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강해

고린도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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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전서1장

고린도전서 강해

·기록한 사람 : 사도 바울

·기록한 연대 : 주후 57년경

·기록한 장소 : 에베소

제 1 장 십 자 가

(대 지)

一. 문안 축복(1-3)

二. 감사와 확신(4-9)

三. 당파와 분쟁(10-17)

四. 십자가의 도(18-25)

五. 약한 자를 부르심(26-28)

六. 주님으로 자랑하라(29-31)

(본문 강해)

一. 문안 축복 (1-3)

.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은 자기가 원하거나 다른 사람이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친히 택하여 부른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거역하면 화를 입게 되므로 아니할래야 아니할 수가 없어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이다(9:16).

사도는 헬라 원어로 (아포스톨로스)인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부르시고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소스데네는 회당장으로서 예수를 믿고 바울을 따랐던 사람인지(행18:17), 혹은 다른 사람인지 잘 알 수 없다. 이 소스데네가 본서를 대서했다는 설(說)도 있다.

.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이지만 하나님께서 설립하셔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주인이 하나님이시다. 교회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시고, 보호하시고, 성장시켜 나가신다.

교회 교회의 정의(定義)는 예수를 믿어 중생한 자들의 유기적 (有機的) 단체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행동이 완전히 거룩하여졌다는 말이 아니고, 그 영이 거룩해졌다는 말이다.

성도가 거룩하여졌다는 것은

첫째, 하나님에게 속했기 때문이다.

둘째, 중생한 영이 있기 때문이다. 중생한 영은 성령께서 진리를 가지고 다시 살려 놓은 새 생명이므로 거룩한 것이며 밝고 깨끗한 것이다.

셋째, 하나님이 성도 안에 계셔서 성도로 성전을 삼으시고 그를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계시의 기관으로 삼아 하나님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기 때문에 성도를 거룩하다고 하였다. 성도의 행실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점점 성화되어 나아간다.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 성도는 자기 스스로 믿은 것이 아니고 주님이 친히 부르셔서 붙잡고 끌고 가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린도 교인들 뿐만 아니라 각처에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도 바울이 문안하고 편지를 보낸다는 뜻이다. 바울이 편지를 어느 지방에 보내면 그곳에서 읽은 후 다른 지방으로도 보내어 윤독(輪讀)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신 것이다.

.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고후6:18).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된 것이고 진리와 영감으로 영이 중생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는 거저 받은 것인데, 그 내용은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모든 전체(全體)이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창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어 구속하시고, 영을 중생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고, 영생의 나라를 주신 것 등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값없이 거저 주신 것이다.

"평강"은 은혜 받은 결과로 오는 영적 평안이다. 은혜 가운데 있어야 심령이 강건하고 영적 평안이 있게 된다. 영적 평안이 있을 때에 육신의 평안도 따라 온다. 에베소서6:10-11에 "종말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다.

은혜 속에서만 심령이 강건하고 심령이 강건해야만 영적 평안과 만족과 감사가 나오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면 세상에서는 참된 평강이 없다. 세상의 평안은 외부적인 것이요, 그 속에는 쓴 것이 섞여 있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二 . 감사와 확신 (4-9)

.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서 바울이 많은 근심을 하기도 하였으나(고후2:1; 7:8-10 참조),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에 주신 은혜를 인하여 바울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우리는 교회의 잘되지 않은 면을 보고 탄식하는 동시에 잘된 면을 보고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다

. 1:5-6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에 주신 은혜는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이 풍족한 것이었다. 구변( g )은 말씀(진리)이라는 뜻이다. 지식은 깨달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고린도 교회에 풍족하였고 교인들은 그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배우지 않고 깨달음이 풍족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너희 중에 견고히 섰다"고 말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일년 육 개월 동안 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곳이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가 성경을 많이 배웠고 성경 말씀이 풍족하였다.

성도가 성경을 배우지 못하면 알지 못하고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한다. 성경을 배워서 다 행하지 못하더라도 배우는 것이 좋다. 가령 열 가지를 배워서 다섯 가지를 행하는 사람과 백 가지를 배워서 두 가지를 행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현재는 열 가지를 배워서 다섯 가지 행하는 사람이 낫다. 그러나 감사하는 면과 양심에 가책받는 면에서는 열 가지를 배워서 다섯 가지를 행하지 못한 사람보다 백 가지를 배워서 아흔 여덟 가지를 행하지 못한 사람이 더 낫다. 그 이유는 때가 되어 하나님이 징계하므로 자기가 행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날이 올 때에는 백 가지 배운 사람은 그 백 가지를 다 행하려고 힘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백 가지 배운 사람은 열 가지 배운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열 가지 배운 사람은 아무리 힘을 쓴다고 해도 아는 것이 열 가지 밖에 없으므로 그 이상은 행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평소에 많이 배워 두는 것이 좋다. 배워서 힘쓰면 힘쓴 만큼 올라간다.

성경 말씀을 많이 배우는 것이 좋으며 그것을 깨닫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자기 생명이 되지 못한다(호4:6, 14). 양잿물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죽어도 양잿물을 안 먹는다. 교회가 잘되려면 교인들이 성경을 많이 배워야 하고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확실해야 한다.

그러면 신자들의 신앙이 복음에 견고하게 서게 된다.

. 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린도 교회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것을 바울이 감사하였다. 고린도 교회가 여러 가지 은사를 많이 받았는데 그것은 12장에 있는 여러 가지 은사를 말한다. 고린도 교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교회였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재림하시는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 날마다 준비하는 생활이 아주 귀한 생활이 다.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날은 예수님이 구름타고 재강림하시는 날이다. 빌립보서1:6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하였다.

착한 일을 시작했다는 것은 예수를 믿게 했다는 뜻이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갈 때에 책망 받을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 하였을까? 착한 일, 즉 성도의 구원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을 지고 이루어 나가신다는 뜻이다. 불완전하고 결점 투성인 성도들을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날 합격품으로 만들기 위해 성령께서 밤낮 탄식하시면서 건설하여 나가신다. 그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주고, 징계도 하고, 책망도 하며 많이 주시기도 하고 다 빼앗아 가기도 하시면서 연단을 시키신다.

야고보서1:2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우리를 연단시키는데 그 결과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여 주님 앞에 바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시험이 없는 것보다 여러 가지 시험이 있는 것이 좋다. 시험이 있어야만 자기가 만들어진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징계가 있고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징계가 없다(히12:5-8).

.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우리를 불러서 예수 믿게 해 주시고 그리스도로 더불어 교제케 해 주신 하나님은 미쁘시다. 미쁘시도다란 말은 신임할 만하다, 믿음직하다, 신실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끝까지 신임할 만한 분이므로 우리의 구원에 실패함이 없이 반드시 하고자 하는 뜻을 다 이루어 놓고야 말 것이다. 우리 구원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 일을 끝까지 이루어 나가실 것이다.

三. 당파와 분쟁 (10-17)

.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같은 말은 ① 죄를 자복하는 말, ②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말, ③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말이다. 같은 마음을 가지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이란 자기의 영광과 존귀를 다 내어놓고 종살이하는 마음이다(빌2:5-8).

같은 뜻이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는 뜻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세례요한의 정신을 말한다(요3:30). 자기는 낮아져도 하나님의 구원운동만 잘되어 나가면 만족하다는 정신을 가져야 같은 뜻이 된다.

. 1: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써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린도 교회의 소식이 글로에의 집 편을 통하여 바울에게 전해 졌다. 글로에는 고린도 교인인 것이 확실하나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다. 분쟁은 분열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투는 것을 말한다.

. 1:12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고린도 교회에는 네 당파가 있었는데 그것이 아주 잘못된 것이다. 참으로 그리스도에게만 속했다고 하면 다른 당파와 대결하지 않아야 하며 그들과 갈라져서 다른 파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당파를 만들고 사람을 따라가는 것은 영에 선 신앙이 아니다. 3:22에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라고 하였다. 성도가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당파를 만드는 것은 신령한 신앙에서 떠난 증거이다. 당파 운동은 하나님 앞에 아주 잘못된 것이다.

. 1: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 받은 성도는 다 죄 사함 받아 그리스도께 속하고, 그리스도는 머리가 되고 성도는 그의 지체가 된 것이다. 바울이나 다른 어떤 사람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았고 그들 이름으로 세례 받은 것도 아닌데 왜 당파를 만드느냐고 바울이 책망을 하였다.

. 1: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그리스보와 가이오는 바울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바울에게 세례 받은 자들이다(행18:8; 롬16:2)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여러 사람에게 세례 주지 않은 것을 높일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항상 자기를 낮추고 교인들을 그리스도께 접붙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바울을 더욱 귀히 쓰셨다

. 1: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지나치게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만 따라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교인들이 그리스도만 잘 따라가도록 인도하는 종은 하나님이 귀히 쓰시고 높여 주신다.

. 1: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바울이 그리스보와 가이오에게 세례를 주었고(14절)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으나 그 외에는 누구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바울이 기억하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한다고 진실하게 말했다(스데바나에 대하여는 16:15-17 참조할 것).

. 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교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세례 주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복음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요 세례는 믿는 자에게 인(印)치는 예식이다. 바울이 전도할 때에 될 수 있는 대로 지혜 있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전도할 때에 지혜 있는 말을 쓰면 십자가가 가려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전도자가 지혜로운 말을 쓰면 듣는 사람이 십자가를 깨닫고 따라가는 것보다 전하는 사람의 말을 좋아하며 따라가기 때문이다. 요즈음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좋아서 따라가는 경우보다 이적기사와 말 잘하는 것과 병 고치는 것을 좋아하며 따라가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말씀에 굳게 서지 못하고 혼란해지고 있다.

四. 십자가의 도(18-25)

.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하려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를 말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기독교의 중심되는 교리이다. 십자가의 구속이 믿어지면 예수 믿는 사람이고 십자가의 구속이 믿어지지 않으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다. 십자가의 구속이 가장 믿기 힘든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과 산상보훈 같은 것은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십자가의 구속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십자가가 믿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이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종교가 아니고 순전히 객관적인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되어진 종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인간의 지혜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리석게 보일 만하다. 인간의 지혜로만 생각하면 지금부터 이천여 년 전에 사형 받아 죽은 예수가 사람들의 죄를 사할 수 없다. 이천여 년 전에 죽은 예수의 피가 어떻게 우리 죄를 용서해 주며 죽었던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서 하늘나라로 올라가겠는가! 인간의 지혜로만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불가능하고 십자가의 도가 아주 미련하게 보일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기독교 교리 전체를 말한다. 인간의 지혜로만 생각한다면 미련하게 보이고 십자가의 도를 믿는 사람도 아주 미련한 사람으로 보인다. 성경대로 바로 믿으려는 사람은 더욱 더 미련하게 보인다.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믿는 사람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다. 십자가의 도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 믿는 사람을 죄 가운데서 구원해 내고 생명을 살려내고 세상과 마귀를 이기게 하고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어 나가게 한다.

. 1: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이사야29:14을 인용한 말씀이다. 인간의 지혜로 하는 것은 실패하게 되고 믿음으로 하는 것만 성공되게 한다는 뜻이다. 무엇이나 인간의 지혜로 하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여 마침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또 인간의 지혜와 총명으로만 사는 자는 십자가의 도를 믿지 못하고 필경 멸망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십자가의 도는 하늘에서 내려 온 객관적 진리이므로 인간의 지혜로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지혜 있는 자 헬라의 철학자를 가리킨다. 선비 서기관과 같은 유대인의 학자를 말한다. 변사 헬라의 웅변가 등을 가리킨다. 인간이 볼 때는 선비나 변사는 지혜 있는 사람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므로 그 지혜와 지식은 미련케 된 것이다. 또 유대 선비들이 자랑하는 외부적인 율법의 지식도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를 거역하므로 미련한 것이다.

.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의 미련한 것 십자가의 도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케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도를 전파하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신다. 모든 인간이 죄로 인하여 어두워지고 영혼이 죽었으므로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도를 주어서 인간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유대인은 성경을 믿고 그리스도가 오실 것도 믿었으나 표적을 요구하는 정신이 있었다(요2:18; 6:30). 그들은 자기 욕구를 채우려고 이적과 기사를 열렬히 구하였다. 오늘날도 이적을 존숭하고 추구하는 신비주의자들이 많이 있다.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헬라인은 철학적이요 이론적인 지혜를 요구하였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도 인간의 지혜로 기독교를 이해해 보려는 신신학자들이 많이 있다.

.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바울이 이적을 행하거나 지혜로운 말을 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만 전하였다. 이적을 숭상하는 유대인들이 그것을 부인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기 때문에 거리끼는 것이 되었다. 또 인간의 지혜를 숭상하는 헬라인에게는 십자가의 구속이 이해가 되지 않으므로 아주 미련하게 보였다. 오늘날에도 십자가의 도(진리)만 전하는 자는 신비주의자들에게 거리끼게 보이고 인간의 지혜로 기독교를 이해하려는 신신학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인다.

. 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불러서 십자가의 도를 믿게 한데 있는 것이며 이적이나 인간의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도를 믿어야만 구원받는다. 이적이나 인간의 지혜로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으며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죄인을 구원하여 죄와 세상과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게 하는 능력이다

하나님의 지혜 구원받는 지혜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혜이다.

. 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 하나님께 무슨 미련한 것이나 약한 것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조금도 미련한 것이나 약한 것이 없다. 다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사람이 보기에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고 약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보다 지혜 있고 사람보다 강하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사람이 보기에 약하게 보이고 미련하게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는 일이고 사람보다 강하였다. 성경대로 바로 믿는 사람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하게 보이고 약하게 보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사람보다 강하고 지혜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된다. 사람이 자기 지혜를 가지고 무엇을 하면 그것이 미련한 것이요 약한 것이다. 지혜 있고 강한 자가 되려면 성경대로 해야 한다.

노아가 방주 지을 때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미련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보다 지혜가 있고 강했다. 십자가의 도가 사람이 보기에는 약하게 보이고 미련하게 보이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가 된다.

五. 약한 자를 부르심(26-28)

.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하나님이 불러서 예수 믿게 한 사람들을 보라는 뜻이다. 예수 믿는 자들 가운데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으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 지혜 있고, 능하고, 문벌 좋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출세하고 높아지려고 한다.

마태복음11:25에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하였다. 교회에 나온 사람 가운데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사람 중에는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 많다. 신신학과 세상주의로 걸어가는 것은 넓은 길로 가는 것이다. 성도가 세상과 더불어 짝하고 나아가면 넓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성경 말씀 그대로 믿고 나아가는 것이 좁은 길로 가는 것이며 이러한 성도는 소수이다.

. 1:27-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십자가의 도를 믿는 사람 가운데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 온 후에는 미련한 것들이 지혜 있게 되고 약한 것들이 강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다윗이 처음에는 양치는 목동이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워주셨다. 예수를 바로 믿으면 하나님이 높여 주셔서 세상 사람보다 훨씬 나아진다. 그때에 성도가 교만해지면 망한다. 항상 순진한 어린아이의 자리에서 말씀을 사모하고 예수님만 따라가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지혜 있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사람들과 천하고 멸시받는 자의 편이 되어 주신다. 약하고 천한 자들이 하나님만 의뢰하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높아지고 능력 있게 되어 세상의 지혜 있고 능하고 문벌 좋은 사람들이 부끄럽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시는 분이시다(마11:25).

六 . 주님으로 자랑하라(29-31)

.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지혜 있고 통달한 자를 택하면 자기가 잘해서 구원받은 줄로 알 것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하고 미련한 자를 택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 나가게 하셨다. 그렇게 하여야 자기가 구원받은 것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이다.

.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다. 이것은 성도가 중생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 믿는 자들은 법적으로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다. 또 영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힘입어 그를 의뢰하고 그 속에서 사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예수를 통하여 하시는 구원역사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예수를 우리의 지혜와 거룩함과 의가 되게 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지혜가 되었고, 우리를 죄 가운데서 의롭다 함을 얻어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이 되신 것이다.

. 1: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예레미야9:23-24 말씀의 대의(大意)를 인용한 말이다. 사람은 아무 것도 자랑하면 안 된다. 천하에 있는 것은 다 주의 것이고 내게 있는 것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전4:7 참조). 또 내가 한 것은 다 주께서 하신 것이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뿐이다(고전15:10 참조). 그러므로 자랑할 바는 주님밖에 없다.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말씀은 주님만 자랑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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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23456 78910111213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전서2장

제 2 장 전 도

(대 지)

一. 성령과 능력으로 전도됨(1-5)

二. 하나님의 지혜는 성령으로 알게 됨(6-12)

三. 신령한 것을 분별 할 것(13-16)

(본문 강해)

一. 성령과 능력으로 전도함(1-5)

.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의 증거는 복음을 가리킨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은 웅변이나 철학적 이론을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때에 웅변이나 철학이나 귀로 듣기에 아름다운 말로나 인간의 지혜로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4-5절에서 설명한다.

.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만 구속과 생명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만 전하기로 작정을 했다. 그가 고린도에 이르기 전에 아덴에서 철학적인 말로 전도를 했으나 거기에서는 별로 열매가 많지 못했다(행17:16-34). 그러므로 바울이 헬라를 떠나 고린도로 갈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고 십자가만 자랑했다. 그 결과 고린도에서는 많은 열매가 맺혔다.

전도자가 철학이나 웅변이나 아름다운 말로 꾸며서 전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면 도리어 십자가가 가려지게 된다.

베드로와 같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행3:6).

죄에서 구원을 받고 새 생명으로 걸어가는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된다. 바울은 자기 속에 예수님이 충만히 거하므로 예수님의 생명이 충만히 역사하고 그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잘 전해 줄 수 있었다. 바울이 예수님을 좀 더 알고 좀 더 얻고 그 가운데서 발견되기를 힘썼다(빌3:7-12 ).

그러므로 바울이 그리스도를 점점 많이 알게 되고 많이 얻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때에도 능력으로 전해 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십자가는 신구약 성경의 중심이요 가장 요긴한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그리스도를 중심한 구원의 도리이므로 신구약 성경 전체를 바로 해석하여 바로 세워 나가야 한다.

.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바울이 전도할 때에 십자가만 나타내려고 심히 떨었다. 자칫 잘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가려질 염려가 있으므로 바울이 할 말도 못하고, 때리면 맞고, 욕하면 먹고, 오른뺨을 치면 왼뺨까지 돌려대는 생활을 하였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사용하였으면 매를 안 맞고, 욕도 안 먹고 강한 자가 되어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주님의 십자가가 가려질까 봐 로마 시민권을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약하고 낮은 자리에서 십자가만 전하였다. 이것이 참으로 이기는 방법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게 되면 고통이 너무 심하므로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끊어질까 염려되어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고 슬퍼하사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했다(히5:7).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마귀가 승리한 것 같았으나 사실은 완전히 패배하였다. 마귀는 강하고도 약한 자이며 이기고도 지는 자이다. 예수님이 약하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나 부활로 승리하신 것이다(고후13:4). 성도들은 하나님께 욕이 돌아갈까 봐 할 말도 못하고 싸울 것도 못 싸우며 약한 자와 같이 살아야 한다.

. 2:4-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바울은 교인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기 위하여 웅변이나 철학이나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성령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하기를 작정하고 힘썼다.

성령의 나타남은 성령을 힘입어 성령의 역사로 전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능력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 능력의 역사로 복음을 전한 것이다. 교역자가 말을 잘함과 인간의 지혜와 수완과 사교술로 전도하고 목회 하면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것을 따라가게 되므로 십자가가 가려지고 그 신앙이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에 서지 못한다.

교회에서 강단을 굉장히 아름답게 꾸미고 의식을 성대히 거행하게 되면 교인들의 마음이 거기에 끌려가고 그리스도와 영적 교제하는데는 지장이 많다. 슬라이드와 영화로 성경을 가르치면 빨리 이해시킬 수는 있으나 심령이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 그리스도와 교제하는데는 큰 방해가 된다. 신자들이 교회에 오면 다른 것은 아무 볼 것이 없고 교역자가 전하는 진리가 귀하여 그 말씀을 믿어 따라가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붙들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二. 하나님의 지혜는 성령으로 알게 됨(6-12)

.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1절과 4절에서 십자가의 도는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전하면 안 된다고 말한 데 대한 대답으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으며 복음 자체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을 논술한다.

온전한 자 각주에는 장성한 자라고 하였다. 장성한 신자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하나님께서는 세상 지혜를 미련케 하셨다(고전1:20참조). 참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고전1:24참조).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이 되시고 세상의 지혜나 관원의 지혜는 얼마 후에 없어질 것이다

. 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지혜는 비밀이므로 하나님이 알게 하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골로새서1:27에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비밀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예정해 놓으시고 비밀로 감추어 두었다가 예정한 시기가 이르매 나타내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영광을 위하여 나타내 주신 것이다.

.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믿지 않는 이 세대의 관원들과 지도자들과 유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하나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지혜 있고 통달 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신다(마11:25).

. 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이사야64:4 말씀의 대의(大意)를 인용한 말씀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것은 예수 그리스도요 구속의 세계 즉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 영광에 참여하는 일들이다. 이것들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고, 육신의 귀로 듣지 못하는 것이며 인간의 지혜로는 아무리 연구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이 감추었던 지혜를 성령으로 우리에게 알게 해 주셨다. 때가 이르매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 구속을 이루어 놓았고 성령께서 우리들을 감동시켜 믿게 하여 주셨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성령을 받은 것이다.

. 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영이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만이 아신다. 십자가의 도를 사람의 지혜로는 도저히 알 수 없고 하나님이 그의 영으로 알게 해 주셔야 안다.

.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감추었던 비밀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성도가 예수를 믿을 때에 이미 보혜사 성령을 받았으며 그 성령이 언제나 성도 안에 계신다. 그러므로 다시 성령을 받을 필요가 없고 다만 성령의 감동과 인도와 주장을 충만히 받으려고 해야 한다. 이 성령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모든 은사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三. 신령한 것을 분별할 것 (13-16)

.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바울이 전도할 때에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였다. 성령의 가르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성령으로 말씀을 가르칠 때에 생명이 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신령한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분별할 수도 없다.

.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 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

육에 속한 사람 중생하지 못한 자연 그대로의 사람이다. 육신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도리어 어리석게 본다. 복음 진리는 영으로라야 알고 분별할 수 있다.

.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신령한 자는 빛 가운데 들어가 빛의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에 대해서 밝히 알고 영혼에 대해서 밝히 알고 하나님의 신령한 일이나 이 세상에 대한 일도 밝히 알 수 있다. 모든 것의 근원과 정상과 목적과 가치와 사리를 신령한 빛의 세계에 들어가야 바로 알고 밝히 아는 것이다.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성품을 알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바로 판단할 수가 있다.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듣고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성도들의 신앙의 비밀을 바로 알지 못하고 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도리어 어리석게 보고 광적(狂的)으로 본다. 이것은 마치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다 보이지만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는 유리창과 같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신앙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로 알지 못한다. 또 한가지 뜻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판단하고 취급하든지 거기에 대해서 하등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옳은 것을 그대로 세워 나가면 언젠가는 옳은 것으로 밝혀질 날이 온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비방하든지 오해하든지 거기에 대해 제재를 받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해도 진리는 별의 광채와 같이 영원히 빛난다. 그 시대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진리 세워 나가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 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자연 본래의 사람은 그 영혼이 죽은 자이므로 누구나 주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중생한 영혼이 있는 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을 알고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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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전서3장

제 3 장 성 전

(대 지)

一. 육에 속한 신자(1-4)

二. 하나님의 집과 밭(5-9)

三. 성전 건축(10-17)

四. 인간의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라(18-23)

(본문 강해)

一. 육에 속한 신자(1-4)

.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모든 신자들을 신령한 신자와 육신에 속한 신자로 나눌 수 있다. 육신에 속한 자는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은 먹지 못한다. 신령한 자(장성한 자)가 젖만 먹어서는 영양 부족에 걸리게 되므로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유지할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히5:12-14).

어린아이들은 단단한 식물을 먹으면 소화를 못 시키고 감당하지 못한다.

. 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린도 교인들이 어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젖으로 먹였다고 하였다. 젖으로 먹인다는 것은 성경을 초보적인 진리로 알기 쉽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단단한 식물은 성경에서 깊은 진리, 깊은 뜻, 신령한 뜻을 찾아 해석하는 것이다. 신구약 성경 전부를 다 젖으로 먹일 수도 있고 단단한 식물로 먹일 수도 있다. 초보적인 해석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까지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세상에서 복을 받고 육신의 병이 낫고 세상에서 잘 살게 된다고 가르치는 것은 다 초보적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육신에 속했기 때문에 어린아이와 같아서 단단한 식물을 전에도 못 먹었거니와 지금도 먹지 못한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가 있다. 고린도 교인들이 젖이나 먹는 어린아이의 자리에 있는 것은 그들이 육신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 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린도 교인들이 육신에 속한 증거는 시기와 분쟁이 있는 것이었다. 시기하고 분쟁하는 것은 명예와 영광심, 즉 자기를 위하는 것 때문이다. 예수를 믿어도 명예와 영광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중심으로 사람을 따라가는 사람은 육에 속한 신자이다.

. 3: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어떤 이는 바울에게 속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아볼로에게 속했다고 말하니 그것이 육신에 속한 증거이다. 영의 세계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말씀(진리)만 사모하며 성령으로 기뻐하고, 예수를 위하여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 위하는 것이다. 세례요한과 같이 주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자기는 쇠하여야 하겠다는 소원을 가진 자가 되어야 신앙생활을 바로 하는 신령한 사람이다(요3:30).

二. 하나님의 집과 밭(5-9)

. 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아볼로와 바울이 아무리 훌륭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종으로서 하나님의 심부름을 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따라가며 당파를 맺고 시기와 분쟁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이다.

.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나는 심었고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는 뜻이다. 바울이 최초로 복음의 씨를 고린도에 뿌렸다.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아볼로는 그 후에 고린도 교회에 가서 성경을 가르쳐 주고 돌보아 주었다는 뜻이다.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한 것뿐이다. 자라나게 하신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부름한 종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일을 시키신 주인과 길러 주신 분만이 위대하시고 고마우시다. 교회의 주인 되신 하나님과 자라나게 하신 하나님만을 위하고 높이고 따라가야 한다.

. 3:8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교회를 세운 종이나 그 교회를 길러나간 종이나 하나님의 심부름한 면에서는 같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각자 자기의 일한 대로 하나님께 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혼잡케 하고 성경말씀을 바로 전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고후2:17).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과 같지 않다고 하였다.

.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교인들은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밭에서 농사가 잘되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집이 잘 지어져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바울이 아무리 잘 심었다고 해도 가꾸는 일을 잘하지 못하여 농사가 잘못되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아볼로가 물을 주었다고 해서 아볼로만 자랑하고 성전을 잘 짓지 못했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옳은 말씀을 받았으면 그 말씀을 자기 심령 속에 심어 그 말씀이 자라나게 하여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히도록 하는 것이 참된 성도의 할 일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성전 짓는 법을 배우고 좋은 재료를 써서 설계도대로 성전을 지어서 그 성전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중요하다. 성전 짓는 일에 대해서는 다음 구절들에 해석이 나온다.

三. 성전 건축 (10-17)

.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바울이 받은 사도직의 은혜이다.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신령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말한다.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1절). 바울이 계시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깨달은 것이 교회의 터가 되고 영적 성전의 기초가 된다는 뜻이다. 성전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운다고 했다(엡2:20-21).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는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성경 말씀이다. 십자가의 도에 대한 모든 것을 사도와 선지자를 통해서 성경에 기록해 놓았다. 이 말씀이 성전 건축의 터가 된다.

.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터가 없다는 말이다. 즉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는 다른 터가 없다는 뜻이다. 신구약 성경 말씀에 더하거나 감하면 다른 터를 닦은 것이 된다. 사도와 선지자를 통해서 신구약 성경을 기록해 놓으시고 그 후에는 성경과 같은 계시의 말씀을 주시지 않는 것이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한다든지,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말씀을 주었다고 하는 사람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성경 말씀을 더하는 사람이니 재앙을 받는다(계22:18). 또 신신학자들은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인 것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경 말씀을 감하는 자들이다. 또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목적만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이므로 성경에 잘못된 것도 있으며 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만 골라서 믿어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사람들도 성경 말씀을 제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자는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린다고 했다 (계22:19 참조).

성전을 짓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기초이다. 기초가 잘못되면 아무리 건물을 잘 지어도 얼마 못 가서 무너지고 만다. 우리 신앙의 기초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도가 성경 말씀대로 하려고 노력하고 그대로 안된 것은 회개하여 다시 성경대로 하려고 힘을 써야 한다. 성경 말씀을 무시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기초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 집은 반드시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 3: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여기 성전을 짓는 재료는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 여섯 가지이다. 여섯 가지 재료를 두 종류로 나누면 불에 타지 않는 재료 (금, 은, 보석)와 불에 타는 재료(나무, 풀, 짚)이다. 성도가 영적 성전을 짓는데 있어서 금, 은, 보석으로 짓는 사람도 있고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짓는 사람도 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불에 타지 않는 재료인데 이것은 영감으로 진리를 깨달아 그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걸어간 사람이다. 금, 은, 보석으로 집을 지으려면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진리를 바로 깨닫고 그 가운데 거하여야 되고 또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진리)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께 피동되며 그로 말미암아 믿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으로 인하여 영혼이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영적 성전을 건축하는 것인데 순전히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요 하나님의 것이다. 하늘나라에는 하나님이 하신 것과 하나님의 것만 남아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이것은 불타는 재료들이다. 이것으로 짓는 자는 어떤 자들인가?

첫쩨, 이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웠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다.

둘째, 공력이 불에 탔으나 구원을 얻었으니(15절) 지옥 간 자가 아니고 천당에 간 자들이다. 상만 못 받는 자들이다.

셋째, 이들은 육신에 속한 신자요, 시기와 분쟁을 하는 자들이다(고전3:1-3 참조).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대로 행하고 연보도 바치고 구제도 하고 직분도 가지고 기도와 봉사도 하고 의를 행하나 자기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한 자들이다. 이들이 구제나 연보나 봉사 생활을 한 것은 자기를 위해 한 것이며 사람 앞에서 한 것이요, 제도나 의식에 매여서 습관적으로 한 것이다. 이렇게 부득이하여 억지로 한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마6:1-5, 고 9:7 참조).

그것은 전부 껍데기로 한 것이므로 속(심령)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영혼이 자라나지 못하고 신령한 인격이 만들어지지 못한다. 이러한 신자는 아무리 큰 의를 행했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는 상이 없다.

. 3: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성도 각자가 성전 건축한 것(신앙생활 한 것)을 하나님께서 불로 시험하신다. 불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다.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시험할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이 불이라고 했다(렘5:14 참조).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시험하시므로 말씀대로 만들어진 것은 영원히 남게 되고 말씀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것은 다 불에 타서 (심판 받아) 없어질 것이다.

둘째, 불같은 시험 당하는 것을 가리킨다(벧전4:12). 이 세상에서 큰 시험(불같은 시험)이 올 때에 영적 실력이 있는 자(금, 은, 보석으로 지은 자)는 신앙을 잘 지키므로 광채가 난다. 그러나 나무, 풀, 짚으로 지은 자는 불같은 시험이 올 때에 영적 실력이 없어서 넘어지고 만다.

. 3:14 만밀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금, 은, 보석으로 지은 자는 중력이 불타지 않았으므로 상을 받는다. 그 이유는 영감과 말씀대로 순종하여 영혼이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셋 중에 금으로 지은 자가 상급이 제일 클 것이다. 금으로 지은 자는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다. 그 다음은 은으로 지은 자이다. 은은 금만 못하지만 불에 타지 않는 귀한 것이니 상급을 받는다. 셋째는 보석으로 지은 자이다. 보석이 금이나 은보다 귀한 것도 있으나 본문에 셋째 번에 기록을 했으니 은 다음으로 상을 받는다.

. 3: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공력이 불탄 자는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자들이다(12절 해석 참조). 이 셋 중에는 나무로 지은 자가 제일 낫다. 사람 보기에는 잘 믿는 자 같고 자기도 잘 믿고 잘한 줄로 아는 자이다. 그러나 그는 영혼이 자라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불타고 말았다. 그 다음은 풀로 지은 자인데 중간 치기 신자이다. 셋째는 짚으로 지은 자인데 신앙생활이 시원치 않은 자이다. 이들은 다 공력이 불타 없어진다. 불로 심판하실 때 공력이 불에 타면 해를 받으나 그 사람은 불 가운데서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받는다. 공력은 불탔으나 기초가 바로 되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다. 기초마저 잘못된 것(예수 믿지 않는 것)은 다 지옥에 가지만 이 사람들은 자기가 일한 공력만 다 없어지고 예수는 믿었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는다. 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불붙은 집에서 벌거벗고 뛰어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소돔 고모라에서 롯이 구원받은 것과 같다 롯은 소돔 고모라의 물질과 세상을 따라갔으므로 불 심판이 올 때에 자기 처는 소금 기둥이 되었고 사위는 불에 탔고 두 딸은 음란한 여자가 되었으며 자기 자신도 정조를 상실했다. 그러므로 구원은 받았으나 부끄러운 구원이었다.

.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첫째, 신자 개인이 하나님의 성전이다. 신자의 중생한 영혼 속에 성령이 계신다.

둘째,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의 무리(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신자들 가운데 그리스도가 계시며(눅17:21 참조)성령이 임재하여 교통하신다.

.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도는 자기 속에 계신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아야 된다(엡4:30). 성령을 근심시키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한다. 또 누구든지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멸망시킨다. 자기에게 어떠한 손해가 와도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를 주면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망한다. 또 다른 사람의 영적 신앙에 손해를 주지 말고 자기의 영적 신앙에도 손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영적 신앙에 손해를 받으면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된다. 성도는 언제나 영적 신앙이 잘 되도록 하고 교회의 영적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지 않도록 하며 적극적으로 구원 운동을 도와주려고 해야 한다. 제자의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이라도 도와주면 상급을 받는다.

四 .인간의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라(18-23)

. 3: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자기가 지혜 없으면서 지혜 있는 줄로 아는 자는 어리석은 자요 스스로 속는 자이다.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 판단하며 진리를 따라가지 않는 사람은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고 자기가 자기에게 속는 사람이다.

미련한 자가 되어라 참으로 지혜 있는 자는 자기의 지혜를 내놓고 세상 사람이 미련하게 보는 십자가의 도를 믿는 자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하나님만 위하는 자가 참으로 지혜 있는 자이다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받아 들여 신종 (信從)하는 것이 참된 지혜이다.

. 3: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세상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미련한 것이다.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구원의 길(십자가의 도)을 이해할 수도 없고 도리어 미련하게 보며 하나님의 지혜를 배척한다. 그러므로 그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다.

자기 궤휼에 빠지게 욥기5:13 말씀의 인용인데 인간의 지혜로만 나가는 자는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는 것이다. 인간의 지혜를 써서 자기만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자는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다.

. 3: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시편94:11의 인용이다. 지혜 있는 자들이 인간의 지혜로 무엇을 하는 것은 전지(全知)로 해 놓으신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설계에 비하면 헛것이요 없는 것과 같다.

. 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만물은 다 성도들을 위해서 있다. 성도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온전히 만들어서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만물이 존재한다. 또 모든 사람도 다 성도의 구원 성취를 위해 있으므로 성도는 모든 사람을 이용해서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자랑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가 다 성도를 배우게 하고 깨닫게 하고 연단시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약1:2-4 참조). 이단들도 성도의 유익을 위해서 있다. 이단이 성도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가? 이단은 기본 교리를 잘못 주장하는 자들인데 성경에 탈선되면 저렇게 망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어 성도로 하여금 말씀에 굳게 서고 믿는 일에 힘을 쓰도록 해준다. 또 잘못된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바른 교리가 더욱 잘 드러나고 그것이 귀한 줄 알아 더욱 더 열심히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이단도 성도를 위해 유익한 것이다. 환난, 핍박, 시험, 실패가 전부 나를 위해서 있다. 욥이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한 날에 다 죽고 모든 재산이 없어졌으나 그것이 욥에게 유익한 것이었다.

욥이 많은 연단을 통과한 후 금과 같이 연단 되어서 전보다 배나 더 나은 욥이 되었으므로 그 표로 재산도 배나 더 주셨다.

생명이나 사망이나 사는 것도 나의 구원 성취를 위하여 살고 나의 죽는 것이나 순교도 더 좋은 구원을 위하여 주시는 것이다. 욥의 자녀 십 남매가 일시에 다 죽은 것도 욥을 연단시켜 정금과 같이 만들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욥23:10).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현재의 모든 상황과 장래에 닥칠 모든 상황은 다 나를 연단시켜 나의 구원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 주시는 것이다

. 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것이다(6:19-20).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야 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을 받아서 하나님께 돌린다. 그리스도가 성도를 통해서 받은 영광도 하나님께 돌린다. 마지막에는 그리스도 자신도 하나님께 돌린다. 그러므로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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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전서4장

제 4 장 충 성

(대 지)

一. 그리스도의 일꾼(1-5)

二. 교만을 책망하고 사도의 발자취를 보여줌(6-13)

三. 사부(師父)의 권면(14-21)

(본문 강해)

一. 그리스도의 일꾼(1-5)

.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인간적인 약점을 보고 멸시하면 안되고 하나님이 그들을 붙들고 사용하시는 면을 보고 존경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붙드시고 간섭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잘못된 길로 걸어가면 하나님이 친히 징계하시고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비밀 복음, 즉 그리스도가 비밀이다(골2:2; 4:3 참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그가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과 누구나 그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 얻는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비밀이다. 이 비밀은 눈으로 보아도 모르고 귀로 들어도 모르며 손으로 만져 보아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택한 백성은 성령이 그 귀를 열어 주시고 눈을 뜨게 해 주셔서 예수를 믿고 구원 얻게 하여 주신다.

천국 운동과 생명 운동이 하나님의 비밀이다(마13:11). 하나님께서 영혼을 살려 나가는 생명 운동은 사람이 자기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다. 예수를 믿어 영혼이 살아 나가는 것과 생명의 역사와 성도의 영혼이 자라나는 일들은 불신 세계에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이다.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있는 성도가 홀연히 변화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비밀이다(고전15:51 참조).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영의 귀와 눈을 열어 주신 사람만이 알 수 있다.

.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충성이란 오직 한 곳에 자기의 전폭을 쏟아 부어서 그 일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忠臣 不事二君)는 말이 있다. 성도가 오직 한 분 하나님을 위해서 전폭을 쏟아 붓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하여 마음과 뜻과 힘과 생명 전체를 다 바쳐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고 통달한 자보다 어린아이와 같이 충성된 자를 불러서 사명을 맡기신다(고전1:27-30 ,딤전1:12 참조).

또 하나님께서 충성된 자를 통하여 당신의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느7:2-3, 히3:5 참조). 부자의 정성 없는 많은 연보보다 과부의 엽전 두 푼 바친 것을 기쁘게 받으셨다(막12:42-44 ,눅21:1-4 참조). 하나님께서 심판할 때에 다섯 달란트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 남긴 종은 그 충성을 보고 같은 칭찬과 같은 상급을 주셨다.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은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충성한 여부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가 맡은 일이 크든 작든 불평하지 말고 맡겨진 일에 충성만 하면 예수님께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는 칭찬을 받게 되고, 충성하지 않은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 을 받을 것이다(마25:15-29 참조).

요한계시록2:10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다. 충성을 하되 죽도록 충성하는 자는 주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는 데까지 나아간다. 성도가 세상과 벗이 되거나(약4:4),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자는 충성하지 못하는 것이다(마6:24).

. 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성도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하여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 판단 받는 것이 문제이지 사람의 판단은 아무 것도 아니다. 또 자기가 자기를 옳다고 판단해도 안 된다. 다만 자기를 판단하실 분은 주님뿐이다.

. 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사도 바울이 자책 받을 죄가 생각나지 않고 불충성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울이 충성하느라고 했으나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기를 판단할 이는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사람의 판단은 참된 바른 판단이 못되니 누구에게도 판단 받지 말고, 또 다른 사람을 판단해도 안 된다. 주님이 오셔서 판단하실 때에야 사람이 바른 판단을 받게 된다. 그때에는 어두움에 있는 것이 다 드러나고 마음의 생각까지 다 드러나며 행한 대로 하나님께 판단을 받게 된다.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는 남이 모르게 지은 죄도 다 드러나서 심판을 받는다.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마음으로 지은 죄가 다 드러나서 거기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그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책망을 받을 자도 있고 상급을 받을 자도 나타난다. 주님은 성경대로 판단하셔서 성경에 맞으면 의롭다고 판단하시고 성경에 맞지 않으면 책망을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대로 했느냐 하지 못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二. 교만을 책망하고 사도의 발자취를 보여 줌(6-13)

.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 일 당파를 만들어 자기 당파 사람은 자랑하고 자기 당파가 아닌 사람은 과도히 판단하여 멸시하는 일이다.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고전3:4-9에 바울과 아볼로에 대해서 말한 것은 당파를 만들지 말라고 표본적으로 한 것이다.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기록한 말씀은 구약 성경이다. 구약 성경의 요지는 하나님으로만 자랑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사람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당파를 만들어 사람을 자랑하고 있으니 구약 성경 교훈에서 벗어난 것이요 구약 성경 교훈의 한계를 넘은 것이므로 다시 성경으로 돌아서라는 권면이다.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당파를 만들어 서로 대적하는 것은 교만한 마음이요 교만한 행동이다. 이 교만을 속히 회개하고 종의 위치에서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자기를 위하는 방편으로 당파를 만들고 사람을 자랑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요 악한 일이다.

. 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우리가 조금이라도 된 것이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뿐이다(고전15:10).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신8:18, 대상29:14).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잘해서 된 것처럼 자랑하는 것은 교만이요 악한 일이다.

. 4: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 교인들이 심령의 가난한 자리를 떠나 마음의 배가 부르고 부요해져서 은혜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갈급증)이 없어졌다. 그들이 겸손하게 남을 섬기는 자리에 있지 아니하고 스스로 높아져 바울을 제쳐놓고 왕 노릇하면서 자기 이상 없는 듯이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으로 되었다. 이것이 "우리 없이 왕 노릇 하는 것"이며 진리와 영적 생명에서 떠난 상태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외부적으로 몇 가지 잘한 것을 가지고 배가 부르고 부요해져서 교만한 상태에 빠진 것이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왕권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참는데서 얻어지는 것이다(딤후2:11-12 참조). 그러므로 그 왕권이 커지려면 예수의 고난에 참여하고 예수의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여야 된다(빌3:10-11 참조). 이렇게 참된 왕 노릇을 하는 세계가 영의 세계요 진리의 세계이다. 바울은 벌써 그 세계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바울을 제외(바울 없는)한 세계는 그 세계(영적 세계, 그리스도의 세계)가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영혼이 자라나서 영권이 커지고 진리의 권세가 높아져서 참된 왕권이 커지기를 원하고 있다. 이 세계는 바울과 같이 왕 노릇 하는 세계요 모든 성도와 같이 왕 노릇 하는 영적 세계이다. 이 세계의 왕들은 겸손하고 심령이 가난하며 남을 사랑하고 희생 봉사하는 세계이다.

. 4:9 내가 생각컨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바울은 하나님의 사도인 만큼 그 직분이 영광스럽고 존귀하였다.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바울이 사형수(死刑囚)와 같이 가장 낮고 천한 취급을 받았다는 뜻이다. 미말은 가장 천한 자리이다.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그 당시에 사형수를 사자나 호랑이에게 던져 그 맹수에게 찢겨 죽게 하고 맹수의 밥이 되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구경시켰다고 한다.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환난 받는 것이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또 천사는 영계요 사람은 인간계이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것이 영계와 인간계 곧 온 세계 (온 우주)의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바울을 비천하게 여겨 멸시하는 마음과 태도로 구경하지만 천사들은 흠모하고 동정하고 도와주는 마음과 태도로 구경한다(벧전1:12 참조). 그러므로 복음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은 외부적으로는 고난이나 속은 기쁘고 용기와 새 힘을 얻는다.

. 4:10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바울이 십자가만 전하므로 사람들이 미련하게 본다. 또 그가 자기를 희생하며 예수만 위하니 사람들이 미련하게 본다는 뜻이다.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고린도 교인들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기독교를 이해시키고 교회의 모든 것을 인간의 지혜와 수단으로 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연고로 약하여 졌다. 주의 영광이 가려질까 봐 싸울 것도 못 싸우고 말할 것도 못하고 능욕과 멸시와 수욕을 당하면서 참고 나아갔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와 진리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지 않고 당파를 만들어 싸울 것 다 싸우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다 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강한 것이다.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울은 비천하여 천사와 세계의 구경거리가 되었으되(9절) 고린도 교인들은 존귀하여 남을 판단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왕 노릇 한다는 것이다.

. 4:11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바울이 주를 위하여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 없는 생활을 하였다. 이것이 영적 성공이다. 세상적인 성공은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히 쉴 만한 안식처가 있고 대접을 잘 받는 것이지만 영적인 성공은 자기를 희생하고, 수난을 당하며 의를 세우고 구원운동을 도와주고 양심을 쓰고 도덕을 지키고 남을 도와주는 것이다. 영적인 성공은 정처 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정처 없이 갔다. 세상 성공과 영적인 성공은 전혀 다르다.

.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바울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자기 손으로 일하여 생계를 유지하면서 전도했다. 후욕과 핍박을 당할 때에도 대항하여 싸우지 않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축복해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참았다.

. 4: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성도가 비방을 받을 때에 자기도 그 사람을 비방하지 말고 온유한 마음으로 사실을 바로 말해 주며 좋은 말로 권면하는 것이 좋다.

권면하니는 좋게 말한다는 뜻이다. 더러운 것은 씻어낸 오예물(汚穢物)이다. 찌끼는 방을 청소할 때 나오는 쓰레기를 가리킨다. 바울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세상의 오예물과 만물의 쓰레기처럼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바울에게 복음을 받은 고린도 교인들은 오히려 존귀하고 강하고 교만하여진 것이 옳으냐 뜻이다.

三. 사부(脚父)의 권면(14-21)

. 4: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고린도 교인들이 교만하여 왕 노릇 하는 것을 바울이 책망하는 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자녀에게 권하는 심정으로 한 것이다. 바울의 심정은 어디까지나 그들을 바로 세워 나가려는 부모의 심정인 것이다.

.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스승은 몽학 선생으로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관활하며 지도하기 위해서 가정에 둔 종이나 가정교사이다. 교육하며 지도해 주는 사람은 많지만 아비는 많지 않다.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바울이 복음으로 그들의 생명을 살렸다는 뜻이다. 이것은 바울이 전도해서 고린도 교인들로 예수를 믿게 했다는 뜻도 있으나 그들의 영혼을 살려 놓은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르쳐 줄 때 그들의 영혼이 살아났다.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복음으로써 낳은 것이 된다.

바울 자신이 낳은 것이 아니고 복음으로써(예수로 말미암아)낳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그들에게 아비라고 주장했다.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는 부모와 자녀같은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자녀들을 권하고 책망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과 책망을 하는 것이다.

.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바울이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한 것은 위대한 일이다.

웬만한 사람은 자기를 본받으라는 말을 할 수 없다. 바울이 많은 환난을 받고 약하며 매맞고, 수고하고, 굶주리고 핍박당하면서도 참고,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한 것을 본받아야 한다. 특별히 바울이 교만하지 않고 낮아지고 겸손하여 봉사한 것은 본받을 만하다. 바울도 사람이니까 단점도 있고 실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를 위해 수고하고 환난을 받으면서도 계속하여 충성하고 희생한 것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 4:17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 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이를 인하여 바울을 본받는 일을 위하여 라는 뜻이다.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로서 바울을 잘 받들어 주고 충성한 사람이다. 빌립보서2:21-22에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하였다. 다른 사람은 다 자기의 일을 구했으나 디모데는 자기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였다. 이것이 참 종의 위치이다. 이 때문에 디모데가 하나님 앞에 귀히 쓰는 종이 되었고 바울에게도 귀한 제자가 되었다.

나의 행사 곧 내가 각 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 바울의 교훈은 곧 바울의 행사이다. 바울은 교훈과 행사가 일치하였다.

바울이 각 교회에서 교훈하며 행사하는 것을 알려서 본받게 하기 위하여 디모데를 파송한 것이다.

. 4: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다시 올 면목도 없고 또 올 필요도 없다고 하며 거침없이 바울을 비방하고 교만한 언행을 하였다.

. 4:19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주께서 허락하시면 바울이 속히 고린도 교회에 가서 그 교만한 자들의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하였다. 교만한 자들은 말은 잘하지만 믿음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 하고 오직 능력에 있는 것이다(고전4:20 참조).

교만한 자들이 아름다운 말로 자기를 변호하고 자기를 자랑할 수 있으나 능력은 자기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한다. 능력은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약4: 6). 이사야57:15에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라고 하였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소성케 하므로 능력이 있다. 누구든지 교만하면 하나님이 물리치시고 은혜를 주시지 않을 뿐 아니라 있던 능력도 점점 떨어져서 마침내 없어진다. 말은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으나 능력은 겸손하고 순종한 만큼 그 사람에게 머물게 된다.

.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으로 모든 생명을 살려 내는데 있다. 말은 아무리 잘해도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고전2:4-5 참조). 능력으로 사람을 살리고 능력으로 하나님이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할 때 말로만 전하지 말고 성령으로 전하고, 능력으로 전하여 그 영혼이 살아서 능력의 말씀에 붙들려야 한다. 복음을 능력으로 전하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하여 이기주의가 없어지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기도 할 때 말씀 속에 깊이 들어가고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서 자기가 그리스도의 능력에 붙들리는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 생명의 나라요 영적 생명이 장성해 나가는 나라이다. 이 나라는 능력으로 인한 생명의 역사로만 커 나가는 것이요 건설되어 나가는 것이다.

. 4: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는 권징을 가리킨다. 내가 너희에게 갈 때에 너희를 징계하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가기를 원하느냐고 바울이 묻고 있다. 바울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는 고린도 교인들 자신에게 달렸다는 뜻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징계를 받게 끔 행동하면 바울이 가서 권징을 행할 것이고 그들이 회개하고 바로 서면 바울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나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바로 서라는 것이다. 그들이 회개하고 바로 섰을 때에 바울이 온유한 마음과 사랑 가운데서 그들과 반가이 만나기를 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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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전서5장

제 5 장 음 행

(대 지)

一. 음행 책망(1-5)

二. 누룩 없는 덩어리가 되어라(6-8)

三. 권 징(9-13)

(본문 강해)

一. 음행 책망(1-5.)

.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고린도 교회에 음행 죄가 들어왔다. 교인 중에 어떤 사람은 심지어 자기의 계모를 취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후처를 얻어 살다가 세상을 떠나자 자기 아버지의 후처(계모)를 데리고 산 것 같다. 다윗 아들 아도니야가 자기 아버지를 수종들던 아비삭이라는 여자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다가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다.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일은 악한 일이요 음행 죄를 범하는 것이다(레18:8).

.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바울이 이 사건에 대하여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한 내용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음행 죄가 들어온 것을 책망하였다. 자기 계모를 취하는 음행은 이방인 중에는 없는 악한 일이다.

둘째, 고린도 교인들이 그것을 알면서도 통한히 여기지 않은 것을 책망했다. 고린도 교회가 죄에 대하여 둔해졌고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자기가 직접 그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해서 교회에 들어온 죄를 통한히 여기지 않고 용납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교회에 죄가 들어오면 통한히 여기고 애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셋째, 범죄한 사람을 책벌하여 물리치지 않고 그냥 놓아둔 것을 책망하였다. 죄가 교회에 들어오면 교인들이 통한히 여기고 죄를 지은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여야 한다. 누구나 범죄한 사실이 있으면 처음에는 그것을 드러내지 말고 자기 혼자서 찾아가 권면하고 그렇게 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두 세 증인을 데리고 가서 권면해야 한다. 그 때에 만일 그 사람이 회개하면 다시는 그러한 죄를 짖지 않도록 권면하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범한다면 교회적으로 책벌해야 한다.

. 5:3-4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바울은 멀리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늘 고린도 교회에 가 있었다. 기도하는 가운데 자기 영혼의 인도를 받아서 그 음행한 사람을 처리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처리 방법은 첫째,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한다. 교회의 치리는 주의 말씀을 실천함이며 치리하는 자는 말씀이 치리하는 것을 전달하는 것뿐이다.

둘째,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회중과 함께 권징하기로 작정했다. 고린도 교인들이 모일 때에 바울의 심령도 거기에 참여하여 같이 치리하기로 했다.

셋째, 주 예수의 능력으로 한다. 권징의 권위는 주의 능력에 있다.

.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범죄자를 책벌하였다는 뜻이다. 즉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로써 있어야 할 정상적인 위치에서 법적으로 제거된 것을 가리킨다. 또 하나님의 권고가 떠나고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는 진리의 응함이다.

육신은 멸하고 책벌받는 동안 육신적으로는 교회의 정회원이 될 수 없고 정죄 하에 있는 상태이다. 또 범죄하고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께 벌을 받아 육신이 망한다는 뜻이다(신28:20-24).

주 예수의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다. 성도가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사단에게 내어 주어 멸망하는 가운데 내려가도록 버려두신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가?

처음 믿을 때에 사죄를 받았고 중생을 했으므로 지옥에는 가지 않으나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마음과 육신에 고통이 있고, 사업이나 자녀에게 징계가 오기도 한다. 징계를 받으면서도 회개치 않으면 육신에 속한 모든 것이 아주 망하고 만다. 그러나 이런 자는 영혼은 구원을 얻되 불붙는 가운데서 겨우 나온 자와 같이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3:15).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예수를 잘 믿어야 복을 받고 영이 자라나고 육의 것도 잘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힘써 죄와 싸워야 하고 성경대로 바로 믿어야 한다.

二 .누룩 없는 덩어리가 되어라(6-8)

.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 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 교인들이 교만하여 죄가 교회에 들어왔음에도 그 죄를 통한히 여기지 아니 했고 물리치지 아니하면서 오히려 자랑하고 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룩은 죄를 가리킨다. 교회 안에 죄가 들어오면 그것이 적은 것일지라도 곧 교회 전체에 퍼져 교회가 부패해 버린다. 현재 미국 교회의 대부분이 신신학으로 기울어졌으나 처음에는 신신학이 프린스톤 신학교와 유니온 신학교의 몇몇 교수를 통하여 들어 왔었다. 그 신신학 사상이 학생들에게 점점 퍼져서 지금은 보수 신학자보다 신신학자가 더 많아졌다. 적은 누룩을 시초에 제거해 버렸더라면 온 덩이에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도 신비주의가 처음 들어올 때에는 적은 수였으나 그들을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얼마 안되어 적극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가라지가 자라면 그 세력이 곡식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곡식이 힘을 못 쓰게 된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자라나기 전에 뽑아 버려야 곡식이 잘 자라날 수 있다. 적은 누룩이 들어올 때 제거시키지 못하면 마침내는 전체를 다 썩히고 만다.

.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느니라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성도는 본질상 누룩 없는 자이다. 중생한 새 사람에게는 누룩이 없다. 이 새 사람이 성령과 합하여 옛 사람의 요소인 누룩을 점점 제거해 나아가는 것이다.

새 덩어리는 새 사람의 단체이다. 묵은 누룩은 여러 가지 죄악적인 요소와 육체의 부패성, 즉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의 요소를 가리킨다. 유월절 양 구약시대의 유월절에 제사드리기 위하여 잡은 양은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성도를 위해 희생이 되어 주셨다.

.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피막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명절 유월절을 가리키는데 신약시대 전체를 의미한다. 구약시대의 유월절에는 누룩 없는 떡을 먹었다. 이것은 성도가 죄를 떠나서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영적인 교제와 단합으로 새 생명운동을 해 나갈 것을 가리킨다.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 누룩의 성질을 말함인데 괴악하고 악독한 죄악을 가리킨다.

三. 권 징(9-13)

. 5:9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음행하는 자 교회 안에 있는 음행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고, 불신자 중 음행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10절 참조).

. 5: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음행은 자기 몸에 대한 죄이다(고전6:18).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는 타인에 대한 죄를 범한 사람이다. 토색은 자기의 소유가 아닌 재물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취하는 것이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 대한 죄이다. 불신 사회에는 이러한 죄가 가득하니까 믿지 않는 자들과 전연 사귀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하려면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살 수 없다. 신자가 이러한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을 이겨야 된다.

. 5: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형제 기독 신자를 가리킨다. 교인 중에 음행, 탐욕, 우상 숭배, 남을 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옳지 않은 이득을 취하는 일)하는 자가 있으면 그러한 사람과는 신앙적 교제나 친교를 하지 않아야 된다. 그러한 사람들과 신앙적 교제나 친교를 하게 되면 그 죄를 용납하는 것이 되고 자신도 그들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함께 먹지도 말라 죄인들과 더불어 성찬예식을 하지 말고 그들을 수찬 정지시키라는 것이다.

. 5:12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불신자가 범죄하는데 대해서는 신자가 관여할 바가 못된다. 그러나 신자가 범죄하면 치리하고 다스려야 하나님의 말씀이 서 나가고 교회의 성결을 유지할 수 있다.

. 5:13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쫑으라

불신자의 처벌은 하나님께 맡기고 신자가 범죄하면 최악의 경우 내어쫓아야 한다. 이단이나 아주 큰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출교해야 한다. 출교는 교회의 벌 중 가장 큰 벌이다. 성도가 죄를 지으면 그 사람을 견책하고 그래도 회개하지 않을 때는 그 직분을 정지시키고 그래도 회개하지 안으면 그 직분을 면직시키고 그래도 회개하지 않을 때는 제명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리를 세워 나가는 것이고 교회의 정결을 보존하며 그 범죄자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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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전서6장

제 6 장 송 사

(대 지)

一. 신자간 송사를 불신 법정에서 하지 말 것(1-8)

二. 불의를 행치 말 것(9-11)

三. 음행을 떠나 주와 합한 자가 되라(12-18)

四. 너희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19-20)

(본문 강해)

一. 신자간 송사를 불신 법정에서 하지 말 것(1-8)

. 6: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은 사건을 가리킨다

불의한 자들은 불신자들을 가리킨다. 성도는 하나님의 의를 받았고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도 받았으나 불신자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불의한 자라고 한 것이다. 성도간에 송사할 만한 사건이 있을 때는 성도 앞에서 판결을 받아야 한다. 믿지 않는 세상 법정에 가서 판결을 받으려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불신자들 앞에서 교회가 경멸을 당하는 것이며 복음 전도의 문이 막히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 지는 일이다.

. 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감동이 있기 때문에 세상 전체를 바로 판단할 수 있다. 성도는 말씀에 비추어 보아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하여 세상 전체에 대해서 옳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예수님 재림시에 성도가 주와 함께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마19:28, 딤후2:12, 계2:26-27 참조). 성도가 이 세상 전체를 판단할 것에 비하면 성도간의 사건들은 지극히 작은 일이다.

. 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천사는 성도를 위해서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자이다(히1:14). 성도는 천사보다 지위가 높고 장차 천사를 심판할 지위에 있는데 신자간 사건을 판단 못할 리가 없다.

. 6:4-5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산 영혼과 진리와 하나님의 빛이 있고, 성령의 인도가 있으므로 귀중한 자이나 불신자는 그러한 것이 없으므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불신자에게 판단을 받으려는 것은 교회에는 그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같이 여김을 받게 되는 일이며 부끄러운 일이다. 성도에게 송사할 만한 일이 생기면 교회의 판단을 받아 그대로 순종해야 하나님 앞에 가서 책망을 받지 않는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 앞에 바로 하기를 힘써야 하며 자기의 유익만 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회의 판단이 자기에게 불리할지라도 불만을 품지 말아야 한다(출22:28 참조). 하나님 앞에서 판결된 것을 불평하고 욕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된다.

신자가 불신자를 상대로 하는 사건은 세상 법정에 가서 판결을 받을 수 있다. 바울도 가이사에게 호소한 사실이 있다(행25:11).

. 6:6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신자간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송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 부득이 해서 송사를 하더라도 교회의 판단을 받아야 하며 세상 법정에서 불신자의 판결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

. 6:7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신자가 불신자 앞에서 서로 송사하는 일은 교회의 허물을 드러낸 것이다. 차라리 속고 불의를 당해도 예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지 않고 전도 문이 막히지 않도록 세상 법정에서 판결 받는 일을 피해야 한다. 이것이 이긴 것이요 성공한 것이다. 손해 보지 않아도 될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손해보고 속지 않아도 될 것을 주를 위하여 속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다른 것으로 몇 배나 더 보충해 주실 것이다.

. 6: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믿는 형제가 불신 법정에 가서 피차 송사를 하면 한편은 불의를 당하거나 속지 않으려 하고 또 한편은 불의를 행하고 속이려고 한다. 전자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낫다고 한 것이며(7절), 후자는 형제에게 불의를 행하고 속였으므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범죄한 것이며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것에 대해 말한 것이다.

二. 불의를 행치 말 것(9-11)

.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불의한 자 기독 신자가 불의한 송사를 하므로 불의를 행치 말라는 뜻이 있고(7, 8절), 또 일반적으로 범죄자 전체를 총칭하여 불의한 자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불신자는 불의에 거하므로(원죄가 있고 믿지 않는 것이 불의임)하나님 나라에 가지 못한다. 믿는 성도도 육체의 욕심(부패성, 옛사람)을 따라 살면 범죄하게 된다. 신자가 범죄하면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고 마음의 천국을 잃어버린다. 그리하여 영적 낙원을 잃어버리고 흑암 속에서 지옥의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어떤 면으로든지 하나님의 심판을 이미 받고 있는 것이다. 성도는 날마다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아 가져야 하는데(마11:12 참조), 불의를 행하면 그 일을 못하게된다. 그리하여 영적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고 영혼이 자라나지 못한다(고전3:1, 히5:12-14 참조). 이러한 사람은 영적 분별력이 없고, 진리의 분별도 못하고, 능력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형상도 이루어 나가지 못한다. 따라서 천국에 가서 칭찬과 상급을 받지 못한다.

불의를 행하는 신자는 하나님 나라의 복락과 상급을 만들어갈 재료를 잃어버린 것이다. 음란, 간음, 탐색(색을 탐하는 것), 남색(레20:13 참조) 이 네 가지는 성적 죄악이다. 도적, 탐람(몹시 탐하는 것), 토색은 남의 물질에 손해 주는 죄이다. 술 취하는 것은 방종하는 죄이며 후욕은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죄이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은 얻은 것이므로 행동은 아무렇게 하여도 괜찮다는 자유 방종주의(폐법주의)는 잘못된 것이다. 성도가 그러한 말에 미혹을 받지 말고 모든 죄에서 떠나 성결한 생활을 해야 한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율법대로 행해야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도 잘못된 것이다. 성도가 믿을 때에 벌써 구원을 받았으며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 아버지를 노엽게 하지 않기 위해서 항상 죄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신자는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사역으로 인하여 법적으로 사죄와 거룩함과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행위에 있어서도 죄를 떠나 성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三. 음행을 떠나 주와 합한 자가 되라(12-18)

. 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옳은 것이라고 해도 유익이 없고 덕이 안 되는 것은 성도가 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진리를 세워 나가는 일에 유익이 되도록 행동해야 한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 하리라 옳은 일이라고 하여 거기에 얽매여 종노릇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옳은 일이라고 해도 절제를 해야 한다. 주릴 때에 음식을 먹는 것은 옳은 일이지마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먹으면 안되고 절제 없이 너무 많이 먹어도 안 된다. 예를 들면 찬송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예배시간 중에 성경 말씀을 증거하는 시간에 자기 혼자서 찬송을 하면 유익이 없고 손해가 된다. 말에 있어서도 옳은 말이라고 해서 함부로 하면 유익이 없고 손해를 주는 때가 많다.

. 6:13-14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고린도 교회에 음란죄가 들어왔고 물질 문제로 인한 송사할 일이 생겼으므로 바울이 물질 문제와 음란한 일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식물은 배를 위해서 있고 또 배는 식물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이것(배), 저것(식물)을 다 폐할 것이므로 그것들 때문에 공연히 싸우고 다투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일하면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식물을 예비해 놓았다. 그러므로 물질 문제 때문에 서로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지으실 때에 음란을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니고 주를 위해서 지으셨으며 주는 우리 몸을 위해 있다.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것이다. 주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이 우리 몸도 다시 살려서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게 하실 것이다.

. 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인데 음행을 하면 창기의 지체가 된다.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드는 것은 얼마나 큰 죄가 되겠는가! 성도가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 6:16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창기와 합하는 자는 창기와 한 몸이 된다(창2:24 참조).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 6: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이 되어 있으므로 주와 하나가 되어 있다.

.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음행을 피하라 음행 죄는 피해야 범하지 않는다. 다른 죄는 싸워 이기라고 했으나 음행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피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창39:7-12 참조). 공자는 색을 피하기를 원수 같이 하라(避色如避讐)고 했다. 성도가 음행 죄를 범할 만한 환경과 기회와 시간을 피해야 한다. 다른 죄는 몸 밖에 있는 하나님과 사람과 물질에 대하여 손해를 주는 죄이지만 음행은 자기 몸에 대하여 법을 어긴 것이요, 또 몸으로 몸에 대하여 죄를 범하는 것이다.

四.너희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19-20)

.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성도는 물과 성령으로 영혼이 중생했고 그 속에 성령이 내주하여 계신다. 그러므로 성전된 신성한 몸으로 음행을 하면 안 된다.

.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이므로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성도는 자기 몸을 주의 것으로 삼아 놓고 오직 주를 위해서 살고 주를 위하여 모든 일을 해야 한다.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을 섬기되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절반이고 몸으로 섬기는 것이 절반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간 것은 몸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이다.

성도가 몸으로 순종해야 온전한 믿음이 된다(약2:22).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요 복 받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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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전서7장

제 7장 부 부(夫婦)

(대 지)

一. 부부의 의무(1-6)

二. 독신 생활(7-9)

三. 혼인한 자에 대한 권면(10-16)

四.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17-24)

五. 이혼과 결혼에 대하여(25-28)

六. 아내 있는 자는 없는 것 같이 하라(29-35)

七. 처녀 딸에 대한 교훈(36-38)

八. 과부에 대한 교훈(39-40)

(본문 강해)

一. 부부의 의무(1-6)

. 7: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너희의 쓴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혼인 문제에 대하여 바울에게 서신으로 문의 한 것이다. 거기에 대한 답변이 본 장에 기록되어 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독신으로 있는 것이 신앙 생활과 주의 일을 하는 데에 유익한 면을 말한 것이며 혼인제도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 7: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결혼의 목적이 단지 음행 방지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독신 생활의 좋은 면만 보고 결혼하지 않다가 음행 죄에 빠지면 도리어 큰 낭패가 되겠기 때문에 사람마다 결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바울이 결혼을 신성시하였다(엡5:22-23 참조).

. 7: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있고 아내는 남편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피차 상대방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나님의 의(義)를 이루어 나가게 된다.

. 7:4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부부 사이의 성(性)적 면에 있어서는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주장대로만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 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분방하지 말라 성도가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분방할 수 있으나 다시 합해야 한다. 억지로 분방하면 마귀가 틈타 죄를 짓게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억지로 분방하지 말라고 했다. 성도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히 13:4).

. 7: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

"이 말"은 2절에서 바울이 결혼하라고 권한 말이다.

권도는 명령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고 사랑으로 권면하는 말이다.

二. 독신 생활(7-9)

. 7: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바울은 성도들이 자기처럼 혼자 사는 것을 원하나 각 사람이 받은 은사가 다르기 때문에 받은 은사대로 하라는 것이다.

. 7:8-9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혼인하지 아니한 자나 과부들은 혼자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는데 좋은 것이다. 그러나 절제하기 힘들고 정욕이 불같이 타서 음란한 생각이 들어오면 믿는 일이 안되고 마귀가 틈타서 죄짓기 쉽다. 그러므로 절제할 수 없는 자는 혼인하는 것이 낫다

三. 혼인한 자에 대한 권면(10-16)

. 7:10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바울이 주의 명령으로 명한다는 것은 주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명령하신 말씀으로 명한다는 뜻이다(마5:32 참조). 혼인한 자는 성경에 허락한 조건 외에는 이혼하면 안 된다.

. 7:11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부부가 만일 갈라졌을 경우에 그냥 지내다가 다시 합하도록 한다. 그러나 끝까지 다시 합할 수 없고 이혼을 해야 할 때는 공적으로 제정된 수속을 밟아서 해야 한다. 장로교 정치 문답 조례166문답에는 음행이 있거나 오랫동안 집을 버리고 멀리 가서 관리의 처분으로 부합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이혼하는 것이 가하다고 하였다(렘29:4-6 참조).

. 7:12-13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고 주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말씀도 영감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쌍방이 믿지 않을 때에 결혼하였으나 그 후 남편이 먼저 예수를 믿게 된 경우에 아내가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면 그 아내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여자가 먼저 예수를 믿고 남편이 믿지 않을 때 남편이 함께 살기를 좋아하면 그의 아내는 갈리지 말고 함께 살아야 한다. 이것은 믿는 자가 불신자와 결혼하라는 말은 아니다. 신자는 신자와 결혼하여야 한다(고후6:14-16 참조).

. 7: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 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예수 믿는 아내 때문에 거룩해질 수가 있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믿는 남편 때문에 거룩해질 수가 있다. 그것은 남편이나 아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복음의 광채와 인격적인 감화(그리스도의 형상이 어느 정도 이루어 졌으므로)와 성령의 감동이 상대방에게 미쳐서 어느 정도 감화를 받는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반대한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어졌으므로 속에 어느 정도 감동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또 부부 일신이므로 믿는 성도와 한 몸이 된 부부는 외부적으로는 거룩한데 속해 있고 하나님의 이름이 그 집에 있고 하나님의 권고가 항상 계속되고 있으므로 거룩한 것이다. 그 증거로 그들의 자녀가 거룩한 것을 들어 말하였다.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부부 중 한편만 믿는 가정의 자녀들도 거룩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부모 중에 한편만 믿어도 그 자녀에게 유아 세례를 줄 수 있다. 그 아이가 거룩하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부모 중 한편만 믿어도 신자의 자녀가 거룩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신자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계약에 참여하였다(창17:7-8, 행16:31 참조).

② 외부적으로 종교 의식에 참여하였다.

③ 믿는 부(父)나 모(母)를 통하여 복음과 그리스도의 광채가 비취어져 있다.

④ 하나님의 권고가 그 가정에 계속되고 있다.

⑤ 하나님의 이름이 그 가정에 있다.

. 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믿지 않는 남편이 신앙 문제 때문에 이혼하자고 하면 이혼할 수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대로 이혼하지 말고 화평하게 함께 사는 것이 좋다. 그러나 신앙을 양보하면서까지 살수는 없다. 신앙을 양보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 짓는 일이요 신앙의 역사가 죽는 일이며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다. 부부 생활 때문에 신앙 생활에 구속받으면 안 된다.

. 7:16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신자는 가정 형편이 어떠하든지 거기에서 신앙을 지키며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하여 믿지 않는 식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도록 계속 기도하며 권면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아무리 완고한 자라도 감화시켜서 구원하실 것이다.

四.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17-24)

. 7: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10-15절에 있는 내용을 들어 말하는 것인데 남편이 있든지 떠나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환경을 바꾸려 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믿음을 지키라는 말이다.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주님이 부르실 때의 환경과 형편을 바꾸려 하지 말고 거기에서 믿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바울이 이 진리를 모든 교회에서 가르쳤다.

. 7:18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는 난지 팔 일 된 남자의 양피(陽皮)를 베는 율법적 의식의 하나이다(창17:10-11).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시켜 주셨으므로(골2:14-15) 이제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미 받은 자는 무할례자가 되지 말고 그대로 믿음을 지키면 된다.

. 7: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할례와 같은 율법적 의식을 행하거나 행치 않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 갈라디아서5:6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고 하였다.

요한복음4:23-24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신다. 의식적으로 행하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 7:20-21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 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성도는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믿음을 잘 지키고 거기에서 신앙과 양심과 영의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종노릇을 바로 해야 한다.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도 그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그리스도 안에서 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남의 종으로 있어도 그 자리에서 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누리면서 믿음을 지키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형편이 자유 할 수 있으면 종살이를 그만 두고 자유인이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 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나 영의 자유를 얻은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적 자유를 얻은 사람이다. 또 세상에서는 자유자라고 해도 주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 7: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성도(고전 6:20참조)는 남의 종으로 있든지 주인으로 있든지 다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의 명령대로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써서 살아야 된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와 영적 자유권을 떠나서 사람에게 얽매이고 사람의 종이 되면 영적 생명의 역사가 죽는다.

. 7:24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할례를 받았든지 안 받았든지 종이든지 자유자이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것이 자기 영이 살고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이루어지는 복 받는 길이다. 신자는 자기가 환경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어떠한 환경에서나 그대로 지내며 신앙을 지켜야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꾸어 줄 때는 바꾸는 것이다.

五.이혼과 결혼에 대하여(25-28)

. 7: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직접 말씀하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이 말씀을 하는 것이므로 이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 7: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세상 마지막 때가 되어 남은 때가 얼마 남지 않았고 환난과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할 때에 결혼하여 거기에 얽매이고 세상에 빠지거나 세상 근심을 하게 되면 일을 못하기 쉽다. 그러므로 처녀는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바울이 말한 것이다.

. 7: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부부는 서로 매여 있는 것이다(롬7:2). 남편에게 매였으면 매인 그대로 또 놓였으면 놓인 그대로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

비록 매였다고 해도 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지켜 주의 명령대로 믿음을 잘 지키면 된다. 매여 있는 자는 놓이기를 구하지 말고 놓인 자는 할 수만 있으면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 7:28 그러나 장가가도 죄 짖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결혼하는 것이 죄는 아니나 결혼하는 사람은 육신에 고난이 있다. 결혼하는 날은 고난받는 생활을 시작하는 날이다. 그 고난 속에서 잘 인내하면 연단을 받아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혼자 사는 자는 그 고난을 받지 않고 주의 일을 잘 할 수 있다.

六. 아내 있는 자는 없는 것같이 하라(29-35)

. 7:29-31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때가 단축하여지고 남은 때가 얼마 없으므로 세상의 것들 때문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신앙생활을 잘하라는 것이다. 아내 있는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이 말씀은 자기 의무를 감당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아내는 남편을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서로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부부간에 제재를 받아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거기에 얽매이거나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세상의 것을 초월하여 신앙의 길을 걸어나가야 한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세상 물건을 샀던지 흑은 팔아서 없어 졌던지 또 세상 일로 인하여 울거나 기뻐할 만한 사건을 만날 때에도 거기에 제재를 받아 마음을 빼앗기거나 낙심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하게 될 것을 믿고(롬8:28),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위엣 것을 찾으며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만 위하고 믿는 일을 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 물건을 쓰는 사람은 그것을 다 쓰지 못하고 하나님께 갈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고 모든 것이 지나가고 만다(요일2:16-17 참조). 세상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고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이 세상의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다 (벧전1:24-25 참조).

. 7:32-34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 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세상 염려를 하면 믿음에서 떠난다. 일반적으로 장가 간 자는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힘쓰며 시집간 여자는 남편을 기쁘게 하려고 하여 마음이 나누이고 세상 염려를 하게 되는 것이다. 주를 위해 독신 생활하는 자는 몸과 심령을 거룩하게 하여 주의 일에 전폭을 바치기 쉽다. 그러므로 바울이 독신 생활을 권면 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자라도 부부의 의무만 감당하고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같이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몸과 심령 전폭을 주께 바쳐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의 일을 전적으로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람이 장성한 신자이다.

. 7: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독신 생활을 권면하는 것은 강압적으로 명령하여 시험에 빠뜨리려 함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권면이니 받을 만한 사람만 받고 타고 난 자만 받으라는 것이다(마19:11-12). 이치에 합하게 개인적 사정이 헌신 원리에 합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분요함이 없이 마음이나 생활이나 능력 사용에 있어 나뉨이 없이 단순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생활하라는 의미이다.

七 .처녀 딸에 대한 교훈(36-38)

. 7:36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처녀 딸을 시집 보내고 안 보내는 문제에 있어서는 부모의 결정이 중요하고 또 본인의 의사가 더욱 중요하다. 부모가 딸을 독신으로 두므로 타인의 유혹을 받아 죄에 빠질 염려가 있고 노후의 일도 염려되어 이치에 합당치 않게 생각이 되거든 시집 보내도록 하는 것이 좋다. 또 부모가 딸을 시집 보내지 않으려고 해도 본인이 시집가기를 원하면 보내야 된다.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딸의 사정이나 부모의 심정이 시집 보내야 될 필요가 있거든 보내라는 것이다.

. 7:37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부모의 결심과 딸의 심정이 일치가 되어 딸을 시집 보내지 않는 것은 잘하는 것이다. 부득이한 일도 없고 딸을 시집 보내지 않아도 부득이한 사정이 없고 괜찮은 것을 말한다.

. 7:38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주님의 뜻을 찾아 딸을 시집 보내는 것도 잘하는 것이요, 시집 보내지 않아도 될 자는 안 보내는 것이 더 잘하는 것이다. 시집 보내지 않고 믿음으로 살게 하면 주의 일을 돕는데 더 유익을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八. 과부에 대한 교훈(39-40)

. 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과부가 자기 뜻대로 시집갈 수 있다. 그러나 주 안에서 하라고 하였다.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주 안에서 믿음을 지키면서 하라는 뜻이다. 자기의 깨달은 신앙양심을 양보하여 불신자나 이단자에게 시집가는 것은 믿음을 배반하는 일이요 그리스도를 떠나는 일이다. 이러한 과부는 믿음 지키는 것보다 재혼하는 것을 더 중히 여기는 자이다. 무엇이나 주님보다 더 중히 여기는 것은 우상이다.

. 7: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바울이 전 절에서는 과부의 재혼의 자유를 주었으나 본 절에서는 과부의 독신 생활을 권면한다.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과부는 얽매이는 데가 없으므로 주의 일을 받드는데 시간과 마음과 몸을 전적으로 바칠 수 있으며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 더욱 많은 복을 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바울 자신이 독신 생활하는 것을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로 생각하며 다른 사람에게 권면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의 인도로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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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전서8장

제 8 장 우상의 제물

(대 지)

一. 지식과 사랑과 덕(1-3)

二. 우상에 대한 지식(4-6)

三. 제물로 알고 먹으면 양심이 더러워짐(7-10)

四. 약한 형제를 실족케 하지 말라(11-l3)

(본문 강해)

一. 지식과 사랑과 덕(1-3)

.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당시 고린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우상에게 제사하는 일이 성행되었고 그 제물로 친척이나 친지들을 청하여 회식하기도 하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신자가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 바울이 말하게 되었다. 당시 모든 교회가 우상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신자가 지식에만 입각하여 행하고 사랑과 덕이 없다고 하면 교만한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지식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고 자기 자랑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도가 우상의 제물을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라고 하였다(9-12절 참조). 또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는 우상의 제단에 참여하는 자라고 하였다(10:18).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성령께서 금하시는 일이다(행15:28-29 참조).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누구나 교만하면 망하게 되므로 교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잠16:18). 지식만 표준해서 나아가고 사랑이 없으면 무익한 일이요(13:2 참조) 교만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운다.

.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자기가 어떤 문제에 있어서 그것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자기가 아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아직도 모르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상은 나무와 돌로 사람이 만든 것이며 아무 것도 아니라는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고전10:20에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방인들이 우상을 섬길 때 그 우상을 통하여 귀신을 섬기는 것이다. 또 사랑과 덕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사랑과 덕이 없는 지식은 무익하고 교만하게 하는 것뿐이다

. 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게 된다. 사랑의 세계는 빛의 세계요 영적 세계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심령이 밝아지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게 되며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해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아시는 바 된 것이다.

二. 우상에 대한 지식(4-6)

. 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우리가 섬길 바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는 뜻이다. 우상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방인들은 그 우상을 통해 귀신을 섬긴다. 귀신은 마귀의 일종이며 실제로 있다.

. 8: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이방 사람들은 마귀를 섬기는데 많은 신과 많은 주를 만들어 놓고 섬긴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한다.

.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기독 신자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만 섬긴다는 뜻이다. 이는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가 섬길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뜻이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귀신이 많이 있으나 우리 성도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며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왕이고 우리의 주시며 우리를 주장하시는 분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은 우리 앞에 용납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은 모든 귀신을 다 이기고 모든 우상을 다 타파할 수 있는 것이다

三. 제물로 알고 먹으면 양심이 더러워짐(7-1())

. 8:7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이 지식은 4-6절에 말한 것으로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요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께만 지배를 받는 신앙적 지식이다.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우상의 제물을 모르고 먹는 자는 상관이 없다(10:25-27). 그러나 우상의 제물인 줄 알고 양심에 거리끼므로 먹는 자는 그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진다. 성도는 우상의 제물 뿐 아니라 무엇이든지 양심에 거리끼는 것을 하면 그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진다. 양심은 사람의 이성에 속한 것으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여 옳은 것은 마땅히 하여야 하고, 악한 것은 마땅히 안 해야 된다는 것을 직관적(直觀的)으로 느끼는 작용을 하며 영혼이 사용하는 기관이다. 이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지면 믿는 일을 바로하지 못한다. 신자에게 들어오기 쉬운 우상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곧 우상이다.

둘째, 탐심이 우상이다(골3:5).

셋째, 하나님보다 더 지배를 받는 것이 우상이다.

넷째, 고집(완고한 것)이 우상이다(삼상15:23). 자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자기가 우상이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고집하고 나가면 자기의 고집이 우상이다. 성도가 이러한 우상들을 따라가서 이(利)를 얻은 것은 우상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소득을 얻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다 우상의 제물이다. 성도는 이러한 우상을 섬기거나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 8: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식물은 우상의 제물이 아니다. 모든 식물 자체는 하나님 앞에 서게 하거나 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은 식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식물을 먹었다고 하나님 앞에서는 것이 아니고 식물을 먹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출애굽기16:18에 만나를 많이 거둔 자도 풍성함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고후8:15). 그러므로 하필 우상의 제물을 먹어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지게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바울이 이 말을 한 것이다. 본 절은 모든 식물에 대한 원리를 말한 것이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니다.

. 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자유는 율법과 마귀와 우상의 속박(종노릇)에서 벗어난 자유, 곧 영의 자유를 말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이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했고 영적 자유를 얻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생명의 능력으로 마귀를 이기고 우상을 타파하며 모든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계속해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자유를 가진 성도(강한 자)가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약한 성도에게 거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한 자라도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아야 된다. 약한 신자에게 손해를 주는 일은 누구라도 해서는 안 된다.

. 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지식을 가지고 우상의 집에 앉아 제물을 먹으면 그것을 보고 약한 형제도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다가 양심이 더러워지고 파상(破傷)하게 되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 된다(12절). 그러므로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지식은 아직 알 것을 알지 못한 지식이다(2절).

四. 약한 형제를 실족케 하지말라(11-13)

. 8:11-12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강한 자가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지식만 가지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면 그것을 보고 약한 형제가 권함을 받아 양심에 꺼리면서도 제물을 먹게 될 때에 그 약한 자의 양심이 더러워지고 상하여 멸망하게 된다. 그 약한 자도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이므로 그 형제에게 죄를 짓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다.

. 8: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바울은 식물 때문에 형제를 실족케 한다면 그 식물을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바울은 여기서 지식보다 사랑으로 행할 것과 자기 유익보다 형제의 유익에 중점을 두어 행하기로 작정한 것을 보여 준다. 교인들도 이것을 본받으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본 장 결론은 강한 자나 약한 자나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어떤 사람은 디모데전서 4장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우상의 제물도 기도하고 먹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디모데전서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는 것은 우상의 제물에 대한 것이 아니다. 디모데전서4:1-4절을 보면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는 금욕주의가 교회에 들어 왔으므로 그 금욕주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므로 혼인을 금하고 채식을 강조할 필요가 없고 감사함으로 취하면 버릴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또 로마서14:2-3, 6에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다는 말씀도 우상의 제물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 로마서 14장에서는 우상의 제물이라는 말이 한 마디도 없고 다만 구약시대에 금지했던 식물들을 해제시켜 준 것을 말한 것이다. 특히 레위기 11장에 쪽발 갈라지지 않고 새김질하지 않는 짐승이나 비늘이 없고 지느러미가 없는 물고기는 먹지 말라고 금지했는데 신약시대에는 그것을 해제하였으므로 그것들을 먹어도 좋고 먹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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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전서9장

제 9장 사 도

(대 지)

一. 사도직의 변명(1-3)

二. 전도자의 권리(4-14)

三. 모든 것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할 것(15-18)

四. 모든 사람을 포용하라(19-22)

五. 복음에 참여코자 달음박질함(23-27)

(본문 강해)

一. 사도직의 변명(1-3)

. 9:1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바울이 네 가지를 들어 자기 입장과 권리를 말하고 있다.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율법의 종에서 벗어난 자유를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영적 자유를 얻은 자이다.

사도가 아니냐 바울은 예수님이 직접 불러서 보내심을 입은 자이다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았다. 환상으로 본 것이 아니고 직접 보았다. 이것이 사도직의 유력한 증거이다.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바울이 주 안에서 복음을 전하고 사도직을 행한 결과로 고린도 교회가 이루어 졌다.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하게 된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바울을 비방하며 그의 사도권을 부인하였기 때문이다(고후12:11-18 참조).

.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다른 사람들은 바울이 사도된 것을 부인할지라도 고린도 교인들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바울의 전도로 인해서 고린도 교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사도 된 증거요 인(印)이다.

. 9:3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힐문"이란 따져 묻는 것이다.

바울이 자기를 비방하는 자들의 말에 대해서 변명하는 말을 1-2절에서 말하였다. 거기에서 밝힌 대로 고린도 교인들 자체가 바울의 사도 된 증거와 인친 것이라고 말한다.

二. 전도자의 권리(4-14)

. 9:4-5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하나님의 일꾼이 먹고 마실 권리(교역자가 교회에서 사례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도 있다고 주장했다. 게바는 베드로인데 그가 전도하러 다닐 때 자기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전도하였다. 자매된 아내 성도인 아내, 즉 믿는 아내라는 뜻이다.

. 9: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사도 된 바울과 바나바가 세상의 일을 하지 않고 교회에서 사례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 9:7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일하는 자가 그 일하는 곳에서 보수를 받는다는 일반적 원리를 들어 바울이 말한 것이다. 군사로 다니는 사람은 자기의 식량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국가에서 먹여 준다. 농부가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면 그 실과를 먹게 되어 있다. 양떼를 기르는 사람이 그 양떼의 젖을 먹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다.

. 9:8-10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7절에서는 바울이 사람의 예대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율법에서도 일하는 자가 거기서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신명기25:4절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소의 입에 망(그물)을 씌우면 먹을 수 없으므로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은 소로 하여금 먹을 수 있게 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주의 일을 하는 자가 교회에서 사례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 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복음을 성령으로 전했다는 뜻이다.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교역자가 물질로 사례 받는 것을 말한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으로 함께 하라고 하였다(갈6:6). 로마서15:27에 "…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다. 이방인들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신령한 것(복음)을 나눠 가졌으므로 이방인 교회가 연보를 하여 물질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신령한 것"은 영혼이 사는 것이요 영원하고 귀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을 받은 자가 물질 면으로 공궤하는 것은 마땅하다.

.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다른이들도 바울이 떠난 후에 고린도 교회에 온 거짓 선지자들을 말한다. 그들도 물질에 대한 권이 있는데 하물며 사도인 바울에게 왜 그러한 권리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바울에게 당연한 권리가 있으나 복음에 장애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 권리를 쓰지 않았다. 복음 전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께로 인도하고 교인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장애가 될 만한 일을 피해야 한다. 바울이 복음에 장애가 될 만한 물질의 대접을 아예 받지 않으려고 자기 손으로 일하는 수고와 궁핍한 생활을 참으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만일 바울이 자기의 권리를 다 썼다고 하면 거짓 선지자들이 바울을 더 많이 비방하고 교인들도 많이 시험에 들었을 것이다.

. 9:13-14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에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구약시대에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었다. 제단을 모시는 사람은 제단에서 나는 제물을 먹도록 하나님께서 규정해 놓으셨다(레7:6, 14; 10:12-15). 예수님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가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명하셨다(마10:10, 눅10:7). 복음 전하는 자가 복음으로 살도록 되어 있으나 오늘날 복음 전하는 자가 복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三. 모든 것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할 것(15-18)

. 9: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바울이 물질로 대접받을 권리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도 생계 유지를 위하여 스스로 일을 하였으며 교회에서 보수를 받지 않았다(행20:33-34).

전도자가 사례를 받기 위해서 전도를 하거나 다른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서 전도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는 전도자가 아니요 삯꾼이다. 교역자는 물질 문제를 떠나서 오로지 사명감 때문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차라리 죽을지언정……바울이 죽을지언정 대접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은 원문에도 있는 것으로 바울의 굳은 결심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이 결사 각오하고 대접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교역자는 대접을 받지 않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하고 교인들은 교역자를 잘 대접하려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교역자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만 충성되이 하면 하나님께서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신다.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바울의 자랑하는 것은 복음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만일 보수를 받았더라면 그때 형편으로는 그 복음이 헛된 데로 돌아가겠으므로 대접을 받지 않기로 결사 각오했다.

"자랑하는 것"이 자급 전도라는 해석도 있으나 다음절에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 할 것이 없다고 한 것을 보아 자급 전도는 자랑할 바가 못된다. 보수를 받지 않고 전도하는 것이 큰 자랑거리라고 하면 바울이 자기 자랑을 하려고 결사 각오한 것이 된다. 그가 자랑하는 복음이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게 하려고 결사 각오한 것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6:14에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하였다(1:31).

.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일 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는가?

복음은 자기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어 그들도 구원을 얻게 하려고 주신 것이다. 에스겔3:17-19에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고 하였다.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아서 그 사람이 멸망하면 그 사람이 멸망한 책임이 전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다고 하였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해 주었으나 본인이 믿지 않았으면 전도자는 책임이 없다. 바울이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하였다(행20:26).

이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할 자에게 다 전했다는 뜻이다. 로마서1:14에는 바울이 "빚진 자"라고 하였다.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의 심정으로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전하려고 모든 힘을 다 기울였다. 한국에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도 한국에 와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면서 우리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를 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힘써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복음은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죽으신 사실을 전하는 것인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주님이 위하여 죽으신 백성에게 전하지 않고 침묵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 당연하다.

. 9:17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희생 정신으로 자원하여 즐거움으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 상을 받는다.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임의로 아니하는 경우, 즉 복음 전하는 일을 자원하여 즐거움으로 자기를 희생하며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직분을 맡은 이상 부득불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복음 전하는 직분을 맡은 자는 무조건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 9: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희생한 것은 하나님 앞에 상급이 된다고 했다. 바울이 대접받을 권리를 쓸 수 있었으나 복음을 위해 그 권리를 쓰지 않고 희생하였으니 그것이 상급이 된다. 복음을 위해서 희생한 것만큼 상급이 크다. 바울이 먹을 수 있으나 주를 위해서 먹지 않고, 낙을 누릴 수 있으나 주를 위해 포기하고, 가질 수 있으나 주를 위하여 갖지 않고, 살 수 있으나 주를 위해서 죽임(순교)을 당하고, 로마 시민권이 있었으나 그 권리를 쓰지 않고 매를 맞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상급을 받을 것이다.

누구나 주를 위해 희생한 것은 전부가 하나님 앞에 가서 상급이 된다.

四. 모든 사람을 포용하라(19-22)

.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바울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하여 죄와 율법에서 해방되어 자유자가 되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려고 바울이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종의 형상을 입은 것과 같다(빌2:6-8).

. 9:20-21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이 몇몇 사람들을 더 얻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고, 율법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있는 자같이 되고,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같이 되었다.

이것은 진리를 양보하지 않고 전도의 수단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유대인에게는 바울 자신도 유대인임을 말해 주고 같은 민족으로서 친근한 감정을 갖게 하여 복음을 전해 주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 얻게 하려고 한 것이다. 또 율법의 의식을 주장하는 자를 얻고자 하여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고(행16:2-3), 성전에서 결례도 행했다(행21:17-26). 그러나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일시라도 양보치 않고 디도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갈2:3). 율법 있는 자에게는 모세 율법에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고 하였는데 그 선지자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율법대로 된 것이다"라고 증거하여 율법을 아는 자에게도 힘써 복음을 전하였다. 또 바울이 율법 없는 이방인에게는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쳐 주며 전도했다. 바울이 안디옥에서 이방인과 같이 먹은 것은(갈2:11-19 참조) 바울이 이방인과 같이 된 것이다.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이방인과 같이 교제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 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약한 자 신앙과 양심이 약한 자(8:10-12), 진리의 깨달음이 약한 자이다(롬14장 참조). 즉 복음대로 사물을 바로 취급하지 못하는 자인데 그들의 사고방식이 죄라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양심 때문이니 그 양심대로 하는 것이 그들의 신앙에 유익하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을 용납하여 주고 그 약한 자를 위하여 고기도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8:13). 바울은 그 외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어 복음을 전했다. 이것이 체휼하는 생활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셨다(히4:15).

五. 복음에 참여코자 달음박질함(23-27)

. 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복음을 배우고 전하는 데에만 그치지 말고 복음에 참여하고 그 복음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했다(빌1:20).

바울이 복음을 믿고 그 복음을 전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그 복음에 참여하려고 애썼다.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만 하고 자기가 참여하지 않으면 자신의 심령에 유익이 없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생활을 하기 위해 육신에 속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교역자들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만 하고 자기가 거기에 참여하려고 힘쓰지 않으면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은 버림을 받게 된다(27절).

.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당시 올림픽과 같은 경기가 2년마다 고린도의 교외에서 행해졌다고 한다. 그 경주하는 경기에서 상 얻는 자는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성도들도 그 상 얻는 자처럼 최선을 다하여 신앙의 경주를 하여야 상을 받을 수 있다. 신앙생활은 달음박질하는 것과 같다 (빌3:10-14; 딤후4:7; 히12:1-4). 상을 얻으려고 달음박질하는 사람은 있는 힘을 다 기울여야 한다.

우리 성도가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항상 믿음의 달음박질을 잘 해야 한다.

.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올림픽 경기가 시작되기 수개월 전부터 선수들은 극기하며 운동에 해로운 것은 금하고 특별히 향락 생활을 멀리하며 음식과 잠자는 것 등을 규칙적으로 하여 매일 자기 몸을 훈련시켰다고 한다. 그들은 썩을 면류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였는데 성도들이 그들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들은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매일 뛰고, 땀을 흘리면서 힘써 훈련을 하였다. 하물며 우리 성도가 썩지 않을 영원한 면류관을 얻으려면 그들보다 더욱 절제하고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을 바로 하려면 자기를 억제하고 제재해서 인내로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 믿는 사람이 절제하지 못하면 믿는 일이 안되고 그 만큼 손해가 나고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게 된다. 성도가 절제하는 것만큼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할 수 있고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갈 수가 있다.

. 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달음박질을 하면서 향방 없이 한다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목표가 없는 달음박질은 성공할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목표가 없으므로 성공할 수 없고 상을 받지 못한다.

또 아무리 열심히 싸운다고 해도 상대를 모르고 싸우면 허공을 치는 것밖에 안 된다. 믿는 사람이 목표를 바로 정하고 달음박질을 해야 한다. 우리의 목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빌3:13-14 참조). 성도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고 빛의 갑옷을 입어 나아가는 것을 목포로 하고 신앙의 달음박질을 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은 영이 살아서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점점 닮아가게 된다. 성도가 싸워야 할 싸움은 선한 싸움인데 허공을 치는 싸움을 하지 말고 대적을 분명히 알고 싸워야 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27절 참조).

.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마귀가 성도에게 있는 부패성을 충동하여 성도의 몸을 불의의 병기로 사용하려고 한다(롬6:12-13). 그러므로 성도가 성령을 힘입어 마귀와 더불어 싸워 이겨서 몸을 제재하고 복종시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성도에게 있어서 일평생 원수는 자기이다. 먼저 자기와 잘 싸워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를 제재하여 부패성(옛 사람)을 이김으로 자기 몸을 중생한 영혼(새 사람)에게 복종시켜 나가야 한다.

베드로전서2:11에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다. 그 후에야 외부에 있는 모든 불의의 세력과도 싸워 이길 수 있다.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외부에 있는 대적도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항상 두려워하면서 자기 몸을 늘 복종하게 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우리도 복음을 힘써 전하여 교회를 세워 나갈 뿐만 아니라 항상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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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전서10장

제 10 장 전 감(前鑑)

(대 지)

一. 신령한 은사로 양육함(1-4)

二. 광야 전감(5-13)

三. 우상숭배를 피하라(14-22)

四.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23-33)

(본문 강해)

一. 신령한 은사로 양육함(1-4)

. 10: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한 사실을 기억시킨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1-4절에 "다""라는 말이 네 번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같이 애굽에서 나왔고 다같이 하나님의 이적으로 신령한 은혜에 참여했으나 다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에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 하셨다.

"구름"은 첫째, 하나님의 보호를 가리킨다. 낮에 사막의 뜨거운 태양열을 구름으로 덮어 시원하게 해 주셨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셔서 권고해 주시고 인도하셨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을 연단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사막 지방에서는 밤에는 대단히 춥고 낮에는 대단히 뜨거우므로 낮에는 구름으로 덮어 서늘하게 하여 밤의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미리 연단시켰다. 불기둥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신33:2, 렘5:14).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성도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보호하시고 권고하시며 연단시켜 나가신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적해 오므로 다 죽게 되었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여 홍해 바다를 가르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육지와 같이 마른땅으로 건너게 하셨다. 그들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꼼작 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앞길을 열어 그들을 인도해 주셨다.

.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모세에게 속하여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도자를 세우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신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교역자들을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신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킨다(1절 해석 참조).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마른땅으로 건넜는데 거기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였다.

침례교에서는 물 속에 잠겼다가 나와야 세례가 된다고 주장하지만 세례의 양식이 반드시 물 속에 잠겼다가 나와야 되는 것은 아니다. 세례는 구약시대부터 내려온 것이다. 그 증거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또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세례 줄 때에 그곳에 모인 무리들이 "무슨 새 법이 나왔느냐, 이 일을 행하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고 세례를 받았다.

세례의 뜻은 정화(淨化) 곧 깨끗케 한다는 뜻이며, 죄를 씻는 표이다. 정화를 상징하는 예식이 구약시대부터 유래되어 왔다.

에스겔36:25에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라고 하였다. 구약시대에 물을 뿌려서 정결케 하는 예식을 행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는 표요 죄 씻음을 받았다는 뜻이다. 또 세례의 양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세례는 믿는다는 표를 하는 것이며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깨끗함을 입었다는 뜻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홍해 바다에서 하나님의 이적을 보고 애굽의 모든 습성을 버리고 하나님을 더욱 친근히 하여 의뢰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성도가 많은 연단을 받아 정결케 되어야만 하나님 앞에 쓸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시험 가운데서 믿음으로 이기고 연단을 받아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가 환난이 없이 자라나면 힘이 없고 실력이 향상되지 못한다. 우리가 연단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롬5:4; 약1:2). 시험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참고 끝까지 견디어 나아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신다.

. 10:3-4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었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요6:31-33).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신 목적은 육신의 양식을 주어서 먹게 하는 동시에 신령한 양식인 그리스도를 영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혼이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된 때에 반석에서 나온 물이 살려준 것처럼 신령한 음료를 마셔야 영혼이 산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신령한 물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의 역사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신령한 물을 마신 자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다(요4:14). 그 뱃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기 때문이다(요7:37-38).

신령한 음료를 마시면 목마른 것이 해갈되어 만족하고 즐겁고 생명이 소생함을 얻는다. 이것은 영적 생명의 역사가 만족하고 즐겁게 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에서 목마른 것을 해결해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향락을 취해 보지만 이 세상의 물은 일시적으로는 해갈시켜 주어도 다시 목마르게 된다. 세상이 주는 행복과 위로와 즐거움과 편안함은 잠깐이요 너무나 얕고 짧다. 세상이 주는 행복이 겉은 달콤하지만 속은 쓰다. 향락 뒤에는 고난이 그림자처럼 따르고 불원간에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신령한 물을 마시면 영원한 위안과 기쁨과 행복이 있다. 신령한 세계에 깊이 들어 갈수록 생수가 더 많이 솟아 나오고 기쁨이 충만하고 영이 소생하는 것이다.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르비딤과 가데스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셨는데(출17:1-7 ,민20:10), 그 반석들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으로 그들을 따라가며 인도해 주시고 신령한 양식과 물을 주어 그들의 영혼을 살려나간 것이다. 만나와 반석에서 난 물은 신령한 양식과 물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상징만 했다.

신령한 양식과 물은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二. 광야 전감(5-13)

. 10: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본 절에서 두 가지 사실을 교훈하신다. 첫째, 많은 은혜를 받고 이적으로 구출한 백성도 범죄하면 멸망한다는 것이다.

둘째, 범죄하면 다수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멸망시킨다는 것이다. 소수라도 진리에 바로 서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구원해 주시고(렘5:1), 아무리 다수라도 진리에서 떠나 범죄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 다수를 다 버리신다. 그러므로 진리는 다수에 있는 것이 아니다(눅12:32 참조).

. 10: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생활한 것이 거울이 되어 모든 성도들에게 교훈이 되는 것이다. 악을 즐겨한 것같이 "죄는 육체의 쾌감(快感)을 따르는 것인 만큼 사람이 그것을 범하느라고 높은 벼랑이라도 기어올라간다"고 하였다(박 윤선 목사). 히브리서11:25에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 죄악의 낙은 잠시뿐이며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노아시대와 소돔 고모라시대가 그 실례이다.

. 10: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멸망한 죄가 네 가지 인데 그 첫째가 우상숭배이다. 그들이 광야에서 우상을 숭배하다가 망하였다(출32:4, 25-28).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과 바다에서 은혜를 받았고 신령한 식물을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시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다가 망하였다. 하나님께서 제일 미워하는 죄가 우상숭배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우상을 섬기면 반드시 망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더 의지하는 것, 하나님의 지배보다 더 지배를 받는 것이 곧 우상이다. 무엇이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세력이 있어서 그것에게 끌리어 가고 지배를 받게 되면 그것이 우상이다. 가령 하나님은 주일날 일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주일날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므로 할 수 없이 나갔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학교나 직장의 지배를 더 받은 것이니 그것들이 곧 우상이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이다. 또 신앙양심에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대로 끌리어 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이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겼으나 오늘날 신자들은 보이지 않는 우상을 많이 섬기고 있다. 성도가 여러 가지 사정에 끌리어 가고, 국가나 권력에 끌려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면 그것들이 다 우상이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위하고 사랑하면 자기가 우상이 된다. 성도들이 이러한 우상을 타파하고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만 따라가고 주님만 위하여 살고 주님을 위하여 죽어야 한다(롬14:7-8).

. 10: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멸망한 둘째 죄는 간음한 죄이다. 간음하다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라고 하였으나 본문에는 이만 삼천 명이라고 하였다. 본문의 이만 삼천 명은 하루 동안에 죽은 숫자이고, 민수기의 이만 사천은 그 다음날에 죽은 사람까지 합한 숫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광야를 통과하는 중에 있었으나 그들이 죄를 범하므로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였다.

우리 성도들도 간음하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마음에 이미 간음 한 것이라고 하였다(마5:28). 야고보서4:4 에는 세상과 벗된 자가 간음한 자라고 하였다. 성도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면 심적(心的) 간음을 한 것이다. 성도가 이러한 간음죄에 빠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10:9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멸망한 셋째 죄는 주를 시험한 것이다. 이것은 민수기 21:5-9에 있는 말씀을 가르쳐 한 말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박(薄)한 음식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이 원망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 약속을 의심한데서 나온 말이므로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불뱀을 보내어 멸망시켰다.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 계신가(출17:7),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겠는가 이루어 주시지 않겠는가(신6:16 참조)"하고 그의 임재와 약속을 의심하는 것이다. 주를 시험하다가 죽은 사람이 제일 많다. 이스라엘 백성 육십만 명이 대개는 주를 시험하다가 망하였다. 주를 시험한 죄는 아주 큰 죄이다. 성경 말씀에 "된다"고 했으면 반드시 될 줄로 믿어야 한다. "되겠나 안되겠나"하는 것은 주를 시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여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범사에 믿으며 견디며 바라는 신앙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형통할 때뿐만 아니라 형통하지 못할 때에도 믿고, 물질을 많이 줄 때뿐만 아니라 물질을 다 거두어 갈 때에도 믿어야 한다. 믿을 수 없을 때에도 믿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권고하여 주신다.

. 10:10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멸망한 넷째 죄는 원망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세워 하나님의 일을 시키셨고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일을 하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원망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가 되는 것이다.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된다(출16:2-8; 민21:4-6 참조). 성도는 언제나 책임을 자기가 지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 원망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원망할 수 있었다. 가령 보디발이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자기 아내의 말만 듣고 죄 없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었다고 원망할 수 있고,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할 수도 있다. 또 형들이 자기를 팔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하여 형들을 원망할 수도 있다. 아버지가 형들에게 심부름을 보냈기 때문에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고 하여 자기 아버지도 원망 할 수 있다. 원망하기 시작하면 계속 원망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성도는 무엇이나 원망하면 안되고 후회해도 안 된다. 후회나 원망은 마귀가 시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줄 알고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것으로 주신 줄 알고 그 처지에서 믿음을 잘 지키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아무리 쓴 것과 가시를 주었다고 해도 그것이 필요해서 주신 것이며, 거기에서 자기의 인격이 만들어질 바가 있다. 거기에서 연단을 시켜 신령한 것을 채워 주시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아가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시련이 와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으로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를 순종하여야 한다.

. 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신약시대의 거울로 삼아 성도들을 교훈하기 위하여 기록하였다. 거울이 되고는 그것을 보고 죄에서 떠나 바른 길을 걷게 된다는 뜻이다. 광야 사건뿐만 아니라 모든 구약의 사실들은 신약시대 성도의 거울과 경계로써 기록한 것이다. 물론 구약시대의 성도들에게도 거울과 경계가 되었다.

구약의 모든 예언과 의식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되었으므로 신약시대에 더 명확히 경계가 되고 있다.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 말세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주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를 가리키고(히9:26; 벧전1:20) 둘째, 주님이 재림할 시기가 임박한 때를 가리킨다(마24:3). 본 절의 말세는 전자를 가리킨다.

.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누구나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벌써 넘어지기 시작한 자이다.

언제나 자기가 되지 못한 것을 붙들고 애통하여야 한다. 조금 된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 알고(15:10), 자기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섰다"하는 자신을 갖게 되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버리고 그 사람은 망하는 것이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이 잠시라도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살지 못할 줄 알고 항상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아가야 한다. 누구나 선 줄로 생각하는 그 시간부터 넘어지고 있는 것이다.

.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 하나님은 미쁘사 하나님은 믿을 만하다(신용할 만한 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성도의 미쁘신 아버지이신데 그 아버지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어서 사랑하는 아들을 죽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힘이 약한데 너무 큰 시험이 왔다고 실망하지 말고, 믿고 순종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감당하게 해 주신다. 또 시험 당할 때에 피할 길을 주셔서 능히 감당하게 해 주신다.

피할 길은 어떤 것인가? 첫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잘못된 것을 찾아 회개하고 말씀대로 바로서야 한다. 둘째,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서 영접하고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 시험이 올 때에 아무리 큰 시험이라도 이 두 가지만 하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다 이기게 해 주신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 승리의 길은

첫째,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주신 줄 알고 감당해 나갈 각오를 하여야 한다.

둘째,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고 그러한 시험을 허락하신 줄 믿어야 한다(약1:4). 시험은 은혜와 복으로 주신 것이며 시험이 없으면 성도의 인격이 만들어지지 못한다.

셋째,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한다(약1:2-3).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시험이요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서 주신 것이요 더 좋은 것을 주려고 주신 것이므로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한다.

넷째, 피할 길로 가야 한다. 시험 당할 때에 하나님이 피할 길을 반드시 주신다. 혈육으로나 인간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였다. 피할 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서는 것이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다섯째, 참고 견뎌야 한다. 진리는 양보하지 말고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날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큰 시험이 들어와 당장 죽을 것 같아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만능의 역사로 더 좋은 것을 주신다. 이와 같이 시험을 치러 이기면 한 계단씩 올라간다. 자주 시험을 치르고 연단을 받는 성도가 복 있는 자이다. 사도행전14:22에 성도가 하늘나라에 가려면 많은 환난을 통과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에게 많은 환난과 시험이 있는 것이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지 않고 세상과 마귀를 따라가면 시험이 없고 평안하다. 그러나 말씀대로 믿음을 지키며 마귀를 대적하여 세상에 빠지지 않고 생명길을 걸어가려면 항상 선한 싸움이 있다. 디모데전서6:12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라고 하였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우리 영혼이 자라나는 것은 곧 영생을 취하는 것이다. 오늘 새 생명을 얻고 내일도 새 생명을 더 얻어 영혼이 계속하여 자라나고 생명의 역사가 계속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 영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마귀의 밥이 되고 마귀의 일만 해 준다.

三. 우상숭배를 피하라(14-22)

. 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로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상숭배를 하다가 멸망하였으니 우리는 우상숭배를 피하여야 한다. 피하라는 것은 멀리 떠나라는 뜻이다.

. 10: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그들의 지혜에 맡겨서 판단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이미 복음을 믿고 신령한 지혜가 있으므로 바울의 말이 진리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 10:16-17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성찬 예식에 참여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 것같이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시는 것도 그 제사에 동참하는 것이며 귀신과 연합하는 것이 된다.

. 10: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이란 신령한 이스라엘(참 성도)(롬2:28-29; 갈3:7; 6:16 참조)과 대조되는 혈통적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신령한 이스라엘 생활을 하지 못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기도 하고, 우상의 제단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 일을 상기시켜 하는 말이다. 제물을 먹는 자는 우상 축연( 宴)에 참여하는 것도 불사하게 된다. 성찬을 먹는 자가 그리스도께 참여한 것같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사람은 우상의 제단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우상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 성도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면 성령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죄가 된다(행15:28-29).

. 10:19-20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여기에서 바울은 우상은 어떤 것이며 우상의 제물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우상은 8:4에 말한 대로 아무 것도 아니요 돌과 나무일뿐이다. 그러나 우상숭배자들은 그 우상을 통해서 귀신을 섬기고 있다. 그러므로 그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그 제단에 참여하는 것이요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성도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을 바울이 원치 않는다고 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가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 된다.

. 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여치 못하리라

주의 성찬예식에 참여하여 주의 몸과 피에 참여한 성도가 우상의 제물을 먹음으로 우상의 배후에 있는 귀신의 상과 잔에 참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주님과 귀신을 겸하여 섬기는 일로써 참으로 가증한 일이다.

. 10: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성도가 우상에게 제사한 떡을 먹으며 잔을 마시는 것은 주님을 노하시게 하는 일이요 벌받을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주보다 강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진노와 벌을 피할 길이 없다는 뜻이다.

四.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23-33)

. 10:23-24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옳은 일이라고 하여 그것이 전부 유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옳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다. 옳은 일이라도 남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안 해야 된다. 그러나 진리 문제는 결사적으로 준행하여야 한다. 성도는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사람은 이기주의자이다. 먼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유익이 되도록 하고, 그 다음에 남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자기 하나만 잘되고 자기 유익만을 따라간다. 이러한 사람은 기생충과 같은 사람이다.

. 10: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당시에 우상의 제물을 상품화하여 시장에서 파는 일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우상의 제물일지라도 모르고 먹으면 괜찮다고 하였다.

. 10: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 선하게 지었다. 또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것이며 물질이 악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이라도 모르고 먹으면 괜찮다. 그러나 알고 먹으면 귀신의 상과 잔에 참여하는 일이요 남의 양심에 손해를 주는 일이므로 먹으면 안 된다.

. 10:27-28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성도가 불신자의 초대를 받았을 때에 차려 놓은 것을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하였다. 먹는 도중에 누가 이것은 우상의 제물이라고 하면 먹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는 그 말한 자의 양심에 손해를 주겠기 때문이다. 이 성구는 남의 양심을 위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구절이다.

. 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위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하였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는 일에는 자유를 쓰면 안 된다. 성도의 자유는 진리 안에 있는 자유이다

우상의 제물 먹는 일은 남의 양심에 거리껴서 판단을 받는 일이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였다. 성도가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나님께서 금하셨다.

. 10: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내가 감사함으로 하는 일이라도 다른 사람의 비방을 받게 될 경우에는 그만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 문제일 경우에는 어떤 비방과 핍박이 와도 양보하지 말고 결사적으로 끝까지 하여야 한다.

.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하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남에게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도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 때에는 그만두어야 한다. 가한 일이더라도 남에게 유익이 안되고 비방거리가 될 때에는 그만두는 것이 좋다. 이것은 다른 사람 때문에 진리를 양보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비방하고 판단해도 진리는 양보하면 안 된다. 성도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해야 한다.

. 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이 말은 진리를 양보하여 타협주의로 나가라는 말이 아니고 진리 문제가 아니고 죄 되지 않는 문제에 관해서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여 거치는 일이 없도록 피차 양보하고 낮아지고 극기(克己)하여 서로 화합하여 나가라는 뜻이다.

. 10:32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바울은 모든 일에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며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도록 하며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게 하려고 힘썼다.

그러나 진리 문제에 있어서는 일시라도 양보하지 않고 강하게 세워 나갔다(행15:2; 갈 2:2-5, 11-14).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방해가 되고 손해를 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 항상 유익을 주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도와주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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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전서11장

제 11 장 성 찬

(대 지)

一.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임(1-16)

二. 성찬을 잘못 행함으로 책망함(17-22)

三. 성찬의 참뜻(23-26)

四. 성찬에 잘못 참여하면 징계 받음(27-34)

(본문 강해)

一.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임 (1-16)

.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본 절은 전장의 연속으로 바울은 특히 우상문제와 교회의 건덕생활(建德生活)에 있어서 자기의 하는 일을 본받으라고 한 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본 받았으므로 바울을 본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된다. 바울이 "내가 죄인 중에 괴수"(딤전1:15)라고 한 것을 보면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다.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한 것은 그의 신앙과 진리 세워 나가는 것을 본받으라고 한 것이다. 바울이 자기의 약함과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궁핍과 능욕과 핍박을 많이 받았다고도 하였다(고후12:10). 그러나 그가 주님을 의뢰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과 믿음의 달음박질을 하는 점에 있어서 본받으라고 하였을 것이다.

. 11: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바울이 자기의 의견이나 인간의 말을 전해 준 것이 아니고 문서에 기록되지 않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과 성령으로 세워 놓은 성례와 거룩한 예배 모범 같은 것을 전하여 주었을 것이다. 바울이 전하여 준 하나님의 말씀과 모든 교훈을 고린도 교인들이 잘 지키기 때문에 그들을 칭찬하였다.

.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남녀가 인권에 있어서는 동등이나 질서에 있어서는 남자가 여자의 머리이다. 이것은

첫째, 창조의 원리에 있어서 그러하고(7-9절) 둘째, 천사의 감시에 있어서 그러하고(10절) 셋째, 본성 즉 자연의 감각에 있어서 그러하다고 했다(14절).

창세기2:18, 20-22에 남자를 돕는 배필로 여자를 창조하였다고 했다. 여자는 신체 구조에 있어서나 심리면에 있어서 남자를 보조하기에 알맞도록 하나님이 지으셨다. 남자보다 나은 여자도 혹시 있으나 보편적으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연약하고 마음과 생각하는 분야가 좁은 편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여자는 교회에서 주장하고 인도하는 입장에서 말하지 말고 잠잠하여 종용히 배우고 순종하라고 하였다(14:34; 딤전2:11-12).

. 11: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는 것을 표하기 위하여 머리에 무엇을 쓰지만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므로(7절) 머리에 무엇이나 쓰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영적으로 남자의 머리가 되는 것이므로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쓸 필요가 없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말한다.

. 11: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여자들이 교회에서 공적으로 교훈하는 것을 금하였다(14:34, 딤전2:10-12). 그러나 특수한 분야에는 여자의 가르치는 것이 허락되었다(딛2:3-4 참조).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므로 여자는 권세 아래 있는 표로써 머리에 무엇을 쓰라고 했다(10절).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고 기도나 예언하는 것은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여자들이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는가? 그것은 긴머리가 쓰는 것을 대신하기 때문이다(11:15).

. 11:6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여자가 머리를 짧게 깎거나 미는 것은 그 본성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므로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반드시 써야 된다는 뜻이다.

. 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 남자는 처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창1:27). 또 남자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땅에서 만물을 정복할 권리를 받았다(창1:28). 이런 의미에서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인간계에서 종속(從屬)의 표로 머리에 쓰는 것을 쓸 필요가 없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 여자는 남자를 영화롭게 할 자라는 뜻이다. 여자는 남자를 보조하여 남자가 잘되게 하는 것이 임무요 자기가 잘되는 길이다.

. 11: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할 때에 남자(아담)를 먼저 창조하셨다. 그리고 남자(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창조의 원리로 보아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다.

. 11: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창세기2:18, 20-22에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를 위해 지음을 받았으며 남자를 도와주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지금도 남자보다 여자가 더 오래 사는 것은 남자가 죽을 때까지 여자가 도와주게 하려는 증거이다.

. 11:10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이러므로란 말은 윗절에서 말한 "창조의 원리에 의해서"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 할 때에 천사들이 보았으므로 여자의 위치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를 위하는 위치에 서야 된다. 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공예배 때는 물론 언제 어디서나 성도의 모든 사정을 살펴서 하나님께 보고하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항상 남자의 권세 아래 있어야 되고 그 표로 머리에 쓸 것을 써야 된다.

. 11:11-12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남자나 여자나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또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에게서 났으니 인권과 존재에 있어서는 남녀가 동등이요 남녀가 다 하나님께 필요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고 해서 우월감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 질서를 유지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 하나님을 잘 섬기라는 것이다

. 11: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여자는 머리에 무엇을 써야 된다고 바울이 가르치고 나서 "너희 스스로 판단하라"고 하였다. 신앙양심을 쓰는 자는 스스로 판단하면 옳고 그른 것을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

. 11:14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본성 자연의 직감, 도덕적 본성을 가리킨다. 남자가 여자와 같이 긴 머리를 하고 다니면 자기의 위치가 욕되는 것을 그 본성으로 알게 된다.

. 11: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여자의 긴 머리가 자기에게 영광이 되는 것처럼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며 도와주는 일이 자기에게 영광이 된다.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 긴 머리 자체가 쓰는 것을 대신 하기 때문에 여자에게 긴 머리만 있으면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이 성구에 의하여 오늘날 교회에서는 여자들이 머리에 쓸 것을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11:16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바울이 지금까지 말한 문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어떤 이론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나(사도 바울이나 동역자) 모든 교회에 그러한 규례가 없다고 바울이 단언하여 엄금(嚴禁)하였다.

二. 성찬을 잘못 행함으로 책망함(17-22)

. 11: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 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고린도 교회는 성찬예식을 할 때에 애찬(음식을 모여서 함께 먹는 일)을 겸하여 했는데 그 일이 도리어 은혜스럽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을 부끄럽게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일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를 칭찬하지 않고 도리어 책망하였다. 사람들이 대개는 자기를 칭찬해 주면 좋아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칭찬해 주어 그 사람에게서 자기의 유익을 보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너무 칭찬해 주면 그 사람이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아 교만해지고 자기가 바로 서려고 노력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칭찬하지 않고 도리어 책망을 하였다.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한 것을 가르쳐 줄 때에 그것을 고맙게 여기고 고쳐 나가야 한다. 자기의 잘못된 면이나 부족한 면을 가르쳐 줄 때에 단 마음으로 고쳐 나가는 사람은 앞으로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 11:18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첫째 첫째가 될 만한 중요한 것임을 말한다.

분쟁이 있다함을 듣고 이 분쟁을 21-22절에 있는 부유층(富裕層)과 빈궁층(貧窮層)간에 있는 분쟁을 가리킨다.

대강 믿노니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것을 바울이 풍문(風聞)에 들었으나 전적으로 다 믿지는 않았다.

사실을 실지로 알아보기 전에는 들려오는 말을 다 믿어서는 안 된다.

. 11:19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반대하는 편이 있어야 옳은 것이 더 잘 나타난다. 어두운 곳에서 빛이 더욱 환하게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흑암이 있을 때에 빛을 나타내야 그 빛이 더 잘 나타난다. 옳은 것을 주장하면 처음에는 그 옳은 것이 잘 나타나지 않으나 옳지 않은 것이 나와 반대하면 옳은 것이 더욱 확실히 나타난다. 루터를 위대하게 만들어 준 것은 당시 타락한 천주교 세력이었다. 진리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으면 진리가 손해를 보는 것 같으나 도리어 옳은 것이 환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빛이 있으면 어두움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염려할 것이 없다. 빛이 적고 어두움이 많다고 할지라도 어두움이 빛을 삼키지 못한다.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적다고 해도 반드시 진리는 성공하고야 만다.

. 11:20-21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초대 교회 당시에는 애찬과 성찬을 겸하여 했다고 한다. 성도들이 다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는 애찬이 있은 뒤에 성찬예식을 행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교회 재정이 부족해서 성도가 자기 먹을 것을 자기 집에서 각각 준비해 가지고 와서 애찬을 나누고 그 후에 성찬예식을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부자들은 많이 먹고 취하나 가난한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여 시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폐단 때문에 주후 412년 칼타고 회의에서 애찬을 폐지 하기로 결의하였다. 그 후부터는 교회에서 애찬을 폐지하고 성찬만 거행하게 되었다.

. 11: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성도간에 빈부의 차별을 하는 것은 교회를 업신여기는 일이요 가난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다. 교회는 모든 성도가 다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하고 서로 사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三. 성찬의 참뜻(23-26)

. 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주께 받은 것이니 성찬에 대한 교훈은 사람의 교훈이나 사람의 뜻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고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직접 주신 말씀이고 또 바울이 계시나 영감으로 그 진리를 깊이 깨달은 듯하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성찬예식을 창설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잡히셨다.

. 11:24-26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예식 때의 떡과 포도즙에 대해서 천주교에서는 화체설 (化體說)을 주장한다. 화체설이란 성찬예식 때에 신부가 축도하면 그 떡과 포도즙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루터파 교회에서는 공재설(共在說)을 주장하여 떡 속에 예수님의 살이 같이 있으며 포도즙 속에 예수님의 피가 같이 있다고 한다. 이 주장도 잘못된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떡은 떡 그대로, 포도즙은 포도즙 그대로 있으나 떡과 포도즙에 예수님의 영이 함께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도 잘못된 것이다. 성도가 믿음으로 성찬예식에 참여하면 성령으로 성도의 영이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의 영과 신비적 교통이 있다. 만일 떡이나 포도즙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거나 예수님의 살과 피가 떡과 포도즙에 같이 한다든가 예수님의 영이 같이 한다면 안 믿는 사람이 그 떡과 포도즙을 먹어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은 것이 되고 예수님의 영에 참여함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성찬예식에 참여해도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다.

요한복음6:53 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성도가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만 생명이 있다. 예수님의 살을 먹지 않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께서 나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내 죄를 씻어주신 것을 믿는 것이다.

둘째, 좀더 깊이 예수님과 사귀는 것이며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이다.

四. 성찬에 잘못 참여하면 징계받음(27-34)

.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거룩한 성찬예식에 합당치 않게 참여하면 거룩한 것을 더럽히는 죄를 범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만홀히 여겨 멸시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예수님이 자기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을 확실히 믿는 자만이 성찬에 참여해야 되고 또 자기 죄를 살펴서 회개한 후에 참여해야 한다

. 11: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지 않거나 성찬의 떡과 포도즙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거룩한 예식임을 깨닫지 못하여 경건치 않게 먹고 마시면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성찬은 세례 받은 사람만 참여해야 되고 어린 사람은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입교 문답하기 전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성찬예식을 매 주일 행하는 교회도 있으나 그것도 잘못된 것이며 특별히 준비를 잘하여 목사의 주례 하에 거룩하게 행하는 것이 옳다

. 11:30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성찬에 잘못 참여함으로 하나님께 심판과 징계를 받은 실례가 많이 있다. "잠자는 자"는 죽은 자를 말한다(살전4:13). 성찬예식에 잘못 참여하므로 고린도 교회에 약한 자, 병든 자, 잠자는 자가 많다고 하였다. 이것은 주의 몸과 피를 범한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이다. 성찬예식에 거룩하게 참여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죄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 11: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를 살폈으면 성찬에 참여할 수 없는 죄가 자기에게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면 회개한 후 참여하거나 성찬의 참 뜻을 알아 바로 참여하였더라면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 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가 성찬에 잘못 참여하거나 어떤 죄를 범하면 주께 징계를 받게 된다. 구약시대에도 자기를 깨끗하게 하지 않고 유월절 양을 먹었기 때문에 그것이 죄가 되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다. 그때에 히스기야왕이 회개하고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용서하여 주셨다(대30:18-20).

구약시대의 성례는 유월절과 할례인데 유월절은 신약시대의 성찬예식과 같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주시는 목적은 첫째, 회개시켜서 바로 세우려는 것이다. 둘째, 세상 사람과 같이 지옥에 보내지 않으시려고 하는 것이다 불택자는 범죄하여도 하나님께서 징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택한 성도가 범죄하면 징계를 하신다(시73:14 참조). 그 이유는 불택자는 지옥에 가서 형벌을 받겠기 때문이고, 성도는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징계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도(公道)이다. 예레미야30:11에 "…그러나 내가 공도로 너를 징책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 11:33-34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 하리라

고린도 교회에서는 각자가 음식을 가지고 와서 애찬과 성찬을 겸하여 하였으므로 어떤 이는 떡과 포도주를 애찬으로 먼저 먹고 취한 상태에서 성찬예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교회의 모임이 도리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시장한 자는 집에서 먹고, 온 교회가 다같이 신성하게 성찬을 거행하여 교회의 신성을 도모하라고 하였다. 그 남은 것 바울이 지금까지 중요한 문제들을 우선 논했으나 그 외에도 할 말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얼마 후에 고린도에 가서 귀정(歸正) 하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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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전서12장

제 12 장 일 신 (一身)

(대 지)

一. 신령한 것을 분별하라(1-3)

二. 은사는 각각 다르나 근본과 목적은 같음(4-11)

三. 한 몸에 많은 지체가 필요하다(12-27)

四. 자기 본분을 지키며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28-31)

(본문 강해)

一. 신령한 것을 분별하라(1-3)

.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신령한 것은 하나님과 성도의 영적 영역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은사(恩賜)들이 많이 있는데 거기에 대하여 바로 알고 깨달아야만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가 있고 교회를 바로 세워 나갈 수가 있다.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알아야 된다는 말을 강조하는 말이다.

. 12: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예수를 믿기 전에는 말 못하는 우상을 섬겼다. 그러나 그 생명 없는 우상이 사람에게 생명의 복을 줄 수 없다

.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영은 성령이다. 하나님의 영과 성령은 같은 것이다. 예수가 구주로 믿어지는 것은 성령을 받은 증거이다. 또 성령으로 말하는 자는 예수를 저주할 자라고 하지 않는다. 예수를 저주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죄 값으로 영혼이 죽어 있었으나,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죽었던 영혼을 살려 놓았으므로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는 중생한 것이며 다 성령을 받은 것이다. 성령 받은 증거는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가 성령을 받지 못한 줄로 알면 잘못 깨달은 것이다.

二. 은사는 각각 다르나 근본과 목적은 같음(4-11)

. 12:4-5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성령의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은사이다. 예를 들면 병 고치는 은사와 같은 것이다. 은사에 대하여 본장 8-10절에 아홉 가지를 열거하였다. 이 은사를 나눠주신 분은 한 성령이시다.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주께서 여러 직분을 맡기시고 거기에 대한 은혜를 주신다. 사도, 선지자, 교사와 같은 직임을 맡기시고 그 직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 12: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성령이 주신 은사와 주님이 맡기신 직분을 가지고 역사하는 면(일하는 면)을 말한다. 8-10절에 열거한 아홉 가지 은사와 여러 가지 직분을 받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붙들고 신령한 일을 하게 하신다.

은사에는 성령을, 직임에는 주를, 역사에는 하나님을 말하였으나, 은사, 직임, 역사 이 셋을 전부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이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나타났다. 성부·성자·성령의 위는 셋이지만 하나님은 일체시며 하나이다. 삼위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다. 이 삼위의 하나님께서 동일한 구원사업을 하시는 것이다. 모든 은사와 직임과 역사가 한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므로 사랑으로 아끼고 도와주고 협력하여 하나님의 일만 잘되게 해 나가야 된다.

.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 8-10절에 나타난 아홉 가지 은사를 말하며 거기에는 직임과 역사도 포함된다. 그 은사를 가지고 교만하여 서로 분쟁하고, 자기 명예나 영광을 나타내고 돈을 모아 자기 볼장을 보려고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일에 유익되고 하나님의 교회에 유익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 12:8-10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지혜의 말씀 이 지혜는 인간의 지혜를 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데(2:6-7),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지혜이다. 또 성령께서 어떤 경우에든지 할 말을 주어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마10:19-20). 바울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도리를, 깨달은 것이나 칼빈이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과 궁극적 구원을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지혜로 된 것이다. 지식의 말씀 성경에 대한 지식이다. 성경을 바로 알고 많이 알아서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스데반이 성령과 지혜로 구약성경을 들어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능히 감당치 못하였다(행7장). 믿음 믿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사이다. 믿음은 모든 은사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요 근본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많은 사람에게 믿음의 은사를 주셨다. 예수가 믿어지는 자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이다. 마가복음9:23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능력 있는 믿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믿는 자는 누구나 믿음을 쓰면 능력이 나온다.

병 고치는 은사 병 고치는 은사가 지금도 있을 수 있다. 병 고치는 은사가 사람 보기에는 좋은 것 같으나 말씀 전하는데는 방해되는 수가 많다. 병을 고치느라고 거기에 시간과 정력을 쏟고 성경 연구할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수가 많다. 육신의 병 고치는 것을 위주하는 자는 말씀을 연구하고 배우는 일을 소홀히 한다. 또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자라고 해도 그가 기도하면 어떤 병자나 다 고침을 받는 것은 아니다. 병이 낫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은 사람만 낫고, 낫지 않아야 될 사람은 아무리 기도해도 낫지 않는다.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기도해도 죽을 사람은 죽게 되어 있으며 나을 사람은 병자 자신이 기도해도 낫는다. 육신의 병 고치는 것이 큰 것이 아니고 심령의 병을 고치는 것이 큰 것이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병을 고친 것도 병 고치는 것이나 이적 행하는 것이 원 목적이 아니었고 심령의 병을 고쳐 주는 것을 원목적으로 하여 그 표적으로 육신의 병도 가끔 고쳐 주었다. 예수님도 병자마다 다 고쳐 주신 것이 아니다(눅4:23-27).

능력 행함 어려운 일을 감당하게 하고 큰 고난을 이겨 나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예언 구약의 예언이나 사도행전11:28에 있는 예언과는 다른 것이다. 이 예언은 앞으로 성도나 교회가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앞으로 행하여야 될 말씀을 성경을 들어서 말하는 것이다. 성경을 떠나서 말하는 것은 참 예언이 아니다.

영들 분별함 악령도 광명한 천사의 모양으로 나타나고 또 사이비한 영의 역사가 많이 있으므로 영들을 분변치 못하면 미혹에 빠져 낭패한다. 신비주의는 영의 역사 같으면서도 영의 역사가 아니고 감정의 역사이다. 성도가 영의 역사와 감정의 역사를 분별하여야 믿는 일을 잘 할 수 있다. 감정에 있어서도 외적 감동과 내적 감동을 분별하여야 된다. 외적 감동은 크게 역사하나 생명의 역사는 없다. 열왕기상19:11-12의 바람, 지진, 불은 외적 감동의 역사인데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그 후에 들린 세미한 음성이 내적 감동의 역사이며 거기에 하나님이 계셨고 생명의 역사와 말씀이 임했다.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4장 2절과 27절 해석을 참조하라

.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

그 뜻대로 성령의 은사는 사람의 요구대로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께 "이런 은사를 주시요 저런 은사를 주시요"하고 요구하면 안 된다. 나눠 주시느니라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주신다. 각양 다른 은사를 각각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시기 때문에 다 같은 은사를 받으려고 하거나 남이 받은 은사를 자기도 받겠다고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서 각자에게 은사를 주시기 때문에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三. 한 몸에 많은 지체가 필요하다(12-27)

.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예수는 머리이며 교회는 몸이다. 그리고 성도는 몸의 지체이다. 많은 성도에게 주신 은사는 각각 다르나 한 몸(교회)을 위해서 주신 것이다.

.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세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성령 세례와 물세례이다. 성령세례는 성도가 예수를 믿을 때에 받은 것이다. 세례는 정화(깨끗케 됨)를 뜻한다. 성도가 예수를 처음 믿을 때에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함을 얻은 것이다.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성령이 진리의 말씀을 가지시고 우리 심령 속에 새 생명을 주신 것을 가리킨다. 그 새 생명의 역사가 생수이다(요4:14; 7:37-38). 많은 성도가 이 생명을 받았고 한 성령으로 교통되고 있기 때문에 한 몸인 것이다.

. 12:14-16 몸은 한 지체 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한 몸에 많은 지체가 붙어 있다. 발이 손만 못하다고 쓸데없다고 할 수 없다. 발이 손만 못하다고 하여 없애버린다면 발 없는 병신이 된다. 발은 걸어다니는 일을 하고 손은 손의 일을 한다. 교회에도 눈과 같은 직책과 은사가 있으며 코나 귀와 같은 직책과 은사가 있다. 그 여러 지체가 없으면 그리스도의 몸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다. 코가 대접을 못 받고 더러운 일과 분주한 일만 하지만 자기의 할 일을 부지런히 하면 코에게도 그 혜택이 온다. 누구든지 교회에서 자기가 높아지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자기의 할 일만 충성되이 해나가면 자신이 살고 교회에도 유익이 된다.

. 12: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귀나 코가 자기 할 일을 안하고 눈이 귀하다 하여 다 눈이 되려고 하면 듣는 것과 냄새 맡는 것은 무엇으로 하겠는가! 교회에서도 존귀하게 보이는 은사나 직분만 얻으려고 하면 교회 구실을 하지 못한다.

. 12:18-19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두셨다. 하나님께서 코가 필요하시면 코를 두시고 입이 필요하면 입, 눈이 필요하면 눈을 두셔서 온 몸이 완전하게 하셨다. 교회도 이와 같이 눈 노릇할 사람, 귀 노릇할 사람, 입 노릇할 사람, 손 노릇할 사람을 두셨는데 자기들의 원하는 대로 두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리스도의 몸에 필요한대로 두신 것이다. 성도 각 사람이 자기에게 주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자기에게 주신 은사와 직책에 충성하여 교회가 잘되어 나가도록 해야한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대로 그 일에 충성만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 12:20-21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아무리 눈이 귀중하지만 눈만 있고 손이 없어도 안되고, 머리가 귀하지만 머리만 있고 다리가 없어도 안 된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이 자기만 못하다고 하여 쓸데없다고 할 수 없다. 교회에서는 크고 작은 모든 은사와 직책이 다 필요한 것이다.

. 12:22-25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 우리 몸의 혀나 심장이나 폐나 간장 같은 것은 약하게 보이나 더 요긴하고 더 잘 보호를 받고 있다.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은 우리 몸의 동체(胴體)와 같은 것이다. 그 부분은 의복으로 잘 입혀 준다. 그 아름답지 못한 지체를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입혀 주고 아름다운 지체(얼굴 같은 부분)는 입혀 주지 않는다. 이와 같이 교회에서도 빈천한 신자를 강한 자들이 보호해 주고 추한 성도를 가리워 주고 약한 자를 붙들어 주므로 온 교회 전체가 서로 도와서 그리스도의 생명운동을 잘해 나가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 12:26-27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모든 신자는 공동체요, 하나님께나 이방 사람에게도 공동 취급을 받고 있다. 교역자 하나가 잘못되면 모든 교역자에게 욕이 돌아가고 신자 한 사람이 잘못하면 온 교회에 욕이 돌아간다.

그러므로 작은 형제 하나를 자기 몸과 같이 여겨 서로 사랑하고 도와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四. 자기 본분을 지키며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28-31)

.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사도 직접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자로 열 두 제자이다. 여기에 가룟유다 대신 사도 바울이 포함된다.

선지자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새롭게 깨달아 전하는 자인데 요즈음은 교역자가 선지자의 직분에 해당한다.

교사 성경 말씀을 가르쳐 주는 자이다. 성령께서 능력 행하는 자와 병 고치는 자와 서로 돕는 자와 다스리는 자 각종 방언하는 자를 세우셨다. 그 중에 믿음과 서로 돕는 은사는 누구에게나 다 주신 것이다.

. 12:29-30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다 사도겠느냐 성도들이 다 사도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다…겠느냐"하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것은 다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성도가 다 선지자나 교사가 될 수는 없고 다 능력 행하는 자나 병 고치는 자도 될 수 없으며 다 방언을 말하거나 통역하는 자도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모든 교인이 다 방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 성경 말씀에 위반되는 것이다.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여야 한다. 자기의 원대로 하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다.

.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8-10절에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를 말했으나 그것들보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것이다. 더욱 큰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방언보다 훨씬 큰 것이다. 그러므로 14:1, 39절에 방언보다 예언의 말씀을 사모하라고 하였다.

"예언의 말씀"이란 마땅히 하여야 할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깨달은 것이다. 그 말씀대로 자기가 순종하여 만들어지고 그 말씀대로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 귀하다. 요즈음 신자들 가운데는 병 고치는 은사를 크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것은 사실 큰 것이 아니다. 육신의 병은 아무리 많이 고쳐도 영적 유익은 별로 없다. 성도가 말씀을 깨닫고 말씀대로 걸어가는 것이 크고 귀한 것이다. 그 이유는 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만 영원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는데 필요한 아홉 가지 직분을 주어 봉사하게 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를 부러워하지 말고 예언의 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머지 않아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폐하고, 지식도 폐할 날이 온다(13:8). 그러나 성도가 말씀대로 영적성전을 잘 지어 나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제일 좋은 길은 다음 13장에 나오는 사랑이다. 교회를 세워 나가는데 사랑이 제일이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는 동시에 사랑으로 그것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가 만들어지고 말씀대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 더 큰 것이며 이것을 사랑으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이 사랑이 무엇보다도 제일 좋은 길이다. 사랑이 없다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과 비밀을 아는 지식이 있으며,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고 해도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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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전서13장

제 13 장 사 랑

(대 지)

一. 사랑의 가치(1-3)

二. 사랑의 성질(4-7)

三. 사랑의 영속성(8-13)

(본문 강해)

一. 사랑의 가치(1-3)

.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본장에 말한 사랑은 아가페( g )사랑이다. 헬라어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네 가지가 있다. ① 스톨게( g ): 가족적, 동족적인 사랑. ② 휠리아( ): 친구나 우애적인 사랑. ③ 에로스( ) : 이성적, 정적 사랑. ④ 아가페( g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랑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방언과 같은 은사를 크게 여기고 자랑하기 때문에 아무리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을 교훈한 것이다. 소리나는 구리 구리쇠판(銅片鐵) 같은 것을 두드려서 소리나게 하는 악기 종류이다. 울리는 꽹과리 대야형으로 만든 금속제 악기인데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소리나는 구리나 울리는 꽹과리는 무질서한 소음을 내는 악기들이다.

이 아가페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고 영적 세계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 영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이 사랑의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와 빛의 세계와 구속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거기에 사랑과 밭과 생명이 있다. 이 사랑은 구속받은 성도의 영적 생명의 역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성도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해도 이 사랑이 없으면 영적 인격의 역사가 아니므로 심령을 살려 나가는 일을 할 수 없고 영적 인격을 건설해 나갈 수도 없다. 이 사랑의 세계에서 행하여야 영이 살게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되고 생명의 열매가 맺혀 나가게 된다. 이것이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다.

.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예언하는 능이 있어 성경을 연구하는 재능이 있어 하나님의 비밀을 알았다고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지식적으로만 안 것이고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므로 아무 유익이 없다.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산을 옮기는 것은 산과 같은 난관을 돌파해 나가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큰 일을 하였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생명의 세계에서는 떠났기 때문에(사랑의 세계는 생명의 세계이므로)아무 유익이 없다. 산을 옮기는 것은 이적과 기사인데 이적과 기사가 사람의 영혼을 살리지 못한다. 사람들이 이적을 보면 감탄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두려워하지만 영적 생명이 살아나지는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 가나안으로 갈 때에 애굽과 광야에서 하나님의 이적들을 많이 보았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믿지 못하고 광야에서 쓰러졌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나 그들이 다 영적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영혼이 살고 구원을 이루는 것은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한 영혼에서 본능적으로 나오는 영적 사랑의 역사로 되어지는 것이다. 이 사랑은 다른 사람을 살리고 자신도 사는 길이다. 이 사랑의 역사가 없이 외부적인 이적과 기사로는 생명을 살리지 못한다.

.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자선사업을 한다고 해서 우리 영혼이 살아나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남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재산과 몸까지 희생하는 것은 아주 큰 희생이다. 그러나 사랑이 없을 때는 그것이 하나의 자선 사업에 그치고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 구제도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 영적 유익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생한 영의 역사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한一서 4:7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라고 하였다. 요한一서 3:14에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고 하였다. 사랑하는 마음이 나오지 않는 것은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진 것이다. 생명의 역사가 있다면 사랑이 나오게 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을 수 없다. 성도가 한 사람이라도 미워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떠난 것이다. 이 거룩하고 영적인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면 자기 몸을 불사르는 데에 내어 주며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영적 사랑의 세계에서 영의 생명이 살아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二. 사랑의 성질(4-7)

.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오래 참고 노할 만한 때에 노하지 않고 오래 참는다는 뜻이다. 사랑의 세계와 영적 세계와 빛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는 한 세계이다. 이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가 유익하게 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오래 참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천년을 하루와 같이 참아 주신다(벧후3:8).

온유하며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이다.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항상 온유하다. 큰 것을 붙잡은 사람은 작은 것 때문에 싸우거나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세계, 즉 하나님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작은 것들 때문에 다투지 않고 온유하게 나간다.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자는 속옷을 빼앗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어 주고,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면 십리까지 동행하면서라도 그 사랑의 세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온유하게 나아간다.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투기는 다른 사람이 나보다 우월하게 될 때에 싫어하고 낮추려는 심리이다. 사랑의 세계, 즉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항상 자기의 부족한 것을 깨달아 하나님만 의뢰하고 주님으로 기뻐하고 하늘나라의 것(신령한 것)으로 만족하므로 투기하거나 자랑하지 아니한다.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의 세계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므로 항상 자기의 부족과 연약함을 느껴 교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랑의 세계는 겸손한 세계이다.

. 13: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사랑의 세계는 진리의 세계이며 질서의 세계이므로 예의가 있는 것이다. 사랑의 세계, 즉 하나님의 세계는 질서정연하고 합법적인 세계이며 무법한 세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우주 만물도 질서정연하게 법대로 존재하며 운행된다. 인간에 대해서나 하나님께 대해서 법칙대로 행하고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랑의 세계이다. 십계명 중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하여 바로 하는 법칙이며,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사람에게 대하여 바로 하는 법칙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공중(公衆)에 대하여식도 합당하게 예의를 지키며 개인에 대하여도 합당하게 행하여 예의를 지키게 된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사랑의 세계, 즉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희생해 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그리스도께 몸을 바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희생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랑의 세계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는 세계이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유익(그 나라의 의)과 다른 사람의 영적 유익을 구하게 된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은 욕심으로 기울어진 것이니 사랑의 세계에서 떠난 것이다.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의 세계는 성내지 아니한다. 모든 것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현재 당한 모든 환경과 형편과 사건을 자기를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으로 믿기 때문에 성낼 만한 일이 생겨도 성내지 않고 의의 길로 걸어간다. 스데반이 원수들에게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성내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었다.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타인에게 피해를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였을지라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 일을 없는 것같이 사랑으로 대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그것을 기억하여 복수하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성도는 사랑으로 허다한 죄와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한다(벧전4:8). 사람들이 자기 부모에게 매를 맞는 것은 잘 기억하지 않는다. 혹시 기억이 되어도 섭섭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악한 일을 기억하고 섭섭해하거나 분하게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이 사랑의 세계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불의는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불의를 기뻐할 수 없다. 불의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이다. 불의를 기뻐하는 자는 마귀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요 사랑의 세계에서 떠난 자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의와 선을 기뻐하고 불의를 떠나게 된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사랑의 세계는 진리의 세계이기 때문에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진리가 아닌 것은 기뻐하지 않는다. 물고기가 썩은 물에서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진리만 기뻐하고 진리가 아닌 것을 반대하고 떠난다. 성도의 영혼이 성령과 진리로 중생하였기 때문에(요3:5) 진리로 된 인격체(人格體)이다. 이 영적 새 사람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사랑의 세계는 영적 세계이기 때문에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진리를 사모하여 진리를 자기 양식으로 삼고 진리를 따라가는 자가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다.

.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모든 것을 참으며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못하여 자기가 피해를 입어도 그 사람을 용납하고 잘 참는다. 불의를 당해도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해 주실 것을 믿고 참는다. 대적하는 무리가 많이 있을지라도 최후에는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다. 자기에게 손해를 여러 번 준 사람도 아주 끊어버리지 않고 손해를 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 사람을 신임해 준다.

모든 것을 믿으며 사랑의 세계는 믿음의 세계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여러 가지 시험과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해도 하나님이 합동하여 유익하게 해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롬8:28). 또 다른 사람이 마귀의 유혹과 죄악에 길이 빠져 희망이 없는 것 같을지라도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구원해 줄 것을 믿는다.

모든 것을 바라며 사랑은 절망을 느낄 만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고 하나님이 친히 잘 해 주시기를 바라며 소망을 가지는 것이다.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고 어떤 악한 상황을 만나도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많은 유익을 얻게 된다.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자는 모든 것을 잘 참고 오랫동안 견디는 것이다. 참고 나가다가 도중에 참는 일을 견디지 못하면 그 일이 실패되고 상대방(그 사람)은 버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랑은 끝까지 견디는 힘이 나온다.

三. 사랑의 영속성(8-13)

. 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사랑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사랑의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이므로 영속적이고 영원하다. 현세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영속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가 이 사랑의 귀중함을 모르고 일시적 은사인 예언과 방언과 지식을 중히 여기고 자랑하였다

예언도 폐하고 예언은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이므로 그것이 이루어지면 그 예언은 끝난 것이다. 예를 들면 이사야7:14의 예언은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한 것인데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탄생한 후에는 그 예언이 끝난 것이다.

방언도 그치고 이 세상을 떠나가면 이 세상의 모든 말(모든 방언)은 그칠 날이 온다. 천국에서는 이 세상에서 말하던 모든 방언이 다 필요 없다. 지식도 폐하리라 이 세상의 지식은 폐할 날이 온다. 세상의 것이 없어질 때 그 지식도 필요 없게 된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지식은 하나님 앞에 가면 다 필요 없게 된다.

. 13:9-10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아는 것은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다. 온전한 것이 오기 전에는 부분적으로 알고 또 부분적으로 예언도 하였으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으로 하던 것은 다 폐하고 온전한 것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된다. "온전한 것"은 두 가지 인데 첫째, 사랑의 세계, 빛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국을 가리킨다. 사랑의 세계, 빛의 세계, 영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만큼 그 세계를 밝히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는 성경을 안다고 해도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며 실제로 자신이 그 세계에 들어갈 때에야 영안이 밝아져서 그 영적 세계를 밝히 보게 되며 성경도 점점 깊게 확실히 알게 되어 부분적으로 알고 예언하던 것을 폐하게 된다. 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 나라에서는 모든 것을 밝히 알게 되겠으므로 그 전에 부분적으로 알던 것이 폐한다는 뜻도 있다.

.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성도가 처음 믿을 때는 중생한 영혼이 어린아이이다. 그 영혼이 점점 자라나야만 장성한 사람이 된다(3:1-3; 히5:12-14).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과 깨닫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이 유치하여 분별을 잘 못한다. 그러나 성도가 신령한 세계, 즉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서 단단한 식물을 먹고 연단을 받으며 자라나 장성한 영혼이 되는 것이다. 영적 세계에 들어간 사람은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에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던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던 것을 알게 된다. 그 세계에 들어가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장성한 사람처럼 제대로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고 또 그 세계에 들어가서 단단한 식물을 먹고 연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 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성도가 이 세상에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아는 것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다는 뜻이다(그 당시에는 금속 철판으로 거울을 만들었으므로 희미하게 보였다고 함). 야고보서1:23-24에는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라고 하였다.

그 때 주님이 재림하시는 때이다.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주께서는 항상 나를 보시고, 나의 전체를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는 내가 주님을 직접 바라보고 주님의 모든 것을 잘 알게 되고 내 모든 것도 완전히 알게 될 것이다. 또 성도가 사랑의 세계에 들어갈 때에도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처럼 주님과 영적으로 교제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주님을 완전히 알 수 있다.

.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성도에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금세와 내세에 항상 필요한 것이다. 천국에 가면 믿음과 소망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옳지 않다. 천국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하나님을 닮아가려고 하는 소망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계속되어 나갈 것이다. 천국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다. 유아들이 부모를 의뢰하고 믿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도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닮아가려는 소망을 가지고 계속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항상 소망을 가지고 영원히 닮아가야 한다. 그리고 천국에서도 하나님과 성도간의 사랑과 성도와 성도간의 사랑은 영원히 계속된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영원히 있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 믿음, 소망, 사랑 이 셋 중에 사랑이 제일 귀중하고 제일 크고 제일 좋은 것이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 믿음이 시작되었으니 사랑에 뿌리를 박고 있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허락하신 것을 소망하고 사랑으로써 그 소망을 이루어 나갈 수가 있으며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요 하나님과 사랑의 교통으로 영원히 즐거움을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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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전서14장

제 14 장 방 언

(대 지)

一. 예언과 방언에 대하여(1-25)

二. 질서와 화평을 지키라(26-33)

三.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34-38)

四. 예언을 사모하라(39-40)

(본문 강해)

一. 예언과 방언에 대하여(1-25)

. 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성도는 항상 신령 한 것을 사모하여야 한다. 신령한 것은 육신에 속한 것이나 세상에 속한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즉 성령과 중생한 영혼에 속한 것이요 영적인 것이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한계시록1:3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였다. 디모데전서1:18에도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라고 하였다. 여기 말한 예언은 성경 말씀을 가리킨다. 성경 말씀 가운데 장차 되어질 것은 다 예언이다. "예수 믿으면 천당간다"는 말씀도 예언이다. 왜냐하면 성도가 아직 천당에 간 것이 아니고 앞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말씀도 예언이고,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씀도 예언이다. 또 성경의 역사적 사실에서 순종하여 복 받은 사실과 불순종하다가 벌받은 사실도 오늘날 우리에게 복 받는 길과 벌받는 길을 가르쳐 주는 예언이 된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다 예언의 말씀이 된다. 모든 성경은 오늘날 우리 성도가 마땅히 하여야 될 것과 걸어가야 될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것은 자기가 걸어갈 말씀을 찾아서 걸어가라는 뜻이고, 모든 사람이 행하여야 될 말씀을 찾아서 증거하라는 뜻이다. 성령으로 말씀을 새롭게 깨달아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고 고쳐야 할 것을 고치고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될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예언을 하는 것이다.

성도에게 이것이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없으면 빛이 없어지고 생명이 살지 못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중요하지 않은 방언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잘못된 것을 바로 세우려고 본 장을 쓴 것이다.

.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방언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다른 나라 말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들이 배우지 않은 이방 나라 말로 전도하였다(행2:4).

둘째,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있다. 말을 하지만 무슨 말인지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고 하나님과만 통하는 방언이다.

셋째, 새 방언이다(막16:17). 천국의 신령한 진리를 새롭게 깨달은 말씀(성경 말씀을 새로 깨달은 것)은 그 내용이 새로운 것이므로 새 방언이다.

방언의 출처도 셋이 있다.

①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방언이 있다. 자기 스스로 방언을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면 방언을 할 수 있다. 또 배우고 연습하여 방언을 하는 자도 있다.

②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방언이 있다. 이러한 방언은 흔하지 않다.

③ 마귀로부터 오는 방언이 있다. 마귀가 사람을 미혹시키기 위하여 방언을 하게 만든다. 본 절에 말하는 방언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 14:3-4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예언,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여 준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유익을 준다는 말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신자들의 믿음에 유익 준다는 뜻이다.

권면 신자를 권하여 바로 세우고 믿음을 굳건히 한다는 뜻이다.

안위 환난과 핍박당하는 신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평안과 소망을 주며 위로를 받게 함이다. 그러나 방언하는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므로 자기에게는 어느 정도 유익이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나 교회에는 유익이 없다.

. 14: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12:30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고 하였고, 12:11에는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고 하였으며, 12:28에는 "그 다음은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 한 것을 보아 모든 성도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하기를 바울이 원치 않은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본 절의 방언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는 뜻이 아니고 새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새 방언, 즉 성경 말씀을 성령으로 새로 깨달아 말하는 것은 성도 누구나 다 말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바울이 본 절에서부터 방언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첫째,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을 세우지 않으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다고 하였다.

. 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둘째, 그 방언은 성도들에게 유익이 없다고 하였다.

계시나 지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내적 면을 가리키는데 이것이 예언에 속한다.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 성경 말씀의 외적 전파를 가리키는데 위의 두 가지와 이 두 가지가 합하여 넷이 다 예언에 속한다.

. 14:7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셋째, 그 방언은 뜻을 분별할 수 없으므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악기를 연주할 때 악기가 제각기 독특한 소리와 음을 내기 때문에 그것을 분별할 수 있고 가치가 있는데 방언은 그렇지 못하다.

. 14:8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넷째, 전쟁을 예비할 수가 없다. 전장(戰場)에서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전쟁을 준비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하면 성도가 마귀와 더불어 싸울 준비를 할 수가 없게 되므로 패전하기 쉽다.

. 14:9 이와 같이 너희도 허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다섯째, 그 방언은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계속하는 것은 허공에다 말하는 것과 같다.

. 14:10-11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여섯째, 그 방언을 말하는 자나 듣는 자가 서로 야만이 된다.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자는 듣는 사람에게 야만이 되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된다. 서로 의사가 통하지 않고 알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은 피차 야만의 행위이다. 야만( : 발바로스) 미개인 혹은 외국인이라는 뜻이다

. 14:12-13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참으로 신령한 것을 구하는 성도는 예언하기를 구하여야 한다. 만일 방언을 하는 자가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못되는 방언만 하지 말고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였다.

.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일곱째, 방언으로 기도하면 자기 영은 기도를 하나 마음에는 열매가 없다. 여기 마음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깨달음이 없는 것, 회개가 없는 것, 불의를 떠나고 바른길을 걸으려는 결심이 없는 것 등을 말한다.

.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성도가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가리키고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무엇을 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또 영으로 찬미한다는 것은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가리키고 마음으로 찬미하는 것은 마음으로 찬미하는 가사 내용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기쁘다 구주 오셨네"하고 찬송하는 것 같은 것이다.

. 14:16-17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너는 감사를 잘 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여덟째, 방언으로 축복을 하거나 감사할 때에 무식한 자가 "아멘"할 수가 없다. 자기는 감사를 잘했지만 교회에는 유익이 없다.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 종교의 전문가나 교회의 지도자가 아닌 평신도를 가리킨다.

아멘 "진실", "찬동한다"는 뜻으로 유대 교회에서 모여서 지도자가 기도나 말씀을 전할 때에 회중은 아멘으로 화답하여 "그렇습니다"하는 뜻을 표한 것이다(신27:15-26; 대상16 :36; 느5:13). 이것이 신약시대 교회에도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 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모든 사람보다 더 말한 것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본 장에서 그러한 방언은 교회에 덕이 못되고, 유익이 없고, 피차 야만이 되겠으니(11절) 잠잠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28절). 그러면 바울이 모든 사람보다 더 말한 방언은 무슨 방언일까?

그 방언은 사도행전2:4-11에 나오는 방언으로 배우지 않고도 다른 나라 말로 전도하는 방언을 말했을 것이다. 또 마가복음16:17에 있는 새 방언일 것이다. 이 새 방언은 신령한 진리를 새로 깨달아 자기 나라 말로 말하는 것이다. 참으로 바울은 모든 사람들보다 새로운 진리를 더 많이 말한 사람이다. 그가 기록한 성경도 13권 이상이나 된다.

. 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아홉째, 깨달은 마음으로 성경을 다섯 마디 말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하는 것보다 낫다. 한 마디라도 성경 말씀을 깨달아 말하면 교회에 큰 유익이 있으나 방언은 아무리 많이 말해도 교회에 유익이 없다.

. 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고린도 교인들이 교만하여 시기와 분쟁을 하며 유익이 없는 방언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악에는 장성하고 지식에 유치(幼稚)한 까닭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어 악한 일을 할 줄도 모르고 할 수도 없는 자가 되고, 지혜에 있어서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 어떠한 것이 귀중한 것인지(예언의 귀중성), 어떠한 것이 유익이 없는 것인지(방언의 무익성) 바로 깨달아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가라고 권면한다.

. 14:23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열째,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여 주신 표적이다.

율법에 기록된바 이사야28:ll 이하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한 말이다. 이사야서를 율법이라고 한 것은 구약 성서가 율법이라 불리우기도 했기 때문이다(요10:34; 롬3:19-21).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 주었으나 그 말씀을 지키지 않으므로 방언이 다른 앗수르 사람을 불러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여 깨닫게 할 것을 예언하였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나라 말로 말할 때에 믿고 순종하였다면 앗수르 나라 사람들을 불러 올 필요가 없었으나 그들이 순종치 않았기 때문에 방언이 다른 앗수르 사람들을 불러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여 하나님께 순종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주는 표적이요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여 주는 것이다.

. 14: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열 한째, 온 교회가 다 모여서 방언하며 떠들면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나 무식한 사람들이 볼 때에 미쳤다고 할 것이다. 불신자 와 무식한 자는 어느 때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방언을 하는 것은 별로 유익이 없다.

무식한 자는 16절 해석을 참조하시오

. 14:24-25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면(예언하면) 불신자나 무식한 자도 그 말씀을 통하여 책망을 받고,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므로 유익한 것이다. 방언은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하나 예언은 큰 유익을 준다. 그러므로 예언이 귀중한 것이 다.

二. 질서와 화평을 지키라(26-33)

. 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모든 은사는 이기주의로 사용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교회에 유익이 되고 덕을 세우도록 사용하여야 한다. 찬송시 초대 교회에서 구약의 시편과 새로 작사한 찬송들을 불렀다고 한다. 가르치는 말씀은 성경 말씀과 그 뜻이다. 계시 초대교회 때까지는 계시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사도시대 후에는 표준계시가 종결되었으므로(계22:18-19 참조) 지금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 14: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교회에서 방언을 말하려면 두 세 사람만 순서대로 하되 반드시 통역을 세우라고 하였다. 거짓으로 통역하는 자가 많으므로 통역하는 자가 바른 통역을 하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바른 통역인지 알아보려면 한 사람이 방언을 하고 통역하는 자를 두 사람 이상 세워서 통역하는 내용을 각자 기록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내용이 일치하면 바른 통역이고 그렇지 못하면 바른 통역이 아니다. 바른 통역을 하였다면 백 사람이 통역을 하여도 일치할 것이다.

. 14: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방언을 말하지 말고 잠잠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 14:28-31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예언)을 가르칠 때에 모든 사람이 배우고 권면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사람씩 말씀을 전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권면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 모든 것을 분별하며 고칠 것은 고치고 순종할 것은 순종해 나가야 한다.

. 14:32-33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란 예언하는 자가 받은 성령의 감화를 가리킨다.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요16:13). 그러므로 이 감화를 받은 자가 무리하고 무질서하게 난동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탈선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예언하는 자가 그 감화를 받을 때에 제재하여 말씀대로 바른 의식과 행동으로 나가야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三.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34-38)

. 14:34-35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모든 교회에서 함과 같이라는 뜻이며 교회의 규례도 성경에 근거한 것은 지키는 것이 옳다. 이 규례는 창세기3:16에 근거한 것이며 여자가 교회에서 남자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게 되면 자기 남편 위에 있게 되므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여야 한다. 이것은 여자가 교회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남자들을 주장하는 공적 교훈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여자가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배우라고 하였다.

. 14: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고린도 교인들이 성경대로 건전하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방언하고 떠들며, 여자들이 교회에서 가르치느라고 유별나게 분요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고 책망하고 성경을 순종하여 모든 교회에서처럼 여자들은 잠잠하고 성경대로 건전한 신앙 생활을 하라고 권한 것이다.

. 14:37-38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흑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고린도 교인 중에 자기를 선지자나 신령한 자로 생각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너희가 신령한 자라면 이 편지로 권면하는 말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 하였다. 이 권면이 주의 명령인 줄을 알지 못하면 그는 신령한 것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자이다. 자기가 신령한 자라고 생각을 하면 방언에 대하여 바울이 말한 모든 것이 주의 명령인 줄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주의 명령이 아닌 줄로 생각하면 그는 신령한 자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니다.

四. 예언을 사모하라(39-40)

. 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 말씀이 은혜스럽고 그 말씀이 자기에게 생명과 힘이 되어 자기를 인도해 주는 예언의 말씀이 되도록 사모하라는 것이다.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예언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힘써서 생명의 열매가 맺혀 나가야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 일을 부지런히 하면 방언을 하던 것은 자연히 안 하게 된다. 왜냐하면 방언은 영적 유익이 없고 열매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억지로 방언을 금하지 말고 더욱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말씀만 사모하여 그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면 모든 어지러움이 바로 잡아 질 것이다

. 14:40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데살로니가전서5:14에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질서가 있고 모든 것이 적당하다. 성도가 질서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자기가 하고 자기 위치를 바로 지키며 모든 것을 알맞게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해 나가야 아름다운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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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전서15장

제 15 장 부 활

(대 지)

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었다가 성경대로 살아나심(1-4)

二.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함(5-11)

三. 부활 신앙(12-19)

四. 부활 능력(20-34)

五. 부활 이치(35-41)

六 부활체의 존귀(42-49)

七. 부활 승리(50-58)

(본문 강해)

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었다가 성경대로 살아나심 (1-4)

. 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이다(롬1:2-4). 고린도 교인들이 이미 복음을 받았고 또 그 가운데서 있었다.

. 15:2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 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이 이미 복음에 확고히 서 있으므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리스도는 이사야53:5-6의 말씀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시편16:10의 말씀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를 성경대로 이루신다. 성경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녀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사7:14), 우리 죄를 위하여 성경대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리셔서 우리에게 의와 생명과 구원을 주셨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없으나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예수님을 살려 놓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성도의 부활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경대로 성취시킬 것이다.

창세기21:1-2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라고 하였다.

二.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함(5-11)

. 15:5-8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열 두 번 나타내 보이셨다.

①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심(요20:18).

② 여인들에게 보이심(마28:9; 눅24:10).

③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에게 보이심(15:5; 눅24:34).

④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보이심(막16:12 ;눅24:13-35).

⑤ 예루살렘에서 열 사도(도마 없을 때)에게 보이심(요20:19).

⑥ 열 한 사도에게(도마도 함께 있을 때) 보이심(요20:26-29).

⑦ 일곱 사도에게 보이심(요21:1-2).

⑧ 열 한 사도에게 보이심(갈릴리 산에서)(마28:16-17, 막16:14).

⑨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심(갈릴리에서)(15:6).

⑩ 야고보(주의 동생)에게 보이심(예루살렘에서)(15:7).

⑪ 승천하실 때 모든 사도들에게 보이심(감람산에서) (막16:19; 눅24:51; 행1:9).

⑫ 사도 바울에게 보이심(다메섹 도상에서)(15:8: 행9:3-6).

게바는 베드로이다(요1:42). 잠들었으며 잠들었다는 것은 성도의 죽음을 말한다. 야고보 제자 야고보가 아니고 주의 동생 야고보이다. 그가 주님이 살아 계실 때는 믿지 않았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본 후에 믿고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 되어 초대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 되었다(갈2:9). 그를 귀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내 보이신 것 같다. 그 후에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 나타난 것(행18:9)과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서 계시를 준 것(계1:10-20)은 계산하지 않는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사람이 잉태하면 열 달 만에 아이를 낳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바울이 기한 전에 태어난 사람처럼 변변치 못한 자라는 뜻이다. 바울이 이처럼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자리에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였다.

. 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바울이 다른 사도보다 많은 수고를 하였으나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였다. 그가 과거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감당치 못할 자라고 하였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를 핍박한 죄는 하나님 앞에 아주 큰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한 것은 예수님을 찌르고 예수님의 몸에 상처를 준 죄가 된다. 그 죄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다 나타난다(계1:7 참조).

바울이 전에 지은 큰 죄를 생각하고 회개하는 일을 계속하며 자기를 항상 부인하였다. 이것이 자기 영의 사람을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되었다. 바울이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하였으며(엡3:8),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다(딤전1:15). 바울이 모든 성도 가운데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는 종노릇을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였고 또 하나님이 귀히 쓰셨다.

.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울이 바울이 되어 어느 정도 만들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기 때문에 된 것이며, 그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를 하며 주의 일을 한 것도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자기가 한 것이나 자기가 이룬 것은 하나도 없고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뿐이고 하나님이 하신 것뿐이다.

누구든지 무엇을 "내가 했다"고 하면 교만이다. 또 무엇이나 "나는 안 하겠다"고 하여도 교만한 생각이다. 성도는 오직 주께서 시키시는 대로 순종만 해야 한다. 자기가 된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속은 것이며 벌써 넘어지고 있는 자이다(10:12; 갈6:3).

. 15: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바울이나 베드로나 아볼로나 그 외에 다른 사도가 다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파하였으므로 고린도 교인들이 그대로 믿었다는 뜻이다.

三. 부활 신앙(12-19)

. 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전파되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 중에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가 있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 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부활하셨겠는가?

. 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바울이 전파하는 복음과 그 복음을 믿은 신자들의 믿음도 다 헛것이 된다. 그 이유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했고 고린도 교인들이 그 복음을 받아 믿었기 때문이다.

. 15:15-16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고 하면 바울이 거짓 증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파하였고 성도의 부활도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원리로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했다고 하면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야 참 믿음이 되고 죄 사함을 받기 때문이다.

. 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는 별세한 성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다 멸망하고 만다.

.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기독 신자는 세상 사람보다 바로 살려고 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 하려고 모든 것을 희생하며 나아간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받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받고(시73:14), 시련과 연단을 위한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죄악에 빠지지 않으려고 극기와 인내로 나가는 것은 부활의 소망, 즉 내세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망이 없어지고(헛된 데로 돌아가고) 이 세상만으로 끝나고 멸절된다면 기독 신자가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

四. 부활 능력(20-34)

.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이다. 첫 열매가 어떠하면 다음에 맺히는 열매도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첫 열매이므로 성도도 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 부활의 밑천(資本)이요 원동력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킨 능력으로 그의 부활체와 같이 모든 성도들을 부활시킬 것이 확실하다.

. 15:21-22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사망은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나 부활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왔다. 아담은 법적으로 인류의 대표인데 그가 범죄하므로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의 영과 육이 죽게 되었 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의 영혼이 죽었고 마침내 육체도 죽게 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대표로서 대속하고 부활하였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영혼이 살아났고, 육체도 부활하게 되었다.

.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죽은 자의 부활은 각각 차례대로 된다

제1차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하였다.

제2차는 예수님 부활 시에 자던 성도들이 일어난 것이다(마27:52-53). 이들은 오실 그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구약 성도들 중의 몇 명이다.

제3차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무덤에서 자던 성도들이 부활함이다.

제4차는 예수님 재림 시에 살아있던 성도들이 홀연히 부활체로 변화되는 것이다.

제5차는 그리스도 재림 후에 죽은 성도들의 부활이다.

제6차는 천년왕국 끝에 살아있던 모든 성도가 부활체로 변화함이다.

제7차는 불택자들의 부활이다.

이상 7차 부활을 크게 둘로 나누어 구원받은 모든 성도의 부활을 첫째 부활이라 말하고(1차에서 6차까지), 불신자의 부활은 둘째 부활이라고도 한다(계20:4-6 참조). 불신자들의 부활은 천년왕국이 지나간 다음에 있다.

. 15: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정사는 정치와 일 처리하는 것을 뜻하는데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모든 정치는 하나님께서 멸하신다.

권세는 이 세상에서 권세를 잡고 세도를 쓰는 것을 가리킨다.

능력은 세상적인 능력, 즉 돈의 능력, 지식의 능력과 같은 것들이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모든 권세와 능력은 하나님이 멸망시키신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에 이 세상 나라와 불순종하는 세력들을 다 정복하여 하나님께 복종시키게 된다.

. 15: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하시리니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고 모든 원수를 정복하여 발아래 두기 위하여 불가불 왕권을 행사하신다. 발아래 둔다 함은 완전 정복을 의미한다.

. 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사망도 마지막에는 멸망하게 되어 죽음이 영원히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것이다.

. 15: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시므로 만물 아래 들지 않고 만물을 정복할 자가 분명하다.

. 15: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지금은 만물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하게 와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마귀의 역사로 인하여 만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종하는 사람과 만물 속에는 하나님의 통치와 역사가 와서 있다. 만물이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될 때에는 하나님의 통치와 사랑이 만물에게 충만히 와 있게 된다. 이것이 만물 통일이요 하나님이 만물 안에 계심이다.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복종할 때에는 만물을 정복시키는 아들의 임무가 끝난다는 뜻이다.

. 15: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다는 성구는 난해 구절이다.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세례 받는다는 것은 이단설인데 바울이 이단설을 말했을 리가 없다. 죽은 자는 영혼이 죽은 자를 말한다. 예수 믿기 전의 모든 사람의 영혼은 죽어있다(엡2:1).

세례 여기의 세례는 고난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누가복음12:50에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받으실 십자가의 고난을 세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영혼이 죽은 자들, 즉 불신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고난받으실 것을 가리킨다.

모든 전도자들은 영혼이 죽은 불신자들을 건져내려고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 만일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것이 없다고 하면 영혼이 죽은 사람을 위해서 고난 당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또 믿음이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당하는 고난이 있다. 신앙이 죽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위해서 바울이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하였다(갈4: 19).

. 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사도들이나 전도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며 고난을 당하는 것은 부활이 있기 때문이었다.

.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의 자랑은 복음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성도가 날마다 죽어야 날마다 살아난다.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고난을 받으며 죽음을 무릅쓰고 전도를 하며 의를 행한다.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자기를 죽음에 넘기우는 것, 생명을 내어놓고 죽음의 노선을 걸어가는 것을 뜻한다.

. 15: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범인(凡人)처럼 부활 소망이 없는 일반 불신자처럼 이라는 뜻이다.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이것은 비유이니 맹수처럼 악랄하게 복음을 대적하고 핍박하는 사람들과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면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데 부활 소망이 없다고 하면 이렇게 한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내일의 소망이 없는 자, 즉 부활의 소망이 없는 자는 죽기 전에 먹고 마시는 것밖에 없다. 대가가 없이는 일하지 않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주를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악한 동무 전 절에 말한 순간주의자(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들과 교제하면 그들의 악한 생각과 그릇된 행동에 오염되기 쉽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도 성경대로 믿지 않고 성경 말씀을 거역하는 악한 동무의 말을 들으면 거기에 동화되어 참된 진리를 버리고 신앙에서 떠나기 쉽다.

.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짖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깨어 영으로 사는 생활이다. 성도는 늘 깨어 영적 새 생명의 길을 걸으며 의를 행하기를 힘써야 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교회 안에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五. 부활 이치(35-41)

. 15: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사람이 죽어 장사되면 썩어 없어지는데 어떻게 부활할 수가 있으며 어떤 몸으로 부활하겠느냐 하는 물음이다. 다음절에 그 답변이 있다.

. 15:36-37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식물의 원리를 들어서 부활을 설명하였다. 땅에 심은 종자가 썩어져야 싹이 나온다. 새로 나온 싹과 줄기는 심은 종자의 형체와는 다르다. 종자(알갱이)에는 줄기나 잎사귀나 뿌리 가 없었으나 그 알갱이가 땅 속에서 썩으므로 그것들이 나온다. 이와 같이 사람이 죽어 장사되는 것은 종자를 심는 것과 같다. 종자를 심어 놓으면 다음에 새 생명체가 부활되어 나온다. 그 생명체는 심은 것과는 다른 형체의 생명체이다. 식물의 원리에서 우리의 부활체가 어떠할 것을 알게 된다.

. 15: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종자를 심으면 하나님께서 종자마다 다른 형체의 줄기와 잎이 나게 하였다. 이와 같이 현재의 우리 몸과 부활한 몸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 15: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동물)의 육체를 내실 때에 각각 다르게 내셨다. 이와 같이 현재의 우리 몸과 부활체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성도들이 신령하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육체로 부활된다.

. 15:40-41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하늘에 속한 형체 해와 달과 별들을 말한다. 땅에 속한 형체 지상에 있는 생물과 무생물의 모든 형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형체의 크기와 모양과 질이 각각 다르게 창조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부활할 때에도 현재의 육체와는 아주 다른 육체로 부활시킨다는 뜻이다.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각각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다. 하나님이 여러 가지 형체를 영광이 다르게 지으셨으므로 현재 우리의 육체와 다음의 부활체는 그 형체의 질과 영광이 아주 다르다. 또 성도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것만큼(갈4:19) 부활 후에 그 영광이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에서 순교자의 영광은 아주 크다.

六. 부활체의 존귀(42-49)

.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사람이 죽어서 장사되는 것은 종자를 심은 것과 같다. 종자를 심으면 거기에서 새 생명이 나오는 것처럼 사람이 죽어 장사되면 그 사체(死體)에서 새 생명이 부활하게 된다. 썩을 것 현재 우리의 육체는 썩을 것이다.

썩지 아니할 것 부활체를 말한다. 현재 썩을 몸이 죽으면 다음에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성도가 죽기 전에도 현재의 썩을 것을 믿음으로 희생하면 장래에 썩지 않을 것을 많이 거둘 수가 있다.

. 15:43-44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욕된 것, 약한 것 이 세상에서 사는 육체를 가리킨다. 낮고 천한 몸이니 욕된 것이요, 병들고 쓰러지기 쉽고 불가불 죽을 몸이니 약한 것이다. 육의 몸 헬라어로 푸쉬키코스(y c )이니 동물 생래(生來)의 생명과 인간 생래의 생명을 뜻한다. 우리는 생래적으로 제한된 육체를 가진 몸이다. 그러나 부활체는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이다. 빌립보서3:21에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하였다. 우리가 부활 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과 같이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이 되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만국을 심판하며 통치하는 강한 몸이 될 것이다.

.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기록된 바는 창세기2:7의 말씀을 인용함이다. 아담은 산 영이되었다 하나님께서 진리와 영감으로 아담의 영혼을 살려 산 영혼이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끊어지면 영혼이 죽고, 연결되면 영혼이 산다.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님과 아담의 영혼이 연결되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몸을 동정녀 탄생으로써 창조하시고 영혼도 새 창조하셔서 예수님을 인류의 대표로서 은혜 계약을 맺으셨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고 진리와 영감으로 죽은 영혼들을 살려 주는 영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이다. 믿기 전에는 성도의 영혼이 죽은 영혼이며 성도가 믿을 때에 그 영혼이 살아난다(엡2:1).

. 15:46-47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육 있는 자는 아담이요 신령한 자는 그리스도이다.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났으므로 흙에 속한 자요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신 자이다(요3:31; 9:33). 그리스도는 도성인신하신 하나님이시다.

. 15: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무릇 흙에 속한 자 부활하기 전의 육체이다. 이 세상에서 사는 우리의 육체는 "저 흙에 속한 자" 즉 아담과 같다는 것이다. 무릇 하늘에 속한 자 부활한 몸을 가리킨다. 성도가 부활하면 "저 하늘에 속한 자" 즉 그리스도의 부활체와 같은 몸으로 된다는 뜻이다.

.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가 현세에서는 흙에 속한 자, 즉 아담의 형상을 입고 있으나 다음 부활할 때에는 하늘에 속한 자,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된다.

七. 부활 승리(50-58)

.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현재 우리의 몸은 혈(血)과 육(肉)을 가지고 있고 썩을 몸이다. 이 몸으로는 신령하고 썩지 않는 영원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썩을 수밖에 없는 혈과 육의 몸이 부활하거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야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

.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잠잘 것 성도의 죽음은 사망이 아니고 잠자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생명이 천당에 가서 살아있기 때문이며 또 부활할 때에 깨어 일어나겠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 좇아 재림하신다. 그 때에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일어나고 살아있던 성도들도 홀연히 변화되어 부활체와 같이 되어 공중에 올리워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살전4:16-17).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다.

. 15: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현재 우리의 몸은 죽을 것이요 썩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반드시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 믿는 자는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몸도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 일이 불가불, 즉 필연적으로 될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권능으로 성취시키는 것이다.

.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로 인하여 썩지 아니할 몸, 죽지 아니할 몸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완전히 이기게 된다. 이 때에 이사야25:8의 예언이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 호세아13:14를 인용한 것으로 사망이 생명의 승리에 삼킨바 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영적 새 생명과 부활의 승리는 사망을 완전히 삼켜서 멸절시키고 만다.

.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은 사람을 이기고 정복하고 사람을 쏜다. 사망이 들어오면 영웅호걸이라도 그것을 이기지 못한다. 아무리 행복스러운 가정과 사회라고 할지라도 사망이 찾아와 쏘면 고통을 당하고 마침내 사망에게 정복당하고 만다..

.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사망은 죄로 인하여 세상에 들어 왔으며 사망의 권세는 하나님의 율법에 있다.

로마서 7:8에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고 하였다. 죄가 율법을 의지하여 살아 득세하고 힘을 얻어 모든 사람을 쏘고 이긴다.

.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사망과 죄를 다 이길 수 있다. 사망은 율법을 의지하여 세력을 쓰는데 예수께서 율법을 다 완성시켜 주시고 우리 대신 죄 값을 다 치러 주셨고, 부활로써 사망 권세를 다 이기셨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사망이 없고 다시 정죄함도 없다(롬8:1).

예수 믿는 사람은 영혼이 살았으므로 다시 사망이 없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 때에는 죄와 사망의 세력을 날마다 이겨 나갈 수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시에는 사망을 완전히 정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된다.

.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그러므로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이미 사망을 이기셨고 이길 능력이 있고, 그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라는 뜻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음 세 가지로 권하였다.

첫째, 견고하며 둘째, 흔들리지 말며 셋째,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 성도가 견고하여 굳건한 반석과 같은 신앙으로 흔들리지 않아야 된다. 옳은 것을 깨달았으면 계속하여 나아가야 한다. 성경 말씀에 든든히 서 있는 신앙이 견고한 신앙이다. 옛말에 언불청 도불행(言不聽 道不行)이라는 말이 있다. 즉 말이 아니면 듣지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뜻이다. 한번 뜻을 세우면 끝까지 참고 견뎌 나가는 인내가 필요하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주의 일을 위해 수고하라는 말이다. 주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구원운동을 위하여 힘을 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의 일을 착수하였으면 중단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계속해서 힘써 해 나가야 한다. 주를 위해 수고하면 그것이 복이 되며 결코 헛되지 않는다. 주를 위해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준 것도 헛되지 않으며 성도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준 것은 주님이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고 주님이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준 것이 된다(마25:34-40).

주를 위하고 성도를 사랑하여 봉사하고 수고한 것은 하나님 앞에 결코 헛되지 않는다. 주를 위해 수고한 것이 금생과 내세에 그 사람을 따라가고 그것에 따라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신다(딤후4:7-8; 계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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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전서16장

제 16 장 장 부(丈夫)

(대 지)

一. 연 보(1-4)

二. 고린도에 갈 뜻을 보임(5-9)

三. 일꾼 영접(10-12)

四. 강 건(13-14)

五. 교역자 존중(15-18)

六 문안 축복(19-24)

(본문 강해)

一. 연 보(1-4)

. 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성도를 위하는 연보 구제 연보를 말한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가난한 성도가 많았으므로 바울이 각처 교회에서 연보를 거두어 예루살렘 교회로 보낸 적이 있다(행11:29-30; 갈2:10).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도 연보에 대하여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다.

. 16: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매주일 첫날 매 이레 중 첫날, 즉 주일날(일요일)을 말한다. 성도들이 한 주간 동안 이(利)를 얻은 가운데서 연보를 하되 매주일마다 연보하여 두었다가 바울이 고린도에 갈 때에 특별연보를 다시 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 연보는 특별히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한 연보였다. 고린도 교인들이 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면서 주일 연보는 물론이요 십일조 연보도 했을 것이다. 그 외에도 특별 연보를 매주일 하여 교회가 그것을 저축해 놓으라고 하였다.

이 말씀에 주일마다 예배 드리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초대교회가 이 때부터 토요일에 모이지 않고 주일날 모여서 예배 드린 것이 분명하다. 구약시대에는 안식일(토요일)을 지켰으나 신약시대에는 이레 중 첫날(일요일)을 지켰다. 이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요(마28:1-7),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이며(행2:1-4), 성부께서 계시를 주신 날이다(계1:10). 또 사도행전20:7에도 안식 후 첫날(주일날) 모여서 예배 드릴 때에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래 강론하였다. 이것을 보면 초대교회 때부터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지킨 것이 분명하다. 안식교회에서는 아직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나 그것은 성경을 바로 깨닫지 못한 증거이다.

히브리서7:18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하였다. 여기에서 "전엣 계명"은 구약을 가리킨다. 히브리서4:7에는 안식일에 대하여 논하다가 다른 날을 정한다고 하였다.

골로새서2:16-17에는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일날을 지키는 것이 옳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으로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주일에는 일하지 말고 사사로운 말이나 오락을 행하지 말아야 하며 하루종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사58:13-14). 주일날에 일을 하거나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이다.

민수기15:32-35에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나무를 한 사람을 돌로 때려죽이라고 하였다. 주일을 범하는 죄는 하나님 앞에 죽임을 당할 만한 죄인 줄 알고 거룩하게 주일을 지켜야 한다.

. 16:3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고린도 교인들이 한 연보를 예루살렘으로 보낼 때에 고린도 교인들이 인정한 사람들(위원들)을 택하여 맡기고 또 바울의 편지도 주어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겠다고 하였다. 교회의 연보를 이렇게 인정받는 여러 사람에게 맡겨서 처리하는 것은 마귀의 훼방을 방지함이 되고 교인들이 의심할 여지를 주지 않으므로 복음 사업에 큰 유익이 된다. 은혜는 연보를 가리킨다.

. 16: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

바울은 무엇이나 교회에 유익이 되도록 행동할 작정이다.

二. 고린도에 갈 뜻을 보임(5-9)

. 16:5-6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나아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과동할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1:15-16에 보면 바울이 처음에 경영할 때는 에베소에서 먼저 고린도에 갔다가 거기서 마게도냐로 가고, 마게도냐에서 다시 고린도에 갔다가 거기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 경영이 바뀌어 바울이 고린도에 들르지 않고 직접 마게도냐로 갔다가 거기에서 고린도에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방하는 자들이 그 점을 들어 바울이 진실하지 못하고 거짓되다고 비방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진실한 마음으로 한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일에 유익되는 일이라면 전에 작정했던 것을 변경시킬 수 있다. 그렇게 변경하는 것은 진실한 것이요 성도에게 유익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마게도냐에 갔다가 고린도로 가서 겨울을 지내며 교인들을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자기가 하는 일에 고린도 교인들이 협력하고 도와주기를 원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모든 교인들이 서로 도와주어야만 잘 되어 나간다.

. 16: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기 위해서 지금은 가지 않으나 이 다음에 가서 장기 체류하며 잘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 16: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바울이 이 편지를 유월절 되기 전에 에베소에서 기록했는데 오순절까지는 약 2 개월간의 기간이 있었다고 한다.

. 16:9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

바울이 에베소에 머무르려고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즉 복음 사업에 성공의 역사가 많이 나타났다. 이것이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린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많은 효과가 나타나 복음이 널리 전파되어 나가고 전도의 열매가 많이 맺혀 나가는 때에는 그 곳을 떠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고 문이 열려 있을 때에 힘써서 그 일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둘째, 대적하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대적하는 자가 많으면 고난이 많으므로 교역자들이 그러한 곳을 떠나려고 하는 것이 보통인데 바울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핍박하고 대적하는 자가 일어날 때에 교역자가 그곳을 떠나지 말고 거기서 믿음을 지키며 마귀를 이겨 나가야 한다. 그리하면 자기 영혼이 자라나서 힘을 얻고 영력이 생기며 신앙이 견고해진다.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면 마귀의 역사도 크게 일어난다(행7:54-58 참조).

三. 일꾼 영접(10-12)

. 16:10-11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알아보고 여러 가지 잘못된 문제들을 시정하기 위하여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에서 디모데를 영접하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디모데도 하나님의 종이므로 그를 잘 영접하여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한 것이다. 교역자에게 근심을 끼치면 교역자가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가 그 일을 잘 끝마치고 돌아오기를 원하고 있다.

. 16: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아볼로는 성경에 능하고 학문이 많은 사람이다(3:4-6; 행18:24-28). 그리하여 고린도 교회 안에 아볼로파가 생겼다. 바울이 아볼로에게 고린도에 가라고 권한 것은 바울과 아볼로 사이에는 당파심이 없고 서로 신임하여 하나님의 일만 잘되게 하려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에 가지 않은 것은 자신이 가게 되면 아볼로파가 득세하여 교회에 유익이 없고 도리어 손해가 되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두 지도자의 태도는 후대 모든 교역자들이 본받을 만하다

四. 강 건(13-14)

. 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성도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마26:40-41). 베드로전서5:8에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하였다. "깨어 있다"는 것은 영으로 사는 것을 가리킨다. 중생한 영혼을 써서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영적 세계에서 사는 때가 깨어 있는 때이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마귀의 일을 잘 분별할 수 있으며 마귀와 더불어 싸워 이길 수 있다.

그러나 깨어있지 않을 때에는 심령이 잠을 자는 때이며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고 진리에 대하여 분별이 없으며 하나님 앞에 바로 하지 못한다. 심령이 잠들었을 때에는 영적 일을 하지 못하고 육신으로 기울어져서 신앙의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늘 영이 깨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 영이 깨는 방법은 힘써 기도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이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도록 힘써야 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이 깨어 있을 수 없다. 성도가 항상 깨어서 시대를 분별하고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마귀가 어디로 들어오는가를 잘 분별하여야 믿음을 지킬 수 있다. 영이 깨어 있을 때에만 분별력이 생기고 영적 양식을 먹을 수 있다.

디모데전서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다. 육체의 일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깨어 있지 못하고 신앙과 심령 상태가 죽은 것이다.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강건은 강력을 의미한다. 남자의 특성은 강력이요 여자의 특성은 온유이다. 성도가 강하고 담대하여야 된다. 모든 성도는 누구나 여자와 같이 온유와 겸손이 있어야 하고, 또 남자같이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 여호수아1:7에 "극히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였다. 성도가 자기 마음을 약하게 쓰지 말고 강하게 쓰고 담대히 나가야 마귀를 이길 수 있다. 에베소서6:10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하였다.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여 이기려면 하나님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적 강한 자로 만들어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정복하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연약하여 마귀에게 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남자답게 강건하려면 첫째,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생명과 성령의 역사와 능력을 성도에게 주신 것을 깨달아야 한다. 빌립보서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내게 만능을 주셨다는 것과 자기에게 그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써야 한다. 하나님께서 많은 능력을 주셨으나 그 능력을 쓰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 가령 자기 아버지가 자기에게 몇 천억 원을 주었다고 해도 그것을 쓰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면 없는 것과 같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노라 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아갈 때에 그 큰 장수도 소년 다윗에게 패하고 말았다(삼상17:45).

하나님이 주신 그 강력한 능력을 쓰는 방법은 우리에게 주신 환경과 시험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말씀을 지킬 때에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 기울이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도와 주셔서 이기게 한다. 여자들도 남자답게 강한 힘으로 마귀와 더불어 싸워 이겨야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여자이지만 예수님의 무덤에 제일 먼저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처음으로 만났다.

.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신자의 모든 선한 싸움은 사랑으로 하여야 한다. 혈육으로 대적하면 마귀에게 사로잡힌다. 진리를 굳게 붙잡고 마귀를 대적하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하여야 한다.

五. 교역자 존중(15-18)

. 16:15-16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 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스데바나는 아가야(고린도가 속해 있는 주(州)의 이름)에서 제일 처음으로 예수 믿은 사람이요(1:16 참조),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자이다. 이 두 가지 점에서 스데바나를 바울이 귀히 여기고 고린도 교회로 하여금 그를 알아주고 그에게 복종하라고 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 같은 자들과 그와 함께 수고하는 자들을 교회적으로 알아주고 복종하라는 것이다.

. 16: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세 사람이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와서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는 면과 믿는 일을 잘하는 면을 전해 주어 바울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시원하게 하였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의 부족한 것을 보충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걱정을 끼치고 궁금하게 한 것을 그들이 와서 보충해 주었다는 뜻이다. 그 세 사람이 와서 바울의 걱정을 제거시켜 주었고 기쁨을 준 것이다.

. 16:18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고 한 것을 보면 그들이 바울에게 왔다가 고린도 교회에 다시 돌아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고린도 교회에 돌아가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기뻐한다는 소식을 전하였으므로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도 시원케 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사업을 도와서 하나님의 일을 잘 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알아주신다. 교인들도 그러한 사람을 알아주어야 한다.

六. 문안 축복(19-24)

.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아시아는 소아시아를 가리긴다. 교회들이 서로 문안하는 것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사랑의 역사이다. 아굴라와 브리스가는 부부인데 그들의 집에서 교회가 모였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이 고린도서를 썼는데 그 때에 그들은 그곳에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의 일을 도와 준 듯하다. 그 집에서 모이는 모든 교인들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문안하였다. 아굴라와 브리스가에 대해서는 사도행전18:1-3, 18, 26, 로마서16:3, 디모데후서4:19을 참조하라.

그들의 이름이 서로 교체되어 부인의 이름이 남편의 이름보다 앞서 기록된 때가 있는데 그 이유는 남편보다 부인이 복음을 위한 봉사를 더 많이 한 까닭이다.

그 집에 있는 교회 초대 교회 때는 가정 교회가 많이 있었다(롬16:5; 골4:15; 몬1:2). 어디서나 신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을 위주하였고 꾸미는 예배 의식과 화려한 예배당은 그들에게 무익한 것이었다.

. 16: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입맞추는 인사는 초대교회 당시에 근동 지방의 인사법이었다고 한다. 입맞추는 인사는 친절, 사랑, 존경, 영접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써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입맞추었다고 한다. 현대에는 그러한 방식으로 인사하지 않는다

. 16: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바울이 편지를 대서시키고 맨 마지막에는 친필로 몇 마디 문안하곤 하였다(골4:18, 살후3:17). 이것은 사랑과 정성의 표현이요 편지의 순전성(가짜가 아님)과 사도의 권위로 이 편지를 보낸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예수를 믿지 않는 자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저주를 받은 것이다. 예수를 믿는 자는 법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요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될 자이다. 그리스도 안은 구속의 세계요, 사랑과 빛의 세계요, 기쁘고 평안한 세계이다. 예수를 믿어도 영적으로 사랑과 기쁨과 평강의 세계에서 살지 못하는 때는 법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나 영적으로는 그 세계에서 떠나 있는 때이다. 그때에는 흑암을 만나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져 신앙이 죽은 때이다.

요한一서 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피흘려 구원해 주신 큰 사랑을 먼저 깨닫고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그 사랑에 끌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 밖의 세계는 다 저주의 세계이다. 우리 시조 아담이 범죄하여 이 세상이 저주를 받았다. 이 저주받은 세계에서 축복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주님과 깊이 교제하며 그 사랑에 끌리어 세상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주님만 따라가는 자가 하나님 앞에 복 받은 사람이다.

예수를 믿어도 그리스도의 사랑의 세계에서 떠나 세상에 빠져 있으면 저주받은 세계에서 사는 자이다. 성도가 항상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그 말씀대로 살며 그 세계를 영원히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린도후서5:14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라고 하였다. 주의 사랑에 끌려서 사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이 복 받은 자이다.

. 16: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물고기가 물 속에 있어야 살고 활동할 수 있는 것같이 성도가 은혜 속에 있어야 심령이 살고 강건하다. 디모데후서2:1에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하였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하는 언약 성취의 전체(全體)이다.

. 16: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끝으로 바울의 뜨거운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고린도 교인들과 함께 하기를 축원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본서를 기록하였고 뜨거운 사랑으로 끝마친다. 본서에 많은 책망도 있으나 그것도 사랑으로 했기 때문에 받는 사람이 달게 받아 회개하고 고쳤을 것이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고(벧전4:8), 사랑의 징계와 바른 책망은 형제를 사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돌아서게 하며 많은 사람을 바른 데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도후서 강해

·기록한 사람 : 사도 바울

·기록한 연대 :주후 57년경(고전과 6개월 차이)

·기록한 장소 : 마게도냐

고전123456 78910111213141516

고후123456 78910111213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후서1장

제 1 장 위 로

(대 지)

一. 서 문(1-2)

二. 하나님이 위로해 주심(3-7)

三. 하나님이 구출해 주심(8-11)

四. 진실(12-19)

五. 약속의 보증(20-22)

六. 신앙 보조(23-24)

(본문 강해)

一. 서 문(1-2)

.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된 것이며 사람의 뜻으로나 사람이 권해서 된 것이 아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되었다. 그러므로 사도권의 출처와 근원이 하나님께 있으며 사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능력과 권위가 있다. 직분을 맡은 자들은 그 직분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줄로 믿고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한다.

형제 디모데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전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였다. 바울이 믿음 안에서 그를 참된 아들(딤전1:2), 믿음의 형제(골1:1), 동역자(롬16:21)로 여겼다. 디모데도 믿음 안에서 바울을 아버지처럼 섬기며 도와주었다.

하나님의 교회 교회는 사람의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이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목사나 교인들은 결코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야 하며 그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요 하나님의 심부름꾼(사역자)이다. 교회의 일은 크든지 작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만일 사람의 생각이나 수단으로 큰 교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사람이 그 교회의 주인이 된 것이고, 바벨탑을 쌓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교회만 크게 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항상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할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에 합한 교회가 되겠는가? 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일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는 직분이고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는 위치에 있다. 아가야 고린도가 속해 있는 넓은 지역을 말한다. 바울이 아가야 지방의 모든 성도에게 본서를 보냈다.

.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으로 구속과 그 구속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예정, 선택, 구속하시고 믿음을 주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 등이다. 이 모든 것이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받는 것이 은혜 받는 것이다. 성경을 떠나서 일시적인 감동을 받는 것만으로는 은혜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평강은 은혜를 받은 결과로 오는 것이며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마음에 평강이 있게 된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내려오는 은혜와 평강이 언제나 넘치는 것이다.

二 .하나님이 위로해 주심(3-7)

.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을 말할 때에 "찬송하리로다"하는 말부터 나오게 된다(엡1:3, 벧전1:3). 바울이 구원받은 것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 감사해서 "찬송하리로다" 하는 말이 자연히 나왔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하나님"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엘로힘)인데 "능력의 신"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된 사역을 능력으로 이루어 나가신다는 뜻이다.

자비의 아버지시요 하나님께서 율법대로 우리를 취급하시면 우리는 다 죄인이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속량하여 주시고 사랑으로 불러 주시므로 우기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과 긍휼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위로를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환난 중에서도 큰 위로를 받게 된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큰 환난이 일어났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서 바울을 크게 위로해 주시고 새 힘을 주셨다 (행18:9-10).

.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하나님은 복음을 인하여 환난 중에 있는 성도를 찾아 가셔서 위로해 주신다. 시편50:15에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환난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위로해 주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위로로써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성도들을 능히 위로해 줄 수 있다.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뢰(依賴)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되고 그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주게 된다.

.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위로도 넘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이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위로도 없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 할수록 그만큼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무엇인가?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고난이다. 어떠한 고난이 올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그 고난을 이겨 나가려고 애를 쓰면 그리스도께서 그 고난을 대신 감당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위로가 오게 된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에 자기 혼자 그 고난을 감당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기 혼자 고난을 감당하려고 하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낙심하여 자포자기하기 쉽다. 환난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 안에 들어가 그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만들면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과 평안이 오고 한량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둘째, 그리스도로 인해서 당하는 고난이다.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다. 바울이 예수님을 위하여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 12:15에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라고 하였다. 그가 유대에서만 복음을 전하고 이방에까지 가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많은 고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여러 지방에까지 힘써 전도하였기 때문에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6:4-10; 11:23-27). 모세도 애굽에 가만히 있었으면 공주의 아들의 지위와 애굽의 모든 보화와 재물을 소유하고 평안히 살 수 있었으나 그것들을 다 내어놓고 주를 위해 능욕받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와 재물보다 더 크게 여기고 고난의 길을 걸어갔다(히11:24-26). 이렇게 자원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그만큼 넘쳤었다.

교역자가 개척교회를 하며 고생할 때에는 고난이 많으나 하나님의 위로도 그만큼 넘치게 된다. 그 교회가 커지고 평안해졌을 때 교역자가 "이제는 괜찮다"하고 힘을 안 쓰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위로도 끊어진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생활을 해야 하나님의 위로도 계속해서 오게 되는 것이다.

훌륭한 성도들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고난받는 길을 걸어갔다.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간 일이나, 소돔과 고모라를 조카 롯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좋지 못한 곳으로 간 일이나,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일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이다. 바나바도 자기 밭을 팔아 사도의 발 앞에 두며(행4:36-37) 적극적으로 주를 위하여 물질을 바치므로 권위자(위로의 아들)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것은 바나바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한 증거이었다.

셋째, 말씀을 지키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지켜 나가면 고난이 온다. 다니엘이 삼십일간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금령이 내린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므로 사자굴에 들어가는 고난을 당하였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세워 나가려면 고난이 온다.

주의 말씀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 말씀을 지켜야 한다. 주를 위해서 말씀을 지키려고 하면 육신적으로는 고통이 오고 많은 손해가 따르게 된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가 충만하다. 이러한 사람은 다음에 오는 더 큰 고난도 충분히 이겨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말씀을 양보하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고난도 그리스도의 위로도 없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지 못하면 장차 올 고난도 이길 수 없다.

성도가 하나님의 위로 없이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믿는 일이 힘들고 억지가 된다. 항상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으며 사는 사람은 주를 위하여 매를 맞아도 기쁘고, 멸시를 받아도 기쁘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다 참고 이길만한 힘과 위로가 주께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믿는 일을 해 나가는 사람은 봄동산에 따뜻한 햇빛이 비쳐 얼었던 땅이 녹고 만산초목(滿山草木)이 자라나는 것처럼 신앙생활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가 없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겨울에 농사하는 것처럼 힘이 들고 어렵다.

고난은 가정적으로 오는 것도 있고, 사회적으로 오는 것도 있으며, 국가적으로 오는 것도 있다. 그 모든 고난을 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감당해야 한다. 고난이 올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과 더불어 그 고난을 다 감당하려고 힘을 쓰면 그리스도의 위로가 오고 능력이 온다.

우리가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몸바쳐 일하고 모세처럼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말씀을 순종하여 나가려면 양심에 가책이 되는 것과 하나님 앞에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다 끊어버려야 한다. 그때에 많은 고난이 오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능력과 위로도 그만큼 많이 받게 된다.

. 1: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과 모든 성도들의 구원을 위하여 환난을 받는 것이다. 바울은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하였다. 바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위로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해져서 그들의 속에서 역사하였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이 모든 환난을 이길 힘이 있었다. 교역자의 믿음과 위로와 능력의 역사는 그 인도를 받는 성도들에게도 전달되는 것이다.

. 1: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소망이 견고하다.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했기 때문이요,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하고 고린도 교인들의 영혼이 자라나겠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하여 그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에 넘어지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해결하도록 힘을 써야 한다. 우리 앞에 아무리 큰 고난이 오고, 시험이 온다고 해도 말씀을 붙들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그것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만들어야 소망이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성도는 소망이 있는 성도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받는 교회도 소망이 있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환난을 당할 때에 원망하지 말고 합심하여 기도하고 그리스도로 인해서 믿음으로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몸을 바쳐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의 위로가 풍성히 임하고 소망이 있는 교회가 된다.

三 .하나님이 구출해 주심(8-11)

.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 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심한 환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이 건져 주셨다(행19 :23-41; 고전15:32 참조). 바울이 그 경험을 들어서 하나님은 환난 중에 위로하여 주시고 유익을 주신다고 증거하고 있다. 아시아는 소아시아 지방을 말한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이었고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정도이었다.

. 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바울이 아시아에서 환난을 받을 때에 그 환난이 너무 커서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다. 바울이 디모데후서4:17에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하였다. 그가 사자의 입에 놓여 있는 것과 같은 큰 고난을 받을 때에 전혀 살 소망이 없었으나 하나님이 능력으로 바울을 그 환난 가운데서 건져 주셨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러한 고난을 당하도록 허락하신 것은 바울로 하여금 자신을 의뢰하지 말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만 의뢰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성도가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의뢰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성도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사람이나 권세나 물질이나 세상의 것을 의뢰하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다 제해 버리신다.

이사야3:1-3에 "보라 주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 하실 것이며"라고 하였다. 그것들을 그대로 놓아두면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들을 의지하겠으므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제해 버리시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세상의 것이 다 실패되고 없어질 때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살 길이 생긴다.

야고보서4:14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이 건강할 때에는 자기와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지만 병이 들거나 실패하여 고난 당할 때에는 사람의 생명이 아침 안개와 같은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을 깨달을 때에 하나님만 의뢰할 수 있게 된다. 성도가 세상에서 실패와 낙망을 당하고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깨달을 때에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나온다. 사람들은 자기가 의뢰하던 것이 제거될 때 낙망하기 쉬우나 곧 그때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세상일이 잘되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니고 세상일이 잘되지 않는 것도 좋은 것이다.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건져 주신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현재 자기가 당하는 사자굴과 같은 시험에서도 하나님이 건져 줄 것을 믿고 낙망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아무리 큰 환난이 닥쳤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만 믿고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그 말씀대로 한 발자국씩 걸어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건져 주신다.

.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바울이 과거에 큰 환난 중에서 하나님이 건져 주신 것을 경험으로 삼아 현재의 환난 중에서도 그 하나님이 건져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과거와 현재의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건져 주셨으므로 그 하나님이 미래에도 건져 주실 것을 믿고 또 바라며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길이다. 과거에 믿음의 길을 걸어 나온 것을 경험 삼아 현재에 당하는 모든 난관을 믿음으로 통과하여야 한다.

요한계시록3:3에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하였다. 과거에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환난을 당하고 괴로움을 받은 것을 생각해 보고 그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건져 주셨는가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크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바울로 하여금 많은 환난 가운데서 이기게 해주셨고 앞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현재에도 그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도 과거에 환난 가운데서 생명 있는 영적 신앙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건져 주신 것을 기억하고, 현재에도 그 신앙으로 나아가면 과거에 건져 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능력으로 건져 주실 것이다. 과거에는 환난을 만나도 걱정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갔으나 지금은 환난 가운데서 걱정하고 낙심한다면 육신의 생각으로 기울어진 증거이다.

바울이 과거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심한 환난 중에서 하나님이 건져 주신 것을 생각하고 현재에도 그 신앙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다. 미래에도 그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만 의뢰하고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어떠한 고난이 올지라도 변치 않는 신앙으로 하나님만 의뢰하여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고 위로가 넘치게 된다.

. 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은 바울이 자기를 위한 이기주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바울이 자기들을 통해서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잘되기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운동을 위해서 세우신 종을 위해서 많은 사람이 기도를 하면 그들의 마음과 심령이 하나가 되어 서로 협력하기 때문에 그 일이 잘되어 나가고 또 하나님의 역사가 더욱 크게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더욱 더 많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게 되는 것이다.

바울을 통해서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많은 사랑의 기도와 협력으로 되어지는 것이며, 바울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장군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명령을 받들어 용감하게 싸우는 군사가 없다면 전쟁에서 패하고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운동도 한 두 사람이 할 수 없고, 여러 성도가 기도와 정성과 노력과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협력할 때 더욱 잘 되어 가는 것이다.

四. 진 실(12-19)

.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그 당시 고린도 교회에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이 들어와 바울은 사도가 아니며 간교한 지혜로 자기 사욕을 위하여 전도하는 자라고 비방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거기에 대하여 변명을 하였다. 바울이 자기가 전도한 행위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과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을 양심이 증거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했다는 것은 욕심이나 이기주의를 떠나서 신령하고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했다는 것이다. 진실함으로 했다는 것은 진리를 따라 진실한 마음으로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행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그의 하시는 역사를 따라 한 것을 가리킨다.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바울은 항상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곧 바울의 자랑이다. 그것을 바울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기쁘게 여겨 누구에게나 기탄 없이 말하였다.

. 1:13-14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바울이 이중 인격을 써서 일하는 자가 아니고 서신에 공개한 그것이 전부이며 그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참된 전도자와 참 성도는 말이나 편지에 있어서 항상 진실하며 이면에 숨기거나 속이는 것이 없어야 한다.

대강은 일부, 약간의 뜻이 있다. 고린도 교인 중에 어떤 자들은 바울에 대하여 바로 이해하고 좋은 사도로 알고 있었으나 어떤 자들은 오해하고 비방하였다. 바울을 바른 일꾼이요 참 사도로 알고 있는 자들은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주 예수의 날)에 바울의 자랑이 될 것이다. 자기가 전도한 교인과 가르친 교인들이 잘 되면 주님 앞에 자랑거기가 되기 때문이다. 또 그 교인들에게는 바울이 그들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바울이 그들에게 바른 진리가 잘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 대해서도 자기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했다(빌4:1).

복음을 전하여 그 열매가 맺히면 그것이 전도자의 기쁨이요 자랑이다.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교인들의 영혼이 자라나고 잘 만들어지면 그것도 교역자의 면류관이요 영광이다. 하나님 앞에 가면 그것들이 다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 앞에 가면 우리가 전도한 결과가 다 드러날 터인데 자기를 통해서 구원 얻는 사람이 많다고 하면 얼마나 큰 영광이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힘써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봉사하며 전도에 힘써야 한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 의하여 그만큼 배우고 자라났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자랑감은 바울이다. 바울이 오랫동안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고 바울이 성경을 잘 가르쳐 주었으므로 그들이 많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이야말로 고린도 교회의 자랑이요, 면류관이 되는 것이다. 교인들이 좋은 교역자를 만나는 것은 그들의 자랑이다. 바울과 같은 좋은 지도자를 둔 고린도 교인들은 참으로 복되고 바울을 자랑할 만 하였다.

. 1:15-17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바울이 처음에 경영한 것은 고린도에 갔다가 다음에 마게도냐로 가고 거기에서 다시 고린도에 갔다가 고린도 교인들이 보내주므로 유대로 가기를 작정하였다. 그런데 그 경영을 변경하여 고린도에 들르지 않고 마게도냐로 바로 가서 지금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경솔히 경영하였으며 그는 자기 육신의 편리대로 나가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방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말에 대하여 자기가 처음에 경영한 일이 변경되었다고 할지라도 진실하게 한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바울이 처음에 한 경영도 진실하고 그것을 변경시켜서 마게도냐로 곧바로 간 것도 진실하다. 바울이 만일 육신의 편리대로 경영을 바꾸었다면 잘못된 것이지만, 육신의 편리대로 바꾼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꾼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에 갈려고 했으나 일이 진행됨에 따라 생각해 보니 고린도에 들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아 곧장 마게도냐로 갔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에 들르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한 마음으로 한 것이며 잘한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처음 약속할 때에 잘 하느라고 작정을 했으나 그 일의 진행되는 과정에서 확실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한다. 처음 약속한 것이 하나님의 뜻보다 더 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먼저 약속했다고 하여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따라 간다고 하면 인본주의로 나아가는 자요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일이다.

헤롯왕이 자기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인(세례 요한)을 죽이는 큰 죄를 범하였다. 헤롯이 자기의 약속과 행세를 어기더라도 세례 요한을 죽이지 않아야 하나님 앞에 옳았을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자기들 생각대로 바울을 비방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큰 손해를 주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되었다. 사도 바울을 배척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배척하는 일이 된다.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형편에 따라서 예, 예 하고 또 형편에 따라 아니, 아니라 하는 사람은 인본주의로 나아가는 사람이요 기회주의자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러한 사람이 아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유리할 때에는 "예"했다가 불리하게 되면 "아니다" 하는 그러한 사람이 아니다. 바울은 언제나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가 움직이고 자기 육체의 유익을 따라 처세하지 않았다.

마태복음5:37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하였다. 옳은 것은 어디에서나 "옳다"고 하고 아닌 것은 어디에서나 "아니라"고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자기에게 어떤 손해가 나도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해야 한다.

. 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하나님은 신실하시므로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다. 우리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대로 따라가야 한다. 바울이 항상 진실하게 행동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아 진실한 마음으로 전에 했던 작정을 변경한 것이다. 그가 자기의 형편을 따라서 경영을 변경한 것은 아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 그것을 "아니라"하고 거부 한 적이 없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경영이나 약속을 그대로 실행하면 안 된다.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 즉시로 예 하고 따라 갔다. 만일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경영이나 약속을 변경한다면 일구이언(一口二言) 하는 자요 진실하지 못한 자이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면 한번 약속한 것과 맹세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켜야 한다(시15:4).

. 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실루아노 바울과 함께 전도한 실라를 가리킨 듯하다.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를 동반하고 고린도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예(순종)만 했다. 한번도 아니라(불순종)한 적이 없다(요5:30).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여 우리의 구원을 찬성해 놓았다(빌2:8). 그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 고린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고, 그 예수를 따라가는 바울이 어떻게 그를 순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울이 그를 순종하기 위해서 과거에도 경영을 하였고, 지금도 경영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바울이 처음 경영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한 것이었고, 변경한 것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 변경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방법은 언제나 일직선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 할 때에 구름 기둥이 에돔 땅으로 향해가다가 에돔족속이 나와서 대적할 때는 구름기둥이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구름기둥이 돌면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에돔까지 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요, 돌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히스기야왕이 병들었을 때에 이사야가 찾아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고 말했다. 그 때에 히스기야왕이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니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 년을 더하고…"라고 하였다(사38:1-8). 이사야의 처음에 한 말과 나중에 한 말이 다르지만 이사야가 진실하게 말한 것이다. 이사야가 처음에 한 말과 나중에 한 말이 다 진실한 것이다. 이사야가 처음에 왕이 죽는다고 한 말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실하게 한 말이며 그 후에 15년을 더 산다고 말한 것도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진실하게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히스기야가 죽을 때가 되어서 이사야를 통해 죽는다고 했으나 15년 연장시켜 주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이기 때문에 15년을 연장시켜 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두 번 다 진실하게 말한 것이다. 요나에게도 하나님께서 니느웨성을 40일 후에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셨으나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한 다음에는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았다. 니느웨성을 멸하겠다고 한 것도 진실하고 멸망시키지 않은 것도 하나님의 진실이다. 둘 다 하나님의 예정이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깨닫지 못해서 처음에 작정을 잘못하고 나가다가 다음에 바로 깨달아서 고쳐 나가는 사람이 많다. 만약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자기가 유리한 대로 이랬다 저랬다 한다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결과가 되고 악에다 악을 더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만 진실하게 따라가야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이다.

五 .약속의 보증(20-22)

.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예"는 성취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구약에 약속한 것이 많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 성취되었다. 우리는 아멘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명령대로 순종할 것뿐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므로 그 약속을 받은 우리는 그대로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 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진실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약속을 신실하게 성취시켰는데 그 일을 우리 속에 적용시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여 주시고 또 그 보증으로 기름을 부어 주셨다.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진리와 영감으로 신자의 생명을 살린 것(중생)을 말한다.

.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을 치셨다는 것은 진리와 영감으로 중생시켜 주신 것을 가리킨다.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두셔서 내주하게 하시고 또 외부에서 성령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중생한 영혼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와 약속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아멘 하고 따라가게 한다. 그때에 우리 영혼이 만족하고 살게 된다.

六. 신앙 보조(23-24)

. 1:23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한다는 말은 바울이 자기의 진실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중생한 영혼과 하나님과 성령은 다 참되며 거짓이 없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는 것을 변경한 이유는 고린도 교인을 아끼려 함이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지 않으므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다. 바울이 처음 경영대로 고린도에 갔더라면 회개하지 않고 있는 그들을 엄하게 벌하였을 것이고 고린도 교인들은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경영을 변경한 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크게 유익이 되었다.

. 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있음이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편지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어서 그들이 회개함으로 고린도 교회와 마음이 피차 기쁨을 얻고자 함이었다.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고린도 교회가 믿음에 서있기 때문에 시험에 든 자들도 마침내 바로 설 것을 바울이 확신하고 있다.

고전123456 78910111213141516

고후123456 78910111213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후서2장

제 2 장 총 서

(대 지)

一. 근심과 사랑(1-4)

二. 근심과 용서(5-11)

三. 그리스도의 향기(12-16)

四.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아니함(17)

(본문 강해)

一. 근심과 사랑(1-4)

. 2:1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고린도 교인들 중에 범죄한 자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려 그들이 회개한 다음에 바울이 가게 되면 근심하지 않고 기쁨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범죄자들이 회개하지 않았을 때에 가게 되면 바울이 근심으로 나아가고 그들을 엄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로서기를 기다려 바울이 근심으로 나아가지 않고 기쁨으로 나아가기를 결단한 것이다.

. 2: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죄를 책망하므로 그들이 근심하게 되었으면 그들이 회개하고 바로 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울이 기뻐할 것이며 그 일로 인하여 바울을 기쁘게 할 자는 고린도 교회밖에 없다.

. 2: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내가 이같이 쓴 것은 고린도전서를 말하며 특히 고린도전서5:1 이하의 범죄를 다스리라는 내용을 가리킨다. 고린도 교인들은 마땅히 바울을 기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전도해서 고런도 교회가 세워 졌고, 그들은 바울을 통해 은혜를 받아 그만큼 자라났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는 당연히 바울을 기쁘게 해야 할 위치에 있다. 그런데 그들이 범죄자를 치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바울이 가서 근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이 이 점을 염려하여 고린도 방문을 연기한 것이다.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 함이로라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기쁨은 곧 고린도 교회의 기쁨이다. 교역자의 기쁨은 곧 교인의 기쁨이다. 왜냐하면 교역자가 기뻐하는 이유는 교인이 바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역자의 기쁨은 곧 교인들의 기쁨인 것이다. 반대로 교역자가 근심하면 그것은 곧 교인들의 근심이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바로 되지 못할 때에 교역자가 근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근심하면 교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찾아 근심하고 회개해야 한다. 교역자는 교인들의 신앙 상태에 따라서 근심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 2: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전에 고린도 교회를 책망한 것은(고전5:1이하)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한 것이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근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향해서 넘치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책망이나 책벌은 손해를 줄 수 있고 낙심케 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은 사랑으로 책망하면 그 사람을 죽음에서 살려낼 수 있다.

二. 근심과 용서(5-11)

. 2: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고린도 교회에 범죄자들이 있어서 바울이 많은 근심을 하고 많은 눈물과 애통으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 범죄자들이 회개한 후에는 바울이 너그럽게 사랑으로 용납해 주었다. 범죄자들을 직접 지적하지 않고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라고 가정하여 부정사(不定詞)로 지칭한 것은 그들을 용납하는 태도이다.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라고 한 것도 자기가 근심한 것은 기억하지 않는 태도이며 바울이 멀리서 근심을 했지만 직접 사건을 당한 너희들의 근심에 비하면 경미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대한 사랑과 이해와 동정심을 나타낸 것이다.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바울이 범죄자에 대하여 너무 심하지 않게 말하려고 "어느 정도"라고 부드럽게 말하였다. 범죄자를 다스릴 때에 감당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다스리고 너무 심한 벌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 죄를 다스릴 때에 너무 가혹하게 처벌하면 그 사람이 낙심하기 쉽다. 범죄한 사람을 가볍게 처벌하면서도 다시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해 나가며 의를 세워 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세상에서도 법이 너무 가혹하면 도리어 반발심이 생겨 더 악한 죄가 나오게 되고 민심이 악해지기 쉽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도적질을 하면 아예 손을 자른다고 한다. 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히면 여러 사람 앞에서 목을 베어 죽인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도적도 생기고 간음하는 자도 나온다.

범죄를 부드럽게 다스리는 나라가 잘되고 가혹하게 다스리는 나라는 더 험악해지고 점점 더 악화된다. 죄는 부드럽게 다스리며 선과 의를 길러 주고 세워 나가야 한다. 교회에서 범죄자를 부드럽게 다스리며 아무리 큰 죄라도 어느 정도 벌한 후에 그가 회개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문제도 잘 처리되며 교회도 잘 되어 간다. 죄를 미워하다가 사람까지 미워하면 안 된다. 죄를 책망하되 회개하면 너그럽게 용납해 주어야 한다. 언제나 죄는 미워하고 사람은 사랑해야 한다.

. 2:6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받은 것이 족하도다

고린도 교회의 범죄자가 벌써 많은 사람에게 벌을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편지로 책망하였기 때문에 그후 교회에서도 책망했을 것이다. 그들이 벌써 벌을 받았으므로 그 정도 벌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한 것이다.

. 2: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이제는 그들이 그만큼 벌을 받았고, 회개하는 단계에 있으니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해 주는 것이 옳다.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계속해서 책망만 한다면 그들이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기고 도리어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어 손해를 보게 될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너그럽게 용서하고 사랑으로 포섭해서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기지 않게 위로해 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병들었을 때에 수술하는 것이 필요하나 또 싸매어 주고 치료하는 것도 필요하다. 수술한 후 싸매어 주지 않고 치료하여 주지 않으면 도리어 수술 안한 것만 못하다.

. 2: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범죄자들에게 사랑을 나타내라고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하였다. 사랑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다.

. 2: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목적 중의 하나는 교인들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바울이 전에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범죄자를 책벌하라고 하였는데 고린도 교인들이 그 말을 순종하였다. 이번에는 용서해 주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순종하여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다 순종하는 교인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바울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죄를 책망하라는 것도 순종을 해야하고 사랑으로 용서하라는 것도 순종해야 한다.

기독교는 순종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도는 순종으로 배워나가고 순종으로 성취하여 나간다. 예수님께서도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빌2:8; 히5:8-9).

. 2:10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고린도 교회가 범죄자들을 용서한 일이 있을 때에는 바울도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서로 공동 보조를 취해 나가야 한다. 또 바울 자신이 범죄한 자들을 용서해 준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믿음으로 한 것이라고 하였다.

. 2: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마귀가 기회를 타서 성도를 속여 멸망시키려고 한다. 죄를 책망할 때는 마귀가 그것을 가지고 참소하여 성도를 멸망시키려 하고 사랑할 때는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만들어서 멸망시키려고 한다.

사도 바울이 책망만 했다면 마귀가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바울에 대해서 너무 가혹하게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반감을 갖게 하고 원망하게 하여 바울의 인도를 받지 않게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반면에 바울이 범죄한 고린도 교인들에 대하여 책망하지 않고 사랑과 관용만 가지고 나갔다면 마귀가 고린도 교인들 속에 자유 방종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죄를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죄를 짓게 하여 멸망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고 사랑을 나타내면 그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 회개함에도 불구하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사단이 그 기회를 타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낙심하게 만들고 마음을 삐뚤어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사단의 궤계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회개하는 사람은 즉시 용서해 주고 사랑으로 포섭하는 것이 그 사람을 살려내는 길이다.

三. 그리스도의 향기(12-16)

. 2: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에 가서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전도의 문이 열려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오고 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 2:13 내가 내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의 일이 염려가 되므로 디도를 보내어 고린도 교회 문제를 수습하게 한 후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하였었다. 그 후 바울이 드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디도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으므로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알 수 없고 염려가 되어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디도가 빨리 돌아오지 않은 것은 고린도 교회의 일이 잘되지 않으므로 그들에게 권면하여 그들이 좀 더 회개하고 바울의 명령대로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다음에 돌아가려고 지체한 것 같다. 디도가 고린도교회 문제를 잘 수습하고 왔다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로 갈 예정이었다(1:15). 그러나 디도가 빨리 돌아오지 않으므로 바울은 심령이 편치 못한 가운데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갔다. 바울이 마게도냐로 간 것은 고린도에 가까운 곳으로 가서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함인 것 같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나 먼저 세워 놓은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바로 알아 다스려 나가는 일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바울이 고린도 교회 때문에 염려하며 애를 쓰는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염려하고 지극한 관심을 기울이고 많은 수고를 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에 직접 가지 않은 것은 직접 가게 되면 치리하지 않을 수 없고, 치리하게 되면 막대기로 때릴 수밖에 없으므로 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바울이 마게도냐에만 가 있어도 고린도 교인들이 그것을 알게 되고 더욱 경성하여 회개하였을 것이다.

바울이 원하는 바는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여 바로서는 것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바울이 많은 염려와 수고를 하는 것이다. 교회를 하나 이루어 나가려면 교역자가 이처럼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미 있는 교회를 바로 세워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바울이 가지 않아야 고린도 교회가 잘 될 경우는 가지 않아야 이기는 것이고, 이 다음에 가야 잘 될 경우에는 그때가 되어서 가야 이기는 것이다. 가겠다고 했다가 안 가는 것도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잘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은 연약하나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모든 것을 이기게 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나게 해 주신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그리스도의 증거,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격과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 2:15-16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빌립보서1:28-29에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어떤 사람에게서 나오는가?

그리스도 안(영적세계)에서 그를 힘입어 이기는 생활을 하는 자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난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그리고 깊이 깨달아 그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걸어갈 때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더욱 많이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는 신자가 참 신자이며 영이 산 신자이다. 영이 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이다. 백합꽃이 생생할 때에는 짙은 향기를 풍기지만 시들어지거나 죽은 것은 향기를 내지 않는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많이 나타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향료가 많이 들어가야 한다. 그 향료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더욱 더 깊은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깊이 깨달아 신앙으로 화합하여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더 많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많이 나타낸 사람은 그만큼 자기 영혼이 자라나고, 천국에 가서 많은 상을 받게 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것이다. 그러한 사람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야고보서2:17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겨 나가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된다는 것은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는 것과 같다. 성도가 세상에 빛을 비추어 내보내지 못하는 것은 죄와 욕심이 가리워져 있기 때문이요, 희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영으로 살고 희생하며 말씀을 순종해 나가야 그리스도의 향기가 계속 나타나게 된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성도를 통하여 나타난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것을 반대하고 막는 무리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 진리의 역사가 힘있게 발전해 나아가면 진리를 대적하는 반대 세력이 나온다. 그 반대하는 세력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망의 형벌을 받는다.

다리오왕이 삼십일 동안 기도하지 말라는 금령을 내렸을 때 다니엘이 마음속으로 묵상 기도를 하거나, 밤중에 문을 닫아 놓고 숨어서 기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이 전에 행하던 대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 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다. 그러므로 원수들에게 발견되어 많은 고난을 받았으나 그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많이 나타나서 이방의 왕과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단6:10-28).

그리스도의 향기가 커질 때 사망의 냄새도 커져서 마귀의 세력들이 다니엘을 잡아 사자굴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여 그리스도의 향기가 이기게 해 주셨다.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중대한 의무를 누가 수행하겠느냐는 뜻이다. 사람은 연약하여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므로 하나님에게 붙들리 운 사람은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

빌립보서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다. 무슨 일이나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四.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아니함(17)

. 2: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있게 전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있게 전하려면

①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고 순전한 말씀 그대로 전해야 한다. 성경에 다른 것을 심거나 감하면 안 된다. 이기선 목사님은 강단에서 성경 본문을 그대로 읽는 것도 위대한 강도(설교)라고 하였다.

②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해야 한다. 깊은 기도 중에 영감으로 성경을 깨달아서 전해야 생명이 있다.

③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감시를 받으면서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힘입어서 전해야 된다.

④ 그리스도 안에서 말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영권으로 말씀을 전해야 다른 사람을 살려내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게 된다. 주일학교 학생들에게도 성경 말씀을 그대로 읽어 주고 해석해 주는 것이 좋다. 동화나 예화를 하여 다른 것을 많이 섞으면 아이들은 좋아할지 모르나 성경의 신령한 뜻이 가리워져서 생명이 없어진다. 성경 말씀을 전할 때에 이성주의나 지식주의나 신비주의나 인본주의나 세상주의를 섞으면 안 된다. 이것은 순수한 진리를 혼잡케 하는 것이요, 기독교가 타락되는 길이다. 신신학은 인간의 지식과 이성에 맞도록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요, 신비주의는 주관적 육신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하나님께 받았다고 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였을 때 그 다음 날에는 더 많은 사람이 왔다. 그때에 예수님이 한 번만 더 물질이나 육체적인 것으로 섞어서 배부르게 해 주면 더 많은 사람을 포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내 살을 먹지 아니하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고 하여 물질주의와 육체주의자들을 물리치고 순전한 진리 그대로만 전하였다. 이 진리를 바로 깨달은 자가 참으로 생명이 있는 자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고 있으나 우리는 순전한 말씀만 전하여 참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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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후서3장

제 3 장 펀 지

(대 지)

一. 그리스도의 편지(1-4)

二. 복음의 직분은 영으로 된 것(5-6)

三. 복음의 직분의 영광(7-18)

(본문 강해)

一. 그리스도의 편지(1-4)

.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자천(自薦) 자기가 자기를 추천하거나 소개하는 것이다. 천거서(薦擧書) 어떤 유명한 사람의 추천하는 글이다. 바울은 이런 것들을 고린도 교회에 부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또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어떤 추천서를 맡을 필요도 없다고 하였다. 거짓 선지자들은 유명한 사람의 소개장을 많이 가지고 다녔다. 그러나 바울은 소개장이나 천거서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는 신앙적으로 더욱 깊은 관계에 있기 때문에 천거서 같은 것이 필요 없는 것이다.

. 3:2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바울이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가 이루어졌고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서 고린도 교인들의 심령이 살고 영혼이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졌다. 그 자체가 "바울이 하나님의 종이요 참사도"라는 편지이며 추천서이다.

우리 마음에 썼고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전한 복음을 고린도 교인들이 받아 그 열매가 맺혔으므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그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다른 사람들도 고린도 교회를 볼 때에 사도 바울은 참으로 하나님이 쓰시는 능력의 종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과 생활을 보고 바울이 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종인 것을 알게 된다.

.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그리스도의 편지 편지의 저자가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편지이며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깨달은 진리와 같은 진리를 세우고 같은 은혜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기 때문이다. 또 고린도 교인들을 보면 사도 바울을 알 수 있고 그리스도를 알 수 있었다. 또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편지이다. 그리스도를 보면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었다(요14:9).

성도가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편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믿기 전에는 죄 중에 살면서 악하고 불량하던 사람이 예수를 믿은 후에 새 사람이 되어 선한 생활을 하고 경건하게 되고 진실하게 되는 것을 볼 때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 믿는 사람이 불신자처럼 행동하고 진실하지 못하여 방탕하고 사치하며 세상에 빠져 돌아가면 그리스도의 편지 노릇을 못하고 마귀의 편지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편지 봉투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은 썼으나 내용은 마귀의 편지이다. 그러한 신자를 안 믿는 사람들이 보게 되면 기독교에 대한 인상을 아주 나쁘게 갖기 때문에 전도의 길이 막히게 된다. 불신자가 예수 믿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불의한 일을 당하게 되면 나중에 그 사람에게 예수를 전해도 잘 받지 않는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편지 노릇을 잘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행동 하나, 말 한마디를 삼가 조심해야 한다. 우리 성도가 항상 그리스도의 편지인 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 읽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먹으로 쓴 것은 낡아지고 없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은 영원 불멸인 동시에 생명이 있고 장성한다.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그리스도의 편지는 모세의 십계명과 같이 돌비에 쓴 것이 아니다. 육의 심비에 한 것이다. 육의 심비에 한 것은 성령으로 인하여 중생한 영의 역사가 마음과 육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신앙 인격이다. 중생한 영이 성령으로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대로 성도의 인격이 만들어져야 한다. 중생한 영이 성령으로 마음을 이용하고 또 그 마음이 육체를 이용하여 신자의 인격(몸)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편지를 한번 쓰고 마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써 나아간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편지가 다 완성된 것이 아니다. 성도는 항상 성령으로 말씀을 받아 중생한 영이 그 말씀대로 자라나야 한다. 성도가 중생한 영이 자라난 만큼 마음과 육신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다.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편지인 동시에 바울의 편지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쳐 주어 그 말씀대로 고린도 교인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교역자가 바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그 성도가 바로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많이 쓰여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면 많은 상을 받는다. 그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바울을 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나타났으므로 바울이 하늘나라에서 많은 상을 받게 될 것이다.

. 3: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통하여 편지를 썼다는 확신이 있고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를 통하여 쓰여진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께서 사용하는 종이라는 것과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통하여 일한 결과요, 열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二. 복음의 직분은 영으로 된 것(5-6)

.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바울이 사도의 직분을 받아 일한 것에 대해 자기가 무엇을 한 것처럼 스스로 만족하지 않았다. 일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이 생겨도 낙심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하나님이 사도 바울에게 직분을 맡겼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만족한다. 하나님이 일꾼으로 택해 주시고 직분을 맡겨 성령으로 편지를 기록해 주었기 때문에 바울이 그것으로 생각하면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누구든지 교만하면 반드시 망하게 된다.

.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새 언약이라 함은 옛 언약과 비교해서 새 언약이라고 하였다. 옛 언약은 모세의 율법을 가리키고(7-9절), 새 언약은 신약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신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이것은 성령으로 한 것이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이 복음의 일꾼이 된 것은 외부적인 의문이나 의식과 제도로 써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의 직분을 맡기신 것이다. 모세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것뿐이니 죽이는 일 밖에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영적인 것이 아닌 모든 의문들은 죽이는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도 영으로 인도하면 살고, 의문으로만 인도하면 죽는다.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영은 중생한 영이 성령으로 역사하는 것들 가리킨다. 이것으로 사람을 살려나가는 것이다 . 교역자가 영의 역사로 교인들의 영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교인들의 심령이 움직이고 새 생명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직분으로서 영으로 행하는 역사라야 교인도 살고 교역자도 살아난다.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에 영의 역사가 없고, 심령에 감동이 없으면 의문과 형식적인 예배가 된다. 의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다. 영이 살지 못하면서 의식주의로 나가는 것은 죽은 사람에게 옷을 갈아 입히고 화장해 주는 것과 같다. 아무리 누더기 옷을 입고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그 아이가 살아 있으면 자라나고 앞으로 희망이 있다. 그러므로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참 성도요 산 성도이다.

三. 복음의 직분의 영광(7-18)

. 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사십일 사십야를 기도한 후 하나님께서 친히 돌판에 써 주신 십계명을 받았다. 모세가 그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을 들고 내려와 백성에게 반포할 때에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얼굴을 주목하지 못했다(출34:29-30). 모세가 받은 계명은 의문에 속한 것이요 사람을 정죄하여 죽이는 것이었으나 그 율법을 전파하는 직분에는 영광이 있기 때문에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 그 계명 속에는 빛이 있어 그 계명을 받은 사람도 얼굴에서 빛이 나오게 된다. 죄인들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흑암 속에서 사는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음성(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서부터 내려 왔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하나님이 사람을 기억하시고 살 길을 보여 주고 갈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이야말로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다. 세상에는 빛이 없어서 흑암 가운데 빠져 있었는데 모세의 율법으로 인해서 하늘의 빛이 세상에 비쳐 왔다. 그리하여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

. 3:8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영의 직분 복음과 성령으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사도 직분이며 영을 살려내는 그리스도의 종의 직분을 말한다. 율법의 직분도 광채가 있었는데 영의 직분이야 더욱 영광이 있을 것이다. 율법은 처녀가 결혼하는데 있어서 중매인과 같다고 하면 복음은 신랑과 같다. 율법도 좋은 소식이지만 복음은 율법보다 훨씬 더 좋은 소식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지만(갈3:24), 그리스도는 성도의 신랑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중매인이 아무리 훌륭하여도 신랑과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 3: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정죄의 직분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때문에 정죄의 직분이라고 한다. 의의 직분 복음은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게 하기 때문에 복음의 직분은 의의 직분이다. 정죄의 직분을 가지고 율법을 전파하는 모세의 얼굴에도 영광이 있었는데 하물며 복음과 성령으로 영을 살리는 의의 직분이야말로 얼마나 더 영광이 넘치겠는가!

. 3: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이 나타나면 그 전의 영광은 영광 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달빛이 밝지만 해가 뜨면 달빛은 없는 것과 같다. 영광되었던 것은 율법의 직분의 영광을 말한다. 더 큰 영광 복음의 직분의 영광을 가리킨다.

. 3: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율법의 직분이 전에는 영광이 있었으나 그 영광은 없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복음의 직분은 더 큰 영광의 직분이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영광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 성도들은 더욱 크고 영원한 영광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 큰 영광의 직분을 처음에 사도가 받았고, 오늘날에는 교역자가 받았으며 또 누구나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 영광의 직분을 받은 것이다. 누구든지 복음을 전하면 복음의 직분을 받은 것이다. 복음을 좀 더 깊이 깨달으면 그만큼 복음의 빛이 커지고 그 영이 점점 자라나게 된다. 성도가 계속해서 진리를 깊이 깨닫고 계속해서 진리를 받아야 자기 영혼이 자라나고 자기 인격이 커지며 자기에게 있는 복음의 빛이 커진다. 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성도가 이 일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 큰 상급을 받게 된다.

. 3:12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복음의 직분은 율법의 직분보다 월등하며 그 영광이 영원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또 하늘나라에서 상 받을 소망이 있으므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위축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

. 3: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점차 없어져 가는 얼굴의 광채를 사람들이 주목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 수건을 썼다고 하였다. 모세가 율법을 공포할 때는 얼굴에 수건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공포하고 말을 마친 후에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웠다(출34:32-33).

모세가 왜 이렇게 했을까?

모세는 아주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므로(민12:3) 자기를 우러러보게 하려고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율법의 광채는 수건과 같은 의식과 제도에 가리워져 있고 그리스도에게 인도한 후에는 그 광채가 없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미급(未及)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 광채가 차차 없어지는 것을 보면 율법을 무시하고 따라오지 않을 염려가 있으므로 그 결국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으로 가리운 것이다. 율법이 그리스도에게까지 가서 없어질 것이나 그때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부지런히 따라오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갈 때까지는 율법이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므로 그것으로 죄를 깨달아야 되겠으므로 율법의 결국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가리워 놓았다가 때가 된 다음에 알게 해주시는 것이 많이 있다. 요한계시록 5장의 일곱 인을 봉한 것도 인봉하여 모르게 했다가(계5:1), 그 후에 그 인을 뗄 때에야 알게 한 것이다(계6:1). 또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날과 시각은 알지 못하게 가리워 놓았다가 재림하실 때 가서야 알게 해 놓았다. 또 사람이 죽는 날도 모르게 해 놓았으며 죽을 때 가서야 안다. 하나님이 모르게 해 놓은 것은 모르고 있는 것이 좋다. 미리 알아도 유익이 없다. 구약에도 복음(그리스도)이 내포되어 있으나 그것이 가리워져 있었다. 양이나 소를 잡아 제사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피흘려 주실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도 오실 그리스도를 믿을 수가 있었다(창3:15; 15:5-6). 신약시대의 바울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도록 복음을 가리우지 않고 공공연하게 전파한다고 하였다.

. 3: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구약을 읽어도 그 율법이 내포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수건이 아직 벗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그리스도를 믿어야 율법을 바로 깨닫고 의식주의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구약의 참 뜻을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와 영적 자유의 세계에서 사는 자가 아니면 아직도 수건이 벗어지지 않은 자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수건이 벗어져야 참된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고, 영적 생명의 길을 걸을 수가 있다.

. 3:15-16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예수를 믿지 않고 구약성경을 읽으면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그리스도와 구원의 진리를 발견치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영이 살아나야 구약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령이 살아야 모든 성경의 참 뜻을 매달을 수가 있다.

.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주는 영이시니 주님 자신이 영이시고 진리와 영감을 가지시고 우리 영혼을 살리시는 분이시며 성도와 영적 연합, 영적 교통을 하시는 분이다. 주님을 영접한 자는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영의 자유와 생명이 있다. 영적 세계에 들어간 사람이라야 영적 자유가 있다. 영적 세계는 진리의 세계요, 생명의 세계요, 자유의 세계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영으로 받아야 한다. 껍데기로만 듣지 말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심령이 살아서 영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는 참된 평화와 기쁨과 생명의 역사와 능력이 있다. 그 세계에서는 성도가 모든 얽매였던 것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린다. 성도가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하는 아들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롬8:14-15). 율법주의자는 종의 영을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고 율법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도 종의 위치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에는 지키지 않으면 죽인다든지 내쫓는다든지 하여 자유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연합한 자는 양자의 영을 받은 것이므로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하여 성도는 아버지의 것이 자기의 것이 되고 아버지와 함께 자유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믿음 지키는 것도 자유롭게 본능적으로 해 나갈 수 있다. 말씀을 지키는 것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지킬 수 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는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성도가 아무 것에도 제재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고 하면 안 된다. 주의 영이 계신 곳의 자유란 ①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난 영의 자유. ②영의 자유로 모든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믿음을 지켜 나가게 되는 것. ③영적 세계에 들어간 자는 믿는 일을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사람은 예배당에 가고 싶어서 가고, 성경을 읽고 싶어서 읽고, 기도하고 싶어서 기도한다. ④영의 세계에 들어가서 믿는 사람은 언제나 자유와 생명이 있는 것이 사람은 모든 신앙생활을 전부 다 자율적으로 해 나가고 즐거워서 하는 것이다. 자기 영혼이 날마다 살아 나가고 자라나는 재미로 모든 일을 해 나간다. 이렇게 영의 자유로써 하나님의 모든 일을 해 나갈 때에는 점점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성도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야만 모든 진리를 바로 알게 되고 자유로이 그 진리의 길을 걷게 된다. 또 진리를 따라가야 영의 자유가 있다. 주의 영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진리 가운데 있는 자에게는 영의 자유가 있고 생명이 있다. 새 술을,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못한다고 했다(눅5:36-38). 새 술은 새 생명의 역사를 가리킨다. 새 술이 팽창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새 생명의 역사는 팽창되어 나간다. 진리가 아닌 다른 것에 얽매이면 생명의 역사가 중단된다.

.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적 생명이 산 자는 성경을 볼 때에 수건이 벗어져서 영적 생명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주의 영광을 거울로 보는 것같이 보게 된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주의 영광을 본 자는 주의 형상으로 화하여 가게 된다. 누구나 주의 영광에 접촉한 자는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영광으로 영광에 주의 영광을 보고 주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자는 점점 영광으로 화하여 나가게 된다. 점점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거기서 주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이것은 주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며 사람의 지혜나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영혼이 자라나서 주의 형상을 이룬 것만큼 영광이 커지는 것이다. 하늘나라에 가면 성도들이 영광이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 영광이 큰 자는 상급이 크고 영광이 작은 자는 상급이 작다. 또 상급이 없는 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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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후서4장

제 4 장 직 분

(대 지)

一. 직분 충성(1-6)

二. 토기에 담긴 보화(7-15)

三. 겉사람과 속사람(16-18)

(본문 강해)

一. 직분 충성(1-6)

. 4:1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러하므로 3장 5절 이하에 말한 대로 "사도직(복음의 직분)은 영광스러운 것이므로" 라는 뜻이다. 복음의 직분을 맡은 자는 그 영광을 인하여 교만해질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자기의 부족한 면이나 타인의 비방을 인하여 낙심하기 쉽다. 그러나 바울이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에게 복음의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직분을 맡길 때에 사람이 능해서도 아니요, 지식이 있어서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서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겨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전하는 직분은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를 두었고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며 하나님이 친히 일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믿는 사도 바울은 여하한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실패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통하여 하시는 일에 대하여 바울이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 직분을 담대하게 감당해 나아갔다.

.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거짓 사도(使徒)들은 잘못된 것을 숨겨 놓고 가만히 들어오지만(벧후2:1) 바울은 숨기는 것이 없이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진리를 나타내었다. 거짓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것을 섞어서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사람을 미혹하는데 반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그대로 전하였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이 증거하는 바라고 바울이 말했다. 말세에는 성도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이적과 기사와 인본주의와 신비주의로 택한 자라도 할 수만 있으면 넘어뜨리려고 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깨어 있어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말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아니하고 진리 그대로 진실하게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귀한 종이다.

. 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바울이 참된 복음을 전했으나 받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망할 자들이기 때문에 바울이 전하는 참 복음을 받지 않은 것이다.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참 복음이라는 확신과 그 복음을 받기로 예정된 자는 다 받게 될 것을 믿었다. 그러나 이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눈으로 희한한 일을 보아야 좋아하고 성경 그대로 가르치면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거짓 사도들은 사람들을 속여야만 따르기 때문에 궤휼 가운데 행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여 거짓 사도들의 말만 듣고 바울이 사도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안타까워하면서 "내가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냄으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해서 천거한다"고 하였다.

바울이 전해준 말씀이 참 말씀인지 아닌지 신앙양심을 쓰는 사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바울 자신이 양심을 써서 성령으로 말씀을 전하였고 받는 사람도 양심을 쓰면 그 말씀이 진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앙양심을 쓰는 사람은 그 말씀이 옳은 줄로 알고 그 말씀대로 걸어간다.

.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마귀는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한다. 바른 진리를 확실히 믿는 사람은 마귀가 혼미케 하지 못한다. 진리를 참으로 믿는 자는 그 영혼이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결이 되어 있고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그 속에 비치어 빛 가운데 거하기 때문에 마귀(흑암의 세력)가 미혹하지 못한다. 그러나 진리를 믿지 않는 자는 그 심령이 어두움 가운데 있으므로 갈 길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은 마귀가 끄는 대로 끌리어 가게 된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는 사단이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미혹한다고 하였다(살후2:9-10). 진리를 믿지 않고 진리를 기뻐하지 않는 자는 마귀의 유혹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버려 두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이다. 그들이 미혹에 빠지면 진리 아닌 것을 좋아하고 따라가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다.

성도가 미혹에 빠지면 비진리를 진리라 하여 따라가게 되고 구원 이루어 가는 것이 중단된다. 바른 진리를 전하는 것은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바른 진리는 널리 전파되어 가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망하는 자들에게는 이 복음의 광채가 가리워져서 믿지 않는다. 그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고 진리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 보여 주신다는 뜻이다(요14:9). 그리스도의 광채가 없는 자는 하나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항상 빛 가운데 거하여야 한다.

. 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자기를 나타내거나 교인들을 자기에게 속하게 하여 교회의 왕으로 군림하려고 한다면 그는 자기를 위하는 교만한 자이며 절도요 강도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시고 물리치신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기를 전파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가 되신 것과 자기는 그의 종 된 것을 전파하였다. 그것은 세례요한이 "주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고 말한 것과 같다. 주님만 높이고 자기는 쇠하여지는 것이 참된 하나님의 일꾼이다. 복음만 높이고 구원운동만 잘 되게 하기 위하여 자기는 쇠하여지고 낮아지고 없어져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참 종이다. 이러한 종은 하나님이 더욱 귀히 쓰시고 하늘나라에서 상급도 크다.

.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창세기1:3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던 것과 같이 흑암 중에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어 어두움에 있던 우리에게 영적 빛을 마음에 비취어 주셨다.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다. 이 빛을 우리에게 비취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빛을 따라가게 되었다. 이 빛은 영적 빛이요 복음의 광채이다.

우리 성도가 이 빛 가운데 살면서 이 빛을 다른 사람에게도 비취어 줄 책임이 있다.

二. 토기에 담긴 보화(7-15)

.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보배는 영광과 복음의 직분이다. 복음 자체가 보배이며 복음의 직분도 보배이다. 모세의 얼굴에 있었던 광채보다 더 영광이 있고 빛나는 직분이 복음의 직분이다. 질그릇은 신적 요소를 제외한 인간성을 가리킨다. 사람은 전적 부패했고 연약하기 때문에 가치 없는 질그릇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극히 영광스럽고 보배로운 복음의 직분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고 또 보배로운 복음 진리를 우리에게 주셨다. 생명이 살아나가는 진리,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진리, 만물을 통일시켜 나가는 진리를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가 진리를 많이 깨달았으면 보배가 많은 것이요, 적게 깨달았으면 자기의 보배가 적은 것이다.

진리를 많이 깨달은 사람은 많이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맡은 자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매를 더 많이 맞는다고 하였다(눅12:48). 사람은 누구나 다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여 환난이 들어오면 넘어지거나 쓰러지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가 전력을 다 기울여야 겨우 하나씩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도 겨우 하나씩 이루어 나갔다(벧전4:18 참조).

질그릇과 같은 인간이 있는 힘을 다하여야 겨우 복음이 발전되어 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가며 구원운동이 이루어져 나간다.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질그릇에 보배를 주신 것은 복음 운동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와 사람의 능력으로 척척 쉽게 되어 간다면 사람이 제 스스로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고 하나님이 도와서 조금씩 이루어져 나가야 "아!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며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한 자, 멸시받는 자, 천한 자, 미련한 자를 택해서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어 나가게 만드는 것이다(고전1:27-28).

. 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성도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것은 보배인 복음의 산 역사가 자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산 역사로 모세는 애굽 군대를 홍해에 몰살시킬 수 있었고, 삼손은 사자를 찢을 수 있었고, 다윗은 곰을 쳐죽일 수 있었다. 질그릇에 보배를 담아 놓았다고 할지라도 역사가 없으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속에서 믿음으로 화하여 산 역사가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고, 힘이 되고, 자기를 인도해 나가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한다. 우리가 말씀을 받은 다음에 그 말씀을 흘러 떠내려 보내지 말고 그 말씀을 새김질하여 그 말씀이 소망이 되고 생명이 역사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그 말씀이 소망이 되고 생명이 되어 말씀의 영광에 우리가 참여하기 때문에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즐거워하고, 우겨 싸여도 그 영적 세계가 넓고 핍박을 받아도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서 버린바 되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그 속에 생명이 있음으로 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 4: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① 예수 죽인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 죽인 책임을 지고 나갈 때 죄를 원통히 여기며 회개하는 마음이 나가게 되고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고 예수의 생명이 속에서 역사한다. ②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지고 간다는 뜻이다. 즉 성도가 핍박과 고난으로 인하여 예수의 죽음의 길을 걸어간다는 말이다. 핍박과 환난을 받으며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나가는 성도에게는 예수의 생명도 그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바울이 실제로 자기 몸을 죽음에 내어 주어 예수의 죽음의 길을 걸어갔으며 그러므로 그 속에는 예수의 생명이 나타났다. 아무리 험한 죽음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주를 위한 일이라면 바울이 자원하여 그 길을 걸어갔다. 그러므로 바울의 몸에 예수님의 생명이 언제나 나타나고 생명의 역사로 그의 영혼이 자라나는 일이 계속되었다

. 4:11 우리 산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성도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고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된다. 예수를 위하여 죽을 만한 일이 생기면 자기가 먼저 그 자리에 나아가고 고난 당할 만한 길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그 길로 걸어 나아가며 핍박받을 만한 일이 있을 때에는 자기가 먼저 그 일을 한다면 자기의 썩어질 육체가 예수님에게 이용되고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가 그 죽을 육체에 나타난다. 바울이 예수를 위해서라면 죽음의 길이라도 자원하여 그 길을 걸어갔다.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평안함이나 유익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죽음을 각오하고 걸어갔다 (행20:24).

바울이 이러한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자기의 죽을 육체에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 자신이 살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살려내는 생명의 역사가 있었다. 성도가 만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평안이나 유익을 따라간다면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지 않고, 생명의 역사가 끊어져 죽음의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 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바울이 항상 자기의 생명을 죽음에 넘겨주고 죽음의 길을 걸어갔으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바울 안에서 역사하게 되었고 그 생명의 역사가 바울을 통하여 복음과 함께 고린도 교회에도 전달되었다. 바울이 날마다 복음 전파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서 죽음의 길을 걸어간 것이 곧 사망이 바울 안에서 역사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는 교인들 속에는 생명이 역사하였다. 교역자의 심령이 먼저 살아야 다른 사람의 심령도 살려 낼 수 있다. 교역자 자신이 사는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자신이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9:25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하였다. 천하를 다 얻었다고 해도 자기 만들어 나가는 것을 잃어버리든지 생명의 역사를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자신이 먼저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자기 영이 생명길을 걸어 나가면서 자기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다른 사람의 생명도 살릴 수 있다. 예수님의 생명이 먼저 우리 속에 나타났고(10절), 그 다음에 그 생명이 너희 속에 역사한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다(12절), 자신이 먼저 생명길을 걸어가면서 주를 위해 희생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려낼 수 있다. 교역자는 예수를 위하여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면서 자기 중심, 자기 평안, 자기의 유익을 버려야 한다. 교역자가 자기의 진액을 다 짜 바치고 많은 피땀을 흘려야 다른 사람을 살려 낼 수가 있다.

. 4:13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이 말씀은 시편116:10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다윗이 큰 고난 중에서도 믿는 고로 담대히 말한 것처럼 바울도 믿는 마음이 있음으로 여러 고난 중에서도 담대히 말한다는 뜻이다. 자기가 믿는 진리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담대히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리는 하나님이 만능으로 성취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믿으면 증거할 말이 많으나 믿지 않으면 진리에 대해 할 말이 없다.

바울은 핍박을 받아서 거꾸러지고 육신적으로는 희망이 없었으나 진리대로 될 것을 믿기 때문에 소망이 있고 찬송이 나가고 증거 할 말이 많은 것이다. 우리 성도는 누구나 자기가 믿는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말해 줄 필요가 있다. 자기 혼자만 믿고 진리의 빛 가운데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흑암 속에서 방황하게 내버려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믿는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 주면 그것을 듣는 사람이 그 말씀을 받아서 믿고 빛 가운데서 살게 된다. 믿는 진리를 말하지 못하는 자는 믿음을 쓰지 않는 자요 벙어리 개이다(사56:10).

. 4: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13절에서는 예수를 위해서 죽는 것을 말하고, 여기 14절에서는 예수와 함께 살리는 것을 말한다. 교역자가 예수를 위해서 항상 죽음에 넘기우는 생활을 하면 생명이 자기 안에서 역사한다. 예수를 위해서 죽는 자는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다시 살려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신다.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주님에게서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다.

. 4: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모든 것을 교인들을 위하여 하였으나 고린도 교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고 경멸하였다.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여러 가지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바울이 자기를 죽음에 넘겨주면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三. 겉사람과 속사람(16-18)

.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환난과 핍박이 많고 반대하는 자들이 멸시하고 비방하지만 바울은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

바울이 낙심하지 않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께서 긍휼로 이 직분을 맡겼기 때문이다(4:1).

② 자신은 죽음의 길을 걸어가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이 바울과 교인들에게 역사하여 창성해 나간다. 즉 구원운동이 자기로 말미암아 진보되기 때문이다.

③ 주님재림 때에 영광스러운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④ 주께로부터 면류관 상급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⑤ 하나님께 더욱 많은 영광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겉사람은 육신을 가리킨다. 육의 사람은 핍박과 비방과 외부적으로 오는 많은 환난을 받아 쇠약해지고 노쇠하고 죽음이 점점 가까워지는 상태를 말한다.

바울이 항상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는 생활을 하며 많은 고난을 받고 날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때문에 연약한 육체는 후패하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울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하였다. "속사람"은 중생한 영혼이다. 성도가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 외부적으로 아무리 훌륭해도 비참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사람은 외부적으로는 환난과 고통을 당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즐거워한다. 겉사람은 잠깐 있다가 죽어 없어질 것이므로 성도가 겉사람 중심의 생활을 하면 안 된다. 도리어 겉사람이 깨어져 나가야 속사람이 새로워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성도의 겉사람이 후패해지는 것은 유익하다. 성도는 속사람이 새로워지도록 힘써야 한다. 성도의 영혼이 진리와 영감으로 날마다 자라나야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신앙이어야 산 신앙이요 장성하는 신앙이다. 우리가 겉사람은 어찌되든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져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의 믿는 일도 성공되어 나아간다.

. 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환난은 잠시동안이다. 잠시잠깐 후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죄악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히10:37). 성도가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에서 잠시동안 받는 환난이 지극히 크고 중하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환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지극히 가벼운 것이다. 성도가 세상에서 받는 환난은 작은 것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하늘나라에서 받을 영광은 대단히 크며 세상에서 받는 고통은 잠시 동안이나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광은 영원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에 세상에서 받는 환난과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롬8:18).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예수를 위해 잠시 가벼운 환난을 당하면 주님께서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므로 기쁨으로 환난을 통과해야겠다. 우리 성도가 겉사람은 후패해도 속사람이 새로워지도록 날마다 힘쓰고, 예수를 위해서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어 영원한 영광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보이는 것은 현실 세계의 것이요, 육에 속한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의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 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므로 우리가 날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보이는 것은 잃어버려도 보이지 안는 것을 날마다 이루어 나가야 참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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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후서5장

제 5 장 화 목

(대 지)

一. 육신의 장막과 하늘의 처소(1-10)

二.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라(11-17)

三. 화 목(18-21)

(본문 강해)

一. 육신의 장막과 하늘의 처소(1-10)

.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은 육신을 가리킨다. 사람은 영혼과 육신이 합하여 되었으며 영혼이 주격이다. 사람의 영혼이 육신의 장막을 쓰고 살다가 하나님이 영혼을 불러 가시면 육신의 장막을 벗어 놓고 내세(來世)로 가게 된다. 육신을 장막 집이라고 한 것은 육신이 잠깐 있다가 무너질 것(죽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도 죽음이 임박했을 때에 장막을 벗어날 날이 가까이 왔다고 했다(벧후1:14).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에는 믿는 사람의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믿지 않는 사람의 영혼은 지옥으로 간다. 성도가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면 영혼의 본향인 천국에 가서 살 것을 확실히 믿고 그것을 사모해야 한다. 아브라함도 천국을 자기의 본향으로 삼고 늘 그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다. 천국이 우리의 본향이지만 우리가 하늘에서 온 것은 아니다. 또 영혼이 본래 하늘에 있었다는 의미도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우리의 영혼도 없었다. 그런데 천국을 본향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천국에 계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계신 곳이 자기의 본향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나그네와 같이 잠시 동안뿐이며 나그네 생활이 끝나면 본향으로 갈 것이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우리 영혼의 본향인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같이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고 그것을 바라보며 사모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 5: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성도가 육신의 장막을 쓰고 살 때 탄식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죄성) 때문에 그것을 붙들고 빼어 내버리려고 회개하며 탄식하는 것이다.

둘째, 자기 연약성과 불완전성 때문에 탄식하는 것이다.

둘째,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가 덧입혀지지 않아서 탄식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것은

① 성도가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사모하고 그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②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을 가리킨다. 로마서13:14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라고 하였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나가는 것이(갈4:19) 하늘의 처소를 덧입는 일이며, 그것은 하늘의 것이요 영원한 것이다.

③ 성도가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다(롬13:12). 성도가 빛의 갑옷을 입으려면 먼저 빛의 세계를 발견하고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사야 한다. 탄식하며 사모함이 없는 사람은 빛의 갑옷을 입지 못하고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와 주장을 받지 못한다. 성도는 빛의 갑옷을 입는 일을 제일 첫째로 삼고 그 일을 전문으로 해 나가야 한다.

④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벧후1:4).

⑤ 새 사람을 입어 나가는 것이다(엡4:24). 하늘의 처소로 덧입는 사람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서 살면 넓은 길로 가게 되고 주를 위해서 살면 좁은 길로 가게 된다. 믿는다고 해도 말씀을 지키지 않고 세상주의와 육체주의와 인본주의로 나아가는 사람은 넓은 길로 걸어가는 것이다. 예수를 위해 살고 좁은 길로 가는 성도들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따라가는 것이다(창12:1). 성도가 말씀과 세상 재물을 겸하여 붙들려고 하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마6:24). 말씀 하나만 붙들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빛의 갑옷을 입을 수 있고 하늘의 처소를 덧입는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는 것은 쉽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요 힘써야 겨우 되어지는 것이다.

. 5:3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성도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 벗은 자들로 발견된다. 고린도전서3:12-15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하였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성도는 공력이 불타서 없어지지만 구원은 얻는다. 그 사람은 불 가운데서 벌거벗고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얻는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벗은 자로 발견된 자이다.

바울이 하나님 앞에 벗은 자로 발견되지 않으려고 탄식하였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구원을 얻어 천당에 간다. 이것은 자기 공로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되어지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완전히 죄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천당에는 거저 가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믿음을 잘 지키고 말씀대로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달려갈 길을 달려가야 영혼이 자라나서 장성한자가 되고 천당에 가서 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구원을 잘 이루어 그리스도의 옷을 많이 입고 가면 천국에서 칭찬과 영광과 상급이 크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고자 탄식하면서 간절히 사모했다. 우리 성도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 주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그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야 하겠다.

. 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성도가 세상에 있는 동안 탄식하는 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다.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책임을 지고 탄식한다는 뜻이다.

벗고자 함이 아니요 육신의 장막을 벗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죽고자 함이 아니라는 뜻이다.

덧입고자 함이니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고자 함이라는 뜻이다. 바울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를 짐진 것 같이 탄식하며 원하였다. 로마서8:12-13에"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육신에게 빚진 것이 아니다 영으로써 육신의 행실을 죽여야 할 그 빛을 진 것이다. 그러므로 빚진 자가 빛을 물어줄 책임을 진 것 같이 성도는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탄식을 하는 것이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죽을 것"은 육신대로 사는 생활이며 "생명"은 영적 생명의 역사이다. 육신대로 사는 생활은 죽을 것이고 영적 생명으로 사는 생활이 사는 것이다. 바울은 육신대로 사는 것을 영적 생명의 역사가 모두 삼켜 먹고 하나님 앞에 가기를 원하였다. 중생한 영혼이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영이 사는 길이다. 영이 사는 길로 걸어 나가려면 육신의 것은 모두 희생을 해야 한다. 성도가 사는 길은 육신대로 사는 길과 영으로 사는 두 길이 있다 (롬8:4-10).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롬8:13). 그러므로 육신대로 사는 길을 버리고 영이 사는 길로 걸어가야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워지는 것이다. 영으로 말씀을 따라 사는 길은 환난과 핍박과 고난이 오고 십자가가 오지만 거기에 참된 생명이 있다. 육신대로 사는 길은 편안하고 쉽지만 생명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는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 대성공이다. 순교자는 육신의 생명이 완전히 영혼의 생명에게 삼키워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순교자는 천국에서 특별한 자리에 앉아 큰 영광을 누리게 된다. 육신대로 사는 생활은 죽어 없어질 것이므로 그것을 영적 생명의 역사가 삼켜서 영적 생명이 점점 커 나간다면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다. 영적 생명이 죽을 것을 많이 삼킬수록 영혼이 점점 장성하고 능력이 있게 된다.

.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워지게 하는 일은 성령이 책임을 지고 이루어나가신다. 이 일은 성도가 자기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성도를 붙들고 역사하여 이루어 가신다. 그러므로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힘쓰는 자에게는 성령께서 만능으로 도와주셔서 그 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생활은 힘이 들지만 성취할 수가 있다. 힘써 하고자 하는 성도가 자기의 힘이 진하여 지면 성령이 능력으로 그 일을 다 이루어 나가기로 보증하셨기 때문이다.

. 5:6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성도의 구원 성취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며 이를 성령이 보증하셨기 때문에 어떤 고난 중에서도 성도는 항상 담대하여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다.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 때에는 주님을 직접 보지 못하고 믿음으로만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이 주와 따로 거하는 상태이다. 영으로는 주와 교제하며 동고 동락 할 수 있으나 몸은 아직 완전 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주와 따로 있는 형편이다.

.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하늘에 있는 처소를 덧입기 위하여 바울이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세상과 육신 중심의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행한다는 말이다. 성도가 하나님과 그 말씀만 믿고 따라가야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어 나가게 된다.

.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바울이 육신의 몸을 떠나서 그의 영혼이 주와 함께 거하기를 원했다. 몸에 거할 때는 주님과 따로 거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6절), 바울은 차라리 몸을 떠나서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를 원했다. 바울은 항상 몸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빌1:23).

바울은 세상에 살아 있어도 유익이 되고 세상을 떠나도 유익이 되지만 더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도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죽는 것을 무서워하고 세상에서 오래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직도 육신 중심이다. 몸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애착심도 없이 영적인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래 살든지 속히 떠나든지 다 유익이 된다. 성도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있을 욕망을 가지고 매일 영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 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을 떠나도 좋고 살아 있어도 좋은 것이다.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살게 되므로 좋고 세상에 살아 있으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는 생활을 하고(4절) 복음 전파하는 일을 하겠으므로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을 떠나든지 거하든지 문제가 아니고 다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쓸 뿐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쁘시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다.

.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사죄와 칭의를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공심판은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모두 영생을 얻는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 그것은 공심판이 아니고 구원받은 성도적 행위에 따라서 책망과 상을 주는 사심판이다. 그때에 구원을 잘 이루어 간 성도는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되고 구원을 잘 이루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받지 못한다.

누가복음19:12-26에 열 므나 남긴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다. 또 다섯 므나 남긴 사람에게도 같은 칭찬을 하며 다섯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장사는 안하고 한 므나를 그대로 가져온 사람은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고 책방을 받았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지옥에 가는 공심판은 받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선악간에 행한 대로 사심판을 행하여 책망 받을 자에게는 책망하시고, 칭찬 받을 사람에게는 칭찬하시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잠시 동안 나그네로 사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을 이루어 가는 일을 해야 한다. 나그네 생활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어 죽을 것이 많이 생명에게 삼키워지도록 하여야 많은 상금을 받는 사람이 된다.

二.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라(11-17)

. 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바울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권면한다고 하였다. 권면하지 않으면 하나님에게 책망을 받을까봐 아니할 수가 없어서 권면하였다(고전9:16). 바울이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대를 표준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도 바로하고 다른 사람들도 바로 세우려고 힘썼다.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바울이 참 사도인 것과 그가 전하는 말씀이 참 복음인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는데 너희 고린도 교인들이 오해(誤解)하여 비방하면 주님 앞에서 심판 받을 때에 책망을 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바울이 전한 복음이 참 복음인 것을 너희 양심에도 알려졌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아니하고 궤휼 가운데 행치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한다고 말했다(4:2)

. 5: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바울이 자기를 변명할 기회를 주어 외모로 자랑하는 잘못된 사람들을 대하게 하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외모(의식주의와 인본주의)를 가지고 자랑하면서 바울을 비방하였다. 그리하여 고린도 교회에 바울을 자랑하던 것이 없어지고 바울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바울이 자기에 대해서 변명하는 말을 하여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바울과 그 복음에 대하여 바로 깨달아 그 잘못된 사람들을 대하게 하려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악평할 때에 그들의 말만 듣지 말고 실제로 본인의 말을 들어보아 바로 알고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한다.

. 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바울을 미쳤다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울이 하나님을 위하여 너무 열심히 봉사하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그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바울을 미쳤다고 한 것이다(행26:24).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객관적 계시의 사실인고로 정신차리고 참된 말을 한 것이다(행26:25).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들을 만큼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운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교회를 위한 것이었다. 결코 자기의 명예나 이익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다.

.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컨대 한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기 때문에 전도를 아니할래야 아니할 수 없고 몸을 바치지 않을래야 바치지 아니할 수가 없어서 몸을 바치고 나아갔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몸도 바치고 재산도 바치고 모든 희생을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생명까지도 즐거움으로 바치는 것이 참되고 귀한 신앙이다.

사랑에 끌려서 할 때에는 아무리 고난을 당해도 힘이 들지 않고 아무리 물질을 바쳐도 아까운 것이 없다. 사랑에 끌려서 하는 사람은 죽는 곳에도 즐거움으로 간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살 때는 죽는다고 할지라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주를 따라간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삼켜져서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죽음이 참된 순교이다.

주후 2세기경에 로마 정부가 폴리캅 감독을 죽이려고 나무를 쌓아놓고 그 나무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폴리갑 감독을 결박하여 불을 붙이려고 하였다. 그 순간에도 폴리갑 감독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그때 집행관이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한 번만 모른다고 하면 죽이지 않고 석방하겠다고 말하자 폴리갑 감독 대답하기를 "예수님께서는 나를 팔십육년 동안 사랑하시되 한번도 모른다고 한 일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를 한번이라도 모른다고 할 것인가?"하고 기쁨으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문제이다. 예수님이 나를 제일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시고 "내 양을 치고 먹이라"고 말씀하셨다(요21:15-17).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양을 먹일 자격이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사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 갈 수가 있다.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예수님이 우리 믿는 성도 모두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므로 성도가 다 법적으로 죽은 것이다.

.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택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믿는 성도의 영혼을 살려 놓았다. 믿는 자는 다 영혼이 산 자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기가 자기를 위해서 살지 말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자가 되어야한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예수와 함께 죽은 자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의를 인하여 산 자이다. 우리가 산 것은 우리가 아니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갈2:20).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만 주를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 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유대 사람이냐 이방 사람이냐?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여 육체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취급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에 모든 택한 자들을 위하여 죽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육신으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다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바울이 믿기 전에는 그리스도도 일개 인간으로만 알고 그 제자들을 핍박하였다. 그러나 믿은 후에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속주로 알았다.

.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새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육체대로 알고 육체대로 취급하던 것은 다 지나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영혼으로 사는 새사람이 되었으니 만큼 그 새사람으로 더불어 교제해야 한다.

三. 화 목(18-21)

.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새사람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엡2:8). 범죄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자기와 화목케 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희생시켜 대속해 주신다. 이로 인하여 성도가 죄사함을 받고 우리로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 모든 사람이 믿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용납하여 서로 화목하기를 힘써야 한다. 화목하려면 희생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목할 때도 독생자를 희생하시면서 화목하셨으니 우리도 희생함이 없이는 화목할 수 없다

.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할 때에 원수 되었던 죄는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삼으셔서 대신 형벌 받아 죽게 하시고 믿는 자들의 죄는 저희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화목하는 역사를 점점 확장해 나가기 위하여 화목케 하는 복음(말씀)을 성도들에게 부탁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하여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케 되도록 힘써야겠다.

.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일하였다. 이것이 사도적의 권위이다. 바울의 귄면은 사람의 권면이 아니고 하나님의 귄면을 그대로 전파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권면에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간구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은 바울이 전하는 참 복음을 그대로 믿고, 참 종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권면을 전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서는 일이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신으로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고 그들의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보고해 드려야 한다.

사신은 종이므로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말고 자기를 보낸 자의 뜻대로 말씀을 전달하고 심부름을 해야한다. 하나님의 사신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다. 만일 어느 나라의 대사가 본국의 지령을 받지 아니하고 제 마음대로 하고 자기이익을 위해서 일하면 그 대사는 송환되어 처벌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로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성도가 세상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통이 안될 때는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도록 해야 한다. 영적 교통이 이루어져 자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자기 안에 있는 생활이 진짜 화목이다. 화목을 하면 사랑이 점점 깊어지고 하나님이 점점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다. 하나님과 화목된 사람은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고 모든 것을 다 형통하게 해주신다.

.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목하기 위하여 최고의 희생으로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 예수님은 경험적으로 죄를 지은 일이 없다는 뜻이다(벧전2:22).

죄를 삼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로 죄인을 삼은 것이 아니고 죄 자체를 삼으셨다는 뜻이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인 취급을 받으셨다. 죄인취급 받은 것은 저주와 극도의 형벌로 고난을 받은 것을 말한다(갈3:13).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고전1:30). 이미 믿는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롬13: 14) 하나님의 의가 되어 나가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의 하나이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대신 벌을 받으시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우리들의 의로 삼으셨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신 책임지고 내가 벌을 받으면서 자기의 잘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입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것이 화목하는 법이요, 구속을 이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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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후서6장

제 6 장 동 사(同事)

(대 지)

一. 은혜 받을 때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1-2)

二. 복음과 직분의 능력(3-10)

三. 마음을 넓히라(11-13)

四. 타협하지 말라(14-18)

(본문 강해)

一. 은혜 받을 때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1-2)

.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 말씀은 5장에서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말씀의 연속으로써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아야 될 것을 바울이 역설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취하신 하나님의 구원사업 전체를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① 구속의 진리 전체를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② 구속의 진리를 그대로 믿고 그 세계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③ 그대로 열매가 맺혀져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택하여 세웠기 때문에 사도가 되었고, 하나님이 보냈기 때문에 갔고, 하나님이 시켰기 때문에 일을 했다. 바울 자신은 아무 힘이 없으나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려 하나님과 함께 일하였다. 누구나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고 하나님께 이용당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와 함께 한다.

.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것은 이사야49:8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연단하기 위해서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때가 있고 구원하시는 때가 있다. 은혜를 받지 않으면 안될 만한 때가 곧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시는 때이다. 우리가 생활하다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때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는 이길 수 없고 걸어 갈 수 없고 일을 해 나갈 수도 없는 때가 있다. 그러한 때가 곧 은혜 받을 만한 때이다.

그때에는 은혜를 받으려고 더욱 힘을 써야 한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만능으로 도와 주셔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에게 큰 시험이 닥치고 어려운 난관에 부딪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해결할 수가 없는 그때가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주시는 때이다. 그때에 은혜 받으려고 힘써 기도하면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역사로써 그 일을 잘 해결해 주신다.

예를 들면 느부갓네살왕이 두라 평지에 세운 금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 속에 던지겠다는 명령이 내렸을 때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때이다

그때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합심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니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풀무불 속에서 건져 주셨다. 다니엘에게도 사자굴의 시험이 왔었는데 그때가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줄 때요 다니엘로서는 은혜 받을 때이다. 다니엘이 그때에 힘써 기도하고 믿음을 지키므로 하나님이 그를 사자굴에서 건져 주셨다. 그러므로 그날이 다니엘에게 구원의 날이 되었다. 성도는 환난의 때에 은혜 받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생각으로 낙망하거나 인본주의의 수단을 써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줄 그때를 놓치면 그 은혜는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성도가 사업이 잘 안되고, 멸시를 받으며 고난을 당하여 도저히 살길이 없는 것 같을 때에 더욱 믿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고난받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은혜 받는 기간이 길어지므로 성도에게는 유익이 많다. 인삼은 오래된 것일수록 값이 나가는 것처럼 성도가 고난받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큰 은혜가 온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 다녔는데 그때가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이다. 그때에 다윗이 참고 믿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구원의 날에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워 주셨다.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줄 때에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잘 받으면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

모세가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며 살 때가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때였으며, 그때에 모세가 낙심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순종하였으므로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주셨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아 주셨다. 사도 바울도 가만히 있었으면 고난이 없었을 것이나 주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갔다(12:15).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를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은혜 받을 만한 때에 헛되이 받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 환경을 피하려 하지 말고, 믿음으로 통과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구원해 주시고 자기에게 큰 은혜가 된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은 신약시대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지만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가 많이 나타나고 역사가 많이 나타나는 신약시대를 가리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한 것이다. 신약시대는 예수님께서 구속을 완성하시고 구속의 세계로(신령한 잔치 집으로) 우리를 항상 부르고 계신다(14:16-24).

어떤 사람이 은혜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①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해 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다. 사모하는 것이 없고 배부름으로 나가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눅6:25).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마19:24).

②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언제나 은혜 받을 수 있고 계속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③ 자기 사명에 충성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고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바울은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을 줄 알면서도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전했다.

이런 사람이 신약시대에 언제나 은혜 받을 사람이고 구원의 날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二. 복음과 직분의 능력(3-10)

. 6:3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이 직책은 복음을 전파하는 직책이다. 이 복음의 직분이 훼방을 받으면 안 된다. 복음의 직분과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기관이므로 훼방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복음의 직분이 훼방을 받으면 하나님의 구원사업에 지장을 초래한다. 교회의 목사나 전도사에게 훼방이 돌아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6:4-5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바울은 거짓 스승들과 같이 유명한 사람의 천거서를 가지고 다니지 않고 자신의 신덕(信德)과 일한 공덕(功德)으로 자신이 참된 하나님의 일꾼인 것을 인정하게 한다는 뜻이다.

많이 견디는 것 참된 하나님의 종은 모든 환난과 어려움을 승리적으로 통과하기 위하여 많이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바울이 많이 견딘 것은 ① 믿음으로 견디었다. ② 소망 중에 견디었다. ③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견디었다. ④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함을 힘입어 감사와 기쁨으로 견디었다. 본문에 나타난 아홉 가지 고난을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환난, 궁핍, 곤난.

둘째, 매맞음, 갇힘(감옥에 갇힌 일), 요란함(무질서 무법적인 폭도의 소동).

셋째, 수고로움(바울의 자급 전도를 위한 생업의 수고와 전도하는 일을 위한 수고), 자지 못함, 먹지 못함(복음을 위한 자기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때가 많았음).

. 6: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깨끗함 바울은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으며 금전이나 다른 모든 면에 깨끗하였다. 지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르고 깊은 지식이다. 오래 참음 ① 사랑으로 오래 참는다(고전13:4). ② 하나님의 권고를 기다림으로 오래 참는다. 자비 바울은 핍박 중에도 참고 도리어 그 핍박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성령의 감화 바울이 핍박하는 무리들에게 믿음으로 대하였으므로 성령의 감화가 많이 나타나 그들을 감동시켰다(행13:44-52 참조). 거짓이 없는 사랑 영적 사랑은 거짓이 없다. 거짓으로 사랑하는 자는 남을 이용하여 자기의 유익을 보려는 자이다.

. 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진리의 말씀 성경 말씀과 그 바른 해석을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야 된다(빌4:13; 살전1:5). 의의 명기로 좌우하고 이것은 성도가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세워나가기 위하여 진리의 말씀을 성령의 능력으로 실현시켜 나아가는 것이 의의 병기로 좌우하는 것이다.

. 6:8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영광과 욕됨으로 바울에게는 사도직의 영광이 있다. 누구든지 복음을 전하는 자는 영광이 있다. 전도자에게는 영광도 있으나 욕을 당하기도 한다. 복음 진리가 전파되어 마귀의 세력이 깨어져 나가고 비진리가 드러나기 때문에 마귀의 종들과 비진리를 따라 가는 사람들이 핍박하고 능욕하게 된다.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복음 전하는 직책은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을 받게 된다. 참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여 악평하고 욕하는 사람도 있고 또 시기하여 악한 이름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진리를 바로 깨달은 사람은 존경하며 아름다운 이름을 돌린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의 생명과 영생의 도리를 전하면 불택자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속이는 자같이 보여진다. 그러나 그 진리를 믿는 성도에게는 참된 것임을 알게 된다. 바울은 진실하며 참된 진리를 전하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 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외부적으로는 무명한자같이 보였고 무명한 자로 취급당했다. 하나님께서 원래 유명한 사람들을 택하여 전도자로 세운 것이 아니다(고전1:27-29). 세상에서는 무명한자이나 하나님 앞에서와 구원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사신(使臣)이며(5:20), 하나님의 일(영혼 구원의 일)과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하는 자이니 얼마나 유명한 자인가!

죽은 자 같으나 바울이 가는 곳마다 큰 환난과 핍박을 받아 사지(死地)로 가는 양같이 죽음에 넘기워졌다. 그러나 그가 하나의 능력의 보호로 죽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의 일을 점점 발전시켜 나갔다.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은 바울이 환난과 고난과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하나님께 징계 받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망하거나 사지가 죽어 쓰러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뢰하고 새힘을 얻으며 (사40:29-31) 극강 담대하여 전진하였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하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

.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외부적으로 볼 때 바울에게 여러 가지 근심이 있었다(11:27-29; 롬9:1-2; 빌2:27). 그러나 그 속에는 항상 기쁨이 있었다.

①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영적 즐거움.

② 소망 중에 즐거워함.

③ 합동해서 유익하게 해 줄 것을 믿고 믿음으로 즐거워함이다. .

가난한 자 같으나 맡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전도자에게는 은과 금이 없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행3:6) 진리로써 많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부요하게 한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여기 "같으나"라는 말은 실은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외부적으로 볼 때는 수중 무일전(手中無一錢)이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다 아버지의 것이요(시24:1), 아버지의 것은 다 성도의 것이다.

고린도전서3:21-23에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하였다. 믿음으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시는 것이다.

三. 마음을 넓히라(11-13)

. 6: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을 향해서 모든 것을 숨김없이 다 말했다는 뜻이다.

마음이 넓었으니 사랑으로 아량을 베푸는 상태이다.

. 6: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고린도 교인 중에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치 않고 자기들의 자유를 속박하며 간섭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사랑이 식어져 있는 상태에 있었으므로, 사랑이 식어진 것은 그들이 바울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너희의 마음을 넓히고 나를 용납하라고 권면한 것이다.

. 6: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바울은 부모가 자녀에게 말하듯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탄 없이 사랑으로 권면하고 있다. 그들이 마음을 넓혀서 바울을 이해하고 그의 사랑에 보답하는 생활을 하도록 권면 하였다.

四. 타협하지 말라(14-18)

.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이 바울에게서 떨어지게 된 것이 첫째는, 그들의 마음이 좁은 것이었고 둘째는, 불신앙과 짝했기 때문이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성도가 믿지 않는 자에게 속박을 받아 그와 같은 보조를 취하며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신자가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와 짝함으로 신앙의 길에 방해를 받으면 안되므로 그러한 자와 함께 하지 말라는 뜻이다. 심령의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생명을 빼앗기는 것이다. 신앙의 달음박질에 방해되는 다른 것들에 얽매이지 않는 자가 지혜 있는 자이다. 신명기22:10에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라고 하였다. 이것은 신앙이 서로 맞지 않으면 일을 같이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의(義)와 불법은 서로 반대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 의가 불법과 함께 하게 되면 의는 벌써 없어진 것이고 의의 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빛이 오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어두움이 오면 빛이 물러간다. 신자가 어두움과 함께 있다고 하면 빛은 벌써 잃어버린 것이다(롬13:12-14 참조). 수돗물과 하수도 물이 합하면 수돗물은 쓰지 못하게 된다.

자기만 신앙을 잘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여 신앙이 맞지 않는 단체에 들어가 활동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신앙을 바로 지키기 힘들다. 신앙이 맞지 않는 단체에 들어가면 그 단체의 법과 결정(다수결에 의한)에 따라야 한다. 신앙이 다르더라도 사업만은 같이 해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사업이란 신앙의 열매이므로 신앙이 다르면 열매도 다르게 맺혀야 한다. W.C.C.는 각 교파의 신앙노선이 다를지라도 사업은 함께 하자는 혼합주의이다. 그러나 교리가 다르면 사업도 같이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제 상관하며

벨리알은 사악한 것, 무가치한 것을 의미하는데 사단의 별명이다. 그리스도는 사단의 일을 멸하려 하고 사단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방해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와 사단은 조화(調和)될 수 없다. 조화는 동의하는 일을 말한다. 사단은 때때로 신자의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사단이 베드로에게 들어가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할 때에 예수님이 그에게 "사단 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다(마16:23). 신자는 사단의 궤계와 유혹과 역사를 밝히 보고 분별하여 물리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실패하고 만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신자가 일반 사회 생활면에서는 불신자와 상관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으로 영적 생명의 길을 걸어 나아가는데 손해를 보거나 진리를 양보하면서 까지 불신자와 관계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그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우상은 신도 아니요 생명도 없으나 마귀의 도구가 된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로 사는 생명 있는 성도는 우상과 일치될 수 없고 본능적으로 모든 우상을 물리치게 된다. 우상을 받아들이는 신자는 생명이 없는 증거이다.

일치는 같이 앉는다는 뜻이다.

본 절 하반 절은 구약의 여러 곳을 인용한 것인데 하나님은 성도 가운데 계시고 성도의 하나님이 되시고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는 뜻이다(출29:45; 레26:12; 렘31:1; 겔37:27). 이것은 신약시대에 더욱더 완성되어 나가는 것이다.

. 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이것은 이사야52:11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는 불법, 어두움, 사단적인 것, 불신앙적인 것, 우상적인 것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신자가 그런 단체와 분위기에서 그 영향력을 받으며 같이 앉아 있으면 생명력이 없어지고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 산 고기는 썩은 물에서 있을 수가 없다. 거기서 나와야 산다. 요한계시록18:4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써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였다.

나와서 장소나 단체에서 나와야 될 경우도 있는데 자기가 소속한 기독교 단체가 잘못되었을 경우 거기서 탈퇴하고 나와야 한다. 그 안에 있으면 그 지배를 받게 되고 그것을 방조(幇,助)하는 것이 되며 법적 책임이 있다. 반대하지 않는 자는 환영하는 자가 되므로 마음이 그들의 불의에서 멀리 떠나 성별된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런 자를 하나님이 영접하여 주신다.

.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성도가 불의에서 나와 따로 있어야만 하나님이 영접해 주시고 아버지의 혜택을 입혀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에 참여하게 된다.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이 능력으로 약속의 말씀을 성취시켜 가실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 복이 자기에게 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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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후서7장

제 7 장 회 개

(대 지)

一. 성 별(聖別)(1)

二. 일꾼 영접(2-4)

三. 위 로(5-7)

四. 근 심(8-10)

五. 근심의 효과(11-12)

六. 기 쁨(13-16)

(본문 강해)

一. 성 별(聖別)(1)

.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본 절은 6장의 계속이요 특히 6:14 이하의 결론이다. 성도는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빛에 속한 자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벨리알, 우상, 어두움의 일 등)에서 떠나 자신을 정결케 하라는 뜻이다.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6:17-18에"…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는 약속을 말한다.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고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죄에서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된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 이것은 신자의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신자의 밖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가리킨다. 즉 6:14 이하에 언급한 벨리알이나 불법, 우상, 어두움 같은 것을 말한다. 벨리알이나 우상은 영의 더러운 것이고 불법과 어두움은 육의 더러운 행위, 즉 음행, 호색, 술 취함, 연락, 사치 등을 말한다.

二. 일꾼 영접(2-4)

. 7: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고린도 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기를 자랑하며 바울을 비방했다. 그로 인하여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 대한 존경심이 행하거나 해롭게 하거나 속여 빼앗은 일이 없다고 변명하였다. 교역자를 진심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교역자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생명의 말씀이 교역자를 통해서 전파되기 때문에 교역자를 마음으로 영접하는 자는 그 교역자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그러나 교역자가 성경 말씀을 잘못 가르치고 인본주의로 나아갈 때는 심령이 살지 못하므로 그 교역자에게서 떠나는 것이 좋다.

. 7:3 내가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간에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을 정도로 서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였다. 이것을 전에도 말했고(1:6; 2:4, 3:3; 6:11-13), 지금도 권면하는 것이니 바울의 말을 오해하여 자기들을 정죄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 7:4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담대한 것도 많고 일본 성경에는 신임이 크다고 번역했다. 바울이 마음속 깊이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고 전적으로 신임하여 담대히 고린도 교인들을 자랑하고(1:14), 또 환난 중에서도 고린도 교인들을 통하여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것을 재삼 강조한다 (1:6).

三. 위 로(5-7)

. 7: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육체가 편치 못하고 2:12-13에 보면 바울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에 가게 된 동기는 고린도 교회에 파견했던 디도가 오지 않는 것을 보고 고린도 교회의 시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 그런 줄 알고 심령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회에 많은 시험이 들어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으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너지지 않을까, 또 성도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할까 하여 바울에게 두려움이 있었다. 또 외부에서는 바울을 비방하고 대적하는 세력이 많이 있었으므로 그들과 선한 싸움을 싸우느라고 바울이 많은 환난을 당했다.

. 7:6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주의 일을 하느라고 환난과 고통을 받아 낮아지고 멸시를 받으면서도 주님 앞에 앉아서 주만 의지하고 주께만 부르짖는 자는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고 권고해 주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환난 가운데서 고난을 당하더라도 불만을 품거나 원망하지 말고 낮은데 처하여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귀한 자리에 앉혀 주신다. 교역자는 특히 낮아질 줄 알아야 한다. 낮아질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이 귀히 쓰시지 않는다. 교역자가 높은 자리에 처하여 "나다!"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멸시당하며 다 실패한 것 같고, 희망이 없는 것 같은 그때가 은혜 받을 만한 때이므로 그때에 낮아져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권고해 주신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려면 낮아져야 한다. 높아지면 하나님의 위로가 떠난다. 하나님의 위로가 끊어지면 생명이 끊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로가 없으면 자기가 교만한 줄 알고 낮아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이며(딤전1:15), 모든 성도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다(엡3:8).

사도 바울이 이렇게 겸손한 자리에 처했으므로 하나님의 위로가 항상 같이 하였다. 디도의 옴으로 고린도 교회의 희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한량없는 위로를 받았다. 그 이유는 ① 동역자인 디도를 만나게 되었다. ②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명령을 순종하여 믿음에 섰다. ③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적극적으로 영접하고 바울에 대하여 열심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7절).

. 7:7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디도가 고린도에서 받은 위로를 가지고 와서 바울을 위로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때문에 염려하며 비천해지고 두려워하는 중에 있었으나 하나님이 디도를 보내어 위로하게 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잘 영접해 주었다는 것과 그들이 바울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며 애통하는 가운데 바울을 대단히 사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므로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四. 근 심(8-10)

. 7:8-9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편지로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했기 때문에 바울이 그들을 근심하게 한 결과가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책망을 해 놓고도 근심했다. 고린도 교인들이 책망을 잘 받아 회개하면 좋으나 도리어 낙심하고 삐뚤어지지 않을까 하고 근심한 것이다. 책망한 다음에는 책망한 사람이 도리어 근심을 하고 후회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책망을 받고 진정으로 회개하여 바로 섰다는 소식을 바울이 들었으므로 기뻐한 것이다. 바울이 그들을 근심하게 한 까닭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회개하였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잠깐 근심했으나 그것 때문에 그들이 회개하여 큰 유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근심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세상 근심"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다. "세상 근심"이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여 근심하는 것이다.

누가복음21:34에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라고 하였다. 부하려 하는 마음을 품거나 세상 염려를 하면 마귀의 올무에 걸려 마귀에게 끌려가기 쉽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했다(시55:22 ;벧전5:7). 성도는 항상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기며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한다(딤전6:8). 성도가 믿음을 지키다가 괴로움을 당하면 그것으로 족한 줄 알고 모든 것을 주께 맡겨야 한다. 염려하고 방탕하고 부하려 하는 사람은 시험에 든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① 책망을 받을 때 잠깐 근심이 들어오는 것. ② 자기의 잘못된 것 때문에 하는 근심. ③ 바로 하려고 하여도 잘 안되어서 하는 근심. ④ 잘 믿으려고 하는 근심이다.

책망을 달게 받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책망을 받는 것마다 빛으로 나타난다고 했다(엡5:13). 책망을 받은 다음에 회개하는 길과 더 삐뚤어지는 길 두 가지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책망을 하고 책망한 자가 근심을 하게 된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성도는 책망을 받아 자기 죄를 깨닫고 큰 근심에 빠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다. 책망을 받지 않았어도 자기에게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탄식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근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또한 책망 받을 때에도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하겠기에 책망하는 줄 알고 달게 받으며 회개하고 바로서야 한다.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적극적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것을 인하여 하는 근심이다. 올라가야만 되겠으나 아무리 힘을 써도 올라가지 못할 때에 간절한 마음이 생기고 애통한 마음이 생겨서 근심하면 그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자는 기어코 구원에 이르게 될 날이 온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많을수록 하나님께서는 더욱더 많은 능력으로 붙들어 주시고 구원에 이르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새벽기도 못하는 자는 근심하고, 양심을 쓰지 못하는 자도 근심하며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될 것을 바치지 못하는 자도 근심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을 하면 하나님께서 회개하게 해 주시고,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해 주신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없기 때문에 되지 않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만 하면 반드시 구원에 이를 날이 온다.

五. 근심의 효과(11-12)

. 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했기 때문에 믿음에 바로 서게 되었다.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바울이 책망을 하였고 고린도 교인들이 그 책망을 달게 받아 근심하며 회개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변명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와 바울에게 변명하게 되었다는 것. 분하게 죄에 대하여 분하게 여겼다는 것. 두렵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 열심 있게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 바로 서는데 열심이 있었다는 것. 벌하게 죄를 벌하는 마음이 일어났다는 것.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 깨끗한 자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책망 받은 다음에 이렇게 되는 것이 큰복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책망을 하나님의 책망으로 받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 것이다. 우리가 책망을 받을 때 하나님이 주신 책망인 줄 알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

. 7: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바울이 일찌기 고린도 교회에 불의한 자를 물리치지 않았다고 책망한 적이 있다(고전5 :1-2). 그렇게 책망한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나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고린도 교회 전체를 바로 서게 하는데 있었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가 죄를 물리치지 못하리만큼 신앙이 약해졌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또 바울을 사모하는 마음이 식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 전체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고 회개시켜 처음 믿음과 처음 사랑을 다시 찾게 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로 바울에 대한 간절함이 나타나게 되었고 고린도 교인들이 살게 되었다.

六. 기 쁨(13-16)

. 7:13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고린도 교회가 바로 섰음으로 바울이 큰 위로를 받았으며, 전에는 디도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근심하였으나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고 바로 서서 바울과 디도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을 볼 때에 디도가 안심하고 큰 기쁨으로 돌아왔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기뻐하는 디도의 얼굴을 볼 때 더욱 기뻐하였다.

. 7: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디도가 고린도에 가기 전에 바울이 그에게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자랑을 하였다. 그런데 디도가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 만일 고린도 교인들이 불순종하는 것을 보게 되면 바울의 자랑이 부끄럽게 될 뻔하였다. 다행히 디도가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바울을 사모하며 열심 있는 것을 보았으므로 바울의 자랑이 참된 것임을 디도가 알게 되었다. 교회가 믿음에 바로 서 나가야 그 교회에 대한 교역자의 자랑이 참되게 되고 부끄럽지 않게 된다.

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같이 바울이 전에 고린도 교회에 한 말은 다 참된 말만 한 것이며 과장이나 허위로 한 것이 없다. 교역자가 허위나 과장으로 말을 하면 일시적인 환영을 받고 유익을 볼지 모르나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할 날이 온다.

. 7:15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디도가 갈 때에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일꾼을 두려워하고 떨면서 영접하고 순종을 잘했다. 그것은 디도가 유명하고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잘 영접한 것은 바울을 영접하고 바울의 훈계한 말씀을 순종한 증거이다. 고린도 교회가 그와 같이 하나님의 종을 사람으로 영접하고 존경하며 순종하였으므로 디도가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심정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하여 고린도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마음 속 깊이 사모하며 그들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 7:16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책망을 달게 받아 회개를 철저히 하고 바울이 보낸 디도를 두려워하고 떨며 잘 영접하였으므로 바울이 담대해졌다. 전에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 때문에 근심하며 연약해졌으나 지금은 그들이 바로 섰기 때문에 담대하며 기뻐하였 다. 교인들이 불평하며 원망하고 불순종하면 교역자가 풀이 죽고 연약해진다. 그러나 교인들이 잘 순종하고 교역자를 존경하면 교역자가 담대해진다. 교역자가 담대하면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가고 교회가 창성해지며 구원운동이 힘있게 잘 되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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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후서8장

제 8 장 은 혜

(대 지)

一. 연보 은혜(1-9)

二. 연보는 원하는 대로 할 것(10-15)

三. 연보 조심(16-22)

四. 디도와 그 동역자를 다시 소개함(23-24)

(본문 강해)

一. 연보 은혜(1-9)

. 8: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마게도냐 교회가 많은 은혜를 받아 열심으로 연보하였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도 이 은혜를 알기 원한다고 바울이 말했다.

. 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마게도냐 교회는 많은 환난과 극한 가난(밑바닥까지 내려간 가난의 뜻)가운데서도 믿는 일을 잘하였다. 그 증거는 ① 시련을 잘 받아서 신앙 인격을 만들어 나갔다. ② 영적 기쁨이 늘 넘치고 있었다. ③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은혜를 많이 주셨기 때문이다.

. 8:3-5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저희가 힘대로 힘대로 연보한다는 것은 신자가 자기의 재산에서 하나님께 바쳐야 할 적당한 분량대로 연보하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연보할 때에 언제나 자기 힘대로 힘써 연보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이 된다. 연보할 때에 마땅히 바쳐야 할 만한 분량을 바치지 않고 조금 바치는 것은 무성의요, 하나님께 대한 불충성이며,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을 자기가 취한 것은 불의한 재물이 된다. 이것이 심판날에 소리지를 것이다(약 5:4).

마게도냐 교회들이 연보할 때에 ①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연보하였다. ② 자원하여 하였다. 억지로나 사람 앞에서 부득이 하여 한 것이 아니다. ③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구하여서 한 것이다. 연보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일이며 성도 섬기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다. ④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연보도 드렸다. 성도가 금전보다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도 성도가 물질보다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것을 원하신다(12:14). 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울에게 자신을 맡기고 그 뜻을 순종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을 통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잘 이루어져 나갔다.

. 8:6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시작하였은즉 연보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얼마 전에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내어 연보 거두기를 시작하였는데 그 일을 그대로 성취케 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연보할 것을 권면하는 일은 성경적이다.

은혜 연보를 가리킨다. 연보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증거이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야 하나님께 연보를 바칠 마음이 생긴다.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께 감사하여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릴 마음이 생기고, 주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나오며, 주를 위해서 물질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연보하는 일은 은혜의 열매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쓰면 더욱 큰 은혜를 받게 되고 자기의 영혼이 자라나며 신앙의 열매가 더 많이 맺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빌4:18).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하여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때에 연보를 안하면 영혼이 자라나지 않는다. 믿음을 쓰지 않기 때문에 힘이 나지 않고 열매도 없다. 연보를 안 하는 사람은 돈이 우상이 되어 마음을 닫아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 8: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린도 교인들에게 여러 가지로 은혜가 풍성했으나 연보하는 은혜도 풍성하게 하라고 바울이 권면하였다. 성도에게 믿음, 하나님의 말씀, 지식, 간절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많을지라도 물질을 하나님께 바치고 구제하는 일을 잘못하면 그것들의 열매가 잘 맺히지 못한 것이다. 물질이 우상이 되면 신앙 인격이 자라나지 못하고 전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물질이 신앙의 역사하는 마음을 막기 때문이다.

. 8: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연보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연보한 예를 보여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있는 사랑과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부, 진실이 있는 여부를 연보로써 알 수 있다. 성도에게 진실함과 참된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께 바치지 않을 수 없고 구제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