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마태복음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마태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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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1장

 

제 1 장  족  보

 

(대  지)

一. 족보삼강(族譜三綱) 1-17)

  1. 예언필성(豫言必成)(1)

  2. 인성변천(人性變遷)(2-11)

  3. 징악상선(懲惡賞善)(12-17)

二. 탄생삼진(誕生三眞)(18)

三. 요셉의인(義人)(19-25)

 

(본문강해)

 

一. 족보삼강(族譜三綱)(1-17)

 

1. 예언필성(豫言必成)(1)

 

.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할 때에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정식으로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확실하게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어서 의인이 되었고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이 된 것이다(창15:4-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전에도 아담에게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즉 창세기 3:15에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여자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리스도가 뱀(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겠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죄인에게 최초로 그리스도를 허락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이 최초의 복음이며 이 복음을 아담이 믿었고, 이 신앙이 아벨과 셋을 통하여 계승되어 내려 왔다.

아담의 때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실 그리스도를 믿어 내려오다가 약 2,000년이 지난 후에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나시겠다\"고 하나님이 정식으로 약속해 주셨다(창15:5-7 참조). 하나님은 이와 같이 먼저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대로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실 때에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그대로 믿어 신앙의 조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믿는 자는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그대로 성취시켜서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아브라함부터 기록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경 사람으로 2,000년 전에 약속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것이다.

다윗의 자손 다윗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주전 1,000년경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다윗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이사야 9:7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하였다.  또 이사야 11:1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대로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탄생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 세계(世系)라는 말은 계통 혹은 족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그대로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함이 없다.  세대가 변하고 모든 사람과 모든 만물이 다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다.  천지가 변할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신 구원의 약속을 틀림없이 성취시켜 주셨다.  예수님이 나시기 약2,000년 전에는 아브라함에게, 약 1,000 년 전에는 다윗에게, 열 달 전에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를 통하여 약속하셨는데, 그대로 이루어져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이루어져야 할 것도 있고 속히 이루어질 것도 있다.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다 그대로 다 이루어지고 만다.  천지가 변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는 만능으로 그 말씀들을 성취시켜 나가신다.

 

2. 인성변천(人性變遷)(2-11)

 

.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대대로 이어 내려왔다.  아브라함의 때부터 족장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첫째 족장이 되었고, 이삭은 둘째 족장, 야곱은 셋째 족장, 요셉은 넷째 족장이 되었다.

이삭 아브라함의 아들로 특별히 순종의 사람이었다.  이삭이 어렸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에도 이삭은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였다(창22:9-12 참조)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을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아브라함 때에 판 우물을 막고 그 곳을 떠나가라고 하였다(창26:12-22 참조).  그 때에 이삭은 그 곳을 양보하고 그랄 골짜기로 가서 아브라함 때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다.  그런데 그랄 목자들이 그 곳에까지 와서 다투며 그 우물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삭이 그 우물을 또 양보하고 다른 우물을 팠으나 그들이 또 다투었기 때문에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우물을 파고 살았다.  이것을 보면 이삭은 물질문제 때문에 싸우고 다투는 사람이 아니며, 다만 하나님의 축복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성도가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믿음을 지켜 나아가면 하나님이 복을 주어 창대해지고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싸우고 다툰다고 해서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모든 일이 더욱 잘되어 나갈 것이다.

 

. 1:3-4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다말은 이방 여자이며 유다의 며느리이다.  다말이 시부(유다)와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을 행한 여자이다.  그러나 다말이 이렇게 부끄러운 일을 행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에서 나실 것을 다말이 믿은 것이다 (창49:10 참조). 예언전에도 유다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이삭이 영감으로 아들들에게 말해 주었던 것 같다. 유다 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터인데 그 유다 지파의 혈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다말이 시부와 동침한 것이다.  방법은 잘못 되었으나 다말이 그리스도에게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이며 결코 음란한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다.

 

. 1:5-6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라합과 룻도 이방 여자이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서 기생노릇을 한 여자이며 룻은 모압여자로서 자기 남편이 죽은 뒤에 자기 시모 나오미를 따라 유대나라로 온 여자이다.  우리야의 아내는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빼앗은 여자이다.

예수님 족보에 기록된 네 여자가 도덕적으로 볼 때에는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라합은 기생노릇을 하였고 룻은 모압 족속이다.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자기 딸들과 동침하여 낳은 후손들이다.  대개 이방 여자요 도덕적으로 자랑할만한 것이 없는 여자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것은 첫째, 이방인이나 죄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의 계통에 참여 할 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아무리 이방 사람으로 부도덕하고 더러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참여할 수가 있다.  누구나 믿으면 구원의 반열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자랑 할 것이 없고 형편없이 더러운 죄인들이다.  또 우리들이 이 여자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모두 가증한 자요, 이스라엘 밖에서 사는 이방 사람으로서 도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그리스도의 계통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둘째, 육신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여 자기들을 굉장히 훌륭한 줄로 알고 있으나, 그들의 조상들 가운데에는 이방 사람도 있고 사람 앞에 내어놓을 수 없을 만큼 도덕적으로 더러운 죄가 가득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겸손해야 된다.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게 된다.  또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만 구주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이방 사람에게도 구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야 한다.

셋째, 인성은 변천되어 가는 것을 가르쳐 준다.  사람이 과거에는 라합처럼 기생노릇을 하던 사람일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성도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는 거룩한 사람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되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 이스라엘의 정탐군이 들어왔을 때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정탐군을 숨겨 주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에게 붙이실 것을 라합이 믿은 것이다.  여리고 성이 죄 값으로 멸망할 것과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성취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이 라합에게 있었다.  자신이 여리고 사람이었지만 본토나 친척이나 인정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구원반열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이스라엘의 정탐군을 숨겨 준 것이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난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으로 라합이 하나님의 백성을 영접하고 보호해 준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는 말씀을 라합이 믿고 자기도 거기에 참여하고자 간절히 소망한 것이다.

룻은 모압 여자로 유대 사람에게 출가하였으나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었다.  그 후에 시어머니를 따라 모압을 떠나서 이스라엘로 가서 살았다.  나오미가 룻에게 \"소망이 없으니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였으나,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겠다\"고 하면서 돌아가지 아니했다.

룻도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부모와 아비집과 본국을 떠나 이스라엘로 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흠모하고 사모하여 고생을 무릅쓰고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로 간 것이다.  사람이 변화되려면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성도들도 과거의 생활을 돌이켜 보며 날마다 회개하고,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고 주를 따라가야 인격이 점점 변화되는 것이다.  성도는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며 고난을 무릅쓰고 진리를 따라가야 한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면 그것이 음란한 행동이다.  마태복음 12:39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였는데 악하고, 음란한 세대란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말한다.

성도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육신에 속하면 인정과 물질에 얽매이고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  룻이 자기 고국(모압)을 떠나는 것처럼 모든 죄악에서 온전히 떠나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의 말씀대로만 따라가야 한다.  그리하면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반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 1:7-11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요람과 웃시야왕 사이에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사의 세 왕의 이름이 빠져 있다.  \"아하시야\"는 모친의 꾀임을 받아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하다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왕이다(대하22:7-9 참조).

\"요아스\"는 선지자가 자기를 책망할 때에 그 선지자를 성전에서 죽인 악한 왕이다.  그리하여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하였다(대하24:20-21 참조).

\"아마샤\"는 에돔 사람의 우상을 섬기고 그것 때문에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으나 불순종하고 거역한 왕이다(대하25:14-26 참조).

예수님의 족보에서 빠진 이 세 왕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 악한 왕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반열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악한 사람은 언제나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반열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3. 징악상선(懲惡賞善)(12-17)

 

. 1:12-16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틀 낳고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유대 민족이 바벨론에 가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다.  예수님의 족보에 70년간 바벨론 포로생활이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므로 이방 나라의 포로가 되었던 수치스러운 역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생활을 하게 된 여러 가지 죄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① 우상을 섬긴 죄.  ② 안식일을 범한 죄.  ③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하여 인간의 세력과 물질을 의지하여 살아온 죄이다.  인간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반드시 징계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생활을 하면서 회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시 해방시켜 유대 나라로 돌아오게 하셨다.  우리도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징계하시고, 회개하여 죄에서 돌이키면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다.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하루가 천년같이 기다리시며 우리에 대한 심판은 천년을 하루같이 참아 주신다고 하였다(벧후3:8참조).  회개하기를 고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것을 찾아 회개해야 한다.  우리 성도가 죄 값으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이 많이 있다.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죄를 찾아 회개하도록 힘써야 한다.  징계를 받으면서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사야 1:5-6에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라고 하였다.

이사야 선지때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많이 내려 왔었다.  머리로부터 발꿈치까지 성한 곳이 없었으나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았다.  회개 하였더면 그 상처를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학개 선지 때에도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많이 내려왔다.  즉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 전대에 넣으나 전대에는 구멍이 뚫렸다고 하였다(학1:6 참조).

또 하나님께서 한재를 불러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육축에게와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다고 하였다(학1:11 참조).

성도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원망하기 쉽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자기가 책임을 지고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받는 징계도 성도 각자가 책임을 지고 회개하여야 한다.  성도가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민족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줄로 알아 회개하여야 한다.  또 전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도 성도 각자가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고 회개하여야 한다.  예루살렘에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하나님께서  그 성을 사하겠다고 하셨다(렘5:1 참조).  소돔 고모라에서도 의인 열 명을 찾으면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다(창 18:32 참조).

 

.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열 네 대이고,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가 열 네 대이다.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사실은 열 세 대이다.  열 네 대라는 것은 7의 두 배이다.  7 수는 하나님의 만수이므로 그렇게 기록된 것 같다.

여기 마태복음 1장의 족보와 누가복음 3장에 있는 족보와는 차이가 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차이가 없으나 다윗부터 그 아래로 내려가면서 서로 다른 이름이 많이 나온다.  우선 요셉의 아버지만 보아도 마태복음에는 야곱인데 누가복음에는 헬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① 마태는 요셉의 족보를 기록하고 누가는 마리아의 족보를 기록하였다는 해석이 있다.  ② 마태는 계대계승법(양자법)으로 기록하였고 누가는 실조(實祖)대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는 예수님이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지만 실제로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는 뜻이다.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하는 것은 헬리가 마리아의 아버지 이름이다.  이것은 실제의 혈통을 기록한 것이다.  즉 예수님이 마리아의 피를 받은 것이지 요셉의 피를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아버지를 기록하는 것이 당연하다.  요셉의 계통이 따로 있고 마리아의 계통이 따로 있다.  그러나 다윗까지 올라가면 한 계통으로 되어 있다.

 

二. 탄생삼진(誕生三眞)(18)

 

.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 세 가지 진리가 있다.  ①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므로 참 하나님이시다.  ② 마리아가 낳았으므로 참 사람이다.  ③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속하여 주셨으므로 참 구주(그리스도) 이시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똑 같은 하나님이시고 사람과 똑 같은 사람이시다(죄만 없으시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친히 기름 부어 세우신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참 제사장이요, 왕이요, 선지자가 되신 것이다.

 

三. 요셉 의인(義人)(19-25)

 

. 1:19-20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다.  요셉이 의로운 것은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가 결혼 전에 잉태한 것을 알고도 저를 드러내지 아니한 것과 가만히 끊고자 한 것과 그 일을 생각한 점이다.  의인이 아니면 이렇게 할 수가 없다.

드러내지 아니하고 자기와 약혼한 여자가 잉태한 것을 알고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의로운 일이다.  그 당시에는 처녀에게 잉태된 것이 드러나면 동네 사람이 그 처녀를 돌로 쳐죽이는 시대이었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요셉이 인내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허물이 있으면 아내로 맞지 않으면 될 것이며 그 사람의 허물을 드러내어 죽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다.  손해를 입고도 남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으려면 잘 참아야 한다.

가만히 끊고자 하여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는 마음이다.  요셉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드러내므로 그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의로운 마음이 있었다.

불의한 일(죄악)이 나타났을 때 그 불의를 드러낸다고 해서 불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의가 드러나므로 써 오히려 불의가 더 커지고 다른 사람에게 악 영향을 끼치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처리하므로 써 회개의 기회를 주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수가 많다.  요셉이 이렇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려고 한 것은 참으로 의로운 일이었다.  가령 그 여자가 불륜의 관계를 맺어 잉태하였다고 하더라도 자기 신앙에 손해 되지 않도록 하고 다른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남을 용서해 주고 자기는 자기대로 손해보지 않도록 해결하여 불의한 일을 될 수 있는 대로 더 커지지 않게 하는 것이 의로운 방법이다.

예수님께서도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사람 홀로 있을 때 가서 죄를 짓지 못하게 권면하고 듣지 않거든 두 세 증인을 데리고 가서 다시 권면하고 그래도 듣지 않거든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였다(마 18:15-17참조).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신중한 태도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생각해 보고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를 깊이 생각한 것이다.  우리도 무슨 일을 만나면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단순하게 자기 생각대로 처리하면 안 된다.  자기가 어떤 불의한 일이나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에도 화풀이를 하거나 성급히 드러내지 말고 성경대로 처리해 나가야 한다.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깨닫기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상고해 보아야 한다.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를 쓸 때에 이사야 7:14의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라고 한 말씀이 응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때에 천사가 나타나서 모든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무슨 사건이나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를 살펴서 성경대로 해결하려고 힘써야 한다.  무슨 일을 당할 때에 성도들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여 \"너무 억울하다\" \"너무 사람을 멸시한다\"고 분을 내고 홧김에 죄를 짓는 경우가 많다.

불의한 일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였더라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으려고 힘을 쓰며, 성경에는 어떻게 말하였는지 깊이 생각하여 성경대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성도가 순종의 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성령께서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신다.  요셉이 믿음으로 나아가므로 성령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다\"라고 알려 주신 것이다.

요셉이 불의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그것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깊이 생각할 때에 자기와 모든 백성이 구원 얻는 길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요셉은 두려워함이 없이 잉태된 마리아를 데려왔다.  요셉은 이로 인해 부모나 친척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한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사람의 생각은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것이다.

다른 사람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오해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요셉은 사람에게 오해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문제였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나머지 모든 일은 하나님이 제일 좋은 길로 인도하셔서 자기의 구원도 되고 다른 사람의 구원도 되도록 이루어 주신다.

 

.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  자기 백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죄에서 건져낸다는 것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즉시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하며 또한 예수를 믿는 성도가 날마다 예수를 옷 입어 나가므로 인격이 점점 죄에서 벗어져 나오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면도 말한다.

로마서 13:14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만큼 죄는 멀리 떨어져 나간다.  예수를 영접한 것만큼 죄에서 벗어져 나온다.  그리고 죄에서 나온 것만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자기 힘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로 옷을 입어 나아가야 죄의 세력이 물러간다.  우리 힘으로 어두움을 물리치려고 함은 헛수고에 불과하다.  그러나 빛을 영접하면 어두움이 자연히 물러가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어두움을 물리치려고만 하지 말고 빛을 영접해야 한다.  성도가 영으로서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 죄의 세력은 약하여지고 하나님이 심령 속에서 강하게 역사하시게 된다.

 

. 1:22-23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야만 되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원죄가 없이 세상에 오셔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과 같이 부정모혈(父精母血)로 태어나게 되면 예수님이 원죄가 있게 된다.  육신의 아버지가 없이 성령으로 잉태해서 낳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원죄가 없는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가 낳아야만 하나님의 새 창조이고 원죄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마리아의 복중에 들어가서 인성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마리아의 복중에 들어가서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한 인격으로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임마누엘이 되신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곧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 1:24-25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아내를 데려왔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려고 해도 순종하지 못할 만한 여러 가지 악조건이 많이 있을 수 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요셉을 비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요셉은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고 할까봐 겁내지도 않고 사람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만 나아간 요셉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데려오라고 하였으므로 무조건 데려온 것이고 그 다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긴 것이다.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요셉이 절제 있고 경건한 생활을 하였다.  예수님이 탄생하자 이름을 예수라고 했다.  이것은 천사가 요셉에게 계시하여 준대로 한 것이다.  자기 족속이나 혈통적으로는 예수라고 할만한 근거가 없지만 하나님의 천사가 알려 준 말씀을 잘 기억하여 그대로 예수라고 한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무조건 지켜 나아가는 순종의 사람이다.  이러한 요셉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요셉을 마리아와 약혼하게 만들고 그에게 그리스도를 맡겨서 잘 기르게 한 것이다.

마리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낳아서 잘 기를 만한 거룩한 성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죄가 없고 마리아는 원죄가 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어 부정모혈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에게 원죄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마리아는 보통 우리와 꼭 같은 죄인이고 예수님만이 원죄가 없이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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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2장

 

제 2 장  박 사

 

(대  지)

一. 박사들이 주님을 찾아옴(博士尋主)(1-12)

  1. 찾아옴(尋來)(1-2)

  2. 목적(目的)(3-10)

  3. 경배(敬拜)(11-12)

二. 예수님의 피난(13-15)

三. 헤롯의 악행(16-18)

四. 예수님의 환향(19-23)

 

(본문강해)

 

一. 박사들이 주님을 찾아옴(博士尋主)(1-12)

 

1. 찾아옴(尋來)(1-2)

 

. 2:1-2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로마의 속국이었던 유대의 분봉왕으로 주전 47년부터 주전 4년까지 왕 노릇한 사람이다.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을 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 왔다.  동방은 메대·파사 나라로 전에는 바벨론에 속해 있던 나라이다. 이 박사들은 천문학과 점성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인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을 경배하기 위하여 먼길을 찾아 왔다.  그들이 찾아올 때에 별을 보고 찾아 왔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생활을 할 때에 민수기 24:17의 말씀대로 장차 한 별이 나타나게 되면 이스라엘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믿고 그 그리스도를 대망하였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그 별이 나타나기만 하면 유대인의 왕으로 그리스도가 오셔서 유대인들을 중심하여 그리스도 왕국을 건설하시고 전 세계를 통치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바벨론 사람들에게도 말하여 주었을 것이다.  그 말씀이 바벨론 사람 사이에 구전(ㅁ傳)으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마침내 한 별이 나타난 것을 박사들이 발견하게 되었다.

박사들이 \"저 별은 무슨 별일까?\"하고 생각할 때에 성령의 감동으로 유대인의 왕이 나신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유대인의 왕인 그리스도가 나신 것을 동방의 박사들이 알게 된 것은,  ① 성경 말씀(민24:17).  ② 실제로 별인 나타난 것.  ③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먼 동방에서 찾아 온 것은 아주 힘든 일이요 그만큼 훌륭한 일이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① 불고가사(不顧家事=집안 일을 돌보지 않음). ②불사노고(不思勞苦=고생을 생각지 않음). ③ 불원천리(不遠千里=천리를 멀다 하지 않음)하고 찾아 온 것이라고 이기선 목사님이 말했다.  세상일에 얽매인 사람은 예수님을 찾아 갈 수 없다.  육신의 평안을 위해서 고난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예수님을 찾아 갈 수 없다.  너무 멀어서 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주님을 경배할 자격이 없다.

박사들이 동방에서 올 때에 별의 인도를 따라서 온 것이다.  그 별은 실제로 나타난 별이고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 별이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동방에서 유대 나라를 향해서 이동(인도)한 별이다(9절 참조).  하나님께서 어떤 혜성을 이용하셨는지, 아니면 새로운 별을 나타나게 하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적으로 박사들을 동방에서부터 유대 나라까지 인도하여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늘날도 우리를 인도하는 영적 빛이 있다.  성도를 인도하는 그 빛은 무엇인가 ?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의 빛이다.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로만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에서 영적 교훈을 받아 영의 양식으로 먹고 자기 영이 소생하며 힘을 얻어 나가야 한다.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고 영감(靈感), 즉 성령의 감동이 우리를 인도한다.

요한일서 2:27에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라고 하였다.  \"기름 부음\"이라는 것은 중생한 영혼 속에 있는 진리와 영감의 역사이다.  중생한 영혼 속에는 언제나 진리와 영감이 내주(內住)하여 역사를 하고 계신다.  성령이 외부에서도 또한 끊임없이 역사하고 있다.  빛의 인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이 중생한 영혼 속에 역사하고 중생한 영혼이 마음을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진리와 영감이 우리 심령에 역사하여 우리의 심령을 밝히고 인도하여 나가는 역사를 말한다.

우리의 심령을 인도하는 말씀 안에는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하고 성령의 감동은 말씀을 근거로 해야 한다.  말씀과 성령의 감동이 합해서 우리 심령(중생한 영혼과 마음이 합해진 것)에 역사하여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나아간다.  이것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나아가는 빛이다.

마태복음 6:23에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하였다.  성도는 하나님의 빛의 역사가 심령에 있어서 심정이 밝고 명랑하며 언제나 그 빛을 따라가야 한다.  빛을 따라가면 명랑하고 즐겁고 생명의 역사가 있으며 항상 감사와 사랑이 넘치게 된다.

빛은 언제나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빛을 따라가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잘 이루어진다.  그런데 박사들이 별을 따라오다가 예루살렘에 들어간 것은 큰 실수였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않고 별만 따라갔더라면 분명히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요단강을 건너 유대 땅까지 왔을 때에 \"이제는 다 되었다\"하고 별을 보지 아니하고 곧 바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별을 잃어버렸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간 것은 인간의 지식을 따라 간 것이다.  유대의 왕이 나셨다면 분명히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나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유명한 성전이 있고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만하다. 상식적으로나 전통적으로 볼 때에 왕이 예루살렘에서 나실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여 인간의 생각대로 박사들이 곧 바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별은 예수님이 계신 베들레헴으로 인도하였는데 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별을 잃어버리고 흑암에 빠졌다.  박사들이 멀리서부터 별을 잘 따라오다가 거의 다 와서 방심하고 별을 따라가지 않았다.

별은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빛이다.  언제든지 빛을 따라가야지 인간의 생각대로 인간의 지식을 따라가면 별을 잃어버리게 된다.  성도가 빛을 잃어버리면 흑암을 만나게 되어 기도가 막히고, 심령이 답답하고, 불쾌한 마음이 들어온다.  성도가 빛을 잃어버리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떠난 것과 같다.  빛을 잃은 성도는 빛을 다시 찾아야 만족이 있고, 기름이 있고, 심령의 상쾌함과 즐거움이 있게 된다.  빛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그 빛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방심부주의하고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뜻을 따라 자기의  주장과 생각대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본주의로 나아가기 때문에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  전통에 얽매이고 세상주의에 얽매여 육신의 생각으로 기울어지면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

 

2. 목적(目的)(3-10)

 

. 2:3-4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별을 잃어버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실 이가 어디 계시뇨?\"하고 물어 보았기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났고 복잡한 일이 많이 생겼다.  성도가 빛을 잃어버리면 마음부터 뒤숭숭하고 복잡해진다.  박사들의 말을 듣고 헤롯왕이 모든 대계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예수를 찾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찾는 목적은 모두 다르다.  ① 헤롯왕은 죽이기 위하여 찾고, ② 제사장은 돈을 벌려고 찾고, ③ 서기관은 명예를 얻기 위하여 찾고, ④ 백성들은 호기심으로 예수를 찾았으나, 오직 박사들만이 경배하기 위하여 예수를 찾았던 것이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츄리를 만들어 놓고 성탄절을 축하하지만 그 목적은 모두 다르다.  술집에서는 손님을 끌어들여 술을 많이 팔려고 성탄절을 이용하며, 백화점에서는 손님을 많이 끌려고 크리스마스 츄리를 만들어 놓는다.  잡아죽이려고 예수님을 찾는 사람도 있고, 육신의 향락을 누리려고 찾는 사람도 많다.

우리 성도는 동방 박사와 같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경배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박사들이 빛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심히 답답한 가운데 빠졌고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찾아서 경배할 수 있을까 하여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다.  성도는 심령 속 깊은 곳에서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아서 경배하고자 애타는 심정이 있어야 한다.

 

. 2:5-6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서기관이 예수님의 나실 곳을 성경에서 잘 찾아냈다.  서기관들은 직업적으로 성경을 기록하여 보존하고 해석하며 가르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경을 잘 알았다.  그리하여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나시겠다고 성경을 인용하여 헤롯왕에게 대답해 주었다.

미가서 5:2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서기관이 참으로 성경을 잘 알았다.  또 성경을 바로 찾아 바로 증거해 주기도 하였으나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가지는 않았다.

오늘날에도 이 서기관과 같은 교역자들이 많다.  성경을 바로 알고 가르치기도 잘 하는데 자기는 실제로 그대로 행하지 않는다.  백성들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나시겠다는 말씀을 들었으나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다.  오늘날도 교역자나 교인들이 겉으로는 성경을 잘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예수님을 만나 경배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성도는 실제로 그리스도를 찾아가 만나고 참으로 예수님께 합당한 경배를 드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을 찾는 간절한 마음과 열렬한 심정이 있어야 하고, 다음에는 자기 몸으로 주님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실제로 주님을 만나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하는 사람이 참된 성도이다.

 

. 2:7-8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그리스도를 찾는데 있어서 박사들이 제일 열심이고 그 다음에는 헤롯왕이다.  헤롯은 예수를 잡아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관심이 큰 것이다.  예수를 반대하고 핍박하는 무신론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그것은 기독교의 내용을 자세히 알아야 성도들을 핍박하고 미혹시켜 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 주면 헤롯 자신도 가서 예수님께 경배하겠다고 하였다.  헤롯이 실제로는 예수님을 잡아죽이려고 하면서도 겉으로는 경배하겠다고 속이고 있는 것이다.  마귀의 역사는 항상 거짓되고 악랄하다.

 

. 2:9-10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겠다는 성경 말씀을 듣고 박사들이  예루살렘에서 다시 나왔다.  예루살렘을 등지고 거기서 나와 무조건 성경 말씀을 순종하여 갈 때에 문득 별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에서는 아무리 빛을 찾으려고 하여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은 성도가 인본주의로 나가던 길에서 돌이켜야 빛을 찾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생각대로 세상 풍속과 전통을 좇아가던 것을 포기하고 거기서 나와 성경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빛을 잃어버렸을지라도 성경 말씀을 따라가면 빛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소망이 있다.   박사들이 성경 말씀을 따라 한참 나아갈 때에 별이 문득 나타나서 박사들을 인도하였다.

성도가 빛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낙심만 하고 아예 믿는 일을 포기하면 안 된다.  잃어버린 빛을 다시 찾으려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인본주의로 나아가던 곳에서 돌이키기를 힘써야 한다.  빛을 잃어버린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세상 풍속과 인간의 뜻대로 나아간 증거이다.  그러므로 인본주의로 나아가던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빛을 잃어버린 원인은 대체로 다음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인본주의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둘째는 하나님께 피동 되는 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와 생각대로 세상의 풍속과 습관과 의식을 따라 간 것이 없는가를 찾아보고 회개해야 한다.  또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한 것이 없는가를 찾아보고 회개하여야 한다.  그 다음에는 성경을 상고하여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그 말씀을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  자기가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피동되어 따라가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을 계속 따라가면 문득 별이 나타나서 인도하여 주실 것이다.  그 때에는 마음이 매우 기쁘고 즐거워진다.

 

3. 경 배(11-12)

 

.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박사들이 요셉과 마리아는 보기만 하고 아기께 경배를 하였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상을 만들어 놓고 경배하는데 그것은 성경 위반이다.  마리아는 경배의 대상이 아니다.  박사들이 경배를 예수님께만 하였고 마리아에게는 하지 않았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께 경배할 때에 믿음으로 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박사들을 많이 비방하였을 것이다.  박사의 체면도 없이 갓난아이에게 경배하였다고 비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박사들은 다른 사람이 비방을 하든 말든 그러한 것은 관계치 않고 오로지 그가 구주임을 믿음으로 아기 예수께 경배한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도 믿음으로 하고 인간의 체면이나 사람의 여론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무엇이라고 할까 보아 두려워하거나 자기 위신을 생각하면 믿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주님께 경배하는 것이 마땅하면 경배해야 하고, 예물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면 예물을 바쳐야 한다.

박사들이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물약을 예물로 드린다.  황금은 왕에 대한 합당한 예물이며 유황은 선지자에 대하여 합당한 예물이고 몰약은 제사장에 대하여 합당한 예물이다.  그리스도는 왕권과 선지자권과 제사장권의 세 직분을 가지고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왕으로 합당하게 영접하고, 제사장으로서 합당하게 영접하며, 선지자로서 합당하게 영접하여 경배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영적 왕과 우주의 영원한 왕으로 영접하여 그의 절대적인 주권과 만능의 왕권에 복종하고 항상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에게 돌려야 한다.  또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하나님을 보여 주신 예수님을 우리가 선지자로 영접하고 그가 주시는 은혜와 진리를 받아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고 하나님을 좀 더 깊이 발견해 나아가야 한다.  요한복음 1:17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은혜와 진리를 가지고 오셔서 그 진리를 다 이루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진리를 새로이 깨닫고, 그 진리대로 자기 자신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에게 유향을 예물로 바치는 생활이 된다.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우리 택한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당신의 몸을 친히 십자가에서 제물로 바치셨다.  예수님은 생축으로가 아니라, 당신의 거룩한 몸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바쳐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주셨다.  그리하여 우리를 죄 가운데서 건져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대제사장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바로 영접하고 날마다 죄에서 벗어져 나와 거룩을 입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께 몰약을 드리는 생활이 되는 것이다.

또 황금은 믿음을 가리킨다(벧전1:7).  유향은 기도를 가리키며(계5:8),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하고 심령을 하나님께 바쳐 드릴 것을 가리킨다.  몰약은 시체에 바르는 것이니 우리 몸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믿고 그 진리 안에서 심령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몸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2: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박사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  박사들이 일시적으로 인본주의에 빠졌기 때문에 그 댓가를 톡톡히 받았다.  오던 길로 갔더라면 편했을 것이나 다른 길로 갔기 때문에 고생이 매우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올 때에는 하나님의 인도대로 왔으므로 제일 좋은 길로 왔을 것이다.  돌아갈 때에도 그 길로 돌아갔으면 제일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오던 길로 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가라고 하나님이 지시했다.  다른 길로 가느라고 길을 많이 돌고 많은 고생을 하였을 것이다.

한번 인본주의로 잘못 나아가면 반드시 그 댓가를 받는다.  박사들이 인본주의를 따라갔기 때문에 얼마나 손해가 컸는가?  

① 다른 길로 돌아가느라고 고생이 심하였다.

② 예루살렘에서 별(빛)을 잃어버림으로 흑암을 만나 심령이 편안치 못하였다.

③ 헤롯을 격동시켜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 사내아이가 다 희생되었다.

④ 예수님이 피난 갈 수밖에 없었다.

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베들레헴의 아이들도 죽지 않았을 것이고, 박사들도 오던 길로 편안히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흑암을 만나지도 않고 마음이 상쾌하였을 것이다.

 

二. 예수님의 피난(13-15)

 

. 2: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헤롯이 궤계로 예수를 잡아죽이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미리 아시고 예수님을 피난시키셨다.  아무리 마귀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하여도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마귀의 궤계를 막아주신다. 마귀가 우리 성도들을 죽이려고 하지만 하나님이 보호해서 대책을 세우시고 피난처를 예비하여 그 곳으로 인도해 주신다.  오늘날 성도들의 피난처는 어디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이 피난처가 된다.  영이 하나님 속에 깊이 들어가고 말씀대로 바로 서면 그 곳이 진정한 피난처가 되는 것이다.

 

. 2:14-15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아기 예수님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것은 헤롯이 죽이려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호세아 11:1에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이라고 하였다.

요셉이 꿈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애굽으로 내려감으로 성경이 이루어졌고 예수님의 생명도 안전하게 되었다.  이 꿈은 성령께서 특별계시로 요셉에게 주신 것이다.  지금은 표준계시가 종결되었으므로 꿈을 믿고 따라가면 안 된다.  성경에 기록된 꿈은 특별계시이다.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시키려고 성령께서 주신 표준계시이다.  오늘날 우리의 꿈은 표준계시가 아니다.  지금은 성경 말씀을 따라가야 하고 꿈 같은 것을 따라 가면 안 된다.

 

三. 헤롯의 악행(16-18)

 

. 2: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박사들이 돌아간 뒤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베들레헴과 그 부근에서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전부 죽이게 하였다.  많은 어린아이가 억울하게도 무참히 죽어 갔다.  이 아이들이 죽을 것을 순교라고 하면 안 된다.

순교란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생명을 바꿔 가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죽은 것이 순교이다.  이 아이들은 말씀을 지키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그저 예수님 때문에 애매히 피해를 입고 죽은 것뿐이다.  예수 때문에 죽었다고 하여 모두 순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불신자도 예수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수가 때때로 있다.  순교는 자발적으로 예수를 위하여 그 말씀을 지키다가 죽임을 당해야 순교인 것이다.

 

. 2:17-18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본문은 예레미야 31:15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라마는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곳인데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바벨론 군대가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 갈 때에 라마라는 곳에서 집결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갔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덤 속에 있는 라헬이 그것을 슬퍼하여 크게 통곡하였다고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옛날 바벨론이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 갈 때 그러한 슬픔이 이루어졌고, 예수님 탄생 때에도 베들레헴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므로 다시 그 곳에서 슬픈 사건이 생겨 라헬이 통곡할 만한 것이었다.  라헬의 자손들이 다 잡혀 죽었기 때문에 위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四. 예수님의 환향(19-23)

 

. 2:19-20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헤롯은 베들레헴 근처의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다 죽였기 때문에 예수도 죽인 줄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호로 살았고 헤롯왕 자신은 예수님이 탄생한 그 해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악한 질병에 걸려 죽었다.  그러므로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고 지시하여 주었다.

 

. 2:21-23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아켈라오는 헤롯의 맏아들이며 자기 부친을 이어 유대와 사마리아의 에돔을 통치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요셉이 유대로 가기를 무서워하였는데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살게 되었다.  나사렛이란 동네로 간 것도 예언의 성취였다.

이사야 11:1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가지\"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네체르( )\"인데 나사렛이란 뜻과 같다고 한다.  구약 성경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하는 직접적인 말씀은 없으나 \"이새의 줄기에서 한 가지가 난다\"고 한 말씀에서 이 \"가지\"라는 말이 나사렛이라는 말과 같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므로 나사렛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게 된 것이다.  예수의 탄생과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되어졌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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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3장

 

 제 3 장  세례요한

 

(대  지)

 

一. 요한이 전도함(1-12)

   1. 자기수양(自已修養)(1-4)

   2. 대중인도(大衆引導)(5-10)

   3. 구주를 밝히 증거함(救主明證)(11-12)

二. 예수님이 세례를 받음(13-17)

 

(본문강해)

 

一. 요한이 전도함(1-12)

 

1. 자기수양(自己修養)(1-4)

 

. 3:1  그 때에 세례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세례요한이 광야에 오래 있었다.  누가복음 1:80에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고 하였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오랫동안 자기 수양을 한 것 같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백성들이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오도록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중요한 사명이 요한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자기의 책임이 막중함을 깨달아 자기 수양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자기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깊은 기도를 하여야 했고, 진리를 깊이 깨달아야 했다.  예수님을 좀 머 깊이 알아야 했고, 자기 자신을 또한 깊이 알아야 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오랫동안 자기 수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사명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자기의 평안을 구하거나 안일주의에 빠질 수가 없다.  어떠한 고난이 와도 기쁜 마음으로 참고 견디면서 자기의 사명을 바로 감당하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하고 자신을 만들어 가야 한다. 모세도 자기의 사명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에 애굽의 모든 재물과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와 명예와 영광을 다 내어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고난받기를 즐거워하였다(히 11:24-25 참조).  모세가 자기 사명을 착수하기 전에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많은 수양을 쌓고 준비를 하였다.

세례요한이 광야에 나가 있는 생활도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자기 수양을 쌓은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례요한이 제사장의 아들로서 좋은 대접을 받고 육신의 평안을 누릴 수 있었으나, 그것들을 다 내어버리고 광야에 나가서 자기 수양을 한 것은 우리 성도가 깊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이기선 목사님은 세례요한의 생활을 기안취고(棄安取苦), 즉 평안을 버리고 고난을 취하는 생활이라고 말했다.  우리 성도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기 위하여 세례요한과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광야와 같이 고요한 세계에 깊이 들어가 영적 수입을 많이 얻어야 한다.  수입이 많이 있어야 많은 지출을 할 수가 있다.  수입은 별로 없이 지출만 하면 얼마 못 가서 껍데기만 남는다.  교역자나 성도가 기도를 많이 하고  많은 성경 연구와 많은 깨달음이 있어야,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나오고, 양떼를 인도할 만한 힘도 나온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먼저 준비가 필요하다.

자기를 수양하는 과정이 없이 하나님의 일만 하겠다고 날뛰는 것은, 수입은 없이 지출만 하겠다는 것과 같다.  교역자들이 수입은 없이 지출만 하다 보면 나중에는 밑천이 떨어져 자연히 인본주의 수단과 방법이 나오게 된다.  교역자가 성경을 바르게 깨달아 영권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성경을 바로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도행전 14:22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많은 고난과 많은 연단을 겪어야 성경이 깨달아지고 말씀대로 자기 인격이 만들어져 나아가는 것이다.  실제로 호랑이가 나온 것을 보고 와서 호랑이가 나왔다고 말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와서 호랑이가 나왔다고 말하는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고 이기선 목사님이 항상 말씀하셨다.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실제로 깨달아 그 말씀대로 자기 인격이 만들어져서 전하는 것과 남에게 듣기만 해 가지고 전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교역자가 성경을 듣고 배운 다음에 자기가 실제로 그 세계에 들어가 영적인 체험을 하고 자기가 그 말씀대로 만들어져서 복음을 전해야 양떼들의 참 양식이 된다.

 

.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세례요한의 첫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였다.  천국이 가까왔다는 것은 복음이 가까왔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하였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므로 하나님이 세상에 찾아오신 것(임마누엘)을 말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주시고 하늘나라의 모든 은혜와 진리를 주어서 구원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가 가까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천국에 참여하려면 죄를 회개하여야 한다.  죄를 가지고는 구원운동에 참여하지 못한다.

우리 성도가 날마다 회개하여 죄를 벗어버리고 세상으로 향하였던 마음을 온전히 돌이켜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한다.  그때부터 천국운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 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이사야 40:3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세례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였다(요1:23 참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세례요한에게 가서 \"네가 누구냐\"고 물어볼 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밝히 말하였다.  그러면 \"네가 엘리야냐\"고 물을 때에도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고 할 때에도 \"아니라\"고 분명히 대답하면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였다(마5:37).

세례요한과 같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밝히 말해야 한다.  아닌데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으면 죄를 짓게 된다.  세례요한은 자기를 밝히 알고 자기 이상의 대접을 받지 않았다.

성도는 자신과 자신의 위치를 밝히 알아야 한다.  \"네가 그 선지자냐?\" 할 때에 세례요한이 가만히 있으면 예수님의 대접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일에 큰 방해가 되므로 하나님이 귀히 쓸 수 없다.  아닌 것을 \"아니다\" 라고 하여야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사람이 자기 분수 이상의 대접이 올 때에 그것을 물리치지 않으면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다.  아닌데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속에 엉큼한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분수에 지나치도록 대접받기를 좋아한다.  세례요한은 자기 위치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인 것을 바로 깨달았다. 소리는 말씀을 나타내고 없어지는 것이다.  말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나 소리는 말씀만 나타내고 없어진다.

말씀은 예수님이시므로, 세례요한은 말씀이신 예수님만 나타내어 놓고 자기는 없어진다.  이것이 소리의 위치이다.  예수만 나타내어 놓고 자기는 없어진다고 하면 그 종이야말로 하나님이 참으로 만족할만한 종이다.  소리의 위치에 있는 세례요한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귀하게 쓰셨다.  예수님도 세례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라고 하시며 귀히 여기셨다.  하늘나라에서도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히어 놓았을 것이다.

소리의 위치에 서서 말씀만 나타내어 놓고 자신은 사라져 버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귀한 종이다.  말씀만 나타내고 자신은 사라져 버리면 말씀만 권위가 있게 되고 말씀만 힘있게 전파되어 나아가게 된다. 말씀을 나타낸 다음에 자기가 나타나면 그 말씀이 가리워 진다.  우리는 소리의 위치에서 말씀만 흥왕하게 하고, 자신은 이 복음운동을 위해 희생당하고 이용당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자기는 낮아지고 멸시와 천대를 받더라도 오직 말씀 하나만 잘 전파되면 좋다는 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실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고,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성도가 귀한 성도이다.  그러한 사람은 어디서나 필요한 것이다.

 

. 3:4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요한의 의복은 약대 털옷이요,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다.  요한은 의식 (衣食)에 제재를 받지 않는 생활을 하였다.  세례요한이 자기 직무를 감당하는데 있어서 적당한 음식과 의복을 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약대 털옷은 광야 생활에 적당한 옷이다.  밤에는 입은 채로 자면 한편은 이불이 되고 한편은 요가 된다.  기도하고 일어나서 먼지가 묻었으면 털면 된다.  누구나 자기 직무에 적당한 옷을 입는 것이 좋다.  우리 성도는 자기 분수에 적당하고 아담한 옷을 입어야 한다.  성도는 의식(衣食)에 제재를 받지 않고 의식을 초월하여 살아가야 한다.

사도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다(빌4:11-12 참조).  특히 교역자는 의식문제에 얽매이면 하나님의 참 종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풍부한 가운데 주시면 풍부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고 궁핍한 가운데 두시면 궁핍한 가운데서 믿음을 지켜 물질에 구애받지 않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모두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풍부하든 가난하든 마음을 물질에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하나님만 따라가고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기선 목사님은 교역자의 의식에 대하여 중등(보통)으로 취하면 좋다고 말씀하신다.  의복이 너무 고급이고 화려하면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된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자연스럽게 메뚜기를 잡아먹고 들에 있는 꿀(석청:야생꿀)을 취하여 먹었다.  이것이 의식에 제재를 받지 않는 생활이요, 의식을 초월한 생활이다.  메뚜기와 석청은 광야에서 얻기 쉬운 음식들이다.  교역자가 의식주를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고 또 남에게 누(累)를 끼치지 않는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다.

 

2. 대중인도(大衆引導)(5-10)

 

. 3:5-7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어 준 것은 하나님께 맡은 자기의 직무를 수행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려는 백성들에게 요한은 자기가 해야 할 일과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것이다.  요한이 백성들에게 세례를 준 것은 자기 육신의 평안이나 자기의 유익을 구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교회에 대한 자기의 사명과 자기의 직무를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나아올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하고 예수님을 밝히 증거하고 자기는 예수님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한 자라고 하면서 모든 사람을 예수께로 보냈다.  세례요한은 참으로 믿음 있는 일을 하였다.  

자기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께로 가는데 좋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  그러나 세례요한은 만족하게 여겼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요3:29)고 하였다.  세례요한은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아무 것도 자기 것으로 삼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면 하고, 그만 두라 하면 그만두는 사람이다.  우리 성도들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역자들도 교회를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만 해야한다.  마음으로는 늘 이삿짐을 싸놓고, 내일이라도 떠나라 하면 떠날 각오를 하고 목회를 해야 하며, 있는 동안에는 충성을 다하여 자기의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한다.  세례요한이 자기 위치를 바로 알았을 뿐 아니라 세상의 것을 초월하여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신 것이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 앞에 마땅히 해야 할 사명과 의무가 있으니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된다.

 

.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여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일을 감당하지 못한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것을 찾아서 회개하여야 한다.  아무리 회개를 다한 것 같아도 또 회개할 것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날마다 회개하면서 자기의 죄를 벗어버려야 한다.  죄가 없다 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사람이다(요일1:8-10 참조).  날마다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심령이 깨끗해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회개하지 못하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이다.  죄 가운데 제일 큰 죄는 교만죄이다.  우상 섬기는 죄도 큰 죄이지만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도 결국 교만하기 때문이다.  교만은 죄의 근본이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한 마음 때문이었다. 마귀가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것도 교만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교만이 가득하여 그 교만이 쉬지 않고 나온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으나 교만 때문에 버림을 당하고 하나님이 귀히 쓰는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사울왕도 교만 때문에 망하였고, 다윗도 교만하여 인구 조사를  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7만 명이 죽었다.  웃시야왕이 문둥병에 걸린 것도 교만죄 때문이었다. 이처럼 교만은 사람을 망하게 만드는 죄의 근본이다.  바울이 자신은 성도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으며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하여 겸손하였다.  그러나 바울을 그냥 놓아두면 교만해 질까봐 교만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시를 주셨다(고후12:7 참조).

그러므로 날마다 가시가 바울을 찔러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만들었다.  실상 바울이 받은 계시가 크므로 교만해질 가능성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망하지 않게 하려고 사랑으로 가시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를 아침마다 정책 하시고 분초마다 시험하시며 침 삼킬 동안도 놓아두지 아니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이다(욥7:18-19 참조).

세상에서 잘되는 것만 복인 줄로 알아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만사 형통하게 되는 것만이 복이 아니다.  재앙과 징계도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시는 것이다.  외부로 나타나 보이는 면이 잘되고 영적으로는 낭패를 당하는 것보다 보이는 면이 잘 안되더라도 영적 열매가 많이 맺히는 것이 복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말로만 회개한다고 하여서는 안되고 실제로 고쳐 나아가야 한다. 죄를 짓던 자리에서 돌이켜 못된 행실을 끊어버려야 한다.  죄 짓는 습관을 끊고, 선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를 닮아 나아가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다.

 

.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이 조상을 자랑하고 혈통을 자랑하는 자리에 빠지지 말라는 뜻이다.  외부적인 혈통만 자랑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갖지 않으면서 아브라함의 혈통만 자랑한다면 아브라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아브라함이 걸어간 신앙의 길을 실제로 걸어가면서 다윗과 같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외부적으로 아브라함이 자기 조상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아브라함과 같은 생명 있는 신앙을 가졌는가가 문제이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다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로마서 11:17에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정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이라 고 하였다.  돌감람나무와 같은 이방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참감람나무(이스라엘)에 접붙여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가 있다.  이스라엘 사람이 천대하고 멸시하는 이방인을 불러서 성도의 반열에 참여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능력이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더라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갖지 아니하면 꺾어 버리고 그 대신 이방사람들을 접붙여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외부적인 혈통은 결코 자랑할 것이 못된다.

 

.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도끼로 다 찍어 버리신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끼를 나무 뿌리에 놓고 좋은 열매를 맺히나 못 맺히나 살펴보시고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다 찍어 버리실 것이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에 다 찍혀 버릴 것이라.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가 내려오면 그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태를 살펴보시고 우리가 악한 열매만 맺고 좋은 열매를 맺을 소망이 없을 때에는 당장에 심판해 버리실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나쁜 열매를 맺게 되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내려온다.  성도가 성경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양심을 쓰지 않고, 서로 싸우고 다툰다면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예수 믿는 성도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 말씀을 거역하고 나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처럼 심판이 임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괜찮다\"  \"평안하다\" 하며 사람의 비위만 맞추어 준다.  에스겔 시대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기 때문에 에스겔 선지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온다고 하였으나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백성을 미혹했던 것이다.  지금 강대국들이 비축해 놓은 핵무기는 세계를 40여 번 망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세상을 심판할 도끼로 핵무기를 이용하실는지도 모른다.

부패한 인간들이 핵무기를 가지요 있으니 언젠가는 한번 사용 할 날이 올 것이다.  우발적인 핵전쟁이 일어나서 확대될 수도 있고 악한 지도자가 나와서 침략수단이나 방위수단으로 핵을 사용하게 되어 전 세계가 핵전쟁에 휘말려 들어갈 수도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아도 도끼가 휴전선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언제 전쟁이 일어날는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가 언제 내려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경성하여 회개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아가야 한다.

 

3. 구주를 밝히 증거함(救主明證)(11-12)

 

.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려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세례요한이 베푼 물세례는 회개의 세례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회개시켜서 그리스도가 공적으로 나타나실 때에 그에게로 인도 할 목적이었다(16절 해석 참조).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요한의 세례는 물로 주는 것이며 회개케 하는 세례이다.  이것은 외부적이고 의식적인 세례이며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이다.

불세례는 죄인이 믿음으로 근본적으로 정화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죄에서 정결케 되고 새로운 생명이 하나님에 의해서 죄인에게 주어진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야만 본질적으로 정화가 되고 변화가 된다.  

요한의 세례는 어느 정도 외부적으로 회개케 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과 죄를 뉘우치고 죄를 떠나는 생활을 하게 하였으나 영에까지는 영향력을 주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하시는 회개운동은 영 에게까지 영향력을 주어 본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다.

누가복음 12:49-50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고 하였다.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는 것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려고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씀과 같은 것이다.  그 불이 아직 붙지 않았으나 이제 붙을 것이라고 하셨다.  불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으로 이루어 주시는 구속성취를 말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죄 가운데서 멸망 받는 것을 보시고 불쌍하여 참을 수가 없다.

죄를 짓고 죄 값으로 망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볼 때에 그냥 둘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지은 것을 그냥 묵인할 수도 없다.  죄의 값은 반드시 갚아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뜨거운 사랑으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구속을 이루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도리를 성취시키는 일은 하나님의 열렬한 사랑의 불이 나타난 열매이다. 예수님이 불로 정화시킨다고 할 때 불은 구속의 도리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 가운데는 우리 죄를 소멸하고 우리를 건져내는 재료가 풍성하고 충만하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가지시고  역사하셔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우리 영을 살려 나가신다.

예수님께서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불, 보혜사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말씀의 불을 말한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그 재료가 약하다(롬8:3-4 참조).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도 약하였다.  신약시대의 복음은 재료가 강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명백하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여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고 충만하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은 성령께서 신약시대에 강하게 역사하시기 시작한 것을 보여 준 것이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연약하고 육체의 부패성은 강하기 때문에 구속의 역사를 이룰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어서 우리 죄를 짊어지게 하시고 구속을 이루어 주신 것이다.  신약시대는 진리도 충만하고 성령도 강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성도가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불로 세례를 준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이 구속을 이루어 놓으신 그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이 강하게 역사한 복음이요, 따라서 성령도 강하게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벗어  버리는 일과 의를 이루어 나아가는 일도 강하고 그만큼 뜨겁게  역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로 정결하게 만들어진다고 했다.

성도는 누구나 예수를 믿을 때에 불세례를 받은 것이며, 성령께서 계속하여 말씀으로 뜨겁게 감동을 시켜 성도를 더욱 더 정결하고 더욱 더 깨끗하게 만들어 간다 . 예수님의 불세례는 하나님의 열렬하고 뜨거운 사랑이 내포되어 있는 말씀을 가지고 성령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 영혼을 날마다 살려 나아가고 죄악을 떠나 점점 정결케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운동은 불로 세례를 주는 운동이다.  외부적인 의식도 아니고 조직적으로 움직여 나아가는 단체운동도 아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때에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고, 죄를 떠나 하나님의 의에 참여하여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바로 깨닫고 또 자신이 어떠한 자인 줄도 바로 알았다.  세례요한처럼 훌륭한 사람도 예수님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하였으니 우리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도 세례요한과 같이 겸손하여 주님만 높이고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악이 가득한 것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하여는 알면 알수록 예수님이 거룩하시고, 높으시고, 능력이 무한하신 것을 깨닫게 된다.

 

.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예수님의 절대적인 심판권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사 사람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불로 점점 정결함을 받아서 신앙의 열매를 많이 맺고 알곡이 되어야 한다. 정결함을 받아 깨끗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요한복음 15:2에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고 하였다.  불로서 정결함을 받아야 새 생명의 싹이 나오고 열매가 맺혀 알곡이 된다.  알곡이 되지 못한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

 

二. 예수님이 세례를 받음(13-17)

 

. 3:13-15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오졌다. 그 때에 요한이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말하였다.  요한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누가 세례를 주고 누가 세례를 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일만 잘되면 좋은 것이지 네가 세례를 줄 수 있다 없다 말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 그것을 이루어 나아가면 그것으로 만족한 것이다.  세례를 주는 사람은 높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낮다고 하는 제도적인 면이나 의식적인 면에 얽매이지 말고 다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나(예수님)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 되겠고, 또 너 (세례요한)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일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일이었고, 또 모든 택한 백성을 대신하여 행한 것이며 모든 성도의 모본(模本)으로 받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완전히 순종하고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다 지키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온전히 순종하려면 세례 받는 일까지 순종하여야 되고, 따라서 세례를 받아야 의가 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세례 주라고 하나님이 보내셨으므로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도 하나님을 순종하여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된다.  예수님은 세례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의가 되고, 세례 요한은 세례를 주는 것이 하나님 앞에 의가 되는 것이다.

 

. 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네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예수님께서 물(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 없는데(육지)로 올라오셨다는 말이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물위로 올라온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이 물에서 땅으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였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말이 없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어떻게 물에 잠갔다가 꺼낼 수가 있는가?  물을 떠서 끼얹는 것이 신사적이고 또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세례의 원 뜻에 맞는다.

세례( )라는 말은 \"잠그다\", \"적시다\", \"씻는다\", \"씻어서 정결케 한다\"는 뜻이 있다.  침례교파에서는 \"잠근다\"는 뜻으로만 해석하여 침례를 주장한다.

세례라는 헬라원어가 (배티조)인테 변형되어 (배토-), (배티스마), (배티스테-스)로 되어 성경 여러 곳에 사용되었다.  누가복음 11:38에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손씻지\"나 요한복음 13:26의 \"떡 한 조각을 찍어서…\"의 \"찍어서\"가 다 라는 말이 변형된 말이다.

침례교파에서는 잠근다는 뜻에만 국한시키고 다른 뜻을 무시한 것은 헬라어 원문을 올바로 해석한 것이 아니다.  물론 \"잠근다\"라는 뜻도 있다.  그러나 \"씻는다\" \"적신다\"는 뜻도 있다.  원문의 뜻만 가지고는 잠그는 것인지, 씻는 것인지, 적시는 것인지 확실히 나타낼 수 없다.  침례교파에서는 일방적으로 \"잠그다\"로만 해석하여 침례만이 참된 세례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체를 무시하고 의식(儀式)에 치우쳐 침례를 고집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줄 때 사람들을 물에 잠갔다가 꺼냈을까?  아니면 물을 떠서 머리에 끼얹었을까?  세례의 기원은 세례요한의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전에 없던 세례를 세례요한이 새로이 시행하였다고 하면 백성들이 당연히 세례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세례는 구약시대부터 유래한 것인데 세례요한이 특별히 많이 행한 것뿐이다.  그러면 세례가 구약시대에 무엇에서부터 유래되었는가?  모세가 송아지의 피를 뿌려 성소를 정결케 하였다(출29:16 참조).  에스겔 36:25에 \"맑은 물로 너희에게 부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성경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라고 하였다.  또 문둥병 걸렸다가 정결케 된 자는 살아있는 새(烏) 두 마리를 제사장에게 가져가면 한 마리는 죽여서 피를 내어 그 피를 제사장이 찍어서 문둥병 걸렸다가 나은 사람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라고 했다(레14:5-6 참조).  이와 같이 구약시대의 모든 정결케 하는 예식이 모두 물이나 피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베푼 세례도 뿌려서 정결케 하는 예식의 일부였다.

베드로가 하루에 3천 명이나 세례를 주었는데 3천 명을 모두 물에 잠그었다가 꺼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는가!   물에 잠그었다가 꺼낸다면 철야하여 24시간 동안 세례를 베푼다고 하여도 3천 명을 다 세례주지 못한다.  바울이 다메섹에 가서 금식 기도하다가 아나니아에게 안수 기도를 받고 일어나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지 물에 나가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는 않았다.  방에서 기도하다가 일어나 세례를 받은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세례받았다(행16:33 참조).  강에 가서 세례를 준 것도 아니요, 목욕통을 만들어서 세례를 준 것도 아니었다.  즉시 머리에 물을 끼얹어 세례를 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다(고전10:1-2 참조).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나왔는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고 바다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그것을 곧 세례라고 하였다.

침례파에서는 세례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즉 다시 말하면 물속에 들어간 것은 옛사람이 죽어서 장사지낸 것을 상징하고 물속에서 올라오는 것은 새 사람이 살아 올라왔다고 해석한다.  세례의 참 뜻이 \"씻어서 정결케 한다\"고 해야 성경 전체의 사상에 맞는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을 때에 꼭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적수(滴水) 세례 가 옳다고 본다.

침례교파에서 적수세례를 무시하고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삼위의 이름으로 건전하게 세례 받은 것은 피차간 인정하고 나가는 것이 옳다.  그런데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것을 취소하고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의식주의이고 독선적이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였다고 했으나 성령의 모양이 비둘기 같이 생긴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한 분이시고 영이시기 때문에 형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임한 것은 상징적인 뜻이 있다.  비둘기는 하나님께 제물로 이용되는 새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제물로 드렸다.  그러므로 성령이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임하신 것은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게 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완전한 제물이 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내 아들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예수님이 아들로서 다 받았다는 뜻이다.  기뻐하는 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린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계시를 다 받아 은혜와 진리를 우리에게 전부 전달하여 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인을 완전히 다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리므로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완성하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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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4장

 

제 4 장  승시(시험을 이김)

 

(대  지)

一.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심(1-11)

  1. 떡에 대한 시험(1-4)

  2. 크고 기이한 일에 대한 시험(5-7)

  3. 명예와 영광에 대한 시험(8-11)

二. 예수님이 전도하심(12-25)

  1.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심(福音傳播) (12-17)

  2.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여 세우심(弟子擇立) (18∼22)  

  3. 예수님이 순회하며 전도하심(巡回傳道) (23-25)

 

(본문강해)

 

一.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심(1-11)

 

1. 떡에 대한 시험(1-4)

 

. 4:1-4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귀가 예수님께 와서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을 한 것은 예수님이 40일 금식 기도한 후였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여러 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으나 거기에 대한 결론으로 마귀가 세 가지를 시험했다.

첫째시험은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여 먹으라는 것이었다.  마가복음 1:12-13에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계속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고 볼 수 있다. 이 시험문제 때문에 예수님이 기도를 많이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죄가 없으신데 왜 시험을 받으셨겠는가?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이겨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성을 입으셨기 때문에 우리와 꼭 같이 시험을 받았으나 죄는 없으시다(히4:15 참조).  예수님은 인성을 입으셨기 때문에 연단을 받기 위해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셔야 했다.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고요하고 한적한 광야에 나가서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를 하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힘입어야 하기 때문에 깊은 기도를 하기 위해 광야로 가신 것이다.

예수께서 시험받는 기간 동안 여러 가지 들짐승이 많이 왔으나  하나님이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고 모든 시험을 다 이길 수 있도록 하여 주셨다.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셨고, 성령께서 기도를 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주신 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셨다.  

오늘날 우리성도가 시험을 받을 때에도 광야 생활을 통과해야 된다.  \"광야생활\"이라는 것은 아무 의지할 데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쓸쓸하고 거친 지경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시험 당하는 동안에는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두 들짐승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시험 당하는 기간에는 사람들이 짐승같이 해하려고 하는 일이 많다.  시험 당하는 기간에는 가까운 사람들도 모두 짐승처럼 물어뜯으려고 하며 잡아먹으려고 하는 때가 많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손해 받지 않게 해 주시고 멸망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다.  시험받는 동안에는 짐승이 많이 오는 줄을 알아야 한다.  시험받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말씀대로 걸어가면서 그 말씀으로 시험을 이겨 나가야 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험은 마음으로 받은 시험이다.  예수님이 실제로 마귀를 따라 성전 꼭대기에 올라 갓을 리가 없다.  또 실제로 천하 영광이 다 보이는 산은 없다.  마귀가 예수님의 마음속에 그러한 생각을 넣어 주어 마음속으로 받은 시험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하는 것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이 구비되었다고 하면\"의 뜻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사를 하려고 한다면 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여 먹으라는 것이다.  그만한 권능이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의 행사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뜻이다.

제일 초단계의 시험은 물질 시험이다.  사십 일 동안 금식하고 주린 형편에서는 먹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예수님께서 사십 일 금식 기도하신 후 몹시 배가 고픈 틈을 타서 마귀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그 때 만일 예수님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을 권능이 있었으나 마귀의 말대로 예수님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었다면 예수님은 마귀에게 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구속사업을 완성할 수가 없게 된다.  마귀는 항상 기회를 타서 그럴듯한 말로 미혹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여 성경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셨다(신8:3 참조).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은 영(靈)이 살 것이라는 뜻이다.  육신이 사는 것이라고 하면 안 된다. 영이 사는 것이 첫째이고 그 다음에 육신도 살 것이다.  영이 살아있으면 육신이 죽는다고 해도 실상은 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육신이 살아 있어도 영이 살지 못하면 실상은 죽은 것이다.

디모데전서 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다.  육신은 살았으나, 심령은 죽었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죽어 있는 나사로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다(요11:11 참조). 영이 산 사람은 육신이 죽었더라도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영이 살아서 날마다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 아무리 세상에서 잘되고 육신이 건강하다고  하여도 벌써 죽은 것이고 실패한 것이다.  교역자도 자기 영이 살아서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 외부적으로 아무리 교회가 잘되어 나간다 해도 벌써 실패한 자이고 마침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만다(고전9:27 참조).

야고보서 4:16에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하였다.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서 세상의 것이 성공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하는 것은 다 헛된 것이고 악한 것 이 라는 뜻이다.  성도는 먼저 영이 살아야 하고 그 다음에 육도 살아야 한다.  영이 살지 못하고 육만 살아가는 것은 허탄한 것이고 실패한 것이다.  세상의 것은 아무리 성공되었다고 할찌라도 허탄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다 없어질 날이 온다.  영의 일(믿는 일)이 잘 되면서 육신의 일이 잘 되는 것은 괜찮다. 우리 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고, 말씀으로 영이 힘을 얻는다.

떡으로만 여기 \"만\"자가 왜 들어갔는가?  영혼은 말씀으로  살고, 육신은 떡으로 살기 때문에 \"만\"자를 붙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말씀과 떡 둘 다  있어야 산다는 말이 되어 성경에 맞지 않는다.  마태복음 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정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말씀과 떡\" 두 가지가 다 있어야 산다고 하는 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되므로 부당하다.

누가복음 10:41-42에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고 하였다.  인간 생활에 필요불가결한 것은 몇가지 밖에 없고 오로지 필요한 것은 말씀 하나만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사는 데에는 말씀 하나만 있으면 된다.  말씀 하나만 있으면 영과 육신이 다 살게 되는 것이다.  \"떡으로만\"하는 \"만\"자가 들어간 것은 떡을 부인하지 않는 태도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말씀에만 있으며 말씀만 붙들고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떡도 주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영과 육이 사는 것은 말씀에만 있다.  말씀만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이 영을 살리시고 떡도 덤으로 주어서 육신도 살리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영을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에 육신을 만드셨다.  사람을 먼저 만들고 다음에 사람이 거할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이 먼저 영의 양식(말씀)을 먹고살게 되면 육신의 양식도 하나님께서 주신다.  마태복음 6:33-34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은 육신에 필요한 것들인데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더해 주신다고 하였다.

말씀만 붙들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떡을 주셔서 육신도 살릴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말씀과영\" 두 가지를 다 가지려고 하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되고 마침내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된다.  말씀만 붙들고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영혼도 살펴 주시고, 육신에 필요한 것도 모두 주신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첫째, 영을 살리는 특별계시(말씀)가 필요한 것이다.  성도가 날마다 영의 양식을 받아먹고 영이 소생하며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둘째, 도덕이 필요한 것이다.  물질보다 도덕이 있어야 사람이 산다.  채소를 먹으면서도 서로 화목하고 도와 가면서 살면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다.  소를 잡아먹으면서도 날마다 싸운다면 채소를 먹으면서도 서로 화목하고 도와주는 것만 못하다(잠15:17 참조).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여야 한다.  물질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면 수전노가 되어 물질의 종이 된다.  그러므로 물질보다는 바른 정신이 항상 먼저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떡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으므로 바른 신앙과 도덕(바른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물질이 적든지 많든지 희락과 화평으로 생명의 길을 걸어 나갈 수가 있다.  그러나 바른 신앙과 도덕이 없다면 물질이 아무리 풍성해도 그 물질 때문에 도리어 망하게 된다.  현재에 물질이 없을지라도 바른 신앙이 있고  도덕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물질을 주실 날이 온다.

17세기에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황무지와 같은 곳이었고 청교도들은 빈 손들고 신앙의 자유만을 찾아갔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얼마나 좋은 땅으로 인도하여 주셨는가!

스페인 사람들은 그 당시에 돈을 벌기 위해(금을 얻기 위해서)남미 대륙으로 갔으나 지금은 저개발 국가의 처지를 못 면하고 있다.  마귀가 예수님께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여 먹으라고 할 때에 예수님이 왜 만들지 않았는가?  마귀가 만들라고 했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바른 대답이 못된다.  왜냐하면 마귀가 간 다음에 예수님이 스스로 떡을 만들어 먹어도 옳지 않기 때문이다.  돌로 떡을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에만 만들어야 한다.  이적을 자기 사사로운 일에 사용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적을 행할 수 있으나 자기를 위하여서 이적을 행하는 것은 안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것만 행하시고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다(요5:19 참조).  40일 동안 굶어서 말할 수 없이 배가 고프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이 없이는 절대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행을 말씀으로 이기셨다.  둘째 시험이나 셋째 시험도 예수님은 모두 성경 말씀으로 이기셨다.  말씀이 아니면 시험을 이길 수가 없다.  마귀는 사람보다 강하고 지혜롭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의 힘이나 자기의 지혜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  마귀보다 더 강하고 더 지혜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마귀를 이길 수가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도 세 번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게 된 것이다.

 

2. 크고 기이한 일에 대한 시험(5-7)

 

. 4:5-7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둘째 시험은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이었다.  이것은 크고 기이한 일을 행하여 보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더욱 더 큰 일과 기이한 일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이 잘되지 않겠느냐는 시험이다.  또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어 발이 상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나 붙들어 주지 않나 한 번 시행해 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도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는 것도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서 실제로 붙들어 주시는지를 시험하는 것이고, 또 시편 91:11-12의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인지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웠다고 했으나 누가복음 4:9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이끌고 갔다고 하였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웠다는 것을 보면, 이것은 종교적인 시험이며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시행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왜 성잔 꼭대기에서 내려 뛰라는 시험을 받으셨는가?  마귀가 시행할만한 근거가 조금은 있었다.  그럴만한 근거가 조금만 있으면 마귀는 기회를 타서 들어와 시험을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마귀가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하려면 무슨 비상한 역사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다치지 않는 이적이 나타나게 되면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고 따르게 되어 예수님의 하시는 일이 잘 성공되어 나갈 것이라고 마귀가 유혹한 것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많은 사람에게 큰 인기를 얻어 갑자기 큰 일을 하라는 것이다.  마귀는 큰 일과 기이한 일을 행하여 모든 사람 앞에 자랑할만한 일이 있어야 모든 사람에게 인기를 얻고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미혹한다.  마귀가 종교적 사업주의, 인기주의, 명예 영광주의로 성도를 시험한다.

다윗도 이런 시험을 당하여 많은 실패를 거듭한 뒤에 바로 깨달았다.  시편 131:1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 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겠다.  성전 꼭대기에서 내려 뛰면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보내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붙들어 주실 것이라고 시편 91:11-12의 성경 말씀을 이용하여 미혹하였다.  마귀는 성경 말씀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다.  자기의 명예나 인기나 자랑을 인하여 성경을 이용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자기의 뜻과 자기의 힘으로 하려고 성경을 악용하면 안 된다.

시편91:11-12에 있는 말씀의 원 뜻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순종하여 말씀대로 걸어갈 때에 위태한 일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에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붙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뜻대로 나아가면서 자기의 명예와 사업주의를 위하여 모험심으로 이 말씀을 이용하면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는다.  성경대로 한다고 하여도 성경을 바로 알고 성경의 바른 뜻대로 하여야 한다.  성경의 바른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 하지 아니하면 성경대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없고 하나님의 권고가 떠난다.  마귀는 성경을 제멋대로 이용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성경을 말한다고 해서 모두 다 성경을 바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귀가 성도를 넘어뜨리려고 성경을 이용하는 수가 많다.  마귀가 악랄하게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예수님이 \"또 기록하였으되\"라고 하셨다.  이것은 성경 다른 곳을 또 상고하여 원리대로 해야 된다는 뜻이다.  성경의 일면만을 말하여 다른 면에 어긋나게 적용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를 찾아보아야 한다.  한 면에만 치우치지 말고 성경 전체에 맞는 성경의 본뜻을 깨달아 하나님을 위하여 그 뜻대로 이루어 드려야 한다.  바리새인의 고르반 사상도 한 면만을 맞춘 것이다.

또 이단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성경 말씀을 근거하여 주장한다(예 : 영혼이 없다고 주장하는 여호와 증인도 성경에서 근거를 대고 주장한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고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를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고 하면서 성경을 갖다 댄다.  그러나 주일에 일하는 것은 분명히 죄이다.  그들은 성경을 내 버리고 믿는 자들이다.  마귀는 성경을 비뚤어지게 이용하여 미혹시키는 고등술법을 사용한다.  일제 때에 신사참배를 하면서도 성경대로 한다고 했다.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은 것이 없나니 권세를 복종하는 자는 하나님을 복종하는 것이라\"고 하여 로마서 13:1의 말씀을 이용하였다.

그릇된 신비주의자들도 고린 도전서 12장의 아홉 가지 은사 가운데 제일 작은 것이 방언인데 제일 작은 것도 못하는 자가 어떻게 큰 것을 하겠느냐고 하면서 방언을 못하는 자는 성령을 못 받은 자니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성경 본뜻에 맞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2:30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고 한 것은 교회(교인)가 모두 다 방언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14:23에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비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고도 했다.

마귀의 세력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사람을 미혹시킬 때 \"또 가라사대\"를 말해야 한다.  다른 성경에 또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성경 해석은 성경 전체의 원리에 맞아야 한다.  한 성구만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면 성경의 본뜻에서 이탈된다.  이단들은 대개 여기서 한 성구, 저기서 한 성구씩 뽑아서 자기들 생각대로 해석하여 자기들의 교리를 세워 놓고도 성경대로 한다고 하며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죄이다.  고린도전서 10:1-10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60여만 명)이 네 가지 죄로 인하여 광야에서 쓰러졌었다.  네 가지 죄란 ① 우상 숭배한 죄 ② 간음한 죄. ③ 하나님을 시험한 죄. ④ 원망한 죄였다.  그 중에 제일 많이 죽게 한 죄가 하나님을 시험한 죄였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큰 죄가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해 주겠나 하고 말씀을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이다.  성경 말씀에 된다고 하였으면 되는 줄로 믿어야 한다.  되는지 안 되는지 한 번 시험해 보아야겠다고 하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된다고 하였으면 된 것과 같다.  이미 된 줄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시험하는 것은 아주 악한 일이다.

 

3. 명예와 영광에 대한 시험(8-11)

 

. 4:8-11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셋째시험은 마귀가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하였다.

누가복음 4:5-7에는 마귀가 예수님께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고 했다.  요한일서 5:19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 요한일서 2:16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라고 하였다.  마귀는 하나님이 허락한 그 한도 안에서만 불신자나 불순종하는 자의 속에 들어가 주장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마귀가 아무것도 자기 마음대로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마귀가 사람을 괴롭게도 하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세상권세와 영광을 마귀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도 안에서 마귀가 집행권을 넘겨 받았다는 뜻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날 수가 없다.  하나님이 허락치 않으면 마귀가 꼼짝하지 못한다.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라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셨다.  마귀가 자기에게 절을 한 번만 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다 주겠다고 예수님에게 말하였다.

신앙을 양보하는 것과 말씀을 양보하는 것과 신앙양심을 양보하는 것과 옳은 것을 양보하는 것은 다 마귀에게 절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선한 양심을 어기면 세상에서 일시적으로는 좋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에게 절하고 얻은 것이요 허탄하고 악한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자기의 명예와 영광심을 버리고 모든 물질이나 권세도 포기해야 한다.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든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택하든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다.  말씀을 내놓으면 세상 영광을 가질 수 있으나 말씀을 택하면 세상 영광을 내놓아야 한다.  오늘날 마귀가 천하만국과 그 모든 영광을 준다고 할 때 그것을 버리고 믿음 지키는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될까 !  마귀는 예수를  믿되 성경을 조금 양보하여 천하만국과 그 모든 영광을 얻으라고 한다.  마귀는 또 절을 여러 번 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단 한 번만  절하면 모든 영광을 다 준다고 한다.  성도가 한 번 마귀에게 절하여 천하 영광을 얻어 놓은 다음에 믿는 일을 잘하면 어떠할까?   그것은 안 된다.  왜냐하면 한 번 마귀에게 절하면 믿음을 팔아먹은 것(예수를 팔아먹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신앙을 팔아먹은 다음부터는 믿는 일이 되지 않는다.  믿음을 다시 찾으려면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는 회개를 해야 한다(마5:26 참조).

한 성구를 팔아먹은 다음에는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믿는 일이 되지 않는다.  신앙을 회복하려면 먼저 팔아먹은 그것을 물어내야(회개해야) 한다.  이 말씀은 내가 못 지키지만 다른 말씀은 잘 지키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말씀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바로 지켜야 그때부터 믿는 일이 되어 나아간다.  그러므로 한 번  절하여 천하 영광을 얻은 후에 잘 믿겠다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다만\"은 다른 것은 다 내어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이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아야지 다른 것도 붙잡고 말씀도 붙잡으려고 하면  \"다만\"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것에 끌려가게 된다.  말씀만 붙들어야 끌려가지 않는다.  예수 믿으면서 언제나 \"다만\"이라는 말을 써야겠다.  \"다만\" 하나님만 섬겨 나아갈 때 마귀가 떨어져 나간다.  하나님만 경배하고 하나님만 따라가면서 육신의 염려는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모두 보내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버리시지 않는다.  시편 37:25-26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마귀에게 속한 사람도 다 하나님이 먹여 살리는데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하나님이 굶겨 죽일리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리고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오게 된다.  결국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세상의 명예 영광도 잃어버려 모두 다 잃어버리게 된다.  \"다만\" 그를 섬길 때에 마귀는 떨어져 나갔다.  하나님 섬기는 일 하나만 하겠다고 할 때에 마귀는 발붙일 곳이 없으므로 떨어져 나간다.  말씀만 붙잡고 모든 시험을 이긴 예수님을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들었다.

마귀가 떨어져 나갔으나 얼마 동안만 떠난 것이다(누가4:13참조).  마귀가 예수님께 이렇게 참패를 당하고도 마귀는 얼마 있다가 또 온다는 뜻이다.  마귀가 우리들을 시험하다가 실패한 다음에도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다.  얼마 후에는 다시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귀는 참으로 악착스럽다.

성도가 시험을 이겼다고 해서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그러므로 근신하고 깨어 계속하여 마귀를 대적해 나아가야 한다.  마귀를 한 번 이겼다고 해서 방심하면 그 다음에는 마귀에게 지게 된다.  김현봉 목사님은 하루에 세 번만 마귀의 종노릇을 하여도 괜찮겠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보통 하루에 세 번 이상 마귀에게 지고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시간마다 사사건건 마귀를 이겨 나아가야 한다.  불쾌한 마음이나 섭섭한 마음이 들어오고, 남을 원망하고 혈기를 내는 것도 마귀에게 넘어간 증거이다.  또 적극적으로 믿음을 써서 영의 세계에서 새 생명의 길을 걸어 나가지 못하는 때도 마귀에게 진 때이다.  그러므로 삼가 조심하여 마귀에게 화평한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의 믿음과 영적 사랑의 생활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二. 예수님이 전도하심(12-25)

 

1.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심(福音傳播)(12-17)

 

. 4:12-14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예수님의 가정이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간 것 같다.  이것도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사9:1-2 참조).

 

. 4:15-16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스불론과 납달리와 요단강 저 편 해변 길과 갈릴리는 스불론과 남달리 족속이 제비를 뽑아서 얻은 지방인데 그들이 원주민인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살았다.  또 이 지방은 유대 북방에 있어서 열방의 침략을 받아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갔고 이방인들이 많이 그곳에 정주하여 혼합되었다.  그러므로 그 지방을 이방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빛을 모르고 흑암에 사는 백성이었으나 예수님이 그 곳에 이사하여 사시므로 큰 빛을 보게 되었다.  사망과 흑암의 땅에 기독교가 들어가면 하나님의 빛이 비취어져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땅이 밝아지고,  아름다워지고 하나님의 빛과 생명의 빛이 비취게 된다.

교역자가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그늘진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이 밝아지고, 사망의 땅에 들어가면 그 땅에 생명이 살아나게 된다.  죄만 짓고 우상을 섬기면서 흑암 속에 앉아 있는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면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 나가게 된다.  하나님의 빛을 받은 성도가 사망과 흑암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빛을 비출 책임이 있다.

 

.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천국운동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고 그 천국운동이 시작되었으니 회개하고 거기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천국은 복음을 가리키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가리킨다.

 

2.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여 세우심(弟子擇立)(18-22)

 

. 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주고 예수를 좇으니라

요한복음 1:35-42에 있는 사건이 본문의 사건보다 먼저인 것 같다.  요한복음 1:35의 두 제자는 세례요한의 제자로서 사도 요한과 안드레이다.  세례요한이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여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다(요1:36 참조).  요한과 안드레가 처음에는 세례요한의 제자이었으나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후 안드레가 자기 형 시몬을 예수님에게 데려왔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장차 게바라고 할 것을 말씀해 주셨다(요1:42 참조).

시몬이 그 후에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갔는데(아직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않은 것 같음) 그 때에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에 오셔서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 던지는 것을 보고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눅5:1-11 참조).  그러므로 그들이 그물을 버려 두고 즉시로 예수님을 좇았다.  당시에는 그물이 큰 재산이요 배는 직장이었다.  직장을 버리고 재산까지 다 내어버리고 예수님을 즉시 따라간 것은 큰 믿음이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한다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꾼이 되게 해 주겠다는 뜻이다.

 

. 4:21-22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이 전에 예수님을 만나 보았다(요1:40 참조).  이번에 예수님이 오셔서 부르실 때에 배와 부친을 다 버려 두고 즉시로 예수님을 따라갔다.  배와 부친 즉 재물과 인정을 다 내어놓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이다.  세상의 것을 다 내어놓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힘있게 따라갈 수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 것과 같다.

 

3. 예수님이 순회하며 전도하심(巡回傳道)(23-25)

 

. 4:23-25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예수님이 각색 병을 고치신 것은 병 고치는 것이 근본 목적이 아니고 심령의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을 알게 하여 주는 표적(표징)으로 병을 고쳐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심령의 병을 고쳐 주는 것이 언제나 첫째이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겨 하나님의 권능으로 고질병인, 간질과 중풍병과 그 외 여러 가지 병을 고쳐 주신 고로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좇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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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5장

 

제 5 장  팔 복(八福)

 

(대  지)

一. 팔 복의 자격(1-12)

二. 신자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13-16)

三. 율법의 성취(律法成就) (17-20)

四. 5대 금지(五大禁止) (21-42)

  1. 살인 (21-26)

  2. 간음 (27-30)

  3. 이혼 (31-32)

  4. 맹세 (33-37)

  5. 보수 (38-42)

五. 완전하라 (43-48)

 

(본문강해)

 

一. 팔 복의 자격(1-12)

 

.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이 산은 컨해틴(Kun Hattin) 산이라고 하는데 후에 팔복산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나아오매 예수님이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로 앉아서 진리의 도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진리는 큰 소리로 외쳐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앉아서 조용한 음성으로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능력있게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셨다.  세상에서는 흔히 5복을 말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필 복은 세상의 복과는 전연 다르다.

세상의 5복은 ① 수(壽) ② 부귀(富貴) ③ 강령(康寧) ④ 유호덕 (攸好德) ⑤ 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

성경의 팔 복은 세상 5복과는 거의 반대이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핍박받는 것이 복이라고 하였다. 세상 복은 건강한 것이 복이지만 하늘나라의 복은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 드리면 병든 것도 복이 될 수 있다.  몸이 건강한 것이 좋으나 건강하기 때문에 교만해지고 방탕하고 악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차라리 병이 들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온유한 마음을 갖는 것 보다 못하다.

칼빈이 기독교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지만 몸은 퍽 약하였다고 한다.  몸이 약하였기 때문에 칼빈이 위대한 사람이 되었는지 모른다.  건강해도 믿음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건강한 것이 복이고 병이 들어야 믿음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병드는 것이 복이다.  육신의 몸이 항상 건강해야 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디모데도 위병을 앓았고 바울도 육체에 가시가 있었다고 하였다.  사람의 생각에는 바울에게 그 가시가 없었더라면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하였을 것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 가시가 없었다면 바울이 교만하여져서 망하게 된다.  성도의 복은 육신에 표준을 두지 말고 믿는 일에 두어야 한다.

 

. 5:2-3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첫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자의 복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천국에 대하여 가난한 것을 말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 영적 문제에 대하여 가난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심령이라는 것은 영혼이 마음을 통해서 역사하는 면을 말한다.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가난을 느끼는 사람은 영이 산 사람이다.  심령이 깨어 산 역사가 있어야 가난한 것을 느끼게 된다.  심령이 잠자는 상태에 있으면 가난을 느끼지 못한다.

야고보서 2:17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믿음 자체가 마음을 통하여 생명력을 발휘해야 될 터인데 믿음이 죽었기 때문에 생명력이 없고 생명의 역사가 없는 것이다.  생명의 역사가 없는 자는 예수를 믿어도 죽은 믿음이다.  그리하여 기쁜 소리를 해도 춤추지 아니하고 슬픈 소리를 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 무감각한 상태에 빠진다.  영이 깨어서 심령이 일을 하는 사람이라야 심령의 가난함을 느끼게 된다.  일하는 사람은 항상 모자라게 되어있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조금 있는 것도 남아 돌아간다.  심령이 깨어서 영의 역사가 있고 심령에 영적인 가난을 느끼게 되면 그 사람은 벌써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다.

심령에 가난을 느끼는 사람은 갈급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많은 것을 주신다. 많은 것을 받은 다음에는 그것을 가지고 또 영의 일을 해 나가야 한다.  영의 일을 해 나가면 또 다시 모자라게 되어 다시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 구하게 되고 하나님은 또 더 많은 것을 주신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 앞에 신령한 것을 구하게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신령한 것을 많이 받게 된다. 심령에 가난을 느껴야 안타까워서 하나님께 매달릴 생각이 나고 기도할 생각이 난다.

심령에 가난을 느끼면 성경을 배울 때에도 열심으로 듣게 되며 성경 말씀이 꿀송이보다 달고 정금보다 귀하게 여겨진다.  그러므로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을 쓰고 그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게 된다.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하늘나라를 많이 소유한 사람이다.  현재에도 천국을 소유하고 있으나 앞으로도 점점 더 많이 소유하게 되어 하늘나라의 보화가 아주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부요한 사람은 화가 있나니 지옥이 저희 것이다(눅6:24-25 참조).

 

.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둘째는 애통하는 자의 복이다.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다.  그러나 믿음에서 떠나 세상 것으로 부하고 웃고 즐거워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  누가복음 6:25에 \"화있을 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라고 하였다.

애통하는 자는

① 자기의 죄를 붙들고 애통하는 사람을 말한다.

②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나가기를 소망하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것 즉 말씀대로 신앙 인격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을 애통하는 사람이다.

③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해서 애통하는 사람이다.  신령한 세계에 들어갔더라도 좀더 깊은 세계에 들어가려고 애통해야 한다.  세상의 것 때문에 애통하는 것이 아니고 신령한 것을 위하여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죄 때문에 애통하면 죄 사함 받은 기쁨이 있게 된다.  또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애통하면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되고,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여 애통하면 드디어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성도가 말씀을 받았으나 말씀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애통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능력을 입혀서 말씀대로 만들어지게 하신다.  그 때에는 한량없는 하나님의 위로가 오는 것이다.

진리(말씀)의 세계는 애통을 통과해야 이루어지고 기쁨이 오는 것이다.  십자가 후에 부활이 있었다.  애통이 없이 예수 믿는 사람은 진리에 대한 성공이 있을 수 없다.  자기의 되지 못한 것을 붙들고 애통하면서 말씀의 표준에 도달하려고 힘을 쓰되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성도가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만들어지려면 반드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교역자들도 날마다 계속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해나가야 겨우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피와 땀을 흘리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여 진액을 짜 바치고, 사선을 넘는 수고와 인내가 있어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기독교는 애통을 통과한 후에 성공이 있는 것이다.  또 애통을 통과한 다음에 오는 기쁨이어야 참된 기쁨이다.  애통을 통과함이 없이 얻어지는 기쁨은 다 세상적이고 인간적이고 임시적이다.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자기 인격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을 애통하면서 힘을 바짝 써서 일심정력을 기울이면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조금씩 조금씩 말씀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한량없이 내려온다.  그러므로 믿는 일을 힘써 하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믿는 사람에게는 받은 증거가 많아진다.  눈물을 통과하여 얻는 기쁨이 참으로 가치있는 기쁨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참되게 애통하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도와 주셔서 믿는 일이 성공되어 나간다.  그렇게 되면 영적 생명이 자라나게 되고 새로운 영적 세계가 발견이 되며 영이 힘을 얻고 소생하여 올라와 한량없는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성도가 애통하는 단계를 거쳐서 새 생명을 받아 새로운 기쁨을 날마다 누리고 새 사람이 되어 나아가야 한다.

 

.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셋째는 온유한 자의 복이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이 있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진리를 붙든 자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붙든 자는 마음이 든든하고 온유하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게 된다.  무조건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온유가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만 하는 사람은 완고한 고집쟁이이고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라 가기만 하는 사장은 무골충과 같은 사람이다.  참으로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판단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이 때로는 고집쟁이라는 말을 듣게 되나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아주 온유한 사람이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나아가는 자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사람의 구실을 이루어 나아가는데 이용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고린도전서 3:21-22에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 것이요\"라고 하였다.  온유한 사람에게는 만물이 다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이용되어 유익한 것이다.  온유한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놓고 하나님께 이용을 당하는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은 악한 사람에게 악한 일을 당할찌라도 그것을 유익하게 이용한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고 빌라도가 악을 행하였으나 결국 그들은 예수님께 이용당하고 예수님의 일을 해 주었다.  모든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예수님을 위하여 있고 예수님은 그것들을 바르게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드렸다.   온유한 자에게는 모든 것이 그 사람을 위하여 일해 주고 도와준다.  풍랑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그 풍랑 인연하여 더 빨리 나아갈지언정 그 풍랑 때문에 손해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땅 위의 모든 것이 온유하고 믿음 지킨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것이 땅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넷째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이다.  어떻게 해야 옳은 길을 걸어 나아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까? 하고 하나님의 의를 찾고 그 의를 이루어 나가는 일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처럼 갈급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의가 아니면 천하를 다 주어도 가지려 하지 않고 의(義) 하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긴다.

베드로후서 3:13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의를 이룬 것은 하늘나라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누가복음 19:12-19에는 열 므나 남긴 사람은 열 고을 권세, 다섯 므나 남긴 사람은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땅에서 의를 이루는 것이 참으로 가치 있고 고귀한 것이다.  우리 성도는 천하를 다 준다고 하여도 의가 아니면 행치 말고 의를 이루는 일이라면 죽음이라도. 사양치 말고 나아가야 한다.  스데반은 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고, 다니엘은 의를 위하여 사자 굴에 들어갔다.  의가 참으로 귀한 줄 알고 오늘 이루어야 할 의는 오늘 이루고 내일 이루어야 할 의는 내일 또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례를 베풀고 혜롯왕을 책망하다가 감옥에 갇히어 죽기까지 하였다.  우리 성도가 의(義)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것처럼 간절히 사모하고 의(義)를 이루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야 한다.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그리스도의 의로 만족하계 되고 또 자기가 의를 이루어 만족하게 된다는 뜻이다.  의를 이루기 위하여 간절히 사모하는 자는 마침내 의를 이루게 된다.  의를 이루기 위해서 밤낮 애타는 심정으로 사모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의를 이룰 날이 오게 된다.  성도를 이 세상에 살게 하는 목적은 믿는 일을 잘하여 의(하나님의 뜻)를 이루라는 것이다.  의인 줄 알면서도 자기 육신을 아끼느라고 따라가지 못하고 돈과 인정 때문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의가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의(義)인 줄 알았으면 자기의 모든 재산이나 자기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따라가야 한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도 바치는 것이 의이다. 주님께서 나귀를 바치라 할 때에 바치지 않으면 불의(不義)한 일이요 죄(罪)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하실 때에 제자들은 배와 그물과 부친(父親)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이것이 의(義)이다.  예수님께서 따라 오라고 하실 때 따라가지 않으면 불의요 죄이다.  

의를 하나 이루면 자기 영이 그만큼 배가 부르고, 강해지고, 자라나고, 커짐으로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그만큼 크다.  고린도후서 9:9에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했음으로 그 의가 영원히 하늘나라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  참된 신앙으로 의를 이루어 나가면 영혼이 만족하고 새 힘을 얻어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다섯째는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이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성도가 하나님께 받은 긍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우리에게 있는 긍휼(적은 긍휼)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하나님은 더 많은 긍휼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가 긍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더 많은 긍휼을 우리에게 주시게 되므로 긍휼의 그릇이 점점 커진다. 그릇이 커지면 하나님의 긍휼을 더욱 더 많이 받게 된다.  우리 성도가 항상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한다.  우리에게 손해를 주고 잘못을 범하였을찌라도 불쌍히 여겨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남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관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긍휼없는 심판을 받게 된다(약2:13 참 조).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면 되겠느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다.  또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여섯째는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이다.  마음이 청결해 지려면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벗어버리고 중생한 영혼을 따라 살아야 한다.  마음이 부패성(욕심)을 따라 살 때에는 더럽고 악한 마음이 된다.  그러나 마음이 성령과 중생한 영혼을 따라 살 때에는 청결하고 거룩하게 되어 그 마음을 통하여서 하나님과 사귀게 되고 하나님 을 볼 수 있다.  신자의 마음과 육신이 중생한 영혼에게 이용될 수도 있고 육체의 부패성에 이용될 수도 있다.  중생한 영혼에게 이용될 때에는 의의 병기가 되고 부패성(죄성)에게 이용될 때에는 불의의 병기가 된다(롬6:15-19참조).

중생한 영혼에는 언제나 성령이 내재한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혼이 마음을 사용하면 청결한 마음이 된다.  성경에는 마음이 두 가지 상태로 표현되어 있다.  마음이 전적으로 부패하였다는 말씀도 있고(롬7:18, 렘17:9, 막7:21-23 참조), 하나님을 사모하는 좋은 마음으로도 표현되어 있다(롬7:25, 마13:34-35, 왕상8:18,23 참조).  중생한 영이 마음을 사용할 때에는 선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사모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만 좋아하며 그 뜻대로 살려고 한다(롬7:22).  

반대로 부패성이 마음을 이용하면 악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멀리하여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려면 마음이 항상 중생한 영에 붙들려서 중생한 영에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마음이 된다.

 

.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일곱째는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이다.  화평케하는 자란 ①하나님과 화평하고 ②자기 마음에 화평을 누리고 ③다른 사람과 화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자기 마음이 화평을 누리고 다른 사람과 화평하여야 복이 있다.  성도는 모든 일을 화평으로 해결해야 한다.  불의를 당하고 속는 한이 있더라도 화평한 가운데 모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힘써야 한다(고전6:7 참조).  사람이 악한 마음을 쓰면 한없이 악하여지고 선한 마음으로 나 아가면 아무리 억울하고 불의를 당한 경우에라도 화평을 이룰 수가 있다.  마귀는 육신의 부패성(정욕)을 충동시켜 마음에서 화평을 제하여 분노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들려고 한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이 성령과 중생한 영혼을 따라 가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중생한 영인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내 마음을 붙들고 사용하면 무슨 일에나 화평을 이루며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성령과 중생한 영 에게 이용되는 마음은 항상 평됨하고 다른 사람과도 화평을 이루기를 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행동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일컬음을 받게 된다.  만일 반대로 불화하는 자가 되면 화가 있나니 마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어떤 사람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고통 가운데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선하게 쓰고 하나님을 순종해 나가면 마침내 하나님이 건져주시게 된다.

 

. 5:10-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여덟째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복이다.  의를 이루어 나아가려면 반드시 핍박이 오게 되어 있다.  언제나 예수를 바로 믿으려고 하면 여러 가지로 비방과 핍박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핍박이 올 때에 기뻐해야 한다.  의로 인해 핍박이 오는 것은 바로 믿는 증거이다.

서 있는 나무는 바람을 맞게 되나 누워 있는 나무는 바람을 맞지 않는다.  태풍 맞는 것이 싫다고 부러져 누워 있는 나무는 잠시는 평안할지 모르지만 태풍이 지나가면 말라죽고 만다.  바로 서서 태풍을 견디어 낸 나무는 고난이 많았으나 태풍이 그치고 해가 나오면 더 싱싱하게 자라나고 뿌리가 더 깊이 박힌다.  성도에게 핍박이 오는 것은 믿음이 산 증거이고, 의의 길을 걷는 증거이다.  핍박을 믿음으로 통과하면 연단이 되어 더 좋은 인격이 만들어진다.

전에 있던 모든 선지자들도 핍박을 받았고 거짓말로 비방을 당한 것이다.  성도가 핍박을 받게 되면 선지자가 걸어간 길을 걸어가는 줄 알고 기쁘게 받으며 끝까지 참고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한다.  주님과 의를 위해 핍박을 달게 받으면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크다.  그러므로 의를 위해 핍박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二. 신자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13-16)

 

.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신자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되라 하지 아니하고 신자는 이미 세상에 대해서 소금이 되어 있다고 했다.  \"소금\"은, 인간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 불가결한 물질이다.  그처럼 성도는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이다.  소금이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 신자가 없어서는 안되게 되어 있다.  소금이 아주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사람들이 소금 가마니의 대접은 잘 해 주지 않는다.  성도가 소금 가마니처럼 대접은 잘 받지 못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소금의 생명은 짠 데 있다.  그러므로 맛 잃은 소금은 소금이 아니요 아무 소용이 없다.

\"짠 소금\"은 믿음을 지키는 성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자기 인격을 만들어야 한다.  말씀을 지키는 성도는 짠 소금이 된 것이다.  소금은 어디서나 짠 맛을 낸다.  성도는 항상 변함이 없고 진실해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항상 진실하게 된다.  이 세상은 거짓과 외식이 가득하고 음모와 술수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에 진실한 사람이 요구되고 있다.  사회 어느 곳에서나 진실한 사람을 찾아 귀한 일을 맡기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가 무척 힘들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서 있는 성도는 언제나 양심을 쓰고 진실하여 세상의 소금과 같은 존재이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윤리도 있고, 사람에게 대한 윤리도 있다.

십계명 중 1∼4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며 5∼10계명은 사람에 대한 계명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바로 하고, 사람 앞에서도 바로 하게 된다.  신자가 소금의 역할을 다하려면 하나님께 바로 할 뿐 아니라 사람에게 대하여서도 바로 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참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사람에 대하여도 마땅히 자기가 해야 할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 참 성도이다.  성도는 왕, 관리, 부모, 자녀, 윗사람, 형제, 동료, 아랫사람에 대하여 자기의 도리를 다 해야 한다.  또 직무에 대하여도 책임을 바로 해야 된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가 있다가 총리가 되었으나 항상 하나님 앞에 바로 하였고, 바벨론의 왕에게도 충성되어 아무 흠을 찾을 수 없었다.  요셉도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 나중에는 총리가 되었는데 종으로 있을 때나 총리로 있을 때나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바로 하고, 사람 앞에서도 바로 하였다.  요셉이 왕에게 바로 하고, 부모 형제에게도 바로 하고, 백성에게도 바로 하였다.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을 살리고 자기부모 형제를 살려내었다.  요셉은 애굽에 있어서나 이스라엘에 있어서나 항상 없어서는 안될 소금이었다.  이것이 맛을 잃지 않은 소금이다.

소금의 특징은 ① 맛을 내고, ② 부패를 방지하고, ③ 변하지 않게 하며, ④ 생명을 보존하고 치료하는데 사용된다.  소금은 형체가 녹아져서 보이지 않아야 짠맛을 낸다.  성도가 이 소금의 특징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면 맛 잃은 소금이 되고 만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① 자신에게는 맛이 없어지고(신앙의 맛이 없어짐), ② 하나님은 내어버리고, ③ 세상사람은 발로 밟게 된다.

맛이 없어졌다는 것은 신앙의 생명력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사람은 성경을 보아도 맛이 없고 기도를 해도 맛이 없고 다만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게 된다.  이쯤 되면 멀지 알아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세상 사람들이 발로 밟게 될 것이다.

성도가 맛을 잃게 되는 것은 믿음을 지키지 않는 까닭이다.  여덟 가지 복된 성품을 잃어버리고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면서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는 맛 잃은 소금이요 하나님께서 버리시게 된다.  세상 사람들도 \"저 따위가 다 예수 믿는 사람이냐?\" 하여 조롱하고 발로 밟게 된다.  성도가 소금의 본분을 다하려면 자신이 희생되어야 한다.  소금이 녹아져서 자신의 형태가 없어져야 맛을 내고 소금이 녹지 않으면 짠맛을 내지 못한다.

우리 성도들도 이와 같이 자신을 온전히 회생하여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사명과 사람에 대한 자기의 도리를 충성되이 해나가야 한다.  소금노릇을 제대로 하는 성도는 하나님에게도 유익한 사람이고 사람에게도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된다.  성도는 이미 소금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본분(맛)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된다.  성도가 말씀을 지키고 믿음으로 살기만 하면 가는 곳마다 맛을 내고 무슨 일에나 희생하고 충성하여 하나님께 영장을 돌리게 된다.  요셉은 가는 곳마다 소금노릇을 잘 하였고 그리하여 가는 곳마다 가장 필요하고 유익한 존재가 되었다.

 

 .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예수 믿는 사람은 벌써 세상의 빛이 된 것이다.  성도는 빛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였으며, 영혼이 중생하여 빛 되신 새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자는 세상의 빛이 되어 있는데 그 빛을 숨기지 못한다.  그 빛은 끊임없이 세상을 비추어 나가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빛이 세상에 비추어 나가면 하나님이 증거되고 진리가 전파되며 죄가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흑암에 거하는 사람들은 빛을 부끄러워하고 거절하며 어두운 곳에 머물기를 좋아한다(요3:19-20 참조).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그곳에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 나갔다.  또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갔으나 요셉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빛이 비치어 나가므로 어두운 곳이 환하게 밝아졌다.  성도에게서 비치어 나가는 빛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많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되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믿는 사람은 산 위에 있는 동네와 같아서 그 빛을 세상에 비추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성도는 진리의 역사와 영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로 빛을 비추어 나가게 되어 있다(빌2:15-16 참조).  이것을 마치 등불을 등경 위에 놓고 집안 사람에게 비치게 하는 것같이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비치게 되어 있다.  마태복음 10:26에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성도에게서 나가는 빛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그 분위기와 환경을 통하여 비칠 수 있는 범위까지 비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도가 그 빛을 말 아래 두면 비취어 나가지 못한다.

말 아래 두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성도가 육신의 욕심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육신의 욕심대로 살면 빛을 비추어 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모든 정욕, 당파, 탐욕, 이기주의, 쟁투, 시기, 분쟁, 우상숭배, 술수, 인본주의는 모두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 때문에  빛이 가리워져서 비취지 못하고 있다.  성도가 말씀의 인도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중생한 영혼인 새 사람으로 살면 반드시 빛이 비취어 나가게 된다.  이 빛은 아무도 막을 자가 없고 점점 널리 비취어 나갈 것이다.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엡5:9 참조).   빛을 비추어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  성도는 착한 열매를 많이 맺혀 어디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의의 열매를 많이 맺히어 하나님께 영광을 많이 돌리는 자는 천국에서 상급이 클 것이다.

 

三. 율법의 성취(律法咸就)(17-20)

 

.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며 율법을 완성시키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율법이나 선지자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율법서에는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제물로 드려서 속죄제사를 드렸다.  그것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피흘려 대속하여 주실 것을 예표하는 그림자였다(히10:1, 골2:16-17 참조).  구약에 있어서는 그림자로만 나타났으나 신약에는 그 실체되시는 그리스도가 오셔서 속죄의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와 구원을 이루어 주신 것이다.  그림자만으로는 불완전한 것이 실체가 되는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완전해졌다.  

구약의 모든 율법은 그리스도에게서 완성이 되었다.  신구약성경을 다 지키시고 모든 계명을 다 지킨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다.  완전한 의를 이루어서 성도에게 주시려고 친히 다 지키셨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시켰다 함은 ① 예수님의 그림자인 구약의 제도, 의식, 의문에 대한 실체로 오신 일 ② 예수님이 피 흘려서 완전한 속죄제를 드려 주신 일 ③ 하나님의 모든 말씀(신구약 성경)을 온전히 순종하여 완전한 의를 이루신 일을 말한다.

 

. 5:17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신약시대에는 구약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신약시대에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으나 그것은 구약의 의식(儀式)과 의문(儀文)에 속한 제도들이다.  그것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도말하셨다.

골로새서 2:14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의문과 제도 속에 내포되어 있는 진리는 신약시대에도 버려서는 안되고 지켜야 한다.  구약의의문과 의식은 도말했으나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진리는 영원불변의 진리요 하나님의 뜻이므로 오늘날도 지켜야 한다.

예를 들면 소나 양으로 제사하는 그 의식은 도말했으나 그 의식이 내포하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레위기 11장에 성도는 쪽발 갈라진 짐승만 먹고 비늘있는 고기만 먹으라고 했는데 그 의식은 도말했으나 거기에 내포한 진리는 남아있으니 곧 성도는 구별된 생활을(쪽발 갈라진 것) 할 것과 전신갑주(비늘있는 것)를 입으라는 뜻이다(엡6:11-13 참조).

의식이 내포한 진리는 영원히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율법이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성경을 바로 깨달아 바로 믿겠다는 사람을 율법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율법주의란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주의이다.  예를 들면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율법주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벌써 구원을 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율법주의가 아니고 성도의 당연한 의무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  성도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징계하신다.  성도가 성경대로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받게 된다(신28:1-68 참조).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버리면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그러므로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내 말을 듣고 행치 않는 자는 입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하셨다(마7:24-26 참조).

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으니(약2:26 참조), 성경대로 바르게 살려는 사람을 율법주의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말이다.  천지가 없어진다고 하여도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라고 다 이루어질 것이니 그 말씀을 바로 깨닫고 바로 믿고 바로 순종해 나가는 성도는 그 말씀에 허락한 복은 다 받을 것이요 그 말씀을 버리는 자는 그 말씀에 기록된 저주를 받을 것이다.

 

.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와 같이 가르치면 천국에서 작은 자가 된다.  그러나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  구원은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만 얻게 된다.  성도의 행위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작은 자가 되는 데에만 관계가 있다.  성경은 분명히 천국에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고 말했다.  이 말씀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천당에 가면 누구나 다 같다고 하는 것은 이 말씀에 위배된다.  성경 말씀을 많이 행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큰 자가 되고 예수를 믿어도 성경 말씀을 순종한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천국에는 갈찌라도 천국에서 작은 자가 되는 것이다.  천국에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면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천국에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어야 공평한 것이다.  사도바울은 일생동안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많은 고난과 환란을 받으면서 믿음을 지켰는데 이러한 사도바울과 일생동안 죄만 짓다가 죽기 직전에 겨우 회개하고 죽은 사람이 천국에서 똑 같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공평치 못하다.

벨콩씨는 지옥에도 차등이 있다고 하였다.  죄악에 따라서 좀더 고통이 심한 사람이 있고 고통이 조금 덜한 사람이 있다(마11:21-24 참조).

천국에서 순교자의 반열은 아주 영광스러운 반열이다.  그 다음에 주를 위하여 고난을 많이 받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많이 하여 자기를 많이 만든 사람은 그만큼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는다.  예수를 믿었으나 성경 말씀대로 많이 행하지 못한 사람은 예수를 믿었으므로 천국에는 가지만 말씀을 행한 것이 별로 없고 인격이 만들어진 것이 없으므로 그만큼 영광을 다 누리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많이 행하고 주를 위해 고난을 맏이 받은 사람이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다.  면류관에도 종류가 많다.

① 영광의 면류관 (벧전5:4).

② 자랑의 면류관 (살전2:19).

③ 의의 면류관 (딤후4:8).

④ 금 면류관 (계14:14).

⑤ 생명의 면류관 (계2:10).

⑥ 즐거운 면류관 (빌4:1).

⑦ 썩지 않을 면류관 (고전9:25)이 있다고 하였다.  말씀을 지키어 영이 자라난 사람(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사람)은 자라난 그대로 천국에 가고 영이 자라나지 못한 사람도 그대로 천국에 갔다.  그러므로 성도가 세상에 사는 동안 영이 자라나야 한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인에게 너희가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하였다(고전9:1 참조).

어린아이는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한다.  자라난 사람은 장성한 자의 불량에 이르러 단단한 식물을 먹고 의의 말씀을 분별하는 자이다(히5:13-14참조).  

우리의 영혼이 날마다 자라나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며 또 그리로 가르치는 사람은 그 영이 점점 자라난다.  에베소서 4:15에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성도가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말씀대로 힘써 행하여 자라나야 된다.

 

.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세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바리새인들은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렸다.  또 토색하지 아니하고, 음란하지 아니하여 외부적 행위 면으로 보면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의는 자기가 참된 믿음이 없이 행한 의이고 신자의 의는 하나님의 의를 받은 의이니 곧 예수님이 행하신 의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의, 즉 하나님의 의를 받지 못하면 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뜻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자기가 행한 의이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롬9:30-33, 10:3 참조).

예수님이 행한 의를 받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신구약성경을 다 지키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여 완전한 의를 이루어 놓으셨는데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그 의를  받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

 

四. 5대 금지(21-42)

 

1. 살인(21-26)

 

. 5:21-22  옛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 말씀이 여러 번 나온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잘못 가르치는 말을 너희가 들었다는 뜻이다.  새 번역 성경에는 \"구약에는 그렇게 하였으나\"로 되어 있다. 이것은 번역을 잘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구약성경과 반대로 가르친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구약성경을 무시하고 새로운 법을 낸 것이 아니다.

바리새인들이 구약을 잘못 가르쳤으나 예수님은 구약을 바르게 아시고 구약성경의 참뜻을 바로 가르치려는 것이다.  \"라가\"라는 말은 히브리인의 욕설로 바보라는 말과 비슷한 뜻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노하였다가 그 다음에는 라가라 하는 욕설로 나오게 되고 그 다음에는 미련한 놈이라고 한다.  \"미련한 놈\"이라는 말은 원래 \"하나님을 모르는 놈\" 또는 \"하나님과 부모에게 반항하는 자\"라는 뜻이 있다. 이것은 \"라가\"라는 욕보다 좀 더 큰 욕이다.  다른 사람에게 노하지 말고, 욕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아주 못된 사람으로 몰아 부치지 말라는 뜻이다.  노하여 혈기가 나오고, 남을 욕하는 상태에 있으면 그것은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양심이 편안치 않고, 기도가 안되고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럽다.

공회 산헤드린 공의회를 말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서 매 지파마다 6명씩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으로 구성된 최고 재판부이다.  \"라가\"라고 욕을 하면 이 최고 재판부에 넘겨져 판결을 받아야 할 만큼 큰 죄가 된다는 뜻이다.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였다.   이 지옥불은 심령 상태가 천국을 빼앗겨 화평을 잃고 지옥과 같은 고통과 흑암을 만난 것을 말한다.

요한일서 3:15에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만 살인이라고 가르쳤으나 실제로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이다.  악독한 말로 욕하지 않더라도 노하거나 속으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다.  다른 사람이 못된 행실을 하여 미워 할만한 사정이 있을찌라도 불쌍히 여기고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면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요한일서 3:14에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한다\"고 하였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어두움 가운데 거하는 자요 사망에 거하는 자이다.  믿음의 세계는 사랑의 세계요 빛의 세계이며 영의 세계이다.  사랑과 빛과 영의 세계는 하나이다.  사랑을 버리면 빛을 버릴 것이요, 생명을 버린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랑을 버린 자는 사망 가운데 빠지는 것이다.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자기 영이 살고, 생명이 있고, 빛 가운데 거하게 된다.  남을 미워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점점 흑암이 들어오고 생명의 역사가 끊어진다.

이기선 목사님은 다른 사람이 잘못하여 밉게 보일 때에도 \"하나님께서 내 꼴을 보시고 참으시는데 나도 참자\"고 하셨다.  성도는 무조건 참고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실 때 내가 잘해서 사랑한 것이 아니다.  사랑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무조건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남을 미워할 만한 일이 있을 때에도 참고, 그 사람을 더욱 사랑하려고 힘써야 한다.  무슨 혐의가 있거든 서로 풀고 사랑하기를 힘써야 한다.  사랑을 계속하면 악한 사람도 나중에는 깨닫고 돌이켜 변화될 날이 온다.

 

.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먼저 형제와 화목을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라고 하였다.  할 수 있는 대로 형제끼리 화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서로 불화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며 믿음의 세계가 아니다.  화목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지옥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은 화목하려고 하지만 상대방이 거절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에도 참고 그 사람을 용납하고 긍휼히 여기며 될 수 있는 대로 화목하려고 힘을 써서 진정으로 사랑하면 자신의 마음은 벌써 화목을 이룬 것이다. 그 후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신다.

 

.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형제와 송사할 일이 있을 때에도 할 수 있는 대로 화목하여야 한다.  송사하다가 두 집이 모두 망한 사람이 많다.  예수 믿는 사람끼리는 불신 법정에 가서 송사하지 말라고 하였다(고전6:4-7 참조).  믿지 않는 사람과는 부득이한 경우에 송사할 수도 있으나 할 수 있는 데까지 화목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범죄하는 과정에서 죄짓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 있다.

송사하는 자 양심을 가리킨다.  로마서 2:15에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하였다.  죄를 지으려고 할 때에 양심이 송사(반대)를 한다.

길에 있을 때 아직 죄는 짓지 않았을찌라도 죄를 지으려는 길로 걸어갈 때에 양심이 가책을 하여 송사를 한다.  그리하여 죄를 지으려고 할 때는 마음이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게 된다.  그때에 급히 사화하고 그만두면 평안할 것인데 양심의 송사를 무시하고 끝까지 죄짓는 길로 걸어가면 그 송사하는 자가 재판관에게 넘겨준다.

재판관 율법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19:48에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했다 (시51:4 참조).  재판관은 관예에게 내어 준다.

관예 죄의 세력을 가리킨다.  시편 32:3-4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려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맥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고 하였다.  여기에 보면 죄의 세력이 강하게 눌러서 진액이 말랐다고 했다.

옥에 가둘까  \"옥\"은 영적 흑암을 가리킨다.  이사야 42:22에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불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라고 하였다.  성도가 범죄하면 영적 흑암을 만나 고통을 당하며 영의 자유가 없어진다.  이것이 감옥이다.  죄를 짓기 전에는 율법(말씀)이 가만히 놓아두지만 일단 죄를 짓게 되면 율법이 \"너는 죄인이다\"하고 정죄한다.  죄짓기 전에는 율법이 아무 힘이 없어 보이나 죄지은 사람에게는 율법이 매우 힘있게 정죄하여 고통을 준다(계16:8 참조).

세상의 법도 그러하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으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그 법이 큰 힘으로 정죄하여 징벌한다.  성도가 죄를 지으면 율법(말씀)이 정죄하여 죄의 세력에게 내어 준다.  일단 율법의 정죄를 받으면 죄악의 세력에 눌리워 벗어나지 못하고 죄의 종이 되는 것이다. 죄의 종이 되면 영적 흑암을 만나고 영적 자유를 잃게 된다.

 

.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호리 헬라어의 \"고드란테스\"( )로 로마 동전(銅錢)의 명칭이며 가장 적은 단위와 화패이다. 범죄하여 영적 흑암과 부자유와 고통에 빠진 자는 호리라도 남김없이 모두 갚아야 그 감옥에서 나온다. \"호리라도 남김없이 갚는다\"는 것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것을 말한다.

죄를 범하여 영적 흑암을 만났을 때 회개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회개를 말로만 해서는 안되고 죄를 다 갚도록 해야 한다.  호리라도 남김없이 회개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자기가 죄지은 것만큼 통회를 해야 한다.  죄지은 것을 원통히 생각하고 다시는 죽으면 죽었지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죄 값을 갚기 위해서는 자기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회개하면 죄의 영향력이 호리라도 남김없이 완전히 빠져나가게 된다.  이것은 마치 요나가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이 큰 풍랑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 아노라\"(욘1:12) 하며 회개한 것과 같다.

가령 남의 소를 도적질하여 잡아먹고 나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하고 그 다음에 또 한 마리 도적질하여 잡아먹고 또 \"하나님 잘못했습니다\"하는 식의 회개는 회개가 아니다.  남의 소를 도적질하여 잡아먹은 사람이 호리도 남김없이 회개하려면 그 죄를 깨닫고 죄지은 것을 원통히 생각하여 가능한 한 그 소의 값을 주인에게 다 갚아 주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소의 값을 갚아 줄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죄 값으로 어떠한 형벌이라도 달게 받으려는 각오를 하고 자기 죄를 원통히 여겨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아가야 한다.

다윗은 한번 범죄한 것 때문에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참조)라고 하였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하였는데 그 죄를 원통히 생각하여 침상이 뜨고 요가 젖도록 회개를 한 것이다.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는 회개를 해야 영적  흑암에서 벗어져 나오고, 영이 해방을 받아 자유를 얻게 된다.  이것이 감옥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 18:24-27에 보면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있는데 갚을 것이 없는지라 그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고 하였다.  일만 달란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소유를 다 팔아서 갚으라는 것이다.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하고 다 팔아서 갚으려는 결심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그 주인이 불쌍히 여겨서 탕감하여 주었다.  여기에서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빚진 것\"은 죄 지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몸과 처와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갚아야 마땅하다.  호리라도 남김없는 회개를 하려면 모든 것을 다 희생할 각오를 하여야 한다.  이것이 참 회개이다.  참으로 회개한 사람은 또 다시 같은 죄 가운데 잘 빠지지  않는다.  실수하여 죄를 범하였더라도 호리도 남김없이 다 갚고 죄에서 완전히 돌이킨 사람은 영적 흑암과 죄악의 권세에서 벗어져 나올 수가 있다.  진정한 회개는 얼마나 힘이 드는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뼈가 다 부서지고 진액이 다 마르도록 힘을 써서 회개하여야 한다(시32:3-4 참조).

호리도 남김없이 회개를 하면 죄를 짓지 않았을 때와 같이 영이 다시 자유를 누리고 생명을 얻어 죄의 권세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남을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호리도 남김없이 다 갚는 회개를 하였다면 원수를 만나도 마음에서 진정한 사랑이 나오게 된다.

 

2. 간 음(27-30)

 

. 5:27-28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자라고 하였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게 되는 것은 그 전에 이미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 영적 간음을 하였기 때문에 음욕이 들어왔다는 뜻이다.  이것이 이미 간음한 것이다.

마태복음 12:39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하나님을 떠난 세대라는 것이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여자를 볼 때에 음욕이 들어온다.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사귀고 있으면 음란한 마음이 들어오지 못한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할 성도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요 영적으로 간음한 것이다.  그러므로 음란한 마음을 회개하기 전에 먼저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자기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더러운 마음이 들어왔다.  먼저 자기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부터 회개하고 그 다음에 음란한 마음이 들어온 것에 대하여 회개하여야 한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면 여러 가지로 죄지을 생각이 들어온다.

마태복음 12:43-45에는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면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다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하고 하였다.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지 아니하면 일곱 마귀가 들어오는 줄 알아야 한다.

음란한 생각이 들어오지 않게 하려면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과 같이 살면 죄가 들어오지 못하는데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면 죄를 아무리 막으려고 하여도 막을 수가 없다.  그것은 마귀의 힘이 인간의 힘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않으려고 힘쓰기 전에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으로 살기를 힘써야 한다.  죄가 마음에 들어오면 먼저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알아 원통히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서 죄를 몰아내야 한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이 시키시는 대로 순종하며 자신을 위하지 않고 주를 위하여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러 모든 죄를 물리칠 수가 있다.

 

. 5:29-30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죄를 지으면 실제로 눈을 빼고 손을 찍으라는 말이 아니다.  눈이나 손과 같이 필요한 물건이나 사람이나 직장이라고 할찌라도 그 것 때문에 범죄하게 된다고 하면 그것을 잘라버리고 빼내 버리면 서라도 죄를 범하지 않아야 된다는 말이다.  돈이 잘 벌리고 자기의 팔과 같이 귀중한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업 때문에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사업을 버려야 한다.  아무리 보수가 좋고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직장이라고 하여도 그 직장 때문에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게 된다면 그 직장을 버려야 한다.

또 다른 사람이 자기를 죄 짓는 데로 끌고 가는 경우에는 그 사람에게 얽매여서 죄를 짓지 말고 아무리 다정한 친구나 친척 부모일찌라도 인정을 끊어 버리고 성경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인정에 끌려서 죄인줄 알면서도 질질 끌려가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지옥 불과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된다.

 

3. 이 혼(31-32)

 

. 5:31-32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바리새인들은 이혼 증서만 써 주면 누구나 이혼하여도 가하다고 잘못 가르쳤다.

신명기 24:1에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라고 하였다.  바리새인들이 \"수치 되는 일\"은 빼어 버리고 \"누구든지 이혼 증서만 써 주면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잘못 가르친 것이다.  \"수치 되는 일\"은 간음한 것과 같은 것들을 말한다.

성경에서 부부계약이 해약되는 경우는 첫째, 남편이나 아내 중 한편이 죽었을 때이다(롬7:2참조).  한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벗어나 자유하계 된다.

둘째, 신앙문제 때문에 쫓겨날 때이다(고전7:15참조).  남편이 아내에게 또는 아내가 남편에게 진리를 양보하여 신앙을 버리면 살고 안 버리면 이혼하자고 강요할 때에는 신앙이 생명이므로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이혼할 수 있다.

셋째, 예레미야 29:4-6에 보면 유대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 잡쳐가서 70년 동안 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포로로 잡혀갈 때에 부부가 서로 헤어진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벨론에서 사는 동안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낳고 아들이나 딸들도 결혼을 시켜서 생산하게 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으면서 법관이나 교회가 도저히 다시 합하게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다시 혼인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4장 6항에는 \"남자 편에 무슨 부정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을 조사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한 사람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간음이 아니라도 교회나 법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고의적인 부부동서 거절은 결혼의 약속을 취소할 충분한 원인이 된다\"(마19:18-19, 고전7:15, 마19:6)고 하였다.

교회정치문답 조례 66문답에는「음행이 있거나 오랫동안 집을 버리고 멀리 가서 관리의 처분으로 부합(復合)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이혼하는 것이 가하나, 구타하는 것이나 성격이 서로 맞지 아니하는 것이나 동거하지 아니하는 일 따위는 하나님 앞에서 합당히 이혼할 이유가 되지 못하며, 또한 음행이 있는가 의심하는 것으로는 이혼서를 주지 못하겠고 실범한 증거가 확실하여야 이혼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전쟁이 난다든지 불의의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부부가 갈라져 있으면서 다시 교회나 법이 합할  수가 없을 경우 부부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말이다.

넷째, 남편이나 아내가 음행 죄를 범하였을 경우에 이혼할 수 가 있다(마5:32 참조).  이상의 조건들 외에는 이혼하는 것을 성경이 금한다.  성격이 맞지 않다거나 남편이 술주정을 한다거나 핍박을 한다고 하여서 이혼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4. 맹 세(33-37)

 

. 5:33-36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맹세하지 말라는 이유는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므로 하나님이 해 놓으신 모든 것을 인간이 하나라도 변동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의 머리털 하나도 희고 검게 할 수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해 놓은 대로 있고 사람이 어떻게도 할 수 없는데 사람이 맹세를 한다고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성도는 겸손히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대로,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그러므로 맹세는 아무 소용이 없고 할 필요도 없다.

 

.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쫓아 나느니라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해야 한다.  맹세하여 놓은 것 때문에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지 못하거나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면 그 맹세 가 우상이 된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큰 우상이 하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체면이나 물질적인 이권이나 그 외의 어떤 것에 얽매여서 양심을 바로 쓰지 못하면 그것이 악이다.  맹세한 것 때문에 신앙양심을 지키지 못한다면 맹세가 참으로 큰 해독이다. \"옳은 것을 옳다\"못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못하면 그것은 악으로 쫓아 나는 것이다.  맹세를 하지 않으면 맹세 때문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옳은 것만 따라가면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여 떠나야 영이 산다. 옳지 않은 것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마귀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힘있게 끊어 버리고 옳은 것을 따라가야 한다.  신자의 말 한마디가 맹세한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맹세할 필요도 없고 맹세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옳은 것이 큰 것이지 맹세가 큰 것이 아니다.  영이 사는 것이 큰 것이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5. 보 수(38-42)

 

.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이 네 눈을 찔러 소경이 되게 했으면 그 사람의 눈도 찔러서 소경이 되게 하고 어떤 사람이 네 손을 잘랐으면 너도 그 사람의 손을 자르라고 가르쳤다.  그것은 잘못 가르친 것이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출21:24, 신19:18 참조)는 말은 재판장이 쓰는 법이다.  재판할 때에 죄를 지은 것만큼 갚아 주고 공정한 재판을 하라는 뜻이다.  일반적인 교훈은 그것이 아니다.  구약에도 \"원수를 사랑하라\"(레19:18)고 하였다.

바리새인들이 이 사랑의 법은 가르치지 않고 재판할 때 쓰는 법을 일상 생활법으로 잘못 가르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보복하는 생활을 하게 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약의 본 뜻을 바르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성도가  고요하고 평온한 심령으로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영이 날마다 살아 나아가는 생활을 하면 악한 자라도 대적하지 않고 원수도 사랑하게 된다.

 

.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오른편 뺨을 맞았더라도 평안한 마음으로 왼편도 돌려대야 한다.  그래야 믿음의 손해를 보지 않고 마음에 화평을 누리고 하나님과의 교통을 유지할 수가 있다.  좌우 뺨을 맞는 것은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는 일이다.  이렇게 인격적인 모욕을 당해도 내 속에 있는 생명 있는 신앙 즉 하나님과의 교통하는 영적 생활을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어떠한 일을 당할찌라도 이 영적 생활만 빼앗기지 않으면 승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약자의 도덕이 아니고 강자의 도덕이다.

 

. 5: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누가 6:29에는 옷을 빼앗는 자라고 했다.  악한 자가 와서 송사하여 속옷을 빼앗으려고 할 때에 같이 싸우면 마음의 화평과 신령한 영적 생활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마귀는 성공한 것이고 나는 실패한 것이다.

속옷과 겉옷은 물질문제이다.  즉 속옷과 겉옷은 자기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이며 자기 몸을 가리우기 위해 마지막까지 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까지 내놓을찌언정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적 생명의 역사는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영적 생명의 역사가 그 속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다른 것도 더하여 주신다.  이삭이 우물을 판 다음에 아비멜렉의 종들이 와서 빼앗으려고 할 때에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가 또 우물을 팠다.   그런데 그들이 또 와서 빼앗으려고 하므로 다시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팠다.  세 번째 판 우물은 빼앗지 않았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백 배나 더 주었다.  악한 자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도가 있다.  무한정으로 빼앗지는 못한다. 물질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서로 싸우고 다투며 물고 찢어서는 안 된다.  물고 찢으면 피차가 다 망한다(갈5:15 참조).

 

.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는 것은 억지로 일을 시키어 인권을 유린하는 인권문제이다.  자기의 인권이 유린당하는 한이 있어도 생명 있는 신앙생활(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며 성결을 입어 나가는 생활)이 더 중요하므로 그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한다.  어떤 사람은 이 성경을 보고 기독교는 약자의 도라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약자의 도가 아니고 강자의 도이다.  적은 것을 희생하고 더 귀하고 크고 영원한 것을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육신의 것을 빼앗겨도 신령하고 영원한 영의 것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얼마나 지혜있고 강한 자인가!  자기의 인권을 유린당하여도 영적인 생활이 계속되어 나간다면 유익이 많다.  믿는 일이 중요하고 자기 영이 생명의 길을 걷고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는 자는 항상 주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행20:35 참조).  우리 성도는 물질면이나 육신적으로는 희생을 당하여도 영적인 면과 영원히 누릴 내세의 것 즉 그 나라의 것에 대해서는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五. 완전하라(43-48)

 

. 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본 정신을 어기어 원수를 미워하라고 잘못 가르쳤다.  레위기 19:18에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본정신대로 가르치셨다.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잘 되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믿음을 쓰는 것이요 성령을 따라가는 것이요 영혼이 사는 길이다.

로마서 12:19에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였으니 자기 자신이 갚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원수를 사랑해야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도 못박은 무리들을 위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다.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하나님께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다.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하다 기도하여 주는 스데반의 마음은 천국이다.  그리하여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났다.  원수에 대하여 미워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성령의 역사가 떠나고 흑암과 고통이 온다.

 

.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많이 이루어진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많이 받을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누구와 원한이 맺힌 것이 있으면 다 풀어놓고 원수를 사랑하며 위하여 기도하여 주는 사람이 되어야 자기 속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있게 된다.  그 때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어 항상 기쁨이 충만하고 즐거움이 넘치게 되며 마음이 평안하다.  또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이 점점 이루어지게 된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을 차별하지 않고 해를 비춰 주시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차별하지 않고 비를 내려 주신다.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햇빛과 비를 주시는 넓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서 성도들도 이 같은 사랑을 하여야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이 된다.

 

. 5:46-47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자기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고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믿음을 쓰는 것이 아니며 성령과 중생한 영 을 따라 사는 생활이 아니므로 불신자와 같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게 되라는 것이 주의 명령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온전을 영원히 배워 나가야 한다.  하나님과 같이 다 온전하여진 자는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자가 자기는 온전하여 범죄하지 않는다 하면 거짓말하는 자요 잘못된 자이다(요일1:8-10, 빌3:12 참조).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온전을 목표로 하여 온전하여질 소망을 가지고 계속 달음박질하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 신자가 일생동만 하여야 할 일이다.  하나님의 온전을 닮아진 것만큼 인격도 크고 영광도 크고 상급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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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6장

제 6 장  의 무(義務)

 

(대  지)

一. 구제(1-4)

二. 기도(5-8)

三. 주기도(9-15)

四 금식(16-18)

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19-24)

六. 염려하지 말라(25-32)

七. 의를 구하라(33-34)

 

(본문강해)

 

一.구 제(1-4)

 

.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륵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의를 행할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여야 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면 사람 앞에서 사는 자요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자이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에 상을 받지 못한다.

 

.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구제하는 목적은 하나님 앞에 바로 하기 위해서 구제하는 것이다.  즉 구제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해야 된다.  만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화가 미칠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해야 되고, 사람 앞에 자기를 나타내려고 구제를 하면 안 된다.

고린도전서 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하였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고 만일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화가 미칠까봐 하는 것이다.

구제하는 것도 이러한 정신으로 해야한다.  이러한 정신으로 구제를 한다고 하면 사람 앞에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고 칭찬 받을 것도 없다.  자기의 생각대로 다른 사람을 동정하느라고 구제하는 사람은 사람 앞에서는 칭찬을 받을 수 있으나 하나님 앞에는 칭찬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한 것이 아니고 자기 생각대로 했고,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상은 이미 사람에게서 다 받은 것이다.  또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한 것이 아니고 껍데기로만 한 것이기 때문에 외식이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서 한 것이 아니면 하나님에게서는 아무 상도 받지 못한다.

 

.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구제할 때에 은밀하게 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갚아 주신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심령에 매인 바 되어 구제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할까봐 두려워하며 하나님께만 충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을 위해서 구제하는 사람은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사용하므로 하나님 앞에 의를 이루는 것이다.

연보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해야 한다.  \"얼마를 연보해야 하나님의 뜻에 꼭 맞을까?\" 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해야 한다.  만일 연보를 사람 앞에 보이려고 한다거나 사람 앞에서 부득이 함으로 하게 된다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사람을 위한 연보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연보할 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빌4:18 참조)

 

.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은밀하게 하는 구제는 영적 골방에 들어가서 성령과 중생한 영의 인도를 받아서 한 구제이다.  이렇게 한 구제는 하나님이 보시고 신령한 것으로 더 많이 갚아 주신다.  그러므로 구제한 자는 영적으로 더욱 부요해진다.

 

二. 기 도(5-8)

 

.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은 외식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인도와 자기 심령의 역사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와 심령으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영적 생활을 하는 태도 즉 진실하여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는 기도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으로 기도한 것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으므로 하나님 앞에는 받을 것이 없다.

 

.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 골방은 영적 세계를 의미한다.  \"네 골방\"이라고 한 것은 자기의 중생한 영의 세계를 말하는데 그 중생한 영에는 언제나 성령과 진리가 내재(內在)한다.  그 영적 세계는 모든 현상 세계와 복잡 다단한 잡념의 세계를 초월하여 자기 속 깊은 곳에서 성령에 의해 발견된다.  그 세계를 찾아서 기도하여야 하나님과 교통하고 영의 역사가 있게 된다.

문을 닫고 세상의 것이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자기 마음이 세상에 나가지 못하도록 늘 자기 마음을 지키라는 뜻이다(잠4:23 참조).  기도할 때에 은밀한 자기 골방을 찾지 못하면 기도가 되지 않는다.  고요한 심령의 세계를 찾으려면 시간을 많이 들이고 애를 많이 써야 한다.  기도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산심(散心)이 되고 여러 가지 잡념이 들어와서 기도의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  이것은 심령이 골방에 들어가지 못한 증거이다.  거기서 골방에 들어가려고 더욱 힘을 쓰고 매달려서 전심전력을 기울이면 점점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기울이면 마음이 하나님께 도달되어 하나님과 접촉이 되고 우리의 영이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된다.  그 때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감동과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의 빛과 기쁨의 세계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되면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한 주님만 보이게 되며 감사의 눈물이 나오고 감격이 넘치게 된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직접 들어 주셔서 응답해 주시고 위로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섭섭한 마음이나 한숨이 사라지고 위로가 오며 평강이 온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품 속에 사는 생활이다.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시고, 위로를 풍성히 내려 주신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관계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내 마음과 몸을 바쳐야 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갚아 주신다.  사람 앞에서 하고 체면 때문에 하고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하늘나라 밖의 일이요,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고 했다.  \"중언 부언\"이라는 것은 믿음 없이 형식적으로 하는 기도요 골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는 기도이다.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같은 말을 반복해서 기도할찌라도 중언부언이 아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같은 말로 기도를 세 번 하셨고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비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할 때 같은 말을 일곱 번 하였다.  그 기도는 중언부언이 아니었다.  영적 골방을 찾아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맡아 줄 수 있는 참된 기도를 하게 된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지 못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하는 기도이다.

 

.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성도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아시고 주신다.  그러므로 욕심으로 말을 많이 하여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지 말고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三.  주기도(9-15)

 

.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예수님이 어떻게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주기도는 열 마디로 되어 있는데 첫마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하늘에 계신 도덕과 지혜와 능력이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우리 아버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영적 교회인데 그것이 \"우리의\" 세계이다.  사욕을 버리고 \"우리\"의 세계에서 사는 자라야 아버지의 혜택을 받는다.  교만과 독선과 사욕을 채우려는 신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의 아버지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이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제일 첫째이다.  자기를 위하는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 드리는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 성도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늘 소원을 가져야 한다.

빌립보서 1:20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소원했다.  자기에게 아무리 유익한 일이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 하는 것은 하지 않아야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라면 자기에게는 어떠한 손해가 나더라도 꼭 하여야 한다.

\"내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또 \"내가 높아지겠느냐, 낮아지겠느냐\" 하는 것은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일이라면 무조건 하여야 한다.  자기에게 아무리 유익이 되는 일 일지라도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낮아지고,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일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일을 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므로 망하게 된다.

많은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일을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순조롭게 성공의 길이 열리게 된다.  \"내가 복을 받아야겠다.\"  \"내가 잘 되어야겠다\"하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도록 힘을 쓰면 영혼이 잘되고 육신도 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존귀하게 되고, 영광스러워진다면 거기에 하나님의 모든 것(만복)이 다 있다.

천하를 다 얻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면 마지막에는 다 망하게 된다.  반대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할지라도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갔다면 하나님께서 더 크고 더 좋은 것으로 주시게 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는 만큼 그만한 복이 온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간다고 하면 그만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

 

. 6:10  나리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하심이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벌써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으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사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와 더불어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마음과 몸을 통하여 나타나야 한다.  믿는 성도들이 서로 교제를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그 중심에 모시고 주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믿는 사람끼리 서로 시기하고 당파를 만들고 분쟁이나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마귀의 나라이다.  진리문제 때문에 싸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진리는 양보하면 죽기 때문에 양보하지 않으려고 싸우는 수도 있다.  그러나 물질 문제와 자기들의 이권문제 때문에 싸우는 교회나 노회나 총회는 하나님의 나라 운동이 아니다.  항상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활하면 싸우지 않게 된다.  김의홍 목사님은 늘 \"예수 생활화하자\"고 말씀하셨다.  성경을 배우는데만 그치지 말고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예수님의 생활을 닮아 가자는 말씀이다.  참으로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누가 17:21에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예수님을 중심으로한 제자들의 유기체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말이다.  또 너희 심령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뜻도 있다.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중심하여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주장을 받게 되면 서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사랑하게 된다.

로마서 14:17-18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현재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면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다 제거되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만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개인에게서부터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뜻이 내 자신을 통하며 이루어져 나아가도록 소뭔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한다.  또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 사이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한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전 세계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소원을 가지고 기도해야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의 구속을 하늘에서 예정하시고 땅에서 이루어 주신 것처럼 우리의 구원이 그 목적대로 점점 이루어 져서 완성이 되고 악의 세력은 심판하여 없애달라는 뜻이 있다.

 

. 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용할 양식이란 영적 양식을 가리키는 것이며, 믿음으로 나아가면 육신의 양식은 따라오게 된다.  마태 6:25에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일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하였다.  영이 새 생명으로 살아 나아가려면 영적 양식을 날마다 먹어야 한다.  영적 양식을 날마다 먹지 못하면 영이 날마다 새롭게 살아 나아갈 수 없다.

중생한 영은 죽지 아니하고 늘 살아있으나 새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으려면 날마다 영적 양식을 받아먹고 자라나야 한다.  그러므로 육신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것은 마치 육신의 목숨보다 영혼의 생명이 더 중요한 것과 같다(마10:28, 요11:25-26 참조).

일용할 양식을 육신의 양식이라고 하면 마태 6:25-31의 말씀과 모순된다.  왜냐하면 육신의 양식은 구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 육신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이 더 중요한데 육신의 양식은 구하면서 영의 양식을 구하지 않는다면 옳지 않다.

요한 4:34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고 또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셨다(요6:27 참조).  성도가 영의 양식을 받아먹으려면 우선 주일날 영의 양식을 받아먹어야 한다. 주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영이 새 힘을 얻어 소생함을 입어야 한다.  교역자들은 주일날 하나님의 양떼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양식을 먹여서 양떼들의 영이 새 힘을 얻고 소생하도록 길러 나아가야 한다(마24:45 참조).

목사가 강도(講道)를 할 때에 신령과 진정으로 가르치지 못하면 영의 양식이 되지 못한다.  교역자가 먼저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새 힘을 얻어 그 영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줄  때에 교인들의 영이 새 힘을 얻어 살아 나아갈 수 있다.  성도가 주일날 영의 양식을 얻어먹고 그 말씀을 새김질하며, 자신이 날마다 성경을 읽고 영으로 깨달아 힘을 얻어 나아가야 한다.

날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영의 양식이 되게 하려면 기도를 많이 하고 애써야 된다.  일용할 양식을 \"내게\" 달라 하지 않고 \"우리에게\" 달라고 했다.  일용할 양식을 먹으려면 사욕을 떠나 \"우리\"의 세계에 들어가야 하고 \"우리\" 전체가 먹기 위해 일용할 양식을 구하여야 된다.  일용할 양식을 이기주의로 구하면 먹지 못한다.

이기주의와 욕심과 자기를 위하는 것을 다 내어버리고 예수님의 세계에 들어가야 영의 양식을 먹을 수 있다.  잠언 30:8-9에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 \"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육신의 양식을 말하고 있다.  육신의 양식은 너무 많으면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기 쉽고 너무 적으면 가난하여 도적질하기 쉬우니 너무 가난하게도 말고 부하게도 말게 하여 달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함을 나타내는 기도이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4:11-13에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일체의 비결\" 즉 풍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환경에 제재를 받지 아니하고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참된 신앙에 서면 배부를 때나 배고플 때나 물질에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에 너무 부하게도 말고 가난하게도 말게 하라는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이 육신의 양식이라고 하면 바울같은 사람은 이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닌가 !

주기도문은 기도의 표준이기 때문에 참 믿음에 서 있는 사람도 주기도문대로 기도해야 된다.  따라서 \"일용할 양식\"은 영의 양식으로 보아야 한다.  성도는 영이 살아가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성경의 모든 원리가 영을 살려 나가는 것이 목적이며 육신을 살려 가는 것이 표준이 아니다.  영을 살려 나가기 위한 주기도요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기도이다.  그러므로 영의 양식을 먹고 영적 생명이 장성하며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영의 양식을 구하는 자에게 육신의 양식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죄에서 점점 벗어져서 성결을 입어 나가기 위한 기도이다.  신자는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  법적으로는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를 다 용서 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입어서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성도의 육체 속에 부패성이 아직 남아 있다(롬7:15-23, 골3:5-10 참조).  또 마귀가 끊임없이 성도를 시험하기 때문에 마귀의 시험에 들어서 성도와 성도 사이에 막혀 있는 것이 많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다 없이 하여 달라는 기도이다.

우리 이미 구원받은 모든 성도와 앞으로 구원받을 모든 성도 즉 택한 백성 전체를 가리켜 우리라고 한다.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다 사하여 주셨으니 신자는 법적으로 다 죄사함을 받아서 의롭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영적으로 한 생명(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되어 있다.  이렇게 사죄의 은례를 입은 신자가 타인이 자기에게 범한 과오를 용서해 주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① 우리 속에 있는 육체의 부패성을 제거하여 달라는 것이다. ② 날마다 짓는 죄를 사하여 달라는 것이다. ③ 신자간에 막히고 불화하는 것을 제거하여 달라는 것이다. ④ 택한 백성 중에 아직 믿지 않고 죄 중에 있는 자들을 사죄하여 구원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죄사함 받을 때에 어떤 조건부로 죄사함 받은 것은 아니다.  즉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면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우리의 죄도 용서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도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면 하나님과 의 영적 교통이 막히고 사랑의 세계를 잃어버린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떠나고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점점 거룩을 입어 나가는 일을 하지 못한다.  이것이 긍휼없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다는 말이다(약2:13 참조).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은 사람도 그 지체 속에는 죄악의 강한 세력이 있다.  그러므로 죄악의 세력과 그 영향력에서 벗어져 나오는 일 즉 성화를 이루어나가는 일은 필요하다.  성화를 이루어 나아가는 데는 조건이 있다.  즉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만 하나님도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다.

누가 11:4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여 한층 뜻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공로로 사죄 받은 성도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면 죄의 세력과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져 나오지 못한다는 말이다.  성도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성화를 이루어 나갈 수 없다.  참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

제자들이 다른 사람의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되느냐고 물어 볼 때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의 죄를 얼마든지 용서하여 주어야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세력에서 건져 주신다.  성도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줄 때에 하나님과의 막힌 것이 열리고 빛과 생명의 역사가 임하여 죄악의 세력에서 벗어져 나오게 되며 영혼이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점점 이루어져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게 된다.

 

.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우리의 세계 즉 구원받은 성도 전체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뜻이다.  영적인 \"우리\"의 세계에 들어가면 믿는 형제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  \"우리\"인 성도 전체가 사실은 자기의 몸이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지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그 몸 전체를 사랑하여 그 몸 전체가 시험에 들지 않기를 소원하며 기도해야 한다.  다른 성도는 시험에 들던 말던 자기만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이기주의이며 사욕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자신이 벌써 시험에 든 자이다.  이 기도는 우리 성도 모두가 시험에 들지 않고 잘 되게 하여 달라는 것과 하늘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시험이 없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시험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안 된다.  성도가 시험이 올 때에 시험에 들지 않고 그 시험을 이기면 시험이 자기에게 큰 유익이 된다.  시험은 성도를 연단시키고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주어지는 것이다. 야고보 1:2-4에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시험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이 올 때에 피하지 말고 그 시험을 이겨야 한다.  이기면 유익이 많다.  시험을 이기면 우리 영이 자라나고 인격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모두 감당할 수 있는 것만 허락하시는 것이다(고전10:13 참조).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 올지라도 자기에게 감당할 것을 주신 줄  알고 잘 참고 이겨서 유익을 얻도록 하여야 한다.  시험을 이기려 면 걱정하지 말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나가야 한다.  또 자기 영이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살아야 시험을 이길 수 있다.  마귀의 세력을 이기려면 영적인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하면 마음에 화평과 기쁨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적 생명의 힘으로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세상은 악이 가득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악에서 건짐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악에서 건져 달라는 기도이다.  이 세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아서 악한 세력이 가득 차 있고 마귀가 믿는 자를 삼키려고 한다.  이것을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건져 주어야만 건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주여 이 악에서 건져 주옵소서\"하고 부르짖어야 한다.  악에서 건짐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죄악의 세력을 점점 제거시켜 주시고 의를 입혀 주셔서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되고 악에서 건짐을 받는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말 위에 대개라는 말을 넣어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장이.... \"하는 주기도문도 있다.  \"대개\"라는 말이 어떤 사본에는 없고, 어 떤 사본에는 있다.  우리가 주기도를 할 때 \"대개\"를 넣어서 하는 것이 옳다. \"대개\"라는 말은 \"왜냐하면\" 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일곱 마디의 기도를 하고 나서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현재에도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기도합니다\"의 뜻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께만 있다.  세상나라는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나라만 영존하고, 세상 권세는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권세만 영존하고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영광은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영광만 영원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권세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영원 전부터 천국에 있는 영광은 물론이고 이 세상에서 구원운동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도 금생과 내세에 그대로 영원히 남는다.

 

.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성도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천부의 사죄 은총을 입는다.  성도가 믿을 때에 법적으로 사죄를 받았으나, 여기서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긍휼과 사랑으로 대하여 주신다는 뜻이 있고, 죄악의 권세에서 건져 주신다는 뜻도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죄대로 다스리지 않으신다는 뜻도 있다.  우리 성도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여 주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용서받는 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긍휼이 떠나기 때문에 하나님과 막혀서 기도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먼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고 나서 기도를 해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산다면 남의 허물을 자연히 용서하여 주게 된다.  다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여 주어야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고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만 또 참된 용서가 나오게 된다.

 

四. 금 식(16-18)

 

.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금식하는 목적은 자기 목소리를 하나님께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다(사58:3-5 참조).  그러므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여 금식한다면 외식하는 것이다.  금식하면서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쓴다고 신앙이 바로 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고, 흉악의 결박을 다 풀어 주고,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누어주는 사랑의 세계에서 자신이 살면서 자기 목소리를 하나님께 상달되게 하기 위해서 자기를 괴롭게 하여 마음을 좀 더 하나님께 기울이려고 금식을 해야 참 된 금식이다.  금식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기 위한 것이며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 앞에 보여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금식을 한다면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요 도리어 하나님께 외식 자라는 책망을 받을 것이다.

 

. 6: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금식하는 것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야 한다.  하나님께 바로 하려고 할 때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칭찬하면 도리어 그 일에 방해가 된다.

 

. 6: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신앙생활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한다.  금식은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 바로 보이고, 하나님께만 그 목소리를 상달케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해야 한다.  그러므로 금식할 때에 사람 앞에 알리지 않도록 하고 은밀하게 해야 한다.

 

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19-24)

 

.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보물은 무엇인가?  목숨, 몸, 마음, 정력, 시간, 사람, 재산, 물질, 기업, 분위기, 환경, 세력이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보물이다.  이것들을 자기 욕심대로 세상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면 보물을땅에 쌓는 것이고, 하늘의 것(신령한 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사용하면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기 위하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와 부친,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으니 그 모든 보물을 하늘에 쌓은 것이다.  요셉은 자기의 지위, 애굽백성, 형제. 부친 등을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인하여 이용했으니 그 보물들이 하늘에 쌓인 것이다.

다니엘과 그 새 친구는 자기 몸을, 스데반은 자기 목숨을, 주님과 그 말씀에게 이용했으니 그것들을 하늘에 쌓아 놓은 것이다.  동방박사는 자기 몸과 시간, 기력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주를 위해 사용했으니 그 보물들을 하늘에 쌓은 것이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 놓으면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고 도적이 도적질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땅에 쌓아 둔 것은 일시적으로는 안전할는지 모르나 마침내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여 간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면 보물이 없어지는 날에 자기도 망한다.  보물을 땅에다 쌓아 두는 사람은 신령한 세계를 떠났기 때문에 심령이 어두워지고 모든 사건을 바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쓸 곳에 쓰지 않으면 보물을 땅에 쌓아두는 것이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려면 먼저 하늘나라를 찾아야 한다. 영적 세계를 잃어버리면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을 수가 없다.  신령한 영적 세계를 찾은 다음에 그 세계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고 그의 뜻을 따라 이용당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주를 위하여 물질을 바치고, 주를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인도하는 바가 없이 자기 생각대로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찾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한 것은 가치가 없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순종한 것이 아니면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더라도 하늘나라의 보물이 되지 못한다.  영의 세계를 찾아 하나님이 시켜서 한 것이 아니면 아무리 교회를 위하여 일을 했다고 하여도 보물을 하늘에 쌓은 것이 아니다.  이처럼 보물을 하늘에 쌓지 못하면 땅에 쌓게 되는데 땅에다 보물을 쌓아 두면 반드시 다 썩고, 좀먹고, 도적맞고 또 불타서 없어질 날이 온다.

 

.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물은 귀한 것이므로 자연히 마음이 그곳으로 끌려가고 거기에서 떠나지 못한다.  보물을 하늘에다 쌓아둔 자는 마음이 하늘에 가 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점점 더 많은 보물을 하늘에 쌓게 된다.  그러나 보물을 땅에다 쌓아 두면 마음이 땅에 있게 되고 점점 신령한 세계를 떠나게 된다.

 

. 6:22-23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보물에 대한 말씀이 나오다가 갑자기 눈에 대한 말씀이 나왔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면 마음이 하늘로 가기 때문에 심령의 눈이 밝아진다.  땅에 보물을 쌓아 둔 사람은 마음이 땅으로 가 있으므로 심령의 눈이 어두워진다.  마음이 하늘로 가면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땅으로 가면 눈이 어두워진다.  그래서 \"눈\"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중생한 영이 우리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할 때에는 심령의 눈이 밝아진다.  영이 마음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을 심령이라고 하는데 그 심령이 하나님과 교통하면 심령의 눈이 밝아진다.  눈이 밝아지면 모든 것을 바로 볼 수가 있다.  눈이 밝아야 모든 것을 바로 분별할 수 있고 바른 길을 찾아 걸어갈 수 있다.

예수를 믿어도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지 않고 돈버는 데에만 가 있거나 자녀들 공부 잘 시켜 출세하게 하려는 데에만 마음이 가 있다면 심령의 눈이 어두워진 것이다.  빛은 신령한 세계의 것이기 때문에 위엣 것을 찾고 영혼이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신령한 교통을 해야 신령한 빛이 비치인다.  영이 살아서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야 심령의 눈이 밝아지고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다.

그리나 땅에다 보물을 쌓아 두면 마음이 땅에 가 있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진다.  마음이 땅에 있으면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끊어지고 흑암을 만나게 되므로 마음이 답답하고 모든 것을 바르게 판단할 수 없다.  일단 흑암에 빠지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 하고 마귀가 끄는 대로 방향없이 끌려간다.  신령한 눈은 등불과 같아서 그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아지고 명랑하다.  그러나 눈이 나쁘면 몸 전체가 다 어두워지고 점점 더 흑암으로 빠져들어 가게 된다.

 

.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고 한 신하가 두 왕을 섬길 수 없으며 한 여자가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다.  한 신하가 두 왕을 섬기고 나가면 한편 왕에게는 반드시 역적이 되고 만다.  한 여자가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듯이 성도가 하나님과 재물을 정하여 섬기지 못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고 하면 하나님은 섭섭하여 떠나신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행동이다.  하나님께만 생명이 있고 하나님으로만 살 수 있는데 재물로 살 수 있는 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요, 그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 하면 하나님은 떠나고 재물만 섬기게 된다.  

물질시험은 제일 초계단의 시험이다.  그러나 이 물질시험에서 제일 많이 넘어진다.  예수를 믿으려면 물질을 초월하여야 한다.   물질선을 넘지 못하고 물질에 붙잡혀 끌려 다니고 물질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은 초계단에서 넘어진 사람이다.  재물과 하나님을 정하여 두 주인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잘 섬기려면 다른 주인(물질)을 내 버려야 한다.  둘째계단은 인정선을 넘어서야 예수님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다.  셋째계단은 생명선을 넘어서야 한다.

 

六. 염려하지 말라(25-32)

 

.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보통 인간들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면서 일생을 보낸다.  목숨이 중요한가 음식이 중요한가?  음식보다 목숨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잘 아는 바이다.  그러면 중요한 목숨을 주신 하나님이 그 목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음식을 왜 주시지 않겠는가!  우리 목숨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유지시켜 주심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먹을 것을 위하여 염려하지 알아야 할 것이다.

또 몸이 중요한가 의복이 중요한가?  의복보다 몸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중요한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몸에 필요한 의복을 왜 주시지 않겠는가!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하나님이 보호하여 오늘까지 보존시켜 주신 것이다.  이렇게 몸을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 몸에 필요한 의복을 반드시 주실 것이다.  이것을 깨달았 면 의복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만 잘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창조해 주셨으니 먹을 것도 주신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주셨으니 그 몸을 위해서 입을 것도 주신다.

농부가 소를 사다 놓았으면 반드시 소가 먹을 것을 주게 되어  있다.  소가 죽으면 주인의 손해이다.  그러므로 주인이 소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 놓았다가 주어서 먹게 한다.  사람의 목숨과 몸을 하나님께서 내신 것을 믿고 그 하나님께서 목숨과 몸을 위해서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주실 줄을 믿어야 한다.

 

.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이 먹여 기르신다.  하나님께서 새를 지으실 때 새가 먹을 것을 다 준비해 놓으셨다.  겨울철에 눈이 많이 와서 덮여도 풀씨와 솔방울의 솔씨 등을 먹고 살 수 있게 해 놓았다.  하물며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위해서는 얼마나 잘 준비해 놓았겠는가!  천부께서 반드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니 염려할 것이 없는 것이다.

공중의 새를 보라 새는 공중에 날아 다녀야 먹을 것을 찾아 먹을 수 있다.  그것은 자기 기능을 써서 노력해야만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기선 목사님은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고 했지 목침 베고 낮잠 자는 새를 보라고 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낮잠 자는 새는 먹을 것을 찾아 먹지 못한다.  그러므로 새가 새벽부터 \"짹짹\"거리며 날아다닌다.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날아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새와 같이 새벽부터 날기만 하면 먹을 것을 반드시 찾을 수 있다.  누구나 노력을 하면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것을 찾을 수 있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는 식으로 좋은 일만 하겠다고 하면 아무리 날아 다녀도 일자리가 없다.  겸손하고 낮은 데에 처하여 아무 일이나 하겠다는 정신을 가지고 날아다니면 반드시 일감이 생기고 직장이 생겨서 굶어 죽지 않는다.  좋은 것만 골라서 하려고 하지 말고 아무 것이나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살후3:10 참조)고 하였으니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을 것이 없는 것이 마땅하며, 아무 일이나 부지런히 노력해서 일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먹을 것을 주신다.

 

.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사람이 염려한다고 해서 키를 한 자나 더 크게 할 수가 있는가?   아무리 염려를 해도 한 치도 키를 더 크게 할 수 없다.  무슨 일이나 염려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되게 해 주셔야 된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사람이 자기가 해야 할 노력만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을 것뿐이다.  자족을 배우고 분수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아야 된다.  그리고 믿는 일에만 더욱 힘을 써서 전진해 나가야 한다.

 

. 6:28-30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들에 핀 백합화는 하나님이 내셨는테 얼마나 아름다운가 !  백합화는 아름답고 향기가 좋다.  솔로몬의 옷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백합화만큼 아름답지는 못하다.  백합화는 생화인데 솔로몬의 의복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생기가 없다.  백합화는 생기가 있고 향기가 속에서 나오지만 솔로몬의 옷은 생기도 없고 향기도 없다.  백합화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풀인데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는데 이보다 귀한 성도의 몸에 입을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

믿음만 잘 지키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입혀 주실 것이다.  백합화도 살아서 일하고 있다.  뿌리에서 양분을 섭취하여 줄기를 통하여 잎으로 보내고 잎사귀에서는 공기나 태양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흡수하여 양분을 만들어 뿌리로 내려보내는 일을 부지런히 한다.  사람도 자기 할 일을 부지런히 해야 먹을 것도 나오고 입을 것도 나오는 것이다.

 

. 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성도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성도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고 구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주시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은 불신자나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요. 성도의 구할 바가 아니다.

 

七. 의를 구하라(33-34)

 

.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성도가 구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성도가 구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한다. 먹을 것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입을 것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와 의도 얻도록 해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도 더하여 주신다.  우리 성도가 할 일은 날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 운동으로 영적 생명운동과 몸의 구속(롬8:23 참조)과 만물 구속(롬8:19-21 참조)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구속운동이 완성되어 나가기를 구하고 하나님의 나라 운동이 잘 되기를 구하는 것이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다.  진리와 성령으로 성도의 영혼이 살아서 날마다 자라나고 소생하여 장성해 나가야 되고 그 영에게 몸과 마음이 이용되어 점점 깨끗하고 거룩함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후7:1, 요3서 1:2-3, 유다서1:2 참조).  모든 권세와 능력과 만물이 하나님의 의로운 뜻대로 복종하고  사용되어 하나님께 돌아가고 하나님의 충만이 만물 안에서 충만케 되기를 구하며 그의 인도를 따라나가야 한다.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을 구하라는 뜻이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을 찾아 옳은 것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옳은 것을 먼저 자기 심령 속에서 옳다고 붙잡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옳은 것을 힘써 세워 나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은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판단하고 성경대로 처리해 나가야 한다.  성경대로 한 것은 의를 이룬 것이고 성경대로 하지 못한 것은 불의한 것이다.  또 성령의 감동과 신앙 양심을 통해서 옳은 것을 찾아야 된다.  의가 아니면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갖지 않아야만 한다.  의 하나가 자기 생명보다 귀한 것이다.  옳은 것을 붙들었으면 죽어도 내놓지 말고 붙들고 나아가야 한다.  옳은 것을 계속 찾아서 나아갈 때 영이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면 의의 나라가 점점 건설되어 나가고 의의 등대가 점점 커지고 의의 빛이 점점 발하게 된다.  그 의(義) 구하기를 주리고 목 마른 것같이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찾으면 금보다 귀히 여겨 그 말씀대로 의를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의에서 의로 점점 전진하여 의가 커 나가야 한다.  의가 커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커진 것이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모든 것은 앞에 말한 먹을 것과 입을 것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하는 자에게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더하여 준다는 뜻이다.  성도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려하지 않고 구하지 않아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힘있게 세워 나가면 육신에 필요한 의. 식. 주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신다는 뜻이다.

 

.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내일(來日)을 위하여 오늘 염려 할 필요가 없다.  오늘은 오늘의 일만 하면 된다.  오늘의 일이란 무엇인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이다.  성도는 내일은 없는 줄 알고 오늘을 충성스럽게 살아야 한다.  또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다(약4:13-17참조).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내일 일은 무엇인가?  그것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내일 염려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도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세워 나가는 일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염려는 성도의 할 바가 아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오늘의 신앙 지킨 일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한 일의 결과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 신앙 지켰으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그 결과가 핍박, 환난, 궁핍이 올지언정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제일(第一) 좋은 것으로 골라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환난이나 핍박이나 궁핍이 오더라도 유익하기 때문에 주시는 줄 알아야 한다.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믿음 지키느라고 한 날 괴로움을 당했으면 그것이 그 날에 족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으로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해 일한 것이요, 보물을 하늘에 쌓은 것이요, 하늘나라가 커진 것이요, 영원한 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썩어질 것으로 만족하는 자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자이다(눅12:16-21 참조).  육신의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일하여 신앙을 양보하고 진리를 양보한 자는 일시적 평안과 향락을 누릴 수 있으나 그것은 믿음을 팔아먹은 자요, 의를 버린 자요, 하나님을 버린 자요, 맛 잃은 소금이 된 자이다.  그리하여 누가 17:32에는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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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7장

 

제 7 장  정 로(正路)

 

(대  지)

一. 비판하지 말라(1-2)

二.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빼라(3-5)

三. 거룩한 것을 거룩한 데 주라(6)

四.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7-11)

五. 남을 대접하라(12)

六.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13-14)

七.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15-20)

八. 천국 자격(21-23)

九. 건물 비유(24-27)

十. 예수님의 교훈(28-29)

 

(본문강해)

 

一. 비판하지 말라(1-2)

 

. 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하나님의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비판을 받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려면 사람에게 대한 것을 바로 해야 한다.  성도가 사람 앞에는 아무렇게 하여도 하나님 앞에만 바로 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비판을 받는다. 비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방하는 것이다.  성도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결점을 덮어 주고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자기도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받게 된다(마6:14 참조).

야고보 2:13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되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받으려면 긍휼히 여기고 관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주인이 탕감을 해 주었는데 그는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나서 당장 갚으라고 하였다.  백 데나리온 빚진 자가 참아 달라고 하여도 참아 주지 않고 빚을 갚지 않는다고 감옥에 가두었다.  주인이 그것을 알고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그 사람을 불러다가 \"이 악한 종아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과 같이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고 책망하면서 탕감하여 준 일만 달란트를 다시 다 갚으라고 하였다.  진리에 어긋난 문제는 날카롭게 비판을 가해야 하지만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얼마든지 용서해 주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에베소 교회가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내고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은 잘하였다고 하였다(계2:2-6 참조).  우리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하고 용납하여 긍휼히 여겨야 한다. 형제가 내게 잘못할 때에 일곱 번 용서하여 주리이까 하고 베드로가 여쭈어 볼 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여 주라고 하였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너희가 다른 사람에게 준 것만큼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는 뜻이다. 많이 주면 많이 갚아 주시고 적게 주면 적게 갚아 주신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 드러났더라도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입장에 서지 말고 그 사람을 사랑으로 권면하고 또 그 사람이 회개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회개하고 바로 서면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실수하지 않았던 것과 꼭 같이 생각하며 사랑해야 한다.  가령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이미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바로 섰는데 나는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을 기억하고 용납하여 주지 아니한다면 나는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헤아림을 받게 된다.

또 내가 남에게 잘못하였다고 하자 회개한 후에도 \"내가 과거에 실수하였기 때문에 저 사람이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것도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된다.  우리가 남을 헤아리는 것은 마귀의 시험이다.  성도의 세계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 주는 세계요 회개할 때에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는 것이다.  바울이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심히 다투었으나(행15:39 참조) 마가가 회개한 후에는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에게 유익하니라\"(딤후4:11)고 하였다.  이것은 과거에 마가가 잘못한 것을 바울이 다 용납해 준 태도이다.

형제를 긍휼히 여기고 사랑해야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받는 자리에 들어간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면만 치중하고 인간에 대한 면을 무시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것이 나를 통하여 사람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사람에게 주어야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것이 또 내게 온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 나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이 다시는 오지 않는다.  마치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가야만 수도국에서 물이 오는 것과 같다.  수도국에 있는 많은 물을 계속하여 공급받으려면 수도꼭지를 열어서 물을 내보내 주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과 사랑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그 긍휼과 사랑을 계속 나누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야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더욱 많이 받을 수 있다.  남을 헤아리고 비판하는 것은 벌써 신앙에서 떠났기 때문에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한다.  내가 남을 헤아리고 판단하면 내 자신이 하나님의 비판을 받고 하나님의 헤아림을 받아 망하는 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

 

二.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빼라(3-5)

 

. 7:3-5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로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를 빼려고 하지 말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 형제가 행동으로 잘못한 것을 가리킨다.

네 눈 속에 있는 들보 자기 속에 들어 있는 부패성(죄악성)을 가리킨다.

우리 성도는 자기 속에 있는 죄악성이 들보와 같이 큰 줄로 알고 그것을 빼내려고 힘을 써야 한다.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빼내 버리는 사람이 되어야 믿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형제의 마음속에 있는 죄는 볼 수 없고 행동으로 나타난 죄만 볼 수 있다.  자기 속의 부패성에 비하면 형제에게 나타난 허물은 극히 작은 것이다.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은 굉장히 큰 것이다.  이것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지만 자기는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것은 \"티\"이고 자기 눈 속에 있는 것을 \"들보\"라고 하였다.  우리 성도가 자기 속에 있는 들보와 같이 큰 부패성을 찾아 빼내 버리는 일을 부지런히 하여야 한다.

사도 바울이 \"나는 죄인 가운데 괴수\"라고 한 것같이 나는 전적 부패한 자이며 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부패성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안타까워하고 탄식을 하며 그것을 빼내 버리려고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진실한 성도이다.  그렇지 않으면 외식하는 사람이 된다.  성도가 다른 사람의 결점과 잘못한 것만 들추어내면서 자기 속에 있는 더럽고 악한 부패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외식하는 자이다.  자기의 부패성을 제거하려고 힘쓰면서 겸손하고 진실한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사람의 속에 있는 죄악성은 악한 생각, 음란, 도적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이는  것,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광패와 같은 것이다(막7:21-23 참조).  자기 속에 있는 이 죄악성 때문에 탄식을 하고 통회하고, 애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보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들보와 같은 죄악성을 날마다 발견하여 하나씩 하나씩 빼어 버려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조금씩 자기 구원이 이루어져 나간다.

이 일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만 비판하고 헤아리며 \"다른 사람 이 나를 어떻게 볼까?\" 또 \"저 사람은 무엇이 틀렸다\"고 하는 것은 신앙에서 떠나 외식하는 자리에 빠진 것이다.  들보를 날마다 빼버리는 생활을 하여야 참 성도가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게 되며 다른 사람도 바로 세울 수 있는 자가 된다.  자기가 만들어져야만 다른 사람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자기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캐내 버려야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도 빼낼 수가 있다.

 

三. 거룩한 것을 거룩한 데 주라(6)

 

.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거룩한 것\"이나 \"진주\"는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거룩한 것 영감된 성도의 마음과 몸과 인격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께 사용되는 것이므로 거룩한 것이다.  성도는 주님이 피로 값을 주고 사서 주님의 것이 되었으며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령의 전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몸과 마음은 거룩한 것이며 개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

 개의 특징은 물고 찢는 것이다.  싸우고 다투며 시기와 분쟁을 하는 것은 개와 같은 행동이다. 거룩한 것을 개와 같이 싸우는 곳에 던져서 물고 찢고 다투면 안 된다.  또 음란한 일도 개의 행동이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면 거룩한 것을 물고 찢어 마지막에는 망치게 된다.

고린도전서 3:17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하였다.  성전된 몸과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기에 있고, 하나님의 것으로 값 주고 사신 바 되었는데 그것을 개에게 주어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온다.  거룩한 것을 항상 거룩한 데 주는 생활을 하여야 참된 성도가 되는 것이다.  서로 물고 찢으면 둘 다 망한다.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동행하고 악한 자가 와서 속옷을 빼앗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면서라도 거룩한 것을 지켜야 한다.  물질에 손해가 날지라도 서로 물고 찢고 싸우지는 말아야 한다.  물질에 손해가 있어도 거룩한 것을 지켰다면 벌써 더 좋은 것을 하나님께 받은 것이다.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너희의 진주라고 하였으니 각 사람에게 진주가 다 있는 것이다.  \"너희 진주\"란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과 환경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이다. 각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이 처한 그 환경을 잘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우리가 어떠한 사건을 만나면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처지를 잘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진주를 얻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진주 만들 재료를 다 주셨다.  우리 성도가 어떠한 환경에서나 매 시간 매 사건마다 진주를 만들어 가질 수가 있다.  하나님이 진주를 주실 때에 성도는 그것을 사서 가져야 한다. 진주를 살 때에는 값없이 돈 없이 산다.  \"진주를 산다는 것은 일심정력을 기울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당면한 환경에서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만일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면 돼지가 그것을 발로 밝고 상하게 하여 다 내어버리게 된다.  진주를 버린 자는 하나님 앞에서 불쌍한 사람이 된다.  우리가 무슨 사건을 만나든지 하나님이 진주로 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며 거기에서 진주를 사서 가지는 자가 되어야 한다.

돼지 돼지의 특징은 ① 먹자주의이다. 물질주의로 나아가고 욕심을 따라가는 것은 돼지의 생활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욕심이나 자기 가족의 욕심이나 자기 교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물질을 따라가고 세상을 따라가며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면 하나님이 주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는 것이 된다. ② 돼지는 깨끗이 씻었다가 다시 더러운 곳에 눕는다(벧후2:22 참조).  성도가 회개하고 주를 영접한 후에 더러운 죄 가운데로 다시 들어가면 돼지와 같은 생활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주를 받아 가진 자는 그 진주를 잘 보관해야 한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환경을 바로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 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진주가 만들어진다.  어떠한 역경을 만나도 반드시 나아갈 길이 하나 있다.  나아갈 길이 없을 만큼 어려운 역경은 없다.  이번에는 도저히 뚫고 나아 갈 길이 없다고 생각될 때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찾고 그 뜻대로 순종을 하여 날마다 진주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나사로가 죽어서 나흘이나 되어 무덤에서 썩은 냄새가 나고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으나 살 길이 있다.  거기에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 있다.  주님의 명령은 돌을 옮겨 놓으라는 것이다.  죽은지 나흘이 되고 썩은 냄새가 날지라도 주의 명령대로 돌을 옮겨 놓아야 한다.  돌을 옮겨 놓으면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려 주신다.  하나님이 많은 진주를 주셨으나 그것을 다 우리의 소유로 만들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많이 이루어 진주를 많이 소유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물론 하늘나라에서도 존귀한 존재가 된다.

 

四.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7-11)

 

. 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구하라는 뜻이다.  성도는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이요,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인 세계이다.  잠시 잠깐 후에는 썩어 없어질 것을 구하지 말고 신령하고 영원한 것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령한 것을 구한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다.  성도들이 현실주의에 빠져서 세상의 것을 열심히 구하는 자는 많으나 신령한 것을 구하는 자는 적다.  우리 성도는 잠시 후에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 것이므로 위엣 것을 구하고 신 령한 것을 구해야 한다.

어리석은 부자가 농사를 잘하여 창고를 헐고 다시 크게 지어 여러 해 동안 먹을 것을 쌓아 놓고 자기 영혼에게 말하기를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할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놓고 신령한 것을 구하지 않는 사람은 이와 같이 미련한 자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눅12:16-21 참조).

어떤 교회에서 주일날 교인들이 평소보다 대단히 적게 출석하여 목사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원인을 알아보았더니 유명한  권투 선수가 세계 타이틀 시합을 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텔레비젼을 보느라고 교회에 나오지 않았더라고 한다.  권투 시합이 중요한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한가?  텔레비젼 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는가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는가?  지금 이 정도로 성도들이 속화되어 있다.  참 성도는 하나님과 좀 더 깊이 사귀기를 힘쓰고,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려고 노력하여 영원하고 신령한 것을 구해야 한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주신 다.  구하지 않는 자는 받지 못한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찾으라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느 때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있다.  그러나 그 뜻을 찾지 않는 자는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 드리기 의해 먼저 하나님의 뜻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전에 몇 가지 준비하여야 할 일이 있다.

①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한다.  항로를 찾아가는 배의 나침반 속에 조그마한 쇠붙이가 들어가 있다면 그 나침반의 바늘이 정확히 남북을 가리키지 못하므로 배가 항로를 바로 가지 못하고 마침내 암초에 부딪쳐 파선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의 마음속에 욕심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하고 결국 실패와 파멸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욕심을 내버리고 깨끗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발람은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기도했기 때문에 옳은 길을 찾지 못하고 어그러진 길로  나가다가 망하였다.

②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하나님의 뜻이 삐뚤어진다.

③ 시험에 빠진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한다.  시험에서 벗어져 나와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 있다.

④ 원수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으면 바로 찾지 못한다.  요나는 원수를 미워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고 할 때에 다시스로 갔고, 니느웨에 가서 40일 후에는 망한다고 외치고 나서 망하지 않으므로 노하여 하나님 앞에 죽기를 구하였다.  이와 같이 원수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한다.

⑤ 사랑을 가지고 찾아야 한다.  모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고, 영적 세계와 빛의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은 첫째, 성경을 상고하여 말씀에서 찾아야 한다.

둘째, 원리원칙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한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원리원칙을 무시하면서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집하면 안 된다.

셋째, 자기의 믿는 일이 잘 되고 영이 사는 길을 택하여야 한다.  자기의 신앙에 손해를 보고 믿는 일이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넷째, 전체의 구원운동에 유익한 길을 찾아야 한다.  전체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면서 자기나 자기 교회나 자기 교파만을 위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다섯째, 의를 이루는 길로 찾아 나가야 한다.  의를 이루는 길이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불의의 길을 걸어 나가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악한 고집이다.  기도하여 보니까 하나님의 뜻인 줄 깨달았다고 하면서 불의한 일을 하는 사람은 마귀에 게 속은 것이다.  

여섯째, 하나님의 섭리를 보아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점 알게 된다.

일곱째, 오랜 신앙 경험을 참작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여덟째,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이상 여덟 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하여 준비를 잘하고 바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힘을 쓰면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하여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나은 신앙의 지도자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은 가장 귀한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만 찾으면 절반은 성공이다.  하나님의 뜻을 잘 찾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가 되어야겠다.

두드리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노력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을 하되 안 되면 또 하고, 안 되면 또 하여 자꾸 두드리면 마침내 문이 열리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찾은 것은 문을 찾은 것과 같다.  문을 찾았으나 열리지 않으므로 자꾸 두드려야 한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그만 두지 말고 참고 견디면서 자꾸 두드리면 반드시 열려진다.  문이 열릴 때까지 참고 계속하여 힘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신령한 세계의 문이 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이 열리면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며 신앙의 열매가 맺히고 모든 것이 다 형통하게 된다.  또 문이 열리면 하나님께서 신령한 것을 풍성하게 주신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반드시 그 목표(표준)에 도달할 날이 온다.  구하는 것이나 찾는 것이나 두드리는 것이 모두 신령한 세계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진주를 만들어 가지기 위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은 반드시 영원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 7:9-10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자기 자녀가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줄 사람이 없다.  또 생선을 달라고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없다. 악한 인간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녀(성도)가 구하면 왜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인간은 본성이 이기주의이며 악하다.  아담이 자기를 위하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 먹었으며 아담의 후손도 다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악하기 짝이 없다.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눅18:19 참조).  악한 인간도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준다.  그렇다면 절대 선하시고 절대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자녀(성도)가 구할 때에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는 까닭이다.  찾아도 못 찾은 것과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은 모두 정욕으로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욕심부터 내어 버려야 한다. 신령한 것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자꾸 두드리면, 문이 열려 성공이 되고 진주가 만들어져 점점 구원이 이루어져 나아가게 된다.  성도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점점 머물게 되어 아주 존귀하고 보배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五. 남을 대접하라(12)

 

.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러므로\"라는 말은 11절까지의 결론으로 네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뜻이다.  즉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하여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네가 다른 사람에게 하여 주라는 뜻이다.유교에서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고 했다.  내가 하기 싫다고 다른 사람도 시키지 않으면 그 일은 영영 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의 교훈은 네가 남에게 원하는 그것을 네가 먼저 하라고 하셨으니 이대로 하면 일도 잘되어 나가고 사람들도 잘되며 세상도 바로 되어 나갈 것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네가 남에게 먼저 해 주라는 뜻이다.  일어 성경과 영어 성경을 참고하면, 일어 성경(일본성서 협회간)에는 \"무슨 일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해 주기를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하라\"고 했고, 영어 성경(흠정 역)에는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네가 그 사람들에게 그대로 하라\"고 번역되어 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좀 더 친절하면 좋겠다고 바란다면 내가 먼저 저 사람에게 친절하게 해 주라는 뜻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먼저 우리에게서 이루어져야 하겠다.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그렇게 해 달라고 요구만 하지 말고 자기가 먼저 그대로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볼 때에 그 사람에게 그러한 결점이 없는 좋은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때에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 그러한 결점을 찾아 고쳐 나가야 한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불평불만하지 말고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정죄하여서 못 쓰겠다고 내어버리면 자기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건설적으로 저 사람에게는 저러한 결점이 없어지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주면 좋겠다고 바란다면 그 결점이 없어지도록 기도해 주고 먼저 자기 자신의 결점을 고쳐 나가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진주를 만들어 갖게 되는 것이다.  그대로 할 수 없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율법이나 선지자는 한마디로 남을 섬기는 일이다.  즉 율법의 강령과 선지자의 강령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라는 뜻이다.

마래 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바란다면 욕심장이가 된다.  신령한 세계의 것과 거룩한 것을 바라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좀 더 거룩한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신령한 면이 좀 더 이루어지고 믿음이 좀 더 견고해지기를 바라야 한다.  그 때에 자기가 먼저 사랑의 사람이 되고, 자기가 먼저 믿음의 사람이 되며, 점점 거룩한 것이 자기에게서부터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고 고쳐지기를 바라면서 자기의 결점을 먼저 고쳐 나간다고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그만큼 더 커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방법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헤아린다고 하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사랑하고 긍휼을 베풀어주고 섬기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  주지 않으면 썩어 없어지고 주면 또 하나님께로부터 더 많은 것이 온다.  온 다음에는 또 남에게 주어야 한다.  남에게 줄 때에 그릇이 커지고 그릇이 커져야 하나님이 더 많이 주신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성도의 인격과 영혼이 점점 커 나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결점이나 잘못한 것이 보일 때에 자기 자신부터 바로 서고 만들어져 나아가야 한다.

 

六.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13-14)

 

.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누가 13:24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했다.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고 힘이 들지만 그래도 힘써 들어가야만 생명이 산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생명을 얻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멸망한다.

넓은 문,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어떤 자인가?

첫째, 안 믿는 사람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간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이다.

둘째,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도 좁은 문과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이 있고, 넓은 문과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 있다.  성경 말씀을 어기고 육신의 소욕대로 생활하며 교회에 다니는 자는 넓은 길로 가는 자요, 성경을 지키기 위하여 환란과 고난을 당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는 좁은 길로 가는 자이다.  이 좁은 길로 가는 자는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영혼이 소생하여 자라난다.  그러나 성경을 내어놓고 육신의 소욕대로 나가며 믿는 자는 현재 생명의 역사가 없고, 영적 진보가 없으며,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세상에서 망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자라도 예수를 구주로 확실히 믿는 자는 천국에는 간다(고전5:5 참조).

생명, 멸망 첫째,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지옥 멸망을 받을 것을 의미한다.  둘째, 생명이란 믿는 사람이 좁은 길로 걸어가면서 말씀을 지킬 때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영혼이 날마다 자라나는 것을 뜻한다.  믿는 자가 넓은 길로 가면 멸망한다는 것은, 영적 생명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영적 생명의 요소들을 잃어 버려 자라나지 못하고 만들어지지 못하며,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겨우 영혼만 불 가운데서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받게 된다(고전3:15 참조).

예수 믿는 사람이 죄 가운데 빠져 성경을 불순종하는 생활을 하면 마귀의 종이 된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와 육신은 다 망하고 영혼만 겨우 구원을 받는다(고전5:5 참조).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며, 좁은 길로 걸어가는 사람이다.  이렇게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핍박이 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므로 제재받는 것도 많고, 하고싶은 것도 하지 못한다.  

신앙을 지키려고 하면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로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험한 길이요 찾는 사람이 적고 자기를 날마다 부인하면서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가지 못한다.  성경 말씀 전체를 다 지키려고 하면 매우 좁은 길이다.  때로는 감옥에도 가야하고 때로는 쫓겨나기도 하고, 굶기도 해야 한다.  성경 말씀을 지킨 것만큼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영이 자라나고, 신앙인격이 만들어진다.  말씀을 많이 붙든 것만큼 길이 좁아지고 그만큼 찾는 사람이 적으나 생명과 인격은 그만큼 커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좁은 문에서 좀 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서 생명이 날마다 살아 나가고 신앙의 열매가 더욱 많이 맺혀 나가야 하나님 앞에 가서 상급을 많이 받게 된다.

 

七.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15-20)

 

.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성도가 진리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한가지 주의해야 될 것은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을 받지 않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을 받으면 아무리 믿는 일을 잘 하려고 하여도 할 수가 없고 마귀의 종노릇만 하게 된다.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큰 표적과 기사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한다고 하였다(마24:11, 24 참조).

택한 백성도 자칫하면 거짖 선지자에게 미혹을 받아 넘어 가서 일생동안 낭패를 당한다.  택한 백성은 미혹을 받아도 마지막에는 회개시켜 하늘나라에 데려가는데 그것이 곧 해받는 구원이다(고전3:15 참조).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옷을 입고 나오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이다.  거짓 선지자들도 외모는 다 똑 같다.  그러나 속이 다르다.  외모를 보면 목사요, 전도사요,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교회 일도 잘한다.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는데 조금씩 다르다.  그들도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기본 교리를 다르게 가르친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하였다.

갈라디아 1:6-7에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고 바울이 말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처음에는 바울이 전한 복음이 옳은 줄 알고 따라가다가 조금 후에는 다른 복음을 따라간 것이다.  옳다고 하였으면 끝까지 복음을 따라가야 될 터인데,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을 받아 다른 복음을 따라가는 것이 이상하다는 뜻이다.

다른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언제나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다른 진리가 하나 있는데 그보다 조금 다르게 만들어 놓은 것은 복음이 아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 다\"(갈1:7-8)라고 하였다.  거짓 선지자 는 성경을 잘못 가르치고 삐뚤어지게 가르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거짓 선지자는 드러난다.  그 다음에는 신앙의 열매로 거짓 선지자를 분별한 수 있다.

 

.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가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가 없다.  사사기 9:10-13에 보면 여러 나무들이 무화과에게 가서 너는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고 하였다.  그 때 무화과나무가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할 때에 여러 나무들이 포도나무에게 가서 우리의 왕이 되어달라고 하였다.  그 때에 포도나무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버리고 어찌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라고 하였다.

거짓 선지자는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가 아니므로 포도나무 열매를 맺을 수가 없고 무화과나무의 열매도 맺을 수 없다.  여기에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참 진리의 열매이다.  거짓 선지자는 참 진리를 가르치지 아니하므로 참 진리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거짓 선지자는 물질주의, 정욕주의, 세상주의, 인본주의로 나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열매가 맺힌다.  그것들은 영적 생명의 역사가 아니며, 인간의 지식주의나 신비주의도 영적 생명의 역사가 아니다.  신비주의는 영의 역사 같으면서도 영의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운동이다.  감정은 영이 아니요 육에 속한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성경을 가지로 말하지만 인간의 이성주의로 해석하여 성경을 세상주의에 이용하고, 인본주의에 이용하고 물질주의, 정욕주의에 이용한다.

\"포도나무 열매\"나 \"무화과나무 열매\"는 진리와 영감으로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는 것을 말한다. 진리와 영감으로 영이 사는 것은 포도나무의 열매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이 열매로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여야 한다.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와서 미혹을 시키기 때문에 분별을 바로 하지 못 하면 신앙의 경로를 걸어갈 수 없다.  지금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왔다.  예수님께서 말세에는 제일 첫째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

 

. 7:17-20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인본주의, 세상주의, 신비주의는 영적 열매를 맺히지 못한다.  왜냐하면 진리대로 된 것이 아니고 영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마지막 날에 찍혀 불에 들어간다.  그것들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없어지고 오직 진리대로 영이 산 것만 영원히 남게 된다.

 

八. 천국자격(21-23)

 

.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께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요한 6:40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라고 하였다.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믿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믿지 않고 주여 주여 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고, 선지자 노릇을 하고, 병 고치고, 많은 권능을 행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알아주는 것이 아니다.  지옥에 갈 사람도 이적을 행할 수 있고 귀신을 내어쫓을 수 있고 권능을 행하고 병을 고칠 수 있다.  마귀도 이적을 행하고 병을 고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했느냐 아니 했느냐이다.  예수를 믿으면 기본적으로는 아버지의 뜻대로 된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가 계속하여 아버지의 뜻인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점점 영적 성전이 건축되고 진보되어 나간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은 하늘나라에서도 인정되어 상급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이적을 행하고 병 고친 것을 알아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늘나라에는 법이 있다.  하늘나라의 법대로 되어야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하나님의 법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이적을 행하고, 아무리 선지자 노릇을 하고, 훌륭한 일을 하였을지라도 주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한 것은 하나님의 법과 사랑을 온전히 이룬 것이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낸 것은 사랑이요 십자가에서 죽게 한 것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법을 이룬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얼마나 철저한지 모른다.  법을 이루기 위하여 독생자라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법에 맞게 하여야 한다.  주일을 지켜야 하나님의 법에 맞고 지키지 않으면 법에 어긋난다.  십일조를 바쳐야 하나님의 법에 맞는다.

 

九. 건물 비유(24-27)

 

.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 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령으로 깨달아 거기서부터 행하여진 것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이다.

마태 13:23에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좋은 땅에 뿌린 씨와 같아서 결실을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맺는다\"고 하였다.  이것이 반석 위에 지은 자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열매를 맺히지 못한 자이다.  이것은 길가와 돌작밭과 같은 것들이다(마13:18-22 참조).  이들 가운데는 처음부터 마귀에게 빼앗긴 자도 있고, 환란이나 핍박, 세상 염려나 재리의 유혹에 넘어가 실패한 자들도 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환란과 핍박과 풍파를 말한다.  심령 속 깊이 진리를 확실히 깨달은 진리는 어떠한 환란이 와도 그것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심령 속 깊이 깨닫지 못한 사람은 환란이 올 때에 진리를 내버린다.  그것이 곧 집이 무너지는 것이다.  말씀이 깨달아지고 깨달은 말씀이 행동으로 나타나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진리를 깨달아 고백할 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하였다.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진리를 심령 속 깊이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좀 더 깊이 깨달아야 되고 좀 더 확실하게 깨달아야 되고 좀 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감동을 받아야 한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행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행하였다고 하여도 환란과 핍박과 유혹이 오면 다 넘어가고 만다.  확실한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환란이 오고 핍박과 유혹이 오고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여도 깨달은 진리를 버릴 수가 없다.  반석 위에 지은 까닭에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확실한 깨달음에서는 반드시 행함이 나온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다(약2:17 참조).

심령으로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그 말씀이 자기 자체가 되고 생명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버릴 수가 없다.  육신의 목숨보다 그 말씀을 더 귀히 여기고 육신의 생명을 내어놓더라도 그 말씀은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말씀을 심령 속 깊이 확실하게 깨닫지 못하면 환경이 좋을 때에는 말씀대로 순종하다가 환경이 나빠지고, 말씀으로 인하여 환란과 핍박이 오고 손해가 나게 되면 말씀을 내어버리게 된다.  이것이 모래 위에 지은 자요 어리석은 자이다.

 

十. 예수님의 교훈(28-29)

 

. 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의 교훈은 권세가 있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진리를 다 행하시고, 이 말씀을 성령으로 전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하기 때문에 말씀에 권세가 있었다.  오늘날 교역자도 말씀을 먼저 행하며 가르치고, 하나님을 의뢰하여 성령으로 전하고, 능력으로 전하면 그 말씀에 권세가 있게 되어 모든 사람이 그 말씀에 복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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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8장

 

제 8 장  백부장

 

(대  지)

一. 문둥병을 고침(1-4)

二. 백부장의 신앙(5-13)

三. 능력을 나타내어 교훈하심(顯能敎訓)(14-17)  

四. 주님을 따를 각오(從主覺悟)(18-22)

五. 환란을 당할 때에 면하는 길(當難免路)(23-27)

六. 귀신의 해독(28-34)

 

(본문강해)

 

一. 문둥병을 고침(1-4)

 

. 8:1-3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한 문둥 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이 산상보훈(마태 5-7장)을 교훈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시니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다. 그 때에 한 문둥 병자가 나아 와서 예수님께 절을 하며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하고 자기의 문둥병을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예수님이 그에게 손을 대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실 때에 즉시 문둥병이 깨끗하여졌다.

문둥병 인간의 심령을 썩게 하는 죄를 상징하고 있다.  죄로 인하여 우리의 심령이 썩어져 들어가기 때문이다.  문둥병에 걸리면 육체가 자꾸 썩어져 들어가 마침내 생명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절하면서 간청한 것을 보면 문둥 병자가 대단히 겸손하였다.  주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믿고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문둥병자에게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문둥병을 깨끗이 고쳐 주셨다.

성도가 자기 심령에 병이 든 것을 항상 발견하여야 한다.  육신에 병이 든 것은 잘 알 수 있으나 심령에 병이 든 것은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다.  계시록 3장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심령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었으나 그 수치를 알지 못하고 외부적인 면, 즉 교회 사업적인 면만 보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다가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다.  우리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 간절하고 또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  낫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을 갖고 예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고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간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어루만져 주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는 위로와 응답이 오는 것이다.  우리가 문둥병자와 같은 심정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예수면이 우리를 만져 주시고, 건져 주시고, 낫게 하여 주신다.

 

. 8: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자는 것은 은혜받은 다음에 그것을 자랑하거나 방심하지 말고 성경에 명한대로(모세의 명한 예물)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순종하여 나가라는 뜻이다.

모세의 명한 예물 레위기 14:2-13에는 문둥병자가 나은 다음에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에 필요한 예물, 즉 정한 산 새 두 마리,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 흠 없는 어린 수양 둘,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암 양 하나, 고운 가루 에바 십 분의 삼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라고 했다.  예수를 믿고 죄에서 깨끗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 해야 될 의무가 있고 자기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 있다.  문둥병자 같이 더러운 죄에서 깨끗함을 받은 성도는 이제 성경대로 바로 생활하라는 말이다.  깨끗해진 다음에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살면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야 한다.

 

二. 백부장의 신앙(5-13)

 

. 8:5-6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이 백부장은 참 좋은 사람이다.  자기 하인이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고쳐 주려는 마음이 간절하여 예수님께 찾아 나와 그 사정을 알린 것이다.  하인을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고, 하인의 병을 자기의 병처럼 안타까워하는 사람이다.  성도는 다른 사람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고 체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 8:7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의 신앙을 보고 예수님이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였다.  그런데 백부장은 대답하기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고 말하였다.  백부장의 지위는 상당히 높은 지위이다.  군사적으로 백 사람의 부하를 데리고 있는 지휘관이고, 정치적으로도 백부장이 어느 정도 치안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이처럼 간구한 것은 아주 겸손한 증거이다.

 

.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이것은 백부장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확실히 믿고 경외하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우리 성도는 세상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신4:10 참조).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하고 구제하는 일에 힘을 썼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서 응답하여 주었다(행10:1-2 참조).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이삭을 결박하여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서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였다(창22-12 참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게 한 것은 아브라함이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백부장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실 수 없다고 한 것은 예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 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자기 하인이 자기 말을 복종하는 것처럼 주님의 말씀에 천지만물이 모두 복종하게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나님이시며 천지의 대주재요 절대적인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모든 것이 그대로 되어 질 것을 백부장이 믿었다 . 예수님이 말씀 한 마디만 하시면 자기 하인의 중풍병까지도 복종하게 될 것을 믿었다.

아무리 큰 세력도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 없고, 사람 속에 있는 병이나 세균 하나까지라도 주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게 될 것을 믿은 것이다.   백부장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 걱정이 없다.  예수님은 절대 주권자이시고 무한한 권능이 있어서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모든 것이 복종하게 되니 무엇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

예수님의 말씀이면 물고기도 복종, 바람도 복종, 병도 복종, 바벨론이나 애굽의 세력도 복종하게 되고, 귀신도 복종하게 되므로 아무 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우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이스라엘 중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큰 믿음이라고 칭찬하셨다.  백부장이 겸손하여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주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믿어 그의 명령에 모든 것이 복종할 줄을 믿었기 때문이다.

 

. 8:11-13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아서 천국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방인인 백부장은 그렇게 큰 신앙을 가졌는데 나라의 본 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은 믿지 않음으로 예수님이 탄식하며 책망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하여도 믿지 않으면 멸망받을 것을 가리킨다.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예수님이 말씀만 하여도 하인의 병이 나을 줄로 믿었으니 네 믿은대로 되라고 하신 것이다.  말씀은 만능이기 때문에 그 시로 하인의 병이 나았다.

 

三. 능력을 나타내어 교훈하심(顯能敎訓)(14-17)

           

. 8:14-15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앎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예수님은 심령의 병을 고쳐 주시는 표적으로 육신의 병도 때때로 고쳐 주셨다.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병이 나은 다음에 예수님께 수종들었다.

 

.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심령의 병을 고쳐 주실 뿐만 아니라 마귀의 모든 역사도 물리쳐 주시는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해 주시려고 병도 고쳐 주고 귀신도 쫓아내 주었다.  예수께서 병을 고치셨으나 병 고치는 것을 위주로 하지 않으셨다.  영적인 병을 고치고 그 표적으로 이따금 육신의 병을 고치신 것이다.  떡 다섯 개로 오 천 명을 먹인 이적도 예수님이 자신의 살을 생명의 떡으로 주실 것을 알게 하기 위해 한두 번 한 것이고 먹을 것이 없을 때마다 늘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다.

 

.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친히 짊어져 주시고 연약한 사람은 다 오라 내가 담당해 주리라고 하신다.  우리 심령의 병과 연약한 것을 주께 맡기면 주님이 대신 다 짊어져 주신다.  우리가 상한 심령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면 예수님은 우리의 상한 심령을 싸매 주시고, 고쳐 주시며 온전하게 만들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여 나는 약한 자입니다 나는 병들었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겸손히 주 앞에 찾아 나아가면 주님이 다 고쳐서 강건하게 만들어 주신다.

 

四. 주님을 따를 각오(從走覺悟)(18-22)

 

. 8:18-19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 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주님을 배반하고 핍박하는 때에 예수님을 좇겠다고 하였으니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여 예수를 따라가는 길은 세상에서 고난의 길인 것을 말씀해 주셨다.

 

.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여우와 같은 생활을 하는 자도 집이 있고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도 거처가 있으나 예수님은 거처가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헤롯을 여우라고 말한 적이 있다(눅13:32 참조).  새는 마귀를 상징한다(눅8:12 참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예수님은 세상으로 머리 둘 곳을 삼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운동은 세상운동이 아니고 천국운동이라는 말이다.  이 운동은 썩어질 것이 아니고 썩지 않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4:18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고 하였다(요18:36 참조).

예수님의 머리 둘 곳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나라이다.  \"머리 둘 곳\"은 안식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나라로 안식처를 삼지 않고 하나님의 품속과 하나님의 나라로 안식처를 삼으신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썩지 않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신다.  세상운동을 하면서 육신의 평안이나 세상 것을 얻으려고 하는 자는 예수님께는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좇아오거나 떠나가는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으시고 오직 진리를 가르칠 뿐이었다.  예수님은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한 사람 이라도 진리를 깨달은 자를 기뻐하신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수 천 명이 좇아와도 소용이 없다.  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갔으나 예수님의 양(羊)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한마디 전했는데 그 말씀이 역사하여 결국에는 예수님을 믿어 공회에서 예수를 위하여 변명하고(요7:50-51참조), 예수님을 장사할 때에는 몰약과 침향섞은 것을 백근 쯤이나 가지고 왔다(요19:39참조).

 

. 8:21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부친을장사 부친이 별세했으므로 장사한다는 말이 아니다.  아직 부친이 생존해 있는데 그 부친을 모시고 있다가 앞으로 별세하면 장사하고 그 후에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뜻이다.

 

. 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죽은 자들로 저회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영혼이 죽은 자(믿지 않는 사람)들로 죽은 자(별세한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뜻이다.  믿지 않는 사람은 전부 영혼이 죽은 자이다(엡2:1참조).  믿지 앓는 부모가 별세하면 믿지 않는 자들이 장사할 수 있으니 죽은 사람 장사할 것 때문에 예수 따라가는 것을 중지하지 말라는 뜻이다.  부모를 공경해야 하지만 믿음을 떠나서까지 하면 안된다.  믿는 일이 첫째이고 주님의 명령을 따라가는 것이 생명이다.

너는 나를 좇으라 예수님을 좇는 것이 생명의 길인데 너는 부모 때문에 이 생명의 길을 버리려고 하느냐는 뜻이다.  생명의 길을 발견하고 생명의 도를 깨달았으면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영혼이 죽은 사람도 할 수 있는 죽은 일(생명없는 일) 때문에 생명길을 걷지 못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생명길을 걸어가면서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생명의 말씀 때문에 혹시 부모를 공경하지 못할 경우에도 부모 보다 생명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감옥에 들어가면 부모를 공경할 수 없는 줄 알면서도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신앙을 지키다가 감옥에 들어갔다.  부모 공경 때문에 말씀을 못 따라가면 부모가 우상이 되고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부모보다 하나님이 더 크고 말씀(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떠 크다.  부모 때문에 옳은 진리를 못 따라가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마땅히 해야 될 줄로 알면서 조금 있다가 하겠다는 것도 죄이다.  부모가 세상 떠난 다음에, 결혼한 다음에, 돈을 조금 벌어 집이니 한 칸 마련한 다음에, 신앙생활을 잘하겠다는 것은 마귀에게 속은 것이다.  내일은 없는 줄 알고 오늘에 살아야 한다.  오늘 말씀을 따라가고 오늘 생명길을 걸어가야 한다. 부모나 자녀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항상 말씀만 따라가며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하나님이 그것들도 지켜 주시고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누가복음 9:61에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겼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 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좇는 것은 손에 쟁기를 잡고 하나님의 밭에서 일하는 것이며 생명을 살려 나가는 구원운동인데 이것을 중지하고 가족을 작별하러 가겠다는 것은 합당치 않다.  왜냐하면 예수 좇는 것보다 가족 작별을 떠 중시한 까닭이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아 밭가는 일이 실패하기 때문이다.

 

  五. 환란을 당할 때에 면하는 길(當難免路)(23∼27)

 

. 8:23-25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아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지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마가복음 4:35-39의 말씀과 같은 사건인데 거기에는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하고 제자들이 말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광풍이 일어나서 물결이 부딪혀 배에 물이 많이 들어오고 대단히 위태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운 것이다.  제자들은 풍랑 때문에 죽을까봐 무서워서 벌벌 떠는데 예수님은 평안하게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의 말이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하였다.  같은 배를 타고 같은 사건을 만났지만 제자들은 죽을까봐 벌벌 떨었고 예수님은 평안하였다.  예수님은 믿음이 크기 때문에 무서워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요, 믿음의 인도자이다.  풍랑을 만나고 죽을 지경을 당해 보아야 큰 믿음이 있는 자도 나타나고, 믿음 없는 자도 나타난다.

예수의 믿음은 왜 큰 믿음인가?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다.  죽이고 살리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니 물결이 아무리 심해도 하나님이 죽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을 믿는 것이다.  풍랑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으면 죽을까봐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려면 평소부터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적은 일부터 연단을 받아 믿음이 자라나야 한다.  자라나면 큰 환난을 만날 때에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둘째, 예수님은 육신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영의 생명으로 하나님을 중심하여 사는 것이므로 육신은 죽는다고 하여도 죽지 않는 생명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빌립보서 1:21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바울이 말하였다.  영적 생명은 뺏앗기지도 아니하고 영원히 죽는 법도 없다.  예수님은 영원히 사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육신이 죽는 것은 큰 일이 아니다.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로 사는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육신이 죽는 것은 영혼이 쓰고 살던 장막집을 벗어 놓고 더 좋은 집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고후5:1참조).

예수님이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11:25-26참조)라고 하였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오히려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 되었기 때문에 몸이 죽는다 해도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게 되었사오니 감사합니다 하는 신앙을 가졌다.

셋째,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다.  아무리 풍랑이 심하게 일어난다 할찌라도 그 물결이 능히 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능력으로 지켜 줄 것을 믿은 것이다.  하나님은 사자의 입도 막아주고, 풀무불 가운데서도 타지 알게 하고, 홍해 바다나 요단강도 갈라서 육지와 같이 만들고,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은 것이다.

넷째,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사명이 있기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을 믿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낸 목적은 구속을 이루려고 보내셨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사업을 이루기 전에는 하나님이 데려가시지 않는다.  제자들이 자기들의 사명을 깨달았다고 하면 죽을까봐 두려워하지 알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구원운동에 이용하려고 하나님이 택하여 가르치고 훈련시키다가 왜 도중에 죽이겠는가 !  자기 사명을 다 망각했기 때문에 두려워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명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이 살려두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왜 멸망시키지 아니하였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맡긴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믿음이 적은 자들아 풍랑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적은 증거이다.  누가 8:25에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과 영적 생명으로 사는 믿음이 적었다.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제자들이 시험을 신앙으로 통과하지 못했다.  시험이 지나간 다음에는 잔잔하여진다.  문제는 그 시험을 믿음으로 합격하였는지 합격하지 못하였는지가 중요한 문제이다.  시험에 불합격이 되면 믿음이 적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원통한 마음을 가지고 통회해야 한다.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고 나서 분한 마음과 억울한 마음이 가득하여 가슴을 치면서 대성통곡하였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너희가 왜 죄에 대하여 통한히 여기지 않았느냐고 책망하였다(고전5:2 참조).  시험이 들어왔을 때 믿음으로 통과하면 감사와 기쁨이 나오는데 실패로 통과하면 억울하고 분하기 짝이 없으며 자기 자신이 밉고 원수처럼 생각된다.  그때에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된다.

 

. 8:27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물결이 잔잔하여진 다음에 제자들이 \"아하 좋다\"하지 말고 거기에서 통곡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제자들은 원통히 여기며 통곡은 하지 않고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였다.  이방인 백부장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으나 제자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신앙이 어떠한가 알 수 있다.

 

六. 귀신의 해독(28-34)

 

. 8: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만 하더라

귀신들린 두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리로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사납고 많은 손해와 해독을 주었다.  이 사람들은 귀신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이며 귀신에게 이용당하고 있었다.  귀신은 마귀의 졸병들이다.

 

. 8:29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귀신들린 사람이 하는 말은 귀신이 하는 말이다.  귀신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고 있다(약2:19 참조).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귀신을 구원하여 주려고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과 귀신은 상관이 없다.  귀신들이 때가 이르면 망할 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에 오셨느냐고 귀신이 예수님께 말한 것이다.

 

. 8:30-31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실찐대 돼지떼에 들여 보내소서 한대

마침 멀리서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떼가 먹고 있으므로 귀신들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실찐데 돼지떼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였다.  귀신들도 제 마음대로 돼지떼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마귀가 침범할 수 없고 하나님의 허락하신 한도 안에서만 마귀가 움직인다.

 

. 8:32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돼지떼에게 들어가라고 허락하셨으므로 귀신들이 두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 이천 마리에게로 들어갔다.  귀신들이 들어가자 돼지떼가 비탈길을 달려 내려가 바다에 들어가 몰사하였다.  이것을 예수께서 허락한 이유는 첫째, 귀신은 반드시 존재한다.  보이지 않아도 마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귀신은 반드시 해독을 준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귀신은 사람에게 해독을 주지 아니하면 짐승에게라도 해독을 주고야 만다.  성도가 마귀에게 한번 걸려들면 막심한 해독을 받는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타격을 받게 되므로 마귀에게 걸려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한번 마귀의 시험에 들면 회개한다고 하여도 막심한 타격과 해독을 받기 때문에 그 상처가 오래 간다.  마귀는 언제나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통하여 들어온다.  하와에게도 선악과를 따먹게 할 때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그것 하나 따먹으면 굉장히 좋아질 것 같았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이용하여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고 손해를 주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해야 한다.  마귀의 해독을 받지 않아야 영혼이 자라나고 믿는 일이 된다.

셋째, 한 사람의 생명이 돼지 이천 마리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의 생명이 돼지 이천 마리보다 훨씬 귀하기 때문에 귀신들이 돼지떼에 들어가는 것을 예수님이 허락하셨다.

넷째, 사람보다 귀신이 강하고, 귀신보다 예수님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자기 힘을 가지고는 귀신을 이기지 못한다,  사람이 귀신을 이기려면 예수님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야 한다.

다섯째, 욕심으로 하는 사업은 심판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구약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돼지는 먹지 못하는 부정한 짐승이었다(레11:7 참조).  왜냐하면 돼지는 쪽발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먹지 못한다.  그런데 돼지를 많이 기른 것은 분명히 성경을 어기고 욕심으로 돈을 벌려고 했기 때문이다.  욕심으로 하는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느라고 돼지 이 천 마리에게 귀신이 들어가는 것을 예수님이 허락한 것이다.

 

. 8:33-34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돼지 치던 자들이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도 예수를 믿지 않고 시내로 들어간 것은 시내에 있는 돼지들이 전부 죽을까봐 알려 주려고 급히 들어간 것 같다.  이 동네는 사람보다 돼지를 더 중하게 여긴 동네이다.  구주가 오셔서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는커녕 그 동네에서 예수님이 떠나기를 간구했다.  사람보다 돼지를 더 중히 여기고 예수님 보다도 돼지를 더 중히 여겼으므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다.  사람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돼지 즉 돈만 아는 사람들이다.  그 동네는 참으로 불쌍한 동네이다.  그 동네에 모처럼 예수님이 가셔서 귀신을 쫓아내고 생명을 살려 내는 이적을 보여 주었음에도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께 감사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다.  그리고 도리어 예수님을 배척하는 죄악에 빠졌다.  그러므로 이 동네는 재물과 함께 망할 수밖에 없는 동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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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9장

 

제 9 장  마 태

 

(대  지)

一. 반신불수가 완전하여짐(1-8)

二. 마태를 부르심(9-13)

三. 의식과 새 생명 운동(14-17)

四. 혈루증을 고치심(18-22)

五.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23-26)

六. 소경과 벙어리를 고치심(27-34)

七. 연수 의무(35-38)

 

(본문강해)

 

一. 반신불수가 완전하여 짐(1-8)

 

. 9: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본 동네는 예수님의 전도 근거지인 가버나움을 가리킨다.

 

.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마가 2:1-12의 사건과 동일한 사건인데 거기에는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에는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어 온 것과 그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서 구멍을 뚫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린 것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메고 왔다.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이 계신 곳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렸다.  그리하여 예수님 앞으로 중풍병자의 누운 상이 내려 왔을 때에 예수님께서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저희의 믿음 중풍병자와 그를 메고 온 네 사람의 믿음을 말한다.  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다.  또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반드시 구원해 줄 것도 믿은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에 왔을 때에 사람들이 겹겹이 예수님을 둘러섰기 때문에 예수님이 계시는 방안에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붕 위로 올라가서 구멍을 뚫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렸다.  이것은 난관을 돌파하고 나아가는 신앙이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길에 난관이 가로막혀 있다고 할지라도 전심전력을 다하여 그 난관을 돌파하고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아무리 방해물이 많고, 길이 막혔을지라도 잘 찾아보면 반드시 길이 하나 있다.  그 길을 연구하고 힘써 찾아야만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힘써 찾을 때에 마침내 지붕을 뚫고 침상을 내려보내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역사해 주셨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자기의 피로 구속함을 이룰 것이기 때문에 죄사하는 권세가 있다.  예수님에게 나아갈 때에 이 중풍병자는 몸만 나아간 것이 아니고 마음도 나아갔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예수님을 볼 때에 마음이 서로 통하고 심령이 예수님과 더불어 교통하게 되었다.  그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을 사모하며, 예수님께 나아가면 반드시 상 주실 것을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난관을 극복하고 기어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한 것이다.

히브리 11:6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다.  이러한 믿음을 가졌던고로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사죄와 새 생명을 주셨다.  이 생명은 죄사함을 받은 결과로 얻은 것이다.  죄사함과 생명을 얻으면 영적 평안과 즐거움이 넘치게 된다.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풍성하게 주신다.

중풍병자가 세상에서는 소망이 없는 줄로 알고, 오직 그리스도께 나아가야만 자기가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중풍병자는 병으로 인하여 좋은 신앙을 가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병들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찾을 마음도 생겼고 어떠한 난관이 와도 그것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아갈 길을 찾게 된 것이다.  또 자기 힘으로 못 갈 때에는 여러 사람이 협력하여 나아갔다.  이 네 사람은 자기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들일 것이다.  그 네 사람들도 이 중풍병자를 고쳐 보려는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다른 방법으로는 고칠 길이 없으므로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하였으므로 그리스도가 오시면 병을 고쳐 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다.

시편 119:71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하였고, 시편 119:67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도 고난으로 말미암아 귀한 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중풍병자 때문에 그의 가까운 사람들(메고 오는 사람들)까지 믿음을 갖게 되었다.

 

. 9:3-4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서기관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인 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죄사해 주는 권세가 있는 줄을 몰랐다.  그러므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참람하다\"고 생각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그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은 악한 생각이다.

 

. 9:5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말보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이 더 어렵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 본문의 내용은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더 어렵고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이 더 쉬운 것이다.  왜냐하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려고 중풍병자를 일어나 걸어가게 했기 때문이다.  걸어가게 하는 것은 인자가 죄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는 증거이다.  걸어가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을 하면 쉬운 것은 틀림없이 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만일 걸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면 쉬운 것은 했지만 어려운 것은 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것(걸어가는 것)을 하면 쉬운 것(죄사함)은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병은 대개 죄 때문에 난다고 볼 수 있다.  병이 나아서 걸어가는 것은 벌써 죄의 문제가 해결된 증거이다.  \"일어나 걸어가는 것\"은 죄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고 죄사함을 받은 결과이다.

요한 5:14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는 죄 때문에 병이 났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더 중한 병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였다.  요한 9:1에 나오는 소경은 죄 때문에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까닭이라는 말씀이 있으나, 대개는 죄 때문에 병이 난다고 보아야 한다.

야고보 5:13-16에서 죄 때문에 병든 줄 알고 병든 자를 위하여 서로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였다.  우리가 병이 들면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있어서 병이 났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을 찾아 회개하여야 한다.  병자뿐 아니라 병 없는 가족에나 친척이나 친구들도 서로 회개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였다.

 

.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하실 때에 그 사람이 예 하고 벌떡 일어나 집으로 걸어갔다.  이것을 보면 중풍병자가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  왜 침상을 가지고 가라고 하셨을까?   38년 된 병자에게도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다(요5:8 참조).

병이 나서 누워 있던 침상을 그대로 놓아두면 안 된다.  그대로 두면 또 그 자리에 누울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병이 나서 누워 있던 침상을 가지고 가서 버려야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이 과거에 병신 노릇하던 그 환경과 분위기를 정리 정돈하여 끊어 버릴 것은 끊어 버리고 없애야 할 것은 없애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그러한 자리에 들어갈래야 갈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아야 한다.  과거에 심령이 병들었을 때에 사귀었던 친구나 나쁜 습관들을 다 내어 버려야 한다.  그리해야 은혜 가운데서 계속 달음질을 할 수 있다.

 

. 9: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하시므로 중풍병자가 반드시 일어날 것을 믿고 순종하니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겨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 이 중풍병자는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세계를 만났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고, 기쁘고 즐거운 세계에 들어 갈 수 있다.

 

. 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큰 권세를 하나님이 주셨다\"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을 보면 어려운 일(걸어가는 일)을 하였으니 쉬운 일(죄 사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능히 하실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二. 마태를 부르심(9-13)

 

. 9: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마가 2:14에는 마태를 레위라고 하였다.  마태가 예수 믿기 전의 이름은 레위이고 믿은 다음에는 마태라고 불리운 것 같다.  베드로도 예수 믿기 전에는 시몬이었으나, 믿은 후에는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가졌다.  도마도 예수 믿기 전에는 디두모라 하였다.  마태는 당시에 그 지방의 세금을 받는 관직(세리)에 있었다.   러므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좋은 직장을 가졌으나 예수님께서 \"나를 좇으라\"고 하실 때에 그 직장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아가 제자가 되었다.  이것은 아주 귀한 믿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우수하여 이 마태복음을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부름받은 마태는 너무 기뻐서 자기 집에서 잔치를 하였다.  예수님을 손님으로 청하고 또 자기 친구들도 많이 청하였다.  마태의 친구들은 대개가 세리였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마태 한 사람이 회개하고 따라오는 것을 기뻐하셔서 초대에 응하여 같이 음식을 잡수셨다.

 

. 9:11  바리세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R\" 잡수시느냐?\"고 질문하였다.  당시에 세리는 창기와 같은 죄인으로 취급받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참 도를 말하는 선한 선생님 되시는 예수님이 어찌하여 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힐문한 것이다.

 

.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의원은 병을 치료하여 병을 고쳐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병이 없고 깨끗한 자는 의사가 필요없다.  의원이 병든 자에게 필요한 것같이 예수님은 죄인에게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죄를 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제사는 외부적인  면이고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사랑이다.  하나님은 형식적으로 제사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중심에서 사랑하고 긍휼이  여기는 것을 원하신다.  내가 남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하나님도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  긍휼과 사랑의 세계는 영의 세계이다.  자기가 먼저 하나님의 긍휼을 받고 나서 제사를 하여야 한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제사를 드려야 참된 제사가 된다.  그러므로 긍휼이 제사보다 앞서고 긍휼없는 제사는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고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다.  죄없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필요치 않다.  예수님이 구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이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는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

시편 51:17에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통회하는 자를 원하시고 그러한 사람의 심령을 소생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시다(사57:15 참조).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여호와이시다(시34:18 참조).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올 때마다 통회하는 마음과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  지금 지은 죄가 없다고 하더라도 전에 지은 죄를 붙들고 애통하는 심령을 가져야 한다.  다윗은 범죄한 후에 침상이 뜨고 요가 적시도록 회개하였다.  바울은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였다고 회개하였다(딤전1:13 참조).

베드로는 매일 새벽에 닭이 울 때마다 \"하나님이여 내가 저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한 죄인입니다\"라고 회개의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과거에 이미 회개하여 사함을 받았을지라도 그 죄를 다시 원통히 여기고 회개하면 영혼의 거름이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점점 겸손하여지고 자기를 부인하게 되어 하다님 앞에 점점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죄가 없는 줄로 아는 자도 사실은 속에 죄가 많이 있다.

죄가 많은데 왜 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가?  회칠한 무범이 되었기 때문에 모른다.  외부에는 회칠을 해 놓았으므로 아름다우나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사람은 전적 부패한 것인데 왜 죄가 없겠는가 !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을 날마다 붙들고 상한 심령이 되어 예수님께 나아가면 주님이 그 사람을 영접하여 주신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이시니 날마다 자기의 죄를 붙들고 애통하면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또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도 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다고 하여도 오히려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정성이 부족하여도 죄이고 마음을 다하지 못한 것도 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늘 자기 죄를 붙들고 애통하는 자가 되어야 희다.

사랑하지 못한 것도 죄이다.  사랑을 하였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면 하나님 앞에는 죄이다.  스스로 죄를 회개하고 상한 심령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권고가 떠나고 마귀에게 내어준 바 된다(고전5:1-5, 삼하24:1, 대상21:1 참조).  그리하여 죄와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되면 그때서야 자기가 죄인인줄 알고 회개하게 된다.  마귀에게 걸려들어 손해를 보고 나서 회개하는 것이다.  더러워진 옷을 씻으려면 시일이 많이 걸리고, 육신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손해가 있으나 영적 면으로는 그 짯이 유익 하5).

 

三. 의심과 새 생명 운동(14-17)

 

. 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을 자주 한 모양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식하는 절기를 정하여 놓고 일년에 네 번씩 금식하였다(슥8:19 참조).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므로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이유를 예수님께 물어 보았다.

 

. 9:1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신랑\"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혼인집 손님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신랑을 빼앗길 날은 신자가 예수님을 빼앗길 때를 가리킨다.  금식을 의식주의로 자주 하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다. 금식하는 목적은 자기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다(사58:3-5 참조).

그러므로 이 목적을 떠나서 절기마다 금식하고 또 남이 금식하므로 자기도 금식하는 것은 의식주의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신랑과 같이 즐거워하고 교제하며, 새 생명의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금식할 필요가 없으나 신랑을 빼앗길 때에는 금식하면서 신랑을 다시 찾아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자기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하지 못할 때에는 부르짖으면서 금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을 할 필요가 없다.

 

. 9:16-17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아니 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예수님은 금식에 대한 답변을 두 가지 예를 들어서 말씀하셨다.

①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욱 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②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새 포도주가 팽창할 때 부대가 터져서 부대도 버리고 포도주도 버린다.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 의문과 의식주의를 가리킨다.  로마서 l7:6에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의문과 의식주의는 묵은 것이다.

생베조각과 새 포도주 진리와 영감으로 하는 새 생명운동인데 성도들의 영혼을 살려 나가는 신령한 운동이다.  영혼을 살리는 영적 역사는 새 것인데 이것을 묵은 의식주의 속에 넣으면 안 된다.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둘 다 버리고 만다.

요한 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하였다.  영의 운동을 의문과 의식주의의 속에 넣어 두면 영적 운동이 실패되고 의식주의도 제대로 안 된다.  교회는 영을 살펴내는 일을 하여야 하는데 세상주의와 인본주의와 의식주의로 나가게 되면 영의 운동도 되지 않고 의식주의와 세상운동도 되지 않는다.  영혼이 살아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요 의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의식주의 속에 들어가면 영적 운동을 할 수 없다.  영이 자유롭게 진리와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산다.  영이 의식에 얽매어 제재를 받는다면 영의 역사는 중단이 된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새 부대는 진리의 말씀을 가리킨다(롬7:6, 히8:13 참조).  우리의 중생한 영이 말씀과 영감 속으로 들어가야 우리의 영적 생명이 점점 창성하고 생명의 역사가 커 나간다.  교회를 외부적으로 부흥시키기 위하여 의식주의와 인본주의로 나아가면 안 된다.  교인이야 많든 적든 진리를 바로 밟히고, 한 사람이라도 바로 세우고, 영을 살펴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참 빛의 등대가 되는 것이다.

 

四. 혈루증을 고치심(18-22)

 

. 9: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

여기 한 직원은 회당장 야이로이다(막5:22 참조).  야이로가 자기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예수님께 와서 자기 딸을 살려 달라고 간구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한 사건이 일어났다.

 

. 9:19-20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 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혈루증 않는 여자가 나은 것은 누가 8:43-48에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2년간을 이 병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더니 예수님의 뒤로 와서 겉옷 가에 손을 대므로 병이 깨끗이 나았다.

 

. 9: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이는 그 여자가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낫겠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여자는 병이 나은 후 가만히 숨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게 손을 낸 자가 누구냐?\"고 물으셨는데 베드로는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 가면서 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대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그 때에 예수님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그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 능력으로 혈루병을 고쳐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것을 숨기려고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여자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줄 알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고백하였다.

이것은 은혜를 받은 다음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은혜를 받고도 가만히 있으면 은혜가 소멸된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주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증거를 하여야 한다.  믿음을 써서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감사연보도 힘써 하여야 한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변화된 생활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한다.  사랑하지 못하던 사람을 사랑하고, 원수도 용서하고,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것을 충성하여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조금  받았으면 조금 쓰고, 많이 받았으면 많이 써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그 은혜를 써야 자라나고 열매가 맺히고 더 많은 것을 받을 수가 있다.

 

.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 여자의 믿음이 참으로 좋은 믿음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자기의 병이 나을 줄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 여자는 자기 혈루증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 같다.  그리스도 외에는 자기의 병을 고쳐 줄 분이 없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사모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힘쓴 사람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예수님의 깊은 면을 점점 더 알게 된다.  사람은 깊이 사귀어 들어가면 점점 결점이 들어 나게 되는데 예수님은 깊이 사귀면 사귈수록 점점 더 능력이 많고, 사랑이 충만하고, 완전무결하고, 생명이 넘친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을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좀 더 깊이 사귀도록 힘써야 한다.

이 여자가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찾을 때에 자기 심령 속 깊은 곳에서 예수님을 찾아 발견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발견하고 보니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능력이 무한하시고, 사랑과 긍휼이 무한하시고, 생명이 넘치는 분이심을 알았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옷깃만 만져도 자기 병이 나을 것을 확신하여 예수님의 뒤를 좇아가서 예수의 겉옷을 만졌다.  과연 만지는 순간 그 여자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  예수님은 그 여자의 모든 것을 아시고, 예수님이 만능으로 그 여자의 병을 고쳐 주신 것이다.

 

五.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23-26)

 

. 9:23-24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야이로의 딸이 이미 죽었는데 예수님이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 시대에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 피리를 부는 풍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피리를 불고 슬퍼하는 가운데 있었으나 예수님은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무리들은 소녀가 죽은 것이 확실하므로 비웃었다.  예수님은 성도가 죽은 것을 잔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생명이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고 영이 살아 있다는 뜻이고 또 자는 사람은 반드시 잠에서 깨어나듯이 육신이 다시 살아날 것(부활)을 가리킨다. 이것은 누가 8:49-56의 사건과 같은 것이다.

 

. 9:25-26  무리를 내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예수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아이와 부모만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다른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소녀야 일어나라\"하시니 그 아이의 영이 돌아와 곧 일어났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알게 해 준 것이다.

누가 8:55에는 먹을 것을 주라고 예수께서 명령하셨다.  살려 놓은 다음에는 먹을 것을 주어야 계속하여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이 살려 놓았으면 먹을 것은 너희들이 주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네가 할 일은 네가 해야 한다\"는 뜻이다.

누가 8:56에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것은 메시야의 은닉사상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다음에야 공적으로 알리시게 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이 십자가 후에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六. 소경과 벙어리를 고치심(27-34)

 

. 9:27-31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

소경들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줄 믿고 또 그리스도는 모든 병과 약한 것을 짊어져 주시고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네가 믿느냐고 하실 때 주여 그러하오이다 라고 대답한 것이다.  이 말은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능력으로 구원해 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뜻이다.  그들의 심령의 눈은 이미 밝아져 있었던 것이다.  그 심령의 눈이 밝게 된 표적으로 예수님이 육신의 눈을 밝게 해 주신 것이다.  이 사람들은 소경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요9:39-41 참조).

 

. 9:32-33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귀신들려 벙어리 된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그 귀신을 쫓아내 주어 그 벙어리가 말하게 되었다.  귀신은 예수님의 명령에 항거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이것을 본 무리가 기이히 여겨 말하기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 9:34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이적을 행하여 생명을 살려 내며, 연약한 것을 고치시며, 악한 마귀를 쫓아내시는 생명운동을 하시는데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시기하여 \"예수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바리새인들은 시기하고 비방을 하였다.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비방하는 바리새인들이야말로 얼마나 거짓된 종교가인가 !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七. 추수의무(35-38)

 

.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께서 대중운동을 하시지 않고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하시기에 힘쓰셨다.  또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 주는 일을 하셨다.  참으로 예수님은 우는 자의 위로요, 병든 자의 고침이요, 불쌍한 자의 친구요 약한 자의 강함이었다.

 

.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것을 예수님이 보시고 참으로 불쌍하게 여기셨다.  참 목자가 와서 그들 가운데 계시면서 인도하여 주시려고 하지만 그 무리들은 목자 되신 예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인도를 받지 아니하고 고생하며 유리하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이 얼마나 민망하셨겠으며 얼마나 안타까워 하셨겠는가 !

 

. 9:37-38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바른 목자가 있으나 돌아오지 않고 고생하며 방황하는 것을 예수님이 몹시 안타까워 하셨다.  바른 목자에게로 돌아오게 하려면 일꾼들이 많이 필요하다.  곡식이 다 익어 추수할 때가 됐는데 나아가서 거두어들이는 사람이 없다.  예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부르실 때에 일꾼들을 시켜서 거두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해산하는 수고를 하며 거두어들이는 자가 필요하다.

삯군은 많고 자기만 먹이는 목자는 많으나 참으로 양들을 예수께로 인도하며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일꾼은 많지 않다.  세례요한과 같이 양 떼를 예수께로만 인도하고 예수님의 구원운동만 흥하게 하고 자기는 쇠하려는 일꾼이 절대 필요하다.  현세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를 따라가고 인본주의와 의식주의와 신비주의를 따라가는 자가 많다.  또 지식주의와 세상주의를 많이 따라 가고, 거짓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고생하고 유리하는 자가 많다.  그러나 참 진리를 가르치는 참 종에게 돌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므로 주님에게 붙잡혀서 이용당하며 진리를 바로 전하고, 깊은 진리와 영감으로 영혼을 살려 나가며, 주님과 그 나라만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참된 일꾼이 많이 나와서, 고생하며 유리하는 양떼들을 건져내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힘써 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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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10장

 

제 10 장  제 자

 

(대  지)

一. 열 두 제자를 세우시고 권능을 주심(1-4)

二. 하나님의 권능으로 전도함(神能傳道)(5-15)

三. 핍박을 각오하라(逼迫覺悟)(16-23)

四. 두려워하지 말고 증거하라(24-33)

五. 모든 것을 내어놓고 주를 따라갈 것(34-39)

六. 영접하는 자의 복(40-42)

 

(본문강해)

 

一. 열 두 제자를 세우시고 권능을 주심(1-4)

 

.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누가 6:12에는 예수님이 밤이 맞도록 산에 가서 기도하시고 내려와서 열 두 제자를 택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제자들을 택하여 세우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택하여 세우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이런 권능을 언제나 누구에게나 주신다.  우리가 약하고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권능을 입혀 주신다.  그리하여 귀신도 내어쫓을 수 있고, 병 고치는 권능도 나오게 된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 자신도 강하여지고 다른 사람의 약한 것을 고쳐서 강하게 만들어 나가는 권능이 있게 된다.  최권능 목사님이 권능의 사람이 된 것도 하나님의 복음을 힘있게 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권능을 입혀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권능을 줄 때에 그것을 써서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 자기의 능력이 되고 자기의 인격이 된다.  쓰지 많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거두어 가신다.  능력이 없고 말할 줄 몰라서 전도를 못 한다고 하면 안 된다.  예레미야가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1:6-7 참조)고 하였다.  일은 하나님이 친히 하실 것이므로 너는 순종만 하라는 것이다.

모세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자라...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4:10 참조)라고 말하였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라고 하셨다(출4:11 참조).  나 여호와가 네 입을 지었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주었는데 왜 네가 말을 못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느냐는 뜻이다.  네가 아무리 연약하고 말할 줄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나아가면 하나님이 입도 열어 주시고 힘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이 성공되어 가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 10:2-4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세리 마태는 마태복음을 기록한 제자인데 자기 이름을 기록할 때에 \"세리 마태\"라고 하였다.  당시에 세리라는 직분은 천하게 여기고 죄인 취급을 받는 직업이었다.  그런데 마태는 겸손하여 자기가 죄인이라는 의미에서 \"세리 마태\"라고 기록한 것 같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는 학자나, 선비나, 문벌 좋은 사람이 없다.  또 제사장이나 서기관같이 훌륭한 종교 지도층도 없고, 다만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나, 세리와 같이 중류 이하의 사람들이었다.  가룟 유다 한 사람만 유대 사람이고 그 외의 열 한 사람은 모두 천한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을 유명한 사람, 즉 학자나 선비같이 지혜있고 통달한 사람이나 문벌 좋은 사람 가운데서 택하지 않으셨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고린도전서 1:26-29에 잘 나타나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자기와 지혜나 능력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려고, 지혜가 없고 능력이 없으며 보잘 것이 없는 사람들을 택하여 제자로 삼은 것이다.  자기의 지혜와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고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항상 어린아이같이 되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줄 알고 하나님만 의뢰하여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고린도후서 4:7에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인격은 질그릇과 같이 약하고 보잘 것이 없으나 하나님이 우리의 속에 보배를 넣어 주셨다.  이 보배는 복음이요 복음 전하는 직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고 복음만 자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제자 중에 가룟 유다는 불택자인데, 예수님이 그를 제자로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① 후에 교역자 중에도 불택자가 있을 것을 알게 차려고,

② 불택자도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이용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③ 택자와 불택자를 추수(심판)때까지 함께 두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④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하여(요13:18, 시41:9 참조),

⑤ 범죄자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불택자이며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미리 알면서도 제자로 택한 것이다.

 

二. 하나님의 권능으로 전도함(神能傳道)(5-15)

 

. 10: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멀리 가서 이방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지 말고 가까운 곳(내 집 근처)에서부터 복음을 전하여 죄인을 건져내라는 뜻이다.  사마리아인은 이방인들과 혼혈되었고 종교도 성경에서 멀리 떠나 있었다.  종교가 다른 이방이나 종교가 타락한 사마리아보다 구약 성경을 그대로 믿으려고 하는 이스라엘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다.

 

. 10: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스라엘 집은 구약의 의식과 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먼저 그리스도가 오신 소식을 전하여 주어야 옳고 실제로 그들이 먼저 받을 준비와 자격을 갖춘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바른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양들을 사랑하여 건져내어 주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사모하는 자에게 만나 주시고, 배우고자 하는 자에게 가르쳐주시고, 진리를 찾고자 하나 분별하지 못하여 방황하는 자에게 분별할 힘을 주시며, 참된 길을 가고자 하나 깨닫지 못하여 잘못된 길로 가는 자에게 옳은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이것이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양을 찾는 데서부터 전도를 시작하여야 한다.  잃어버린 양을 하나 찾으면 하나님이 대단히 기뻐하신다.

누가 15:3-24의 잃은 양의 비유와 탕자의 비유는 잃어버린 양 하나를 찾았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다.  탕자가 돌아올 때에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라 !  또 잃은 양 하나를 찾기 위하여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찾으러 가서 찾았을 때 목자가 어깨에 메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생각하여 보라 !  우리가 이러한 심정으로 잃은 양을 찾기 위하여 부지런히 전도하여야 한다.

 

. 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천국은 신약시대의 복음 운동을 가리킨다.  복음 전파가 시작되었으니 천국이 임한 것이다.

 

. 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복음 전하는 사람에게는 심령에 병든 자를 고쳐 줄 권능이 있다.  또 복음에는 죽은 영혼을 살려낼 권능이 있어 누구나 복음을  믿고 영접하면 죽은 영혼이 살아난다.  또 죄로 인하여 문둥이와 같이 썩어져 가는 심령을 깨끗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도 있다.  전도자에게는 이러한 권능이 함께 하므로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이런 능력의 역사가 나타난다.

로마 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고 복음 전하는 자에게는 이 능력이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자가 복이 있다.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심령의 병이 낫게 되는 표적으로 육신의 병도 고쳐지는 일이 있다.  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귀신 즉 마귀의 세력이 물러가게 되어 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이 피 흘려 주신 복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성도가 거저 받았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여 희생 정신으로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복음을 전하면서 조금이라도 물질이나 어떤 댓가를 바라고 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며 따라서 다른 사람의 심령을 구원하여 낼 수 없다.

 

. 10: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전도할 때에 생활의 염려는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장래에 대한 문제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이나 그 가족에게 먹을 것을 반드시 주시기 때문이다.  전도자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하여 염려하게 되면 마귀의 시험인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라 하실 때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절대로 굶어 죽지 않게 하여 주신다.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전대는 돈을 넣어 허리에 차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대에 돈을 넣어 가지고 돈을 의지하여 전도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서 전도하라는 뜻이다.

 

. 10: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주머니 빵이나 다른 것을 넣어 여행할 때에 가지고 다니는 자루와 같은 것이다.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주머니와 함께 여행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도 가지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사람을 통해서나 혹 까마귀를 통해서라도 먹을 것을 주실 것이다.  의식주에 대한 대책이 없어서 하나님의 일에 나가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이다.  물질이 풍성하여 그것을 의지하고 나가는 자도 하나님이 안 도와 주시고 따라서 실패한다.  마가 6:8에는 지팡이를 가지라고 했다.  그것은 지팡이를 능력의 상징으로 취급했기 때 문이다.

누가 22:36에 \"이제는 전대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영적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영적인 전대, 영적인 주머니, 영적인 검, 즉 성령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이다.  영적 전대와 주머니는 영적인 양식과 영적인 실력을 가지고 나가라는 뜻이다.   에 전도할 때는 별로 준비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해 주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 때보다 좀 더 능력을 덧입고 좀 더 말씀의 무장을 하여 영적 양식과 영적 실력을 준비해야 환난을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가까이 왔으므로 영적 무장과 영적 실력을 갖추라는 말이다.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먹을 것을 반드시 주신다는 말이다.  누구를 통해 주든지 그것을 받는 것이 옳다는 뜻이다.  그러나 받기 위해서 일하면 삯꾼이 된다.

 

. 10:11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충성되이 복음을 전하면 믿는 사람이 나오게 되고 믿는 사람이 나오면 거기에서 합당한 자를 찾아서 그 집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였다.  전도할 때에 유력한 자나 돈 많은 사람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합당한 자를 찾아서 그 집에 가서 머물러야 한다.  

합당한 자는 어떤 사람인가?  전도자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협력하며 받들려고 하는 사람이다.  어떤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든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일심정력을 다하여 전하면 거기에 합당한 자가 나오게 된다.  생명 있는 도를 전한다면 반드시 그 복음을 영접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복음을 영접하는 자는 자연히 전도자를 영접하여 그에게 협력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사람을 만나면 합당한 자를 만난 것이다.  합당한 자를 만나 그 집에 머물러 있다가 다른 데로 옮기면 안 된다.  합당한 자를 만났으면 떠나기까지 그 집에 있어야 하고 더 좋은데 갈려고 옮기면 안 된다.  또 괴로움이나 조금 섭섭한 일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옮기면 안 된다.  복음 안에서 사귀고 복음 안에서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참고 변함이 없이 나가야 한다.

 

. 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을 빌어 주어야 한다.  그 집을 위하여 기도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고, 말씀대로 지도해 주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살도록 인도하여 주어야 한다.  복음을 받아 들여서 그대로 살면 그 집에 참 평안이 와서 가장 복된 가정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아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그 집에 계시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 10: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합당하면 평안을 받기에 합당한 것은 전도자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가르쳐 주고 지도해 주는 것을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하는 집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평안이 임하게 된다.  순종하면 일시적으로는 시험이 올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 집에 영원하고 참된 평안이 온다.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전도자가 전해 주는 복음을 잘 받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일꾼이 가서 하나님의 바른 복음을 전하여 주는데 그 집에서 그 말씀을 받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 집에 하나님의 평안이 머물지 않는다.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전도자가 평안을 빌 때에 성령이 역사했고, 전도자는 믿음과 사랑을 썼다.  그러므로 평안을 빌 때에 벌써 자신이 은혜를 받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임한  것이 다.  그 집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심령이 더욱 더 그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게 되어 성령께서 더욱 힘있게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더욱 큰 능력을 입혀 주신다.  이것이 돌아온 평안이다.

 

. 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복음을 전하면 나타나는 반응은 세 가지 종류이다.

첫째는 일꾼을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있다.

둘째는 영접하였으나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복음을 받기는 하지만 잘 받지 못하고 잘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평안이 임할 수 없다.

셋째는 복음을 전하면 영접하지 아니하고 반대하는 자이다.  그 사람에게는 먼지까지 떨어버리고 오라는 것이다.  그 집에서 한 가지라도 얻어먹지 말고 신세지지 말라는 뜻이다.  전도자가 양심을 쓰지 않고 떳떳하지 못하게 행동하면 복음이 가려진다.  전도자는 특히 물질문제에 있어서 깨끗해야 한다.  먹어서 안될 것은 주어도 먹지 말고 받아서 안될 것은 주어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진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뜻은 복음을 거절하므로 멸망하는 책임을 그들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복음 전하는 자는 책임은 다했으므로 그들이 멸망하는 죄책에 대해서는 깨끗하다는 것을 뜻한다(행18:6, 13:51 참조).

 

. 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이 말씀을 보면 지옥에도 조금 견디기 쉬운 곳이 있고 힘든 곳이 있다.  더 무서운 고통을 받는 사람도 있다.  다시 말하면 지옥에도 형벌의 차등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의 일꾼이 복음을 전하는데도 받지 않고 복음을 대적하며 반대하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는다.

심판날에 소들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으므로 형벌을 받았으나 복음을 반대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죄는 그보다 더 큰 것이며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복음의 정도와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서 반대하는 자의 벌이 다르다.  스데반이 성령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참 복음을 전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고 돌로 때려 죽였다.  그 사람들이 받을 앙화와 저주는 아주 큰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큰 능력을 친히 보여 주셨고 마음에 찔림을 받게 했으나 그들이 그것을 반항했기 때문이다.

 

三. 핍박을 각오하라(逼迫覺悟)(16-23)

 

.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는 것이 이리 가운데 보내는 양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면 이리가 물고 찢고 잡아먹을 것이다.  성도가 세상에서 복음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도 이리 가운데 있는 양과 같은 것이다.  성도가 조금만 방심하면 이리에게 물어뜯기고 상처를 받고 잡아먹힌다.  믿지 않는 사람은 다 이리 노릇을 하고, 믿는 사람도 이리 노릇을 하는 때가 많다.  자기 자신이 이리노릇을 하기도 한다.  믿는 사람도 어느 시간에 이리로 변할른지 모른다.  언제 어디서나 성도를 잡아 삼키고, 물어뜯고, 손해를 주려는 이리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리에게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첫째, 자기가 이리 가운데 나아가는 양인 것을 깨닫고 둘째, 이리에게 손해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신앙의 손해를 보지 아니하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실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때는 자기 부모나 형제나 처자도 이리가 되어 신앙생활에 상처를 주려고 한다.  그 때에는 사람이 아니고 이리인 줄 깨달아 경계해야 하는데, 여전히 사람인 줄로 알고 나아가다가 그 이리에게 붙잡혀 신앙에 큰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성도는 언제든지 이리 가운데 있는 양으로서 조심하여야 한다.  

셋째, 이리를 오히려 자기 구실에 이용해야 한다.  성도는 모든 것을 자기 구원에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리 노릇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을 자기 구원에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스데반이 돌로 자기를 쳐죽이는 사람들에게서 손해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구원에 잘 이용하였다.  스데반은 그 원수를 사랑하므로 그만큼 자기가 더 만들어졌다.  그 사람들 때문에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기도 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를 자기 구원에 잘 이용하셨다.  예수님은 환도와 몽치를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나 제사장, 바리새인들이나 빌라도를 모두 잘 이용하셨으며 한 번도 손해보지 않으셨다.

넷째, 이리 노릇하는 사람에게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요셉의 형들이 이리와 같아서 요셉을 팔아먹었으나 요셉은 형들의 구원에 유익을 주기 위하여 애굽으로 식량을 사러온 형들에게 처음에는 자기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것은 형들을 회개시켜 이리의 상태를 벗어나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형들이 회개하게 되어 좋은 사람이 되었다(창42:6-7).

마귀는 사람보다 지혜로우므로 사람의 지혜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  마귀보다 지혜로운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야 마귀를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 말씀이다.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기셨다.  성경대로 하면 마귀를 이기고 이리에게도 해를 받지 않는다.  무슨 일이나 \"성경에 무엇이라고 하였는가?\"를 생각하여 성경대로 처리하여야 한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하는 것은 잘 될 것 같아도 실패하고 마귀에게 걸려들어 제 꾀에 제가 넘어가고 자기가 만들어 놓은 함정에 자기가 빠져 큰 낭패를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수단과 생각대로 무슨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인 복음을 따라 행하여 마귀를 이기고 날마다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도록 힘써야 한다.

뱀 같이 지혜롭고 지혜가 없이는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  뱀은 자기 지혜로 하지 않고 마귀의 지혜를 받아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성도가 자기 지혜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그 지혜로 마귀를 이기라는 뜻이다.  뱀이 자기 밖에 있는 마귀의 지혜를 받아서 사용한 것처럼 성도도 자기 밖에 있는 신의 지혜 즉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사용하라는 뜻이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순결이라는 것은 순진,깨끗, 소박, 단순의 뜻이 있다.  비둘기는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새이다.  성도는 언제나 깨끗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도록 힘을 써야 한다.  인간의 꾀와 수단으로 하지 말고 순진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제물로 바치도록 힘써야 한다. 즉 생명을 바쳐 놓고 순결을 지키라는 말이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으므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기로 결심을 했다.  말세에는 마귀가 더욱 발악하여 여러 가지 올무로 성도를 넘어뜨리려고 하기 때문에 성도가 신앙을 지키려면 말씀에 굳게 서고 자신을 언제나 깨끗하게 보전해야 한다.  우리의 영적 생활에 손해 주려고 이리가 찾아오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서 비둘기와 같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제물로 바쳐서 하나님의 뜻대로만 순종하여야 한다.

 

. 10: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사람들을 삼가라 복음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이리인 줄 알고 삼가서 신앙에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공회\"란 산헤드린을 말하는데 각지파에서 6인씩 뽑아 72인으로 구성된 유대 나라의 최고 법정이다.  \"회당\"은 동네마다 있는데 거기에서 율법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기도 하며 재판도 했다.  성도가 신앙을 지키려면 세상 법정에 끌려가고 채찍질을 당하고 많은 고난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 10: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갈 날도 온다.  총독은 빌라도와 같은 지역 치리자, 임금은 헤롯과 같은 왕들이다.  성경을 양보하고 믿는 사람은 환난이 없다.  그러나 성경 한 말씀을 양보하면 신앙이 모두 무너진다.  그러므로 순교자는 한 성구를 지키다가 죽는 것이다.  한 성구가 천하보다 귀한 것이고 육신의 생명보다 귀한 것이다.  총독들과 임금 앞에 끌려가면 복음을 증거 하여야 할 것이다.  끌려가도 말씀을 양보하지 말고 성경대로만 답변하고 나가면 도리어 복음이 널리 증거되는 계기가 되고 도리어 유익이 된다.

 

. 10:19-20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총독이나 임금들 앞에 끌려갈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끌려가면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다.  말씀 지키는 자에게 성령이 같이 하시고 필요한 말씀을 주신다.  미리 염려하고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의 지혜로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끌려가면서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나가면 마음이 평안하다.  죽기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두려워하는 것은 믿지 않는 증거이다(요14:1, 막4:35-40 참조).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서 환란과 핍박을 받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특별히 역사하여 권능의 말씀으로 붙들어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견고한 믿음을 주셔서 그 사람을 더욱 더 요긴하게 쓰신다.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이 역사한다고 하였다(행5:32 참조).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면 환란이 오더라도 성령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여 모든 것을 다 감당하도록 하여 주신다.

 

. 10: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외부에서 오는 핍박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이 서로 배신하고 잡아 주는 것을 말한다. 잡아 주지 않으면 자기가 죽게 되므로 할 수 없이 잡아 주게 된다.  부모가 자식을 잡아 줄 수가 없으나 잡아 주지 않으면 부모를 잡아죽이기 때문에 자기가 죽지 않으려고 잡아 주는 것이다.  자기가 죽더라도 잡아 주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다.  자기가 죽을 각오를 한 사람은 잡아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생명을 내어놓지 않으면 믿음을 지킬 수 없다.

형제가 형제를 잡아 주고, 목사가 목사를 잡아 죽음에 넘겨주지 않으면 안 되는 무서운 환란의 때가 있다.  그러나 성도를 잡아 주면 그 성도는 하나님의 예정대로 가서 환난을 당하고 혹 순교를  당하겠으나 잡아준 자는 앙화와 저주를 받게 된다.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보다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낫다고 하였는데 성도를 잡아 준 죄는 얼마나 크겠는가?

 

.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를 믿는 일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면 복이 있다.  그러므로 미움을 받아도 끝까지 참고 견디어 나가면서 말씀을 지켜야한다.  말씀을 지키면서 끝까지 참고 견디어 나가야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여기서는 기본 구원을 말함이 아니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면을 말한다.  왜냐하면 기본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은 것이고 행함으로는 구원을 이루어 나가기 때문이다.

 

.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이 동네에서 핍박이 심하면 일할 수가 없으니 일할 곳으로 가서 일하라는 뜻이다.  이 동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으면 저 동네로 가고 저 동네에서도 핍박을 하면 또 다른 동네로 가면서 계속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신앙의 길을 다 가기 전에 하나님의 권고가 온다는 뜻이다.

인자가 오리라 주님의 권고가 온다는 뜻이다.  성도가 믿음으로 걸어가려면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다.  신앙의 길이 끊기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권고하심이 온다.  \"희망이 없다\" \"갈 길이 막혔다\"고 말하지 말고 계속하여 복음을 전하고 믿음을 지켜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고가 온다.

오 천명, 사 천명이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는 예수님이 큰 성공한 것 같았으나 다 물러가고 전도하러 내보낼 때는 칠십 제자뿐이었고, 그 다음에는 열 두 제자였으며, 겟세마네 동산에 나아갈 때는 세 제자만 따라가고, 예수님이 심판 받는 자리에는 두 제자만 따라 갔다.  또 십자가에 못 박힐 때는 요한 한 사람뿐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외부적으로 볼 때에는 다 실패한 것 같았으나 실패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을 복종하여 의를 완성했다.  그 의로 인하여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진리를 붙들고 나아가면 외부적으로는 다 실패한 것 같아도 반드시 하나님의 권고가 오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성공되어 나간다.  \"인자가 오리라\"는 것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멸망을 가리킨다고 하는 해석도 있다.

 

四. 두려워하지 말고 증거하라(24-33)

 

. 10: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는 믿는 사람들이고, 선생은 예수님 이시다.  은 믿는 사람들이고, 상전은 예수님이시다.  제자가 선생보다, 종이 상전보다 나은 대접을 받으려 하면 잘못이다.  우리의 선생이요 상전인 예수님이 많은 환란과 핍박을 받았으니 우리도 당연히 환란과 핍박을 당하고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를 하면서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 10: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사람들이랴

우리의 선생이신 예수님이 복음을 전할 때 얼마나 맡은 비방과 멸시를 받았는가 !  우리의 상전 되시는 예수님이 복음 전할 때에 핍박을 받고 멸시를 당했으니 우리가 복음 전도하면서 멸시와 핍박을 받는 것이 마땅한 줄로 알아야한다.  우리 선생이요, 상전이신 예수님과 같이 되면 족한 것이다.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선생인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고 비방하고 멸시하였다.  우리도 세상으로부터 \"귀신이 들렸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하는 비방을 들을 때에도 선생같이 된 줄 알고 만족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므로 환란과 핍박을 받게 되어도 우리의 선생이신 예수님이 받은 대접을 우리가 받는 줄 알로 만족하고 감사해야 한다.

 

. 10:26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감추어져 있는 복음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숨은 것도 다 알려지게 되어 있다.  숨은 것은 깨달은 진리이다.  감추인 것과 숨은 것을 드러나게 하려고 환란과 핍박이 온다.  또 환란과 핍박 속에서라도 속에 감추인 것과 숨어 있는 것을 다 나타낼 것이라는 말이다.  속에 있는 것을 외부로 내어놓아야 자라나고 열매가 맺힌다.  너희는 복음을 받았고 너희 속에 진리와 생명의 역사가 감추어져 있다.  그것들이 반드시 드러나고 알려지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을 나가서 전파하여 드러내라는 것이다.  드러내지 않으면 환란이 와서라도 드러내도록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숨겨 두시지 않는다.

 

. 10: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어두운 데는 골방이다.  골방에서 너희에게 말하여 준 것을 이제는 세상에 나가서 전파하라는 뜻이다.  영의 귓속으로 들은 것을 많은 사람이 보는데서(집 위에서) 전파하라는 것이다.  핍박이 온다고 하여 전파하는 일을 중지하면 안 된다 . 만일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  씨를 부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벌레가 먹지 아니할까 염려하지 말고 무조건 나가서 뿌려야 한다.  뿌리기만 하면 일은 하나님이 해 주신다.  받은 은혜를 감사하여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여 나타내어야 한다.  속에 있는 것이 나와야 성장하고 결실한다.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께 맡기고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어두운 세상에 복음의 빛이 비치어 나가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이 생명의 빛으로 나아오게 된다.

 

.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사람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다 지옥에 멸하시는 분이다.  지옥에 간 영혼은 멸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영원한 고통 중에 있게 된다.  이것을 지옥에 멸한 것이라고 하였다.  육신의 생명보다 영혼의 생명이 더 중하고 크다.  신자가 환란이 두려워서 진리를 양보하면 영적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어 흑암과 고통을 만난다.  그러므로 두렵다고 하여 진리를 양보하지 말고 육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신앙을 지키라는 뜻이다.  성도는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 세상에서 살지 말고, 영의 생명을 위해서 영적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육신의 생명이 죽을 때에는 영적 생명 하나만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생명을 바꾸어 가지고 살아야 한다.  보통 신자들이 육신의 생명에만 소망을 두고 살다가 죽음이 앞에 오면 절망을 한다.  그것은 그 사람이 일생 동안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산 증거이다.  평소에 영의 생명을 가지고 산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가는 밝은 길이 환하게 나타나고 명랑하게 된다.  그러므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의 영적 생명을 살게도 하시고 죽게도 하시는 생명의 주장자 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뜻대로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아무리 핍박하고 위협해도 그들은 우리의 육신만 죽이고 산 영혼은 절대로 죽이지 못한다.  영으로 사는 사람은 육신이 죽어도 살고 그 생명의 세계가 계속되는 것이다.

 

.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앗사리온은 로마 동전의 명칭이며 데나리온(드라크마)의 10분의 1이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린다.  참새의 생명이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것 같으나 그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아무리 참새를 잡으려고 하여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잡을 수 없다.  참새 한 마리까지 주관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어야 한다.

 

. 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우리의 머리털이 몇 개인지 하나님이 모두 아시고 떨어진 것도 아신다.  머리털 하나 떨어지기는 쉬운 일이지만 그 하나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세밀한 것까지 보호하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10: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참새 한 마리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신 성도들을 왜 보호하여 주시지 않겠는가 !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성도의 생명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죽을려고 하여도 죽을 수 없고 살려고 하여도 살지 못한다.  이기선 목사님이 말하기를 \"살고 싶어서 산다면 죽을 사람이 하나도 없고, 죽고 싶어서 죽는다면 살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죽을까봐 두려워할 것도 없고 더 살려고 발버둥칠 것도 없다.  또 굶을까봐 걱정할 것도 없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를 먹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왜 성도를 굶기시겠는가?  먹을 것을 염려하고 죽을까봐 걱정하는 사람은 자신을 참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행동이다.

 

.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음으로 믿는 믿음을 입으로 증거하여 사람 앞에서 신앙고백을 하라는 것이다.  사람 앞에서 믿음을 써야 영혼이 자라나고 하늘나라에 가서 인정을 받는다.  사람 앞에서 믿음을 쓰지 못하고, 양심을 쓰지 못하면 영혼이 자라나지 못하므로 하나님 앞에 가서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은밀한 골방에서 귓속으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 앞에서 나타내어 증거를 하여야 한다.  종자를(복음) 하나님께 받아 가지고 밭(사람의 마음)에다 뿌려야 한다.  그러면 그 씨가 싹이 나고 자라나서 열매가 맺히면 추수하여 하늘 창고에 들이게 된다.  사람 앞에 복음을 나타내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종자를 받기만 하고 농사하지 않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무조건 씨를 뿌리면 하나님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하게 해 주신다.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그리스도와 진리를 바로 증거하고 그리스도와 진리를 나타내는 길을 걸어가면 그 사람의 인격이 하늘나라에서 주님 앞에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 하리라 사람 앞에서 그리스도와 진리를 부인하는 생활을 하면 하늘나라에서도 그 사람의 인격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람 앞에서 신앙양심을 바로 쓰고, 그리스도와 진리를 증거하고 나타내는 생활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가서 큰 자로 인정을 받고 상급을 많이 받게 된다.

 

五. 모든 것을 내어놓고 주를 따라갈 것(34-39)

 

.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예수님이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였다.  검은 분쟁을 가리킨다.  신앙과 진리문제 때문에 서로 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진리를 바로 깨달아 그 진리를 붙들고 나가면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반대를 하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불화가 일어난다.  안 믿는 사람은 진리 전체에 대하여 반대하므로 자연히 불화가 일어나고,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기가 깨닫지 못한 진리를 다른 사람이 깨달아 주장하면 거기에 반대를 하게 된다.  자기가 깨달은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틀렸다고 생각되어 반대를 한다.  카톨릭교회가 루터와 칼빈을 반대한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가령 삼 계단이나 오 계단의 진리를 깨달아 신앙 생활하는 사람을 일 계단의 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볼 때에는 이해를 못 하고 틀려 보인다.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그 진리를 세워 나가려고 하면 반드시 거스리는 세력이 나오고 대립이 되어 불화가 생긴다.  그러므로 진리문제 때문에 서로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종교개혁 시대의 루터나 칼빈은 진리의 말씀을 확실히 붙들고 그 말씀을 생명과 같이 여기며 생명을 걸고 그 진리를 지켜 나아갔다.  그리하여 교리(깨달은 진리)가 다른 신교가 구교에서 갈라지고 루터와 칼빈도 깨달은 바 교리가 다르기 때문에 갈라졌다.  그런데 요사이는 합동시대가 되었다.  교리에 구애됨이 없이 무조건 합하자는 시대가 되었다.  교리 문제는 덮어두고 서로 합하여 사업적인 면을 같이 하자고 한다.  이것은 진리는 버리고 껍데기만 가지고 종교 활동을 하자는 것이다.

 

. 10: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신앙은 부자간의 혈친보다 더 귀중한 것이다.  부자간에 불화 할지라도 신앙과 진리는 양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씀대로 바로 믿으려고 하면 반대가 나온다.  그래서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서로 불화하게 된다.

 

.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는 것은 신앙을 반대하고 진리대로 나가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집안 식구 중에서 진리를 양보하라고 강요할 때에 성도가 그것을 양보하지 않으면 미워하고 원수가 되는 것이다.  불신앙과 신앙은 서로 충돌이 되고 신앙이 같지 않아도 의견이 다르게 되므로 자연히 충돌과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네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이나 부모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된다.  그러면 자녀와 부모가 우상이 되어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예수님만 사랑하고 나아가면서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부모나 가족을 사랑하고 또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부모나 가족을 내어 놓기도 하면서 예수님만 따라가야 한다.  이렇게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는 사랑이고 변함이 없는 사랑이다.  인간적인 사랑은 가다가 변한다.  사람의 욕심은 땅보다 두껍기 때문에 인간의 욕심을 다 채워 줄 수가 없다.  믿음으로 나가지 않으면 자기 욕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불만이 나오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변함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인정선을 넘어서야 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  인정선을 넘지 못하고 인간에게 끌려 다니면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전토를 마음으로 다 내어놓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하나님의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예수를 믿고 따라 가려면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친구와 사회로부터 반대와 비방과 핍박과 고난을 받게 된다.  이것이 자기 십자가이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으며 그 십자가를 지고 참고 견디면서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야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된다.

 

.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신자에게는 목숨이 둘이 있으니 즉 육신의 목숨과 영의 목숨이다.  주와 진리를 위하여 육신의 목숨을 잃는 자는 영혼이 더욱 자라나서 새 생명으로 창성하여 나아간다.  이것이 영원한 목숨을 얻는 것이다.

 

六. 영접하는 자의 복(40-42)

 

.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 있는 복음을 들고 나가서 전하는 그 사람을 영접하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자를 영접하게 된다.  사렙다 과부는 엘리야를 영접하므로 그 집이 복을 많이 받았다.  흉년에도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고 죽은 아들도 살려 냈다.  바울을 영접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복을 받았다.  하나님 의 종을 영접하게 되면 영육간에 복을 받는다.

 

.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선지자를 영접하였으면 그 사람의 말을 선지자의 말로 받을 것이다.  선지자의 말을 참으로 받은 사람은 그 말을 순종하고 세워 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받을 상을 그 사람도 받는다.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을 의인으로 알고 영접하면 그 사람의 말을 의인의 말로 받아 드릴 것이다.  의인의 말을 받아 그대로 실행하게 될 것이므로 자기도 의인으로 만들어지며, 따라서 의인의 상을 받게 된다.

 

.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소자는 믿는 소자이다.  제자의 이름으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지극히 적은 냉수 한 그릇이라도 도와주면 그 상을 잃지 않는다.  복음운동에 조금이라도 협력하고 도우면 그것이 영원히 생명체로 남아있다.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하나 이루어지고 그만큼 자기 영혼이 자라났으므로 하늘나라에 가면 그만큼 입장이 크다.  자기가 받들어 주므로 조금이라도 구원운동에 유익이 된다고 하면 전력을 다해서 받들어야 한다.

하늘나라를 건설하여 나가는데 어떻게 하든지 도움을 주어야 한다.  냉수 한 그릇 만큼이라도 받들어서 하나님의 생명운동에 협력하면 그것은 영원히 남아 있게 되고 하나님의 상을 잃지 않는다.  자기가 마땅히 도와야 할 일을 돕지 않았다고 하면 그만큼 하나님 나라에 손해가 난다.  하늘 나라에 가도 자기 때문에 손상된 그것이 그대로 남아 있다.  주님이 재림할 때에도 자기 때문에 손상된 것이 그대로 나타난다.

계시록 1:7의 \"그를 찌른 자\"는 하늘나라에 손상을 준 자이다.  우리 성도가 모두 하나님의 생명운동에 가담하여 자기로 말미암아 한 모퉁이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을 순종하느라고 고난을 당하고 목이 말라 애타는 자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가져다주면 그 사람이 힘이 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나간다.  그러면 냉수 한 그릇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더 잘된 것이다.  그것이 영원히 남아 있다.

천국운동(생명운동)을 하는데 도와 준 사람은 상급을 다 같이 나누어 가진다.  목사가 진리를 지키다가 감옥에 갇힌다면 그 가족의 생활을 성도들이 돌봐 주어야 한다.  돌보아 주려면 그 사람도 자기 생명을 내놓아야 도와 줄 수 있다.  도와주는 사람도 감옥에 갇힌 사람과 같은 신앙을 갖지 않으면 도와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같은 상을 받는 것이다.  복음운동에 일비지력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라는 사람이 B를 도와주고, B가 C를 도와주고, C가 D를 도와주어서 구원운동이 잘 되었다면 A, B, C, D 모두 상을 받는다.  이것이 하늘나라가 되어 가는 법이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생명운동을 받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오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소자 하나에게 조그마한 상처를 준다고 하면 그것도 하늘나라에 영원히 남아있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 때에는 그것 때문에 그만큼 부끄럽고 후회가 막심할 것이다.

누구든지 세상에 있는 동안 구원운동에 손상을 주거나 교회에 상처를 주면 안 된다.  교회에 상처를 주면 하늘나라에 상처를 준 것이다.  만일 상처를 주었으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빨리 회개하고 그 상처를 다 고쳐야 한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 일에 전적으로 협조하고 받들어 주는 자가 되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주는 자리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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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11장

 

제 11 장  문 답

 

(대  지)

一. 세례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1-15)

二. 세대의 죄악(16-19)

三. 고라신과 벳새다를 책망하심(20-24)

四. 예수님을 배우라(25-30)

 

(본문강해)

 

一. 세례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1-15)  

 

. 11:1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예수께서 전도하는 일을 제자들에게만 맡기지 않으시고 친히 여러 동네로 다니시며 전도하시고 가르치셨다.

 

. 11:2-3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요한이 헤롯왕의 죄를 책망하다가 감옥에 오랫동안 갇히어 있었다.  요한이 감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하고 예수님께 물어 보았다.

오실 그 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세례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전에 태어나서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광야에 나가서 백성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외치며 그리스도를 소개했다.  요단강에서 벡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고 \"내 뒤에 그리스도가 오실 터인데 그는 나보다 먼저 계신 자요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증거하였다.

또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다\"하여 확실히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기 위해 요한에게 나아가셨을 때에 \"내가 마땅히 당신한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세례를 주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임하는 것을 세례요한이 실제로 보았고,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또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하여 그리스도를 밝히 증거하였다.  예수님은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을 정결케 하며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는 심판주 이심을 확실히 증거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요한이 어째서\"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리오리이까?\"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였을까 !  이것은 세례요한이 일시적으로 신앙의 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신앙의 잠이 들어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호한 가운데 빠졌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심판주이시기 때문에 여우와 같은 헤롯을 당장 심판하시고 세례요한 자신은 감옥에서 즉시 건져내 주시며 곧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세례요한이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어도 예수님은 한 번도 와 보지도 않으시고 세상은 여전하였다.  그러므로 부자유한 가운데 고통이 너무 심하여 일시적으로 신앙이 잠들어 예수님이 심판주 되심을 의심하게 된 것 같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도 일시적으로 신앙이 잠드는 수가 때 때로 있다.  엘리야가 신앙이 좋아서 아합왕의 죄를 책망하고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겨루어 기도할 때에 제단에 불이 내려와 하나님이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고, 거짓 선지자들을 숙청하였다.  또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한즉 비가 왔다.  이러한 엘리야도 이세벨이 죽이려고 할 때에는 도망가다가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엘리야가 신앙이 잠든 상태에 빠진 것이다.

성군 다윗도 신앙이 잠들었을 때에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요나도 신앙의 잠이 들어서 박넝쿨이 마르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신앙이 좋은 사람도 일시적으로 신앙이 잠들면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믿음이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기 쉬운 것이다.  세례요한이 일시적 신앙의 잠이 들어 실족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6절 참조).

 

. 11:4-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답변하신 말씀은 너희가 여기서 보는 것을 그대로 가서 세례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소경이 눈을 뜨고 있는 것, 앉은뱅이가 걷는 것,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것을 요한에게 말해 주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는 증거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이적의 외부적인 면만을 본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외부적인 이적은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행하기 때문이다.

마태 7:22에 \"많은 사람들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말하였다.  그 때에 예수님이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예수님이 행한 이적과 다른 사람들이 행한 이적과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예수님의 이적은 먼저 영혼을 살려 일으키고 그 표적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주시며, 심령의 눈을 뜨게 해 주고 그 표적으로 육신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신다.  심령이 죄로 말미암아 썩어진 상태에 있는 것을 깨끗하게 해 주시고 그 표적으로서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해 주신다.  예수님은 영혼의 것을 먼저 고쳐 놓으시고 그 표적으로서 육신의 것을 고쳐 주신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하시는 이적이 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지 않고 외부적으로만 행하는 사람들의 이적은 심령의 것은 고치지 못하고 그저 육신의 병만 고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폐병환자가 몸에 열이 높아서 고통을 당할 때에 A의사는 폐병을 근본적으로 고쳐서 몸의 열이 정상적으로 되게 하고, B의사는 페병을 고치지 못하였으나 해열제를 써서 몸의 열이 일시적으로 정상상태가 되게 하였다고 하자.  외부적인 면을 보면 환자의 체온을 정상적으로 되게 한 것은 두 의사가 같으나, 실제로는 A의사는 폐병을 근본적으로 고쳤으나 B의사는 고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려 주시는 것이 주목적이다.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죽고, 심령이 병이 들고, 앉은뱅이가 된 것을 예수님이 죄를 깨끗하게 씻어서 완전하게  고쳐 주시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피 죄 사함을 받아 심령이 깨끗하게 나음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심령의 상태가 앉은뱅이와 같아서 걸어가지 못하던 사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서서 신앙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속사람에게 생명과 힘을 주어 영적 생명의 길로 걸어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지금도 이런 일을 계속하신다.  심령의 눈이 소경된 자에게 눈을 뜨게 만들어서 신령한 세계와 진리의 세계를 바라보게 만들고,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다.

심령이 귀머거리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심령의 귀를 열어서 말씀을 깨닫게 만들어 주신다.  심령의 귀가 열려야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줄 깨닫고, 귀한 줄도 알아 그 말씀을 따라가게 된다.  영의 귀가 열려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달고 송이 꿀보다 단 것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이 우리의 귀를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하다.  예수님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하여 주셔서 신령한 세계를 보게 해 주시니 그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가 !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상태에 있는 우리의 심령을 살려내서 힘있게 일어설 수 있도 록 만들어 주시고, 문둥병과 같이 썩어져 가는 우리의 심령을 낫게 해 주신다.  예수님이 이 일을 세상 끝날까지 계속 하신다.  이 일은 그리스도만이 하시는 일이다.

 

. 11: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실족은 넘어진다는 뜻이다.  세례요한이 일시적으로 신앙이 잠들어 넘어진 것을 가리킨다.  세례요한이 실족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책망하신 것이다.  책망 받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실족한 사람에게 책망해 주는 사람이 참으로 선생이다.  나의 잘못한 것을 말해 주는 사람은 나의 선생이고, 나의 잘한 것을 말해 주는 사람은 나의 도적(道吾善子는 是吾賊이오 道吾惡子는 是吾師)이라는 말이 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책망해 준 것은 예수님이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다음에는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칭찬해 주셨다.  사람들은 만났을 때에는 칭찬해 주고 돌아간 다음에는 욕을 하고, 깎아 내리고, 비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에수님은 있을 때에는 책망을 하시고, 떠나간 다음에는 칭찬해 주셨다.

 

. 11:7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세례를 줄 때에 무엇을 보려고 나갔었느냐는 말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세례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여론에 따라 움직이거나 사람의 요구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았으며, 사람의 마음을 살려고 갈대와 같이 움직이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워서 일어났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인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 11: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 사치하고 호화로이 연락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왕궁에 있느니라 왕이 잘못해도 옳다고 하여 아부하는 자들은 권세를 얻어 호화로이 연락하는 생활을 한다.

세례요한은 부드러운 옷을 입기 위하여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의를 위하여 왕을 면책한 반석과 같이 강직한 사람이다.  세례요한은 자기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호화스럽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의를 귀중히 여기고 의를 위해서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의의 사람이다.  세례요한에 대하여 예수님이 가장 바로 알고 가장 바로 인정해 주셨다.  예수님을 바로 안 사람은 세례요한이고, 세례요한을 바로 안 분은 예수님이시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 나타나서 세례를 줄 때에는 많은 사람이 요한을 따라갔으나 감옥에 갇힌 후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요한에 대하여 바로 알고 증거해 주셨다. 세례요한이 일시적으로 신앙이 잠들어 실수하였으나 그것 때문에 그가 일생동안 해 놓은 것을 무시하지는 않으셨다.

아무리 충성을 잘하던 사람도 한번 실수하면 그 사람을 쉽게 내 버리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  일시적으로 실수한 것은 책망하셨지만 그 사람이 한 일과 그 사람의 인격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인정하여 주셨다.  예수님은 실족한 자일지라도 진정으로 회개만 하면 용서해 주시고 과거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한 것을 인정해 주시며 다시 쓰신다.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다.

 

. 11: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줄 때에 사람들이 나아간 것은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선지자보다 나은 자이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세상에 소개했기 때문이다.

 

. 11:10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말라기 3:1에 예언된 대로 세례요한이 와서 주님의 길을 예비한 것이다.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사자\"는 세례요한을 가리키며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보다 앞서 세상에 보내어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할 것 즉 회개시킨 것을 가리킨다.  말라기 3:1과 여기 인용한 말씀이 약간 다른 이유는 성령께서 구약성경을 더 알기 쉽게 계시해 주신 것뿐이다.  성경을 변경시킨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성경을 오해하지 않고 잘 알 수 있도록 다시 계시해 주실 것이다.  이것을 성경의 오류라고 하면 옳지 않다.

 

.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모든 인간은 다 여자가 낳은 사람이다.  그 가운데 세례요한이 제일 크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왜 세례요한을 제일 크다고 하셨는가?  창세로부터 그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제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에 대하여 제일 많이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 대하여 다음과 같이 깨닫고 있었다.

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구속주).

② 키를 가지고 타작 마당을 정결케 하시는 심판주.

③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자기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하지 못함.

④ 예수님은 자기보다 먼저 계신 분(영원 자존자)임을 깨달았다.  세례요한만큼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바로 깨달은 사람이 그 때까지는 없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제일 큰 자가 된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큰 자는 진리를 많이 깨달은 자이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 진리대로 행하게 되므로 영혼이 그만큼 더 자라나고 그 인격이 더 커진다.  누가 진리를 많이 깨달았느냐에  따라서 하늘나라에서 크고 작은 것이 결정된다.

당시에는 세례요한이 진리를 가장 많이 깨달았다.  세례요한이 진리를 많이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그 진리대로 살아갔다.  예수님이 세례받으러 오실 때에도 내가 당신한테 세례를 받아야  할텐데 어떻게 내게로 오시나이까 라고 하였고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증거하였다.  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세례요한이 실제로 그 진리에 거하고 진리를 증거한 생활이었다.  예수님을 직접 세상에 소개하는 중대한 사명을 받은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큰 사명을 받아 이루어드린 사람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제일 큰 자이다.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이 말씀을 보고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이 지옥에 갔다고 말하기도 한다.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세례요한보다 크므로 세례요한이 천국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모르고 잘못 말한 것이다.  여기서 \"천국\"이라는 것은 신약시대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천국\"이라고 할 때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① 마음의 천국, ② 교회, ③ 천년 왕국, ④ 영원한 하늘나라를 천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약시대의 교회에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 크다.  세례요한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인데 구약시대는 세례요한 때까지이다.  그 다음부터는 신약시대가 전개된다.  신약교회 시대에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 보다 진리를 더 많이 알게 되고 예수님을 더 많이 깨달아 더 많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진리, 삼일만에  부활하신 진리, 승천하신 진리와 성령 강림하신 것과 재림하실 것을 세례요한은 몰랐으나 신약시대의 성도는 유년부 학생까지  다 알고 있다.  우리가 세례요한보다 인격이 더 나아서가 아니고 그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구속사역을 아직 다 성취하시기 전이므로 하나님이 알게 해 주시지 않은 때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알게 해 놓으신 때이고, 그 일 즉 성자가, 부활, 승천, 성령강림을 다 이루어 놓으신 때이므로 누구나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알게 하시기 전에 누가 알겠는가 !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이 알게 하시지 않으면 알 사람이 없다.  

신약교회 시대에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 하나님의 계시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세례요한이 구약시대 사람으로서는 계시를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이다.  아브라함보다도 세례요한이 더 많이 받았고 엘리야보다도 세례요한이 더 많이 받았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지극히 작은 성도라도 세례요한보다 더 많은 진리를 가지고 있어 밝은 빛 가운데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성령의 역사가 크고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나타난다.  신약시대의 성도가 인격적으로 볼 때에는 세례요한보다 못할 수도 있으나 진리를 아는 면과 깨달은 면이 세례요한보다 크고 그 진리를 가지고 사는 면이 세례요한보다 크며 그 진리를 증거 하는 면이 세례요한보다 크다.  진리의 분량대로 영적 세계가 크게 열리고 그 세계에서 살게 되며 그 진리를 이루어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를 받은 것이 많으면 이루는 것도 많게 된다.

 

. 11:12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세례요한의 때까지 구약시대는 끝나고 그 후부터 신약시대가 시작된다.

천국 신약시대의 교회, 즉 예수님의 구원운동을 말한다.  이 천국은 세례요한의 때부터 침노를 당하기 시작하였다.  세례요한은 원칙적으로 구약시대에 속하지마는 그가 예수님을 증거하였으므로 예수님의 구원운동에 어느 정도 참여한 것이다.

침노를 당하나니 구약 성경에는 힘쓰는 자가 빼앗는다고 하였다.  누구나 천국에 가기를 소원하고 힘써 예수를 영접하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힘써 침노하여 들어가면 천국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천국에 가는데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천국백성으로서 힘쓰는 자가 더욱 영광스러운 인격을 만들어 천국의 영광과 상을 많이 받게 된다는 뜻이다. 자기가 인격을 만들어 가진 것만큼 하늘나라에서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되고 힘쓴 것만큼 인격이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빼앗는다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이 많은 계시를 나타내 보여 주었으므로 그것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몰라서 진리대로 살지 못했으나 이제는 알게 하여 주었으므로 그것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지식적으로 아는 데에만 그치고 사용하지 못한다면 아무 유익이 없다.  예를 들면 옛날에는 전등, 라디오, 텔레비젼, 자동차와 같은 문명의 이기가 없었고 사용하는 법도 몰랐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문명의 이기가 많이 있다.  누구나 쓰는 방법을 알아서 사용을 하면 편리하고 유익하다.  좋은 물건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침노하여서 들어가듯 성도가 힘만 쓰면 하늘나라의 것을 얼마든지 내유할 수 있는 자격이 만들어지고 천국에서 큰 상급과 복을 받게 된다.  침노하여 들어가듯 힘쓴다는 것은 힘써서 진리대로 자기 인격을 만드는 것이며, 생명을 내어놓고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 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구약의 계시는 그림자로서 세례 요한까지 끝났다(히10:1 참조).  요한 이후부터는 실체되시는 그리스도가 오셔서 직접 천국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오리라 한 엘리야 말라기 4:5-6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을 엘리야라고 하신 것은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심정을 가지고 와서 엘리야의 하는 일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요한이 엘리야와 같이 사람들을 회개시켜 하나님께 돌리고 사람들 사이의 잘못된 것을 바로 세웠다.  세례요한이 외부적인 면으로 보면  엘리야가 될 수 없으나(요1:21 참조), 그가 하는 일은 엘리야가 하던 바로 그 일이었다.

 

.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영의 귀가 열린 자라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다.

 

二. 세대의 죄악(16-19)

 

. 11:16-17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이 세대 사람들은 양심이 마비가 되어 죄를 책망하여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큰 은혜를 베풀어 주어도 감사할 줄 모른다.  하나님이 자주 자주 책망하여도 양심이 화인 맞은 자와 같아서 회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책망하실 때에 회개하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한다.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예수님이 구원의 복음을 전파해 주셨으나 감사할 줄 모르고 기뻐할 줄도 모른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므로 신랑을 맞은 혼인집과 같은데 그 세대 사람들은 외면하고 아무 감응이 없다는 뜻이다.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슬퍼 통곡할 만한 때에도 슬퍼하지 않고 애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례요한이 죄를 책망하여도 무감각하여 슬퍼하거나 애통함이 없으며, 회개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자주 징계하시고 책망하시는 데에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애통할 줄 모른다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원통히 여겨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이어야 참된 하나님의 자녀이다.

 

. 11: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세례요한을 귀신이 들렸다고 비방하였다.

 

. 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예수님은 세례요한과 같이 금욕주의 생활을 하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셨다(눅5:34, 요3:29 참조).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복음에 참예하지 않고 거역하며 \"예수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방하였다.  바리새인들이 약간의 근거가 있는 것을 가지고 거짓말을 만들어서 비방하였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했으나 죄 자체를 용납한 것은 아니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맞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죄인의 친구라고 정죄 하며 비방했다.  예수님이 먹고 마셨으나 먹기를 탐하거나 포도주를 즐긴 일이 없지마는 그들은 거짓말을 더하여서 비방한 것이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요한의 증거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는 것이 지혜이고 받지 않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참 복음을 받는 자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힌다.

누가 7:35에 자녀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는다고 하였다.  자녀는 복음을 받은 열매를 가리킨다.  참 복음을 받으면 복음이 생명이 되므로 그 진리대로 생명의 열매가 맺히케 된다.  하늘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전4:20 참조).  말로는 자기가  지혜있다고 할지라도 행한 일이 하나님 앞에 옳게 되지 못하였으면 지혜있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을 받을 때에 애통하고 회개하는 자가 지혜있는 자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자가 지혜있는 자이다.  또 날마다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는 자가 지혜있는 자이다.  바리새인들이 말로는 지혜있다고 하면서 세례요한의 책망과 예수님의 복음을 받지 않았으므로 미련한 자가  되었다.

 

三. 고라신과 벳새다를 책망하심(20-24)

 

. 11: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때에 책망하시되

고라신과 벳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행하신 이적을 많이 보고도 회개하지 아니하였다.  그 많은 권능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으므로 예수님께 큰 책망을 받았다.  하나님이 은혜로운 역사를 많이 나타내서 믿을만한 증거를 많이 보여줄 때에 믿지 않으면 책망이 그만큼 더 크다.

 

. 11:21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고라신과 벳새다는 예수님이 전도하신 본거지인 가버나움에서 가까운 곳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전도도 많이 하고 권능도 많이 베푼 지방이었으나 그 지방 사람들이 회개치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들의 완악함을 보시고 탄식하시며 책망하신 것이다.

 

. 1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심판의 형벌에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두로와 시돈은 이방에 속한 도시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곳이다(겔 28장 참조).  두로와 시돈은 예수님의 권능을 보지 못하고 죄악 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  그러나 고라신과 벳새다는 하나님의 많은 권능을 보고도 끝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로와 시돈보다 더 큰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의 큰 권능을 보고도 회개하지 못하는 샤람은 그만큼 더 마음이 완악한 것이며 심령에 더 큰 고통이 있고 주님 앞에 가서도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

 

. 11:23-24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가버나움에 예수님의 집이 있었고 그 지방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많은 권능을 베풀어 주셨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인 것과 그의 모친과 형제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육신적인  에 대한 선입감이 너무 강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메시야 되심을 인정하지 않았다(마13:54-57 참조).  만약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행한 권능을 소돔성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회개하였을 것이요, 그 성이 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있었을 것이다. 권능과 은혜를 많이 받고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더 큰 심판이 있다.

 

四. 예수님을 배우라(25-30)

 

.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왜 하늘나라의 것을 숨기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고전2:14 참조).  그것은 지혜 있는 자들이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과 그 나라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고전1:21 참조).  지혜있고 통달한 자는 자기 지혜와 자기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며 섬기려고 하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어린이들에게 나타내신다\"는 뜻은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말씀을 그대로 잘 받는 사람에게 복음이 깨달아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무조건 그대로 받아들여야 깨달을 수 있다.  어린아이의 특성은 ① 자기를 부인하고 낮추는 것이다.  ② 배우기를 힘쓰고 모방을 잘 한다. ③ 어머니를 사모하고 젖을 사모한다.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해 주신다.

 

. 11: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지혜 있고 통달한 자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므로 숨겨져 있고, 어린아이는 겸손하여 무엇이나 배울려고 힘을 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믿기 때문에 진리가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자기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기 때문에 감사한 일이다.  \"옳소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믿는 사람만 깨닫게 되는 것이 옳다는 뜻이다.  자기 지혜와 지식을 다 내어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그대로 믿는 사람을 구원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진리와 은혜를 예수님께 다 주셨다.  율법은 모세로부터 왔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왔다(요1:17 참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신령한 세계를 깊이 알 수 있다.

 

.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간다.  모든 사람에게 다 근심과 걱정이 많이 있다.  이 세상은 모든 인생이 무거운 짐을 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고하는 곳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마음과 육신에 속한 모든 수고와 괴로움이다.  이것은 죄 값으로 온 것이며, 에덴 동산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없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의 에덴 동산은 아무 짐이 없는 생활이고 즐거운 생활이었다.  항상 기쁘고 근심이나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로는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나게 되고 땀을 흘려 수고하여야만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여자에게는 해산하는 수고와 여러 가지 고통이 들어왔다.  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땅에서 사는 모든 인생은 수고해야만 하게 되어 있다.

에린동산을 쫓겨난 인간은 또 마음의 낙원을 다 빼앗겼다.  그리하여 마음이 쓸쓸하고 외롭게 되었으며,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끊어져 죽은 영혼이 되었다.  이 세상은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저주를 받았으므로 누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각 사람이 자기 책임과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 것도 무거운 짐이다.  그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을 수가 없으나 예수님께 나아오면 예수님이 쉬게 해 주신다.

\"내게로 오라\"는 것은 나를 믿으라는 뜻이고 이미 믿는 사람도 계속하여 심령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라는 것이다.  몸만 오지 말고 마음이 주님을 찾아서 가까이 나아가면 주님을 만나고 또 주님이 그 사람을 위로해 주시며 생명과 힘을 주신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날마다 가까이 나아가는 생활이 중요한 것이다.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길이 없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덜어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된다.  돈을 벌면 수고가 없을 것 같으나 수고가 더 많아진다.  전도서 5:11에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라고 하였다.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고 하여도 거기에 만족이 없다.  전도서 2:3-11에 보면 솔로몬이 자기 왕궁을 짓고 포도원을 만들고 과수원을 만들어 많은 수목을 심었다.  또 남녀 종들을 많이 두고 재산과 각종 보배를 많이 쌓아 놓았다.  처첩을 많이 두고 인간의 모든 향락을 누려보았으나 모두가 헛되고 수고와 눈물뿐이라고 탄식하였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수고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도리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 나아가면 예수님이 그 짐을 대신 져 주시므로 편히 쉴 수 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의 심령이 예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면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항상 기쁘고 평안하여 안식을 얻게 된다.  이것이 쉬는 것이다.

 

.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성품이 온유하여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생활을 한 것이다.  타고난 성품이 온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지체와 지식대로 나간다든가 다른 사람의 주장대로 따라가는 것은 온유가 아니다.

온유 오직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행위가 참된 온유이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의 멍에는 순종이다.  순종하면 마음이 평안하다.  \"자기\"가 할려고 하면 고통이 오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 평안하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였다(삼상15:22 참조).

예수님을 순종하는 것이 순종하지 않는 것보다 쉽고 예수님이 지어준 짐을 지는 것이 지지 않는 것보다 가볍다.  순종하려고 하면 육신이 구속을 받아야 되고 제재를 받아야 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순종하기를 싫어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탕자도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하기 싫어서 재산을 가지고 멀리 가서 허랑방탕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주 비참하게 되고 큰 고통 가운데 빠졌다.  순종을 안 하면 고통이 들어온다.  그러나 순종을 하면 고통이 없어지고 마음이 승을 얻게 된다.

 

.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내 멍에는 쉽고 순종을 하면 하나님이 다 해 주시기 때문에 쉬운 것이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영적 생명의 역사와 성령의 능력이 임하고 그 능력으로 해 나가기 때문에 쉬운 것이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고 \"자기\"가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일하여 주시지 않고 또 속에 생명의 능력이 없으므로 대단히 힘이 들고 고통스럽다.  그것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생활이다.  또 예수님의 멍에를 메지 않는 사람은 자기 욕심대로 나가기 때문에 짐이 더욱 더 무겁고 수고가 많다.  욕심은 한정이 없고 자꾸 큰 것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수고가 더욱 더 많아진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가는 것은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과 같고 예수님의 멍에를 벗어버리는 것은 엔진이 꺼진 자동차를 끌고 가는 것과 같다.  자동차를 끌고 가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순종하면 처음에는 자유가 없고 힘이 들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고 능력을 입혀 주셔서 쉽게 그 일을 해 나갈 수 있다.  순종을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야 한다. 성도는 주일 지키는 것과 십일조 드리는 것과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 것부터 순종을 하라.  이 세 가지를 순종한 다음에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순종하여야 한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자기 욕심대로 해 나가면 고통만 당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지고 가던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가벼운 멍에를 메고 가는 것이 지혜로운 생활이다.  주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 주시는 분이시다(벧전5:7, 시68:19 참조).

시편 55:22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너의 요동함을 영영히 보지 않게 해 주시리로다\"라고 하였다.  모든 염려와 자녀들에 대한 걱정과 큰 일을 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 걱정, 장래에 대한 걱정을 모두 주께 맡겨 버려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그리고 자족을 배워 항상 하나님이 제일 좋은 것으로 주신 줄 알고 만족하고 자족하여야 한다.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그 곳이 하늘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런 자의 속에 생명의 역사가 오고 생명의 능력이 생기고 그 능력으로 일하기 때문에 모든 일이 쉽고 가볍다.  이것이 짐을 가볍게 하는 법이요, 예수님을 배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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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12장

 

제 12 장  안 식

 

(대  지)

一. 안식일에 대한 교훈(1-8)

二.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9-23)

三. 바리새인들의 훼방을 책망함(24-37)

四. 세대를 책망하심(38-45)

五. 주의 모친과 동생들(46-50)

 

(본문강해)

 

一. 안식일에 대한 교훈(1-8)

 

. 12: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세일한 규정을 만들어 안식일에 이삭 자르는 것을 금하였다.  그러나 신명기 23:25에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시장하여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율법에 어긋남이 없으나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 12: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바리새인들은 계명보다 사람의 유전을 더 귀중히 여겼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바리새인들이 정한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에 하지 못할 일을 한다고 힐문했다.

 

. 12: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은 다윗이 성전에서 진설병을 먹은 문제를 들어 말씀하셨다.  다윗이 사울왕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놉이라는 곳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할 진설병을 먹었다(삼상22:10 참조).  그러나 성경이 그것을 죄라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성전에서 했고, 하나님의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여 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먹은 것이기 때문이다.

 

. 12: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느라고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율법이 가르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민28:9-10 참조).

 

. 12: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전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예수님 안에 충만히 계심으로 손으로 지은 성전보다 크다.

 

. 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자비를 원하고 자비는 영적 생명에서 나오는 덕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내적 생명을 누리며 거기서부터 나오는 긍흘과 자비를 하나님이 원하신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외부적인 제사는 원치 않으신다.

 

.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사니라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은 주일의 주인이라는 뜻도 된다.  예수님은 당신의 뜻대로 안식일을 주장하신다.  그리스도 안에만 참된 안식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을 받아 그 안식 세계에서 예수를 믿는 것이 제대로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안식을 받지 못한 자는 아직도 안식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다.  참된 영적 안식을 누리면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  김현봉 목사님에게 어떤 과부 교인이 찾아 왔을 때에 그 과부에게 요사이 하나님 앞에서 위로를 받으며 사느냐고 물어 보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안식을 누리고 있느냐는 말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고 있으면 과부일지라도 남편보다 더 좋은 것을 소유하고 낙원에서 사는 사람이다(사56:3-7 참조).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면 아무리 세상에서 모든 것을 풍성히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고통스러운 세상이다.  일평생에 모든 원하는 것을 다 했다고 할지라도 헛되고 헛되다.

전도서 5:18에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라고 하였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라고도 하였다(전5:10-17 참조).  솔로몬이 왕이 되어 부귀와 영화가 극치에 달하였으나 지내고 보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고백하였다(전1:2 참조).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에서 수고하는 중에서 영적 안식을 누리는 것이 복인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는 부자로 살든지 가난하게 살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안식을 누리며 영적 낙원을 만들어서 사는 것이 복된 삶이다.  현재 영적인 안식을 누리면 영원한 성공이나 영적인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면 영원한 실패이다.  성도가 영적인 안식을 누리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러나 먼저 외부적인 안식일부터 지켜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이 토요일이었으나 신약시대에는 주일로  변경이 되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시고 칠 일째 되는 날에 쉬셨다.  구약시대에는 칠일 안식일을 지켰으나 오랜 후에 다시 다른 날을 정하여 이레 중 첫날에 안식일을 지키게 하였다(히4:7-10 참조).

토요일에 지키던 옛 계명이 연약하여 폐하고(히7:18), 새 계명이 되는 주일에 예수님이 부활을 하셨고(마28:1), 부활승천 후 첫 오순절날(부활일 후 49일째) 즉 주일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셨고(행2:1), 주일에 성부께서 묵시를 주셨다(계1:10).  그러므로 주일은 성부 성자 성령이 합하여 새로운 생명과 말씀과 은혜를 주시는 날이다.  그래서 신약시대에는 구약시대에 지키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주일을 지켜야만 4계명을 바로 지키는 것이다.  구약의 안식일이나, 월삭, 절기들은 그림자요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다(골2:16 참조).  구약의 모든 제도는 그림자이고,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어놓은 것은 실체이다.  예수님이 주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다.  사도들도 주일을 지켰다(고전16:2, 행6:7).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안식의 표징이다.  사람에게 강제로 주일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더 좋은 안식세계를 예비하여 놓고 그 안식을 주기 위하여 주일을 지키라는 것이다(출31:13 참조).  주일에 일하면 안 된다.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일지라도 일하지 말고 자녀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주일에는 일하면 안 된다.

주일을 지켜야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쉬신 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영적 안식을 받기 위하여 주일을 지키는 것이다.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심령 속에 안식을 받고 생명의 말씀을 받아 한 주일동안 안식을 누리면서 그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또 앞으로 영원한 안식이 올 것을 보여 주는 날이다.  현재에도 주님이 주시는 영적 안식에 참여해야 하고 동시에 앞으로 천년왕국과 영원한 하늘나라가 우리 앞에 있는 것을 믿고 그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 소망을 이루어 나아가면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성도가 주일에 교회에 나오면서 버스를 타면 죄인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한 방편으로서 버스를 타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주일에 사사로운 일을 보기 위하여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은 죄이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심방하거나 구제하거나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는 일은 주일에도 할 수가 있다.  그 외에는 주일에 일하면 죄이다.  주일을 지키는데 있어서 외부적인 면과 내적인 면이 합하여 조 화를 이루어야 완전하다.  나무가 살려면 나무 껍질도 성하여야 되고 나무의 속도 살아야 한다.  만일 나무의 속만 중히 여리고 껍질은 필요없다고 하여 벗겨 버리면 그 나무는 죽고 만다.  영적 안식만 중히 여기고 외부적인 면을 무시하면 안 된다.  성도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하여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율법을 패하는 자이다.  나무 껍질은 필요없다고 다 벗겨버리는 자람과 같다.

내적인 안식세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율법적으로 외부적인 면만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면 그것도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나무의 속은 다 죽어 생명이 없는데 껍데기만 잘 유지하겠다는 사람과 같다. 주일은 육신이 쉬는 날이 아니고, 영혼이 쉬는 날이다.

어떤 사람은 주일에 쉬어야 되겠는데 예배당에 나가면 여러 시간 예배드리기 때문에 더 피곤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영적인 안식 세계에 들어가면 그 심령이 기쁘고 즐겁고 위로가 와서 육신의 피곤함도 없어진다.  토요일까지 죽어 가던 사람이 주일날 예배당에 겨우 나왔다가 하나님의 안식을 받아 육체도 건강해지는 수가 많이 있다.

주일은 하나님이 특별히 안식의 은혜를 주시는 날이다.  그러므로 십계명 가운데 중심 계명이 이 4계명이다.  안식일에 안식 세계에 들어가서 안식을 얻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한 주일 동안 그대로 살아야 한다.  또한 장차 오는 천년왕국의 안식세계와 영원한 하늘나라의 안식세계를 바라보면서 그 나라를 위한 준비를 매일 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일을 하라고 안식일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을 범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내어버리는 사람이요, 진주를 발로 밟는 돼지와 같은 사람이다.

 

二.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9-23)

 

. 12:9-10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한편 손 마른 사람이 회당에 들어왔는데 바리새인들은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낫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송사하는 재료로 삼았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바리새인들의 법에는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답변을 들어보고 책잡으려고 물어본 것이다.

 

. 12:11-1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만일 양 한 마리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면 붙잡아 내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한가 !  그러므로 사람이 병들어 구덩이에 빠졌고, 마귀에게 시달리는데 안식일에도 건져내는 것이 마땅하고 옳다는 것이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안식일에 선을 행할 수 있다.  영혼을 살려 내는 일, 다른 사람을 영적 흑암에서 건져내고 선을 베푸는 일은 안식일에 하여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기주의로 자기 이익을 위하여 안식일에 무슨 일을 하면 안 된다.

 

. 12: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예수님이 바른 진리를 가르쳐 주셨고 믿을 만한 증거를 많이 보여 주었으나 바리새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하였다.

 

. 12: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예수님께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에게서 떠난 것은 두려워서가 아니고 복음을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시려고 그들을 떠나 가셨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영혼을 살려 내고 그 표적으로 육신의 병도 고쳐 주셨다.

 

. 12:16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메시야를 공적으로 나타낼 시기가 되기 전이고 또 전도에 방해가 되겠으므로 예수님이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계하셨다.

 

. 12:17-18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바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이사야 42:1-3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종의 위치에서 순종을 다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  예수님에게는 성령이 한량없이 임해서 성령으로 일하고 계신다.  그의 복음은 이방까지 전파되어 구원과 심판을 이방에게 알게 하신다.

 

. 12: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나가서 다투고 싸우고 떠들썩하게 일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구원운동은 고요하고 잔잔하게 전파되어 나가는 것이다.  영적 생명운동은 은밀하게 되어 나간다.  떠들썩하게 대중 운동과 같이 나팔을 불어 광고하고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은 외식하는 자들이 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라고 하셨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셨다.  큰 일을 해 놓고도 나타내지 말라 하시고 그저 은밀하게 해 나아가는 것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다.

 

. 12:20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예수님은 상해서 거의 넘어져 가는 갈대도 꺾지 아니하고 잘 보존해서 가꾸어 나가신다.  또 불이 깜박깜박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고 그 불을 잘 보호하고 보존해 나가시는 예수님이시다.  사람들이 상한 갈대와 같이 연약하여 쓰러지고 꺼져 가는 심지와 같이 어느 시간에 꺼질지 모르는 상태에 처해 있어도 버리지 아니하고 보호하여 지켜 주시고 잘 가꾸어 길러 나가시는 예수님이시다.  상한 심령을 고쳐 주시고 꺼져 가는 심지에 기름을 다시 공급하여 생명의 빛이 비쳐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 는 주님 이시다.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이다.  그 때까지만 참아 주신다.  심판 날에는 모두 공의로 심판하신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고침을 받아야 한다.

 

. 12:21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복음은 전 세계로 전파될 것이며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된다는 뜻이다.

 

. 12:22-23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덩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푸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귀신을 쫓아내시었다.  그러므로 벙어리가 말하고 소경이 보게 되었다.  백성들은 예수님의 능력에 놀라서 다윗의 자손 곧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고 호기심을 갖게 되고 예수님을 찬양하였다.

 

三. 바리새인들의 훼방을 책망함(24-37)

 

. 12:24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바알세불 마귀의 왕이라는 뜻이다.  바리새인들과 그 교권주의 자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들을 쫓아냈다고 비방했다.  바리새인은 사사건건 예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악평과 비방을 하였다.

 

. 12:25-26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예수님이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마귀가 마귀를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마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고 반문하셨다.  마귀도 저희끼리 분쟁하면 망할 것을 알기 때문에 마귀가 마귀를 대적하고 쫓아내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12: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너희 아들들 바리새인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당시에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있었다(막9:38, 행19:13 참조).  예수님이 내가 귀신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면 너희 제자들도 귀신을 힘입어 쫓아 낸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 제자들이 그렇치 않다는 것을 판정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쫓아내기 때문에 이것을 알고 믿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을 것이다.

 

. 12: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강한 자는 마귀를 가리킨다.

세간은 마귀에게 잡혀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늑탈을 마귀의 수하에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건져 내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강한 마귀를 결박했기 때문에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을 건져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마귀를 결박한 분이시다.  사단이 번개같이 하늘에서 멀어지는 것을 예수님이 보았다고 하셨다.  사단을 결박하고 사단을 내쫓고 사단을 완전히 정복한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마귀에게 붙들린 사람을 다 건져 낼 수 있고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서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사람이니 상한 갈대와 같이 된 사람을 건져낸다.  예수님은 마귀를 결박했기 때문에 마귀의 수하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전부 건져내고 마귀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모든 것을 건져내실 수 있다.

 

. 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아니하고 또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명운동을 방해하고 손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마귀의 인도를 받고 있는 것이다.  빛과 어두움의 중간은 없다.

 

. 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성령훼방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라고 하였다.  성령훼방죄는 성령의 역사인 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반항하는 죄이다.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반항하기 때문에 사함을 받지 못한다.  믿지 않을 때에 성령을 훼방하다가 후에 회개하고 성령을 훼방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훼방자가 아니다.  예를 들면 전에 앓다가 나은 사람은 환자가 아닌 것과 같다.  죽을 때까지 계속하여 성령을 훼방하여야 성령훼방죄가 된다.  그러므로 성령훼방죄는 불택자의 죄이다.  믿지 않는 사람은 중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선한 것이 없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영혼이 죽었기 때문에 그 속에 진리와 영감을 받지 못하고 근본적으로 마귀의 인도를 받는다.  그리하여 성령을 훼방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그 죄 값으로 지옥에 간다.  끝까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도 사함 받을 길이 없고 오는 세상에서도 사함 받을 길이 없다.

\"성령훼방죄\"란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믿는 사람이 짓는 죄는 성령훼방죄가 아니다.  믿는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을 욕하고 성령 받은 사람을 반대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성령훼방죄가 아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의 영혼에는 성령이 항상 내주하기 때문에 중심에서는 절대로 성령을 훼방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현재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옥에 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다음에 믿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는 불신자일지라도 죽기 전에 믿으면 불신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지내보아야 성령훼방죄 지은 자를 알 수 있다.

 

. 12: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실과를 보아서 나무를 안다.  그러므로 열매가 좋으면 나무도 좋다고 하여야 하고 실과가 나쁘면 나무도 나쁘다고 하여야 한다.  예수님에게 맺힌 열매는 선한 것이었다.  손 마른 사람을 펴 주고 병을 고쳐 주고,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주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고 눈 먼 사람을 보게 하여 준 것은 다 선한 열매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선한 열매는 인정하면서도 예수님이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성령을 훼방한 것이다.

 

. 12:34-35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독사는 마귀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귀의 자식들이라는 말이다.  마음 속에 악한 것이 쌓여 있는 사람은 쌓인 악에서 악한 말이 나오고 마음속에 선한 것이 쌓여 있는 사람은 선한 것이 나온다.  하나님이 예수님께 성령을 한량없이 주어 그 선한 열매가 풍성히 맺혀졌다.  성령의 열매를 보아서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하시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바리새인들의 입에서 악한 말이 나오는 것은 그들의 속에 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 12:36-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이 말로 나온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말로 정죄함을 받는다는 것은 속에 있는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과 같다.  속에 선한 것이 있으면 선한 말이 나오고 악한 것이 있으면 악한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 마음속에 세상의 것이 있으면 세상 말이 나오고 신령한 것이 있으면 신령한 말이 나온다.  그러므로 입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말이 나오면 자기 속에 그러한 것이 들어 있는 줄 알고 회개하여야 한다.

우리의 말, 생각, 행동이 모두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깨달아 항상 그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선한 것을 마음에 쌓아야 한다.  선한 것을 소유한 사람은 그 입에서 선한 것이 나오게 되 고 하나님 앞에 가서 복을 받게 된다.  성도는 항상 자기의 마음을 잘 지키고 다스려서 악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잠언 16:32에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였다.  마귀는 자꾸 악한 생각을 넣어 주어 불평하고 원망하여 남을 정죄하고 훼방하는 일을 하게 한다.  성도가 이것을 깨달아 마귀의 참소와 격동과 유혹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마음속에 악한 생각이 들어왔을 때에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입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악한 생각이 속에 일어날 때에 즉시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야 한다.

잠언 4:23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였다.  마음을 잘 지켜 선한 마음을 써야 한다.  선한 마음을 써야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자기 자신의 구원을 잘 이룰 수가 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으려고 할 때에도 예수님은 선한 마음을 가졌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무리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선한 마음으로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다.

 

四. 세대를 책망하심(38-45)

 

. 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표적을 좋아하여 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 12:39-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악하고 음란한 세대 하나님을 떠난 세대라는 뜻이다(약4:4 참조).

요나의 표적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어 땅 속에 있다가 삼일만에 부활할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요나의 표적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십자가와 부활밖에는 그들에게 보여줄 표적이 없다는 뜻이다.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영혼이 죽은 사람들은 다른 표적을 아무리 보아도 소용이 없다.  요나의 표적 되는 십자가와 부활로 그들의 죽은 영혼을 살려 내는 것이 선결 문제이다.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그 외의 표적을 보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토는 자기 영혼이 사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영혼이 살지 못하면 아무리 신기한 이적이 나타나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고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다.  제일 큰 이적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이다.  둘째로 큰 이적은 죽었던 영혼인 살아난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으로 살아난 것이 얼마나 큰 이적인가 !  세째로 큰 이적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다.  이리와 타조 같고 마귀의 종노릇을 하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점점 닮아 나아가는 것은 참으로 큰 이적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런 이적들은 무시하고 다른 표적만 구하였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 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는데 이 세대 사람들은 예수님의 전도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으므로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 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또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스바)에서부터 왔는데 솔로몬보다 더 큰 예수님이 계시는데도 이 세대 사람이 영접하지 않으므로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이러한 책망을 하신다.  귀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진리의 말씀대로 바로 서려고도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  귀한 진리를 받았으면 거기에 대한 회개와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또 진리대로 만들어져야 한다.

 

. 12: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예수임 앞에 나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그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갔다.

물 없는 곳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보면 부자가 지옥을 갔는데 천당에 있는 나사로를 바라보고서 손 끝에 물을 찍어다가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하였다.  지옥은 물 한 방울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하늘나라에는 생명수가 강 같이 흘러내린다.

은 복음과 생명의 역사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조금도 없는 곳은 답답하고 고통스럽다.  하나님의 복음이 전혀 없는 그 곳은 지옥이요 쉴 만한 곳이 전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곳은 누구나 다 사모하고 좋아한다.  마귀도 예수 믿는 사람을 좋아하면서 무서워한다.

 

. 12:44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내가 나온 내 집 예수를 믿음으로 마귀가 쫓겨난 사람이다.  예수님의 빛이 비치었기 때문에 마귀가 쫓겨 나갔다.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회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과 예수님을 모시지 않음으로 비어 있는 집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으나 예수님을 그 심중에 모시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 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일곱은 만 수이므로 많은 귀신을 데리고 와서 들어간다는 뜻이다.  말씀을 듣고 받은 자가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지 못하면 전보다 칠 배나 더 악하여 진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악한 자가 교회 안에 있다.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고 주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안 믿는 사람보다 칠 배나 더 악하여지고 칠 배나 더 욕심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 주님을 늘 모시고 살아야 한다.  주님을 언제나 자기 중심에 모시고 주의 인도를 받아 주 안에서 살면 마귀가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살지 못 할 때에는 일곱 마귀가 들어오기 쉽다.

 

五. 주의 모친과 동생들(46-50)

 

. 12:46-47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데리러 왔다.  마가 3:21에는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붙들러 왔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마귀의 종이 되어서 구원사업을 무너뜨리려고 온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벌써 다 아시고 나가 보지도 않으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이 때에는 모친과 동생들이 사단노릇을 한 것이다.

 

. 12:48-50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모친이며 내 형제요 내 자매요 라고 하였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 영혼이 중생한 자이다.  중생한 영혼은 새 생명을 받아 가지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으므로 예수님의 형제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 으로 사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도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자이기 때문에 형제요 자매라고 한 것이다.  같은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형제요 자매이다.  진리를 같이 받아서 같은 진리대로 영이 살아나가는 것이야말로 침 형제요, 참된 자매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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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13장

 

제 13 장  비 유

 

(대  지)

一. 씨 뿌리는 비유(1-9)

二. 비유의 목적(10-17)

三. 씨 뿌리는 비유의 해석(18-23)

四. 가라지 비유(24-30)

五. 겨자씨 비유(31-32)

六. 누룩 비유(33)

七.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34-35)

八. 가라지 비유와 해석(36-43)

九. 보화 비유(44)

十. 진주 비유(45-46)

十一. 그물 비유(47-50)

十二. 깨달은 자의 사명(51-52)

十三.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받으심(53-58)

 

(본문강해)

 

一. 씨 뿌리는 비유(1-9)

 

. 13:1-2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예수님이 바닷가에 앉으시매 많은 무리가 모여들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무리들은 해변에 서 있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을 말씀하실 때에도 앉아서 가르치셨다.

 

. 13:3-4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첫째 비유는 씨 부리는 비유이다.

씨를 뿌리는 자 예수님이시다.  전도자들은 예수님이 씨를 뿌리는데 수종드는 사람들이며 이용되는 기구들이다.

는 하나님 말씀이다(눅8:11 참조).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씨이다.

길 가에 떨어지매 말씀을 들으나 마음이 완고하여 받지 않고 깨닫지 못한 자이다(19절 참조).

길 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마음이 굳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알기는 하지만 마음에는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자기와 말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마귀가 와서 그 말씀을 빼앗아 간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새는 악한 자 즉 마귀이다(19절 참조).

 

. 13:5-6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사람의 마음이다.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로 받아서 일시적으로 기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환란과 핍박이 오고, 반대 세력이 생겨 어려운 고통이 들어오면 \"못 믿겠다\"고 포기해 버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또 돌은 완강하게 박힌 인간의 지혜와 세상적인 지식과 전통과 고집 같은 것을 가리킨다.  이런 것들을 내어놓지 않고 말씀을 받아 들였으므로 뿌리가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  속에 돌이 있고 돌 위에 흙이 얇게 덮여 있어서 떨어진 씨가 얇은 흙에 묻혀서 싹이 나기는 하지만 돌 때문에 뿌리가 제대로 박히지 못한다.  그리하여 해가 돋으면 곧 말라죽고 만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얼마동안 좋아하다가 환란과 핍박이 들어올 때에 말씀을 포기해 버린다.  싹이 말라죽은 것을 보니 영혼이 중생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도를 즐거워 한 것에 불과하다.

 

.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가시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일락이다.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라고 했다(22절 참조).

누가 8:14에는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을 하지 못하는 자\"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람은 성경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고, 참으로 믿는다.  또 교회에도 잘 나오고 봉사도 잘한다.  그러나 지내는 동안에 생활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욕심과 향락주의 때문에 기운이 그리로 다 빠져나가 온전히 결실을 하지 못한다.  실제로 농사할 때에 씨가 가시밭에 떨어지면 가시가 기운을 다 흡수함으로 곡식이 잘되지 못한다.  비료를 주어도 가시가 다 빨아먹고 곡식은 잘 자라지 못하며 변변히 결실하지 못한다.  뿌리와 곡식이 말라죽지는 않았으니 중생한 사람이다.  중생하여 그 생명은 죽지 아니하나 열매가 별로 없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은 일생 동안 예수를 믿으나 세상의 염려와 물질에 대한 욕심과 방탕한 생활 때문에 기운이 그리로 빠져나간다.  그리하여 믿는 일에 진보도 없고 열매도 별로 맺히지 못한다.  믿는 일에는 힘쓰지 아니하고 세상 걱정과 돈 버는 일과 향락을 즐기는 일에 시간과 정력과 재산을 다 소모해 버리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기는 하지만 신앙의 열매가 별로 없으므로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좋은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확실히 깨닫는 자이다.  깨닫는 자는 그대로 실행하게 된다.  누가 8:15에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하였다.  말씀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은 그 말씀대로 실행한다.  한 알의 씨가 땅에 떨어졌지만 열매는 백 배, 육십 배, 삽십  배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한 증거이다.

가령 양잿물을 먹으면 죽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절대로 양잿물을 먹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깨달은 사람은 그 말씀 한 마디가 생명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자기의 생명을 내어 놓을찌언정 그 말씀은 버리지 못한다.  이것이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다.  성도의 마음이 옥토와 같이 되어야 신앙의 열매가 잘 맺혀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묵은 밭을 기경하라\"고 했다(렘 4 3 참조).  가시가 나고 잡초가 난 묵은 밭을 갈아 좋은 밭을 만들라는 뜻이다.  길가와 같은 완고한 고집을 버리고 회개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한다.  돌짝 밭과 같은 사람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여서 뿌리가 깊이 박히게 하여야 한다.

인간적인 기존지식과 지혜 위에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뿌리가 박히지 못하여 환란과 핍박이 들어올 때에는 넘어지고 만다.  예를 들면 유교 사상이 강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성경 말씀을 유교 사상에 비교하여 유교 사상에 맞으면 옳고, 맞지 않으면 틀렸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이 부리가 박히지 못한다.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자기의 지식과 지혜를 다 내어 버려야 한다.  또 가시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욕심과 일락을 버려야 한다.  믿는 사람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면 그것이 가시가 되어 그리로 기운이 빠져나간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너희 천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될 것을 다 아신다고 하였다.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기를 힘쓰고, 오늘에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내일 일은 내일에 가보면 무슨 대책이 나온다.  장래 문제를 가지고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고 말씀하였다(마6:33-34 참조).

또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부하려 하는 자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떨어진다(딤전6:9-10 참조).  돈을 좀 더 벌어 놓고 좀 더 부자가 된 다음에 예수를 잘 믿겠다는 사람은 벌써 시험과 올무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한다.  또 안일주의와 향락주의에 빠지게 되면 믿는 일하는 기운이 다 그리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기도할 마음도 없어지고 기도할 시간도 없게 된다.  방탕하여 향락주의로 나아가면 기도를 하여도 기도가 되지 않는다.  예배당에는 열심히 나오지만 열매가 없다.

생명이 하나님께만 있는 줄 알고 힘써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은밀한 골방을 찾고, 하나님으로 생명을 삼고 말씀을 깨달아 말씀대로만 순종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도 한 시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과거에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실행하여 나가므로 자기 영이 자라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가시가 제거되고 옥토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 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영의 귀가 열린 자라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가 있다.

 

二. 비유의 목적(10-17)

 

. 13:10-11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천국의 비밀은 복음인데 이 복음을 아는 것이 너희(택한 백성)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불택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복음은 택한 백성에게만 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 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있는 자 말씀을 받을 바탕이 있는 자, 즉 제자들과 같이 믿고 중생한 영이 있는 자는 더욱 더 말씀을 받아 넉넉하게 하시려고 비유로 자주 가르치신다는 뜻이다.

없는 자 말씀을 받을만한 바탕이 없는 자, 즉 믿음콰 중생한 영이 없는 자이다.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인데 믿음으로 살지 않는 자는 이미 들은 말씀까지 빼앗긴다는 뜻이다.

 

. 13: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보아도 보지 못하며 육신의 눈으로는 표면적인 것은 볼 수 있으나 영적 진리의 세계는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들어도 듣지 못하며 육신의 귀로 비유의 말씀은 들어도 영의 귀가 없으므로 그 비유의 신령한 뜻은 듣지 못한다는 뜻이다.

 

. 13:14-15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것은 이사야 6:9-10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모든 백성들이 믿지 않고 영혼이 죽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운동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이 믿음에 거하지 못하고 그렇게 된 이유는 마음이 완악하고 둔하고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이사야 6:9-10에 보면 그들이 고침을 받을까봐 하나님이 염려한다고 하였다.  불택자는 곡식이 아니고 가라지이며, 양이 아니라 염소이다.  근본적으로 종자가 다르다. 가라지는 곡식이 될 수 없고 염소는 양이 될 수 없다.  불택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들은 절대로 구원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말해 준 것이다.

 

. 13:16-17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리스도를 중심한 구원운동과 그의 복음 진리를 신령한 눈으로 보고 신령한 귀로 들을 수 있는 자는 복이 있는 자이다.  이 사람은 벌써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에 참여한 자요 그 복음에 참여한 자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많은 선지자들과 신앙의 선진들이 그리스도를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했고 그리스도가 전하시는 복음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이었기 때문이었다.

 

三. 씨 뿌리는 비유의 해석(18-23)

 

. 13:18-23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란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이 구절들의 내용은 3-9절에 기록된 씨 부리는 비유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본장 3-9절에 강해 했으므로 생략한다(3-9절 강해 참조).

 

四. 가라지 비유(24-30)

 

. 13:24-30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순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37절을 보면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인자 즉 예수님이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즉 택한 백성이며 가라지는 악한자의 아들들이다(38절).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며 추숫꾼은 천사들이다(39절).

여기서 \"천국\"은 지상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며 지상교회는 밭에 좋은 씨를 심은 것과 같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여 천국의  아들들 즉 택한 백성들을 불러서 교회를 세웠는데 얼마 후 교회가 성장한 다음에 보니 가라지 되는 악한 자 즉 불택자도 교회에 들어와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원수 되는 마귀가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순수한 교회 내에 마귀의 자식도 섞여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불택자인 줄 알면서도 제자로 택한 것은 후대에 교역자와 교인들 가운데에도 불택자가 섞여 있을 것을 가르쳐 주려는 데에도 목적이 있었다.

예수님의 열 한 제자는 좋은 씨이고 가룟 유다는 가라지(마귀의 자녀)이다.  교회 안에서 곡식도 자라나고 가라지도 자라라는 것이다.  가라지는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에 아무 유익이 없고 해만 끼치므로 뽑아 버려야 하지만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가 되기 때문에 그냥 놓아두는 것이다.  그것이 추수 때까지(심판 때) 계속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다만 가라지가 교회를 무장하지 못하게 하여 곡식만 잘 길러 나가면 된다.

가라지가 교회를 주장하게 되면 교회가 마귀의 인도를 받게 되어 교회 구실을 하지 못한다.  요즈음 교회들이 신앙은 보지 아니 하고 믿음이 없는 교인이라도 돈이나 세상 지위를 보고 집사나 장로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결국 돈이 많고 세상 권세 있는 자가 교회를 주장하게 되는데 그러한 교회는 하나님이 주장하는 교회가 아니고 마귀가 주장하는 교회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많이 있기는 하지만 당회나 상부를 가룟 유다와 같은 자들이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앙중심이어야 하고 믿음 있는 사람이 교회의 직분을 맡아야 한다.  믿음 있는 사람이 집사 장로가 되고, 믿음 있는 사람이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그 뜻대로 나가야 한다. 믿음 없는 사람이 직분을 맡게 되면 가라지가 권세를 잡기 때문에 교회가 타락이 되고 마귀의 세력이 교회를 주장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권세가 있으면 아무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주일도 변변히 지키지 못한다고 할찌라도 직분을 맡기기 때문에 그들이 교회를 주장하게 되어 교회를 타락시킨다.  일단믿음 없는 사람들이 교회를 주장하게 되면 목사도 그들에게 끌려가게 된다.  이것이 인본주의 교회이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가라지는 뽑아 내버리면 좋을 것 같으나 하나님은 심판 때까지 놓아두라고 하신다.  가라지가 있는 가운데서 곡식을 길러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가라지 가운데서 곡식이 자라나는 것은 매우 힘이 들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마귀는 잘 때에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린다.  교역자의 신앙이 잠자고, 교회가 잠잘 때에 마귀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지만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면 가라지가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가라지에게 직분을 맡기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의 잠이 들면 물질주의와 사업주의로 기울어져서, 연보를 많이 낼 만하고 교회 사업에 유리할 것 같은 사람에게 직분을 맡긴다.  직분을 맡기고 보면 교회가 막심한 손해를 받고 영적 교회를 망치는 수가 많다.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했으니 믿음 없는 사람도 그대로 두고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도 잘 지키도록 가르쳐 주면서 쫓아 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곡식만 잘 자라나서 열매를 맺혀 나가도록 물을 주고 길러야 한다.  문제는 곡식이 얼마나 잘 자라나느냐가 문제이다.  곡식이 자라나기만 하면 반드시 세상 마지막 끝에 가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가라지는 뽑아다가 불사르게 한다.  가라지는 교회 안에서 불법을 행하고 진리운동을 방해하는 자들인데 이것들은 때가 이르면 하나님이 심판하여 버린다.  그러므로 가라지 걱정은 하지 말고 곡식만 잘 자라서 열매를 많이 맺히면 된다.

 

五. 겨자씨 비유(31-32)

 

. 13:31-32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지상 교회운동은 겨자씨 한 알을 심어 놓은 것과 같다.  겨자씨는 작아도 생명이 있다.  복음의 씨는 이와 같이 위력이 있고 창성해 나가는 생명력이 있다.  복음의 한 말씀은 미미하고 아무 보잘 것 없는 것 같으나 점점 자라서 나무와 같이 커지고 큰 세력이 된다.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세상사람들이 와서 의지하고 살려고 한다는 뜻이다.  마가 4:32에는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고 했다.  처음에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여서 믿는 일을 해 나가면 그 생명이 점점 커지고 믿음이 점점 전진하며 영혼이 점점 자라난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도 예수를 믿게 되어 영적 운동이 점점 커지게 된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과 교회를 의지하여 살려고 모여 든다.

미국 사람들의 조상인 청교도들이 처음에는 지극히 작은 세력이었으나 하나님을 잘 섬겨서 세계적으로 큰 나무가 되어 지금은 미국을 의지하고 살려는 나라들과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대단히 많아졌다. 어린아이 하나가 예배당에 나오는 것이 작은 일 같으나 그 아이가 말씀을 바로만 받아 놓으면 큰 역사가 일어나서 나중에는 믿지 않는 세력까지 그 사람을 의지하게 되는 때가 온다.  그러므로 복음을 계속해서 받고 믿는 일을 잘하는 것이 제일 큰 일이요 모든 사람이 복 받는 일이다.

 

六. 누룩 비유(33)

 

. 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누룩 지상 교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요소 즉 이단과 죄와 인본주의와 세상주의 등을 말한다.  성경에서 이단이나 의식주의를 말할 때 누룩이라고 하였다(갈5:9 참조).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죄악을 누룩이라고 하였으며(고전5:6-8 참조), 또 바리새인의 잘못된 교훈을 누룩이라고도 하였다(마16:6-12 참조).  복음을 누룩이라고 한 곳은 없다.

여자 세상주의를 가리키며, 세상주의에는 마귀가 주장한다(계17:1 참조).

가루 양식으로 영의 양식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서말 3수는 하나님의 수이니 하나님께 속한 순수한 복음을 가리킨다.  마귀가 순수한 복음에다가 누룩적인 요소(이단, 의식주의, 인본주의, 세상주의)를 집어넣어 교회를 부패시키는 것이다.  처음에는 교회 안에 적은 누룩이 들어오지만 얼마 후에는 전 교회를 부패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누룩적인 요소를 교회 안에 용납하면 안 된다.  아무리 큰 교회나 교단일찌라도 적은 누룩을 용납하면 얼마 안 가서 전 체가 다 썩어진다.  갈라디아 교회는 율법주의의 누룩이 들어와서 교회를 썩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사도바울이 왜 너희가 누룩을 제거하지 않았느냐고 책망하였다.  고린도 교회에는 음행죄와 의식주의등  누룩적인 요소가 들어왔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마16:11)은 성경을 잘못 가르친 것을 말한다. 잘못된 교훈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누룩과 같이 전 교회를 썩게 만들어 생명력이 없어진다.  신신학운동을 처음에는 한 두 사람이 시작했으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교회들이 신신학화되어 가고 있다.  그릇된 신비주의운동도 처음에는 적은 무리가 시작하였으나 지금은 많은 교회에 퍼져 나가고 있다.

 

七.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34-35)

 

. 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예수께서 이곳에서는 비유로만 말씀하셨다.  이는 선지자로 예언하신 시편 78:2의 성경을 응하게 하심이었다(본장 13-15절 해석 참조).  다른 곳에서 (특히 산상보훈 등에서)는 비유를 사용치 않고 직 접 말씀하신 경우도 많이 있다.  예수님은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비유로 말씀하시되 창세로부터 감추인 복음을 드러내면서 말씀하셨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37절 이하에 나와 있다.

 

八. 가라지 비유의 해석(36-43)

 

. 13:36-40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이 구절들은 24-30절의 가라지 비유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본장 24-30절 강해에 해석이 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 13:41-42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생명을 살려 나가는데 그들을 넘어지게 하는 자들과 성경을 어기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주께서 심판하여 멸망시킨다.

 

. 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의인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대로 믿음을 지킨 자 들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나라 즉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된다.

귀 있는 자 영의 귀가 있는 자라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다.

 

九. 보화 비유(44)

 

.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보화 진리와 영감으로 된 생명과 생명의 세계와 생명의 역사를 말하며 이것은 하늘에서 온 것이다.  복음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려 놓으시고 생명의 세계를 우리에게 주시고 또 영혼이 자라나도록 성령이 역사하고 계신다.  이 보화를 발견하면 기쁘고 즐겁다.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를 발견할 때에 기쁘고 즐거움이 한량없이 내려온다.

밭에 감추인 보화 밭은 내 몸과 세상만물과 여러 사람들과 환경과 분위기와 여건들이다.  이것들 속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으므로 이것들(밭)을 사야만 그 보화가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자기를 위해서 살던 것 다시 말하면 자기 사욕을 위해 이용하던 세상 만물과 환경과 소유물을 주를 위하여 다 내어놓는 것을 뜻한다.  신령한 보화는 주님과 교제함으로 발견한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복이 있다.  이 보화를 영원히 소유하려면 밭을 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소유를 다 팔아서 밭을 사는 것이다.  소유를 다 팔아서 산다는 것은 보화를 소유하기 위하여 다른 것을 희생한다는 말이다.  보화가 가장 귀중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다 내어놓고 보화가 묻혀있는 환경과 분위기와 세상 만물과 모든 사람을 사야 된다.  \"산다\"함은 주와 그 말씀으로 되는 생명의 역사에 이용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세상 모든 것이 보화를 만들어 나가는데 다 필요한 것이다.  만물과 사람들과 환경과 여건이 영적 생활에 바로 이용되어질 때 보화를 사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21-22에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라고 했다.  만물, 바울, 아볼로, 게바, 세계, 생명, 사망, 지금 것, 장래 것을 영적 생활에 이용할 때에 밭을 사는 것이다.  밭을 사는 것이란 첫째, 성도가 자신을 의의 병기로 주께 드려 순종하는 것이다(롬6:13 참조).  둘째,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요6:27 참조).  셋째, 우리의 몸과 환경과 재산과 정력과 시간을 바쳐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환란과 핍박과 시험하는 사람들까지도 영적 생활에 이용되면 성도에게 유익한 것이다.

요셉이나 다니엘 같은 사람들은 그것들을 잘 이용하였다.  밭을 사야만 그 속에 숨어있는 보화가 자기 것이 될 수 있다.  어떠한 환경에서나 이길 것은 이기고, 사랑할 것은 사랑하고, 끊을 것은 끊고, 가지 않아야 될 곳은 안 가고, 가야 될 곳은 가는 것이 환경을 바르게 이용하는 것이요 밭을 사는 것이다.  날마다 밭을 사면 날마다 보화를 얻을 수 있다.  밭을 사지 못하면 보화를 발견하고 좋아한다고 할찌라도 그 보화가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  스데반은 죽음이 왔을 때에도 그것을 샀으므로 거기서 보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너무 기뻐서 얼굴이 천사와 같이 되었다.  자기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사야 한다.

육적인 것, 물질적인 것은 손해를 보더라도 영적인 면이 손해보지 않도록 하는 사람이 자기 소유를 팔아 보화를 사는 사람이다.  원망과 불평은 버리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환경과 처지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밭을 사서 보화를 갖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자기 것을 다 팔아서 보화를 차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복 있는 사람이다.

 

十. 진주 비유(45-46)

 

. 13:45-46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진주 하나님의 중요한 말씀과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진주를 구하는 장사 진리를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살려고 힘쓰는 성도이다.  장사의 목적은 이윤을 많게 하는 것이다.  성도는 어떻게 해야 좀 더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살고, 좀 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지키겠는가 하여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살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의 요긴한 말씀을 발견하면 기뻐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산다.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모든 것을 희생하여 그 진주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에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진리를 깨닫고 그 진주를 사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그리하여 천주교의 모든 전통과 신부의 지위를 다 내어 놓았다.  루터가 진주를 발견한 후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자기 일생을 다 바쳤다.  또 진주는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인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다른 것이 다 희생되더라도 일생 동안 그것을 세워 나가도록 결심을 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깨닫고 그 일을 위해 일생 동안 희생했다(히11:24,25 참조).

 

十一. 그물 비유(47-50)

 

. 13:47-50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교회는 바다에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  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끌어 올려서 못된 고기는 내어버리고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는 것과 같이 교회 안에 참신자도 들어오고 불신자도 들어온다.  참신자는 하늘나라에 데려가고 불신자는 내어버린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된다(벧전4:17-18 참조).  심판 때까지는 불신자도 놓아주지만 심판이 올 때에는 용납하지 않는다.  참신자 즉 믿음을 지킨 자는 하나님의 나라 즉 친국에 가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고, 말씀을 버리고 순종치 않고 거역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악인들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으므로 천사들이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진다.  그들이 거기서 슬퍼 울며 이를 갈게 된다.

 

十二. 깨달은 자의 사명(51-52)

 

. 13:51-52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복음을 맡아서 일하고 전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누구나 서기관의 지위에 있다.

새것 성령과 생명의 역사로 새롭게 깨달은 진리이다(계14:3 참조).

옛것 이전부터 알고 있던 진리이다.  \"옛것\"은 옛 계명이고 \"새 것\"은 새 계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요13:34 참조).

곳간은 신구약성경이다.  이전부터 내려오는 기본적인 교리(진리)와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진리가 곳간되는 성경 속에 가득히 들어 있다(요21:25 참조).  그러므로 말씀 속에 깊이 들어가서 전에 알고 있던 진리를 다시 새김질하여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또 새로운 진리를 깨달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자기 영이 은혜를 받아 심령이 새롭게 되면 전에 알고 있던 진리도 새것이 된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 신령한 세계를 발견하면 전에 알고 있던 성경 말씀이 새로운 맛이 나고 새로운 은혜가 된다.  그 때는 전에 알지 못하던 새로운 진리가 깨달아지기도 한다.  이 때는 전자나 후자나 둘 다 새것이 된다.

 

十三.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받으심(53-58)

 

. 13:53-54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예수께서 다시 고향인 가버나움으로 돌아가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 그 지혜와 능력에 사람들이 다 놀란다.  이 때가 그들에게는 믿을만한 좋은 기회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육신적으로만 취급하기 때문에 믿지 못했다.

 

. 13:55-57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예수님이 육신적으로는 목수인 요셉의 아들이요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였다.  또 그의 형제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이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설을 주장하여 예수님 외에는 해산치 않았다고 하나 그것은 분명히 성경 위반이다.  본문에는 형제들과 누이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  고향에서는 육신적으로 너무 잘 알려져 있으므로 사람들이 선지자를 육신으로만 알고 판단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영적인 면이 가리워져서 선지자를 자로 보지 못하고 대접을 바로 하지 못한다.

어느 선지자나 육신면을 볼 때에는 존경할만한 것이 없다.   러므로 육신면을 보지 말고 하나님이 쓰시는 면과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면을 보아야 한다.  진리면과 영적인 면을 보고 그 면을 믿음으로 영접하여 순종하면 천국의 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이 선지자를 대접치 않은 것처럼 예수님도 그러하였다.

 

. 13: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많은 능력을 행하는 것은 진주와 보화를 내 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행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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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14장

 

제 14 장  오천 명을 먹이심

 

(대  지)

一. 헤롯의 악행과 요한의 순교(1-12)

二. 오병이어의 이적(13-21)

三. 바다 위로 걸어오심(22-33)

四. 병자들을 고치심(34-36)

 

(본문강해)

 

一. 헤롯의 악행과 요한의 순교(1-12)

 

. 14:1-2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

분봉왕 로마 황제의 임명을 받아 일정한 지역을 통치하는 왕이다.  여기 헤롯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당시에 있었던 헤롯왕(대 헤롯)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이다.  그는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을 주전 4년부터 주후 39년까지 통치하였고 세례요한을 죽인 사람이다.  헤롯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죽은 세례요한이 살아나서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한다고 말하였다.

헤롯왕은 부활을 알았고 하나님의 권능과 이적도 어느 정도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마귀의 올무에 걸려서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악한 인을 하였다.

 

. 14:3-4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로디아 대 헤롯의 손녀인데 그의 숙부인 빌립 I세와 처음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혜롯 안티파스 즉 시숙과 재혼을 한 부도덕한 여자이다.  헤롯(안티파스)왕이 자기 조카 딸이자 제수를 빼앗아 데리고 살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책망을 한 것이다.  그 책망으로 인하여 헤롯이 요한을 옥에 가두어 놓았었다. 이 감옥은 사해 동쪽 마케르스 성 중에 있는 옥이라고 한다.  헤롯이 세례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었다고 하였다(막6:20 참조).

헤롯이 요한을 의인인 줄 알고, 거룩한 사람인 줄도 알고, 또 책망하는 말을 옳게 여기면서도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헤로디아의 간교한 술책에 빠져 세례요한을 죽이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적과 능력을 믿고 부활을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는 데에만 그치지 말고 자기의 생활이 실제로 죄 가운데서 나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걸어 나아가지 못하면 마침내는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어 생각하지 못한 무서운 죄 가운데 빠지게 된다.  올바른 신조와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을 달게 받고 즉시로 죄를 회개하여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 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헤롯은 자기의 죄를 은폐하려고 요한을 의로운 사람인 줄 알면서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민중을 두려워하여 죽이지는 않았다.  헤롯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 14:6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로더아의 딸은 빌립 I세의 딸이다.  이름은 살로메라고 하며 당시에 열 일곱 살쯤 되었다고 한다. 헤롯이 생일을 당하여 크게 잔치를 베풀고 즐거워할 때에 헤로디아의 딸이 와서 춤을 추었다.  마귀가 기회를 타서 헤롯을 망하게 하려고 이 소녀를 들여보내서 춤을 추게 만들었다.  마귀는 언제나 기회를 타서 일시적으로 기쁘게 해 주고 그 방탕을 이용하여 사람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다.

 

. 14: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살로메의 춤에 도취된 헤롯이 너무 기뻐서 무엇이든지 네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였다.  마가 6:23에는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고 하였다.  여기서 헤롯은 두 가지 오류를 범했다.  첫째는 맹세한 것이 잘못이었다.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하였다.

둘째는 무엇이든지 나라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한 것이 잘못이다.  분봉왕으로서 로마황제의 허락없이 나라 절반을 줄 권리가 없다.  나라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줄 수 없는 중대한 것을 구하면 맹세를 지킬 수 없다.  일시적 흥분에 겨워 주제넘은 말을 하면 그 말이 올무가 되어 본의가 아닌 죄를 저지르기 쉽다.

 

. 14:8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헤로디아의 딸이 자기 어머니에게 의논하고 그 어미 헤로디아가 시키는 대로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하고 말하였다.  앞에 나와 춤추며 기쁘게 해 주는 헤로디아의 딸은 보잘 것 없는 어린 소녀였지만 그 배후에는 간악한 헤로디아가 도사리고 있었다.  또 헤로디아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는 악한 사단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헤로디아의 딸은 마귀와 마귀의 종이 시키는 대로 모든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헤롯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그 소녀만 상대했기 때문에 마귀의 올무에 걸려서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죄를 범하게 되었다.

 

. 14:9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헤롯이 근심하면서도 자기가 맹세한 것과 함께 앉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위신을 지키기 위해 가책을 느끼면서도 세례요한의 머리를 추라고 명령하였다.  헤롯이 그런 상태에서도 요한의 머리를 주지 않았어야 한다.  자기가 맹세한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크고 사람들보다 하나님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하기 위하여 요한을 죽이지 않았다고 하면 하나님이 더욱 권위를 높여 주었을 것이고 백성들도 왕을 좋게 여기도록 하나님이 역사 하여 주었을 것이다.  또 헤로디아의 모녀(母女)도 하나님이 눌러서 꼼짝 못하게 해 주셨을 것이다.  맹세한 것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다면 맹세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된다.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아서 자기 일신이 멀어지고 낮아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신다.

헤롯왕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를 더 생각하였다.  성도가 언제나 자기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더 생각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문제가 더 큰 줄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쇠해져도 하나님의 일만 흥하여지곤 하나님만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14:10-11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헤롯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자기 지위와 체면과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생각때문에 큰 죄를 범하였다.  요한의 머리는 그 소녀의 손을 통해 악한 헤로디아에게 넘어 갔다.  하나님을 위하여 순교한 세례요한은 하늘나라에 가서 큰 상급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헤롯의 죄를 알면서도 면책(面責)하지 않았다.

왜 예수님이 헤롯을 면책하지 않았을까?  헤롯왕을 면책하는 것은 세례요한의 사명이다.  세례요한의 사명과 예수님의 사명이 다르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다. 세례요한은 백성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시키는 것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다.  그러므로 자기 생명을 내어놓고 헤롯왕을 면책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세례요한이 3년 동안 일한 것 같은데 일년 반 동안은 광야에 나가 외치고 일년 반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순교를 당한 것 같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다.  세례요한과 같이 말씀을 순종하다가 순교를 당한다면 참으로 복된 자이다.  순교자는 하늘나라에 순교자의 반열이 따로 있고 특별한 영광을 누린다.  육신의 생명이 육신대로 살면 다 썩어질 것이 되나 순교를 하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워진다(고후5:4 참조).  또 영혼이 그만큼 커지고, 그 커진 영혼이 하나님 앞에 그대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교자는 아주 큰 복을 받은 자이다.  계시록 6:9-11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가진 증거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하나님의 제단 아래에 가서 호소하는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이 흰 두루마기를 주시면서 잠깐 기다려서 너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순교한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흰 두루마기를 받고 순교자의 반열에 앉아서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게 된다.  성도가 땅에서 주를 위해 얼마나 희생을 하고 가느냐가 문제이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1 참조) 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 14: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그의 제자들은 옥 중에 있는 세례요한과 밀접한 연락을 취하며 공궤(대접)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가 순교당하니 제자들이 즉시 그 시체를 장사하였다.  세례요한의 제자가 예수님께 가게 된 것은 필연지사이다.  진리는 진리대로 합하고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과 합하는 법이다.

 

二.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적(13-21)

 

. 14:13-14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입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예수께서 세웨례요한이 순교 당한 소식을 들으시고 고요한 자리를 찾아 광야로 나아가셨다.  기도하시며 생각하시기 위하여 가셨을 것 같다.  그런데 큰 무리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그 곳에 또 찾아 왔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셨다.

 

. 14: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도(道)를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저녁이 되니 제자들은 이 큰 무리들의 먹을 것 때문에 걱정이 생겼다.  그리하여 예수님에게 이들을 마을로 보내어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하고 말씀드렸다.

 

. 14:16-17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 때 다른 데 갈 것 없다.  너희가 해결해 주라고 말씀하신다.  또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말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신다.  우리에게 당면한 일은 우리가 해결하라는 것이 주의 명령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와 같이 보잘 것이 없을찌라도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순종만 하면 된다.  없어서 못 한다고 하지 말고 네게 있는 그것을 가지고 하면 된다는 뜻이다.  요한 6:9에는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다고 하였다.  이 떡은 보리떡이요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이였다.  어린아이가 점심 한 끼 먹을 분량을 싸온 것 같다.  빌립은 군중을 위하여 이 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도 부족하다고 하였다(요6:7 참조).  한 데나리온은 당시 장정이 하루 일한 품삯이므로 이 백 데나리온은 상당히 많은 돈이다.

 

. 14:18-19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예수님은 빌립의 타산적인 말을 듣지 않으시고 너희에게 있는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보리떡은 떡 중에 좋지 못한 하급 떡이요 물고기도 작은 것(큰 멸치 만한 것)이지만 부끄러워하거나 적다고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여 바쳤다.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축사하신 후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면서 무리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순종하였다.  무리들도 순종하여 100명씩 50명씩 떼를 지어 앉았다(막6:40 참조).  그 때에 큰 이적이 나타났다.

 

. 14:20-21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 천명이나 되었더라

그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가 되었다.  남은 조각을 거둔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은 부스러기 하나라도 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부스러기라도 필요하게 쓸 때가 있다. 먹은 사람이 여자와 아이 외에 오 천명이나 되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한 아이가 한 끼 먹을 분량이었지만 예수님께 바치고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능력을 베풀어 크게도 하시고 많게도 하셔서 큰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  이 오병이어의 이적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살을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주어 우리를 살리실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요6:33-35 참조).

오늘날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어 우리의 영을 살려 나아가신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를 믿는 자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명의 떡이다.  성도가 오늘날 이 생명의 떡인 하나님의 말씀을 영으로 받아먹고 우리의 심령이 만족하며 힘을 얻어 생명있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엘리야도 하나님이 까마귀를 시켜서 가져다 주는 떡과 고기와 물을 먹고 40일 40야를 달음박질하여 하나님의 산으로 갔다(왕상19:6-8 참조).  우리가 보리떡과 같이 보잘 것이 업고 부족하다고 할찌라도 하나님께 바치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가지고 크게도 하시고 많게도 하셔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려 나아가신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장사하여 이(利)를 남겨서 그 돈으로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현재 가지고 있는 그것을 다 바쳐서 충성되이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가지고 큰 역사를 하셔서 구원운동을 성공시켜 나아가신다.

 

三. 바다 위로 걸어오심(22-33)

 

. 14:22-24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신 다음에 백성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고 하였다(요6:15 참조).  십자가와 부활로 영적 구원운동을 하시러 오신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한 것은 하나의 큰 시험이었다.  제자들을 명하여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혼자 산에 기도하러 올라 가셨다.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깊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 이기셨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갔는데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배가 동력선이 아니고 돛단배이었기 때문에 바람이 거슬려 불 때에는 고생이 아주 막심했을 것이다.

 

.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예수님이 그 제자들의 형편을 다 아시고 밤 사경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밤사경 1경은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2경은 오후 9시부터 오후 12시까지, 3경은 오전 0시부터 오전 3시까지, 4경은 오전 3시부터 오전 6시까지이다.  제자들은 초저녁부터 새벽 및 까지 고난을 당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였는지 알 수 있다.

 

. 14:26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으로 알았다.  살려 주려고 오시는 예수님을 죽이러 오는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하였다.  믿음이 없을 때에는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바람이 거슬리고 파도가 일어나 죽을 고생을 당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찾아 오셨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  그런데 제자들은 유령이 나타난 것으로 알고 무서워하며 소리질렀다.  제자들이 이렇게 된 것은,

① 예수님이 제자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고난 당할 때에 찾아오시고 건져 주시는 주님이심을 깨닫지 못한 까닭이다.

2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께 부르짖지 않고 주님의 만능을 믿지 못한 까닭이었다.

제자들이 이상 네 가지를 확실히 깨닫고 그 신앙에 거하였더라면 주님이 오실 때에 반가이 영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실 것은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생각했다.  또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실 수 있는 능력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물 위로 걸어 오시는 것을 보니 필시 유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건져 주기를 소망하며 간절히 부르짖지 아니하고 다만 물결과 싸워서 자기 힘으로 고난을 면해 보려고 힘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려 주시려고 오시는 주님을 죽이러 오는 유령인 줄 알고 소리를 지르면서 무서워하였다.

 

. 14: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예수님이신 줄을 깨달았다.

안심하라 제자들이 이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마음속에 평안이 쑥 들어왔다.

내니 두려워 말라 예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믿으면 두려움이 다 사라지고 평온해진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심과 안식을 주시는 분이시다.  주와 그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하늘에서 오는 안식과 평화와 위로가 심령 속에 들어오고 모든 두려움이 다 사라진다.  바람이 거슬리고 파도가 심하여 사망의 골짜기를 만났다고 하여도 주님이 주시는 안심과 평안을 받으면 안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중에서라도 \"나의 맘 속이 늘 평안해\"하고 찬송을 부르며 살 수 있다.  세상이 요란하고 큰 물결이 부딪쳐도 예수님이 주시는 안식세계에 들어간 사람은 언제나 평안하고 고요하게 지낼 수가 있다.  시편 127:2에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하였다.  잠을 준다는 것은 휴식 즉 안식을 준다는 뜻이다.  주님이 주시는 안식을 받아 누림으로 슬픔 많은 이 세상이 천국으로 화하게 된다.  이 세상은 바람이 안 부는 곳이 없고 풍랑이 일지 않는 때가 없다.  이러한 세상에서도 다만 예수님이 주시는 안식을 받아 가지고 살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화평한 가운데 살 수 있다.

 

. 14:28-29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만일 주시어든 베드로가 \"만일 주시어든\" 한 것은 주님인지 아닌지 의심해서 한 말이 아니다.  의심이 나서 \"만일 주시어든\"했다면 의심하는 분이 물 위로 오라 할 때에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오라\" 할 때에 베드로가 걸어간 것을 보면 주님을 의심한 것이 아니고 확실했기 때문에 걸어간 것이다.  확실한 때에도 \"만일\"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열왕기하 1:10에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 인을 사를찌로다\"고 하였다.  그 때에 곧 불이 하늘에서 내러와서 저와 그 오십 인을 살랐다고 하였다.  엘리야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 의심이 나서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어든\" 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강조한 것이다.  베드로가 \"만일 주시어든\" 이라고 한 것도 주님이신 것을 확신하고 강조한 말이다.  또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처음으로 발견할 때에 감탄한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도행전 16:15에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고 하였다.  루디아가 하나님을 믿고 공경하였으며, 온 집안이 세례까지 받았는데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이라고 한 것은 자신이 주를 믿지 않는지 의심이 나서 한 말이 아니고 확실히 주를 믿었고, 또 믿는 줄을 알고 바울이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 집에 들어와 유하라고 한 것이다.  여기 \"만일\"이라는 말은 자기가 주 믿는 자임을 확증한 말이다.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그런 주님이시라고 하면 나도 바다 위로 오라 하소서 하는 뜻이다.

요한 14:12에 예수님께서 교훈 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주님이 하시는 일을 자기도 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소망 중에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전망의 사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주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실 때에 아! 우리 주님은 바다 위로 걸어가시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베드로도 걸어갈 수 있을 것을 믿었다. 그러므로 \"나도 오라 하소서\"하고 주님께 간청한 것이다.  예수님의 명령만 있으면 자기도 물 위로 걸어갈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베드로가 주님께 부르짖었고, \"오라\"하는 주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갔다.  이만한 용기가 있어야 믿음으로 전진할 수 있다.  오라 할 때 주저하면 안 된다.  예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즉시로 물 위로 걸어갔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명이 떨어지기 전에 물 위로 뛰어 내리면 물에 빠져 죽는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명령대로 물 위로 뛰어 내려서 물결을 발로 밟고 예수님을 향하여 걸어갔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요 사람을 잡아 삼키는 고해이지만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거기가 낙원이 되었다.  사람이 물 위로 걸어갈 때에 물결이 잔잔한 것보다 바람이 불고 풍랑이 심하면 더욱 재미가 있을 것이다.  성도가 베드로와 같이 물결을 발로 밟고, 전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말씀만 붙들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서 험악한 세상을 다 정복하여 나아갈 수 있다.

 

.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베드로가 처음에는 주의 명령을 따라 주님만 바라보고 용감하게 나아갔으나 도중에 바람과 물결을 바라보고 무서워하였다.  그 때에 물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갔다.  예수님과는 아직 거리가 있고 배에서 얼만큼 떠나 왔는데 물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도록 베드로가 위급하게 되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지게 된 원인은 바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바람과 물결을 보고 두려워하여 빠져 들어가니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즐거워하면서 갈 때에는 마음도 평안하고 물을 발로 밟고 즐거움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다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성도가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세상을 바라보면 사람의 생각을 따라 염려와 걱정이 들어오고 또 유혹이 들어온다.  마귀가 그건 것들을 집어넣어 준다.  그 때에 \"사단아, 물러가라\"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세상에 빠지지 않는다.

언제든지 성도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마귀에게 넘어 간다.  하나님의 일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진리를 구하여 영적 생명이 창성해 나아가도록 힘써야 한다.  베드로가 점점 물속으로 빠져 들어갈 때에 처음에는 제 힘으로 헤엄을 쳐서 생명을 구해 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써도 되지 않고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므로 할 수 없이 주님께 부르짖었다.  베드로가 자기의 있는 힘을 다 발휘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써도 할 수 없을 때에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고 부르짖게 되었다.  그 때에 주님이 건져 주셨다.  부르짖기 전에는 주님이 가만히 내버려둔다.  사람이 제 힘으로 할 수 없을 때에 부르짖는 것이 참된 부르짖음이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때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님이 나를 건져 주시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하고 부르짖는 것이 참으로 부르짖는 것이다.

베드로가 물결이나 바람을 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끝까지 걸어 나아갔더라면 제일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을 보고 빠져 들어가기 시작할 때에는 빨리 부르짖는 것이 상책이다.  사람들이 환란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고 자기의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에 오히려 고생을 많이 하는 것이다.

 

.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할 수 없이 되었을 때에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하니 주님이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셨다.  주님은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는 자를 결코 내 버리지 않으신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은 죽이는 자가 아니고 살려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이 명령하실 때에는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가다가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며 의심한 것은 믿음이 적은 증거이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주권이 하나님께 있는데 바람을 보고 죽을까봐 겁을 내는 것은 예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 적은 까닭이다.  온전한 믿음은 모든 두려움을 다 내어쫓는 것이다.

 

. 14:32-33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다.  그러므로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 놀라 진실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물 위로 걸어오시며 다른 사람을 물 위로 걸어가게도 만들겠는가 !  또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하여져서 배가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도록 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의 아들이 분명하다고 깨달은 것이다.

 

四. 병자들을 고치심(34-36)

 

. 14:34-36  저희가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그곳 사람들이 예수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게네사렛 갈릴리 바다 서안에 있는 평야이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병자를 많이 데려왔다.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예수님에게 접촉하는 자는 다 나음을 얻는다.  우리의 심령이 예수님과 교통하고 접촉할 때에 영이 소생하고 심령의 병이 나음을 얻는다.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보는 신자가 되지 말고 좀 더 예수님을 가까이 찾아 나아가고, 예수님과 더불어 영적으로 교통하는 자리에까지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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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15장

 

제 15 장  사천 명을 먹이심

 

(대  지)

一. 유전과 하나님의 말씀(1-20)

二. 가나안 여자의 신앙(21-28)

三. 모든 병을 고쳐 주심(29-31)

四. 사천 명을 먹이심(32-39)

 

(본문강해)

 

一. 유전과 하나님의 말씀(1-20)

 

. 15:1-2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데 대하여 질문하였다.  장로들의 유전이란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고,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목욕하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그 외에도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었다(막7:2-4 참조).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아니하고 음식을 먹으므로 장로들의 유전을 범한 것이라고 힐문한 것이다.

 

. 15:3-6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고 반문하였다.  하나님의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고(출20:12 참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였다(출21:17 참조).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아비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는 장로들의 유전을 지켜 부모를 공경치 않았다.

마가 7:11-12에는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라고 하였다.  이것이 고르반 사상이다.  이 사상은 ① 하나님께만 다 바치고 사람에게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②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교훈을 더 크게 여기는 것이다.  너희는 사람의 교훈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패하는 자라고 예수님이 책망하셨다.  우리가 부모를 마땅히 공경하여야 한다.  부모가 잘하여 줄 때뿐만 아니라, 잘하여 주지 못할 때에도 부모를 잘 공경하여야 된다.  부모가 설사 악을 행한다고 하여도 악은 따라가지 말고 부모는 공경하여야 하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악한 죄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고르반 사상에 빠져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다.  성경은 하나님께 대해서도 바로 하고 사람에게 대해서도 바로 하라는 것이다.  부모에 대해서나 스승에 대해서나 형제에 대해서 자기가 해야 할 본분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사람에게 대한 일을 무시하여 의리를 지키지 아니하고, 도덕을 무시하며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하기 위하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또 사람 앞에 바로 하기 위하여 부모를 공경하고, 교인노릇을 바로 하고, 형제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윗사람 아랫사람 그리고 동료에게도 모든 것을 바로 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도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책임 가운데에는 복음을 전해 주는 것도 포함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어도 믿지 않고 망하는 것은 우리에게 책임이 없으나 전하여 주지 않으므로 믿지 않고 지옥 가면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겔3:18-19 참조).

바리세인들은 사람의 유전을 지키는데 치중하여 의식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져 성경 말씀을 경히 여기고 말씀에 바로 서 있지 못하였다.  성경 말씀을 위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로들의 유전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하고 나아갔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 15: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예수님이 이사야서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여 책망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내적 생명에서 나오는 진실이 없는 자이다.  이사야 때에도 외식하는 사람이 많았고 예수님 당시에도 외식하는 사람이 많았다.  말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 15:8-9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이사야의 책망은 다음과 같다.

①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하면서 마음은 멀리 떠나 있다.

②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

③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입술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며 제도와 의식적으로만 섬기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중심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으면서 형식과 제도와 입술로만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없다.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하나님께 바치고 정력을 기울여 심령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은밀한 교제를 하여야 한다.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기고 의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겼다.  손이 깨끗한 것보다 마음이 청결하여야 되고 몸만 하나님 앞에 나가지 말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가 있어야 한다.

의식으로만 예배를 드리지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로 말미암는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헛되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의 참뜻을  찾아서 진리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오늘날도 신자들이 목사나 장로의 말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내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주일날 예배만 드리고 나면 오후에 나가서 세상일을 하여도 괜찮은 것처럼 가르치는 교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않는 신자가 많고, 주일을  범하면서도 아무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을 헛되이 공경하는 것이다.

 

. 15:10-11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속 사람은 더러워지지 않는다.  속에 있는 부패성이 입으로 나올 때에 더러워진다.  입으로 나오는 것은 속에 있는 부패성을 가리키며,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더럽게 한다는 말이다.

 

. 15: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회개하였으면 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참 진리를 장로들의 유전에 비교하여 맞지 않으므로 실망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처음에 잘못 가르침을 받은 것이 큰 화근이 되었다.

 

. 15: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 주었으나 마음속에 걸려서 도리어 불평을 하면 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  진리가 아닌 것은 하나님께서 심지 않으신 것이니 그것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뽑아 버린다.

 

. 15:14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성경을 어기고 신령한 세계에 거하지 못하는 사람은 심령의 눈이 어두운 자이니 영적 소경이다.  이와 같이 바리새인들은 영적 소경이 되었으면서도 종교적 지도자로서 남을 인도하였으니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결국은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신령한 진리의 말씀을 따라가지 않고 유전과 전통을 따라가는 것은 영적 소경이다.

 

. 15:15-17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손을 씻지 않고 먹어도 그것은 결국 뒤로 나간다.  그러므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육체에 대한 위생을 지키는 것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딤전4:8 참조), 경건에 대해서는 아무 유익이나 손해를 주지 못한다.

 

. 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은 사람의 속에 있는 부패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도덕적으로 사람을 더럽게 한다.

 

. 15:19-20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악한 생각 사람은 나면서부터 악하다(시51:5, 창8:21 참조).

살인 사람을 죽이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다(요일3:15 참조).

간음 7계명을 범한 죄이다.

음란 성적으로 문란한 일을 말한다.

도적질 물질에 대한 범죄. 8계명을 범한 죄이다.

거짓 증거 9계명을 범한 죄이다.

훼방 남을 헐뜯어 비방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속에도 이러한 죄악이 가득한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부패성이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있는 이러한 죄악을 빼어 버려야 한다.  외부적인 면이나 육체적인 면보다 심리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이 더 중요하다.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육체적으로 아무리 깨끗하여도 마음이 더럽고 도덕이 부패하면 참으로 더러운 것이요,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더럽게 한다.  양심이 바르지 않고 도덕적 질서가 없다면 물질이 풍성하여도 그것을 바로 이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가득한 죄악을 다 빼내 버려야 천국이 우리 속에 임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어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는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二. 가나안 여자의 신앙(21-28)

 

. 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두로와 시돈은 갈릴리 북쪽에 있는 땅인데 마가는 이 곳을 수로보니게 땅이라고 하였다(막7:26 참조).

 

. 15:22-28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 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가나안 여자 마가 7:26에는 이 여자가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하였다.  이 여자는 자기 딸이 귀신 들렸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와서 부르짖었고 그 믿음으로 자기 딸이 나음을 얻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뜻이다.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을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믿었다(22절).  그리하여 자기 딸이 흉악히 귀신 들린 것을 예수님께 고쳐 달라고 호소하였으나 예수님은 한 말씀도 안 하시고 그냥 가시기만 했다(23절).  가나안 여자의 신앙은 첫째, 예수님의 대답이 없어도 따라갔다.  예수님은 전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셨다.  그렇지만 가나안 여자는 계속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부르짖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하고 청하였다.

둘째, 상관이 없다고 하여도 따라갔다.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고 하셨다(24절).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 사람과는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셔도 가나안 여자는 여전히 예수님을 좇아와서 절하며 \"주여 ! 저를 도우소서\" 하고 간절히 구했다.

셋째, 개라고 하여도 따라갔다.  예수님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하셨다(26절).  유대인은 이방인을 개나 돼지처럼 생각하였다.

에베소 2:11-12에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언약 밖에서 사는 사람은 개나 다름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의 상태를 예수님이 그대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가나안 여자를 개와 같이 취급하셨으나 가나안 여자는 조금도 실망함이 없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고 다시 애원하였다.

여기에서 ① 가나안 여자의 겸손이 잘 드러났다.  \"개\"라고 취급받아도 \"옳소이다\" 하는 자리에 까지 낮아져서 주님을 따라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②자기를 부인하여 기어코 은혜를 받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간절히 은혜를 사모하는 신앙이 잘 드러났다.

③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상을 주실 것을 믿었다(히11:6 참조).

④부스러기 하나라도 주시면 만족하겠다는 신앙이다(큰 것을 바라보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예수님이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아시고 \"여자야 데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다.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다.  가나안 여자가 이렇게 끈질기게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온 것은 예수님을 바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님은 긍휼이 풍성하시고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마귀를 쫓아 내어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는 주님이심을 확실히 믿은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비난과 멸시를 받더라도 예수님을 떠날 수가 없고 끝까지 따라가서 주님의 은혜에 참여하기 위하여 따라가며 부르짖은 것이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자의 신앙을 미리 다 아셨으나 그 신앙을 드러낸 후에 그 딸을 고쳐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대답도 안 하시고 \"상관이 없다.\"고 하시고 개와 같이 취급한 것은 가나안 여자로 하여금 믿음을 쓰도록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을 바로 깨닫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참된 신앙이 나올 수 없다.  진리를 바로 깨달은 다음에는 끝까지 진리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끝까지 따라가려면 참고 견디어야 한다.  멸시와 천대가 오고, 개와 같이 취급을 당하더라도 불평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진리만 따라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고가 온다.  진리를 따라간다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 것이 아니 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내어버린 듯이 내버려 주시기도 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과 함께 가시면서도 예수님은 자기를 나타내시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시려고 하였다.  예수님이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같이 느껴지고 개와 같은 자리에 처해 있어도 계속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끝까지 따라가면 마침내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  이렇게 끝까지  따라가는 신앙이 큰 믿음이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의 구원과 큰 복을 받게 된다.

 

三. 모든 병을 고쳐 주심(29-31)

 

. 15: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산에 올라가 앉으셨는데 산에서 기도하며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함인 것 같다.

 

. 15:30-31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큰 무리가 여러 병자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두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다 고쳐 주셨고 큰 무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四. 사천 명을 먹이심(32-39)

 

. 15: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큰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흘 동안이나 계속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예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서 자신들의 먹을 것 문제나 기력이 기진해질 것은 생각지 않고 열심히 따라다녔다.  이렇게 열렬히 진리의 말씀을 구하면서 따라오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의 먹을 것과 육체의 기력이 진하여질 것을 예수님이 친히 책임을 지시고 염려해 주셨다.

 

. 15:33  제자들이 가로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의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제자들은 얼마 전에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오천 명을 먹인 것을 보았으나 여전히 현실적인 타산에만 빠져 있었다.  그리하여 이 곳은 광야이기 때문에 떡을 먹을 수 없다고 하였다.

 

. 15:34-36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너희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주라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다.  그들에게 있는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를 예수님께 바치니 그것을 예수님이 받아 축사하시고 때어 제자들에게 주어서 무리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셨다.  제자들이 순종을 잘하였다.  무리들도 순종하여 땅에 앉았고 떡을 떼어 줄 때에 순종하여 받아먹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작은 떡과 물고기이지만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고 순종을 잘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가지시고 역사하셔서 크게도 하시고 많게도 하셔서 큰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이것은 예수님이 당신의 몸을 생명의 떡으로 주어 많은 생명을 살릴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 15:37-38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거두었다.

여자와 아이 외에 여자와 아이는 세지 않는 것이 유대인의 계수법이다.

남은 조각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은 남은 조각도 버리지 말고 간수해 두었다가 필요하게 사용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 15: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에 가시니라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신 후에 마가단 지경으로 가셨다.  마가 8:10에는 달마누다로 가셨다고 했다. 달마누다는 마가단 지경에 속했으므로 마가단이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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