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아가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123456 78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아가 1장

 

아가 강해

 

* 기록한 사람 : 솔로몬

* 기록한 연대 : 솔로몬 재위 (주전 973-933)의 중반

* 기록한 장소 : 예루살렘 왕궁

 

제 1 장 초애(初愛)

 

[대 지]

 

一. 포도주보다 나은 사랑 (1-4)

二.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는 사랑 (5-7)

三. 앞서 간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사랑 (8-11)

四. 향기와 생명이 있는 사랑 (12-17)

 

[본문강해]

 

一. 포도주보다 나은 사랑 (1-4)

 

. 1:1 솔로몬의 아가라

※ 왕의 말 (1)

아가(雅歌)의 히브리 원어   (쉬르 하쉬림)은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으로, \"노래 중 가장 뛰어나고 귀한 노래\"를 말한다. 솔로몬이 지은 노래가 일천 다섯이나 되는데(왕상 4:32) 아가서는 그 가운데 일부라고 한다.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말씀한 것이다. 아가서는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육적으로 이용하면 거룩한 것을 속(俗)되게 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 우리는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자의 관계를 통하여 예수님과 성도와의 신령한 관계를 배워야 한다.

 

. 1:2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 술람미 여자의 말 (2-4)

술람미 여자는 \"신령한 성도\"를 가리키고, 예루살렘 여자는 \"보통 성도\" 혹은 \"육신에 속한 성도\"를 가리킨다. 이와 같이 신자 중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고린도전서 3:1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 했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입 맞춰 주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도가 예수님과 더불어 접촉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술람미 여자(신령한 성도)는 예수님을 가까이 하며 영적 교통을 하며 교제하기를 원한다. 예수님도 성도가 멀찍이 따라 다니는 것을 원치 않고 좀더 가까이 나아와서 신령한 교통을 하는 것을 원하신다.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예수님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낫다는 말이다. 포도주는 달콤하여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삿 9:13; 시 104:15), 사람으로 하여금 취하게 한다. 이처럼 예수님 의 사랑은 달고 성도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그 사랑에 도취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도 그 목적은 주님이 하시는 구원운동(생명운동)은 변화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요 2:1-11).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기쁘고 즐겁게 하고, 달고 도취가 되게 만들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그 사랑 속에 깊이 들어간 성도라야 신령한 성도이다. 그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속에 깊이 들어가서 그 사랑의 단맛을 알고 즐거워하며 그 사랑에 이끌리어 따라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 1:3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자랑하는구나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이것은 예수님이 기름부음 받은 것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성도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이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그것이 참으로 향기롭다는 뜻이다.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예수님의 이름은 향기롭다. 그 향기는 모든 더러운 냄새를 제거하며 썩어져 가는 것을 방지하고 좀이나 벌레가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더러운 마귀는 예수님의 이름에 놀라서 도망친다. 또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의 심령 속에서도 향기가 넘쳐 나오게 된다.

처녀들이 너를 자랑하는구나 처녀들은 모든 성도를 가리킨다(마 25:1-13; 고후 11:2).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아름다움과 지극히 큰 사랑을 깨닫고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사모한다.

 

. 1:4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예수님이 술람미 여자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였다는 말이다. 예루살렘 여자(보통 성도)는 침궁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만 왕을 따라 다니면서 섬길 뿐이다. 그러나 술람미 여자(신령한 성도)는 왕이신 예수님과 함께 침궁에까지 들어간다. 침궁에 들어간다는 것은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더불어 신령한 교통을 하며 동거동락하는 생활을 가리킨다.

술람미 여자는 영적 세계에 들어가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생활을 한다. 그러나 예루살렘 여자는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세계 밖에서 예수님을 섬긴다. 우리도 좀더 신령한 자리, 은밀한 골방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자리에까지 들어가는 믿음을 가져야겠다. 마태복음 6:6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계시고 또 거기서 보시고 거기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너는 나를 인도하라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의 인도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나 좋기 때문에 성도들이 예수님을 사랑함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二. 외모를 보지 알고 중심을 보는 사랑 (5-7)

 

. 1:5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계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 술람미 여자의 말 (5-7)

예루살렘 여자들아 술람미 여자가 예루살렘 여자들을 부르는 말이다. 술람미 여자가 외적으로는 아무 보잘것이 없으나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 영적으로 주님과 교통하며 동행하는 신앙의 비밀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간증하려는 것이다.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술람미 여자가 얼굴이 검지만 예수님 보시기에는 아름답다는 뜻이다. 그가 얼굴이 검게 된 원인은 일광에 쬐었기 때문이다(6절). 일광에 쬐어서 얼굴이 검어졌다는 것 은 세파에 시달려 얼굴이 보잘것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술람미 여자는 믿음을 지키며 예수님을 바로 따라가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을 받는 동안에 겉모습이 보잘것없이 된 것이다. 그가 예수님을 사모하여 들로 산으로 헤매며 다니느라고 얼굴이 검어졌다. 그래도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아름답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도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 중심과 속사람을 보신다. 술람미 여자가 외모는 보잘것 없으나 그 중심과 속사람은 실로 아름답다.

계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계달\"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인데 그 족속은 검은 염소털로 만든 장막을 치고 유목생활을 하였다(창 25:13; 사 21:17). 그러므로 계달의 장막같다는 것은 염소털같이 검고 너저분하여 아무 모양이나 광채나 볼 만한 것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술람미 여자가 외모로는 아무 보잘것 없으나 예수님 보시기에는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호화 찬란하다는 것이다.

믿음 지키기 위해서 환난받는 성도가 비록 외모는 이렇게 계달의 장막같이 변변치 못하고 보잘것이 없으나 예수님께서는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아주 호화롭고 아름답게 보아주신다. 이와 반대로 외모를 아무리 아름답게 단장하고 호화로이 꾸몄을지라도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는 성도는 예수님의 눈에 계달의 장막과 같이 추하게 보여진다. 우리는 외모를 꾸미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많이 닮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신령한 세계(침궁)까지 들어가 예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1:6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 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술람미 여자가 일광에 쬐어서 얼굴이 거무스름하게 되었다. 그것은 어미의 아들들이 그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기 때문에 그 포도원에 가 있는 동안 일광에 쬐어서 얼굴이 거무스름하게 된 것이다.

일광(日光)에 쬐어서는 세상 풍파에 시달린 것을 가리킨다. 술람미 여자가 포도원지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 시련 가운데 얼굴이 검게 되었다. 흘겨보지 말 것은 업신여기지 말라는 뜻이다. 어미의 아들들 육신의 친척들과 세상 사람들을 가리킨다. 나를 노하여 세상 사람들은 술람미 여자가 자기들이 시키는 대로 안 하고 주님만 따라 가고 주의 말씀만 따라가므로 노하였다.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이것은 육신의 친척들이 술람미 여자를 세상의 이용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술람미 여자를 세상의 이용물로 삼아서 세상 일에 이용하였기 때문에 술람미 여자가 그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많은 환난을 받았다. 또 세상의 모든 일로 시달리는 동안에 얼굴이 거무스름해졌고 외모가 보잘것없이 되었다. 그러나 술람미 여자는 그 가운데서 신앙을 잘 지켰다. 술람미 여자가 포도원을 지키면서도 마음은 예수님께가 있고 예수님만 사랑하고,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 주님과 교제하는 생활을 하며 예수님의 명령을 잘 지켰다. 술람미 여자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첫째로 하고 포도원 지키는 것은 둘째, 세째로 했다. 그러므로 포도원은 잘 지키지 못하였다. 성도가 비록 세상 일을 맡아서 일해 나가면서도 믿음을 잘 지켜 속사람을 아름답게 단장해야 한다. 그런 성도를 예수께서 기뻐하신다.

욥기 23:10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했다. 욥이 그 많은 재산이 다 없어졌고, 아들 일곱, 딸 셋이 한꺼번에 다 죽었고, 또 몸에는 병이 나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으며, 심지어 아내에게 배척을 당했다. 그렇게 많은 시련을 당한 것이 곧 일광에 쬐어 거무스름해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욥은 믿음을 지켰고 모든 시험을 믿음으로 다 통과했다.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믿음 지키느라고 세상 일을 제대로 다 못했다는 것이다. 성도가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하지만 믿음지키는 문제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거나 하면 부모 공경을 제대로 못하고 또 가정도 제대로 잘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갈 때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부친을 작별하고 따라갔다(마 4: 18-22). 그것이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 일이 잘못되는 경우도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가정에서 자기 할 일을 잘해야 되고, 부모를 잘 공경해야 되고, 또 자녀를 잘 길러야 되고, 직장에도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 위반되는 것까지는 할 수 없다. 그로 인하여 세상 일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수님만 잘 따라 갔다고 하면 대성공이다.

 

. 1:7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 내가 네 동무 양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 같이 되랴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을 부르는 말이다.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 술람미 여자는 예수님이 양떼를 어디서 먹이는지, 어디서 쉬게 하시는지, 그곳을 알아서 자기도 거기에 가려고 찾는다. 성도는 어떻게 하여야 주님의 신령한 양이 되고 어떻게 믿어야 주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는가, 진리가 어디에 있는가, 어디서 주님이 생명 운동을 하시는가, 그곳에 가려고 애쓰며 찾아야 한다. 어디가서 배워야 바로 배우며 어느 곳에 가야만 주님과 같이 안식할 수 있는지 애쓰며 찾아야 한다. 성도는 생명의 꼴을 먹을 만한 곳에 가서 꼴을 먹고 그 생명이 살고, 안식할 곳을 찾아 안식을 누려야 한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이 그 시대에 필요한 꼴을 먹이셨고, 초대 교회 시대에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필요한 양식을 공급했고, 이스라엘의 아합왕 시대에는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서 양떼들을 먹였고, 종교 개혁 시대에는 루터와 칼빈을 통해서 참된 양식을 먹였고, 일정 말기 신사참배의 환난 때에는 주기철 목사, 이기선 목사등을 통해서 참된 양식을 먹였다. 우리는 오늘날 이 시대에 양떼를 바로 먹이는 곳(바른 진리를 가르치는 곳)이 어디인가, 또 생명을 살리는 곳이 어디인가를 찾아 그곳에서 생명의 양식을 먹고 자기 생명이 살아야 한다.

내가 네 동무 양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 같이 되랴 부끄러울 때 얼굴을 가리운다. 성도가 신랑되신 예수님을 잃어 버렸거나 신령한 꼴을 먹지 못하고 자기 영적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면 주님 앞에 부끄럽다. 하나님의 진리가 예수 믿는 사람 속에서 영적 양식이 되어야 하고, 또 그 시대에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며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기쁘고 떳떳하게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참된 양식(꼴)을 먹지 못하고 새 생명의 역사가 없으면 동무 양떼 곁에서 얼굴을 가리운 자같이 부끄러운 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자기 신랑을 잃어버린 신부가 무엇이 떳떳하겠는가? 예수님의 양떼 먹이는 곳에 가서 신령한 꼴을 먹지 못하고 오정에 쉬게 하는 곳에 가서 영적 안식을 누리지 못하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술람미 여자는 이런 자가 되지 않으려고 그 곳을 애써 찾는 것이다.

 

三. 앞서 간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사랑 (8-11)

 

. 1:8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 왕의 말 (8-11)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예수님은 당신을 애써 찾는 술람미 여자를 어여쁘게 보신다.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예수님을 바로 따라가 신령한 꼴을 먹고 안식을 누리던 성도, 순교자의 발자취를 따라 가라는 것이다. 예레미야 6:16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고 했다. \"옛적 길\"은 옛날 믿음의 선진들이 바른 진리대로 믿은 길이다. 시대와 사상과 사람은 변해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히브리서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다. 옛적 믿음의 선진들이 어떤 길을 걸어 갔는가? 아브라함, 다니엘, 스데반이 어떤 길을 걸었는가? 초대 교회 성도가 어떤 길을 걸었는가? 바로 믿던 성도들이 걸어간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바른 진리와 주님의 안식처를 찾는 길이다. 앞서간 양떼들이 걸어간 발자취를 살펴보면 현재 우리가 바로 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환하게 드러난다. 만일 우리가 믿음이 없고 육신 중심과 세상주의로 기울어져 있다면 거기서 회계하고 앞서 간 양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염소는 양의 종류 가운데 들어가지만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이것은 양 가운데 염소 새끼 노릇하는 양을 잘 인도하라는 것이다.

양을 치는데는 염소도 필요하다. 양떼 가운데 염소를 한 마리 넣어 놓으면 다른 양떼들에게 유리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양들이 밤에 잘 때에 추우면 가운데로 서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가운데 힘이 없는 양은 치어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 염소 새끼를 하나 넣어두면 뿔로 받아서 .헤치기 때문에 추워도 가운데로 많이 모이지 못하고 그대로 지내므로 양들이 깔려 죽지 않는다고 한다.

교회에도 염소 새끼같은 신자가 있다. 교역자는 그 염소 새끼를 잘 먹일 줄 알아야 한다. 염소 새끼를 잘못 먹이면 다른 양떼들도 잘 먹이지 못한다. 염소 새끼를 잘 먹여야 다른 양을 잘 인도할 수 있다. 염소 새끼가 말을 잘 않 듣는다고 내어 쫓으면 다른 염소 새끼가 또 나온다. 염소 새끼에게 받히지 아니하면서 잘 다스려야 능력있는 교역자가 되고 양을 잘 먹일 수가 있다.

또 성도가 염소 새끼와 같이 순종하지 않는 자기 몸을 쳐서 잘 복종시켜 나가야 자기 영을 잘 길러 나갈 수가 있다. 고린도전서 9:27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다.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염소 새끼를 잘 먹이면 예수님을 만날 희망이 있다.

 

. 1:9-10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사슬을 은을 박아 만들리라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바로의 병거의 준마는 아주 좋고 뛰어난 말이다. 신랑되신 예수께서 선한 싸움을 잘 싸우는 성도를 볼 때에 바로의 병거의 준마와 같이 훌륭하고 씩씩하고 장하고 위대하게 보아주신다.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성도의 뺨에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나타나 있으므로 주님께서 그 뺨을 아름답게 보아주신다.

\"머리털\"은 권세 아래 순종하는 것을 가리킨다. 고린도전서 11:10에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고 했다. 구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순종하는 성도를 예수님께서 이렇게 아름답게 보아주신다.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목의 구슬은 순종을 가리킨다.

잠언 1:8-9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고 했다.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떠나지 않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은 그 목에 금사슬과 같이 보배롭고 아름답다.

금사슬을 은을 박아 만들리라 \"금\"은 믿음을 가리키고 \"은\"은 행위를 가리킨다. 연단받은 믿음은 금보다 귀하다(벧전 1:7). 그 연단받은 믿음에 행위가 따르면 예수님께서 금사슬에 은을 박은 것과 같이 보배롭고 아름답게 보아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받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열매가 맺히면 금사슬에 은을 박아 만든 것같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다.

 

四. 향기와 생명이 있는 사랑 (12-17)

 

. 1:12  왕이 상에 않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였구나

※ 술람미 여자의 말 (12-14)

왕이 상에 앉았을 때에 왕이 즐거운 연회석상에 앉은 것을 말한다. 이것은 성도가 예수님과 같이 먹고 마시는 생활을 가리킨다.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였구나 \"나도 기름\"은 기름 가운데도 귀중하고 가장 값진 기름이다(막 14:3-9, 요 12:3). 이것은 술람미 여자(신령한 성도)가 예수님에게 마음과 뜻과 사랑과 생명 전체를 쏟아 붓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참으로 예수님과 한자리에 앉아 있을 때에 이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온다. 그것이 또한 예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향기가 되는 것이다.

 

. 1:13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요

예수님은 성도의 품 가운데 몰약 향 주머니이다. \"몰약 향\"은 악취를 제거하며, 방부제로 사용했다. 성도가 예수님을 심령 속에 모시면 언제나 향기가 가득하고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가는 데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와 모든 악취가 제거되고 부패가 방지되고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긴다.

고린도후서 2:14-16에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라고 했다. 그리스도가 믿는 사람 속에 와서 내주할 때에 믿는 사람 속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계속하여 나오게 된다. 자기 속에는 악취가 없어지고 부패가 제거되며 언행을 통해서 향기가 계속 나타나게 된다. 좋은 일을 당해도 향기가 나오고 환난과 고통과 핍박이 올 때에도 향기가 나타나게 된다. 최 권능 목사는 항상 기쁨과 즐거움으로 \"예수 천당\"을 외치며 다니셨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그의 속에 향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속에 모시지 못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오지 못한다. 말 한마디를 해도 향기가 없는 말을 하게 되고, 마음의 생각도 향기가 없는 더러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술람미 여자와 같이 예수님을 심령 속에 모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성도는 가시밭에 백합화 같아서 가시가 찌를수록 향기가 더욱 잘 나오게 된다(2:2). 다니엘은 사자굴 시험이 왔을 때도 감사하는 기도를 했다. 조금 있으면 사자굴에 던져지겠는데 어떻게 감사가 나왔을까? 그것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심령 속에 모시고 그로 말미암아 그 생명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한 것이다.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에 원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것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 속에서 나온 것이다.

 

.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술람미 여자는 예수님을 엔게디 포도원의 고별화 송이라고 했다.

엔게디는 아름다운 수풀이 많고 포도로 유명한 지방이라고 한다.

고벨화는 팔레스타인과 애굽에 많이 나는 식물로 봉선화와 비슷한 꽃인데 그 크기는 3m쯤 된다고 한다. 엔게디 들과 같은 넓은 들판에 높이 솟아나 피어 있는 고벨화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끌고 그 모양이 아름답기 짝이 없다. 그 꽃으로 인하여 그 포도원 전체가 아름다와 보인다. 참으로 예수님은 엔게디 포도원에 고벨화 송이와 같이 뛰어나며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분이시다.

포도원은 교회를 상징한다(사 5:1-7). 교회에도 예수님이 계셔야 아름다운 교회가 되고, 가정에도 예수님을 모셔야 아름다운 가정이 된다. 교회에 예수님이 떠나면 사탄의 교회가 되고 예수님이 계셔야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하나님의 이적으로 나았다는 말을 바벨론 왕이 듣고 사자를 유다에 보냈다. 그때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자들에게 하나님만 보여주고 하나님만 자랑했어야 될 것인데 하나님을 보여주지 않고 무기창고, 내탕고, 보물창고 등을 보여주며 자랑했다(사 39:1-4). 그것들은 바벨론 나라에 있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후 바벨론이 유다를 업신여겨 군사를 이끌고 와서 유다를 함락시켜 버렸다. 히스기야왕이 그 때에 하나님만 보여주었더라면 바벨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유다를 침략하지 못했을 것이다.

 

. 1: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 왕의 말 (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예수님이 성도를 향해서 \"내 사랑\"이라고 불러 주시며 어여쁘게 보아주신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성도가 신령한 눈을 떠서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 보시기에 그 눈이 비둘기같이 보여진다. \"비둘기\"는 온유하고 순결하고 정결한 짐승으로 구약 시대에는 비둘기를 제물로 드리기도 했다. 신령한 눈을 떠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성도는 정결하고 순진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심직한 제물이 되고 예수님께서는 아름답게 보아주신다. 우리는 항상 신령한 눈을 떠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생명있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 1:16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 술람미 여자의 말 (16-17)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화창하다\"는 것은 마음이 시원하고 즐겁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는 분이므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참으로 아름답고 마음이 시원하다.

우리의 침상 예수님과 술람미 여자가 교제하는 곳이다. 술람미 여자만 왕의 침궁에 들어갈 수 있고(4절) 침상에서 동거동락(鬧居同樂)할 수 있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침궁에 들어가지 못하고 예수님을 멀찍이 바라보고 수종을 드는 성도들이다. 성도가 침궁에 까지 들어가 침상에서 예수님과 교통해야만 생명이 산다. 술람미 여자와 같은 성도는 주님께 마음과 사랑과 정성과 목숨을 전폭적으로 쏟아 붓는다(12절). 요한복음 12:1-8에 마리아는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으며 전폭을 쏟아 붓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푸르고 \"푸른 빛\"은 생명의 빛으로 푸른 침상은 생명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본이시므로 푸른 빛을 좋아하신다. 하나님께서 모든 산천 초목과 하늘과 바다도 푸르게 만드셨다.

 

. 1:17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석가래로구나

우리 집은 성도가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신령한 집이다. 백향목 들보 \"백향목\"은 좀이 먹지 않고 후패(朽敗)하지 않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나무이다. 예수님과 더불어 침궁에 들어가는 영적 생활 하는 성도는 악취가 제거되고 좀이 못먹고 향기만 난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가 되고 거기에 향기가 가득해진다. 최 권능 목사는 조그마한 오두막에 살면서도 예수님을 모시고 살았으므로 항상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렸다. 한번은 미국 선교사가 심방을 오겠다고 하니까 사모님이 \"이런 누추하고 조그만 집에 어떻게 선교사가 오겠읍니까?\"하니 최 권능 목사는 \"우리 집에 하나님이 계시는데 선교사가 왜 못오시겠는가\"고 하며 선교사를 기쁘게 모셨다고 한다.

잣나무 석가래 \"잣나무\"는 사시장철 늘 푸르고 창성하는 나무이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집은 언제나 백향목 향기가 나고 푸른 침상같이 생명이 있고 잣나무와 같이 계속 발전하고 창성해 나간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아가 2장

 123456 78

 

제 2 장 고난(苦難)

 

[대 지]

一. 성도는 가시밭 가운데 있음 (1-2)

二. 고난 중에서도 주님으로 즐거워함 (3-7)

三. 고난의 주가 찾아오심 (8-9)

四. 은밀한 중에 있는 성도를 부르심 (10-14)

五. 여우를 잡으라 (15-16)

六. 주님의 재림을 고대함 (17)

 

[본문강해]

 

一. 성도는 가시밭 가운데 있음 (1-2)

 

. 2:1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 술람미 여자의 말 (1)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사론은 갈멜산 남쪽에 있는 들판으로 길이는 90리 폭은 30리나 된다고 한다. 여기 수선화는 장미와 같은 종류라고 한다. 그 넓은 들판에 수선화 한 송이가 피었다가 진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꽃이 그저 넓은 들판에 나서 꽃이 피고 향기를 날리다가 때가 되면 스러져서 없어진다. 술람미 여자는 자신이 마치 이러한 사론의 수선화와 같다는 것이다.

성도는 광야와 같은 넓은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알아주든지 몰라주든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이다. 성도는 사람 앞에서 사는 자가 아니며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해야 할 본분을 다 하다가 하나님이 오라고 하시면 하나님 앞에 가는 자이다. 누가 알아주면 좋아하고 몰라주면 섭섭해하며, 다른 사람이 알아주면 잘 하고 알아주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은 사론의 수선화가 아니다. 사람 앞에서는 피었다가 사람이 없으면 지는 꽃은 진짜 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보든지 말든지, 사람이 알아주든지 몰라주든지 하나님 앞에서 꽃을 피우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향기를 날리다가 하나님 앞으로 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골짜기의 백합화는 은밀한 곳에 있는 백합화를 말한다. 이와 같이 숨어서 믿음을 지키고, 봉사하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술람미 여자의 신앙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한다. 술람미 여자의 신앙은 골짜기와 같은 은밀한 가운데서도 심령 속에 꽃을 피워, 그리스도의 향기로 골짜기에 가득하게 채우는 신앙이다.

요한계시록 2:17에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했다. 성도는 자기가 꽃을 피웠는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리는 중에 있는지를 자기 자신은 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잘 모른다. 골짜기 가운데 피어 있는 백합화는 그 골짜기의 밖에 있는 사람은 모르고, 그 골짜기에 들어가 직접 그 꽃을 보고 접촉해 본 사람만 안다.

 

. 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 왕의 말 (2)

여자들은 성도들을 가리킨다. 내 사랑은 술람미 여자를 가리킨다.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는 험한 세상 가운데서 믿음 지키는 성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참 성도 술람미 여자를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같이 보아주신다.

참으로 이 세상은 가시나무와 같이 사납게 성도를 핍박하고 환난과 고통을 준다. 미가 7:2-4에 \"이와 같이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 하도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고했다. 성도가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려면 환난이 많다.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화는 바람이 불면 그 가시들이 꽃을 꾹꾹 찌르므로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백합화는 가시에 찔려서 찢길수록 더욱더 향기를 짙게 날리게 된다. 신령한 성도는 가시나무 같은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해 꽃을 피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며 환난과 핍박이 올 때는 그 향기를 더욱더 많이 날리고 멀리까지 날린다. 술람미 여자와 같은 신령한 성도는 환난과 핍박을 받을수록 향기가 많이 날리고 순교당할 때에 그 향기가 더욱 많이 날리고 죽은 후에도 향기는 계속 날린다. 손 양원 목사는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자기의 양아들로 삼았다. 그러므로 손목사님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많이 날렸다. 스데반도 순교당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를 많이 날렸다(행 7:59-60). 그는 술람미 여자와 같이 평소에 꽃을 피우고 있다가 환난과 죽임을 당할 때에 그 향기를 더욱 잘 날린 것이다. 그 향기가 그 시대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세대의 성도에게 아름다운 향기가 되었다.

참된 성도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처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심령 속에서 꽃이 피고, 숨은 봉사와 숨은 기도를 하면서 교회를 잘 받들어 나간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 환난 이 닥치면 속의 향기가 밖으로 나오고, 멀리까지 날아간다.

우리는 술람미 여자의 신앙처럼 심령 속에 꽃이 피어 있는 신앙, 그리스도의 향기가 속에 가득 차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환난이 올 때에 속에 있던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성도가 되어야겠다.

 

二. 고난 중에서도 주님으로 즐거워함 (3-7)

 

. 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 술람미 여자의 말 (3-7)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수풀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벧전 1 :24 참조). 사과나무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같이 많은 사람들 위에 뛰어난다. 사과나무는 수풀과 달리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열매를 맺으며 그 열매는 아름다운 향기를 내고 좋은 영양소가 된다. 또 무성한 잎은 여름에 그늘이 되어 시원하게 해준다.

참으로 예수님은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와 같이 위대하고 존귀하신 분이시다. 공자나 석가모니나 마호메트나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들도 역시 수풀과 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겸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사과나무와 같이 뛰어나고 비할 데 없이 존귀하다(전 7:28 참조).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어찌 인생들과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술람미 여자가 사과나무 아래(예수님 아래) 앉아서 심히 기뻐하는 생활을 하고 그 사과나무 열매를 따먹는 생활을 하였다. 사과는 향기와 맛이 좋고, 영양이 많은 과실이다. 또 그 그늘 밑에서 시원하게 안식을 누린다. 이와 같이 신령한 세계에서 주님을 의뢰하고 사는 성도는 예수님 아래서 위안을 받고 예수님으로 부터 공급되는 꿀과 같이 단 생명의 열매를 먹고 만족한다.

 

. 2: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집에 들어 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

잔치집 예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항상 잔치 집에서 사는 생활이다. 언제나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하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 가신 것은(요 2:1-11) 예수님의 구원운동이 잔치집과 같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도 예수님이 하시는 생명 운동은 변화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의 구원운동은, 슬픔 많은 이 세상을 변화시켜 즐거운 세상으로 만들고, 맛이 없는 세상을 맛이 있는 세상으로 변화시키고, 사망의 골짜기와 같은 세상을 생명이 넘치는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 \"기(旗)\"는 어떤 뜻을 나타내는 표지(標識)이다. 성도가 예수님과 같이 연락(宴樂)하는 집은 사랑의 세계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 집 위에 사랑의 기를 세운 것이 다. 주님과 연회하며 연락하는 집은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한 곳이요, 사랑이 충만히 넘치는 곳이다.

 

. 2: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건포도\"는 포도를 말린 것이므로 단단한 식물에 속한다. 단단한 식물에 대한 신령한 뜻은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도리를 말한다. 성경 말씀을 초보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젖으로 먹이는 것이고, 보다 깊게 가르치는 것은 단단한 식물로 먹이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1-2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했다. 히브리서 5:13-14에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다.

성도가 초보적인 진리만 먹으면 그 영이 힘을 얻을 수 없고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힘을 얻고 장성한다. 신구약 성경을 전부 젖으로 먹일 수도 있고 단단한 식물로 먹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7:13-14에 있는 넓은 길로 가는 자와 좁은 길로 가는 자에 대한 말씀을 해석할 때, 초보적으로 해석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다 넓은 길로 가는 것이고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좁은 길로 가는 것 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젖으로 먹이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도 죄 가운데 거하고 방탕하고 우상 숭배하는 사람은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요, 성경 말씀대로 바로 믿어 보려고 죄와 더불어 싸우고 경건한 생활을 하고, 또 비진리와 타협하지 아니하고 신앙 양심을 써서 믿음을 지켜 나가는 성도는 좁은 길로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단단한 식물로 먹이는 것이다.

젖으로 먹는 사람은 쉽게 예수를 믿을 수 있으나 단단한 식물을 먹는 성도는 해야 할 일이 많고 힘을 많이 써야 한다. 신령한 진리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대로 자기 자신이 만들어지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 나가야 하므로 할 일이 많고 힘이 많이 든다. 그러나 그 때에 능력을 얻고 자라나고 생명길을 걸어나간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나드 향유를 가져다가 부은 것도 젖으로 먹이는 해석은 나드유 그 물질만 쏟아 부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고, 단단한 식물로 먹이는 해석은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과 자기 생명까지 예수께 전 폭을 쏟아 부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단한 식물을 먹고 그 말씀을 새김질하며 그 말씀에 도달하려고 힘을 써야 한다. 그럴때 우리 심령이 새 힘을 얻고 점점 자라나게 된다.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사과는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성도의 심령이 시원함을 얻게 해 달라는 소원이다. 성도는 예수님의 생명을 받고 예수님의 생명이 심령 속에서 역사할 때에 심령이 만족을 누리고 새롭게 된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열매(사과 열매)는 우리의 심령을 살게 해주고 향기로운 냄새로 그 심령에 만족을 준다.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 병이 났다는 것은 마음이 상했다는 뜻이다. 술람미 여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다가 병이 났다.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고 너무 간절했기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몸의 기

운도 다 빠져 나갔다. 시편 42:6에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라고 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에 예수님과 교제하려고 요단 땅과 헤르몬 산과 미살 산으로 헤매며 다닌 것이다. 이와 같이 신령한 성도는 예수님 만나기를 갈망하고 간절히 사모하여 들로 산으로 헤매며 주님을 찾아서 가까이 하려고 한다.

 

. 2:6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주님의 \"왼손\"은 위안의 손이요, \"오른손\"은 능력과 보호의 손이다. 예수께서 성도를 위안의 손으로 평안히 안식하게 해 주시고 능력자 보호의 손으로 원수를 물리쳐 주시며 성도를 붙들어 일으켜 세워 주신다. 주님은 성도의 피난처요 안식처가 되신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자는 그 심령에 참된 위로와 평안을 받게 되고 보호와 능력을 받게 된다.

 

. 2:7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회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술람미 여자가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자기를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육신에 속한 신자들은 술람미 여자와 같이 영에 속한 성도를 흔들고 깨우기 잘 한다. 신령한 성도가 예수님과 같이 침궁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더불어 즐거워하며 교통하는 생활을 할 때 육신에 속한 신자들은 참 성도를 흔들며 깨운다.

육신에 속한 신자들은 참 성도에게 \"예수를 어찌 그렇게 믿느냐\" \"그렇게까지 믿지 않아도 된다\"\"꼭 그렇게 믿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신령한 곳에서 나와서 우리와 공동 보조를 취하자\"고 하면서 흔들어 깨운다. 넓은 길로 나가는 신자들은 좁은 길로 걸어가는 신실한 성도들을 유혹하여 영의 길로 걸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노루와 들사슴은 연약하여 맹수들의 위협을 많이 받으며 잘 놀라는 짐승이다. 성도는 영적 생활에서 노루와 들사슴같이 깨어나기 잘한다. 골방에서 주님과 명적으로 교통하다가 곧잘 세상으로 나온다. 노루와 들사슴은 또한 도망쳐서 산으로 올라가기를 잘한다. 이와 같이 신령한 성도는 노루와 들사슴처럼 영적 시온 산으로 계속 달음박질을 잘한다. 시온 산으로 계속 뛰어 올라가면 따라올 사람이 없고 아무리 큰 세력일지라도 그 성도를 이기지 못한다.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이것은 주님과 교통하는 골방 생활에서 떠나게 하지 말라는 부탁이다. 예수님도 성도가 그 자리에서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 술람미 여자가 깨우지 말라고 해도 예루살 렘 여자들은 듣지 않고 계속해서 깨울 것이다. 술람미 여자가 예루살렘 여자들이 깨울 줄 알면서도 이렇게 깨우지 말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비록 그들이 말을 듣지 않을지라도 이렇게 부탁함으로 써 자기가 깨지 않겠다는 결심이 강해지고 예루살렘 여자들에게는 가책을 주어 견제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깨지 않겠다는 술람미 여자의 굳은 결심이 들어 있는 것이다.

 

三. 고난의 주가 찾아오심 (8-9)

 

. 2:8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술람미 여자의 말 (8-9)

나의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산\"은 고난을 가리키는데 \"(큰)산\"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가리키고, \"작은 산\"은 오늘날 교회가 당하는 모든 환난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고난의 산을 넘어 오셨다. 또 오늘날 성도들이 당하는 환난의 작은 산에도 주님은 찾아오신다. 사울이 교회를 핍박할 때에 예수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다(행 9:4). 스데반이 순교 당할 때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행 7:55).

이처럼 주님은 성도가 고난당할 때 고난의 자리로 빨리 오셔서 같이 고난 당하시고 도와주신다. 예수님은 성도가 믿음 지키다가 환난 당할 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빨리 그 고난의 산을 넘어와서 힘을 주시고 건져 주신다. 환난없이 믿는 사람은 이런 비밀을 알지 못한다. 안일주의에 빠져 있는 신자에게는 예수님이 멀리 떠나 계신다.

 

. 2:9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이것은 예수님의 온유하심과 빨리 행동하심을 가리킨다. 우리 벽 뒤에 서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하시고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고 계신다.

\"벽\"은 ① 죄악의 벽이다. 이사야 59:1-3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고 했다. 우리의 죄악의 담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신다.

② 의문과 의식과 제도의 벽이다. 로마서 7:6에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 할지니라\"고 했다. 구약의 모든 의식과 제도는 죄를 깨닫게 하고 오실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하였으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 생존을 하는 데는 아무 유익이 없고 도리어 방해가 된다(빌 3:5-8; 골 2:20-23).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문을 십자가에서 도말(塗抹)하셨다(골 2: 14).

유대인들은 유월절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하면서도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배척했다. 의식과 제도에 치우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방해가 되며,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는데 장벽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성화(聖晝)나 성서의 내용을 담은 영화(映晝)나 환등(幻燈)이나 그림책이 어느 정도는 기독교와 예수님에 대해서 빨리 인식시키는 일은 할 수 있으나 예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고 영적 세계에 들어가는 데는 그것이 큰 장벽이 된다.

③ 잘못 배우고 잘못 깨달은 것이 벽이다. 로마서10:2-3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약 성경을 잘못 배우고 잘못 깨달았다. 구약에 그리스도에 대한 신령한 진리가 있는데 그 신령한 면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적인 지식만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이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했다. 잘못 배운자는 그것이 옳은 줄 알고 그대로 나아가기 때문에 그것이 벽이 된다. 차라리 그것을 몰랐더면 옳은 것을 가르쳐 줄 때 바로 배울 수 있다.

④ 완고한 것, 자기가 하겠다는 것이 벽이다. 이것은 교만이다. 사무엘상 15:23에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했다. 우리의 완고한 마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담장이 되어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시고 창으로 들여다보고, 창살 틈으로 엿보고 계신다.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이것은 예수님이 이따금씩 외부적인 감동으로 감동시켜 깨닫게 하시는 것을 말한다. 5:4에는 문틈으로 손을 들이 밀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징계를 해서라도 깨닫도록 역사하시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벽을 헐어 버려야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죄를 회개하고, 의식주의를 버리고 잘못 배우고 잘못 깨달은 것을 과감히 고치고, 고집과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의 감동을 순종하며 말씀을 따라가야 주님을 만날 수 있다.

 

四. 은밀한 중에 있는 성도를 부르심 (10-14)

 

.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 술람미 여자의 말 (10-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술람미 여자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말씀하신다. 육신 중심과 세상 중심의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과 같이 주님의 나라로 가자는 것이다. 성도 는 이 말을 듣고 즉시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 나서야 한다.

 

. 2: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겨울도 지나고 \"겨울\"은 꽁꽁 얼어붙는 때로서, 영적으로 감동이 없는 때를 가리킨다. 비도 그쳤고 지루한 장마가 그쳐서 초목이 소성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 2: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지면에는 꽃이 피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양춘가절, 좋은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한다(마 3:16). 즉 성령으로 역사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 이다.

 

. 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무화과나무\"는 유다 나라를 상징하는데(렘 24:5), 구약 교회에서 그리스도가 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역사가 일어날 것을 가리킨다.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포도나무\"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하는데(요 15장),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루어진 교회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점점 창성할 것을 말한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성령이 감동하고 예수님이 함께 가자고 인도하실 때에 즉시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고린도후서 6:2에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다. 봄이 늘 있는 것이 아니며 꽃이 늘 피어 있는 것도 아니다. 봄에 꽃이 핀 다음에는 열매가 열리고 가을이 되면 그 열매가 익고 또 그 열매를 거두게 된다.

봄에 해야 될 일이 있고, 가을에 해야 될 일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은혜 베풀 때에 은혜를 받고 예수께서 일어나서 가자고 할 때에 가서 주님과 함께 심고, 믿음의 열매를 거두어야 된다.

갈라디아서 6:8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했다. 봄과 같이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반구의 소리가 들릴 때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봉사하고 충성해야 한다.

이 때에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둘 뿐이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실 때에 성령으로 의를 심으면 자라나서 열매를 거둘 날이 오고 또 하나님 앞에 가서 상급을 받는다.

 

.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이것은 성도가 산과 바위 틈에 찾아가 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도 산에 가서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성도가 산이나 바위 틈이나 또한 은밀한 골방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기 원하시고 그 소리를 듣기 원하신다. 그 목소리는 부드럽게 그 얼굴은 아름답게 보아주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때때로 바위 틈, 낭떠러지 같은 은밀한 곳을 찾아가서 기도해야 한다. 안일주의에 빠져서 침상에서 기도하는 것은 능력을 얻지 못한다. 방안에서 기도하는 것과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것이 다르고,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 다르다. 책상에서 얻을 것이 따로 있고, 바위 틈에서 얻을 것이 따로 있고, 은밀한 곳에서 얻을 것이 따로 있다. 교역자들도 이따금 바위 틈 낭떠러지, 험한 골짜기를 찾아가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한다. 다른 곳에서 얻지 못하는 은혜를 그곳에서 받는다.

 

五. 여우를 잡으라 (15-16)

 

.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 술람미 여자의 말 (15-16)

꽃이 핀 포도원에 여우가 들어와서 헐면 꽃이 떨어져 열매가 맺힐 수 없다. 포도원에 비료주고, 김매주는 것도 중요하고, 전정(剪定)하는 것과 울타리 치는 것도 중요하나 여우를 잡지 못하면 포도 농사는 낭패하고 만다.

작은 여우는 ① 성도 속의 욕심(물욕, 정욕, 사욕)이다. ② 혈기이다. ③ 뒤돌아 보는 것이다. ④ 이간시키는 것이다. ⑤ 썩은 것 (죄)을 좋아하는 것이다. ⑥ 참 교회를 허는 이단이나 악한 사상이다. 예를 들면 신신학 그릇된 신비주의, 해방신학 같은 것이다. ⑦ 우상 숭배, 간음, 시험, 원망이다. 고린도전서 10 :1-11에 보면 이스라엘 광야 교회가 우상숭배, 간음, 하나님 시험하는 것, 원망하는 것 등 네 가지로 망했다. 교회 안에 우상 숭배나 원망하는 것이나 음란이 들어오면 꽃이 다 떨어진다. 그러므로 작은 여우를 경히 여기지 말고 잘 잡아야 한다.

우리에게 오는 여우는 처음에는 작은 여우이다. 누구나 잡으려면 넉넉히 잡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경히 여기고 버려 두면 얼마 후에는 큰 여우가 되어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게 된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가운데도 가룟 유다가 여우였다(눅 22:1-6).

교회에서는 불평하는 자, 원망하는 자, 하나님의 일을 비방하는 자가 여우이다. 여우를 가만히 두면 포도원을 헐고 진리운동에 손해주고, 하나님의 교회에 시험거리가 되고, 모든 교인들이 은혜 받는 데에 막대한 손해를 준다. 그러므로 그 여우를 용납하지 말고 잘 잡아야 교회가 잘 된다. 교회에서 불평하면 불평하지 못하게 하고 원망하면 원망하지 못하게 해야 된다. 여우를 잘 잡으면 개인 신앙도 잘 되고 교회도 잘 되어서 교인들의 심령이 자라나고 열매가 많이 맺히는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

 

. 2:16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성도에게 속했고 성도는 예수님에게 속했다. 예수님은 성도의 주시요, 성도의 생명이시요, 성도의 기업이시다. 또 성도는 예수님의 것이요, 예수님의 기업이다. 예수께서 피로 값주고 사서 당신의 소유로 삼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것도 주님의 것인 줄 알고 주님의 것으로 삼아 놓고, 자기를 위해 살지 말고 주님을 위해 살아야겠다. 예수님을 우리의 기쁨, 우리의 소망, 우리의 생명으로 삼고 나가야 한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 백합화는 성도의 심령속에 꽃이 피어서 향기를 날리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는 가시밭의 백합화인데(2:2) 가시에 찔릴수록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는 성도 를 예수님은 찾아가서 먹이시는 것이다. 그러한 성도를 살지게 만들고 더욱 소생시키고 잘 길러 나가신다.

 

六. 주님의 재림을 고대함 (17)

 

. 2:17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 술람미 여자의 말 (17)

나의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 날이 기울었다는 것은 남은 때가 얼마 없다는 것이고, 그림자가 간다는 것은 환난이 온다는 것이다. 개인에게도 종말(임종)이  닥치고 고난이 오고, 또 시대적으로도 말세에 대환난이 온다(마 24:3-22).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이것은 성도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심정과 태도이다. 베데르는 이별의 뜻이 있다. 노루와 어린 사슴들이 낮에는 산에서 놀다가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는 서로 이별하고 각각 자기 처소로 찾아 들어간다. 이와 같이 세상 끝날에도 예수님은 성도를 찾아오시고 성도는 예수님을 찾아간다. 지금은 세상의 악이 점점 성해지고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이다. 성도는 재림하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오게 된 것이요 예수님께 갈 날이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잘 해야 한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아가 3장

123456 78

 

제 3 장 실애(失愛)

 

[대 지]

一. 주님을 찾음 (1-5)

二. 광야 교회의 보호 (6-10)

三. 주님을 자랑함 (11)

 

[본문강해]

 

一. 주님을 찾음 (1-5)

 

. 3: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 술람미 여자의 말 (1-5)

술람미 여자가 안일주의에 빠져 일시적 신앙의 잠을 잤다.

침상에서 안일주의와 세상에 빠진 상태를 말한다. 술람미 여자가 그 가운데서 예수님을 찾으려 하나 거기에서는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다. 아모스 6:4-6에 \"상아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하였다. 잠언 6:10-11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했고 잠언 26:14에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고 하였다.

안일주의에 빠져서 자유 방종하는 자는 예수님을 잃어버린다. 사람들이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을 때에는 예수님께 힘써 부르짖고 주님을 가까이 하지만, 좀 평안해지면 안일주의에 빠져서 믿는 일과 기도에 힘쓰지 않고 방심하기 쉽다. 이때 그 가운데서 예수님을 찾고자 기도해도 아무 힘이 없고,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는 예수님을 찾아 만나고자 해도 쉽게 안 된다.

 

. 3:2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

술람미 여자가 침상에서 주님을 잃어버리고 거리와 큰 길에서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성중, 거리, 큰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다. 통행인 중에 예수님이 계신 줄 알고 찾았으나 거기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 오늘날 많은 신자나 교역자들이 안일주의에 빠져 힘쓰고 애써 기도하지 아니하고 여러 사람이 쓴 책을 보거나 설교를 듣고 거기서 예수님을 찾으려고 하나 그것으로 예수님을 찾을 수 없다.

 

. 3:3  성중의 순행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성중의 순행하는 자는 성을 지키기 위해서 순행(巡行)하는 파수꾼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말씀을 바로 가르쳐 주는 인도자를 가리킨다. 술람미 여자가 그 순행하는 교역자에게 물어 보니 바르게 잘 가 르쳐 주었다. 올바른 인도자를 만나서 바로 배우고 바른 깨우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요 복이다.

5:7에서는 술람미 여자가 잘못된 순행자를 만나서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미혹시키는 교역자의 인도를 받으면 미혹된다. 신신학적인 인도자를 만나면 신신학 교인이 될 것이고, 해방신학 지도자를 만나면 해방운동자가 될 것이다.

 

. 3:4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술람미 여자가 순행하는 자에게 바른 가르침을 받은 후 그대로 힘써 나아갈 때에 곧 사랑하는 자 예수님을 만났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바로 배우고 바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또 바로 배운대로 힘써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에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성도들이 진리를 배운 다음에는 그 말씀을 새김질해야 되고 거기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께 성경 말씀을 배울때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 후에 예수님이 더 가려고 하자 예수님을 강권하여 붙들고 함께 유하기를 원했다. 그때 주님이 함께 유하러 들어가 떡을 들고 축사하실 때에 눈이 밝아져 예수님인 줄 알게 되었다(눅 24:29-31). 그러므로 바로 배운 다음에는 그대로 힘을 써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를 붙잡고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는 예수님을 붙잡아야 한다. 찬송가에 있는대로 \"예수 예수 내 주여 곧 가까이 오셔서 영 떠나지 마옵소서\"하고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어미의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미 집은 우리를 거듭나게 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적 세계를 말한다.

잉태한 자의 방은 우리를 거듭나게 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고린도전서 4:15에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하였다. 성도가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는 그를 붙잡고 어미의 집인 영적 세계로 들어가고 또 잉태한 자의 방인 말씀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성도가 늘 성령의 인도를 받고 말씀에 굳게 서야 생명의 역사가 있고 능력이 있다. 그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게 된다.

 

. 3:5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령한 세계에 있는 술람미 여자를 깨우기 잘 한다. 육체 속한 신자들은 신령한 성도를 신령한 신앙 세계에서 나오게 하려고 여러 가지로 방해한다.

노루와 들사슴은 놀라기 잘하고 잠들었다가도 깨어나기 잘한다. 이와 같이 성도도 신령한 자리에서 나오기 잘한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술람미 여자를 그 신령한 세계에서 나오게 하여 자기들과 같은 길을 걷게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자는 사랑하는 예수님이 원하기 전에는 자신을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고 부탁한 것이다(2:7 해석 참조).

 

二. 광야 교회의 보호 (6-10)

 

. 3:6  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

※ 예루살렘 여자들의 말 (6-10)

예루살렘 여자들이 솔로몬의 혼인 행렬을 보고 노래한 것이다.

연기 기둥은 혼인 행차시 피우는 향연(香煙)으로, 그것은 거무스름하여 아름답지 못하나, 위엄스럽게 높이 올라감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아름다운 것과 볼 만한 것이 없으나, 연 기 기둥과 같이 위엄있게 높이 솟아 있고 이 세상 많은 사람이 다 바라보는 산 위에 있는 동네와 같다(마 5:14).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교회가 외부적으로는 연기 기둥같이 별로 볼품은 없지만 속은 각종 향품으로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다.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이란 향품을 사서 아름답게 단장한 것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3:18에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횐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였다.

금을 사고 횐 옷을 사고 안약을 사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거저 주셨다. 그러나 받는 노력은 해야 한다. 이 노력하는 것이 사는 것이다.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말씀을 순종하며 믿음을 지키고 공력이 들어가야만 불로 연단한 금과 같은 믿음이 생기고 인격이 만들어 진다.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 \"거친 들\"은 이 세상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교회는 거친 들과 같은 이 험악한 세상을 통과하고 있다. 교회는 외부적으로는 아무 보잘것이 없으나 속은 여러 가지 향 품으로 아름답게 단장하였고, 그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거친 들(세상)을 통과하고 있다.

 

. 3:7-8  이는 솔로몬의 연이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인이 옹위하였는데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솔로몬의 연이라 \"연(輦)\"은 옛날 왕이 타고 다니던 가마(승교)와 같은 것으로 여기서는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교회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인이 옹위하였는데 용사 육십 인은 천사들과 신앙의 용사들을 가리킨다. 마태복음 26:53에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예수님을 보호해 줄 수 있다고 하였고, 히브리서 1 :14에는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교회가 거친 들과 같은 이 세상을 통과할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보호해 주고 또 신앙의 용사들이 교회를 옹위(擁圍)해 간다. 6수(數)는 인간의 숫자로서 거기에 예수님과 합하면 7수(數)가 된다. 60인은 연(輦) 밖에서 옹위하였고 예수님은 연 안에 계신다.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신앙의 용사 육십 인은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교회를 자기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고 최전선에 나가서 원수와 더불어 싸우며 대적을 물리치는 용사들이다.

이들은 교회의 기둥과도 같은 자들이다. 초대 교회의 기둥은 야고보, 요한, 게바, 바울 같은 사람들이다(갈 2:9). 어느 교회 어느 교단이나 기둥이 있다. 진리운동을 할 때는 반드시 기둥들이 있어야 한다. 그 기둥들이 어깨를 들이대고 전적으로 몸을 바쳐서 그 진리의 말씀을 세워 나가려고 교회를 옹위하고 보호하며 전진한다. 사도 시대 이후에는 폴리캅, 오리겐 등이 기둥이었고, 종교 개혁시대에는 칼빈, 루터, 쯔윙글리, 멜랑히톤 등이 기둥이었다.

교회는 선한 싸움을 계속 싸워 나가지 않으면 원수가 쳐들어 와서 다 파괴한다. 느헤미야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을 건축할 때에도 대적이 많고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았기 때문에 절반은 병기를 손에 잡고 경비하고 절반은 성을 건설했다(느 4:16-18). 우리가 진리를 세워 나가고 하나님의 참교회를 세워 나가려고 하면 육십 인의 용사들처럼 진리를 반대하는 세력들과 선한 싸움을 싸우며 진리를 세워나가야 한다.

 

. 3:9-10  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연을 만들었는데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담이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혔구나

솔로몬왕이 향내 나는 레바논 백향목으로 연(가마)을 만들었다.

그 기둥은 은으로 세우고 바닥은 정금이며 그안의 자리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힌 자색담(紫色 )을 깔았다.

레바논 나무는 백향목을 가리키는데 백향목은 향기가 나고 썩지 않으며 벌레가 먹지 않는 최고급 목재이다.

기둥은 은이요 은(銀)은 믿음 지키는 성도의 의로운 행위를 가리킨다. 성도가 믿음을 잘 지킨 그 행위는 교회의 기둥이 된다. 어느 시대나 믿음 잘 지킨 성도가 교회의 기둥이 된다.

바닥은 금이요 금은 믿음을 가리킨다(벧전 1:7). 하나님의 교회는 기초가 신앙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 위에 세워나가야 한다. 베드로는 이신득구(以信得救)의 진리를 잘 세워 나갔다. 그가 욥바 피장 시몬의 집 지붕에서 기도할 때에 할례와 관계없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대로 실행하였다(행 11:4-18). 베드로는 그 진리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채택되도록 바울과 함께 중추적 역할(中樞的 役割)을 하였다. 진리를 바로 깨달아서 생명을 내놓고 세워 나가려고 힘쓰는 자가 교회의 기둥이 된다.

자리는 자색 담이라 담( )은 성도의 희생봉사를 가리킨다. 자색(紫色)은 아름다운 색이다. 성도의 희생봉사는 아름다와서 예수님의 앉는 자리가 된다. 교회는 성도의 눈물과 피땀과 희생이 들어가 야 되어 나간다.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혔구나 술람미 여자가 만들어 놓은 자색 담에 예루살렘 여자들은 사랑으로 수(繡)를 놓아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겉에 놓는 수보다는 속에 있는 담요가 더 중요하다. 술람미 여자가 자색 담을 만들어 놓으면 예루살렘 여자들은 그 위에 수를 놓아 아름답게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앉을 담요를 만드는 성도가 따로 있고, 그것에 사랑으로 수를 놓아 꾸미는 성도가 따로 있다. 예수님이 앉을 담요는 술람미 여자가 피땀을 흘리고 진액(津液)을 짜 바치고 전심전 력을 기울이고 전폭을 쏟아 부어서 만들고 그 요나 연(輦)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이 수(繡)를 놓아 아름답게 입혀 놓는다.

교회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도 필요하다. 그로 인하여 예수님은 한층 더 영화롭게 되고 더 존귀하게 된다. 다 각각 자기 할 바를 해야 한다. 기둥 역할을 할 사람은 기둥으로서 일을 잘 감당하고, 바닥 될 사람은 바닥 위치에서 희생봉사하고, 그 위에 사랑으로 수놓을 사람은 수를 놓아야 한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의 교회가 잘 건설되어 나간다.

 

三. 주님을 자랑함 (11)

 

. 3:11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 술람미 여자의 말 (11)

시온의 여자들은 예루살렘 여자들을 가리킨다. 나와서 솔로몬왕을 보라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을 자랑하는 말이다. 혼인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모든 것이 혼인날에 해당된다. 예수님은 신랑이고 성도는 한 남편되는 그리스도에게 중매받은 신부이다(고후 11:2). 그 예수님이 성도에게 찾아오신 날부터 성도와 혼인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신랑이 되기 위해서 성도를 찾아 오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 온 때부터 신랑이 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므로 우리를 신부로 영접하여 주셨다.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예수님이 모친 마리아의 복중(腹中)을 통해서 인성(人性)을 입고 오시고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서 승리의 면류관을 그 머리에 쓰게 된 것을 말한다.

시편 8:4에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하였다.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온고 고난을 당한 것은 천사보다 조금 못한 처지에 거하신 것이다. 그러나 부활로 인해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때는 천사보다 뛰어나게 되신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여 면류관을 쓰게 되었으니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자랑이시다. 성도는 예수님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아가 4장

 123456 78

 

제 4 장 동산

[대 지]

 

一.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아름다움 (1-6)

二. 일어나 같이 가자 (7-8)

三. 주의 마음을 빼앗음 (9)

四. 사랑과 진리 생활 (10-11)

五. 잠근 동산 생활 (12-16)

 

[본문강해]

 

一.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아름다움 (1-6)

 

. 4: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 왕의 말 (1-5)

예수님이 술람미 여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성도를 사랑의 대상자로 삼으셨고 지극히 사랑하신다. 예수님이 믿음 지키는 성도를 볼 때 어여쁘게 보신다.

너울 속에 있다는 것은 성도의 겸손을 가리킨다. 눈은 성도의 신령한 눈을 가리킨다.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신령한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깨끗하여 하나님이 받으심직 하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벧전 5:5).

머리털은 권세에 대한 복종을 가리킨다. 고린도전서 11:10에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세워 놓은 권세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성도의 생활은 예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다.

① 성도는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해야 된다. ② 성도는 하나님이 세워 놓은 이 세상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국가의 권세, 단체, 직장 상사의 권세, 선생의 권세, 지도자의 권세, 부모의 권세, 남편의 권세 등에 복종해야 된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온 것이다(롬 13:1). 그러므로 그 권세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복종하지 않는 것이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 권세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징벌이 온다.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하나님이 주신 권세에 복종하는 것은 예수님 보시기에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같이 아름답게 보신다. 길르앗 산기슭에는 무성한 초장이 있고 그 초 장에 염소때가 무리지어 누워 있는 모습은 평화스럽고 아름답다고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잘 복종하고, 하나님이 세워 놓은 세상 권세를 잘 복종하는 성도는 예수님 보시기에 이처럼 아름다운 것이다.

요셉이 가는 곳마다 권세에 잘 복종하였으므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왔다. 요셉이 집에 있을 때에는 아버지 권세에 잘 복종하고, 애굽에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할 때에는 주인을 잘 복종했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는 옥사장에게 잘 복종하였다. 이렇게 요셉은 어디를 가나 믿음으로 권세에 잘 복종했으므로 하나님이 애굽의 총리로 높여 놓았고 총리가 된 다음에도 바로 왕을 잘 복종하고 국사(國事)를 잘 처리해 나갔다. 그러므로 애굽을 구원하고 자기 가족 75인을 다 구원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나 사람 보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잘 복종하면 그 며느리가 아름답고, 학생이 선생을 잘 복종하면 그 학생이 아름답고, 아내가 남편에게 잘 복종하면 그 아내가 아름답다. 그러나 권세를 복종하지 않는 성도는 머리 깎인 여자와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흉하고 복을 받지 못한다(고전 11:2-6).

 

. 4:2  네 이는 목욕장에어 나온 털 깍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술람미 여자의 이는 희어서 목욕장에서 나온 흰 양과 같이 순결하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이것은 윗니와 아랫니가 잘 맞추어져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술람미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잘 씹어서 새김질하고 잘 소화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하는 성도를 아름답게 보신다.

새김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읽고 들은 하나님 말씀을 재삼 되 새기며 기도하는 생활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2:2의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에 대한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기를 \"내가 비록 가시나무 같은 환난과 고통이 많은 세상에 살지라도 더욱더 믿음의 향기를 날리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가시가 찌를수록 더욱 많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이 새김질하는 것이다.

새김질 할 때는 그 말씀대로 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그 말씀대로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할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 심령이 힘을 얻어 살아나고 점점 자라나서 좋은 성도가 되어 나간다. 새김질 잘 하는 성도가 되어야 주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성도가 된다.

 

. 4:3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성도의 입술과 입과 뺨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입술은 흥색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에 대하여 증거하고 감사하며 찬송하는 입술과 입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3:15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에 감격해서 입술로 찬송하며 증거하는 성도는 예수님께서 아름답게 보신다. 그러므로 입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었을 때에 힘써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세상 떠나면 한 마디도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 떠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마디라도 더 가르치고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해야 한다.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너울 속\"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한 태도를 가리킨다. \"석류 한 쪽\"은 붉은 빛을 띠고 있는데 이것은 성도의 얼굴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가  넘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손한 자리에서 구속의 은혜가 얼굴에 넘치는 성도가 주님 보시기에 이같이 아름답다.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며 영적 생활을 하는 사람은 심령이 평안하고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같이 광채가 난다.

 

. 4:4  네 목은 군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술람미 여자의 목은 망대 같다고 하였다. 망대(望臺) 중에서도 원수를 이긴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가 달린 견고한 망대와 같다는 것이다. 목이 망대와 같다는 것은 진리를 어기는 일에 목을 굽히지 아니한 것을 의미하고 또 진리의 말씀을 굳게 세워 나간 것을 말한다.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며 진리를 세워 나가는 견고한 성도의 목은 일천 방패가 달린 다윗의 망대와 같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목은 우상에게 굽히지 않고 풀무 앞에서도 굽히지 않은 견고한 목이다. 이런 목이 예수님 보시기에 견고한 망대같이 보인다.

육신의 목은 꺾여도 심령의 목은 굽히지 않아야 한다. 진리가 아닌줄 알면서 목을 굽히고 진리를 양보하는 것은 개의 목과 같다. 이사야 66:3에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라고 하였다. 불의한 일에 머리를 숙이고 진리와 신앙 양심을 양보하는 것은 꺾여진 개의 목과 같아서 하나님 앞에 가증하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다가 죽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 건져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술람미 여자와 같은 목을 가진 사람을 통하여 교회를 지키시며 세워 나가신다.  또한 술람미 여자의 목은 멍에를 잘 메는 목이다. 마태복음 11:29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메워 주신 멍에를 잘 메는 목이 아름다운 목이다.

원수에 대해서는 굽히지 않고 일천 방패와 같이 견고하게 나가며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메워준 멍에를 잘 메고 십자가를 지고 순종해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목이 예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다.

 

. 4:5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

두 유방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성도의 믿음과 사랑을 상징한다는 해석이다(살전 5:8). 둘째, 성도가 신령한 젖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성도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 마태복음 13:52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고 했고, 마태복음 24:45-46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였다.

신령한 젖은 곧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집 사람들을 맡아서 때를 따라 신령한 양식을 잘 나눠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신령한 젖)을 먼저 자기가 먹고 새김질을 하여 자기의 살과 영양이 되게 하고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그 말씀을 순종하면 젖이 풍성해진다. 요한복음 10:9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 을 얻으리라\"고 했다. 젖이 많아지면 타인에게 신령한 젖을 나눠주려고 힘을 쓰게 된다. 가르쳐 줄 사람을 찾게 되고 전도하려고 애를 쓰게 되고 젖을 잘 나눠 먹이는 사람이 된다.

쌍태 노루 새끼 성도가 신령한 젖이 풍성하여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을 예수님이 보실 때에 쌍태 노루 새끼와 같이 아름답게 보아 주신다는 것이다.

 

. 4:6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잘 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 술람미 여자의 말 (6)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낮이 다 가고 밤이 닥쳐오는 것처럼 사망의 그늘이 닥쳐오는 것을 의미한다.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몰약산(沒藥山)\"은 성도가 순교당하는 것을 가리키며 유향산(乳香山)은 희생과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성도의 향기를 가리킨다. 지금은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가서 남은 때가 얼마 없는 때이다. 이 때에 성도는 순교를 각오하고  어떤 환난이 와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면서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다.

 

二. 일어나 같이 가자 (7-8)

 

. 4:7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 왕의 말 (7-15)

예수님이 성도를 볼 때에 순전히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게 보아 주신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피흘려 구속하였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4:8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였다.

 

. 4:8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레바논 술람미 여자의 고향은 \"수넴\"이다. 수넴은 레바논 부근에 위치하며 예루살렘에서 북방으로 약 50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라 한다. 그러므로 레바논에서부터 함께 가자는 것은 고향을 떠나서 함께 가자는 것이다. 정든 고국산천을 떠나서 가보지 않던 먼 길을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야만 예수님과 함께 갈 수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도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고 하였다. 그 때에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떠나서 하나님의 지시대로 갔다.

성도는 육신 중심으로 살던 자리, 인정에 매어서 살던 자리, 세상과 짝하고 살던 자리를 떠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과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

아마나는 \"견고\", \"확고\"라는 뜻이 있다. 성도는 반석과 같은 확고한 신앙을 가져야 신랑되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다. 스닐은 아모리 족속이 부르는 헤르몬 산의 이름이며(신 3:9) \"갑옷\"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성도는 신령한 전신갑주를 입고 예수님을 따라 가야 한다(엡16:13-17). 헤르몬은 유대에서 제일 높고 험한 산인데 그 어원은 \"단절(斷絶)\"이라는 뜻이 있다. 이것은 성도가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모든 것을 다 끊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는 험산준령(險山峻嶺)으로 거기에는 사자 굴과 표범 산이 있다. 그 길은 높고 험하며 무서운 길이다. 주님이 성도를 이러한 곳으로 인도하신다. 성도가 예수님을 말씀대로 바로 따라가다 보면 헤르몬과 같이 험한 산도 만나고 사자 굴과 표범 산도 만난다. 그 때에 두려워하거나 의심하면 사자와 같은 마귀에게 잡아 먹힌다. 사자나 표범이 으르렁거릴 때 성도는 예수님께 바짝 달라붙어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고 그만 바라 보아야 한다. 우리의 신랑되신 예수님은 절대적인 주권자요, 심판자요, 전능자이기 때문에 아무 염려할 것 없다. 그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걸어가면 사자 굴, 표범 산과 같은 곳도 넉넉히 통과할 수 있다.

주님께서 왜 성도들을 사자 굴과 표범 산으로 인도하시는가? 그 것은 신부가 자기 자랑과 자기 주장과 자존심과 고집을 다 버리고, 예수님만 더욱 가까이 하게 하고 전적으로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험한 길을 걸어갈 때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된다. 이것이 성도의 큰 유익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자 굴로 인도하며 표범 산으로 인도할 때에 잘 따라 가야 한다. 거기서 주님을 가까이 하고, 더욱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해야 한다.

내려다 보아라 성도가 예수님을 따라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로 갈 때에는 이 세상이 내려다 보인다. 그 때에는 이 세상이  다 분토(糞土)와 같고 시시해 보인다(빌 3:7-9 참조). 성도는 세  상을 내려다 보고 살아야 한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재물, 공주의 아들의 지위를 분토와 같이 내어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택했다. 모세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험한 길을 가는 것이 애굽의 부귀영화보다 더 좋기 때문에 다 내어 버리고 주님을 따라 갔다(히 11:24-26).

 

三. 주의 마음을 빼앗음 (9)

 

. 4:9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은 성도가 신령한 눈을 떠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는 예수님을 순종하는 것을 가리킨다(잠 1:8-9). 성도가 신령한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예수님의 마음을 다 빼앗는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여 따라가는 성도는 그 마음이 예수님께 향하고, 예수님의 마음은 그런 성도에게 기울어진다.

 

四. 사랑과 진리 생활 (10-11)

 

. 4:1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포도주는 달콤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고 취하게 만든다(삿 9:13). 예수님과 성도간의 사랑은 달콤하고 서로 기쁘게 하고, 도취(陶醉)하게 한다. 예수님의 사랑이 성도에게 포도주보다 낫고(1:2) 또 성도의 사랑이 예수님께 포도주보다 낫다.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기름\"은 애정과 마음과 정성을 전폭적으로 쏟아 붓는 것을 가리킨다(1:12). 성도가 예수님을 사랑할 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전폭적으로

쏟아 부을 때에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나드 기름 한근을 쏟아 부은 것도 이와 같은 것이었다. 그 향기는 오늘까지도 진동한다(마 26:6-13).

 

. 4: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시 19:10). 하나님의 말씀은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다.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꿀 방울같이 달아야 한다. 혀 밑에는 꿀 과 젖이 있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심중(心中)에서부터 달게 느껴짐을 말한다. 술람미 여자는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서 꿀보다 더 달고 꿀송이보다 더 단맛을 느끼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의복\"은 성도의 의로운 행실을 가리킨다(계 19:8). 성도의 의로운 행실은 레바논 백향목의 향기처럼 매우 아름답다는 것이다.

 

五. 잠근 동산 생활 (12-16)

 

. 4:12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성도를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고 하였다.

잠근 동산 성도의 심령은 잡다(雜多)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다만 예수님만 들어와서 즐거워하는 동산이 되어야 한다. 성도는 심령을 언제나 잠근 동산처럼 잘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동산에 문을 잠그지 아니하면 지나가던 사람도 들어오고, 장사꾼도 들어오고, 불량배도 들어오고, 도적도 들어온다. 그러므로 성도의 심령을 잠가 두어 예수님만 들어와서 편히 쉬고 같이 즐거워하는 동산을 만들어 야 한다.

마태복음 6:6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했다. 성도는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세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또 자기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자기 마음을 은밀하게 하고 예수님과 교통해야 한다. 잠언 4:23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다. 언제나 믿는 사람의 심령은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는 잠근 동산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과 동거하는 동산은 사망이 없고, 밤이 없고, 눈물이 없고, 겨울이 없고, 다만 생수가 영원토록 흘러나오는 동산이다.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우물에는 물이 고여 있고, 샘에서는 물이 계속 흘러 나온다. \"물\"은 생명의 역사를 가리킨다. 성도 속에는 언제나 진리와 영감으로 인한 생명의 역사가 흘러 나온 다. 요한복음 4:14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다. 예수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역사가 있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고 항상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함이 넘치게 된다.

이사야 12:3에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라고 했다. \"구원의 우물\"이란 \"그리스도의 구속의 도\"를 가리킨다. 우리는 구원의 우물되는 그 구속의 진리를 많이 받아 가져야 되겠다. 그리하면 우리 심령 속에 구원의 우물물이 고이고 우리 속에 생수가 넘쳐 흐르게 된다. 이와 같은 생명의 역사가 계속 넘쳐 나가야 자신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고 예수님도 기뻐 하신다. 생수의 역사가 끊어지면 심령이 메마르고 자신도 못살고 남도 살릴 수 없다.

성도가 은밀한 골방 즉 침궁에 들어가는 생활을 할 때에 언제나 덮은 우물 봉한 샘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말씀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에 심령 속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된다. 그 자리를 잃어버리면 껍데기 신자가 된다.

 

. 4:13-14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이것은 성도의 아름다운 골방 생활을 상징한다. 성도가 침중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같이 살며,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영적 생활을 하며, 생명의 역사가 있을 때 거기에는 언제나 신령한 꽃이 피어 있고 또 신령한 과수의 실과와 향기나는 기름과 향품이 가득하게 된다(갈 5:22-23, 엡 5:9 참조). 신령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고 신앙의 열매를 많이 맺힌다.

 

. 4: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레바논의 산들은 높기 때문에 언제나 눈이 덮여있고 그 눈이 녹아 흘러 내리는 찬물은 고갈(枯渴)함이 없이 사시장철 변함없이 흘러 내린다고 한다. 이처럼 성도의 심령 속에는 끊이지 않는 생수의 강이 계속 흘러 나오고 있다. 이것이 생명 시내이다.

 

. 4: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 술람미 여자의 말 (16)

\"북풍\"은 찬바람, \"남풍\"은 더운바람을 가리키는데 북풍은 환난과 핍박을, 남풍은 안일과 풍부와 유혹을 가리킨다. 성도가 심령 속에 향기를 가지고 있다가 바람이 불면 향기를 멀리까지 날려 보낸다. 환난의 바람이 불어 닥칠수록 성도 속에 가득차 있는 향기는 멀리까지 날아가게 된다. 그때 다른 사람들이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심령 속에 향기를 가득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환난과 역경(逆境)이 올 때 말 한 마디에도 향기가 나오게 되고 행동 하나에도 향기가 나오게 된다. 또 풍부와 평안과 유혹이 많이 온다고 해도 거기에 빠지지 않고 신앙의 향기를 더욱 날린다(히 11:24-26).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예수님께서 동산에 들어와 성도와 더불어 생수를 마시고 실과도 따먹으면서 함께 즐거워 하신다.

\"실과\"는 성도가 믿음 지킨 열매요 성령의 열매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사는 자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영적 낙원에서 사는 것이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아가 5장

 123456 78

 

제 5 장 심주(尋主)

 

[대 지]

 

一. 주님이 성도를 즐거워함 (1)

二. 주님이 문을 두드리심 (2-5)

三. 주님을 찾는 성도의 상태 (6-8)

四. 받는 자 밖에는 알지 못함 (9)

五. 주님의 아름다움 (10-16)

 

[본문강해]

 

一. 주님이 성도를 즐거워함 (1)

 

. 5:1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 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 왕의 말 (1)

내 동산은 성도의 심령 속을 가리킨다. 성도의 심령 속은 예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요 동산이다. 성도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주님과 교통하면 성령의 열매가 가득하고 꽃이 만발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동한다. 예수님은 그 동산에 들어와 몰약과 향재료를 거두고 꿀 송이와 꿀을 먹고 포도주와 젖을 마신다. 두 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그 가운데 주님이 계신다(마 18:20).

꿀 송이와 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시 19:10). 꿀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된 성도의 심령 속에는 꿀과 꿀 송이가 가득하다. 그 심령 속에는 말씀의 역사가 있고 말씀에 의한 생명의 역사가 있다. 이와 같이 말씀의 역사가 있는 성도의 심령 속에 예수님이 오셔서 그것들을 다 차지하시고 즐거워 하신다.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포도주\"는 구속의 은혜를 가리키고, \"젖\"은 진리 즉 신령한 양식을 가리킨다(사 55:1; 벧전 2:2). 성도가 하나님이 주신 구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것을 간직하면 그로 말미암아 생명의 역사가 그 속에서 뛰놀게 된다. 그것이 성도 속에 있는 포도주와 젖이며 주님이 제일 먼저 마시고, 다음에는 예수님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자들이 마시도록 하신다.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여자들을 가리킨다. 술람미 여자 속에 있는 은혜와 진리가 넘쳐나오니, 그 향기로움과 아름다움을 예수님이 먼저 거두시고, 다음에 다른 성도들에게도 나눠주시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은혜와 진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예수님이 오셔서 즐거워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도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잔치집이 된다. 술람미 여자와 같은 성도가 한 교회에 몇 사람만 있어도 온 교회가 다 즐거워하게 된다.

 

二. 주님이 문을 두드리심 (2-5)

 

.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 술람미 여자의 말 (2-8)

술람미 여자가 신앙의 잠이 들었다. 술람미 여자는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교통하였으나 여기서 잠깐 신앙의 잠이 들었다. 믿음 좋은 성도들도 때때로 신앙의 잠이 드는 수가 있다. 노아가 신앙의 잠든 때에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있었고, 다윗은 잠든 때에 범죄했고, 엘리야는 잠이 든 때에 로뎀나무 아래 쓰러졌고, 세례 요한은 잠든 때에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예수님께 물었다.

마음은 깨었는데 술람미 여자가 잠이 들었어도 아주 깊이 잠든 것이 아니고 그 마음은 깨어 있었다. 자면서도 마음에 \"이래서는 안 되는데 ……예수님을 찾아 만나야겠는데 ……처음 사랑, 처음 은혜를 다시 찾아야 되겠다\"하고 생각한 것이다. 잘 믿던 신자는 신앙의 잠이 들어도 전에 받은 은혜를 늘 생각한다. 이전에 어떻게 말씀을 들었으며, 어떻게 주님을 따라다녔으며,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했으며 어떻게 은혜를 받았던가를 생각한다. 지금은 신앙이 타락되고 믿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으나 깨어나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잘지라도 마음은 깨어있는 것이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이 잠든 술람미 여자를 참아와 그 문 앞에서 밤새도록 기다린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머리에 밤이슬이 맺히도록 가지 않으시고 문을 두드리셨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감동을 주고 양심에 가책을 주시는 것을 가리킨다. 문을 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 문을 열라는 것이다. 자기 고집대로 나가는 완고한 문, 자기의 지혜와 지식으로 닫아 놓은 문, 물욕 정욕 사욕으로 기울어져서 닫혀진 마음 문을 열라는 것이다. 성도가 잠자고 있을지라도 예수님은 자기 피로 값주고 사신 성도이기 때문에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아름답게 보시고 귀히 여기시며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라고 부르면서 문열어 달라고 계속 두드리신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가지 않고 들어오려고 문을 두드리신다.

 

. 5: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술람미 여자가 하나님의 일하던 것을 그만 두고, 옷을 다 벗고, 발을 씻고, 마음놓고 자려고 침상에 누운 것이다. 이것은 술람미 여자가 육신주의에 빠지고 안일주의와 자유 방종에 빠져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아모스 6:3-6에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와지게 하고 상아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잘 믿던 성도 가 이제는 믿는 일과 하나님의 일을 집어치우고(심방도 않고, 전도도 안하고, 성경 읽는 생활, 기도하는 생활하지 않고) 안일주의에 빠져 자유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이 마음의 문을 두드려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영적 신앙 생활을 거절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도 예수님은 일어나라고 계속 문을 두드리시며 밤새도록 문 밖에서 계신다.

 

. 5:4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예수님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술람미 여자가 문을 열지 않으므로 예수님이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었다. 그 때에야 술람미 여자의 마음이 감동되어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틈으로 손을 들이 밀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특별한 감동과 역사가 나타난 것을 가리킨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보통으로 감동시키는 것이고 손을 들이미는 것은 특별한 감동, 특별한 역사로 성도를 깨우는 것이다. 우리에게 임하는 주님의 특별한 섭리와 징계 등은 예수님이 손을 들이민 것이다. 이 때는 성도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이 손을 들이미는데 어떻게 그냥 누워 있을 수가 있겠는가? 성도가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와 간섭이 있을 때 즉시 깨닫고 속히 문을 열어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 5:5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술람미 여자가 즉시 일어나 문을 열려 하였다. 그때 술람미 여자의 손에서 기름이 문빗장에 뚝뚝 떨어졌다. 이것은 기름을 많이 바르고 잤기 때문이었다. 술람미 여자가 자기 육신을 위해 아름답게 단장하고 사치한 모습을 보여준다. 술람미 여자가 자기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물질을 쓰면서 안일주의에 빠져, 심령이 잠들었다. 그 바람에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예수님이 찾아와도 잠만 자고 있었다. 성도들이 생활이 부요해지고 평안해지면 이런 자리에 빠지기 쉽다. 환난과 핍박이 들어오고 고통이 심할 때는 예수님께 부르짖고 예수님만 따라가려고 하나, 세상의 것이 넉넉해지고 풍성해지면 심령의 잠이 드는 자가 많다. 그 때가 위험한 때이다. 아마나, 스닐, 헤르몬 꼭대기, 사자 굴, 표범 산으로 갈 때는 예수님께 바짝 붙어서 예수님만 의뢰하고 전적으로 예수님만 따르나 평안해질 때에 신앙의 잠이 든다(호 13:5-6). 풍성해지고 평안해지면 세상과 육신의 일들이 많아져서 이것 저것을 하느라고 시간을 다 빼앗기고 마음을 다 빼앗기고 주님을 잃어버리기 쉽다.

교역자들도 개척교회 할 때에는 주님께 바짝 달라 붙어서 주님이 도와 주지 않으면 안 될 줄 알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교회가 좀 커지고, 평안해지고, 예배당도 크게 짓고 교인들이 잘 대접하면 뒤로 물러가 안일주의와 사업주의로 빠지는 자가 많다. 고린도전서 7:29-31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했다.

다니벨은 느부갓네살왕이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서 바벨론의 최고학문을 무료로 공부하게 해주고 명예와 출세를 시켜줄 때에 거기 빠지지 않고 믿음을 지켜 나가므로 심령이 잠들지 않았다.

 

三. 주님을 찾는 성도의 상태 (6-8)

 

. 5:6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 만날 기회를 잃어버리고 후회하는 말이다.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예수님이 문을 두드릴 때 일어나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 하였으므로 예수님은 물러가셨다. 그 다음에 문을 열고 예수님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만날 수 없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 예수님이 부를 때 그 감동을 무시하면 그 사람이 부를 때에 예수님도 응답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이 찾을 때에 오지 아니하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찾을 때 예수  님도 응답하지 않는다.

호세아 5:6에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고 하였다. 잠언 1:28-30에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 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 여겼음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문을 두드리고 찾을 때 속히 일어나 나가 영접해야 한다. 주의 감동을 소멸(消滅)하지 말고, 순종하고 주를 위해서 충성해야 한다. 기회가 지나가면 아무리 예수님을 찾으려고 해도 못 만난다. 한번 타락이 되면 원상회복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처음 믿음을 저버리고 처음 사랑에서 떠났다가 다시 찾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을 다시 만나려고 불러도 대답이 없고 찾으려고 애써도 잘 찾아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계속해서 찾아야만 원상회복이 될 수 있다.

 

. 5:7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처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후에 그를 찾으려고 돌아다니 다가 성중에서 행순(行巡)하는 자들과 성벽을 파수(把守)하는 자들을 만나 물어보고 찾으려 하였으나 도리어 그들에게 상처만 받고 웃옷만 빼앗겼다.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 성벽을 파수하는 자는 교역자들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3: 3과는 달리 잘못 가르치고 잘못 인도하는 교역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참성도에게 상처만 주고 웃옷을 빼앗는다.

웃옷은 성도의 의로운 행실이다(계 19:8). 다시 말하면 성도가 어느 정도 구원을 이루어 나갔던 것, 예수님의 의의 형상을 좀 입었던 것을 말한다. 잘못 가르치는 교역자는 그것까지도 빼앗아 간다.

그들은 술람미 여자에게 \"잘못 믿는다\" \"그렇게 좁게 믿으면 안 된다. 넓게 믿어야 된다 \"고 하며 핍박도 하고(요 16:2) 또 꾀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며 세상과 짝하게 만든다(계 2:14, 20). 한나가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한나를 술 취한 여자로 취급하였다 (삼상 1:13-14).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름 부을 때 제자들은 분히 여기며 마리아를 책망하며 괴롭게 하였다(마 26:7-10). 이것이 상처를 주는 것이요, 웃옷을 빼앗는 것이다.

신령한 골방에서 주님과 교통하던 신자가 깊은 신앙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에게 가서 예수님을 찾으려 하면 찾을 수도 없고 도리어 상처만 받는다. 최 권능 목사는 왜정 말단에 많은 교회가 신사참배를 죄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을 때, 신사참배를 주장하는 교회에 나가는 교인들에게 \"죽은 어머니 젖을 빨면 젖이 안 나오고 죽은 피가 나온다\"고 말하며 그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 5:8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참성도는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므로 병이 날 정도였다.

 

四. 받는 자 밖에는 알지 못함 (9)

 

. 5:9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 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 예루살렘 여자들의 말 (9)

신령한 성도가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사모하며 그 말씀을 전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볼 때에 보통 신자들인 예루살렘 여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의문을 갖고 질문하게 된다. 술람미 여자가 사랑하는 주님은 어떤 분이기에 그 분을 사랑함으로 병까지 났으며 그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어본 것이다.

 

五. 주님의 아름다움 (10-16)

 

. 5:10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 술람미 여자의 말 (10-16)

예루살렘 여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술람미 여자가 \"나의 사랑하는 자(예수님)는 희고도 붉다\"고 대답한다. 희다는 것은 성결과 승리를 가리키고 붉다는 것은 영광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승리와 성결의 주님이시며 그에게는 영광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만 사람에 뛰어난다 예수님은 세상 어느 위인보다도 뛰어난 분이요 아무도 그와 비교할 자가 없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다.

 

. 5:11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는 주권을 가리키며(고전 11:3) 정금은  믿음을 가리킨다(벧전 1:7). 예수님은 믿음의 주요, 만왕의 왕이다.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 머리털은 순종을 가리킨다(고전 11:10). 예수님은 성부께 절대 순종했다. 머리털이 고불고불 하다는 것은 예수께서 여러 면에 다 순종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명하시는 대로 모든 면에 완전히 순종했다. 또 까마귀같이 검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심한 고난을 받으신 면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고난받은 자취는 하나님 아버지 보시기에 아름답다. 히브리서 5:8-9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순종하셔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참으로 아름다움을 보여 주셨다.

 

. 5:12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다는 것은 지혜와 자비를 가리킨다. 지혜롭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예수님의 눈은 이렇게 아름답게 보여 진다.

 

. 5:13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 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은 얼굴 전체를 말하는데 주의 얼굴은 꽃밭과 풀 언덕같이 아름답고 향기롭다는 것이다. 입술은 백합화같다는 것은 향기롭다는 것이다.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몰약은 부패를 방지하는 것으로 구원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입에서 사죄와 구원의 음성 즉 복음이 뚝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입이 참으로 아름답고 향기  롭다.

 

. 5:14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구나

 예수님의 손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못자국 난 그 손이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같이 아름답게 보인다.

예수님의 몸은 우리를 위해 구속의 제물로 바쳐준 몸이다. 그 몸은 상아에 청옥을 입힌 것같이 아름답다.

 

. 5:15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다리 예수님의 다리는 우리를 위해서 믿음으로 걸어가시고 모든 의를 이루어 주신 다리이므로 그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같이 견고하고 아름답다. 형상은 레바논 같다는 것은 높고 위엄스럽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형상은 도덕적으로 고귀하고 위엄스럽다. 백향목은 여러 나무보다 뛰어난 나무로 향기가 난다. 예수님은 만인 위에 뛰어나고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 5:16  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

입은 심히 다니 예수님의 입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데 그 말씀은 달고 꿀 송이보다 더 달다(시 19:10; 119:103).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수님은 자체가 사랑이요, 우리를 사랑하사 피흘려 주셨기 때문에 그 전체가 사랑스럽다. 신령한 성도는 보통 성도보다 주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알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좋아하고, 더 깊이 사귀며 나간다.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 예수님은 아름답고 귀하신 분이므로 술람미 여자가 그를 신랑으로 모시고 친구로 삼았다는 것이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아가 6장

 123456 78

 

제 6 장 유혹(誘惑)

 

[대 지]

 

一. 자기 동산에 계신 주님 (1-3)

二.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아름다움과 권위 (4-10)

三. 포도나무 동산에 내려감 (11-12)

四. 유혹과 보호 (13-14)

 

[본문강해]

 

一. 자기 동산에 계신 주님 (1-3)

 

. 6:1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이켰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 예루살렘 여자들의 말 (1)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는 술람미 여자를 가리킨다. 신령한 성도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잘 따라가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 여자들도 그를 어여쁘게 보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믿음이 좋은 성도는 하나님이 어여쁘게 보시며 사람들도 어여쁘게 본다.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신령한 성도가 예수님을 깊이 사귀어 체험하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증거하면 육에 속한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흠모하며 함께 찾으려고 한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 그리스

도를 발견하고 동네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밝히 증거하고 와보라고 했을 때 그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왔다(요 4:39).   이와 같이 예수님을 발견한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말 해주므로(5:10-16) 예루살렘 여자들도 함께 찾으러 가자고 나선 것이다.

 

. 6:2  나의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 술람미 여자의 말 (2-3)

예수님은 자기 동산에 계신다. 예수님을 찾으려면 예수님의 동산으로 가야 한다. 예수님의 동산은 예수님의 소유요 예수님만 위하고 예수님의 뜻대로만 하고 예수님이 통치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자기 위하는 일과 자기의 뜻대로 하려는 것과 자기의 것을 만들려는 자리에서 떠나 예수님의 동산으로 나아가야 예수님을 찾을 수 있다.

성도가 자기를 위해서 예수를 믿거나 자기 중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 안 된다. 인간이 중심이 된 곳에는 예수님은 계시지 않는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의 것으로 삼아 놓고 주의 뜻대로만 사용하고, 주만 위하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교회도 자기의 교회로 만들어 놓거나, 주의 일도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은 예수님의 동산이 아니고 그 사람의 동산이 된다. 그러므로 주님이 기뻐하지 아니하고 거기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 예수님이 거하시는 참된 교회(동산)는 주의 인도만 받는 교회, 주의 말씀 대로만 순종하는 교회, 주만 위하는 교회, 영적으로 주님과 깊이 사귀는 교회이다. 그 곳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은혜를 받아 주님과 영적 교제를 할 수 있다.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며 예수님의 동산은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 있는 곳이다. 거기는 은혜가 넘치는 동산이요 양떼들이 꼴을 얻는 생명의 동산이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가정과 교회도 진리와 영감만이 주장하고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져 나가는 그런 동산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예수님이 그 곳에 들어와 양떼를 먹이는 예수님의 동산이 된다

백합화를 꺾는구나 예수님이 성도의 의로운 행실을 받으시며 꽃이 잘 핀 성도를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을 말한다. 요셉과 같이 신앙의 꽃이 잘 피어 아름답고 향기나고 흠이 없는 성도는 예수님이 취 하여 귀한 자리에 세워서 귀히 쓰기도 하고, 또는 먼저 꺾어서 천국으로 데려가기도 하신다. 집사 스데반이 아름다운 꽃으로 향기를 발하므로 먼저 꺾어서 천국으로 데려가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찍 꺾어서 데려간 것은 그가 꽃을 잘 피웠기 때문이다. 의인은 환난이 오기 전에 미리 피난처로 데려가신다고 했다(사 57:1). 예수님이 먼저 데려가는 성도는 천국에서 쓸 만하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잘 익은 열매를 먼저 따고 선 과실은 따지 않는다.

 

. 6:3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 하였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그 양떼를 먹이는구나

나는 나의 사랑하는 … 속하였다 술람미 여자는 예수님에게 속 하였고, 예수님은 술람미 여자에게 속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과 성도가 생명적 연합을 이룬 것을 뜻하며 모든 면에 일치됨을 속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일이다. 하나님이 질그릇과 같은 사람에게 속한 일은 측량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그 양떼를 먹이는구나 예수님은 성도의 신앙의 꽃이 잘 핀 가운데서 양떼를 먹인다. 가시밭에 있는 백합화가 바람이 불어오면 그 꽃이 가시에 찔리고 찢겨 향기가 날린다. 그러한 곳에서 예수님은 양떼를 먹이신다. 또 예수님은 아무도 알지 못 하는 골짜기에 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신다. 양을 먹인다는 것은 신령한 양식을 공급하여 생명 운동을 해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二.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아름다움과 권위 (4-10)

 

. 6:4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 같고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 왕의 말 (4-10)

예수님이 성도를 지극히 사랑하므로 아름답게 보아 주신다. \"디르사\"는 북쪽 이스라엘의 도시 이름으로 \"즐겁다\"는 뜻이 있다. 이곳은 이스라엘 왕들의 별궁을 두었던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왕상 14: 17, 16:15-23). 예루살렘은 유다 나라의 수도요 많은 나라에게 사랑받는 도시였다. 이처럼 예수님은 성도를 기뻐하시고 아름답게 보아 주신다.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다는 것은 성도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또 신적 능력과 형상이 있으므로 위엄이 있다는 것이다. 선한 싸움을 잘 싸우는 성도는 그 굳셈과 강건함과 용기가 기치를 벌인

군대 같다. 그런 성도는 아름다우면서도 위엄이 있고 불의에 대해서는 용맹있게 싸워 나간다.

 

. 6:5  네 눈이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떼 같고

네 눈이 나를 놀래니 이것은 성도의 눈을 보고 예수님이 놀란다는 것이다. 왜 놀라는가? 성도의 마음과 눈 속에 예수님을 모신 것과 그 눈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볼 때에 예수님이 놀란 것이다.

계달의 장막같은 술람미 여자에게서 거룩하고 위대한 사랑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 주님을 사모함이 너무 큰 것을 발견할 때에 놀란 것이다. 또 그 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 것을 볼 때 주님은  놀란 것이다.

머리털은 권세 아래서 순종하는 것을 상징한다(고전 11:10). 성도가 권세 아래서 순종하는 것은 예수님 보시기에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떼 같이 아름답게 보인다(4:1 해석 참조).

 

. 6:6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암양떼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고

진리의 말씀을 받아먹은 신령한 성도의 이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쌍태를 낳은 양 같다는 것은 윗니와 아랫니가 맞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 잘 하는 성도의 이를 쌍태 양에 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그 말씀을 씹어서 새김질을 잘 해야 한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그대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그대로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말씀을 새김질하는 것이다.

 

. 6:7  너울 속의 너의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

너울 속에 있다는 것은 겸손과 경외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석류 한쪽 석류는 쪼개면 붉은 빛이 난다. 성도의 뺨에는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가 넘친다. 예수님께만 향하고 겸손하며 구속의 은혜가 넘치는 그 성도의 뺨은 윤택하고 때로는 천사의 얼굴같이 빛난다(행 6:15).

 

. 6:8-9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 뿐이로구나 그는 그 어미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의 귀중히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후와 비빈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비빈은 왕의 첩을 가리킨다.

열왕기상 11:3에는 후비가 700이요 빈장이 300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솔로몬왕이 말년에 더 많은 아내를 둔 것을 말한다. 솔로몬왕은 왕후와 비빈이 많아도 술람미 여자를 제일 사랑했고 제일 귀중히 여겼다. 그 이유는 술람미 여자가 솔로몬 왕을 가장 잘 알고 깊이 사랑했고 영적 교제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마리아를 예수님이 잘 알아주고 사랑한 것과 같다(마 26:6-13). 성도들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자기의 전폭을 쏟아 바쳐서 예수님을 제일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께서도 그를 제일 사랑하고 외딸과 같이 귀히 여겨 주신다.

외딸은 사랑을 독차지 하는 자이다. 여러 신령한 성도가 각각 예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다. 이런 신령한 성도를 다른 성도들이 복된 자라고 하며 칭찬한다.

 

. 6:10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아침 빛은 그 날의 새로운 빛이니 성도에게 날마다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있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는 날마다 새로와지고 새 노래를 부르며, 날마다 새롭게 소생해 올라오는 생활을 해야 된다. 이러한 성도는 예수님 보시기에 아침 빛같이 뚜렷하다.

달같이 아름답고 \"달\"은 햇빛을 반사해서 세상에 비추어 내 보내는 천체이니 성도가 진리의 빛을 세상에 비추어 내보낼 때에 예수께서 그를 달같이 아름답게 보아주신다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님의 빛과 진리의 빛을 반사하여 어두운 세상을 밝혀 나가야 한다. 그를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난다(요 14:9).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에 예수님을 보여주고 그리스도의 빛이 없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보여줄 때 예수님은 그를 달과 같이 아름답게 보아주신다.

해같이 맑고 \"해\"는 진리(말씀)를 가리킨다. 진리 말씀을 그대로 비추어 내보내는 성도를 예수님은 해같이 맑게 보아 주신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 비추어 내보냈다(고후 2:17). 그러므로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이 밝히 나타나고 진리가 밝히 증거되었다. 바울이 가는 곳에는 진리로 인하여 어두움이 물러갔다.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나가는 성도는 예수님께서 기치를 벌인 군대와 같이 위엄있고 튼튼하게 보신다. 그런 성도에게는 어떤 원수도 침입할 수가 없고, 또 원수가 들어와도 능히 다 물리칠 수 있는 능력과 위엄이 있다.

성도가 이상과 같은 술람미 여자의 미를 소유하려면 기도를 많이 하고 예수님의 동산에 들어가야 한다. 자기를 위한 동산, 자기 중심인 동산에서 떠나 자기는 무(無)요 공(空)이 되고 자기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구속의 주만 보이는 예수님의 동산에 들어가서 아마나, 스닐, 헤르몬 꼭대기, 사자 굴과 표범 산까지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이러한 성도는 예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성도이다.

 

三. 포도나무 동산에 내려감 (11-12)

 

. 6:11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 술람미 여자의 말 (11-12)

푸른 초목, 포도나무 순, 석류나무 꽃은 어린 성도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믿음이 잘 자라는지 은혜를 받고 있는지 잘 돌봐야한다.

호도 동산은 진리의 동산을 가리킨다. 호도는 겉은 딱딱하나 속은 영양이 풍부한 열매이다. 깊은 진리는 딱딱해서 먹기는 힘이 들지만 그것을 먹어야 힘을 얻고 달음박질을 잘 할 수 있다. 술람미 여자가 어린 성도를 잘 돌보고 자기는 단단한 진리의 말씀을 먹으려고 호도 동산으로 내려간 것은 모범적인 일이다.

단단한 식물이란(히 5:14) 고상하고 깊은 진리의 말씀을 가리킨다. 즉 성경을 깊이 해석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진리를 깊이 해석해서 잘 깨닫게 해주고, 알지 못하던 진리를 밝히 알게 해주고, 좀더 깊이 깨닫게 해줘야 한다.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영이 힘을 얻고 강건해져서 달음박질을 잘하여 영이 자라난다.

 

. 6:12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로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이르게 하였구나

술람미 여자가 골짜기에 내려가서 푸른 초목을 잘 살피고, 포도 나무 순과 석류나무 꽃을 잘 돌보고, 호도 동산에 가서 호도를 먹으려고 애를 쓰다보니 어느덧 귀한 백성의 수레에 이르러서 예수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성도가 주님이 맡긴 사명을 다하고 자기가 영의 양식을 먹고 믿음 지키는 일에 힘써 나가면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동행하게 된다.

 

四. 유혹과 보호 (13-14)

 

. 6:13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로 너를 보게 하라

※ 예루살렘 여자들의 말 (13)

예루살렘 여자들이 술람미 여자에게 돌아오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것은 신령한 성도 술람미 여자가 단단한 식물을 먹으며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교통하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을 보고, 육에 속한 성도 예루살렘 여자들이 자기들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이 때에 신령한 성도가 예수님과 동행하던 신령한 자리에서 돌아가면 안된다.

술람미 여자나 예루살렘 여자가 겉으로는 같아 보인다. 다 같은 예수를 섬기고 다 같은 신자이다. 그러나 영적면은 다르다. 깨달은 진리가 다르고 영적 세계가 다르고 먹는 양식도 다르다. 술람미 여자는 단단한 식물을 먹고 예수님과 같이 험산준령도 능히 이기며 가지만 예루살렘 여자는 평탄한 길로만 가려 한다. 젖을 먹고 쉽게 믿고 세상 축복을 따라간다. 진리를 양보하면서 넓은 길로 가며 예수님을 믿는다. 예레미야 15:19下에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고 했다.

어느 시대나 신령한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단단한 식물을 먹고 그 말씀대로 바로 살려고 하면 속화된 신자들이 돌아오라고 한다. \"우리도 예수를 믿는다\" \"같은 하나님, 같은 예수, 같은 성령, 같은 성경인데 뭘 그렇게 별나게 믿느냐\" \"돌아와서 우리와 같이 믿고 보조를 같이 하자\"고 한다. 일정 말기에 신사참배 바람이 불어 올 때도 신사참배 하면서 믿는 목사들이 신사참배 거부하는 목사들을 향해서 신사참배를 하라고 권유했다.

 

. 6:14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 왕의 말 (14)

\"마하나임\"은 고대의 춤추는 장소였다. 술람미 .여자가 주님을 찾아다니며 분투 노력하며 험한 길을 걷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 여자들은 춤추는 장소에서 춤추는 여자들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구경거리로 삼았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잡아 재주를 부리게 하고 구경거리로 삼았다. 삼손이 재주부린 것은 과거에 신앙으로 하던 일이다. 즉, 성문짝을 메고 나가던 일, 나귀 뼈로 일천 명을 죽인 역사 등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늘날도 속화된 신자들은 신령한 신자들이 참된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구경거리로 생각하고 자기들은 그 신앙에 참여하지 않는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아가 7장

 123456 78

 

 

제 7 장 동행 (同行)

 

[대 지]

 

一.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아름다움 (1-9)

二. 주와 같이 여행함 (10-12)

三. 성도가 주를 위해 예비한 것들 (13)

 

[본문강해]

 

一.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아름다움 (1-9)

 

. 7:1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 왕의 말 (1-9)

귀한 자의 딸아 예수께서 성도를 존귀하게 보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산 신부이기 때문에 존귀한 자이다.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복음의 신을 신고 다니는 성도의 발이 아름답다(엡 6:15). 성도가 복음대로 발걸음을 옮겨 놓는 것이 아름다운 발걸음이 된다. 제 욕심대로 걸어가는 발은 추한 발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는 발은 아름다운 발이다. 이사야 52:7에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고 했다. 전도하러 다니는 발, 양떼를 돌보기 위해 심방하러 다니는 발이 아름다운 발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했는데 그것은 자기를 벗으라는 것이다 (출 3:5). 성도는 제 마음대로 하는 신, 제 주장, 제 뜻대로 하는신, 자기 방법으로 하는 신, 자기를 위해서 다니는 신을 다 벗고 복음의 신을 신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나아가야 한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구슬 꿰미 같구나 넓적다리는 힘있는 지체이며 두 넓적다리가 연합하여 몸을 운반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 연합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세워 나갈 때 그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시편 133:1-3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했다.

가룟 유다가 죽은 후에 사도 보충을 할 때에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님 승천하실 때까지 \"항상 사도와 함께 다니던 사람\" 가운데서 택하였다(행 1:21-22). 항상 함께 다니면서 배우고 연합하여 교회를 세워 나갈 수 있는 자를 택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환난과 고난을 같이 하고 십자가가 와도 끝까지 같이 다니는 사람이어야 제자들 중에 들 수 있다. 곧 더불어 정신이 있어야 한다.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나가는 자는 힘이 아무리 강해도 교회를 같이 받들어 나갈 수가 없다. 전도서 4:9-12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고 했다. 힘을 합하고 연합하면 힘이 더욱 강해지지만 연합하지 못하고 물고 찢으면 다같이 망한다.

둥글어서는 원만하다는 것이다. 성도는 모가 나지 않고 모든 면에 원만하여야 된다. 구슬 꿰미는 한 가지 한 가지 순종한 것이 연합된 상태를 말한다. 순종한 것이 연합하여 주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간다.

 

. 7:2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배꼽은 모태에서 배꼽줄을 통해서 태아에게 피가 공급된 흔적이다. 이것은 성도가 예수님의 피를 먹은 자취를 가리킨다. 구속의 피를 먹지 않은 자는 생명이 없고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 성도가 예수님의 피를 마시고 예수님의 살을 먹은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포도주\"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을 상징한다(사 55:1). 예수님은 성도가 구속의 피를  먹은 그 자취를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둥근 잔같이 아름답게 보신  다.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에베소서 6:14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라고 했다. 자기를 쳐서 복종 시키고, 근신하고, 단속하며, 진리로 단장한 성도의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과 같이 향기롭고 풍성한 양식같고 아름답게 보여진다.

 

. 7:3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유방은 성도의 믿음과 사랑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살전 5:8) 또는 하나님의 신령한 젖을 다른 사람에게 먹여 주는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젖을 먹여 주는 것처럼 성도가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젖(말씀)을 먹여 주려고 준비해 가지고 있는 그것이 아름답다. 먼저 자기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먹고 새김질하여 자기 영이 살고 그 양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같이 아름다운 것이다.

 

. 7:4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망대는 견고하고 높아서 멀리까지 바라보며 적이 쳐들어 오는 것을 속히 식별하고 방위할 수 있다. 이처럼 성도는 멀리까지 내다보고 멀리서 오는 원수를 잘 살펴 미리 방비 를 잘 해야 된다. 원수가 오는 길목을 살지지 못하고 무방비한 상태에 있는 자는 원수에게 잡아 먹히고 만다. 교회 안에 신신학이나 해방신학이 들어오지 않는가? 신비주의가 들어와 진리를 무너뜨리지 않는가를 잘 살펴서 막아야 된다. 성도는 당장 눈앞의 유익과 편안만 보지 말고 먼 장래를 내어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올 환난을 바라보고 그것을 대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또 성도는 멀리 까지도 바라보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현재는 환난이 고생스럽지만 장래의 영광을 바라보고, 믿음을 지키며 즐거워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롬 8:18). 봄에 종자를 심는 것은 고생스럽지만, 가을을 내다보는 사람은 힘써 종자를 심는다. 가을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봄에 심지 않는다.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고 \"헤스본\"은 사해 북단에서 동쪽으로 약 29km 지점에 있는 곳이다. 이곳의 바드랍빔 문 곁 에 있는 못은 아주 맑고 깨끗하였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는 성도의 신령한 눈은 맑은 못과 같이 아름답다.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코는 호흡을 하고 냄새를 분별하는 지체이다. 신령한 뜻은 기도를 잘하는 성도, 분별을 잘하는 성도를 예수님이 레바논 망대같이 보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깨어 기도하고 진리와 비진리에 대한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영의 운동과 육의 운동을 잘 분별해야 한다. 이것을 잘못하면 미혹을 받아 마귀의 종이 되고 낭패한다.

또 종교와 정치와 구별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가 정치운동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는 죄를 사하고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나가며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영적나라를 세워나가는 종교이다. 코가 냄새를 못 맡고 분별하지 못하면 썩은 것을 먹게 되고 병이 나게 된다. 우리는 레바논 망대와 같이 신령한 세계에 높이 올라가서 모든 것을 잘 분별하여야 한다.

 

. 7:5  머리는 갈멜 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머리는 갈멜 산 같고 머리는 성도의 신앙 사상을 말한다. \"갈멜 산\"은 높고 견고한 산이다. 성도의 신앙사상은 높고 견고해야 한다. 세속화된 신앙 사상은 낮고 천한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썩고 만다. 고상하고 견고한 신앙 사상이라야만 예수님이 아름답게 보아 주신다.(시 27:6)

머리털은 자주빛이 있으니 \"머리털\"은 권세 아래서 순종하는 표이다(4:1 해석 참조). \"자주빛\"은 존귀성을 나타낸다(단 5:16).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워 놓은 모든 권세를 순종하는 성도를 예수께서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여기신다.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매인다는 것은 끌린다는 뜻이니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권세와 그가 세워 놓은 권세에 복종하는 성도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이 세워 놓은 권세에 잘 순종하면 존귀해지고 영광스러워진다. 그러나 권세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존귀하던 것도 점점 천해지고 있던 영광도 점점 떠난다.

아하수에로왕의 왕후 와스더가 자기 남편의 권세에 순종치 않다가 왕후의 지위에서 좇겨나고 말았다(에스더 1장). 그러나 에스더는 모르드개와 아하수에로왕의 권세에 잘 순종했으므로 귀한 자리에 올라갔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게 되었다.

 

. 7:6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쾌락하게 하는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 지키는 신령한 성도를 아름다운 신부로 여겨 즐거워 하신다. 술람미 여자가 외모로 볼 때는 계달의 장막 같으나 예수님은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찬란하게 보아 주시고 귀히 여겨 주시고 기뻐하신다.

 

. 7:7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성도의 영이 믿음을 잘 지켜 높이 자라난 것을 가리킨다(엡 4:15). 자라난 성도를 예수님이 기뻐하신다. 성도가 자라나려면 시기, 비방, 악독, 궤휼, 외식을 다 내어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만 된다(벧전 2:2).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 자라난 성도는 신령한 젖인 하나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 먹여 준다. 그것을 종려나무 열매같이 예수님이 아름닫게 보아 주신다.

 

. 7:8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예수님은 종려나무같이 승리하며 높이 자라난 성도를 기뻐하시고 그에게 오셔서 동거동락 하신다.

네 유방은 포도 송이 같고 성도가 신령한 양식을 풍성히 먹고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 주는 일은 포도송이같이 아름답게 예수님이 보아 주신다.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콧김\"은 영적 호흡하는 생활 즉, 성도의 기도생활을 가리킨다. 기도하는 생활은 예수님이 사과 냄새같이 좋고 향기롭게 여기신다.

 

. 7:9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성도의 입은 은혜로운 말씀을 증거하는 입이다. 은혜로운 말씀, 신령한 말씀을 증거하는 성도의 입은 좋은 포도주 같다. 사사기 9:13에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라고 했다. 성도에게서 나오는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한다.

성도가 하나님 말씀대로 은혜롭게 말을 하지 않고 가시 돋힌 말이나 과격한 말로 남을 찌르면 안된다. 다른 사람의 심령을 윤택하게 하는 말, 건설적으로 세워 나가는 말을 해야 한다. 성도가 자기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 말씀을 받아 생명을 삼을 때 죽은 자를 살려내는 생명의 역사가 있다.

 

二. 주와 같이 여행함 (10-12)

 

. 7:10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 술람미 여자의 말 (10-13)

술람미 여자는 예수님에게 속했고 예수님은 술람미 여자를 사모한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사모하고 진정으로 사랑하신다.

 

. 7:11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술람미 여자가 한적한 곳에 가서 왕과 교제하자고 간청하는 것이 .술람미 여자는 복잡하고 화려한 왕궁을 떠나서 예수님과 같이 한적한 들로 가서 거기서 속삭이고 은밀한 교제를 나누기를 원한다. 들과 시골 동네는 한적한 곳이다. 거기에 가서 유하면 고생은 많지만 거기서 얻는 것이 많다. 그 한적한 곳에서 예수님을 깊이 사귈 수 있고 새 생명을 얻는다. 그때 영권이 커지고 왕궁 안에서 받지 못하던 신령한 비밀의 세계를 발견하고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된다.

 

. 7:12  우리가 일찌기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과 동행하며 수종드는 술람미 여자는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예수님을 수종들고,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주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간다.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예루살렘 여자들이다. 성도는 일찍 일어나서 포도원에 가서 일하여야 한다. 포도원은 교회요 하나님의 나라이다.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열렸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님과 같이 들과 동네로 동행하는 성도는 포도원과 동산을 잘 돌본다. 우리는 세상일도 충실히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마음을 두고 힘써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들과 동네로 나가는 생활, 일찍 일어나는 생활, 나가서 포도원의 상태를 잘 살피며 돌보는 생활을 해야 한다.

 

三. 성도가 주를 위해 예비한 것들 (13)

 

. 7:13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우리의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새 것, 묵은 것이 구비하였구나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둔 것이로구나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합환채\"는 애정을 상징하는 풀이라고 한다(창 30:14). 성도 속에서는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향기가 나온다. 예수님에 대한 성도의 사랑은 중생한 영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뜨거운 사랑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나오기 때문이다. 생명의 역사가 있는 성도는 그 심령 속에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쏟아져 나온다. 마리아가 나드유를 예수님께 부은 것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향유를 쏟아 부은 것이다.

우리의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새 것, 묵은 것이 구비하였구나 참성도의 속에서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쏟아져 나오고 성도의 몸에는 예수님을 향한 아름다운 열매가 많이 맺힌다. 참성도에게는 믿음의 열매, 선한 열매, 신령한 열매가 많이 열린다. 또 전에 맺힌 옛 열매, 새로 맺힌 새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성도는 달마다 열매가 새로 맺히며 사건마다, 시험당할 때마다. 한 과정 지나갈 때마다, 새로운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 나온다(계 22:2). 그것은 예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둔 것이로구나 성도에게 있는 열매는 예수님에게 바치려고 쌓아둔 열매들이다. 그 열매를 예수님이 먼저 잡수시고 예수님이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신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아가 8장

123456 78

 

제 8 장 승리(勝利)

 

[대 지]

 

一. 육에 속한 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령한 생활 (1-4)

二. 거친 들에서 오는 성도 (5)

三. 사랑의 힘 (6-7)

四. 작은누이 보호 (8-9)

五. 포도원을 위해 일하는 자의 상급 (10-12)

六. 동산에서 재림을 고대함 (13-141

 

[본문강해]

 

一. 육에 속한 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령한 생활 (1-4)

 

. 8:1  네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 술람미 여자의 말 (1-4)

네가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오라비 같았었더라면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에게 입을 맞추어도 다른 사람들이 멸시하지 않았을 것이나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께 입맞출 때에 다른 사람들이 멸시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라비는 세상에 속해 있고 예수님은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입맞추는 생활을 하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히 여기며 미워하고 업신여긴다. 요한복음 15:19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했다(요- 4:5-6). 육신의 오라비에게 입맞추는 생활은 세상에 속한 일이므로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고 그것을 타당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과 입맞추는 생활은 세상에 속한 일이 아니고 영적인 일이긴 때문에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핍박한다.

성도가 신령한 길을 걸으며 예수님과 입맞추는 생활(영적교통)을 하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이상히 여기고 멸시한다. 성도가 신령한 세계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면 세상 사람들이 업신여긴다.

그들은 세상에 맞는 일, 육신에 맞춰서 하는 일만 좋아한다.   그러므로 속화된 기독교는 육신과 세상에 맞도록 신앙생활을 해 나간다. 기독교 현실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정치운동 등은 다 그러한 것이며 세상 사람들이 환영한다. 그 반면에 예수님과 영적으로 깊이 사귀는 일, 영의 운동, 생명을 살리는 역사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히 여긴다(고전 2:14). 그러나 신령한 신앙의 길을 걸어가던 성도가, 세상 사람들이 멸시한다고 신령한 일을 중지하고 육에 속한 일과 세상에 속한 일로 기울어지면 안 된다. 성도는 영의 길만 계속 걸어가야 한다.

 

. 8:2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 집에 돌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 집에 들이고 \"어미 집\"은 우리 영이 거듭난 집이요 진리와 영감의 세계를 가리킨다(고전 4:15).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에게 교훈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영적 세계,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성도가 예수님을 만나면 함께 영적  세계로 들어가야 되고, 들어가서는 예수님에게 교훈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들어가면 성경 말씀을 깨닫게 된다. 그때 성도는 예수님에게 향기로운 술과 석류즙을 대접하게 된다.

향기로운 술, 석류즙은 말씀대로 산 열매(결과)이다. 성도가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말씀을 받아 그 말씀대로 새김질하여 그 말씀을 자기의 생명과 힘으로 삼으면 그것이 예수님을 대접하는 향기  로운 술이 되고 석류즙이 된다.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예수님께 희생 봉사하는 것은 석류즙으로 예수님께 마시우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것을 달게 마시고 기뻐하신다.

 

. 8:3  너는 왼손으론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론 나를 안았었으리라

예수님의 \"왼손\"은 위로와 안식과 평안을 주는 손이요(2:6), \"오른손\"은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일으켜 세워주시고 원수를 막아 주시는 손이다. 주님의 능력의 손에 붙들리면 약한 자가 강해지고, 병든 자가 건강해지고, 힘없는 자가 새 힘이 생기고, 소경이 눈을 뜨게 되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게 되고, 절름발이가 달음박질하게 되는 큰 역사가 나타난다. 성도가 신령한 세계에서 예수님과 교통하여 그 교훈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면 예수님께로부터 위로와 안식과 평강이 오고 능력의 손에 붙들려 모든 일을 하게 된다.

예수님의 왼손만 베고 있으면 위안과 평강과 안식이 있으나, 일어서는 역사가 없다. 그러므로 또한 오른손에 붙들려 일어서고 힘을 얻어 주의 일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양손을 다 의지해 야 한다.

 

. 8:4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2장 7절 해석 참조.

 

二. 거친 들에서 오는 성도 (5)

 

. 8:5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 수넴 사람들의 말 (5上)

술람미 여자가 솔로몬왕을 의지하고 고향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고향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신령한 성도는 거친 들과 같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고 전진해야 한다. 신자가 하나님을 바로 믿는지, 형식적으로만 섬기는지 세상 사람들이 보고 안다.

※ 왕의 말 (5下)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거친 들을 승리적으로 걸어가게 된 것은 거저 된 것이 아니고 그를 낳은 자가 애를 많이 썼고, 어미가 신고한 사과나무 아래서 예수님이 깨워주었기 때문이다. \"네 어미, 너를 낳은 자\"는 해산하는 수고를 한 교역자를 가리킨다(고전 4:15; 갈 4:19).

사과나무 아래서 깨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 놓고 일으켜 세웠다는 것이다(2:3). 모든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다 깨어난다. 심령이 잠자는 성도, 세상에 빠져 있는 성도를 주님이 그 은혜로 다 깨우신다. 성도가 깨어서 일어나는 것은 교역자가 애쓰며 수고를 많이 한 결과이다. 낳은 자가 애쓴 교역자가 복음으로 해산하는 수고를 한 것을 가리킨다. 또한 자기도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힘쓰고 애써 전심전력을 기울여 해산하는 수고를 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깨어난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세우려고 애를 많이 썼고, 갈라디아 교회를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를 했고 또 교인들도 해산하는 수고를 했다. 그때 그 교회들이 하나님 안에서 깨어났다.

 

三. 사랑의 힘 (6-7)

 

. 8:6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 술람미 여자의 말 (6-7)

인같이 마음애 품고 참 성도(술람미 여자)가 자기 이름이 예수님 마음속에 새겨진 도장처럼 꽉 들어가 박혀서 잊혀지지 않기를 원하며 자기 이름을 늘 기억해 달라는 부탁이다.

도장같이 팔에 두라 옛날에는 도장에 끈을 달아 팔에 걸고 다녔다고 한다. 도장이 주인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참성도는 예수님의 장중(掌中)에서 떠나지 않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예 수님에게 우리를 인같이 마음에 품어 주시고 도장같이 주의 장중에서 살기를 갈망하며 주께 간구하면 예수님이 품어 주시고 떠나지 않으신다. 이사야 49:14-16에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했다. 주님은 이와 같이 성도의 이름을 자기 손바닥에 새기고 항상 잊지 않으시고 기억해 주신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는 것이다. 죽음이 얼마나 강한가? 고금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외에는 영웅호걸, 장사들과 모든 인류가 다 죽음에게 정복당하고 삼키워졌다. 아무도 사망을 이길 자 없고 그 가운데서 나올 자 없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와 같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강한 예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가 아무도 없다.

로마서 8:35-39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다. 폭포수와 같이 쏟아 내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아무 것도 우리를 끊을 수 없다. 폭포수를 어떻게 끊을 수 있겠는가? 이 사랑은 사망이 와도 못 끊고 환난이 와도 못 끊고, 곤고가 와도 못 끊고, 핍박이 와도 못 끊고, 또 우리가 주의 품을 떠나 달아날지라도 못 끊는다. 어디까지라도 따라가면서 부어 주시는 사랑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힘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

주님이 성도를 이렇게 사랑하기 때문에 성도 또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정도의 사랑도 끊을 수 없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에 생명까지 즐거움으로 내놓고 주를 따라가며 순교를 당한다. 2세기 경에 서머나 감독 폴리캅이 있었다. 로마정부에서 그를 잡아다가 불에 태워 죽이려고 장작 위에 놓고 불사르기 직전에 관리들이 그에게 예수님을 한번만 욕하면 놓아주겠다고 했다. 그때 폴리캅이 말하기를 \"예수님은 나를 86년 동안을 사랑하시되 한번도 나를 욕되게 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한번이라도 욕하리요\"하고 순교 당했다고 한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그 사랑에 삼키워진 것이 순교이다. 주님과의 사랑은 참으로 죽음보다 강한 것이다.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음부는 죽음의 상태를 말한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다 정복한다. 죽음에 정복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고 그 기세는 여호와의 불같이 맹렬하다. 즉 성도가 우상을 섬기거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이 투기하여 성도를 징계하시고 그 우상들은 불같이 다 살라버린다(사 42:8).

 

. 8:7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예수님이 성도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가르쳐 준다. 이사야 43:2-4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 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 하리니\"라고 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해서 주님을 사랑할 때에 물이 와도 우리가 주님을 안 따라 갈 수 없고, 불이 와도 주님을 안 따라 갈 수 없고, 죽음이 와도 안 따라 갈 수 없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면 자기 생명까지 단 마음으로 바치게 된다. 사람이 천하의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해도 그 사랑과 바꿀 수 없다. 이것이 참사랑의 세계이다.

 

四. 작은 누이 보호 (8-9)

 

. 8:8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 술람미 여자의 형제들의 말 (8-9)

이 말은 술람미 여자가 어렸을 때에 그녀의 오라비가 한 말을 기억했다가 말하는 것이다. 작은 누이는 영적으로 심령이 어린 성도를 가리킨다. 영이 자라나지 못한 어린 성도는 유방이 없다는 것이다. 심령이 여리고 자라나지 못한 성도는 다른 사람에게 신령한 젖을 나누어 줄 실력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수 없고 말씀을 가르치지도 못한다.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심령이 어린 성도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좋겠는가 하고 그를 도와 줄 방도를 찾는 것이다.

 

. 8:9  그가 성벽일진대 우리는 은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진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그가 성벽일진대 우리는 은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영이 어린 성도가 만일 성벽이라고 하면 우리는 은망대를 그 위에 세워서 잘 지켜 주어야 한다. 어린 성도는 외부에서 침략해 오는 원수를 략잘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장성한 성도들은 그를 위해 은망대를 세워 원수가 와서 그 어린 성도를 노락하지 못하도록 지켜 주어야 한다.

그가 문일진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신앙과 영이 어린  성도가 문이라고 하면 우리는 백향목과 같은 고귀하고 튼튼한 판자로 막아 주어 손해 주는 자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어야 한다. 심령이 어린 성도는 잘 분별하지 못하고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아무 사람이나 받아 들여 큰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가 만일  사이비한 것, 이단, 인본주의, 신비주의, 비진리를 받아들이면 신  앙의 정조를 다 빼앗기고, 도적맞고, 상처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어린 성도들에게 문이 되어서 원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 주어야 한다. 문을 만들 때는 향기롭고 튼튼한 백향목 판자로 두른 것 같이 향기롭고 아름답고 덕이 되게 막아 주어야 한다. 공력을 많이 들여서 원수의 침략을 막아 주는 것은 은망대와 같고 기도를 많이 하면서 어린 심령들을 지켜 주는 것은 백향목 판자로 막아 주는 것 같다.

성도들이 어린 성도에게 은망대를 세워 주고 판자로 문을 막아줄 때 어린 성도는 그것을 거절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고맙게 생각하여 겸손히 잘 받고 순종해야 한다. 겸손하고 순종하면 자라난 성도들이 와서 방대도 세워 주고 판자도 둘러주어 신앙이 보존되어 자라   나도록 만들어 준다.

 

五. 포도원을 위해 일하는 자의 상급 (10-12)

 

. 8:10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 술람미 여자의 말 (10-12)

술람미 여자는 많이 자라나서 견고한 성벽과 같이 되었고 유방은 망대와 같이 커졌고 젖이 많아졌다. 그것은 예수님이 보시기에 화평을 얻은 자같이 아름답게 보였다. 술람미 여자같이 많이 자라난 성도는 쇠기등, 놋성벽같이 견고한 성벽이 되어 악한 자가 침입하지 못한다(렘 1:18-19). 유방이 방대같이 된 것은 믿음과 사랑이 아주 견고해진 것을 가리키며 또한 신령한 젖이 풍성해져서 많은 사람에게 그 말씀의 젖을 나누어 먹여 줄 수가 있게 된 것을 가리킨다.

 

. 8:11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들로 각기 그 실과를 인하여서 은 일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바알하몬\"은 술람미 여자의 고향 \"수넴\"지방 근처에 있는 곳이다(4:8). 거기에 솔로몬의 포도원이 있었다. 영적으로 \"포도원\"은 교회를 가리키고 \"바알하몬\"은 세상을 가리킨다. \"지키는 자들\"은 교역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세상에 포도원되는 교회를 세우고  거기에 교역자를 두고 지키며 육성하여 열매를 맺도록 하였다.

\"일천\"은 많은 수를 상징한다. 포도원 지키는 자들은 포도 열매를 얻는 대신 주인되는 예수님께 일천을 바쳐야 한다. 은 일천은 많은 것을 상징하므로 전적으로 다 바쳐야 한다는 뜻이다. 교역자는 자기 몸과 마음과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과 교회까지도 전부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 드려야 한다. 교역자와 성도는 종의 자리에 서서 일심정력을 바치고 희생과 선한 행실과 모든 영광을 다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만일 포도원을 지키면서 하나님께 바쳐야 될 것을 안 바치면 하나님이 그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 8:12  솔로몬 너는 일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솔로몬 너는 일천을 얻겠고 예수님이 모든 것을 소유했고 모든 영광을 다 받았다는 뜻이다.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이 해나가는 사람도 예수님에게 좀 받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소유요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다 바쳤지만 그 중에 이백은 지키는 자의 소유가 되게 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 성도를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고, 새 힘도 주고, 여러 가지 은사를 내려 주시는 것을 가리킨다.

이백은 예수님이 받으신 것의 오분지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상급이요 은혜이다.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포도원은 교회를 가리키는데 교회는 성도에게 속했고 성도 앞에 있고 성도가 일할 장소이다.

 

六. 동산에서 재림을 고대함 (13-14)

 

. 8:13  너 동산에 거한 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무나

※ 왕의 말 (13)

너 동산에 거한 자야 술람미 여자는 신령한 동산에서 예수님과 동거한다.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무나 여러 성도들이 술람미 여자의 신령한 음성, 새 노래, 새로운 진리를 증거하는 말을 듣기를 원하며 좋아한다.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심령이 새롭게 되어 나오는 소리는 모든 사람의 심령을 소생시킨다. 예수께서도 그 소리 듣기를 심히 원하시며 좋아하신다.

 

. 8:14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 술람미 여자의 말 (14)

참성도가 주의 재림을 고대하는 말이다. 향기로운 산은 시온 산 즉 천성을 가리킨다.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노루와 사슴은 빠른 짐승이다. 예수님께서 노루와 사슴같이 빨리 강림 하시길 간구하는 말이다. 요한계시록 22:20에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했다. 참성도는 모든 것을 잘 준비해 놓고 예수님이 노루와 사슴같이 속히 오시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우리도 슬기있는 다섯 처녀같이 기름 준비를 잘 해놓고 주님의 재림을 매일 기다리는 자가 되자.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123456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