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강해

고린도후서 강해

·기록한 사람 : 사도 바울

·기록한 연대 :주후 57년경(고전과 6개월 차이)

·기록한 장소 : 마게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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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후서1장

제 1 장 위 로

(대 지)

一. 서 문(1-2)

二. 하나님이 위로해 주심(3-7)

三. 하나님이 구출해 주심(8-11)

四. 진실(12-19)

五. 약속의 보증(20-22)

六. 신앙 보조(23-24)

(본문 강해)

一. 서 문(1-2)

.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된 것이며 사람의 뜻으로나 사람이 권해서 된 것이 아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되었다. 그러므로 사도권의 출처와 근원이 하나님께 있으며 사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능력과 권위가 있다. 직분을 맡은 자들은 그 직분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줄로 믿고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한다.

형제 디모데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전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였다. 바울이 믿음 안에서 그를 참된 아들(딤전1:2), 믿음의 형제(골1:1), 동역자(롬16:21)로 여겼다. 디모데도 믿음 안에서 바울을 아버지처럼 섬기며 도와주었다.

하나님의 교회 교회는 사람의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이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목사나 교인들은 결코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야 하며 그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요 하나님의 심부름꾼(사역자)이다. 교회의 일은 크든지 작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만일 사람의 생각이나 수단으로 큰 교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사람이 그 교회의 주인이 된 것이고, 바벨탑을 쌓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교회만 크게 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항상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할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에 합한 교회가 되겠는가? 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일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는 직분이고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는 위치에 있다. 아가야 고린도가 속해 있는 넓은 지역을 말한다. 바울이 아가야 지방의 모든 성도에게 본서를 보냈다.

.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으로 구속과 그 구속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예정, 선택, 구속하시고 믿음을 주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 등이다. 이 모든 것이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받는 것이 은혜 받는 것이다. 성경을 떠나서 일시적인 감동을 받는 것만으로는 은혜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평강은 은혜를 받은 결과로 오는 것이며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마음에 평강이 있게 된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내려오는 은혜와 평강이 언제나 넘치는 것이다.

二 .하나님이 위로해 주심(3-7)

.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을 말할 때에 "찬송하리로다"하는 말부터 나오게 된다(엡1:3, 벧전1:3). 바울이 구원받은 것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 감사해서 "찬송하리로다" 하는 말이 자연히 나왔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하나님"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엘로힘)인데 "능력의 신"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된 사역을 능력으로 이루어 나가신다는 뜻이다.

자비의 아버지시요 하나님께서 율법대로 우리를 취급하시면 우리는 다 죄인이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속량하여 주시고 사랑으로 불러 주시므로 우기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과 긍휼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위로를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환난 중에서도 큰 위로를 받게 된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큰 환난이 일어났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서 바울을 크게 위로해 주시고 새 힘을 주셨다 (행18:9-10).

.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하나님은 복음을 인하여 환난 중에 있는 성도를 찾아 가셔서 위로해 주신다. 시편50:15에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환난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위로해 주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위로로써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성도들을 능히 위로해 줄 수 있다.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뢰(依賴)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되고 그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주게 된다.

.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위로도 넘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이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위로도 없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 할수록 그만큼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무엇인가?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고난이다. 어떠한 고난이 올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그 고난을 이겨 나가려고 애를 쓰면 그리스도께서 그 고난을 대신 감당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위로가 오게 된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에 자기 혼자 그 고난을 감당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기 혼자 고난을 감당하려고 하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낙심하여 자포자기하기 쉽다. 환난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 안에 들어가 그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만들면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과 평안이 오고 한량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둘째, 그리스도로 인해서 당하는 고난이다.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다. 바울이 예수님을 위하여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 12:15에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라고 하였다. 그가 유대에서만 복음을 전하고 이방에까지 가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많은 고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여러 지방에까지 힘써 전도하였기 때문에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6:4-10; 11:23-27). 모세도 애굽에 가만히 있었으면 공주의 아들의 지위와 애굽의 모든 보화와 재물을 소유하고 평안히 살 수 있었으나 그것들을 다 내어놓고 주를 위해 능욕받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와 재물보다 더 크게 여기고 고난의 길을 걸어갔다(히11:24-26). 이렇게 자원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그만큼 넘쳤었다.

교역자가 개척교회를 하며 고생할 때에는 고난이 많으나 하나님의 위로도 그만큼 넘치게 된다. 그 교회가 커지고 평안해졌을 때 교역자가 "이제는 괜찮다"하고 힘을 안 쓰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위로도 끊어진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생활을 해야 하나님의 위로도 계속해서 오게 되는 것이다.

훌륭한 성도들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고난받는 길을 걸어갔다.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간 일이나, 소돔과 고모라를 조카 롯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좋지 못한 곳으로 간 일이나,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일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이다. 바나바도 자기 밭을 팔아 사도의 발 앞에 두며(행4:36-37) 적극적으로 주를 위하여 물질을 바치므로 권위자(위로의 아들)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것은 바나바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한 증거이었다.

셋째, 말씀을 지키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지켜 나가면 고난이 온다. 다니엘이 삼십일간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금령이 내린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므로 사자굴에 들어가는 고난을 당하였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세워 나가려면 고난이 온다.

주의 말씀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 말씀을 지켜야 한다. 주를 위해서 말씀을 지키려고 하면 육신적으로는 고통이 오고 많은 손해가 따르게 된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가 충만하다. 이러한 사람은 다음에 오는 더 큰 고난도 충분히 이겨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말씀을 양보하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고난도 그리스도의 위로도 없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지 못하면 장차 올 고난도 이길 수 없다.

성도가 하나님의 위로 없이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믿는 일이 힘들고 억지가 된다. 항상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으며 사는 사람은 주를 위하여 매를 맞아도 기쁘고, 멸시를 받아도 기쁘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다 참고 이길만한 힘과 위로가 주께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믿는 일을 해 나가는 사람은 봄동산에 따뜻한 햇빛이 비쳐 얼었던 땅이 녹고 만산초목(滿山草木)이 자라나는 것처럼 신앙생활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가 없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겨울에 농사하는 것처럼 힘이 들고 어렵다.

고난은 가정적으로 오는 것도 있고, 사회적으로 오는 것도 있으며, 국가적으로 오는 것도 있다. 그 모든 고난을 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감당해야 한다. 고난이 올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과 더불어 그 고난을 다 감당하려고 힘을 쓰면 그리스도의 위로가 오고 능력이 온다.

우리가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몸바쳐 일하고 모세처럼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말씀을 순종하여 나가려면 양심에 가책이 되는 것과 하나님 앞에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다 끊어버려야 한다. 그때에 많은 고난이 오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능력과 위로도 그만큼 많이 받게 된다.

. 1: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과 모든 성도들의 구원을 위하여 환난을 받는 것이다. 바울은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하였다. 바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위로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해져서 그들의 속에서 역사하였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이 모든 환난을 이길 힘이 있었다. 교역자의 믿음과 위로와 능력의 역사는 그 인도를 받는 성도들에게도 전달되는 것이다.

. 1: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소망이 견고하다.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했기 때문이요,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하고 고린도 교인들의 영혼이 자라나겠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하여 그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에 넘어지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해결하도록 힘을 써야 한다. 우리 앞에 아무리 큰 고난이 오고, 시험이 온다고 해도 말씀을 붙들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그것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만들어야 소망이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성도는 소망이 있는 성도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받는 교회도 소망이 있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환난을 당할 때에 원망하지 말고 합심하여 기도하고 그리스도로 인해서 믿음으로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몸을 바쳐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의 위로가 풍성히 임하고 소망이 있는 교회가 된다.

三 .하나님이 구출해 주심(8-11)

.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 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심한 환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이 건져 주셨다(행19 :23-41; 고전15:32 참조). 바울이 그 경험을 들어서 하나님은 환난 중에 위로하여 주시고 유익을 주신다고 증거하고 있다. 아시아는 소아시아 지방을 말한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이었고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정도이었다.

. 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바울이 아시아에서 환난을 받을 때에 그 환난이 너무 커서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다. 바울이 디모데후서4:17에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하였다. 그가 사자의 입에 놓여 있는 것과 같은 큰 고난을 받을 때에 전혀 살 소망이 없었으나 하나님이 능력으로 바울을 그 환난 가운데서 건져 주셨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러한 고난을 당하도록 허락하신 것은 바울로 하여금 자신을 의뢰하지 말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만 의뢰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성도가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의뢰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성도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사람이나 권세나 물질이나 세상의 것을 의뢰하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다 제해 버리신다.

이사야3:1-3에 "보라 주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 하실 것이며"라고 하였다. 그것들을 그대로 놓아두면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들을 의지하겠으므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제해 버리시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세상의 것이 다 실패되고 없어질 때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살 길이 생긴다.

야고보서4:14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이 건강할 때에는 자기와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지만 병이 들거나 실패하여 고난 당할 때에는 사람의 생명이 아침 안개와 같은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을 깨달을 때에 하나님만 의뢰할 수 있게 된다. 성도가 세상에서 실패와 낙망을 당하고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깨달을 때에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나온다. 사람들은 자기가 의뢰하던 것이 제거될 때 낙망하기 쉬우나 곧 그때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세상일이 잘되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니고 세상일이 잘되지 않는 것도 좋은 것이다.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건져 주신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현재 자기가 당하는 사자굴과 같은 시험에서도 하나님이 건져 줄 것을 믿고 낙망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아무리 큰 환난이 닥쳤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만 믿고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그 말씀대로 한 발자국씩 걸어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건져 주신다.

.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바울이 과거에 큰 환난 중에서 하나님이 건져 주신 것을 경험으로 삼아 현재의 환난 중에서도 그 하나님이 건져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과거와 현재의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건져 주셨으므로 그 하나님이 미래에도 건져 주실 것을 믿고 또 바라며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길이다. 과거에 믿음의 길을 걸어 나온 것을 경험 삼아 현재에 당하는 모든 난관을 믿음으로 통과하여야 한다.

요한계시록3:3에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하였다. 과거에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환난을 당하고 괴로움을 받은 것을 생각해 보고 그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건져 주셨는가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크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바울로 하여금 많은 환난 가운데서 이기게 해주셨고 앞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현재에도 그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도 과거에 환난 가운데서 생명 있는 영적 신앙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건져 주신 것을 기억하고, 현재에도 그 신앙으로 나아가면 과거에 건져 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능력으로 건져 주실 것이다. 과거에는 환난을 만나도 걱정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갔으나 지금은 환난 가운데서 걱정하고 낙심한다면 육신의 생각으로 기울어진 증거이다.

바울이 과거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심한 환난 중에서 하나님이 건져 주신 것을 생각하고 현재에도 그 신앙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다. 미래에도 그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만 의뢰하고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어떠한 고난이 올지라도 변치 않는 신앙으로 하나님만 의뢰하여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고 위로가 넘치게 된다.

. 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은 바울이 자기를 위한 이기주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바울이 자기들을 통해서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잘되기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운동을 위해서 세우신 종을 위해서 많은 사람이 기도를 하면 그들의 마음과 심령이 하나가 되어 서로 협력하기 때문에 그 일이 잘되어 나가고 또 하나님의 역사가 더욱 크게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더욱 더 많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게 되는 것이다.

바울을 통해서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많은 사랑의 기도와 협력으로 되어지는 것이며, 바울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장군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명령을 받들어 용감하게 싸우는 군사가 없다면 전쟁에서 패하고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운동도 한 두 사람이 할 수 없고, 여러 성도가 기도와 정성과 노력과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협력할 때 더욱 잘 되어 가는 것이다.

四. 진 실(12-19)

.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그 당시 고린도 교회에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이 들어와 바울은 사도가 아니며 간교한 지혜로 자기 사욕을 위하여 전도하는 자라고 비방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거기에 대하여 변명을 하였다. 바울이 자기가 전도한 행위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과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을 양심이 증거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했다는 것은 욕심이나 이기주의를 떠나서 신령하고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했다는 것이다. 진실함으로 했다는 것은 진리를 따라 진실한 마음으로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행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그의 하시는 역사를 따라 한 것을 가리킨다.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바울은 항상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곧 바울의 자랑이다. 그것을 바울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기쁘게 여겨 누구에게나 기탄 없이 말하였다.

. 1:13-14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바울이 이중 인격을 써서 일하는 자가 아니고 서신에 공개한 그것이 전부이며 그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참된 전도자와 참 성도는 말이나 편지에 있어서 항상 진실하며 이면에 숨기거나 속이는 것이 없어야 한다.

대강은 일부, 약간의 뜻이 있다. 고린도 교인 중에 어떤 자들은 바울에 대하여 바로 이해하고 좋은 사도로 알고 있었으나 어떤 자들은 오해하고 비방하였다. 바울을 바른 일꾼이요 참 사도로 알고 있는 자들은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주 예수의 날)에 바울의 자랑이 될 것이다. 자기가 전도한 교인과 가르친 교인들이 잘 되면 주님 앞에 자랑거기가 되기 때문이다. 또 그 교인들에게는 바울이 그들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바울이 그들에게 바른 진리가 잘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 대해서도 자기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했다(빌4:1).

복음을 전하여 그 열매가 맺히면 그것이 전도자의 기쁨이요 자랑이다.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교인들의 영혼이 자라나고 잘 만들어지면 그것도 교역자의 면류관이요 영광이다. 하나님 앞에 가면 그것들이 다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 앞에 가면 우리가 전도한 결과가 다 드러날 터인데 자기를 통해서 구원 얻는 사람이 많다고 하면 얼마나 큰 영광이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힘써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봉사하며 전도에 힘써야 한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 의하여 그만큼 배우고 자라났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자랑감은 바울이다. 바울이 오랫동안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고 바울이 성경을 잘 가르쳐 주었으므로 그들이 많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이야말로 고린도 교회의 자랑이요, 면류관이 되는 것이다. 교인들이 좋은 교역자를 만나는 것은 그들의 자랑이다. 바울과 같은 좋은 지도자를 둔 고린도 교인들은 참으로 복되고 바울을 자랑할 만 하였다.

. 1:15-17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바울이 처음에 경영한 것은 고린도에 갔다가 다음에 마게도냐로 가고 거기에서 다시 고린도에 갔다가 고린도 교인들이 보내주므로 유대로 가기를 작정하였다. 그런데 그 경영을 변경하여 고린도에 들르지 않고 마게도냐로 바로 가서 지금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경솔히 경영하였으며 그는 자기 육신의 편리대로 나가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방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말에 대하여 자기가 처음에 경영한 일이 변경되었다고 할지라도 진실하게 한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바울이 처음에 한 경영도 진실하고 그것을 변경시켜서 마게도냐로 곧바로 간 것도 진실하다. 바울이 만일 육신의 편리대로 경영을 바꾸었다면 잘못된 것이지만, 육신의 편리대로 바꾼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꾼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에 갈려고 했으나 일이 진행됨에 따라 생각해 보니 고린도에 들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아 곧장 마게도냐로 갔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에 들르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한 마음으로 한 것이며 잘한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처음 약속할 때에 잘 하느라고 작정을 했으나 그 일의 진행되는 과정에서 확실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한다. 처음 약속한 것이 하나님의 뜻보다 더 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먼저 약속했다고 하여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따라 간다고 하면 인본주의로 나아가는 자요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일이다.

헤롯왕이 자기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인(세례 요한)을 죽이는 큰 죄를 범하였다. 헤롯이 자기의 약속과 행세를 어기더라도 세례 요한을 죽이지 않아야 하나님 앞에 옳았을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자기들 생각대로 바울을 비방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큰 손해를 주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되었다. 사도 바울을 배척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배척하는 일이 된다.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형편에 따라서 예, 예 하고 또 형편에 따라 아니, 아니라 하는 사람은 인본주의로 나아가는 사람이요 기회주의자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러한 사람이 아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유리할 때에는 "예"했다가 불리하게 되면 "아니다" 하는 그러한 사람이 아니다. 바울은 언제나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가 움직이고 자기 육체의 유익을 따라 처세하지 않았다.

마태복음5:37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하였다. 옳은 것은 어디에서나 "옳다"고 하고 아닌 것은 어디에서나 "아니라"고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자기에게 어떤 손해가 나도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해야 한다.

. 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하나님은 신실하시므로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다. 우리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대로 따라가야 한다. 바울이 항상 진실하게 행동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아 진실한 마음으로 전에 했던 작정을 변경한 것이다. 그가 자기의 형편을 따라서 경영을 변경한 것은 아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 그것을 "아니라"하고 거부 한 적이 없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경영이나 약속을 그대로 실행하면 안 된다.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 즉시로 예 하고 따라 갔다. 만일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경영이나 약속을 변경한다면 일구이언(一口二言) 하는 자요 진실하지 못한 자이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면 한번 약속한 것과 맹세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켜야 한다(시15:4).

. 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실루아노 바울과 함께 전도한 실라를 가리킨 듯하다.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를 동반하고 고린도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예(순종)만 했다. 한번도 아니라(불순종)한 적이 없다(요5:30).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여 우리의 구원을 찬성해 놓았다(빌2:8). 그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 고린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고, 그 예수를 따라가는 바울이 어떻게 그를 순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울이 그를 순종하기 위해서 과거에도 경영을 하였고, 지금도 경영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바울이 처음 경영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한 것이었고, 변경한 것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 변경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방법은 언제나 일직선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 할 때에 구름 기둥이 에돔 땅으로 향해가다가 에돔족속이 나와서 대적할 때는 구름기둥이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구름기둥이 돌면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에돔까지 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요, 돌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히스기야왕이 병들었을 때에 이사야가 찾아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고 말했다. 그 때에 히스기야왕이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니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 년을 더하고…"라고 하였다(사38:1-8). 이사야의 처음에 한 말과 나중에 한 말이 다르지만 이사야가 진실하게 말한 것이다. 이사야가 처음에 한 말과 나중에 한 말이 다 진실한 것이다. 이사야가 처음에 왕이 죽는다고 한 말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실하게 한 말이며 그 후에 15년을 더 산다고 말한 것도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진실하게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히스기야가 죽을 때가 되어서 이사야를 통해 죽는다고 했으나 15년 연장시켜 주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이기 때문에 15년을 연장시켜 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두 번 다 진실하게 말한 것이다. 요나에게도 하나님께서 니느웨성을 40일 후에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셨으나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한 다음에는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았다. 니느웨성을 멸하겠다고 한 것도 진실하고 멸망시키지 않은 것도 하나님의 진실이다. 둘 다 하나님의 예정이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깨닫지 못해서 처음에 작정을 잘못하고 나가다가 다음에 바로 깨달아서 고쳐 나가는 사람이 많다. 만약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자기가 유리한 대로 이랬다 저랬다 한다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결과가 되고 악에다 악을 더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만 진실하게 따라가야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이다.

五 .약속의 보증(20-22)

.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예"는 성취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구약에 약속한 것이 많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 성취되었다. 우리는 아멘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명령대로 순종할 것뿐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므로 그 약속을 받은 우리는 그대로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 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진실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약속을 신실하게 성취시켰는데 그 일을 우리 속에 적용시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여 주시고 또 그 보증으로 기름을 부어 주셨다.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진리와 영감으로 신자의 생명을 살린 것(중생)을 말한다.

.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을 치셨다는 것은 진리와 영감으로 중생시켜 주신 것을 가리킨다.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두셔서 내주하게 하시고 또 외부에서 성령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중생한 영혼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와 약속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아멘 하고 따라가게 한다. 그때에 우리 영혼이 만족하고 살게 된다.

六. 신앙 보조(23-24)

. 1:23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한다는 말은 바울이 자기의 진실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중생한 영혼과 하나님과 성령은 다 참되며 거짓이 없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는 것을 변경한 이유는 고린도 교인을 아끼려 함이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지 않으므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다. 바울이 처음 경영대로 고린도에 갔더라면 회개하지 않고 있는 그들을 엄하게 벌하였을 것이고 고린도 교인들은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경영을 변경한 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크게 유익이 되었다.

. 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있음이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편지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어서 그들이 회개함으로 고린도 교회와 마음이 피차 기쁨을 얻고자 함이었다.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고린도 교회가 믿음에 서있기 때문에 시험에 든 자들도 마침내 바로 설 것을 바울이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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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후서2장

제 2 장 총 서

(대 지)

一. 근심과 사랑(1-4)

二. 근심과 용서(5-11)

三. 그리스도의 향기(12-16)

四.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아니함(17)

(본문 강해)

一. 근심과 사랑(1-4)

. 2:1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고린도 교인들 중에 범죄한 자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려 그들이 회개한 다음에 바울이 가게 되면 근심하지 않고 기쁨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범죄자들이 회개하지 않았을 때에 가게 되면 바울이 근심으로 나아가고 그들을 엄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로서기를 기다려 바울이 근심으로 나아가지 않고 기쁨으로 나아가기를 결단한 것이다.

. 2: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죄를 책망하므로 그들이 근심하게 되었으면 그들이 회개하고 바로 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울이 기뻐할 것이며 그 일로 인하여 바울을 기쁘게 할 자는 고린도 교회밖에 없다.

. 2: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내가 이같이 쓴 것은 고린도전서를 말하며 특히 고린도전서5:1 이하의 범죄를 다스리라는 내용을 가리킨다. 고린도 교인들은 마땅히 바울을 기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전도해서 고런도 교회가 세워 졌고, 그들은 바울을 통해 은혜를 받아 그만큼 자라났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는 당연히 바울을 기쁘게 해야 할 위치에 있다. 그런데 그들이 범죄자를 치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바울이 가서 근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이 이 점을 염려하여 고린도 방문을 연기한 것이다.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 함이로라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기쁨은 곧 고린도 교회의 기쁨이다. 교역자의 기쁨은 곧 교인의 기쁨이다. 왜냐하면 교역자가 기뻐하는 이유는 교인이 바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역자의 기쁨은 곧 교인들의 기쁨인 것이다. 반대로 교역자가 근심하면 그것은 곧 교인들의 근심이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바로 되지 못할 때에 교역자가 근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근심하면 교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찾아 근심하고 회개해야 한다. 교역자는 교인들의 신앙 상태에 따라서 근심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 2: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전에 고린도 교회를 책망한 것은(고전5:1이하)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한 것이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근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향해서 넘치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책망이나 책벌은 손해를 줄 수 있고 낙심케 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은 사랑으로 책망하면 그 사람을 죽음에서 살려낼 수 있다.

二. 근심과 용서(5-11)

. 2: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고린도 교회에 범죄자들이 있어서 바울이 많은 근심을 하고 많은 눈물과 애통으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 범죄자들이 회개한 후에는 바울이 너그럽게 사랑으로 용납해 주었다. 범죄자들을 직접 지적하지 않고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라고 가정하여 부정사(不定詞)로 지칭한 것은 그들을 용납하는 태도이다.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라고 한 것도 자기가 근심한 것은 기억하지 않는 태도이며 바울이 멀리서 근심을 했지만 직접 사건을 당한 너희들의 근심에 비하면 경미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대한 사랑과 이해와 동정심을 나타낸 것이다.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바울이 범죄자에 대하여 너무 심하지 않게 말하려고 "어느 정도"라고 부드럽게 말하였다. 범죄자를 다스릴 때에 감당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다스리고 너무 심한 벌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 죄를 다스릴 때에 너무 가혹하게 처벌하면 그 사람이 낙심하기 쉽다. 범죄한 사람을 가볍게 처벌하면서도 다시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해 나가며 의를 세워 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세상에서도 법이 너무 가혹하면 도리어 반발심이 생겨 더 악한 죄가 나오게 되고 민심이 악해지기 쉽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도적질을 하면 아예 손을 자른다고 한다. 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히면 여러 사람 앞에서 목을 베어 죽인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도적도 생기고 간음하는 자도 나온다.

범죄를 부드럽게 다스리는 나라가 잘되고 가혹하게 다스리는 나라는 더 험악해지고 점점 더 악화된다. 죄는 부드럽게 다스리며 선과 의를 길러 주고 세워 나가야 한다. 교회에서 범죄자를 부드럽게 다스리며 아무리 큰 죄라도 어느 정도 벌한 후에 그가 회개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문제도 잘 처리되며 교회도 잘 되어 간다. 죄를 미워하다가 사람까지 미워하면 안 된다. 죄를 책망하되 회개하면 너그럽게 용납해 주어야 한다. 언제나 죄는 미워하고 사람은 사랑해야 한다.

. 2:6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받은 것이 족하도다

고린도 교회의 범죄자가 벌써 많은 사람에게 벌을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편지로 책망하였기 때문에 그후 교회에서도 책망했을 것이다. 그들이 벌써 벌을 받았으므로 그 정도 벌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한 것이다.

. 2: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이제는 그들이 그만큼 벌을 받았고, 회개하는 단계에 있으니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해 주는 것이 옳다.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계속해서 책망만 한다면 그들이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기고 도리어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어 손해를 보게 될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너그럽게 용서하고 사랑으로 포섭해서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기지 않게 위로해 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병들었을 때에 수술하는 것이 필요하나 또 싸매어 주고 치료하는 것도 필요하다. 수술한 후 싸매어 주지 않고 치료하여 주지 않으면 도리어 수술 안한 것만 못하다.

. 2: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범죄자들에게 사랑을 나타내라고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하였다. 사랑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다.

. 2: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목적 중의 하나는 교인들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바울이 전에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범죄자를 책벌하라고 하였는데 고린도 교인들이 그 말을 순종하였다. 이번에는 용서해 주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순종하여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다 순종하는 교인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바울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죄를 책망하라는 것도 순종을 해야하고 사랑으로 용서하라는 것도 순종해야 한다.

기독교는 순종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도는 순종으로 배워나가고 순종으로 성취하여 나간다. 예수님께서도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빌2:8; 히5:8-9).

. 2:10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고린도 교회가 범죄자들을 용서한 일이 있을 때에는 바울도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서로 공동 보조를 취해 나가야 한다. 또 바울 자신이 범죄한 자들을 용서해 준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믿음으로 한 것이라고 하였다.

. 2: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마귀가 기회를 타서 성도를 속여 멸망시키려고 한다. 죄를 책망할 때는 마귀가 그것을 가지고 참소하여 성도를 멸망시키려 하고 사랑할 때는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만들어서 멸망시키려고 한다.

사도 바울이 책망만 했다면 마귀가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바울에 대해서 너무 가혹하게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반감을 갖게 하고 원망하게 하여 바울의 인도를 받지 않게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반면에 바울이 범죄한 고린도 교인들에 대하여 책망하지 않고 사랑과 관용만 가지고 나갔다면 마귀가 고린도 교인들 속에 자유 방종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죄를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죄를 짓게 하여 멸망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고 사랑을 나타내면 그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 회개함에도 불구하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사단이 그 기회를 타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낙심하게 만들고 마음을 삐뚤어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사단의 궤계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회개하는 사람은 즉시 용서해 주고 사랑으로 포섭하는 것이 그 사람을 살려내는 길이다.

三. 그리스도의 향기(12-16)

. 2: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에 가서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전도의 문이 열려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오고 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 2:13 내가 내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의 일이 염려가 되므로 디도를 보내어 고린도 교회 문제를 수습하게 한 후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하였었다. 그 후 바울이 드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디도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으므로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알 수 없고 염려가 되어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디도가 빨리 돌아오지 않은 것은 고린도 교회의 일이 잘되지 않으므로 그들에게 권면하여 그들이 좀 더 회개하고 바울의 명령대로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다음에 돌아가려고 지체한 것 같다. 디도가 고린도교회 문제를 잘 수습하고 왔다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로 갈 예정이었다(1:15). 그러나 디도가 빨리 돌아오지 않으므로 바울은 심령이 편치 못한 가운데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갔다. 바울이 마게도냐로 간 것은 고린도에 가까운 곳으로 가서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함인 것 같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나 먼저 세워 놓은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바로 알아 다스려 나가는 일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바울이 고린도 교회 때문에 염려하며 애를 쓰는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염려하고 지극한 관심을 기울이고 많은 수고를 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에 직접 가지 않은 것은 직접 가게 되면 치리하지 않을 수 없고, 치리하게 되면 막대기로 때릴 수밖에 없으므로 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바울이 마게도냐에만 가 있어도 고린도 교인들이 그것을 알게 되고 더욱 경성하여 회개하였을 것이다.

바울이 원하는 바는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여 바로서는 것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바울이 많은 염려와 수고를 하는 것이다. 교회를 하나 이루어 나가려면 교역자가 이처럼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미 있는 교회를 바로 세워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바울이 가지 않아야 고린도 교회가 잘 될 경우는 가지 않아야 이기는 것이고, 이 다음에 가야 잘 될 경우에는 그때가 되어서 가야 이기는 것이다. 가겠다고 했다가 안 가는 것도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잘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은 연약하나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모든 것을 이기게 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나게 해 주신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그리스도의 증거,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격과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 2:15-16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빌립보서1:28-29에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어떤 사람에게서 나오는가?

그리스도 안(영적세계)에서 그를 힘입어 이기는 생활을 하는 자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난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그리고 깊이 깨달아 그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걸어갈 때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더욱 많이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는 신자가 참 신자이며 영이 산 신자이다. 영이 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이다. 백합꽃이 생생할 때에는 짙은 향기를 풍기지만 시들어지거나 죽은 것은 향기를 내지 않는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많이 나타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향료가 많이 들어가야 한다. 그 향료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더욱 더 깊은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깊이 깨달아 신앙으로 화합하여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더 많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많이 나타낸 사람은 그만큼 자기 영혼이 자라나고, 천국에 가서 많은 상을 받게 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것이다. 그러한 사람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야고보서2:17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겨 나가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된다는 것은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는 것과 같다. 성도가 세상에 빛을 비추어 내보내지 못하는 것은 죄와 욕심이 가리워져 있기 때문이요, 희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영으로 살고 희생하며 말씀을 순종해 나가야 그리스도의 향기가 계속 나타나게 된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성도를 통하여 나타난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것을 반대하고 막는 무리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 진리의 역사가 힘있게 발전해 나아가면 진리를 대적하는 반대 세력이 나온다. 그 반대하는 세력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망의 형벌을 받는다.

다리오왕이 삼십일 동안 기도하지 말라는 금령을 내렸을 때 다니엘이 마음속으로 묵상 기도를 하거나, 밤중에 문을 닫아 놓고 숨어서 기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이 전에 행하던 대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 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다. 그러므로 원수들에게 발견되어 많은 고난을 받았으나 그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많이 나타나서 이방의 왕과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단6:10-28).

그리스도의 향기가 커질 때 사망의 냄새도 커져서 마귀의 세력들이 다니엘을 잡아 사자굴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여 그리스도의 향기가 이기게 해 주셨다.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중대한 의무를 누가 수행하겠느냐는 뜻이다. 사람은 연약하여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므로 하나님에게 붙들리 운 사람은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

빌립보서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다. 무슨 일이나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四.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아니함(17)

. 2: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있게 전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있게 전하려면

①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고 순전한 말씀 그대로 전해야 한다. 성경에 다른 것을 심거나 감하면 안 된다. 이기선 목사님은 강단에서 성경 본문을 그대로 읽는 것도 위대한 강도(설교)라고 하였다.

②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해야 한다. 깊은 기도 중에 영감으로 성경을 깨달아서 전해야 생명이 있다.

③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감시를 받으면서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힘입어서 전해야 된다.

④ 그리스도 안에서 말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영권으로 말씀을 전해야 다른 사람을 살려내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게 된다. 주일학교 학생들에게도 성경 말씀을 그대로 읽어 주고 해석해 주는 것이 좋다. 동화나 예화를 하여 다른 것을 많이 섞으면 아이들은 좋아할지 모르나 성경의 신령한 뜻이 가리워져서 생명이 없어진다. 성경 말씀을 전할 때에 이성주의나 지식주의나 신비주의나 인본주의나 세상주의를 섞으면 안 된다. 이것은 순수한 진리를 혼잡케 하는 것이요, 기독교가 타락되는 길이다. 신신학은 인간의 지식과 이성에 맞도록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요, 신비주의는 주관적 육신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하나님께 받았다고 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였을 때 그 다음 날에는 더 많은 사람이 왔다. 그때에 예수님이 한 번만 더 물질이나 육체적인 것으로 섞어서 배부르게 해 주면 더 많은 사람을 포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내 살을 먹지 아니하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고 하여 물질주의와 육체주의자들을 물리치고 순전한 진리 그대로만 전하였다. 이 진리를 바로 깨달은 자가 참으로 생명이 있는 자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고 있으나 우리는 순전한 말씀만 전하여 참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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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후서3장

제 3 장 펀 지

(대 지)

一. 그리스도의 편지(1-4)

二. 복음의 직분은 영으로 된 것(5-6)

三. 복음의 직분의 영광(7-18)

(본문 강해)

一. 그리스도의 편지(1-4)

.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자천(自薦) 자기가 자기를 추천하거나 소개하는 것이다. 천거서(薦擧書) 어떤 유명한 사람의 추천하는 글이다. 바울은 이런 것들을 고린도 교회에 부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또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어떤 추천서를 맡을 필요도 없다고 하였다. 거짓 선지자들은 유명한 사람의 소개장을 많이 가지고 다녔다. 그러나 바울은 소개장이나 천거서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는 신앙적으로 더욱 깊은 관계에 있기 때문에 천거서 같은 것이 필요 없는 것이다.

. 3:2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바울이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가 이루어졌고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서 고린도 교인들의 심령이 살고 영혼이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졌다. 그 자체가 "바울이 하나님의 종이요 참사도"라는 편지이며 추천서이다.

우리 마음에 썼고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전한 복음을 고린도 교인들이 받아 그 열매가 맺혔으므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그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다른 사람들도 고린도 교회를 볼 때에 사도 바울은 참으로 하나님이 쓰시는 능력의 종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과 생활을 보고 바울이 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종인 것을 알게 된다.

.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그리스도의 편지 편지의 저자가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편지이며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깨달은 진리와 같은 진리를 세우고 같은 은혜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기 때문이다. 또 고린도 교인들을 보면 사도 바울을 알 수 있고 그리스도를 알 수 있었다. 또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편지이다. 그리스도를 보면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었다(요14:9).

성도가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편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믿기 전에는 죄 중에 살면서 악하고 불량하던 사람이 예수를 믿은 후에 새 사람이 되어 선한 생활을 하고 경건하게 되고 진실하게 되는 것을 볼 때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 믿는 사람이 불신자처럼 행동하고 진실하지 못하여 방탕하고 사치하며 세상에 빠져 돌아가면 그리스도의 편지 노릇을 못하고 마귀의 편지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편지 봉투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은 썼으나 내용은 마귀의 편지이다. 그러한 신자를 안 믿는 사람들이 보게 되면 기독교에 대한 인상을 아주 나쁘게 갖기 때문에 전도의 길이 막히게 된다. 불신자가 예수 믿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불의한 일을 당하게 되면 나중에 그 사람에게 예수를 전해도 잘 받지 않는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편지 노릇을 잘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행동 하나, 말 한마디를 삼가 조심해야 한다. 우리 성도가 항상 그리스도의 편지인 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 읽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먹으로 쓴 것은 낡아지고 없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은 영원 불멸인 동시에 생명이 있고 장성한다.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그리스도의 편지는 모세의 십계명과 같이 돌비에 쓴 것이 아니다. 육의 심비에 한 것이다. 육의 심비에 한 것은 성령으로 인하여 중생한 영의 역사가 마음과 육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신앙 인격이다. 중생한 영이 성령으로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대로 성도의 인격이 만들어져야 한다. 중생한 영이 성령으로 마음을 이용하고 또 그 마음이 육체를 이용하여 신자의 인격(몸)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편지를 한번 쓰고 마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써 나아간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편지가 다 완성된 것이 아니다. 성도는 항상 성령으로 말씀을 받아 중생한 영이 그 말씀대로 자라나야 한다. 성도가 중생한 영이 자라난 만큼 마음과 육신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다.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편지인 동시에 바울의 편지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쳐 주어 그 말씀대로 고린도 교인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교역자가 바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그 성도가 바로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많이 쓰여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면 많은 상을 받는다. 그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바울을 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나타났으므로 바울이 하늘나라에서 많은 상을 받게 될 것이다.

. 3: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통하여 편지를 썼다는 확신이 있고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를 통하여 쓰여진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께서 사용하는 종이라는 것과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통하여 일한 결과요, 열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二. 복음의 직분은 영으로 된 것(5-6)

.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바울이 사도의 직분을 받아 일한 것에 대해 자기가 무엇을 한 것처럼 스스로 만족하지 않았다. 일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이 생겨도 낙심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하나님이 사도 바울에게 직분을 맡겼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만족한다. 하나님이 일꾼으로 택해 주시고 직분을 맡겨 성령으로 편지를 기록해 주었기 때문에 바울이 그것으로 생각하면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누구든지 교만하면 반드시 망하게 된다.

.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새 언약이라 함은 옛 언약과 비교해서 새 언약이라고 하였다. 옛 언약은 모세의 율법을 가리키고(7-9절), 새 언약은 신약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신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이것은 성령으로 한 것이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이 복음의 일꾼이 된 것은 외부적인 의문이나 의식과 제도로 써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의 직분을 맡기신 것이다. 모세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것뿐이니 죽이는 일 밖에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영적인 것이 아닌 모든 의문들은 죽이는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도 영으로 인도하면 살고, 의문으로만 인도하면 죽는다.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영은 중생한 영이 성령으로 역사하는 것들 가리킨다. 이것으로 사람을 살려나가는 것이다 . 교역자가 영의 역사로 교인들의 영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교인들의 심령이 움직이고 새 생명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직분으로서 영으로 행하는 역사라야 교인도 살고 교역자도 살아난다.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에 영의 역사가 없고, 심령에 감동이 없으면 의문과 형식적인 예배가 된다. 의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다. 영이 살지 못하면서 의식주의로 나가는 것은 죽은 사람에게 옷을 갈아 입히고 화장해 주는 것과 같다. 아무리 누더기 옷을 입고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그 아이가 살아 있으면 자라나고 앞으로 희망이 있다. 그러므로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참 성도요 산 성도이다.

三. 복음의 직분의 영광(7-18)

. 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사십일 사십야를 기도한 후 하나님께서 친히 돌판에 써 주신 십계명을 받았다. 모세가 그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을 들고 내려와 백성에게 반포할 때에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얼굴을 주목하지 못했다(출34:29-30). 모세가 받은 계명은 의문에 속한 것이요 사람을 정죄하여 죽이는 것이었으나 그 율법을 전파하는 직분에는 영광이 있기 때문에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 그 계명 속에는 빛이 있어 그 계명을 받은 사람도 얼굴에서 빛이 나오게 된다. 죄인들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흑암 속에서 사는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음성(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서부터 내려 왔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하나님이 사람을 기억하시고 살 길을 보여 주고 갈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이야말로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다. 세상에는 빛이 없어서 흑암 가운데 빠져 있었는데 모세의 율법으로 인해서 하늘의 빛이 세상에 비쳐 왔다. 그리하여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

. 3:8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영의 직분 복음과 성령으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사도 직분이며 영을 살려내는 그리스도의 종의 직분을 말한다. 율법의 직분도 광채가 있었는데 영의 직분이야 더욱 영광이 있을 것이다. 율법은 처녀가 결혼하는데 있어서 중매인과 같다고 하면 복음은 신랑과 같다. 율법도 좋은 소식이지만 복음은 율법보다 훨씬 더 좋은 소식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지만(갈3:24), 그리스도는 성도의 신랑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중매인이 아무리 훌륭하여도 신랑과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 3: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정죄의 직분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때문에 정죄의 직분이라고 한다. 의의 직분 복음은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게 하기 때문에 복음의 직분은 의의 직분이다. 정죄의 직분을 가지고 율법을 전파하는 모세의 얼굴에도 영광이 있었는데 하물며 복음과 성령으로 영을 살리는 의의 직분이야말로 얼마나 더 영광이 넘치겠는가!

. 3: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이 나타나면 그 전의 영광은 영광 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달빛이 밝지만 해가 뜨면 달빛은 없는 것과 같다. 영광되었던 것은 율법의 직분의 영광을 말한다. 더 큰 영광 복음의 직분의 영광을 가리킨다.

. 3: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율법의 직분이 전에는 영광이 있었으나 그 영광은 없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복음의 직분은 더 큰 영광의 직분이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영광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 성도들은 더욱 크고 영원한 영광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 큰 영광의 직분을 처음에 사도가 받았고, 오늘날에는 교역자가 받았으며 또 누구나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 영광의 직분을 받은 것이다. 누구든지 복음을 전하면 복음의 직분을 받은 것이다. 복음을 좀 더 깊이 깨달으면 그만큼 복음의 빛이 커지고 그 영이 점점 자라나게 된다. 성도가 계속해서 진리를 깊이 깨닫고 계속해서 진리를 받아야 자기 영혼이 자라나고 자기 인격이 커지며 자기에게 있는 복음의 빛이 커진다. 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성도가 이 일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 큰 상급을 받게 된다.

. 3:12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복음의 직분은 율법의 직분보다 월등하며 그 영광이 영원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또 하늘나라에서 상 받을 소망이 있으므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위축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

. 3: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점차 없어져 가는 얼굴의 광채를 사람들이 주목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 수건을 썼다고 하였다. 모세가 율법을 공포할 때는 얼굴에 수건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공포하고 말을 마친 후에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웠다(출34:32-33).

모세가 왜 이렇게 했을까?

모세는 아주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므로(민12:3) 자기를 우러러보게 하려고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율법의 광채는 수건과 같은 의식과 제도에 가리워져 있고 그리스도에게 인도한 후에는 그 광채가 없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미급(未及)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 광채가 차차 없어지는 것을 보면 율법을 무시하고 따라오지 않을 염려가 있으므로 그 결국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으로 가리운 것이다. 율법이 그리스도에게까지 가서 없어질 것이나 그때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부지런히 따라오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갈 때까지는 율법이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므로 그것으로 죄를 깨달아야 되겠으므로 율법의 결국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가리워 놓았다가 때가 된 다음에 알게 해주시는 것이 많이 있다. 요한계시록 5장의 일곱 인을 봉한 것도 인봉하여 모르게 했다가(계5:1), 그 후에 그 인을 뗄 때에야 알게 한 것이다(계6:1). 또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날과 시각은 알지 못하게 가리워 놓았다가 재림하실 때 가서야 알게 해 놓았다. 또 사람이 죽는 날도 모르게 해 놓았으며 죽을 때 가서야 안다. 하나님이 모르게 해 놓은 것은 모르고 있는 것이 좋다. 미리 알아도 유익이 없다. 구약에도 복음(그리스도)이 내포되어 있으나 그것이 가리워져 있었다. 양이나 소를 잡아 제사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피흘려 주실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도 오실 그리스도를 믿을 수가 있었다(창3:15; 15:5-6). 신약시대의 바울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도록 복음을 가리우지 않고 공공연하게 전파한다고 하였다.

. 3: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구약을 읽어도 그 율법이 내포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수건이 아직 벗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그리스도를 믿어야 율법을 바로 깨닫고 의식주의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구약의 참 뜻을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와 영적 자유의 세계에서 사는 자가 아니면 아직도 수건이 벗어지지 않은 자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수건이 벗어져야 참된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고, 영적 생명의 길을 걸을 수가 있다.

. 3:15-16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예수를 믿지 않고 구약성경을 읽으면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그리스도와 구원의 진리를 발견치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영이 살아나야 구약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령이 살아야 모든 성경의 참 뜻을 매달을 수가 있다.

.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주는 영이시니 주님 자신이 영이시고 진리와 영감을 가지시고 우리 영혼을 살리시는 분이시며 성도와 영적 연합, 영적 교통을 하시는 분이다. 주님을 영접한 자는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영의 자유와 생명이 있다. 영적 세계에 들어간 사람이라야 영적 자유가 있다. 영적 세계는 진리의 세계요, 생명의 세계요, 자유의 세계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영으로 받아야 한다. 껍데기로만 듣지 말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심령이 살아서 영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는 참된 평화와 기쁨과 생명의 역사와 능력이 있다. 그 세계에서는 성도가 모든 얽매였던 것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린다. 성도가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하는 아들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롬8:14-15). 율법주의자는 종의 영을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고 율법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도 종의 위치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에는 지키지 않으면 죽인다든지 내쫓는다든지 하여 자유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연합한 자는 양자의 영을 받은 것이므로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하여 성도는 아버지의 것이 자기의 것이 되고 아버지와 함께 자유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믿음 지키는 것도 자유롭게 본능적으로 해 나갈 수 있다. 말씀을 지키는 것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지킬 수 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는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성도가 아무 것에도 제재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고 하면 안 된다. 주의 영이 계신 곳의 자유란 ①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난 영의 자유. ②영의 자유로 모든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믿음을 지켜 나가게 되는 것. ③영적 세계에 들어간 자는 믿는 일을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사람은 예배당에 가고 싶어서 가고, 성경을 읽고 싶어서 읽고, 기도하고 싶어서 기도한다. ④영의 세계에 들어가서 믿는 사람은 언제나 자유와 생명이 있는 것이 사람은 모든 신앙생활을 전부 다 자율적으로 해 나가고 즐거워서 하는 것이다. 자기 영혼이 날마다 살아 나가고 자라나는 재미로 모든 일을 해 나간다. 이렇게 영의 자유로써 하나님의 모든 일을 해 나갈 때에는 점점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성도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야만 모든 진리를 바로 알게 되고 자유로이 그 진리의 길을 걷게 된다. 또 진리를 따라가야 영의 자유가 있다. 주의 영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진리 가운데 있는 자에게는 영의 자유가 있고 생명이 있다. 새 술을,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못한다고 했다(눅5:36-38). 새 술은 새 생명의 역사를 가리킨다. 새 술이 팽창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새 생명의 역사는 팽창되어 나간다. 진리가 아닌 다른 것에 얽매이면 생명의 역사가 중단된다.

.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적 생명이 산 자는 성경을 볼 때에 수건이 벗어져서 영적 생명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주의 영광을 거울로 보는 것같이 보게 된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주의 영광을 본 자는 주의 형상으로 화하여 가게 된다. 누구나 주의 영광에 접촉한 자는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영광으로 영광에 주의 영광을 보고 주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자는 점점 영광으로 화하여 나가게 된다. 점점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거기서 주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이것은 주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며 사람의 지혜나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영혼이 자라나서 주의 형상을 이룬 것만큼 영광이 커지는 것이다. 하늘나라에 가면 성도들이 영광이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 영광이 큰 자는 상급이 크고 영광이 작은 자는 상급이 작다. 또 상급이 없는 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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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후서4장

제 4 장 직 분

(대 지)

一. 직분 충성(1-6)

二. 토기에 담긴 보화(7-15)

三. 겉사람과 속사람(16-18)

(본문 강해)

一. 직분 충성(1-6)

. 4:1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러하므로 3장 5절 이하에 말한 대로 "사도직(복음의 직분)은 영광스러운 것이므로" 라는 뜻이다. 복음의 직분을 맡은 자는 그 영광을 인하여 교만해질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자기의 부족한 면이나 타인의 비방을 인하여 낙심하기 쉽다. 그러나 바울이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에게 복음의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직분을 맡길 때에 사람이 능해서도 아니요, 지식이 있어서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서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겨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전하는 직분은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를 두었고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며 하나님이 친히 일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믿는 사도 바울은 여하한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실패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통하여 하시는 일에 대하여 바울이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 직분을 담대하게 감당해 나아갔다.

.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거짓 사도(使徒)들은 잘못된 것을 숨겨 놓고 가만히 들어오지만(벧후2:1) 바울은 숨기는 것이 없이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진리를 나타내었다. 거짓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것을 섞어서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사람을 미혹하는데 반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그대로 전하였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이 증거하는 바라고 바울이 말했다. 말세에는 성도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이적과 기사와 인본주의와 신비주의로 택한 자라도 할 수만 있으면 넘어뜨리려고 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깨어 있어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말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아니하고 진리 그대로 진실하게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귀한 종이다.

. 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바울이 참된 복음을 전했으나 받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망할 자들이기 때문에 바울이 전하는 참 복음을 받지 않은 것이다.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참 복음이라는 확신과 그 복음을 받기로 예정된 자는 다 받게 될 것을 믿었다. 그러나 이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눈으로 희한한 일을 보아야 좋아하고 성경 그대로 가르치면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거짓 사도들은 사람들을 속여야만 따르기 때문에 궤휼 가운데 행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여 거짓 사도들의 말만 듣고 바울이 사도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안타까워하면서 "내가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냄으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해서 천거한다"고 하였다.

바울이 전해준 말씀이 참 말씀인지 아닌지 신앙양심을 쓰는 사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바울 자신이 양심을 써서 성령으로 말씀을 전하였고 받는 사람도 양심을 쓰면 그 말씀이 진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앙양심을 쓰는 사람은 그 말씀이 옳은 줄로 알고 그 말씀대로 걸어간다.

.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마귀는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한다. 바른 진리를 확실히 믿는 사람은 마귀가 혼미케 하지 못한다. 진리를 참으로 믿는 자는 그 영혼이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결이 되어 있고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그 속에 비치어 빛 가운데 거하기 때문에 마귀(흑암의 세력)가 미혹하지 못한다. 그러나 진리를 믿지 않는 자는 그 심령이 어두움 가운데 있으므로 갈 길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은 마귀가 끄는 대로 끌리어 가게 된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는 사단이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미혹한다고 하였다(살후2:9-10). 진리를 믿지 않고 진리를 기뻐하지 않는 자는 마귀의 유혹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버려 두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이다. 그들이 미혹에 빠지면 진리 아닌 것을 좋아하고 따라가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다.

성도가 미혹에 빠지면 비진리를 진리라 하여 따라가게 되고 구원 이루어 가는 것이 중단된다. 바른 진리를 전하는 것은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바른 진리는 널리 전파되어 가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망하는 자들에게는 이 복음의 광채가 가리워져서 믿지 않는다. 그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고 진리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 보여 주신다는 뜻이다(요14:9). 그리스도의 광채가 없는 자는 하나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항상 빛 가운데 거하여야 한다.

. 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자기를 나타내거나 교인들을 자기에게 속하게 하여 교회의 왕으로 군림하려고 한다면 그는 자기를 위하는 교만한 자이며 절도요 강도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시고 물리치신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기를 전파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가 되신 것과 자기는 그의 종 된 것을 전파하였다. 그것은 세례요한이 "주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고 말한 것과 같다. 주님만 높이고 자기는 쇠하여지는 것이 참된 하나님의 일꾼이다. 복음만 높이고 구원운동만 잘 되게 하기 위하여 자기는 쇠하여지고 낮아지고 없어져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참 종이다. 이러한 종은 하나님이 더욱 귀히 쓰시고 하늘나라에서 상급도 크다.

.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창세기1:3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던 것과 같이 흑암 중에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어 어두움에 있던 우리에게 영적 빛을 마음에 비취어 주셨다.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다. 이 빛을 우리에게 비취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빛을 따라가게 되었다. 이 빛은 영적 빛이요 복음의 광채이다.

우리 성도가 이 빛 가운데 살면서 이 빛을 다른 사람에게도 비취어 줄 책임이 있다.

二. 토기에 담긴 보화(7-15)

.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보배는 영광과 복음의 직분이다. 복음 자체가 보배이며 복음의 직분도 보배이다. 모세의 얼굴에 있었던 광채보다 더 영광이 있고 빛나는 직분이 복음의 직분이다. 질그릇은 신적 요소를 제외한 인간성을 가리킨다. 사람은 전적 부패했고 연약하기 때문에 가치 없는 질그릇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극히 영광스럽고 보배로운 복음의 직분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고 또 보배로운 복음 진리를 우리에게 주셨다. 생명이 살아나가는 진리,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진리, 만물을 통일시켜 나가는 진리를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가 진리를 많이 깨달았으면 보배가 많은 것이요, 적게 깨달았으면 자기의 보배가 적은 것이다.

진리를 많이 깨달은 사람은 많이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맡은 자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매를 더 많이 맞는다고 하였다(눅12:48). 사람은 누구나 다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여 환난이 들어오면 넘어지거나 쓰러지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가 전력을 다 기울여야 겨우 하나씩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도 겨우 하나씩 이루어 나갔다(벧전4:18 참조).

질그릇과 같은 인간이 있는 힘을 다하여야 겨우 복음이 발전되어 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가며 구원운동이 이루어져 나간다.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질그릇에 보배를 주신 것은 복음 운동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와 사람의 능력으로 척척 쉽게 되어 간다면 사람이 제 스스로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고 하나님이 도와서 조금씩 이루어져 나가야 "아!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며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한 자, 멸시받는 자, 천한 자, 미련한 자를 택해서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어 나가게 만드는 것이다(고전1:27-28).

. 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성도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것은 보배인 복음의 산 역사가 자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산 역사로 모세는 애굽 군대를 홍해에 몰살시킬 수 있었고, 삼손은 사자를 찢을 수 있었고, 다윗은 곰을 쳐죽일 수 있었다. 질그릇에 보배를 담아 놓았다고 할지라도 역사가 없으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속에서 믿음으로 화하여 산 역사가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고, 힘이 되고, 자기를 인도해 나가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한다. 우리가 말씀을 받은 다음에 그 말씀을 흘러 떠내려 보내지 말고 그 말씀을 새김질하여 그 말씀이 소망이 되고 생명이 역사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그 말씀이 소망이 되고 생명이 되어 말씀의 영광에 우리가 참여하기 때문에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즐거워하고, 우겨 싸여도 그 영적 세계가 넓고 핍박을 받아도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서 버린바 되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그 속에 생명이 있음으로 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 4: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① 예수 죽인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 죽인 책임을 지고 나갈 때 죄를 원통히 여기며 회개하는 마음이 나가게 되고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고 예수의 생명이 속에서 역사한다. ②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지고 간다는 뜻이다. 즉 성도가 핍박과 고난으로 인하여 예수의 죽음의 길을 걸어간다는 말이다. 핍박과 환난을 받으며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나가는 성도에게는 예수의 생명도 그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바울이 실제로 자기 몸을 죽음에 내어 주어 예수의 죽음의 길을 걸어갔으며 그러므로 그 속에는 예수의 생명이 나타났다. 아무리 험한 죽음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주를 위한 일이라면 바울이 자원하여 그 길을 걸어갔다. 그러므로 바울의 몸에 예수님의 생명이 언제나 나타나고 생명의 역사로 그의 영혼이 자라나는 일이 계속되었다

. 4:11 우리 산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성도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고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된다. 예수를 위하여 죽을 만한 일이 생기면 자기가 먼저 그 자리에 나아가고 고난 당할 만한 길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그 길로 걸어 나아가며 핍박받을 만한 일이 있을 때에는 자기가 먼저 그 일을 한다면 자기의 썩어질 육체가 예수님에게 이용되고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가 그 죽을 육체에 나타난다. 바울이 예수를 위해서라면 죽음의 길이라도 자원하여 그 길을 걸어갔다.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평안함이나 유익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죽음을 각오하고 걸어갔다 (행20:24).

바울이 이러한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자기의 죽을 육체에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 자신이 살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살려내는 생명의 역사가 있었다. 성도가 만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평안이나 유익을 따라간다면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지 않고, 생명의 역사가 끊어져 죽음의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 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바울이 항상 자기의 생명을 죽음에 넘겨주고 죽음의 길을 걸어갔으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바울 안에서 역사하게 되었고 그 생명의 역사가 바울을 통하여 복음과 함께 고린도 교회에도 전달되었다. 바울이 날마다 복음 전파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서 죽음의 길을 걸어간 것이 곧 사망이 바울 안에서 역사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는 교인들 속에는 생명이 역사하였다. 교역자의 심령이 먼저 살아야 다른 사람의 심령도 살려 낼 수 있다. 교역자 자신이 사는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자신이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9:25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하였다. 천하를 다 얻었다고 해도 자기 만들어 나가는 것을 잃어버리든지 생명의 역사를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자신이 먼저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자기 영이 생명길을 걸어 나가면서 자기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다른 사람의 생명도 살릴 수 있다. 예수님의 생명이 먼저 우리 속에 나타났고(10절), 그 다음에 그 생명이 너희 속에 역사한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다(12절), 자신이 먼저 생명길을 걸어가면서 주를 위해 희생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려낼 수 있다. 교역자는 예수를 위하여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면서 자기 중심, 자기 평안, 자기의 유익을 버려야 한다. 교역자가 자기의 진액을 다 짜 바치고 많은 피땀을 흘려야 다른 사람을 살려 낼 수가 있다.

. 4:13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이 말씀은 시편116:10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다윗이 큰 고난 중에서도 믿는 고로 담대히 말한 것처럼 바울도 믿는 마음이 있음으로 여러 고난 중에서도 담대히 말한다는 뜻이다. 자기가 믿는 진리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담대히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리는 하나님이 만능으로 성취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믿으면 증거할 말이 많으나 믿지 않으면 진리에 대해 할 말이 없다.

바울은 핍박을 받아서 거꾸러지고 육신적으로는 희망이 없었으나 진리대로 될 것을 믿기 때문에 소망이 있고 찬송이 나가고 증거 할 말이 많은 것이다. 우리 성도는 누구나 자기가 믿는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말해 줄 필요가 있다. 자기 혼자만 믿고 진리의 빛 가운데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흑암 속에서 방황하게 내버려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믿는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 주면 그것을 듣는 사람이 그 말씀을 받아서 믿고 빛 가운데서 살게 된다. 믿는 진리를 말하지 못하는 자는 믿음을 쓰지 않는 자요 벙어리 개이다(사56:10).

. 4: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13절에서는 예수를 위해서 죽는 것을 말하고, 여기 14절에서는 예수와 함께 살리는 것을 말한다. 교역자가 예수를 위해서 항상 죽음에 넘기우는 생활을 하면 생명이 자기 안에서 역사한다. 예수를 위해서 죽는 자는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다시 살려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신다.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주님에게서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다.

. 4: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모든 것을 교인들을 위하여 하였으나 고린도 교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고 경멸하였다.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여러 가지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바울이 자기를 죽음에 넘겨주면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三. 겉사람과 속사람(16-18)

.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환난과 핍박이 많고 반대하는 자들이 멸시하고 비방하지만 바울은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

바울이 낙심하지 않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께서 긍휼로 이 직분을 맡겼기 때문이다(4:1).

② 자신은 죽음의 길을 걸어가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이 바울과 교인들에게 역사하여 창성해 나간다. 즉 구원운동이 자기로 말미암아 진보되기 때문이다.

③ 주님재림 때에 영광스러운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④ 주께로부터 면류관 상급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⑤ 하나님께 더욱 많은 영광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겉사람은 육신을 가리킨다. 육의 사람은 핍박과 비방과 외부적으로 오는 많은 환난을 받아 쇠약해지고 노쇠하고 죽음이 점점 가까워지는 상태를 말한다.

바울이 항상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는 생활을 하며 많은 고난을 받고 날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때문에 연약한 육체는 후패하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울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하였다. "속사람"은 중생한 영혼이다. 성도가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 외부적으로 아무리 훌륭해도 비참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사람은 외부적으로는 환난과 고통을 당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즐거워한다. 겉사람은 잠깐 있다가 죽어 없어질 것이므로 성도가 겉사람 중심의 생활을 하면 안 된다. 도리어 겉사람이 깨어져 나가야 속사람이 새로워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성도의 겉사람이 후패해지는 것은 유익하다. 성도는 속사람이 새로워지도록 힘써야 한다. 성도의 영혼이 진리와 영감으로 날마다 자라나야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신앙이어야 산 신앙이요 장성하는 신앙이다. 우리가 겉사람은 어찌되든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져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의 믿는 일도 성공되어 나아간다.

. 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환난은 잠시동안이다. 잠시잠깐 후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죄악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히10:37). 성도가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에서 잠시동안 받는 환난이 지극히 크고 중하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환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지극히 가벼운 것이다. 성도가 세상에서 받는 환난은 작은 것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하늘나라에서 받을 영광은 대단히 크며 세상에서 받는 고통은 잠시 동안이나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광은 영원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에 세상에서 받는 환난과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롬8:18).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예수를 위해 잠시 가벼운 환난을 당하면 주님께서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므로 기쁨으로 환난을 통과해야겠다. 우리 성도가 겉사람은 후패해도 속사람이 새로워지도록 날마다 힘쓰고, 예수를 위해서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어 영원한 영광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보이는 것은 현실 세계의 것이요, 육에 속한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의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 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므로 우리가 날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보이는 것은 잃어버려도 보이지 안는 것을 날마다 이루어 나가야 참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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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후서5장

제 5 장 화 목

(대 지)

一. 육신의 장막과 하늘의 처소(1-10)

二.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라(11-17)

三. 화 목(18-21)

(본문 강해)

一. 육신의 장막과 하늘의 처소(1-10)

.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은 육신을 가리킨다. 사람은 영혼과 육신이 합하여 되었으며 영혼이 주격이다. 사람의 영혼이 육신의 장막을 쓰고 살다가 하나님이 영혼을 불러 가시면 육신의 장막을 벗어 놓고 내세(來世)로 가게 된다. 육신을 장막 집이라고 한 것은 육신이 잠깐 있다가 무너질 것(죽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도 죽음이 임박했을 때에 장막을 벗어날 날이 가까이 왔다고 했다(벧후1:14).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에는 믿는 사람의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믿지 않는 사람의 영혼은 지옥으로 간다. 성도가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면 영혼의 본향인 천국에 가서 살 것을 확실히 믿고 그것을 사모해야 한다. 아브라함도 천국을 자기의 본향으로 삼고 늘 그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다. 천국이 우리의 본향이지만 우리가 하늘에서 온 것은 아니다. 또 영혼이 본래 하늘에 있었다는 의미도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우리의 영혼도 없었다. 그런데 천국을 본향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천국에 계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계신 곳이 자기의 본향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나그네와 같이 잠시 동안뿐이며 나그네 생활이 끝나면 본향으로 갈 것이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우리 영혼의 본향인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같이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고 그것을 바라보며 사모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 5: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성도가 육신의 장막을 쓰고 살 때 탄식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죄성) 때문에 그것을 붙들고 빼어 내버리려고 회개하며 탄식하는 것이다.

둘째, 자기 연약성과 불완전성 때문에 탄식하는 것이다.

둘째,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가 덧입혀지지 않아서 탄식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것은

① 성도가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사모하고 그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②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을 가리킨다. 로마서13:14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라고 하였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나가는 것이(갈4:19) 하늘의 처소를 덧입는 일이며, 그것은 하늘의 것이요 영원한 것이다.

③ 성도가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다(롬13:12). 성도가 빛의 갑옷을 입으려면 먼저 빛의 세계를 발견하고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사야 한다. 탄식하며 사모함이 없는 사람은 빛의 갑옷을 입지 못하고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와 주장을 받지 못한다. 성도는 빛의 갑옷을 입는 일을 제일 첫째로 삼고 그 일을 전문으로 해 나가야 한다.

④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벧후1:4).

⑤ 새 사람을 입어 나가는 것이다(엡4:24). 하늘의 처소로 덧입는 사람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서 살면 넓은 길로 가게 되고 주를 위해서 살면 좁은 길로 가게 된다. 믿는다고 해도 말씀을 지키지 않고 세상주의와 육체주의와 인본주의로 나아가는 사람은 넓은 길로 걸어가는 것이다. 예수를 위해 살고 좁은 길로 가는 성도들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따라가는 것이다(창12:1). 성도가 말씀과 세상 재물을 겸하여 붙들려고 하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마6:24). 말씀 하나만 붙들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빛의 갑옷을 입을 수 있고 하늘의 처소를 덧입는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는 것은 쉽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요 힘써야 겨우 되어지는 것이다.

. 5:3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성도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 벗은 자들로 발견된다. 고린도전서3:12-15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하였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성도는 공력이 불타서 없어지지만 구원은 얻는다. 그 사람은 불 가운데서 벌거벗고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얻는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벗은 자로 발견된 자이다.

바울이 하나님 앞에 벗은 자로 발견되지 않으려고 탄식하였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구원을 얻어 천당에 간다. 이것은 자기 공로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되어지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완전히 죄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천당에는 거저 가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믿음을 잘 지키고 말씀대로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달려갈 길을 달려가야 영혼이 자라나서 장성한자가 되고 천당에 가서 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구원을 잘 이루어 그리스도의 옷을 많이 입고 가면 천국에서 칭찬과 영광과 상급이 크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고자 탄식하면서 간절히 사모했다. 우리 성도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 주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그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야 하겠다.

. 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성도가 세상에 있는 동안 탄식하는 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다.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책임을 지고 탄식한다는 뜻이다.

벗고자 함이 아니요 육신의 장막을 벗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죽고자 함이 아니라는 뜻이다.

덧입고자 함이니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고자 함이라는 뜻이다. 바울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를 짐진 것 같이 탄식하며 원하였다. 로마서8:12-13에"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육신에게 빚진 것이 아니다 영으로써 육신의 행실을 죽여야 할 그 빛을 진 것이다. 그러므로 빚진 자가 빛을 물어줄 책임을 진 것 같이 성도는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탄식을 하는 것이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죽을 것"은 육신대로 사는 생활이며 "생명"은 영적 생명의 역사이다. 육신대로 사는 생활은 죽을 것이고 영적 생명으로 사는 생활이 사는 것이다. 바울은 육신대로 사는 것을 영적 생명의 역사가 모두 삼켜 먹고 하나님 앞에 가기를 원하였다. 중생한 영혼이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영이 사는 길이다. 영이 사는 길로 걸어 나가려면 육신의 것은 모두 희생을 해야 한다. 성도가 사는 길은 육신대로 사는 길과 영으로 사는 두 길이 있다 (롬8:4-10).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롬8:13). 그러므로 육신대로 사는 길을 버리고 영이 사는 길로 걸어가야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워지는 것이다. 영으로 말씀을 따라 사는 길은 환난과 핍박과 고난이 오고 십자가가 오지만 거기에 참된 생명이 있다. 육신대로 사는 길은 편안하고 쉽지만 생명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는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 대성공이다. 순교자는 육신의 생명이 완전히 영혼의 생명에게 삼키워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순교자는 천국에서 특별한 자리에 앉아 큰 영광을 누리게 된다. 육신대로 사는 생활은 죽어 없어질 것이므로 그것을 영적 생명의 역사가 삼켜서 영적 생명이 점점 커 나간다면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다. 영적 생명이 죽을 것을 많이 삼킬수록 영혼이 점점 장성하고 능력이 있게 된다.

.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워지게 하는 일은 성령이 책임을 지고 이루어나가신다. 이 일은 성도가 자기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성도를 붙들고 역사하여 이루어 가신다. 그러므로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힘쓰는 자에게는 성령께서 만능으로 도와주셔서 그 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생활은 힘이 들지만 성취할 수가 있다. 힘써 하고자 하는 성도가 자기의 힘이 진하여 지면 성령이 능력으로 그 일을 다 이루어 나가기로 보증하셨기 때문이다.

. 5:6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성도의 구원 성취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며 이를 성령이 보증하셨기 때문에 어떤 고난 중에서도 성도는 항상 담대하여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다.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 때에는 주님을 직접 보지 못하고 믿음으로만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이 주와 따로 거하는 상태이다. 영으로는 주와 교제하며 동고 동락 할 수 있으나 몸은 아직 완전 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주와 따로 있는 형편이다.

.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하늘에 있는 처소를 덧입기 위하여 바울이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세상과 육신 중심의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행한다는 말이다. 성도가 하나님과 그 말씀만 믿고 따라가야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어 나가게 된다.

.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바울이 육신의 몸을 떠나서 그의 영혼이 주와 함께 거하기를 원했다. 몸에 거할 때는 주님과 따로 거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6절), 바울은 차라리 몸을 떠나서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를 원했다. 바울은 항상 몸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빌1:23).

바울은 세상에 살아 있어도 유익이 되고 세상을 떠나도 유익이 되지만 더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도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죽는 것을 무서워하고 세상에서 오래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직도 육신 중심이다. 몸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애착심도 없이 영적인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래 살든지 속히 떠나든지 다 유익이 된다. 성도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있을 욕망을 가지고 매일 영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 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을 떠나도 좋고 살아 있어도 좋은 것이다.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살게 되므로 좋고 세상에 살아 있으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는 생활을 하고(4절) 복음 전파하는 일을 하겠으므로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을 떠나든지 거하든지 문제가 아니고 다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쓸 뿐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쁘시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다.

.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사죄와 칭의를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공심판은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모두 영생을 얻는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 그것은 공심판이 아니고 구원받은 성도적 행위에 따라서 책망과 상을 주는 사심판이다. 그때에 구원을 잘 이루어 간 성도는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되고 구원을 잘 이루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받지 못한다.

누가복음19:12-26에 열 므나 남긴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다. 또 다섯 므나 남긴 사람에게도 같은 칭찬을 하며 다섯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장사는 안하고 한 므나를 그대로 가져온 사람은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고 책방을 받았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지옥에 가는 공심판은 받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선악간에 행한 대로 사심판을 행하여 책망 받을 자에게는 책망하시고, 칭찬 받을 사람에게는 칭찬하시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잠시 동안 나그네로 사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을 이루어 가는 일을 해야 한다. 나그네 생활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어 죽을 것이 많이 생명에게 삼키워지도록 하여야 많은 상금을 받는 사람이 된다.

二.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라(11-17)

. 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바울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권면한다고 하였다. 권면하지 않으면 하나님에게 책망을 받을까봐 아니할 수가 없어서 권면하였다(고전9:16). 바울이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대를 표준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도 바로하고 다른 사람들도 바로 세우려고 힘썼다.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바울이 참 사도인 것과 그가 전하는 말씀이 참 복음인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는데 너희 고린도 교인들이 오해(誤解)하여 비방하면 주님 앞에서 심판 받을 때에 책망을 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바울이 전한 복음이 참 복음인 것을 너희 양심에도 알려졌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아니하고 궤휼 가운데 행치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한다고 말했다(4:2)

. 5: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바울이 자기를 변명할 기회를 주어 외모로 자랑하는 잘못된 사람들을 대하게 하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외모(의식주의와 인본주의)를 가지고 자랑하면서 바울을 비방하였다. 그리하여 고린도 교회에 바울을 자랑하던 것이 없어지고 바울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바울이 자기에 대해서 변명하는 말을 하여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바울과 그 복음에 대하여 바로 깨달아 그 잘못된 사람들을 대하게 하려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악평할 때에 그들의 말만 듣지 말고 실제로 본인의 말을 들어보아 바로 알고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한다.

. 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바울을 미쳤다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울이 하나님을 위하여 너무 열심히 봉사하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그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바울을 미쳤다고 한 것이다(행26:24).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객관적 계시의 사실인고로 정신차리고 참된 말을 한 것이다(행26:25).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들을 만큼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운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교회를 위한 것이었다. 결코 자기의 명예나 이익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다.

.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컨대 한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기 때문에 전도를 아니할래야 아니할 수 없고 몸을 바치지 않을래야 바치지 아니할 수가 없어서 몸을 바치고 나아갔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몸도 바치고 재산도 바치고 모든 희생을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생명까지도 즐거움으로 바치는 것이 참되고 귀한 신앙이다.

사랑에 끌려서 할 때에는 아무리 고난을 당해도 힘이 들지 않고 아무리 물질을 바쳐도 아까운 것이 없다. 사랑에 끌려서 하는 사람은 죽는 곳에도 즐거움으로 간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살 때는 죽는다고 할지라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주를 따라간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삼켜져서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죽음이 참된 순교이다.

주후 2세기경에 로마 정부가 폴리캅 감독을 죽이려고 나무를 쌓아놓고 그 나무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폴리갑 감독을 결박하여 불을 붙이려고 하였다. 그 순간에도 폴리갑 감독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그때 집행관이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한 번만 모른다고 하면 죽이지 않고 석방하겠다고 말하자 폴리갑 감독 대답하기를 "예수님께서는 나를 팔십육년 동안 사랑하시되 한번도 모른다고 한 일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를 한번이라도 모른다고 할 것인가?"하고 기쁨으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문제이다. 예수님이 나를 제일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시고 "내 양을 치고 먹이라"고 말씀하셨다(요21:15-17).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양을 먹일 자격이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사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 갈 수가 있다.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예수님이 우리 믿는 성도 모두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므로 성도가 다 법적으로 죽은 것이다.

.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택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믿는 성도의 영혼을 살려 놓았다. 믿는 자는 다 영혼이 산 자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기가 자기를 위해서 살지 말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자가 되어야한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예수와 함께 죽은 자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의를 인하여 산 자이다. 우리가 산 것은 우리가 아니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갈2:20).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만 주를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 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유대 사람이냐 이방 사람이냐?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여 육체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취급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에 모든 택한 자들을 위하여 죽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육신으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다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바울이 믿기 전에는 그리스도도 일개 인간으로만 알고 그 제자들을 핍박하였다. 그러나 믿은 후에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속주로 알았다.

.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새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육체대로 알고 육체대로 취급하던 것은 다 지나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영혼으로 사는 새사람이 되었으니 만큼 그 새사람으로 더불어 교제해야 한다.

三. 화 목(18-21)

.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새사람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엡2:8). 범죄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자기와 화목케 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희생시켜 대속해 주신다. 이로 인하여 성도가 죄사함을 받고 우리로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 모든 사람이 믿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용납하여 서로 화목하기를 힘써야 한다. 화목하려면 희생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목할 때도 독생자를 희생하시면서 화목하셨으니 우리도 희생함이 없이는 화목할 수 없다

.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할 때에 원수 되었던 죄는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삼으셔서 대신 형벌 받아 죽게 하시고 믿는 자들의 죄는 저희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화목하는 역사를 점점 확장해 나가기 위하여 화목케 하는 복음(말씀)을 성도들에게 부탁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하여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케 되도록 힘써야겠다.

.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일하였다. 이것이 사도적의 권위이다. 바울의 귄면은 사람의 권면이 아니고 하나님의 귄면을 그대로 전파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권면에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간구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은 바울이 전하는 참 복음을 그대로 믿고, 참 종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권면을 전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서는 일이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신으로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고 그들의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보고해 드려야 한다.

사신은 종이므로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말고 자기를 보낸 자의 뜻대로 말씀을 전달하고 심부름을 해야한다. 하나님의 사신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다. 만일 어느 나라의 대사가 본국의 지령을 받지 아니하고 제 마음대로 하고 자기이익을 위해서 일하면 그 대사는 송환되어 처벌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로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성도가 세상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통이 안될 때는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도록 해야 한다. 영적 교통이 이루어져 자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자기 안에 있는 생활이 진짜 화목이다. 화목을 하면 사랑이 점점 깊어지고 하나님이 점점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다. 하나님과 화목된 사람은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고 모든 것을 다 형통하게 해주신다.

.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목하기 위하여 최고의 희생으로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 예수님은 경험적으로 죄를 지은 일이 없다는 뜻이다(벧전2:22).

죄를 삼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로 죄인을 삼은 것이 아니고 죄 자체를 삼으셨다는 뜻이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인 취급을 받으셨다. 죄인취급 받은 것은 저주와 극도의 형벌로 고난을 받은 것을 말한다(갈3:13).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고전1:30). 이미 믿는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롬13: 14) 하나님의 의가 되어 나가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의 하나이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대신 벌을 받으시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우리들의 의로 삼으셨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신 책임지고 내가 벌을 받으면서 자기의 잘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입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것이 화목하는 법이요, 구속을 이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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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후서6장

제 6 장 동 사(同事)

(대 지)

一. 은혜 받을 때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1-2)

二. 복음과 직분의 능력(3-10)

三. 마음을 넓히라(11-13)

四. 타협하지 말라(14-18)

(본문 강해)

一. 은혜 받을 때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1-2)

.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 말씀은 5장에서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말씀의 연속으로써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아야 될 것을 바울이 역설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취하신 하나님의 구원사업 전체를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① 구속의 진리 전체를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② 구속의 진리를 그대로 믿고 그 세계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③ 그대로 열매가 맺혀져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택하여 세웠기 때문에 사도가 되었고, 하나님이 보냈기 때문에 갔고, 하나님이 시켰기 때문에 일을 했다. 바울 자신은 아무 힘이 없으나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려 하나님과 함께 일하였다. 누구나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고 하나님께 이용당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와 함께 한다.

.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것은 이사야49:8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연단하기 위해서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때가 있고 구원하시는 때가 있다. 은혜를 받지 않으면 안될 만한 때가 곧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시는 때이다. 우리가 생활하다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때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는 이길 수 없고 걸어 갈 수 없고 일을 해 나갈 수도 없는 때가 있다. 그러한 때가 곧 은혜 받을 만한 때이다.

그때에는 은혜를 받으려고 더욱 힘을 써야 한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만능으로 도와 주셔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에게 큰 시험이 닥치고 어려운 난관에 부딪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해결할 수가 없는 그때가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주시는 때이다. 그때에 은혜 받으려고 힘써 기도하면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역사로써 그 일을 잘 해결해 주신다.

예를 들면 느부갓네살왕이 두라 평지에 세운 금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 속에 던지겠다는 명령이 내렸을 때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때이다

그때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합심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니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풀무불 속에서 건져 주셨다. 다니엘에게도 사자굴의 시험이 왔었는데 그때가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줄 때요 다니엘로서는 은혜 받을 때이다. 다니엘이 그때에 힘써 기도하고 믿음을 지키므로 하나님이 그를 사자굴에서 건져 주셨다. 그러므로 그날이 다니엘에게 구원의 날이 되었다. 성도는 환난의 때에 은혜 받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생각으로 낙망하거나 인본주의의 수단을 써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줄 그때를 놓치면 그 은혜는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성도가 사업이 잘 안되고, 멸시를 받으며 고난을 당하여 도저히 살길이 없는 것 같을 때에 더욱 믿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고난받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은혜 받는 기간이 길어지므로 성도에게는 유익이 많다. 인삼은 오래된 것일수록 값이 나가는 것처럼 성도가 고난받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큰 은혜가 온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 다녔는데 그때가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이다. 그때에 다윗이 참고 믿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구원의 날에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워 주셨다.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줄 때에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잘 받으면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

모세가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며 살 때가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때였으며, 그때에 모세가 낙심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순종하였으므로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주셨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아 주셨다. 사도 바울도 가만히 있었으면 고난이 없었을 것이나 주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갔다(12:15).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를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은혜 받을 만한 때에 헛되이 받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 환경을 피하려 하지 말고, 믿음으로 통과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구원해 주시고 자기에게 큰 은혜가 된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은 신약시대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지만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가 많이 나타나고 역사가 많이 나타나는 신약시대를 가리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한 것이다. 신약시대는 예수님께서 구속을 완성하시고 구속의 세계로(신령한 잔치 집으로) 우리를 항상 부르고 계신다(14:16-24).

어떤 사람이 은혜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①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해 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다. 사모하는 것이 없고 배부름으로 나가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눅6:25).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마19:24).

②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언제나 은혜 받을 수 있고 계속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③ 자기 사명에 충성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고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바울은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을 줄 알면서도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전했다.

이런 사람이 신약시대에 언제나 은혜 받을 사람이고 구원의 날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二. 복음과 직분의 능력(3-10)

. 6:3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이 직책은 복음을 전파하는 직책이다. 이 복음의 직분이 훼방을 받으면 안 된다. 복음의 직분과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기관이므로 훼방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복음의 직분이 훼방을 받으면 하나님의 구원사업에 지장을 초래한다. 교회의 목사나 전도사에게 훼방이 돌아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6:4-5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바울은 거짓 스승들과 같이 유명한 사람의 천거서를 가지고 다니지 않고 자신의 신덕(信德)과 일한 공덕(功德)으로 자신이 참된 하나님의 일꾼인 것을 인정하게 한다는 뜻이다.

많이 견디는 것 참된 하나님의 종은 모든 환난과 어려움을 승리적으로 통과하기 위하여 많이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바울이 많이 견딘 것은 ① 믿음으로 견디었다. ② 소망 중에 견디었다. ③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견디었다. ④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함을 힘입어 감사와 기쁨으로 견디었다. 본문에 나타난 아홉 가지 고난을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환난, 궁핍, 곤난.

둘째, 매맞음, 갇힘(감옥에 갇힌 일), 요란함(무질서 무법적인 폭도의 소동).

셋째, 수고로움(바울의 자급 전도를 위한 생업의 수고와 전도하는 일을 위한 수고), 자지 못함, 먹지 못함(복음을 위한 자기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때가 많았음).

. 6: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깨끗함 바울은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으며 금전이나 다른 모든 면에 깨끗하였다. 지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르고 깊은 지식이다. 오래 참음 ① 사랑으로 오래 참는다(고전13:4). ② 하나님의 권고를 기다림으로 오래 참는다. 자비 바울은 핍박 중에도 참고 도리어 그 핍박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성령의 감화 바울이 핍박하는 무리들에게 믿음으로 대하였으므로 성령의 감화가 많이 나타나 그들을 감동시켰다(행13:44-52 참조). 거짓이 없는 사랑 영적 사랑은 거짓이 없다. 거짓으로 사랑하는 자는 남을 이용하여 자기의 유익을 보려는 자이다.

. 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진리의 말씀 성경 말씀과 그 바른 해석을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야 된다(빌4:13; 살전1:5). 의의 명기로 좌우하고 이것은 성도가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세워나가기 위하여 진리의 말씀을 성령의 능력으로 실현시켜 나아가는 것이 의의 병기로 좌우하는 것이다.

. 6:8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영광과 욕됨으로 바울에게는 사도직의 영광이 있다. 누구든지 복음을 전하는 자는 영광이 있다. 전도자에게는 영광도 있으나 욕을 당하기도 한다. 복음 진리가 전파되어 마귀의 세력이 깨어져 나가고 비진리가 드러나기 때문에 마귀의 종들과 비진리를 따라 가는 사람들이 핍박하고 능욕하게 된다.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복음 전하는 직책은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을 받게 된다. 참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여 악평하고 욕하는 사람도 있고 또 시기하여 악한 이름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진리를 바로 깨달은 사람은 존경하며 아름다운 이름을 돌린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의 생명과 영생의 도리를 전하면 불택자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속이는 자같이 보여진다. 그러나 그 진리를 믿는 성도에게는 참된 것임을 알게 된다. 바울은 진실하며 참된 진리를 전하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 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외부적으로는 무명한자같이 보였고 무명한 자로 취급당했다. 하나님께서 원래 유명한 사람들을 택하여 전도자로 세운 것이 아니다(고전1:27-29). 세상에서는 무명한자이나 하나님 앞에서와 구원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사신(使臣)이며(5:20), 하나님의 일(영혼 구원의 일)과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하는 자이니 얼마나 유명한 자인가!

죽은 자 같으나 바울이 가는 곳마다 큰 환난과 핍박을 받아 사지(死地)로 가는 양같이 죽음에 넘기워졌다. 그러나 그가 하나의 능력의 보호로 죽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의 일을 점점 발전시켜 나갔다.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은 바울이 환난과 고난과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하나님께 징계 받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망하거나 사지가 죽어 쓰러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뢰하고 새힘을 얻으며 (사40:29-31) 극강 담대하여 전진하였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하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

.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외부적으로 볼 때 바울에게 여러 가지 근심이 있었다(11:27-29; 롬9:1-2; 빌2:27). 그러나 그 속에는 항상 기쁨이 있었다.

①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영적 즐거움.

② 소망 중에 즐거워함.

③ 합동해서 유익하게 해 줄 것을 믿고 믿음으로 즐거워함이다. .

가난한 자 같으나 맡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전도자에게는 은과 금이 없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행3:6) 진리로써 많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부요하게 한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여기 "같으나"라는 말은 실은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외부적으로 볼 때는 수중 무일전(手中無一錢)이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다 아버지의 것이요(시24:1), 아버지의 것은 다 성도의 것이다.

고린도전서3:21-23에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하였다. 믿음으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시는 것이다.

三. 마음을 넓히라(11-13)

. 6: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을 향해서 모든 것을 숨김없이 다 말했다는 뜻이다.

마음이 넓었으니 사랑으로 아량을 베푸는 상태이다.

. 6: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고린도 교인 중에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치 않고 자기들의 자유를 속박하며 간섭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사랑이 식어져 있는 상태에 있었으므로, 사랑이 식어진 것은 그들이 바울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너희의 마음을 넓히고 나를 용납하라고 권면한 것이다.

. 6: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바울은 부모가 자녀에게 말하듯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탄 없이 사랑으로 권면하고 있다. 그들이 마음을 넓혀서 바울을 이해하고 그의 사랑에 보답하는 생활을 하도록 권면 하였다.

四. 타협하지 말라(14-18)

.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이 바울에게서 떨어지게 된 것이 첫째는, 그들의 마음이 좁은 것이었고 둘째는, 불신앙과 짝했기 때문이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성도가 믿지 않는 자에게 속박을 받아 그와 같은 보조를 취하며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신자가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와 짝함으로 신앙의 길에 방해를 받으면 안되므로 그러한 자와 함께 하지 말라는 뜻이다. 심령의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생명을 빼앗기는 것이다. 신앙의 달음박질에 방해되는 다른 것들에 얽매이지 않는 자가 지혜 있는 자이다. 신명기22:10에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라고 하였다. 이것은 신앙이 서로 맞지 않으면 일을 같이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의(義)와 불법은 서로 반대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 의가 불법과 함께 하게 되면 의는 벌써 없어진 것이고 의의 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빛이 오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어두움이 오면 빛이 물러간다. 신자가 어두움과 함께 있다고 하면 빛은 벌써 잃어버린 것이다(롬13:12-14 참조). 수돗물과 하수도 물이 합하면 수돗물은 쓰지 못하게 된다.

자기만 신앙을 잘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여 신앙이 맞지 않는 단체에 들어가 활동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신앙을 바로 지키기 힘들다. 신앙이 맞지 않는 단체에 들어가면 그 단체의 법과 결정(다수결에 의한)에 따라야 한다. 신앙이 다르더라도 사업만은 같이 해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사업이란 신앙의 열매이므로 신앙이 다르면 열매도 다르게 맺혀야 한다. W.C.C.는 각 교파의 신앙노선이 다를지라도 사업은 함께 하자는 혼합주의이다. 그러나 교리가 다르면 사업도 같이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제 상관하며

벨리알은 사악한 것, 무가치한 것을 의미하는데 사단의 별명이다. 그리스도는 사단의 일을 멸하려 하고 사단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방해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와 사단은 조화(調和)될 수 없다. 조화는 동의하는 일을 말한다. 사단은 때때로 신자의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사단이 베드로에게 들어가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할 때에 예수님이 그에게 "사단 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다(마16:23). 신자는 사단의 궤계와 유혹과 역사를 밝히 보고 분별하여 물리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실패하고 만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신자가 일반 사회 생활면에서는 불신자와 상관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으로 영적 생명의 길을 걸어 나아가는데 손해를 보거나 진리를 양보하면서 까지 불신자와 관계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그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우상은 신도 아니요 생명도 없으나 마귀의 도구가 된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로 사는 생명 있는 성도는 우상과 일치될 수 없고 본능적으로 모든 우상을 물리치게 된다. 우상을 받아들이는 신자는 생명이 없는 증거이다.

일치는 같이 앉는다는 뜻이다.

본 절 하반 절은 구약의 여러 곳을 인용한 것인데 하나님은 성도 가운데 계시고 성도의 하나님이 되시고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는 뜻이다(출29:45; 레26:12; 렘31:1; 겔37:27). 이것은 신약시대에 더욱더 완성되어 나가는 것이다.

. 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이것은 이사야52:11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는 불법, 어두움, 사단적인 것, 불신앙적인 것, 우상적인 것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신자가 그런 단체와 분위기에서 그 영향력을 받으며 같이 앉아 있으면 생명력이 없어지고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 산 고기는 썩은 물에서 있을 수가 없다. 거기서 나와야 산다. 요한계시록18:4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써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였다.

나와서 장소나 단체에서 나와야 될 경우도 있는데 자기가 소속한 기독교 단체가 잘못되었을 경우 거기서 탈퇴하고 나와야 한다. 그 안에 있으면 그 지배를 받게 되고 그것을 방조(幇,助)하는 것이 되며 법적 책임이 있다. 반대하지 않는 자는 환영하는 자가 되므로 마음이 그들의 불의에서 멀리 떠나 성별된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런 자를 하나님이 영접하여 주신다.

.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성도가 불의에서 나와 따로 있어야만 하나님이 영접해 주시고 아버지의 혜택을 입혀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에 참여하게 된다.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이 능력으로 약속의 말씀을 성취시켜 가실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 복이 자기에게 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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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후서7장

제 7 장 회 개

(대 지)

一. 성 별(聖別)(1)

二. 일꾼 영접(2-4)

三. 위 로(5-7)

四. 근 심(8-10)

五. 근심의 효과(11-12)

六. 기 쁨(13-16)

(본문 강해)

一. 성 별(聖別)(1)

.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본 절은 6장의 계속이요 특히 6:14 이하의 결론이다. 성도는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빛에 속한 자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벨리알, 우상, 어두움의 일 등)에서 떠나 자신을 정결케 하라는 뜻이다.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6:17-18에"…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는 약속을 말한다.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고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죄에서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된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 이것은 신자의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신자의 밖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가리킨다. 즉 6:14 이하에 언급한 벨리알이나 불법, 우상, 어두움 같은 것을 말한다. 벨리알이나 우상은 영의 더러운 것이고 불법과 어두움은 육의 더러운 행위, 즉 음행, 호색, 술 취함, 연락, 사치 등을 말한다.

二. 일꾼 영접(2-4)

. 7: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고린도 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기를 자랑하며 바울을 비방했다. 그로 인하여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 대한 존경심이 행하거나 해롭게 하거나 속여 빼앗은 일이 없다고 변명하였다. 교역자를 진심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교역자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생명의 말씀이 교역자를 통해서 전파되기 때문에 교역자를 마음으로 영접하는 자는 그 교역자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그러나 교역자가 성경 말씀을 잘못 가르치고 인본주의로 나아갈 때는 심령이 살지 못하므로 그 교역자에게서 떠나는 것이 좋다.

. 7:3 내가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간에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을 정도로 서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였다. 이것을 전에도 말했고(1:6; 2:4, 3:3; 6:11-13), 지금도 권면하는 것이니 바울의 말을 오해하여 자기들을 정죄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 7:4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담대한 것도 많고 일본 성경에는 신임이 크다고 번역했다. 바울이 마음속 깊이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고 전적으로 신임하여 담대히 고린도 교인들을 자랑하고(1:14), 또 환난 중에서도 고린도 교인들을 통하여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것을 재삼 강조한다 (1:6).

三. 위 로(5-7)

. 7: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육체가 편치 못하고 2:12-13에 보면 바울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에 가게 된 동기는 고린도 교회에 파견했던 디도가 오지 않는 것을 보고 고린도 교회의 시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 그런 줄 알고 심령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회에 많은 시험이 들어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으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너지지 않을까, 또 성도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할까 하여 바울에게 두려움이 있었다. 또 외부에서는 바울을 비방하고 대적하는 세력이 많이 있었으므로 그들과 선한 싸움을 싸우느라고 바울이 많은 환난을 당했다.

. 7:6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주의 일을 하느라고 환난과 고통을 받아 낮아지고 멸시를 받으면서도 주님 앞에 앉아서 주만 의지하고 주께만 부르짖는 자는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고 권고해 주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환난 가운데서 고난을 당하더라도 불만을 품거나 원망하지 말고 낮은데 처하여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귀한 자리에 앉혀 주신다. 교역자는 특히 낮아질 줄 알아야 한다. 낮아질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이 귀히 쓰시지 않는다. 교역자가 높은 자리에 처하여 "나다!"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멸시당하며 다 실패한 것 같고, 희망이 없는 것 같은 그때가 은혜 받을 만한 때이므로 그때에 낮아져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권고해 주신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려면 낮아져야 한다. 높아지면 하나님의 위로가 떠난다. 하나님의 위로가 끊어지면 생명이 끊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로가 없으면 자기가 교만한 줄 알고 낮아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이며(딤전1:15), 모든 성도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다(엡3:8).

사도 바울이 이렇게 겸손한 자리에 처했으므로 하나님의 위로가 항상 같이 하였다. 디도의 옴으로 고린도 교회의 희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한량없는 위로를 받았다. 그 이유는 ① 동역자인 디도를 만나게 되었다. ②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명령을 순종하여 믿음에 섰다. ③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적극적으로 영접하고 바울에 대하여 열심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7절).

. 7:7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디도가 고린도에서 받은 위로를 가지고 와서 바울을 위로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때문에 염려하며 비천해지고 두려워하는 중에 있었으나 하나님이 디도를 보내어 위로하게 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잘 영접해 주었다는 것과 그들이 바울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며 애통하는 가운데 바울을 대단히 사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므로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四. 근 심(8-10)

. 7:8-9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편지로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했기 때문에 바울이 그들을 근심하게 한 결과가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책망을 해 놓고도 근심했다. 고린도 교인들이 책망을 잘 받아 회개하면 좋으나 도리어 낙심하고 삐뚤어지지 않을까 하고 근심한 것이다. 책망한 다음에는 책망한 사람이 도리어 근심을 하고 후회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책망을 받고 진정으로 회개하여 바로 섰다는 소식을 바울이 들었으므로 기뻐한 것이다. 바울이 그들을 근심하게 한 까닭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회개하였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잠깐 근심했으나 그것 때문에 그들이 회개하여 큰 유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근심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세상 근심"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다. "세상 근심"이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여 근심하는 것이다.

누가복음21:34에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라고 하였다. 부하려 하는 마음을 품거나 세상 염려를 하면 마귀의 올무에 걸려 마귀에게 끌려가기 쉽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했다(시55:22 ;벧전5:7). 성도는 항상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기며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한다(딤전6:8). 성도가 믿음을 지키다가 괴로움을 당하면 그것으로 족한 줄 알고 모든 것을 주께 맡겨야 한다. 염려하고 방탕하고 부하려 하는 사람은 시험에 든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① 책망을 받을 때 잠깐 근심이 들어오는 것. ② 자기의 잘못된 것 때문에 하는 근심. ③ 바로 하려고 하여도 잘 안되어서 하는 근심. ④ 잘 믿으려고 하는 근심이다.

책망을 달게 받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책망을 받는 것마다 빛으로 나타난다고 했다(엡5:13). 책망을 받은 다음에 회개하는 길과 더 삐뚤어지는 길 두 가지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책망을 하고 책망한 자가 근심을 하게 된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성도는 책망을 받아 자기 죄를 깨닫고 큰 근심에 빠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다. 책망을 받지 않았어도 자기에게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탄식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근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또한 책망 받을 때에도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하겠기에 책망하는 줄 알고 달게 받으며 회개하고 바로서야 한다.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적극적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것을 인하여 하는 근심이다. 올라가야만 되겠으나 아무리 힘을 써도 올라가지 못할 때에 간절한 마음이 생기고 애통한 마음이 생겨서 근심하면 그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자는 기어코 구원에 이르게 될 날이 온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많을수록 하나님께서는 더욱더 많은 능력으로 붙들어 주시고 구원에 이르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새벽기도 못하는 자는 근심하고, 양심을 쓰지 못하는 자도 근심하며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될 것을 바치지 못하는 자도 근심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을 하면 하나님께서 회개하게 해 주시고,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해 주신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없기 때문에 되지 않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만 하면 반드시 구원에 이를 날이 온다.

五. 근심의 효과(11-12)

. 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했기 때문에 믿음에 바로 서게 되었다.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바울이 책망을 하였고 고린도 교인들이 그 책망을 달게 받아 근심하며 회개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변명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와 바울에게 변명하게 되었다는 것. 분하게 죄에 대하여 분하게 여겼다는 것. 두렵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 열심 있게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 바로 서는데 열심이 있었다는 것. 벌하게 죄를 벌하는 마음이 일어났다는 것.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 깨끗한 자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책망 받은 다음에 이렇게 되는 것이 큰복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책망을 하나님의 책망으로 받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 것이다. 우리가 책망을 받을 때 하나님이 주신 책망인 줄 알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

. 7: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바울이 일찌기 고린도 교회에 불의한 자를 물리치지 않았다고 책망한 적이 있다(고전5 :1-2). 그렇게 책망한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나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고린도 교회 전체를 바로 서게 하는데 있었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가 죄를 물리치지 못하리만큼 신앙이 약해졌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또 바울을 사모하는 마음이 식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 전체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고 회개시켜 처음 믿음과 처음 사랑을 다시 찾게 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로 바울에 대한 간절함이 나타나게 되었고 고린도 교인들이 살게 되었다.

六. 기 쁨(13-16)

. 7:13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고린도 교회가 바로 섰음으로 바울이 큰 위로를 받았으며, 전에는 디도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근심하였으나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고 바로 서서 바울과 디도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을 볼 때에 디도가 안심하고 큰 기쁨으로 돌아왔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기뻐하는 디도의 얼굴을 볼 때 더욱 기뻐하였다.

. 7: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디도가 고린도에 가기 전에 바울이 그에게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자랑을 하였다. 그런데 디도가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 만일 고린도 교인들이 불순종하는 것을 보게 되면 바울의 자랑이 부끄럽게 될 뻔하였다. 다행히 디도가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바울을 사모하며 열심 있는 것을 보았으므로 바울의 자랑이 참된 것임을 디도가 알게 되었다. 교회가 믿음에 바로 서 나가야 그 교회에 대한 교역자의 자랑이 참되게 되고 부끄럽지 않게 된다.

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같이 바울이 전에 고린도 교회에 한 말은 다 참된 말만 한 것이며 과장이나 허위로 한 것이 없다. 교역자가 허위나 과장으로 말을 하면 일시적인 환영을 받고 유익을 볼지 모르나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할 날이 온다.

. 7:15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디도가 갈 때에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일꾼을 두려워하고 떨면서 영접하고 순종을 잘했다. 그것은 디도가 유명하고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잘 영접한 것은 바울을 영접하고 바울의 훈계한 말씀을 순종한 증거이다. 고린도 교회가 그와 같이 하나님의 종을 사람으로 영접하고 존경하며 순종하였으므로 디도가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심정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하여 고린도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마음 속 깊이 사모하며 그들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 7:16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책망을 달게 받아 회개를 철저히 하고 바울이 보낸 디도를 두려워하고 떨며 잘 영접하였으므로 바울이 담대해졌다. 전에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 때문에 근심하며 연약해졌으나 지금은 그들이 바로 섰기 때문에 담대하며 기뻐하였 다. 교인들이 불평하며 원망하고 불순종하면 교역자가 풀이 죽고 연약해진다. 그러나 교인들이 잘 순종하고 교역자를 존경하면 교역자가 담대해진다. 교역자가 담대하면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가고 교회가 창성해지며 구원운동이 힘있게 잘 되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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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후서8장

제 8 장 은 혜

(대 지)

一. 연보 은혜(1-9)

二. 연보는 원하는 대로 할 것(10-15)

三. 연보 조심(16-22)

四. 디도와 그 동역자를 다시 소개함(23-24)

(본문 강해)

一. 연보 은혜(1-9)

. 8: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마게도냐 교회가 많은 은혜를 받아 열심으로 연보하였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도 이 은혜를 알기 원한다고 바울이 말했다.

. 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마게도냐 교회는 많은 환난과 극한 가난(밑바닥까지 내려간 가난의 뜻)가운데서도 믿는 일을 잘하였다. 그 증거는 ① 시련을 잘 받아서 신앙 인격을 만들어 나갔다. ② 영적 기쁨이 늘 넘치고 있었다. ③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은혜를 많이 주셨기 때문이다.

. 8:3-5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저희가 힘대로 힘대로 연보한다는 것은 신자가 자기의 재산에서 하나님께 바쳐야 할 적당한 분량대로 연보하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연보할 때에 언제나 자기 힘대로 힘써 연보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이 된다. 연보할 때에 마땅히 바쳐야 할 만한 분량을 바치지 않고 조금 바치는 것은 무성의요, 하나님께 대한 불충성이며,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을 자기가 취한 것은 불의한 재물이 된다. 이것이 심판날에 소리지를 것이다(약 5:4).

마게도냐 교회들이 연보할 때에 ①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연보하였다. ② 자원하여 하였다. 억지로나 사람 앞에서 부득이 하여 한 것이 아니다. ③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구하여서 한 것이다. 연보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일이며 성도 섬기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다. ④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연보도 드렸다. 성도가 금전보다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도 성도가 물질보다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것을 원하신다(12:14). 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울에게 자신을 맡기고 그 뜻을 순종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을 통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잘 이루어져 나갔다.

. 8:6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시작하였은즉 연보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얼마 전에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내어 연보 거두기를 시작하였는데 그 일을 그대로 성취케 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연보할 것을 권면하는 일은 성경적이다.

은혜 연보를 가리킨다. 연보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증거이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야 하나님께 연보를 바칠 마음이 생긴다.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께 감사하여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릴 마음이 생기고, 주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나오며, 주를 위해서 물질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연보하는 일은 은혜의 열매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쓰면 더욱 큰 은혜를 받게 되고 자기의 영혼이 자라나며 신앙의 열매가 더 많이 맺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빌4:18).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하여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때에 연보를 안하면 영혼이 자라나지 않는다. 믿음을 쓰지 않기 때문에 힘이 나지 않고 열매도 없다. 연보를 안 하는 사람은 돈이 우상이 되어 마음을 닫아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 8: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린도 교인들에게 여러 가지로 은혜가 풍성했으나 연보하는 은혜도 풍성하게 하라고 바울이 권면하였다. 성도에게 믿음, 하나님의 말씀, 지식, 간절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많을지라도 물질을 하나님께 바치고 구제하는 일을 잘못하면 그것들의 열매가 잘 맺히지 못한 것이다. 물질이 우상이 되면 신앙 인격이 자라나지 못하고 전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물질이 신앙의 역사하는 마음을 막기 때문이다.

. 8: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연보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연보한 예를 보여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있는 사랑과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부, 진실이 있는 여부를 연보로써 알 수 있다. 성도에게 진실함과 참된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께 바치지 않을 수 없고 구제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본래 부요한 하나님이신데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보좌와 영광의 자리를 다 내어놓고 낮아져서 가난하게 되어 종살이 하다가 나중에는 십자가에서 죽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속과 의와 생명과 거룩함을 얻어(고전1:30) 모든 신령한 축복에 부요하게 되었다. 성도가 참으로 믿음과 사랑이 있다고 하면 예수님의 하신일을 본받아야 된다. 참된 사랑은 이기주의가 아니고 희생이 따르게 된다.

二. 연보는 원하는대로 할 것(10-15)

. 8:10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사도 바울이 연보하는 일에 대하여 고린도 교회에 명령한 것이 아니고(8절) 뜻만 보여 주었다. 그것은 선한일이 억지가 되지 아니하고 자원해서 해야만 심령에 유익하였기 때문이다. 인색한 마음으로 부득이하여 한 것이나 강제로 한 연보는 심령의 유익이 없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연보를 안 하든가 선을 행해야 될 줄 알면서 행치 않는 것은 죄이다(약4:17).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고린도 교회가 마게도냐 교회보다 먼저 연보를 시작하였고 원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먼저 시작하고 원한 너희(고린도 교회)가 나중에 시작한 마게도냐 교회보다 더 잘하라는 뜻이다.

. 8:11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전부터 시작하고 원하던 연보와 자선사업을 이제는 적극적으로 실행하여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고 바울이 권면했다. 연보할 때에 있는 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 다음에 돈을 벌어서 하겠다든가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현재 자기에게 있는 대로 힘을 다해서 해야 한다.

예수님이 빈들에서 이적으로 오천명을 먹이실 때에 너희에게 있는 "그것(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을 내게 가져오라"고 하셨다. 있는 "그것"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시며 없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시지 않았다. 그것을 가져올 때에 예수님이 능력으로 오 천명을 먹이고도 부스러기를 열두 광주리나 거두었다. 자기에게 있는 대로 힘써 바치면 이렇게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역사하여 풍성하게 하신다.

. 8: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 하시리라

구제나 연보할 마음이 있으면 있는 것 중에서 힘써하면 된다. 없는 것까지 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물질을 힘써 바치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일도 잘되어 간다. 과부가 하나님께 두 렙돈을 바칠 때에도 예수님이 칭찬하셨다. 성도가 물질을 바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성도들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믿음을 써서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크게도 하시고 많게도 하여 하나님의 할 일을 해 나가시는 것이다. 현재 자기에게 있는 것을 충성되이 바치지 않고 다음에 돈을 벌어서 많이 바치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 8:13-14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 교인들이 예루살렘 교인들을 돕기 위해 연보하는 것은 평균케 하려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부요한 것으로 예루살렘 교인들의 가난한 것을 돕고 후에 고린도 교인들이 어려울 때 예루살렘 교인들의 부요한 것으로 도와주면 서로 평균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유무상통과 같은 것이다(행2:44).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사랑으로 서로 도와 나가는 일은 성도간에 마땅히 할 일이다

. 8:15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 하였느니라

이것은 출애굽기16:18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거둘 때에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았다. 이 세상 물질은 적게 수입되는 사람도 하루 밥 세끼 먹고 수입이 많은 사람도 하루 밥 새끼 먹고산다. 집이 천간(千間)이 된다고 해도 밤에 잠잘 때에는 여덟 자만 필요하고 문전옥답(門前沃畓)이 수 만평이 된다고 해도 하루 밥 세끼밖에 못 먹는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물질을 주신 것은 먹고살면서 믿는 일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고 하나님께 합당하게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는 사람이 복 받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연보를 많이 바쳤다고 해도 자기에게 물질이 모자라지 않고 적게 바쳤어도 물질이 넉넉하여 잘 사는 것이 아니다. 많이 바친 사람이나 적게 바친 사람이나 하나님께서 다 살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三. 연보 조심(16-22)

. 8:16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같은 간절함 바울의 마음에 있는 것과 같은 간절함을 디도에게도 주셨다.

. 8:17 저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디도가 권함을 받고(6절) 고런도 교회에 나아갈 때에 마지못하여 간 것이 아니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원하여 간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인도자의 권면과 본인의 자원함으로 실행될 때에 잘 성취되는 것이다.

. 8:18 또 저와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바울이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낼 때에 두 사람을 함께 보냈는데(22-23절) 본 절에는 그 중 한 사람만 소개되었다. 그 사람이 바나바나 누가나 마가라고 하는 설이 있으나 잘 알 수 없다.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디도와 함께 보낸 사람은 복음을 믿고, 전하고, 복음을 발전시켜 복음의 일로써 칭찬 듣는 자였다. 여러 교회에서 칭찬 듣는 사람을 채용하여야 하나님의 복음이 더욱 발전되어 나아간다.

. 8:19 이뿐 아니라 저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우리의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동일한 주의 영광 같은 주의 영광을 위하여 일한다는 뜻인데 연보하는 일과 구제하는 일과 봉사하는 일은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 자기 영광을 위하여 하면 안 된다.

우리의 원 연보를 완성하는 소원이다. 이 일에 봉사하는 자는 마게도냐의 여러 교회에서 택함을 입은 자인데 그를 고린도 교회에 소개한다

. 8: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연보에 대한 처리는 조심해서 해야 한다. 바울이 많은 연보를 말았으므로 그것을 인해서 훼방을 받으면 안되기 때문에 조심하여 많은 사람 앞에 인정받을 만한 사람을 택하여 디도와 함께 보냈다. 연보 처리를 이러한 방법으로 하면 다른 사람들이 훼방하지 못한다. 재상분명(財上分明)이 대장부(大丈夫)라는 말이 있는데, 장부는 재물을 다루는데 있어서 흐리터분한 점이 없고 셈이 밝다는 뜻이다. 특별히 교회 재정에 대해서는 교인들이 인정할 만한 사람들(장로나 집사)에게 맡겨 장부를 확실히 하고 모든 것을 분명히 해 놓아야 다른 사람들이 훼방하지 못한다.

. 8: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돈에 대해서는 주 앞에서 바로 할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바로 하여 언제나 오해를 받지 아니하도록 조심해야 한다. 돈 문제에는 언제나 마귀가 따라 다닌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공명정대하게 처리해야 한다.

. 8:22 또 저희와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가 여러 가지 일에 그 간절한 것을 여러 번 시험하였거니와 이제 저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디도와 함께 보낸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소개한 것이다. 저는 여러 가지 일에 시험받은 후에 신 임받은 자이므로 연보 맡는 일에 적격자라고 하였다. 또 그 사람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고 믿으므로 고린도 교회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다

四. 디도와 그 동역자를 다시 소개함(23-24)

.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디도는 바울의 제자인데 그를 자기의 "동무"라고 했다. 동무라는 말은 친교(親交)를 내포한 친구의 뜻이 있다. 또 바울은 그를 "나의 동역자"라고도 했다. 주의 일을 동등으로 같이 하는 자라는 뜻이다.

우리 형제들 디도와 같이 파견된 두 사람이다.

여러 교회의 사자 여러 교회의 사도라는 뜻인데 바울이 여러 교회에 보내어 하나님의 일을 돕게 하는 자이다.

그리스도의 영광 크게 경건하여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이다.

. 8: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

고린도 교인들이 연보 은혜에 힘써 참여하므로 고린도 교인들이 다른 교회를 사랑하는 그 사랑도 나타내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자랑한 그 열매도 나타내라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이 권면을 받고 연보를 힘써 하게 되면 ①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증거가 된다. ② 다른 교회를 사랑하는 열매가 된다. ③ 바울이 그들을 자랑한 일에 증거가 된다.

이 증거의 열매를 바울이 파견한 디도 등 세 사람 앞에서 보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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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후서9장

제 9 장 연 보

(대 지)

一. 열심으로 연보하라(1-5)

二. 감사한 마음으로 연보하라(6-10)

三.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1-15)

(본문 강해)

一. 열심으로 연보하라(1-5)

. 9:1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연보는 신앙의 열매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다. 그러므로 연보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빌4:17-18). 성도가 하나님께 물질을 바치는 것은 믿음의 초계단이고 지극히 작은 일이다. 믿음의 둘째 계단은 인정선이다. 아브라함이 독자를 하나님께 바치고,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것과 입다가 딸을 하나님께 바친 일은 인정선을 초월한 일이다. 믿음의 셋째 계단은 생명선이다. 자기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바쳐놓아야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다.

성도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질은 자기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며(시24:1), 다만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것을 일시적으로 맡아 가지고 있는 것뿐이다. 청지기는 주인이 맡긴 물건을 내어놓으라고 할 때에 "예"하고 즉시 내어놓아야 한다. 주인의 물건을 맡아 가지고 주인이 내어놓으라 할 때에 내어놓지 않으면 악한 종이요 다시는 주인이 그 사람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물질을 맡아 가지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내어놓으라 할 때에 즉시 내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도적이 된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재산과 생명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의 생명도 주께서 값 주고 사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까지 주께 바쳐 놓고 믿는 일을 바로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주님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내어놓아야 주의 것을 받을 수 있다. 재물은 지극히 작은 것인데 이것에 충성치 않는 사람은 큰 것에도 충성할 수가 없다(눅16:10).

. 9:2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 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

아가야는 고린도가 속해 있는 그리이스 남부지역을 가리킨다. 고린도 교회가 일 년 전부터 연보하기를 원하여 예비하였으므로 바울이 마게도냐에 가서 그것을 자랑하였다. 그 결과로 마게도냐인들이 크게 감동을 받아 그들도 힘써 연보할 마음이 생겨 힘에 지나도록 연보했다(8:1-5).

. 9:3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이 형제들이란 디도와 같이 간 두 형제이다(13:6, 18, 22). 바울이 그 사람들을 고린도 교회에 보낸 목적은 고린도 교회가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려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가 연보하기 시작한 것을 바울이 다른 교회에 가서 자랑하였는데 시작만 하고 완성을 못하면 바울의 자랑한 것이 헛되게 될 염려가 있으므로 그 연보를 미리 준비시키려는 것이었다.

. 9:4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이 앞으로 마게도냐인들과 함께 고린도에 갈 것인데 고린도 교인들이 연보를 약속만 하고 준비하지 않았다면 고린도 교인들은 물론 바울 자신도 믿고 자랑한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서 사람을 미리 보내어 준비하게 하였다.

. 9: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미리 준비했다가 바치는 연보라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안 된다. 연보에 대해서 미리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다. 부득이하여 억지로 하는 연보는 합당치 않다. 연보는 자원하여 자기 힘에 맞도록 해야 하고 또 자기 힘에 지나도록 하는 수도 있다(8:3).

연보를 약속할 때에 자기 재산의 정도대로 하나님 앞에 힘써 해야 한다. 성도가 다른 일에는 돈을 많이 쓰면서 연보를 적게 한다면 믿음과 양심을 바로 쓰는 것이 아니다. 또 이미 작정한 연보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바쳐야 하나님 앞에 옳다.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은 같기를 더디 하지 말고 힘닿는 대로 준비해서 빨리 갚아야 한다(신23:21).

二. 감사한 마음으로 연보하라(6-10)

.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하는 말이로다

하나님께 연보하는 것은 종자 심는 것과 같아서 적게 심은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사람은 많이 거둔다. 자기 힘을 다 기울여서 많이 한 사람은 하나님께 신령한 것을 많이 받는다. 성도가 연보하는 것은 믿음을 쓰는 것이요, 중생한 영혼의 역사를 쓰는 것이요, 선한 양심을 쓰는 것이며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쓰는 것이다. 연보하는 것은 신령한 것을 심는 것이므로 힘써 연보하는 자는 신령한 것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거두게 된다. 성도가 연보를 하지 않으면 신령한 것을 뿌리지 않았으므로 신령한 것을 받지 못한다. 또 연보할 때에 힘을 다 써서 하지 않고 자기 힘보다 적게 하면 그만큼 적게 심은 것이 되어 신령한 것도 적게 거둘 수밖에 없다. 성도가 물질을 아끼려고 하다가 신령한 것에 손해를 보게 되면 어리석은 일이다. 물질은 있다가도 없어지지만 신령한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성도가 인색한 마음으로 연보하는 것은 근심하는 마음과 아까운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며 이렇게 인색한 마음이나 억지로 연보하면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 연보할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즐거움으로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귀하게 받으신다.

.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을 위해서 심는 자는 하나님이 넘치도록 많이 주신다. 하나님을 위하여 즐거이 연보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신령한 은혜를 넘치게 하여 주시고 물질도 주신다. 그러므로 그 믿음과 물질로 모든 착한 일을 하기에 넉넉하게 하신다.

. 9:9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시편112:9절을 인용한 말씀이며 빈궁한 자에게 구제한 것은 하나님 앞에 의가 되어 영원히 있다는 뜻이다. 성도가 하나님께 바친 것은 의(義)이며 그 의가 영원토록 남아 있다. 가령 쌀 한 가마니를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했다고 하면 구제 받은 사람에게는 그 쌀을 먹는 것으로 그만이지만 준 사람은 그 의가 영원토록 남아 있다. 그러므로 주는 자가 복이 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물질을 바치면 믿음을 쓴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영혼이 자라나고 그 자라난 영혼은 영원히 있는 것이다.

. 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곡식을 심으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게 하여 심은 자에게 다음에도 심을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신다. 신령한 것을 심는 자에게도 하나님께서 신령한 것을 더욱 풍성하게 주어 의의 열매가 더 많이 맺히게 하여 주신다.

三.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1-15)

. 9: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물질을 많이 주었고 너그럽게 연보할 마음(믿음)도 부요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그럽게 연보를 하고 그 연보(물질)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다.

. 9: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봉사의 직무는 물질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가리킨다. 연보하여 물질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물질만 보충해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감사가 넘치게 된다. 연보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또 그 연보를 써서 하나님의 일이 잘되어 나가고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되면 그들이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이다.

. 9: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직무는 연보하는 일을 말한다. 남을 돕기 위하여 후(厚)하게 연보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증거요, 모든 사람을 섬기는 증거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 9:14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연보를 하여 다른 성도들을 도와주었으므로 그 도움을 받은 성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고 고린도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그들을 더욱 사모하였다. 그들이 후한 연보를 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극한 은혜이다.

. 9: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하나님께 연보하여 그 물질로 다른 성도들을 돕고 또 하나님의 일을 도와 나가는 일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할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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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후서10장

제 10 장 경 성

(대 지)

一. 바울의 관용과 담대(1-2)

二. 우리의 싸움(3-11)

三. 자랑과 칭찬(12-18)

(본문 강해)

一. 바울의 관용과 담대(1-2)

. 10:1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대면하면 겸비하고 편지로는 담대하다고 하였다. 10절에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거기에 대하여 변명한 것이다(11-12장).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바울 자신이 그렇게 강경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바울이 온유와 관용하는 마음으로 친히 권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속아서 바울을 오해하고 있었으나 바울은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이 자기를 비방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직접 공격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권하는 사실만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알려 주었다.

. 10:2 또한 우리를 육체대로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을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려는 것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어떤 사람들이 바울을 육체대로 행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육신에 속하여 자기중심이요, 욕심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라고 비방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의 거짓된 비방에 굴하지 않고 더욱 대담하였다.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대면할 때에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기를 원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고 믿음에 바로 선다면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그들을 대면 할 때에도 사랑과 온유로 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지 않고 바로 서지 아니하면 바울이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대하는 것처럼 담대하게(강경하게) 책망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 말한 것이다(고전4:21).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바울이 가서 매를 때릴 것이며 그들이 속히 회개하여 바로 서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二. 우리의 싸움(3-11)

. 10:3-4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본문의 "육체"란 연약한 인간성과 부패성을 가진 육체를 말한다. 바울이 이러한 육체를 가졌으나 육체의 방법, 즉 인간의 수단이나 방법으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였다.

견고한 진 마귀의 전진(戰陣)을 가리킨다. 비진리로 견고해진 것은 다 마귀의 견고한 진이다. 당시의 율법주의와 의식주의와 철학주의는 마귀의 견고한 진이었다.

.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모든 이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이란 철학과 자율주의적인 종교와 인본주의의 모든 사상 및 복음을 반대하는 모든 운동을 말한다. 바울이 이것들을 믿음으로 싸워서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만능의 역사로 파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했다

마귀의 세력은 인간의 이성과 이론에 맞도록 말하므로 보통 믿음 없는 사람들은 인본주의의 종교나 철학을 잘 따라간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만 전하였으며 이 복음에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는 능력이 나타났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만능이 역사함으로 인간적인 모든 것들을 다 깨뜨리고 이길 수 있다. 복음이 처음에는 약하고 미련하게 보이지만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고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택한 백성을 사로잡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한다. 이것이 복음의 승리이다.

. 10:6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린도 교인 가운데는 아직도 바울의 바른 교훈을 복종치 않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그 복종치 않는 자들을 가만히 놓아두고 바른 교훈을 계속 전하면서 그들이 복종하기를 기다렸다. 바울은 그들이 회개하고 온전히 복종할 때에는 끝까지 복종치 않는 모든 자들은 벌하려고 하였다.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과 끝까지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한 사람들은 책벌해야만 교회가 바로 선다. 잘못된 자가 많을 때에는 그들을 가만히 놓아두고 바른 교훈을 자꾸 가르쳐 나가면 복종하는 자가 점점 늘어나고 복종치 않는 자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때에 끝까지 복종치 않는 자들은 제거시켜도 괜찮다.

복종치 않는 세력이 많을 때에 책벌하면 도리어 교회에 큰 손해가 나기 쉽다. 환자를 수술하는 것은 좋지만 수술하다가 사람이 죽게 되면 수술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회개할 자들이 회개 할 때까지 기다려서 끝까지 복종치 않는 사람만 책벌하면 전체가 다 깨끗해지고 교회간 바로 된다. 이것이 교회에서 책벌하는 원리이다.

. 10: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외모만 보기 때문에 미혹을 받았다. 바울의 외모는 변변치 않고 약하며 말이 시원치 않고(10절) 눈병이 있어서 보기에 좋지 않았다(12:7; 갈4:13-14). 바울이 말을 잘하고 자기를 잘 나타내었다면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외모만 보면 누구나 바울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거짓 스승들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성령과 영권이 있으며 하나님이 사도로 세워서 친히 붙들고 역사하는 면이 있었다. 이것을 보지 못하고 외모만 보는 자는 영적 소경이요 우맹들이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이는 거짓 스승을 따르는 어떤 계층의 인물들을 상대로 한 말이다.

그들이 그리스도께 속한 줄 믿을진대 사도 바울은 더욱 그리스도께 속한 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그들을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 인정한 것은 그들이 바울의 전도를 받고 믿음에 섰던 자들이나 지금 일시적으로 미혹을 당했기 때문이다.

. 10: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주께서 주신 권세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사도권을 말한다. 사도에게는 교인들을 인도하고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 거짓 스승들은 자기 권세를 가지고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파괴한다. 그러나 사도의 권세는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세워 나가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하는 것은 그들을 파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회개시켜서 신앙을 바로 세워 나가려는 것이었다.

바울이 그 사도권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않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사도직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영광스러운 복음의 직분이며,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세워나가고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 나가는 직분이기 때문이다.

. 10:9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같이 생각지 않게 함이니

이 말씀은 바울이 앞(8절)에서 사도권을 지나치게 자랑하지 않는 이유를 말한 것이다. 앞에서 바울이 사도권에 대하여 지나치게 말하여도 부끄럽지 않겠다고 말하였으나 지나치게 자랑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울이 편지로 고린도 교인들을 놀라게 하려는 것같이 그들이 생각할까봐 그만 둔 것이다.

. 10:10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바울이 편지로는 중하고 힘이 있으나 실제로 대면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하였다. 바울이 편지로는 "너희가 회개하지 않으면 책벌한다"고 하지만 실제 대면해 보면 무능해서 아무 것도 못할 것이라고 비방하였다.

바울의 몸이 실제로 보잘 것 없었다고 한다. 바울이 허세를 부리거나 자기의 위풍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다. 또 그에게는 눈병이 있어서 사람들의 보기에 시원치 않았고 말하는 것도 순수한 진리만 전하고 인간의 지혜 있는 말이나 귀에 즐거운 말을 하지 않았다(2:17 ,4:2; 12:7; 고전 2:1, 4; 갈4:13-14 참조).

. 10:11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자가 어떠한 자이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자도 그와 같은 자인 줄 알라

거짓 스승들이 말하기를 바울이 편지로는 중하게 말하여 범죄자를 책벌하겠다고 말했으나 실제로 만나면 무능하여 아무 힘이 없고 아무처리도 못한다고 비방하기 때문에 바울이 그것에 대하여 답변하는 말이다. 바울이 편지에 말한 대로 그들에게 가서 대면할 때에도 꼭 그대로 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고린도 교인들이 미혹되면 바울에게서 은혜를 받을 수 없고 바울의 지도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비방하는 자들의 미혹을 물리치려고 말한 것이다.

三. 자랑과 칭찬(12-18)

. 10:12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비교하면서 스스로 칭찬하고 자랑한다. 자기 생각에 잘한 것 같으므로 잘한 줄 알고, 자기 생각에 칭찬할 만 하니까 스스로 칭찬하고 돌아다닌다. 그들의 표준은 자기이다.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누가복음16:15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표준은 주님이시다. 주께서 칭찬하시는 것이 참된 칭찬이요 참된 주의 종이다(18절). 주님이 보실 때에 어떻게 보시겠는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어떻게 나타나겠는가 항상 거기에 표준을 두고 두렵고 떨림으로 나가야 한다. 자꾸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고 높이면 그 사람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생긴다. 드다가 일어나서 스스로 자랑하므로 약 400명이 따라갔다(행5:36). 시몬이라는 사람이 자칭 큰 자라 하여 자기를 자랑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따라갔다(행8:9). 누구나 자기를 자랑하며 내세우면 사람들이 많이 따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도 망하고 따르는 사람도 망한다(살후2:12; 유1:16).

그러나 바울은 자기의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치 아니했다. 그러므로 바울이 생명의 길을 걸어갔다. 바울은 자기의 약한 것만 자랑해도 많은 성도가 따라 갔다. 자기를 자랑하고 높이는 사람을 따라가는 자들은 마귀의 미혹을 받은 사람들이다. 자기의 약한 것만 자랑하는 교역자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신령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교역자들은 언제나 자기의 약한 것을 깨닫고 예수님만 자랑해야 한다. 자기를 칭찬하는 자는 표준을 자기에게 두고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 스스로 표준을 세워 놓고 거기에 맞추어서 행동하며 그것을 자랑한다. 그러나 참된 표준은 성경이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인정받는 데에 두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칭찬 받을 일이 아닌 것을 자랑하는 자는 다 어리석은 자이다.

. 10:13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바울은 자기가 일한 분량 밖의 것을 자기가 한 것같이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분야에서 일하고 그 열매를 자기가 일한 성과로 삼은 것이다. 바울이 일한 성과가 고린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거짓 스승들은 남의 일한 것을 제가 한 것처럼 자기 것으로 여기고 자랑하였다. 이것은 절도요, 강도의 행위이다.

분량 밖의 자랑은 다 거짓이며 외식이다. 가령 자기가 일을 50% 했으면 50%만 자랑하고, 60%나 70%로 자랑하면 안 된다. 자기의 재산을 팔아 절반을 가져왔으면 절반 가져왔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이며 다 가져왔다고 하면 외식이다. 아나니아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다가 망했다.

. 10: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편지나 사람을 보낸 것은 지나치게(월권)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사도로서 고린도에 갈 권리가 있고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며 권면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한계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한계를 넘어서 남의 집(교회)에 들어가고 남의(바울이) 일해 놓은 것을 빼앗으려고 한다. 그들은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 악평하고 비방하여 교인들과 바울 사이를 이간 붙여 교인들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 10: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바울은 거짓 스승들처럼 남이 수고한 것을 가지고 자기가 한 것같이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는다. 바울이 원하는 바는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이 자라나서 바울에게 주신 은혜와 사도직의 영광과 권위를 바로 깨달아서 바울이 하는 일이 더욱 발전되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고린도 교회가 은혜를 받아 자라날 수가 있고 바울이 다른 곳에서도 복음을 더욱 힘있게 전하게 될 것이다.

. 10:16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서 위대하여 지기를 바란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처럼 남의 한계 안에서 남이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고린도 교회의 도움을 받아 그 지경을 넘어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 함이었다.

.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은

①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다.

②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를 자랑하는 것이다.

③ 하나님의 말씀만 말하는 것이다.

④ 주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자랑하는 것이다.

⑤ 주님이 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다.

. 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주께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나 참된 주의 종들은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주께서 칭찬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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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후서11장

제 11 장 열 심

(대 지)

一. 용 납(1-2)

二. 미혹 받지 말 것(3-4)

三. 바울이 자기를 변호함(5-12)

四. 사단의 일꾼(13-15)

五. 바울의 봉사와 수고에 대한 자랑(16-27)

六. 바울이 약한 것을 자랑함(28-33)

(본문 강해)

一. 용 납(1-2)

. 11:1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보편적으로는 자기를 자랑하는 일이 어리석은 일이다. 바울이 그것을 알면서도 부득불 자기 자랑을 하였다. 그 이유는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스승들의 비방하는 말을 듣고 바울을 무시하고 멀리하며 바울이 전한 진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을 사랑하여 그들의 신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자기 자랑을 아니할 수 없어서 자랑하면서 그것을 용납하고 잘 받아 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신망에 유익을 주기 위함이었다.

.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 주어서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만 사랑하고 신앙의 정조를 지켜 점점 자라나고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흠과 티가 없이 재림하시는 그리스도 앞에 서게 하고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열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세상에 보내시고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는 하나님이 쉬지 않고 역사하신다.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이 열심으로 일하며 권면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도 이 열심으로 일하였다(렘20:9). 내가 너희를 청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교인들은 정결한 처녀이고 그리스도는 남편이시다. 성경에서는 종종 성도들을 처녀로,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비유한다(마25:6; 요3:29; 엡5:27-33, 계19:7-9). 바울이 중매자로서 교인들을 정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바치기를 힘썼다. 교역자는 교인들을 예수님께 중매해 주고 자기는 교인들에게 아무 대접이나 환영이나 영광이나 유익을 보려고 하면 안 된다. 세례 요한은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이다 자기를 버리고 예수께로 갈 때에 그것을 기뻐하면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였다(요3:30). 이것이 주의 참 종의 표본이다. 성도가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정조를 지킨 십 사만 사천 명이 시온산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계14:3-4). 정조는 생명보다 귀하다. 그러므로 생명을 내놓고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한다. 모든 순교자가 신앙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죽은 것이다.

二 . 미혹받지 말 것(3-4)

. 10: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하와를 미혹한 마귀가 오늘날에도 성도를 미혹시키고 있다. 마귀가 에덴 동산에서는 뱀을 통해서 하와를 미혹했으나 고린도 교회에서는 거짓 선지자와 비방하는 무리를 통하여 교인들을 미혹했다. 거짓 선지자들이 참된 하나님의 일꾼인 것처럼 가장하여 교인들을 대단히 사랑하고 위해주는 척하여 바울과 교인사이를 이간 붙이고 바울이 전한 참 진리를 떠나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하고 깨끗한 신앙에서 떠났고 바울에게 배운 참된 진리를 떠나고 영적 신앙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것은 참으로 섭섭하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성도가 마귀의 미혹을 받으면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난다. 마귀가 미혹할 때에 천사처럼 가장하기도 하고(14절), 그리스도의 사도처럼 가장하기도 한다(13절). 마귀가 교인들에게 바울의 단점을 말해 주면서 교인들을 바울과 이간 붙이고 격동시켜 바울이 하는 구원운동을 훼방하였다. 마귀가 교인들을 높여 주고 칭찬해 주면서 미혹시켜 자기를 따르게 한 것이다. 성도가 마귀의 미혹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① 신앙양심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가 신앙양심을 날카롭게 쓰고 진리에 서서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마귀의 미혹을 받지 않는다.

②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살후2:10). 마귀도 이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여 신자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외부적인 면만 보면 마귀에게 속아 미혹을 받게 된다.

성도가 미혹을 받는 것은 일종의 심판이요 벌이다(살후2:11-12). 성도가 신앙양심과 말씀을 양보하면 신앙의 정절을 지키지 못한다. 말씀 중에서도 시대적으로 꼭 지켜야 할 요긴한 말씀이 있다. 일본 정권이 신사 참배를 강요할 때는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말씀이 시대적으로 지켜야 할 말씀이었다. 오늘날에는 제4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이 무너져 가고 있다. 이 말씀이 이 시대에 우리 성도가 지켜야 할 요긴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주일을 지키지 못할 만한 시험이 올 때에는 주일을 지켜야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것이다. 큰 시험이 들어올 때에 그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면 신앙의 정절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성도가 비진리나 혼합 주의나 인본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그대로 지켜나가는 것이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것이다.

사데교회 전체가 다 죽었으나 그 중에 몇 명만은 횐 옷을 더럽히지 않고 정절을 지켰다고 하였다(계3:4).

.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한 점은 세 가지다.

① 거짓 선지자가 다른 예수를 전할 때에 용납하고 받았다

② 다른 영을 받게 할 때에 용납하고 받았다.

③ 다른 복음을 전할 때에 용납하고 받았다. 다른 예수 거짓 스승들이 전하는 예수이다. 그들은 예수를 전할 때 예수를 바로 알지 못하고 전했다. 다른 영 성령 같으나 사이비한 영의 역사이며 그릇된 신비주의와 주관적인 감정주의이다. 다른 복음 복음은 복음인데 조금 다른 것이다. 거짓 스승들이 전혀 다른 예수나 전혀 그릇된 도를 전하며 전혀 복음이 아닌 것을 전했다면 교인들이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전하고 복음이라고 하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이 용납하고 받았다. 이것이 마귀가 미혹하는 방법이다. 다른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갈1:8-9). 참된 진리는 하나인데 그것을 변경시켜 놓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고 요란케 하는 일이며 하나님께 저주받는 일이다. 다른 영,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전해 줄 때에 그것을 용납하지 말고 거기에서 떠나야 한다. 예수를 바로 깨달아 참 복음 하나만 믿고 성령의 인도만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용납하면 신앙의 정절을 버린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분별력이 없어서 마귀의 미혹을 받아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잘 용납하였다. 그러나 복음이 아니면 아니라고 해서 끊어 버리고 거기에서 떠나야 성도가 신앙의 정절을 지킬 수 있다

三. 바울이 자기를 변호함(5-12)

. 11:5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지극히 큰 사도들은 베드로나 요한과 같은 사도들을 말한다. 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는 줄 생각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바울이 교만한 마음으로 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자기를 부르시고 계시한 바가 있기 때문에 계시(진리)를 깨달은 면에 있어서 다른 사도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말이다(갈1:11-17 참조).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 11:6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말에는 졸하나 바울이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은 면이 많은데 그것을 말로는 다 나타낼 수 없는 고로 말에는 졸하다고 한 것이다. 말로는 다 형용치 못하고 표현력이 부족하나 진리의 지식에는 부족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바울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진리를 모든 일로 나타내었다.

. 11: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천막을 만들어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하고, 다른 교회에서 보내준 물질을 받아쓰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에서는 사례(돈)를 받지 않고 전도하였다. 이것을 거짓 선지자들이 비방하는 구실로 삼았다. 즉 바울이 돈을 받지 않고 전도한 것은 교인들을 속이려는 것이며 교인들에게 인심을 얻은 후에 모두 빼앗으려는 간교한 수단이라고 비방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내가 너희를 도와주느라고 너희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돈을 안 받고 스스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것이 너희에게 죄를 지은 것이냐"고 책망하였다. 그러므로 도와주려고 한 선한 일을 죄로 생각지 말라고 한 것이다.

. 11: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바울이 다른 여러 교회에서는 돈을 받았다고 하였다. 교역자가 교회에서 사례금을 받는 것은 죄가 아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는 사례를 받지 않았으나 다른 여러 교회에서는 사례를 받아 생활하였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일할 때에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것이 마땅한 것인데 다른 교회에서 주는 돈으로 생활한 것이 다른 교회에 대하여는 탈취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 11:9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페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용도가 부족하되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바울은 생활비가 부족해도 교인들에게 도와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일을 하면서 마게도냐에서 보내준 돈을 가지고 생활하였다.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바울이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하려고 전에도 조심하였으나 또 조심하리라고 하였다. 교역자가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면 그 교인들을 영적으로 인도할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교역자가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면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고 교인들도 그 짐을 무겁게 생각하여 믿음으로 하지 못하고 믿음에 서지 못한다. 또 그 일로 인하여 교인 중에 시험에 드는 자도 많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이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조심하였다.

. 11: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고린도 지방에서 바울을 비방하는 무리가 아무리 많을지라도 바울은 자신 속에 그리스도의 진실과 그리스도의 진리가 있기 때문에 그 자랑이 아가야 지방에서 막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의 자랑은 복음 진리를 가리키고 아가야 지방은 고린도를 포함한 그 부근 지방을 말한다. 비방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고 바울을 나쁜 사람으로 선전해도 하나님의 진리가 바울에게 있으므로 고린도 지방뿐 아니라 그 부근의 모든 지방까지 그 진리의 빛이 막히지 않고 비쳐 나간다. 아무리 혹암이 가득해도 빛만 있으면 그 빛이 널리 퍼져 나가게 된다. 비방하는 사람이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빛이 속에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이다. 자기 속에 진실과 진리만 있으면 그 진리가 반드시 전파되어 나가게 되고 그 진실도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

. 11:11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요(사례금)를 받지 않은 것은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요 사랑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신다고 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이 아시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 11:12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바울이 자급 전도하던 것을 또 하겠다고 하였다. 기회를 찾는 자들은 거짓 스승들, 즉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이다. 바울이 전에는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금을 받지 않고 전도하다가 후에는 받는다고 하면 비방하는 자들이 그 기회를 타서 바울을 함정에 빠뜨리고 바울이 전에 요를 받지 않은 것은 술책이었다고 비방할 것이다. 비방하는 사람들 때문에 잘하던 것을 고쳐 놓으면 마귀가 오히려 더 비방한다. 옳은 것은 끝까지 해 나가야지 다른 사람들이 비방한다고 물러서면 비방하는 사람들이 더욱 물고 찢어서 아주 거꾸러뜨리고 발로 밟을 것이다.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 바울이 계속 자급 전도를 하므로 비방하는 사람들도 바울과 같이 고린도 교회에서 요(돈)를 받지 않고 진실한 일꾼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四. 사단의 일꾼 (13-15)

. 11: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궤휼의 역꾼은 속이는 일꾼이라는 뜻이다. 거짓 스승들은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여 교인들에게 인기를 끌어 자기의 이(利)를 얻으려고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한 거짓 사도로서 교인들을 속이는 자들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가장하여 나오기 때문에 교인들이 많이 속는다. 그러나 그들의 교훈이나 열매를 보아서 그들이 거짓 스승인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의 교훈이나 열매는 성경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마태복음24:4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세에는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다. 거짓 스승들이 어느 시대에나 많이 있다. 오늘날도 거짓 부흥사들은 "돈을 많이 내야 큰 축복을 해 주고 자기가 축복해 주면 큰 부자가 된다"고 하며 사람을 속이고 공갈(恐喝)하는 일이 많이 있다.

.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 하나니

사단도 하나님의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난다. 마귀도 빛에 속한 천사와 같이 나타내는 지혜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속는다. 이상한 일이 아니라 이상하다고 놀랄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마귀가 늘 그런 수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귀에게 속지 않으려면 욕심과 허영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와 영적 교통을 하며 신앙양심을 날카롭게 써서 아닌 것은 즉시로 떠나고 옳은 것은 즉시 따라가야 한다.

. 11: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사단의 일꾼은 거짓 선지자요 마귀의 주장을 받는 자들이다. 그들이 의의 일꾼, 즉 하나님의 일꾼으로 가장하고 나타나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성도들을 미혹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많이 속지만 그들의 열매를 보면 그들이 거짓 선지자임을 알 수 있다. 포도나무에서 무화과 열매를 딸 수 없고 가시나무에서 포도 열매를 딸 수 없다. 하나님의 참 종이 아니면 성경에 맞지 않는 열매가 하나씩 나타나게 되고, 그 열매를 보아 사단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마귀는 불안을 느끼게 하고 평안한 마음을 빼앗는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마음이 화평하고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고 생명력이 있다.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하나님은 사단의 일꾼들의 잘못된 것을 드러내고 반드시 심판하신다. 마귀가 처음에는 어느 정도 속이지만 얼마 후에는 그 거짓된 열매가 나타나기 때문에 그 행위대로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 얀네와 얌브레가 자기들은 옳고 모세가 틀렸다고 대적하므로 많은 사람이 미혹되었으나 결국 하나님이 저희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심판하셨다(딤후3:8-9). 성도가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언제든지 성경 말씀에 확실히 서 있어야 하고 신앙양심을 써서 참이 아닌 것은 떠나야 한다.

五. 바울의 봉사와 수고에 대한 자랑(16-27)

. 11: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누구든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줄 알면서도 바울이 부득이 자기 자랑을 조금 할 필요가 있어서 자랑하려고 하지만 자기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고 하였다. 이해가 안되더라도 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받아서 조금 자랑하는 것을 용납해 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바울이 겸손하여 낮아지는 태도이며 거짓 선지자들의 비방하는 말을 듣고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안타까워하며 교인들을 바로 세우려고 애타는 심정으로 말한 것이다.

. 11: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바울이 하는 말이 영감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바울이 자기를 조금 자랑하는 것은 주님을 본받아 하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울이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부득불 조금 자랑한다고 말한 것이다.

. 11:18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거짓 스승들이 자기들의 문벌이나 학식, 가문이나 종교의식과 같은 세상에 속하고 외부적인 것을 자랑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울도 그러한 자랑을 조금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거짓선지자가 너무 바울을 못된 사람으로 비방하기 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바울을 오해하고 있으므로 그 오해를 풀어 주려고 부득불 육체를 따라 자랑해야겠다는 것이다.

. 11: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이 말은 풍자적(諷刺的)으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참 종을 비방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인데 너희가 그들을 용납한 것은 마치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들을 용납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잘못된 것이라는 뜻이다.

. 11:20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선지자들을 잘 용납하였다. 거짓 선지자들은 고린도 교인들을 종으로 삼고, 잡아먹고, 사로잡고, 자고하다 하고 뺨을 치는 것처럼 모욕하였다. 종을 삼거나 거짓 선지자들은 교인들을 율법의 종으로 삼기도 하고 혹은 자기의 종으로 삼는다. 잡아 먹거나 거짓 선지자는 교묘한 수단과 방법으로 교인들을 미혹시키고 꾀어 재산을 다 빼앗아 먹는다. 사로 잡거나 거짓 선지자들은 교인들을 사로잡아 자기의 이용물로 삼고 모든 것을 빼앗는다. 자고하다 하거나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를 사도의 위치에까지 높이고 있다. 뺨을 칠지라도 업신여김이 심하다는 뜻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아 많은 피해를 입고 가련한 상태에 처한 것을 바울이 말해 주고 그 거짓 선지자를 용납한 고린도 교회를 책망한 것이다.

. 11:21 우리가 약한 것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우리가 약한 것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거짓 선지자는 자기를 높이고 자기의 강한 것을 자랑하나 바울은 항상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였다. 자기의 약한 것을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바울이 항상 자기를 낮추어 말했다. 그러나 누가 담대히 자랑하면 나도 어리석은 말 같지만 담대히 자랑하겠다고 바울이 말한다.

. 11:22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히브리인 건너 온 자라는 의미인데 아브라함이 유브라데강을 건너 온 후에 그에게 붙여진 이름으로써(창14:13) 아브라함의 자손, 즉 이스라엘 민족을 뜻한다. 이스라엘인 신정국가의 국민을 뜻한다(롬9:4). 아브라함의 씨 메시야의 약속을 받은 자손을 뜻한다.

. 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바울이 자기가 정신없는 말을 한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말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바울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인 줄을 알면서 정신없는 말 같지만 자기가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자랑하나 바울은 그 이상의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말한 것이다.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바울이 주를 위해 수고를 넘치도록 하였으나 모든 고난을 믿음으로 달게 받았다.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바울이 갇힌 옥은 ① 빌립보 감옥 ② 예루살렘 감옥 ③ 가이사랴 감옥 ④ 로마 감옥 등이다.

.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사람을 형벌할 때 사십을 넘게 때리면 죄가 된다(신25:1-3). 사십 번까지 때리려다가 잘못하여 하나를 더 때리면 죄가 되겠으므로 미리 하나를 감하여 서른 아흡 번씩 때리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이 최고 태형이다. 이 최고 태형을 바울이 다섯 번이나 맞았다.

.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이것은 로마의 태형을 가리킨다. 그 한 번은 빌립보에서 맞았다(행16:22-23). 한 번 돌로 맞고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이다(행14:19). 세 번 파선 파선될 때 하나님이 세 번이나 죽음에서 건져 주셨다.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기 "깊음"이라는 것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바다)을 가리키며 깊은 물 속이 아니다.

. 11:26-27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이 삼십 년간 전도함에 있어서 모든 곳에서 모든 방면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위험을 당하면서도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희생하고 극기하면서 일하였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남이 수고한 것을 거저 먹으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을 바울과 비교해 보면 바울의 진가가 판별될 것이다.

六. 바울이 약한 것을 자랑함(28-33)

. 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이 여러 가지 육신의 고난 외에도 날마다 교인들을 위해서 염려하는 심적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컸었다.

. 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바울은 교인들의 믿음이 약해지면 자신이 약해진 것처럼 애를 쓰고 교인 한 사람이 실족하면 자기가 실족한 것처럼 애타하는 심적 고통을 많이 당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그것을 자랑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바울이 어리석은 자처럼 조금 자랑했으나 그것은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 때문에 교인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어서 부득불 조금 자랑한 것뿐이고 바울 자신으로서는 약한 것밖에 자랑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바울과 같이 우리도 복음을 위하여 고난의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겠다. 바울이 자원해서 그러한 고난을 당하였다. 바울이 만일 가만히 있었다면 그러한 고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주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전도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고난을 당하였다. 성도가 가만히 있어서 안일주의에 빠지면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한다. 성도가 적극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바쳐서 구원 운동을 해야 한다. 고난이 있어도 참고 십자가가 와도 그 십자가를 지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교인들은 이렇게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며 가르치는 사람을 알아주고 배나 더 존경해야 한다. 교역자는 교회를 위해서 수고했다는 자세(藉勢)를 하지 말고 언제나 자기의 약한 것과 부족한 것만 자랑하고 복음만 자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11: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 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바울이 다메섹에서 당한 사건을 들어 자기의 당한 고난과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으로 끝마치려고 한다(32-33절). 바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할 분은 주 예수의 아버지이시며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사람의 증거보다 하나님의 증거는 영원히 참된 것이다.

. 11:32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아레다왕 아라비아 사람으로 헤롯 안디바의 양자이며 일시 다메섹 왕이 되었었다. 그 방백이 바울을 잡으려고 유대인들을 시켜 다메섹 성을 지키고 있었다(행9:24-25),

. 11:33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바울이 성문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내려가 그 성에서 벗어났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광주리 도망꾼이다. 이것이 바울의 약한 면이다. 바울은 이렇게 주를 위해 고난을 수없이 당하고 수고를 많이 했으나 그것은 주님의 은혜로 한 것뿐이고, 하나님이 친히 한 것뿐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바울이 자기는 언제나 약한 자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였다. 바울은 자기의 약한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위신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지 않았다. 그것이 예수만 자랑하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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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후서12장

제 12 장 계 시(啓示)

(대 지)

一. 바울이 삼층천에 감(1-6)

二. 가시를 주심(7-8)

三. 약한 것을 자랑할 것(9-10)

四. 바울이 다른 사도보다 부족함이 없다고 함(11-13)

五.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요 너희이다(14-18)

六. 두려워 하라(19-21)

(본문 강해)

一. 삼층천에 감(1-6)

. 12: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바울이 자신의 명예를 구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자신에 관한 것을 자랑하는 것은 자기에게 무익한 일이다. 그런데 바울이 자기에 대한 비방이 너무 심하여 교인들이 자기를 오해하기 때문에 그 교인들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바로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부득불 자랑하는 것이다. 환상은 현실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느끼는 상념이다. 계시는 가리워졌던 것을 열어 보여 주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었던 환상과 계시는 성경에 기록하기 위해서 주신 표준계시이다. 표준계시는 사도와 그 후계자까지 있었고 그 후에는 종결되었다. 오늘날 꿈이나 환상, 묵시 받는 것은 성경에 맞지 않으면 전부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것을 믿으면 마귀의 시험에 빠진다.

.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셋째 하늘은 신령한 하늘, 즉 영계(靈界)를 가리키는데 그곳이 낙원(樂園)이다(4절). 첫째 하늘은 물질계, 둘째 하늘은 정신계를 가리킨다. 이 물질계와 정신계를 초월하여 그 배후에 영계가 있다. 이 낙원은 분명히 한 장소인 것이 분명하다. 신비주의자들이 입신했다고 하는 것과 바울이 삼층천에 간 것과는 다르며 그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바울은 주체가 있었다. 바울이 삼층천에 간 다음에도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입신은 주체성이 없고 꿈꾸는 것처럼 몽롱한 상태에서 보는 것이다.

둘째, 바울은 객관적으로 끌리워갔던 것이고 신비주의자들은 주관적으로 느낀 현상이다.

셋째, 바울은 피동적으로 끌리워갔으나 신비주의자들은 능동적으로 자기가 힘써서 자기 힘이나 혹은 기술적으로 한 것이다.

넷째, 바울은 스스로 원해서 된 것이 아니고 우연히 된 것이나 신비주의자들은 자기가 원하여 소원대로 되어진 것이다.

다섯째, 바울은 십사년 전에 한번만 갔으나 신비주의자들은 입신하기를 원하기만 하면 자주자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시는 한번만 주어 사용하는 것이지 자주자주 되풀이하지 않는다.

여섯째, 바울은 자랑하지 않으려고 힘을 많이 썼고 십 사년 만에 처음으로 부득불 자랑하였으나 신비주의자들은 그것을 늘 자랑하고 그것으로 한몫 보려고 한다.

일곱째, 바울이 삼층천에 간 것은 내용이 성경에 맞는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은 그 내용이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이 많다. 바울이 삼층천에 간 것은 순전히 하나님에게 끌리워 간 것이며 하나님께서 후대의 여러 성도에게 이 비밀을 알게 해 주려고 표준계시로 준 것이다.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하나님이 아시면 더 알아볼 필요가 없다. 사람은 아는데 까지만 알고 그 이상의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 이상의 것을 알려고 하면 월권 행동이다. 성도가 월권 행동을 하게 되면 진리에서 떠나게 되어 마귀의 미혹을 받게 된다.

. 12: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바울이 셋째 하늘에 끌려갔던 사람을 자기라고 밝히지 않고 내가 이런 사람을 안다고 하였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고 자기가 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이 삼층천에 갔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에 이용된 것이므로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느라고 "그가" 했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에 이용당할 때의 그 사람과 현재의 바울은 같지 않다. 하나님의 역사에 이용당할 때는 바울이 신령한 사람과 거룩한 사람으로 순전히 하나님에게 붙들려서 영적으로 이용당한 것이다. 그것은 바울의 전체가 아니다. 그 외에 바울에게는 약한 면과 부족한 면이 많이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가" 갔다고 한 것이다. 부족한 바울이지만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만들어 이용하신 것뿐이며 바울 자신이 자격이 있거나 할만해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하였다(고전15:10).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하늘나라의 상태와 생활은 너무 신령하고 신기하기 때문에 이 세상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 12: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바울이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께 이용된 때의 사람을 위해서는 자랑할 만하다고 하였다. 그것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한 것이므로 하나님을 자랑하기 위하여 자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바울이 자기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바울은 교만하지 않으려고 항상 힘을 많이 썼다.

. 12: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바울이 삼층천에 가서 본 것을 다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바울을 사실 이상으로 생각하고 숭배할까봐 그렇게 한 것이다. 바울이 삼층천에 가서 체험한 사실을 그대로 말해도 본인에게는 괜찮다(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인들이 듣고 지나치게 생각하면 그것이 허위(虛僞)가 되므로 교인들의 신앙이 진리에서 떠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떠나게 되어 마귀의 인도를 받게 될 것이다. 사실이라고 하여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고전10:23). 옳은 것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없을 때는 그만 두어야 한다.

二. 가시를 주심(7-8)

.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의 육체에 가시를 주어 바울이 찌르는 듯한 고통을 당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랑하여 자고하지 않게 하려고 주신 것이다. 가시는 바울에게 준 눈병이다. 바울에게 눈병이 있어서 편지를 쓸 때에도 다른 사람에게 대서를 하게 하고 편지 마지막에 큰 글자로 몇 자씩 친필로 쓰곤 하였다(고전16:21; 갈6:11). 그러므로 갈라디아 교인들이 할 수만 있으면 자기들의 눈이라도 빼어서 바울에게 주려고 하였다(갈4:15). 바울에게 눈병이 있어서 잘 보지 못했기 때문에 교인들이 그렇게 까지 생각한 것이다. 바울의 눈병은 교인들에게 시험이 되기도 했고(갈4:14), 비방거리가 되기도 했으며 복음을 전하고 편지를 쓰는데도 막대한 지장이 있었을 것이다. 바울에게 눈병이 없었다면 그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에게 가시가 있어야 낮아지고 교만하지 않고 망하지 않겠으므로 하나님이 바울을 사랑하여 가시를 준 것이다.

사단의 사자 바울이 과거에 사단의 종노릇하며 성도들을 핍박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의 빛을 보고 눈이 어두워졌을 때 얻은 눈병이므로(행9:.8-9, 그 후에 다시 보게 되었으나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닌 듯함) 사단의 사자라고 하였다. 이 가시는 하나님이 허락해서 생긴 것이지만 그것을 집행하는 자는 마귀이다. 욥의 고난도 하나님이 허락은 하셨으나 실제로 재산을 없애고 몸에 병들게 하고 자녀들을 죽인 것은 마귀가 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준 가시요 또 사단의 사자이다. 하나님이 가시를 줄 때에 그 사람에게 제일 알맞은 것으로 정도에 맞추어 주신다. 성도에게는 누구나 가시가 다 있다. 성도에게 가시가 없으면 연단을 받지 못하고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가시를 우리가 감사히 받아야 한다. 환난도 은혜로 준 것이다(빌1:29).

. 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은 가시가 너무 자기를 찌르므로 고난이 많고 하나님의 일에도 지장이 많아 가시를 없애달라고 하나님 앞에 특별기도를 세 번이나 하였다.

三. 약한 것을 자랑할 것(9-10)

.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바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가시를 없애주지 않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였다. 가시 때문이 바울이 약해지고 일을 하는데 지장이 많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부터 온전히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성도가 약할 때에 자기가 낮아지고 죽어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며 다른 사람을 살려내고 하나님의 일이 성공되어 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말씀을 듣고 바울이 기뻐서 이제는 자기의 약한 것들을 자랑할 마음이 생겼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시를 주시는 것은 우리를 낮추시고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여 그의 능력이 우리에게 머물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가시를 주신 것을 감사하며 기뻐하고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하였다. 바울은 결국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한 것이다.

.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약한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문다는 것을 바울이 깨닫고 자기의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였다.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당할 때에 자기의 위신과 재물과 명예와 영광이 다 깨져나가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예수님만 바라보게 되므로 예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와서 머물게 된다. 가시로 인하여 자기가 다 깨어지고 약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친히 붙들고 일을 하신다. 모세가 육신적으로 강할 때에는 사람을 죽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했으나 미디안 광야 사십년 동안에 자기가 다 깨어지고 약해졌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 그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성도가 연약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이 그 사람을 더욱 귀히 여기며 능력을 입혀 주신다. 그러나 성도가 자기의 수단이나 완력, 지혜, 재주로 무엇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떠나게 된다.

四. 바울이 다른 사도보다 부족함이 없다고 함(11-13)

. 12: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바울이 지금까지 자기 자랑을 많이 했으나 그 책임은 바울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스승을 용납하고 참 사도인 바울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바울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겸손히 말하면서도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칭찬 곧 추천(인정)을 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가 바울 사도의 일한 열매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면과 말씀을 깨달은 면에 있어서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다. 지극히 큰 사도는 베드로와 요한 같은 대(大) 사도를 말한다.

. 12:12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모든 참음 자기를 희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참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워 나가는데는 많은 환난과 핍박과 고난이 있다. 이러한 모든 어려움을 참으면서 계속해 나가는 것이 참된 일꾼의 표이다. 표적과 기사 표적은 영적 생명과 구원역사의 표로 나타난 것이고, 기사는 그 역사가 신적 능력으로 경이적(驚異的)인 것을 가리킨다. 능력 바울은 참 사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전4:20).

. 12: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

바울이 다른 교회에서는 돈을 받았는데 고린도 교회에서는 돈을 받지 않았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 일 외에는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대한 것이 하나도 없다.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 바울이 다른 교회에서는 사례금을 받고 고린도 교회에서는 받지 않는 것이 공평치 않은 것이며 바울이 이것을 용납해 달라고 말하였다.

五.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요 너희이다(14-18)

. 12:14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바울이 이제 세 번째로 고린도 교회에 가려고 하는데 이번에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하였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는 것은 재물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고 교인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어디까지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신앙이 바로 되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서 권면하는 것이다. 여기에 바울의 사랑이 나타나 있다

. 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의 영혼을 사랑하여 요(料)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자기 재산을 다 허비했으며 자기 자신까지 희생하였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희생할 수 있다.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고린도 교인들이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바울을 오해하여 바울에게서 멀어졌다. 교역자의 사랑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오해하면 그 교역자를 의심하게 되고 미워하게 되고 멀어지게 된다.

. 12:16-17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 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돈을 받지 않은 것은 형식뿐이고 공교한 수단으로 고린도 교인들의 재물을 취하고 교인들을 자기 종으로 삼으려고 계획적으론 그렇게 한 것이라고 비방하였다. 거기에 미혹된 교인들은 "바울이 요를 받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돈을 받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사서 우리를 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내가 보낸 자 중에 누구를 통해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고 반문하였다.

. 12: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바울과 디도는 성령으로 동일한 복음을 동일한 방편으로 동일 한 보조를 취하면서 전하였다. 동역자들이 동일한 보조를 취해 나가야 진리가 서 나가고 마귀의 훼방을 막을 수 있다. 만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돈을 받지 않았는데 바울이 보낸 디도가 돈을 받았다고 하면 바울이 수단꾼이어서 자기는 돈을 받지 않는 척하고 나중에 자기의 사람을 보내어 다 받아간다고 비방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과 디도가 똑 같이 돈을 받지 않고 동일한 보조 를 취하였다.

六. 두려워 하라(19-21)

. 12:19 이때까지 우리가 우리를 너희에게 변명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바울이 지금까지 말한 것을 보면 자기를 변명하므로 교인들의 호의를 사서 인기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바울은 자기를 높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전4:3-4 참조). 바울이 한 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의 인도를 받아 한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참말을 하였다. 바울은 조금도 허위나 가면이 없었다. 바울이 교인들을 사랑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고 교인들의 신앙을 바로 세우며 교인들을 도와주려는 심정에서 말한 것이다.

. 12: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갈 때에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원치 않는 상태(회개하지 않은 상태)에 있을까봐 염려하고 두려워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말씀에 굳게 서서 믿음을 잘 지키기를 원하는데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믿음을 쓰지 못하는 것을 가서 보게 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또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 사도가 자기들을 사랑하고 위로해 주기를 바라는데 바울이 가서 그들의 바로 되지 못한 것을 보고 책망하면 그들이 섭섭할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고 바로서면 바울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인자하고 사랑이 많은 바울이 될 것이며 그들은 바울이 원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전서4:21에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 말한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고 바로 서면 바울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갈 것이고 그들이 여전히 죄를 짓고 싸우면 매를 가지고 나아갈 것이다. 그것은 바울과 고린도 교회가 서로 원치 않는 상태이므로 바울이 그렇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만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한 것과 어지러운 일이 있으면 바울이 고린도에 가기 전에 속히 회개하고 바로 서라고 말한 것이다.

. 12: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말(편지로 권면 한 말)을 순종치 않는 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울을 낮추시는 것이며 바울이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한다고 하였다. 과거에 고린도 교회에 더러운 것과 음란과 호색하는 죄가 있었으므로 회개하라고 경책했는데 그것을 회개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바울이 근심하고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바울 자신이 낮아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교회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바울이 염려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고 믿음에 바로 서서 이 다음에 만날 때에 서로 거룩한 믿음 안에서 사랑과 기쁨으로 반가이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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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고린후서13장

제 13 장 문 안

(대 지)

一. 믿음에 있는가 확증하라(1-6)

二. 온전케 되기를 원함(7-10)

三. 문안 축복(11-13)

(본문 강해)

一. 믿음에 있는가 확증하라(1-6)

. 13: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니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고린도 교회의 범죄자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바울이 다시 갈 때에(세 번째 갈 때에) 처리하겠다고 엄중히 경고하였다.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바울이 범죄자들을 혼자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고 고린도 교회의 유력한 사람들의 증거를 얻어서 확정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바울이 성경대로 바로 하는 처사이다 .

잠언18:17에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고 하였다. 쌍방의 말을 다 들어보아야 사건을 바르게 판결할 수 있다. 교회에서 죄를 다스릴 때에도 반드시 증인이 있어야 한다. 형제가 범죄할 경우 처음에는 혼자 있을 때에 찾아가 권면하고 그 권면을 듣지 않으면 두 세 증인을 데리고 가서 말마다 증참(證參)케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였다(마18:15-17). 또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라고 하였다(딤전5: 19). 장로나 목사에 대한 송사는 반드시 두 세 증인이 있어서 확실할 때에 신중하게 처리하여야 한다.

. 13: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바울이 그전에도 범죄자들을 용서하지 않았으며 이번에도 가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므로 미리 준비해서 책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범죄한 후 가만히 있다가 벌받는 것보다 이러한 책망을 받고 미리 회개하는 것이 낫다. 누구든지 죄를 자복하면 하나님 앞에 불쌍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죄를 자복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용서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죄를 벌할 것이다(잠28:13). 그러므로 죄를 숨기지 않고 빨리 자복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람들도 그를 불쌍히 여긴다.

. 13:3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께서 바울의 속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구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바울을 의심하여 참 사도인 증거를 구하였으나 바울이 사도된 표는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다(12:12).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알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약한 것 같으나 그들을 향해서 강하게 나타낼 것이다. 강하게 나타낸다는 것은 강하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며 하나님께서 지금은 가만히 놓아두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강하게 다스릴 것이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이 범죄할 때에도 일 백 이십 년 동안 가만히 놓아두었다가 일 백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 홍수를 내려서 강하게 징벌하셨다.

사람들이 죄를 범하고도 하나님의 징계가 당장 나타나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없는 것 같고 약한 것 같으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얼마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며 기다리시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 성령께서 양심으로 책망하고, 성경말씀으로 책망하며, 주의 종들을 통하여 책망하면서 일정한 기간을 기다리시다가 그 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강하게 나타나셔서 그 사람을 징계하신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없는 것 같을 지라도 말씀이 강하게 나타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에는 진리의 권세가 나타나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심판하신다(계16:8 참조).

요한복음12:48에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믿는 사람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신다. 외부적으로 강력한 심판이 나타나기 전에 속에서 죄를 책망하고 가책을 느끼게 할 때에 빨리 회개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여 말씀대로 걸어 나가게 하고 죄를 끊어 버리게 하신다.

.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지시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악한 자들 앞에서는 약하게 죽으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셨다. 성도들도 악한 자들 앞에서는 혈육으로 대적하지 않으므로 약한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 안에서 강하게 산다. 예수님이 악한 자들 앞에서 얼마든지 대항할 수 있고 천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다 죽일 수도 있었으나 약한 자처럼 죽임을 당하셨다.

성도들도 죄를 짓는데 대해서는 약하나 그리스도 안에서 의 (義)에 대해서는 사자와 같이 강하다. 거짓 선지자들이 바울을 사도가 아니라고 비방하지만 바울은 그 사람들과 같이 대항하여 싸우지 않고 약한 자처럼 되었다. 바울의 처사가 지금은 약하게 보이나 마침내 그들을 향하여 강하게 나타나서 범죄자들을 처리 할 것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약할 때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으로 강하게 역사했다(12:9-10). 그리스도께서 왜 우리 속에서 강하게 역사를 못하는가? 우리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약하다고 하면 그만큼 내가 강한 증거이다. 또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역사하는 감각이 없다고 하면 내가 아주 강한 증거이다. 강한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와서 힘을 못쓴다. 나는 거꾸러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리스도께서 역사하고 인도해 주신다. 그리스도께서 진리의 말씀대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시므로 상한 심령을 가지고 순종해 나가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시고 회개도 시키고 인도해 나가신다. 성도는 언제나 자기의 약한 것을 붙들고 애통하여야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역사해 주신다.

열왕기상19:11-12에 보면 불, 바람, 지진이 지나간 다음에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그 세미한 소리를 붙들고 나가면 그것이 아주 강하게 역사한다. 이 능력이 다윗에게 역사하여 골리앗과 블레셋 권세를 격파했고 다니엘에게 역사하여 사자굴을 이겼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역사하여 풀무불을 이겼고 모세에게 역사하여 바로왕과 애굽의 세력을 다 이길 수 있었다.

.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미혹되어 "바울이 참 사도가 아니고 공교한 자가 되어 자기들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 이닌가?"하고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너희 자신이 믿음에 있는가 시험해 보라"고 말한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의 속에 믿음만 있으면 바울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을 쓰지 않기 때문에 미혹되어 시험에 빠진 것이다.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된 증거는 그들의 마음에 다 쓰여져 있다(3:2).

바울에게서 사도의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기 전에 그들이 믿음만 쓰면 그들 속에 증거가 있고,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셔서 알게 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믿음으로 사는가 불신앙으로 사는가를 시험해 보라"고 바울이 책망하였다. 자신을 시험해 보고 확정 한 증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을 시험하거나 평하진 말고 먼저 자신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쳐 주는 교역자를 비방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교역자를 비방하는 사람은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 자손까지도 복을 받지 못한다. 자기 자신이 믿음에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하려면 그 열매를 살펴보아야 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다(갈5: 22-23). 이 열매가 있어야 믿음에 있는 것이다. 육신의 일은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탐심, 분쟁, 시기, 당 짓는 것, 미워하는 것, 분내는 것, 원수 맺는 것, 수군수군하는 것, 분리, 이단, 투기, 술 취하는 것, 방탕, 불의이다(갈5:19-21).

자기에게 육신의 열매가 맺히면 성령을 떠나서 육신에 있고 믿음에 거하지 않는 때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시험해 보고 믿음에 서도록 힘써야 한다. 신자라고 해도 믿음에 거하지 못할 때가 많다. 성경을 어기고 나가는 것은 믿음에 거하는 때가 아니다. 중생한 영혼이 힘을 써서 영의 길을 걸어갈 때만 믿음에 있는 때이고 육의 사람으로 살면서 육신의 열매를 맺히면 믿음이 없는 때이다. 성도가 마음속에 감동이 없고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없다고 하면 죽은 믿음이다.

믿음은 예수님과 그 말씀을 의뢰하고 그로 말미암는 구원을 대망하는 인격적인 역사로써 그를 의뢰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믿음 있는 사람이 되려면 주님을 힘써 찾아 의뢰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역사하여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 우리는 믿음이 있는가 시험해 보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음에 서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항상 믿음의 역사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일직선으로만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양으로 인도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매시간 매분 매초 인도하신다. 1분 1초라도 그리스도의 인도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 인도를 잘 받아서 "예"하고 따라가야 하며 성령의 감동과 진리가 자기를 인도하도록 해야 한다. 진리대로 그리스도께서 인도하는 것을 따라가면 무럭무럭 인격이 자라난다

우리가 항상 믿음에 있는가 확증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버리운 자이다.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믿음에 굳건히 서라, 믿음을 굳게 잡으라는 뜻이다. "확증하다"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 (도키마조)인데 시험하다, 판별하다, 시험하여 알아낸다는 뜻이다. 우리는 자신이 믿음에 있는가 시험해 보고 믿음이 없으면 믿음 있는 사람이 되고 믿음을 한번 찾으면 버리지 말고 그 역사로 자기를 만들어 나가야겠다. 확실히 믿음에 서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나아가야 그리스도가 자기 속에서 강하게 역사하게 된다. 신자의 속에 그리스도의 역사가 없으면 죽은 믿음이다.

. 13:6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내재하신 것을 분명히 알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 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린도 교인들도 알기를 원하였다. 그래야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권면하고 책망하는 일들이 그리스도께서 시켜서 하는 줄 알고 순종할 것이다.

二. 온전케 되기를 원함(7-10)

. 13:7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 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악을 행치 않기를 구한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목적은 그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도 아니요 사도의 대접을 받으려 함도 아니었다.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 지라도 "사도권을 인정받지 못하여 미확증된 자로 남아 있을 지라도"라는 뜻이다.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는 죄를 짓지 않고 오히려 선을 행하는 좋은 신자가 되기를 바울이 갈망하였다. 이것이 바울의 정신이다. 바울은 교인들이 선을 행하고 하나님 앞에 옳게 나타나고 믿음에 바로 서 있으면 자기는 아무렇게 되어도 족하겠다는 정신으로 일했다. 이것은 세례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고 한 그것과 같은 정신이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예수님의 구원운동이 잘되고, 교인들의 신앙만 바로 된다고 하면 자기는 버리운 자 같이 된다고 해도 좋다는 것이 바울의 정신이다. 이것은 부모가 자기 자녀에 대해서 갖는 심정과 같은 것이다.

. 13:8-9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바울이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이 진리에 서게 되면 바울은 그것을 거스려 책망할 수가 없고 그들이 악을 행하게 되면 바울이 강력을 나타내어 징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약할 매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바울이 원하는 바는 고린도 교인들이 진리에 서서 강하게 되고 그 결과 자기는 아무 권력을 행사할 기회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교인들이 진리대로 행하면 교역자가 하등의 제재를 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교역자가 약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교인들이 믿음에 서 있지 않고 진리를 거역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로 엄히 다스리게 되므로 교역자가 강하게 보인다. 교역자가 진리를 거스려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교인들이 강한 신앙을 가지고 점점 온전케 되어 나가기를 바울이 항상 구하였다.

. 13:10 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이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미리 써 보낸 것은 이 다음에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권세로 엄하게 책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이 편지를 보고 미리 회개하여 바로서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때에 엄하게 책망하지 않고 온유하게 대하게 되고 기쁨으로 대하게 될 것이다.

三. 문안 축복(11-13)

. 13: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은 기뻐하고 점점 온전케 되어 나가라고 하였다. 또 하나님의 신령한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여 평안하라고 하였다. 마음을 같이 하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자기의 존귀와 영광을 다 내어놓고 종의 자리에 내려가야 마음이 하나가 된다. 서로 종노릇하면 마음이 일치한다. 마음이 하나가 될 때에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한량없는 위로와 평강을 넘치게 부어 주신다.

거룩하게 입 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입맞춤은 옛날 그 나라의 인사 방식이었다. 각 나라마다 인사법이 다르다. 본문은 성도간에 다정한 인사를 하라는 뜻이다.

. 13: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성도들은 서로 문안하고 교통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 13:13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삼위의 축복이다. 목사가 축도할 때에 이 성경 구절로 한다.

너희 무리라고 한 것은 바울이 먼 곳에서 축복하기 때문에 자기는 내어놓고 "너희 무리"라고 하였다. 목사가 교회에 같이 있으면서 축도할 때는 "저희 무리"나 "우리 무리(자기도 포함한 무리)"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먼저 말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며 그 구속의 은혜를 성령으로 적용하셔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성령의 교통하심이 언제나 우리 전체 성도 가운데 같이 있어야만 성도의 심령이 살고 교회가 성장한다. 있을지어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있으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주 예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으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고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 있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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