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창세기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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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장

 

창세기 강해

 

·기록한 사람 : 모세

·기록한 연대 : 주전 1450-1440년경

·기록한 장소 : 시내반도

 

제 1장  창 조

 

(대  지)

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1)

二. 제 1일의 창조(땅과 물과 빛)(2-5)

三. 제 2일의 창조(궁창)(6-8)

四. 제 3일의 창조(해륙 분리와 초목)(9-13)

五. 제 4일의 창조(일월성신)(14-19)

六. 제 5일의 창조(조류와 어류)(20-23)

七. 제 6일의 창조(동물과 사람)(24-31)

 

(본문 강해)

 

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 (1)

 

.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한 구절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증거하고 있는 참으로 귀한 말씀이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가 세계 유일의 참된 종교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다른 종교에서는 천지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여러 가지 허황된 말을 하고 있고, 과학자들은 하늘과 땅이 자연히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 구절은 창조 사역의 총론인 동시에 서론이다.  태초 요한복음 1:1에 말한 \'태초\'는\"영원한(무궁한)태초\"를 말하고 본문의 \'태초\'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한 때\"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히브리 원어로  (엘로힘)으로서 \"능력의 신\"이라는 뜻이다.

 

二. 제 1일의 창조(땅과 물과 빛)(2-5)

 

.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실 때에 단번에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6일 동안 단계적으로 창조하셨다.  처음에는 땅이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그 다음에 그것을 정리하시고 정돈하셔서 점점 완전하게 만들어 나가신 것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땅을 첫째 날 이전에 창조한 것으로 보면 안 된다.  그 이유는 2:1-2과 출애굽기 20:11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6일 동안에 창조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말씀을 총론으로 간주해서 땅이 제3일에 창조되었다고 해도 안 된다.  그 이유는 셋째 날에는 물을 한 곳으로 모으고 그 속에 있던 땅을 드러나게 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땅은 물과 함께 첫째 날 창조됐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혼돈과 흑암을 마귀라고 해석하는 것도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 혼돈이 아니고 물질적 혼돈이며 영적 흑암이 아니고 공간적 흑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 하나님은 삼위일체로서 수면에 운행하신 분은 제 2위인 성자와 제 3위인 성신(성령)을 가리키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3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고 했고, 잠언 8:30에 \"내(그리스도)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천지 만물을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창조하였으나 직접 창조에 착수하신 분은 제 2위인 성자이시다.  성자께서 성신(성령)의 능력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창조하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있고 물과 흙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을 성자 하나님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성령으로 인하여 그 물질 위에서 역사하시며 창조해 나가셨다.

 

.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여호와께서 빛을 창조하셨다.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땅과 물과 빛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첫날 창조한 땅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고(2절 참조) 점점 완전케 만들어 가셨다.

 

. 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하나님은 빛으로 모든 것을 드러내고 밝히는 것을 좋아하신다

 

. 1: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빛을 창조하니 어두움은 빛이 없는 곳으로 물러갔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창조의 첫날부터 주야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지구가 자전함을 증명한다.  

첫째 날 \"날\"이라는 히브리 원어  (욤)을 1일로 보지 않고 한 세대, 한 기간으로 해석하여 천지 창조가 몇 억 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하였으니 \"날\"을 지구의 자전(自轉)으로 생긴 24시간의 하루로 보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다. 또한 출애굽기 20:11에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을 만들고 제 7일 에 쉬었음이라고 했으므로 엿새 동안에 천지 만물을 다 만든 것이 확실하다.  어떤 과학자들은 몇 10억 년 전에 지구가 생겼다고 주장하나 과학자들 간에도 학설에 따라 몇 십억 년씩 차이가 나고, 그 학설들의 근거 또한 애매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확 무오한 성경을 그대로 믿는 것이 참된 지식을 얻는 것이요 바른. 진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어떤 과학자는 지구의 생성 연대가 46억 년 전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몇 억 년 전이라고 한다.  또 몇 억 년 전 사람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성경 역사로 보면 첫 사람 아담은 6천년 전 사람이다.  지금으로서는 천년이나 억 년을 걸려야 될 것이 초기에는 하루 동안에 변화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에 앞서 성경대로 믿어야 된다.  성경은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초과학적(趨科學的)인 것이다.  또 구약의 연대는 우리에게 구속의 도리를 가르치기 위한 연대이고 과학적인 증명을 해 주기 위한 연대가 아니다.  곧 성경은  구속의 도리를 가르쳐 주는 책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로 믿는 것이다.

이 빛의 창조는 장차 영적 빛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영적인 흑암을 다 밝혀 줄 것을 교훈해 주는 뜻이 있다.  마음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에 싸여 있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가면 심령이 밝아지고 새 생명의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三. 제 2일의 창조(궁창)(6-8)

 

. 1:6-8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둘째 날에는 첫째 날 창조된 것을 가지고 구별해서 궁창을 창조하셨다.  궁창의 히브리 원어  (라키아)는 \"넓은 공간\", \"허공\"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궁창으로 물을 갈라서 궁창 아래 물과 궁창 위의 물(구름)로 나뉘게 하시고 그 궁창을 하늘이라 하셨다.  창조할 때 처음에는 궁창에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물이 나뉘어 윗물은 위에만 있고 아랫물은 아래만 있게 하였다.  하나님은 위의 것과 아랫것을 갈라놓는 하나님이시고, 궁창은 궁창대로 드러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위엣 것을 위에다 놓고 아랫것은 아래에 놓아야 새 창조의 역사가 나타난다.  성도가 구별하는 신앙을 가지고 모든 것을 제 자리에 놓을 때에 혼돈이 없어지고, 질서와 체계가 있게 되고, 넓고 밝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四. 제 3일의 창조(해륙 분리와 초목)(9-13)

 

. 1:9-10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물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물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셋째 날은 지상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하여 뭍(陸地)이 드러나게 하시고 육지에 풀과 채소와 나무(草木)를 내셨다.  육지가 물과 흙이 섞여서 혼돈한 가운데 있었으나 천하의 물을 깊은 데로 모이게 하여 바다를 만드시고 뭍이 드러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땅이 물 속에서 나온 것이다(벧후3:5).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구별하시고 정리하시는 분이심을 보여 준다.  성도들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구별하고 정리, 정돈할 때에 귀하고 아름답고 값진 것들이 드러나서 필요하고 유익하게 이용된다.

 

. 1:11-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 땅에 풀과 채소와 열매 맺는 각종 나무를 내셨다.  물과 뭍을 갈라놓지 않았으면 이런 것들이 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갈라놓은 후 나무와 채소와 각종 과목이 나게 하셨고, 그것을 사람들이 사용하며 먹고살게 하셨다.  우리도 진리와 비진리, 영과 육을 갈라놓아야 영이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을 얻게 된다.

각기 종류대로 하나님은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풀도 종류대로, 채소도 종류대로, 열매 맺는 과목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종류대로 취급하시고 관리하시는 분이시다.  성도들도 모든 것을 종류대로 바로 알고 종류대로 갈라놓고 바로 취급하고 바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갈 수 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는 ①피조물이 하나님의 선하신 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② 피조물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③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④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피조물을 이용하여 성취하시겠기 때문이다.

 

五. 제 4일의 창조(일월성신)(14-19)

 

. 1:14-16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첫째 날 창조한 빛을 가지고 분리하여 이것들을 창조하신 것이다.  빛을 분리시켜서 큰 빛으로 태양을 만드시고, 작은 빛으로 달과 별들을 만드신 것이다.  이로 인해서 주야가 생기고 춘하추동 사시(四時)와 연한(年限)이 생겼으며 모든 초목과 생물들이 살고 자라나게 하셨다.  빛은 실로 귀중한 것이요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을 갈라서 각기 자기 위치에 있게 하고 자기 본분을 다하게 할 때에 주야와 연한과 사시가 생겨서 모든 것이 살게 되고 자라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신령한 세계에서는 그리스도가 참 빛이시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빛이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각각 자기 위치에서 자기 본분을 다할 때에 좋은 때가 오고 좋은 일이 생기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고, 소생하며 창성하여 나아간다.

 

. 1:17-19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일월 성신을 하늘의 궁창에 두었다는 말이다.

 

六. 제 5일의 창조(조류와 어류)(20-23)

 

. 1:20-23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다섯째 날에는 하나님께서 물고기와 새를 창조했다.  물고기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창조하여 그것들이 물에서 살며, 번성케 하시고, 새를 창조하여 하늘의 궁창에 날게 하셨다.  2:19에 보면 각종 들짐승과 새는 다 흙으로 만드셨다고 했다.  모든 것을 각각 종류대로 창조했고, 종류대로 모여 살게 했고, 종류대로 번성하게 했다.  사람들도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끼리 살게 하였고 한반도는 한국 사람에게 주었다.  가나안 땅은 유대인에게 주었고, 거기서 유대인은 유대인끼리 살게 했다.  아프리카는 흑인들에게 주었고, 거기서 흑인들끼리 살게 만들어 놓았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 거주의 한계도 정해 주셨다(행17:26).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든 것을 구별하여 생명을 유지하여 살도록 한 것처럼 진리 면에서는 같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끼리 교회를 세워야 되고, 진리가 같은 교회들이 연합하여 교단을 세워야 된다.  그리하여야 그 진리대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고 그 진리를 발전시켜 나갈 수가 있다.  바로 깨달은 진리대로, 교회와 신학교를 세워 그 진리를 발전시켜 나아가야 후대까지도 그 진리가 계승되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바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진리가 맞지 않는 다른  교단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 이유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깨달은 참된 진리를 세워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七. 제 6일의 창조(동물과 사람)(24-31)

 

. 1:24-25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창조하시고, 또 사람을 창조하셨다.  땅의 모든 생물과 짐승과 공중의 새가 다 흙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했으나 그 원료는 흙을 사용하셨다(2:19).  생물의 히브리 원어    (네페쉬 카야)는\"생명 있는 자\"라는 뜻이다.  이것은 모든 생명 있는 것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육축이란 소, 말, 개, 닭, 돼지, 양 등 가정에서 기르는 가축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날에 모든 짐승의 종류를 다 창조하시고, 그 종류대로 번식하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므로 번식할 때에는 종류의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사람은 사람대로, 원숭이는 원숭이대로, 개는 개대로 번식한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법은 없다.  19세기의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20세기에 와서는 다윈의 진화론이 잘못되었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예를 들면 사람과 동물과 식물들은 모두 염색체(染色體)를 가지고 있는데 염색체란 염기성 색소에 잘 염색되고 세포핵(細胞核)이 유사분열(有絲分裂)을 할 때 핵(核)속에 나타나는 실 모양의 것이다.  그 염색체는 생물의 종류에 따라 그 수(數)와 행동이 다르며 유전과 성(性)을 결정하는데 중대한 요인이 된다.  사람의 체염색체(體染色體) 수는 46이고, 원숭이의 염색체 수는 54이고, 말은 38, 개는 78, 고양이는 36이다.  아무리 많은 세대를 거친다고 해도 이 염색체 수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없고 고양이가 개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수백 대, 수천 대를 내려가도 내내 그 염색체 수는 변하지 않는다.  염색체의 변화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진화론을 주장하며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만약 진화론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지금도 원숭이가 변해서 사람이 되는 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물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사람과 짐승을 각 종류대로 낸 것이다.  한가지 실례로 암 말과 숫당나귀를 교미시켜 새끼를 낳으면 노새를 낳는데 그 노새는 새끼를 낳지 못한다.  노새가 자꾸 새끼를 낳아야 종자의 변화가 생기는데 노새가 새끼를 낳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노새의 대가 끝나는 것이다.  이것도 종의 변화가 없다는 증거이다.

 

.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말한다.  삼위의 하나님이 서로 의논하여 사람을 만드셨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영적 형상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속성을 말한다.  하나님께는 12 속성이 있는데, 특수한 속성 4가지와 보편적인 속성 8가지가 있다. 특수한 속성은 ① 독립성 ② 불변성 ③ 무한성(완전성) ④ 단일성이고, 보편적 속성은 ①지식 ②지혜 ③ 선 ④ 사랑 ⑤ 거룩 ⑥ 의 ⑦ 진실 ⑧ 주권(능력)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속성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원형이고 사람은 모형이다.  그러므로 사람 안에 내주 하셔서 당신을 다 나타내 보일 수 있고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갈 수가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당신을 다 나타낼 수 있고, 사람은 원형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독립된 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닮아갈 수가 있다.

 

.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영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육체는 흙으로 창조하여 영과 합하여 사람이 되게 하셨다.  여자는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서 창조하셨다(2:21-22).

 

.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천지만물은 하나님 자신의 계시와 사람을 위해서 창조했고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육과 번성의 축복을 주시고,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  이는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그 권세를 사용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을 때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사람의 주관을 받고 다스림을 잘 받게 되어 있었으나 사람이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릴 때에 만물이 사람을 불복종하고 멀리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면 만물이 그 사람에게 다시 복종하게 되고 그 사람은 만물을 정복하게 되며, 다스리고 주장하게 된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면 만물이 따라오게 되고 그의 주장과 다스림을 잘 받게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을 따라가면 곧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요, 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것이요, 그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되므로 만물이 즐거워서 복종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해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고, 만물은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 돌아가고 영광을 돌린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아가려면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 멀리 떠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와 신령한 교통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신앙 인격을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 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처음에 주신 식물은 모든 채소와 과일이었다.  즉 채식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도록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육식을 허락하신 것은 노아 홍수 이후이다(9:1-3).

 

. 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짐승과 새들에게는 푸른 풀을 식물로 주었다.  짐승들과 새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은 인간이 타락한 후 그것들이 악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천년 왕국 시대에는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놀며 어린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다(사 11:8-9; 65:25).  그것이 에덴동산의 회복이다.

 

.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지하신 지혜와 전능하신 능력으로 천지와 만물과 인생을 다 창조하셨으므로 모든 것이 완전하고 아름다웠다.  참으로 천지와 만물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대로 움직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대로 사용될 때 더욱 아름답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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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2장

제 2 장  에 덴.

 

(대  지)

一. 제 칠 일 안식일(1-3)

二. 천지와 인간 창조에 대한 대략(4-7)

三. 에덴 동산 창설(8-15)

四. 각종 나무와 선악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16-17)

五. 여자 장조(18-25)

 

(본문 강해)

   

一. 제 칠 일 안식일(1-3)

 

.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1장에서는 천지와 만물 창조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했고, 본 장에서는 그 창조의 내용을 다시 약술하며, 안식일과 에덴동산 창설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 2:2-3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셨고, 그 날을 사람에게 안식일로 정해 주셨다.  그러므로 이 날은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요, 하나님이 복 주시는 날이다.  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육신의 안식과 영적 안식을 주신 날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안식일에 육신의 모든 일을 쉬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영적 안식을 누려야 한다.  이 날에 세상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안식일을 범하는 큰 죄가 된다.

십계명 중 제 사 계명은 안식일에 대한 계명인데, 이 사 계명이 십계명, 가운데 중심 계명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성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날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령한 은사를 주시는 복된 날이요, 또 하나님과 더불어 즐거워하면서 영적 안식을 누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날에 받은 은혜와 말씀을 가지고 한 주간 동안 믿음으로 살아나가야 한다.  성도가 안식일에 영적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의 말씀(영의 양식 )을 받아먹는 것은 마치 자동차가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공급받는 것과 같다.  구약 시대에 제 칠 일(토요일) 안식일이 신약 시대에는 이레 중 첫 날(주일)로 바뀌었다.  히브리서 7:18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했고, 히브리서 4:7에는 하나님께서 다른 날을 정하였다고 하였다.  안식일을 주일날로 정한 이유는 이 날에 예수께서 부활하여 성도들에게 안식을 주셨고, 성부께서 주일날에 계시의 말씀을 주셨고(계 1:10), 성령께서 강림하셨고(행 2:1-3), 초대 교회 때부터 사도들이 주일을 지켰기 때문이다(행 20:7; 고전 16:2).  이사야 58:13-14에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될 젓과 해야 될 것을 말씀하셨다.  ※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될 것은

① 자기 발을 금하고, 자기 길로 행치 말아야 한다.  이것은 세상일을 하거나 사사로운 일을 하기 위해 돌아다니지 말라는 뜻이다:

② 오락을 행치 말아야 한다.

③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개인 문제라도 신앙에 관계되는 것을 의논하는 것은 괜찮다.

※ 안식일에 해야 될 것은

① 안식일을 즐거워해야 된다.  즐거운 안식일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면 말씀에서 새 생명을 얻어 성도의 영이 소생하므로 참으로 즐거운 세계에서 살게 된다.

② 안식일을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  안식일은 사람의 날이 아니고 여호와의 날이므로 존귀한 날이다.  또, 하나님을 만나고 영의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고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날이다.  성도가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이고,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하고, 야곱의 업(業)으로 그 사람을 기른다고 하였다(사58:14).

 

二. 천지와 인간 창조에 대한 대략(4-7)

 

. 2:4-6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천지 창조에 대하여 1장에서 상술(詳述)했으므로, 본 장에서는 그 창조에 대하여 총론적으로 다시 한번 약술(略述)하며, 보충 설명을 하고 에덴동산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흙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신은 흙으로 말미암았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전 3:20).  그러나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1:27)된  영적 존재이므로 영존한다.  사람이 죽으면 구속받은 성도는 그 영이 하늘 나라로 가고(전 3:21), 죄인들은 그 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가서 영벌을 받는다(마 25:46).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이것은 사람의 영을 불어넣었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진리와 영감을 사람에게 불어넣어서 영적 생명을 살려 놓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20:22에 예수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호흡이 성령이 아니고, 예수께서 진리와 성령으로 예수 자신과 성도들을 연결시켜서 영적 생명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5:45에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예수)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도 예수님이 진리와 영감으로 성도를 연결시켜 영을 살려 주어 산 영(중생)이 되게 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만약 여기 불어넣은 것이 영혼이라고 하면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속에서 나온 것이 되므로 유출설(流出說)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 속에서 유출된 것이 아니고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여기 불어넣은 생기는 진리와 영감으로 해석해야 옳다.

생령의 히브리원어    (네페쉬카야)는 \"생명 있는 자\" 라는 뜻인데 이 말이 짐승과 육축에게도 사용되었다(1:24).  이 말을 영이라고 하면, 짐승들도 영이 있다고 해야 되고 짐승이 죽게 되면 영도 죽는다고 해야 된다. : 그러므로 이 생령은 단지 생명 있는 자로만 보아야 된다.  사람이 진리와 영감을 받았으므로 생명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짐승들은 육체의 생명이 있는 자라는 뜻이고, 사람에게는 영적 생명이 있는 자(생기를 불어넣었으므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람의 생명(생령)이나 짐승의 생명(생령)이 히브리 원어로 볼 때 같은 말이므로(    네페쉬카야 ) 짐승의 생명이 죽을 때에 없어지는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그 영도 역시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악독한 이단설이다.  짐승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은 육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고,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영이 산 것을 말한다.

 

三. 에덴 동산 창설(8-15)

   

.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그곳에서 살게 하셨다.

동산의 히브리원어  (깐)는 정원, 큰 과수원, 낙원을 가리킨다.  이 에덴 동산은 창조 당시의 낙원이요 죄와 사망이 없는 곳이었다.  그 에덴동산은 이 지구상에 있었는데, 사람이 범죄함으로 그 동산을 상실했다.  지금은 그 자취를 알 수 없고, 다만 성도들의 영적인 에덴 동산(낙원)이 있을 뿐이다.  영적 에덴 동산(낙원)이란 성도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 말씀이 이루어져 나가며,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하는 그 세계가 에덴 동산이다.

 

.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에덴 동산에는 세 가지 나무가 있었는데  

첫째,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가 많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주어 그 아름다움을 누리고 먹을 수 있게 하셨다.  그 나무는 영적 생명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나무였다.  그것은 일반 은총(자연은총)의 상징으로서 실제 있었던 과수(果樹)였다.  그러나 그것들이 아무리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것이라고 해도 적당하게 먹어야 된다.  먹을 것 풍성하다고 하여 지나치게 섭취하면 잘못된다.  모든 것을 분수에 맞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자연 은총을 많이 주셨으나 그것들을 욕심으로 지나치게 취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허락한 분량만큼 적당하게 취하고 믿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생명나무가 있었다.  이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실지로 있었던 나무였다.  그런데, 아담이 이 생명나무 따먹기 전에 범죄 하였으므로 에덴 동산에서 축출 당하고 말았다(3:23).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영원한 생명이시다(요일 1:2).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믿음으로 받는다(요 11:28).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믿음으로 먹는다(요 6:54, 55).  그러므로 믿는 자는 생명나무에 접붙인 자들이다.  성도들 그 생명나무의 진액을 받아 열매를 맺어야 된다.

셋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 실과는 먹지 말라고 금하셨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 하나님의 금단(禁斷)의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이 선악과를 내신 목적은 ① 이 동산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② 이 동산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사는 동산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③ 다른 나무들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기 위함이고, ④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늘 기억시켜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상 네 가지가 선악과를 내신 목적인 동시에 십일조의 근원이 된다(14:20 참조).  그러므로 선악과는 사람에게 복 주려고 낸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이 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이 명령을 거역하면 죽는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취하지 말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성도들은 잘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사람이 하면 범죄하는 것이니 그 때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게 되고 영적 낙원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삼가 조심하여 계명을 잘 지켜야 된다.  그리고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하고 발견하여, 그 생명에 참여하여 영이 날마다 창성해 나가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 2: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강의 근원은 에덴 동산이며, 강물이 흘러 에덴 동산을 다 적시고, 동산 밖 사방으로 흘러가서 온 땅을 소성(蘇醒)시켰다.  강 생명의 역사의 상징으로 실제 있었던 강이다.  신령한 뜻은 생명의 역사를 가리킨다.  요한복음 7:38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요한복음 4:14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다.  이 생명강은 에덴에서부터 발원(發源)하여 네 강이 되어 사방으로 흘러 나갔는데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령한 에덴 동산) 곳에서부터 생명의 역사가 흘러 사방으로 퍼져 나갈 것을 가리킨다.  이 강물은 생명들을 살려나가는 일을 한다.

 

. 2: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이다.  비손은 \"창일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심령에 낙원(에덴)을 소유한 성도는 그 생명의 역사가 창일하게(넘치게) 흘러 나갈 것을 가리킨다.  그 생명의 역사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 강을 막으면 넘치고, 또 막으면 또 넘쳐서 생명의 역사가 힘있게 계속 흘러 나간다.  로마의 네로 황제가 무자비하게 기독교를 박해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막으려 했으나 결국 막지 못하였고, 그밖에 여러 세상 나라들이 그리스도의 생명 운동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막을 수 없었다.  이렇게 생명의 역사는 끊이지 않고 계속 흘러 나간다.  이 생명의 역사는 전진하고 또 전진하며, 이기고 또 이기게 된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끊임없이 하여야 생명의 역사가 항상 있고 넘쳐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흘러 나가 많은 사람을 살려 나갈 수가 있다.  \"하윌라\"는 \"모래 땅\", \"모래언덕\"이란 뜻이 있다.

 

. 2:12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베델리엄의 뜻은 \"진주\"이다.  호마노는 보석의 일종이다.  비손강이 흘러 나가는 곳은 금도 있고 진주도 있고 보석(호마노)도 있다.  영적 낙원(에덴)에서 사는 성도에게는 신령한 복과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이 가득하다.  학개 2:8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고 했다.  성도 속에서 생명의 강이 창일하게 흘러 내려가면 금은과 보석같이 귀한 것을 하나님이 다 주신다.

 

. 2: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다.  기혼은 \"유출(流出)\", 즉 \"흘러나간다\"는 뜻이다.  성도의 속에 있는 생명의 역사가 밖으로 흘러 나간다는 것이다(요 7:38, 4:14).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가만히 있지 않고 반드시 흘러 나가게 되어 있다.  흐르고 흘러서 먼데까지 퍼져 나가게 되어 있다.

 

. 2: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다.  힛데겔은 \"급류(急流)\"라는 뜻이다.  성도 속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는 급히 흘러나간다.  그 생명수가 계속해서 많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급히 흘러나가지 않을 수 없다.

넷째 강의 이름은 \"유브라데\"이다.  유브라데는 \"감미(甘味)\"라는 뜻이다.  성도 속에 있는 생명의 역사는 단맛이 있으며 꿀과 꿀 송이보다 더 달다(시 19:10).  사람들이 이 생명 강수의 맛을 보면 너무 달고 너무 좋아서 생명 강을 떠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부지런히 나눠주려고 한다.  낙원에서 흐르는 생명의 역사는 달고 급하고 창일하게 흘러 나가서 만민을 소성케 한다.  이 물이 적시는 곳은 모두 에덴 동산이 되어 낙원이 점점 확장되어 나간다.

 

.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  이것은 성도가 영적 낙원 생활을 함에 있어서 그것을 잘 다스리며 지키지 않으면 안될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좋은 에덴 동산이라도 다스리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고 마귀에게 빼앗긴다.  에덴 동산을 다스리는 법은 ① 사람과 만물을 자기 위치에 있게 해야 한다.  제 위치에서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②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이다.  ③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대로 실현되어 나가는 곳이다.  ④ 자기직분과 자기의 책임을 감당해 나가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각기 자기의 사명과 직책을 다해 나가는 나라이다.  하나님이 사람과 만물을 다스리는데 사람을 시켜서 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만물에게 미치도록 해야 한다.

또 에덴 동산을 지키는 방법은 ① 성도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것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② 마음을 잘 지켜야 된다.  마음이 하나님의 인도만 받고 다른 곳에 가지 못하도록 항상 지켜야한다.  잠언4:23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다.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생명의 근원이 된다.  마음을 붙들어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것이 에덴 동산을 지키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가 방심 부주의 할 때 마귀가 미혹했다.  ③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만 위하여야 한다.  하나님 이외(以外)에 다른 것이 주인이 되거나 다른 것을 위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잃어버리게 된다.  ④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말씀에 위반되는. 세력이나 행동을 배격해야 한다.  이와 같이 성도가 에덴 동산을 잘 다스리고 잘 지켜 나가야 낙원이 계속 유지되고 거기서 생명 강수가 사방으로 흘러 나가 만민과 만물을 소성 시켜 나가게 된다.

 

四. 각종 나무와 선악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16-17)

 

.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도록 허락하셨다.  이 실과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의 실과이다(9절).  이것은 자연 은총을 가리키는데 그것들을 임의로 먹을 수 있으나 각자의 분량대로 적당하게 먹어야 된다.  또 생명나무의 실과도 먹을 수 있게 허락하셨다. 생명나무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에게 참여케 하여 영생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기 전에 범죄하여 쫓겨났다.

 

.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지로 있었던 나무인데 그 당시의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이요 후대의 모든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을 범하면 반드시 죽게 된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를 경외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살게 하신 것이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 즉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금하신 명령을 범한 자는 반드시 죽는다.  우리가 범한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기독 신자가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면 생명의 역사가 죽어 흑암을 만나고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된다.

 

五. 여자 창조(18-25)

 

.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면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성도간의 교제도 즐거운 것이요 큰 위로가 된다.  시편16:3에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했다(빌2:1-3 참조).  그러므로 사람에게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  물론 신앙적인 일을 돕는 배필이어야 한다(빌2:22; 4:3; 몬1:13 참조).  독신으로 사는 사람도 믿음의 동역자가 필요하다.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언제나 돕는 위치를 지켜서 돕는 일을 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마음 구조를 돕는 일 하기에 알맞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남자를 앞세우고 자기는 돕는 일을 하여야만 모든 일이 잘된다.

그러나 여자가 주장을 하면 거꾸로 되어 모든 일이 잘 되지 않는다.  이 성경 말씀은 또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도와 나가야 자기도 잘 되고 모든 일이 잘 된다는 의미도 있다.

 

. 2:19-20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므로 신령한 지혜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 지혜로써 각 생물을 하나님이 지으신 그대로, 그 상태대로 적합하게 이름을 지을 수 있었다.

아담은 히브리 원어로  (아담)이며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담이나 사람이나 원어 상으로는 같은 말이다.  아담이 각 생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줄 때에는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지어 준 것이 아니고 각 생물들의 모양과 성격 상태를 따라 그것들에게 알맞은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실 때에 그 사람들의 모든 상태 곧 신앙·성품·인격을 따라서 시몬에게는 \"베드로\"라고 했고,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주셨다.  신령한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신앙상태나 인격을 따라 거기에 합당하게 알아주시고 취급해 주시고 사용하신다는 것이요 또 성도가 사람들과 만물을 바로 알고 바로 취급하고 바로 이용하며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려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 2:21-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깊이 잠들게 하시니 보통 잠이 아니고 깊은 잠을 가리키는데 수술할 때에 마취시킨 것과 비슷한 잠이었다.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이유는 ① 여자를 남자의 일부분으로 만들어 보필하게 하기 위함이요, ② 부부가 한 몸을 이루게 하기 위함이요, ③ 부부를 동등으로 하기 위함이다.  만일 팔이나 다리뼈로 지었으면 동등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④ 여자를 벼 중의 뼈로, 살 중의 살로 여겨 사랑하라는 것이요(엡 5:25 참조), ⑤ 여자는 남자를 순종하며 경외하라는 것이다(엡 5:33),  여자라 칭하리라 여자의 히브리 원어 (잇샤)는 그 어원 이 남자에게서 나온 말인데 남자와 상대되는 여성을 가리킨다.  

 

.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와 여자는 육신의 부모를 떠나서 하나님이 지어준 짝과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몸이 하나가 될 뿐 아니라 마음도 하나가 되어야 된다.  마음이 하나가 되려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된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빌립보서 2:5-8에 있다.  또 영의 일치가 되어야 한다.  영의 일치는 부부가 같은 신앙을 가지고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같이 기도 생활을 하여야 한다.  이상 세 가지가 하나가 되어야 참으로 이상적인 부부가 되는 것이다.  우리 성도는 육신적인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일치가 되어야 한다.

 

. 2: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만 알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고 하나님만 위해서 살며 다른 사람이나 자기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충만히 임재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벗었으나 부끄러운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이 참으로 에덴 동산 생활이요 복된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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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3장

제 3 장  타 락

 

(대  지)

一. 인류의 타락(1-6)

二.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심(7-10)

三.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약속(11-21)

四. 범죄한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남(22-24)

 

(본문 강해)

 

一. 인류의 타락(1-6)

 

.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표면적으로는, 사람이 뱀의 유혹을 받아 타락하였으나 이면적으로는, 마귀가 뱀을 이용하여 미혹하므로 타락하게 되었다.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하나님께서 뱀을 지으실 때에 간교하게 지은 것이 아니다.  디모데전서 4:4에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하였다.  또 1:31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뱀을 간교하게 지으셨을 리가 만무하다.  간교한 것은 순진하지 못하고, 사사로운 지혜와 정의롭지 못한 꾀를 쓰는 것이니, 그것이 마귀에게서 온 것이 분명하다.  간교한 마귀가 뱀을 이용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이간시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하여 생명에서 떠나게 하였다.  마귀는 이와 같이 짐승도 이용하고, 사람도 이용한다.  그리하여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원수 된 사람까지 이용하여 성도를 하나님과 생명의 말씀에서 떠나도록 궤계(詭計)를 꾸민다.  뱀이 여자에게 말한 첫 마디가 \"하나님이 참으로……\"라고 하였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도 참되지 못한 면이 있는 것처럼 의심나게 하는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지 못한 것처럼 미혹하는 말이다.  이와 같이 마귀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의심나게 하며 하나님과 인간을 이간시키고자 미혹하는 것이다.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말은 사람을 격동시켜 하나님께 반항하는 마음을 갖도록 선동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처럼 뱀(마귀)이 불평하는 말투로 말한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신뢰감과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도록 충동시켜 그 말씀을 떠나게 하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은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게 하여 사람을 괴롭게 하는 하나님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마귀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2:17)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오직 \'먹지 말라\'고 한 말씀만 가지고 사람을 격동시키고, 하나님과 이간시키려고 하였다.

마귀는 성경 말씀을 앞뒤는 떼어놓고 일부만 이용하여 원 뜻을 왜곡시켜 사람을 미혹한다.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이용하여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처럼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하거나 감하는 것은 큰 죄이다(신 4:2; 12:32; 계 22:18-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믿고 따라가야 마귀의 미혹에 빠지지 않는다.

뱀이 간교하게 된 것과 사탄의 이용물이 되어 자기 위치를 떠난 것을 깨달을 만한 지혜가 아담과 하와에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와가 깨닫지 못한 것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 양심을 떠나 방심 부주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도가 언제나 방심 부주의하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마귀의 미혹을 받는다.  누구나 간교하게 되고 자기 위치를 떠났으면 그는 마귀의 이용물이 된줄 알고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하와가 마귀의 종이 된 뱀과 대화함으로 미혹을 받게 되었다.  성도가 신앙과 진리 문제에 대해서는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와는 대화하면 안 된다.

 

. 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하나님 말씀에는 \"임의로 먹으라\"고 하셨으나(2:16)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라고 답변한 것은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약화시키고 변질시킨 것이다.  하와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약해졌다.

 

.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와가 뱀에게 두 번째 말한 내용이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하나님께서는 그 나무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말씀하셨으나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고쳐서 애매하게 말한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으나(2:17) 하와는 이 말씀을 고쳐서 \"죽을까 하노라\"고 하였다.  하와는 심중에 벌써 선악에 대한 관념이 없어졌고, 정녕 죽는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있었다.  하와가 이렇게 된 것은 에덴 동산의 좋은 것에만 도취되어 방심부주의 하고 말씀으로 생명을 삼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도가 일반 은총(자연 은총)이 풍성할 때에 세상의 것에 도취되고 방심 부주의하면 말씀을 떠나게 되고, 마귀에게 속는다.  그러므로 환난과 궁핍도 은혜와 복으로 주시는 줄 알아야 한다.  하와는 선악에 대한 관념이 희박해졌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관념도 희박해졌다.  하와가 믿음에서 떠나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서 떠났으므로 뱀이 찾아왔고, 미혹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에 하와가 전심전력을 기울여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여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동산을 잘 다스리고 지켰더라면 뱀이 들어올 수도 없고 만일 들어왔다고 해도 즉시 분별하고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을 시험에 들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시험에 드는 것이다.  아가4:12에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라고 하였다.  성도는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처럼 외부의 잘못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러워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빼앗기게 된다.

 

.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확신이 없는 것을 보고, 마귀는 더욱 적극적으로 미혹하여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다.  성경 말씀을 변경시키거나 뒤집어 놓는 것이 마귀의 역사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어 놓아도 하와가 깨닫지 못하였다.

이것이 하와가 깊이 잠든 증거이다.  요한복음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마귀의 독소가 뱀을 통하여 하와에게 들어오자 하나님의 말씀이 다 가리워 졌고, 하와는 뱀의 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는 마귀의 말에 사로잡히게 된다.

 

.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마귀가 하와를 또 다시 미혹시키는 말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진다고 하였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다음 눈이 밝아졌다.  이것은 자기를 위하는 눈이 밝아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 곧 악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과 같이 자기에게 맞는 것은 선이요,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악이라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22절 강해 참조).  다시 말하면 하나님 표준으로 살던 사람에게 자기 표준대로 살라는 것이요, 하나님을 위하여 살던 자에게 자기를 위하여 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큰 미혹이요 죄악의 큰 함정이다.

 

.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는 마귀의 미혹을 알지 못하고 그 마귀의 말을 받아들였다.  자기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마귀의 말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와가 뱀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하와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있었다면 자기가 감히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그 말이 얼마나 패역하고 참람된 말인가를 깨닫고 사탄의 미혹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그 말을 좋게 여겨 귀담아 듣고 있었으니 미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도 옳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과 대화하며, 그 말을 받아들이면 미혹을 받아 죄에 빠지게 된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보니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였다.  먹으면 죽을 것처럼 보여야 할 터인데 좋게 보여진 것은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 신앙에서 떠나 욕심으로 기울어진 증거이다.  먹음직해 보인 것은 물욕이며, 보암직해 보인 것은 정욕이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인 것은 사욕이다.  마귀는 언제나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가지고 사람을 미혹한다(요일 2:16).  마귀는 이 욕심을 가지고 예수님까지도 시험하였다.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은 물욕의 시험이며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받들어 주리라\"는 것은 명예욕에 대한 시험이요, \"절하면 천하 만국의 영광을 다 주겠다\"는 것은 사욕의 시험이었다.  마귀는 오늘날에도 사람 속에 있는 이 욕심을 통하여 사람을 미혹하고 타락시킨다.  그러므로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들지 않으려면 모든 욕심을 버리고 신앙 양심을 써서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하와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 마침내 금단의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 남편에게도 그 실과를 주어 먹게 하였다.  아마 아담이 잠시 없는 사이에  하와가 먼저 그 실과를 먹고 그 후에 아담이 왔을 때 실과를 주어 먹게 한 것 같다.

하와가 권하는 열매를 아담이 먹은 것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호주로서 자기의 책임을 바로 하지 못하고, 동산을 다스리지 못한 처사이다.  아담이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었더라면 아내가 권할 때에 그 실과가 무슨 실과인지 알아보고 그 일을 책망하고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하나님께서 하와만 죽이고 또 다른 배필을 주셨을 것이고 또는 하와의 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었다.  민수기 30:8에 \"그러나 그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고 경솔히 입술에서 발한 서약이 무효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아내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도 남편이 그에 동의하지 않고, 말씀대로 바로 걸어가면 아내를 바로 세울 수 있다.  반대로 남편이 잘못 나아갈 때에도 아내가 진리에 굳게 서서 바로 나아가면 남편을 구원할 수 있다(벧전 3:1; 고전 7:16).   그러므로 믿음의 호주가 신앙에 바로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믿음의 호주가 말씀에 바로 서서 나아가면 그 가정을 바로 세울 수가 있고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호주가 진리에 바로 서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치 않은 것을 따라가면 낙원을 빼앗기고, 모든 신령한 복을 다 빼앗기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된다.  2:16-17에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대표자 아담과 맺은 행위 계약이다.

행위 계약의 당사자는 하나님과 아담이요, 그 계약의 약속은 \"생명\"이다.  즉 먹지 말라는 계약을 지키면 산다는 것이다.  아담이 이 계약을 지켰다면 그와 그 후손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이 계약을 어겼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고 전 인류에겐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다.

※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내지 않았다면 인간이 범죄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저주도 임하지 않았을 텐데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내셨는가?  그 이유는  

①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선악과를 내셨다.  선악과가 없으면 먼 장래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도, 섬겨야 되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고, 에덴 동산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 동산과 먹을 과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경외하는 신앙을 갖게 된다.

② 금단의 명령을 지킴으로 영혼이 자라나게 하시려고 선악과를 내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 영혼이 자라난다.

※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내실 때에 아담과 하와가 그것을 따먹을 줄 아셨는가 아니면 모르셨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이 다 아셨다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고 내셨다면 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의 타락이 하나님의 예정에 들어있다(엡 1:3).  하나님이 인류 타락을 예정하신 목적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인류에게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해주시고 더욱 큰 은사를 주시기 위함이다.

※ 타락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가 무엇인가?

①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에덴 동산에서 쫓겨남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게 해 주셨다.

② 타락한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피 흘려 구속해 주시므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알게 해 주셨다.

③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타락 전에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4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일치가 되게 해 주셨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게 해주셨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성도는 그 가지로서 생명이 연합되었다.  성도는 이제 영원히 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  그러나 범죄하기 전 아담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지 못했고 죽을 수 있는 영혼이었으며.  범죄할 때에 그 영혼이 죽었다.  이상 네 가지 은사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성도에게 주신 복이다.  그러나 불택자는 영원히 지옥에 가야한다.  불택자는 본래 마귀에게 속했고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에 제 곳으로 갈 것뿐이다(요 8:44; 6:70). 디모데전서 4:4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하셨으므로 선악과도 선한 목적으로 내셨으며 나무자체는 선한 나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도 성도의 영이 자라나게 하며 유익되고 복이 되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이다.

 

二.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심(7-10)

 

.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의 눈이 밝아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졌다.  이것은 자기를 위하는 눈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이들이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좋아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으로만 즐거워하였으므로 자기가 보이지 않았고, 전연 자기 위할 줄 몰랐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벗은 줄도 모르는 항상 낙원생활이었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임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는 자기를 위하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만을 위하던 생활에서 자기를 위하는 생활로 돌아섰다.  그러므로 자기들의 몸이 벗은 것도 발견되었다.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할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에 거하므로 전부가 영광스러웠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자기 위하는 눈이 밝아진 다음에 자기를 보니 얼마나 보잘것없고 수치스럽고 추한 몸인가를 알게 되었고, 그 몸을 가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물질을 가지고 자기들의 수치를 가리워 보려고 한 것이다.  그것이 사람 보기에는 가리운 것 같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수치가 가려지지 않았다.  성도들도 믿음으로 살 때는 외모를 꾸미거나 단장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진리로 기뻐하는 생활을 하며 항상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 타락이 되면 외모를 꾸미고 사람 앞에 자기를 잘 보이려고 외식하기 시작한다.

 

. 3: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날이 서늘할 때에 그들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과 은총에서 떠났기 때문에 서늘해진 것이다.  이것은 쓸쓸하고 고독한 상태를 가리킨다.  은혜의 자리에서 완전히 떠났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 찬바람이 불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범죄하여 쓸쓸한 가운데 있는 그들을 사랑하여 구원하시려고 찾아가셨다.  그러나 그들은 나무 사이에 숨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의 영이 죽은 증거이다.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을 피할 줄로 안 자체가 그 영이 죽은 증거이다.  범죄한 즉시 그들의 영이 죽었고 자기들의 수치와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 했던 것이다.

동산 나무사이에 숨은지라 이것은 물질 가운데 숨으려고 한 것이다.  거기에 숨고 그것으로 살려고 한 것이다.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태는 이와 같다.  곧, 하나님보다 물질을 의뢰하고 그것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그것으로 자기 모든 수치를 가리우고 그것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한 후에는 물질이 있으면 살고 물질이 없으면 죽을 줄로 안다.  타락한 자들은 사는 것이 오직 물질에 있는 줄로 안다.

 

.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여호와 하나님이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을 찾아가서 \"아담아, 아담아\"하고 부르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이것은 삼위일체중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찾아가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음성으로 아담을 부르신 것이다.

여호와는 계약을 지키시며 그 계약대로 구원해 주시는 신이라는 뜻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것은 \"네가 왜 나를 떠나 물러갔느냐?…네가 어찌하여 거기 가서 숨었느냐?\", \"네 상태가 왜 그렇게 되었느냐?\", \"그 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러 왔으니 내 음성을 듣고 돌아 오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에도 범죄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인간(택자)을 이와 같이 부르시며 찾으신다.

 

.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범죄의 결과로 벗은 수치가 드러났고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구원하러 오셔서 부르시는데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로 오기를 주저하고 있다.  참으로 그리스도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마 9:13).

 

三.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약속(11-21)

 

. 3: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범죄의 결과로 벌거벗은 수치가 드러난 것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양심이 알고 하나님께서도 아신다.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을 범한 자는 다 이와 같다.

 

. 3:12-13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 대답은 책임을 전가하는 말이다.  아담은 자신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하와가 준 것을 먹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른 대답이 못된다.  아담에게는 여자가 주었어도 먹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먹지 않아야 옳다.  그런데 여자에게서 받아먹었으므로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어떤 이유든지 금단의 과실을 먹은 것은 죄이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내가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죄책을 하나님께 돌리며 원망하는 태도이다.  또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시켰다.  이는 하나님 앞에 악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책임을 자기가 질 줄 알아야 한다.  여자가 아무리 먹으라고 해도 자기가 먹지 않았으면 될 것이 아닌가!  또 하와는 뱀이 아무리 먹으라고 해도 자기가 안 먹었으면 될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계명을 범하고 죄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여 죄책을 면해 보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책임을 전가시키고 원망하는 것은 죄에 죄를 더하는 일이다.  비록 미혹을 받고 꾀임에 속아 시험에 넘어갔든지 환난과 핍박으로 넘어갔든지 그것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혹하는 자나 핍박하는 자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거나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불신앙의 태도요 죄에 죄를 더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모든 유혹과 시험과 환난을 이기고 영이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그 모든 것을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은사와 피할 수 있는 길(고전 10:13)을 주시고, 믿음만 쓰면 다 이길 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간 것은 전적으로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고 원망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전 10:10).

범죄하기 전에는 아담과 하와가 한 몸과 한 마음으로 낙원에서 살았으나 범죄하고 나니 서로 원망하고 소원(疎遠)해 졌다.  사람이 범죄하면 서로 멀어지고 만물과도 멀어진다.  그러나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 때에 한 마음과 한 뜻이 되고 만물도 가까워져서 바로 이용되게 된다.

 

.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나님께서 뱀에게는 심문을 하지 않고 직접 심판을 하셨다.  그 이유는 인격도 없고 하나님의 약속과 계명이 없기 때문이다.  

뱀이 받은 심판은

1 저주를 받았다.  하나님의 백성을 범죄케 한 자는 짐승이나 사람이나 다 저주와 앙화를 받는다(마 18:7).

2 배로 다니게 되었다.  다른 짐승들은 걸어다니거나 날아다니기도 하는데 뱀은 배로 다니게 되었으니 얼마나 그 처지가 비천하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백성을 범죄케 한 사람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처지가 비참하게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레미야 17:6에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땅,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했다.

3 흙을 먹게 되었다.  이것은 생활이 아주 곤궁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범죄케 한 사람도 그 생활 상태가 비참하고 곤궁 한데 빠져 사람이 가히 먹지 못할 것을 먹게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미 7:17).  탕자가 곤궁해져서 돼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게 된 것과 같다(눅 15:16).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어떤 사람은 이 성구를 해석하기를 뱀이 흙을 먹는다고 했으니 마귀가 흙으로 만든 사람의 육체에만 손해 주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영혼은 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아담 하와가 마귀의 미혹을 받아 범죄 할 때에 영과 육이 다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티끌을 핥는다는 뜻이다(미 7:17; 애 3:29; 시 72:5).  뱀이 \'이와 같이 사람을 타락시켜 범죄케 하였으므로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며 티끌을 핥는 비천한 짐승이 될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천사나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손해를 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비천한 처지로 전락되고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원수가 되게 하리니 범죄한 아담 부부는 뱀과 원수가 되었고, 서로 책임전가하며 멀어지고, 만물은 탄식하게 되었다(롬 8:22).  오늘날 우리도 범죄하면 이와 같은 결과가 온다.  여자의 후손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여자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오셔서 마귀의 머리를 깨뜨릴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복음이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마귀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십자가에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릴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류를 버리지 않고 찾아오시고 불러 주시고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마귀의 세력을 깨뜨리고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것이 복음이다.

 

.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죄한 여자에게 형벌을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해 주시되 공도(公道)로 징계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30:11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열방은 진멸한다 할지라도 너는 진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공도로 너를 정책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하나님께서 범죄한 여자에게 내린 벌이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 범죄했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범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받은 벌이 모든 사람에게 임한 것이다.  그로부터 모든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왔다.  짐승들은 고통 없이 새끼를 낳는데 인간만은 고통을 당하고야 해산을 하게 되었으니 죄 값으로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이 분명하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교훈은 성도가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만 영적 새 생명을 얻어 나아가고 영이 자라나게 될 것을 가리킨다(딤후 4:15 참조).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4:19에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했다.  이것은 성도가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만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새 생명이 자라난다는 뜻이다.  여자가 잉태하고 해산하면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 같이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 해산하는 수고를 함으로 새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영적 열매를 맺혀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쉽게 믿고자 하는 것은 해산의 수고 없이 자녀를 얻겠다는 것과 같다.  기도하는 일부터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한다.  교역자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하여 열매 맺는 성도가 되도록 해야겠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여자가 먼저 범죄한 것을 보아 여자보다 남자가 낫다.  사람은 자기보다 강하고 나은 사람을 사모하며 배우며 지도를 받아야 앞 길이 열린다.  성도가 신앙에 있어서 자기보다 진리 면과 영적 면이 앞선 사람을 사모하며 배우며 지도를 받아야 한다.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와가 먼저 범죄 했기 때문에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이 믿음이 연약하고 미혹을 잘 받는 자는 자기보다 믿음이 강하고 나은 자의 다스림을 받아야 된다.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다시 유혹에 빠져 아주 망하게 된다.

 

.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린 형벌로서 책임자가 아랫사람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일에 대한 형벌이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땅까지 저주를 받았다.  실로 책임자의 위치는 중요한 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고 사람이 땀을 흘리며 수고해야 겨우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여 가시와 엉겅퀴가 계속 나오게 하였으므로  사람이 많이 수고하며 그것을 제거해야 곡식과 채소가 자라나고 먹을 것을 얻게 되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성도가 피땀을 흘리며 죄와 더불어 싸우고 성경 연구와 기도와 말씀 순종을 하여야만 겨우 승리하며 영의 양식을 얻어먹을 수 있음을 가리킨다.  특히 교역자가 땀 흘려 수고하지 않으면 자기도 먹을 것이 없고 교인들에게 신령한 양식도 나눠 줄 수 없다.  일심전력을 기울이고 피땀을 흘려 기도하며, 성경을 배우고 연구하며 그대로 살기를 힘써야만 자기도 먹을 것을 얻어먹고 교인들에게 나눠 줄 수도 있다.  

흙으로 돌아가리니 이것은 육신이 죽을 것을 선언함이다.  육신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할 때에 영은 그 즉시 죽었다.  영이 죽은 증거는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은 것이다(8절).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을 피할 줄로 생각한 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영이 죽은 것이다.  그 후 육신도 죽었다(5:5).

 

. 3: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하와(    )는 \"생명\"이라는 뜻이다.  아담이 자기 아내를 하와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어 영적 생명이 살아났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것은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15절)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믿은 증거이다.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그리스도가 하와의 후손에서 나겠으며 그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모두 산 자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그리스도를 보내서 속죄의 죽음으로 죄인을 대속해 줄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짐승의 피를 흘려(희생시켜) 그 가죽옷을 입혀 주신 것이다.  그들이 범죄한 후에 무화과 잎을 엮어 가리운 것으로는 그 범죄의 수치를 가리우거나 죄책을 없애지 못했다.  또한 나무 사이에 숨은 것으로는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없었고 심판을 면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서 입혔다.  그 때에 그 모든 수치가 가리워 지고 그 죄가 사함을 받았다.  또한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 나갈 것을 가리킨다(롬13:14).

 

四. 범죄한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남(22-24)

 

. 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여기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어떻게 선악을 아시는가.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선이요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은 악이요, 하나님께 맞는 것은 선이요, 하나님께 맞지 않는 것은 악으로 아신다.  그런데 아담도 범죄한 후에는 자기에게 맞으면 선이고 맞지 않으면 악으로 알고, 자기를 위하는 것은 선이고, 자기를 반대하는 것은 악으로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는 말이다.  범죄하여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절대 선이신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처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교만이요 참람된 일이다.  이것이 원죄이며 모든 부패성 중에 이것이 제일 으뜸이 되는 죄이다.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생명 나무\"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이며 그 열매를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는 것을 가리킨다.  교만하여 하나님의 자리까지 올라온 그들이 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면 큰 문제이다.  그들이 징계를 받아 에덴에서 쫓겨나서 많은 고난을 받으며 회개를 하며 낮아져서 피조물의 자리, 종의 자리에 서야만 될 것이다.

 

.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들을 추방했다.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만 위하면서, 하나님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물질로만 살려고 하기 때문에 쫓겨났다.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하나님이 주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 실과를 먹지 못하게 되었고, 수고하며 땀을 흘려야만 겨우 먹고살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범죄하면 좋은 것을 빼앗기고 고난과 곤고가 오게 된다.

 

.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룹은 천사의 일종이고, 화염검은 말씀을 가리킨다.  범죄하면 낙원에서 쫓겨나는 동시에 거기에 다시 못 들어가도록 천사가 막고 하나님의 말씀이 막을 것을 가리킨다.  범죄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가책이 되어 영적 평안과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는 그 동산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으므로 지상의 에덴 동산은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적 낙원이 회복되게 하였고,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천년 왕국의 낙원을 회복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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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4장

제 4 장  가인과 아벨

 

(대  지)

一. 아담이 두 아들을 낳음(1-2)

二.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3-5)

三. 가인이 아벨을 죽임(6-8)

四. 하나님의 심판(9-15)

五. 죄악의 성장(16-24)

六. 신앙의 계대를 주심(25-26)

 

(본문 강해)

 

一. 아담이 두 아들을 낳음(1-2)

 

. 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여호와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자녀를 주셨다.  그 때에 그들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했다고 감사했다.  시편127:3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했다.  가인은 \"얻음\"이라는 뜻이다.

 

.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아벨은 \"공허(空虛)하다\"는 뜻이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서 아들을 낳고 아들에게 소망과 큰 기대를 가지고 가인(얻음)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 같다.  그러나 가인이 믿음으로 살지 않는 것을 보고, 그 아우를 낳고는 이름을 아벨(공허)이라고 지은 듯하다.  사람이 하나님께만 소망과 기대를 두어야지 사람에게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된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가 되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자가 되었다.  그 때부터 농사와 목축이 시작되었다.

 

二.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3-5)

 

. 4:3-4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은 자기가 농사한 농작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경우는 제물만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인격까지도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경우는 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그 인격까지 받으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합당한 제사를 드리면 그 사람까지 기쁘게 받으시고, 합당치 않은 제사를 드리면 그 사람까지 받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신 이유는    

① 아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아담이 범죄한 후 여호와께서 복음을 주셨고(3:15),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는데,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를 보내서 피를 흘려 구속해 주시고, 마귀의 세력을 깨뜨려 주실 것을 계시해 주신 것이다.  아담이 비록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했으나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피 흘려 희생하여 구원해 주신다고 하는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가인과 아벨에게도 그 말씀을 가르쳤을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아벨은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것이다.  

② 영적으로 제사를 드린 것이다.  히브리서 11:4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그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했다.  그 믿음이 곧 영적 믿음이다.  말씀에는 맞으나 영적 면이 없으면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가 되지 못한다.  이사야1:11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변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숫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다.  이사야 당시 사람들도 양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으나, 그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그 양의 피가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영적으로 믿지 않고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 제사는 진리와 영감이 합해져야 된다.  요한복음 4:23에 신령과 진정(진리)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를 하나님이 찾으신다고 했다.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  로마서 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다.  이러한 제사가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교통하면서 그의 말씀대로 드린 산 제사이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가 된다.

열납하셨으나 히브리서 11:4에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고 한 것을 보아 하나님이 열납 하신 것을 알 만한 외부적 증거가 나타난 것 같다.  그 제사로 인하여 아벨은 여호와께 인정받는 자가 되었고 큰 은혜를 받은 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아벨은 심령 속에 받은 그 은혜로 영이 소생함을 얻었고,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는 확실한 증거를 얻게 되었다.

 

. 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부모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생축의 피로 제사하는 것)을 순종치 않고 그저 자기의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면 될 줄 알고 농작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므로 받지 않으신 것이다.  제사에는 산 제사와 죽은 제사가 있는데 가인의 제사는 죽은 제사이고, 아벨의 제사는 산 제사이다.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기 제사를 받지 않으신데 대한 분노와, 동생 아벨에 대한 시기심으로 안색이 변했다.  안색이 변한 것은 마음속에 품은 분노와 동생을 미워함이 얼굴에까지 나타난 것이다.  이 때에 가인이 분노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찾아 회개할 기회로 알고 바로 섰더라면 복을 받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사를 왜 받지 않으셨는가를 자기 부모가 가르쳐 주신 말씀을 생각해 보거나 동생에게 물어 보았더라면 자신의 잘못됨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은 것을 보아 아벨이 드린 제사 방법대로 제사를 드렸더라면 하나님이 반드시 받으셨을 것이다.

가인이 이러한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분노하며 안색까지 변한 것은 그가 마귀의 충동을 받아 마귀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형으로서의 자존심과 교만에 사로잡혀 패망의 길로 걸어갔다.

 

三. 가인이 아벨을 죽임(6-8)

 

.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하나님께서 가인을 책망하셨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사랑하여 책망하신 것이다.  가인이 그 책망을 달게 받고 회개하였더라면 좋았을 뻔하였다.  에베소서 5:13에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고 했다.

 

.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낯을 들지 못하는 것은 선을 행치 않은 증거이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선에서 떠나면 죄와 마귀의 종이 된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마음 문에 엎드린다.  그러므로 성도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한다.  선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을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적극적으로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마음 문에 엎드려 있다가 기회를 타서 마음속에 들어와 범죄케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선한 마음을 가져야 되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하며, 선을 위해서 고난받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베드로전서 4:1에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라고 했다.  이것은 선을 행하기 위하여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죄가 조금 물러가고 선을 행할 때는 죄가 그쳐진다.  그러나 선을 행하지 않을 때 죄가 다시 들어오려고 한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죄가 좋아 보이고, 죄가 세력을 쓰고 죄 지을 소원이 네 속에 있다는 것이다.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제는 죄의 소원이 강해졌기 때문에 죄를 힘써 다스리지 않으면 죄를 범하게 되고, 죄의 종이 되게 된다.  죄를 다스리는 법은 죄와 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선을 행하면 죄가 점점 멀어진다.  이는 어두움을 물리치려면 어두움과 싸우지 말고 빛을 받아들이면 어두움이 저절로 물러가는 것과 같다.

 

. 4:8  가인의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이 하나님의 책망과 권고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나가므로  죄의 소원이 점점 커져서 아벨을 쳐죽이는 살인죄를 저질렀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가 점점 자라나서 다음 대(代)에 가서는 아들 가인이 의인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다.  의인이 악인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아벨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四. 하나님의 심판(9-15)

 

.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하신 것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죄를 뉘우치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찾아가신 것은 그 죄를 다스리시고, 범죄한 가인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기 위함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가인이 하나님께 거짓말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어주시려고 찾아가셨으나 가인은 오히려 거짓말을 하여 자기의 죄를 은폐시키고자 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이 하나님께 도리어 반발했다.  이것은 자기의 죄를 은폐하려고 반박(反駁)하는 언사이다.  이렇게 사람이 간악하여졌다.

 

. 4: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피가 소리내어 호소할 수 없다.  이 말씀은 야고보서5:4-6에 \"삯이 소리지르며\"하는 말과 같은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죄를 보시고 기억하시고 그 죄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을 하신다는 뜻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여서 피 흘린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기억하시어 그 피에 대해서 심판하시게 되었다.  아벨이 흘린 피는 의인의 피요 순교자의 피이다.  의로운자의 피와 순교자의 피를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고 기억하시고 그 피에 대하여 반드시 신원하신다.

히브리서 11:4에 아벨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오히려 말한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아벨이 순교 당했으나 산 제사를 드린 믿음, 생명있는 .믿음으로 오히려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아벨이 드린 제사가 참 제사이고 아벨의 믿음이 생명 있는 산 믿음이다.  그러한 제사를 하나님께서 열납하신다\"라고 세세토록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아벨의 제사가 산 제사요, 하나님께서 열납하는 제사요, 그 믿음이 참 믿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벨이 산 제사를 드린 까닭에 영혼이 자라나 천국에서 영광과 상급이 크고 그 의가 영원히 남아 있다.  또한, 가인이 지은 죄도 역시 없어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 되어서 반드시 심판하신다.  마태복음 23:35에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죄 값을 그 세대 사람에게 담당하도록 하신다.  이 역시 아벨의 피가 호소하는 결과이다.

 

. 4: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땅에서 피 흘린 죄 값을 땅에서 받게될 것을 가리킨다.  생명을 죽인 죄가 아주 큰 죄이다. 사람을 죽인 다음에는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다.  곧 그 생명을 다시 살릴 수 없다.

 

. 4: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사람이 범죄한즉 땅도 저주를 받고 사업에도 저주가 미친다.  그러므로 가인은 이리저리 떠돌며 유리하는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인과 같이 사람을 죽이는 자리에 서지 말고 언제나 사람을 살리는 자리에 서야 한다.  또한 실제 살인뿐만 아니라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다(요일3:15).  마태복음5:21-22에 예수께서 형제에게 노하고 \"라가\"라 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것은 살인한 죄와 같은 심판 받을 만한 죄라고 하였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든지 형제를 사랑하고 관용하고 용서해 주는 사람이 되어 항상 남을 살리는 자리에 서야겠다.  선으로써 악을 이기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 4:13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가인이 하나님의 벌을 두려워하였다.  죄는 두려움 없이 지으면서, 형벌은 두려워하는 것이 우매한 인간이다.  가인은 자기의 범한 죄에 대하여 회개하지 않고 그에 대한 형벌이 중하다고 불평을 하였다.  누구나 자기가 받는 고난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은 회개하지 않은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죄대로 다 벌하면 살 자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죄보다 가벼운 벌을 주시며 진노 중에도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다(합 3:2).

 

. 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사람이 범죄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그를 쫓아낸다.  그리하여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거친(저주받은)땅에서 살게 된다.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범죄한 가인에게 공포심이 들어왔다.  이와 같이 죄를 지으면 ① 징벌이 온다.  ②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환경을 다 빼앗기게 된다.  낙원이 쓸쓸한 곳으로 변하고 전에 좋던 곳이 찬바람 부는 비참한 곳이 된다.  ③ 공포심이 들어온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이 떠난 증거이다.  동생을 죽인 가인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죽이지나 아니할까 하고 항상 두려워하고 떨었다.  이것이 범죄자의 특징이다.

 

.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범죄한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가인에게 벌을 주셨으나 아주 멸망시키지 않으셨고. 또 다른 사람들이 가인을 죽이지 못하도록 해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  가인에게 표를 주사 무슨 표를 주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마 하나님이 용서해 주는 표, 하나님이 사랑해 주는 표를 이마에 나타나게 하여 가인을 만나서 얼굴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게 해주신 것 같다.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본문 내용으로 보아서는 부모인 아담과 하와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그 외에 어떤 사람이 또 있었기에 가인이 자기가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했는가?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 외에 또 있었던 것 같다.  성경의 내용은 구원 역사에 관계된 사건만 기록했으므로 구원 역사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여러 아들과 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제일 첫째 아들은 가인, 둘째 아들은 아벨이 분명하다.

 

五. 죄악의 성장(16-24)

 

. 4: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가인이 범죄 하였으므로 심판을 받아 하나님 앞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다.  은 \"유리한다\"는 뜻이다.  범죄자는 이렇게 안정되지 못하고 유리(流離)하는 생활을 할 것을 가리킨다.

 

. 4:17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범죄한 가인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떠났으므로 공포심이 들어왔다.  그러므로 그가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녹이라 했고, 또 성을 쌓고 그 성의 이름도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이라고 했다.  이것은 가인이 하나님의 보호 대신에 성의 보호를 받고 살려한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아들을 의지하고 살려고 한 것이다.  잠언 28:1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했다.  그에게는 그 아들이 우상이었다.  이 에녹은 승천한 에녹(5:24)이 아니다.

 

. 4:18-19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가인의 아들 에녹부터 라멕까지의 계대를 기록했는데, 라멕은 아담의 칠대손으로 아내 둘을 얻었다.  이것은 일부일처의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서 떠난 것이다.

 

. 4:20-21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라멕의 첫째 아내 아다에게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인 야발은 육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  둘째 아들인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  그 때부터 악기를 만들고 그 것을 연주하는 음악이 시작된 것이다.

 

. 4: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도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라멕의 둘째 아내인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는데, 그는 동철로 각종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다.  그 때부터 동과 철을 사용하였고, 기술이 발달하여 각종 날카로운 기계를 만든 것이다.  칼도 만들고, 화살도 만들고,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어 짐승도 잡고 싸움도 한 것 같다.  아담의 칠대손 라멕 때에 벌써 세상 문명이 많이 발달되었고 거기에 따라 죄도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 4:23-24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는다고 하나님께서 법을 제정해 주셨다.  라멕은 자기를 죽이는 자는 벌을 칠십 칠배나 받는다고 자기가 법을 정하였다.  이것은 공포심이 그만큼 커진 증거요 자기가 자기를 보호하려는 인본주의 수단이었다.  죄가 인간에게 들어온 뒤에 세대마다 점점 자라나서 그 세력이 강해지고 커지게 되었다.

 

六. 신앙의 계대를 주심(25-26)

 

. 4: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죄악이 증가하는 동시에 신앙의 씨도 자라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다시 셋이라 하는 아들을 주어서 아벨 대신에 신앙의 계대를 잇게 하였다.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이것은 신앙의 계대를 이을 씨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계통을 끊지 않고 반드시 계승자를 주어서 그 신앙을 계승케 하신다.

 

.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하나님께서 셋에게 에노스를 낳게 하여서 신앙의 계대가 계승해 내려가게 하셨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호와는 약속을 지켜 구원해 주시는 신이라는 뜻으로 에노스 때에 성도들이 많아져서 오실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고 구원의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일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유형(有形) 교회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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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5장

제 5 장  에 녹                  

 

(대  지)

一. 아담에서 야렛까지의 계도(1-20)

二. 에녹의 신앙(21-24)

三. 므두셀라에서 노아까지의 계보(25-32)

 

(본문 강해)

 

一.아담에서 야렛까지의 계보(1-20)

 

. 5:1-2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전장에서는 아담의 계보로써 가인의 후예를 기록하였고, 본 장에서는 셋의 후예를 기록하였다.

 

. 5:3  아담이 일백 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것은 아담의 타락된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말이다.  아담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1절), 타락한 후 아담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원상대로 있지 않았다.  그 후부터 인류는 아담의 타락한 형상을 유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될 것이다(엡4:24).

 

. 5:4-20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일백 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 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십 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 십 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 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은 육십 오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 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팔백 구십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야렛은 일백 육십 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육십 이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본문에는 아담으로부터 육대손까지 셋의 계보를 기록하였다.  이 계보 중에서 특별히 죽었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① 아담의 범죄한 죄 값으로 사망이 세상에 들어 왔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②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2:17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다.  ③ 죽지 않는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죽지 않는 길은 21-24절에 에녹이 믿음으로 죽지 않고 승천한 사실로 보여 주었다.

이 계보에 나타난 사람들이 보통 구백 세를 살았으나 세상에 죄악이 관영해 짐에 따라 인간의 수명이 점차 단축되었다.  특히 노아 시대 이후부터 현저히 단축되었다(11:10-26 참조).  앞으로 죄악이 없는 천년 왕국 시대에는 사람이 다시 장수하게 되어 천년 동안 죽지 않고 살게 되는데, 이것이 원상 회복이다.  요한계시록 20:4에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라고 했다(사 65:17-25 참조).

여기 기록한 자녀들 외에 다른 자녀들도 많이 있었으나 계보에는 신앙의 계대만을 기록한 것이므로 다른 자녀는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二. 에녹의 신앙(21-24)

 

. 5:21  에녹은 육십 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에녹은 셋의 계열로 아담의 칠대손이고, 라멕은 가인의 계열로서 아담 칠대손이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승천하였다.  라멕은 사람을 죽였고, 그 아들들은 세상으로 나가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고, 또 여러 가지 악기를 만들어서 연락(宴樂)을 즐기고, 싸움 받을 것을 두려워하였다(4:21- 24).

에녹과 라멕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신앙의 길로 나아간 자와 세상의 길로 나아간 자가 칠대 후에는 이렇게 큰 차이가 났다.  가인의 계통은 세상에서 세력을 잡았고, 지혜로와 기계와 악기를 발명하고 세상적으로 많이 발달했다.  누가복음 16:18에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했다.  그러나 셋의 계통은 세상적으로는 별로 내어놓을 것이 없었으나 믿음으로 살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일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서 학식이 많고 재주가 좋은 것만 귀히 여길 것이 아니라 독실한 믿음을 소유한 것이 큰복인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사는 것은 물질이나 세상 지식이나 명예나 출세에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와 동행하여 그 말씀을 순종하므로 영이 사는 데 있는 것이다.

 

.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담의 칠대손 에녹은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과 최후 심판까지 예언하였다.  유다서 1:14-15에 \"아담의 칠대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이미 에녹을 통해서 예언해 주신 것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리스도의 구속과 재림, 심판에 대한 진리를 계시해 주셨고, 에녹이 그 진리를 받아서 자기가 그 진리대로 순종하여 경건한 생활을 하였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이 진리를 전하는 생활을 하다가 승천하였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재림과 심판을 증거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 한다.  아담의 큰아들 가인의 계통은 죄악이 점점 장성하여 더 큰 죄를 지었고, 아담의 작은아들 셋의 계통은 믿음이 자라나 더 큰 신앙의 사람 에녹이 출생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녹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러므로 가정을 돌보느라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했는가?

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하면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를 힘입어 살았다.

②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대로 살았다.

③ 범사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렸다.

④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았다.

⑤ 하나님께서 상주실 것을 믿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동행하면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자녀가 많아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그러나 성도가 가정 생활에 얽매여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믿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신앙 생활도 안되고 그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게 된다.  하나님을 섬기며 그와 동행하는 것이 성도의 본업(本業)이고 세상일은 부업이다.  성도가 본업과 부업을 바꿔 놓으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  그리고 성도는 아무 것에나 사로잡히면 안 된다.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나 사업에 얽매이게 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 실패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첫째로 하고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범위 안에서 자기 책임을 다해 나가야 한다.

 

. 5:23-24  그가 삼백 육십 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삼백 육십 오 세를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하늘 나라로 옮기워 갔다.  히브리서11:5에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구약 시대에 죽지 아니하고 살아서 승천한 사람은 에녹과 엘리야뿐이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산채로 승천하게 했는가?

①모든 성도들도 나중에 부활 승천할 것을 표본으로 보여 준 것이다.

② 성도는 영생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③ 우리의 살 나라가 하늘 나라인 것을 보여 준 것이다(빌 3:20).

우리도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면 현세에서도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며 큰복을 받게 되고, 주님 재림하실 때에도 칭찬과 영광과 상급을 받게 된다.

 

三. 므두셀라에서 노아까지의 계보(25-32)

 

. 5:25-27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 구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므두셀라는 구백 육십 구 세를 향수하였는데, 그는 인류 역사상 최 장수자가 되었다.  이로써 천년 왕국 시대에는 사람들이 천년 동안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계 20:4, 사 65:17-25).  그는 그렇게 오래 세상에 살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나 구원 운동을 위해서 무슨 특별한 일을 했다는 기사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삼십 삼 세의 짧은 삶을 살았으나 하나님과 구원 사역을 위해 가장 큰 일을 하셨다.  우리도 세상에서 사는 날의 길고 짧음을 막론하고 하나님과 구원 운동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가자!

 

. 5:28-32  라멕은 일백 팔십 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 구십 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칠백 칠십 칠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노아는 아담의 십대손이다.  노아도 역시 에녹과 같이 가정 생활과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6:9).  노아가 세 아들을 낳아 자부를 데려온 후에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다(6:18).  에녹의 신앙은 노아에게로 계승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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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6장

제 6 장  탄 식

 

(대  지)

一. 범 죄(1-2)

二. 심판 결정(3-8)

三. 노아의 신앙과 그 시대의 죄악(9-13)

四. 방주 제조 명령(14-22)

 

(본문 강해)

 

一. 범 죄(1-2)

 

.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노아 홍수 전에는 사람들이 장수하였으므로 세상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되었다.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사람의 딸들이 났다는 뜻이다(2절).  사람의 딸들이란 가인의 계통에서 난 딸들을 말하는 동시에 불신자를 말한다.

 

.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하나님의 아들들 아벨의 신앙의 계통에 속한 셋의 후손들, 다시 말하면 믿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구약 시대에도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는 진리와 영감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다(요 1:12).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성도가 불신자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아내로 맞아 들였다.  이것은 믿음으로 하지 않고 육체의 소욕대로 행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외모가 아름다운 것보다 믿음으로 속사람의 만들어져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나아가는 것을 더 아름답게 보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믿음이 타락되어 육신중심으로 기울어져  외모만 보고 결혼하였다.  참 성도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성도의 신앙 인격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한다(시 16:3).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하지 않고, 외모의 아름다음을 보고, 안목의 정욕으로 아내를 취하고, 또한 세상의 것(물질이나 명예나 영광)을 욕심으로 취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성도가 결혼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신앙 중심으로 해야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들의 좋아하는 자로 아내를 삼은 것은 자기 중심이요, 육신 중심이다.  무엇이나 자기의 좋은 대로 욕심을 따라 취한 것은 큰 죄악이다.  로마서 8:5-7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분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했다.

성도가 영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가는 것은 사망의 길을 가는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다.  이것은 교회가 비진리를 용납하고 그와 타협한 것을 말한다.  세속화되고 타락한 교회는 육신적인 예능, 기술, 지식면에 치중하므로 그 방면에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진리를 세워 나가는 참 교회는 신앙적인 면에 치중하며 말씀만 따라간다.  개인이나 교회나 진리와 내적 생명의 역사가 있으면 외부적으로 보잘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신다.

 

二. 심판 결정(3-8)

 

.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으로 살지 않고 육체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이 떠나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되었다.  성도가 육신 중심으로 살면 범죄하기 마련이며 범죄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신다.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그때부터 120년 후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120수는 하나님의 만수이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면, 정한 기간이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도록 은혜 베푸시는 기간에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를 즉시 심판하시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회개할 수 있는 기간을 허락해 주시고 그 후에 회개하지 않는 자를 심판하신다.  이것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오래 참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벧후 3:8-9).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없는 줄로 알아 회개하지 않고 더욱 악을 행하기에 담대한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다.  전도서 8:11에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멸망할 뿐이다.  그러므로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에 즉시 회개하고 바로서는 자가 지혜로운 자요 복 있는 자이다.

 

. 6: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네피림(   )은 장부(丈夫),  또 힘센 자들을 의미한다.  이 단어 민수기 13:33에도 나온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낳은 자손이 네피림으로서 용사요 고대에 유명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말씀)를 받은 성도가 그 지혜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와 세상을 위해서 쓰면 외부적으로는 왕성해지고 발전이 잘된다.  그러나 그들의 날은 하나님의 세신 바 되고 심판은 정해져 있다.

 

.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육체로 기울어진 때부터 죄악은 세상에 급속히 퍼져서 죄가 세상에 관영해 졌으므로 사람들의 생각하는 것과 모든 계획하는 것이 자기 중심이요 욕심으로 하게 되었다.

 

.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사람들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한탄하셨다.  하나님께서 한탄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심이나 경영하심이 잘못되었으므로 후회하심이 아니고 사람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탄식이 크심을 이렇게 표현한 것뿐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하였다(민 23:19; 렘 4:28).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신 것을 잘못했다고 후회하신다면 전지전능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완전하시고 그 하시는 일도 완전하시기 때문에 절대로 후회함이 없으시다.  후회하셨다는 말로 표현한 것(삼상 15:11,35)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갑자기 변경되므로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이 후회하신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해가 뜬다\", \"해가 진다\"는 말과 같다.  사실은 해가 뜨거나 지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도는 것인데, 사람이 보기에 해가 떠오르므로 해가 뜬다고 하고 해가 서편으로 지므로 해가 진다고 한다.

 

. 6: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므로 하나님께서 사람과 육축과 공중의 새까지 심판하여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다.  사람의 죄 때문에 만물까지 다 심판 받게 되었다(롬 8:19-22 참조).  이것은 그 모든 짐승이나 새나 만물을 다 사람을 위하여 지었기 때문이다.

 

.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않고 의를 행하며 믿음을 지켰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신앙의 계통이 아담에게서 아벨과 셋에게 이어져 내려갔고 또 아담의 7대손인 에녹에게로 내려갔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으며, 또 아담의 10대손인 노아에게로 신앙의 계통이 내려갔다.

그 시대에 믿지 않는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믿음의 계통인 하나님의 아들들까지도 육신을 따라 정욕으로 기울어져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였다.  누가복음 17:27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라고 했다.  먹고 마신다는 것은 물질주의요,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것은 음란방탕주의를 가리킨다.  그러한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신앙의 빛을 남겨 두셔서 참된 신앙의 계대를 이어 가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인데, 노아는 그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三. 노아의 신앙과 그 시대의 죄악(9-13)

 

.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의인이요 로마서 3:10에 세상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는데, 노아는 어떻게 의인이 되고 완전한 자가 되었는가?

노아는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그 당시에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한 것이다.  욥도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다(욥 1:1).  욥도 역시 노아와 같이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 할 때에는 의인이요 완전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할 자는 세상에 하나도 없다.  욥도 속에 부패성을 지닌 죄인이었다.  그러므로 욥이 \"하나님께 회개하나이다\"라고 하였다(욥 42:6).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언제나 하나님을 모시고 그로 더불어 주장을 받는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영감으로 사는 생활을 해야한다.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생명이요 영생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육체대로 산 생활은 다 실패의 생활이요 멸망의 생활이다.

 

. 6:10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세 아들을 낳았다.  에녹도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에녹이 이렇게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가정 생활을 하면서도 육신 생활에 매이지 아니하고 힘써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들도 환경에 얽매이거나 빠지지 말고 그 환경을 이기면서 믿음의 달음박질을 잘 해야 한다.  배는 물이 있어야 하지만 그 물이 배 안에 들어오면 침몰하고 만다.  그와 같이 성도들이 세상에서 살고 있으나 세상의 물결이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된다.  오직 하나님만 따라가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고 믿는 일을 첫째로 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 6:11-12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노아 당시에 불의한 세력이 세상에 가득하여 땅에 강포가 충만케 되었다.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의 마음이 부패하여 행위가 어그러지고, 인간의 도덕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고 있었다.

 

.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 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라

강포가 땅에 가득 찬 것은 끝 날이 이른 증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하셨다.  사람이 마땅히 해야할 도리와 본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배로 하나님을 삼고 먹고 마시며, 음란 방탕하고 강포를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그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것을 노아에게 알게 해 주셨다.

 

四. 방주 제조 명령(14-22)

 

. 6: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구원할 자를 방주로써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계획하셨다.  방주는 그때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다.  이 구원의 방주는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온 세상이 심판 받아 멸망할 때에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길이 없다.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여러 종류의 금수(禽獸)를 갈라서 넣기 위함이었다.  역청 아스팔트와 같은 것이다.  이것을 배(船)에 칠한 것은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  역청으로 칠하여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처럼 성도들도 세상이 자기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의 구속을 날마다 덧입고 말씀대로 잘 무장해 나가야 한다.

방주를 잣나무로 지으라고 하셨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잣나무\"는 사철 푸른 나무로서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을 상징하고, 방주 짓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성도들이 신앙 인격을 만들어 나가는 것, 즉 그리스도 안에 살며 그리스도를 덧입어 나가는 일을 가리킨다(롬 13:14).  성도는 잣나무와 같이 사시 불변하는 생명의 말씀으로 자신의 영적 인격과 실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홍수\"는 대환난을 상징하는데, 그 환난에 쓰러지지 않고 그 환난을 발로 밟고 승리할 만한 신앙의 실력을 길러 나가야 한다.

※ 노아가 방주 지은 기간은 몇 년이나 걸렸을까?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신 때는 노아가 600세 되던 때였다(7:6,11; 8:13; 9:28-29). 또 그 때는 그의 아들들이 모두 장가들었던 때였다(6:18; 7:13).  5:32에 보면 노아가 500세 후에 세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다.  11:10에 노아의 장자 셈이 100세 되는 때는 홍수 후 2년이었다고 했으므로 홍수 때에는 셈이 98세였고 노아가 600세였으므로 노아가 셈을 502세에 낳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후에 둘째와 셋째 아들을 낳고  자부를 맞은 다음에 홍수 예고와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다(6:18).  그 때 노아의 나이는 약 530세쯤, 셈의 나이는 28세쯤 되었을 것으로 본다면 방주를 지은 연수는 대략 70년쯤 될 것 같다.  6:3에  사람들의 날이 120년이 되리라고 한 것은 그 시대에 사람들이 타락하의 육체주의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예고하신 때부터 120년 후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시고 아직 방주 지으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이었다. 그 때부터 몇 십 년이 지난 후에 노아에게 홍수가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다.  홍수가 나기 120년 전에는 노아가 480세였는데 그 때에는 장자 셈을 낳기 22년 전이다(5:32; 7:7,11).

 

. 6:15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방주의 크기는 길이가 300규빗, 폭이 50규빗, 높이가 30규빗이다.  일 규빗은 한자(尺) 반(45cm)쯤이다.  그러면 방주의 길이는 450척(약135m)이다.

 

. 6:16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상층으로 할지니라

방주의 창문은 꼭대기에서 한 규빗 내려와서 옆으로 내었다.  이것은 ① 물이 방주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요 ② 성도는 위만 쳐다보고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상·중·하 삼층으로 방주를 짓도록 한 것은 고등·중등·하등 동물들을 구별해서 넣기 위함인 것 같다.

 

. 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1다 죽으리라

인간의 죄로 인하여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홍수의 심판으로 사람뿐 아니라 땅의 생명 있는 육체를 다 멸절하시기로 작정하셨다.

 

.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노아에게는 구원의 언약을 세우시고 방주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셨다.  노아뿐 아니라 아내와 아들들과 자부들도 함께 들어가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되 성도에게는 언제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다.

 

. 6:19-20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 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노아를 통해서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들여보내어 생명을 보존케 하라고 하셨다.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종류대로 각각 둘씩 방주에 들어가게 하라고 하였다.

 

. 6:21-22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사람과 모든 육축이 먹을 식물을 방주에 저장하여 홍수 기간 동안 먹고살게 하셨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반드시 먹을 것을 주신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다 순종하는 것이 곧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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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7장

제 7 장 심 판

 

(대  지)

一. 칠일 후에 홍수가 날 것을 알려 주시고 방주로 들어가라 하심(1-4)

二. 노아의 가족과 짐승들이 방주에 들어감(5-9)

三. 홍수가 남(10-12)

四. 방주에 들어간 자들에 대한 설명(13-16)

五. 홍수의 창일함과 방주가 떠오름(17-20)

六. 홍수의 심판으로 방주 밖의 모든 생물이 멸망함(21-24)

 

(본문 강해)

 

一. 칠일 후에 홍수가 날 것을 알려 주시고 방주로 들어가라 하심(1-4)

 

. 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당시 노아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온 식구와 함께 방주에 들어가서 구원받도록 하셨다.

 

. 7:2-3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 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 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일곱씩 은 히브리어로  (쉬브아)이며 \"각각 일곱\"이라는 말이다.  즉 암 수 일곱씩이란 암컷과 수컷이 각각 일곱임을 말한다.  6장 19절에서는 암 수 한 쌍씩이라고 했고, 20절에서는 각기 둘씩이라고 했으나 쌍이라는 것이 둘을 의미하므로 차이가 없다.  일 곱씩이라고 한 것은 암 수 일곱이니까 열 네 마리이고 일곱 쌍이다.  보통 동물과 생물은 암컷과 수컷 두 마리씩 취하고 정결한 짐승은 암컷과 수컷 일곱 마리씩(일곱씩) 취하였다(7:2).

 

. 7:4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지금부터 칠일이면 7일 후에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지면을 멸하실 것을 예고하셨다.  아모스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 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무슨 큰 일을 행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 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예고하여 알게 해 주고 행하신다.  홍수에 대한 예고도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과 함께 약 70년 전에 명하셨고, 다시 7일 전에 홍수가 날 것을 알려 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을 성경에 예고해 놓으셨고 그 모든 징조를 보아 알게 하신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반드시 알게 하여 주신다.

 

二. 노아의 가족과 짐승들이 방주에 들어감(5-9)

 

. 7: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여호와의 명령을 즉시 순종하였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다.

 

. 7:6-7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홍수가 날 때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였다.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 아들과 세 자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홍수 전에 방주로 들어갔다.

 

. 7:8-9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 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모든 짐승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다.  짐승들과 새들이 방주에 들어가도록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 것이다.

 

三. 홍수가 남(10-12)

 

. 7:10-12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 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7일 후에 홍수가 나서 사십 주 사십 야를 하늘에서 물을 쏟아 붓는 것처럼 비가 내리고 땅에서는 샘이 터져 올라와서 온 세상이 다 물에 잠기게 되었다.

하늘의 창들이 열려 이 말은 비유니 창문을 열고 물을 붓는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려왔다는 뜻이다.

 

四. 방주에 들어간 자들에 대한 설명(13-16)

 

. 7:13-16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 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노아의 여덟 식구와 모든 짐승과 새들이 방주에 다 들어간 후 여호와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셨다.  이것은 구원의 문이 닫힌 것을 의미한다.  구원의 문이 열려 있을 때에 들어가지 않으면 때가 될 때 닫히고 만다.  여호와께서 문을 닫았으므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 해도 들어갈 수 없고,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해도 나올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홍수 심판을 피하기 위해 방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다 지나가 버렸다.  우리도 기회가 있을 때에 구원의 방주를 지어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에 방주 안에 들어가야 한다.  기회가 지나가면 방주를 지을 수도 없고 방주 안에 들어갈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열지 않으시면 그 문을 열 자가 없다(계 3:7).

우리는 대환난의 홍수가 나기 전에 부지런히 구원의 방주를 지어야 그 심판을 피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의 날이 덫과 같이 갑자기 임할 때에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매일 닥치는 시험 가운데서 연단을 잘 받고 진리와 영감으로 신앙 인격과 실력을 길러 나가야 한다.  우리 성도의 마음속에 세상의 물결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또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자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이 영적 실력을 기르고 자기의 신앙 인격을 잘 만든 자는 대환난이와도 능히 승리할 수 있다.

 

五. 홍수의 창일함과 방주가 떠오름(17-20)

 

. 7:17-20  홍수가 땅에 사십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비가 40일간 내리매 방주가 떠올랐고 천하의 산이 다 잠기고도 15규빗 높이까지 물이 올라갔다.  그때 방주밖에 있던 모든 짐승과 새는 다 죽었다.  \"노아 홍수 당시에 그 지역만 물에 잠겼는가?\" \"아니면 천하가 다 물에 잠겼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우리는 성경대로 천하가 다 잠겼다고 믿어야 한다.

 

六. 홍수의 심판으로 방주 밖의 모든 생물이 멸망함 (21-24)

 

. 7:21-23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홍수로 인하여 땅 위에서 코로 호흡하는 모든 생물이 다 죽었다.  홍수로 모든 산들이 물에 잠겼으므로 새들도 피할 곳이 없어 모두 죽고 땅 위의 모든 생물이 멸절되었다.  그러나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여덟 식구와 방주 안의 짐승들은 구원을 받았다.

 

. 7:24  물이 일백 오십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

노아 홍수 때 물이 150일 동안 땅에 창일하였다.  150일은 다섯 달이다.  요한계시록9:5에 다섯 달은 환난의 기간이라고 했다.  다섯 달 동안 땅이 물에 잠겨 있었고 땅 위의 모든 것을 다 심판하여 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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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8장

제 8 장  회  복

 

(대  지)

一. 물이 감함(1-5)

二.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놓아 줌(6-12)

三. 노아의 식구가 방주에서 나옴(13-19)

四. 노아가 제단을 쌓음(20-22)

 

(본문 강해)

 

一. 물이 감함(1-5)

 

.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식구들과 모든 짐승들을 살리기 위하여 물을 감하게 하셨다.

방주의 구조를 상·중·하 3층으로 만들었는데(6:16), 사람은 아마 맨 위층에 있었을 것 같다. 또한 까마귀도 정결한 짐승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에 필요했기 때문에 맨 위층에 있었을 것 같다(6,7절).  예수께서 가룟 유다 같은 사람도 복음 전도에 필요한 존재로 사용하셨다.  교회 안에 까마귀와 같은 교인이 혹 있더라도 관용하여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실 때에 쓰실 수 있게 해야 한다.

맨 밑층에는 뱀, 지렁이, 두더지, 개구리 같이 부정한 짐승들이 있었을 것 같다.  가운데층에는 상층과 하층에 들어가지 않은 것들이 들어갔을 것이다.

 

. 8:2-3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홍수가 난 지 150일이 지난 후에 물이 감하여지고 뭍이 드러났다.

 

. 8:4  칠월 곧 그 달 십 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홍수가 나기 시작하여 비가 40주야를 내리고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니 물이 땅에 창일한 기간은 5개월(150일) 동안이었다(7:24).

아라랏산은 현재의 어느 산인지 잘 알 수 없으나 배가 그 산 위에 머무른 것으로 보아 다른 꼭대기보다 높은 곳임을 증거한다.  노아의 신앙 방주는 모든 산꼭대기 위에 머물러 모든 산을 정복하였다.  우리의 신앙의 방주도 잘 지으면 모든 산들 위에서 모든 산(세상 열방과 모든 권세 )을 정복한다.

 

. 8:5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무른 날 7월 17일부터 74일을 지나 10월 1일에는 물이 더욱 많이 감하여 모든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다.

 

二.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놓아 줌(6-12)

 

. 8:6-7  사십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10월 1일부터 40일이 더 지난 후에 노아가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여 창문을 열고 제일 먼저 까마귀를 내어 보냈다.  까마귀는 비둘기보다 강하고 사체(死體)를 먹고 살 수 있는 새(鳥)이기 때문에 까마귀를 내어 보낸 것 같다.  그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고 사체들을 먹으며 날아 다녔을 것이다.  이와 같이 썩은 것을 좋아하는 자는 믿음의 방주로 돌아오지 않는다.

 

. 8:8-9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촉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노아가 두 번째로 비둘기를 내어 보냈는데, 온 지면에 물이 있어서 비둘기가 발붙일 곳이 없으므로 방주로 다시 돌아왔다.  산봉우리들과 육지가 어느 정도 드러났으나, 아직은 초목이 소성하지 못했고 시체들의 냄새가 풍기기 때문에 비둘기가 살 만한 곳을 찾지 못하였으므로 방주로 돌아왔다.

 

. 8:10-11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노아가 칠일 후에 비둘기를 다시 내어 보내니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다.  이것은 땅에 물이 감하여 져서 새 잎사귀가 나왔다는 표시이다.  심판으로 비참하여 진 땅 위에 새 잎이 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며 이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온 비둘기는 아름다웠다.  그로 인하여 노아와 그 식구들이 심히 기뻐하였다.

 

. 8:12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또 칠일을 지나서 비둘기를 내어 보내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땅 위에 비둘기가 먹고 살 만한 것이 생긴 증거이다.  이것은 사람이나 모든 짐승들도 살 수 있도록 물이 감해졌다는 증거이다.

 

 

三.  노아의 식구가 방주에서 나옴(13-19)

 

. 8:13-14  육백 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이월 이십 칠일에 땅이 말랐더라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0일에 방주에 들어간 후 7일만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 후 노아가 601세 되던 해 2월 27일에 방주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방주에 거한 날은 1년(360일) 17일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세상을 심판하셨으나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풀어주신 것이다.

 

. 8:15-19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실 때에 나왔고, 또 모든 짐승들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나오게 되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방주를 지었고, 명령에 의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명령을 순종하여 나왔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요, 명령대로 순종할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전개된다.  노아가 나온 세상은 새 하늘과 새 땅이었다.  이전 죄악의 세상은 심판 받아 멸망하였고 새로운 세계에는 구원받은 노아의 여덟 식구뿐이었다(벧전 3:20).

 

四. 노아가 제단을 쌓음(20-22)

 

. 8:20-21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여호와께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다.  이것은 노아가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이며, 하나님께 헌신과 충성하기를 다짐하는 제사이다.  정결한 짐승으로 변제를 드린 것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고 그를 상징하는 제사를 드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기뻐 받으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나오는 제사를 언제나 기뻐 받으신다.  우리도 날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세계에서 살며 구속의 피에 감격하여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선하다가 자라나면서 악해지는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악한 사람으로 태어난다(시 51:5).  아담의 자손은 날 때부터 악하고, 부패성이 가득하고, 죽은 영혼으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공로로 사죄를 받아야 되고, 물(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하여야 구원을 받는다.  인간의 악한 상태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시고 물로 생명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 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가 쉬지 않게 하겠다고 하셨다.  이는 홍수 심판 때에는 심고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상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께서 이 죄악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벧후 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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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9장

제 9 장  무 지 개

 

(대  지)

一. 득구자의 복(1-3)

二. 피를 귀중히 여길 것(4-7)

三. 언약을 세움(8-17)

四. 저주받은 자와 축복 받은 자(18-29)

 

(본문 강해)

 

一. 득구자의 복(1-3)

 

.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구원받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생명 있는 믿음의 후예들은 번성하고 창성하여 땅에 충만케 되어 나간다.  우리도 영이 자라나고 신앙 인격이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면 점점 창성하여 땅을 정복하게 된다.

 

. 9: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땅위의 모든 것을 주시고(고전 3:21-23 참조), 만물이 복종하고 두려워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 9: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하나님께서 홍수 후에 사람에게 산 동물을 식물로 주셨다.  노아 홍수 전에는 사람들이 채식을 했으나 홍수 후부터 육식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악해짐에 따라서 식물(食物)도 달라졌다.  에덴 동산에서는 과일만 먹고살았으나 범죄하여 쫓겨난 다음에는 농사하여 채소와 씨 맺는 열매를 먹도록 하셨고, 홍수 후에는 동물까지 식물(食物)로 주셨다.  사람들이 에덴 동산에서는 실과만 먹었어도 건강이 유지되었으나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는 곡식과 채소를 먹어야 건강이 유지되었고, 홍수 이후부터는 동물까지 식물로 먹어야 했다.  홍수 이후부터 사람의 마음이 더욱 악해졌고, 육체도 허약해 졌으므로 그때부터 사람의 수명이 짧아졌다.  그러므로 사람의 상태를 참작하여 하나님께서 짐승을 식물로 허락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영적 양식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신앙이 어렸을 때에는 젖(초보적 진리)을 먹다가 신앙이 자라나면 단단한 식물(깊은 진리)을 먹어야 하고, 좀더 자라나면 좀더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힘을 얻을 수 있다.  또 시대에 따라서 그 시대에 필요한 양식(진리)이 있다.  악한 세대에는 거기에 대항하여 이길 만한 진리를 먹어야 신앙이 유지된다.

초대 교회 때에는 율법주의에 대항하여 이신득구(以信得救)의 진리가 필요했고, 종교개혁 시대에는 천주교의 교권주의와 의식주의에 대항하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진리를 깨달아 그 진리 안에서 살므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단과 해방신학과 신비주의와 현실주의가 횡행하는 말세에는 거기에 대항할 만한 진리를 깨달아야 마귀의 궤계와 시험을 이기고 참 신앙을 지킬 수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마귀의 술수와 체계를 능가할 만한 진리를 붙들고 있어야 마귀를 이길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마귀의 힘과 실력을 능가 할 수 있는 영적 실력이 있어야 이긴다.  선지자 엘리야 때보다 엘리사 때는 세상이 더욱 악해졌기 때문에 갑절의 영감이 있어야만 그 시대를 이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했다.

 

二. 피를 귀중히 여길 것(4-7)

 

. 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짐승의 고기는 먹되 피채 먹지 말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이다(레 17:11,14, 신 12:23).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신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파괴하지 말라는 뜻이다.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그 생명을 먹고 마시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동물을 식물(食物: 먹을 것)로 주실 때에 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그 육체는 먹되 그 생명은 존중히 여기라는 것이며,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겨 살인하지 말라는 뜻이 있다.  또 장래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속해 주실 피를 존귀하게 여기며, 그 피에 생명이 있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 9:5-6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생명은 생명으로 갚으리라는 뜻이다.  남의 짐승을 죽인 자는 자기 짐승으로 그 주인에게 갚아 주어야 하며 사람을 죽인 자는 자기 생명으로 갚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다(마 16:26).

 

. 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번성의 복과 편만하는 복을 주셨다(1:28 참조).  마태복음 28:19-20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복음을 힘써 전파하는 교회는 창성하게 된다.

 

三. 언약을 세움(8-17)

 

. 8:8-1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지 않겠다고 언약을 세웠다.  이 언약에는 모든 짐승까지 포함시켰다.  이 언약은 사람의 협조를 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독자적으로 세우시고 독자적으로 실천하신다.  이 언약은 사랑의 언약이요 은혜의 언약이다.

이 언약은 홍수의 심판으로 다 멸망하여 두려워하는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참으로 안위와 큰 소망을 주었다.  그 때에는 이 언약을 믿고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이 필요하였다.  만일 이 은혜 언약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심판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안정된 마음으로 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언약을 주심으로 모든 사람이 믿음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9:12-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하나님께서 그 언약의 증표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셨다.  그 무지개는 홍수 후에 새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이전에 창조되어 있었던 것을 그때에 언약의 표준으로 사용하신 것뿐이다.  지금도 우리가 비 온 후에 구름 속에 무지개가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 세상을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하신 그 약속을 믿고 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류와 여러 가지 언약을 세우셨으니

첫째, 자연 계약이다.  춘하추동과 사시(四時)와 해(年)와 달과 날과 밤과 낮과 시간 이 모두 자연계약에 속한다.

둘째, 행위 계약이다.  이 계약은 인류의 대표인 아담과 세우신 언약인데 선악과를 두고 하신 것이다.  사람이 그 금단의 명령을 지키면 살고,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다(2:17).  아담은 이 계약을 어겼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계약대로 영혼을 즉시 죽이셨고, 육신도 후에 죽게 하셨다.

세째, 은혜 계약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과(3:15),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신 것과(3:21), 무지개 언약을 세우신 것과 그리스도가 와서 구속해 주시겠다는 약속은 다 은혜 계약이다.  또 모세의 율법도 행위 계약이 아니라 은혜 계약의 기초이다.  모세 율법은 사람이 죄를 깨닫게 해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역할을 한다(롬 3:20; 갈 3:24).

네째, 평화 계약이다.  이 계약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한 후에 세상을 심판하시고, 마귀를 무저갱에 가두고 천년 왕국을 건설할 것을 가리킨다(사 2:4; 65:17-25).

다섯째, 영원 계약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원한 하늘 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을 약속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계약을 세우시고 그 계약대로 실천하신다.  \"여호와\"라는 이름도 \"계약대로 구원하시는 신\"이라는 뜻이다.  천지는 없어지고 변할지언정 하나님의 언약은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닥쳐와도 그 언약의 말씀을 믿고 담대히 걸어갈 수 있다.

 

. 9:14-17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구름 속에 나타나는 무지개를 언약의 증거로 삼으신 것은

① 구름이 뜰 때마다 이 언약을 믿고 다시 홍수가 날까봐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② 사람이나 짐승이나 눈을 들어보면 잘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③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긍휼과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합 3:2).

하나님은 언제나 그때에 합당한 진리를 주시며 그 진리를 누구나 다 알 수 있게 하시며 그 말씀을 순종하여 구원받도록 하신다.  또 하나님께서 신령한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하여 보이는 물질을 이용하여 가르쳐 주시기도 한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 만드신 일과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서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신 일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 등도 다 신령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성도는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 버리고 힘있게 주의 말씀을 따라갈 수 있다.

 

四. 저주받은 자와 축복 받은 자(18-29)

 

. 9:18-19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홍수로 모든 사람이 멸절하였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세 아들들로 말미암아 후손이 땅에 퍼지기 시작했다.  장자 셈(황인종)의 자손은 동방에 거하였고, 셋째 아들 야벳(백인종)의 자손은 서방에 거하였고, 둘째 아들 함의 자손은 흑인종이 되었다.

 

. 9:20-23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홍수 후에 농사를 하였으며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자고 있었다.  이것은 노아의 큰 실수였다.  노아는 당시의 선지자로서 중대한 책임이 있는데, 술에 취하여 자신의 수치를 드러낸 것은 구원 운동에 큰 지장을 준 것이다.  그때에 둘째 아들 함이 벌거벗고 자는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형제들에게 가서 폭로하였다.  그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 쳐들어가서 아비의 하체를 덮었는데, 그 때까지 그들이 얼굴을 돌이켜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복 받을 일이다.  그들이 옷으로 아비의 하체를 덮은 것은 아버지 노아의 허물이 드러나면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는데 큰 손해가 되겠기 때문이요, 자기들도 보지 않은 것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게 되면 아버지를 통해서 은혜 받는데 손해가 나겠기 때문이다.

 

. 9:24-25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아버지가 깨어나서 그 사실을 알고 함을 저주했다.  부친이 자녀에 대해 저주하는 기도를 할 수 없으나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한 것이다.  성령의 감동과 인도대로 하는 기도가 참된 기도이다.  함이 왜 저주를 받게 되었는가?  함이 부친에 대하여 사실대로 말했으나 그것은 저주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이루어 나가는 구원운동에 큰 손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그를 통하여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중이었고 그러므로 노아는 당시의 선지자요 구원 운동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구원의 기관으로 사용하는 노아의 허물을 함이 드러냄으로 다른 사람들이 은혜 받는데 큰 손해를 주었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을 저주하게 하신 것이다.  누구나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손해를 주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저주하신다.  반대로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도움을 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

출애굽시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실 때에 아말렉이 길을 막고 통과하지 못하게 하며 싸우려고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천하에서 도말하여 기억함이 없게 하시겠다고 하셨고(출 17:14-16), 약 400년 후에 사울왕을 시켜서 아말렉을 진멸하셨다(삼상 15:2-3).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협력하고 돕는 자가 될지언정, 방해하고 손해 주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사실대로 하는 말이라 해도 구원 운동에 손해가 되면 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이라 하여 함처럼 교회에 손해 주는 말이나 일을 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고전 10:23).  잘못하고 망하는 자보다 잘하고 망하는 자가 많이 있다(교만하거나 구원 운동에 손해 주는 때).  함이 전체면을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생각지 않고, 사실대로 말하다가 그러한 죄를 범하게 되었다.  언제나 표준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 되도록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에게 비록 허물이 있더라도 진리만 바로 전하면 하나님이 그를 들어 사용하시고 구원운동을 해 나가시는 것이니 주의 사랑으로 덮어주고 가리워주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후손이 복 받는 길이다.  교역자의 잘못이나 죄를 발견하면 사랑하는 마음과 온유한 마음으로 직접 충고하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 맡기고 위해서 기도해 줄뿐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시고 처리하신다.  그러나 교역자가 성경에 어긋나는 교훈을 할 때는 용납지 말고 한 번, 두 번 충고하고 그래도 안 들으면 떠나야 한다.  진리에서 탈선된 교역자를 용납하는 것은 이세벨을 용납하는 것이며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계 2:20-23).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하나님께서 함을 저주함에 있어서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신 것은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폭로시킬 때에 그 아들 가나안과 같이 한 것 같다.  가나안이 먼저 보고 나와서 그 아버지 함에게 말하므로 함이 같이 들어가서 보고 나와서 폭로한 것 같다.  이 예언대로 함은 흑인으로서 대대손손이 종노릇하게 되었다.

 

. 9:26-27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아버지의 허물을 가리워 주고 아버지를 위해 좋은 일을 한 셈과 야벳에게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축복해 주셨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셈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셈의 후손에게서 나신다는 예언이다.  이 예언대로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택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그 후손에게서 그리스도가 나게 하셨다.  또 셈의 후손인 황인종에게서부터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야벳의 후손은 백인종이며 그들에게 하나님이 창성하는 복을 주셨다.  이 예언대로 백인종은 창성하여 셈의 장막(황인종의 나라)까지 퍼져서 살게 되었다.  야벳의 자손(백인종)이 셈의 후손(황인종)의 나라에까지 와서 황인종의 나라를 관할하고 혹은 통치하며 도와주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대륙도 본래는 인디언들(황인종)의 나라인데 백인종인 영국 사람들이 건너가 정복했기 때문에 야벳의 후예의 땅이 되었다.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의 아들 가나안 민족(흑인종)은 셈과 야벳의 종살이를 하고 살게 하셨다.  그것은 함과 가나안이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손해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예언대로 셈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족속을 멸하고 가나안땅을 차지하였다.  그때 살아남은 가나안 사람들은 종살이를 하였다.

 

. 9:28-29  홍수 후엔 노아가 삼백 오십 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구백 오십 세에 죽었더라

노아가 홍수 후에 350년을 더 살며 그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하나님을 섬기는 법과 하나님의 계약과 신앙에 대하여 많이 가르쳐 주고, 950세에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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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10장

제 10 장  계 보

 

(대  지)

一. 야벳의 계보(1-5)

二. 함의 계보(6-20)

三. 셈의 계보(21-32)

 

(본문 강해)

 

一. 야벳의 계보(1-5)

 

. 10:1-5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홍수 후에 노아의 세 아들의 자손이 온 땅에 퍼지게 되었다.  그 중에 야벳의 아들들은 창성하여 바닷가에 살았으며, 야벳의 손자 때에 가서는 여러 방언과 나라가 나뉘어졌다.  노아의 셋째 아들 야벳의 족보를 먼저 기록한 것은 노아가 예언한 대로(9:27) 야벳 자손이 제일 많이 창성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二. 함의 계보(6-20)

 

. 10:6-14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많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함의 족보를 보면 그 후손들 중에 니므롯 같은 영걸이 나왔다(8절).  니므롯( )의 뜻은 모반자, 대적자라는 뜻이며 이는 적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그는 아마 바벨탑 쌓는 주동자였을 것이다.  그는 사냥도 잘하였고(9절) 성도 많이 건축하였다(12절).  그가 세상에서 유명한 자가 되었고 그의 나라는 큰 나라가 되었으며 니느웨와 같은 큰 성도 건축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살던 나라 앗수르는(11절)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었고, 그들이 건설한 큰 성 니느웨는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시게 되었다(욘 1:2).    

 

. 10:15-20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의 조상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처하였더라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 이었더라

함의 자손 중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히위 족속 등은 가나안 땅에 살면서 하나님을 떠나 죄만 짓고 있었으므로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멸망시켰다(수 3:10 참조) .

함의 자손은 또 소돔 고모라에 살고 있었는데(19절) 그 성의 죄악이 하나님께 상달하였으므로 아브라함 때에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와 멸망되었다.  함의 자손들이 세상에서 유력하고 큰 성과 집을 잘 건축하고 사냥을 잘하며 생활이 부요하였으나 하나님 섬기는 신앙을 물려받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나갔기 때문에 그 후손들은 복을 받지 못했다.

 

三. 셈의 계보(21-32)

 

. 10:21-29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홀과 게델과 마스며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웽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목단의 아들이며

셈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협력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아를 통하여 그를 축복하였고(9:26) 그 후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계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셈의 10대 후손에는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이 태어났다(11:10-26 참조).  아브라함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 이삭과 그 손자 야곱이 나왔고 그 자손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게 되었다.  이것은 노아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9:26).

 

. 10:30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

그들이 동편 산에 거하였으며 점점 동쪽으로 이주하여 동양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시아인(황인종)들은 셈 족속이다.

 

. 10:31-32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족속과 방언과 나라가 나뉜 것은 다음 장(11장)의 바벨탑을 쌓은 때부터이다.  이것은 11장의 서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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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11장

제 11 장  바 벨 탑

 

(대  지)

一. 바벨탑을 쌓음(1-4)

二. 여호와의 심판(5-9)

三. 셈의 후예(10-26)

四. 데라의 후예(27-32)

 

(본문 강해)

 

一. 바벨탑을 쌓음(1-4)

 

. 11: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바벨탑을 쌓기 전까지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이었다.  구음은 언어(말)를 의미한다.  그 때는 노아 홍수 후 얼마 되지 않았고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인종이 퍼졌으므로 그 언어가 하나일 것은 확실하다.

 

. 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홍수가 끝날 때 방주가 머문 아라랏산 지방에서부터 그들은 점점 동진(東進)하여 살다가 넓고 비옥한 시날 평지를 만나서 거기에 정착하게 되었다.  시날 평지는 바벨론 지방이다.

 

. 11:3-4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사람들이 큰 성을 쌓고 하늘에까지 닿는 대를 쌓아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이것은 앞으로 홍수가 또 나더라도 대를 높이 쌓아 홍수의 화를 면하고 자기들의 이름도 내려고 한 것이다.

은 도시를 의미하고, 는 탑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성과 대를 쌓기 위하여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고 벽돌을 쌓기 위한 접착제로는 역청을 사용하였다.  역청은 아스팔트와 같은 물질이다.

그들이 바벨탑을 쌓은 것은 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었다.  하나님이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무지개를 두어 약속하셨으나 그 말씀을 믿지 않고 다시 홍수가 날까봐 두려워하였다.

② 인본주의이다.  \"자, 벽돌을 만들어\", \"자, .성과 대를 쌓아\",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들의 지혜와 힘으로 건설하려고 한 것은 분명히 인본주의이다.

③ 명예 영광주의이다.  이것은 \"우리 이름을 내고\"라는 말이 증명한다.  사람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할 터인데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한 것은 교만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죄이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정신과 역사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 없이 자기들의 지혜와 단결된 힘으로 문화와 문명을 건설하려고 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들의 생각대로 계획하고 처리하는 것과 인간의 공로와 이름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바벨탑을 쌓는 일이다.

바벨탑에는 정치적인 바벨탑과 과학적 바벨탑과 종교적 바벨탑이 있다.  첫째, 정치적(국가적) 바벨탑은 하나님을 떠나 정치를 잘하여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대전 후에 만든 국제연맹이나 U.N.(국제연합) 같은 것은 하나의 바벨탑이다.

둘째, 과학적 바벨탑은 과학 만능(科學 萬能)을 믿고 하나님보다 과학과 기술을 더 의지하여 과학의 힘으로 인간을 행복스럽게 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련에서 제일 처음 우주선을 우주에 쏘아 올렸을 때 그 안에 타고 있던 우주인 가가린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천당이 없다\"고 발표했었다.  이렇게 하나님보다 과학을 더 높이고 의지하는 것은 과학적 바벨탑이다.

세째, 종교적 바벨탑이란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 양심을 양보하고 종교적 연합과 단결로 큰 단체를 만들어 큰 연합 사업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단적 바벨탑이 있다.  교단적 바벨탑이란 진리를 양보하면서라도 교단만 크게 확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단은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 진리를 세워 나가는 일은 하지 않고 큰 교단 만드는 일에만 열중한다.  또 여러 교단이 진리를 양보하고 서로 연합하여 거대한 세력 단체를 만들어 큰 세력을 쓰는 것도 종교적 바벨탑이다.  신신학이나 그릇된 신비주의, 심지어 이단적인 단체까지 연합하여 세계적인 운동을 하는 W.C.C.와 같은 것이 종교적 바벨탑이다.

말세에는 모든 면에서 바벨탑을 높이 쌓는 시대가 되어 하나님과 그 말씀을 떠나 인본주의로 나아간다.  이러한 바벨탑을 높이 쌓아 정상(頂上)까지 올라가면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바벨론의 멸망이 기록되어 있다.  그 바벨론은 인본주의 세상을 가리킨다.  세상의 인본주의와 속화된 교회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을 때에 참된 신앙의 길을 걸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요한계시록 18:4에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였다.  성도가 그 안에 있으면 신앙을 지킬 수 없고 그 바벨론이 멸망할 때 같이 멸망하게 된다.  요한계시록 18:7에는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고 하였다.  바벨론에 있는 자들은 말하기를 \"나는 여황(女皇)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며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루 동안에 재앙들이 임하게 하여 모두 멸망시킨다(계 18:8).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 바벨론에서 나와 하나님과 그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二. 여호와의 심판(5-9)

 

. 11: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인생들이 성과 대를 높이 쌓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보시고 마침내 그들의 인본주의 바벨탑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강림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살펴보시고 심판하시기를 착수(着手)하셨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인본주의 바벨탑을 높이 쌓는 것만큼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떠나고 하나님 없이 살게 된다.  인본주의의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나님을 떠나고 진리를 불순종하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불가불 바벨탑을 심판하지 않을 수 없다.

 

. 11:6-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바벨탑 쌓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  그러므로, 언어가 소통되지 않아서 바벨탑 쌓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물을 가지고 오라\"하면 불을 가져오고, \"돌을 가지고 오라\"하면 나무를 가져오고, \"오라\"하면 가고, \"가라\"하면 오니 더 이상 바벨탑을 쌓을 수 없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의사 소통이 잘되어 바벨탑을 계속 쌓아 그것을 의지하고 살며 교만해져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멀리 떠나 향락주의로 기울어지고 자기들을 영화롭게 하다가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여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더 이상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하셨다.  이것이 세계 각 민족의 방언이 달라지게 된 근본 원인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는 자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신다.  오늘날 언어를 혼잡케 한다는 것은 서로 의사 소통이 안되고 의견이 서로 맞지 않고 충돌되는 것을 가리킨다.  의견이 엇갈리고 의사 소통이 안되고 충돌하여 단합이 되지 않으므로 연합된 일은 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때에는 바벨탑 쌓는 것을 중지하고 회개하여 겸손히 하나님께 돌아가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진리만 세워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세워 나가면서 창성하고 견고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커지는 것이다.

우리가 내려가서 삼위일체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 의논하신 것이다.  인간창조나 구원이나 심판에 대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공동으로 역사하신다.

 

. 11:8-9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언어가 서로 달라졌으므로 사람들이 같이 살수가 없게 되었고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었다.  바벨( )은 \"하나님의 성문\"이라는 뜻이다.

 

 

三. 셈의 후예(10-26)

 

. 11:10-26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 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 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셀라는 삼십 사 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 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벨은 삼십 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 삼십 년 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 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삼십 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 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홀은 이십 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 십 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셈의 후예를 기록함에 있어서 본 장에서는 특히 아브람(아브라함)조상들을 기록하였다.  10:21- 30에 있는 셈의 족보와 다른 점은 벨렉까지는 같으나 10장에서는 벨렉의 아우 욕단의 후예를 기록했고, 11장에서는 벨렉의 후예를 기록하여 아브람(아브라함)까지 기록한 점이다.  그러므로 본 장의 셈의 족보는 신앙 계통의 족보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며 셈의 후손이다.  이것은 노아가 셈의 하나님이라고 예언한 대로되었다.

노아 홍수 후에 사람들의 수명이 현저하게 짧아졌다.  특히 벨렉(18절) 이후에는 사람의 수명이 더욱 짧아졌다.  또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뉘어지고 족속들이 흩어졌다(10:25).  이렇게 수명이 짧아진 것은 홍수 후에 죄악이 세상에 많아졌기 때문이요, 그때부터 육식을 한데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四. 데라의 후예(27-32)

 

. 11:27-32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 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데라의 아들과 손자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아브람(아브라함)은 데라의 맏아들이며, 롯은 아브람의 아우 하란의 아들이다.  하란은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그 자부 사래와 그 손자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가던 중 하란에 거할 때에 데라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데라는 본래 우상을 섬겼으나(수 24:2-3), 가나안 땅에 가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명령한 그 말씀(12:1 참조)을 따라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데라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도중에 하란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는 우상 섬기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아브람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다가 죽었으니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신령한 가나안(하나님의 나라)에는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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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2장

제 12 장  소 명(召命)

 

(대  지)

一. 하나님의 명령과 축복 약속(1-3)

二.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감(4-8)

三. 아브람이 남방으로 옮겨 감(9-10)

四. 애굽에서의 실패(11-16)

五. 하나님의 구원(17-20)

 

(본문 강해)

 

一 . 하나님의 명령과 축복 약속(1-3)

 

.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본토는 갈대아 우르를 가리킨다(11:28참조).  본토를 떠나라는 뜻은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에서 떠나라는 것이다.  성도가 자기를 위하며 자기 중심으로 사는 생활을 떠나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생활로 돌이켜야 한다.  본토를 떠나는 것이 신앙 생활의 제일 첫째 단계이다.  본토를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없고 전진할 수 없다.

친척을 떠나라는 것은 인정을 떠나라는 뜻이다.  성도가 인정에 얽매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가 없다.  성도는 인정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생명길을 걸어 갈 수가 있다.

아비 집을 떠나 아브람의 아비 데라는 우상을 섬겼으므로(수 24:2) 아브람이 아비 집을 떠나야만 했다.  아비 집을 떠나라는 것은 세상 전통과 풍속 습관, 그리고 의지하고 살던 모든 것을 떠나라는 뜻이다(엡 2:2).  이것을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가 없다.  주님을 따라가는데 방해되는 세상의 권세나 돈이나 명예 영광을 떠나야만 성도가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아왔던 젊은 부자는 그 재물 때문에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했다(마 19:16-22).  예레미야 17:5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전에 자랑하던 종교적 전통과 의식을 다 해(害)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면서 오직 그리스도만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했다(빌 3:4-8).

성도는 아브람처럼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떠나야 할 것을 떠나지 않으면 마치 배가 닻을 내려놓고 노를 열심히 젓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힘써 노를 저어도 전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어놓으라고 말씀하실 때 내어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떠나라\"하실 때에 떠나지 않으면 아무리 나아가려고 애를 써도 나아가지 못한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목적지를 말씀해 주시지 않고 떠나가라고만 하셨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한 걸음씩 따라가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곳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어디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났다(히 11:8).  동으로 갈지, 서로 갈지, 길이 멀지, 가까울지도 모르고, 또 험한 길인지 평탄한 길인지도 전연 알지 못하고 하나님만 믿고 그 말씀만 따라갔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때에 이와 같이 나아가야 한다.  성도가 무조건 하나님만 믿고, 그 말씀만 따라가면 하나님이 생명길과 복된 자리로 인도해 주신다.

 

.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는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첫째,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하셨다.  아브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 갔으므로 하나님은 마침내 그 약속대로 아브람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고,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게 해 주셨다.  또 아브람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성도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 말씀만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 창성하게 하여 주시며, 그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사람이 많게 하여 주신다.

둘째, 이름을 창대케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름은 실상(實狀)과 인격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인격이 커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그 인격이 커지도록 축복하셔서 그 사람이 세계 만방에 뛰어나게 해 주신다(신 28:1-14).  이와 같이 커진 인격은 천국에 가서도 큰 자가 된다(마 5:19).

세째,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아브람 자체가 복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는 사람은 누구나 복 덩어리가 된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가는 곳에는 복이 있고, 그 사람을 영접하면 복을 영접하는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사도바울이 아시아로 가려고 애써도 예수님의 영이 허락지 않았고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건너오라고 바울에게 청하였다.  그때에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깨닫고 유럽으로 건너갔다.  그리하여 유럽 사람들이 큰복을 받게 되었다.  바울을 배척한 곳에는 복이 떠났고, 바울을 영접한 곳에는 복을 영접한 것이므로 복을 많이 받았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성도가 가는 곳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한다.

성도가 아브람처럼 본토·친척·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인도와 말씀을 따라가면 그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되어 황무지도 소성하게 되고 사해(死海)도 생명이 사는 곳이 된다(겔47:8).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가니 그 집에 복이 임했고, 감옥에 가니 그 감옥에 복이 임했다.  또 애굽 총리가 되니 애굽 전체가 복을 받았다.  그러므로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나아가므로 복 자체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아브람은 복 자체이다.  그러므로 아브람을 영접한 자는 복을 영접하는 것이 되므로 복을 받게 되고, 아브람을 저주한 자는 복을 저주했으므로 저주를 받게 된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따라가는 생명 있는 성도 한 사람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된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복음을 전파하면 다른 사람도 그 믿음을 본받아 말씀을 따라가게 되니 복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바른 복음의 길을 걸어가며 전하는 것은 많은 사람을 복 받게 하는 길이다.

 

二.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감(4-8)

 

. 12:4-5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에 그의 조카 롯이 아브람의 신앙을 본받아 따라갔다.  그러므로 롯도 복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믿음을 지키는 성도를 따라가면 그 사람도 복을 받는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따라감으로 복을 받았고,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 감으로 복을 받았다.  또 디모데는 바울을 따라 감으로 복을 받았다.  이와 같이 말씀대로 바른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신앙 노선에 동참하는 자는 반드시 복을 받게 된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 칠십 오 세였다.  에녹은 육십 오 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는 나이 많다고 핑계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즉시로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성도가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는 것은 연령이 많고 적음에 관계가 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즉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아브람은 지시하시는 가나안 땅으로 그 아내와 조카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들어갔다.

 

. 12: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세겜 땅 은 가나안 땅의 중심지로서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며 예루살렘 북방 48km 지점에 있다.  지금은 나브루스(Nablus)라고 불려지고 있다.  모레 상수리나무 모레는 마므레(13:18)와 같이 지방 이름인 듯하다.  그 지방에 상수리나무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또 그 땅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사람이 살고 있었으므로 아브람이 정착하기에는 여러 면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가나안 땅을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람이 그 약속의 말씀을 받고 너무 감사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 12: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브람이 세겜에서 동편 산으로 옮겨 그곳에 장막을 치고,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 드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처럼 아브람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우상이 가득한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원주민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각오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담대히 부르면서 신앙을 지켰으므로,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보호해 주셨고 큰복을 내려 주셨다.

 

三. 아브람이 남방으로 옮겨 감(9-10)

 

. 12:9-10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람이 그 땅에 기근이 심하므로 애굽을 향하여 점점 남방으로 내려갔다.  이것은 아브람이 신앙적으로 실수한 것이다.  마치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흉년으로 인하여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간 것과 같다(룻 1:1-2).

 

四. 애굽에서의 실패(11-16)

 

. 12:11-13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람이 생각하기를 애굽에 들어가면 애굽인이 사래의 미모를 탐내어 자기를 죽이고 사래를 빼앗아 가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그 아내 사래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고 했다.  물론 사래가 아브람의 이복누이(20:12)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내라고 말하지 않고 누이라고 한 것은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자기 동창생과 결혼한 자가 그를 자기 아내라고 하지 않고 동창생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또한 자기 사돈과 결혼한 후에 아내라고 하지 않고 사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아브람이 스스로 빠질 함정을 만들어 놓은 것과 같다.  아브람은 이때 신앙이 잠들어서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세례 요한도 일시적으로 신앙의 잠이 들어서 예수께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하고 물었다(마 11:2-3).  엘리야도 한 때 신앙의 잠이 들어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하였다(왕상 19:4).  이와 같이 신실한 성도라도 잠깐 동안 신앙의 잠이 드는 경우가 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사래를 자기 아내라고 사실대로 말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지켜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 아내를 빼앗기지 않고 자기도 생명의 위협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믿지 않고 죽을까봐 두려워하여 인간의 수단과 꾀를 써서 아내를 누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람을 지켜 주시지 않았고 마침내 애굽사람에게 사래를 빼앗기게 된 것이다.

 

. 12:14-15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아브람이 애굽에 들어가매 애굽 사람들이 사래의 아름다움을 보고 바로 앞에 사래의 미모를 칭찬하였으므로 바로가 사래를 아브람의 누이인 줄 알고 거리낌없이 자기 아내로 취하려고 궁으로 불러들였다.

 

. 12:16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아브람이 사래를 누이라고 했기 때문에 바로가 사래를 취하고 그 오라비 되는 아브람에게 예물로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주었다.  아브람이 아내를 누이라고 하여 물질을 많이 얻고, 생명도 보존하고, 후한 대접을 잘 받았으나 자기 아내를 빼앗긴 대가로 받은 것이 되었다.

 

五. 하나님의 구원(17-20)

 

. 12: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아브람이 아내를 바로에게 빼앗기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밤새도록 회개하며 부르짖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지 않고 죽을까봐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여 그 죄 값으로 아내를 빼앗긴 것을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하며 처음 신앙을 다시 찾았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래를 건져내려고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 12:18-19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하나님께 재앙을 받은 바로가 크게 놀라서 아브람을 불러다가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네 아내를 내가 취하게 하여 재앙을 당하게 하였느냐\"고 하면서 책망하였다.  이것을 보면 아브람이 처음부터 사래를 자기 아내라고 했더라면 바로가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가 받은 재앙이 어떤 재앙인지 알 수 없으나 바로는 자기와 자기 집안에 돌연한 큰 재앙이 임하였으므로 그것이 사래 때문인 줄 알았고, 또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임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래와 동침하지 않고 아브람에게 돌려보냈다.

 

. 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바로가 사람들에게 명하여 사래는 아브람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람에게 속한 모든 소유를 보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함께 하심을 바로가 알고 아브람의 소유를 빼앗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그 지방에서 나가도록 하였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와 모든 소유를 가지고 애굽에서 무사히 나왔으나 영적인 면에는 많은 손해를 보았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타락의 길을 걸었고, 인격적인 면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우상을 섬기는 이방 왕에게 책망을 받았다.  또 도덕적인 면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큰 부덕을 끼쳤다.  아브람의 아내가 일시적 이나마 바로의 아내가 되었던 것이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믿음으로 하지 않고 인간의 수단을 쓰면 이와 같이 손해가 막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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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3장

제 13 장  분 리

 

(대  지)

一. 아브람이 풍부하여짐(1-4)

二. 분 쟁(5-7)

三. 분 리(8-13)

四.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복 주심(14-18)

 

(본문 강해)

 

一. 아브람이 풍부하여 짐(1-4)

 

. 13:1-3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가서 신앙적으로는 큰 실패를 하였으나(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한 것과 아내를 빼앗겼던 일), 재물은 많이 얻었다.  애굽에서 그 모든 것을 다 빼앗길 뻔하였으나(12:20),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애굽에서 무사히 나오게 되었다.

남방으로 유다 남방을 가리킨다.  애굽에서 유다 남방으로 올라갔다가 거기서 다시 벧엘과 아이 사이로 옮겨갔다.

 

. 13:4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은 아브람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처음 제단을 쌓은 곳이다(12:8).  아브람이 그곳에 다시 찾아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그가 애굽에 내려가 신앙적으로 실패하고 처음 신앙을 잃어 버렸으므로 그 처음 신앙을 사모하여 다시 찾으려고 간 것 같다.  이것은 후에 야곱이 밧단아람의 타락 생활을 만회하려고 벧엘로 올라간 것과 같다.

 

二. 분 쟁(5-7)

 

. 13:5-7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룻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의 양과 소가 많고, 그의 조카 롯의 소유도 점점 많아져서 그 땅이 좁아 함께 살기에 불편하였다.  그리하여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게 되었다.  이것은 숙질간에 물질문제로 생긴 분쟁으로 아브람이 이 문제를 잘 처리하지 않으면 그 땅에 거하는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염려가 있다.  그래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물질 문제를 바르게 처리하려고 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 모든 물질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도간에도 물질 문제로 시험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언제나 물질에는 마귀가 따라다니는 줄 알고 바로 처리해야 한다.  아브람처럼 우리도 물질을 양보하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생명과 존귀와 더 많은 물질로 축복해 주신다.  그러나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는 한 물질 문제를 무조건 양보하지 말고 공정(公正)하게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三. 분 리(8-13)

 

. 13:8-9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이 조카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한 것은 최대의 양보이다.  거주지의 선택에 있어서 어느 면으로 보아도 삼촌인 아브람에게 우선권이 있다.  왜냐하면 롯은 아브람을 따라온 입장이고, 또 아브람을 따라와서 많은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조카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아브람 자신은 좋은 곳이든 나쁜 곳이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아브람이 물질을 의지하여 살지 않고 하나님으로 생명과 재산을 삼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사람의 사는 것이 물질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고 믿었다.  아무리 박토(薄土)에 가도 하나님만 같이 하시면 하나님이 반드시 창성케 해 주실 것을 믿었다.

둘째,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끼리 물질(땅) 문제로 서로 싸우고 다툰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이방 사람들 앞에 덕이 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은혜스럽게 해결하기 위하여 물질을 양보하고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셋째, 아브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생명으로 삼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초막이나, 궁궐이나, 산골이나, 빈들이나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였다.  아브람이 물질 문제로 롯과 다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세계를 잃어버리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줄로 알아 롯에게 다 양보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마 6:33).

마태복음 5:39-42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물질(옷)을 빼앗기고, 인격적인 모욕(뺨을 맞음)을 당하고, 인권 유린(강제로 5리를 끌리어 감)을 당할지언정 주님과 교통하는 산 신앙을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생명 있는 신앙이 중요한 것이며 외부적인 물질 문제나 인격 문제, 인권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과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적 성전을 지어 나가는 일과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일이다.  이것들을 빼앗기지 않으면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이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영적 성결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역사가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물질로 사는 것보다 몇 만 배나 더 중요한 것이다.  성도에게 생명의 역사만 있으면 결국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은사를 주시고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

 

. 13:10-11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이 의리를 저버리고 욕심으로 기울여져 좋은 땅인 소돔, 고모라 성과 그 부근 요단 들을 택했다.  삼촌이 마땅히 먼저 좋은 곳을 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먼저 좋은 곳을 택하여 갔다.  롯은 한 손에는 하나님을 붙들고 또한 손에는 세상을 붙들고 살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땅이 기름지고 물이 넉넉한 요단을 택하여 그곳으로 간 것이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소돔 고모라가 망하기 전에는 에덴 동산과 같이 즉, 지상 낙원과 같이 모든 자연적 조건이 좋았다.  애굽 땅과 같았더라 비옥한 옥토였다는 뜻이다.  애굽 땅은 나일강의 혜택을 받는 옥토였다.

롯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대로 사는 것은 둘째이었고, 세상이 첫째이었다.  롯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곳으로 갔고, 그곳에 가서도 하나님을 섬기며 경건한 생활을 하였다(벧후 2:6-8).  이렇게 롯은 세상도 붙잡고 하나님도 붙잡겠다는 신앙 노선이다.  그러나 아브람의 신앙 노선은 하나님 한 분만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는 것이다.

 

. 13:12-13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가나안 땅은 소돔, 고모라에 비하면 박토(薄土)이지만 그곳에 거하기로 작정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12:6-7)이기 때문이다.  그 땅은 산과 골짜기로 된 땅이요 비가 내리면 다 흡수하는 땅이므로(신 11:11) 곡식도 안되고 풀도 무성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약속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고를 믿고 거기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며 살려고 하였다.  반면에 롯은 세상의 것을 좀더 많이 얻기 위하여 장막을 옮겨 죄악의 도시 소돔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四.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복 주심(14-18)

 

. 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람과 롯이 서로 떨어져 살게 되었다.  롯은 욕심을 따라 갔고 아브람은 땅의 것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말씀만 따라 갔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의 하나님이시요, 이러한 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가나안 땅을 아브람과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네가 바라보는(소망하는) 진리의 세계를 다 네게 주겠다\"는 것이다.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진리를 넓고 깊고 멀리까지 깨달아 소망하면 그것을 다 네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리를 깊이 깨닫고, 진리의 세계를 점점 확장시켜 나가고, 그 진리의 세계를 바라보고 소망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다 이루어 주신다.  우리가 진리를 많이 배우고, 진리의 세계를 많이 발견하고, 그 진리를 확신하고, 소망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이 실상이 되게 해 주신다.  히브리서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였다.  이는 바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져서 실상이 된다는 뜻이다.

 

. 13: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땅의 티끌 같게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 창성케 해 주시겠다는 뜻이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터나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따라가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자에게는 그 후손이 창성하도록 축복해 주신다.  이것은 또한 아브람의 후손 가운데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많게 될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 13: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처음에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아야 하고(14,15절), 그 다음에는 그 땅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종과 횡으로 행해야 한다.  그리하여야 그 약속의 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가 있다.  바라만 보고 걸어가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네가 깨달은 진리, 네가 소망하는 진리를 종과 횡으로 행하면 그 안에 포함한 모든 은혜와 복을 다 네게 주겠다\"는 뜻이다.

종과 휭 종(從)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윤리(倫理)요, 횡(橫)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리(倫理)이다.  즉 하나님께 대해서 바로 하고, 사람에게 대하여 바로 하라는 것이다.  십계명도 이 두 가지 강령(綱領)으로 되어 있다.  우리도 말씀의 세계를 바라보고 살아야 되고, 그 말씀대로 행하여야 그 복을 받는다.  날마다 성경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소망하며 그 진리를 몸으로 행해야 자기의 것이 되고, 기업이 되고, 후손들까지 그 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붙들고 나아가는 롯에게는 이러한 복을 주시지 않았다.  아브람의 신앙 노선은 힘들고 고난의 길이지만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길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다.

롯은 소돔 고모라를 바라보고 살았으나 아브람은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롯은 땅위의 것을 소망하였으나 아브람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고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하면서 살았다.  로마서 5:3-4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다.

 

.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귀중하고 큰 약속을 하나님께 받은 아브람은 그 말씀의 세계만 바라보면서 즐거움으로 살았고, 세상에서는 장막 생활을 하며 나그네 생활을 하였다.  아브람이 가나안 헤브론 골짜기로 가서 장막을 치고 마므레 수풀에 이르러 제단을 쌓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아브람은 언제나 여호와를 섬기는 일이 본업이요, 하늘 나라가 본향이었으며 세상일은 부업이었고 세상 생활은 나그네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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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4장

제 14 장  멜기세덱

 

(대  지)

一. 전쟁이 일어남(1-9)

二. 롯과 그 재물이 노략 당함(10-12)

三. 아브람이 롯을 구출함(13-16)

四. 제사장의 축복과 십일조 드림(17-20)

五. 아브람이 물품을 받지 않음(21-24)

 

(본문 강해)

 

一. 전쟁이 일어남(1-9)

 

. 14:1-2  당일에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과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이 소돔왕 베라와 고모라왕 비르사와 아드마왕시납과 스보임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왕과 싸우니라

롯이 사는 소돔 고모라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 전쟁은 엘람왕 그돌라오멜을 중심한 네 왕의 연합군이 쳐들어오므로 일어났다.  그 네 왕의 연합군은 시날왕과 엘라살왕과 엘람왕과 고임왕의 군대들이었다.  그때 소돔왕을 중심으로 다섯 왕이 연합군을 편성하여 그들과 싸웠다.  그 다섯 왕은 소돔왕, 고모라왕, 아드마왕, 스보임왕, 벨라왕(소알왕)의 군대들이었다.  시날은 바벨론을 가리킨다.  엘라살은 유브라데 강 동쪽에 있다.  엘람은 바사 지방에 있다.

 

. 14:3-4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 염해에 모였더라 이들이 십 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 삼 년에 배반한지라

이 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소돔왕을 중심한 다섯 왕들이 그돌라오멜을 12년 동안 섬기다가 13년에 배반했기 때문이었다.  자기 나라에 속해 있던 나라가 배반할 때, 전쟁하는 것은 상례이다.  그들이 골짜기에서 싸웠다.  

싯딤 골짜기는 소돔, 고모라의 근처이며 지금의 염해이다.  소돔과 고모라도 멸망하여 염해가 되었다.

 

. 14:5-7   제 십 사 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은 르바 족속을 가르나임에서 치고, 수스 족속을 함에서 쳐서 이기고 엠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치고 호리 족속을 세일에서 쳐서 엘바란까지 이르렀다.  그돌라오멜과 그와 연합한 왕들이 계속하여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쳐서 모두 정복하였다.

 

. 14:8-9  소돔왕과 고모라왕과 아드마왕과 스보임왕과 벨라 곧 소알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접전하였으니 곧 그 다섯 왕이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과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 네 왕과 교전하였더라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이 싯딤 골짜기에 이르매 소돔왕의 5대 연합군이 그곳에서 싸우게 되었다.  이 전쟁은 삼촌 아브람의 은혜를 배반하교 물질을 탐하여 소돔, 고모라로 간 롯을 징계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전쟁이다.

롯이 한편으로는 세상을 붙잡고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붙들고 나아가 소돔성에서 재물도 많이 얻었고, 또 성문에 앉는 높은 벼슬도 얻었으나(19:1)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만 했다.

 

二. 롯과 그 재물이 노략 당함(10-12)

 

. 14: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왕과 고모라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두 연합군이 싸운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았으며, 소돔과 고모라왕이 그 전쟁에 패하여 도망갈 때에 많은 군사들이 역청 구덩이에 빠지고 일부는 산으로 도망하였다.  역청은 지금의 아스팔트와 같은 물질이다.

 

. 14:11-12  네 왕이 소들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이 전쟁에서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이 승리하여 소돔과 고모라와 모든 재물과 양식을 노략해 갔고, 또 소돔에 사는 아브람의 조카 롯과 그 가족도 사로잡아 갔으며 그의 재물까지 빼앗아 갔다.  롯이 삼촌 아브람의 은혜를 배반하고 세상 물질을 따라갔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그 동안 모았던 많은 재물을 다 빼앗기고, 자기 자신과 아내와 자식들까지 포로의 신세가 되어 끌려갔다.  롯이 잘 살아보려고 소돔 고모라에 갔으나 결과는 이렇게 비참한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은 롯의 신앙노선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성도가 한 손에는 하나님을 붙들고, 또 한 손에는 세상 물질을 붙들고 살려고 하면 롯과 같이 된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세상의 것을 아무리 많이 쌓아 놓았다 할지라도 순식간에 없어지고 만다(눅 12:20).

 

三. 아브람이 롯을 구출함(13-16)

 

. 14:13-14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 십 팔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찾아가서

아브람이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시킨 자 318명을 거느리고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을 추격했다.  아브람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롯을 구하러 나간 이유는 무엇인가?

① 롯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롯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이므로 그가 어려운 환난에 처해 있을 때 구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에 처해 있을 때 도와주고 위급할 때 건져 주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② 롯이 아브람의 혈육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이며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이다(딤전 5:8).  

연습한 자 삼백 십 팔인은 아브람이 양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평소에 연습시켜 두었던 사람들이다.

 

. 14:15-16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찾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더라

가신(家臣)은 히브리 원어로  (예벧)이며 \"노예\", \"종\"이라는 뜻이다.  아브람이 집에서 길러온 종 318명을 거느리고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을 좇아가서 파,(破)했다.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은 소돔 고모라의 5대 연합국을 격파한 강한 군대였으나, 아브람이 318명의 적은 숫자로 승리하였다.  아브람의 가신들은 군대가 아니며 양떼와 재산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담대히 싸우러 나갔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하고 믿음으로 나아간 것과 같다(삼상 17:45).  또 그 318명은 기드온 300명 용사들처럼 모두 신앙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하나님의 종으로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복음 운동을 하시기 때문에 아브람의 종들이 아브람을 위하여 생명을 내어놓고 싸우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깨닫고 충성되어 헌신하였다.  이 전쟁은 여호와를 위한 전쟁이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전쟁이므로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나아갔다.  아브람이 318명을 이끌고 가서 나누어 매복해 있다가 밤을 타서 갑자기 치니 그들이 혼비백산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때 아브람은 그들의 빼앗아 갔던 재물과 롯과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다.  우리도 구원 운동을 위해 아브람과 같이 생명을 내어놓고 나아가 마귀와 싸워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다 잡혀가고 망하게 되었는데 자기만 평안히 있으면 어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자기의 생명을 다 내어놓고 나가서 힘써 싸워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는 일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결코 평안하고 쉬운 것이 아니다.  때로는 원수의 적진을 향해 생명을 내어놓고 나아가야 하고, 적전 상륙을 하여 결사적으로 싸워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요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엡 6:12).

 

四. 제사장의 축복과 십일조 드림(17-20)

 

. 14: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아브람이 그돌라오멜의 사대 연합군을 격파하고 돌아올 때에 숨어 있던 소돔왕이 기뻐하며 나와서 영접하였다.

 

. 14:18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아브람이 승전하고 돌아올 때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나타나 피곤한 아브람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고 축복해 주었다.  멜기세덱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이때부터 약 1,000년 후에 다윗이 멜기세덱에 대해 기록하였고(시110:4), 약 2,000년 후에는 사도 바울이 히브리서에 기록하였다(히 6:20, 7:1-3).  살렘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데, 그 뜻은 \"평화\", \"평강\"이다.  멜기는 \"왕\"이라는 뜻이며 세덱은 \"의(義)\"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의의 왕\" 또는 \"평강의 왕\"이다.  멜기세덱은 영원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시다(마 21:5; 슥 9:9; 히 7:2).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히브리서 강해 PP. 108-123 참조.

떡과 포도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오셔서 당신의 살과 피를 모든 믿는 자에게 신령한 양식과 음료로 주실 것을 가리킨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항상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 경외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이시다(시 110:4).

 

. 14: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멜기세덱이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람에게 축복해 주었다.  이것을 보면 멜기세덱은 아브람보다 높은 분이시다(히 7:7).  믿음으로 승리할 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

 

. 14:20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람 자신의 힘으로 그 전쟁을 이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셨다.  그러므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린 것이다.  우리도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줄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드려야 한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람이 전리품 중에서 십분 일(십일조)을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바쳤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십일조를 바친 기사이다.  그러나 십일조의 근원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2:9 강해 참조).  십일조의 정신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말라기 3:8-9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했다.

 

五. 아브람이 물품을 받지 않음(21-24)

 

. 14:21-23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아브람이 소돔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소돔왕이 그돌라오멜의 사대(四大) 연합군과 싸우다가 패하여 소돔성의 재산과 백성을 다 빼앗기고 도망하여 숨어 있다가 아브람이 가서 싸워 이기고 그 모든 것을 도로 찾아 올 때에 소돔왕이 기뻐하여 아브람을 영접하고,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고 했다.  소돔왕으로서는 처자식과 백성만 찾아도 대 만족이었다.  또 아브람으로서는 자기가 승전하고 전리품으로 얻은 것이며 더구나 소돔왕이 허락했으므로 그것을 다 취해도 아무 잘못이 없다.  소돔성의 재산이 대단히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느 사람이라면 그 때에 지체하지 않고 그 재물을 취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실오라기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지금까지 아브람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아 왔는데 소돔성의 재산을 취하게 되면 하나님이 아브람을 축복해 주신 것이 가려지고, 소돔왕의 재물로 아브람이 치부(致富)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둘째, 아브람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을 상급으로 믿고 살아왔다(15:1).  그러한데 아브람이 소돔 고모라의 재산을 취하면 아브람이 물질을 의지하고 사는 자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브람이 그 많은 재산을 취하지 않았다.  셋째, 아브람은 타인의 불행을 이용하여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넷째, 아브람이 하나님을 세상의 모든 재물보다 더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다섯째, 아브람이 싸운 것은 물질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고 성도(롯)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 생명을 구원하는데 있으며 물질이나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섯째, 소들의 재산 때문에 아브람이 부요하게 되었다는 인상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만일 아브람이 소돔의 재산을 취하면 소돔왕이 말하기를 \'내가 아브람을 치부케 했다\'고 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이 생각하여 그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요하게 된 것이 가려진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소돔왕이 주는 물품을 하나도취 하지 않았다.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않는 것은 아무리 좋아도 취하지 말고 아무리 많이 주어도 받지 말아야 한다.  또 하나님의 역사가 가려지는 것들은 거저 주어도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아브람이 승리하였을 때에 넓은 길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시험이었으나, 아브람이 넓은 길로 가지 아니하고 그것을 부인하고 하나님만 위하며 좁은 길로 나아갔다.  이것이 아브람의 신앙 노선이다.

 

. 14:24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

아브람은 자기가 받을 것은 거절했으나 자기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에 대해서는 그들이 취하도록 관용을 베풀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물질을 취해도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는 아브람과 동맹한 자들이며(13절) 이번에 아브람과 같이 가서 싸운 사람들이다.  일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삯을 주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딤전 5:18).  그러므로 그들이 먹은 것과 그들의 분깃을 주는 것은 옳은 일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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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5장

제 15 장  칭의

 

(대  지)

一. 하나님은 방패요 상급임(1)

二. 행사에 대한 문답(2-4)

三. 이인득의 (以身得意)(5-7)

四. 아브람이 제사 드림(8-11)

五. 애굽에 내려갈 예언(I2-21)

 

(본문 강해)

 

一. 하나님은 방패요 상급임(1)

 

.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후에는 14장의 사건 후, 즉 아브람이 318명을 거느리고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을 격파한 일과 소돔왕이 주는 재산을 거절한 후를 말한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이유는 아브람의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브람이 두려워한 이유는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이 패하여 도망했으나 그들이 전력을 재정비하여 다시 아브람을 침공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브람이 몇 명 안 되는 군사로 자기들을 쳐서 이겼다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다시 연합군을 결성하여 아브람을 치러 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두려워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임하여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고 위로와 힘을 주신 것이다.

나는 너의 방패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적의 화전을 막아 주는 방패가 되신다고 말씀했다.  아브람이 평소에 하나님을 자기의 방패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아브람의 방패가 되어 주신 것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방패로 삼고 싸우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방패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방패로 삼는 자에게 방패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성도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을 격퇴한 것은 하나님을 자기의 방패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만약 하나님을 방패로 삼지 않았더라면 4대 연합군의 큰 세력과 싸우기 위해 318명의 적은 인원으로 감히 나갈 수도 없었을 것이며 싸움에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기의 방패로 삼고 나가서 싸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방패로 삼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그 사람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 스가랴 7:13에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라고 했다.  또 시편 18:26에는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라고 하였다.  역대하 15:2에는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고 했다.  에스겔 2:6에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라고 했다.  핍박하는 사람들이 전갈과 가시와 같이 괴롭게 할지라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이 구원해 줄 것을 믿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신다.

예레미야 1:18에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했다.  아무리 핍박하는 세력이 크고 강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해 줄 터이니 두려워말고 나아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믿지 않는 신신학자에게는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해 주지 않는다.  최 유선 선교사는 \"신신학자들의 하나님은 매우 약한 하나님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의 뜻은 신신학자들은 하나님을 매우 약한 분으로 믿고 있다는 뜻이다.  즉, 홍해를 가를 수 없는 하나님, 물위로 걸어갈 수 없는 예수님,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일 수 없는 예수님으로 그들은 믿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신자는 아브람처럼 전능한 하나님으로, 능력의 방패로 믿고 어떠한 역경에도 담대히 나아간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셨다.  이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상급으로 믿은 증거는

① 아브람이 하나님을 상급으로 삼고 갈 곳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만 따라갔다.

② 자기 목자와 롯의 목자가 싸울 때에도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믿고 세상 것을 양보하였다.

③ 소돔왕이 약탈당했던 소돔성의 모든 재산을 아브람에게 다 가지라고 할 때에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믿고 거절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셨다.  하나님을 방패로 삼고 극강 담대하게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삼고 나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큰 상급이 되어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두려워하는 것과 근심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방패와 상급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방패와 상급으로 믿으면 아무리 원수가 많고 강해도 두려울 것이 없고, 아무 것도 염려할 것이 없다.

 

二. 후사에 대한 문답(2-4)

 

. 15:2-4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아브람은 일찌기 하나님께로부터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과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다(12:2-3).  또 이 가나안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12:7, 13:15)는 약속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이 늙도록 자녀를 생산치 못했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그 말씀 성취가 어떤 방식으로 되겠는가, 양자로 인하여 그 말씀이 성취되겠는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식으로 되겠는가에 대해서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자손이 된다는 말씀을 받지 못한 때였다.  아브람은 아직까지 무자(無子)한 것만 생각하여 다메섹사람 엘리에셀을 자기 집에서 길러서 상속자로 삼고자 생각하고 있었다.

아브람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한 소치이며, ② 너무 조급한 생각이요, ③ 자기가 늙어서 생산치 못할 것만 생각한 때문이다.  이것은 아브람이 일시적으로 실족한 것이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은 아브람의 자손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늙은 아브람에게서도 능히 자녀를 생산케 해 주실 수 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이것은 아브람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방인은 너의 후사가 될 수 없고 네 몸에서 나야 되고, 네 정성과 노력과 희생을 바쳐야 된다\"는 것이다.  신앙의 후사도 이와 같이 사랑과 피땀이 들어가고 정성과 수고로 길러야 후사가 될 수 있다.

 

三. 이신득의 (以信得義)(5-7)

 

.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문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네 자손이란 장차 아브람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가리킨다.  갈라디아서 3:16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다.  아브람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자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는 의미이다.

 

.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아브람이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정식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하신 것이다.  그 전에는 여호와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서 구속해 주겠다는 약속은 하셨으나 누구의 자손 중에서 나게 하시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은 없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 비로소 네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아브람의 자손이요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롬 4:11).

누가복음 16:22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것은 나사로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고, 아브라함이 믿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뜻이다.  아브람이 오실 그리스도를 말로만 믿는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실제로 믿고 영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였다.  요한복음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곧 그를 영접하는 것이요 그에게는 생명과 권세가 있다.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아브람이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의롭게 여기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의인으로 간주(看做)하시고 인정했다는 뜻이다.  이제 아브람은 여호와 앞에 의인이 되었다.  그것은 행위로 된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된 것이다.  아브람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구속해 주실 것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와 영적 교통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가 사죄와 칭의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오늘날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믿고 심령으로 영접하여 그로 말미암아 살면 의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게 된다.

 

. 15: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그리스도를 약속해 주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이러한 은혜를 베푸신 것은 아브람이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즉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四. 아브람이 제사 드림(8-11)

 

. 15:8-9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을 증거를 여호와께 보여 달라고 했다.  그때 여호와께서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해서 제사하게 함으로 여호와께서 그 제사를 응답해 주실 것을 암시하셨다.  과연 여호와께서 그 제사를 불로 응답하셨다(17절) 여호와께서 제사를 받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가 된 증거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주실 증거이다.

삼 년 된 소가 3년이 되면 논밭을 갈 수 있고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장성한 소가 된다.  그러므로 삼 년 된 것을 잡아 제사 드리라는 뜻은 하나님께 완전한 제물을 드리라는 뜻이다.  이것은 또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예표하기도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흠 없는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  예배 시간에 늦거나 졸거나 하는 것은 흠 있는 제사가 된다.  성도가 하나님께 흠 있는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한다.

 

. 15: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아브람이 짐승들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해 놓았다.  이런 의식은 만일 계약을 위반하면 그 짐승을 쪼개는 것처럼 쪼갬을 당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하는 의식이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불로써 그 고기 사이로 지나가게 한 것은 그 계약 성취를 확증한 것이다(17절).  그 계약 내용은 그리스도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5-7절).  이것이 8절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새를 쪼개지 않았기 때문에 솔개가 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솔개는 매과에 속하는 새의 일종이며 여기서는 마귀를 상징한다.

레위기 1:17과 5:8에 새는 제물로 드릴 때 아주 쪼개지 말라고 했으므로 새를 쪼개지 않은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 아니고 도리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모든 제물은 하나님께 합당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17절).

 

. 15: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솔개가 온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마귀가 삼키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마귀가 와서 늘 방해한다.  그 때에는 마귀를 쫓아야 된다.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때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마귀를 물리쳐야 마귀에게 빼앗기지 아니하고 합당한 제사가 된다.  기도할 때도 마귀가 방해하는 생각을 넣어 준다.  이럴 때에는 즉시 그 마귀의 방해를 물리쳐야 한다.  처음에는 독수리보다 작은 솔개가 와서 방해하며 제물을 가로채려고 한다.  작은 것이 올 때는 쫓기가 쉽다.  그러나 작은 마귀의 역사(방해물)를 용납하면 나중에는 점점 큰 것들이 날아 와서 더 큰 방해를 한다.

아가 2:15에 작은 여우가 포도원을 헌다고 했다.  작은 여우나 솔개는 얼마든지 쫓을 수 있고 넉넉히 물리칠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을 용납하면 더 큰 것이 오므로 쫓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마귀의 역사를 처음부터 쫓아내야 한다.

 

五. 애굽에 내려갈 예언(12-21)

 

. 15: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해질 때 해질 무렵 아직 제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때에 아브람은 실지로 깊이 잠들었다.  이것은 또한 신앙의 잠이 든 것을 상징한다.  성도가 신앙 생활을 하다가 때로 흑암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신앙의 잠이 깊이 들고 두려움에 빠진다.  엘리야와 요나와 세례 요한도 잠깐 신앙의 잠이 들었던 때가 있다.

 

. 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할 것을 예언으로 주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흑암면인데, 이 고난을 통과해야만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예정이다.  어떤 사람은 아브람이 제사 드리다가 잠깐 졸은 죄 값으로 받은 징벌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옳은 해석이 아니다.  제사 중 한번 잠들었다고 그 자손을 400년 종살이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법에 맞지 않는다.

 

. 15:15-16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허락한 가나안 땅을 완전히 차지 하기는 먼 장래의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그것을 믿고 바라보면서 영적 가나안인 하늘 나라를 사모하며 평안히 살다가 죽어 천국에 갈 것이라고 하였다.  아브람의 자손 되는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동안 애굽에서 고난을 통과한 후에야 가나안 땅에 돌아갈 것이며, 그 동안 가나안 원주민은 악이 관영해져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사대 만에 그 400년 동안은 4대 후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4수는 고난의 수이다.  성도는 애굽과 같은 이 세상에서 4수의 고난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한 것과 광야 40년 생활과 예수님이 40일 금식 기도한 일 등은 다 고난받는 기간이었다.  성도들도 하나님이 예정한 기간 동안 고난을 받아야 연단되고 정결케 되고 자라나게 된다.  반면에 아모리 족속과 같이 악한 자는 점점 악해져서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

 

. 15: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이것은 하나님의 응답의 불이요 그 계약을 확증하는 행사요 그 제사를 받았다는 증거이다.

 

.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하나님께서 증거를 주신 다음에 다시 언약을 세우며 가나안 땅의 경계를 정해 주셨다.  애굽강에서 유브라데까지는 이스라엘의 이상적 국경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이다(왕상 8:65, 사 27:12).

 

. 15:19-21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이방 족속이 있는 땅을 다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셨다.  비록 하나님이 허락한 곳에 다른 민족이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그들을 하나님이 다 심판하고 좇아내어 하나님의 허락하신 것을 다 이루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실성과 능력으로 이루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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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6장

제 16 장  실 패

 

(대  지)

一. 아브람이 하갈을 취함(1-3)

二. 종이 주인을 멸시함(4-5)

三. 종을 학대하니 도망침(6)

四. 주인께 복종케 하여 복 받게 함(7-8)

五. 이스마엘에 대한 예언(11-16)

 

(본문 강해)

 

一. 아브람이 하갈을 취함(1-3)

 

. 16:1-3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십 년 후이었더라

아브람이 자녀를 얻기 위해 하갈을 첩으로 취한 것은, 그가 인본주의로 기울어진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날 자가 후사가 되리라고 언약하셨음에도 사래가 76세가 되도록 잉태하지 못하자 앞으로 아들을 낳을 소망이 없다고 인간의 생각대로 판단해 버렸다.  그리하여 사래가 아브람에게 자기의 여종을 취하여 아들을 낳으라고 권하였고, 아브람은 여종이라도 취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사래의 권면대로 여종 하갈을 취하였다.  그 당시 서부 아시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함무라비 법전 144-147조에, \"만약 아내가 자녀를 낳지 못하면 시녀를 남편에게 주어 자녀를 낳게 하라\"는 말이 있다.

아브람이 하갈을 취한 것은 정욕으로 취한 것이 아니고 세상의 풍속과 법을 좇은 것이다.  아브람이 믿음으로 끝까지 참으며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한 것은 잘못이다.  다시 말하면 아브람이 영적 신앙에서 육적 신앙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그 말씀을 아브람이 이루어 드리려고 하는 정신은 좋으나 그 방편이 인본주의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났다.

하나님의 일은 목적도 성경에 맞아야 되고, 방편도 성경에 맞아야 된다.  요즈음 해방신학자들은 억압받는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해도 좋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 방법이 성경을 위반한 것이요 악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였으나 꼭 사래의 몸에서 낳아야 된다고 말씀하지 않았으므로 아브람은 첩이라도 얻어 아들을 낳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원리 원칙에 어긋난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가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래를 아브람의 아내로 정해주셨으니 사래가 아무리 늙었고 경수가 끊어졌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낳게 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그릇된 방법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시지 않기 때문이다.

교역자나 신자가 교회를 부흥시키겠다는 좋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성경의 원리에 어긋나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쓰면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요,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인본주의로 얻은 교인은 아브람에게 속한 자가 아니요 육에 속한 자이다(갈 4:22-25 참조).

 

二. 종이 주인을 멸시함(4-5)

 

. 16: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여종 하갈이 잉태하매 여주인 사래를 멸시하였다.  언제나 불법의 길을 걷는 자가 정당한 길을 걷는 자를 핍박ㅎ여,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한 자를 핍박하고 멸시한다.  교회 안에도 육에 속한 목사도 있고, 장로도 있고, 집사도 있으며, 신자도 많이 있다.  그들이 영에 속한 신자를 멸시하며 핍박한다

 

. 16: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브람이 인본주의를 썼기 때문에 집안이 평안치 않았다.  아브람과 사래가 다투게 되었고, 사래와 여종이 다투게 되었다.  온 집안의 화평이 깨어지고 종이 주인의 위에 올라가서 주인을 멸시하게 되었다.

 

三. 종을 학대하니 도망침(6)

 

. 16: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가정의 질서를 회복하는 해결책은 1 정당한 아내 사래에게 권세를 주는 것과(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하라)

② 여종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갈라디아서 4:22-23에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다.  언제나 성경대로 바로 된 자에게 권세를 주고 영으로써 육체를 쳐서 복종시켜야 생명이 살고, 평안이 오고, 모든 일이 바로 된다.  로마서 8:13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9:27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고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육에 속한 것과 진리에 맞지 않는 것을 끊어버리고 진리 안에서 영의 자유와 새 생명을 얻어 나가야 한다.  종의 신분을 망각한 하갈을 엄히 다스리라고 아브람이 사래에게 권한을 부여하였다.  아브람은 가정의 질서 유지를 위해 각자의 위치를 바로하고 원리 원칙대로 그 일을 처리했다.  나이 많은 아브람이 종을 통하여 아이를 잉태하였으나 아브람이 인정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사건을 바로 처리했다.  사래는 교만해진 여종 하갈을 주인의 위치에서 바로 다스렸다.  아랫사람이 교만하면 엄히 다스려서 바른 위치에 세워 놓아야 한다.  사래가 자기의 정당한 권세를 사용하여 그 여종 하갈을 다스려 질서를 유지한 것은 잘한 것이다.

 

四. 주인께 복종케 하여 복 받게 함(7-10)

 

. 16:7-9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 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하갈이 주인의 학대를 받고 광야로 도망했다.  그때 하갈이 주인에게 순종하지 않고 광야로 도망친 것은 아주 잘못된 행동이다.  누구나 교만하여 자기 위치를 떠난 사람은 광야와 같이 쓸쓸하고 곤고한 자리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겸손하여 윗사람에게 복종하고 자기의 위치에 바로서는 것이 중요하다.  하갈이 주인의 집을 떠나 광야 생활을 하면서 고통받는 중에 회개하며 하나님께 진정으로 부르짖게 되었다.

하나님은 고통 중에서 회개하며 부르짖는 하갈을 천사를 보내어 권고해 주시고 다시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겸손히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살길을 가르쳐 주었다.  겸손과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복종하는 것이 사는 길이요 높아지는 길이다(벧전 5:5-6),

 

. 16: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크게 번성하여 하갈이 주인에게 돌아가서 복종할 때에 하나님이 잘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이 세워 놓은 위치에서 윗사람을 잘 섬기고 제도를 잘 지킬 때에 하나님께서 창성하고 잘되게 해 주신다.  가정이나 교회에서도 질서를 지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순종해야 잘되고 번성한다.

 

五. 이스마엘에 대한 예언(11-16)

 

. 16:11-12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이스마엘이 번성하고 강해질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육신에 속한 신자가 세상적인 면에서는 강하고 번창할 수 있다.  교회도 인간의 수단을 써서 종의 아들들(이스마엘)을 끌어들이면 연보도 많이 나오고, 사업도 크게 할 수 있다.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25:18에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그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 거하였더라\"고 하였다.  동방은 맞은편이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을 이삭에게서 멀리 떠나서 살게 하지 않고 그 부근에서 살도록 하여, 이삭의 영향력을 계속 받아 이삭의 자손이 어떻게 하는 것을 보고, 이스마엘 자손도 그것을 본받아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도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이다.  복음의 빛은 가까운 데서부터 비춰나가게 된다.

 

. 16: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하나님께서 하갈을 불쌍히 여겨 감찰해 주셨다.  하나님은 육에 속한 신자도 버리지 않고 감찰해 주신다.

 

. 16: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이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하갈이 샘물 곁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으므로 그 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다.  그 뜻은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 16: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의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육 세이었더라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았고, 아브람은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였다.  그 때 아브람의 나이는 86세이었다.  이 때는 아브람이 이삭을 낳기 14년 전이었다.  조급하게 인간의 생각과 수단으로 이스마엘을 얻었으나, 그 이스마엘이 결국은 참된 후사인 이삭을 핍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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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17장

제 17 장  할 례

 

(대  지)

一. 완전하라(1)

二. 언약과 축복(2-8)

三. 할례의 언약(9-14)

四. 이삭 출생의 언약(15-22)

五.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함(23-27)

 

(본문 강해)

 

一. 완전하라(1)

 

. 17:1  아브람이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람이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엘 샤다이) 즉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을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루어 나아가실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아브람이 구십 구 세이며 사라가 팔십 구 세로써 몸이 죽은 것 같이 되어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자녀를 생산할 수 없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낳게 하실 것이다.

 

二. 언약과 축복(2-8)

 

. 17: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전에 언약을 세운 바 있으나(12:2-3,15:5-7), 또 다시 언약을 세워 전에 세운 그 언약을 더욱 확실하게 하셨다.  그 언약의 내용은 아브람의 자손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크게 번성하여 열국을 얻을 것과, 아브람은 열국의 아비(믿음의 조상; 롬4:16)가 될 것과, 가나안 땅을 그와 그 자손에게 기업으로 준다는 것이다.

 

. 17: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브람이 엎드린대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은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태도이다.  이것은 또한 전에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될 것\"(15:4)이라는 언약을 하셨으나 아브람이 그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끝까지 참아 기다리지 못하고 인본주의를 써서 이스마엘을 낳은 일에 가책을 느껴 회개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 17: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아브람이 열국의 아비가 된다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다.  이것은 아브람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자가 열국에 퍼지고,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을 가리킨다.

 

. 17:5-6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쫓아 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람( : 높은 아버지라는 뜻)에게 아브라함( )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열국의 아버지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한 보증이었다.  아브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인격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새 이름을 그에게 주신 것이다.  이름은 그의 인격의 실상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은 이전 사람이 아니고 새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조상이요, 열국의 아비가 된 것이다.  또 자기만 살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살려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창성케 되고 많은 사람을 살려 내는 사람이 된다.

 

. 17:7-8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심히 번성케 해 주시고(2-6절), 열국의 아비(4,5절)가 되게 해주시고,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三. 할례의 언약(9-14)

 

. 17:9-10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를 주시겠다고 언약을 세우시고(15:5-7), 그 언약의 표로써 할례의 제도를 세우셨다.  신약의 성례가 성찬과 세례인 것처럼 구약의 성례는 유월절과 할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  할례의 양식은 남아가 출생하여 팔 일이 되면 양피(陽皮: 성기 끝의 가죽)를 조금 베어버리는 것이다.

할례의 뜻은 첫째, 정욕을 제거함이다.  예레미야 4:4에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라\"고 했다.  또 빌립보서 3:3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고 하였다.  정욕을 벗어버리고 성령으로 행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그것이 참 할례이다.  골로새서 2:11에는 육적 몸을 벗어버리는 것이 참 할례라고 했다.

둘째, 하나님께 속함이다(렘 4:4 참조).  할례를 받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뜻이다.

셋째,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함이다.  할례를 받으므로 정식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넷째, 하나님의 백성된 표이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된다(14절).  이것은 시민증과 같다.

지금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속하여 정욕을 벗어버리고 육체를 신뢰하지 말고, 성령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나가면 신령한 할례를 받는 것이 된다.

 

. 17:11-12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양피를 베어라 남자아이는 난지 팔일 만에 이 예식을 행하여야한다.  이것은 정욕을 제거한다는 뜻이 있다(9-10절 강해 참조).

 

. 17:13-14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할례는 살(육체)에 한 언약의 표인데, 오실 그리스도의 언약에 참여한 표요, 하나님께 속한 자의 표요,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이 된 표이다.

 

四. 이삭의 출생의 언약(15-22)

 

. 17:15-16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고 하셨다. \"사래\"는 \"여걸\", \"귀부인\"이라는 뜻이고, \"사라\"는 \"여주인\", \"공주\"라는 뜻이다.  사라도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운동에 이용당할 것이므로 새 이름을 주셨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며 그를 보조하는 사라는 열국의 여주인과 같은 위치에 있게 되고, 따라서 그러한 인격자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구원 사역에 잘 이용당하는 자는, 이와 같이 인격이 변하여 존귀하게 되고 큰 자가 된다(마5:19 참조).  성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으로만 받지 말고 약속 받은 대로 몸으로 행해야 한다.  성도가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면 그의 인격이 변화되어 점점 자라나고 존귀해진다.  인격이 커지고 존귀해지면 많은 사람을 구원하게 되고, 열국의 아비처럼 존귀하고 큰 자가 되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큰 자가 되고 큰 영광과 상급을 받게된다.

 

. 17:17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낳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아브라함이 웃었다.  아브라함이 왜 웃었는가?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지 못해서 웃은 것이 아니라 100세 된 자기와 90세 된 사라가 생산 할 것을 생각하니 웃을만한 일이요,  이와 같은 하나님의 큰 역사가 자기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여 웃는 웃음이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의심하고 믿지 못하여 웃었다면 하나님이 책망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책망하시지 않고 그 믿음을 더욱더 인정해 주셨다.

 

. 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 한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을 믿사오나 나이가 많고 나의 아내도 나이가 많은데, 어찌하여 이런 늙은이에게서 아이를 낳게 하려고 하십니까, 차라리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하는 뜻으로 한 말이다.

 

. 17:19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사라를 통해서 낳을 아이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지어 주었다.  

이삭( )은 \"웃음\" 이라는 뜻이다.  21:6에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말한 대로 사라가 이삭을 낳을 때에 사람들이 웃었다.  90세 된 할머니가 아이를 낳았으므로 웃을만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후사로 세우지 않고 분명히 사라로 말미암아 아들(이삭)을 낳아 후사가 되게 하실 것을 확실히 언약하셨다.

아브라함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 이스마엘은 후사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낳은 약속의 아들 이삭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고 하나님께서 그와 영원한 약속을 세우시겠다고 하였다.  약속의 자녀를 낳은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롬 4:18-21).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끝까지 믿고 소망하였다.

 

. 17:20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 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하나님께서 이스마엘도 복을 주고 번성케 하여 열 두 방백을 낳게 하고 큰 나라가 되도록 하시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 17:21-22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하나님의 약속 성취는 신령한 아들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영에 속한 신자가되어, 하나님의 참된 구원 운동을 이루어 나가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의 축복을 받도록 해야 한다.

 

五.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함(23-27)

 

. 17:23-27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생장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양피를 베었으니 아브라함이 그 양피를 벤 때는 구십 구 세이었고 그 아들 이스마엘이 그 양피를 벤 때는 십 삼 세이었더라 당일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생장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아브라함은 99세 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마엘도 할례를 받았다.  그때 이스마엘의 나이는 13세이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아브라함의 집의 모든 남자가 다 할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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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18장

제 18 장  기 도

 

(대  지)

一.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함(1-8)

二. 사라를 통해 아들 낳을 것을 예고함과 사라의 불신(9-15)

三. 아브라함에게 소돔 멸망을 예고함(16-21)

四.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기도함(22-23)

 

(본문 강해)

 

一.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함(1-8)

 

. 18:1-2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본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 있을 때에 세 사람이 맞은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영접하여 대접하였다.  히브리서13:2에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였다고 하였다.  세 사람 중 한 분은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비의적현상(秘儀的現像)으로 나타난 것이며(33절), 그 외 두 사람은 천사였다.  아브라함이 영감으로 그 세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분으로 알았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영감이 있는 신령한 신앙의 사람이었다.

 

. 18:3-5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두 천사에게 경배하며 대접하겠다고 간청했다.  아브라함의 간청에 그들이 허락하였다.  하나님은 간절히 원하는 자의 대접을 받으시고 상급을 주신다.

 

. 18: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세 스아 한 스아(Seah)는 7.33 리터이다(왕하 7:16 참조).  나그네를 위하여 속히 떡을 만들어 대접하려는 아브라함의 정성과 사랑이 매우 귀하였다.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신다.

 

. 18:7-8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아브라함이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고 급히 요리하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와 버터와 우유를 가져다가 손님들 앞에 차려놓고 대접하였다.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하나님과 천사를 영접했고, 자기 집에 모시고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서 정성껏 대접했다(딤전 3:2 참조).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하다가 천사를 대접하게 된 것이다(히 13:1-2).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하다가 하나님을 대접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복 받을 일인가!  성도가 하나님의 성도들을 잘 대접하면 하나님의 일이 잘되고 자신도 복을 받게 된다(갈 6:9-10).

특히 우리는 믿음 지키다가 환난 받는 성도를 잘 대접해야 한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알고 대접할 마음이 생겼고, 자기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 작은 방 하나를 지어서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고 엘리사가 지나갈 때에는 들러서 유(留)하게 하였다(왕하 4:8-10).  이렇게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을 대접함으로 복을 받아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대접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로만 믿고 영접하여 대접하고 보니 그분들이 하나님과 천사였다.  그들이 그 음식을 다 받으시고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주었다.

 

二. 사라를 통해 아들 낳을 것을 예고함과 사라의 불신 (9-15)

 

. 18:9-10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천사를 영접하고 잘 대접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다(갈 3:16).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은 최고의 축복이다.  이것은 그 아들 이삭을 통해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약속이며 만민이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구원받을 복음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람을 잘 대접하고 존경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대한 귀한 소식(복음)을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셨다.  오늘날도 나그네를 잘 대접하며 하나님의 종을 잘 받들어 주는 자는 복을 받는다.

 

. 18:11-12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요 사라의 나이는 89세였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고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어졌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 웃음은 사라의 불신앙에서 나온 웃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왜 사라가 웃느냐고 책망하시고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사라가 웃은 이유는 자기들 부부가 노쇠한 것만 생각하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지 못하여 웃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신앙의 호주인 아브라함이 원리원칙에 서서 믿음으로 나아갈 때 사라가 일시적으로 믿음이 없어서 실족했을지라도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앙의 호주가 원리원칙대로 굳게 서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이것은 사라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노쇠한 것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힘을 믿지 못한 연고로 이렇게 말하였다.

 

. 18:13-14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고 웃는 것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라의 불신앙을 책망하신 후에 또다시 사라에게 아들을 낳게 하실 것을 말씀해 주셨다.  이것을 보면 사라의 일시적 불신앙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본래의 구원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약한 자라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붙들어서 다시 믿음에 서게 하여 구원계획을 성취하신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이루어 가시고(이적), 또는 자연법칙을 동원해서라도(기사) 다 성취해 나가신다.

 

. 18:15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사라가 두려워서 웃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을 속인 것이 아니라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하나님은 사람의 심령 골수를 다 살피심으로 절대 속지 않으신다(잠 21:2).  이 뜻은 \"명년 이 때에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네가 아들을 낳을 때에야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회개하고 신앙의 호주 되는 남편의 신앙을 따르라\"는 말씀이다.

 

三. 아브라함에게 소돔 멸망을 예고함(16-21)

 

. 18: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아브라함에게 대접을 잘 받은 그 사람들이 소돔을 향하여 떠날 때에 아브라함이 전송하려고 함께 나갔다.  이는 아브라함이 손님을 끝까지 정성스럽게 대접한 것을 보여준다.

 

. 18: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을 영접하고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해주신다.

아브라함에게 알게 해주신 비밀은

첫째, 구원에 대한 비밀이다.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만민을 구원할 비밀을 알게 해 주셨다(10,14,18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구원의 비밀을 알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이 구원의 기관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이용당하게 하셨다.  곧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을 성취시키므로 아브라함이 복의 기관이 되게 해 주셨다.

둘째,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해 주셨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심판의 비밀을 알게 해 주셨다(20-21절).  이와 같이 하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고 영감으로 사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비밀을 미리 알게 해 주신다.  예를 들면 일정말기에 신사참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만주로 피해 갔던 성도들에게 2차 대전에서 일본이 망할 것을 미리 알게 해 주셨다고 한다.  또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도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그 멸망을 미리 알게 해주었다고 한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영감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앞으로 올 환난에 대해 성경과 영감을 통해 미리 알게 해 주신다.  아모스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 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아합왕 때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과 그 후에 비가 내릴 것을 엘리야에게 알게 해 주셨고, 노아에게도 홍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미리 알게 해 주셨다.

 

. 18:18-19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창성하게 하여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그를 통하여 복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케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기관으로 삼아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 받게 하기 위함이다.  참된 복음운동은 천하 만민이 복 받는 운동이다.  이일에 이용당하는 자는 강대한 사람이나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해 주시며 그를 통하여 세상에 의와 공도를 이루게 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를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구원의 복음에 대한 비밀과 심판의 비밀을 알게 해주신 것이다.

 

. 18:20-21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부르짖음이 크고 이것은 불의와 압제와 착취를 당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만군의 여호와에게까지 들렸다는 뜻이다.  야고보서 5:4-6에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다.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이것은 피해자의 부르짖는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고 그 사실을 자세히 살펴서 심판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 공평하시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 그 때에 음란 방탕하여 만물을 원리대로 사용하지 않고 역리로 사용하였으므로 모든 사람들과 만물이 탄식을 하였다.  만물도 죄에게 이용당할 때에 부르짖고 탄식하며(롬 8:20-22), 우리 몸도 원리대로 사용되지 않고 불의에 이용당하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롬 1:24-27; 8:23).  품꾼의 삯을 주지 않으면 그것이 하나님께 부르짖고(약 5:4-6), 핍박받는 성도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순교 당할 때에 그 피가 하나님께 호소한다(4:10).  이와 같이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고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상달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세상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신다.

 

四.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기도함(22-33)

 

. 18: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두 천사는 소돔을 향하여 갔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손님을 대접하려고 영접했으나 천사를 영접하였고 천사를 대접하고 보니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밀을 알게 해 주셨다.

 

. 18:23-25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아브라함이 여기서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즉시 응답해 주시고 아브라함은 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은 또 응답해 주셨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①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한 기도이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시는 분도 아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다(25절).

② 하나님의 뜻대로 한 기도이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거기에 맞는 기도를 해야 한다.  자기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달라는 기도가 참된 기도이다.

③ 하나님의 백성(의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한 것이다.  이것은 구원운동을 위한 기도요 하나님의 백성을 살려내기 위한 기도이다.  물론 개인문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나 좀 더 고상한 기도는 택한 백성(의인)을 위하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이다.

④ 죄인들이 망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죄로 멸망할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사랑의 기도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자기를 못 박는 무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고 스데반도 이와 같은 기도를 했다.  이것은 영의 세계에서 사는 증거이며 사랑의 발로(發露)이다.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의인을 귀히 여기고 보호하여 건져 주시는 하나님인줄 믿고 의인 오십 인을 위하여 그 성 전체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했다.

⑤ 겸손의 기도이다.  자기를 티끌과 같은 자라고 하며(27절) 기도하였다.  이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기도요 지극히 겸손한 자리에서 하는 기도요 자기는 쇠(衰)하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은 흥(興)하여야 되겠다는 기도이다.

 

. 18: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50인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고 응답하셨다.  왜냐하면 아무리 소돔성이 죄악으로 관영하더라도 의인 50명이 있다면 바로 설 소망이 있고, 또 그 의인을 불의한 자와 함께 멸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다.

 

. 18:27-28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 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생각해 보니 그 성중에 의인 오십 인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45인으로 낮추어서 하나님께 다시 말씀드렸다.  그때 하나님은 의인 45인을 위해서도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 하셨다.

 

. 18:29-31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이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이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다시 \"의인 40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고 하나님께 여쭈어 볼 때에 하나님은 의인 40인을 찾아도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때 아브라함이 다시 10명을 감하여 \"의인 30인을 찾으면 어떻게 하시겠나이까\"하고 여쭈어 보니 하나님이 의인 30인을 인하여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대답해 주셨다.  아브라함은 또 10인을 감하여 \"의인 20인을 찾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고 여쭈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 20인을 인하여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 18:32-33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27절),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30절),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31절) 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한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며 겸손한 심정과 태도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은 마지막으로 \"소돔성에서 의인 1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라고 말씀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의인 10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이 말씀은 마땅히 멸망시킬 것도 의인을 위해서 멸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로 인해 마땅히 멸망할 도성도 하나님을 섬기는 의인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사무엘상 2:8에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이 땅의 의인들이 기둥이라는 뜻이다.  시편11:3에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라고 하였는데 \"의\"가 굳건한 터가 된다.  세계가 죄악으로 멸망당하게 되어 있으나 기둥들(의인들)이 지탱하고 있어서 멸망이 연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 얼마나 있느냐가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도 죄악이 관영하여 그 죄값으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으나 의인들이 나타나서 기둥 역할을 잘 해나가면 소망이 있다.  그 의인들을 인하여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월남은 이러한 기둥(의인)이 없었기 때문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월남의 종교가 다 부패하여 세속화되고 기둥들이 무너졌으므로 망하였다.  의인들이 기둥역할을 하면 자기뿐 아니라 그 도시 전체, 그 나라 전체를 살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의인 열 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 성을 멸망시켰다.  예레미야 시대에는 예루살렘에서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의인 한 명만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 성을 사하여 주신다고 하였다(렘5:1).  또 에스겔 22:30-31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했다.  이와 같이 의인 한 사람이 많은 군대와 많은 무기보다 낫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된 자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므로 의를 이룬 자를 말한다.  베드로후서 2:7에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라고 했다.  롯의 의는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 의였다.  또 롯은 죄를 용납하지 않고 죄를 미워하고 죄로 인하여 의로운 심령이 상하였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롯을 그 멸망 중에서 구원해 냈다.  죄를 용납하고, 죄를 보고도 탄식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 속에 의가 없기 때문이다.  에스겔 9:4에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도 교회 안에서 성경 말씀을 어기는 일에 대하여 탄식해야 한다.  의는 죄를 미워하는 데서부터 세워 나가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행함으로 의를 세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핍박을 받으면서 경건하게 믿는 사람(딤후 3:12)을 하나님께서 기둥으로 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세워 나가는 교역자와 성도와 교회를 찾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다수를 기뻐하지 아니하시고(고전 10:5; 삿 7:7 참조), 몇 사람이라도 의인을 찾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돔 고모라 도시가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한 것을 전감(前鑑)으로 삼고 의를 세워 나가는데 힘을 써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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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19장

제 19 장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대  지)

一. 롯이 천사를 대접함(1-3)

二. 소돔인들의 악행(4-9)

三. 롯을 보호하고 소돔인들의 눈을 어둡게 함(10-11)

四. 천사가 롯의 가족을 구출함(12-23)

五. 소돔 멸망과 소금 기둥 된 롯의 아내(24-29)

六. 딸의 간계와 롯의 실패(30-38)

 

(본문 강해)

 

一. 롯이 천사를 대접함(1-3)

 

. 19:1-2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그 당시에는 성문을 재판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룻 4:1, 삼하 15:2).  그러므로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롯이 높은 관직에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두 천사를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하고 간청하였다.  롯이 손님 대접하는 것을 삼촌 아브라함에게 배운 것이다.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소돔 고모라는 더운 지방이었으므로 사람들이 맨발로 다니며 밖에서 돌아오면 발을 씻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므로 롯이 천사에게 발을 씻고 주무시라고 하였다.  이것은 손님을 대접하는 예의이다

 

. 19:3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롯이 천사를 영접하려 하였으나, 천사들은 거리에서 밤을 지내겠다고 사양하였다.  그러나, 롯이 재차 간청할 때에 허락하고 롯의 집으로 들어갔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그대로 지나가려고 했으나 두 제자가 간청하므로 예수님이 함께 들어가셨다(눅 24:29).  성도에게 은혜 .받는 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곧 지나 가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은혜 받을 기회가 올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해서 은혜 받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며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시고 간절히 찾는 자에게 만나 주신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간구할 때에 예수님은 ① 못 들은 체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② 상관없다고 하였고, ③ 아이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줄 수 없다고 하였으나 그 여인은 간절한 마음으로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하며 은혜를 간구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하시고 그 여인의 간구를 들어 주셨다.

천사가 한번 거절했을 때에 만일 롯이 간청하지 않았다면 그 천사들을 영접치 못했을 것이며 따라서 소돔성이 멸망할 하나님의 비밀도 알지 못했을 것이며 구원 얻는 길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롯이 천사를 대접하였으나, 아브라함이 대접한 것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브라함은 살찐 송아지를 잡고 고운 가루 세 스아로 떡을 하고 버터와 우유를 대접했으나(18:6-8), 롯은 무교병을 구워서 대접하였을 뿐이다.

이렇게 간단히 대접한 것은 롯이 가난해서도 아니고 대접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롯에게 송아지나 양 같은 짐승이 많았고, 시간적으로도 천사가 밤을 지낼 만큼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롯은 손님을 대접하는 정성이 아브라함보다 부족하였다.  아브라함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도 천사를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서 정성스럽게 귀한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도 자기 신앙에 따라 정도가 다르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연보하는 것도 재산이 많다고 많은 연보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해도 믿음이 좋으면 없는 중에도 힘써 정성스럽게 한다(막 12:41-44).

 

二. 소돔인들의 악행(4-9)

 

. 19:4-5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밤이 되어 그들이 잠자리에 눕기 전에 소돔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롯의 집을 에워싸고, 롯에게 말하기를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을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과 상관하겠다\"고 하였다.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상관\"은 히브리 원어 (야다)로서, 성적(性的)으로 관계하겠다는 것이다.  소돔 사람들이 음란 방탕(淫亂放蕩)하여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동성 음행)을 행하려고 하였다(롬1:27 참조).  유다서1:7에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하였다.  \'다른 색\'은 \"남색\"을 말한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남녀 노소 모두가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포악과 음란이 가득하여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레20:13 참조).

 

. 19:6-8  롯이 문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

롯이 하나님의 사람을 자기 딸들보다 더 귀히 여기고 아꼈다.  롯은 자기 딸들을 희생시켜서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능욕 당하는 것을 막아 보려고 하였다.  이것은 롯이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딸들을 악한 무리들에게 내어 주겠다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목적은 좋았으나 방법이 잘못되었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더라도 그릇된 방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  목적도 선하고 방법도 선해야 한다.

 

. 19:9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우거는 타향에 임시로 와서 사는 것을 말한다.  롯은 소돔의 본토인이 아니고 이주해 와서 깃들여 사는 입장이었다.  롯이 무리들에게 자기 집안에 있는 사람을 해하지 말라고 만류하자 그들은 더욱 악해져서 롯의 집에 머무는 사람들보다 롯을 더 해하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리하여 롯을 밀치고 문을 부수려고 맹렬하게 달려들었으니 소돔 사람들이 얼마나 완악하고 잔인한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소돔성의 죄악은 말세 죄악의 예표가 되었고, 그들이 받은 심판은 말세 심판의 예표가 되었다(눅17:28)

 

三. 롯을 보호하고 소돔인들의 눈을 어둡게 함(10-11)

 

. 19:10-11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으며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

천사들이 위험에 처한 롯을 구원해 주고 음란하고 포악한 무리들의 눈을 어둡게 했다.

그 눈을 어둡게 하니 하나님의 사람을 해하려고 하는 자는 눈이 어두워진다.  열왕기하6:1-8에서 아람 군대가 엘리사가 있는 도단성을 에워쌌을 때에 선지자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람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했다.  하나님의 사람을 해하는 자는 심령의 눈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바울도 성도들을 해하려고 다메섹으로 갈 때에 눈이 어두워졌으나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때 다시 눈이 밝아졌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귀히 여겨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손해 줄까봐 벌벌 떨어야 한다.

 

四. 천사가 롯의 가족을 구출함(12-23)

 

. 19:12-14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내라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천사가 롯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해 주었다.  그 비밀은 구원과 심판에 관한 것인데, 죄악이 관영한 소돔과 고모라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과, 롯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성에서 나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천사들이 롯에게 \"제게 속한 자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내라\"고 하였을 때에, 롯이 자기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찾아가서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고 하였으나 사위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길을 가르쳐 주었으나 그 말을 농담으로 여길 만큼 사위들의 마음은 강퍅하고 심령이 어두웠다.

 

. 19:15-16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 하심이었더라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두려우니 아내와 두 딸을 이끌고 빨리 이 성에서 나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롯이 재산에 대한 미련 때문에 지체하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모은 많은 재산을 다 버려두고 나가기가 너무 아까워서 주저하고 지체한 것 같다.  아직도 롯이 물질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였다.  롯이 이렇게 지체하고 있을 때에 천사들이 롯과 그의 처와 딸들의 손을 붙잡고 성밖으로 이끌어냈다.  이렇게 강권해서 끌어내야만 겨우 멸망의 자리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대로 놓아두면 멸망하겠으므로 천사가 강제로 이끌어내어 그 생명을 구원하였다.  롯은 겨우 구원받은 것이며 불 가운데서 얻은 구원과 같다(고전 3:15).

 

. 19: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천사들이 롯과 그 가족을 이끌어 낸 다음에 그들에게 세 가지를 지시했다.

첫째, 도망하라.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성도들이 세상의 죄악에서 떠나 시온산을 향하여 도망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을 향하여 도망할 때에 힘이 든다고 도중에 머무르지 말고 계속하여 산으로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말세의 성도들이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도망하여 나와 구별된 생활을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계 18:4).

둘째, 뒤를. 돌아보지 말라.  뒤를 돌아보는 것은 세상을 돌아보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세상으로 기울어 져서 세상의 것을 마음에 두면 신앙의 달음박질을 못한다.  그러므로 소돔에서 나온 다음에는 소돔에 대한 애착심을 끊고 뒤돌아보지 않아야 된다.  돌아보면 소금 기둥이 된다.

세째, 들에 머물지 말라.  성도가 신앙의 달음박질을 하다가 중단하지 말고 계속하여 전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평안할 때나 괴로울 때나 언제든지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신앙의 달음박질을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아 일체의 비결을 배웠고(빌4:12), 항상 믿음의 달음박질을 계속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이요, 자라나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령한 시온산을 향하여 달음박질하면서 뒤를 돌아보지도 말고 들에 머물지도 말고 계속하여 영적 생명이 사는 자리로 나아가야겠다.

 

. 19:18-20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 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롯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여 하나님이 지시하신 산까지 가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내려와 자기도 재앙을 만나 죽을 것 같아 두려워하였다.

 

. 19:21-22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롯이 소돔성 가까이에 있는 소알성으로 도망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였다.  하나님께서 그것까지 허락해 주셨다.  신령한 뜻은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 세상과 같고, 소알성은 오늘날 교회와 같다.  성도가 세상을 떠나서 천성을 향해 달음박질하는데, 하나님께서 교회를 피난처로 허락하셨다.  사람이 연약하여 시온산에까지 도망할 수 없을 때 소알 성에 가서 임시로 보호를 받다가 다시 도망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리의 피난처요 천성 가는 준비를 하는 곳이다.

 

. 19: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롯이 해가 돋을 때 소알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유황불이 내려오기 직전이었다.

 

五. 소돔 멸망과 소금 기둥 된 롯의 아내(24-29)

 

. 19:24-25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소돔과 고모라성에 유황불이 비같이 내려와 다 멸하였다.  소돔 고모라 성이 멸망한 자리가 지금의 사해인데, 그 바다는 사람이 들어가면 몸이 뜰 정도로 염분이 많고, 물이 너무 짜서 물고기도 살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사해의 수면은 지중해의 수면보다 392m가 낮아서 물이 사방에서 흘러들어 오기만 하고 나가는 곳은 없다.

 

. 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계속해서 달음질하여 산으로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17절)고 하였으나 그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했다.

둘째, 물질에 대한 애착심 때문이었다.  롯의 아내는 천사에 이끌려서 소돔성에서 억지로 나왔으나, 그 때까지 모아 놓은 물질과 재산에 대한 아까움과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 올 때에 그 재산들이 어찌될까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요즈음도 롯의 아내처럼 세상 물질에 미련을 두고 뒤(세상)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된 사람이 많이 있다.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성도가 믿음을 지키지 않고 물질을 따라가면 맛 잃은 소금이 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5:13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했다.  맛 잃은 소금은 ① 하나님이 내어버리고 ② 사람은 발로 밟고 ③ 자신은 신앙의 맛이 없어진다.

성도들도 롯의 처와 같이 맛 잃은 소금이 되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성도들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시온산을 향하여 계속 달음질할 때에는 성경을 보면 꿀송이보다 달고,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된다.  그러나 물질과 세상에 애착심이 있어 뒤를 돌아보면 성경을 보아도 맛이 없고 기도해도 감동이 없으며 결국 하나님이 버리고 사람에게 짓밟히게 된다.

 

. 19:27-28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것을 아브라함이 멀리서 바라보았다.  우리 성도들도 세상이 멸망할 때에 아브라함과 같이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을 준비해야겠다.

롯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다가 세상이 멸망할 때에 의지하고 살던 것이 다 없어지고 겨우 몸만 구원받았다.  롯의 사위들은 불에 타 죽고,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재산은 다 불에 타서 없어지고, 자기와 두 딸만 겨우 벌거벗은 몸으로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얻었다(고전 3:15 참조).  우리 성도들도 한 손에는 하나님을 붙들고 또 한 손에는 세상을 붙들고 살려고 하면 롯과 같이 된다.

 

. 19: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신앙과 기도를 생각하여 롯을 건져 주셨다.  그러므로 기도의 자식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는 줄 알고 자녀를 위해 부지런히 기도해야 한다.  자녀들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에서 살지라도 그 자녀를 위해 항상 기도해 주면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마침내 건져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낙심하지 말고 타락한 자나 고난 중에 있는 자를 위해 계속하여 기도해 주어야 한다.

 

六. 딸들의 간계와 롯의 실패(30-38)

 

. 19:30  롯이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였더니

롯이 소알 성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산으로 올라가 굴속에 거하였다.  하나님이 롯에게 소알 성을 피난처로 주고 거기서 살게 하였으나 그것을 믿지 않고 롯이 그 곳에서 살기를 두려워하여 산에 올라 두 딸과 함께 굴속에서 살았다.  소알 성에도 죄가 있으므로 또 하나님이 심판할까봐 두려워서 거기를 떠난 것이다.

소알 성은 교회를 상징하는 것인데, 오늘날 지상 교회 안에도 잘못된 것과 죄가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한 곳이라 할지라도 합당치 못한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지상 교회는 죄와 싸우는 곳이므로 성도들이 죄와 싸우면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곧 하나님이 피난처로 정해 주신 그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며 자기 신앙을 잘 지키고 말씀대로 달음질해야 한다.  그런데 롯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장소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 굴속에서 살다가 큰 죄를 범하게 되었다.

 

. 19:31-38  큰딸이 작은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에 큰딸이 작은딸에게 이르되 어제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이 밤에도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작은딸이 일어나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큰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작은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

롯이 딸들에게 이 도성 사람들은 다 죄인들이고 망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딸들이 이 도성 사람들은 결혼의 대상자로 삼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에 아브라함의 족속은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들과 결혼했으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롯의 딸들은 소돔 고모라 성의 악한 사람들만 생각하고 세상에는 자기들의 배필이 없는 줄 알고, 자기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녀를 생산하였다.  그리하여 맏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여 낳은 아이는 모압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작은딸이 낳은 아이는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이렇게 롯은 자기 몸을 버리고, 사위들은 죽고, 딸들은 음란하게 되었고,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어 그 가정이 비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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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20장

제 20 장  보 호

 

(대  지)

一. 그랄에서의 실패(1-2)

二. 하나님께서 사라를 보호함(3-7)

三.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책망함(8-13)

四. 사라의 수치를 풀어 줌(14-16)

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기도로 복 받음(17-18)

 

(본문 강해)

 

一. 그랄에서의 실패(1-2)

 

. 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헤브론 즉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살고 있었다(18:1).  거기서 남방으로 옮겨 가데스와 술 사이의 그랄 땅에 우거하게 되었다.  그곳은 가사 남방 8km 지점에 있다.

 

. 20:2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아브라함은 그 지방 사람들이 자기 아내를 빼앗고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했다.  사라가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였으나, 현재는 자기의 아내이므로 결국 거짓말을 한 것이다.

전에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도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여 실패한 적이 있었다(12:13).  그 때에도 애굽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까봐 아브라함이 두려워하여 누이라고 하였었다.  그러므로 ,바로 왕이 사라를 자기 궁으로 취하여 아내를 삼았을 때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브라함이 다시 데려 왔으나 이방 왕에게 책망을 받는 큰 수치를 당하였다.  아브라함이 진실하게 말했더라면 하나님께서 더욱 잘 보호해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철저히 회개하지 않고 이번에 또 아브라함이 인간의 수단을 써서 어려운 일을 피해 보려고 거짓말을 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함정이 되어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여 갔다.

 

二. 하나님께서 사라를 보호함(3-7)

 

. 20: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사라에게 범죄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셨다.  사람은 미련하여 때로 함정에 빠지고 위경에 처할 때가 있으나,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보호해 주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 주신다.

네가 죽으리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사라가 남의 아내임을 가르쳐 주시고 그 여자를 범하면 죽이겠다고 하셨다.  남의 아내를 취하는 일과 동침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벌받아 죽을 만한 죄이다 (레20:10).

 

. 20:4-5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 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아비멜렉이 그 여인(사라)을 가까이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라고 말하면서 그가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했으므로 취하였다고 하나님께 답변하였다.  아브라함이 자기와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수단을 썼으나, 그것이 도리어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실치 못하면 자기와 남을 실족케 한다.  성도는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하여야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아비멜렉이 불의한 생각으로 행했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사라를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빼앗겼을 것이다.

 

. 20: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나도 알았으므로 아비멜렉이 고의로 잘못한 일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범죄하지 못하게 막아 주시는 것이 큰 은혜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범죄하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대로 놓아주시면 그 사람은 저주받을 사람이다(잠 22:1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감동하시고 여러 가지 섭리를 통해서 범죄하지 않도록 권고해 주시는 것을 큰 은혜요 복으로 알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서 죄를 떠나 말씀대로 바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남의 아내나 물건을 취했으면 돌려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삭개오는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은 사 배나 갚겠다고 했다(눅 19:8).  남의 것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요 망하게 될 것이다.

그는 선지자라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세워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이루어 나가셨다.  그러므로 그 아내를 취하는 일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큰 손해를 주는 것이며 그 죄가 더욱 크다.  아비멜렉이 만일 사라를 보내지 않으면 아비멜렉과 그에게 속한 자를 다 죽일 것을 하나님께서 경고하셨다.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선지자가 기도해 주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심판의 칼을 거두어 주신다(대상 21:26-27).

 

三.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책망함(8-13)

 

. 20:8  아비멜렉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모든 신복을 불러 그 일을 다 말하여 들리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아비멜렉이 아침 일찍 일어나 모든 신복에게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명령하신 것을 말하였으므로 모든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심히 두려워하였다.

 

. 20:9-10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관대 네가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 책망하였다.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아비멜렉은 음행죄를 범하는 것은 자신과 자기 나라가 큰 죄에 빠지는 것인 줄 알았다.  고린도전서 6:18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 하였다.  두렵고 떨림으로 음행죄에 빠지지 않도록 힘쓰는 자를 하나님께서 범죄하지 않도록 지켜 주신다.  그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이방 사람에게 책망을 받고 수치를 당했다.

 

. 20:11-13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의 책망을 받고 대답하기를 사라는 본래 이복 누이였는데 결혼하여 아내가 되었으므로 누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이라고 한 것은 옳지 않다.  아무리 누이와 결혼했어도 일단 아내가 된 이상 아내라고 해야 한다.  아내가 된 후에 아내라는 말을 하지 않고 누이라고 한 것은 거짓말이 된다.  성도가 말과 행실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때로는 이방인에게 책망과 수치를 받게 하시고 함정에 빠지도록 하신다.

 

四. 사라의 수치를 풀어 줌(14-16)

 

. 20:14-16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라 하고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아비멜렉이 사라를 돌려보내는 동시에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또 그 땅에 좋은 대로 아브라함이 거하게 해 주었다.  아비멜렉이 비록 본의 아니게 잘못을 저 질렀으나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해 준 것이다.  우리가 본의 아니게 상대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도 거기에 상당한 보상을 해 주는 것이 옳다.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아비멜렉이 남의 아내인 줄 알고 취한 것은 아니지만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했던 것만은 사실이므로 사라에게 있어서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 앞에 그에게 수치됨이 없음을 밝혀 주고 또 아브라함이 섬기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과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브라함을 보호해 주신 것을 알게 해 주고 많은 선물을 주어서 위로해 주었다.

은 천 개는 천 세겔을 가리킨다.  한 세겔은 11.4g이다.

 

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기도로 복 받음(17-18)

 

. 20:17-18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그가 비록 이방 왕이었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잘못을 깨달았을 때 모든 일을 바로 처리하며 아브라함에게 기도를 받았다.  선지자 아브라함이 기도해 줄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모든 것을 선하게 해결하여 주셨다.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사라에게 접근치 못하게 하려고 그 집에 있는 여인들을 쳐서 무서운 병이 갑자기 들게 한 것 같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이 꿈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그 무서운 병으로 인하여 두려워서 사라를 빨리 돌려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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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21장

제 21 장  출 생

 

(대  지)

一. 이삭을 낳음(1-3)

二. 이삭을 믿음으로 양육함(4-7)

三.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함(8-9)

四.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음(10-14)

五. 이스마엘로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함(15-21)

六. 아브라함에게 아비멜렉이 와서 맹약함(22-34)

 

(본문 강해)

 

一. 이삭을 낳음(1-3)

 

. 21:1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잉태케 하시려고 성령으로 감동시키시고 섭리하셔서 여러 면으로 힘 주신 것을 말한다.  아가 2:11-12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라고 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권고하시는 역사를 나타낸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권고하셔서 모세를 택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게 하셨다.

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이 권고하셔서 고레스와 같은 좋은 왕을 세워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셨다.  50:25에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예정한 때가 되면 그 말씀대로 자기 백성을 권고하시며 그 뜻을 이루신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고가 임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겨울에 땅이 얼어붙어 있을 때에는 농사할 수 없지만 봄이 돌아와 눈이 녹고 양춘가절(陽春佳節)이 되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예정한 때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권고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반드시 말씀대로 권고하시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어느 환경, 어느 위치에서든지 그대로 순종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권고가 임할 때에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때를 주지 않으면 가만히 기다리고, 기회를 주실 때에는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만사가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전 3:1-8).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말씀대로 일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반드시 말씀대로 성취된다.  어떤 것은 빨리 성취되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더디 성취되는 것도 있으므로 말씀을 순종할 때에 한 번에 안되면 두 번하고, 두 번에 안되면 세 번하면서 계속 힘써 순종해 나아가면 마침내 하나님의 만능의 역사로 반드시 성취된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계속 순종해 나아가야 한다.

 

. 21:2-3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사라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하여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이 되매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전에 지시하신 대로(17:19)순종하여 지은 이름이다.

       

二. 이삭을 믿음으로 양육함(4-7)

 

. 21:4  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이삭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였다(17:12).  아브라함이 아들을 기르는 일에 있어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길러 신앙의 후사가 되게 하였다.

 

. 21:5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 세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에 나이가 백 세였다.  아브라함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삭을 낳게 된 것을 증거한다.

 

. 21:6-7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이 웃음은 불신앙에서 나온 웃음이 아니고 신앙에서 나온, 기쁘고 즐거운 웃음이다(18:1-12참조).  90세 된 할머니가 아이를 낳았으니 웃을 만한 일이다.  이삭은 사람의 능력과 지각을 초월하여 신적 역사(神的役事)로 출생한 것이니 놀랍고 기뻐서 사라가 웃은 것이다.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90세 된 사라 할머니가 해산했다는 말을 사람들이 들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뻐하며 웃을 만하다.  사라가 늙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으므로 사람들의 생각에는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사라가 자녀를 젖먹이겠다고 누구도 감히 아브라함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아들을 낳게 해주셨으므로 사라가 감사하여 하나님께 찬송한 것이다.

 

三.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함(8-9)

 

. 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였더라 이삭이 자라서 젖을 뗄 때에 아브라함이 잔치를 베푼 것은 육신이 자란 것을 즐거워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서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가실 터인데, 이삭이 젖을 뗄 정도로 장성했으므로 그만큼 구원 역사가 진보 한 것이므로 대연을 배설하고 즐거워하였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육신 중심으로 즐거워한 것이 아니고 이삭을 통하여 많은 사람의 구원 운동이 잘 되어 나가는 것을 감사하며 즐거워한 것이다.

구약 시대에 젖을 떼는 나이는 3-6살 정도라고 하는데(삼상 1:21-23 참조), 이삭이 젖을 떼고 단단한 식물을 먹게 되었으니 그만큼 영이 장성했고 구원 역사가 확장된 것이다.

 

. 21: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하갈의 소생은 이스마엘이며 그가 13세 때에(아브라함은 99세 때) 할례를 받았으니(17:24-25),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4세 위이다.  보통 3-6세에 젖을 떼었다고 하면 이삭이 젖을 질 때에 이스마엘의 나이는 17-20세쯤 되었을 것이다.  이스마엘이 어린 동생 이삭을 시기하여 심하게 희롱하였고 핍박하였다 (갈 4:29).  이스마엘은 활 쏘는 자였으므로(20절) 이삭에게 활을 겨누고 위협하며 희롱했을 것 같다.  사라가 그것을 보고 잘못하면 이삭이 다치거나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四.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음(10-14)

 

. 21: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고 요구했다.  갈라디아서 4:29에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했다.  이스마엘은 육에 속한 자요, 이삭은 영에 속한 자이다.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한 자를 핍박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일이다.  또 영에 속한 자와 육에 속한 자가 공존할 수도 없다(고후 6:14).  이스마엘과 이삭이 갈라진 것처럼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는 서로 갈라서야 한다(계 18:4).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육에 속한 자(이스마엘)는 약속의 자녀(이삭)와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이스마엘이 종의 소생이긴 하나 역시 자기의 아들이므로 그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21: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아브라함이 가정의 어려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을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대로 행하라고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 왔다.  오늘날도 성도들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에는 특별히 기도를 많이 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일을 바로 처리해야 한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하나님이 이삭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성취시킬 것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는 자라야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는 뜻이다.

 

. 21: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육에 속한 아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에게서 났으므로 하나님이 번성케 하여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육에 속한 신자도 번성케 해 줄 것을 의미한다.

 

. 21: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자 지체하지 않고 즉시로 순종하여 여종과 이스마엘을 내어보냈다.  즉시 순종하지 않고 지체하면 마귀의 시험이 들어오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즉시 순종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을 때에 물질을 많이 주지 않고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만 주어 보냈다.  아브라함이 신앙의 결단을 잘 내렸다.  비록 사라가 내어쫓도록 요구하고 하나님께서 명령 하셨다고 해도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내어쫓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인정을 끊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은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신앙이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더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희생하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위대한 신앙을 가졌다.  비록 아들일지라도 그 인정에 얽매이지 말고 끊을 것은 끊어버리고 내어쫓을 것은 내어쫓아야 신앙이 바로 된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따로 분가시켜 줄 수도 있고 재산과 종을 많이 나누어주어 옆에서 살도록 할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내어쫓았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영에 속한 자와 육에 속한 자가 갈라져야만 영에 속한 자가 자유스럽게 자라날 수 있다는 뜻이다.  성도가 육신의 생각, 인정, 인본주의를 내어쫓아야 영적 생명의 길을 힘있게 걸어갈 수 있다.  우리 속에 있는 육신의 소욕을 그냥 놓아두면 영의 일이 안 된다.  육신도 잘되고 영도 잘되면 좋을 것 같지만 그러나, 영의 일이 안 된다.  그러므로 담대히 육신의 모든 소욕을 끊어버려야 생명 있는 신앙으로 걸어갈 수 있다.  육신의 생각은 늘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고, 영적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일을 방해한다(롬 8:7).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생각을 내어버려야 한다.

교회에서 어떤 일을 처리해 나갈 때에도 육신에 속한 의견을 따라가게 되면 영적인 교회로 자라나지 못한다.  교회는 죄인을 구원해 내는 속죄의 구령 기관(救靈機關)이다.  그러므로 영적 구원 운동에 장애가 되는 모든 세력과 인본주의를 좇아내고 참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  개인 신앙에 있어서도 육신에 속한 생각과 인정과 욕심을 내어쫓고 영적 신앙에 서도록 해야 한다.

쫓겨난 하갈이 이스마엘과 함께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했다.  브엘세바는 헤브론 서남 55km 지점에 있다.

 

五. 이스마엘로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함(15-21)

 

. 21:15-16 가죽 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 대곡하니

하갈과 이스마엘이 가지고 간 물 한 가죽 부대를 다 마셔버렸으니 아마 며칠이 지난 것 같다. 이렇게 물이 다 떨어져 죽게 되었을 때 하갈이 차마 자식이 죽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없어 아들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아래 두었다. 왜냐하면 사막의 태양볕이 너무 뜨겁기 때문에 떨기나무 그늘에서 쉬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샘물을 찾으러 떠나가다가 살 한 바탕쯤 가서 아들과 마주보고 앉아 방성 대곡하였다.  주인을 떠난 종은 죽을 지경을 당하게된다.

살 한 바탕쯤  활을 쏘아 화살이 미치는 거리이므로 약 200m 정도일 것이다.

 

. 21:17-18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 주인을 떠나 슬피 우는 하갈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었다.  그리고  그 아들 이스마엘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 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하나님께서 하갈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눈을 밝혀 샘물을 보게 하여 하갈과 그 아들이 살도록 해 주셨다.  하나님이 살릴 자는 눈을 밝혀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생수를 발견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을 자는 눈이 어두워져서 살길을 보지 못하고 곁에 있는 샘도 보지 못하고 목말라 죽는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에게 부르짖는 것이 사는 길이다.

 

. 21: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이스마엘이 장성하고 강건해져서 광야에 살면서 활 쏘는 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육에 속한 신자가 세상일에 있어서는 지혜가 있고 힘이 있어서 모든 것을 잘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에게서 나온 열심이요 하나님의 뜻과 지식을 좇은 열심은 아니다(롬 10:2-3).

교회도 이스마엘과 같은 육에 속한 교회가 외부적으로 힘이 있고 강하여 사업도 잘하나 영적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이스마엘이 외부적으로는 건장하고 사냥도 잘하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영적인 일을 이루어 나가는데는 멀리 떠나 있었다.  하나님의 기업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영적 신앙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주어진다.

 

. 21: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이스마엘이 애굽 여인을 취한 것은 이방 결혼이므로 잘못된 것이다.  이스마엘이 애굽 여인을 취했듯이 오늘날 교회가 신신학, 해방신학, 에큐메니칼 운동, 그릇된 신비주의와 짝하여 나가는 일은 육에 속한 운동이요 땅에 속한 운동이다.  이것은 성경에 위반되는 것이다.

 

六. 아브라함에게 아비멜렉이 와서 맹약함(22-34)

 

. 21:22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을 찾아왔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것을 이방인까지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축복을 해 준 것을 보고 안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방패와 상급으로 삼고 말씀대로 믿고 나아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났고, 많은 재물과 큰 세력을 얻게 되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아브라함에게 불가침 조약 맺기를 원하여 찾아왔다.  또 헷 족속과 모든 사람들도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으로 존경하게 되었다(23:5-6).

누구나 하나님을 잘 섬기면 아브라함과 같이 창성하여 큰 세력이 된다.  성도가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인간 지각에 뛰어난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는 큰 세력이 되게 하신다.

 

. 21: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전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거짓되이 행하였으므로 아비멜렉의 집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질병으로 태(胎)가 닫혀졌고 수치를 당하고 물질적으로 손해가 있었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다시는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맹세하라고 하였다.  자기 아들과 손자에게까지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맹세하여 서로 후대하면서 공존하기를 원하였다.  이는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다시 손해를 볼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여러 가지로 후대한 것처럼 아브라함도 아비멜렉을 후대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도는 남의 신세를 진 다음에 배은망덕하지 말고 반드시 갚아 주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 21:24-25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의 말대로 맹세하겠다고 약속했다.  상대방이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면 즉시 허락하는 것이 좋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였다.  그 지방은 고원 지대이기 때문에 물이 귀하고 목축을 하는 자들에게 우물은 큰 재산이며 생명줄이었다.  그리하여 우물로 인해 가끔 분쟁이 일어났다.  전에 아브라함의 종들이 파 놓은 우물을 아비멜렉의 종들이 빼앗은 일이 있었으나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말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책망한 것이다.  이와 같이 책망은 적당한 때에 해야 효과가 난다(잠 25:11-12).

 

. 21:26  아비멜렉이 가로되 누가 그리 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아비멜렉은 그 일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고 사과하였다.  아브라함 자신이 그 사실을 아비멜렉에게 알리지 않았고 아비멜렉도 그 사실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아브라함이 우물을 빼앗기고도 직접 그들과 싸우지 않고 잠잠히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오직 하나님을 방패와 상급으로 삼아 믿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세력을 강하게 해 주시고, 모든 면에 창성하게 해 주셨다.  사람이 서로 물고 찢으면 피차 망하게 된다.

 

. 21:27-30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뇨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웠다.  그 때에 특별히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았다.  구약 시대에 양을 약조의 증거물로 주는 예가 있었다.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이 우물은 본래 아브라함의 것인데, 아비멜렉의 종들이 늑탈했다가 아브라함에게 다시 돌려주었으므로 그 증거품으로 일곱 암양 새끼를 아비멜렉에게 준 것이다.  보통 전쟁이 끝나고 평화 조약을 맺을 때에도 빼앗았던 것을 다 돌려주고 조약을 맺는다.  아비멜렉도 빼앗은 우물을 돌려주고 조약을 맺었다.

 

. 21: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이 맹세의 내용은 서로 해(害)하지 않고 서로 후대(厚待)하자는 것이었다(23절).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으로 그들이 그 우물을 증거로 삼아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삭의 때에 아비멜렉이 또 빼앗았다(26:15-22).  사람은 서로 계약을 하고도 곧 마음이 변하기 쉽다.  \"세계의 모든 조약은 대포 한 발이면 다 깨어진다\"는 말이 있다.  \"불가침 조약\"이니 \"평화 조약\"이니 하여 서로 조약을 맺어도 인간이 맺은 언약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 사람이 노력하는 데까지는 해야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했다.

 

. 21: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비멜렉과 군대 장관 비골은 브엘세바까지 찾아와 맹약을 하고 그곳을 떠나 다시 그랄로 돌아갔다.

 

.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에셀\"은 \"수풀\"이라는 뜻이 있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많은 나무를 심어 수풀을 만든 것 같다.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아브라함이 영생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생의 길을 날마다 걸어가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님은 영생의 하나님이시며 날마다 생명을 살려 나가시는 하나님이심을 아브라함이 믿었다.  또 자기 속에 새생명이 날마다 역사하였으므로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우리도 날마다 영적 생명이 소생(蘇生)하고 자라나면서 하나님을 부르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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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22장

제 22 장  시 험

 

(대  지)

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함(1-2)

二. 정성드려 하나님을 섬김(3-4)

三. 지혜를 써서 드림(5-8)

四. 독자를 바침(9-10)

五.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심(11-14)

六.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고 맹세함(15-19)

七. 나홀의 자녀들(20-24)

 

(본문 강해)

 

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함(1-2)

 

.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목적은 ① 아브라함의 심중에 있는 신앙을 드러내어 만대에 신앙의 모본을 삼고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이것은 좋은 시험이요 복된 시험이다.  ② 아브라함에게 좀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신앙 인격을 갖춘 자로 만들어 귀하게 쓰려 함이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너무 사랑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야고보서 1:13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악한 목적으로 유혹하는 시험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야고보서 1:2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다.  이것은 성도를 연단시키는 시험이며 성도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여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다(약 1:4).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셔서 큰복을 주시려고 시험하신 것이다.  예를 들면 공부 잘하여 실력 있는 사람에게 고등고시를 쳐서 그 실력을 인정해 주고 귀히 쓰려는 것과 같다.

 

.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을 시험한 문제는 가장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다.

모리아 땅으로 가서 모리아 땅은 아브라함이 사는 곳에서 3일 길쯤 되는 먼 곳이다.  아브라함이 특별한 제사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서 거리가 멀지만 하나님께서 그곳을 택해 주신 것이다.  

그를 번제로 드리라 번제(燔祭)는 제물을 완전히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서(레 1:3-9), 이 시험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어렵고 큰 시험이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자녀를 낳을 수 없었으나, 하나님의 언약으로 낳은 아들이므로, 그를 죽여서 번제물로 드리는 일은 아브라함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또 한 가지 큰 문제는 이삭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며 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다(15:4-5 참조).  이삭이 아직 어리고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 이삭의 자녀가 하늘에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겠는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을 변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믿음으로 순종했고, 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고 하신 말씀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 상반(相反)되나, 이삭을 잡아 번제로 드리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이삭을 다시 살려 전에 주신 약속(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진다는 말씀)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아브라함이 확신하며 순종하였다.  히브리서 11:17-19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 다른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겠다고 하거나 \"전에 이삭을 씨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지금은 왜 바치라고 합니까\"하고 원망하고 불평했다면 아브라함이 그 시험에서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만능의 하나님을 믿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바쳤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자는 아무리 독자와 같이 귀중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바치라고 할 때에 즉시 순종하여 바치게 된다.

 

二. 정성 드려 하나님을 섬김(3-4)

 

.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아브라함이 ① 즉시 순종하고 ② 부지런하고 ③ 충성되이 하나님을 섬긴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즉시로 순종하는 신앙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2:1)고 하실 때에도 아브라함은 즉시로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갔다.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 말씀을 즉시 순종하고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하나님을 섬겨야 된다.  게으른 것은 악이며 게으른 자는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고린도전서 4:2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였다.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이것은 정성을 기울여 제사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는 인구가 많지 않은 때이므로 모리아 산에도 나무가 많고 고목이 되어 쓰러져 있는 나무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집에 있는 깨끗한 나무를 정성껏 준비해 가지고 가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했다.  나무를 가지고 삼일 길을 가는 것이 힘들지만 아브라함은 그것을 개의치 않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데만 마음을 기울였다.  우리도 하나님을 섬길 때에 정성을 다하여 섬겨야 한다.  성도가 연보할 때에도 미리 정성스럽게 준비하였다가 바치고(고후 9:5), 예배도 미리 준비하였다가 일찍 교회에 나와 정성 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예배 시간에 늦거나 빠지는 것은 정성이 없는 증거이다.  정성 없는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은 제사 드리러 갈 때에 하나님의 지시와 인도를 따라 갔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그 땅으로 갈 때에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영적인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까지 가서 제사를 드린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께 몸을 바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를 드리며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산 제사가 된다(롬 12:1).

 

. 22:4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산을 향해 삼일 길을 걸어갔다.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이삭과 함께 삼일 길을 걸어가면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이 굳게 붙들고, 그 말씀을 새김질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갔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다음에는 사람들과 의논하거나 변경시키지 말고 즉시 순종하되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하며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방심하지 말고 전심전력을 기울여 그 뜻을 이루어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三. 지혜를 써서 드림(5-8)

 

. 22: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아브라함이 사환들을 산밑에 남겨 두고 이삭만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기로 작정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 지혜롭게 행한 것이다.  사환들과 나귀를 데리고 가면 산에 올라가기까지는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이삭을 잡아 제물로 드리려 할 때에 사환들이 한사코 만류하게 되면 제사 드리는데 큰 방해가 되어 제사 드리기에 힘들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사를 드릴 수 있을까 하여 깊이 생각하고 방해될 만한 일들을 사전에 지혜롭게 제거하였다.

막아야 할 일을 미리 막지 못하면 나중에는 아주 힘이 들고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아브라함이 산 아래에서는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 한 마디로 일이 잘 처리 될 수 있으나 사환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간 다음 그들이 제사를 방해할 때에는 아무리 힘을 써도 그 사환들의 방해를 물리칠 수 없게 된다.  우리도 하나님 섬기는 일에 모든 것을 사전에 준비하고 심사숙고(深思熟考)하여 바로 처리해야 하나님의 일을 원만히 이루어 나갈 수 있다.

 

.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번제에 쓸 나무를 지우고 자신은 한 손에 불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번제용으로 쓸 불을 집에서부터 준비하여 들고 갔다.  그 당시는 불씨 구하기가 어려웠으므로 집에서 불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가야 제단 나무에 불을 붙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22:7-8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려면 번제할 양이 있어야 할 터인데 나무와 불과 칼은 있으나 양이 없으므로 이삭이 궁금하여 부친 아브라함에게 여쭈어 본 것이다.  이삭은 평소에 양을 잡아 제사하는 것을 자주 보았으므로 이렇게 물어보았다.  이 때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 이삭이 순진하게 하는 말을 듣고도 조금도 인정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신앙에 굳게 서서 끝까지 나아갔다.

또 아브라함이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지혜롭게 답변했다.  이 말을 계획적으로 꾸며서 답변한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모든 것을 친히 해주신 하나님을 믿고 한 말이다.  그때 만일 아브라함이 인정에 끌려 이삭이 죽을 것을 애처롭게 생각하면 맥이 죽 빠져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의뢰하고 일심전력(一心專力)을 다하여 나아갈 때에 자기가 생각지도 못한 지혜로운 말을 하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신 것이다.

 

四. 독자를 바침(9-10)

 

.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산까지 갔다.  그리하여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은 다음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네가 제물이 되기를 원하시니 네가 결박당하여 제물이 되어야겠다\"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그 때에 이삭이 \"나같은 부족한 것을 하나님께서 제물로 받으시겠다고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하면서 자원하여 결박당했을 것이다.  이삭은 늙은 아버지가 결박할 때에 하나님께 몸을 바치는 것이 가장 복되고 영광스럽다는 것과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이며 더 좋은 생명을 받는 진리를 평소에 아버지께 배웠으므로 이렇게 믿음으로 한 것이다.

그러면 자원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는 이삭을 결박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리 자원해서 바치려고 할지라도 칼로 찌를 때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칼을 붙들고 몸부림치거나 뒹굴다가 계단에서 떨어지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얽매어 있어야 탈선하지 않고, 본능과 욕심의 종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잘 이루어 나아갈 수 있다.  성도가 말씀에 얽매이고 직분에 얽매어 있는 것이 탈선과 육의 본능적 행동을 방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유익이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얽매어 신앙 생활하는 것이 귀하고 좋은 것이다.  예를 들면,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고, 성경을 몇 장씩 정해 놓고 읽고, 직분과 책임을 맡아서 감당해 나가고, 교회의 제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얽매여서 사는 자가 신앙 생활을 잘할 수 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정해 놓고 기도했다(단 6:10).

 

.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여 단에 올려놓은 후 이삭을 칼로 잡으려고 하였다.

 

五.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심(11-14)

 

. 22:11-12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인정하셨다.  비록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지는 않았으나 마음으로는 이미 다 바쳐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인정하셨고, 이삭을 번제로 받으신 것이다.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전에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했으나 독자 이삭을 바치는 것을 보시고서야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셨다.  이 시험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  야고보서 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다.  시험 당할 때에 이겨서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가장 사랑하는 독자라도 바쳐야 영과 인격이 자라난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며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바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같이 가장 소중한 독자라도 바쳐야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인정받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와 부활로 구속을 성취하신 다음에야 인정받았다고 했다(롬 1:3-4).  디모데후서 2:15에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 참으로 인정받는 자는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면 그만큼 크고 귀한 그릇으로 사용된다.

 

. 22:13-14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 본 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이삭을 번제로 드리지 못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무슨 준비한 제물이 없을까 하고 사방을 살펴보니 뿔이 수풀에 걸린 수양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브라함은 그 양을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놓은 제물인 줄 알고 그 양을 잡아 그 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여호와이레(        )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이라는 뜻이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신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해 나아가는 성도에게는 언제나 여호와이레이다.

 

六.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고 맹세함(15-19)

 

. 22:15-19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독자를 바친 것이 너무 귀하고 기뻐서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 나타나서 맹세하시며 복을 주셨다.  하나님의 맹세와 축복은 절대로 변치 않는 것이다.  히브리서 6:13-14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라고 했고, 이 두 가지는 변치 못할 사실이라고 했다(히 6:18).

그 축복의 내용은 ① 큰복을 주신다.  ② 아브라함의 씨로 크게 번성케 하신다.  ③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의 문을 얻는다.  ④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그리스도가 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겠다는 것이다(13:16).  오늘날도 성도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독자라도 바치면 영이 자라나고 신앙 인격이 커져서 창성하고 번성하게 되어 그 사람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된다.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대적과 싸울 때에 그 대적을 이기고 정복하도록 해 주신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만큼 대적을 이기고 땅을 정복하는 축복을 받으며, 천국에 가서도 면류관과 상급이 크고 귀히 쓰는 영광의 그릇이 된다(약 1:12).  성도가 순교하는 것도 독자를 바치는 신앙이다.  순교자가 천국에 가면 영광스러운 특별 좌석에 앉게 된다.  순교자는 없어질 육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영원히 큰복을 받은 자이다.

 

七. 나홀의 자녀들(20-24)

 

. 22:20-24  이 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그대의 동생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무엘과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처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아브라함의 둘째 동생 하란은 롯을 낳은 후 일찍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고(11:27-28), 첫째 동생 나홀의 자녀들의 계보를 여기에 기록했다.  나홀은 그의 처 밀가에게서 여덟 아들을 낳았으며 그 여덟째 아들의 이름이 브두엘이었다.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리브가는 장차 이삭의 아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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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창세기23장

제 23 장  사라 별세

 

(대  지)

一. 사라가 별세함(1-2)

二. 아브라함이 장지(葬地)를 구함(3-4)

三. 헷 족속이 허락함(5-6)

四. 막벨라 굴을 매입함(7-18)

五. 사라를 매장함(19-20)

 

  (본문 강해)

 

一. 사라가 별세함(1-2)

 

. 23:1-2  사라가 일백 이십 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성경에 여자로서 연령이 기록된 것은 사라뿐이다.  슬퍼하며 애통 하다가 이것은 아브라함이 그 아내를 노년에도 진정으로 사랑하여 귀히 여긴 증거이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시체 앞에서 슬퍼하며 통곡한 것도 사라를 사랑하여 귀히 여긴 증거이다.

 

二. 아브라함이 장지(葬地)를 구함(3-4)

 

. 23:3-4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아브라함이 사라를 위하여 헷 족속에게 가서 사라의 시체를 장사하기 위한 매장지를 구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으나(12:7; 17:8) 아직 아브라함은 그 땅에 우거하는 자로 묘지를 사두지 않고 장막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더 나은 본향인 하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갔다(히 11:13-16).

 

三. 헷 족속이 허락함(5-6)

 

. 23:5-6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방백의 원어(         )는 \"들림을 받은 자\", \"족속의 장(長)\"을 뜻한다.

헷 족속이 아브라함을 가리켜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했고, 자기들의 묘실 중 좋은 곳을 택하여 장사할 것과 장사함을 금할 사람이 없으리라고 한 것을 보면 그들이 아브라함을 크게 여겨 두려워하며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번성하고 창대 해져서 이방 사람들에게 크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랄 왕 아비멜렉도 아브라함의 세력과 권세를 두려워하여 군대 장관 비골을 데리고 와서 불가침 조약을 맺었었다(21:22-31).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말씀을 좇아갔고, 독자까지 바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처럼 축복해 주셨다.  믿음을 잘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창대케 해 주시며 존귀하게 해 주신다.

 

四. 막벨라 굴을 매입함(7-18)

 

. 23: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몸을 굽혔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존경하는 태도이다(12절).  아브라함은 큰 세력이 되었으나 언제나 겸손하고 상대방을 존중히 여겼다.

 

. 23:8-9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소유인 막벨라 굴을 정당한 값을 치르고 사기를 청원했다.  아브라함은 청원할 때에도 \"당신들의 뜻일진대\"하고 상대방의 뜻을 존중히 여기면서 겸손히 행하였다.

 

. 23:10-11  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에브론은 아브라함에게 굴뿐 아니라 굴이 있는 밭도 거저 주겠다고 성문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 듣는 자리에서 말했다.  그 사람이 밭과 굴을 거저 주겠다고 한 것은 아브라함에게 거저 줄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왕과 같은 권세로(하나님의 방백) 평소에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고 크게 존경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 23:12-13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밭과 굴을 거저 받지 않고 반드시 값을 주고 사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① 훗날 땅의 소유권 문제로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②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허락한 땅이므로 영구히 무덤을 두기 위함이었다.

 

. 23:14-18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대로 은 400 세겔을 그 땅 값으로 주었다.  아브라함이 여러 증인 앞에서 주인이 말한 땅 값을 다 준 것은 그 땅을 억지로 헐값에 빼앗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함인 것 같다.  로마서 13:8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했다.  거저 받으면 빚이 되고 너무 헐값으로 사도 주인에게 신세를 지은 것이 되어 빚이 된다.

아브라함이 제 값을 지불하고 산 이유는 ① 남의 것을 대가 없이 자기 것으로 삼지 않기 위해서이다.  ②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③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물질에 대하여 정당하게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④ 훗날에 그 일로 인한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⑤ 후대에 이스라엘과 헷 족속 사이에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일 아브라함이 거저 받았다고 하면 후에 에브론의 자손이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때에 분쟁이 생길 소지가 크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정당하게 그 값을 지불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대대로 그것을 소유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사람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할 수 있으므로 거저 준다고 무조건 받으면 나중에 다시 돌려 달라고 할 때 돌려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물질에 대하여 깨끗하고 정당하게 처리해야 한다.

 

五. 사라를 매장함(19-20)

 

. 23:19-20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헤브론)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고 그 밭과 굴을 영구히 아브라함의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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