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성경강해

요한 一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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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요한일서 1장

 

·기록한 사람 : 사도 요한

·기록한 연대 : 주후 90년경

·기록한 장소 : 에베소

 

 

제 1 장  영 교(靈交)

 

(대  지)

一. 생명의 말씀(1-2)

二. 증거의 목적(3-4)

三. 빛 가운데 행하라(5-7)

四. 각죄(覺罪) 회개(8-10)

 

(본문 강해)

 

一. 생명의 말씀(1-2)

 

.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태초 창조 시의 태초가 아니고, 영원한 태초를 가리킨다(요 1:1).  이 태초는 시작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태초, 즉 무시무종(無始無終)을 가리킨다.

생명의 말씀 말씀이 곧 생명이라는 뜻인데,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요한복음 1:1에 말씀( :로고스) 되신 그리스도께서 태초부터 하나님과 같이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고 했다.  성자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같이 계셨다.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한 것은 성자 그리스도께서 본체 되시는 성부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말(言)은 의사 표시(意思表示)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을 그리스도께서 실현시켜 다 나타내 주셨으므로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생명이시다.  요한복음 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의 본체시요 인간과 만물의 생명의 창조자시요 근원이시요 또 성도의 영적 생명이시다.

모든 생명이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잠시라도 존재할 수 없다.  특히 사람의 영혼은 그리스도와 단절되면 사망이요, 연결(연합)되면 산 영혼이 된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사도 요한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고, 그 말씀을 친히 들었고, 손으로 만져 보았다.  부활 전에도 그렇게 했고, 부활 후에도 그렇게 했다.  이것이 사도의 징표(徵表)요, 특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지 못한 자는 사도가 되지 못한다.  이로 인하여 사도의 증거는 확실하고 명백하며 견고하여 교회의 기초가 된다(엡 2:20, 고전 3:10).  그 확실한 증거를 하나님께서 사도와 그 수종자들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게 하였으니 곧 성경이다.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그 성경을 보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영생을 얻고(요 5:39), 그 신령한 뜻을 정확히 깨달아 체험하고, 체험한 그것을 전할 때에 권위가 있고 생명의 역사가 있다.

 

. 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나타내신 바 된지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이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다.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세상에 오신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도들이 친히 보고 증거하여 전했다.  그러므로 그 증거는 확실하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영원부터 성부와 함께 계시다가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의 신성과 인성이 결합하신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고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시킬 수 있다.

 

二. 증거의 목적(3-4)

 

.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정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사도들은 보고 들은 바를 전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그 증거는 확실하다.  또 그들은 보고 들은 참된 진리를 큰 환난과 핍박이 있더라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도행전 4:19-20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했고, 고린도전서 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했다.  성경 말씀을 영으로 깨달은 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하다(벧후 1:16-19참조).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깨달은 진리를 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복음 즉 예수그리스도를 전해 주는 것은 생명을 전해 주는 것이며 복음을 받는 자는 생명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자와 받는 자가 생명적인 사귐이 있게 되고 생명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성도는 이 생명을 자기 혼자만 소유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 주어야 할 사명이 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성도가 함께 모여 예배 드리며 신앙으로 교제하는 곳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신다(마 18:20, 눅 17:21).  그러므로 성도가 신령한 신앙으로 사귀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사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져 나아가는 하나님의 나라는 천년 왕국을 통과하여 영원한 천국에까지 계속되어 간다.  그러나 성도가 육신 중심으로 사교적으로 사귀는 곳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그 가운데 계시지 않는다.  그러한 사귐은 도리어 향락주의로 기울어지기 쉽고 마귀가 틈타기 쉽다.

 

.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이것은 1-3절에 기록한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과 성도의 교제와 그 교제 속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일이다.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말씀을 전해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다 기쁨이 충만하다(살전 1:6).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돌아올 때에 기쁨이 충만하였고 전도하러 나갔던 칠십 인도 기뻐 돌아왔다(눅 10:17). 복음을 전하면 왜 이렇게 기쁜가 ?

첫째, 땅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전도하라고 하신 주님의 분부를 순종해 드림으로 기쁘다.

둘째, 승리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전도자에게 권세를 주어서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시고 교활한 마귀의 세력을 이기게 해주시기 때문에 기쁨이 충만하다.

셋째, 영이 자라나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원수의 능력을 제어하고 말씀을 순종하며 전도할 때에 영혼이 자라나는 기쁨이 있다.  예수께서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고 하신 것도 영혼이 자라난 것으로 기뻐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순종하고 전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 일을 다른 일보다 먼저 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족을 작별한 다음이나 부친을 장사한 후에 이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다(눅 9:62).

넷째, 생명을 살려내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전도하여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생명을 살려내는 일이다.  그 생명을 살려내는 것은 자녀를 낳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다(요 16:20-21).

다섯째, 성도의 교제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시 16:3).

여섯째, 주님과 함께 교제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성도가 주의 이름으로 모일 때에 주께서 거기 같이 계시므로(마 18:20), 그로 말미암는 기쁨이 충만하다.  그러므로 육신에 얽매어서 믿는 일을 못하고 염려와 근심에 싸여 있지 말고 하나님을 순종하여 믿는 일을 하고, 전도하여 기쁨이 충만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

 

三. 빛 가운데 행하라(5-7)

 

. 1: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우리에게 전하는 소식 곧 복음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하나님은 영적 빛이요, 진리의 빛이요, 생명의 빛이요, 사랑의 빛이시다.  하나님 자체가 빛이요, 하나님의 세계는 빛의 세계이다.  거기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

어두움은 죄를 가리킨다.  욕심과 자기 중심적인 생활과 비진리와 인본주의는 다 어두움에 속한 것이다.  이러한 것에서 떠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다.  하나님은 그 빛을 비취어 주시고(요 1:5, 엡 5:14), 그 빛으로 성도들을 인도하신다.  그 빛 가운데 거하는 자는 태산 같은 시험과 험곡같은 난관을 믿음과 승리로 통과하며 천성을 향하여 달음박질한다.

 

.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는 자는 하나님과 사귈 수가 없다.  그 하나님은 빛이므로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기 때문이다(5절 해석 참조).  고린도후서 6:14에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말로만 하나님과 사귄다고 하는 자요 실제로는 하나님과 사귀지 못하므로 거짓말하는 자이다.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어두운 가운데 행하는 자는 진리를 행치 않는 자이다.  시편 119:105에 말씀을 빛이라고 했다.  빛 되신 하나님을 떠난 자는 흑암에 거하는 자이므로 빛 되신 하나님을 사귈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을 참으로 사귀지 못한 자는 진리를 행할 수가 없다.  이것은 빛과 어두움이 함께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 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려면 어두움에 처했던 것을 회개하고 빛 되신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영접하여 심령이 밝아져야 한다.  마태복음 6:23에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했다.  여기 눈은 심령의 눈을 가리킨다.  심령의 눈이 어두우면 온 몸 전체가 어두운 가운데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영으로 살며 진리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걸어갈 때에 참으로 하나님을 사귀는 생활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영적 생활을 하고, 말씀대로 살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빛 가운데 살아야 하나님과 성도를 참으로 사귀게 되는 것이다.

서로 사귐이 있고 성도가 성령 안에서 서로 교통함이 있다는 뜻이다.  성도간에 서로 영적 교통과 사랑의 교통이 있어야 한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성도는 믿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깨끗함을 받았고, 또 계속해서 깨끗케 되어 나가야 한다(요 15:2-3).  성도가 빛 가운데 거하여야 죄악의 세력에서 점점 벗어져 나오고 마음이 점점 깨끗해지고 몸의 행실도 점점 거룩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아가게 된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四. 각죄(覺罪) 회개(8-10)

 

. 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죄 없다고 하는 자는 스스로 속이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적 부패했으므로 죽을 때까지 옛 사람의 소행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잠언 20:9에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뇨\"라고 했고, 전도서 7:20에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않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고 했다.  또 로마서 7:18에는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했다.

스스로 속이고 사람이 양심을 쓰지 않고 외식한다는 뜻이다.  자기 속 사람을 보고, 신앙 양심을 쓰며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자기 속에 들보와 같은 죄(부패성)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도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고 했다(딤전 1:15).  그러므로 죄 없다고 하는 자는 겉 사람만 자랑하고 신앙 양심을 버린 자이며 자기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자이다.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어떤 사람이 자기는 \"성령 충만을 받았으므로 죄를 범치 않는다\"고 말하거나 자기 안에 \"죄가 들어오지 못하고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 그들 속에 진리가 없는 증거이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① 교만한 증거이며, ② 양심을 쓰지 않는 증거이며, ③ 속 사람을 떠나서 외식하는 증거이며, ④ 어두운 가운데 있는 증거이며, ⑤ 성경을 믿지 않는 증거이다.  성경에 기록된 거룩한 성도들도 일생 동안 죄와 더불어 싸웠다(딤전 1:15, 잠 20:9-10, 전 7:20, 마 7:4, 사 64:5,6 참조).  디모데전서 1:19에 양심을 버린 사람은 믿음이 파선된 자라고 했다.  성도는 언제나 진실하여 선한 양심을 가지고 옛 사람과 계속하여 싸워 나아가며 옛 사람을 제거해 나아가야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가 있고, 진리도 깨달을 수 있다.

 

.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성도가 날마다 죄를 발견하여 죄를 자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자의 죄를 기쁨으로 사해 주시고 불의와 그 죄악의 세력도 제거시켜 주시고 점점 깨끗케 만들어 나가신다. 잠언 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자기 죄를 발견하여 자복하며 늘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 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

누구든지 범죄치 아니하였다고 하면 자기를 속이는 자요, 또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에 자기가 죄를 범한 것이 분명하고 예수를 믿은 후 지금도 자기 속에 부패한 옛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전 7:20, 롬 3:10, 갈 5:19, 막 7:21-22).  죄가 없다고 하는 자들은 성경 말씀을 부인하고 외식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성경을 말하고 가르치는 것은 자기들의 이(利)를 삼으려는 것 뿐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것이다(렘 23:30).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요한일서 2장

 

제 2 장  영 지 (靈知)

 

(대  지)

一. 신자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받음(1-2)

二. 하나님을 아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임(3-6)

三. 형제를 사랑하라(7-11)

四. 각 신자의 정도대로 권면함(12-14)

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15-17)

六. 적그리스도를 주의하라(18-23)

七. 영생의 생활(24-29)

 

(본문 강해)

 

一. 신자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받음(1-2)

 

.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나의 자녀들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입장에서 성도들을 자기 자녀처럼 사랑하는 심정에서 하는 말이다.  사도요한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 나이가 많았으므로 연령으로 보아도 성도를 가리켜 자녀라 할 만하고, 또 신앙의 입장에서도 자녀라고 부를 만하다.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 요한이 본서를 기록하는 목적은 성도로 하여금 죄를 범치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자주 권면하시고 교훈하시는 것도 성도로 하여금 죄를 범치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소극적으로 죄와 싸우는 일과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는 두 면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 성도가 적극적으로 의를 행할 때에는 죄가 물러간다(벧전 4:1, 창 4:7).

대언자의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보혜사, 대언자, 변호자, 위로자라는 뜻이 있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의를 이루어 주셨고, 구속을 이루어 주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대언자 역할을 해주실 수가 있다.  요한복음 14:16, 26, 15:26, 16:7의 보혜사는 성령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내 주시고 성취해 주신 모든 진리를 성령께서 우리에게 알게 해주시고 믿게 해주시기 때문에 보혜사를 대언자라고 부른 것이다.

 

.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예수님은 우리와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되셨다(롬 8:32, 요 1:29).

온 세상 꼭 전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여러 곳에서 온 많은 사람들을 온 세상이라고 했다(요 12:19참조).  그러므로 온 세상의 죄는 세상 각처에 있는 택한 모든 백성의 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택한 백성의 죄를 위하여 피 흘려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이다.  불택자는 속죄와 구원의 은총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택한 백성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은혜와 축복이 어느 정도는 불택자에게도 미치게 된다.  예를 들면 성도를 통하여 비추어 나가는 하나님의 빛을 볼 수 있고 성도에게 주신 축복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심판의 연기와 자연 은총의 축복에 참여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 구절의 말씀으로 무제한 속죄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경에는 분명히 택자와 불택자가 있고, 곡식과 가라지, 양과 염소의 구별이 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불신자까지를 위해서 피를 흘렸다고 하면 믿지 않고 죽는 자들을 위하여 흘린 피는 효력이 없는 피가 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주장은 그리스도의 피를 무능한 피로 만드는 극히 잘못된 주장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택한 백성의 죄를 위하여서만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이 분명하다.

 

二. 하나님을 아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임(3-6)

 

. 2:3-4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알게 되면 말씀을 지키게 된다.  이는 왕을 아는 자가 왕명을 지키는 것과 같다.  왕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왕이 어떠한 자인지 모르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자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하여 벌주시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기뻐하여 상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에 기쁨으로 그 계명을 지키게 된다.  세상 왕의 권세를 아는 자도 왕의 말을 두려워하여 그 명령을 지키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권세를 아는 자가 어찌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을 가리킨다(요 15:10).

 

.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누구든지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지키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이 그 사람 속에서 온전케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이요 생명이요 능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하나님의 사랑이 속에서 역사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성도가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영적 교통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 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행한 대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고 그 계명을 지키기 때문이다.

 

三. 형제를 사랑하라(7-11)

 

. 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바 말씀이거니와

옛 계명은 구약의 계명을 가리키며 그 계명의 대지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옛 계명 자체가 사랑을 가리킨다.  신명기 6:5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고, 레위기 19:18에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였다.  사랑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마 22:34-40, 막 12:30-31, 눅 10:37).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요 13:34-35)인 사랑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 사랑은 또한 옛 계명도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것을 너희가 처음부터 들었다고 상기시킨다.

 

.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여기 새 계명도 사랑이다.  요한복음 13:34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  사랑하라는 옛 계명을 다시 새 계명으로 예수님이 주셨다.  새 계명이라고 한 이유는 예수께서 그 계명(사랑)을 완성시켰고, 그 사랑을 완전히 나타내 주었고, 예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사랑을 우리에게 입혀 주셨기 때문이다.

저에게는 주님에게 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사랑을 완성하시고, 그 사랑을 새 계명으로 성도들에게 주셨기 때문에(요 13:34) 참된 것이다.

너희에게 너희는 주님을 믿는 성도를 가리키고 있다.  성도는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여 그리스도와 새로운 사랑의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참으로 사랑할 수 있다.

참된 것은 참된 사실, 즉 실재(實在)라는 것이다.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참 빛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없는(불신앙) 어두움의 시대가 지나가고, 참 빛 되시는 그리스도가 와서 비춰 주시기 때문에 사랑이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5:14에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참 빛이 광명하게 비취는 신약 시대에 모든 어두움에 있는 자들을 이 빛으로 나오라고 초청한다.  또 잠자고 있는 성도들도 속히 깨어 빛의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빛의 세계와 사랑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와 성령의 세계와 중생한 영의 세계는 동일한 세계이다.  그러므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이미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이다.  왜냐하면 미움은 어두움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 2: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가운데 있는 자요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이다.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속사람(중생한 영)이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중생한 영은 본질이 사랑이며 그 사랑이 계속하여 나오게 된다.  그 사랑의 순리대로 형제를 사랑하였으므로 아무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형제를 미워하는 성도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는 자이다.  그는 빛을 버렸기 때문에 흑암 속에서 헤매며 불안과 답답함과 곤핍을 당하게 된다.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자기가 마땅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과 자기가 행하는 바 그 결과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심령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뜻이다.  어두운 가운데서 어두운 일을 하게 되면 심령의 눈이 어두워져서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한다.  이러한 교회와 교역자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니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진다(마 15:14) .

 

四. 각 신자의 정도대로 권면함(12-14)

 

. 2:12-13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여기에서 사도 요한은 자녀들, 아비들, 청년들을 연령적으로 나누어서 각각 권면하였다.

자녀들아 교회 안에 나이가 어린 유년이나 소년들에 대한 권면이다.  쓰는 것은 본서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교리, 즉 죄가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 얻는 것을 말하여 그 사죄의 은혜를 감사하라고 권면한다.

이름으로 이름은 본체(本體)나 인격을 가리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아비들아 노인 성도들, 특히 원로(元老)들을 가리킨다.  노련한 성도들의 특징은 진리를 많이 아는 것이다.

태초부터 계신 이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나이 많은 성도들은 오랫동안 많이 듣고 배웠으므로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알고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귀한 것이니 감사하며 그 진리에 굳게 서 나아가라는 권면이다.

청년들아 교회에서 나이 젊은 성도들을 가리킨다.  젊음의 특징은 힘이다(잠 20:29 참조).  그 힘을 신앙 생활에 바로만 쓰면 기도도 많이 할 수 있고, 성경도 많이 읽을 수 있고, 전도도 많이 할 수 있고, 신앙의 달음박질도 잘 할 수 있다.

악한 자를 이기었음 악한 자는 마귀를 가리킨다.  젊은 사람들이 그 힘과 정력을 신앙 생활에 기울일 때에 악한 자들의 시험을 용맹 있게 이기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감사하며 더욱 힘써 싸워 나가라는 권면이다.

 

.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본 절의 아이, 아비, 청년은 영적 자격과 신앙의 정도를 따라 구분한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같은 사건을 연속하여 반복 기술할 리가 없고, 청년들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속에 거한다는 것을 보면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하는 용맹있는 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쓴 것은 본 절의 앞부분과 요한복음을 가리키는 것 같고 12-13절에 \"쓰는 것\"이라고 한 것은 본 요한일서를 가리키는 것 같다.

아이들은 아비들, 청년들과 3구분으로 나눈 것과, 또 권면의 내용이 초보적인 것을 보아 본 절의 아이들은 신앙이 어린 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고전 3:1, 히 5:12-14 참조).  신앙이 어린 신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요한복음 17:3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생을 얻었으니 그것을 감사하며 신앙 생활을 더욱 잘하라는 것이다.

아비들아 신앙의 부로급(父老級)에 있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비록 소년이라도 신앙이 장성(영이 장성)한 성도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우고, 그 말씀 속에서 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 하나님을 알되 태초부터 계신 이로, 즉 근본적으로 알고 있는 자이다.  다윗은 소년 때에 골리앗을 이겼다.  이런 신자는 교회에서 귀히 여겨야 된다.  이들 중에는 교역자나 장로나 교사나 교회의 지도급에 있는 자들도 많을 것이다.

청년들아 믿음이 젊은 신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용맹 있는 성도들이다.  사무엘은 노년에도 이러한 신앙을 가졌다.  이러한 성도는 극히 강하고 담대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속에서 살아 역사하며, 흉악한 마귀의 궤계와 시험을 잘 이긴다.  그들에게 더욱 분발하여 전진하라는 권면이다.  시편 기자는 늙을 때에 신앙이 약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시 71:9-12).  이 같은 신자는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고 천하 만국의 모든 권세를 쳐서 부숴뜨리는 산 돌이신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연합되어 그로 말미암아 싸움을 싸우는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을 승리하는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가 그 힘을 힘입고 적극적인 청년의 신앙으로 힘써 싸우며 달음박질하여야 하겠다.

 

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15-17)

 

.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 하나님을 떠난 죄악 세상을 가리킨다(약 4:4).  다음 절(16절)의 내용을 보면 죄악 세상임이 확실하다.  사람이 세상의 물질(돈)을 사랑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다(딤전 6:10).  예수께서도 사람이 재물을 사랑하는 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고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마 6:24).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것은 사랑할 바가 아니다.

육신의 정욕 육신으로 좇아 나는 정과 욕심인데,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육신의 부패성이다.  하와가 선악과를 볼 때에 \"먹음직\"한 것은 육신의 정욕이다(창 3:6).

안목의 정욕 대외적인 것을 육신의 눈으로 볼 때에 일어나는 욕심이다.  하와가 선악과를 볼 때에 \"보암직한 것\"이 안목의 정욕이다(창 3:6).  마귀가 예수님에게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준 것 역시 안목의 정욕의 시험이었다.

이생의 자랑은 이 세상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준 것이다.  그것을 받았으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합당하다.  그런데 그것을 자랑하고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행위이다(사 39:4-6).  다윗이 인구 조사한 것도 국민의 수(국력)를 자랑하고 의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죄가 되었다(삼하 24:10, 대상 21:8).  또 세상의 것을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청지기의 위치를 떠난 교만이다.  이 세 가지 욕심은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다.

세상으로 좇아왔다는 것은 마귀로 좇아 왔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3:8, 5:19에 세상은 다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해야 된다.  갈라디아서 6:14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1:31에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없어진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잠깐 후에는 다 지나간다.  특히 세상은 주님이 재림하시면 반드시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이다.  베드로전서 1:24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은 무상하나(잠깐 지나가는 허무한 세상)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이 견고하며 금, 은, 보석으로 지은 집이 되어 하늘 나라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六. 적그리스도를 주의하라(18-23)

 

.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아이들아 본 절의 아이들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 듯하다.  왜냐하면 다음에 나오는 교훈과 권면이 모든 성도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 그리스도가 많이 나오는 때가 마지막 때라는 뜻이다.  마태복음  24:11, 24에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난 그때가 마지막 때이다.  초대교회 시대에도 적 그리스도가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때인 줄 알았으나 그때는 적그리스도가 오늘날과 같이 많이 나타난 때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예수님의 예언대로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가 많이 나왔다.

어떤 자가 거짓 선지자인가?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자가 거짓 선지자이다.  어떤 자가 거짓 그리스도인가?  자기가 예수라고 하거나 혹은 자기를 예수님의 자리에 승격시켜서 예수님이 받을 대접과 영광을 자기가 받는 자이다.  이들은 물론 성경을 떠난 자이다.  어떤 자가 적 그리스도인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를 대적하는 사람, 단체, 사상, 국가 등이다.  이들도 물론 성경을 떠난 것이다.  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했다(22절).

오늘날 신신학자들과 그릇된 신비주의자들과 성경 말씀을 내놓고 믿는 세속주의자들이 거짓 선지자이다.  통일교의 문선명이나 자기를 가리켜 감람나무, 혹은 횐 돌, 혹은 인 뗀 자, 또는 예수님의 전권대사라고 하여 자기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자들이 다 거짓 그리스도이다.  이러한 자들이 오늘날 많이 나와 있다.  또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가 참으로 마지막 때가 다 되었다.

 

. 2: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바른 교회와 바른 진리를 배반하고 나간 자들을 가리킨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바른 교회와 바른 진리를 배반하고 나간 자들은 바른 교회에 속하지 아니한 증거이다.  만일 그들이 진리에 속하였다면 그 진리에서 떠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간 것을 보면 참 진리에 속하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다.

 

.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거룩하신 자는 성부 하나님이시다.  고린도후서 1:21에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다.

기름 부음은 성도의 중생한 영 안에 내재하는 성령과 진리의 역사를 가리킨다.

모든 것을 아느니라 중생한 자의 심령에 있는 진리와 영감의 역사로써 하나님과 참 진리를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를 알 수 있고 비진리를 분별할 수 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신앙 양심을 쓰고 영으로 살 때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 나가게 되고 참 진리가 자기 생명의 양식이 된다.  비진리는 자기의 영적 생리에 맞지 않고, 또 생명의 양식도 못되고, 힘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비진리를 반대하고 떠나게 된다.

 

. 2: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본서를 쓰는 목적을 또 한 가지 밝힌다.  본서는 불신자에게 쓰는 것이 아니고 성도에게 쓰는데, 그 목적은 적 그리스도에게 미혹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쓴다는 것이다.  이미 진리를 아는 자들에게 진리를 더 깊이 가르치고 권면하여 앞으로 어떠한 미혹이 와도 미혹 받지 않게 하는 것이 인도자의 책임이요 의무이다.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성령도 참이요 진리도 참이요 성도의 영도 참이므로 모든 거짓과는 반대하여 싸우게 된다.  거짓을 용납하면 모든 참은 생명력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고, 그리스도와 사단이 같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 2: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여기 거짓말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바로 말하지 않고 잘못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잘못 가르치는 자 전체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더라도 구원받으려 면 오순절 성령을 다시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방언을 해야 된다고 주장하거나, 자기의 인도(가르침)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신신학자들과, 해방 신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는 자이다.

 

. 2: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아들을 부인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아버지도 없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 10:30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없고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 라야 아버지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못된 교리를 주장하는 자들은 믿는다고 해도 그 속에 아들도 없고 하나님도 없다.  그들은 실제로 그리스도와 아버지가 없는 자이다.

 

七. 영생의 생활(24-29)

 

. 2: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처음부터 들은 것은 본서 1:1-3에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복음이다.  생명 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에 받아서 그 말씀으로 살면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할 수 있다.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며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힘입어 그 말씀대로 산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진리가 성도 안에 거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8:31-32에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였다.  또 요한복음 14:23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했다.  성도는 진리를 마음으로 받아 믿고 그 말씀에 거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그 사람과 함께 하신다.

 

. 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그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영원한 생명이다.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에게는 영원히 사는 영적 생명을 벌써 주셨고, 그 생명이 말씀으로 계속 자라나고, 장차 친국에 가서 영생 복락을 얻는다.

 

. 2:26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본서를 쓰는 목적을 또 다시 밝힌다. 그 목적은 성도들이 미혹하게 하는 자를 삼가 조심하여 미혹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 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기름부음은 성도의 중생한 영 안에 내재하는 성령과 진리의 역사를 가리킨다.  성도에게는 이 기름 부음이 있으므로 깨어 그 인도대로 살면 진리를 분별하게 되고 바른 길을 걷게 된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진리에 어긋나는 것은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진리는 그 기름 부음에 적합한 것이요, 또 기름 부음의 역사이니 얼마든지 배우고 전진하여야 한다.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그의 기름 부음이 성도에게 바른 길을 걷게 하며, 하나님을 바로 섬기게 한다는 것이다.  또 바른 진리를 깨닫게 한다는 뜻이다.  이런 성도는 성경을 계속 배워 나가게 된다.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기름 부음이 가르친 그 진리대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미혹을 받지 않고 생명의 세계에서 전진할 수가 있다.

 

. 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 거하라 윗절 끝에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는 것이다.  진리와 주 안에 거하는 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 담대함을 얻고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주님 재림할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으며 기쁘고 즐거움으로 담대히 주님을 영접하는 자는 복 있는 자이다.  미혹을 받거나 세상에 빠져 믿는 일을 잘못하면 그 앞에 담대함을 얻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당한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미혹 받지 않고 믿음을 잘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 2: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하나님을 사귀려면 의를 행해야 된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므로 하나님을 사귈 수가 없다.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그에게서 난 것은 중생한 것을 가리킨다.  성도는 진리와 영감으로 중생했기 때문에 성도의 영이 성령의 인도대로 행할 때 의를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의 본능으로 의를 행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난 자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름 부음이 모두 의롭기 때문이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요한일서 3장

 

제 3 장  자 녀

 

(대  지)

一. 하나님의 자녀(1-3)

二.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음(4-9)

三. 마귀에게 속한 자(10-12)

四. 서로 사랑하라(13-18)

五. 사랑하는 자가 주께 받을 복(19-24)

 

(본문 강해)

 

一. 하나님의 자녀(1-3)

 

.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보라는 감탄사로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을 주셨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고 깨달아 알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러하도다는 자녀라는 이름만 붙여 준 것이 아니라 실제 자녀가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과거에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었고(롬 5:8),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치 못할 자들이었다.  이리와 타조 같이 잔인하고 무자비하고(사 43:20), 버러지와 같이 미천하고, 더러운 자들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 우리를 불러 중생시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다.

그러므로 단순히 자녀라는 명분만 주신 것이 아니고, 아들의 생명과 아들의 권세를 주셨고,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하늘 나라의 기업은 썩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며,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기업이다.  또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면서 늘 보호해 주신다(시 121:1-8).

우리가 이렇게 큰 사랑과 은총을 입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인 줄 알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알 리가 없다.

 

.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 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현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나타내실 때에는 우리가 그와 같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빌립보서 3:21에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땅 위에 있는 성도는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어 공중에 들림을 받고, 거기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그러나 부활한 성도의 영광이 그리스도와는 차이가 크다.  이것은 마치 태양 빛과 전등 불빛과 같은 차이이다.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하고 성경을 통하여 거울로 보는 것 같이 보고 있으며 영적으로만 교제하고 있으나 주의 재림시에는 얼굴을 대하여 직접 보게 된다.  그때에는 사모하던 예수님을 계신 그대로 보게 되고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성은 무한하므로 무한히 그를 발견하고 알아 나가야 할 것이다.

 

.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이 소망은 예수와 같이 되는 소망이다.  예수님과 같이 될 소망을 가지고 계속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모하는 자는 예수님을 닮아 가는 일을 하게 된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성도가 믿음으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나 중생한 영이 자라남으로 점점 더 깨끗해진다.  깨끗은 거룩과 일맥 상통하는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도덕적 형상 가운데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죄는 더럽고 부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죄와 더불어 싸우며 성결을 이루어 나가면 의도 이루어지고 영적 능력과 지혜와 지식면도 자라나게 된다.

이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성도는 환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키게 된다.  그 성도에게는 성령과 사랑의 능력이 역사하므로 그 능력으로 승리하며 소망을 이루게 된다(롬 5:2-5).

 

二.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음(4-9)

 

. 3:4-5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은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죄는 불법이라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인 성경 말씀을 어긴 자는 다 죄인이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죄 없으신 몸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홀려 죽으셨으며,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

 

. 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 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성도의 영이 성령을 힘입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교통하며 살 때는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육신의 정욕대로 살 때는 범죄하게 된다(롬 8:5-6참조).  로마서 8:13 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이것은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는 말이다.  이는 성경을 어기고 죄를 거침없이 범하는 불신자들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과 그 추종자들을 가리킨다.

 

. 3:7-8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성도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는 자는 전부 미혹시키는 자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의를 행하게되고, 마귀에게 속한 자는 죄를 범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은 본체가 의롭고,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한 자요, 모든 죄악의 근본이기 때문이다(요 8:44, 창3장 참조).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하나님께 속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는 점점 의를 이루어 의로우신 하나님을 닮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성도로 하여금 마귀의 일, 즉 죄를 범하는 일을 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의를 이루어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성도는 죄를 떠나고 의를 행하여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겠다.

 

.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도리를 가르칠 때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요 3:5).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 범죄하지 않는가?

 

一. 성도의 중생한 영은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했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베드로전서 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다.  또 누가복음 8:11에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성도의 중생한 영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중생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은 다시 죽지 않고 범죄하지 않는다.  박윤선 목사는 \"그리스도 신자의 인격은 성경 말씀대로 보아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으니 곧 옛 사람과 새 사람이다(엡 4:22-24).  새 사람은 거듭난 생명이니 그것은 범죄할 가능성도 없다.  그러나 신자라도 혹시 불행하게 범죄하게 되는 것은 옛 사람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했다(박윤선 저 요한일서 주석 Page 362-363 참조).

하나님께로 났음이라 중생한 영은 하나님께로서 난 새 생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새 생명은 범죄하지 않는다.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성도는 상습적으로 범죄치 않는다(가끔 실수하여 범죄할 수 있다고함)\"고 해석하는 분들이 있다.  이 해석은 범죄치 않는다는 뜻으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실수하여 범한 죄도 범죄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실수하여 간음이나 살인을 하였으면(상습적이 아님) 그 사람이 간음이나 살인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중생한 성도는 절대로 범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완전주의자들의 주장도 잘못된 것이다.  중생한 성도라도 새 사람으로 살 때에는 범죄하지 않으나 옛 사람으로 살 때에는 범죄한다.

 

二. 중생한 영 전체가 다 산 영이요 새 생명이다.

로마서 8:10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했다.  이것은 성도의 몸은 아직 죄와 사망 하에 있으나 성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전체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로마서 8:23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했다.

여기 몸의 구속이란 성도의 영은 살아났으나 몸은 아직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성령과 중생한 영이 합력하여 몸을 죄에서 건져내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영을 중생시킬 때에 일부만 살렸을 리가 없다.  성도의 영이 만일 일부분만 살고 일부분은 죽어 있다고 하면 성도의 영은 산 것도 아니요 죽은 것도 아니다.  또 성도의 영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된다.  한 사람의 영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없다.

성도의 영이 일부라도 죽어 있다고 말한 것을 성경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에베소서 2:1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고, 요한복음 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다.  여기서 성도의 영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겼다고 했다.  에베소서 2:6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다.  여기서는 성도의 영은 벌써 하늘에 올라가 앉았다고 했다.

성도의 영이 일부만 살았다고 하면 죽은 부분은 하늘에 앉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성도의 영이 일부분(살아있는 부분)만 하늘에 앉아 있고, 죽은 부분은 하늘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논리적으로도 모순되고 성경에도 맞지 않는다.  요한복음 11:26에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의 중생한 영은 영 전체가 다 살아난 것이요 그 영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새 생명이다.

 

三. 옛 사람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갈라디아5:19-21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자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5:16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마가복음 7:21-23에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했다.  여기 모든 죄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곧 욕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4:22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라고 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육체의 욕심, 육체의 정욕, 육체의 소욕을 옛 사람 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범죄하는 옛 사람은 육체의 욕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四. 육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육체의 원어는 (씩스)라고 하는데 성경에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마태복음19:5 \"그 둘이 한 몸( )\", 골로새서2:5 \"육신( )으로는 떠나 있으나\", 히브리서 12:9 \"육체( )의 아버지\", 요한복음 6:53 \"인자의 살( )을 먹지 않고\", 요한복음 6:55 \"내 살( )은 참 양식\", 로마서 1:3 \"육신( )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셨고\", 로마서 9:5 \"육신( )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고\",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 )이 되어\" 등의 모든 성구를 보아 육체( )는 부패성이 아니고, 살(肉)이나 몸을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이 육체를 몸이 아니고 부패성이라고 하게 되면 예수님도 부패성이 있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므로, 육체( )는 부패성이 아니라 살(肉)이나 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육체의 욕심과 육체가 가지고 있는 악한 성품과 육체의 소욕과 육체의 정욕이 옛 사람이다.

성경에는 성도의 마음이 두 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로마서 7:25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했다.  에베소서 5:19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하였다.  성도에게 악한 마음이 있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마음이 있다.  마음은 하나인데 중생한 영에게 이용될 때는 선한 마음으로 나타났고, 육체의 부패성에게 이용될 때는 악한 마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성도의 한 인격 안에 새 사람(중생한 영)이 있고, 옛 사람(육체의 부패성)이 있다.  성도가 새 사람을 따라 살 때에는 그 마음에서부터 죄를 떠나게 된다.

 

五. 중생한 영은 자라난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다.  히브리서 5:13-14에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고, 마태복음 5:48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했다.  이것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같이 온전해진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온전을 목표로 하고 달음박질하며 계속 자라나는 면을 말한 것이다.  중생한 영이 자라난다는 것은 물체가 자라나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그 속성들이 자라난다는 말이다.

성도는 중생할 때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진실과 거룩과(엡 4:24) 지식(골 2:10)과 능력과 지혜(고전 1:30)와 선과 사랑을 받았다.  성도가 이것들을 점점 덧입어 나아가야 된다(롬 13:14).  덧입은 것만큼 의와 진실과 거룩과 지식과 지혜와 능력과 선과 사랑이 커진다.  이러한 영의 속성들이 커지는 것이 영이 자라나는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나가야 한다(갈 4:19).  그리하여 성도가 죽을 때는 옛 사람을 다 벗어 놓고 자라나서 온전히 거룩하게 된 그 영이 하나님 앞으로 간다.  요리 문답 제37 문답에 \"신자가 죽을 때 그 영혼(Soul)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며 즉시 영광에 들어가고\"라고 한 것도 이 같은 내용과 같다고 볼 수 있다.

 

六. 성도가 범죄한 것을 중생한 영이 책임지는 문제

성도가 범죄하는 것은 언제나 옛 사람의 소행이고, 새 사람 즉 중생한 영의 소행은 아니나 그 범죄한 것을 중생한 영이 책임을 지고 탄식하며 같이 회개한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책임지고 대신 형벌 받으시고 대신 의를 행한 것과 같다

 

七. 로마서 7:15-25에 대한 고찰

로마서 7:15에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라고 했는데, 여기 \"나의 행하는 것\"을 \"옛 사람이 행하는 것\"을 가리키고,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은 \"중생한 영이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로마서 7:17에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했는데, \"이것을 행하는 자\"는 \"옛 사람이 행하는 것\"을 가리키고, \"내가 아니요\"한 것은 \"중생한 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한 것은 \"옛 사람 속에 거하는 죄의 부패성\"이라는 말이다.

로마서 7:19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했는데, 여기 \"내가 원하는 바 선\"은 성도의 새 사람(중생한 영)은 선을 원하고 있으나 옛 사람(부패성)은 악을 행한다는 것이다.

성도가 악을 행할 때 중생한 영은 반대하고 양심에 가책한다.  범죄한 후에도 중생한 영은 계속하여 반대하고 책망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범죄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심령이 괴로워서 회개하게 된다.

로마서 7:23에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했다.  여기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란 \"육체의 부패성\"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성도가 범죄하는 것은 옛 사람(육체의 정욕, 부패성)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八. 영이 범죄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구들에 대한 고찰

1. 고린도후서 7:1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라고 했다.  본 절 초두에 \'그런즉\'이라고 한 것을 보아 6장 후반부와 연속되는 말이다.

\"육과 영과 온갖 더러운 것\"이란 6장에서 말한 불법, 어두움(6:14), 벨리알, 믿지 않는 자(6:15), 우상(6:16) 등을 가리킨다. 여기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은 성도의 영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외부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가리킨다.  만일 그것들이 성도의 안에 있는 것들이라고 하면 육과 영의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라고 하지 않고, 자신의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깨끗케 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2. 미가 6:7에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라고 했다.  미가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대변자로서 이스라엘 전 백성을 대표하여 한말이고, 자기 개인에 대한 말이 아니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지 않고 영혼의 범죄(불신자는 영혼이 범죄로 죽어 있음) 한 것을 위하여 번제나 수송아지나 수만 강수 같은 기름이나 몸의 열매인 자녀를 드려도 안되고 오직 공의를 구하고 인자를 행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뿐이라는 뜻이다(8절).

또한 시편이나 다른 성경에 영혼이 상한다, 낙망한다는 말이 있는데(시 77:3, 142:3,4, 시 42:5), 중생한 성도의 영이 범죄한다는 뜻이 아니며, 다만 성도가 범죄한다는 말이거나 성도가 범죄할 때 영혼이 탄식하는 뜻일 것이다.

 

三. 마귀에게 속한 자(10-12)

 

.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리라

여기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을 분별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중생한 영이 있으므로 심령 속에서부터 의와 사랑이 나오고, 마귀의 자녀들은 중심에 의가 없고 사랑이 없으므로 마귀의 충동을 받아 불의와 미워함이 나온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이다(요 8:44).

 

. 3:11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성도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속에 있는 사랑을 쓰는 것이니 이로 인하여 자신이 점점 자라나고 남도 살려내게 된다.  이 사랑의 계명은 복음을 받을 때 처음부터 들은 것이다.  이는 복음의 중심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 3: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가인이 자기 행위는 악하고 아우의 행위는 의로우므로 자기의 악이 드러나기 때문에 죽인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기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우의 제사는 받았으므로 시기가 일어나 분을 품고 죽인 것이다.  참 성도에 대한 핍박도 이렇게 일어난다.  불의하게 나가는 자는 의롭게 나가는 자로 인하여, ① 자기의 악한 행위가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미워서 핍박한다.  ② 의를 행하는 성도는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옳은 자로 인정받고 자기들의 행위는 악행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시기하여 분을 내고 핍박한다.

유대인들도 예수님은 그의 의가 드러나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고 자기들은 불의하여 모든 사람에게 악한 자로 드러나게 되었으므로 시기하여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인 것이다.

 

四. 서로 사랑하라(13-18)

 

. 3: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성도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하고 세상을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하고 핍박한다.  요한복음 15:19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하였다.  성도가 세상에서 나와서 하나님께 속하여 세상 풍속과 세상의 모든 것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과 비진리로 나가는 사람들이 성도를 미워하고 핍박할 때에 이상히 여기지 말고, 도리어 성도가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증거인 줄 알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 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사랑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 영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사랑에서 떠나면 생명의 세계에서도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믿음으로 형제를 사랑할 때에 사망에서 떠나 생명에 들어간 것이고, 사랑치 않을 때는 사망에 거하는 것이 분명하다.

 

. 3:15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사랑의 세계에서 떠난 자이므로 생명과 하나님의 세계에서 떠나 마귀에게 속한 자요 살인하는 자이다.  따라서 그는 영생 곧, 영적 생명이 사는 역사가 그 속에 없다.

 

.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며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나가야겠다.  토마스 목사는 우리 나라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 당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다.  우리도 \"나만 예수 믿고 영생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이기주의로 나가지 말고 아무리 위태한 곳이라도 하나님께서 가라 명하시면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 영혼을 건져내는 일을 위해 고난과 희생을 각오하고 나가야 할 것이다

 

. 3: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도울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으면서 어려운 형제를 돕지 않는 것은 사랑으로 행치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도와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도움을 받는 자는 할 수만 있으면 그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힘써야 한다.  사도행전 20:35에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것 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주는 자가 복이 있다.  받는 자는 그 받은 물질이 없어지면 그것으로 끝나게 되나 주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 그 의가 영원히 남아 있다(고후 9:9).  또한 그것은 믿음을 쓴 것이므로 그때 영혼이 자라났고, 자라난 것은 영원히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약한 사람을 돕고, 또 하나님의 일을 도와 나가며, 특히 복음 전도에 협력하고, 주의 일에 수고하는 사람을 돕는 자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다.

 

.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행실로 사랑의 열매가 맺히도록 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진실과 행함으로 사랑했다.  우리도 이것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겠다.

 

五. 사랑하는 자가 주께 받을 복(19-24)

 

. 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성도가 믿는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은 진리의 역사가 그 속에 있는 증거다.

진리에 속함은 구원에 참여하여 진리가 그 속에 역사한다는 뜻이다.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한다는 것은 주 앞에 부끄럽지 않다는 것, 마음에 가책이 없고 담대하게 주 앞에 나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도는 주님 심판대 앞에서 담대히 서게 될 것이다.

 

. 3:20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보냐

성도가 말과 혀로 사랑하고, 진실과 중심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믿는 형제를 사랑하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면 신앙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야 얼마나 책망을 받겠는가 하는 뜻이다.  성도가, ① 모든 일에 자기 신앙 양심에 가책이 없이 행하고, ②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③ 믿음을 써서 자기 생명을 다 바쳐서 행하여야만 하나님 앞에 책망 받지 않게 될 것이다.

 

. 3: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전 절에서는 마음에 책망할 것이 있을 때에 대한 교훈이고, 본 절에서는 반대로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을 때는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는다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실 지라도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여 우리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을 때는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게 된다.  이는 성도가 하나님을 순종하고 믿음 쓰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윗 절들에서 언급한 대로 성도가 진정한 사랑의 세계에서 양심에 가책이 없이 행할 때는 그 계명들을 지키게 되는데, 이런 성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성도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이다.  이런 성도는 자기 욕심대로 간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게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간구하는 기도는 다 이루어 주시고,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이루어 주시지 않는다(약 4:2, 3).

성도가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으려면, ① 행함과 진실함으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해야 하고, ② 그의 계명들을 지켜야 하며, ③ 그의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며 그 뜻대로 구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 성도가 하나님께 구하는 바를 다 받게 된다.

시편 84:11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그의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신다.  요한복음 15:7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였다.

자기 속에 말씀이 있는 자는 그 말씀에 합당한 것을 구하게 된다.  그러한 것은 구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다 주시는 것이다.

 

.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은, 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함이다.  이 사랑의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주신 것이다(요 13:14, 15:12).  그리스도를 믿음과 서로 사랑하는 것은 신구약성경의 대 강령이다.

 

. 3: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성도의 참된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통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한다.\"  이렇게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자에게는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이 늘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날마다 받아먹으며 그 영이 무럭무럭 자라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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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4장

제 4 장  영적인 사랑(靈愛)

 

(대  지)

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것(1-6)

二. 하나님은 사랑이심(7-8)

三.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3-11)

四. 사랑 안에 거하라(12-16)

五. 사랑의 효과(17-18)

六.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함(19-21)

 

(본문 강해)

 

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것(1-6)

 

.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께 속한 영(성령)이 있고, 마귀에게 속한 영(악령)이 있다.  비록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는 영의 역사라고 하여도 다 믿으면 안 된다.  거기에 악령의 역사도 있으므로 미혹 받기 쉽다.  거짓 선지자들도 영의 역사로써 미혹한다(딤전 4:1참조).  그러므로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영과 마귀의 영을 분별하는 법은,

①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가 성경에 맞는 여부를 시험하여야 한다.  성경에 맞지 않으면 마귀의 역사이고, 성경에 맞으면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요 16:13) 진리를 떠나서는(위반하여서는) 절대로 역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에 위반되게 주장하거나 역사하는 영은 전부 마귀의 영으로 단정하고 끊어 버려야 한다.

② 영의 역사로 맺히는 열매를 보아 안다.  그 열매가 불경건하고 악한 것이면 마귀의 영이다(마 7:15-19).

③ 중생한 성도의 심령에 불안과 공포를 주고 뒤숭숭하게 하는 것은 악령의 역사이다.  성령의 역사는 성도의 심령에 평안과 안식과 생명을 주는 것이다.

④ 성령의 역사로 분별한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성도는 악령의 역사를 만나면 서로 통하지 않고 갈등을 느끼게 한다.

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여부로 분별된다.

그 내용은 다음 절에 설명했다.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사도 요한 당시에 이미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와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곡식 밭에 가라지가 있는 것처럼 거짓 선지자들이 나온다.  그러나 특별히 말세에는 더욱 많이 일어난다(마 24:11).

사람이 받는 감동에도 세 가지 종류가 있다.

① 악령의 감동이다.

악령은 거짓 선지자 속에서 역사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9-10에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이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고 했다.

② 육신의 감정적 감동이다.

시국 강연회나 연극장에서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육신의 감정에서 나오는 감동이다.

③ 성령의 감동이다.  이 영감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외적 감동이 있다.  외적 감동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19장에 나타나 있다.  열왕기상 19:11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라고 했다.  이것은 특수한 영적 역사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 안에 바람 같은 강한 역사, 지진과 같이 전국적으로 움직이는 큰 역사, 불과 같이 뜨겁고 맹렬한 역사가 때때로 일어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지 아니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것을 따라가면 실패한다.

둘째는 내적 감동이다.  성령의 내적 감동이 참된 것이다.  이것은 열왕기상 19:12에 잘 나타나 있는데 \"세미한 소리\"라고 했다.  세미한 소리는 심령 속 깊이 작고 가늘게 감동된 것인데, 즉 성령으로 심령 속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내적 감동이요, 생명과 빛과 능력이 온 것이다.  외적 감동인 바람, 지진, 불의 역사에는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으셨다고 했으니 그것으로는 여호와의 생명 운동이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요, 생명의 역사도 없고, 빛의 인도도 없는 것이요, 하늘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바람과 지진과 불과 같이 강하고 맹렬한 역사가 있으나 하늘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므로 얼마 후에는 다 없어지고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것들을 떠나 내적 감동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따라가야만 한다.

 

. 4:2-3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거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구주로 시인하지 않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니며 마귀의 영이다.  그 당시에 노스틱주의 사상을 가진 이단이 있어서 예수님은 육체가 없는 영체만으로서 가현적(假現的)으로 나타난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다.  또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않고 단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아는 유대주의자들도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 적그리스도이며 그들 속에 악령이 역사하고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속한 영을 받지 않은 자들이다.

교회사를 보면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파(노스틱파)가 있었고, 그 반면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파(에비온파, 소시니안파, 유니테리안파)가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양성 즉 인성과 신성의 결합을 부인하는 파(유티커스파)도 있었다.  또, 그리스도의 부활과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파도 있었고, 재림을 부인하는 파도 있었다.  이들이 모두 적 그리스도요, 악령의 역사를 따라가는 자들이었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기독교 안에 많이 있으니 곧 신학자들과 해방 신학자들과 기독교 사회 운동자들과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이다.

신신학자들은 예수를 위대한 사람으로만 알고, 그리스도의 속죄와 몸의 부활과 재림을 믿지 않는다.  해방신학자들은 예수님을 사회의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자로 잘못 알고 예수의 정신을 따라가려면 사회 혁명을 해야 한다고 하여 사회 개혁을 위해 폭력적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누가복음 4:18에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종노릇하고 죄에 억눌리어 있는 자들에게 영적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잘못 깨닫고 육신적, 사회적, 제도적 해방을 주장하며 폭력주의로 나간다.  이것도 적그리스도 운동이요 사단의 역사이다.

또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은 지금도 예수님이 직접 자기에게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을 환상으로 본다, 입신하여 대화했다고 하며 성경에 가(加)하고 있다.  이런 것이 다 적그리스도요 마귀의 역사들이다.  이것들을 잘 분별하지 못하면 미혹을 받아 사단의 종노릇을 하여 일생을 망치고 신앙도 실패한다.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마 24:11, 24), 사도들도 자주 말했다(벧후 2:1, 딤전 4:1-2, 행 20:29). 적그리스도가 당시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말세에는 더욱 많이 나온다(마 24:24, 계 13:1-10).

 

.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너희 안에 계신 이는 그리스도의 영(롬 8:9) 즉 성령을 가리킨다.  세상에 있는 이는 마귀의 영을 가리킨다.  성도들이 자기의 힘으로는 마귀의 영을 이기지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만 마귀를 이길 수 있다.  마귀는 사람보다 지혜롭고 성령은 마귀보다 지혜롭고 강하기 때문이다.  성도 안에는 성령이 내주하시고 말씀이 있으므로 성도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힘입어 마귀와 싸워 나아가면 마귀를 이기어 생명길을 걸어갈 수 있다.

 

. 4: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적그리스도는 세상에 속하였으므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한다.  요한일서 2:16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하였다.  마귀는 사람에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켜 주는 말을 하여 미혹시킨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자들은 모두 그 말에 미혹되어 따라간다.

 

.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우리의 말은 사도들을 통하여 주신 진리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중생한 성도를 가리킨다.  이들은 중생한 영이 있으므로 진리의 말씀을 받아 생명의 양식으로 삼는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불택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진리의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진리를 떠나서는 역사하지 않는다.

이로써 아느니라 진리의 말씀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따라 진리의 영과 마귀의 영을 구별하여 안다는 뜻이다.  미혹케 하는 영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이 반드시 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며 육체와 물질과 세상주의로 나간다.

 

二. 하나님은 사랑이심(7-8)

 

.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 사랑은 아가페( )의 거룩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이성적(異性的)사랑( 에로스)이나 우정적 사랑( 필리아)이 나 동족적인 사랑( 스톨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인정적인 사랑에서 떠나 아가페의 거룩한 형제애를 발휘하여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께로서 나서 중생한 것을 가리킨다.  이 거룩한 사랑을 하는 것은 중생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된다.  중생한 자는 그 영에서부터 사랑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육체의 부패성이 방해하면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  부패성이 방해하지 않으면 계속하여 사랑을 나타내게 된다.  이는 중생한 영이 물과 성령으로 났으며 그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전 절에는 하나님을 아는 자에 대해서 말했으나 본 절에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에 대해서 말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중생하지 못하고 영이 죽어 있기 때문이다.  죽은 영에서는 사랑이 나을 수 없고 하나님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속성 중 제일 큰 것이 사랑이시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 구원의 근원이 된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영원한 사랑을 주기 위하여 성도를 선택하였고, 독생자를 보내 대속해 주셨고, 사랑으로 성도를 불러서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셨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불러서 영원한 사랑을 입혀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랑과 긍휼의 그릇이다(롬 9:23-24).

 

三.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9-11)

 

.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여 믿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믿게 되었다(요 15:16, 롬 1:6, 엡 2:8).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낸 바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사랑은, ① 조물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피조물 되는 인간들을 살리려고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신 것과, ②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에게 인간의 죄를 대신 지워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이다.  누가 자기 독자를 남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게 할 수 있겠는가!  이에서 더 큰 사랑은 없다.  그로 인하여 우리가 살리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

 

.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은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서부터 나오는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진정한 사랑이다.  육신의 친분으로나 인정과 동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성도의 거룩한 아가페 사랑이 아니고, 인본주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도리어 신령한 아가페 사랑을 막는 일이 된다.

 

四. 사랑 안에 거하라(12-16)

 

. 4:12-13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므로 누구나 하나님을 보고 믿을 수는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직접 보여 줄 수도 없다.  그러나 성도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그 성도들 간에)거하시는 것을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도 있다.  그 사랑은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셔서 역사한 열매이므로 그 열매를 보아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신 것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다.  또 그들 자신들도 하나님이 자기들 안에서 역사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 안에 거하신다는 뜻이다.  성도가 믿음으로 거룩한 사랑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 안에서 온전히 나타나고, 그것이 실현되어 나가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도가 서로 사랑할 때에 그의 성령의 감동이 크게 역사하여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게 한다.  서로 사랑하는 성도는 성령의 은사와 하나님 안에 자기가 거하고, 자기 안에 하나님이 거하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여지는 은사를 받게 된다.

 

. 4:14-15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구주로 보내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고 구주로 믿는 자는 법적으로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저 안에 거하게 된다.

 

.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고 믿는다.  성도는 그 큰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그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에 끌려서 어디든지 따라간다(고후 5:14).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그 영이 하나님 안에 거하여 안식과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서도 그 성도 안에 거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시요 속성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하나님 안에 거하려면 사랑 안에서 행해야 한다.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하면 하나님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五. 사랑의 효과(17-18)

 

. 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이로써는 윗 절에서 말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지극히 큰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 거하므로써\"라는 말이다.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성도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 사랑을 가리킨다.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사랑에 끌려서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사랑이 온전히 이룬 것이다.  이러한 성도는 심판날에 담대함을 얻는다.  이상과 같은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하면 현세에서도 양심에 가책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담대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그리스도께서 사랑을 온전히 이룬 것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사랑을 온전히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성도가 사랑 안에 거하려고 힘을 쓰기만 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되게 해주신다(13절).  그러므로 성도는 반드시 사랑을 온전히 이룰 수가 있다.

 

.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거하며, 그 사랑을 형제들에게 충분히 나눠주어 사랑을 온전히 이루었다고 하면 아무 두려움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여(5:3) 그 사랑을 온전히 이루었기 때문에 아무 가책이 없고, 하나님과 신령한 교통을 하며 기쁘고 즐거움으로 하나님과 동고동락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에게는 아무 두려움이 없고 형벌의 염려도 없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성도가 두려워하는 것은 가책이 있는 증거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한 증거이다.  이런 자에게는 형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지옥 형벌은 받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징계하는 형벌을 받으며 때로는 세상에서도 책망 받게 된다.

 

六.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함(19-21)

 

.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가 사랑함 성도가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이 같은 사랑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랑의 원동력에 의하여 하나님과 믿는 형제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 사랑은 신본주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그 사랑이 넘쳐 나오게 된다.

 

.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말의 진가(眞假)는 형제 사랑의 여부를 보아 판별된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는 그 속에 사랑이 있을 것이요, 속에 있는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는 그 속에 사랑이 없는 증거이며 사랑이 없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속에 있는 것은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요, 속에 없는 것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다.  우리 성도가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회개하고, 먼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받아 그 사랑 안에서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과 사람 앞에 바로 사는 것이다.

 

.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께 받았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15:12에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였다(요 13:34 참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5:3).  하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마 22:37-40, 레 19:18)

이 계명(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려면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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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5장

제 5 장  세상을 이김 (勝世)

 

(대  지)

一. 신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다(1-3)

二. 세상을 이길 자가 누구인가(4-5)

三. 믿는 자에게는 증거가 있음(6-13)

四. 기구(祈求)에 대하여(14-17)

五.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치 않음(18-19)

六. 확 신(20-2l)

 

(본문 강해)

 

一. 신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다(1-3)

 

. 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거듭난 자, 즉 중생한 자를 가리킨다.  중생이란 죽었던 영이 살아 난 것을 가리킨다.  사람이 중생한 여부를 어떻게 아는가?  중생한 증거는,

첫째,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이다.  죽은 영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그 영이 중생하여 살아났기 때문에 예수를 그리스도, 곧 구주로 믿게 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그 내신 이(물과 성령으로 중생시킨 이), 즉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과 성령으로 모든 성도들을 중생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한 새 생명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셋째, 중생한 자는 믿는 형제를 사랑한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같은 하나님에게서 난 자(중생한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

 

. 5:2-3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여부로 알 수 있다.  그의 계명을 중심으로 지키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계명을 중심으로 지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이다

그의 계명들은 하나님의 중요한 명령들을 가리키는데 십계명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중요한 말씀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①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불의한 것이니 불의한 자는 의로우신 하나님과 동거할 수 없는 것이다.  ② 하나님의 자녀인 믿는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는 믿는 형제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중생한 영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생리에 맞고 또 자기 세계이기 때문에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무겁지 않고 가볍다.  이것은 물고기가 물에서 활동하며 사는 것이 자유롭고 쉬운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중생한 영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중생했기 때문에(벧전 1:23)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평안하고 힘들지 않다(무겁지 않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는 영적 세계이기 때문에 중생한 영에게 잘 맞고 자유와 생명이 있다.  성도가 계명을 지키는 것이 힘이 드는 것은 영의 인도를 따라 살지 아니하고 육신과 세상 중심으로 살기 때문이다(롬 8:5-7).  그러므로 회개하고 육신 중심에서 떠나 영적 세계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계명이 무겁지 않고 힘들지 않다.

 

二. 세상을 이길 자가 누구인가(4-5)

 

.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 즉 중생한 자는 세상을 이긴다.  이는 중생한 자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거하는 자보다 크기 때문이다(4:4).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대승리한 능력을 받은 것이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안에서 벌써 세상을 이긴 자이다.

세상은 마귀의 주장을 받아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력과 사상과 모든 일들을 가리킨다(요일 2:16).  중생한 자는 그 영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에 세상을 이긴다.  로마서 6:3-5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고 하였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승리한 능력을 본받아 힘입어 믿음으로 나아갈 때는 계속하여 세상을 이겨 나가게 된다(요 16:33).

 

.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길 자가 하나도 없다.  이는 믿지 않는 자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이다(엡 2:2, 요일 5:19).

 

三. 믿는 자에게는 증거가 있음(6-13)

 

.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물은 진리를 가리키고(벧전 1:23, 엡 5:26), 피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 오셨고 말씀대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우리를 구속해 주셨다.

물로만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대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속죄의 피까지 흘려주신 것이다.

물과 피로 임하셨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성취하셨고, 또 속죄의 피를 홀려 주셨다는 뜻이다.  이로써 우리 구속을 완성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여 생명의 세계로 인도해 주셨다.

 

. 5: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성령은 진리니라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를 증거하고 계시고, 성령 자신도 진리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은 진리를 가지시고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6:13).

 

. 5:8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주인 것을 증거하는 이가 셋인데 성령과 물과 피이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데(엡 5:26, 벧전 1:22)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완전히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것을 가리킨다.  피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의와 그리스도의 피에 대하여 성령께서 증거 하신다.

그러므로 증거하는 이가 셋이라고 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피가 증거하고, 성령께서 증거한다는 것이다.  이 셋은 또한 우리 믿는 자 속에서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말씀과 피와 성령이 합하여 구원의 도리 하나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 도리를 믿는 믿음이 하나요 생명이 하나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의와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시고 우리 영을 살려 주시고 의를 입혀 주시고 성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점 정결케 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혀 나가신다.  이 셋이 합하여 우리 구원 하나를 이루어 나아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힘써 믿음을 지키고 말씀을 순종해 나가야 된다.

 

.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사람의 증거도 두 세 사람의 증거로 확증되는데(신 19:15)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고 확실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증거는 윗절들에서 언급한 물과 피와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증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물은 성경 말씀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의를 가리키는 동시에 성경 말씀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는 증거는 가장 큰 증거이다.

 

. 5: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 ?

첫째, 위에서 말한 물과 피와 성령이 믿는 자 속에서 증거하고 있다.

둘째, 살아 계신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이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하였다.

셋째, 영생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11절).  그 영생은 우리의 중생한 새 생명이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범죄하지도 않고 마귀가 만지지도 못한다.

넷째, 성령의 내주(內住)와 감동이 증거가 된다(7절).  우리 중생한 영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성령이 증거하여 확실히 알게 해준다.

이 증거를 가진 자는 환난과 핍박이 와도 요동치 않고 거짓 선지자들과 적그리스도의 미혹이 많아도 미혹되지 않고 담대히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며 믿음을 지키며 달려갈 길을 달음박질한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잣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노스틱주의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실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이다.  이는 요한일서 2:23에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아들이신 것과 대속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증거하여 주신 것을 거짓말로 여기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거짓말로 여기는 것은 그를 거짓 말하는 자로 여기는 것이다.  참되신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오히려 우상에게 끌려가며 마귀의 인도를 받다가 헛된 세상과 함께 망하게 된다.

 

.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에게 영생을 벌써 주셨다.  요한복음 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중생한 새 생명이다.  이 영의 생명은 범죄하지도 않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다.

성도는 믿을 때 영원히 죽지 않는 새 생명을 받았다.  육신이 죽어도 이 생명은 죽지 않고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산다.  요한복음 11:25-2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했다.  이 영원한 생명은 그 아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인데 믿음으로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받은 것이다.  이것은 포도나무에 접붙임 받은 가지와 같다.

 

.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시다(요 1:4, 14:6).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생명이 없다.  그 영원한 생명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 인간에 예수의 이름 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이 없다(행 4:12).

 

.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본서를 기록하는 목적을 말한다.  그 목적은 성도가 내세에서 얻을 영생이 아니고 이미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성도가 물론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  그러나 현재 영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성도가 많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미 영생 있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본서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영생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면 영적 생명으로 살아 나아갈 수 없고 그 생명으로 살지 않으면 그 영적 생명은 자라 나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미 영생을 받은 것을 알고 그 생명으로 살아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 한다.  성도에게는 생명이 둘이다.  하나는 육신의 생명이요 다른 하나는 영의 생명이다.  마태복음 16:25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한 것은 주를 위하여 육신의 목숨을 잃는 자는 영의 생명이 산다는 것이다.

 

四. 기구(祈求)에 대하여(14-17)

 

. 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 영생의 생명을 주어 아들로 삼은 하나님은 그 생명을 길러 나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되 성도가 간구하면 그것을 다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서 간구하는 것이다.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하나님께서 성도의 간구하는 것을 얼마든지 주시지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다.  야고보서 4:3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다.  만일 성도가 욕심으로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면 그 사람을 오히려 망하게 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과 성도를 바로 세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거기에 합당치 않은 것은 아무리 기도해도 주시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놀겠다고 구하면 부모가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도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은,

① 성경에서 찾는다.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은 전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② 성경 명문에 없는 것은 모든 성경의 원리, 원칙에서 찾는다.

③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는다.  모든 일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섭리가 있는데 그 섭리를 알면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다.

④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중심해서 찾아야 된다.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성도에게 많은 것을 주시려고 한다.  그것을 성도가 구하면 얼마든지 주신다.

 

.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구한 것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나 아무리 큰 일이라도 다 이루어 주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기도는 들어주지 않는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성도의 생명을 길러 나가시는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거기에 맞는 기도는 얼마든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신다.  태산이라도 옮겨가고 뽕나무 뿌리라도 뽑혀 바다에 심기우게 된다(마 17:20, 눅 17:6).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한 것은 반드시 주실 것이므로 이미 받은 줄로 믿는다.  받은 것으로 믿기 때문에 벌써 얻은 줄로 알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이다(막 11:24).

 

. 5:16-17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아 생명길을 걸어가는 성도는 또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하여도 기도하라는 것이다.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중생한 신자가 짓는 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성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는 사함 받았고, 중생한 영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 있기 때문에(요 5:24) 다시는 사망이 없다(요 11:25-26).  그러므로 혹 성도가 옛 사람을 따라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영적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통이 막히고 흑암을 만나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중단된다. 이러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서 그 형제가 그 죄를 벗어버리고 그 영혼이 자라나도록 하여야 한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사망에 이르는 죄는 믿지 않는 불택자의 죄이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전연 없다.  죄 값은 사망이므로(롬 6:23) 그가 지극히 작은 죄 하나를 범했어도 그 죄값으로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다.  불신자 중에서도 언제든지 예수를 믿으면 사죄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  믿는 사람은 택자이며 그가 믿기 전에 지은 모든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아니다.

불택자는 죽을 때까지 믿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한다.  그러므로 그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이다.  그는 현세에서도 영이 죽은 자요 내세에는 둘째 사망을 당한다.  이런 자를 위하여 생명 받기를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므로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불택자를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요 10:26 ,행 13:48).

 

五.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치 않음(18-19)

 

.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중생한 영혼을 가리킨다.  우리의 육신은 육신의 부모에게서 났으나 중생한 영혼은 하나님께로서 물(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난 것이다(요 3:5).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성도의 중생한 영은 새 생명이니 범죄하지 아니하고 범죄할 가능성도 없다.  이 구절을 성도가 상습적으로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면 본문과 원리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습적으로 살인이나 간음하지 않고 실수해서 살인이나 간음을 했어도 범죄한 자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서 난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고 해야 본문에 부합한다(여기에 대해서는 요일 3:9해석 참조).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성도의 영을 그리스도께서 항상 지켜 주시기 때문에 마귀가 만지지도 못한다.

악한 자는 마귀이다.  성도가 중생한 영으로 살지 않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살 때는 범죄한다.  그때는 중생한 영은 반대하고, 가책을 주고, 범죄한 후에도 양심에 가책을 주어 회개시킨다.  회개할 때에도 중생한 영이 책임을 지고 회개한다.  이는 예수께서 범죄하지 않으셨으나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대신 형벌을 받으신 것과 같다.  또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는 것과 같다.

 

.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성도는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고, 세상은 마귀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의 세계를 가리킨다.  악한 마귀는 불신앙의 모든 세력과 모든 사람들을 이용하여 성도의 영적 생활을 방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이(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안에 있는 마귀보다 능력이 크기 때문에 그(예수)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가 있다.

 

六. 확신(20-21)

 

.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지각의 원어 (디아노이아)는 \"아는 능력\"을 말한다.  중생한 성도에게는 영적인 것을 아는 능력을 주셨다.  그 영적 지각으로 참되신 자 곧 하나님을 알게 해주셨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요 17:3).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셨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된다

참된 자  (알레디노스)는 \"진정\"의 뜻으로 다음절에 나오는 우상과 대조하여 우상은 헛된 것이고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뜻이다.

 

. 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자녀들아 한 것은 나이 많은 요한 사도가 성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한 말이다.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더 존귀히 여기거나 하나님의 지배보다 더 지배를 받거나 하는 것들이 다 우상이다.  무엇이나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고 숭배하거나 위하는 것이 우상이다.  돈이나 사람이나 기업체나 직장이나 단체나 국가도 우상이 될 수 있고, 자기 자신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우상들은 하나님과 원수이다.

성도는 이러한 우상에서 떠나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섬겨야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만 섬길 때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교제가 이루어지고 생명이 날마다 자라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된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본서의 결론으로 우상을 경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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