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열왕기하 강해

 

기록한 사람 : 예레미야

기록한 연대 : 주전 560-540년

 

제 1 장   엘리야와 오십부장

 

(대  지)

 

一. 아하시야가 병들매 이방신에게 물으러 사자를 보냄(1-2)

二. 엘리야가 아하시야의 사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함(3-8)

三. 삼 인의 오십부장이 엘리야에게 감(9-15上)

四. 엘리야가 아하시야를 만나 책망함(15下-16)

五. 아하시야가 죽고 여호람이 왕이 됨(17-18)

 

(본문강해)

 

一. 아하시야가 병들매 이방신에게 물으러 사자를 보냄(1-2)

 

. 1:1-2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매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했다. 나라가 약해지면 속국들이 배반하는 법이다.

아하시야왕이 다락 난간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병이 들었다.  신명기 22:8에 \"네가 새 집을 건축할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고 했는데, 아하시야는 조심하지 않다가 떨어져 병이 들었다.  아하시야가 모압은 배반했고 자신의 몸은 병들었으므로 참으로 곤궁에 빠졌다. 이럴 때에는 하나님께 회개하며 기도해야 할 터인데, 아하시야는 사자를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보내며 자기 병이 낫겠는지 물어 보라고 했다.

\"에그론\"은  블레셋의 한 도시이고, \"바알세붑\"은 에그론 성읍에서 블레셋 족속이 섬기는 신이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이방신 즉 마귀에게 묻는 것은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일이다.  역대상 10:13에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라고 했다.  또 이사야 2:6에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같이 술책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고 했다.

하나님께 물어 볼 때에 하나님께서 답변해 주지 않아도 이방신에게 가면 안 된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려고 할 때 일이 잘 안 되어도 사람의 방법이나 세상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물어도 응답이 없으면 또 물어 보고 그래도 응답이 없으면 응답 받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

 

二. 엘리야가 아하시야의 사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함(3-8)

 

. 1:3-4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엘리야가 이방신에게 물으러 가는 왕의 사자들을 만나서 책망하고 왕이 그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으리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  사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에게 돌아가서 엘리야의 말 그대로 보고했다.  왕의 명령을 행하러 가다가 도중에 엘리야의 말을 듣고 돌아간 것을 보면 엘리야가 얼마나 권위가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 1:5-8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저희가 고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고한 그 사람의 모양이 어떠하더냐 저희가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더이다 왕이 가로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사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에게 돌아와서 엘리야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보고했다. 아하시야왕은 사자들의 보고를 듣고 그 말한 사람의 모양을 물으니 털이 많은 사람이며 허리에 가죽띠를 띤 사람이라고 대답할 때, 왕이 그 사람이 엘리야인 줄 깨달았다.  엘리야는 털이 많은 사람이며 또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다녔다.  엘리야는 산과 광야에서 살았으므로 옷을 갈아 입을 처지가 못되므로 광야 생활, 산중 생활하는 데에는 제일 편리하고 실용적인 털옷을 입은 것이다.  털옷은 아무데나 가서 기도하기에 편리하고 밤에 잘 때는 그대로 입고 누워 자면 요와 이불 역할을 하는 옷이다.

 

三. 삼 인의 오십부장이 엘리야에게 감(9-15上)

 

. 1:9-10  이에 오십부장과 그 오십 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저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서 본즉 산꼭대기에 앉았는지라 저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 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 인을 살랐더라

왕이 하나님의 징벌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엘리야를 잡아오라고 오십부장과 그 부하 오십 인을 보냈다.  그때 엘리야가 기도하므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오십부장과 거느리고 간 오십 인을 불살랐다.

산꼭대기에  앉았는지라 엘리야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곳에 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로 가라 하면 그 곳으로 가고, 사르밧 과부집으로 가라 하면 그 곳으로 가고, 갈멜 산으로 가라 하면 갈멜산으로 갔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오십부장 이 왕의 명령을 받고 엘리야를 잡으러 왔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체포하러 온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다.  그들은 왕의 명령만 중한 줄 알고, 왕만 두려워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은 멸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줄 알지 못하고 또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직접 쓰시는 줄도 알지 못하면서 형식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이여\"하고 엘리야를 불렀다.  그들은 하나님을 왕만큼도 대우하지 않았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엘리야는 그들이 아는 그런 형식적인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참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참 하나님의 사람을 잡아가려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불은 심판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종을 잡고 하나님의 일에 손해 주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

 

. 1:11-12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 오십 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저가 엘리야에게 일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엘리야가 저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 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 인을 살랐더라

왕이 두 번째 오십부장과 오십 인을 보냈는데 그들도 전번 오십부장과 오십 인과 같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체포하려다가 불 심판을 받아서 죽었다.

 

. 1:13-15上  왕이 세 번째 오십부장과 그 오십 인을 보낸지라 세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 이르러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 오십 인들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저를 두려워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왕이 세 번째로 또 오십부장과 오십 인을 보냈다.  이 오십부장 은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두려운 하나님으로 알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능력으로 사용하는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며 그 앞에 꿇어 엎드려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하고 정중히 간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귀히 보시고  엘리야에게 그들과 같이 가라고 하셨다(15절).  그들은 엘리야의 생명을 해하지 않겠기 때문이다.  그들은 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자요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더 두려워하는 자이므로 엘리야가 같이 가서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해도 엘리야가 안전할 것이다.

 

四. 엘리야가 아하시야를 만나 책망함(15下-16)

 

. 1:15下-16  엘리야가 곧 일어나 저와 함께 내려와서 왕에게 이르러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없음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엘리야가 오십 인과 오십부장의 호위를 받으면서 왕 앞에 갔다.  엘리야를 잡으러 온 군대가 이제는 엘리야를 보호해 주는 군대가 되었다.  엘리야가 왕 앞에 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간 것을 책망하고 그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는다고 전했다.  그때 왕이 엘리야를 처형할 마음이 있었을 것이나 엘리야를 데리고 온 오십부장과 오십 인이 엘리야를 호위하고 있으므로 엘리야를 잡으라는 명령을 못했을 것이다.  전에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할 때는 엘리야가 도망쳐서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기도하였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담대히 왕을 면책하고 심판을 예고했다.

 

五. 아하시야가 죽고 여호람이 왕이 됨(17-18)

 

. 1:17-18  왕이 엘리야의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저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제 이 년이었더라 아하시야의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하시야가 아들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동생인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  여호람은 아합의 아들이다(3:1).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해는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제 이 년\"이라고 했다.  3:1에는 \"유다 왕 여호사밧의 십 팔 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라고 했다. 그러나 두 절이 모순되지 않는 이유는 유다 왕 여호람은 그 부왕(父王)이 살아 있을 때, 즉 여호사밧 16년부터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 2 장   승천(昇天)

 

(대  지)

 

一.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감(1-8)

二.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함(9-10)

三. 엘리야가 승천함(11)

四.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취함(12-14)

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를 찾아봄(15-18)

六. 좋지 못한 물을 좋은 물로 만듬(19-22)

七. 엘리사를 조롱하던 아이들 42명이 죽음(23-25)

 

(본문강해)

 

一.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감(1-8)

 

. 2:1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산 채로 하늘로 데려 가시려고 그 일을 엘리야에게 알게 해 주셨고,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알게 해주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하늘 나라에 데려 가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① 모든 성도들을 장차 다 부활시켜서 하늘로 데려 갈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함이요, ② 성도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함이다.  아담의 칠대손 에녹도 죽지 아니하고 산 채로 승천하였다(창5:24 ; 히11:5).

 

. 2: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떠나 벧엘로 갔다.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길갈에 머물라고 했다.  이것은 엘리야가 엘리사를 억지로 떼어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권유(勸誘)이다.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결심하고 나선 것이다.  엘리사의 영감(靈感)받은 비결은 끝까지 선생을 따라간데 있다.

이것은 가나안 여인과 같은 신앙이다(마15:22-28).  가나안 여인은 자기 딸이 귀신들렸으므로 예수님께 가서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하였다.  그때 예수님이 대답도 하지 않고 길을 갔다.  그래도 그 여자는 예수님을 따라가며 부르짖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하며 이방 사람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말했다.  그래도 그 여인은 예수님을 따라갔다. 세 번째에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여 개와 같은 너희에게 줄 수 없다는 뜻으로 말했으나, 그 여인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고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으려고 애쓰며 끝까지 따라갔다.  그때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딸이 나았다.  엘리사도 그런 신앙이다.  따라오지 말라는 권유를 몇 번 받았고 여러 선지자의 생도들이 따라가지 말라고 하였으나 끝까지 고난을 당하며 따라갔다.

 

. 2: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선지자의 생도는 오늘날 신학생과 같이 선지자 수업을 받으며 하나님의 일꾼으로 훈련받는 자들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도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데려가실 줄을 알았다.  그들은 엘리사가 그 선생을 따라가는 것을 만류(挽留)했다.  그들은 멀리서 바라만 보는 자들이고 직접 따라가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까지 따라가는 신앙이므로 그 생도들의 만류를 거절하고 엘리야를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 2:4-6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벧엘에서도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거기에 머물라고 했으나 엘리사는 여전히 선생을 떠나지 않고 따라가겠다고 하였다.  이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여리고로 갔다.  엘리야가 거기에서 또 엘리사에게 머물라고 했으나 엘리사는 거기서도 선생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도 벧엘에 있는 생도들과 같이 말하며 엘리사를 만류하였으나 엘리사는 그들의 말을 물리치고 끝까지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그 곳을 떠나 요단으로 갔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여러 번 머물라고 한 목적은,

① 엘리사가 얼마나 갈급해 하며 얼마나 사모하는지 시험한 것이다.  그 때에 엘리사의 사모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은혜와 영감을 많이 받고자 하는 마음이 나타났다.

② 자기 제자 엘리사로 하여금 더욱더 사모하고 갈망하게 하여 갑절의 영감을 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길갈에서, 벧엘로, 여리고로, 요단 들로 옮겨가면서 머물라고 한 것이다.  엘리야가 가는 길이 엘리사가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따라가야만 되는 길이다.  그러므로 엘리사에게 은혜를 더 많이 주어 하나님의  일을 계승시키려고 이렇게 한 것이다.  그 때에 엘리사는 모든 시험을 이기고 끝까지 선생을 따라갔으므로 그 목적을 이룬 것이다.

 

. 2:7-8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 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섰더니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두 사람이 요단 강가에 가서 엘리야가 겉옷을 벗어서 강물을 치니 그 물이 이리저리 갈라져서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 강을 육지같이 건너갔다.  여기서 엘리야의 능력이 크게 나타난 것이다.

 

二.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함(9-10)

 

. 2: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엘리사에게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고 하였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제자로서 자기 선생보다 영감(靈感)을 갑절이나 더 구한 것은 너무 교만한 것같이 보이나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① 갑절은 기업 나눌 때에 장자에게 돌아오는 몫으로(신21:17), 엘리야의 하던 사역을 장자와 같이 이어 받으려는 뜻에서 나온 간구이기 때문이다.

② 엘리사 시대는 엘리야 시대보다 더 악하므로 갑절의 영감을 가지지 않고는 선생이 해놓은 일을 계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면, 즉 엘리야가 하던 구원 운동을 계승해 나가려면 갑절의 영감이 있어야만 해 나갈 수가 있다.  엘리사는 엘리야 보다는 부족하기 때문에 엘리야만한 영감 가지고는 그 일을 계승할 수가 없다.  엘리사는 엘리야보다 나이도 어리고 또 인격이나 실력이나 경험도 부족하고 연조도 부족하다. 모든 면에 부족한 자기가 선생님의 하던 일을 계승하려면 선생님보다 갑절의 영감이 있어야만 계승해 나갈 수 있다.

또한 엘리야 때의 일보다 그 후대의 일은 점점 큰일이 이루어져 나가겠기 때문에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한 것이다.  요한복음 14:12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집을 짓는 일 중에서 기초 공사를 해 놓으신 것이고, 제자들이 할 일은 예수님이 닦아 놓은 터 위에 영적 성전을 건축해 나가는 일이다.  터 닦는 일도 중요하지만 집 짓는 것은 더 큰일이라고 볼 수 있다. 엘리야가 해 놓은 터 위에 엘리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야 할 것이므로 더 큰 영감이 필요하였다. 가면 갈수록 세대는 악해져 가고 대적은 커 간다.  즉 악한 자는 점점 더 악을 행하고 의로운 자는 점점 더 의로워진다(단12:10 ; 계22:11).

오늘날 말세가 되어 죄악이 점점 커지고 그 악의 상태가 점점 극악해진다.  거기에 따라 이제는 성도들도 점점 악을 이길 만한 영권과 진리가 있어야 된다.  갑절의 영감은 꼭 배(倍)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좀더 많은 영감을 가리킨다.  엘리사는 이미 그 선생을 통해서 세미한 음성, 즉 신령한 진리를 다 받았다(왕상 19:12).  엘리야는 하나님의 신령한 세미한 음성을 듣고 엘리사에게 그것을 다 가르쳐서 엘리사로 하여금 참 교회를 세워 나가게 하였다.  그 말씀과 사명을 받은 엘리사는 이제 그 일이 너무 크고 그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영권이 가장 필요했다.  

엘리사는 참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영감을 겸하여야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영감을 구한 것이다.  말씀만 있어도 안 되고 영감만 있어도 안 된다.  모세도 애굽에서 40년 공부하고 많이 배웠지만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일을 하려다가 사람만 죽이고 실패했다. 그후 미디안 40년 동안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모세는 배운 진리와 영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냈다.  사도 바울도 과거에 가말리엘 문하에서 많은 성경을 배웠으나 회개 후 아라비아 사막에 가서 3년 동안 진리를 연구하며 깊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전할 때 능력으로 전했다(살전1:5). 이 복음은 말로 전파되고 능력으로 전파되었고 성령으로 전파가 되었다.  그러므로 영감이 없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은 병행해야 한다.  이것은 열차의 두 레일과 같다.

 

. 2: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갑절의 영감을 받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나 여호와께서 엘리야 를 하늘로 취하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면 가능하다.

 

三. 엘리야가 승천함(11)

 

. 2: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불수레와 불말 이것은 천군 천사의 출동을 상징한다.  6:17에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고 했다.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야를 하늘로 끌어올린 회리바람은 신령한 바람이다. 예수 그리스도 재림시에 모든 성도가 구름을 타고 올라 갈 것인데, 그 구름도 신령한 구름이다.  이것을 영광의 구름이라고 했다(마17:5).

엘리사가 엘리야의 승천하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아야만 영감을 받게 된다.  회리바람을 타고 올라가는 엘리야를 끝까지 바라보는데는 난관이 많다.  하늘이 맑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바라보기가  쉽겠으나 회리바람으로 인하여 자기 몸도 잘 가누지 못할 형편이고 또 회리바람이 엘리야를 이리 저리로 날리며 올라가는데, 그 엘리야를 따라 다니며 바라보는 것은, 베드로가 바다 위로 걸어오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큰바람과 물결이 치는 것을 이기며 걸어가는 것과 같다.

엘리야가  끝까지 바라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①  사모하라는 것이다. ②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 당시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영감을 주시기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엘리야를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다.  엘리사가 큰바람이 불어도 무서워하지 않고 엘리야만 사모하고 그 명령을 지켜 끝까지 따라갔다.

 

四.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취함(12-14)

 

. 2:12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지켜주는 병거와 마병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지켜 주었는데 이제 그가 승천하면 누가 이스라엘을 지키겠는가 !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받으려는 것은 자기 개인을 위한 것이나 자기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요 오직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 신앙이다(마6:33),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이것은 옛사람을 찢고 벗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엘리야의 겉옷을 취하기 전에 먼저 자기 옷을 찢어버려야 한다.  제 생각, 제 뜻, 욕심, 이기주의, 모든 부패성을 찢어 버리고 하나님과 엘리야에게로부터 오는 능력의 옷을 받아 입어야 한다.  자기 것을 찢지 않고는 그 능력의 옷을 입을 수 없다.

 

. 2: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사는 자기 선생 엘리야가 승천하여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올라갔어도 낙망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마침내 엘리야의 겉옷이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엘리사는 회리바람에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그 겉옷을 일심 전력을 다 기울여서 바라보며 그 떨어지는 곳까지 따라가서 마침내 그 능력의 겉옷을 주어 가지고 왔다.  이것이 능력을 받는 법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사모하고, 영감(靈感)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힘써 예수님을 바라보며, 환난과 핍박이 많고 난관이 많아도 끝까지 따라가면 하나님의 능력의 옷을 받게 된다.

 

. 2: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사가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요단 언덕에 돌아와 서서 그 겉옷으로 요단 강물을 쳐서 강물을 가르고 마른땅으로 건넜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어디 계시니이까\"하는 말은 \"여기 계시지 않습니까\"하는 말이다.  이것은 첫째,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여기 계신 줄로 믿습니다\",  둘째, \"내가 지금 엘리야에게 있던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나갑니다\", 셋째, \"엘리야의 영감이 갑절이 온 것을 믿습니다\", 넷째, \"이제 역사해 주시옵소서\"하는 말이다.  이런 신앙으로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니 요단 강물이 이리저리 갈라져 육지가 되어 건넜다.

 

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를 찾아봄(15-18)

 

. 2: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맞은편에서 바라보던 선지자의 생도들은 전에 엘리사가 따라가는 것을 반대하던 사람들이었으나 이제 엘리사가 요단 강물을 가르는 것을 보고는 엘리야의 영감이 그에게 온 것을 알고 엘리사를 영접하며 그 앞에 엎드렸다.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믿으며 걸어 갈 때에 비방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에 그들이 와서 엎드려 절하게 된다.  요한계시록 3:9에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고 했다.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믿고 걸어 나가면 언젠가는 반대하고 핍박하던 자들도 \"당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다\"라고 할 때가 온다.

 

. 2:16-17  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오십 인이 있으니 청컨대 저희로 가서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저희가 오십 인을 보내었더니 사흘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엘리사에게 나와서 엘리야를 찾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 이유는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올라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떨어졌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찾아 볼 것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생을 하늘 나라로 데려 가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지자의 생도들은 ① 엘리야가 바람을 타고 올라간 것만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  ②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다.  하나님의 능력은 넉넉히 엘리야를 하늘 나라로 올려 갈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무리가 엘리사가 부끄러워하도록 까지 사람을 보내자고 강청하므로 엘리사가 보내라고 했다.  엘리사가 억지로 막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믿음으로 나가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억지로 하지 않기 위함이요 그들이 가보아야만 엘리야가 하늘로 올려간 것을 믿겠기 때문이다.  발람 선지자가 모압 사신이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했다.  그 다음에 모압 사신들이 더 많은 뇌물을 가지고 와서 가자고 할 때 갈 마음이 생겨서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가라고 했다.  이는 억지로 막아야 소용이 없겠기 때문이다.

 

. 2:18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선지자의 생도들이 사방으로 다니며 엘리야를 찾다가 못 찾고 부끄러움으로 돌아왔다.  사람의 생각으로만 판단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과 그의 능력을 보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고 하나님 앞에 책망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고,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은 영영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한다.

 

六. 좋지 못한 물을 좋은 물로 만듦(19-22)

 

. 2:19-22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여리고 성읍의 땅은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여 떨어지고 농사가 안되었다. 그것을 안 엘리사는 그 일을 위해 기도한 것 같다.  그때 하나님께서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셨다.  그 내용은 그릇에 소금을 담아다가 물 근원에 던지라는 것이다.  엘리사가 하나님 말씀대로 소금을 물에 던지매 그 물이 좋은 물로 변했다.

새 그릇 로마서 7:6에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했다.  새것은 영(靈)의 역사(役事)이다.

소금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리킨다(민18:19 ; 대하13:5).  그러므로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영으로써 받아들여 영적 생명으로 삼은 것을 가리킨다.

근원에 부은 것은 말씀을 영적 생명의 근원으로 삼는 것을 가리킨다.  그때 생명의 역사가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심령이 새로운 생명으로 받아 가지지 못할 때는 신앙의 열매가 결실하지 못한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면 행복이 없고 늘 실패만 한다.  외부적으로 보기에는 그 땅이 아름답고 좋아 보이고 실지 속에 들어가 살려고 하면 살 수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을 영적 생명으로 삼아 나아갈 때에, 열매가 익지 못하고 떨어지던 곳이 열매를 잘 맺는 곳이 되며 황무지가 소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 자기 심령에 만족이 되고 기쁨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주위 환경이 토산이 떨어지고 열매가 없고 사망의 골짜기 같을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역사하면 토산이 잘 결실하는 좋은 곳이 된다.  예수님을 모시지 못한 곳은 겉은 아름답게 보이나 실제는 근심과 고통이 많고 기쁘고 즐거운 열매가 없다.  거기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그대로 한 걸음씩 순종하여 나가면 생명이 소생하고 기쁘고 즐거운 열매가 맺히는 낙원이 된다.

 

七. 엘리사를 조롱하던 아이들 42명이 죽음(23-25)

 

. 2:23-24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 명을 찢었더라

엘리사가 벧엘에 올라갈 때 젊은 아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그를 조롱했다.  엘리사는 머리가 벗어져서 머리 뒷부분이나 앞부분에 머리털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을 근거로 엘리사를 멸시하며 배척한 것이다.  이때 엘리사가 그 아이들을 저주하니 암콤 둘이 나와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였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죽을 사람도 살려야 하겠는데, 아이들이 대머리라고 조롱했다고 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많은 아이들을 죽게 한 것은 잘못된 일인가?  그것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저주한 것이므로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벧엘은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기는 곳이다.  그것을 엘리야가 책망하고 또 엘리사도 책망했다.  금송아지 섬기는 것을 자주 틀렸다고 하니까 벧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싫어했다.  우리나라 속리산 지역은 불교의 세력이 강한 곳으로서 그 곳에 하나님의 교회를 지으면 헐어 치운다고 한다.  3절에 보면 벧엘에도 선지자의 생도가 있기는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 것 같다.  벧엘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엘리야나 엘리사를 좋아하지 않고 배척하였다.  그러므로 아이들도 이를 본받아 하나님의 사람을 비방하고 배척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가서 살리려고 하는데 벧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하고 비방하고 배척하였으므로 그 동네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한 것이며 또 하나님이 저주하라고 했기 때문에 한 것이다.  그 저주를 받아서 아이들 42명이 죽었다.  하나님의 종을 어른들이 비방하고, 배척하고, 무시하면 아이들도 그 본을 받고 어른보다 아이들이 먼저 망한다.

하나님의 종을 존경하고 영접하는 자가 복이 있다.  마태복음 10:41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했다.  어른들이 하나님의 종을 존경하면 아이들이 그것을 배우고 존경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을 비방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그것을 배우고 배척한다.  부모가 하나님의 종을 무시하고 비방하면 그 자녀들은 더욱 악화된다.  왜냐하면 부모는 하나님의 종이 잘하는 면을 알면서 잘못한 면만 비방하지만, 아이들은 그 비방하는 것만 듣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이 다 잘못된 줄 알고 거역하며 악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신앙이 타락되고 더 심한 징계와 저주를 받게 된다.

 

. 2:25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엘리사가 벧엘에서 갈멜산으로 갔다가 갈멜산에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다.  갈멜산은 그의 기도처요, 사마리아도 사역(使役) 근거지이다.  엘리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겸하여 하였다.

 

제 3 장   엘리사와 세 왕

 

(대  지)

 

一. 여호람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바알을 제거함(1-3)

二.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함(4-5)

三. 세 왕이 모압을 치러 출전함(6-9)

四. 세 왕이 엘리사에게 가서 물어봄(10-19)

五. 세 왕이 엘리사의 예언대로 모압을 쳐서 이김(20-27)

 

(본문강해)

 

一. 여호람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바알을 제거함(1-3)

 

. 3:1  유다 왕 여호사밧의 십 팔 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이 년을 치리하니라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2년 동안 치리하다가(왕상22:51) 아들이 없이 죽으매(1:17) 아합의 아들 중 여호람이 왕이 되어 12년을 다스렸다.

 

. 3:2-3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저가 그 아비의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음이라 그러나 저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아합이 바알신을 많이 만들어 놓았는데 그 아들 여호람이 바알신을 제거하였다.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우상을 아들이 제거하는 일이 많이 있다.  여호람이 이와 같이 좋은 일을 하였으나 그도 여로보암의 죄에서는 떠나지 못했다.  여로보암의 죄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절기를 고치고, 레위 사람 아닌 보통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다(10:29).

이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북 이스라엘의 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이 옳은 줄 알고 섬기며 또 그것을 제거하면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을 섬기다가 남 유다로 돌아갈 염려가 있기 때문에 그냥 둔 것이다.

 

二.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함(4-5)

 

. 3:4-5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모압은 다윗 때부터 이스라엘에게 속해 있었으며(삼하8:2) 해마다 새끼 양 10만 수양 10만의 털을 이스라엘에게 조공으로 바쳤는데 아합왕이 죽으매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했다.

 

三. 세 왕이 모압을 치러 출전함(6-9)

 

. 3:6-7  그 때에 여호람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서 온 이스라엘을 점고하고 또 가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뇨 저가 가로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

모압 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므로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노하여 모압을 치기로 작정하고,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같이 모압을 치자고 제안했다.  그때 여호사밧은 자기는 이스라엘 왕과 일반이고 유다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과 일반이라고 하면서 여호람의 청을 응락했다.  이것은 여호사밧이 잘못한 것이다. 여호사밧이 전에 아합왕에게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왕상22:4), 그 때에 아합과 더불어 나가다가 손해를 보았는데도 이번에 또 그러한 대답을 한 것은 여호사밧왕이 확고하고 옳은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하고 마음이 약하여 불의한 세력과 타협하고 동조한 것이다.

 

. 3:8-9  여호람이 가로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저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행하더니 길을 둘러 행한 지 칠 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생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여호사밧은 연령이 많고 경험이 많으므로 에돔 광야 길로 가자고 한 것이다.  에돔 광야 길은 모압 남방 길인데 그리로 치면 모압을 점령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그때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뿐만 아니라 에돔 왕까지 연합해서 모압을 치러갔다.  그들이 행군하다가 7일째 되는 날에 군사와 생축을 먹일 물을 얻지 못했다.   물이 없으므로 군사와 따라가던 생축들이 다 죽을 지경에 빠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이다.

 

四. 세 왕이 엘리사에게 가서 물어봄(10-19)

 

. 3:10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어려울 때 여호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을 보면 그가 하나님을 섬긴 것 같다.  아합왕은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많이 섬겼으나 그 아들 여호람은 바알신을 다 제거하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섬겨도 바로 섬기지 못하고 진리를 바로 알지 못했다.

 

. 3:11-12  여호사밧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이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여호람은 어려울 때 하나님을 원망했으나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았다.  그는 아버지 아사왕의 신앙을 본받아 신앙이 좋았다.  여호사밧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에 한 사람이 말하기를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부어 주던 엘리야의 수종자 엘리사가 있다고 하였다.  여호사밧이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하자 세 왕이 엘리사를 찾아갔다.  왕의 권위로 엘리사를 불러와도 되겠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엘리사를 찾아간 것이다.

 

. 3:13-14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엘리사가 여호람을 보고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하고 책망을 했다.  그때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자기 귀에 거슬리는 책망을 달게 받았다.  이것은 자기가 왕이지만 낮아져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려고 간청한 것이다.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하나님이 여호사밧을 인정해 주었다.  여호사밧이 신앙이 좋고 믿음을 잘 지키는 왕이므로 여호사밧왕을 알아주며 여호사밧왕이 같이 동행했기 때문에 살길을 가르쳐 주었다.

 

. 3: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엘리사가 거문고 탈 줄 아는 사람을 불러다가 거문고를 탈 때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시켰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거문고 소리를 들을 때에 감동을 받아 복잡한 마음이 고요해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게 되었다.  요즘도 예배 시간에 찬송 부르는 것은 좋은 것이다.  찬송을 부름으로 복잡한 것을 다 잊고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질 때 성령께서 감동을 시키는 것이다.  기도가 잘 안될 때는 찬송을 마음으로라도 부르면 감동이 된다.  또한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그 말씀을 사모하고 거기 도달하려고 하고 새김질할 때 감동이 된다.

 

. 3:16-17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엘리사가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서 그들에게 전하였다.  그 내용은 물이 없는 그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놓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사람과 짐승이 마시게 된다고 했다.  개천을 많이 파 놓아야 하나님께서 물을 흘려 내려보낼 때에 그 개천에 물이 많이 고이게 될 것이고 그 물을 사람과 생축이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적과 기사로 물이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도록 하여 개천에 고인 물을 그 모든 군대와 생축이 다 먹고 힘을 얻어 전쟁을 하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물이 없어 다 목말라 죽을 것 같아도 하나님은 능치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마른 골짜기에도 하나님이 넉넉하게 물을 내어서 다 먹게 만들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면 사막이나 광야에서라도 물이 나게 하신다(사43:19 ; 롬4:17).

다만 미리 할 일은 개천을 파는 일이다.  사람이 할 일은 개천을 파서 준비하고 하나님이 물을 내려 주실 때 받도록 하는 것이다.  개천을 미리 파 놓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준비를 잘해 놓아야 된다.  아무리 물이 없어도 하나님이 주겠다고 했으므로 그 말씀을 믿고 개천을 많이 파놓으면 하나님이 물을 주실 때에 넉넉히 받을 수 있다.  한국 속담에 \"가물에 돌 친다\"는 말이 있다.  가물 때 돌을 쳐 놓으면 창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 3:18-19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과 모든 아름다운 성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마른 골짜기에 물이 내려오는 일은 오히려 작은 일이요 하나님께서 세 왕에게 모압 사람도 붙여 주겠다고 하셨다.  물이 내려 온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고 원수를 손에 붙여 주는 것은 열매 맺는 일이다.  은혜를 맛보는 것보다 승리의 열매를 맺는 것이 더 큰 것이다.

 

五. 세 왕이 엘리사의 예언대로 모압을 쳐서 이김(20-27)

 

. 3:20-23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모압 모든 사람이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섰더라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찌기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취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가로되 이는 피라 필연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엘리사의 예언대로 위에서 물이 흘러 내려와 파놓은 개천에 물이 가득하였다.  이튿날 아침 일찌기 모압 사람들이 에돔 쪽을 바라보니 그 골짜기에 피가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이는 동편에 뜬 해가 물에 비춰서 붉게 보인 것이다.  모압 사람들이 그 곳에 물이 없는 줄을 알고 있는데 그 곳에 붉은 물이 가득한 것을 보고는 그것을 사람의 피로 착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 왕이 서로 싸워서 피를 많이 흘린 줄 알고 노략하러 가자고 하며 방심한 채로 노략물을 탈취하러 이스라엘 진으로 내려왔다.

 

. 3: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병해 있다가 방심하고 오는 모압 사람들을 갑자기 일어나 쳐서 크게 승리하였다.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군대가 다 죽은 줄로 착각하고 마음을 푹 놓고 노략하러 왔다가 크게 패전하였다.  하나님이 원수로 하여금 착각이 생기게 만들어서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한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므로(삼상17:47), 군대가 많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시33:16).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셔야 승리할 수 있다.

 

. 3:25  그 성읍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맷군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이스라엘 연합군이 모압 사람을 물리치고 그 지경에 들어가 모압 성읍들을 헐고 좋은 밭에 돌을 던져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어 버렸다.   그러나 모압의 수도인 길하레셋(사16:7 ; 렘48:31)은 점령하지 못하고 포위하여 물맷돌을 성으로 던졌다.

 

. 3:26-27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 찬 군사 칠백을 거느리고 충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능히 못하고 이에 자기 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모압 왕이 전세(戰勢)가 불리해지므로 이스라엘 연합군중 에돔 왕이(9절) 제일 약한 줄 알고 칼찬 군사 700명을 데리고 에돔 왕을 치고 탈출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마귀는 제일 약해 보이는 데로 뚫고 들어온다.  그러므로 약점을 잘 살펴서 그리로 못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모압 왕이 에돔 왕 치기를 실패하므로 위급해지자 자기 뒤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해 죽여서 모압의 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위기를 처했을 때 자기 맏아들을 죽여서 모압 신에게 제사 드리면 괜찮을 줄 알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痛憤)함이 임하매 이것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결과이다.  왜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세 왕이 일이 형통하고 원수를 이겼으므로 교만한 마음이 들어와 서로 잘했다고 하고 서로 자기 고집만 내세워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는지 모른다.  언제든지 겸손으로 시작했다가 겸손으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일이 잘 된다고 해서 방심하고 제가 하는 줄 알고 나가다가는 망한다.  일이 잘되었어도 자기가 잘해서 된 줄 알지 말고 겸손히 낮아져서 하나님이 해주신 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겠다.

 

제 4 장   수넴 여인

 

(대  지)

 

一. 기름 한 병이 많은 그릇에 넘침(1-7)

二. 수넴 여인의 신앙(8-37)

三. 가루를 쳐서 국에 있는 독을 제거함(38-41)

四.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자루를 백 명이 먹음(42-44)

 

(본문강해)

 

一. 기름 한 병이 많은 그릇에 넘침(1-7)

 

. 4:1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선지자의 생도는 선지자의 후보생으로 양육 받는 자인데, 금일의 신학생이나 전도사와 같은 자이다.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한 선지자의 생도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앙을 잘 지키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선지자의 생도는 아합왕의 핍박으로 인하여 순교 당한 것 같다.  그때 그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와 딱한 사정을 호소했다.  그녀의 사정은 채주가 이르러 두 아이를 취하여 종을 삼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빚을 못 갚으면 그 대신 그 자녀를 종으로 끌어가는 풍습이 있는 때이다.  이 과부는 두 아들을 종으로 내어 줄만큼 빚이 많은데, 과부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갚을 길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호소하여 딱한 사정을 해결 받으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영의 법에서도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된다(요8:34).  하나님의 법은 엄격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반드시 종살이하게 된다.  갈라디아서 4:24-25에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율법의 종이라고 했다.  또 히브리서 2:15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한다고 했다.  그 종노릇하는데서 해방을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고 그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 4:2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그 과부가 당한 문제의 해결 방침을 가르쳐 주었다.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신다. 하나님을 순종하여 자기에게 있는 것을 전적으로 쏟아 부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 모든 어려운 일이 다 해결된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쏟아 붓지도 아니하고 거저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 과부는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과부는 솔직하게 자기에게 있는 그대로 고백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기름\"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상징한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있으니 그것이 적다고 무시하고 다른 것을 달라고 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모든 것 즉 마음과 정성과 물질과 노력과 몸 전체를 다 쏟아 부어서 하나님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어려운 문제도 쉽게 해결되어 나가도록 하여 주신다.

 

. 4:3-6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 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과부가 엘리사의 시키는 대로 이웃에 가서 그릇을 여러 개 빌려다 놓고 아들과 함께 문을 닫고 자기 집에 있는 한 병 기름을 그 그릇에 부었다.  그 병에서 기름이 계속 나와 많은 그릇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채울 그릇이 없다고 할 때에 기름이 그쳤다.  하나님의 크신 이적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 많은 그릇을 빌려다 놓았을 때는 그 그릇들에 어떻게 기름을 채울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였겠지만, 그릇에 기름이 다 채워진 후에는 그릇을 좀더 빌려다 놓았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후회했을 것이다.  엘리야 때에 사르밧 과부에게도 이같은 이적이 나타났다(왕상17:12-16).

자기에게 있는 전부를 다 바쳐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에 가득하게 채워 주셨다.  그릇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그릇이 크면 클수록 좋다.  그 기름은 그릇의 수대로 가득하게 나온다.  붓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을 순종해서 쏟아 붓는 사람에게 계속하여 충만하게 주신다.  작은 그릇을 가져오면 작은 그릇에 가득 채워지고, 큰그릇을 가져오면 큰그릇에 가득 채워진다.  하나님은 그릇대로 채워 주시고 그릇이 있는 대로 쓰신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9:6).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일할 것이 없으면 은사(기름)도 끊어진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지만, 일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고 얻을 것도 없다.  하나님을 위해 계속해서 순종하고 계속해서 역사해야만 하나님이 계속해서 필요한 것을 주신다.  하나님의 일을 쉬면 은사도 끊어진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시키는 일에 전폭을 쏟아 충성하면 하늘의 은사가 계속 내려오고 영적 역사가 계속 넘치게 된다.  그러면 자기도 부요해지고 자손도 잘되고 다 잘된다.

 

. 4: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고한대 저가 가로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그릇에 기름이 다 찬 때에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보고했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둘째,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를 받기 위함이었다.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그것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가족이 생활하라고 하였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다시 순종하려고 할 때에 어려운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생활 문제까지 핍절함이 없도록 잘되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전폭을 쏟아 붓는 자에게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고 부족함이 없도 록 하여 주신다.

 

二. 수넴 여인의 신앙(8-37)

 

. 4:8-9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수넴 지방에 한 귀한 여인이 있었는데, 엘리사가 그 곳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알고 음식을 대접하였다.  엘리사가 처음에는 사양했으나 그 여인이 간권(懇勸)하므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 여인은 그 이후에도 엘리사가 수넴 지방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대접하였다.  엘리사는 보통 사람 차림으로 지나 다녔으나 그 여인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줄 알아보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엘리사에게서 어느 정도 거룩한 태도와 덕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말을 하지 않아도 선지자인 것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이 만들어져서 말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거룩한 덕이 나타나야 한다.

 

. 4:10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수넴 여인은 엘리사에게 음식을 대접할 뿐 아니라 자기 집에서 쉬었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서 자기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 자기 집 담 위에 방을 준비하고 그 방에 침상과 촛대와 의자와 책상을 준비했다.  수넴 여인은 어떻게 하든지 선지자를 도와주려는 생각이 간절했고, 그 일을 위하여 쓰는 물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일하시는데 그를 도와주면 얼마나 하나님의 일이 잘되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 여인은 목표가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는데 있고 그 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 봉사하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지날 때마다 그 방에 들어가 쉬며 성경을 보며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 4:11-13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하루는 엘리사가 그 방에 들어가 쉴 때에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 여인에게 축복해 주려고 사환을 시켜 그 여인을 불러다가 사환과 함께 세워놓고 말했다.  이것은 경건(敬虔)과 건덕(建德)을 세우며 말하는 것이다.

생각이 주밀하도다 이 말은 배려(配慮)가 깊다는 말이다.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종을 세심히 대접했다.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그 때에 엘리사가 왕이나 군대 장관에게 말하면 무슨 청이라도 들어 줄 만한 위치에 있었다.  그 이유는 나라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엘리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 말해 주고 왕은 그대로 하여 어려운 일을 해결 받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것을 구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 여인은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구하여 나라의 높은 지위를 얻어 권세를 부리는 것보다 백성 중에 겸손히 거하며 고요히 믿음 지키는 것을 최상의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들이 없어도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있으므로 아들을 요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히브리서 11:24-25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모신 것을 최상으로 여기고 살며 그 이상 높은 지위를 바라보지 않았다.  허영심이나 명예 영광심이 없었다.  그는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사를 감사하고 만족하였다.

그 여인이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아는 것부터 하나님의 은혜이다.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해 나가는 것을 깨닫고 떨며 조심하며 그를 도와주는 자체가 이미 신령한 은혜를 많이 받은 증거이다.  마태복음 10:41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했다.  이 수넴 여인은 선지자를 영접하고 대접했으니 벌써 선지자의 상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제일 좋은 상급이다.  그런데 여기서 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 두 번째 것, 즉 세상의 것과 육신의 것을 주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신령한 상급을 받은 자에게 세상의 것과 육신의 것도 주시는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수넴 여인은 그것을 원치 않았으며 그대로 돌아갔다.

 

. 4:14-16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엘리사는 하나님의 일에 협조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충성한 수넴 여인에게 어떤 좋은 축복을 해주려고 애쓴 것이다.  엘리사는 그녀에게 아들이 없고 남편은 늙었으므로 아들을 낳을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게하시의 말을 듣고 엘리사는 다시 수넴 여인을 불러다 세워놓고 명년에 아들을 안게 되리라고 축복해 주었다.

계집종 엘리사의 앞에서 수넴 여인은 종의 위치에 서 있다.  자기가 집주인이지만 하나님의 대행자인 하나님의 사람 앞에는 계집종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속이지 마옵소서 이 말은 엘리사의 말을 불신한 말이 아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여인이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을 것이 분명하다.  또 한나가 아이를 낳은 것이나, 사라가 90세에 아이를 낳은 것도 다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낳지 못할 것을 낳는다고 하여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첫째, 사람이나 물질에는 언제나 마귀가 붙어 다니면서 그것을 미끼로 하여 사람을 속이기 때문에 \"아들을 낳으면 마귀가 그 아들을 미끼로 나를 속이고 내 신앙을 빼앗아 가지 않겠습니까\"하는 뜻이다.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바치기 힘들고, 또 마귀가 그 여인의 마음을 아이에게 빼앗기도록 속일 가능성이 많다.

둘째, 자기의 약한 것을 붙들고 자랑하는 말이다.  즉 자기는 약하여 아들을 낳으면 마귀에게 속지 않을 만한 실력이 없으므로,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한 것이다.  고린도후서 12:9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셋째, 환경이 변할 때에 그 환경에 속아 신앙을 지키지 못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넷째,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기 때문이다.  아들이 없으면 아들이 없는 것으로 족한 줄 알고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 4:17-20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돐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수넴 여인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을 멀리했다.  수넴 여인은 그 아이에게 마음과 시간과 정력을 다 빼앗긴 것이다.  이것이 속은 것이다.  믿음을 빼앗기고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나면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성도가 환경에 얽매여 믿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수넴 여인이 아이 낳기 전에는 믿음이 좋았고 하나님을 위해 일을 많이 했는데 아이 낳은 다음에는 마음과 시간과 정력을 아이에게 빼앗겼다.  참으로 마귀에게 속은 것이다.

세상 것과 육신의 것 때문에 믿는 일을 못하는 것은 분명히 속는 일이다.  세상 권세나 좋은 직장이나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그 일 때문에 믿음이 떨어지고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마태복음 24:19에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했다.  마귀에게 속아서 믿는 일 못하고 다 빼앗기면 화가 있다.  그러므로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다.

 

. 4:21-25上  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 하고 드디어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수넴 여인이 그 죽은 아이를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에 누인 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맡기는 심정이요 하나님께 은혜 받기를 갈망하는 태도이다.  수넴 여인은 즉시로 하나님의 사람이 계신 갈멜산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그 여인이 안식일과 매월 초하룻날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갈멜산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 같다.  그런데 초하루도, 안식일도 아닌데 왜 가려느냐고 물은 것이다.  아직 남편에게 아이 죽은 것을 알리지 않았다.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이것은 남편을 속이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아들이 죽은 줄 알고, 자기가 바로 서면 그 아들이 다시 살 것을 믿고 한 말이다.  수넴 여인은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나았기 때문에 어려서 데려가지(죽지) 않을 것을 믿었고 또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면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다(히11:19).  그리하여 그 여인은 나귀를 타고 급히 갈멜산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갔다.

 

. 4:25下-26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엘리사가 멀리서 수넴 여인이 급히 오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사환을 시켜 마중 나가 안부를 물으라고 했다.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아이를 다시 살려 평안하게 될 것을 믿고 한 말이다.

 

. 4:27-28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엘리사가 수넴 여인에게 아이를 낳겠다고 말할 때에 한 말이다(16절).  수넴 여인은 그 아들을 낳고 마귀에게 속아서 그 아이에게 마음을 다 빼앗기고 믿는 일을 못했다.  그러므로 징계로 아들이 죽게 된 것을 한탄하는 말이요 회개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것을 복으로 주셨을 때 성도가 그것 때문에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시 빼앗아 간다.  솔로몬왕에게 하나님이 신령한 은혜도 주고 세상의 지혜와 재산과 부요도 주었는데 그것 때문에 속아서 믿음이 떨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것이 많든지 적든지 여전히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고 믿음의 길을 잘 걸어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신앙이 중요하다(빌4:12).

 

. 4:29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지팡이는 능력을 가리킨다.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이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데서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인사할 때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고 산심(散心)과 방심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아이에게 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 4:30-31  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수넴 여인의 간청대로 엘리사가 그 집까지 갔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이 하나님을 위해서 협력한 것과 또 하나님의 사람인 자기를 위해 여러 가지로 마음 써 준 것을 생각하여 같이 갈멜산에서 내려갔다.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빌4:3).

게하시는 먼저 가서 엘리사의 명한 대로 아이 얼굴에 지팡이를 놓았으나 아이가 살아나지 않았다. 엘리사가 시킨 대로 했는데 왜 아이가 깨어나지 않았을까?  그것은 수넴 여인 때문이다. 왜냐하면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할 때 수넴 여인이 믿고 게하시를 따라갔으면 그 아이가 깨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수넴 여인이 게하시를 따라가지 않고 엘리사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으므로 아이가 깨어나지 않은 것이다.

아이가 깨어나려면 삼합(三合)이 맞아야 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고자 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셋째, 본인이 받을 만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게하시가 엘리사의 명을 받고 갈 때에 아이의 어머니가 따라가서 하나님께 전심전력을 기울여 기도하며 그 지팡이를 아이 얼굴에 놓았더라면 아이가 살아나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면과 하나님의 사람의 역사는 있었으나 그 여인이 믿음을 쓰지 않았다.  받는 사람이 믿음을 쓰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이 주려고 해도 안 되고 또 하나님의 사람에게 아무리 큰 능력이 있어도 안 된다.

 

. 4:32-33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침상에 눕혔는지라 아이의 어머니는 자기가 아이 때문에 속아서 믿음이 떨어진 것을 깨닫고 다시 그 믿음을 회복하려고 죽은 아이를 엘리사의 침상에 눕혀 놓았다.  즉 그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서 침상을 만들 때의 신앙, 즉 아이 낳기 전의 신앙을 다시 찾으려고 애를 쓴 것이다. 문을 닫으니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은밀한 기도를 하기 위함이었다.  두 사람뿐이라 죽은 아이와 엘리사 두 사람을 가리킨다.

 

. 4:34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아이 위에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아이 입에 자기의 눈을 그 아이의 눈에, 자기 손을 그 아이 손에 댄 것은 그 아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함이요, 자기가 죽인 것같이 생각하고 책임을 자기가 진 것이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자기가 잘 인도하지 못해서 그 아이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여 책임을 졌고 수넴 여인도 자기가 책임을 지고 회개했다.  엘리사가 그 아이 죽은 것을 체휼하면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해졌다.

 

. 4:35  엘리사가 내려서 집안에서 한 번 이리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사가 집안에서 이리저리 돈 것도 기도하는 태도이다.  그때 아이가 살아났다.  아이가 살아난 것은 첫째, 엘리사의 기도였다.  둘째, 그 아이의 어머니의 회개와 믿음 때문이다.

 

. 4:36-37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엘리사가 수넴 여인을 불러다가 살아난 아들을 취하라고 했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갔다.  수넴 여인은 진정으로 회개했고 아이를 살려준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했고 엘리사를 더욱 존경하며 진정으로 사례했다.

 

三. 가루를 쳐서 국에 있는 독을 제거함(38-41)

 

. 4:38-41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솥을 걸고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등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 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외쳐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 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이 없어지니라

엘리사가 길갈에 다시 가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  엘리사가 굶주린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솥을 걸고 국을 끓여 먹이려 했다.  어떤 사람이 들외를 따다가 국솥에 넣었는데 그것에 사망의 독(毒)이 있었으므로 먹지 못하게 되었다.

가루를 가져오라 \"가루\"는 영적으로 신앙을 가진 유대인의 조상들을 가리킨다.  로마서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의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면 사망의 골짜기가 생명의 골짜기가 된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한 생명의 역사가 있으면 사망의 독이 없어지고 생명의 세계가 전개된다.  독이 있는 들외, 돌감람나무, 들포도 같은 이방인과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구속의 생명의 역사가 들어가면 사망의 독이 없어지고 생명과 유익을 준다.

그러므로 사망의 독이 있는 세상에 가루를 갖다가 넣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나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해 주는 생명 있는 전도자가 있어야 이 세상에 사망의 독이 빠져  나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사망의 독이 빠져나가고 좋은 사람이 된다.

 

四.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자루를 백 명이 먹음(42-44)

 

. 4:42-44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 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

흉년 때에 어떤 사람이 보리떡 20개와 한 자루의 채소를 엘리사에게 드렸다.  그 사람은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공궤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돕는 자였다.  흉년에 떡 20개와 한 자루의 채소는 참으로 귀한 것이다.  그 사람은 자기의 모든 힘을 다 기울여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하여 그것을 가지고 역사하셔서 백 명이 먹고 남게 하였다.  하나님은 그 적은 것을 가지고 크게 역사하여 많은 무리를 먹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살려 나가는 일을 하신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정성과 힘을 다해 바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살리신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 어린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것과 같다.  그 아이는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서 있는 소유 전체를 바쳤고,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역사하셔서 오 천명이 먹고도 남게 하셨다.  적은 것이라도 정성과 힘을 다해서 바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역사하셔서 많은 사람이 먹고도 남음이 있게 하신다.

 

제 5 장   문둥병자 나아만

 

(대  지)

 

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짐(1-14)

二. 엘리사가 예물을 받지 않음(15-19)

三. 게하시의 범죄와 받은 벌(20-27)

 

(본문강해)

 

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침(1-14)

 

. 5: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 병자더라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아람이 위경(危境)에 처했을 때 나라를 구원한 공신(功臣)이었으므로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문둥 병자였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유명한 군대 장관이지만 문둥병에 걸렸으므로 군대 장관 일을 제대로 못 보고 늘 근심 걱정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 5:2-3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전쟁 포로로 잡혀 간 이스라엘의 계집아이는 비록 아람에서 종살이하는 처지에 있었지만 믿음을 지켰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에 유익이 되게 하였다. 그 계집종이 주모(主母)에게 말하기를 자기 주인이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 5:4-5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아람 왕이 가로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어린 계집종이 전해 주는 말을 듣고, 나아만의 부부가 옳게 여기고 그 말을 왕에게 고하니,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써주고 가도록 허락했다.  이 포로로 잡혀 간 작은 계집종 하나가 한 나라의 군대 장관과 왕의 마음을 움직였다. 계집종은 자기가 배운 대로 아는 대로 말해 준 것뿐이다.  그러나 아람 사람들은 그 말을 처음 들은 것이다.  작은 아이 하나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놓으면 큰 역사가 일어난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대로 배운 대로 전해 놓으면 하나님이 그것을 가지고 일을 하신다.  우리는 어리고 비천하다고 주저하지 말고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아는 그대로 전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신다.  씨를 뿌리면 하나님이 반드시 나게 하신다.

 

. 5:6-7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

이스라엘 왕이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달라는 아람 왕의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당시는 이스라엘보다 아람이 더 강했으므로 강한 나라의 왕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문둥병을 왜 고쳐 달라고 했을까?  이것은 트집을 잡아서 이스라엘을 치려고 하는 줄 알고 왕이 크게 번민했다.

나아만이 이스라엘 왕에게 올 때 아람 왕의 편지를 가지고 온 것이 잘못이다.  이것은 국가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신앙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 계집아이의 말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고친다고 했는데, 왜 왕에게 고쳐 달라고 했는가?  그것은 나아만이 하나님의 일을 왕의 권세로 해결해 보려고 한 것이다.

 

. 5: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었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왕에게 보내어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 달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의 말을 듣고 염려했던 마음을 놓고 나아만을 엘리사에게 보냈다.

 

. 5:9-12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나아만이 말과 병거를 거느리고 당당한 권세로 엘리사를 찾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자를 시켜서 그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면 깨끗해 질 것이라고 전했다.  그 때에 나아만이 대단히 노하였다.  강대국의 군대 장관이 찾아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고 인사도 없이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하는 말에 너무 섭섭하여 노한 것이다.

나아만이 아직도 낮아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문둥 병자인 줄 알고 하나님의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할 것이다.  곧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겸손해지지 않고 노하여 돌아가려고 한 것은 한 마디로 자살 행위이다.  자기 나라의 아마나 강과 바르발 강은 이스라엘의 요단 강보다 외부적으로는 낫게 보여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없다.  그러나 이제 요단 강에 가서 목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모든 병이 낫는 역사와 생명의 역사가 있다.  이 은사는 겸손해야만 받을 수 있다.  엘리사는 나아만을 겸손하게 만들고 순종하게 하여 그 은사를 받게 하려고 나와 보지도 않고 문둥병이 낫는 방도만 전달하여 준 것이다.

문둥병은 죄를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 다 죄가 있는데 그 죄는 우리 자신들을 점점 썩어지게 하고 결국 우리를 멸망시킨다.  죄와 사망에서 나음을 얻는 길은 하나님께로 가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어린아이가 되어서 겸손히 빈손 들고 나아가야 한다.

 

. 5:13-14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 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의 종들이 지혜롭게 주인에게 권유했다.  \"엘리사가 비록 나와 보지도 않고 종들을 시켜 요단 강에 가서 씻으라고 하여 섭섭하고 노엽지만 이스라엘까지 힘들게 왔는데 분한 마음으로 그냥 돌아가면 어떻게 문둥병을 고칠 수가 있겠읍니까?\" \"시키는 대로 순종해서 병만 고치면 되지 않겠읍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더 큰일을 시켜도 해야 할 것인데 씻어서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하고 잘 권면할 때에 나아만이 종들의 말을 듣고 그 말에 수긍을 하고 분한 마음을 돌이켰다.

아람에서 이스라엘까지 온 목적이 문둥병을 고치려는 것이지 대접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문둥병만 고친다고 하면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고, 비천해져도, 아무리 힘든 일을 시켜도 좋게 여기고 순종해야 할 것인데 금번 엘리사의 처사에 화낸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엘리사가 시킨 대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그었다.  그것은 나아만이 교만과 위신과 자존심을 다 내어놓고 어린아이같이 되어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서 문둥병이 나아서 어린아이의 살같이 깨끗하게 되었다.  만일 나아만이 그대로 돌아갔더라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잃고 문둥병으로 죽었을 것인데 겸손히 순종함으로 고침을 받았다.

\"물\"은 하나님의 은혜(사55:1 ; 요4:14), 하나님의 말씀(엡5:26),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한다.  \"일곱 번 목욕한 것\"은 완전한 순종을 가리킨다.  한 두 번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한 순종을 하라는 것이다.  순종할 때 교만한 마음을 다 내버리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자존심을 버리고 어떤 처지에 있든지 달게 받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고 진리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서 완전히 순종할 때에 심령의 깨끗함을 받는다.  여섯 번 순종하고 그만두지 말고 일곱 번까지 완전히 순종해야 깨끗해진다.  어떠한 죄로 인해 더러워졌어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참여하여 말씀을 받아 전적 순종 할 때에 심령이 깨끗해지고 소생하고 기쁨이 충만해지고 새 사람이 된다.

 

二. 엘리사가 예물을 받지 않음(15-19)

 

. 5:15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나아만이 과거에는 아람의 신들을 섬겼으나 그것이 다 헛된 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 내어버리고, 하나님만 참신인 줄 알고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섰다.  나아만은 이제 천하에 위할 참신은 하나님 한 분이심을 믿고 증거하였다. 하나님께서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준 목적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아람에 하나님의 큰 능력을 알게 하여 다시는 이스라엘을 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 5:16  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한지라

나아만이 예물을 주려고 할 때에 엘리사가 여호와로 맹세하며 그 예물을 받지 않았다.  받지 않아야 될 것을 받으라고 할 때는 아예 강하게 잘라서 거절하고 그 일을 끝내야 한다. 흐지부지하게 나가면 계속하여 시험이 된다.  이 때에 엘리사가 나아만의 예물을 받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과 아람과의 관계는 하나님의 나라와 마귀 나라와의 관계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의 나라의 군대 장관이 하나님의 나라에 와서 문둥병을 고친 것은 하나님의 큰 영광이 드러난 것이고 많은 혜택을 입혀 그 나라에 사랑의 빚을 지운 것이므로 그때 모든 아람 사람이 하나님 앞에 굴복을 하게 되고 그 사랑의 신세 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때 만일 엘리사가 나아만의 예물을 받으면 그 사람들이 그 대가를 지불했다고 생각하여 신세 진 것이나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또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게 된다.

 

. 5:17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나아만이 이스라엘 땅의 흙을 가져가겠다고 한 것은 신앙적이 아니고 인간적이요 육신적이고 미신적이다.  나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보니 그 땅이 아름다워 보이고 그 땅을 흠모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 흙을 가져가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탈선된 것이다.  그 이유는 신령한 은혜를 받고 나서 그것으로 감사하려 하지 않고 눈으로 보이는 흙을 가지고 돌아가서 그것을 귀중히 여기려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사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 5: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나아만이 또 어리석음을 범했다.  천하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참신이 없고 여호와께만 경배하겠다고 말해 놓고도 아람 왕이 우상 숭배할 때에 자기가 돕는 일을 하는데 그것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된 간구이다.  자기 나라 신이 참신이 아니요 잘못된 줄 알았으면 즉시 그만두어야 할텐데 계속 그 일을 할 생각을 가지고 그 일을 하더라도 용서해 달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때 나아만은 바로 하는 길을 선지자에게 물었어야 한다.  그리하면 엘리사가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그 길이 잘못된 줄 알면 즉시 끊어 버리고 바른 길을 찾으면 반드시 찾게 된다.  다니엘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으려고 작정하니 그 길이 열렸다(단1:8-16),

 

. 5:19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

평안히 가라 이것은 가서 우상에게 절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나아만이 세상 지위로는 군대 장관이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 어리다.  여호와 한 분만 참신이시요 그만 섬기겠다고 생각했으나 사유해 달라는 것을 보면(18절) 죄를 끊어 버릴 생각은 못하고 있다.  엘리사는 나아만의 신앙이 그 정도이므로 지금은 그만큼 알았으면 되었다는 뜻에서 평안히 가라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아만이 하나님 한 분만 섬기겠다고 했으므로 그만해도 족하고 앞으로 점차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니 평안히 가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할 때 베드로가 검 두 자루를 내어놓자 예수님이 족하다고 하신 것과 같다(눅22:35-38).  예수님께서 옷을 팔아 검을 사라는 것은 영적 무장을 하라는 말씀인데 베드로는 실제의 검으로 알았으므로 현재 그만큼 알면 족하다는 것이다.

 

三. 게하시의 범죄와 받은 벌(20-27)

 

. 5:20-22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저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하고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 내려서 맞아 가로되 평안이냐 저가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생도 중에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 왔으니 청컨대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게하시는 가장 가까이 있어서 엘리사를 잘 받들어 나가야 할 수종자인데 그만 탐심이 들어와 범죄하고 말았다.  게하시는 가난하므로 그것을 받아서 잘 살 생각이 났다.  나아만이 선물 준 것을 자기 주인이 안 받았으므로 자기가 가서 조금 받아와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  오히려 자기 주인이 안 받은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게하시가 잘못한 것은,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지 못하였다.  그 물질을 취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인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물질을 준다고 해도 받으면 안 된다.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감사의 뜻으로 전리품을 다 주겠다고 할 때 그것을 취해도 괜찮으나 아브라함은 소돔 왕이 \"내가 아브라함으로 치부케 하였다\"고 할까 하여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였다(창14:23).  참된 성도는 물질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더 귀히 여긴다.

둘째, 자기 스승에 대해서 바로 할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물질 보다 스승에 대한 바른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이다.  자기 스승이 받을 수 없어서 돌려보낸 것인데 스승이 받지 않은 것을 자기가 받으면 스승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게하시가 나아만에게 선물을 받으면 사제지간(師弟之間)의 도가 어긋난다.  게하시가 그 물질을 받아서 스승을 잘 대하더라도 스승의 뜻을 어기고 스승을 대접하는 것은 스승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셋째, 게하시는 엘리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하는 줄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은 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하는 줄을 아는데 게하시는 엘리사의 처사가 잘못됐고 자기 생각이 바른 줄 알았다.  나아만에게는 좋은 아랫사람이 있어서 그들의 지혜로운 말로 자기 주인으로 요단 강에서 목욕을 하게 설득하여 병을 낫게 하였으나 게하시는 스승이 해놓은 것을 다 망치고 말았다.

넷째, 자기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을 했다. 자기 양심을 지키고 진실한 것이 물질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양심을 어기고 속이면 망한다.  잠언 12:19에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 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고 했다.  잠언 21:6에는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고 했다.

다섯째, 나아만의 영적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나아만은 엘리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큰 은혜를 받은데 대하여 감격했으며 또 엘리사가 예물을 사양한 데 대하여 아주 훌륭하게 생각하며 돌아가는데, 게하시가 가서 엘리사의 이름으로 물질을 구했으니 나아만이 엘리사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엘리사에 대한 의구심(疑懼心)이 생기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조차 감소하게 되었을 것이다.  즉 나아만의 신앙심에 막대한 타격을 준 것이다.  물질보다 다른 사람의 영이 사는 것이 더 크고 중요하다.

여섯째, 아람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았다.  게하시가 이러한 과오를 범하였기 때문에 문둥병이 걸려 그의 말로가 아주 비참하게 되었다.

 

. 5:23-24  나아만이 가로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저를 억제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저희가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언덕에 이르러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취하여 집에 감추고 저희를 보내어 가게 한 후

 나아만이 게하시에게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었다. 은 두 달란트는 약 60kg으로서 요즈음 돈으로 3천 만 원 정도이다.  그것을 두 사환에게 지워서 게하시와 같이 보냈다.  게하시는 그것을 집에 감추었다.

 

. 5:25  들어가서 그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대답하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게하시가 한 일을 엘리사가 알고 물었는데 게하시는 또 거짓말을 하고 속였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을 감추려고 또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것을 감추려고 또 거짓말을 하게 된다.  곧 눈덩이 커지듯이 거짓말이 커지게 된다.  이때 게하시가 거짓말을 하지 말고 잘못을 회개했으면 형벌을 면했을 것이다.

 

. 5:26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심령은 히브리 원어로 (레브)인데 마음, 심장, 지혜를 뜻한다.  엘리사는 심령의 감각으로 게하시의 행한 일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  오늘날도 기도를 많이 하고 심령이 맑을 때는 이와 같은 일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혹시 꿈으로 알게 해주시는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치우치면 마귀의 시험에 들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성경만 따라가야 한다.  이때 엘리사의 심령에 감각된 것은 표준 계시요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신 것이다.

게하시는 엘리사가 이렇게 심령으로 감각되는 생활을 하는 줄을 알지 못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듯이 늘 모시고 살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다.  도리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자들이 예수님을 더 잘 알았다.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16절 해석참조).

 

. 5: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 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나아만의 문둥병이 게하시에게 들렸다. 그는 일생 동안 문둥 병자가 되었고 그 자손에게까지 영원토록 이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징벌이 이렇게 크고 두렵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세우지 않고 자기 양심을 속이고, 다른 사람의 영을 살리는 것을 무시하고, 선지자와 스승을 무시하고 물질을 따라가면 게하시와 같이 벌을 받는다.  즉 신앙이 타락되고, 죄가 그 속에 들어와 점점 부패하게 되고 끝내는 멸망의 구렁텅이로 내려가게 된다.  디모데전서 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했다.  돈이나 세상 것을 따라가고 그것을 잡으려고 하면 이러한 결과를 당하게 된다.

 

제 6 장   포위된 아람 군대

 

(대  지)

 

一. 물에 빠진 도끼를 건짐(1-7)

二. 엘리사를 잡으려는 아람 군대가 눈이 어두워짐(8-23)

三. 사마리아 성중에서 아이를 삶아 먹음(24-33)

 

(본문강해)

 

一. 물에 빠진 도끼를 건짐(1-7)

 

. 6:1-2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 그 곳에 우리의 거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가라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많이 나타나므로 많은 생도가 몰려와서 엘리사에게 배운 것 같다.  그러므로 거처가 비좁게 되었고, 생도들이 요단에 가서 목재를 취하여 그 곳에 거할 장소를 건축하고자 엘리사에게 간청했다.

선지 학교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엘리사를 통해서 하는 구원 운동이 점점 확장되어 나가므로 장소를 넓히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 6:3  그 하나가 가로되 청컨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가리라 하고

생도 중 한 사람이 엘리사에게 같이 가자고 한 것은 선생의 지도 없이는 그 일이 잘 안되겠기 때문이었다.  즉 나무를 베고 처소를 짓는데 자기들을 지도하며 가르쳐 주는 선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그들과 같이 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웃사람의 인도와 지도를 받고 모든 일을 바로 해야 한다.  사람들이 대개는 자기의 마음대로 하기를 좋아한다.  누구나 간섭받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제도에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엘리사 선지자의 생도들은 스승의 인도 받기를 원했다.  엘리사는 집 전체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아랫사람을 잘 지도할 수 있다.  지도자가 없이 하면 일이 제대로 안되고 실수가 많다.

선지자의 생도들은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배웠다. 거처가 좁을지라도 어디 가서 원조 받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자기들이 집을 세우려 했고 자기 일은 자기가 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엘리사가 그런 정신을 가르쳐 주었고, 선지자 생도들은 그대로 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3:10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다.  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자기가 거할 처소는 자기가 마련하는 자립적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

 

. 6:4-5  드디어 저희와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가로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어온 것이니이다

빌려온 도끼가 물에 빠졌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겼다.  선지자나 생도가 다른 사람의 도끼를 빌려다가 강물에 빠뜨려서 돌려주지 못한다면 죄책을 면할 수 없다.  생도의 탄식은 다른 사람의 것을 돌려주겠다는 정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고 정당하게 하려는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남에게 누(累)를 끼치고 손해를 주면 하나님 앞에도 옳지 않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것을 반드시 돌려주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 맺어야 한다.

 

. 6:6-7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 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로 떠오르게 하고 가로되 너는 취하라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취하니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지니 도끼가 떠올랐다.  도끼가 물에 빠졌으므로 일을 못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도끼를 돌려주지 못할까봐 큰 걱정이 생겼는데 엘리사가 도끼를 건져 일 할 수 있게 해주었고 원상대로 회복시켜 주었다.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찾아서 하나님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끼에 대한 신령한 뜻은 성도의 영적 무장을 가리킨다. 누가복음 22:36에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라고 했다.  영적 무장을 해야 마귀의 세력을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갈 수가 있다.  영적 무장을 해야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승리 할 수 있다.  영적 무장을 상실하면 마귀의 세력을 이길 수 없고 하나님의 일을 계속할 수 없다.

어디 빠졌느냐 잃어버린 곳에서 찾아야 찾을 수 있다.  요한계시록 2:4-5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다.  우리가 어디서 믿음을 잃어 버렸나 찾아서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한다.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이것은 엘리사의 능력의 표현이다.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킬 때에 그 지팡이를 통해서 능력이 나타난 것처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물에 던진 것도 그 나뭇가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도끼를 빠뜨린 생도가 엘리사에게 간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선한 길을 가르쳐 줄 것을 믿고 찾아 간 것이다.  우리도 때때로 영적 무장을 상실할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 달라붙어서 다시 회복할 길을 열어 달라고 간구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해 나갈 때 그 일을 제대로 해 나갈 수 있다.  도끼가 없으면 일을 못하는 것처럼 영적 무장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이 안 된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영적 무장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만 된다.

 

二. 엘리사를 잡으려는 아람 군대가 눈이 어두워짐(8-23)

 

. 6:8-10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그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 한 두 번이 아닌지라

아람 왕이 누차 이스라엘을 쳤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그 이유는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아람 왕이 쳐들어오는 길을 가르쳐서 방비를 잘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 6:11-13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번뇌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의 내응이 된 것을 내게 고하지 아니하느냐 그 신복 중에 하나가 가로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아람 왕은 자기 편에 내응(간첩)이 있어서 아람 군대의 일을 이스라엘 왕에게 보고하는 줄 알고 그 신하들에게 따져 물었다.  그  신복 중 하나가 왕의 의심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에는 선지자 엘리사가 있어서 아람 군대의 모든 사정을 이스라엘 왕에게 가르쳐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 6:14-15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 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많은 군사와 말과 병거를 동원하여 밤에 가서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을 에워쌌다.  아침에 일찌기 엘리사의 사환이 나가보고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라고 한탄했다.  아람 군대에게 포위 당한 것을 보고 두려워하며 당황하여 엘리사에게 보고하였다.

 

. 6:16-17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는 아람 군대보다 더 많은 천군 천사가 와서 호위하고 있는 것을 보고 담대하였다.  엘리사가 자기의 사환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고 사환의 눈을 뜨게 하여 그것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사환의 신령한 눈을 뜨게 하시매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를 둘러선 것을 보고 안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위급할 때에 천사를 보내서 지켜 주신다(시34:7).  신령한 눈을 뜬 자는 영적 세계의 것을 보고 환난과 핍박 중에도 담대하여 오히려 큰 소망을 가진다.

 

. 6:18-19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아람 군대의 눈이 어두워진 것은, 하나님의 사람을 핍박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손해를 주는 자들은 신령한 눈이 어두워져서 모든 것을 바로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손해를 끼치고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면 심령의 눈이 어두워진다.  사울도 예수를 핍박하다가 눈이 어두워졌었다(행9:3-9).  아람 군대는 눈이 어두워져서 엘리사를 보고도 알지 못하고 엘리사에게 끌려서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가 포위당했다.

 

. 6:20-23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저희의 눈을 여시매 저희가 보니 자기가 사마리아 가운데 있더라 이스라엘 왕이 저희를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소서 왕이 위하여 식물을 많이 베풀고 저희가 먹고 마시매 놓아 보내니 저희가 그 주인에게로 돌아 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에 갇힌 것을 보고 이스라엘 왕은 죽이려고 했으나 엘리사는 죽이지 말고 그들에게 떡과 물을 주어 잘 대접하여 돌려보내라고 했다.  엘리사는 대적하는 원수를 사랑으로 대했다. 원수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으나 오히려 잘 대접하므로 그들의 머리에 숯불을 놓은 것처럼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돌아갔다(롬12:18-20).  그러므로 그들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러오지 않았다.  원수가 사랑의 힘에 굴복된 것이다.  원수를 사랑으로 정복해서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창성하고 확장되어 나가는 역사가 나타난다.

 

三. 사마리아 성중에서 아이를 삶아 먹음(24-33)

 

. 6:24-25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아람 왕 벤하닷이 온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사마리아 성을 에워쌌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성이 크게 굶주려 죽을 지경이 되었다.  한 동안 침략하지 않던 아람 군대가 왜 다시 쳐들어 왔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 원수를 사랑으로 이겨서 태평케 했지만 백성들이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원수를 일으켜 그 손에 붙인 것이다(레26:17-25).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나귀 머리\"는 평소에는 먹을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인데 양식이 핍절하자 은 팔십 세겔의 고가(高價)가 되었다.  은 1세겔은 11.4g이니 은 팔십 세겔은 912g이고 현재 시가(時價)로 계산하면 약 40만 원쯤 된다.  또 \"합분태( 糞太)\"로 번역된 히브리어 (디브요님)은 \"비둘기 똥\"이라는 뜻으로 비둘기 똥 같이 생긴 콩을 의미한다.  또 다른 학자는 오니도갈룸 이라는 식물의 둥근 뿌리(球根)를 말한다고 한다.  한 갑은 1.3ℓ인데 그것의 ¼이 은 5세겔이면 현재 시가로 계산하면 2만 5천원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얼마나 심한 기근을 당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살게 해야 살고 하나님이 한 번 손을 대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돈이 가치가 없다.  생명이 하나님께 있고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니다.

 

. 6:26-29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사마리아 성이 말할 수 없이 심한 기근을 당할 때 급기야는 자식을 삶아 먹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다(레26:29 ; 신28:53-57).  그러나 아들을 삶아 먹은 것은 믿음을 떠난 행위이며 짐승과 같은 행동이다.  둘 다 죽을 바에는 하나만 죽고 하나는 더 살아보자고 해서 아들을 잡아먹은 것이다.  이것은 남이야 죽든지 살든지 자기 하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요 극단적 개인주의이다.

요새도 자기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사람이 많다.  자기가 잘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매장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사기 횡령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을 죽을 구덩이에 몰아 넣으면 자기가 살고 안 몰아 넣으면 자기가 죽을 경우에 다른 사람을 죽을 구덩이에 몰아 넣는 것이 보통이다.

장차 말세 환난 때 아들이 아버지를 죽는 데 내어 주고, 어머니가 딸을, 딸이 어머니를,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아버지가 아들을 죽는 데 내어 준다고 했다(마10:21 ; 24:10).  환난 때에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 가까운 사람이라도 잡아 주는 것이다.  자기가 죽더라도 형제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만 안 내어 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자기 생명같이 귀히 여기고 자기가 죽어도 다른 사람을 살리고 아끼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 6: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왕이 송사하러 온 여인들의 말을 듣고 너무 참담(慘憺)하여 자기 옷을 찢었다.  굵은 베 죄를 회개할 때에 입는 옷이다(왕상21:27 ; 욘3:5).  이스라엘 왕이 굵은 베옷을 입은 것은 너무 기근이 심하여 백성이 다 죽게 되니 하나님께 회개하는 태도를 가진 것이다.

 

. 6:31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이것은 왕이 엘리사의 목을 자르겠다는 말이다. 왕은 엘리사 때문에 재앙이 내려온 줄로 알고 있다.  엘리사를 원망하려면 원망할 수 있다.  전에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안에 갇혔을 때에 잡아 죽였어야 하는데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살려 보냈기 때문에 후환(後患)을 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또 엘리사는 말하기를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죄를 짓고 나아가므로 하나님이 아람 군대를 보낸 것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왕이 엘리사를 당장 잡아죽이려고 각오했다.  왕이 베옷을 입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좋으나 선지자를 원망하고 죽이려는 것이 잘못이다.

아무리 곤궁에 빠져서 다 죽게 되어도 하나님의 종과 교회는 다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기관을 다치게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욥이 재앙을 받아 형편없이 되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복을 받았다.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따라다녔지만 하나님께 대해서나 하나님의 기름 부은 왕은 언제나 아끼고 귀히 여겼다.

 

. 6:32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장로들이 저와 함께 앉았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내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자식이 내 머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엘리사는 왕이 자기를 잡으려고 한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알고 있었다.  살인한 자의 자식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가리킨다.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엘리사를 잡으러 오는 왕의 사자들이 오거든 집에 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왕이 홧김에 엘리사의 목을 자르라고 사람을 보내 놓고는 곧 뉘우치고 엘리사가 죽을까봐 왕이 급히 따라 오고 있는 중이다. 그것을 엘리사가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잠시만 있으면 왕이 와서 죽이지 말라고 할 것이므로 사자를 문에 들이지 말라고 한 것이다. 왕이 베옷을 입고 회개하는 중에 있고 또 과거에 엘리사가 이스라엘을 구원한 공이 있기 때문에 엘리사를 죽이면 안되겠다고 왕이 생각한 것이다.

 

. 6:33  무리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가 이르니라 왕이 가로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왕이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 온 줄을 알았다. 여호와의 시킨 것이 아니면 재앙이 임하지 않는다(암3:6).  성도들은 재앙이 임할 때 여호와께서 주신 줄 알고 여호와께서 주신 잔을 달게 받으면서 회개하여야 한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며 인본주의로 생각하지 말고 여호와께로부터 왔다고 믿어야 한다.  어떤 재앙을 만나든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회개시켜서 더 좋은 것을 주려고 주신 줄 믿고 참는 자가 복을 받는다.  예레미야애가 3:24-26에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 라 하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했다.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멍에를 잘 메고 끝까지 참으면 때가 이르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으로 갚아 주신다.

 

제 7 장   아람 군대의 도망

 

(대  지)

 

一. 사마리아 성중에 곡식이 풍성할 것을 예고함(1)

二. 하나님의 권능을 불신한 장관이 죽을 것을 말함(2)

三. 네 문둥이가 아람 진에 감(3-5)

四. 주께서 아람 군대로 도망치게 함(6-7)

五. 아람 군대가 도망친 것을 문둥이들이 보고함(8-11)

六. 왕이 정탐케 함(12-15)

七. 아람 진을 노략함과 장관의 죽음(16-20)

 

(본문강해)

 

一. 사마리아 성중에 곡식이 풍성할 것을 예고함(1)

 

. 7:1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오랫동안 심한 기근으로 인하여 사마리아 성중의 사람들이 굶주려 기진맥진(氣盡脈盡)해졌고 더 이상 살 도리가 없게 되었다.  그 때에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내일 이맘때에는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된다고 하였다.  한 스아는 약 7.7ℓ에 해당한다.  이것은 요즈음 도량형(度量衡)으로 약 반말(斗) 정도이다.

사람의 것이 진(盡)해져야 하나님의 것이 온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 포도주가 다 떨어졌을 때에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다(요2:1-11).  사람이 아직도 제가하려고 할 때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  사람이 할 수 없이 되어 하나님께만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임한다.

굶주린 백성들이 내일 이맘때에는 먹을 것이 풍성케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소망이 생기고 용기가 났다.  당장은 배가 고프지만 그 말씀을 믿을 때에 든든하고 담대한 마음이 생겼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망이요, 사는 길이다.

 

二. 하나님의 권능을 불신한 장관이 죽을 것을 말함(2)

 

. 7:2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왕이 가장 귀히 쓰는 장관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비방하고 반박하였다.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믿지 아니하고 불평하며 반대하는 사람은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거기에 참여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지식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가고 자기 판단으로 자기가 정죄당하고 만다.  고린도전서 3:19에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미련한 것이요 지혜 있는 자로 하여금 자기 궤계에 빠지게 한다고 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된다고 했으면 그대로 될 것을 믿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왕 바로의 수하에서 해방되어 나가는 것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였고, 홍해가 앞에 가로막혔을 때에 절망적으로 느껴졌으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믿고 나아갔으므로 자신과 백성을 구원하였다.  믿음으로 나가지 않으면 좋은 일이 올 때에 거기에 참여하지 못한다.

 

三. 네 문둥이가 아람 진에 감(3-5)

 

. 7:3-5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지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 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 가에 이르러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문둥이 네 사람이 아람 군에게 항복하려고 아람 진으로 갔다.  가만히 있으면 굶어 죽을 것이나, 아람 진에 가서 항복하면 혹시 살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적진인 아람 진으로 간 것이다.  이것은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왕 앞에 나아갈 때에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심하고 나간 것과 같다(에4:16).  그 문둥이들이 아람 진에 가보니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었다.

 

四. 주께서 아람 군대로 도망치게 함(6-7)

 

. 7:6-7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들에게 큰 군대가 오는 소리를 들리게 했으므로 아람 군대가 크게 두려워하여 모든 것을 버려두고 다 도망쳤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두려운 마음을 없애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면 아무 것도 아닌 것에도 벌벌 떤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병기 잡은 자와 함께 단둘이 블레셋 군대를 쳤는데, 블레셋 전군대가 다 떨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떨리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다(삼상14:15).  한국에서도 8·15 해방된 지 며칠 후 중공군이 나온다는 소문이 신의주에서부터 퍼졌는데, 그 소문이 삽시간에 평북 전 지역에 퍼져 피난가느라고 소동이 났고, 평남도 그 소문을 듣고 피난 가는 소동이 일어났다.  그 후에 밝혀진 사실은 신의주 감옥에서 푸른 옷 입은 죄수들 수백 명이 8·15해방으로 인하여 석방되었는데 그것을 보고 중공군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을 지키는 분도 하나님이시요(시127:1), 원수를 오게 하시는 분도, 원수를 물리쳐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성을 견고하게 쌓고 아무리 잘 지킨다고 할지라도 순식간에 다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아무리 원수가 많고 강해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면 원수가 손을 대지 못한다.  히스기야왕 때에 앗수르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하룻밤에 18만 5천 명을 다 죽이고 예루살렘 성을 건져 주셨다(19:35).

 

五. 아람 군대가 도망친 것을 문둥이들이 보고함(8-11)

 

. 7:8  그 문둥이들이 진 가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문둥이 네 사람이 아람 진에 들어가서 그들이 버리고 간 양식을 마음껏 먹고 마시고 금은과 의복을 취하여 감추고 또 다른 장막에서도 물건을 취하여 감추었다.

 

. 7:9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그 문둥이들이 성중에서 굶주리고 있는 자기 백성들을 생각하고 성에 들어가 이 좋은 소식을 전하기로 작정하였다.  만일 잠잠하고 아침까지 기다리면 하나님의 큰 벌이 자기들에게 임할 줄로 알았다.

 

. 7:10-11  드디어 가서 성 문지기를 불러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 보니 거기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저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저희가 왕궁에 있는 자에게 고하니

그 문둥이들이 성으로 달려가 자기들이 본 사실을 문지기에게 고했고 문지기는 왕궁에 있는 자들에게 고했다.  문둥이들이 이렇게 행한 것은 잘한 일이다.  만일 이 문둥이들이 소식을 전해 주지 않고 자기들 욕심만 채웠더라면 분명히 하나님께 벌을 받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살리려고 적군을 물러가 게 하셨는데, 이 사실을 알고도 전해 주지 않으면 죄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살릴 목적으로 일해 놓았는데 먼저 발견한 자가 그 사실을 전하지 않고 자기 욕심 채우는 데만 급급해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는가?  또 망대에서 파수꾼이 항상 적진의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 아람 군대의 진에 아무 사람도 보이지 않으면 정탐을 보내어 확인해 볼 것이 분명하다.  그 때에는 문둥이들이 한 일도 알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백성들이 그 문둥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기쁜 소식이 있을 때 자기들만 알고 이것을 전해 주지 않으면 화가 있다.  우리도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 자기만 구원받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지 않으면 화가 미칠 줄 알아야 한다(고전9:16).

 

六. 왕이 정탐케 함(12-15)

 

. 7:12  왕이 밤에 일어나 그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저희가 우리의 주린 것을 아는 고로 그 진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저희들이 성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왕은 그 보고를 듣고도 사실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아람 군대의 전술로 생각했다.  이것은 왕이 경솔히 판단하지 않고 신중히 생각하느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생각이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아무리 지혜 있는 사람의 생각이라도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지혜 이상으로 일해 놓으시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으로는 잘 알지 못한다.

 

. 7:13-15  그 신복 중 하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필을 취하고 사람을 보내어 정탐하게 하소서 이 말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저희가 병거 둘과 그 말을 취한지라 왕이 아람 군대 뒤로 보내며 가서 정탐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그 뒤를 따라 요단에 이른즉 아람 사람이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군물이 길에 가득하였더라 사자가 돌아와서 왕에게 고하매

왕이 하나님의 일을 믿지 않을 때에 지혜 있는 신하 한 사람이 좋은 의견을 제출해서 그 말대로 말 다섯 필과 마병으로 아람 진을 정탐케 하도록 했다.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필 기근에 죽고 남아 있는 몇 안되는 말들 중에서 다섯 필을 보내자는 말이다.  이 말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그 말들이 성중에서 굶주려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과 처지가 같다는 것이다.  혹 이미 굶어 죽은 무리들과 같은 형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래도 죽을 말(馬)이므로 그 말로 정탐해 보자는 것이다.

왕은 그 신하의 말(言)을 받아들여 정탐꾼을 보내어 아람 진을 정탐케 했는데, 문둥이들이 전한 것과 같이 아람 군대가 모든 것을 버리고 급히 도망친 사실을 정탐꾼들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七. 아람 진을 노략함과 장관의 죽음(16-20)

 

. 7:16-20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왕이 그 손에 의지하였던 그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저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의 한 말 대로라 일찌기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한즉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그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었으되 곧 백성이 성문에서 저를 밟으매 죽었더라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제히 성을 나가 아람 진을 노략하였다.  그러므로 그 날에 엘리사의 말대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었다(1절).  그리고 왕이 그 손에 의지하던 장관, 곧 엘리사가 예언할 때에 믿지 않고 비방하던 그 사람은 식량이 풍성해진 것을 보기는 했으나 먹지 못하고 성문을 지키다가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었다.

왕이 그 손에 의지하였던 그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왕이 그 장관을 성문에 세운 것은 혹시 아람 군대가 성 주위에 매복해 있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성에서 나가면 그 백성을 사로잡고, 성을 쳐올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성문을 지키게 했을 것이다.  이 장관이 왕의 명대로 성문을 지키다가 굶주린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나가기 때문에 성문에서 밟혀 죽은 것 같다.  또는 굶주린 백성들이 이 장관의 권위를 거부하고 그의 통제하려는 행위를 거부하면서 그를 밟아 죽였을 것이다(풀핏).

이 장관은 곡식이 풍성해진 것을 보기는 했지만 먹지는 못하고 죽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또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비방하다가 죽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 말씀의 역사를 믿어야 한다.  현재는 눈에 안 보이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만능으로 그 말씀을 이루실 것을 믿어야 그 은사에 참여할 수가 있다.

 

제 8 장   하사엘이 아람 왕이 됨

 

(대  지)

 

一. 수넴 여인이 흉년을 면함(1-2)

二. 수넴 여인이 집과 전토를 도로 찾음(3-6)

三. 아람 왕이 병들매 엘리사에게 물음(7-10)

四. 엘리사의 예언대로 하사엘이 아람 왕이 됨(11-15)

五. 여호람왕의 실패와 그 원인(16-24)

六. 아하시야왕의 실패와 그 원인(25-29)

 

(본문강해)

 

一. 수넴 여인이 흉년을 면함(1-2)

 

. 8:1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명하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속 재앙을 내리셨다.  엘리야 때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흉년이 들었고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을 때에도 기근이 아주 심하여 자기 아들을 잡아먹기까지 하였다(6:24-29).  본문에서도 하나님이 7년간 기근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을 잘 공궤하었던 수넴 여인에게는 앞으로 7년 동안 기근이 임할 것이니 일어나 권속과 함께 거할 만한 다른 곳으로 가서 기근을 면하라고 엘리사를 통하여 말씀해 주셨다.

 

. 8:2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 권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수넴 여인이 엘리사의 말을 듣고 블레셋 땅에 가서 7년 동안 거했다.  이스라엘 땅에는 기근이 심했으나 블레셋 땅에는 기근이 없었다.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을 잘 공경하고 섬겼으므로 기근을 면하도록 하나님이 좋은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기근 가운데서도 지켜 주신다(욥5:17-21).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시켜서 떡과 고기를 가져다가 기근을 면하게 하시고, 엘리야를 섬긴 사르밧 과부도 3년 6개월 동안 기근을 면하게 하셨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영적 기근이 와도 하나님께서 그 기근을 면하게 해주시고 신령한 양식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주신다.

 

二. 수넴 여인이 집과 전토를 도로 찾음(3-6)

 

. 8:3-4  칠 년이 다 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돌아와서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씀하며 가로되 너는 엘리사의 행한 모든 큰일을 내게 고하라 하니

수넴 여인이 7년 후에 블레셋 땅에서 돌아와 보니 자기의 집과 전토(田土)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주지 않으므로 왕에게 호소하려고 왕에게 나아갔다.  그 때에 마침 왕이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를 불러 엘리사가 행한 큰일을 보고 받고 있었다.  게하시가 전에 탐욕으로 인하여 문둥병이 걸렸었는데 격리(隔離)되어 있다가 이 때는 왕이 엘리사의 일한 사실을 들으려고 불러 온 것 같다.

 

. 8:5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미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가로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게하시가 왕에게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마침 수넴 여인이 토지를 위해 왕께 호소하였다.  그때 게하시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인물이 그 여인이라고 증거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수넴 여인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함이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때를 맞추지 못하면 효과를 볼 수 없으며 기회가 좋을 때에 말을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잠15:23).  그 때를 맞게 해주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을 순종하여 말씀대로만 걸어가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신다.

 

. 8:6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고한지라 왕이 저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가로되 무릇 이 여인에게 속한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

왕이 한 관리를 명하여 수넴 여인에게 속한 것과 7년 동안의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고 하였다.

 

三. 아람 왕이 병들매 엘리사에게 물음(7-10)

 

. 8:7-8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에 아람 왕 벤하닷이 병들었더니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 이르렀나이다 왕이 하사엘에게 이르되 너는 손에 예물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맞고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나의 이 병이 낫겠나 물으라

엘리사가 아람의 수도 다메섹에 갔다.  엘리사가 다메섹에 간 것은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첫째, 전에 군대 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주었을 때에 그가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했으므로 나아만의 신앙을 돈독(敦篤)히 해주고 권면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이 때는 나아만이 군대 장관의 직위에서 물러나고 그를 대신하여 하사엘이 군대 장관이 된 때였다.  나아만은 신앙 문제 때문에 물러난 것 같다.  둘째,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하여 아람 나라에 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엘리사를 보낸 것 같다.  왕상 19:15에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라고 한 일이 있는데 그 일을 위하여 엘리사를 보낸 것 같다.

이 때는 아람 왕 벤하닷이 병들어서 고통 중에 있었는데 엘리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람 왕이 군대장관 하사엘을 엘리사에게 보내어 자기의 병이 낫겠는가 물어 보라고 했다.  아람 왕이 전에는 엘리사를 죽이려고 했으나(6:13), 지금은 병들었으므로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선지자의 인도를 받으려고 했다.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의 사람을 거역하다가 징계를 받아 병들고 위태하게 될 때에는 그 마음이 다 깨져 나가고 하나님의 사람을 존경하고 그의 인도를 받으려고 하는 자가 많다.

 

. 8:9  하사엘이 드디어 맞으러 갈새 다메섹 모든 아름다운 물품으로 예물을 삼아가지고 약대 사십에 싣고 나아가서 저의 앞에 서서 가로되 당신의 아들 아람 왕 벤하닷이 나를 당신에게 보내어 가로되 나의 이 병이 낫겠나이까 하더이다

하사엘이 왕의 명대로 약대 40마리에 많은 예물을 싣고 엘리사에게 나아가 왕의 병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이때 엘리사가 하사엘이 가져온 예물을 다 받았다.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주었을 때는 예물을 받지 않고(5:16) 보냈는데 이 때는 왜 받았는가?  그 때는 예물을 받으면 나아만의 신앙도 손해가 나고 하나님의 영광도 가리워지고 아람 왕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러 올 염려가 있으므로 받지 않았지만, 이 때는 받아도 괜찮은 때였으므로 예물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선물을 준다고 다 받는 것이 아 니고 하나님 구원 운동에 조금이라도 손해나는 것은 받지 않아야 한다.

 

. 8:10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왕이 정녕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가 정녕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고

왕이 정녕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가 정녕 죽으리라 아람 왕이 병은 낫겠으나 하사엘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가리킨다.  왕의 병은 정녕 나을 것이지만 다른 일로 인하여 죽게 된다는 것이다. 병들었다고 다 죽는 것이 아니고 병이 나았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목숨은 하나님이 살려 주는 날까지 살고 하나님이 데려가실 때에는 죽는 것이다.

 

四. 엘리사의 예언대로 하사엘이 아람 왕이 됨(11-15)

 

. 8:11  하나님의 사람이 저가 부끄러워하기까지 쏘아보다가 우니

엘리사가 하사엘을 쏘아보다가 운 것은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많이 죽이겠기 때문이다.

 

. 8:12  하사엘이 가로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저희 성에 불을 놓으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아이를 메어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하사엘이 아람 왕이 되어 장차 이스라엘의 성들을 헐고 장정을 칼로 죽이고 어린아이와 부녀들을 비참하게 죽일 것을 예언해 주었다.

 

. 8:13  하사엘이 가로되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관대 이런 큰일을 행하오리이까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관대 이런 큰일을 행하오리이까 하사엘이 자기는 엘리사가 말한 대로 그런 큰 사건을 행할 수 없는 사람으로 알고 대답한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환경에 따라 변한다.  왕의 자리에 올라가면 마음이 교만해지고 또 이스라엘과 싸우게 되면 예상 밖의 많은 악을 행하게 된다.  사람은 연약하기 때문에 환경과 지위에 따라서 변하기 쉽다.  아무리 환경이 나아지고 자리가 높아져도 언제든지 처음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은 복이 있다.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이방 나라 왕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사엘을 아람 왕으로 세울 것을 예정해 놓으셨다(왕상19:15).

 

. 8:14  저가 엘리사를 떠나가서 그 주인에게 나아가니 왕이 묻되 엘리사가 네게 무슨 말을 하더냐 대답하되 저가 내게 이르기를 왕이 정녕 나으시리라 하더이다

하사엘이 벤하닷왕에게 엘리사의 말을 보고할 때에 병이 낫는 다는 말까지만 하고 죽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왕에게 사실 전부를 고해야 할 터인데 일부만 고한 것은 거짓된 보고요 왕을 무시한 보고다.  심부름하는 사람은 듣기 좋은 말이나 듣기 싫은 말이나 사실 그대로 보고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왕에게 병이 낫는 다는 말뿐 아니라 죽는다는 말도 말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이 죽음에 대한 준비도 하고 회개하고 바로 서기도 하고 사후대책(死後對策)도 세워 나갈 수 있다

 

. 8:15  그 이튿날에 하사엘이 이불을 물에 적시어 왕의 얼굴에 덮으매 왕이 죽은지라 저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하사엘이 이불을 물에 적셔다가 왕의 얼굴에 덮으니 왕이 질식(窒息)하여 죽었다.  왕이 하사엘을 제일 신임하고 믿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맡기고 침실에까지 들어오게 하였는데, 제일 가까운 그 사람이 왕을 죽인 것이다.  하사엘로서는 쉽게 왕을 죽일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하사엘은 왕이 병으로 죽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은 하사엘이 왕을 죽인 것을 모르고 하사엘을 왕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으며 그 사실을 성경에 기록시켜서 후대에 많은 사람이 다 알게 하셨다.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는 일은 아주 악한 일이다.  아람 왕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죽었으나 자기 주 왕을 죽인 하사엘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 악한 일은 영원히 남게 되고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五. 여호람왕의 실패와 그 원인(16-24)

 

. 8:16-18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 오 년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오히려 위에 있을 때에 그 아들 여호람이 왕이되니라 여호람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삼십 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을 치리하니라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를 행하였으나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유다 왕이 되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잘 섬긴 선한 왕이었으나 그 아들 여호람은 악한 일을 많이하여 마침내 실패했다.  그 실패의 원인은,

첫째, 아버지가 살았을 때에 아들을 왕위에 앉힌 것이다.  아버지가 아직 살았을 때에 왕권을 맡았기 때문에 교만하고 오만한 마음이 들어와 아버지의 지도를 받지 아니하고 실패하는 길로 점점 나아간 것이다.  여호사밧왕이 자신의 생존시에 아들을 왕으로 세운 것이 잘못이다.  여호사밧왕이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친히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자기의 아들에 대해서는 좀더 연단시키고 좀더 다스린 후 왕위를 물려주어야 했을 것이다.

둘째, 타락한 이스라엘과 교제를 했기 때문이다.  여호사밧왕은 이스라엘 왕 아합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교제를 계속하고 있었다(3:6-12).  그러므로 아들 여호람은 아합의 행위가 옳아 보여서 그것을 따라 간 것이다.  요한계시록 2:20-23에 보면 두아디라 교회가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했기 때문에 용납한 자를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그 자녀는 사망으로 죽인다고 했다.  자녀는 이세벨 교훈이 동화(同化)된 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이세벨 교훈이 좋은 줄 알고 따라가기 때문에 아주 죽고 만다.  그러므로 악의 세력과는 아예 교제를 끊어야 한다.  적은 누룩을 제거하지 않으면 온 덩이에 퍼지고 만다.

셋째, 여호사밧이 아합의 딸로 여호람의 아내를 삼은 것이다.  여호사밧이 아들을 결혼시킬 때 왕자이므로 아내도 왕의 딸을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타락된 아합의 딸을 자부(子婦)로 데려온 것이다.  이것은 혼인을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고 세상 권세와 세상 지위를 표준하여 한 것이다.  결혼할 때에 신앙으로 하지 아니하고 세상 학벌과 돈과 직장과 외모를 보고 결혼하면 실패한다.  아합의 딸은 곧 이세벨의 딸이다.  그러므로 이세벨을 보더라도 그녀의 딸을 자부로 데려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 여자가 여호사밧 왕가에 많은 손해를 주었고 유다 전체에 큰 해를 주었다.

 

. 8:19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저와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

여호람이 자기 선조 다윗의 길로 행치 아니하고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했으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징벌했으나 아주 멸망시키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다윗의 왕통(王統)이 영영히 끊어지지 않게 해주시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왕상11:36).  하나님은 약속한 것을 변치 않고 지키신다.  이것은 다윗 왕통에서 계속 왕이 나오다가 마지막에는 그리스도가 그 왕통에서 나게 하실 악속인 것이다.

 

. 8:20-22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 뮤다의 수하에서 벗어나 자기 위에 왕을 세운 고로 여호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갔더니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치니 이에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 장막으로 돌아갔더라 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더니 오늘날까지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였더라

유다 왕 여호람이 하나님과 그 말씀을 떠나 아합의 길을 따라 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에돔 왕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했다(대하21:8).  또 립나도 여호람의 손에서 벗어났다.  립나는 유다의 한 부분이었는데 배반한 것이다.  유다의 관할 아래 있던 나라와 성읍들이 유다 왕에게서 벗어난 것이다.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주셨던 것을 다 빼앗아 가신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하지 못하고 신앙을 잘 지키지 않으면 자녀들이나, 하인들이나, 기업체들도 자신의 수하에서 벗어나가게 된다

 

. 8:23-24  여호람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람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열조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호람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많이 섬겼고 선지자 엘리야의 책망도 안 받고 자기 아우들을 죽이고 각종 악을 행하다가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해져 창자가 빠져 나와서 죽었다(대하21:4, 12, 15, 18, 19).  여호람이 죽은 후 그 아들 아하시야가 아버지를 이어 유다 왕이 되었다.  그 당시 북 이스라엘 왕도 여호람이었다(3:1).

 

六. 아하시야왕의 실패와 그 원인(25-29)

 

. 8:25-26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 십 이 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더라

아하시야가 22세 때 왕이 되었다.  역대하 22:2에는 아하시야가 42세에 즉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차이는 필사자(筆寫者)들이 성경을 베낄 때 40(  : 멤)과 20(  : 카프)의 히브리 원어가 비슷하므로 시각상 혼동하여 잘못 베낀 듯하다(박윤선).  아하시야의 즉위시 나이는 22세로 보는 것이 옳다.  그 이유는 8:17에 아하시야의 부친 여호람이 32세에 왕이 되어 8 년간을 치리했으므로 여호람이 40세 때 그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된 것이다.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 나이가 42세라고 하면 아버지 나이와 거의 같이 되기 때문이다.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인데 오므리의 손녀라고 했다.  오므리는 아합의 아버지(왕상16:28-29)이므로 아달랴는 아합의 딸이다.

 

. 8:27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저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악을 행했다.  그는 아합의 딸을 아내로 삼았기 때문에 그 아내의 영향으로 악을 많이 행한 것이다(대하22:2-9).

 

. 8:28-29  저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 요람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맞아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있으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르엘에 내려가서 방문하였더라

유다 왕 아하시야가 북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여호람)과 교제하며 같이 나가서 아람과 싸우다가 요람이 부상당하므로 실패하였다.  유다 왕 아하시야는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악한 이스라엘 왕과 교제하며 요람을 문병하러 이스르엘에 갔다가 예후에게 요람과 함께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9:16-27).

 

제 9 장   예후가 왕이 됨

 

(대  지)

 

一. 엘리사가 생도를 시켜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임무를 줌(1-10)

二. 예후가 왕이 됨(11-13)

三. 예후가 요람왕을 죽임(14-26)

四. 예후가 유다 왕 아하시야를 죽임(27-29)

五. 예후가 이세벨을 죽임(30-37)

 

(본문강해)

 

一. 엘리사가 생도를 시켜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임무를 줌(1-10)

 

. 9: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라는 하나님 말씀을 엘리야가 받았고(왕상19:16),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부탁했고, 엘리사는 그 생도를 시켜서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았다.  자기가 못다한 것은 후계자에게 넘겨주어 하게 하는 것이 원리 원칙이다.  그러므로 바른 후계자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일은 한 세대에 다 끝나는 것이 아니고 후대까지 계승해 나가야 한다.  기름 붓는 일에 엘리사가 직접 가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방해받지 않고 하기 위함이다.

길르앗 라못으로 간 것은, 그때 예후가 아람 사람과 전쟁하기 위해서 길르앗 라못에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 9:2-3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 가서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

\"골방\"으로 들어가서 기름을 부으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왕을 세우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은밀한 가운데서 당신의 일을 해 나가신다.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 하나님의 임무를 다 이행한 다음에는 그 곳을 빨리 떠나는 것이 좋다.  임무를 다한 다음에도 계속 머물게 되면 시험이 들어올 염려가 있고 마귀에게 악용 당할 염려가 있다.

 

. 9:4-7  그 소년 곧 소년 선지자가 드디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저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았는지라 소년이 가로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씀이 있나이다 예후가 가로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뉘게 하려느냐 가로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소년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엘리사의 명을 받은 소년 선지자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엘리사가 시킨 대로 예후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다.

아합의 집을 치라 그때 이스라엘 왕은 아합의 아들 여호람(요람)이었는데(1:17, 8:16), 그 아합의 모든 자손을 다 치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합은 이세벨의 꾀임에 빠져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종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

 

. 9:8-10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저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여로보암은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데 그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집을 멸망시켰다(왕상15:29).  바아사의 집 바아사는 이스라엘의 3대 왕인데, 그도 또한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그 집을 멸망시켰다(왕상16:11).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도 그와 같이 멸망시킨다는 것이다.

 

二. 예후가 왕이 됨(11-13)

 

. 9:11  예후가 나와서 그 주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묻되 평안이뇨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

그 미친 자 선지자의 생도들은 보통 사람들이 보면 미친 사람과 같이 보였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만 행동하고 보통 사람들 같이 방탕하지 아니하고, 세속을 멀리 떠나서 살며 오직 하나님만 위해서 희생의 길을 걸어 나아가기 때문이다.  군대 장관들도 선지자의 생도가 자기들의 생활 방식과 다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미친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행하는 사람과 신령한 세계에서 사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외모를 볼 때에도 군대 장관들은 위엄 있고 엄격한 옷차림을 하고 당당한 권세로 행하는데 비해 선지자의 생도들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은 것처럼 초라한 옷을 입고 빈천(貧賤)한 생활을 하였으므로 멸시 한 것이다.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 조금 있으면 하나님께서 한 일을 하실 것인데 그 때는 다 알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기다려보면 안다.  사람이 광고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는 뜻을 이루셔서 누구나 알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의 비밀은 인을 뗄 때에야 안다(계6장).

 

. 9:12-13  무리가 가로되 당치 않은 말이라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대답하되 저가 이리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가로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예후와 함께 있던 장관들이 하나님께서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다는 말을 듣고 즉시로 예후를 왕으로 모셨다.  \"섬돌\"은 계단을 가리킨다.  다른 장관들이 돌층계 위에 자기들의 옷을 벗어서 깔고 예후를 그 위에 앉게 하고 나팔을 불면서 예후는 왕이라고 외쳤다.  그들이 선지자의 생도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지만(막3:21 참조), 선지자의 생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것을 양심으로는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외부적으로는 욕을 하고 멸시하고 천대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사람인 줄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전한 말대로 예후를 왕으로 삼은 것이다.

 

三. 예후가 요람왕을 죽임(14-26)

 

. 9:14-16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아람 왕 하사엘을 인하여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아람 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전하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이 거기 누웠음이라 유다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이에 예후가 혁명을 일으켜 요람왕을 반역하였다.  이때 요람왕은 얼마 전에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과 싸우다가 입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하여 이스르엘에 가 있었다.

 

. 9:17-20  이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섰더니 예후의 무리의 오는 것을 보고 가로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요람이 가로되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어 맞아 평안이냐 묻게 하라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가로되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가로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 하니라 파수꾼이 고하여 가로되 사자가 저희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다시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었더니 저희에게 가서 가로되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가로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 하니라 파수꾼이 또 고하여 가로되 저도 저희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의 모는 것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예후와 그 혁명군이 요람왕이 있는 이스르엘 성으로 달려 갈 때에 왕의 파수꾼이 왕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때 왕이 즉시 사람을 보내어 \"평안이냐\"고 물었다.  예후는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고 했다.  그 뜻은 지금 평안을 물을 때가 아니며 죽지 않으려면 자기 뒤로 돌이켜서 자기를 따르라는 것이다.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의 모는 것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예후는 군대 장관으로서 열심이 있고 병거를 몰 때 아주 빨리 거칠게 모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다.

 

. 9:21  요람이 가로되 메우라 하매 그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왕의 연락병이 돌아 오지 않고 큰 군대가 달려오는데, 요람왕이 자신을 보호할 만한 호위병도 없이 맞이하러 나간 것은 자신을 과신하고 부주의한 행동이다.  예후가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라 해도 아무 연락도 없이 군사를 몰고 급히 오며 연락병을 보냈어도 돌려보내지 않고 급히 오는데, 요람왕이 왕의 권위만 생각하고 괜찮을 줄 알고 맞으러 나간 것은 잘못이다.  언제나 사람이 잘 될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늘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유다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문병하려고 이스르엘에 갔던 차인데(8:29), 그도 정신없이 예후를 맞으러 나갔다가 죽임을 당했다(27절).

나봇의 토지는 요람왕의 부친 아합왕이 나봇을 죽이고 빼앗은 나봇의 포도원이다.  선지자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아합에게 말하기를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고 한 그 곳이다(왕상21:17-19).  그 곳에서 요람왕이 예후를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람이 보기에는 우연히 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행하시고 섭리하신 것이다.

 

. 9:22-23  요람이 예후를 보고 가로되 예후야 평안이냐 대답하되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요람왕의 어미 이세벨은 온 이스라엘로 우상을 섬기게 만들고 영적 음행을 하게 만들었으므로 온 나라에 육신적으로도 음란이 성행하였다.  우상 숭배는 육적 음란도 수반한다.  \"술수\"는 무당이나 점쟁이와 신접한 자들에게 묻는 일, 길흉을 보는 일 등이다.

 

. 9:24-26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어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살이 그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저가 병거 가운데 엎드러진지라 예후가 그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취하여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 아비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 아래같이 저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젯날에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시체를 취하여 이 밭에 던질지니라

요람왕이 도망치는 것을 예후가 활로 쏘아 거꾸러뜨렸다.  그리고 그 시체를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포도원 밭)에 던졌다.  이것으로 전에 엘리야가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을 모든 백성에게 알게 해주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 아합이 포도원을 빼앗으려고 나봇을 죽일 때 그 아들들도 죽인 것이다.  열왕기상 21:13에는 나봇만 죽인 것으로 되어 있으나 나중에 보복할까봐 그 후에 그 아들들도 죽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봇과 그 아들들의 피에 대하여 요람에게 보복하신 것이다.

 

四. 예후가 유다 왕 아하시야를 죽임(27-29)

 

. 9:27-29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동산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쫓아가며 이르되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니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저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그 신복들이 저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 열조와 함께 그 묘실에 장사하니라 아합의 아들 요람의 십 일 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유다 왕 아하시야는 요람왕을 문병하러 갔다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하시야는 왕된 지 1년 만에 죽었다(대하22:2).  아하시야는 악한 아합의 딸과 더불어 결혼했고(8:27),  악한 요람왕과 교제하며 함께 보조를 취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악한 것을 용납하고 타협하면 악을 따라가게 된다.  그러므로 악은 끊어 버리고 옳은 길로만 걸어 나가야 산다.

 

五. 예후가 이세벨을 죽임(30-37)

 

. 9:30-31  예후가 이스르엘에 이르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가로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이세벨이 이렇게 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머리를 풀고 통곡을 해야 하겠는데, 오히려 머리를 꾸미고 눈을 그린 것을 보면 이세벨이 얼마나 완악하고 강퍅하고 간교한 가를 알 수 있다.  머리를 꾸미고 눈을 그린 것은 다른 사람 앞에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태도이다.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시므리\"는 엘라왕을 반역하여 바아사 왕가를 멸절하고 이스라엘 왕이 되어 7일 동안 왕 노릇 한 자이다(왕상16:8-15). 이세벨이 예후에게 이렇게 말한 것은 \"네가 왕을 죽였지만 시므리처럼 얼마 못 가서 망할 것이라\"는 저주의 말이다.  왕을 죽이고 들어오는 예후 앞에서 이렇게 담대히 말한 것은 이세벨의 생각에 아직도 군사들 가운데 자기편이 많은 줄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9:32-33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가로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가로되 저를 내려 던지라 하니 내려 던지매 그 피가 담과 말에게 뛰더라 예후가 그 시체를 밟으니라

예후의 말을 듣고 내시가 이세벨을 창으로 내어 던지매 이세벨이 비참하게 죽었다.  죄를 지으면 원수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집안에 있는 법이다.  내시가 지금까지는 이세벨을 수종들고 도와주었지만 이번에는 이세벨을 죽이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심판할 때는 도와주던 사람이 죽인다.

 

. 9:34-37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가로되 가서 이 저주받은 계집을 찾아 장사하라 저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돌아와서 고한대 예후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로 말씀 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지라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 면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이세벨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예언한 대로 비참하게 죽었다(왕상21:23).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사람은 그 말씀대로 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사람은 그 성경 말씀대로 심판을 받는다.  이세벨을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頭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했다.  개들이 그 시체를 먹고 그것만 남긴 것이다.  이것도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된 것이다(왕상21:23-24).  시돈 왕의 딸이요 이스라엘 왕후가 비참하게 죽었다.  죄는 참으로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제 10 장   예후의 숙청

 

(대  지)

 

一. 아합의 아들 70인이 죽음(1-11)

二. 아하시야의 형제 42인이 죽음(12-l4)

三. 예후가 여호나답을 영접함(15-17)

四. 예후가 바알의 제사장을 죽임(18-25)

五. 바알당과 목상을 훼파함(26-29)

六. 여호와께서 예후의 왕위가 4대를 지내리라고 하심(30-31)

七. 하사엘의 침략과 예후의 죽음(32-36)

 

(본문강해)

 

一. 아합의 아들 70인이 죽음(1-11)

 

. 10:1  아합의 아들 칠십 인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어 이스르엘 방백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

아합의 아들 70명이 사마리아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아합이 아들들을 위해 훌륭한 교사들을 두고 또 궁내 대신과 부윤(府尹)과 여러 장로들을 그 곳에 두어 왕자들을 교육하고 보호하고 인도하게 하였다(5절).  아합이 아들들에게 특별한 교육을 시켜 지식면으로나 인격면으로나 그 나라의 으뜸이 될 만하도록 한 것이다.

 

. 10:2-3  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병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 아비의 위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사마리아에 있는 방백들과 아합의 아들들을 교육하는 여러 선생들에게 예후가 편지로 전하기를 아합의 아들 중에서 왕을 세워 싸우러 오라고 했다.  이것은 싸울 힘이 있으면 싸우고 싸울 힘이 없으면 항복하라는 것이다.

 

. 10:4-5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 왕이 저를 당치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궁내 대신과 부윤과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무릇 명하는 것을 우리가 행하고 아무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의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대신들과 장관들이 예후를 당하지 못할 줄 알고 예후에게 항복하고 그의 종이 되겠다고 했다.

 

. 10:6-9  예후가 다시 저희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 된 사람들의 머리를 취하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칠십 인이 성중에서 그 교육하는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편지가 이르매 저희가 왕자 칠십 인을 잡아 몰수히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사자가 와서 예후에게 고하여 가로되 무리가 왕자들의 머리를 가지고 왔나이다 가로되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 어귀에 두라 하고 이튿날 아침에 저가 나가 서서 뭇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사마리아에 있는 대신들과 장로들이 예후의 시키는 대로 아합의 아들 70인 머리를 잘라서 광주리에 담아 예후에게로 보냈다.  아합의 아들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었다.

 

. 10:10-11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예후가 무릇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 존귀한 자와 가까운 친구와 제사장들을 죽이되 저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께서 그 종 엘리야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졌다고 예후가 말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아무리 아들이 많고 공부를 잘하고 고등 교육을 시키고,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되어도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으면 이와 같이 망한다.

 

二. 아하시야의 형제 42인이 죽음(12-14)

 

. 10:12-14  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가더니 노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가로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 이 인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아하시야의 모친이 아합의 딸이고(8:26), 아하시야도 아합집의 사위였다(8:27).  그러므로 아하시야의 형제 42사람은 아합의 집의 외가 쪽으로 가까운 친척이었다.  그들이 아합의 아들 요람왕과 그 형제 70인과 태후(太后) 이세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문하러 가던 길에 예후를 만나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역대하 22:1에 \"예루살렘 거민이 여호람의 말째 아들 아하시야로 위를 이어 왕을 삼았으니 이는 전에 아라비아 사람과 함께 와서 영을 치던 부대가 그의 모든 형을 죽였음이라 그러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더라\"고 했다.  이것을 보면 아하시야의 형들은 이미 죽었으므로 본문의 아하시야의 형제들은 아하시야의 조카들이라고 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본문대로 형제들로 보는 견해가 타당하다.  아하시야의 형제들이 전에 다 죽었다고 해도 또 42명의 형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아하시야가 여호람의 말째 아들이며 또 형들은 전에 전쟁에서 죽었다고 한 것은 여호람의 본처에게서 낳은 아들이 다 죽어 말째 아하시야가 왕이 된 것을 가리키고 여기 형제 42인은 여호람의 서자(庶子)들인 것 같다.  이 42인도 예후에게 한꺼번에 죽임을 당했다.  그러므로 아하시야의 집안도 다 망한 것이다.

말씀에서 떠나 속화(俗化)된 북 이스라엘과 타협하고 혼인하며 교류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왕도 죽고, 왕의 형제들도 죽고 유다 왕가가 몰살을 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세벨을 용납하지 말고 비진리와 타협하지 말고 성경대로만 걸어가야 한다.

 

三. 예후가 여호나답을 영접함(15-17)

 

. 10:15-16  예후가 거기서 떠나 가다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 맞으러 오는 것을 만난지라 그 안부를 묻고 가로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가로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가로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났다. 레갑 족속은 대대로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집도 짓지 않고 포도원을 재배하지도 않고 일생 장막에 거하며 경건한 생활을 하는 족속이다(렘35:6-18).  그들은 죄를 미워하며 신앙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예후와 마음이 합했고 예후가 하는 하나님 나라 일에 협력했다.  악한 자와 협력하는 자는 망하고 선한 싸움에 협력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

 

. 10:17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를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예후가 사마리아에 가서 아합에게 속한 자를 전부 진멸하였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대로 된 것이다(왕상21:20-26).

 

四. 예후가 바알의 제사장을 죽임(18-25)

 

. 10:18-19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치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오게 하라 무릇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리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궤계를 씀이라

예후가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다 죽이려고 궤계를 꾸몄다.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거저 오라고 하면 오지 않을 것이다.  이 때는 자기들을 비호해 주던 왕과 왕의 형제들과 왕의 근친(近親)이 다 죽임을 당하는 때이므로 자기들도 죽임을 당할까봐 오지 않는 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예후가 궤계를 써서 자기는 바알을 더욱 전적으로 섬기겠다고 공언(公言)하고 바알에게 큰제사를 드리겠으니 바알의 선지자는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다 오라고 한 것이다.

 

. 10:20-23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 하였더라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두루 보내었더니 무릇 바알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당에 들어가매 이편부터 저편까지 가득하였더라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어다가 무릇 바알 섬기는 자에게 주라 하매 저희에게로 예복을 가져 온지라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으로 더불어 바알의 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전국에 공포하고 전국의 바알 선지자를 다 모아서 바알에게 제사하게 했다.  또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시켜 바알의 당에 들어가 바알 선지자가 아닌 자들을 구별하여 내라고 하였다.  혹시 여호와의 종이 있으면 살리려고 한 것이다.  바알 제사장들은 출세한 줄 알았을 것이다. 만일 여호와의 종도 출세하기 위해서 거기 있었으면 죽는다.

 

. 10:24-25  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인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붙이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번제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장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장관들이 칼로 저희를 죽여 밖에 던지고 바알의 당있는 성으로 가서

그들이 바알에게 번제드리기를 마치매 예후가 호위병과 장관들을 시켜 바알 선지자 전원을 죽였다. 예후가 바알 선지자를 다 죽인 것은 잘했으나 그 방법이 옳지 못하다.  궤계를 쓰지 않고 진실하게 해도 마침내는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일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목적과 방법이 다 진실해야 한다.

 

五. 바알당과 목상을 훼파함(26-29)

 

. 10:26-27  바알의 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하여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이에 무리가 바알의 당에서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 당(堂)을 훼파하고 그 곳을 변소로 만들었다.

 

. 10:28-29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예후가 바알만 멸하고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는 멸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백성들로 벧엘과 단에서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여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만일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면 유다 왕에게로 돌아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예후가 절반은 하나님께 바로 했으나 절반은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했다.  한 편은 죄를 잘 다스렸으나 한 편은 잘 다스리지 못했다.  예후는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행하고 불리한 것은 행치 않았다.  참신앙은 육신적으로 손해가 나도 하나님 말씀으로 해 나가는 것이다(시15:4 참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이면 자기에게 손해가 날 것도 다 지켰다.  아브라함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났고, 백 세에 난 아들을 바쳤고, 조카 롯의 목자와 자기의 목자가 서로 다툴 때도 좋은 땅을 롯에게 양보하였다.

 

六. 여호와께서 예후의 왕위가 4대를 지내리라고 하심(30-31)

 

. 10:30-31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 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그의 잘한 것을 칭찬해 주시면서 그의 왕권이 4대를 간다고 하였다.  그의 왕계(王系)는 여호아하스, 요하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인데 모두 약 100 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예후가 하나님의 명대로 아합의 집을 숙청(肅淸)하고 바알 신을 멸하는 등 하나님의 마음에 시원하게 잘한 것이 많다.  그러나 잘못한 것도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때에 자기 방법으로 행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한 것은 좋으나 궤계를 써서 행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방법도 옳은 방법을 써야 한다.  인간의 방법과 거짓된 방법으로 행하면 바로 된 것이 아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때 자기의 권세 확보를 위해 행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때 지나친 잔인성을 가지고 행했다.  죄인을 죽일지라도 잔인하게 행했다.  유다 왕 아하시야와 그의 형제 42인을 한꺼번에 죽인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다.

넷째,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행했다.  즉 기도하지 않고 행한 것이다.

다섯째, 금송아지를 멸하지 않고 섬긴 죄이다.  자기에게 유익 된 것은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냥 두었다.

여섯째,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 어느 정도 하나님의 말씀을 행한다고 했지만 전적으로 행하지 않고 일부를 양보하였다

 

七. 하사엘의 침략과 예후의 죽음(32-36)

 

. 10:32-33  이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이스라엘을 찢으시매 하사엘이 그 사방을 치되 요단 동편 길르앗 온 땅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바산까지 하였더라

앞에서 말한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원수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찢으셨다.  요단 동쪽 길르앗 온 땅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이다(민32장).  그 땅을 아람 왕 하사엘이 와서 친 것이다(암1:3).

 

. 10:34-36  예후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모든 권세는 이스라엘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예후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예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햇수는 이십 팔년이더라

예후가 죽고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다.  예후는 28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제 11 장   아달랴

 

(대  지)

 

一. 아달랴가 정권을 빼앗음(1-3)

二.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움(4-12)

三. 아달랴가 죽임을 당함(13-16)

四. 요아스왕과 백성 간에 언약을 세움(17-21)

 

(본문강해)

 

一. 아달랴가 정권을 빼앗음(1-3)

 

. 11:1-3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요람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 요아스가 저와 함께 여호와의 전에 육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아하시야왕이 죽으매 그 모친 아달랴가 왕의 씨를 다 멸하고 자기가 왕이 되었다.  아달랴는 요람왕의 아내이며 여호사밧왕의 자부(子婦)요 북 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었다.  아달랴가 왕이 되고자 자기의 손자들을 다 잡아 죽였다. 조모가 손자를 사랑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왕이 되려고 자기 손자들을 다 죽인 것은 아주 악독한 일이다.  아달랴가 그 모친 이세벨의 악을 본받아 자라났기 때문에 이렇게 엄청난 악을 행하였다.  명예욕에 눈이 어두워져서 자기 가문(家門)도 손자도 안 보인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는 다윗의 자손이 왕이 되어야 하는데 아달랴는 하나님 말씀도 하나님의 나라도 생각지 않고 오직 자기가 높아지고 권세를 잡으려는 욕심 때문에 큰 죄악을 저질렀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자기를 위하는 정신에서 따먹은 것이다.  자기를 위하는데서부터 만 가지 죄가 다 시작된다.

아달랴가 왕자를 죽이는 중에서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제일 어린 왕자 요아스를 도적해다가 6 년간 여호와의 전에 숨겨서 길렀다.  만일 이 요아스까지 죽었더면 다원의 왕통이 끊어질 뻔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왕의 누이를 이용하여 어린 왕자를 건져내신 것이다.

여호세바는 여호람(요람)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다(대하22:11). 그러므로 그 왕자를 성전에서 기를 수 있었다.  여호세바가 제사장에게 출가한 것은 믿음으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를 구원하고, 유다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요람왕은 왕의 딸과 결혼하려는 욕심으로 북 왕국 이세벨의 딸을 아내로 삼았기 때문에 자기도 망하고 집안이 다 망하게 되었다.

육년을 숨어 있는 동안 아달랴가 알면 즉시 죽일 그 아이를 육 년 동안 숨겨 기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믿음으로 잘 참고 견디었다.  그것은 마치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겨 기른 것과 같다.

 

二.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움(4-12)

 

. 11:4  제 칠 년에 여호야다가 보내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고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서 맹세케 한 후에 왕자를 보이고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린 지 제7년째 되는 해에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위에 세우려고 백부장들과 호위병을 하나님의 전으로 불러모아 놓고 그들과 은밀히 의논하고 7세 된 왕자를 보이니 그들도 왕통을 이을 왕손이 있음을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

 

. 11:5-8  명하여 가로되 너희의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 입번한 너희 중 삼분 일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삼분 일은 수르 문에 있고 삼분 일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이와 같이 왕궁을 주의하여 지켜 방어하고 안식일에 출번하는 너희 중 두 대는 여호와의 전을 주의하여 지켜 왕을 호위하되 너희는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무릇 너희 반열을 침범하는 자는 죽이고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할지니라

레위 사람 중에서 성전을 지키기 위하여 안식일에 한 대(一隊)는 입번(入番)하였고 한 대는 출번(出番)하였다(대상9:17-27 ; 26:1-13 ; 대하23:4).  한 부대가 안식일 아침에 들어가 일주일 동안 성전의 여러 곳을 호위하다가 다음 안식일 저녁에 나오므로 안식일에는 두 부대가 같이 근무하게 된다.

여호야다가 아침에 입번하는 부대를 세 부대로 나누어 삼분의 일은 왕궁을 지키고, 삼분의 일은 수르 문을 지키고, 삼분의 일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기초문, 대하23:5)에서 지키게 했다.  이것은 아달랴의 군대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또 안식일에 출번하는 부대를 두 대로 나누어 성전과 왕위에 앉힐 요아스를 지키게 했다.  즉 입번하는 자들은 왕궁문을 지켜 아달랴의 군대를 막고 출번하는 자들은 성전을 지키며 왕을 호위하게 하였다.  여호야다가 지혜롭고 면밀(綿密)하게 일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 11:9-10  백부장들이 이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대로 행하여 각기 관할하는 바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를 거느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나아오매 제사장이 여호와의 전에 있는 다윗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니

제사장 여호야다가 여호와의 성전에 보관되어 오던 다윗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에게 주었다. 이것은 다윗의 왕통을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을 상징하며 그 신앙을 확신케 하기 위함이었다.

 

. 11:11-12  호위병이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전 우편에서 부터 전 좌편까지 단과 전 곁에 서고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여호야다의 지휘하에 여호와의 전에서 요아스가 유다 왕으로 취임했다.  요아스왕에게 면류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았다.  이것을 본 백성들은 아달랴의 악정이 종식된 것과, 다윗의 왕통에서 왕이 된 것과, 하나님께서 그 일을 친히 하신 일임을 알고, 크게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불렀다. 역대하 24:7에 보면 악한 여인 아달랴의 아들들이 6 년간 치세하는 중에 하나님의 전을 깨뜨려 황무하게 만들고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섬기지 못하게 하고 악정을 베풀어 백성들에게 많은 고 통을 주었다고 했다.

 

三. 아달랴가 죽임을 당함(13-16)

 

. 11:13-16  아달랴가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백성에게 이르러 보매 왕이 규례대로 대 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셨으며 온 국민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부는지라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반열 밖으로 몰아내라 무릇 저를 따르는 자는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전에서는 저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이에 저의 길을 열어 주매 저가 왕궁 말 다니는 길로 통과하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아달랴는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가 알아보고자 하여 자기 혼자 성전에 왔다가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께서 아달랴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혼자 성전에 왔으므로 아무리 외쳐도 도와 줄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출세한 자는 이와 같이 올무에 걸리게 되고, 멸망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四. 요아스왕과 백성 간에 언약을 세움(17-21)

 

. 11:17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 다음에 한 일은,   첫째, 왕과 백성이 여호와와 더불어 언약을 세웠다.  하나님 앞에서는 왕이나 백성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왕과 백 성이 다 같은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자녀이다.  오직 하나님만 왕이요 하나님의 통치만 받아야 된다.  백성과 왕이 합하여 하나님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운 것은 제일 중요한 일이다.  왕과 백성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 것을 약속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려고 한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나라에서 살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의를 세워 나가야 한다.

둘째, 왕과 백성 사이에 언약을 세웠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으로 백성은 요아스를 유다의 왕으로 모시고, 요아스는 그 백성을 다스릴 것을 언약한 것이다

이 두 언약은 천륜(天倫)과 인륜(人倫)에 대한 것으로 모두 잘 한 일이다.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는 천륜이고 왕과 백성의 관계는 인륜이다. 사람 사이의 윤리도 바로 되어야 한다. 사람 사이의 윤리를 무시하는 것은 고르반 사상이요 악한 일이다. 십계명은 구약 율법의 강령(綱領)인데, 십계명 중 1-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윤리이고, 5-10계명까지는 사람에게 대한 윤리이다.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모두 바로 해야 한다.

 

. 11:18  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그 당을 훼파하고 그 단들과 무상들을 깨뜨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을 수직하게 하고

언약을 세운 후에 국민이 전국의 바알 당을 훼파하고 바알의 제사장을 죽였다. 그외 모든 가증한 것을 깨끗이 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일을 시작했다.  \"맛단\"은 바알 제사장의 우두머리 같은데, 그 두목을 없애고 바알 산당을 훼파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린 것이다.  죄를 제거하고 악을 떠나는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 11:19-20  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국민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내려와서 호위병의 문 길로 말미암아 왕궁에 이르매 저가 왕의 보좌에 앉으니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었더라

요아스왕을 성전에서 왕궁으로 인도하여 왕의 보좌에 앉게 했다.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백성들이 나이 7세의 어린 왕을 세워 놓고 모두 즐거워 한 것은 악한 왕 아달랴가 처단된 것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윗의 왕통에서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혈통으로 왕통이 이어져 가다가 그 줄기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소망이다.

 

. 11:21  요아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칠 세였더라

요아스가 7세에 왕이 되었다. 왕이 비록 어려도 백성들이 왕으로 모시고 그의 인도를 받으며 왕을 잘 섬기려 했다.  또한 왕은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인도를 받아 백성을 잘 다스렸다.  그뿐 아니라 왕과 백성이 모두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준행하며, 하나님의 인도와 통치를 받았다.  하나님의 인도와 통치를 받는 나라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요, 복된 나라이다.

 

제 12 장   유다 왕 요아스

 

(대  지)

 

一. 요아스왕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음(1-3)

二. 성전 수리가 지연됨(4-8)

三. 여호야다의 명령으로 성전을 수리함(9-16)

四. 아람 왕의 내침과 격퇴(17-18)

五. 요아스왕이 죽음(19-21)

 

(본문강해)

 

一. 요아스왕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음(1-3)

 

. 12:1  예후의 칠 년에 요아스가 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요아스가 7세에 유다 왕이 되어 40년을 치리했다.  요아스의 통치를 살펴보면 처음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때는 정직히 행하였으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제사장에게 받은 좋은 교훈을 버리고 범죄하였으며 그 죄값으로 망했다(대하24:17-25).

 

. 12:2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요아스왕이 어려서부터 훌륭한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과 지도를 받은 것은 큰복이다.  요아스왕이 제사장의 지도를 받을 때는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바로 하였으므로 형통했다.  십계명 중에서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한다는 말씀은 부모의 인도와 지시를 받으면 가다가 실패하지 않고 잘 된다는 뜻이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3:14)라고 했다.

 

. 12:3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산당\"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여러 산에 쌓은 제단이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기 전까지는 실로에 성막이 있었고 그 외에 여러 산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왕상3:2).  그러나 솔로몬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때부터는 성전에서만 제사하고(대하6:5-6),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은 금했다.  왜냐하면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혼동하기 쉽고 우상 숭배로 전락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원근 각처에서 예루살렘에 오는 것이 너무 힘들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므로 가까운 산당에서 제사하는 습관이 이 때까지 이어져 왔다.  이는 백성들이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요아스왕이 그것을 묵인하여 산당을 폐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二. 성전 수리가 지연됨(4-8)

 

. 12:4-6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무릇 여호와의 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은 곧 사람의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서 전의 어느 곳이든지 퇴락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더니 요아스왕 이십 삼 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오히려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요아스왕이 성전을 수리할 마음이 생겼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이요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는 곳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이 퇴락(頹落)한 것을 보고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이전 왕들과 백성들은 바알신을 섬기느라고 하나님의 성전이 퇴락했어도 그대로 놓아 두었다(대하24:7).  그러나 요아스왕은 성전이 퇴락한 것을 보고 수리할 마음이 뜨겁게 생긴 것이다.

사람의 통용하는 은 20세 이상 된 자가 속전(贖錢)을 1년에 반 세겔씩 성전에 바치는 것을 말한다. 그 돈은 회막(성전) 봉사에 썼다(출30:11-16).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 여호와께 헌신하기 위하여 드리는 은을 가리킨다(레27:2-8).  자원하여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모든 은 성전 수리를 위하여 자원하여 드리는 은이다.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 들여서 예루살렘에서만 수금하지 말고 제사장이 거주하는 곳의 모든 사람에게서 수금하라는 것이다.

요아스는 자기가 1세부터 7세 되기까지 성전에서 자라났으므로 성전이야말로 자기의 피난처요 생명을 보호받는 곳이었던 것을 생각하고 더욱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성전 퇴락한 곳을 수리하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 12:7-8  요아스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부터는 너희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저희로 전 퇴락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전 퇴락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응락하니라

성전 수리 명령을 제사장들에게 내렸으나 요아스왕 23년이 되도록 오랫동안 성전을 수리하지 않으므로 성전 수리의 임무를 제사장들에게서 빼앗고 다시는 백성들에게 은을 수거하지 못하게 했다.  자기 직분을 감당치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직무를 빼앗는다.

 

三. 여호야다의 명령으로 성전을 수리함(9-16)

 

. 12:9-12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취하여 그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문 어귀 우편 곧 단 옆에 두매 무릇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는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 와서 여호와의 전에 있는 대로 그 은을 계수하여 봉하고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전을 맡은 자의 손에 붙이면 저희는 또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전 퇴락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궤를 만들고 궤뚜겅에 구멍을 뚫어서 여호와의 전 단 옆에 두고 문지기에게 맡겨 백성들이 성전에 가져오는 은을 그 궤속에 넣게 하였다(9, 10절).  그리고 그 연보궤에 은이 가득 차면 대제사장과 왕의 서기가 가서 계수(計數)하고 인봉하여 성전 맡은 자의 손에 맡겨서 그가 직접 목수, 석수, 미장이를 고용하고 재목과 돌을 사다가 성전 수리를 하게 하였다.

 

. 12:13-14  여호와의 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전의 은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그릇이나 은그릇을 만들지 아니하고 오직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성전을 수리할 동안에는 성전에서 사용하는 기명들, 즉 은대접, 불집게, 나팔, 주발, 금그릇, 은그릇을 만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직 성전 수리하는 데만 총력(總力)을 기울이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한 가지씩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일 저일 많이 벌여 놓으면 모두 다 성공하기 힘들다.  먼저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거기에 총력을 기울여 이루어 놓고 그 다음에 다른 것을 해야한다.

 

. 12:15  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은을 거두어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양심껏 성실히 하였으므로 회계(會計)하지 않았다. 이는 그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믿지 못하면 일이 안 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했기 때문에 일이 성공된 것이다.

 

. 12:16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속건제와 속죄제를 위하여 드리는 은은 제사장의 생활비로 돌렸다.  이는 제사장의 생활비 지급에 대한 의무를 감당하기 위함이다.  아무리 성전이 잘 수리되어도 하나님의 종이 굶으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잘 될 수가 없다.  소도 먹일 것을 먹인 후에 부리는 법이다.

 

四. 아람 왕의 내침과 격퇴(17-18)

 

. 12:17-18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취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한 고로 유다 왕 요아스가 그 열조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취하여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내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아람 왕이 내침했을 때 요아스왕이 격퇴(擊退)시킬 만한 힘이 없으므로 열왕(列王)이 성전에 드린 성물(聖物)과 자기가 드린 성물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취하여 아람 왕 하사엘에게 주어 돌려보냈다.  아람 왕이 예루살렘 성을 함락(陷落)시키고 성전에 있는 성물과 왕궁에 있는 금을 취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주어 전쟁 없이 돌려보낸 것은 어떤 면으로는 잘한 것 같으나 실상은 잘못 된 것이다.  원수가 침략해 오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쳐 물리칠 생각은 하지 않고 굴욕적인 화친(和親)을 하고 돌아가게 한 것은 신앙적이 아니다.  그것이 훗날 화근(禍根)이 되었다.  그들이 일단 물러갔다가 예루살렘에 보물이 많은 줄 알고 얼마 후에 다시 침략해 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노략해 갔다(대하24:23-24).  마귀는 처음부터 싸워 이겨야 된다.  양보하여 일시적 평안을 얻는다 해도 후일에 더 큰 화를 당하게 된다.

 

五. 요아스왕이 죽음(19-21)

 

. 12:19-21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것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모반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궁에서 저를 죽였고 저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이었더라 저는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요아스왕이 여호야다의 생존한 동안에는 그의 지도와 인도를 잘 받아 성공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했다(대하 24:17-18).  좋은 선생의 지도를 받을 때는 하나님을 잘 섬겼고 퇴락한 성전을 수리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이렇게 잘하던 요아스왕이 자기를 지도하던 제사장이 세상을 떠나니까 신하들의 꾀임을 받아 여호와를 떠나서 우상을 섬겼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비참하게 신복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좋은 인도자에게 지도받을 때가 복이 있다.

하나님께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켜 우상을 섬기는 요아스왕을 책망하였다.  그때 왕이 회개하지 않고, 왕과 무리가 함께 꾀하고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스가랴를 돌로 쳐죽였다(대하24:20-22).  자기를 죽을 자리에서 건져 주고 6, 7년간 숨겨 길러 주고 왕위에 오르게 해 준 은인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인 것은 배은 망덕한 악한 행동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성전 마당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죽인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한 큰 죄를 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람 왕을 보내서 유다 방백들을 멸절하고 물건을 노략하여 가게 했다.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침략했으나 심히 큰 유다 군대를 하나님께서 그 손에 붙여 요아스를 징벌하셨다(대하24:23-24).  이때 요아스가 심히 큰 부상을 입었고, 그 심복들이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인 피로 인하여 그 누운 침상에서 쳐죽였다(대하24:25).  그를 다윗 성에는 장사했으나 열조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않았다(대하24:25).  백성들이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로 왕을 삼았다.  이는 다윗에게 한 등불이 계속되겠다는 여호와의 말씀을 성취한 것이다.

 

제 13 장   이스라엘 왕 요아스

 

(대  지)

 

一. 여호아하스의 범죄와 징계받은 일(1-9)

二.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치세(治世)(10-13)

三. 이스라엘 요아스왕과 엘리사의 관계(14-19)

四. 엘리사의 최후(20-25)

 

(본문강해)

 

一. 여호아하스의 범죄와 징계받은 일(1-9)

 

. 13:1-3  유다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이십 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칠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17년을 치리하였다.  여호아하스의 부친 예후가 혁명을 일으켜 아합의 집을 진멸하고 다른 우상들을 다 훼파하였으나 여로보암의 죄에서는 떠나지 못했고 아들 역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로보암의 죄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긴 죄이다.  자기만 섬길 뿐 아니라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가르치니 백성들이 다 따라갔다.

이스라엘 왕들이 이 죄에서 떠나지 못한 이유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려고 유다 땅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하면 북 이스라엘의 많은 잘못된 점이 노출되겠고 예루살렘 성전을 볼 때마다 솔로몬왕과 다윗의 왕통이 생각나서 유다로 돌아 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요새로 말하면 하나님을 섬기되 성경대로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인본주의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다.  요즈음도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혹은 묵시(默示)를 받았다,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 것은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자기의 주관적 감정(主觀的 感情)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벧엘의 금송아지 섬기는 것과 같다.  타락된 이스라엘이 이렇게 금송아지를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아람 왕 하사엘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여서 이스라엘이 학대를 받도록 하였다.

 

. 13:4-5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저희의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회개하고 간구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구원자를 보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 13:6-7  저희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저 두었더라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과 병거 십 승과 보병 일 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아하스왕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므로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어 건져 주셨다.  그러나 그가 죄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 다시 그 죄에 머물렀으므로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여 아람 왕을 보내어 징계하여 마치 타작 마당의 티끌같이 만드셨다.  누구나 징계 받고 회개한 후에 다시 그 죄 가운데 들어가면 그 상태가 더 악해지고 하나님께서는 전보다 더 심한 매를 때리신다.

 

. 13:8-9  여호아하스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것과 그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호아하스가 죽고 그 아들 요아스가 이스라엘 왕이 되었다.

 

二.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치세(治世)(10-13)

 

. 13:10  유다 왕 요아스의 삼십 칠 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륙 년을 치리하며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이스라엘 왕이 될 때는 유다 왕 요아스 37년이었다.  북 이스라엘의 왕의 이름과 남 유다 왕의 이름이 같다.  유다의 6대 왕 아하시야도 이스라엘의 8대 왕 아하시야와 동명이인(同名異人)이었다(8:24).  남북 나라가 사모해서 동명으로 지었는지 출생 시에 상대방을 모르고 지었는지 잘 알 수 없다.

 

. 13:11-13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유다 왕 아마샤와 싸운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그 위에 앉으니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다가 죽었고 그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다.  이 왕은 여로보암 2세로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과 동명이인(同名異人)이며 이스라엘의 13대 왕이다.

 

三. 이스라엘 요아스왕과 엘리사의 관계(14-19)

 

. 13: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 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사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데려 가신다.  믿음 좋은 사람은 병들지 않고 병든 것은 다 죄값이라고 주장하는 신비주의자들의 말은 잘못된 것이다.  엘리사와 같은 믿음의 사람도 때가 되니 죽을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병든 사람이 고침 받는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면 죽은 자가 살아나고 병든 자가 고침 받을 수 있다.  기도하면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하는 것도 잘못된 주장이다.  바울이 눈병 낫기를 세 번이나 하나님께 간구했으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시며 낫게 해주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기로 예정되었으면 누가 기도해도 낫게 된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엘리사를 찾아가서 눈물을 홀리며 이렇게 외쳤다.  이것은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역할을 하여 나라를 잘 수호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엘리야가 승천할 때에 엘리사가 자기의 선생을 향해 부르짖었던 말과 같다(2:12).  엘리사가 자기 선생을 이스라엘을 수호하며 세워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존경하였기 때문에 엘리사 자신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그와 같은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누구나 심은 대로 거두는 법이다.

요아스는 엘리사가 가르치는 교훈 때문에 이스라엘이 견고하게 되어 나가는 것을 요아스가 알고 엘리사가 떠난 후를 염려하며 눈물을 흘린 것이다.  엘리사는 약 66 년간 선지자로 하나님의 일을 했는데 초기 20년간에 많은 활동을 했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 다음 45년간은 침묵을 지키며 이스라엘을 돕고 유익을 주며 원수를 막아 준 일을 하였는데 이때 나이는 80세 정도였다고 한다.

 

. 13:15-16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엘리사가 왕의 손을 안찰(按察)한 것은 하나님께서 왕과 함께 계시는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께서 왕과 같이 계셔서 왕이 활로 원수를 치고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 13:17  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엘리사가 왕에게 동편 창을 열게 하고 그 쪽을 향하여 활을 쏘게 했다.  이것은 아람 군대가 동편 아벡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벡에서 아람 군대를 쳐서 진멸할 것을 예고한 것이다.

 

. 13:18-19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왕이 살을 들고 땅을 세 번 치니 엘리사가 왕에게 5,6번을 치지 않았다고 노했다.  엘리사가 처음부터 5,6번을 치라고 말해 주지 않고 책망만 할 때에 왕의 마음에 섭섭한 생각이 들어오려고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왕은 섭섭해하지 않았다.  책망을 받을 때 섭섭해하지 말고 달게 받아야 한다.  왕은 엘리사가 이스라엘을 지켜 주는 병거와 마병인 줄 알았고 또 이스라엘의 가장 큰 대적 아람의 침략에서 보호해 준 분이 엘리사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편 창을 열고 살을 쏘았을 때 엘리사가 그것은 장차 요아스왕이 아람 군대를 진멸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알게 해주었다(17절).  그러므로 살로 땅을 치라고 할 때에 원수 아람을 치는 뜻으로 알고 단단히 5,6번을 쳤어야 합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데 세 번만 치고 그만 둔 것은 왕이 원수를 치는 정신이 미약한 증거이다.  원수에 대해 끝까지 싸우는 정신이 아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마귀에 대해서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요아스왕은 원수와 더불어 끝까지 싸워 진멸 시키려는 정신이 미약하다.  원수로 더불어 어느 정도 싸우다가 그만 두는 정신이다.  왕이 이런 정신을 가지고 아람 왕과 싸운다고 하면 몇 번 싸우다가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노해서 5,6번을 쳐야 할 것인데 왜 세 번만 쳤느냐고 책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더불어 끝까지 싸우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죄와 비진리와 조금 싸우다가 진리를 양보하고, 불의와 싸우다가 의를 양보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히브리서 12:4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했다.  비진리와 조금 싸우다가 도중에 그만두거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와 진리를 위해 싸워 나가다가 힘들다고 그만두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것이 아무리 힘들고 반대 세력이 많아도 끝까지 세워 나가야 한다.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다.

 

四. 엘리사의 최후(20-25)

 

. 13:20-21  엘리사가 죽으매 장사하였더니 해가 바뀌매 모압 적당이 지경을 범한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 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엘리사가 죽어 장사 지낸 다음 해에 어떤 죽은 사람을 장사하다가 갑자기 적당(賊黨)이 오므로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졌는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回生)하여 일어났다.  그 죽은 사람을 일시적 회생시킨 것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엘리사와 같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죽은 영혼을 살려 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동시에 장래에도 엘리사와 같은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통해 죽었던 영혼들을 살려 낼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께서는 참된 종들을 통해서 죽은 영혼을 많이 살려 내신다.  이것은 또한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많은 죽은 영혼을 살려 내실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 13:22-23  여호아하스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아람 나라가 이스라엘을 항상 학대하였으나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망하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을 지켜 주신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언약이 있기 때문에 보호해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 13:24-25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그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두어 성읍을 회복하였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그 아들 벤하닷이 왕이 된 기회를 타서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자기의 부친 때에 아람 왕에게 빼앗겼던 두어 성읍을 회복했고 아람을 세 번 쳐서 격파하고 이겼다.  그것은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살을 취하여 땅을 치라 할 때에 요아스왕이 땅을 세 번만 쳤기 때문이다.  요아스가 원수와 끝까지 싸우고자 하는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전쟁에 나가서도 세 번밖에 이기지 못하였다.

영적 무장을 한 것 만큼 실지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세워 나가는 일을 끝까지 하고 비진리로 더불어 끝까지 싸울 결심을 하고 나가야만 끝까지 승리할 수가 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부를 때에 밭을 갈던 열 두 겨리 소를 버려두고 한 겨리 소를 잡아 백성에게 나누어주고 즉시 일어나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다(왕상19:19-21).  그러므로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다.  또 엘리야가 승천할 때에도 엘리야가 벧엘로 가도 따라가고 여리고로 가도 따라가고 요단으로 가도 따라갔기 때문에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았다.  엘리사는 도중에 그만두는 정신이 아니라 끝까지 따라가는 정신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따라가고 불의한 것에 대해서도 끝까지 싸워 나가는 정신을 가져야겠다.

 

제 14 장   아마샤왕

 

(대  지)

 

一. 아마샤왕의 신앙과 승리(1-7)

二. 아마샤왕의 교만과 패전(8-16)

三. 아마샤왕이 모반을 받아 죽음(17-22)

四. 여로보암 2세의 치세(治世)(23-29)

 

(본문강해)

 

一. 아마샤왕의 신앙과 승리(1-7)

 

. 14:1-3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이 년에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호앗단이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유다 왕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그는 선한 왕이었으나 조상 다윗과 같지는 않았다(대하25:2).  그가 나중에는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다가 모반한 무리에 의해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대하25:14-28).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부친 요아스왕도 처음에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인도를 받아 믿음으로 모든 일을 행했으나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생명의 은인인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성전 뜰에서 돌로 쳐죽이는 등 여러 가지 죄를 많이 짓다가 신복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대하24:17-25).

 

. 14:4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아마샤왕이 산당을 제하지 않았다. 여기 산당은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찌기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씀하셨다(대하7:12).  그러나 지방에 있는 백성들은 가까운 곳에 가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그 산당들을 폐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다.

 

. 14:5-6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아마샤왕이 자기 부친을 죽인 신복들을 처형했으나 그들의 아들들은 죽이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처리한 것이며 보복으로 하지 않고 공정하게 처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비의 죄로 인하여 아들을 죽이지 말라고 했다(신24:16 ; 겔18:4).

 

. 14:7  아마샤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을 죽이고 또 셀라를 쳐서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아마샤가 에돔과 싸워 대승리를 했다. 역대하 25:5-13에 보면 아마샤가 에돔을 치려 할 때에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군사 30만을 동원하고, 또 은 일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군대 10만을 삯 내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나아와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니 이스라엘 군사를 돌려보내라고 했다.  그 때에 아마샤왕이 말하기를 이미 이스라엘 군대에게 은 일백 달란트를 지불했으니 어찌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이 다시 말하기를 그것을 포기하고 순종하면 하나 님께서 도와주시고 더 많은 것으로 주실 것이니 물질적 손해가 날지라도 이스라엘 군대를 돌려보내라고 하였다.  그때 아마샤가 선지자의 말을 믿고 이스라엘 군대를 돌려보냈다.  이것은 아마샤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음을 쓴 것이다.  그리고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유다 군사 30만으로 에돔과 싸워 승리를 하였다.  군대의 수가 많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군대의 수가 많아도 안 되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무기나 군대의 수가 적어도 승리한다(삼상17:47 ; 시33:16-17).

아마샤왕이 염곡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세일 자손을 물리쳤는데, 돌아 올 때에 세일 자손이 버리고 간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하였다(대하25:14).  그때 한 선지자가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하고 경책하였다.  그 말을 듣고 왕이 심히 불쾌히 여겨 그 선지자에게 그치라고 하였다.  선지자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할 때는 원수를 이기고 형통하였으나 이 때는 교만하여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선지자를 대항하였다.  그때 왕이 즉시 회개하고 이전 신앙을 되찾았으면 복을 받았을 것인데, 선지자의 책망의 말을 듣고 오히려 격노하고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를 대항한 것은 멸망당하기로 작정된 증거이다(대하25:16).

 

二. 아마샤왕의 교만과 패전(8-16)

 

. 14:8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아마샤가 에돔을 쳐 이기고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났다.  그러므로 세일 우상을 가져다가 섬겼고 북 이스라엘과 대면하여 싸우려고 했다.

서로 대면하자는 것은 서로 같은 수의 군대를 내어 강함을 비교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샤왕이 교만해져서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나아간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살상(殺傷)당하는 것은 생각지 않고, 자기의 권세를 떨치고 자기 군사의 강함을 자랑하고 자기 명예를 얻고자 한 것이다.

 

. 14:9-10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궁에나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전쟁을 요청하는 유다 왕 아마샤에게 비유를 들어 멸시했다.  즉 자기는 백향목이고 유다 왕 아마샤는 가시나무라고 하며 상대할 가치가 안 되니 아마샤는 궁에나 평안히 거하고 아마샤와 유다 백성이 멸망할 일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 14:11-14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로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아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아마샤가 승리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끝내 이스라엘 왕 요아스와 싸우다가 패전하여 자신은 사마리아로 사로잡혀 갔고, 예루살렘 성벽 400규빗이 헐렸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사마리아에 빼앗겼다.

 

. 14:15-16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 권력과 또 유다 왕 아마샤와 서로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죽으매 그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이는 여로보암 2세이다.

 

三. 아마샤왕이 모반을 받아 죽음(17-22)

 

. 14:17-20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 오 년을 생존하였더라 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 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 열조와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아마샤는 유다의 선한 왕이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에돔을 이긴 후에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지 않고 이스라엘 요아스왕과 싸우다가 패전하였다(8-14).  그후 신복들이 반역하였으므로  라기스로 도망갔다가 모반한 무리에 의해 거기서 죽임을 당했다. 그는 싸우지 않을 싸움을 싸웠고, 교만하였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 14:21-22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 륙 세라 아마샤가 그 열조와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로 왕을 삼아 다윗 왕통을 계승케 했다.

 

四. 여로보암 2세의 치세(治世)(23-29)

 

. 14:23-25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십 오 년에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 일 년을 위에 있으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41년을 치리하였는데, 그도 역시 여로보암(1세)의 죄, 즉 금송아지를 섬기며, 절기를 변경하여 지키고, 성경대로 제사장을 세우지 않는 일을 떠나지 못했다.  여로보암이 이렇게 악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이스라엘 땅을 회복하게 하였다.  가드헤벨은 나사렛 동북 4km 지점에 있는데 거기에 요나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이 경계선은 솔로몬왕 때에 이루어진 것이다(왕상8:65).  하맛 어귀는 이스라엘 북단(北端)이요 아라바 바다는 남단(南端)이다.  여로보암이 이렇게 땅을 확장한 것은 선지자 요나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  이 요나는 니느웨 성을 쳐서 예언한 선지자이다.

 

. 14:26-27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이스라엘이 열국의 침략으로 고난이 심하였고, 어떤 지방에는 놓인 자(자유자)도 없고 매인 자(종)도 없고 도울 자도 없어 그 지방이 폐허가 되었다.  이렇게 비참하게 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하감(下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겠다는 언약을 기억하시고 여로보암을 통하여 구원해 주신 것이다.

 

. 14:28-29  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 그 권력으로 싸운 일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로보암이 그 열조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로보암 2세가 죽으매 그 아들 스가랴가 왕이 되었다.

 

제 15 장   이스라엘 혁명 왕들

 

(대  지)

 

一. 유다 왕 아사랴의 시종(始終)(1-7)

二. 이스라엘 왕 스가랴의 치세(治世)(8-9)

三. 살룸이 스가랴를 죽이고 왕이 됨(10-12)

四. 므나헴이 살룸을 죽이고 왕이 됨(13-22)

五.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됨(23-24)

六. 베가가 드가히야를 죽이고 왕이 됨과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포로됨(25-29)

七. 호세아가 베가를 죽이고 왕이 됨(30-31)

八. 유다 왕 요담 때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침략함(32-38)

 

(본문강해)

 

一. 유다 왕 아사랴의 시종(始終)(1-7)

 

. 15:1-7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이십 칠 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륙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이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아사랴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궁중 일을 다스리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사랴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사랴왕을 역대하 26:4에는 웃시야라고 하였다.  아마 이름이 둘인 것 같다.  웃시야왕은 신앙이 좋은 선한 왕이요 유다를 크게 번영케 하였으며 국위를 만방에 떨치게 하였다.  역대하 26:1-15에 보면 웃시야왕의 신앙은 첫째,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3절 ; 대하26:4). 둘째, 율법을 밝히 아는 스가랴 선지자의 인도를 받고 그에게 말씀을 바로 배웠다(대하26:5).  세째,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다(대하26:5).  네째, 이스라엘을 잘 다스리고 건설에 힘썼다(대하26:6).  그러므로 웃시야왕 때에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받아 유다가 부강하고 강성한 나라가 되어 그 명성이 애굽에까지 떨치게 되었다(대하26:6-15).

그러나 웃시야왕이 그 신앙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타락하여 실패했다.  웃시야왕의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 산당을 제하지 않았다.  둘째, 마음이 교만해졌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나라가 부강해지고 권세가 높아지자 마음이 교만해졌다(대하26:16).  세째, 성경에 맞지 않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대하26:16).  레위 지파 가운데 아론의 자손 제사장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는데, 웃시야왕은 유다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하였다.  네째, 제사장의 책망을 달게 받지 않았다.  만일 왕이 제사장의 말을 즉시 듣고 회개하고 바로 섰으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교만하여 제사장을 향해 노하고 그 책망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다.  웃시야는 문둥 병자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성소에서 쫓겨나 일생 동안 별궁(別宮)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5-7절 ; 대하26:16-23).  그가 문둥이로 있는 동안 그 아들 요담이 나라를 다스렸다.  우리는 웃시야왕의 좋은 신앙은 본받고, 웃시야왕의 실패하고 망한 원인을 전감(前鑑)으로 삼아서 그 길을 걷지 말아야 한다.

 

二. 이스라엘 왕 스가랴의 치세(治世)(8-9)

 

. 15:8-9  유다 왕 아사랴의 삼십 팔 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여섯 달을 치리하며 그 열조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본 절에서부터 남 유다에 대한 기사가 중단되고 북 이스라엘의 역사가 나온다.  스가랴는 이스라엘 14대 왕이요, 여로보암 2세의 아들이다.  그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가 열조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여섯 달 동안 왕 노릇하다가 그 신하 살룸에게 죽임을 당했다.

 

三. 살룸이 스가랴를 죽이고 왕이 됨(10-12)

 

. 15:10-12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저를 모반하여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스가랴의 남은 사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이스라엘 위를 이어 사 대까지 이르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

살룸이 일어나 스가랴를 쳐죽이고 왕이 되므로 예후의 왕가는 4대만에 끝나고 말았다.  이것은 성경대로 된 것이다(10:30).

 

四. 므나헴이 살룸을 죽이고 왕이 됨(13-22)

 

. 15:13-15  유다 왕 웃시야 삼십 구 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한 달을 치리하니라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살룸의 남은 사적과 그 모반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예후의 4대손 스가랴는 살룸의 반역으로 죽었고 살룸은 왕이 된 지 한 달만에 므나헴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반역하여 왕을 죽이고 대신 왕이 되는 역사가 계속된다.  왕을 보좌하면서 나라를 세워 나가겠다는 정신을 가지고 선을 행해야 할 터인데 도리어 왕을 모반하여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였다.  이렇게 남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는 자는 자신도 죽임을 당한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 자기가 왕이 되면 자기는 잘 할 것 같아서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었으나 자기도 결국 얼마 못 가서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서로 물고 찢으면 피차 다 망하고 만다.

이렇게 북 이스라엘이 죽이고 죽는 악순환의 혁명이 끊이지 않은 것은 죄 때문이다.  이스라엘 왕들의 가장 큰 죄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요. 하나님 말씀을 어기면서 제사장을 세우고 절기를 지켰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어 자주 자주 책망하고 권면 했으나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지 않고 죄를 계속 짓고 내려갔다.  그러므로 북 이스라엘은 나라가 안정이 안 되고 계속해서 혼란한 상태로 내려갔다.

 

. 15:16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저희가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치고 그 가운데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

므나헴은 심히 잔인한 사람이다. 므나헴이 쳐들어 갈 때에 딥사에 있는 거민이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하여 그 성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심지어는 아이 밴 부녀의 배를 가르기까지 하였다.

 

. 15:17-18  유다 왕 아사랴 삼십 구 년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십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므나헴이 사마리아에서 십 년간 이스라엘을 치리하였는데 그도 역시 평생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는 이기주의 때문이다.  왕은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요 백성들은 쉽게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 15:19-20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일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저로 자기를 도와 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토색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돌이키고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징벌하시려고 앗수르 왕을 이스라엘에 보낸 것이다.  그때 이스라엘 왕 므나헴은 은 1천 달란트를 부자들에게 토색(討索)하되 각 사람에게 은 50세겔씩을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고 돌려보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경제적인 징계를 한 것이다.

 

. 15:21-22  므나헴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므나헴이 그 열조와 함께 자고 그 아들 브가히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므나헴이 십 년간 왕위에 있다가 죽고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五.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됨(23-24)

 

. 15:23-24  유다 왕 아사랴 오십 년에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어 2 년간 이스라엘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그는 열왕들이 죄의 길로 가다가 망한 것을 보면서도 여전히 그 길로 가다가 망했다.

 

六. 베가가 브가히야를 죽이고 왕이 됨과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포로됨(25-29)

 

. 15:25-26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갈르앗 사람 오십 명으로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 브가히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 베가가 반역하여 브가히야왕과 그 신복들을 죽이고 대신 왕이 되었다.  이로써 므나헴의 왕조는 2대(12년간) 만에 망한 것이다.

 

. 15:27-28  유다 왕 아사랴 오십 이 년에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이십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된 때는 유다 왕 웃시야 52년이었다.  그도 역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으므로 망했다.  여로보암의 길은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겼고, 절기도 7월 절기를 8월로 변경시켜 지켰으며, 제사장도 레위인이 아닌 사람으로 세운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노라고 하였으나 성경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성경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여로보암의 길로 가는 것이다.  성경을 어기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죄짓는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

 

. 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28절)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보내어 이스라엘 여러 지방을 쳐서 많은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겨가게 하였다.

 

七. 호세아가 베가를 죽이고 왕이 됨(30-31)

 

. 15:30-31  웃시야의 아들 요담 이십 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베가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웃시야의 아들 요담 이십 년(32-33절 참조). 요담은 16년 통치했고(33절), 요담의 아들 아하스는 베가 17년에 왕이 되었다(16:1).   베가가 20 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으므로(27절) 베가의 죽음은 아하스 4년에 해당된다.  웃시야의 아들 요담 20년에 호세아가 일어나 베가를 죽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베가는 전 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으나 20년 후에는 자기도 아랫사람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는 법이다.

 

八. 유다 왕 요담 때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침략함(32-38)

 

. 15:32-33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이 년에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요담이 유다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6년을 치리했다.  30절에 요담 20년이라고 한 것은 아버지 웃시야왕이 문둥병이 들어 별궁에 거할 동안 요담이 섭정한 기간을 계산한 연대일 것이다(5절).  아버지 웃시야가 죽은 후 정식으로 왕위에 올라 실제 통치한 기간은 16년간이다.

 

. 15:34-36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 요담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유다 왕 요담은 선한 왕으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하나님을 잘 섬겼다.  북 이스라엘의 왕들은 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남 유다에서는 웃시야나 요담 같은 선한 왕이 나와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통치했다.  요담이 그 아버지 웃시야의 신앙을 본받아 정직히 행하며 여호와의 전의 윗 문을 건축하였고, 오벨 성을 증축하고 유다 산중에 성읍을 건축했고 견고한 영채와 망대를 건축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믿음과 정성이요, 유다 나라를 견고케 한 것을 나타낸다(대하27:3-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암몬 자손을 이기게 하시고 그들에게서 많은 곡식을 조공으로 받게 했다(대하27:5).

 

. 15:37-38  그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더라 요담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조상 다윗 성에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윗절에서 요담의 사적은 끝났으므로 본절들의 아람과 이스라엘의 침략은 요담 때가 아니고 요담의 아들 아하스왕 때이다(16:5 ; 사7:1-2).  유다 왕 아하스가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동맹군으로 하여금 유다를 치게 하였다.  이것은 아하스왕과 유다 백성들을 징계하여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다.

 

제 16 장   아하스왕의 범죄

 

(대  지)

 

一. 아하스가 유다 왕이 되어 범죄함(1-4)

二.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연합하여 내침함(5-6)

三. 아하스가 앗수르 왕에게 구원을 요청함(7-9)

四. 아하스가 다메섹에 있는 우상 제단을 본받아 우상을 섬김(10-16)

五. 아하스가 성전 기구를 이동시킴(17-18)

六.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가 왕이 됨(19-20)

 

(본문강해)

 

一. 아하스가 유다 왕이 되어 범죄함(1-4)

 

. 16:1-3  르말랴의 아들 베가 십 칠 년에 유다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 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아하스왕은 유다의 악한 왕 중에 하나이다.  그가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북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했다.  또 이방 사람의 섬기는 물록 우상을 섬기며 그 물록 우상 앞에 아이들을 태워 죽였다(대하28:3).

 

. 16:4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아하스왕은 예루살렘 성전보다 산당에서 제사하고 작은 산과 푸른 나무 아래에서 각종 우상을 많이 섬겼다.

 

二.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연합하여 내침함(5-6)

 

. 16:5-6  이 때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이기지 못하니라 당시에 아람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아하스왕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아람의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 엘랏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치게 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낮추려고 하심이었다(대하28:3-7, 16-19).

 

三. 아하스가 앗수르 왕에게 구원을 요청함(7-9)

 

. 16:7-8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더니

아하스왕은 원수가 쳐들어 올 때에 회개하지 아니하고 앗수르 왕을 의지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과 왕궁에 있는 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보냈다.  여호와의 전에 있는 금을 이방 사람에게 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까지 예물로 주면서 도움을 청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겸손히 낮아져서 하나님께 전심으로 간구했으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서 도와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이 이렇게 이방 나라를 의지함으로 하나님을 점점 더 멀리 떠나는 죄를 범했다.

 

. 16:9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와서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치고 아람 왕 르신을 죽였다.  일시적으로는 유다 왕에게 조금 도움이 된것 같으나 사실은 아무 유익을 주지 못했다(대하28:20-21).  그로 인하여 앗수르 왕은 유다 왕 아하스를 자기 신복과 아들로 삼았고 유다는 자기 스스로 앗수르의 수하에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세상 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다 이와 같이 세상의 포로가 되고 종이 된다.

 

四. 아하스가 다메섹에 있는 우상 제단을 본받아 우상을 섬김(10-16)

 

. 16:10-11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단을 보고 드디어 그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 아하스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대로 단을 만든지라

앗수르 왕이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점령하였으므로 유다 왕 아하스가 앗수르 왕을 만나기 위해서 다메섹에 가보니 거기에 우상을 섬기는 단이 있었는데, 그 단이 굉장히 아름답고 훌륭해 보였다.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섬기는 단보다 더 위대해 보인 것이다.  아하스왕은 거기에 미혹되어 그 구조와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어 그와 같은 단을 예루살렘에도 만들라고 명하였다.  이것은 마치 요새 신자들이 교회의 것과 세상의 것을 비교해 보고 세상의 것이 더 좋아 보이므로 그것을 본받아 하나님을 섬기려는 것과 같다.  세상의 것은 화려해 보이고, 찬란해 보이나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생명도 없다. 성도가 그것을 따라가면 망하게 된다.

제사장 우리야는 왕이 돌아오기 전에 왕의 명대로 그와 같은 단을 만들어 놓았다.  제사장 우리야는 왕이 잘못된 것을 시킬 때 바른 말로 충고해야 할 입장에 있음에도 벙어리 개와 같이 짖지 못하고 왕의 악한 일에 동참하였다.

 

. 16:12-13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 단을 보고 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자기의 번제와 소제를 불사르고 또 전제를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단에 뿌리고

아하스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 그 단에서 자기의 제사를 드리고 분향했다.  역대하 28:22-23에 \"이 아하스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고 했다.

 

. 16:14  또 여호와의 앞 곧 전 앞에 있던 놋단을 옮기되 새 단과 여호와의 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단 북편에 두니라

아하스왕은 여호와의 성전 앞에 있는 놋단을 옮겨 새로 만든 우상 단 북편에 두었다. 그가 또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훼파하고 성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게 하여 여호와의 진노(震怒)를 격발하였다(대하28:24-25).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징계를 받을 때에 엎드려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살고 도리어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 방법대로 나아가면 망하게 된다.

 

. 16:15  아하스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아침 번제와 저녁 소제와 왕의 번제와 그 소제와 모든 국민의 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를 다 이 큰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고 오직 놋단은 나의 물을 일에 쓰게 하라 하매

큰 단에서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리고 제물의 피를 뿌렸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명하지 않은 단이요 우상 단을 본받은 것이므로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다.  놋단은 나의 물을 일에 쓰게 하라 \"놋단은 내게 생각해 볼 일이 되게 하라\"는 말로, 놋단에 관해서 는 좀 더 생각을 해서 앞으로 조치(措置)하도록 하라는 뜻이다(칼·델리취).  이 놋단은 솔로몬 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만든 참된 단인데 이 단을 제 자리에서 옮기고 거기에 제물드리는 일에 대하여 반신반의(半信半疑)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멀리 떠난 증거이다.

 

. 16:16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왕의 모든 명대로 행하였더라

제사장이 이렇게 악한 일에 맹종(盲從)하고 협조했기 때문에 온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제사장이 왕에게 바른 말을 해주고 성경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져서 왕이 언젠가는 바로 설 수 있을 것이고 나라도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五. 아하스가 성전 기구를 이동시킴(17-18)

 

. 16:17  아하스왕이 물두멍 받침의 명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두며

아하스왕이 성전 기구를 제 마음대로 다 옮기고 구조를 변경시켰다.  성전 기구들의 위치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배치한 것인데, 그것들을 사람의 생각대로 옮긴 것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무시한 망령(妄靈)된 행동이다.

 

. 16:18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인하여 여호와의 전에 옮겨 세웠더라

\"낭실(廊室)\"은 성전 봉사하는 제사장들에게 휴게실의 역할을 하는 방이다.  제사장들이 성전 봉사하다가 그 낭실에서 쉬고 다시 나가서 봉사하곤 했다.  안식일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아주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낭실을 옮겨서 안식일에 봉사를 잘하지 못하게 하였다.  아하스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인하여 여호와의 전에 옮겨 세웠다는 것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해 등한히 한다는 인상을 앗수르 왕에게 주기 위함이다.

 

六.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가 왕이 됨(19-20)

 

. 16:19-20  아하스의 그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성전을 더럽히고 하나님 앞에 가증한 악을 많이 행하던 아하스 왕이 죽었다(대하28:24-27).  그리고 그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다.

 

제 17 장   이스라엘 멸망

 

(대  지)

 

一.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백성들은 이민 당함(1-6)

二. 이스라엘이 멸망한 죄(7-23)

三. 사마리아에 이민 온 사람들에게 여호와 섬기는 법을 가르쳐 줌(24-28)

四. 사마리아 사람들이 여호와와 우상을 겸하여 섬김(29-41)

 

(본문강해)

 

一.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백성들은 이민 당함(1-6)

 

. 17:1-2  유다 왕 아하스 십 이 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유다 왕 아하스 12년에 호세아가 이스라엘 왕이 되었다.  15:27 ; 15:30 ; 16:1-2에 의하면 호세아가 아하스 4년에 베가를 모반했고, 그를 죽인 후 스스로 왕이 되었다.  한편 여기 본문에는 유다 왕 아하스 12년에야 호세아가 실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므로 그는 8년간은 베가와 경쟁을 벌여온 셈이다(칼·델리취).  호세아왕은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처럼 악을 많이 행하지 않았다.  호세아왕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남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에 자유롭게 왕래하도록 허락하였다(18:1 ; 대하29:3-5, 30:1-25).

 

. 17:3-6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서 호세아를 친 고로 호세아가 신복하여 조공을 드리더니 저가 애굽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의 배반함을 보고 저를 옥에 금고하여 두고 올라와서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삼 년을 에워쌌더라 호세아 구 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서 호세아를 쳤으므로 호세아가 항복하고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치기로 약조하고 해마다 바쳤다.  그 후 호세아왕이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애굽 왕 소에게 사자를 보내어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므로 앗수르 왕이 올라와서 호세아를 잡아 감옥에 가두고 사마리아 성을 에워 쌌다(5절).  포위 된지 3년 후 호세아왕 9년에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점령당하고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로잡아다가 할라와 고산 하볼과 메대의 여러 고을에 두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 성에 여러 이방 나라 사람들을 이주시켰다(24절).  호세아왕이 앗수르를 배반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배반하면 이렇게 비참한 결과가 온다.  이스라엘의 19대 호세아 왕 제9년(주전 721년)에 이스라엘이 아주 멸망하고만 것이다.  남 유다는 시드기야왕 때에(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다.

 

二. 이스라엘이 멸망한 죄(7-23)

 

. 17:7-8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의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7절부터 23절까지는 이스라엘이 멸망한 죄에 대하여 기록되었다.  그 죄의 첫째는, 하나님께 대하여 배은 망덕한 죄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셨으나 하나님을 떠나 이방 신을 섬겼으며 이방인의 규례 대로 행하였다.

 

. 17:9-12  이스라엘 자손이 가만히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상을 세우고 또 여호와께서 저희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같이 그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며 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치 말라 명하신 일이라

둘째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산당을 세우고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아세라 목상을 세우고 그 우상에게 분향한 죄이다.

 

. 17:13-15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그 목을 굳게 하기를 그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저희 열조의 목같이 하여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 열조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좇아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하사 본받지 말라 하신 사면 이방 사람을 본받아

셋째는, 선지자와 선견자를 보내어 명령한 하나님의 언약과 율례를 지키지 않은 죄이다.  저희가 그 목을 굳게 하여 그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이방 사람들의 길로 행하여 우상을 섬겼다.  선지자와 선견자는 같은 직분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사람들이다.

 

. 17:16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넷째는,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만들어 섬긴 죄이다.  이스라엘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섬겼다(왕상12:28).

다섯째는,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며 섬긴 죄이다.

여섯째는, 바알신을 섬긴 죄이다.

 

. 17:17-18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노를 격발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일곱째는, 자기 자녀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한 죄이다.  이것은 암몬 족속의 신 몰렉을 섬기는 방법이다.

여덟째는, 복술과 사술을 행한 죄이다.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사람이 자기 의지는 없는 듯이 죄악에 끌려가며 죄의 종이 된 것을 가리킨다.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금송아지 섬기던 북 이스라엘이 망할 때 남 유다는 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절에는 이스라엘의 죄가 유다까지 퍼져 유다도 망하게 된 것을 말하고 있다.

 

. 17:19-20  유다도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의 세운 율례를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버리사 괴롭게 하시며 노략군의 손에 붙이시고 심지어 그 앞에서 쫓아내시니라

유다도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이스라엘의 규례대로 행하였으므로 유다도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서 쫓아 내버리셨다.

 

. 17:21-23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시매 저희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으로 왕을 삼았더니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몰아 여호와를 떠나고 큰 죄를 범하게 하매 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의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떠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 종 모든 선지자로 하신 말씀대로 심지어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제하신지라 이스라엘이 고향에서 앗수르에 사로잡혀 가서 오늘까지 미쳤더라

이스라엘의 멸망한 죄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게 한 것이다.  그러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고향에서 쫓아내어 앗수르에 사로잡혀 가게 하였고,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三. 사마리아에 이민 온 사람들에게 여호와 섬기는 법을 가르쳐 줌(24-28)

 

. 17: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저희가 사마리아를 차지하여 그 여러 성읍에 거하니라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로잡아 할라와 고산과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이주시키고(6절), 그 대신 이스라엘 땅에는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 사람들을 데려다가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서 살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땅에는 그 때부터 여러 잡족들이 섞여 살게 되었다.  \"구다\"는 바벨론 동북 15마일 지점에 있는 땅이고, \"하맛\"은 오론테스 강변에 있는데 이스라엘 북쪽 변경에 있는 땅이다(왕상8:65).  \"스발와임\"은 유브라데 강가 양 언덕 위에 있는 지방이다.

 

. 17:25  저희가 처음으로 거기 거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치 아니한 고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 가운데 보내시매 몇 사람을 죽인지라

이스라엘 땅에 이민 온 여러 나라 사람들이 여호와를 경외치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사자(獅子)를 보내매 사자가 그 가운데 몇 사람을 죽였다.  그들이 비록 이방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에 사는 이상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17:26-28  그러므로 혹이 앗수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하게 하신 열방 사람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 신이 사자들을 저희 가운데 보내매 저희를 죽였사오니 이는 저희가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앗수르 왕이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하나를 그 곳으로 데려가되 저로 그 곳에 가서 거하며 그 땅 신의 법으로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하나가 와서 벧엘에 거하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 것을 가르쳤더라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 제사장 한 사람을 사마리아와 벧엘에 보내어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가르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쳐 인도할 제사장을 보내어 종교적으로도 유화정책을 쓴 것을 보면 앗수르의 이민 정책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四. 사마리아 사람들이 여호와와 우상을 겸하여 섬김(29-41)

 

. 17:29-33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의 지은 여러 산당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의 거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으며 저희가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이와 같이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 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이스라엘 땅에 이주하여 온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도 섬기고 자기들의 신도 겸하여 섬겼다.  포로 잡혀갈 때에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열방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섞여 살므로 혼혈 민족이 되었고 종교도 혼합 종교가 되었다.  숙곳브놋은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는 신으로 암탉 형상의 우상으로 되어 있다.  네르갈은 숫탉 형상의 우상으로 굿 사람들이 만들어 섬겼다.  아시마는 깨끗한 수염소 형상의 우상으로 하맛 사람들이 만들어 섬겼다.  닙하스는 개 형상의 우상이고, 다르닥은 나귀 형상의 우상으로 아와 사람들이 만들어 섬겼다.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자기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다.  아드람멜렉은 공작새 형상의 우상으로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것을 바람과 비를 주장하는 신으로 믿었다.  아남멜렉은 꿩 형상의 우상으로 하늘의 신이라고 한다.

 

. 17:34-41  저희가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치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는도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저희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숭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만 너희가 경외하여 그를 숭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너희가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치 말며 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치 말고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 그러나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느니라 그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더니 그 자자 손손이 그 열조의 행한 것을 좇아 오늘까지 그대로 하니라

사마리아에 이민 온 열방 사람들이 하나님도 섬기고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우상도 섬기며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는 지키지 않았다.  이로부터 이스라엘 땅에는 포로로 사로잡혀 갈 때 남은 자들(아브라함 자손)과 열방에서 이민 온 자들과 혼혈 민족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여러 번 경고하시기를 이방 신과 우상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며 그 명령과 법도대로 행하면 영영히 복을 주신다고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않고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며 자자손손이 내려갔다.  그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탄 생 하시기까지 700년 동안 암흑 시대가 이어진 것이다.

 

제 18 장   히스기야왕

 

(대  지)

 

一. 히스기야왕의 신앙과 치세(治世)(1-8)

二. 이스라엘의 멸망(9-12)

三. 앗수르 왕의 내침(13-16)

四. 랍사게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독함(17-27)

五. 이스라엘을 유혹함(28-35)

六. 백성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잠잠함(36-37)

 

(본문강해)

 

一. 히스기야왕의 신앙과 치세(治世)(1-8)

 

. 18:1-2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 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히스기야왕은 다윗왕 다음으로 선한 왕이다. 자기 아버지 아하스는 악을 많이 행했으나, 히스기야는 아버지의 악행을 본받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선정(善政)을 했다.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이 스가리야는 주전 520년대에 사역한 선지자 스가랴와 다른 사람이다.  히스기야가 부친의 악행을 본받지 않고 모친의 좋은 신앙을 본받아 좋은 왕이 된 것 같다.

 

. 18:3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켰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일만 행한 왕이다(왕상14:8).  하나님이 다윗을 기뻐하셨는데 히스기야왕도 다윗의 믿음을 가지고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양심을 쓰는 것을 기뻐하신다.

 

. 18: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 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여러 산당을 제하며 산당에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왕상3:2-3 ; 12:31-32 ; 대하15:16-17)과 우상을 섬기는 산당이다(23:13 ; 왕상11:7).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대하6:6).  그러나 유다 백성들이 각처에 산당을 지어 놓고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며, 또 우상을 섬겼다.  히스기야가 이 모든 우상과 산당을 제해 버린 것이다.

놋뱀 히스기야는 모세가 만든 놋뱀도 부수어 버렸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 길을 행할 때에 길로 인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므로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셨다.  모세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기를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물린 자들이 바라보면 살 수 있다고 하셨다.  모세가 그대로 하여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보면 살게 되었다(민21:4-9).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요3:14).  즉 예수 그리스도가 장차 오셔서 뱀의 세력, 마귀의 세력을 멸하고 구원해 줄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놋뱀 자체를 귀한 것으로 여겨 그 놋뱀 앞에서 분향을 하고 섬겼다. 700여 년 동안 놋뱀을 섬겨 왔으며 놋뱀이 우상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히스기야가 그 놋뱀을 다 깨뜨려 버리고 그것을 느후스단이라고 하였다.  느후스단은 \"놋 조각\"이라는 뜻으로 일개 놋 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을 신성시하면 옳지 않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하나님이 그 당시 필요에 의해서 귀히 사용한 것이라도 근본적인 뜻을 깨닫지 못하고 그 자체를 내내 귀하게 여기고 신성시하며 우상화(偶像化) 하면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다.  천주교에서 성자(聖者)의 유골(遺骨)이나 그들이 사용하였던 기구 등을 숭배하며, 성지(聖地)를 순례하면 복 받는다고 하거나, 요단 강물을 가지고 와서 세례를 주는 것, 칼빈이나 기타 유명한 주의 종들을 추도예배(追悼禮拜)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시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화 할까봐 천사를 보내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치워 버렸다(신34:6 ; 유1:9).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에게 우상이 될 만한 것을 다 치워야 된다.  진리에 대한 전통은 귀히 여기고 세워 나가는 것이 옳지만 죽은 사람이나 어떤 물건을 귀히 여기고 신성시(神聖視)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모세의 지팡이도 그가 사용할 당시에는 귀한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 였지만 오늘날에는 보통 지팡이와 같고, 십자가도 예수님이 못 박혀 죽으실 때는 필요했지만 오늘날 십자가의 형틀은 아무 효력도 없는 것이다.

 

. 18:5-6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믿고 그 능력을 힘입어 나간 것을 가리킨다.  연합하여의 히브리 원어 (다바크)는 \"들어붙다\", \"바싹 따라가다\"라는 뜻인데, 하나님과 교통하며 사는 것을 가리킨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며 그 명령을 순종하는 생활을 하였다.  또 히스기야는 모세가 명한 계명을 잘 지켰다.

 

. 18:7-8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히스기야는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우상을 다 철폐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며 그 계명을 지킬 때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해주셨다.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히스기야의 부친 아하스왕은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합세하여 유다를 칠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 왕을 의지하므로 앗수르 왕이 일시 도와주었으나 그 때부터 유다가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쳤다(16:5-9).  그러나 히스기야왕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앗수르 왕을 섬기지 않고 배척했다.  또 블레셋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다.  가사는 블레셋 평원의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 국가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히스기야가 블레셋 전부를 정복했다는 의미이다.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란 블레셋 성을 완전히 점령했음을 의미한다.  히스기야왕이 이렇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갈 때 강한 원수를 다 이길 수 있었다.

 

二. 이스라엘의 멸망(9-12)

 

. 18:9-12  히스기야왕 사 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칠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육 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구 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

북 이스라엘은 호세아왕 9년(주전 721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 사건은 17:5,6과 동일한 사건으로 여기에 다시 기록한 것은 유다의 번영의 원인과 북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을 대조하기 위한 것 같다.  본서 17장 해석을 참조하라.

 

三. 앗수르 왕의 내침(13-16)

 

. 18:13-16  히스기야왕 십 사 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히스기야왕 14년에 산헤립이 유다를 쳐들어와 여러 성읍들을 취하였다.  이것은 히스기야가 믿음을 쓰지 못하고 약해졌기 때문에 앗수르가 쳐들어 온 것이다.  이때 히스기야는 두려워하여 앗수르 왕이 요구하는 대로 많은 예물을 주어 화친했다.  히스기야가 전에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그 말씀대로 나갈 때는 담대하고 형통했다(7,8절).  그러나 여러 해 지나는 동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이 약해졌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계속해서 앗수르에 대항했어야만 되는데,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앗수르에게 굴복하여 은 300 달란트와 금 30 달란트를 주어 화친했다.  그 금과 은은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것과 자기가 기둥에 입힌 것이다.

 

四. 랍사게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독함(17-27)

 

. 18: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왕을 치게 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저희가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얼마 후에 앗수르 왕이 재차 유다를 침략해 왔는데, 세 장군이 대군을 거느리고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먼저번 침략해 왔을 때에 히스기야왕이 인간의 방법을 써서 화친을 했으나 또 쳐들어 왔다.  앗수르가 쳐들어오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목적은 히스기야의 믿음을 회복시키려는 것이다.  히스기야왕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좋은 믿음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다르단\"은 군대의 지도자란 뜻이고(사20:1), \"랍사리스\"는 환관장이라는 뜻이고(렘39:3), \"랍사게\"는 군대 장관이라는 뜻이다.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 이사야 7:3 에도 나오는 곳으로 이사야가 악한 왕 아하스를 만나 왕이 앗수르를 의존하던 것을 책망한 곳이다.  그 곳에는 옷을 빠는 자가 쓰기에 충분한 물이 있었고, 또 성벽이 없는 곳으로 앗수르 장군들이 그곳에서 왕을 직접 만나겠다고 했다.

 

. 18:18  저희가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 궁내 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저에게 나가니

본절 이후에 대하여는 저자의 성경 강해 이사야 pp.307-313을 참조하라.  서기관 셉나는 히스기야왕의 신하로서 산헤립의 공격시 충성스럽게 일을 잘 한 사람이었으나(37절), 그후 그는 하나님의 길에서 이탈하여 이사야로부터 악한 자로 책망을 받았다(사22:15-18).

 

. 18:19-21  랍사게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고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 왕 바로는 무릇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랍사게는 유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도 없으면서 누구를 의지하고 배반하였느냐고 앗수르 왕의 말을 전하면서 유다를 심히 비방하고 모독하였다.  또 히스기야왕이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는 것과 같으므로 손에 찔릴 것뿐이라고 했다.  갈대를 꺾어 지팡이로 사용하고자 하면 이내 부러질 정도로 약한데, 그것을 의지하면 오히려 손해를 줄뿐이라는 것이다.

 

. 18:22-24  너희가 혹시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이 단 앞에서만 숭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그 말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필을 주리라 네가 어찌 내 주의 신복 중 지극히 작은 장관 하나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랍사게는 또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은 헛된 것뿐이라고 조롱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이 단 앞에서만 숭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것은 랍사게가 하스기야와 백성을 이간시키는 말이다.  히스기야가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유다 각처에 있던 산당을 제하고 예루살렘에서만 하나님께 경배하며 섬기게 하였다(대하31:1).  그런데 그것이 잘못된 것처럼 비방하며 이간 붙이려 한 것이다.  랍사게는 유다에 말 이천 필을 거져 주어도 탈 만한 병사가 없고 유다의 큰 장수라도 앗수르의 극히 작은 장관 한 사람조차 물리칠 수 없다고 조롱했다.

 

. 18: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 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히스기야가 신당과 제단을 다 헐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랍사게에게 유다를 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여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미혹을 시키면서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항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귀가 미혹을 시킬 때 성경 말씀을 악용하며 잘한 것을 잘못한 것처럼 말하여 미혹시키고, 연약한 곳을 드러내어 낙심케 한다.  사마리아에 있는 늙은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유다에서 온 젊은 선지자를 꾀어 죽게 하였다(왕상13장).

 

. 18:26-27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컨대 아람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의 듣는데 유다 방언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랍사게가 저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로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랍사게가 유다 방언으로 백성을 꾀이므로 유다 대신들이 아람 방언으로 말하라고 하였으나 그는 응하지 않고 더욱 크게 유다 방언으로 말하며 백성들이 랍사게 말을 듣고 미혹 받아 히스기야를 불신케 하려고 이간을 하였다.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앗수르 군대가 곧 예루살렘을 포위할텐데 그때 성에 먹을 것이 없어서 자기 대변을 먹고 자기 소변을 마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참한 기갈(飢渴)에 빠지게 될 터이니 빨리 항복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랍사게가 백성들을 멸시하며 위협하는 말이다.

 

五. 이스라엘을 유혹함(28-35)

 

. 18:28-31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 질러 불러 가로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저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내지 못하리라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로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저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정녕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않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랍사게는 여호와의 이름을 들어 유다 백성을 회유(懷柔)하려 했으나 듣지 않자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생각대로 노골적으로 말을 했다.

첫째,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무시했다.  이사야가 여호와께서 유다 백성을 도와주실 것(대하32:6-8)과 예루살렘이 결코 함락되지 않으리라는 예언을 했다(사31:4-6).  그 말씀을 듣고 히스기야가 하나님만 의뢰할 것과 여호와께서 유다를 반드시 건져 주실 것을 백성에게 말했는데,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그 말이 거짓이니 듣지 말고 앗수르 왕의 말을 따라 항복하라는 것이다.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앗수르 왕에게 항복하면 죽지도 않고 자기 포도와 무화과를 먹을 것이요 자기 우물 물을 마시며 평안히 살게 된다는 것이다.

 

. 18:32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면려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둘째, 랍사게는 앗수르 왕에게 항복하는 자는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한 땅으로 옮겨 준다고 꾀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게 하려는 술책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면 더 좋은 것을 준다고 언제나 미혹시킨다.

 

. 18:33-35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열국의 모든 신 중에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셋째,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했다.  여러 나라 신들이 앗수르 왕의 손에서 그 나라를 건져내지 못했으므로 여호와도 앗수르 왕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건져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항복하면 잘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방의 여러 도시의 신들은 다 허무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 성들을 건져내지 못하였으나 여호와는 살아 계신 참신이시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반드시 건져내실 것이다.  마귀는 이것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공갈과 위협을 한 것이다.

 

六. 백성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잠잠함(36-37)

 

. 18:36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이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왕의 명을 순종한 증거이다.  이렇게 말씀대로 인도하는 인도자의 명령을 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건져 주신다.

 

. 18:37  이에 힐기야의 아들 궁내 내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고하니라

랍사게와 회담하던 히스기야의 사신들은 랍사게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훼방하며 이간 붙이며 유혹시키는 말을 듣고 너무 기가 막혀서 옷을 찢고 히스기야왕에게 나아가 그 말을 다 고했다.

 

제 19 장   앗수르 군 멸망

 

(대  지)

 

一. 이사야에게 기도를 청원함(1-5)

二. 앗수르 왕이 죽을 것을 예언함(6-7)

三. 앗수르 왕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하게 참소 함(8-13)

四. 히스기야의 기도(14-19)

五. 기도 응답(20-34)

六. 천사가 앗수르 군 십 팔만 오천 명을 죽임(35-37)

 

(본문강해)

 

一. 이사야에게 기도를 청원함(1-5)

 

. 19:1-2  히스기야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궁내 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입혀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본 장은 이사야 37장과 같은 내용이다(저자의 성경강해 이사야 PP. 314-325 참조).  앗수르의 군대 장관 랍사게가 내침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하여 항복을 강요하므로 히스기야왕이 너무 원통해서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궁내 대신, 제사장, 서기관들에게도 굵은 베옷을 입히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내어 하나님께 기도를 부탁했다.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에게 모독(冒瀆)받고 훼방 받는데 대한 원통함의 표시이다.  앗수르의 18만 5천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함락시키려고 하는데 유다의 군대로는 도무지 당할 힘이 없었다.

 

. 19:3  저희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 원수 앗수르 군대가 포위했으므로 당하는 고난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책벌(責罰)로 알고 기도하려는 것이다.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앗수르 왕의 침략을 이기면 반드시 큰 유익과 새 생명의 역사가 있을텐데 그것을 이길 만한 실력이 없다는 것이다.  시험과 환난을 이기면 큰 유익과 새 생명의 역사가 있다.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환난을 당하게 했으나 그것을 해결할 만한 실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다.

 

. 19:4-5  랍사게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저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을 인하여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이와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였으니 랍사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훼방하고 모독하는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셨을 것이므로 거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견책(譴責)해 달라는 기도이다.  남아 있는 자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백성을 가리키는 동시에 유다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히스기야왕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은 자기가 멸시받으며 욕먹는 것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훼방당하고 능욕당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기 때문이었다.  참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고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들을 때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二. 앗수르 왕이 죽을 것을 예언함(6-7)

 

. 19:6-7  이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능욕하는 말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저의 속에 두어 저로 풍문을 듣고 그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 본국에서 저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비밀을 이사야를 통해서 알게 해주셨다. 히스기야왕이 기도를 시작하고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할 때에 벌써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을 해주셨다.  그 응답의 내용은, ① 앗수르 왕의 종들이 하나님을 능욕한 말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 것, ② 하나님께서 영(靈)을 앗수르 군 속에 두어 풍문(風聞)을 듣고 고토(故土)로 돌아가게 할 것, ③ 앗수르 왕은 본국에 돌아가 피살(被殺)될 것이라는 것이다.

 

三. 앗수르 왕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하게 참소함(8-13)

 

. 19:8-9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싸우는 중이더라 앗수르 왕이 구스 왕 디르하가가 나와서 더불어 싸우고자 한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가로되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점령하고 립나 성을 치는 중에 있었는데 그 성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점령하려 하였으나, 구스 왕 디르하가가 앗수르로 더불어 싸우고자 올라왔기 때문에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으로 오지 못하고, 립나에서 히스기야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사자의 편으로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왕과 백성에게 항복을 받으려고 하였다.

 

. 19:10-13  너희는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의 의뢰하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붙이지 않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앗수르의 열왕이 열방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내 열조가 멸하신 열방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의 신들이 건졌느냐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

이것은 편지 내용인데, 그 내용은 열방이 앗수르를 당하지 못했고, 열방의 신들이 그들을 구하지 못했으니 유다도 앗수르를 당할 수 없고 유다의 의뢰하는 하나님도 유다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앗수르 왕들이 주위 열방들을 멸절시킬 때 그 신들이 구원하지 못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유다와 예루살렘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四. 히스기야의 기도(14-19)

 

. 19:14-15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히스기야왕이 사자의 손에서 앗수르 왕의 편지를 받아 보고 성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그 편지를 읽어보실 줄 믿고 하나님의 영광의 눈앞에 펴놓은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살아 계신 능력의 하나님이요 천하 만국에 유일(唯一)하신 하나님이요,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고 능력으로 구원해 줄 것을 바라며 기도한 것이다.

 

. 19:16-19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열왕이 과연 열방과 그 땅을 황폐케 하고 또 그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저희가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 곧 나무와 돌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줄 알리이다 하니라

산헤립이 하나님에 대하여 훼방을 하는 것을 히스기야왕이 원통히 생각하고 하나님이 신원(伸寃)해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지 않게 되기를 간구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이기적인 기도가 아닌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이다.  앗수르가 열방과 열왕을 멸망시킨 것은 열방의 신들이 참신이 아니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나무와 돌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참 신이시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능히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이다.

 

五. 기도 응답(20-34)

 

. 19:20-22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까닭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훼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그 내용은, ① 시온(예루살렘)이 앗수르를 멸시하고 비웃을 것(21절).  ②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훼방했다는 것이다(22절).  처녀 딸 시온, 딸 예루살렘 순진하고 사랑 받는 딸로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사랑하고 아껴 주고 귀히 여기고 보호해 주신다.

 

. 19:23  네가 사자로 주를 훼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지경 끝에 들어가며 그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겠다고 한 말이다.  여러 산꼭대기 여러 나라 위에 올라간다는 뜻이다.  그 지경 끝에 들어가며 그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겠다고 장담한 말이다.

 

. 19:24-25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렸노라 하였도다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상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앗수르의 교만을 책망하는 것이다.  앗수르가 과거에 열방을 황폐케 하고 그 신들을 불에 던지고 그 열방의 물을 마신 것을 자랑하며 호언 장담하고 있으나 그 진멸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앗수르 왕은 자기가 한 줄 알고 자랑하며 더욱 교만하여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훼방하며, 예루살렘을 정복하려고 한다.

 

. 19:26  그러므로 그 거한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저희는 마치 들의 풀 같고 나물 같고 지붕의 풀 같고 자라기 전에 마른 곡초 같으니라

앗수르가 점령한 열방은 하나님께서 멸하기로 예정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 거민의 힘이 약하여 들의 풀 같고 나물 같고 지붕의 풀 같고 마른 곡식 같게 되었기 때문에 쉽게 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19:27-28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에 꿰고 자갈을 네 입에 먹여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교만에 대하여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앗수르 왕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들어 쓴 줄을 알지 못하고 교만하다가 망한 것이다.  몽둥이가 그를 사용하는 사람을 알지 못하고 교만하면 나중에 그 몽둥이를 부러뜨려 버린다.  이사야 10:5에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고 했다.

 

. 19: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명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 삼 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앗수르 왕의 침략 때문에 2년 동안 농사를 못했지만 제1년과 제2년의 두 해 동안에는 하나님이 자연히 나서 자라난 식물을 먹게 해주시고, 제3년에는 씨를 뿌리고 농사를 해서 먹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시키는 말이다.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하여 농사를 못하는 2년간에도 땅에서 스스로 곡식이 나게 하여 먹게 하시고, 전화(戰禍)가 지나간 다음에 제3년에는 농사를 하여서 먹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고와 은혜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어 먹게 한 것과 같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호와 양육과 구원해 주시는 징표이다.

 

. 19:30-31  유다 족속의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가 서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예루살렘과 시온 산에서부터 남은 자와 피하는 자가 나와서 번성케 될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원상대로 회복시켜 주신다.  유다 족속의 피하고 남은 자 예루살렘에 피하는 자를 가리키며, 신령한 뜻은 그리스도 안에 영적으로 피하여 있는 성도를 가리킨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열심\"은 \"시기\"라는 뜻이다.  시기(猜忌)는 여호와께서 그의 영광을 수호(守護)하시려는 거룩한 마음이다(사48:11).  하나님께서는 그의 예정하신 뜻은 반드시 성취하시고야 만다.

 

. 19:32-3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저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에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물러간다는 것이다.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강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살 하나도 쏘아보지 못하고 철군(撤軍)하고 만다.

 

. 19: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이 다윗에게 세우신 언약을 위하여(8:19 ; 삼하7:12-16),  유다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않고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六. 천사가 앗수르 군 십 팔만 오천 명을 죽임(35-37)

 

. 19:35-37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더니 그 신 니스록의 묘에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저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히스기야왕이 생명이 위급할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부르짖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을 쳐서 멸망시켰다.  앗수르 왕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멸시한 죄로 자기 몸에서 난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대하32:21).  죄값은 반드시 사망이다.

 

제 20 장   수명 연장

 

(대  지)

 

一. 히스기야가 병들매 기도함(1-3)

二. 히스기야의 수명을 15년 연장하여 줌(4-7)

三. 해 그림자가 십 도 뒤로 물러감(8-11)

四. 바벨론 사자의 내방과 히스기야의 실수(12-13)

五. 이사야의 책망(14-19)

六. 히스기야의 죽음(20-2l)

 

(본문강해)

 

一. 히스기야가 병들매 기도함(1-3)

 

. 20: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그 때에 히스기야 14년, 즉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이 멸망당하고 물러갔을 때를 가리킨다(19:35). 너는 집을 처치하라 왕권과 국정(國政)에 관한 것을 인계하고 유언하라는 것이다(사38장 참조).  또 신앙면에서도 바로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마음을 정돈하라는 것이다.  사람이 죽게 되면 그 집을 잘 처치(處置)해야 하는데, 바로 처치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자기가 죽은 후에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없도록 믿음으로 처리를 잘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 시험과 어지러운 일이 많이 생긴다.  이사야가 전에 두 번씩이나 히스기야왕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으나(19:6-7, 20-33), 이번에는 죽을 것이니 죽음에 대하여 준비하라고 했다.  선지자는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 든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면 그대로 전해야 된다.

 

. 20: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히스기야가 죽고 다시 살지 못한다는 이사야의 말을 듣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심히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낯을 벽으로 향하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이켜 하나님만 의지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이다.  왕으로서 병들면 유명한 의사나 좋은 약을 찾는 것이 보통인데(대하16:12),  히스기야가 그렇게 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한 것을 보면 믿음이 좋은 왕이다.  이전에는 세상의 것 때문에 염려하고, 세상의 것을 붙들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가운데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 앞에 갈 때가 되었으니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향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진 것이다.

 

. 20: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이것은 히스기야가 과거에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고 선하게 행한 공로를 보아서 살려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과거에 하나님 앞에 진실과 전심으로 행한 것을 추억하며, 현재 하나님 앞에 진실과 전심으로 선을 행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며 처음 신앙, 처음 사랑을 간절히 찾으려는 태도로 기도한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 잘못 행한 것, 진실과 전심으로 선을 행하지 못한 것을 찾아서 회개해야 된다.  또 처음 신앙과 처음 사랑에서 떨어진 것을 찾아 회개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二. 히스기야의 수명을 15년 연장하여 줌(4-7)

 

. 20:4-6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히스기야가 3일 만에 병이 완치되어 성전에 올라가겠고, 그의 수명을 15년 연장시켜 주며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주신다고 하셨다. 히스기야가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리에 들어가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을 힘입고 기도했으므로 즉시 응답이 내려 왔다.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와 눈물을 헛된 데로 돌려보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그 생명을 연장시키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히스기야의 수한을 15년 더 살게 해주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생명을 주관하시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영원한 영적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주신다.  그 당시 육신의 생명이 15년 더 사는 것이 큰 것 같아도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영원히 사는 영생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큰 줄 알고 그것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된다.

십 오 년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기간을 정하여 알려주신 이유는 그 기간에 믿는 일을 잘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잘 세우도록 하기 위함이다.

 

. 20:7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무화과 반죽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종기(腫氣)나 궤양(潰瘍)의 치료약이었다고 한다.  이 무화과 반죽을 가져다가 히스기야의 종처(腫處)에 놓으니 나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적으로 된 것이다(대하32:24).  약(藥)도 하나님이 효과가 나게 해야 병이 낫는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하나님께서 약효가 나지 않게 하시면 백약(百藥)이 무효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면서 약을 쓰게 하여 병을 낫게 하시는 경우도 있다.  요즘 안수 기도하는 사람들이 약을 쓰지 말고 기도만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약을 쓰지 않고 낫게 해주시는 경우도 있고 의사나 약을 통해서 낫게 해주시는 경우도 있다

 

三. 해 그림자가 십 도 뒤로 물러감(8-11)

 

. 20:8-11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이사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서 왕에게 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 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 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 도가 물러갈 것이니이다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 하매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

히스기야가 이사야 선지자에게 삼 일 만에 병이 나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징조로서 해 그림자가 뒤로 십 도 물러가게 해 달라고 구했고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셨다.  히스기야가 징조를 구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해서가 아니고 그 말씀에 대한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하려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종종 확신을 가져다 줄 징조를 구한 일이 있었다(19:29 ; 출3:12 ; 삿6:27-40 ; 사7:11, 14).  하나님께서 해 그림자로 징조를 보여 주신 것은 해가 뒤로 물러감으로 히스기야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 실 것을 뜻한다.  이것은 여호수아 때에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친 것과 같은 하나님의 이적적 역사(異蹟的 役事)이다(수10:12-14).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을 주장하시며 영생을 주신다.  일영표(日影表)는 해 그림자의 이동으로 시간을 알게 하는 해시계이다.

 

四. 바벨론 사자의 내방과 히스기야의 실수(12-13)

 

. 20:12-13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 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에게 보였는데 무릇 왕궁과 그 나라 안에 있는 것을 저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라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사자에게 편지와 예물을 보냈다(사39:1-2).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축하 하는 뜻이었으나 이면적으로는 유다의 실력을 알아보고 침략하려는 것이었다(대하32:31).  그 때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왕의 간계(奸計)를 알지 못하고 예물을 가지고 온 것만 기뻐하며, 자만심과 자랑하는 마음으로 궁중에 있는 보물 창고와 무기 창고와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

히스기야가 그 때에 바벨론 사자에게 하나님이 지켜 주심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앗수르를 이긴 것과 병나은 것을 보여주었더면 바벨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유다를 침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궁중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준 것은 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로 인해서 바벨론 왕이 유다를 경시(輕視)하고 침략을 하게 되었다.  내탕고(內帑庫)는 임금의 사사로운 재물을 두는 창고이다.

 

五. 이사야의 책망(14-19)

 

. 20:14-15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왕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이사야가 가로되 저희가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저희가 다 보았나니 나의 내탕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바벨론 왕의 사절단이 돌아간 후에 이사야가 히스기야왕에게 그들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무엇을 보았는가를 물어보았고 히스기야왕은 사실대로 말했다.  여기서 히스기야왕의 진실성을 알 수 있다.  히스기야는 진실한 왕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왕이다.

 

. 20:16-18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불신앙적인 처사로 인하여 유다에 재앙이 임할 것을 말해 주었다.  외부적으로 보면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들에게 나라 안에 있는 것을 자랑한 것밖에 없기 때문에 잘못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잘못은 죽을병이 들었다가 나았다는 소문을 듣고 온 축하 사절단에게 보여주어야 할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지 않고 무기와 재물만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히스기야의 신앙이 타락한 증거이며 하나님께서 시험하신 일에 넘어간 것이다(대하32:31).

히스기야가 타락하게 된 이유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은혜로 부와 영광이 극치에 달했을 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살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려는 마음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살고 도와주시지 않으면 죽을 줄 알고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살았는데, 재물이 많아지므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 재물을 의지한 것이다.  이처럼 히스기야가 먼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히스기야왕을 떠나시고 붙들어 주시지 않은것이다.  만일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신 것과 앗수르 대군들을 물리쳐 주신 것과 여러 가지 하나님의 능하신 역사를 말해 주고 하나님만 자랑했더라면 바벨론이 두려워서 유다를 넘보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나 믿음을 떠나면 시험에 넘어간다. 원수가 와서 자기를 삼키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만 의지하다가 마음이 평안해지고 재물이 늘어가면 점점 뒤로 물러가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역대하 32:25에 \"히스기야가 마음에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라고 했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보답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은혜를 보답하는 생활을 하려면, ① 현재 있는 바를 족한 줄 알아야한다.  ② 자기 몸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몸이니 하나님께 감사히 몸을 바쳐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해야 한다.  ③ 주를 위해 사는 생활을 해야 한다.  ④ 주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⑥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⑦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⑧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 20: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사는 날 동안 태평과 진실이 있겠다고 하시므로 히스기야가 이기주의에서 선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고 그 말씀 자체가 선하다는 것이다.  자기의 죄값을 생각하면 당장에 망할 것이나 사는 날 동안에 평안하게 해주겠다고 하시므로 진노 중에 긍휼을 베풀어 주신데 대해 감사하는 말이다.  역대하 32:26에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히스기야가 일시적으로 실수를 했으나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장차 무서운 재앙을 내리겠다는 책망을 하자 즉시로 자기의 교만을 뉘우쳐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풀어 주신데 대해서 감사하면서 겸손의 태도를 가졌다. 우리도 잘못하여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에 즉시 회개하고 겸손히 낮아져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에 서야만 한다.

 

六. 히스기야의 죽음(20-21)

 

. 20:20-21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권력과 못과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중으로 인도하여 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고 그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히스기야가 처음 왕이 될 때부터 다윗과 같이 정직하여 산당을 다 폐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에 힘을 기울였다.  또 원수의 내침시에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원수를 물리치고 유다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유하게 만든 선한 왕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 부와 영광이 극치(極致)에 달할 때에 하나님으로 살던 마음이 물질로 기울어져서 말년에는 실수를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히스기야왕은 선한 왕이요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므로 온 백성이 히스기야왕의 업적을 생각해서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고 히스기야왕의 죽음에 존경함을 표시하였다(대하32:33).  우리도 다른 사람의 단점이나 실수하는 면만 보아 무시하지 말고 그 사람이 믿음 지킨 것과 선한 업적도 알아주어야 한다.

 

제 21 장   악한 므낫세왕

 

(대  지)

 

一. 므낫세가 왕이 되어 악을 행함(1-9)

二. 선지자가 재앙을 예고함(10-15)

三. 므낫세의 최후(16-18)

四. 아몬왕의 치세(治世)와 죽음(19-26)

 

(본문강해)

 

一. 므낫세가 왕이 되어 악을 행함(1-9)

 

. 21:1-3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오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헵시바더라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 왕 아합의 소위를 본받아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므낫세는 열 두 살의 나이에 유다 왕이 되어 55년을 치리하였다.  그의 부친 히스기야가 선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악을 제일 많이 행한 왕이 되었고 악한 왕들 가운데 제일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그는 그의 부친 히스기야가 철폐한 산당과 모든 가증한 우상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부친이 바로 해 놓은 것을 계승해서 그대로 받들어 나가지 아니하고, 교만하여 부친이 한 것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는 것이 더 잘하는 줄로 알아 부친이 해 놓은 것을 다 무너뜨렸다.  과거에 다윗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신앙의 좋은 전통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자기가 하는 것이 제일인 줄 알고 자기 주장대로만 해 나갔다. 이러한 행동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과거부터 내려온 좋은 전통과 율례와 법도와 미풍들을 젊은 사람들이 단번에 다 헐어버리고 자기 생각이 제일인 줄 알고 행동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세대 차이라 해서 기성 세대가 해 놓은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여 모든 것을 뒤집어엎으려고 하는 것은 십중팔구 실패하고 만다.

 

. 21:4-5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의 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단들을 쌓고

므낫세가 하나님의 전에 우상의 단을 쌓고 우상을 숭배하였다.  일월 성신을 위하여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천체를 숭배하는 것으로 특히 앗수르에서 성행하고 있었다.  므낫세가 이와 같이 성전에까지 우상을 세우고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을 수 없다(23-26).

 

. 21:6  또 그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격발하였으며

그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이것은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해서 죽이는 우상 숭배의 예식이다(렘7:31).  점치며 여러 가지 표적을 보고 운명을 판단하는 것이고, 사술을 행하며 마술적인 미신 행위를 포함하는 말이며, 신접한 자 무당과 같은 점술을 하는 사람, 죽은 자와 교통한다고 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박수 일종의 마술사이다.  므낫세가 이런 사람들을 용납하며 신임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다.

 

. 21:7-8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여호와께서 이 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만일 이스라엘이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종 모세의 명한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떠나 유리하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므낫세왕이 자기가 만든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우는 아주 악한 일을 했다.  솔로몬왕이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에 예루살렘 앞산에 산당을 지었으며(왕상11:7), 그 외 다른 왕들도 그렇게 했으나 므낫세와 그의 조부 아하스(16:11-14)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상을 하나님의 이름을 둔 성전에까지 세우고 숭배했다.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을 준행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므낫세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버리고 범죄하여 하나님을 진노케 했다.

 

. 21:9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므낫세는 자기만 악을 행한 것이 아니라 백성까지 꾀어서 범죄하게 만들었다.  그 범죄는 하나님이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여 하나님께서 므낫세를 징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二. 선지자가 재앙을 예고함(10-15)

 

. 21:10-12  여호와께서 그 종 모든 선지자들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케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가나안 7족속 중 가장 악한 아모리 사람들도 죄가 많으므로 하나님께서 멸망시켰는데, 유다 왕 므낫세는 그 보다 더 많은 악을 행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제 진노하셔서 재앙을 내린다고 하셨다.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하나님의 심판을 듣는 사람들이 두렵고 놀라 큰 충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 21:13-15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보던 추로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를 버려 그 대적의 손에 붙인즉 저희가 모든 대적에게 노략과 겁탈이 되리니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 열조 때부터 오늘까지 나의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니라 하셨더라

잰 줄 땅을 재어서(측량)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을 가리키고, 다림보던 추는 죄악을 달아본다는 뜻으로(사34:11 ; 암7:7-9), 사마리아와 아합의 집이 지은 죄를 계량(計量)하여 그 땅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준 것처럼 므낫세도 그 죄로 인하여 반드시 심판받을 것을 가리킨다.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사람이 그릇을 씻어 더러운 것을 다 없애 버리고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이제 예루살렘을 심판해서 더러운 죄악과 우상을 다 제하여 깨끗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결케 하기 위함이다.  남은 자를 버려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 유다의 두 지파만 남았는데 이 두 지파도 죄로 인하여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노략은 전쟁의 노획물을 의미하고, 겁탈은 전리품을 의미한다.

 

三. 므낫세의 최후(16-18)

 

. 21:16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므낫세의 죄에 대해 두 가지로 요약하여 기록했다.

첫째는, 유다로 범죄케 한 죄이다. 이것은 므낫세가 유다 백성들을 꾀어 우상을 섬기게 한 것을 말한다.  둘째는,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린 죄이다.  여기에는 선지자 이사야를 죽인 죄도 포함되어 있다.  혹자는 므낫세가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서 죽였다고 한다(히11:37).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이 예루살렘을 가득 채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21:17  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무릇 그 행한 바와 범한 죄는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므낫세의 남은 생애가 여기서 끝나는 것 같으나 역대하 33:10-20에는 므낫세가 앗수르의 군대 장관들에게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그 이유는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의 속국이므로 앗수르 군대 장관이 므낫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므낫세가 그 곳에서 크게 겸비하여 열조의 하나님께 힘써 간구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간구와 기도를 받으시고 저로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와 왕위에 오르게 하시매 그 때에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 알고 모든 우상을 다 철폐하고 우상을 섬기던 산당을 다 헐고, 여호와의 단을 중수(重修)하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다.

므낫세가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단 위에 드렸으나 속죄제는 드리지 않았다(대하33:16).  속죄제를 드리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도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깊은 회개가 없는 증거이다.  므낫세가 회개하고 백성들로 하나님만 섬기게 한 것은 잘했으나, 역대하 33:17에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보면 우상을 섬기는 산당은 제거했으나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은 헐지 않은 것 같다.  므낫세가 모든 산당을 헐고 예루살렘에서만 하나님을 섬기도록 했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은 잘못이다.

 

. 21:18  므낫세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궁궐 동산 곧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우리는 여기서 아무리 선한 왕의 아들이라도 므낫세와 같은 악한 왕이 나올 수 있고, 아무리 악한 왕이라도 징벌받을 때 겸비하여 하나님께 회개하면 그 기도를 들으시고 긍휼을 베풀어 다시 왕권을 회복시켜 준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그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원상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므낫세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에 왕권을 회복시켜 주었고 그가 죽은 다음에 백성들이 그를 웃사의 동산에다가 장사하였다.

웃사의 동산이 동산은 므낫세와 아몬 두 사람이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므낫세가 자신을 위해 만든 묘실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동산은 다윗의 성에 있는 열조의 묘실과는 다른 것 같다.

 

四. 아몬왕의 치세(治世)와 죽음(19-26)

 

. 21:19-23  아몬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므술레멧이라 욧바 하루스의 딸이더라 아몬이 그 부친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부친의 행한 모든 길로 행하여 그 부친의 섬기던 우상을 섬겨 경배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 길로 행치 아니하더니 그 신복들이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아몬은 유다 15대 왕으로 22세 때 위에 올라 2년을 치리하였다.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회개한 후의 선행을 배우지 않고, 회개하기 전의 악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므낫세가 회개한 다음에 아들을 잘 가르쳤어야 할 터인데 잘 가르치지 못했고 아몬 역시 많이 성장한 다음이므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  아몬이 어려서 아버지의 우상 섬기는 것을 많이 배웠기 때문에 그것이 몸에 배어 아버지 죽은 다음에 우상을 섬겼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철폐해 놓은 우상을 도로 갖다가 섬겼고 그 우상에게 경배했다.  이와 같이 아몬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 길로 행하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그 신복들이 배반하여 아몬을 죽였다.  아몬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신복들에게 죽게 만든 것이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멸망이 따라온다.

 

. 21:24-26  그 국민이 아몬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 아들 요시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았더라 아몬의 행한 바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몬이 웃시야의 동산 자기 묘실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몬왕을 죽인 신복들을 백성들이 죽이고 왕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삼았다.  이것은 다윗의 왕통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백성들은 그대로 순종한 것이다.

 

제 22 장   요시야왕의 신앙

 

(대  지)

 

一. 요시야왕의 신앙(1-2)

二. 성전 수리를 명령함(3-7)

三. 율법책을 발견함과 왕이 율법을 듣고 옷을 찢음(8-11)

四. 왕이 선지자에게 물음(12-14)

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을 약속하심(15-20)

 

(본문강해)

 

一. 요시야왕의 신앙(1-2)

 

. 22:1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 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디다라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요시야왕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21:19) 여덟 살 때에 왕이 되었으나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하나님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선한 왕이다.  요시야왕은 그의 부친 아몬과 조부 므낫세가 악한 왕이었으나 그 악행을 본받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겼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 22: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요시야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  사람이 보기에 정직히 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참으로 어렵고 귀한 것이다.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다윗의 길은 전심으로 여호와를 좇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길이다.  열왕기상 14:8에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라고 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 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하지도 않고 감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형통하게 해주시겠다고 하셨다(수1:7).  왼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말씀에서 감하는 것이고, 오른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말씀보다 더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가감(加減)하지 말고 말씀대로만 나가면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주신다.  요한계시록 22:18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라고 했다.  성경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만 믿고 순종해 나가는 자가 복이 있다. 성경 말씀을 가감하고 믿는 자는 화를 받는다.

 

二. 성전 수리를 명령함(3-7)

 

. 22:3  요시야왕 십 팔 년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전에 보내며 가로되

요시야가 왕이 된 지 십 팔 년에 성전 수리를 시작했다.  요시야가 왕이 된 지 팔 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구하였고, 12년에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렸다(대하34:3).  요시야왕이 성전 수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구하고,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고 모든 우상을 철폐하였다.  그것이 성전을 수리하는 신앙의 기본이 되었다.  이와 같이 요시야왕이 재위 십 팔 년까지 신앙 준비를 잘하였다.  자신의 신앙을 잘 준비하고, 국가의 기강(紀綱)을 공고히 하고, 또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실력을 18년 동안 기르고 신앙의 터전을 잘 닦아 놓은 것이다.

그리고 요시야왕은 자기 집보다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수리하고자 하였다.  먼저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집을 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하려고 한 것이다.

 

. 22:4-5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전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수하여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여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에게 주어 전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되

요시야왕이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전에 보내어 대제사장에게 성전을 수리하도록 명했다.  수리하는데 드는 비용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전(殿)에 연보한 돈으로 하라고 하였다(대하34:9).

 

. 22:6-7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전을 수리하게 하라 하니라 그러나 저희 손에 붙인 은을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행하는 것이 진실함이었더라

성전을 수리하는 일에 감독자를 세웠고 목수, 건축자, 미장이 등 여러 기술자를 동원하였다.  그들에게 은을 주어 그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게 하였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자가 다 필요하다.

은을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모두가 양심대로 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하고 서로 믿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양심대로 하고 믿음으로 진실하게 하면 회계(會計)하지 않아도 회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보통은 회계하는 것이 좋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회계하는 것이 공명정대하다.

 

三. 율법책을 발견함과 왕이 율법을 듣고 옷을 찢음(8-11)

   

. 22:8-11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복명하여 가로되 왕의 신복들이 전에 있던 돈을 쏟아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였나이다 하고 또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했는데 대제사장이 그 책을 서기관에게 주니 서기관이 율법책을 읽고 왕에게 보고하였다.  왕은 자기 앞에서 그 율법책을 읽게 하였는데 그 말씀을 듣고 왕이 옷을 찢었다.  요시야왕이 26세가 되도록 율법책의 말씀을 듣지 못하다가 처음 듣고 깜짝 놀라며 열조가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벌이 임할 것을 깨닫고 옷을 찢은 것이다.  옷을 찢는 것은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는 것을 상징한다.

율법책을 잃어버린 지가 오래 된 것이다.  조부 므낫세왕이 치세한 55 년간은 하나님을 별로 섬기지 않았다.  또 부친 아몬왕이 다스린 2년 동안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책이 필요 없었으며 율법책도 다 없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요시야왕이 하나님을 찾고 성전을 수리하다가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섬기던 가정이 세상에 속해 살며 오랫동안 성경을 읽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을 다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옛날의 하나님을 다시 찾고 영적 성전을 수리하려는 신앙이 들어오면 하나님 말씀을 다시 찾게 된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게 된다.  성도가 영적 성전을 발견할 때 꿀보다 더 달고 생명이 되는 하나님 말씀이 발견이 된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요엘 2:13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라고 했다.  베드로가 전도할 때에 모든 사람의 마음이 찔리웠다고 했다(행2:37).  그러므로 요시야왕이 율법책의 말씀을 들을 때에 옷을 찢은 것은 마음을 찢은 것이다.  그 말씀 앞에 거꾸러지고 그 말씀대로 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그 시간에 직접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인 줄 알고 받으며 그 말씀을 두려워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아무 감각이 없는 성도는 이미 죽은 신앙이다.  에베소서 4:18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했다.  마음이 연하여 그 말씀에 감화 감동을 받고 그 말씀 앞에 굴복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19절).  여호와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제사라고 했다(시51:17).  우리가 마음이 연하여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에 찔리우고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四. 왕이 선지자에게 물음(12-14)

 

. 22:12-14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신 아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저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하였더라 저희가 더불어 말하매

요시야왕이 율법책을 읽고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좀 더 자세한 것을 물으라고 했다. 왕이 중견(中堅)들 다섯 사람을 여선지 훌다에게 보내어 묻게 하였다.  읽은 율법책에 의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는데(19절),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 하실지, 면할 방법은 무엇인지, 좋은 길을 알아보라고 한 것이다.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여선지 훌다는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였다.  여선지 훌다는 가정을 갖고 하나님의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는데 아무 지장을 받지 않은 것이다.  여선지 드보라도 남편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일을 잘했다(삿4:4).  훌다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왕의 사신들에게 말해 주었다.

 

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을 약속하심(15-20)

   

 

. 22:15-17  훌다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의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소위로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이 곳을 향하여 발한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내게 보낸 사람에게 고하기를 왕에게 고하라고 하지 않고 \"내게 보낸 사람\"이라고 한 것은 왕도 하나님 앞에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 내용은 유다 왕의 읽은 책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성취된다.

유다 백성이 재앙을 받게 된 이유는 첫째,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을 버린 것이 근본적 악이요 제일 큰 죄이다.  둘째, 다른 신에게 분향하였기 때문이다.  유다 백성이 우상을 많이 섬김으로 인하여 재앙이 내려온다는 것이다.  요시야의 조부 므낫세는 심지어 성전 뜰에다 우상 단을 쌓고 성전 두 마당에 일월 성신을 섬기는 단을 쌓고 아들을 불 가운데 통과해서 죽이고 점치며 사술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에게 묻고 성전에다 아세라 목상 우상을 세우고 각양 악한 일을 했었다(21:1-7).  예루살렘 이 가에서 저 가까지 피 흘린 죄가 많았다(21:16).  백성들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아 악을 행한 것이 하나님께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 심하였다(21:9).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가 반드시 쏟아져 내려온다는 것이다.

 

. 22:18-19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들은 말을 의논컨대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요시야왕에 대해서는 긍휼을 베풀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첫째는, 요시야왕이 하나님의 율법책 말씀을 깨닫고 옷을 찢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마음이 연(軟)하여졌기 때문이다.  연한 것은 부드러운 마음인데, 상한 심령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다(시51:17).

셋째는, 여호와 앞에 겸비했기 때문이다.  니느웨 사람들이 재에 앉아서 회개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낮아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진노할 때 단장품을 다 제해 버렸다고 했다(출33:5-6).

넷째는, 통곡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먼저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온유하며 연한 마음과 상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생명이 산다.  나뭇가지도 새로 나온 가지가 연하고, 풀도 새로 나온 싹이 연한데 거기에 생명이 싹튼다

 

. 22:20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자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심판할 것이다.  요시야왕에게는 긍휼을 베풀어 묘실로 들어가게 하고 그 재앙을 보지 않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오늘날 이 시대가 교만이 싹나고 몽둥이가 꽃핀 시대이므로(겔7:10)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  이 때에 요시야왕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앞에 엎드러져 연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낮추고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될 것이다.

 

제 23 장   요시야왕의 정화 운동

 

(대  지)

 

一. 왕과 백성이 여호와를 순종하기로 언약을 세움(1-3)

二. 요시야왕의 정화 운동(4-14)

三. 요시야가 벧엘과 사마리아의 우상을 제거함(15-20)

四. 요시야가 유월절을 성대히 지킴(21-23)

五. 요시야가 신접한 자와 우상을 제거함(24-25)

六. 므낫세의 죄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성전을 버리시겠다고 하심(26-27)

七. 요시야왕이 죽은 경위(28-30)

八. 여호아하스왕과 여호야김왕의 치세(治世)(31-37)

 

(본문강해)

 

一. 왕과 백성이 여호와를 순종하기로 언약을 세움(1-3)

   

. 23:1-2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요시야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율법책의 말씀을 백성에게 읽어 들려주었다.  그 동안 백성들이 오랫동안 율법의 말씀을 듣지 못하다가 요시야왕으로 인하여 율법책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은 큰 은혜와 복이었다.

 

. 23:3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

왕이 그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려고 백성들과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세웠다.  그 언약의 내용은,

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②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고,

③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왕과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 순종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과거에는 이 말씀을 떠났기 때문에 완전히 실패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그 명령을 이루는 일을 다같이 하기로 언약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며 듣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이루어 드리는 생활, 말씀을 순종하며 세워 나가는 일에 충성하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귀하다.

 

二. 요시야왕의 정화 운동(4-14)

 

. 23:4-7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버금 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을 여호와의 전에서 내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고을과 예루살렘 사면 산당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열 두 궁성과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또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또 여호와의 전 가운데 미동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이었더라

요시야왕이 하나님 말씀을 이루어 드린 일은 첫째,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바알과 아세라와 일월 성신에게 제사하던 기명들을 내어다 예루살렘 밖에서 불사르고(4절),

둘째, 바알신과 해와 달과 열 두 궁성에게 분향하던 제사장들을 폐했다(5절).

셋째,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불사르고 그 재를 평민의 묘실에 뿌렸다.

넷째, 여호와의 전 가운데 있는 미동의 집을 헐었다(7절).  \"미동\"은 남색하는 자들을 가리키며, 이들은 우상 숭배자들이다.  그들은 심령을 더럽히고 몸까지 더럽혔던 것이다.

 

. 23:8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부윤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편에 있었더라

다섯째, 모든 산당들을 헐어 버렸다.  산당 5절의 산장은 우상 섬기는 산당이나 본절의 산당은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인 것 같다.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전에는 각 성읍의 산에서 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겼다.  그러나 성전을 지은 다음부터는 산당에서 제사하지 말고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다(대하6:6).  그러나 백성들이 멀리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 드리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기 때문에 쉽게 하나님을 섬기려고 각 성읍 산당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해 내려왔다.  이것을 요시야 왕이 다 없애 버린 것이다.

 

. 23:9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

여섯째,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단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무교병만 허락하여 먹게 했다.  무교병은 누룩 없는 떡이며 딱딱하고 먹기에는 좋지 못하였지만 그들에게는 분에 넘치는 것이었으며, 이것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메튜 헨리).

 

. 23: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사람으로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그 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하고

 일곱째,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했다.  \"도벳\"은 \"침 뱉음이 된 자\"라는 뜻으로 아주 더러운 곳이기 때문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 도벳에서 유다 백성들이 몰록 우상을 만들어 놓고 불로 달궈서 그 자녀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여 죽인 것이다.  요시야왕은 그런 악습을 철폐한 것이다.

 

. 23:11-14  또 유다 열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시종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유다 열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운 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 내려서 그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 또 예루살렘 앞 멸망산 우편에 세운 산당을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 곳에 채웠더라

여덟째, 유다 열왕이 태양신을 위하여 만들어 드린 말과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또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단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전의 두 마당에 세운 단들을 다 헐어 빻아서 그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렸다.  전에 므낫세 왕은 여호와의 성전의 두 마당에 우상 단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우상을 섬기므로 여호와의 노를 격발한 것이다.  또 예루살렘 멸망산 우편에 세운 우상의 산당들을 더럽혔다.

멸망산은 감람산을 가리키는데 그 산에 단을 많이 세워 놓고 우상을 섬겼다.  그러므로 멸망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요시야왕은 그런 것들을 전부 헐어 버렸으므로 여호와의 마음이 시원하였다. 아스다롯, 그모스, 밀곰 열왕기상 11:5-7 해석 참조하라.  요시야왕은 또 석상(石像)으로 된 우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을 그 곳에 채워 더럽게 하였다.

 

三. 요시야가 벧엘과 사마리아의 우상을 제거함(15-20)

   

. 23:15-16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묘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다가 단 위에 불살라 그 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아홉째, 북 이스라엘의 벧엘로 가서 여로보암이 만들어 놓은 금송아지를 철폐하고 벧엘의 단과 산당을 헐어 불사르고, 아세라 목상들도 불살랐다.  산에 있는 산당 제사장들의 무덤에 가서 그 해골들을 파다가 벧엘 단 위에 불살랐다.  해골을 갖다 단 위에 불사른 것은 그 단을 아주 더럽게 하여 다시는 그 단에서 우상을 섬길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이전에 유다에서 왔던 젊은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대로 성취된 것이다(왕상13:2).  하나님의 말씀은 일호라도 가감없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 23:17-18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성읍 사람들이 고하되 왕께서 벧엘의 단에 향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가로되 그대로 두고 그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요시야왕이 한 비석을 보고 물어 보아 300여 년 전에 젊은 선지자가 유다에서 와서 요시야왕이 벧엘 단을 헐 것을 예언하고 죽어 장사된 무덤인 줄 알고 그 무덤은 그대로 두고 뼈도 옮기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을 존경하는 태도이다.

 

. 23:19-20  전에 이스라엘 열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의 노를 격발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단 위에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요시야왕이 사마리아에 가서 그곳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죽였다.  사마리아에 있는 제사장들은 레위 사람이 아니고 아무나 예물만 가져오면 제사장으로 세웠기 때문에 참 제사장이 아니고 거짓 제사장들이었다.  그들을 죽이고 그 해골을 우상 단에 불살랐다.  요시야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케 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유다 전국이 구석구석마다 열조들이 만들어 놓았던 우상들을 다 철폐하고, 북 이스라엘까지 가서 우상들을 철폐하고 거짓 제사장들을 죽이고 돌아온 것이다.

 

四. 요시야가 유월절을 성대히 지킴(21-23)

 

. 23:21-23  왕이 뭇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인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요시야왕 십 팔 년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열째, 요시야 18년에 유월절을 가장 성대히 지켰다.  이것은 구원 문제를 가장 크게 생각한 것이다. 구원 운동이 가장 중요하고 영적 해방과 구원받은 것이 커서 그 은혜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진 것이다. 또 유월절을 성대히 지킨 것은 유월절 양되는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믿은 증거이다.  유월절 양으로서 우리 죄를 위해 희생해 주실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가진 신앙이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태도이다.  또한 구원 운동을 위해서 생명과 물질을 전폭으로 바치는 생활이다.  요시야왕은 자기 육신이나 나라 일보다 그리스도로 인한 영적 생명의 역사가 더 귀중한 줄 알고, 영적 구원, 영적 자유가 더 귀한 줄 알고, 거기에 모든 것을 다 기울였다.

 

五. 요시야가 신접한 자와 우상을 제거함(24-25)

 

. 23:24-25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박수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열 한째, 요시야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서 모든 신접한 자, 박수, 드라빔 우상과 모든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을 다 제해 버렸다.  유다 땅과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고 백성을 미혹시키는 무리를 다 제거시킨 것이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을 그대로 이루려함이었다(레19:31 ; 20:27).

 

六. 므낫세의 죄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성전을 버리시겠다고 하심(26-27)

   

. 23:26-27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요시야왕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을 준행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요시야왕의 조부 므낫세의 극악한 범죄로 인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시겠다고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기 위함이요 므낫세왕 때에 심판을 선언하신 하나님은 신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시야왕의 선한 일에 대해서는 상급으로 갚아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으로 독생자를 보내 주시고 택한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다.

 

七. 요시야왕이 죽은 경위(28-30)

 

. 23:28-30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시야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하여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 요시야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신복들이 그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 묘실에 장사하니 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저에게 기름을 붓고 그 부친을 대신하여 왕을 삼았더라

요시야왕은 일평생 여호와를 잘 섬기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선한 왕이었으나 한 가지 일을 지혜롭게 행하지 못했으므로 죽었다.  즉 요시야왕이 애굽왕 바로느고와 싸운 것이 잘못이다.  그 이유는, ① 애굽 왕 바로느고가 유다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고 앗수르 왕을 치고자 유브라데로 가는 길이었으며(대하35:20), ② 하나님께서 애굽 왕의 입을 통하여 요시야왕에게 싸우지 말라고 금했는데(대하35:21) 싸웠기 때문이다.

요시야왕이 자존심과 자기 영토로는 통과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싸우다가 죽고 말았다(대하35:21-24).  이것은 곧 요시야왕이 지혜가 부족해서 죽은 것이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성도라도 지혜가 부족하면 패망한다.  지혜가 부족하면 마귀에게 넘어 간다.  예수께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셨다(마10:16).  성도 중에 오늘날도 신앙이 좋은 성도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영적면, 종교면, 도덕면이 구비되어 성자라고 해도 하나님의 지혜면, 즉 진리를 깨달은 면이 부족하면 신신학이나 이단에 넘어가기 쉽다.

 

八. 여호아하스왕과 여호야김왕의 치세(治世) (31-37)

   

 

. 23:31-33  여호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삼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바로느고가 저를 하맛 땅 립나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나라로 은 일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

요시야가 죽고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23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을 치리하다가 애굽 왕에게 잡혀가 립나에 감금되었다가 애굽에서 죽었다.  아버지 요시야왕이 그렇게 선한 왕이었으니 어려서부터 자기 아버지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것을 보았고 또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웠을 것인데, 그대로 행치 않고 악을 행하다가 망했다.  이것은 아버지가 선하다고 아들이 선한 것이 아니며 신앙은 은혜로만 되는 것을 보여준다.

 

. 23:34-35  바로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으로 그 아비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저가 거기서 죽으니라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저가 바로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국민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늑봉하였더라

 애굽 왕 느고가 여호아하스왕을 잡아 가두고 요시야의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그 이름을 여호야김이라고 했다. 여호야김왕이 애굽 왕의 명대로 벌금을 내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은과 금을 부과시켰다.

 

. 23:36-37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 이십 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여호야김이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여호야김이 25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1년을 치리했는데, 그 열조를 본받아 악을 행하다가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어 그 시체가 나귀같이 매장되고 버림이 되었다.

예레미야 22:19에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고 했고, 예레미야 36:30에는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그에게 다윗의 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고 했다.  그에게 다윗의 위에 앉을 자가 없겠다는 말씀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어 석 달을 치리했으나 예레미야는 이 짧은 기간의 통치를 다윗의 위에 앉은 것으로 인정치 않았다(칼·델리취).

 

제 24 장   바벨론의 내침

 

(대  지)

 

一. 여호야김이 바벨론 왕을 배반함(1)

二. 여호와께서 열방을 보내 유다를 치게 하심(2-5)

三. 여호야김의 죽음과 여호야긴이 왕이 됨(6-7)

四.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과 백성을 포로로 잡아감(8-16)

五. 시드기야왕의 치세(治世) (17-20)

 

(본문강해)

 

一. 여호야김이 바벨론 왕을 배반함(1)

 

. 24: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여호야김왕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바벨론 왕을 섬기기로 언약하고 3년을 섬기다가 배반하였다.  그러므로 바벨론 왕이 노하여 올라와서 여호야김을 바벨론으로 사로 잡아갔다.

 

二. 여호와께서 열방을 보내 유다를 치게 하심(2-5)

 

. 24:2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여호야김왕이 느부갓네살을 배반하고 열조를 본받아 각종 악을 행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갈대아 군대와 이방 군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했다.  갈대아는 바벨론인데, 그 나라가 쳐들어 올 때에 그의 속국(屬國)들도 같이 합세하여 침략해 왔다.

 

. 24:3-5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명하신 바로 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 인함이며 또 저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 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께서 유다를 이방에게 내어 주게 된 원인은 므낫세가 범한 극악한 죄악 때문이다.  므낫세왕은 여호와의 성전에 우상을 많이 세워 섬겼고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렸다(21:1-18).  그로 인하여 하나님이 선고한 심판은 그대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므낫세는 여호야김의 증조부인데 그때 행한 악의 영향력이 증손자인 여호야김에게까지 내려온 것이다.  므낫세왕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우상을 섬기면서 백성들을 꾀어 우상을 섬기게 했다(21:9).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왕이 나라를 바로 세웠지만 어느 정도만 백성들의 마음을 바로 잡아 주었고, 전적으로 바로 세우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여호야김 때에 다시 그 악을 행했다.  한번 미혹되면 바로 세우기가 힘들다.  부모와 자식이 같이 죄악의 길을 걷다가 부모가 바로 섰다고 자식이 곧 바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므낫세왕의 지은 죄의 영향으로 유다가 망하게 되었다.

 

三. 여호야김의 죽음과 여호야긴이 왕이 됨(6-7)

 

. 24:6-7  여호야김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하수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취하였음이더라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부친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여호야김이 열조와 함께 잤다는 것은 열조처럼 죽었다는 것뿐이다.  그는 예레미야 22:19과 36:29-30에 보면 바벨론 왕을 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여 시체가 버림이 되었다.  예레미야 22:19에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한다고 한 것은 버림을 당한다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여호야김 3년(주전 605년)에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는데(단1:1), 이것이 바벨론 제1차 포로였다(대하36:5-7 ; 단1:1-2).  이 때는 바벨론 왕의 세력이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하수까지 뻗쳤으므로 애굽 왕이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

 

四.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과 백성을 포로로 잡아감(8-16)

   

. 24:8-9  여호야긴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팔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느후스다라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여호야긴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여호야긴왕은 이름을 여고냐라고도 하고(대상3:16) 고니야라고도 한다(렘22:24).  그가 18세에 왕이 되어 석 달간 치리하고 그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다.  역대하 36:9에 여호야긴이 8세에 왕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후대의 필사자(筆寫者)들이 \"8\"만 쓰고 \"10\"을 의미하는 요드(  )를 빠뜨린 것 같다(박 윤선).  여호야긴이 석 달간 왕위에 있는 동안에도 그 부친의 악을 본받아 많은 악을 행했다.

 

. 24:10-16  그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그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유다 왕 여호야긴이 그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 왕 팔 년이라 저가 여호와의 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전의 금기명을 다 훼파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저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 일만 명과 모든 공장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저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또 용사 칠천과 공장과 대장장이 일천 곧 다 강장하여 싸움에 능한 자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여호야긴이 왕이 된 지 석 달만에(주전 597)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제 2차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여호와의 전을 훼파하고 성전의 귀한 기구들과 왕과 모친과 방백과 환관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유다 땅에는 빈천한 자들만 남겨 놓았다(렘22:26-30).  이것이 바벨론 제 2차 포로이다(대하36:9-10).

 

五. 시드기야왕의 치세(治世) (17-20)

 

. 24: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아자비 맛다니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 대신에 그의 아자비요 요시야왕의 아들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다.

 

. 24:18-19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저희를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시드기야가 21세에 왕이 되어 11년을 치리했다.  시드기야는 아버지 요시야의 신앙과 선을 본받지 않고 형 여호야김을 본받아 악을 행하며 바벨론 왕을 배반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다시 침략 해왔다. 시드기야왕이 조카 여호야긴왕이 포로로 잡혀간 것을 보고도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하나님께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게 되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여기에 대해서는 저자의 성경강해 예레미야 pp.601-604를 참조하라.

 

제 25 장   유다 멸망

 

(대  지)

 

一. 유다의 멸망과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감(1-7)

二.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그 기구와 백성을 바벨론으로 옮김(8-17)

三. 바벨론 왕이 대제사장과 역군을 죽임(18-21)

四. 유다 총독으로 세운 그달리야를 이스마엘이 죽임(22-25)

五. 군대 장관들이 백성을 거느리고 애굽으로 감(26)

六. 바벨론 왕이 여호야김을 포로 중에서 선대함(27-30)

 

(본문강해)

 

一. 유다의 멸망과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감(1-7)

   

. 25:1-3  시드기야 구 년 시 월 십 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사면으로 토성을 쌓으매 성이 시드기야왕 십일 년까지 에워싸였더니 그 사 월 구 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진하였고

17장에서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약 140 년간 유지되어 온 유다가 끝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쳐들어오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예레미야가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겨야 된다고 하였으나(렘37:6-8).  그 말을 듣지 않고 바벨론 왕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왕 9년 10월 10일에 쳐들어와 11년 4월 9일까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었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에는 식량이 떨어져 기근이 심하였다.

 

. 25:4-5  갈대아 사람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성벽에 구멍을 뚫은지라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아라바 길로 가더니 갈대아 군사가 왕을 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 미치매 왕의 모든 군사가 저를 떠나 흩어진지라

바벨론 군사가 성벽에 구멍을 뚫어 성 안에 들어갈 길을 만들었다.  그러자 시드기야왕은 밤중에 군사들을 이끌고 도망을 쳤다.  두 성벽 사이는 외성과 내성, 즉 두 겹 성벽의 사이를 말한다.  혹 자는 이를 비밀 통로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왕의 동산은 실로암(셀라) 못 근처에 위치해 있다(느3:15).  아라바 길 갈릴리 바다로부터 남쪽으로 요단 계곡과 사해를 포함하여 멀리 아카바 만( )까지 이어지는 대계곡을 가리킨다.  여리고 평지 요단 계곡 쪽에 있는 아라바의 일부 지역을 가리킨다.

갈대아 군사가 시드기야의 도망치는 것을 알고 추격하여 따라 미치므로 왕과 함께 있던 군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군사들은 왕과 함께 죽을 각오를 하고 죽을 때까지 왕을 보호해야 할 터인데 왕이 잡히게 되자 살기 위해 다 도망쳤다.  아무리 위험한 때라도 자기 생명을 내놓고 죽을 때까지 왕을 보호하는 자가 충신이다.

 

. 25:6-7  갈대아 군사가 왕을 잡아 립나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가매 저에게 신문하고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 갔더라

갈대아 군사가 시드기야왕을 잡아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가 신문(訊問)했다.  그리고 시드기야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그의 눈을 뺐다.  그 다음에는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두 눈을 빼고 전쟁에 승리한 왕이 포로된 나라의 왕이나 신하들의 눈을 빼는 것은 재침할 능력을 빼앗는 것이다.  또 이 사건은 시드기야가 느브갓네살왕을 보게 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렘32:3-5 ; 34:3)과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에스겔의 예언(겔12:13)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二.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그 기구와 백성을 바벨론으로 옮김(8-17)

   

. 25:8-9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 구 년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느부갓네살의 십 구 년 오월 칠일 예레미야 52:29에는 제 18년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연대 계산법이 유다와 바벨론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유다는 즉위 첫해부터 계산하는 반면, 바벨론은 즉위 다음 해부터 통치, 1년으로 계산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52:29은 바벨론 연대 계산법을 따른 것이고 본절은 유다 계산법을 따른 것이다.

바벨론 왕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다 불살라 버렸다.  솔로몬이 7년간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아름답게 지은 성전과 또 13년간 공들여 지은 왕궁이 다 불사름이 되고 말았고, 또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귀인의 집, 귀족들이나 장관의 집들도 다 불살라졌다.  이 때는 제 3차 포로이며 포로 수(數)는 832인이었다(렘52:29).

 

. 25:10-12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는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다 사로잡아 가고 빈천한 국민을 그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이끈 갈대아 군사들이 예루살렘 성 사면을 파괴하고 또 많은 백성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어가고 유다 땅에는 아무 세력이 없고 빈천한 국민들만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며 농사를 짓게 하였다.

 

. 25:13-17  갈대아 사람이 또 여호와의 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전의 놋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 갔으며 시위대 장관이 또 불 옮기는 그릇들과 주발들 곧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갔으며 또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받침들을 취하였는데 이 모든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 그 한 기둥은 고가 십 팔 규빗이요 그 꼭대기에 놋머리가 있어 고가 삼 규빗이요 그 머리에 둘린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라 다른 기둥의 장식과 그물도 이와 같았더라

바벨론 왕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에 의해 하나님의 전에 있는 대소 기명(大小器皿)들과 보물들이 파괴되거나 바벨론으로 옮겨졌다(대하36:18).  이 사실은 오래 전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된 것이다(사20:6 ; 렘27:19-22).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성전과 그 기명이라도 다 원수의 손에 붙여 빼앗기게 하신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와 성도의 몸도 원수에게 내맡긴다.

 

三. 바벨론 왕이 대제사장과 역군을 죽임(18-21)

 

. 25:18-21  시위대 장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내시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 바 왕의 시종 다섯 사람과 국민을 초모하는 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 바 국민 육십 명이라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저희를 잡아 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많은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이 바벨론 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처럼 유다의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빈천한 자 외에는 다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비참하게 된 것은 시드기야와 그의 백성의 죄 때문이다.  시드기야 왕의 죄는,

첫째,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순종하지 아니한 것이다(대하36:12).  시드기야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은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라는 것이다(렘21:8-10 ; 38:1-3, 17-18).  항복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이 때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바벨론 왕에게 붙여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게끔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멍에를 메어야 살 수 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을 섬기게 했으므로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히 순종했더면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지 않고, 또 성전이나 왕궁도 불사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시드기야왕도 바벨론에 가서 선대(善待)를 받았을 것이다.  여호야긴왕은 비록 바벨론에 잡혀갔지만 거기에서 대우를 잘 받았다(27-30 : 렘52:31-34).  또 시드기야가 하나님께 회개하였더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본국으로 돌려보내 왕이 되게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자존심을 가지고 바벨론 왕을 대항하다가 비참하게 되었다.

누구나 하나님이 순종하라고 할 때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낮춰 놓으신다.  낮아져야 할 때는 낮아지며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께서도 악한 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얼마나 낮아지신 것인가 !  주님은 끌려가는 양과 같이 아무 저항없이 묵묵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다니엘도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서 말씀을 지켰다.  또 다니엘의 세 친구도 말씀을 지켜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  바벨론 왕에게 잡혀갔다고 해서 신앙을 못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제 뜻대로 행동했으며 자기의 죄는 생각하지 않고 자존심만 가지고 나아가다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자기에게 좋은 것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것도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시드기야에게 살 길을 가르쳐 주었으나 불순종하므로 망하게 된 것이다.

둘째, 바벨론을 배반한 죄이다(24:20下 ; 대하36:13 ; 겔17:11-21).

셋째, 목을 곧게 하고 마음을 강퍅케 한 것이다(대하36:13).

넷째,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해서 이방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 성전을 더럽힌 것이다(대하36:14). 성도가 자기의 영적 성전을 더럽히면 망하게 된다(고전3:16, 17).

다섯째,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고 선지자를 욕한 죄이다(대하36:15-16).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 낮아져서 하나님의 종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며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겸손히 낮아져서 하나님이 메어 준 멍에를 메고 순종해야 산다.

 

四. 유다 총독으로 세운 그달리야를 이스마엘이 죽임(22-25)

   

. 25:22-24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로 관할하게 하였더라 모든 군대 장관과 그 좇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로 방백을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 좇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그달리야가 저희와 그 좇는 자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신복을 인하여 두려워 말고 이 땅에 거하여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바벨론 왕이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해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세웠다.  그 소식을 듣고 유다의 군대 장관과 그를 좇는 자가 그달리야에게 모여 왔는데 그 중에 이스마엘과 요하난 등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달리야가 그들에게 유다 땅에 머물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면 평안할 것이라고 말했다(렘40:7-12).

 

. 25:25  칠 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십 인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저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왕족 이스마엘이 열 사람을 거느리고 와서 총독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수비대를 다 죽였다(렘41:1-3).  그가 또 하나님께 제사하러 온 70인도 죽였다(렘41:4-9).  그달리야는 유다에서 석 달간 치리했다.  이스마엘이 그달리야와 그와 같이 있던 유다인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 것은,

첫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유익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암몬 왕의 사주(使嗾)를 받아 죽인 것이다.  이것은 암몬 왕이 자기를 높여 줄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렘 40:14).  자기가 출세하기 위해 자기 동족을 죽이고 남의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자기 나라가 망한 다음에 남의 나라에서 대접을 잘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참으로 어리석은 자이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거나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다.

둘째,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했더라면 선지자 예레미야를 찾아가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면 예레미야가 바벨론을 섬겨야 된다고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셋째, 그달리야 총독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왕의 종친이요 군대 장관이었으므로 자기가 왕이나 총독이 되어야 한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보다 못하게 보이는 그달리야가 총독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미워하여 죽인 것이다.

넷째, 갈대아 군사들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다.  바벨론 군사가 유다를 점령하여 소수의 수비대만 남았으므로 복수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죽인 것이다.  이스마엘이 복수심으로 갈대아 군사들을 죽였으나 도리어 큰 화가 미쳐 자신도 망하고 유다 나라에도 손해가 컸다.  바벨론 왕이 이스라엘을 점령하여 총독을 세워 놓고 이스라엘을 재건시켜 속국으로 유지시키려고 하였는데, 그 재건하려는 이스라엘을 이스마엘이 멸망시킨 것이다(저자의 성경강해 예레미야 PP. 463-465 참조).

 

五. 군대 장관들이 백성을 거느리고 애굽으로 감(26)

   

. 25:26  대소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스마엘은 그달리야를 죽이고 미스바에 남아 있는 백성들을 사로잡아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 했다. 그때 요하난이 이스마엘이 행한 모든 악행을 듣고 자기와 함께 한 모든 군대 장관을 거느리고 이스마엘과 싸우러 나아가다가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를 만나니 사로잡혀 가던 모든 백성들이 요하난 일행을 보고 심히 기뻐하며 일시에 그에게로 돌아가므로 이스마엘은 그와 함께 한 여덟 사람과 암몬 자손에게로 갔다(렘41:11-15).

요하난은 이스마엘을 물리치고 모든 백성을 이끌고 애굽으로 가려 했다.  애굽으로 가려 하는 이유는,

①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갈대아 사람이 자기들의 수비대가 공격을 받아 죽었다면 가만히 있지 않고 재차 와서 잡아죽일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려워서 애굽으로 도망가려 했다(렘41:16-18).  요하난 일행은 애굽으로 떠나기 전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면 청종하겠다고 기도를 요청하였다.  그때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유다 땅에 머물면 구원받으나 애굽으로 가면 반드시 멸망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렘42:1-20).  그러나 그들이 처음 약속을 배반하고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모든 백성을 이끌고 애굽으로 갔다(렘43:1-7).  그들이 애굽으로 간 이유는 바벨론 왕이 와서 그들을 칠 염려 외에,

② 전화를 입고 황무지가 된 땅에서 생활하기가 심히 어렵고 나라를 재건하려면 많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렘42:14).

③ 사방에서 여러 나라가 쳐들어 올 염려가 있고, 환난에 환난이 계속되므로 유다에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렘42:14).

④ 남아 있는 사람이라도 한 마음이 되어 협력하면 좋으나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일만 하므로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굽으로 간 유다 사람들이 잘되려고 애굽으로 갔으나 필경은 다 멸망했다(렘43:8-13 ; 44장).

 

六. 바벨론 왕이 여호야김을 포로 중에서 선대함(27-30)

 

. 25:27-30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 칠 년 곧 바벨론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십 이 월 이십 칠 일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 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선히 말하고 그 위를 바벨론에 저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고 저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바벨론 왕이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간 지 37년만에 포로 중에서 그 머리를 들게 했다.  들게 하고는 존대하거나 지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바벨론 왕에게 해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18세에 왕이 되어 석 달간 왕위에 있다가 순순히 나아가 항복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그 모든 포로된 자 중에서 높임을 받아 죄수의 의복을 바꾸어 입고 왕의 상에서 먹게되고 쓸 것을 날마다 정수(定數)대로 받되 종신토록 받아 평안히 지냈다.  남에게 악하게 행하지 않는 자는 언젠가는 선한 대접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