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골로새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골로새서 강해

 

·기록한 사람 : 사도 바울

·기록한 때 : 주후 61-62년경

·기록한 장소 : 로마옥중

 

    1234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골로새서 1장

 

 

제 1장  복 음

 

(대  지)

一. 문안 축복(1-2)

二. 감사(3-8)

三. 기구(9-12)

四. 그리스도와 그 구속(13-24)

五. 구원운동(25-29)

 

(본문 강해)

 

一. 문안 축복(1∼2)

 

.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사도 바울이 사도 된 것은 사람의 뜻이나 사람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된 일뿐이어야 참된 일꾼이다.

형제 디모데 바울이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이라고도 하였다(딤전1:2 참조).  디모데는 바울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행16:1 참조), 바울을 아버지와 같이 받들어 나가면서 충성되이 섬겼다.  바울이 그를 아들같이 사랑하며 양육하였으나 그를 형제라고 한 것을 보면 그의 겸손과 디모데를 존중히 여기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예수 믿는 사람을 성도라고 말했다.  성도가 \"구별된 자\"라는 뜻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고전3:16 참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하나님이 사용하는 그릇이 되었기 때문에 구별된 자이다.

신실한 형제들 성도를 신실한 형제라고 한 것은 그 인격 전체가 신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그 말씀과 중생한 영혼은 다 신실하다.  그러므로 참으로 믿는 사람은 신실하지 않을 수 없고 선한 양심을 쓰는 사람은 신실을 떠날 수가 없다.  성도가 신실하지 못하면 벌써 믿음을 버린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신실해야 한다.

아버지 하나님 신자가 물과 성령으로 중생할 때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신자는 또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롬8:15, 갈4:6 참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다(요1:16 참조).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준 것으로서 구속에 대한 모든 선물이다.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한 것과,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과, 우리 죄를 위해서 주님이 피 흘려주신 것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과,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데려가는 것 등이 은혜이다.  이 은혜의 내용이 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성경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이 곧 은혜를 받는 것이다.  사람들이 일시적인 감동이나, 위안, 기쁨, 흥분된 감정을 은혜인 줄로 아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말씀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은 참된 은혜가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지 아니하고 은혜만 받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참된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구속의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받아 가지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 선물을 받아 누리며 하나님과 교통하며 영으로 사는 생활을 해야 한다.

평강은 은혜 속에서 산 결과이다.  성도가 은혜 속에서 살게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평강이 넘치게 된다.  이 세상은 환난 풍파가 많은 곳이지만 은혜 속에서 사는 사람은 언제나 그 심령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다.  참된 평강은 물질이나 인간의 사랑과 같은 세상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솔로몬왕은 세상의 권세와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보았으나 거기에 평강이 없으며 다 헛된 것이요, 고생뿐이라고 했다(전2:3-11 참조).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 때에는 초막이나 궁궐이나 참된 평강과 행복이 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속을 떠나서는 행복을 찾지 못하고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음과 같이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참된 행복과 평강을 누릴 수는 없다.

 

二. 감사 (3-8)

 

.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골로새교회 교인들의 신앙이 너무 좋기 때문에 바울이 그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려고 하면 감사부터 나오게 되었다.  교역자가 어느 교회나 개인을 위하여 기도해 주려고 할 때에 감사가 나온다면 참으로 복 받은 교회요 복 받는 성도이다.  그러나 반대로 걱정부터 나온다면 그 교회나 성도는 큰 문제이다.

 

.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골로새교회가 믿음과 사랑과 하늘에 쌓아 둔 소망(5절 참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골로새 교인들은 믿음이 좋고, 사랑이 풍성하고, 소망을 하늘에 쌓아둔 신앙을 가졌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었다(살전1:3 참조).

참된 신앙에는 행함(역사)이 따르고, 참된 사랑에는 수고가, 참된 소망에는 인내가 있어야 된다.  야고보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다.  생명 있는 믿음에는 역사가 있고 힘이 있어서 실행이 따르게 된다.  참된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며 수고하는 것도 즐거움으로 하게 된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 다음에 성도를 사랑해야 한다.  고전16:22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 하였다.  성도가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남을 사랑하려고 하여야 한다.

마태7:12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였다.  우리 성도가 남에게 사랑을 받고 싶으면 우리가 먼저 남을 사랑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사랑이 없다고 하지 말고 자기가 먼저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사랑이 많아지고 그 사랑이 자기에게 돌아온다.

 

.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벧전1:4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 있다.

이 소망은 견고하여 도적 맞을 염려가 없고, 동록이 술지도 않는다.

로마5:3-4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다.  \"소망을 이룬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간다는 뜻이다.  우리 성도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이다.  이 소망을 가진 자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데 그 이유는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방법이며 하늘에 소망을 쌓는 생활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것은 영원부동하고, 영원불변하고, 영원불멸할 것이다.  성도가 환난이 들어올 때에 말씀을 붙들고 참아야 연단이 되고 연단이 되어야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  또 이것은 하늘에 쌓아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정도에 따라 하늘에서 상금을 받고 기업에 참여하게 된다.

지난 1981년 11월 7일자 크리스챤 신문과, 1981년 12월 4일자 한국일보 기사에서 여러 목사들이 부모의 제사 문제에 대하여 말한 것을 필자가 읽어보았다.  그 목사들이 말하기를 성도가 부모의 제삿날에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모의 사진과 음식을 차려 놓고 절하는 것은 죄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였다.

이것은 신사참배 바람보다 더 큰바람이다.  전에는 성도가 조상의 제사를 하지 않으려고 순교를 당하고 심한 핍박을 받았는데 오늘날 제사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내어버리는 것이요 믿음에서 떠난 것이다.  신사참배 때에는 일본정권에 눌려 강압적으로 하였으나 지금은 가르쳐 꾀어 미혹을 시켜서 우상을 섬기도록 만들고 있다.

십계명의 제 이 계명에 우상은 섬기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며, 만들지도 말라고 하였다.  강제로라도 절하면 안 된다.  살아 있는 부모는 마땅히 섬겨야 하되 부모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그 시체에다 절을 해도 죄가 된다.  왜냐하면 시체는 인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추도예배 하는 것이나 제삿날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절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요 죄이다. 인격이 아닌 것에 절을 하면 그것이 우상이 된다.

 

.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며 깨닫지 못하면 망한다(호4:6,14).  물고기가 물에서 살면서도 물의 혜택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이 공기 속에서 살면서도 공기의 혜택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 속에 살면서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시고, 그 피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속해 주신 그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달아야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복이 아니면 주시지 않는다(롬8:32 참조).

시편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다 멸망할 자들인데 하나님이 구원하사 존귀에 처하도록 만들어 주신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참으로 깨닫기만 하면 항상 감사와 감격이 넘칠 것이다.  우리가 깊은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은혜이다.  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면 모든 사건이 전부 은혜이다.  여러 가지 환난과 가시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다.

바울에게 가시를 준 것도 은혜라고 하였다.  바울이 그것을 깨닫기 전에는 그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특별히 기도하였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것을 주었으니 족한 줄로 알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가시가 은혜인줄 깨닫고는 크게 기뻐하였다(고후12:7-11 참조).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곡식은 자라나야 열매를 맺으나 성도의 인격은 열매를 맺어야 자라난다.  성도가 어떤 열매를 맺어야겠는가?  믿음을 지킨 열매, 사랑을 한 열매, 소망으로 참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열매를 맺는 것은 산 증거이다.  죽은 것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자라날 수도 없다.  산 믿음을 가진 성도는 믿음을 쓰므로 믿음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것이 곧 믿음의 열매이며 그 열매가 맺힐 때마다 영혼이 조금씩 자라난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 것과 백세 때에 이삭을 받은 것과 그 이삭을 번제로 바치고자 한 것 등이 믿음의 열매이다.  성도가 연보하는 것도 믿음의 열매라고 하였다(빌4:17 참조).

믿음으로 힘써 연보하면 그 신앙 인격이 자라난다.  성도는 또 사랑의 열매를 맺혀야 영혼이 점점 자라난다.  원수도 사랑하고, 자기에게 손해를 주는 사람도 사랑하며,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때에 영혼이 조금씩 자라난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을 때에도 자기를 죽이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의 열매이다.

또 성도가 소망의 열매를 맺어야 영혼이 자라난다.  소망으로 모든 것을 잘 참고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이 소망의 열매이다.

열매 없는 나무는 찍어 불에 던진다고 하였고(마3:10 참조), 예수님께서도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마21:19 참조).

 

. 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요

에바브라는 본래 골로새 교인들을 가르친 사람이다(골4:12 참조).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골로새 교인들이 그를 바울에게 보내었다(몬1:24 참조).  이 에바브라는 에바브로디도(빌2:25)와는 다른 사람이다.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와서 골로새 교회의 모든 사정을 말해 주므로 그 형편을 알고 난 뒤에는 바울이 그 교회를 위해서 매일 기도해 주고 그 교인들을 사랑하였다(9절 참조).  골로새 교인들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소식을 듣고 바울을 사랑하여 사모하고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다.  바울과 골로새 교인들간에는 서로 보지 못하였으나 소식을 들어 알고 이렇게 신앙적인 교제와 영적인 교제를 하였다.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골로새 교인들이 에바브라를 통하여 바른 진리를 배웠다는 뜻이다.  그 시대에 여러 가지 미혹을 시키는 주장이 많이 있었다.  철학 사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교인들을 미혹하였고(골2:8), 월삭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율법주의와(2:16), 천사 숭배(2:18) 및 금욕주의(2:21)가 교인들을 미혹시켰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에바브라에게서 배운 바른 진리를 굳게 지키라고 권면하였다.

딤후3:14에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하였다.  이것은 디모데가 사도 바울에게 배운 따른 진리를 굳게 붙잡으라는 말이다.  딤후3:13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하였다.  피차 속이고 속는 세대에 너는 바울에게서 배운 바른 진리에 굳게 서 있으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2:25에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하였다.  너희에게 있는 바른 교훈(진리)을 말한다.  굳게 잡아 일생 동안 굳게 지키고 그것을 전파하여 후손들도 바른 진리 안에서 살도록 해야 한다.

 

.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에바브라가 성령 안에서 골로새 교회의 사랑을 바울과 디모데에게 말해 주었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한번도 보지 못했으나 에바브라가 교회의 형편과 교인들의 신앙상태를 자세히 말해주므로 잘 알게 되었다.

 

三. 기구 (9-12)

 

.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듣던 날부터 그 교회를 위해서 매일 기도하였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 바울은 하나님께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지혜 육적 지혜가 아니고 영적 지혜인데 성령이 중생한 영혼에게 역사하여 알게 해주는 하나님의 지혜이다(고전2:6-14 참조).  이 지혜는 신령한 이치에 대해서 바로 아는 지혜이다.

총명은 선악에 대한 분별과 참과 거짓에 대한 분별력을 말한다.  신령한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태10:16에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라는 말은 우리 안에 있는 지혜로 하지 말고 우리밖에 있는 지혜 즉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그 지혜로 해야만 마귀를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신령한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데서 나오며, 총명은 영적 세계에서 영감과 진리의 인도를 받을 때에 나온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그 뜻대로 해야 된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찾는가?

①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성경의 원리원칙을 따라서 찾아야한다.

② 신앙양심을 써서 찾아야 한다.

③ 기도를 많이 하는 중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찾아야 한다.

④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한다

⑤ 신앙 경험으로 찾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면 먼저 자기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욕심은 나침반 안에 들어간 다른 쇠붙이와 같다.  나침반에 다른 쇠붙이가 들어가 있으면 나침반이 방향을 잘못 가리키고 그 배는 바로 항해하지 못하여 파선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모든 것이 성공이요,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된다.

 

. 1: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았으면 주께 합당히 행하여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주께 합당히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노하시고 심판하신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신다(요13:31-32 참조).  주께 합당히 행하는 자를 하나님이 존귀케 해 주고 앞길을 열어주시고, 모든 좋은 것을 아낌없이 다 주신다.

선한 일에 열매는 선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 즉 착한 행실을 말한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면 선한 열매가 맺히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영혼이 점점 자라나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지극히 작은 부분만을 아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해도 그 사랑의 억만 분지 일도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지구만 하다고 하면 우리가 아는 것은 겨우 모래 찬 알만큼의 정도이다.

 

. 1:11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영광의 힘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본체에서 나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모든 속성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영광의 힘은 하나님의 속성과 인격에서 나오는 힘이다.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모든 속성에서 나오는 능력으로 성도들을 능하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능력 있는 자가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능력을 입혀 주시려고 우리를 붙드시고 역사하시고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인도대로 순종만 하면 그 능력을 입혀 주신다.

기쁨으로 모든 견딤 우리가 여러 가지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계속 순종하면서 견디어야 한다.  기쁨으로 견디는 것은 소망을 견고히 붙잡고 그 소망을 이루어 나가기 때문이며 또 하나님의 능력을 입었기 때문이다.

오래 참음 핍박이나 모욕을 받으면서도 대항하지 않고 고요히 기다리는 태도이다.

 

.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빛 가운데는 영적 세계를 말한다.  성도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야 신령한 기업을 얻게 된다.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 선한 싸움을 싸워서 이기는 사람은 영권이 있고, 중생한 영이 자라난다.  영권이 크고 영이 많이 자라난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크고 많은 기업을 얻는다.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기업을 받기에 합당하게된 자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려고 힘쓴 것은 사실이지만 순종한 그 공로로 된 것이 아니고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이루어진 것이다.

 

四. 그리스도와 그 구속(13-24)

 

.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흑암의 권세는 빛의 세계와 반대되는 것을 가리킨다.  믿기 전에는 누구나 빛의 세계를 모르고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산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흑암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았다.  \"아들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신령한 나라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구속의 나라이다.

에베소2:1에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였으며, 에베소2:6에는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하였다.  우리의 중생한 영은 흑암의 권세에서 나와 하늘에 앉아 있다.  중생한 영은 구원을 받아 영적 세계로 옮겨졌으나 몸은 아직도 죄와 사망 하에 있다.

로마8:10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하였다.  로마8:23에는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는 몸을 점점 건져내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몸의 구속이요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성도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법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죄 사함을 받아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나신 자니

여기서부터 우리를 구속해 주신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신가를 논하는 기독론이 시작된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내었다(요1:18 참조).  예수께서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었고, 능력과 거룩의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었으며, 지혜로우시고 완전하신 분이심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잘 나타내어 보여주었으므로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 수있다.  요14:9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나신 자로써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영원히 나셨다.  이것은 항상 계속되면서도 항상 완료되는 신적 역사이다(시2:7 참조).  그리스도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시작이 없고 끝이 없이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나시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나신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이시며, 성자는 성부께로부터 영원히 나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영원히 나신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때가 없는 것처럼 성자와 성령도 없는 때가 없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무시무종(無始無終)이며 안 계시던 때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만물보다 먼저나신 자라고 하였다.

 

.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흑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자이시다.  요1:1-3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말씀\"은 로고스( g ) 즉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잠8:21-31 참조).  성부께서 계획하시고 예정하신 것을 성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시고 실현시킨 것이다.

 

보이는 것 피조물 중에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들 즉 가견적인 만물을 가리킨다.  보이지 않는 것 피조물 중에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들 즉 모든 영들과 영적 세계의 모든 것들을 가리킨다.

보좌들이나 주관자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천사들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천사들을 창조하였으며 천사 중에는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가 있다.  악한 천사는 마귀이다.  마귀는 본래는 선한 천사였으나 교만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쫓아내어 어두움의 권세 아래 가두어놓았다(겔28:13-17, 벧후2:4 참조).

그로 말미암고 만물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존재한다.  히브리1:3에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한 순간이라도 붙들지 않으시면 전부 파멸되고 만다.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만물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하신다.  그러므로 만물이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리스도가 만물보다 먼저 계신 것은 그리스도가 영원 자존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만물이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붙들고 있으며 만물이 그리스도의 주장 아래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만물과 함께 계시고, 만물 안에 내재(內在)하시고, 만물을 초월하여 계신다.

 

. 1:18  그는 고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교회는 그의 몸이다.  교회는 만물 위에 있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만물과 그리스도의 중간에 교회가 있다.  바울이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밝히 말한 것은 그 당시에 여러 가지 이단 사상들이 많이 나와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들을 숭배하며 따라가기 때문에 참된 진리는 그리스도 예수에게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함이다.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음을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셨다.  \"먼저 나신 자\"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뜻이다(고전15:20 참조).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성도의 부활의 표본이요 원동력이 된다.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므로 만물의 머리가 되었다.  예수님은 원수 마귀와 멸망의 원인인 죄악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했으므로 자기 백성과 만물을 구속하게되었다(롬8:20-22 참조).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으뜸 즉 머리가 되었다.

 

.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 하나님의 속성의 충만을 가리킨다.  즉 사랑과 진실과 의와 선과 지혜와 지식과 능력 등등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충만을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그 충만으로 만물을 지배하고 자기 백성과 만물을 구속하신다.

   

.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서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이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셨다.  피조물들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었다.  예수님께서 만민을 화목케 하고 더 나아가서 만물까지 화목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크고 위대한 일이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충만을 만민과 만물에까지 충만케 하실 것이다(엡1:23 참조).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의 충만을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신 것이다.

고전15:27-28에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주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만물 화목이요 만물 구속이다.

 

. 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우리가 전에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멀리 떠났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원수가 되었었고 우리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었다.

 

.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 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케 되었다.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우리를 구속하실 궁극적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워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려는데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현세의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연단과 양육을 갈 받아 점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 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 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믿음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고 말씀에 거하는 것이다.

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고전3:10-11 참조).  에베소2:20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다.  사도와 선지자의 터는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가리킨다.  성도의 신앙이 성경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복음의 소망 복음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므로(롬1:3 참조) 그리스도께 도달하는 소망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소망을 말한다.  이 소망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전진하면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자로 만들어진다.  이 참된 복음이 천하 만민에게 전파되었으니 다른 것에 미혹 받지 말라는 뜻이다.

 

.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한번도 가 본 일이 없으나 그 교회를 위하여 괴로움 받는 것을 기뻐한다고 말하였다.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감옥에 갇혀 괴로움을 받는 것은 그 복음을 받는 모든 교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피땀 흘리는 기도를 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려고 본서를 기록하였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받을 때에 온전히(100%) 다 당하셨으며 조금도 남겨 놓으신 것이 없다.  우리가 구원받는데 있어서 속죄의 고난을 99%는 예수님이 받으셨고 나머지 1%는 본인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단설이 된다.  우리의 구원이 인간의 고난이나 공로는 조금도 관계할 수 없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남은 고난이란 무엇인가 ?

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다.

② 복음으로서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다(고전4:15 참조).

③ 성도의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다(갈4:19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복음을 전하는 교역자가 당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위에 세워지고, 교역자의 일심정력과 땀과 진액 위에 성장한다. 천주교의 주장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대부분 다 담당하셨으나 조금 남아 있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그 고난을 받아야 완전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루터도 구원받기 위하여 빌라도 사다리를 무릎으로 올라가며 고행을 하였다.  그렇게 하던 중 루터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을 깨달았다.  사람이 고난을 받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것이 종교 개혁의 계기가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남겨 놓았다고 하거나 그 고난을 사람이 받아야 된다고 하면 사람의 공로 때문에 죄 사함을 받는 결과가 된다.  인간의 의는 하나님 앞에 더러운 옷과 같은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 죄사함을 받는 공로가 되겠는가!(사64:6 참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고 교인들을 길러 나가는 고난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마20:22 참조).

우리가 주님의 고난의 잔을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는다.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희생하고, 고난을 많이 당하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이다.  구원 역사를 위하여 고난을 많이 당하는 사람은 천국에서 큰 자로 예정된 사람이다.

 

五. 구원운동을 위한 수고(25-29)

 

. 1:25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바울이 하나님의 일군(교역자)이 되어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워 나갔다.  그 이유는 골로새 교회 (이방 교회)를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고자 함이었다.

경륜은 광범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이다.  즉 이방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따라서 바울이 하나님의 일군이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이 비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 비밀이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취었던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나타내었다.  만세와 만대는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 전의 모든 세대를 가리킨다.

 

.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비밀의 영광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영광이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그들이 믿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게 되었다.  그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풍성하였다.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 그리스도가 영광의 소망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고자 하는 것이 소망이다.  요일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가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때에 우리도 그와 같이 될 소망이 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와 같이 될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리스도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에 도달하려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그 영광을 소망하고 나가는 자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롬5:3 참조).

그 이유는 환난이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소망을 가진 자는 믿음을 잘 지키고 연단을 잘 받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천국에 가면 여러 가지 면류관이 있는데 자격을 만들어야 그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  자격을 만들지 못한 자는 면류관을 받을 수 없다.

 

.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바울이 교인들을 권하고 가르치는 목적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는 것이다.  성도가 신앙의 달음박질을 한다고 하여도 목표가 없는 달음박질을 하면 헛수고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가 이 완전을 목표로 정해 놓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음박질을 하여야 한다(마5:48 참조).

누구나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자기를 완전한 자로 생각하는 자는 벌써 넘어진 자이다.  죽는 날까지 완전을 목표로 하여 전심전력을 다해 달려나가야 한다(고후1:6)

 

.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이를 위하여 완전을 목표로 하여 우리를 거기에 도달하게 하려고 성령께서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 속에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  그 인도와 역사에 우리가 순종하고 협력하면 그 목표에 도달하게 되고, 협력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가며 힘을 다하여 수고할 때에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완전케 만들어진다.  성도가 자기 속에서 성령이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식적으로만 알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감동을 받아야 한다.  성도가 그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완악하고 교만하며 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모든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과실을 부인하여 상한 심령을 가지면 하나님의 감동과 인도가 있게 되고 거기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따라갈 때에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

 

제 2 장  신 앙

 

(대  지)

一. 신앙 확립을 위한 노력(1-5)

二. 말씀에 굳게 서라(6-7)

三. 그리스도와 연합된 생명으로 살라(8-15)

四. 여러 가지 미혹에 들지 말라(16-23)

 

(본문 강해)

 

一. 신앙 확립을 위한 노력(1-5)

 

. 2: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바울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인들을 위하여 힘을 많이 썼다.  바울이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며 심령으로 그들의 신앙에 동참하여 여러 면으로 도와주려고 힘썼을 것이다.

 

. 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함이라

바울이 교인들을 위하여 힘을 많이 쓴 이유는 그들이 위안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유혹과 많은 환난이 있었으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진리를 바로 가르쳐서 그들의 신앙이 진리에 굳게 서면 그것이 그들의 위안이 된다.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은혜를 나누어주어 그들이 위안을 받게 하려고 힘을 많이 썼다(롬1:11-12 참조).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성도가 사랑 가운데서 서로 연합되어야만 큰 성전이 이루어져 나간다(엡2:21-22 참조).  성도가 서로 연합되어 큰 성전을 지어 나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 진리에 대한 이해의 원만하고 부요함(양적풍부)을 말한다.  우리가 진리를 부분적으로 일면만 깨달아서는 우리의 인격이 바로 되지 못하고 교회도 바로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에 대해서 과거에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달아야 하고 아직 개척하지 못한 면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교인들에게 진리를 더 많이 가르치고 더 풍부하게 가르쳐서 그들의 신앙인격과 교회가 진리대로 바로 성장하도록 힘을 많이 썼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진리에 대한 원만한 이해가 있어야 그리스도를 바로 깨달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계시의 말씀과 성령으로만 믿을 수 있고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에 대하여 점점 더 깨달아 나가야한다.

 

.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여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이 지혜와 지식은 세상의 지혜나 지식이 아니고 신령한 지혜와 지식을 가리킨다.  다른 종교나 미혹시키는 자들의 주장은 참된 지혜와 지식이 아니고 거짓된 것이다.  참된 지혜와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말씀을 바로 배워야 모든 것을 바로 알고 바로 분별하여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을 바로 배우면 신관, 인생관, 우주관, 구원관, 내세관, 세계관이 다 바로 된다.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보화는 신령한 지혜와 지식을 말한다.

성도가 신령한 지혜와 지식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궁 무진한 보화를 발견해야 한다.  구속의 세계에 있는 것들은 모두 보화들이다.  이 보화들이 다 그리스도 안에 감취어 있다.

 

. 2: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내가 이것을 말함은 바울이 2-3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만이 참된 지혜와 지식이라고 밝힌 것을 말한다.  바울인 이렇게 말하는 것은 미혹하는 자들이 공교한 말로 골로새 교인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경고하였다.

공교한 말 그럴듯한 이론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는 말이다.

기독교는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 있으며,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권능에 있다.

 

. 2: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바울이 육신으로는 골로새 교회와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영적으로는 기도하는 중에 항상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것이 교역자와 교인들 간의 영적 교통이다.

규모는 질서를 가리키는 말로써 특히 군대의 질서와 대오(隊伍)에 사용하는 말이다.  성도의 생활이 군대와 같이 대열과 질서가 정연하고 믿음이 견고하여야 마귀의 침략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다.  골로새 교회는 이 면이 잘 되었으므로 바울이 기뻐하였다.

 

二. 말씀에 굳게 서라(6-7)

 

. 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스로 예수를 주로 믿는 자는 그 초보적 신앙에만 머물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 믿음의 뿌리를 더욱 깊이 박아야 한다.  성도가 영적 세계에 깊이 들어가서 진리의 말씀을 더욱 더 깊이 깨닫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여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가뭄이 와도 시들지 않으며 마귀의 세력이 와서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세움을 입어 성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능력으로 굳게 세움을 입어야 한다.

교훈을 받은 대로 성도가 진리의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계시록2:24-26에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하였다.  보배로운 진리를 귀한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미혹을 받아 그 진리에서 떠나게 된다.

 

三. 그리스도와 연합된 생명으로 살라(8-15)

 

.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당시 거짓 선지자들이 공교한 말로 성도들을 속이는 것을 바울이 밝힌 것이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 이것은 추측적 전제하에 이론을 전개하는 것들로서 실지가 아니고 사람을 속이는 헛된 공론뿐이다.  철학적 논리는 실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사람을 속여서 끌고 가는 것이다.

노략할까 주의 노략은 전리품(戰利品)을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가 미혹되면 진리와 신앙 인격과 자신을 다 노략 당하고 만다.  사람의 유전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것이 아니고 인조(人造)의 교훈을 가리킨다.

초등 학문 철학과 율법의 의문을 지키는 것(14-16절)과 천사숭배(18절) 및 금욕주의(21절)등을 가리킨다.  그 뜻은 초보적 학문 초보적 종교를 의미하며 오늘날에도 이런 것들이 많이 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 교제를 하는 신앙에서 떠나 의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인간의 이성으로 성경을 비판하고 교리를 철학화하는 신신학들은 모두 초등학문이다.  그리스도의 영적 생명의 역사가 없는 모든 종교 의식이나 주장들은 초등학문이다.

 

.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나타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도성인신(道成人身)한 몸)에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이 충만히 나타났다(요1:14 참조).

 

. 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며 그리스도는 모든 천사와 모든 피조물의 머리이시다.  성도의 중생한 영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히 내재하고 계신다.

정사와 권세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마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정사와 권세까지를 말한다.  예수님은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주장과 주관자)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모든 천사와 세상만국을 주장하며 모든 권세와 모든 정치를 주장하신다.  정치를 사람이 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운전하는 대로 세상이 움직이므로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해도 예수님이 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

 

.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영적 할례를 받았다.  할례의 뜻은 무엇인가?

① 정욕을 제거한다는 뜻이다(렘4:4).

②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표이다(창17:9-14).

③ 하나님의 백성이 된 표이다(창17:14).

성도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언약에 참예하였고. 육신의 정욕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갈5:24 참조)이므로 신령한 할례를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할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영적 할례를 받았다는 뜻이다.

 

.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성도가 믿을 때에 성령 세례를 받았다.  성령 세례를 받았으므로 그 표로 물세례를 받는 것이다.  성도는 세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에 연합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자이다(갈2:20 참조).

세례는 씻는다는 뜻이다.  성도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 씻음을 받은 표로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죄 씻음을 받아 깨끗해졌으므로 그 표를 치는 것이 세례이다.  침례교파에서는 세례를 죽었다가 살아나는 상징적인 예식으로 본다.  그리하여 물 속에 담그는 것은 죄로 인하여 장사 지내는 것으로 보고, 물 속에서 나오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본다.

로마6:3-5에는 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에 연합하는 것으로 말하였고, 죽음과 부활의 양식을 재현하는 것으로는 말하지 않았다.  성경은 신령한 도리에 대하여 외부적 의식으로 반복하라고 하지 않았다.  침례교파 이외의 모든 교회에서는 세례를 씻는다는 표로 본다.

성도가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을 받아 정결한 사람이 되었으므로 그 표로서 세례를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속이 깨끗해진 사람에게 외부적으로 깨끗하다는 표를 붙이고 인을 치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의 생명과 연합한 것이다.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기독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했기 때문에 영이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  성도가 물세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믿을 때에 이미 성령 세례를 받았으며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그 영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중생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난 자이다.

 

. 2: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 사람이 믿기 전에는 외부적인 범죄와 속에 있는 육체와 정욕으로 인하여 영이 죽었던 자들인데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죄 사함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이 살아났다.  육체의 무할례 할례는 정욕을 제거한다는 뜻이므로 무할례는 육체의 정욕을 제거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즉 죄사함을 받지 못하였고 중생하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

 

.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의문은 율법의 규정이며 율법이 정해 놓은 모든 규정과 의식을 가리킨다.  소나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와 유월절 지키는 것, 안식일 지키는 것과 같은 의식을 예수님이 십자가로 도말하였다.

그러나 거기에 내포해 있는 진리는 지금도 지켜야 되는 것이다.

소나 양의 피를 흘려 제사 드리던 의식의 실체는 예수님의 피로서 죄 사함 받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지금은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할례의 의식은 도말했으나 그 실체인 세례 (성령 세례와 물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 진리는 첫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고 둘째, 정욕을 제거시키고 셋째, 하나님의 백성이 된 표로서 영적 할례를 받는 것이다.  의식은 폐했으나 그 진리는 지금도 지켜져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8 참조)고 하셨다.  의문은 제하여 버리고 그 진리는 완성시켜 놓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 율법을 준 목적이 무엇인가?

① 죄를 깨닫게 만들어서 그리스도가 올 때에 그에게로 인도하려는 것이다.

② 인간의 무능력과 연약성을 알게 하기 위하여

③ 하나님의 의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

④ 신자의 생활 규범이 되게 하기 위하여

⑤ 율법을 지키므로 영이 자라나게 하기 위하여

ⓑ 율법을 지키므로 천국에 가서 상 받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지금은 의문의 묵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겨야 한다(롬7:6 참조).  그러므로 의문과 의식은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진리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율법은 선한 것이지만(롬7:12-14) 우리가 너무 연약하고 악하기 때문에 선한 그 율법이 항상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이 되어 있었다.

증서 차용 증서와 같이 우리에게 그대로 하라고 독촉하는 문서이다.  율법에 기록된 대로 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여 항상 우리를 재촉하고 있었다(갈3:10 참조).  율법이 요구하는 그 대가를 지불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우리에게 지불을 요구하고 우리는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것의 요구를 다 지불하시고(죄 값을 치러줌) 그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셨다.

도말 장부의 기록을 지워버린다는 뜻이다.  제하여 버리사 철거하여 버렸다는 뜻이다.  의문에 쓴 증서는 도말하였으나 그 내용의 진리는 일점일획도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마5:18 참조).

 

.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정사와 권세는 마귀와 마귀의 역사에 이용당하는 세상의 모든 정치와 권세들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모든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이기고 그 세력을 벗어 버렸다.

벗어버려 포로들을 무장해제 하는데 사용하는 술어로 무능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밝히 드러내시고 예수님이 마귀의 권세와 정사를 이기시고 그것을 온 세상이 다 알도록 드러내셨다.  우리 죄를 인하여 마귀가 율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세력을 쓰던 것(사망의 권세)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기시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四. 여러 가지 미혹에 들지 말라(16-23)

 

.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먹고 마시는 것 구약시대에 새김질하지 않는 짐승의 고기나 쪽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의 고기 또는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부정하므로 먹지 말라고 하였다(레11:1-12 참조).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 절기는 유월절이나 초막절과 같은 것들을 말한다.  월삭은 매월 초하룻날을 지켜 제사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토요일을 지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런 것들을 폄론할 만한 일이 못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그 모든 의문과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다 장래 일의 그림자요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모든 의문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피 홀려 구속해 주실 것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러한 의문이나 절기나 월삭같은 것을 지킬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다.  주일을 지키되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으로서 일하지 말고, 물건을 사고 파는 것도 하면 안 된다.  주일날 물건을 사고 판다면 사계명을 범하는 죄가 된다.

 

. 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일부러는 자원하여 즐거워서 한다는 뜻이 있다.  천사 숭배 사람은 너무 부족하여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없고 천사를 중보로 하여 나아갈 수 있다고 하며 천사 숭배를 주장하는 자가 있었다.  유대교 중에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세네파의 세 종파가 있었는데 엣세네파가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며 모세를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야 된다고 주장하고 금욕주의와 천사 숭배를 했다고 한다.  또 그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어도 된다고 주장한 탈선된 교파이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대에 천사를 통하여 주었으므로(갈3:19참조) 천사를 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사는 피조물이요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것이다(히1:14 참조).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성도가 지나치게 겸손하여 머리 숙이지 않을 것에 머리를 숙이고, 비진리에 굴복하고 주의 뜻이 아닌 것을 순종하면 금생과 내세에서 모든 존귀와 상급을 빼앗긴다.  겸손한 것은 좋은 일이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겸손해야 한다.  말씀을 떠난 겸손은 자기 상을 빼앗기는 어리석은 일이다.

본 것을 의지하여 사람들은 본 것을 의지하나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다(요20:29참조).  신비주의자들은 본 것(환상이나 육신의 병이 낫는 것)을 의지한다.  기독교는 보는 것이 표준이 아니고 성경이 표준이다.  육신의 눈으로 본다고 해서 다 바른 것이 아니다.  사람의 눈은 보아도 잘못 보는 수가 많고, 마귀가 보여 주는 것도 있다.  또 영적인 면은 눈으로 보아서 판단할 수 없고 영으로 판단해야 한다.

육체의 마음을 좇아 이것은 육신의 감정주의이다.  감정주의자들은 감정을 따라가며 감정의 만족을 얻는 것이 신앙인 줄로 안다.  그러나 감정을 따라가는 자는 불원간에 진리에서 탈선되기 쉽다.  그 이유는 감정이 육에 속한 것으로 표준이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객관적인 계시를 따라가고 영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다.

헛되이 과장하고 사람들이 자기를 자랑하고 지나치게 과장을 잘한다.  그러나 자기를 굉장한 사람처럼 과장하면 하나님이 그를 낮추시고 물리치시며 얼마 후에는 사람들도 그 정체를 알게 된다.  바울은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였다.  자기의 잘못한 것과 약한 것을 자랑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고(고후11:29-30 참조) 자기의 잘하는 것을 자랑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점점 떠나게 된다.

 

. 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머리로 말미암아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 성도가 머리인 그리스도의 통치와 주장을 받으며 그 생명과 힘을 공급받아 자라나야 한다.  몸이 머리에 붙고 몸은 마디를 통해서 머리인 그리스도로부터 생명과 능력과 모든 은총이 공급되어 자라나야 된다.  성도가 천사나, 인간이나, 어떠한 의식과, 제도 및 눈으로 본 것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그리스도에게 끊어진 것이다.

갈5:4에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고 하였다.  신비주의자들은 보는 것을 의지하며, 육체의 감정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주장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환상으로 무엇을 보았다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겔13:2참조).  자기 마음에서 나온 어떤 환상을 자랑하는 것은 헛되이 과장하는 것이요 머리인 그리스도를 받드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예수님의 통치만 받고,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만 따라가고, 예수님의 역사만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 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세상의 초등학문 초등학문은 초보적인 종교로서 본문에서는 이방인들의 종교, 즉 모든 우상 숭배를 가리킨다.  골로새 교인들은 이방인들이므로 전에는 우상 숭배로 죽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죄를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들의 죽음이었다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성도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의문을 순종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신앙에서 탈선된 것이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는 일이다.

 

. 2: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금욕주의자들의 주장은 어떤 음식은 맛보아도 죄가 되고, 어떤 부정한 것은 만져도 죄라고 하였다.  심지어 결혼문제에까지 이러한 것을 적용하여 독신 생활을 주장하였다.

 

. 2:22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성경에 금하지 않은 것은 죄가 아니다.  구약의 의식과 의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도말하였다(14절).  성경에 금하지 않은 음식물과 기타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성도는 그런 것들을 논할 바가 못된다.  금욕주의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교훈을 따라가는 것이다.

 

. 2: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은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위에서 말한 금욕주의 생활은 겸손한 모양과 몸을 괴롭게 하는 모양은 있으나 육체의 정욕을 금하는데는 아무 유익이 없다.  하늘 나라는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며 말에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늘 나라는 오직 능력에 있다(고전4:20).

자의적 숭배 객관적 계시에 의하여 실행되는 종교가 아니고 인간의 자유로 제정한 종교 행위라는 뜻이다.  참 예배가 아니고 인간의 뜻으로 예배 드리는 가인의 제사와 같은 것이다.

지혜있는 모양 지혜 있다고 하는 호평과 칭찬을 받는 상태이다.  금욕주의가 사람에게는 칭찬과 호평을 받으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다.  금욕주의 생활은 육체의 정욕과 죄를 이기는 힘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와 성령의 능력으로서만 모든 죄와 육체의 정욕을 이길 수 있다.  이 내적 경건이 없는 외적 경건은 생명도 없고 하나님의 역사도 없으며, 영혼이 자라나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외식에 지나지 않고 자기와 남을 속이는 것뿐이다.

 

제 3장  새 사람(新人)

 

(대  지)

一. 새사람의 사상과 소망(1-4)

二. 새사람의 싸움(5-11)

三. 새사람의 생활(12-17)

四. 부부간의 도(18-19)

五. 부자간의 도(20-21)

六. 상하인(上下人)의 도(22-25)

 

(본문 강해)

 

一. 새사람의 사상과 소망(1-4)

 

.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러므로\"는 2장 끝에 있는 말과 연결시키는 말이다.  사람의 가르침을 좇는 것은 육체를 따르는 것 뿐이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과 힘을 공급받는 일에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성도의 믿기 전의 영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것이며(엡2:1참조), 예수를 믿을 때에 그 영이 살아난 것이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성도의 영을 살려 놓은 것이 중생이다.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믿어지는 것은 그 사람이 중생한 증거이다(요일5:1 참조).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은 신령한 것을 가리킨다.  신령한 것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모하여 새 힘을 얻고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사40:31, 시107:9, 사45:22 참조)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란 어떤 뜻인가?

1.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성도가 그 그리스도를 발견할 때에 감사와 위안과 안심이 있고 구원에 대한 확신과 즐거움이 있다.

2.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주요, 신앙의 표본이다(히12:2上 참조).  성도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 자취를 따라가야 한다(벧전2:21-24 참조).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찾아 그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길을 걸어서 거기에 도달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갖게 된다.

3.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다(롬8:34 참조).  스데반이 순교 당할 때 하나님 우편에 서 게시는 그리스도를 보았다.  우리가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찾고, 바라보고 있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시며, 우리에게 생명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항상 위엣 것을 바라보아야 걱정이 없다.  위엣 것을 찾고 주님을 발견한 성도는 그 주님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항상 기뻐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2장에 언급한 철학이나 의식주의나 금욕주의 같은 것을 좇아가거나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따를 필요가 없게 된다.

 

.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추구하라는 뜻이다.  신령하고 영원한 것,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자는 반드시 그것들을 받아 이루게 된다.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땅의 것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도가 땅에서 일을 하지만 그 목적은 위엣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한다.  성도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첫째, 예수님을 생각하며 둘째, 주께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셋째,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여야 한다.  3장 5절의 \"땅에 있는 지체\"는 모든 죄성을 가리킨다.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것은 모든 죄성(부패성)을 생각지 말라는 뜻도 있다.

 

.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너희가 죽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인하여 죽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미 죽은 자이다.  예수를 믿고 영접한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정죄 받은 자요, 저주받은 자요, 사형을 받아 죽은 자이다.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성도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연합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산 것이다.  성도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 있다.(롬6:3-5 참조)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그리스도가 하나님 안에 계심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의 생명도 하나님 안에 있다.  이것은 영적 생명의 관계이며 육신과 물질계에서는 감추어진 비밀이기 때문에 육신의 사람으로서는 알지 못한다.

 

.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영적 생명으로 살고 있으므로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생명이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재림하실 때에는 성도들도 주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다.  잠시 잠깐 후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며(히10:37 참조), 재림 전에는 환난이 있을 것이다.(계11:7 참조)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환난 받을 각오를 해야한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고 고대하면서 환난 받을 준비를 해야겠다.  우리가 현재 말씀을 순종하느라고 고난을 받으면 장차 대 환난을 이길만한 자격이 만들어진다.

 

二. 새사람의 싸움(5-11)

 

.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땅에 있는 지체는 육체의 죄성, 즉 부패성을 가리킨다.  롬7:23에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하였다.  성도가 믿음으로 영이 중생했으나 육체의 부패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므로 육체의 소욕(갈5:19-21 참조)을 죽여야 중생한 영이 성장한다.  죽인다는 말은 그 죄성을 제어하고 저지시키고 제거시킨다는 뜻이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 음란은 성적인 죄이며 부정은 성적죄를 포함한 더러운 행위들을 가리킨다.  사욕은 음란 외에 자기 중심에서 나오는 분노와 질투 같은 억제하기 어려운 욕망들이다.  악한 정욕은 음란을 포함한 일반적 욕심을 가리킨다.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탐심을 품으면 돈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보다 돈이나 물질을 더 귀히 여기고, 그것을 의지하며 살게 된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고 탐심을 품지만 결국은 그것 때문에 망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사는 것은 재산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하셨다(눅12:15 참조).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께 있고, 그 말씀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그 말씀 안에서 사는 것이 생명이 사는 길이요, 가치 있는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믿는 사람은 이미 영이 살아 있고 또 영원히 살 것이다.  이런 자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도 더하여 주신다.(마6:33 참조)

 

. 3: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십자가에서 다 지불하였으며 그 공로로 성도가 구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성도가 행위에 있어서는 아무렇게 해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자가 있으나 그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성도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야 한다.  이스라엘이 죄를 범할 때에 하나님이 진노하여 앗수르를 보내어 멸망시켰다.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고, 죄 가운데 나아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징계하신다.  그러나 한 사람만 회개하고 바로서도 하나님의 진노가 그만큼 풀어진다(렘5:1 참조)

 

. 3: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신자들도 믿기 전에는 죄 가운데 살았다.

 

. 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성도가 믿기 전에 가졌던 모든 죄의 습관을 벗어 버려야 한다.  여기에는 대인관계의 죄악들 즉 분내는 것, 악한 생각, 남을 헐어 말하는 것, 부끄러운 말들을 온전히 벗어버리라는 것이다.

 

. 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거짓말을 말라 믿기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도 없기 때문에 거짓과 외식과 허위로 살았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진리와 영감으로 중생한 영은 진실하며 거짓과 외식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새 사람으로 사려면 거짓부터 버려야 한다.

옛사람은 육신의 부패성이다.  성도는 예수님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고, 구원을 받았으니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괜찮다 하여 되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이다(6절 참조).  성도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하나님과 멀어져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고 구원역사가 중단된다.  이것이 영적면의 징계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날마다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나가야 한다.

 

.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성도의 중생한 영은 새 사람이다.  이 새사람은 위에서 말한 도덕적 죄에서 성별되어 하나님이 도덕성을 입고 있다.  이것은 의, 선, 거룩, 사랑, 진실 등이다.  이 새사람은 도덕적 성결뿐만 아니고 그 위에 능력도 입어 나가야 한다.  우리의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도덕성과 지성과 능력을 점점 더 입어 나가며 하나님을 닮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이 속성과 동일(同一)하다.  하나님의 속성에는 12속성이 있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자존성(독립성).  ② 무한성.  ③불변성(완전성).  ④ 단일성.  ⑤ 지혜.  ⑥ 지식.  ⑦ 의.  ⑧ 선  ⑨ 거룩.  ⑩ 사랑.  ⑪진실.  ⑫능력.

 

. 3: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 것과 또 새사람을 입어나가는 일에 있어서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의 인종차별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의 종교적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또 헬라인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의 문화적 차별이나, 종이나 자유자 같은 신분이나 계급의 차별도 전연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새사람은 하나님의 새 생명으로 창조함을 받은 자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므로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성도간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야인 로마인이나 헬라인들은 자기들 외에는 다 야만으로 보았다.  스구디아인 북방에 살던 아주 야성적인 족속들이며 야만 중의 야만으로 취급했다고 한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만유\"는 만물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만물 전체이며 만유 안에 계시고 만물을 초월하여 계신다.  또 그리스도는 만물을 주장하며, 만물을 통일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三. 새사람의 생활(12-17)

 

.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성도는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자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며 겸손하고 온유하여 오래 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11:29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사57:15 참조)

 

. 3: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성도는 남의 허물을 용서해 주고 긍휼을 베푼다.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셨다(마18:22참조).  우리가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나 되는 죄를 용서받았는데 일백 데나리온(60만분의 1)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영적 감옥에 갇힌다(마18:23-34 참조).  남의 허물을 용서해 주지 않고 마음을 좁히는 사람은 그 마음에 지옥 고통이 들어오고, 마음을 넓혀서 용서해 주면 그 마음에 천국이 임한다. 태평양 바다는 여러 강으로부터 아무리 더럽고 흐린 물이 들어와도 다 삼키고 맑은 물을 유지한다.  우리 성도가 바다처럼 넓은 마음과 아량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용서해주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어야

.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앞에서 말한 도덕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다.  모든 도덕에 영적 사랑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생명 없는 외부적 도덕에 지나지 않고, 생명의 열매가 없으며 생명이 커 나가지도 못한다.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 안에서는 모든 도덕이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으로 나타나게 되고 영이 자라난다.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사랑은 다른 모든 도덕을 한데 묶는 띠가 되어 온전을 향해 전진하게 한다.  성도의 목표는 하나님을 온전히 닮아 가는 것이다(마5:43-48 참조)

 

.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풍성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영적 평강으로 하늘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평강은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다.  성도가 힘써 기도하여 영적 세계에 들어가야 이 평강을 누릴 수 있다.  또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면 언제나 평안한 마음이 충만하게 된다.  고후6:10에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한다\"고 바울이 말했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말할 수 없는 근심과 걱정이 있을 것 같은 사람도 영적 세계에서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면 평안한 마음이 된다.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주신 목적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성도에게 하늘의 평강을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가 그 평강을 누리며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하나님이 주신 평강을 누려야 한다.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하나님이 주신 평강을 누려야 한다.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만 하면 주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신다.  우리가 평강 가운데서 예수님만 바라보고 그만 따라가고 말씀만 순종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자신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게 해 주신다.  그러나 이 평강을 빼앗기면 생명을 빼앗긴 것이다.  우리가 뺨을 맞는 모욕을 당할지라도 다른 뺨을 돌려대는 여유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또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리를 동행하면서라도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된다.  마귀는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으려고 여러 보양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얻었어도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면 실패한 자가 되고,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으면 성공한 자가 된다.

 

.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배워서 언제나 그 말씀을 새김질하여(묵상하고 기도함) 자기의 생명이 되고 힘이 되도록 하며 말씀에 붙잡혀서 끌려가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사도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에게 먼저 전도하였고(행18:5 참조),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다(눅5:5 참조).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지해서 움직이는 신앙이 귀한 것이다.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모든 지혜는 성령의 지혜를 가리키는 것이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지혜로 가르쳐서 성도가 그 말씀을 따라오도록 해야 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빚진 자이기 때문에(롬1:14 참조), 그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바울이 가르칠 때에 인간의 지혜로운 말을 쓰지 않고 성령과 능력으로 하였다(고전2:1-5 참조).  우리가 힘써 전도하고, 전도한 다음에는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가서 권면하고, 그 사람이 자라나도록 돌봐주어야 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시는 구약 시편을 가리키기도 하고 성도들이 은혜 받아 진리대로 부르는 시도 포함된다.

찬미는 하나님께 찬송하는 찬송가이고, 신령한 노래는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은혜를 받아서 찬송을 부르는 것이다.  성도가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성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라고 했다.  이것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이 나타나도록 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말이나 행동에서 주님의 진실과 선과 사랑과 의로움이 보여지도록 하고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뢰하고 그의 주시는 힘으로 모든 일을 하면 그 결과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생활이 될 것이다(벧전4:11 참조).

四. 부부간의 도(18-19)

 

. 3: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며 원리 원칙이다.  성경에 위반되는 것은 남편에게 복종할 수 없으나 그렇지 않는 것은 복종할 마음이 없더라고 복종하여야 한다.  이것이 성경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원리 원칙이다.  남자는 여자보다 강하기 때문에 자기 뜻에 맞지 않을 때에는 아내를 괴롭히기 쉽다.  그러나 성도는 여하한 일이 있어도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  아내도 남편을 괴롭게 하지 말고 서로 참고 희생하며 사랑과 봉사로서 그리스도께서 왕 노릇 하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부부간에 있어서 상대방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지라도 자신이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의 선하심과 오래 참으심과 용서와 자비하심을 보여주면 상대방이 감동되어서 돌아온다.

 

五. 부자간의 도(20-21)

 

.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자녀들은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  순종은 \"주 안에서\"라는 조건부가 있으나(엡6:1 참조), 공경은 무조건이다.  부모가 자기에게 잘해주지 않고 악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녀는 그 부모를 공경해야 된다.  그러나 부모의 악한 일에는 동참하거나 순종하면 안 된다.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은 첫째, 부모가 예수를 잘 믿도록 하는 것이다.  부모가 지옥에 가지 않고 천당 가서 영원히 복을 받도록 해드리는 것이 참된 효도이다.

둘째, 부모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드려야 한다.  부모가 있고 싶은 곳에 있도록 해드리고 부모가 원하는 것을 가능한 한 해드리는 것이 효도이다.

셋째, 의복을 잘 해드려 따스하게 해드려야 한다.

넷째, 음식을 잘 해드려야 한다.

 

. 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아무리 선한 책망이라도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고 낙심케 하면 안 된다.  자녀들의 방종한 생활을 그냥 두는 것도 자녀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책망할 것은 책망하고 채찍질할 것은 채찍질해야 한다(잠13:24, 22:15, 23:13 참조).  부모가 자녀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채찍질을 하되 노엽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또 그 때에는 자신들이 맞아서 마땅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 주고 때려야 한다.  자기 양심에 잘못했다고 인정할 때에는 단단히 책망해야 한다.  또 책망한 후에는 낙심하지 않도록 위로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六. 상하인(上下人)의 도(22-25)

 

. 3:22-24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이것은 상하인의 도이다.  종은 아랫사람이며 상전은 윗사람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있고 시키는 사람과 시킴을 받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윗사람에 대한 도리와 아랫사람에 대한 도리를 바로 배워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순종할 때에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자기가 하는 일을 주님이 맡긴 줄 알고 사람 앞에서 눈가림만 하지 말고, 주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도록 충성해야 한다.

아랫사람은 언제나 다음 세 가지를 지켜야 한다.

첫째, 윗사람을 순종해야 한다.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시키는 대로 순종해야 한다.

둘째, 양심을 바르게 써야 한다.  무슨 일이나 양심을 바르게 써서 하나님 앞에서 바로 해야 한다.

셋째, 윗사람이 맡긴 일은 하나님이 맡긴 줄 알고 충성해야 한다.  사람 앞에 보이려고 하거나 사람이 보지 않을 때에 게으르지 말고 하나님 보시기에 충성되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축복해 주시고 형통케 해주신다.

 

. 3: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무슨 일에나 하나님 앞에 바로 충성하지 않고, 사람의 눈가림이나 하고 원망하며 불의를 행하면 반드시 그 불의의 보응을 받는다.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윗사람이라고 보아주는 것이 아니고 아랫사람이라고 보아주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게 해주시고 오직 공의대로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주는 상전의 편도 아니고 종의 편도 아니며 항상 의의 편이다.

 

제 4 장  기 도

 

(대  지)

一. 윗사람의 도(1)

二. 기도와 전도생활(2-6)

三. 두 사람을 보냄(7-9)

四. 소개와 문안과 부탁(10-18)

 

(본문 강해)

 

一. 윗사람의 도(1)

 

.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본 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 대한 도이다. 윗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 책망 받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잠언21:2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하였다.  윗사람도 자기 상전이 하늘에 계신 줄 알고 하나님 앞에 바로 해야 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 대하여 항상 의와 공평을 베풀고 아랫사람의 사정을 알아주어야 한다.  윗사람이 모든 일을 공평하게 처리하고 자기도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것을 알고 바르게 하여야 한다.  아랫사람이 볼 때에 윗사람이 바로 하지 못하면 아랫사람이 개인적으로 간(충고)할 수 있으나 그 일의 성사는 하나님께 맡기고 참아야 한다.  파업이나 노사분쟁을 일으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다투는 것은 피차 망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서로 참고 나아가면 언젠가는 바로 될 날이 온다.

 

二. 기도와 전도생활(2-6)

 

.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예수 믿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것을 제일 첫째로 삼아야 된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요 제일 중요한 시간이다.  성도가 기도를 통해서 생명이 살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다.  그러므로 성도가 기도를 하지 않으면 신령한 일을 할 수 없다.  마귀가 성도의 기도 시간을 빼앗으려고 발악을 한다.  성도가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기면 믿음, 능력, 열심,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의 신령한 일을 하는 것들을 다 빼앗긴다.  성도가 기도하지 않고는 마귀를 이기거나 쫓아낼 수가 없다(막9:29 참조).  우리가 매일 승리의 생활을 하려면 기도 시간을 정해놓고 시간을 많이 들여서 힘써 기도하여야 한다.

마가1:35에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는 습관을 세워놓고 그 산에 가서 기도하시곤 하였다(눅22:39 참조).  성도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하나님의 위안이 오고, 인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역사가 임한다.

감사함으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한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제일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고 감사하여야 한다.  깨어 있으라 기도할 때에 깨어 기도하라고 하였다(마26:41 참조).  깨어 기도하는 것은 영적인 기도, 영의 사람으로 하는 기도를 가리킨다.  우리가 영으로 성령을 힘입어 기도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우리\"란 복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도 바울과 디모데 및 교역자를 가리킨다.  교역자에게 전도할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고 교역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비밀의 말씀을 잘 전파 할 수 잇도록 기도해 주어야 한다.  온 교인들이 교역자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그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다.  교역자는 생명의 기관이므로 그 교역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또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그 교역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도록 특별히 역사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교역자가 혼자서 일을 하면 피곤해서 쉽게 쓰러진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들어 주고 도와 주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승리하였다.

교인들이 교역자를 돕는 방법은 무엇인가?

1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

2 교역자에게 가까이 있어서 여러 면으로 봉사하는 것.

3 물질로서 도와주는 것.

4 교역자 대신 욕먹어 주는 것.

교인과 교역자가 대립이 되면 그 교인이 은혜를 못 받는다.  그러므로 교역자에 대해서 비난이 들어올 때에 교역자를 대신하여 욕먹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5 교역자의 허물을 가리워 주는 것.

교역자의 잘못한 책임을 교인이 대신 짊어지는 것은 그 교역자를 크게 도와주는 것이다.  노아가 술이 취해 벌거벗고 잠들어 있을 때에 함은 그 잘못을 폭로하였으나 셈과 야벳은 그 허물을 가리워 주고 도와주었다.  그 결과 함은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비밀은 복음을 가리킨다.  매임을 당하였노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한다.

 

. 4: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성도들이 교역자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 주면 그 교역자가 그리스도의 비밀인 복음을 더욱 잘 전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된다.

 

.4:5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외인은 불신자를 가리킨다.  세월을 아끼라 각주에는 기회를 사라고 하였다.  이 말의 원어 g (엑사고라조메노이)는 속량하다는 뜻이다.  시간은 금이다.  시간을 힘써 붙잡아 믿는 일(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시간을 잃어버리고 만다.  성도가 외인인 불신자와 교제하거나 헛된 일에 시간을 다 허비하면 믿는 일이 안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뱀같이 지혜롭게 하여 시간을 사서(힘써 붙잡아) 모든 시간에 믿는 일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소금은 녹아져야 그 역할이 나타난다.  소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아무 가치가 없다.  성도가 어디 가든지 소금노릇을 해야 한다.  성도가 자기를 희생하는 데서부터 소금의 역할이 나타난다.  소금이 녹아지면 그 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맛이 나고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여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준다.  녹아진 소금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잘 살고 건강하고 맛이 난다.  소금으로 고루게 하려면 항상 은혜 가운데서 자기가 희생되어야 한다.  성도가 은혜 가운데서 성령의 인도대로 하고 말도 은혜 가운데서 신자의 본분을 생각하여 항상 고루게(조화)함같이 하여야 한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고 먼저 은혜 가운데서 믿음과 성령의 인도대로 나아가면 대답할 것은 하나님이 다 주신다.  성도가 믿음을 쓰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이 대답할 말을 주신다.  채소에 소금을 치면 부드럽고 다른 것과 화합이 잘된다.  이것이 고루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을 써서 은혜 가운데서 모든 것을 하면 말마다 전부 은혜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고 화평이 되고 유익이 되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져 나간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된다.

 

三. 두 사람을 보냄(7-9)

 

. 4: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바울이 두기고를 오네시모와 함께 골로새 교회에 보냈다.  바울이 그 편에 골로새서를 보내며 자신의 정황을 골로새 교회에 알리게 하고 교인들의 마음을 위로하게 하였다.  두기고에 대하여는 행20:4, 엡6:21, 딤후4:12, 디도3:12에 기록되었다.  에베소6:21에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하였다.

사랑을 받는 형제 두기고는 특별히 사람을 받는 형제였고 신실한 일군이었다.  또 바울을 도와 바울과 함께 주의 일을 한 종이었다.  바울이 항상 신실한 사람을 썼다.  성도가 진실하여 믿음으로 하여야만 마귀의 궤계를 이길 수 있다(계17:14 참조).

 

. 4:8  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낸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골로새 교인들이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의 사정을 알지 못해 궁금하고 염려하므로 바울이 두기고를 보내어 그 사정을 알리고 위로하려고 한 것이다.

 

. 4: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오네시모는 골로새 사람으로서 빌레몬의 종이었다(몬1:10 참조).  그가 주인인 빌레몬의 집에서 종살이 하다가 과오를 범하고 도망쳤다.  그런데 로마 옥중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어 새사람이 되었다.  새사람이 된 오네시모는 바울을 잘 도와주었으므로 바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새사람이 된 오네시모를 소개하고 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전과자로 취급하지 않고 사랑 받는 형제로 대우하였다.  과거에 잘못하고 손해 주던 사람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복음 전도에 유익이 되고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

 

四. 소개와 문안과 부탁(10-18)

 

.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사람으로서(행20:4 참조), 바울이 최후에 예루살렘에 갈 때에 같이 갔고 로마에까지 동행한 것 같다(행19:29, 27:2 참조).  이 아리스다고가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에 얼마 동안 갇혀 있었던 것이다.

마가는 전에 바울에게 무익한 자이었으나 지금은 유익한 자가 되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에 동행했던 마가가 밤빌리아에서 되돌아갔다(행13:13 참조).  그리하여 2차 전도여행 때에는 바울이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다투고 갈라지기까지 하였다(행15:37-39 참조).  마가가 전에는 바울에게 큰 손해를 주었으나 회개한 다음에는 유익하게 되었다(딤후4:11 참조).  바울이 그 마가를 골로새 교회에 보내면서 골로새 교회가 그를 잘 영접하라고 부탁하였다.

 

. 4: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유스도\"라 하는 예수가 전에는 할례당파에 속하였었다.  할례당이 바울을 반대하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유스도가 복음을 받아 돌이키고 바울을 전적으로 도와주며 구원운동에 충성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교역자가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바른 복음만 붙잡고, 예수만 향해서 달음박질을 잘하면 하나님이 대적자를 굴복시키고 도와 줄 사람들도 보내주신다.

 

. 4: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에바브라는 본래 골로새 교회의 교인으로 로마 옥중에 있는 바울을 찾아왔다.  이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를 가르친 사람이며(골1:7 참조), 로마에 와서도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항상 기도하며 교인들이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진리에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였다.

교역자가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 신앙과 인격이 점점 완전하게 되고 진리에 확신 있게 서도록 기도해 주어야 한다.

 

. 4: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알렸다.  또 그가 라오디게아 교회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교회를 위하여도 많이 수고하는 것을 알렸다.  이와 같이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는 종들을 소개하는 일과 교회가 알아주는 일은 좋은 일이다.  에바브라가 전에는 골로새 교회에서 가르쳤고, 지금은 로마에 가서 옥중에 있는 바울을 받들어 주며 봉사하는 일에 수고한다.  교역자는 자기가 시무하는 교회를 위해서 수고할 뿐 아니라 선배를 도와주고 다른 교회를 위해서도 수고하는 정신을 배워야 한다.

 

. 4:14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누가는 의사인데 바울의 수종자가 되어 바울을 잘 받들어 주고 누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이다.  바울이 딤후4:11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한 것을 보면 누가는 옥중에서 바울의 임종시까지 충성되이 시종한 조사(助事)였다.  데마는 바울을 도와서 주의 일을 하는 일군이었으며 나중에 믿음이 약해져서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딤후4:10 참조).  본서에서 데마가 문안한 것은 그가 바울을 떠나기 전이었다.

 

. 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라오디게아는 골로새 부근에 있는 지방이다.  바울이 그곳에 있는 교회들에 관심을 가지고 문안하라고 아였다.  눔바 이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설이 있으나 우리 한역 성경대로 여자로 본다.  그 여성도의 집에서 교회가 모인 것이다.  초대교회는 가정집에서 모이는 교회가 많았다(몬1:2, 고전16:19, 롬16:5 참조).

 

. 4: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본서를 골로새 교회에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어 읽게 하라는 말을 보면 성경의 서신들은 개인이나 개교회에 관한 것이 아니고 여러 교회에서 읽어야 될 공적 서한인 것이 분명하다.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 현존 성경에는 라오디게아서가 없다.  바울 사도가 당시 서신들을 여러 교회에서 윤독케 하였음으로 에베소서나 혹 다른 서신(현존 성경에 있는 서신)이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읽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 서신을 골로새 교회에서도 읽으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성도가 여러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될 것과 성경을 깨달은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될 것을 교훈하고 있다.

 

. 4: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로 교역자가 된 사람이다(몬1:2 참조).  아킵보와 오네시모(골4:9, 몬1:10 참조)가 언급된 것을 보면 골로새서가 빌레몬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 안에서 받은 직분 교역자는 그 직분을 사람에게 받은 것이 아니고, 주님께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삼가 조심하여 자기의 분량대로(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그 사명을 다 이루기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여야 한다.

 

. 4: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바울은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편지를 쓸 때에 다른 사람에게 대신 쓰게 하고 맨 마지막에 친필로 문안하곤 하였다.  바울이 친히 큰 글씨로 문안한 것은 바울의 싸인과 같은 것이다(살후3:17 참조).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감옥에 갇혀있는 것을 기억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① 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기억케 함이다.

② 수난 중에서도 죽도록 충성하여야 된다는 것을 깨우치기 위함이다.

③ 바울이 전파하는 참 진리에 굳게 서서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④ 어떤 고난이 와도 이 복음을 위하여 공동전선을 펴고 함께 싸워 나가야 될 것을 각오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이 끝으로 축복 기도하는 말씀이다.  항상 은혜 가운데 있어야만 심령이 강건하고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 할 수 있다(딤후2: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