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사무엘상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기록한 사람 : 사무엘

기록한 연대 : 주전 1040-1030년경

사무엘이 주전 1110년경에 출생하여 70-80세 되었을 때 본서를 기록한 것 같으나 정확 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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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사무엘상1장

제 1 장  사무엘 출생

 

(대  지)

 

一. 엘가나와 그의 가정 상태(1-5)

二. 브닌나가 한나를 핍박함(6-8)

三. 한나의 기도와 서원(9-18)

四. 한나가 아들을 낳음(19-20)

五. 사무엘을 여호와께 드림(21-28)

 

(본문강해) 

 

一. 엘가나와 그의 가정 상태(1-5)

 

. 1:1-5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더라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가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기록되었으므로 사무엘이 에브라임 지파 같으나 그가 제사장이 된 것을 보면 레위 지파임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레위 지파가 아니면 제사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는 역대상 6:16-28에 엘가나가 레위 족속에 속한 사실이다.  레위 지파 사람이지만 에브라임에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에브라임 사람이라 하였을 것이다.

엘가나에게 아내가 둘이 있었는데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였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고 한나는 자식이 없었다.  구약시대에는 아내를 여러 얻는 것도 용납되었다.

엘가나가 실로라고 하는 곳에 있는 제사장을 찾아가서 제사를 드렸다고 하였다. 거기에는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있었다.

엘가나의 온 식구는 매년 실로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으며 제사드리는 날에 엘가나가 제물을 나누어 줄 때 브닌나와 그 자녀들에게도 주었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나로 성태치 못하게 하셨으므로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아무리 제물의 분깃을 갑절이나 받고 또 남편의 특별한 사랑을 받지만 하나님께서 잉태하지 못하게 만드셨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여러 가지 번민과 고통이 있었다.

 

二. 브닌나가 한나를 핍박함(6-8)

 

. 1:6-8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한나는 잉태하지 못한 것 때문에 늘 브닌나의 격동을 받아 번민케 되었고 마음이 편안치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왜 한나에게 잉태하지 못하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한나를 잉태하지 못하게 만드신 것은 그로 인하여 낮추고 시험하여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낮추고 또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광야길로 인도하신 것과 같다(신8:2, 16 참조).  가까운 길로 인도하시면 며칠만에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는데 광야길을 빙빙 돌게 만드시고 40년 동안 큰 시험과 환난을 당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낮추고 시험하여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었다.  한나에게 잉태하지 못하게 하신 것도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길을 걷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이다.

브닌나가 자주 한나를 격동시킨 것은 한나의 연단을 위한 시험이요 가시이다.  즉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브닌나를 가시로 주어 격동시키고 번민하게 만들고 고통을 주어 마침내 좋은 신자가 되게 하여 복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이 교만하여 져서 망하지 않도록 바울을 낮추시기 위함이었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바울을 통하여 끝까지 성공시키기 위한 연단이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고후12:7-10).

한나가 순조롭게 잉태했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서 낮아질 것도 없었고 하나님께 매달려 부르짖을 것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편이 제물을 갑절이나 줄만큼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5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재물로 바칠 만큼 경제적으로 유족하였는데(24절), 거기에다 잉태하여 아들까지 낳았다고 하면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었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잉태하지 못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한나를 낮추셨다.  잉태하지 못하는 까닭에 자주 격동을 받은 한나는 더욱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눈물로 기도하게 되었고 매달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나가 낮아지고 겸손하여 하나님만 의뢰하는 좋은 신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그를 낮출 만한 결함이나 결점을 주신 것 같다.  무엇 한 가지라도 잘되면 의기 양양하다가도 자기의 결함이나 결점이 나올 때는 거기서 낮아지고 교만하던 것이 쑥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가시를 주시는 것이다.  베드로도 졸기를 잘하는 결점이 있었다.  변화산에서 졸았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도 졸았다.  또 성격이 과격하여 환도를 빼어 말고의 귀를 베었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것들은 다 결함이요 결점이지만 이것 때문에 베드로는 더욱 겸손하여지고 좋은 사도가 되었다.  베드로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교만이 나오려고 하다가도 \"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예수님을 몇 번 모른다고 하였는가?  나는 말고의 귀를 벤 사람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는 그만 교만이 쑥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각 사람에게 단점과 가시와 시험하는 것이 있음은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그 사람을 낮추시려는 것이다.  사람마다 무엇인가 낮출만한 가시가 있어야만 낮아질 수가 있게 된다.  엘리 제사장도 아들은 있었지만 아들들의 못된 행실로 낮추고 연단하셨으며(2:12-17), 사무엘도 그 아들들이 아비의 행실을 따르지 않고 불의한 행동을 하였으므로 그것으로 사무엘을 낮추셨다(8:1-3).

대개 사람들은 아무 결함이나 결점이 없이 늘 평안하고, 가는 데마다 대접을 잘 받고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어야 그것이 하나님의 복인 줄 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그런 평안한 환경 가운데 가만히 놓아두시지 않고 어떤 사건을 통하여서라도 낮추시고 연단하시어 하나님 앞에 버림받지 아니하고 마침내 복을 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기의 결함과 부족한 면을 붙들고 늘 겸손하며 낮아져서 자기를 만들어 가도록 힘써야 한다.

성도는 자기가 되지 못한 것, 잘못한 것, 죄 지은 것을 늘 붙들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교만하지 않도록 자기를 만들어 가야된다.  일평생의 원수가 자기인 줄을 알아야 한다.  곧 자기가 제일 큰 원수이다.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나아갈 때는 생명의 역사가 있는 때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기가 살아서 자기가 중심이 되면 영적 생명이 끊어지는 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날마다 부인하여야 된다.  하루라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을 때는 자기가 살아나고 자기가 살아나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막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하나님과 자기 사이를 막는 것은 언제나 자기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하였다.  또 고린도전서 15:31에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다.

오늘에 자기를 죽인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바울은 자기가 사도 가운데 제일 작은 자요, 성도라 일컬음도 감당치 못할자라고 하였다.  자기가 교회를 핍박하고 또 스데반을 죽일 때 주도적 역할을 한 죄를 붙들고 통회하고 낮아진 것이다.

자기를 죽이지 못하면 성경을 다 알아도 쓸데가 없다.  도리어 교만하여진다.  마치 강도에게 칼을 준 것과 같아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먼저 강도질하려는 속마음을 없앤 다음에 칼을 취면 그 칼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의 강도는 그냥 두고 칼만 쥔다면 죄만 짓고 더욱 비참한 상태가 되고 말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는 강제로라도 낮추어 자신을 부인하고 낮아지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하나님의 강제적 징계가 오기 전에 미리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 낮아진다.

한나가 브닌나의 격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아 아직도 다 만들어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참신앙에 섰다면 남이 자기를 격동할지라도 격동받지 않게 된다.  격동받는 자체가 한나에게는 아직까지도 만들어질 것이 많다는 증거이다.  또 원통히 생각하고 번민하고 눈물을 흘리는 그 자체가 그만큼 되지 못한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도 격동을 받으겼을까?  예수님은 아무리 격동시켜도 격동을 받지도 않으시며 분한 마음도 생기지 안았다.  

한나는 깊은 도(道)에 도달하지 못한 신자이지만 보편적으로 신앙이 아주 좋은 신자이며 영에 속한 신자이다.  반면에 브닌나는 육에 속한 신자로 보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브닌나는 육신의 것을 가지고 만족하고, 육신의 것 때문에 질투하고 남을 멸시하였기 때문이다.  자기는 아들 딸을 낳았다고 하여 그것을 가지고 뽐내고 자랑하며, 다른 사람을 아이 낳지 못한다고 멸시하며, 또 남편이 한나를 더 사랑한다고 질투한 것을 보아 분명히 육신 중심이요 육에 속한 신자이다.  

한나는 신령한 은혜 속에 있는 신자이다.  2:1-2에서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고 여호와로 인하여 뿔이 높아졌고 여호와와 같은 반석이 없고 주 밖에 다른 이가 없다고 기도한 것을 보아 한나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사는 신자이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생활에서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없애려고 자주 격동을 받게 하신 것이다.  본래의 신앙은 좋으나 표준까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뿐이다.  한나의 신앙은 좋은 편이지만 더 좋은 신앙 인격을 만들려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브닌나로 하여금 한나를 핍박하게 하였다.  

육에 속한 신자가 영에 속한 신자를 핍박하고 학대하고 격동을 시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아들은 계집종에게서 난 이스마엘이고 다른 한 아들은 자유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난 이삭이다.  그 계집종의 아들이 이삭을 희롱하고 핍박하였다.  이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고 하였다(창21:1-13 ; 갈4:21-31).

여기에서 한나가 낳은 사무엘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똑같은 의미의 영에 속한 아들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을 때에 언약으로 인하여 이삭을 낳았고 이 언약은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었다.  사무엘에게는 그러한 약속이 없었으며 다만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한 자를 핍박하는 면이 엘가나의 가정과 아브라함의 가정이 같다는 것이다.  

육에 속한 이스마엘이 영에 속한 이삭을 핍박하였고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시키고 핍박하였다.  육에 속한 신자는 세상에서 출세하고 육신의 것이 부요해지는 반면에 영에 속한 자는 세상에서 환난과 궁핍을 당한다.  요한계시록 2:9에\"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고 하였고, 요한계시록 2:10에 \"···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다.  

한나가 경건하게 살려고 하므로 핍박을 받았고 진리를 지키려고 하므로 시험을 당하게 된 것이다.  격동시켜도 격동을 받지 않으며 육에 속한 모든 것을 초월하고 하나님 안에 깊이 들어가 그 진리에 바로 서서 나아가면 점점 자신이 만들어지게 된다.  격동받는 일 때문에 한나는 기도를 많이 하며 하나님을 더욱더 간절히 찾게 되었다.  이제는 한나가 하나님을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그런 자리에 들어가 자신의 인격이 잘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 복 받은 것이요 감사한 것이다.  

 

三. 한나의 기도와 서원(9-18)

 

. 1:9-18  그들이 원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엘리 제사장이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고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말하기를\"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하는 것은 나실인을 삼겠다는 뜻이다. \"나실인\"은 자신을 성별(聖別)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이다(민6:2-8).

한나가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하였는데 기도할 제목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핍박과 환난 속에서 자기의 부족한면(단점, 즉 해산치 못하는 것)과 외부에서 격동시키는 일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기도할 재료를 주신다.  한나는 영에 속한 신자이지만 그 신앙이 많이 자라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문제로 인하여 기도하게 하셨다.  

그러나 신앙이 좀 자라나면 어떤 기도를 하게 되는가?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12:23에\"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도는 자기를 위한 기도가 아니고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을 위한 기도이다.

또 욥은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하였다.  자녀들이 혹시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하여 늘 기도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택한 백성)의 구속을 이루기 위하여 늘 기도하셨다.  또 십자가를 앞에 놓고 그것을 승리적으로 통과하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셨다.

이런 성경의 증거를 볼 때 하나님께서는 정도에 따라서 각 사람에게 기도할 재료를 주시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 기도하도록 만드신다.  고상한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급의 기도라도 하도록 만들어 주신다.  즉 이스라엘을 위하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는 고상한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하지 않고 이기주의로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자기 개인에 대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가 생긴다.  즉 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작은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예정된 것도 기도하므로 받도록 예정된 것이 많다.  황무했던 곳을 회복시켜 에덴 동산과 같이 하여 주시되 그렇게 하여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여야만 이루어 주신다고 하였다(겔36:35-37).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도를 하도록 시키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실 때에는 결과만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방편도 예정을 하셨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도 예정에 들어간다.  예정되었으면 기도하지 않아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기도할 때 이루어 주시기로 예정되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기도할 재료를 주신 것이다.  

그가 아이가 없는 것 때문에 기도하였고 기도하므로 장성한 신앙이 되었다.  기도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 이상의 것, 좀더 큰 것을 이루어 나가기 위한 기도의 재료로서 좋은 것을 주신 줄 알고 감사해야 한다.  사도 바울도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감사하라고 하였다(딤전6:6-8).

한나의 기도의 출발점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모든 문제를 하나님으로 더불어 해결하자는 것이다.  브닌나가 자주 격동시켜 마음이 격동되고 번민하여 괴로워도 더불어 싸우지 않고 또 자기의 수단이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가서 해결하려고 하였다.  아무리 환난과 핍박이 들어오고 또 대적이 나를 죽을 지경에 빠뜨린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을 원망해서는 안 되며 적개심을 품어서도 안 된다.  오로지 하나님께 나아가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독교는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의 종교이다.  원수를 미워하면 하나님께 나아가도 기도가 막힌다(마5:23-24 참조).  한나가\"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요\"한 것을 보아 하나님과 잘 통해진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이나, 섭섭한 마음이나 싸우겠다는 마음이 없이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한 한나의 신앙은 참으로 본받을 만하다.  원수가 와서 포위하고 쳐들어오겠다는 편지를 편쳐 놓고 하나님께 기도한 히스기야왕의 신앙과 같다고 볼 수 있다(사37:14-20).

또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며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기도였다.  어떠한 문제 때문에 기도하든지 하나님을 발견하고 교통하며 깊이 사귀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된다.  그런 기도가 참 기도이다.  한나는 마음이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지기까지(2:1) 기도하였고 또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지기까지 기도하였으니 영적 권세(뿔)가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다.  

또 한나의 기도는 여호와를 발견하여 주밖에 거룩한 자가 없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기도요 또 하나님이 자기의 견고한 반석이요 피난처와 방패가 되는 데까지 나아가는 기도였다(2:2).

한나는 처음엔 격동이 너무 심하고 고통과 환난의 원인이 되는 자기의 약점이 있기 때문에 기도를 하였지만 기도하는 동안에 영적 세계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좀 더 발견하고 영혼이 많이 자라났다.  

산에 기도하러 갈 때 기도할 조목(條目)을 여러 가지로 적어 가지만 며칠 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점점 그것이 다 쓸데없어지고, 하나님이 나와 점점 가까워지며, 나의 반석이 되고, 피난처가 되며, 나의 즐거움이 되며, 나의 모든 것이 됨을 깨닫게 된다.  그때 비로소 그 종이 쪽지를 내어버리게 되며 그 대신 남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고 즐거운 것도 하나님밖에 없게 된다.  하나님 한 분 모시므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른 기도이다.  

다시 말하면 기도하는 동안에 사욕은 다 없어지고, 자기라는 것도 점점 깨어지고, 하나님과 영적 세계가 발견되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하나님을 많이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아들 일곱보다도 더 크다.  그러기 때문에 한나가\"전에 잉태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라고 말하였다(2:5).  한나가 아이를 하나 낳아 놓고 일곱을 낳았다는 말을 한 것은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 아들 일곱보다 더 낫다는 말이다.  벌써 영적 세계는 7배나 커졌고 영적 생명의 역사도 7배나 장성해졌고 하나님을 7배나 더 많이 발견하였으므로 아들 일곱보다 더 나은 것이다.  이사야 56:3에 \"··· 고자도 나는 마른나무라 말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기도할 때 아들 일곱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도한 결과는, ① 기도하는 도중에 더 좋은 것을 발견하여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게 되었고, ② 이스라엘을 위하는 사람이 되었고, ③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이 되었다.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 하겠나이다 하나님의 나라(이스라엘)를 위하여 아들을 바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이 기도는 개인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이다.  왜 이러한 기도가 나오게 되었는가?  한나는 브닌나가 자주 격동 시켜서 죽을 지경에 빠져서 한나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였다.  하나님께서 이런 난관을 주걱서 아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바칠 마음이 우러나게 하신 것이다.  사람이 죽을 난관에 빠질 때에는\"이번만 하나님이 살려 주시면 이제는 주를 위하여 일하겠습니다.\"하는 서원이 나오게 된다.  한 번만 건져 주시면 주님을 위하여 전적으로 충성하겠다고 한다.  저자도 6·25사변 때 죽을 고비에 빠졌을 때\"하나님이 이번만 건져 주시면 남은 여생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결심하고 기도한 때가 많았다.  어려운 일이 없다고 하면 그런 기도를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만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데로 돌이켜 놓기 위한 것이다.  

처음부터 브닌나가 아이를 낳을 때 한나도 낳고, 또 브닌나가 둘을 낳을 때 한나도 둘을 낳았더라면 한나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힘쓸 생각이 그렇게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주 환난이 들어오고 어려움이 들어오므로,\"이제 나는 어떻게 할 수 없으므로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아야겠다.\"하고 돌이켰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나가 아이 낳지 못하게 하신 것은 한나가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며 하늘 나라만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신 것인데 그대로 이루어졌다.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하려는 마음과 아들을 낳아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바치려는 생각이 나게 되었다.  자기가 낳은 아들이라도 자기의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려는 것이다.  

기도할 때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면 안 된다.  하나님을 위하고 그의 의를 위하는 기도, 그의 나라를 위하는 기도를 하여야 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 나아간다면 만족하고\"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는 지경에 들어가는 기도가 바로 된 기도이다.  예수께서\"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는데 한나의 기도가 거기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정욕으로 쓰기 위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다.  주시지 않는 것이 도리어 사랑이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은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므로 만일 그 기도를 들어주시면 더욱 욕심으로 구하게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은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약4:1-3).

그러므로 우리가 한나의 기도를 본받아 영적 세계로 들어가 하나님을 깊이 사귀는 데까지 이르러야 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반석이 되는 것을 깨닫고, 뿔이 높아지는 데까지 나아가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데까지 나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께 바쳐서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구속의 주만 남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한 걸음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회생하는 자리까지 나아가고 십자가의 죽음도 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주의 전을 위하는 열심이 자기를 삼켜 멸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야 한다.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한나는 입술만 움직이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그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엘리는 한나가 취한 줄로 알아 포도주를 끊으라고 하였다.  소리를 내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될 것을다 아시고(마6:8), 소리를 내지 않아도 다 들으신다.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기도할 때 주의할 것은 기도하다가 졸지 않아야 하고 또 잡념이 들어오지 않도록 일심정력을 다하여 기도해야 한다.  소리를 내지 않는 기도가 영적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다.  

깊은 기도는 영으로 하는 기도인데, 영과 영이 통할 때에 소리를 내는 것은 도리어 방해가 된다.  깊은 기도는 영이 통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은밀하게 해야 된다.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며 영의 움직임이 별로 없고, 외부적 감정에만 치우치기 쉽다.  큰 소리를 지르면 힘이 나고 어느 정도 감동이 있으나 이것은 외부적 감동이요 육신의 감정에 불과하다.  영의 깊은 데서 영이 움직여서 나오는 감동이어야만 참생명이 있다.  육신의 감정에서 나오는 감동과 힘은 사실상 영의 세계에 들어가는 데는 방해물이다.  외부적인 것이 너무 클 때 그것을 가지고 만족하여 영의 것을 사모하지 않게 된다.  외부적(육신적)인 감정을 부인하고 한 계단 더 높이 올라가야만 영적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영의 세계를 발견하지 못하고 일생 동안 외부적 감정 운동만 하다가 가게 된다.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찬송하고 영으로 찬송해야 한다(고전14:15).  감정으로 하는 세계가 너무 크면 영으로 하는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다.  감정 세계의 것을 부인하고 영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서 성령의 감동에 의한 영의 움직임이 있어야만 된다.

외부적인 위력에 압도당하여 어느 정도 감동과 힘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은 영의 힘이 아니다.  이것을 분별해야 한다.  한나의 기도는 영의 세계에서 영으로 통하는 기도이다.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엘리 제사장이 한나가 기도하는데 술에 취하여 있는 줄 알고 오해하였다.  그래도 한나에게는 섭섭한 마음이 들어오지 않았다.  섭섭한 마음이 들어왔다고 하면 벌써 그것은 마귀의 세력에 말려들어 가는 것이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아니다.  다른 사람이 오해해도 섭섭한 생각이 들어오지 않아야 된다.  불완전한 인간은 언제나 오해하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신앙에 바로 서야 된다.  

 

四. 한나가 아들을 낳음(19-20)

 

. 1:19-20  그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한나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하였다.  사무엘( )은 쉐무아( :들으심)와 엘(  :하나님)의 합성어로서\"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뜻이다.  여호와께 구하면 들어 주신다는 것을 한나가 깨닫고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어 주시는 분이시다(시116:1-2).

 

五. 사무엘을 여호와께 드림(21-28)

 

. 1:21-28  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 대로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한나는 사무엘이 젖 떼기까지 집에서 기르다가 젖 뗀 다음에 그를 데리고 하나님의 전에 가서 하나님께 바쳤다.  사무엘이 몇 살까지 젖을 먹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스라엘에서는 4, 5세까지 젖먹이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젖을 뗀 후에 데리고 실로로 갔는데, 그때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갔다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바치려고 가지고 간 것이다.  

특히 소 셋을 잡아 하나님께 바쳤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는 제사로서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피를 흘려 죄를 대속하여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다.  제사를 이렇게 바로 드리는 신앙이 있어야 아이를 하나님께 바칠 수 있다.  한나는 아들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의 봉사자로 바쳤다.  또 가루는 희생의 상징이다.  

한나가 서원한 것을 그대로 지킨 것이 훌륭한 점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서원하지만 그 서원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를 낳지 못할 때는\"아이를 낳으면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하였지만 낳은 다음에는 바치지 못하는 자가 많고, 또 병들어 죽어갈 때에는\"이번만 건져 주시면 내게 있는 재산을 다 바치고 내 몸까지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하던 자도 다 나은 다음에는 십일조도 바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  신명기 23:21에\"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감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고 하였다.  

바로왕은 재앙이 내려올 때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겠다고 서원하고 그 재앙이 지나가면 또 강팍하여졌다.  재앙이 내려 죽게 되었을 때 모세를 불러서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였으나 그 재앙이 지나가면 다시 강팍하여졌다.  이렇게 마음이 강파하여져서 서원한 것을 갚지 아니하곤 하다가 마지막에는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고 짐승의 첫 새끼도 다 죽고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보냈다.  내어 보내 놓고 또 마음이 변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다가 군사들이 홍해에 빠져 몰살당하였다.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바친 일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쳤던 것과 같은 신앙이라고 보아야 된다.  그 아이를 데려다가 하나님께 바친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평생 하나님께 바침이 되어 하나님께 바친 자로서 여호와께 경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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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2장

제 2 장  엘리 아들의 죄

 

(대  지)

 

一. 한나의 기도(1-11)

 1. 여호와는 구원이심(1-2)

 2.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3-5)

 3. 임의로 낮추시고 높이시는 하나님(6-9)

 4. 상벌을 주시는 하나님(10-11)

二. 엘리의 하들들의 죄(12-17)

三. 사무엘의 자람과 부모의 복받을(18-21)

四. 엘리의 책망을 아들들이 듣지 않을(22-26)

五. 엘리의 집에 대한 심판 예고(27-36)

 

(본문강해)

 

一. 한나의 기도(1-11)

 

1. 여호와는 구원이심(1-2)

 

. 2:1-2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가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갈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한나가 기도하였는데 그 첫마디가\"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다\"고 하였다.  그의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였다고 한 것은 낳지 못하던 아들을 낳아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모처럼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을 때 섭섭한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여호와로 인한 즐거움은 위로부터 오는 즐거움이요 아들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즐거워할 수 있는 영적 즐거움이다.  그래서 한나는 아들을 바친 다음에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였다.  성도는 여호와가 나의 즐거움이 되는 경지에까지 들어가야 한다.  세상에 있는 물질과 영광 때문에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한 한나의 신앙은 본받을 만하다.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여호와로 인하여 영적 권세(뿔)가 높아졌다는 말이다.  중생한 영이 자라나면 영적 권세가 그만큼 높아진다.  시편 23:1에\"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다.  이것은 여호와가 목자가 되사 양과 같은 자기를 온전히 주관하여 인도하시매 조금도 부족함이 없고 늘 만족하여 즐거워하는 생활이다.  또 자기 영혼이 소생하므로 영혼의 뿔(권세)이 커지고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한나가 원수를 향하여 각을 크게 벌려 주의 구원을 찬송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원수의 목전에서 승리의 개가(凱歌)를 부르며 잔치 상을 베풀게 된 것과 같다(시 23:5).  원수를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안고 오직 말씀을 따라 믿음을 지켜 나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원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찬송하게 될 날이 온다.  

다니엘도 원수들의 시기를 받아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사자굴에서 건져 주셨을 때에 다니엘이 얼마나 하나님을 찬송하였겠는가!  다니엘 6:26에 다리오왕이 말하기를\"… 내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라고 하였다.  또 요셉이 형들로 인하여 팔려 애굽으로 내려가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바 되었지만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요셉을 판 형들은 요셉 앞에서 절하며 애걸하게 되었다(창44:14-34).

믿음을 잘 지키면 영의 뿔이 높아지고 원수를 향하여 입이 크게 벌려질 날이 오게 된다.  그러나 원수에게 끝까지 환난과 핍박만 받다가 죽는 성도도 있다.  스데반이나 요나단 같은 사람이 좋은 예이다.  믿음을 잘 지키고도 이 세상에서 원수 앞에 입을 벌리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실패한 것 같고 비참하게 된 것 같으나 하늘 나라에서는 상급이 더욱 큰 것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하고 신령한 입을 크게 벌렸으며 얼굴이 천사의 얼굴같이 되었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만 입이 대계 벌려지는 것인 줄로 알면 안 된다.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여서 핍박을 당하다가 사무엘을 낳았다고 하여 입이 크게 벌려진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어떤 일에 성공했다고 하여 원수를 향하여 입이 벌려진 것이라 하면 잘못이다.  오로지 하늘 나라의 큰 상급과 영광을 바라보고 입을 벌려야 크게 입을 벌린 것이다.  

요나단이 끝까지 믿음을 잘 지켰는데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인간의 편에서 보면 좀 억울한 것 같다.  그러나 요나단이 죽지 아니하고 다윗의 다음 자리에 앉아 세상 권세와 영광을 누리는 것보다 끝까지 하나님을 위하여 선을 이루고 세상에서 상급을 하나도 받지 않은 것이 더욱 좋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고 거기에 대한 보답을 받게 되면 세상에서 상급을 다 받았기 때문에 하늘 나라에 가서는 받을 것이 없다.  예수께서 세상에서 섬김을 받지 못하고 환난과 핍박을 당하다가 마지막엔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므로 원수를 영원히 발 아래 두었고 영원히 원수 앞에서 입이 벌려진 것이다.  

한나는 또 여호와만이 거룩하신 참하나님이시므로 믿을 분은 하나님밖에 없고, 자기를 사랑해 주시고 자기를 구원해 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하였다.  또 하나님은 자기의 반석이 되시므로 하나님은 견고한 피난처요, 방패시요 요새라고 기도하였다.  

여기서 한나는 첫째, 마음이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게 되었고, 둘째,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고, 세째, 원수를 향하여 그의 입이 크게 열리게 되었고, 넷째, 주의 구원을 기뻐하게 되었고, 다섯째, 여호와 외에 거룩한 이가 없으며, 여섯째,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일곱째, 하나님 같은 반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세상의 부귀나 영광보다 하늘 나라에 속한 이 신령한 것들이 귀한 것이다.  고린도후서 4:18에\"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다.  

 

2.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3-5)

 

. 2:3-5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사람이 감히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말을 입밖에 낼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며(약4:6) 행동을 달아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브닌나가 자녀를 낳은 것을 자랑하고, 자식이 없는 한나를 멸시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교만하고 야비한 행동이다.  브닌나는 보이는 것으로 자랑하고 육신의 것으로 자랑하였다.  세상의 보이는 것(육신의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교만한 말이요 어리석은 말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여호와는 전지 전능(全知全能)하셔서 오든 것을 아시고 행동을 달아보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마음도 저울질하신다(잠24:12).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 행동, 인격을 달아보시고 심판하신다.  그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대로 순종한 것은 근수가 많고, 불순종한 것, 인간의 생각대로 한 것은 가벼운 것이다.  자기를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판단이 문제이지 인간의 판단이나 비방은 매우 작은 일이다.  바울도 다른 사람이 자기를 판단하는 것을 매우 작은 일로 여긴다고 하였다(고전4:3).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제 힘으로 용사 노릇을 하는 자는 그 활이 꺽이우나, 말씀을 지키고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쓰러진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띠를 띠우시고 일으켜 주신다는 말씀이다.  

삼손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힘으로 용사 노릇을 하였지만 하나님 말씀을 양보하고 머리를 깎인 후에는 용사 노룻을 하지 못하고 잡혀서 눈이 뽑히고 포로가 되어 맷돌을 돌렸다.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넘어지면 넘어지면서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 예수님을 붙들고 넘어지고, 예수님을 놓쳤으면 손을 내밀어 예수님을 붙들려고 부르짖어야만 된다.  그래야 예수께서 일으켜 주시고 띠를 띠워 주신다.  넘어질 때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넘어진 후에도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께 부르짖지 않으면 희망이 없고 아주 망하고 만다.  넘어진 후에는 말씀대로 서려고 힘을 쓰며 부르짖고 주님이 붙잡아 줄 때 빨리 일어나서 말씀대로 한 발자국씩 옮겨 놓아야만 한다.  

넘어졌을 때 바로 일어서는 방법은, 첫째, 예수님을 바라볼 것, 둘째, 예수님을 붙들려고 애를 쓸 것(붙들어 달라고 부르짖을 것), 세째, 넘어진 다음에 일어나려고 발버둥칠 것, 네째, 발버둥치다가 하나님께서 일어서라 하실 때 속히 말씀대로 순종하여 발걸음을 옮겨 놓아야만 한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띠를 띠워 주시고 위로하여 주신다.  칠전 팔기(七顚八起), 백절 불굴(百折不屈)의 정신이 있어야 신앙 생활을 바로 할 수 있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세상의 것(물질, 명예, 권세 등)이 유족하여 그것으로 만족하는 자는 영적으로 기갈을 당하고,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찾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과 평강을 얻어 심령이 만족하게 된다는 뜻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다(계3:17).세상의 것으로 만족하고 향락주의에 빠져 이미 배부른 자들은 영적으로 벌써 주린 자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반드시 주릴 날이 온다.  

마태복음 5:3에\"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였다.  심령이 주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만난 바가 되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건져 주시고 주리지 않게 하여 주신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갈급한 심령을 가지고 좀 더 깨달아 알고자 하는 자는 배부른 자가 아니고 주린 자이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양식을 풍성히 주신다.  성경을 읽을 때에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기 위하여 주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말씀을 깨닫게 된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한나가 전에 잉태치 못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무엘을 낳았는데 왜 일곱을 낳았다고 했는가?  사무엘이 잘 생기고 똑똑하여 일곱보다 낫다는 뜻이 아니다.  일곱을 낳았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신령한 것을 받았다는 뜻이다.  한나는 아들보다 더 좋은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받은 증표로서 사무엘을 하나 받은 것이다.  그런데 브닌나는 많은 자녀를 가졌다고 하여 자랑하고 뽐내면서 아들 없는 한나를 멸시하였다.  세상의 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쇠약해질 날이 온다.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을 의지하기 때문에 심령이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의 권고가 떠남으로 쇠약해질 것은 정해 놓은 것이다.  

 

3. 임의로 낮추시고 높이시는 하나님(6-9)

 

. 2:6-9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않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심령이 상할 자(회개하는 자)는 살리시고, 완악한 삼령을 가진 자(회개하지 않는 자)는 죽이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당신의 뜻대로 주장하신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땅의 기둥들\"은 국가의 왕들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움직이시고 세계의 역사를 주장하시되 왕들(지도자들)을 세워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를 주관하신다.  또 신령한 의미에서는 말씀을 순종하고 의를 이루어 나아가는 하나님의 종과 신실한 성도가 기둥들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도 이 기둥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의인 열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였다.  외부적으로는 소돔 왕이 기둥이지만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국이 침략해 올 때 하루아침에 다 무너졌었다(창14:1-1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의인 열 사람만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의인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기둥들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예레미야 5:1에\"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였으니 예루살렘 성이 망하지 않게 버티어 줄 기둥은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이다.  이런 기둥이 하나만 있어도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다.  에스겔 22:30-31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라고 했다.  그러므로 외부적으로는 세상 나라 왕들이 기둥이지만 실지로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는 기둥은 소돔의 경우 의인 열 명, 예루살렘 성의 경우에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이다.  

성도가 다 기둥은 아니다.  예루살렘 성에 성도는 많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찾는 기둥은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으로 그 뿔이 높아지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고, 겸손하며 가난한 심령이 되어 진리를 찾고, 진리를 세워 나아가는(실천해 나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찾는 기둥감이다.  

공의를 행하려면\"의\"에 서고 진리를 찾아 그대로 걸어 나아가는 것이다.  진리를 바로 발견하기 위하여 힘을 쓰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를 쓰며,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살겠는가 하여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찾고 그 뜻대로 순종해 나아가야 한다.  디모데전서 3:15에\"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하였다.  기둥이란 진리의 기둥이다.  성도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기둥 노릇을 할 수 있다.  

한국에도 하나님의 기둥이 많이 나오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신다.  한국이 견고하게 서 나아가려면 기둥이 많이 나와야 한다.  각처에서, 겸손하여 하나님으로 즐거움을 삼고,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으로 반석을 삼고, 뿔이 높아지고, 가난한 심령으로 말씀을 좀 더 받아먹으려고 애를 쓰고, 진리를 세워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면 하나님께서 한국 백성을 멸망시키지 않고 보호하여 지켜 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국에 기둥이 없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와서 멸망당할 줄을 알아야 한다.  

이 말세에 세계가 다 하나님의 심판을 앞에 놓고 흔들흔들하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둥이 얼마나 나오겠는가 하고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며 찾고 계신다.  만일 찾다가 기둥이 없으면 다 심판하여 멸망시키실 것이다.  이 세계는 분명히 하나님의 기둥들이 버티고 있는 줄 알아야 된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의 기둥은 모세와 아론 같은 사람이다.  가나안에 들어갈 때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좋은 기둥이었다.  사무엘 시대는 사무엘이 역시 좋은 기둥이었다.  

기둥들은 또 제 자리에 있어야만 제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둥이 제 마음대로 아무데나 가서 서게 되면 아무리 좋은 기둥도 제 구실을 못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기둥들이 주님이 세워 주시는 자리에 순종하여 서 있어야 교회가 바로 되고 나라가 튼튼히 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기둥들이 주님이 세워 주시는 자리에 서서 순종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잘 섬길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자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둥이 된다면 원수가 많은 것도 문제가 아니고 자기가 힘이 없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기둥만 되면 그 사람을 이길 자가 없고 당할 자가 없다.  하나님께서 지켜주는 사람을 누가 이기며 누가 당할 수 있겠는가?  기둥이 되기만 하면 자기도 복을 받고, 한국 교회도 복을 받고, 세계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4. 상벌을 주시는 하나님(10-11)

 

. 2:10-11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자기를 대적하는 자를 반드시 심판하신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땅 끝까지 심판을 베풀어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또 하나님은 자기가 세운 왕에게 힘을 주시며 앞길을 인도하여 주시며 치리하여 나아가신다.  즉 하나님에 의하여 왕으로 세움을 받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처리하는 자에게 힘을 주시며 뿔(권세)을 높여 주신다.  

 

二. 엘리의 아들들의 죄(12-17)

 

. 2:12-17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그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장인데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큰 죄를 범하였다.  제사를 드리기는 하였으나 제사보다 먹는 것을 더 크게 여겼다.  제사장의 임무는 모든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바로 인도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종노릇을 바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는 둘째이고 먹는 것이 첫째가 되었다.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세살 갈고리를 솥이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였고, 때로는 기름을 태우기도 전에 사환을 보내어 구워 먹을 고기를 가져오게 하였다.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가져가라 하면\"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죄이다.  

오늘날도 제사보다 자기 먹을 것을 더 크게 여기는 제사장이 많이 있다.  교인들도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것보다 먹는 것을 더 크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좋은 것, 큰 것이 있으면 자기부터 먼저 먹고 난 후에 생각나면 하나님께 조금 바친다.  좋은 것은 다 먹고 찌꺼기, 흠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친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것이다.  세상 총독도 그런 예물은 받지 않는다(말1:8).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첫째이어야 하는데 믿음이 타락하여 자기를 위하는 것이 더 크고, 자기가 먹는 것이 첫째가 되었으므로 하나님 앞에 좋은 것을 바칠 수가 없다.  말로는 하나님 섬기는 것이 첫째라고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농사를 하면 곡식 가운데 첫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쳐야 한다.  시간도 첫 시간을 하나님께 바쳐야 된다.  새벽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마음을 먼저 하나님께 바치고 나서 다른 일을 하여야 한다.  하나님 섬기는 제사가 언제나 첫째가 되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한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보라(4:11-20).

하나님을 섬기는 모양은 있으나 자기의 유익을 찾은 것이 첫째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둘째, 셋째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이다.  교역자들이 큰 교회나 도시 교회로 가기만을 원하는 것은 사례금 많이 받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결국 자기를 위하는 것이 첫째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야 어떻게 되든지간에 그저 자기 하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은 하나님 앞에 악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땅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으려고 힘써야 된다.  육신의 문제만 잘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제사보다 자기의 육신 문제를 더 크게 여긴 것으로서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이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는 하나님 앞에 심히 큰 죄요 가증한 죄이다.  

 

三. 사무엘의 자람과 부모의 복받음(18-21)

 

. 2:18-21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엘리가 엘가나와 그 아내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그 집으로 돌아가매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세마포 에봇은 일종의 조끼와 비슷한 옷으로 앞부분은 가슴을 덮고 뒷부분은 등을 덮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다.  

한나는 매년제를 드리기 위하여 남편과 함께 실로에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사무엘에게 주었다.  엘가나와 한나의 독실한 믿음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엘리 제사장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주었다.  축복 받은 엘가나와 한나가 집으로 돌아와서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한나가 모처럼 얻은 귀한 아들(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바치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 아들과 두 딸을 낳도록 풍성하게 복을 주셨다.  하나님을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을 바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이 갚아 주신다.  

어린 사무엘은 부모의 뜻을 순종하여 부모를 떠나 여호와 앞에서 신앙으로 잘 자라갔다.  

 

四. 엘리의 책망을 아들들이 듣지 알음(22-26)

 

. 2:22-26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엘리가 자기 두 아들의 죄를 알았다.  그 아들들이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르되\"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하고 엘리가 아들을 책망하였다.  아들을 책망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너무나 미온적(微溫的)이다.  좀 더 강경한 자세로 경계하고 안 들으면 권징을 행하여 제사장직을 파면해서라도 그 죄를 계속 범하지 못하도록 했어야 옳을 것이다.  

엘리가 책망하였으나 그 아들들이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다.  책망할 때에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고 만다.  이는 엘리의 아들들이 망하기로 예정된 까닭이다.  벌써 죽이기로 작정되었다고 하였다(25절).  책망을 받을 때 즉시 회개하지 않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나가면 망하기로 예정된 사람인 줄 알아야 한다.  아마샤왕이 선지자의 책망을 듣지 않았는데 그것은 망하기로 예정되었기 때문이었다(대하25:16).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이나 책망을 할 때에 그 말을 들어야만 된다.  듣지 않으면 반드시 망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의 책망을 끝까지 받지 않으면 그것은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로 알아야 된다.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책망을 받을 때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회개하여 바로 서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는 자기의 체면이나 위신 같은 것은 다 내어 버려야 한다.  책망할 때 회개하고 순종하여 바로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로 예정된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멸망하기로 예정된 줄 알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에 두려워 떨며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된다.  

 

五. 엘리의 집에 대한 심판 예고(27-36)

 

. 2:27-36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유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내가 나을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내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가로되 청하노니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나로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엘리의 집이 망하게 된 죄는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죄 때문이며, 엘리 제사장이 자기 아들들의 죄를 책망하기는 하였으나 너무 소극적이고 미온적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엘리는 자기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다(29절).  하나님의 제물과 예물을 밟는(멸시하는) 죄악을 범하였으면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아들들을 적극적으로 강하게 책망하고 회개하도록 지도하였어야 마땅하다.  

엘리의 집안이 왜 제사를 멸시하게 되었는가?  엘리의 아들들은 먹는 것을 제사보다 중히 여겼고,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의 죄에 대하여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강하게 책망하지 않았고, 인정에 치우쳐서 아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성도가 물질과 향락주의와 인정으로 기울어져서 죄에 대하여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면 하나임의 제사를 멸시하게 되고 신령한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성도는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지 않고 바른 제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멸시하는 것이 큰 죄인 줄 알고 언제나 두려움 마음으로 바른 제사를 드려야 된다.  이사야 66:2에\"…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라고 하였다.  이같이 하는 사람이 복을 받게 된다.  

사람이 망할 사람인지 복 받을 사람인지 하나님 섬기는 면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과 그 제사를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두려워 떨고 말씀이 아닌 것은 떠나려고 힘쓰고,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자는 틀림없이 복을 받을 자이다.  현재의 상태가 어려운 처지라 해도 필경 복을 받게 되고 소망이 있다.  반대로 지금 모든 것이 잘되고, 출세하고, 자녀들이다 잘되어 나간다고 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제사를 존중히 여기지 아니한다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날이 오고 희망이 없다.  잘못된 것은 끊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면 어떠한 희생이 있어도 순종하고 나아가는 것이 합당한 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를 멸시함은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을 멸시하는 것과 같다.  성도는 어떠한 손해를 보고 궁핍을 당하더라도 구원 운동에는 절대로 손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면에서는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 나아가야 한다.  가다가 실수하더라도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려고 벌벌 떨면서 나아가는 자는 희망이 있고 복을 받는다.  

또 자손에게도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된다.  엘리는 아들들에게 하나님 섬기는 법을 잘 가르치지 못하였다.  예배를 존중히 여기지 않거나 주일을 범하는 일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예배 시간에 늦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제사를 존중히 여기는 것이다.  엘리의 집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기 때문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고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것이 곧 엘리의 집에 대한 심판의 예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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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3장

제 3 장  말씀 희귀

 

(대  지)

 

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짐(1-3)

二.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실(4-10)

三. 엘리의 집에 심판을 예고하심(11-18)

四. 여호와께서 사무엘과 함께 하심(19-21)

 

(본문강해)

 

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짐(1-3)

 

. 3:1-3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사무엘 시대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성경책(모세 오경 등)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새로 깨닫는 것이 희귀하여졌고,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희귀해졌다는 뜻이다.  그 시대에 영적 양식이 될 말씀, 그 시대에 걸어가야 할 말씀, 그 시대에 싸워 나가야 할 말씀이 희귀해졌다는 것이다(암8:11).  그 시대에 필요한 말씀이 희귀하여 바른길로 걷지 못하고 영적 양식이 없으므로 기근을 당한 셈이다.  

주석가 미전풍(米田豊)은\"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였다.\"는 것은\"제사장의 눈이 밝히 볼 수 없을 만큼 흐려만 갔다.\"는 뜻이라고 하였으며, 그 시대는\"암흑한 위기였다.\"고 하였다.  엘리의 눈이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함을 영적 눈이 어두워 갔다고 해석하면 잘못된 해석이다.  엘리의 눈이 어두워진 것은 나이가 많아 노쇠하여 눈이 어두워진 것으로 보아야한다.  믿음이 좋은 이삭도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졌다.  사도 바울도 눈이 어두워 큰 글씨로 편지를 썼다.  간의 기능이 좋은 사람은 늙어도 시력이 좋지만 간이 좋지 못한 사람은 늙으면 시력이 나빠진다.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것은 성전의 불을 저녁에 켜고 아침에 끄곤 하였는데(출30:8 ; 레24:3), 끌 때가 가까웠다는 뜻으로 곧 새벽 미명을 의미한다.  이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였다.  

 

二.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심(4-10)

 

. 3:4-10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러나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른 줄 알고 엘리에게 달려갔고 엘리는 자기가 부르지 않았으니 다시 누우라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두 번째 부르셨으나 사무엘은 또 엘리에게로 나아갔고 엘리는 사무엘에게 다시 누우라고 하였다.  이때까지는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이 아직 그에게 임하지 아니한 때였다.  세 번째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사무엘은 여전히 엘리에게로 나아갔다.  엘리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줄 깨닫고 사무엘에게 일러 주었다.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말하기를\"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고 말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사무엘이 자기 처소에 가서 다시 누우니 여호와께서 전과 같이\"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그때 사무엘은 엘리가 가르쳐 준 대로\"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명확하다.  한 번 불러서 모르면 두 번 부르고 두 번 불러서 모르면 세 번이라도 불러서 확실히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은 불명확하게 계시하지 않으시고 하고자 하시는 일을 종에게 확실히 알게 하고 깨닫게 하여 성공시켜 나아가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불러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선지자들도 이렇게 확실하게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하고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셨고(출3:4), 이사야를 부르실 때에도 하나님께서 성전에 나타나셔서 옷자락이 가득하고 문지방의 터가 움직이기까지 확실하게 부르셨다(사6:1-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인지 부르시지 않는 것인지 확실히 모를 때에는 좀더 기다려 보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확실해질 때에 나서는 것이 좋다.  

 

三. 엘리의 집에 심판을 예고하심(11-18)

 

. 3:11-18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가로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엘리의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라고 하였다.  그의 아는 죄악은 엘리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한 것이다.  알면서 금하지 아니한 죄가 엘리의 집이 망한 죄이다.  아들들이 짓는 죄에 대하여 책망은 하였지만 미온적(微溫的)으로 몇 마디하고는 할 수 없다고 체념해 버린 것이다.  아들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버려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합당한 변명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먼저 타이르고 다음에 잘못하면 엄중히 경계하고 그래도 또 잘못하면 처치(징계)를 하여야 한다.  엘리는 제사장이고 두 아들들은 부제사장격이였으므로 파면할 수도 있다.  이렇게 징계할 만한 위치에 있고 금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집에서 아이들이 잘못할 때도 이렇게 최선의 방법을 다 써서 금하고 그래도 듣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면서 징계를 하고 거기에 대한 합당한 처치를 하여야 한다.  잘못 나아가는 것을 용납하고 내버려두면 안 된다.  

목사는 교인들이 잘못할 때 금할 만한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집사님, 담배 피워서는 안 됩니다\", \"장로님, 주일에 가게문 열어서야 되겠습니까?\" 하며 미온적으로 한마디 해놓고는 제직회 할 때는\"장로님 어서 오십시오. 집사님도 오십시오. 제직회 합시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바로 잡아지겠는가?  한 번, 두 번 권면하고 그래도 끝까지 순종하지 않을 때는 집사직 이든 장로직 이든 사면시켜야 한다.  그대로 두어서는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마침내 하나님의 징계가 내리게 된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먼저 부르고 다음에 사명을 맡기셨다.  그런데 사무엘의 경우는 갑자기 불러서 바로 엘리의 집이 망할 것을 일러 주셨다.  사무엘은 제사장의 집이 망한다고 전해야 되니 퍽 난처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어린 사무엘에게 너무 무거운 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며 언제나 가장 적당하게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에서 보여 주는 하나님의 뜻은

① 당장에 필요한 일을 위하여 사무엘을 불러서 시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할 때 당장에 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때에 그 말씀은 당장에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에 필요한 말씀은 오늘에 주시고 그 말씀에 붙들린 사람을 오늘에 쓰신다.  

②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벧전4:17).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되기 때문에 믿는 자와 안 믿는 자가 같은 죄를 지으면 믿는 자가 먼저 심판을 당한다.  교역자가 평신도와 같은 죄를 지어도 교역자는 먼저 심판을 받는다.  평신도라도 믿음이 좋은 자와 믿음이 어린 자가 같은 죄를 범하면 믿음이 좋은 자를 먼저 심판하신다.  안 믿는 자는 아무리 범죄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심판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오는 세상에서 지옥 형벌을 받겠기 때문이다.  

깨달은 진리는 당장에 순종하고 지켜 나아가야 한다.  사무엘에게는 그 시대에 필요한 말씀을 주셨고 그 일을 위하여 쓰시려고 세우셨던 것이다.  심판도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하지만 말씀을 받아 순종하면 축복도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받게 된다.  

사무엘이 아침에 일어나서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하였는데 엘리가 재촉함으로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자세히 말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엘리가\"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고 하였다.  엘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기의 자식들을 원망하지 않고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소견대로 하시기를 원하였다.  그때 엘리가 하나님 앞에 통회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간구하는 태도를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심판을 연기해 주시든가 아니면 심판을 아주 면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그의 정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만을 믿으며 통회하지 못한 면이 잘못되었다.  

 

四. 여호와께서 사무엘과 함께 하심(19-21)

 

. 3:19-21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사무엘이 자랄 때 여호와께서 함께 하여 주셨고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여호와께서 세우신 선지자로 알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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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4장

제 4 장 언약궤 빼앗김

 

(대  지)

 

一.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전함(1-2)

二. 언약궤를 전장(戰場)으로 가져감(3-5)

三. 언약궤를 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김(6-11上)

四. 엘리의 집이 망함(11下-18)

五. 이가봇이 출생함(19-22)

 

(본문강해)

 

一.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전함(1-2)

 

. 4:1-2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쳤더니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이스라엘 사람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을 쳤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과 전쟁을 하였으나 그들 앞에서 패하였다.  그 전쟁에서 죽은 이스라엘의 군사가 사천 명 가량 되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원수 블레셋에게 참패를 당하고 많은 군사가 죽게 된 것은 참으로 원통한 일이며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二. 언약궤를 전장(戰場)으로 가져감(3-5)

 

. 4:3-5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을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백성이 패전하여 진으로 돌아올 때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여 이스라엘 백성이 왜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는지 의논한 결과,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다가 백성 중에 있게 하면 그것이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합의가 되었다.  

이 언약궤에는 출애굽 당시에 모세가 시내 산에서 사십 주 사십 야를 기도하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십계명을 새겨 주신 돌판 두 개를 넣어 두었고, 만나 한 호멜을 금항아리에 넣어 둔 것이었다.  그 앞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다(민17:4-10 ; 히9:3-5),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고 그룹이 있으며 그를 사이는 만군의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다(출25:22 ; 민7:89).

이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의 핵심이 되었고, 성전 안의 지성소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에서 패하고 죽은 자가 사천 명이나 되므로 마침내는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언약궤를 따라서 전장에 왔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올 때 온 이스라엘이 땅이 진동할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과 싸우는데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 음으로써 이제는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큰 소리로 외치고 언약궤를 자랑하고 뽑낸 것 같다.  

 

三. 언약궤를 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김(6-11상)

 

. 4:6-11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히브리 진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찜이뇨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블래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가로되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가로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황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같이 말고 대장부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았겼고

히브리 전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블레셋 사람이 듣고 알아본 결과 여호와의 언약궤가 히브리 진에 들어온 것을 알고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것은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스라엘의 신이 진에 이르렀으니 아무도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질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이 신들이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뿐이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지 않으려면 한층 더 강하고 대담한 대장부가 되어 싸워야 한다\"고 굳은 결의를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블레셋 사람은 더욱 주의와 경계를 하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이스라엘을 쳤고 이스라엘은 마침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고 보병이 삼만 명이나 죽었으며 하나님의 궤도 빼앗겼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대하던 바와는 딴판으로 하나님의 궤가 아무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은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四. 엘리의 집이 망함(11下-18)

 

. 4:11下-18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에서 달려나와 그 옷을 찢고 그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곁 자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 마음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에 들어오며 고하매 온 성이 부르짖는지라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이 훤화하는 소리는 어찜이뇨 그 사람이 빨리 와서 엘리에게 고하니 때에 엘리의 나이 구십팔이라 그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그 사람이 엘리에게 고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가로되 내 아들아 일이 어찌 되었느냐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육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 년이었더라

이스라엘이 패전한 날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에서 달려 나와 그 옷을 찢고 그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실로에 달려 왔다.  엘리 제사장은 나이 구십팔 세의 노령으로 길 곁 자기 의자에 앉아서 언약궤가 전쟁 마당에 나가 있음으로 인하여 마음이 초조하고 떨리는 상태에 있었다.  이것을 보면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께 대한 정성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그러나 자기 아들들이 제사를 멸시하고 제물을 밟아서 하나님 앞에 범죄한데 대하여 미온적으로 말로만 타이르고 그 죄를 책벌하여 금하지 못한 점과 또 아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점이 잘못된 것이다.  

소식 전하는 자가 진에서 나와 성에 들어오면서 패전의 결과를 보고할 때 온 성이 부르짖었다.  온 성이 부르짖는 소지를 엘리가 듣고 어찌된 일인가 하고 물으니 진에서 나온 자가 엘리에게 보고하기를, ① 백성이 블레셋 사람의 앞에서 도망하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으며 ②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③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다고 하였다.  그때에 엘리는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엘리가 죽은 때는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 되었을 때였다.  

 

五. 이가봇이 출생함(19-22)

 

. 4:19-22  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웠는데 시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갑자기 해산하고 죽어갔다.  그 곁에 있던 여인들이\"아들을 낳았으니 두려워 말라\"고 하였으나,\"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고 하며 아이의 이름을\"이가봇\"이라 하고 죽었다.  이가봇은\"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난 증거는 하나님의 궤를 블레셋에 빼앗긴 것이다.  

블레셋 사람은 할례를 받지 못한 자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궤를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며 언약궤를 귀중히 여겼는데 왜 빼앗겼는가?

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뢰하지 않고 궤 자체를 하나님과 같이 여겼기 때문이다.  궤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지키려는 것보다는 외형적인 궤가 능력이 있는 줄로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의식화되고 형식화된 증거이다.  

돌 비석에 새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고 법궤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중요한 것인데, 법궤에 임재하시는 하나님보다 궤 자체를, 생명력이 있는 말씀보다 생명이 없는 돌비석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언약궤가 있어도 아무런 능력의 역사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이방 민족의 손에 붙이신 것이다.  

어느 시대나 종교가 형식화되어 내적 생명이 없을 때는 이방 사람의 손에 붙이셨다.  예루살렘 성전을 바벨론 사람의 손에 붙이신 것도 같은 이유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으므로 저주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가 형식화되었으므로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징계하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② 이스라엘 백성이 법궤(종교)를 이용하려 하였다.  자기가 하나님께 이용을 당해야 되겠는데 오히려 자기들이 하나님을 이용하려 하였으므로 법궤를 빼앗긴 것이다.  

③ 신령한 종교를 자기들의 육신을 위하여 이용하려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쟁터에서 자기들이 패하게 되므로 승리를 얻기 위하여 법궤를 가지고 갔다.  영적인 회개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육신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였다.  이 세 가지 이유로 법궤를 빼앗긴 것이다.  

그들은 언약궤를 가지고 가면 옛날처럼 큰 능력이 나타날 줄 믿었다.  옛날 법궤를 메고 갈 때는 요단 강이 갈라졌고 또 여리고성을 7일 동안 도니 여리고 성이 무너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 능력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아무 능력이 없는 하나님으로 삼고 언약의 말씀도 산 말씀으로 믿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즉 종교가 형식화되고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다.  로마서 2:28-29에\"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고 하였다.  할례의 참뜻은 육신의 정욕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속한다는 뜻이므로 할례가 가르치는 신령한 뜻에 할례의 목적이 있고 할례의 형식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참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로마서 12:1-2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는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산 제사가 되고 영적 예배가 된다.  의식, 제도, 형식과 감정에만 치우쳐 하나님과 교제하여 얻는 생명력은 없고 말씀 앞에 떠는 것이 없을 때는 종교를 이용하려 하게 된다.  말씀에 떠는 것이 없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이단에 미혹되고 신비주의로 기울어지게 된다.  신비주의는 영적 운동 같으나 감정 운동이다.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영광이 떠나는 것도 갑자기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죄를 하나씩 하나씩 꿰미에 꿰어 나가다가 꿰미에 가득 차면 영광이 떠나고 이가봇이 나오는 날이 오게 된다.  말씀을 어긴 것, 주일을 범한 것,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도적질하고 신앙 양심을 똑바로 쓰지 않는 것 등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게 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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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5장

제 5 장 블레셋에 재앙 내림

 

(대  지)

 

一.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 땅으로 감(1)

二. 하나님이 다곤을 치심(2-5)

三. 아스돗에 재앙을 내림(6-7)

四. 가드에 재앙을 내림(8-9)

五. 에그론에 재앙을 내림(10-12)

 

(본문강해)

 

一.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 땅으로 감(1)

 

. 5:1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이라고 하는 곳으로 가져갔다.  이스라엘의 신을 정복한 것처럼 의기 양양하여 가져간 것이다.  

 

二. 하나님이 다곤을 치심(2-5)

 

. 5:2-5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찌기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당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의기 양양하여 그들이 섬기는 우상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놓아 두었다.  \"다곤\"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이다.  아스돗 사람이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은 것을 보고는 일으켜 다시 제 자리에 세워 놓았다.  그 이튿날 아침에 다시 보니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지고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몸둥이만 남아 있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그들의 우상이 두 번씩이나 넘어지고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지고 몸둥이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곤의 당에 들어가는 자는 지금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않게 되었다.  

 

三. 아스돗에 재앙을 내림(6-7)

 

. 5:6-7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지라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아스돗 사람에게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 독종이 발하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다.  땅과 곡물에도 재앙을 내렸다(6:4-5 참조).  다곤 우상이 다 파괴되어 큰 피해를 입었고 사람이 독종으로 죽고 농산물은 쥐가 먹어 버렸다.  블레셋 사람들은 전쟁에 이겼다고 좋아하였지만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四. 가드에 재앙을 내림(8-9)

 

. 5:8-9  이에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할꼬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갔더니 그것을 옮겨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에 더하사 성읍 사람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종이 나게 하신지라

아스돗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온 재앙인 줄 깨닫고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여 다곤 우상의 제사장들과 방백들을 모으고 의논한 결과 여호와의 궤를 가드로 옮겨가게 하였다.  궤를 가드로 옮겨 간 후에 하나님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가드에 내리셨다.  그리하여 가드 사람들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독종이 나게 되었다.  

여호와의 궤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재앙을 내리므로 블레셋 사람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게 되었다.  그들이 믿고 의지하던 다곤 신을 치고, 사람은 독종으로 죽어 가고 농작물은 쥐가 먹으니 떨 수밖에 없었다.  

 

五. 에그론에 재앙을 내림(10-12)

 

. 5:10-12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가로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하나님이 내린 재앙으로 인하여 여호와의 궤를 가드에서 다시 에그론으로 옮겨가니 에그론에서도 하나님이 재앙을 내려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하고 죽지 아니한 자는 독종으로 심한 고생을 하게 되었다.  에그론 사람들이 부르짖어\"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하고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아서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어 자기 백성의 죽임을 면케 하자고 하였다.  

하나님의 궤가 이르는 곳마다 하나님의 재앙이 내렸는데 그  앙은 세 가지로 나타났다.  ① 다곤 우상이 파괴되고, ② 사람에게 독종이 발하여 죽고, ③ 쥐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였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빼앗기지 않았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종교가 형식화되고 자기들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려 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 민족에게 붙여서 전쟁에 패하게 하고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게 만드셨으나 하나님의 궤를 멸시하는 이방 민족을 하나님께서 또 심판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신다(사48:11).  로마서 3:4에 \"…사람은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라고 하였다.  인간은 실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워 놓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영광을 빼앗기지 않으셨다.  믿지 않는 자는 믿지 않으므로 망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고 하나님의 획은 후회가 없으시다(민23:19; 롬 11:2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능력을 나타내어 이방을 심판하셨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실패함이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속되어 나간다.  아무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다(롬9:8).  원수들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집어넣은 것은 하나님 기는 자를 멸망시키기 위함이었지만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나타나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널리 전파되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원수들은 완전히 성공한 줄 알았으나 더욱 큰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고 구원의 역사를 다 이루게 되었다.  이와 같이 구원 운동은 결코 실패함이 없고 막히지 않으며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어 나간다.  

주전 606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훼파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성소는 훼파된 것이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가 형식화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떨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는 성소는 훼파하였으나 이지 않는 성소를 바벨론에 옮겨 놓으셨던 것이다(겔11:16).  외부적으로 자랑하는 것들이 깨어져 나가야 내적(생명적)인 것이 나타나고 이루어져 나간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다.  외부적으로 의지하며 사랑하던 언약궤를 빼앗겨야 참하나님을 찾고, 그 하나님을 모시고 신령한 교제를 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언약궤를 이방에 빼앗기게 하셨고, 이방에 나간 언약궤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어 이방 민족을 심판하시고 당신의 권위와 영광을 나타내셔서 크고 오묘한 섭리를 이루어 나가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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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사무엘상6장

제 6 장  궤가 돌아옴

 

(대  지)

 

一.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돌려 보내려 함(1-2)

二.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함(3-6)

三. 소수레에 궤를 실어 보냄(7-12)

四.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영접함(13-16)

五. 금독종과 금쥐와 성읍의 수효(17-18)

六.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자들의 죽음(19)

七. 벧세메스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옮겨가라고 함(20-21)

 

(본문강해)

 

一.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돌려보내려 함(1-2)

 

. 6:1-2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있은지 일곱 달이라 블레셋 사람이 제사장들과 복슬자들을 블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꼬 그것을 어떻게 본처로 보낼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궤를 블레셋에  빼앗긴 후 하나님의 궤가 아스돗에서 가드로,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이동되었지만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려 많은 피해를 입혔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신의 궤를 돌려보내기 위하여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그 방법을 물어보았다.  하나님의 궤를 다른 지방으로 보내었다가는 그 지방이 또 하나님의 큰 재앙을 받을까 두려워함이었다.  

 

二.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함(3-6)

 

. 6:3-6  그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 손을 너희에게서 옮지지 아니하는 연고도 알리라 그들이 가로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꼬 가로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이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방백에게 내린 재앙이 일반임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독종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화를 돌리라 그가 혹 그 손을 너희와 너희 신들과 너희 땅에서 경하게 하실까 하노라 애굽인과 바로가 그 마음을 강퍅케 한 것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기이하게 행한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이 말하기를 속건제를 드려야 병도 낫고 재앙을 거두지 아니하는 연고도 안다고 하였다.  그들은 이방사람 이지만 여호와의 궤로 말미암아 가는 곳마다 재앙을 만나므로 속건제를 드려야 할 것으로 알았으니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 활동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신께 영화를 돌리라\"고 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였다.  

무엇으로 속건제를 삼아야 하느냐고 백성들이 다시 물었을 때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으로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하였다.  제사의 방법은 바르지 못하고 저희들 방법대로 한 것 같다.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을 만들었으니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방법은 옳지 않았으나 물질을 희생하여 속건제를 드려야 하겠다는 그럴듯한 생각이 나온 것이다.  성경을 모르므로 방법이 틀리긴 하였지만 가장 좋은 물질(금)을 바쳐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려는 생각은 좋은 것이다.  

궤를 돌려보낼 때, ① 속건제를 드리고, ②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③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고 마음을 겸손하게 가지라고 하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야 할 것을 이방 사람들도 깨달았는데 성도들이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三. 소수레에 궤를 실어 보냄(7-12)

 

. 6:7-12  그러므로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소에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 드릴 금 보물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보아서 궤가 그 본 지경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 손이 아니요 우연히 만난 것인 줄 알리라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여호와의 궤와 및 금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새 수레를 만들어서 금보물을 상자에 담아 여호와의 궤와 함께 실려 보내는 것도 그들이 하나님을 거룩한 하나님으로 아는 까닭이다.  보낼 때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을 떼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것은 소가 송아지 생각을 하여 뒤로 돌아올 가능성을 크게 한 것이다.  이것으로 재앙이 하나님의 섭리로 온 것인지를 시험하여 알아보려고 한 것이다.  즉 소가 돌아오면 블레셋 사람에게 내린 재앙이 우연히 온 것이고 소가 똑바로 가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기 위해서였다.  

또 가벼운 법궤를 소 두 마리가 끌게 한 것도 같은 의도로서 소 두 마리가 마음을 같이 하고 보조를 같이 하여 똑바로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서는 새끼를 떼어놓은 소 두 마리가 한결같이 똑바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그 소들을 인도하시므로 송아지 생각이 나서 울면서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때 블레셋 방백들이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갔다.  

 

四. 벧새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영접함(13-16)

 

. 6:13-16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것의 보임을 기뻐하더니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변제와 다른 제를 드리니라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벧세메스 사람들이 밀을 베고 있다가 여호와의 궤를 보고 기뻐하였고 수레는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고 수레의 나무를 패어 그 소를 변제로 여호와께 드렸다.  

하나님이 소를 이용했다.  하나님께서는 사자, 당나귀, 닭 같은 짐승도 필요에 따라 이용하신다.  이 소들은 끝까지 하나님께 이용당하여 하나님께서 가게 하는 곳까지 가서 서게 할 때 섰고 나중에는 번제물로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  두 마리가 똑같이 이용당하였다.  사람도 이렇게 하나님께 이용당할 때 복이 있다.  소를 이용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은 더 많이 이용하신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에게 맡겨졌었고, 초대교회 시대에는 특별히 바울에게 이방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사명이 맡겨졌었다.  현재에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메고 나아가는 직책을 맡았다(고후3:9).  초대교회 시대에는 복음 운동을 사도들이 메고 나아갔고 그 후에는 교부들과 신앙의 선배들을 통하여 복음을 메고 나아가게 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우리들에게 복음의 수레를 끌고 나아가게 하셨다.  

복음의 수레를 끄는 자는 송아지 생각이 나도 뒤를 돌아보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만 똑바로 나아가야 된다.  송아지 걱정은 하지 말고 떼어놓고 가야 한다.  송아지도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신다.  인정을 다 끊어 버리고 자기의 생각, 자기의 뜻은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목적지까지 끝까지 이용당하여 나아가야 한다.  나아갈 때 두 마리가 끝까지 같이 나아가야 한다.  한 마리가 돌아서거나 보조를 같이 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수레를 패어서 땔나무로 한 것같이 자기가 끌고 가는 수레라고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기는 죽어서 번제물로 타서 없어지고 하나님의 말씀(법궤)만 남게 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도중에 돌아보거나 좌우로 치우치는 소는 합당치 않다.  끝까지 이용당하여 수레도 없어지고 자기도 없어지되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게 하는 데까지 이용당하여야 한다.  

금보다 귀하고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메고 나아가는 사명을 깨닫고 끝까지 충성하며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였다(행20:24 ; 빌2:17), 하나님의 복음을 메고 나아갈 때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정로(正路)로만 나아가야 한다.  신비주의로, 신신학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신비주의로 치우치는 것은 우로 치우치는 것이요, 신신학으로 치우치는 것은 좌로 치우치는 것이다.  또 세속주의로나 인본주의로도 치우치지 말고 똑바로 나아가야 한다.  

 

五. 금독종자 금쥐와 성읍의 수효(17-18)

 

. 6:17-18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전제로 드린 금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드린 바 금쥐는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견고한 성읍과 시골 동리 곧 다섯 방백에게 속한 사람의 모든 성읍의 수효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하나님의 궤는 세 도시로 옮겨갔지만 다섯 성읍의 사람이 죽은 것 같다.  하나님의 궤가 머무른 근처의 큰 도시에도 재앙이 내렸던 것 같다.  금쥐 다섯은 쥐의 피해를 받은 성읍의 수효대로였다.  여호수아는 모세 시대나 스룹바벨시대의 여호수아가 아니고 이 당시의 벧세메스 사람이다.  

 

六.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자들의 죽음(19)

 

. 6: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오만)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오만)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어떤 사본에는\"오만\"이란 숫자는 없고\"칠십\"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죽은 자는 칠십이고 징계받은 자까지 합하며 오만 칠십 인 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징계를 받는 자가 많고 죽는 자는 소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도 범죄하면 많은 사람이 징계를 받았고 죽은 자는 소수였다.  성찬예식에 합당치 못하게 참여하는 자들 가운데에도 징계를 받은 자는 많았고 죽은 자는 적었다(고전11:27-30).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보았을 때 왜 죽었을까?  제사장 외에는 성물을 보거나 만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민4:15, 20).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했고(출33:20), 하나님의 거룩한 지경을 범하지 말라고 하였다(출19:12), 거룩한 하나님 앞에 죄인이 서게 되면 죽고 만다.  어두움이 빛을 보면 어두움이 사라지고 마는 것과 같다.  

역대상 13:7-10에 보면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가는데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웃사를 죽이셨다.  비록 웃사가 좋은 동기에서 붙들었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이다.  사람의 생각으로 궤가 넘어질 것 같아서 붙들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기가 붙들려고 하는가?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실패하는 것 같을 때 붙들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다(마16:21-23).  법궤는 복음 운동이며 생명을 살려 나가는 운동이다.  이 운동이 실패할까봐 손으로 붙들다가 망하는 자가 많다.  

벧세메스 사람들도 여호와의 궤가 온전한가 하여 들여다보다가 죽었다.  오늘날에도 교회를 자기의 힘으로 붙들려고 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이루어 나가신다.  모세가 자기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사람만 죽이고 바로의 체포령이 내리자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40년간 숨어살았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하시고 성도(나)는 진리의 멍에를 메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만 하고 나아가면 된다.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자기가 붙들어야만 교회가 잘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버려야 한다.  어떻게 하여야 말씀을 받아먹고 말씀대로 순종하고 말씀대로 따라 갈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나아가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잘되게 하신다.  

지경(한계)을 범하면 안 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 한계를 범하면 죽는다.  하나님의 궤를 성소에 둘 때는 휘장을 쳐서 한계를 정하고 궤가 있는 곳은 지성소라 하여 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씩 들어가게 하였다.  제사장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죽는다.  제사장도 제사를 드려 몸을 거룩하게 하고 반드시 피를 가지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 졌으므로 제도적인 한계는 없어졌으나 영적인 한계는 지금도 있다.  

주일에 대한 한계는 주일 새벽 0시부터 주일 밤 12시까지이다.  주일에는 신문을 보거나 사사로운 말을 하거나 오락을 행하지 않아야 하며 더욱이 자기 개인을 위한 일은 하지 말고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물질에 대한 한계에 있어서는 소득의 십분의 일(십일조)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된다.  예배시간에 대한 한계는 예배를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이다.  

거룩한 한계를 절대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어떻게 하면 될까 하고 궁리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세상 임금에게도 충성을 하여 법을 지키고 순종하되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날 때에는 순종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가이사와 하나님과의 경계이다.  

이기선 목사가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감옥에 갇혔을 때 한번은 나오라고 하여 신사(신사) 앞까지 데리고 가서\"최(最)경례\"하는 구령이 내렸는데 절하지 않았다. \"왜 여기까지 와서 절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때 이기선 목사의 대답이\"여기까지 온 것은 국가에 순종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였다.  그러자 순경이\"절하라는 명령은 왜 순종하지 않느냐\"고 또 물었다.  그때 대답하기를\"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하므로 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기선 목사에게는 나라의 법과 하나님의 말씀에 뚜렷한 경계가 있었던 것이다.  

W.C.C.(세계 교회 협의회)는 불교, 마호며교 등 이방 종교와 기독교가 아무 경계도 두지 말고 한데 어울려 교리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고 오직 사업만을 같이 하자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쪽발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은 먹고 그렇지 않은 것은 가증한 것이므로 먹지 말라고 하였다.  쪽발이 갈라진 것은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못한 것을 갈라놓으라는 뜻이다(신약시대에는 그 진리만 지키고 고기는 먹어도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과 한계를 구별하여 지키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경계를 범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경계선에 오면\"이 이상은 못 간다.  이 선은 하나님께서 넘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넘어가면 망한다.\"고 하며 벌벌 떨면서 그 선을 넘지 않도록 힘써야 하겠다.  자녀들에게도 한계를 범하지 않도록 가르쳐 주고 또 자신이 한계를 범하지 않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그저 경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나아가면 실수하기 쉽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 신성한데 여기에 대하여 관계할 만큼 관계하고 알만큼만 알고 더 이상 관계하거나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온갖 것에 다 참여하고 온갖 것을 다 비판하고 하나님의 종에 대한 한계를 무시할 때,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자기도 망하게 된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는 다 같으나 직책상으로 볼 때는 하나님 앞에 차이가 있다.  한계를 범하여 보통 사람같이 여겨 핍박하고_비방하여 멸시하다가 망한 사람이 많다.  경계를 지키는 것은 복을 받는 비결이다.  하나님의 경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은 믿음을 지킬 수 없다.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제물과 자기가 먹을 것과의 한계를 범하여 망하고 말았다.  

 

七. 벧세메스 사람들이 하나님의 괘를 옮겨가라고 함(20-21)

 

. 6:20-21  벧세메스 사람들이 가로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꼬 하고 사자들을 기럇여아림 거민에게 보내어 가로되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가라

벧세메스 사람이 법궤를 들여다 보다가 많은 사람이 죽자 법궤를 자기들이 모실 수 없다고 생각하여 어디로 보내야 좋을까 의논한 결과 기럇여아림에 기별하여 법궤를 가져가라고 했다.  하나님의 궤를 잘 모시고 있으면 큰복을 받을 것인데 궤를 들여다보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기 때문에 두려워하여 다른 곳으로 보내 버렸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자기들의 잘못한 것을 회개할 생각은 아니하고 궤만 가져가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법궤를 잘 모시므로 복을 받았다(대상13:13-14).  모처럼 벧세메스에 하나님의 법궤가 왔므므로 잘 모셨으면 큰복을 받을 수 있었는데 궤를 들여다보다가 죽은것만 생각하고 궤를 가져가라고 하였으므로 이들은 매우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신약시대에 군대 마귀들린 사람에게서 나간 귀신들이 돼지 2천 마리 속에 들어가 돼지 떼가 비탈길로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을 본 거라사인들이 예수님께 그 지방을 떠나시기를 간구한 것과 같다.  자기들의 돼지가 또 죽을까 보아 예수님을 떠나게 하였다.  예수님을 돼지나 죽이러 다니는 사람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복의 근원이 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이 떠나시면 복이 떠나는 것이요 생명이 떠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떠나라고 하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바로 잘 모셨으면 복을 받을 수 있었는데 다른 곳으로 보낸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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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사무엘상7장

제 7 장  미스바 부흥 운동

 

(대  지)

 

一. 여호와의 궤가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 있음(1 -2)

二.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라(3-4)

三. 미스마의 부흥 운동(5-6)

四. 블레셋을 이김(7-12)

五. 이스라엘의 회복과 사무엘의 치리(13-17)

 

(본문강해)

 

一. 여호와의 궤가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 있음(1-2)

 

. 7:1-2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두려워하여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법궤를 가져가라고 하였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다가 아비나답의 집에다 20 년간 놓아두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소가 실로에 있었으나 실로의 성소는 이미 다 훼파되어 20 년간 제사를 드리지 못하였다.  그 동안 이스라엘의 생활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종교가 타락하여 세상으로 기울어져 버렸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침략을 당하고 종살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 온 민족이 여호와를 사모하게 되었다.  곤고한 가운데 빠지게 된 후에야 여호와를 사모하게 된다.  

 

二.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라(3-4)

 

. 7:3-4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버리고 마음을 여호와께만 향하여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였다.  그리하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과거 20년 동안 자기들을 위하고 아무리 우상을 섬겨 보아도 실패뿐이었고, 블레셋의 속국이 되었고, 하나님의 복이 다 떠났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20년 동안은 아마 사무엘과 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궤 있는 곳(기럇여아림)에 가서 제사를 드린 것 같다.  이스라엘 민족은 마치 탕자가 아비의 집을 떠나 자유스럽게 자기 마음껏 다니며 허랑방탕한 것과 같다.  탕자가 어느 정도 육의 자유는 있었으나 그 방탕하며 자유를 누린 까닭에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돼지 치는 집에 가서 주인의 종노릇을 하며 돼지의 먹이인 쥐엄 열매를 먹으려고 해도 주는 자가 없어 못 먹는 신세가 되어 거의 죽게 될 때에야 회개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생긴 것과 같다.  

긴 세월을 공연히 고통의 멍에를 메고 허송한 것뿐이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세상의 우상이 가득히 들어왔고 그들이 그 우상들을 섬겼으나 평안한 것이 없고 점점 비참하게만 되어갔다.  20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였고, 여러 가지 고통의 멍에가 자주 오므로 이것저것 다 해 보아도 이제는 별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마음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다윗도 범죄한 다음에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기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불의의 관계로 아이를 낳고 얼마 후에 나단 선지자가 그를 책망하였고, 책망을 받자 다윗은 즉시 회개를 하였다(삼하12:1-13).  나단 선지자가 즉시 가서 책망하지 않은 것은 즉시 책망하여도 잘 듣지 않겠기 때문이다.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올 즈음에 책망하여야 듣게 되어 있다.  죄를 짓고 우상을 섬기며 자기가 하는 일이 재미가 나고, 제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려고 할 때는 책망해도 잘 듣지 않는다.  자기가 해 볼대로 해보고 실패만 거듭하고 죽을 지경에 빠져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망할 자이고 깨닫는 자라야 소망이 있는 자이다.  이스라엘 온 족속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려고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보내어 이스라엘 민족을 권면하라고 하신 것이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먼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올 것을 권고하였다.  돌아올 때에는 전심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힘쓰되 마음을 붙잡아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이키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번개와 같이 빠르므로 기도로 길들이고 붙잡아서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면 점점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은혜를 받을 수 있으며 뒤숭숭한 마음으로는 은혜를 받지 못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전심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돌이키려고 애를 쓰고 과거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은혜가 풍성하다.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을 버리도록 권고하였다.  20년 동안 우상을 많이 섬겼고 따라서 하나님께 전심을 바치지 못하였다.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다.  요즈음은 돈이 우상이 되었고, 남편과 자식이 우상이 되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귀히 여겨서 하나님 말씀을 제쳐놓고 좇아가는 것이 곧 우상이다.  또 성경 말씀을 어기고 세상의 것을 취하고, 세상을 따라가고, 신앙을 떠나서 세상의 것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우상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의 마음대로 이방 신을 섬기며 살아 왔지만 성공한 것이 없고 실패만 당하였다.  말씀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는 자는 가는 곳마다 고통이요 환난이다.  성도가 양심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은 그 속에 우상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허락되지 않고 양심이 편하지 않은데도 우상을 따라가면 심령이 죽는다.  

우상 중에 가장 큰 우상이\"자기\"이다.  자기를 위하기 때문에 믿음을 팔아먹고, 자기의 명예와 영광과 유익을 구하느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 버리며,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가 앉아서 왕 노릇 하다가 망하는 사람이 많다.  누구나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인줄 알아야 하며 자랑할 것은 자기 약한 것밖에 없는 줄 알아야 한다(고후12:9-10).  바울이 약한 것, 환난, 궁핍, 가난한 것을 자랑한 것 같이 자기의 장점을 자랑하지 말고 약점을 자랑하고, 잘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우상 중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붙인 우상들도 있다.  진리가 아니고 성경에서 어긋나는 데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서 따라가는 사람이 많다.  교회는 진리에서 탈선하여 나가는 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거기에 동참하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생명이 없는 데도 구원 운동을 한다고 열심이다.  생명이 없는데 어떻게 구원 운동이 되겠는가?  종교를 우상화해도 안 되며, 교회를 우상화해도 안 된다.  교회가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의 역사가 없으면 곧 우상이 된 것과 같고, 마치 무화과나무가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한 것과 같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타락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셨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경배와 봉사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하였으니 외부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여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다.  외부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하는 것은 생명이 없고 외부만 붙잡은 것이므로 우상이다.  현대 교회가 이러한 우상이 되어 있지 않은지 깊이 반성해야 할 때이다.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하나님만 섬길 때 다른 것은 다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다른 것은 다 버리고 하나님 한 분만 섬기고 따라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고 사무엘이 선언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의 말을 순종하여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겼으므로 복을 받게 되었다.  

 

三. 미스바의 부흥 운동(5-6)

 

. 7:5-6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효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사무엘의 명령으로 온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이고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었다(12:23 참조).  하나님의 종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그러나 3합이 맞아야 한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려고 예정한 바가 있어야 하고, 둘째로 그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걸어가야 하고, 셋째로 하나님의 종이 기도해 주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려고 부르셨고, 아브라함이 복을 받을 길을 걸었고(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갔다), 멜기세덱 제사장의 축복이 있었다.  

망하는 것도 3합이 맞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망할 사람으로 예정하셔야 하고, 그 사람이 신앙을 떠나서 망할 길로 걸어가며, 제사장의 권고를 듣지 않을 때 망한다(대하25:16 참조).

사무엘이 아무리 기도해 주어도 망하기로 작정된 사람은 듣지 않고 망하게 된다.  사울의 경우는 사무엘이 기도해 주었지만 사울이 망할 길로 나아갔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제사장이 기도해 주지 않아도 자기가 복 받을 길을 가면 복을 받는다.  그려나 제사장이 인도하여 축복해 준 만큼은 받지 못한다.  자기가 최선을 다하고 제사장이 인도해 주면 더욱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이것은 마음을 물 쏟듯이 하나님께 부어 놓으라는 것이다(애2:19).  다시 말하면 전심을 하나님께 쏟아 바쳐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 날에 금식하고 금식은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하나님 앞에 겸비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한 것이다.  미스바에 모인 백성들은 이렇게 한 곳에서 합심하여 하나님 앞에 겸비하고 전심으로 회개의 기도를 하였고 하나님과 종 사무엘의 지도를 받았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찾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에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다.  

 

四. 블레셋을 이김(7-12)

 

. 7:7-12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변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볼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예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스라엘을 치러 블레셋 사람들이 미스바로 올라왔다.  하나님의 백성이 은혜를 받을 때 마귀는 언제나 시기하고 방해한다.  이스라엘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저들을 도와주시고 마귀의 종이 되지 못하겠으므로 마귀가 블레셋 군대를 동원하여 쳐들어갔다.  

성도가 은혜를 받으려고 할 때 마귀가 방해한다는 것을 언제나 알아야 한다.  기도할 때에는 기도하지 않을 때보다 마귀의 시험이 더욱 크고, 진리의 말씀을 깨달았을 때에는 깨닫지 못할 때보다 더욱 크다.  우상을 내어 버릴 때는 버리지 않을 때보다 더욱 큰 시험이 온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면 성공하는 것이고, 마귀(블레셋 군대)에게 지면 지금까지 쌓아 놓은 것이 다 허사가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길 것은 확실하다.  백성이 회개하여 영이 깨어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선지자가 힘써 기도하여 백성들과 합심이 되었는데 그 백성을 누가 대적하겠는가?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것은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를 신뢰한 증거이다.  선지자를 신뢰하는 때는 복을 받는 때이다(대하20:20).

교역자가 교인들을 위하여 힘써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신다.  교역자만 힘써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교인들도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고, 겸비하여 회개하며, 교역자를 순종하여 신뢰하고 믿음의 길을 걸어 나아가야만 한다.  이렇게 하면 마귀의 군대를 다 이길 수 있다.  자기의 할 일은 하지 않고 교역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역자도 할 일을 하고 교인도 자기의 할 일을 바로 하여야 하나님의 도움이 온다.  교역자는 모름지기 전심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밝히 깨달아 가르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순종하는 교역자가 되어야 한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린 것은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려야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피를 흘려주신 은총으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을 깨달아 주님께 감사하고 더욱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위하여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어린양을 잡아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여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란 뜻이다.  돌을 세운 것은 첫째로 그 돌을 볼 때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둘째로 하나님에서 도우신 것을 기억하며, 셋째로 원수와 싸워 승리한 그곳에서 이제는 후퇴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으면 거기에다 경계선을 치고 거기서부터 전진할 생각을 하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된다.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한다고 하였다(겔47:11).  어떤 성도는 은혜를 조금 받으면 열심이 나고 마음이 화평하고 참  기쁘나 조금만 지나면 받은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다시 세상의 근심과 걱정이 쌓이고 기도가 되지 않고 성경 말씀을 들어도 깨달음이 없게 된다.  이런 성도는 개펄과 같은 신자이다.  이러한 신자는 은혜를 받은 후에 그 말씀에 굳게 서지 못하고 신앙 양심을 쓰지 않고 순종하는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신앙에는 전진만이 있을 분 절대로 후퇴해서는 안 된다(저자의 성경강해 에스겔 ·다니엘 p. 450 참조.)

 

五. 이스라엘의 회복과 사무엘의 치리(13-17)

 

. 7:13-17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 자기 집이 있음이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게 해 주셨고, 잃어버렸던 땅을 다시 찾게 하여 주셨고, 평화가 찾아 왔다.  사무엘이 사는 동안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행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자기 집이 있는 라마에 돌아와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  이렇게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종 사무엘이 있는 동안에는 원수(블레셋)가 쳐들어오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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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8장

제 8 장  왕을 구함

 

(대  지)

 

一.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가 됨(1-3)

二. 백성이 왕을 구함(4-9)

三. 사무엘이 왕 세우는데 대하여 경계함(10-18)

四.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라 하심(19-22)

 

(본문강해)

 

一.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가 됨(1-3)

 

. 8:1-3  사무엘이 늙으매 그 아들들로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이 늙어 그 아들들로 이스라엘의 사사(士師)를 세웠는데 그들이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이(利)를 구하여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였다.  엘리의 아들들이 불량하여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고 제물을 밟았다고 하였는데 사무엘의 아들들도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였다.  그러므로 사무엘에게는 그 두 아들이 가시가 된 것 같다.  

사무엘이 아들들의 교육을 잘못시켜 그렇게 되었을까?  사무엘 선지자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자녀를 잘못 가르칠 리가 없다.  그의 아들들이 아비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바로 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녀가 신앙 생활을 잘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부모가 잘 가르칠 의무와 책임이 있으나 부모가 잘 가르쳤다고 반드시 자녀가 믿음을 잘 지키며 바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이 자녀를 잘 가르쳤지만 이삭은 잘 순종했고 이스마엘은 아비의 교훈을 따르지 않았다.  에스겔 18:20에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 돌아가리라\"함과 같다.  

아들이 부모의 말을 안 듣고 나간다고 부모가 전부 책임을 질 수는 없다.  목사나 장로의 아들들 중에 잘못된 길로 나가는 자들이 있다.  이것이 부모의 신앙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부모(특히 어머니)가 자녀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믿음과 사랑으로 잘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고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사실 자녀 교육에 대한 어머니의 책임은 막중하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자녀와 접촉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에 여학교를 더 많이 세워서 여자들을 잘 교육시켜야 제2세 국민을 바로 가르칠 수 있다는 교육 정책을 세웠었다.  참으로 일리 있는 정책이다.  일본 국민들의 단결심이나 친절성, 근면성은 참으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어머니들이 자녀교육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자기 자녀들에 대하여는 잘못한 점을 바로 보지 못하고 남의 자녀들의 잘못하는 것만 보기 쉬운 점이다.  항상 객관적 입장에서 자기 자녀들을 보고 잘못한 점은 믿음과 사랑으로 잘 타일러 나아가야 할 것이다.  

 

二. 백성이 왕을 구함(4-9)

 

. 8:4-9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한 그것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

사무엘의 아들들이 그릇된 길로 나아갈 때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와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해 달라\"고 하였다.  사무엘은 이 말을 기뻐하지 않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만일 왕을 세우면 자기 아들들이 사사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되는 것이 섭섭하여 사무엘이 기뻐하지 않았는가?  사무엘의 신앙은 아들들을 표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여 바로 섬기고 이스라엘을 바로 인도하는데 표준이 있다.  사무엘이 백성의 요구에 대하여 기뻐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했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왕을 세우는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여 물을 때 하나님께서 왕을 세워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셨고, \"그들이 너(사무엘)를 버림이 아니요 나(하나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또 백성들에게 왕을 세워 주되 그 왕의 제도를 알게 하여 주라고 하셨다.  

 

三. 사무엘이 왕 세우는데 대하여 경계함(10-18)

 

. 8:10-18  사무엘이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일러 가로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 아들들로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병기와 병거의 제구를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의 제일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취하여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 양떼의 십분 일을 취하리니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 그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그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지 아니하시리라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의 제도를 말하여 주었다.  만일 너희가 왕을 세우게 되면,

①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왕의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며 그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하고 너희 자녀를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게 될 것이다.  즉 너희 자녀가 군인이 되어 왕을 섬겨야 되고 왕의 수하에서 왕의 명령을 좇아 전쟁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② 왕이 너희 자녀로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왕을 위해 추수를 하게 할 것이다.  

③ 왕이 너희 자녀로 자기의 병기와 병거의 제구를 만들게 할 것이다.  

④ 왕이 너희 딸들을 취하여 떡 굽는 자, 향료 만드는 자, 요리하는 자를 삼을 것이다.  

⑤ 왕이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의 제일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 신하에게 주고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원과 신하에게 줄 것이다.  

⑥ 왕이 너희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취하여 자기 일을 시킬 것이다.  

⑦ 왕이 너희 양떼의 십분의 일을 취하게 될 것이다.  

⑧ 너희는 왕의 종이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지만 왕을 세우면 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를 것이며 마침내 왕으로 인하여 탄식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될 날이 올 것인데 그때는 여호와께서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사무엘이 말해 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인간 왕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四.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라 하심(19-22)

 

. 8:19-22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사무엘이 백성 모든 말을 듣고 여호와께 고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사무엘이 왕의 제도를 자세하게 말하여 주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히려 듣기를 거절하고 왕을 세워 주면 그 왕이 자기들을 다스리며 자기들을 위하여 싸울 것이라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백성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고 하시니 사무엘이 백성들을 각기 성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왕을 세워 달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시면서도 그것을 허락하셨다는 점이다.  사무엘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면서도 왜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우라고 하셨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그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으니까 인간 왕이라도 세워서 이스라엘을 보존하고 다스려 나아가려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완악해진 것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 나아가신다.  로마서 1:28에\"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아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되었으나 왕을 세우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즉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받아서 사는 것이 이상적이고 좋은 방법이지만 하나님을 떠났고 그 이상적인 방법을 쓸 줄 모르니 둘째 방법이라도 써서 이스라엘 국가를 세워 나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니 각자가 왕 노릇하게 되었고 제 소견에 좋은 대로하였다(삿21:25).  질서가 문란하고 이스라엘의 유지와 발전에 지장이 컸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기며 이방 민족에게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삿3:7-14).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는 형편에서는 차라리 왕이라도 세워서 백성을 바로 인도하고 이스라엘을 세워 나가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왕의 제도를 허락하셨다.  

왕의 제도를 요약하면 ① 왕을 중심으로 제도를 세운다(이스라엘 국가조직), ② 제도적인 권세를 부여하여 그 권세로 이스라엘을 통치한다.  그 제도적인 권세는 이스라엘 총회가 위임한 권세이다.  ③ 백성들은 왕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복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형벌이 있다.  왕에게 제도적인 권세를 주어 조직을 통하여 통치하게 하는데 하급조직(기관)은 상급조직(기관)에 복종하고 상급조직은 왕께 복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왕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을 다스릴 때는 이스라엘나라가 오히려 사사시대보다 강력한 국가 체제를 갖추고 흥왕하여 갔다.  다윗, 솔로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와 같은 왕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나라를 잘 다스린 대표적인 왕들이다.  

반대로 왕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거나 백성이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며 하급조직(기관)이 상급조직(기관)에 불순종할 때는 질서가 문란하여지고 국력이 약하여 지며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니까 왕은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아 조직을 통하여 백성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지도하며 하급조직(기관)은 상급조직(기관)에 절대 순종하여야 한다.  이 중에 어느 하나가 잘못되어도 나라는 쇠약하여지고 망한다.  왕에게는 조직을 통하여 백성을 복종하게 할 권세가 부여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한다.  오늘날 교회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개교회가 모여서 지방노회를 조직하고 지방노회가 모여 총회를 조직하고, 총회에서 총회장을 세운다.  노회 제도 없이 개교회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만 받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걸어 나아가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고 사사시대와 같이 각 교회 교역자가 스스로 왕 노릇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알고 나가면 제재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제일 좋은 방법(최선 방법)대신에 둘째 방법(차선 방법)을 쓰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더라도 쓸 자격이 없을 때는 안 쓰는 것이 좋다.  

교회는 먼저 교역자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양떼를 잘 다스리며, 교인들은 교역자에게 순종하고 가르침을 잘 받아 믿는 일을 잘할 때 부흥과 발전이 있다.  개교회는 노회의 지도와 감독에 순종하고 노회는 또 상부조직(총회)에 순종하며, 상부조직 에서는 총회장을 세우되 그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서서 나아가야 한다.  

상급 조직에는 반드시 하급조직을 지배할 권세가 있어야 한다.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조직은 있으나마나 하다.  만일 상부조직(기관)이 하나님 말씀에서 탈선하였을 때는 건의하여 고치게 하고 고치지 않으면 탈퇴하여야 한다.  그러나 상부조직(기관)이 하나님 말씀에 바로 섰을 때는 상부의 명령에 순종하여 지배를 받고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해 타산으로 탈퇴하면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다.  

교회가 조직체를 이를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교역자들이 모여서 정치하느라고 시간을 많이 소모하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기기 쉬운 점이다.  그러나 사무를 분담하여 처리하고, 모여서 기도하고, 감투를 쓰려고 사전에 공작하지 알고, 투표하여 결정하면 된다.  또 지도자는 가장 많이 봉사하고 섬길 자인 줄 알고 진리대로 나아가야 한다.  지도자가 되는 것을 감투로 알고 자기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권모 술수로 행하면 죄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조직이 필요한 것이며 자기 출세와 권세 부리는 것을 위하여 조직을 이용하여서는 안 된다.  

디모데전서 1:8-10에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라고 했다.  각 교회가 하나님만 잘 섬기고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고 나아가면 왕의 제도가 필요 없으나,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지 않기 때문에 이런 교회들을 바로 다스리기 위하여 왕의 제도를 세우는 것이다.  왕의 제도는 잘못 나아가는 사람들을 바로 다스리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니 선한 것이다.  왕을 세우지 않으면 이스라엘을 유지하고 인도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왕을 세우라고 하셨다.  제일 좋은 방법은 사사를 세워서 하나님을 왕으로 삼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인데,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제각기 왕 노릇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으므로 그 다음 방법으로 왕의 제도를 허락하신 것이다.  

사사시대에는 왕이 없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으므로, ① 각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하며, ② 우상을 섬기고, ③ 원수가 쳐들어 올 때는 백성들이 슬슬 피하고 누군가가 나서서 이기고 돌아오면 서로 자기의 공로를 주장하며 이기주의로 나갔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이스라엘의 족속이 어려웠던 것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려면 원수가 쳐들어올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막아야 하고,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고 신앙 생활을 바로 해야 한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하여 혹자는 \"교회에서는 지배자가 있을 수 없다\"고 하며 목사 제도를 부인하는 교파가 있다.  다 같은 형제로서 누구나 성령의 감동이 있는 사람이 강단에 나가서 설교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누구든지 나가서 \"나는 이 성경 말씀에서 이렇게 감동을 받았다\"하고 자기가 느낀 대로 몇 마디씩 외치면 그것이 설교가 된다고 한다.  지배받을 것도 없고 지배할 것도 없이 하나님만을 왕으로 삼으므로 좋은 것 같으나 그렇지 못하므로 역시 사사시대같이 되고 만다.  무질서하게 되는 것보다 차라리 정당한 절차를 밟아 목사를 세우는 것이 낫다.  

독립 교회 제도의 폐단도 각 교회가 왕이 되어 자기 좋은 대로하고 어려운 일에는 협조하지 않고 이기주의로 나가려는 점이다.  또 개 교회 목사가 하나님의 참 종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나아갈 때는 좋으나 목사 자신이 범죄할 때 그것을 치리하고 탈선하는 것을 바로 잡아 나아갈 대책이 없다.  대인이 잘못할 때는 교역자가 다스릴 수 있으나 교역자가 잘못했을 때는 다스릴 길이 없고 교회에 피해가 막심하다.  

그러므로 사도시대부터 교회 조직을 시작하여 내려왔다.  이상적인 방법은 하나님만 왕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지배만 받는 것이지만 이것을 쓸 자격이 없으므로 사도 바울이 제도를 세울 수밖에 없어 각 교회마다 조직을 하고 직분을 세우고 감독을 세워 교회를 맡기고 교인을 다스리게 하고 공의회를 열어 여러 교회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였던 것이다(행15:1-29 ; 20: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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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9장

제 9 장 사울 지명

 

(대  지)

 

一. 사울이 나귀를 찾으러 다님(1-4)

二.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감(5-14)

三.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왕 될 자를 지시하여 주심(15-17)

四.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지명함(18-21)

五. 사무엘이 사울과 담화함(22-27)

 

(본문강해)

 

一. 사울이 나귀를 찾으러 다님(1-4)

 

. 9:1-4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인 사람이더라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하더라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사울은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로 보통 사람보다 키가 어깨 위는 더 컸고 준수한 소년이었다.  아비의 잃은 암나귀를 찾아 에브라임 산자와 살리사 땅, 사알림 땅,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돌아 다녔으나 찾지 못하였다.

 

二.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감(5-14)

 

. 9:5-14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하는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부친이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그릇에 식물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치게 하겠나이다(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지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 있는 성으로 가니라 그들이 성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섰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에 들어오셨나이다 당신들이 성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라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금시로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사울이 나귀를 찾다가 찾지 못하자 아버지가 걱정하실 것을 생각하여 돌아가자고 사환에게 말하였다.  그때 사환의 제안으로 그 성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선견자)에게 자기들의 갈 길을 물어 보기로 하였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로는 사환이 가지고 있는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을 가지고 갔다.  가는 도중에 물긷는 소녀의 도움으로 사무엘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갈 때에 무슨 예물이라도 드리려고 하였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빈손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출23:15).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였으니 물질을 통하여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줄 알고 정성스럽게 연보하는 태도를 배워야 하겠다.  

사울이 나귀를 찾기 위하여 나왔다가 선지자 사무엘을 만난 것은 아주 큰 의의가 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려고 이렇게 섭리하셨으니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잠언 16:9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했고, 잠언 20:24에\"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고 하였다.  

 

三.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왕 될 자를 지시하여 주심

   (15-17)

 

. 9:15-17  사울의 오기 전 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하시더니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하시니라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오기 전 날에 벌써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내일 이맘 때 베냐민 사람을 보내리니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고 지시하셨고, 그 다음날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 볼 때에 이가 왕 될 자라고 알려 주셨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이렇게 정확하고 진실하시다.  

기스가 암나귀를 잃게 만드시고 사울이 사환과 같이 나귀를 찾아 헤매게 만드시고, 또 사환을 통하여 사무엘을 찾아가도록 인도하시며, 물긷는 소녀를 통하여 사무엘을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라 !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시고 오묘하시다.  

 

四.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지명함(18-21)

 

. 9:18-21  성문 가운데 사무엘에게 나아가 가로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컨대 내게 가르치소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선견자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날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나아가 선견자의 집이 어디냐고 물을 때 사무엘이 \"내가 선견자니라\"고 하면서\"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날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라고 말하며 사울을 초대하였다.  또\"사흘 전에 잃은 암나귀는 찾았으니 안심하라\"고 일러주었다.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이것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말해 준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사울이 자기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지파이고, 자기 가족은 베냐민 지파 중에서도 가장 미약하다고 하였다.  

여기에 사울의 겸손한 신앙이 잘 나타나 있다.  감히 왕이 될 생각도 없고 될 수도 없는 자라고 생각하였다.  참으로 겸손한사람이었다.  이러한 사울은 하나님께서 쓸 만한 사람이었다.  자기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쓸 만한 사람이다.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선거 운동하고 미리 모의하고 명예와 영광심으로 설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으며 왕이 된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고 악한 왕이 되고 만다.  선한 왕이 되려면 자기가 미약한 자이고 할 수 없는 자인 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신다.  

 

三. 사무엘이 사울과 담화함(22-27)

 

. 9:22-27  사무엘이 사울과 그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수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 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요리인이 넓적 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어서 이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그들이 일찌기 일어날새 동틀 때 즈음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가로되 잃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으로 우리를 앞서게 하라 사환이 앞서매 또 가로되 너는 이제 잠깐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 네게 들리리라

사무엘이 사울과 그 사환을 객실로 인도하고 청한 자 중 수석(首席)에 앉게 한 후 사울을 위하여 미리 준비해 두었던 요리를 주어 먹게 하였다.  사무엘이 이렇게 사울을 후대한 것은 장차 이스라엘(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지도자가 되겠기 때문이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알아 지도자에게 순종하고 지도자를 공경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성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 올라가서 담화하였다.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올라가서 나라 일을 말하고 새벽 일찍 떠나 성읍 끝에 이르매 사환을 먼저 앞서가게 하고 사무엘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리리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일에 마귀가 시험하지 못하도록 신중을 기한 것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마귀가 틈타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서 처리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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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10장

제 10 장  사울이 기름 부음받음

 

(대  지)

 

一. 사울이 기름 부음을 받음(1-8)

二. 사울이 예언자의 무리에 들어감(9-13)

三. 사울이 숙부와 말함(14-16)

四. 사울을 왕으로 제비 뽑음(17-21)

五. 사물의 겸손(22-27)

 

(본문강해)

 

一. 사울이 기름 부음을 받음(1-8)

 

. 10:1-8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물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모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비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를 인하여 걱정하여 가로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 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께 뵈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이 너와 만나리니 하나는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하나는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하나는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 손에서 받으리라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

지붕에서 사무엘이 사울과 나라 일에 대하여 담화하고 새벽 미명에 성읍 끝으로 나갈 때에 사환은 앞서 가게 하고 사무엘과 사울 두 사람만이 있었다(9:25-27).  그때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  그것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표이었다.  또 사울이 돌아가는 도중에 되어질 일을 말해 주었다.  

첫째로, 가다가 두 사람을 라엘의 묘실 곁에서 만날 것이며, 그들이 말하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비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를 인하여 걱정하여 가로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고 가르쳐 줄 것이다.  

둘째로, 다볼 상수리 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날 것인데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하나는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하나는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졌으며 그들이 사울에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사울은 그것을 받을 것이다.  

셋째로, 사울이 하나님의 산에 이르면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고 성읍으로 들어갈 때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고 사울에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여 사울도 그들과 함께 예언하며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사무엘은 또 사울에게 자기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서 자기가 변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사울에게 행할 일을 가르칠 때까지 칠일 동안 기다리도록 말해 주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왕이 되도록 기름 부은 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세상의 대세를 따라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 믿고 행한 것이다.  사울에게 세 가지 예언을 해 준 것은 예언이 이루어질 때 자기가 기름 부음받은 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임을 확실히 믿고 순종하도록 증거를 주신 것이다(요一5:10 참조).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다(암3:7).

 

二. 사울이 예언자의 무리에 들어감(9-13)

 

. 10:9-13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이 사울의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그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비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가로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사울이 예언하기를 마치고 산당으로 가니라

사무엘의 말대로 모든 징조가 다 응하였다.  여기서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한 말씀도 틀림이 없이 다 맞는 것을 보고 자기가 장차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되어지는 것인 줄 확실히 알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였을 것이다.  

신자들도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증거를 주시고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주신다.  또 이 증거로 인하여 더욱 힘을 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순종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나아갈 때는 신자가 누릴 참된 영적 기쁨이 없다.  

사무엘이 예언한 대로 사울이 선지자의 무리와 함께 예언을 하였고 다른 사람들이 사울의 예언하는 것을 보고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고 하여 그것이 속담이 되었다.  사울에게 이렇게 예언하는 은사와 새 마음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직은(職恩)을 주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왕이 되게 하고 왕의 직분을 잘 감당하도록 은혜와 능력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은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나가면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미리부터 못한다고 주저앉아서, 자기에게 맡겨진 짐이 너무 무겁고 자기는 힘이 없어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고, \"나는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나갑니다\"하고 나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솔로몬이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릴 능력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서서 잘 감당하도록 하여 주셨다.  모세도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처음에는 못하겠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로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었다.  

교역자가 개척 교회를 하면서 힘이 들 때에도 하나님께서 직분을 맡기면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줄 알고 엎드려 기도하며 순종해야 한다.  교역자들이 자기가 힘이 있어서하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없는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고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감당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항상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하고 충성해야 된다.  

사울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영접하고 사울에게는 하나남의 신이 크게 임하였다.  이 산에는 산당이 있고 이곳은 선지자들이 모여 예배하는 곳이다.  이러한 산에 이를 때에 사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은 의미가 있다.  신자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교회나 조용한 산에 가서 기도하여 영력을 얻는 것이 귀중한 일이다.  

사무엘의 예언대로 사울이 갈 때에 정확한 증거가 생기고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이 쓰시는 종의 말을 순종하고 나아가면 이렇게 복되고 형통한 길이 열린다.  

 

三. 사울이 숙부와 말함(14-16)

 

. 10:14-16  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사울이 가로되 암나귀들을 찾다가 얻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사울의 숙부가 가로되 청하노니 샤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고하라 사울이 그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의 말하던 나라의 일은 고하지 아니하니라

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 사환을 만나서 어디 갔었느냐고 물었다.  사울은 암나귀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여 사무엘에게 갔었다고 말했고, 숙부는 또 사무엘이 무엇이라고 하더냐고 물었다.  사울은 사무엘이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말해 주었다고만 말하고 기름 부음받은 일과 사무엘이 이야기한 나라의 일은 말하지 많았다.  

이때 이 일을 이야기하면 마귀가 틈타서 시험거리가 생길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밀의 은사는 함부로 아무에게나 말하면 안 된다.  사울은 할 말은 하고 하지 않을 말은 하지 않았으니 지혜 있게 대답한 것이다.  

 

四. 사울을 왕으로 제비 뽑음(17-21)

 

. 10:17-21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애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를 그 가족대로 가까이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지라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왕을 뽑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각 지파대로 천 명씩 나오게 하여 제비를 뽑게 하니 베냐민 지파가 쁩혔고, 베냐민 지파 중에서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왕으로 뽑혔다.  사무엘이 이미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놓고 이렇게 제비를 뽑다가 만일 사울이 안 뽑히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으나, 구약시대에 제비 뽑는 일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여서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있으므로 절대로 틀릴 수가 없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같 때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는데 선원들이 죄인을 찾기 위하여 제비를 뽑으니 정확하게 요나가 뽑혔던 것이다(욘1:7).  사무엘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대로 인도하실 줄을 확신하고 제비를 뽑았다.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사울이 왕으로 뽑혔다.  

현재(신약시대)는 그런 특별계시는 종결되었으므로 제비 뽑는 것이 맞지 않는다.  구약시대에는 제비 뽑는 일 외에도 하나님의 특별 계시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났으니, ① 꿈, ② 환상,③ 음성, ④ 비의적 현상(秘儀的 現像), ⑤ 우림과 둠밈 등이다.  그러나 요즈음도 꿈을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믿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특별계시가 종결되었고 기록된 말씀(성경)이 표준계시이다.  구약시대와 같이 계속 새로운 계시가 임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뜻을 성경을 표준하여 찾아야 한다.  

 

五. 사울의 겸손(22-27)

 

. 10:22-27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그들이 달려가서 거기서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크더라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은 그와 함께 갔어도 어떤 비류는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사울이 왕으로 뽑혀서 백성들이 사울을 찾았으나 없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행구(行具)사이에 숨었다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다.  왜 숨었을까?  자기는 능력이 없어 못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집이나 반항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이다.  이때의 사울은 참으로 겸손하였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들어 쓰셨다.  

사울이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가 더 컸고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고 사무엘이 칭찬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겸손하여 자기는 왕의 자격이 없는 자로 알고 행구 사이에 숨었었다.  그 행구 사이에서 사울을 데려왔고,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부르고 기뻐하였다.  

사무엘이 왕의 제도를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백성들을 각기 집으로 돌려보낼 때에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자는 사울과 함께 갔으나 어떤 비류(匪類)는 사울을 멸시하여\"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고 비방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온유하고 겸손하여 잠잠하였다.  남이 멸시하고 욕을 해도 자기가 부족하여 그런 줄 알고 대항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이 사울의 온유와 겸손은 배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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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11장

제 11 장  사울이 왕이 됨

 

(대  지)

 

一. 암몬 사람이 쳐들어 옴(1-5)

二. 사울이 암몬을 격파함(6-13)

三. 사울을 왕으로 삼음(14-15)

 

(본문강해)

 

一. 암몬 사람이 쳐들어 옴(1-5)

 

. 11:1-5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를 대하여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야베스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유예를 주어 우리로 이스라엘 온 지경에 사자를 보내게 하라 우리를 구원할 자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이에 사자가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고하매 모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가로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로 고하니라

암몬 사람 나하스가 이스라엘을 침입하여 길르앗 야베스를 대하여 진을 쳤다.  야베스 사람들은 \"우리가 너희를 섬길 터이니 우리와 언약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암몬 사람 나하스가 이스라엘을 모욕하여 이르기를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어야 언약을 하겠다\"고 오만 방자하게 굴었다.  

야베스 장로들이 자기들에게 칠 일 동안 유예(猶豫)를 주어 이스라엘 온 지경에 사자를 보내게 하여 자기들을 구원할 자가 없으면 암몬 사람에게 나아가겠다고 하고 사자를 이스라엘 온 지경에 보냈다.  이에 사자가 기브아에 가서 암몬 사람이 쳐들어온 것과 그들의 요구 조건을 다 말하니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었다.  사울이 마침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백성이 우는 것을 보고 우는 이유를 물어 보니 암몬 사람이 쳐들어온 것과 야베스 사람이 당한 모든 형편과 사정을 말하여 주었다.  

 

二. 사울이 암몬을 격파함(6-13)

 

. 11:6-13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같이 나온지라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은 계수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 만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이더라 무리가 온 사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라 사자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가로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소견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이튿날에 사울이 백성을 삼대에 나누고 새벽에 적진 중에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사울이 가로되 이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사울은 암몬 사람이 야베스에 쳐들어온 것과 교만한 말로 이스라엘을 모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사울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고 사울은 크게 감동되어 한 겨리 소를 잡고 소의 각을 떠서 각 지방에 보냈다.  사울이 누구든지 이스라엘을 위한 전쟁에 나오지 않으면 그의 소들도 그와 같이 죽이겠다고 하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여 다 한 사람같이 나왔다.  

무리가 야베스에서 온 사자들에게 말하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라\"고 전하게 하였다.  야베스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으며, 그들이 암몬 사람에게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소견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고 통고하였다.  

사울이 베섹에서 계수한 결과 이스라엘 자손이 삼 십만이요 유다 자손이 삼 만이었다.  그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대로 나누어 새벽에 적진에 들어가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쳐서 물리쳤고, 암몬 사람 중 남은 자는 다 뿔뿔이 흩어졌다.  

사울이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책임감을 느껴 자기의 사명을 다 하려고 하였다.  이렇게 사울이 사명감을 느끼고 몸을 바쳐 일하고자 결심할 때에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감당할만한 능력을 입혀 주셔서 그 일을 잘 감당하였고, 이스라엘은 원수를 물리치게 되었다.  

우리 신자들이 교회(구원 운동)를 위하여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바로 깨닫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생명까지 돌보지 않고 몸바쳐 일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고 또 친히 그 일을 도와 주셔서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은 그 사명을 바로 깨닫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결심하고 생명까지 돌아보지 않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만능의 역사로 도와주신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나아가 싸울 때에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함께 하여 주시고 반드시 승리하게 하여 주신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께서 사울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하나님이 친히 쓰시는 것을 증명하여 주셨고, 백성들로 그것을 알게 해주신 것이다.  교역자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종이다.  교역자가 사명을 바로 깨달아 모든 것을 희생하고 구원 사업을 위하여 몸바쳐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고 감당할 힘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 사업을 이루어 나아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교역자와 함께 하시어서 열매를 맺어 나가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의 능력으로 이루어 가시는데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가지고 교역자가 자기의 영광을 삼으려고 하면 하나님 앞에 교만한 것이며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지도 않으시며 망할 날이 오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울과 함께 역사하시고 사울이 암몬 사람을 물리침을 보고 백성이 사울에게 고하기를 사울이 왕 되는 것을 멸시하던 자(10:27)들을 끌어내면 죽이겠다고 하였다.  이에 사울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신 날이므로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고 하였다.  참된 하나님의 종은 자기를 위하는 말은 경히 여기고 하나님의 뜻과 그의 영광만 찾아서 나아가며 하나님의 나라만 견고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三. 사울을 왕으로 삼음(14-15)

 

. 11:14-15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암몬 사람과 싸워 크게 승리한 후 사무엘과 백성이 길갈로 가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로 왕을 삼고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며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기뻐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사울을 왕으로 받아들이고 왕의 위임식을 갖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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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12장

제 12 장  사무엘의 책망

 

(대  지)

 

一. 사무엘이 자기를 변명함(1-5)

二.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신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함(6-12)

三. 왕을 구한데 대한 경책과 하나님의 징계(13-18)

四. 장래에 대한 경고와 소망(19-25)

 

(본문강해)

 

一. 사무엘이 자기를 변명함(1-5)

 

. 12:1-5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그들이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 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며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날 증거하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그가 증거하시나이다

여기에서 사무엘도 별 수 없이 자기를 변명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사무엘이 자기를 위하여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책망하기 위하여 변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자기의 잘못이 없음을 명백하게 밝히면서 만일 잘못이 있으면 여호와 앞과 사울왕 앞에서 증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백성들은 사무엘이 백성들을 속이지 않았고 압제하지 아니하였으며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또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에게서 아무 허물도 찾아내지 못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고 기름 부음받은 자(왕)도 증거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종은 언제나 어디서나 사무엘처럼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자신을 가질 수 있도록 공명정대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二.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신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함(6-12)

 

. 12:6-12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며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시니 그런즉 가만히 섰으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하여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너희 열조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그 두 사람으로 너희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이곳에 거하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장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붙이셨더니 그들이 치매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룻을 섬기므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로 안전히 거하게 하셨거늘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의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왕이 되실지라도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하여 사무엘이 백성과 담론하였다.  하나님이 친히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어 가나안에 살게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길 때는 이방 나라(하솔, 블레셋, 모압)의 손에 붙여 치게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원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여룹바알, 베단, 입다, 사무엘을 보내사 이스라엘을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어 안전하게 거하게 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암몬 자손외 왕 나하스가 이스라엘을 치러 오는 것을 보고 사무엘에게 왕이 필요하니 왕을 세워 달라고 하였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친히 간섭하신 이스라엘의 역사를 출애굽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말해 주면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는 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고 인간의 왕을 구한 죄악이 크다고 책망한 것이다.  

 

三. 왕을 구한데 대한 경책과 하나님의 징계(13-18)

 

. 12:13-15  이제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와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좇으면 좋으니라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고 인간 왕을 구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울을 너희 위에 왕으로 세웠다고 사무엘이 말해 주었다.  또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왕을 섬기고 그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으며 너희와 너희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순종하고 좇으면 좋겠지만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불순종하고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왕이 너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여부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과 징계가 내려질 것이라는 경고이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 하지 않고 인간의 제도만 바꾸면 모든 것이 잘될 줄로 아는 것이 현대인들의 사고 방식이다.  

 

. 12:16-18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제도를 통하여 잘 살아 보려고 왕을 구한 이스라엘의 죄가 큰 것임을 보여 주셨다.  사무엘이 기도하니 여호와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셨는데 마침 밀 베는 때이므로 많은 피해가 있었고 백성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다.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왕을 구한 일이 큰 죄악임을 밝히 깨닫게 되었고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게 되었다.  

 

四. 장래에 대한 경고와 소망(19-25)

 

. 12:19-25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좇는데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밀 수화기에 하늘에서 우뢰와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크게 두려워한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한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서 여호와께 기도하여 죽지 않게 해 달라고 사무엘에게 부탁하였다.  사무엘은 너희가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좇는데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고 유익하게도 못하고 구원하지도 못할 헛된 것(우상)을 좇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의 백성으로 택하였으므로 그들이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버리시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범죄한데서 돌이켜 회개하며 하나님을 좇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우상을 버릴 때는 하나님께서 결단코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참된 하나님의 종은 양떼를 위하여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한다.  사무엘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라고 하였으니 오늘날 교역자들은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

선하고 의로운 도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지 않는 교역자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교역자는 먼저 기도하고 신령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신령한 양식으로 양떼를 먹여야 한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하나님은 항상 살아 계셔서 큰 권능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마음을 다하여 진실하게 섬기면 복을 받을 것이나,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의 왕이 다 멸망하리라고 사무엘이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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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13장

제 13 장  블레셋의 내침

 

(대  지)

 

一. 요나단이 블레셋을 침(1-4)

二.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옴(5-7)

三. 사울의 범죄를 사무엘이 책망함(8-15上)

四. 블레셋 군대와 서로 대진함(15下-23)

 

(본문강해)

 

一. 요나단이 블레셋을 침(1-4)

 

. 13:1-4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새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이년에 이스라엘 사람 삼천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은 자기와 함깨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여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사울의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가증히 여김이 되었다 함을 듣고 길갈로 모여 사울을 좇으니라

우리말 성경에는 사울이 왕이 될 때 사십 세라고 하였는데 히브리 원문, 성경에는 사십 세라는 말이 없다.  그런데 아들이 나라의 한 군인으로 활약할 만큼 장성한 것을 보아 사울의 연령이 사십 세는 되었을 것으로 본다.  교부 오리겐(Origson)의 헥사플라(Hexapla) 역에서는 삼십 세로 추측하여 번역하였다.  흠정역(KJV)에서는 \"사울이 1년 동안 다스렸더라\"고 번역하였다.  

사울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이년에 사울은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 천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였고 일 천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였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에 쳐들어 왔으므로 사울이 전국 백성을 모이게 하여 그 원수들을 물리친 후 사울이 이스라엘 상비군 삼천 명만 남겨 두고 그 나머지는 각기 장막(집)으로 돌려보냈다.  

블레셋 수비대가 게바에 있었는데 이것을 요나단이 쳤다.  그러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올 기운이 있는 것을 보고 사울이 나팔을 불어 전국에 있는 군대를 다 모이게 한 후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 수비대를 친 것과 그로 인하여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곧 쳐들어오게 될 것이므로 싸울 준비를 해야겠다고 말하였다.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친 것은 잘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 깨서 통치하는 나라 안에 이방 세력이 들어올 수 없다.  들어왔으면 쫓아내야 한다.  요나단은 믿음과 용기가 있고 의(義)를 귀혀 여기는 사람이므로 하나남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불붙듯 하여 블레셋 수비대를 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블레셋 군대가 또 많이 올라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블레셋 사람이 또 올라오면 하나님이 또 치게 하여 주실 것으로 요나단은 믿은 것이다.  

요나단은 숫자가 많고 적은 것에 관계하지 않았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음을 믿고 나아간 것이다(14:6).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위하여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해 주시므로 적이 아무리 많고 강하다고 하여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확신하고 나아가는 요나단이다.  다윗이 믿음으로 나아가 골리앗 대장을 친 것과 같다(17:47).  아무리 원수가 강하고 숫자가 많아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여 주시면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갈 때 요나단과 같이 용감할 수 있다.  

 

二.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옴(5-7)

 

. 13:5-7  볼블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서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은 떨더라

블레셋 사람이 병거 삼 만과 마병 육 천, 그리고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당시의 최신식 무기로 중무장하여 많은 군대가 쳐들어와서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을 친 것이다.  거기에 비해 이스라엘 군대는 아주 미약하다.  무기도 변변치 못했고 숫자도 적었다.  사울과 요나단밖에는 칼과 창을 가진 자가 없었다(22절).

블레셋 군은 무기가 많고 좋은데 비하여 이스라엘은 무기도 없으며, 블레셋 군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데 이스라엘은 소수였다.  어느 면으로나 이스라엘은 블레셋 군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약하고 보잘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군대는 너무 두려워 바위틈에 숨어 벌벌 떨고 어떤 자는 요단 강을 건너가서 갓과 길르앗으로 도망치고 또 어떤 자는 수풀이나 웅덩이에 숨게되었다.  

 

三. 사울의 범죄를 사무엘이 책망함(8-15上)

 

. 13:8-15上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 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칠일 안에 오기로 약속하였으나 칠일이 되어도 사무엘은 오지 않고 상황은 심히 급박하여 당장에라도 적이 쳐들어올 형편이며 백성(군사)들은 무서워서 사울을 떠나 이리저리 도망하므로 사울이 급한 마음에 자기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제사를 막 드리고 나자 사무엘이 왔다.  이것을 보면 사울이 사무엘과 약속한 칠일이 다 지나도록 완전히 기다리지 못한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을 터인데 참으로 유감스럽다.  우리가 참되 최후 순간까지 참아야된다.  

원수 블레셋 군대는 많고, 백성은 두려워서 다 흩어지고, 원수와 싸우러 나아가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나아가야 되겠는데 사무엘이 오지 않기 때문에 사울이 생각하다 못하여 자기가 사무엘 대신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으려고 생각하였고 번제물을 가져다가 번제를 드렸다.  

사울이 하나님히 은혜를 사모한 것은 좋은 것이지만 자기가 번제를 드린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레위 지파 중 제사장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데(민3:5-10) 베냐민 지파인 사울이 제사장 노릇을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다.  

목적이 좋다고 방법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목적과 방법이 다같이 바르게 되어야 한다.  

사무엘이 사울왕에게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사울이 제사를 드렸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돌려서 말하기를\"백성은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않고 적은 믹마스에 모여 있고 블레셋 사람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는데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으므로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다\"고 하였다.  이 말 속에는 사무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사울의 입장에서 보면 참다못하여 아주 위급한 상황에서 할 수 없이 이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형편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지켜야 되고 사람의 형편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약을 받을 수는 없다.  

그래서 사무엘이 왕에게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다고 엄히 책망하며 왕이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왕권을 빼앗기게 되었다고 하였다.  제사를 드린 것 때문에 이렇게 왕권을 빼앗는 하나님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가며 제사를 드린 것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죄이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범한 죄이며, 거룩한 한계를 범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여다보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도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한계를 침범했기 때문이었다.  제사 자체는 선한 일이고 성경 말씀을 순종한 것이었지만 방편이 바르지 못하므로 하나님 앞에 벌받는 죄가 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만 드리면 되는 것으로 알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에 대하여서는 무관심한 사람이 많다.  이것은 사울이 제사를 드린 죄에 빠진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를 믿되 어떻게 믿어야 바로 믿는 것인지, 또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바로 깨달아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해야 된다.  

올바른 제사, 복을 받는 제사를 드리려면 성경 말씀에서 제사드리는 방법을 찾아야 된다.  이 방법대로 하지 않고 그저 교회에만 왔다갔다하면서 예수 잘 믿는 것으로 아는 것이 오늘날 타락된(세속화된) 교회의 병폐이다.  교회에서는 성경을 바로 가르치고, 성도는 바로 배워서 어떻게 믿어야 바로 믿는 것인가, 어떻게 섬겨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를 알아 성경대로 믿고 섬겨야한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우려고 힘써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경 말씀대로 바로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열심을 내고 돌아가는 것은 사울과 같은 식으로 제사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 앞에 도리어 악이 된다.  웃시야왕도 제사장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하다가 문둥병에 걸렸다(대하26:19), 인간적인 면에는 좀 실수가 있더라도 종교면에 있어서는 잘못이 없어야 하나님께서 귀히 보신다.  반대로 인간적인 면에서는 아무 흠이 없더라도 종교적인 면(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잘못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잘못 할까 보아 벌벌 떠는 자가 복을 받는다.  

사울의 인격은 다윗의 인격보다 좋은 점이 많다.  다윗은 우리아 아내를 빼앗고 우리아를 전쟁에 내어보내 죽게 하였으므로 살인과 간음을 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한 아각왕을 살릴 만큼 인정이 많았고, 간음하지도 않았다.  인간면에 대하여는 사울이 마음이 넓고 인정이 많으나 종교면에 대하여는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으니 잘못한 것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을 침범하고, 제사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함으로 망하게 된 것이다.  

다윗은 인간면은 부족한 것이 있지만 종교면에 대하여는 바로 순종하려고 애를 썼다.  때로는 실수하여 죄를 지었지만 죄를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벌벌 떨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제사장을 존중히 여기고 또한 제사를 존중히 여겼다.  번제를 사울보다 더 많이 드렸으나 자기가 제사한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제사장을 통하여 드렸다.  하나님의 제사에 대하여 벌벌 떨고, 존중히 여기고, 제사장(교역자)을 존중히 여길 줄 알아야 복을 받는다.  신약시대에 있어서 일반적 의미로는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의 위치에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에서의 봉사적 직무의 제사장은 교역자이다.  

구약시대에 제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줄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희생의 제물을 드릴 때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이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가운데 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러한 제사가 산 제사이다.  생명 있고 영이 사는 제사는 말씀에 맞게 드리는 제사이다.  

사울은 왕이 된 지 불과 이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교만하여져서 월권 행동을 하고 하나님이 두려운 줄을 알지 못하고 은혜만 받을 욕심으로 자기가 소를 잡아 제사 드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고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다.  참 제사는 영으로 하나님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그 속에 있어야 되는 것인데 이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 앞에 영광을 얻지 못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부득이하여 그랬다고 변명해도 쓸데없다.  하나님 말씀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하지 않아야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가 제사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말씀에 맞는 제사를 드리려고 해야 한다.  예배를 바르게 드려야 생명이 있고,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하고, 영적 생명이 장성하는 것이다.  예배시간을 존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예배 시간에 늦거나 빠지는 것은 제사를 경히 여기는 것이요 복 받지 못하는 행위이다.  누구든지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 시간에 늦지 않고 빠지지 않는 사람은 소망이 있으나 반대로 진리를 버리고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고 세상 것(공부, 직장, 돈, 명예)을 크게 여겨 주일을 범하고 예배 시간에 늦고 빠진다면 복을 받을 수 없다.  

성도는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제사를 존중히 여겨 성경에 맞도록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왕권(복)을 빼앗기고 만다.  사울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른 사람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을 삼겠다고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말해 주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면 나라나 집안이나 오래 가지 못하고 반드시 망할 날이 온다.  

 

四. 블레셋 군대와 서로 대진함(15下-23)

 

. 13:15下-23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명 가량이라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그들과 함께 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진 쳤더니 노략꾼들이 삼대로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로 말미암아 수알 땅에 이르렀고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를 향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경 길로 향하였더라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어졌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온 이스라엘 사람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버리려면 블레셋 사람에게로 내려갔었는데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 블레셋 사람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

사울과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었다.  사울이 군사 이 천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육백 명밖에 남지 않았다.  원수가 너무 많고 강하니까 두려워서 숨고 달아나고 육백 명 가량만 남았다.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칼과 창이 있었을 뿐이었고 나머지에게는 무기도 변변한 것이 없었다.  블레셋 부대는 믹마스에 진쳐 있고 거기서 노략꾼 삼대가 나왔다.  

무기도 없는 사울의 군대가 블레셋 군대를 맞아 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울의 군대에 무기가 없는 것은 전에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와서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려워하여 철공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갔기 때문이다.  그리하며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어서 이스라엘 사람이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날카롭게 하려면) 블레셋 사람에게 내려가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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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14장

제 14 장  사울의 승리

 

(대  지)

 

一. 요나단이 블레셋 군을 침(1-15)

二. 요나단의 승리(16-23)

三.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여짐(24-35)

四. 사울이 요나단을 벌하고자 함(36-44)

五. 백성이 요나단을 건짐(45-46)

六. 사울의 승전(47-52)

 

(본문강해)

 

一. 요나단이 블레셋 군을 침(1-15)

 

. 14:1-3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병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하고 그 아비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사울이 기브아 변경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의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건너편에 블레셋 군대의 진이 있는데 하루는 요나단이 자기병기 든 소년에게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군대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고 말하였다.  그때 사울은 기브아 변경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겨우 육백 명 가량이었으며 또 아히야가 에봇을 입고 있었다.  아히야는 이가봇의 형제인 아히둡의 아들이고 비느하스의 손자요 엘리 제사장의 증손이었다.  아히야가 에봇을 입은 것을 보면 제사장이 된 것 같은데 사울이 제사장으로 채용한 것 같다.  

현재 사무엘 제사장이 있지만 사무엘은 사울을 책망하고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갔으므로(13:15上) 사울이 자기 마음대로 아히야를 데려다가 진중에 있게 한 모양이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책망을 받았으면 회개하고 바로 서야 소망이 있는데 오히려 자기의 생각대로 제사장을 세우고 자기 마음대로 하였으므로 사울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심히 안타깝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책망받을 때 잘못한 것을 원통히 생각하고 회개하면 소망이 있고,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자기 주장대로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한다.  

 

. 14:4-7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사이 이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고 저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한 바위는 북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병기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그 사이에는 양편에 험한 바위가 있고 깊은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있었다.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기에서 요나단의 믿음이 잘 나타나 있다.  블레셋 군대는 해변의 모래같이 많다고 하였다(12:5).  그런데 두 사람이 올라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너무나 무모하고 경솔한 것 같으나 요나단에게는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군대가 하나님의 백성을 침략하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을 요나단이 분명히 믿은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신다면 비록 두 사람뿐이지만 능히 원수 블레셋 군대를 쳐 물리칠 것을 확신하고 블레셋 사람의 부대로 건너가자고 자기의 병기 든 자에게 말하였다.  병기 든 자도 충성스럽게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라고 하였다.  

 

. 14:8-12  요나단이 가로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그들이 만일 이같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그들이 만일 이같이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 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붙이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둘이 다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를 대하여 가로되 우리에게로 올라 오라 너희에게 한 일을 보이리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 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볼이셨느니라 하고

요나단이 병기를 든 자에게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여서 그들이 만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그들이 만일 \'우리에게로 올라 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가자 그때는 그것이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붙이신 표징이 되리라\"고 말하였다.  적군이 있는 곳에 올라가서 싸우는 것이 하나님 뜻인지, 아니면 적들이 오는 것을 맞아 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기 위하여 요나단이 기도하는 가운데 이렇게 정한 것 같다.  

요나단과 병기 든 자가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 보이니 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하고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를 향하여 말하기를\"우리에게로 올라 오라 너희에게 한 일을 보이리라\"고 하였다.  요나단은 그 소리를 듣고 아주 기뻤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요나단의 손에 붙이셨음이 확실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나단이 병기를 든 자에게\"나를 따라 올라 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불이셨느니라\"고 하였다.  

 

. 14:13-15  요나단이 손발로 붙잡고 올라갔고 그 병기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가 반일경 지단 안에서 처음으로 도륙한 자가 이십인 가량이라 들에 있는 진과 모든 백성 중에 떨림이 일어났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요나단과 병기 든 자가 험한 바위를 손발로 붙잡고 올라가서 블레셋 군대를 쳤다.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시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고 병기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는데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가 반일경(반나절 동안 땅을 갈 수 있는 넓이) 지역 안에서 처음으로 도륙한 자가 이십명 가량 되었다.  이 때 들에 있는 진과 모든 백성 중에 떨림이 일어났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다.  요나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생명을 돌보지 않고 용감하게 나아가므로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역사하사 요나단을 돕기 위하여 큰 떨림이 일어나게 하신 것이다.  

 

二. 요나단의 승리(16-23)

 

. 14;16-23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이 무너져 이리저리 흩어지더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고하여 보라하고 점고한즉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없어졌더라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 오라 하니 그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사울의 파수꾼이 건너편에 있는 블레셋 진을 바라보니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교란되는 것이 보였다.  사울이 자기 진중에서 혹시 건너간 자가 있는지 점검해 보라고 명령하였다.  점검하여 본 결과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건너간 것을 알게 되었다.  사울이 아히야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궤를 자기에게로 가져오라고 하였다.  엘리 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궤를 전쟁터에 가져갔다가 다 실패한 일이 그리 오래 되지 않고 사울도 다 알았을 터인데 또 가져오라고 하였다.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 소동이 점점 더하였다.  적진이 자꾸 흩어지고 소동이 점점 더하여 가므로 사울이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는 것을 그만두게 하고 백성들을 데리고 전장에 가 보았더니 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자기 동무를 치며 크게 혼란이 일어나 있었다.  블레셋 군대들이 왜 갑자기 자기네끼리 서로 쳤을까?  밤도 아닌데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역사하셔서 블레셋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자기편 군대를 원수로 착각하게 만드신 것 같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불가능이 없다.  자연과 만물을 복종시키시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못하실 것이 없다.  

 

. 14:21-23  전에 블레셋 사람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과 함께 와서 진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과 합하였고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셌 사람의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여호와께서 그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전에 블레셋 땅에 가서 사는 히브리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이번에 블레셋 군대로 뽑혀 나와 싸우다가 블레셋 군대가 패색이 짙으므로 이스라엘 편으로 돌아와서 블레셋 군을 치게 되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좋은 무기도 있었고 또 갑자기 반란을 일으켜 자기 편을 치니 블레셋 군대는 큰 혼란이 일어나서 당할 재간이 없게 되었다.  

또 에브라임 산지에 숨어 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패전하여 도망친다는 말을 듣고 나와서 블레셋 사람을 추격하였다.  그러니 블레셋 사람에게는 설상가상(雪上加霜)격이 되었다.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시기 위하여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역사하신 때문이다.  이날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의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요나단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적전 상륙(敵前上陸)을 한 것이다.  할례 받지 못한 마귀의 군대가 아무리 많을지라도 만군의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능력이 더 크시다고 믿고 병기 든 자 한 사람을 데리고 적전 상륙을 한 것이었다.  

둘째, 하나님께서 원수들로 크게 무서워 떨게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땅이 진동하고 노략꾼이 떨고 부대도 백성도 다 떨었다.  하나님께서 떨게 만드셨으므로 블레셋 군대는 사기가 다 죽어 두려움과 겁에 질려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셋째,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을 혼란시켜 자기네끼리 찔러 죽이게 하셨다.  

넷째, 블레셋 지경에 가서 살던 히브리인들이 군대로 뽑혀 나왔는데 이스라엘 편으로 돌이켜 블레셋 군대를 친 것이다.  

다섯째, 에브라임 산지에 숨어서 떨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기가 충천하여 나와서 블레셋을 추격하였다.  그들은 전에 무서워서 숨어 있었으나 이번에는 면목을 세우기 위하여 추격하는 데도 앞장을 섰을 것이다.  

처음에는 요나단이 믿음으로 자기 병기 든 자만 데리고 적 앞에 나갔으나 결과는 이렇게 대승리를 가져왔다.  이번 싸움은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승리하게 하셨다.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나가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나아가면 작은 것으로 시작하지만 크게 성공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인간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어디서 왔는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각지 사방에서 도와주고 생각하지도 못하였던 자들이 협력하여 일이 성공되어 나간다.  요나단과 같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 용감하게 적전 상륙을 하고 안될 것 같아도 생명을 내어놓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만능으로 도와주신다.  

오늘날 성도의 싸움은 혈과 육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싸움이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세력들과 싸워 나가는 것이며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과 싸우는 것이다.  크고 강한 세력이 대적하여 올 때도 요나단과 같이 믿음으로 나가서 싸워야 한다.  대세로 보아서는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이면 될 줄로 믿고 자기 생명뿐만 아니라 자기의 모든 것(물질, 자녀, 명예, 영광)을 다 내어놓고 하나님과 그의 나라만 위하여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고 만능으로 역사하여 반드시 성공되게 하여 주신다.  예배당을 건축할 때도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믿음으로 착수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되도록 하여 주신다.  

블레셋 군대와 같이 크고 강한 대적이 나올지라도, 사자같이 무서운 자가 핍박을 하여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말씀대로 굳게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감동시켜 핍박을 이기게 하여 주신다.  무섭다고 주저앉으면 마귀에게 지게 되며 믿는 일은 낭패가 된다.  승리할 수 없는 형편에서 얻은 승리가 더욱 기쁘다.  요나단과 같이 말씀대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즉시즉시 주신다.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착착 주시네\"하고 김 윤석 조사는 찬송을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누가 도와주기를 기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  오히려 도와 줄 것으로 기대하였던 그 사람이 자기의 대적이 되는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섭섭하게 생각할 것 없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나아가면 도와주는 자가 저절로 생기게 되고, 도망친 자도 돌아오고 원수 가운데 있던 자도 나와서 돕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절대로 양보하지 말고 나아갈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승리의 길로 인도하신다.  히브리서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였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증거와 실상이 생기고, 없던 것이 있게 되고, 실패하였던 것이 성공하여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三.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여짐(24-35)

 

. 14:24-30 이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이 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으나 요나단은 그 아비가 맹세로 백성에게 명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꿀을 찍고 그 손을 들이켜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때에 백성 중 하나가 고하여 가로되 당신의 부친이 맹세로 백성에게 엄히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오늘날 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요나단이 가로되 내 부친이 이 땅으로 곤란케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았거든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사울이 백성을 다 불러모으고 저녁 곧 원수를 다 갚을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맹세시켰다.  그러므로 백성이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금식도 신앙 정도를 따라서 해야 한다.  금식하고 싶으면 자기나 할 것이지 온 백성을 전쟁 마당에서 이길 때까지 금식시키고, 먹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맹세시킨 것은 너무 분별없는 처사이다.  전쟁 마당에서 먹지 않고 싸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울의 잘못된 맹세 때문에 백성들이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싸웠으므로 대단히 배가 고프고 지쳐 있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사울이 맹세시켜 명하는 것을 듣지 못하고 수풀에 들어가서 꿀이 흐르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그 꿀을 지팡이로 찍어 먹으므로 눈이 밝아졌다.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너무 배가 고프고 피곤하여 눈이 희미하여졌는데 꿀을 조금 먹으므로 배고픔이 없어지고 기운이 나서 눈이 밝아졌다는 말이다.  이때 백성 중 하나가 요나단에게 사울의 맹세한 것을 알려 주었고 요나단은 아버지의 처사가 잘못된 것을 말하였다.  만일 백성이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을 자유롭게 먹고 힘을 내어 싸웠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더 많이 죽일 수 있었겠다고 하였다.  

 

. 14:31-35  그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취하고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 있는 채 먹었더니

저녁때가 되니 백성들이 탈취한 양과 소와 송아지를 땅에서 잡아 피 있는 채로 먹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피를 뺄 겨를도 없이 먹게 된 모양인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다.  성경에 피는 먹지 말라고 하였다(레17:10).

 

. 14:33-35  무리가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채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무신하게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또 가로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각기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잡아먹되 피 있는 채 먹어서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단이었더라

무리 중에 어떤 자들이 사울에게 와서 백성들이 피 있는 채로 고기를 먹어 하나님께 범죄하였다고 말하자 사울이 큰 돌을 하나 갖다 놓고 누구든지 탈취한 짐승을 잡아먹을 때는 이 돌 위에서 잡아먹되 피는 먹지 말고 버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말라고 하였다.  사울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았다.  

 

四. 사울이 요나단을 벌하고자 함(36-44)

 

. 14:36-44  사울이 가로되 우리가 밤에1 블레셋 사람을 쫓아 내려가서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가로되 왕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가로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을 쫑아 내려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하되 그날에 대답지 아니하시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너희 백성의 어른들아 다 이리로 오라 오늘이 죄가 뉘게 있나 알아보자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지 아니하매 이에 그가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너희는 저편에 있으라 나와 내아들 요나단은 이편에 있으리라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왕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하니라 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컨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 사울이 가로되 나와 내 아들 요나단 사이에 뽑으라 하였더니 요나단이 뽑히니라 사울이 요나단에게 가로되 너의 행한 것을 내게 고하라 요나단이 고하여 가로되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사울이 가로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사울이 그 밤에 \"블레셋 사람을 좇아 내려가서 동틀 때까지 싸워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고 말하자, 백성들은 왕의 소견대로 하자고 하였는데 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가 물어 보자고 하였다.  사울이 하나님께 물어 보았으나 응답이 없었다.  이것은 분명히 백성 중에서 누군가 여호와께 맹세한 것을 범하였기 때문이라고 사울이 생각하였다.  그래서 누가 죄를 지었는지 알아보고 자기 아들 요나단이 죄를 지었다 하여도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였다.  

백성은 저편에 서고 사울과 요나단이 이편에 서서 제비를 뽑았는데 사울의 편이 뽑혔다.  사울과 요나단 사이에 또 뽑자 요나단이 뽑혔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네가 무엇을 행하였느냐고 물었다.  요나단은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지만 죽을 수밖에 없다고 대답하였다.  사울이 \"네가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요나단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벌을 받겠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너무나 과격한 말이다.  

 

五. 백성이 요나단을 건짐(45-46)

 

. 14:45-52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사하였음이니이다 하여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사울이 블레셋 사람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사울왕이 요나단을 죽이지 못하도록 모든 백성들이 왕에게 청원하였다.  하나님과 동사(同事)하여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을 죽일 수 없고, 그의 머리털 하나라도 떨어뜨릴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왔다.  그러자 사울은 요나단을 죽이지 않았다.  백성의 말을 듣고 안 죽인 것은 잘하였다.  그러나 사울이 너무 경솔하여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백성들 앞에 권위가 떨어지게 되었다.  

 

六. 사울의 승전(47-52)

 

. 14:47-52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나아간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기었고 용맹 있게 아말렉 사람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의 손에서 건졌더라 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리스위와 말기수아요 그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히마아스의 딸이요 그 군장의 이름은 아브넬이니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 사울의 아비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비는 넬이니 아비엘의 아들이었더라 사울의 사는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있는 자나 용맹 있는 자를 보면 그들을 불러 모았더라

사울이 왕위에 나아간 후에 사방의 대적을 다 물리쳤는데, 블레셋과 소바와 에돔을 쳤고 향하는 곳마다 이기고, 이스라엘을 그 노략하던 원수에게서 건졌다.  사울 가정의 족보가 49절로 51절에 기록되어 있다.  사울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있는 자와 용맹 있는 자를 보면 그들을 모아 군사로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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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사무엘상15장

제 15 장  사울의 범죄

 

(대  지)

 

一. 사울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함(1-5)

二. 겐 사람을 피난시킴(6)

三. 아각과 좋은 짐승을 남김(7-9)

四. 사울의 득세와 사무엘의 탄식(10-16)

五. 사무엘의 책망과 사울의 변명(17-21)

六.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22-23)

七. 사울이 사무엘을 이용하려 함(24-31)

八. 사무엘이 아각을 죽임(32-33)

九. 사무엘이 사울을 다시는 만나지 않음(34-35)

 

(본문강해)

 

一. 사울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함(1-5)

 

. 15: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였다.  그내용은 아말렉이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에게 대적한 일을 하나님께서 추억하시고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다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내는 구원 운동이다.  그런데 아말렉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 운동을 방해하여 광야길을 가는 이스라엘을 대적했었는데(신25:17-19), 약400여년이 지난 지금 사울에게 그 원수를 갚도록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죄를 결코 잊지 않으시고 때가 되매 갚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는 구원 운동을 방해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진노하시고 행한 대로 갚으신다.  

신약시대에도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를 주면 하나님께서 아주 진노하신다.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과 같다.  오늘날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택한 자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이 곧 출애굽의 역사이다.  택한 자를 애굽과 같은 이 세상에서 건져내어 예수를 믿게 하여, 광야 같은 세상 길에서 연단시켜 하나님 앞으로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며, 중생한 영을 자라나게 하신다.  이스라엘을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지금은 말씀과 영감으로 보호하며 인도하신다.  

오늘날 교회를 대적하고 교역자를 비방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진노하신다.  하나님에서는 교회를 구원의 기관으로서 사랑하시고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은 반드시 잊지 않고 심판하신다.  불신자들만 교회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라도 시험에 들면 교회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종을 비방하게 되는데, 하나님은 이런 일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8:6-7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면 당장에 망하지 않는다고 해도 오랜 후에는 다 망하고 만다.  아말렉이 400년 후에는 멸망하지 않았는가 !  생명을 살려 나가는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면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다 망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더니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였다.  

 

. 15:4-5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계수하니 보병이 이십 만이요 유다 사람이 일만이라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하니라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의 군대를 모으고 계수하니 보병이 이십 만이요 유다 사람이 일 만이었다.  상당히 큰 군대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하러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협력을 잘한 모양이다.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을 하였다.  

 

二. 겐 사람을 피난시킴(6)

 

. 2: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내려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겐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선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치기 전에 미리 피난을 시키라고 하였다.  겐 사람은 모세의 장인 족속이다.  이스라엘 사람이 애굽에서 나올 때 모세의 장인이 나와 이스라엘의 갈 길을 안내하여 주고, 모세가 재판할 때에도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세워 가벼운 사건은 그들이 처리하고 그들이 처리할 수 없는 것만 모세가 하도록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출18:17-23).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도와 준 겐 사람은 하나님께서 결코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여 400년 후에라도 재난과 화를 면하게 하여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조금이라도 도와 준 것은 하나님께서 늘 기억하시고 자자손손이 복을 받게 하여 주시며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위험한 데서 건져 앞길을 인도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크게 도운 것만을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자기의 힘있는 대로 정성껏 도울 때 기뻐하신다.  마가복음 9:41에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방해하는 자는 늘 기억하여 반드시 심판하여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협력하고 돕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급으로 갚아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신다.  성도는 어떻게 하든지 힘써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도움이 되어야 하겠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돕는 길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영이 자라나게 만들고, 마음과 몸과 물질을 정성껏 바치고, 힘써 전도하고, 교회를 위하여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 충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충성하는 것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성도가 땅 위에서 살 동안 구원 운동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다가 가는 것이 본분이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세상의 것(물질, 명예, 영광)을 얻으려고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써도 세상을 떠날 때는 다 남의 것이 되고 썩어 없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도와 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기억하시며 우리의 영원한 상급이 된다.  

 

三. 아각과 좋은 짐승을 남김(7-9)

 

. 15:7-9  사울이 하월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하나님께서 사울왕에게 아말렉을 칠 때에 다 진멸하여 죽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아각왕을 사로잡고 죽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다 죽이고 왕만은 사로잡아 왔다.  왜 죽이지 않았는가?  불쌍하다고 사정을 조금 보아 준 모양이다.  또 보통 전쟁을 하면 왕은 죽이지 않는 것이 관례인 것 같다.  그리고 양과 소도 가치 없고 나쁜 것만 죽이고 기름진 것과 좋은 것을 남겼다.  이것은 백성들이 잡아먹으려는 속셈으로 죽이지 않고 가져온 것이다.  

 

四. 사울의 득세와 사무엘의 탄식(10-16)

 

. 15:10-12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더니 혹이 사무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이것은 사울의 마음이 변하여 하나님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하는 일이 없으시지만 인간편에서 볼 때에는 탄식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므로 사무엘이 사울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밤을 새워 기도하였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다.  그저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와서 말하기를 사울이 갈멜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길갈로 내려갔다고 하였다.  

 

. 15:13-1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컨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사무엘이 가로되 그러면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 사울이 가로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가로되 말씀하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사울이 크게 승리하고 의기 양양(意氣揚揚)해서 전승비까지 세웠으며, 사무엘을 만났을 때는 칭찬이라도 받을 줄 알고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왕과 이스라엘의 장래를 위하여 밤새도록 근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다가 온 것이다.  사울의 생각은 사무엘과 너무 먼 거리에 있다.  사울이 전쟁에 나가서 수고도 많이 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느라고 했지만 완전히 순종하지 못했다.  

사무엘이 자기 귀에 들려 오는 소와 양의 소리는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사울이 대답하기를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을 남기고 그 외에는 진멸하였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전부 죽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 제사한다는 구실을 붙여서 살지고 좋은 것은 살려 두고 나쁜 것만 죽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구실을 붙여서 불순종한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간밤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들어보라고 하였다.  

 

五. 사무엘의 책망과 사울의 변명(17-21)

 

. 15:17-21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사무엘은 대단히 격노한 음성으로 사울을 책망하였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겸손할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왕)가 되었으며,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시고 왕을 보내시며 명령하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는데 어찌하여 왕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고 탈취하기에만 급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느냐고 책망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데는 구실이나 조건이 있을 수 없다.  무조건 순종하여야 한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께 제사한다는 핑계를 대고 탈취하는데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울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릴 것을 살렸다고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사울왕이 왜 아각왕을 죽이지 않고 데려 왔는가?  그것은 아각왕을 불쌍히 여겨 인정에 기울어졌기 때문이요, 패전국의 왕을 살리는 세상의 관습을 따르느라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또 사울이 살진 짐승들을 끌어온 이유는 백성들을 두려워해서이다(24절).  \"짐승을 다 죽이지 말고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우리도 먹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백성들의 여론에 굴복하여 좋은 것은 죽이지 않고 끌어온 것이다.  또 탈취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19절).  그러나 인간의 사정을 보아주는 것이 큰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큰가?  세상 관습이 큰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큰가?  백성의 여론이 큰가 하나님의 말씀이 큰가?  무엇보다도 크고 존귀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사울은 백성의 환심을 사서 자기의 왕권을 오래 누려 보려고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백성의 여론을 크게 여겨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가감하지 않아야 하며 어떤 이유든 구실을 붙여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六.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22-23)

 

. 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순종이 아주 귀하다는 말씀이다.  사울이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하여 짐승들을 살려서 끌어왔다고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것이다.  순종이 없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제사 드리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로 막혔던 담을 헐어 버리고 하나님과 사귀기 위한 것이며, 둘째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순종하지 않으면 벌써 그 자체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나 다른 무엇보다도 순종을 가장 기뻐하신다.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제물보다 낫다.  로마서 10:17에\"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다.  믿음에는 표준이 있고 표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고 들어서 말씀대로 믿어야 한다.  믿음을 위하여 희생할 때 말씀대로 희생하여야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 중에도 말씀대로 희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희생을 해도 바로 하여야 한다.  바르지 못한 교리에 대하여 희생하고 충성하는 것은 헛것이다.  영적 골방에 들어가기를 힘쓰고 사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다음에는 힘써 순종하여야만 된다.  순종하지 않으면 죄이다.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또한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된다.  하나님을 떠나서 아무리 열광적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하여도 그것은 무당이 굿하는 것과 같다.  

완고함은 마음이 굳어지고 고집이 센 것으로 온유함의 반대이다.  마음이 완고하면 감동을 받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생명의 역사가 떠나게 된다.  이런 처지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  감동을 소멸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떠나고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이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나타나게 된다.  

 

七. 사울이 사무엘을 이용하려 함(24-31)

 

. 15:24-31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울이 자기가 범죄하였다고 말하였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어긴 것을 말한다.  사울이 죄를 범한 이유는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울이 이렇게 말하였지만 진정한 회개를 한 것이 아니다.  범죄한 이유를 대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자기의 죄를 원통히 생각하여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는 행위가 아니다.  세리의 기도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통절히 회개하는 기도였다(눅18:13).

사울이 백성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은 자기를 위하는 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  이것은 곧 자기가 우상이 된 것이다.  제일 큰 원수가 자기이며 제일 큰 우상이 자기인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자기를 위하는 정신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은 떠나시고 결국에는 멸망하게 된다.  

사울은 자기를 위하는 정신을 그대로 두고 회개했기 때문에 참된 회개가 되지 않았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하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만 위하고 자기는 부인하여야 진정한 회개가 되고 진정한 순종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껴 돌아가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사울이 사무엘과 동행함으로써 자기의 위신을 높이려고 한 것이다.  아직도 자기를 위하는 정신이 여전하여 자기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려 하지 않고 자기의 죄를 감추려고 하였다.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진리(말씀)를 버린 자와는 동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종이 한 개인의 유익을 위하여 이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무엘은 또 사울에게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렸다\"고 책망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버리신다.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교만하여지니 하나님께서 사울에게서 왕권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형편에 따라 수시로 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으신다.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사울은 자기가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백성과 장로들 앞에서 자기를 높여 달라고 사무엘에게 말하였다.  겸비하고 낮아져서 통회하여야 할 터인데 도리어 뻔뻔스럽고 허영과 교만이 가득한 태도이다.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무엘이 사울을 따라간 것은 진리 문제를 다 밝혀 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동행하여 준 것이다.  진리를 세워 놓은 후에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잘한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하여야 된다.  

 

八. 사무엘이 아각을 죽임(32-33)

 

. 15:32-33  사무엘이 가로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이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가로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사무엘이 가로되 네 칼이 여인들로 무자케 한 것같이 여인 중 네 어미가 무자하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사무엘의 책망을 듣고 사울이 참으로 회개할 마음이 있었다면 아각왕과 모든 짐승을 다 죽이고 진정한 회개를 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겼을지도 모른다.  사울이 죽이지 않은 아각왕을 사무엘이 죽였다.  사무엘이 아각을 죽이기 전까지는 사울이 회개할 기회가 있었으나 아각왕을 죽인 후에는 회개할 기회가 없어졌다.  참으로 사울의 장래가 불쌍하게 되었다.  

지금도 사울과 같은 타락된 성도(교회)가 있고 사무엘과 같은 참성도(교회)가 있다.  타락된 성도는 성경 말씀을 자기의 마음에 맞는 것만 지키고 맞지 않는 것은 버린다.  참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두 지키려고 애를 쓰다가 지키지 못하면 회개하고 더욱 힘써 지켜 나아가는 것이 참성도이다.  

찍어 쪼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하는데는 단호하게 수행하고 인정이나 사정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 죽이라면 죽이는 것이 옳고 살리라면 살리는 것이 옳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지키려고 힘써 나아가야 한다.  사울과 같이 가감하여 지키면 마지막에는 왕권이 떠나고 하나님의 심판이 와서 망하고 만다.

 

九. 사무엘이 사울을 다시는 만나지 않음(34-35)

 

. 15:34-35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본집으로 올라가니라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면서 회개할 줄 모르는 사울에게 사무엘은 더 이상 권면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 회개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온다.  에서도 나중에는 울면서 원통해 하였지만 한 뻔 빼앗긴 장자의 명분을 끝내 되찾지 못하였다.  사울이 사무엘의 책망을 듣고 즉시 거꾸러져서 \"불쌍히 여겨 주소서\"하고 아각왕과 소와 양을 다 죽이고 잘못을 통회하였더라면 하나님의 노가 풀어졌을 것이지만 기회를 잃고 말았다.  

사무엘은 아각왕을 죽이고 돌아갔다.  그 후에는 사울왕을 다시 보지 않았다.  회개할 때가 다 있는데 그때를 놓치면 회개할 수가 없다.  우리도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을 찾아서 회개할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다 회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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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16장

제 16 장  다윗에게 기름 부음

 

(대  지)

 

一. 사무엘이 기름을 가지고 베들레헴으로 감(1-5)

二. 다윗에게 기름을 부음(6-13)

三. 사울을 악신이 번뇌케 함(14-17)

四. 사울이 다윗을 부름(18-23)

 

(본문강해)

 

一. 사무엘이 기름을 가지고 베들레헴으로 감(1-5)

 

. 16:1-5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사무엘이 가로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화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가로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가로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케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세와 그 아들들을 성결케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사무엘이 사울을 위하여 오래도록 슬퍼하였다.  사울이 범죄한 다음에는 사무엘이 온 밤을 새워 기도하였고(15:11), 사울이 회개하지 않으므로 죽는 날까지 사울에게 가지 않았는데 이것도 사무엘이 사울을 위하여 슬퍼한 까닭이었다(15:35).  사울이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으므로 죽는 날까지 서로 만나지 않았지만 사무엘은 늘 사울을 위하여 슬퍼하며 기도해 주는 일을 계속하였다.  사울이 범죄하여 희망이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사무엘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하고 하나님께 기도해 주는 일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더 이상 사울 때문에 슬퍼하지 말고 기름을 취하여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라고 하였다.  사울이 지금 왕으로 있는데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기름을 붓는다면 사울이 죽일 것은 분명하다.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사무엘이 왕 될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러 가지마는 먼저 제사를 드리고 난 후 기름을 붓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사를 드리는 데까지만 말을 하고, 기름 붓는 일에 대하여서는 말하지 말고 비밀로 두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속이는 것이 아니다.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을 드린다고 하는 것은 속이는 일이지만, 실제로 제사를 드릴 것이므로 제사 드리는 일까지만 말하여 주고 그 다음에 할 일은 말하여 주지 않더라도 거짓이 아니다.  

기름 붓는 일은 하나님의 비밀에 속한 것이므로 그것을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되고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되며, 또 사울왕이 죄를 더 짓게 될까봐 그렇게 한 것이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의 일에도 유익이 되는 경우가 많다.  

모세도 바로 앞에 서서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하였다(출7 : 16).  이것도 모세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은 분명하다.  그것까지만 말해 주고 그 다음에 가나안으로 갈 것은 말해 주지 않았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가로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사무엘 선지자가 베들레헴에 이르니 장로들이 무슨 큰 불상사(不祥事)가 있어서 오지 않았는가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사무엘이 가면 보통 큰 일이 있곤 하였다.  이번에도 혹시 이방 나라가 쳐들어와서 군사를 모집하러 오지 않았는지, 또는 갑자기 무슨 큰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근심이 되어 이렇게 물어 본 것 같다.  사무엘이 제사를 드리려고 왔다고 하며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제사에 청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二. 다윗에게 기름을 부음(6-13)

 

. 16:6-13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엘리압은 이새의 맏아들이며 인물이 훌륭하고 키가 크고 외모가 아주 잘 생긴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그 맏아들이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인 줄 알고 기름을 부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기 쉽다.  속 사람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외모가 잘 생기면 훌륭하게 보이고 큰 일을 해 낼수 있을 것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오히려 외모 때문에 교만하기 쉽다.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외모에 표준을 두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사도행전 13:22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라고 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중심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전심으로 노력하는 자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요 이러한 자가 하나님의 일꾼의 자격이 있다.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기 때문에(왕상14:8),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신앙의 사람이다.  중심이 하나님의 마음아 합한 자가 아니면 외모가 아무리 잘 생기고, 훌륭해 보이며, 힘이 있고, 기술이 능숙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버리신다.  교회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교인이 많고 예배당을 잘 지어 놓았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은,

첫째, 자기를 위하지 않고 하나님만 위하는 사람이다.  사울은 자기를 위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지 못하였으나 다윗은 자기를 위하지 않고 하나님만 위하는 생활을 하였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위하여 하느냐, 자기를 위하여 하느냐가 문제이다.  교회를 봉사한다 하여도 자기를 위해서인가 하나님을 위해서인가 ?  자기를 위해서 예수를 믿는가 하나님을 위해서 예수를 믿는가?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에는 맞지 않는다.  예수님도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고 했다(요8:50).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만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것이다.  

사울이 아말렉 사람들의 살진 소와 기름진 양을 끌고 올 때 하나님께 제사하겠다는 구실을 붙여 하나님을 위한다는 간판은 내어 걸었으나 실제로는 자기가 먹으려고 가져왔고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가져온 것이었다.  중심(中心)에는 자기를 위하는 정신이 있으면서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하는 척하였기 때문에 사울을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만 위하여 살았다.  골리앗과 싸울 때도 자기의 생명을 돌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싸웠던 것이다.  다윗은 늘 하나님을 위하는 정신으로 살아가므로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되었다.  

둘째,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다윗은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자기 생명보다 중히 여겼다.  하나님의 말씀은 추호도 가감함이 없이 그대로 지키려고 힘썼다.  그러나 사울은 말씀을 지키되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지키고 끝까지 지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사람을 다 죽이라고 하셨는데 아각왕은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다.  가령 아말렉 인구가 십만이라면 다 순종하고 십만분의 일만 못지킨 셈이다.  이것도 하나님 마음에 합할 수 없다.  하나님 말씀대로 다 죽여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다.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다 지켜야 한다.  무슨 사정을 들어 말씀을 지키지 못한다고 핑계하지 말고 말씀을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겨야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된다.  

셋째,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아가는 사람이다.  다윗의 생활은 하나님을 힘  입어서 걸어가는 생활이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서 잠시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아갔기 때문에 골리앗과 같은 원수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생겼다.  

다윗은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고 하였다(18절).  다윗의 호기와 무용과 구변은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호기(豪氣)라는 것은 하나님을 힘입어 나아가는 데서 오는 것이고, 무용(武勇)은 선한 싸움을 계속하여 싸우는 것이며, 구변(口辯)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으로 사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다윗은 나이가 어리지만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아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를 힘입어서 계속 전진하는 신앙으로 생활하였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아니하고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위하지 않고 하나님만 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의뢰하여 하나님을 힘입어 나가는 사람을 찾으셨다.  

 

. 16:11-13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를 찾으시기 때문에 외모가 훌륭한 맏아들을 택하지 않으셨다.  둘째, 세째, 네째‥‥일곱째까지 사무엘이 보았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다.  이새도 아마 실망하였을 것이다.  그때 사무엘은 아들이 더 없느냐고 이새에게 물었다.  이새는 말째가 있는데 들에 나가 양을 지키고 있다고 하였다.  이새는 다윗이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고 해서 데리고 와야 합격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사무엘은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였다.  사람을 보내어 데려 왔는데 얼굴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다.  여호와께서\"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하였다.  다윗이 외모는 형들에 비하면 아무 볼 것이 없지만 중심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사무엘이 발견한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이런 사람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참보배를 찾은 것과 같이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기름 부음을 받은 다음부터는 다윗이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이 되었다.  이것은 다윗과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성립되고(하나님께서 특별히 쓰시는 종이 된 것)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시키기 위하여 그만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시게 된 것이다.  직분을 감당할 만한 능력과 역사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다.  

 

三. 사울을 악신이 번뇌케 함(14-17)

 

. 16:14-17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 오라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났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신이 어떤 자에게서 떠나는가?  하나님보다 자기를 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영적 교통이 없고, 제힘으로 무엇을 해 보려고 하면 여호와의 신이 떠난다.  여호와의 신이 떠나면 악신이 들어오게 되어 있다.  빛이 떠나면 어둠이 오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사울에게서 여로와의 신이 떠나게 되자 악신이 들어온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사울을 통하여 하시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였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였고, 하나님을 힘입어서 하지 않고 도리어 제힘으로 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악신은 사람의 마음을 번뇌케 하므로 악신이 들어오면 걱정과 번민과 고통과 근심이 생긴다.  여호와의 신에게 붙들려 살 때는 마음이 평안하고 근심과 걱정이 없다.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이와도 하나님을 위하여 살 때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원수를 막아 주시기 때문에 낙원에서의 생활과 같이 심령이 평안하고 기쁘고 즐거운 것이다.  

사울에게 악신이 들어온 것만큼 마음에 걱정과 번민과 두려움과 염려가 들어왔다.  왕위를 빼앗기지 않을까?  누가 와서 자기를 죽이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생겨 심령이 고아와 같이 되었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같이하여 주시고 지켜 주셨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신이 떠났으므로 고아와 같이 자기의 힘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왕위를 붙잡으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신이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그 세계에서 살지 못하며 모든 것을 자기가 하겠다고 하므로 번민, 고통, 염려, 안타까움, 외로움, 답답함이 홍수같이 밀려오게 되었다.  

수금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어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신하들이 사울에게 들린 악신을 물러가게 하기 위해 수금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도록 간하였다.  엘리사도 거문고를 탈 때에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물 있는 곳을 지시하여 주셨다(왕하3:15).  구약시대에는 거문고 타는 것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찬송가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영으로 찬송을 부를 때에는 마음이 평안해진다.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고통을 당할 때에 성도들이 찬송가를 불러 주면, 그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고 평안이 온다.  찬송을 통하여 성령의 감동이 오므로 마귀의 역사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위로가 오게 되는 것이다.  

 

四. 사울이 다윗을 부름(18-23)

 

. 16:18-23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사울이 이에 사자를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 아들 다윗의 손으로 사울에게 보내니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청컨대 다윗으로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사울이 수금을 잘 타는 자를 찾을 때에 소년 중 한 사람이 베들레헴 사람 이세의 아들이 잘 탈 줄 아는데 그는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며 여호와께서 함께 하는 자라고 다윗을 소개하였다.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것을 사울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무엘과 다윗의 가족만이 아는 것이다.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이새가 왕에게 자기 아들을 보내면서 선물을 같이 보냈다.  왕의 집에 모든 것이 풍성하지만 이새가 아들을 왕에게 보내면서 빈손으로 가게 하는 것은 왕에게 예의가 아니므로, 왕을 대접하는 마음에서 예물을 보낸 것이다.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다윗이 수금을 탈 때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나타난 것을 보면, 다원이 평소에 기도를 많이 했고, 수금을 탈 때에도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그 노래에 맞추어 수금을 탄 모양이다.  신령한 노래를 부르면서 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이 같이 하고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는 다윗을 사울이 기뻐하였다.  영감된 신령한 노래를 다윗이 부르면서 거기에 맞추어 수금을 타면 하나님의 신령한 영적 역사가 일어나 악신은 물러가고 사울에게 위로가 되고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었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은총을 얻어서 왕이 귀히 쓰는 자리에 있게 되었다.  다윗은 그 자리에서도 사울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왕이 자기를 불러 수금을 타게 하였으므로 그곳에서 정성을 다하여 충성한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지만 그렇다고 왕을 멸시하지도 않았으며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자기가 왕 앞에서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할 일을 다하고 왕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것이다.  왕 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현재에 자기가 할 일을 충성되이 하는 것뿐이었다.  

만일 자기가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하여 왕이 죽으면 좋겠다든가 빨리 자기가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다.  다윗는 왕이 되고 안 되는 것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현재 자기 위치에서 자기가 할 일을 충성되이 하였다.  현재에 하나님께서 새우신 왕을 받들어 충성을 다하고, 자기가 하여야 할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하나님 마음에 합한 생활, 하나님을 위하는 생활, 말씀을 잘 좇아가는 생활, 하나님을 힘입어 나가는 생활을 계속했다.  이렇게 나아가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주어서 다윗이 수금을 타면 사울에게 있던 악신이 떠나가게 되고 왕 앞에서도 형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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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17장

제 17 장  다윗의 골리앗 승리

 

(대  지)

 

一. 블레셋 군과 이스라엘이 대진함(1 -3)

二.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모욕함(4-16)

三. 다윗이 진에 가서 싸우고자 하매 형이 꾸짖음(17-30)

四. 다윗이 사울에게 신앙 경험을 들어 출전하겠다고 함(31-37)

五. 다윗이 물매를 기지고 출전함(38-40)

六. 다윗이 골리앗을 이김(41-54)

七. 다윗이 사울에게 인도됨(55-58)

 

(본문강해)

 

一. 블레셋 군과 이스라엘이 대진함(1-3)

 

. 17:1-3  블레셋 사람들이 그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을 대하여 항오를 벌였으니 블레셋 사람은 이편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편 산에 섰고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본장에는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블레셋 군과 이스라엘 군이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진을 쳤다.  블레셋 군이 이스라엘 군과 싸우려고 유다에 속한 땅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에 있는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기에 대항하여 엘라 골짜기에 진을 쳤는데 블레셋 사람이 진을 친 산과 이스라엘 사람이 진을 친 산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다.  

 

二.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모욕함(4-16)

 

. 17:4-16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자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 많아 늙은 자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제삼은 삼마며 다윗은 말째라 장성한 삼인은 사울을 쫓았고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 아비의 양을 칠 때에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블레셋 군의 장수가 나와서 싸움을 걸어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었다.  그 사람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약 3m가량)으로 보통 사람보다 아주 키가 컸다.  또 머리에는 놋투구를 쓰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다고 하였다.  어린갑(魚鱗甲)이란 고기 비늘 모양으로 만든 갑옷이다.  갑옷의 근수가 오천 세겔(57kg)이나 되는 무거운 갑옷을 입고 나와서 전쟁을 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힘이 센 장수인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무거운 갑옷이므로 적으로부터 창이나 화살이 날아와도 능히 뚫지 못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리에는 놋경갑(脛甲)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는데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6.8kg)이나 되었다.  이와 같이 골리앗은 키가 크고 힘이 세며 전신은 머리에서 발까지 전쟁에서 보호될 수 있도록 무장되어 있었다.  

이러한 골리앗이 나와서 오만 불손하게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쳤다.  \"너희가 감히 블레셋 군을 대항하려고 항오를 벌였느냐 너희는 대표 한 사람을 택하여 나에게 내려보내라 나하고 싸워서 그가 능히 나를 쳐서 죽이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되겠고 내가 너의 대표로 나온 자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 종이 되어 우리를 섬겨야 한다\"고 이스라엘을 모욕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는 골리앗을 감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다 벌벌 떨며 두려워하기만 할 뿐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이때 유다 베들레헴의 에브랏 사람 이새에게 여덟 아들이 있었는데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다.  그들의 이름이 장자는 엘리압이고 둘째는 아비나답, 셋째는 삼마였다.  말째 아들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아비의 양을 치고 있었는데 블레셋 사람이 사십일 동안 아침 저녁으로 나와서 싸움을 걸어 왔다.  

 

三. 다윗이 진에 가서 싸우고자 하매 형이 꾸짖음(17-30)

 

. 17:17-27  이새가 그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스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 오라

이새가 다윗에게 말하기를 볶은 곡식 한 에바와 떡 열 덩이를 진으로 속히 가져가서 형들에게 주고 치스 열 덩이를 가지고 가서 천부장에게 주고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형을 만난 증거품을 가져오라는 것은 다윗이 물론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하겠지만 더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취한 좋은 방법이다.  

 

. 17:19-27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는 중이더라 다윗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양을 양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의 명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하며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이 항오를 벌이고 양군이 서로 대하였더라 다윗이 그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항오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더러는 가로되 너희가 이 올라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비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하시리라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남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백성이 전과 갈이 말하여 가로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여차여차히 하시리라 하니라

다윗이 진에 도착했을 때 마침 골리앗이 전과 같이 교만한 말로 싸움을 걸어 왔다.  그것을 다윗이 들었다.  이때 이스라엘군은 벌벌 떨고 심히 두려워했고 그 앞에서 도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그를 죽이는 자는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고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비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하시리라\" 고 말하였다.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한다\"는 것은 군대에 안 나가도 되고, 세금을 안 내도 되고, 법의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하여 주겠다는 말이다.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이것은 단지 질문이 아니라 다윗의 믿음으로 강하게 나온 용맹이었다.  이스라엘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에게 치욕당하는 것을 원통히 생각하고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름답고 거룩하고 선한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나라가 모욕당하는 것을 다윗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장하시고 이루어 나아가시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여 손해를 주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실 것을 다윗이 믿고 담대하게 말한 것이다.  다른 것에 손해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 묵인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손상되고 치욕당하고 방해받는 것은 중대한 일이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다윗이 생명을 걸고 나선 것이다.  

하나님의 군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아가시므로 이스라엘의 군대는 하나님의 군대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이용하시고, 도와 주셔서 모든 하나님의 대적과 싸우시고, 물리쳐 나가신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인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이용하셔서, 당신의 선한 일, 선한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 누구도 모욕할 수 없다.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군사이다(딤후2:3).  하나님께서 이용하시는 자는 마귀와 더불어 싸워 이겨 나가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늘 나라를 건설해 나간다.  

 

. 17:28-30  장형 엘리압이 다윗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 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이 가로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돌이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소년 다윗이 너무 담대히 말하는 것을 본 장형 엘리압이 노를 발하였다.  엘리압이 동생 다윗에게 노하여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라고 책망하였다.  다윗이 아직 나이가 어리고 아무 경험도 없이 겁 없는 말을 하는 것을 볼 때 다윗이 교만하여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으로만 알았다.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장수로서 온 이스라엘이 다 들어 붙어도 당하지 못하는 장수였다.  그런데 나이 어린 다윗이 이렇게 겁 없이 담대히 말하는 것을 형이 들을 때 믿음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적인 면으로만 생각하고 노를 발하였다.  다윗은 믿음으로 하였지만 형은 인간면으로 보았기 때문에 교만해 보이고, 완악해 보이고, 마땅치 않게 보여 노를 발한 것이다.  

헝이 다윗에게 노하여 교만하고 완악하다고 책망하면서 들에 있는 양이나 치지 무엇하러 왔느냐고 멸시하였지만 다윗은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형이 다윗의 마음을 몰라주고 아버지의 심부름을 구실로 전쟁 구경을 하러 왔다고 도리어 책망하였지만 다윗은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라고 한 마디만 대답하고 대항하지 않았다.  

만약 다원이 대항하였더라면 형제끼리 싸울 뻔하였다.  형제끼리 싸우면 블레셋 군대만 유익을 보게 되고 그들이 좋아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네끼리는 싸우지 말고 원수와 대적하여 싸워야 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원수와는 싸우지 않고 저희끼리 사소한 문제로 싸운다.  마땅히 싸워야 할 원수와는 싸우지 않고 자기편끼리 불화하고 싸우는 것은 망하는 길이다.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한다(갈5:15).

어떤 사람이 싸우고자 하더라도 상관치 말고, 싸울 만한 일이 있더라도 자기가 할 일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싸움을 피할 수 있다.  상대방이 아무리 싸움을 걸어오고 마음을 상하게 하여도 못된 사람도 깨달아 바로 될 날이 온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긴 그 일에만 충성하여야 한다.  골리앗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는데 다윗은 이 골리앗과 싸워 물리쳐야 할 사명이 있고, 그 사명을 바로 감당하려면 형과 싸워서는 안 될 줄로 알았다.  형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멸시해도 형도 하나님의 군대이므로 자기가 하나님의 군대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면 다같이 살 수 있는 것이다.  골리앗만 물리치면 형이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원수의 손에서 구원을 받을 것을 믿은 것이다.  다윗이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이스라엘 군대가 다 망하는 것이다.  

 

四. 다윗이 사울에게 신앙 경험을 들어 출전하겠다고 함(31-37)

 

. 17:31-37  혹이 다윗의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처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 병사 중에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사울왕에게 가서 보고하였다.  사울이 다윗을 부르매 다윗이 사울의 앞에 섰는데 사울이 볼 때는 너무나 기대에 어긋났다.  그렇게 용감하게 말은 하였지만 키가 작고 나이 어린 소년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사울에게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심할 것이 없으며 주의 종이 나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다\"고 용감히 말하였다.  그러나 사울왕은 다윗에게 이르기를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울은 다윗의 이스라엘을 위하는 그 마음씨는 고마왔지만 원수 골리앗과 싸우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경험도 없으므로 이렇게 만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신앙 경험을 통하여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주의 종이 평소에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 양새끼를 물어 가는 곰이나 사자와 싸웠고 곰이나 사자가 해하고자 하면 그 수염을 잡고 쳐서 죽였다\"고 사울에게 말하면서 사자나 곰도 쳐죽였으니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인들 왜 죽일 수 없겠느냐고 말하면서 골리앗도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될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하였다.  

다윗은 범사에 믿음으로 행하였다.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물어 가게 되면 그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사자나 곰을 쫓아가 그 짐승을 찢어 죽이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온 것이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바로 감당하기 위하여 생명을 내어놓고 사자나 곰과 싸워 가면서 연단을 받았다.  

사자나 곰을 물리치기 위하여 다윗이 틈나는 대로 물매 던지기를 연습한 모양이다.  처음에는 물매가 바로 안 나갔겠지만 연습을 많이 하게 되자 나중에는 거의 백발백중하게 되었을 것이다.  곰과 사자가 물매를 맞으면서도 양을 물어 갈 때는 그 짐승을 따라가서 양을 빼앗고 짐승이 달려들면 수염을 잡고 찢어 죽이곤 하였다.  

사자와 맞서 싸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기의 생명을 내어 놓지 않고는 곰과 사자에게서 양을 빼앗을 수가 없다.  다윗이 자기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긴 양을 지키기 위하여 믿음으로 나아가 싸운 것이다.  양 한 마리가 값으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긴 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양을 빼앗기는 것은 하나면 앞에 잘못되는 것인 줄로 알고 자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생명을 돌보지 않고 싸운 것이다.  

나아가 싸울 때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나아가 싸웠다.  사자나 곰의 수염을 잡고 찢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나아가 싸웠기 때문에 찢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긴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생명을 돌보지 않고 나아갈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을 늘 체험한 다윗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그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바로 하려 하고 자기에게 맡긴 사명을 감당하려고 생명을 돌보지 않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도와 사자나 곰 같은 대적이라도 다 이길 수 있도록 해주신다.  

오늘날도 사자와 곰과 같이 하나님의 것을 파괴시키려는 마귀의 역사와 마귀의 종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이기고 남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신앙의 체험을 쌓아 가야 골리앗과 같은 큰 대적(마귀)이 나타날 때에도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을 믿습니다.  만일 나를 안 건져 주서서 죽을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나아가겠습니다\"하는 이런 신앙이 참으로 귀한 신앙이다.  다윗은 주를 위하여 주의 뜻대로 나아가다가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면 살고 죽이시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걸어갔다.  다윗이 믿음에 굳게 서서 확신을 가지고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하므로 할 수 없이 사울이 나아가 싸우라고 허락하였고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하였다.  

 

五. 다윗이 물매를 가지고 출전함(38-40)

 

. 17:38-40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어린 소년 다윗이 믿음으로 나아가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간청하자 사울이 귀히 여겨 친히 자기의 군복을 입히고 놋투구를 머리에 씌우고 갑옷을 입혔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찼는데 군복은 커서 맞지 않고 칼은 땅에 끌리었다.  시험적으로 걸어 보고 사울왕에게 익숙하지 못하므로 입고 가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벗었다.  다윗은 처음부터 맞지 않을 줄 알면서도 순종하는 뜻으로 입어 보았다.  실제로 입어 보니 맞지 않고 거북하므로 사울왕을 설득시켜 벗었다.  다윗이 이렇게 사울왕에게 순종함으로 마음이 화합하고 서로 좋은 분위기에서 출전하게 되었다.  

진리 문제가 아니면 윗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좋다.  혹시 잘못된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윗사람이 지는 것이다.  물론 윗사람이 분명하게 잘못 나아갈 때는 충성하는 마음으로 건의하여 시정하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윗은 갑옷이나 투구나 칼은 벗어버리고 자기 가 늘 사용하던 물매와 돌 다섯 개 그리고 손에 막대기를 들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갔다.  이것은 다윗이 양을 칠 때의 모습 그대로이다.  

 

六. 다윗이 골리앗을 이김(41-54)

 

. 17:41-45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든 자가 앞섰더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골리앗이 다윗을 가까이서 보고 업신여겨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왔느냐\"고 멸시하면서 자기네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또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와 들짐승에게 주어 먹게 하겠다\"고 장담하였다.  다윗의 외모만 본 골리앗은 비웃고 멸시할 만하였다.  다윗이 너무나 어린 홍안(紅顔) 소년인데다 막대기와 물매를 가지고 싸우겠다고 하니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다윗은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실제 행동으로 의지한 것이다.  이렇게 위대한 신앙은 하루 이틀에 된 것이 아니고, 평소에 하나님을 생명같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뢰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 열매가 여기서 맺힌 것이다.  

다윗은 평소에 첫째로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종으로 충성을 다하는 생활을 하였고, 둘째로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여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생활하였고,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간절히 사모하였다.  

다윗은 막대기와 물매를 가지고 원수에게 멸시를 당하면서 나아갔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의지하고 만군의 여호와, 천지 만물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나아갔다.  다만 하나님께 이용되어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뜻만 성취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나아가는 다윗이었다.  

 

. 17:46-54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틀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지르며 블레셋 사람을 쫑아 가이와 에그른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의 상한 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을 쫑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을 노략하였고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다윗은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자기에게 붙이셔서 자기가 골리앗의 머리를 벨 것이고 이스라엘이 크게 승리할 것이며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이 먹게 할 것을 믿었다.  또 여호와의 구원이 칼과 창에 있지 않음을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알게 할 것을 믿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멸망시키시는 하나님이신데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였으니 반드시 망할 것을 믿은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전쟁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승패가 결정된다는 말씀이다.  블레셋 군대가 수가 많고 무기가 좋으니까 승리할 줄로 믿고 있지만 그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을 치려고 가까이 올 때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면서 물매를 던졌는데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고 골리앗은 땅에 거꾸러지고 말았다.  다윗이 달려가 골리앗의 칼을 뽑아서 그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베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시고 위대하시다.  골리앗이 어린갑을 입고 놋투구를 써서 이마밖에는 빈 틈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곳에 물매돌이 박히게 하셨다.  다윗이 물매들을 잘 던지기도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역사로 이루어진 것이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고, 자기의 사명을 깨달아 그 사명을 감당키 위하여 생명을 내어놓고 나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도와주시고 승리하게 하신다.  골리앗이 죽는 것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할 때에 이스라엘과 유다가 일어나 쫓아가서 그들을 치고 그들의 진을 노략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다.  

 

七. 다윗이 사울에게 인도됨(55-58)

 

. 17:55-58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나감을 사울이 보고 군장 아브넬에게 묻되 아브넬아 이 소년이 뉘 아들이냐 아브넬이 가로되 왕이여 왕의 사심으로 맹세 하옵나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매 왕이 가로되 너는 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가 물어보라 하였더니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 손에 있는 채 아브넬이 그를 사울의 앞으로 인도하니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뇨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아갈 때 사울은 군장 아브넬에게 다윗이 뉘 아들이냐고 물어 보았으나 아브넬도 알지 못하였다.  사울이 다윗으로 하여금 자기 옆에서 수금을 타게 했을 때 다윗이 누구의 아들인지 알고 있었고(16:17-23), 또 방금 전에 다윗을 자기가 전장에 보내어 놓고도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왜 누구냐고 물었을까?  그 이유는 사울에게 악신이 들려서 정신이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장 아브넬이 다윗을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은 왕이 다윗을 전장에 보낼 때에 아브넬이 거기에 없었던 모양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돌아을 때 아브넬이 그를 사울의 앞으로 인도하였다.  그때 사울이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고 묻자\"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다윗은 승리했다고 하여 조금도 뽑내거나 자랑하는 기색이 없다.  하나님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며 마땅히 자기가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겸손하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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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18장

제 18 장  다윗을 죽이려함

 

(대  지)

 

一.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함(1 -3)

二. 다윗이 군장이 됨(4-5)

三.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함(6-19)

四. 사울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줌(20-30)

 

(본문강해)

 

一.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함(1-3)

 

. 18:1-3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그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 아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지 아니하였고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왔을 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의 생명과 같이 사랑하였다.  그것은 다윗이 여호와의 백성을 위하여 생명을 내어놓고 싸움에 나아가 원수 골리앗을 쳐 물리치고 이스라엘에 승리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요나단은 자기가 하지 못하던 그 일을 다윗이 해 주었으니 다윗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가장 존귀히 여길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만일 다윗이 아니었더라면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패하고 모두 블레셋 사람의 종이 될 뻔하였다.  요나단은 모든 것을 바로 보고 판단하여 이스라엘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워 준 다윗이 고맙고 사랑스러워 자기의 생명과 같이 귀히 여기고 사랑한 것이다.  

 

二. 다윗이 군장이 됨(4-5)

 

. 18:4-5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요나단이 다윗을 생명과 같이 사랑하므로 무엇이든지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원수가 다 빼앗아 갈 뻔하였는데 다윗으로 인하여 빼앗기지 않았으니 다윗에게 그것들을 다 준다고 하여도 아까울 것이 없는 것이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생명을 건져 준 까닭에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의 생명같이 사랑하여 자기의 겉옷, 군복, 칼, 활, 띠를 다 벗어 다윗에게 주었다.  

새 것으로 만들어 주어도 될 것인데 왜 자기의 것을 주었을까?  요나단이 자기의 군복, 칼, 활, 띠를 벗어서 다윗에게 준 것은 자기의 지위와 직무를 다윗에게 물려주는 의미가 있다.  다윗이 나타나기 전에는 요나단이 사울왕 다음의 지위를 가졌었다.  이스라엘 군대를 두 부대로 나누어서 한 군대는 사울이 거느렸고 한 군대는 요나단이 거느렸었다(13:2).

요나단은 실제로 군대 장관으로 큰 전공(戰功)을 세우기도 하였다(14:1-15).  요나단이 지금 왕의 다음 가는 자리에 있고 자기 아버지가 죽으면 자기가 왕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귀중한 자리를 다윗에게 양보한 것은 요나단이 훌륭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요나단은 자기의 지위나 영광보다 이스라엘 나라가 잘되기만 바라고 자기가 하는 것보다 다윗이 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다면 아까운 생각 없이 자기 자리를 다윗에게 물려주려는 신앙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번에 골리앗과의 싸움으로 다윗이 자기보다 유능한 것을 확실히 깨달은 요나단은 자기의 지위, 직무, 권한을 다윗에게 넘겨주었다.  이것은 양심적이고 원리 원칙에 맞는 일이다.  세상에서는 자기의 능력이 부족한 줄 알면서도 자기의 명예와 유익을 위하여 기어코 자기가 해야 한다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많이 있다.  나라는 잘되든지 말든지 자기만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권세와 영광을 누리려고 한다.  그리하여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남을 비방하며 윗사람에게 아부하여 여러 가지 죄악이 판을 친다.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일이야 잘되든지 말든지 자기만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자가 있다.  자기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높은 직분을 맡겠다고 하며, 자기보다 유능한 사람이 나와도 그 자리를 내어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맡아 가지고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앉아 있으려고 하므로 정작 일을 할 사람이 일을 못하고 전체(국가, 교회, 단체)에 큰 손해를 끼치게 된다.  

자기보다 나은 다윗을 사랑하고 아끼며 그에게 자기의 자리를 내어 주는 요나단의 행동은 참으로 아름답고 고상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하다.  다윗이 맡아서 하나님의 일만 잘되면 자기도 축복에 참여할 줄 아는 요나단이야말로 참으로 지혜 있는 자요 참으로 자기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요나단의 너그러운 마음가짐과 자기 개인보다 전체를 위하는 마음, 자기의 권세나 명예, 영광보다 하나님의 뜻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은 참된 신앙의 열매인 것이다.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지혜롭게 행동하고 믿음으로 하므로 모든 것이 성공되어 이스라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되었고 사울은 이러한 다원에게 귀한 직분(군대의 장)을 맡겼다.  온 백성과 신하들도 그것을 합당하게 생각하였다.  사울이 다윗에게 요직(要職)을 맡긴 것은 잘한 일이다.  사울왕이 끝까지 다윗을 잘 사용했다면 이스라엘을 위하여서나 사울 자신을 위하여 크게 유익했을 것이다.  

 

三.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함(6-19)

 

. 18:6-9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 각 성에서 여인들이 나와 환영하며 기뻐서 춤도 추고 노래하기를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라고 하였다.  여인들의 노래 내용이 좋지 않았다.  똑같이 \"만만이로다\"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사울은 천천이라고 하여 사울을 시험에 들게 하였다.  자기에게는 천천을,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니까 사울왕이 온 백성이 자기보다 다윗을 더 좋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나라가 다윗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염려하여 시험에 든 것이다.  

여인들이 너무 경솔하게 노래를 하였다.  마음속으로는 다윗을 사울보다 더 좋게 여길지라도 그렇게 표현하면 안 된다.  또 아무리 다윗의 공로가 크지만 왕보다 더 높이는 것은 왕으로서 불쾌한 일이다.  여자들이 경솔하여 왕과 다윗에게 큰 손해를 주었다.  여인들이 다윗을 볼 때 다윗이 참 훌륭하고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더라도 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다윗 위에 왕이 있으니 왕을 존경하고 나서 다윗을 존경해야 한다.  

누가 무엇 하나 잘해 놓으면 다른 사람이 시기 할만큼 칭찬하고 높여 주는 것은 도리어 시험거리가 된다.  사람을 자주 칭찬하고 높여 주면 그것이 마귀의 역사인 줄 알아야 한다(눅6:26).  가정에서도 아이가 둘이 있다면 둘 다 잘한다고 해야지 한 아이만 잘한다고 하면, 한 아이는 마귀의 시험에 들어 마음속에 불만이 생기고 불만이 시기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큰 죄를 짓게될 수 있다.  

 

. 18:10-11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 고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전쟁에서 돌아온 다음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렸다.  사울이 본격적으로 마귀에게 걸려들었다.  사울이 집 가운데서 날뛰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수금을 타는데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두 번이나 창을 던지므로 다윗이 두 번 피하였다.  이것은 사울이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으며 사람의 뜻만 생각하고, 또 자기의 지위를 지키는데만 급급하고 그것만을 귀중히 여기므로 마귀가 그 속에 들어가 번민하게 하고 야료하게(소리지르고 떠들게) 만든 것이다.  

사울이 다윗을 볼 때 자꾸 미운 생각이 들고 마침내는 죽여야겠다고 결심하여 단창을 던진 것이다.  다윗을 자기보다 잘했다고 칭찬하더라도 그런 것에 마음 쓰지 말고 다윗을 잘 이용했더라면 이스라엘 나라가 잘될 것이고 사울에게도 아주 유익하였을 것인데 어리석게도 다윗을 이용하지 못하고 죽이려고 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이다.  

사울이 자기의 왕위를 빼앗길까 보아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다.  사울이 왕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윗이 아무리 잘해도 자기에게 일생동안 수종만 들었을 것이고 또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가 다윗을 죽이려고 하여도 죽이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자기가 손해를 볼 것인데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뜻만 생각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된 것이다.  사울은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였고, 하늘 나라(이스라엘)가 잘되는데 목표를 두지 않고 어떻게 해야 자기가 왕 노릇을 오래 하겠느냐에 목표를 두었다.  목표 설정을 잘못하였으므로 일은 비뚤어지게 되어 있다.  

 

. 18:12-19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그러므로 사울이 그로 자기를 떠나게 하고 천부장을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사울이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함을 인함이었더라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맹을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말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비의 집이 무엇이관대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 사울의 딸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흘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준 바 되었더라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고, 보호하셔서 죽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막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므로 사울이 두려워하여 다윗을 천부장으로 삼아서 멀리 보냈다.  

그러나 다윗은 백성 앞에 출입하며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였으므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든 족속이 다윗을 사랑하였다.  

사울은 자기의 맏딸 메랍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어 왕에게 충성하게 하고 그 충성심을 이용하여 전쟁터에 내어 보내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나 자기의 가문을 볼 때 왕의 사위가 될 만한 자격이 없다고 사양하였다.  여기에서도 다윗이 겸손하고 자신을 바로 보는 지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四. 사울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줌(20-30)

 

. 18:20-25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혹이 사울에게 고한지라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 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 하고 이에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다시 내 사위가 되리라 하니라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명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로 다윗의 귀에 고하매 다윗이 가로되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라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여차여차히 말하더이다 사울이 가로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왕이 아무 폐백도 원치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을 원하신다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라

사울의 작은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였고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그것을 말해 주었다.  사울은 그것을 좋게 여겨 다윗에게 미갈을 주어 아내로 삼게 하고 그것을 올무로 삼아 블레셋 사람과 싸우게 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다원을 죽게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사울은 신하를 시켜 왕이 자기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니 왕의 사위가 되라고 다윗에게 권하게 하였다.  다윗은 이 말을 듣고 왕의 사위가 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며 자기는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인데 어떻게 왕의 사위가 되겠느냐고 말하였다.  이에 사울 왕이 다시 신하를 시켜 왕은 아무 폐백도 원치 않으시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을 원하신다고 전하게 하였다.  이것은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려고 한 것이다.  

 

. 18:26-27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로 다윗에게 고하매 다윗이 왕의 사위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 만기가 되지 못하여서 다윗이 일어나서 그 종자와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그 양피를 가져다가 수대로 왕께 드려 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니 사울이 그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다윗이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겨 그 종자와 함께 나아가서 원수를 이백 명이나 죽여 양피를 베어 수(數)대로 왕에게 주니 왕은 자기 딸 미갈을 주어 다윗의 아내가 되게 하였다.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 백 명을 죽일 동안에 전사할 줄 알았는데 이백 명이나 죽이고도 죽지 않았으므로 이제는 딸을 주어 차차로 죽이려고 생각하였다.  사울의 딸이 아주 불쌍하다.  사울이 자기 중심으로 나아가면서 자기 딸의 앞길도 생각하지 않고, 딸은 불행하게 되든 말든 자기의 목적만 달성하려고 하였다.  권력에 욕심이 끌리면 자기 자녀도 돌보지 않는 법이다.  자기 아들을 죽이고 왕이 된 사람, 자기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사람이 인류 역사에 많이 있다.  왕의 자리라는 것은 부자간 부부간도 없다.  세상 권세는 이렇게 악하고 추잡한 것이다.  

사울이 이렇게 악하고 더러운 죄악 가운데 빠졌으니 참으로 불쌍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세운 다윗을 막으려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절대로 막지 못한다.  아무리 수단 방법을 다 써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아 보려고 하여도 막을 수가 없고 자기만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망하게 된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는 자는 다 이렇게 어리석은 가운데 빠지게 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협력하고 나아가는 자가 복을 받는다.  

하나님의 나라만 잘되게 만들어야겠다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고, 자기중심에 빠져서 자기가 잘 되야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울왕과 같이 비참한 가운데 빠진다.  성도는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만 잘되게 하고 하나님의 의만 이루어 가려고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만 잘되면 자기는 낮아져도, 멸시를 받아도, 환난과 궁핍을 당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신앙의 길이요 복을 받는 길이다.  

 

. 18:28-30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나오면 그들의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 이름이 심히 귀중히 되니라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는 것을 사울이 보고 알았으며 사울의 딸 미갈도 다윗을 사랑하므로 사울의 인간적인 모든 계획은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울이 더욱 다윗을 두려워하였고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는 것을 면서 사울이 다윗의 대적이 되는 것은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이 나오면 그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였고 그로 인하여 다윗의 명성은 점점 더 높아가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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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19장

제 19 장  다윗의 도주

 

(대  지)

 

一. 요나단이 다윗을 도와 줌(1 -7)

二.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함(8-10)

三. 미갈이 다윗을 도피시킴(11-17)

四. 다윗이 사무엘에게로 감(18-19)

五. 사울과 그 사자들이 예언함(20-24)

 

(본문강해)

 

一. 요나단이 다윗을 도와 줌(1-7)

 

. 19:1-7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과 그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 그가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내가 나가서 너 있는 들에서 내 부친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부친과 말하다가 무엇을 보거든 네게 알게 하리라 하고 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다윗을 포장하여 가로되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알게 하고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여전히 있으니라

사울이 자기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대단히 사랑하고 기뻐하였으므로 다윗에게 그 사정을 알려 주고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면 내 부친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부친과 말하다가 무엇을 보거든 너에게 알려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요나단이 아비 사울에게 가서 다윗을 칭찬하고 왕의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말라고 간(諫)하였다.  다윗이 왕께 죄 지은 것이 없고 그가 왕께 행한 것은 심히 선한 일이며, 또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골리앗과 싸웠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베풀었고, 왕은 이를 보고 기뻐하셨는데 까닭없이 다윗을 죽이는 것은 무죄한 피를 흘리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것이라고 조리있고 충성스럽게 간(충고)하였다.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윗사람이 사건을 바로 처리하지 못할 때 요나단처럼 진실하고 충성스럽게 간(諫)하면 윗사람도 감동을 받아 이렇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윗사람에게 아부를 하면 일시적으로는 호감을 살지 모르나 머지 않아 둘 다 망하게 된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말할 때 요나단은 대단히 기뻐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모든 것을 말하여 주고 안심시켜서 사울왕 앞에 인도하니 다윗이 이전과 같이 사울왕을 섬기게 되었다.  

 

二.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함(8-10)

 

. 19:8-10  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매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니라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블레셋 사람이 다시 쳐들어와 전쟁이 일어났다.  이때도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크게 무찌르니 블레셋 사람들은 도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수를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이루어 나아가는데 사울에게 악신(마귀)이 들어가서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다.  다윗이 사울 앞에서 수금을 탈 때 사울이 단창을 던져 다원을 벽에 박으려고 하였으나 다윗이 빨리 피하므로 사울의 창이 벽에 꽂히고 말았다.  사울이 자기 아들 요나단 앞에서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하였지만 마귀가 속에 들어가자 마음이 돌변하였다.  마귀는 언제나 거짓말을 하여 남을 속이는 것이다(요 8:44).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마귀가 사울에게 들어가 다윗을 죽이려고 역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들어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을 이루어 나가시므로 마귀는 하나님의 일이 잘되지 못하도록 대적하는 것이다.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이 계속 성공되어 가고 이스라엘(하나님의 나라)이 계속 창성해 나가므로 마귀가 이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마귀는 언제나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힘써 해 나가는 자를 죽이려고 한다.  다윗이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의 길로 걸어가기 때문에 마귀가 제일 싫어하고 죽이려고 발악을 한 것이다.  

다윗을 죽이면 이스라엘은 쉽게 파괴할 수가 있다.  사울은 이미 마귀의 도구가 되었으므로 마귀가 죽이려고 할 필요가 없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을 힘입어 능력의 길을 걸어 나가면서 마귀의 세력을 깨뜨리고 이스라엘을 창성하게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이 일을 못하게 하려면 다윗을 죽여야만 하므로 마귀가 사울왕에게 들어가 공작을 하는 것이다.  

마귀는 잘 믿는 성도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믿지 않는 사람을 이용하기도 하고 믿는 사람을 이용하기도 한다.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마귀는 블레셋 사람을 보내기도 하고 사울왕을 통하여 역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종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마귀의 손에 죽도록 버려두시지 않고 눈동자와 같이 지키신다.  다윗 자신도 늘 조심하며 수금을 탔을 것이다.  요나단을 통하여 사울이 죽이지 않겠다고 하여 다시 와서 수금을 탔지만 사울이 언제 마음이 변하여 죽일는지 모르는 형편이므로 수금을 타면서도 삼가 조심하여 사울의 손을 늘 경계하였을 것이다.  

성도가 범사에 삼가 조심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손해를 본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여 주시지만 자기 자신이 삼가 조심하여 자기를 보호할 책임도 있는 것이다.  방심 부주의하여 마귀의 올무에 걸려드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자기를 잘 지켜 마귀의 화전(火箭)을 맞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성도가 마땅히 하여야 할 책임이다.  마귀가 언제 나에게 화살을 쏘려고 할지 조심하여 살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유다서 1:21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5:8-9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을 항상 연습(연단)하여야 한다.  

사울은 다윗의 장인이요 왕이다.  두 사람 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다.  마귀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하여서도 생명 운동(구원 운동)을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람이 나로 하여금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격동을 시켜 혈기를 부리게 만들어 믿음으로 걸어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늘 깨어 자기를 지키고 믿음에 굳게 서서 말씀대로 걸어가야 마귀의 궤교를 물리칠 수 있다.  

 

三. 미갈이 다윗을 도피시킴(11-17)

 

. 19:11-12  사울이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일러 가로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우매 그가 도망하여 피하니라

다윗의 아내 미갈은 자기 부친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남편 다윗에게 \"오늘밤에 도망하여 생명을 구원하지 않으면 내일은 분명히 죽을 것이라\"고 말하고 다윗을 창문으로 달아 내려 도망가게 하였다.  그것은 사울이 사자들을 보내어 그 집을 지키게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피할 길을 열어 주어서 사울의 딸 미갈이 아버지를 속여 남편을 도피하게 하였다.  다윗이 골리앗을 대적하여 생명을 내어놓고 싸웠지만 이번에는 창문으로 도망을 쳤다.  도망쳐야 할 때에는 도망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데 미련하게 가만히 있다가 화를 당하면 안 된다.  

 

. 19:13-17  미갈이 우상을 취하여 침상에 뉘고 염소털로 엮은 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더니 사울이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으려 하매 미갈이 가로되 그가 병들었느니라 사울이 또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율 보라 하며 이르되 그를 침상채 내게로 가져오라 내가 그를 죽이리라 사자들이 들어가 본즉 침상에 우상이 있고 염소털로 엮은 것이 그 머리에 있었더라 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미갈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하니라

미갈이 우상을 침상에 누이고 염소 털로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덮어 놓고 사울의 사자들이 다윗을 잡으러 왔을 때 다윗이 병이 들어 누워 있다고 말하였다.  사울이 다윗을 침상채로 가져오라고 명령하였고 미갈의 거짓은 드러났다.  그래서 사울왕이 미갈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속여서 내 대적을 피하게 하였느냐\"고 추궁하였더니 미갈은 다윗이 자기를 도망가게 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해서 놓아주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성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원리 원칙이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고 털끝만큼도 거짓이 없으시므로 성도는 진실해야 한다.  그러나 단 생명에 관계되어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 놓고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정탐꾼들이 왔다가 나갔다고 거짓말하였다(수2:1-7).  미같이 사실대로 말하였어도 다윗은 이미 도망쳤음으로 잘되었을 것 같다.  미갈이 이렇게 한 것은 아마 시간을 지연시켜 다윗으로 하여금 더 멀리 달아나게 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사울의 손에 붙잡히지 않게 되었다.  미갈이 남편을 살리려고 이런 술책을 썼지만 이런 술책을 쓰지 않고 도망갔다고 하여도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로 붙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四. 다윗이 사무엘에게로 감(18-19)

 

. 19:18-19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유한 일을 다 고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거하였더라 혹이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사무엘에게로 갔다.  성도가 환난을 만났을 때 마귀의 올무를 벗어나 위로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종에게 찾아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종인 사무엘에게 모든 사정을 다 말하고 사무엘과 같이 라마 나욧에 있게 되었다.  이것을 누가 또 사울왕에게 보고하여 알려 주었다.  

 

五. 사울과 그 사자들이 예언함(20-24)

 

. 19:20-24  다윗을 잡으려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흑이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른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고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이르러 물어 가로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혹이 가로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다는 보고를 사울이 듣고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아오게 하였는데 사울의 사자들이 라마 나욧에 도착하여 선지자의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首領)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여 그들도 예언을 하게 되었다.  사무엘의 수하에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신학생들인데 그들이 예언을 한 것이다.

예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을 말한다.  성도는 깨달은 진리대로 걸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계1:3 참조)을 떠난 예언은 허튼 소리요 예언이 아니다.  사무엘 앞에서 여러 선지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대로 살기를 작정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말씀대로 이루지 못한 것은 회개하고 말씀대로 이루어 나아가려고 힘을 써야 한다.

사무엘을 수령으로 한 선지자들이 모두 성령의 감동을 충만히 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사울의 사자들도 그렇게 충만한 은혜를 사모하여 성령의 감동을 받고 즐거워하였다.  그러므로 사울이 또 다른 사자들을 보냈으나 그들도 마찬가지로 은혜를 받고 돌아오지 않았다.  세 번째 보낸 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울왕이 세 번이나 다윗을 잡아오도록 사람을 보냈으나 실패하게 되자 이번에는 자기가 가서 다윗을 잡아오려고 마음을 먹고 다윗이 있는 라마 나욧에 내려갔다.  사울이 가서 보니 거기에는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있어 낙원을 이루고 있었다.  자기는 속이 답답하고 살기(殺氣)가 등등해서 갔는데 그들을 보니까 다 화평하고 즐거워하고 기쁨이 충만하였고 사울 자신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 즐거워하며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다윗을 잡아죽이겠다는 생가도 다 없어지고 너무 좋아서 의복이 벗어지는 것도 모르고 벗은 몸으로 종일 은혜 가운데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니 마음이 평안하고 다윗을 죽일 생각도 없어졌다.  하나님께서 좋은 기회를 사울왕에게 주신 것이다.  사울왕이 이 은혜 가운데 바로 서서 나갔더라면 참 복을 받을 뻔하였다.  하나님께서 감동시켜서 즐거운 마음도 주시고, 말씀도 주시고,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결심을 주실 때 성령을 소멸치 말고 그대로 나가는 자가 복이 있다.  

사람이 잘못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시며 말씀으로 위로를 주시고 말씀이 생명이 되도록 인도하시는 때가 가끔 있다.  이때 하나님의 감동을 소멸하지 말고 신앙 양심을 쓰고 믿음을 써서 하나님 앞에 바로 행하면 누구나 다 복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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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20장

제 20 장  다윗과 요나단

 

(대  지)

 

一. 다윗이 요나단에게 사울의 의향을 타진케 함(1 -11)

二. 요나단과 다윗이 언약을 세움(12-16)

三. 다윗과 요나단이 신호를 정함(17-23)

四.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을 요나단이 알게 됨(24-34)

五. 요나단이 다윗과 작별함(35-42)

 

(본문강해)

 

一. 다윗이 요나단에게 사울의 의향을 타진케 함(1-11)

 

. 20:1-4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와서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관대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대소사여 내게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내 부친이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다윗이 또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네게 은혜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온 것은 사울의 의향을 타진하여 할 수만 있으면 다윗이 자기 위치를 지켜서 사울왕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해 보려고 돌아왔다.  사울이 라마 나욧에서 은혜를 충만히 받았으므로 다윗이 이렇게 기대해 볼만도 하였다.  그리하여 요나단에게 \"내가 네 부친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기에 네 부친이 나를 죽이려 하느냐\"고 물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말하기를 \"네가 죽지 아니할 것이다 나의 부친이 무슨 일을 행할 때는 나에게 다 알리고 하는데 나의 부친이 너를 죽인다 말을 결코 하지 않았으니 네가 죽을 리 없다\"고 말하였다.  다윗은 \"내가 너에게 은혜받은 줄을 왕이 알고 나를 죽인다는 말을 하면 네가 슬퍼할까봐 알려 주지 않는 것뿐이다\"라고 말하였다.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 이 말은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이다.  즉 생명이 지극히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어 어느 순간에 죽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다윗의 말을 듣고 요나단이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말하면 내가 그것을 이루어 주겠다\"고 말하였다.  요나단은 다윗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윗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어떠한 희생이라도 각오하고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친구가 위급하고 생명이 위태할 때 사랑하며 진정으로 도와주는 친구가 참 친구이다.  형편이 좋을 때, 잘될 때는 친구가 많지만 어려울 때는 친구들이 멀리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이 위기에 처하여 있을 때 다윗을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도와주려고 결심하였다.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자는 바로 요나단의 아버지이다.  자기 아버지가 죽이려고 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 없는 사랑이고 큰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 20:5-11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제삼일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네 부친이 만일 나를 자세히 묻거든 그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틀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그의 말이 좋다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 그런즉 원컨대 네 종에게 인자히 행하라 네가 네 종으로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케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거든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부친에게로 데려갈 것이 무엇이뇨 요나단이 가로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있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부친이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고하겠느냐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다윗이 요나단에게 말하기를 \"내일은 월삭(초하루)이므로 마땅히 왕을 모시고 식사를 하여야 하겠지만(월삭에는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왕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관례인듯 함)사흘 동안 내가 들에 가서 숨어 있을 터이니 나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사울왕이 보시고 뭐라고 말하는가 살펴보아 왕의 마음을 알아 보고서 나에게 알게 하여 달라\"고 하였다.  사울왕이 자기에 대하여 자세히 물으면 자기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제사할 수 있도록 급히 보내 달라고 하여 보냈다고 말하여 그때 만일 사울이 좋다고 하면 자기가 평안하겠고 노(怒)하면 왕이 자기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 알겠다고 하였다.  

내게 죄악이 있거든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다윗은 자기에게 죄가 있으면 언제든지 죽기를 사양치 않겠다고 자기의 결백성을 증거하였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너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위로하여 주고 \"나의 부친이 너를 죽이기로 결심하였다면 너에게 알려 주겠다\"고 말하였다.  다윗은 또 요나단에게 사울왕이 엄하게 말하면 그것을 고하기 위해 아무도 자기에게 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고 요나단은 다윗과 함께 들로 나가서 서로 연락할 방법을 세우려고 하였다.  

 

二. 요나단과 다윗이 언약을 세움(12-16)

 

. 20:12-16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거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 때에 내 부친을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보내어 내게 알게 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만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하거늘 내가 이 일을 네게 알게 하여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 하신 것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은 치실지어다 하니라

요나단이 다윗에게 \"내 부친을 살펴서 너에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네게 알게 하겠고 만일 너를 해하려 하거늘 내가 너로 평안히 가게 하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또\"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 하신 것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고 다윗에게 축복해 주고 위로하여 주었다.  그리고 요나단은 다윗에게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고 있었다.  자기가 현재에는 왕의 아들이요 왕 다음가는 세력을 갖고 있지만 장차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들어 쓰시고 다윗의 대적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릴 줄을 밝히 깨달았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섭리를 밝히 깨닫고 거기에 순종하는 것이다.  부친(사울왕)은 하나님의 뜻을  닫지 못하고 자기의 욕심만 채우려고 자기 중심으로 나가고 있었으나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일에 협력하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바라며 나간 것이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자기와 같이 해 달라고 하지 않고 다윗과 같이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다윗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실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성취되기를 바라는 기도였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  축복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축복하여야 한다.  자기의 욕심대로 졸은 것은 모두 자기에게 돌리고 나쁜 것은  두 다른 사람에게 돌리면 이는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달아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자기는 그 일을 받들어 나갈 생각만 하여야 한다.  요나단이 사람의 수단대로 한다면 얼마든지 자기가 다윗을 죽이고 왕이 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았기  문이다.  

요나단의 표준은 자기 중심에 있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이 잘되는 데에 있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세워 이스라엘이 잘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이스라엘 전체가 복을 받고 자기도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요나단은 자신은 쇠해야 되겠고 하나님의 나라는 흥해야 되겠다는 믿음이다(요3:30).

요나단이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하였는데 다윗의 대적은 자기 아버지 사울이다.  이것을 보면 요나단은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다.  현재에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며 생명이 위태하지만 앞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들어서 이스라엘 나라를 지켜 나가고 건설해 나가실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義)을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 다윗의 대적을 여호와께서 치시기를 원한 것이다.  

 

三. 다윗과 요나단이 신호를 정함(17-23)

 

. 20;17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를 생명같이 사랑해야 자기에게 유익이 있을 것인데 오히려 아버지의 대적인 다윗을 생명처럼 사랑하였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골리앗)과 싸울 때에 다윗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이 다 망하고 요나단 자신도 죽었을 것이다.  다윗이 큰 대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으므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귀한 보배이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들어서 대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건설해 나아갈 것을 밝히 알기 때문에 요나단은 아버지가 죽이려고 하는 다윗을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하였다.  

요나단의 신앙이 이렇게 좋았기 때문에 신앙이 좋은 다윗을 자기의 생명처럼 사랑하고 두 사람의 마음이 연락된 것이다.  성인이라야 성인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신앙가(信仰家)이어야 신앙가를 알 수 있다.  자기 욕심이나 채우려고 하는 자는 신앙가를 알지 못하고 알아도 귀히 여기지 않는다.  

 

. 20:18-23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죽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너는 사흘을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내가 과녁을 쏘려 함같이 살 셋을 그 곁에 쏘고 아이를 보내어 가서 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이편에 있으니 가져 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앞편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영토록 계시느니라

요나단이 다윗에게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에셀 바위 곁에 숨어 있으면 부친(왕)의 의향을 타진해 보고서 그 결과를 전달하겠는데, 그 방법은 아이 하나를 데리고 가서 활을 쏘고 활을 쏜 후에 아이에게 화살을 주워 오라고 할 때 \"화살이 네 이편에 있으니 가져 오라\"고 아이에게 말하면 평안할 것이고, \"보라 살이 네 앞편에 있다\"고 하면 떠나서 도망을 쳐야 될 것이라고 서로 신호를 짰다.  이렇게 둘이서 약속을 한 후 요나단은 왕에게로 돌아갔다.  

 

四.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을 요나단이 알게 됨

  (24-34)

 

. 20:24-34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월삭이 되매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았고 요나단은 섰고 아브넬은 사울의 곁에 앉았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으나 그러나 그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 이튿날 곧 달의 제이일에도 다윗의 자리가 오히려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와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뇨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가로되 청컨대 나로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나로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 요나단이 그 부친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치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 부친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에서 떠나고 달의 제이일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부친이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월삭이 되어 왕과 신하들이 음식을 먹을 때 다윗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사울이 첫날에는 다윗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이상히 여기지 않고 아마 다윗이 사고가 있어 부정한가보다 하고 생각하였다.  그 다음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비어 있음을 보고 다윗이 왜 나오지 않았느냐고 요나단에게 물었다.  요나단이 대답하기를 베들레헴 자기 고향에 제사하러 가겠다고 해서 허락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울이 노발 대발하여 \"이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집과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느냐 다윗이 사는 날 동안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할 것이니 그를 내게로 끌어 오너라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라\"고 호통을 쳤다.  

요나단이 사울왕에게 다윗을 죽일 만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사울왕이 노하여 단창을 들어서 요나단을 죽이려고 하였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로 요나단이 알고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에서 떠났고 제 이일에는 먹지 아니하고 다윗을 위하여 슬퍼하였다.  

 

五. 요나단이 다윗과 작별함(35-42)

 

. 20:35-42  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시간에 들로 나가서 아이에게 이르되 달려가서 나의 쏘는 살을 찾으라 하고 아이가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아이가 요나단의 쏜 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가로되 살이 네 앞편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살을 주워 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그 아이는 아무런지 알지 못하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더라 요나단이 그 병기를 아이에게 주며 이르되 이것을 가지고 성으로 가라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편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차 입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으로 들어오니라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을 알고 요나단은 약속대로 사흘 후에 아이를 데리고 들에 나아가 아이에게 자기가 쏘는 화살을 주워 오라고 하였다.  아이가 화살을 주으러 가는 동안에 요나단이 그의 위에 지나치게 화살을 쏘고 뒤에서 큰 소리로 \"살이 네 앞에 있지 아니하냐 빨리 달려가서 가져오라\"고 외쳤다.  이것은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아이가 화살을 주워 온 후에 요나단이 그 아이에게 병기를 주어 성으로 돌려보내고 다윗을 만나서 울고 서로 맹세하였다.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히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영원히 계시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둘이 서로 슬퍼하여 울었으나 다윗이 더욱 심히 울면서 거기서 떠나가고 요나단은 집으로 돌아왔다.  과연 요나단은 다윗을 생명같이 여기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여 다윗을 사랑하고 위로하여 주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이 하시고 다윗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건져내시고 구원해 내는 일을 하시는데 이런 다윗을 따나가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손해를 가져오는 일이다.  요나단과 사울이 앞으로 전쟁에 나가서 죽게 된다.  만일 다윗을 보내지 않고 같이 있었더라면 사울과 요나단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을 보호해 주는 자를 보냈으므로 마지막에 망할 것은 정해 놓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들어서 그 당시에 구원 운동을 하시고 생명을 건져내고, 원수를 물리치며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건설해 나가시는데 그 사람을 잃어버렸으므로 마지막에 가서는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다윗을 붙들었어야만 실패하지 않았을 것인데 잃어버렸으므로 사울은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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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1장

제 21 장  아히멜렉과 다윗

 

(대  지)

 

一.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진설병을 줌(1-6)

二.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가짐(7-9)

三. 다윗이 가드 왕에게로 도피함(10-15)

 

(본문강해)

 

一.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진설병을 줌(1-6)

 

. 21:1-6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 바 일의 아무 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알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 떡은 내 수증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삼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낸 떡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낸 것이더라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하여 가는 길에 놉이라는 곳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났다.  아히멜렉 제사장이 떨면서 다윗을 맞이하고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고 물었다.  다윗이 아무 호위병도 없이 혼자서 온 것이 이상하여 제사장이 그렇게 물어 본 것이다.  

제사장이 떨면서 다윗을 영접한 것은 다윗이 갈 때마다 중대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왕의 사위이며 군대 장관이니 다윗이 한번 출동하는 것은 아주 중대한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다윗이 제사장에게 진실하게 말하지 아니하고 거짓말을 한 것은 중대한 실수이다.  물론 생명이 위태롭고 위급한 지경이지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의논하는 것이 옳다.  다윗에게 동행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서 제사장을 만나러 온 것은 분명하다.  

다윗이 제사장에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달라고 부탁하였다.  사울을 피하여 도망하느라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무척 배가 고팠을 것이다.  

항용(恒用)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항용떡\"은 보통 먹는 떡이고,\"거룩한 떡\"은 하나님 앞에 제사드린 떡(진설병)인데 더운 떡과 바꾸어 놓고 물려낸 것이며,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떡으로 다윗은 제사장이 아니므로 먹을 수 없다.  

그런데 제사장은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경건한 생활을 하고 육신대로 살지 않고 신령한 생활을 하였으면(고전7:5)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성경에는 하나님께 제사한 거룩한 떡은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왜 다윗에게는 주었는가?  제사장이 하나님께 물어보았을 때 주라고 하셔서 준 것이다(22:10).  진설병을 다윗에게 준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다(마12:3-4).

거룩한 떡을 제사장 외에는 먹지 말라고 하신 근본 뜻은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속되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거룩한 떡을 부정한 사람이 먹고 속되게 만들면 하나님의 거룩이 침범되므로 먹지 말라고 한 것이다.  제사장이 다윗에게 떡을 준 것은 ① 다윗이 제사장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붙들고 사용하시는 거룩한 사람이며, ②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고 경건한 생활을 하였고, ③ 생명을 살려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주일)에 일하면 죄가 되지만 생명을 살려 내는 일은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전도(영적 생명을 살려 내는 일)하는 것이나 죽을 사람을 살려 내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이고 자신이 거룩한 생활을 하여 신령한 세계에서 살면서 생명을 살려 나가는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二.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가짐(7-9)

 

. 21:7-9  그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제사장이 가로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 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가로되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다윗이 거짓말로 왕의 명령을 수행하러 간다고 하므로 아히멜렉 제사장이 아무 거리낌없이 다윗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는데 마침 그때 사울의 신하 도엑이 그곳에 있다가 모든 사실을 사울에게 보고하여 나중에 아히멜렉 제사장과 많은 사람이 큰 화를 당하게 된다(22:11-19).  다윗이 처음부터 진실하게 말하였더라면 제사장이 모든 것을 신중하게 잘 처리하여 그런 화를 면하였을는지 모른다.  

다윗이 도망하여 갈 때에 제사장에게 간 것은 잘못이 아니다.  전에 도망할 때에도 사무엘 제사장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19:18).  사람마다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에 따라 잘 가는 곳이 정하여져 있다.  어떤 사람은 틈만 있으면 술집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극장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시간만 있으면 교회에 나아가서 기도한다.  다윗은 신앙의 사람이기 때문에 무슨 일만 생기면 제사장을 잘 찾아갔다.  그러나 제사장에게 찾아가서 사실대로 다 말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고 제사장의 도움을 구하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인데 진실하지 못하게 사실을 숨기고 말았다.  

다윗이 왜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첫째, 제사장에게 말을 하면 제사장이 왕께 고발하지 않을까 의심을 한 모양이다.  둘째, 아히멜렉이 다윗이 도망가는 것을 알고도 떡이나 칼을 주었다고 하면 다음에 아히멜렉에게 책임이 돌아갈까봐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히멜렉 제사장도 다윗이 거짓말하는 것을 알 만한 증거가 있었는데 알지 못하였다.  그 증거는 다윗이 혼자 온 것, 아무런 병기도 없이 와서 칼을 달라고 한 것, 먹을 것이 없어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한 것 등, 조금만 주의하면 다윗이 거짓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다윗의 말을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속이는 사람이 나쁘지만 속는 사람도 어리석다.  

다윗이 악한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고 탄로날까 두려워서 인본주의 수단을 쓴 것인데 이것은 잘못이다.  다윗이 진실하지 못하므로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들어 장차 쓰시려고 하셨기 때문에 보호하여 주신 것이다.  다윗의 모든 행동이 옳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와주시는 것은 아니다.  다윗에게 실수가 많고 결점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장차 쓰시려고 보호하여 주시고 잡히지 않게 하신 것이다.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창이나 칼이 있으면 달라고 하였다.  왕의 일이 너무 급하여 칼과 병기를 가지고 오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더니 제사장이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가지려면 가지라\"고 하였다.  다윗은 자기에게는 아주 필요한 무기였으므로 그것을 달라고 하였다.

 

三. 다윗이 가드 왕에게로 도피함(10-15)

 

. 21:10-15  그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고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한지라 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의 앞에서 그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아기스가 그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갔는데 그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다윗을 고소하여 말하기를 이는 이스라엘의 왕이며 이스라엘의 무리가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의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노래하였었다고 보고하였다.  다윗이 그 소리를 듣고 심히 두려워하였다.  

사울을 피해 도망 온 것이 원수 블레셋에게 잡히게 되었으니 이제는 꼼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빙 둘러서서 지키고 있으니 다윗은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생각하다 못해 미치광이 노릇을 하였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미친 척하니 이것을 본 아기스왕이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리고 왔느냐 내어 보내라\"고 하였다.  

다윗이 위기는 모면하였지만 처음부터 아기스왕에게로 간 것이 잘못된 것이며, 심히 두려워한 것도 잘못된 것이다.  심히 두려워하고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마귀가 들어 올 기회를 주는 때이다.  너무 두려워서 미치광이 노릇을 한 것도 잘못된 것으로 진실하지 못하다.  장차 이스라엘의 왕 될 사람이 이렇게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써서 생명을 유지하려는 것은 졸렬한 방법이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아기스왕이 죽일 수 없다.  다윗이 미치광인 체하여 죽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장차 쓰시려고 보호하여 아기스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죽이지 않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면 아무리 사람이 죽이려 해도 죽지 않고 하나님이 죽이려 하시면 아무리 미치광이인 척해도 죽게 된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죽지 않기로 예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다윗이 미치광이인 체할 때 아기스왕이 죽이지 않고 내보낸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뢰하고 믿음을 써서 나아가야 할 터인데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겼으니 신앙이 잠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윗이 믿음으로 통과하지 못하고 인간의 방법과 수단을 써서 오점(실수)을 남긴 것이다.  수단을 써서 시험을 면한 것은 신앙이 잠든 것이며 하나님 앞에 믿음을 쓰지 못한 것이다.  

다윗은 재능이 있어서 악기를 들면 세계 제일의 음악가요, 손에 검을 들면 세계 제일의 무사요, 양을 치면 일등 목자요, 손에 붓을 들면 일등 시인이 되었으므로 미치광이인 것같이 연극을 하여도 아기스가 속아넘어갔다.  마귀가 다윗의 소질을 통하여 들어왔다.  재능(소질)을 가지고 있으면 재능을 통하여 마귀가 들어온다.  아예 그런 재능이 없으면 마귀도 이용하지 못한다.  마귀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특기, 기술, 기능)을 이용하여 인본주의를 쓰도록 만들고 믿음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이용하여 수단과 방법으로 하고 싶은 생각이 나오면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줄 알아야 한다.  

성도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뢰하고 전적으로 말씀에 붙잡히면 하나님께서 다 보호하여 주시고 천사를 보내어서라도 지켜 주시고 위태한 가운데서 건져 주신다.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베드로도 불을 쬐면서 구경꾼인 체하였다.  베드로가 정정당당하게 예수님 제자의 자격으로 나아가도 하나님께서 죽지 않게 하시면 절대로 죽지 않는다.  생사(生死)가 하나님께 있고 성공과 실패도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건져 주신다.  곤고한 때 주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시편 34:7-10에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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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22장

제 22 장  부모 부탁

 

(대  지)

 

一. 다윗에게로 사람들이 모임(1-2)

二. 다윗이 부모를 모압 왕에게 부탁함(3-4)

三. 사울왕에게 다윗을 고발함(5-10)

四. 사물왕이 제사장들과 놉의 사람들과 짐승을 망함(11-19)

五. 아비아달이 다윗에게로 도피함(20-23)

 

(본문강해)

 

一. 다윗에게로 사람들이 모임(1-2)

 

. 22:1-2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빛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이 아둘람 굴에 피해 있을 때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 내려가서 다윗과 함께 있게 되었다.  또 환난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윗에게로 모여 왔다.  다윗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윗에게 내려간 것은 사울이 다윗을 찾다가 다윗의 부모와 형제까지 죽일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다윗에게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윗을 좇는 무리가 사백 명 가량 되고 다윗은 그 장관이 되었다.  

사울은 악한 왕이 되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원통한 일이 많이 생기고 나라가 평안치 못하며 살기가 괴로워져서 빛진 자, 환난을 당한 자, 마음이 원통한 자가 많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같은 처지에 있는 다윗에게로 가야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고 또 생명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아둘람 굴로 다윗을 찾아간 것이다.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 위로하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협력하고 단결하여 나아가면 난국을 타개해 나갈 수가 있다.  생명에 위협을 당하는 자들이 한 데 모여 서로 위로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강구하며 공동전선을 펴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윗은 그들의 원수를 막는데 큰 방패가 되므로 다윗을 자기네의 장관으로 세웠다.  굴속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같이 해 주시므로 거기가 하늘 나라가 된 것이다.  마음이 상한 자와 살기가 힘들어 빛을 지고 빛을 갚을 가망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실패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였지만 믿음으로 새 출발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권고하시고 인도하시므로 다윗에게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그들이 다윗을 장관으로 택한 것은,

첫째, 다윗이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고 신앙 양심에 어긋남이 없이 원리 원칙에 맞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다윗을 존경하고 자기들을 바로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가는 곳마다 원수를 쳐부신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윗만큼 지혜와 무용(武勇)을 갖춘 자가 없기 때문에 다윗을 장관으로 삼은 것이다.  현재는 다윗이 억울하게 쫑겨 다니는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윗의 원통함을 풀어 주실 날이 올 것을 믿고, 다윗을 장관으로 세우고 그의 인도를 받게 된 것이다.

 

二. 다윗이 부모를 모압 왕에게 부탁함(3-4)

 

. 22:3-4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이 다윗의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다윗이 부모를 모압 왕에게 부탁하였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느라고 부모를 잘 모실 수가 없는 형편이므로 모압 왕에게 나아가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하도록 말씀하실 대까지 자기 부모를 그들과 함께 있게 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모압은 다윗의 증조모 룻의 고향이다.  다윗과 모압 나라와는 혈연 관계가 있으므로 다윗이 모압 왕에게 자기의  부모를 자연스럽게 부탁한 것 같다.

다윗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다.  피난을 다니며 생명이 위태한 가운데서도 힘이 닿는 데까지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였다.  어려운 일이 닥쳐와 부모를 공경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아들의 책임을 다 하였다.  성경은 성도가 부모를 잘 공경하고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잘하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엡6:1-3).  부모가 자기에게 흡족할 만큼 잘해 주든지 못해 주든지 부모에게 자식의 도리와 책임을 다하여야 마땅하다.

어떤 사람은 부모가 자기에게 교육을 충분히 시켜 주지 않았다고 하여 불만을 품고, 또 어떤 사람은 부모가 자기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지 않았다고 부모를 원망하고 거역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다 잘못된 것이고 하나님 앞에 악한 것이다.

다윗의 부모가 다윗에게 특별히 잘해 준 것이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오히려 사무엘이 기름 부으려 할 때 이새는 다윗의 형 일곱을 다 소개하였으나 사무엘이 그들에게 기름을 붓지 아니하고 다른 아들이 없느냐고 물을 때 말째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고 있다고 하였다(16:11).  형들도 합격되지 못하였으므로 다윗은 보나 마다 시원치 않다고 느낀 것 같다.  가장 어린 아들로 양을 치게 만든 것은 아버지가 다윗을 무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도 다윗은 아들로서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하였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상(上)에서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고 어머니에게 효도와 책임을 끝까지 다하였다.  사람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마땅하고 성도는 특히 하나님의 명령인 줄 알고 부모를 잘 공경하고 섬겨야 한다.

 

三. 사울왕에게 다윗을 고발함(5-10)

 

. 22:5-10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 곁에 섰더니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가로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었는데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식물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사울이 다윗과 그 함께 있던 자들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 앉았다.  사울왕이 위엄을 나타내는 자세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에 앉아서 신하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 내용을 보면 사울이 베냐민 사람들을 들어서 천부장 백부장을 삼고 밭과 포도원을 특별히 많이 준 것을 알 수 있다.  사울이 자기가 베냐민 지파라고 하여 베냐민 지파에게 우대한 것은 인본주의요 당파심을 조장하는 악한 행동이다.  자기 지위를 견고하게 다져 놓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기 아들이 다윗과 함께 맹약하였는데도 베냐민 사람들 중에 그것을 고발하는 자가 없다고 노하였다.  사람이 하나님께 바로 하면 원수라도 자기편이 되고(잠16:7) 하나님께 바로 하지 않으면 자기 아들이라도 대적이 되는 것이다.

 

四. 사울왕이 제사장들과 놉의 사람들과 짐숭을 멸함(11-19)

 

. 22:11-19  왕이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아비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사울이 가로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로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뇨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컨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 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의 대소간에 아는 것이 없나이다 왕이 가로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왕이 좌우의 시위자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인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왕에게 나와서 다윗이 놉에 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온 것을 자기가 보았는데 아히멜렉이 하나님께 묻고 먹을 것을 주고 골리앗의 칼을 주었다고 말하였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시기하여 애매하게 의인을 죽이려고 하는 것인데 도엑이 불의한 일에 가담하였다.  사울왕이 죄를 지으려고 할 때 죄를 짓지 못하도록 간(諫) 했어야 옳은데 오히려 죄를 짓도록 도와주었다.

도엑의 말을 들은 왕은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아히멜렉과 그 아비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불러 들였다.  왕이 아히멜렉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의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로 오늘 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고 추궁하였다.  아히멜렉은 \"왕의 신하 중에 다윗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입니까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닙니까 그를 위하여서는 그 전부터 하나님께 물어 왔고 이번에도 전례대로 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고 다른 내용은 아는 바 없으니 허물을 종과 종의 아비의 집에 돌리지 말라고 사울왕 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사울왕은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들이 죽어야 할 이유는 그들이 다윗과 협력하였고 또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자기에게 고발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왕의 신하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을 죽이기를 싫어하므로 왕이 도엑에게 죽이라고 하여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쳐죽였다.  이것을 보면 사울은 잔인하고 강팍하고 악독하다.  하나님의 종을 파리 목숨같이 여겨 거침없이 죽였다.  제사장이 실지로 다윗과 함께 공모하였는지 조사도 해보지 않고 다 죽였다.

아히멜렉은 사실상 다윗이 도망하는 줄도 모르고 하나님께 물어서 떡과 칼을 주었다.  또 죽인다고 해도 다윗에게 칼을 준 장본인만 죽일 것이지 다른 제사장들과 성읍 사람들까지 죽일 필요는 무엇인가?  이것은 잔인하고 악독한 행위이다.  이렇게 자기 지위 하나를 지키려고 많은 사람을 서슴없이 죽이는 사울의 죄가 하늘에 사무쳤다.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운 것은 아무 잘못이 없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이고, 사울왕의 충실한 신하이며, 그가 실지로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으로 믿고 먹을 것과 칼을 준 것이니 선한 일이다.  옳은 일 하다가 죽은 아히멜렉과 그 가족은 하나님 앞에 가면 상급을 받을 것이다.

도엑도 처음부터 아히멜렉을 고발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보고하지 않았는데 사울왕이 호통을 치는 바람에 만일 보고하지 않고 있다가 발각되면 자기가 위험하게 되지 않을까 하여 보고한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왕 앞에 잘 보여서 자기 목자장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보고하였는지 모른다(21:7).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행동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바로 분별하여 행동하지 않고 대세에 따라 행동하는 기회주의자이다.  사울왕이 도엑에게 제사장을 죽이라고 명령한 다음에는 도엑이 제사장을 죽이기 싫어도 죽이지 않을 수가 없다.  만일 죽이지 않는다면 자기가 도리어 죽을 가능성이 있다.  생명을 내어놓지 않으면 본의 아닌 살인을 하게 된다.  즉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게 되므로 할 수 없이 죽이게 만든다.  자기의 생명을 내어놓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의인을 잡아죽이고 본의 아니게 죄를 많이 범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사람을 다 잡아 죽이라고 했을 때는 아각왕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고, 살지고 좋은 짐승을 끌어 왔는데 이번에는 죽여서는 안 될 여호와의 제사장들과 소와 양은 다 잡아 죽였다.  사울이 죽여야 할 것은 살리고 살려야할 것은 자기를 위하여 무자비하게 죽였다.  하나님께는 불순종하면서, 자기를 위하여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

 

五. 아비아달이 다윗에게로 도피함(20-23)

 

 . 22:20-23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고하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두려워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 하니라

아히멜렉의 아들 중에 피한 자가 하나 있는데 아비아달이다.  도엑이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일 때에 아비아달이 다윗에게로 도망하여 퍼해 갔다.  사울이 이렇게 많이 잡아 죽였어도 하나님께서 거기서 한 사람을 건져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필요한 자는 반드시 건져내시는 하나님이시다.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자기가 왕 될 생각이 나서 왕의 씨(자기의 손자)를 다 진멸하고 왕이 되었다.  그러나 왕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요아스)을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도적하여 내어 성전에 6년간 숨겨 두었다(왕하11:1-3).  사람이 아무리 다 잡아 죽이려 해도 그 중에서 한 사람을 빼내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행하신다.  또 바로가 히브리 사람이 낳은 남자 아이를 다 잡아 죽이게 하였지만 모세를 빼내어 이스라엘을 구원하게(출애굽) 하셨다.  사람은 다 없애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운동을 위하여 택한 사람을 빼내어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실패가 없다.

다윗이 아비아달을 보고 \"네 아비집의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 전부 나의 연고로다\"라고 말하면서 두려워 말고 자기에게 있으라고 하였다.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이 말은 서로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함께 있으면 보호해 주겠다고 다윗이 아비아달을 위로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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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23장

제 23 장  셀라하마느곳

 

(대  지)

 

一. 다윗이 그일라를 구원함(1-5)

二.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하여 감(6-14)

三. 요나단이 다윗을 마지막 면회함(15-18)

四. 십 거민이 다윗을 고발함(19-20)

五. 사울이 다윗을 탐지하여 보고케 함(21-23)

六. 하나님께서 다윗의 위기를 면케 해주심(24-29)

 

(본문강해)

 

一. 다윗이 그일라를 구원함(1-5)

 

. 23:1-5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셌 사람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거민을 구원하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타작 마당을 탈취하였다는 말을 듣고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해 내고 싶은 생각이 나서 하나님께 물어 보았다.  사울왕이 나아가서 원수를 쳐야 할 것인데 사울이 하지 않으므로 다윗이 치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을 쳐서 그일라 사람들을 건져내라고 말씀하셨다.  다윗이 지금 사울을 피해 도망해 다니고 있는 형편인데 블레셋 사람과 싸운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유다에 있기도 두려운데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일라가 유다 지방 옆에 있는 것 같으나 원래 유다에 속한 땅이다(수15:44).

다윗이 두 번째 하나님께 기도하니 여호와께서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하고 확실히 말씀하여 주셨다.  그래서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군과 싸워서 블레셋 사람을 크게 도륙하고 가축을 끌어 왔다.  원수에게 짓밟힌 그일라 사람들을 다윗이 구원하여 주었다.

다윗이 비록 피난을 다니는 무척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는 일에는 생명을 내어놓고 나아가 싸웠으니 이것은 다윗이 믿음으로 한 것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이다.  사울을 피해 다니기도 어려운데 블레셋 군과 싸워서 다른 사람들을 건져낸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블레셋 군대는 상당히 많은데 그 블레셋 군대를 싸워 물리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 블레셋 군과 싸우기를 원하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으므로 다윗은 싸워서 대승리를 거두어 그일라를 구원하였다.

 

二.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하여 감(6-14)

 

. 23:6-14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었더라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로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붙이셨도다 그가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다윗이 사울의 자기를 해하려 하는 계교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다윗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의 연고로 이 성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주의 종의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주의 종에게 일러주옵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가 내려오리라 다윗이 가로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이 황무지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황무지 산골에도 유하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시니라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말을 사울왕이 듣고 말하기를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에 다윗이 들어가 있으니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를 내 손에 붙이셨다고 좋아하였다.  이제 독 안에 든 쥐와 같다고 하여 모든 백성을 군사로 소집하였다.  그때 다윗은 사울이 그일라에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분명히 내려오겠는지를 하나님께 물어보았더니 하나님께서 사울이 내려오겠다고 알려 주셨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 다윗은 그일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울의 손에 붙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른 곳으로 피하여 갔다.  다윗이 생명을 내어놓고 그일라 사람들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주었는데 그들은 다윗을 사울의 손에 붙일 것이라고 하였다.  그일라 사람들은 은혜를 모르는 배은 망덕한 사람들이다.  다윗이 아니었더라면 블레셋 군에 망하였을 터인데 자기들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나가 싸워 준 다윗을 사울에게 잡아 주려고 한다는 것은 악한 소행이다.

어떤 동화(童話)에 호랑이가 함정에 빠졌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불쌍히 여겨 건져 주었다.  그러나 은혜를 모르는 호랑이는 배가 고프다고 자기를 살려 준 그 사람을 잡아먹겠다고 하였다.  그 사람이 호랑이에게, 토끼에게 가서 물어본 후에 잡아먹으라고 하여 같이 토끼를 찾아갔다.  토끼는 실제로 내가 보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다고 하며 그 실상을 보여 달라고 하여 호랑이가  함정에 다시 들어가니 사람과 토끼는 도망해 버렸다고 한다.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을 건져 주었을 때는 그들이 다윗을 아주 고맙게 생각하였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울왕에게 잡아 주려고 하였다.  인심이란 것은 물과 바람 같아서 방향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민심(여론)을 통하여 무엇을 얻어 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군중 심리란 대세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이다.

사울이 매일 다윗을 찾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다윗의 생명을 해할 수 없었다.  사울은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 하고, 그일라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명의 은인을 잡아 주려고 하여 다윗에게는 의지할 곳도 없고 도와 줄 사람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시므로 안전하였다.  사람은 다 나를 버리고, 온 세상이 나를 버릴지라도 여호와는 나를 영접해 주시고 지켜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만일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이 자기를 배반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블레셋 사람과 싸워서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다윗은 그일라 사람들이 자기를 배반하든지 말든지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는 정신으로 블레셋 사람과 싸워서 그일라 사람을 건져 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망 가운데 빠졌을 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순종한 것이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그일라를 구원한 것은 아니다.  다윗은 아무리 어렵고 위태한 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의 명령만 떨어지면 자기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자기를 배반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관계치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내는 일에 충성을 다하며 나아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원수의 손에서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신 것이다.

 

三. 요나단이 다윗을 마지막 면회함(15-18)

 

. 23:15-18  다윗이 사울의 자기 생명을 찾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황무지 수풀에 있었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거하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왕과 함께 다윗을 잡으러 나왔다.  아버지가 가자고 하므로 요나단이 거역할 수 없어서 따라왔을 것이다.  그러나 요나단은 이 기회에 다윗을 만나 위로해 주려고 아무도 모르게 다윗을 찾아갔다.

요나단이 다윗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에 다윗을 변호하다가 아버지에게 죽을 뻔하였다(20:30-33).  이번에 요나단이 다윗을 만나서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준 것이 사울왕에게 알려지면 사울왕이 당장 죽일 것이다.  또 다윗을 찾아가도 만나기가 힘들 것이다.  다윗의 병사들에게 잘못 발견되면 잡혀 죽을 가능성이 많다.  사울의 군대가 겹겹이 있을 것이고 다윗의 군대가 다윗을 보호하고 있을 것인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요나단이 다윗을 만난다는 것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다.  그래도 요나단이 생명을 내어놓고 다윗을 만나러 다윗이 숨어 있는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요나단이 다윗에게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다.  다윗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며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을 알게 하여 소망을 든든히 가지도록 만들어 주었다.  물론 다윗 자신이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이하여 주시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요나단이 어려운 방문을 하여 격려해 준 것은 다윗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요나단이 가만히 있으면 편안할 것인데 생명이 위태로운 적진에 일부러 들어가서 다윗을 만나려고 하는 것은 믿음을 쓴 것이다.  인정으로 만나려고 한 것이 아니고 환난을 만난 성도를 진정으로 사랑하여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여 모든 환난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게 하려고 찾아간 것이다.

믿음을 쓰는 일은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이다.  적극성을 갖고 적진에 들어가는 것이고 위태한 가운데서도 생명을 내어놓고 사명을 위하여 나가는 것이 믿음을 쓰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쉽게 편안하게 믿겠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아무리 위험한 곳에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가는 것이고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가는 것이 믿음이다.  쉬운 것, 좋은 것, 편안한 것, 잘되는 것, 환영받는 것만 골라서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자기의 연약한 것이나 원수가 너무 강한 것을 겁내지 말고 그저 하나님의 명령만 좇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이면 될 것을 확신하고 적극적으로 나가는 것이 산 신앙이다.  그렇게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고 도와주신다.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사울이 앞으로 요나단을 왕으로 세우려 하고 현 정세로 보아서 부친이 죽으면 틀림없이 요나단이 왕이 될 처지이지만, 요나단이 다윗에게\"네가 왕이 될 것이라\"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다.  요나단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을 알고, 자신이 왕이 되는 것보다 다윗이 왕이 되어야 원수를 잘 물리치고 이스라엘이 견고하게 되고 발전할 것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자기가 잘난 줄만 알고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이 보통인데 요나단은 자기의 역량을 알고 그 역량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교회에는 금 그릇도 있고 은 그릇, 나무 그릇, 질그릇도 있다.  자격이 변변치 않은 사람이 자기 역량은 생각지 않고 자꾸 큰 것을 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그릇이 깨끗하면 귀히 쓰신다고 하였지만 나무 그릇이 아무리 깨끗해도 나무 그릇으로 귀한 것이고 금 그릇은 되지 못한다.  요나단이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만한 그릇이고 자신은 그 다음 그릇인 줄 알고 거기에 만족할 줄 알았다.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향해 믿음으로 나가 싸워서 이겼지만 골리앗이 나왔을 때는 나가지 못하였는데 다윗이 나가 이겼다.  다윗은 자기보다 월등한 신앙가요 능력 있는 인물인 줄 깨닫고 요나단은 자기의 자격과 위치를 바로 알고 행동하였다.

다윗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귀히 쓸 그릇인데 지금은 환난을 만나 심히 연약하고 피곤한 상태에 있으므로 도와주려고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간 것이다.  과거에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고 사자와 같이 용맹 있는 사람이었지만 사울에게 쫓겨다니면서 너무 시달려 사기가 죽고 기진 맥진한 상태에 있었으나 요나단이 하나님의 일에 이용당하여 사명을 깨닫고 자기 아버지의 눈을 피해 적진에 들어가서 다윗을 만나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다.  이 요나단의 위로와 격려가 다윗에게 큰 용기와 담력과 소망을 견고하게 해 주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여 끝까지 다윗을 도와주었다.

 

四. 십 거민이 다윗을 고발함(19-20)

 

. 23:19-20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가로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편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붙일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다윗이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어 있는데 십 사람들이 사울 왕에게 나아가서 다윗을 왕의 손에 붙이는 것이 자기들의 의무라고 하면서 왕이 원하실 때에 내려오라고 하였다.  십 사람들이 사울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무죄한 다윗을 죽이도록 사울의 마음을 충동하는 큰 죄를 범한 것이다.

 

五. 사울이 다윗을 탐지하여 보고케 함(21-23)

 

. 23:19-23  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혹이 내게 말하기를 그가 심히 공교히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 은적하였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탐지하고 실상을 내게 회보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천천인 중에서 그를 찾아내리라

사울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처리하고 있다.  자기에게 잘해 주면 복을 받고 자기에게 잘못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다.  십 거민이 다윗의 있는 곳을 사울에게 알려 주었다고 하여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사울은 이렇게 십 사람들을 칭찬해 놓고 자세히 살펴서 다윗의 거처와 본 사람에 대하여 보고하라고 하였다.

 

六. 하나님께서 다윗의 위기를 면케 해주심(24-29)

 

. 23:24-29  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편 마온 황무지 아라바에 있더니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혹이 다윗에게 고하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이에 사울이 다윗 쫑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블레셋 사람을 치러 갔으므로 그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거하니라

다윗이 심한 위기를 당하였다.  꼼짝없이 잡혀 죽을 지경에 처해 있는데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여 건져 주시려고 블레셋 군대를 보내 주셨다.  사울의 사자가 급히 와서 사울에게 블레셋 사람이 침노하였으니 속히 오라는 바람에 사울이 다윗 잡는 것을 그만두고 돌아갔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면 아무리 위태한 가운데서도 문제가 없다.  다윗과 같이 믿음만 잘 지키면 아무리 큰 원수가 나와도 염려 없고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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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사무엘상24장

제 24 장  굴속의 사울과 다윗

 

(대  지)

 

一. 사울이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을 찾으러 감(1-2)

二. 다윗이 굴에서 사울의 옷자락만 벰(3-7)

三. 다윗이 사울왕을 해하지 않음과 자기의 무지함을 변명함(8-15)

四. 사울이 잘못을 고백하고 다윗이 잘될 것을 말함(16-22)

 

(본문강해)

 

一. 사울이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을 찾으러 감(1-2)

 

. 24:1-2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따르다가 돌아오매 혹이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보고를 사울이 듣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려고 들염소 바위로 갔다.  사울왕은 자기의 사위요 또 충성스러운 자기의 신하 다윗을, 자기의 왕위를 빼앗을까보아 잡아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二. 다윗이 굴에서 사울의 옷자락만 벰(3-7)

 

. 24:3-7  길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 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다우시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이것은 낮잠을 자러 들어갔다는 뜻이다.  사울왕은 몸이 피곤하여 잠깐 쉬어가려고 하였던 것 같다.  그 굴 속 깊은 곳에는 이미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들어가 숨어 있었다.  사울왕이 굴에서 깊이 잠든 것을 다윗을 좇는 사람들이 보고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이니이다\"라고 하였다.  지금이 사울을 죽일 기회라는 것이다.  사실 잠자고 있는 사울왕을 죽이기는 아주 쉬운 일이다.

다윗이 자기의 원수가 된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고 사울의 겉옷자락만 가만히 베었다.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지만 겉옷자락만 베고 자기 추종자들에게 \"내 손으로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바라\"고 하였다.  사울이 잠을 깨어 굴 밖으로 나갔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 삼천 명을 데리고 다윗을 찾으러 다니는 중에 있었는데 왜 다윗은 사울을 죽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죽이지 않았는가?  사울을 살려 두면 자기가 언제 붙잡혀 죽게 될는지 모르고, 이 기회에 사울을 죽여 버리면 모든 것이 편안하겠는데 왜 옷자락만 베고 말았을까?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쓰시려고 기름을 부었고 또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쓰실 수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치실 것이고 사람이 할 것은 아니라고 다윗이 믿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왕이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며 사람이 왕을 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이다.

 

三. 다윗이 사울왕을 해하지 않음과 자기의 무죄함을 변명함(8-15)

 

. 24:8-15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가로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사울에게 이르되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옛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쫑음  이니이다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사울왕이 굴에서 나간 뒤에 다윗도 굴에서 나와 사울의 뒤에서 외쳤다. \"내 주 왕이여\" 하고 부르니 사울이 다윗을 돌아볼 때에 다윗은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내가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어찌하여 믿습니까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여 죽일 기회를 주었고 어떤 사람은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고 하였지만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나의 아버지여 그 증거를 보시옵소서 내가 왕의 겉옷 자락만 베고 왕을 죽이지 않았으니 내 손에 악이나 죄가 없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왕은 나를 죽이려고 찾아다니지만 나는 왕에게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시고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실 것이나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다윗은 선악간에 여호와께서 친히 판단하시고 보복해 주실 것을 믿었다.  또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한계를 지켜, 여호와께 기름 부음받은 자는 하나님이 특별히 붙들고 쓰시며 처리하실 것을 믿고 자기가 처리하려고 하지 않았다.

기름 부음받은 자가 하나님께 순종을 잘하면 하나님께서 귀히 쓰는 그릇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므로 사람이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자를 하나님의 종으로 선하게 대하고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하였다.  또 다윗은 사울이 아무리 자기를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친히 예정하신 가운데 자기에게 기름 부으신 약속대로 이루어 주셔서 마침내는 자기가 왕이 될 것을 믿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대로 될 것을 믿으니 죽을까 보아 걱정할 것도 없고 왕이 되지 못할까 하여 걱정할 것도 없다.  다윗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하려 하지 않고 자기가 마땅히 하여야 할 선한 일만 해 나갔다.

하나님께서 악인은 친히 심판하시고, 선한 사람은 사망의 구렁텅이에서라도 능력으로 건져 주신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하나님의 예정된 대로 가거니와 잡아 주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겠다(마26:24).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제사장들이 시기로 잡아 주고 빌라도가 오판을 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지만, 실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못박는데 참여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제게 좋을 만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게 된다.  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대로 왕이 되겠지만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화를 받아 망하게 될 것이다.  선에 대한 보응은 생명과 존귀와 영광이다.  로마서 2:7-8 에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은 신앙으로 원수를 내가 갚으려 하지 말고 오히려 불쌍히 여겨서 선을 행할 수만 있으면 선을 행하여야 우리의 영적 생명이 살고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된다.

또 다윗이 자기를 잡아죽이려는 사울을 \"내 주 왕이여\"하면서 땅에 엎드려 절했고, \"나의 아버지여\" 라고 말한 것을 보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왕을 여전히 왕으로서 또 자기의 장인으로서 존경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자기 위치를 바로 지킨 다윗의 신앙이다.  성도가 인륜 관계를 바로 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잘못된 것이다.  나를 멸시하고 나를 잡아죽이려고 할 때에도 인륜 관계를 바로 해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마땅히 자기가 하여야 할 일을 바로 하여야 한다.

남편이 잘해 줄 때에야 누가 아내의 노릇을 잘못하겠는가?  국난지충신(國難知忠臣), 가빈사현처(家貧思賢妻)라는 말이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에 충신을 알고, 집이 가난할 때에 어진 아내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나라가 평안하고 잘될 때에야 누구나 애국자 노릇을 잘할 수 있다.  그러나 나라가 어려울 때 충신 노릇을 해야 진짜 충신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내의 본분을 잘하여야 현명한 아내가 된다.  자식 노릇하기 어려울 때 자식 노릇을 바로 하고, 아랫사람 노릇하기 어려울 때에 아랫사람 노릇을 바로 해야 자기 구원이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된다.

다윗은 사울왕이 자기를 잡아죽이려고 쫓아다니는 가운데서도 신하의 위치와 자식(사위)의 위치를 여전히 잘 지켜서 사울왕을 존경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신앙의 열매이다.  윗사람이 잘해 줄 때나 잘못해 줄 때나 윗사람을 바로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만 되면 가정 생활이나 사회 생활에 있어서 질서가 있고 화평을 유지할 수 있다.

 

四. 사울이 잘못을 고백하고 다윗이 잘될 것을 말함(16-22)

 

. 24:16-20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가로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권고히 설 것을 아노니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옷자락만 베었다는 말을 듣고 사울왕이 감동이 되어 울고 양심의 고백을 하게 되었다.  사울이 얼마나 크게 감동이 되었는지 울기까지 하였다.  다윗이 끝까지 선으로 악을 이겼기 때문에 사울이 다윗에게 완전히 굴복한 것이다.

사울이 자기가 한 것을 생각할 때에 너무도 기가 막힌데 다윗이 한 것은 너무나 선하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스스로 울면서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해 주고 장차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될 것과 이스라엘 나라가 다윗에 의하여 견고히 서게 될 것도 말해 주었다.

다윗이 원수를 사랑으로 이겼다.  원수를 사랑으로 이김으로써 원수에게서 좋은 것이 나온 것이다.  마귀를 이기면 거기서 많은 유익과 먹을 것이 나온다(삿14:14참조).  다윗이 사랑으로 사울을 이기게 되자 강한 자(사울)에게서 단 것(축복)이 나왔다.

 

. 24:21-22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비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를 위하여 맹세해 달라고 할 때에 맹세를 해 주어야 사울의 마음이 평안하겠으므로 사울이 원하는 대로 다윗이 맹세해 주었다.  사울은 장차 자기 후손이 끊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멸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하였고, 그의 소원대로 다윗이 맹세를 해주었다.  여기서도 다윗이 사울에게 선을 베풀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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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25장

제 25 장  사무엘의 죽음

 

(대  지)

 

一. 사무엘의 죽음(1)

二. 다윗이 나발에게 선물을 구함(2-8)

三. 나발이 다윗을 모욕함(9-11)

四. 다윗이 나발의 집을 해하고자 함과 아비가일이 선물을 가지고 잦아감(12-22)

五. 아비가일이 지혜로 다윗의 보수하려던 것을 막음(23-35)

六.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죽음(36-38)

七. 아비가일이 다윗의 아내가 됨(39-44)

 

(본문강해)

 

一. 사무엘의 죽음(1)

 

. 25:1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애곡하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사무엘은 나이가 많도록 이스라엘의 사사와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다가 늙어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 무리가 그를 애곡하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하였다.  다윗이 바란 광야로 내려갔는데 바란 광야는 유다 남쪽 시내 반도에 있는 넓은 광야이다.

 

二. 다윗이 나발에게 선물을 구함(2-8)

 

. 25:2-8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이요 염소가 일천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 양털을 깍고 있었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사가 악하며 그는 갈멜 족속이었더라 다윗이 광야에 있어서 나발이 자기 양털을 깍는다 함을 들은지라 다윗이 이에 열 소년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이같이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네게 양털 깍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상치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 하였나니 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고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로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바란 광야에 있는 마온이라는 지방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갈멜에서 양치는 업을 하는데 심히 부자여서 양이 삼천이요 염소가 일천이나 되었다.  나발은 마음이 완고하고 행사가 악하였으나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총명하고 아름다웠다.

다윗이 광야에 있는데 나발이 자기 양털을 깎는다 함을 듣고 자기를 따르는 소년 열 사람을 나발에게 보내면서 자기의 이름으 로 문안하고\"우리가 갈멜에 있는 동안에 당신들을 해하지 아니하고 당신들을 잘 지켜 보호해 주었다.  이제 좋은 날에 왔으니 당신의 종들과 당신의 아들 다윗에게 당신의 손에 있는 대로 무엇이든지 도와 주기를 원한다\"고 말하라고 하였다.

 

三. 나발이 다윗을 모욕함(9-11)

 

. 25:9-11  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고하기를 마치매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깍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나발이 다윗의 요구를 들어주지도 않고 다윗의 소년들에게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쳐 온 줄을 다 알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이것은 자기의 물질을 다윗의 소년들에게 줄 수 없다는 말이다.  다윗이 이새의 아들인 것과 사울을 피해 다니는 형편을 알면서도 자기와 이해 관계가 없기 때문에 자기의 물질을 주지 않고 다윗을 모욕하였다.  나발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다.  나발은 어리석은 부자이다.  하나님께서 재산을 많이 주셨는데 그 재산을 가지고 자기는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늘 하면서(36절), 하나님의 사람(다윗)이 무엇을 조금 보내 달라고 부탁할 때에 아무 것도 보내 주지 아니하고 도리어 모욕하였다.  또 자기들의 양떼와 양치는 자들을 보호해 주고 지켜 주었는데도 그 은혜를 몰랐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놓은 하나님의 종이며 과거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생명을 내어놓고 골리앗과 싸웠고 또 많은 블레셋 사람을 물리친 사람이다.  지금은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 육백여 명을 데리고 광야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먹을 것이 없고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기들을 위해 싸워 준 다윗에게 물질로 도와주고 공경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또 앞으로 다윗은 이스라엘 나라를 인도하고 다스려 나갈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므로 다윗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돕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환난을 만나서 생활 문제가 곤란한 가운데 있는데 이때에 나발이 다윗에게 물질을 바쳐서 도와주었더라면 하나님의 일을 돕는 결과가 되고 자신이 더욱 복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는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갈 때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다윗을 도와주었고 나중에 자신도 큰복을 받았다(삼하17:27-29 ; 19:31-39).

나발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자기를 위해서만 쓰고 하나님의 일에는 인색하여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사람에게 바치지 않는 사람이다.  돈을 벌어서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바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아까워하고 십일조를 드릴 때 인색한 마음으로 벌벌 떨면서 드리고 반면에 자기를 위하여는 세상에다가 많이 쌓아 두려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나발이 다윗을 도와주지 않은 것은 사울이 현재 왕이고 세력이 강하며 다윗을 잡아죽이려고 쫓아다니고 다윗은 쫓겨다니는 입장에 있으니 도와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사울의 세력이 당당하니 사울왕의 보호를 받아 자기들이 살아가는 줄만 알고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 않고 다윗을 도와주지 않았다.

 

四. 다윗이 나발의 집을 해하고자 함과 아비가일이 선물을 가지고 찾아감(12-22)

 

. 25:12-22  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이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와서 이 모든 말로 그에게 고하매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결에 있게 하니라 소년 중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사자들을 보내었거늘 주인이 그들을 수욕하였나이다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상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을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잡아 준비한 양 다섯과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을 취하여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에게 이르되 내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 남편 나발에게는 고하지 아니하니라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유벽한 곳으로 좇아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중 한 남자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 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다윗의 소년들이 나발에게 갔다가 돌아와서 보고하는 소리를 듣고 다윗이 노하여 각기 칼을 차게 하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 가량은 소유물을 지키게 하였다.  이것은 다윗이 들에 있을 때 나발의 양떼를 지켜 보호해 주고 나발의 종들을 선대하였는데 나발이 은혜를 모르고 배은 망덕한데 대한 보수(報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나발의 종들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자초지종을 상세하게 말하여 주었다.  즉 \"우리(나발의 종들)가 들에 있어 다윗의 무리와 상종할 동안 그들이 밤낮으로 우리를 도와주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다윗이 오늘 우리 주인(나발)에게 문안하려고 사자들을 보내었는데 주인이 모욕하였고 다윗이 노하여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으니 아비가일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을 알아서 잘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주인은 불량하여 더불어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이므로 과연 일을 잘 처리하였다.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 잡아서 준비한 양 다섯 마리, 볶은 곡식 다섯 세아, 건포도 백 송이, 무화과 뭉치 이백을 나귀들에게 싣고 다윗이 있는 곳을 향해 길을 떠났다.  이때 자기 남편 나발에게는 이 모든 것을 알리지 않았다.

다윗은 이미 나발과 그 온 집을 해하려고 군대를 거느리고 마주 내려오고 있었는데 산 유벽(幽僻)한 곳에서 아비가일과 만나게 되었다.  다윗은 나발이 자기에게 악으로 선을 갚는 것을 분하게 생각하고 나발에게 속한 한 남자도 아침까지 남겨 두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오고 있는 중이었다.

 

五. 아비가일이 지혜로 다윗의 보수하려던 것을 막음(23-35)

 

. 25:23-35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니라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으로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의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사시고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수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여종이 내 주에게 가져온 이 예물로 내 주를 좇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수하셨다든지 함을 인하여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신 때에 원컨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 두지 아니하였으리라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서 절하고 나발이 지은 죄악을 자기에게 돌리고 여종의 말씀을 들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나발 같은 불량한 사람을 개의치 말라고 하면서 나발(미련하다는 뜻)은 그 이름과 같이 미련한 자라고 하였다.

내 주의 손으로 퍼를 흘려 친히 보수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콰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은 아비가일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셔서 모든 대적하는 세력의 손에서 다윗을 건져 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여 원수를 갚아 주실 것이며 나발이 미련하게 다윗을 비방하고 대적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대로 심판하실 줄 믿고 말한 것이다.

아비가일이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는 것이 미련한 일이어서 반드시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을 깨달았다.  마태복음 25:35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란 말씀도,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믿음을 지키는 일 때문에 헐벗고 주리고 나그네 되었을 때 도와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억하여 상급을 베풀어주신다는 뜻이다.  반대로 믿음을 지키는 일 때문에 환난을 만나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성도를 돌보지 않고 훼방한 것은 예수님을 돌보지 않고 훼방한 것이 되며 반드시 그 대가(심판)를 받게 되는 것이다.

아비가일은 나발이 자기 남편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미련하게 행동하여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을 알았고 다윗에게 그대로 말하여 노여움을 풀게 하였다.  아비가일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하였다.  아비가일은 참으로 지혜 있는 말로 다윗을 깨우쳤다.  다윗이 이 말을 들을 때 자기가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사사로운 싸움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시는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친히 원수를 갚아 피를 흘림으로 씻을 수 없는 실수를 범할 뻔한 것을 깊이 회개하였을 것이다.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다윗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시므로 원수들이 해하려고 해도 안전하고, 다윗을 대적하는 무리들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던져버리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나발과 같이 미련한 자의 죄악에 개의치 말고 친히 원수 갚는 일은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대로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때에 다윗이 무죄한 피를 홀렸다든지, 친히 보수하였다든지 함을 인하여 슬퍼할 것도 없고 다윗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을 것이라고 조리 있게 말하였다.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신 때에 훤컨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아비가일이 자기를 낮추어 겸손한 말로 다윗에게 설득력 있게 말한 것이다.  이것을 보면 참으로 아비가일은 지혜 있는 여자이다.  다윗이 홧김에 사람을 죽이려고 떠나서 오는데 아비가일의 이 지혜 있는 말을 듣고 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다.  아비가일이 아니었더라면 다윗이 큰 실수를 범할 뻔하였다.  사람이 홧김에 실수하기가 쉽다.  화가 날 때는 말을 하여도 좋은 말이 안 나오고 전부 가시가 돋쳐서 사람에게 손해를 준다.  홧김에 무엇을 하려고 하면 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화가 날 때는 잠자코 있는 것이 상책이다.  홧김에 나오는 것은 전부가 다 마귀가 시키는 대로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원리 원칙대로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잘못 나가도 자기는 원리 원칙대로 나가야 한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로 해 나가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신다.

아비가일은 일이 위급함을 깨닫고 급히 서둘러 다윗에게 마주 나간 것 또한 지혜 있는 행동이다.  다윗이 나발의 집에 당도한 다음에는 사람 죽이기에 바빠서 말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죽이기 전에 나아가야 한다.

아비가일이 마주 나아갈 때 선물을 많이 가지고 갔다.  선물은 사람의 마음을 너그럽게 한다고 하였다(잠18:16).  다윗이 나발에게 물질을 요구하였는데 바치지 않으므로 화가 났으니 바칠 만한 것을 충분히 가지고 가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자기 남편이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대신 바치러 간 것이다.  남편이 연보를 하지 않으면 부인이 연보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아비가일이 급히 서둘러 마주 나가서 겸손하게 엎드려서 말을 원리 원칙에 맞게 지혜롭게 하였으므로 다윗이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한 것이다.  아비가일은 믿음에서 이러한 지혜와 총명이 나왔다.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다윗이  정신을 바짝 차렸을 것이다.  다윗도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이 말한 대로 해주실 것을 믿긴 믿었지만 홧김에 냉정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나발을 죽이려고 나왔는데,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다윗이 잠에서 깨어나듯 정신을 차리고 아비가일을 보내어 주신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게 되었다.

또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라고 축복해 주었다.  아비가일이 아니었더면 다윗이 피를 홀리고 친히 원수 갚는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너를 보내어 내가 범죄하는 것을 막았다\"고 다윗이 고백하였다.  그리하여 아비가일에게 네 청을 들어주노니 너는 평안히 네 집으로 올라가라고 하였으며 다윗은 나발의 집을 치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六.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죽음(36-38)

 

. 25:36-38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그 집에 배설하고 대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다소간 말하지 아니하다가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가 깬 후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고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아비가일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나발이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배설하고 대취하여 기뻐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비가일이 말하지 않고 가만 두었다가 그 이튿날 아침에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나발이 그 아내의 말을 듣고 크게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다가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죽었다.

아비가일은 신앙과 지혜를 써서 다윗을 설득시켜 자기 남편을 구원하고, 다윗이 피를 흘려 원수를 갚으려는 것도 막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발의 악한 행위를 심판하셔서 몸이 돌과 같이 굳어져 죽게 하셨다.  어리석은 부자는 나발과 같이 된다.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큰 잔치를 배설하여 육신의 쾌락을 누린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한 번 치시면 하루아침에 망하고 만다.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을 바치지 않고 땅에 재물을 쌓아 놓는다 하여도 죽은 뒤에는 쌓아 놓은 재물이 누구의 것이 되며 자기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하나님을 위하여 쓰는 것이 영원히 자기의 것이 되는 것이며 영원한 상급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七. 아비가일이 다윗의 아내가 됨(39-44)

 

. 25:39-43  다윗이 나발의 죽었다 함을 듣고 가로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욕을 신설하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 머리에 돌리셨도다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로 자기 아내를 삼으려고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 다윗의 사환들이 갈멜에 가서 아비가일에게 이르러 그에게 일러 가로되 다윗이 당신을 아내로 삼고자 하여 우리를 당신께 보내더이다 그가 일어나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가로되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사환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하고 급히 일어나사 나귀를 타고 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사자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취하였더니 그들 두 사람이 자기 아내가 되니라  

나발이 죽었다는 소문을 다윗이 듣고 하나님께 찬송하였는데 그 이유는 나발에게 당한 치욕을 하나님께서 친히 갚아 주시고 자신이 원수를 갚는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막아 주신 것을 감사한 것이다.

다윗이 아비가일로 자기 아내를 삼으려고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의 아내로 데려오기로 한 것은 아비가일이 신앙의 사람이고 그의 지혜와 총명이 하나님의 일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육신의 쾌락을 구하여 나발이 죽자마자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은 것이 아니다.  다윗이 육신의 욕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잘되기를 위하는 마음에서 믿음과 지혜가 있는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았다고 보아야 한다.

아비가일의 입장으로서도 다윗의 아내가 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남편(나발)은 죽었어도 남긴 재산이 많으므로 편안히 살 수 있다.  사울을 피해 다니는 다윗을 따라다니려면 얼마나 고생이 많겠는가?  그러나 아비가일도 하나님의 일을 돕는 정신으로 십자가를 지고 다윗을 따라 간 것이다.  그리하여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사환들의 발 씻길 종\"이라고 하면서 따라 나섰다.  다윗의 아내가 되어 호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사환들의 발을 씻기는 일이라도 도와주겠다는 뜻으로 따라간 것이다.

그들 두 사람이 자기 아내가 되니라 구약시대에는 아내를 여럿 얻는 것도 허용한 때였다.

 

. 25:44  사울이 그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

사울이 그의 딸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 이미 주었었는데 다윗이 피해 다니는 동안에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아내로 주었다.  사울은 인륜도 무시하고 하나님의 법도도 불순종하는 악한 일을 자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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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26장

제 26 장  사울이 다윗에게 사과함

 

(대  지)

 

一. 사울이 광야 진 중에서 잠이 듦(1-5)

二. 다윗이 사울의 장과 물병을 가져옴(6-12)

三. 다윗이 아드넬을 책망함(13-16)

四. 다윗을 해하려고 왕을 격동시킨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임(17-20)

五. 사울의 사과와 다윗의 신앙(21-25)

 

(본문강해)

 

一. 사울이 광야 진 중에서 잠이 듦(1-5)

 

. 26:1-5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이르러 가로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사울이 일어나 십 황무지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과 함께 십 황무지로 내려가서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치니라 다윗이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황무지로 들어옴을 깨닫고 이에 탐정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일어나 사울의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대 장관 아브넬의 유하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쳤더라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었는데 십 사람이 그것을 알고 사울왕에게 가서 고발하였다.  그래서 사울이 일어나 삼천 명을 거느리고 십 황무지로 내려가서 광야 앞 하길라 산 길가에 진을 쳤다.  사울이 황무지로 들어온 것을 다윗이 알고 탐정을 보냈는데 탐정이 사울의 진에 이르러 본즉 사울은 진 가운데 누웠고 군대는 사울을 둘러 진치고 있었다.  이것은 날이 저물었고 사울이 대단히 피곤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二. 다윗이 사울의 창과 물병을 가져옴(6-12)

 

. 26:6-12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가로되 누가 나로 더불어 진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아비새가 가로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곁 땅에 꽃혔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흑 죽을 날이 이르거나 흑 전장에 들어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깨든지 이를 보든지 알든지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로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이었더라

다윗이 아히멜렉과 아비새에게 \"누가 나와 함께 사울이 있는 진으로 가겠느냐\"고 물으니, 아비새가 \"내가 가겠습니다.\"하고 용감히 나섰다.  다윗은 아비새를 데리고 밤에 사울의 진에 내려가 보았는데 사울은 진 가운데서 자고 사울의 창은 머리 곁 땅에 꽃혀 있고 물병도 있었고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과 그 군대는 사울왕을 빙 둘러 누워 자고 있었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창으로 사울을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꽃게 허락해 달라고 말하였다.  왕도 자고 왕을 지키는 군대 장관이나 군대들도 깊이 잠들었으므로 창으로 찌르면 사울은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이 단번에 찔러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에게 사울을 죽이지 말라고 하였다.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원수요 자기를 잡아죽이려고 군사를 삼천 명이나 데리고 와서 지금 잠들어 있는 사울왕을 아비새가 단번에 창으로 찔러 죽여서 멸하겠다고 하니 다윗의 말 한 마디만 떨어지면 사울은 죽게 되고 모든 문제가 간단히 해결 될 처지였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만나기도 어렵다.  그러나 다윗이 여기에서 믿음을 썼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은 죄가 된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이용하셨다.  지금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다윗을 잡아죽이려고 쫓아다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세워 놓은 왕이니 사울이 잘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전쟁 마당에 나가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여호와께서 세워 놓으셨으므로 여호와께서 치실 것이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분이 여호와시요 또 사용하신 분도 여호와시니 그를 칠 분도 여호와시다.  사람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이며 또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이므로 사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고 하였다.

깨든지 이를 보든지 알든지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다윗이 사울의 창과 물병만을 가지고 나왔는데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잠을 깨든지, 알든지, 보든지 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군사가 왕을 둘러 진치고 군대 장관과 군사 삼천 명이 자는데 그 중에 한 사람도 깨지 않고 보지도 못하였다.  아마 보초병도 세워 놓았겠지만 여호와께서 그들로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전쟁은 여호와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왔지만 여호와께서 잠들게 만들면 꼼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군사가 많고 용맹이 있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다.  승리는 순전히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다(17:46-47 ; 시33:16-19).  시편 34:7에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라고 했다.  전쟁은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잠들어서 아무 힘도 쓰지 못하게도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잠을 자다가도 원수가 가까이 오면 깨어나서 피하게 만드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6·25사변 때도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공산군에게 부산만 남기고 모두 점령당하였지만 유엔군을 보내어 주셔서 이렇게 회복시켜 주셨다.

성경에도 그런 일이 많이 있다 압살롬이 다윗왕을 쳐 물리치려할 때에 아히도벨이라는 모사가 있었는데 아히도벨은 군사 일만 이천 명을 데리고 그날 밤에 다윗을 습격하자고 하였다(삼하17:1-4).  만일 그때 아히도벨의 말대로 다윗을 습격하였더라면 다윗왕은 꼼짝 못하고 잡혀 죽게 되고 압살롬이 왕 노룻을 하게 될 뻔하였다.  그러나 압살롬이 후새라는 모사에게 물은즉 후새는 아히도벨의 모략이 좋지 않다고 말하였다.  다윗왕은 어려서부터 용사이며 영웅이었고 또 함께 하는 사람도 모두 용사들로서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처럼 격분하여 있을 것이며 왕은 전쟁에 능하기 때문에 지금 굴에나 산에 숨어 있을 것이다.  만일 오늘밤에 이렇게 급히 내려갈 때 다윗왕이 어디 숨어있다가 갑자기 반격을 하게 되면 우리 중 몇 사람이 거꾸러지게 되고 그 소문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면 모든 사람의 마음이 저상(沮喪)하게 되겠으니 천국에 있는 군대를 모집하되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군사를 모아 다윗이 있는 곳을 알아본 후 공격하자고 하였다(삼하17:5-13).

이 두 가지의 의견을 놓고 어느 것을 택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때 압살롬은 후새의 모략을 따라갔다.  그래서 다윗은 위기를 모면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압살롬으로 하여금 아히도벨의 모략을 따르지 않고 후새의 모략을 따르게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시고 압살롬을 미워하셨으므로 그렇게 판단이 비뚤어지게 만드신 것이다.  전쟁은 하나님께 있고 사람에게 있지 않다.  오직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때에 구원을 받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지 않으면 다 망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로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이것은 이들이 육신의 잠뿐만 아니라 심령 상태가 잠자는 것도 가리킨다.  깬다는 것은 정신을 차리고 각성하는 것이다.  사람이 깨지 못하고 잠잘 때에는 살길이 있는 데도 다 버리고 죽을 길로 스스로 들어가게 된다.  믿는 일을 하지 않으면 신앙이 잠들어서 살길을 버리고 죽을 길로 들어가게 된다.  이사야 29:10에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고 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는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바른 길로 가게 하여 주시지만 신앙이 잠들면 육신의 생각으로 기울어 져서 잘못된 길을 옳은 길인 줄 알고 가게 된다.  성도는 언제든지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신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三. 다윗이 아브넬을 책망함(13-16)

 

. 26:13-16  이에 다윗이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산꼭대기에 서니 상거가 멀더라 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가로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지 아니하느냐 아브넬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다윗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중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려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중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 네 행한 이 일이 선치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의 기름 부음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다윗이 아브넬을 책망하였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 장관으로서 기름 부음받은 사울왕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데 왕을 보호하지 않고 잠을 잤으니 마땅히 죽을 자이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책망한 것이다.  

 

四. 다윗을 해하려고 왕을 격동시킨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임(17-20)

 

. 26:17-19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가로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다윗이 가로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또 가로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쫑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 청컨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만일 인자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날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붙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다윗이 아브넬을 책망하는 소리를 사울이 알아듣고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고 물었다.  다윗이 자기 음성이라고 대답하고 어찌하여 종을 쫓으시며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였느냐고 물었다.  또 왕을 격동시켜서 자기를 해하려 하는 자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제물로 받으시기를 원하며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그들은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기 원한다고 하였다.

얼마전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을 때에도 사울이 삼천 명이나 이끌고 다윗을 잡아죽이려고 내려 왔었고 그때 다윗이 죽일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사울의 옷자락만 베고 사울의 생명은 해하지 않았었다(24:1-15).  그것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해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므로 해하지 않았다고 말하였을 때 사울왕은 대단히 잘못하였다고 사과하고 다윗에게 \"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며 이스라엘 나라가 너로 말미암아 견고히 설 것이라\"고 말해 주고 돌아갔다.  그런데 다시 다윗을 죽이러 삼천 명을 거느리고 온 것은,

첫째, 누군가가 다윗이 있는 곳을 사울에게 보고하고 사울왕을 격동시켰기 때문인 것 같다.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어 있는데 왕이 가기만 하면 죽일 수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다시 죽일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둘째, 사울왕이 엔게디 황무지에서 잘못을 뉘우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심령이 바로 서기 위한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자기를 죽일 수 있는 데도 죽이지 않았으므로 일시적인 감동으로 뉘우쳤지만 영에 뿌리를 박은 근본적인 회개를 하지 못했으므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셋째, 사울이 왕의 명예와 권세를 유지하려는 욕심이 아주 강하였기 때문이다.

 

. 26:20  그런즉 청컨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곳에서 이제 나의 피로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산의 메추라기와 같고 벼룩과 같은 자기를 사냥하러 오셨느냐고 하며 자기의 피를 땅에 흐르지 않게 하여 달라고 애원하였다.

다윗은 항상 겸손한 가운데서 의리를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을 아끼고 자기 위치를 잘 지키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믿지 않으면 다윗이 이러한 행동을 하기가 어렵다.

사울이 아무리 자기를 죽이려고 해도 생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자기는 하나님께 기름 부음받은 자이므로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굳게 믿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심판자이시므로 반드시 사울을 심판하실 것을 믿고 있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다윗은 죽을까봐 겁이 날 것도 없고 악한 사울왕을 제 손으로 죽일 필요도 없으며 언제나 자기 위치를 바로 지키고 윗사람을 공경하였다.  다윗의 신앙은 언제나 선으로써 악을 이겨 나가는 신앙이다.

 

五. 사울의 사과와 다윗의 신앙(21-25)

 

. 26:21-25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 되었도다 다윗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은 창을 보소서 한 소년을 보내어 가져가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내 손에 붙이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치 아니 하였음이니이다 오늘날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사울왕이 다윗에게 자기가 범죄하여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하였다고 사과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다윗을 해하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소년을 보내어 왕의 창을 가져가라고 말하면서 여호와께서는 각 사람에게 의와 신실을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니 다윗은 하나님 앞에 의와 신실을 행하였고 왕의 생명을 귀중히 여겨 해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 의와 신실을 갚아 주실 것이며 자기의 생명도 귀중히 여겨서 모든 환난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이다.  다윗은 범사에 어떻게 해서든지 의를 이루고 신실을 행하려는 태도이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죽인다고 해도 신실을 떠날 수가 없고 불리한 환경과 처지에 있어도 의(義)를 잊어버릴 수가 없다.  아무리 위태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언제나 선과 의와 신실을 이루어 나아가는 다윗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겨서 살려 놓으면 내 생명을 존중히 여겨서 환난 날에 건져 주시고, 다른 사람에게 의와 신실을 베풀면 의와 신실로 나에게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람 앞에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고 긍휼을 행치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긍휼 없는 심판을 받는다(약2:13).

우리가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의를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고 선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그쳐서는 안 된다.  선과 의와 신실을 행하면 그대로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  다른 사람이 내게 악을 행할 때에 내가 그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야 하나님께서 내게 선으로 갚아 주신다.  악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자기만 정당하게 나아가면 마침내 선이 이기게 된다.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다윗이 원수 사울왕에게 의와 신실을 행하였기 때문에 사울(원수)에게서 이러한 축복을 받았다.  원수에게서 축복을 받은 것이다.  사울의 이 말 한 마디에 큰 의의가 있다.  아직도 백성의 대부분이 사울왕을 지지(支持)하고 다윗을 지지하는 자는 극소수인데 사울의 입에서 이런 축복이 나온 것은 왕위를 물려준 것과 다름이 없다.

사울이 다윗을 잡아먹으려고 왔지만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삿14:14).  이렇게 믿음으로 나가면 잡아먹으려는 자에게서 반드시 자기의 먹을 것이 나오고 강한 힘으로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온다.  모든 것을 선으로 대하고 의와 신실로 나아가면 이렇게 큰 유익을 얻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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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27장

제 27 장  다윗의 블레셋 망명

 

(대  지)

 

一. 다윗이 블레셋 땅에 망명함(1-7)

二. 다윗이 유다 남방을 침노함(8-9)

三. 다윗의 블레셋 생활(10-12)

 

(본문강해)

 

一. 다윗이 블레셋 땅에 망명함(1-7)

 

. 27:1-7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일어나 함께 있는 육백 인으로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각기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 되었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흑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지방 성읍 중 한 곳을 주어 나로 거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짜 당신과 함께 왕도에 거하리이까 아기스가 그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한 날 수는 일년 넉달이었더라

사울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늘 따라다니기 때문에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다윗에게 들어왔다.  그래서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블레셋 땅에 가서 있으면 사울이 자기를 수색하다가 이스라엘 땅에 없으므로 절망할 것이고 자기 생명은 보존될 것이라고 다윗은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함께 있는 육백 인을 데리고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망명을 하였다.  이렇게 다윗이 블레셋 땅에서 일년 넉 달 동안 망명 생활을 하였는데 이것은 다윗의 일생 동안에 수치될 만한 일이다.

본장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나 믿음을 쓴 것이 별로 없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역사도 없다.  블레셋에서 일년 넉 달을 지낸 것은 다윗의 일생 가운데 흑암을 만난 기간이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 가서 20년 동안 생활한 것과 비슷한 생활이고 나오미가 모압에 가서 살던 생활과 마찬가지이다.  또 동방박사가 동방에서 별을 보고 오다가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별을 잃어버린 것과 비슷한 생활이다.

다윗이 신앙의 용사요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일시적으로 연약성에 빠져서 블레셋 땅에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다.  가드는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이며, 블레셋은 항상 이스라엘을 대적해 온 나라인데 다윗이 가드 왕을 찾아가서 망명을 요청한였다.  전에는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갔다가 아기스가 죽일까 두려워서 미치광이 노릇을 하여 겨우 쫓겨난 일이 있었다(21:10-15).  마옥의 아들 아기스는 전에 그 아기스왕의 후손인 것 같다.  가드 왕은 사울의 대적(다윗)이 망명하겠다 함으로 용납해 준 것이다.

다윗은 두 아내와 육백 인의 부하들을 데리고 사울을 피해 다녔기 때문에 힘이 들고, 또 언제 사울왕이 와서 죽일지 알 수 없으므로 아예 안전지대로 가서 편안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여 블레셋으로 망명을 하게 된 것이다.

다윗이 블레셋에 하나님의 명령 없이 간 것이 잘못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가라 할 때에 가고 오라 할 때에 와야 한다.  다윗이 전에는 하나님께 물어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무슨 일이나 하였다.  다윗이 그일라를 침노한 블레셋 사람을 칠 때에도 하나님께 물어보고 쳤다(23:2-5).  이렇게 하던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할 때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도 없이 간 것이다.  아마 다윗이 기도를 해 보았지만 하나님의 지시가 없었던 모양이다.

전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즉시로 응답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왜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는가?  동방 박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별을 잃어버린 때와 같다.  동방박사가 별을 잃은 것은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진 것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끊어진 것이다.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면 기도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면 먼저 회개하고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믿음에서야 한다.  다윗은 인간의 생각대로 블레셋으로 내려갔다.  즉 인간의 생각과 수단 방법을 쓴 것이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에도 처음에는 다윗이 두려워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다.  또 기름 부음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실 것을 믿고 아무리 위태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을 믿어 담대히 나아갔다.  그런데 다윗이 일시적으로 흑암을 만나 과거의 신앙경험도 다 잊고 믿음을 쓰지 못한 것이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호해 주시고 막아 주시는 것을 한 번 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닌데도 신앙의 잠이 들어서 언젠가는 잡히지 않겠는가 하는 염려 때문에 블레셋으로 망명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고 인간의 생각과 방법을 앞세우면 이렇게 신앙의 길을 떠나게 된다.  사울이 여러 번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셔서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온 것이다.  또 사울이 다시는 해하려 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니(26:21-25) 블레셋 땅으로 가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나아갔어야 옳았다.  과거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믿고 사울이 아무리 죽이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면 죽지 않을 것을 믿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으니 왕이 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죽게 버려두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나아가면서 사울이 죽이러 오면 피해 다닐 수 있는 데까지 피해 다니다가 쫓겨서 국경선까지라도 가고 거기에서도 어쩔 수 없어 블레셋 땅에 가지 않으면 죽게 될 수밖에 없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이면 블레셋 땅으로라도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울이 잡으러 오지도 않는데 미리 인간의 생각으로 추측하여 나아가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주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지켜 주셨으므로 앞으로도 지켜 주실 것을 믿으며 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예정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믿음으로 버티어 나아가야 한다.

인간의 생각대로 행하여 원수의 나라에 망명을 간 것은 이스라엘의 굴욕이며 사울왕이 죽이지 않겠다고 한 것에 대한 불신이다.  원수의 나라에 가서 망명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원수에게 굴복한 것과 같다.  전에는 골리앗을 죽이고 승리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전쟁도 없이 항복한 것이다.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 가드 왕의 수하에 들어가서 가드 왕을 섬기는 자리에 서 있으니 얼마나 굴욕적인 처사인가?

다윗이 블레셋에 일년 넉 달을 머물러 있었다.  일년 넉 달만 참았으면 믿음으로 잘 승리할 수 있었을 터인데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러면 다윗의 권위가 더욱 올라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 것이고 또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영광스럽게 될 뻔하였다.

끝까지 참고, 믿음을 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인도를 바로 받으며 복을 받을 수 있다.

 

二. 다윗이 유다 남방을 침노함(8-9)

 

. 27:8-9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거민이라 다윗이 그 땅을 처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약대와 의복을 취하고 돌아와서 아기스에게 이르매

다윗이 그술 사람, 기르스 사람, 아말렉 사람을 습격하였다.  이들은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다.  유다 남방에는 여러 족속이 있는데 이 족속들은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었다.  다윗이 이들을 치므로써 노략한 물건을 아기스왕에게 선물로 바쳐 아기스왕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다.  참으로 다윗이 굴욕적이고 비굴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三. 다윗의 블레셋 생활(10-12)

 

. 27:10-12  아기스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다윗이 가로되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이니이다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행사가 이러하여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하였으니 그는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하니라

다윗이 유다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을 습격했다고 보고했을 때 아기스왕은 자기들의 적대 관계에 있는 유다인과 겐 사람을 친 줄로 오인(誤認)하고 대단히 좋아했다.  사실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치고서 유다와 겐 사람의 남방이라고 한 것은 아말렉 사람이 유다 남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스는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심히 미워하는 바가 되었으니 영영히 자기의 사역자(종)가 되리라고 만족해하였다.  이방 나라 왕이 다윗을 자기의 사역자로 영영히 부려먹게 되었다고 기뻐하였으니 다윗의 지위가 형편없이 내려갔다.  다윗이 아기스왕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이렇게 보고한 것이다.

성도 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종이 되면 마귀는 아주 기뻐한다.  처음에는 믿음을 잘 지켜 나가던 성도라도 세상에 빠지기만 하면 그때부터 마귀에게 유익을 주게 된다.  성도가 세상에 빠져 자기 육신의 일만 생각하고 나아가면 결국 마귀의 이용물이 되고 만다.

또 마귀는 성도를 자기의 이용물로 삼아 영영히 자기 종(사역자)으로 삼으려고 한다.  다윗이 이렇게 타락된 상태에서 바로 서려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담대히 믿음으로 싸워 이겨야만 된다.  과거의 신앙 경험을 살려서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믿고 나아가면서 진리 운동이 잘되는 길이라면 자기는 어떠한 희생도 달게 받고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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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28장

제 28 장  사울과 신접한 여인

 

(대  지)

 

一. 다윗 블레셋 군대에 참가함(1-2)

二. 사무엘의 죽음과 블레셋 군의 내습(3-5)

三.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감(6-lO)

四.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고 함(11-14)

五. 사울을 블레셋 사람에게 붙이겠다고 함(15-19)

六. 사울이 땅에 엎드러져 고통을 당함(20-25)

 

 (본문강해)

 

一 .다윗이 블레셋 군대에 참가함(1-2)

 

. 28:1-2  그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한 가지로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이 종의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로 영영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군대를 모집하였는데 블레셋 왕 아기스가 다윗과 다윗의 일행도 군대에 함께 참가하도록 명령을 하였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적 블레셋 군대에 가담하게 되어 말할 수 없는 실수를 범하였을 뿐만 아니라 큰 수치를 당하게 되었다.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았으며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으로서 블레셋 군이 이스라엘을 치러 나가는데 거기에 가담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대적이 하나님의 백성을 치는 일에 다윗이 동조하는 것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여기서 다윗은 군대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피난)하여 종과 같은 처지에 있어서 블레셋 왕의 명령을 어기면 당장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할지라도 그 대세(분위기)에 따라 군대에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고자 하여 블레셋 군대에 가담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탄식하시겠는가?  또 장차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이 일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일 것인가?  다윗이 영원히 씻을 수 없는 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다윗이 블레셋에 간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가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이 이스라엘 안에서 피난을 다녔더라면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지켜 주셔서 사울에게 잡히지도 않고 마귀의 시험에 빠져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리에도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에도 하나님이 그렇게 지켜 주셨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에 가서 1년 넉달을 참지 못하고 인간의 생각대로 평안한 곳을 찾아갔다가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인간의 생각대로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점점 마귀의 세력에 얽매이게 된 것이다.

다윗과 같은 용사가 이렇게 된 것을 보면 인간은 다 이렇게 연약하고 불완전하고 실수가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한 사람이 없고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줄 알고, 실수할 슬 있는 사람인 줄 알고 삼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윗은 성자(聖者)이며,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가다가 이렇게 실수하여 마귀에게 걸려들고 수치스러운 자리에 떨어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불쌍히 보시고 또 건져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으로 실수가 있다고 해서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하나님을 순종하려고 하는가 안 하는가를 보신다.  고린도전서 4:2에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중심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려고 하는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려고 하는가를 보신다.  다윗이 일시적으로는 과오가 있었지만 그의 중심은 하나님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왕상14:8)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의 일시적인 실수를 회개시켜 다시 쓰시려고 다윗을 건져내신 것이다.

성도가 연약성에 빠져 한 번 실수하였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셨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일시적으로 실수하였다고 하여 버리시는 것이 아니다.  또 실수하지 않았다고 하여 나는 괜찮다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며 남을 멸시하여서도 안 된다.  다윗이 일시적으로 흑암을 만나 하나님 앞에서 실수하고 잘못된 일이 있었지만 전심으로 하나님을 순종하려는 마음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귀히 보시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것이며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권고하신 것이다.

실수하지 않고 행동이 깨끗하다고 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심이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려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만을 귀히 여기지 않으시고, 조금 부족하여도 성경 말씀을 잘 지키려고 힘쓰고, 기도하는데 전심을 기울이고, 하나님께 충성하려고 하는 그 사람을 귀히 여기며 들어 쓰신다.

 

二. 사무엘의 죽음과 블레셋 군의 내습(3-5)

 

. 28:3-5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애곡하며 그의 본성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쫑아내었었더라 블레셋 사람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쳤더니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하나님의 종으로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충성을 다하였는데 하나님의 정하신 수한(壽限)이 차서 죽으니 백성들이 슬퍼하며 그의 본성(本城) 라마에 장사하였다.

그 후에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와 수넴에 진을 치고 사울은 이스라엘 길보아에 진을 쳤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며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리게 되었다.  어려울 때에 자기를 도와주고 책망도 하던 사무엘이 죽고 없음으로 이 어려운 시국에 상의할 만한 사람도 없고 마음이 초조하여 심히 불안하였던 것이다.

 

三.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감(6-10)

 

. 28:6-10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쌔 그돌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는 사울이 가로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의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사울이 여호와로 그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치 아니하리라

사울이 여호와께 물어보았지만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여 주시지 않으므로 심히 답답한 가운데 빠졌다.  사울은 하나님과의 기도가 막히고 심령이 어두워지고 흑암을 만난 것이다.  아무리 기도하여도 은혜가 안되고 하나님의 감동이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는 정신이 없고 신앙양심을 버렸고,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울은 마귀의 종이 되어 하나님께서 다윗을 귀히 쓰실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다.  다윗은 사울을 하나님께 기름 부음받은 왕이라고 하여 자기가 손을 들어 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는데, 사울은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다윗을 자기가 죽이려고 하였다.  사울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신앙 양심을 쓰지 않으니 그의 심령이 어두워진 것이다.  심령이 어두워지게 되면 더욱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망하는 길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을 순종하고 경외하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는 마음이 사울에게는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심령이 완악해지고 어두워지며 양심이 화인 맞은 것같이 둔해진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고 하나님의 징계만 오게 되는 것이다.  원수(블레셋)가 쳐들어 온 것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방편이다.

사울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위급한 상태에 빠졌는데 하나님께 기도하여도 응답이 없으므로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사무엘을 불러 올리게 하여 사무엘에게 물어보면 응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신접한 여인을 찾아 가는 것은 잘못되었지만 사무엘에게 물어 보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고 사울이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사무엘은 위대한 선지자요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전하여 주었던 선지자였으므로 방편은 잘못되었지만 사무엘을 부를 수만 있다면 그 사무엘에게 물어 보려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것이다.

방편은 잘못되었어도 결과만 좋게 되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방편이 잘못되었으면 아무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여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다.  신접한 것은 벌써 마귀의 역사인데 마귀의 역사 속에서 좋은 결과가 나을 수 없다.  목적은 성경적이라 하여도 그 목적을 이루는 방편이 잘못되었으면 언제나 잘못된 줄 알아야 한다.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통하여 사무엘을 만나려고 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한 것이다.

 

四.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고 함(11-14)

 

. 28:11-14  여인이 가로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사울이 가로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 모양이 어떠하냐 그가 가로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신접한 여인이 누구를 불러 올리면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사울이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일은 방편도 성경적이고 진행 과정도 전부 성경에 맞아야 한다.  성경에서 떠난 방편을 써서 성경에 맞도록 목적을 이루겠다는 것은 마귀의 역사이다.

한 번 인간의 수단을 써서 위기를 모면한 다음 믿는 일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주 잘못이다.  한 번 양심을 속여서 돈을 몇백만 원 벌어 놓고 다음에 믿음을 잘 지켜야겠다든가, 한번 신앙을 양보하여 좋은 직장을 잡고 그 다음부터는 신앙 생활을 잘해야겠다는 것 등은 모두 방편이 신앙적이 아니므로 잘못 된 것이다.  주일날 한 번만 시험을 보아서 학교에나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주일을 철저하게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그만두어야 한다.

목사들에게도 그러한 시험이 많다.  우선, 교인을 모으기 위하여 처음에 여러 가지 인본주의 수단을 써서 교인을 많이 모아 놓고 그 다음에 성경을 잘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처음부터 성경적으로 하면 교인이 잘 모이지 않고, 연보도 적게 나오고, 목사의 생활도 곤란하게 되니 인간의 수단을 써서라도 우선 교인을 많이 모아 놓고 나서 그 다음부터 성경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인본주의로 모아 놓은 사람을 성경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면 따라오지 않고 대부분 탈선되어 나간다.  사람을 잡고자 하는 자는 그 사람에게 자기가 잡힌다.  수단을 써서 교인을 모아 놓고 자기(교역자)가 잡은 줄로 알지만 언젠가는 교인들에게 자기(교역자)가 잡히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있어서 동기나 방편이나 결과를 다 성경에 맞도록 해 나아가야 한다.

한 노인이 올라 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이것은 사무엘이 아니고 마귀가 사무엘의 탈을 쓰고 나온 것이다.  사무엘이 무당의 말을 듣고 오겠는가?  또 사무엘이 죽었는데 죽은 사람이 올 수 있는가?  사무엘이 죽은 다음에는 영혼이 천국에 가있어 예수님의 재림 때에나 올 것이고 그 전에는 오지 못한다.

한번 천국에 간 사람은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다.  사울이 진리를 확실하게 붙들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귀를 사무엘로 알고 마귀에게 절을 한 것이다.  진리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면 마귀를 섬기고 마귀에게 절하게 되는 줄 알아야 한다.

 

五. 사울을 블레셋 사람에게 붙이겠다고 함(15-19)

 

. 28:15-19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군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 순종치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께서 오늘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라

마귀가 사무엘의 탈을 쓰고 나와서 제법 사무엘의 흉내를 잘 내고 있다.  마귀가 사무엘 노릇을 하려니까 꼭 사무엘과 같이 사울을 책망하였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사울과 이스라엘을 내일 블레셋 군대에게 붙이겠다고 하였다.  마귀에게 걸려들었으므로 마귀가 치는 것이다.

마귀에게 한 번 걸려들면 가만히 놓아두지 않고 몰아친다.  아담과 하와도 동산 나무의 실과를 하나님께서 참으로 먹지 말라고 하더냐고 뱀이 물어볼 때 하와가 정신을 차리지 않고 방심 부주의하게 되니(창3:2-4) 마귀는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과 같이 눈이 밝아진다고 하였다.  마귀의 독이 하와에게 들어가서 마침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 항상 깨어 있어 정신을 똑바로 차려 마귀의 역사를 경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아가야 한다.  마귀는 성도를 하나님과 이간 붙이고 하나님의 종과도 이간을 붙인다.  목자와 양떼 사이를 이간 붙여 놓으면 양이 목자에게서 흩어지고 이리가 양을 잡아먹기가 쉽기 때문이다.

당나귀를 이용하여 발람을 책망하신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이용하여 사울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알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할 때면 나귀도 이용하시고 닭도 이용하시고 마귀도 이용하신다.

사울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은 비참한 것이었다.  사울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멜렉에게 쏟지 않았기 때문에 왕권을 빼앗아 다윗에게 주고 이스라엘과 사울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여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내일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 왔으므로 이렇게 비참한 심판의 경고를 듣게 된 것이다.

 

六. 사울이 땅에 엎드러져 고통을 당함(20-25)

 

. 28:20-25  사울이 갑자기 땅에 온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을 인하여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 기력이 진하였으니 이는 그가 종일 종야에 식물을 먹지 못하였음이라 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심히 고통함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왕이 내게 이르신 말씀을 청종하였사오니 그런즉 청컨대 이제 여종의 말을 들으사 나로 왕의 앞에 한 조각 떡을 드리게 하시고 왕은 잡수시고 길 가실 때에 기력을 얻으소서 사울이 거절하여 가로되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라 그 신하들과 여인이 강권하매 그 말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으니라 여인의 집에 살진 송아지가 있으므로 그것을 급히 잡고 가루를 취하여 뭉쳐 무교병을 만들고 구워서 사울의 앞에와 그 신하들의 앞에 드리니 그들이 먹고 일어나서 그 밤에 가니라

사울이 심히 위태한 가운데 빠져서 두렵고 답답하여 한가닥 소망을 가지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 왔고, 그 여자에게 부탁을 하여 사무엘(실상은 마귀)을 불러 올려서 말을 들었지만 그 결과는 말할 수 없이 비참한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사울은 심히 두렵고 기력이 다 떨어져 땅에 거꾸러졌다.  참으로 비참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보고 신접한 여자가 왕을 불쌍히 여겨 떡을 좀 드시고 기력을 얻으라고 권하였으나 처음에는 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여자와 신하들이 강권하므로 일어나 침상에 앉아서 급히 잡은 살진 송아지와 무교병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사울과 그 신하들이 그 밤에 쓸쓸히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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