"만일 베냐민에 재해가 미치면 나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하리라\"하셨다는 말을 전해들을 때에 아버지를 직접 보는 것 같고 자기와 베냐민을 인하여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하며 고통 당한 것을 알게 되어 가슴이 터지는 듯하였을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유다와 그 형제들도 그때 일을 생각하며 진정으로 회개하였을 것이다.

음부(陰府)는 히브리 원어로 (스올)인데 무덤, 죽음의 상태, 사후에 가는 세계(내세), 고기 뱃속, 불붙은 구덩이 등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성도가 가는 내세를 가리킨다.

 

. 44:32-34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 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유다는 자기가 아버지에게 아우 베냐민을 담보했으니 만일 베냐민을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에게 죄인이 된다고 하며 아우 대신 자기가 종이 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만일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재해가 미칠 것이라고 하며 아버지께 대한 효성이 지극한 말을 했다.  전에 요셉을 애굽에 팔 때에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하고 애타하겠는가를 생각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아버지가 슬퍼할 것과 아버지에게 재해가 미칠 것을 대단히 염려하고 있다.  또 전에는 그들이 동생을 시기하여 팔았으나 지금은 동생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여 어떻게 하든지 그를 건져내려고 모두 애를 쓰고 있으니 그들이 참으로 회개한 증거가 나타났다.

유다가 말한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은

첫째, 진실과 겸손이다.  이제까지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을 꾸밈없이 진실하게 말했으며, 요셉에 대해서도 \"주\"라는 말을 본 장에서 20번이나 했으니 참으로 겸손한 태도이다.

둘째, 아버지에 대한 효성심이 나타났다.  아우 베냐민을 아버지께로 데려가지 않으면 아버지께 재해가 미칠까 두려워했다.

세째, 형제를 위한 희생이다.  아우 대신에 일생 종이 되겠다는 마음은 참으로 아름다운 믿음이다.

네째, 의를 세워나갔다.  아버지에 대한 의를 세웠다.  즉 유다는 동생을 담보하고 만일 데리고 오지 못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라고 말했다.

다섯째,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 하셨다\"(16절)고 하여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신 것으로 믿었다.

여섯째, 공동 책임을 졌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전가(責任轉嫁)하려 하지 않고 다 같이 종이 되려는 마음으로 연대 책임(連帶責任)을 졌다.  이것은 \"우리\"라는 사상을 가지고 \"우리\"의 세계에 완전히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회개하여 바로 선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을 해 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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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45장

제 45 장  초 청

 

(대  지)

一.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를 알게 함(1-4)

二. 요셉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형들을 위로함(5-8)

三. 요셉이 형들에게 부친과 가속(家屬)을 데려 오라고 함(9-15)

四. 바로가 요셉의 가속을 데려 오라고 허락함(16-20)

五. 선물과 수레와 양식을 주어 부친과 가속을 데려오게 함(21-24)

六. 야곱이 요셉의 초청을 받고 감사함(25-28)

 

(본문 강해)

 

一.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를 알게 함(1-4)

 

. 45:1-2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요셉이 방성 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이제는 형제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연단을 받아서 좋은 형제가 되어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할 만한 자격이 구비된 것을 요셉이 알고, 지금까지 억제하던 정을 참지 못하고 방성 대곡(放聲大哭)하며 자기를 형제들에게 알렸다.  그 소리가 애굽 사람들에게 들리고 바로의 궁중에까지 들렸다.

 

. 45: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나는 요셉이라 지금까지는 바로가 지어준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으로 행세를 했으나(41:45), 이제는 그 이름도 쓰지 않고, 총리라는 직명도 쓰지 않고, \"나는 요셉이라\"고 하며 가까이 오라고 하였다.  형들은 천만 뜻밖의 일이라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했다.

 

. 45: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그 형들이 너무 기적적인 사태에 정말 요셉인가 하고 경악(驚愕)할 때, 요셉이 말하기를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고 재차 말했다.  요셉이 조금 전까지는 통역관을 내세워 애굽 말로 말하였으나 지금은 히브리말로 말했다.  그러므로 틀림없는 요셉의 목소리요 자기들이 전에 애굽에 판 자라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                  

 

二. 요셉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형들을 위로함(5-8)

 

.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는 요셉의 말을 듣고 형들이 근심할 것 같으므로 근심하지 말고 한탄하지 말라고 요셉이 위로하면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다\"고 하였다.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요셉이 형들에게 알게 해 주었다.  요셉은 모든 것이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믿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다.

 

. 45:6-7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요셉은 형들에게 흉년이 2년 지났으나 아직도 흉년이 5년 동안 계속 될 것을 알려 주었다.  요셉에게는 곡식만 풍성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비밀)도 풍성하였다.  이 7년 흉년 중에서 이스라엘 족속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앞서 보내셨다고 믿고 형들에게도 그와 같이 말하고 위로해 주었다.

 

.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의 신앙은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이다.  요셉은 \"나를 애굽으로 보낸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을 3번이나 했고(5, 7, 8절), \"하나님께서\" 자기를 바로의 아비로 삼고 온 땅의 치리자 와 전국의 주로 세웠다고 하였다(8, 9절).  바로의 아비 는 바로의 고문관(顧問官)을 말한다.

형들이 시기하여 악한 생각으로 자기를 애굽에 팔았으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요셉은 흉년 때에 자기 집 족속을 구원하려고 하나님이 자기를 먼저 애굽에 보냈다는 것을 믿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사람들의 악행도 선을 이루는데 이용하신다.  로마서 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는 일은 하나도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 모든 일들이 다 성도들에게 유익되고 신앙에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다른 사람이 아무리 내게 손해를 주었어도 그 사람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면 안 된다.  비록 악한 사람 때문에 많은 손해를 보았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신령한 것과 회개와 바른 깨달음과 연단을 시켜 내세의 영광에 참여시키려고 주신 줄 믿고 믿음과 소망과 감사로 통과하여야 한다.  로마서8:18에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다.

둘째, 형들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사랑한 신앙이다.  형들이 자기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다가 팔아 넘겼지만 그 형들에게 죄를 돌리지 아니하고 용서해 주었다.  쌀자루에 돈을 도로 넣어 준 것이나, 시므온을 잡아 가둔 것이나,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이나,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고 도둑으로 몰아 곤경에 빠뜨린 것은 형제들이 자기를 판 데 대한 보복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형제들을 사랑함으로 회개시켜 바로 세워 앞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는데 합당한 자격을 만들기 위하여 연단시킨 것이다.  요셉은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악을 행한 것도 선하게 이해하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에게 손해 주는 사람을 섭섭하게 생각지 말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실 줄 믿고 용서해 주고 사랑하여야 한다.

세째, 자기를 팔아 넘긴 형제에게 복음(하나님의 섭리적 구원 역사)을 전해 주고 앞으로 계속 될 하나님의 비밀(7년 흉년)을 가르쳐 준 신앙이다.

 

三. 요셉이 형들에게 부친과 가속(家屬)을 데려 오라고 함(9-15)

 

. 45: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 말고 내려오사

속히 아버지께로 을라가서 하나님의 뜻인 줄 깨달은 다음에는 속히 실행하여야 한다.  지체하므로 기진(氣盡)하여 쓰러지는 자가 있게 되면 하나님께 책망을 면치 못한다.

 

. 45:10-11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요셉이 자기 아버지와 자기 모든 형제와 그 가족들을 다 애굽에 초청하고 아버지를 봉양하며 그 가족들을 돌보겠다고 하였다.  디모데전서 5:8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다.

요셉이 이처럼 애굽 총리의 직분을 이스라엘 구원 운동에 잘 이용하였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한 목적은 그 큰 권세와 많은 재물을 이스라엘 구원 운동에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권세와 능력과 건강과 재물과 환경을 주신 것은 구원 운동에 사용하라고 준 것임을 깨닫고 구원 운동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 45:12-13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당신들은 나의 애굽에서의 영화와 당신들의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고하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요셉이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모든 것과 애굽에서 누리는 나의 영화를 아버지께 다 말하라\"고 말했다.  눈으로 직접 보고 하는 말은 확실하고 힘이 있어 그 말을 믿게 된다. 요한 일서1:1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다.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기근으로 굶주리고 곤경을 당하는 아버지를 한시라도 빨리 구원하여 풍성한 모든 것으로 봉양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우리도 심령이 굶주리고 곤고를 당하는 형제들을 속히 건져내어 살려 나아가야 한다.

 

. 45:14-15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하니라

요셉은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고 또 형들과 목을 안고 울었다.  이것은 총리의 자리에서 형제의 자리로 내려온 것이다.  그제야 심회(心懷)가 풀어지고, 형제들이 요셉과 말했다.

 

四. 바로가 요셉의 가속을 데려오라고 허락함(16-20)

 

. 45:16-20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 신복이 기뻐하고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너희 아비와 너희 가속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 땅 아름다운 것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이제 명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비를 데려오라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하라

바로가 요셉의 형제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에게 후의를 베풀어주었다.  요셉으로 말미암아 애굽 나라가 주림만 면한 것이 아니라 국위(國威)가 세계적으로 떨치게 되었고, 여러 나라에 곡식을 공급해 주게 되었으므로 바로가 요셉의 부친과 그의 형제, 친척까지 다 애굽으로 데려와 애굽의 아름다운 것을 주고 기름진 것을 먹게 하라고 했다.  또 그 일을 위하여 애굽의 수레를 가져다가 요셉의 부친과 그 가속을 다 태워 오고 애굽 땅 중 좋은 땅을 그들에게 주라고 했다.  바로가 요셉의 부친과 그 가족에게 큰 혜택을 베풀어 준 것이 다.

 

五. 선물과 수레와 양식을 주어 부친과 가속을 데려오게 함(21-24)

 

. 45:21-22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대로 할 새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수레와 길 양식을 주고 각기 옷 한 벌씩 주었다.  요셉이 부친과 그 온 집 가족을 초청할 권세가 있었지만 바로에게 말을 해서 바로가 하라는 대로 하였다.  바로가 애굽의 주권자이므로 주권자의 허락을 맡아서 한 것은 잘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앞에서도 옳고 애굽의 모든 사람에게도 원망과 불평이 없도록 잘한 일이다.  좋은 일이라도 질서를 지켜서 해야 하고 순서대로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윗사람의 허락을 맡아서 원만하게 일이 진행되면 모든 사람이 다 수긍하고 부작용이 없게 된다.  요셉이 죽은 다음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로 왕이 청해온 사람들이라고 애굽 백성이 말하게 되었고 아무 불평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다른 형제들에게는 옷 한 벌씩을 주었으나 베냐민에게는 왜 다섯 벌을 주었겠는가?  베냐민은 요셉을 판 사건에서 아무 죄도 없기 때문이다.  다른 형제들은 과거에 요셉을 판 죄로 그 죄를 회개하는 과정에서 많은 괴로움을 당했고, 그 중에 시므온은 감옥에 갇히는 등 많은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베냐민은 요셉이 팔릴 때에 어린 아이였으므로 그 사건에 대해 알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베냐민이 형들을 따라 애굽에 왔다가 애매히 도둑으로 몰렸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아무 죄가 없는 베냐민이 많은 고생을 하고 큰 심적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다섯 배를 준 것 같다.

만일 베냐민을 더 사랑하여 준 것이라고 하면 이 다음에 애굽에 온 후에 주어도 될 것이다.  베냐민이 애매히 고난을 받았고,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았고, 이스라엘 구원 운동을 위해 고난을 받았으므로 그에 대한 하나님의 상급이다.  베드로전서 2:19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라고 했다.  우리가 애매히 고난을 받고 참거나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 고난을 받고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고 복 받는 것이다.

 

. 45:23 그가 또 이와 같이 그 아비에게 보내되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비에게 길에서 공궤할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

요셉은 아버지에게 수레와 수나귀 열 필과 암나귀 열 필에 많은 선물을 보냈다.  기근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 그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되었다.

 

. 45:24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노중(路中)에서 다투지 말라고 한 것은 그들이 돌아가는 길이 매우 기쁜 일이지만, 전에 요셉을 판 데 대하여 서로 책임 추궁을 하며 다툴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선히 해결해 주었으므로 서로 용서하고 재론하지 말라는 뜻이다.  과거의 허물은 다 용서해 주고, 이제부터는 형제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고,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을 위해 충성하라는 것이다.

 

六. 야곱이 요셉의 초청을 받고 감사함(25-28)

 

. 45:25-26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비 야곱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

그 형제들이 가나안에 가서 그 아버지에게 고하기를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야곱이 그들의 말을 믿지 않고 기색(氣塞)하였다.  요셉이 살았다는 것도 믿지 못하겠거늘 더구나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고 하니 어떻게 믿겠는가?  기색은 힘이 빠졌다는 뜻이다.  너무나 놀라 정신적 충격으로 기운이 막히는 모습이다.

 

. 45:27-28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 아비에게 고하매 그 아비 야곱이 요셉의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요셉의 형제들이 아버지에게 요셉이 부탁한 말을 듣고, 또 요셉이 보낸 애굽 수레를 보고 그제야 믿고 기운이 소생했다.  불확실한 말로 백 마디 말하는 것보다 한 가지라도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믿고 힘을 얻어 걸어가게 된다.  야곱은 이제 요셉이 살아 있는 것과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을 믿고,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있으니\"라고 하며 그 아들이 살아 있는 것을 가장 만족하게 여겼다.

아들이 총리가 된 것도, 애굽에서 보낸 선물과 호화찬란한 수레를 받는 것도 좋지만 그 아들이 살아 있는 것이 더욱 큰 것이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했어도 아버지는 그 아들이 다시 돌아온 것을 기뻐했다(눅 15:11-32).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야곱은 죽기 전에 요셉을 보기 원했다.  죽기 전에 해야 될 것을 다 하고 죽어야 한다.  일할 수 없는 때가 오고 마침내 죽을 때도 온다.  그러므로 죽기 전에 자기 사명과 해야 할 일을 다 해야 한다.  죽은 후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죽기 전에 하나님의 일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영원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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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46장

제 46 장  애굽에 들어감

 

(대  지)

一. 야곱이 출발 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1)

二. 야곱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음(2-4)

三. 야곱의 가속이 애굽으로 이민감 5-7)

四. 애굽에 들어간 야곱 자손들의 이름과 수(8-27)

五. 요셉이 야곱을 고센 땅에서 영접함(28-30)

六. 요셉이 형들에게 고센 땅에서 목축할 것을 권고함(31-34)

 

(본문 강해)

 

一. 야곱이 출발 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1)

 

. 46: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니

야곱이 모든 소유와 가족을 이끌고 애굽을 향해 출발하고 브엘세바에 이르러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브엘세바는 가나안 땅이며, 조부 아브라함과 아비 이삭이 제단을 쌓던 곳이다(21:33; 26:23-25).

 

二. 야곱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음(2-4)

 

. 46:2-4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야곱이 거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애굽으로 이민 가는데 대한 하나님의 정확한 뜻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기에게 허락하신 땅이므로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온 가족이 떠나는 일이므로 장차 후손들이 어떻게 되겠는가?  애굽에서 아들이 초청했다고 해서 물질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비록 지금은 아들이 총리대신이지만 그 후대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에 가면 번성하지 못하고 그 민족에게 다 삼키워지지 않겠는가?  또 우상 섬기는 애굽에 가서도 신앙을 잘 지킬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간절히 기도하였을 것이다.  육신이 잘되고 아들의 세상적 지위가 높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중요하다.

야곱은 하나님의 백성의 장래와 이스라엘의 창성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야곱아, 야곱아\"하고 이름을 친히 불러 주시고 ①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능력의 신이라는 뜻이며, \"네 아비의 하나님\"이란 말은 약속한 것을 능력으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다.

②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고 했다.  이것을 보면 야곱이 애굽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여 기도한 것이 분명하다.

③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④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

⑤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오게 하겠다.\"

⑥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고 하셨다.

에스겔 11:16에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고 하셨다.  야곱이 애굽에 가도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성소가 되어 주시고 함께 해주시고 큰 민족이 되게 해주시고 나중에는 약속대로 가나안 땅으로 다시 올라오게 해 주시겠다는 응답이다.

그러므로 야곱은 힘을 얻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담대히 애굽으로 갔다.  여호와의 말씀에 의해 걸어가는 성도는 담대하고 힘이 있다.  우리도 무슨 일을 할 때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해야 한다.  육신적으로 살기 좋은 곳으로 간다고 좋아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신앙 문제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곳에 가면 구원 운동에 유익이 되겠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서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고 그 뜻을 찾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대로 하지 않은 것은 성공 같으나 실패이다.

 

三. 야곱의 가속이 애굽으로 이민감(5-7)

 

. 46:5-7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발행할 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의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비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웠고 그 생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 자손들이 다 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야곱과 그 아들들과 그 손자들이 생축과 모든 재물을 이끌고 애굽으로 갔다.

 

四. 애굽에 들어간 야곱 자손들의 이름과 수(8-27)

 

.  46:8-25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이 이러하니 야곱과 그 아들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르우벤의 아들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요 시므온의 아들 곧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스할과 가나안 여인의 소생 사울이요 레위의 아들 곧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또 베레스의 아들 곧 헤스론과 하물이요 잇사갈의 아들 곧 돌라와 부와와 욥과 시므론이요 스불론의 아들 곧 세렛과 엘론과 얄르엘이니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라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삼십 삼 명이며 갓의 아들 곧 시뵨과 학기와 수니와 에스본과 에리와 아로디와 아렐리요 아셀의 아들 곧 임나와 이스와와 이스위와 브리아와 그들의 누이 세라며 또 브리아의 아들 곧 헤벨과 말기엘이니 이들은 라반이 그 딸 레아에게 준 실바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라 합 십 육 명이요 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 곧 요셉과 베냐민이요 애굽 땅에서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요셉에게 낳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요 베냐민의 아들 곧 벨라와 베겔과 아스벨과 게라와 나아만과 에히와 로스와 뭅빔과 훗빔  아릇이니 이들은 라헬이 야곱에게 낳은 자손이라 합 십 사명이요 단의 아들 후심이요 납달리의 아들 곧 야스엘과 구니와 예셀과 실렘이라 이들은 라반이 그 딸 라헬에게 준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이니 합이 칠 명이라

애굽에 들어간 야곱의 자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46:26-27 야곱과 함께 애굽에 이른 자는 야곱의 자부 외에 육십 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나온 자며 애굽에서 요셉에게 낳은 아들이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의 도합이 칠십 명이었더라

애굽에 이른 66명은 야곱의 몸에서 난 자들인데, 거기에 야곱과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을 합하면 70명이다.  이 70명은 야곱의 아내와 자부들의 수(數)는 제외된 숫자이다.  사도행전 7:14에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 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라고 했는데 70명은 약술(略述)이고, 75명은 상술(詳述)이다.  지금도 인수(人數)를 말할 때에 약술(略述)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五. 요셉이 야곱을 고센 땅에서 영접함(28-30)

 

. 46: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야곱이 애굽 땅에 도달하자 유다를 요셉에게 보내서 곧 바로 고센 땅으로 인도하게 했다.  이는 전에 요셉이 아버지가 오시면 고센 땅에 있게 하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요(45:10), 또 자기들이 오는 모습을 왕도(王都)에 있는 시민들에게 될 수 있는 대로 드러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드러나면 시기하는 자와 비방하는 자가 생길 염려가 있으므로 그 바람을 안 받기 위함이다.

 

. 46:29-30  요셉이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아비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 목을 어긋맞겨 안고 얼마 동안 울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

요셉은 고센 땅으로 가서 아버지를 영접하고 피차 목을 어긋맞겨 안고 얼마 동안 울었다.  야곱은 죽은 줄로만 여겼던 아들을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하였겠는가!  17세 때 이별했다고 하면(37장) 30세에 총리가 되어(41:46) 7년 풍년과 2년 흉년이 지났으니 약 22년간이 경과된 셈이다.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만났으니 죽어도 한이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극도의 기쁨과 만족을 나타낸 것이다.

 

六. 요셉이 형들에게 고센 땅에서 목축할 것을 권고함(31-34)

 

. 46:31-34  요셉이 그 형들과 아비의 권속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비의 권속이 내게로 왔는데 그들은 목자라 목축으로 업을 삼으므로 그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당신들은 고하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거하게 되리이다

고센 땅에 거하게 되리이다 요셉이 고센 땅에 이스라엘 권속을 거하게 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그 이유는

첫째,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인과 동화(同化)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섬기는 애굽인들과 같이 거하게 되면 우상 섬기는데 감염(感染)되기 쉽고, 그들의 풍속이 들어오게 될 염려가 있으므로 애굽인과 구별된 고센 땅에 거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둘째,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시기하거나 피해 의식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창성케 해주실 때에 그들과 마찰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애굽인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거처를 정한 것이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기를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묻거든 \"우리는 조상적부터 목축을 해 온 사람들이므로 애굽 사람을 떠나서 고센 땅에 거하게 해달라고 청원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근본적 이유는 먼 후대에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창성하는 것을 보고 시기하여 싸우지 않도록 하여 이스라엘을 보호하려는 데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는 언제나 불신 이방인들에게 외적 면과 물질적 면이 잘 나타나지 않게 하여 그들의 시기와 투쟁 목표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세째, 고센 땅은 목축하기 좋은 땅이기 때문이다.  그 땅이 넓고 목축에 적합한 땅이므로 얼마든지 창성해 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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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47장

제 47 장  신 정 책 (新政策)

 

(대  지)

一. 요셉이 아버지와 형들을 바로에게 소개함(1-10)

二. 요셉이 아버지와 형제들의 가속에게 거처와 식량을 줌(11-12)

三. 요셉의 새로운 정책(13-26)

四. 야곱이 사후에 가나안 땅에 매장해 달라고 함(27-31)

 

(본문 강해)

 

一. 요셉이 아버지와 형들을 바로에게 소개함(1-10)

 

. 47:1-2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가로되 나의 아비와 형들과 그 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형들 중 오인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요셉이 바로에게 자기 가족이 고센 땅에 온 것을 보고하고, 형 5인을 택하여 바로에게 가서 인사하게 했다.  형제가 다 가지 않고 왜 다섯 형제만 갔겠는가?  이는 너무 큰 세력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만약 70명을 다 이끌고 바로의 궁으로 간다면 바로와 애굽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경계심을 갖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 47: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우거하러 왔사오니 청컨대 종들로 고센 땅에 거하게 하소서

종들은 목자이온데 애굽인들은 목축을 천(賤)히 여기는 것을 알면서도 요셉의 형제들은 자기들이 목자라고 솔직히 말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자기들의 직업이 변변치 못한 직업임을 솔직히 알게 한 것이니 잘한 일이다.  만약 이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목자라는 말을 안 했더라면 앞길이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사정을 솔직히 말하고 그 목축에 적합한 교센 땅에 살게 해 달라고 바로에게 요청했다.  이것은 요셉이 미리 계획하고 가르쳐 준 대로 한 말이다.  요셉은 먼 장래에 자기 민족이 애굽인과 충돌되지 않고 번성하게 하기 위해 애굽인과 멀리 떨어지고 기름진 초장(草場)인 고센 땅을 택한 것이다.  적당한 기회에 상대방에게 자기의 사정을 솔직히 말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자기의 사정과 형편을 모르기 때문이다.

 

. 47:5-6  바로가 요셉에게 일러 가로되 네 아비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비와 형들로 거하게 하되 고센 땅에 그들로 거하게 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

바로가 요셉을 불러 그 형들의 요구대로 고센 땅을 그들에게 주어 거주케 하라고 허락했다.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바로 왕은 능한 자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이다.  전에 요셉에게 총리직을 맡긴 것도 요셉이 능하였기 때문이었다.  인정(人情)이나 파벌(派閥)로 사람을 등용(登用)하면 그 일은 실패한다.

 

. 47:7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야곱이 바로에게 인사하러 갔을 때에 먼저 축복해 주었고, 나올 때에도 축복해 주었다(10절).  야곱은 남을 축복해 주기를 좋아하는 신앙가였다.  바로가 하나님의 축복의 기관인 야곱에게 축복 받은 것은 큰 은혜였다.

 

. 47:8-10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야곱이 바로에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라고 답변한 것은 내세를 바라보며 산 신앙의 간증(干證)이다.  참된 성도들은 언제나 내세를 바라보고 살았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사는 생활은 나그네 생활이요 본향은 하늘에 있다(히 11:13-16).  하늘 나라를 자라보고 험악한 이 세상에서 잠시 잠깐 나그네 생활하는 동안 본 향에 갈 준비를 잘 해야겠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은 일생에 많은 환난을 받으면서 내세의 소망을 더욱 견고하게 가지고 준비를 한 것이다.

 

二. 요셉이 아버지와 형제들의 가속에게 거처와 식량을 줌(11-12)

 

. 47:11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 아비와 형들에게 거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를 그들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고

요셉은 바로 왕의 허락을 받아 부친과 형제들에게 목축하기에 가장 좋은 땅 라암세스를 기업으로 주었다.  이 일에 있어서도 바로 왕의 명령대로 질서를 지켜서 하였다.  이것이 자기와 후대에 큰 유익이 되었다.

라암세스는 애굽의 동북부에 있는데 고센 땅의 별명이다.  출애굽 직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왕의 명령에 의해서 그곳에 국고성을 지었고(출 1:11), 출애굽시에는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발하였다(출 12:37).

 

. 47:12  또 그 아비와 형들과 아비의 온 집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하였더라

요셉은 부친과 형들과 그 온 가족들에게 식물을 주고 잘 공삥했다.  요셉이 굶주려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 인도하고, 살 곳을 주고, 먹을 양식을 풍부하게 주어 잘 돌보며 섬겼다.  참으로 요셉은 장자의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그러므로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돌아갔다(대상 5:1-2).

 

三. 요셉의 새로운 정책(13-26)

 

. 47:13-14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식물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쇠약하니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몰수히 거두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오니

흉년이 여러 해 동안 계속되므로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해졌다.  요셉은 저장해 두었던 곡식을 계속 쏟아서 백성들을 살리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몰수히 거두어 바로의 궁으로 가져갔다.  이로 인하여 애굽은 부국(富國)이 되었고 바로의 왕권은 더욱 견고하게 되었다.  이러한 요셉의 공(功)을 바로 왕가에서 잊지 않고 후대(後代)에도 이스라엘 백성을 후대(厚待)하였다.

 

. 47:15-17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진한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가로되 돈이 진하였사오니 우리에게 식물을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요셉이 가로되 너희의 짐승을 내라 돈이 진하였은즉 내가 너희의 짐승과 바꾸어 주리라 그들이 그 짐승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떼와 소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식물을 주되 곧 그 모든 짐승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식물로 그들을 기르니라

애굽인들이 돈이 진(盡)하여 다 죽게 되었을 때에 짐승을 내어 양식을 바꿔 가라고 했다.  요셉이 그들의 짐승을 받고 한 해 동안 곡식을 주어 그들을 길렀으니 짐승 값보다 몇 배나 더 들었을 것이다.  그들의 가축이 얼마 안되었으므로 이 일에 .대해서도 그들이 참으로 감사하였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애굽의 모든 가축은 다 국가의 소유가 되었다.

 

. 47:18-20  그 해가 다하고 새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고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짐승 떼가 주께로 돌아 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전지뿐이라 우리가 어찌 우리의 전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대지를 식물로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고 전지도 황폐치 아니하리이다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 전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드리니 애굽 사람이 기근에 몰려서 각기 전지를 팜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그 해가 다 지나가고 새해가 돌아오니 백성들이 요셉에게 와서 \"이제는 몸과 전지(田地)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굶어 죽게 되었는데 죽으면 전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겠으니 그 대신에 식물과 종자를 주십시요\"라고 간청했다.  그때 요셉은 그들의 요구대로 곡식을 공급해 주고 그들의 전지와 몸을 다 사서 바로에게 돌려주었다.  이 일에도 그들의 요구대로 했으므로 그들은 너무 감사해서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라고 했다(25절).

 

. 47:21  요셉이 애굽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요셉이 애굽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모든 백성을 각 성읍들로 옮겼다.  그 이유는 첫째,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식량 공급을 원활(圓滑)하게 하기 위해서이고, 둘째, 이전 소유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백성들이 이전에 소유했던 자기 소유를 생각하고 미련을 가지므로 불평을 하거나 서로 싸울 염려가 있으므로 과거에 대한 미련을 다 끊어버리고 현재에 바로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누구나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현재에 맡은 일을 충성되이 하는 자가 성공한다.

요셉이 애굽에서 결혼하여 맏아들을 낳고,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고 하며 그 아들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다(41:51).

 

. 47:22  제사장의 전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의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 전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여기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아니라 애굽 신을 섬기는 제사장들이다.  그 사람들은 바로의 녹(錄)을 먹고살았으므로 전지를 팔지 않았다.  요셉은 그 제사장들의 토지는 억지로 사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나 애굽인들에게 후대에라도 불평이나 원망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토지 국유화 정책(土地國有化政策)은 어디까지나 자원(自願)에 의해서 한 것이다.  요셉이 그 돈이나 토지를 자기 것이나 자기 형제들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국가의 소유로 만들고 백성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한 것은 자기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탄(指彈)을 받지 않고 후대에까지 오랫동안 그 공덕이 빛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 47:23-26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날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전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추수의 오분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아이의 양식도 삼으라 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대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까지 이르니라

요셉은 애굽 백성들에게 전지를 적당히 분배해 주고 농사할 식량 두 종자도 주며 농사를 하게 하고 추수하여 5분의 1만을 국가에 바치고 5분의 4는 그들이 소유하게 하였다.  이것은 선을 베푼 것이다.  모든 전지를 다 국가에서 샀기 때문에 추수하여 절반을 바치고 절반을 자기들이 소유하게 하여도 가(可)한데, 5분의1만 바치라고 한 것은 상당한 후의(厚意)를 베풀어 준 것이다.

상심한 백성들에게 후의를 베풀어줌으로 그들이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라고 하였다.  그 덕이 후대 백성에게 돌아왔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둔다.

 

四. 야곱이 사후에 가나안 땅에 매장해 달라고 함(27-31)

 

. 47: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7년 흉년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야곱 족속은 고진 땅에 거하면서 생육하며 번성하였다.  하나님은 흉년에 이스라엘 백성을 기르시기 위하여 애굽 땅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허락하셨다.

 

. 47: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 칠 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 사십 칠세라

야곱이 애굽 땅에 가서 17년 동안을 더 살았고 147세를 향수하였다.  요셉이 죽은 줄 알았는데 그 요셉을 만나 함께 17년을 더 산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년에 보람있는 생활을 한 것이고, 또 요셉이 아버지를 모시고 17년 동안이나 잘 공경하고 섬긴 것도 큰 복이다.

 

. 47:29  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곱이 죽을 때가 되매 요셉을 불러서 \"내가 죽으면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 땅 선영(先塋)에 장사(葬事)하라\"고 부탁하고 맹세시켰다.  야곱이 이렇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은 애굽 땅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권고하시는 때가 되면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후손들에게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환도뼈는 요긴한 뼈인데, 중요한 맹세를 할 때에 이렇게 한 것이다.  야곱은 죽어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잊지 않고 소망하며 늘 승리하는 신앙 생활을 했다.  또 그는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과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손들에게 전해 주려고 항상 힘썼다.

 

. 47:31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야곱이 침상에 누워 있다가 겨우 일어나서 침상 머리를 붙들고 경배했다.  이것은 야곱의 위대한 신앙이다.  야곱은 누워서 거동하기 어려울 때에도 심령은 깨어 있었고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쉬지 않았다.  겉 사람은 후패했으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진 증거이다(고후4:16).  성도가 죽을 때에 이런 신앙을 가지고 죽는 것은 큰 은혜요 복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11:21에 야곱의 신앙을 말할 때에 이 사건을 들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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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48장

제 48 장  에브라임과 므낫세

 

(대  지)

一. 요셉이 부친 임종시에 찾아감(1-2)

二. 이스라엘이 축복해 준 근거(3-7)

三. 이스라엘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함(8-20)

四.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것을 예언함(21-22)

 

(본문 강해)

 

一. 요셉이 부친 임종시에 찾아감(1-2)

 

. 48:1  이 일 후에 흑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부친이 병들어 별세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요셉이 듣고 자기의 두 아들(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축복 받기 위해 부친에게 나아갔다.  요셉은 믿음으로 부친에게 축복권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서 세상의 권세와 부귀가 극치에 달했으나 그것을 의지하여 살려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더 귀중히 여겨 그 축복 받기를 원했다.

 

. 48:2  혹이 야곱에게 고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야곱이 임종할 때가 되어 침상에 누워 앓고 있다가 요셉이 왔다는 말을 듣고 요셉을 장자로 세우고 그의 두 아들에게 축복해 주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해 침상에서 일어났다.

 

二. 이스라엘이 축복해 준 근거(3-7)

 

. 48: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야곱이 자기의 축복권에 대한 근거를 세 가지로 말하였다.

① 전에 루스(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자기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신 것(3절).

② 생육하고 번성하여 많은 백성이 나게 해 주시겠다고 축복해 주신 것(4절상).

③ 가나안을 그의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4절하).

이상 세 가지 사실은 야곱이 그 자손에 대해 축복권이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야곱이 처음 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때 (28:10-15)가 77세쯤이었다고 하면 지금은 147세이니 약 70년이 지난 일이다.  그러나 야곱은 그때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현재에 받은 것처럼 붙들고 있었으며 늘 새롭게 그 말씀을 생명과 능력으로 삼고 있었다.  야곱은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과 내세에 대한 소망을 확신하고 그것을 늘 바라보고 즐거워하였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나이가 많아지고 몸이 노쇠해지면 기억이 희미해지고 잊어버리기가 쉬운데, 야곱은 나이가 많았어도 늘 심령이 깨어서 변치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붙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명백하게 증거하고, 그것을 근거로 축복해 주며 자기가 죽은 후에 가나안 땅에 장사(葬事)할 것을 부탁하였다.

 

. 48:5-6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 하에서 함께 하리라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내 것\"이라고 하였다.  야곱이 이미 열 두 아들이 있었음에도 둘밖에 없는 요셉의 아들을 왜 자기 아들로 삼겠다고 했는가?  야곱이 지금까지 아들들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는데 왜 이제 또 두 손자까지 아들로 삼으려고 했는가?  이는 요셉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기 위함이었다.  요셉은 아버지가 두 아들을 바치라고 할 때에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지만 믿음으로 그 두 아들을 바쳤다.  요셉이 아들들을 바친 것은 아버지가 하나님의 축복의 기관인 줄 알았고, 순종하면 반드시 복 받을 줄 믿었기 때문이다.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名義)하에서 함께 하리라 야곱이 하나님의 기업을 요셉에게는 두 배를 주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요셉을 장자로 세운다는 뜻이다.  신명기 21:17에 장자에게는 두 몫을 추라고 하였다.  요셉이 자기에게 있는 두 아들을 다 바쳐야 장자의 명분(두 몫)을 받을 수 있다.  희생하고 낮아지고 바치는 것은 높아지는 것이요 많이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 바치지 않으면 그대로 있으나 바치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더 많이 받게 된다.

요셉의 아들들이 총리의 아들로서 애굽인들이 천히 여기는 목자의 아들이 되면 외부적으로는 낮아지나 신앙적으로는 이스라엘의 12지파에 참여하여 영원한 하늘 나라의 기업을 받게 된다.  그들이 현재의 것은 희생했으나 신령한 것과 영원한 축복을 대대손손이 받게 된 것이다.  세상의 것을 내어놓고 하나님을 순종하면 신령한 복과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다 받게 된다.  요셉이 희생하여 두 아들을 내어놓았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두 배나 받았다(수 16:4).  이와 같이 하여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갔다(대상 5:1-2 참조).

왜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갔는가?

첫째, 하나님의 섭리이다.  요셉이 소년 시절에 꿈꾸었을 때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고, 또 열 한 곡식단이 요셉에게 절하였다(37:7-9).  이것은 여러 형제가 요셉에게 굴복하고 요셉을 통하여 연단과 구원을 받게 될 하나님의 예정이며 그 예정대로 이루어 진 것이다.

둘째, 요셉이 부모 형제들을 가장 많이 섬겼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이다(마 20:26).  형제 중에서 요셉만큼 부모와 형제들을 많이 섬긴 사람이 없다.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효도했고 아버지가 늙었을 때에도 애굽으로 모셔다가 잘 봉양하였다.  또 형제들의 비행을 아버지께 고한 것도 아버지를 통해 형제들의 잘못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형들을 도와 준 것이다.  또한 형들을 애굽에 데려다가 거주지와 식량을 풍성히 주어 그 가족들까지 잘 보양(保養)하였으니 요셉에게 장자의 자격이 충분히 있다.

세째,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요 마음이 너그러워서 형들을 용서해주고 잘 통솔하였다.  자기를 애굽으로 보낸 이는 형들이 아니요 하나님이라고 하며 자기가 형들과 형들의 자녀를 기르겠다고 했으니 이것이 장자의 자격이다.

네째, 요셉은 하나님의 축복 받기를 사모하였다.  부친이 별세하려고 할 때에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축복을 받았다.

다섯째, 하나님께 잘 바치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두 아들을 바치라고 할 때에 기쁨으로 바쳤으니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요셉에게 장자의 명분이 돌아갔다.

 

. 48:7  내게 관하여는 내가 이 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오히려 격한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야곱이 손자에게 축복해 주는 일을 하다가 난데없이 라헬이 죽어 장사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야곱이 갑자기 라헬을 가나안 땅에 장사했다는 말을 한 것은, ① 야곱이 믿음의 길을 걸어온 그 많은 고난 중에 라헬이 동참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가나안으로 갈 때 라헬이 야곱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많이 도와주다가 베들레헴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이 일을 요셉에게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를 위해 수고한 종을 후대의 성도가 알아주어야 한다.

② 라헬을 가나안에 장사 지낸 것은 라헬이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고 종자(種子)로서 가나안 땅에 심어 놓았다는 뜻이다.  이로써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라헬의 장사(葬事)에 대하여 야곱이 언급했다.

우리 성도의 나라는 하늘에 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생활은 잠깐 있다가 떠날 나그네 생활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의 본향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늘 사모하면서 나아가야겠다(히 11:13- 16).

 

三. 이스라엘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함(8-20)

 

. 48:8-9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가로되 이들은 누구냐 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다.  자기가 애굽에 온 것은 형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것으로 믿었고(45:5-8), 또 감옥에서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 할 때도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였으며(40:8), 바로 앞에서 꿈을 해석할 때도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했다(41:16).  이와 같이 요셉은 매사를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으로 처리하고 해결했다.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셔서 된 것으로 믿었다.

 

. 48:10-11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  

이스라엘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했으나 그 신앙은 늘 깨어 있어 심령의 눈이 점점 더 밝아졌다.  야곱이 그 손자들을 보고 감개 무량했다.

 

. 48:12-14  요셉이 아비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우수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좌수를 향하게 하고 좌수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우수를 향하게 하고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땅에 엎드려 절하고 요셉이 애굽의 총리 대신이지만 겸손히 아버지를 잘 공경한 것이요 아버지를 하나님의 축복의 기관으로 존경한 태도이다.  요셉이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붙잡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붙잡고 아비 이스라엘 앞으로 인도하여 므낫세는 아비의 오른 손을 향하게 하고 에브라임은 아비의 왼 손을 향하게 하였다.  이것은 므낫세가 맏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얹고 축복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비 이스라엘은 손을 어긋맞겨 오른손을 작은아들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맏아들 므낫세의 머리에는 왼손을 얹고 축복해 주었다.

 

. 48:15-16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야곱이 손자들을 축복할 때 삼위 일체의 하나님으로 축복했다.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계약해 주셨다는 뜻이다.  그 계약대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원한 것이다.  \"섬기던 하나님\"은 믿음으로 걸어가게 했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즉 성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을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길을 걸어가게 해 주신 것이다.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성자 하나님, 즉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 성령을 가리키며 성령은 모든 환난에서 성도들을 보호해 주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다(요 16:13).  히브리서 11:21에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라고 하였다.  야곱의 일생에 훌륭한 일을 많이 하였으나 그 중에 가장 훌륭하고 큰 일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지팡이(침상이라는 뜻이 있음)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한 일이다.

야곱이 손자들에게 축복해 준 내용은 ① 손자들로 자기 이름과 아버지 이삭과 조부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칭하게 해 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신앙의 계통이 계승되고 조상들에게 주었던 언약의 말씀과 구원 역사가 계승되게 해 달라는 뜻이다.  ② 손자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믿음의 아들이 창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 48:17-19  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 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이스라엘이 손을 어긋맞겨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얹고 축복하는 것을 요셉이 좋지 않게 여겨 아버지의 오른손을 들어서 장자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그것을 허락지 않고 차자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면서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이 더 크게 되겠다고 말했다.

야곱이 왜 장자 므낫세에게 오른손을 얹지 않고 차자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어 장자의 축복을 해 주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에브라임 족속을 므낫세 족속보다 큰 족속이 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의 예정을 알았을까?

첫째, 성령의 감동으로 알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평소 늘 깨어있는 신앙이었으므로 요셉과 그 두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이 돌아가게 될 줄 알았을 것이다.

둘째, 손자들의 신앙을 보아 알았을 것이다.  두 손자들과 대화를 통해서, 또 그들의 행동을 보아 므낫세보다는 에브라임이 모든 일에 있어서 신앙적이요 원만하고 큰그릇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깨어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말 몇 마디만 들어봐도 그 사람의 신앙 정도를 알 수 있고, 겸손하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태도를 보면 신앙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축복한 것을 배워야겠다.  이스라엘이 인정이나 세상 풍속을 따라 축복한 것이 아니고, 아들(요셉)의 뜻에 맞춘 것도 아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명하시는 그대로 기도해 주고 축복해 주었다.

 

. 48: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다른 사람들이 축복할 때에 축복 받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같이 되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한다는 의미이며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축복 받은 표본과 본보기가 된다는 뜻이다.

 

四.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것 예언함(21-22)

 

. 48:21-22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자손을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요 이스라엘의 소망이었다.  또한 요셉에게는 다른 형제들보다 한 몫을 더 준다고 하였다.  두 몫을 받는 것이 장자의 권리이다.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자기가 선한 싸움을 싸워서 얻은 소득을 신앙의 후계들에게 물려준다는 의미이다.  성령의 검을 가지고 마귀의 권세와 싸워 이겨야 믿음의 자손들에게 물려 줄 것이 있다.  자기가 이기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아무 것도 물려 줄 수가 없다.  교역자가 먼저 이겨야 교인들에게 나눠 줄 것이 있고 또 성도들이 이겨야 진리를 세워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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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49장

제 49 장  예 언

 

(대  지)

一. 야곱의  아들들에 대한 예언과 축복(1-18)

  1.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1-7)

  2. 유다에 대한 예언(8-l2)

  3. 스불론 잇사갈에 대한 예언(13-15)

  4. 여종의 아들 4인에 대한 예언(16-21)

  5. 라헬의 두 아들에 대한 예언(22-27)

  6. 각인의 분량대로 예언함(28)

二. 야곱이 사후에 가나안 땅에 장사해 줄 것을 명령함(29-33)

 

(본문 강해)

 

一. 야곱의 아들들에 대한 예언과 축복(1-28)

 

1.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1-7)

 

. 49: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야곱이 그 열 두 아들에게 후일에 당할 일을 예언하는 동시에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해 주었다(28절).

 

. 49: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야곱은 아들들을 부를 때에는 \"야곱의 아들들\"이라고 불렀으며, 말을 들으라고 할 때에는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했다.  이것은 육신의 혈통에 속한 아들들(야곱의 아들들)을 불러서 승리자(이스라엘)인 아버지 말을 들으라는 뜻이다.  이때 야곱의 나이 147세로서 오랜 세월 동안 야곱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가운데 많은 경험과 견고한 믿음에서 얻은 지혜와 지식이 풍부하고 영이 많이 자라났다.  그러므로 밝은 심령의 눈으로 아들들의 장래에 대해 밝히 보면서 성령의 감동을 입어 앞으로 되어질 일을 말해 주려는 것이다.  야곱은 선지자의 자격으로 말해 주려는 것이다.

 

. 49:3-4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맏아들 르우벤에 대한 예언이다.  르우벤은 맏아들이므로 위엄스런 빛이 있었고 권능이 탁월하였으며 장자로서의 지도권과 분 깃이 컸다.  그러나 르우벤은 아비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 큰 죄를 범했다(35:22).  그것은 물의 끓음과 같이 월권 행동(越權行動)을 한 것이다(49:4; 신 27:20).  그러므로 결국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갔고(대상 5:1-2); 장자의 지도자격은 유다에게로 갔다.  누구나 범죄하면 능력이 없어지고 빛을 잃어버리게 되며 하나님의 축복과 지배권을 상실하게 된다.

특별히 간음죄를 범치 않도록 항상 근신하며 삼가 조심 해야 한다.  이 죄에 빠지면 능력과 뛰어난 권세를 다 잃어버리고 자기 위치도 유지하지 못하며 비참하게 몰락된다.  혹 이 죄에 빠진 자는 다윗과 같이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 49: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시므온과 레위는 동복 형제(同腹兄弟)이다.  이들은 서로 생명이 결탁(結託)된 것처럼 늘 같이 행동했으므로 그들에 대한 장래 예언도 같이 하였다.  같은 고향, 동창생, 성격이 맞는 사람끼리만 어울리면 시므온과 레위같이 된다.  요셉은 여러 형제를 다 같이 사랑하고 다 같이 보호해 주고 다 같이 길렀다.  우리도 원만한 사람이 되려면 다 같이 행동하고 다 같이 사랑하고 다 같이 일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시므온과 레위는 칼을 쓰며 늘 모의(謀議)하여 남을 해하였다.  특히 그들은 세겜성 사람들을 살해했다(34:25-26).

 

. 49:6-7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악한 종류가 모여 불평하며 원망하며 모의하는데 참여하면 믿음과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손해를 주게 되므로 거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에베소서 4:26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했다.  분을 다음날까지 품고 나가면 사람을 미워하고 살인까지 하게된다.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소의 발목 힘줄을 끊으면 힘이 없어 달릴 수 없고 일할 수 없다. 뒷전에서 남에게 손해 주는 언사를 하고 뒤에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그 사람의 약점을 들추어 그가 하는 일에 힘을 못쓰게 만들어 놓는 일은 저주받을 일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나눠지게 하고 흩어 버리신다.

 

2. 유다에 대한 예언(8-12)

 

. 49:8-9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유다 지파에 대한 예언은,

① 승리할 것.  원수를 정복하고 아비의 아들들도 굴복하게 되겠으므로 찬송이 된다는 것이다.

② 왕이 날 것.  \"사자\"는 백수(百獸)의 왕이다.  모든 원수를 사자와 같은 힘으로 승리할 것을 말한다.  요한계시록 5:5에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원수 마귀와 죄와 사망을 이길 것을 예언한 것이다.

③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날 것(10절).

 

. 49: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홀(忽)은 왕이 가지고 행사하는 지휘봉 혹은 지팡이와 같은 것으로 왕권을 가리킨다.  치리자의 지팡이는 통치권을 의미한다.  유다 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나서 왕권을 가지고 통치하실 것을 뜻한다.  실로가 오시기까지 실로는 메시야를 상징한다.  이것도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의미한다.

 

. 49: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나귀를 포도나무에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짐승이므로 유다 지파가 화평한 지파요 포도와 우유가 넘쳐서 풍족할 것을 말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유다 지파에서 평화의 왕인 그리스도가 나셔서 은혜와 진리가 넘쳐 나을 것을 가리킨다.  포도즙은 은혜, 우유는 진리를 상징하고, 그 때는 나귀와 같은 사람까지 다 혜택을 입고 살게 될 것을 가리킨다.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모든 더러워진 죄에서 정결(淨潔)항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는 눈, 감격에 넘치는 눈이다.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진리를 많이 먹어서 정결케 되고 건강하고 윤택해졌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유다 지파는 그리스도의 지파인 동시에 은혜의 지파이다.  축복을 제일 많이 받은 지파이다.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로 돌아갔지만 장자의 지배권은 유다 지파에게로 돌아갔다.

 

3. 스불론과 잇사갈에 대한 예언(13-15)

 

. 49:13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

스불론 지파는 이 예언대로 후일에 북쪽 해변 땅과 항구 도시를 차지하였다.  그 항구를 통해서 이스라엘 족속이 무역을 하였다.  이 지파는 모든 지파에게 이용당하며 도와주는 일을 하며 창성하는 축복을 받았다.

 

. 49: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될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잇사갈에 대한 예언과 축복이다.  나귀는 양보다 힘이 세고 큰 짐승이다.  그러나 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처럼 잇사갈 지파는 강하고 자기 일을 용감히 잘하나 다른 지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다.  잇사갈 지파는 자기의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고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면서 자기 일을 견실(堅實)하게 잘 해 나가는 지파였다.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그가 건장한 나귀와 같이 강하지만 남의 수하에서 봉사하여야 한다.  자기의 건강한 힘으로 남을 잘 섬길 때 에 좋은 혜택이 오게 된다.  아마 잇사갈에게는 건강의 축복과 남을 섬기는 복을 준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신 그 힘으로 양을 보호하기 위해서 악한 짐승들을 막으며 봉사하라고 이 직분을 준 것 같다.  오늘날 건강한 체력과 경제적인 힘과 좋은 환경을 받은 성도는 그것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위치에서 잘 봉사해야 한다.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멍에 아래서 섬긴다는 뜻이다.  잇사갈은 하나님께서 메워준 멍에를 벗으려 하지 말고 그 멍에를 메고 잘 섬겨야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큰 축복이다.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은 요셉과 같이 그 멍에를 메고 맡은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는 법이다.

 

4. 여종의 아들 4인에 대한 예언(16-21)

 

. 49:16-17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단에 대한 예언이다.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① 단 지파에 이스라엘 심판권을 주었다.  후에 단 지파에서 삼손이 나와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심판하였다.  ② 악독하게 남을 해할 것을 예언했다.  이것은 또한 독사와 같이 악한 자라도 일시적으로 남을 통치하는 때가 있을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권세는 오래가지 못한다.

길의 뱀이요 첩경(捷徑)의 독사 단은 독사와 같이 남을 물고 상처를 주는 악독한 성격이 있었던 것 같다.  단은 12제자 가운데 가롯 유다와 같은 자로서 그 지파는 적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 지파에서 앞으로 적그리스도가 나올 것을 예언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7:5-8에 이스라엘의 인(印) 맞은 12지파 중에는 단 지파를 제외시키고 대신 므낫세 지파가 들어갔다.  이는 하늘나라의 구원받은 지파 가운데 적그리스도가 들어갈 수 없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단 지파도 하나님이 사용하고 은혜를 주셔서 이스라엘을 건설해 나가는데 한 지파가 되었고 그 가운데도 구원받은 사람이 많이 있으나 적그리스도의 그림자로서 상징적으로 뱀이요 독사라고 한 것이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단은 남을 물고 해하는 습성이 있었던 것 같다.  레위기 24:10-14에서 단 지파에 속한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를 저주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다.  사사기 18:30에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다고 하였다.  단 지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악한 것은 아니지만 야곱의 아들 단이 이러한 성격이 있었고 또 신앙 생활도 잘하지 않고 남의 약점을 물어뜯고 남을 실족케 하는 생활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선한 마음을 가지고 떨어지는 사람들 붙들어 주고 바로 세워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 49: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단 지파가 독사와 같이 말굽을 물어 탄 자를 떨어뜨리는 일을 하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의 구원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길에 독사가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고 기원하며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모든 독사를 다 정복하도록 해 주신다.  요한계시록 6:2에 흰말이 이기고 또 이긴다고 했다.  구원 역사는 이기고 또 이기며 계속해서 이기는 것이다.

 

. 49:19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갓은 핍박과 공격을 받겠으나 오히려 승리할 것을 예언했다.  갓에게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용기를 축복해 주었다.  성도가 핍박과 공격을 받을 때에 끝까지 참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힘써서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정복하게 해주신다.  요한계시록 3:7-13에 빌라델비아 교회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핍박을 많이 했으나 그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끝까지 참고 주의 말씀을 지켜나갔기 때문에 최후엔 그들이 와서 절했고 그로 인하여 빌라델비아의 교회는 문이 열리고 면류관을 받게 됐다.

 

. 49:20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아셀에게서는 기름진 식물의 축복을 해 주었다.  아셀 지파는 후에 비옥(肥沃)한 땅에 살았으며 그 땅에서는 곡식이 풍성했다.  신령한 양식이 풍성하여 다른 사람에게 신령한 식물을 나누어주는 성도와 교회와 교단은 복이 있다(마 24:45-46).

 

. 49: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납달리에게 자유와 아름다운 소리를 축복해 주었다.  시편18:33에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라고 하였고 하박국3:19에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했다.  사슴은 높은 곳에서 뛰어 다니며 좋은 꼴을 먹는 짐승이다.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아름다운 소리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관련 되어있다.  먼 장래에 그리스도가 와서 남달리 지방에서부터 천국 복음을 선포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마태복음4:12-16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복음을 전할 때 남달리 지방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천국 복음의 음성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소리이다.  또 아름다운 소리는 새 노래를 말한다.  요한계시록14:3에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 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고 했다.  새 노래는 성도의 영이 새롭게 되어서 부르는 노래이다.  이 새 노래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부를 수 있으며 이러한 성도는 복이 있다.

 

5. 라헬의 두 아들에 대한 예언(22-27)

 

. 49:22-26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야곱이 요셉에게 가장 많은 축복과 예언을 했다.  요셉이 많은 축복을 받은 것은 그가 믿음을 잘 지켰으며 부모나 형제에게 많이 봉사하고 그의 신앙 인격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요셉이 받은 축복은 다음과 같다.

① 창성해질 것(22절).  \"샘곁 무성한 가지\"처럼 그 뿌리를 샘 곁에 박았으므로 더위가 오나 가뭄이 오나 계속 창성하고(시 1:3, 렘 17:8), 그 가지가 담을 넘는 것처럼 번성하고 정복해 나갈 것이다.

② 핍박을 받으나 승리할 것(23, 24절 상).  요셉은 믿음을 지켜 경건하게 살기 때문에 많은 핍박을 받았고(딤후 3:12 참조), 요셉은 신앙으로 그것을 다 이겼으니 전능자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뢰하고 말씀을 지키는 자를 만능으로 도와주신다.

③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실 것.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는 하나님을 가리킨다(시 23:1).  이것은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돌아간 것을 가리킨다(대상 5:1-2).  요셉은 하나님을 반석으로 믿는 신앙의 선봉이요, 이스라엘의 장자로서 이스라엘 12지파를 애굽으로 인도했고 후에 요셉 지파에서 여호수아가 나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다(민 13;8, 16, 수 1:1-2).

④ 하늘의 복과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태)의 복을 주심(95절).  이것은 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되어진다. ㉠ 위로 하늘의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복을 가리킨다.  ㉡ 아래로 원천의 복은 요셉 지파가 거하는 땅에는 수원(水源)이 풍성하여 고갈(枯渴)함이 없는 생활을 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또한 영적으로 신령한 생수가 강같이 흘러 나을 것을 가리킨다(요4:14; 7:38). ㉢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은 자손이 번성할 것을 말한다.  이것은 또한 믿음의 자손이 많아지겠다는 의미가 있고,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 같이 많아지겠다는 축복의 계승이다.

⑤ 부여조와 형제 중에 뛰어나게 될 것.  내 부여조(附與祖)의 축복 \"부여조\"는 아버지와 그 위의 여러 조상, 즉 이삭이나 아브라함 등을 말한다.  그러므로 야곱이 요셉에게 해 주는 축복은 이삭과 아브라함의 축복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축복이 야곱을 통해서 요셉에게 임했기 때문이다.  열매가 나무 보다 낫다는 원리와 같다.  요셉에게 장자의 명분이 돌아왔기 때문에(대상 5:1-2) 부여조의 축복이 결실하게 될 것을 말한다.  그 축복은 영원한 산이 한없는 것처럼 무한할 것이다.  요셉에게 온 장자의 축복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成就)될 것이므로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축복은 무한히 창성하여 나가고 영원히 계속 될 것을 가리킨다.

그 형제 중 뛰어난 자는 요셉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요셉이 이스라엘 12형제 중에 뛰어난 일을 한 것과 \"나실인\"이 된 것을 가리켜 한 말이다.  신명기 33:16에 요셉을 \"구별한 자\"라고 했는데 이것은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몸을 바친 것을 가리킨다.

 

. 49: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야곱이 베냐민을 12아들 중에 제일 사랑했는데 \"물어뜯는 이리\"라고 한 것을 보면 자기 생각대로 예언한 것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시키시는 대로 예언한 것이 분명하다.  이는 베냐민이 호전적(好戰的)인 성격으로 남을 공격하기 잘하고 특히 원수를 쳐서 노략 물을 얻을 것을 가리킨다.  후에 베냐민 지파에서 사울왕, 에스더, 모르드게, 바울 등이 나왔다.

 

6. 각인의 분량대로 예언함(28)

 

. 49: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이스라엘이 열 두 아들에게 축복해 준 것은

① 성령의 인도하시는 대로 했다.

② 그들의 신앙 인격이 만들어지고 자라난 대로 했다.

③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했다.  곧 그들의 은사와 능력의 역사대로 했다.

하나님께서 12지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여 지금까지 인도하셨고, 또 앞으로도 반드시 인도해 줄 것이다.  이스라엘은 아들들의 행실이나 모든 것을 볼 때에 자기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 많았으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소망을 가졌다.

특별히 18절에 단 지파의 말을 하고서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고 말하였다.  단 지파가 이렇게 독사와 같이 물고 말의 발꿈치를 물어서 사람을 뒤로 떨어지게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계시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을 갖는 이스라엘을 본받아야 되겠다.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 12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시고 또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게 하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구원받도록 하신다.

 

二. 야곱이 사후에 가나안 땅에 장사해 줄 것을 명령함 (29-33)

 

. 49:29-32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 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야곱이 죽으면 가나안 땅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고 다시 유언했다(47:29-30).  그 이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믿는 까닭이요, 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소망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 49: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야곱이 죽을 때까지 깨어있는 신앙으로 열 두 아들에게 축복하고 가나안 땅에 대한 견고한 소망을 가지고 후손들에게 가나안에 돌아 갈 소망을 가지도록 교훈하고 세상을 떠났다.  야곱의 최후는 참으로 장엄(莊嚴)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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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50장

제 50 장  유 언

 

(대  지)

一. 야곱이 죽으매 가나안 땅에 장사할 허락을 바로에게 맡음(1-6)

二. 야곱을 가나안 땅에 장사함(7-14)

三. 요셉의 형제들의 불 신앙과 두려워함(15-18)

四. 요셉이 형제들에게 사죄와 시은(施恩)약속(19-21)

五. 요셉의 유언과 죽음(22-26)

 

(본문 강해)

 

一. 야곱이 죽으매 가나안 땅에 장사할 허락을 바로에게 맡음(1-6)

 

. 50:1  요셉이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요셉이 죽은 부친의 얼굴에 울며 입을 맞춘 것은 부친에 대한 깊은 사랑과 효성을 나타낸 것이다.

 

. 50:2-3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를 넣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시체에 40일간 향 재료를 넣게 한 것과 70일간 곡(哭)한 것은 존귀한 자가 죽었을 때에 행하는 애굽의 풍속이었다.  요셉은 부친을 살아 있을 때나 사후에나 가장 존귀하게 대우하였다.

 

. 50:4-5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청컨대 바로의 귀에 고하기를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요셉이 상복을 입고 있어서 왕 앞에 직접 나아갈 수가 없었으므로 사람을 시켜서 자기 아버지의 시신(屍身)을 가나안 땅에 장사하게 해 달라고 바로에게 허락을 맡게 하였다.

내가 다시 오리이다 바로가 염려할까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였다.  요셉은 윗사람에게 염려를 끼치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을 하였다.  윗사람에게 염려를 끼치면 유익이 없다.

 

. 50:6  바로가 가로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비를 장사하라

바로가 쾌히 요셉의 요구를 허락해 주었다.

 

二. 야곱을 가나안 땅에 장사함(7-14)

 

. 50:7-9  요셉이 자기 아비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장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장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 형제들과 그 아비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아이들과 양떼와 소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야곱의 장사는 굉장히 큰 행사였다.  마치 왕을 장사하는 것과 같이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다.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모든 장로와 애굽 땅의 모든 장로와 요셉의 온 집의 모든 사람들과 그 형제들과 아비 집 모든 사람과 거기에 군병들까지 동원되었으니 심히 많은 무리였을 것이다.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요셉을 대단히 신임하고 존경한 것이 잘 나타났다.

 

. 50:10-11  그들이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호곡하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비를 위하여 칠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가로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강 건너편이더라

애굽에서 가나안까지는 약 10일 길이나 되는 먼 길이므로 가는 도중에 아닷 타작 마당에서 7일 동안 쉬면서 애곡하였다.  가나안 주민들이 그것을 보고 아벨미스라임(애굽 사람의 곡함)이라고 했다.  이는 그 행렬이 애굽에서부터 왔고 장례식이 애굽식이요 야곱의 자손에 비해 많은 조문객이 애굽인이요 우는 사람들도 애굽 말로 울었기 때문인 것 같다.

 

. 50:12-14  야곱의 아들들이 부명을 쫓아 행하여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요셉이 아비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군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요셉과 그 형제들이 아버지의 명령대로 아버지의 시신을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장사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왔다.  이때 요셉만 애굽으로 돌아오고 다른 형제들은 가나안 땅에 머물러 있었으면 좋지 않았겠는가?  왜 다시 전부 애굽으로 돌아왔는가?  그것은 아직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예정한)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없었다.  또 요셉이 애굽으로 돌아오겠다고 바로와 약속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5절).  다시 오겠다는 것은 자기 혼자만 온다는 것이 아니고 형제들도 같이 온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때가 되기까지 애굽에 있으면서 많은 고난과 핍박과 학대를 받으며 낮아지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많은 시련과 연단을 받은 다음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애굽을 나와야 된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허락한 복을 받을 수가 없다.  성도들도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연단을 받아 그 인격이 만들어진 다음에야 하나님의 약속하신 상급을 받을 수 있다.

 

三. 요셉의 형제들의 불신앙과 두려워함(15-18)

 

. 50:15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부친을 장사하고 돌아온 요셉의 형들은 자기들이 전에 요셉에게 행한 악을 요셉이 보복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죄는 언제나 가책을 주고 두려움을 준다.  죄는 순간에 짓지만 그로 인한 가책과 두려움은 오래간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요셉이 아버지를 생각해서 그대로 놓아두었으나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므로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어왔다.  잠언 28:1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했다.

 

. 50:16-17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형들이 직접 요셉에게 나아가지 못하고 사람(아마 베냐민이었을 것이다)을 내세워서 아버지가 살았을 때에 형들의 죄를 용서해 주라고 유언했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실지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수 없으나 아버지의 심정은 요셉이 형들의 죄를 용서해 주기를 원하였을 것은 틀림없다.  요셉의 형들이 이러한 태도를 취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요셉을 믿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것은 형제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요셉을 두려워하면서 불신하는 태도이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① 요셉이 진정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고 위해 주었으나 형들이 모르기 때문에 울었다.  이제까지 17년 동안 그 형들을 사랑하며 돌봐 주고 모든 것을 풍성히 주었으나 요셉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고 복수할까봐 의심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요 울 만한 일이다.  ② 형들의 불신앙적인 태도를 보고 너무 불쌍해서 운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우신 것과 같다.  부활이요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 오셨으나 나사로가 죽어 생명이 없다고 울기 때문에, 그들의 불 신앙을 보고 우신 것이다(요 11:25-35).

 

. 50:18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형들에 대해서 마음이 뜨거워서 울었다는 소식을 형들이 듣고 이제는 그들이 친히 요셉 앞에 와서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노인이 된 나이 많은 형들이 와서 엎드려서 절하는 것을 볼 때 요셉이 그가 어렸을 때 꾼 꿈이 다시 한번 생각났을 것이다.

 

四. 요셉이 형제들에게 사죄와 시은(施恩) 약속(19-21)

 

. 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요셉이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먼저 두려워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두려워하지 않도록 위로해 주는 것이 급선무이며 덕스러운 일이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이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이다.

요셉을 애굽으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오, 아버지와 형제들을 애굽으로 인도하여 양육하여 주신 분도 하나님이신데 그 일에 대해서 형들을 정죄하고 보복한다면 하나님을 대신하는 죄가 된다는 것이다.

 

. 50:20-2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다.  형들이 애굽에 자기를 팔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를 앞서 애굽에 보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도록 했다고 말하였다.  요셉이 형들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하며 현재까지 잘 해 준 것처럼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하고, 또 그 자녀들까지 양육하겠다고 약속하며 위로했다.  요셉은 여기서도 장자의 책임을 다한 것이다(대상 5:2 참조).

 

五. 요셉의 유언과 죽음(22-26)

 

. 50:22-23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 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요셉이 젊었을 때에 많은 고난을 받았으나 그것을 다 믿음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애굽에서 110세까지 살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자손 3대를 보았다.  요셉은 하나님과 부친께 그 두 아들을 바쳤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두 아들을 창성하게 해 주셨다.

 

. 50: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임종시에 그 신앙을 고백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할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살 나라는 애굽이 아니요, 가나안 땅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하늘 나라를 소망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 50:25-26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일백 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은 하나님께서 만드시 그 말씀대로 성취시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20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하여 예수님이 정녕 재림하셔서 성도를 하늘나라로 데려가 살게 하실 것을 믿었다.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이것은 요셉의 신앙이 잘 나타난 말씀이다.  히브리서11:22에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요셉의 믿음을 기록할 때에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나 칠 년 흉년 동안의 구원역사는 기록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과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한 것만 기록하였다.  이것이 요셉의 신앙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요셉이 자기 해골을 메고 나가라고 한 목적은 무엇인가?

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소망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을 \"해골의 예언\"이라고 한다.  요셉이 죽은 후에 그 해골에 대한 예언이 400년 동안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깨우쳤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는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가나안에 갈 소망을 포기할까봐 요셉이 자기 시체를 장례시키지 않고 잘 보이는 곳에 입관해 둠으로 그것을 볼 때에 가나안 땅으로 갈 소망을 갖게 했다.  그러므로 그 해골의 예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을 400년 동안 깨우친 것이다.

② 애굽은 임시 살다가 떠날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해골을 보거나 거기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애굽은 임시 우거하는 곳이요,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기들의 영원한 나라인 것을 깨우쳐 주었다.

40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 그 말씀을 지켜 요셉의 해골을 메고 나와서 가나안 땅 세겜에 장사하였다(수 24:32).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이 죽은 후에 곧 장사하였다면 야곱의 장례보다 몇 배 더 굉장히 크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장사하지 않고 입관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고센 땅에 두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게 했다.  이것이 죽었으나 그 신앙으로 말하는 것이요 죽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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