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요한복음

 

·기록할 사람:사도 요한

·기록한 곳:예루살렘

·기록한 때:주후 90년경

 

제 1장  증 거

 

(대  지)

一. 그리스도에 대한 논증(1-5)

二. 하나님께서 증거자를 보내어 증거하심(6-8)

三. 그리스도의 오심과 영접자(9-13)

四. 도성인신(道成人身)(14-18)

五. 요한의 명백한 태도(19-23)

六. 요한이 그리스도를 증거함(24-34)

七.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께 보냄(33-37)

八. 네 제자를 부르심(38-44)

九. 나다나엘의 신앙(45-51)

 

一. 그리스도에 대한 논증(1-5)

 

.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 창세기1:1에 말한 태초는 천지 만물을 창조한 때를 말하고 본문의 태초는 천지 창조 이전의 영원한 태초를 말한다.

말씀은 헬라 원어로 로고스인데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말씀\"인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태초)부터 계셨다.  그리스도 곧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무시무종(無始無終)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도 무시무종 하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 성자, 하나님의 아들, 인자, 주, 그리스도 등 여러 명칭으로 불려진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내어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말씀은 의지의 표현이다.

 

.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인 아들이시며 태초 즉 영원부터 하나님과 같이 계셨다.

 

.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의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잠언8:22-31에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그리스도)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 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 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중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그리스도)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그리스도)가 그(하나님 아버지)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그리스도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창조 전부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리스도는 만물의 생명과 영적 생명의 근원이시요 그 생명의 창조자이시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연결되면 산 영혼이 되고, 그리스도와 끊어지면 죽은 영혼이 된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신자는 그에게 접붙인 가지이다.  따라서 신자의 영혼은 산 영혼이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8:12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는 또 빛이 되신다.  요일1:5에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 생명이요 영적 빛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면 흑암이요 사망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연접하면 참된 생명을 얻고 빛의 세계를 발견하여 그 속에서 살 수 있다.  이 그리스도의 참 빛은 지금도 각 사람에게 비취고 있다(엡5:14 참조).

 

.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어두움은 죄를 뜻한다.

그리스도의 빛이 만물을 통하여 비취고 있으며(롬1:20참조), 또 특별계시의 빛 즉 영적 빛은 창세기3:15의 복음에서부터 이 어두운 세상(죄악 세상)에 비취고 있다.  창세기3:15의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는 말씀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죄인을 구속하여 주시겠다는 첫 복음이다.  신약시대는 그리스도의 화육(化肉)으로 이 빛이 더욱 환하게 비취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어두움의 세상에 참 빛이신 예수님이 오셨으나 세상 사람들이 그 참 빛(예수님)을 깨닫지 못하였다.

 

二. 하나님께서 증거자를 보내어 증거하심(6-8)

 

. 1: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어두움에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을 보내어 참 빛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셨다.

 

. 1: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세례요한이 차서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고 힘을 썼다.

 

.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당시에 세례요한을 그리스도로 오해하는 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빛이 아니요 그 빛을 증거하러 온 자라고 분명히 밝혔다.  사실을 바로 밟히지 않으면 신앙이 바로 되지 못한다.

 

三. 그리스도의 오심과 영접자(9-13)

 

.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여기 세상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계를 말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그리스도께서 성육신(成肉身)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빛을 비취고 계신다.

 

.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구약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세상에 계셨고 또 선지자들 속에 계셔서 역사하였다.  또 그리스도는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벧전 1:10-11에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고 하였다.  선지자들에게 그리스도가 영으로 와서 증거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알지 못하였다.

알지 못하였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알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알고 영으로만 알 수 있다.

 

.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자기 땅에 오매 예수께서 유대 땅에 탄생하신 것을 가리킨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말한다.  민족적으로 이스라엘백성은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

 

.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유대 백성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영접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마음으로 믿고 영으로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태초부터 계시며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며 또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생명과 영적 빛이 되시는 것을 믿고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찾아 오셔서 우리를 구속해 주시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믿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여 신뢰하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것은 신자가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그때에 영혼이 살아난다.  신자는 하나님의 생명이 그 속에 들어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포도나무 가지가 원 나무에 접붙인 것과 같이 신자는 그리스도와 한 생명이 되었다.  하나님의 생명이 신자 안에 있고 영혼이 살아났으므로 실체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또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빌4:3참조).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주신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는 굉장한 권세이다.  독생자에게 주신 권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이다(마28:18 참조).  이 권세를 가지신 독생자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도 권세를 주셨다.  성도가 받은 권세는 어떤 권세인가?

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세이다(마10:1 참조).

②새 방언(새로운 진리를 깨달아 증거하는 말)을 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 권세이다(막16:17-18 참조).

③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능력을 믿는 자에게 주셨다.  에베소서1:19-22에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실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지극히 큰 능력을 주셨는데 그 능력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여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자를 이기게 하여 만물을 그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다.  이 큰 능력을 믿는 자에게 주셨으므로 신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순종하면 그 능력이 다 나온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그것을 법대로 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그 능력이 나오지 않고 도리어 큰 사고가 난다.  예를 들면 힘이 강한 자동차라도 그것을 법대로 사용하지 않고 잘못 사용하면 도리어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극히 큰 능력을 거저 주신 하나님께 먼저 늘 감사하고 이 능력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능력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쓰지 않으면 그 능력이 나오지 않는다.  그 능력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그 능력을 쓸만한 자격을 만들고, 사용하는 법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쓰면 지극히 큰 능력이 나온다.  부잣집에는 여러 가지 좋은 기구가 말이 있으나 각기 사용되는 곳이 따로 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능력도 각각 쓸데가 있다.  믿는 자는 법적으로나 생명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자녀의 권세까지 받은 것이다.  이 권세로 어디서나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 나갈 수 있고 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

 

.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브라함의 혈통이나 유대인의 혈통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또 육정 같은 부정모혈(父精母血)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육신과는 상관이 없고 성령으로 되는 것이다.  요한3:6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하였다.

거듭나는 것은 육이 아니요 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으로서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물과 성령으로 살아나 새 생명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四. 도성인신(道成人身)(14-18)

 

.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영원부터 살아 계시고 로고스 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신성이 인성으로 변한 것이 아니고 신성과 인성이 혼합된 것도 아니다.  신성인 그리스도의 영이 인성 (몸과 영혼)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시고 사람가운데 거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신 것이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그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생애)을 통해서 나타났다.

독생자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을 유독(惟獨)히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만 다 나타낸 것을 가리킨다(요14:9 참조).  그리스도 예수는 신성에 있어서 영원하신 독생자이시며 인성을 입으실 후에도 독생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존재와 형상과 영광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는 영장은 독생자의 영광이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구속의 선물에 속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즉 선택, 속죄, 소명, 중생, 신앙, 자비, 성화, 영생 등이다.  이것은 측량할 수 없는 광대(廣大)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데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졌다.

진리 예수 그리스도는 신구약 성경의 중심이요, 구약의 완성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감추어 있는 진리(하나님과 하나님의 뜻)를 다 나타내 보여 주셨다.  독생자로 말미암아 구속의 진리를 다 나타내었고 완성시켰다.  그러므로 독생자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할 때에 \"내 뒤에 오시는 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세례요한보다 6개월 후에 탄생한 것을 가리킨다.

나보다 앞선 것이라고 한 것은 자기보다 예수님이 위대하다는 뜻이요,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은 그리스도가 영원전재(永遠前在) 하심을 가리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느니라\"고 하셨다(요8:58) .

 

.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도성인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14절 해석 참조).  그 은혜와 진리를 성도가 다 받는다.

은혜 위에 은혜러라 은혜가 증가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므로 우리가 계속하여 더 받아나갈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 신앙이 전진하고 영혼이 자라나게 된다.

 

.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 것이라

율법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주셨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으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려는 것이었다(롬3:20, 갈3:23-24 참조).  정죄 하는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었으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정죄 받은 모든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와서 은혜를 받아야 생명이 살게 된다.

 

.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육안으로 본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등을 보았다, 혹은 하나님이 지나가셨다(출33:23), 하나님의 발 아래에서 먹고 마셨다(출24:10-11)고 한 말씀은 비의적 현상(秘儀的現象)으로 나타난 하나님이시다.  비의적현상은 천사를 빙자하여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자기를 나타내 보여준 것이므로 그 때에 천사가 나타났으나 사실은 천사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계시록4:3-4에 하나님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녹보석과 같은 무지개가 들렸다고 하였으나 이것도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의 본체(本體)를 본 사람이 없으며 볼 수도 없다(딤전6:16 참조).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내 보여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하나님, 자비롭고 거룩하시며 의로우시고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심을 완전히 다 나타내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이다(요14:9 참조).  또 하나님은 영으로 실존하시기 때문에 중생한 성도가 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접촉할 수 있고 교통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을 본 것이요 하나님을 만난 것이요,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것이다.

독생하신 하나님 독생자이신 하나님이라는 뜻인데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라는 뜻이다(독생자의 뜻은 14절 해석 참조).

 

五. 요한의 명백한 태도(19-23)

 

.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유대인들 여기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집권자들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70인 공회원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을 보고 혹 그리스도가 아닌가하여 의심이 생겨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물어보게 하였다.

 

. 1: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세례 요한이 그들에게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답변하기를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였다. 증거자가 숨기는 것은 죄가 된다.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난 것이라고 하였다(마5:37 참조).  숨기지 않고 사실 그대로 드러내어 말하는 것이 증거자의 생명이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의심할 때에(혹은 오해할 때) 아니라고 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자리를 빼앗는 자가 된다.  그렇게 되면 거짓 그리스도가 되어 자기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단호하게 아니라고 밝히 말하고 강하게 부인하여야 한다.  \"나는……이 아니라\"고 할 때에 증거자의 참 모습이 나타나고 모든 것이 밝아진다(행14:11-15 참조).

 

. 1:21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네가 엘리야냐\"하고 물을 때에도 요한이 \"아니라\"고 명백하게 대답하였다.  말라기4:5에 엘리야가 온다는 예언이 있는데 그것은 엘리야의 재능과 성품으로 그리스도의 선지자역할 할 사람을 하나님이 보낸다는 뜻이다.  세례요한이 과연 이 엘리야이었다(눅1:17, 마11:14, 17:10-13 참조).  그러나 여기서 엘리야가 아니라고 한 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그 엘리야가 아니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옛 선지 엘리야가 육신적으로 부활하여 다시 온다고 믿고 있었다.

네가 그 선지자냐 신명기18:15에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 한 사람을 세운다고 예언하였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또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과대평가 할 때에 요한이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며 자기를 밝히 말해 준 것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격이 있다.

 

. 1:22-23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들이 요한에게 \"너는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가서 대답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 때에 세례요한이 대답하기를\"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고 하였다.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소리로서 표현한 것이 말이다.  그러나 소리는 말을 이루어 놓고는 곧 없어진다.  예를 들면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소리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뜻의 말을 만들어 놓고는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그 말은 남는다.  세례 요한의 위치가 그러한 위치이다.  로고스 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 놓고 자기는 없어질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례요한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위치를 바로 알고 밝히 증거한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를 과대평가 할 때에 세례 요한처럼 그것을 부인하여야 한다.  만일 높아지려고 부인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낮추신다.  언제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만 증거하여야 그리스도가 바로 증거 된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를 내세우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것을 도적질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절도요 강도이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나 교역자는 자기 자신을 먼저 부인하고 자기 위치를 바로 알아 그리스도만 증거하여야 한다.

 

六. 요한이 그리스도를 증거함(24-34)

 

. 1:24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자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의식주의에 빠져서 그리스도 관(觀)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하여 잘못 가르쳤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바른 진리를 들을 때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 1:25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

그들은 세례요한이 세례 주는 자격에 대하여 따지고 물었다.

세례는 죄를 깨끗케 하는 일을 표하는 예식이다(겔36:25, 히10:22 참조).

 

. 1:26-27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어 죄를 회개시켜 마음을 깨끗케 하는 세례를 주었다.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들 가운데 예수님은 이미 와서 계시었다.

내 뒤에 오시는 그이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요한보다 6개월 후에 탄생하시었고, 성역도 세례요한이 먼저 시작하였다.  세례요한이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한 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알고 피조물인 자기를 바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귀히 쓰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4:6 참조).  우리도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아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조물로서 예수님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자이니 신들메 푸는 것 하나만 맡겨도 감사하며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바로 알고 자기를 바로 알았으므로 예수님을 바로 증거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점점 알아 갈수록 예수님은 위대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이실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자신을 알면 알수록 자신은 불완전하고, 약하고, 더럽고, 죄인 가운데 괴수인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자신을 바로 아는 사람을 하나님이 귀히 쓰시고 모든 은사를 풍성하게 주신다.

 

. 1:28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요한이 세례 주던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볼 때 요단강 건너편이다.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던 베다니는 요단강 이편이요 예루살렘에서 5리쯤 되는 곳에 있었다.

 

.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속죄 죽음을 당할 것을 증거 하였다.

하나님의 어린 양 구약시대에 소나 양으로 하나님께 속죄제사를 드렸다.  예수님이 속죄양과 같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실 것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모든 택한 백성의 죄를 짊어지시고 당신의 몸을 하나님 앞에 속죄 제물로 단번에 드려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 1: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전에 말하기를 1:15에 말한 것을 가리킨다.  전에는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先在)와 위대성에 대하여 말하였으나 지금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이면서 증거한다(1:15 해석 참조).

 

. 1: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세례요한이 알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세례를 주고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려함 이라고 하였다.

 

. 1: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에서 내려와 예수님 위에 머물렀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비둘기가 성령이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우주에 충만하신 성령께서 비둘기가 될 리가 없다.  비둘기 같다고 한 것은 예수님께 임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보여준 것이다.  비둘기는 구약시대에 제물로 쓰였다(레1:14 참조).  비둘기가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진 것 같이 예수님이 속죄 제물로 바쳐지게 하기 위하여 성령이 그리스도에게 임하여 역사하실 것을 나타내 보여준 것이다.  비둘기는 순결하고 온유하다(마10:16 참조).

성령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순결하고 깨끗하게 역사하시고 또 온유하고 겸손하며 지극히 낮아져서 죽기까지 복종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도록 역사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하셨기에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이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것은 세례요한이 자기 지혜로 그리스도를 안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고 알게 해 주셨기 때문에 알았다는 뜻이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께 임한 것을 보여주시고 그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셨다.  이것을 보면 기독교는 사람의 마음에서 연구하고 자각하여 아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객관적인 계시에 의해서 알게 되는 종교이다.  다른 종교는 다 사람의 마음과 지혜에서 나왔고 사람의 지혜로 깨달아 알 수 있으나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시고, 보여 주시고, 말씀해 주셔야 알게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세례요한은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셔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증거하였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세례는 정결케 한다는 뜻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성령으로 믿게 하여 죄 씻음을 받아 정결케 해 줄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에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다.  누구든지 믿는 자는 다 성령세례를 이미 받았다.

 

. 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대로 사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증거하였다.  이렇게 체험하여 보고 증거하는 증거는 더욱 힘이 있다.

 

七.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께 보냄(35-37)

 

. 1: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제자 중 두 사람 안드레와 본서를 기록한 사도 요한이다.

사도 요한이 본서에서 자기 이름과 자기 형제 야고보의 이름과, 어머니 살로메의 이름을 일체 밝히지 않고 기록하였다.

이것이 본서가 요한의 기록인 것을 더욱 증명한다.

 

. 1:36-37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사도요한과 안드레는 본래 세례요한의 제자인데 이따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배우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세례요한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을 좇게 된 것이다.  세례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다 돌려보내는 일을 하였다.  이것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위해서 쇠해지고 낮아진 것이다.  세례요한은 제자도 영광도 모두 주님께 돌려보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므로 주님께로 돌려보내는 것이 마땅하며 이것이 참된 신앙이다.

 

八. 네 제자를 부르심(38-44)

 

. 1: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님은 그 두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따라 오는가를 예수님이 알아보려고 하신 것이다.  \"어디 계시오니이까\"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을 알고 가서 같이 있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성도는 누구나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오 싶어한다.

 

. 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 시쯤 되었더라

와 보라 예수님은 그들에게 와 보라고 하셨다.  그들이 계신 곳을 가서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  기독교는 가서 보아야만 아는 도(道)이다.  계2:17에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진리의 세계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만 듣고서는 잘 알 수 없다.  실제로 가 보아야 알고, 거기 도달해보아야 알고 참여해 보아야 안다.  예수님에게로 가까이 가보고 영적 양식도 먹어 보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령한 영적 세계도 그 세계에 들어가 보아야 참으로 알 수 있다.  변화산에도 가 본 사람만 알았다.  변화산에 가본 베드로는 그 곳이 너무 좋아서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다.  우리도 그리스도에게 좀 더 가까이 가고 좀 더 깊은 세계에 들어가 보는 생활을 하여야 되겠다.  가보는 생활은 자기가 힘을 써서 걸어 올라가야 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이 일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힘을 많이 써야 도달하고 알게 된다.

제 십 시쯤 되었더라 그 당시 유대나라 시간은 하루가 스물 네 시간인 것은 지금과 같으나 1일(日)의 시작은 해질 때(지금 오후 여섯 시)부터 잡는다.  그러므로 유래인의 0시는 지금의 오후 여섯 시이며, 유대인의 열 시는 지금의 오후 네 시이다.

 

. 1:40-41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하고(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예수님을 따라가 보고 그리스도를 발견한 안드레는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거하였다.

이렇게 전도는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된다.  등불을 켜면 집안사람부터 비추이게 된다(마5:15 참조).  메시야는 그리스도와 같은 말인데 메시야는 히브리어이고, 그리스도는 헬라어이면 그 뜻은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이다.

 

. 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시몬이 형제 안드레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께 가서 보고 그도 메시야를 발견하였다.  자기가 먼저 가 보고 그 자리로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을 배워야 하겠다.  그리스도를 깊이 발견하고 깊은 진리의 세계, 신령한 자리, 깊은 영적 세계에 자기가 먼저 가 보고 다른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오기를 힘써야 한다.  예수께서 베드로가 오는 것을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하셨다.  주께서는 베드로를 장차 어떻게 쓰실 것을 예정하셨고 그것을 알게 해 주셨다.  그 때부터 거기에 합당한 은사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성도는 처음 믿을 때부터 벌써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 것과 거기에 합당한 은사를 주신다.

게바 베드로와 같은 말인데 게바는 아람어이고 베드로는 헬라어인데 그 뜻은 \"반석\"이다.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신명(新名)을 주신 것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신앙 고백할 때이었다(마16:16-19 참조).  장차 베드로가 반석과 같은 교회의 기초적 역할을 할 것을 예언하여 주실 것이다.

 

. 1:43-44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을 만나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고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시기 위하여 찾아가신 것이 분명하다.  그때에 빌립을 제자로 불렀다.  빌립은 베드로와 안드레와 한 동리 사람이요 친구였다.  복음은 부모나 형제자매,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전파되어 나가게 되는 것이 보통 원리이다.

 

九. 나다나엘의 신앙(45-51)

 

.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은 바돌로매와 동인(同人)이고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이다(눅6:14).  그는 갈릴리 가나 사람이다(요21:2 참조).  모세의 율법과 여러 선지서에는 그리스도가 예언되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 그리스도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야말로 사천 년 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급히 전하였다.

 

. 1: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나사렛은 비천한 지방이어서 선한 것이 날 수 없다는 전통적인 사상이 유대인들에게 있었다(7:52 참조).  외모로 볼 때 나사렛은 북방 갈릴리에 있는 보잘것없는 작은 촌이었다.  나다나엘은 전통적인 사상과 외모를 보는 잘못에 빠져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것에 사로잡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많이 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본 다음에는 믿지 않을 수 없다.

 

.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될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은 즘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이사야1:21에 이스라엘은 본래 신실하고 공평하고 의리가 충만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이스라엘이 점점 타락되어 신실과 공평과 의리를 잃어 버렸다.  이스라엘 사람은 신실하고 의리가 있는 자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참 신자를 알아주신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거짓과 외식이 없는 진실한참 신자라는 뜻이다.  왕하20:3에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고 하였다.  이것은 히스기야왕이 자기가 진실과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행한 것을 알아달라는 기도이다.  신자에게 있어 진실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진실한 자를 찾으시고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고 그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신다.  이 세상에서도 진실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진실한 사람에게는 주인이 중요한 창고 열쇠를 맡길 수 있으나 진실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맡기지 못한다.  성도가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자신도 진실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양심을 끄지 않고 간사하게 외식한다면 마귀의 종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책망하셨다(마23:13,15,16,23,27,29 참조) .

이 기선 목사님이 성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진실이라고 하였다.  진실이 성도의 생명이다.  우리가 진실하지 못한 일을 했다면 찾아서 회개하고 양심을 똑바로 쓰며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의 생각도 진실하여야 한다.

 

. 1: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예수님은 영으로 나다나엘을 보신 것이다.  이것을 보면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아래에서 기도하며 영적 생활을 한 것이 분명하다.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기다리며 기도하므로 영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영으로 그와 교통하시고 그 사람을 다 알고 계신다.  성도가 기도하기로 결심한 첫날부터 그 말을 하나님이 다 들으셨다고 하였다(단10:12 참조).

성도에게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귀한 시간이다.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며 영적으로 하나님께 교통하는 생활은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그 기도를 다 들어주시는 것이다.  또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한 기도는 은밀한 기도이다.  하나님은 은밀한 곳에 계시고 은밀한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러므로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였다(마6:6 참조) .

보았노라는 영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 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 그 말씀을 듣고 즉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자기의 영적 생활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으로 영적 이스라엘의 임금이시다.

 

. 1:50-5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본 사실은 은밀한 것이요, 작은 일이다.  세미한 소리를 듣고 지극히 작은 것부터 믿고 순종하면 주님이 큰 것도 보여 주시고 맡겨 주신다.

더 큰 일을 보리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28:11-12에 야곱이 벧엘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잠잘 때에 하늘이 열리고 땅에서부터 하늘에까지 닿은 사닥다리가 섰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본 것과 같은 것이다.  야곱이 보았던 그 사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것이 열리고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에게 임할 것을 나타낸 것이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신약계시의 위대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죄의 담을 다 헐고 화목시켜 하나님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인간에게 다가오고, 또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을 열어 주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제 2 장  이 적

 

(대  지)

一. 물로 포도주를 만듦(1-11)

二. 성전을 정결케 함(12-22)

三. 사람을 의지하지 않음(23-25)

 

(본문 강해)

 

一. 물로 포도주를 만듦(1-11)

 

. 2:1-2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사흘 되던 날 예수님이 빌립을 부른 날(1:43-44 참조)부터 사흘 되던 날 같다.

갈릴리 가나 가나라는 지방이 여러 곳에 있으므로 분별하기 위하여 갈릴리 가나라고 하였는데 이곳은 나사렛에서 8km 쯤 떨어진 곳이다.

가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거기에 예수님의 어머니도가서 계셨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청함을 받아서 갔다.  잔치하는 도중에 포도주가 모자라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을 행하셨는데 이는 그 잔칫집을 위해서 모자란 포도주만 채워 주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성역에 대한 신령한 뜻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본문의 신령한 뜻을 모르고 성도들이 포도주는 먹어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것은 성경을 바로 할지 못하고 한 잘못된 말이다.  구약성경 잠언에는 포도주를 먹지 말고 입에 대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고 차였고(잠23:31 참조), 신약에도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다(엡5:18 참조).  잔칫집에 모인 사람들이 먹고 마셔서 취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을 리가 없다.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예수께서 하시는 생명운동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영적 구원운동을 나타내 보이려고 행하신 일들 중에는 성도가 그대로 모방하면 안될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성전에서 채찍으로 소나 양날 쫓아내신 일, 돈 바꾸는 상을 둘러엎으신 힐,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 등이다.  이러한 일들은 심판주로서 장차 올 심판과 영적 심판을 보여 주기 위하여 행하신 일인데 성도가 이러한 일을 모방하려 하면 안 된다.  또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여인이여\"라고 말했으나 성도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예수님이 성역을 혼인 잔칫집에서부터 시작한 것은 큰 뜻이 있다.  아가서2:4에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라고 하였다.  이는 예수님은 신랑이요 성도는 신부인데 신랑 되신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언제나 잔칫집과 같이 기쁘고 즐겁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잔칫집으로 인도하신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임마누엘이 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신약시대는 언제나 기쁘고 즐거운 잔칫집과 같다.  이것을 알게 하여 주기 위하여 혼인 잔치 집에서부터 예수님의 성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 2: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사람은 제상의 것, 인간의 것이 진(盡)한 다음에야 주님을 찾게 되고 그 때에야 주님이 일해주신다.  사람의 것이 진해져서 자기가 할 수 없는 줄 알고 주님만 의뢰할 때에 하나님이 일해 주시는 것을 알게 해주실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줄 알 때에는 예수님이 일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신다.  그러나 세상의 것은 쇠해지고 없어질 것인 줄 알고 하나님만을 의뢰할 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의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모든 것이 가능한 줄 알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그만 의지하여 신적인 것, 영적인 것,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라보며 찾고 간구하는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이것은 예수님이 어떠한 일(이적)을 행하여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사실대로 보고한 것뿐이다.  예수님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다.

 

. 2: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여자여 이 말은 어머니를 멸시하는 말이 아니다.  성자(하나님의 아들)의 위치에서 볼 때는 마리아도 한낱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준 것이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한 것은 그리스도의 위치에서 구속사업을 하는데 있어서는 어머니라도 상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천주교의 마리아 숭배사상은 이 성경에 맞지 않는다.  마리아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인데 마리아를 숭배하여 섬기는 것은 우상 섬기는 죄가 된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이것은 구속 사역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즉 그 구속사역을 보여 주기 위하여 포도주를 만들 때가 아직도 이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잠시 후에 포도주를 만드셨다.  한 시간 후에 만드셨다고 해도 그 한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만사를 예정하신 년, 월, 일, 시가 되어야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계9:15 참조).  또 한가지 뜻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구속을 이루실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 2: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어머니는 예수께서 부족한 것을 해결하여 주실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만 하면 반드시 졸은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을 알고 그대로 순종하라고 하인들에게 시켰다.  마리아가 많은 경험과 체험을 통하여 깨달은 신앙으로 한 말이다.

 

. 2: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를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유대인의 결례 유대인들이 식사 건이나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에 손을 씻는데 팔뚝까지 씻은 후에 음식을 먹는 규례가 있었다.  그러므로 씻지 않고 먹으면 유대인의 규칙에 어긋난다.

잔칫집에는 손님이 많이 오기 때문에 돌 항아리 여섯을 준비하여 물을 채우고 손을 씻게 한 것이다.

 

. 2: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 우니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하인들이 물을 퍼다가 항아리 아구까지 채웠다.  아구까지 채운 것은 끝까지 순종하고 충만히 한 것이다.

 

. 2: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인들이 그 항아리의 물을 여서 연회장(宴會長)에게 갖다 주었다.  그 하인들이 아무 불평 없이 무조건 순종하였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항아리에 붓기 전에 연회장에게 바로 가져가라고 하였으면 힘도 안 들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을 터인데 왜 이렇게 번거롭게 일을 시키느냐\"고 불평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하인들은 불평 없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끝까지 순종하였다.  연회장은 연회할 때에 연회를 맡아 감독하는 총 책임자이다.

 

.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그 물이 포도주로 변화하였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다.  다만 순종하여 물을 떠온 하인들만 알았다.  받는 자 밖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예수님이 하시는 변화 운동이다(계2:17 참조).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의 심령을 변화시켜 주시고 환경과 분위기와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을 알게 하려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을 행하셨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① 질(질)이 변화가 된 것이다.  물과 포도주는 질이 다른 것이다.  신자도 믿기 전보다 질이 달라진다.

② 가치(가치)가 변한 것이다.  물보다 포도주는 값진 것이다.  신자도 믿기 전보다 가치가 달라진다.

③ 용도(용도)가 변화된 것이다.  물의 용도와 포도주의 용도는 다르다.  성도도 믿음을 지키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

④ 위치(위치)가 변화된다.  보통 물 항아리는 대문이나 마당에 놓아두는데 반해 포도주 항아리는 방안에 놓는다.

성도도 믿음을 지키면 귀한 위치에 이르게 된다.

⑤ 맛이 변화된 것이다.  포도주 맛은 물맛보다 달고 영양이 많다.  신자도 믿음으로 살면 룰보다 달고 송이 꿀보다 단 생활을 하게 되고(시19:10참조),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게 된다.

⑥ 색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물은 무색(無色)이나 포도주의 색은 붉고 아름답다.  신자가 믿음으로 살면 얼굴빛도 변하고(단1:15, 행6:15 참조), 모든 환경도 좋게 변화한다.  가나안 땅이 사막이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가 되었다.

성도가 주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렇게 모든 면에 변화가 일어난다.  참으로 주님의 생명운동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알게 해 주기 위하여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성도가 매일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하여야 변화의 역사가 계속되어 나간다.  범사에 주님의 인도를 받고, 명령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인격이 변화되고 얼굴과 환경까지 변화가 일어난다.

 

. 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세상의 것은 처음에는 좋다가도 나중에는 차차 나빠지고 쇠해진다.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간다(요일2:15-17참조).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잠31:30참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낡아지고 쇠해지고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운동은 처음보다 나중이 점점 더 좋아져서 더욱 더 좋아진다.  처음에는 별로 좋은 줄 알지 못하지만 점점 더 좋아지고 맛이 나고 아름답게 되어 그것으로만 살고자하는 것이다.  이것은 변화산에서 변화된 광경을 보고베드로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며 거기를 떠나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 2: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제일 큰 이적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심이요 십자가와 부활이다.  다른 이적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운동을 보여 주기 위한 표적들이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최초의 이적이다.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고 제자들은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二. 성전을 정결케 함(12-22)

 

. 2: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가버나움은 갈릴리 유대의 수도로서 예수님의 집이 있는 곳이다.  예수님의 집이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가셨는데(마4:13 참조),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 않으시고 곧 전도하기 위하여 떠나셨다.  가족들은 그대로 가버나움에 살고 있었던 것 같다.

형제들 예수님의 동생들이 네 명이 있었다.  천주교에서는 이것을 사촌(從兄弟) 동생이라고 하나 잘못된 주장이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낳은 예수님의 친동생이 분명하다(마13:55, 막6:3).

 

. 2: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유월절에는 유대인이 각처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되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그들에게 나타내기 가장 좋은 기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상경하셨다.

 

. 2: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두 번 성전을 정결케 하셨는데 요한은 그 첫 번의 것을 기록하였고 공관복음에는 그 두 번째 것을 기록하였다(마21:12-l3, 막11:15-18, 눅19:45-46참조).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 왜 성전 안에 고와 양과 비둘기를 쏟고 돈 바꾸는 자들이 있었는가?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를 드리려면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아무 것이나 바치면 안되고 날 때부터 거룩하게 구별하여 기른 것을 바쳐야 된다고 가르치고 날 때부터 구별하여 기른 것들을 가져다가 성전에서 파는데 시장보다 비싼 값으로 팔았다.  또 당시 통용되던 화폐(데나리온)는 로마 황제 가이사 화상이 그려져 있으므로 그 돈을 하나님 앞에 바치면 기뻐하지 않고 성전에서 사용하는 돈(세겔)으로 바꾸어서 연보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세겔을 바꿀 때에 환전요금을 받아 그 돈을 나누어 가졌다.

의식적으로는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는 것 같이 했지만 그이면(裏面)에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의식주의와 교권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교훈으로 사람들을 가르쳐서(사29:13 참조), 이익을 보려는 탐욕이 가득했다.  성경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자기가 기르는 것 가운데 흠 없는 것을 바치라고 하였으며 시장에서 사다가 드려도 된다고 하였다(신14:24-26 참조).  소나 양을 하나님께 십일조로 바칠 때에도 막대기를 놓고 소나 양을 한 마리씩 넘어가게 하여 열 번째 넘어가는 것을 바치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안 된다고 하였다(레27:32-33참조).  그런데 성전에서 소와 양을 매매하고 돈을 바꾸는 일을 한 것은 유대종교가 성경을 떠나서 교권주의로 기울어진 증거이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물질적인 이(利)를 취하려고 탐욕주의로 나간 증거이다.  그들은 돈을 위해서 종교의식을 거행하였고 돈밖에 모르는 자들이었다(미3:10-ll 참조).  종교가 타락되면 탐욕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어느 때나 마찬가지이다(마23:16-21, 25 참조).

 

. 2:15-16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엎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심판자이시므로 심판자의 위치에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내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고 상을 뒤집어엎은 것이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정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책망하셨다.  마21:13에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성전(내 집)을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다(사56:7 참조).

기독교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종교요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종교요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배우고 깨달아 그 뜻을 이루어드리는 종교이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이 물질을 따라간다는 것은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말세를 당한 오늘날에도 이러한 지도자가 많이 있다.  그러한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에 계시고 또 그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요4:23-24 참조).  하나님의 교회는 영이 살고 진리를 세워나가는 일을 본분으로 하고 성도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두 제 사람이 모이는 곳에도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마15:8에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리를 세워나가는 일은 하지 않고 예배당을 지나치게 크게 짓고 사치스럽게 꾸미고 굉장한 의식으로 예배드려야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줄로 아는 것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하나님을 헛되이 섬기는 것이 된다.  오늘날 교회들이 외부적이고 의식적인 면에만 치우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영적 생명운동은 하지 않는다.  교회들이 양적 부흥에만 치우쳐 교인 모으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 건물만 크고 화려하게 짓는 것은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대 종교를 심판하신 주님의 심판이 곧 임하게 될 것이다.  교역자가 돈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고, 돈을 받고 축복기도를 해 준다면 예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고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항상 말씀대로 걸어나가는 신앙생활을 하여야겠다.  말씀에서 날마다 예수님을 발견하며 기도로서 신령한 세계에 좀 더 깊이 들어가 영이 사는 자리에 나가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영의 양식으로 받아먹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자기 속에 이루어져서 생명이 소생하고 영혼이 자라나야 한다.  이렇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성도가 교회 안에 많아진다고 하면 교회가 소금의 직분을 잘 하게 될 것이다.

 

. 2:17  제자들이 성경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것은 시편69:9의 인용이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하나님의 성전의 신성성(神聖性)을 보호하려는 열심이며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 거룩한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열심이다.  또 하나님과 교통하며 교제하는 신성한 집을 사모하는 열심이다.

나를 삼키리라 내가 삼키워진다.  핍박을 받아서 내가 희생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이 까닭이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때문에 주의 전이 더럽혀지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으므로 책망하게 되고 정결케 하는 일을 하게 되므로(말씀대로 바로 세우려 하므로)핍박을 받아 희생을 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어느 시대나 잘못된 것을 바로 세우며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려고 하면 그것이 옳다고는 하면서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시기하고 핍박하고 배척하는 무리가 일어나고 심한 경우에는 죽이기까지 한다(요16:2 참조).

 

. 2:18-19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이 성전을 정결케 할 때에 유대인들은 가책이나 회개도 없이 예수님께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하고 질문하였다.  그들은 진리나 그리스도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육신의 눈에 기이하고 이상한 표적만 구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신 말씀과 같은 말이다(마16:1-4 참조).  그 뜻은 성전되시는 예수님의 몸이 헐리어(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한 마디로 십자가와 부활을 말한다.  이것이 표적 중에 가장 큰 표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고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제일 큰 이적이고 그 이상 더 큰 이적이 없다.  또 이 이적 하나 밖에는 다른 표적을 보일 필요가 없다.  만가지 이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것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기이한 이적을 보았다 할지라도 생명이 살지 못하면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이적이야말로 죽은 영혼을 살리며, 또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진리를 받게 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참된 길이다.  이 이적 하나만 있으면 만족하고 충족하다.

 

. 2: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예루살렘 성전은 사십 육 년 동안 지었으나 그때까지 완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주전 19년쯤에 착공하여 이 사건 당시(주후 27년)까지 46년이 걸렸고 그후 36년을 더 지었다고 하는데 예루살렘 성전이 완성된 것은 주후 63년경이라고 한다.  착공 후 완성까지 82년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완공 후 7년만인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하여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우지 않고 다 헐리고 훼파되고 말았다.  82년이나 걸려서 아름다운 미석으로 꾸미고 굉장하게 성전을 지어 놓았지만 완공 7년만에 훼파되고 만 것이다.  외부적인 성전만 아름답게 지어 놓고 내적 신앙은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적 산 교훈이다.  오늘날 교회도 예배당을 크게 짓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에만 급급하며 외부적인 의식주의로 나가고 내적 생명의 역사가 없고 진리를 세우는 면이 없다고 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과 심판이 올 것이다.

 

.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는 것이라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만 생각하고 말하였으나 예수님은 성전 되시는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외부적인 것 물질적인 것만 보고 말하고있으나 예수님은 연재나 신령한 것, 생명적인 것, 진리적인 것, 그리스도 자신에 대하여 깊이 말씀해 주셨다.

 

. 2: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제자들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의 참 뜻을 다 알지 못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그 뜻을 깨닫고 믿었다.  그 이유는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이었고 보혜사 성령이 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 어리기 때문에 몰랐다.

 

三. 사람을 의지하지 않음(23-25)

 

. 2:23  유월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었다.

 

. 2:24-25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친히 모든 사람을 다 아셨다.  사람의 속은 어떻게 생겼는가?  마가7:21-22에는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홀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라고 하였고 갈라디아5:19-21에는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하였으며, 디도1:16에는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람을 의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참으로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썩은 나무를 의지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은 의지할 바가 아니고 사랑할 바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만 걸어가셨다.  그리고 사람은 사랑만 하셨다.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사랑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증거를 받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그 말씀이 증거하고 하시는 일이 증거하며 또한 성령이 증거하신다.  진리에 바로 서지 못한 사람의 증거는 받을 바가 못되고 따라갈 바도 못된다.  이러한 사람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뜻대로 나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사람의 인도를 받을 때에도 성경을 바로 가르쳐주는 참된 하나님의 일군은 우리가 신임하고 따라가야 하겠으나 성경을 잘못 가르칠 때에는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제 3 장  니고데모

 

(대  지)

一. 중생에 대하여(1-12)

二. 영생의 교훈(13-21)

三. 요한의 믿음과 겸손(22-30)

四. 위로부터 오신 자(31-36)

 

(본문 강해)

 

一. 중생에 대하여(1-12)

 

. 3: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관원 즉 70인 공회(산헤드린)의 회원이요, 이스라엘의 선생인 학자이었다(10절).  그는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밤에 예수께 와서 그와 높은 지위와 한자의 신분과 바리새교파의 영향으로 인하여 낮에는 예수님을 찾아오지 못하고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을 것이다.  이 까닭에 공공연하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는 못하였다.  요한9:22에 보면 유대교인으로서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면 출교하기로 결의 할 정도로 예수를 극도로 반대하던 때였다.

이는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으나 낮에는 무서워서 실행하지 못하고 밤에 바알신당을 훼파하고 소를 잡아 하나님께 제사 드린 것과 같다(삿6:26-27). 니고데모가 낮에 떳떳하게 예수님을 찾아오지 못하고 밤에 찾아 온 것은 비열함을 면할 수 없으나 밤에라도 찾아 와서 중대한 문제를 해결 받으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니고데모에 대한 기사가 본서에 세 번 기록되어 있다.  ①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고(야간의 니고데모)(3:1), ② 예수님을 변증하였고(변증의 니고데모)(7:50), ③ 예수님을 장사할 때에 향품을 넣었다(백주(白晝)의 니고데모)(19:39) .

랍비는 선생이라는 뜻인데 그렇게 고귀한 지위에 있고 학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실 분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자였다.  그러나 그가 아직 외부적인 표적을 보고 인정하려는 정도이고 영적인 신앙은 없는 때였다.

 

.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니고데모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줄 아시고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하고 즉시 중요한 중생의 도리를 가르쳐 주셨다.

◎ 중생의 정의: \"거듭난다\"는 것은 중생 흑은 다시 난다는 말인데,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믿기 전에는 모든 사람의 영이 다 죽은 것이다(엡2:1, 요5:25-26, 눅9:60).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에 그 죽었던 영이 살아난다(엡2:1, 요6:63 참조).  이것이 거듭나는 것이요, 중생이다.  중생은 새 생명의 시작이요, 영적 생명으로 찰나(刹那)적인 전환이다.  거듭나기 전에는 죽은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고 죽었던 영이 살아나야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으며 알 수 있게 된다.

 

. 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니고데모가 중생의 도리를 들을 때에 육신적으로만 생각하여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날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수 있겠습니까?\"하고 반문하였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성령의 일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육에 속한 사람을 아무리 지위가 높고 학식이 많다 하여도 영의 일은 깨닫지 못한다(고전2:14 참조).

 

.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중생의 요소: 물과 성령이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말씀으로 중생한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베소5:26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하였으니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또한 벧전1:23에 \"저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했다.  야고보1:18에도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다.  어떤 이는 물을 \"회개의 눈물\", 어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창에 질리실 때 옆구리에서 나온 물\"이라고도 하고 또 \"세례(물 세례)주는 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중생의 요소가 세례 주는 물이라고 하면 예수 믿어도 세례 받지 못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결론이 된다.  세례는 신앙을 고백할 때에 죄 씻음 받은 표로서 외부적으로 인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세례로서 영을 거듭나게 할 수는 없다.  세례를 받지 않아도 믿으면 거듭난 것이고 구원받는다.  예수님과 같이 못 박힌 한 강도는 십자가상에서 믿고 세례를 못 받았어도 구원을 받았다.  또 회개의 눈물도 그 눈물로 죄 씻음 받을 수 없고 거듭날 수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옆구리를 창으로 찔려 쏟아진 그 물도 우리를 중생시키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

본문의 물을 말씀 외에 다른 것이라고 해석하면 말씀 없이 거듭난다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성경에는 맞지 않는다(악1:18, 벧전1:23).  눅8:11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씨라고 했는데, 이 생명의 씨가 없이 어찌 새 생명이 시작(중생)될 수 있겠는가?  성경말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인데 그 말씀을 성령으로 믿게 한다.  그 때에 죽었던 영이 살아난다.  중생과 신앙은 시간적으로 동시에 이루어지는데 논리적으로는 중생이 먼저이다.

 

.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육과 영을 갈라놓지 않으면 신령한 도리는 깨닫지 못한다.  거듭나는 것은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서 산 영이 된 것이요(요6:63 참조),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다.  롬8:10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했다.  이는 성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의를 인하여 산 영이 되었다는 뜻이다.  고전15:45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했다.  범죄하여 죽었던 아담의 영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산 영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영은 다 산 영이다.  이 산 영은 새 생명이요, 새 사람이다.  이 산 영은 성령이 늘 붙들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 산 영 즉 새 생명, 새 사람은 전대로 범죄하지 않는다.  요일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했다.  신자가 범죄하는 것은 옛 사람 즉 육체의 부패성 때문이다(엡4:22-24참조).

박 윤선 목사는 \"그리스도 신자의 인격은 성경 말씀대로 보아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으니 곧 옛 사람과 새 사람이다(엡4:22-24).  새 사람은 거듭난 생명이니 그것은 범죄할 가능성도 없다\"고 했다.

 

.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중생의 도리가 육신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므로 이상하게 생각되지만 거듭난 사람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고 도리어 확실하다.

 

.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앓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다 이러하니라

◎ 중생은 성령의 단독적 역사이다.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성령이 절대적인 주권으로 중생시킨다.  중생은 인간의 협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간의 협조나 노력 없이 하나님의 주권과 성령의 단독적인 역사로 되는 것이다.  바람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특수한 경우 외에는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게 거듭난다.  그러나 거듭난 후에는 그 결과를 보아서 알게 된다.  바람도 그 자체는 안 보이나 사물에 부딪칠 때 그 결과로 알 수 있다.

◎ 중생한 증거: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는 것이다.  요일5:1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제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전부 중생한 자이다.  믿어지는 것이 택한 백성인 증거요, 중생한 증거이다.

중생한 영은 다시 죽지 않는다.  벧전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였다.  썩지 아니할 씨, 항상 살아 있는 말씀으로 거듭나기 때문에 한번 거듭난 영은 다시 죽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는 뜻은 하나님과 단절될 수 없고 지옥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한번만 하는 것이고 반복하지 않는다.

중생한 자는 벌써 영생을 얻어 놓은 것이다.  요한5:24에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다.  예수 믿는 자는 예수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어 있다고 했다.  엡2:6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밝히시니\"라고 했다.  예수 믿는 자는 중생한 영이 살아 있으므로 절대 지옥가지 않고 친국에 들어간다.

 

.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니고데모는 아직 중생하지 못하였으므로 중생의 도리를 들을 때에 잘 깨닫지 못했다.

 

. 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중생의 도리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선생의 자리에 앉아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치고 있으니 그 사람이나 백성이 얼마나 불쌍한가!  오늘날에도 이러한 선생들이 많이 있다.

 

.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은 영적인 세계를 보고 그 세계에 거하시기 때문에 정확히 알고 말씀하실 것이다.  고전2:14-15에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분별하고 판단하나 육에 속한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고 하였다.

 

.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땅의 일은 중생의 도리를 가리킨다.  중생은 육신을 가진 사람의 속에서 이루어지고, 사람이 체험하여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땅의 일이라고 했다.

하늘의 일은 객관적인 신령한 일, 즉 다음절에 나오는 인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일과 같은 도리를 말한다.  자기 영이 거듭나지 못한 자는 다른 신령한 도리를 전연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죽은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 이 다.

 

二. 영생의 교훈(13-21)

 

.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인자\"와 \"하늘에서 내려온 자\"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님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는다는 말씀과 같다.  즉, 예수로 말미암아서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사도행전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다.  가령 예를 들면 한국에서 한국사람 한 사람도 없는 외국으로 비행기 한대만 날아갔는데 가서 보니까 그 나라에 한국 사람이 많이 있게 되었다.  그들은 그 비행기 안에 타고 간 자들이다.  그와 같이 예수님 한 분밖에는. 하늘에 간 자가 없는데 가서 보니 천당에 간 사람이 많다.  어떻게 갔는가?  예수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간 것이다.  비행기 안에 타고 간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가지 못한다.

 

. 3:14-15  각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민수기2:4-7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원망할 때에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물게 하였으므로 많은 백성이 죽게 되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게 하고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다 살게 하였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예표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구속을 믿는 자는 다 구원을 얻어 살게 하신 것이다.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것과 부활 승천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본 절은 신구약 성경의 총 요절이요 천국 복음의 요약이다.

하나님이 우리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말한다.

세상을 구원의 범위는 유대인만이 아니고 세상 모든 나라민족 즉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불러내신다.

사랑하사 구원의 동기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시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은 독생자(예수님)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시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하신다.  택한 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다(엡2:8).

멸망치 않고 믿는 자는 멸망에서 구원되나 불신자는 멸망한다.  영생을 얻게 믿음의 결과는 세상에서 육신이 잘사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 사는 것이요, 또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목적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고 구원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구원의 손을 펴고 구원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할 때는 심판주로 오신다.

 

.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예수님이 믿는 자 대신 심판 받고 형벌을 받아 주셨기 때문에 신자는 공심판(지옥 가는 심팎)을 받지 않는다.  에베소3:12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가게 된다.

벌써 심판을 받은 것 심판은 죄인으로 정죄 받은 것을 뜻한다.  불신자는 아담 안에서 정죄 받은 원죄를 사함 받지 못했다는 뜻이고, 또 유전죄와 이미 지은 원죄까지 사함 받지 못하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정죄 받고 있는 것이다.

 

.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이요, 영의 빛이요, 진리의 빛이요, 구원의 빛이다.  이 빛이 세상에 와서 비추어 주었다.

사람들이 그 빛을 영접하지 않는 것이 정죄 받은 증거요, 상태이다.

 

.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 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악을 행하는 자가 빛으로 오지 않고 빛을 미워하는 것은 그악한 것이 드러나 책망을 받을까 함이다.  그러나 심판날에는 다 드러나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 3:21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 안에 진리를 좇는 자는 빛 되신 예수님께로 가까이 가게 된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예수께서 기뻐하시고, 자기 심령도 평안하다.  성도가 진리대로 행할수록 그리스도가 가까워지고 생명의 빛이 커지고 그리스도와 교제가 더욱 깊어진다.  그러나 진리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 만큼 그리스도가 멀어진다.

 

三. 요한의 믿음과 겸손(22-30)

 

. 3:22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예수님은 이때까지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셨는데 이제는 그곳을 떠나 요단강가로 가셨다.  세례를 준 것은 예수님이 친히 하신 것이 아니고 그 제자들이 한 것이다(4:1-2 참조).

 

. 3: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살렘은 요단강과 얍복강의 합류처(合流處)에 가까운 지방이라고 한다.

애논은 베다니의 서남쪽으로 8마일 지점에 있다고 하는데 세례요한은 이 지방에서 세례를 주었다.

 

. 3: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 구절이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잠시동안 동시에 사역하였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 3:25-26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결례나 세례는 동의어(同意語)로서 죄나 더러움을 씻어 정결케 되는 것을 표하는 예식이다.  세례요한의 제자에게 어떤 유대인이 아마 예수님의 세례가 요한의 세례보다 더 위대하다고 주장한 것 같다.  그러므로 요한의 제자가 시기심과 격분이 일어나 요한에게 나아가 예수님이 세례 주는 일과 사람들이 다 그리로 간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 3:27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세례요한의 신앙과 그의 위대성이 여기에 잘 나타났다.  하나님이 주실 바가 아니면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바는 귀한 것이다.  사람들이 다 예수께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하는 일이니 잘 되었다는 것이다.  요한은 영적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요 자기를 알고 예수님을 안 사람이다.  사람이 자기를 알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바로 안다고 하면 시기심이나 자기 중심의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고 겸손하여 하나님의 일에 잘 협력할 수 있게 된다.

 

. 3:28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세례요한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 제자에게 전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한 말을 상기시켰다.

 

. 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신랑은 예수님이요 신부는 신자들인데 신랑이 신부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자기가 신랑의 친구로서 신랑의 음성만 들어도 크게 기뻐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예수님과 자기를 바로 안 것이요, 신자들을 예수님께 안내하는 참 종의 모습이다.

모든 교역자들은 세례요한처럼 성도가 말씀을 바로 배우고 신앙이 바로 되어 영적 유익이 있다면 자기에게서 떠나도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자기 중심과 이기주의로 교인을 자기에게 붙이려는 자는 절도요 강도이다.

 

.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그는 예수님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해져야 한다.  내가 쇠하여야만(낮아지고 희생당하여야만)그리스도가 흥해진다.  그(예수님)도 잘 되고 나도 잘 되고자하는 것은 욕심이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흥해지려면 인간은 쇠해져 보이지 않아야 한다.  내가 아직 조금이라도 살아서 흥해지려 한다면 예수님은 그 만큼 쇠해지는 것이다.  내가 쇠해진 만큼 예수님이 흥해진다.  내가 쇠해져서 보잘것없는 자로 인정되고 멸시와 천대를 받아 낮아지고 비방과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만 잘 되고 주님의 진리 운동만 잘 되면 만족한 것이다.  누구든지 이러한 신앙으로 나아간다고 하면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될 것이다.

 

四. 위로부터 오신 자(31-36)

 

. 3:31-32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위(하늘)로부터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신다.  땅 위에서 난 자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만 말한다.  하늘로부터 오실 예수님은 친국에서 보고들은 것을 증거하신다.  그러나 땅에 속한 많은 사람이 그 증거를 받지 못하였다.

 

. 3: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 쳤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중생한 사람만 그리스도의 증거를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받은 자는 하나님을 참되신 분으로 인정하는 것이 되고, 받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거짓된 분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구약에 그리스도를 예언하였고 하나님께서 친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증거를 받지 않은 자는 그 말씀하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여기는 것이 된다.

인 쳤느니라 그리스도의 증거를 받는 자는 그 심령에 성령으로 인 침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으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심령에 인정되었으니 그것이 곧 심령에 인친 것이다.

 

.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만 나타내었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만 이루어 놓았다.  그것은 온전히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서 한 것이다.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 예수님은 완전 순종하였으므로 성령의 역사도 한량없이 임한 것이다.

 

. 3: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만물은 아버지의 것인데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완전 순종하였으므로 아버지의 것을 다 그 손에 주시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만물을 당신의구원운동에 이용하게 되었다.

 

.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  영생의 뜻은 세 가지가 있다.

① 죽었던 영이 살아난 것, 즉 중생한 새 생명인데 이 생명을 받은 자는 벌써 영생을 얻은 자이다.  한번 중생한 자는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

② 중생한 영적 새 생명이 날마다 새롭게 자라나는 것이 영생이다.  이 새 생명의 산 역사가 소성(蘇醒)하고(사57:15참조), 창성하여 나가는 것이다.  성도의 영적 생명이 날마다 자라나야 된다.

③ 이 후에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이다.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 신앙은 곧 순종이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도 못하고,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원죄와 본죄가 그대로 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가 나중에는 심판을 받아 지옥불에 던지운 바 되어 세세토톡 고통을 받게 된다.

 

제 4 장  사마리아 여인

 

(대  지)

一. 사마리아 여인이 구원을 받음(1-26)

二. 사마리아 여인이 전도함(27-42)

三. 예수께서 갈릴리로 돌아가심(43-45)

四. 아버지의 믿음으로 아들이 나음(46-54)

 

(본문 강해)

一. 사마리아 여인이 구원을 받음(1-26)

 

. 4:1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세례요한의 운동을 두려워하던 바리새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요한의 제자보다 더 많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더욱 시기하고 두려워하였을 것이다.

 

. 4: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예수님이 친히 세례 주는 일 즉 영적인 사죄와 정화의 역사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외부적인 물세례는 제자들이 하도록 당분간 허용하신 것이다.  그 후에 갈릴리에 가서부터는 물세례는 주지 않은 것 같다.

 

. 4:3-4  유대를 지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 야 하겠는지라

유다에서 갈릴리에 가려면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이 가까운 길이다.  금번에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가시게 된 것은 다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전도하기 위함이었다.

 

. 4: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수가는 세겜 동남 2마일 지점에 있는 현재 \"아스갈\"이라고 하는 작은 촌이라고 한다.  야곱이 요셉에게 땅을 준 기사는 창세기 48장 22절에 있다.

 

. 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야곱의 우물 조상 야곱이 팠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우물인데(12절) 지금도 깊이가 70여 척이나 된다고 한다.  옛날에는 더욱 깊었다고 한다.

예수께서 그 우물곁에서 쉬신 것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하기 위해서였다.

육시 현재 시간으로는 12시이다.

예수님도 우리와 꼭 같은 인성을 입으셨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목이 마르시고 피곤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쉬지 않고 계속 일하시었고 마지막에는 생명까지 희생하여 주셨다.

 

. 4:7-8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고 예수님은 우물곁에 앉아 쉬고 계셨다.  그 때에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우물로 나왔으며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셨다.

 

. 4: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멸시하고 천시하여 상종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주전 722년에 북방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갔고, 이방인을 그 땅에 이주시켰으므로 혼혼(混婚), 혼혈(混血)되었고, 또 종교도 변질되었기 때문이다(왕하17:24 이하, 스4:2-4 참조).  그런데 유대인 남자(예수님)가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하므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여자가 물어 보았다.

그 여자가 예수님을 유대인으로 알게 된 것은 ① 옷차림을 보고 안 것 같다.  유대인의 옷차림과 사마리아인의 옷차림이 다를 수 있다.  ② 말씨를 듣고 안 것 같다.  지방마다 말씨(사투리)가 조금씩 다른 것이 보통이다(삿12:6 참조).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를 시작할 때 \"물을 좀 달라\"고 하여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말씀으로 시작하셨다.  전도할 때 그 처지와 형편에 맞는 평범한 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께서는 여인이 물어본 말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보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또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네가 오히려 내게 물을 구하였을 것이요 내가 그 생수를 네게 주었을 것이라\"고 진리를 말해 주었다.  \"생수\"는 진리와 영감으로 예수님이 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가리킨다.

 

. 4: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여인이 \"주여\"한 것은 존칭어로서 부른 호칭이고 예수를 구주로 믿어 \"주여\"한 것이 아니다. 그 여자는 신령한 일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여 캄캄하였다.  신령한 생수에 대하여는 전연 이해하지 못하고 물질적인 물만 생각하기 때문에 물길을 그릇도 없고 또 이 우물이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겠느냐고 질문하였다.

 

. 4: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이 우물은 야곱이 두서 사용하고 자손에게 물려준 것으로 전해 내려왔다.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그들은 야곱과 몇 족장들을 존경하고 자랑해 왔다.  그런데 이 우물의 물보다 더 좋은 물을 주겠다고 하므로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하고 예수님을 배척한 것이다.  그 여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한 것은 외모와 전통과 조상숭배 때문이었다.  오늘날도 이러한 것들 때문에 진리를 배척하는 일이 많다.

 

.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물은 사마리아 수가 성에 있는 우물물이다.

이 세상 물을 먹으면 다시 목마르게 된다는 뜻이다.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으로 만족(해갈)을 얻고자 하는 자는 이 우물을 마신 자처럼 다시 갈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목이 말라서 헐떡이며 갈증을 면해 보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돈에 목마른 사람은 돈을 벌어서 갈증을 해결하려고 하며, 명예에 목마른 사람은 명예를 얻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세상 것에 목마른 사람은 그것을 해갈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며 어떤 사람은 쾌락으로 목마른 것을 해갈하려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방탕과 술 처함과 호색과 향락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일시적으로 욕심의 만족을 줄지는 모르나 다시 갈할 수밖에 없다.  세상이 주는 행복과, 사람이나 물질을 통하여 얻는 즐거움은 마치 목이 마를 때에 소금물을 먹는 것과 같아서 점점 더 목이 마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참 만족이 없고 참된 평안과 행복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는 생수를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 나오는 샘물이 된다.  이 생수는 무엇인가?  진리와 성령으로 우리 영혼을 살려나가는 생명의 역사이다.  이 물을 먹는 자는 언제나 만족이요 충만이요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우리가 진리를 참된 영의 양식으로 받아먹고 우리 영이 신령한 영적 세계에 들어가고 우리 속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 소생하는 영적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피어 우리 속에서 계속 나오게 간다.

 

. 4: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 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 여자가 물 길러 다니는데 상당히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아직도 이 여인은 그 물이 무슨 물인지 깨닫지 못하고 물을 길러 다니려면 피곤하고 힘이 드는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신다고 하므로 그런 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되어 이 물을 내게 주어 다시는 여기에 물 길러 오지 않게 하여 달라고 간구하였다.

 

. 4: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생수를 간구할 때에 예수께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회개해야만 이 생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여자가 회개할 것은 남편 문제였다.  죄를 그냥 두고는 생수를 받을 수 없다.

 

. 4: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그 여자가 자기는 남편이 없다고 예수님을 속여서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자가 은밀한 중에 범죄하고 있는 것을 다 아셨다.

 

. 4: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네 말이 참되도다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그 여자가 전에 남편 다섯이 있었던 것과 지금도 정당한 남편이 아닌 자와 은밀히 동거하고 있는 것을 예수님은 다 아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내용을 여자에게 다 알려 주었다.  이는 그 여자를 회개시키기 위함이었다.

 

. 4: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그 때에 여자가 회개하게 되었다.  자기 죄가 드러나고 책망을 받을 때에 회개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러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한다.  잠언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이것은 회개하는 태도이다.  자기가 겪은 과거사와 은밀한 범죄 행위까지 아시는 것을 보니 범인(凡人)은 아니고 선지자가 분명하다는 뜻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영적 생수를 마실 수 없다.  죄는 어두움이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빛이다.  그러므로 빛을 받기 원하면 어두움을 내어놓아야 한다.  또 죄는 마귀에게 속한 것이고 생수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서로 공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마귀를 내어 보내고 마귀의 종노릇하던 것을 다 청산해야 하나님의 빛이 들어와 역사한다.  여인에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있는데 어찌 생수를 마실 수 있겠는가!  그것들을 다 내어놓아야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생수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세상과 헛된 것이 간음하는 여자와 같다고 하였다(약4:4 참조).  그 여자가 솔직하게 \"내가 그런 여자입니다\"하고 과거 죄를 시인하고 예수님을 선지자로 대접하였다.  그 여자는 예수님 앞에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동네 사람 앞에서도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29절)고 하였다.  이는 참으로 회개한 증거이다.

 

.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 여인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았기 때문에 평소에 해결하지 못하고 나오던 중대한 문제를 묻기로 하였다.  그것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참 예배가 되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사마리아인들은 주전 400년경에 사마리아 그리심산에다 성전을 세우고거기서 예배를 드려야 정당하다고 주장하였으며, 성경을 모세 오경만 믿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본래부터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려야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다(신12:5, 16:2, 26:3 참조) .

우리 조상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다.

이 산은 그리심산을 말한다.  이 여자는 참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우리도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말씀을 바로 배워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바로 순종하여 드릴까 하고 그것을 찾으려 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한다.  성경을 바로 배우고 지각을 사용하여 의의 말씀을 분별하여 연단을 받는 자라야 영이 장성한 자가 된다(히5:13-14 참조).

 

. 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신약시대가 왔으니 이제는 구약의 장소적인 예배, 의식적인 예배를 드릴 때가 아니요,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왔다고 가르쳐 주셨다.  신약시대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배할 때이다.

 

.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리심산에서 예배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한 것이다.  또 모세 오경만 믿고 구약의 다른 부분은 버렸으니 알지 못하고 한 것이다.  그것은 진리의 말씀대로 예배 드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유대 사람은 구약을 다 믿고 예루살렘에서 예배한 것은 말씀대로 바로 예배 드린 것이다.

의식적으로 볼 때에는 유대 사람이 하는 것이 옳다.  외부적인 면이 성경에 바로 되어야 속(內)도 바로 될 희망이 있다.

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서 태어난다는 말이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서 출생하여 이 세상의 구주로 오셨다.

 

.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신령한 예배란 중생한 성도의 영이 성령을 힘입어서 영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를 말함이다(롬12:1-2 참조).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구약의 제사가 그림자와 의식적인데 비하여 그것들의 실체요 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사 드리게 될 것을 가리킨다.  또 이 진정이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 알레데이아( )인데 진리라는 말이다.  즉 진리로 예배 드리라는 뜻이다.

예배는 경배라는 뜻이며,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경배한다, 봉사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린다는 것은 성도의 영이 성령을 힘입어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와 영적 교통을 하며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에 복종하며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러한 예배가 영적 예배요, 성도의 영이 사는 예배이다.  하나님을 영으로 섬기려면 먼저 기도를 많이 하여 중생한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고 영의 세계를 찾아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바른 진리를 찾고 좀 더 깊은 진리를 계속 찾아서 들어가야 한다.  마태13:52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고 하였다.  그 시대에 필요한 진리의 말씀을 찾고 그 사건에 대한 진리(하나님의 뜻)를 찾아 그대로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이것이 신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이며,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며 찾고 계신다.

 

.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요 천지에 충만하시다(렘 23:24 참조).  그러므로 전 절(23절)에 언급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것이 합당하다.  신약시대 예배는 예루살렘이나 그리심산 같은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다.

 

. 4: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사마리아 여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자이었다.  메시야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게 해 주고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지 못하였다.  메시야를 고대하는 사상은 참 귀한 것이다.  아마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이러한 마음이 있는 것을 아시고 구원하기 위하여 그 동네로 가실 것 같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기름 준비를 하고 간절히 기다리는 성도를 하나님이 권고하여 주시며 주님이 재림하실 때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 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그 여자는 메시야가 오셔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고대하고 있었으나 그가 누구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그리스도가 누구인 것만 가르쳐 주면 잘 믿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사모하여 고대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심령을 열어 주시고 당신을 밝히 알도록 해 주신다.

 

二. 사마리아 여인이 전도함(27-42)

 

. 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보통 사람의 일이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남자가 어떤 여인과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만 예수님은 성자요, 하나님이심을 믿는 제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이상할 것이 없고 마땅히 하여야 될 말씀을 하시는 것인 줄 알았고 아무 것도 질문해 볼 필요가 없었다.

 

.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메시야를 발견한 사마리아 여인은 너무 기쁘고 감격해서 이 기쁜 소식을 자기만 간직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물동이도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물질이나 사업을 버려 두고 그리스도를 전파한 것과 같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발견하고 그 은혜와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세상 일 때문에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을 주저하거나 지체할 수 없다.  이것은 바울이 과거에 귀히 여기고, 유익하던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고, 해로 여겨 그리스도만 따라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빌3:7-8 참조).

 

. 4: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사마리아 여자는 자기의 신앙체험을 가지고 나가서 전도한 것이다.  전에는 자기의 행한 불미스러운 일을 숨기려고 하였으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회개한 다음에는 자기의 수치나 낮아짐을 생각지 않고 그리스도만 전하기 위하여 힘쓴 것이다.

 

. 4: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그 여자의 솔직하고도 강력한 신앙간증과 간절한 권면을 듣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을 믿게 하는 일은 예수님이 하셨다.  오늘날에도 이런 전도가 필요하다.

 

. 4: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음식을 대접할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동네에 가서 음식을 사다가(8절) 예수님께 음식을 잡수시라고 권하였다.

 

. 4:32-33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하시므로 제자들이 서로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며 수군거렸다.  제자들은 육신의 양식만 생각한 것이다.

 

.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양식은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신령한 양식이다.  영의 양식은 세 가지이다.

① 하나님의 말씀이 양식이다.  이 말씀의 양식은 처음에는 젖으로 먹으나 나중에는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영의 생명이 자라난다.  성경말씀을 읽고 배우고 영으로 깨닫는 것이 양식을 먹는 것이다.

②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양식을 먹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요, 예수님과 연합하는 생활이다.  예수님과 생명적 연합을 이루는 것이 양식을 먹는 것이다(요6:51 참조).

③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다.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이루어 드리는 것이 양식을 먹는 것이다.  예수님은 보내신 자의 뜻(자기 사명)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양식이라고 하였다.  복음 전파하는 일과 십자가를 지는 일은 다 예수님의 영적 양식이었다.  우리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산다.  이것을 하지 않을 때에는 영이 굶주리고 힘이 없고 죽은 믿음이 된다(약2:26 참조).

 

. 4:35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넉달은 심어서 거둘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유대 나라같이 더운 지방에서는 밀을 심은 후에 넉달이 되면 거둔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봄 밀은 사월에 심어서 넉달 있다가 거둔다.  넉달이면 거두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것이 한 속담이 되어 내려왔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영적인 추수의 때가 벌써 되었다는 뜻이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오래 전부터 심은 복음의 씨가 자라서 이미 거둘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 기회를 잃지 말고 나가서 추수를 해야된다.  추수할 기회에 빨리 나가서 추수하지 않으면 큰 손해가 난다.  언제 우박이 올지, 언제 눈을 올지 알 수 없기 예문이다.  예수님이 오신 그 때는 이미 추수할 때가 다 된 때이며 지금은 추수기간의 말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빨지 나가서 추수해야 되겠다.  이 추수는 우리가 전도하여 택한 백성을 건져내는 일이다.

 

. 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전도하여 택한 백성을 거둬들여 오면 하나님께서 삯도 주시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도 주신다.  추수할 때에는 뿌린 자에게도 즐거움이 있고 거두는 자에게도 즐거움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하여 추수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 4:37-38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오랜 세월을 걸려 다른 사람들이 심고 가꾸어 놓은 것을 우리가 나가서 거두어 오면 즐거움에 참예할 수가 있다.  전도하므로 부지런히 추수하여 거둬들이면 선진들이 오랜 세월에 노력한 일에 우리가 참예하는 것이다.  또 전도하는 자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는 칭찬을 받게 되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한다.  그러나 게으르고 나태하여 전도하지 않고 추수하지 않으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전도하고 거둬들이는 자가 되어야겠다.

 

. 4:4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 여자가 전에는 불의한 여자였으나 참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발견한 다음에 자신의 체험을 들어 열정적으로 전도할 때에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여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다.  지금도 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열렬히 전도하는 자에게 성령이 크게 역사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 4:40-41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고 예수님을 사모하면서 좀 더 유하시기를 간청한 것이다.  예수께서 저들의 청을 들어 이틀이나 더 유하셨다.  사모하는 자들에게 그 만큼 큰 은혜와 영광과 축복이 임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한 시간만 계셔도 아주 복된 일인데 이틀이나 유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신 것은 말할 수 없는 큰 은혜요 축복이다.  예수님이 처음에는 그날 지나가려고 하셨으나 저들이 간청하므로 이틀을 더 유하신 것이다.  주님이 찾아오시면 만나만 보고 떠나지 말고 주님을 모시려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간청하여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 사람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그 집에 가셔서 유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여 주신다.  구하고 간청하는 자에게 귀한 것을 주님이 주신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다.

 

.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처음에는 그 여자가 증거하는 말을 듣고 예수께 왔으나 친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참으로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믿게 되었다.  그들의 신앙은 사람의 말만 듣고 믿는 것이 아니고 친히 예수님을 보고 그 말씀을 받고 깨달아 말씀에 선 신앙이다.  이러한 신앙이 참 신앙이다.  우리도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통하고 성경말씀에서 생명을 얻어 주님을 따라가며 증거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전도해 준 그 여자에게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하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더 좋을 뻔하였다.  그 여자가 전도해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가게 되었으니 그 여자에게 대하여도 감f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三. 예수께서 갈릴리로 돌아가심(43-45)

 

. 4:43-44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예수께서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육신의 부모와 친척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자랄 때에 육신적으로 친하고 그의 장단점을 너무 잘 알고 있으므로 선지자를 육신적으로만 취급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누누이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배척을 받았다(눅4: 4, 마13:57 참조).  그러나 배척받을 때에도 예수님은 싸우지 않으셨다.  단지 능력을 더 많이 행하지 않으시고 거기를 떠나곤 하셨다.

 

. 4: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라

고향 사람들이 이번에는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그들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배척한다고 해서 늘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육신적으로 평가하고 취급할 때는 배척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에는 영접하고 환영한다.  우리도 복음을 증거하다가 배척을 받을 때에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받으신 대접을 나도 받는 줄 알고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 배척하는 사람이 항상 배척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면 그들도 들이켜서 영접하게 될 낟이 온다는 것을 믿고 사랑과 소망을 가지고 화평적으로 이별도 하고, 떠나기도 하여야 한다.

 

四. 아버지의 믿음으로 아들이 나음(46-54)

 

. 4:46-47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왕의 신하 이 왕은 대 헤롯의 아들인 헤롯 안디바스를 가리킨다(행13:1 참조).  그의 신하가 가버나움에서 살고있는데 그의 아들이 병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왕의 신하가 가나에까지 와서(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는 약 80리(32km)쯤 된다) 자기 아들이 죽게 된 것을 예수님께 고하여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청하였다.

 

. 4: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께서는 너희가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믿지 않는다고 한탄하셨다.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이 더 복이 있는데(요20:29 참조) 그들은 육에 속하여 그러한 믿음이 없었다.

그들은 영적으로 어두워졌고, 완악하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 보아야만 믿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다.  이적을 보고, 병이 낫고, 방언을 하고, 계시를 받아야 믿겠다는 것은 아직 어린아이의 신앙이요, 불완전한 신앙이다.  마귀도 계시를 보여 주고, 음성을 들려주며, 이적을 행할 수 있다(마7:22 참조).  그러므로 보고 믿으려는 사람은 신앙이 잘못되기 쉽다.

 

. 4:49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왕의 신하는 사회적 신분으로 볼 때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고, 예수님은 외면적으로는 아무 보잘것없는 분이지만 그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자기를 낮추고 겸손히 주님의 긍휼을 간구한 것이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구하는 자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 4: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예수께서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하실 때에 그가 그 말씀만 믿고 가버나움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은 증거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만능인 것을 믿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의 병이 나은 것을 믿고 간 것이 분명하다.

 

. 4: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왕의 신하가 돌아가는 길에 그 종들이 마주 오는 것을 만났는데 그 아이가 다 나았다고 말하였다.  그 종들은 선생님을 괴롭히지 않게 하고, 자기 주인에게 속히 기쁨을 전하기 위하여 빨리 온 듯하다.

 

. 4: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 아이의 병은 열병이었던 것 같다.  제 칠시는 오후 한시이다.  이때 종들이 출발하러 80리를 걸어갔으니 밤 9시경가버나움에 도착했을 것 같다.  그 당시는 해지기 전을 어제라고 한다.

 

. 4:53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예수께서 네 아들이 나았다고 하신 그 즉시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능력이 80리밖에 있는 그의 아들의 병을 고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전쟁할 때에 모체가 산 위에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여호수아와 모든 군사에게 나타나서 아말렉 군대를 이길 수가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서 아무리 먼 거리에서도 능력이 나타난다.  영의 역사는 공간의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 4: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첫 번째 표적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고(요2:1-11참조), 이것은 두 번째 표적이다.  이곳 갈릴리 가나는 예수님이 진리를 많이 나타내신 곳이므로 축복 받은 곳이다.

 

 

제 5 장  삼십 팔 년 병자

 

(대  지)

一.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나음(1-9)

二. 병 나은 자의 신앙 생활(10-18)

三. 그리스도께 영생과 심판권이 있음(19-30)

四.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31-39)

五.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이유(40-47)

 

(본문 강해)

 

一.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나음(1-9)

 

. 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유대인의 명절 무슨 절기인지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① 3월의 부림절(에스더9:26-28) ②4월의 유월절 ③ 5월의 오순절 ④ 10월의 초막절(수장절) ⑤ l2월의 수전절 등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예레미야23:3439에 초막절(수장절)을 큰 명절로 정하였고 요한7:2에도 초막절을 명절이라고 한 것을 보거나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 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친 것을 보아 초막절인 것 같다.

 

. 5:2-4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않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를 뭇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양문 예루살렘에 성문이 여럿이 있으며 그 가운데 북동 편에 있는 문의 이름을 양문이라고 하였고, 그 안에 양의 시장이 있었으며 지금은 스데반 문이라고 한다.

그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 못에서 병자들이 병을 고치기 때문에 자비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 같다.  이 베데스다 못은 가끔 물이 속에서 솟아올라 오는 간헐천(間歇泉)이다.  이는 천사가 와서 가끔 물을 동하게 하는데 그때 먼저 들어가는 자는 무슨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전설이 내려왔다.  그러므로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그 곳에 와서 물아 동하기를 기다렸고, 그 환자들을 위해서 행각을 다섯이나 지어 놓았던 것 같다.

 

. 5:5  거기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삼십 팔 년 동안이나 병을 앓은 가련한 자가 있었다.  그가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의사를 찾아가고 많은 약을 쓰며 백방으로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낫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베데스다 못에서 병을 고쳐보려고 찾아 온 것 같다.

 

.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이 오랜 줄 아시고 환자가 말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은 그 병자의 상태를 벌써 다 아셨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사정과 상태를 다 아시고 우리의 영적 상태를 다 아신다.  우리의 심령이 병들어 소경이 되고, 절름발이가 되고, 앉은뱅이가 되고 귀머거리가 된 상태를 잘 아신다.  어떤 때는 믿는 일을 잘하고 어느 때는 잘하지 못하는 것은 신앙의 절름발이이다.  주일을 잘 지키다가 이따금 빠지고 십일조를 바치다가 가끔 바치지 않고, 새벽 기도 시간에 가끔 빠지는 사람은 신앙의 절름발이가 분명하다.  아예 십 일조를 바치지 않고 새벽기도를 하지 못하는 신자는 신앙의 앉은뱅이다.  혈기가 말라서 신앙의 힘을 쓰지 못하는 신자도 있고 전도하지 못하는 벙어리,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귀머거리 신자도 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을 찾아오셔서 고쳐주시고자 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① 네 상태를 알라. 즉 나아야 될 자 인줄 알라.  ②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라.  ③ 예수님에 소망을 두라.  ④ 말씀 한마디면 나을 줄 믿고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뜻으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어보셨다.

 

.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 병자가 \"낫고자 합니다\"고 했어야 합당하다.  이것이 믿음의 대답이요, 예수님은 이러한 대답을 기다리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어 보셨다(6절 해석 참조).  그러나 그 병자는 베데스다 못에 들어가지 못할 사정만 말한 것이다.

물이 동할 때에 삼십 팔 년 된 중환자가 먼저 들어가 고침을 받도록 해야 옳을 것인데 경환자가 먼저 뛰어 들어가기 때문에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할 중환자는 버림을 받는 상태였다.  베데스다 못가에 자비의 집이라는 간판을 붙여 놓았으나 공평하지 못하고 생존경쟁이 심하고 약육강식(弱肉强食)하는 곳이었다.  이 세상은 어디에서나 생존 경쟁이 치열하고 참된 자비가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이 자기 사정을 몰라주더라도 섭섭해하거나 슬퍼할 것이 없다.  세상 사람은 다 그런 줄 알고 소망을 주님께 두어야 한다.  나의 사정을 참으로 알아주시고, 참된 자비를 베풀어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이 세상에서 실패와 낙망을 당하여 소망이 없는 자라고 할지라도 주님께 소망을 주고 주님의 능력으로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순종하면 주님께서 만능으로 낫게 해주시고 구원해 주신다.

 

.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일어나라 할 때에 \"예\"하고 일어나면 병이 낫는다.  그 이유는 주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고 주님의 말씀도 만능이시기 때문이다.  일어나라 할 때에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자기 병세와 약해진 것과 다리에 힘이 없는 것과 걸을 수 없는 상태만 생각하고 \"나는 일어나지 못합니다\"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못 일어난다.  삼십 팔 년 된 병자는 주의 능력과 그 말씀의 능력을 믿고, \"예\"하고 일어났다.  그 때에 단번에 병이 다 나아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 일어날 수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없을 때는 아무리 \"나을 줄 믿습니다\"하고 일어나려고 애써도 일어나지 못한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나고(롬10:17),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는 것이 산 믿음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없는데 무조건 믿사오니 하는 것은 미신(迷信)이요, 맹신(盲信)이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병자로 누워서 앓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다.  신령한 뜻은 신자가 신앙이 병들어 병신 노릇하던 건전치 못한 사업, 직장, 환경, 분위기를 걷어치우라는 뜻이다.  그것들을 그대로 놓아두면 그 자리에 또 누울 생각이 나게 되므로 그 자리를 정리하고 없앨 것은 없애고, 떠날 것은 떠나고, 치워야 할 것은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지고 병신 노릇하면서 신앙생활을 바로하지 못하던 환경과 분위기를 떠나고 치워야만 다시 그 자리에 빠지지 않는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백성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생각이 났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홍해 바다를 막아서 그 환경을 떠나게 하셨다.  우리도 죄짓던 모든 환경과 분위기와 친구를 다 떠나고 걷어 치워야 한다.

 

. 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순종하니 곧 나아서 걸어가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우리 심령의 병을 고쳐주시려고 늘 찾아와 계신다.  그 예수님께 낫고자 하는 소망을 두고 일어나라 할 때에 순종하여 일어나면 일어 설 수 있다(단10:11-12 참조).  주님의 말씀에는 만능이 있으므로 단번에 다 나아서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벌떡 일어나서 걸어갔다.

 

二. 병 나은 자의 신앙생활(10-18)

 

. 5: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유대인들이 병 나은 자에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힐책(詰責)하였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선행)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안식일(주일)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죄이다.  일어나서 걸어가려고 하니 핍박이 들어왔다.  딤후3:12에 \"겅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생명의 역사가 있는 신앙, 영적인 달음박질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자는 핍박을 각오하여야 한다.

 

. 5: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중에 예수님을 증거하였다.  우리 신앙의 체험을 사실대로 말할 때 예수님의 권위가 올라간다.

 

. 5:12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병 낫게 해준 사람이 누구냐 묻지 않고 자리를 듣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물은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일이요, 생명을 살리는 것은 경히 여기고 남을 책(責)잡아 정죄하려는 데만 급급한 일이다.

 

. 5:13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병 나은 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떠들고 복잡하므로 예수님께서 피하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복잡한 곳은 피하시고 은밀한 곳에 계신다(마6:6 참조).

 

. 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시니

병 나은 사람이 성전 생활을 하였다.  나은 후에 육신 중심으로 집에 돌아가지 않고 성전생활을 한 것은 귀한 일이다.

그때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집에 돌아갔더라면 못 만날 뻔했다.

우리도 심령의 병을 고침 받고 영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다음에는 육신 중심으로 돌아서지 말고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고 아버지의 집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때 예수님을 다시 만난다.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가 죄 때문에 병이 났던 것이 분명하다.  ① 대부분의 병은 죄로 인하여 난다.  ② 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병이 혹시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은 죄로 인하여 병이 나는 줄 알고 병이 날 때 죄를 회개하며 기도해야 한다(약5:16 참조).

육신의 병이 전부 마귀 때문에 난다고 하여 마귀를 몰아 내면 무슨 병이든지 다 낫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러한 주장은 성경에 맞지 않는다.  욥기서에 보면 마귀가 욥의 육체를 쳐서 병이 들게 했으나 이는 ㉠ 하나님께서 욥을 마귀에게 붙여서 망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욥을 환난 가운데 연단시켜서 ㉡ 더 좋은 욥을 만들고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렇게 했던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병이 죄 때문이고, 가난한 것도 죄 때문이라고 하며 예수를 잘 믿으면 무슨 병에나 다 낫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된다고 주장하나 성경에 맞지 않는 말이다.

성경에 보면 믿음으로 산 사도바울이나 디모데도 병이 있었다.  또 욥은 연단시켜서 더 좋은 것을 주려고 병을 허락했다.  또 가난해야 그 사람의 신앙에 유익이 될 것 같으면 가난하게 하여 그 가운데서 신앙을 지키도록 하시는 것이다.

빌4:11-13에 보면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척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다.  바울이 예수를 잘못 믿어서 궁핍과 비천과 배고픔을 당한 것이 아니다.  로마8:35에 성도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고난을 이긴다고 했고 로마8:36에는 구약 시대 성도나 신약시대 성도나 고난받는 것은 상례(常例)이고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딤후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다.  야고보서1:2-4에 여러 가지 환난(시험)은 성도를 연단시켜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병 나은 다음에 죄를 지으면 전보다 더욱 심해진다.  다시 죄를 범치 않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를 복종시키고 성전생활을 하고 언제나 죄와 더불어 싸워서 승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 5: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가 자기를 낫게 해주신 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았으므로 너무 감사해서 \"나를 고친 이는 예수라\"고 예수님을 증거하였다.  은혜 받은 다음에는 전도해야 한다.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 했다(고전9:16) .

 

. 5: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므로 그리스도의 빛과 권위가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반대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더욱 핍박하였다.  진리의 빛이 들어오면 반대하는 마귀의 세력도 강하게 역사한다.

 

.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님께서 핍박하는 그들을 향하여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증거했다.  자신의 한 일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대로 한 것이라고 했고 아무리 반대와 핍박이 신해도 아버지께서 시켜서 하시는 일을 아니할 수가 없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와도 아버지께서 하시는 구원운동을 아니할 수가 없어서 하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 5:18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친아버지라 하는 것과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이라고 한 것이 하나님께 대한 큰 모독이라고 생각했고,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 고친 일은 율법을 범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말세에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이렇게 신앙관과 성경관이 다르기 때문이다(요16:2).

 

三. 그리스도께 영생과 심판권이 있음(19-30)

 

.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예수님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자(父子)관계에 있어서 자(子)가 부(父)에게 종속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의 부자관계를 유지하고 아들이 아버지에 대하여 복종하기 위해서이다.

 

.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여 아버지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셨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는 성자께서 성부께 전적 복종하는 관계에 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대로만 이루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당신이 하시는 모든 것을 보여 주신다.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더 큰일\"은 21-29절에 있는 심판과 부활에 대한 일들이다.  요한14:12에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라고 했다.

이 말은 앞으로 성도를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역사의 성취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한 일보다 더 크게 성취될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기초공사로서 구원운동의 터를 닦아 놓은 것이고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오순절 이후에는 예수님이 닦아 놓은 터 위에다 영적 성전을 건축해 나가는 것이다.

기초공사 보다 건축공사가 더 큰 것과 같이 신약교회를 세워서 영적 성전을 이루는 일이 더 크다는 말이다.  이 일도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용해서 해나가시는 것이므로 결국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다.

 

. 5: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본 절에서 부자일체(父子一體)된 이유를 설명한다.

죽은 자들을 일으켜 영이 죽은 자를 중생시켜 살려낸다는 뜻과 육체 부활의 뜻도 있다.  천부께서 이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이 아들에게도 주셨다.

 

.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윗 절들에서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대로 아들도 한다고 하셨으나 심판하는 일은 아버지는 하지 않고 아들만 하신다고 하였다.  이것이 20절에 말한 더 큰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심판권을 가지고 계시므로 천상천하의 모든 것이 예수님 앞에서다 심판을 받게 된다.

 

. 5: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심판하는 권세를 주신 이유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함이었다.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를 공경하게 하였으므로 아들을 공경치 않는 자는 아버지를 공경치 않는 자이다.

 

.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에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벌써 얻은 것이며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했으니 기독신자가 영생을 얻는 것은 미래에 얻을 것이 아니고 벌써 얻은 것이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벌써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는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을 얻는다.  기독 신자가 구원을 못 얻을까봐 염려하는 것은 이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에 대해 확신이 없는 신자는 이 성구를 계속 반복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이 구절이 믿어질 때 확신이 올 것이다.

영생은 신자의 영이 사는 것이다.  한번 중생하여 산 영혼은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

심판은 하나님께 정죄 받는 것을 뜻하는데 믿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대신 정죄 받고 형벌을 받아 주셨으므로 다시 정죄 받지 않고 이 다음 하나님 앞에 가서도 심판은 받지 않는다.

 

.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죽은 자들 영혼이 죽은 자들이다.  영혼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된 것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죄와 허물로 인하여 그 영혼이 죽어 있었다(엡2:1).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듣고 믿을 때에 죽었던 영혼이 살아난다.  복음은 믿는 자를 살려내는 능력이 있고(롬1:16), 그 능력은 만능이다.  말씀은 생명을 살려내는 양약이 되어 죄로 죽은 자도 살려내고, 병든 자도 고치는 능력이 있다.

 

. 5:26-27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아버지께는 생명이 있다.  그 생명을 아들에게 주셨고, 우리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생의 생명을 받았다.  이 생명은 곧 아버지와 그리스도와 연결된 생명이다.  아들에게는 살리는 권세를 주신 동시에 또 심판하는 권세를 주신 것이다.

 

. 5:28-29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께 육체의 부활권이 있음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에는 생명이 있으므로 마지막 주님의 재림 때에 주께서 한번 명령하시면 무덤(墓)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  이것은 놀랄만한 기이한 일이다.

육신이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 썩어 흙이 되었든지 화장(火葬)해서 연기와 재가되었든지 수장(水葬)으로 물이 되었든지 부르시면 그 음성을 듣고 무덤이 터져서 살아난다.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성도의 부활을 가리킨다.  기독 신자는 예수님이 대신 행해 주신 선(善)과 의(義)를 받은 자이므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다.  성도는 생명의 부활로 나와서 공중으로 올라가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살전4:17).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믿지 않는 자인데 이는 예수님의 의를 받지 못했고 사죄도 받지 못하여 원죄와 본죄가 그대로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악인 즉 죄인으로 나타난다.  주께서 그들도 나중에 부활시켜서 공심판을 하여 정죄를 받고 영영 지옥으로 들어간다.

 

.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아버지께서 심판하지 않고 심판권을 아들에게 주었다(22절).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의 원대로 심판하지 않고 아버지의 원대로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심판은 아버지의 심판이 된다.  이것이 성부 성자의 바른 관계요, 또 상하인(上下人)의 바른 관계도 된다.

 

四.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31-39)

 

. 5:31-32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누구나 자기가 자기를 위하여 증거하면 참되지 않다.  예수께서도 자기가 자기를 증거 하지 않았고 예수님께 대하에 증거하는 이가 따로 있다.  그 증거에 대하여 다음절부터 언급한다.

 

. 5: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첫째 증거는 세례 요한의 증거이다.  유대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세례요한에게 공적(公的)으로 보내서 물어 본 적이 있다(1:19-25).  그때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했다(1:26-27).

 

. 5: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윗 절에 세례요한의 증거를 말한 것은 당신이 메시야의 증거를 받으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의 증거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2:25).

 

. 5:35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세례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함으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었다.  그는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 그 길을 준비해야된다는 것,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된다는 것을 주로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어 나갔다.  세례요한은 이 빛을 비취어 내보내는 등불이었다.  참 빛은 그리스도요 모든 증거자는 그 빛을 비취어 내보내는 등과 같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이 등의 본분을 잘 해야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먼저 그리스도를 모셔야 되고 다음에 그 빛을 가리우는 것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제거하고 언제나 마음이 청결해야 그 빛이 잘 비취어 나간다.  또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면 안 된다고 했다(마5:15).

말(斗)은 빛을 가리우게 하는 것인데 곧 자기를 위하는 것,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 명예 영광주의가 모두 말(斗)이다.  이 말을 걷어치워야 한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그 영광만 드러나게 하여야 이 빛이 밝히 드러나 많은 사람이 그 빛으로 즐거워하고 구원을 얻게 된다.

 

. 5: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오

그리스도에 대한 둘째 증거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하시는 역사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세례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이다.

 

. 5: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셋째 증거는 아버지께서 직접 증거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음성으로 증거해 주었다(마3:17).  또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강림하여 예수님 머리 위에 머물렀다(마3:16).  이것이 아버지께서 직접 증거한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음성을 듣지 못했고 그 형체를 보지 못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영으로 그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을 보았을 것이다(요14:7-9 참조) .

 

. 5: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 함이니라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말씀이 그 속에 없다.

 

.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리스도에 대한 넷째 증거는 성경이다.  여기서는 구약성경을 말한다.  구약의 율법이나 역사나 예언이 전부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며 믿음으로 영생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성경의 의식과 문자를 지켜서 구실을 얻고자 힘썼기 때문에 멸망에 이른 것이다.

영생은 영이 사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 영이 살아서 역사하고 계속해서 영원토록 살아나가는 역사가 영생의 역사이다.  그 영생은 신구약 성경에서 얻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상고하고 배우고 읽고 듣고 묵상해야 한다.  읽을 때나 들을 때에 영의 양식이 되도록 성령의 감동으로 읽고 또 들어야 한다.  그 때에 성령께서 영의 귀를 열어주시고 심령의 눈을 뜨게 해주시어서 깨닫게 해주고 지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해주신다.  그 때에 영이 살고 순종할 때에 영이 소생하여 자라난다.  이것이 영생을 계속 얻어 나가는 것이다.  자라난 그대로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산다

 

五.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이유(40-47)

 

.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성경 말씀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지만 그들이 예수님께로 오기를 원치 않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의식주의(儀式主義)에 눈이 가려져서 성경의 신령한 참 뜻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첫째 이유이다.

 

. 5:41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되신 증거를 하신 것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 함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서 영광 얻는 것을 원치 않고 도리어 싫어하신다.

 

. 5: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둘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 속에 없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된다.

 

. 5: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예수님은 종의 모습으로 비천하게 오셔서 아버지만 위하고 그 뜻만 순종하고 아버지의 영광만 나타내고 희생과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므로 하나님을 사랑치 않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영접치 않았다.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가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높이고 백성에게 아부하여 육신을 즐겁게 하고 세상에서 잘되게 해준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간다.  믿음이 없는 세대는 육신과 세상 중심으로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만 높이고 참 진리를 전한다.  그렇지만 참 진리를 찾는 자는 언제나 적은 무리이다(눅12:32).

 

.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그리스도를 영접치 않는 셋째 이유는 자기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 5: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정죄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을 고소하고 정죄하는 것은 모세의 율법이다(롬3:19) .

 

. 5:46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면서 자기들은 모세를 믿는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이 참으로 모세를 믿었다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신18:15에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 즉 그리스도가 오질 것을 예언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을 보면 사실은 모세도 믿지 않은 것이다.

 

. 5: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그들에게 모세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 말을 믿겠느냐고 책망하신 것이다.  성경을 믿지 않는 자는 그 성경이 응해진 것도 믿지 않고 무시한다.

 

제 6 장  떡

 

(대  지)

一.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적(1-15)

二. 바다 위로 걸어가심(16-21)

三. 썩는 양식과 영생하는 양식(22-51)

四. 인자의 살과 피를 먹을 것(52-59)

五. 제자의 종류(60-71)

 

(본문 강해)

 

一.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적(1-15)

 

. 6: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배척 당하시고 다시 갈릴리로 가셨다.  마태4:12 이하의 갈릴리에서 행한 모든 일은 이 기간에 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갈릴리 바다를 디베랴 바다라고도 하며 게네사렛 호수라고도 한다(눅5:1 참조).

 

. 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님은 바다 건너편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예수님은 항상 한적한 곳을 찾아가기도 하시며 복음을 전했다.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 그곳까지 왔는데 그들은 병이 나은 표적을 보고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 다녔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언제나 병 나은 것과 같은 표적을 중히 여기고 따라간다.

 

. 6: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예수께서는 산이나 들이나 바닷가와 같은 한적한 곳에 가셔서 제자들과 예수님을 좇는 큰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셨다.

 

. 6: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유월절 가까운 때에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 명을 먹이는 표적을 행하셨다.

 

. 6:5-6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예수께로 모여온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 천 명이었으나 여자와 아이까지 합하면 만 여명 이상 되는 큰 무리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곳은 빈들이었다(마14:13-21 참조).

예수께서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많은 사람을 먹게 하겠느냐고 물으신 것은 빌립의 타산적(打算的)인 신앙(인간의 계산적으로 따져서 믿는 신앙)을 고쳐 주기 위함이었다.

 

.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은 자기 신앙(타산적 신앙)대로 그 익숙한 계산 솜씨를 발휘하여 각 사람으로 조금씩 먹게 한다고 한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 데나리온은 장정의 하루 품삯이므로 이백 데나리온은 장정 이백 명의 품값에 해당하는 많은 돈이다.

 

. 6: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마태14:16에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문제가 생기면 너희가 스스로 해결하라고 주님은 언제나 말씀하신다.

 

.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안드레가 여기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고 예수님께 보고하였다.  예수님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고 말씀하셨다(마14:18 참조) .

우리에게 있는 것이 적거나 많거나 보리떡과 같이 좋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주님께 온전히 바치라고 주께서 명령하신다.  주님은 지극히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그것을 가지고 능력으로 역사하여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 6: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 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사람들을 잔디밭에 앉게 하시니 수효가 여자와 아이 외에 오 천쯤 되었다(마14:21 참조).

 

.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예수께서 그 떡과 물고기를 가지사 축사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멍하여 무리에게 나눠주도록 하였다.

 

. 6: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남은 조각을 버리지 말고 거두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그것을 잘 간수해 두었다가 효과 있게 사용하여야 한다.  지극히 작은 것에 불 충성하는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하지 못한다(눅16:10 참조).

 

.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보리떡 다섯 개로 오 천명이 먹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 두 바구니나 되었다.  주님은 주의 도를 더하고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넘치도록 풍성히 주신다.

바구니 대나 싸리를 쪼개어 만든 그릇으로 떡이나, 기타 물건을 담아 두는데 사용한다.

예수님께서 이 이적을 행하신 목적은 ① 빌립과 같이 인간의 지혜로 계산하고 판단하는 신자에게 인간 지각에 뛰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교훈하기 위함이었다.  ②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영의 양식인 말씀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육신의 양식도 주신다는 것을 할게 해주기 위함이다.  3 보리떡과 같이 보잘 것이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바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사용하여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고전1:27-28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라고 하셨다.  ④ 한 아이가 점심으로 먹을 정도의 적은 분량의 물질이라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많게도 하시고 크게도 하셔서 큰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교훈하기 위함이었다.  5 이 표적을 행한 궁극적 목적은 생명의 떡 되시는 예수님의 몸을 많은 사람에게 영의 양식으로 주어 모든 택한 백성의 생명을 살리시는 것을 나타내는데 있다.

 

. 6:14-15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그 사람들은 그 표적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떡을 먹고 배부른 것만 알고 예수님을 지상적인 메시야 왕국을 건설할 선지자(신18:15) 즉, 그리스도로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세상 나라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임금이 되면 가난과 기아(饑餓)에서 해방되어 먹고사는 경제문제가 해결되고(떡 다섯 개로 오 천명을 먹인 것을 보니)질병에서 해방되어 건강 문제가 해결되며 (모든 병을 고쳐주므로) 또한 로마 정부에서 해방이 되어 정치문제가 해결되고 이스라엘이 독립되겠으므로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상 나라와 물질적인 것, 육신적인 것을 해결해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고 영혼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려고 오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으로 알고 환영하고 영접했다가 그 욕망에 어긋나게 될 때에 예수님을 배척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고 할 때에 혼자 산으로 피하여 밤새도록 기도하셨다.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것이 예수님께 큰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리스도교를 세상적, 육신적, 물질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이다.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기도밖에 없다.  또한 세상의 명예, 영광, 권세를 다 내어놓고 택한 백성의 속죄(贖罪)와 영혼을 살리는 일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일이 마귀를 이기는 길이요 승리하는 길이다.

 

二. 바다 위로 걸어가심(16-21)

 

. 6:16-17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가신 기적은 마태14:22-32, 마가6:45-52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재촉하여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라고 하셨으므로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가버나움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졌고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 6: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갈릴리 바다에는 갑자기 돌풍(突風)이 불곤 하였다.  그날 밤에도 큰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 풍랑이 심했다.

 

. 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 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제자들이 노를 저어 해상으로 십 여리쯤 들어갔는데 바람이 일고 물결이 거슬리므로 바다 가운데서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십 여리는 원어에 25스다디온이나 30스다디온으로 되어 있는데 8스다디온이 1마일이므로 3-4마일 즉 4.8㎞∼5.6㎞쯤 된다.  갈릴리 바다는 깊이가 600척(尺)이고 폭이 약 6마일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산에서 제자들이 고난 당함을 아시고 구해주시려고 바다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찾아갔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 바다와 육지를 창조하셨고 그 자연법칙도 창조하였으므로 그 법칙을 초월해서 일하실 수 있다.  원하시면 제자(베드로)도 걸어오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인줄 알고 무서워서 소리질렀다(마14:26).  그들은 믿음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살려 주려고 오는 예수님을 죽이러 오는 유령인줄 알고 두려워만 했다.  노도와 광풍이 일어났을 때 제자들이 믿음에 굳게 졌다고 하면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① 바람과 파도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②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께 있는 것을 믿고 ③ 예수님께서 제자를 삼아 훈련을 시켜 복음을 전하게 하려는 사명을 깨달았다고 하면 조금도 두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져서 살길이 없는 것 같고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 6:20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건져주시려고 더 가까이 오셔서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다.  그때에야 제자들이 예수님이신 줄 알고 두려워 말라는 주의 말씀을 받아들이니 두려움이 다 없어지고 안심이 되었다.  풍파가 많고 괴롭고 두려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의뢰하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안식세계를 찾을 수가 있다.

 

. 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제자들에 심령에 안식을 얻고 기쁨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예수님을 영접하니 풍파는 그치고 배는 쉽게 가고자 하는 땅에 갔다.  참으로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벼운 것이다.  예수님 모신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다. 만사를 해결하는 길이다.

 

三. 썩는 양식과 영생하는 양식(22-51)

 

. 6:22-25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 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이튿날 많은 사람들이 어제 떡 먹던 곳에 와서 예수님을 찾았다.  그들은 어제 그곳에 배가 한 척 밖에 없었고 그 배에는 제자들만 타고 가는 것을 보았으므로 예수님이 그곳에 계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예수님은 안 계시기 때문에 그곳에 나중에 도착한 배들을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보니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밤에 물위로 걸어서 걸어가신 것을 알지 못했으므로 \"랍비여 어느 때에 이곳에 오셨나이까?\"하고 물었다.  \"랍비\"는 선생이라는 뜻이다.

 

.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찾는 목적은 표적의 참뜻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하였다.  요6:2에는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이 따라왔다고 했는데 본 절에는 그들이 따라온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이나 말씀의 참뜻 즉 신령한 영적인 진리를 받아 영이 사는 길은 알지 못하고 외부적인 육신적인 면, 물질적인 면만 보고 그것을 얻고자 하여 따라 온 자들이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 온 것은 첫째, 물질 중심으로 예수님을 따라온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먹고사는 물질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알고 따라 온 것이다.  둘째, 육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따라온 것이다.  셋째, 이적을 보려고 따라 온 것이다.  신비하고 희한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기이하여 따라온 것이다.  넷째, 육신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육신이 잘되고 이 세상에서 평안히 잘 사는 것을 목적으로 따라온 것이다.  다섯째, 자기를 위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따라 온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서 그리스도를 이용하여 자기가 잘되고 명예 영광을 얻기 위함이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목적으로 기독교에 들어와서 열심히 따라 다니는 사람이 많다.

배부른 까닭은 자기 육신적 욕망을 채우려고 예수를 따라온 자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다 썩는 양식으로 얼마 안가면 다 썩어지고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간다(요일2:17) .

표적을 본 까닭 표적의 참뜻을 본 자는 생명의 주님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자 곧 예수님으로 생명을 삼는 자이다.

 

. 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앞 절에 언급한 ① 표적의 외부적인 면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2 육신의 병 낫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③ 떡을 얻기 위하여 즉 물질이나 직장, 명예, 출세를 위하여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④ 교회에서 주의 일을 해도 자기 영이 살지 못하는 것은 다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성도의 영이 산것만 영원히 썩지 않는다.  고전13:1-3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다.  사랑이 없이 행했다는 것은 영적 사랑(아가페 사랑)이 없이 행했다는 것이다.  그 뜻은 자기 영혼이 살지 못하고 행한 그 모든 것은 다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1 예수님의 행하신 표적 중에서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를 발견하고 거기에 참예하는 것, 즉 오 천 명에게 떡 먹인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생명의 떡인 것을 발견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다(6:53절 참조).  ②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지식적으로만 받지 않고 영의 양식으로 받아 영의 생명이 살고 새 힘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③ 자기가 마땅히 걸어가야 될 예언의 말씀(성경)을 따라가는 것이다.  4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성령의 역사와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다.  ⑤ 신앙양심을 써서 옳은 것은 옳다하여 따라가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여 떠나야 된다.  ⑥ 심령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일해야 한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 갈 때 결사각오하고 올라간 것은 심령의 인도를 따라간 것이라고 했다(행20:22 참조).  ⑦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 이루어 드려야 한다.  예수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요4:34 참조).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것이 곧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⑧ 세상 모든 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힘입어서 하는 것이다.

 

. 6:28-29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 영접하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신령한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 6:30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그들은 예수님이 나타내신 표적도 보았고 예수님의 많은 말씀도 들었지만 육신에 속했기 때문에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다시 보여달라고 했다.

 

. 6:31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그들은 구약시대에 모세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먹인 것 같이 예수님께서도 이적으로 만나와 같은 무슨 양식을 내려 주기를 구하였다.  그들은 여전히 육신의 양식(썩는 양식)만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 6:32-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참으로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 때에 광야에서 내린 만나가 아니라 그 만나가 상징하고 있는 참된 생명의 떡이 있는데 이 떡은 지금 내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것이라고 하셨다.

 

. 6: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그들이 생명의 떡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 생명의 떡을 항상 주소서 하고 구하였다.

 

.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밝히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예수께로 오면 심령이 주리지 않고 영적 고갈이 없으며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심령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영적 교통을 하여야 한다.

 

. 6:36-37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모든 사람이 다 예수께로 오는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주신 자만 예수를 믿고 예수님에게 올 수 있다.  예수님께로 오는 자 즉 ale는 자는 예수님께서 결코 내어쫓지 않으시며 부스러기 하나라도 버리지 않으신다.

 

. 6:38-39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늘로서 내려오신 것은 당신의 뜻을 행하시려 함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려 함인데 아버지의 뜻은 믿는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고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것이다.  소자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친부의 뜻이 아니다(마18:14).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다.  예수님 재림 시에 성도의 부활이 있다.

 

.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천부의 제일 큰 뜻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것이다.  믿는 것은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이다.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받았으므로 그 영이 죽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부활한다.

 

. 6:41-42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님께서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하여도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고 인간적인 면만 생각하여 그는 요셉의 아들이요. 그 모친을 우리가 아는데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고 하는가 하여 예수님을 배척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야 분별하고 깨달을 수 있다.  육신에 속한 자는 육신의 눈으로 보고, 육신의 귀로 듣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만 믿고 알 수 있다.

 

. 6:43-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신령한 것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고 이상히 생각하면 안 된다.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고 성령이 감동시켜 믿게 해주셔야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순전히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고 마지막 예수님 재림 시에 부활한다.

 

. 6:45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사야54:13인용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이끌어 예수님께로 오게 할 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오 배우게 하고 성령으로 받게 하여 생명을 살려 나가는 것이다.  생명의 말씀을 계속 배우는 자는 복 있는 자이다.

 

. 6: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전 절에 말한 바 아버지께 배우는 자는 누구나 직접 하나님을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통해서 배우게 하신 것이다.  이유는 예수님은 아버지를 직접 보고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신 것은 화육(도성인신)하시기 전에 본 것이고 또 그 후에도 영적으로 항상 아버지를 보고 계시고 아버지 안에서 그와 함께 계신다.

 

.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믿는 자는 영생을 벌써 얻었다.  요일5:13에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함이라\"고 했다.

 

. 6:48-50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  그 만나는 생명의 떡이 아니고 생명의 떡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象徵)하는 것뿐이었다(고전10:3-4).  그러나 참 생명의 떡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자는 영원히 죽진 않는다(먹는 법은 53절 해석 참조).

 

. 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며 항상 살아 계셔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다.

 

四. 인자의 살과 피를 먹을 것(52-59)

 

. 6:52-53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시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유대인들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살을 생명의 떡으로 주시겠다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서로 다투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그 속에 생명이 없다고 하였다.  예수의 살과 피 외에 다른 것으로서는 영의 생명이 살 수 없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법은 첫째, 믿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희생해 주신 것을 심령으로 믿는 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이요, 우리 죄값으로 피 흘려주신 것을 영으로 믿는 것이 피를 마시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교통하는 것이다.  이 때에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서 역사한다.  셋째,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다(56절 참조).  넷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것이다(57절 참조).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 힘으로 사는 것이다.  여섯째,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이기 때문에 날마다 진리를 성경에서 새롭게 받아 그 말씀 가운데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날마다 먹는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날마다 먹어야 계속 새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영이 계속하여 자라나고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나가고 그리스도의 산 증인이 되어 그 나라와 그 의를 실현시켜 나가게 된다.

 

. 6:54-55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벌써 얻은 자요 주님이 재림할 때에 부활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살은 참된 영의 양식이요 피는 참된 영의 음료이기 때문이다.

 

.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는 자는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게 된다.

 

.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자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게 되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자는 더욱 많이 먹게 된다.

 

. 6: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생명의 떡을 한번 먹으면 영원히 살고 다시 죽지 않는다(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한다).

 

. 6: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위에서 교훈하신 살과 피를 먹는 중대한 도리는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친 것이었다.

 

五. 제자의 종류(60-71)

 

. 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오랫동안 교훈을 받아 온 제자들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도리는 어려워서 알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깊은 신령한 진리를 깨닫는 자는 많지 않고 극소수이다.

 

. 6:61-62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살과 피를 먹는 도리를 깨닫지 못하면 그보다 더 크고 높은 계시 (啓示)인 당신이 승천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셨다.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은 예수님이 승전하실 것을 가리킨다.

 

.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살리는 것은 영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영은 벌써 살려 놓았고 계속해서 살려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영이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회에 다니고 예배의식에 참여하고 육의 사람으로 봉사하고 기독교 사회사업을 많이 했다고 해도 자기 영이 살지 못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  그것은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집과 같아 불타져서 없어지고 말게 된다(고전3:12-15 참조).  우리 영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날마다 신령하고 단단한 진리의 말씀을 받아 새 생명으로 살아 나가야 된다.

육은 무익하니라 영이 사는 것이 아니면 다 육의 것이다.

주의 일 한 것도 자기 영이 살지 못하고 새 생명의 역사가 얼이 한 것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므로 무익하다.

 

. 6: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 돈 전대를 맡아서 일을 많이 했으나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불택자로서 나중에 예수를 팔게 된다.  예수께서 불택자를 왜 제자로 택했을까?  ①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해서 (시41:9, 요13:18), ② 후대 교역자나 교인 중에서 불택자가 있을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③ 택자나 불택자나 이 세상에서는 다같이 사랑하시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④ 불택자도 구원운동에 이용하기 위해서, (이것은 집 지을 때 비계목과 같이 사용하고 건축이 끝나면 비계목은 걷어 불태우는 것과 같다) 5 범죄자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 6: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누구나 다 예수님께 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다 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고 성령으로 감동시켜야 믿고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선물이다.

 

. 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떡 다섯 개로 오 천명을 먹인 다음날 또 먹을 것을 줄까 하여 더 많은 무리가 따라 왔으나 예수께서는 인자의 살과 피를 먹으라는 진리를 말씀해 주고, 영이 살아야 되고 육은 무익한 것이라는 신령한 도리를 말해 줄 때에 그 많은 사람이다 물러가고 열두 제자만 남아 있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이와 같다.  먹여주어야 열심을 내고, 육신을 위해주면 좋아하지만 자기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떠나간다.

 

. 6:67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모든 사람들이 물러 갈 때에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붙들려고 하지 않았다.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갈려면 가라는 뜻으로 열 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으로 언제나 만족하신다(16:32).

 

.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 이까

그 때에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대답했다.  베드로와 몇 제자는 참으로 영생의 말씀을 깨닫고 따르는 것이 분명하다.  영생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깨닫고 따르는 재자가 참 제자이다.  깨닫지 못하는 제자는 언젠가는 가게 될 것이다.  그런 제 자들을 붙들고 일하는 것은 공중누각(空中樓閣)을 짓는 것과 같다.

 

. 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베드로가 오래 전부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인 것을 믿음으로 알고 따라 다녔다(마16:16 참조).  믿고 아는 것이 영생의 도이다.

 

. 6:70-7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예수께서 제자 열 둘을 택했으나 그 가운데 하나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다.  그것은 가를 유다를 가리킨다.  가를 유다가 불택자요 마귀인 줄 예수님이 아시고 제자로 택했다(그 이유에 대하여는 64절 해석을 참조하라).  제자로 택했다는 것은 제자로 정했다는 뜻이고 구원받기로 택한 자라는 뜻이 아니다.

 

 

제 7 장  물

 

(대  지)

一. 초막절에 상경하심(1-13)

二. 절기 중간 교훈(14-24)

三. 예루살렘 사람들의 태도(25-31)

四. 관원들에게 교훈함(32-36)

五. 영생 교훈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태도(37-49)

六. 니고데모의 변증(50-53)

 

(본문 강해)

 

一. 초막절에 상경하심(1-13)

 

. 7:1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 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이 후에 앞(6장)에서 되어진 사건 이후를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6:4의 유월절(4월)부터 초막절(10월)까지 약 6개월 간 유대로 가시지 않고 갈릴리에서 전도하셨다.  유대로 가시지 않은 것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는 것을 두려워 한 것이 아니다. 아직 십자가를 질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그 전에 복음을 더욱 많이 전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가시지 않은 것이다.

 

. 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초막절은 유대인의 삼대 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중의 하나이다.  초막절과 수장절은 같은 절기인데 유대인력으로 7월 15일부터 8일 동안 지킨다.  지금에 있어서는 10월경에 해당된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광야에서 천막 생활한 것을 기념하여 한 주간 동안, 옥상이나, 마당이나, 길가나 혹은 들에 나가서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거기 머물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며 그 해에 추수한 새 곡식을 바쳤다.

 

. 7: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제자들 예수를 믿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유대로 가라고 권면한 이유는 예수님을 출세시키기 위함이었다.

 

. 7:4-5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스스로 나타나기를(출세하기를) 원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으니 갈릴리와 같은 시골구석에 묻혀 있지 말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명절에 모여든 많은 사람 잎에서 자기를 나타내고 영광을 받으라\"고 하였다.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므로 예수님을 참으로 알지 못했다.  예수님은 생명운동을 위한 구속주로 오셔서 구원운동을 하시는데 형제들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영광을 얻고 출세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하시는 줄로 알았다.

 

. 7: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내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구속을 이루실 때를 말한다.  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 때를 말한다.  아직 하나님의 예정하신 그 때가 안되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얼마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아마 하루나 몇 시간 후에 올라갔다고 하면 하루가 몇 시간 전에는 아직도 하나님의 정해 놓으신 때가 안되었다는 말씀이다.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형제들이 믿을 수 있는 기회는 늘 준비되어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늘 준비되어 있다(고후6:2 참조).

 

. 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예수님의 형제들은 세상이 미워하지 않으나 예수님은 미워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잘못된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미워하지 않겠으나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여 바른말을 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성경 말씀을 잘못 가르치고 교회를 인본주의와 의식주의로 끌고 나가는 생명이 없는 교회들에게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 도리어 그 사람을 핍박하고 미워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바른 진리를 가르치고 전파하여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증거해야 진리의 빛이 비취게 되고 양들을 바른 진리로 살려 나갈 수가 있다.

 

. 7:8-9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게시니라

예수께서 형제들에게 명절(초막절)에 올라가라고 권하시고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다(6절 해석 참조).

 

. 7: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형제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다음 얼마 후에 예수님께서 때가 되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하나님의 예정은 년, 월, 일, 시(年, 月, 日, 時)까지 정해 있기 때문에(계9:15 참조) 그날 그 시간이 되어야 그 일을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비밀히 올라가신 것은 두려워서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방해하고 죽이려 하니까 하나님의 일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방해하는 세력을 피해서 하나님의 일이 잘되겠으면 피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셨고 핍박가운데서도 드러내서 증거해야 하나님의 일이 잘 될 때는 담대히 드러내놓고 증거하셨다(14절).

 

. 7:11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과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예수를 찾는 목적은 믿고자 함이 아니고 예수를 시험하여 빠뜨리려 함이었다.  예수를 죽이려는 공기가 뚜렷했다.

 

. 7:12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않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전 절과 달리 일반 군중들은 예수님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리를 미혹하는 자 라는 사람도 있었다.

 

. 7: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므로 두려워서 예수님이 좋은 분이라고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다.  교권주의 자들은 양심의 자유를 박탈했고 무리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무서워한 것이다(마10:28-31 참조).

 

二. 절기 중간 교훈(14-24)

 

.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초막절 중간에 예수께서 공공연하게 성전에 서서 많은 대중에게 담대히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하고 담대히 당신의 할 일을 다 해 나가셨다.

 

. 7:15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그 교훈이 성경적이며 권위가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놀랐다.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 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예수님은 정규학교나 명문 선비에게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성경을 저렇게 잘 아는가 하고 놀란 것이다.  성경은 성령으로 알게 되는 것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다 아신 것이다.

 

.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예수님의 교훈은 자기 지혜대로 지어낸 말이 아니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데 사람에게 배우고 못 배웠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나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예수님의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스스로 말하는지, 또 그 말이 진리인지 비진리인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고 사모하고 애를 쓰는 사람이 그 말을 들으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대로 행하려는 자는 진리를 사모하는 자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자이므로 심령이 밝아지고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되어 진리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 하지도 않고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심정이 어둡고 마음이 둔하여 진리를 아무리 들어도 분별치 못하고 알지 못한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며 영이 깨어 있어 하나님과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음성)인 참 진리를 깨닫게 된다.  요한10:4-5에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고 했다.  그러나 육신에 속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과 정신이 없고 또 영이 살려고 사모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의 영광만 구하여 자기를 위하는 자니 불의한 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자기를 위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자이니 참되고 그 속에 불의가 없다.  누구나 자기를 위하는 것은 불의한 것이요, 하나님만 위하는 것은 참되고 불의가 없다.  교역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불의한 교역자요, 삯꾼이다.  자기는 희생하고 무(無)요 공(空)이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만 위하고 복음운동만 잘되게 하는 자가 참된 교역자이다.  성도들도 자기의 유익과 자기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은 불의에 매여 있는 자이다(행8:18-23 참조) .

 

. 7: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모세를 존경하고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율법에 예언하였고(신18:15 참조), 율법의 실체(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죽이려 한 것은 율법을 알지 못하고 율법을 범한 것이다.  또한 그들이 율법의 껍데기인 의식과 의문은 열심히 지켰으나 그 속에 내포된 진리와 알맹이(내적 생명적인 것)는 버렸으니 이는 참으로 율법을 범한 자가 된 것이다.  오늘날 교인들도 교회제도와 예배의식과 설교를 듣는 것과 외부적인 교회 봉사 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통한 신령한 생명의 역사가 없다고 하면 성경을 범하는 것이요 껍데기만 있는 교인이다.

 

. 7: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하나이까

무리들은 당국자(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 하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할 때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하고 대답한 것이다.  언제나 교권 자들이 하는 간악한 일들을 일반 교인들은 모르는 것이 상례이다.  경험해본 자와 지내본 자만 안다.

 

. 7: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한가지 일 요5:2-9에 안식일에 병자를 낫게 하여 상을 들고 걸어가게 한 일이다.  이것이 그들이 괴이히 여겨 예수를 죽이려 하는 이유였다.

 

. 7: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모세 오경에 할례를 주라고 명했다는 뜻이다(창 7:10).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주신 명령으로 율법을 받기 전에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한 것이다.  남자가 출생하면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는데 그날이 안식일인 경우에도 할례를 행하였다.

 

. 7:23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할례는 부분적으로 깨끗케 하는 예식이다(렘4:4 참조).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실은 아브라함 때부터 남) 할례의 법을 폐하지 않으려고 안식일에 할례 행하는 것을 용납한다고 하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전신을 깨끗케 해서 낫게 하는 일(38년 된 병자를 고친 일)이 왜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을 안식 일 범한 자로 여기지 말고 당연히 용납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뜻이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다.

 

. 7: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안식일은 사람의 영적 생명을 살펴 참된 안식을 주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외부적인 면과 의식적인 면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율법의 근본 정신을 바로 알고 판단해야 된다.  같은 사건인데 자기들이 하는 것은 옳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죄라고 정죄하는 것은 공의의 판단이 아니다.  옳은 것은 누가 했든지 옳은 것이고, 죄는 누가 범하든지 죄이다.

 

三. 예루살렘 사람들의 태도(25-31)

 

. 7: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것을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

 

. 7: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

예수님이 드러나게 말해도 당국자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찾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민중은 종교 지도자들의 권세욕과 시기와 살기에 찬 흉계를 잘 알지 못하고 언제나 선하게만 생각하여 \"당국자들이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라고 말했다.

 

. 7: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어디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게 온다고 잘못 가르쳤다.  그렇게 배운 백성들이 그리스도관을 잘못 가지게 되었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온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아닌 줄로 알았다.  백성들이 잘못 배웠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것이다.

성경을 한번 잘못 배워 놓으면 옳은 것을 틀린 것으로 알고 틀린 것을 옳은 줄로 알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바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바로 배우고 참된 진리대로 신앙생활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바른 진리를 알게 된 자는 많은 사람을 바른 데로 인도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다니엘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다.

 

줎. 7:28-29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성전 모든 사람 앞에서 큰소리로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증거하셨다.  그러나 무리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신성과 영적면을 모르고 육신적으로만 알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도 알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에 대하여 외부적인 면과 신자의 육신적인 면만 보고 있는 자들은 신령한 면을 알지 못하고 거기에 참여하지 못한다.

 

. 7:30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저희가 아무리 예수님을 잡아죽이려 해도 때가 되기 전에는 못 죽인다.  성도들도 핍박이 와서 원수가 아무리 잡아죽이려 해도 때가 되기 전에는 잡아죽이지 못한다.  그러나 때가 되어 죽는 것은 마땅하다. 죽 을 때가되면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생명을 내놓고 죽으면 그것이 영광이고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이다(고후5:4 참조).  주와 복음을 위해 죽는 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일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멀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요12:24참조).  성도가 주를 위해 죽으면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많은 열매가 맺히게 된다.  때가 되지 않으면 죽지 않는 것을 믿고 때가 될 때에 담대히 믿음으로 죽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된다.

 

. 7:31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이려 하지만 무리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믿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순진한 마음으로 진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증거한 것이었다.

 

四. 관원들에게 교훈함(32-36)

 

. 7:32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그리스도께서 오시더라도 예수님보다 표적을 더 행하겠느냐고 하며 무리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듣고 더 많은 사람이 예수를 따라갈까 봐 심려하고 시기가 나서 예수를 잡으려는 조건을 찾아내려고 하속들을 보냈다.

 

. 7:33-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후에는 현실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거기 가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 7:35-36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고 아버지께로 갈 것 즉 신령한 진리를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육신과 세상적으로만 해석하여 헬라인 중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가서 그들을 가르치려는가 하고 추측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아는 정도대로 생각한다.  성인이라야 성인을 안다(聖人能知聖人)는 말이 있다.  육신과 제상에 속한 자는 신령한 진리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고전2:13-14 참조).

 

五. 영생 교훈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태도(37-49)

 

.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명절 끝날 초막절의 끝날 인데 절기 시작한지 팔일 째 되는 날이다.  초막절에는 밖에 나가 초막에 한 주간 있다가 칠일 째 되는 날에는 초막을 철거하고 집에 들어와서 그 이튿날 팔일 째 되는 날에는 큰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큰 날 칠일간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고 제 팔 일에는 가나안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날이므로 큰 날이라고 한다고 한다.  또 절기 끝 날은 많은 은혜가 있는 날이므로 큰 날이다.  아무 절기나 한 주간 전심전력으로 은혜를 사모한 결과로서 끝 날에는 큰 은혜가 있는 것이 상례이다.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심령이 목마른 자는 예수님께로 오면 해갈할 수 있다.  또 물질에 목이 마르거나 고독하거나 세상에 목이 마른 사람들은 다 예수께로 와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적 새 생명을 얻으면 목마른 것이 없어진다(행3:3-8 참조).

 

.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때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생수의 강은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 속에 이루어 놓은 생명의 역사이다.  즉 새 생명의 역사이다.

생수를 마시는 법은 ① 예수께로 와서 믿는 것이다.  성령으로 아니하면 믿을 수 없다(고전12:3).  그러므로 믿는 자는 성령을 벌써 받은 것이다.  ②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 말씀에서 새 생명을 계속 얻어나가고 성도의 영혼이 날마다 소생하고 창성하고 자라나는 것이다.  이 생수는 계속해서 속에서 솟아 올라오는 것이다.  이 영적인 새 생명의 역사가 계속하여 전진해 나가면 심령의 목마른 것이 해갈되고 그 외의 물질적 육신적 세상적 모든 목마른 것도 없어진다(마4:4 참조).  초막에 살거나 궁핍하거나 죽는다고 할지라도 이 생명의 역사가 있으면 만족하고 위안이 있고 부족함이 없다.

 

. 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으로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야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으므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생수는 성령과 진리로 신자의 영에 역사하는 영적 새 생명의 역사이다.

영광을 받지 못한 고로 십자가와 부활 승천이 예수님의 영광이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다.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 하시니라 보혜사 성령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요16:7 해석 참조).  그러나 제자들이 처음부터 성령으로 믿었다(마16:16-17, 고전12:3 참조).  목마른 사람은 예수께로 나가야 생수를 받아 마실 수 있는데 예수께로 나갈 때 몸과 마음이 가야 되고 영이 그와 더불어 교통하도록 까지 나가야 된다.  그렇게 갈급한 심령으로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해야 한다.  그러면 그와 만난 바 되고 성령의 감동을 주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은혜와 사랑으로 권면하시고 위로하시고 책망하시어서 우리 영적 생명을 곤고한 자리에서 싸매시며 고치시며 바로 세워 위로와 평안을 주시며 만족을 주셔서 소생하는 생명의 역사가 있게 해주신다.  이 역사가 우리 속에 이루어질 때에는 어떠한 환난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궁핍이나 칼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 사랑의 감격과 참된 만족이 있다(롬8:35-39).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를 받으면 그것이 최고의 행복이요 그것이 만족이요 영의 것을 소유한 부자이다.  이와 같이 영의 것으로 살고 거기서 참된 만족을 찾는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다시 목마름이 없고 기쁨이 충만하게 넘쳐 나는 생활이 될 것이다.  이 생수는 심령이 가난하여 목이 마른 자만 마실 수 있다.  심령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에 빠졌는데도 나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는 라오디게아 교인(계3:17)과 같은 사람은 생수를 마실 자격이 없다.  자기 심령이 지금 곤고해졌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외부적인 것을 가지고 부요하다 하고 그것으로 만족을 삼고 나가는 자는 생수와 상관이 없는 자이다.

 

. 7: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예수님의 생수의 교훈을 들은 자 중에 예수님을 그 선지자 즉 그리스도로 믿는 자가 생겼다.

 

. 7:41-42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어떤 사람들은 갈릴리에서는 그리스도가 나올 수 없으니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씨로 다윗이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난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미가5:2).  그런데 예수는 갈릴리에서 왔으니까 그 성경에 안 맞는다고 영접하지 않았다.  그들이 좀 더 예수님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았다면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신 후 갈릴리 나사렛 동리로 가서 사셨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요, 이렇게 예수를 배척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단편적 성경 지식을 가지고 판단한 것이 생명의 주를 버린 것이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겠다는 성구만 알고 마태 2:23에 인용된 그리스도가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예언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성경을 한편만 알고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모르면 마귀에게 속기 쉽다.

마태 4:6에 마귀도 성경을 가지고 와서 시험했다.  그때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여 다른 곳에 있는 성경으로 이겼다(마4:7).  우리는 성경의 다른 곳에 있는 성경 원리와 성경 전체적인 뜻에 맞게 알고 해석해야 된다.  또한 껍데기만 알지 말고 좀더 상고해서 깊이 알아야 한다.  성경을 부분적으로 아는 것 가지고 전체적인 뜻을 그르치는 것은 소경이 코끼리 보는 식이다.  그렇게 가르치고 배운 자들은 미혹을 받아 신앙에서 떠나게 된다.

 

. 7:43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쟁론이 생겼다.

 

. 7: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이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예수를 잡고자 하는 하속들도 예수님의 권위에 눌려서 잡지 못했다.

 

. 7:45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하속(하인)들에게 예수를 잡아오지 않았다고 책망을 했다.

 

. 7:46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하속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인격과 성령으로 말하는 권위에 위압되고 참 진리를 말하는데 감동이 되었으므로 잡아가지 못했다.  이제까지 그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종교적 편견이 없는 자는 진리와 감동을 쉽게 받을 수 있다.

 

. 7:47-49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하속들이 예수님의 교훈에 감동을 받은 것 같으므로 너희도 미혹을 받았느냐고 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받는 자는 ① 미혹 받은 자 ②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 ③저주받을 자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바리새인들 자기네가 의식주의에 미혹되어 있고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 이 유는 율법 은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고(신18:15) 율법의 의문과 의식의 실체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골2:16-17).  그러므로 저주받을 자는 성경을 버린 그들이었다.

 

六. 니고데모의 변증(50-53)

 

. 7:50-51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묻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니고데모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반대하고 그의 전하는 진리를 반대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여 말하기를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고 했다.  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들어보지 않고 행한 것도 알아보지 않고 예수님을 죄인으로 판결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정죄하고 있다.  사실은 저들이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고 저주받은 자들이었다.

 

. 7:52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저들이 예수님께 대한 분노를 니고데모에게 터뜨렸다.  니고데모가 예루살렘 시민인 줄 알면서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한 것은 갈릴리 지방을 멸시하는 평소의 심리가 분노와 함께 터져 나온 것이다.  이렇게 분노와 어떤 지방 사람들을 멸시하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무엇을 바로 할 수가 있겠는가!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이것도 구약 성경을 모르는 무식한 발언이었다.  왕하14:25에 의하면 선지자 요나는 갈릴리 출생이었다.  저들이 오히려 율법(성경)을 모르는 자라는 것이 드러났다.

 

. 7:53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를 정죄하고 잡으려는 무리들이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갔으므로 별로 큰 문제가 생기지 않고 하루가 지나갔다.

 

 

제 8 장  진 리

 

(대  지)

一. 간음한 여자에 대하여(1-11)

二. 예수님께서 자신을 증거하심(12-20)

三.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말씀하실(21-30)

四. 진리가 자유케 함(31-43)

五. 마귀에게서 난 자는 진리를 불신함(44-50)

六. 그리스도는 아담 전부터 계심(51-59)

 

(본문 강해)

 

一. 간음한 여자에 대하여(1-11)

 

. 8:1-2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예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 감람산으로 가셨다.  예수님은 자주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  예수님이 밤에는 산에 가서 기도하시고 아침에는 성전에 와서 백성을 가르치시므로 큰 권능이 있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고 전도해야만 힘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다.

 

. 8:3-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님에게 끌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 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모세의 계명에는 남녀가 간음하다가 잡히면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는데 (신22:22-24, 레20:10), 이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들어 책잡으려고 한 것이다.  만일 죽이라고 하면 예수님도 모세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는 자요 모세의 제자 정도에 지나지 않는 자로 여길 것이며, 또 죽이지 말라고 하면 예수님이 율법을 어겼다고 정죄할 근거로 삼기 위한 의도였다.  예수님이 평소에 가르치실 때에 자기들이 배운 것과 다르게 가르치셨으므로 이 문제도 분명히 자기들의 배운 율법과 다르게 가르치실 것이라고 예상하여 질문한 것이다.

 

.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대시니

저들은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을 책잡아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시험한 것이다.  그 때에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셨다.

 

. 8:7-9  저희가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있는 여자만 남았더라

저희가 예수께 답변을 재촉했다.  잠깐 후에 예수께서 조용히 일어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셨다.  무슨 글씨를 쓰셨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아마 처음에는 율법의 대강령을 쓰신 것 같고 다시 쓰실 때는 율법의 근본정신을 기록한 것 같다.  율법의 대강령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눅10:27, 신6:5, 레19:18 참조).

간음하는 여자를 잡아서 데리고 왔을 때 예수께서 율법의 대강령(大綱領)을 땅에 기록하여 너희 속에 참으로 이 여자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을 일깨워주시니 그들이 어느 정도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양심을 억누르고 다시 재촉하여 물을 때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시고 다시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하고 땅에 쓰시니 그들이 그것을 읽어보고 마음으로 지은 죄가 양심에 가책이 되어 하나씩 다 가버렸을 것이다.

저들은 율법의 근본정신은 깨닫지 못하고 단편적이고 외부적인 면만 가지고 남을 정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의 근본적인 것과 좀 더 깊은 뜻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간음한 여인도 이웃인데 그들이 여인을 회개시켜서 바로 세우고자 하는 사랑은 없고 죽이려는 생각만 한 것이 가책이 되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자기들도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었던 것이 생각나고 양심에 가책이 되므로 돌을 놓고 하나씩 하나씩 돌아가고 그 자리에 예수님과 그 여인만 남았다.

 

.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그 여자를 고소하고 죽이려고 떠들던 자들이 다 가고 고요해졌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 하고 친절한 음성으로 물으셨다.

 

.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그때 그 여자는 주여 없나이다 하고 답변하였다.  이것은 그 여자가 예수님께 굴복하여 회개하는 심정으로 발한 것이 분명하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사죄의 원칙을 말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죄인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구원하러 오셨다(요3:17).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간음한 여자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구원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셔서 어떠한 죄인이라도 회개시켜 구원해 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교는 사죄의 종교인 동시에 다시는 죄를 범치 않게 하고 새 생명으로 새 출발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는 종교이다.  사죄 받은 다음에는 말씀대로 걸어가고 그리스도를 푯대로 달음박질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어 사죄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다고 하여 다시 범죄하고 악행을 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자라고 볼 수 없다.  성도가 범죄하면 하나님의 더 큰 진노와 심판이 와와 아주 멸망할 것을 알고 다시는 범죄 하지 않아야 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 중에 죄 지은 것을 용서해 주시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만 알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무시하여 죄를 짓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책망을 받지 않고 바로 서려고 하지 않는 자가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참 도리를 모르는 자요,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자이며 머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을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시고 우리를 모든 죄에서 용서해 주신 것을 감사하며 우리도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성화의 도리요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도리이다.

 

二. 예수님이 자신을 증거하심(12-20)

 

.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죄로 인하여 깊은 흑암의 세상에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하나님(하나님의 속성)을 비취어 내보내는 빛이요, 진리와 의의 빛이요, 영적 생명의 빛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하나님을 알고, 영적 생명을 얻고, 진리와 의의 빛 가운데로 걸어 갈 수가 있다.  그리스도는 개인과 이스라엘의 빛이요 온 세상의 빛이시다.

 

. 8:13  바리새인들이 가로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하니 네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

예수님이 앞에서 자신에 관하여 증거한 것을 바리새인들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증거 한다고 하여 인정하지 않았다.

 

. 8: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자기의 증거가 참된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것은 \"예수님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이 보내서 온 그리스도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서 왔고 하나님이 명하시는 대로 말도 하고 일도 하고 있으니 이것이 그리스도가 된 증거요, 자기가 증거하는 말씀이 참된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예수님께서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진리는 믿어야 알고 회개하고 상한 심령을 가질 때에 성령의 감동으로 믿을 수 있다.

 

. 8: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영적인 면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그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신령한 영적 도리인데, 육신의 지혜와 생각으로는 전연 알 수가 없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알 수 있고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고전2:13-14 참조).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육신을 따라 판단하므로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판단하기 위함이 아니고 죄인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에 그때에는 판단치 않는다고 했다(요3:17).  그러나 나중에는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 8:16-18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 하시느니라

예수님께서 판단한다고 해도 예수님의 판단은 언제나 참되다.  그 이유는 자기 혼자서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같이 판단하시기 때문이다.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고 기록하였으니(신17:6 참조) 아버지와 예수님이 같이 증거하고 판단한 것은 참된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언제나 같이 계시고 아버지께서 시키는 대로 말씀하시고 일하시고 판단하신다.

 

. 8:19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저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니 그 아버지를 알 리가 없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저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았다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또 저희가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하나님이 친히 증거했고(마3:17) 구약 성경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희가 종교적인 의식에만 치우치고 하나님과 성경은 멀리 떠나 있었으니 진리를 알 리가 없다.

 

. 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예루살렘 성전에 연보궤가 있었다.  연보궤에 연보를 넣는 것이 성경적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연보 주머니(그릇)를 개인 앞으로 돌리며 연보하게 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이 방법을 중지하고 각 교회가 연보궤를 해놓고 교인들이 스스로 연보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연보대를 개인 앞으로 돌려서 연보를 많이 거두려는 생각을 버리고 성경대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

 

三.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말씀하심(21-30)

 

. 8: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 승천으로 아버지께로(하늘나라) 가실 것인데 그것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다른 그리스도를 찾다가 찾지 못하여 사죄도 받지 못하고 죄 가운데서 죽게 될 것을 가르쳐 주셨다.  천하 인간에 예수님 외에 다른 이로서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아버지께로 갈 수도 없다(행4:12).

 

. 8:22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

예수님께서 가신다고 하신 것은 천국으로 간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육신 중심으로 예수님이 자결 즉 자살하러 간다는 뜻으로 생각했다.  누구나 자기 정도대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 8: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아래서 났다.  아래서 났다는 것은 ① 이 세상에서 났다.  ② 죄 가운데서 났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에서 났다.  예수님이 위에서 났다는 것은 ① 하늘나라에 영원부터 계실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셨고, ② 죄가 없는 거룩한 분이라는 뜻이다.

 

. 8:24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 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사람들은 다 죄 가운데서 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사죄를 받지 못하고 죄 가운데서 죽어 멸망할 것이다.

 

. 8:2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그리스도는 아담 때부터 족장들과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계시)해 온 분이시다(벧전1:10-11 참조).  자연계시인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요1:3 참조), 특별계시인 신구약 모든 성경도 그로 말미암아 주신 말씀이라는 뜻이다.  \"나는 위에서 났다\"(23절)는 말과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58절)하신 말씀을 보아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시기 전부터 말하여 오신 것이 분명하다.

 

. 8:26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저들의 비참한 상태와 정죄에 대하여 할말이 많으나, 그것보다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먼저 하였다.  어두움을 책망하기 보다 빛을 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빛이 비취면 어두움은 사자지고 말 것이다.

 

. 8:27  저희는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믿음이 없는 저들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줄을 깨닫지 못했다.

 

. 8: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야 예수님에 대하여 믿게될 것이다.

인자를 든 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가리키나 부활 승천 성령강림을 다 포함해서 한 말이다.  십자가와 부활 승천으로 진리가 확실히 나타나게 되고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여 강하게 역사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그때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과 예수님의 말씀이 아버지께서 시키는 대로 하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8:29-30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 때문에 항상 아버지께서 함께 하셨다.  우리도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동행해 주신다.

 

四. 진리가 자유케 함(31-43)

 

.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오늘날 믿는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예수님의 제자인데 예수님의 말씀에 거해야 참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제자는 선생을 배워나가고 선생을 닮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참 제자는 예수님을 배워나가고 닮아 가는 사람을 말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예수를 닮아가지 않고 예수님을 배워 나가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참 제자라고 할 수 없다.  성도가 예수님의 마음과 성품과 덕을 배우고 닮아 나가므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야 한다(마11:29).  예수님을 배우려면 예수님의 말씀에 거해야 한다.  말씀에 거하는 것은

첫째, 말씀을 즐거워해야 된다.  시편1:2에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했다.  말씀을 즐거워하여 마음이 그 말씀 안에 있고 그 말씀이 생명이 되는 것이 말씀에 거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 들어가려면 먼저 회개부터 해야 한다.  시편1:1에 \"악인의 죄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했다.  마음속에 죄악의 독소가 들어가 있으면 말씀을 즐거워할 수 없고, 마음속에 흑암이 있으면 빛이 들어 갈 수 없다.  그러므로 먼저 죄를 회개하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에 몸만 나가지 말고 심령이 예수님에게 도달하도록 까지 전심전력을 기울여 힘써 기도하고 영적 세계를 찾아서 주님과 교통하는 자리에 나가야 된다.  그 자리에 들어가면 심령에 즐거움이 있고 주의 말씀이 꿀보다 달며 송이 꿀보다 달게 된다.  그때에 말씀에 거하는 자가 된다.  예레미야15:16에 보면 예레미야는 큰 환난과 핍박이 많았으나 그 말씀이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기 때문에 위로를 받고 생명길을 걸어갔다.  먼저 마음이 말씀 안에 거해야 되고 몸도 그 말씀에 거해야 한다.  먼저 마음이 예수님과 동행하며 즐거움을 얻고, 말씀에 거하는 자리에 들어가고 몸으로 순종하여 그 말씀에 거하면 참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배우게 된다.

 

.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에 거하고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때에 진리를 알게된다.  영의 세계에 들어간 것 만큼 진리를 알게 되고(그 세계에 가봐야 그 세계를 알 수 있다) 영혼이 자라난 것만큼 진리를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에게 결혼하는 법과 결혼생활 하는 법과 해산하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준다 해도 이해를 못한다.  그러나 그 아이가 성인이 되면 하루 동안에 다 알 수 있다.  영의 문제도 그와 같다.  영이 어릴 때는 진리를 가르쳐 주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다가 자라나면 알 수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깨달은 진리는 그 사람에게 자유를 준다.  영의 자유는 진리 안에 있다.  진리가 정죄하면 속박을 받고 진리가 놓아주면 자유케 된다(진리에 위반되면 정죄를 받고, 진리에 위반이 없고 가책됨이 없고 진리가 자기를 옳다고 인정해 주면 자유하게 된다).  진리가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고,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준다.

진리는 또한 모든 의식과 제도, 죄책으로 인한 억압에서 자유함을 준다.  복음의 진리가 죽음의 공포와 염려와 걱정에서 해방시켜 생명의 기쁨과 위로와 평안을 준다.  말씀에 거하여 진리를 안 것만큼 영의 자유와 안식을 누리게 된다.  이것은 영의 자유이고 진리 안에 있는 자유이며 영이 살아나가는 자유이다.

 

. 8: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로마 정부에 속박되어 있으나 종교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종교 행사의 자유와 일상생활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자라고 했는데(31절) 아직도 영의 자유를 알지 못하고 종교 의식과 외부적인 종교생활만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믿는 사람 중에 영의 세계, 영의 자유, 영의 장성을 하알 못하는 신자가 많이 있다.

 

.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지를 범하는 자는 마귀와 부패성에 진 자이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므로(벧후2:19 참조) 죄를 범하는 자는 죄와 마귀의 종이다.

 

. 8: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아버지의 집에서 죄의 종은 쫓아 낼 것이고 아들만 영원히 있게 될 것이다.

 

.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히리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는 영적 자유요 참된 자유이다.  말씀에 거하는 자에게 이 자유를 준다.

 

. 8: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저들이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시나 영적 신앙에서 볼 때 그들은 아브라함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은 말씀을 좇아갔고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으나 저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려 하기 때문이다.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그들은 주의 말씀을 받을 만한 영적 터전과 실력이 없었다.  위가 약한 사람은 좋은 음식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 8: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저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고 반대하는 것은 그 근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의 근원은 하나님 아버지시요, 저들의 아버지는 마귀이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본 것(들은 것)을 말하고 저들은 저들의 아버지 마귀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는 것이다.

 

. 8:39-40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저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또 주장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신앙과 행사가 없는 너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저들이 참 진리를 반대하고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 8:41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저들은 마귀의 행사를 하면서도 혈통적으로 음란한데서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자기들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마귀의 행사는 음란할 뿐 아니라 욕심, 살인, 거짓말, 진리에 서지 않는 것 등 기타 여러 가지가 많다.  이런 것들을 하면 비록 실제로 음란을 행치 않았어도 마귀의 종이 되며 하나님을 떠난 자이다.

 

. 8:42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영적 교제를 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여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도 사귐이 있게 된다.

 

. 8: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하나님께 받아 말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자이다.

 

五. 마귀에게서 난 자는 진리를 불신함(44-50)

 

.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너희 아버지는 마귀라고 했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욕심으로 행하고 거짓을 제것으로 행한 자요 참 진리를 반대하는 자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마귀의 종이다.

 

. 8:45-46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자 아니하느냐

마귀의 인도를 받는 자들은 예수님이 진리를 말해 줄 때에 믿지 않고 도리어 죄로 책잡으려고 한다.  마귀의 행사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동일하다.

 

.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안다고 했다(10:4 참조).  하나님께 속한 자는 진리를 알고 기쁨으로 받는다.  진리를 받지 않는 자는 그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증거이다.

 

. 8: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예수를 비방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예수는 사마리아 사람이다(이단자라는 것과 같음)\",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다\", \"귀신이 들렸다\"고 비방하였는데 이번에는 직접 대면해 놓고 그 비방이 옳다고 했다.

 

. 8: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하나님을 바로 공경하는 자를 귀신들렸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무시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 8:50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저들은 예수님을 비방하고 무시하나 예수님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진리를 전하므로 하나님이 주님께 영광을 주실 것이요 비방하는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六. 그리스도는 아담 전부터 계심(51-59)

 

. 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앞에서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신 예수님은 그 심판을 면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신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 8:52-53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그들은 육신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한다(5절)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브라함과 선지자들과 모든 훌륭한 사람들이 다 죽었는데 네가 어떻게 영원히 죽지 않겠느냐?  네가 귀신들린 정신병자가 틀림없다.

네가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선지자보다 크냐? 하고 따져 물었다.  그들이 귀한 영생의 도리를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버렸다.

 

. 8: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예수님이 자기를 그리스도라고 하시고 내 말을 지키면 영생을 얻는다고(51) 증거하신 것은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고 참 진리를 말씀한 것이다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세우시고 말씀을 주신 분은 너희가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그 하나님이시라고 밝히 증거했다.  너희가 하나님을 참으로 섬긴다면 그가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것이고 그가 주실 말씀을 받아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 8: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 말씀을 받지 않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다.

만일 예수님이 그와 같이 말씀하면 예수님도 그들과 같이 거짓말장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날것을 허락하시고 약속하셨다(창15:5, 22:18, 갈3:16 참조).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믿어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다가 믿음으로 보고 기뻐하였다.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즐거워한 것이다.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기뻐하였다는 뜻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히11:1 참조).

 

. 8:57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믿지 않고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이상하게만 들렸다.  그래서 예수님을 비방하고 그 말씀을 반대하였다.  \"네가 나이 오십도 못되었는데 2천년 전의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인가\"하고 따졌다.

오십도 못되었는데 한 것은 실제 나이보다 넉넉히 잡아 준 것이다.

 

. 8:58  주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그리스도의 신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아브라함 전부터 계신 것이 분명하다.

 

. 8: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전 절에 예수님께서 아브라함 전부터 계셨다 하여 자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했다.  그러자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레위기24:16에 의해 돌을 들어 치려고 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셨다.

숨어 무리 가운데로 들어가서 성전을 떠났다는 뜻이다.  이리하여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시게 되었고 그들은 생명 없는 껍데기 성전만 지키고 종교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신령과 진리가 없는 교회는 다 이와 같이 껍데기만 남는 것이요(요4:23 참조), 죽은 교회이다.

 

제 9 장  소 경

 

(대  지)

一.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1-7)

二. 점암점명(漸暗漸明)(8-34)

三. 눈뜬 자가 예수님을 만남(35-41)

 

(본문 강해)

 

一.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1-7)

 

. 9: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같이 길 가실 때에 소경 한 사람을 만났다.  이 사람은 날 때부터 장성하도록 일생을 소경으로 살고 있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 9: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병은 보통 죄로 인하여 나기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사람의 소경 된 원인이 자기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 때문인지 알기 위해 질문했다.

 

.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는 그가 소경 된 것이 그 사람의 죄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하여 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에스겔18:14-18에 아버지의 죄로 아들이 죽지 않는다고 했다.  또 이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이니 자신이 죄를 범하기 전에 소경이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가르치셨다.  모든 병은 보통 죄로 인하여 난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루시려고 나는 병도 있다.  성도에게는 위의 두 가지의 병이 다 더 좋은 것을 주려고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병들었을 때 첫째는 죄를 찾아 회개해야 된다.  그 다음에는 더 좋은 것을 주려고 온 것인 줄 알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가까이 하고 말씀을 받아 더욱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 9:4-5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낮이다.  밤은 예수님이 핍박을 받아서 죽으실 때를 가리킨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가까운 것과 일할 수 없는 그때가 오기 전에 일시일각이라도 놓치지 말고 구원사업을 하여야 할 것을 가리킨다.  오늘날 우리도 일할 수 없는 환난의 밤이 오기 전에 일분 일초라도 허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사업을 해야겠다.  말세에는 대환난이 온다고 했다.  앞으로 환난의 밤이 점점 깊어지면 서로 잡아주고 미워하며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는 시대가 올 것이다(마24:10, 10:21 참조).  그때에는 성도가 일할 수 없으나 지금은 아직 일할 수 있는 때이다.  죽은 자를 살려내고 영적 소경을 눈뜨게 하며, 다른 사람의 심령을 살려 나가는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일해야 하겠다.

 

. 9:6-7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물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빛 되신 예수님께서 영적 소경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알게 하시려고 여기서 육신적으로 소경 된 자의 눈을 뜨게 하는 표적을 나타내신 것이다(39절 참조).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소경의 눈에 발랐다.  아마 예수님의 손가락으로 진흙을 이겨 발랐을 것이다(요8:6 참조).  거룩한 독생자 예수님의 침과 손가락이 소경의 몸에 접촉되었다는 것은 위대한 은혜이다.  이것은 ①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 부은바 됨이요 ② 하나님의 권고가 그에게 임한 것이요 ③ 하나님이 그에게 일하기 시작한 것이요 ④ 주님의 구원이 임한 것이다.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그의 눈이 어두운 것을 상징함이요 믿음으로 순종하여 씻어서 보게 하기 위함이다.

그 진흙으로 인하여 소경의 눈은 더 어두워졌을 것이다.

그때에 소경의 믿음이 나타났다.

① 예수님이 자기에게 옳은 진리를 말씀해준 것을 받고 감사하였을 것이다.

그는 평소에 자기가 소경 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부모의 죄인가?  내 죄로 인함인가 궁금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모의 죄나 자기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고 할 때에 그 말씀을 옳게 여겨 받으며 생각하기를 부모의 죄로 자식이 벌을 받을 리가 없고(겔18:14-18 참조), 자기는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죄 범할 시간이 없으니 예수님의 말씀이 참으로 진리인 것이 분명하다고 기뻐하였을 것이다.

② 예수님을 세상의 빛 즉 그리스도로 믿었을 것이다(5절에 예수님이 빛이라고 할 때에 믿음).

③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해 줄 것을 믿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여 소경이 되었다고 하신 말씀을(3절) 믿은 것이다.

④ 예수님이 자기를 돌봐주시고 접촉하여 주시는 것을 감사하며 구원해 줄 것을 믿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고아원 보모가 고아의 코를 한번 닦아주면 다른 아이들에게 그것을 자랑하며 크게 기뻐한다고 한다.  이는 자기를 돌봐준 것이 좋기 때문이다.

⑤ 순종한 믿음이다.

그는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다.  순종이 믿음이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며 둘째, 그 말씀을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이다(약2:22 참조).  만일 그가 믿음이 없었으면 보지도 못하는 눈에다가 더러운 침으로 진흙을 발라서 더 어둡게 하므로 멸시감과 굴욕감에 분노를 터트렸을 것이다.  또 실로암 못에까지 가서 씻으라고 하는 말에는 더욱 노하여 가지 않고 예수님께 따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겸손히 순종한 것을 보면 믿음을 쓴 것이 분명하다.

실로암 못 예루살렘 성전 남쪽 티로폐온 골짜기 입구에 있는 못으로 초막절 중 제사장이 매일 이 못에 가서 물을 떠다가 제단에 부었다고 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에서 그들과 영으로 동행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고전10:4 참조).  실로암이라는 뜻도 보내심을 입었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낼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못을 통하여 당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나타내려고 이 표적을 행했다.  그러므로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통해서 모든 영적 눈이 뜨게 되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二. 점암점명(漸暗漸明)(8-34)

 

. 9:8-9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그 소경이 눈을 뜨고 밝은 눈으로 오니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소경으로 구걸하던 자라 하는 자도 있고 아니라 그와 비슷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자도 있었다.  그때에 소경 되었던 사람이 \"내가 그로라\"하고 자신을 밝히 증거하였다.  사람이 자기 과거에 대하여 자랑할 만한 것은 밝히 드러내지만 수치스러운 일은 드러내기를 꺼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소경은 자신이 소경으로써 빌어먹던 자라고 밝히 드러내어 말했다.  자신을 밝히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자기의 부족한 것과 약한 것을 자랑할 때에 강해진다(고후12:9-10 참조).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명백히 자신을 증거하고(요1:20 참조) \"그는(그리스도)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고 밝히 말했다(요3:30 참조).  그때에 그리스도가 밝히 드러나고 자신이 지나친 대접을 받지 않았으므로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는 종이 되었다.  높임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약한 것과 죄를 숨겨두고 잘한 것만 자랑하는 자는 자신을 기만하는 자요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자이다.

 

. 9:10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그가 자신에 대해 밝히 증거하기를 나는 소경으로 있다가 눈뜬 자라고 하니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어떻게 눈이 떠졌는가를 물었다.

 

. 9: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 때에 그는 예수라 하는 사람이 진흙을 이겨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여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고 하여 눈을 뜨게 한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사실 그대로 증거했다(아직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에 대하여 첫 번째 증거한 것이다.  이 후에 점점 그리스도를 밝히 증거하게 된다(17, 18절 참조).

 

. 9:12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사람들이 많아 뒤숭숭하고 떠들썩하므로 예수님께서 그 자리를 피하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복잡한 곳은 피하신다.  그러므로 그가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알지 못하였다.

 

. 9:13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그들은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하였다는 말을 듣고도 예수님과 예수님의 행하신 표적을 믿으려하지 않고 소경 되었던 그 사람을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갔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대세주의로만 나가는 군중들이다.

 

. 9:14-15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소경의 눈을 뜨게 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은 영적 소경의 눈을 뜨게 하여 영적 안식을 주시는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의 의식면만 고집하고 영적 면은 모르는 그들에게는 크게 거리끼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매 그 사람이 진흙을 눈에 발라 씻고 보게되었다고 사실대로 증거 하였다.

 

. 9:16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바리새인들 중 혹자는 안식일 날을 지키지 않고 병자를 고치는 것을 보니 예수는 하나님께로 온 자가 아니라 하고, 혹자는 죄인이 어떻게 이런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자기네들끼리 서로 쟁론이 되었다.

 

. 9:17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저들이 소경 되었던 사람들에게 다시 묻기를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한 때에 \"선지자니이다\"하고 담대히 증거했다.  그 때에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하면 많은 핍박이 오고 고난이 왔다.  그러나 이 사람은 너무 감격하여 핍박과 고난을 초월하여 깨달아진 그대로 신앙양심을 따라 솔직하게 증거하였다.  이것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자리에 있는 신앙이다.

눈뜬 사람이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한 것은 두 번째 신앙고백이다(처음에는 예수님을 단지 사람으로만 알았음 11절).  이 사람은 이렇게 심령의 눈이 밟아지고 있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알게 하며 필요할 때는 이적 기사도 행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였다.  핍박이 무서워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증거하지 못하면 속에 있는 생명의 역사가 중단된다.  마치 새싹이 나와서 자라려고 할 때에 돌이나 가마니 같은 것으로 덮어 눌러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믿음을 쓰는 자에게는 더 주고 쓰지 않는 자에게는 있는 것도 빼앗는다(마25:29 참조).

 

. 9:18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그 명백한 사실을 부인하고 의심하는 것은 저들이 예수님을 무조건 무시하고 고의적으로 반항하여 마귀의 인도를 받는 까닭이었다.  오늘날에도 이렇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진리를 반대하는 자가 많다.

 

. 9:19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저가 어떻게 되어 보느냐

바리새인들이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물은 것은 그 소경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눈뜬 것을 무시하고 다른 구실을 찾으려고 애쓴 것을 말해준다.

 

. 9:20-21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부모가 그는 내 아들이요 소경으로 난 것도 분명하지만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니 저에게 물어보면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그 부모가 주님의 은혜에 배은망덕한 처사요 양심을 쓰지 않은 것이다.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기 아들을 고쳐 준 예수님을 기뻐 뛰며, 감사함으로 영접하여 믿고 증거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고도 일신상(一身上)의 이익을 위하여 영감의 역사와 양심을 부인하고 모른다고 한 것은 흑암과 마귀에게 잡혀있는 자요 심판날에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이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10:32-33 참조).

 

. 9:22-23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 하였더라

부모가 모른다고 한 것은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출교 당할 것을 두려워한 것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운동에 참예하는 길을 막는 마귀의 철의 장벽이다.  그것을 결의한 회의는 사단의 회였다(계2:9 참조).

 

. 9:24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줄 아노라

유대인들이 그 사람을 두 번째 불러다가 누구를 통하여 네 눈을 뜨게 되었든지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뜨게 하신 것이니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고 예수님은 죄인인줄 알고 따르지 말라고 권했다.  여기에 바리새인들의 고르반 사상(사람에게 할 것은 무시하고 하나님께만 하면 된다는 것)이 잘 나타났다(막7:10-13 참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일이요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이다.

 

. 9: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그 때에 그 사람이 정신을 바짝 차려 대답하기를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아는 것은 예수님이 내 눈을 뜨게 하여 지금 보는 것이라고 담대히 증거했다.

 

. 9:26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그들이 다시 어떻게 하여 눈이 떠졌느냐고 물었다.

 

. 9: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눈뜬 사람이 그들에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고 자꾸 묻느냐고 반문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반대하기 위해 이렇게 자꾸 묻고 있는 것이다.

 

. 9:28-29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안 그 사람을 욕하면서 자기들은 모세의 제자라고 하였다.  여기서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가 대조된 것이다.  눈뜬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욕을 받은 것이다.  그들이 모세를 참으로 믿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도 믿었을 것이다.  그들이 모세의 율법의 참된 뜻은 알지 못하고 껍데기만 알면서도 모세의 제자라고 하였다.

 

. 9: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도다

눈뜬 사람이 더욱 공기를 내어 그들을 공격하였다.  자기 눈을 뜨게 한 그리스도의 역사를 보고도 왜 부인하는가!  그것이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이 세대는 언제나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하시는 구원역사를 보고도 부인하는 세대이다.

 

. 9:3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하나님은 죄인의 기도는 듣지 아니하시고(사59:2 참조), 의를 행하는 경건한 자를 찾으시고 건져 주시는 분이시다(렘5:1, 벧전3:12 참조).

우리가 아나이다 한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라는 뜻이다.

 

. 9:32-33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사실은 창세 이후 처음 있는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되므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확실하다고 증거했다.  즉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한 것이다.  이것이 그가 세 번째 말한 신앙고백이다.  신앙 양심을 써서 옳은 것은 옳다고 담대히 증거하므로 점점 심령의 눈이 밝아졌다.  그가 눈뜨고 나서 처음에는 예수님을 사람이라고 증거했고(11절), 두 번째에는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증거했고(17절), 세 번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한 것이다(33절).  하나님께서 믿음과 착한 양심을 담대하게 따라가는 사람의 눈은 점점 밝게 하여 주시지만 양심을 쓰지 않는 사람의 눈은 점점 더 어두워져서 생명의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 9:34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그 사람을 쫓아 내보냈다.  쫓아낸 이유는 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했다는 것, ②그 사람(눈 뜬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멸시하는 심리), ③ 자기들과 백성을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유대인의 지도급에 있는 자들로서 권세와 권위를 떨치며 선생의 자리에 있는 자들인데 소경으로 빌어먹던 자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게 되자 그 자존심이 상해서 노하여 쫓아내었다.  마침내 그리스도를 바로 증거하는 자가 쫓겨나고 말았다.  어느 시대나 바로 믿는 자가 의식주자와 교권주의자에게 쫓겨나는 일이 많다(요16:2, 딤후4:16참조).  그것은 어두움이 빛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취한 처사이다.  그러나 최후에는 진리가 이긴다.

 

三. 눈뜬 자가 예수를 만남(35-41)

 

. 9:35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 사람을 쫓아냈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그가 사람에게서 쫓겨나니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그가 만일 사람에게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양심을 안 쓰고 예수님에 대해 깨달은 대로 확실히 증거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신앙양심을 써서 말씀을 밝히 증거해 나가면 비록 사람에게서는 쫓겨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니 얼마나 큰 은혜요 행복인가!  핍박을 받아 고립을 당하고 의지할 곳이 없게 되고 곤고한 가운데 있을 때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이시다.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네가 인자를 믿느냐하고 말씀해 주셨다. 그때에 그가 말로다 할 수 없는 위로와 기쁨과 생명과 소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가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더욱 밝히 알게 되었다.  눈을 뜨고 나서 예수님을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수님께서는 부요하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가난하고 핍박과 고난을 받으며 겸손하여 주만 사모하는 성도를 찾아가서 위로하고 생명과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 9:36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그는 예수님을 바로 알과 더욱 믿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바로 알고자 하는 마음)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신앙이다(마7:7-8 참조).

 

. 9: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육신의 눈으로는 보지 못했으나 영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줄 때 믿음을 가지고 영으로 예수님을 본 것이다(벧전1:8 참조).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내가 그리스도라고 눈앞에 나타나서 밝히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영으로 성경말씀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다(벧후1:17-19, 요20:29 참조).

 

. 9:38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주님을 만난 그는 감격에 넘쳐서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했다.  이 자리는 최고의 행복한 자리이다.

 

. 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예수님은 구원의 주요 심판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불쌍한 자들이 자기의 비참한 처지를 깨닫고 구원의 길을 찾으면 예수님이 당신을 믿게 하여 구원해 주시고 심령의 눈을 뜨게 해 주신다.  그러나 소경이 아니라고 하여 교만하고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인줄 알고 그것으로 비판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소경 되게 하신다.  누구든지 교만하여 선 줄로 아는 자는 벌써 넘어진 자이다.  바리새인들은 부족한 것이 없다.  배가 불러 부요한 자인 줄 알고 있기 때문에 화가 있다(눅6:24 참조).  또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실상은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수치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계3:17 참조).  겸손하여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는 천국을 주고 애통하는 자에게는 위로를 주고(마5:3-4 참조) 소경 된 줄 알고 눈뜨기를 사모하는 자에게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해주신다.

 

. 9: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일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영의 세계를 모르는 바리새인들은 신령한 눈을 뜨게 하는데 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우습게 여겨 우리도 소경인가 하고 배척하였다.  그들이 육신적인 것만 알고 그것으로 만족하며 영의 것은 부인하고, 영에 대한 진리를 멸시하고 비방하였다.

 

. 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차라리 저희가 소경이었다면 겸손히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믿고 의뢰하여 죄사함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 때문에 만족하게 여기고, 영혼이 죽은 것과 영적 소경인 것을 깨닫지 못하였고 고침을 받으려고 예수님께 간구하지도 않았으니 죄사함을 받을 길이 없어 원죄와 본죄가 그대로 있게 되었다.  죄 없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고(요일1:8, 롬3:9-11 참조), 예수 이름 외에는 죄 사함 받을 길이 없다(행4:12, 히9:22 참조).

 

 

제 10 장  목자

 

(대  지)

一. 목자와 양의 비유(1-18)

二. 목자와 양의 관계(19-21)

三. 하나님의 아들 된 증거(22-39)

四. 세례요한의 증거와 효능(40-42)

 

(본문 강해)

 

一. 목자와 양의 비유(1-18)

 

.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예수님은 내가 문(門)이라고 하였고(9절), 목자라고 하였다(11절).  양의 우리(집)도 예수님이요(16절), 문지기도 예수님이시다(3절).  양의 우리(집)는 그리스도 안(內)을 가리키고 영적 신령한 세계와 구속의 세계를 가리킨다.  양들이 거기에서 살아야 평안과 안식이 있고, 그리스도께서 보호하여 주시고, 꼴(먹을 것)을 많이 먹고 잘 자라난 수 있다.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들어가는 자는 절도요 강도라는 것이다.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어떠한 자들인가?

첫째, 양의 문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다른 것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요즈음 기독교 내에서도 기독교 이외에 다른 이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신학자가 있다.  구원의 목적은 같은데 길이 달라서 기독교는 이 길로 가고, 불교나 유교나 마호메트교는 다른 길로 가지만 결국에는 같은 목적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곧 절도요 강도이다.  왜냐하면 사도행전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구원의 문은 그리스도 한 분밖에는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 들어오는 것은 전부 절도요 강도이다.  또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 성도의 마음속에 들어온 모든 것들(물질, 사람, 명예, 영광, 기업 등)이 영적 모든 은사를 빼앗아 가는 절도요 강도이다.  또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 교회에 들어온 사람과 모든 것들이 절도요 강도이다.  이것은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자와 같다(마22:11-13 참조).

둘째, 성경이 보여 주는 구원의 길(성경의 참된 진리)을 떠나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요한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라고 하였다.  성경말씀이 곧 영생의 길이다.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는 영생이 없다.  예수께서 사십일 금식하신 후 주리실 때에 마귀가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돌로 떡덩이를 만들어 먹을 능력이 있었으나 만들어 먹지 않고 성경말씀으로(신8:3 참조) 마귀를 이겼다.  마귀가 간 다음에 예수님이 스스로 떡을 만들어 먹어도 안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허락되지 않은 것을 하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생명의 역사가 끊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얻는 물질, 사람, 직장, 학식, 명예는 전부 영적 생명의 역사와 모든 신령한 복을 빼앗아 가는 절도며 강도이다.

셋째,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절도요 강도이다.  로마서14:23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하였다.  그것들은 내게 있는 하나님의 은사와 축복을 빼앗아 가는 절도요 강도이다.

 

.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9절), 목자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문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의 문이다.  구속의 문으로 인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참된 목자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의 직무를 완성하여 구속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참된 목자가 되셨다.

 

.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문지기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양의 우리의 문을 열고 닫을 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계3:7 참조).  또 문지기는 이리나 약한 짐승이 오는 것을 막아 주고 위태한 일이 있을 때 양을 지켜 주고 보호해 준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실 뿐만 아니라(계3:8 참조) 지켜주시고 악한 자를 막아주시고 보호하여 주신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성도는 예수님의 음성을 영으로 듣고 그리스도의 영감으로 나오는 참된 진리와 신령한 도리를 영으로 분별할 줄 안다.  그래서 그 음성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고 어디든지 따라가게 된다.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이름은 인격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성도의 인격을 각각 아시고 그 이름들을 불러 인도하여 내신다.

베드로는 처음에 시몬이었으나 반석과 같은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반석)라는 이름을 주셨다(마16:18 참조).  또 아브람이 믿음으로 열국의 아비가 되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라고 하였고(창17:4-5 참조), 사울을 바울이라고 고친 것도 그의 신앙 인격을 나타낸 것이다(행13:9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양의 이름을 불러 인도하여 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인격과 신앙상태를 다 알아주시고, 인정하여 주시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시켜서 양을 인도하시며 길러 나가신다는 뜻이다.  오늘날도 주님은 우리의 신앙인격과 신앙상태를 알아주시고 위로하여 주시고 싸맬 것을 싸매 주시고 고칠 것은 고쳐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시키고 인도하시며 길러 나가신다.

 

. 10:4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예수님은 앞서 가시며 우리에게 모본을 보여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는 목자이시다(벧전2:21-23 참조).  히브리6:19-20에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휘장 안으로 앞서 들어가셨으니 양들도 휘장 안으로 예수님을 따라 들어 갈 수 있다.  휘장 안은 영적 세계를 가리킨다.  예수님이 신령한 세계로 앞서 가면서 우리를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신다.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그의 음성을 안다는 것은 성도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신령한 생명의 진리를 알고 받아 영의 양식을 삼고 따라간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이름을 불러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 큰 은혜요, 또 미련한 양들이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가게 된 것이 큰 은혜이다.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고 신령한 말씀을 분별하고 받아 영의 양식을 삼는 것을 가리킨다.  신령한 구속의 도리를 전하여 줄 때에 위안과 생명을 얻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영혼이 소생하는 것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라가는 까닭이다.

 

.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타인의 음성 예수님의 음성이 아닌 것, 신령과 진정의 도리가 아닌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은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신령한 진리의 말씀이 아닌 것은 성도의 심령에 인정이 되지 않고 위안이 없고, 생명의 양식이 되지 못하고 영혼이 소생함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말과 오묘한 학설과 철저한 이론으로 천사의 방언을 한다고 해도 영의 소리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참된 구속의 도리가 아니면 성도의 영의 귀에 들어오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그 사람에게서 도망쳐 나온다.  거기에 있으면 영이 살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 10:6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신령한 세계의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으므로 영의 귀가 열리지 못한 자들은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다.  이것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들에게는 아니 되었기 때문이다(마13:11 참조).

 

.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은 양의 우리(집)의 문이라고 하였다.  양의 우리(집)에 들어가려면 문을 통하여만 들어갈 수가 있다.  양의 우리(집)는 구속의 세계요 영의 세계이다(1절, 9절 해석 참조).

 

.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먼저 온 자 예수님보다 먼저 온 구약시대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일하였기 때문이다.  \"먼저\"는 앞섰다는 말이니 자기를 예수님과 동등으로 여기거나 예수님보다 앞세우는 자가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이다.  예수님 이후에 출생하여 주의 이름으로 일한 자들 중에도 자기를 예수님과 동등으로 여기거나, 예수님보다 앞세우는 자는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이다.  예수를 믿어도 자기를 통하여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자들은 다 이러한 자이다.

절도요 강도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다 절도요 강도이다.  저들은 겉으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을 하지만 실제는 자신을 위하고 자기 유익과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도적질한 자들이요 예수님의 양을 도적질하여 자기 양을 만든 자들이요 그들은 예수님이 받을 모든 대접을 다 도적질한 자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주와 하나님 나라의 것을 도적질하여다가 먹고 살찐 자들이다.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4절) 그러한 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  성도들은 진리를 분별하고 목자를 분별하여 그런 자를 다르지 말고 예수님만 따라가야 한다.  보수적인 교역자들 중에도 처음에 겸손할 때에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쓰시다가 교인들이 자기를 통하여 은혜를 받고 대접을 하고 따르게 되면 교만하여져서 자기를 위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고 자기를 높이는 자가 많다.  이러한 자는 벌써 절도가 되었고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다(벧전5:5 참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고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수단 방법으로, 강제로 양을 인도하려고 하다가 자기도 망하고 남도 망하게 만든다.

 

.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양의 우리(집)가 있고(16절) 그 우리에는 문이 있다.  양은 우리에 들어가야 보호를 받고 안식할 수가 있다.  양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이요, 영적 세계이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살아야 험악한 세상에서 보호를 받게 되고 위안과 안식을 얻게 된다.  그 세계에 들어가는 문도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그 외에는 문도 없고 길도 없다. 거기에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꼴은 양이 먹고사는 풀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 즉 영적 세계에 들어가면 양식이 풍부하다.  거기서 영적 양식을 배불리 먹고 새 힘을 얻는다.  그 세계에 기이 들어가면 꼴이 더욱 더 풍성하다.  시편23:2에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한 것은 그 세계의 풍성하고 만족함을 가리킨 것이다.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주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나올 때 꼴을 얻는다는 것이다.  주님이 가라고 한 곳은 어디든지 가고 주님이 시키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때에 우리 영이 신령한 양식을 먹게 되고 영의 배가 부르고 새 힘을 얻고 자라나서 강하여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세계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영적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은 첫째, 회개하여야 한다.  둘째, 세상과 자기를 부인하여야 된다.  셋째, 간절한 마음으로 그 세계를 사모하고 찾아야 한다.

우리 안에 들어갈 때에 안식을 누리게 된다.  우리에 들어가는 것은 단맛이 나고, 나가는 것은 쓴맛이 난다.  계시록10:9에 천사의 손에 펴 있는 책을 갖다 먹으니 입에서는 다나 배에서는 쓰다고 하였다.  입에서 달다는 것은 신령한 세계에 들어갈 때와 하나님의 영으로 받아먹을 때에 기쁘고 즐겁고 평안한 것을 가리킨다.  배에서 쓰다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려면 고난이 오고 힘이 들고 어려움이 온다는 뜻이다.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신령한 세계를 볼 때에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다.  이것이 우리 양의 우리에 들어가서 꼴(먹을 것)을 얻고 단 맛을 본 증거이다.  이 세계에 들어간 자는 순종하기 위하여 나가야 한다.  베드로가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거기에다가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한 것은 큰 실수이었다.  그 때 다시 나가야만 또 꼴을 얻는다.  예수님이 내게 시키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순종하여 나가야 된다.  우리가 신령한 양식을 얻지 못하는 것은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못하였기 때문이요 또 들어갔다 할지라도 순종하여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계속하여 우리 안에 들어가야 되고, 또 날마다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러 나가야 된다.  우리 안에 들어갈 때에는 전보다 좀 더 깊이 들어가야 된다.  좀 더 깊이 들어간 것만큼 영의 세계가 넓고 깊어지며 신령한 양식이 풍성해지고 그 양식을 먹고 더욱 자라난다.  좀 더 깊은 우리 안에 들어가려면 성도가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전에 깨닫지 못하던 것을 순종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의 마음에 합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어야 단단한 양식을 먹게 되고(히5:12-14 참조) 영이 점점 자라나간다.

 

.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도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요(1절 해석 참조),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니 곧 절도요 강도이다(8절 해석 참조).  이러한 자들은 성도의 신령한 은사와 인격과 자기 만들 것을 도적질하는 자요 생명의 역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이다.  양들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는 목자가 도적이다.  저들은 다 양들의 것을 도적질하여 먹고 마침내는 양들을 죽이는 자이다.  그러나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살과 피를 주어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의 특징은 1 양을 사랑하는 것이요, 2자기를 위하지 않고 양을 위하는 것이요, 3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양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요, 4 양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고 양을 먹이며 치는 것이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  오늘날 교역자들도 목자장 되시는 예수님을 본받아 이렇게 행하여 참 목자가 되어야 하겠다.

 

. 10:12-13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라

삯군 목자는 양과 예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고, 삯을 위해서 일하는 자이다.  말로는 예수님을 위하고 양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위한다.  자기를 위하니까 양을 잡아먹고, 양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양은 먹이지 아니하고 병든 자를 고치지도 아니하고 상한 자를 싸매지 아니하고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강포로 그들을 다스릴 뿐이다(겔34:2-4 참조).  이러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크다.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영으로 사는 자라야 예수님의 생명이 자기 생명이 되고 예수님의 것이 자기의 것이 된다(양도 그러하다).  그러나 삯군은 자기를 위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것이 제 것이 되지 못한다.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이리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늑탈하고 헤치는 자들이다.  삯군 목자는 양들이 핍박당하고 늑탈 당하고 해를 받아 산과 들로 유리하여도 제 것이 아니므로 마음이 아프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위험과 해가 올까봐 도망친다.  삯군 목자는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움직이고 자기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한다.  돈 많이 주는 곳으로 가고 크게 성공할 곳으로만 찾아간다.  진리와 양에 대한 애착이 없다(미3:11-12 참조).

 

.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므로 양들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도 양을 안다.  예수님과 신자는 생명의 연합이 되어 있고 서로 교통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것이 신자의 것이고, 신자의 것이 예수님의 것이다.  피차간 서로 자기 것이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간에 서로 아는 것과 같고, 나무와 그 접붙인 가지의 관계와 같다.

아는 것은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고 좀 더 깊은 영적 관계로 안다는 것이다.  영적 생리에 맞아서 자기 것으로 인정한다는 뜻이 있다.

 

.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또 우리는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우리 안에 서로 하나가 되어 서로 알고 인정해 주고 교통하는 것이 영적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사는 자가 참으로 복 있는 자이다.  우리를 이 세계에서 살게 하려고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희생하여 구속해 주셨다.

 

.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이 우리에 들어 있는 양과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에 대한 해석은

① 이 우리에 들어 있는 양은 유대인 기독 신자를 가리키고, 다른 양은 이방인 기독 신자를 가리키는데 이방인들이 장차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것을 예언한 것이다.

② \"우리\"는 그리스도 안(內)에 있는 영적 세계를 가리킨다(1절, 9절 해석 참조).  그러므로 우리에 든 양은 신령한 신자이고, 다른 양은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육에 속한 신자이다.  다른 양도 예수 믿는 성도가 분명하다.  그 이유는 양이라고 한 것과 내게(예수님께)있다고 한 것이 증명된다.  성도 중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고전3:1-3에 보면 신령한 신자와 육에 속한 신자가 있다고 하였다.  이 우리에 들어간 양은 영의 세계에 들어가서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고 신령한 길을 걸어가는 신자이다.  또 육에 속하여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믿는 신자가 있다.  이러한 신자가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이다.  아가1:5, 6:13에 보면 술람미 여자가 있고, 예루살렘 여자가 있다.  둘 다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신자이다.  술람미 여자는 영에 속한 신자인데 신랑 되실 예수님을 따라가되 후궁(침실)에까지 따라갔다.  그러나 예루살렘 여자들은 후궁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신랑 되신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가며 섬기는 성도이다.  이들은 동에 속한 성도이다.  술람미 여자가 사람이 보기에는 게달의 장막 같지만 신령한 신앙을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아름답고 찬란하다고 하였다(아가1:5 참조).  그런데 예루살렘 여자들은 술람미 여자에게 돌아오고 돌아오라고 한다.  예수님을 따라가되 자기들처럼 따라가자는 것이다.  이 우리에 들어가지 못한 양은 근심 걱정과 고통이 따라다닌다.  이 우리에 들어가야만 근심 걱정이 다 없어지고 아무 고통이 없고 기쁘고 즐겁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만족하고 충만하다.  성도는 언제나 우리 안에 들어가서 은밀한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깊은 영적 교통을 갖고 교제하며 사귀는 영적 신자가 되기를 힘써야겠다.

다른 양은 우리 안에 들지 못한 양이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가리켜 \"내게 있어\"라고 한 것을 보면 예수 믿는 성도가 분명하다.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을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며 그들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게 된다.  주의 종들도 먼저 이 우리에 들어가고 또 이 우리에 들지 않은 양도 인도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한 무리가 되어 우리에 들어 있는 양과 다른 양을 합한 큰 무리이다.  이것은 조직으로 된 것이 아니고 유기적으로 된 모든 교회이다.  그들이 다 \"한 목자\"인 예수님께 속하여 있고 예수님은 그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계속 힘쓰신다.

 

. 10: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죽음을 허락하신 것은 천부의 큰사랑이다.  순교는 사랑하는 자에게 더 좋은 생명과 상급을 주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에 있어서 자원하여 목숨을 버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였다.  예수님은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성도는 순종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내어놓으라고 하실 때에 자원하여 내어놓으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그만큼 큰 권세가 온다(딤후2:11-12 참조).  자원 순종하여 내어놓으면 하나님께서 그것보다 백 배나 더 좋은 것으로 줄뿐만 아니라 그만큼 더 큰 권세를 주신다.  또한 상급도 그만큼 더 많아진다.

이 계명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사명을 말한다.

 

二. 목자와 양의 관계(19-21)

 

. 10:19-21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혹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두 종류의 사람이 나타났다.  ① 예수님이 귀신 들려 미쳤다고 하는 사람과 ② 예수님은 귀신 들린 것이 아니다, 귀신이 어떻게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고 하는 사람이었다.  귀신은 사람에게 손해를 주고, 죽이려 하고, 망하게 하려는 자인데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선한 일을 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점점 더 예수님을 발견하고,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반면에 반대하는 사람은 점점 더 어두워져서 예수님을 오해하고 거스리고 반항하며 정죄하는 데까지 나간다.  어느 때에나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면 옳다하고 받아들이는 자와 반대하고 훼방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나타난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는 영생이요, 반대하는 자는 멸망이다.

 

三. 하나님의 아들 된 증거(22-39)

 

. 10: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수전절(수전절)은 성전을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주전 165년에 마카비 유다가 창시한 것이다.  그 유래는 수리아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방신에게 제사하고 있었으므로 마카비 유다가 궐기하여 수리아군을 격파하고 성전을 수리하여 새로운 제단에서 하나님께 제사하였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해마다 12월 중순에 8일간 지키는 절기인데 이 때에는 전 시(全市)를 등불로서 장식하고 축하하였다.

 

. 10: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행각은 지붕만 있는 각(각)인데 솔로몬 행각은 성전 동족에 있었다.

 

. 10: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유대인들이 피하지 못하도록 에워싸고 당신이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라고 하였는데 그 목적은 믿고자 함이 아니고 책잡아서 죽이려 함이었다.

 

. 10: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대중 앞에서나 성전에서 다 말씀하여 주셨고 저들은 그 말씀을 다 들었다.  또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증거하고 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은 선한 일들이다.  예를 들면 물로 포도주 만드신 일이나, 삼십 팔 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일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로 인하여 행하신 일이다.  이 일을 행하신 목적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는 것을 나타내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일이 증거하고 있다고 하시었다.  꼭 필요한 증거는 요나의 표적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이 증거야말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최고의 증거이다.

 

. 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그들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를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택한 자와 불택자, 내 양과 내 양이 아닌 자, 곡식과 가라지(마13:38), 양과 염소(마21:32-33)이다.  예수님의 양이 아닌 염소에게 아무리 좋은 꼴을 먹이고 좋은 우리에서 길러도 양이 될 수 없고, 가라지에게 아무리 좋은 비료를 주고 잘 길러도 곡식이 될 수 없다.  예수님의 양이 아닌 불택자는 끝까지 예수를 믿지 않고 지옥에 간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지는 것은 택한 백성의 증거이다.

 

.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의 양인 택한 백성은 예수를 믿고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간다.

나는 저희를 알며 예수님이 믿는 성도를 알아준다는 뜻인데 알아준다는 것은 사랑하고 돌보아 주고 위로하여 주고 먹여 주고 보호하여 준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양은 과거에 모든 유익하던 것을 다 분토와 같이 내어버리고(빌3:7-8 참조) 예수님을 단 마음으로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 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믿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었다.

영생은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을 가리키고 또 성도의 영적 생명이 계속하여 소생하며 창성하며 성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영생권을 예수께서 성도에게 주셨다.  이 생명을 받은 성도를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며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보다 크시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의 손에서 그 양을 빼앗을 수 없다.  만유보다 크신 손안에 우리가 있는데 누가 우리를 빼앗을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고 아버지가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아무도 그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지 못한다.

그러나 마귀는 택한 자일지라도 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게 한다고 하였다(마24:24 참조).  신자가 일시적 미혹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마귀가 아주 빼앗지는 못한다.  신자가 마귀의 미혹에 들어도 아버지가 절대 놓아주지 않고 매를 때리고 징계를 해서라도 깨닫게 만들고 마침내는 회개하여 미혹에서 돌아서게 만든다.  택한 백성은 하나님이 이렇게 끝까지 구원하시는 것이다.

 

.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삼위일체(三位一體)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한 분 하나님 안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있다.  아버지도 하나님이시고(요3:16, 요1:1 참조), 아들도 하나님이시고(요1:18 참조), 성령도 하나님이시다(빌2:13 참조).  아나니아가 성령을 속인 것은 하나님을 속인 것이라고 하였다(행5:3-4 참조).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자(예수님)는 요단강에 계셨고,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고, 성령님은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께 내려 오셨다.  이 삼위가 어떻게 한 분이 되시는가?  그 이유는 성경에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요10:30, 신6:4참조). 구 약에 하나님이라는 글자는 (엘로힘)인데 복수형이다.  이것은 존엄사도 되고 복수를 가리키기도 한다.  신명기6:4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한 것은 하나님들은 오직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들(성부, 성자, 성령)은 오직 하나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성자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셨다.  성령은 아버지에게서도 나오고, 아들에게서도 나온다.  또 아버지께로부터 성자가 나셨다.  이것은 항상 계속 되면서 항상 완료된 신적 역사로서 영원히 나시는 것이다.

 

. 10: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라고 하는 말을 듣고 격분하게 되었으며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고 하였다.

 

. 10: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돌을 들어 치려고 하는 그들을 향하여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일, 삼십 팔 년 된 병자를 고친 일등 여러 가지 선한 일을 하여 그리스도인 증거를 충분히 보여 주었는데 왜 믿지 않고 더욱 패역하여 돌로 치고자 하느냐 하고 책망하셨다.

 

. 10: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그들은 외부적인 선한 일 도덕적인 면은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이 예수를 정죄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종교적, 특히 교리 적인 면이었다.  교리가 반대되면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필연지사(必然之事)이다.

 

. 10:34-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율법은 ① 모세 오경을 가리킨다.  ② 광범위한 의미에서 구약 전체를 가리킨다.  여기에 인용된 성구는 시편82:6로서 재판장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재판할 때는 신적인 권위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므로 신들이라고 하였다.  신들이라고 복수로 된 것은 그러한 재판장이 여러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를 \'신\'이라고 한데 대하여 한가지 주의할 것은 오늘날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여 자기가 신이라 칭함을 받으면 멸망한다.  그 일을 자신이 했다 하여도 성령에 붙들려 하나님의 일에 이용된 것이므로 사람이 한 것이 아니고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바울이 성령에 붙들리어서 삼층천에 갔었으나 자기가 갔다고 하지 않고 그가 삼층천에 이끌려 갔다고 하였고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하였다(고후12:2 참조).  바울이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성령의 사람이 간 것이므로 자기가 간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 10: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하나님께서 성별시켜 세상에 보내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사실 그대로 말한 것이다.  이를 참람하다 하는 것은 진리를 배척하고 대적하는 것이다.

 

. 10:37-38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찌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아버지의 일은 영혼을 살리고 영의 병을 고치는 구원운동이다.  세례요한이 실족하여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리스도가 당신이오니이까\"하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라고 하시면서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전하라고 하셨다(마11:2-5).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일이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시는 일이요, 또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을 증거하는 일들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영혼이 죽은 자를 살리시고 심령의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문둥이와 같이 죄로 썩어져 가는 심령을 건져내는 일을 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육신의 병을 고쳐준 것은 그 심령의 병을 고쳐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표적으로 행한 것뿐이고 육신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 원 목적이 아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일을 행하는 것을 믿으면 내(예수)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예수)안에 계셔서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10:39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저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들의 손에서 건져주셨으므로 그들의 손에서 벗어난 것이다.

 

四. 세례요한의 증거와 효능(40-42)

 

. 10:40  다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주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요단강 저편은 베레야 지방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사는 곳인데 요한이 처음 세례 주던 곳이다.  마태19:1-20:28, 마가10:1-45의 기사는 이 곳에서 되어진 일이라고 보는 자가 많다.  예수께서 고향에서 배척을 받았으므로 이곳으로 오셔서 얼마동안 일을 하신 것이다.

 

. 10:41-42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예수께서 세례요한이 세례 주던 곳에 와서 계실 때에 세례요한의 증거를 들은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와보고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 다 참이라고 하며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하나님은 진실한 말씀을 붙들고 일하시므로 참 진리의 말씀은 반드시 승리한다.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세례요한이 아무표적도 행하지 않고 말씀만 전하였으나 그 말씀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표적은 이적으로서 신령한 사실을 나타내 보여 주기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가 지나갈 때에 먼지가 일어나는 것과 같으며 배가 지나갈 때 물결이 이는 것과 같다.  먼지나 물결보다 자동차나 배가 더 중요하다.  그와 같이 표적보다는 실재가 더 중요한 것이다.  실재를 본 사람은 표적이 필요 없다.

그러므로 외부적인 것(표적)을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하였다(요20:29 참조).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은 내용은 잘 모르면서도 표적만 보고 따라간다.  그러므로 도중에 넘어지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리는 실재이기 때문에 그 진리만 믿고 따라가면 반석 위에 선 집과 같아서 굳건한 신앙이 된다.  표적은 또한 거짓 선지자나 마귀도 행할 수 있다(마7:22, 24:24, 신13:1 참조).

그러므로 표적을 따라가면 미혹 받기 쉽다.  성도들을 통해서도 병을 고치는 표적이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이 큰 것이 아니다.  진리를 증거하여 듣는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 얻는 일 즉 영을 살려내는 이 일이 큰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진리에 서고 진리를 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유년부 학생들에게도 참된 진리만 말해주어야 한다.  시청각 교육이라고 하여 환등이나 영화 같은 것을 보여 주면 안 된다.  그림은 인식이 빨리 되고 지식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만 영적 세계에 들어가는데 큰 장벽이 되기 때문에 참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놓은 것이 된다.  그러므로 영적 세계에 들어가는데는 큰 방해물이 된다.

 

제 11 장  나사로

 

(대  지)

一. 나사로가 죽음(1-16)

二. 예수께서 나사로 죽은 곳에 가심(17-37)

三. 예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38-44)

四. 나사로 살린 결과(45-57)

 

(본문 강해)

 

一. 나사로가 죽음(1-16)

 

. 11:1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남쪽으로 약3.2km 지점에 있는 마을로서 요한 1:28에의 베다니와는 별개의 마을이다.

이 마을에 예수님을 믿는 한 가정이 있었는데 그 식구는 연령순으로 보면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이었다(5절 참조).

 

.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이 마리아는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씻기던 마리아이다.  이 기름 부은 사실은 12:1이하에 기록되어 있는데 11장에 미리 기록한 것은 본서를 기록할 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마태26:1-13과 마가14:3-9의 기사와는 동일 사건이고 누가7:36이하의 사건은 별개 사건이다.  그 남동생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

 

.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그 누이들이 사람을 보내어 나사로가 병든 것을 보고하였다.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는 예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나사로가 병든 것을 벌써 아시고 그 원인과 어떻게 될 것을 알고 계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벌써 우리의 상태를 다 알고 계신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사람의 병중에 죽지 않을 병도 있고 죽을병도 있다.  죽을병은 백약이 무효이고 아무리 기도하여도 낫지 않는다.  자기가 기도해 주면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나사로의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었다.  우리의 병든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죄로 인하여 병든 것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병든 것도 있고, 또 더욱 더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병든 것도 있다.

어떤 사람은 모든 병이 마귀 때문에 들린다고 하여 마귀만 쫓아내면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주장하며 자기에게 오면 마귀를 쫓아내 준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병은 전부 죄 때문에 오고 가난도 죄 때문에 온다고 하면서 죄를 회개하고 성령을 받으면 모든 병이 다 낫고 모두 부자 되고 성공한다고 한다.  이것도 성경에 맞지 않는 잘못된 말이다.  죄 때문에 병드는 수가 많이 있다.  그러나 병이 다 죄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도 오고,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하여 연단으로 주시기도 한다.  욥의 병든 것은 죄로 인하여 온 것이 아니고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하여 온 것이다.  가난한 것도 죄 때문이 아니다.  가난해야 그 사람이 믿음을 잘 지킬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가난하게 하시고, 또 부요한 중에서 하나님을 잘 공경할 사람이면 부요하게도 해 주신다.  이 모든 섭리가 믿는 일을 잘하게 하고 하나님을 잘 공경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나사로의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시게 하기 위함이었다.  성도가 병드는 것도 구원운동을 위하여 필요하게 이용하신다.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구원운동에 유익 되게 하시려고 건강과 부요함도 주시고 또 질병과 궁핍을 주실 때도 있다.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는 거지요 몸이 헌데를 앓아 개가 핥는 고통을 당하였지만 그가 믿음을 지켰으므로 하늘나라에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눅16:19 이하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적 구원이 잘 되게 하기 위하여 육신적으로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풍부하게도 하시며 환난과 고난, 평안과 기쁨, 약함과 건강과 모든 환경을 주시는 것이다.  성도는 이 모든 환경에서 늘 감사를 배우는 신앙을 가져야겠다.

 

. 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의 믿음을 보시고 사랑하셨다.  이것은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고 거룩한 아가페 사랑이었다.  누구나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자는 그의 사랑을 받는다.

 

.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예수께서 나사로가 병든 소식을 듣고 왜 즉시 가서 고쳐 주시지 않고 그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셨는가?  이는 나사로가 죽어서 장사를 지낸 다음 나사로를 살려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것이 다 진(盡)해져서 소망이 다 끊어지고 가망이 없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를 살려내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함이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즉시로 주시는 것도 있고 또 오랫동안 응답이 없다가 일이 다 틀어져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가망이 없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 주시는 때도 있다.

 

. 11:7-8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그 때 예수님이 계시던 곳은 요단강 동쪽 베레아 지방이었다(10:40 참조).  거기에서 베다니로 가자고 아니하시고 유대로 다시 가자고 하신 것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려 하는 자들이 유대에 가득 차 있으나 나사로를 다시 살려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당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다시 한 번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 때에 제자들이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하였는데 왜 또 그곳에 가려고 하시느냐고 질문하였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그곳에 가면 죽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 11:9-1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그 당시 하루는 밤 열 두시 낮 열 두시 합하여 스물 네 시간이었다.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아직도 낮이 다 지나가지 않고 빛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낮에 다니면 그 빛으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는 빛이 없으므로 실족하게 된다.  그와 같이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있어 일하는 동안은 낮이므로 실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낮에 다니면 낮은 하나님께서 일하게 하신 기간이요, 다닌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걸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이 때(낮)에는 하나님이 만능으로 보호하시고 붙들어 주셔서 그 일을 시키고 원수들을 막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족하거나 넘어지지 아니한다.

은 그 낮이 다 지나간 때요 하나님의 명령이 없이 걸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밤에 다니면 실족한다.  누가22:53에는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이 일할 때가 다 지나갔고 십자가에 못 박힐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오늘날은 지는 해 비낀 볕과 같은 낮이다.  이렇게 빛이 있을 동안에 힘써 일을 하여야 되겠다.  이기주의나 안일주의에 빠지거나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명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황급히 주의 일을 하여야겠다.

밤이 오면 일할 수 없다.  그 때에는 어두움의 세력이 세계를 뒤덮고 흑암 속에 다 들어간다.  그 때에는 전 세계 기독교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때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실족하여 넘어진다.  그 전에 우리가 빨리 나가서 이 복음을 전하여야 되겠다.

 

.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님은 나사로 죽은 것을 잠들었다고 하였다.  성도의 죽은 것을 잠들었다고 한 뜻은 ① 생명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그냥 있기 때문이다.  잠든 사람은 생명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현상 세계에서 꿈의 세계로 바꾸어진 것뿐이다.  그와 같이 성도가 죽어도 영적 생명은 그냥 있다.  사람의 죽음은 명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영과 육이 갈라지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는 믿을 때에 중생하여 영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으므로 육신은 죽어도 그 살아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육신이 죽을 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가서 사는 것뿐이다(빌1:21-23 참조).  ② 잠든 자는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깨어나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이 죽으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다시 부활하게 되겠기 때문에 잔다고 한 것이다.  나사로가 죽은 것도 예수님이 가셔서 다시 살려 주실 것이므로 잠들었다고 한 것이다.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러 가신다는 말씀이다.

 

. 11:12-13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 지라

제자들은 영적 생명과 부활에 대하여 아직 알지 못하므로 육신적으로만 생각하고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라고 하였다.  병자가 잠들면 병이 낫는 증거이다.

 

. 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깊은 신령한 도리를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고 밝히 가르쳐 주었다.

 

.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예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거기에 계셨더면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그냥 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거기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나사로가 죽어서 장사 지내게 되었고 가셔서 그를 부활시켜서 제자들과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겠으므로 기뻐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하게 된 것이다.

 

. 11: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유다로 가자고 하는데 도마는 죽으러 가자고 하였다.  마가10:32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제자들은 다 두려워하였으나 예수님은 앞서서 가셨다고 하였다.  그 때에는 예수님을 잡아죽이려는 살벌한 공기가 예루살렘에 가득하여 가면 죽을 것이 분명하였다.

제자인 도마로서는 예수님이 가시는데 안 따라갈 수 없어서 우리도 같이 가서 죽자고 각오하고 나선 것이다.  예수님은 살리는 역사를 보이시려고 일하러 가시는데 도마는 육신의 죽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며 따라가자고 한 것이다.

 

二. 예수께서 나사로 죽은 곳에 가심(17-37)

 

.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에서 예수님이 계시던 베레야까지는 하룻길이므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예수님께 오는데 하루 걸리고, 예수님이 그 소식을 듣고 이틀을 더 유하시고(6절) 베다니에 오시는데 하루 걸렸으므로 전부 4일이 걸린 것이다.  나사로는 사자(使者)가 떠난 후에 즉시 죽은 것이 분명하다.

 

. 11: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리쯤 되매

한 오리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까지는 3.2km의 거리라고 한다.

 

. 11: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많은 사람들이 위문하러 온 것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평소에 많은 사람에게 덕을 세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 11:20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여기에서 빨리 나가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활동적인 마르다와 가만히 앉아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마음으로 맞이하는 마리아의 성격상 차이가 나타났다.  빨리 나가서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도 잘 한 것이지만 마리아와 같이 앉아서 예수님이 오실 것을 고대하고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고 사모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예수님과 더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고 예수님의 신령한 은혜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그곳에 같이 계셨다면 나사로 병을 고쳐 주셨을 것을 믿었다.

 

. 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은 믿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께 구하면 무슨 좋은 것을 주실 줄 믿은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마7:11 참조).

 

. 11:23-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을 말씀하여 주셨다.  그 때에 마르다는 당장에 다시 살 것은 믿지 못하고 전에 예수님께 들었던 말씀이 생각나서 마지막 날 부활할 때에는 다시 살 줄을 아나이다 라고 하였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그때로 다 믿는 신앙이었다.  성도는 배운 대로 알게 되고 배운 대로 믿게 된다.  그러므로 배울 때 바로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배운 정도만큼 알 수 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서 100% 다 믿는다고 하여도 배우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것은 믿을 수 없다.  일 계단의 진리를 배운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 계단까지 도달하고 그 정도밖에는 신앙이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이 계단, 삼 계단의 진리를 배운 사람은 그것까지 믿을 수 있고 거기까지 자라날수 있다.  그러므로 진리를 바로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다음으로 많이 배우고 깊이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할 것까지 배웠기 때문에 그 정도의 신앙에 머물고 있다.  이것이 초보적인 신앙이다(히6:1-2 참조).

 

.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 때에 예수님은 좀 더 깊은 진리, 좀 더 고상한 진리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므로 자신도 부활하고, 자신(예수님)을 믿고 죽은 성도도 부활시킨다는 것이요 또 영적 생명이시므로 영원히 죽지 않으시고, 믿는 성도도 그 영적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게 하여 주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그 부활과 생명의 권세를 가지시고 죽은 영혼을 살려내어 믿게 하시고 믿는 자의 영혼을 새 생명으로 날마다 살려 나가신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예수를 믿는 자는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산다는 뜻이다.  믿는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중생하였기 때문에 산 영혼이요,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받았다(요5:24, 벧전1:23 참조). 또 에베소2:5-6에 믿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고 하였다.  신자가 육신의 목숨이 죽는다고 하여도 그 영혼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자가 죽을 때에 \"나는 죽어도 산다\",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큰 소리로 증언을 하여야 한다.

 

.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살아서 나를 믿는 자 영혼이 살아서 믿는 자이다.  영혼이 살았다는 것은 중생한 것을 말한다.  중생하지 못한 자의 영혼은 하나님과 구주를 알 수 없고 믿을 수도 없다.  이것은 마치 죽은 자가 자기 부모 형제를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다 영혼이 산 자이다.  한번 중생하여 산영은 다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  산 영혼이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 그 영혼이 소생하여 자라난다(벧전2:1-2 참조).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지막 날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한(24절) 마르다에게 현재의 부활과 현재 죽지 않는 생명을 소유한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깊은 영적 도리요 하나님의 비밀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이므로 언제나 살려내고, 자신이 생명이시므로 믿는 자에게는 그 생명을 다 주시는 것이다.  또 계속하여 새 생명길로 인도해 주시며 생명을 더욱 더 주신다.  이 생명의 세계에서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를 날마다 따라가는 사람은 육신의 죽음도 생명으로 통과되어 죽음이 생명에게 삼키운 바 될 것이요 더 큰 생명으로 발전되어 나갈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영적 생명의 역사에 육신의 생명까지 이용당하고 희생되기를 원하였다(고후5:4 참조).

 

. 11:27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는 가르쳐 주신 진리를 즉시로 믿었다.  이러한 신자는 옥토에 뿌린 씨와 같아서 무럭무럭 자라나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게 된다.  신자는 부지런히 배워야 되고, 배우는 대로 즉시 그대로 믿고 순종하며 그 세계에 도달하려고 노력하여야 자라나고 결실한다.

 

. 11: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마르다는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서 선생님이 너를 부르신다고 하였다.

 

. 11:29-30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의 맞던 곳에 그저 계시더라

마리아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고대하던 차에 예수님이 부르신다 하므로 급히 일어나 예수님이 계신 동구 밖으로 나갔다.  예수님이 마르다와 같이 집에 들어가시지 않고 왜 마리아를 불러 내셨을까?  집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많고 뒤숭숭하고 복잡할 것이므로 조용하게 말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복잡한 곳은 피하신다.

 

. 11: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의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께로 가는데 마리아를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무덤에 곡하러 가는 줄로 알고 따라갔다.  마리아는 신앙 중심이요 그들은 육신 중심이었다.

 

.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마리아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린 것은 그 마음에 비통함이 있는 증거요 예수님을 지극히 존경하고 의뢰하는 까닭이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고 한 것은 마리아가 평소에 주님의 사랑과 만능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 11: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다.  이는 부활이요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와 계시는데 그들이 이 영적 생명을 알지 못하고 육신적으로만 생각하여 생명(나사로의 생명)이 없다고 울고 있으므로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신 것이다.

 

. 11: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무덤을 찾아갔다.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죽음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성경에 예수님의 우신 것이 세 번 기록되었다.  ①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탄식하시면서 우셨다(눅19:41 참조).  ②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히 5:7).  ③ 본문에 있는 대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여기서 예수님이 우신 것은 나사로의 죽음을 위함도 아니요, 우는 그들을 동정하기 위함도 아니다.  조금 후에 살리실 것인데 이로 인하여 우실 리가 없다.  예수님이 여기에서 왜 우셨을까?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그들 가운데 와서 계시는데 마리아와 우는 그들은 생명이 없다고(나사로의 생명) 울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우는 그들이 너무 가련하고 불쌍하여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그들이 무지몽매(무지몽매)하여 믿음이 없고 참 생명(예수님)을 너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나사로가 불쌍해서 울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불쌍하여 우셨다.

그들은 생명이 없다고(나사로의 생명) 울었지만 예수님은 나사로의 생명이 없어지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데(예수님의 생명임) 그 생명을 알지 못하고 울고 있는 그들을 위하여 우신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의 세계를 환하게 눈에 보고 계시는데 그 사람들은 캄캄하여 도무지 알지 못하고 육신적으로만 생각하여 생명이 없다고 슬퍼서 울고 있는 상태는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본 절은 신구약 성경 중 가장 짧은 절이다(원문에 석자로 되어 있음).

 

. 11: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생명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사랑한 까닭에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줄로만  알았다.

 

. 11: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그 유대인들이 전에 예수님이 병 고치신 것을 보았으므로 예수님이 이곳에 계셨다면 나사로의 병도 고쳐 주었을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들은 언제나 육신 중심이었다.

 

三. 예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38-44)

 

. 11: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그 사람들이 영적 생명의 세계를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것을 다시 통분히 여기시고 무덤에 가셨다.  나사로의 무덤은 굴인데 돌로 막아 놓았다.

 

. 11:39-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예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다.  그 때에 마르다가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한 것은 돌을 옮겨 놓아도 죽은지가 나흘이나 되어 시체 썩은 냄새만 나며 도리어 더 비참한 것만 드러나겠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다.

믿으면 믿음이란 순종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받아들이고 다음에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고(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행하여야(순종하여야) 온전한 믿음이 된다(약2:22 참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순종할 때에 인간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보게 해 주시는 것이다.

말씀을 순종만 하면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게 하셨고(민17:8), 홍해를 육지 같이 되게 하시며, 하늘에서 양식을 눈 같이 내리시며,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신다.  이사야56:3 이하에 보면 고자(성적 불구자)와 마른나무 같은 자라도 믿음으로 순종하면 소망이 있고 자녀보다 더 나은 것과 아름다운 이름(영광)을 주신다고 하였다.  나사로가 죽어 장사 지낸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고 소망이 없다고 할지라도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씀이다.  죽은지 사십 일이나 사백 일이 되었다고 하여도 주의 명령을 순종만 하면 살아나서 영광을 볼 것이다.

이와 같이 무슨 일이 다 틀어져 열길 스무 길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하여도 믿으면(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에 빠져서 이중 삼중 얽혀 매여 다시 나올 수 없는 상태에 처하였다고 해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건져 주시고 영광을 보게 해 주신다.

 

. 11:41-42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순종하여 돌을 옮겨 놓았다.  그 때에 예수님이 감사하며 기도하였다.  주님이 감사한 이유는 ①아버지께서 항상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과 ② 이 일을 행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겠기 때문이었다.

 

. 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예수께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시니 죽었던 나사로가 벌떡 일어서서 걸어 나왔다.  에스겔37:1-10에 보면 죽은지 오래되어 뼈만 남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뼈들이 서로 들어맞아 연락되고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이게 하고 또 생기를 넣어서 살려 내셨다.  주의 말씀은 만능이시다.  주님이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나오라\"고 하였다면 창세 이후로 죽은 자가 다 살아 나올 뻔하였다.  그 때에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였기 때문에 나사로만 나온 것이다.  주님이 \"아담아 나오너라\"하고 부르시면 사천 년 전에 죽은 아담도 벌떡 일어나서 나을 수 있다.  주의 말씀은 죽은 생명을 살려 내기도 하고 새 창조하기도 하고, 사망의 강물도 소생시켜 생명강이 되게도 하시고 마른땅에 생물도 나게 만드시며, 죽은 나무에 꽃도 피게 하시는 능력이 있다.  나사로를 살려내신 목적은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알게 하고 믿게 하려는데 있다.

 

. 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나사로를 죽은 가운데서 살려 내었는데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얼굴은 수건에 싸인 채로 나왔다.  이제는 얼굴을 풀어놓고 수족도 풀어놓아 자유 활동을 하게 하라는 것이다.  살아난 자는 죽은 상태에서 얽매었던 모든 것을 풀어서 제거하여야 한다.  예수를 믿고 영혼이 살아난 자는 예수 믿기 전에 죽은 영혼으로 살 때 얽매였던 모든 것, 장애물과 환경, 분위기, 모든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다 제거하여 자유스럽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이 살아났는데도 전에 얽매었던 것들 때문에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써서 걸어가지 못한다고 하면 죽은 신앙이 되고 만다(약2:26 참조).

 

四. 나사로 살린 결과(45-57)

 

. 11:45-46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나사로가 살아난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으나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고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고하여 예수님을 더욱 핍박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 때 언제나 이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 11: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았다.  이 공회는 산헤드린이라고 칭하는 칠십인 공회로서 유대인들의 최고의 회이다(국회와 유사함).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소집한다.  이때에 이 공회가 모인 목적은 예수가 그리스도인가 아닌가 또는 예수님의 말이 진리인가 아닌가를 알아보기 위함이 아니고 예수를 어떻게 처치해야 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 11:48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저들은 백성들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여부를 생각지 않고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권세와 권위를 빼앗기지 않고 유지하려는데 만 급급해 있었다.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큰 무리가 예수를 따라가면 로마 정부에서 내란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인정하여 군대를 파견해 칠십인 공회에 부여한 권세를 빼앗길 염려가 생겨 이 말을 한 것이다.  그들은 진리 문제와 구원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자기네들의 권세 유지에만 급급한 것이다.  언제나 타락된 종교가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이와 같다.

 

. 11:49-50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가야바는 유대와 마지막 대제사장으로 예수를 죽이는데 주동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예수를 그냥 두면 로마인들이 와서 멸망시킬 것이니까 예수 한 사람을 죽여서라도 온 민족이 망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이다.

 

. 11:51-52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가야바는 예수 죽일 목적으로 그 말(50절의 말)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 말을 전용(轉用)하기 위해서 시킨 것이다.

즉 예수께서 그 민족(택한 백성)을 위하여 죽으실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시킨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실 것에 대한 예언으로 이용한 것이다.  가야바가 자기는 다른 목적으로 말했지만 그 말은 하나님의 목적에 이용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귀의 소리나 닭의 소리를 이용한 것과 같다.

 

. 11:53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가야바의 말을 듣고 예수를 죽이는 것이 온 백성이 망하지 않는 길이라고 합의한 그들은 그 날부터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한 것이다.

 

. 11: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여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유하시니라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죽이기로 결안하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이나 유다에서 전도할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광야 한적한 곳에 가서 십자가 질 때를 고요히 준비하고 기다리며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에브라임 어느 곳인지 지금은 잘 알 수 없다.  혹자는 예루살렘 동북 20리 지점이라고도 하고(흑기) 또는 예루살렘북쪽 16마일, 벧엘에서 40마일이라고 한다(이상근).

 

. 11: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유대인들이 양을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미리부터 올라와서 자기 몸을 성결케 하였다.  그러나 참 유월절 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배척하였다.  의식주의자들은 언제나 의식에만 치중하고 참 진리는 배척하는 것이다.

 

. 11:56-57  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바리새인이 예수를 잡으려고 하므로(57절) 호기심에 끌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다. 시골에서 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제 12 장  상 경

 

(대  지)

一. 마리아의 기름부음(1-11)

二. 나귀 타고 입성하심(12-19)

三. 인자의 죽음과 영광(20-33)

四. 빛 가운데 행할 것(34-36)

五. 유대인들의 불신(37-41)

六. 관원들의 신앙상태 (42-43)

七. 말씀의 심판과 영생(44-50)

 

(본문 강해)

 

一. 마리아의 기름부음(1-11)

 

. 12:1-2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라는 동네에 들어 가셨다.  그곳에는 나사로가 살고 있었으며 이 나사로는 죽어서 무덤에 장사된 것을 예수님이 살려낸 사람이다.  예수님을 위하여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마26:6, 막14:3 참조),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때에 마르다는 음식 준비하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방안에 앉아 있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 것이 밝히 증거되고 예수님께 큰 영광이 돌아갔다.

 

.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부어 드렸다.

나드 한 근 나드는 인도산 식물로서 거기에서 짜낸 향유는 최고급 향유이었고 한 근의 값은 삼백 데나리온에 해당되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장정이 하루 일한 고가(하루품삯)이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고 하였으나 마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하였다(마26:7).  마태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기 시작한 때를 표준해서 기록하였고, 요한은 그 기름이 예수님의 발에 흘러 내려서 마리아가 자기의 머리털로 닦은 때를 표준하여 기록한 것이다.  본사건과 마26:6-13, 막14:3-9의 사건은 동일한 사건이다.  마리아가 이렇게 값비싼 나드 향유 한 근을 사서 바친 것은 그녀가 예수님께 모든 정성과 모든 물질을 아낌없이 바쳐 드리는 신앙의 열매이었다.  예수님이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죽게 되리라는 것을 제자들이 알았다(요11:16,57 참조).  마리아도 그것을 알고 예수님께 무엇을 바쳐야만 합당하겠는가를 많이 기도하면서 생각하였을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예수님께는 돈이나 음식이나 옷보다 장사(장사)를 위해 향유가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제일 좋은 향유를 바쳐 드린 것이고,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죽음이 향기로운 것과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향유를 부어 드리는 것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서 발에까지 흘러내리도록 한 것은 시체에 바르듯이 예수님의 전신에 부어 드리는 것이 합당한 것으로 깨달은 것이다.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여자의 머리털은 여자에게 있어서 그의 영광이다(고전11:15 참조).  그러므로 마리아는 자기의 귀하고 영광 되는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렸다.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신앙의 향기가 하늘 나라에 가득한 것이고, 또한 후대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가득하게 된 것이다.

 

. 12:4-5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비싼 향유를 부어 드렸을 때에 가룟 유다가 제일 먼저 불평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그 불평에 합세하여 분(忿)해 하였다(마26:8 참조).  가룟 유다가 표면적으로는 가난한 자의 구제를 내세워 불평했으나 이면으로는 자기가 그 돈의 얼마를 훔치고자 하는 탐욕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제를 위해 돈을 맡기면 돈궤를 맡고 있는 가룟 유다가 그 돈을 훔쳐 가곤 했다(6절).  가룟 유다가 불평을 시작하자 다른 제자들도 거기에 선동되어 그 돈으로 많은 사람을 구제하지 않고 왜 많은 돈을 허비하느냐고 분히 여긴 것이다(마26:8).  제자들이 마리아의 행위를 분히 여겼다고 했으나 사실은 예수님께 대한 불평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마리아의 하는 일을 말리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좋게 여기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불평한 것은 그들의 신앙이 마리아의 신앙과 다르고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한데 기인한 것이다.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을 크게 여기고 기독교 사회 사업에만 치우친 신앙이요, 마리아는 영적 구속 사업에 중점을 둔 신령한 신앙이다. 신령한 신앙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구속에 중점을 둔 신앙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그의 구속사업을 위해 모든 것(생명까지도)을 쏟아 부어도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런 신앙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예수님도 기뻐하신다.  그러나 기독교 사업주의로만 치우쳐 나가는 신자들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허비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불평한다.  오늘날 기독교 사업주의와 해방 신학 사상이 일어나 사회를 빈곤과 모든 억압하는 세력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투쟁하는데 기독교가 앞장서야 된다고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기독교는 인간의 영혼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해방시키는 도(道)이며 결코 사회를 구원하는 운동이 아니다.

 

.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홈쳐 감이러라

가룟 유다는 열 두 제자 중에 똑똑한 사람으로 회계(會計)를 맡아 일하였으나 가끔 그 돈을 훔쳐갔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지 않은 것이다.

양심을 쓰지 않고 욕심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비참하게 망하였다.

 

. 12: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제자들이 마리아의 하는 일을 불평했으나 예수님은 마리아가 하는 일을 귀하고 좋은 일로 여기셔서 저가 네게 좋은 일을 했다(마26:10)고 칭찬하셨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구속을 위해서 죽으실 것을 바로 깨달았으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실 것은 알았으나 그가 이루실 구속에 대한 것은 깨닫지 못했다.  성도가 진리를 바로 깨달아야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있다.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예수님의 탄생을 위해서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합당한 예물이요,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서는 향유가 가장 합당한 예물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구속의 죽음을 바로 깨달아 거기에 합당한 예물로 값진 향유를 바쳐 드렸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두게 하라고 하신 것이다.  또 천하의 어디에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의 일을 말하여 기념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26:13).

 

.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가난한 사람은 이 세상에 항상 있으므로 구제할 기회가 있다.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 바쳐 드리고 충성할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 그 기회가 지나가면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바쳐 드릴 기회가 주어질 때에 모든 정성을 다하여 바쳐야 한다.

 

. 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나사로를 만나 보려고 찾아 왔다.

 

. 12:10-11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보고 제사장들이 더욱 시기하고 더욱 악하여 져서 예수님도 죽이고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이는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예수를 믿기 때문에 자기들의 종교적 권세가 떨어질까 염려한 까닭이다.  그들은 양심을 쓰지 않고, 진리를 사모하지 않고, 명예와 권세욕에 사로잡혀 눈이 점점 어두워지고 마음이 극도로 악해져서 사람을 잡아죽이는 일까지 거침없이 행하려는 자리에 빠졌다.

 

二. 나귀 타고 입성하심(12-19)

 

. 12:12-13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님께서는 원수가 가득 찬 예루살렘 성으로 유유히 입성하셨다.  명절(유월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말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하며 영접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는 메시야에 대한 찬송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주님을 찬송하며 영접하였다.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의 상징이죠 호산나는 히브리말 호쉬안나( )의 음역(音譯)으로 \"도와주소서\"라는 뜻이다.  마태21:8에는 무리가 겉옷을 길에 펴서 깔았는데 이것도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는 태도이다(왕하9:13 참조).

 

. 12:14-15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함과 같더라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왕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다.  예수님은 영적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다.  예수님께서 말을 타지 않고 나귀를 타신 것은 ① 겸손을 나타낸 것이다(마21:5 참조).  나귀는 겸손의 상징이라고 한다.  나귀는 타고 다니는 짐승 중에 키가 작고, 귀만 크고 배가 뚱뚱하며 다리가 짧아 볼품이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한 마디만 하시면 얼마든지 크고 좋은 말(마)을 타고 광채가 나게 입성하실 수 있으나 외부적으로는 모양과 광채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귀를 타시고 가셨다.  예수님은 영적 왕이요 진리의 왕이시므로 외부적으로 광채가 나거나 화려하게 한 것이 아니다.  교회도 외부적으로는 모양과 광채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예배당을 너무 화려하게 짓지 않는 것이 좋고, 교회행사도 외부적으로 굉장한 표어를 내걸고 장엄한 의식으로 하지 않아야 된다.  외부적으로는 별로 볼 것 없고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내적 생명의 역사와 진리가 풍성한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②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짐승으로 예수님이 평화의 왕이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③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다(15절).  스가랴 9:9에도 그리스도가 왕으로서 나귀를 타고 오신다고 했다.  ④ 마태21:5에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라고 했다.  멍에 멘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멍에를 메고 가실 것을 상징하는 뜻이 있다.

우리도 겸손히 예수님이 메신 순종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 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인 줄 생각났더라

예수께서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뜻을 그 당시에는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으나 영광을 얻으신 후(부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진리의 말씀을 보고 들어 두면 깨달을 날이 온다.

 

. 12:17-18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거한지라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만나는 사람에게 그 사실을 들어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증거하였으므로 그들의 증거가 더욱 힘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 표적의 증거를 들은 많은 무리가 예수를 영접하였다.

 

. 12: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찌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 도다 하니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의 구원운동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을 자인하였다.  온 세상이 저를 좇는 도다 전세계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예수를 좇는다는 뜻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좇아간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절대로 사람이 막거나 중단시키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것을 다 이용해서 하나님의 일이 더 잘 되도록 하시고 방해하는 자는 심판하신다.

 

三. 인자의 죽음과 영광(20-33)

 

. 12: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명절은 유월절이다.  헬라인이 유대인의 명절에 예배하려고 온 것을 보면 그들이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인 것 같다.

 

. 12:21-22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헬라인들이 빌립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뵙게 해달라고 청한 것은 그들이 빌립의 고향인 갈릴리 벳세다 부근에서 온 때문인 것 같다.  또 빌립의 이름이 헬라식으로 되었으므로 더욱 친근해지기 쉬웠을 것이다.  빌립은 그 사실을 안드레에게 말하여 그와 같이 예수님께 나아가 그 사실을 말씀 드렸다.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한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예루살렘에 와 보니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험악한 분위기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아끼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망명시키고자 한 것 같다.  그 증거는 예수님이 그들을 만나주지 않은 것과 다음절에 예수님의 답변에서 잘 드러나 있다.

 

. 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예수님은 헬라인들이 만나고자 하는 목적 즉 죽음을 피하여 망명시키고자 하는 것을 아시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했다.  이 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을 때를 가리킨다(7:30, 39, 8:20, 12:16).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왜 하나님 앞에 영광을 얻는 것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구원 계획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 일이다.  또한 예수님이 순종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므로 아버지께서도 예수님을 영화롭게 해주신다(요13:32 참조).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자신이 영광을 얻는 일이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은 부활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구속받은 많은 성도가 예수님을 주라 칭하여 영광을 돌릴 것이다.

그리하여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 성도들도 십자가가 올 때에 그 다음에 오는 영광을 바라보고 그 십자가를 단 마음으로 지고 나가야 하겠다.  순교란 지극히 작은 것(목숨)을 하나 투자하고 지극히 큰 것(영적 생명과 상급)을 얻는 것이다.  동전 한 푼 투자하고 몇 백 억 짜리를 얻는 것과 같다.  아무래도 한번 죽을 목숨인데 주를 위해 순교 당하면 가장 큰복이다.

 

.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번식을 못하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것은 예수님 한 분이 희생하여 죽으시므로 많은 생명들이 살아날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과 같이 죽었으므로 오늘날 수십 억 되는 많은 생명들이 살아 나온 것이다.  이것은 만고 불변의 철칙이다.  우리 성도들도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이 되어 순교 당하면 그 순교의 자리에서 많은 생명들이 살아난다.  그런고로 순교자의 피는 절대로 헛된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토마스 목사가 한국에 복음 전도를 위해 선교사로 왔다가 복음 전도도 못하고 죽었으나 그로 인해 오늘날 한국에 많은 열매가 맺혔다.  그 순교 실화를 전해 듣는 사람마다 속에서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새로운 결심과 용기가 나온다.  스데반이 순교 당할 때는 그의 죽음이 값없이 죽는 죽음 같았으나 그 피가 스데반을 죽일 때 옷을 지켜준 사울 속에도 크게 감동과 가책을 주었다.  그가 사단의 사자로 일할 때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 것 같았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돌이킴을 받았을 때 스데반 죽인 것에 대해서 크게 회개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 핍박자라고 자신을 늘 반성하게 했다(딤전1:13).

 

.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육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영적 생명을 잃게 된다.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이 세상에서 육신의 생명을 내놓으면 영적 생명을 보존한다.  육신의 생명과 영의 생명을 바꿔 가지는 것이다.  자기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은 육신의 소욕 대로 사는 생명, 즉 말씀을 어기고 사는 생명을 미워하여야만 말씀을 지켜서 영적 생명이 살 수 있다는 뜻도 있다.

 

.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님을 잘 섬기고 예수님을 잘 따라가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귀히 여겨서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

 

. 12:27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왜 민망하다고 말하였을까?  예수님은 만대 만민의 택한 백성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그 고난을 한꺼번에 다 받아야 된다.  그러므로 그 고난과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크다.  그 고난을 승리적으로 통과하느냐 통과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 때문에 민망하신 것이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를 지려고 오셨는데 정작 십자가가 당도했을 때에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리가 없다.  이 때는 고난의 때를 가리키는데 십자가는 지되 고난만 면케 해 달라는 기도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고난도 받으러 오셨다.

 

. 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예수님은 자기를 통하여 아버지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이번에는 하늘에서 직접 소리가 들려왔다.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여 주셨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이미 영화롭게 되었고 또 다시 영화롭게 하리라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완전 순종하여 구속을 완성하겠기 때문이다.

 

. 12:29-30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하늘에서 소리가 날 때에(28절) 예수님은 알아들었으나 곁에 섰던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우뢰가 울었다, 또는 천사가 예수님께 무슨 말을 한 것 같다 하고 오해하였다.  실은 이 소리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곁에 섰는 사람들을 위하여 났으며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화롭게 될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리를 알아들을 만한 실력이 없었다.

 

. 12: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죄악 세상의 심판을 시작한 것이요, 세상 임금 되는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이다.

 

. 12:32-33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땅에서 들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가리킨다.

모든 사람은 모든 택한 백성이다.  그들이 다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서 예수를 믿고 영생 얻을 것이다.

 

四. 빛 가운데 행할 것(34-36)

 

. 12: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죽지 않고 영원히 계신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가 죽는다고 하므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고 들었는데 당신이 어찌하여 죽는다고 하느냐\"고 질문하였다.  진리를 잘못 배운 자는 이렇게 바른 진리를 배척하게 된다.  우리가 진리를 배울 때 바로 배워야 그리스도를 바로 영접하고 구원운동에 바로 참여하여 자기의 생명도 살고 다른 사람의 생명도 살릴 수 있다.  한번 잘못 배우면 그것을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  잘못 배운 사람에게 바른 말씀을 가르쳐 주어도 자기의 잘못된 지식만 고집하면서 고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지식을 표준하지 말고 언제나 성경을 표준해서 잘못된 지식을 고치고 성경대로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 12:35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빛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중에 계셔서 영적 빛을 비춰주고 진리와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는데 죽은 자와 잠자는 자는 어두움에 있으므로 알지 못한다.

에베소5:14에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했다.  졸고 잠자는 자리에서 깨어 그리스도의 빛을 영접하고 그 빛에 거하는 생활을 해야한다.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했다(고후6:2).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예수님이 잠시 동안 있다가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고하신 말씀이다.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흑암의 세력 즉 죄와 마귀의 세력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어두움에 다니는 자 그리스도의 빛을 받지 않고 죄와 육신 중심으로 사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는 자요, 갈 바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으로 영접하여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말세에 세상은 어두움의 세력에 휩싸이게 될 때가 온다.  그 때는 환난의 때이며 기독교가 핍박을 받아 진리의 빛을 비추지 못하는 때이다.  우리는 그 때가 오기 전에 빛 가운데 거하여 믿는 일을 잘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에 영접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 12: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빛이 있을 동안에 빛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 즉 세상에 계시는 동안을 말한다.  그 때에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다.  빛 되신 예수를 믿으면 빛의 아들이 된다.

빛의 아들은 빛을 영접하고 빛 가운데 거하며 그 빛으로 생명을 삼고 빛의 열매를 맺히는 생활을 하는 자이다.  에베소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했다.  빛 가운데 사는 자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한 열매가 맺힌다.  이런 자가 빛의 아들이다.  그는 자기 속에 빛이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와 말씀의 인도를 받아 신앙양심을 쓰게 되므로 어두움의 일을 하지 않는다.  말세에는 빛이 없어지고 말씀을 받지 못할 때가 온다(암8:11 참조).  그러므로 이 빛을 비추어 내보내는 때에 이 빛을 받아서 빛의 아들이 되는 자가 복이 있다.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예수님이 숨으신 것은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그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五. 유대인의 불신(37-41)

 

.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여 당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밝히 나타내 보이셨으나 사람들이 완악해서 믿지 않았다.  많은 표적과 증거를 보고도 믿지 않는 죄는 더욱 크다(마11:20-24).

 

. 12: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저희들이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이사야53:1을 인용한 말씀으로 이사야가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사53:1-2)를 믿지 않았다는 뜻이다.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서 구원하려는 역사(표적과 능력)를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을 탄식하신 말씀이다.

 

. 12:39-40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저희가 믿지 않는 것은 그렇게 예정(豫定)된 까닭이다.  하나님께서 불택자는 심령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와서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였다고 했다.  이들은 주님의 양이 아니고(마25:33-46) 염소들이요 곡식이 아니고 가라지들이다(마13:25-30).

불택자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은 염소가 양이 될 수 없고, 가라지가 곡식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택자와 불택자에 대해서 이해가 잘 안되면 로마서9:10-23을 여러 번 읽어 보라.

 

. 12: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주를 가리켜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구약시대 모든 선지자가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예언하고 기다린 것이다.

 

六. 관원들의 신앙 상태(42-43)

 

. 12:42-43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관원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가리킨다.  그 중에도 믿는 자가 많았다.  니고데모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그들은 드러나게 믿는다고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믿고 있었다.  그 이유는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출회하기로 결의(9:22)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드러나게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혼이 자라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빛을 비취어 내보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빛의 아들로 인정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지 못하고 영원한 선물과 상급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나약하고 가련하여 영원한 복을 잃고 있는 자요, 양심의 가책과 하나님께 책망을 계속 받고 있는 자들이다.  저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한 자들이다.  오늘날 기독교인 중에도 이런 자가 많이 있다.

 

七. 말씀의 심판과 영생(44-50)

 

. 12:44-45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이시다(10:30).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가 다 나타내신 바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이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아버지를 믿는 자이다.

 

.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께서 영의 빛, 진리의 빛, 생명의 빛으로 세상에 오신 것은 예수를 믿는 자로 하여금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영적 세계에서 하나님 말씀의 빛을 받아서 계속해서 말씀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생활을 해야 된다.

 

.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구원하려고 오셨으며 세상을 심판하여 멸망시키려 하심이 아니다.

 

.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저들이 이 말씀을 받지 않아도 지금은 그대로 놓아두지만 마지막 날에는 그 말씀이 불이 되어서 그 사람을 심판한다(렘5:14 참조).  하나님은 진리이시기 때문에 심판 때에 진리대로 심판하실 것이며 또한 예수님께서도 언제나 진리를 말했으므로 그 말씀이 마지막 날에 심판할 것이다.  계시록16:8에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라고 하였다.  해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킨다.

나중에는 이 진리가 권세가 있어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할 것을 가리킨다.

 

. 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예수님은 스스로 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 보냄을 받아 오셨으며 자의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주신대로 시키신 대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님이 행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권위와 그 말씀의 생명력과 심판력이 여기에 있다.

 

. 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이다.  영생은 영이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이 없이는 영이 살지 못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친히 받아 전해 주셨으므로 생명력이 있다.  오늘날 전도자에게는 하나님이 직접 명령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영감의 역사와 성경 말씀으로 하나님이 명령하여 주시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전도자가 자기 의견과 자기 뜻은 다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전하면 생명력과 권위가 있어서 많은 사람을 살펴 낼 수가 있다.  이런 사람을 방해하고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가 된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자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한다고 했다(창12:3).  아브라함과 같이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말씀대로만 따라가면 큰 권위가 있는 자가 되고 세상을 정복하는 자가 된다.  나는 무요 공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가라는 대로 가고 하라는 대로 하면 큰 권능의 두루마기를 입혀주시고 하나님의 만능의 역사가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난다.

 

제 13 장  제자들의 발을 씻어줌

 

(대  지)

一. 제자를 극진히 사랑함(極愛弟子)(1-5)

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6-11)

三. 예수님의 모범(12-17)

四. 예수님을 팔 사람(18-30)

五. 인자의 영광(31-35)

六. 베드로의 신앙 상태(36-38)

 

12장까지는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전도의 싸움이요 본 장부터 16장까지는 소수의 제자들을 데리고 특별교훈을 하시고 17장에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것으로 당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셨다.

 

(본문 강해)

 

一. 제자를 극진히 사랑함(1-5)

 

.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알았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은 제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 두게 되겠으므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이라고 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극진한 최고와 사랑을 제자들에게 쏟아 부어 주심을 뜻한다.  물론 전에도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했으나 이제 당신의 고귀한 피를 흘려 죽기까지 사랑하겠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그 이상 더 큰사랑이 없는 최고의 사랑으로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대속적인 사랑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도 베풀어 주셨다.  이 사랑은 무한한 사랑이요 변함이 없고 영원한 아가페 사랑이다.

 

.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예수님이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의 분위기 속에 마귀가 들어와 예수님을 팔려고 하는 마음을 가룟 유다에게 넣어 주었다.  빛 가운데 어두움이 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지상 교회의 모습이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삼 년 동안 길러주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었고 사랑하여 돈궤를 맡겨서 회계 일을 보도록 하였으나 예수님에게 반기를 들었다.  보통사람이 예수님의 입장에 처해 있다면 대단히 분개하여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미리부터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거기에 대해서 조금도 마음 상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불쌍히 여기셨다.

 

. 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먹는 중 유월절 만찬을 먹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게 될 자로 지적되었다(21-30절).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예수님이 아버지를 순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하여 받을 권세를 말한다(마28:18 참조).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받게 될 것을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루시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시는 것이다.

 

.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겉옷은 상 하의를 입고 그 위에 덧입는 옷이다.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것은 종의 태도요 봉사하는 태도이다.

 

.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유대인의 습관은 일반적으로 식사하기 전에 발을 씻는 것이 관례이었으나 여기에서는 식사 시작할 때에 발을 씻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누가 크냐 하는 다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예수님이 종의 위치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사랑과 겸손과 서로 섬기는 모본을 보여주시고 좀더 나아가 당신이 십자가에서 보배 피를 흘려 택한 백성의 죄를 씻어주실 것을 상징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6-11)

 

.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차례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그 때에 베드로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더러운 발을 씻기는 것이 너무 황송하였으므로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하고 사양하는 태도로 말했다.  베드로의 신앙으로서는 그것이 당연한 말이었다.

 

.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예수께서 발 씻겨 주시는 깊은 뜻을 베드로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게 되리라는 것이다.  진리는 자기 신앙의 정도대로 이해한다.  신앙이 어려서 지금은 진리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후에 믿음이 자라나면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 잘 깨닫지 못해도 성경을 부지런히 가르쳐주고 또 배우는 것이 좋다.  한 가지 주의해야 될 것은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하는 자리에 나아가지 말고(벧후3:16참조), 믿음이 자라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깊은 뜻을 베드로가 깨닫지 못하고 도덕적인 면만을 생각하여 예수님이 자기 발을 씻겨 주는 것을 거절한 것이다.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강하게 거절하는 어조이다(고전8:13 참조).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전술(전술)한 바와 같이 예수께서 발을 씻기시는 깊은 뜻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실 보혈의 피로 택한 백성의 죄를 씻어 주실 것을 상징적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지 아니하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 13: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주옵소서

단순하고 성격이 급한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내가 너의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다 씻어 달라고 간청하고 나선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하신 뜻은 깨닫지 못했으나 그것이 예수님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말을 한 것이다.  성도가 주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 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미 목욕한 자 예수를 믿을 때에 죄사함 받아 영이 온전히 깨끗해진 것을 말한다.  중생하여 처음 믿을 때(자기가 죄인인줄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전부 사함을 받아 온몸 전체가 깨끗해진 것이다.

이것을 기본 회개라고 한다.  회개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기본 회개이다.  이것은 성도에게 일생 동안에 한번만 있는 일이요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이것은 중복 회개(重複悔改)이다.  성도가 날마다 행동으로 짓는 죄를 자주 회개하여 자기 속에 있는 죄의 부패성을 점점 벗어버리고 성화 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 회개는 중생한 다음에도 날마다 발을 씻듯이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성도가 중생하여 새 사람을 입었으므로 그 영이 이미 깨끗해졌으나 육체의 부패성인(정욕) 옛사람이 지체 속에 역사하여 부패성을 따라 행동하게 될 때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마다 이것을 자주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발을 씻는 일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날마다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성령으로 감동을 시키시고 또 징계도 하셔서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아와 씻김을 받도록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감동을 소멸하지 말고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며 씻어서 깨끗케 하시고자 하시는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다 드러내놓으면 그 죄가 아무리 크고 더럽다고 할지라도 깨끗하게 씻김을 받아 점점 깨끗해지고 예수님과 사귐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믿는 제자는 깨끗하나 믿지 않는 가룟 유다는 깨끗함을 받지 못했다.  유다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요6:64, 70 참조).

 

. 13: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가룟 유다가 처음부터 믿지 않았고 마귀에게 속했으며 예수를 팔 자인 줄을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아셨다(요6:64, 70참조)(이런 자를 알고도 예수님이 그를 제자로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강해서 10:4절 해석 참고하라).  믿지 않는 자는 죄사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깨끗하지 않다.

 

三. 예수님의 모범(12-17)

 

. 13: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발을 다 씻기시고 예수님은 정장 정좌를 하시고 제자들에 그 뜻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비유나 상징적인 역사나 표적을 보이시고 그 뜻을 풀어 가르쳐 주곤 하셨다.

 

. 13:13-15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제자가 선생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도리인데 예수님의 도는 선생이 제자의 발을, 상전이 종의 발을 씻어주는 도(도)임을 보여 주셨다.  ① 그것은 겸손의 교훈이다.  예수님은 주와 선생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서 그 보좌와 영광을 다 내놓고 사람이 되어 종노릇하는 데까지 낮아졌으니 지극히 겸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낮아져서 서로 종노릇하는 것을 배우라는 교훈이다.  ② 그것은 사랑의 교훈이다.

예수님이 성도들을 끝까지 사랑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며 봉사한 것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라는 교훈이다.  ③ 이것은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라는 교훈이다.  예수님이 피 흘려서 죄를 씻어 준 것을 본받아 너희도 서로 용서해주고 주님의 구원운동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받들어 나가라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줄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한다.  종의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발을 씻어줄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된 자리를 다 내어놓고 종의 자리에 내려갔다(빌2:6-7).

발씻는 재료는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죄를 정결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다(히9:22 참조)고 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고 예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게 만들고 예수님의 친구가 되게 하는 사명이 있는데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도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전해서 믿게 해야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발 씻는 재료이다(벧전1:22). 에베소5:26에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케 한다\"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함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말씀도 초보적 말씀에서부터 점점 깊은 진리(단단한 식물: 히5:12-14)를 받아 그 진리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 자기 속에 깊이 감추어진 더러운 죄를 찾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회개하여 씻어내므로 점점 더 깨끗해지게 된다.

우리 성도가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죄 씻음 받아 점점 더 깨끗하게 씻어 나가도록 봉사해야 한다.  이것이 남의 발을 씻어 주는 일이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

 

. 13:16-1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한 것이 원리이다.  그러나 주인이 종의 발을 씻어 주고 큰 자가 낮은 자의 발을 씻어 주는 일을 하면 복이 있다.  하늘 나라에서는 섬김을 받는 자보다 섬기는 자가 큰 자요, 복이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四. 예수님을 팔 사람(18-30)

 

. 13: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택함을 받은 자만 예수를 믿게 되고 믿음으로 깨끗함을 받는다.  가룟 유다는 불택자이므로 처음부터 믿지 않았기 때문에(6:64 참조) 깨끗케 함을 받지 못했다.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이것은 시편41:9의 인용으로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하나가 배반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가룟 유다를 제자로 택한 이유는 ①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시41:9), ② 후대 교역자 가운데도 불택자가 있는 줄 알게 하려고, ③ 알곡과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같이 보호해 줌을 알게 하려고, ④ 불택자도 구원 운동에 이용함을 알게 하려고, 5 범죄자의 말로가 비참한 것을 알게 하려고 택한 것이다.

 

. 13: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일이 이루기 전에 예수님께서 팔리어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일이 이루기 전이다.

미리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그 일이 이룬 다음에 믿게 하려함이라고 하셨다.  구속 성취의 확실한 진리를 믿는 자는 복이 있다.

 

. 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가룟 유다와 같은 배신자(배신자)가 있어도 복음운동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고 예수님은 전도자를 보내서 이 복음을 계속 전한다.  그러므로 전도자를 영접하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교역자를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므로 그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교역자가 성경을 바로 못 가르치거나 성경 이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는 자는 하나님의 참된 종이 아니기 때문에 영접할 필요가 없고 도리어 그러한 종을 떠나야 한다.

 

. 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민망히 여기신 것은 제자에게 배신당하여 섭섭하기 때문이 아니요, 그 사람이 망할 것을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를 각성시키기 위하여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다.

 

. 13: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제자들은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 13: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그의 사랑하시는 자는 사도 요한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자인데 여기서는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고 했다.

 

. 13:24-25  시몬 베드로가 머리 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시몬 베드로가 요한에게 그가 누구인지 물어보라고 머리 짓을 하니 요한이 예수님의 품에 그대로 의지하여 예수님께 그가 누구인지 여쭈어 보았다.  중대한 일은 그 사람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을 통해서 물어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 13:26-3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그때 예수님께서 내가 떡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가룟 유다에게 떡 한 조각을 주니 그가 떡 한 조각을 받은 후 사단이 곧 유다에게 들어갔다.  가룟 유다는 본래부터 마귀에게 속한 자이다(6:70).  그런데 여기서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다\"는 것은 사단이 그 속에서 역사하기 시작했다.  사단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가룟 유다는 그때부터 더욱 사단에게 붙잡혀 예수님을 파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인 곳은 참 친밀하고 서로 사랑이 충만하고 완전히 하나 되어 있는 모임이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기듯 기대고 누워 있어도 아무 흠이 되지 않고 사랑이 충만하여 왜 이렇게 하느냐 하지 않았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다 가리워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랑으로 서로 뭉쳐진 깨끗한 덩이에 누룩이 들어왔다.  그 누룩을 제거시켜야 한다.  제거시키지 않으면 온 덩이에 퍼지게 될 것이다.  누룩을 제거시켜야만 누룩 없는 순전한 떡 덩이가 되어(고전5:8 참조) 주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성찬을 베풀 수가 있다.  그러므로 마귀의 일을 하는 자는 여기에 참여시킬 수 없기 때문에 가룟 유다를 내보내신 것이다.  내보낼 때에 처음 \"나를 팔리라\"고 하여 가룟 유다의 양심에 찔림이 되어 가책을 받게 하였고\"떡 한 조각을 찍어다 주는 자가 그니라\"하고 그에게 줄 때는 이제는 다 폭로가 되어 더 숨길 수가 없으므로 가룟 유다가 떡 조각을 받은 후에 나간 것이다.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가룟 유다는 열 두 제자 중 재정을 맡아 회계(회계)를 보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가 예수를 팔려고 나갔을 때에도 다른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쓸 무슨 물건을 사러 나가는 줄로 생각했다.

 

五. 인자의 영광(31-35)

 

. 13:31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기 위해 나갔으므로 십자가를 지실 일이 가까이 당도하였다.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것을 가리킨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속 사업을 완성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이 영광을 얻는 일인 동시에 하나님도 영광을 얻는 일이다.  과거사로 된 것은 구속 성취를 확신하기 때문에 이미 이룬 것으로 안 것이다.

 

. 13:32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완성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었으므로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실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그 받으신 영광을 인하여 예수님을 부활시켜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뜻이다(빌2:6-11 참조).  하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히시고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권세를 다 주셨다.  성도들도 하나님을 순종한 것만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만큼 성도에게 영광을 주신다. 구속 사업에 참여하고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기 위해 희생한 것만큼, 하나님의 뜻을 복종한 것만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그만큼 영광을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가 영광스럽게 되는 길이다.  성도가 이일은 안하고 자기가 스스로 영광스럽게 되어 대접을 받고 크게 성공하고자 하는 자는 교만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를 물리치신다.

 

. 13:33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예수님이 잠시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가신다고 하신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실 것을 예언한 말이다.  이 말은 일찌기 유대인들에게도 말씀하신 바가 있다(7:33, 34, 8:21).

 

.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회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다고 했다.  이미 구약 레위기19:18에도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라\"고 했는데 왜 새 계명이라고 했을까?  이는 예수님께서 신자들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택한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사랑의 새로운 국면(국면), 깊은 영적 사랑의 본질을 새로이 나타내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새 계명이라고 한 것이다. 구약시대는 그런 사랑은 알지 못했다.

 

.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사랑은 중생한 영의 본질이다.  성도가 영적 생활을 하면 사랑은 자동적으로 나오게 된다.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인줄 안다.  서로 미워하는 것은 마귀의 인도를 받는 자요 마귀의 제자이다.

 

六. 베드로의 신앙 상태(36-38)

 

. 13:36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속을 이루시고 하나님께로 갈 것을 베드로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었다.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나중에는 순교의 죽음으로 하나님께로 갈 것을 가리킨다.

 

. 13:37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베드로 자기의 영적 실력이 약함을 깨닫지 못하고 육체의 용기와 결심을 가지고 죽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장담하였다.

 

. 13: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의 상태를 베드로보다 예수님이 더 잘 아신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가14:30에는\"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되어있다.  이 말씀을 해주신 목적은 이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부인할 때에) 회개시키려 한 것이다.  조금 후에 베드로의 결심과 용기는 다 깨어지고 자기의 연약과 무능을 깨닫게 되어 자신을 부인하고 회개하며 주의 말씀이 진실한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성도는 자신을 믿지 말고 육체의 용기와 결심으로 주를 따라가려 하지 말고 영적 실력을 길러서 앞날의 환난을 대비하여야 하겠다.

 

제 14 장 근심하지 말라(勿憂)

 

(대  지)

一. 거처 예비(居處豫備)(1-3)

二.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4-11)

三. 주의 이름으로 구하라(主名祈求)(12-15)

四. 보혜사(16-31)

 

(본문 강해)

 

一. 거처 예비(居處豫備)(1-3)

 

.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가까운 줄 알고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다.  그때 예수님이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면 근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요한17:3에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알고 의뢰하며, 그의 생명의 역사와 능력의 보호를 받는 자는 아무 근심이 없고 영적 생명이 날마다 살아나가게 된다.

 

.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 아버지 집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요 영적 세계이며 구속의 세계이다.  이 세계가 곧 천국이다.  천국은 장소적인 천국이 있고, 또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살면 그곳이 하늘 나라이다.  아버지의 집은 아무걱정이 없고 행복이 넘치는 세계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집밖에 있으면 근심 걱정이 조수처럼 밀려들고, 불안과 고통이 끊일 날이 없다.  성도가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이 들어올 때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면 근심과 걱정이 다 떨어져 나가고 아버지의 보호와 위로가 있어 항상 편안하고, 사랑이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된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마태25:34에 천국은 창세 전에 예비되었다고 하였으므로 예수님께서 천국을 예비하러 가신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처소를 예비한다는 뜻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구속의 세계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의미이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비해 놓았으나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택한 백성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여 구속의 세계를 예비하여 성도들이 구원받게 하신 것이다.

 

.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으로 성도의 구속의 세계를 준비하면(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오셔서 성도들을 그 구속의 세계로 인도하여서 그곳에서 살게 하신다.  구속받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동거 동행하는 곳은 초막이나 궁궐이나 하늘 나라인 것이다.  또 내세천국(來世天國)도 아버지의 집이다.

 

二.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4-11)

 

. 14:4-5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로 구속을 완성하시고 낙원에 계시는 아버지 앞으로 가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6절).  이것은 예수님께서 전에 제자들에게 여러 번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며 도마가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하고 물었다.  도마가 세상적이요 육신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나 그 길도 알지 못하였다.  오늘날에도 영의 귀가 열리지 못한 자는 도마와 같은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고 했다(계2:7,17,29).

 

.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내가 곧 길이요 ① 천당 가는 길이다.  예수를 믿지 않고 다른 길로는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다.  ②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다.  모든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므로 예수님의 구속함을 입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한다.  ③ 사죄 받는 길이다.  죄인이 죄를 용서받는 길은 예수님의 피 밖에 없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히9:22).

진리요 진리란 참된 이치, 즉 참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①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나타내는 진리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나타내 보여 주었으므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알 수 없다.  ② 예수님은 하나님의 언약 성취의 진리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언약하신 것이 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았으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한 진리이다.  ③ 영계와 천계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게 해 주고 나타내신 진리이다.  ④ 하나님의 형상의 진리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 즉 모든 속성을 다 보여주셨다.

생명이니 ⓛ 예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모든 생명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로 인하여 보존된다.  ② 예수님은 영적 생명이다.  예수님은 영적 생명의 근원이시며 우리는 예수님과 생명적인 연합을 이루었다.  포도나무(예수님)에 가지(성도)가 접붙임을 받은 것과 같다.  ③ 영을 소생시키는 생명이다.  그리스도의 생명과 성도가 연합이 되어 날마다 그의 생명의 역사로 성도의 영이 새 생명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에베소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라고 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과 진리와 생명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  사도행전4:12에 천하인간에 예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절대로 없다.  그 이유는 ①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이다(히9:22).  모든 사람은 원죄와 본죄가 있으며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아니고는 그 죄를 사함 받을 길이 없다.  ②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요3:5).  인간은 출생할 때 죽은 영혼으로 출생하며 예수 믿지 않는 자의 영은 다 죽은 것이다(엡2:1).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말씀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구속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성령으로 믿는 자라야 중생한 것이다.

 

.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이 영원 자존자시요 단일하시며 독립하여 계시고 무한 불변하시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속성을 예수님을 통해서 다 나타내 보여 주셨다.  즉 예수님이 행하신 일과 그 모든 말씀과 인격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어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요 예수님을 아는 자는 아버지를 아는 자이다.

 

. 14: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빌립은 하나님을 육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보여 주면 족하겠다고 하였다.  이는 영으로 계신 하나님과 신령한 세계를 육체적 지식과 감정으로 인지(認知)하여 감정의 만족을 채우는데 이용하려는 잘못된 생각이다.  오늘날에도 진리를 중히 여기지 않고 육체적 감정주의로 나가는 신비주의자들은 빌립과 같은 자들이다.

 

.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이 오랫동안 제자들과 같이 계시며 하나님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가르쳤으나 그들은 아직도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내신 모든 신령한 진리를 잘 알지 못했다.

 

. 14:10-11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①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 들어와서 일하시고 예수님은 영으로 아버지 안에 계시는 신비적인 도리를 믿으라고 하셨다.  ②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믿으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스스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하시는 그대로 하는 것이다.  ③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믿으라고 하셨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일하시는 대로 예수님이 일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과 아버지를 따로 볼 필요가 없고, 예수님을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자인 것이다.

 

三. 주의 이름으로 구하라(主名祈求)(12-15)

 

.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나의 하는 일 예수님이 하시는 구속 사역이다.  믿는 자는 믿음으로 그 일에 참여하고 순종함으로 그 일에 이용되어서 주님의 구속 사역을 이루어 나간다.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예수님의 하시는 일보다 큰 것도 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보고 예수님보다 더 큰 일과 더 큰 이적을 행하려 하고 더 큰 능력을 받겠다고 욕심으로 구하는 자도 있다.  또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기도하며 노력하면 무슨 일이나 다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원리적으로 볼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보다 더 큰 일하겠다는 것은 교만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보다 더 큰 일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구속사업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하신 일은 구속사업의 기초(터)요 모퉁이 돌을 놓은 것이고, 그후에 모든 성도들은 그 위에다 집(영적 성전)을 짓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집을 짓는 일이 터 닦는 일보다 더 큰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집을 짓는 것도 모퉁이 돌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모퉁이 돌에서부터 능력이 나오고 생명이 나와 영적 성전이 지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생명의 역사와 능력의 역사로 지어졌기 때문에 성도가 지은 영적 성전도 결국 예수님이 지은 것이다.  단지 사람은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순종하는 것뿐이며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또 이보다 더 큰 일이란 다시 말하면 신약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예수님 때는 신약 교회가 열 두 제자와 그 외 몇 명뿐이었다.  그 다음 사도 시대에는 삼 천 명 오 천 명으로 불어나고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 믿는 성도가 수십 억이 되었다.  이 성도를 통한 구원운동이 크게 확장되어 큰 교회가 되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보다 더 큰 일이다.  그러나 이것도 궁극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하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늘나라는 사람이 한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께서 친히 해주신 것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찬양하고 예수님만 자랑하고 우리는 항상 겸손하여야한다.

 

.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이루어 주신다고 한 것은 ①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기도하라는 뜻이다.  사람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어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으므로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대신 자기 이름으로 기도해야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예수님의 자리에 올라간 것이요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는 참람된 자이다.  ② 예수님의 뜻대로 기도하라는 뜻이다.  아무리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도 정욕으로 쓰려고 기도한 것은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다(약4:2-3 참조).  ③ 예수님을 인(인)하여 기도하라는 것이다(요6:57 참조).  이것은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것과 같은 뜻이다(엡6:18 참조).  ④ 예수님의 인격을 닳아가기 위하며 기도하라는 뜻이다.  이름은 인격을 가리킨다.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을 앙모하고 그 형상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면 이루어 주신다.  ⑤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운동을 위하여 간구하라는 뜻이다.

예수의 이름은 구원의 뜻이 있다(마1:21).  우리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갈망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예수님의 구속을 힘입어 예수님 안에 들어가서 영적으로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주신다.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뜻과 구속을 이루셔서 영광을 얻으시고 또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역사를 계속 이루어 나가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이루어 주신다.

 

.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다(요일5:3 참조).  영적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의 계명은 쉽게 지켜진다.

 

四. 보혜사(16-31)

 

.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는 대언자(代言者), 혹은 변호인(辯護人)이라는 뜻이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대언하시고 죄인을 위하여 변호하는 일을 하셨는데(요일2:1)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에는 성령을 보내어 이 일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한 것이다(요16:7 해석 참조).

 

.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저를 알지 못한다.  성도는 믿을 때에 성령으로 믿었고(고전12:3), 그 성령이 보호하고 게시며 항상 성도 속에 내재하고 계신다.  성령이 잠시라도 성도에게서 떠나면 멸망한다.

 

.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예수님이 부활하여 오실 것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재림하여 오실 것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며 성령 강림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예수께서 성도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성도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서 성도와 같이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므로 예수님 안에 성령이 계시고 성령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성도와 함께 세상 끝날 까지 같이 계신다(마28:20 참조).

 

.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조금 있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므로 세상 사람은 예수님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은 영원히 죽지 않고 항상 살아 있기 때문에 중생한 성도는 영으로 예수님을 볼 수가 있다.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예수님은 영으로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영은 산 영이요 계속 살아나갈 것이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 날은 보혜사 성령이 오시는 날이다.  성령이 오시면 영적 세계가 열려서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있고 성도는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성도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성령으로 인하여 성도가 영적 세계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주님과 동거하게 될 것이다.

 

.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나의 계명은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말씀을 지키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그 계명 (말씀)이 무거운 것이 아니다(요일5:3).  그 말씀을 지키는 자는 영적 자유를 얻게 되고(요8:31-32), 하나님이 그를 더욱 사랑할 것이요 예수님도 더욱 사랑하여 당신을 그에게 나타내 보여 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점점 더 발견하게 되고 그로 더불어 영적 교제가 더욱 깊어지게 되고 그리스도를 더욱 더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게 된다(빌3:8-9참조).  이것이 영의 성장이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오늘날 주의 계명(말씀)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믿는다고 하는 성도나 교회가 많이 있다.  특히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서 믿는 자가 많다.  이런 자는 본문 말씀과 반대 현상 즉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에서 떠나게 되고 예수님을 점점 잃어버리고 영의 자유를 빼앗기고 영적 세계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 14: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가룟인 아닌 유다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는데(눅 6:16), 그를 다대오라고도 불렀다(마10:3, 막3:18).  그는 그리스도의 영적 구원운동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적인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 \"어찌하여 자기를 세상에 나타내려 하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질문한 것이다.

 

.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사람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면 자기 목숨까지라도 내놓고 그 말씀을 지키게 된다. 이렇게 말씀을 지키는 자를 하나님이 더욱 사랑하여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오셔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저에게 와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오셔서 동거하시고 보호해 주시고 내주하여 계신다는 뜻이다.  이런 자는 하늘의 위로와 평강과 기쁨이 충만하다.  에녹이 삼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것도 그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기 때문이다(히11:5).

 

. 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 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신령한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서 영으로 살지 못하고 육신을 좇아 사는 자는 주님의 말씀에 굴복치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롬8:7).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하나님께 받아서 하는 신령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 14:25-26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님이 말씀한 신령한 뜻을 제자들이 그 때는 잘 깨닫지 못했으나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그 모든 말씀을 깨닫게 해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대언자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성도의 영의 귀를 열어서 신령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모든 성경은 성령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성령이 아니고는 알 수가 없다(딤후3:16, 요16:13 참조).

 

.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은 작별 인사로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었다.  주님이 주신 평안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육신적 평안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는 심령의 평안이요 영적 안식이다.  이 평안은 세상이 알지도 못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받을 수가 없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14:1말씀의 결론이다.  예수님께서 이상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은사를 많이 계시해 주시고 특히 보혜사를 보내어 성도를 위해 모든 것을 하여 주실 것이므로 근심이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교훈하신 것이다.

 

.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성령으로(성령 안에서) 다시 오셔서 항상 같이 계시겠다는 말씀을 위(18절)에서 제자들이 들었다.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슬퍼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뻐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고 성령과 함께 영으로 임하사 성도와 같이 계시며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가겠기 때문이다.  이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 나갈 것이니 막을 자가 절대로 없다.(롬8:33-35 참조).

 

. 14:29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 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는 그 일이 이루어질 때에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당신에게 대한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말씀하셔서 그 일이 이룰 때에 믿게 하려 함이었다.  이와 유사한 말은 13:19, 16:14에도 있다.

 

. 14: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세상 임금은 마귀를 가리킨다.  마귀는 그 종들을 충동시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구속하기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요10:18 참조).  그러므로 마귀는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  마귀는 예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거나 도와주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에 이용당하는 것뿐이다.

 

. 14: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윗 절에 말한 바와 같이 마귀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놓아두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아버지의 예정하신 구속을 성취하여(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세상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하려 함이었다.

 

제 15 장  포도나무

 

(대  지)

一. 포도나무 비유(1-8)

二. 사랑의 생활(9-17)

三. 세상이 미워함(18-27)

 

(본문 강해)

 

一. 포도나무 비유(1-8)

 

.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신자는 가지이며 하나님은 그 농부라고 하였다.  이것은 교회를 포도원에 비유한 것이다.  이 포도원은 하나님의 기업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위하여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고 망대를 세우고 그 안에 술틀을 갖추었다.  또 가지를 잘라 전정(剪定)을 해주었고, 북을 돋우어 주었고, 구름을 명하여 비를 내려 주었다(사5:2-6 참조).  하나님이 이렇게 모든 것을 포도원에 부족함이 없도록 더할 나위 없이 잘해 주었다.  이렇게 하신 목적은 포도 열매를 잘 맺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이스라엘이 들포도를 맺었다고 탄식하셨다(사5:2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이 징벌하여 포도원의 울타리를 걷어서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하겠다고 하였다(사5:5-6).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에게도 모든 은사와 축복을 해주신 것은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다.  만일 우리 성도가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하나님의 징벌이 내려 올 것이다.

 

.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제해 버리신다.  나무와 가지는 생명적으로 연합이 되어 있다.  이는 사람의 머리와 몸이 생명적 연합이 되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머리와 몸 사이에 얇은 종이 한 장만큼이라도 단절(틈)이 생기면 생명이 끊어진다.  이와 같이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도 작은 것 하나라도 들어가 끼이게 되면 영적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 맺지 못하여 하나님이 제해 버린 그 가지는 말라져서 사람들이 주어다가 불에 던져 사른다(6절). 성도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의 심령이 메마르고, 하나님은 내어버리고, 사람은 발로 밟고 불에 태우는 것과 같은 큰 환난과 고통 가운데에 빠진다.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가지가 깨끗해야만 열매를 맺는다.  깨끗하지 못한 가지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① 성도가 죄를 회개하고 속에 있는 더러운 물욕, 정욕, 사욕을 버릴 때에 깨끗해진다.

② 성도가 세상에 취하여 세상 중심으로 살던 것을 온전히 돌이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에 깨끗해진다.

이러한 생활은 심령이 새롭게 되는 생활이다(롬12:2, 엡4:23 참조).  ③ 성도의 영이 자라날 때에 깨끗해진다.  영이 성장하는 것은 새 생명이니 새 생명은 깨끗한 것이다.  포도나무도 묵은 가지에는 열매가 맺히지 못하고 새로 자라난 깨끗한 가지에만 열매가 맺힌다.

 

.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이미 깨끗하였으니 성도가 이미 중생한 것을 가리킨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말씀과 성령으로 이미 중생했으며 중생한 영은 깨끗한 것이다.  거기에는 더러운 것이 하나도 없으나 2절에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한 것은 성도가 육신의 부패성을 점점 제거시켜 나가는 것과 중생한 영혼이 자라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다.

 

.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포도나무의 진액을 받을 수도 없고 생명이 살 수도 없으며 따라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포도나무와 가지 사이에 생명의 교통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살 수 없고 예수님과 영적 교통이 계속되어야 심령이 살고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과 영적 교통이 끊어지면 심령이 메말라서 죽은 가지와 같이 된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내 안에 거하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방법은 ① 믿는 것이다.  믿는 자는 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이다.

② 그리스도와 영적 교통을 하는 것이다.  영적 교통을 하려면 회개하고 돌이켜서 주님을 사모하고 간절히 찾고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기도하면 예수님이 가까워지고 예수님을 만난 바 되어 영적 교통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영으로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법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그 사람 안에 영적 평안과 기쁨과 위로가 한량없이 넘치며 그의 능력이 와서 머물게 된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에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액이 공급되어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

 

.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성도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영적 교통이 이루어진다(4절 해석 참조).  예수님은 성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역사하여 성도로 하여금 많은 열매를 맺히게 하는 것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너희가\"라고 하였으니 이 말씀은 예수님이 믿는 사람에게 한 말씀이다.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떠난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영적 교통이 끊어지는 것(단절)을 말한다.  성도가 법적으로는 예수님을 떠날 수 없으나 마음이 예수님을 떠나고 예수님과의 영적 교통이 중단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마음이 예수님을 떠나고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교통이 중단되면 믿는 일(신령한 일)은 아무 것도 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도 다 자기가 한 것이므로 결국에는 불타서 없어지고 말게 되기 때문이며(고전3:15 참조), 그것은 포도나무 열매(믿음의 열매)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통이 끊어지면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와 감동이 없기 때문에 믿는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야 참 포도 열매를 맺게 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받는다고 했다(렘17:5).

과실을 많이 맺나니 과실은 원 나무되는 예수님의 진액을 받아 맺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매이다.  성도 안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로 맺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실은 그리스도의 속성과 그리스도의 형상이다(갈4:19 참조).  그 대표적인 것이 사랑이요 의와 진리와 거룩과 깨끗함이다.  이 과실을 성도가 맺을 때에 그의 영혼이 자라난다(골1:6참조).

 

.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말라지고 사람들이 그것을 가져다가 불사른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이와 같이 된다(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4절 해석을 보라).  신자의 마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면 ① 자신의 심령은 메말라지고 ② 하나님은 버리며 ③ 사람들은 발로 밟는다.  이러한 신자는 맛 잃은 소금과 같다(마5:13 참조).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생명의 역사가 없는 신자는 환난고통을 당한다는 뜻이다.  먼저 마음에 번민과 고통이 오고 그 다음에는 자기 몸과 가정과 사회면에 환난과 고통이 온다.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이다.

 

.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성도가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하고 다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성도 안에 거하여야 한다.  성도가 주의 말씀을 계속 받아서 그 말씀에서 생명을 얻고 힘을 얻어 그 말씀대로 자신이 만들어져 나가야 한다.  그러면 원하는 대로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신다.  원하는 대로 구하는 것은 말씀이 자기 안에 거하는 자가 그 말씀대로 되어 지기를 원하여 그 말씀에 도달하기 위해서 구하는 것이다.  말씀이 자기 안에 거하는 성도는 성경 말씀을 받은 대로 깨달은 대로 구하게 되며 그 소원을 가지게 된다.  성경 말씀을 조금 깨달은 사람은 구하는 것도 적고 많이 깨달은 사람은 많이 구하게 된다.  말씀을 깊게 깨닫지 못한 자는 구하는 것도 얕을 것이고 깊게 깨달은 사람은 구하는 것도 깊어진다.  그러므로 말씀이 자기 안에 거 하는 대로 구하게 되어 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은 말씀을 새김질하라는 것이다.  새김질은 그 말씀을 되새기면서 기도하는 생활인데 그대로 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그 말씀대로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원하는 자에게는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신다.

무엇이든지라는 말은 말씀대로 구하는 것은 아무리 어렵고 큰 일이라고 하여도 다 이루어 주신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태산을 옮기며 홍해를 가르는 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말씀)이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욕심과 허영으로 구하는 것은 아무리 구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성도가 과실을 맺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과실 해석은 5절 해석 보라),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게 되고 성도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선생을 배우고 선생을 닮아 가는 것이 제자이다.  우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예수님을 닳아가게 되므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된다.  성도가 말씀대로 과실을 맺는 것만큼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만큼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참 제자가 되는 길이다.

 

二. 사랑의 생활(9-17)

 

.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본 절부터는 성도가 사랑 안에 거하여야 된다는 것을 교훈하신다.  성도가 처음에는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되고(4절)다음에는 말씀이 성도 안에 거해야 되며(7절) 세 번째는 사랑 안에 거해야 된다는 것이다.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우리를 사랑하여 죽으셨으니 그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에 감격에 넘쳐서 믿는 일을 하게 된다.

 

.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단 순종한 것을 가리킨다(요12:49-50, 5:20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셨다.  성도가 사랑 안에 거하는 방법은 주님이 명령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아버지의 계명은 십계명이나 율법이 아니고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윗 절에 주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한 것은 무거운 짐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고(요일5:3참조), 예수님이 하나님의 명령(계명)대로 순종하여 소유한 그 기쁨을 성도에게도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아버지의 기쁨을 소유하는 방법은 그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뿐이다.  사랑 안에서 그 명령(계명)을 지킬 때에 ① 신령한 세계가 넓어지고 예수님이 더욱 깊게 발견된다.  이는 충만한 기쁨이다.  2 새 생명의 역사가 있고 일이 소생하고 창성하여 자라난다.  영이 자라난 기쁨은 한량없이 큰 것이다.  ③ 진리와 모든 것을 바로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은 큰 기쁨이다.

 

.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내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이다(요13:34).  서로 사랑하라는 것을 왜 새 계명이라고 하는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나타내어 확증하셨기 때문이다.  10절의 내 계명은 예수님의 명령을 가리킨다.

 

.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예수님께서 원수 된 우리를 위해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시고 우리를 친구로 삼아 주셨으니 우리도 친구 되신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순교적 신앙으로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또 다른 사람의 근원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가져야 한다(요일3:16).

 

. 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님의 명령대로 믿고 복종하고 서로 사랑하면 그리스도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참 제자가 된다.

 

.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좋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율법에 속한 자는 종이었다(갈4:24).  그러나 성도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자녀이다(롬8:15).  또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되었으므로 종이 아니요 외인(외인)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요 형제이다(히2:11).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친구요 형제 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게 해주셨다.

 

.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함이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택해서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를 택해서 믿게 한 것이다.  알미니안주의자는 자기가 예수님을 택하여 믿는다고 한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 예수를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죄로 인하여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죽게 되었는데 거기에 예수님의 구원의 손 즉 구원의 밧줄이 내려 와서 사람이 그 밧줄을 붙잡으면 건져주고, 그 밧줄을 붙잡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것이다.  또 루터파에서는 그 구원의 밧줄을 거절만 하지 않으면 구원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구원의 밧줄이 내려와서 나를 얽어매어 구원의 길로 끌고 가기 때문에 안 갈래야 안갈 수 없는 불가항력적 구원을 주장한다.  예수님이 사랑으로 나를 택하고 불러서 끌고 가기 때문에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대로 된 바른 교리이다.

택하여 세운 목적은 과실을 맺게 하고 그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받게 하려는 것이다(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데 대한 해석은 14:13 해석 참조).

 

.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서로 사랑하는 것이 열매 가운데 제일 큰 열매이다.  주의 모든 명령은 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三. 세상이 미워함(18-27)

 

.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세상이 성도를 미워하는 까닭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이다.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믿는 자도 미워한다.

 

.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성도는 세상에서 택함 받아 거기에서 나와 예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의 것이 아니다.  이제는 법이 다르고 나라가 다르다.  성도의 나라는 하늘에 있으며 성도의 왕은 예수님이시므로 진리의 법과 예수님의 통치를 받고 생활한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는 성도를 세상이 미워하고 핍박한다.

 

. 15: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기 때문에 주인보다 더 대접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주인이신 예수님이 핍박을 받았으니 그 종 되는 우리도 핍박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종이 \"주인 같이 되는 것\"이다.  종이 주인같이 되면 족하다고 했다(마10:25).  또 우리 주인 되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은즉 그 종 되는 성도가 전도하는 말을 지키는 자(믿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 15: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세상이 성도를 핍박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성도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일이다.

 

. 15:22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오셔서 진리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면 죄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오 죄에 대한 가책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진리를 말했기 때문에 이제는 저희가 핑계하지 못하고 가책을 받을 것이며 또 하나님 앞에 가서 그 말씀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계명이 있기 전에 죄가 있어도 죄인 줄 몰랐오, 죄가 죽었었다(롬7:7-8).  그러나 계명이 이르매 계명으로 인하여 죄가 심히 죄 되게 되어 세력을 쓰게 된 것이다(롬7:13).  성경 말씀을 듣기 전에는 죄인 줄 알지 못했으나 성경 말씀을 듣고 보면 죄인 줄 안다.  그러면 차라리 듣지 않고 알지 못한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하는 자가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는 없다.  양잿물(독약)은 알지 못하고 먹어도 죽는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심판하시고 공의대로 심판하신다.  알지 못하면 회개할 기회가 없다, 미리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과실을 맺는 자가 복이 있다.

 

. 15: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셨고 하나님이 명하는 대로 말씀하시고 행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완전히 계시(계시)했으므로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은 나타난(보이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니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 분명하다.

 

. 15: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아무도 못한 일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이다.  그 일들은 ① 하나님을 보여 준 것이요 ②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신 것이다(10:37-38).  그 일들을 통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반역함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악은 더욱 크다.

 

. 15:25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저들이 예수님을 미워한 것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 대한 예언이 그때에야 끝이 온다(시35:19, 69:10 참조).

 

.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보혜사 성령은 대언자이므로 성경의 어느 부분이든지 성령께서 임하시면 그리스도와 모든 진리를 다 증거하실 것이다(보혜사에 대한 해석은 16:7 해석 참조).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 성령은 아버지께로서 나오시고 아들에게서도 나오신다(20:22).  영원히 나오시며 항상 계속 되면서도 항상 완료된 신적 역사인데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삼위일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비이다.

진리의 성령이기 때문에 진리를 깨닫게 하고 증거하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

 

. 15: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거하며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친히 듣고 체험하며 (요일1:1, 눅1:1), 예수님의 증인으로 세움을 받은 자들이다.  이들의 증거야말로 확실한 증거이다.  사도들의 증거로서 신약 성경이 오늘날 남아있다.  그것이 성령과 함께 세세토록 명확한 증거를 할 것이다.

 

제 16 장  보 혜 사

 

(대  지)

一 신자가 신자를 죽임(1-4)

二. 예수님이 가시면 보혜사를 보냄(5-14)

三.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예언(15-24)

四.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실 것을 밝히 말씀해 주심(25-31)

五. 환난 때에 담대하라(32-33)

 

(본문 강해)

 

一. 신자가 신자를 죽임(1-4)

 

. 16: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이란 요한15:18∼27의 내용으로 세상이 너희를 핍박할 것과 핍박 중에도 성령으로 이 복음이 전파되어 나갈 것을 말한다.  이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핍박당할 때에 실족하지 않을 것이다.

 

.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것이다(9:22 참조).

출회는 국적(國籍)을 박탈하고 추방하는 것과 같은 벌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성도를 죽이는 때가 온다.  어느 시대에나 타락된 종교가들이 참 신자를 핍박하고 죽인다(마10:21-23 참조).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그렇게 했고 중세기에 타락된 로마 카톨릭 세력이 종교개혁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말세에도 타락된 세속주의 종교가들이 참 신자를 핍박하고 죽일 것이다(계13:11-18 참조).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16:3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타락된 종교가들이 참 신자를 핍박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을 참으로 알지 못한 까닭이요,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 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참 신자를 핍박하는 일은 보통 상식 밖의 일이므로 실족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것을 미리 가르쳐서 제자들이 알고 있어야 그 일을 당할 때에 실족하지 않게 된다.

 

二. 예수님이 가시면 보혜사를 보냄(5-14)

 

. 16:5-6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네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아버지께로 가는 기쁨의 길인데 제자들은 그 기쁨의 진리는 모르고 죽는 일만 생각하여 근심이 가득하였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어 가지게 된다.

 

.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이 실상은 유익하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죽으셔야 구속을 이루게 되고 보혜사가 오시기 때문이다.

보혜사는 대언자(代言者), 변호자(辯護者)라는 뜻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완성된 진리를 대언하시는 성령을 가리킨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예수님이 떠나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으로 구속을 완성할 것을 가리킨다.  구속이 완성된 후에 그 완성된 진리를 대언하며 사역할 보혜사가 오신다(보혜사의 직무는 완성된 진리를 대언하며 사역하는 일임).  구약시대에도 성령이 내내 계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믿도록 역사하였다(시51:11).  또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였고 세례요한의 부친이 성령의 감동으로 말을 하였다(눅1:67).  안나가 아기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도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을 알았고(눅2:38), 예수님의 제자들이 믿게 된 것도 성령으로 믿은 것이다(마16:16-17).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로 믿을 수가 없다(고전12:3).  그런데 예수님이 승천하실 다음에 오시는 성령도 같은 성령인데 왜 보혜사라고 하는가?  이는 보혜사의 직책과 직무를 가지고 역사하기 때문이다.  보혜사는 완성된 구속의 진리를 대언하며 사역하신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으로 구속이 완성된 후에 성령께서 보혜사의 직책을 가지고 일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아직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에 대한 진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성령이 이 진리에 대해서는 역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게 되면 성령은 그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게 된다.  따라서 그 직무를 수행하는 성령을 \"보혜사\"라고 칭한다.  구약 시대에나 예수님 당시에나, 신약시대에 역사한 성령은 같은 성령이지만 역사하는 진리면이 다르고 직무가 다르다.  구약 시대에는 진리가 의문과 제도에 내포되어 희미하게 나타났기 때문에(골2:14-17 참조) 성령도 그 정도로 약하게 역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진리가 좀더 확실히 나타났을 때는 그만큼 성령이 강하게 일을 하였고,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 승천으로 구속을 완성한 다음에는 성령이 그만큼 더 강하게 역사를 하신다.  이 성령의 직명이 보혜사이시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만능이신 데 왜 약하게 역사하기도하고 강하게 역사하기도 하는가?  그것은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세계 일등 가는 조종사라고 해도, 구형 경비행기나, 프로펠러 비행기를 조종한다면 빨리 날 수 없고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최신형 제트 비행기를 조종하면 초음속으로 빨리 날 수 있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비행기에 따라 조종사의 능률이 다른 것처럼 성령은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기 때문에 진리에 따라 사역과 능력의 나타남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기 위하여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에게 \"보혜사\"라는 명칭을 준 것이다.

 

.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중생하지 못한 자와 영감을 받지 못한 자는 심령이 어두워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바로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진리를 깨닫게 해줄 때에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바로 깨닫게 되고 책망도 바로 받게 된다.  그때에 비로소 죄관(罪觀)과 의관(義觀)과 심판관(審判觀)이 바로 된다.  책망하시리라는 말의 원어 ( =엘렝크세이)는 죄악과 과실을 꾸짖어 확신하게 함을 의미한다(박윤선).

 

.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이다.  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대속해 주셨으므로 예수를 믿는 자는 죄사함을 받아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그 죄가 그냥 남아 있으므로 영원토록 죄인이다.  ②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임하고 무시한 죄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서 구속을 이루시고 믿으라고 초청(招請)을 했기 때문이다(마22:2-14).  ③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성경 말씀을 불순종한 죄이다.  죄는 성경 말씀을 어기거나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다.  신구약 전체가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사죄와 칭의와 구원을 받을 것을 증거했기 때문이다.

 

.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후 부활, 승천할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은 하나님의 의(義)의 현현(顯現)이요(롬3:21),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실 의(義)의 완성이다(롬3:22-24).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이루어 놓으신 의를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밝히 증거하여 깨닫게 해시고 성도로 하여금 그 의를 받아 확신케 한다(8절의 \"책망하시리라\"는 뜻 참조).

 

.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세상 임금은 마귀를 가리킨다(12:31).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마귀가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 때에 죄와 사망의 권세와 마귀의 권세가 깨어진 것이다(히2:14-15).  그로 인하여 마귀가 신자에게는 왕 노릇하지 못하고 주장하지 못하고 패잔병(敗殘兵) 노릇을 한다.  보혜사 성령이 와서 이 사실을 밝히 드러내어 성도에게 확신케 하고, 또 마귀의 잔재(패잔병)를 점점 더 멸하여(복음이 전파되는 것만큼, 성도가 신앙 생활하는 것만큼)맨 나중에는 불 못에 던지고 만다(계20:10).

 

. 16: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진리의 대지(大旨)와 원리만 가르쳐 주고 신령한 깊은 뜻은 말해 주지 않았다.  그 때는 감당치 못하겠기 때문이었다.

 

.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그 신령한 뜻을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보혜사는 진리의 대언자시요 또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진리의 깊은 뜻과 신령한 뜻을 다 통달하고 대언해 주신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신령한 일과 진리의 참 뜻을 알 수가 없다.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성경 진리에 어긋나도록 역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에 어긋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마귀의 역사이다.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성령은 오직 아버지께 듣는 진리와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진리대로만 증거하신다.  또 장래 일도 알게 해 주신다.  즉 신약교회 운동, 말세에 관한 일, 심판에 대한 일 등이다.  그 모든 성령의 증거는 오늘날 우리 성경에 다 기록해 놓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표준 계시가 우리 성경에 다 기록되어 완성되었고 종결되었다(히1:1).

 

.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라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예수님이 진리를 다 계시하시고 또 완성하셨으므로 그것을 가지고 성령이 일하며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할 것이다.  그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더욱 나타날 것이다.

 

三.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예언(15-24)

 

. 16: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아버지의 모든 것은 아들을 통하여 계시(啓示)함으로 아버지의 것은 다 아들의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성령으로 알게 하고 적용한다.  성도들도 자기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귀의(歸依)하여 하나님께 전적 순종하면 하나님의 것이 다 자기의 것이 된다.

 

. 16: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예수님께서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후에는 다시 부활할 것을 가리킨다.

 

. 16:17-18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도리를 아직 깨닫지 못하여 예수님이 윗 절(16절)에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 16: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제자들이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말씀을 깨닫지 못하므로 예수님이 다음절부터 여러 면으로 다시 말씀해 주신다.

 

.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면 제자들은 선생님을 빼앗기겠으므로 애통할 것이요. 세상은 자기들이 승리한 줄 안고 기뻐할 것이다.

 

.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제자들이 근심하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시므로 기뻐할 것을 비유로 가르쳤다.  이것은 마치 여자가 해산하게 되었을 때에 그 고통으로 인하여 근심하는 것과 같고, 그 기쁨은 해산 후에 낳은 아이로 인해 기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성도가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환난과 핍박을 받는 것도 이와 같다.  고난이 올 때에 잠깐 근심하나 그로 인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권고가 오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져서 그 환난과 시험을 이기게 되므로 주님이 가까워지고, 능력이 입혀지고, 새 생명이 자라나 큰 기쁨이 된다.

 

.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은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다.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예수님이 부활하여 제자들을 다시 만나 볼 것을 가리킨다.

 

. 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주의 부활체를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이니 그 날에는 부활에 대하여 알려고 다시 묻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주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간구는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이루어 주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주시지 않는다(약4:3).

 

.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아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 승천으로 구속을 완성하신 후에야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리스도인 것을 밝히 알고 믿게 될 것이며 그 때에는 믿음으로 구하게 되고 그 구속에 대한 모든 것을 받게 되어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四.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실 것을 밝히 말씀해 주심(25-31)

 

. 16: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이것은 16절 이하의 강화(講和)를 가리킨다.  비사(比辭)는 특히 21절에 여자가 해산하는데 대한 비사를 가리킨다.  때가 이르면 성령 강림할 때를 가리킨다.  성령께서 강림하시면 아버지께 대하여 예수님께 대하여 밝히 알게 될 것이다.

 

. 16: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그날은 성령 강림할 날이다.  성령 강림 전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기도해 주었으나 강림 후에는 제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직접 아버지께 구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24절 해석 참조).  그러나 이 말은 예수님께서 성령 강림 후에는 성도를 위하여 도무지 기도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다(롬8:34, 히7:25 참조).

 

. 16: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 후에 성령이 강림하시면 제자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 믿게 되어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요, 아버지께서 친히 그들을 사랑하실 것이다.  제자들은 진리를 깨닫고 영의 눈이 밝아진 것만큼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 16:2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 나신 영원하신 성자로서 아버지께서 보내서 세상에 왔고 그 사명을 다한 후에는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시는 일로 인하여 근심할 바가 아니다.

 

. 16:29-30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제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실 것과 다시 오실 것과 성령 강림에 대하여 밝히 말씀해 주시는 것을 듣고 그의 전지(全知) 하심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했다.

 

. 16: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예수께서 그들이 믿는 것을 기뻐하셨다.

 

五. 환난 때에 담대하라(32-33)

 

. 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잡혀 갈 때에 제자들이 자기 육신의 목숨을 위하여 도망할 것을 예고해 주셨다.  그들은 믿는 자이지만 아직 육체 속한 연약한 자이므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할 자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제자들이 버리고 도망할 때에 예수님은 섭섭해하거나 고독해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는 것으로 항상 만족하고 든든하고 담대하였다.  예수님은 온전히 하나님만 의뢰하는 신앙이다.  우리도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환난이 와서 옥에 끌려가고 자기를 사랑하고 도와주던 사람이 자기를 버리고 배반할지라도 그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면 아버지가 함께 계시고 붙들어 주신다.  하나님이 방패와 병기가 되시고 큰 위로와 생명이 되신다.

 

.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본 절은 14:1 이하의 결론으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로 시작하여 15:18-25에는 환난과 핍박인 올 것을 말씀하시고 16장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강림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이것은 제자들로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평안은 진리를 깨달음과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영적 교통을 하는데서 오는 영적 평안이다.  이 평안은 모든 환난 중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참된 평안이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신자가 환난 중에 담대하게 될 이유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이 세상을 다 이기시고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정복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오는 모든 환난과 고통은 그리스도께서 이기시고 정복해 놓은 것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그 모든 것은 다 패잔병들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가는 성도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나 권세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모든 피조물이라도 넉넉히 이기게 된다(롬8:35-39).

 

제 17 장  기 도

 

(대  지)

一. 인자의 영화와 성도의 영생(1-5)

二. 성도가 주의 것이므로 믿음을 주심(6-10)

三. 성도 보전과 거룩함을 얻는 기도(11-19)

四.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한 기도(20-23)

五. 성도들이 주의 영광을 보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함(24-26)

 

(본문 강해)

 

一. 인자의 영화와 성도의 영생(1-5)

 

.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성부, 성자, 성령은 삼위일체이지만 구속사역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늘 성부께 기도하였다.  때가 이르렀사오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실 때가 이르렀다는 말이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께서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은 명예 영광심으로 하신 것이 아니요 예수님이 영광을 얻어야 아버지께서 영광을 얻으시겠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쟁에 나간 장군이 승리하여 영광을 얻으면 그것이 곧 왕의 영광이 되고 그 장군이 영광을 얻지 못하면 왕도 영광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을 다 이루어서 자신이 영화롭게 되고 또 아버지가 영화롭게 되기를 소원하는 기도이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십자가의 구속을 승리적으로 완성케 해달라는 기도이다.  예수님이 영화롭게 되는 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일을 다 완수하는 일이다.

 

.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하나님이 아들인 예수님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는데 그것은 택한 백성을 건져내어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다.

 

.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과 영적 생명이 계속하여 살아나가는 것이다.  그 영생을 얻는 방법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영혼이 산 증거이다.  죽은 사람이 자기 부모나 형제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죽은 영혼은 영적인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구주를 알지 못한다.

안다는 것은 육신적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인하여 영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로 믿는 사람은 그 영혼이 살아났다(요일5:1).  이것이 중생이다.  중생한 영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것이 영생이다.  벧전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다.  ②중생한 새 생명은 자라나는 것이다.  산 것은 무엇이나 활동하며 자라나게 되어 있다.  영이 자라나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선한 싸움을 싸워 자신을 그대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이 모든 죄와 싸워 성경대로 순종하면 점점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풍성히 얻어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영이 날마다 살아 나가는 것이요 영생 생활이다.  이렇게 영으로 살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무한한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달아 알게 된다.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구속에 대한 모든 선물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전부 값없이 거저 주신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그 은혜를 계속 받고 그것으로 살게 되므로 항상 평안하고 기쁘고 즐거움이 넘친다.  이것이 영이 날마다 살아나가는 생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

 

.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 이루어 드리므로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셨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있어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다 감당해 드려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면 하나님께서 또 그 사람을 영화롭게 해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자신이 낮아지고 종노릇하고 환난과 핍박이 많아도 온유 겸손하여 잘 참고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사명을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여서 영화롭게 해주신다.

 

.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요 성자이시다.  그러므로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영광도 함께 가지셨다.  성자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세상에 계실 때는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되었다(시8:5).  이제 예수님이 사명을 다 완수하심으로 하나님이 다시 그 영화를 회복시켜 주실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二. 성도가 주의 것이므로 믿음을 주심(6-10)

 

.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즉 택한 백성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택한 백성을 다 예수님께 주었고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다 나타내 주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 믿었으므로 아버지의 중요한 명령을 지킨 것이 된다(요6:40참조) .

 

. 17:7-8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을 지킬 때에 그 말씀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알게 되고(요7:17 참조),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서 오신 줄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말씀을 순종할 때에 심령의 눈이 밝아져서 신령한 것도 알게 되고 또 모든 것을 바로 알게 된다.

 

. 17: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고 믿는 성도를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리 택한 백성의 구원이 잘되도록 기도하시며 우리가 잘못 나갈 때에는 잘못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또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할 때에 바른 길을 가도록 기도해 주시며 우리가 시험에 들었을 때에 그 시험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환난과 핍박이 올 때,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잘 이루어 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늘 기도하신다(롬8:34 참조).

 

. 17: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버지의 것으로 삼아놓았으므로 자기의 사사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것이 전부 예수님의 것이 되었다.  또 아버지의 영광도 예수님에게 왔다.  성도들이 보리떡과 같이 보잘것없고 가치가 없는 자일지라도 하나님을 순종하여 자신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면 아버지의 것이 다 자기 것이 된다.  보리떡 그것조차도 사실은 내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바치면 하나님은 더 좋은 것으로 주신다.  욥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놓고 살았기 때문에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어버렸을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신령한 것을 한없이 많이 주었고 더 좋은 자녀와 물질도 배나 주었다.  성도가 인색하여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놓고, 하나님 앞에 내놓지 않으려고 움켜쥐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다 불어 버리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아버지의 것으로 삼아 놓고 청지기의 위치에서 봉사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령한 것과 모든 것을 다 주신다.  우리가 이기주의와 사욕을 버리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과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바쳐 놓고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성도는 아버지의 것이요 또 예수님의 것이다.  성도가 구원을 받고 말씀대로 순종하면 예수님이 영광을 받는다(마5:16).  그러나 성도가 불순종하고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 욕이 돌아간다(요2:24 참조).

 

三. 성도 보전과 거룩함을 얻는 기도(11-19)

 

.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갈 날이 가까우므로 제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란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의 능력으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제자들을 지켜 달라는 것이다.  그 제자들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아버지의 이름이 세상에서 거룩케 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해 주신 이름이다.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어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킨다.

 

. 17: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제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하여 지켰다.  즉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케 하도록 보전하고 지켜 주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멸망하게된 것은 예수님의 보호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고 성경(시41:9)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게될 때에 제자들의 보호를 아버지께 부탁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잠시라도 하나님의 보호가 없다면 마귀가 성도를 그냥 두지 않고 삼켜 버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항상 성도를 보전하셔서, 낮에 해와 밤에 달이 상치 않도록 지켜주신다(시121:3-1 참조).

그들의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시다(암9:9).

 

. 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에 대한 구속의 참 진리를 깨달았다.  성령 강림과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에 대한 말씀을 깨달아 확고히 믿을 때에 근심이 없어지고 도리어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모든 기도를 해주신 것이다.

 

.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한다(요15:18-19).  성도가 세상에 속했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하겠으나 하나님이 세상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였으므로 세상이 미워하고 핍박하며 배척한다.  세상 사람이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미워하는 것은 자기들과 맞지 않고 자기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기 때문이다.  딤후3:12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다.  그러나 세속화된 교인을 세상사람이 칭찬하고 높인다.  거짓 선지자들은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환영한다(눅6:26).

 

.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믿는 자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14절)은 믿는 자로 하여금 당장 죽어 하늘 나라로 데려가기를 원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직 세상에서 악에 빠지지 않고 마귀 시험을 이기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보호가 아니면 믿음을 지킬 수 없고 마귀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그의 능력을 힘입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나아가야 한다.

 

. 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같이 성도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진리이다.  진리로 거룩하게 진리의 말씀을 믿고 지킬 때에 죄악에서 떠나 거룩하게 되고, 영혼이 자라나고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점점 더 이루어 나간다.  그러므로 성도가 진리를 믿고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2:26).

 

.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구속 사업을 한 것 같이 예수님은 성도들을 세상에 보내어 구원 사업을 하게 하신 것이다.  성도가 세상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구원사업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여야 한다(골1:24 참조).

 

. 17: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구속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지켜서(죽기까지 복종)진리로 자신을 거룩하게 하였다(17절에 진리로 거룩하게 된다고 했음).  그 목적을 성도들이 진리를 믿고 당신과 같이 죽기까지 복종하여 거룩함을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四.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한 기도(20-23)

 

. 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예수께서 제자들이 거룩하게 되기 위한 기도와 하나가 되기 위한 기도를 하신 것은 그 당시 제자들만 위한 것이 아니고 후대의 모든 성도들도 포함하여 기도한 것이다.

 

. 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성도가 하나가 되는 비결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안에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신 것 같이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진리와 영적 신앙의 교통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참 진리와 영적 신앙이 아니면 하나가 될 수 없다.  제도나 조직이나 사업만 같이 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아니다.

 

.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영광은 도성인신(道成人身)하신 독생자의 영광이다(요1:14).  이 영광을 신자에게 주신다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양자가 된 것과(롬8:15)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갈4:19, 고후3:18, 벧후1:4).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17: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성도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은혜와 진리)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에게 공급하여 성도들이 영적으로 온전함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서로 사랑하며, 영적 일치(靈的一致)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케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온전함을 이루어 성도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일생동안 이루어 나가야 한다.

 

五. 성도들이 주의 영광을 보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함(24-26)

 

.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나 있는 곳은 아버지의 집이요 예수님이 예비하신 처소이다(요14:1-3해석 참조).  즉 구속의 세계요 하나님의 나라인데 천국도 포함된다.  성도가 구속의 세계에서 살면 예수님과 같이 있는 것이다.  마28:20에 예수님은 세상 끝날 까지 성도와 항상 같이 계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주신 그 영광을 계속 발견하면 보게 된다.  예수님 재림시에도 완전히 보게될 것이다.

 

. 17: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하나님을 의로우신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세상을 공의대로 심판하시고,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세워 나가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의로우신 아버지께서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세상을 심판하시고 교회를 육성해 주실 것을 기도로 부탁하였다.

저희도 성도들 즉 교회를 가리킨다.

 

. 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의 이름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자가 계시하신 바 하나님의 특성을 말한다(이상근).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나타났다.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그것이 더욱 더 성도에게 잘 알게 될 것이다.  그 목적은 성도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게 하고 성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계시려함이다.  이것이 천국 운동이다.

 

제 18장  잡히심

 

(대  지)

一. 겟세마네 기도(1-2)

二. 예수님의 담대하심과 사랑(3-9)

三.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달게 받음(10-12)

四. 심판석까지 두 제자가 따라감(13-18)

五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심(19-40)

 

(본문 강해)

 

一. 겟세마네 기도(1-2)

 

. 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기드론 시내 예루살렘 동쪽에 있으며 성전 있는 산과 감람산 사이를 남북으로 흐르는 작은 시내로서 남쪽은 물이 힌놈의 골짜기를 통해 사해로 흘러들어 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는다.  동산은 겟세마네 동산을 가리키며 감람산에 있다.  예수님이 가끔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가서 기도하셨으며 이번에도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하러 가셨다.

 

. 18:2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도 잘 아는 그 동산에 예수님이 기도하러 가신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자원하여 지기 위함이었다.

 

二. 예수님의 담대하심과 사랑(3-9)

 

. 18:3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훼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세상 권력을 대표하는 로마 군대와 타락된 종교를 대표하는 대제사장과 바리세인들의 하속들이 합세하여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를 앞세우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다.  언제나 이두 세력이 합세하여 참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다.  말세에 기독교 대 박해 시대에도 이 두 세력이 합세할 것이다(계 13장의 두 짐승 해석 참고).  누가22:52에 보면 그 무리 가운데는 대제사장과 성전의 관원들과 장로들이 끼어 있었다.

군대 로마 군대의 한 대대(600명) 라는 설과 3분의 1되는 중대(200명) 라는 설이 있다.  그 부대는 예루살렘 성전 서북 구석의 안토니아 요새에 있었는데 대세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데리고 온 것이다.  그들은 성자 예수님을 마치 강도를 잡는 것 같이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잡으러 온 것이다.  참으로 그들은 세상 힘과 무력만을 의지하는 가련한 자들이었다.

 

. 18: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기도하던 동산 깊은 곳에서 나가서 \"누구를 찾느냐\"\" 물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고 마주 나간 것이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입 맞춘 사실은 예수님이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시기 직전에 한 것이다(마26:49-50).  요한은 여기에서 그 일을 생략했다.

 

. 18:5-6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예수께서 잡으러 온 그들을 향해 \"내로라\"하고 말씀할 때에 그들이 땅에 엎드러졌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권위와 신적 능력 앞에 굴복된 것이다.  예수님이 생명을 내놓고 선한 양심을 따라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하나님을 힘입어 그 능력으로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게 능력이 충만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처럼 살면서 하나님을 힘입어 증거할 때 영력이 있고 권위가 있다.

 

. 18:7-8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예수님이 \"누구를 찾느냐\"고 재확인하시고 제자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죽음에 내어주면서도 제자들을 보호하고 사랑하셨다.  이보다 더 큰사랑이 없다.

 

. 18: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예수님이 잡히면서 제자들을 보호하신 것은 17:12에 예언한 말씀의 성취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실을 예언한 것이며 그 말씀은 곧 성취이다.

 

三.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달게 받음(10-12)

 

. 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천성적으로 성격이 급하고 의협심이 강한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마음에서 즉시 검을 빼어 말고의 귀를 베어 버렸다.  그가 베드로의 칼에 좀더 큰 상처를 입었더라면 예수님이 자신을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자원하여 잡히는 구속사업의 신성한 일에 큰 방해와 오점이 될 뻔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칼을 막아서 더 큰 사건이 생기지 않게 해주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지 아니하면 언제나 실족한다.  예수님의 싸움은 혈육의 싸움이 아니고 영적 싸움이다.  그러므로 제자 된 자가 혈육(혈기)으로 대적하면 실패요 예수님을 걱정시킨다.

 

. 18: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누가22:51에는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고 했다.

예수님은 제자의 실수로 생긴 상처를 싸매시며 낫게 하여 당신의 성역에 지장이 없도록 하시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대제사장과 군인들이 병기와  몽치를 가지고 와서 잡으려고 할 때에 예수님은 그것이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고난) 인줄 알고 달게 마시려고 작정하셨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은30에 팔았고,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시기하여 잡아죽이려고 하며 빌라도가 불의한 재판을 하여 죽게 되는 것을 아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주신 잔으로 알아 달게 받으셨다.  우리도 애매히 능욕과 비방과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에 이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주신 잔으로 알아 달게 받고, 감사히 받아야 할 것이다.  사람을 원망하고 환경을 탓하고 불평과 불만에 사는 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심사(心思)이며 분명히 마귀의 충동인 것이다.

 

. 18: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예수님은 원수들에게 잡혀 결박당하시고,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다(마26:56).

 

四. 심판석까지 두 제자가 따라감(13-18)

 

. 18: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안나스는 주후 7∼14년까지 대제사장이었으며 그 후에는 그 아들이 대제사장직에 있었고, 그 후에는 그의 사위 가야바가 주후 18∼36년까지 대제사장으로 있었다고 한다.

 

. 18: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권고하던 자러라

가야바는 공회에서 예수님께 대해 본의 아닌 예언을 한 바 있다(요11:49∼50해석 참조).

 

. 18: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제자들이 동산에서 다 도망했었으나 베드로는 돌아와서 예수님이 결박되어 잡혀가는 것을 멀리서 보고 따라갔다(마26:58, 막14:54 참조).

다른 제자는 사도 요한으로 본다.  요한의 어머니 살로매는 성모 마리아와 형제간이고(요19:25, 막15:40, 마27:56 비교) 그들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의 친족이었으므로(눅1:5, 36 참조) 요한은 제사장의 가계(家系)와 가까운 친족 관계이었을 것이다.  요한이 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였으므로 안 마당까지 들어갔다.

 

. 18:16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베드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 서 있었는데 요한이 나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부탁하여 베드로도 함께 안 마당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심문 받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열두 제자 중 겨우 이 두 제자가 그곳까지 따라갔으나 그것도 예수님의 제자의 자격으로 따라간 것이 아니다.  요한은 그 친척집에 가는 구실로 따라갔고 베드로는 요한을 통해 들어갔으나 예수님의 제자라는 신분을 밝히지 못하고 구경꾼인체 하고 불을 쬐면서(18절) 예수님이 심문 받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어떤 환란과 핍박이 와도 예수님의 제자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신앙 준비와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나가야겠다.

 

. 18: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대사도(大使徒) 베드로가 문 지키는 여종 앞에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부인하였다.  이것은 베드로가 자기 목숨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한 까닭이다.  베드로에게 그의 목숨은 우상이었다.  신앙 안에서 죽고자 하는 자만이 사는 것이 십자가의 도이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지 않고 믿는 신자는 언제나 이러한 실패를 당할 것이다.  그 때가 오기 전에 신앙의 준비를 잘 하여야 실패하지 않는다.

 

. 18: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의 자격은 완전히 상실(실패)하고 구경꾼의 일원(자격)으로 불을 쬐고 있었다.

 

五.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심(19-40)

 

. 18:19-21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예수님의 교훈은 공명정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온 세상을 향하여 회당과 성전에서 공공연히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숨어서 음모를 하거나 비밀결사 같은 것을 한 일이 없다.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언제든지 증거할 수 있을 것이니 그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셨다.  본인의 말보다 증인의 증거가 더 중요한 것이므로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신 것이다.

 

. 18: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 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대제사장은 진리대로 재판할 자요 하속은 그 조수(助手)이다.  그런데 그 하속이 대제사장의 체면을 세우기 위하여 진리를 말하는 예수님을 손으로 친 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이렇게 타락된 종교가들은 진리의 여부와 의와 불의를 판단하는 것은 멀리 떠나고, 자기들의 교파와 교권을 세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또 그 하속(下屬)들은 맹목적인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으니 그들이 받을 심판이 클 것이다.

 

. 18: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사람을 징벌하는 데는 표준이 있어야 한다.  그 표준은 진리요 의요 법이다.  예수님이 잘못 말한 것이 없음에도 예수님을 친 것은 그들이 불의를 행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반항한 것이 아니고 불의를 지적해 준 것이다.

 

. 18: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예수님은 결박된 채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려갔다.  이것이 두 번째 심문소이다.

 

. 18: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베드로가 두 번째 주를 부인했다.  이때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두 주인을 섬기는 자는 결국 자기 사욕이 주격이 되어 그것을 따라가게 된다.

 

. 18:26-27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예수님께서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셨다(마26:52).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칼로 베었고 때문에 말고의 일가가 베드로를 잘 기억하였다가 베드로에게 아주 불리한 증언을 하였다.  그때 베드로가 또 주를 부인하였다.  이것이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째 부인한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원수를 맺을 만한 말이나 행위를 하지 말고 항상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가 닭이 우는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울었다고 했다(막14:71- 72, 마26:75 참조).

 

. 18:28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심문한 후 저희가 새벽에 빌라도 관정으로 끌고 갔다.  관정(官庭)은 총독이 재판할 때에 사용하는 장소이다.  유대인들은 때가 유월절 전날이므로 더럽힘을 받지 않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그날 종일 더러워진다고 함) 그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이 외부적인 규례와 의식을 지키는데 만 치중하고 내적 생명과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은 배척하고 죽이려 하고 있다(고전5:7 참조).  의식과 제도를 지켜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타락된 종교는 언제나 이와 같이 의식과 제도와 규례를 지키기에만 열중하고 진리와 생명의 역사에서 떠나 있다.  이들이 신앙의 알맹이를 내버리고 껍데기만 가지고 만족하는 우맹이요 소경들이다.

 

. 18: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빌라도가 그들이 관정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 있으므로 밖으로 나가서 저희에게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 18:30-31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기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죄명은 논거(論據)하지 못하고 무조건 행악자인고로 재판에 넘긴다고 대답하였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는 것을 알았고(눅23:14, 요18:38 참조) 그들이 시기로 예수님을 잡아온 줄도 알면서(마27:18, 막15:10 참조) 너희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다고 했다.  타락된 종교가들은 이방 정권의 힘을 빌어 생명의 주를 죽이려 했다.

 

. 18: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교권자들이 시기와 충동으로 민중을 움직여 예수님을 잡아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 자신이 어떠한 죽음으로 죽어야 할 것을 성경에 예언해 놓았으며 그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다(3:14, 12:32).  그러므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예정이며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이었다.

 

. 18: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려고 한다고 고소했다(눅23:2 참조).  그 때문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결박했고 유대인의 왕인지 여부를 물어보았다.

 

. 18:34-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유대인의 왕은 세상적 왕과 신령한 왕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어느 종류의 왕에 대하여 묻는가를 알아보고 답변하려고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하고 물으신 것이다.  빌라도가 스스로 한 말이면 세상 왕에 대해 물으신 것이므로 예수님은 \"아니다\"고 답변하였을 것이요, 유대인들이 시켜서 묻는 것이라면 신령한 왕(그리스도)에 대해서 답변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빌라도가 유대인들이 시켜서 묻는 것으로 답변했기 때문에(35절)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답변하시고 그 왕의 성격을 말해 주었다.

 

.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은 신령한 왕의 소속과 권세를 말해 주었다.  그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또한 혈육으로 싸우는 왕이 아니라고 했다.

 

. 18: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는 신령한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신령한 왕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을 깨닫지 못하고 \"네가 왕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은 밝히 \"내가 왕이니라\"하시고 그 신령한 왕의 성격에 대해 다시 말해 주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나셨으며(육신적 출생), \"이를 위해 세상에 왔나니\" 왕 즉 메시야의 사명을 위해 왔다는 것이다.  이 신령한 왕은 진리를 증거하는 왕이요 진리에 속한 자는 그 왕(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나라 백성이 된다고 말씀해 주었다.

 

. 18:38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예수님께 질문하였다.  그는 진리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캄캄한 자였다.  그러므로 종교문제에 대해서 개입하려 하지 않고 세상법으로 볼 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하고 예수님의 무죄를 제 일차로 선언했다.

 

. 18: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큰 절기가 되면 죄인들을 특별 사면해주는 전례가 그때에도 있었다.  빌라도는 의지가 박약한 자이므로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하고도 석방하지 못하고 민중의 합의를 얻으려고 하였다.  이는 법과 진리에 서지 못한 비겁한 자이다.

 

. 18:40  저희가 또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빌라도의 말을 듣고 군중들은 강도인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는 못 박게 해달라고 했다(막15:6-15).  예수님에게는 아무 죄가 없는데 십자가에 못 박으라 하고, 살인 강도는 놓아 달라고 했다.  이는 그들의 처사가 얼마나 악하고 잔인 무도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 속에 시기가 들어오면 마음이 이렇게 까지 악해진다.  무지하고 악한 사람들은 이렇게 알지 못하고 악한 일을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이용해서 당신의 구속사업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참으로 오묘하다.

 

제 19장  십자가

 

(대  지)

一. 빌라도의 심문과 재판(1-16)

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17-30)

三. 예수님이 죽으심(31-37)

四. 예수님의 장사(葬事)(38-42)

 

(본문 강해)

 

一. 빌라도의 심문과 재판(1-16)

 

. 19: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질한 것은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얻은 후에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려는 수단으로 한 것인데 이는 그 아내가 예수님을 죽이지 말라고 충고한 후 일 것이다(마27:19).  그러나 이 방법은 나약(懦弱)하고 야비한 수단이었다.  이것은 이사야53:5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예언한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우리가 맞을 채찍을 대신 맞으신 것이다.  그때 채찍은 나뭇가지나 혁대(革帶)로 만들어 끝에 연(鉛)이나 뼈(骨片)를 붙였다고 한다.

 

. 19:2-3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옷을 입히고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

군병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기 위해 왕으로 가장하여 능욕하고 조롱한 것이다.

가시 면류관 왕관 대신에 가시 면류관을 씌웠다.  이것은 우리의 머리로(사상으로)지은 죄 때문에 고난받은 것이다.  자색 옷은 왕이 입는 옷인데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하여 입혔다.  마태복음에 보면 손에 갈대를 들렸다고 했는데 이것은 왕이 가진 홀을 대신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와서 꿇어 희롱하기를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거짓 인사를 하고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때렸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이렇게 희롱과 멸시와 폭행을 당했다.  빌라도가 군병들의 악한 희롱을 내버려 둔 것은 예수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을 만족시킨 다음에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한 불법적이고도 나약한 인간의 수단이었다.  의는 불법한 방법으로 세워나갈 수 없고 진리로서만 세워 나간다.

 

. 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두 번째 선언했다.  이로써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한 것이다(18:38 참조).

 

. 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그는 관정 안에서 지치고 초라한 모습이 된 예수님을 가시면류관과 자색 옷을 입힌 채 데리고 나와서 유대인들에게 보였다.  이는 유대인들의 동정을 얻어 놓아주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더 멸시하고 의기 양양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불의한 자와 타협하면 불의한 자에게 사로잡히는 법이다.

 

. 19:6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유대인들은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을 권리가 없다(18:31).

빌라도가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한 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할 줄 알고 한말이다.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세 번째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했다(18:38, 19:4 참조).

 

. 19: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법이 있다\"함은 레24:16, 신18:20등, 하나님을 훼방한 자나 거짓 선지자를 죽이는 법이다.  그들이 시기하여 예수를 죽일 목적으로 이렇게 정죄하여 무고(誣告)한 악행이다. 또 이 법은 종교적 법이며 세상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문제를 로마법에 의하여 정죄 할 수 없는 것이다.  빌라도가 세상 법관이면서 그 법대로 재판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리에 있다.

 

. 19: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가 그 아들이라면 큰 벌을 받지 않을까? 하여 더욱 두려워한 것이다.

 

. 19: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예수님이 대답해 주지 않은 이유는 ① 이미 빌라도에게 예수님 자신에 대하여 충분히 증거해 주었고(요18:33-37), ② 빌라도가 예수님이 죄 없는 줄 알면서도 석방하지 못하고 유대인들의 농락(籠絡)에 걸려들어 질문하기 때문에 그런 불성실한 질문에 대답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③ 불신자인 빌라도에게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문제, 하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문제를 말해 주어도 알 수 없고, 그때 상태로서는 도리어 물고 찢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 19:10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므로 빌라도는 자기의 권위가 손상될 것으로 생각하여 자기가 가진 세상 권세를 말하여 예수님으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려고 했다.

 

. 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롬13:1).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신 것은 그 권세를 바로 사용하여 선한 자는 포상하고 악한 자는 벌하라고 준 것이다(롬13:3-4).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빌라도의 죄도 크지만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준 자, 즉 유대인들의 죄는 더 크다는 것이다.  유다 총독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시기로 잡아 온 것과 예수님에게 죄 없는 줄을 알면서도 공의를 따라 바로 판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죄가 큰 것이고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다 나타내 보여 주었으나 믿지 않고 오히려 시기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넘겨주기 때문에 그 죄가 더 큰 것이다.  빌라도가 예수를 재판하고 있으나 사실은 예수님이 빌라도를 재판하신 것이다.

넘겨 준 자는 대제사장, 바리새인들 즉 공회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과 성경대로 모든 것을 판결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인데 성경과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시기로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으니 그들의 죄는 빌라도의 죄보다 더 큰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죽인 죄는 천추만대(千秋萬代), 내세까지 최고의 죄가 되는 것이다.

 

. 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가 조금 전에도 예수를 놓으려고 했으나 예수님의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놓으려고 힘썼다.  그때 유대인들은 죄악의 발악을 하여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예수를 놓으면 로마 황제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고 반역자\"라고 소리지르자 나약한 빌라도는 총독의 지위를 잃을까 염려하여 바른 판결을 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석방시키지 않았다.

 

. 19: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 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

빌라도가 예수님을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 언덕이라는 뜻)으로 끌고 나왔다.  이곳은 높은 곳으로서 바닥을 돌로 깐 듯하다.  빌라도가 이곳에서 재판을 하려고 최종의 재판석에 앉았다.

 

. 19:14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제 육시는 유대의 정오(낮 12시)를 가리키는 시간인데 여기서는 낮 9시∼12시를 가리키는 대략적인 시간으로 보아야한다(Calvin).  이렇게 해석해야 될 이유는 마가15:25에 제 삼시(오전 9시)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풍속으로는 대략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 19:15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군중들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시키는 대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하고 소리질렀다.  그들 가운데는 얼마 전에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풀 때에 떡 먹은 자도 있었을 것이고,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부르던 자들도 상당히 있었을 것이다.  군중들의 심리는 갈대와 같아서 바람 부는 대로 대세를 따라 움직이며 큰 소리를 치는 것이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대제사장들이 가이사의 통치 받는 것을 좋아해서 한 말이 아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가이사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아부하여 한 말이다.  그들은 이렇게 외식하며 교활하고 잔인하며 악을 행하기에 지혜로운 자들이다.

 

. 19: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 주었다.  그야말로 참으로 불의의 재판관이다.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할 때 빌라도가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다는 것을 여러 번 선언하고도 백성의 비위를 맞추고 자기의 정치적 유익을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판결했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히 죄인이 되었다.

 

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17-30)

 

. 19:17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 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십자가는 로마의 여러 가지 사형법 중에 최극형으로 노예나 식민지 백성에만 가했던 것이다.  저희가 예수를 맡아 예수님을 못박을 십자가 형틀을 예수님께 지우고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 라틴말로는 갈보리)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 형틀을 지고 가다가 넘어지면 채찍으로 때려서 일으켜 세우고, 또 넘어지면 채찍으로 때려서 일으켜 세워 끌고 가다가 나중에는 구레네 시몬에게 그 십자가(형틀)를 억지로 지워 가지고 골고다까지 갔다(막15:21).

 

. 19:18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 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다른 두 죄수도 예수님의 좌우 편에 못 박았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나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과 형벌을 대신 받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사람이 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을 당하셨다.  한 사람의 죄 값으로 죽는 고통도 큰데 예수님은 만대의 모든 택한 백성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그 고난을 받으셨으니 얼마나 그 고난이 컸겠는가!

 

. 19:19-20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말로 기록되었더라

빌라도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를 히브리말과 헬라말과 로마말로 써서 붙였다.  예수님은 영적 왕(메시야)이시므로 하나님께서 빌라도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렇게 쓰게 한 것이다.

 

. 19:21-22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

대제사장들이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죄패를 보고 어느 정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또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참으로 유대인의 왕인 그리스도로 알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고, 또 예수를 참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하여 빌라도에게 그 죄패를 고쳐 달라고 청원했다.  그때 빌라도는 단호히 거절했다.  이것도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움직여 고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 19:23-24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군병들이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어 가지고 속옷은 제비 뽑아서 나누어 가졌다.  이 일은 시편22:18에 있는 성경 말씀이 응하여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들 생각대로 나누어 가졌으나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 가셨다.

 

.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기는지라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네 명의 여지(聖女)들과 제자 요한이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네 여자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의 이모인 세베대와 아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메(막15:40, 마27:56),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일 것이다; 마27:56, 막15:40, 47), 막달라 마리아(일곱 사귀(邪鬼)가 나간 여성도; 요20:1, 눅8:2)이다.

 

. 19:26-27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순종하여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쓰리고 아픈 고난을 당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고난 중에서도 모친을 생각하고 제자에게 부탁한 것은 천륜과 인륜을 다 성취하신 것이다.  십자가상에서까지 효도를 하셨으니 평소에는 얼마나 효도를 잘하셨겠는가!  십계명도 일 계명에서 사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윤리요 오 계명에서 십 계명까지는 사람에게 대한 윤리이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교훈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다 완성하셨다.

여자여 예수님이 모친께 여자여 하신 데 대해서는 2:4절 해석 참조하라

 

. 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내가 목마르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의 말씀 중 다섯 번째로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목마르신 것은 피가 거의 다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사람이 피를 많이 홀리면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목이 마르도록 까지 피를 다 흘리셨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성경에 예언한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다(시69:3).

 

. 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신 포도주는 로마 군인들이 음료수로 먹기 위해서 갖다 놓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 진 포도주는 보통 음료수로 먹었다. 그 러나 해융과 우슬초를 준비해 둔 것을 보면 죄수들에게도 주기 위해 준비한 것 같다.  \"해융\"은 솜과 같이 수분을 많이 흡수하는 바다풀이고 \"우슬초\"는 보통 길이가 3, 4척쯤 되는 갈대와 같은 식물이라고 한다.  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대어드렸다.  마27:48에는 해융에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예수님의 입에 댔다고 했다.

 

.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사람들이 정성으로 드리는 신 포도즙을 예수께서 받으셨다.  마27:34 이하에 쓸개 탄 포도주를 먼저 예수님에게 드렸으나 맛보시고 마시지 않으셨다고 했다.  쓸개 탄 포도주는 사형수에게 십자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마취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속죄의 십자가 고난을 전부 다 받으셔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사가 되겠기 때문에 마취제인 쓸개 탄 포도주는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받으신 신 포도주는 마취제가 아니고 음료수로 사용하는 포도주였기 때문에 받으신 것이다.

다 이루었다 예수께서 신구약 성경을 다 이루었다는 뜻이다.  또한 예수님의 사명 완성이요 인류의 구속 완성을 말한다.  예수님은 모든 자기 백성들의 사죄와 침의를 완성하신 것이다.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꼭 같은 신성이 있고 우리와 꼭 같은 인성이 있으므로 육신과 영혼이 있다.  그 신성과 인성이 완전히 하나로 결합되었다.  그 영혼이 신성과 함께 하나님 나라(낙원)로 돌아갔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셨다.

 

三. 예수님이 죽으심(31-37)

 

. 19:31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예비일은 유월절 전날이며 금요일이었다.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유월절 주간의 첫 날이다(출12:16, 레23:7).  그해는 유월절이 안식일(토요일)과 겸한 모양이다.  신명기21:22에 나무에 달린 자의 시체는 저주받은 것이므로 그 날에 장사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치우고 유월절을 지키려고 했다.  그 다음날이 안식일이므로 더욱 그러했다.

다리를 꺾어 다리를 꺾는 방법은 큰 나무 망치로 친다고 한다.  이렇게 잔인 무도하게 행하면서 유월절을 더럽히지 않고 먹겠다고 하는 것이다.

 

. 19:32-33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군병들이 다른 두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님은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했다.  이것도 성경을 응하게 된 것이고(36절 참조),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완전한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다리를 꺾지 않게 하신 것이다.

 

. 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예수님의 생명이 아직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까 하여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서 피와 물이 다 흘러나온 것이다.  이것은 생명 전부를 다 쏟아 부은 것을 뜻한다.

 

. 19:35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

이것은 지어낸 말이 아니고 본 자들이 사실을 증거한 것이다.  성경은 사실주의요, 참 진리만 기록한 것이다.

 

. 19:36-37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뼈를 하나도 꺾지 않은 것은 유월절 양의 뼈를 꺾지 말라고 한 출애굽기12:46의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인데 이로서 예수님이 유월절 양의 실체임을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의 옆구리가 창으로 찔리운 것은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리라\"한 스가랴12:10의 성경이 응하게 된 것이다.

 

四. 예수님의 장사(葬事)(38-42)

 

.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요(마27:57),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요(눅23:51), 존귀한 공회원이었다(막15:43).  이 공회원은 당시 예루살렘에 있는 최고 의회기관으로 71명의 의원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의원을 가리킨다.  오늘날 국회의원과 비슷한 직분이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는 아니나 평상시에 숨어서 믿는 예수님의 제자였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유대교에서 출교하기로 결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요9:22), 공회원 직분을 가진 자로서 출교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서 믿은 것 같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크게 한 몫을 감당했다.  공의회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할 때에는 가타하지 않았고(눅23:51),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는 공공연하게 나타나 빌라도에게 담대히 나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였다.

 

. 19:39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께 와서 중생의 도리를 받고(3:2-3), 숨어서 믿은 자이다.  그리하여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할 때에 반대 의견을 제출했었고(7:50-51),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자 이 니고데모가 담대히 나가서 몰약과 침향 백근쯤 가지고 왔다.  한 근은 340그람이라고 한다.  몰약은 고가(高價)의 향으로서 구약시대 때 왕가의 장례식에 사용되었다(대하16:14).

 

. 19: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님의 시체를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다.

 

. 19:41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가 죽으면 묻히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반석을 파서 새 무덤을 만들어 놓았는데 거기에 예수님을 장사하였다(마27:57-60).  요셉이 자기의 새 무덤을 기쁨으로 주를 위해 바쳤고, 하나님께서는 그 무덤을 예수님을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순종하여 구속사역을 이루시는 예수님을 위해 필요한 것(무덤까지도)을 다 예비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성도가 죽은 다음에 자기의 장사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 19:42  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예비일 유월절의 예비일로 본다.  다음날은 안식일이요 큰 날이니(31) 유월절과 안식일이 겸한 날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 유월절까지는 세 시간의 여유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급히 서둘러서 그 동산에 있는 요셉의 무덤에 장사한 것이다.

 

제 20 장  부 활

 

(대  지)

一. 열심(1-10)

二. 사랑(11-13)

三. 봉주(주님을 만남)(14-16)

四. 전도(17-18)

五. 현현(나타나심)(19-23)

六. 부활 신앙(24-29)

七. 성경 목적(30-31)

 

(본문 강해)

 

一. 열심(1-10)

 

. 20:1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안식 후 첫날 안식일은 토요일이므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 즉 주일날이다.  이날 아침에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이날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무덤을 찾아갔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곳은 예수님과 강도들이 사형 받은 곳이다.  그런 외딴 곳에 있는 무덤에 밝기도 전에 찾아간다는 것은 남자로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여자의 믿음과 사랑이 두려움과 공포를 이길 수 있었다(요일4:18).  마리아에게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그곳에 가게 된 것이다.

마리아가 그곳에 간다해도 예수님의 시체를 보는데는 어려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무덤을 막아놓은 돌을 자기 힘으로는 치울 수 없었다.  둘째,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무덤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셋째, 로마 국권으로 인봉해 놓은 것을 뗄 수 없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러한 난관을 미리 생각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 놓고 간 것이 아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에 가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 즉, 예수님을 향한 사모하는 열심이 여러 가지 난관을 무릅쓰고 그곳에 달려가게 한 것이다.  신앙이란 일종의 모험이다.  그러나 이 모험은 허영심과 욕심에서 나온 모험과는 다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열심이 어려운 난관과 장애를 무릅쓰고 나아가게 하는 모험을 하게 한 것이다.  마리아가 인간의 생각으로 이것저것을 따지고 계산하였다고 하면 예수님의 무덤에 나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이 잘 될 것 같지 않고, 무섭고, 어려운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랑과 주님께 충성되이 봉사하고자 하는 믿음으로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마리아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벌써 옮겨져 있었고, 군인들은 다 어디로 가고 없었다.  하나님이 상상 밖으로 모든 일을 잘 이루어 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성도가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신기하게 일해 놓으신 것을 발견하는 수가 종종 있다.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미리 상상만 하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험을 통해서 증거가 생기고 확신이 생긴다.  기도해 보고, 고난받는 자리에 들어가 보고, 전도해보고,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는 신앙이 고귀한 것이다.

 

. 20:2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절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의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도적질해 간 줄로 알고 시몬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보고했다.

 

. 20: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그 보고를 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을 향해 빨리 달음질해 갔다.

 

. 20:4-5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요한이 젊기 때문에 베드로보다 더 빨리 뛰어 먼저 무덤에 도착하여 무덤에 세마포가 놓인 것을 보았으나 그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 20:6-8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대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나이 많은 베드로는 조금 후에 무덤에 도착하자 곧 바로 무덤에 들어갔다.  무덤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를 쌌던 세마포가 놓였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다른 곳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에야 요한도 들어가 보고 믿었다.  베드로가 나중에 왔지만 무덤에는 먼저 들어가 보았다.  젊은 사람이 용기가 있어 일을 추진하고 다른 사람보다 앞장서는 면이 있으나 나이 많은 사람이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신중하게 처리하는 면에 있어서는 젊은 사람보다 훨씬 앞선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을 처리해 나가는데 있어서 젊은 사람도 필요하고 경험이 풍부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도 필요하다.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다른 제자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막달라 마리아가 말한 것(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이 사실임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가 예수님이 부활한 것을 믿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 해석은 그가 당장 기뻐하지 않은 사실과 다음절(9절)에 부활에 대한 말씀을 아직 믿지 못하더라 하는 말과 19절에 그들이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있었다는 것과 마가16:10에 그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었던 사실과 마가16:10에 예수님의 살아나셨다는 마리아의 보고를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하는 말과 누가24:11-12에 사도들이 부활을 믿지 아니한 일파 베드로는 무덤에서 세마포만 보고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간 사실들을 보아 바른 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

 

. 20:9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구약 시편16:10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예언하였고 예수님께서도 여러 번 부활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나 철벽과 같은 완고한 불신앙 때문에 그들이 알지 못했다.

 

. 20: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두 제자가 빈 무덤을 보고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누가24:12에 보면 베드로가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너무 무성의하고 불성실한 것이다.  다음절에 마리아가 울며 찾아 본 것에 비하면 그 제자들의 행동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二. 사랑(11-13)

 

. 20: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전에는 발길을 돌릴 수 없어서 돌아오지 않고 무덤 밖에 서서 울고 다시 그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다.

 

. 20:12  횐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마리아가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횐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아 있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천사들을 보내신 것이다.

 

. 20:13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부활하여 살아나신 것을 아직 알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시체를 다른 옷으로 옮겨 간 줄로 알았다.

 

三.  봉주(주님을 만남)(14-16)

 

. 20: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 못하더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리아의 뒤에 나타나셨고 마리아가 뒤로 돌이켜 예수님의 서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했다.  마리아가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20:15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도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당신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갔으면 어디에 두었는지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부활에 대한 철벽같은 불신앙 때문에 주님을 보고, 또 그 음성을 듣고도 깨닫지 못했다.  \"주여\"하는 말은 일반적인 존칭어이고 예수님께 대한 말이 아니다.

 

.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말로 랍오니여 하니(이는 선생님이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시체만 찾고 있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하여 친절한 음성으로 \"마리아야!\"하고 부르셨다.  그 때에 마리아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과 그의 음성이 평소에 귀에 익은 예수님의 음성이 분명하므로 돌이켜 바라보고 예수님이신 줄을 깨닫게 되었다.  마리아가 처음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으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을 때에 예수님이 당신을 나타내 보여 주신 것이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좀더 예수님을 알기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찾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당신의 모든 것을 나타내 보여주시고, 말씀해 주시며, 알게 해주신다.  예수님을 발견한 마리아는 \"랍오니여\"하고 예수님을 불렀다.  랍오니는 히브리말로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四. 전도(17-18)

 

.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나를 만지지 말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너무 기쁨에 넘쳐 예수님을 지상(地上)에 붙잡아 모시려는 생각으로 예수님을 만지려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영적으로 교제해야만 된다.  예수님은 승천해야 되고 승천 후에도 모든 성도들과 영적으로 영원히 교제하게 될 것이다.  마태28:9에 여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다고 한 것은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다시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려고 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한 것뿐이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아버지께로 올라간다는 것은 영적 세계로 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영적으로 교제하고 섬겨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예수님이 승천할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승천 후에 예수님은 영으로 세상 끝날 까지 성도들과 함께 계셔서(마28:20), 영적인 교제를 계속하신다.

내 형제들에게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형제라고 한 일은 이것이 처음이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으로 인하여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되겠으므로 형제이다.  또 성도가 믿음으로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므로 성도가 예수님의 형제이다(롬8:15).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요 성도들도 부활하여 그와 같이 되겠으므로 모든 성도는 예수님의 형제이다(히2:10∼12,17, 롬8:29, 히1:6).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 예수님의 아버지는 성도의 아버지요 예수님의 하나님은 성도의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님과 생명적인 연합이 되었고 예수님은 우리 안에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으므로 예수님의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요 예수님의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 20: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한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아무도 만나지 못한 부활의 주님을 먼저 만난 막달라 마리아는 전도할 사명이 크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마리아에게 자신을 보이신 것은 자기 혼자만 알고, 홀로 기뻐하라고 알게 한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여 그 기쁨을 같이 나누라고 알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전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이다(고전9:16).  마리아는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전도는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사도들도 그렇게 전도했다(행4:20).  예레미야 선지자도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아이라 하지 말고 너는 보내는 자에게 가서 명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셨다(렘1:7).  하나님을 순종하여 말씀 그대로 전하면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서 택한 백성을 건져내신다.  종자를 심으면 그것이 싹이 나고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말씀의 씨를 뿌려 놓으면 하나님이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신다.

 

五. 현현(나타나심)(19-23)

 

. 20:19  이 달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당한 핍박이 자기들에게도 미칠까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 가운데 나타나셔서 \"저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고 평안을 주셨다.  그 말씀을 받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평안과 안심이 들어 왔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만능이시기 때문이다.  풍랑이 심한 갈릴리 바다를 향해서도 예수님이 \"잔잔하라\" 명하실 때에 잔잔해졌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이 주신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그 평안은 속에서 생수와 같이 솟아나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평안이다.  예수님이 주는 평안은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다(요14:27 참조).  진리를 믿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평안을 주신다.  이 세상에는 환난과 풍파가 많고 마귀 역사도 많아 평안이 없고 복잡하고 뒤숭숭하여 근심과 걱정과 분쟁과 괴로움이 그치지 않으나 예수님이 주신 평안을 받아 누리면 늘 고요하고 평안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문 닫은 방안에 문을 열지 않고 들어가기도 하시고 나오기도 하시며 보이게도 하시고 보이지 않게도 하신다.  음식을 잡수실 수도 있고 영원히 잡수시지 않아도 시장하지 않다.  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신다.  가고자 원하시면 순간적으로 어디든지 가실 수 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 성도가 부활한 몸도 그와 같다.

 

.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님이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 주며 제자들을 믿게 했다.  그 때에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믿고 기뻐했다.  예수님은 언제나 이렇게 믿음이 없어 떨고 있는 성도들에게 찾아가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주님이시다.

 

. 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재차 평안을 주신 것은 그들이 더욱 많은 평안을 얻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게 하기 위함이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구속을 이루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증인들이다(행1:22)

 

.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예수께서 숨을 내쉰 그 숨이 성령이 아니다.  그 숨기운 때문에 성령이 오신 것도 아니요, 그 숨과 같이 오신 것도 아니다.  박윤선 목사는 \"숨을 내쉬는 것은 일종의 상징(象徵)으로서 성령께서 그의 숨기운 때문에 그들에게 오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약속하신 말씀 때문에 오셨다\"라고 했다.  그러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는 뜻은 무엇인가?  진리를 받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보내실 성령으로(16:7) 인하여 그리스도와 생명이 연결되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진리와 영감으로 그리스도의 생명과 성도의 생명이 연결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창세기2: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한 말씀과 같은 내용이다.  따라서 성도는 진리와 영감으로 주는 생명으로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들을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 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이 주신 권위를 가지고 전하라는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에 복음을 받아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죄가 그대로 있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21절), 생명 있는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22절),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했다(마16:19 참조).  사람에게 그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의 복음에 천국 열쇠가 있는 것이다.

 

六. 부활신앙(24-29)

 

. 20:24-25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 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도마는 없었으므로 보지 못했다.  그 후 도마가 오매 제자들이 도마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님을 보았다\" 하니 의심 많은 도마가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나는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다.  신령한 부활의 주님을 육신의 눈과 손으로 만져보고 믿겠다는 것은 유치하고도 위험한 신앙이다.

 

.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여드레를 지나서 그 다음 주일날이다.  부활한 날(주일)과 그 다음 주일을 합하면 여드레다.  이것을 보면 제자들이 주일을 지킨 것이 분명하다.  그 둘째 주일에 제자들이 함께 오고 도마도 함께 있을 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평안을 다시 주셨다.

 

.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은 의심하는 도마에게 그 의심하는 바를 해답해 주셨다.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며 만져 보고 믿으라고 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성도 한 사람이라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찾아가서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셔서 확신케 하시는 것이다.

 

. 20: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가 최고의 신앙고백을 했다.  좀처럼 믿지 않는 자가 믿게 되면 열렬하게 믿어 최고봉에까지 올라가는 자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것이다.

 

.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보고 믿는 것은 초보적인 신앙이요 위험한 신앙으로 마귀의 시험에 들기 쉽다.  우리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오늘날 그 예수님은 영으로 계시므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영으로 믿어야 된다.  하나님의 말씀도 성령의 감동으로 받아 영으로 믿어야 한다.  이것이 바른 신앙이다.  그런데 육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고 나서 믿겠다고 하는 것은 감정에 치우친 육신 중심의 신앙이다.  뿐만 아니라 신령한 것을 육신의 손으로 만져보고 육신의 귀로 듣고 믿겠다고 하는 것은 아주 유치하고 위험하다.  환상이나 음성은 마귀도 보여줄 수 있고 들려줄 수 있다(고후11:14).  영적인 것을 육신에 맞추어서 믿겠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공기를 눈으로 보아야만 믿겠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보고 믿는 사람보다 보지 않고 그 말씀을 믿고 영으로 예수님을 알고 교제하며 믿는 사람이 바른 신앙에 선 자요 복이 있는 자이다.  그릇된 신비주의로 나가는 자는 기도하는 가운데서 계시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는 것은 육신의 감정으로 느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이 아니다.  또한 눈으로 보는 것은 착각에 빠지기 쉽고 또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그러므로 육신의 눈으로 보고 영의 것을 안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이런 자는 마귀의 미혹을 받아 잘못된 길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말씀을 그대로 믿고 예수님을 영으로 영접하여 그 진리와 영감을 받아서 날마다 영적 생명의 길을 걷는 사람이 참 신앙에 선 자요 복이 있는 자이다.

 

七. 성경 목적(30-31)

 

.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이 이 성경책에 기록되지 않은 것도 많이 있는데 이 성경책 특히 요한 복음에 기록한 표적들만 기록한 것은 목적이 있다.  본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함이었다.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새 생명을 날마다 얻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그 구원에 대한 진리를 더욱 발견하여 그를 믿고 힘입어 새 생명을 날마다 얻어나가야 한다.

 

제 21 장  부 탁

 

(대  지)

一. 불순종 실패(1-5)

二. 순종 성공(6-14)

三. 문답과 부탁(問答과 付託) (15-17)

四. 순교 각오(18-19)

五. 타인 무관(他人無關) (20-23)

六. 진리 무한(24-25)

 

(본문 강해)

 

一. 불순종 실패(1-5)

 

. 21: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전 장까지는 부활하신 주님이 유대에서 나타난 것을 기록했으나 본 장에서는 갈릴리에서 나타난 사실을 기록했다.

디베랴 바다는 갈릴리 바다라고도 하고 게네사렛 호수라고도 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 되기 전에 오랫동안 고기잡이하던 바다이다.

 

. 21:2-3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할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를 위시하여 일곱 제자가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을 삼 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며 진리를 많이 배웠다.  예수님이 친히 죽었다가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을 그들에게 여러 번 들려 주셨으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그들을 만나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아침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막달라 마리아를 따라가서 빈 무덤을 보았다.  또 마리아가 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도마가 없을 때 열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20:19), 팔일 후에는 도마와 함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보았다(20:26).  그러므로 지금은 그들이 부활의 주님을 증거해야 할 터인데 물고기를 잡으러 간 것은 하나님의 일을 제쳐놓고 세상으로 돌아간 것이며 믿음이 없는 행동이다.  그들이 제자로서의 사명을 버리고 하늘 나라의 일보다 세상 일로 기울어졌고, 신령한 일보다 육신의 일을 중히 여기며 하나님을 위하는 것보다 자기를 위하는 생활로 돌아간 것이다.  그들은 지금 물고기 잡을 때가 아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적으로 사귀며 그의 인도를 받아 생명을 내놓고 부활의 주님을 증거해야 할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 사명감도 잊어버리고, 물질이 있어야만 산다고 하는 물질주의로 돌아가고 세상으로 돌아간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들이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물고기를 못 잡았다.  베드로와 요한의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 잡는 어부로서 고기 잡는 기술이 능통하고 갈릴리 바다의 형편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고기 있을 만한 데는 모두 그물을 내려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밤새도록 노력했으나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막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10:29).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물고기를 많이 잡았더라면 세상과 물질로 기울어져서 예수님이 찾아가도 그들이 회개하기 어려울 뻔했다.  그러나 그들이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실패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다시 찾고 예수님 앞에 돌아와 회개할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성도가 믿는 일을 잘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이 징계하는 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히12:5,6)

 

. 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님이 세상으로 기울어진 제자들을 버려두지 않고 찾아가셨다.  그들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보고도 예수님인줄 알지 못했다.  그것은 심령의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의 마음이 세상으로 기울어지고 돈으로 기울어지면 심령의 눈이 어두워진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도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눅24:15-16).  오늘날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물질 중심, 육신 중심, 세상 중심으로 기울어져서 돈을 사랑하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면 그 사업이 실패하고 심령의 눈이 어두워진다.

 

. 2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얘들아!  하고 예수님이 늘 듣던 음성으로 부르셨으나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것을 보면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마음이 세상과 물질에 가 있고, 신령한 면이 심히 어두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二. 순종 성공(6-14)

 

. 21: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하실 때에도 그들은 그 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고기를 잡은 다음에야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았다(7절).  그들은 그분이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거나, 하나님의 종으로서 자기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분 인줄 알고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살전2:13 참조) 즉시 순종했다.  순종이 믿음이다.  순종하니 고기가 심히 많이 잡혔다.  그들이 밤새도록 잡아도 고기가 없던 곳인데(왼편에서만 잡았을 리가 없다), 그 고기가 어디서 왔을까?  하나님께서 몰아 온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 메추라기를 몰아다가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하나님은 바다의 물고기도 몰아올 수 있다.  만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하나님이 허락해야 된다.  사람의 생각에는 안될 것 같아도 하나님을 순종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동원시키고 몰아다가 그 일이 되게 만들어 놓는다.  그들이 순종할 때에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가 잡히게 되었다.

 

. 21: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제자들이 순종할 때에 눈이 밝아져서 주님이신 줄 알았다.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는 요한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가기 위하여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는 용기를 얻어 예수님께로 달음박질하게 되었다(물이 한길 못되므로 물에 들어서서 바다 밑을 딛고 걸어갈 수가 있었다함).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신 것은 물고기가 목적이 아니고, 제자들의 심령의 눈을 밝혀서 다시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쓰시려는 것이다.  제자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과 물질주의로 기울어졌으므로 예수님이 그것을 안타까워하시고 찾아가서 믿음을 바로 세워 주시기 위해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때에 제자들이 그대로 순종하여 눈이 밝아져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께 사로잡히게되었다.  이 사건은 제자들로 하여금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로잡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것을 찾아서 순종해야 된다.  성도가 신령한 눈이 밝아지려면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주일을 지켜야 되고 십일조 못하는 자는 십일조를 해야 되고 계명을 어기는 자는 그것을 지켜야 된다.

마땅히 고쳐야 될 것을 고쳐 나가는 것이 신앙이다.  그렇게 할 때에 심령의 눈이 밝아지고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주님을 좀더 발견하고 용기가 나서 담대히 앞으로 달음질해서 나갈 수가 있다.

 

. 21: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와서

오십 간은 약 삼백 척이다(한 간은 육 척인데 약 1.8m정도이다).  원문에는(이백 페쿠스, )로 되어 있는데 구약에는 한 페쿠스가 한 규빗으로 되어 있고 영역(英譯) 성경도 규빗으로 번역되었다.  한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이므로 일 척 반(약 45cm)쯤 된다.  그러므로 이 백 페쿠스는 삼 백 척쯤 된다.  따라서 오십 간은 가까운 거리이며 예수님과 대화할 수 있었다.  제자들이 작은 배를 타고 그물을 끌고 육지에 올라갔다.

 

. 21: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었으며 떡도 있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주려고 준비한 것이다.  제자들이 조반 먹을 것도 없어서 그것을 염려하여 물고기라도 잡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으러 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고픈 것을 미리 아시고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려고 숯불을 피워 떡과 생전을 굽고 계셨다.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해 나가면 의식주 문제는 예수님이 친히 책임을 지고 주시는 것이다(마6:33).

 

. 21: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성도가 순종해서 얻은 열매는 예수님도 기뻐하시고 그것을 받으시려고 조금 가져오라고 하신 것이다.  성도가 믿음 지킨 신앙의 열매는 그 성도에게 기쁨이 되고 주님도 기뻐 받으신다.

 

. 21: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 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일 백 쉰 세 마리 숫자에 큰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큰 고기가 일 백 쉰 세 마리나 되면 반드시 그물이 찢어지게 되어 있으나 찢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보호해 준 증거이다.  믿음을 떠나서 세상의 것을 구하고 물질을 첫째로 삼을 때에는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회개하고 돌아 올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그 사람에게 있다.  우리에게 무엇이나 잘 된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보호로서 된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면 아무 것도 되는 법이 없다.

 

. 21:12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님이 제자들의 시장한 것을 아시고 미리 먹을 것을 준비하여 주셨다.  예수님은 육신 문제뿐만 아니라 영적 문제도 해결해 주셨다.  그리하여 심령의 눈이 밟아지고 영적 새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예수님 앞에 나가게 되었다.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았으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잡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잡을 목적으로 여기에 오셨고 고기를 잡게 하신 것이다.  이제는 그 제자들이 예수님의 소유가 되었고 예수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자들이 되었다.

 

. 21: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의 굶주린 상태를 돌봐주시고 해결해 주신 것이다.

 

. 21: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세 번째 요한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만 헤아려 세 번째라고 했다.  첫 번째는 요한20:19절 이하, 두 번째는 요한20:26절 이하에 나타났다.  열 한 제자들 외에 나타나심이다.  예수님이 부활 후 열 두 번 나타났다.  ① 막달라 마리아에게(요20:15, 막16:9), ② 다른 부인들에게(마28:9), ③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눅24:13), ④ 베드로에게(눅24:34), ⑤ 열 제자에게 (20:19), ⑥ 열 한 제자에게(20:26),⑦ 일곱 제자에게(21:14), ⑧ 열 한 제자에게(마28:16, 막16:14), ⑨ 오백여 형제에게(고전15:6), ⑩ 야고보에게(고전15:7), ⑪ 승천할 때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막16:19, 행1:3, 눅24:50), ⑫ 사도 바울에게(행9:3-6, 고전15:8) 나타나셨다.

 

三. 문답과 부탁(問答과 付託)(15-17)

 

.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 베드로의 아버지 이름이 요한이었다.  주님께서 이렇게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서 시몬을 찾은 것은 더욱 친절한 사랑을 나나내심이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뜻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물으신 이유는 마태26:33에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하고 장담했던 말을 상기시켜 회개케 만들고 겸손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그때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는 말을 감히 하지 못하고 다만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하고 겸손한 태도로 주님 중심의 대답을 했다.  예수님이 물어본 사랑은 아가페( ) 사랑으로 거룩한 최고의 사랑, 하나님께 속한 사랑을 물어 보았는데 베드로는 필리아( ) 사랑을 한다고 대답하였다.  필리아는 인간적인 사랑 친구간의 사랑이다.  베드로가 \"주께서 아시나이다\"하고 주님의 전지(全知)에 맡겼다.  자기가 아는 것이 표준이 아니고 주님이 인정해 주는 것이 표준이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어린양은 예수님께로 와서 믿는 어린아이(마18:5) 믿는 소자 하나(마18:6) 또는 신자 가운데 영이 자라나지 못한 어린 신자들을 가리킨다(히5:13).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큰 관심을 두시고 귀중히 여기신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신앙이 어린 신자 하나라도 귀히 여기고 잘 영접해서 먹이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먹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가르쳐서 영의 양식으로 먹여 주고 그 영혼을 잘 길러 나가라는 뜻이다.  그 일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잘 할 수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으로 기르는 것과 같다.

 

. 21: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여기서도 아가페(사랑)를 하느냐 물으셨는데 베드로는 필리아(사랑)로 답변했다(15절 해석 참조).

내 양을 치라 양을 치라는 것은 양들을 주님의 뜻대로 인도하고 미혹되거나 실족하지 않도록 돌봐주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도록(갈4:19) 길러 나가라는 뜻이다.  양들을 잘 먹여 줄뿐만 아니라 또 인도해주고 이리나 곰이나 사자가 와서 해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고 잘 자라나도록 길러서 장성한 신자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히5:12-14).  이런 목자가 양을 잘 치는 자이다.

 

. 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세 번째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주님이 세 번 물으신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을 회개시키기 위함이요 또 사도직(양을 먹이고 치는 목자)의 사명과 책임의 중대성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야 잘 감당해 나가겠기 때문에 사랑에 대해 세 번째 물어 보는 것이다.  주님이 세 번째는 원문에 아가페(사랑)를 물어 본 것이 아니고 필리아(사랑)를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주님이 아가페(사랑)를 물을 때는 낮추어서 필리아(사랑)한다고 답변했는데 이번에는 필리아(사랑)하느냐 하고 예수님이 물으시므로 베드로의 심중에 근심이 들어왔다(필리아 사랑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베드로가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맡기면서 떨리는 심정으로 내가 주를 필리아(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겸손히 답변했다(아가페와 필리아에 대해서는 15절 해석 참조).  이것은 베드로 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과 후대에 모든 교역자와 전도자에게 주신 명령도 된다.  어린양이나 좀 장성한 양이나 다같이 계속 신령한 양식을 먹여서 세상 끝날 까지 길러 나가야 된다.

 

四. 순교 각오(18-19)

 

.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띠 띠는 것은 단속(團束)하는 것을 가리킨다.  베드로가 젊어서는 자기 몸을 스스로 단속하여 원하는 곳으로 즉 자기 마음대로 육신의 원대로 자기의 뜻대로 다녔다는 말이다.  베드로가 물고기 잡으러 간 것도 자기 원하는 대로 갔던 것이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도망친 것,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까지 가지 않은 것 등은 다 자기 몸을 단속하여 자기 원하는 곳으로 다닌 것들이다.

다녔거니와 과거사이다.  스스로 띠 띠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 것은 금번 회개와 복직으로 인하여 지나갔다.  이 다음에는 오순절을 통과하여 팔을 벌려서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가게 될 젓이다.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팔을 벌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 후에는 나이가 들수록 자기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니지 않고 팔을 벌려서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게 될 것이요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사용될 것이요, 또 하나님께서 핍박하는 자에게 붙여서 그 사람들이 띠를 띠우고(단속, 속박, 결박을 하여)육의 사람으로서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다가 순교 당하게 될 것을 예고하신 것이다.  팔을 벌리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 온전히 순종하고 이용당하는 태도이다.

 

.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께서 베드로가 순교 당할 것을 예언하여 주셨다.  베드로는 주후 64년 7월이나 혹은 주후 76년에 로마에서 네로 황제의 핍박을 받아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오리겐과 터툴리안 같은 유명한 교부들의 저서에 의해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나를 따르라 이제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평안하고 환영받을 때만 따르지 말고 환난과 핍박이 있을 때에도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따라가는 방법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주가 맡긴 사명을 다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 것이요, 주님이 걸어가신 순종과 희생과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五. 타인 무관(他人無關)(20-23)

 

. 21: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는 사도 요한을 가리킨다.  요한은 이때도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갔다.  요한은 만찬석에서도 예수님을 의지하여 말했고 십자가 밑에까지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갔다.

 

. 21: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의 장래 일을 말해 주었고 특히 고난받는 길을 걸어야 될 것을 예고 받았을 때에 외롭기도 하고 그 고난의 길을 다른 제자도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은 생각도 있었으므로 예수님께 요한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하고 물은 것이다.

 

. 21: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다른 사람은 상관 말고 네가 가야 될 길만 가라는 것이다.  남의 일을 상관하는 것은 자기에게도 유익이 없고 그 사람에게도 유익이 없다.  남의 일에 간섭치 말고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  베드로는 주께서 자기에게 주신 말씀 곧 나를 사랑하면서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과 또 환난과 순교를 각오하고 따라오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힘입어 걸어가면 된다.  불필요한 남의 일에 간섭하고 상관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요 잘못된 것이다.  남의 일에 간섭하고 상관하다가 시기와 다툼과 원망이 일어나기 쉽고 나중에는 시험에 들어 믿음에서 떠나며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도 적지 않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내가 올 때는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때에 예수님이 나타나실 것을 예고한 것 같다(계1:12-20).

그때까지 요한을 머물게 할 예정이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요한이 세상에 오래 살면서(약 90∼100세)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주의 일을 하다가 나중에 환난을 받아 밧모섬에 귀양까지 가서 예수님의 환난에 참예할 때에 요한에게 계시를 주시기 위하여 나타나실 것을 가리킨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되는 것이다.  베드로나 요한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와 같이 순교 당할 자로 예정되었으면 순교를 당하게 되고, 또 요한과 같이 오래 살면서 주의 일을 하기로 예정된 사람은 그대로 된다.

너는 나를 따르라 쓸데없이 다른 사람을 상관하여 그 사람은 어떻게 되겠는가 하지 말고 왜 나만 이런 고난을 당하는가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불만 불평을 하지 말고 자기에게 맡겨 주신 십자가를 지고 오직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만 해야 된다.  자기 할 일이 따로 있고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이 할 일이 따로 있으니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다.

 

. 21: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형제들에게 와전(訛傳)되어 요한은 죽지 않겠다고 하는 말이 돌아갔다.  그러므로 요한이 그 와전된 말을 시정하여 예수님이 그때 하신 말씀 그대로 다시 기록해서 사실대로 증거한 것이다(22절 해석 참조).  자기 생각으로 추측하여 말이 와전되어 나가게 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추측하여 말한 것이 사실에 맞지 않으면 거짓말이 되고 마귀 시험거리가 된다.  그러므로 사실을 분명히 알아서 확인하고 말해야 되고 확실치 않으면 말하지 말아야 한다.  또 확실한 것이라도 덕이 안 되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노아의 아들 함이 노아가 술 먹고 취해서 벌거벗고 누웠을 때 그 사실을 그대로 말했는데 함이 저주받았다.  또 어떤 사람에 대한 말이 와전되어 잘못 전해지는 것이 있으면 요한과 같이 즉시 시정시켜 주어야 모든 사람이 죄 짓지 않고 진실에 서게 된다.

 

六. 진리 무한(24-25)

 

. 21:24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사도 요한이 본지의 저작자인 것을 밝혀 둔다.  요한은 자기가 실제로 보고 듣고 손으로 만져보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모든 일을 체험하고 그 사실을 증거한 것이므로 그 증거가 참된 것임을 증거한다.

 

. 21:25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이 복음서는 예수님의 행하신 일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다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20:30 참조),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 것을 믿게 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20:31).  이 복음(성경)에는 예수님의 행하시고 말씀하신 진리의 대강령을 기록한 것이다.  이 성경 안에는 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예수님의 행적과 진리도 다 포함되어 있다.  이 성경에서 그 모든 진리를 캐낼 수 있다.  예수님의 행하신 일(성경)에 대하여 책을 쓴다면 무궁무진하여 그 해석한 책을 두기에 이 세상이라도 부족할 것이다.  오늘날 성경 외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이 성경에서 진리를 계속 발견하고 진리의 세계를 새로이 개척하여 좀더 단단한 양식을 먹고 우리 영이 자라나고 그 진리를 계속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