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사도행전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사도행전 강해

 

一. 저 자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이다.  사도행전이 누가의 저서라는 명백한 기록은 없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고대로부터 누가가 저자라는 것이 정통적인 견해이다.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은 동일한 사람이 기록한 것이 분명하다.

① 이 두 책은 모두 \"데오빌로\"에게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행1:1, 눅1:3 참조).

② 두 책이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쓴 글(누가복음)은 예수의 행하시며 승천한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고, 나중 쓴 글(사도행전)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의 일을 기록하였다.  또 누가복음24:49에는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지기까지 이 성(예루삼렘)에 유하라고 하였으며, 사도행전1:4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③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의학적 술어가 많고 공통된 술어가 40여 군데나 된다.  이상의 이유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동일 저자에 의해 기록된 것이 증명된다.  사도행전에 \"우리\"란 말이 많이 기록되어 있으므로(행16:10-17, 20:5-15, 27:1, 28:16 참조), 바울과 함께 다니며 그를 보조한 자에 의해 사도행전이 기록된 것은 분명하다.  의사로서 바울을 따라 다니며 보조한 사람은 누가밖에 없다(골4:14, 딤후4:11, 몬1:24참조).

 

二. 기록한 장소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2년간 전도한 일까지 기록하고 그 후 재판 받은 일이나 재판 받은 후의 기록이 없는 것을 보아 로마 옥중에서 기록한 것이 분명하다.

三. 기록한 연대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던 2년간으로 보아 주후 62년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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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사도행전 1장

 

제 1 장  성령 받을 준비

 

(대  지)

一. 서언(序言)(1-2)

二. 주님의 분부(3-8)

三. 승천과 재림의 약속(9-11)

四. 기도에 전력을 다함(12-14)

五. 유다의 죽음에 대한 성경적 해결(15-20)

六. 사도 보충(21-26)

 

(본문 강해)

 

一. 서언(序言)(1-2)

 

. 1:1-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데오빌로 본서는 데오빌로에게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누가 복음은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낸다고 하였다.  \"각하\"라는 칭호를 보면 데오빌로가 어떤 개인의 이름이며, 그가 높은 관직에 있었던 것 같다(총독 이상을 각하라 하였다고 함).  그러므로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누가복음을 먼저 써 보내었고 두 번째로 사도행전을 써 보낸 것이다.

먼저 쓴 글 이것은 누가복음을 말한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시며 복음 전파하신 것을 처음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기록한 것이다.

 

二. 주님의 분부(3-8)

 

. 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해 받으신 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다음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친히 부활하신 몸을 많은 사람에게 나타내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까지 사십 일 동안 많은 증거로 자신이 부활하신 것을 나타내 보여 주셨고, 하늘나라에 대하여 증거 하셨다.

 

.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들과 함께 감람산에 가셔서 저희에게 분부하셨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 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거기에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 때에는 아무 곳에서나 기도하면 안되고 예루살렘에서 기도하여야만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수 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성령이다(요15:26, 16:7, 14:16, 눅24:49 참조).

그 당시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이므로 보혜사 성령이 오시지 않았었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다음 첫번 오순절날에 강림하셨다.  지금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도 보혜사 성령이시다.  오순절 성령 강림 전에도 성령님이 세상에 계셨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말씀하셨고,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할 때에도 성령으로 한 것이다.  마리아에게 성령이 충만하였고(눅1:34-35), 세례요한(마3:1-12), 엘리사벳(눅1:41), 사가랴(눅1:67), 시므온(눅2:27), 안나(눅2:38)와 같은 사람에게도 성령이 함께 하였다.  그러나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은 보혜사 성령인데 대언자의 직책을 가지고 오신 것이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기도하면 주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므로 보혜사 성령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이 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는가?

①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할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누가 24:47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라고 하였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다.

②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를 하여야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할 때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여야 한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면 간절한 기도를 아니할래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잡아죽인 무리들이 예루살렘에 다 있고 그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잡아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면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되어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간절한 기도를 하라고 하여도 하지 않기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급한 환경에 빠뜨려서 간절한 기도를 하게 하신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죽게 되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환경에 빠뜨려 놓아야만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된다.  기도하지 않던 사람도 이러한 환경 속에 빠뜨려 놓으면 결사적으로 기도를 하게 된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아도 6.25사변 전에는 간절한 기도를 그다지 많이 하지 못하였으나 6.25때에 죽을 지경을 당하여 참으로 간절한 기도를 하였다.

평소에 새벽기도를 하지 않던 사람도 어떤 위급한 일이 생기면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참된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③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게 하려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환난을 이길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게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였다.

④ 하나님께 생명을 바쳐 놓고 헌신하는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생활을 하려면 생명을 하나님께 바쳐 놓고 헌신 봉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를 할 때에는 그 생명을 하나님께 바쳐 놓고 기도하게 되고 앞으로도 하나님께 생명을 바쳐서 봉사할 수 있게 된다.

⊙ 당시 예루살렘의 상황은 어떠한 상황이었나?

㉠ 예루살렘은 사단의 위가 득세한 곳이다.  마귀의 세력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곳이다.

㉡ 예루살렘은 어두움의 세계요, 빛이 없는 세계이었다.  요한 11:9-10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잡히실 때부터 어두움의 권세가 시작이 되어 이때까지 계속되었다.

㉢ 예수 믿는 자를 잡아죽이려고 하는 곳이다.  예수님을 잡아 죽였을 뿐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도 잡아죽이려고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숨어서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때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루살렘은 기독교 박멸 운동이 한창 전개되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문을 닫고 숨어 있는 그 때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보통 신앙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는 목적

㉠ 생명을 내어놓고 말씀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서이다.  생명을 내어놓아야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킬 수 있고, 내어놓지 않으면 말씀을 지킬 수 없는 곳이다.  예수님께서도 생명을 내어놓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다(빌2:8참조).  바울도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을 것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행21:13 참조).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다시스로 가다가 고기 뱃속에까지 들어갔다.  하나님의 명령은 니느웨로 가라고 하였으나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다시스로 가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나가면 요나와 같이 풍파가 일어나고, 모든 사람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며 마지막에는 환난의 바다에 빠져 징계의 채찍을 맞게 된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사망이요, 그 말씀을 귀히 여겨 순종하면 생명을 얻는다.

그러므로 말씀을 생명과 바꾸어 가질 수 있는지 시험하여 능력을 주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육신의 생명보다 말씀을 더 귀히 여기고 그 말씀을 떠나지 않는 자가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성도에게 허락하신다(신13:1-3, 8:2-3 참조).  성도가 평안할 때는 잘 믿는 것 같고 성경 말씀을 잘 지키는 것 같으나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성경 말씀을 헌 신짝처럼 내어버리는 사람이 많이 있다.  제자들이 시험을 치러서 생명보다 말씀을 더 귀히 여기고 말씀을 떠나지 않으면 제자의 자격이 있고 예수님의 증인의 자격이 있다.  그 자격을 만들려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 하나님의 능력을 생명보다 귀히 여기는 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의 생명보다 귀히 여겨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은혜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이 생명이므로 능력의 사람이 되도록 힘은 써야 한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있어야 그 능력을 사모하게 되고 그 능력을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는 자리에 들어 갈 수 있다.  바울은 살전1:5 에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고 하였다.  복음을 말로만 전해도 안되고 말로만 믿어도 안 된다.

능력과 성령으로 전하여야 한다.  교역자들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서 영적 생명의 역사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교역자가 설교집이나 사다 보고 말로만 전하면 교인들의 영혼이 살지 못한다.  능력과 성령(영권)이 아니면 교인들의 생명을 살려내지 못한다.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과 능력으로 전하여 줄 때에 성도들의 영혼이 힘을 얻어 일어선다.  예배드릴 때에 교역자를 통하여 나오는 능력이 신자들의 영혼을 움직여 영이 새 힘을 얻어 야 한다.  이러한 교역자가 되려면 기도를 많이 하고 영권이 입혀지기를 사모하여야 한다.  영권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많은 기도와 해산하는 수고를 하여 많은 시련과 인내를 이루어 나가야 조금씩 얻어지는 것이다.

㉢ 생명을 내어놓고 사명을 수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생명이 위험한 곳에서는 자기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나아가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 나갈 수 있다.  자기 생명보다 하나님의 사명을 귀히 여기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자기 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면 예루살렘을 떠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생명보다 하나님의 사명을 더 중히 여겨 생명을 내어놓고 나가는 훈련을 받게 한 것이다.

㉣ 자기 위치를 떠나지 않고 지키게 하기 위해서이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세워 놓은 각자 자기의 위치가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위치에서 생명을 내어놓고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예루살렘에 있으라\"고 하면 예루살렘에 있어야 하고 \"감옥에 있으라\"고 하면 감옥에 있어야 한다.  성도가 자기의 위치를 떠나면 안 된다.  천사가 자기의 위치를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 마귀가 된 것이다.  천사로서의 위치가 따로 있는데 교만하여져서 자기 위치보다 더 올라가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유1:6참조).  교인은 교인의 자리를 지켜야 되고, 집사나 장로들은 집사나 장로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전도사는 전도사의 위치를 지키고, 목사는 목사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목사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며 선후배의 위치가 있다.  가정에서도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위치가 있고, 아들과 손자의 위치가 다르다.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자기 위치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십자가가 오고 고난이 와도 하나님이 세워 놓은 자기 위치에서 탈선하면 안 된다.  자기 위치보다 넘어가지도 말고 뒤로 물러서지도 말아야 한다.  자기에게 유리할 때에는 자기 위치를 지키다가 자기에게 불리하면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은 절도요 강도들이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려면 환난을 겪고 자기 생명까지 내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예수님이 승천한 후 첫번 오순절 날 보혜사 성령이 오셨고, 그 성령이 신약 교회 시대에 계속 역사하여 우리를 믿게 하시고 우리 속에 내주하여 계시고 계속하여 감동을 시키고 계신다.  그런데 성도가 성령의 능력을 입지 못하는 것은 예루살렘을 떠나고, 또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를 끝까지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전3:16, 빌2:13 참조).  요한일서 2:27에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라고 하였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계속하여 감동을 시키고 또 탄식하면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신다(롬8:26 참조).  열광적으로 손뼉을 치고 육신의 감정을 흥분시켜 얻는 감동은 외부적인 감동이며 감정적인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는 것은 영혼이 자라나서 거기에서 역사하는 능력이다.  참된 능력은 영혼이 자라나면서 입혀지고, 능력이 입혀지면서 영혼이 자라나는 것이다.

 

.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①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지는 것을 가리킨다(눅24:49 참조).

② 세례는 정결케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운동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말씀대로 점점 깨끗하여져 나가는 운동이 성령의 세례이다.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시고 우리를 깨끗하고 정결하게 만들어 나가는 일이 곧 성령의 세례이다.

③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일이다.  성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정결함을 입어 나가야 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면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 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눅19:11 참조).  또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할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눅24:21 참조).  그러므로 요한의 형제는 자기 어머니를 내세워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구원운동을 하면서도 아직 민족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구원운동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해 나가는 것으로 알았다. 또 그들은 예수님의 구원운동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믿기는 하지만 지상적인 나라와 혼동하고 있었다.  영적 하늘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고, 지상적이고 이스라엘 중심의 하늘나라만 바라보고 있었다.  신령한 나라와 이 세상나라를 혼동하며 영적인 구원과 육체적인 구원을 혼동하고 있었다.  지금도 이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다.  \"하늘나라\"와 \"구원\"을 믿고 있지마는 세상나라와 혼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유브라데강(교회와 세상과의 경계선)이 말랐기 때문에 하늘나라 운동과 세상운동이 혼동되고 영적 운동과 육적 운동을 혼동하고 있다.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진 전체적인 하늘나라를 자기들만의 하늘나라로 생각하는 편협하고 파당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있다.  유대인들이 이러한 생각에 빠져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면 인정을 하지 않았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따져보고 이방 사람이면 낮추어 보고, 같이 먹다가도 슬그머니 돌아앉았다.  제자들이 예수를 믿고 하늘 나라를 바라보고 구원역사에 참여하고 있으나 아직도 자기네 중심의 하늘나라, 자기 교파 중심의 구원운동, 또 자기민족 중심의 구원운동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어느 시대나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 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참된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의 권한에 있으며 그 완성의 때는 우리에게 알려 주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마24:36참조).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은 예수님이 영광의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는 날 완성된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때는  아버지의 권한에만 속한 것이고 아들에게도 그것을 알게 해 주지 않았다.  아들도 모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날은 예수님도 알지 못한다.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여 물어보았으나 예수님의 답변은 바른 답변을 해 주셨다.  그것은 예수님의 구원운동으로 이 세상에서 신령한 하늘나라가 이루어져 나가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완성된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이스라엘 회복을 바라고 질문하였으나 예수님의 답변은 영적 이스라엘과 하늘나라에 대하여 답변하여 주셨다.  제자들은 가끔 잘못된 질문을 할 때가 있었으나 예수님은 언제나 바른 답변을 해 주셨다.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부탁하기를 주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내 아들을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잘못 구할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내 좌우 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마20:23)고 바른 답변을 해 주셨다.

 

.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다.  고전2:4-5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하였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능력과 성령으로 전했다(살전1:5 참조).  하늘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전4:20참조).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라는 것이다.  복음의 빛은 가까운 데부터 비취어 나가게 되어 있다.  등불을 켜면 집안 사람에게 먼저 비치게 되는 것이다(마5:15 참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고 부활하셨으니 예루살렘에서부터 복음이 전파되어 나가야 한다(눅24:47 참조).  그 다음에는 가까운 유대와 사마리아에 전파하고 나중에는 땅 끝까지 전파하라는 것이다.  이 복음은 이기고 또 이겨 전 세계 땅 끝까지 전파되게 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성령의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증인이 되리라 성도는 말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행동과 인격으로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나라 회복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나라에 대하여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또 그리스도의 증인은 자기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빌1:20 참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15:14-16)고 하였다.  이것이 곧 증인이 되는 생활이다.  성도를 통해서 예수 믿는 향기가 퍼져 나가야 한다(고후2:15 참조).  말로 그리스도를 전하고 또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여지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증인생활이다.  살든지 죽든지 자기에게서 그리스도가 높아지고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그리스도가 존귀하여지도록 하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요 금생과 내세에 많은 복을 받는다.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여지는 생활을 하면 자기가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가 과거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지 못하고 마귀의 냄새(썩은 냄새)를 피우던 것과 우리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하여지지 못하고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게 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로마2:24에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라고 하였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이 자기 때문에 모독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고 자기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잘 되고 하늘나라에서도 복을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복에서 떠나고 도리어 저주와 앙화 속에 들어간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이 있지만 자기 몸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팥죽 한 그릇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의 축복이 야곱에게로 돌아갔다.

술을 마시고 주일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집사나 장로로 세우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복음의 문이 막힌다.  그러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점점 타락한다.  일반 신자도 이러한 행동을 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 지겠는데 집사와 장로가 그렇게 하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 지겠는가 !  오늘날 교회들이 사람 많이 모으는 데만 급급하여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도 마구 직분을 세우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교회가 타락되어 간다.  바울처럼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도록 해나가는 생활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 진다면 그만두어야 한다.  반대로 아무리 손해가 나고 괴로운 일이라고  할지라도 복음전도에 유익이 된다면 하여야 한다.

 

三. 승천과 재림의 약속(9-11)

 

.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다.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  이 구름은 실제의 구름이다.  하나님께서 실제의 구름으로 예수님을 가리워서 보이지 않도록 역사하셨다.  이 구름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고 또 이 구름이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영광의 구름을 타고 오신다.

 

. 1:10-11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흰옷 입은 두 사람은 천사를 가리킨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 두 천사가 예수님을 호위한 것이다.  이 천사가 증거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해 주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갈릴리 지방은 비천한 지방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말하기도 하였다.  예루살렘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만 갈릴리라 하면 알아주지 않는 곳이다.  천사가 \"갈릴리 사람들아\"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여 우월감이나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고 천한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것을 늘 잊지 말고 겸손하도록 그렇게 부른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의 과거를 잊어버리고 산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가 과거에 교회를 훼방하고 핍박하였으며 스데반을 잡아죽일 때 동참한 것을 언제나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이었다고 말했다(딤전1:13 참조).  누구나 교만하여지면 망한다.  우쭐하여 \"나다\"하면 벌써 망한 것이다.  언제나 겸손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지 못할 줄 알고 하나님만 붙들고 살아야 한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① 하늘로 올라가셨으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다.  ② 눈으로 보이는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으므로 또 눈으로 보이는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  ③ 육신의 눈으로 보이게 올라가셨으니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게 재림하실 것이다.  ④ 신령한 몸으로 올라가셨으니 신령한 몸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이 네 가지 사실이 맞지 않으면 예수님의 재림을 잘못 깨달은 것이다.  요즈음 예수님이 이미 재림했다고 미혹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재림 예수라고 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온 것도 아니요, 육신의 눈으로 보이게 하늘로서 온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재림 예수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이 네 가지 사실이 맞지 않으면 거짓 그리스도요 적그리스도인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한 하나님이시요 그리스도는 그의 영광의 아들이시다.  피조물인 인간들이 자기를 예수라 하는 것은 참람되고 악독한 마귀 놀음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데, 죄인이 어떻게 자기를 하나님이라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부터 재림하실 때까지는 성도가 영적으로 예수님을 섬겨야 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권능이 입혀지기를 기다려 영적으로 예수님을 섬기고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미혹에 빠지면 권능에 참여할 수가 없다.

 

四. 기도에 전력을 다함(12-14)

 

. 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승천하셨다 (눅19:29 참조).  누가 24:50-51에는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올리우셨다고 하였다. 이 두 곳은 같은 곳이다.  왜냐하면 감람산 남쪽 기슭에 베다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예수님이 승천하셨으므로 모든 것이 끝났다 하지 아니하고,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기도하기를 힘쓴 것을 보면 희망이 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결사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 그 당시에는 안식일에 먼길을 가지 못하도록 규례로 정해져 있었다.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도 갈 수 있는 길이었다.

 

. 1:13-14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저희 유하는 다락은 마가요한의 다락방이다.  마가요한의 다락방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성찬예식을 거행하시던 방이다(눅22:12 참조).  제자들도 마가요한의 다락방을 집회 장소로 사용하였다. 사도 시대에는 개인의 집을 예배당으로 사용한 예가 많다(몬1:1-2, 고전16:19, 골4:15 참조).  전도하여 교인들이 생기면 적당한 가정집에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자기집 다락방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하면 참으로 귀한 일이다.  마가요한의 가정이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바치는 생활을 하므로 마가요한이 복을 많이 받았다.  하나님 앞에 바친 사람은 자신과 그 자손이 많은 복을 받는다.

딤후4:11에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다.  바울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마가요한이 유익한 존재라고 하였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요한의 형), 안드레(베드로 동생), 빌립, 도마, 바돌로매,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열심당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룟유다가 아님)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또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칼빈은 이 여자들을 \"사도들의 부인이다\"라고 하였으나(주. 칼빈 저 사도행전 I p53 신교출판사) 근거가 없다.  이 여자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여자들이다(마27:55-56, 눅24:10 참조).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데 항상 선봉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곳에 갔었고 예수님의 무덤에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찾아갔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에도 이 여자들이 참석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120명과 더불어 같이 기도하였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우상화하여 경배의 대상으로 섬기고 있으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마태13:55에는 분명히 예수님의 형제들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 한 분만 낳고 동정을 지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제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전심으로 기도했다.  제자들은 기도를 안할래야 안 할 수 없고 힘을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잡아죽인 무리들이 예수교를 박멸하려고 성도들을 다 잡아 죽이려고 하는 살벌한 곳이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생명을 내어놓고 힘써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결사적인 기도를 시키려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이 많이 들어오는 것은 우리에게 참된 기도를 하게 하여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이 올 때에 넘어지지 말고 기도로 이겨 나가야 한다.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는 말은 기도를 전문적으로 했다는 뜻이다.  평소에도 기도를 많이 해야 하고 특별히 기도해야 할 만한 일이 생겼을 때에는 더욱 힘써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힘써 기도해야 할 처지에 놓였으면 다른 일은 제쳐놓고 힘써 기도해야 한다.  힘써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지게 된다.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기도에서 나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까지 열흘 동안 힘써 기도하였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시험이 많이 있었겠지만 제자들이 잘 참고 끝까지 기도했다.  참고 끝까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주간 동안 작정하고 산에 기도하러 가면 도중에 집에 돌아가야 할 만한 일이 생긴다.  무슨 급한 소식이 오기도 하고, 기도가 전혀 되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할 때에도 기한 전에는 기도를 중단하고 돌아가면 안 된다.   끝까지 기한을 채워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한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이 입히워지는 정도가 다르다.  성도들이 시간이 없어서 기도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기도할 시간이 없는 것은 다른 일에 시간을 다 빼앗겼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시간을 첫째로 생각하면 기도할 시간이 많다.  초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기도할 시간이 많다.  또 저녁에 일찍 집에 돌아와서 기도해도 된다.  밤늦게까지 T.V 구경하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에 기도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다니엘은 다리오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금령이 내려 졌음을 알고도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  다니엘이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기도를 했기 때문에 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마귀는 성도에게서 다른 것보다도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  이용도 목사 서간집에 보면 \"마귀는 우리의 신앙이나 열심을 빼앗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다만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으려고 한다\"고 하였다.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으면 신앙도 열심도 봉사도 다 빼앗은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성도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마귀를 이길 수 없다(막9:29 참조).

 

五. 유다의 죽음에 대한 성경적 해결(15-20)

 

. 1:15-17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 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가룟 유다가 목매어 죽은 일에 대하여 문제가 생겼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예수님은 왜 가룟 유다를 제자로 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마음속에 의심이 들어오고 의아한 생각이 들어오면 기도가 잘 안 된다.   그러할 때에는 성경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베드로가 일어나 가룟 유다의 사건이 성경대로 되었다고 증거했다.

 

. 1:18-19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차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예수님을 배반하고 무죄한 피를 판 가룟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저주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가룟 유다가 목매어 죽으려고 나무에 매달렸다가 끈이 끊어져 배가 터지고 창자가 흘러 나와 비참하게 죽었다.  이 일에 대하여 베드로는 시편에 기록한 대로 된 것이라고 증거하였다.  시편69:25에 \"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자는 저주받아 망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팔아먹은 가룟 유다가 저주를 받아 멸망하게 된 것이 당연하다.

우리 성도들에게 무슨 사건이 생기면 성경대로 해석하고, 성경대로 처리해 나가야 한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제자로 택한 이유는 다음 몇 가지가 있다.

① 교역자 중에도 불택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② 불택자도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되는 것을 알게 하려고,

③ 택자와 불택자를 추수 때까지 함께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④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하여(시편 41:9참조).

⑤ 범죄자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룟 유다는 불택자인 것을 아시면서도 제자로 택한 것이다.  불택자도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이용하는 것은  비계(日語 :아시바리)와 같은 것이다.  집 지을 때는 비계를 이용해서 건축 재료도 운반하고 작업도 하지만 집을 다 지은 다음에는 그 비계(아시바리)는 치워버린다.  가룟 유다가 목매어 죽은 것을  보면 그가 예수님을 팔아먹고 나서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한 것은 사실이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때에는 돈을 받아 잘 살려고 하였으나 그 돈을 쓰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면서 죽었다.  가룟 유다가 목을 매었다가 끈이 끊어져 곤두박질하고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으니 예수님을 팔아먹은 범죄자의 말로는 참으로 비참하다.  예수님을 팔아먹고 믿음을 팔아먹은 결과는  비참한 것이다.  교회를 팔아먹고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면 가룟 유다처럼 비참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머리요 교회는 몸이기 때문에 교회에 손해를 주면 예수님께 손해를 준 것이 되고, 교회를 팔아먹으면 예수님을 팔아먹은 것이 된다.  예수님을 팔아먹고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된다.

 

. 1: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예수님을 팔아먹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한 자는 그 집이 저주를 받아서 망하게 된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고 예수님을 잡아죽이는데 동참했기 때문에 유다의 집이 저주를 받아서 망하게 되었다.  구원운동을 방해하면 저주를 받아 반드시 그 집이 망하게 된다.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유다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에게 손해 주고 교회에 손해를 준 사람은 하나님이 그 직분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신다.  교역자가 교회에 손해를 주게 되면 하나님이 그 종을 쓰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교인들에게 배척을 받고 쫓겨나도 하나님의 교회에는 절대로 손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역자가 교인들에게 배척받으면 조용히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우리 성도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 줄까봐 벌벌 떨어야 한다. 자기가 낮아지고 멸시를 받더라도 교회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구원운동에 손해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六. 사도 보충(21-26)

 

. 1: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가룟 유다가 죽었으므로 열 두 사도 중에 하나가 결원이 생겼다.  열 두 사도가 있어야 하나님의 일이 원만하게 되어 나가겠으므로 한 사도를 보충시켜야 한다.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할 사람의 수를 충족하게 세워 나가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한 것이다.  자기의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기도하여야 한다.  자기의 할 일을 안하고 기도만 하는 사람은 잘못된 것이다.  진리를 세워 나가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는 일에 있어서 자기가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사도를 보충하는데 있어서 첫째 조건은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제자들과 함께 다니던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은 요한이 그리스도를 증거한 때부터 예수님과 항상 같이 다니면서 배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진리를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은 나가서 바른 증거를 할 수 없다.  진리를 많이 배우고 제대로 배운 사람을 선택하기 위하여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님의 승천하실 때까지 따라다닌 사람을 조건으로 한 것이다.  말하자면 요한의 세례는 준비과정이고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 다니면서 배운 것은 본 과정을 다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충분한 준비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깨달은 사람이 제자의 자격이 있다.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교역자 중에서 잘못된 길로 탈선된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은 대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배운 것이 없으므로 자기 생각대로 하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가게 된다.

 

. 1: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사도 보충에 있어서 둘째 조건은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닌 사람 즉 충성된 사람이라야 한다.  다니고 싶을 때는 다니고 그만두고 싶을 때는 그만두는 사람은 안 된다.  시종일관 충성되고 덕이 있는 사람이어야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다.  셋째 조건은 우리로 더불어 다닌 사람 즉 협동 정신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하려면 더불어 정신이 있어야 한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같이 협력하는 덕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하여도 자기 혼자서 개인주의로 나가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같이 협력하여 일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일군이 될 수 있다.  자기만 잘난 줄 알고 독선주의로 나가는 사람은 안 된다.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일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자격이 있다.

 

. 1:23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사도가 될 만한 조건을 갖춘 두 사람을 택하여 제비를 뽑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과 맛디아를 추천하였다.  이 두 사람을 공천하여 놓고 제비를 뽑았다.

 

. 1:24-26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제비를 뽑기 전에 간단하게 기도를 하였다.  제비를 뽑는 것은 많은 사람의 의견을 따라가자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자는 것이다.

잠언 16:33에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였다.  주권과 결정권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은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어떠한 문제를 투표하여 결정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이 완전한 방법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의 의견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표하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이 없을 때에 부득이하여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날도 제비를 뽑아서 무슨 일을 결정하면 안 된다.

구약시대와 사도 시대에는 표준계시의 한 방법으로 제비를 뽑았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였다.  즉 하나님의 음성, 환상, 꿈, 우림과 둠밈, 비의적 현상, 제비 뽑는 것 등이다.  그러나 표준계시가 사도와 사도의 수종자까지 끝났기 때문에 지금 신약시대에는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제자들이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뜻대로 맛디아를 사도로 보충했다.  사도의 직무 사도의 직무는 봉사직이다.  교회의 직분은 모두 봉사의 직무이다.  목사, 장로, 집사가 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직분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을 맡아 가지고 봉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직분을 맡지 않는 것이 좋다.  교회의 직분은 명예 영광직이 아니다.  집사가 되면 봉사를 잘하고 집사가 안되면 봉사를 잘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모든 성도는 직분을 맡았거나 맡지 않았거나 봉사를 잘하여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는 더욱 충성스럽게 봉사를 잘하여야 한다.  맛디아는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한 자이다.  원 사도 (12사도)에는 맛디아 대신 바울이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서 보내신 자이기 때문이다.  맛디아는 예수님께 직접 부르심을 입은 자가 아니고 간접으로 부르심을 입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 보낸 사람이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의 할 바를 바로 하면서 말씀대로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힘써 기도하였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고, 큰 권능이 입혀졌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생활하여야 한다.  이것이 신앙 생활을 바로 하는 법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권능을 입어야 증인이 될 수 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증인노릇을 바로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한다.  성도가 말로만 전도할 것이 아니라 자기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나가야 한다.  비록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지라도 거기서 믿음을 지켜야 그리스도의 빛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

유다는 이 일을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유다가 지옥으로 갔다고 하지 않고 제 곳으로 갔다고 한 것은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 3년간 있었으므로 내세에 대한 결정권은 하나님께 맡기고 인간이 판단하려 하지 않음이다.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가룟 유다가 없어졌으므로 열 한 사도였으나 맛디아가 거기 가입하므로 열 두 사도가 되어 결원이 보충되고 충족하게 되었다.

 

제 2 장  성 령

 

(대  지)

一. 성령 강림(1-3)

二. 방언으로 전도함(4-13)

三. 베드로의 전도(14-41)

   1. 성령을 증거함(14-21)

   2.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함(22-35)

   3. 책망(36)

   4. 교훈(37-38)

   5. 권면(39-41)

四. 교회의 부흥(42-47)

 

(본문 강해)

 

一. 성령 강림(1-3)

 

. 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오순절은 유월절부터 오십 일 째 되는 날이다.  정월(아빕월) 14일은 유월절이고 정월 14일부터 50일째 되는 날이 오순절이다.  레위기23:15-16에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 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라고 하였다.  여기서 안식일은 유월절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 다음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49일)이 지난 그 이튿날이 오순절이다.  오순절을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칠칠절이라고도 한다(출34:22, 민28:26, 신16:9-10 참조).  오순절은 안식일 이튿날이니 이레 중 첫날 즉 주일날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후 첫번 주일날(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시고, 그 후 일곱 번째 주일인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셨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날에 대하여 세 가지 학설이 있다.  ① 예수님이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유월절 다음날은 안식일이고 안식일 다음날에 부활하셨다는 설(說).  ② 유월절 다음날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다는 설(說).  ③ 유월절 전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유월절(유월절을 안식일로 봄)에는 무덤에 계시고 유월절 다음날 부활하셨다는 설(說)들이 있다.

③ 설이 옳다고 믿는다.  요한 18:28에는 예수님이 재판 받기 위하여 빌라도의 관정으로 들어갈 때에 유대인들이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다.  재판 받은 그날 못 박혔으므로 유월절 전 날 못 박히신 것이 분명하다.  또 그 안식일이 큰 날이라고 하였다(요19:31 참조).  유월절이 큰 안식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월절 전 날 못 박혔다가 유월절(안식일)에는 무덤 속에 계시고 유월절 다음날 부활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첫번 오순절이 되었는데 예수님의 제자 120명은 그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하늘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라는 뜻이다.  즉 거룩하고 성결한 곳으로부터 성령님이 오셨다는 뜻이다.  물론 성령님이 그 전에도 세상에 계셨다.  시편 51:11에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다윗이 말하였다.  사가랴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하였으며(눅1:67 참조) 마리아에게도 성령이 임하였다고 하였다(눅1:35 참조).  또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하였다(눅1:41 참조).  모든 성경이 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을 고백한 것도 성령으로 한 것이다(마16:16 참조).

⊙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은 어떤 성령이신가?

예수님 승천 후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은 보혜사 성령이시다.  요한14:16에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하였다.  요한16:7에도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보혜사라는 뜻은 \"대언자\" 혹은 \"돕기 위하여 부름 받은 자\" \"변호사\"라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오신 성령은 보혜사의 직분을 가지고 오신 성령이시다.  오순절 전에 역사하시던 성령과 보혜사 성령은 같은 성령이시지만 직분이 다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전부터 형님이 계셨으나 이번에는 그 형님이 국회의원이라는 직분을 받은 것과 같다.  동일한 형님이지만 그 직분을 받은 다음에는 하는 일이 다르다.

이와 같이 구약시대의 성령이나 예수님 승천 후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이 같은 한 성령이신데 직분이 다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강림하신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이 전파하고 이루어 놓으신 진리를 가지고 일하신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의 도리를 적용시키려고 보혜사 성령이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이 하시는 일은 구약시대에 성령이 하시던 일과는 다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과 못 박히신 후에 성령이 일하시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구약시대에는 제도와 의식에 가리워져서 희미하게 나타난 진리를 가지고 성령이 일하시었으나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성령이 일하시기 때문에 더욱 큰 능력이 나타나고 더욱 큰 일을 하시게 되었다.  예수님이 완성하여 놓으신 이 진리를 대언하고 세워 나가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이 오신 것이다.  이 보혜사 성령은 한번 오신 다음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신다(요14:16 참조).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이 신약시대에 계속해서 일하신다.  예수님의 탄생이 반복되지 않는 것과 같이 오순절에 강림하신 것도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믿게 하시고 감동하셔서 순종케 하는 성령도 오순절에 임하신 보혜사 성령이시다.  보혜사 성령이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16:13 참조).  요일2:1에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하였다.  대언자라는 말이 보혜사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한번 오신 성령은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믿고 감사하며 순종하여야 한다.  성령은 천지에 충만하시고 안 계신 곳이 없다.

예레미야23:24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고 하였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므로 천지에 항상 충만하시다.  그러므로 성령 강림은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우주에 충만하신데 어떻게 왔다 갔다 하시겠는가!  아주 가셨다고 하면 그 곳에는 성령이 없는 곳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셔서 안 계신 곳이 없다.  고로 성령도 안 계시는 곳이 없고 안 계시는 시간이 없다.

그러면 \"성령이 임했다\" \"가셨다\" \"거두어 가신다\"는 뜻은 무엇인가?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과 역사가 임했다는 뜻이고, 가셨다, 거두어 가신다는 것은 감동과 역사를 거두어 가셨다는 말이다.  즉 성령의 감동과 역사가 끊어진 것을 말한다.  성령은 항상 계시지마는 감동과 역사가 떠나기도 하고 임하기도 하는 것이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바람, 불, 혀라고 했는데 바람과 불과 혀가 성령이 아니고, 성령의 본질과 성품과 사역의 상태를 보여 주기 위한 표상(表象)이다.  보이지 않는 성령이 어떤 신이시며 어떠한 일을 하시는 것을 보여 주고 알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표상들을 보여 준 것이다.

마태3:16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다고 했으나 비둘기가 성령이 아니고 성령의 표상(表象)으로 나타난 것이다.  비둘기가 온유하고 정결하여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것처럼 예수님이 성령으로 완전한 구속 제물이 될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성령을 바람으로 상징한 것은

①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같이 성령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일하시는 것을 상징한다.  사람이 구한다고 하여 성령이 그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할 때 자기 욕심대로 구하면 안되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구해야 된다.

② 바람 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사물에 부딪친 결과를 보아서 강한지 약한지, 또 그 방향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성령이 사람에게 임하여 일해 놓으신 결과를 보아 그 성령이 어떠한 신이신지 알 수 있다.  급하고 강하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 강하고, 하시는 일을 급속히 진행하신다는 뜻이다.

 

. 2: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성령의 역사가 불과 같이 뜨거운 것을 말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여 주신다는 뜻이다(눅24:32 참조).

①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

② 선을 사모하는 뜨거운 마음.

③ 진리를 사모하는 뜨거운 마음.

④ 성경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

⑤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따라가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

⑥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

⑦ 천국을 앙모하고 거기에서 살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을 성령이 주시기 때문이다.

요한2:17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고 하였다.  성령이 뜨겁게 역사하므로 자기가 죽는 것도 모르고 나아가는 것이다.  성령이 뜨겁게 역사할 때는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단마음으로 나아간다.  토마스 목사가 성령의 뜨거운 역사로 죽음을 각오하고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와서 순교하였다.

성령은 육신을 뜨겁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뜨겁게 한다.  성령을 받으면 육신이 뜨거워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것은 감정적으로 마음이 뜨거워진 것을 몸이 뜨거운 것처럼 잘못 느껴진 것이다.

불의 혀같이 혀는 맛을 아는 것과 말을 하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①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맛을 알게 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기도의 맛을 알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그 말씀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신다.

② 성령은 하나님 말씀을 전도하는 힘과 능력을 주신다.  베드로와 요한이 불학 무식하지만 성령으로 기탄 없이 말하는 것을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감당하지 못하였다.  혀같이 갈라졌다는 것은 성령이 모든 것을 갈라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갈라놓는다.  또 마귀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 죄와 의, 하늘의 운동과 땅의 운동, 영의 것과 육의 것, 진리와 비진리, 영적 감동과 육적 감동,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갈라놓는다.  성령으로 하지 않으면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마귀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확실히 구별하게 되고 마귀의 종노릇을 하지 않는다.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 위에 충만히 임하였다.  그 성령은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항상 임하여 계신다.  만약 성령이 잠시라도 성도를 지켜 주지 않으면 마귀가 잡아 삼키고 멸망시킨다.  성령께서 항상 성도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능력으로 보호해 주시므로 마귀가 성도를 잡아 삼키지 못한다.  성령이 항상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고전3:16 참조). 그렇지 않으면 버리운 자라고 하였다 (고후13:5 참조).  성령은 항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려고 애를 쓰신다.  성령의 인도대로 순종하며 의지하는 자에게 성령은 더욱 충만케 역사하여 주신다.

 

二. 방언으로 전도함(4-13)

 

.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충만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그릇에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성령이 사람에게 가득 차 있으면 충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성령을 충만히 받기도 하고 조금 받기도 하는가?  그러한 것은 아니다.  성령 충만이란 양적인 의미가 아니고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생각과 자기 뜻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는 마음도 다 없어져서 온전히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다.  일시적으로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 있다가도 마음속에 세상이 들어오고, 인간의 것이 들어오면 성령 충만이 못된다.  성령이 충만하려면 첫째, 제 생각  제 뜻, 자기 위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즉 자기가 완전히 죽어지고 성령의 인도만 따라가야 한다.  둘째, 성경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

요한16:13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하였다.  성령은 진리의 성령이므로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성령은 모든 진리 가운데로 계속 인도하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을 다 순종하여야만 완전 충만이다.  성경 말씀을 조금만 어기거나 순종 못하면 성령 충만이 아니다.  성령이 늘 충만한 사람은 신구약 성경을 다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항상 완전히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일생 동안 신구약 성경을 하나도 어김없이 전부 다 완전히 지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성경에 성령 충만이라고 기록된 것은 그 시간에 성경을 아는 범위만큼 성령의 인도를 전적으로 받았다는 뜻이다.  아는 진리를 다 순종하면 그 시간에는 성령이 충만하게 된다.  그 후에 성령이 다른 진리로 인도할 때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지 못하면 성령 충만이 못된다.  베드로가 오순절에는 성령이 충만하였으나 안디옥에 가서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내려오므로 먹지 않는 척하고 외식하였다.  그때에는 베드로가 성령 충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계속적으로 받아나가야 한다(엡5:18 참조).

 

. 2: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출애굽기23:14-16에는 이스라엘 사람이 매년 삼차(유월절, 오순절, 수장절) 절기를 지키라고 했다.  이 말씀대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천하 각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든 것이다.

 

. 2:6-12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에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  성령의 큰 권능이 임하므로 모든 사람의 심령이 깨어나고 새로운 세계가 발견되었다.  심령이 새로워지고 새로운 진리를 깨닫게 되면 말하는 것도 새로운 말이 나오게 된다.  새로운 진리를 깨닫고 심령이 새로워지면 그 사람이 하는 노래도 새 노래가 되고 말도 새 말이 나온다.

로마12:2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방언의 종류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배우지 않은 다른 나라 말을 성령의 능력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배우지 않은 다른 나라 말로 전도한 것이다.  제자들은 자기 나라 말로 말하였으나 듣는 사람이 각기 저희 나라 말로 들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제자들이 자기 나라 말로 말하였다는 증거가 없다.  제자들이 다른 나라 말을 배우지 않았지만 성령께서 다른 나라 말로 전도하도록 능력을 입혀 주었다.  성령님은 모든 나라 말을 들을 수 있고 말하게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사도들은 다 갈릴리 사람이었지마는 메데와 메소보다미아와 애굽과, 구레네와, 로마말로 전도하게 되었다.  실로 성령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이다.

둘째,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있다.  고전14:2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할 수도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통역이 없을 때에는 교회에서 하지 말라고 하였다(고전14:28 참조).

통역이 없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교회 안에서 하게 되면 말하는 자도 야만이 되고 듣는 자도 야만이 된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① 덕을 세우지 못한다(고전14:5).  ② 유익이 안 된다(고전14:6).  ③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다(고전14:7).  ④ 나팔이 분명치 못하므로 전쟁을 준비할 수가 없다(고전14:8).  ⑤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 된다(고전14:9).  ⑥ 야만이 된다(고전14:11).  ⑦ 마음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전14:14).  ⑧ 방언으로 기도하면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함으로 감사할 수 없다(고전14:16).  ⑨ 일만 마디 방언하는 것이 깨달은 성경을 다섯 마디 말하는 것보다 못하다(고전14:19).  ⑩ 방언은 믿지 않는 자를 위하여 있는 표적이다(고전14:22).  ⑪ 무식자나 믿지 않는 자들이 보고 미쳤다고 한다(고전14:23).  ⑫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닌데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 된다(고전14:33).

⊙ 방언을 통역하는 일에 대하여

방언을 통역한다고하는 사람 중에 거짓 통역자가 많다.  그러므로 참 통역자인지 아닌지 시험을 해보아야 안다.  시험할 때에는 한 사람이 방언을 말하고 두 사람 이상이 통역을 하되 음성을 내지 말고 그 내용을 종이에 기록하도록 하고 그 기록들을 대조해 보아서 꼭 같지 않으면 참된 통역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방언을 금하지는 말고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하였다(고전14:39).

셋째,  새방언이 있다(막16:17).  새방언이라는 것은 성경말씀을 새롭게 깨달아 자기 나라 말로 말하는 것이다.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깨달은 것은 처음 듣는 말이요 그 내용이 새로운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새방언이라고 한다.

방언의 출처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있다.  둘째, 자기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방언이 있다.  자기 마음에서 방언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자꾸 연습을 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나오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방언을 해야 된다고 하고, 자기도 방언을 하려고 애를 쓰면서 며칠만 노력을 하면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참 방언이 아니다.  셋째,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도 있다.  마귀가 허영심에 날뛰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한 말을 하게 한다.  이러한 방언을 하는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되고 마침내는 마귀의 일을 하게 되어 교회에 큰 타격과 손상을 입히게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방언만 참 방언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방언은 성경에 맞는다.  성경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방언이 아니다.  성령은 진리의 신이시요,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때문이다(요16:13 참조).

 

. 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새 술이 취하였다 성령이 충만한 제자들을 조롱하여 한 말이다.  이렇게 조롱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데 너무 열광적이며 자기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술에 취한 것 같이 보여지므로(신령한 역사를 알지 못하여서) 그렇게 비방하였다.

 

三. 베드로의 전도(14-41)

 

1. 성령을 증거함(14-21)

 

. 2:14-15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변증하여 주었다.  베드로가 변증한 내용은 첫째, 때가 제 삼 시니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여기 삼 시는 지금의 오전 9시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낮에는 술을 먹지 않고 밤에 술을 마셨다.  살전5:7에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라고 하였다.  지금은 술 마실 시간이 아니므로 이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다른 사람이 오해를 하고 있으면 그 오해한 것을 풀어서 이해시켜 주어야 한다.

 

. 2:16-17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베드로가 변증한 내용의 둘째는 선지자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하였다.  말세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그 하나는 예수님의 초림때부터 재림때까지가 말세이다.  벧전1:20에 \"그는(예수)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라고 하였다. 선지자 요엘이 말한 말세는 예수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말세를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오순절에 이미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베드로가 증거했기 때문이다.  그 오순절은 예수님 승천 후 10일 즉 초대교회시대였다.  오순절날 임하신 성령은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말세에 모든 사람에게 다 부어 주시는 성령이시다.  또 하나는 세상의 마지막 끝을 말세라고도 하였다(마24:3-14).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육체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준다는 말이다.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어서 성령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신다.  성령께서 불완전한 인간을 붙드시고 당신의 일을 해 나가신다.  예수님께서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다(마9:13 참조).  하나님은 연약한 육체와 부패성이 있는 사람들을 성령으로 붙드시고 당신의 할 일을 해 나가신다.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께서 임하실 때에 자녀나 노인이나 젊은이들에게 꿈과 환상과 예언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주신다.  그리고 그 말씀을 성경에 기록시키기로 예정하셨다.  성령이 어떤 특수한 계급의 사람에게만 임하시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과 젊은이와 노인에게 남녀 구별 없이 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하여 주신다.  오늘날에는 꿈이나 환상을 보려고 하면 안 된다.  사도시대까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다 기록하여 완성시켜 놓았기 때문에 지금은 성경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옳다.  성경에서 예언적으로 날마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여 영의 길을 걸어 나아가야 한다.

 

. 2: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남자나 여자나 구별 없이 하나님 앞에서 종의 위치에 있어야만 성령이 붙잡고 사용하게 된다.  종의 특징은 세 가지가 있다.

① 자기의 소유권이 없다.  항상 주인의 것으로 사는 것이며 자기의 것은 하나도 없다.

②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주인을 위하여 산다.

③ 제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뜻대로 하여야 한다.  종이 무슨 일을 제 뜻대로 하면 종이 아니라 주인의 자리에 서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빈 손 들고 왔다가 빈 손 들고 가는 것이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아야 한다.  성도는 주인되시는 예수님만 위하여 살고, 살든지 죽든지 주님만 위하는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할 때 성령께서 붙들고 쓰시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아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자기가 완전히 죽어져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성경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고 자기를 인도하여 주는 빛이 된다.  그리하여 걸어갈 길이 밝히 보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많은 성도들이 입으로는 종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주인이 되어 있다.  종의 위치를 떠난 사람은 성령의 감동이 약하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누구나 하나님의 종노릇만 잘하면 성령이 그 사람을 능력으로 붙잡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귀하게 사용하신다.

 

.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하늘에서는 기사 하늘은 신령한 영역을 말하며 기사는 구원의 기사를 말한다.  신령한 세계에서는 우리를 구원하는 기사가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다.  이리와 타조 같은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 보좌에 앉게 된 것이 기사이다.  이것보다 더 큰 기사가 있겠는가!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땅은 신령한 세계와 대조된 불순종자들의 거처이다.  불순종자들에게는 심판의 징조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베드로에게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여 기사가 나타날 때에 아나니아 부부가 불신앙으로 나아가다가 심판을 받았다.  이것이 하늘에서는 기사요 땅에서는 징조를 베푼 것이다.  피와 불과 연기로다 땅에서 베풀어지는 심판의 징조는 피와 불과 연기이다.  피는 사망을 가리키고, 불은 환난과 고통, 연기는 흑암을 가리킨다.  성도가 신령한 세계에서 살아야 땅의 심판을 면하게 된다.  몸은 땅에서 살지만 속 사람은 항상 영적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땅에 속하여 땅의 것을 가지고 살면 피와 불과 연기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땅의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였다.

요일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다.  또 골로새3:2에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였다.  땅엣 것을 사랑하면 영적 생명의 역사가 없어지고 사망이 오게 된다.  그러나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힘써 찾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기사가 일어나고 기이한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 2: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은 예수님의 재림하는 날을 말한다.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해는 진리를 상징한다.  말세에는 진리가 가리워지고 신령한 진리의 빛이 없어지므로 세상이 어두워지게 된다.  환난이 심하고 악의 세력이 강하여 진리가 가리워지므로 흑암의 세상이 된다.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달은 교회를 상징한다.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것처럼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받아서 세상에 비치어 나간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직전에는 대환난이 일어나 교회가 큰 박해를 받고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내보내지 못한다.  그 때에는 적기독이 일어나 기독교 박멸 정책을 쓰고,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하여 미혹시킨다.  또 거짓 선지자들은 적기독(敵基督)과 합하여 참 교회를 핍박하고 박멸해 나가므로 교회가 빛을 잃게 된다.  \"피가 되리라\"는 생명이 죽는다는 뜻이다.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곳인데 말세에는 생명을 죽이는 곳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신신학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성경을 부인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 가운데에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이 많이 일어나 방언이나 묵시나 꿈이나 예언이나 환상을 위주하고 그것을 따라가게 만들므로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또 현실주의자들은 이 세상을 위주하여 세상 것을 따르게 하므로 진리가 어두워지고 교회는 참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는다(롬10:9,13 참조).  또 한 가지 뜻은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는 때에도 말씀대로 믿고 그 신앙을 고백하고 신앙을 지켜 나아가면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이다.

 

2.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함(22-35)

 

. 2:22-24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증거하였다.  십자가와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 십자가와 부활을 확실하게 전해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면 성령께서 그것을 가지고 역사하신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으니 누구든지 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믿지 않으면 죄 값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을 우리도 밝히 전해 주어야 한다.

기독교를 박멸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가 담대히 \"너희가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성령의 권능으로 외쳤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어떠한 환난이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나가서 생명의 도를 전하여야 하겠다.

베드로가 전도한 내용은 ① 예수께서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베풀어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  ②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하나님의 뜻이다.  ③ 너희가 법 없는 자의 손을 빌어 예수를 죽였다.  ④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주어 예수를 살리셨다는 것을 증거하며 믿으라고 권면했다.

 

. 2:25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 말씀은 시편16:8이하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다윗이 육신으로는 그리스도의 조상이지만 영으로는 그리스도가 다윗의 주(主)가 된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가 뵈올 수 있는 분이시고 또 성도들을 요동치 않도록 지켜 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분이시다.  우편 여기서 우편은 요긴한 곳, 튼튼한 곳을 가리킨다.

 

. 2: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러므로\"는 주께서 항상 내 우편에 계셔서 요동치 않게 하시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내가 항상 주 앞에 있을 때에 주님은 나를 요동치 않게 하여 주시고, 또 우편에서 나를 붙들어 주시므로 마음이 기쁘고 입술도 즐거워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육체도 희망에 거하게 된다.  나를 구속해 주신 주님께서 내 우편에 항상 계신 것을 믿으면 마음이 기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며 그때에 육체도 희망에 거하게 된다.  잠언4:22에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얻는 자에게는 그것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고 육체의 건강도 된다는 뜻이다.  성도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희망에 거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영혼도 살고, 육신도 살고 영원히 사는 희망에 거한다.

 

. 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성도의 영혼은 음부(지옥)에 버려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처럼 부활하겠기 때문이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죽었다가 부활할 것을 천 여 년 전에 다윗을 통하여 예언해 놓았다.  그 예언이 성취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다.

 

. 2:28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다.  이 생명의 길을 발견한 사람은 기쁨이 충만하다.  성도가 날마다 이 생명에 더욱 깊이 참여하며 영혼이 자라날 때에 기쁨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 2: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다윗이 부활에 대하여 말한 것은 다윗 자신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다.  그 증거는 다윗의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기 때문이다.

 

. 2: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다윗이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알았다.  다윗은 선지자로서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왕권을 영원히 계속할 것을 깨달았다.  삼하7:12-13에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하였다.

 

. 2: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다윗은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미리 보고 그리스도의 육신이 썩음을 당치 아니하리라는 예언을 하였다.  \"음부\"는 무덤을 가리킨다.  음부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스올( )\"이라고 하는데 무덤, 죽음의 상태, 불구렁텅이, 고기뱃속, 죽음 다음에 가는 고통의 자리 즉 지옥 등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본문에서는 무덤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다음에 무덤 속에서 썩음을 당하지 않고 부활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산 증인이었다.

 

.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하나님이 능력으로 예수님을 높여 놓았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 제자들에게 부어 주셨다고 하였다.  성령은 아버지에게서도 나오시고 아들에게서도 나오시는데 영원히 나오신다.

 

. 2:34-35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시편110:1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주께서 내 주께 \'주께서\'는 \'하나님께서\'이고 \'내 주께\'는 \'그리스도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신성으로는 다윗의 주가 되신다.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를 다 정복하게 될 것을 말한 것이다(고전15:24-26 참조).  그리스도의 원수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정사와 권세와 모든 것들이다.  발등상이 된다는 것은 완전히 정복하는 것을 뜻한다.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나님의 우편은 요긴한 자리요 능력의 자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3. 책망(36)

 

.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은 그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하였다.  주라는 말은 주인이오 주장자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었다는 뜻이며 히브리어의 메시야 곧 구속주,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킨다.

 

4. 교훈(37-38)

 

.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도 하고 여러 가지로 증거하여 가르쳐 줄 때에 저희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렸다.  마음에 찔렸다는 것은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죽인 죄를 성령으로 깊이 깨닫고, 마음 아프게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상태이다.  죄를 책망 받을 때에 마음에 찔림을 받고 \"어찌할꼬\"하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스데반을 죽이던 사람들도 스데반이 성령으로 말할 때에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이를 갈고 살기가 등등하여 돌로 스데반을 때려 죽였다(행7:54-58 참조).  마음에 찔린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베드로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여 자기 죄를 깨닫고 원통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자기들의 할 바를 물었다.

큰 죄를 범했을지라도 그 죄를 깨달았을 때에 회개하며 이제는 어떻게 하여야 되겠는가 하고 앞으로 해야 할 대책과 걸어가야 할 길을 지도 받으려고 겸손히 물어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베드로가 책망을 한 뒤에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었다.  책망만 하고 나아갈 길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그들이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한다.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고 하였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세례가 죄사함 받는 조건은 아니다.  그 때에 세례는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에게 주었으니 세례는 믿음의 대명사격으로 쓰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세례라는 말은 씻어 정결케 한다는 뜻인데 믿음으로 죄 씻음 받은 자에게 그 증표로 세례를 주는 것이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령의 감동과 위로와 기쁨을 받는다는 뜻이다.  예수를 믿으면 성령의 모든 역사(감동, 위로, 생명의 역사)를 받을 수가 있다.

 

5. 권면(39-41)

 

.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 약속은 믿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을 말한다(33절 참조).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을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성령의 감동과 위로와 모든 은사를 받게 된다.  너와 너희 자녀와 먼데 있는 이방인들까지 얼마든지 부르시며,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는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하나님을 거스리는 세대가 패역한 세대이다.  하나님을 거스리는 세대에는 평안과 생명과 위로가 없다.  모든 것이 다 괴로운 것뿐이고 또 위태한 것뿐이다.  그 세대는 종교지도자들이 패역한 행동을 하여 모든 사람으로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세대에서 용기를 내어 스스로 구원의 길을 걸으라고 권면한다.  이 세대를 바로 알아야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도 그 당시와 같이 패역하고 위급한 세대이다.  거기 잡히거나 방해를 받지 말고 힘써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

 

.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이 날에 세례를 받은 사람이 삼천이나 되었다.  물을 뿌려서 세례를 받은 것이 확실하다.  물 속에 잠그었다가 꺼내려면 밤낮 24시간 세례를 베풀어도 삼천 명에게 다 베풀 수가 없다.  하루에 삼천 명이나 회개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씨를 뿌려 놓았던 것을 베드로가 성령으로 거두어들이는 것뿐이다.  성령으로 거두어들이는 일이기 때문에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하고자 하시면 하지 못할 것이 없고 많은 사람들을 일시에 구원하실 수 있다.

 

四. 교회의 부흥(42-47)

 

.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초대 교회에 있어서 교회 부흥의 비결이 여기 몇 가지 나타나 있다.

첫째,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

둘째, 교제하였다.

셋째, 떡을 떼었다.

넷째, 기도하기를 힘썼다.

다섯째,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여섯째,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사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회가 이루어져 나가는데는 말씀이 제일 첫째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도의 위치가 중요하고 또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바로 깨달아야 한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며 3년 동안이나 보고, 듣고, 배우고 체험하여 확실히 깨달은 진리를 성령과 능력으로 가르쳐 주었다.  사도들은 자기의 영이 먼저 그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성령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사도 바울도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였다(고전2:4 참조).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도 성령의 감동으로 받아야 하고,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야 한다.  딤전1:18에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라고 하였다.  말씀을 받은 자는 그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고, 힘이 되고 그 말씀에 붙잡혀 끌려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복음을 전하고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에 올라갔다(행20:22 참조).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릴 때에 고기가 많이 잡혔다(눅5:5 참조). 아브라함도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말씀을 좇아갔다. 말씀을 좇아가는 생황이 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말씀을 잘 가르쳐서 교인들로 하여금 그 말씀으로 영혼이 살고 생명을 얻게 해야 한다.

서로 교제하며 서로 교제하는데서 힘이 나왔다.  이 교제는 코이노니아( )라는 말인데 진정한 사랑의 교제이며, 영에 있어서 일치하고 마음이 일치하는 교제이다.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초대 교회는 참으로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생활을 하였다.  떡을 떼며 초대 교회에서는 애찬과 성찬을 겸하여 했다고 한다.  교인 전체가 모여서 교회의 재정으로 떡을 하여 나누어 먹고 이어 성찬식을 거행하곤 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교회 재정으로 하지 않고, 각자가 자기집에서 떡과 포도즙을 가지고 와서 애찬을 하고, 성찬식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점점 폐단이 되었으니 부자는 많이 가져와서 많이 먹고 취하나 가난한 자는 많이 가져오지 못하므로 주리고 또 부끄러워했다.  그러므로 주후 412년 칼타고 회의에서 애찬을 폐지하기로 결의하였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행하는 친목회는 일종의 애찬과 같은 것이다.  교회에서 친목회를 자주하는 것은 좋지 않다.  교회에서 애찬을 그만두고 성찬 예식만 하여야 정당한 것이다.  성찬 예식은 성도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찬 예식의 떡과 포도즙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영으로 피와 포도즙에 같이하는 것도 아니다.  목사가 기도한 다음에도 떡과 포도즙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며 떡과 포도즙이 다만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한 것뿐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성찬 예식에 참여하면 성도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생명에 더욱 깊이 참여하는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진다.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초대 교회에서는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이 되었다.  \"전혀\"는 전문적이라는 뜻이다.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는 은혜가 있고 부흥이 잘 된다.  기도할 시간을 잃어버리면 생명을 잃어버린 줄 알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 서로 교제하는 것, 떡을 떼는 것,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는 것, 이 네 가지를 잘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히 나타나고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교역자의 권위가 올라가고, 교회에 생명의 역사가 있고, 마귀의 세력이 깨져 나가는 이적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되고 복음에 복종하게 된다.

 

. 2: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초대 교회에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한 것(有無相通)은 공산당처럼 무자비한 투쟁을 하여 강제로 남의 재산을 빼앗아 분배하자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유무상통은

① 자기 재산을 제 것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 마음으로 바친 것이다.

②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바친 것이다.

③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서 재산을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④ 사도들은 그 바친 재산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였다.

⑤ 가난한 자를 많이 구제하게 되었다.

사도행전5:4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고 하였다.  성경에는 개인의 소유권과 임의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친 것은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하는 마음이 나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때는 물질을 아까워하지 않고 필요한 곳에 쓰게 된다.

둘째, 믿음을 쓴 것이다.  은혜를 받아서 믿음이 생긴 다음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려고 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 마음이 자연히 나온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무엇이나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나온다.  그러할 때 믿음을 써서 바친 것이다.  물질을 바치는 것은 믿음의 열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 받은 다음에는 연보를 하여야 한다.  바칠 마음이 생길 때에 힘써서 바쳐야 믿음이 자라나고 열매가 맺혀진다.

셋째, 하나님으로 살기 위하여서이다.  과거에는 물질을 의지하여 살려고 하였으나 이제는 하나님 한 분으로 살 결심을 한 것이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보니 사람이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사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만 있으면 거기에 모든 것이 있다 . 영적 생명으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육적 생명도 살펴 주실 것을 믿는다.  초대 교회에서는 하나님으로 사는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물질을 하나님 앞에 기쁜 마음으로 바치게 되었다.

넷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로 하겠다는 정신으로 한 것이다.  물질 면에 있어서도 하나님 앞에 바로 쓰려고 하였다.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로 하여야 하되 물질부터 바로 사용하여야 한다.  물질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하고 사람에 대하여도 바로 하여야 한다.  윗사람에 대하여 바로하고 아랫사람에 대하여도 바로 하여야 된다.  물질을 하나님 앞에 바로 쓰지 못하면 다른 것도 바로 하지 못한다.  작은 것에 대하여 바로 충성하지 못하면 큰 것에도 충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눅16:10 참조).  성도가 연보할 때에 하나님께 바로 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인색한 마음이나 부득이해서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충성되이 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믿음이 바로 되고 하나님께서 큰 것을 맡기신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부하려하는 자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져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된다(딤전6:9-10 참조).  성도는 돈을 모으려고만 힘쓰지 말고 돈을 하나님 앞에 바로 쓰려고 힘써야 한다.  하나님 앞에 바친 것은 의를 이루며 그 의는 영원토록 하늘나라에 있게 된다.  고후9:9에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 하였다.

 

.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마음을 같이 하려면 자기를 위하는 마음과 제 생각은 내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하며 주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전 중심 생활을 했다.  우리도 영적인 성전 중심 생활을 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12세 때에 벌써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했다(눅2:49 참조).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이 살아 있기 때문에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집에 돌아가서도 기쁨의 신앙생활을 계속하였다.

 

.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을 찬미하며 다른 사람에게 칭송을 받게 될 때에 하나님이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께 바른 신앙생활은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게 된다.  일시적으로 사람들이 성도를 미워하여 큰 핍박을 하고 죽이려고 할 때가 있으나 그들의 양심은 성도를 옳다고 인정하고, 칭찬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시험과 환난을 믿음으로 통과한 후에는 백성들이 성도들을 칭찬하게 된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도 그러하였다.

 

제 3 장  사도

 

(대  지)

一. 앉은뱅이가 일어섬(1-10)

二. 증거 전도(11-26)

  1. 경책(11-16)

  2. 위로(17-18)

  3. 교훈(19-21)

  4. 권면(22-26)

 

(본문 강해)

 

一. 앉은뱅이가 일어섬(1-10)

 

. 3: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유대인의 제 구시는 지금의 오후 세시이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새벽, 오후 3시, 저녁) 기도하였다고 한다.  두 사도는 오후 세시를 기도 시간으로 정해 놓고 매일 기도하였다.  고넬료도 제 구시 기도 시간에 기도하였다고 했다(행10:3 참조).  다니엘도 하루 세 번씩 기도하였다(단6:10  참조).  성도들도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면 좋으나 세 번씩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루 한번은 꼭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여야 한다.  하루 한번 기도할 때에는 새벽 시간이 제일 좋다.  부득이 새벽에 기도하지 못한 사람은 저녁이나 점심 시간에라도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막1:35 참조).  우리도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이 좋다.  새벽에 일어나 예배당에나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 좋다.  예배당에 갈 형편이 안되면 다른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할 때에 시간과 공력을 많이 들여 기도하여야 한다.  적어도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은 기도하여야 한다.  직장 때문에 바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한 시간은 기도하여야 한다.  루터는 하루에 두 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은 날은 마귀에게 지는 날이라고 하였다.  기도를 안 하면 마귀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힘써 기도하는 생활을 하였다.  기도를 해야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머문다.  성도가 기도를 안 하면 충전되지 않은 밧데리와 같아서 빛이 희미해지고 힘이 약하여진다.

베드로와 요한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성전으로 간 것은 협동정신이다.  두 사도가 서로 마음이 맞고 협동이 잘 되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베드로는 나이가 제일 많은 제자이고 요한은 나이가 제일 어린 제자이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다니며 기도도 하고 하나님의 일을 같이한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었다.  연령적으로 차이가 있고 두 사람의 성격이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고의 귀를 벨만큼 성격이 과격한 사람이고 요한도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다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여 그들을 불에 태워 죽이자고 할만큼 성격이 과격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성격이 다 죽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자기는 죽어지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았기 때문에 초대 교회의 기둥과 같은 위치에서 두 사람이 합심하여 하나님의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여 나갔다.

이 두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갈 때에도 함께 갔고, 겟세마네 동산에도 함께 가서 기도하였다.  예수님이 잡혀서 심판 받는 자리에도 같이 갔고, 부활 후 무덤에도 같이 갔었다.  이 두 사도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며, 서로 봉사하며,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손이 맞아 항상 함께 다니며 일해 나간 것 같다.  성전에 올라갈쌔 그들은 성령으로 일하지만 계속하여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생활을 하였다.

 

.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는 한번도 걸어 본 적이 없고, 인간의 힘으로나 인간의 생각으로는 걸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자이었다.  그가 성전에 들어가서 좀더 크고, 영원하고, 생명적인 것을 구하려 하지 않고 병신된 육신을 위하여 썩을 양식을 얻기 위해 성전 미문에 앉아 몇 푼씩 구걸하였다.  이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인가 !  그는 육신도 가련하지만 심령은 더욱 가련하였다.  그가 만일 성전에 들어가서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을 구하였더라면 영원히 굶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첫째, 성전에 오기는 했지만 성전밖에 앉아 있었다.  둘째, 미문이라는 아름다운 문에 앉아 있지마는 말할 수 없이 더럽고 비참하였다.  셋째, 생각하는 것이 물질이요 요구하는 것도 물질이었으니 물질과 같이 망하고 말 자이었다.

 

.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죽은 자를 살펴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오직 썩을 양식을 위하여 한푼의 물질을 구걸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

 

. 3: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베드로가 요한을 쳐다보고 요한은 또 베드로를 쳐다보았다.  두 사도가 서로 바라보며 눈과 마음으로 통하고 그 앉은뱅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통하고 그에게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주자는 마음이 시선으로 통하였다. 그리하여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주목하여 보았다.  우리를 보라 이것은 사랑과 긍휼의 말이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사도들에게 역사한 것이다.  그 앉은뱅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그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자기들에게 있는 생명의 주 그리스도를 주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우리를 보라\"고 한 것은 소망을 가지라는 뜻이며 우리가 좋은 것을 너에게 줄 것이니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선물은 배부르고 부요한 자에게는 숨겨져 있고 가난한 자, 원하는 자, 목마른 자만이 받기 때문이다(계22:17 참조).  그 사람을 건져내려는 사명감이 두 사도의 마음속에서 넘쳐 나왔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기를 심판 때까지 하신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의 마음을 품은 것이다.  소자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소자 하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천사를 보내어 늘 돌보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앉은뱅이 된 불쌍한 소자 하나라도 간과하여 그대로 지나쳐 버릴 수가 없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선물을 주고자 하는 책임과 사명을 느끼게 된 것이다.

병든 소자 한 사람의 심령이라도 어떻게 하든지 살펴보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의 것을 나누어주려고 하는 것이 참된 하나님의 일군의 심정이다.  잃어버린 양 하나를 위하여 여러 가지 고생을 무릅쓰고 찾으러 다니다가 그 한 마리를 찾으면 기뻐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요 또 베드로와 요한의 마음이었다.

 

. 3: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앉은뱅이가 처음에는 두 사람에게서 돈이나 몇 푼 얻을까 하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볼 때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다.  그들의 얼굴과 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쏟아져 나오고 거룩한 모습과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을 보고 깨닫게 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 거룩한 분위기에 싸이게 되었다.  성령의 감동 속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 3:6-7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두 사도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한 것은 그 앉은뱅이가 물질을 구하기 때문에 그 물질을 구하는 사상을 깨뜨려 버리려는 목적이 있다.  그 마음이 없어지기 전에는 참된 생명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 명을 먹인 다음 날, 더 많은 무리가 모여 온 것을 보시고 너희가 온 것은 표적의 참 뜻을 보고 온 것이 아니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으로 왔다고 하셨다(요6:26 참조).  이것은 그들의 떡을 구하는 사상을 깨뜨려버릴 목적으로 내 살을 먹지 않고 내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심으로 그들이 다 물러갔다.  그리고 영생의 말씀을 깨달은 열 두 제자만 가르치셨다.  물질을 얻기 위하여 모인 자들에게는 영생의 말씀이 심령 속에 들어가지 않는 법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집사나 장로나 무슨 직분을 구하는 자가 있으면 그 생각을 깨뜨려 버려야만 진리가 들어갈 것이다.  물질을 통하여 사람을 모은 교회는 영생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지 못한다.  예수님의 몸된 교회는 물질로 한 몫 보고 물질을 가지고 운동하는 것이 아니다.  참 교회는 주와 그 은혜의 말씀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행20:32 참조).  그러므로 참된 하나님의 종은 물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만 전해 주어야 한다.  물질 문제를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만을 생명으로 받는 자들이 참된 성도요 참된 교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생명이요, 능력이요 지혜요, 구원이다.  전도자는 이 예수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고 그를 의뢰하고 그를 힘입어 영혼이 먼저 살아서 일어나면, 그 표적으로 그 육신의 병도 나을 수가 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할 때에 이 앉은뱅이는 성령의 감동으로 무슨 거룩하고 신령한 것을 주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 들여 영혼이 살아났다.  또 걸으라고 하는 말을 힘을 써서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발과 발목이 힘을 얻어 일어선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그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가 넘쳐 있었는데 믿음을 가지고 사모하는 그 앉은뱅이에게 그것이 역사하여 영과 육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만능의 역사가 일어나는 길이요, 하나님의 선물을 초자연적으로 받는 길이다.  그리하여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 때에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서 일어나게 되었다.

앉은뱅이는 두 사도와 함께 성전에 들어가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앉은뱅이가 일어서게 된 것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앉은뱅이가 믿음이 있는 증거는 바라보라 할 때에 순종하여 바라보았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할 때에 은과 금보다 더 좋은 것을 줄 것을 믿었다.  그리하여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손을 잡아 일으킬 때에 순종하여 벌떡 일어섰다.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령할 때에 베드로가 자기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고 성령에 붙들려 하나님의 명령으로 한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그렇게 말한 것이다.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쳐다볼 때에 이 사람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여 걷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았다.  이 사람을 일으켜 세우라는 감동이 오고 능력이 오고 역사가 오므로 베드로가 그대로 순종하여 말한 것이다.  그 때에 일어 설 수 있는 그 능력이 앉은뱅이에게 임했다.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거룩한 하나님의 종으로 알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분명히 믿었다.  그리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명령이 내려올 때에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다.  그 때에 발과 발목의 뼈가 힘이 나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붙들어 주므로 벌떡 일어섰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신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께 잘 이용당하였고 앉은뱅이는 잘 순종하여 복을 받았다.

앉은뱅이가 일어서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명령을 그대로 받아 들여 순종할 때에 일어설 수 있다.  베드로와 요한도 결점이 많은 사람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실수를 하였다.  예수님께 십자가를 멀리 하라고 마귀 노릇하던 때도 있었다.

변화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서는 졸기만 하다가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그 곳에 초막 셋을 짓자고도 하였다.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혈기가 나서 환도를 빼어 말고의 귀를 깎았다.  열 두 제자 가운데 혈기를 제일 잘 부린 사람이 베드로인 것 같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도 예수님 따라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고 바다로 갔다.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도 실수가 있었다.  안디옥에 내려가 이방인과 같이 먹다가 예루살렘에서 형제들(유대인들)이 내려오니 안 먹은 체하고 돌아앉아서 외식을 하다가 바울에게 책망을 받았다.

실수가 많고 인간적으로 부족한 것이 많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을 주시고 종으로 쓰셨다.  사도들이 부족한 면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쓰신 면이 중요한 것이다.  모든 앉은뱅이가 이러한 방법으로 일어서야 한다.  교회 안에 믿음의 앉은뱅이가 많이 있다.

신앙으로 걸어가지 못하고 주저앉아서 믿음에 진보가 없고 달음박질을 못하는 사람이 믿음의 앉은뱅이이다.  믿음이 진보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힘을 써서 달음박질을 하여야 되는데 앉은뱅이가 되어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상태에 있으면서 몸만 예배당에 왔다갔다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신앙의 앉은뱅이들이 일어서려면 하나님의 능력의 장중에 붙들려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베드로와 요한 같은 종이 필요하다.  베드로와 요한도 인간적으로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완전한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고, 아무리 완전한 것 같아도 반드시 결점이 있다.  로마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였다.  성도가 완전한 사람을 찾아 교훈을 받겠다고 하면 마지막에는 미혹을 받게 된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누군가가 \"내가 완전하다\"하면 그 사람을 따라가게 되어 미혹을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다 부족하고 결점이 있다.  노아, 아브라함, 다윗, 요나, 엘리야와 같은 사람들도 다 결점이 많이 있었다.  인간적인 결점이 있더라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핍박 속에서도 모든 것을 믿음으로 통과시키면 하나님의 영권이 입혀진다.  또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당하면 그 종은 훌륭한 종이다.  우리 성도는 은이나 금에 기대를 걸지 말고 더 크고 거룩한 것, 더 영원하고 더 참된 것을 소망해야 한다.

우리를 바라보라는 것은 위엣 것을 찾으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썩어질 것을 찾지 말고 썩지 않을 것을 찾고, 잠시 후에 없어 질 것을 찾지 말고 영원한 것을 찾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 안에 깊이 들어가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그를 힘입어 사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걸으라\" 할 때에 그 말을 받아들여서 믿고 순종하여야 한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오른손을 잡아 일으킨 것은 그가 일어 서고자할 때에 도와 준 일이다.  오른손은 힘있는 손이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를 붙들어 주고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나사로가 주의 명령대로 살아 나올 때에 수건을 풀어 준 것도 그를 도와 준 일이다.

 

.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앉은뱅이가 일어서서 제 집으로 가지 않고 성전으로 들어갔다.  나은 다음에 제 집으로 뛰어가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쓸모가 없다.  이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따라서 성전으로 들어갔다.  신앙의 앉은뱅이가 일어선 다음에는 영적 성전 생활을 하고 좀더 깊은 지성소 생활을 하여야 한다.  앉은뱅이가 나은 다음 성전에서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앉은뱅이가 전에는 이렇게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알지 못하였다.  과거에는 은전이나 금전 몇 푼씩 구걸하여 먹고살았는데 이렇게 좋은 세계를 새로이 발견했다.  이제 이 세계를 발견하고 보니 너무 좋아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성전에 들어가는 생활과 하나님을 찬미하는 생활을 하였다.  앉은뱅이가 나은 다음에 육신과 세상 중심 생활로 돌아가지 않고 신앙 중심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3:9-10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성전에서 그 사람이 그렇게 뛰며 기쁨에 넘쳐 찬송하는 것을 모든 백성이 보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 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인 것을 알고 심히 놀라며 어떻게 하여 낫게 되었을까 하고 기이히 여겼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인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 결과를 보고 모든 사람들이 기이히 여기게 된다.

 

二. 증거 전도(11-26)

 

1. 경책(11-16)

 

. 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다.  즉 베드로와 요한에 의하여 고침을 받았다고 알려 준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  앉은뱅이가 나은 것도 놀랄만한 일이었으나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이 고쳤다는 것에 더욱 놀라고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일을 자세히 알아보고 그들의 활동을 막을 무슨 대책이라도 세우기 위하여 모인 자도 있겠고, 또는 호기심으로 많은 무리가 솔로몬 행각에 모였을 것이다.

 

.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모든 백성이 베드로와 요한을 신격화하여 기이히 여기며 앙망하게 되었을 것이다.  만일 베드로와 요한이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자기들이 우상화될 위험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자기도 망하고 그들도 망하고 하나님의 일도 무너지고 만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들이 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로 되어진 것을 증거해야 된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가장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해서 우리를 쳐다보느냐?  우리가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낫게 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다.  우리의 생활이 경건하고 거룩하여 이런 권능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고 명백하게 말하였다.

모든 사람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낮출 때에 하나님께서는 높아지시는 일이요 자기가 사는 길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머물게 되는 일이다.  언제나 자기를 낮출 때에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계속된다.  교인들이 대개 개인의 경건을 크게 숭배하고, 개인의 경건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일이 되는 줄로 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여야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있고,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이용당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신다.

 

.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베드로와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영화롭게 하였다고 증거하였다.  너희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리스도를 보내어 영화롭게 하였다고 말했다.

그 종 예수 \"종\"이란 원어는 파이스(π )인데 아들의 의미도 있다(마12:18, 행3:26, 4:27, 30 참조).  이사야 40장-66장에 많이 나오는 종(메시야)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절대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성자의 위치는 성부 하나님을 순종하는 위치이다.  예수님이 완전히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수를 영화롭게 하였다.

 

. 3:14-15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너희(유대인들)가 거룩하고 의로운 예수님은 죽이고 살인한 바라바는 놓아 달라고 하였다.  너희가 죽인 그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는데 그 분이 생명의 구주시라고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히 증거하였다.

 

. 3:16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그 이름 이름은 권세 곧 예수님의 권세를 말한다.  예수님의 권세가 믿는 자에게 역사하여 앉은뱅이를 낫게 하였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의 역사가 이 앉은뱅이를 완전히 낫게 하였다고 베드로와 요한이 증거하였다.

 

2. 위로(17-18)

 

. 3: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 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베드로가 무리를 향하여 너희가 알지 못하여 생명의 주를 죽인 것이라고 말하여 주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무리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저 무리들이 알지 못하여 이렇게 한다고 하셨다(눅23:34 참조).  베드로는 진정한 사랑과 용서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진정한 사람으로 권면할 때에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된다.  사랑이 없으면 천사의 말을 하여도 아무 유익이 없다.  수술한 다음에는 약을 발라주고 싸매어 주듯 책망한 뒤에는 위로해 줄 필요가 있다.

 

. 3: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너희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실은 성경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구약 성경에 그리스도가 수난을 받을 것이 예언되었으며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수난은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이다.

 

3. 교훈(19-21)

 

.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죽은 것은 성경대로 구속을 이룬 것이므로 너희가 죄를 회개만 하면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고 유쾌하게 되는 날이 온다고 한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였으나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또 다시 죄를 짓게 된다.  그러므로 죄에서 돌이켜 세상은 뒤로하고 예수님만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면 성령이 그 속에 역사하여 기쁘고 즐거움을 얻을 것이며 하나님의 권고가 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권고와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되면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넘치게 된다.  이 날이 유쾌하게 되는 날이다.

 

. 3: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을 말한 것이다.  택한 백성이 회개하여 주께로 돌아오고 복음이 땅 끝까지 퍼지면 주의 재림이 있을 것이다.  너희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지는 일이다.

 

. 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유가 회복될 날이 온다.  그때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다(사11:6-9, 35:1-10, 65:17-25 참조).  예수님의 재림이 있고 이 세상에 천년왕국이 임하면 만유회복이 이루어진다.  천년왕국 시대가 되면 마귀는 무저갱에 가두고 천년동안 죄 없는 시대가 이루어진다.  그때에 만물의 탄식이 끝나고 범죄와 불의에 사용되던 만물이 거기에서 해방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될 것이다(롬8:18-23 참조).  이것이 만유 회복이다.  그 때에 성도들은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한다.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재림때까지는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다는 뜻이다.  천년왕국이 끝나면 성도들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4. 권 면(22-26)

 

. 3: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신명기18:15의 인용이다. \"너희 형제 가운데서\"란 유대인 중에서라는 뜻이며 나 같은 선지자는 예수님을 말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 모세의 말을 믿는 것이요 성경을 순종하는 것이다.

 

. 3: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신명기18:19의 인용인데 내용이 조금 달라진 것은 성령께서 알기 쉽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모세가 예언한 그리스도(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멸망 받게 될 것이다.

 

. 3: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선지자의 예언을 말할 때에 모세와 사무엘과 그 후의 모든 선지자들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한 것이 예수님의 때를 가르쳤다고 증거하였다.

 

. 3: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예언한 선지자의 자손이므로 그 예언성취의 사실을 받아들일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이나 그의 여러 조상들과 세운 하나님의 언약(그리스도를 통한 은혜계약)이 있는 자들이므로 언약의 자손이라고 한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다(창12:3 참조).  여기 \"네 씨\"는 아브라함의 자손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언약한 것이다.  땅위의 모든 족속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족속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족속이 구원받을 길이 열린 것이다.

 

. 3: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종을 세워 여기 종은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이사야42:1-4 등에 예언한 그리스도의 종의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완전히 순종하여 구속사업을 성취시킨 면을 강조하여 종이라고 한 것이다.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그리스도를 먼저 유대인에게 보내고 다음에 이방인에게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된다는 뜻이다.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그리스도의 구원운동은 로마 정권 하에서의 정치적 해방이 아니며 유대인의 민족운동도 아니고, 각 사람을 그 죄악에서 해방시켜 구출하여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개인적인 문제이다.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악에서 벗어져 나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하고 영원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제 4 장  핍 박

 

(대  지)

-. 수옥질문(공회원들이 사도들을 옥에 가두어 놓고 질문함)(1-7)

二. 답증구주(사도들이 답변하여 구주를 증거함)(8-12)

三. 공갈처리(공회원들이 사도들을 공갈로 처리함)(13-18)

四. 사실증거(사도들이 사실대로 증거함)(19-22)

五. 보고예배(사도들이 출옥하게 된 것을 보고하고 예배함)(23-30)

六. 성령충만(31)

七. 유무상통(32)

八. 무리가 큰 은혜를 받음(33-37)

 

(본문 강해)

 

一. 수옥질문(공회원들이 사도들을 옥에 가두어 놓고 질문함)(1-7)

 

. 4: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성전 맡은 자 성전을 수호하기 위하여 제사장 중에서 택하여 세운 경위장(警衛長)이다.  이들은 성전에서 소란이 일어나면 책임져야 되는 자들이다.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영도 없고, 천사도 없다고 주장하는 종파이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그들이 싫어한 이유는

① 그들이 예수를 잡아 죽였는데 그 예수가 부활했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② 부활의 교리가 사두개인의 교리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③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권위가 점점 떨어지기 때문이다.

④ 성전 맡은 자는 성전에서 옳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자기들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 4:2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전함을 싫어하여

사도들이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일에 대하여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아주 싫어하였다.  그들 속에 마귀가 들어가 구원운동을 반대하게 하였다.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부흥되면 마귀의 나라가 점점 파괴되겠으므로 마귀가 크게 발악한 것이다.  마귀는 항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고 성도들을 잡아 삼켜 자기의 종을 삼으려는 것이다.

 

. 4:3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유대인들은 밤에 심문이나 재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도들을 붙잡았으나 날이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어 두게 되었다.

 

.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핍박으로는 신앙과 진리를 막지도 못하고 멸하지도 못한다.  진리는 막을수록 더욱더 전파되어 남자의 수가 오 천 명이나 되었다.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는 백 이십 명이었고, 사도행전2:41에서는 삼천 명이 되었으나 또 여기에서는 오 천 명이 새로 믿게 되었다.  생명의 복음운동은 이렇게 널리 퍼져 나갔다.

 

. 4:5-6  이튿날에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재판하기 위하여 산헤드린 공회가 모였다.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나라 최고 재판소인데 한 지파에서 6명씩 7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대제사장이 회장이 되었다.  여기 \"관원\"이라고 하는 자는 대제사장들을 가리킨다.  \"서기관\"은 율법을 보존하며 해석하는 직분이다.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은 공회원이며 예수를 잡아죽일 때에도 이들이 모여서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 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예수님을 정죄하여 죽인 이 산헤드린 공회가 다시 모여 사도들을 심문하였다.  이것은 기독교를 박멸하려는 운동이다.  무슨 권세 산헤드린 공회에서 권세를 부여한 일이 없는데 어찌 이런 일 (앉은뱅이가 일어난 이적)을 하였느냐 하는 뜻이다.

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했거나 아브라함이나 모세 같은 유명한 이름으로 행했으면 괜찮겠으나 갈릴리에서 나와 소란을 피우다가 정죄 받아 십자가에서 사형 받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여 백성들을 따르게 한 것은 그들에게는 아주 마땅치 않게 보였다.

 

二. 답증구주(사도들이 답변하여 구주를 증거함)(8-12)

 

. 4: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였다.  공회원들은 사도들을 향하여 당당한 위세로 심문하였다.  그 공회석상은 반원형으로 아주 장엄하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공회원들이 거기에서 위엄스러운 자세로 앉아 죄수를 심문하는 것이다.  이 공회원들은 얼마 전에 예수님을 정죄하여 죽인 사람들이다.  이번에도 그들이 사도들을 죽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예수님을 죽인 그들은 예수를 좇는 사도들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잡아죽일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므로 웬만한 사람 같으면 심문 받을 때에 두려워서 벌벌 떨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사도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고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의지하여 담대히 나서서 증거할 때에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였다.

 

. 4:9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앉은뱅이가 낫게 된 것은 착한 뜻으로 된 일인데 당신들은 왜 착한 일을 반대하는 태도로 묻느냐고 베드로가 담대히 말했다.  앉은뱅이를 고쳐 준 것은 선한 일이다.  선을 행할 때에는 힘이 나온다. 공회원들은 숫자가 많고 세력이 당당하였으나 베드로는 선을 가지고 대항하였다.  옳은 일에는 언제나 떳떳하고 담대한 힘이 나온다.  듣는 사람도 옳은 일에 대하여는 인정을 하게 된다.  사도들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낫게 한 것은 좋은 일인 데 왜 죄인 취급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도들 자신도 착한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양심이 편안하다.  그러므로 죄인취급을 받고 있으면서도 담대히 말하게 되었다.  공회원들의 양심과 이 소식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사도들이 옳다고 인정을 하게 될 것이다.  선(善)이 일시적으로 핍박을 받더라도 마침내는 이기게 되는 것이다.  진리와 선은 악에게 패하는 법이 없다.

 

.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베드로는 공회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사실대로 말하였다.  베드로의 대답은 공회원들에게 큰 죄책을 깨닫게 해 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데 그 예수의 이름으로 이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았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일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공회원들에게 알게 해 주었다.

 

.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시편118:22말씀인데 그리스도를 예언한 말씀이다.  건축자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산헤드린 공회원들도 해당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벧전2:4-8 참조).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쓰지 못하겠다고 버렸다.  모퉁이의 머릿돌 가옥의 양벽(兩壁)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놓은 돌 혹은 기초돌이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못 쓰겠다고 내어버린 예수님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요긴한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베드로의 이 대답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크게 책망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가장 요긴한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진리를 종교 지도자들이 내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루터나 칼빈 같은 사람들을 중세 로마 카톨릭 지도자들은 못쓰겠다고 내어버렸으나 그 당시 진리운동에는 요긴한 돌이 되었다.  이 기선 목사님이나 주 기철 목사님도 일제 때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노회나 총회에서 제명까지 당하였으나 그 분들은 그 당시 진리와 생명 운동에 요긴한 돌이 되었다.

 

.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천하 인간에 다른 이로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가 없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구원이 없다.  기독교만 구원을 얻는 유일한 종교이다.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를 통해서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구약시대에도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지 못하고 죽은 자는 다 지옥에 간 것이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는데(히9:22 참조)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를 믿지 않았으므로 죄사함을 받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친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였다(요14:6 참조).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는 전부 절도요 강도라고 하였다.  천성에 들어가는 문이 하나밖에 없는데 그 문은 예수님이시다.  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전부 절도요 강도이다.  구약시대에도 율법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양심으로 구원받은 것도 아니다.  아담도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으며 아벨, 노아, 아브라함도 모두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요8:56-58 참조).  신약시대에는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三. 공갈처리(공회원들이 사도들을 공갈로 처리함) (13-18)

 

. 4:13-14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본래 학문 없는 베드로와 요한은 무식한 사람이다.  그들은 학문이나 종교의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어부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자와 약한 자를 택하사 지혜있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고전1:27 참조).

범인으로 알았다가 범인은 \"평민\"이나 \"병졸\"과 같은 사람이다.

범인으로 알았던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으로 담대하게 예수를 증거할 때에 공회원들이 놀랐으나 힐난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① 무식한 사람이 말을 아주 잘하였기 때문이다.

②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인 줄 알므로 부인하지 못했다.

③ 병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으므로 힐난할 수가 없었다.

④ 그 말이 권세가 있어서 양심에 찔리우고 있었다.

성도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확신을 가지고 진리를 전하면 학문이 많고, 지혜있고 통달한 사람들도 능히 굴복시킬 수 있다.  지금도 생명을 바쳐 놓고 충성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여 지혜있고 통달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일이 많이 있다.  사도들이 세상학문에 대하여는 무식하지만 성경말씀은 많이 알고 있었다.  베드로가 1장에서 두 번(행1:20 참조), 2장에서 세 번 (행2:17-, 21, 25-28 참조) 구약성경을 인용하였고 본 장에서도 또 인용한 것을 보면 베드로가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었다.  베드로는 또 예수께 대한 진리를 자세히 알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생명을 바쳐 하나님께 충성을 하면 세상 학식이 없어도 하나님이 귀히 쓰신다.

 

. 4: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사건 당사자들은 내보내고 그들이 듣지 않는 곳에서 공회원들이 대책을 의논하였다.

 

. 4: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사도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이 나타나 예루살렘에 알려졌으므로 공회원들은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또 그것 때문에 사도들을 벌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민심을 잃을까 두렵고, 백성들이 자기들을 돌로 칠 염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 4: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하고

사도들이 예수의 부활을 전하고 이적을 행하는데 그것을 내버려두면 하나님의 복음이 점점 널리 전파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예수를 죽인 피 값이 공회원들에게 돌아가고 그들의 권위가 떨어지고 유대교는 소멸될 것이다.  그러므로 공회원들이 생각다 못해 사도들을 위협하여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거나 가르치지 못하게 하자고 결정하였다.

 

. 4: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사도들을 불러 이번만은 용서하여 주지만, 앞으로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무슨 말을 하거나 가르치면 안 된다고 엄히 경계하였다.

 

四. 사실증거(사도들이 사실대로 증거함)(19-22)

 

.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다고 할 것이다.  사도들은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너희들(공회원들)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가 판단하라고 반문했다.

 

.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보여 주고, 듣게 해 주고, 전하라는 사명을 주었으나 사람의 압력에 눌려서 전하지 않으면 \"벙어리 개\"이다.  그 진리를 말할 때에 자기 생명이 살고 성령의 역사가 커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보호해 주시고 귀히 쓰는 일군이 된다.

 

. 4:21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더라

관원들은 마음속으로 사도들을 죽이고 싶었으나 사도들이 앉은뱅이를 고친 일에 대하여 백성들이 옳게 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벌할 도리가 없었다.  그때 만일 사도들을 벌한다고 하면 백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협박만 하고 놓아주었다.  그들은 옳은 진리를 찾는 것보다 백성의 인기를 얻으려고만 하였다.  잠언29:25에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고 하였다.  베드로나 요한은 생명을 내놓고 진리에 서있기 때문에 담대히 증거하게 되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사람의 인기를 얻으려고 하면 양심과 진리를 버리게 된다.  신앙양심과 성령과 진리를 따라가는 자는 사자와 같이 담대하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서 생명 길을 힘있게 걸어나가며 진리를 세워 나가게 된다.

 

. 4:22  이 표적으로 병나은 사람은 사십 여세나 되었더라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가 40년 동안 고치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았다.  이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요,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五. 보고예배(사도들이 출옥하게 된 것을 보고하고 예배함)(23-30)

 

. 4: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사도들이 공회원들의 손에서 풀려 나와 그 동류에게로 갔다.  그 동류는 다른 사도들과 성도들을 말한다.  그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했던 것 같다(행12:12 참조).  베드로와 요한이 거기에 가서 장로들과 제사장들의 말을 다 고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지(死地)에서 석방되어 자기의 집으로 가지 아니하고, 또 잡힐까봐 도망치지도 아니하고 그 동류들이 모인 교회로 간 것은 다른 사도들과 성도들의 염려를 덜어 주고 위로해 주려함이며 주께서 어떠한 역사로 자기들을 건져 주신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 4:24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기도하던 사도들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너무 기뻐서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여\"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  이것을 보면 초대 교회는 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있었다.  두 사도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다른 성도들은 전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갇힌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다가, 갇혔던 사도들이 나오므로 자기가 감옥에서 나오게 된 것처럼 한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찬송하며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히브리 13:3에 \"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하였다.  대 주재여 우주 만물을 주장하는 주장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창조주시며, 그것들을 주장하시는 절대적인 주권자이시다.  그 주권으로 두 사도를 건져 주신 일을 찬양하는 것이다.

 

. 4:25-26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장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사도와 성도들은 성경을 상고하고 그 성경대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을 기뻐하였다.  이 성구는 시편2:1-2말씀인데 그 내용은 세계 열방의 왕이나 관원이나 모든 족속이 모여 분노하고 주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은 허사를 경영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성도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성경말씀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 4: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시편2:1-2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헤롯왕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합동해서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그리스도를 거스리고 죽였는데 그것이 성경대로 되었다고 하였다.

 

. 4: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그들이 모여서 예수를 거스리고 대적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예정을 이루는 것뿐이다.  그들이 대적한다고 해서 기독교가 없어지거나 하나님의 예정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말씀대로 예정을 이루려고 그 사람들이 그러한 일을 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누가22:22에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하였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잡아 주었고 대제사장과 빌라도가 예수를 죽였으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대로 죽으신 것이다. 그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실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 악한 자들을 이용해서 예정하실 뜻을 이루신 것이다.  잠언 16:4에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악한 자도 하나님의 예정에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악한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

 

. 4:29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대적하는 무리들의 위협을 하나님께서 살펴보아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이것은 원수에 대한 것을 모두 하나님께 맡겨버린 것이다.  원수들을 멸망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렇게 했다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없는 때에는 두려움이 들어온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는다(요일4:18 참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놓고 하나님께서 친히 선하신 뜻대로 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원수들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겼다.  벧전2:23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원수를 끝까지 사랑하시며 자기의 할 일만 바로 하여 나갔다.  사도들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대적하는 자와 싸우지 말고 자기가 하나님을 바로 순종하고 바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힘을 써야 한다.  왜냐하면 악한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고 구원이룬 것은 영원히 남겠기 때문이다.

 

.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육신의 병이 낫고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기를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이 같은 은사를 주시는 것은

첫째, 복음 전하는데 유익하게 위함이다.

둘째,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심령의 병이 낫는 것을 표적으로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복음을 성령과 능력으로 전하고 그 복음을 믿음으로 받을 때에 영적 병이 나아 심령이 강건해지고, 앉은뱅이들이 일어서고, 소경이 눈을 떠서 신령한 세계를 보게 되고, 벙어리가 말하게 된다.

 

六. 성령충만(31)

 

.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진동하더니 진동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 것이다 (행16:26, 사6:4 참조).  하나님의 임재하는 증표로 땅이 진동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표준계시로서의 특별한 역사는 사도와 그 수종자에게까지 종결이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땅이 진동하는 것이나 묵시나 환상을 보고 따라가면 안 된다.  지금은 성경을 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때이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성령으로 복음을 전해야 담대히 전하게 되며 힘있게 전하게 된다.

 

七. 유무상통(32)

 

.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믿는 모든 무리가 어떻게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을까?  이 사람들은 물질 문제나 권리 문제나 생명 문제와 같은 자기를 위한 문제는 다 초월하였다.  그것들을 초월하지 못하면 한 마음 한 뜻이 될 수 없다.  그들은 또 주님과 진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여 예수를 위해 생명을 바쳐 놓고, 복음을 위하여 충성하는 마음이 간결하고 뜨거웠다.  성도가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거나 명예와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아직도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  우리 성도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육신 중심에서 벗어나 오직 주님만 뜨겁게 사랑하고 복음을 전파하며 세워 나가는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온 교회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힘있게 나아가면 아무리 대적하는 자가 많아도 복음이 힘있게 창성하여 나아갈 수 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기쁨으로 물질을 바치고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므로 그 중에 궁핍한 사람이 없었다.  이것은 유무상통으로 초대교회에 있었던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이것이 공산주의와 다른 점은 제도화하지 않았고, 무자비한 투쟁이나 강제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무상통은 성도들이 자유의사로 하나님께 감사해서 물질을 바침으로 된 것이다.  예수님은 재물을 반드시 유무상통하라고 명하시지 않으셨다.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천하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 생명까지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았다.

 

八. 무리가 큰 은혜를 받음(33-37)

 

.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전도자가 큰 권능으로 복음을 전하면 그 복음을 받는 무리가 큰 은혜를 받게 된다.  교인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전하는 자가 성령과 권능으로 전하지 못하거나 교인들이 성령을 힘입어 간절한 마음으로 받지 않기 때문이다.

 

. 4:34-35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큰 은혜를 받은 성도는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나온다.  그 때에 하나님께 바치면 신앙의 열매가 맺히고, 영혼이 자라나게 된다.  성도들이 자진하여 바친 물건을 사도들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으므로 신자 중에 핍절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 4: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변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바나바는 예루살렘에서 큰 부자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사도의 발 앞에 두므로 권위자 혹은 위로자라 하는 별명을 얻었다 . 바나바의 이 행위는 사도들에게 큰 힘이 되었고 성도들에게 많은 위로가 된 것 같다.  바나바는 믿음으로 자기의 소유를 팔아 바쳤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이 귀히 쓰는 일꾼이 되었다.  사도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한 사람이 바나바이다.  다른 사람들은 바울이 회개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는데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바울을 불러다가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해 주었다.  바울이 일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 바나바가 함께 다녔고 안디옥 교회의 중견 인물로 활약하였다.  그는 구브로에서 난 사람이고 레위인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를 우러러보고 위로자라는 이름을 주었다.

 

제 5 장  아나니아

 

(대  지)

一. 아나니아 부부를 징벌함(1-11)

二. 권능으로 전도함(12-16)

三. 핍박 중에 주를 전도함(17-32)

四. 핍박 중에 갈 길을 열어 줌(33∼42)

 

(본문 강해)

 

一. 아나니아 부부를 징벌함(1-11)

 

. 5:1-3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바나바가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므로 권위자라는 존귀한 이름을 얻었다.  그것을 보고 아나니아 부부도 사도들의 발 앞에 두기 위하여 자기 소유 전부를 팔았다.  그러나 그들은 팔고 나서 마음이 변하였다.  판 값을 다 갖다 바치면 앞으로 무엇을 먹고살까 하는 염려와 물질에 대하여 아까운 생각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부부가 의논을 하여 땅값 얼마를 감추고 그 나머지만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두었다.  베드로가 성령으로 이것을 알고 아나니아에게 물어볼 때에 그는 다 가져왔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성령의 역사로 부흥 발전하는 초대 교회에 사단의 역사가 들어 온 큰 사건이었다.

① 명예 영광주의가 싹이 튼 것이다.  아나니아 부부는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소유를 판 것이다. 베드로가 물어볼 때에 일부만 가져왔다고 말해도 되지만 그렇게 하면 자기의 명예가 떨어질까 봐 다 가져왔다고 하였다.

② 탐욕주의가 들어온 것이다.  하나님께 다 바치려고 팔았으나 탐욕이 들어와 얼마를 감춘 것이다.  그들은 신앙을 버리고 욕심을 따라간 것이다.

③ 거짓이 들어온 것이다.  얼마를 감추어 놓고 다 가져왔다고 하였으니 양심과 진실을 버리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거짓은 언제나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였고 거짓말쟁이의 아비가 된 것이다(요8:44 참조).  순수한 진리로 이루어지는 초대 교회를 마귀가 파괴하려고 표면적 선을 앞세워 침입한 것이다.

④ 외식이 들어온 것이다.  아나니아 부부가 겉으로는 의와 선으로 장식을 하여 소유를 다 하나님께 바친 것처럼 하였으나 속에는 불의가 가득하였다.  성령을 속이고 아나니아 부부가 성령의 감동을 속였다는 말이다.  베드로는 아나니아 속에 사단이 가득하여 성령을 속인 것을 알았다.  땅값을 감추려고 할 때에 성령은 아나니아 속에서 진실하게 하라고 하였을 것이다.  베드로가 물어 볼 때에도 성령은 진실히 하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이 성령을 속인 것이다.

 

. 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로서의 소유권이 있다.  시편24:1에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원리원칙으로 말하면 자기의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 인생은 빈손 들고 나그네로 왔다가 때가 되면 빈손 들고 가야 한다.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 가지고 있는 청지기에 불과하다.

\"네 땅이 아니며…\" 하는 것은 네가 그 땅을 이용하여 믿는 일을 할 땅이 아니냐하는 뜻이다.  그 땅을 이용하여 믿는 일을 할 수 있으므로 자기의 것이다.  또 믿는 일을 해 놓은 것도 자기의 것이다. 가령 그 땅을 팔아서 믿는 일을 하였다면 그것은 영원히 자기의 것이다.  그 땅을 팔아서 하나님 앞에 바로 썼다면 하늘나라에 그 의가 영원히 남아 있다.  또 그와 같이 믿는 일을 할 때에 영혼이 자라나고 영혼이 자라난 것은 영원히 남는다.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판 다음에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 양심의 자유대로 믿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판 다음에도 그것으로 믿는 일을 바로 했다면 그것은 영원히 자기의 것이다.  판 다음에 믿는 일을 하려면 그것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면 된다.  또 얼마를 놓아두고 일부만 가져왔을지라도 사실대로 말하면 믿는 일이 된다.  그런데 아나니아 부부는 믿는 일을 안하고, 마귀의 종이 되어 허영심과 욕심으로 죄를 지었다.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거짓말한 것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한 것이다.  교회에 거짓말을 한 것은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세운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이 계신 전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한 것은 주인이 하나님이시요 사람은 누구나 다 종이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종에게 잘못한 것은 그 주인에게 잘못한 것이 된다.  또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으므로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 된다.

 

. 5: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사람은 영혼과 육신이 합하여 되었으며 영혼이 떠나면 죽게 된다.  아나니아가 죽은 것은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징계하신 것이다.  교회를 속이고 교회에 손해를 주는 자는 하나님이 이렇게 진노하신다.  왜냐하면 교회를 속인 것은 하나님을 속인 것이며 생명 운동을 대적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나니아를 징벌한 것은 초대 교회에 들어온 누룩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누룩은 제거하지 않으면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게 된다.  아나니아의 영혼이 반드시 지옥에 갔다고는 할 수 없다.  그가 예수를 믿었다면 육신은 죄로 인하여 벌받아 죽었더라도 영혼은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도 그러한 예가 있었다(고전5:5 참조).

 

. 5: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젊은 사람들이 아나니아의 시체를 메고 멀리 시외로 나가서 장사하였다고 한다.

 

. 5:7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삽비라는 그 남편이 세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으므로 사도들에게서 무슨 큰 명예와 영광을 얻은 줄 알고 자기도 그 영광에 동참할 생각으로 사도들에게로 달려온 듯 하다.  그는 그 남편이 죽어 장사한 것은 알지 못하였다.

 

. 5:8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베드로가 삽비라에게도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하고 물어 보았다.  그 때에 만일 삽비라가 양심을 똑바로 썼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남편과 공모를 하였기 때문에 양심을 쓰지 않고 역시 성령을 속였다.  하나님께서 삽비라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하지 않고 양심을 속이며 거짓말을 하였다.

 

. 5:9-10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삽비라의 대답을 듣고 베드로는 \"너희가 왜 공모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느냐\"고 책망하였다.  그 때에 삽비라도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었다.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주님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 성령을 속인 행동이 주의 영을 시험하는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초대 교회 안에 들어온 누룩이었다.

교회의 본질은 누룩 없는 떡이다.  그러므로 누룩이 들어오면 그 누룩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고전5:8에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하였다.  누룩을 제거해야만 유월절 제사가 제대로 된다.  누룩 있는 떡은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  외식, 탐심, 거짓, 인본주의와 명예 영광주의는 교회를 썩게 하는 누룩이다.

교회 안에 이러한 누룩이 들어오면 생명의 역사가 끊어진다.  그러므로 누룩을 제거하기 위하여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징계하신 것이다.

참 교회의 징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여야 한다.  진리를 바르게 전하고 옳은 진리를 점점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붙들고 그 이상의 진리를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

둘째, 성례를 거행하여야 한다.

셋째, 권징을 부지런히 행해야 한다.  마귀가 계속하여 누룩을 교회 안에 갖다 넣기 때문에 교회는 부지런히 그 누룩을 제거해야 참 교회가 유지되어 간다.  누룩을 제거하지 못하면 얼마 후에는 다 썩어 버린다.  초대 교회에서 아나니아 부부를 징계한 것도 참 교회를 계속 유지하여 나가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도 부지런히 누룩을 제거하여 참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 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교회 안의 누룩을 제거할 때에 하나님의 권위가 나타났다.  복음을 가지고 일하는 일꾼들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것을 말씀대로 바로 처리하여 나가면 하나님께서 살릴 자는 살리고 벌할 자는 벌하셔서 하나님과 그 종의 권위를 높여 주시고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하신다.

 

二. 권능으로 전도함(12-16)

 

. 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교회에서 죄를 처리하였으므로 새 힘이 났다.  누룩을 제거시켜야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다.  누룩을 제거하면 마음이 하나가 되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칭송하게 된다.

솔로몬 행각 성전 주위에 있는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이기에 좋은 곳이었다(행3:11 참조).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이 다 그 곳에 모였다.

 

. 5: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아나니아 부부가 처벌받는 것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도들을 두려워하여 감히 상종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백성들이 칭찬하였다.

 

. 5: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그 때에 남녀의 큰 무리가 믿고 주께로 돌아왔는데 수 만 명에 이른 것이다.

 

. 5:15-16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베드로가 더욱더 힘을 얻어 전도할 때에 사람들이 병자들을 많이 메어 왔다.  그것은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혹 덮이게 되면 그들이 벌떡벌떡 일어나는 큰 권능의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고침을 받았다.

 

三. 핍박 중에 주를 전도함(17-32)

 

. 5:17-18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하나님의 큰 권능이 나타나고 큰 역사가 일어날 때에는 마귀의 역사도 크게 일어난다.  교회가 큰 권능으로 발전하여 나가고 왕성하여 나가기 때문에 마귀도 그만큼 강하게 방해를 하는 것이다.  마귀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 속에 들어가 사도들을 시기하게 만들었다.  사도들은 성령이 충만하였고 그 사람들은 시기가 가득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으나 그들도 사도들이 옳은 줄을 양심으로는 알면서 시기하여 잡아 가둔 것이다.

 

. 5: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밤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내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으려고 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참조)고 하였다.

 

. 5: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하나님께서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건져 주신 목적은 집에 돌아가서 평안히 살라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 5:21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사도들은 옥에서 나오는 즉시로 순종하여 새벽부터 성전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산헤드린 공회를 모으고 사도들을 처벌하려고 준비를 서둘렀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고 한 것이다.

 

. 5:22-23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관속들이 옥에 가보니 옥문은 든든히 잠겨 있고, 지키는 사람도 문에 서 있었다.  그러나 옥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러므로 관속들이 당황하여 돌아가 그대로 보고하였다.  천사들이 사도들을 옥에서 끌어낼 때에 지키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다.  천사들이 그들을 졸게 했는지도 모른다.

 

. 5: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사도들이 기적적으로 탈출된 것을 보고 공회원들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심히 당황하였다.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막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들은 이렇게 두려움이 미치고 당황하게 된다.

 

. 5:25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옥에서 나온 사도들이 성전에서 담대히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어떤 사람들이 공회에 보고하였다.

 

. 5:26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그들이 사도들을 성전에서 잡아왔으나 강제로 처벌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이 자기들을 돌로 칠까봐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인본주의로 나가는 것이 분명하다.  살아 계신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움직이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5:27-28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사도들을 공회 앞에 세우고 대제사장이 정죄하는 죄는 두 가지이다.

첫째, 공회에서 금한 명령을 왜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공회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 가르치느냐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의 피에 대한 책임을 자기들에게 돌리고자 한다는 것이다.  사도들은 그러한 악의를 품고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하여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을 순종하여 복음을 전한 것뿐이었다.

 

.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공회의 명령에 왜 순종하지 않느냐는 데 대하여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대답하였다.  사도들은 오직 하나님을 순종하기 위하여 생명을 내어놓고 나아가기 때문에 큰 핍박 중에서도 담대히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상부의 권세도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므로 순종하여야 한다(롬13:2 참조).  그러나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는 것은 순종할 수 없다.

 

. 5:30-31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예수를 죽인 책임을 공회원들에게 돌린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하여 사도들은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대답했다.  그뿐 아니라 그 예수를 하나님이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으니 이는 이스라엘로 회개하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두려워하지 말고 회개하여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사도들이 증거하여 주었다.

 

.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도들은 공회원들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루어진 사실대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신 성령도 이 일을 증거한다고 대답하였다.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 성령은 우주에 충만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므로 안 계신 곳이 없다.  성령을 순종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과 성령의 인도를 뜻하는 것이다.  불순종하는 자는 성령의 감동과 인도를 못 받음으로 성령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四. 핍박 중에 갈 길을 열어 줌(33-42)

 

. 5:33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쌔

사도들의 말을 듣고 공회원들이 마음에 찔려 크게 노하였다.  사도들의 증거한 말로 인하여 자기들의 죄가 더욱 드러났고 예수님이 더욱 높아지고, 자기들의 권위가 떨어지게 되었으므로 사도들을 없애버리려고 하였다.

 

. 5: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은 교법사(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요 공회원이었다.  그는 율법의 가장 엄격한 보수파로서 바울의 선생이었다(행22:3 참조).  그는 공회에서도 권위를 인정받는 유력한 사람이었다.  그가 일어나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나가게 하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가말리엘을 이용하여 사도들을 죽음에서 건져내려고 하신 것이다.

 

. 5: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가말리엘은 사도들에 대하여 조심하고 일을 바로 처리하여야 하며 일시적인 감정이나 분노로 처리하면 안 된다고 말하였다.

 

. 5: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 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가말리엘은 두 가지 역사적 실례를 들어서 말하였다.  전에 드다라는 사람이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 백 명이 따랐으나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자들이 다 흩어졌다고 말하였다.

 

. 5: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주후 6년 수리아 총독이 호적을 시켰는데 갈릴리 지방도 수리아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호적을 했다고 한다.  그 때에 유다라는 사람이 일어나 세금은 오직 하나님께만 바쳐야 하고 이방나라에 바치면 안 된다고 주장하다가 처형을 받아 죽으니 따르던 사람들이 다 흩어지고 말았다.  주후 6년에 한 호적은 세금을 받기 위하여 수리아 총독이 하게 한 것이고 예수님 탄생하실 때에 한 것은 주후 4년에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令)을 내려한 것이다.

 

. 5:38-39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예수님에게 대한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가만히 놓아주어도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드다나 유다의 경우 주모자가 죽으면 그 추종자가 다 흩어졌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이미 죽었으므로 그 소행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자연히 소멸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상과 소행이 하나님께로서 났다고 하면 너희가 없애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할까 두렵다고 가말리엘이 말한 것이다.

 

. 5:40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공회원들이 가말리엘의 말을 옳게 여겨 가만히 놓아두기로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말리엘을 감동시켜 그러한 말을 하게 하였고, 또 듣는 사람들도 그 말을 옳게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그들은 사도들을 놓아주되 채찍질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게 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을 놓아주면서도 이렇게 화풀이를 한 것이다.

 

.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예수를 위하여 능욕 받는 것도 자격이 있어야 받는다.  예수를 위하여 능욕을 받으면 그 대가로 하나님의 상이 크다.  마태5:11-12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고 매를 맞는 것은 그만한 상급이 있기 때문에 그 상급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야 능욕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자격자로 선정된 데 대하여 기뻐하였다.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을 상받는 데에 참여하도록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능욕 받는 자격자로 삼아 주신 일이 너무 감사하여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회 앞을 떠나갔다.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면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된다(갈6:17 참조).

 

.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은 하나님의 일을 전문적으로 하려고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예수를 모시고, 예수 안에서 살고, 예수로 즐거워하고, 예수를 전하는 일을 쉬지 아니하고 힘써 해 나갔다.

 

제 6 장  집사

 

(대  지)

一. 구제에 대한 원망(1-2)

二. 사무를 분담함(3-6)

三. 교회가 왕성해짐(7)

四. 스데반의 전도(8-10)

五. 위증으로 핍박함(11-14)

六. 얼굴이 천사와 같음(15)

 

(본문 강해)

 

一. 구제에 대한 원망(1-2)

 

.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헬라파 유대인 이방에서 출생한 유대인을 말한다.  \"히브리파 유대인\"은 유대 본토에서 출생하여 거주하는 유대인이다.

사도들이 구제한 일에 왜 원망이 들어왔을까?

① 사도들이 구제함에 있어 헬라파 유대인의 과부들을 잘 살피지 못했을지 모른다.  교인들이 수 만 명이나 되는 그때에 구제 대상자의 보고가 잘못되면 구제 받을 만한 사람이 구제에서 빠질 수도 있다.

② 구제를 잘하였다고 해도 자기 욕심에 차지 않은 사람은 원망할 수 있다.

③ 표준과 관점과 목적이 다르면 아무리 잘한 것이라도 원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 마리아가 기름 부을 때에 제자들이 원망한 일과 탕자가 돌아왔을 때에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맏아들이 원망한 일 같은 것이다.

돈이나 물질에는 언제나 마귀가 따라다닌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그림자와 같이 따라 다닌다.  \"황금은 흑사심(黃金은 黑士心)\"이라는 말이 있다.  물질에는 언제나 마귀가 따라다니면서 사람의 욕심을 이용하여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든다.  초대 교회가 부흥하므로 마귀가 들어와 욕심으로 원망하게 한 것이다.

 

. 6:2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모든 제자 모든 믿는 사람을 말한다.  사도들의 가장 중요한 직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제쳐놓고 구제하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일을 바로 하지 못하므로 교회에 시험이 들어온 것이다.  교역자가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데 전무하지 않고 사업이나 다른 일에 시간을 빼앗기면 교회의 신령상 손해가 많고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며 환난에 처하게 하신다.

 

二. 사무를 분담함(3-6)

 

.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사도들은 교회에 시험이 들어왔을 때에 즉시로 그것을 깨닫고 바로 세우기로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집사들을 택하고 구제하는 일은 그들에게 맡기며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만 전무하기로 한 것이다.  집사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집사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라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때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집사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바로 순종하려면 지혜가 충만하여야 한다.  교회 일은 인간이 자기 지혜대로 하면 안 된다.  자기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하여야 한다(고전2:13, 14, 3:18, 19, 참조).  집사는 자기 사욕과 자기 개인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면 안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혜를 써서 하나님의 뜻대로 일을 해 나가야한다.

칭찬 듣는 사람 모든 사람 앞에 덕을 세워 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구제하는 일은 모든 사람 앞에 덕이 되고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고후8:20에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고 하였다.  교회의 재정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은 교인들의 신임을 받아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에 시험이 들어온다.  교회에서 직분을 세울 때에 주일을 지키지 않고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집사로 세우면 안 된다.  그러한 교회에서는 목사가 교인들에게 \"주일을 지키라\", \"술과 담배를 금하라\"고 하면 \"집사들도 범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느냐\"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인들을 다스릴 수가 없다.  참 교회는 진리를 세워 나가며, 성결을 유지해 나가며, 그리스도의 참된 모습을 세상에 보여 주고, 죄인을 구원하여 거룩하게 해 나가야 한다. 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세상에 비치어 어두운 세상에 등대의 사명을 다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빛을 가리우는 자에게 직분을 주면 안 된다.

 

. 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교역자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만 전무하여야 한다.  전무란 그 일만 전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교역자가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요, 교회 앞에도 죄이다.

삼상12:23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이라고 하였다.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 교역자는 하나님 앞에 가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면치 못한다.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려면 교회 일을 복잡하게 하지 말고 사무를 분담시켜야 한다.

 

.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온 무리가 사도의 말을 기뻐하여  순종하였다.  그 이유는 사도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만하고 구제하는 일은 집사들에게 맡김으로 하나님의 복음 사업이 더 잘되어 나가겠기 때문이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 스데반은 반석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였고 성령의 인도를 전적으로 받는 사람이었다.  그 증거가 다음 장(7장)에 나타났다.  스데반 뿐만 아니라 일곱 집사가 다 성령과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  여기 일곱 집사는 안수 집사인데 교인들이 택한 것이다.  이 일곱 집사의 이름이 모두 헬라 이름으로 되어 있으나 모두 헬라파 유대인 중에서 택했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도 헬라 이름을 가진 자가 많았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집사를 선택할 때에 너희 중(어느 지파 중에서나)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을 택하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일곱 집사가 다 재정을 처리하여 구제하는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스데반은 전도하는 일에 열중하였고, 빌립은 사마리아와 가이사랴에까지 가서 전도하였다.

니골라는 안디옥 사람인데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이다.  계시록2:15-16에는 니골라가 이단적인 잘못된 교훈을 했다고 하였다.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아마 같은 사람인 것 같다.  열 두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와 열 두 지파 가운데 단 지파와(창49:17에 단 지파는 뱀이라고 하였다) 일곱 집사 가운데 니골라가 들어가 있다.  사도나 교역자나 집사 중에도 이러한 사람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사도들은 그 일곱 사람에게 안수하고 집사직을 맡겼다.  안수하여 성직을 맡기는 의식은 구약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다(민27:18, 신34:9 참조).

 

三. 교회가 왕성해짐(7)

 

.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아나니아를 처벌하여 교회를 성결하게 하고 집사를 선택하여 구제하는 일을 맡김으로 사도들에게 원망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교인의 단결과 교회의 거룩한 빛이 나타나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만 전무하게 되니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흥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큰 무리가 주께 돌아오고 제사장의 무리도 많이 돌아와 예수를 믿게 되었다.  유대교의 지도자인 제사장의 무리가 많이 돌아온 것은 아주 중대한 사건이었다.

 

四. 스데반의 전도(8-10)

 

. 6: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스데반은 집사가 되기 전에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였고 집사직을 맡아 봉사하고 충성할 때에 더욱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많이 행하게 되었다.  스데반에게서 사도들 못지 않게 큰 역사가 나타났다.  누구나 믿음과 성령으로 죽도록 충성하면 하나님은 직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에게 큰 권능을 입혀 주시고 그를 통해 당신의 구속사업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 6:9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쌔

이들은 다 이방에서 예루살렘에 온 유대인들인데 이들이 스데반과 변론하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핍박하였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이방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그 돌아온 지방의 방언을 따라 각각 회당을 짓고, 그 회당에서 기도하고 시편을 노래하며 성경을 읽고 가르쳤다고 한다.  리버디노 라틴어로 자유를 의미하는데 로마로 포로되어 갔던 유대인의 후손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구레네 리비아 북부 해안에 있는 수도이다.  이곳은 구레네 시몬의 고향이기도 하다(눅23:26 참조).

알렉산드리아 애굽 북부에 있는 도시로서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의 5분의 2가 유대인이었다고 한다.  길리기아 소아시아 지방인데 에베소가 그 수도였다고 한다.  이상 여러 지방에서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거주하며 회당을 지었다.

 

.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지혜 인간의 지혜가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신령한 지혜이다(고전2:6-7 참조).  신령한 지혜와 성령의 역사로 진리를 말할 때에 세상 지혜와 지식으로는 능히 감당할 수 없다.

 

五. 위증으로 핍박함(11-14)

 

. 6:11-14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스데반의 말을 감당하지 못한 유대인들은 거짓 증인을 세워 스데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을 꾀어서 \"스데반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거짓 증거하게 하였다.  그리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스데반을 공회로 잡아가게 하였다.  공회 앞에서 거짓 증인들은 이 사람이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모세가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거짓 증거하였다.

그들은 스데반에게 두 가지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려고 하였다.

첫째, 나사렛 예수가 이 성전을 헐겠다고 하였다.

둘째, 모세가 전하여 준 율법을 고치겠다고 하였다.  이 말들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  예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고 하신 말씀을 악용한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실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헐라고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또 율법을 고치겠다고 하였다는 말도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하므로 율법을 고치겠다는 말과 비슷하다.  마귀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을 거짓말로 뒤집어 씌워 성도를 정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전혀 근거 없는 거짓 증거도 있으나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을 뒤집어씌우는 경우가 많이 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의 궤계로 공회에 끌려갔고 그들이 세운 거짓 증인들로 인하여 정죄 당하여 죽게 되었다.

 

六. 얼굴이 천사와 같음(15)

 

. 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그들이 스데반을 죽이려고 거짓 증인을 세워 정죄하고 있는데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화평하고, 온유하고, 기쁨이 충만하고 거룩한 광채가 있었다.  스데반은 그 때에 신령한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영적 세계에서 중생한 영혼을 써서 살고 있었다.  영적 세계는 언제나 빛의 세계요, 기쁨의 세계이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하나님이 그의 기쁨이요, 하나님이 그의 노래요 피난처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언제나 화평하고 기쁨이 충만하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믿고 스데반은 이미 죽음을 초월하여 있었다.

영적 세계는 영원히 죽음이 없는 생명의 세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거짓 증거하는 것을 다 아신다.  스데반에게는 거짓 증거하는 그 사람들이 도리어 불쌍히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데반은 죽이려하는 그 일에 해를 받지 않았다.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므로 거짓 증거하는 것을 염려할 것이 없다.  이기선 목사님이 말씀하기를 \"스데반이 핍박을 받을 때에 나도 예수님과 같이 되는구나 하고 너무 기뻐서 얼굴이 천사와 같이 되었다\"고 하였다.  예수를 위하여 거짓말로 비방을 받고 거짓말로 정죄를 당하고 핍박을 받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는 것이요,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일이다.  스데반은 부족한 자기가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였겠는가!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그 기쁨이 얼굴에까지 나타나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다.  우리 선생이신 예수님을 이렇게 핍박하였는데 나도 예수님과 같은 대접을 받는구나 하고 너무 기뻐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된 것이다.

 

제 7 장  스 데 반

 

(대  지)

一. 스데반의 강도(講道)(1-53)

   1. 네 가지 증거(四證)(1-50)

      ① 아브라함(1-7)

      ② 요셉(8-17)

      ③ 모세(18-46)

      ④ 솔로몬(47-50)

   2. 책망(責望)(51-53)

二. 스데반의 순교(54-60)

 

(본문 강해)

 

一. 스데반의 강도(講道) (1-53)

 

1. 네 가지 증거(四證) (1-50)

  ① 아브라함(1-7)

 

. 7:1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지금 스데반이 공회에서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고 있다.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거짓 증인들이 증거한 내용(행6:13-14)이 사실이냐고 심문하였다.  이것이 사실이면 스데반은 죽음을 면할 길이 없다. 모세의 율법을 훼방하고 성전을 모독한 죄는 마땅히 죽을죄이기 때문이다.

 

. 7:2-3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창세기11:18-12:4에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하란에 가서 거하다가 아버지(데라)가 죽은 다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하란에 오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부르셨다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처음에 메소보다미아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떠나오다가 하란에서 얼마 동안 머물러 살았다.  그 곳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에 하나님이 하란에서 다시 아브라함을 부른 것 같다.  창세기12:1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 하신 것은 하란에서 부른 것이다.  그 증거는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은 후에 하란에서 떠났다고 하였다(창12:4-5 참조).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첫번 불러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하셨다.  창세기12:1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두 번째 불러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번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고 두 번, 세 번 부르시는 일이 많이 있다.  야곱에게도 하나님이 벧엘에서 나타나시고(창28:10-19), 하란에서 양을 칠 때에 재차 나타나서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셨다(창31:3 참조).  그 다음에도 하나님이 또 야곱에게 나타나셨다(창 35:9-10 참조).  솔로몬에게도 여호와께서 두 번 나타나서 말씀하셨다(왕상3:5, 9:2-9 참조).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떠나오다가 왜 하란에서 머물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하란이 제 2 고향과 같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 네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두 번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자주자주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권면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본토를 떠났다가도 또 다시 본토에 주저앉는 일이 많이 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은 한마디로 자기중심으로 사는 생활이다.  자기중심 생활을 떠나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물욕, 정욕, 사욕이다.  본토는 자기 옛사람의 본바탕이며, 자기주관이다.  친척은 인정이고, 아비집은 의지하고 사는 것과 이 세상주의를 말한다.  이것들을 다 떠나야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갈 수 있다.

이것들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창성하여지고 인격이 커지고, 그 사람이 복 자체가 되어 그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고 그 사람을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된다(창12:3 참조). 배의 닻을 뽑지 않고는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성도가 자기 위하는 정신을 뽑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따라가지 못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전부 자기의 것이 된다.  자기를 위하는 것에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모든 복을 받을 터인데 사람들은 복 받을 길은 가지 않으면서 공연히 다투고 싸우고 시기하고 있다.

 

. 7: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에 하나님이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셨다.

 

. 7:5  그러나 여기서 발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아브라함 당시에는 가나안땅을 발붙일 만큼(아주 좁은 땅)도 유업으로 주시지 않았다.  다만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뿐이다.  이 약속은 창세기12:7에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한 말씀과 창세기15:4에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한 말씀들을 말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한치의 땅도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아들도 없었지마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확신하고 나아간 것이다.

 

. 7: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 백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사 백 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게 하셨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연단 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사 백 년 동안 연단을 통과한 다음에야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성도가 하나님의 허락하신 복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고난과 연단을 통과하여야 될 것이다(행14:22 참조).

 

. 7:7  또 가라사대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저희가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애굽에서 사 백 년간 종살이하며 많은 고난과 연단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을 구출하여 약속한 땅 가나안에 거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오늘날 우리들도 성경 말씀을 따라가면 그 말씀의 세계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 세계가 이루어지려면 많은 연단을 받아야 한다.  연단을 다 통과하면 약속한 말씀의 세계가 온전히 이루어져 그 복을 받게 된다.

 

②요셉(8-17)

 

. 7: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 두 조상을 낳으니

할례의 언약 할례는 구약 시대에 행한 두 가지 성례중 하나이다.  구약 시대에는 할례와 유월절의 성례가 있었다.  할례의 뜻은 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이다.  ② 정욕을 제거하는 표시이다(렘4:4).  ③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증표이다.

스데반이 할례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할례를 받았으나 의식적인 할례만 받고 마음의 할례는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행7:51 참조).  마음의 할례란 하나님의 언약 성취인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믿고 죄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은 야곱을, 야곱은 열 두 조상을 낳았으니 이 열 두 조상은 다 할례의 언약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다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이니 그 언약 성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것이다.

 

. 7:9-10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

여러 조상들(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다가 애굽에 팔아먹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요셉과 함께 계셔서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져 주셨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바로왕 앞에 서게 하시매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삼아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다.  조상들이 시기하여 애굽에 판 요셉을 하나님은 애굽의 치리자로 높여 놓으신 것처럼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잡아죽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높여서 영화롭게 하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 7:11-13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들어 큰 환난이 있을때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가나안에 7년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을 당하고 죽게 되었을 때에 야곱이 애굽에 그의 아들들을 보내어 양식을 구해오게 하였다.  야곱이 재차 아들들을 보냈을 때에 요셉이 형제들에게 알게 되고,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났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도 예수를 시기하여 팔았으나 앞으로 온 세상이 환난으로 죽게 될 때에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그를 의존하여야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 7:14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 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7년 흉년으로 다 죽게 되었을 때에 요셉이 그의 부친 야곱과 친족 75인을 애굽으로 데려다가 봉양하였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다.  이와 같이 죽음에서 구원받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일흔 다섯 사람 창세기46:27, 출애굽기1:5에는 70인으로 되어 있다.  본문의 75인은 상술(詳述)이고 창세기나 출애굽기에 기재된 70인은 약술(略述)이다.  실제로는 75인인데 대략적으로 말할 때는 70인이라고 한 것이다.  성경에는 약술(略述)로 기록된 곳이 많이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60만 명이라고 한 것도 60만 명에서 한 명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대략 60만 명이라는 뜻이다.  니느웨성의 유아가 12만 명이라고 한 것도 대략적인 숫자로 12만 명이라고 표시한 것이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은 사람이 오 천 명이라는 것과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인 것도 대략적인 숫자를 기록한 것 같다.

 

. 7:15-16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세겜으로 옮기워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야곱이 애굽에서 죽었으나 애굽 땅에 장사하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하였다.  창세기50:13에는 야곱을 장사한 곳이 세겜이 아니고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창49:29 참조).  또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 일 백 개로 밭을 산 사람은 아브라함이 아니고 야곱이었다(창33:19 참조).  그런데 본문에는 왜 아브라함이 샀다고 하였으며 야곱을 왜 세겜에 장사했다고 하였을까?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은 사 백으로 산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굴과 야곱이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 백으로 산 세겜의 무덤을 합해서 하나로 보고 스데반이 본문과 같이 말한 것이다.  이 두 무덤이 어느 지방이든지 다 가나안 땅에 있고 누가 샀든 그의 조상들이 산 것이기 때문에 조상의 대표자인 아브라함이 샀다고 한 것이다.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세겜으로 옮기워 야곱이 죽어 세겜으로 옮긴 것을 중점을 두어 말한 것이고 다른 조상들이 옮기웠다는 것은 아니다.

 

. 7: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 하나님이 창세기15:13-16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대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때를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을 번성케 하셨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

 

③ 모세(18-46)

 

. 7:18-19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그가 우리 족속에게 궤계를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아이들을 내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쌔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가까우면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더욱더 핍박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많은 곳에는 마귀도 더욱더 대적하게 된다.  애굽왕이 마귀의 종이 되어 이스라엘 사람 중에 남자아이를 낳으면 죽이라고 하였다.  이 같은 핍박은 이스라엘 백성을 멸절시키려는 궤계이었다.

 

. 7: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달을 길리우더니

이스라엘 백성이 멸절될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나타났다.  즉 하나님이 모세를 낳게 한 것이다.  이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성취를 위한 중요한 인물이었다.  모세의 부모는 바로의 명을 어기고 모세를 석 달 동안 집에서 길렀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모세는 모태에서부터 믿음이 있었다.  믿음이 있고 성령의 은혜가 있는 아이는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아름다워 보인다.  하나님이 모세를 기뻐하시는 줄 알고 모세의 부모가 바로의 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석 달을 숨겨 길렀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를 숨겨 주는 자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 (수2:1-14 참조).

 

. 7:21  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히브리인이 남자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는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건져 애굽 궁중에서 공주의 아들로 기르게 하셨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이 당하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사자굴에서 모세를 기른 것과 같다.

 

. 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모세는 40세가 되도록 애굽의 학술을 다 배워 말과 행사가 능하게 되었다.  애굽의 학술은 천문학, 수학, 지리학, 의학이라고 한다.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출애굽기4:10에서는 모세가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에 있어서 일은 크고 대적은 강하므로 자기의 부족과 미약함을 깨달아 하나님 앞에 말할 줄 모른다고 한 것이다.  또 자기 형 아론과 같이 변사가 아니라는 뜻도 있다.  그러나 모세는 진리와 성령으로 하는 말에는 능하였다.

 

. 7:23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모세가 애굽의 학술을 다 배운 때는 나이가 40세 된 때이었다.  그 때에 모세가 하나님의 사명감을 깨닫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일하려고 나선 것이다.  히브리11:24-25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고 하였다.

 

. 7:24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일하려고 나갔는데 한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며 압제하는 것을 보았다.  모세는 그 때에 의분과 혈기와 완력으로 그 애굽 사람을 죽여 모래땅에 묻었다.  이것은 분명히 모세의 실수였다.  하나님의 일은 분과 혈기와 완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권위로 가르쳐서 순종하여 따라가게 하는 것이다.  모세가 실패한 원인은

① 제가하려고 했다.

② 혈기와 완력으로 하려고 했다.

③ 외부적 육적 구원에 치우치고 영적 면을 무시했다.

④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한 것이 아니었다.

 

. 7:25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서 애굽사람을 죽인 것을 보았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실 것을 깨달을 만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도무지 깨닫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깨닫도록 증거를 주셨으나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 7:26-28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가로되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이튿날 모세가 나가 보니 이스라엘 사람끼리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것을 본 모세는 마음이 아파서 형제끼리 싸우지 말고 화목 하라고 권유하였다.  그 때에 그 중 한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관원과 재판장으로 삼았느냐\"하며 배척을 하였다.  그뿐 아니라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인 것 같이 나를 죽이려느냐\"하고 모세의 잘못을 폭로하였다.  그 사람은 어제 애굽 사람과 싸우며 학대를 받던 사람인데 모세가 도와서 건져 준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모세가 자기를 도와 구출해 준데 대하여 배은망덕하고 모세를 해하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구원하여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가해(加害)하여 십자가에 죽인 것을 스데반이 책망하고 있다.

 

. 7:29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모세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모세가 애굽 사람 죽인 것을 폭로했다.  모세는 그 일 때문에 애굽에서 도망하여 미디안으로 가서 40년간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미디안으로 보내는 섭리였다.  모세를 미디안에서 수양을 시켜 장차 하나님이 쓰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모세가 40년간 미디안에서 무엇을 하였는가?

모세는 40년간 깊은 기도를 하며 은밀한 세계에 깊이 들어가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발견하였을 것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을 것이다.

미디안 40년 생활에서 모세는 자기 자신을 벗어버리고 깊은 영적 세계를 발견하였으며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헌신하게 되었다.  히브리11:26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모세가 미디안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깊이 발견하고 주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받는 것을 낙으로 삼고 큰복으로 여겼다.  또 그 결과가 하늘나라에서 큰상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몸을 바치고, 능욕 받고, 고난받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희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 됨과 애굽의 모든 재산과 자기 육신의 평안함을 다 내어놓고 희생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대한 인간의 협력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모세가 하나님을 위하여 결심한 것처럼 결심하고 나서야 한다.

아들 둘을 낳으니라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낳은 두 아들인데 게르솜과 엘리에셀이다(출18:2-4 참조).

 

. 7:30-32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더라

미디안 40년 후에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나타났다.  이 때는 모세가 80세 된 해이다.  출애굽기3:1-2에는 호렙산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다고 하였다.  시내산은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는 여러 산을 가리키며 호렙산은 그 중의 한 봉우리를 가리킨다.

여호와의 사자는 비의적 현상으로 나타나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천사인데 하나님을 가리킨다(창22:11, 48:15-16).

가시나무떨기 나무 중에서도 좋지 않은 나무인데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백성에 비하면 가시나무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불꽃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가리킨다.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재 했을 때에도 불로 나타났다(출 19:18 참조).  하나님은 지혜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가시나무와 같이 보잘것없는 자에게 나타나신다.  가시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는 않았다.  이것은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시나무에 불이 붙어서 광채가 나고 붉고 찬란하여 심히 아름다워 보였다.  보잘것없는 인간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렇게 아름답고 광채가 나고 고귀해 보인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름답고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고 존경하게 된다.

하나님이 나타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계약의 하나님인 동시에 선택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 7:33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네 발의 신을 벗으라 신을 벗어야 종이 된다.  당시 종들은 신을 벗었다고 한다.  모세가 전에는 자기라는 신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이 되지 못하였다.  신을 벗어야만 하나님의 종노릇을 할 수 있다.  모세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의 완력과 수단으로 하려다가 사람을 죽였으나 이제는 그것을 다 벗어 버려야 한다.  모세가 애굽에서 40년간 학문을 배웠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다가 실패하였다.  오늘날 교역자들이 신학교에서 조금 배웠다고 해서 그것 가지고 제 힘으로 하려다가 양떼를 많이 때려잡는다.  자기의 수단, 자기의 지혜, 자기의 지식, 자기의 계획을 다 버려야 하나님의 참 종이 될 수 있다.  교역자가 자기 수단과 인본주의로 교회를 해 나가면 사람은 좀 모을 수 있지만 영적 구원운동은 되지 않는다.  \"신을 벗으라\"는 말에는 죄를 벗어버리라는 뜻도 있다.  자기 자신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전히 피동되고 이용당하는 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사업에 대한 인간의 협력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신을 벗은 종을 전적으로 사용하신다.

 

. 7: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그 택한 백성이 괴로움 받는 것을 정녕히 보고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하나님이 택한 백성의 형편을 다 아시고 친히 건져 주시려고 찾아오신 것이다.

 

. 7:35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하고 배척하던 모세를 하나님이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의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다.  사람들은 배척하였으나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는 변치 않고 이루어 나가신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 되는 것과 애굽의 많은 재물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고난받는 것을 즐거워하며 미디안에서 신을 벗는 생활을 바로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모세를 불러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이루어 가셨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사람들이 배척한다고 안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가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반드시 성공되어 나간다.  스데반이 증거한 이 말씀 중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배척하였으나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구주로 삼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 7: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40년간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기사와 표적을 행하며 이스라엘의 인도자(구출자)로 삼으신 것을 증거하였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증거로 그리스도가 된 것이 확증되고 있다는 뜻으로 스데반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 7:37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신명기18:15을 인용한 말씀인데 모세가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이다.

나와 같은 선지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모세를 믿는 너희는 모세가 예언한 그리스도를 믿어야 된다는 뜻이다.  참으로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가 예언한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자는 모세도 배척하는 결과가 된다.

 

. 7: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모세는 하나님과 동사(同事)하는 자로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며 생명의 도를 받아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준 것이다.

광야 교회 이스라엘은 신정국가로서 금일의 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을 한 것은 교회운동이다.  오늘날 민족운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전자는 교회운동이고 후자는 세상 운동이다.

생명의 도 십계명과 모든 율법과 그 중에 내포한 메시야에 대한 진리가 생명의 도이다.  모세가 이러한 귀한 도를 받아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해 주었다.

 

. 7: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모세가 생명의 도를 받아 이스라엘에 전해 주고 여러 가지 표적과 기사를 보여 인도하였는데 그 모세를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거역하고 마음이 애굽으로 향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완악하게 하나님을 거역하였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자손된 유대인들이 모세가 예언하여 준 그리스도를 완악하게 거절하고 있다고 스데반이 지적한 것이다.

 

. 7:40-41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그 때에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들 것을 기뻐하더니

모세가 40일간 기도하기 위해 산에 올라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만들라고 하였다.  그러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섬겼다.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 때에 우상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만든다고 한 것이다.  보이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든다는 것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았다.  생명의 도를 받아서 전해 준 진리는 복종하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손으로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섬겼다.

오늘날도 교회가 세상으로 향하고 하나님을 금송아지 섬기는 식으로 섬기는 경우가 많이 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것은 자기가 주관적으로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섬긴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겨 주는 것이다.  또 자기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뜻대로 하나님이 따라와 달라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주권대로 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주권대로 살려는 것이다.  또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관(神觀)대로 하나님을 만든 것이 금송아지였다.  금이 외부적으로는 존귀한 보배이며 광채가 나고 아름답다.  그러나 금송아지 신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다리가 있어도 활동하지 못하였다.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그 때까지 섬겨 오던 하나님이 곧 이러한 하나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과 시험이 들어올 때에 원망하고 두려워하고, 애굽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거역하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인들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였다(엡5:14 참조).

 

. 7:42-43  하나님이 돌이키사 저희를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늘의 군대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이 천체(天體)를 섬기는 죄를 범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기며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두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린 큰 벌이었다 (롬1:28 참조).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간섭하고 징계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증거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신다(히 12:6 참조).

선지자의 책 선지자 아모스가 기록한 구약성경 \"아모스\"를 말한다.  본문은 아모스5:25-27을 인용하였으나 내용이 조금 다르다.  이것은 성경을 변경한 것이 아니고, 그 내용을 알기 쉽게 해석하여 다른 표현과 어구로 인용한 것이다.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희생과 제물을 드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들이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겼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며 하나님도 그러한 제사는 받지 않는다.

몰록은 너희 왕이라는 뜻이다.  아모스5:26에 \"너희 왕 식굿\"이라고 하였는데 이 식굿은 장막이라는 뜻으로 바벨론 사람이 섬기는 우상이다.

레판의 별은 앗수르인이 숭배하는 토성(土星)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나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서 멀리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 갈 것을 아모스가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되었다.

스데반 당시 유대인들이 생명의 도인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율법과 성전을 우상화하면서, 고집의 우상을 버리지 않고 나가면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 7:44-45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저가 본 그 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거짓 증인들이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겠다고 증거하였기 때문에 스데반이 성전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다.  출애굽기25:8-40에 성막 짓는 식양을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 주었고, 그 식대로 만들게 한 것이다.  증거의 장막은 성막을 가리킨다.

모세가 지은 성막은 광야생활을 할 때에 가지고 다녔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른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니 예루살렘 성전을 우상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스데반이 증거하고 있다.

 

. 7: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 했으나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④ 솔로몬(47-50)

 

. 7:47-50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다윗 때까지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다가 솔로몬 때에 성전을 지었다.  스데반이 이사야66:1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하나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으로 지은 것이라고 증거하셨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줄로 아는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다윗이 증거한 바요(대상29:10-19 참조).  성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유대인들)가 성전을 우상화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바로 섬겨야 할 것을 스데반이 가르쳐 준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외부적인 의식과 제도만을 중히 여기고 보이는 성전만을 중요시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근본 목적은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으라는 것이다.  율법을 참으로 지키면 그 율법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요, 또 영적 생명이 살 것이다.

 

2. 책망(51-53)

 

.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목이 곧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고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기 고집대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끝까지 나간다.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중심이요 욕심이 가득하여 성령을 거스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데반이 유대인의 역사를 들어 그들을 책망하고, 회개해야 될 것을 권면했으나 그들은 깨닫는 마음과 듣는 귀를 갖지 못하고, 목이 곧아 돌이키지 못했다.  이것은 성령을 거스리는 죄요 또 조상들이 지은 죄의 길을 그들도 걷고 있는 것이다.

할례 정욕을 제거하는 것과 하나님께 속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렘4:4 참조).

 

. 7: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스데반은 유대인들을 노골적으로 책망하고 있다.  너희 조상들도 선지자들을 핍박했고, 특히 메시야가 오신다고, 예언한 선지자들을 잡아 죽였다.  그리고 너희들은 그 선지자들이 예언한대로 오신 그리스도를 잡아 임으로서 조상들의 죄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책망한 것과 흡사한 책망이다(마23:29-36 참조).

 

. 7: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율법은 천사를 통하여 주신 것이다(히브리2:2, 갈3:19 참조).  스데반에게 율법을 무시하고 거스렸다고 비방하는 그들 자신(유대인들)이 사실은 율법을 배척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율법이 예언한 그리스도를 배척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율법을 지키면 그 율법이 예언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었을 것이다.

 

二. 스데반의 순교(54-60)

 

. 7:54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말하매 저희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렸다.  베드로의 강도를 들은 사람들도 마음에 찔렸었다(행2:37-42 참조).

그리하여 그들은 \"어찌할꼬\" 하면서 회개를 하였다.  그러나 스데반의 강도(講道)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리면서도 도리어 더 강퍅하여져서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고 분하게 여겼다.  마음이 찔리울 때에 회개하지 않으면 칠 배나 더 강퍅해지고 성령을 거스리는 죄가 된다.  마음에 찔렸을 때에 회개하였으면 그들에게 살 길이 열렸을 것인데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이를 갈았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대단히 완악하고 하나님의 도에서 멀리 떠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7:55-56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그는 자기를 죽이려고 둘러선 무리들을 보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살기가 등등하여 이를 갈며 죽이려고 하는 그 사람들만 보았다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스데반은 사람들을 보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볼 때에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  마가16:19에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고 하였는데 본문에는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고 하였다.  이것은 스데반이 환난 당하는 것을 예수께서 도와주려고 일어서신 것이다.  성도가 핍박당할 때에 예수님은 자신이 당하시는 것으로 여기시고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고 일어서서 도와주시는 것이다.

스데반이 순교 당할 때에 ① 하늘을 우러러보았고(사40:3l, 45:22 참조), ②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③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광 중에서 즐거움으로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  스데반은 자신이 보고 있는 신령한 사실을 그들에게 증거하였다.

 

. 7:57-58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스데반이 \"하늘문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할 때에 듣는 무리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터인데 도리어 하나님의 신령한 소식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고 일심으로 달려들어 스데반을 성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쳤다.  성령께서 큰 역사로 그들에게 살길을 보여 주었으나 거역하고 도리어 악한 일을 행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악하며 불쌍한 자들인가!  하나님의 증거를 듣고 성령이 크게 역사하는데 더욱더 강퍅하여 돌로 쳤으니 그들의 상태가 비참하고, 그 죄가 더욱 크고, 그 벌이 더욱 큰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반대한 것만큼 자신들이 악화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벌이 크다.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사도 바울이 회개하기 전에는 스데반을 죽이는데 가편투표를 하였고 옷을 지켜 주는 증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께 부탁하였다.  이것은 스데반의 소망 충만이다.  스데반은 견고한 소망을 가지고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였다.  스데반은 자기가 죽어도 영혼은 하나님 앞에 가서 사는 것을 바라보고 나가는 소망의 사람이다.

우리도 소망이 충만하여 위엣 것을 바라보고 위엣 것을 찾는 생활을 하여야겠다.  스데반이 순교당하는 것을 보고 사울이 많은 감동을 받아 후일 개종하는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 때에 어느 정도 감화를 받았으나 돌이키지 못하였고, 나중에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질 때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 기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죽이는 무리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스데반의 사랑 충만이었다.  원수를 향하여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나오지 않을 때는 영에 서 있는 때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통이 되지 않고 심령에 기쁨이 없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영적 세계에서 살고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에는 모든 사람, 특히 원수까지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스데반의 순교에 5대 충만이 나타났는데 ① 성령 충만(55절) ② 신앙 충만 (55-56절) ③ 예수 충만(55-56절) ④ 소망 충만(59절) ⑤ 사랑 충만(60절)이었다.

 

제 8 장  빌립

 

(대  지)

一. 교회를 핍박함(1-3)

二.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4-8)

三. 마술사 시몬의 입교(9-13)

四. 베드로와 요한의 사마리아 방문(14-17)

五. 시몬이 책망 받음(18-25)

六. 내시의 신앙 (26-40)

 

(본문 강해)

 

一. 교회를 핍박함(1-3)

 

. 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하는 것을 마땅한 일로 여겼다.  이것은 사울이 얼마나 기독교를 반대하고 있었는가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 날에 큰 핍박이 일어나서 사도 외에는 많은 신자들이 유다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반대파들은 하루의 여유도 없이 스데반을 죽인 그 날부터 큰 핍박을 하기 시작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자기들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안 떠났을 것이고 모든 성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복음을 널리 퍼지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들은 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기독교가 점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 8: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의 시체를 장사하였다.  그들은 그 큰 핍박 중에서 자기 신변의 위험도 무릅쓰고 생명을 내어놓고 스데반의 시체를 장사한 것이다.  참 신앙을 지키다가 죽으면 뒷처리는 참 신앙을 가진 자들이 나타나서 해 주게 되어 있다.

크게 울더라 이것은 인정으로 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충성스럽게 해 나아가던 일군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염려하여 운 것이다.  그러나 스데반이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하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품에 안겨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을 생각하면 기쁜 일이다.

 

.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이 기독교를 박해하던 자들의 선봉에 서 있었다. 그가 스데반을 죽이고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교회를 잔멸하려는 결심을 가지고 각 집에 들어가 믿는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겨주었다.  이로 인해서 교회가 큰 환난을 만났고 많은 성도가 감옥에 갇혔다.  사람이 보기에는 기독교가 멸절될 것같이 보였다.

 

二.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4-8)

 

. 8:4-5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유대에 흩어진 사람은 유대에서 전하고 사마리아에 흩어진 사람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또 다른 지방으로 간 사람들은 그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들 속에는 그리스도와 그 생명의 역사가 충만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속에 있는 그리스도가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한 것과 같다.  속에 악독이 있는 사람은 악독이 나오게 되고, 속에 사랑이 있는 사람은 사랑이 나오게 된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속에서 항상 예수님이 살아서 역사하였다.  그러므로 핍박을 받아 쫓겨다니는 처지에서도 가는 곳마다 속에 있는 예수를 전하게 되었다.  예수를 전하는 생활이 가장 가치 있고 귀한 것이다.  예수를 전하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며 자손 만대까지 복을 받게 되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서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된다.  이사야52:7에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고 하였다.  복음전하는 일이 제일 아름답고 제일 가치가 있다.  토마스 목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한국에 들어오다가 대동강에서 순교를 당하였다.  그 열매로 많은 한국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토마스 목사와 같이 생명을 내걸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여 준 분이 없었다고 하면 지금 우리가 예수를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빌립 집사가 핍박 때문에 쫓겨나 사마리아성으로 갔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하여 내었다.  복음을 전할 때에는 듣든지 말든지 전해야 한다.  복음에는 그 자체 속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살려내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울면서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된다.  생명 없는 것은 땅 속에 묻히면 썩어 없어지지만 생명 있는 씨는 땅속에 묻히면 거기에서 새싹이 나오고 새 생명이 나온다.

 

. 8:6-8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집사 빌립이 피난 다니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에게 능력을 주어 마귀를 정복하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도 낫게 되는 역사가 나타났다.  이 표적을 보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기뻐하며 일심으로 빌립을 좇았다.  표적만 보고 따라가는 신앙은 말씀에 서지 못하고 유치한 신앙이다.  예수께서도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하셨다(요20:29 참조).  마귀들도 표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다(마7:21-23 참조).  성도가 표적과 기사를 따라가면 미혹을 받기 쉽다 (골2:18, 신13:1-5 참조).  기독교는 육신의 것을 얻는 도가 아니다(요6:26, 63 참조).

 

三. 마술사 시몬의 입교(9-13)

 

. 8:9-11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시몬이라는 마술쟁이가 오랫동안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고 자칭 자기를 큰 자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속아서 시몬을 숭배하고 그 말을 청종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큰 능력이라는 칭호까지 듣게 되었다.  마귀가 시몬의 속에 들어가 간교하게 사람을 속여 자기를 높여 자기를 따라오게 한 것이다.

 

.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이 마술을 행하여 자기가 큰 자라고 미혹시키는 바람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온통 속아서 시몬을 따라가므로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빌립이 하나님을 힘입어 힘써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  많은 사람은 마귀를 이기지 못하여 그의 종노릇을 하지만 하나님은 능히 마귀를 이기시고 사람들을 구원하여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

 

. 8: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도하는 것을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가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다.  이는 빌립에게서 나타나는 표적과 능력을 보고 놀랐기 때문이다.  빌립에게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볼 때에 시몬은 자기의 마술이 가짜인 것을 깨달았다. 예레미아23:28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고 하였다.  시몬이 믿고 세례받은 후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닌 목적은 자기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① 빌립의 역사로 인하여 시몬의 마술이 가짜인 것이 드러나고 사마리아에서 받던 최상의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자기도 빌립의 행하는 표적을 배워 자기 권위를 만회해 보려는데 있었다.  ② 빌립과 같은 일을 자기가 행함으로 좀더 큰 명예와 영광을 얻어 보려고 하였다.  ③ 빌립에게 배워서 그것을 자기도 행함으로 돈을 많이 벌려는 탐욕에서 나온 것이다.

성도는 자기 죄를 회개하고 복음 진리를 받아 믿음으로 자기 생명이 살고, 그 진리를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이기심(利己心)에서 교회에 들어와 진리를 배우고, 직분을 맡고 자기의 유익을 도모한다면 시몬과 같은 사람이다.

 

四. 베드로와 요한의 사마리아 방문(14-17)

 

.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에 파견하였다.  이것은 사마리아 교회를 시찰하고 그들의 신앙을 살펴 바로 지도하기 위함이었다.

 

. 8: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그곳 신자들이 성령 받기를 기도하였다.  신자는 누구나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다.

고전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가 없다.  믿기 전에는 죽은 영혼이며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중생)은 물(말씀)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불가능한 것이다(요3:5 참조).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를 믿을 때에 이미 성령을 받은 것이다.

 

. 8:16-17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이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주 예수를 믿은 것이 분명하다.  이들이 믿을 때에 성령에 의하여 믿게 된 것이 분명하다(고전12:3 참조).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이것은 성령의 특수한 은사를 내리신 일이 없다는 말이다.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고전12:8-11 참조) 그 중에 믿음도 큰 은사이다.  그러므로 확실히 믿어지는 것은 큰 은사를 받은 것이다.

성령을 받는지라 성령의 특수한 은사를 받았다는 말이다. 이들은 사도들이 안수하며 기도할 때에 은사를 받은 것이다(15절 참조). 그러나 안수를 받지 않아도 자신이 기도를 많이 하면 성령의 큰 은혜를 받을 수가 있다.

사도들이 안수하지 않고 기도만 할 때에도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행4:31 참조).  고넬료 가정에서는 베드로에게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  이것도 성령의 특수한 은사인 것이다(행10:44, 45 해석 참조).

 

五. 시몬이 책망 받음(18-25)

 

. 8:18-19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사도들이 안수하므로 성도들이 성령 받는 것을 보고 시몬이 돈을 많이 주면서 그 권능을 자기에게도 주어 누구든지 자기가 안수하는 사람도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하여 달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시몬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으나 아직도 중생한 영혼에 뿌리박지 못한 일시적인 신앙인 것 같다.  일시적 신앙이란 일시적으로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겠다고 작정한 신앙으로 돌밭에 뿌려진 씨와 같은 것이다(마13:20-21 참조).  중생한 영혼에서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신앙이 참 신앙이다.

시몬은 그러한 권능이 자기에게도 있다면 자기의 명예가 높아지고, 좋은 대접을 받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에게 돈을 많이 주어 그 권능을 사고 싶어하였다.

 

. 8:20-21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베드로가 시몬에게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함께 네가 망하리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네 마음이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하니 너는 이 도에 관계할 것도 없고 네게 돌아갈 분깃도 없다고 베드로가 선언하였다.

하나님의 선물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어 피 흘려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구속하시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거져 주시는 선물이요,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돈주고 매매하려는 것은 악한 일이요, 구원의 도리를 알지 못하는 언행(言行)이다.  이러한 행동은 구원의 도리 밖의 세계에서 하는 말과 행위이기 때문에 이 도에는 아무 관계가 없고 망할 수밖에 없다.

성령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어떻게 돈으로 사겠으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어떻게 돈으로 매매하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요, 돈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여기는 일(두 주인을 섬김)이므로 하나님의 도에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 돈 우상과 같이 그 사람도 망하게 될 것이다.

 

. 8: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베드로는 시몬을 불쌍히 여겨 그 악함을 회개하고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러면 혹 사하여 주시리라고 한 것은 시몬의 죄가 너무 악독하고 불의에 매어 있기 때문에 회개하기가 힘든 것을 나타내고 있다.

 

. 8: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시몬이 돈을 주고 하나님의 선물을 사겠다고 한 목적은 하나님의 선물을 이용하여 자기의 명예를 높이고 모든 사람에게 존숭을 받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선물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利)를 보려고 한 악한 일이다.  또 이기주의와 자기 중심과 하나님의 일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삼으려고 하는 그것이 불의에 매인바 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역자들이 성직을 이용하여 자기가 커지고 자기 이익을 보고자 하는 것은 시몬과 같은 자들이다.

 

. 8:24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시몬은 심판받아 망한다는 무서운 책망을 받고 공포와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기가 엎드려 회개하지 않고 베드로에게 기도하여 자기에게 벌이 임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하였다.  시몬이 너무 악독과 불의에 매어 있기 때문에 회개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회개도 믿음으로 하고 성령의 감동으로만 할 수 있다.  회개하는 자는 벌써 은혜를 받은 자이다.

 

. 8: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쌔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 주고,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여러 촌에서 안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사도들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게 말씀 전하는 것만 전무하였다.  오늘날의 교역자들도 믿는 자들에게만 전하지 말고 믿지 않는 자에게도 전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六. 내시의 신앙(26-40)

 

. 8: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하나님께서 에디오피아 내시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북쪽에 있는 빌립을 남으로 보내었다.  천사를 빌립에게 보내어 음성으로 명령하였다.  이것은 빌립이 주관적으로 느낀 것이 아니고 객관적 계시이다.

가사 예루살렘의 서남쪽으로 70km 지점에 있는 도시이다.  옛날 블레셋 사람의 땅이었고 예루살렘에서 애굽으로 가는 도중 지중해 해안에 있다.

빌립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광야 길로 예루살렘을 지나서 가사로 가는 길까지 내려갔다. 전도하는 것은 사람이 많은 곳만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많지 않은 광야에라도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야 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해야겠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로 가라하기 때문에 빌립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여 광야로 갔다.

 

. 8:27-28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빌립이 광야로 향하여 예루살렘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한 내시가 병거를 타고 가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때 빌립은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자기를 보내신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 내시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를 가진 내시였다.  에디오피아는 구약에 구스라고 불리우는 흑인의 나라로 애굽 남방에 있는 나라이다.  솔로몬왕 때에 찾아 왔던 남방 스바 여왕이 이 나라의 왕이었다고 한다(왕상10:1-10 참조).

간다게라는 이름은 대대로 내려오는 여왕의 성(姓)인 것 같다.  이 내시는 여왕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자로서 지금의 재무장관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내시는 고자인데 옛날에는 내시로 하여금 궁전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겨 일을 보게 하는 일이 있었다.  스바여왕이 솔로몬을 찾아 와서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우고 돌아가 그 때부터 궁중에서부터 하나님을 공경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이 내시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 같으며 일년에 몇 번씩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배드리곤 하였던 것 같다.  내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때는 유월절이나 무슨 특별한 절기였을 것이다.

신명기16:5-7에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고기를 구워먹고\"라고 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는 아무 곳에서나 드리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택하신 곳이 곧 예루살렘이다.  하나님이 택해 놓은 그 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라는 성경 말씀을 순종하여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까지 올라가서 예배를 드린 것이다.  이 내시가 하나님 말씀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불원천리하고 예루살렘까지 찾아간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려면 아무 곳에서나 편리한대로 해서는 안 된다.  성경말씀에 맞도록 바른 예배를 드려야 한다.

 

. 8:29-30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에디오피아 내시가 병거를 타고 가면서도 성경을 읽었다.  성경을 사모하여 길을 가면서도 성경을 읽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하박국2:2에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였다.  신자는 부지런히 성경을 읽어야 한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뜻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면서도 성경을 부지런히 읽었다.  성경은 이해가 잘 안되어도 읽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새김질하고 그 말씀을 상고하면서 사는 생활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말씀을 사모하여 부지런히 읽고 상고하는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이 빌립을 보내어 깨닫게 하여 주셨다.  빌립은 성령의 지시로 병거에 가까이 나아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하고 물어 보았다.

 

. 8: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내시가 말하기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느냐고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에디오피아 내시와 같이 높은 지위와 큰 권세가 있는 사람이 깨닫지 못한다고 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내시는 겸손하고 솔직하였다.  신자는 언제나 겸손하여야 앞길이 열린다.  자기 권위와 체면을 위하여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고,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면 희망이 없다.  만일 내시가 교만하여 왜 남의 일에 참견하느냐고 빌립을 책망이나 하였다면 그리스도를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 8:32-34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내시가 빌립을 병거에 올라오라고 청하므로 빌립이 병거에 올라가 보니 이사야53:7에 있는 말씀을 읽고 있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를 가리켜 말한 것인지 다른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인지 빌립에게 물어 보았다.

이사야53:7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과 같이 순순히 끌려가 십자가를 지셨다.  내시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물어 보았다.  모르는 것은 언제나 물어 보아야 한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이 있다.  아랫사람에게 물어 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모르는 것은 아랫사람에게라도 물어보고 배워야 한다.  내시는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다.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진리를 깨달으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하나님이 빌립을 보내어 모든 것을 깨닫도록 가르쳐 주셨다.

 

. 8:35-37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내시가 빌립의 전도를 듣고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성경말씀을 들을 때에 그대로 믿어야 한다.  내시는 복음을 받은 즉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그가 믿고 죄 씻음을 받은 증표로 세례를 받고자 하였다.

 

. 8: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빌립과 내시가 물에 내려가 빌립이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초대 교회는 세례를 누구나 준 것이 아니다.  빌립이 세례를 주었으나 빌립은 안수 집사로서 초대 교인 수 만 명중에서 일곱 명을 뽑을 때에 피택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고 칭찬 듣는 사람이었다.  또 그가 전문적으로 전도에 나선 사람이다. 그때는 아직 목사 안수 받는 법이 생기기 전이었으므로 목사의 칭호는 못 받았으나 오늘의 목사보다 나은 성직자였다.

둘 다 물에 내려가 육지에서 물가로 내려갔다는 뜻이고 물 속에 잠겼다는 뜻이 아니다.  침례교파에서는 이 성구를 둘 다 물 속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러면 침례교에서는 침례 받는 자나 주는 자가 둘 다 물 속에 잠겨야 된다.  침례교파에서도 침례 주는 목사는 침례 줄 때마다 물속에 잠겼다가 나오지 않는다.  빌립과 내시가 육지에서 물가에 내려가 빌립이 물을 떠서 내시에게 세례를 주고 물에서 육지에 올라온 것으로 본다.

 

. 8: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쌔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둘이 물에서 올라갈쌔 물속에 잠겼다가 올라온 것이 아니고 물가에 내려가서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육지로 올라갔다는 뜻이다.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빌립이 주의 영에게 이끌려서 내시를 떠나갔다.  빌립은 천사가 전하는 주의 명령에 의해서 광야로 갔다.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내시가 기쁨으로 길을 갔다는 뜻이다.  내시가 하나님의 도를 배워 믿고 세례를 받아 그 도에 참여할 때에 큰 기쁨이 생겼다.  이 내시는 크고 영원한 보화를 발견하였기 때문에 기쁘고 즐거웠다.  빌립을 떠나 혼자 갈지라도 그가 전해 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말씀을 생명으로 삼았으므로 기쁨이 넘쳐 고국으로 돌아갔다.  내시가 빌립을 다시 보지 못했으나 그가 전해 준 말씀은 언제나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되었다.  이로써 기독교가 에디오피아까지 전파된 것이다.

 

. 8: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빌립은 해안 지방으로 올라갔다.  아소도 블레셋 지방에 있는 도시로 가사의 북방에 있으며 구약 성경에는 아스돗(삼상5:3)이라고 불리웠다.  빌립은 이 부근 성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가이사랴 아소도에서 더욱 북쪽에 있는 해안 도시이다.  빌립이 이곳에서도 복음을 전했다.  빌립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복음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제 9 장  사울

 

(대  지)

一. 사울이 교회를 핍박함(1-2)

二. 하나님이 사울을 특별히 부르심(3-19)

三. 사울이 즉시로 복음을 전함(20-31)

四. 베드로의 전도(32-43)

 

(본문 강해)

 

一. 사울이 교회를 핍박함(1-2)

 

. 9:1-2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죽일 때에 사울이 증인들의 옷을 지켜 죽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했다.  사울은 이방 도시 다메섹에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결박하여 잡아오려고 하였다.  대제사장은 산헤드린 공회의 회장이었다.  이 산헤드린 공회는 사람을 죽이는 권리는 없었으나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사람을 체포하거나 감금할 권리가 있었다.

 

二. 하나님이 사울을 특별히 부르심(3-19)

 

.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정오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햇빛보다 밝은 빛이 비치었다. 너무 강한 빛이 갑자기 비치는 바람에 사울이 땅에 엎드러졌다.  그런데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말씀이 들려왔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울을 특별히 사랑하여 부른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빛이 육신의 눈에 보였고 하늘로부터 주의 음성이 육신의 귀에 들리게 사울을 굴복시켰다.  사울이 마귀의 종이 되어 교회를 핍박하며 주의 제자들을 결박하려고 악한 길을 걸어가므로 하나님이 갑자기 빛을 비추어 사울을 거꾸러지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성도들을 영의 빛으로 인도해 주신다.

요일1:5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언제나 빛으로 역사하시고 마귀는 언제나 어두움의 권세를 가지고 미혹한다.  사울이 흑암 속에 빠져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이 큰 빛을 비추어서 마귀와 흑암의 권세에서 사울을 건져내신 것이다.  사울에게는 육신의 눈으로도 볼 수 있도록 빛을 비추어 주셨다.  사도행전22:9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고 하였다.

 

. 9:4-7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마귀의 종이 된 사울을 하나님이 \"사울아 사울아\"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이름을 다 아시고 불러 주신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실 때에도 그 이름을 다 아셨다.  주님이 부활한 다음에 마리아를 향하여 \"마리아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  주님은 지금도 예수 믿는 사람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시고 불러 주신다.  빌립보4:3에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고 하였다.  택한 백성은 어린 아이 하나까지라도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해 놓고 그 이름을 불러 주신다.  요한10:3에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우리 이름을 불러서 하나님을 믿도록 인도해 주시고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도 우리 이름을 불러 건져내시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주신다.  그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고 늘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사49:15-16참조).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참으로 감사하다.

식사 때가 되어 자녀들이 자리에 없으면 그의 부모가 자녀들의 이름을 불러 찾는다.  자녀 중에 약하고 어리석고 변변치 못한 자녀에게는 더욱 마음을 쓰고 불러서 밥을 먹인다.  하나님께서도 모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음에 두시고 불러 주시되 부족한 사람을 더욱 기억해 주시고 불러 주신다.  예수님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병난 자의 위로와 약한 자의 강함이 되어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의 처지와 형편을 다 아시고 불러내어 인도해 주신다.

사울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나 마귀의 종이 되어 교회를 핍박하므로 주님이 큰 긍휼을 베풀어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불러 주셨다.  사울에게는 특별히 육신의 눈으로 빛을 볼 수 있게 역사했으나 오늘날에는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빛을 나타내거나 육신의 귀에 들리게 불러 주시지 않는다.  지금은 영의 귀(靈耳)에 성령의 감동과 진리로 우리를 불러 인도해 주신다.  사울이 \"주여 뉘시오니까\" 할 때에 예수님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하였다.  사울은 예수님이 죽어 없어진 줄 알았으나 그 예수님이 하늘에서 나타나 빛을 비추면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할 때에 심히 놀랐을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여 살아 계시고, 또 자기 이름을 기억해 주시고 불러 주시는 분인 것을 깨달았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으나 예수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다.  예수님은 믿는 사람을 자기의 몸으로 여기시기 때문이다.  성도가 핍박을 받으면 예수님은 자신이 핍박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시고 성도가 고통을 당하면 예수님 자신이 고통을 당하시는 것으로 아신다.  성도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면 예수님은 당신이 친히 고난 당하는 것으로 인정하시고 그 고난을 대신 감당해 주신다(마25:35-40 참조).  그러므로 성도가 주를 위해 고난 당할 때에는 그다지 힘든 줄을 모르게 된다.  그러나 성도가 자기 죄 값으로 고난 당할 때에는 예수님이 도와주시지 않기 때문에 대단히 힘이 든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고난 당할 때에는 주님의 위로가 와서 마음이 시원하고, 매를 맞아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주고, 굶어도 기쁘게 해 주신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풀무불 가운데 들어갔을 때에 주님이 찾아 와서 모든 것을 다 감당하게 해 주셨으므로 풀무불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고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게 된 것이다.

 

. 9:8-9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사울이 그리스도를 반대하였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졌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다.  사울의 영안이 어두워져서 마귀의 종노릇했던 것을 주님이 깨닫게 하려고 육신의 눈을 어둡게 한 것이다.  사울이 다메섹에 들어가 삼일간 금식 기도하며 자기가 예수님과 교회를 핍박한 죄를 철저히 회개하였다.  그 때에 아나니아가 와서 사울에게 안수를 하니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눈이 밝아졌다.  그러나 사울의 눈이 완전히 밝아진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영향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서 늘 눈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갈6:11, 4:15, 롬16:22 참조).  그러므로 그것이 바울에게 가시가 되었고 바울은 그것을 사탄의 사자라고 했다(고후12:7 참조).  사탄의 사자라고 한 것은 사울이 마귀의 종노릇하다가 얻은 눈병이기 때문이다.

 

. 9:10-12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이제는 하나님이 사울에게 앞길을 열어 주시려고 아나니아를 보내셨다.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 직가라 하는 거리에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고 지시하셨다.  이 아나니아는 사도행전 5장에 나온 아나니아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며 믿음이 독실한 성도였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성도를 다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기 위해 온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아나니아는 그 말을 듣고도 다메섹을 떠나지 아니하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아나니아도 사울에 대한 소식을 다 듣고 있었지만 스데반과 같은 순교의 정신으로 다메섹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에 하나님이 사울에게 보낼 만한 종을 찾다가 환난을 각오하고 충성되이 기도하는 아나니아를 불러서 쓰셨다.  아나니아에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울이 기도하는 중에 아나니아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다.  아나니아가 할 일을 주님이 보여 주신 것이다.

 

. 9:13-14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나니아가 주님께 대답하기를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성도에게 많은 해를 끼쳤고 여기서도 성도들을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에게 받았다고 하였다.

 

. 9:15-16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가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울이 성도를 핍박하고, 잡아죽이는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은 그 사울을 불러 회개시켜 이방인과 임금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택하셨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은 참되시고 떨기나무와 같은 자를 불러 쓰시고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교회를 핍박하는 사울을 불러 교회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게 하셨다.

 

. 9:17-19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아나니아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가 안수하며 주께서 자기를 보낸 것을 말할 때에 성령이 충만해지고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다.  사울이 성도를 핍박하고 복음을 반대하다가 눈이 어두워졌으나 주님 앞에 회개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종의 인도를 받으므로 눈이 밝아졌다.  누구나 복음을 반대하면 눈이 어두워지게 되고 회개하여 순종하면 눈이 밝아진다.  사울이 음식을 먹고 건강이 회복된 후에 수일간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사귀었다.

 

三. 사울이 즉시로 복음을 전함(20-31)

 

. 9:20-22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사울이 회개한 후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메섹 각 회당에서 전파하였다.  사울이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음성을 들었고, 그것을 나가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즉시로 나가 순종한 것이다(행26:16-18 참조).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나가서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은 사울이 과거에 성도를 심히 핍박하였고 이번에 다메섹에 온 것도 성도를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려던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사울이 복음 전파하는 일을 놀라며 이상히 여겼다.

힘을 더 얻어 갈라디아1:16-18에 바울이 회개한 후에 즉시로 아라비아 (3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하였다.  바울이 아라비아로 갔던 것을 21절과 22절 사이로 보고 여기 힘을 얻었다는 것은 아라비아에 가서 삼 년간 기도하여 얻은 영력과 진리에 대한 힘으로 본다.  기도하지 않고는 영력을 얻을 수 없다.  그 힘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다.

 

. 9:23-25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여러 날이 지나매 이 기간을 바울이 아라비아에 갔던 삼 년간이라고 하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 않고 아라비아에 갔던 기간을 21절과 22절 사이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22절 해석 참조).  사울이 비상한 영력과 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므로 모든 사람들이 굴복을 당하게 되자 반대파들은 복음이 더 이상 퍼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울을 죽이려는 계교를 꾸몄다.  이 핍박은 그 지방을 다스리는 아레다왕의 방백과 유대인들이 합세해서 일어난 것이다.  언제나 타락된 종교 지도자들의 교권과 정권이 합세하여 참된 성도를 핍박하곤 하는 것이다.  그 때 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성문까지 지킴으로 사울이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에서 달아 내려 피하게 된 것이다(고후11:32-33 참조).  사울이 이렇게 도망친 것은 생명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 가서 전도를 하기 위한 것이다.

 

. 9:26-27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의 제자를 사귀고자 하였으나 사도들이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않았다.  사도들은 사울이 처음에 교회를 핍박한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책망을 받고 거꾸러졌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그 후 삼 년간(아라비아 갔던 기간) 나타나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에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됨을 믿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인정을 안하고 제자들이 자기를 오해해도 사울은 그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도 사울이 제자됨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바나바와 같이 인정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사울이 길에서 어떻게 예수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한 것과 다메섹에서 담대히 주님을 증거한 것을 말해 주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신앙으로 사울을 이해해 준 사람이다.  그리하여 사울을 사도들에게 잘 소개하고 이해시켜 주었다.  쌍방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받아 주지 않을 때에 바나바와 같이 양편의 참 신앙과 본의를 알아서 화합시켜 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해 주셔야 되는 것이다.

 

. 9:28-29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더욱 힘써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그 때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나와서 사울과 변론하였다.  헬라파는 언제나 변론을 좋아하였다.  그들이 변론하다가 자기들이 이기지 못하게 되자 사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렇게 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을 하면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보호해 주신다.

 

. 9: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헬라파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는 것을 형제들이 알고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사울의 고향 다소로 보내었다.  사울이 거기에서 얼마동안 머물면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였을 것이다.

 

.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하나님께서 마귀의 세력을 꺾었으므로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들이 평안하고 더욱 든든히 서서 주를 경외함이 더하므로 성령의 위로가 날마다 더하고 교회가 부흥되어 나갔다.  복음을 반대하고 마귀 노릇하던 사람이 돌아서서 전도하게 되면 더욱더 힘있게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든든하게 서 가고 점점 부흥이 된다.

 

四. 베도로의 전도(32-43)

 

. 9:32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만 전도한 것이 아니고 사방으로 두루 다니면서 전도한 것이다.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사방으로 다니면서 열심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  룻다 팔레스틴 중앙 고지에 있는 촌이며 욥바 동방 17km 지점에 있다고 한다.

 

. 9:33-34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지 팔 년이라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베드로가 룻다에 내려가서 애니아라는 사람이 중풍병으로 팔 년 동안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하였다.  그 때에 그가 곧 나아서 일어났다.  이것은 베드로가 병 고치는 것을 원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심령의 병을 고치는 것이 원 목적이었다.  베드로가 사방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여 심령의 병을 고쳐 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육신의 중풍병을 표적으로 낫게 해 주셨다.

 

. 9: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룻다와 사론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병 고치는 이적을 보고 주께로 돌아왔다.  표면적 이적을 보고 주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이적을 보고 따라온 자들과 같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고 말씀하시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고 하실 때 그들이 거의 다 물러갔다(요6:66 참조).  영생의 말씀을 받아 생명으로 삼고 중생한 영혼에 착근(着根)한 신앙이어야 참된 신앙이요 영원히 물러가지 않는다.  사론 팔레스틴 서해안에 가깝고 욥바에서 북으로 넓게 퍼진 비옥한 평원이다.

 

.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고 믿음이 독실한 신자이었다.  그 여성도의 선행과 구제하는 일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성도들이 그 신앙을 알아주고 존귀히 여겼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향기요, 신앙의 열매였다.  도르가 다비다는 히브리명이며, 도르가는 헬라명이다.

 

. 9:37-38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다비다가 병들어 죽으매 제자들이 시체를 씻어 다락 위에 뉘어 놓고 룻다에 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에게 지체 말고 오도록 간청하였다.  제자들이 베드로를 청한 것은 다시 살리는 이적을 위함이 아니고 중대한 일이 생겼으므로 의논하고 지시를 받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 9: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베드로가 욥바에 가서 보니 과부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과부들이 울면서 도르가가 살았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내어다가 보여주었다.  그 옷은 도르가가 다른 사람을 구제하려고 지었던 옷이다.  그 과부들은 도르가가 구제하는 일을 도와주던 신앙의 동지이었던 것 같다.  그들이 베드로에게 그 옷을 보이면서 그의 선행을 생각하고 그의 하던 일을 위하여 슬퍼하였다.  성도가 세상을 떠나면 믿는 일 한 것만 남는다.  도르가가 믿는 일 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존경하고 아까워하는 것이다.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고 돈도 다 없어지지만 그 사람이 믿는 일 한 것과 선한 일 한 것은 영원히 남아 있게 되고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된다.

 

. 9:40-41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베드로가 고요하고 은밀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다 내어 보냈다.  베드로가 그 시체 옆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 할 때에 다비다가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앉았다.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이러한 기도를 시켰고 또 성령께서 도르가를 살리도록 역사할 때에 베드로가 순종하여 이렇게 힘있는 기도를 한 것이다.  도르가가 일어나 앉으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이것은 베드로의 산 믿음의 역사요, 도르가의 생명이 산 증거였다.  베드로가 과부들을 불러 들여 도르가의 산 것을 보여 주었다.

 

. 9: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다비다가 죽었다가 살아난 소문이 그 지방에 퍼지니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베드로가 전도해서 영혼이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는 표징으로서 죽은 다비다를 살리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베드로가 죽은 사람마다 다 살린 것이 아니다.  영혼이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역사가 베드로에게 있는 것을 보여 주느라고 하나님께서 죽은 다비다를 살려낸 것이다.

 

. 9: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

피장시몬은 성도로서 베드로를 자기 집에 여러날 모셨다.  피장은 가죽공인데 유대인들이 천하고 더럽게 여기는 직업이다.  베드로는 믿음으로 고하귀천을 구별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인종과 민족의 구별이 있을 수 없고 유무식, 빈부귀천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제 10 장  고넬료

 

(대  지)

一. 고넬료의 신앙(1-2)

二. 천사가 나타나 명령함(3-6)

三. 고넬료가 사람을 베드로에게로 보냄(7-8)

四. 베드로에게 계시를 줌(9-16)

五. 베드로가 고넬료의 사신을 만나매 성령이 지시함(17-22)

六. 고넬료가 베드로를 영접함(23-33)

七. 베드로의 전도(34-43)

八. 성령 강림(44-48)

 

(본문 강해)

 

一. 고넬료의 신앙(1-2)

 

. 10: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가이사랴 팔레스틴 서쪽 지중해 안에 있는 도시이며 그 당시 로마 총독이 있던 중요 도시이다. 이달리야대 이달리야 사람의 군법들로 된 군대이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대부분 토인들로 되어 있었는데 그 중 이달리야인으로 된 부대가 있었다.  고넬료가 거느린 백 명의 부대는 이달리야대의 한 부대이다.

 

. 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가 이방(로마)인이지만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으며,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하였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생활이다.  고넬료는 자기 개인이 경건할 뿐 아니라 그 가족 전체가 경건한 생활을 하였다.  이것은 그 자신도 힘을 썼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큰 축복이었다.  고넬료의 경건한 생활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선으로 나타나고 자기 자신에게도 아름다운 열매가 맺혔다.  야고보1:27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였다 . 고넬료와 같이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참으로 귀하다.  아브라함도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나 그의 아들들은 불량하였다(삼상8:3 참조).

다윗이 성자였으나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못하였다.  자기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하면 자기의 가족들도 점차 하나님을 경외할 날이 올 것이다.  자기의 힘으로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자기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하면 믿지 않는 가족이 있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하려면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믿고, 그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순종하고, 그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일생동안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신명기4:10에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고 하였다.  성도가 일평생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워 나가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명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경외하는 자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역사하여 주신다.  반대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만큼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시하신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만큼 그 사람이 높아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만큼 그 사람의 인격이 위대하여진다.

삼상2:30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무시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겼으나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워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멸시하였다.  그리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섬기다가 그 대가를 받았다.

주를 경외하는 자는 여호와의 사자가 와서 진을 치고 환난에서  건져 주신다(34:7 참조).  다니엘이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사자굴에 들어갔을 때에도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사자의 입을 막아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경외하는 것만 바로 배워 나간다고 하면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잘 지켜 주시고 축복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바로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권고가 떠나고 마지막에는 다 망하게 된다.  언제나 누구나 하나님 경외하는 것이 점점 퇴보되어 가면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이 가까워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과 선을 베풀어 구제를 많이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구제할 때에는 대가를 바라지 말고 도와주어야 한다(눅6:34 참조).  구제 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부지런히 일을 하여 다른 사람을 도와주되 자신은 될 수 있는 대로 구제를 받지 않으려는 자립 정신을 가져야 한다.  사람에게 구제 받을 생각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앓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이 있다.  자기가 자기 일을 처리하여 나가려고 힘쓰는 사람을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二. 천사가 나타나 명령함(3-6)

 

. 10: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유대인은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단6:10 참조).  고넬료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였다.  제 구시는 지금의 오후 세시를 가리킨다.  고넬료가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한 것은 귀한 것이다.  우리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기도하는 시간은 새벽 시간이 제일 좋다.  새벽에 일어나서 먼저 기도를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일을 하여야 한다.

기도하지 않고 다른 일만 하는 사람은 생명의 양식을 먹지 않고 내어버린 사람과 같다.  기도하는 시간이 제일 귀중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내 기도하는 한 시간 그 때가 가장 귀하다\"하고 찬송하는 것이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시는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전투하는 군대에  있어서 보급로가 차단되고 통신망이 두절된 것과 같다.  후방에서 보급품이 제대로 보급되고 상부와의 통신이 잘 이루어지는 군대이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보급이 안되고 통신이 끊기면 아무리 용감한 군대라고 할지라도 패망할 수밖에 없다.  마귀를 이길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받지 못하므로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  마귀는 언제나 성도에게서 기도 시간을 빼앗으려고 한다.  성도가 기도시간을 빼앗기면 믿음도 열심도 능력도 사랑도 다 빼앗기게 된다.  기도를 안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마귀에게 포로가 되어 질질 끌려가게 된다.  기도할 때에 시간을 많이 들여서 기도하여야 한다.  시간과 공력과 피땀이 들어 간 기도이어야 가치가 있다.  공력을 들여서 기도를 해야 심령의 만족을 얻고 생명의 역사가 있다.

신자가 기도 생활을 잘하려면 첫째, 기도하는 시간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둘째,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해야 한다.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은 기도를 하여야 한다.

셋째, 자기 자신의 부족한 면을 찾아서 회개하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자기 자신의 부족한 점과 교만한 것을 회개하고 양심에 가책되는 일을 찾아서 회개하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부패성을 찾아서 빼내버리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넷째,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바라보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고넬료가 기도하는 중에 여러 가지를 구하였겠으나 그 중에 하나님의 약속하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기도를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베드로를 보내어 약속하실 그리스도를 고넬료에게 알게 하여 주셨다.  이것은 고넬료의 기도가 상달되어 기도의 응답으로 되어진 것이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나다나엘도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할 때에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기도를 하였을 것이다(요1:48,49 참조).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허락하신 영광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여야 한다.

다섯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하며 그리스도를 좀더 발견하고 그리스도 안에 좀 더 깊이 들어가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성도가 기도 시간을 제일 귀중히 여기고 첫째로 하여 먼저 기도부터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면 아무리 분주하여도 늘 계속하여 기도할 수 있다.  바빠서 기도 못하는 사람은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 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참된 기도는 기도하는 첫 시간부터 하나님께 상달이 된다.  기도하러 가려고 결심할 때부터 하나님이 다 아신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은 때가 되어야 온다.

다니엘10:12에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고 하였다.  기도하려고 결심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응답을 받을 때까지 계속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신다.  천사가 고넬료에게 나타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하였다. 성도의 기도와 연보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다(빌4:16-18 참조).

 

. 10:5-6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천사는 고넬료에게 사람을 욥바로 보내 피장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가르침 받을 지를 소개하여 준 것이다.  경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바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다.

 

三. 고넬료가 사람을 베드로에게로 보냄(7-8)

 

. 10:7-8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고넬료가 하인 두 사람과 종졸(하인보다 좀더 나은 사람)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욥바에 보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하기 위하여 사람을 택할 때에 경건한 사람을 택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하나님의 일은 믿음으로 해야 하며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경건한 사람을 보내어 믿음으로 해야만 하나님의 일에 실패가 없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에 실패가 없도록 모든 일을 충성되고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에게 맡겨야 한다.

 

四. 베드로에게 계시를 줌(9-16)

 

. 10: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베드로가 제 육 시(지금의 12시)에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다.  유대 나라 지붕은 평평하여 기도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 10: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그 집 식구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에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하였다.  베드로는 짧은 시간도 낭비하지 않고 틈틈이 기도하고 부지런히 기도하는 생활을 하였다.  베드로가 기도하는 중에 꿈에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계시가 보였다.  이것은 베드로 자신의 정신적 변화가 아니고 심령이 신령한 자리에 들어가 객관적인 계시를 본 것이다.

 

. 10: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하늘이 열리고 보자기가 내려와서 드리운 것은 이 계시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의미한다.

 

. 10:12-13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여기 있는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하신 짐승들로서 유대인들이 더럽게 여겨 먹지 않는 것들이다(레11:1-47 참조).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것들을 잡아먹으라고 하였다.

잡아먹으라고 한 이유는

① 구약의 의문(鑛文)과 의식(儀式)은 제거되었다는 뜻이다(골2:14-15 참조).

② 그 의식과 의문은 이스라엘과 이방을 구별해 놓은 것이었다.  이제는 그 담벽이 제거되어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③ 그 짐승들은 이방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복음을 전해야 될 것과 이방인도 믿음으로 깨끗해져서 구원의 반열에 참여하게 될 것을 계시하여 주신 것이다.

 

. 10: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베드로가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은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 하였다고 말하였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약의 의문과 의식을 제거한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그러한 짐승들을 지금까지 먹지 않았다.  잡아먹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속되고 깨끗지 않은 것은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이 계시의 참뜻을 아직 깨닫지 못하였다.

 

. 10:15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구약의 모든 의문과 의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완전히 도말(塗抹)되고 제거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들(그 생물들)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한데 (딤전4:4 참조) 그것을 부정하다 속되다 하여 버리면 안 된다는 뜻이며 이방인을 더럽다고 버리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다.

 

. 10: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었다는 것은 13절에서 15절까지의 내용이 세 번 되풀이하였다는 것이다.  즉 하늘에서 소리 있어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였고 베드로는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않은 물건은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하고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실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한 이 내용을 세 번 반복하였다는 뜻이다.  잡아먹으라는 말씀을 세 번하였고, 베드로는 세 번 거부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말씀을 세 번하신 것이다.  베드로가 율법의 의식에 강하게 얽매어 있었고 고집이 세어 하나님 명령을 세 번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왔을 때에 비로소 그 계시의 뜻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아무리 거역하여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기어코 성취시키고 마는 것이다.

 

五. 베드로가 고넬료의 사신을 만나매 성령이 지시함(17-22)

 

. 10:17-20  베드로가 본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베드로는 자기가 본 환상이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여 생각하고 있을 때에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문 밖에 와서 베드로를 찾았다.  그 때에 성령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고넬료의 가정으로 보내기 위하여 계시를 주시고 사람을 보내 주시고 성령으로 베드로에게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이와 같이 정확하고 틀림없는 것이다.  두 사람 고넬료가 세 사람을 보냈는데(7절) 여기는 두 사람이 대문밖에 서서 찾았다고 하였다.  한 사람은 조금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 10:21-22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가로되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베드로는 성령께서 가라고 하였으므로 갈 작정을 하고 내려왔다.  베드로가 찾아온 사람들에게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때에 그들은 먼저 그 주인(고넬료)을 베드로에게 소개하였는데 고넬료가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요,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또 천사가 고넬료에게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여 말을 들으라는 지시가 있어서 자기들을 보낸 것이라고 자세히 말하여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베드로는 자기가 본 계시와 성령이 가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고넬료의 집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 줄 깨달았다.

 

六. 고넬료가 베드로를 영접함(23-33)

 

. 10: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쌔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베드로는 그 이방인들을 더럽게 여기지 않고 친절하게 따뜻한 사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였다.  날이 저물었던 것 같다.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11:12절을 보면 여섯 사람이 같이 갔다.  베드로가 이렇게 여러 사람을 데리고 감으로 이방 전도에 큰 힘이 되었고, 고넬료의 집에 모인 무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며, 후일 이방 전도에 대하여 변명할 때에도 유력한 증인이 되었다(행11:12 참조).

 

. 10:24-25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이방인 고넬료가 대 사도 베드로를 영접하게 되었다.

① 고넬료는 베드로가 와서 구원의 말씀을 전해 주기를 갈망하고 기다렸다(행11:13-14 참조).

② 자기 가족만 기다린 것이 아니고 일가와 친구를 다 모아 놓고 기다렸다.  우리도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자기만 들으려고 하지 말고 일가와 친구와 근처 사람을 다 모이게 하여 듣게 해야 한다.

③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베드로를 신과 같이 존경하고 엎드려 절한 것은 잘못이나 그의 겸손과 하나님의 종을 공경하는 마음은 귀한 것이다.  갈라디아 교회는 주의 종을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천사와 같이 존경하였기 때문에 큰 복을 받았다(갈4:14-15 참조).

고넬료는 베드로의 인간 면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면을 보고 천사와 같이 영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넬료의 가정이 복을 받았다.  하나님의 종을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천사와 같이 영접할 때가 가장 복 받는 때이다.  그 신앙이 자손에게도 대대로 물려 내려간다.  인간 면을 보고 하나님의 종을 멸시하고 무시하면 그 집에서 하나님의 복이 떠난다.  그 죄가 삼 사대까지 내려간다.  아버지가 지은 죄가 삼 사대까지 간다는 것은 아버지가 지은 죄 값이 삼 사대까지 간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못된 행실을 자손이 본 받게 되고 아버지가 지은 죄의 영향력이 삼 사대까지 내려간다는 뜻이다.

 

. 10:26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베드로는 자기가 대접을 받지 않으려는 정신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신격화하여 엎드려 절할 때에 베드로가 나도 사람이라고 만류하였다.  교역자가 분수에 넘치는 대접과 높임을 받지 않아야 생명이 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잘 대접하므로 복을 받게 되고 베드로는 그 대접을 안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명이 있었다.

 

. 10: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 것을 보고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안으로 들어가 그 모인 무리들과 말하기 시작하였다.

 

. 10: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모여 사모하는 무리들을 볼 때에 점점 자기가 받은 계시를 깨닫게 되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이나 하나님께서 \"속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고 지시하실 것 때문에 사양치 않고 왔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전통과 규례에 얽매이지 않고 깨달은 즉시로 실행하였다.

 

. 10:29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 생각하며 고넬료에게 자기를 부른 이유를 물어 보았다.

 

. 10:30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고넬료가 대답하기를 기도 시간에 기도하는 중에 홀연히 빛난 옷을 입은 천사가 나타나 지시하여 주었기 때문에 베드로를 청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 10: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와 구제를 기억해 주시고 갚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구제한 때에 마음이 기쁘고 하나님이 가까워진다.

 

. 10: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천사가 고넬료에게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행11:13-14 참조).  그는 욥바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지시는 언제나 정확하고 자세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 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가 하나님의 계시대로 베드로를 청하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었는데 이렇게 오셨으므로 \"잘하였나이다\"하고 기쁨으로 영접하였다.  이것은 베드로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르게 영접한 태도이다.  또 고넬료가 말하기를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한다고 말했다.  고넬료는 베드로의 말을 듣기 위함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고 말했다.  말씀을 듣는 자는 그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야 힘이 된다.

살전2:13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베드로를 통하여 주시겠는가 하고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렸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는 복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말씀해 준 것으로 받아야 한다.  그러면 그 말씀이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고 믿는 자의 속에서 역사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그 말씀을 받지 아니하면 그 말씀이 그 사람을 심판한다.

요한12:48에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하였다.  성경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자기 속에서 그 말씀이 역사하여야 한다.  성도가 말씀을 받을 때에는 첫째, 말씀을 전하여 주는 교역자를 하나님이 쓰는 종으로 알고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종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천사와 같이 존경하고 인간적인 허물이 있으면 가리워주어 하나님의 일이 잘 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종이 성경 말씀을 바로 전해 줄 때에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전해 주는 것으로 들어야 한다.  셋째,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그대로 순종하면서 받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태도이다.

 

七. 베드로의 전도(34-43)

 

. 10: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는 뜻은 유대인이라고 더 잘 보아주는 것이 아니고 이방인이라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민족의 우열이나 지식의 유무나 직업의 귀천이나 의식 참여의 여부로 구별하지 않는다.

 

. 10: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하나님은 어떤 나라, 어떤 민족이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받으시고 그들에게 참된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이 일을 위하여 고넬료의 집에 베드로를 보낸 것이었다.  전도자는 자기가 먼저 진리를 깨닫고 나가서 전해야 그 말씀에 능력이 있다.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확신이 없고 힘도 없다.  자기가 먼저 깨달아야 자기 영이 살고 다른 사람을 살린다.  성경을 볼 때에도 자기가 회개하고 그 말씀대로 바로 서려고 애를 쓰면서 성경을 보 아야 한다.

시편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다.  신앙양심을 날카롭게 쓰고 잘못된 것을 고치고 바른 길을 걸어가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 깨달아진다.  교역자들도 깨달은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복음을 깨달아서 성령으로 한마디 전하면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주게되고 영혼을 살려내는 역사를 하게 된다.

 

. 10: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만유의 주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 모든 민족의 주가 되신다.  만유는 모든 것이라는 뜻이다.  화평의 복음 복음은 믿는 자에게 먼저 하나님과 화목시키고(롬5:1 참조),  다음에 자신의 심령을 화평하게 하고, 또 다를 사람들과 화평하게 한다.  특히 유대인과 이방인들 간에 화평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엡2:14-17 참조).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이는 다음절부터 설명되는 복음을 가리킨다.

 

. 10: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베드로는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하여 예수께서 갈릴리와 유대에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신 것을 말하여 주었다.

 

.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신 증거이다(단9:25 참조).  그리스도라는 뜻은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눌린 자를 해방시켜 준 것도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는 증거이다(요일3:8 참조).  하나님은 예수님과 같이 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이 하여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일하셨다(요12:49-50 참조).

 

. 10:39-40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증인이라고 하였다.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며 베드로가 이 구속의 핵심을 말해 준 것이다.

 

. 10: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고 그의 제자들과 그 외에 증인이 될 만한 사람에게만 나타나셨다.  또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는 그와 음식도 같이 먹었다고 하였다(눅24:30, 40-43, 요21:12-13 참조).  그러므로 이 증거가 확실하다는 것을 베드로가 말하였다.

 

. 10:42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세우셨는데 이것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베드로가 말하였다.

 

. 10:4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마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이것은 모든 선지자도 증거한 바라고 하였다(사33:24, 53:5, 렘31:31-34 참조).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속죄의 도리를 가르쳐 주었다.  이 속죄의 도리는 기독교의 중요한 도리이다.  피 흘림이 없으면 사유함이 없다(히9:22 참조).  속죄가 없는 종교는 참 종교가 아니다.  천하 인간에 예수이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행4:12 참조).

 

八. 성령 강림(44-48)

 

. 10:44-46  베드로가 이 말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베드로가 말씀 전할 때에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오셨다.  그 결과로 그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다.  사도행전8:17에는 안수하며 기도할 때에 성령이 임하였으나 본문에는 말씀을 전하고 들을 때에 성령이 임하였다.  이것을 보면 꼭 안수를 받아야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말씀을 받아 믿을 때에 벌써 성령을 받은 것이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하였다(고전12:3 참조).  여기 방언을 말한 것은 성령의 특수한 역사인데 신자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 아니다.

고전12:30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고 한 것은 누구나 다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고전12:7-11에 있는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는 성령이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다고 하였다.  사람이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당신의 뜻대로 나누어주는 것이다.  믿음도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 가운데 하나이다(고전12:9참조).  믿음을 받은 자는 가장 좋은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이다. 성도는 항상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아야 된다.  방언에 대해서는 행2:6-12의 해석을 보라.  베드로와 함께 온 유대인들이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랐다.

 

. 10:47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고넬료의 가정에서 받은 성령은 오순절에 사도들과 제자들이 받은 성령과 같은 것이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그 성령이 고넬료의 가정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임하여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하였고 또 특수한 역사도 나타내 주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들에게 물로 세례주는 것을 금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세례는 믿음으로 죄 씻음을 받았다는 인(印)과 표로서 주는 예식이기 때문이다.

 

. 10: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베드로가 복음을 듣고 믿는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로써 복음이 정식으로 이방에 전파되게 된 것이다.  그들이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한 것은 은혜 받은 증거이다.  참으로 은혜를 받은 자는 전도자를 대접하고 싶어하며, 은혜 받은 곳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제 11 장  예루살렘

 

(대  지)

一. 유대인의 질문(1-3)

二. 베드로의 해명(4-18)

三. 안디옥 교회(19-30)

 

(본문 강해)

 

一. 유대인의 질문(1-3)

 

. 11: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그 소식이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에까지 알려졌다.  이방인이 복음을 받고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랄 만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 소식이 급속히 퍼져 나아갔다.

 

. 11:2-3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며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베드로에게 \"네가 왜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느냐\"고 힐난하였다.

힐난 잘못을 들어 꾸짖고 비난한다는 뜻이다.  당시는 할례 받은 사람이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음식을 먹으면 유대 종교의 전통에 위반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이었다.  그런데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서 무할례자들과 같이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베드로가 이방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는데, 할례자들이 복음 전한 것은 물어보지도 아니하고 먹는 문제만 가지고 따졌다.  이 사람들은 진리문제와 종교문제보다는 오랫동안 내려오는 전통을 더 중히 여기고 있다.

 

二. 베드로의 해명(4-18)

 

. 11:4-15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가로되 내가 욥바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마침 세 사람이 내 우거한 집 앞에 섰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베드로가 무할례자의 집에서 먹게 된 경위를 차례대로 설명하여 주었다.  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여 베드로를 힐난하였으나 베드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분명히 깨닫고 행한 것이었다.  알지 못하여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알아듣도록 차례차례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베드로가 설명한 내용은 10장의 내용을 반복한 것이다.

① 기도 중에 계시 받은 일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함(5-10).

② 고넬료의 보낸 세 사람이 시몬의 집 앞에서 찾고 있었다는 것(11).  10:19에는 두 사람이었으나 여기는 세 사람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처음부터 세 사람이 온 것이다(10:19 해석 참조).

③ 성령이 의심 말고 가라고 명령하므로 여섯 명이 같이 간 일이요 10:23에는 두어 형제라고 했으나 여기는 여섯 형제라고 했다. 실은 여섯 명이다.  이 여섯 명이 이 때에 증인이 되었다.

④ 고넬료가 천사의 지시로 자기를 청하였다고 했음(13-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는 말씀이 10장에는 없었다.  거기에서는 생략했던 것을 여기에서는 말한 것이다.

⑤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서 말할 때에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임한 것처럼 성령이 임하였다고 말함.  4절-15절에 대하여는 10:10-22, 44-46의 해석을 보라.

⑥ 주의 말씀에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는 말씀을 깨달음(16절).

 

. 11:16-17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베드로가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 마3:11 참조)고 하 신 주의 말씀이 생각났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을 보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계시해 주시고 섭리하여 주시고, 친히 일해 주셨다.  이것은 주의 말씀대로 된 것이며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것을 막으면 하나님을 막는 것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설명했다.  이 일이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루어진 증거는

①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여 구원의 말씀을 들으라고 한 일.

②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 주시고,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와서 찾을 때에 성령이 \"의심치 말고 가라\"고 말씀한 일.

③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말할 때에 성명이 임하신 일.  그러므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

 

.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그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을 듣고 베드로를 반대하고 힐난하던 사람들이 잠잠하여지고 도리어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이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반대하다가 갑자기 찬성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세상 사람은 자기체면을 세우기 위하여 틀린 줄 알면서도 끝까지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내려오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하려는 믿음이 있었다. 어떤 일을 반대하다가도 그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을 알았으면 반대하던 것을 즉시 중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자기 위신이나 전통 같은 것을 생각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거역하게 되고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고 만다.

 

三. 안디옥 교회(19-30)

 

. 11:19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베니게 지중해 연안 남북 200km나 되는 지방인데 두로와 시돈이 그 중요한 도시이다.  구브로 구브로는 지중해에 있는 섬인데  팔레스틴에서 가까운 섬이다.  안디옥 팔레스틴 북쪽에 있는데 수리아의 수도이었다.  지중해에서는 27km나 동으로 떨어져 있으나 오른테스강으로 연결되어  있는 큰 항구로서 당시 인구 50만이 살고 있는 로마의 제 3도시이었다.  후에 세계선교의 본거지가 되었고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세계선교를 하게 되었다.

환난을 당하여 흩어진 성도들이 전도하기를 힘썼다.  베니게에 간 사람들은 베니게에서 전도하고, 구브로에 간 사람들은 구브로에서 전도하고, 안디옥에 간 사람들은 안디옥에서 전도하였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힘써서 전도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였다.  그것은 유대주의 사상과 전통이 아직 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고넬료의 가정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과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가 그 사실에 대하여 증거하고 이해시킨 것을 들었을 터인데 유대주의 전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그 모든 전통에서 벗어나서 영의 자유를 찾고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나님이 크게 역사하고 많은 열매가 맺힌 것이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어디를 가든지 힘써 전도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믿는 사람은 복음 전하는 것을 첫째로 하고 힘써서 전해야 한다.  듣든지 말든지 힘써 전파하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 능력이 있고(롬1:16 참조), 성령께서 그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요16:13 참조) 택한 백성이면 언젠가는 믿게 하신다.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해 놓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 정복을 당하여 예수 믿게 되는 날이 온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까 두렵다고 하였다(고전9:16 참조).

 

. 11:20-21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였다.  그 때에 주의 능력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므로 많은 사람이 믿고 주께로 돌아왔다.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순종하여 일 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큰 능력으로 도와 주셔서 원수를 이기게 해 주시고 많은 열매가 맺히게 하여 주신다.  그러나 유대인은 목이 곧고, 마음이 완악하여 복음을 받지 않았다.  유대인은 조상 적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율법의 외부적인 면만 자랑하면서 복음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제는 이방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 11:22-23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 주께 돌아왔다는 소식을 예루살렘 교회가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에 파송하였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많은 사람이 주께 돌아온 것과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바나바는 은혜를 식별할 줄 아는 사람이요, 교회가 잘되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이 기뻐한 사람이다.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초신자는 시험받아 낙심하기 쉽다.  그런고로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서 떨어지지 않아야 믿음이 견고해지고 영혼이 자라나서 장성한 신자가 된다(히5:12-14 참조).

 

.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바나바는 본바탕이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의 일이 잘되어 나간다.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게 된 것은 범사를 선으로 행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말고 선으로이기고, 믿음으로이기면. 자기도 살고 상대방도 살리게 된다.  바나바는 또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항상 성령의 인도를 받아 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바나바의 사역으로 인하여 많은 무리가 주께로 돌아왔다.

 

. 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다소는 사울의 고향이다.  사울이 고향으로 돌아가 있었기 때문에 바나바가 찾으러 간 것이다.  바나바는 사울을 만나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함께 주의 일을 했다.  바나바는 사울을 이해하고 그에게 주신 은혜와 주의 사명을 바로 알고 있었다.  바나바는 전에 사도들이 바울의 개종을 믿지 않을 때에 그들에게 바울을 소개해 준 사람이다(행9:26-27 참조).  사울에게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있게 된 것이 큰 은혜요, 또 바나바가 사울과 같은 사람을 만난 것도 그에게 큰 유익이었다.  이 두 사람이 안디옥에서 일 년간 성경을 가르쳤다.  그 때에 큰 무리가 주께로 돌아왔다.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말씀이 신자들을 든든히 세워 주고 교회를 부흥시킨다.  안디옥 교인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이름이 안디옥 교회에서 최초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뜻인데 처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것들\"이라고 비방하여 부른 말이다 (행26:28 참조).  우리말로 \"예수쟁이\"라는 말과 같다.  세상 사람들이 신자들을 보고 \"예수쟁이\"씨라고 하는 말은 비방하여 하는 말이지마는 그 내용은 예수만 믿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쟁이\"라는 말은 돌쟁이, 미쟁이, 땜쟁이 등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안디옥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말을 붙여 준 것은 그들이 예수 믿는 일만 전문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예수를 전문적으로 믿어야 한다.  세상일은 실패하여도 믿는 일은 실패하면 안 된다.  자기 개인의 일은 실패가 되어도 하나님의 일은 실패가 되면 안 된다.  안디옥 교인들이 이러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성경을 잘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르침을 받는 그대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사람의 책임이 중요하다. 바나바와 사울이 일 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쳤기 때문에 교인들이 좋은 믿음을 갖게 되었다.

교인들의 믿음이 성경에 기초해야 견고하다.  성경에 굳게 선 신앙은 마귀가 흔들지 못한다.  오늘날 교회가 성경을 잘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교인들이 성경을 모르고, 교인들이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신신학과 사이비한 이단과 신비주의에 미혹되고 있다.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을 배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듣든지 말든지 성경을 가르치면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더라도 성령께서 교인들의 귀를 열어 주면 깨닫게 된다.

신령한 귀가 열리기만 하면 성경말씀이 자기의 힘이 되고, 기름이 되고, 자기를 인도하는 등불이 된다.  교역자가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되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  교역자가 성경을 알미니안주의로 가르치면 배운 사람이 알미니안주의로 나가고, 칼빈주의로 가르치면 칼빈주의로 나아간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 신비주의로 가르치면 배우는 사람이 신비주의로 나아가고, 세속주의로 가르치면 세속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에게서 성경을 바로 배웠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이 바로 되고 그 말씀이 힘이 된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쳤다고 하였다(고후2:17 참조).  바울이 신앙 양심을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진리 그대로 가르쳤다.

 

. 11: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내려왔다.

선지자 구약의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는 큰 권위가 있고 존귀한 직분이었다.  그러나 신약의 선지자 직분은 교사와 같은 직분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교회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 문제를 해석하여 주는 직책이다.  이 선지자들이 한 예언은 성경 말씀을 말한 것이다.  성경 말씀이 곧 예언이다(계1:3, 딤전1:18, 벧후1:21 참조).

성경말씀은 모두 다 예언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복 받는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도 앞으로 될 것이므로 예언인 것이다.  신약에 선지자에 대한 말이 많이 나온다(행13:1, 15:32, 19:6, 21:9-10, 고전12:29, 14:29-32, 엡4:11 참조).

 

. 11: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는 영감을 받아 천하가 장차 크게 흉년 들겠다고 예언하였는데 로마 제 4 대 황제 글라우디오 때에 크게 흉년이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흉년과 환난을 그 종들을 통하여 미리 알려 주는 때가 있다(창41:1-7, 29-32, 왕상17:1, 왕하8:1 참조).  하나님께서 흉년을 예고해 주시는 목적은

① 자연과 만물을 하나님이 주장하는 줄을 알게 함이다.

② 회개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③ 미리 알고 그것을 이길 준비를 잘 하게 하기 위함이다.

④ 그 일이 이루어질 때에 하나님만 의뢰하고 순종하여 잘 이겨 나가게 하기 위함이다.

오늘날도 선지자들이 아가보와 같이 예언을 할 수 있는가?  표준계시는 사도와 그 수종자들에게까지 종결이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성경을 보고 예수를 믿는 시대이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장차 흉년이 들것을 안다. 마태 24:7-8절에는 말세에 큰 기근이 온다고 하였다.  또 아모스 8:11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온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장차 흉년이 들것을 이 성경을 보고 깨달아 준비해야 한다.  항상 풍성하여 좋은 때만 있는 줄 알지 말고 장차 어려운 때, 위험한 때, 기근의 때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평안할 때에 앞으로 환난이 올 것을 알고 준비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 11: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크게 흉년이 들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인들이 연보를 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보냈다.  이방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통하여 신령한 복음을 받았으니 물질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롬15:25-27 참조).  안디옥 교인들은 흉년들어 궁핍한 중에서도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구제하기를 힘썼다.  이것은 그들이 믿음을 쓴 열매요, 예루살렘 교회에 큰 위로가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다(빌4:17-18 참조).

 

. 11: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안디옥 교인들이 연보하여 그 교회의 두 기둥과 같은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에게 보낸 것은 재정 취급의 중대성을 깨달아 이 일로 인하여 마귀가 틈타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아무나 훼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요, 교회간에 참다운 교통이 이루어지기 위함이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함이다.  장로 연장자(年長者)로서 교회와 유지(有志)나, 감독들(교역자)(행20:17, 28참조)을 말하며, 또 사도들을 장로라고도 하였다(벧전5:1, 요이1:1 참조).  장로들에게 연보를 보내서 그 장로들로 하여금 교회의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게 한 것이다.

 

제 12 장  출 옥

 

(대  지)

一. 야고보의 순교(1-2)

二. 베드로가 옥에 갇힘(3-4)

三. 교회가 기도함(5-6)

四. 천사가 구해줌(7-12)

五. 보고(報告)한 후 피신함(13-17)

六. 옥졸들이 사형됨(18-19)

七. 헤롯이 충이 먹어 죽음(20-23)

八.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함(24-25)

 

(본문 강해)

 

一. 야고보의 순교(1-2)

 

. 12:1-2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그 때에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방 안디옥까지 널리 전파될 때에 예루살렘 교회에는 큰 박해가 일어났다.

헤롯 대헤롯의 손자이며 헤롯 아그립바1세이다.  이 헤롯은 로마 황제의 특별한 호의로 팔레스틴 전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기회주의자로서 로마인과 유대인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였다.  헤롯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얻고자하여 기독교를 핍박하였고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인 것이다.  주님의 12제자 중 야고보가 최초로 순교를 당하였으며, 이 야고보는 베드로 및 요한과 더불어 주님께서 특별한 훈련을 시킨 제자였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눅8:49-55참조)와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변화할 때 (마17:1-8 참조) 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마26:36-46 참조) 이 세 제자를 데리고 가서 특별히 보여 주시고 들려주시고 훈계하여 주셨다.  이렇게 특별히 훈련시킨 야고보를 이 세상에서 일을 많이 하기 전에 왜 빨리 데려가셨을까?

① 하나님께서는 흠 없는 양을 먼저 제물로 받으시는 것이다.

②순교는 하나님을 위한 일 중에 가장 큰 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일이 가장 큰 일인 것과 같다.

③ 순교는 땅에 떨어지는 한 알의 밀이요 종자이므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기초 공작이요, 농장에서 파종하는 일과 같다(요12:23-25 참조).

④ 순교는 본인에게 있어서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키워지는 일이다(고후5:4 참조).  그러므로 순교하는 때가 가장 영적 수입이 많은 때이다(계2:9, 10 참조).  이것은 마치 상인이 대목장에서 큰 성공을 하여 거부(巨富)가 된 것과 같다.

⑤ 순교자는 하늘나라에 가서 특별한 반열에 참여하게 되고 큰 영광과 상급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러므로 주께서 야고보를 특별히 훈련시키시고 먼저 순교의 제물로 받으신 것이다.  야고보가 순교를 당한 것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이다.

마태20:23에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야고보가 장차 순교 당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순교는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생명을 바꾸어 가지는 것이다.  육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좋고 예수님의 사랑이 더 좋아서 거기에 생명이 삼키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순교는 큰 은혜이며 아무나 순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야 순교할 수 있다.  순교자는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자이다.

㉡하늘나라에 특별 좌석권(鹿席券)이 있는 자(예정된 자)라야 순교를 당할 수가 있다(계6:9-11참조).  순교자가 앉을 예정 된 좌석수가 있는데 거기 예정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순교를 당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므로 순교하지 못한다.

 

二. 베드로가 옥에 갇힘(3-4)

 

. 12:3-4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헤롯이 야고보를 칼로 죽이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기뻐하였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또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세상이 성도들을 미워하는 것은 예수님을 먼저 미워하기 때문이다(요15:18-19 참조).  헤롯왕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줄도 모르고 정권 유지를 위해 유대인의 환심을 더욱 얻고자 베드로도 죽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베드로를 잡아 옥게 가두었다.  마침 무교절이기 때문에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어 놓았다가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어 죽이려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더럽히지 않고 좀더 잘 지키기 위해서 유월절 후에 죽이려 한 것이다.  그들이 유월절과 유월절 양의 참 뜻을 알았더라면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나, 의식주의자들은 소경이라 신령과 진정은 모르고 항상 진리를 대항하고 더욱더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된 것이다.

 

三. 교회가 기도함(5-6)

 

.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베드로가 옥에 갇혔는데 온 교회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환난 때에는 교회에 나오지 않고 도망치는 신자도 적지 많은데 이렇게 온 교회가 모여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 것을 보면 모두가 순교자적인 신앙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히브리13:3에 \"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하였다.  다른 성도가 믿음을 지키다가 감옥에 갇히면 자기가 갇힌 것처럼 생각하여야 한다.  성도는 누구나 다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한 지체가 감옥에 갇히면 자기도 갇힌 것과 마찬가지이다.  감옥에 갇힌 성도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감옥에 갇힌 자도 은혜와 힘을 얻고 자신들에게도 큰 은혜가 된다.  교인들이 이렇게 큰 환난 중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도한 것은 육신의 생명보다 영의 생명을 더 귀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마태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였다.  육신의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실 수 있기 때문에 마땅히 두려워하여야 한다.  성도가 육신의 생명보다 영혼을 더 중히 여기고, 영혼을 살려 나가도록 힘써야 한다.  영이 사는 것이 첫째이고, 몸이 사는 것이 둘째이다.  육신이 옥에 갇혀도 영이 살면 자유와 평안이 있고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위로와 생명을 주신다.

중생한 영혼은 다시 죽지 않는다.  중생한 영혼이 날마다 자라나고, 새 생명을 얻어 나가고 소생하여 올라가야 한다.  환난을 만났다고 하여 성도들이 믿는 일을 안하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지 못하면 영이 소생하여 올라가지 못하고 생명의 역사가 없고 죽은 믿음이 된다(약2:26 참조).

 

. 12:6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어 놓았는데 베드로는 두 군사 틈에 있어 그들과 함께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또 다른 군사 두 명은 첫째 문과 둘째 문에서 파수를 보고 있었다 (10절 참조).

누워 자는데 야고보를 죽인 헤롯왕이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고 다음날 아침에 끌어내어 죽이려고 하였으나 베드로는 감옥에서 쇠사슬로 묶인 채 누워 잠을 잘 잤다.  이것은 베드로의 특별한 믿음이었다.  베드로의 신앙은

① 하나님의 주권을 믿은 신앙이다.

② 생명을 하나님께 바쳐 놓고 나가는 신앙이다.

③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는 자리에 들어간 신앙이다(빌1:21 참조).

④ 육신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참께 있을 욕망을 가진 신앙이다(빌1:23 참조).

 

四. 천사가 구해줌(7-12)

 

. 12: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홀연히 천사가 나타나서 베드로의 옆에 서므로 옥중에 광채가 환하였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우며 \"급히 일어나라\"고 하였다.  그때 베드로의 손에서 쇠사슬이 벗어져 나가는 하나님의 큰 이적이 나타났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한 마음으로 잠자고 있었다.  시편127:2에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주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안식을 준다는 말이다.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놓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안식을 누리는 생활이 귀중한 것이다.  사람이 쇠사슬로 결박해 놓아도 주의 명령 한 마디면 불탄 실같이 순식간에 다 벗어져 나간다.

 

. 12:8-10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쌔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천사가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그대로 순종하니 또 천사가 말하기를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따라가면서도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 줄로 알았다.  첫째 파수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를 때에 문이 저절로 열려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견고한 쇠문으로 잠가 놓았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열면 열리지 않을 것이 천하에 아무 것도 없다.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어 쇠문을 잠가 놓고 군사 네 명씩 네 패로 지키게 하고 베드로의 양손은 군사 두 사람의 손에 함께 쇠사슬로 묶어 놓아 물샐틈없이 지키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앞에서는 그것들이 없는 것과 같았다.  시편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하였다.

인간이 아무리 지키려고 하여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헛되이 지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한 번 닫아 놓으면 사람이 아무리 열려고 하여도 열지 못하고, 아무리 견고히 잠가 놓았어도 여호와께서 열면 열리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

 

. 12: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천사가 떠나간 후에야 베드로가 정신이 났다.  그리하여 주께서 천사를 보내어 자기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해 주신 것과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히 크신 것과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베드로는 감사하는 마음이 넘쳤다.  우리 성도들도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사망 가운데서 하나님이 능력으로 건져 주신 일이 많이 있다.  6.25사변 때에 3.8선을 열어 주셨고 사망의 골짜기에서 건져 주셨고 병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건져 주셨다.  그러나 건짐을 받은 후에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많지 않고 주를 위하여 사는 자가 많지 않다.

 

.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베드로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옥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마가요한의 다락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는 것을 베드로가 잘 알고 있었다.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빨리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함께 감사하려 했던 것이다.  초대 교회는 슬퍼할 때에 같이 슬퍼하고 기뻐할 때에 같이 기뻐하는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생명과 모든 성도의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五. 보고(報告)한 후 피신함(13-17)

 

. 12:13-14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밖에 섰더라 하니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리니 로데라 하는 여자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을 듣고 너무 기뻐서 대문을 미처 열지도 않고 뛰어 들어가 방안에 있던 성도들에게 베드로가 대문밖에 섰다고 알려 주었다.

 

. 12:1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베드로가 대문밖에 왔다는 말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로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것을 보면 그들이 기도한 내용은 베드로의 석방을 위한 것이 아니고, 베드로가 감옥에서 신앙으로 승리하기를 기도한 것 같다.

네가 미쳤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실제로 보고 사실을 말하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미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사실을 본 사람들은 확실하고 정신차린 말을 하는 것이다.

그의 천사라 베드로를 지키는 천사가 온 모양이라고 하였다.  성도가 어려운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보호하여 주신다.  그러나 각 사람마다 개인의 천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천사를 보내어 모든 성도들을 항상 지켜 주신다.  히브리1:14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명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고 하였다.

 

. 12: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로데가 말하기를 참으로 베드로가 왔다 하고 베드로는 계속하여 문을 두드리기 때문에 저희가 나가서 대문을 열고 보니 베드로가 와 있었다.  증거하는 말을 믿지 알고 미쳤다고 하여도 사실이면 계속 증거하여야 된다.  문을 두드릴 때에 인정하지 않고 열어 주지 않아도 계속 두드리면 마침내 문이 열리고 사실을 보고 알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이면 쉬지 말고 계속 증거하고 두드려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성공할 날이 온다.

 

. 12:17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그들이 베드로를 보고 너무 기뻐서 떠들 때에 베드로가 손짓하여 무리를 조용하게 한 후 주께서 자기를 옥에서 이끌어 내신 일에 대하여 말하여 주었다.  그리고 야고보(주의 동생)와 형제들에게도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베드로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그 곳에서는 일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다른 곳에서 전도하기 위하여 떠났다.  야고보 이 야고보는 주의 동생 야고보이다(마13:55 참조).  주님의 제자 야고보는 이미 순교를 당하였다.  주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갈2:9 참조).

 

六. 옥졸들이 사형됨(18-19)

 

. 12:18-19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숫군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하니라

베드로를 지키던 군사들은 베드로가 없어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옥에서 나오게 하실 때에 그 파숫군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는지 또는 눈을 어둡게 하여 보지 못하게 하셨는지 알 수 없다.  옥졸들은 날이 밝은 다음에야 베드로가 없어진 것을 알고 큰 소동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마침내 헤롯에게까지 보고되어 헤롯이 베드로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지 못하고 베드로가 없어진 까닭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므로 헤롯이 파숫군들을 심문하고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주를 위하여 죽고자 하던 성도는 구출되었고 성도를 죽이려고 지키던 자들이 도리어 죽게 되었다.  헤롯왕은 베드로를 죽여 유대인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가이사랴로 내려갔다(시2:1-4참조).

 

七. 헤롯이 충이 먹어 죽음(20-23)

 

. 12: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 아그립바가 두로와 시돈 사람을 대단히 노여워하였다.  두로와 시돈 지방은 베니게의 중요한 항구 도시인데 헤롯의 관할이 아니고 수리아에 속해 있었다.  이 두로와 시돈 지방 사람들은 유대 땅에서 나는 양식을 사다가 먹었던 것이다.  헤롯이 그 지방 사람들과 충돌이 생겨 대단히 노하고 그 지방에 양식공급을 중단했다.  그로 인하여 그 지방이 대단히 궁핍을 당하여 곤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왕의 침소를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간절히 화목하기를 청하였다.  세상은 언제나 세력이 약하고 가난한 자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것이 통례이다.

 

. 12: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오세프스 역사에 의하면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위한 축전을 개설하였을 때 그 축전 제 2일에 헤롯이 은빛 나는 찬란한 옷을 입고 높은 왕좌에 앉아 참관인들 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이 때를 화목할 기회로 삼았다.

 

. 12: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이것은 백성이 아부하는 소리이다.  백성들은 이와 같이 권력있고 부유한 사람에게 아부하여 자기들의 이를 보려고 한다.  그들은 헤롯왕을 신격화(神格化)한 것이다.

 

. 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이 징계를 내리매 충이 먹어 죽었다.  일제 때에도 일본 천황이 자기를 신이라고 하였다.  일본사람들은 일본천황을 사람으로 나타난 신(顯人神)이라고 하였다.  2차 대전 종말에 맥아더 장군이 일본 천황에게 항복을 받을 때에 \"나는 신에게 항복을 받을 수 없으니 천황이 자기가 신이 아니요 사람이라고 공포한 후에야 항복을 받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때에 천황이 할 수 없어 \"나는 신이 아니요 사람이다\"라고 공포한 후 항복을 했다고 한다.  일본도 천황을 신이라고 하다가 결국은 망하고 말았다.  사람이 신의 자리에 앉아서 신의 대접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말라기2:2에 \"내 이름을 영화롭게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느니라\"고 하였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만 위하고 그 이름만 높여야 한다.  고전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자기는 낮아져야 한다.  자기가 낮아질수록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  영광이 자기에게 오면 즉시 하나님께로 돌려야 한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고 할 때에 헤롯이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는 것은 속으로 좋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제가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자 기에게 돌아오려고 할 때에 아니라고 하여야 한다.  \"아니라\" 할 때에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환하게 비치는 것이다.  만일 아니라는 소리를 안 하면 양심을 쓰지 않는 것이요 흑암에 싸이고 마귀의 그물에 걸리게 된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제가 받으면 헤롯처럼 하나님께 저주를 받을 것이다.

 

八.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함(24-25)

 

. 12:24-25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더 흥왕하여진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어 주시고 교만하여 하나님의 대적이 된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여 죽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힘있게 흥왕하여 나아가게 된다.  누구든지 교만하면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한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구원사업만 위하여 충성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끝까지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흥왕하여 나가도록 하나님이 일해 주신다.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를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마가는 이때부터 그들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제 13 장  안디옥

 

(대  지)

一. 선교 사업(1-12)

  1. 선교사 파송(1-3)

  2. 요한을 수종자로 데리고 감(4-5)

  3. 바예수가 복음을 막다가 소경이 됨(6-12)

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함(13-43)

三. 핍박 중에 복음이 전파됨(44-52)

 

(본문 강해)

 

一. 선교 사업(1-12)

 

1. 선교사 파송(1-3)

 

. 13:1-3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선지자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선지자는 교사와 비슷한 직책인데 교사보다 신령한 면이 더 있다.  성경 말씀의 신령한 뜻을 잘 깨닫고 잘 가르치는 직분이다.  후에 점차로 교사직과 합해져 버렸다(행11:27 해석을 보라).  교사 가르치는 직분을 가진 사람이다.  바나바는 예루살렘에서 안디옥 교회에 파송한 사람이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니게르는 흑인이라는 뜻이다.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분봉 왕 헤롯은 헤롯 안디파스이다.   마나엔의 어머니가 헤롯의 유모이었다고 하는 설이 있고, 마나엔이 헤롯과 같이 자라났다고 하는 설도 있다.  하여간 마나엔은 헤롯의 궁중에서 자라난 귀족이 분명하다.  이러한 귀족이 기독교에 들어온 것은 그가 큰복을 받은 자이고, 교회에도 유익이 많았을 것이다.  사울 사울과 같이 훌륭한 교사가 있는 것은 큰 은혜이었다.  안디옥 교회의 특징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는 교회이다.  먼저 바나바와 사울이 일 년간 성경을 가르쳤고(행11:25, 26 참조).  또 교회 내에 선지자와 교사가 많은 것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또 열심히 가르친 교회이다.

둘째, 협동정신이 강한 교회이다.  니게르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흑인이요,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은 귀족이요, 사울은 젊은 사람이다.  이로 보면 안디옥 교회의 협동정신은 훌륭하였다.

㉠ 인종 차별이 없이 협동하였다(흑인종, 황인종).

㉡ 민족 차별이 없이 협동하였다(유대인, 이방인).

㉢ 귀천의 차별 없이 협동하였다.

㉣ 노소가 차별 없이 협동하였다.

㉤ 유무식(有無識)의 차별 없이 협동하였다.

㉥ 빈부의 차별 없이 협동하였다.

우리 성도들이 노소, 빈부, 유무식의 차별을 두거나 지방적인 차별을 한다면 신앙에서 떠난 것이다.  참된 성도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협동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나가야 한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교회는 몸이며, 우리는 각 지체이다.

셋째, 안디옥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이었다.  온 교회가 모여 기도하기를 힘썼다.  금식을 하며 기도한 것은 그 목소리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기 위함이었다.  기도를 힘써서 하는 신자가 생명력이 있다.  기도하지 않는 신자는 신앙이 죽은 자이다.

넷째, 성령의 감동과 인도를 잘 받는 교회이다.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전도를 보내라고 할 때에 그대로 순종하였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강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모든 일을 처 리 하는 교회이다.

다섯째,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이다.  안디옥 교회는 기둥과 같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자기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고 신앙을 인도해 주던 어머니와 같은 이 두 사람을 내보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겠으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저들은 순종하여 내보냈다.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여 선교사로 보내었다.  이로써 세계 선교가 시작되었고 안디옥 교회는 세계선교의 본거지요 모교회가 되었다.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으로 선교사 두 사람을 보냄으로서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고 기독교인이 7억 이상이 되었다.  참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면 후대에 많은 열매가 맺힌다.  우리도 우리의 건강, 재산, 생명까지 바쳐서 복음을 세워 나가도록 힘써야 되겠다.

 

2. 요한을 수종자로 데리고 감(4-5)

 

. 13: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가서

실루기아 안디옥의 서편 25km 지점 해변에 있는 항구이다.  구브로 팔레스틴에서 가까운 섬이며 바나바의 고향이다.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일하였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하는 일은 실패가 없고 반드시 성공한다.  그들이 구브로 섬에 가서 살라미라는 곳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하였다. 그때 바나바와 사울이 마가요한을 수종자로 데리고 갔다.  바나바가 자기 고향에 먼저 전도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 13: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쌔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살라미 구브로 동쪽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유대인들이 모여 거하는 곳에 회당이 있었다.  이 회당은 예배드리는 곳이 아니고 원래 율법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도하고, 다음에 이방인에게 전도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10:5, 6 참조)는 주의 말씀에 의한 것 같다.  요한 마가요한을 말한다.  복음운동을 하려면 수종자가 필요하다.  수종자는 조수 또는 조사와 같은 것이다.

 

3. 바예수가 복음을 막다가 소경이 됨(6-12)

 

. 13:6-7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온 섬 구브로를 가리킨다.  구브로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라는 곳에 이르러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났다.  그 이름은 바예수이었다.  바예수 예수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즉 신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이 이름은 다른 사람을 미혹시키기 쉬운 이름이었다.  구브로에 서기오 바울이라고 하는 총독이 있었는데 그는 바예수를 선지자로 알고 친하여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그 총독은 지혜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바나바와 바울이 그 지방에 와서 전도하는 것을 알고 그들을 청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 지혜 있는 사람은 진리를 배우려 하고 바른 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 13:8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파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엘루마 박수라는 뜻이다.  이 사람이 바나바와 사울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방해를 하였다.  총독이 예수를 믿게 되면 자기의 거짓된 것이 다 드러나고, 자기가 총독에게 받고 있는 많은 대접과 높임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총독이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려고 여러 가지로 수단을 써서 방해한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예수를 믿게 되면 마귀를 섬기던 자가 하나님을 섬기게 되어 마귀의 나라가 점점 멸망하게 되므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더욱이 총독 한 사람을 잃게 되면 마귀의 나라에 막대한 손해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마귀가 최악의 발악을 한 것이다.

 

. 13:9-11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사울을 처음으로 바울이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사울이 바울로 된 것이다.  \"바울\"은 라틴어로 \"근소자\" 즉 \"적다\"는 뜻이다.  보통 사람은 자기 이름을 좋게 \"큰 자\"라고 부르기 쉬운데 바울은 일부러 자기 이름을 \"작은 자\"라고 고쳤다.  바울은 딤전 1:13에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또 자신을 \"죄인 가운데 괴수\"라고 하였다(딤전1:15 참조).

고전15:9에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 하였다.  바울이 전에 교회를 훼방하고 핍박하였으며 예수님을 능욕한 죄를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고 현재에도 자기가 죄인 가운데 괴수인 것을 분명히 알고 \"작은 자\"라는 이름을 좋게 여겨 부른 것 같다.  이 후부터는 내내 바울이라고 불렀다.  바울은 언제나 자기가 되지 못한 줄로 알아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다.  성도가 사도 바울과 같이 항상 겸손하여야 한다.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줄로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없는 줄로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세가 처음에는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줄로 알고 제가 하려고 하다가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으로 도망쳤다.  모세가 미디안에서 40년을 지낸 다음에는 자기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줄로 깨달았다.  그 때에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쓰셨다.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자기가  하겠다고 날뛰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게 된다.  산 나무로는 집을 지을 수 없고 죽은 나무라야 집을 지을 수 있다.

바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바예수를 주목하고 책망하였다.  대적이 강한 때에는 성령의 충만을 받지 않고는 그것을 대적하여 이길 수가 없다.  여기 성령 충만은 영감에 온건히 붙들려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그 시간에 전적으로 받는 상태이다.

바울이 성령으로 바예수에게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의의 원수요,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않는 자라고 책망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거나 또 바른 진리를 받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들은 다 이와 같이 책망을 받을 자들이요, 벌써 이와 같은 책망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바울은 또 주의 손이 너를 징계하여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고 책망하였다.  그 때에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소경이 되었다.  바예수가 소경이 된 것은

① 하나님의 복음을 반대하고 방해한 죄이다.  복음을 반대하는 자는 영적 소경이 된다.

② 믿고자 하는 자를 믿지 못하도록 한 죄이다.  예수께서 소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마18:6 참조).

③ 하나님의 종을 반대한 죄이다.  하나님이 친히 쓰시는 참 종을 반대하는 것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배척하는 일이다.  누구나 이 세 가지 죄를 지으면 영적 소경이 되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흑암 중에서 방황하게 된다.  이러한 자들은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마귀의 종노릇하다가 망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감동시켜 바른 진리와 바른 길을 알게 하여 줄 때에 양심을 써서 그 길을 따라가려는 정신이 있어야 눈이 밝아진다.  하나님의 바른 복음을 받고도 그 복음을 따라가려고 힘쓰지 아니하면 점점 소경이 된다.  바예수가 심령의 눈이 어두워진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육신의 눈을 어둡게 한 것이다.

 

. 13: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하나님께서 대적을 심판하는 것을 보고 믿음에 더욱 굳게 서는 자가 많이 있었다.  참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기이한 생명의 세계가 열리게 된다.  총독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과 생명의 구주인 것을 믿은 것이다.  구브로에서 총독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아주 큰 열매가 맺힌 것이었다.

 

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함(13-43)

 

.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바울과 그 일행이 구브로 섬에서 떠나 밤빌리아의 버가라는 곳으로 갔다.  밤빌리아는 소아시아 남쪽에 있는 로마의 한 주로서 버가는 그 수도이었다.  이로써 복음은 소아시아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바울 일행이 버가에 이르렀을 때에 수종자로 따라다니던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마가요한은 너무 고생이 심하기 때문에 돌아간 것 같다.  이 일로 후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진 원인이 되었다.  마가요한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수종들려고 출발하였으나 너무 고난이 많기 때문에 도중에 마음이 변하였다.  가는 곳마다 영접은커녕 핍박이 많고 음식이나 잠자리도 아주 불편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결심한 것을 바꾸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교역자가 개척교회를 하다가 고난이 많다고 그만두는 것은 마가요한과 같은 사람이다.  개척교회 하는 일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만 의뢰하고 일심전력을 다 기울이면 하나님이 되게 하여 주신다.  핍박과 환난이 있을 때에 참고 견디지 못하여 뒤로 돌아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히10:38-39 참조).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궁핍을 당하기도 하고 환난과 핍박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의 고난에 참여하는 길이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면 예수님의 영광에도 참여할 날이 온다.  마가요한이 돌아섰기 때문에 바울을 섭섭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에 많은 지장을 준 것 같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는 수종자가 필요한데 마가가 도중에 돌아가 버렸으므로 많은 지장이 있었다.  마가는  바나바와 바울 같은 훌륭한 사도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면 가는 곳마다 복음이 잘 전파되고 좋은 대접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따라 가보니 고생만 죽도록 하였다.  많은 고난이 올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끝까지 받들어 나아가면 하늘나라에 가서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선지자가 하는 일을 받들어 주면 선지자의 상급을 같이 받는다(마10:41 참조).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 나아갈 때 고난이 오면 하나님이 주시는 십자가인 줄로 알고 잘 참아야 한다.  어려운 환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온다.  하나님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시험을 감당하려면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 써야 한다.  마가가 고난이 많으므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뒤로 물러가 하나님의 일에 방해를 하였으나 나중에는 회개하고 바울에게 좋은 협력자가 되었다(딤후4:11 참조)

 

. 13:14-15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읽은 후에 회당장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비시디아 안디옥 비시디아는 소아시아 지방으로서 로마의 한 주였다.  그 지방에 있는 도시 안디옥에 바울 일행이 도착하였다.  회당 유대인들이 모여 율법과 선지자위 글을 읽고, 백성에게 권할 말이 있으면 권하는 곳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안디옥에 있는 회당에 들어갔다.  회당장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바울과 바나바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권할 말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도할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다니면 하나님께서 전도할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복음을 받을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신다.

 

. 13: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인정해 주면서 하나님을 바로 경외하여야 될 것을 말해 주려고 하였다.

 

. 13: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을 선택해 주시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큰 권능으로 구원하여 주셨다고 바울이 말해 주었다.

 

. 13:18-19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약 사 백 오십 년간)

하나님이 큰 권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었으나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을 많이 하였다.  하나님은 그것을 끝까지 참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주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 것은 그들이 의롭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 때문이었다(창15:7).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선택의 하나님인 동시에 약속의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셨다는 것을 바울이 암시하는 것이다.  가나안 7족속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은 것이다(창15:16 참조).

사 백 오십 년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들어갈 때부터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눌 때까지의 연대라고 한다.  즉 애굽생활 400년간, 광야생활 40년간, 가나안 정복기간 10년간을 합하여 450년이라고 한다.

 

. 13: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푸셨더니

그 후에 여호와께서 사사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보호해 주셨다.  사사시대에는 하나님이 직접 다스렸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할 때에 하나님이 왕을 세워 주기로 하셨다.  왕을 세운 다음에는 하나님이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제 1대 왕으로 사울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40년간 다스리게 했으나 이 사울왕이 하나님을 순종치 않으므로 폐하셨다.

 

. 13:21-22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푸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 다윗왕을 세우시고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다윗은 어떻게 하여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는가?

① 하나님과 심령으로 늘 교통하는 생활을 하였다(삼상16:7 참조).

②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삼상17:26 참조).

③ 하나님의 권능을 의뢰하였다(삼상17:45 참조).

④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다(왕상14:8 참조).

⑤ 선한 양심을 써서 정직하게 행했다(왕상14:8 참조).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려면 첫째, 종이 되어야 한다.  종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순종해야 한다.  자기를 위하고 자기 생각대로 하면 종의 위치를 떠난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말씀을 순종하여 나가다가 혹 쓰러지게 되면 또 일어서서 그 말씀을 순종해 나가야 한다. 백절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가야 한다.

셋째,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아야 한다.  마음 전체를 다 기울여서 하나님을 의뢰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하여야 한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머물게 된다.

넷째,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는 악에서 신앙양심을 똑바로 써서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천하를 다 준다고 하여도 그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다윗이 범사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다.  다윗은 아버지의 양 을 칠 때에나 사울왕 앞에 쫓기어 다닐 때에도 범사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하려고 힘썼다. 우리 성도가 신앙양심을 똑바로 써서 하나님 앞에 정직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 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을 구주로 세우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보내어 구주로 삼으셨다고 바울이 증거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삼하7:12-16)과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창15:18, 22:18)을 근거로 말한 것이다.  예수께서 구주가 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이 성취된 것이라고 바울이 증거하였다.

 

. 13:24-25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풀었는데 그는 의인이요,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로 모든 백성이 알고 있었다(마21:26 참조).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 주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뒤에 오시는데 자기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 13:26-30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구원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한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관원들이 신령한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전2:8 참조).  그들이 안식일마다 선지자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 신령한 뜻을 알지 못하여 예수를 정죄하고 죽였다.  그러나 그 실상(선지자의 글의 중심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가리킨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서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했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고 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예수님의 죽음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취된 것이다(사53:1-12, 시22:1-21 참조).

나무에서 내려 십자가에서 예수의 시체를 내려 무명에 장사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성경대로 된 것임을 명백히 증거하였다.

 

. 13:31-32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예수의 부활을 여러 사람이 보았고 그들이 백성 앞에서 증거하고 있다고 바울이 말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다.  바울은 이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는 것이라고 유대인들에게 말하였다.

 

. 13: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오늘 너를 낳았다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하여 세상에 오신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영원히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 세우실 것을 가리킨다.  우리 자녀들에게 구원계약에 참여한 우리들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 13: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이사야55:3의 인용이다.  다윗의 거룩하고 미쁘신 은사는 다윗에게 허락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이며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성취되었다.

 

. 13:35-37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다윗이 시편16:10에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였다.  다윗이 이렇게 말한 것은 다윗 자신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죽어 썩음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켜 이 성경을 성취시킨 것이다.

 

. 13: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이신데 이 예수를 믿음으로만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 얻는 도를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전해 주었다.  전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속죄의 도리이다.  속죄의 도리가 빠져 버리면 기독교의 생명이 빠져나간 것과 같다.

 

. 13: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함을 얻을 자는 한 사람도 없다(롬3:10, 3:19-20, 8:3 참조).  예수를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얻게 된다.

 

. 13:40-41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찌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바울은 하박국1:5의 말씀을 인용하여 조상들이 선지자의 말씀을 멸시하다가 망한 것같이 너희도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말씀을 믿지 않고 멸시하다가 망할까 두려워하라고 경고했다.

한 일을 행할 것이니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이루어질 것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은 하나님의 비밀이므로 사람의 지혜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할 일치며 다만 성령으로만 알 수 있다(고전2:6-14 참조).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외모로는 보잘 것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멸시한다.  그들은 속에 있는 그리스도와 생명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외모만 보고 멸시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에 놀라고 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며 하나님 의 구원운동은

① 신령한 일인 것이다.

② 사람으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

③ 외모로는 멸시받을 만하다(사53:2-3 참조).

④ 많은 사람들이 그 증거를 받지 않고 멸시한다.

⑤ 멸시하는 사람들은 놀라고 망하게 된다.

바울은 그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에게 전하여 준 그리스도의 구속을 멸시하지 말고 믿으라고 권고하였다.

 

. 13:42  저희가 나갈쌔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바울이 복음 전하는 것을 듣고 사람들이 다음 안식일에 또 말해 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은혜 받은 증거이다.  은혜를 받아 그 말씀을 믿는 자는 더욱더 그 말씀을 사모하여 또 듣고자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전도하는 말을 듣고 의아한 마음이 생겨서 다음에 더 확실한 것을 듣고자 하는 자도 생긴다.

 

. 13:43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를 듣고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예수를 믿었다.  이것은 성령께서 크게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면하였다.  처음 예수를 믿으려고 하면 시험과 환난이 많을 것이므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권면도 필요하고 본인들이 힘쓰는 것도 필요하다.

 

三. 핍박 중에 복음이 전파됨(44-52)

 

. 13:44-45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 사람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왔다.  바울의 강도를 들은 사람들이 가서 많은 사람에게 선전하여 다음 안식일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왔다.  이것이 도리어 바울에게 불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불신 유대인들의 시기를 사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중운동에는 언제나 시기와 질투가 따르는 것이며 반대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마귀의 역사도 있다.  마귀의 역사가 일어나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바나바를 비방하고 변박하였다.

 

. 13:46-47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가 비방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너희 유대인에게 먼저 전하여야 하겠으나 너희가 복음을 받지 않고 영생 얻기를 거절하므로 이제는 이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겠다고 하였다.  이것도 성경대로 되는 것이라고 바울이 말하였다.  이사야 49:6에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다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하였다.  복음을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으나 그들이 받지 않으므로 이방인에게로 나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운동은 사람이 막거나 비방하거나 배척한다고 해서 막히거나 좌절되는 법이 없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대로 계속 진보되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막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그리스도를 이방의 빛이 되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빛이 이방에 나가게 된다.

 

. 13:48-49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복음을 전하면 믿기로 예정된 자는 다 믿게 된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불택자가 있으나 누가 예정된 자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이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복음을 전해 주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깨달아 믿게 되고 불택자는 깨닫지 못하여 믿지 않는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유대인들은 배척하고 비방하였으나 이방인들은 믿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역사로 그 지방에 두루 복음이 펴지게 되었다.

 

. 13: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그 성내에 유력한 사람들과 귀부인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게 하고 그 지경에서 쫓아냈다.  43절에 보면 믿은 사람들은 경건한 사람들이었고 바울과 바나바를 반대하는데 가담된 자는 귀부인과 유력한 자들이었다.  복음은 지혜 있고 통달한 사람에게는 숨기시고 어 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시는 것이다(마11:25 참조).

 

. 13:51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그곳에서 정박하여 쫓아내므로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갔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어 보내면서 누구든지 영접하지 않고 너희 말을 듣지 않을 때는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마10:14 참조)고 하였다.  이것은 심판 날에 증거가 되기 위해서이다.  또 그 곳에서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는 뜻이 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가지고 가면 안 된다.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받아서 떠날 때에 그 곳에서 무엇을 얻어 가지고 가면 복음의 빛이 가리워진다.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가서 문둥병을 고친 후 많은 선물을 주려고 할 때에 엘리사가 그 선물을 하나도 받지 않았다.  엘리사가 선물을 받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

①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이심을 나아만이 깨닫고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다.

② 하나님을 섬기기로 한 나아만의 신앙을 돕기 위함이다.

③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이 계셔서 지켜 주는 나라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④ 아랍 나라에 사랑의 빛을 지우기 위함이다.

⑤ 다음에 아람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함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 곳을 떠나 이고니온으로 갔다.  이곳에서 핍박하면 저곳으로 가서 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도 않고 막아도 막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하에 이 진리운동을 막을 자가 하나도 없다.

 

.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제자들이 많이 생겼는데 그들은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믿음으로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다.  이것은 처음 믿음이요 처음 사랑이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진리를 점점 더 발견하여 영적 생활이 계속되고 영혼이 자라나야 기쁨의 생활이 계속된다.

 

제 14 장  루스드라

 

(대  지)

一. 이고니온에서 전도함(1-7)

二. 루스드라에서 전도함(8-18)

三. 교회가 견고하여짐(19-28)

 

(본문 강해)

 

一. 이고니온에서 전도함(1-7)

 

. 14: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가까운 곳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동남쪽 140km지점에 있으며 루가오니의 수도였다고 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전도하니 유대와 헬라의 많은 무리가 믿게 되었다.  바나바도 사도라고 칭했으나 바나바가 원 사도 가운데는 속하지 아니하나 넓은 의미에서는 사도라 칭할 수 있다.  원사도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이며 가룟 유다 대신에는 사도 바울이 들어간다.  맛디아는 임시로 사도의 직무를 대신하였다(행1:25 참조).  바나바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허다한 무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추수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곡식 밭이 누렇게 다 익어 추수 때가 된 것과 같은 때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는 곳마다 한 번씩 외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다.

 

. 14:2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에게 악감을 품게 하였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이방인에게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 대하여 악선전을 하여 악감을 품게 하였다.  한 번 악감을 품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줘도 잘 받지 않는다.  반대하는 자는 항상 사람에게 악감을 품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를 항상 경계하여야 한다.

 

. 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주를 힘입어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므로 마귀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두 사도에게 악감을 품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였으나 두 사도는 여전히 주를 힘입어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  두 사도가 주의 능력을 힘입어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므로 반대하는 자들은 말문이 막히게 되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날 때에는 대적하는 자들이 아연실색하곤 하는 것이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막았으나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때에 그의 입이 막히곤 하였다.

 

. 14:4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

유대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복음과 두 사도에 대하여 악감을 품게 만들었으나 두 사도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증거하므로 사도를 따르는 사람들과 유대인의 말을 따라가는 사람들로 나뉘어졌다.  두 사도가 큰 능력으로 복음을 전했으나 택한 백성만 믿게 된 것이다.

 

. 14:5-7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복음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관원들까지 합세하여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하였다.  마귀의 세력이 아주 적극적으로 복음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종을 대적한 것이다.  그 때에 두 사도는 그들을 피해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이 성에서 핍박하면 저 성으로 피하고, 저 성에서 핍박하면 또 다른 성으로 피하면서 복음을 전하라는 주의 명령대로 한 것이다(마10:23 참조).  부패한 종교가들이 세상 세력과 야합해서 기독교를 핍박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있는 일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에도 제사장들과 헤롯과 빌라도가 합세하였다.  루가오니아 소아시아의 중남부 지방이다.  루스드라 루가오니아 지방에 있는 도시이며, 이고니온 남방 30km지점에 위치한 곳이다.  거기에는 디모데와 그 모친 유니게가 있었다(행16:1-3 참조).  더베 루스드라 동남 27km지점에 있는 도시이다.

 

二. 루스드라에서 전도함(8-18)

 

. 14:8-10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루스드라에 나면서부터 걸어 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바울의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 앉은뱅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겸손한 마음으로 믿고 전적으로 받아 들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자기의 심령 속에 생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바울은 앉은뱅이를 볼 때에 이러한 믿음이 있는 것을 성령으로 알게 되었다.  바울의 심령과 앉은뱅이의 심령이 서로 통한 것이다.  바울은 그 앉은뱅이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울은 그 앉은뱅이가 영혼은 이미 구원을 받았고 그 표적으로서 하나님이 그의 육신도 낫게 해 주실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앉은뱅이에게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하였다.  큰 소리 성령의 강한 역사로 소리지른 것이다.  이렇게 강한 성령의 역사로 앉은뱅이가 일어선 것이다.  앉은뱅이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명령인 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영적 힘을 얻어 전적으로 순종을 하니 벌떡 일어난 것이다.

앉은뱅이가 낫게 된 것은

① 하나님이 그 앉은뱅이를 낫게 해 주려고 하였다.

②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바로 전달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 전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③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말로만 아니라 능력과 성령으로 이 말씀을 전하였다(고전2:1-4 참조).  아름다운 말이나 육신의 인정으로 모아 놓은 교인은 육신에 속한 자가 되어 깊은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한 교인은 영이 새 힘을 얻지 못하고 소생하는 역사도 없다.

④ 복음을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믿었다.  바울이 앉은뱅이에게 \"일어서라\"할 때에 그 앉은뱅이의 심령이 벌써 일어선 것이다.  바울이 그 앉은뱅이를 주목하여 보니 그의 심령이 벌써 일어서 있었다.

⑤ 바울이 \"네 발로 일어서라\" 할 때에 앉은뱅이가 힘써 순종하였다.  심령의 앉은뱅이는 이러한 방법으로 일어서는 것이다.  심령의 앉은뱅이가 일어서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름으로 받고 그 말씀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  심령의 앉은뱅이가 일어서면 힘이 없는 자가 새 힘을 얻고, 걷지 못하는 자가 걷고, 달음박질 못하는 자가 달음박질을 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기도 기쁘고 하나님께도 큰 영광이 돌아간다.

 

. 14:11  우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사람의 지혜나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였기 때문에 그 곳 사람들이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고 하였다.  신이 아니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말 한마디로 벌떡 일어나게 할 수는 없다고 그들이 생각하였을 것이다.

 

. 14:12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쓰스는 헬라의 모든 신 중에 제일 높은 신의 이름이다.  신 가운데서도 최고의 신이다.  허메는 신들의 사자, 웅변가, 신탁전달자(神託傳達者)라는 뜻이다.  바나바는 주신(主神)과 같이 느꼈고, 바울은 말을 전하므로 \"신의 사자\"인 줄 알았다.  바나바의 인품이 더 좋고 권위가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은 말은 잘 하였으나 권위는 바나바만 못하였던 것 같다.  루가오니아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라고 생각하여 신의 대접을 하게 된 것은 그들이 참 신인 하나님을 부지불신(不知不信)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 14:13-14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와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섬기는 쓰스 신이 사람이 되어 온 줄로 알았다.  참 신과 참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다 이와 같이 우둔하여 우상만 더욱더 섬기게 된다.

이 때에 바울과 바나바가 가만히 있으면 신의 대접을 받을 수 있고 명령 한 마디로 전부 예수를 믿으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바울과 바나바가 그렇게 하였다면 하나님의 일을 망치고 자기들도 망한다.  또 그렇게 하여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겉으로만 믿는 척하다가 얼마 후에는 그만 둘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과 바나바의 말을 신의 명령으로 알았으나 언젠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신이 아닌 것이 드러나 자기들이 속은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하면 일시는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마귀에게 속아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가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 \"우리도 너희와 같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라\"고 하였다.

만일 바울과 바나바가 그 제사를 받게 되면

첫째, 루가오니아 사람들이 제 2계명을 범하는 큰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이 가리워진다.

세째, 복음을 전하는 일이 다 무너진다.

네째, 그들(루가오니아 사람들)도 망하게 되고 자기들(바울과 바나바)도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가 옷을 찢고 그들 속에 뛰어 들어가 제사를 못하게 말린 것이다.  옷을 찢은 것은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두 사도가 말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들이 자기들에게 제사를 드리겠으므로 화급(火急)히 그들 가운데로 뛰어 들어간 것이다.  이것이 그들을 말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 14: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두 사도가 우리도 너희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바울과 바나바가 신의 대접을 받게 되었을 때에 이 말을 하여 보통 인간들과 같은 자리로 낮아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적인 태도를 말해 준다.

①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이다.

② 사도의 겸손이다.

③ 인간의 연약성과 자기의 부족을 깨닫고 있는 증거이다.

④ 다른 사람에게 과대평가를 받지 않으려는 것이다.

⑤ 하나님과 복음만 높이는 하나님의 종의 태도이다.

⑥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태도이다.

두 사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 이러한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일을 버리게 하기 위함이다.

㉡ 천지와 바다와 만유(만물과 모든 것)를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였다.

복음을 전한 목적은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속의 도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함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을 죄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생명의 열매가 맺히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없는 것은 참 복음이 아니요 미혹시키는 도요, 성경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이다(고후2:17, 4:2 참조).

 

. 14: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인생들이 자기의 길을 가도록 묵인하여 주셨다.  지나간 세대 복음이 들어가기 전 세대를 말한다.  자기의 길 우상 섬기는 것과 헛된 일을 하는 것들을 말한다.  묵인하셨으나 우상 숭배하며 모든 범죄한 행위를 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고, 내버려두었다는 뜻이다 (롬1:24-25 참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어 구속을 이루어 주시고, 복음을 전하여 주는 것은 하나님이 버려 두었던 자기 백성을 찾으려고 착수하신 증거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빛을 비취어 주고, 불러 주고 권고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이때 사람들이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버려 두지 않고 징계하신다.

 

. 14:17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 만한 증거를 주었다 (롬1:19-20 참조).

①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는 일(농사에 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② 결실케하여 주시는 일(우순풍조(雨順風調)로 결실하게 하여 주신다).

③ 음식을 주시는 일 (의식주는 하나님이 주신다).

④ 마음에 기쁨과 만족을 주시는 일(모든 자연 은총을 주어 기뻐하고 만족하게 하신다).

자연 만물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선과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옳다고 바울이 힘써 권면하였다.  바울이 그들에게 자연 은총을 말한 것은 제사 하려는 것을 만류하기 위하여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자연 은총을 들어서 그들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복음은 9절에 벌써 전하여 놓았다.

 

. 14: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들이 신이 아닌 것을 겨우 설득시켜 제사를 못하게 하였다.  한 가지 잘못된 것을 바로 세우려면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고 사욕을 버리고 끝까지 하면 성공한다.

 

三. 교회가 견고하여짐(19-28)

 

. 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하나님의 큰 역사가 있어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서고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존경하고 우러러보는데 마귀의 역사가 크게 일어났다.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마귀의 역사가 그만큼 커진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루스드라까지는 70km나 된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먼 길을 바울을 핍박하기 위하여 찾아 왔다.  유대인들이 무리를 충동시켜 바울을 돌로 치게 하고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은 줄로 알아 성밖에 끌어 내어버렸다.  바울은 이때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후1:8 참조).

그러나 바울은 주를 위하여 죽는 것을 기뻐하고 그것을 소원하였다(빌1:21-23 참조).  바울은 스데반이 순교 당할 때에 가졌던 것과 같은 신앙을 가진 것이다.  스데반을 돌로 쳐죽일 때에 가담했던 바울이 지금은 자기가 스데반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스데반이 전하던 예수를 인하여 돌에 맞아 죽게 되었다.  바울도 스데반과 같이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고 기뻐하였을 것이다.

바울이 이러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스데반이 전도한 열매이기도 하다.  스데반은 죽었으나 좋은 열매가 맺혔고, 그 신앙은 오히려 지금 살아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 14: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제자들은 바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죽은 자와 같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둘러서서 있는데 바울이 살아서 벌떡 일어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능력이며 이적이다.  바울이 돌에 맞아 터지고 피가 나 죽은 것으로 알았으나 일어나 치료도 받지 않고 성에 들어갔다.  이렇게 큰 환난을 받게 된 것은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는 것이다(고후1:9 참조).

바울이 그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다시 복음을 전하였다.  복음 전하다가 돌에 맞아 다 죽게 되었다가 살아났는데 그 성에 다시 들어가고 그 이튿날 다른 성에 가서 또 복음을 전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힘과 성령의 역사로 한 것이다.

 

. 14: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바울이 생명을 내어놓고 복음을 전할 때에 더베에서도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바울이 그 몇 지방을 방문하여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고, 믿음에 거하라고 권면하였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격려하여 주었다.  환난 받는 것이 천국 가는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 가는 성도에게 왜 환난이 필요한가?

① 연단을 받기 위하여(롬5:1-4).

②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기 위하여(벧전4:13)

③ 고난에 참여한 자가 그리스도의 능력에 참여함으로(빌3:10-11).

④ 영혼이 자라나기 위하여(히5:13-14).

⑤ 그리스도의 가신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하여(벧전2:21-25).

⑥ 구원을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벧전4:18-19, 2:12).

⑦ 친국에서 상급을 받기 위하여(계2:10, 마5:10-12).

믿음으로 구원 얻은 성도에게도 환난이 필요한 것이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게 되어 있다.  핍박을 받고 많은 환난을 통과하여야 하늘 나라에 들어갈 때에 영광과 상급이 크다.  그러므로 환난은 잘 믿는 자에게와 잘 믿어 보려고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시험을 이기려고 하면 환난이 많고 시험에 넘어간 사람은 믿음으로 받는 환난이 없다.  마귀가 하라는 대로하는 사람은 신앙적인 환난이 없다.  바람이 불 때에 서 있는 나무가 많은 고난을 당한다.  그러나 넘어져 있는 나무는 아무 환난이 없다.  바람이 그치면 서서 고난을 겪은 나무는 뿌리가 떠 깊이 박히고 잘 자라난다.  그러나 넘어져버린 나무는 썩어진다.  세상은 진리를 거스려 내려가고 성도는 하나님 말씀대로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마찰이 생기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세상과 마찰이 생기고, 안 믿는 식구와 마찰이 생긴다.  성도가 환난을 통과하여야 연단이 되어 하나님 앞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  시험에 넘어가 버리면 환난은 없지만 죽은 믿음이요, 하나님 앞에 가서 칭찬도 없고 상급도 없다.  성도가 많은 환난을 겪을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한다. 환난이 올 때에 마땅히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겪어 나가야 하나님 앞에 가서 떳떳하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

 

.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바 주께 부탁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각처에서 전도하여 교회를 세우는 일에 힘을 많이 썼고 그 교회들을 돌보며 다스려 나가는 일에도 많은 힘을 썼다.  그 일을 위하여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웠다.

장로 교회를 다스리며 가르치는 자인데 지금의 교역자와 같은 위치에서 교역자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금식 기도 중요한 일을 위하여 그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게 하기 위한 기도이다.  주께 부탁 교회는 주님이 친히 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교회는 주님의 통치를 받고, 주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인본주의로 해 나가는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니다.

 

. 14:24-25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도를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비시디아나 밤빌리아는 주(州) 이름이다.  버가 전도하러 가다가 이곳에서 마가가 돌아갔다.  바울이 돌아오는 길에 여기에서 다시 전도하였다(행13:13 참조).

앗달리아 버가에서 27km 떨어쳐 있는 항구이다.

 

. 14:26  거기서 배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바울과 바나바는 제 일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선교의 본거지인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안디옥 교회는 세계 선교 사업을 제 일차적으로 달성한 곳이다.  두 사도의 이룬 그 일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업을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 금식 기도하며 선교사로 보내었던 곳이라는 뜻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여기에서 파송을 받아 이방에 나가 전도하였다.

 

. 14:27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돌아와 교회를 모아 놓고 선교 보고를 하였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었다는 것과 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많은 열매가 맺히게 된 것을 보고하였다.  그들이 파송 받은 모(母)교회에 돌아와 보고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두 사도가 일한 것은 안디옥 교회와 더불어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일한 열매도 교회와 더불어 기쁘게 여기고 감사하여야 할 것이다.

 

. 14: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를 마치고 2차 전도를 떠나기까지 안디옥 교회에 머물렀다.  오래 있으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돌아와 보니 안디옥 교회에 오래 머물면서 목회를 해야 될 사정이 생긴 것 같다 (행15:1-3 참조).  안디옥 교회는 세계 전도(선교)의 본거지인 만큼 본거지가 굳게 서서 잘되어야만 앞으로 세계 선교도 잘 되겠기 때문에 오래 머물면서 교회를 든든히 세운 것 같다.

 

제 15 장  공 회

 

(대  지)

一. 할례에 대한 변론(1-5)

二. 공회 소집(6)

三. 의논(7-21)

四. 공회 결의(22-29)

五. 안디옥 교회에 전달(30-35)

六. 제 2차 전도여행 출발(36)

七.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짐(37-41)

 

(본문 강해)

 

一. 할례에 대한 변론(1-5)

 

. 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안디옥 교회에 내려왔는데 그들은 안디옥 교인들에게 \"너희가 예수를 믿어도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유대인으로 예수를 믿었으나 아직 율법주의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다.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는 자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결국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 15: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유대로부터 내려온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데 바울과 바나바는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로 인해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고 안디옥 교인 중에 동요를 받는 자가 생긴 것 같다(24절).  신앙과 율법, 할례와 구원의 문제는 초대 교회에 있어 처음으로 대두된 중요한 교리문제이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도리에 확고히 서 있었으나 율법주의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미혹시킬 염려가 있고 성도들 중에 미혹 받는 자들이 나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신득구(以信得救) 교리를 확립시켜 놓는 것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인 줄로 깨달았는데 이것은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갈2:1-2 참조).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그 외 몇 형제를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결의하였다.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와 바른 교리를 세울 사명감에서 동행자들과 같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 15: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바울 일행이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간 것은 그 곳 교회도 돌보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도 말해 주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도리를 좀 더 가르쳐서 율법주의자들에게 동요를 받지 않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 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교회와 장로와 사도들의 영접을 받았다.  바나바는 본래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파송하였던 사람이다(행11:22 참조).  사울은 다메섹에서 회개한 후에 바나바가 그를 예루살렘 교회에 데리고 가서 소개해 준 일이 있다(행9:26, 27 참조).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가 그들을 기쁘게 영접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에 나가 전도할 때에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서 행하신 일을 말해 주었다.  이방인들이 구원에 참여한 일과 또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서 일하여 놓은 것을 말해 주었다.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를 세우려는 기초적인 일이었다.

 

. 15: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은 바리새파 중에 기독교 신자가 된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기를 아직 율법과 의식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방인 신자에게도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참 진리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의 전통과 습관에 얽매어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이다.  이 주장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도리를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러한 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신득구(以信得救)의 교리를 확립할 필요성을 깨닫고, 또 공회에서 이 문제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하여 공회소집 전에 유명한 자 몇 사람을 사사로이 만나서 의논한 것이다(갈2:2 참조).  여기에서 유명한 자들은 베드로와 야고보 같은 분들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총회하기 전에 자기들의 의견을 세우고, 자기들이 권세를 잡으려고 임원과 안건을 사전 모의하여 짜고 들어가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자기를 위함이요, 바울이 한 일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에 실수가 없이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기 위함이었다.

 

二. 공회 소집(6)

 

. 15: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할례 문제를 의논하기 위하여 공회가 모인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최초의 광대 회의였다.

장로 사도 외에 교회의 원로급 중견들이다.  그 때 장로를 감독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들은 사도를 도와 교회를 다스리며 성경을 가르치며 양을 먹이고 치는 일을 하였다(행20:28, 29 참조).  이 중에는 예루살렘 교회 감독인 주의 동생 야고보도 있었다.

사도와 장로들과 안디옥 교회에서 온 바울 일행이 모여서 공회를 개최했다.  공회는 하나님의 기관이다.  사도신경 마지막에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라고 하였는데 한 교회의 소공회와 여러 교회가 모인 대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제도적인 교회에 속해 있어야 하고 개교회는 대회(노회와 총회)에 속해 있어야 한다.  개교회에서 처리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는 공회에서 처리하고, 공회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전한 신자와 건전한 교회로 발전해 나아갈 수가 없다.

하나님은 공회(당회나 노회, 총회)를 통하여 일하신다.  공회에서 결의하고, 처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였다(마18:18 참조).  그러나 공회도 사람들의 모임이므로 실수할 수 있는 것이다.  공회의 결정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성경에 의하여 판명된다.

 

三. 의논(7-21)

 

. 15:7-9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공회가 모여 많은 변론을 하였다. 조상 적부터 할례를 행하여 왔고, 오랫동안 율법을 지켜왔는데, 이젠 할례를 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었다.  그러므로 많은 변론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회의 중에는 누구나 자기 의견을 기탄 없이 모두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변론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두어야 한다.  자기 의견만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악한 행동이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말하기 시작했다.

첫째, 전에 고넬료의 가정에서 경험한 것을 들어 말했다.  베드로는 유대인을 위한 사도지만(갈2:8 참조)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여 이방인에게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행11:18)고 말했다.

둘째, 성령을 주신 일로 증거하였다.  고넬료가 복음을 받을 때에 성령이 임하셨던 것을 증거하였다. 하나님께서 할례 받지 않은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성령을 주신 것을 보면 할례 받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외모(유대인과 이방인, 할례자와 무할례자)로 사람을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아신다.  누구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셋째, 하나님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믿음으로 깨끗케 하셨다는 것을 말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치 않고 마음을 깨끗케 하셨는데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이다.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를 믿음으로 영혼이 거듭나는(중생) 것이다.  그 중생한 영혼에게 이용되는 마음은 깨끗한 마음이다.  이것은 중생한 영혼이 마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 15:10-11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베드로의 논증이 계속되고 있다.

넷째,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시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멜 수 없는 무거운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서는 율법을 다 지킨 자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그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으라는 것이 아니고 죄를 깨달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는 것이다(롬3:20, 갈3:24 참조).

조상 적부터 율법을 지켜서 의인이 된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롬3:10) 이방 신자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이 구원해 놓은 그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는 가혹한 일이다라고 증거하였다.

여섯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의 이론으로 구원받는 것은 동일하다고 하였다.  할례나 율법이 구원받는 조건이 될 수 없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확증하였다.

 

. 15: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신앙적으로 권위 있는 베드로가 말할 때 회중이 그것을 받아들여 따라가게 되었다.  공회가 정돈이 되고 조용해졌을 때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이방에 나아가 복음 전파할 때마다 하나님이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 주신 것을 말하였다.

① 성령이 이방에 가서 전도하라고 하신 일(행l3:2-3 참조).

②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돌아온 일.

③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워 준 일.

④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역사한 일.

⑤ 그들이 구원받은 역사는 유대인이 구원받은 것과 동일하였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이 말을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여 할례를 주장하였으나, 베드로와 바나바와 바울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한 일(경험한 일)을 말해 줌으로 그것이 옳은 줄로 알게 되었다.

노회나 총회를 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여야 한다.  자기 의견만 내세우려고 하면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한다.  처음에는 자기 생각이 옳은 줄로 알고 주장하다가도 자기보다 앞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 말하면 따라가야 한다.  회의 때에 자기 의견을 세우려고 하고 자기들의 유익만 도모하려고 하는 회의는 마귀가 주장하는 회의이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 태도이다.

 

. 15:13-15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번에는 야고보가 일어났다.  이 야고보는 주의 동생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었으며 기둥과 같은 인물이었다.

야고보의 논증은, 첫째, 시몬(베드로)이 말한 것을 시인하였다.  그 내용은

㉠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이방으로 보내셨다.

㉡ 이방 중에서 자기 백성(택한 백성)을 취하려 하셨다.

㉢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권고하여 주셨다.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이 친히 하신 것이며 선지자의 말 아모스9:11-12과 합한 것이라고 야고보가 증거하였다.  성경에 근거하여 말하는 것은 힘이 있다.

 

. 15:16-18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야고보의 논증 둘째는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건설을 가리키는데 거기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방인이 구원에 참여하는 것은 영원부터 예정하신 하나님의 경륜이다.  내가 돌아와서 메시야(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말한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 다윗의 왕통이 무너진 것을 말한다.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다윗의 왕통을 영적으로 다시 세우는 일을 뜻한다.

 

. 15: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야고보는 이방인 신자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구원받는 일에 있어서 믿음 외에 다른 것 (할례)을 짐지우는 것은 괴롭게 하는 것이다.

 

. 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야고보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방신자들에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말하고 다른 것은 짐지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우상의 더러운 것 우상의 제물을 가리킨다(29절).  우상의 제물은 하나님 앞에 더러운 것이다.  목매어 죽인 것과 피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으니 피는 먹지 말라고 하셨고(레17:10-11), 목매어 죽인 고기는 피를 빼지 않고 죽였기 때문에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에 위반되므로 목매어 죽인 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다.  야고보가 이 4가지 금기(禁忌)에 대하여 말한 이유는

① 이 4가지가 가장 요긴하기 때문이다(28절).  그러나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② 이것은 성령의 명령이기 때문이다(28절).

③ 기독신자들이 우선 이 4가지를 지키면 다른 말씀도 점점 지키게 되겠기 때문이다.

④ 이방 기독신자들이 우선 이 4가지를 지키므로 안식일마다 각처에서 모세의 글을 읽는 유대인들과 서로 심한 마찰을 피하기 위함이었다(21절).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선 중요한 이 4가지를 먼저 지켜서 마찰을 피한 후에 다른 말씀도 지키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을 유대인 기독신자와 이방인 기독신자간의 조화를 위한 과도적인 교훈으로 보고 그 후에는 그것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신약교회시대에 음행해도 된다는 결론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진리요, 그 말씀대로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이 4가지는 요긴한 것이요, 성령이 명령하신 것임을 기억하여야 한다(28절).  그러므로 신약교회시대 신자들이 이 4가지를 우선 지키고, 십계명과 다른 성경말씀도 지켜야 된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지켜야 한다 (마7:24-27, 요8:31-32, 7:17, 계1:3).

 

. 15: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이방 각 성에도 안식일마다  모세 5경을 읽는 유대인 기독신자들이 있는 고로 기독신자가 지켜야 될 것 (할례는 제외하고) 중에 그들과 심한 마찰이 될 것부터 먼저 지켜 마찰을 피해 나가는 것이 교회발전에 유익하겠다는 것이었다.

 

四. 공회 결의(22-29)

 

. 15:22-27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가결 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공회가 야고보의 제안대로 교리문제를 결의하고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를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들 편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희에게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미혹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므로 유다와 실라를 택하여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로 일치 가결하였다.  이들이 가면 이 편지의 내용을 말로 너희에게 전할 것이라고 하였다

 

. 15:28-29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예루살렘 공회에서 결의한 것은 사람끼리만 모여서 결의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찾아 결의한 것이다.  이 결의는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여 예루살렘 공회로 하여금 그러한 결의를 하게 한 것이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20절 해석 참조).  율법의 의식(의문과 증서)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도말하였다(골2:14-16).  그러나 율법의 의식 속에 내포되어 있는 진리는 오늘날(신약시대)에도 지켜야 된다.  음행을 피하고 우상의 제물과 목매어 죽인 짐승과 피를 먹으면 안 된다.  로마14:1-3에서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라고 말한 것은 레위기 11장에 먹지 말라고 한 동물들을 말한 것이다.  고전 8장의 우상의 제물론에 있어서도 우상의 제물을 먹으라는 말이 없고 우상의 제물이 다른 사람의 양심에 거치는 것이 되므로 먹지 말라는 것이 중심사상이다.  다른 사람의 양심에 거치는 것이 되면 그 형제를 망하게 하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하였다.  우상의 제물을 먹으라는 말은 한 번도 없다.  고전10:20에는 이방인의 제사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지식만 가지고는 온전한 것이 못된다.  고전10:18에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한 자들이 아니냐\"라고 하였다.  딤전4:1-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느니라\"는 말씀도 우상 제물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  사도시대에 금욕주의가 나와서 고기 먹으면 죄이고 채소만 먹어야 된다.  또 결혼하면 죄이니 독신으로 살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그것을 시정하기 위한 말이었다.  하나님의 지은 것은 다 거룩하므로 고기를 먹어도 괜찮고 결혼도 정당하게 하면 죄가 아니라는 뜻이다.  성령이 본문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같은 성령이 다른 성경에서는 우상의 제물을 먹으라고 하였겠는가!  그렇다면 성령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성령께서 피나 목매어 죽인 짐승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 다음에 하나님이 이 말씀으로 심판하실 때에 왜 목매어 죽인 짐승과 궤를 먹었느냐 하시면 뭐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  신약시대에는 율법이 필요 없는가?

로마3:31에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도 마태5:17-18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다.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하면 율법주의요 이단이다.  반대로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율법이 필요 없다고 하면 성경을 부인하는 폐법주의이다.  율법주의나 폐법주의는 다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다.

율법이 하는 일은

①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롬3:20 참조).  율법이 없이는 죄를 깨닫지 못한다.  가령 탐심이 속에 들어 왔다고 하여도 탐내지 말라는 율법이 없다면 탐심이 죄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롬7:7 참조).

②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갈3:24-26 참조).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③ 율법은 하나님의 의지를 우리에게 알게 하여 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지를 알지 못한다.  그리나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상을 미워하시고 간음, 도적질, 탐심, 거짓 증거를 싫어하시는 줄을 알게 된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율법의 의문과 증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도말하였으나 그 진리는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지켜야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생명과 성령의 권세로 율법을 지키게 된다고 한다(롬8:2-4 참조).

 

五. 안디옥 교회에 전달(30-35)

 

. 15:30-32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바울 일행과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낸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 편지를 전하였고 안디옥 교회는 그 편지를 읽고 예루살렘 공회에서 결의된 것이 과거에 바나바와 바울을 통하여 배운 성경대로 되었으므로 적지 않은 위로를 받고 기뻐하였다.

성도는 진리로 기뻐하고 그 실현으로 위로를 받는다.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이었으므로 여러 말로 권면하여 안디옥 교회 형제들의 신앙을 굳게 하였다.  교인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교훈과 풍조에 요동치 않도록 바른 교리를 잘 가르쳐 굳게 서게 하는 일이 교역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 15: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안디옥 교회가 형제들을 진정으로 전송한 것은 그들이 참 진리에 굳게 선 증거이다.  안디옥 교회가 형제들을 사랑으로 전송하므로 자기 사명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유다와 실라에게 큰 기쁨과 힘이 되었다.

 

. 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머물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힘써 전하였다.

 

六. 제 2차 전도여행 출발(36)

 

. 15:36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울과 바나바는 제 1차 전도여행 때에 설립한 각처의 교회를 다시 방문하기로 하였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세운 교회를 돌아보아 실족하지 않게 하고 진리에 굳게 세워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七.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짐(37-41)

 

. 15:37-39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가고

마가는 제 1차 전도여행 때에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갔다가 밤빌리아에서 돌아갔다.  그리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 전하는 일에 큰 지장을 주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의 복음 운동에 지장이 많다.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왔다.  그 때에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받들어 주므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였다.  사도 바울이 위대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사도이지만 받들어 주는 사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일이 더 잘되어 나간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였으나 바울은 과거에 사고를 일으킨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여 서로 심히 다투었다.  바나바는 성품이 착하고 관용성이 있는 사람이요, 바울은 의에 서서 불의를 용납지 아니하고 징계하여 진리를 세워 나가는 엄격한 사람이다.  마가를 놓고 심히 다투게 된 것은 이 두 사람의 신앙인격에 의해서였다.  자기 개인에 대한 과오나 손해를 준데 대해서는 관용하여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는 것이 가하지만 하나님의 일에 대한 공적 문제와 진리와 참 교회를 세워 나가는데 있어서는 불의를 용납지 않아야 되고 추호라도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점에 있어서 바나바보다 바울이 우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시대에 바울을 통하여 진리를 세워 나갔고 바울의 복음운동에 함께 하여 창성케 하셨다.  바나바가 사랑이 많고 관용과 사람을 포섭하는 것은 좋으나 인정으로 치우쳤기 때문에 그 후에 진리의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피차 갈라지니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 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일하던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지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나 같이 있어 서로 싸우는 것보다 갈라져서 서로 잘되기를 원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낫다.

같이 있으면서 싸우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전도 문이  막히고 피차간 손해만 보는 것이다. 마가 문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졌지마는 서로 잘되기를 원하고 사랑한 것 같다.  바울이  바나바를 좋게 여겼고(고전9:6), 마가가 회개한 후에 나의 일 하는데 유익한 자라고 하였고(딤후4:11), 골로새 교회에 특별히 소개하여 잘 영접하라고 하였다(골4:10).  바나바는 바울과 갈라져서 마가를 데리고 자기 고향인 구브로에 전도여행을 떠났다.

 

. 15:40-41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제 2차 전도여행을 떠났다.  실라는 예루살렘에 돌아갔다가 다시 안디옥 교회로 온 것 같다.  바울이 수리아와 자기 고향인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여러 교회를 굳게 하고 복음을 전하였다.

 

제 16 장  빌립보

 

(대  지)

一. 디모데(1-5)

二. 아시아 전도를 성령이 허락하지 않음(6-7)

三. 마게도냐 전도(8-15)

四. 점하는 귀신을 쫓아냄(16-18)

五.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힘(19-25)

六. 옥중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남(26-34)

七. 용서(35-40)

 

(본문 강해)

 

一. 디모데(1-5)

 

. 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에 디모데라 하는 좋은 제자를 얻었다.  이곳은 바울이 제 일차 전도여행 때에 씨를 뿌린 곳이다(행14:6-10 참조).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이라고 하였고(딤전1:2), 디모데는 바울을 자기 아버지와 같이 섬겼다.  디모데는 바울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충성스럽게 잘 받들어 나간 제자이다.  바울이 디모데를 얻은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큰 유익이 되었다.  디모데는 모친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를 통해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섬겼으며(딤후1:5 참조), 성경을 많이 배웠다(딤후3:15 참조).

 

. 16: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디모데는 믿음이 독실하고 충성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부근 신자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 16: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러라

바울이 전도하기 위하여 디모데를 데리고 가려고 할 때에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였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은 구원받는 조건으로 행한 것이 아니고 전도에 유익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디모데는 부친이 헬라인이요 모친은 유대인이므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전도하는데 큰 유익이 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할례 받지 않은 사람과는 같이 먹지도 않고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디모데를 데리고 다니면서 유대인에게 전도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전도의 유익을 위해 할례를 행한 것이다.  바울이 디도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갈2:3 참조).  그 때는 거짓 선지자들이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때였으므로 할례를 행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바울이 할례 행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거절하였다.  만일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였다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다 무너진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들은 바울도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느냐 할례를 받아야 구원 얻는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 16:4-5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고 음행을 멀리하라는 것이다.  바울이 여러 성으로 다녀가면서 성도들에게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으나 이 네 가지 규례를 지키면 잘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여러 교회가 더욱 믿음에 굳게 서게 되고 또 신자의 수가 날마다 더하게 되었다.  교회의 믿음이 굳게 서고 새 신자의 수가 더하여 가는 것이 산 교회의 정상적인 발전이다.

 

二. 아시아 전도를 성령이 허락하지 않음(6-7)

 

.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으나 성령께서 못하게 하셨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성령으로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에 성령이 금하시는 것을 깨닫고 순종하였다.  아시아 소아시아 지방의 서쪽의 한 주를 가리킨다.  아마 아시아 사람들은 마음이 강퍅하고 완악하여 우상을 많이 섬기고 복음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복음이 유럽으로 먼저 건너가도록 섭리하셨다.

 

.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심으로 바울은 돌이켜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를 썼다. 그 때에도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  예수의 영 신자 안에 내주하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가 역사하여 바울이 비두니아로 내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三. 마게도냐 전도(8-15)

 

. 16: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바울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다.  드로아는 무시아 서쪽의 항구인데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었다고 한다.  바울은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전도지(傳道地)를 찾느라고 많은 수고를 하였다.

 

. 16:9-10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이 밤에 기도를 많이 한 것 같다.  아시아로 가려고 하여도 성령이 허락하지 않고 또 비두니아로 가려고 해도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아 전도의 길이 막혔으므로 힘써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를 많이 썼다.  그 때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바울에게 말하기를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였다.  환상은 꿈이나 음성 등과 같이 특별계시의 한 방법이었다.

구약시대로부터 사도시대까지는 음성, 꿈, 환상, 우림과 둠밈, 비의적 현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셨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사도시대까지 종결되고 지금은 그러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지 않는다.  성경이 완성될 때까지만 환상이나 꿈, 음성 등으로 계시하셨다(계22:18-19 참조).  지금은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도 환상이나 꿈이나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이러한 자는 마침내 마귀의 미혹을 받고 방향 없이 나아가게 된다.  성도는 성령의 감동으로 오직 성경에서만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된다.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깨달았다.  또 마게도냐 사람들은 복음을 사모하였다. 하나님은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주신다.  전도자는 바울과 같이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여 복음을 전해야 한다.  자기를 위하여 자기 생각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순종하여 나가야 한다.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열심만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 곳으로 가서 말씀을 전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기로 작정하고 드로아에서 배타고 네압볼리로 갔다.  우리가 바울의 전도대(傳道隊)중에 본서 기자인 누가가 끼어 있는 것이 이곳에서부터 나타났다(행20:5-7, 14, 21:1, 5-6, 12, 17, 27:1, 28:1, 10, 16 참조).

 

. 16:11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사모드라게는 드로아와 네압볼리의 중간에 있는 섬으로 항구가 있었다고 한다.  네압볼리는 빌립보의 외항으로서 북방으로 수 리나 멀어져 있었다.

 

. 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바울은 마침내 빌립보로 갔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첫 성이요, 로마의 식민지였다.  그 성에서 바울이 여러 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유대인이 적게 살고 있는 이방 지역에는 회당을 짓지 못하고 안식일이면 강가에 나가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겼다.  바울도 이러한 곳을 찾기 위하여 강가에 나갔다가 유대인 여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 16: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그 때 루디아라 하는 여자가 복음을 받게 되었다.  그 여자는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그 여자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였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성령으로 그 마음을 열어 주어야 복음을 받을 수 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수 없다.  성령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청종케 하고 믿게 하였다.  이것이 내적 소명인데 택한 백성에게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다(엡2:8 참조).

바울에게 전도할 길이 열리게 되었다.  바울처럼 문을 두드리면  문이 열리게 된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복음을 힘써 전하려고 하면 전도할 길이 열린다.  전도자는 복음을  전하려는 사명감이 있어야 되고 성령을 힘입고 성명의 인도를 받아야 하며 그 다음에는 힘써 전해야 된다.  되지 않을 것 같아도 나가 힘써 전하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신다.  복음이 유럽에 먼저 들어갔기 때문에 유럽이 아시아보다 모든 면이 앞서게 되었다.  바울이 아시아에 먼저 와서 복음을 전했더라면 모든 복이 아시아로 먼저 올 뻔하였다.  바울이 유럽으로 먼저 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유럽으로 먼저 갔다.

 

. 16:15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루디아의 집이 다 세례를 받고 바울이 자기 집에 유하도록 강권하였다.  참으로 복음을 받은 사람은 그 전도자를 귀히 여기고 영접할 마음이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자는 먹을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빈손 들고 나갔을지라도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받은 자들이 전도자를 영접하여 대접하게 된다.  루디아는 복음을 받고 감사하여 바울 일행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 유하게 하였다.

 

四. 점하는 귀신을 쫓아냄(16-18)

 

. 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났다.  그 여종은 점을 쳐서 그 주인에게 돈을 많이 벌어 주는 사람이었다.  이는 사단의 역사인데 바울이 복음 전하는 것을 방해하려고 나타난 것이다.

 

. 16:17-18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과 실라를 따라다니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구일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알려 주었다.  바울이 그것을 심히 괴로워했다.  그리하여 그 귀신에게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즉시 귀신이 나왔다.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을 바로 알고 바울에 대하여 바른 증거를 해 주었는데 왜 바울은 심히 괴로워했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는 사람 중에 점치는 여종의 말을 듣고 믿었다고 하는 자가 생길 우려가 있었다.

② 바울을 귀신들린 여종과 같은 종류의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러한 오해를 받게되면 사도 바울이 행하는 이적도 귀신들린 여종이 행하는 것과 같은 줄로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바울이 귀신 들린 사람들 중의 하나로 취급받게 되어 하나님의 도가 성공이 되지 못한다.

③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귀신 들린 여종의 말과 동등으로 취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귀의 술책이 아주 간교하다.  귀신들린 여자가 사도 바울을 \"하나님의 참된 종이며 구원의 도리를 전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해 줄 때에 바울이 가만히 있었다면 바울이 전한 복음이 전부 귀신의 말과 귀신의 일로 되어버려 하나님의 복음이 전부 실패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았다.  하나님의 복음과 마귀의 역사를 갈라놓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함께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될 수 없다(고후6:15-16 참조).  하나님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를 갈라놓지 않고 혼합해 놓으면 하나님의 일은 다 무너지고 만다.  진리와 비진리를 갈라놓고 참 영과 거짓 영을 갈라놓아야 한다.  계시록 2장에 나오는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한 것이 잘못되었다(계2:20 참조).  진리와 비진리, 성령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섞어 놓으면 전부가 부패하여 진다(갈5:9 참조).

 

五.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힘(19-25)

 

. 16:19-21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바울과 실라가 귀신 들렸던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으므로 그 여종은 점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주인은 화가 나서 바울과 실라를 잡아 상관들에게 데리고 가서 고발하였다.  고발한 내용은 이 사람들은 유대인인데 이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고 우리 로마 사람이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는 것이었다.  그 주인이 자기의 욕심은 덮어두고 거짓말로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세워서 고발하였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자들이 마음으로는 자기 사욕을 채우려고 하면서도 겉으로는 거짓으로 꾸며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것이 상례이다.

 

. 16:22-23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백성들은 군중심리로 일제히 일어나서 바울과 실라를 송사하였다.  군중심리는 이렇게 애매한 것이다.  상관들은 사실을 알 보지 않고 바울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하였다.  이것은 관리들이 민심을 얻기 위해 백성들에게 아부하는 행동이다.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를 많이 때린 후에 옥에 가두고 든든히 지키게 하였다.

 

. 16:24-25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옥에 갇혔고 발이 착고에 든든히 채워 있었으나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하였다.  이 때 바울과 실라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었을까?

① 이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믿고(벧전4:1 참조) 옥중에서도 감사하였다.

② 승리의 찬송이 나왔다.  참 복음을 전하므로 이러한 핍박을  받으나 그 전한 복음은 반드시 썩지 않고 싹이 나서 열매가 맺혀질 것 을 확신하였다.

③ 상급을 바라보고 즐거워하였다 . 주와 그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 하늘에서 상이 크므로 기뻐해야 한다(마5:11-12 참조).

④ 그리스도의 총명에 깊이 참여하므로 한없는 평안이 있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1 참조).

⑤ 점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고 사망의 냄새는 제거되겠으므로 찬송을 하였다(고후2:14-16 참조).

⑥ 옥중에 그리스도께서 찾아와 한량없는 위로와 안식을 주시므로 찬송을 하였다.  다른 죄수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바울과 실라가 성령으로 기뻐하는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런 은혜는 받는 자 밖에는 알지 못한다(계2:17 참조).

 

六. 옥중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남(26-34)

 

. 16: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든든히 잠가놓은 감옥 문이 다 열렸다.  그 때에 바울과 실라를 비롯하여 모든 죄수들도 매인 것이 다 풀어졌다.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이런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天地)와 같이 든든한 것들도 진동시키시며(히12:26 참조), 인간이 지키는 옥문도 깨뜨리시며(시127:1 참조) 매어 있는 자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시다(눅4:18 참조).

 

. 16: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간수가 자다가 잠이 깨어서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것으로 알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그 당시에는 죄수가 도망하면 간수가 그 죄수의 받을 벌을 대신 받는 법이다.  그러므로 간수가 검을 빼어 자살하려고 하였다.

 

. 16: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순간 바울이 크게 소리질렀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하였다.  간수는 자기 생명을 버리려고 했으나 바울은 그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여 구원하기 위해 초급한 태도를 취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의 생명이 구출되었다.

 

. 16:29-30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간수가 등불을 들고 감옥에 들어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고 무서워 벌벌 떨면서 하나님의 종인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였다.  그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나가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하고 물었다.  간수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역사 앞에서 죽을 것만 같고 또 자기 직책상 받을 벌도 염려하여 구원의 길을 물어 보았다.

 

. 16:31-32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구원의 길을 묻는 간수에게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해 주고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의 말씀을 전하여 주었다.  이러한 때야말로 복음 전하기 제일 좋은 때이다.  자기의 계획과 소망이 깨어져 나가고 구원의 길을 찾느라고 헤매는 자에게 복음을 전해 주면 복음을 잘 받는다.  인간의 힘이 다한 때에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받는 길은 예수밖에 없으며 예수를 믿으면 그 집에 구원이 임하는 것이다(눅19:9 참조).

 

. 16:33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겨 주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았다.  바울과 실라는 맞은 자리를 그들이 물로 씻겨 주어 몸이 시원하게 되었다.  간수의 집도 믿고 세례를 받았으므로 마음이 시원하게 되었다.

 

. 16:34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음식을 대접하였다.  이것은 은혜 받은 증거요, 믿음을 쓴 것이요, 신앙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그 집에 큰 기쁨이 넘쳤다.  하나님은 믿음을 쓰는 자에게 더욱 풍성케 하여 주신다.

 

七. 용서(35-40)

 

. 16:35-36  날이 새매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고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그 이튿날 아침에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바울과 실라를 놓아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간수가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고 한 것이다.  이것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죄 없는 것을 알면서도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상관들에게 사도들을 석방할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일으킨 것이다.

 

. 16: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보통 사람이면 감옥에 갇혔다가 나가라고 하면 좋아할 터인데 바울은 이 때에 로마 시민권을 주장하면서 상관들이 와서 놓아야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 전날 매를 맞을 때에는 왜 로마 시민권을 주장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그 고난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이었으므로 면하려 하지 않고 달게 받기 위해서이다(요18:11 참조).

②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면 많은 열매가 맺힐 것을 확신하고 참은 것이다(요12:24-25 참조).

③ 주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은혜로 여긴 것이다(빌1:29 참조).

④ 상관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 16:38-39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아전들이 장관들에게 가서 바울이 말한 대로 보고하였다.  상관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권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질겁을 하였다.  당시 로마의 법은 죄 없는 자를 벌하면 면직되거나 큰 벌을 받았다.  그리하여 상관들이 와서 두려워 떨면서 사과하고 그 성에서 떠나기를 간청하였다.  다시 소란을 피울까봐 염려하여 떠나 달라고 한 것 같다.  그 때 바울은 상관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것이다.

 

. 16: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감옥에서 나온 바울과 실라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 형제들을 권하였다.  루디아의 집은 교회로 사용되었으며 그곳의 믿는 형제들이 모이곤 하였다.  바울과 실라는 그들을 굳게 서라고 권면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제 17 장  아덴

 

(대  지)

一. 데살로니가 교회 설립(1-9)

二. 귀한 베뢰아 사람(10-15)

三. 아덴 전도(16-34)

 

(본문 강해)

 

一. 데살로니가 교회 설립(1-9)

 

. 17:1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떠나 서남쪽 52km 지점에 있는 암비볼리로 갔다.  그곳은 마게도니아의 주부(州府)가 있는 곳이다.  바울 일행은 거기에서 다시 서남쪽 50km 지점에 있는 아볼로니아로 내려갔고 거기서 서쪽으로 58km 지점에 있는 데살로니가로 갔다.  데살로니가는 그 지방의 수도이며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 전도하기를 시작하였다.

 

. 17:2-3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세 안식일에 구약성경을 강론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쉬지 않고 계속하여 전도하였다.  힘써 일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자기 힘으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미리 포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한다.  자기 힘으로는 안될 것 같아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계속해서 힘쓰면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그 일이 성취된다.  바울이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강론하였는데 안식일 아닌 날도 성경을 강론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3주간을 강론한 것이다.

바울이 강론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구약에 예언한 그리스도가 오셨다.

② 그리스도가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된다(사53:1-6 참조).

③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해야 된다(시16:10 참조).

④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이다.

교역자가 성경의 뜻을 풀어 가르쳐 주므로 교인들이 진리를 깨닫고 성경에 서 있게 되면 그 신앙은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견고하여 요동하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성경을 강론하고 교인들은 성경을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교인들의 신앙이 성경에 서 있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봉사한다고 하여도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아서 결국에는 동요되고, 풍조에 밀려 넘어지기 쉽다.  바울은 믿는 사람에게만 성경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로 성경을 가르쳐 주어 그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많이 생겼다.  성경을 말해 줄 때에는 그 말에 힘이 있고 또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다. 바울이 세 안식일 동안 성경을 강론하였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계속하여 말씀을 가르치면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하여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  우리가 개인 전도할 때에도 성경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하면 그 종자가 싹이 나서 자라나고 열매를 맺게 된다.

 

. 17: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유대인의 회당에서 바울의 강론을 들은 사람 중에는 헬라인으로서 유대교에 개종한 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 중에 바울의 전도를 받아 믿는 자가 많이 생겼다.  유대인들은 조상 적부터 내려 온 전통과 율법을 많이 아는 것으로 교만하여 바울을 멸시하고 바울이 증거하는 말씀을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복음이 이방 헬라인에게로 간 것이다.  귀부인 마게도니아에서는 일반적으로 부인들이 존숭되었다.  이 귀부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고 많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데살로니가에서는 처음부터 말씀을 잘 받아 훌륭한 신자가 많이 생겼다(살전1:5-10  참조).  그러므로 이 교회는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에 모범적인 교회가 되었다.

 

. 17: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고 교회가 잘 되어 나가는데 마귀의 역사가 일어났다.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어떤 괴악한 사람들(깡패종류)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란케 하고 야손의 집어 들어가 바울과 실라를 끌어내려고 하였다.  아마 사도들이 야손의 집에 유하였던 것 같다(7절 참조).  그들이 달려들어가 바울을 잡아내려고 하였으나 마침 바울이 거기에 없었다.

 

. 17:6-7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유대인의 꾀임을 받은 불량배들이 야손의 집에서 바울을 찾았으나 없으므로 야손과 및 형제들만 읍장들 앞에 끌고 가서 큰 소리로 고발하였다.  그들이 고발한 죄는 다음과 같다.

① 바울과 실라는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자라고 함(행24:5 참조)

② 바울과 실라는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였다고 함.

③ 가이사 외에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고 함.  이것은 바울과 실라를 반역자로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예수를 하늘 나라의 왕으로 전하였는데 그것을 곡해하여 한 말이다.

④ 야손은 그 죄인들을 은닉한 자라고 함.

야손이 큰 죄인 바울을 숨겨 주고 동조하였다는 것이었다.  기독교를 핍박할 때에 이러한 치안법(소란케 하는 자)과 반역죄(다른 임금이 있다) 등을 뒤집어씌우는 것이 상례이다.

 

. 17:8-9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을 여러 가지로 고소하였으나 장본인(바울)이 없으므로 해결을 못하고, 다음에 부르면 다시 출두하는 조건하에 보석금(保釋金)을 받고 야손과 그 형제들을 놓아주었다.

 

二. 귀한 베뢰아 사람(10-15)

 

. 17: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의 서남쪽 64km 지점에 있었던 마게도니아의 중요한 도시였다.  데살로니가에서 믿는 형제들이 밤에 바울을 베뢰아로 보낸 것은 핍박이 심하므로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베뢰아로 내려가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도하였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였다.

 

.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신사적 성품이 고귀(高貴)하다, 혹은 성격이 좋다는 뜻이다.  베뢰아 사람들이 신사적인 것은 ①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베뢰아 사람들은 진리를 찾고 성경을 좀 더 깨닫기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시편119:131에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라고 다윗이 말하였다. 성도는 목마른 사슴이 간절히 시냇물을 찾듯이 말씀을 사모하여 꿀과 송이 꿀같이 달게 받아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밥맛이 달고, 병든 사람은 밥맛이 쓰다.  성도가 성경의 단맛을 잃어버리면 신앙이 병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속히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② 성경을 상고하였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성경을 배웠으면 그 말씀을 상고하여 성경대로 신앙인격이 만들어져야 한다.  성경을 부지런히 상고하는 자는 성경이 생명이 되고, 힘이 되고, 기업이 있게 해 준다.  성경을 상고하여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확신을 가진 신앙은 고귀하고 견고하다.

③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읽은 것이다.  성경을 날마다 읽는 사람은 점점 고귀한 사람이 되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계1:3 참조).  요한 사도는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하였다(요5:39 참조).  하박국2:2에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에 세 번 다 성경으로 이기셨다.  이렇게 귀한 성경을 많이 읽고 아는 사람은 참으로 고귀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베뢰아 사람 중에서 좋은 신자가 많이 나왔다.

 

. 17: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베뢰아에 믿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이렇게 존귀한 자들이 기독교에 많이 들어온 것은 베뢰아 사람들이 신사적이었기 때문이다.

 

. 17: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베뢰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믿는 자가 많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거기에서 65km나 되는 베뢰아까지 달려와 바울을 반대하고 무리를 충동시켜 소동케 하였다.  이렇게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들은 열심이 특심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막히지 않는다.  진리는 언제나 전진하고 승리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무리를 충동하는 것과 폭력으로 하는 것은 그들이 진리에 서있지 않은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 17:14-15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유대인들이 방해하고 핍박하기 때문에 바울이 베뢰아에서도 떠나야 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마귀의 종들은 따라 다니면서 바울을 방해하고 괴롭혔다.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고 바울은 안내하는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아덴까지 내려갔다.  베뢰아에서 아덴까지는 320km이다.  10일 이상 걸리는 먼 곳까지 베뢰아의 성도들이 바울을 전송한 것은 그들이 바울을 귀히 여기고 자랑한 증거이다.  이렇게 전도자를 귀히 여기고 도와주는 자는 복을 받는다(마10:40-42 참조).  바울이 자기를 안내해 준 그 성도들에게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자기에게 보내라고 부탁하여 보냈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의 도움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三. 아덴 전도(16-34)

 

. 17:16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아덴은 헬라 문화의 중심지이며 철학, 문학, 예술이 발달하여 당시 자유의 도시로 세계 제일의 문화를 자랑하였다.  그리하여 이 도시에는 우상이 가득하였었다.  세상 문화는 마귀에게 매여 있는 자들을 건져 주지 못하며 인간의 허탈증도 면해 주지 못한다.  세상 문화는 도리어 인간의 허영심을 조장하여 주는 것뿐이다.  마음에 분하여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안타까운 생각에서 분한 마음이 일어 난 것이다.

 

. 17: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바울이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저자에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복음을 전하며 변론하였다.  이렇게 바울은 쉬지 않고 열심히 전도하였다.  저자 시(市) 중앙에 있는 광장이며 그 주위에 상점과 시장이 있고 그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모여 자유로이 변론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 17: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흑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에비구레오 철학파의 이름이며 주전 348년에 사모스섬에서 출생한 에피큐로스라는 철학자가 세운 철학파이다.  이 철학파는 무신론을 주장하고 향락주의로 기울어져 인생의 목적을 자기 행복에 두고 유물주의적인 경향으로 흘렀다.  스도이고 철학파의 이름으로 주전 336년에 구브로에서 출생한 제논이란 철학자가 창립한 철학파이다.  이 철학은 범신론과 도덕주의를 주장하여 자기를 완전히 제어하고 자연과 도덕에 합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또 인간의 영혼은 우주이성(宇宙理性)의 일부분을 받아 난 것이라고 한다.

바울이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과도 변론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말장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방신들을 전하는 사람인 것으로 알았다.  왜냐하면 바울이 예수와 몸의 부활을 전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이 변론하면서 전도하여 보았으나 그다지 좋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새로운 말을 듣고 지식을 얻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변론하지 말라(딤후2:23 참조)고 한 것은 반대할 목적으로 따지는 사람들과 변론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진주를 개나 돼지에게 주는 것이므로 도리어 물고 찢는다.

 

. 17:19-20  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아레오바고 화성신(火星神)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아덴의 서북쪽에 있는 언덕이다.  거기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재판소도 있고 그 맞은편 언덕에는 거대한 팔레온의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이 아레오바고 언덕 위로 철학자와 군중들이 바울을 데리고 가서 바울이 전하는 새 교가 무엇인지 듣고자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를 받고자 함이 아니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많은 열매를 얻지 못하였다.

 

. 17: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아덴은 철학과 문화가 고도로 발달된 곳이므로 새로운 철학과 지식을 듣고 말하는 것만 좋아하고 그 일에만 시간을 다 허비하여 실재적인 일을 아니하였다.

 

. 17:22-23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였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하고 어느 정도 그들을 인정하여 주면서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바울은 두루 다니다가 어떤 곳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다고 말하였다.  아덴 사람이 알지 못하고 섬기는 것을 바울이 그들에게 알게 해 주겠다고 말하였다.  바울이 논리 정연하게 말하므로 그들은 즉시 알지 못하는 신을 알 수 있을까 하여 열심히 들었을 것이다.

 

. 17: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는 것이 아니다.  또 무엇이 부족하여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생명을 내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살펴 나가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주지 아니하시면 사람은 잠시라도 살 수가 없다고 바울이 증거 하였다.

 

.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모든 인류는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의 자손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한 혈통이요, 한 사람의 자손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연령과 각 국가의 연한을 정해 놓으시고 그 예정하신 기한대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민족들이 거하는 영토와 국가들의 국경을 하나님이 정해 주셨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그대로 각 민족이 자기 땅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 17: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과 자연 은총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하려 하심이다(롬1:19-20 참조).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렘23:24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고 하셨다.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고 알지 못하시는 것이 없다.  하나님은 만물을 초월하여 계시고 만물에 내재하여 계시며 만물을 주장하고 계신다.

 

.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인생과 만물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 안에 존재하고(골1:17 참조), 만물이 주로 말미암아 살며 활동하고 있다(롬11:36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손을 떼시면 즉시로 만물이 멸망하고 만다.  시인 중에 주전 3세기경의 길리기아 사람인 아라터스 시집에 이러한 문구(신의 소생)가 있다고 한다.  그의 소생이라 이 시에 신의 소생이라고 한 것은 자기네 신의 소생이라는 뜻으로 한 것인데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소생으로 말한 것이다.

 

. 17: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하나님께 피조된 사실에서 그의 소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영이시므로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겨 만든 우상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은 모두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피조물이 아니다.

 

.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알지 못하던 시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시대는 이방 족속이 구속의 도리를 알지 못하던 시대이었다.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책망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에는 이방 사람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으나 지금은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방인들의 구원문제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4:12이 답변한다.  즉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이 각처에 하나님의 종을 보내어 \"회개하라\"고 전파하고 있고 바울 자신도 전파하는 중에 있으니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정하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으로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믿어야 된다.  믿지 않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바울이 증거하여 주었다.

 

. 17:32-33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바울이 증거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듣고 희롱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 다음에 다시 듣겠다고 하는 사람도 생겼다.  다시 듣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희망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다시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 17: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아덴 전도의 결과는 몇 사람의 신자가 생긴 것뿐이다.  바울이 이곳에서 조리있게 전도를 잘하였으나 결과는 그저 비방하는 사람, 다시 한 번 더 듣겠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몇 사람뿐이었다.  그 가운데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와 다른 몇 사람이 있었다.  바울이 아덴 전도는 거의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게 보이고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마11:25, 고전1:18, 1:26-29 참조).  당시 아덴에는 지혜 있고 통달한 지식인들이 많았다.  철학을 전공하고 가장 새로 되는 일만 들음으로 교만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② 듣는 사람들이 인간적인 지식으로 복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복음은 인간의 지식이 아니고 모든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신령한 도리이다.  그러므로 육의 사람이 자기의 지식으로 인식하려고 하면 깨달을 수 없다.  지혜있고 통달한 사람들은 자기 지식에 맞춰서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예수 믿기가 힘이 든다.  성경 말씀은 무조건 믿어야 하는데 자기 지식에 맞춰서 믿으려고 하니 믿을 수가 없다.  사람의 지식은 물질에 대한 것이고, 성경은 영에 대한 것이며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는 예수를 믿을 수가 없다.  인간의 지식으로 성경을 비판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예수를 믿지 못한다. 말세에는 인간의 모든 지식이 최고도로 발달하고(단12:4 참조) 믿는 사람이 점점 적어진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그 지식을 다 내어놓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믿으면 그 사람은 훌륭한 신자가 된다.

③ 바울이 전도할 때에 그들의 지식에 맞추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이 다른 곳에서는 성경을 강론하고 성경으로 증거했는데 여기에서는 시인(詩人)의 말을 인용하고 그들 이방인의 지식과 논리에 맞추어 증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에 가서 전도할 때에는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하였다.  또 고전2:4-5에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하였다. 구원의 복음은 인간의 지식과 이성으로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방법은 언제나 실패한다.  오직 성령과 능력으로 그 사람의 영에게 전해야 성령이 그 마음을 열어 주고 그 영혼을 중생시켜 믿게 되고 구원의 길로 나오게 된다.

 

제 18 장  고린도

 

(대  지)

一. 고린도 교회 설립(1-11)

二. 핍박(12-17)

三. 서원(18)

四. 귀로(19-22)

五. 제3차 전도여행 출발(23)

六, 아볼로 전도(24-28)

 

(본문 강해)

 

一. 고린도 교회 설립(1-11)

 

. 18:1-2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갈 때에는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갔다.  바울이 아덴에서 실패한 것을 전감으로 삼아 십자가만 전하며 지혜 있는 말을 쓰지 않고 성령과 능력으로 전하려고 하였다(고전2:2-4 참조).  고린도는 아덴에서 80km 떨어진 곳으로, 아가야의 수도였다.  고린도에는 여러 인종이 섞여 살았으며 따라서 풍속이 문란한 곳이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아굴라라는 유대인 하나를 만났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로마에 가서 살다가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들에게 출국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쫓겨난 사람으로 그의 부인은 브리스길라였다.

 

. 18: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바울이 아굴라의 집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아굴라 부부가 로마에서 쫓겨나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믿음으로 사도 바울을 영접하여 자기 집에 모시게 되었다.  그들은 장막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하였으며 사도 바울도 같은 업을 하고 있었다.  사도 바울이 그 집에 있으면서 낮에는 전도하고 밤에는 장막을 만들어 팔았다.  장막은 양털로 짠 천이나 가죽이나 다른 천으로 만든 천막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 유대의 랍비들은 자기의 생계를 유지할만한 기술을 한 가지씩 배우도록 지도했다고 한다.  바울이 어려서부터 랍비의 지도로 장막 짓는 기술을 배운 것 같다.  특히 바울의 고향 길리기아의 천은 유명하였다고 한다.

 

. 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바울이 아덴에서 행하던 철학적 논리를 버리고 고린도에서는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서 성경을 강론하며 복음을 전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권면하였다.

 

.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실라와 디모데가 베뢰아에 머물러 있다가(행17:14 참조) 고린도로 내려왔다.  바울이 그들을 만나게 되어 마음에 안심이 되었을 것이고 그들이 바울을 많이 도와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에 내보내시면서 이방 사람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다(마10:2-6 참조).  바울이 그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에게 먼저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바울은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하거나 제 뜻과 제 생각대로 하지 않고 말씀이 하라는 대로 피동되는 생활을 한 것이다.  성도는 말씀에 붙잡혀 말씀대로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베드로가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라고 한 것도 말씀에 붙잡힌 생활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간 것(히11:8 참조)도 말씀에 붙잡힌 생활이다.  말씀에 붙잡혀 말씀대로 걸어가면 실패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성공이 된다. 성도는 말씀 때문에 갈 곳도 못 가고, 힘이 들어도 해야 되고, 십자가의 길도 걸어가야 한다.

 

. 18: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바울이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였으나 그들이 바울을 대적하며 훼방하였다.  어느 시대나 바른 진리를 전하면 대적하고 훼방하는 일이 일어난다.  처음에 몇 사람이 훼방하면 거기에 동조하는 무리가 생겨 얼마 후에는 많은 무리가 훼방하게 된다.  그들이 대적하고 훼방하기 때문에 바울이 옷을 떨어버리고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하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라고 했다.  유대인이 믿지 않았으므로 그 피 값 이 유대인에게로 돌아가고 바울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에스겔3:17-19에 죄인들이 죄 값으로 멸망하게 되었을 때에 선지자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으면 죄인들은 자기 죄 값으로 멸망하나 그 피 값은 복음을 전하지 않은 선지자에게서 찾겠다고 하였다.  선지자가 전해 주었으나 불순종하여 멸망하면 선지자는 아무 책임이 없다.  성도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 죄가 크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듣든지 말든지 부지런히 전도하여야 한다.

마태복음10:14에 너희 말을 듣지 않으면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한 것은 심판날에 증거가 되기 위함이요, 또 미련을 두지 말고 돌아서라는 뜻도 있다.  자기가 붙들려고 할 것도 없고 붙들린 것도 아예 떨쳐 버리고 새 출발하여 다른 곳에 가서 전도하라는 말이다.

 

. 18: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디도 유스도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으로 바울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은 사람이며 그의 집은 회당 옆에 있었다.  회당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비방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회당 옆집으로 옮겨서 복음을 전한 것이다.  회당 옆이므로 모이기에 편리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숙소를 옮긴 것은 아니다.

 

. 18: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바울이 디도 유스도의 집에 들어감으로 큰 복이 그 집에 들어 간 것이다.  유스도의 집에서부터 복음의 빛이 비추어 나가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 온 집이 예수를 믿고 또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바울이 생명의 복음을 전할 때에 그 지방에 큰 역사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살아났다.  디도 유스도가 회당 가까이에 살다가 큰 복을 받았다.  마태4:15에 예수님이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시니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큰 빛이 비취었다고 하였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믿음으로 살면 그 사람에게서 생명의 빛이 나가고, 그 사람이 가는 곳에는 복이 따라가는 것이다.

 

. 1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환상에 대한 해석은16:9 해석을 보라.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하느라고 많은 고난을 당하고 피곤하여졌을 때에 주께서 환상 중에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라고 하셨다.  또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하였다.  내 백성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말한다.  바울은 그 말씀을 듣고 큰 힘과 소망을 얻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고린도에 있는 택한 백성을 건져내시려고 바울을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종들을 통해 말씀을 전하여 택한 백성의 영혼을 구원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게 하신다.

여기서 몇 가지 배울 것이 있다.

① 하나님이 전도자를 그 지방에 보내신다(9절).

② 그 지방의 택한 백성을 위해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9절).

③ 그러므로 쉬지 말고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한다(9절).

④ 대적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10절).

⑤ 하나님이 전도자와 함께 하여 주신다(10절).

⑥ 하나님이 보호하여 해를 당하지 않게 해 주신다(10절).

⑦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하여 주신다(10절).

 

. 18:11  일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바울이 일년 육 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으므로 고린도 교회가 생겼다.  바울이 일년 육 개월 동안 성경을 가르침으로 택한 백성이 많이 믿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믿는 성도들의 신앙이 말씀에 바로 서게 되어 견고해지고, 그 영혼들이 말씀에서 생명을 얻어 더욱 자라났다.  교회는 성경말씀을 계속하여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말씀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고 성경말씀으로 성도들의 영혼을 길러 나가고 성경 말씀으로 바른 길을 걸어가며 그 말씀을 어두운 세상에 비취어 보내는 등대가 되어야 한다.

 

二. 핍박(12-17)

 

. 18: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갈리오라는 선한 사람이 아가야 지방의 총독이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끌고 가 총독에게 송사하였다.

갈리오 철학자 세네카의 형제이고 웅변가 갈리오의 양자인데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된 연대는 주후 50년경이라고 한다.  아가야 헬라의 전지역을 가리킨다.

 

. 18: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여 송사하는 내용은, ① 율법을 어기었다.  ② 사람들에게 하나님 공경하는 법을 잘못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반대자들은 언제나 죄를 꾸며서 핍박하고 송사하는 것이 상례다.

 

. 18:14-15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고

갈리오가 세상 법의 한계를 분명하게 알고 말하였다.  세상 법은 무슨 부정한 사건이나 괴악한 행동을 다스리는 것이며 언어와 명칭과 성경의 율법은 세상 법이 관계할 바가 아니다.  언어는 종교적 교리이다.  어떤 교리가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세상 법이 알 수 없다.  어느 교파가 정통이며 어느 교파가 비정통인지 세상 정치하는 사람은 알 수 없다.  세상 법으로는 사회적으로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을 다스리는 것이다.  명칭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다, 또는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는 문제를 말한다. 이러한 문제는 세상 법이 알지도 못하고 관여할 바도 아니다.  그러므로 종교상의 문제나 교리 문제이면 너희 스스로 처리하라고 말하면서 갈리오 자신은 그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갈리오가 아주 현명하게 종교적 문제와 세상 문제를 구별하여 올바르게 처리하였다.  갈리오와 같이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 놓고 관계할 것만 관계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일이 쉽게 해결되어진다.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분명하게 한계를 그어 놓고 그 이상 더 넘어가지 않아야 세상도 잘되고 종교계도 잘되어 온 세상이 평안하게 된다.

 

. 18:16-17  저희를 재판 자리에서 쫓아내니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니라

소스데네 소스데네는 회당장이라고 하였다(17절).  바울을 소송하던 무리들은 소송이 기각되자 그 분풀이를 회당장 소스데네에게 하여 그를 많이 때렸다.  그들이 왜 때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소스데네가 바울 대신 매를 맞았다.  그가 바울이 전하는 예수를 믿고 바울과 같이 전도하는 일을 한 것 같다(고전1:1 참조).  주의 종을 위하고,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三. 서원(18)

 

.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타고 수리아로 떠나 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이 여러 날 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리아로 떠나갈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데리고 갔다.  아굴라가 남편이고 브리스길라가 그의 부인인데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기록된 것은 남편보다 부인이 더욱 믿음이 독실하여 신앙의 호주이었기 때문이다.  아론이 형이고 모세는 동생이지만 모세와 아론이라고 기록하였다(출5:1).  부인이 먼저 예수를 믿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면 그가 신앙의 호주인데 이럴 경우 남편도 부인이 하자는 대로하는 것이 좋다.  신앙이 나은 사람의 인도대로 해야 일이 바로 된다.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이 서원한 것은 하나님 앞에 자기 몸을 바치겠다는 서원이다.  바울이 수리아로 가려고 하는데 그 길이 험하고 하나님의 일이 너무 막중하기 때문에 바울이 특별한 기간 동안 하나님께 몸을 바치는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기도를 많이 한 후에 수리아로 떠난 것이다.

이 서원이 다 끝날 때까지는 포도주나 독주를 입에 대지 않고 머리를 깎아서는 안 된다(민6:1-20, 삿13:5 참조).  나실인이라는 뜻은 하나님께 바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삼손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께 바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하였다(삿13:5 참조).  그는 일생 동안 나실인이 된 것이다.  특별한 기도 기간을 정해 놓고 나실인처럼 하나님 앞에 몸을 바치고 새로운 은혜를 받아 새 출발하는 것이 때때로 필요하다.  그러할 때에는 금식도 할 수 있고 하나님께 특별한 서원도 할 수 있다.  에스겔도 7일 동안 기한을 정하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고 그 다음에 새 출발하였다(겔3:15-16 참조).  다니엘은 20일 동안 겸비하고 하나님께 몸을 바쳐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고 전심을 기울이고 거기서부터 새 출발해 나갔다(단10:2 참조).

 

四. 귀로(19-22)

 

. 18:19-22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바울이 에베소에 돌아와 회당에 들어가 강론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그 곳에 머물러 두고 떠났다.  그들을 에베소에 머물러 둔 이유는 무엇일까?

① 바울은 잠시동안 속히 예루살렘과 안디옥을 다녀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② 잠시 후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다시 와서 같이 일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바울을 더 오래 머물도록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고 떠나갔다.  바울은 다시 오는 문제도 하나님께 맡긴 것이다.  전도자는 사람이 붙잡는다고 머물거나 청한다고 다시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떠나가기도 하고 다시 오기도 해야 한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선교 본거지인 안디옥 교회로 돌아왔다.  이로써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끝마친 것이다.

 

五. 제 3 차 전도 여행 출발(23)

 

. 18: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출발하게 되었다.  바울이 안디옥을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면서 성도들을 말씀으로 굳게 세웠다.

 

六. 아볼로 전도(24-28)

 

. 18: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알렉산드리아 아프리카 북쪽에 있는 도시로 당시 헬라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학문과 웅변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한 유대인으로 그가 에베소에 와서 전도하였다.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웅변가이며 인격이 훌륭한 학자이었다.  그러나 그는 영적 경험이 부족하였다.  아볼로가 학문적으로나 말하는 면에 있어서는 바울보다 나은 면이 많았고 또 구약성경에도 능통하며 변증을 잘하는 변증학자이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아볼로파가 생겨날 만큼 아볼로가 유명한 사람이었다.

 

. 18: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는 종교적인 열심도 대단하였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까지만 잘 알고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대단히 빈약하였다.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푼 데까지만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아볼로가 예수에 관하여 열심히 가르치나 예수에 대한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가르치지 못했다.

 

. 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회당에서 많은 학식과 웅변으로 담대히 말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정도 미급이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잘 대접하고 바울에게서 배운 예수님의 구속의 도리를 더 자세하게 풀어서 잘 가르쳐 주었다.  대학자요 구약성경에 능통한 아볼로가 장막 짓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은 겸손한 태도였고 그를 가르치는 아굴라 부부도 믿음과 정성으로 하였다.

 

. 18:27-28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 곳 형제들에게 편지로 소개하여 그를 잘 영접하게 하였다.  그 곳 형제들은 아볼로의 베푼 은혜로 인하여 유익이 많았다.  거기에서 아볼로가 성경으로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대인의 말을 이겨 많은 유대인들을 굴복시켰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주장할 때에 아볼로가 구약성경으로서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여 주었다.  성경으로 증거하고 성경으로 체계를 세우는 일이 귀한 일이다.  성경을 잘 아는 아볼로는 가는데 마다 믿는 사람에게 많은 유익이 되었다.  우리도 어디를 가든지 성경으로써 구원의 도를 밝혀 나가고 성경으로써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제 19 장  에베소

 

(대  지)

一. 에베소 전도(1-12)

二. 마술사의 시험과 회개(13-20)

三. 에베소 소동(21-41)

 

(본문 강해)

 

一. 에베소 전도(1-12)

 

. 19:1-2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윗지방 갈라디아 지방에서 에베소로 가는 높은 지대를 말한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했다.

어떤 제자 바울에게 어떤 제자들이 찾아왔는데 이들은 믿음이 어린 신자들이었다.  바울이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때에 그들은 성령이 있다는 것도 듣지 못하였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아볼로가 전도해서 믿은 신자들이다.

 

. 19: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전도를 많이 하여 신자가 생겼으나 아볼로 자신이 요한의 세례만 알았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을 세례요한까지만 인도하여 세례를 준 것이다.  교역자는 자기가 이루어진 것만큼 교인들을 인도할 수 있다.

 

. 19:4-5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중생하지 못하고 외부적 신앙(일시적 신앙)만으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있다.  에베소에서 아볼로가 전도하여 믿은 몇 사람은 예수님의 구속을 확실히 믿지 못하였다.  그들은 알지 못해서 믿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는 명칭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므로 바울이 요한의 말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즉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요한이 내 뒤에 오신다고 증거한 분이 예수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 때에 그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죄 씻음을 받고 영혼이 중생하였다.  그러므로 그 증표로 세례를 준 것이다(세례에 대한 해석은 8:38의 해석을 보라).

 

. 19:6-7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다.  이것은 사도시대에 있었던 특수한 역사이었다.  이 같은 특수한 역사는 어디서나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사도시대에 간혹 있었던 것이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안수하지 않았다.  고린도 교회에서 1년 반 동안, 에베소에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으나 안수하였다는 말이 없다.  예수님께서도 어린아이에게 안수한 것 외에 여러 사람에게 안수하였다는 말이 없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에는 말씀만 전하여도 성령이 임했다.  오늘날 안수를 위주하여 교역자가 자주 안수를 하고 또 안수를 받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며 불건전하고 신비주의적인 행동이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방언은 세 종류가 있다.  방언에 대한 해석은 사도행전2:6-12 해석을 보라.  예언은 성경 말이다.  자세한 해석은 사도행전11:27, 28 해석을 보라.  에베소 교회 신자가 모두 다 안수 받고 모두 다 방언하며 모두 다 예언한 것이 아니고 몇 사람만 그렇게 한 것이다.

에베소는 전에 바울이 전도한 곳이며(18:19-21)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우거하며 전도했다.  또 아볼로가 열심히 전도한 곳이므로 그 당시 에베소에는 믿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들 중에 방언도 하고 예언을 한 신자가 열 두 명쯤밖에 안되었다고 하였다.  방언의 은사는 누구에게나 다 주는 것이 아니다(고전12:30 참조).  성경에 온 교회가 다 방언을 하면 믿지 않는 자들이 성도들을 미쳤다고 비방할 것이라고 했다(고전14:23 참조).  그러므로 온 교회가 다 방언을 한다거나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성경 위반이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시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하는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믿음도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바울이 에베소에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담대히 강론하였다.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운동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로 이루어 나가시는 그리스도의 구속운동과 성령으로 택한 백성을 불러서 믿게 하고 영혼이 자라나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나가게 하는 역사와 또 지상교회운동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세계와 나아가서 영원한 천국이 모두 하나님의 나라이다.  바울이 여기에 대해서 석 달 동안 증거한 것이다.

 

. 19:9-10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바울이 회당에서 석 달 동안 강론한 결과 찬성하며 믿는 사람도 생겼으나 강력하게 반대하고 비방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바울은 그들과 싸우지 않고 제자들을 따로 갈라놓고 가르칠 수밖에 없다.  교리가 다르거나 신앙 정도가 미급하여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반대하는 자가 있을 때에는 그들과 함께 있어 싸우는 것 보다 갈라져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도리어 덕이 되고 유익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성경을 가르쳤다.

두란노 서원은 두란노라는 웅변가가 철학을 강의하는 강당으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헬라 철학의 번성기였기 때문에 에베소에도 큰 강당을 세워 놓고 철학강론을 한 것 같다.  바울이 그 서원을 빌려서 성경 말씀을 강론하였다.  바울이 2년 동안 매일 성경을 가르쳤고 에베소 사람들도 매일 나와서 성경을 배웠다.  이것이 아주 귀한 일이다.  에베소에는 말씀을 사모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바울은 아무리 피곤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힘을 썼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에베소 교회는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한 교회가 되었다.

 

. 19:11-1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에베소 교회에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타났다.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즉시 낫고 귀신도 나갔다.  이것은 마치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겉옷 가라도 만지면 그 병이 나을 줄로 믿고 예수님께 나아가 겉옷 가를 만질 때에 즉시 혈루병이 나은 것과 같은 것이다.  아주 큰 능력이 바울에게서 나타났다.  이것은 바울이 쉬지 않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를 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에게 머물러 있었고 또 병자들은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자기 위에 얹을 때 바울을 하나님의 종으로 사모하고 존경하여 바울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삼합이 맞아서 이루어진 것이다.  즉 먼저 바울이 기도하는 생활을 하였고, 교인들은 바울을 하나님이 직접 사용하시는 종인 줄로 믿어 천사와 같이 영접하고, 그 바울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자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고, 하나님은 그를 고쳐 주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교역자는 바울과 같이 말씀을 바로 가르치며 심령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생활을 계속하여야 한다.  교인들은 하나님의 종을 존경하고 그 교역자를 통하여 은혜를 받으려고 노력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마귀의 역사도 이기고 심령의 병도 낫고, 눈이 밝아져서 진리를 바로 분별할 수 있게 되고 좋은 신자가 되어 달음박질을 잘하게 된다.

 

二. 마술사의 시험과 회개(13-20)

 

. 19: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 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바울에게서 희한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마술을 행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시험적으로 마귀를 내쫓아 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마귀 들린 사람에게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명령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하였다(16절).  이들은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기가 커지고 자기의 사욕을 채우려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그런 일에 이용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 19:14-16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한 제사장 당시 에베소에서는 유대인의 회당의 랍비를 제사장이라고 했다고 한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에게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모두 마술을 행하는 사람처럼 표현되어 있으나 실은 두 아들만 마술을 행한 것이다(16절).  그 두 마술사가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악귀를 쫓아내려 하니 악귀가 말하기를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그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하여 이겼다.  그러므로 그 두 사람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도망하여 달아났다.  예수님의 이름은 권세와 능력이 있으나 외부적으로만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그 속에서 예수님의 능력이 역사하고 그 능력이 속에서 나타날 때에 마귀는 물러간다.  이러한 성도가 마귀 들린 사람에게 \"사단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면 즉시로 마귀가 쫓겨난다.  그러나 마음속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생명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마귀도 그것을 안다. 예수님의 이름이 무섭기는 하지만 너의 속에 예수님이 없는데 왜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느냐고 마귀가 달려들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손해를 준 것이다.  내적 생명이 없는 사람은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 성도가 마귀를 이기려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내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속에서 나와야 한다.  마귀가 세상에 가득하고 성도는 날마다 이 마귀와 더불어 싸워 이겨야 하는데 내적 생명의 역사가 없으면 마귀에게 실패하는 것이다.  성도가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를 이길 수 없다(막9:29 참조).

그러므로 성도가 매일 시간을 많이 들여서 기도하여야 한다.  루터는 하루 두 시간 이상 기도하지 못한 날은 마귀에게 지는 날 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힘써 기도하여 그의 생명과 능력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여 마귀의 세력을 이기고 승리의 길을 걸어 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 19:17-19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스게와의 아들들이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려다가 마귀에게 상한 것을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게 되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죄를 자복하며 주를 믿고 행한 일을 고하였다.  우리 성도가 날마다 자기 죄를 찾아서 자복하고 회개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많은 마술쟁이들이 예수를 믿고 그 책들을 모아 불살랐는데 그 책값이 은 오만이나 되었다.  은 오만은 미화로 계산하면 일만 불(한 화로 600만원) 정도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렇게 맡은 책으로 마술쟁이들이 사람을 미혹시키다가 복음의 참된 도를 믿고 보니 그것이 거짓되고 마귀 역사인 것을 깨달아 그 책들을 모두 불사르게 되었다.

 

.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주의 이름에 마귀가 정복되며 마술사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책들을 불사르게 되는 큰 역사로 말미암아 주의 말씀이 힘이 있고 세력을 얻어 나가게 되었다.  우리의 신앙도 에베소 교회의 신앙과 같이 날마다 마귀를 이겨나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세력을 얻어 힘이 있게 되고, 말씀이 흥왕하게 되는 역사가 각처에서 일어나야 하겠다.

 

三. 에베소 소동(21-41)

 

. 19: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여기 계획이 고전16:5-7의 계획과 같은 것을 보아 고린도전서가 이미 기록된 것 같다.  이 계획의 목적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 모금인 듯 하다.

 

. 19: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으니라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었다.  에라스도 로마서16:23에 보면 고린도 성의 재무로 있다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고 바울의 수종자가 된 자이다.  바울이 이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먼저 보냈다.

 

. 19: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앉은 소동이 있었으니

에베소에서 바울을 반대하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마귀가 역사하여 하나님의 일을 막고 구원운동을 무너뜨리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점점 잘되어 가므로 마귀가 최후의 발악을 하여 큰 소동을 일으켰다.  하나님의 일이 잘되면 마귀의 나라가 망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무너뜨리려고 극도로 발악하였다.  구원운동이 힘있게 나가면 마귀도 강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 19: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마귀가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에게 들어가 바울이 하는 복음운동을 막으려고 충동시켰다.  데메드리오는 은장색(은으로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으로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다.

아데미는 신의 이름인데 여신으로서 만물의 생식을 주관하는 신이라고 한다.  만물이 다 아데미라는 신에 의해서 생식된다고 하여 그 우상은 유방이 열 두 개나 있고 만물이 다 아데미의 유방에서 나오는 젖을 먹고 생식한다고 믿었다.  아폴로라는 신은 헬라의 남자 우상으로 태양신인데 비해 아데미는 월신(月神)이라고 한다.  데메드리오는 아데미 신의 전각과 아데미 신을 은으로 만들어 팔았다.  크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작은 것은 몸에 차고 다니는 것도 있었다 한다.

은감실은 신전이다.  은으로 신전을 만들고 그 안에는 아데미 신을 만들어 넣었다고 한다.  또 은으로 전각을 만들어 파는 업자가 많이 있었다.  데메드리오와 직공들이 은감실을 만들어 파는 영업을 하여 많음 돈을 벌어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 19:25-26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들은 것이라

데메드리오는 자기의 직공들과 또 같은 영업을 하는 자들을 불러모아 놓고 충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가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팔므로 많은 돈을 벌어 왔다고 상기시키고 바울은 에베소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말하기를 \"사람이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다 들었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바울이 힘써 전도한 것을 알 수 있다.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전도하였고, 우상을 만드는 이 사람들까지 바울에게서 직접 복음전하는 것을 들었다.  실로 바울은 쉬지 않고 전도하여 누구에게나 복음을 다 전하였다.

 

. 19:27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데메드리오가 충동한 내용은 세 가지였다.

① 자기들의 직업이 천하여진다.

② 돈벌이가 잘 안되게 되었다.

③ 아데미의 위엄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같이 일어나서 바울과 그 복음을 반대하고 아데미의 신을 수호하자고 데메드리오가 주장한 것이다.

 

. 19:2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데메드리오가 그들에게 자기들의 직업이 천하여지고 천하가 위하는 아데미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하므로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분이 가득하여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하고 일시에 외쳤다.  아데미를 저희들이 크게 만드는 것이다.  아데미가 크면 가만히 있어도 클 것인데 가짜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크다고 외쳐야 커지는 것이다.  우상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므로 사람들이 크다고 하면 큰 것이고 작다고 하면 작은 것이다.  하나님은 참신이기 때문에 누가 크다고 해서 큰 것이 아니고 누가 작다고 해시 작아지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거짓은 언제나 속여서 선전으로 한몫 보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심령이 어둡기 때문에 거짓이라도 크게 선전하면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 19: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가는지라

가이오 행20:4, 고전1:14, 롬16:23에 나오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다.

아리스다고 행20:4, 27:2, 골4:10, 몬24에 나오는 사람과 동일인이다.  군중들은 그들의 신을 높이는 말에 속아서 격동이 되고 소란을 피웠다.  바울은 그 때에 거기에 없었으므로 다른 신자들을 잡아 가지고 연극장으로 들어갔다.

연극장 당시 연극장은 연극 이외에 집회 장소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 19:30-31  마을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바울이 백성 중에 들어가서 변명하고 진리를 증거하려고 하였으나 제자들이 말렸고 또 관원 중에 친구된 자도 말했다.  바울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이었다.  흥분된 군중들에게 진리를 말해 주는 것은 진주를 개나 돼지에게 던지는 것과 같다.

아시아 관원 그 지방 의회 의장으로서 그 지방의 제사와 경기를 개최하는 지도자가 이 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 19:32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군중들이 충동을 받고 흥분되어 있으며 그 속에는 진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혹은 이 말을 하고 흑은 저 말을 하게 되었다.

 

. 19: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발명하려 하나

유대인들이 알렉산더를 밀어내어 군중 앞에서 말하라고 하였다.  알렉산더는 그 지방의 유지로서 예수를 믿는 사람 같다.  그러므로 알렉산더가 손짓하여 발명(發明)하려고 하였다.

 

. 19:34  저희는 그가 유대인인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 동안이나 하더니

알렉산더도 바울과 같이 유대인으로서 한 파인 줄 알고 듣지 알았다.  군중들은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 동안이나 하였다.  그들은 아데미 신을 높이는데 일치 단결하였다.  그러나 군중들은 데메드리오 일파의 영업이 잘되기 위한 수단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미명 아래서 항상 속고 있는 것이다.

 

. 19:35-37  서기장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전각의 물건을 도적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할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 왔으니

서기장이 무리를 안돈시켰다.  그가 군중들을 설득시키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에베소 성은 아데미의 전각지기인 줄 누구나 알고 있다.

② 그것을 부인할 자가 절대 없으니 안심하라(32).

③ 바울이 전각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않았고 여신을 훼방하지도 않았으니 진정하여 이 일을 바로 처리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먼저 우상을 훼방하지 알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복음을 믿게 하고 우상은 스스로 버리게 한 것을 알 수 있다.  참된 진리운동은 비진리를 반대하는 것보다 참 진리를 전하여 생명을 살려나가는 것을 먼저 하고 거기에 많이 힘을 쓰는 것이다.  그 다음에야 비진리를 반대하도록 해야 한다.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 에베소 사람들은 아데미의 여신이 하늘의 쓰스 신에게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믿었다.

전각지기 우상의 전을 수비하고 소제하고 청결케 하는 직책을 맡은 사람이다.

 

. 19:38-39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거든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

서기장이 계속하여 군중들을 설득시키고 있다.

④ 데메드리오와 그 직공들은 총독에게 정식으로(합법적으로)재판하는 것이 옳다.

⑤ 그 외에 무엇을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도 정식으로(합법적으로) 민회를 모아 결단할 것이다.

무질서하게 군중을 모아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불법한 처사이며 옳지 않다고 하였다.

민회 당시 민회는 로마관리의 허락을 받아 매월 3회씩 열었다고 한다.

 

. 19:40-41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서기관은 결론적으로 이 불법 집회의 소요사건으로 자신이 로마 정부의 책망을 받을 위험이 있고 또 이 소요사건의 주모자는 재판에 회부되어 엄중한 벌을 받을 것이라고 위협하여 무리를 해산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도 놓이고 바울도 위험을 면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서기관을 이용하며 바울과 성도들을 위태한 지경에서 구출하였다.

 

제 20 장  밀레도

 

(대  지)

一. 방문 전도(1-6)

二. 바울의 강론과 유두고의 실족(7-12)

三.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의 행로(13-16)

四. 바울의 권면(17-31)

  1. 과거(17-21)

  2. 현재(22-27)

  3. 미래(28-31)

五. 바울의 부탁과 권면(32-35)

六. 작별 인사(36-38)

 

(본문 강해)

 

一. 방문 전도(1-6)

 

. 20:1-2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에베소 소요가 있은 후에 바울이 제자들을 권면하고 그곳을 떠나 마게도냐로 갔다.  그 지경으로 다니면서 여러 말로 제자들을 권면하였다.  믿음이 어린 신자들은 여러 말로 자주 권면해야 믿음에 굳게 서게 된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교인들을 계속 권면하도록 힘써야 한다.  헬라 아가야의 별명이다(아가야의 헬라명이다).

 

. 20:3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바울이 아가야 지방(고린도)에 석 달을 있었는데 그 때에 성경으로 제자들을 권하였을 것이다.  그 후에 바울은 배를 타고 선교의 본거지인 수리아로 가고자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공모하여 그를 바다에서 해하려고 하므로 해로(海路)로 가는 것을 취소하고 육지인 마게도냐로 돌아가기로 작정하였다.  이러한 때에는 위험을 피해서 가는 것이 좋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는 생명을 내어놓고 간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에는 생명을 내어놓고 가야 된다.

 

.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바울과 함께 여러 사람이 아시아까지 갔다.  소바더 롬16:21의 소시바더와 동일인인지 알 수 없다.  아리스다고 행19:29, 27:2, 골4:10, 몬1:24과 동일인인 듯하다.  세군도 성경 다른 곳에는 안 나옴.  가이오 행19:29와 별개인 임.  디모데 행16:1 참조.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다.  두기고 엡6:21, 골4:7, 딤후4:12, 딛3:12 참조.

 

. 20: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그들은 전 절에 말한 7인이다.  우리는 바울과 누가를 포함한 일행을 말한다.

 

. 20: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바울은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지내고 거기서 드로아에 가서 이레를 머물렀다.

 

二. 바울의 강론과 유두고의 실족(7-12)

 

. 20: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안식 후 첫날은 주일날이다.  바울이 주일 날 드로아에서 교인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성찬예식을 거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었다.  그 이튿날은 떠나야 하기 때문에  바울이 그날 밤중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였다.  바울은 밤늦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강론하고 또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바울이 이번에 떠나면 다시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줄지, 또 못 오게 될지 모르는 처지이었다.  바울이 떠난 후에 다른 사람이 와서 가르쳐 준다고 해도 바울에게 배우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은사가 특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바울과 같이 가르쳐 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 곳 성도들은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귀중히 여겨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말씀이라도 더 받아 영의 양식을 삼으려고 밤이 맞도록 열심히 듣고 있었다.

떡을 떼려 하여 성찬예식을 가리킨다. 떡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생명에 깊이 참여하여 영적인 생명을 받아 가지는 일이다.  예배시간에 자기 영혼이 자라나고 새로운 말씀에 자기 심령이 힘을 얻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바울과 교인들이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꿀송이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받으면서 밤이 깊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예배를 드릴 때에 형식적으로만 드리면 생명이 없다.

 

. 20:8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윗다락 삼층 다락을 말한다(9절).  모인 무리가 많기 때문에 등불을 많이 켰던 것이다.

 

. 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예배시간에 사고가 일어났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서 강도를 듣다가 졸음에 못 이겨 삼층 누에서 떨어져 죽었다.  유두고가 떨어져 죽게 된 원인은

① 창에 걸터앉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적은 증거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영으로 받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바로 앉아서 듣게 되고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게 된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영적 세계를 발견하여 지성소에 들어가려고 힘을 써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창에 걸터앉지 않는다.  유두고가 아마 예배 시간에 늦게 왔을지 모른다.  늦게 와서 앉을 자리가 없으니 창에 걸터앉았는지 모른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갈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목마른 자, 사모하는 자를 오라고 하셨다.  목이 마른 사람이 와서 마셔야 그 물이 달다.  이러한 사람은 예배 시간에 늦지 않으며 들은 말씀에 착념하게 되고 그 말씀이 보배로 여겨진다.  그러한 사람은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유두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도 없고 말씀이 귀한 줄도 몰랐다.  그리하여 태도가 바르지 못하고 위치가 바르지 못하고,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였다.  유두고는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전 한마당만 밟는 사람과 같다(계11:1-2 참조).

② 유두고는 심령상태가 졸고 있었으므로 육체도 졸았다.  심령 상태가 졸고 있으면 육신도 졸게 되며 믿음이 떨어진다.  성도는 졸거나 잠자지 말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살전5:6 참조).  심령이 항상 깨어 등불을 켜들고 있다가 주님이 오실 때에 즉시 나가 영접하여야 한다(눅12:35-36 참조).

③ 조심하지 않다가 떨어진 것이다.  졸고 있었으므로 조심하지 못하다가 떨어진 것이다.  조는 자는 현상 유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상태에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유두고가 삼층 누에서 떨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떨어졌다.  참새 한 마리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유두고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신 것이다.  유두고가 떨어진 다음에는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유두고의 신앙 상태는 양쪽에 걸쳐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하신 것이다.  절반은 세상에 절반은 하늘나라에 절반은 믿음 절반은 불신앙이며, 절반은 영적 세계에서 절반은 육신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다.

중간에 머물러 머뭇머뭇하고 옳은 줄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고,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중간에 서 있는 사람은 유두고와 같은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유두고와 같이 징계를 받아야 회개하고 바로 서게 될 것이다.  유두고의 죽음의 결과는 예배에 큰 방해가 되었다.  성도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어야 한다(롬14:7-8 참조).

 

. 20:10-11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유두고가 삼층 누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바울이 내려가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고 하였다.  바울이 유두고 위에 엎드린 것은 유두고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 것이다.  바울이 유두고를 불쌍히 여겨 자기가 떨어진 것 같이 생각하며 유두고를 위하여 기도한 것이 확실하다.  우리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돌보아 주고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권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약한 사람을 붙들어 주고 병든 사람을 돌보아 주고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  유두고가 떨어져 사고가 났으나 바울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여 밤새도록 강론하고 그 이튿날 떠났다.

 

. 20:12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유두고는 그로 인하여 회개하여 바로 서게 되고 심령이 살아나게 되어 감사하였을 것이다.  바울이 떠난 다음에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다.  신자가 실족하여 사경에 이르러 살 소망이 없어졌을 때에 회개하면 전화위복이 되어 자신이 살아나고 교회와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과 큰 위로를 주게 된다.

 

三.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의 행로(13-16)

 

. 20: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행선하니 이는 자기가 도보로 가고자 하여 이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바울은 드로아에서 밤이 맞도록 강론하고 거기서 앗소까지 32km나 되는 길을 배를 타지 않고 도보로 갔는데 이것은 신자들을 방문하고 권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동행자들은 선편으로 보냈다.

 

. 20: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올리고 미둘레네에 가서

바울이 앗소에서 일행을 만나 배를 타고 미둘레네에 도착하였다.  미둘레네 레스보스 섬의 수도이다.

 

. 20: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리고 또 그 다음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기오 미둘레네 남쪽 80km지점에 있는 섬이다.  사모 기오에서 다시 80km떨어진 곳이다.  밀레도 에베소 남쪽 45km에 있는 항구 도시이다.

 

. 20: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려고 3년이나 전도한 에베소 앞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않았다.  오순절에는 각처에서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이 모임으로 그 때에 바울이 전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에 들르지 않은 이유는 반대파들로 인하여 예루살렘 행이 지연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두로에서 7일간(행21:4 참조), 가이사랴에서 여러 날 유한 것을 보면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四. 바울의 권면(17-31)

 

1. 과거(17-21)

 

. 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밀레도에서 에베소까지 48km나 되는 먼 거리까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청하였다.  장로들은 감독이라고 하였다(28절).

 

. 20:18-19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바울이 에베소에서 온 장로들에게 자기가 과거에 어떻게 하였는가를 상기시키면서 권면하였다.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바울은 항상 겸손하였다.  딤전1:15에 바울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하였다.  또 에베소3:8에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자은 자 보다 더 작은 나\"라고 하였다.  참으로 바울은 겸손한 자이다.  누구나 \"나다\"하는 자리(교만)에 서 있으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겸손하고 낮아지면 하나님이 앞길을 열어 주시되 스스로 높아져서 교만하면 망하는 것이다.  겸손은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눈물을 많이 흘렸다.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지 못하고 의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안타까워서 눈물을 많이 흘린 것 같다.  바울의 눈물은 예수님이 흘린 눈물과 비슷한 눈물이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요11:35), 겟세마네 동산에서(히5:7), 예루살렘을 향해서(눅19:41) 우셨다(3번 우셨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신 것은 거기 모인 사람들의 불신앙을 인하여 우신 것이다.  생명이신 예수님이 계시는데 나사로가 죽었다고 우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우신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흠 없는 제사로 드리기 위하여 우셨다.  예수님이 우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생명운동을 위하여 우신 것이다.  유대인의 간교한 계획이 있었으나 바울이 잘 참고 주님을 섬기며 담대히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 20: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바울이 교인들에게 유익한 것 즉 하나님의 바른 진리는 공중 앞에서나 개인의 집에서나 거리낌없이 다 가르쳐 주었다.  다른 사람이 싫어하고 핍박하더라도 그것을 꺼리거나 주저하지 않고 다 가르쳐 주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양심이 평안하고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거리낌이 없었다.

 

.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바울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님께 대한 믿음 즉 복음을 증거하였다.  바울은 이와 같이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파하였다.

 

2. 현재(22-27)

 

. 20:22-23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심령에 매임을 받아 성령의 인도를 받아 심령에 끌려서 따라간다는 말이다.  심령은 중생한 영혼과 마음이 연합된 것이다.  바울이 심령에 끌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가면 환난과 결박이 있는 줄 알면서도 바울은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성령을 순종하게 되고 심령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항상 심령에 매임을 받는 생활을 하였다.  하나님이 성도를 인도할 때에 진리와 영감으로 심령에 역사하여 인도하신다.  성도는 육신은 괴롭더라도 심령의 인도를 순종하여 일을 처리하여야 한다.  새벽기도를 하면 심령이 편안하고 새벽기도를 안 하면 심령이 편안하지 않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바를 거역하면 심령이 편안하지 않다.  남을 사랑하면 심령이 편안하고 남을 미워하면 심령이 편안하지 않다.  인색한 마음으로 연보를 조금하면 심령이 편하지 않고 연보를 힘써 많이 하면 심령이 편안하다.  심령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다.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하여도 심령의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생활을 하는 것이 성도의 가는 길이요, 사는 길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길이다.

 

.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할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나의 달려갈 길 믿는 사람 각자에게 달려갈 길이 있다.  달려갈 길을 잘 달려가는 성도도 있고 잘 달려가지 못하는 성도도 있다.

바울은 자기의 달려갈 길을 계속하여 달음박질하는 사람이었다.  빌립보3:12에서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이 달려갈 길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붙잡아 끌고 가시는 데 나도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야 한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그 뜻을 이루려고 끌고 가시는 중에 있다.  우리도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좇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은 각자에게 각각 다르다.  우리 성도가 모든 정성과 물질과 생명까지 다 바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여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려고 하는 그 뜻을 다 이루어 드려야 한다.  모세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모세가 달려갈 길이다.  엘리야는 엘리야대로 사렙다 과부는 과부대로 각자에게 달려갈 길이 있다.  근본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일이요(행20:24 참조), 자신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행20:18 참조).  주님이 자기를 붙들고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따라가야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달려가려고 하면 생명을 바쳐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죽기를 무서워하면 일생에 종노릇한다(히2:15 참조).  사람이 죽기를 무서워하여 불의에 종노릇하고 마귀에게 종노릇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지 못한다.

 

. 20:25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예루살렘에는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성령이 증거하였으므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순교 당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바울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할 줄을 아노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결사각오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다.

 

. 20:26-27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바울이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리만큼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다.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바를 다하였다는 뜻이다.  에스겔3:18절에 전도를 받지 못한 악인이 자기 죄 값으로 망하면 그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망하지만 그 피 값은 전도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찾는다고 하였다(겔33:8 참조).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사람에게 전도할 책임이 있다.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진자라고 하였다(롬1:14 참조).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화가 미칠까봐 두렵다고 바울이 말했다.  전도하면 복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택한 자를 건져내게 된다.  전도하였으나 그들이 믿지  않고 망하면 그 피에 대하여는 책임이 없고 깨끗하다.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해 주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하였다.

 

3. 미래(28-31)

 

.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바울이 권면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를 위하여 삼가고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하였다.  감독(교역자)이 삼가 조심하여 자기를 지키고 양떼를 지키지 않으면 교회가 무너지고 만다.

둘째, 교회와 자기 직책을 바로 알라.

① 성령이 너희를 감독자로 삼았다. 감독(교역자)직분을 맡은 것은 사람들이 맡겨 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맡겨 주신 것이다(갈1:1 참조).

②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이다.  교인들의 교회도 아니고 목사의 교회도 아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  예수의 피가 교회의 기초가 되었고 성도들은 예수의 피를 인하여 생명이 살아 나가는 것이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면 교인이나 목사나 무조건 순종하여야 한다.

③ 하나님이 양떼를 치게 하셨다.  교인들은 양이므로 목자가 없으면 안되고 목자는 양을 먹이고 쳐야한다.  친다는 것은 양을 기르는 것을 말하며 교역자는 양을 먹이고 다스리고 인도하고 양육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교역자의 진액이 들어가고 피땀과 눈물이 들어가야 교회가 발전한다.  교역자가 양(성도)을 칠 때에 진액을 짜 바쳐서 양떼를 먹이고 잘 돌보아야 양떼가 잘 자라고 번성해 나간다.

교역자가 자기만 먹고(자기 볼장만 보고) 피땀과 진액을 짜 바치지 않는 교회는 양떼가 굶주리고 사방으로 헤매이며 흩어진다.  이러한 목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겔34:2, 6, 10 참조).  그러므로 교회에서 교역자의 위치가 제일 중요하다.  교역자가 만들어져야 교인들이 만들어질 수 있고 교역자의 영이 살아야 교인들의 영이 살게 된다.  교역자의 신앙이 죽으면 교회 전체가 다 죽는다.

 

. 20: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셋째, 이리가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않을 줄을 알라.

흉악한 이리 성도들의 심령에 상처를 주고 물고 뜯는 자들이다.  거짓 선지자와 이단들은 물론이고 보수를 주장하는 교역자 중에도 이러한 자가 많이 있다.  참된 목자 바울이 떠나면 이러한 이리가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빌립보3:2에 개들과 행악하는 자들과 손할례당이 많이 들어온다고 하였다.  개라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물고 찢고 싸우는 자이다.  행악하는 자들은 진리를 세워 나가는 일을 방해하고 파괴시키려고 하는 악한 무리들이다.  손할례당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 얻는다는 율법주의자들이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어 놓았으니 성경은 안 지켜도 된다는 폐법주의도 손할례당과 같은 것이다.

진리를 세워 나가려고 하면 반대하는 사람이 나오고 개와 같이 물고 뜯고 손해를 주려고 하는 역사가 많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이러한 악한 이리에게 양떼가 물려가지 않도록 양떼를 잘 지켜야 한다.

 

. 20: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교회 안에서 어그러진 말을 하며 자기를 좇게 하려는 자들이 일어날것을 말해 주었다.  이러한 자들은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좇음보다 자기를 좇게 하여 자기 유익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 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넷째, 일깨어 3년간 받은 교훈을 기억하라.

① 감독들은 일깨어 있으라고 했다.  교역자가 잠자면 이리가 들어와 양떼를 잡아먹는다.  일깨는 것은 영으로 살며 영적 식별(識別)을 가지는 것이다.  일깨어 있을 때는 이리가 오는 것을 잘 알고 막을 수 있으며 영의 양식을 잘 먹일 수 있다.

② 바울이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교회를 위하여 일을 하였다.  바울은 이렇게 근면하고 충성을 다하였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고전4:2 참조).

③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한 것은 교인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 가르친 것이다.  교역자는 교인들의 되지 못한 것을 긍휼히 여기며 가르쳐야 한다.

 

五. 바울의 부탁과 권면(32-35)

 

. 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은 교회를 주와 그 말씀께 부탁하고 떠났다.  주님이 살아 계셔서 교회를 세워 주시고, 지켜 주시고 그 말씀으로 먹여 주신다.  그 말씀이 교회를 길러 주고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 주신다.  교회는 언제나 주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말씀을 복종하는 성도는 그 말씀이 붙잡아 주고 든든하게 세워 요동함이 없도록 만들어 주고 금생과 내세에 기업이 있게 만들어준다.  말씀에 붙잡혀 사는 사람은 말씀이 하라는 대로하는 것이다.  말씀에 붙잡혀 사는 사람에게는 말씀이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다.  이러한 성도는 그 말씀이 견고하게 세워 주고 기업이 있게 하여 주신다.  그러나 말씀을 무시하고 세상풍속과 자기 생각대로 나가는 자에게는 말씀이 힘이 없고 지켜 주지 못하고 인도하지 못한다.  성도가 말씀에서 안식과 평안을 얻고 새 힘을 얻어야 한다.  주와 그 말씀에 붙잡힌 성도가 복 있는 자이며 주와 그 말씀의 인도를 받는 교회가 참된 교회이다.  이러한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한다.

 

. 20:33-34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바울은 물질에 대하여 탐심을 가지지 않았고 항상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았다.  참 신앙을 가진 자는 물질에 대하여 초월하는 생활을 하게 되고 또 물질도 하나님께 바로 사용한다.  물질에 대하여 믿음을 쓰지 못하는 자는 다른 일에도 믿음을 쓰지 못한다.  바울은 손으로 일하여 동행자들을 도와주면서 전도하였다.  또 바울이 교회에서 연보하여 보내 주는 것을 받아 사용하면서 일하기도 하였다(빌4:14-18 참조).

 

.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대개 다른 사람에게 받는 것을 복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 받는 사람은 받아서 먹으면 없어지지만 주는 사람은 그 의가 하늘 나라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고후9:9-10 참조).  주는 사람은 자기 마음이 기쁘고 믿음을 썼으므로 영혼이 자라난다.  그러므로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남을 도와주려고 힘을 써야 한다.

 

六. 작별 인사(36-38)

 

. 20:36-38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교회를 떠나는 바울과 전송하는 교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울고 무릎을 꿇고 같이 기도하고 가장 사랑하고 친절한 인사를 나눈 후 배에까지 바울을 전송하였다.  그들은 바울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알고 더욱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크게 울며 애석한 작별을 하였다.  바울은 이 모든 인정을 끊고 주의 일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것이다.

 

제 21 장  예루살렘

 

(대  지)

一. 바울의 상경을 만류함(1-12)

二. 바울이 결사 각오함(13-16)

三, 바울이 결례를 행함(17-26)

四. 유대인들의 오해로 소동이 일어남(27-30)

五. 천부장이 바울을 결박함(31-40)

 

(본문 강해)

 

一. 바울의 상경을 만류함(1-12)

 

. 21:1-4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러라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배를 타고 고스로 갔다.  고스는 밀레도 남쪽 68km지점의 섬이다.  거기서 이튿날에 로도에 이르렀다.  로도는 섬인데 항구가 있었다.  거기서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구브로를 바라보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 상륙하였다.  이는 그 배가 그 곳에서 짐을 풀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바울이 거기서 제자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이레를 머물렀다.  그런데 거기에 있는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고난 당할 것을 알고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하였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 당할 것을 제자들이 아는 것까지는 좋으나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인정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 21:5-6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쌔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

바울이 두로에서 머무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자들의 신앙을 굳게 하였을 것이다.  여러 날 후에 바울이 그곳을 떠날 때에 제자들이 성문 밖 바닷가까지 나와서 무릎을 꿇어 기도한 후에 서로 작별하여 바울은 배에 오르고, 제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을 보면 초대교회는 사랑이 넘치고 하나님의 종을 진정으로 사모하고 존경하였다.  제자들이 처자와 함께 바닷가까지 나와서 바울을 환송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종을 귀히 여기고 사모하여 떨어지기를 싫어하고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환난 당할 것을 생각하고 안타까워한 심정을 알 수 있다.

 

. 21:7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바울 일행이 두로를 떠나 배를 타고 돌레마이에 도착하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유했다.

돌레마이는 두로에서 35km지점에 있는 항구이다.

 

. 21:8-9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물렀다.  빌립은 집사로서 가이사랴에 오랫동안 머물며 전도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 딸 넷이 있는데 다 처녀로 예언을 하는 자였다.  빌립의 신앙이 좋으므로 딸들이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아 예언을 하고 복음을 전하였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계1:3, 딤전1:18 참조).  빌립의 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한 것이다.  요사이 예언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 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같이 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을 가(加)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에 더하면 모든 재앙을 받는다(계22:18,19 참조)고 하였다.

 

. 21:10-11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예언하였다.  아가보는 전에도 천하가 장차 크게 흉년들리라고 예언한 사람이다(행11:28 참조).  예언이란 앞날에 어떻게 되어질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다.  사도시대에는 때때로 예언은 표준계시로 주셨으나 이 같은 방법은 사도시대까지 종결되었다(히1:2 계22:18-19 엡3:5 참조).  사도시대 후로는 성경 말씀을 전하는 것이 예언이다.  지금은 성경 이외에 예언의 말씀은 없다(계22:18 참조).  지금은 성경 말씀을 보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을 알아야 한다.  계시록1:3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라고 하였다.  딤전1:18에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경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다.

 

. 21: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환난을 당하겠으므로 바울의 수종자들이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생각으로만 권한 것이다.

 

二. 바울이 결사 각오함(13-16)

 

. 21: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제자들이 울면서 권할 때에 바울의 마음이 상한 것은 제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이미 예루살렘에 가서 환난을 받을 것과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  이 각오는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므로 누가 아무리 권면해도 변할 수 없다.  바울은 그들의 권면을 거절하면서도 사랑이 넘치는 마음으로 하였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면 환난을 만나기도 하고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죽기도 해야한다.  왜 성령께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할 것을 미리 알게 하셨을까?  그것은 바울이 미리부터 환난 받을 각오를 하고 준비를 하게 하기 위함이다.  주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 앞에 가서 상급이 많다.

 

. 21: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처음에는 바울의 상경을 만류했으나 나중에는 주의 뜻에 맡겼다.  이것이 신앙이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는 것이 주님이 가신 길이다(마26:39 참조).

 

. 21:15-16  이 여러 날 후에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쌔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유하려 함이라

바울이 가이사랴의 몇 제자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구브로 사람 나손도 함께 데리고 갔다.  이는 예루살렘에 올라가다가 그의 집에 머물고자 함이었다.

 

三. 바울이 결례를 행함(17-26)

 

. 21:17-19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무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니 형제들이 잘 영접해 주었다.  그 이튿날 바울이 야고보에게로 들어가 야고보와 여러 장로들에게 문안하고 그들에게 이방에서 복음을 전한 것과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 21:20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예루살렘의 유대인 중에 예수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었으나 불신 유대인들에게 크게 핍박을 받지 않은 것은 그들이 율법을 열심히 지켰기 때문이다.

 

. 21: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바울이 이방에 있는 유대인에게 모세를 배반하고, 할례를 행하지 말고 규모를 지키지 말라고 가르친 것처럼 와전되어 있었다.  사실은 바울이 이방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를 가르쳤으며 할례와 규모에 대하여는 자유를 주었다(고전7:6,19, 갈5:6, 고전10:25, 골2:11,16 롬14:3 참조).

그러나 유대인들이 유대주의 사상과 율법에 너무 열심이 있어서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은 것이다.  어느 시대나 깊은 진리에 대하여 이해되지 않을 때에 오해하고 정죄하는 일이 많이 있다.

 

. 21:22-25  그러면 어찌할꼬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에게 타협 방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서원한 네 사람이 예루살렘 교회에 있으니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비용을 내어 그들의 머리를 깎게 하라는 것이었다.  바울이 교리문제에 대하여는 일시라도 복종치 않았고(갈2:3-4 참조) 베드로도 면책하리만큼(갈2:12-19 참조) 강경하였으나 교리문제가 아닌 것은 교리의 일치를 위하여 순응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외부적인 면만 일치시키는 것이므로 내부적인 문제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서원 무슨 소원이 있어 하나님께 도움을 받고자 하거나 감사하는 일이 있을 때 일정한 기간에 나실인으로 몸을 바치는 규례이다(민6:1-21 참조).  이 기간에는 술을 먹지 않고 주검을 만지지 않고 머리를 깎지 않아야 된다.

결례 그 기간 (단기는 7일, 장기는 31일등)이 끝나면 제사장에게 보고하고 머리를 깎아 제단에 불태우고 희생의 제물을 드린다(민6:9-10 참조).  머리 깎는 비용을 내주는 자도 그 일에 찬동하는 자로 여겼다.

 

. 21: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 된 것을 고하니라

바울이 그 네 사람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 결례를 행하고 제사장에게 만기된 것을 고했다(그 기간은 7일이었다(27절 참조).

 

四. 유대인들의 오해로 소동이 일어남(27-30)

 

. 21:27-30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바울이 성전에 있는 것을 아시아에서부터 온 유대인들이 보았다.  그들은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붙들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외치기를 이 사람이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훼방하여 가르치는 자이며 또 헬라사람들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고 말했다.  헬라 사람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 함은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시내에서 바울과 같이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오해한 것이며, 유대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훼방했다는 것도 바울이 믿음으로만 의를 얻는다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였다.  이렇게 오해가 쌓여서 유대인들이 큰 사건을 일으켜 마침내는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五. 천부장이 바울을 결박함(31-40)

 

. 21:31-36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포행을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예루살렘이 소란하다는 소문이 천부장에게 보고되었다.  그러므로 천부장이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찾아가 바울을 잡아 쇠사슬로 결박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바울을 도망하지 못하게 함이다.

② 바울을 폭도에게서 보호하기 위함이다.

③ 사실을 심문하기 위함이다.

바울이 애매히 결박을 당하였다.  천부장이 군중들에게 이유를 물어 보았으나 무리 가운데 어떤 이는 이런 말을 하고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므로 종잡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부대)안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하였고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을 인하여 군사들이 바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들고 갔다.

 

. 21:37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바울은 자기 생명이 위태한 가운데 있었으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그 무리를 불쌍히 여겨 층대에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천부장에게 말하기를 청하였다.

 

. 21: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애굽인이 아니냐 요세보 사기에 의하면 네로 황제 때(주후 54-68년)에 애굽인이 로마 정부를 정복하려고 3만 명을 거느리고 감람산에 웅거하며 예루살렘을 치려하다가 벨릭스 군대에게 패하여 도망쳤다고 한다.  천부장은 치안유지에 골몰함으로 그 도망쳤던 애굽인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 21:39-40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바울이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 사람이며 애굽사람이 아니라고 변명하며 백성에게 말하게 해 달라고 청했다. 의심이 없어진 천부장이 바울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니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손을 흔들어 조용하게 한 후에 히브리말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그때에 바울을 죽이려 하던 사람들이 조용해져서 그 말을 듣게 되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좋은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 사람들을 일부러 모아 놓으려 해도 이렇게 모을 수가 없다.  이때는 그들 전부가 바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고 죽이자 해서 한 사람도 가지 아니하고 들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신기하다.  바울이 죽을 것 같지만 도리어 전도할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바울이 위험한 지경을 당했으나 힘써 복음을 전하려고 용기있게 자기의 사명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힘써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므로 하나님이 복음을 전할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좋은 환경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며 역경에서라도 하나님만 의뢰하고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다.

 

제 22 장  백성

 

(대  지)

一. 바울이 자기의 신앙경험을 들어 전도함(1-21)

二. 백성들이 바울을 반대하고 소동함(22-23)

三. 천부장이 바울을 결박하고 신문함(24-30)

 

(본문 강해)

 

一. 바울이 자기의 신앙 경험을 들어 전도함(1-21)

 

. 22:1-3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바울이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하였으며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한 율법을 공부했다고 할 때에 유대인들은 친근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은 율법적으로 경건하고 열심있는 사람이다(행5:34 참조).  바리새 교인 중에 가말리엘파와 또 다른 파가 있었는데 가말리엘파가 좀 더 율법에 엄격하고 경건한 보수파였다. 바울은 자기가 누구인 것과 어떻게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과 그리스도의 명령을 어떻게 받은 것을 말하기 위하여 이렇게 서론을 말한 것이다.

 

. 22:4-5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바울 자신도 전에는 그들(유대인들)처럼 예수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핍박하여 믿는 자들을 결박하여 옥에 넘겨주었고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 다메섹의 성도들을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받게 하려고 그 곳으로 갔었다고 말했다.  이 말도 그들이 좋게 받아 들였을 것이다.

 

. 22: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오정쯤 되어 하늘에서부터 큰 빛이 자기를 내려 비쳤다고 했다.  사도행전9:3에는 \"오정\" \"큰 빛\"의 기록이 없다.

 

. 22:7-8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신자가 핍박받을 때에 예수님은 자기가 핍박받는 것으로 여기고 도와주신다(행9:5 참조).

 

. 22: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영의 귀가 열린 사람들만 주의 음성을 듣는다(계2:7 참조).

 

. 22: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징계를 받아 거꾸러진 때에는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하고  바로 서는 길을 찾아야 한다.

 

. 22: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하나님의 구인운동을 방해하고 막는 자는 신령한 눈이 어두워진다.

 

. 22:12-13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율법적으로 경건한 아나니아가 안수하고 인정해 주었다고 하여 유대인들이 바울을 인정할만 하도록 말해 주었다.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주 예수 앞에 회개하면 신령한 눈이 밝아진다(행9:18 참조).

 

. 22:14-15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바울은 하나님이 택한 일군이라는 것을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알게 해 주었다.

저 의인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신구약 성경을 다 지켜 완전한 의를 이루어 놓았으며 믿는 사람에게 그 의를 주신다.

 

.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왜 주저하느뇨 주저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주님은 구원역사를 급속히 진행시켜 나가신다.

죄를 씻으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으라는 뜻이다.  세례는 믿는 표요 죄 씻음 받은 표이다.

 

. 22: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바울이 아라비아 광야 생활 3년 후 다메섹에 갔다가 예루살렘에 온 것이다(행9:26, 갈1:18 참조).

비몽사몽간 사도행전10:10 해석을 참조하라.

 

. 22: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사도행전9:29-30에는 바울이 담대히 전도하다가 죽이려는 사람 때문에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때는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교역자가 자기 임지로(하나님이 보내는 곳)가서 일해야 그들이 복음을 잘 받게 된다.

 

. 22:19-20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바울이 주 믿는 사람을 가두고 스데반을 죽일 때에 옷을 지켜 준 것을 저희가 다 아는데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뜻으로 바울이 겸손하게 말한 것이다.  이것은 미디안 40년 후에 모세가 취한 태도와 같다(출4:1 참조).

 

. 22: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바울은 이방의 사도로 임명받았다.

 

二. 백성들이 바울을 반대하고 소동함(22-23)

 

. 22:22-23  이 말 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에게로 보냈다고 말할 때에 유대 사람들에게는 그 말이 제일 귀에 거스렸다.  유대인들은 이방 사람들을 더럽게 여기고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 사람에게 보냈다는 말을 들을 때에 \"이런 놈은 살려 둘 수가 없다\"하고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며 큰 소동을 일으켰다.

 

三. 천부장이 바울을 결박하고 신문함(24-30)

 

. 22: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므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천부장은 청중이 떠드는 것을 보고 바울이 무슨 죄가 있는 것으로 알고 바울을 가죽으로 결박하여 채찍으로 때리며 심문하라고 하였다.

 

. 22:25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바울이 결박을 당하고 채찍으로 매를 맞게 될 때에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자기를 방위하였다.  당시 노예는 채찍으로 때릴 수 있었지만 로마 시민을 채찍으로 때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성도가 불의의 침해를 당할 때에는 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 22:26-27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부장이 놀라서 근심하며 바울에게 와서 \"네가 로마 사람이냐\"고 확인하였다.

 

. 22:28-29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당시 로마 정부는 세금의 부족금을 보충하기 위하여 시민증을 고가(高價)에 팔았다고 한다.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권이 있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  하면서도 결박을 풀어 주지 않았다.  결박한 것은 로마법에 위반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는 고난이요 이를 통해서 바울에게 유익을 주고 복음이 전파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 22:30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 저희 앞에 세우니라

천부장이 무슨 일로 바울을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이튿날 제사장들과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저희 앞에 세웠다.

 

제 23 장  공회

 

(대  지)

一. 바울이 공회 앞에서 증거함(1-10)

二. 주께서 바울을 격려함(11)

三. 결사대가 바울을 죽이려함 (12-15)

四. 하나님이 바울을 건져 주심(16∼30)

五. 바울을 가이사랴로 호송함(31-35)

 

(본문 강해)

 

一. 바울이 공회 앞에서 증거함(1-10)

 

. 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바울은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아니하고 담대한 힘이 나온다.  딤후1:3에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였다.

또 딤전1:19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였다.  선한 양심을 버리고 예수 믿는 사람은 파선한 배와 같다.  벧전3:21에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양심이 절대 완전한 것은 아니다.  성경을 깨닫기 전의 양심과 성경을 깨달은 다음의 양심과는 다르다.  성경을 잘 모를 때에는 죄를 죄인 줄 모르고, 잘못된 것을 옳다고 하였으나, 성경을 많이 배워 깨달은 다음에는 죄를 죄인 줄 알게 되고 과거에는 옳은 줄로 알았던 것도 잘못된 것을 깨닫게 된다.  양심은 언제나 성경에 비판을 받고 양심이 성경을 따라가야 한다.

선한 양심은 신앙 양심인데 성경에 비판을 받은 양심이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영혼에 사용되는 양심이다.  선한 양심이 옳은 것을 판단해 주고 옳은 것을 가르쳐 준다.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은 양심에 옳은 것을 그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겼다는 말이다.  그러한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요 점점 그 영혼이 자라난다.  신자가 양심에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신앙 양심에 잘못되었다고 깨달아지면 즉시로 돌이켜야 한다.

 

. 23: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다가 그 입을 치라고 하였다.  이것은 바울이 증거하는 복음을 폭력으로 막으려는 마귀의 역사이다.

 

. 23:3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율법에는 죄를 정하지 아니하고는 때리지 못하게 되어 있다(신25:1-2 참조).  아나니아가 바울을 아무 죄도 정하지 않고 때리라고 하기 때문에 바울이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하고 책망하였다.  회칠한 담은 겉은 회칠하여 아름답게 보이나 속은 흙이다.  즉 겉은 깨끗하게 보이나 속은 더럽다는 뜻이며 그들의 외식을 말한다.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불의한 아나니아에 대한 예언이다.  그후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그 예언대로 유대 전쟁 때에 자객에 의해 피살되었다고 한다.

 

. 23:4-5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곁에 선 사람들이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고 힐문하였다.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 줄 모르고 그렇게 말한 것을 겸손하게 사과하였다.  아나니아가 잘못하기 때문에 바울이 책망을 하였으나 성경말씀에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출22:28 참조)고 하였기 때문에 그 말씀에 의하여 사과하였다.

바울은 ① 언제나 성경말씀 순종에 충실하였다.

② 불의를 언제나 미워하였다.

③ 잘못은 누구에게나 솔직하게 사과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자기의 잘못된 점을 알 필요가 있고, 핍박하는 무리들이 잘못하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관원이나 윗사람을 비방하지는 말아야 한다.  다만 하나님의 일을 계속하고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된다.

 

. 23:6-8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바울을 정죄하려는 공회원들의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이었다.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여 교리적으로 잘못된 사람들이고 바리새인은 부활이나 천사나 영이 다 있다(8절)고 하여 교리적으로는 보수이나 실제로는 믿지 않는 자들이다.  바울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불쌍히 여겨 두 가지 선언을 하였다.

① 나는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의 아들이다.  이것은 바리새파가 교리적으로 옳다는 뜻이다.

② 예수님의 부활을 인하여 심문을 받는다.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이나 다 예수의 부활을 믿으라는 뜻이다.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은 믿지 않아 반대하였고, 사두개인들은 아예 부활이 없다고 하므로 부활이 분명히 있으니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라고 복음을 증거한 것이다.  바울의 말을 듣고 회개하여 믿었으면 두 파가 싸움도 안하고 구원을 얻어 생명길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바리새파는 바울의 말을 자기 교파에 유리하도록 이용하려고만 하였다.

 

. 23:9  크게 훤화가 일어날쌔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바울이 증거하는 부활의 복음을 듣고 바리새파는 그것을 이용하여 사두개파를 이기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혹 영이나 천사가 바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냐로 하였다.  그들은 진리를 믿으려 하지 않고 자기들의 주장만 내세워 반대파를 누르고 이기려는 데에만 급급하였다.  그러므로 두 파가 싸움이 붙었다.  교파 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바울의 원 목적은 싸움을 붙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바울이 싸움을 붙이려고 했다면 하나님 앞에 옳지 않다.  바울은 두 파가 다 회개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종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그 복음을 생명으로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리새인들이 말로는 천사가 있고 부활이 있고 영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이 부활하였다고 하면 믿지 않는다.  이것이 타락된 종교이다.  말로는 교리가 보수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안 믿는 사람들이다.  베들레헴에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서기관들이 알았으나 실제로 가서 경배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가서 경배한 사람은 동방박사들이었다.  말로만 \"보수이다\" \"정통이다\" 하면서도 실제로 그 세계에 들어가 그 진리를 생명으로 삼고 따라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수다 정통이다 하는 것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교파나 확장하고 교파 싸움이나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악한 일이다.  바울이 진리를 전하여 주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도자는 재판한다고 하면서 폭력으로 복음을 막으려고 하고 죄 없는 자를 죄인 취급하여 치는 것을 일삼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악하고 패역한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 23: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큰 분쟁이 생겨 바울이 찢겨 죽을 위험한 상태에 처했으므로 하나님이 천부장을 감동시켜 건져내어 영문(부대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① 하나님이 천부장을 이용하여 바울을 보호하게 하셨다.

②. 하나님은 그 영문을 바울의 피난처가 되게 하셨다.

③ 바울은 공회원들에게 복음을 성공적으로 증거하였다.

④ 마귀의 역사들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이용되고 마귀는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二. 주께서 바울을 격려함(11)

 

. 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에게 \"담대하라 네가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범사에 양심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나타나 주신다.  생명을 내어놓고 참된 그리스도의 도를 전하여 주는 사람에게 주님이 나타나서 위로하여 주시고 격려하여 주시고 사명을 주시고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신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죄인 취급을 당하고 매를 맞고 영내에 갇혀 있으나 주님이 찾아와 주시고 격려하여 주실 때에 얼마나 힘이 나고 담대하여졌을까!  주님은 분명히 바울에게 \"내가 너와 같이 한다 너는 담대하라 또 여기서만 전하지 말고 로마에까지 가서 이 복음을 전하라\" 할 때에 큰 위로가 되고 새로운 소망과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바울을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렇게 크기 때문에 마귀 역사도 크게 일어났다.  양지가 크면 음지도 큰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가 크면 마귀의 역사도 그만큼 크다.  하나님의 은혜면만 보고 마음을 놓지 말고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마귀 역사는 언제나 쉬지 않는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는다고 하였다.

 

三. 결사대가 바울을 죽이려함(12-15)

 

. 23:12-13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 여명이더라

그 이튿날 유대인 사십 여명이 결사대를 조직하여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결심하였다.

 

. 23:14-15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볼 양으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그 결사대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는 천부장에게 가서 바울에 대하여 사실을 좀더 자세히 알아볼 것처럼 청하여 바울을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면 도중에서 자기들이 바울을 잡아죽이겠다고 말하였다.  이 궤계가 성공이 되면 바울은 꼼짝없이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서 바울이 죽지 않았다.

 

四. 하나님이 바울을 건져 주심(16-30)

 

. 23:16-18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함을 듣고 와서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고한지라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가로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가로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바울을 죽이려는 40여명의 결사대가 조직되었다는 정보를 바울의 생질이 알고 바울에게 가서 전해 주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한 백부장에게 말하여 자기 생질을 천부장에게 인도하도록 하였다.

 

. 23:19-21  천부장이 그 손을 잡고 물러가서 종용히 묻되 내게 할말이 무엇이냐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저희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당신은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저희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 여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매

천부장이 바울의 생질을 통하여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는 궤계를 알게 되었다.  주의 종을 죽이려는 것과 복음을 막으려 하는 궤계를 하나님이 다 아시고 그것을 막아 주신다.

 

. 23:22-24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 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 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하나님이 천부장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로마 사람인 바울을 그 결사대의 궤계에서 건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밤 아홉 시쯤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 백 명, 마병 칠십 명, 창군 이백 명 모두 사 백 칠십 명이 바울을 호위하게 하고 바울을 태워 갈 말(馬)을 준비시켰다.

 

. 23:25-30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줄 들어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송사하는지 알고자 하여 저희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 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송사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를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