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베드로후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기록한 사람 : 사도 베드로

기록한 연대 : 주후 67년경

기록한 장소 : 로 마

 

    123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베드로후서1장

 

제 1 장 신 앙

 

(대  지)

一. 인사와 축복(1-2)

二. 신의 성품에 참여케 함(3-4)

三. 구원 성취의 여덟 가지 덕(5-11)

四. 진리로 경성케 함(12-15)

五. 재림에 대한 증거(16-18)

六. 예언의 확실성과 위험성(19-21)

 

(분문강해)

 

一. 인사와 축복 (1-2)

 

.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였다. 종의 특징은 ① 주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 ② 주인의 명령대로만 해야 된다. ③ 재산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

우리들도 베드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에서 주를 위해 살고, 주님의 명령과 뜻대로만 순종하여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도 주께서 \"가라\"명하시면 가고,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하라\"하면 하고,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라도 \"하지 말라\"하면 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하고 모든 소유를 주의 것인 줄 알고 주의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 성도가 만일 이와는 반대로 자기를 위해 자기 마음대로 일하고,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삼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면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를 탈선하여 주인의 위치에 올라간 것이다.

사도인 시몬 베드로 사도 ( )는 보내심을 입은 자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복음을 위하여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입은 자이다. 베드로는 바울처럼 사도권에 대한 변명은 하지 않았다(갈 1:1). 그 이유는 베드로에 대한 사도권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몬은 예수를 믿기 전 베드로의 이름이다. 그가 주께 받은 베드로라는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앞에 시몬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덧붙인 것은 자신이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죄 가운데서 살며 아무 쓸모없는 시몬이 었으나 예수님이 친히 크신 긍휼과 사랑으로 불러서 베드로(반석이라는 뜻)가 되었고, 사도로 삼아 주의 구속 사업에 쓰임을 받게 된 은혜를 감사하여 겸허한 자세로 말한 것이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전서 1:12-13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흘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고 했다. 바울도 자신이 전에는 핍박하는 자요, 능욕하는 자이었으나 주님이 긍휼히 여겨 사도의 직분을 맡겨 주신데 대해 늘 회개하면서 감사한 것이다. 우리들도 전에 자기가 어떠한 자이었던가를 생각하여 늘 회개하고 겸손하며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모든 성도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은 자요, 그로 인해 하나님을 의뢰하고 전진하는 자이다.

보배로운 믿음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우리는 이 믿음을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것이다. 왜 그 믿음을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하였는가?

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믿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1:18-19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하였다.

② 믿음으로 하나님과 구주를 알고 그를 힘입어 영이 살기 때문이다.

③ 믿음으로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기 때문이다.

④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닳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요17:3). 성도가 믿음으로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된다.

은혜와 평강 성도가 영적 생명으로 살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게 된다.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주시는 구원에 대한 전체가 은혜이다. \"평강\"은 구원받은 성도가 누리는 영적 평강이다. 우리가 누리는 영적 평강은 세상의 것과 같지 않고(요 14:27), 세상 사람이 알지도 못하고 빼앗지도 못한다.

 

二. 신의 성품에 참여케 함 (3-4)

 

.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신기한 능력은 헬라어   (데이아스 뒤나메오스)로 \"신적 능력\"이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 초자연적 능력으로 성도를 구원하여 주신다.

생명과 경건 \"생명\"은 영적 생명을 가리키고, \"경건\"은 도덕적인 면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신적 능력으로, 믿는 우리에게 영적 새 생명과 경건 생활(하나님을 닮아가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모든 은사를 주셨다.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과 긍흘의 그릇으로 우리를 불러 주셨다(롬 9:23-24). \"덕\"은 사랑과 긍휼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사랑의 대상자로 택하여 당신의 영광과 사랑을 주어 세세토록 그 영광과 사랑(덕)을 나타내게 하기 위하여 불러 주셨다.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신 것도 이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① 우리 구원의 근원은 하나님께서 영광과 덕으로 부르신 것이요

② 우리 구원 역사의 시작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신적 능력으로 주신 것이요

③ 우리 구원의 소망은 지극히 큰 약속을 주신 것이요(4절上)

④ 우리의 구원 성취는 정욕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4절下).

 

.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은 성도의 구원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이다. 이 약속들은 참으로 보배로운 것이다. 그 이유는 금보다 귀한 보배로운 믿음으로 성취되는 것이요 또 그 결과가 보배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① 성도가 시험과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키고 연단을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된다(벧전 1:7, 4:13)는 약속.

② 성도가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약속. 요한일서 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 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지고 자기를 깨끗하게 만들어 나아가면 마지막에는 성도가 주님과 같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이다. 이 약속보다 더 크고 더 보배로운 것이 있을 수 없다.

③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는 약속(마 25:34참조).

④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성도에게 면류관을 주신다는 약속(딤후 4:7-8).

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이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는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서 주님을 공중에서 영접한다.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성도들은 썩어져가는 정욕적인 생활을 피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일을 힘써 하게 된다.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썩어질 것\"이란 이 세상에 속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말한다(요일 2:16). 이 세상의 정욕적인 생활은 다 썩어질 것이다. 지극히 큰 소망을 바라보고 있는 성도는 그 썩어질 정욕을 떠나 영으로 살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경건한 생활을 하며 신의 성품에 참여하려고 힘쓴다.

신의 성품에 참여는 헬라어     (게네스데데이아스 코이노노이)로 \"신적 교제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성품(형상)대로 창조되었다(창 1:27).그러나 타락(범죄)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하나님의 성품(형상)도 상실했다.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었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갈라디아서 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했다.\" 또 에베소서 4:24에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다. 이것은 우리 성도가 세상 정욕대로 사는 생활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므로 영이 살고, 말씀대로 자신을 만들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열 두 가지 속성(하나님의 형상)을 말한다. 하나님의 열두 속성은 ① 자존성(독립성), ② 완전성(불변성), ③ 무한성, ④ 단일성 등 특수한 속성 네 가지와 ① 지혜, ② 지식, ③ 선, ④ 사랑, ⑤ 거룩, ⑥ 의,  진실, ⑧능력(주권)등 보편적인 속성 여덟 가지가 있다.

 

三. 구원 성취의 여덟 가지 덕 (5-11)

 

. 1:5-6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이러므로는 3-4절의 내용과 연결된 말이다. 즉,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고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그 약속을 바라보고, 썩어질 정욕 생활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으므로 다음 여덟 가지 덕을 이루어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여 생명의 역사가 커지고 영혼이 자라나고, 경건한 생활이 진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이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나며(롬 10:17), 그 말씀을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이 된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26). 살아 있는 믿음은 비록 겨자씨와 같이 작아도 생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만 있으면 그 명령을 순종하여 태산이라도 바다에 옮기라고 명령할 것이요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명령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만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데 어떤 사람이 \"믿사오니 태산아! 뽕나무야! 옮기라\"고 하는 것은 맹신이요 미신이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도 만능으로 역사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신다. 이와 같이 산 믿음은 적극성이 있고 능력이 있다.

믿음에 덕을 덕이란 자기의 경건을 지키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믿음은 있으나 덕이 없는 성도는 남에게 욕을 먹고 교회에 손해를 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덕을 세우는데 힘을 써야 한다. 우리 몸에 비유하면 믿음은 뼈와 같고, 덕은 살과 같다.

믿음만 있고 덕이 없는 사람은 뼈만 있고 살이 없는 사람과 같이 완전하지 못하다. 덕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의 인격을 의롭고 선하게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우리 성도가 선하고 거룩하고 친절한 사랑의 인격을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선과 의를 베풀어서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도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말은 하지 말고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같이 가고, 왼뺨을 치면 오른뺨을 돌려대면서도 화목하기를 힘써야 덕을 세워 나아갈 수 있다.

덕에 지식을

① 성경 말씀에 근거한 올바른 지식을 말한다.

지식이 없으면 마귀에게 속아 바른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고 시험에 빠진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지혜는 뱀 같이 하고 순결은 비둘기 같이 하라고 했다(마 10:16). 우리는 성경 말씀에 근거한 바른 진리의 지식을 배우고 깨달아 더욱 풍성하게 해야 한다.

② 영적인 지식을 말한다.

영적인 지식이 없으면 마귀를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고 마귀에게 속아 실패하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가 성령의 뜻인가, 마귀의 뜻인가를 바로 분별하고, 영적인 것인가, 육적인 것인가를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식이 없는 성도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알지 못하고, 선한싸움을 누구와 어떻게 싸워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생활에 바른 지식이 필요하며 지식은 사람의 몸에 있어서 신경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란 자기를 통제하는 것이다. 자기를 통제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하고, 합당치 않은 것은 내어버리는 것이 절제이다. 우리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여러 가지면으로 절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 시간, 건강, 힘, 환경을 절제해서 하나님께 합당하게 사용하고, 합당치 않은 경우에는 사용하지 않아야 된다. 자기 마음도 잘 제어하여 마음을 쓰지 않을 곳에는 쓰지 말고, 마음을 기울여야 할곳에는 기울여서 믿는 일을 잘해 나아가야 한다.

마태복음 24:19에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젖먹인다는 것은 마음과 정력과 모든 것을 세상에 빼앗기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사를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바로 사용하지 못하면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새벽 기도 못하는 것도 시간 절제를 못하는데 원인이 있다. 저녁에 늦게까지 TV를 보거나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늦게 취침을 하면 새벽에 일찍 일어날 수가 없다. 시간 절제를 잘해야 기도할 시간과 성경 볼 시간, 전도할 시간을 얻게 된다. 우리는 모든 일에 절제하여 믿는 일을 잘해 나가야겠다. 절제는 우리 몸에 있어서 관절(關節)에 비유할 수 있다.

절제에 인내를 인내는 어려운 것을 잘 참고 견디는 것이다. 성도에게 인내가 없으면 절제할 수 없고, 믿는 일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인내가 중요하다 인내는 우리 몸에 있어서 힘줄에 비유할 수 있다.

인내에 경건을 경건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는 생활이다. 성도가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하나님을 닮아 나아갈 수 있다 경건은 우리 몸에 있어서 피에 비유할 수 있다.

 

.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형제 우애  (필라델피아)는 자연적인 사랑이다. 믿는 형제는 그리스도의 한 피로 중생했고, 그리스도의 한 생명을 받았으므로 그 영적 생명에서 자연히 형제의 사랑이 나온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는 형제를 자기 속 사람에게서 나오는 뜨거운 사랑으로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형제 우애이다. 형제 우애는 신체에 있어서 상합(相合)과 같다.

사랑 이 사랑은 (아가페)사랑으로 거룩한 사랑, 영적인 최고의 사랑을 가리킨다. 성도는 박애 정신을 가지고 이 사랑을 더욱더 공급해 나아가야 한다. 사랑은 신체의 피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 1: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이런 것\"은 5절에서 7절까지 말한 여덟 가지 미덕이다. 이 여덟 가지 미덕이 있어 흡족한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예수를 점점 더 깊이 알고 신앙의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

 

. 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기의 모든 더러운 죄를 사함받고, 깨꿋케 된 것을 바라보면서 항상 감사해야 한다. 성도는 원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고 죄 사함 받은 것에 대하여 항상 감사하면서 앞에서 말한 여덟 가지의 덕을 행하도록 더욱 힘써야 한다. 이런 것들(여덟 가지 덕)이 없는 자는 소경이요, 옛 죄를 깨끗케 한 것을 망각한 사람이 다.

 

.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회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해 주시고, 불러서 믿게 해주신 것을 잊지 말고, 그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택함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실족함이 없도록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실족치 않으려면, 이 여덟 가지 덕을 행하여야 한다. 이 여덟 가지 덕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 대한 굳건한 신앙에 서 있지 못한 자이다.

 

.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이같이 하면 위에서 말한 바 여덟 가지 덕을 행하여 원시하고 실족치 않은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감을 주신다. 이러한 성도는 불 가운데서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이 아니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영광스러운 구원의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四. 진리로 경성케 함 (12-15)

 

. 1:12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앞에 있는 11절의 말씀을 너희가 이미 알고 그 진리 위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으나, 우리에게 지극히 중요한 교훈이기 때문에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베드로가 이렇게 권면한다고 말하였다. 잠언 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한 두 번 가르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자주 반복하여 가르쳐 주어야 배운 사람이 그 진리를 잊지 않고 잘 간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진리를 반복적으로 가르쳐서 잊어버리지 않고 늘 생각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 1: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장막에 있을 동안 장막은 육체를 가리킨다(고후 5:1).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참으로 우리의 집이요(요 14:2), 육체는 영혼이 임시로 쓰고 사는 장막이다. 영혼이 장막을 떠나 천국의 영원한 집으로 갈 때 장막집은 무너진다.

일깨워 생각하게 함 교인들을 경성시키고 진리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주의 종들이 해야 할 중요한 임무이다.

 

. 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은 요한복음 21:18에 기록된 대로 베드로가 순교당할 것을 가리킨다.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베드로가 본서를 기록 할 때에 자기의 순교가 임박한 것을 여러 면으로 깨닫고 있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깨닫게 해주셨을 것이다.

 

. 1: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는 자기가 세상을 떠나면 성도를 가르칠 수 없으므로 떠나기 전에 성도들에게 필요한 진리를 다 가르치려고 힘썼으며 그 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을 여러 번 반복하여 가르쳐 줌으로 자기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말씀이 성도들 마음에서 늘 생각이 나서 믿음을 잘 지키게 되기를 원했다.

육신을 가지고 사는 성도는 누구나 육신의 장막을 벗어놓고 하늘 나라에 갈 날이 온다. 그러므로 육신의 장막을 떠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맡은 바 사명을 다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달려 갈 길을 마치고, 선한싸움을 싸우고, 주님께로 간다고 하였다(딤후 4:7). 우리도 자녀들에게 마땅히 가르칠 바를 모두 가르치고, 전도해야 할 사람에게 모두 전도하고, 봉사해 야 할 일이 있으면 다하고 떠나야겠다. 우리가 잠시 후에 장막을 벗어 놓으면 다시는 일할 수 없고 가르칠 수 없다. 또 예수님이 재림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우리가 화급히 복음에 대한 우리의 사명을 다 하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

 

五. 재림에 대한 증거 (16-18)

 

.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큰 능력으로 강림하신다는 진리를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게 가르쳤다. 이것은 사람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보고 증거한 것이며 확실하고 진실하다는 것이다.

공교히 만든 말이란 사람이 지어낸 말로서 신화나 우화같은 이야기를 말한다.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이것은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본 것을 말한다(마17:1-8).

 

. 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지극히 큰 영광 중에 변화된 모습을 직접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마 17:1-8). 그때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와 같이 신령한 몸으로 재림할 것을 미리 보여 주신 것이다. 그때에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베드로가 직접 들었고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는 것을 직접 보았다.

 

. 1: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가리키고, \"저와 함께\"는 예수님과 함께 그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거룩한 산\"은 예수님이 변화하신 산이다(마17:1). 그때 그들이 하늘에서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 림에 대한 예언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六. 예언의 확실성과 위험성 (19-21)

 

. 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더 확실한 예언은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가리킨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친히 하늘에서 나는 음성을 직접 귀로 들은 것보다 기록된 말씀이 더 확실하며, 그 예언의 말씀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이 명확(明確)하다는 것이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날이 샌다\"는 것은 어두움이 물러가고 날이 밝아지는 것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신령한 면에 대해 어둡던 것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말한다. \"샛별이 마음에 떠오른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정확한 깨달음을 가리킨다. 날이 새어야 샛별이 떠올라 온다는 것은 신령한 면이 밝아져야 진리를 정확히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르는 것에 대하여 몇 가지 실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안(靈眼)이 밝아지는 것이다. 마태복음 6:22-24에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하였다. 성도가 재물에 대한 욕심과 정욕과 사욕을 버리고, 죄를 회개해야 영안이 밝아진다. 영안이 밝아지면 진리에 대하여도 확실한 깨달음이 온다.

둘째, 영혼이 자라나야 밝아진다. 영혼이 자라난 만큼 신령한 세계가 넓어지고 밟아진다. 또 영혼이 자라난 만큼 진리도 넓고 깊게, 또 정확하게 깨닫게 된다.

세째, 주의 말씀에 거해야 신령한 세계가 밟아진다. 요한복음 8:31-32에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다. 성도가 말씀 안에 거하면 심령이 밝아지고 진리를 확실히 깨닫게 되며 그 진리로 인하여 영이 자유를 누리게 된다.

넷째,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그 예언을 밝히 알게 된다. 예언이 응해지는 것은 날이 새는 것이요, 그것을 보고 정확히 깨닫는 것은 샛별이 떠오르는 것이다. 성도가 예언이 응해지기 전에는 그 예언을 확실히 깨닫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다니엘서의 예언도 그 예언이 이루어질 때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단 2:45, 10:14, 12:8참조).

또 요한계시록 5:3-4에 인(印)뗄 사람이 없어서 요한이 크게 울었으나 요한계시록 6:1에서부터 그 인을 떼었다. 인을 떼는 것은 곧 그 예언의 성취를 의미한다. 그 예언이 성취될 때에는 성도가 그 예언을 정확히 깨닫게 된다. 요한계시록 13:1의 짐승과 13:11의 새끼 양같은 짐승에 대해서도 그 예언이 성취되기 전에는 우리가 잘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 예언이 응해져서 기독교 안에 들어온 해방 신학과 같은 것들임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 예언이 응해지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게 된다.

날이 새어 확실히 깨달은 진리는 변화산에서 보고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샛별이 떠오르기 전에 사람의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하지 말고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주의하며 기다려야 한다.

 

. 1: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사람이 성경의 모든 예언을 사사로이 풀면 안된다. 사사로이 푼다는 것은 인간의 이지 (理智)나 학문을 이용하여 자기의 주관(主管)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예언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므로 성령의 조명(照明)과 인도를 받으며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올라 와야(19절)예언을 바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없이 사람이 인간의 생각과 지식과 자기 주관으로 성경을 억지로 풀면 멸망한다(벧후 3:16).

신신학자는 인간의 이성과 철학과 세상주의로 성경을 해석한다. 또 신비주의자들은 사람의 감정에 느껴지는 대로, 또는 꿈과 환상에 적용시켜 억지로 성경을 해석한다. 로마 카톨릭(천주교)에서는 로마 교황과 종교회의 이외에는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신신학자나 신비주의자나 천주교의 해석 방법은 성경적이 아니고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해석을 따라가면 안된다.

 

.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다. 성경을 인간이 기록했으나 인간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기자(記者)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 사람의 지식과 문체와 특성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오류없이 기록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게 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 나아간다(딤후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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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베드로후서2장

제 2 장 거짓 선지자

 

(대   지)

 

一. 거짓 선지자의 출현(1 -3)

二. 거짓 선지자에 대한 심판(4-11)

三. 거짓 선지자의 형편(12-19)

四. 도를 알고 저버리는 자(20-22)

 

(본문강해)

 

一. 거짓 선지자의 출현 (1-3)

 

. 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민간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구약 시대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거짓 선지자들이 있고, 앞으로도 많이 일어 날 것이므로 성도들이 주의하여, 미혹을 받지 말고, 손해보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교역자가 성경을 잘못 가르쳐 성도들을 바른 신앙에서 떠나게 하는 자를 말한다.

거짓 선생들은 교인들에게 성경을 잘못 가르쳐 바른 신앙에서 떠나게 하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교역자 중에도 이런 자가 있고, 교역자가 아니라도 이런 자가 있다. 거짓 선생은 점차 거짓선지자와 동일시 된 것 같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신도 멸망하는 길로 나아가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한다.

이단 이란 말의 헬라어 (하이레시스)는 \"선택\"이라는 뜻으로 중대한 기본 교리를 조금이라도 부인하거나 변질시키는 자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삼위 일체 하나님, 도성인신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부활, 승천, 그리스도의 재림, 천국, 이신득구(以信得救), 성경의 무오성, 성령의 인격성 등을 부인하거나 성경 원리에 어긋나게 해석하는 자들이다.

가만히 끌어들여 이단들은 그 본색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보호색으로 가장하여 은밀하게 들어와 이단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므로 면밀히 주의하여 방어하지 아니하면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 많은 손해를 받게 된다.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피 흘려 우리를 구속해 주신(고전 6:20 참조) 주님을 부인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단자들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다. 이단자들의 심판과 멸망은 임박한 줄 알아야 한다.

 

. 2:2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이단자들의 특성은 호색하는 것이다. 이단자들은 대개가 음란, 방탕으로 기울어진다. 그들이 호색으로 기울어지는 이유는, ① 그들은 영이 사는 운동이 아니요, 육신과 세상주의로나가기 때문이요, ② 자기들의 욕심을 가리우려고 간사하게도 외식적인 교리를 만들었기 때문이요, ③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 주지않고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는 이단자들이나 타락된 신자들의 행동으로 인하여 라는 뜻이다.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십자가의 도, 즉 참된 기독교가 이단자들이나 타락된 신자들의 행위 때문에 불신자 중에서 훼방을 받는다. 불신자들은 진가(眞假)를 가려내지 아니하고 이단자들도 다 같은 기독교인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참 기독교가 많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 2: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탐심 이단자들의 또 한가지 특성은 탐심이다. 색욕과 탐심 이 두 가지는 어느 시대에나 이단자와 거짓 선지자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탐심을 채우려고 지은 말을 가지고 교인들을 속여 재물을 탈취하고 그것으로 사복(私腹)을 채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인들로 자기들의 이(利)를 삼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럴 듯한 구실로 교인들을 속여 재물을 취하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재산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진리에 굳게 서서 그러한 자들에게 미혹받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한다.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 옛적부터 이단이나 거짓 선지자들의 심판은 지체하지 않고 속히 했다는 것이다.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는 것은 그들은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뜻이다. 그들에 대한 심판은 멀지 않아 올 것이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二. 거짓 선지자에 대한 심판 (4-11)

 

.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지옥에 가두었다고 하였다. 범죄한 천사들은 유다서 1:6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라고 했다. 이들은 마귀를 가리킨다. 마귀는 본래 미가엘이나 가브리엘과 같은 천사장 중에 하나였는데 이 천사가 자기 지위와 자기 처소를 지키지 않고 교만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다가 그 종들로 더불어 좇겨나서 마귀가 된 것이다.

에스겔 28:13-17은 두로 왕에게 대하여 한 말씀이나 두로왕뿐 아니라 그 속에서 역사한 마귀에게 대하여 책망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증거는 에스겔 28:14에 그룹이라고 한 것과 (그룹은 천사를 가리킨다), 에스겔 28:13에 그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다는 것을 보면 두로 왕을 가리킨 것이 아니고 마귀를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 두로 왕은 에덴 동산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그룹(천사)이 교만하다가 쫓겨났다고 했다(겔 28:17).

지옥은 헬라어 (탈타로사스)로 성경 중 이곳에만 있는 단어로써 \"음부의 가장 깊은 곳\"이란 뜻이다. 흑암이 깊고 형벌이 가장 많은 곳을 가리키는 듯하다. 지옥에 대한 원어는 몇 가지가 있다. (게엔나), (탈타로스), (하데스)등이다. 본문의 것은 (탈타로사스)로 음부의 가장 깊은 곳, 즉 흑암의 깊은 곳을 뜻한다(유 6절 참조). 하나님께서 마귀를 흑암의 영역 안에 가두었다. 그러므로, 마귀는 영적 흑암속에서만 역사하고 영적 빛 가운데는 들어오지 못한다. 이원론자들은 \"지옥에 가둔 천사가 마귀라고 하면 어떻게 이 세상에 다니며 성도를 미혹하겠는가?\"라고 하여 범죄한 천사가 마귀가 아니고 악신이 처음부터 따로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지옥이란 말의 뜻이 어두움의 깊은 곳을 가리키는 말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성도가 항상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마귀가 시험하지 못하나 성도가 빛 가운데로 걸어가지 못하면 마귀가 시험한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천사를 이렇게 용서치 않고 심판하여 영원한 흑암에 가두었으니 거짓 선지자나 그 추종자들이야 얼마나 더 큰 심판을 받겠는가!

 

. 2:5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노아 시대에 죄악이 관영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시대를 용서치 아니하시고 심판했다.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 노아의 여덟 식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구원의 방주를 준비하며 의를 이루어 나가며 의를 전파했다. \"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요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여덟 식구는 멸망시키지 않고 구원했으나 경건치 않은 그 시대 사람들을 다 홍수로 심판했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바로 사는 생활이다. 하나님이 노아의 시대를 심판하신 것처럼 말세에도 죄악이 관영하면 용서치 아니하시고 심판하신다. 마태복음 24:37-39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하였고, 누가복음 17:26-27에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라고 하였다. \"먹고 마신다\"는 것은 먹자주의로 나아가는 것이요 \"시집 가고 장가 간다\"는 것은 음란, 방탕주의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또 \"사고 판다\"는 것은 물질주의로 나간다는 것이다. 말세에는 온세상이 노아 시대와 같이 물질주의와 먹자주의와 음란, 방탕주의에 빠지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노아 시대는 물로 심판하였으나 세상 끝에는 불로써 심판하신다.

 

. 2: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소돔 고모라 시대에도 노아 시대와 같이 먹고 마시고 음란 방탕하다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멸망을 당했다. 이것은 후세에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불 심판이 온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표본으로 삼기 위해 성경에 기록하여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 2: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 무법한 자는 성경을 떠난 자들을 가리킨다.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은 그 당시 성경을 떠나 음란 방탕하며 패괴한 색을 따라갔다. 롯은 그들의 행실을 인하여 심적으로 고통을 많이 당했다.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롯은 삼촌 아브라함에게 신앙을 본받아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경건 생활을 하여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의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불경건한 소돔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에 롯을 구원해 주었다.

 

. 2:8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롯은 삼촌 아브라함에게서 받은 믿음과 경건한 생활로 의인이 되었다.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불법한 행실이란 하나님의 율법에 반대되는 일, 즉 음란과 각종 죄악의 행위를 가리킨다. 소돔 고모라 사람들은 날마다 그런 행실을 계속했다.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의를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자는 불법한 일을 볼 때에 심령이 상한다. 심령이 상한 이유는, ① 그들이 죄 가운데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을 볼 때에 불쌍히 여기고 애타는 심정으로 심령이 상했고, ② 죄를 미워하는 심정으로 심령이 상했다. 잠언 8:13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의로운 심령을 가지고 있는 자는 불법을 볼 때 심령이 상하지 않을 수 없다. \"심령\"은 영혼이 이용하는 선한 마음이다.

 

. 2: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경건한 자는 보호해 주시고, 불의한 자들은 심판하신다. 하나님을 떠난 노아 시대를 심판할 때에 노아를 구원해 주시고, 소돔 고모라를 심판할 때에 롯을 구원해주신 것이 그 실례이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은 형벌아래 두어 심판 때까지 기다리신다. 그들은 그때까지 형벌을 계속 당하다가 대심판을 받아 영벌을 받는다. 대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후에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서 죄에 빠지지 않고 노아처럼 의를 전파하고 롯처럼 경건한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된다.

 

. 2:10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거짓 선지자들은 육체 중심이요, 호색과 물욕주의로 행한다. 그들은 또한 주관하는 이를 멸시한다.

주관하는 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운 천사나 교회나 인간적 주장자들을 가리킨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특별히 형벌하실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있는 자를 훼방한다. 그러나 참 성도는 온유 겸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광 있는 자들을 존경하며 순종한다.

영광 있는 자 하나님과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이 세워서 사용하는 종들과 교회를 가리킨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 영광 있는 자들을 거침 없이 훼방하며 강퍅하여 자기 고집대로 담대히 나아가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 2: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 유다서 1:9에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천사장 미가엘은 큰 능력과 영광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 방해하는 마귀를 꾸짖을 수 있으나 꾸짖지 않고,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길 원한다고 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자신은 종의 위치를 잘 지켰다. 이와 같이 천사장은 자기 위치를 지켜서 자기의 의무와 책임만 다한 것이다(천사장 미가엘이 마귀와 변론한 내용은 유다서 1:9해석 참조).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교만하고 고집하며 영광 있는 자들을 거침 없이 훼방하니 심판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러므로 참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자기 위치를 지켜 겸손히 하나님의 심부름만 하여야 한다.

 

三. 거짓 선지자의 형편 (12-19)

 

. 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이 사람들은 이단자와 거짓 선지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이성없는 짐승과 같이 행한다. 유다서 10절에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고 했다. 짐승은 본능만 있고 이성은 없다. 본능은 사람이나 동물이 가진 충동에 의해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배가 고프면 먹고 싶어 하는것 등이다. 이성은 사물과 사건의 이치를 생각하며, 판단하며, 연구하며, 원리를 따라 의지와 행동을 결정짓는 기관인데 사람에게만 주어져 있다. 이성은 영혼이 아니고, 영혼이 사용하는 기관이다. 이성이 중생한 영혼에게 사용될 때는 하나님을 알고, 진리와 신령한 것을 알고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이성이 육체의 부패성에게 이용될 때는 죄를 짓게 된다.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거짓 선지자나 이단자들은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거침없이 훼방만 하나 그 결과는 멸망이다.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자들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훼방하기 때문에 벌써 멸망 가운데 있는자요, 앞으로 멸망하여 둘째 사망 가운데 빠질 자들이다(계2:11).

 

. 2: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그들은 불의한 길을 걸어갈 뿐아니라 불의를 당한다. 디모데후서 3:13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했다. 이것은 발람이 불의의 길을 걸어 가다가 불의를 당한것과 같다(민 31:8). 불의를 행하여 유익을 보는 것은 결국은 자기가 속은 것이다. 왜냐하면 불의하게 유익을 얻은 것은 자기가 불의한 자가 된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겠기 때문이다.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낮에는 일하고 연락과 술 취하는 것은 밤에 하는 것이다(살전 5:7). 성도는 낮에 속한자이므로 술 취하거나 연락해서는 안된다(살전 5:5, 8). 디모데전서 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했다. 그러므로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긴다는 것은 기독교 안에서 연락주의로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믿는 일은 하지않고 연락하는 생활만 하는 자들이다.

점과 흠이라 거짓 선지자들은 기독교에 오점과 흠을 만드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유다서 12절에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고 하였다. \"애찬\"은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이 음식을 나누며 사랑으로 서로 교제하는 거룩한 성도의 교제였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애찬에 참여하여 연락의 기회로 삼아 물질적인 사욕을 채우고자 하였으므로 암초와 같은 자들이었다. 이들은 곧 하나님의 신령한 교회의 영적 운동에 암초가 된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서 연보 돈을 가지고 먹는데와 연락하는데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다 잘못된 것이다.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외면으로는 신성한 성도의 교제인 것같이 하지만 속에는 물욕과 연락을 사랑하는 것이 가득하였으니 간사한 연락이다.

 

. 2: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음란은 이단자들의 특징이다. 유다서 1:4에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꾼다\"고 하였다.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졌다는 것은 성경을 모두 음란주의로 해석한다는 뜻이 있다. 예를 들면, 통일 교회에서 하나님의 아들낳는 원리나, 전도관에서 피가름한다는 원리 같은 것이다.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진리에 굳건히 서지 못하고 영적 면이 어린 성도들을 유혹한다는 뜻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신령한 면이 어리고(유치하고) 육에 속한 신자들을 유혹한다(고전 3:1-3). 그러므로 교회에서 이런 자를 잘 가르쳐 주고 미혹을 받지 않도록 잘 돌봐 주어야 한다.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 이단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탐욕을 채우려는 자들이다. 그들은 탐욕을 행하는데 연단과 시련이 잘되어 있으므로 유치한 성도들을 속이고 물질을 빼앗는데 고도의 술수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진리에 굳게 서 있지 않는 성도는 잘 속아 넘어간다. 그들은 불원간에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니 참으로 불쌍한 자들이다.

 

. 2:15-16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브올의 아들 발람은 선지자였으나 탐심으로 기울어져 불의의 삯을 위하여 가지 않을 곳에 가다가 말 못하는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고, 계속하여 그 불의의 길을 가다가 마침내 멸망했다. 하나님의 종이라도 물질에 눈이 어두워지니 짐승만도 못해져서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다. 성도가 신앙을 떠나면 성경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책망을 받는 사례가 있다(유1:11 해석 참조).

이 선지자의 미친 것 발람이 탐심에 빠져 미친 사람처럼 불의의 길을 걸어간 것을 가리킨다. 사람이 물욕이나 정욕이나 사욕(명예욕)에 빠지면 제 정신이 없어지고 미친 사람처럼 불의의 길을 거침없이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발람과 같이 멸망이다.

 

. 2: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물 없는 샘 샘에는 물이 있어서 모든 사람이 찾아가서 마실수 있다. 물 없는 샘은 물을 마시려고 찾아간 사람에게 물을 주지 못하니 사람을 속이는 것이요, 실망을 주고 갈증만 더하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은 사람들에게 생수를 주어야 한다(요 4:14). 생수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주시는 생명의 역사이다. 사람들이 이것을 받아 먹고 생명이 살아나야 된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물(생명의 역사)이 없으므로 영혼들이 생명을 얻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며, 방황하게 만든다.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안개는 바람을 따라 정처없이 밀려 다닌다. 거짓 선지자들은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와 같이 제 정신없이 동요한다. 그들은 인간의 욕구와 풍조를 따라가고 권력과 세속에 밀려 다닌다. 왜 이렇게 밀려 다니는가? 그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세워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아니하고 자기의 출세와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진리를 새워 나아가는 자는 세찬 바람과 폭풍(환난, 핍박)을 다 이겨 나아간다. 그러나 저들은 안개와 같이 바람이 부는 대로 밀려가므로 고난도 없고 쉽게 모든 것이 진행된다.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물 없는 샘이나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와 같은 거짓 선지자는 생명의 역사가 없으므로 벌써 영적 흑암에 들어가 있으며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흑암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 2:18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를 세우려는 것은 다 허탄한 것이다. 심판 때 하나님이 칭찬하는 것만 참되다(고전 4:5). 그러므로, 참된 성도는 자기를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고, 진리를 자랑한다.

미혹한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 성도가 어떤 미혹하는 자들에게서 겨우 피해 나오면 또 다른 미혹하는 자가 다른 방법으로 미혹한다. 요한계시록 2:14-15에 보면 발람의 미혹이 있었고, 다음에는 니골라당의 미혹이 있었다. 발람의 미혹에서 겨우 벗어나면 니골라당이 나와서 미혹을 시킨다. 또 나중에는 음란과 정욕으로 미혹하여 성도를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고 심령과 육체를 망치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깨어서 여러 가지 미혹을 경계하며 바른 진리에 굳게 서서 경건한 길을 걸어 가야 한다.

 

. 2:19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자유를 준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율법에서 해방되고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자이다. 그러나 이것을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종살이하여야 한다. 베드로전서 2:16에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 했고, 갈라디아서 5:13에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했다. 거짓 선지자들은 성도들의 복음의 자유를 빙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필요가 없으며 육체의 자유대로 살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그들은 성도를 미혹시켜 거침 없이 죄를 짓게 하는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된다(롬 6:16, 요 8:34). 그들은 자유를 얻어 자유롭게 산다고 하지만 결국 죄의 종이 된 것이다.

멸망의 종들이니 멸망은 부패라는 뜻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영적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아 죄를 짓는 자는 부패한 길을 걷기 때문에 죄의 종이요 마귀의 종이다. 왜냐하면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므로 죄를 지은 자는 마귀에게 진 것이요 죄에게 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죄에서 해방받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생명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도에게는 다음 세 가지 권세가 있다. 요한복음 1:12에는 \"아들의 권세\", 로마서 8:2에는 \"생명의 권세와 성령의 권세가 있다\"고 했다.

 

四. 도를 알고 저버리는 자 (20-22)

 

. 2: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죄 가운데서 나와 경건한 생활을 하다가 다시 죄 가운데 빠지면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다. 그리하여 전보다 더욱더 방탕과 음란과 술 취하는 죄 가운데 깊이 빠지게 된다. 회개한 사람이 예수 그리그도를 모시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 속에 일곱 마귀가 들어가 그 상태가 전보다 더 심하게 된다(마 12:43-45참조).

 

. 2: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받은 후에 그것을 내어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 도를 내어버리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어버린 죄가 있고, 성령의 감화를 소멸한 죄가 있으며 심령이 더욱 완악해진다. 알지 못하고 매 맞을 일을 행한 자보다 알고 맞을 일을 행한 자가 더 많이 맞는다고 했다(눅 12:47-48). 말씀을 받고 그대로 살려고 힘을 쓰다가 쓰러진 사람은 회개하게 되고 다음에 그대로 살 희망이 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의식적으로 그 말씀을 저버렸기 때문에 회개할 희망도 없고, 앞으로 그 말씀대로 바로 살 희망도 없다. 이것은 마치 좋은 음식을 받아서 먹지 않고 내어버린 자와 같다. 자기도 먹지 않고 남도 먹지 못하게 했으니 그것을 버린 죄가 얼마나 크겠는가!

히브리서 2:1-3에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라고 했다.

 

. 2: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거짓 선지자들을 개에 비유한 것이 많다(사 56:10-12, 빌 3:2). 개의 특성은 싸우고 물고 찢고 음행하고 토한 것을 먹는것 등이다. 거짓 선지자들의 특성도 이와 비슷하다.

참 속담이란 것은 사실에 알맞는 참된 속담이라는 뜻이다. 다음 내용은 참 속담인 동시에 성경에도 있는 말이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잠언 26:11의 뜻을 인용한 것으로 회개하고 더러운 것에서 떠났다가 다시 그 더러운 것을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눕는 것과 같다.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들은 이러한 행동을 한다. 성도가 믿고 회개하여 더러운 생활을 청산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다가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받으면 다시 더러운 정욕대로 사는 구렁텅이에 빠진다. 그러므로 항상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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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베드로후서3장

제 3 장 재 림

 

(대   지)

一. 예언 기억(1-2)

二. 재림 기롱(3-4)

三. 재림의 확실성(5-7)

四. 재림의 시기와 형편(8-10)

五. 재림의 준비(11-14)

六. 떨어질까 삼가고 자라나기를 힘쓰라(15-18)

 

(본문장해)

 

一. 예언 기억 (1-2)

 

. 3: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이 둘째 편지는 베드로후서를 가리키고, 이 둘은 베드로전후서의 둘을 가리킨다.

진실한 마음의 헬라어   (에이리크리네 디아노이안)은 \"순결한 마음\"을 의미하는데, 순수하고 아주 깨끗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마음은 중생한 영이 사용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마음\"(롬 7:25), \"청결한 양심\"(딤후 1:3), 고리고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다(벧전 1:22). 성도의 심령이 잠들어 있을 때는 이 마음을 상실하고 어두워진다(롬 13:11, 엡 5:14, 고전 16:13, 벧전 5:8).

성도는 그 영이 중생하였고, 진리의 말씀을 받았으나 나태함과 육체의 부패성 때문에 심령이 잠들어 마음이 어두워지기 쉽다. 그러므로 이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서 심령이 늘 깨어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령이 잠들어 이미 받은 진리를 다 상실하고 만다. 이렇게 늘 깨어 있는 자가 되려면 힘써 기도하고, 바른 교역자에게 자주 일깨움 받도록 힘써야 한다.

 

. 2: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예언한 것을 가리킨다(단 7:13).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 신약 시대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하나님이 명(命)하신 예언을 가리킨다. 3절 이하에 보면 당시에 재림을 부인하고 기롱하는 이단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미혹시키기 때문에, 베드로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다시 기억시켜 성도들로 하여금 미혹을 받지 않고 바른 진리에 굳게 세우려고 한다. 교회에서 중요한 교리는 자주 성경을 들어서 가르치고 기억시켜 그 진리를 굳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二. 재림 기롱 (3-4)

 

. 3:3-4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말세에 자기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 기독교 안에서도 많이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타고 재림하실 것을 믿지 않고 기롱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정욕을 좇아 행하며 \"정욕\"은 육욕과 아울러 자기 지혜와 사상도 포함한다. 이단과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자기 욕심과 인본주의로 행하며, 방종하고, 음란하고, 육체와 물질주의로 나간다.

② 하나님의 권위와 중요한 교리를 부인하며 기롱한다.

③ 바로 믿는 성도들과 종들을 기롱하고 비방하는 일을 거침없이 한다. 그들이 이렇게 기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그들이 정욕대로 행하므로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 그들은 자기들의 거짓 교리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만일 진리를 전파하는 참 종들을 그냥 놔두면 자기의 거짓 교리가 드러날 것이므로 기롱한다.

㉢ 그들은 세상주의와 인본주의가 우상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신신학자들과 해방 신학자들, 자유 방종 하는 자들은 다 이와 같이 기롱하는 자들이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자들은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①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부터 지금까지 초자연적인 변동이 없이 그대로 있다. ②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잔 후(별세 후) 지금까지 몇 천년이 되었어도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대한 변명은 다음 5, 6절에서 한다.

 

三. 재림의 확실성 (5-7)

 

. 3: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 하늘이 창조 때부터 변동없이 그냥 있다는 의미이다. 하늘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 없었음으로 옛적부터 아무 변동없이 그냥 있으나 땅은 심판하시겠다는 그 말씀대로 노아 홍수 때에 물로 심판을 받든 것이다(창 6장, 7장). 그러므로 전절(4절)에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은 창조 시에 윗물(구름)과 아랫물(바다)을 갈라서 땅이 드러나게 했다(창 1:6-10).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말씀대로 이 세상이 심판받을 것이 확실하다는 뜻이다.

물로 성립한 것의 헬라어 (디 휘다토스)는 \"물을 통과해 성립한 것\"이라는 뜻이다. 친지 창조 때에 물과 물을 갈라내어 땅이 드러난 것을 가리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졌다.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천지가 말씀대로 창조된 것을 믿는다면 세상을 심판한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는 말씀도(마 24:30-51)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 심판을 믿지 않는 것은 천지가 말씀대로 창조된 것도 고의적으로 잊으려고 하는 태도이다.

 

. 3:6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로 말미암아의 헬라어 (디혼)은 \"이들로 말미암아\"의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물이 창조된 것과 말씀대로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땅이 심판받을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다. 노아 시대에, 세상이 물로 심판받은 것은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증거하고 있다.

 

.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세상 끝에는 하늘과 땅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불 심판을 받아 불사름이 될 것이다.

동일한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고 노아 시대를 심판한 것과 동일(同一)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천지가 말씀대로 창조되었고 말씀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 그리스도께서 말세에 말씀대로 재림하시면 경건치 않은 자들을 심판하여 멸망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와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때까지만 보존될 것이며 영존할 것이 아니다.

 

四. 재림의 시기와 형편 (8 -10)

 

.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다.

하루가 천년 같고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이 회개하기를 하루가 천년 같이 기다리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성도들이 회개하고 말씀대로 바로 서기를 하루를 천년 기다리는 것처럼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천년이 하루 같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경건치 않은 자들을 심판하는데 있어서는 천년을 하루와 같이 참아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을 즉시 심판하셨다면 우리가 벌써 다 멸망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오랫동안 참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다.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반드시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회개하여 바로 서기를 기다리신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신다.

김 의홍 목사는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씀에 의하여 천지를 창조한 육일 후에 일일 안식일이 있었으니 창세 후 육천년에 세상이 종결되고 일천년간 안식(천년 왕국)이 있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우리는 김 의흥 목사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으나 참고로 할 수는 있을 것이다.

 

.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의 재림을 믿지 않고, 믿는 성도들도 초대 교회 때부터 오신다는 그리스도가 이천년 동안 오시지 않았으니 속히 오실 것이 아니다 라고 하며 재림 신앙이 해이해지고 고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주님의 재림은 더딘 것이 아니다. 속히 오실 줄을 믿어야 바른 신앙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며, 때가되면 속히 오신다.

아무도 멸망치 않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불택자까지 멸망치않도록 기다린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하나도 멸망치 않고 모두 구원을 받도록 기다리고 계신다는뜻이다.

 

.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날이다. 도적이 언제 올지 모르는 것처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도 뜻하지 않은 날, 생각하지 않은 때에 갑자기 오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이 오늘에 오시지 않을까?\"하고 매일 고대해야 된다. \"오늘은 오시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는 자는 \"주님이 도적 같이 오신다\" 는 말씀을 믿지 않는 자이다. 왜냐하면 도적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이 도적같이 오실 줄을 믿고 항상 깨어 준비하며 기다려야 된다.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죄악의 하늘, 죄악의 땅이 다 불에 타서 풀어진다는 것이다(계 21:1 참조). 옛날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와 같이 실제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하늘의 공기와 땅이 다 불에 타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또 이 불 심판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핵무기를 하나님이 이용하여 심판하실지도 모른다. \"하늘\"은 이 세상의 큰 세력들을 가리키고, \"체질\"은 국가나 세상 단체나 조직체나 집단들을 가리키는데 예수님 재림시에는 그것들이 다 심판 받아 떠나 가기도 하고 깨어지고 해체되어 멸망할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체질이 깨져 나갈때에 선악간에 모든 것이 숨김없이 다 드러난다는 것, 또는 하나님이 창조한 본래의 정체대로 본질, 본 성품대로 돌아갈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五. 재림의 준비 (11-14)

 

. 3:11-12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볼에 녹아지려니와

현세의 땅은 불 심판을 받아 체질이 녹아지고 풀어지고 말 것이므로 성도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사모해야 한다. 거룩한 행실은 죄에서 떠나서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생활이다.

말세에는 노아 시대와 같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 가고 장가 가고, 사고 파는 생활을 하다가 멸망한다. \"먹고 마신다\"는 것은 먹자주의로 나간다는 것이요, \"시집 가고 장가 간다\"는 것은 정욕을 따라 음란 방탕한 생활하는 것을 말하며, \"사고판다\"는 것은 물질 위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믿음을 지키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나 성도는 그러한 죄 가운데 빠지지 말고, 세상 중심, 육신 중심, 물질 중심 생활에서 나와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던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순종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로마서 8:5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했다. 성도가 육신을 따라 살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으며 그 결과는 사망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영으로 살아야한다.

하나님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는 날이다. 그 날을 바라보며 슬기있는 다섯 처녀와 같이 기름을 준비하고 사모하며 기다리는 성도가 복이 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가 맞기를 원했으나 기름 준비를 못했기 때문에 낭패를 당했다.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죄악의 하늘, 죄악의 땅은 모두 불심판을 받아 멸망한다는 것이다.

 

.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의 약속대로 예수님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이 건설될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해 주셨다(계 21:1, 사 65:17, 마 24:30-32). 그 약속대로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이다. 거기에는 죄인이 거하지 못하고 의인만 거하게 된다.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 새 하늘과 새 땅은 의인만이 거하는 땅인데 \"의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된 자와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를 가리킨다. 로마서 13:14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 준비를 잘하여 죄를 점점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나아가야겠다(롬 13:12-14).

 

.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고 있는 성도가 결점과 흠이 있다고 하면 심령이 평안치 못할 것이다.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신자가 현세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 신앙에 서서 영적 안식을 누리며 심령의 평안을 누려야 된다. 죄를 범하는 자들은 현세에서부터 심 령의 평안이 없고, 그것이 결점과 흠이 되어 주님 앞에 설 때도 부끄러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흠이 없는 사람이 없고 또 그것을 없애는 일은 뽕나무 뿌리를 뽑아 옮기는 것보다 더 힘이 든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서려고 힘을 쓰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것들이 점점 제거된다. 하나님은 힘쓰는 자에게 힘을 주시고 노력하는 자를 도와주신다.

 

六. 떨어질까 삼가고 자라나기를 힘쓰라 (15-18)

 

. 3: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주의 재림과 심판을 오래 참아 주시는 것을 어떤 자들은 오해하여 주의 재림과 심판을 부인하나 오히려 그것(참아 주심)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벌써 멸망하였을 것이나.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베드로는 끝으로 바울이 기록한 서신에 대하여 소개한다. \"이같이 썼고\"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예언을 가리킨다. 바울도 베드로와 같이 말세의 교훈과 재림과 심판에 대한 말씀을 기록 하였다.

 

.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모든 편지는 바울의 모든 편지이고, 이런 일에 관하여는 주의 재림과 심판에 관하여 말한 것을 가리킨다.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말세에 대한 예언은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올라 오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벧후 1:19해석 참조).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성경과 신령한 면에 대하여 무식한 자와 믿음이 굳세지 못한 어린 신앙의 성도를 가리킨다. 이러한 신자는 신령한 도리를 깨닫지 못한다. 고린도전서 3:1-2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했다. 신앙이 어린 신자들은 육에 속했기 때문에 육신중심으로 성경을 잘못 풀기 쉽다.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말세에 대한 교훈은 깨닫기 어려운 것이 많은데 그 말씀을 억지로 풀면 멸망을 받는다. 말세의 환난과 심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것은 어려운 말씀이며 때가 되어 그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어야 확실히 알 수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억지로 풀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 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무법한 자들의 미혹 성경이 하나님의 법이므로 무법한 자란 성경을 어기는 자,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자들은 전부 미혹하는 자들이다. 말세에는 이러한 자들이 많이 나와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도 미혹케 하려고 한다.

굳센 데서 떨어질까 미혹을 받으면 바른 진리를 굳게 믿던 신앙에서 떨어진다. 그러므로 성도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마태복음 24:4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말세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 제일 첫마디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말라고 하셨다.

 

.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사는 것처럼 성도는 항상 은혜 가운데 있어야 산다.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성도의 영은 자라나야 된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점점 자라나야 한다. 하나님은 무한하기 때문에 그를 아는 지식도 무한히 자라나야 한다. 또 지혜, 의, 거룩, 진실, 사랑과 선도 자라나야 한다. 이것들이 자라나는 것이 영이 자라나는 것이다.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영광은 하나님께만 영원히 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모든 것은 마침내 멸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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