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요나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요 나 강 해

 

.기록한 연대 : 주전824-783년경

 

 1234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요나 1장

 

제 1 장 도 망

 

(대 지)

 

一. 여호와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로내심 (1-2)

二.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함 (3)

三. 요나가 풍랑을 만남 (4-10)

四. 요나가 바다에 던지움 (11-16)

五. 요나가 큰 물고기에 삼키움(17)

 

(본문강해)

 

一. 여호와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심(1-2)

 

. 1:1-2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입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처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니느웨 성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요나를 불러 니느웨로 보내어 그 성의 죄에 대하여 경고하라고 하셨다. 큰 성읍 니느웨 니느웨 성은 티그리스강 상류에 자리잡은 고대  앗수르의 수도로서 둘레가 약 145km정도라고 하며 인구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유아가 12만 여명이므로(4:11) 그 총 인구는 상당히 많은 토시였음을 알 수 있다(3:3 참조), 쳐서 외치라 니느웨 성이 죄악으로 관영했기 때문에 그 죄악에  대하여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40일 후  에는 하나님이 니느웨 성을 멸망시킨다는 것을 전하라는 것이다.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다보고 계시며 쬐가들어차면 반드시 심판하신다(창 6:5). 옛글에  惡罐若滿天必誅之(악관약만천핀주지 :악이 차면 하늘이 반드시 죽인다)라고 했다.

 

二.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함 (3)

 

.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을랐더라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 스로 도망하기 위해 욥바로 내려가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랐다. 욥 바는 유다 서즉 지중해 해변에 위치한 항구이다. 다시스는 유다 지방에서 서쪽으로 3,000km나 떨어져 있는 스페인 지방이라고 한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기를 싫어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자기 위신이 실추(실추)될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만일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전도했을 때 니느웨 사람들이 그 전도를 듣 고 회개하여 죄에서 돌이키면 은히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더하시는 하나님의 성품(4:2)으로 미루어 볼 때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것같고 만일 그렇게 되면 자기가 40일 후에 멸망한다고 한 그 말이 거짓말로 인정되겠기 때문이다.

둘째, 죽임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 이고 그 당시 앗수르는 강대국으로서 유다와 원수가 되어 이스라엘 을 압제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적국 앗수르의 수도에 가서 그 나라가 멸망할 것을 외치면 잡혀서 감옥에 갇히거나 죽임을 당 할 위험이 있었다. 그러므로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으려고 하나 님 앞에서 도망친 것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모르는 적기독 국가에 가서 40일 후에 하나님이 그 나라를 멸망시킨다고 외치면 그들 이 가만히 있겠는가?

세째, 원수의 나라가 멸망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자기의 전도를 듣고 그 사람들이 회개하면 하나님이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생각에서 요나는 니느웨로 가기를 싫어하여 다시스를 향해 도망 하였으나 그것은 크게 잘못한 것이다. 요나의 잘못된 점은 ① 자기 중심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을 첫 째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손해 안보고 자기 체면 세우는 데에만 급급하였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니느웨를 척서 외칠 때 그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하나님이 용서해 준다고 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자기는 낮아져서 아무리 멸시와 천대를 받고 무시를 당해도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진다고 하면 감사하고 만족해야 된다.

그러나 요나가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 아니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나아갔다.

② 육신 중심이다. 자기의 명예와 육신의 생명을 더 귀히 여겨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다. 영적 생명보다 육신의 생명을 더 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지키는 것보다 자기 명예를 떠 중히 여겼다. 요나에게는 자기 목숨이 우상이 된 것이다.

③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마음이 업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고 그들의 생명을 살리 는 일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들이 망하기를 기다렸다.

하나님은 악인이 망하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며 그들이 악에 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 에스겔 18:23에 \"나 주 여호와 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했다(겔 18:24 참조).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이것은 요나의 심령이 어두워진 것을 증거한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여호와의 낯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므로 어디로 갈지라도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없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그 자체가 심령이 어두워진 증거이다.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욥바로 내려갔을 때 마침 거기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다. 그 당시 배가 많이 있을리도 없고 또 다시스로 가 는 배도 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요나는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그 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가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즉 요나는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고 선가를 줄 돈이 있었고 그 배에 좌석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도망가는 길이 형통하게 열렸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가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 길이 척척 잘 열린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으로 알면 안된다.

사람들은 보통 일이 잘 되어 갈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잘못 알기 쉽다. 앞길이 척척 열려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방법은

① 성경 말씀에 맞아야 한다.

② 성경 본문에 없는 것은 성경의 원리 원칙에 맞아야 한다.

③ 신앙 양심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으므로 다시스로 도망가는 일이 양심에 편할리가 없다.

④ 성령의 감동으로 찾아야 한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⑤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바로 찾아 그 길로 가야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고 또 사명이 있다. 성도는 누구나 복음에 대한 사명, 구원 운동에 대한 사명이 있다. 그 사명을 망각하고 요나와 같이 이기주의와 육신중심으로 자기의 뜻만 생각 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잘 찾아서 그 뜻을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나 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면 환난과 핍박 을 받게 될 것아고 만일 하나님이 용서하시므로 니느웨가 망하지 않을 경우 자신은 망신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장이로 인정 받게 될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야 한다. 우리는 좁은 길로 걸어가면서 십자가를 지고 자신은 쇠하더라도 주님만 흥해야 하겠다는 신앙으로 나가야 한다.

 

三. 요나가 풍랑을 만남(4-10)

 

. 1:4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여호와께서 요나의 죄로 인하여 대풍을 바다에 내리시므로 요나가 탄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되었다. 시편 104:4에 \"바람으로 자기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라고 하였다.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생각을 따라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큰 바람을 보내 풍랑이 일어나게 하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나아갈 때 처음에는 길이 척척 열리고 잘 되는 것 같으나 얼마쯤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환난 풍파를 일으키시므로 난관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더 나아갈래야 나아갈 수 없고 뒤로 물러 설래야 물러설 수도 없고 가만 있을래야 가만 있을 수도 없는 고통에 빠져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 1:5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배가 풍랑으로 인하여 침몰하게 되었으므로 선원들과 선객들이 각각 자기 신을 찾으며 부르짖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고 풍랑 은 점점 더 흥용하여 배가 거의 파선의 위경에 직면하였다. 그러므로 그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 안에 있는 물건을 내어버리며 생명을 건져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표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하나 님의 낯을 지해 도망가는 요나는 영적 혹암을 만났고 마음이 된치 않아서 모든 것을 다 잊으려고 배 밑층에 내려가 누워 잠이 든 것이 다.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이 잠을 잘 자는 경우가 있다. 마음에 평 안이 없으니 일을 할래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잠으로 다 잊어버리려고 한다. 마음이 죈치 않은 사람은 구석을 찾아 다니거나 잠자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요나와 같이 배 밑충에 내려가서 잠을 자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성도는 언제나 심령이 평안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영적 화평을 누리며 하나님께 점점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사는 성도가 되어야겠다. 늘 깨어서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평안이 오고 하나님께서 그 앞길을 형통케 해 주신다.

 

. 1: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자는 자여 어젬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그 배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으며 그들은 각기 자기들의 신에게 구하여 그들이 당한 풍랑을 멈추게 하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으나 헛수고 였다(5절). 이것으로 이방 신들은 다 헛된 것임이 증명되었다. 그 때 선장이 배 밑층에 내려와 요나를 깨우면서 요나에게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하였다. 선장이 요나에게 이렇게 부탁한 것은 혹시 요나가 섬기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1: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쁩아 이 재앙이 누구로 언하여 우리에게 입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의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제비를 영은 결과 풍랑의 원인자로 요나가 영혔다. 제비 그 당시 불신 사회에도 제비봅는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구약 시대에는 제비 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해 주신 일이 있다(수 7:16-18,삼상 10:19-21). 잠언 16:33에는 \"사람이 제비는 영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제비나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아니다. 신약시대에는 표준 계시가 종결되었으며 성령께서 완성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성도를 인도하신다(엡 3:1-6참조). 요나가 제비에서 봅힌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께서 요나 때문에 풍랑이 임한 것을 여러사람에게 알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은 이방 사람들 앞에서 요나의 죄를 드러내어 요나를 회개시키려고 하신 것이다.

성도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 죄를 드러 내어 깨닫도록 하시고 회개시키신다. 요나와 같이 이방 사람을 통 해서 깨닫게 하는 경우도 있고, 발람과 같이 나귀를 통해서 깨닫게 하는 경우도 있으며, 다원과 같이 자식을 쳐서 깨닫게 하는 경우도 있다. 또 히스기야왕과 같이 몸에 병이 나게 해서 자기의 죄를 깨닫 게 하고 회개시키는 경우가 있다.

 

. 1:8  형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었느냐

배에 있는 무리가 요나에게 무슨 연고로 이런 재앙이 임하였는가 자세히 말하라고 하였다. 무엇 때문에 이 환난이 왔는지 요나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자세히 살펴서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 1:9-10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날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 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요나가 하나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모든 일을 다 고백했다. 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은 풍랑을 일으키고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분으로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을 심히 두려워하게 되었다.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한 것은 잘못했으나 죄를 회개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다.

죄를 회개하면 자기가 낮아질 것 같으나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낮아지지 않으려고 죄를 가리우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 님의 영광도 가리워지고 자신도 심령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하나님께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러나 부끄럽다고 해서 회개하지 않으면 더 부끄러운 결과가 오고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그러므로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제일 상책이다. 잠언 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다. 우리가 언제나 자기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四. 요나가 바다에 던지움 (11-16)

 

. 1:11-12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낙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이것은 요나가 자기 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회개를 하는 태도이다. 곧 사선(死線)을 넘는 진정한 회개이다. 죄를 원통히 여기며 그 죄를 생각할 때 자기는 마땅히 죽을 자로 알아 목숨을 내어놓는 자리에까지 나아간 것이다. 과거에는 죄를 범했을지라도 앞으로는 죽을지언정 죄를 범치 아니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진정한 회개이다. 말로만 자기 죄를 인정하고 마는 것 이 아니라 죄를 죽음보다도 더 미워하고 자기가 죽어야 마땅한 자 인줄 아는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

마태복음 5:26에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고 했다. 죄를 지으면 혹암에 갇혀 자유가 없다. 거기에서 나오는 방법은 호리 라도 남김없이 다 갚는 회개이다. \"호리\"는 로마의 최소 단위 화폐인데 지극히 작은 죄까지 회개해야 혹암에서 나을 수 있다는 것이 다. 우리가 법적으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 지고 죄값을 다 지불하셔서 죄를 사함 받았다. 그러나 그 죄악의 영향력과 혹암에서 벗어져 나오고 하나님과의 교통을 다시 찾고 새 생명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려고 하면 호리라도 남김 없는 참된 회개가 있어야 된다.

너회가 이른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요나가 풍랑이 일어난데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다.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면 안된다. 각자가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하면 모든 일이 바로 된다.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은 마귀의 시험에 빠진 것이다.

 

. 1:13-14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음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선원들이 요나를 회생시키지 않고 억지로 배를 돌려 육지에 대어 보려고 했으나 바다는 더욱 흥용하였고 그들의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요나를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증거를 듣고 알게 되었 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요나는 하나님께 범죄하였으나 뱃사람들 이 보기에는 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요나를 바다에 빠뜨려 죽이면 무죄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된다. 그러나 요나가 풍 랑이 일어난 원인이 자기인 것과 자기를 바다에 던져야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라고 말했고 바다는 점점 더 흉용하므로 할 수없이 요 나를 바다에 던지기로 결정하였고 요나 죽인 죄률 자기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 1:15-16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요나를 바다에 던지니 풍랑이 즉시 그쳤으므로 뱃사람들은 요나의 말대로 그 풍랑의 원인이 요나 때문이었던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고 바다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며 여호 와께 제물과 서원(誓願)을 드렸다.

 

五. 요나가 큰 물고기에게 삼키움 (17)

 

.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하다가 풍랑을 만났고, 결국 물고기 뱃속에들어갔다. 요나가 회생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낮아지지 않고, 자기 가 잘되려는 생각으로 도망하다가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제 생각대로 자기를 위하여 가는 길은 반드시 풍랑을 만나고, 환난 가운데 빠지고, 결국 물고기 뱃속까지 들어가게 된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것은 오늘날 성도에게 무엇을 가리키는 가? 죄로 인하여 자기를 잡아먹는 원수의 수중에 빠지거나 감옥에 들어가는 것 등을 가리킨다. 지금도 하나님을 순종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기를 위하여 다른 곳으로 가면 하나님께 서 환난과 고난 가운데 빠뜨리고 원수를 보내 잡아 먹히게 하고 혹은 감옥에 던지기도 한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요나 2장

 

제 2 장 물고기 뱃속

 

(대 지)

 

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음 (1-2)

二. 깊은 물 속에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함 (3-5)

三. 절망 속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확신하고 기도함 (6-9)

四. 여호와께서 했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함 (10)

 

(본문강해)

 

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음(1-2)

 

. 2: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죽지 않고 여호와께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기적적 역사였다. 물고기 뱃속에서도 하나님이 죽지 않게 하시면 죽지 않고 영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문안할 때 엘리사벳의 뱃속에서 뛰놀  았다고 했다(눅 1:41). 모태에 있는 아이가 그리스도를 알 수 있고 뛰논 것을 보면 고기 뱃속에서도 살 수 있고 하나님께 기도도 할 수 있다.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요나가 자기 힘으로는 물고기 뱃속에서 나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다.

 

. 2:2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스올은 무덤, 죽음의 상태, 지옥 등을 가리키며 본절에서는 고기 뱃속을 스올이라고 했다.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상태, 감옥에 갇힌 상태는 물고기 뱃속에 있는 것자 같다.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당하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름 컸을 것이다. 누구나 그러한 큰 고통과,생사의 위기에서 하는 기도는 간절하여 하나님께 상달된다. 앗수르 군이 쳐들어 왔을 때 히스기야왕의 기도(사 37:1-35)와, 다니엘 이 사자굴의 위협 앞에서 한 기도(단 6:10)와, 예수님의 승친 후 에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한 기도(행 1:4-14)와, 에 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올 때 야곱이 얍복 강에서 한 기도(창 32:10-12)는 다 이러한 기도였다.

이와 같이 사선을 넘는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 은 그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신다. 그 기도에 대해서 응답해 주시는 방법은 육신적으로 건져 주기도 하시고 혹 육신적으로는 건져 주지 않더라도 영적으로는 반드시 건져 주신다. 스데반은 육신은 돌에 맞아 숨겼으나 영으로는 하늘의 순교자의 보좌에 앉는 더 큰 상을 받은 것이다. 고기 뱃속에 들어간 다음에는 아무도 위로해 줄 자가 없다. 누구나 환난을 당할 때는 친구도 사랑하던 자도 다 배반하고 원수가 된다(애 1:2).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시 50:15).

 

二. 깊은 물 속에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함 (3-5)

 

. 2:3-4  주께서 나를 열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범했나이다 4내가 점하기를 내가 주와 목전에서 운겨납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요나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난 것과 같은 절망적 상황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소망을 가졌다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요나가 물 속에서 다 죽게 되었으나 거기서 나와 다시 성전을 바라볼 것을 믿고 소망을 견고히 붙잡고 기도했다. 성도는 아무리 깊은 스을 속에 빠져 절망적일지라도 소망을 버리면 안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성도를 절대 버리지 않으시 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사야 49:15-16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흘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성도가 어디에 있든지 같이 해주시고 기도를 들어 주시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 2:5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요나가 깊은 바다 고기 뱃속에서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신앙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육신만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까지 곤고한 가운데 빠진 것을 말한다. 육신이 죄값으로 고통당할 때에 영혼도 같이 고통당한다.

 

三. 절망 속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확신하고 기도함 (6-9)

 

. 2: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바다 밑까지 내려갔다는 것이다. 땅 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빗장으로 문을 잠그면 안에 있는 사람이 나을 수 없는 것같이 요나가 지금 바다 속에 갇혀 나을 수 없다는 뜻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 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건지셨나이다\'라고 과거사를 사용하며 기도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확실히 믿고, 이미 받은 줄로 믿었기 때문이다(막 11:23-24). 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가 인간의 생각으로는 구원의 희망이 없는 것 같으나 하나님이 거기에서 구원해 주 실 것을 확신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성도는 언제나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소망이 끊어진 자는 좋은 날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한 다.

 

. 2:7  내 영흔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이것은 심령이 피곤해졌다는 뜻이다. 환난을 당하여 곤고할 때에 원망하거나 낙심하거나 인본주의로 나아가면 안된다. 환난 중에서 육신과 심령이 피곤하여 인간적으로는 다 이상 소망이 없을지라도 낙망하지 말고 전망을 가지고 여호와를 앙앙하고 의뢰하면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 하나님은 피곤한 심령을 붙들어 주시고, 연약한 심령을 강건케 하여 주시고 쓰러져 있는 심령을 일으켜 세워 주시며 흑암 속에서 건져 광명 한 자리로 인도해 주신다.

 

. 2:8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자기가 과거에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한 죄를 회개하는 기도이다. 거짓되고 진리가 아닌 것은 다 거짓된 것이다. 요나가 과거에 진리의 말씀에서 떠났던 것을 회개하는 말이다. 곧 하나님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도망치는 것은 헛된 것이므로 요나가 하나님을 불순종하여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쳤던 것을 절실히 회개하는 것이다. 가령 요나가 풍랑을 만나지 않고 무사히 다시스로 갔다 고 해도 헛된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나아간것은 전부 헛된 것이요 열매가 없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만 참된 것이요 가치가 있는 것이다.

또 세상의 것은 다 헛된 것이다. 전도서 1:2에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다.

전도서 1:8에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다. 세상의 것은 다 헛된 것이다. 세상 것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으로 영이 살지 못한다. 금과 은으로 영생을 얻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 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예레미야 애가 3:26-28에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 을 메우셨음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메워준 멍에를 잘 메면 모든 것이 잘된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물질을 다 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 일을 해나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큰 능력으로 그 일을 성취시켜 나가신다.

 

.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서원을 했다. 그 서원의 내용은 고기 뱃속에서 긴져 주시면 일평생 하나님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하였을 것이다(창 28:20-22 참조). 요나는 회개하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하나님께서 고기 뱃속에서 건져 주실 때에 감사 제사를 드릴 것과 그 서원을 갚기로 하나님께 약속했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바로 섰고 좋은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그러므로 요나에게는 고기 뱃속이 신학교와 같은 좋은 배움의 장소였다.

 

四. 여호와께서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함 (10)

 

.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집하니라  

요나가 회개하며 바로 서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물고기에게 명하여 육지에 토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바다 속의 물고기도 주장하시기 때문에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죽지 않게도 하시고 물고기 뱃속에서 나오게도 하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한없이 크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다 측량할 수 없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요나 3장

 

제 3 장 니느웨 회개

 

(대 지)

 

一.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함 (1-3)

二. 요나의 전도 (4)

三.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 (5-9)

四.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심 (10)

 

(본문강해)

 

一.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함 (1-3)

 

. 3:1-2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요나를 고기 뱃속에 넣어 고통을 당하게 만들고 그 고통 가운데서 회개시켜 전에 명령하신 바를 선포하라고 재차 사명을 맡겼다. 하나님은 한번 하고자 하신 것을 기어코 이루신다. 사람이 불순종한다고 하나님의 일이 실패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치 않는 자를 징계하여서라도 회개시켜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를 다 이루신다 불순종하면 징계하시고 다시 불순종하면 또 다시 징계하다가 끝까지 불순종하면 내버리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그 뜻을 반드시 이루신다.

로마서 3:3-4에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다. 사람은 거짓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가 많으나 하나님은 참되시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신다

 

. 3: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음이므로 삼일길이라

하나님의 공출로 살아난 요나가 이번에는 하나님 명령을 순종하 여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음이므로 삼일길이라 니느웨 성읍 둘레의 길이는 약 90마일(145km)이라고 하며 (칼·델리취 )인구는 약 100만명이라고 한다.

 

二. 요나의 전도 (4)

 

. 3:4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요나가 그 성에 하룻길을 행하면서 전도했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요나의 전도하는 말은 간단하였다. 전도는 말 을 많이 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 진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때 권위가 있고 하나님께 서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의 귀에 즐깁도록 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면 큰 권능과 역사가 일어난다. 이때, 요나가 전하는 말은 니느웨 백성들이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 요나가 이 말을 전하면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를 해(害)할 위험성도 있었다. 그러나 생명을 내어놓고 가감(加減)없이 하나님이 전하라는 대로 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三.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 (5-9)

 

. 3:5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하나님을 믿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종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께 복 받은 증거 이 다.

예레미야 당시에 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외칠 때에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예레미야를 핍박하고 잡아 가두고 죽이려고 했다. 유다 사람들은 조상 때부터 하나님을 섬겨왔으면서 도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했다. 그러나 니느웨 백성들은 이방 사람 요나가 와서 전도하는 말을 듣고 즉시 회개했다. 이것을 보면 유다 사람들보다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를 더 잘했다. 마태복음 12:41에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 대 사랑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 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제 그 말씀 앞에 떨고, 회개하며 그 말씀대로 이루어 질 것을 믿어야 한다.

금식을 선포하고 금식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낮추고 목소리를 하나님께 상달케 하기 위함이다(사 58:3-9). 굵은 베는 죄인이 회개할 때에 입는 옷이다. 니느웨 백성들은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며 겸비한 자리에서 회개하였다. 이것을 보면 니느웨 백성들은 복받을 백성이었다.

요나를 통하여 멸망을 선고받은 니느웨 백성들에게는 두 가지 피 할 길이 있었다. 첫째는 회개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구원을 호소하는 길과 둘째는 니느웨를 떠나서 도망치는 길이다. 그때 니느웨 백성들이 니느웨를 떠나 도망쳤다면 재앙을 면할 수가 있었겠는가? 하나님을 니느웨 성이 미워서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니느웨 백성들의 죄가 많아서 멸망 시키려고 하는 것이므로 그들이 도망하면 도망한 고꿋에서 멸망시킨다. 예레미야 42:13-16에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회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복치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거하지 아니하리라 하며 또 말하기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식물의 정절도 당치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결단코 들어가 거하리라 하면 잘못 되리라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 거하기로 고집하면 너희의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의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살길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반드시 임하게 된다.

 

. 3:6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않으니라

요나의 말을 듣고 먼저 백성들이 회개했고 또 그 소문을 들은 니느웨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朝服)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 에 앉았다. 재에 앉은 것은 자기를 낮추고 회개하는 태도이다. 회개하면서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살길을 열어 주신다. 니느웨성의 백성으로부터 왕에 이르기까지 전체가 회개하였다. 왕은 백성들이 회개하는 소문만 듣고도 회개하였으니 참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

 

. 3:7-9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 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왕이 하나님의 긍흘을 바라고 니느웨 전역에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할 것을 공포했다. 백성이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려고 하니 왕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순종하여 바로 서려고 했다. 백성들이 자기 할 도리를 바로 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왕에게 돌리며 왕을 원망하면 결국은 다 망하게 된다. 짐승에게도 베옷을 입힌 것은 짐승에게 죄가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짐승은 사람에게 예속되었으니 만큼 그때에 짐승도 사람과 같이 멸망하게 되었으므로 짐승도 사람과 할께 낮아져서 하나님께 회개하는 일에 참여케 하는 것이 마땅하였기 때문이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의 긍흘을 입으려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고 합심해서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하나님의 긍흘이 임하면 살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위해 낮아지고 회개하며 간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요나가 고기 뱃속에서 힘써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건져 주셨고 니느웨성 사람들도 요나 의 말을 듣고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구원해 주셨다.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각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니느웨 백성이 말로만 죄를 회개한 것이 아니라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 포에서 떠났다. 우리가 회개할때 마음에서부터 죄를 떠날 뿐 아니라 손으로 하는 악한 일과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한다. 말로만 회개하는 것은 참 회개가 아니다. 잘못된 길에서 떠나고 악행을 그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고 원수를 풀곤 사랑하며 선한 길로 걸어가야 한다.

 

四. 하나넘이 용서하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심(10)

 

. 3: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은 것은 그들이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부르짖었기 때문만이 아니고 그들이 악한 길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터난 것을 감찰하시고 긍흘을 베풀어 주셨다. 그러므로 죄의 길에서 돌이켜 터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악한 자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기뻐 하신다. 에스겔 18:23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 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팼느냐\"라고 했다. 성도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낮아져서 죄를 끊고 악한 마음을 고쳐 선한마음을 쓰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내리고자 하셨던 재앙을 거두어 주신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요나 4장

 

제 4 장 박넝쿨

 

(대 지)

 

一. 요나의 노함과 불평 (1-4)

二. 니느웨 성을 바라보고 있는 요나 (5)

三. 하나님께서 요나를 박넝쿨로 교훈하실 (6-11)

 

(본문항해)

 

一. 요나의 노함과 불평 (1-4)

 

. 4:1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로하여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고 바로 서서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큰 은혜와 구원 역사 가 나타났는데 요나는 그것을 싫어하고 노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나타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터인데 도리어 싫어하고 노한 것은 요나가 마귀의 시험에 들었기 때문이다. 요나가 싫어하고 노한 이유는 무엇인가?

①자기가 전한 말대로 되지 않았으므로 자기의 말이 거짓말이 되고 자기의 위신이 털어졌기 때문이다.

②자기 중심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요나가 명예 영광주의로 나아가 낮아지지 않고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를 세워 나가려고 하였기 때문에 니느웨가 멸망하지 않온 것을 싫어한 것이다. 누구나 목표가 잘못되면 이러한 시험에 빠진다.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를 세워나가는데 목표를 두지 말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세워나가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자기는 낮아지든지 높아지든지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되면 감사하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되는데 목표를 두고 나가야 한다.

요한복음 3:30에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하리라\"고 했다. 그는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이 자기를 떠나 예수께로 가는 것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자기의 일이 잘 안되어도 하나님의 일만 잘되면 감사해야 한다. 언제나 목표를 자기 중심에 두 지 말고 하나님 중심에 두어야 하고 자기는 쇠해져도 구원 운동만 잘되면 만족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일이 잘되면 자기도 결국 잘된다. 요나가 말한 대로 니느웨 백성이 망하지 않더라도 요나가 절대로 낮아지지 않는다. 파리가 천리를 날아갈 수 없으나 천리마의 몸에 붙어 있으면 천리를 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성도도 예수님께 연합하여 주님의 구원역사가 잘되면 우리도 잘되는 것이다. 이것이 낮아져도 높아지는 법이다. 원 물체의 자리가 높아지면 부속물은 저절로 그 자리가 높아지는 것과 같다. 요나는 하나님의 일이 잘되었는데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으니 그의 가치관이 잘못된 것이다. 가치관이 잘못되면 선을 악이라 하고 잘한 것을 못했다고 하게 된다. 언제나 자기 중심으로 기울어지면 이렇게 된다. 우리는 자기 중심에서 돌이켜 예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 4:2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쏨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이것은 요나의 잘못된 기도이다(3절). 요나가 하나님을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분으로 알았으니 하나님을 바로 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니느웨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아니한 일에 대해서는 불만이었다. 그 원인은 요나가 니느웨 백성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요 자기 위신 문제(자기가 전한 말대로 이루어지지 않음)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랑으로 하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나아가면 다 이와 같은 잘못에 바진다.

 

. 4:3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내게 나음이니이다

요나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죽기를 원했다. 제 뜻대로 잘 안되었을 때 죽기를 구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 다. 하나님은 죽이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살리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순퐁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주인의 위치에 올라간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인데 죽여 달라는 것이 잘못이다. 자살은 살인죄이다. 그 이유는 자기 목숨은 자기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6:19-20) .

 

. 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  

요나의 성냄은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이므로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다. 이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 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다.

 

二. 니느웨 성을 바라보고 있는 요나 (5)

 

. 4:5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않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열고 그 그늘 아래 않아서 성음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요나가 성밖으로 나가 초막을 짓고 그 그늘에 앉아 니느웨 성의 결국을 보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께서 40일 후에 니느웨가 망하리라고 하였으니 니느웨 성이 멸망할 것 같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볼 때에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해 주실 것 같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세째, 요나는 자기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40일 후에는 니느웨 성이 무너지리라고 말해 놓았으므로 망하지 않으면 자기의 말이 거짓 말이 되고 다른 사람 앞에 망신만 당하게 되며 그 후에 아무도 자기의 말을 인정해 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자기를 세우 기 위하여 니느웨가 망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네째, 원수를 미워하고 원수가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 원수가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겔 25:3). 언제나 자기의 뜻은 버리고 하나님의 뜻만 생각해야 신앙이 바로 된다.

요나가 초막에 거하는 동안 심한 고난만 당하게 되었다. 요나가 고난당한 원인은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라면서 니느웨 성 동편에 대 막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요나가 발걸음을 잘못 옮기고 행동 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성 동쪽에 나간 것은 잘못 걸어간 것이고 니 느웨가 망하기를 바란 것도 생각을 잘못한 것이다. 결국 요나가 스스로 고난을 자초한 것이다. 이같이 고난당하는 것은 대개 자기가 잘못해서 당한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생각을 잘못한 것, 발걸음을 잘못 옮겨 놓은 것, 자기가 일처리 잘못한 것을 찾아서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한다.

 

三. 하나넘껴서 요나를 박넝굴로 교훈하심 (6-11)

 

. 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박넝쿨은 잎사귀가 크고 잎이 많은 식물로 빨리 자라나는 식물이다.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속히 자라도록 역사해서 초막 아래서 더위로 괴로와하는 요나를 서늘하게 해주셨고 요나는 박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없었다.

하나님께서 자연 은총을 베푸셔서 괴로움을 면케 해주셨을 때 기뻐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 다. 박넝쿨이 햇볕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가령 박넝쿨 잎들 사이 사이로 햇볕이 약간 비쳤을 것인데 그 볕이 들어오는 것으로 불평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에도 그 작은 것으로 불평하지 말고 그 박넝쿨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요나가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실 때에 감사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안된다고 원망하며 불평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큰 은혜를 생각치 않고 원망하는 것은 죄 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큰 것을 생각해서 작은 불편은 잘 참고 나가 야 한다. 잠언 14:4에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세상의 좋은 것을 주시는데 거기에 그만큼 고난도 따라온다. 양지가 있으면 음 지가 있고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과 같다.

요나는 그때 하나님께서 박넝쿨 주신 것을 기뻐할 뿐아니라 감사 하는 마음을 가져야 했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했다. 박넝쿨을 주셔서 괴로움을 면케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죽을 지경에 빠진 니느웨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은총을 베풀어 건져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자기 혼자만 기뻐하는 자리에 있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준비하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신 것이다.

 

. 4:7-8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풀을 셉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기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나님께서 또 요나를 깨닫게 하시려고 벌레를 보내어 박넝쿨을 씹어서 박넝쿨 쭐기를 끊었고, 또 뜨거운 동풍을 불게 하여 박넝쿨을 마르게 하였으므로 더욱 뜨거워졌다. 요나는 그 뜨거움을 인하 여 혼곤하여 또 죽기를 구했다(3절). 요나가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한 것은 믿음에서 떠난 증거이다. 죽고 싶은 생각이 난 것은 마귀의 시험이다. 누구나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자기가 마귀의 시험에 든 줄로 깨달아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한다.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나게도 하시고 서늘하게도 해주시고 벌레가 씹어 마르게도 하시고 또 흔곤하게도 하신 것은 요나를 연단시키고 교훈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잘되게 해주실 때가 있고 또 어떤 때는 죽을 지경에 빠지게 하시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 은 여러 가지 환경으로 교훈하시고 연단시키신다.

 

. 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박넝쿨을 인하여 성냄을 책망하시니 요나는 끝까지 자기가 행한 행동이 합당하다고 고집하였다. 그만큼 요나의 심령이 굳어져 있고 어두워진 것이다.

 

. 4:10-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룰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여호와께서 박넝쿨로 요나를 교훈하셨다. 요나는 니느웨 성의 많은 사람과 육축을 박넝쿨 하나보다 못하게 여겼다. 요나는 자기가 고난받는 것과 자기의 위신만 생각하고 많은 생명이 살고 구원받는 것을 생각치 않는 극도의 이기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책망하신다. 우리는 마음을 넓혀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원수까지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 다. 사람을 살리는 일과 주의 구원 운동이 잘 되어 나감을 기뻐해야 겠다.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는 어린 유아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런 어린 아이가 니느웨에는 12만 여명이나 된다고 했다. 옳고 그른 것을 잘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어른의 죄로 인해 같이 망하는 것을 하나님이 어찌 기뻐하시겠는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예수님은 특히 어린 아이들을 기뻐하신다(마 18:1-6,18:10;막 10:13-16). 니느웨에는 어린 아이가 12만 여명이나 된다고 했으니 당시 니느웨가 얼마나 큰 성인가를 알 수 있다. 어른들은 자기 죄로 망하는 것이 마땅하나 아이들은 의식적(意識的)으로 죄를 짓지 않 았는데 어른의 죄로 인하여 연대적(連帶的)으로 멸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고 어린 아이들을 아끼신 것이다.

육축도 많이 있나니 여호와께서는 니느웨 성에 있는 많은 육축들이 죽는 것도 기뻐하지 않으셨다.

이와 같이 니느웨 성의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과 말은 육축들을 하나님이 아끼셨고 더우기 회개하는 니느웨 성의 왕과 백성들을 긍흘히 여겨서 용서해 주시고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 리지 않으셨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