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데살로니가전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기록한 사람 : 사도 바울

.기록한 장소 : 고린도

.기 록 한 때 : 주후 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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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데살로니가전서1장

제 1 장 감사

 

(대  지)

 

一. 문안 축복(1)

二. 감사 기도(2-4)

三. 전도 모본(5)

四. 수도 모본(6-8)

五. 신앙 모본(9-10)

 

(본문강해)

 

一. 문안 축복(1)

 

.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실루아노는 바울의 동반자로서 바울과 함께 많이 수고한 실라를 가리킨다(행 16:19, 벧전 5:12 참조).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요, 바울을 보조한 귀한 일꾼이다(고전 4:17, 딤전 1:2 참조).  데살로니가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인에게 보내는 편지인 동시에 모든 믿는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참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것으로 구속에 대한 모든 선물을 가리킨다.  그것은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이 은혜 받는 것이다.

평강 은혜 받은 결과로 하나님과 화평하고 그로 말미암아 오는 영적 평강을 가리킨다.  이 평강은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빼앗지도 못한다.

 

二. 감사 기도(2-4)

 

. 1: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풍성하기 때문에 바울이 그 교회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교회였다

 

.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본 절에는 믿음, 소망, 사랑이 나타났다.  이 세 가지가 풍성한 데살로니가 교회야말로 모든 교회의 모본(模本)된 교회였다.

믿음의 역사 역사가 있는 믿음이라야 산 믿음이다.  야고보서 2:26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다.  또 야고보서 2:17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행함이 있어야 산 믿음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信仰의 定義) ?

하나님과 그 말씀을 신뢰하고 신임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신임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마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절반이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또 믿음의 절반이다.  이 둘이 합하여 온전한 믿음이 된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살았기 때문에 반드시 그 말씀이 역사를 한다.  히브리서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라고 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 말씀을 마음으로 영접했을 때에 우리 속에서 역사가 일어난다.  생명 있는 믿음은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고 운동력이 일어나는 것이다.  죽은 믿음은 사람의 생각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생명의 역사가 없고 진보가 없다.  그러나 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자 하는 담대한 용기가 나오고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산 믿음은 홍해 바다를 가르고 아말렉과 가나안 칠 족속과 같은 악과 세력을 격파하고 나아간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실 때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胎)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거나 의심하거나 하지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했다(롬 4:19-21 참조).  그때 하나님이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말씀대로 행하셨으므로 그대로 이루어졌다(창 21:1 참조).  이것이 산 믿음이다.

사랑의 수고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수고가 따라야 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한다.  또 수고할 때에 단 마음으로 하는 것이며 억지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를 주시고 또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하는 수고는 그 수고가 즐거운 것이다.  골로새서 1:24에 바울은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말했다.  사랑의 세계는 영적 세계이며 신령한 세계이다.  중생한 영의 본질이 사랑이며 하나님의 본질도 사랑이다.  사랑의 세계에서 살 때에는 자기 전체가 사랑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사랑이 나온다.  이러한 사랑이 나올 때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 즐거우며 더러운 것도 더럽다 하지 아니하고 힘드는 것도 힘드는 줄 모르며 어떠한 희생이 와도 단 마음으로 하게 된다.

소망의 인내 참된 소망에는 인내가 따라온다.  히브리서 6:19에 소망은 신자에게 있어서 \"영혼의 닻과 같다\"고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환난이 올 때 그 환난을 소망으로 참고 이겨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배의 닻 같은 역할이다.  신자에게 여러 가지 환난이 오는 것은 첫째, 범죄했기 때문에 징계로 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세우려고 사랑으로 주신 환난이다.  그러한 환난 때에는 회개하며 바로 설 소망으로 그것을 달게 받고 인내해 나가야 한다.  어떠한 사건 때문에 고난이 오면 그 사건에 대한 잘못이 없는가를 살펴서 회개하며 바로 처리해야 된다.  둘째, 애매히 당하는 고난이 있다.  셋째, 의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 있다(벧전 2:19-20참조).  그때 하나님 앞에 가서 상이 큰 것을 믿고 잘 참고 인내하며 단 마음으로 그 환난을 이겨 나가야 된다.

마태복음 5:10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가서 상급이 클 것을 믿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잘 참고 견디어 나가야 한다.  참된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그 소망으로 잘 참고 견디어 나간다.  고등 고시 시험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고난이 오지만 합격 될 대망을 가치고 참고 공부를 계속하지 않는가!  육신적인 소망을 바라보고도 이렇게 참고 견디는데 하물며 영생의 소망을 가진 우리가 세상에서 잠시 받는 고난을 참지 못하겠는가 !  모세는 공주의 아들의 위치에서 육신적인 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자원하여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았다.  이는 상주시는 하나님을 소망했기 때문이다(히 11:24-25 참조).

농부가 농사하는 것도 인내 없이는 못한다. 봄부터 씨를 부리고 가꾸며 가을에 추수하기까지 수고하며 참아 나가야 한다. 예수 믿는 성도에게도 인내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종살이하시고 능욕을 당하시고 심지어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참고 견디셨다.  예수님이 당한 고난에 비하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억만 분의 일도 안 된다.  인내를 버리는 사람은 믿는 일을 버리는 것이요 소망을 버리는 것이다.  참으로 소망 있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이 와도 달게 받으며 잘 참는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충만한 교회이었다.  그들의 믿음에는 역사가 있었고 사랑에는 수고가 있었고 소망에는 인내가 있었으므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함으로 항상 쉬지 않고 기억하면서 기도하였다.

 

.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밭에 곡식과 가라지가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불택자가 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택한 백성이며(요일 5:1 참조), 죽을 때까지 믿지 않는 자는 불택자이다.  믿음은 사람이 믿고 싶어서 믿는 것도 아니요 믿으려고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참조).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택한 자만 예수를 믿을 수 있다(롬 8:29-30 참조).  사도행전 13:48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은 택한 백성이다.  예수가 구주로 믿어지는 사람은 택한 백성의 증거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지고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신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게 된 동기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본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 사랑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 사랑을 줄 대상자가 필요하고 그 대상자를 예정해 놓은 자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영원까지 무한하신 그 사랑을 쏟아 부어 줄 대상자를 내기로 작정하셨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존귀히 여기신다.  하나님의 마음이 잠시도 택한 백성에게서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 덩어리이다. 하나님의 사랑 덩어리인 성도를 누가 멸시하면 하나님이 섭섭해하시고 진노하신다.  택한 백성된 소자 한 사람을 실족케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시편 16:3에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했다.  이사야 49:15-16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태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했다.

어느 국가이든지 성도를 잘 대접하고 교회에 자유를 주는 나라는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그 나라가 잘 된다.  그러나 교회를 탄압하고 핍박하고 교회를 방해하는 나라는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반드시 그 나라가 멸망한다.

 

三. 전도 모범(5)

 

. 1: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며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말과 능력과 큰 확신으로 전했으며 또 인격으로 전했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때

첫째, 말로 전해야 된다.  로마서 10:14에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했고, 로마서 10:17에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파해야 된다.  디모데후서 4:2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다.  전도하는 사람 자신은 부족해도 이렇게 항상 힘써서 복음을 전하면 복음 자체 속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능력이 다른 사람을 살려내고 정복하여 믿게 한다.  로마서 1:16에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고 했다.

둘째, 능력으로 전해야 한다.  하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하였다(고전 4:20 참조).  복음 자체의 능력과 전도자의 능력이 합할 때 더욱 큰 역사가 나타난다.  전도자가 열심이 있어야 한다. 최 권능 목사님은 권능으로 전도하여 75개 교회를 설립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 것만큼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예한다(빌 3:10-11 참조).  말씀을 순종할 때에 오는 고난을 잘 참고 견디면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입혀지고 능력의 전도자가 된다.

세째는 성령으로 전해야 한다.  자기가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맡기고 주님께 붙들려서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즉 자기 영혼이 성령을 힘입어서 다른 사람의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그때 성령이 그 사람을 믿게 한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 없다(고전 12:3 참조).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네째는 복음을 전할 때에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전해야 한다.  전하는 사람이 확신이 없으면 듣는 사람도 시원치 않게 듣는다.  자기가 먼저 진리를 바로 깨닫고, 깨달은 진리에 확신을 가지고 전해야 듣는 사람도 확신을 가지고 따라온다.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리라 다섯째로 복음을 전할 때에 인격으로 전해야 된다.  전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참된 인격으로 자신을 만들어 나가면서 복음을 전해야 된다(행 26:25 참조).  전도자가 인격적으로 모본이 되고 존경을 받아야 그 말을 잘 청종한다.

 

四. 수도 모본(6-8)

 

.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이것이 복음을 받는 모범적인 태도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았다.  복음을 받을 때에 성령으로 받아 영혼의 양식을 삼고 그 말씀으로 생명을 삼았다.  사람이 회개하고 돌이켜 온유한 마음으로 이 도를 받아야 한다(약 1:21 참조).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 영의 양식으로 삼는 자는 말씀이 꿀보다 달게 되고 그 말씀이 자기에게 힘이 되며 생명이 된다.  말씀을 달게 받은 다음에는 새김질을 하고 소화를 시켜서 그 말씀대로 순종을 해야 된다.  그러면 더욱 더 말씀이 사모가 되고 갈급증이 생겨 심령이 가난하게 된다.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다.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말씀을 실행하여 바울과 주님을 본받아 나간 것이다.

 

.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 되었다. 마게도냐는 데살로니가와 빌립보 교회가 있는 헬라 북쪽 지방이며 아가야는 고린도가 있는 남쪽 지방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북쪽지방 뿐 아니라 아가야가 있는 남부 지방까지 신앙의 모본이 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해주었다.  아가서 1:8에 \"갈 길을 알지 못하거든 앞서간 양떼들의 발자취를 보고 따라 오라\"고 했다.  앞서간 양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신앙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간 사도들과 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간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다.

 

.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행위이다.  사람에게 나타내거나 보일려고 하는 것은 외식이다.  믿음을 지키면 그 열매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다.

 

五. 신앙 모본(9-10)

 

. 1:9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저희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소문을 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와 각처 사람들을 가리킨다.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바울 일행이 어떻게 데살로니가에 가서 전도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서 3주간 동안 전도했다(행 17:1-9 참조).

그 때에 반대 세력이 일어나서 그들을 잡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밤에 베뢰아로 피해갔다.  이처럼 예수를 반대하는 세력이 가득하고 전도하는 사람을 잡아죽이려는 곳이었지만 바울이 하나님을 힘입어 생명을 내놓고 능력과 성령으로 복음을 전했다.  전도할 수 없는 곳에서도 전도하고 하나님이 가라고 할 때에 순종하여 어느 곳에나 가서 전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이 증거되고 택한 백성이 구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은 하나님이 친히 해나가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사람이 협력하여 순종만 하면 된다.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의 전도를 받고 즉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왔다.  우상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 우상을 버리면 큰 저주를 받을 것 같아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단번에 우상을 다 내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은 신기한 은혜의 열매이다.  이는 그들이 말씀을 받을 때 성령의 기쁨으로 영적 생명의 양식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우상이 많이 있다.

① 돈이 우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우상이 되어서 돈이 사람을 살리고 돈이면 모든 일이 다 되는 줄로 알아 돈을 사랑하고 따라 나간다.

② 인본주의의 세상 문화가 우상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 세상과 향락주의와 인본주의 문화를 하나님보다 더 따라간다.

③ 단체나 국가가 우상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지배보다 그것들의 지배를 더 받고 단체나 국가의 명령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순종하면 그것이 우상이 된다.

④ 남편이나 자녀가 우상이 되기도 한다.  이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을 어기며 그들을 위하고 따라가는 것은 그들이 우상이 된 증거이다.

⑤ 자기 목숨이 우상이 되기도 한다.  자기 목숨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은 목숨이 우상이 된 증거다.

⑥ 기도하는 중에 무슨 감동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이 우상이 된 것이다.  그것은 주관적 감정으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겔 14:2 참조).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서 찾아야 된다.  마음에 어떤 감동이 있더라도 그것이 성경에 어긋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 모든 우상을 버려야만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다.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우상은 산 것도 아니고 참된 신도 아닌데 비해 하나님은 사신 하나님이요 참된 신이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생명이 없고 거짓된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요 복 받은 증거이다.

 

.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이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죽은 가운데 살려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고 예수님께서 장차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을 믿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신앙이어야 참된 신앙이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매장 끝마다 예수님의 재림이 언급되어 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전적으로 기다리는 교회였다.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신앙은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같이 귀한 신앙이다(마 25:1-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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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데살로니가전서2장

제 2 장 전도

 

(대  지)

 

一. 전도자의 자세(1-6)

二. 전도자의 심정(7-12)

三. 수도자의 자세(13-16)

四. 사랑과 소망(17-20)

 

(본문강해)

 

一. 전도자의 자세(1-6)

 

.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전도한 것이 실패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능력과 성령의 역사가 없는 전도는 영적 열매가 없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능력과 성령과 확신으로 전했다(살전 1:5).  그러므로 많은 열매가 맺었다.

 

. 2:2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바울이 먼저 빌립보에서 많은 고난과 능욕을 받으며 복음을 전하고 또 데살로니가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행 17:1-9, 16:34) .

고난은 육체의 고난으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것 등을 말한다(행 16:23).  능욕은 인격적으로 받는 치욕을 말한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소유하여 상당한 권리가 있었으나 빌립보에서도 불법적이고 무례한 모욕을 많이 받았다.

하나님을 힘입어 바울은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끊임없이 복음을 전했다.  반대하는 무리가 많았으나 굴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으므로 마지막에는 승리한 것이다.  대적이 아무리 많고 강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힘입어 계속 싸우면 마침내 진리가 이기게 된다.   그 이유는 진리 운동은 하나님이 친히 하시기 때문이다.

 

. 2:3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권면은 복음을 가지고 전도하며 권하는 것이다.

간사는 속임수나 오류를 의미한다.  많은 전도자들이 오류(참된 진리가 아닌 것)를 가지고 성도들을 속이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참 진리를 가지고 진실하게 전한 것이다.

부정 물질적 탐욕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물질을 구하고 자기 유익을 위하여 교인들을 궤계로 속이었으나 바울은 희생적 정신으로 진실하게 참 진리만 전했다.

궤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을 힘입어 능력과 성령으로 전했기 때문에(살전 1:5, 2:1) 인간적(人間的) 술책을 쓰지 않았다.  복음을 전하는 교역자가 인간적 술책을 쓰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떠나고 생명력이 없어진다.

오늘날 많은 교역자들이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써서 교인들을 많이 모아, 큰 교회를 세워서 성공해 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교인 많이 모으고 큰 교회를 세우는 것이 성공이 아니고 진리를 세워 나가는 것이 성공이다. 진리는 세워 나가지 못하면서 교인만 많이 모으려는 자는 장사꾼들이고, 삯군이며 자기를 위하는 사람들이다.  바울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였다(고후 2:17 참조).  그러나 바울은 수다한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아니하고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전하였다(고후 4:2).

 

. 2: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옳게 여김은 헬라어로 도키마조( )인데 금, 은의 제련에 사용되는 말로서 그 순분(純分)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충성되이 여겨 택하시고(딤전 1:12), 부르신 후에 여러 가지 시련을 통하여 연단을 시킨 후에 복음 전할 사명을 주신다.  모세를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연단하신 후에 사명을 맡겼고, 바울을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연단시킨 후에 복음 전파하는 일을 맡겼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사람들의 요구를 따라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전도자가 하나님께 복음 전도의 사명을 받았으니 하나님께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루어 드리는 것이 참된 성공이다.

 

. 2: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아첨은 간사한 말로 취리(取利)하는 것이다.  탐심의 탈 마음속으로는 물질을 탐하면서도 외면(外面)으로는 신성한 자로 나타내는 것이다.  복음 전도자들 중에 이러한 자가 많다.  감언이설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자기의 탐심을 채우려는 자들이나,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므로 생활 문제를 위하여 교역자가 된 자들, 연보 많이 거두기 위해 부흥회 하는 자들은 모두 이와 같은 사람들이다.  칼빈(Calvin)은 위의 두 가지(아첨이나 탐심의 탈) 죄의 유무로 전도자의 진위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하였다.

 

. 2:6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로서 큰 권세와 존귀가 있었고 교인들에게 마땅히 대접도 받고, 존귀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 권리를 쓰지 않았다.  그것은 바울이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광과 존귀와 대접은 하나님께만 돌리고 자기는 낮아져서 멸시와 천대와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자가 참된 종이다.

 

二. 전도자의 심정(7-12)

 

. 2:7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어머니가 자녀를 기름같이 전도자는 어머니의 심정을 가지고 교인들을 길러 나아가야 한다.  아이들이 잘못하여 어머니를 근심시키고 괴롭게 하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괴로워하지 아니하고 잘 용납하고 바로 될 희망을 가지고 온유하게 대한다.  이와 같이 교역자는 어머니의 심정과 하나님의 온유한 성품으로 교인들을 길러 나가야 한다(고후 10:1 참조).

 

. 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바울이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줄 뿐만 아니라 그 목숨까지 주기를 즐거워했다.  이것은 바울이 교인들을 진정으로 사랑한 까닭이다.  교역자는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목숨까지 주기를 즐거워해야 한다.  이러한 교역자가 되려면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교인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된다.

 

. 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교역자는 교인들에게 누(累), 즉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져야 한다.  교역자가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은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는 증거다.  바울은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자기 손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바울이 장막(帳幕)을 지어 생활하면서 복음을 전했다(행 18:3).  바울이 전도하면서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일한 것이다.  아마 낮에는 복음을 전하고 밤에는 천막 짓는 일을 하였을 것이다.

바울이 교인들을 사랑하여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수고하면서 자기의 진액을 모두 짜 바쳤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와 교역자의 피땀(잔액)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교역자의 진액이 들어가지 않은 교회는 생명의 역사가 없다.  그러나 교역자가 교회에서 생활비를 받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누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하여야 한다.  바울도 때로는 교인들이 연보해서 주는 물질을 받아서 생활하기도 했다(빌 4:15-18 참조).  교인들은 교역자를 잘 대접하려고 해야 한다(갈 6:6참조).  이것이 복 받는 길이다(마 10:40-42).

 

. 2: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바울이 언제든지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하려고 힘을 썼다.  이 세 가지 덕(德)은 교역자에게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사랑과 덕으로 교회를 인도하는 자는 목회에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실패한다.

거룩하고 교역자는 물욕, 정욕, 사욕, 자기를 위하는 욕심을 떠나서 언제나 거룩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  옳고 교역자는 모든 일을 옳게 처리하고 정로로만 걸어가야 한다.  모든 면에 흠(欠)이 없고 공명정대한 생활을 해야 한다.  바울은 모든 일에 있어서 위에 열거한 덕을 지켰다는 것을 ① 교인들이 증거하고 ② 자기 양심이 증거하고 ③ 하나님이 증거한다고 했다.  이 세 증거 가운데 하나만 빠져도 안된다.

 

. 2: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교역자는 어머니와 같이 사랑과 유순한 태도로 교인을 길러야 하며(7절) 또 아버지와 같은 엄격하고 공의로운 성품으로 교인들을 권면하고 경계해야 한다.  바울은 이 양면을 다 구비하였다(7,11).  교역자가 사랑과 유순하기만 해도 안되고 엄격하고 공의만 내세워도 안된다.  교인들의 잘못을 용납하고 너그럽게 받아 주는 동시에 또한 엄격하게 훈계하고 경계하며 다스리는 면이 있어야 한다.  또 교역자는 믿음직하고 진실하여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길 만해야 된다.

 

. 2: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도는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해야 한다.  교역자가 교인을 유순하게 용납하고 싸매어 주는 것도 그들이 하나님 앞에 합당히 행하게 하기 위함이며 엄격하게 권면하고 경계하는 것도 그들을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교인들을 많이 모으고 큰 교회를 이루고, 교인들에게 대접 잘 받기 위하여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교역자는 탈선된 것이요 참 종이 아니다.

 

三. 수도자의 자세(13-16)

 

.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줄 때에 그 시간에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알고 성령으로 그 말씀을 받아야 한다(1:6).  그리하면 그 말씀이 자기 속에서 역사하고 생명의 양식이 된다.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 되어야 영이 점점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다(히 5:14 참조).

성경을 읽을 때나 들을 때에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으면 생명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받고 생명의 양식으로 삼기 위해 받고, 말씀을 받아 자기의 고칠 것을 고치고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그 말씀을 따라 발자국을 떼고 그대로 걸어가야 한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릴 때에 고기가 많이 잡혔다(눅 5:1-11 참조).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날 수 없는 형편이었으나 말씀에 의지해서 떠나갔다.  이것이 산 믿음이요 복 받는 믿음이다.

 

. 2: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이방 교회의 모 교회요 표본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이방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본 받았다.  예루살렘 교회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와 같이 이방에 있는 교회도 핍박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한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핍박받는 것은 예수를 본 받는 것도 된다(마 10:24-25).

 

. 2: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고, 시기하여 죽이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잡아죽이며 성도를 쫓아냈다.

 

. 2: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도들이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에 유대인들은 이방에까지 가서 복음 전도함을 금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이 되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처럼 많이 핍박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제일 많이 받았다.  구원 운동을 방해한 것만큼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벌을 내리신다.

 

四. 사랑과 소망(17-20)

 

. 2: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전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나 있을 때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었다.  바울이 몸은 떠나 있지만 마음은 항상 그들과 함께 있었다.  바울은 교인들을 언제나 마음에 두고 사모하며 목숨까지 주기를 즐겨하였다(살전 2:8 참조).  교역자의 마음에 교인들이 있고 또 교인들의 마음에 교역자가 있어야 한다.  빌립보서 1:7-8에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의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하였다.

 

. 2: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난 다음에도 다시 가기 위하여 애를 많이 썼으나 사단이 막아서 가지 못했다.  사단이 막았다는 것은 사단의 역사로 인해서 데살로니가에 가지 못할 형편과 사정이 생겼다는 뜻이다.

 

. 2:19-2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앞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기를 열망한 것은 그 교인들의 인격을 신령하게 잘 길러서 주님 앞에 아름다운 자들로 세우기 위함이었다.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잘 되는 것이 바울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이요, 면류관이다.  교인들의 영이 자라나고 신령한 인격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교역자가 이 세상에서도 기쁘고 주님 재림할 때와 영원한 천국에서도 기쁨이요 자랑이요 면류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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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데살로니가전서3장

 

제 3 장 인애

 

(대  지)

 

一. 교회를 위하는 생활(1-5)

二. 교회를 인하여 기뻐함(6-9)

三. 회를 위한 기도(10-13)

 

(본문강해)

 

一. 교회를 위하는 생활(1-5)

 

. 3:1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방문하기를 열망하였으나 사단이 막았기 때문에 가지 못했다(2:18).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참다 못하여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기로 작정했다.  디모데는 바울을 보필해 주고, 수종들어 주고 있었는데 그 디모데를 보내고 자기만 아덴에 머물기로 작정한 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사랑하여 크게 희생한 증거이다.

 

. 3: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바울이 디모데를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이라고 한 것은 바울의 겸손과 디모데의 지위를 높여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디모데를 통하여 은혜를 받고 인도를 잘 받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교인들이 교역자를 존경하고 영접하고 대접을 잘해야 믿음이 성장한다.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면 환난 중에 있는 교인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위로해 줄 것이다.

 

. 3:3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환난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교인들의 신앙이 요동할 것을 염려하여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어 믿음을 굳게 하려고 작정하였다.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성도가 환난 당하는 것은 마땅하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다(마 16:24).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다(딤후 3:12).  또 사도행전 14:22에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환난을 받도록 세워 놓았을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평안하게 있다가 천당에 가는 것이 좋을 것처럼 생각될 것이다.  그 해답은 로마서 5:2-4에 기록되어 있다.  즉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 하나 즐거워만 하는 것은 그림의 떡을 보고 좋아하는 것과 같다.  영광에 도달하도록 자격이 만들어져야만 그 영광을 다 누릴 수가 있다.  그 영광에 도달하도록 자격을 만들려면 환난을 받아야 된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서 그 소망에 도달하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 가운데 연단을 시켜 자격을 만든 다음 그 영광을 누리도록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러므로 환난은 성도에게 저주가 아니고 은혜로 준 것이요, 복으로 준 것이다.  빌립보서 1:29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였다.

 

. 3: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교회에서 환난이 오기 전에 미리 그것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미리 환난 받을 각오와 준비를 할 수 있고 환난이 올 때에도 당황하거나 동요되지 않고 이겨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말세 환난이 올 것을 미리 알고 각오하며 준비해야 하고,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도 미리 알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한다.

 

. 3:5  이러므로 나도 참다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많은 시험하는 자들이 교인들을 시험에 빠뜨려서 산 신앙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환난 때는 그러한 시험이 더욱 심하고 교인들은 약해져서 넘어가기 쉽다.  시험에 넘어가면 전에 수고한 교역자의 수고가 다 헛된데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미리 교역자가 가서 권면해 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이 참다 못하여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것이다.

 

二. 교회를 위하여 기뻐함(6-9)

 

. 3: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하니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했던 디모데가 돌아와서 바울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 보고 내용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음과 사랑가운데 있으며, 바울을 좋게 생각하여 바울 보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믿음과 사랑은 성도와 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다.  교인들이 교역자를 잘 생각하여 사모하는 것은 그들이 은혜 가운데 있는 증거이다.  바울이 디모데의 전해준 보고(소식)를 들을 때에 참으로 기뻐하였다.

 

. 3: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바울이 환난과 궁핍을 당하는 중에서도 데살로니가 교회의 좋은 소식을 들을 때에 괴로움을 다 잊어버리고,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하여 더욱 용기를 얻어 복음을 전하고 교회 일을 하게 되었다.

 

. 3: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교인들이 주 안에서 믿음에 굳게 서면 교역자가 사는 것이다.

살리라는 뜻은 힘을 얻고 용맹한 심기를 갖는다는 것이다.  교회가 쓰러지면 교역자는 죽는 것과 같은 고통을 당한다.  이는 교회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교인들을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 생명처럼 여기기 때문에 그들이 잘되면 자기가 사는 것이요 그들이 잘못되면 자기가 죽는 것이다.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만족하다고 하였다(롬 9:3).  바울이 이스라엘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끊어진 것을 자기가 끊어진 것처럼 생각한 것이다.

 

. 3: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이 잘되는 것을 볼 때에 너무 기뻐서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는지 말할 수가 없었다. 교역자는 이런 때 더욱 더 하나님께 충성하며 보답하고자 결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도 성도의 신앙이 잘될 때 기뻐하시며 잃은 양 하나를 찾을 때도 이렇게 기뻐하신다(눅 15:6).

 

三. 교회를 위한 기도(10-13)

 

. 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 중에서도 사랑에 굳게 서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6절) 그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고 온전케 하려고 주야로 간구했다.  신앙은 계속해서 굳게 세워 나가야 한다.  스스로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진다.  시험과 환난이 다양하게 다방면으로 들어오므로 계속하여 진리로 굳게 해나가야 하며, 앞으로 더 큰 시험과 환난이 올 것을 대비하여 영적 실력을 더욱 길러 나가야 된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이 일을 하기 위하여 그 교회에 가려고 주야로 간구했다.  성도들을 만나 보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는데 만나서 육신의 교제만 하지 말고 믿음이 부족함을 보충시켜서 좀 더 완전케 만드는 일을 해야한다.

성도가 어디를 가든지 신령한 복(말씀)을 싸 가지고 가서 나누어주려고 해야 한다.  바울은 신령한 복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로마에 가려고 애썼다(롬 1:10-11).  성도의 부족한 면과 무지한 면과 연약한 면과 잘못된 면을 보충시켜 주는 자는 하나님 앞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요 영원히 복 받을 것이다.

 

. 3: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꼭 가야 되겠기 때문에 그 길을 직행하게 해 달라고 늘 기도했다.  우리도 하나님의 신령한 일을 잘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항상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닫아 놓으면 열 자가 없고 열면 닫을 자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어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 3: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데살로니가 교회는 본래부터 사랑의 수고가 많은 교회이고(1:3) 환란 중에서도 믿음과 사랑이 풍성한 교회였다.  그렇지만 그 교회가 사랑이 더욱 더 많아져서 피차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를 바울이 기원한다.  이것은 사랑의 성장 즉 영혼의 성장을 기원하는 말이다.  사랑의 세계와 영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는 하나이다.  성도의 영적 생명이 날마다 자라나야 한다.

 

. 3: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마음을 굳게 하시고 마음이 연약하면 신앙을 지키지 못한다.  에스겔 16:30에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음녀의 행동과 같다고 했다.  마음이 약한 자는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음녀와 같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3:9에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하라고 했다.  우리 마음을 굳게 하는 것은 은혜를 받아야만 된다.  은혜를 받아야 극강 담대해지고 신앙의 정조를 잘 지킬 수가 있다.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 성도가 주님 재림 하실 때에 거룩하고 흠이 없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가 항상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고, 자기 힘써 그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이 이루어져 나가게 된다.  이 문제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힘쓰지도 않는 자는 주님 재림할 때에 흠 있는 자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성화는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자란 대로 만들어진 대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정도대로 예수님 재림할 때에 나타난다.  그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와 상급이 각각 다르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라고 했다.  자라난 그대로 천국에 가서 영원히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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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데살로니가전서4장

 

제 4 장  생 활

 

(대  지)

 

一. 거   룩(1-8)

二. 형제 사랑(9-12)

三. 죽은 자에 대한 소망(13-18)

 

(본문강해)

 

一. 거  룩 (1-8)

 

. 4:1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에게 받은 말씀을 잘 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더욱 더 행하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것(走馬加鞭)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에게 더욱 권면하고 격려하면 하나님의 일이 더 잘 되어 나가고 믿음의 열매가 더 많이 맺힌다.

그러나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아무리 권면해도 효과가 없다.  이사야 28:10에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라고 하였다.  이사야가 열렬하게 경계와 교훈을 했으나 그 백성은 이사야를 비방하며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 원수를 그들에게 보내어 포로가 되게 하고 막대기로 때려서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말로해서 안 들으면 매로 때려서 경계와 교훈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로 경계와 교훈을 할 때에 받는 자가 복 있는 자이다.  우리는 이미 들은 말씀을 순종하고 계속하여 권면을 받고 더욱 더 힘써 순종하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달음박질을 하다가 중간에 머물거나 뒤를 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된다(눅 17:31-32 참조).

 

. 4: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전하는데 있다.   예수로 말미암아 전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예수님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힘입어서 전했다는 뜻이다.  즉 주님의 뜻을 주님의 역사(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전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한 말씀은 큰 권위가 있다.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은 그들이 행해야 될 요긴한 진리를 전해준 것을 가리킨다.  그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준 것이니 그것을 끝까지 순종해야 된다.  처음에 얼마동안 순종하다가 도중에 그만두면 안된다.  계속하여 행하고 그 말씀이 자기 인격이 되도록 계속 힘써 이루어 나가야 한다.

 

.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은 음란을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신자가 색욕을 쫓지 않고, 음란을 버려야 될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님은 신자가 거룩하게 되는 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거룩\"이란 죄에서 멀리 떠나는 것이다.

 

. 4: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각각 자기 아내와 남편을 두고 합법적인 부부생활을 거룩하게 여기고 존중히 여기라고 했다(고전 7:2 참조).

 

. 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쫓지 말고

하나님을 떠난 것이 영적 음란이고 하나님을 떠나면 육신의 음란 죄가 제일 먼저 들어오게 된다.  하나님을 떠난 노아 시대에도 그 죄가 들어왔다.  하나님의 아들들이(성도)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정욕으로 기울어져서 아내를 삼았다고 했다(창 6:1-2).  성도는 결혼을 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정욕대로 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된다(롬  1:24-27).  소돔 고모라 백성이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음란 방탕 남색이 가득했다(창 19:4-9).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하셨다(마 5:28).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지만 그 전에 이미 영적 간음을 했기 때문에 음욕이 들어온 것이다.  영적 간음이란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음욕이 들어왔다.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과 동거 동행 할 때는 음란한 마음이 들어오지 않는다.

   

. 4: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이 일이란 4절에 말한바 거룩하고 존귀함으로 자기 아내를 취하는 일이다.  자기 아내를 취하는 분수 즉 한계를 넘어서 형제의 아내를 취하지 말라는 뜻이다.

형제를 해하지 말라는 것은 형제의 아내와 더불어 음행하지 말라는 말이다.  남의 아내와 음행하는 것은 그 여인의 남편을 해하는 것이요 그 여자도 그 죄값으로 해를 받을 것이다.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 같이 음행하지 말라는 것과 음행하면 주께서 심판하고 징벌 하신다는 것을 미리 말하였다.  신원 하신다는 것은 죄를 갚는다.  그 죄에 대한 벌을 내린다는 것이다(롬 12:19, 시 94:1 참조).

 

.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성도가 음행과 색욕을 좇지 않아야 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거룩케 하여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음행과 색욕을 좇는 생활은 부정한 것이다.

 

. 4: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저버리는 자는 위에 말한 경건에 관한 권면(교훈)을 저버리는 자는 그 권면하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고 그 교훈을 성령으로 주시는 하나님을 저버림이 된다는 것이다.  또 4절에 말한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아내를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 된다는 뜻도 있다(이혼에 대해서는 마 5:31-32해석 참조). 눅 10:16에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말씀과 같은 뜻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를 버렸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 된다.  그러므로 복음 안에서 맺어준 정당한 관계를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다.  부모나 아내나 선생이나 동역자나 형제에 대해서 하나님이 정당하게 성령의 인도로 맺어준 관계 즉 인륜을 저버리는 자는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二. 형제 사랑(9-12)

 

. 4:9-10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미 형제 사랑을 잘하고 있는 교회였다(1:3).  그러나 더 많이 하라고 권한다. 이미 사랑의 수고를 하고 있지만 그 정도에 만족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사랑하기를 힘쓰라는 것이다.

성도의 사랑이 점점 커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분량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이다.  사랑이 점점 커지면 영혼도 자라난다.  영의 세계와 사랑의 세계는 하나이다. 하나님은 성도가 자라나기를 원하신다(히 5:12-14 참조).

 

. 4: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초대교회 교인들이 복음을 받아 인생관과 세상관이 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만을 열심히 고대함에 따라 세상일을 게을리 하는 자들이 생겼으므로 성도는 조용히 일해야 된다는 것을 바울이 여러 교회에서 가르쳤다.  바울은 본절에서 세 가지 권면을 한다.

종용하고 말을 많이 하는 자는 실수가 많고(잠 10:19) 남을 비방하기 쉽고 교회에서 말썽 일으키기 쉽다. 종용이 충성하는 자는 교회의 보배이다.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책임을 자기가 감당하고 남에게 누(累)를 끼치지 않아야 교회의 공동생활에 있어서 덕이 된다.  자기 일을 자기가 감당해 나가지 못하는 자는 교회 일을 도울 수가 없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齋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먼저 몸을 닦고 다음에 집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린 연후에 천하가 평정하게 된다는 뜻이다.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노동은 신성한 것이요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다(창 2:15).  사람이 땀을 흘리며 수고하여야 먹고살도록 하나님이 작정해 놓으셨다(창 3:18-19).  그러므로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다(살후 3:10).  성도가 손으로 힘써 일하여야 남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으며 남을 도와줄 수 있다.  성도는 될 수 있는 대로 남의 도움을 받지 말고 남을 도와주며 살아야 한다. 성도가 자기 손으로 일하지 아니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하면 신앙적인 태도가 아니다.

 

. 4:12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함이라

전 절에 신자가 종용하여 덕을 세우고 자기 책임을 잘 해나가며 손으로 일을 부지런히 하라고 권한 이유는 외인들에게 단정히 하게 하기 위함이요, 자신에게 아무 궁핍이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외인은 불신자를 가리킨다. 신자가 불신자에게도 덕을 세워야되고 자신의 궁핍도 면해야 된다.

 

三. 죽은 자에 대한 소망(13-18)

 

. 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예수 믿고 죽은 성도를 자는 자라고 했다.  신자의 죽은 것을 자는 자라고 한 이유는

① 생명이 없어지지 않고 세계만 바꾸어진 것이다.  잠자는 자는 현상 세계에서 꿈 세계로 바꾸어진 것처럼 성도의 죽음도 생명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현실 세상에서 영적 세계(天國)로 바꾸어진 것 뿐이다. 자는 사람은 일의 수고를 다 마치고 쉬는 것이다.  세상을 떠난 성도는 자기 일을 다 마치고 안식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계 14:13).

② 자는 자는 깨어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예수 믿고 죽은 성도들이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에 다 부활한다.  부활한 주님은 우리 성도의 생명이기 때문에 죽은 성도들도 다 부활하여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도 죽은 나사로를 잠들었다고 했다.  안 믿는 사람은 이 소망이 없기 때문에 슬퍼한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소망이 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된 영혼은 절대 죽지 않는다.  몸은 죽어도 영이 살아 있으니 소망이 있다.

또 예수님 재림 하실 때에 부활할 것이니 전망이 크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죽음을 정복했고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항상 승리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다.  성도가 죽는 것은 쓰고 살던 장막집(육신)을 벗어놓고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다(고후 5:1).  성도가 별세하면 그 영혼이 즉시로 천당에 가서 하나님과 같이 있게 되고 육체는 장사 지낸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는 날에는 그 영혼이 육체와 결합하여 부활한다.  그 때 신령한 몸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하루 먼저 죽는 것은 오는 세상의 하루가 길어진다.  금세에 일일단이면 내세에 일일장(今世一日短  來世一日長)이다.  우리는 내세의 소망과 부활의 소망을 견고히 붙들어야 한다.  이 소망을 확실히 가질 때에 과도히 슬퍼하지 않는다.

 

. 4: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죽은 성도의 부활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로서 모든 성도의 부활의 표본이요 원동력이다.  성도는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부활을 하게된다.  예수님 재림하는 날 죽은 성도들이 다 부활하여 공중으로 올라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 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예수님 재림 때에는 죽은 성도가 먼저 부활한다.  살아 있는 성도는 그 다음에 변화되어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한다.

 

.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굉장한 영광 중에 오신다.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천지가 진동하게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게 오시는 것이다.  그 때에 무덤이 터지고 성도가 부활하여 일어난다.

주께서 호령 예수 그리스도의 호령으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킬 것을 가리킨다(요 5:28,29).  주님의 명령 한마디에 죽은 자가 살아난다(요 11:43,44).

천사장의 소리 원수를 제어하는 천사장의 소리이니 곧 미가엘 천사일 것이다.  예수님 재림시에 마귀를 제어하고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심판하는 소리가 나며 그 때 불신자들은 토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부르짖는다(계 6:12-17).

하나님의 나팔 택한 백성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으는(召集) 나팔일 것이다(마 24:31).  재림 때도 승천하실 때 제자들이 본대로 오신다고 했다(행 1:10,11).

본대로 오신다는 것은 ① 육신의 눈으로 보았으니까 육의 눈으로 볼 수 있게 오신다는 것이고 ② 하늘에 올라가셨으니까 하늘로부터 내려오신다는 것이고 ③ 구름 타고 가셨으니까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뜻이다.  번개가 동에서 번쩍하여 서편까지 비취는 것처럼 온 세계가 일시에 모두 알게 오신다(마  24:26, 27, 31).  그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하여 공중으로 올라가서 그리스도를 영접한다.

 

. 4:17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 먼저 부활하여 공중에 올라가 예수님을 맞이하게 되고 살아서 믿는 자는 그 후에 부활체로 변화되어 공중에 들려 올라가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그리하여 공중에서 예수와 같이 세상을 심판한다(고전 6:2 ; 계 2:26-27).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공중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영접한 때부터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된다.  이것은 공중에서 항상 있을 것이 아니고 공중에 얼마 동안 있으면서 세상을 심판하고 그 후에 천년왕국이 건설될 때에 예수님과 함께 지상에 와서 천년간 왕 노릇하고 그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게될 것이다.

 

. 4: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 여러 말은 윗 구절들에서 말한 성도가 죽은 것은 잠잔다는 것과 예수님 재림할 때 부활하여 영광 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할 것을 가리킨다.  성도는 죽음을 당한 가족들과 형제들에게 이 복음과 성도의 소망에 대하여 깨우쳐 주어서 위로하라는 것이다.  슬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거기에 대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믿게 하는 것이 제일 큰 위로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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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데살로니가전서5장

 

제 5 장 재 림

 

(대  지)

 

一. 재 림(1-11)

 1. 재림준비(1-6)

 2. 물취예비(勿醉豫備-취하지 말고 예비하라)(7-8)

 3. 뢰신예비(賴神豫備-하나님을 의뢰하여 예비하라)(9-11)

二. 교회 생활(12-15)

 1. 대교역자(對敎役者) (12-13)

 2. 대교인 (對敎人) (14-15)

三. 영적 생활(16-22)

四. 천부 보전(天父 保全)(23-24)

五. 문안 축복(25-28)

 

(본문강해)  

 

一. 재  림 (1-11)

 

1. 재림준비 (1-6)

 

. 5: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는 세상 마지막 때, 시기는 재림할 시기를 가리킨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것들에 대해서는 더 쓸 것이 없다는 것이다.

 

. 5:2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주의 날은 예수님의 재림하는 날이다.  주님의 재림하는 날이 도적같이 이른다는 것은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인데(마 24:42-43) 그들이 잘 배워서 자세히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시므로 언제 오실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도적 같이 오실 주님을 우리는 믿고 늘 준비를 해야 하겠다.  주의 재림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적과 같이 오신다는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지금 당장이라도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예비하는 사람이라야 예수님께서 도적 같이 오실 것을 믿는 사람이다.

 

.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말세에는 온 세계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게된다.  세상에 전쟁 없고 사회가 안정되며 경제가 부흥되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니 평안히 먹고 쉬고 즐기자 하며 온 세계가 노아 시대와 같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음란 방탕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갑자기 오실 것을 가리킨다.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잉태된 여자가 해산할 날짜를 알지 못한다.  갑자기 해산 고통이 와서 해산하는 것처럼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갑자기 예수님이 재림하시므로 이 세상에 멸망이 홀연히 임하고 그 멸망에서 피하지 못한다.  그런데 잉태된 여자의 해산할 날짜는 모르나 시기는 알 수 있다.  그와 같이 말세에도 모든 징조를 보아서 예수님 재림할 것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마 24:7,8,32 참조).  그러나 그 날과 그 시는(아버지 외에)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마 24:36).  말세에는 모든 것이 다 잉태되는 시대가 된다.

① 죄악이 전 세계적으로 잉태되고

② 하나님의 심판의 징조가 보이고

③ 불심판의 도구(원자 무기 같은 것)가 잉태되고

④ 세계를 파멸할 요소들이 잉태되고

⑤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각종 불의가 잉태되고

ⓑ 멸망케 할 가증한 물건이 잉태된다(마 24:15).

그 잉태된 것이 점점 커 나간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고 했다(마 24:33참조).  \"그 모든 것을 보거든\"하는 것은 시대를 분별할 줄 알고 징조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잉태된 그것이 커나가니까 반드시 해산할 수밖에 없다.  야고보서 1:15에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다.  잉태된 그것들이 자라나면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노아 시대에도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 하므로 심판했다(창 6:5).

지금은 유브라데 강(이방과 이스라엘의 국경)이 말라서 교회와 세상을 구별할 수 없이 되었다(계 16:12).  초대 교회와 같은 참 교회를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며 우상이 가득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높이는 인본주의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이렇게 죄악이 관영하니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내려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신자들은 원칙적으로 빛에 속한 자이므로(5절) 어두움에 있는 자가 아니다.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2절에는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임한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어찌하여 도적 같이 임하지 못한다고 했는가 이 두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어두움에 있는 자에게나 잠자는 자에게는 도적같이 오고 깨어 빛 가운데 있는 자에게는 도적 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믿는 사람은 낮에 속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주님이 도적 같이 임하지 않으신다.  신앙이 깨어 있는 성도는 모든 징조를 보고 주님의 재림할 때가 가까운 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기 때문에 언제 오든지 도적이 온 것처럼 의외(意外)의 사건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자라 할지라도 신앙이 잠자고 술취하고 있으면(7절) 뜻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예수님이 도적 같이 오시게 된다.  그러나 깨어서 준비하고 주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에게는 주님이 알게 오신다.  노아에게 홍수가 임할 것을 120년 전에 알게 하셨고 홍수 내리기 7일 전에 다시 알게 해 주셨다(창 7:4).

아모스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이 성도에게 도적 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말은 알게 해 주고 온다는 뜻이 있다.  알게 해 주시되 그 날과 그 때는 알지 못한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만 알고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알게 해 주시는가?  모든 징조를 보고서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마 24:33).

말세의 징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을 깨달아 세마포를 입고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밤 이경이나 삼경이 되어도 자지 아니하고 깨어 있으면 예수께서 갑자기 오시지만 그에게는 알려주고 오신 것과 같다.  성도가 매일 주님이 오실 것으로 알고 고대하고 준비할 때 예수님을 반갑게 영접하여 맞을 수 있다.  그러므로 깨어 항상 준비하고 매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을 가진 성도가 복 있는 자이다.

 

. 5: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신자들은 다 빛의 아들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며(요일 1:5), 복음도 빛이다.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빛의 아들이다.

 

.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그러므로 신자는 자지 말고 깨어 근신하고 빛 가운데로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신자가 잠자는 때도 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 해도 잠들면 전에 깨어 있던 신앙이 다 없어진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누워서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한 것은 신앙이 잠든 증거이다.  요나가 니느웨성 밖에서 박넝쿨이 시들어지고 일광이 쪼여 괴로울 때에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기도한 것도 신앙이 잠든 증거이다.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는 자체가 신앙적인 기도가 아니다.  과거에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는데 신앙이 잠들어서 실패와 낙망과 절망 가운데 빠져 쓰러지고 넘어진 것이다.

잠든 가운데에 있는 엘리야를 그대로 두면 망하겠으므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깨워 주셨고, 또 신앙이 잠든 요나에게 하나님이 찾아가서 깨우쳐 주셨다.  이렇게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라 해도 가다가 잠드는 때가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도 신앙의 잠이 들었었다.  그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이가 당신이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리오리이까 하고 물어 보았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메시야인가 아닌가를 묻는 말이다.  세례요한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확실히 알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하고 분명히 증거하였었다.  그런데 그가 감옥에 갇혀서 수개월 고생하는 중에 잠이 들어서 희미해지고 의아한 마음이 생겨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가 아닌가 하고 혼미해졌다.  이것이 잠든 증거이다.

자지 말고 잠잔다는 것은 신자가 육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영으로 사는 생활은 깨어 있는 것이다. 세상에 빠져 향락주의로 나가고 방종하고 방탕주의로 나가는 사람도 잠든 것이다.

깨어 영혼이 벌떡 일어나 육을 이기고 영으로 사는 것이다.  육신으로 살던 사람이 영으로 사는 것이 깨는 것이고, 낙망하던 사람이 영적 신앙으로 돌아서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 깨는 것이고, 또 진리에 대해서 의아심을 품었으나 진리를 영으로 깨닫는 것이 깨어나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말세에는 깨어나라고 강조한 말씀이 많이 있다 (마 24:42, 고전 16:13, 엡 5:14).

근신할찌라 근신은 취하는 생활이나 방종 생활의 반대되는 것으로 경성, 경건, 극기 생활을 가리킨다. 신자는 자유 방종하는 생활을 끊어버리고 근신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자기를 제어하여 이기고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자기를 쳐서 말씀에 복종시키는 경건의 길을 걸어나가는 것이 근신하는 것이다.

 

2. 물취예비(勿醉豫備-취하지 말고 예비하라)(7-8)

 

. 5: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낮에는 자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신자는 낮에 속했지만 신자도 잠자는 때가 있다.  그것은 낮잠을 자는 것이다.  낮잠 자는 자에게는 그 낮도 밤과 같다.  잠들었으니 낮의 밝은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두움 가운데 지낸다.  그런 자에게는 예수님이 도적 같이 오신다(2절).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그 당시에는 낮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밤에 취하는 것이 상례(常例)였다(행 2:15 참조).  성도는 낮에 속한 자이니 취(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성도 중에도 세상에 취하고 물욕, 정욕, 사욕에 취하는 자가 있으므로 취하지 말라고 권면 하였다.

 

.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낮에 속하였으니 5절 해석 참조.

근신하여 6절 해석 참조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흉배는 군인이 가슴을 보호하기 위하여 가죽으로 저고리 같은 것을 만들어 앞뒤에는 쇠를 대서 만든 것인데 성도는 믿음과 사랑을 정면에 내대고 나가야 마귀의 화전을 막고 신앙으로 전진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지 않을 때에는 마귀에게 패하고 모든 사람들과 원수까지라도 사랑하지 못하면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없고 승리의 길을 걸어 갈 수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원수를 사랑하여 기도해 주셨고, 스데반도 순교 당하면서 돌로 치는 사람들을 사랑하여 기도해 주었다.  또 에베소서 6:14에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을 정면에 내대고 전진하여야만 원수가 꼼짝하지 못한다.  만일 스데반이 자기를 죽이는 원수를 조금이라도 미워했다고 하면 하늘 문이 열렸던 것이 닫히고 흑암 속에 빠져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데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하여 사랑의 기도를 했기 때문에 하늘 문이 열렸고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다.  이 세상에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마귀의 화살에 맞아 흑암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통이 막히고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게 된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 투구는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쓰는 방어용 무기이다.  신자가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견고히 갖는 것은 전쟁에서 투구를 쓴 것과 같아서 환난 중에서도 생명을 보존한다.  소망의 인내가 견고하지 못한 자는 큰 환난이 올 때에 넘어지기 쉽다.

 

3. 뢰신예비(賴神豫備-하나님을 의뢰하여 예비하라)(9-11)

 

. 5: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하나님이 신자들을 구원해 놓으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구원해 놓으셨다.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성도가 시험에 빠져 범죄하면 하나님이 노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려고 하심이 아니요 기쁘시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를 구원해 주신 또 한가지 목적은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자기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살게 하려 함이다.

깨든지는 살든지의 뜻이다. 부활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단 12:2).

자든지는 죽든지의 뜻이다(요11:11, 고전15:51). 성도는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고 주와 같이 살아야 한다.  로마서 14:8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다.  또 로마서 14:7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사는 것이 참된 성도이다.  교역자도 자기 위해서 교회일 보는 것은 삯꾼 목자이다.  자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무리 예배당을 크게 짓고 교회 사업을 많이 해도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것이므로 반드시 그 공력이 불에 타 없어질 것이다.  성경 말씀대로 한 것도 자기 위해서 한 것이면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불에 타 없어진다(고전 3:12-15 참조).  금, 은, 보석으로 지은 것을 주를 위하여 한 것이요 주의 인도를 받아 주의 말씀대로 주님의 주시는 힘으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한 것은 공력이 불타지 않고 상을 받는다(고전 3:14).

 

. 5: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하라

성도가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에 덕을 더하라고 했다. 덕이 없는 신자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  교회는 사랑과 덕이 있어야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한다.  방언이나 성령의 은사로 하는 일들일지라도 교회에 덕이 되지 않을 때는 하지 말라고 했다(고전 14:4-5, 32, 34 참조).  성도 상호간에 피차 권면하여 덕을 세우도록 하여야 한다.

 

二. 교회 생활(12-15)

 

1. 대교역자(對敎役者) (12-13)

 

.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는 교역자를 말한다.

알고는 그들의 권위를 승인(承認)하고 순종하며 알아주라는 뜻이다.  교역자는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전폭을 다 쏟아 부어 주를 위하여 수고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 교역자가 개인생활이나 가정생활(경제면)에 어려운 일이 없도록 교인들이 잘 살펴보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을 도와주고 예수님을 대접한 것과 같은 상을 받는다(마 10:42-44).  그러나 나태(懶惰)하고 인본주의로 나아가면서 복음을 바로 전하지 못하는 교역자는 교인들의 지탄을 받고, 치리회의의 책망을 받아야 마땅하다.

 

. 5: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교역자의 충성된 역사로 말미암아 교인들의 영이 살아난다.  참된 교역자는 생명의 기관이다.  그러므로 생명처럼 귀히 여기는 것이 옳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않고, 교인을 인본주의로 인도하며 바로 가르치지 못하는 교역자는 생명이 없다.  그러한 교역자는 영접할 필요가 없다.

너희끼리 화목하라 성도가 서로 화목해야 한다.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시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는다고 했다(마 5:9).  그러나 불목케 하는 자는 마귀의 자식이다.

 

2. 대교인(對敎人) (14-15)

 

. 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지 아니하고 불평과 비방이나 하고 규모 없이 행하는 사람은 가만히 놓아두지 말고 권계도 하고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해야 된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전도의 길이 막히고 교회가 손해를 입고 많은 사람들의 심령에 해독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들을 다스려서 그러한 일을 다시 하지 못하게 해야 복음 운동이 잘 된다.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핍박을 견디기 힘든 연약한 마음의 소유자를 말하는데 이러한 사람을 성도들이 위로해 주고, 도와주어 믿음을 잘 지키도록 인도해야 한다.

힘이 없는 자를 붙들어 주며 자력으로 믿는 일을 잘 못하고 진보가 없는 자들을 기도와 격려와 여러 면으로 도와주어서 믿음의 달음박질을 잘하게 하는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 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 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악으로 대할 때에도 우리는 악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한다(갈 5:15 참조).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성도의 지혜이다(롬 12:13-21 참조).  성도가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은 악을 행하는 그 사람과 같은 악을 행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피차 진리와 신앙에서 떠난 것이 되고 둘 다 망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악을 행하더라도 나는 나의 할 도리만 정당하게 해나가야 한다.

요셉의 형들이 시기하여 요셉을 죽이러 하다가 애굽에 팔아 버렸으나 요셉은 그 형들에게 언제나 선으로 대했고 범사에 정당하게 자기 책임을 감당했다.  형들은 부친 야곱이 죽은 후에 요셉이 보복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요셉에게 와서 부친의 말씀을 하면서 용서를 구할 때에 요셉이 \"염려하지 마소서 나는 당신과 당신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 50:15-21)하고 울면서 위로해주고 자기의 책임을 다 하겠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악을 행할 때에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힘든 일이다.  그러나 성도가 그 힘든 일을 해야만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이 있다.

해방 후 평북 천태동 교회에 김 응숙 집사가 있었다.  그 남편이 공산당 이어서 부인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몹시 반대하고 싫어했다.  하루는 자기 부인이 교회에 갔다오는 것을 지키고 있다가 대문간에서부터 머리채를 잡고 방에 끌고 들어가면서 빨래 방망이로 거의 죽을 만큼 때렸다.  그런데 하나님이 김 응숙 집사를 보호하여 죽지는 않았다.  그 이튿날 김 응숙 집사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예배당에 가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조반을 지어 가지고 남편에게 공손히 밥상을 차려 드리며 아내의 도리와 책임을 정당하게 다 하였다.  그때 남편이 감동을 받아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으면 그렇게 때려서 죽게 만들어 놓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났겠는가 또 그렇게 죽도록 때린 남편(자기)을 어떻게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하고 그후로 그 남편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성도는 항상 모든 사람을 대하여 선을 좇아야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三 . 영적생활 (16-22)

 

. 5:16  항상 기뻐하라  

이 세상에는 항상 기뻐할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근심과 걱정된 일, 번민과 고통스러운 일, 가슴아프고 억울하고 눈물 흘릴 일이 많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  항상 기뻐하는 방도는 영적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영의 세계는 항상 기쁜 세계이다.  성도가 육신 중심으로 살면 항상 기뻐할 수 없으나 영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 항상 기쁘다.  영의 세계는 사랑의 세계요, 성령의 세계요, 빛의 세계요, 생명의 세계요, 기쁨의 세계이다.  이것은 다 같은 세계요 한 세계이다.  거기에는 털끝만큼도 어두움이 없고 슬픔이 없다.  그 세계는 이 세상을 초월한 세계요,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의 주만 보이는 세계이다.

사람이 이 땅위로 걸어가면 강과 산이 있고 나무와 돌이 있어서 발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많고 또 구름이 덮여서 해와 달이 보이지 않고 비나 눈이 오는 때가 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면 거기는 아무 장애를 받지 않고, 일월(日月)이 명랑한 세계에서 항상 상쾌하게 갈 수 있다.

영의 세계에서 걸어가는 자는 이와 같으므로 항상 기뻐할 수 있다.  항상 성도는 영적 시온산 정봉으로 높이 올라가 신령한 세계에서 살아야 근심의 구름, 욕심과 유혹의 구름, 시험과 흑암의 구름이 없고 영의 빛이 찬란하고 이 기쁨이 충만하다.  이 세상의 근심과 걱정, 고통, 불만이 들어올 때에 영적 세계 곧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면 한숨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두려움이 변하여 노래가 된다.  거기에는 언제나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다.

 

.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언제나 주님과 영적 교통하는 생활을 하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이는 언제나 마음으로 하나니께 늘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밥할 때는 \"내 마음이 불붙게 해 주십시요\"라고 기도하고 식사할 때는 \"영의 양식도 먹게 해 주십시요\"라고 기도하고 산에 올라갈 때는 \"내 영적 생활이 올라가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세탁할 때에는 \"내 마음이 깨끗하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으로 언제나 기도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참 뜻은 하나님과 영적 교통이 계속되는 것을 가리킨다.  기도는 마음으로 하고 영으로 해야 된다(고전 14:15).  영적 교통이 없는 기도는 생명이 없다.  쉬지 않고 기도하려면?

① 죄를 회개해야 되고  ② 영이 깨어 있어야 하고  ③ 성령의 인도를 언제나 받아야 되고(갈 5:16, 유 1:20, 살전 5:19 참조)  ④ 하나님을 사모하여 전심전력을 기울여 기도에 힘써서 영적 세계에 들어가 기도해야 된다.

 

.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도가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이는 영적 유익이 많고 육신의 건강에도 유익이 많다.  어떻게 하여야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  ① 욕심을 버려야 한다.  사람의 욕심은 땅보다 두껍다.  불평, 불만, 원망 등은 결과다(딤전 6:9-10, 약 1:14-15).  ② 자족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올 때에 빈손 들고 왔으므로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있으면 감사해야 한다.  오늘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한 줄 알아야 된다(딤전 6:7-8).  ③ 감사해야 한다.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을 믿고 무슨 일을 당해도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  로마서 8:28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합동해서 유익하게 된다는 뜻이다.  육신과 세상일만 볼 때에는 손해가 나고 실패하고 근심이 되고 죽을 것 같아도 영적면과 내세에는 그것이 도리어 큰 유익이 되므로 감사하게 된다(고후 6:8-10 참조).  현재의 일만 생각하면 손해를 보는 것 같으나 얼마 후의 일과 합해 놓으면 그것이 유익이 되니까 감사한다.

요셉이 애굽에 팔리워 간 것이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된 것만 본다면 모든 일이 해롭게만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감옥에 간 것으로 인해 술 감독을 사귀게 되었고 그 사람을 통해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여 총리가 된 것을 합해 놓으면 그 모든 것들이 다 유익이 되었다.  욥의 재산이 다 없어지고, 자녀가 다 죽었을 때는 욥이 육신적으로 큰 손해를 입었고 많은 고통을 당했으나 그가 끝까지 참고 믿음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갑절을 주셨다.  모든 것을 합해 놓으니 그 모든 것이 유익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 자는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스데반은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다.  육신적으로 보면 아주 비참한 죽음이었지만 영적으로 보면 하늘나라에서는 영광스러운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하게 되었고 많은 영광과 상을 받게 되었다.  스데반의 순교는 썩어질 육신의 생명과 그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바꾸어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순교자들은 죽으면서도 감사한다.  이것이 참으로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성도가 범사에 감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 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성도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성령의 감동은 귀한 것이다.  왜냐하면 영적 신앙의 모든 일은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고전 12:3 참조).

소멸치 말며 성령의 감동이 올 때에 경히 여겨서 무시해 버리지 말고 즉시 순종하라는 뜻이다.  게으르거나 육신의 생각을 좇아갈 때에는 성령을 소멸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을 배척한 큰 죄가 된다. 사도행전 20:22에 사도 바울이 심령에 매임을 받아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으려면 환난과 핍박과 십자가를 각오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우리가 주의해야 될 것은 주관적 감정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기도할 때에 마음에 어떤 감동이 있다고 무조건 성령의 인도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성경의 원리에 맞지 않는 것은 성령이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6:13에 성령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하였다.

성령은 반드시 성경의 원리원칙에 맞도록 인도하신다.  바울이 심령에 매인바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성경에 맞는다(행 20:22).  심령에 감동이 있어도 성경에 맞지 않는 감동은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 주관적 감정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입각하여 신앙양심을 예민하게 써서 항상 성령의 감동을 잘 받아 즉시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다.

 

. 5: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데 앞으로 행할 말씀과 걸어가야 될 말씀과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등을 가리킨다.  요즈음 예언을 한다고 하여 남의 마음을 안다든지 언제쯤 전쟁이 난다든지 다른 사람의 앞날을 점치는 식으로 말하는 것 등은 예언이 아니다.  그것은 주관적 감정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하나님이 시킨 것이 아니다(겔 13:2,17 참조).  그것을 따라가다가는 마귀의 올무에 걸릴 뿐이다.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참된 예언은 성경 말씀이다.  계시록 1:3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1:18에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다.  바울에게 배운 성경 말씀이 너를 지도한 예언이라는 것이다. 신구약 성경말씀 전체가 다 예언이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씀도 앞으로 되어질 것이므로 예언이다.  또 성경 말씀대로 살면 복 받고 순종하지 않으면 벌받는다는 말씀도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므로 예언이다.  역사적 사실도 예언이다.  아브라함의 역사도 우리에게 예언이 된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그 복을 받는다고 하는 예언이 되는 것이다.  노아 홍수도 예언이다.  앞으로 환난이 오는데 신령한 믿음의 방주를 짓는 자는 그 환난을 이기고 구원을 받으리라는 예언이다.

멸시치 말고 성경 말씀을 멸시치 말라는 뜻이다.  자기가 마땅히 행해야 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말고 즉시 순종해야 한다.  주일 지키지 않은 것, 십일조 드리지 못하는 것, 기타 자기가 마땅히 지켜야 될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은 그 말씀을 멸시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예언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죄가 된다.

 

. 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바로 찾아서 하라는 말이다.  자기의 이익을 따라서 자기 중심으로 무슨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성도는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항상 선을 좇아서 행해야 하나님이 같이 해주시고 도와주신다.

 

. 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성도는 거룩한 위치에 있는 자이니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자기 양심에 가책을 받는 악과 성경에 금한 것을 범하는 악을 다 버려야 한다.  \"내가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고 깨달아지면 즉시로 고쳐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버릴 것은 다 버리고 나가야 한다.  성도는 덕이 되지 않는 악의 모양까지 버려야 한다.  李下에 不整冠하고 瓜田에 不納履라 하는 말이 있다(오얏나무 아래서 관을 고쳐쓰지 말고 외밭에서 신들메를 매지 말라).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이 오해할만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四. 천부 보전(天父 保全)(23-24)

 

.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이 하나님은 성도에게 모든 평강을 주시고 영적 평강을 주시고 영원한 평강을 주신다.  성도의 영과 혼과 몸까지 전체가 다 우리 주 예수 강림하실 때에 흠이 없게 보존되기를 축원한 것이다.  영과 혼과 몸 인간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영\"은 헬라어로 푸뉴마( )인데 성도의 영혼을 가리키고 \"혼\"은 헬라어로 푸쉬케( )인데 일역(日譯) 성경에는 마음으로 번역되었고 우리말 성경에는 목숨 또는 마음으로 번역된 성구가 많다.

목숨으로 번역된 성구 (마 6:25, 10:39, 16:25, 22:37, 막 8:35, 12:30, 눅 9:24, 10:27, 17:33, 요 10:11,17, 15:13, 롬 11:3, 16:4, 빌 2:30, 살전 2:8, 요일3:16). 마음으로 번역된 성구 (마 11:29, 12:18, 눅 2:35, 요 12:27, 행 15:24, 엡 6:6, 골 3:23, 히 10:38)이다.

 

. 5: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미쁘시니 \"신용이 있으시니\" \"신실하시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를 택하여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불렀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또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녀를 택하셨고, 불러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  그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변함이 없으시고 끝까지 구원 목적을 완수하실 것이다.

 

五. 문안 축복(25-28)

 

. 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전도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라는 말이다.  교역자를 위해서 교인들이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한다.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면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가고 교인들이 복을 받는다.

 

. 5: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친절한 사랑의 인사를 하라는 말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남자는 남자와 입맞추고 여자는 여자와 입맞추며 인사를 하였다고 한다.

입맞추는 인사는 그 당시에 가장 친절한 인사 방법이었다.  지금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안된다.  성도는 어디서나 그 지역에서 하는 인사 방법으로 하되 사랑으로 친절하게 인사하기를 힘써야 한다. 사랑으로 친절하게 인사하지 않을 때에 상대방이 섭섭한 생각이 들어가서 그 사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 5: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들리라

이 편지를 읽고 자기만 아는데 그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읽어 주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 말씀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계속 말해 주고 가르쳐야 한다.  만일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 하였다(고전 9:16 참조).  그러면 듣는 사람도 유익을 보고 자기도 유익을 본다.

 

. 5: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은 교인들에게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