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베드로전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기록한 사람 : 사도 베드로

기록한 연대 : 주후 63년경

기록한 장소 : 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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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베드로전서1장

 

제 1 장 구 원

 

(대지)

 

一. 구원 예정(1-2)

二. 구원 찬송(3-4)

三. 시험과 연단(5-9)

四. 구원 예고(10-12)

五. 구원받은 자의 생활(13-25)

 

(본문강해)

 

一. 구원 예정(1 -2)

 

.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베드로가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한 것은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이 편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는 소아시아에 있는 지명들이다.

흩어진 나그네 유대인으로서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 핍박을 받아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았고, 또 오래 전부터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중에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많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본국인 유대를 떠나 있기 때문에 흩어진 나그네 라고 하였다.

또 나그네란 천국을 본향으로 삼고 있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베드로서에는 나그네 사상이 많이 나타나 있다. 1:17에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하였고, 2:11에는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이와 같이 성도를 가리켜 \"나그네\"라고 말한 것은 단지 그들이 이 세상의 고향을 떠나 나그네 생활하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요, 천국을 본향으로 삼는 성도의 이 세상 생활을 나그네로 비유한 것이다. 나그네는 항상 본향을 사모하여, 임시로 머무는 그 객지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이와 같이 성도는 본향인 하늘 나라를 바라보며, 이 세상을 나그네로 지내는 자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사는 생활을 나그네라고 한 것은 ① 이 세상은 성도가 영원히 살 나라가 아니요 잠깐 나그네와 같이 머물다가 본향인 친국으로 가기 때문이다. ② 성도는 나그네로 임시 머무는 이 세상에 애착심이나 미련을 두어서는 안되고 본향되는 하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③ 나그네는 이곳생활이 괴로와도 본향에 가서 평안히 지낼 것을 생각하고 잘 참는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나그네처럼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고난과 수고를 잘 참고 인내해야 한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지내다가 잠시 잠깐 후에는 이 세상을 떠나 본향 되는 하늘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나그네로 있을 때 실수하지 말고 마귀의 시험에 속지 않도록 하여 기름으로 본향 집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는 것이다. 우리 성도는 모두 나그네로서 잠시 이 세상에 머물다가 본향인 하늘 나라로 돌아갈 터인데 조금 먼저 가고 나중 가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소망이나 미련을 두지말고, 하나님 나라에 돌아가서 하나님 앞에 책망받지 않고, 칭찬과 영광과 상급을 얻도록 힘써야겠다.

 

.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성도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선택하였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서 예지예정(豫知豫定)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 \"미리 알았다\"는 것은 알아 주었다는 것이요, 알아 주었다는 것은 사랑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택할 때에 미리 사랑하여 택했다는 뜻이다.

아모스 3:2에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라고 하였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을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만 알았다는 것이 아니다. \"너희만 알았다\"는 것은 너희만 사랑해 주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를 택하실 때에 성도 자신의 선행이나 공로를 보고 택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선택해 주신 것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예지예정을 주장한다. 어느 때,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 출생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겠는 고로 그 믿을 것을 미리 아시고 그 사람을 택하여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학설은 구원이 사람의 행위에 있게 되고 하나님의 주권이 무시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앞으로 믿을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 사람을 택했으므로 구원이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되어 구원이 사람 편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되면 하나님은 오로지 사람의 의지와 행위를 따라서 구원하시기도 하고, 못하시기도 하는 결과가 된다.

예정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의지를 따라 해주었다고 하면 하나님은 무력한 하나님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이 예지예정설은 성경 원리에 맞지 않는 인본주의 사상이다. 칼빈주의는 성경대로 예정예지(豫定豫知)를 믿는다. 예정예지란 하나님께서 어떤 자를 택자로 예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그가 반드시 예수를 구주로 믿을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것이다. 믿게 되어있지 않으면 어떻게 믿을 것을 알겠는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으로 택하신 자라야만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고,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이다(요일 5:1).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그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라야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 사도행전 13 : 48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성도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게 되었고(고전 12:3),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졌다 (히 3:1, 유 1:20).

순종함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가리킨다 (롬 1:5, 16:26). 성령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의 죽었던 영혼을 살리셨고(중생), 영혼속에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말씀을 순종함으로 점점 더 거룩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나가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피로써 죄 사함을 얻어 구원을 받도록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셨다.

구약 시대에는 피를 뿌려서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했다(레 3:2, 14:7). 그러므로 여기 피를 부린다는 것은 정결케 한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성도가 정결케 되며, 전체가 완전히 깨끗케 된 것을 가리킨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전신이 목욕한 것과 같이 깨끗하여졌다(요 13:10).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정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예정함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이 책임을 지고 하신 것이다. 성부는 그의 자녀를 택하시고, 성자는 십자가에서 구속해 주기로 예정하시고, 성령은 택한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피를 믿게 하고 순종케 하여 거룩하게 하기로 예정하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이 구원의 반열에 참여한 자가 가장 복이 있다.

은혜와 평강 이것은 구속의 은혜와 영적 평강을 말한다. 성도는 항상 은혜 가운데 살아야 강건해지고, 그 결과로 영적 평강이 오고, 그 가운데서 믿는 일을 해 나아갈 수 있다.

 

二. 구원 찬송(3-4)

 

.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말함에 있어서 첫마디가 \"찬송하리로다\" 라는말로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을 생각할 때에 찬송하는 말부터 나오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할 때에 무한히 크고 존귀한 그 구원을 거저 받은 것이 너무 감사하여 찬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거듭나게 하사 거듭났다는 것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다시 살아난 것을 말한다. 이것이 중생이요 영적 부활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은 그의 많으신 긍휼에 기초한 것이다.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속량해 주셨고, 부활의 생명과 능력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성도의 거듭난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받았으므로 영원히 죽지 않는다. 요한복음 11:26에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다. 살아서 믿는 것은 중생하여(영이 살아서) 믿는 자는 그 영이 영원히 죽지 아니함을 가리킨다.

중생은 인간의 노력이나 협력이 필요없는 성령의 단독적인 역사이며, 찰나적으로 이루어진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 세상의 소망은 생명이 없고 없어질 소망이다. 그러나 성도의 소망은 산 소망이요,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소망이다.

성도의 소망을 왜 산 소망이라고 하였는가? ①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 것을 소망하기 때문이요, ② 우리 영이 자라나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소망이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 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다 에베소서 4:15에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라\"고 했다

 

.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세상의 기업들은 더러워지고, 썩어지고, 좀 먹고, 도적 맞게되고, 쇠해지고, 마침내 없어진다. 그러나 성도의 기업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 나라에 있으므로(빌 3:20참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으며, 악한 자가 와서 도적질하거나 빼앗지도 못한다. 성도의 기업은 하늘에 간직된 것이며, 영원하고 아름답고 보배로운 것이다.

하늘에 간직하신 것은 ① 불변(不變), 불쇠 (不衰), 불후(不朽)할 것을 가리키고, ② 분실할 염려 없이 든든히 보존해 두었다는 것이고, ③ 틀림없이 성도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성도가 이 기업을 받아 누릴 만한 자격을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이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으로 성도들을 연단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많이 받는 성도는 그만큼 자격이 더 잘 만들어져 더 많은 기업을 받게 될 것이니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참고 연단을 받아 나아가야 한다.

 

三. 시험과 연단(5-9)

 

. 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여기 \"말세\"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를 가리킨다. \"예비하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에게 주실 구원이다. 이 구원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이며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그 날까지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분 일초라도 우리를 보호하시지 않는다면 마귀가 즉시 성도를 잡아 삼킨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성도가 마귀의 권세와 궤계와 시험과 올무에 빠지지 않고 험한 이 세상을 믿음으로 통과할 수 있다.

 

.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시험이 들어올 때에 시험은 크고 자신은 연약하여 자기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잠깐 근심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뢰(依賴)하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도와 주셔서 그 시험을 이기게 된다.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성도가 시험을 믿음으로 이겼을 때에 크게 기뻐하게 된다. 시험이 들어올 때에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며, 담대히 말씀대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역사하여 그 시험을 이기게 해 주신다.

시험을 이기면, ① 영이 자라나는 기쁨이 있다. ② 하나님께서 능력을 성도에게 주셔서 시험을 이기게 한 다음에는 그 능력을 거두어 가시지 않고 그 성도의 영적 실력이 되게 만든다. 그러므로 시험을 이긴 성도는 그만큼 영적 실력이 커지며 기름이 충만하게 된다. ③ 시험을 이기면 그만큼 하늘 나라의 기업이 커지므로 기뻐한다. 영적 실력이 커졌으므로 하늘 나라의 기업(상급)도 커지게 된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환난과 시험을 당하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슬퍼 보이나 신앙 면으로 볼 때에는 오히려 크게 기뻐할일이다. 야고보서 1:2에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시험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혀 주시고 신령한 기업을 더 많이 주시기 위하여 은혜로 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시험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부르짖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더욱 힘써서 믿음을 지켜 나아가자. 그리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능히 그 시험을 이기고, 큰 기쁨과 복을 받게될 것이다.

 

.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의 시련 정금이 되려면 불로 연단하여 불순물을 다 제거해야 하는 것처럼 성도의 믿음도 연단을 받아야 고상한 믿음이 된다.

불로 연단 불은 시험을 가리킨다(4:12). 불같은 시험을 통과하여 연단을 받은 믿음이라야 견고하다. 성도가 많은 시험과 환난을 통과하는 동안에 자기의 되지 못한 것과 어그러진 것이 바로 세워지고, 교만이 깨져 나가고, 여러 가지 죄악성이 제거되고, 점점 깨끗한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신자는 아직 유치한 신앙이므로 자기의 부족과 연약성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교만하기 쉽고 영적 실력이 부족하다.

시험이 올 때 만일 원망하고 낙심하며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킨다면 그 시험에 실패한 자요 유익이 없다. 시험에 넘어졌어도 다윗과 같이 침상이 뜨도록 회개하고 원통히 생각하여 바로 서면 큰 유익이 된다 연단받은 믿음은 금보다 귀한 보배이다. 금은 아무리 많아도 없어질 것이나 연단받은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된다.

 

.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예수를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 요한복음 20:29에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요 6:69). 만일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보아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아는 것을 믿게 된다면 그 믿음은 불완전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눈은 착각이 있고, 어느 일면만 보게 되고, 또 신령한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영적 교통이 이루어진다. 또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거할 때에 성도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된다. 이러한 성도는 예수를 무엇보다 더 사랑하게 되며, 그 사랑에 끌리워서 어디든지 따라가고 생명까지도 기쁨으로 바치게 된다. 고린도후서 5:14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했다. 여기서 \"강권하다\"는 것은 \"끄는도다\"라는 뜻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줄에 끌려서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 성도가 주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나, 말씀을 순종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끌려서 할 때에 힘들지 않고 큰 즐거움으로 하게 된다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성도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영으로 교통할 때에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다. 이 즐거움은,

① 영적 즐거움이다.

②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즐거움이다.

③ 말씀을 지키므로 영혼이 자라나는 즐거움이다.

④ 주의 뜻을 성취해 드리는 즐거움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그 말씀을 지키게 되고(요일 5:3), 말씀을 지킴으로 영이 자라게 된다. 영이 자라나면 예수그리스도를 좀더 발견하게 되고, 예수님과 좀더 깊이 사귀게 되므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게 된다. 그러나 세상 즐거움은 헛된 것이요(전 2:3-11참조), 죄악의 낙(樂)이요(히 11:25), 사망의 낙(樂)이다(딤전 5:6).

 

.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성도가 예수를 믿을 때 구원을 받았다.

믿음의 결국 성도가 믿음을 지킨 결과로 구원받는다는 뜻이며, 이것은 성도가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구원을 이루어 나아갈 수 있다(벧전 2:1-2). 구원을 이루어 나아간다는 것은 죄는 점점 벗어버리고, 영혼이 자라나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믿음을 잘 지키면 영혼이 점점 자라나서 몸의 구속이 이루어지게 된다(롬 8:23).

 

四. 구원 예고 (10-12)

 

. 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은 갑자기 된 것이 아니고, 오랜 과거(구약 시대)부터 여러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보고 사모하며 기다리던 구원이다.

 

. 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 선지자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을 가리키는데,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기전에도 영으로 구원 역사를 하시었다. 고린도전서 10 : 4에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구약 시대에 성도들을 따라 다니면서 신령한 음료를 주셨다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선지자들 속에서 역사하시었다.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고난받으실 것과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영광을 받으실 일에 대하여 선지자를 통해서 미리 증거했다는 것이다. 이사야 53:4-8에는 그리스도가 고난받을 것을 증거했고, 시편 16:10에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할 것을 증거했고, 다니엘 7:13에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을 증거했다.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속해 주실 그 시기와 때를 자세히 살펴보았으며 그들은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즐거워하였다(요 8:56,51 11:13). 그러나 그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시대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 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선지자들이 자기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하여 예언하며 증거를 하였으나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고. 장차 믿음으로 구원받을 자들을 위하여 한 것이었다. 그 선지자들이 많은 수고와 봉사로 예언한 것은 장차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리스도의 나라에 참여할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며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참여한 자들은 복 받은 자들이다.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가 받을 고난과 영광을 계시로 알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이것을 안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알게 해주셔서 알고 예언하였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그리스도가 예언의 말씀대로 오셔서 구원을 완성 하셨으며, 복음 전하는 자들이 이 구원(복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복음 전하는 자들은 동일한 성령을 힘입어 여러 시대, 여러 사람에게 전하였고, 우리에게까지 전하여 믿게 한 것이다. 이 비밀의 복음을 전하게 하신 분도 성령이요, 믿게 역사하신 이도 성령이다(마 16:17).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놀랍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본래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구원받을 성도들을 위하여 심부름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큰 구원을 죄인들에게 주시는 것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의 구원은 천사들도 흠모하여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요 여러 선지자들도 바라보고 즐거워하던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큰 구원을 받았으니 그 구원을 경히 여기거나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중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히 2:1-4).

 

五. 구원받은 자의 생활(13-25)

 

.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는 마음을 잘 다스리고 단속하라는 말이다. 마음을 잘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고, 마귀에게 빼앗겨서 믿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또 그러한 사람은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해도 마귀의 일을 해주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며,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일이 되지 않는다.

성도가 마음을 단속하지 않으면 속에 있는 부패성이 거침없이 나와서 자신과 남에게 해독을 끼치게 된다. 잠언 4:23에 \"무릇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고, 잠언 16:32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근신하여 근신은 방종, 방탕과 반대되는 말로 삼가 조심하는 생활이요, 자기를 이기는 생활이다. 구원얻은 자가 근신하지 않으면 신령한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게 된다. 우리가 근신하지 않으면 죄가 들어온다.

성도가 삼가 조심하여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구원을 잘 이루어 나아갈 수 있다. 요셉은 근신하여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며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미혹에 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 귀하게 사용되었다. 삼손은 용사였으나 근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귀에게 속아 눈을 뽑히고, 원수에게 조롱당하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을 잘 다스리고 근신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때에 가져올 은혜를 바라보지 않는 자는 현실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져서 자유 방종하기 쉽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에 대한 큰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는 날마다 자기를 다스리고 지킬 뿐 아니라, 신부가 신랑 맞을 준비를 하듯 늘 경성하여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게되며, 주님 앞에서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근신하고 깨어서 신앙의 정조를 잘 지키며 신랑되는 예수님 오시기를 날마다 기다리는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 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회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알지 못할 때는 성도가 믿지 않을 때이다. 그때는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육신의 욕심대로만 살았다.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욕심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사욕\"의 헬라어     (에피뒤미아)는 죄의 깊은 욕망을 가리키는데 전적 부패한 옛 사람의 근본적 욕망을 가리킨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는 욕심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니면서 죄의 종노룻을 하였고, 그 결과는 사망이었다(약 1:15). 믿는 성도가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과 그 말씀을 순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육체의 정욕은 성령을 거스려 행하기 때문이다(갈 5:17). 그러므로 성도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우리를 불러 믿게 한 하나님이 거룩하니 성도는 그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야 한다.

거룩은 죄에서 멀리 떠나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다. 거룩한 자가 되려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을 닮아 나아가야 한다.

 

.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것은 레위기 11:44, 19:2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가 거룩해야 된다는 것이다. 성도에게 죄와 더러운 것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가까이가지 못한다. 성도가 거룩해야만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사귈 수 있고,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으며 (고전 3:16),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거룩의 헬라어 (하기오스)는 구별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구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구별은 두 가지로 갈라놓는 것이다.

진리인가 비진리인가, 또는 인본주의인가 신본주의인가, 또는 마귀의 역사인가 하나님의 역사인가, 두 가지로 갈라놓고, 옳지 않은 것은 버리고 옳은 것을 따라가야 거룩한 생활을 할수 있다.

 

.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며, 행위대로 판단하신다. 사무엘상 16:7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다.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체나 용모나 학벌이나 직분이나 인간의 지혜 등을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보지 않으시고 그 사람의 중심과 행위를 보시고 판단하신다. 다윗의 외모는 보잘것 없었으나 그의 중심과 행위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고 정직하게 행하여 하나님께 합한 자였기 때문에 (왕상 14:8, 행 13:22)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많은 복을 주었다.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우리 성도가 세상에서 사는 생활은 나그네와 같은 생활이다. 나그네는 잠깐후에 본향으로 돌아간다. 이와 같이 성도는 이 세상에서 잠깐 살다가 본향인 하늘 나라로 돌아가 거기서 영원히 살 것이다. 성도가 본향인 천국에 돌아가면 세상에서 행한 행위대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세상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한다. 성도는 세상에서 잠시 고난을 받더라도 본향에 돌아가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의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한 것이니라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 인류의 시조 아담 때부터 유전해 내려온 부패성과 모든 욕심에서 나오는 모든 더러운 행위이다. 아담의 후손은 누구나 다 부패한 성품과 죄가 있으나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희생한 그 피로 성도를 구원해 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을 얻은 자이니 우리의 구원이 참으로 귀한 것을 깨달아 경히 여기지 말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

 

.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 그리스도의 구속은 창세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엡 1:4참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말세에 성도를 위해서 나타내신 바 되었다 여기 말세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를 가리킨다(히 9:26참조). 본절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내신 바 되었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동정녀 탄생하여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구속해 주신 것을 가리킨다.

 

. 1: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자요,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는 자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시고 영광을 주신 분이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한 바 되었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능력으로 다시 살리셔서 영광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려서 영광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으며, 이 소망은 견고하고 든든하다. 성도는 이 믿음을 가지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며 죄와 더불어 싸워 나가는 자가되어 야겠다.

 

.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케 하여 여기 영혼은 헬라어 (프쉬케)로서 혼이라는 뜻이 있는데, 중생한 영이 사용하는 혼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중생한 영의 역사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이것은 중생하여 이미 깨끗해진 영혼이 진리를 순종해 나아갈 때에 점점 더 깨끗하게 되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곧 깨끗에서 깨끗으로, 거룩에서 거룩으로 점점 자라나는 것을 말한다.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에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한 영의 본질도 사랑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중생한 영으로 살면 사랑의 세계에서 살게 되고, 사랑의 사람이 된다. 또 그 사람은 자기 심령 속에서 진정한 사랑이 쏟아져 나온다. 사랑의 세계와 영의 세계와 성령의 세계는 동일하며 빛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도 모두 같은 하나의 세계이다.

모든 성도가 중생할 때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중생했고,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았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으로 사는 사람은 그 속에서 사랑이 자동적으로 나오게 되며 형제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게 된다. 성도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중생한 영으로 살지 않고 육신으로 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영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자요, 흑암에 있는 자이다.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성도가 적극적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기를 힘쓰면 더욱 많은 사랑을 베풀게 되고, 자신의 인격이 더욱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중생의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약 1:18). 중생은 죽었던 영이 살아난 것인데, 성화와는 다른 것이다. 중생은 단번에 순간적으로 되는 것이요, 성화는 일생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 믿기 전에는 사람의 영이 다 죽은 영이다. 그 죽은 영이 성령과 말씀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 중생이요, 이것은 영적 사망에서 영적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새 생명을 받은 것이요, 새 생명의 시작으로 하나님에 의하여 찰나적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 이루어진다(요 3:5). 물은 말씀을 가리킨다(엡 5:26, 약 1:18, 고전 4:15 참조). 말씀의 씨 (눅 8:11)가 아니면 새 생명이 살아날 수가 없다. 본절에도 성도를 중생시킨 말씀은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혼은 다시 죽지 않는다.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의 씨로 중생한 영혼이 어떻게 죽겠는가! 알미니안주의나 카톨릭이나 루터파까지도 중생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생한 사람은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는다. 중생한 사람은 타락해도 지옥에는 가지 않는다. 만일 지옥에 간다고 하면 중생한 영혼이 다시 죽게 되고 그리스도의 구원은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만다.

성도가 실제 생활에서 죄를 범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있다(엡 4:23-24). 중생한 영은 새 사람으로서 죄를 짓지 않고, 항상 의를 행하려고 하며 하나님만 즐거워한다. 그러나 옛 사람(육신의 부패성, 욕심)은 죄를 좋아하고 마귀와 짝하여 죄의 길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속에서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싸운다(롬 7:14-25).

성도가 중생한 새 사람을 따라 살면 의를 행 하나 옛 사람을 따라 살면 죄를 범하게 된다. 이것은 중생한 영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며 성도가 옛 사람(육신의 부패성)을 따라 살므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성도가 범죄할 때에도 중생한 영은 언제나 반대한다. 중생한 영은 성도가 죄를 지으려고 할 때에도 반대하고, 죄를 범할 때에도 반대하며, 죄를 범한 후에도 양심에 가책을 주어 회개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한 산 영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 요한일서 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하였다. 또 중생한 영에는 성령이 내주해 계시는데 어떻게 죄를 짓겠는가! 그러므로 중생한 새 생명은 범죄하지 않는다.

 

.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이사야 40:6이하의 말씀을 인용한것이다. \"풀\"은 잠시 있다 없어지는 것이고, 또 연약한 것이다. 이와 같이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은 잠시 있다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시편 90:10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다.

또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잠깐 있다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花無十日紅(화무십일흥)이요, 勢無十年過(세무십년과) 란말이 있다. 돈을 많이 모아서 부자가 되고, 공부를 많이 하여 유명한 박사 학위를 받고, 또 큰 권세를 얻었다 해도 그 영광이 잠시 잠깐 후에 시들어 없어진다. 인간은 실로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가는 것이다.

 

.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주의 말씀은 생명이요, 영원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주의 말씀을 받아 믿고 순종하면 세세토록 그것이 남아 있다.

인간은 약하고 잠시 잠깐 후에 쓰러질 허무한 존재이지만 세상 사는 동안에 주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 나아가면 영이 자라나고 인격이 만들어져서 하늘 나라에 가서 그것이 세세토록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그네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우고, 그 말씀대로 부지런히 자기 영혼을 길러 나가도록 힘써야겠다.

육체 예수를 믿어도 육신 중심으로 살고, 감정주의와 의식주의로 나아간 것은 다 없어진다. 아무리 교회 의식을 화려하게 거행하고,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지고 나아가도 영이 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의식과 형식적으로 종교 생활을 하고 감정주의로 즐거워하고 자기의 명예, 영광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모두 육에 속한 것이다 이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고, 감정도 가고, 의식도 지나가나 말씀대로 만들어진 것만 영원히 남는다.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우리에게 전하여 믿게 한 복음은 육체를 따라 살지 말고 영으로 살며, 말씀대로 순종하여 영혼이 자라나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라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궁극적 권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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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베드로전서2장

제 2 장 장 성

 

(대지)

 

一. 구원 성취(1-3)

二. 성전 건축(4-8)

三. 신자의 신분(9-10)

四. 승육(勝肉) 생활(11-12)

五. 제도 순종(13-18)

六. 인고효주(忍苦效主)(19-25)

 

(본문강해)

 

一. 구원 성취 (1-3)

 

.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베드로는 본장 서두에서 성도의 영이 자라나라고 권면하고있다(2절 참조).

성도의 영이 자라나려면 소극적인 면에서는 죄악을 버려야 하고., 적극적인 면에서는 신령한 젖(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성도의 영이 자라나기 위해 버려야 할 죄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이것들은 대인 관계에서 행해지는 죄로써 성도의 영이 자라나는데 있어서 지대한 해독을 주기 때문이다.

죄를 크게 나누면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대신 범죄 (對神犯罪) : 하나님께 대한 범죄

② 대기 범죄 (對己犯罪) : 자기에 대한 범죄

③ 대인 범죄 (對人犯罪) : 남에 대한 범죄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로마서 제 1 장 강해 참조).

흔히 하나님께 대한 범죄나 자기에 대한 죄는 크게 생각하지만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 같은 죄는 그다지 큰 범죄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범죄로 인해서 자신의 영적 건축이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모든 범죄와 마찬가지로 이 범죄도 두려워함으로 떠나야 할 것이다.

악독 사람 속에 있는 부패한 성향에서 나온 것으로 남을 해하려는 독한 마음이다.

궤휼 간사한 속임수이다.

외식 마음 속에는 그렇지 않으나 겉은 거짓으로 발라 맞추며, 꾸미는 행위이다. 즉, 속과 겉이 다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외식 하는 자를 가리켜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다(마 23:27). 외식하는 자는 마치 겉에는 회를 칠하여 희고 깨끗해 보이나 속에는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한 무덤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외식하는 것은 다른 사람 앞에 자신을 잘 보이기 위함이요, 그들의 환심을 사서 자기의 유익을 보려는 기만적인 행동이다. 하나님은 진실하시므로 외식을 미워하시고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외식하는 자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다. 우리 주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화가 있을 것이 라고 책 망하셨다.

시기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며 미워하는 행위이다. 잠언 14:30에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잘될 때에 시기하지 말고 기뻐해 주고 그 사람을 본받아 자기도 잘되도록 노력해야한다.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망한다(갈 5:15).

비방하는 말 남의 허물이나 약점을 들추어 내고 거짓말로 남을 비난하며 악평하는 죄이다.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하나님 앞에 벌을 받아 문등병이 들렸다(민 12:1-10 참조). 특별히 교역자에 대해서 원망하고 비방하면 자신이 은혜 받지 못하고 믿음에 큰 손해를 보며 다른 성도도 은혜받지 못하게 되어 교회에 큰 해독을 주게 된다. 이상 모든 죄를 버려야 성도의 영혼이 자라날 수 있고 영적 성전을 잘 지어 나갈 수 있다.

 

. 2:2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순전하고 신령한 젖 젖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순전한 젖\"이란 다른 것이 영이지 않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고린도후서 2:17에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했다.

또 고린도후서 4:2에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했다. 이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다 인본주의 사상을 섞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하여 전하며 궤휼 가운데 행하나, 바울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만 전한다는 말이다.

젖에 다른 것을 섞어 놓으면 맛은 더 있고 보기에는 먹음직스러울지 몰라도 본래 젖이 지닌 본질은 변질되게 마련이다. 그와같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철학이나 과학이나 기타인간적인 요소가 섞이게 되면 말씀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말씀은 씨와 같아서 말씀 그대로 마음 밭에 뿌려야 싹이 나고 움이 돋고 자라나 열매를 맺히게 된다. 종자의 모양을 아름답게 하느라고 자르고, 깎고, 형체를 다르게 만들게 되면 그 씨는 생명을 잃게 된다. 하나님 말씀도 철학이나 과학이나 인간지식에 맞지 않는다고 잘라내고 늘이게 되면 그 말씀은 이미 생명력을 잃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는 말씀의 순수성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이다. 신신학자들은 성경 말씀을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지식에 맞지 않는 부분은 제하고 믿으며, 신비주의자들은 인간의 감정의 만족과 이적 기사를 추구하여 말씀보다 계시와 예언을 더 중시하고 그것을 더 따라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하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믿고 전하고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소생하며(시 19:7), 영이 자라나는 참 교회를 세워 나아가야할 것이다.

신령한 젖 신령한 도리 혹은 하나님 말씀의 신령한 뜻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성령으로라야 알 수 있다. 성도의 영은 이 신령한 젖(양식)을 먹어야만 살 수가 있다. 신령한 젖으로 먹이려면 말씀을 전하는 자가 먼저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성령으로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깨달은 말씀을 자기가 먼저 영의 양식으로 먹고 그 말씀을 성령을 힘입어 영으로 전해야 한다. 또 그 말씀을 받는 사람도 영으로 받아야 신령한 젖(양식)이 되어 영이 힘을 얻고 자라난다. 이와 같이 신령한 젖을 받아 먹고 영이 자라나는 사람은 항상 그 젖을 사모하며 갈급한 심령으로 찾게 된다.

현대 교회가 영적인 면은 고갈되어 가고 외부적인 사업주의와 의식주의로 나가고 영을 살려내는데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지고 육신 중심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 두려운 일이다.

사모하라 성도가 신령한 젖을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갓난 아이는 젖을 사모하여 하루에도 열 번 이상 먹는다. 이와 같이 영이 살아서 장성해 나가는 성도는 신령한 젖을 항상 사모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만일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성도의 심령은 병든 상태이 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로마서 8:10에 \"또 그리스도께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했다. 성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살아났으나 몸은 죄와 사망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성도의 영은 중생하여 살아 있으나 몸은 아직도 죄와 사망 아래 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이 성령과 합작하여 죄 가운데 있는 몸을 점점 건져내는 것이 몸의 구속을 이루는 것이요(롬 8:23). 중생한 영이 자라나는 것이며, 성도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간 성도는 천국에 가서 큰 자가 되고(마 5:19), 상급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구원을 잘 이루어 나아가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성도가 구원을 잘 이루지 못하고 천국에 가면 구원은 얻으나 불 가운데서 벌거벗은 몸으로 구원받은 것과 같다. 고린도전서 3:15에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했다.

 

. 2: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주의 사랑, 주의 선하심, 주의 은혜로우심을 맛 본 것을 가리킨다. 시편 34:8에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다.

그리하라는 위 1,2절에 언급한 대로 죄를 벗어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품속에 있는 것같이 따스한 주님의 사랑과 안식을 맛보았으면 죄를 벗어버리고 말씀을 사모하여 구원을 잘 이루라는 것이다. 처음 믿음과 처음 사랑에 감격하여 그 가운데 살면 세상으로부터 오는 괴로움과 고통을 잊고 낙원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성도들이 대개의 경우 이것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그때에는 전에 말씀을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신앙, 처음 사랑을 다시 찾아 그 사랑 안에서 살면서 죄를 점점 벗어 버리고 신령하고 순전한 젖을 사모하며 자라나야 한다.

 

二. 성전 건축(4-8)

 

. 2:4-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산 돌이 되셨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산 돌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핍박하고 내버렸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셔서 보배롭고 존귀한 산 돌이 되게 하시고 신령한 집을 세우는 기초돌로삼으셨다. 우리가 신령한 집(성전)으로 세워지려면 산 돌이신 예수님께 나아와야 한다.

산 돌이신 예수님에게 다니엘 2:34-35에 뜨인 돌이 신상을 쳐서 부수고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해졌다고 하였다. 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산 돌이라고 한 것은 몇가지 뜻이 있다. ① 돌이 강하고 견고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극히 강하셔서 모든 것을 다 이기시고 온 세상을 심판하신다. ② 산 돌이 자라난것처럼(단 2:34-35) 그리스도의 나라가 점점 커져서 마침내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 3 산 돌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므로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와 능력을 받아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에게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께 나아가려면 은밀한 골방을 찾아, 온전히 마음을 그에게로 기울이고, 신령한 세계를 찾아 그를 가까이 하고 주님과 교통하는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 특별히 새벽에 기도 많이 하고, 다른 때에도 힘써 기도 해야 한다. 공력을 많이 들여서 기도하여야만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 그 말씀대로 따라가는 성도는 예수님과 같이 사람에게는 핍박을 받고 버림을 받게 될 때가 많으나 그 길은 생명의 길이요 능력을 받는 길이요 모든 것을 승리하는 길이다.

고린도후서 10:4-5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라고했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와 능력을 힘입어 나아가는 성도는 모든 이론을 사로잡아 하나님께 복종시킬 수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강력을 다 파하고 승리할 수 있다.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영적 성전을 건축해 나아갈 것을 말한다. 성도 개개인이 성전이고 또 성도가 서로 연합하여 큰 성전을 이루어서 그 가운데 하나님을 모신다. 에베소서 2:21-22에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건물에 있어서 벽돌 한 장과 같고, 교회는 많은 벽돌을 연결하고 연합하여 큰 건물이 된 것과 같다. 또 이 성전 건축의 기초는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고전 3:10-11) 그의 산 능력이 역사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져 나아간다.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해서, ①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되며 ② 먼저 자신을 위해서 속죄 제사를 드려야 되고 ③ 백성을 위해서 속죄 제사를 드려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돌려야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속죄 제물되시는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되고 먼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정결함을 입어야 되고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이 받으심직한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누구나 다 제 사장이다(9절).

신령한 제사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신령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신령한 제사는 영이 사는 제사이다. 제사장은 자신이 먼저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서 신령한 제사를 드리고, 그 후에 다른 사람을 신령한 제사를 드리도록 인도하고 신령한 제물이 되도록 인도해야 한다.

 

. 2: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이것은 이사야 28:16의 말씀의 인용이다.

모퉁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건물을 지을 때 모퉁이 돌을 기초로 하여 거기에 의지하여 건축해 나간다. 영적 성전도 모퉁이 돌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그를 의뢰(依賴)하여 건축해 나아가는 것이다.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1:40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했다. 주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절대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할 뿐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 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이는 시편 118:22의 인용이다.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 건축자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못쓰겠다고 버린 그 그리스도가 믿는 자에게는 요긴한 모퉁이 돌이요 또 보배이다.

 

. 2: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이것은 이사야 8:14의 인용이다.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히려 부딪힘과 거침이 되어 넘어지고 깨어짐을 당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예수그리스도를 순종치 않고 대적하다가 멸망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이는 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되어지는 것이다 (불택자에 대한 예정에 대해서 로마서 강해서 9:20-23 해석 참조).

 

三. 신자의 신분(9 -10)

 

. 2:9-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전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요 그의 긍휼을 입지 못한 자이었으나 예수를 구주로 믿은 후에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

택하신 족속 믿음으로 구원얻어 하나님의 백성된 자를 가리킨다. 믿는 자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만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기 때문이다(행 13:48).

왕같은 제사장 성도는 왕권과 제사장권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다(계19:16).

거룩한 나라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요 성전이다. 또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 나아가고 있다.

그의 소유된 백성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었으므로(롬 1:6)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열에 들어가게 성도가 믿기 전에는 죄와 흑암 중에 거하였으나 믿은 후에는 영적 빛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으므로 성도는 빛에 속한 자요 낮에 속한자이다(살전 5:5).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기 위하여 성도를 택하시고 구원해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려야 하며 자신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의와 거룩과 진실하심이 세상에 나타나야 한다. 고린도전서 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다. 소요리 문답에도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四. 승육(勝肉) 생활(11-12)

 

.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나그네는 잠시 머물다가 본향으로 돌아가는 자요, 행인은 길로 지나가는 자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이 세상을 나그네와 같이 잠깐 지나가고 있다. 이와 같이 잠깐 지나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죄와 싸워 이김으로 구원을 잘 이루어서 본향인 친국에 돌아가야 한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육체의 정욕은 욕심, 옛 사람, 육체의 부패성을 가리킨다. 이 것이 늘 중생한 영을 거스리며 싸운다(이것이 성도의 내적 투쟁이다). 그러므로 원수가 자기 속에 있다. 이것이 일평생 원수이다. 자기를 망하게 할 자가 멀리 있지 않고 자기 속에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싸워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다. 바울은 자기의 대적을 바로 알고 싸운 것이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다스려서 이기는 자가 위대한 자이다. 성도가 이 일을 하지 못하면 믿는 일은 말뿐이고 실제로는 실패자가 된다. 다른 사람을 아무리 많이 인도하고 가르쳤다고 해도 자기 하나 이기지 못하면 결국 자기는 버림이 되고 만다. 육체의 정욕(부패성)이 항상 중생한 영을 거스려 싸운다. 본문의 영혼은 헬라어 (프쉬케)인데 성도의 영(   :프뉴마)에게 이용되는 혼이나 마음을 가리킨다.

 

.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이 방인들(불신자들)은 성도를 비방하나 성도는 행실을 선하게 가져 선으로 악을 이기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성도가 진실과 선으로 나아가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성도를 비방하고 혹은 시기할 때에 성도가 끝까지 선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권고하시는 날이 온다. 하나님이 악을 제어하고 성도를 구원해 줄때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다니엘이 모함하는 자들에게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선하게 나아갔으므로 하나님이 권고하셔서 다니엘을 구원해 주실때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五. 제도 순종(13-18)

 

. 2:13-14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 국가, 사회, 단체, 기관, 교회 등에는 다 제도가 있다. 그 모든 제도는 하나님이 세운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제도를 통해서 모든 것이 질서를 유지하며 발전되어 나아가게 했다. 그러나 진리를 대적하는 제도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므로 마귀적인 것이다.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모든 선한 제도는 하나님께서 세워 놓은 것이므로 그 제도를 순종하고 복종해야 된다. 그 제도를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다. 왕이나 방백들도 하나님이 세워서 그들을 통하여 악을 제어하고 선을 포장( 奬)하게 하여 사회의 안녕질서가 유지되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되지 않는 한 모든 제도를 순복해야 된다. 제도가 개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편할 때도 있고 부자유스러운 경우도 있으나 그 제도를 잘 순복해야 전체가 잘 되어 나가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 나간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도 집사, 장로, 목사, 공회(노회 총회)등 제도를 두어서 교회와 교리를 보호하며 발전시켜 나아가게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제도를 부인하는 무교회 주의자들은 잘못된 것이요 성경적이 아니다.

 

. 2: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성도가 모든 제도를 잘 순종하고 끝까지 진실과 선으로 나아가면 불신자들이 어리석고 무식하게 비방하고 하다가도 마침내 하나님의 권고가 나타나 그들의 입을 막고 성도가 옳다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다.

 

. 2: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로 율법과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었으므로 자유자이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권세가 우리 성도를 속박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공법에서 자유를 얻었고 생명의 자유와 영의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성도가 이 자유를 가지고 악을 행하는데 사용하거나 악을 행하며 그 악을 가리우는데 사용하면 안된다.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이것은 성도가 믿음으로 자유와 구원을 얻었으니 악을 행해도 괜찮다고 한다든지 또는 성도가 믿음으로 사죄와 영생을 얻었으므로 악을 행해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하여 악을 거침없이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종이 된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해야 한다. 성도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의 명령대로 그 일을 충성되이 해야 한다.

성도가 자유를 얻었다고 하여 자기 마음대로 무슨 일을 하면 그것은 방종이 된다. 방종은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의 자유를 구속시키는 것이다.

 

. 2:17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뭇사람을 공경하며 성도는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 모든 사람을 공경해야 하며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다.

형제여 사랑하며 믿는 형제를 형제 우애의 사랑으로 사랑해야한다. 형제 우애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피로 중생했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데서 나오는 진정한 사랑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여기 두려워하는 것은 경외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경외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면서도 그의 위엄과 거룩에 대한 존경의 태도이다.

왕을 공경하라 성도가 언제나 왕을 공경하고 기도해 주어야한다.

 

. 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아랫 사람이 지켜야 할 교훈이다. 사환은 아랫 사람이고 주인은 웃사람이다. 아랫 사람은 선하고 관용한 웃사람에게 뿐 아니라, 까다로운 사람에게도 잘 순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웃사람으로 세워 놓고 순종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아랫 사람이 까다로운 웃사람에게서 배우고 지도를 받을 때에, 도리어 잘 배우게 되고, 더욱 잘 만들어진다. 기술자도 까다로운 사람 밑에서 배운 사람이 좋은 기술자가 된다. 그러므로 아랫 사람은 까다로운 웃사람에게도 잘 순복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자신에게도 유익이 많다.

 

六. 인고효주(忍苦效主) (19-25)

 

. 2:19-20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고난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애매히 당하는 고난이다.

이것은 자신에게 잘못이 없으나 당하는 고난이다. 그 때 그 고난을 인하여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잔인줄 알고, 하나님을 생각하여 참으면 좋은 인격이 만들어진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고난을 주시는 것은 그 고난 가운데서 성도를 연단시켜 쓸 만한 그릇을 만들어 큰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돌째, 죄로 인하여 오는 고난이다.

죄로 인하여 받는 고난은 칭찬받을 바는 못되나 그로 인하여 회개할 기회가 생기고 낮아질 기회가 생기므로 그것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고난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고 나아가다가 멸망의 자리에 들어갈 터인데 고난을 당하므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돌이키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세째,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다(20절 下).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은 은혜요 상급이다. 선을 행한 자체가 벌써 은혜이며 영적 소득이 되었다. 또 그 고난 가운데서 참고 선을 행하면 영이 자라나고 선이 커지고 하늘의 상급이 커진다. 이상 세 가지 고난은 다 유익을 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러나 제일 좋은 것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다.

 

.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고난받으면서 그리스도를 배우기 위해서 성도가 부르심을 입었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5:7-8에 그리스도께서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온전케 되었다고 하셨다. 우리 주님께서 몸소 고난으로 온전케 되는 본을 성도에게 보여주고 그 고난의 자취를 따라오라고 하신 것이다.

 

. 2: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예수님은 죄와 허물이 없으시나, 최고의 고난을 받으셨다. 그 고난은 하나님을 순종함과 의를 세우기 위하심이었다.

그 입에 간사도 없으시며 궤사는 헬라어로 (돌로스) 인데 속임 또는 거짓됨을 뜻한다. 예수님에게 궤사가 없다는 것은 예수님의 완전성을 보여준다. 야고보서 3 : 2에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자\"라고 했다.

 

. 2:23-24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은 죄가 없으나 갖은 곤욕과 멸시를 당하시고 십자가의 최고 고난을 받으셨다. 그때에 예수님은 ①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②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③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고 ④ 친히 나무(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자기 할 일만 다 해 나가신 것이다. 성도들도 욕을 받을 때에 대신 욕하지 말고 고난을 받을 때 억울해 하거나 보복하려 하지 말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고 십자가를 지고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을 본받는 길이다.

위협은 큰 힘이나 세력으로 으르고 협박하여 두려움을 주는것이다. 마태복음 26 : 64에 예수님이 장차 구름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신 말씀은 위협이 아니고 복음을 전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욕하고 핍박한다 하여 자기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그들과 같이 혈과 육으로 대항하고 싸우는 것은 마귀에게 진 것이다. 모든 것을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 할 일만 바로 해 나아가면 자기도 구원받고, 다른 사람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된다. 그러나 성도가 자기의 할 일을 하지 못하면 자기도 실패하고 남도 실패하게 한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고 자기의 할 본분을 다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인가? ① 하나님의 명령을 죽기까지 복종하셨고 ②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③ 의를 다 이루셨다.

우리도 이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명령을 죽기까지 복종하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죄에서 떠나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마태복음 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어 나가라고 했다. 일을 크게 하고 많이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큰 교회를 세우는 것보다 진리를 세워 나아가며 의를 이루어 나아가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우리 성도들에게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는 능력이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죄를 범하려고 하다가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그 죄를 지을 생각이 없어지고 의를 행할 용기가 난다. 또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은 성도는 생명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이 있으므로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할 수 있다. 로마서 8:2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이 채찍에 맞았다. 그로 인하여 우리가 죄의 형벌에서 해방을 받았고, 죄의 상처가 나음을 얻었다(사 53:4-6참조).

 

.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우리가 믿기 전에는 생명길을 잃어 버리고 방황하던 자이었으나 이제는 믿고 생명을 얻었으며 영혼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과 천국가는 길이 열렸다. 뿐만 아니라 그 목자이신 주님을 본받아 죄에 대하여 죽기까지 싸우고 십자가를 지고 의와 구원 운동을 이루어 나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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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전서3장

제 3 장  복

 

(대지)

 

一. 아내에게 주신 교훈(1-6)

二. 남편에게 주신 교훈(7)

三. 일반에게 주신 교훈(8-12)

四. 의를 위하여 고난받는데 대한 교훈(13-17)

五. 고난 승리 (18-22)

 

(본문강해)

 

一. 아내에게 주신 교훈(1 -6)

 

. 3: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남편에게 순복하라 아내 된 자들에게 주신 제일 첫째 교훈은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할 때에 좋은 처지, 좋은 환경에서 뿐 아니라 어려운 처지와 나쁜 환경에서도 잘 순복해야 하고, 남편이 잘해 줄 때나 잘해 주지 못할 때에도 변함없이 순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남편이 혹 도(道)를 순종치 않는 자(믿지 않는 자)라도 그 아내의 아름다운 행위로 말미암아 감화를 받아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된다

이 말씀은 또한 아내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1:3에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머리\"는 웃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도리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교훈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자기 머리인 웃사람을 잘 순복하여야 한다.

말로 말미암지 않고 아내가 남편에게 말로 전도하지 않아도 남편을 잘 순종하고 아름다운 행위를 보여 주면 남편이 감동을 받아 아내가 믿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된다.

 

. 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아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가질 때에 그것을 본 남편이 감화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아내가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가지면 남편에게 가장 좋은 전도가되고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큰 복을 받는다.

 

. 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아내에게 주신 둘째 교훈은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것이다. 아내는 겉 사람보다 속사람을 단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속사람은 마음에 숨은 사람(인격)을 가리킨다 아내가 속사람이 바로 되지 못하면 아무리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화장을 잘하여 외모를 아름답게 꾸몄다 해도 그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와 같다(잠 11:22). 그러한 아내가 있는 가정은 평생 다툼과 불화가 끊이지 않고 신앙을 바로 지키지 못한다. 마음에 숨은 사람을 단장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온유해야 한다.

온유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성품이다(마 11:29). 아내는 특히 말과 태도와 마음이 온유해야 한다. 잠언 15:1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기를 격동하느니라\"고했다. 여자는 언제나 유순한 말과 유순한 대답을 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행동해야 한다.

유순한 말은 온유한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여자는 예수님의 온유를 배워 나가야 한다.

둘째, 안정된 심령을 가져야 한다.

안정된 심령은 신령한 생활에서 나온다. 아내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 하나님 안에 살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해야 안정된 심령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에 힘쓰고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한다. 안정한 심령은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므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고, 남편과 가정에 행복을 주는 것이다.

 

.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이스라엘 역사상에 나타난 훌륭한 부녀들은 겉사람을 단장한 것이 아니고, 남편에게 순복하며, 안정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다.

 

.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아내에게 준 세번째 교훈은 남편을 경외하는 것이다. 사라가 남편인 아브라함을 한 두 번이 아니라 일생 동안을 주로 모시고 복종하였다(창 18:12참조). 이것이 신앙으로 사는 아내의 표본이다.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일생동안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서 신앙의 길을 걸어갔다.

그때에 두려워할 일과 놀랄 만한 일이 많이 있었으나 사라는 그 모든 일에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고 남편을 복종하며 그 신앙의 길을 잘 따라갔다. 그것이 곧 사라가 행한 선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아내들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면 사라의 딸이 된다.

신앙으로 걸어가는 인도자를 두려움으로 잘 따라가고, 순종하며 봉사하는 성도는 아브라함의 자녀가 된다(갈 3:7).

 

二. 남편에게 주신 교훈(7)

 

. 3: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에게 주신 첫째 교훈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이다(엡 5:25).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남편에게 주신 둘째 교훈으로써 이 지식은 아내가 연약한 그릇임을 아는 지식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신체 구조나 마음, 생각하는 것이 연약하다. 남편들은 이것을 바로 알고 아내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며 거기에 맞추어 동거하라는 것이다. 연약한 그릇은 함부로 취급하면 흠이 생기기 쉽고 깨지기 쉽다. 그러므로 남편은 연약한 아내에게 지나친 언사나 행동을 삼가하여 연약한 아내에게 손해나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일 남편이 자기의 표준대로 함부로 말을 하거나 행동하게 되면 아내의 마음이 상처를 입고 오해가 생겨 가정에 분란이 일어나기 쉽다. 그러므로 아내를 연약한 그릇과 같이 여겨 아껴 주고 사랑하며 원만한 가정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 아내는 남자의 종이나 이용물이 아니고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동반자이다. 아내도 남편과 같이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이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남자나 여자가 다 평등한 위치에 있는 것을 알고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귀히 여기라 남편에게 주신 세째 교훈은 아내를 귀히 여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마땅히 아내를 사랑하고 귀히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① 아내는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여자이기 때문이요.

② 하나님이 생명의 유업을 남자와 함께 받도록 하였기 때문이요,

③ 남편의 보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편은 언제나 아내를 귀히 여겨야 된다. 또한 이것은 웃사람이 아랫 사람을 귀히 여기라는 교훈도 된다.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내가 순종하지 않거나 안정된 심령을 잃어버릴때, 흑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이기주의와 자기 고집대로만 나아가면서 아내를 학대하면 기도가 막힌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영적 흑암에 빠져 믿는 일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앞에서 언급한 남편과 아내에게 대한 교훈을 잘 지켜 기도가 막히지 않고 영적 생활의 진보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三. 일반에게 주신 교훈 (8-12)

 

. 3: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2:13이하의 교훈의 결미(結尾)이다.

마음을 같이 하여 마음을 같이 하려면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한다. 각자의 마음이 다 다르기 때문에 자기 주장대로만 하면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없다. 마음이 하나가 되는 길은 피차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은 빌립보서 2:5이하에 나타나 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하나님과 동등된 존귀와 보좌와 영광과 권세를 다 내어놓고 낮아져서 종살이한 마음이다. 부부도 각자가 자기의 자존심과 영광과 권세를 다 내어놓고 서로 종살이하는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하나 되고 화목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면 마음이 하나 될 수 있다.

체휼이란 동정심을 가지는 것이다. 성도가 서로 동정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서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불쌍히 여기며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큰 위로와 도움을 주게 된다. 성도가 남을 불쌍히 여기며 악한 자라도 미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악한 자는 현재 마귀의 종이 되어 있고, 악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니 얼마나 불쌍한가! 그러므로 악한 자가 우리를 대적할지라도 그를 미워하거나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

겸손하며 성도는 예수님의 겸손을 항상 배워 나가야 한다. 겸손은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자기를 남보다 낫게 여기며 남을 무시하는 것은 교만한 증거이다. 누구나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기 전에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볼 줄 알아야 겸손해진다. 성도는 항상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바로보고 그것을 뽑으려고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바울이 \"나는 죄인 가운데 괴수\"라고 하였다(딤전 1:15). 또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 우리도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 나가야 믿음을 지킬 수 있다.

 

.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본절은 대적하는 원수에게 성도가 어떻게 행하여야 될 것인지에 대한 교훈이다. 성도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어야 한다(마 5:38-45).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성도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것은 악한 자들에게까지 하나님의 빛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악한 자가 성도를 욕하고 대적할 때에 성도는 그를 축복해 주어야 자신의 영이 살고, 하나님의 빛이 비취어 나간다. 이것이 성도가 성결을 이루어 나가는 법이요, 참으로 승리하는 길이다. 이것은 또 복음이 전파되어 나가는 길이요 복을 유업으로 받는 길이다.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가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해 주면 유업으로 받을 복이 커진다는 것이다. 성도가 믿음을 써서 악한 자를 위해 기도해 주며, 선을 베풀면 자신의 믿음이 커지고, 영혼이 자라난다 그러므로 그 성도가 하늘에서 받을 유업이 그만큼 커진다. 이와 같이 선으로 악을 이겨 하늘 나라의 기업이 커지는 것은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오는 것과 같다(삿 14:14).

사자와 같은 악한 자가 우리 성도를 삼키려고 할 때 그들을 선으로 이기면 거기서 우리의 영혼이 자라나며 영적 만족을 얻게된다. 이것이 영의 양식을 먹는 것이요, 강한 자(악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 나아가야 한다.

 

. 3:10-11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본절에서 12절까지는 시된 34:12-16의 70인역의 인용이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 시편 34:12에는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생명은 육신의 생명과 장수(실족하지 않는 것)하는 것과 영적 생명 등을 가리킨다.

좋은 날은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요 권고의 날이다. 이것들을 받기를 원하는 자는,

첫째, 혀를 금하며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말에 허물이 없어야 된다. 야고보서 3:8에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했다. 마태복음 12:36-37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다. 말로 짓는 죄는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다(막 7:21-23 마 12:34-35). 악한 말과 궤사한 말과 진실치 않은 말을 하는 자는 사람 앞에서도 불신임을 당하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불필요한 말이나 덕이 되지 않는 말은 하지 않아야 된다. 성도가 남을 비방하고 욕하고 손해 주는 말을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권고가 떠나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중단된다. 더우기 바른 진리를 전파하는 주의 종을 비방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미리암은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등병이 들렸다. 그러므로 남에게 덕을 세우고 유익을 주는 말을 하도록 해야겠다.

둘째, 악에서 떠나야 된다.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므로 반드시 망한다.

세째, 선을 행하고 화평해야 한다. 이러한 자는 생명이 장수하고 좋은 날을 보게 되며 영생을 얻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절에 설명한다.

 

.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주 하나님은 의를 행하는 자를 돌보아 주시고 권고해 주신다.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야고보서 5:16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했다.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걸어가는 자가 의인이다. 이런 자는 생명이 살고 권고받는 좋은 날을 보게 된다.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악행 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항상 살펴보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한다.

 

四. 의를 위하여 고난받는데 대한 교훈(13-17)

 

. 3: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보편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을 해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 3: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받는 성도가 있다. 그 성도는 복 있는 자이다. 마태복음 5:10-12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했다. 의를 위하고 예수를 위하여 고난받는 자는 하늘에서 상급이 커지므로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는 뜻이다.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성도들을 세상 사람들이나 국가나 권세자들이 위협, 공갈로 두렵게 하며 신앙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게 하는 때가 있다. 그때에 성도가 두려워하거나 소동하지 말고(사 8:12참조) 고요히 주님만 의뢰하고 담대히 말씀을 지켜 나아가야 한다(사 30:15 참조).

 

.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성도가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의뢰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께서 평안한 마음을 주시고, 또 힘을 주셔서 능히 이기게 해주신다.

거룩하게 하고 핍박과 고난이 올 때에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죄를 떠나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이유\"는 말씀 즉 (로고스)를 가리킨다.

성도는 소망에 관한 말씀을 가지고 살면서 누구에게나 확실히 대답해줄 수 있어야 한다. 주를 위하여 고난받을 때에도 그 고난받는 원인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온유하고 두려워함으로 말해 주어야 한다.

두려움으로 여기 두려움은 성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가리킨다 핍박하는 자 앞에서 대답할 때 적대 감정을 가지고 반박적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재판석 앞에서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온유하게 대답하여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하나님을 두려워 할 수가 있다.

 

.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성도는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한다. \"선한 양심\"은 \"신앙 양심\"인데 받은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작용되는 양심이다. 그러므로 선한 양심은 아무리 환난과 핍박이 와도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나아가게 한다. 선한 양심대로 나가는 성도는 그 언행(言行)이 신실하고 참되어 진리의 빛을 비취어 나아가며 마침내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다. 그때에는 비방하는 자들이 성도들 앞에서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 시험이 왔을 때에 왕 앞에나 방백들 앞에서 선한 양심대로 나가다가 풀무불에 던짐을 받았으나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구원해 주셨다. 그때에 비방하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했다.

 

.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성도가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은 그 고난이 우연히 온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으로 온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 성도에게 신앙의 유익과 더 큰 은혜와 상급을 주시려고 그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이다. 이 고난이야말로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보다 가치가 있고 유익이 크다. 악을 행할 때에 받는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이다.

 

五. 고난 승리 (18-22)

 

. 3:18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불의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믿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셨다.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님이 육체로는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나 그리스도께서 행한 완전한 의(일생 동안 성경을 다 행한 의와 십자가에 죽기까지 완전 복종한 의)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영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몸이 부활한 것을 가리킨다.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은 로마서 1:4에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여\"라는 내용과 같다. 완전히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영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몸이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의를 위하여 고난받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지키다가 육체가 고난을 받고 죽으면 그것이 곧 영이 사는 길이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는 것이다(고후 5:4). 고린도후서 4:11에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고, 디모데후서 2:11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라고 했다.

예수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예수를 의뢰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 운동을 위해서 죽는 것을 가리킨다. 구원 운동을 위해서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바치고 내 생명까지 희생한다면 그것이 영적 생명이 사는 길이요(눅 9:24), 고난이 올 때 믿음으로 참으면 왕권을 얻게 된다(딤후 2:12).

 

. 3: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본절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신임할 만한 해석은, ① \"영으로\"를 예수님의 영으로 보지 않고 성령으로 해석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속을 완성하고 부활로 대승리한 사실을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성령으로 전하여 알게 했다(믿게 한 것이 아님)는 것, ②그리스도의 영이 노아에게 가서 노아를 통하여 그 시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다가 지옥에 갔다. 그러므로 지옥에 있는 그 영들도 그들이 세상에 살았을 때에 복음 전파를 받았다는 것이다.

칼빈은 \"옥\"을 구약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의 완성을 대망하는 곳을 가리킨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경과 부합되지 않는 해석이다. 그 이유는 본절의 옥에 있는 영들은 아랫 구절에 있는 대로 성도들의 영이 아니고 불순종한 악도(惡徒)들의 영이기 때문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별세하시어 영혼이 지옥 가서 전도했다고 하며, 연옥설의 근거를 삼고 있으나 이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이 한번 지옥에 가면 다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루터파에서는 본절에서 \"예수님이 지옥 갔던 일이 있다\"는 교리를 주장한다. 이 해석도 잘못된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우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한 것을 보아 예수님의 영이 육신을 떠난 즉시 낙원에 가셨기 때문이다.

 

.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전절에 말한 옥에 있는 영들에 대한 설명이다. 그들은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순종치 않은 자들이라고 했다. 이것은 노아 시대 사람만 가리킨 것이 아니고,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 전체를 다 말한 것이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믿는 자의 조상이요, 대표가 된 것처럼(롬 4 : 16) 노아 시대 사람들은 불순종한 자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식구 여덟명 이외에는 전세계가 다 불순종하였으니 노아 시대 사람들은 불순종의 대표가 된것이 확실하다.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노아 시대에 순종하여 방주에 들어가 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는 겨우 여덟명 뿐이었다. 구원얻은 무리는 언제나 소수이다(눅 12:32).

 

.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은 노아 홍수의 물이다. 그 물은 우리 가 받는 세례의 물과 같다.

노아 흥수의 물은 죄인들에게는 심판의 역활을 하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구원하는 역할을 하여 죄인들은 심관을 받았고, 노아는 구원을 받았다. 물 세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에게 죄 사함받아 구원을 얻은 표로써 인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 세례의 뜻은 죄 씻음을 받은 표이다. 침례교에서는 물세례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에 담그는 것은 옛 사람이 죽어 물에 장사 지낸 것을 뜻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는 것은 새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다. 정결케 하는 예식은 구약 시대부터 내려 온 것이다. 소의 피를 뿌려서 정결케 했고(레 1:5참조),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케 했고(겔 36:25), 문등병에 걸렸다 나은 사람은 새의 피를 뿌려서 정결케 된 예식을 행했다. 이와 같이 세례는 물을 뿌려서 정결케 하는 표를 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피뿌림을 받아 이미 정결케 되었는데, 그 표로 물 세례를 주는 것이다. 또 세례는 구약 시대의 할례와 같다.

할례의 뜻은, ①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다는 예식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브라함의 언약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② 정욕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③ 하나님의 백성이 된 표이다.

이와같이 세례도 ①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고, ② 죄 씻음을 받아, ③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뜻한다. 구약 시대에 유아에게 할례를 주었으므로 신약 시대에도 유아에게 세례를 주어야한다. 신자의 자녀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 자이므로, 유아 세례를 주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표가 된다.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가는 것이라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자는 영혼이 중생하였는데 중생한 영에게 사용되는 양심은 선한 양심이요, 그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계속 찾아간다. 그러나, 육신은 아직까지 죄 가운데 있다. 로마서 8:10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 육체의 생각을 따라 가면 죄 가운데 빠지고, 영의 인도를 받아 선한 양심을 따라 살면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다. 성도가 선한 양심을 따라서 주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의를 행하면서 나아가면 그 영이 살아 생명의 역사가 있고, 육체도 죄 가운데서 점점 벗어져 나와 몸의 구속을 이루어 나아간다. 그러므로 성도가 선한 양심이 인도 하는대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옳지 않은 것은 떠나야 된다. 이때에 새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영혼은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

 

. 3: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 죽으신 예수님은 다시 살리심을 받아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예수님께 순복하게 되었다. 우리도 주님의 인도를 받아 말씀을 따라 가며 고난과 희생을 당하면 영으로 늘 살게 되어 하나님 우편에 앉게 되고, 권세와 능력이 우리에게 복종할 날이 온다. 이것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성도들을 하나님이 높여 주시고 승리케 해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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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전서4장

제 4 장  고  난

 

(대 지)

 

一.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갑옷을 삼으라(1-6)

二. 말세 성도의 생활(7-11)

三. 고난에 참여하라(I2-16)

四. 심판과 고난 (17-19)

 

(본문강해)

 

一.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갑옷을 삼으라(1-6)

 

.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성도들도 고난받을 각오를 하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성도가 그리스도와 같이 고난받을 각오로 무장하라는 것이다. 갑옷은 무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들도 그리스도와 같이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승리하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의를 위해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므로 우리도 육체의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한다. 고난이 없으면 그리스도를 따라 갈 수도 없고, 자기를 만들어 나아갈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이 진리를 거스리기 때문이다.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여 그쳤음이니 창세기 4:7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린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죄를 멀리 물리치려면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여야 되고, 선을 행하려면 고난이 오게 되는데 그 고난을 달게 받으면서 선을 행할 때 죄를 그치게 된다는 것이다.

한문에도 \"一日不念善(일일불염선)이면 諸惡(제악)이 皆自起(개자기)니라\"고 하였다. 그 뜻은 하루라도 선을 생각치 않으면 모든 죄가 속에서 스스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을 생각하는 자리에만 머물지 말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자리까지 나가 죄를 멀리하고 그쳐야겠다.

육체의 고난이란 여기서는 선을 행하는 일,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서 받는 고난을 가리킨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를 적극적으로 이루어 나아가면서 고난당할 때에는 죄가 들어오지못한다(죄가 그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적극적으로 이루어 나아가지 않고 안일한 생활을 하며 방심부주의 하면 죄가 들어온다. 성도가 주를 위하여 경건하게 살며 고난당할 때에 죄가 점점 물러가고, 그리스도의 의가 입혀지며, 그 영혼이 더욱더 자라나게 된다.

 

. 4: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들의 여생이 많은 것 같이 생각되어도 실은 잠깐뿐이다. 그 잠깐되는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며 고난을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 죄를 떠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인가?

첫째, 성경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둘째,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 면 욕심과 우상을 버려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이 우상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그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으며,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이삭을 바칠 때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셨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돈이 우상이 되어 예수님을 팔고 멸망의 자리에 들어갔다.

세째, 의를 위해서 고난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성도가 의의 길로 나아가면 고난이 오는 수가 많이 있다. 디모데후서 3 : 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고난이 올 때에도 단 마음으로 그 고난을 받으면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한다.

성도가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뜻은 각자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강포하지 말아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욕심을 버리고 범사에 족한 줄로 알아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구원 운동에 사용해야 한다(눅 3:10-14). 그러므로 자기 몸을 하나님께 바쳐 전도해야 할 사람은 전도하고, 교회에 봉사해야 할 사람은 봉사해야 하며, 심방해야 할 사람은 심방해야한다. 이렇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평안히 예수 믿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게으르고 악한 생각이다. 또한 교역자들이 교회 일을 맡아서 평안히 살려고 하는 것도 썩어진 생각이다.

그러므로, 먼저 마음부터 고치고 다음에 생활면에서 바로 하여 자족을 배우고, 예수를 따라가고, 진리를 세워 나가기 위해 육체적으로 고난을 받으면 영이 살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져 나아가며 하늘 나라에서 큰 상급을 받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를 위해 고난받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며 금보다 귀한 것이다.

 

. 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우리가 지나간 때(예수를 믿기 전)에는 음란, 정욕, 술취함과 방탕, 연락,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면서 살았다.

음란, 정욕은 성적 범죄이고, 술취함, 방탕, 연락은 하나님으로 즐거워하지 않고 쾌락주의에 빠진 죄이고, 무법한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떠난 죄악이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므로 전부 무법한 것이다.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것은 과거에 죄악 생활한 것이 만족하다는 말이 아니다. 과거의 죄악된 생활은 그것으로 끝마치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 4:4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성도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안 뒤에는 이방인과 같이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을 이방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믿는 성도를 말씀을 떠나 바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비방하기도 한다.

 

. 4: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믿고, 바로 살려는 사람을 비방하는 자들은 그 사실을 하나님 앞에 직고할 날이 오고 그들의 행위를 따라 하나님이 심판을 하실 것이다.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가서 자기의 행한 대로 직고하게 되고 그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 4: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 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 \"죽은 자\"는 믿음이 죽은 자를 가리킨다. 믿음이 죽은 자들에게도 이미 복음이 전파되었다. 야고보서 2:26에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다. 믿음이 죽은 자란 마음으로는 예수를 구주로 믿으나 행함이 없는 자이다. 이런 자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행함이 없는데 대해 육체가 심판을 받으나 예수를 구주로 믿었으므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 구절을 가지고 연옥설을 주장한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주장이다. 사람이 죽으면 구원받은 영혼은 천당에 가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지옥에 가게 된다. 그 후에는 변경할 수도 없고, 그곳에서 나올 수도 없다. 지옥에 간 사람을 위해 세상에 있는 사람이 기도해 주고 대신 연보하고 봉사했다고 하여 천당으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며 진리에서 떠난 것이다.

1-2절에는 산 믿음을 가진 성도는 의를 위해 고난받고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 대해서 증거했고, 본 절은 산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죽은 믿음을 가진 자도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다. 죽은 믿음은 육신의 평안만 구하고 말씀을 순종치 않고 고난 없이 믿으려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죽은 믿음을 가진 자는 기도를 잘하지 않고, 연보도 되는 대로 하며 하나님 섬기는 일에 정성이 없다.

고린도전서 5:5에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이런 자들\"도 예수를 믿음으로 그 영혼은 구원을 받으나 산 믿음이 없으므로 육체는 망한다. 여기서 육체가 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가 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징계는 먼저 자기의 심령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그 다음에는 물질, 사업, 자녀, 자기 몸 등 여러 면으로 온다.

 

二. 말세 성도의 생활(7-11)

 

.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만물의 마지막은 세상 끝을 가리킨다. 만물의 종말이 반드시 있고 그 징조를 성경 여러 곳에 예언해 놓았다. 이스라엘의 회복(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나온 것(마 24:32)과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 된 것등 여러 징조가 이루어졌다. 지금은 세상 끝이 다 된 것이 분명하다.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신신학과 해방신학과 그룻된 신비주의자)가 많이 나와서 교회들을 타락시킨다.

어느 시대에나 교회가 타락하고, 성도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말씀을 떠나면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운 때이다. 노아 시대에도 죄악이 관영하고 음란, 방탕, 향락, 쾌락에 빠졌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는데 지금 이 세대가 노아 시대보다 나은 것이 없다. 마귀가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 가려고 사방에서 미혹하는 자들을 보내어 정신을 혼미케 만든다. 요한계시록 17장에는 세상이 음녀가 되어서 미혹하는 포도주를 먹인다고 했다. 말세에는 세상 문명과 인본주의 문화가 점점 화려하게 발전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에 빠져서 취하게 된다. 예수께서 내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하셨다. 이것은 말세에 믿음 지키기가 무척 어려울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말세에 성도들이 정신을 차리고 인본주의와 세상 향락에 빠지지 말고 영적 신앙에 서서 깨어 믿음을 잘 지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믿는 일을 하지 못한다.

근신은 방탕과 반대되는 것으로 삼가 조심하여 자기를 이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신하는 사람은 방탕과 방종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며 자기를 이기고 자기를 하나님과 그 말씀에 복종시켜야 한다.

기도하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는 것은 준비 과정이고, 기도하라는 것이 중심되는 교훈이다. 우리가 지금은 말세인 줄 알고 힘써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마귀를 이길 수 없다. 마가복음 9:29에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와 마귀 시험을 이길 수 없고, 자기 자신도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은 기도이다.

 

.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말세 성도가 둘째로 해야 할 일은 사랑이다. 마태복음 24:12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사랑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말세 성도는 무엇보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성도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요일 4:9-10), 그 사랑 속에 살며 그 사랑 안에서 형제들을내 몸 같이 사랑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은 인간의 사교적인 사랑이나 이성간의 사랑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아 한 몸이 된 성도를 진정으로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거룩한 사랑이다.

성도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 힘쓰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그 사랑 가운데 거할 수 있고, 또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성도가 사랑할수록 사랑이 더욱 풍성해진다. 이것은 샘물을 퍼내면 퍼질수록 새로운 물이 나오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사랑을 자꾸 나누어 주면 하나님께로부터 더 많은 사랑이 우리에게 오고, 사랑의 그릇이 점점 더 커진다.

 

. 4: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말세 성도가 세번째 할 일은 서로 대접하는 것이다. 누구나 대접을 받고자 하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서로 대접을 하면 사랑이 넘치고 원망이 없다. 마태복음 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을 본받아서 성도가 서로 대접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말세에 성도가 네째로 해야 할 일은 봉사하는 것이다. 복음 전하는 일에 봉사하고, 교회에 봉사하고, 연약한 성도를 돌보아주는 일에 잘 봉사해야 한다. 많이 섬기고, 많이 봉사한 자가 천국에서 큰 자이다(마 20:26). 목사, 장로, 집사 등 교회의 직분자들은 봉사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직분을 가진 자는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봉사하기를 힘써야 한다. 모든 성도가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의 위치에서 봉사해야 한다.

각양 은혜를 맡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은사대로 봉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은사를 주셨다.

그러므로, 각자가 자기에게 주신 은사대로 봉사해야 전체 교회가 원만하게 발전해 나아간다. 물질을 받은 사람은 그 물질로 봉사하고, 지혜를 받은 사람은 지혜로, 기술을 받은 사람은 기술로, 건강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건강으로 봉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은사대로 그 은사를 최대한 이용해서 봉사해야 한다. 선한 청지기 같이 성도는 하나님의 은사를 맡은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맡아 잘 관리하는 종이다. 만일 청지기가 주인의 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자기를 위해 사용하면 악한 청지기이다. 청지기는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므로 주인을 위하여, 주인의 뜻대로 사용하고 처리해야 한다.

 

.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말하려면 집회 등에서 교인들에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르치는 자는 자기 지식이나 세상의 것을 가르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하여 그 말씀에 합한 말을 겸손히 전하여야한다.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교회와 복음 운동과 성도들을 위하여 봉사할 때에 자기 힘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하나님의 역사에 의하여 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봉사할 때에 생명이 있고 하나님께 상달된다.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각양 은사를 맡은 자들이 봉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할 때에 자기 명예나 대접을 받기 위해 한다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그러므로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봉사하고 가르치기도 해야 한다. 봉사한 다음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도리어 멸시와 비방하더라도 하나님이 영광받으신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봉사한 다음에 그 사람이 영광을 받으면 하나님께는 영광이 돌아가지 못하며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봉사를 한 다음에 그것을 자랑하고 자기를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악한 일이다.

 

三. 고난에 참여하라(12-16)

 

.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불 시험 하나님이 사랑하는 성도에게 때로는 불 같은 맹렬한 시험을 주신다. 그 시험이 올 때에 왜 이와 같은 불 시험이 오는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 시험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디모데후서 3:12에, \"경건하게 살고자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고, 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를 연단시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영광에 참여시키고(13절) 상급을 주시려고 그 시험을 허락하였기 때문이다.

 

.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본절에서 19절까지는 성도가 불 같은 시험을 당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 받을 때에 기뻐해야 될 몇 가지 이유를 언급한다.

①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즐거워하게 될 것이므로 기뻐할 것이며, ②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영이 계셔서 영광스럽게 하여 주겠기 때문이며(14절), ③ 그것으로 인하여 불 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겠기 때문이다(16-19). 성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만큼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서 3:10-11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 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권능에도 참여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영광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가신 발자취를 따라가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기까지 하나님 말씀을 복종하므로 당하는 고난이다.

따라서 이 고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크게 기뻐해야 할 것이다.

 

.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성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하여 욕을 받으면 복이 있다. 예수를 위해서 고난받는 자체가 은혜이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을 각오를 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영 (성령)이 감동을 주신 것이요 그 고난을 받는 때는 하나님의 영광의 영이 임하여 장차 받을 영광을 위하여 미리 자격을 만드는 것이다. 성도가 믿음으로 고난을 받은 것만큼 하나님께서 영광을 주신다. 그러므로 고난은 성도에게 큰 유익을 주는 것이다.

 

. 4: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성도가 살인이나 도적질 같은 악행을 하거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일로 인하여 고난받는 일은 합당치 않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일이요,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일이다. 사람이 지나가다가 자기에게 상관 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다고 했다(잠 26:17참조).

 

.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와 그 말씀을 위해 고난받는 것은 하나님의 빛과 진리의 빛이 비치는 일이므로 부끄러워 말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야 된다. 그로 인하여 자기도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될 것이다(벧전 1:7).

 

四. 심판과 고난(17-19)

 

. 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하나님 집은 교회를 가리킨다(딤전 3:15). 교회에서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 이 심판은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 책망할 자는 책망하고, 징계할 자는 징계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1:30에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라고 하였다. 고린도 교인 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병든 사람도 있고, 약해진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 이와 같이 성도를 먼저 심판하는 이유는 성도가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고전 11:32). 성도가 죄를 범하면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이 심판하여 징계하신다. 불신자는 죄를 범해도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는 가만히 놓아 두시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불신자는 사후에 지옥에서 형벌을 받겠기 때문이다.

성도가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를 회개시키고 바로 만들어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기 위해 세상에서 먼저 심판하시는 것이다. 에스겔 9:6에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고 했다. 늙은 자는 장로와 교역자를 가리킨다.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먼저 심판하는 것을 보면 복음을 순종치 않는 불신자야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된다.

 

. 4: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이것은 믿음으로 의인 된 성도가 겨우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이다. 의인들(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으며, 여간한 힘을 다 기울여서 겨우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 요한계시록 3:8에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 하였도다\"라고 했다. 말씀을 지킬 때에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 쓰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는다.

성도가 믿음으로 영생은 거저 얻었으나 죄를 이기고 말씀을 지키며 자기를 만들어 나아가고, 영이 자라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은 겨우겨우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모든 것을 희생하며 생명까지 내놓고 말씀을 지켜야 조금씩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하면 경건치 않은 자와 죄인이 하나님앞에 어떻게 설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다가 고난받는 자들, 즉 성경 말씀을 순종하다가 고난받는 자들을 말한다. 이러한 사람은 그 고난을 무서워 말고, 또 고난으로 인하여 좌절하지 말고 자기 영혼을 미쁘신 하나님께 맡겨놓고 계속하여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육신의 생명을 얻고자 하면 영적 생명을 잃어 버린다(눅 9 : 24). 그러므로 성도는 영혼을 아예 하나님께 부탁해 놓고, 즉 죽을 각오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며 아무리 큰 시험과 고난이 와도 계속해서 믿음을 지키며 진리를 세워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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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전서5장

제 5 장 영 광

 

(대 지)

 

一. 장로 모본(1-4)

二. 교인 순종(5-6)

三. 마귀 격퇴(7-11)

四. 문안 축복(12-14)

 

(본문강해)

 

一. 장로 모본(1-4)

 

. 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장로 초대 교회에서는 장로로 불리우는 여러 직분이 있었으니 사도와 감독과 목사와 교회의 지도급에 있는 원로들이었다. 사도 베드로(1절), 사도 요한(요한 2서 1:1), 디모데(딤전 4:13)같은 교훈 장로와 치리 장로(딤전 5:17) 및 교회의 원로들을 장로라고 하였다. 이 장로들을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 장로들을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한 것은, 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으로 이루어 놓으신 도(道), 즉 십자가의 도(道)(고전 1:18)를 증거하는 증인이기 때문이요, ② 십자가의 도는 고난을 받음으로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도(道), 즉 누구든지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도(道)이기 때문이다(마 16:24-25). ③ 그들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해 나아가야 교회가 성장(골 1:24)하기 때문이다. ④ 그리스도의 군사 된 자는 고난을 각오하고 나서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딤후 2:3, 딤후 1:8). 그러므로 장로들은 고난을 받아야 그 사명을 바로 감당할 수가 있다.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고난의 증인들은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주와 그 복음을 위하여 받는 고난에는 영광이 따라오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지 않으면 그 영광을 받지 못한다(벧전 4:13).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빌 1:20, 3:10-11).

 

.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장로들은 하나님의 양 무리를 맡아서 먹이며, 치며, 보호하고, 다스리는 자이다.

하나님의 양 성도들은 하나님의 양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이시다(요 10:14). 교역자와 장로는 하나님의 집(교회)에서 하나님의 양을 위해 목자(주님)의 심부름을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교역자와 장로는 자기 뜻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하되 하나님이 명하시는 대로 전달(傳達)만 해야 된다. 교역자가 양들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거나 자기의 생각과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 양을 치면 주님께서 징계하여 물리치신다. 많은 교역자들이 이 일을 바로하지 못하여 은혜가 떨어지고 주님께 물리침(除去)을 받았다.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하나님은 부득이 함으로 일하는 종을 쓰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중심으로 하지 않는 자의 심령을 성령께서 붙들고 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깨달아 감사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일하려는 자를 하나님께서 쓰시고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부득이함으로 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명을 잘 깨닫지 못하는 자요, 성 령의 감동과 인도를 받지 못하게 되므로 성령이 쓰실 수 없다.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교역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자족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바울은 빌립보서 4:11-13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다. 교역자나 장로가 교회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지 않고 이(利)를 따라 하면 그 이는 더러운 이(利)이다.

교역자가 교회를 이동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지 않고 큰 교회나 사례금을 많이 주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것은 더러운 이를 따라간 것이다. 이런 교역자가 시무하는 교회는 반석 위에 세운 교회가 될 수 없고, 항상 음부의 권세에 흔들린다.

즐거운 뜻으로 하며 믿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교역자가 주님의 사랑에 끌려 주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함으로 주의 일을 하면 많은 고난이 와도 즐겁다.

 

. 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맡기운 자들은 교회의 양떼이다. 하나님이 교역자와 장로들에게 교회의 양떼들을 맡겨서 신령한 양식을 먹이며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교역자나 장로는 하나님의 종의 위치에 서서 교회를 주장하는 자세를 버리고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 목자가 바른 길로 앞서 가면 양들은 따라간다. 그러나 삯꾼 목자는 이(利)만 따라가고 이리가 오면 양떼를 버리고 도망친다.

 

.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장로들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고난의 증인의 사명을 잘하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것이다.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 면류관은 영광스러운 상급을 가리킨다. 고난의 증인의 사명을 잘한 자는 주님이 영광스러운 상급을 주신다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그 상급은 시들거나 썩는 법이 없고 영원히 존재한다.

성경에 나타난 면류관은 다음과 같이 여러 종류가 있다.

① 생명의 면류관(계 2:10, 약 1:12), ② 금 면류관(계 4:4), ③ 의의 면류관(딤후 4:8), ④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⑤ 시들지 않는 면류관(벧전 5:4), ⑥ 자랑의 면류관(살전 2:19), ⑦ 썩지 아니할 면류관(고전 9:25) 등이다.

 

二. 교인 순종 (5-6)

 

.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젊은 자는 교인들을 가리킨다. 교회의 지도자 및 원로급에 있는 중견들을 장로라고 하였으므로 교인들을 젊은 자들이라고 했다. 교인들에게 주신 제일 첫째 교훈은 장로들에게 순복하라는 것이다 이 순종은 의무적인 순종이요, 신앙적인 순종이요, 직무적인 순종이다. 하나님이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하셨으므로 순종해야 되고, 신앙의 지도자요 웃사람이므로 순종해야 되고, 그 직분이 목사요 장로이므로 순종해야 한다. 교역자도 자기 웃사람과 선생에게 순종해야 한다. 교역자도 웃사람에게 순종하지 않고 배우기를 힘쓰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

우리가 순종을 배우는 것이 참으로 신앙을 배우는 것이다. 교역자가 먼저 순종을 배우지 않고 성경만 배우면 좋은 교역자가 되지 못한다. 예수님도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다(히5:8-9).

성도가 하나님을 순종하고, 웃사람을 순종하고, 모든 제도를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지 않으시고 제도를 통해서 양떼를 기르며 교회를 육성해 나가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제도를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와 군대도 제도를 통해서 발전하며 향상되어 나아간다 구원 운동도 제도를 통해서 발전 향상되고 건설되어 나아간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사도로 세워 양을 먹이고 치도록 하셨고(요 21:16), 바울이 각 교회에 장로를 세워 교회를 인도하도록 하였고(행 14:23), 예루살렘 공의회를 회집하여 할례 문제를 결정하였다. 이는 다 제도와 직분을 세워서 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도를 순종하지 않는 교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자요 천국 건설에 함께 사용될 재목이 못된다. 순종은 자기가 원해서 따라가는 것이요, 복종은 자기가 원치 않더라도 따라가는 것이다. 본문에는 장로들에게 순복하라고 했다.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허리를 동이는 것은 자기를 단속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도는 겸손으로 자기를 단속하라는 것이다. 자기를 겸손하게 단속하여 교만하지 않게 하고 자유, 방종, 방탕으로 나가지 않게 하며 자기의 못된 성격과 제 주장과 자존심과 교만이 나오지 않게 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대적이 된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물리치시고(약 4:6), 멸망의 자리에 빠지게 된다. 잠언 18:12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했다. 겸손과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세이다. 겸손한 자는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이 잘 길러서 귀하게 쓰신다. 그러나 아무리 유능하고 실력이 있어 모든 것을 잘한다고 하여도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내어버리신다. 잠언 22:4 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했다.

 

.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란 교만한 자는 아무리 강하고 능해도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는 아무리 약하고 부족해도 높이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도가 부족하고 약해도 겸손한 자리에서 순종하여 나아가면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높여 주실 날이 온다.

성도가 겸손하여 장로를 잘 순종하고, 제도를 순종하며 웃사람을 잘 순종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높여 주실 때가온다. 그때까지 참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고 조급하게 행동을 하면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들은 겸손히 순복하면서 해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능하신 손으로 높여 주시고 귀히 쓰실 때까지 겸손히 참는 자가 복이 있다.

 

三. 마귀 격퇴 (7-11)

 

.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염려는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심(苦心) 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염려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않는 데서 나오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데서 나온다. 그러므로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마태복음 6:31-32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였다. 사람이 염려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다 받을 수있다. 염려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이상의 것을 받을수는 없다. 마태복음 6:27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하였다. 염려는 마귀의 올무이다. 마귀가 염려의 올무로 사람을 끌어다가 자기 종을 삼는다. 그러므로 성도가 염려, 걱정, 근심을 주께 맡기고, 항상 평안하고 고요한 심령을 가지고 자기 할 일을 성실하게 하면 주께서 반드시 권고하여 주신다. 마태복음 6:34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했다. 성도가 염려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 또 성도가 내일 일은 주께 맡기고 오직 오늘에 믿는 일은 주께 맡기고 오직 오늘 오늘에 믿는 수고하는 것으로 족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권고하여 주신다.

 

.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고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는다.

근신하라 깨어라 근신은 정욕, 감정, 염려등에 대한 자제이고, 깨는 것은 육신에 속해 살던 자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영으로 사는 것이다. 성도가 자기를 이기고 삼가 조심하여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마귀를 능히 물리칠 수 있다.

대적 마귀는 항상 성도를 대적하고 하나님께 참소하는 자이다(욥 1:9, 슥 3:1) 마귀의 다른 이름 사단 (사타나스)은 \"대적\"의 뜻이다.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는 원래 두루 다니는 자이다(욥 1:7 ). 마귀를 사자라고 한 것은 사자와 같이 잔인하기 때문이다. 마귀가 두루 다니는 목적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성도를 유혹하거나 강압하여 자기 종으로 삼아 멸망시키려는 것이다. 마귀는 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성도를 유혹한다(요일 2:16).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힘(권세)을 가지고 성도를 정복하여 자기 종으로 삼아 멸망시지려고 한다. 바로 왕의 세력을 마귀가 이용하여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를 죽였다.

또, 마귀는 간교한 뱀처럼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변경시킨다. 신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 기독교 사회주의 등은 다 간교한 뱀의 역사이다. 또 마귀가 어떤 때에는 광명한 천사로 나타나서(고후 11:14) 영적 세계를 혼란케 하여 분별하지 못하게한다. 그릇된 신비주의 운동은 영적 운동 같으나 감정 운동이요, 사단의 세계이다 사단이 광명한 천사처럼 가장하여 성도를 미혹하게 하는 것이다. 삼손에게는 들릴라를 통하여 들어갔고, 가룟 유다에게는 돈을 통해서 들어 갔다.

 

. 5: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마귀를 이기는 방법은 첫째, 믿음을 굳게 하여야 한다. 믿음이 약한 자를 마귀가 미혹시키고 정복한다. 믿음은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에(롬 10:17) 믿음을 굳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그 말씀에 확고히 서야 하고(마 16:16-18) 힘써 기도하여 은혜를 받아야 된다(눅 22:43-46, 히 13:9). 둘째, 마귀를 적극적으로 대적해야 한다. 마귀를 피하거나 용납하면 마귀에게 정복된다. 피 흘리기까지 마귀를 대적하며 (히 12:4)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하여 순종하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도와 주셔서 마귀를 이기게 된다.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마귀를 이기는 방법은 셋째,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십자가를 멀리 하려는 생각은 마귀의 시험이다(마 16:23). 믿음을 지킨 모든 형제들은 다 동일한 고난을 받아 십자가를 지고 갔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지킨 성도의 반열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갈 각오를 하여야 한다.

 

.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다. 성도에게 불같은 시험도 은혜로 주시고(벧전 4:12-13), 고난도 은혜로 주신다(빌 1:29).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불러서 그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고, 성도가 시험과 고난을 당할 때에 친히 찾아와서 도와 주시고 능력으로 보호해 주시고 건져 주신다.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 성도가 세상에서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지극히 작고, 잠깐이다. 고린도후서 4:17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시험과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목적은 그 고난 중에서 성도를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려는데 있다.

온전케 하시며 성도가 예수님의 온전을 닮아 가야 한다(엡 4:15). 성도가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은 그것을 통하여 성도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기 위함이다(약 1:2-4).

굳게 하시며 고정하여 동요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강하게 하시며 강하고 능력 있게 하는 것이다.

터를 견고케 건물의 기초를 견고케 하는 것으로 진리의 깨달음과 신앙 인격이 반석과 같이 견고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 5:11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것은 하나님의 권력에 대한 찬양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고난 받는 성도를 보호하시고, 온전케 만드는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과 권세를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으신다(사 48:11). 권세가 세세토록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마귀와 더불어 싸워 나아가면 반드시 이긴다. 성도가 진리를 양보하지 않고 굳세게 서서 말씀대로 달음박질하면 하나님의 권세로 능히 이길 수 있다. 최후의 승리는 진리에 있고 하나님에게 있다.

 

四. 문안 축복 (12-14)

 

. 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실루아노는 바울과 같이 일한 실라와 동일인으로 본다(행 17:10, 18:5, 고후 1:19, 행 14:14, 16:19, 17:4). 실루아노는 신실한 자로서 복음을 위하여 바울과 같이 일한 자요 베드로를 도와서 본서를 대서한 사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위에서 말한 바 성도가 고난 받는 것이 참된 은혜라는 것이다(빌 1:29 참조).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주와 참된 진리를 위해 고난 받는 은혜에 굳게 서라는 권면이다.

 

. 5: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바벨론에 있는 교회 로마에 있는 교회를 가리킨다고 한다. 바벨론은 이전의 패권국가이었다. 그 당시에는 로마가 세계 주권국가이었으므로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한 것이다. 베드로가 본서를 로마에서 기록한 것이므로 그때에는 로마에 있는 교회가 문안한 것이 자연스럽다. 또는 실제로 바벨론에 있는 성도가 문안 했는지도 모른다.

내 아들 마가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로서 바울과 바나바가 제 일차 전도 여행시에 수종자로 동행했으나 밤빌리아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 돌아갔기 때문에 마가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고 갈라졌다(행 15:37-39). 그 후에 마가가 회개하여 바울에게 유익한 자가 되었고(딤후 4:11), 본서에서는 아들 같이 베드로를 섬기며 도와주었다.

 

. 5: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입맞추는 인사는 그 당시 제일 다정한 인사법으로써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입맞추는 인사를 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는 이 법으로 인사하면 안되고 우리 사회에 합당하고 친절한 인사법으로 인사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친하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끼리만 인사하지 말고, 낯선 성도에게도 친절하게 인사해야 한다. 성도가 서로 문안하고 사랑으로 교제하는 것은 아름답고 귀한 것이다.

피차 문안하려면 서로 먼저 인사를 하여야 한다. 상대방이 혹시 인사를 하지 않아도 자신이 먼저 그 사람에게 진정한 사랑으로 문안하면 그 사람도 나에게 문안하게 된다. 이것이 피차 문안하는 법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적합한 축복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평강이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요 16:33) 본서의 결말로써 이 축복을 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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