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강해

갈라디아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갈라디아서 강해

· 기록한 사람 : 사도 바울

· 기록한 장소 : 에 베 소

· 기 록 한 때 : 주후 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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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갈라디아 1장

제 1 장 복음

[대 지]

一. 문안 축복(1-3)

二. 바른 복음(4-5)

三. 다른 복음(6-10)

四. 복음 계시 (11-17)

五. 복음 전파(18-24)

(본문강해)

一. 문안 축복(1-3)

.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바울이 사도직의 출처에 대해서 말했다. 사도의 직분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세운 것이다. 바울이 복음 전도를 시작하기 전에 다메섹에서 아나니아에게 안수(按手)를 받았고(행 9:17), 이방 선교사로 파송될 때에 안디옥 교회에서 안수(按手)를 받았다(행 13:1-3). 그러나 바울이 사도된 것은 아나니아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며 안디옥 교회에서 안수해 준 사람으로 말미암아 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바울을 사도로 예정하시고 하나님과 예수님이 직접 불러서 그 직분을 맡긴 것이다. 사도직의 출처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신적권위가 있고 사명과 책임이 크다. 바울이 그것을 깨달아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

사도( ' )의 뜻은 "보내심을 받았다"는 말이다.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보내심을 입은 자이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께 직접 부르심을 받아 이방 사도로 보내심을 받았다. 우리 믿는 성도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고 또 교역자들도 그 성직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은 사람이 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것이다. 복음 전도의 일을 자기가 하기 싫다고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고전 9:16). 하나님께 직분 맡은 자들은 사람 앞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만 위해서 일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 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바울이 복음 전도하기 위해 다닐 때에 여러 사람이 통행하였으며 그들도 갈라디아 교회에 문안하였다.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갈라디아 지방에는 여러 교회가 있었으며 그 여러 교회에 본 갈라디아서를 써서 보냈다.

.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쫓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는 값없이 거저 주신 것인데 우리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선물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창세 전에 택하여 주시고, 독생자를 보내 피 흘려주시고, 중생시켜 자녀로 삼아 주신 일 전체가 은혜이다.

평강 세상의 평강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사는 결과로서 오는 영적 평강이다. 바울은 교인들이 항상 은혜 속에서 살 것과 그 결과로 평강의 열매가 있기를 축복했다.

二. 바른 복음(4-5)

.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 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시므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주시는 것이 바른 복음이다(롬 1:2-4).

이 악한 세대에서 현세에는 마귀가 활동하고 있으므로 악이 끊일 날이 없다. 그리하여 마태복음 16:4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였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사망의 세력을 이기고 구원을 이루어 나아간다(롬 8:2).

. 1: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아멘은 성취의 뜻이 있다. 바른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운동이 성취되어 세세에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갈 것을 확신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이다. 이와 같이 바른 복음 운동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말미암아 언제나 승리하게 된다.

三. 다른 복음(6-10)

.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 복음은 복음이나 조금 다른 복음이다. 성경을 가르치지만 조금 다르게 가르치는 것이 다른 복음이다. 가령 성경 내용 중 아흔 아홉 가지는 성경과 같고 하나만 성경과 다르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복음이다. 갈라디아 교회는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다른 복음이 들어왔다.

.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다른 복음은 있을 수 없다. 성경에 어긋난 것은 복음이 아니다. 예컨대 다른 복음은 위조 화폐와 같다. 위조 화폐가 진짜 화폐와 거의 다 똑같으나 지극히 작은 부분이 다르다. 복음도 거의 다 같다고 하더라도 하나만 다르게 해놓으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고 다른 복음이다.

종자를 심을 때에 그대로 심어야 한다. 종자가 잘 생기지 못했다고 그것을 갈고 깍아서 아름다운 형체로 만들어 심으면 싹이 나지 않는다. 호박씨처럼 넓적한 것은 보기 싫어도 넓적한 그대로 보리와 같이 쭈글쭈글한 것은 쭈글쭈글한 그대로 심어야 싹이 난다. 복음도 변경시켜 다른 복음이 되면 생명이 없다.

너희를 요란케 하여 다른 복음이 들어오면 교회가 요란해진다. 이것은 마치 양의 우리에 이리가 들어온 것과 같아서 양의 우리가 요란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복음은 인간의 학설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복음은 참 복음을 약화시키고 참 복음을 가리우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참된 복음을 파괴시키는 반복음(反福音)이다. 하와에게 뱀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어 볼 때에 하와가 대답하기를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대답하였다(창 2:2-3). 그런데 창세기 2:17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만지지도 말라"는 말이 없는데 하와가 이 말을 덧붙였다. 또 하나님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을 고쳐서 "죽을까 하노라"고 했다.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다르게 변경시켜 놓았다. 그러므로 마귀가 "결코 죽지 않는다, 눈이 밝아진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하며 점점 하와를 미혹시켜 선악과를 따먹게 만들었고 하와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다.

열왕기상 13장에 젊은 선지자와 늙은 선지자가 나오는데 젊은 선지자가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했다. 젊은 선지자가 처음에는 말씀대로 잘 순종하였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벧엘의 단이 갈라지고 재가 쏟아졌다. 그가 일을 마치고 유다로 돌아가다가 상수리나무 아래서 쉬게 되었다. 그때 벧엘에 있는 늙은 선지자가 따라와 말하기를 자기 집으로 함께 돌아가서 떡을 먹으라고 하였다. 젊은 선지자가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오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때 늙은 선지자가 다시 말하기를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와서 그에게 물을 마시고 떡을 먹이라 하였다"고 말했다. 이것이 다른 복음이다.

젊은 선지자가 받은 복음은 참 복음이요, 생명이 사는 길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바른 복음이다. 그런데 늙은 선지자의 말하는 다른 복음을 따라 벧엘에 가서 떡과 물을 먹었으므로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고 생명의 역사와 능력도 떠났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저주가 내려 사자에게 찢겨 죽임을 당했다.

다른 복음은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다른 복음에는 교리적인 다른 복음이 있고 행위적인 다른 복음도 있다. 행위적인 다른 복음은 말로는 바른 복음을 말하나 행위로는 바른 복음을 떠난 것을 말한다(딛 1:16 해석 참조). 발람이 모압 나라에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내놓고 바로 전했으나 행위로 배반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하루에 이만 사천 명이나 죽게 되었고 자기도 저주받아 망했다. 발람이 말씀은 바로 말했으나 행위에 있어서 가지 않을 길을 가고 수단을 썼기 때문에 자기도 망하고 이스라엘도 망하게 만들었다.

다른 복음이 들어오면 에덴동산과 같은 심령의 낙원을 빼앗겨 마음이 뒤숭숭해지고 복잡해지고 심란해진다. 마음만 요란해지는 것이 아니고 가정과 교회도 요란해진다. 하나님의 보호가 떠났기 때문에 요란한 소리가 날 수 밖에 없다. 아담의 가정에도 다른 복음이 들어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는 원망과 책임 전가로 요란한 소리가 났고, 뱀이 원수가 되어 사람을 물게 되었다. 또 에덴동산 전체가 다 요란해졌다. 언제나 다른 복음이 들어오면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고 마귀가 들어와 모든 것을 요란케 하는 것이다.

.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 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다른 복음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우리나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나 참 종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뜻이다. 바울이 전에 바른 복음을 전해서 바른 교회를 세웠으나 후에 변해서 다른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 전에 아무리 훌륭한 종이라고 해도 지금 다른 복음을 전하면 틀림없이 저주를 받을 것이다.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길 외에 다른 복음은 절대로 없다(행 4:12 참조).

.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바울이 바른 복음을 전해 주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도이다. 이 복음을 조금이라도 변경시켜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바울이 전에도 경계했으나 다시 경계하고 있다.

.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다른 복음을 전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육체주의요(갈 6:13), 세상주의요, 넓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른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는다. 디모데후서 3:12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바른 복음은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고(갈 6:14), 예수님만 따라가는 길이기 때문에 많은 반대와 핍박이 따른다. 그러나 바른 복음을 전하고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성도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려면 진리를 양보해야 되고 인본주의를 써야 된다. 그러나 진리를 양보하면 자기 영적 생명이 죽고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하나님께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려면 아브라함과 같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하나님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이렇게 신앙 생활을 하면 자기 집 식구가 원수가 될 때도 있다(마 10:36). 또 세상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때도 있다(갈 6:14).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걸어가는 자가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직분을 가졌어도 사탄을 기쁘게 하는 길로 걸어가는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고 삯꾼이요, 자기 배만 위하는 자이다(빌 3:19).

四. 복음 계시(11-17)

. 1: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이 인간적 사상이나 사색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 1: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계시 원어( 아포칼루피스)는 가리워져 있던 것을 열어 보인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구원 계획)이 가리워져 있던 것을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열어 보여 주시고 알게 해주셨다. 이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절대 알 수도 없고 연구하여 만들어 낼 수도 없다. 이 계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온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조금이라도 더 하거나 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듣기에 좋든지 나쁘든지 자기에게 맞든지 맞지 않든지 순수한 그대로 받고 전해야 한다.

이 계시는 표준계시를 가리킨다. 이 표준 계시는 사도 시대까지 종결되었으므로 사도 시대 이후에는 하나님이 직접 표준 계시를 주시지 않는다(히 1:1, 계 22:18-19). 지금은 사람이 성경을 보고 배워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도록 해 놓았다.

. 1:13-14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바울이 복음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게 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과거에 믿기 전에는 유대인 즉 바리새 교인이었다. 그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고 잔해 하였다. 그 바울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면 어떻게 이 복음을 전하게 되었겠느냐는 말이다.

하나님의 교회 바울이 자기가 개종하기 전에 핍박하던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인 것을 깨닫고 그 죄책이 큰 것을 통회하는 것이다.

연갑자 동료들 혹은 유대교에 같이 있던 자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그 시대의 여러 사람들보다 지나치게 유대교에 충성하고 열심으로 유전을 지킨 자인데, 그 유대교에서 예수님을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일에 바울도 동조했으나 지금 그 예수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아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로 된 것이 증명된다는 뜻이다.

.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여기서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이 바울을 모태로부터 하나님의 종으로 택정하시고 불러 주셨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것이다.

. 1:16-17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바울이 받은 복음의 독립성을 말해 주고 있다. 바울이 복음을 직접 계시로 받고 깨달았으므로 사람과 의논하지 않았다. 복음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깨달은 이상 어떤 혈육(사람)과 더불어 의논할 필요가 없었으며 따라서 먼저 사도 된 자들에게도 가지 아니했다. 바울이 예수님을 발견한 후 은밀한 깊은 기도를 하기 위하여 아라비아로 가서 그곳에서 삼 년간 기도하는 중 계시를 받으며 많은 진리를 깨달았다.

혈육과 의논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바울이 복음을 계시로 받은 후에 예루살렘에 있는 원사도(原使徒)들에게 가서 의논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복음은 독립적인 권위를 가진다는 것이다.

五. 복음 전파(18-24)

. 1:18 그 후 삼 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새

그 후 삼 년 17절의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온 다음의 삼 년이 아니고 16절의 회개후에 아라비아로 가서 있던 삼년을 말한다. 바울이 삼년동안 아라비아 사막에서 깊은 기도와 영상속에 복음을 계시 받은 것으로 본다. 아라비아 삼 년 동안은 바울의 신학교 생활이었다. 요셉도 애굽 감옥에서 신학을 한 셈이다. 훌륭한 종들은 기도를 많이 했다. 그 후에 게바(베드로)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으나 그것은 바른 복음을 받은 사람들끼리 서로 유기적인 연합을 통하여 복음을 더욱 잘 세워 나가기 위해서였다.

십 오일을 유할새 십 오일은 짧은 기간이니 복음을 배울 기간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말씀도 역시 바울의 사도직의 독립성과 계시의 독립성을 말해준다.

. 1: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베드로와 같이 십 오일을 있었고 주의 동생 야고보 외에는 다른 사도를 만나보지 못했다. 주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으로서 기둥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이것은 바울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배울 기회가 없었고 바울에게 가르쳐 준 사람도 없었으며 그가 전한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임을 증명하는 말이다.

. 1: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바울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사람을 즐겁게 하려고 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받은 계시 그대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1: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다. 여기서도 바울이 독립적 사도권 행사를 증명하고 있다.

. 1:22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

바울이 위에서 말한 베드로와 야고보와 기타 몇몇 기독 신자들 외에 다른 신자들과는 개인적인 친분이나 교제가 없었다. 그러므로 바울의 사도직이나 복음이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니며 하나님께 직접 받은 것임을 다시 말해준다.

. 1:23-24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 바울이 회개하여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영광을 돌린 이유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과 믿음이 다른 사도들이 전하는 것과 다른 것이 없고 바른 복음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복음을 하나님의 계시로 직접 받았으므로 예루살렘의 원 사도들과 여러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복음과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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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갈라디아 2장

제 2 장 진 리

[대 지]

一. 예루살렘 공의회 참석(1-2)

二. 진리를 양보하지 않음(3-5)

三. 진리파수의 독립성(6)

四. 사도 사역의 분담(7-10)

五. 진리의 직행성(11-18)

六.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삶(19-21)

[본문강해]

一. 예루살렘 공의회 참석 (1-2)

. 2:1 십 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이것은 바울이 제3차로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한 것이다(행 15장 참조).

십 사년 후는 갈라디아서 1:18-24의 사건 후 즉 제1차 예루살렘 방문 후 십 사년이라는 뜻이다. 바울이 제 1차 예루살렘 방문 후 십 사년 동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교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는 목적을 바울의 사도직의 독립성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바울의 제2차 예루살렘에 전달하기 위하여 잠시 들렸던 것뿐이고(행 11:29, 12:25), 사도들과 교제하거나 다른 일을 보지 않았다.

바나바 처음부터 독실히 믿고 자기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둠으로 권위자라는 칭호를 받은 자요(행 4:36-37 참조),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하고 안디옥 교회에 모셔 온 자요,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같이 일년간 성경을 가르친 자이며(행 11:25-26 참조), 바울과 같이 선교사로 파송 받은 자이다(행 3:1-3 참조).

디도 본래 이방인으로서 기독 신자가 된 자이며(갈 2:3 참조), 바울의 조사(助事)로서 일한 사람이었다.

. 2: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할례 문제를 공적으로 결정짓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고 그리하여 예루살렘 공의회가 소집되었다(행 15:2-7 참조). 바울이 이렇게 상경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 바울은 항상 자기의 뜻대로 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한 것이다. 안디옥 교인들은 원래 이방인이었으나 바울과 바나바에게 전도를 받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도리를 믿었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유대로부터 온 어떤 형제들이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하므로 그들과 바울 사이에 적지 않은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대표를 보내서 이 문제를 확정 짓기로 했다. 그 대표로서 바나바와 함께 바울이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많은 기도를 하는 중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상경하게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통한 외부적인 역사와 자기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계시를 인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우리도 무슨 일이나 외부적으로는 교회의 지도와 인도를 받고 내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해야 된다. 사도시대에는 개인에게 직접 계시를 주기도 했으나 지금은 개인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한다.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전한 복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할례와 관계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 바울이 할례 문제를 공적의제(公的議題)로 사도와 장로들에게 제출함에 있어서 먼저 유명한 자 즉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사사로이 그 문제를 토의했다는 것이다(9절 참조). 중대한 문제를 갑자기 제출하면 혼란과 분쟁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하고 그 문제를 위하여 충분히 기도한 후에 결정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은 바울이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세우기 위하여 일생 동알 달음질한 것을 말하는데 할례를 받아야 구원 얻는다고 하면 이 진리가 헛된데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세우기 위하여 그들을 만난 것이다.

二. 진리를 양보하지 않음(3-5)

. 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바울이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행하였다(행 16:3 참조).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요, 아버지는 헬라인이었기 때문이다(행 16:1 참조). 디도의 아버지도 헬라인이었으나 디도에게는 할례를 행치 않았다. 그 이유는 잘못된 주장(할례)을 일시라도 복종치 않기 위함이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므로 할례를 행하거나 행치 않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갈 5:6 참조).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이유는 할례가 구원문제와 상관이 없는 때에 전도의 장벽(방해물)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할례받지 않는 이방인과는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도에게 할례를 행치 않은 것은 당시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는다는 율법주의자들의 그릇된 주장이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 일시라도 복종치 않고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진리를 내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때에 만일 디도에게 할례를 행했다면 율법주의자들이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기 때문에 바울도 할례를 행했다고 악용할 위험이 있었다.

. 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가만히 들어온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에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비밀히 들어 왔다는 뜻이다. 그것은 이리가 양의 가죽을 쓰고 들어 온 것이다.

거짓형제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를 믿으나 참 복음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짓 형제라고 했다.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믿음으로 구원받아 율법에서 해방된 자유를 말한다. 즉 진리 안에 있는 자유(요 8:32 참조), 영의 자유, 생명의 자유를 말한다. 거짓 형제들은 성도가 가진 이 참된 자유를 빼앗고 율법의 종과 자기들의 종으로 삼기 위하여 바른 진리를 파괴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 2:5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일시라도 비진리 (다른 복음)에 복종하지 않았다. 만일 바울이 한번이라도 그것을 복종하면 거짓 선지자들은 그것을 선전의 재료로 삼고 바울도 자기들과 같다고 주장하여 바울이 전한 바른 복음을 무너뜨릴 것이다. 참된 진리를 세워 나가려면 일시라도 비진리에 복종하면 안된다. 진리를 양보하고 비진리와 타협하면 신앙이 죽는다. 신앙의 정조를 한번이라도 양보하지 않을 때에 생명이 있다. 미혹하는 자들은 언제나 한번 만이라고 미혹한다. 그러나 성도가 신앙의 정조를 한번 빼앗긴 후에는 아무 힘이 없다. 마치 삼손이 신앙의 정조를 잃고 머리를 깎인 다음에는 아무 힘이 없고 블레셋 사람들의 종살이 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절대로 진리를 양로하지 말고 신앙양심을 써 나가야 한다. 심을철 목사는 마귀가 성도를 시험할 때에 4단계로 들어온다고 가르쳤다. 제 1단계는 진리를 어기는 일을 "한번만" 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제 2단계는 "남도 그러는데"하고 안심시킨다. 진리를 양보하고 믿는 사람보고 "누구도 그렇고 누구도 그렇더라 그러니 진리를 양보해도 괜찮다" 하고 안심시킨다. 제 3단계는 "염려 없다"고 자위케 한다. "나도 신앙의 뿌리가 있고 배운 게 있으니 지금은 진리를 못 지키나 염려 없다 앞으로 잘 믿을 것이다"라고 자위하게 한다. 제 4단계는 "차차하자"고 한다. 차차 잘 믿겠다, 차차 고치자 하고 믿음을 쓰지 못한다. 차차 마귀가 들어가면 한달 가도 차차, 일년 가도 차차하고 뒤로 미루기만 하다가 죽을 때는 아차차하고 죽고 만다. 성도가 신앙을 지키려면 한 번 만에서부터 막아야 된다. 한 번 만에서 무너지면 남도 그러하는데 하고 그 다음에는 염려 없다 하고 차차 바로 하자 하다가 마침내 아차차 하고 망하고 마는 것이다.

순교자는 한번의 신앙정조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경남 거창에 배추달이라는 성도가 있었다. 6·25사변 때에 인민군들이 주일날 와서 쌀을 지고 가자고 할 때에 주일날이므로 할 수 없다고 대답하자, 그러면 개를 끌고 가자고 했다. 그것도 주일이라서 못한다고 하니 그러면 지서(파출소)의 마당을 쓸라고 했다. 그것도 할 수 없다고 하자 인민군들이 배추달 성도를 총살 시켰다고 한다. 그는 주일 지키는 일을 한번 양보하지 않으려다가 순교 당한 것이다. 한번만 말씀을 어기고 이 다음부터는 잘 하겠다고 생각하면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三. 진리파수의 독립성(6)

. 2: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유명하다는 이들 베드로나 요한 야고보와 같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을 말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초대교회의 창설자로 유명한 자들이었다.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바울이 사도직을 원 사도들에게서 계승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께 직접 받았으므로 바울의 사도직과 그 유명한 사도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바울의 사도직은 하나님께서 직접 불러서 맡겨 주신 것이다(갈 1:1 참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나님이 더 알아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바른 진리를 믿고 산 신앙으로 나가는 자를 하나님이 귀중히 보시는 것이다.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바울이 사도직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았기 때문에 (갈 1:1,12 참조) 유명한 어떤 사람들이라도 더하여 준 것이 없다는 뜻이다. 바울이 자기의 사도직과 진리의 독립성을 주장한 것이다. 바른 진리를 깨달았으면 그것을 절대로 양보하면 안된다. 진리를 바로 깨달은 사람이 많지 않으며 진리대로 바로 믿겠다는 사람도 많지 않다. 누가복음 12:32에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고 하였다. 또 계시록 3:4에는 "흰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사람이 몇 명만 있다"고 하였다.

일제 시대에 노회나 총회적으로 신사 참배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결의했다. 그것을 반대하고 진리를 지킨 사람은 몇 사람 뿐이다. 어느 시대나 대개는 진리를 양보하면서라도 편하게, 쉽게 믿겠다는 사람이 많다. 저들은 성경대로 바로 믿으려고 하는 자에게 "유명한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지 않는데 너만 무슨 특별한 예수를 믿느냐?"고 윽박 지르고 핍박한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 해도 진리를 지키는데 있어서는 상관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 지켜나가야 된다. 교역자가 진리를 양보하면 첫째,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고 다른 사람의 신앙도 죽이고 그 시대를 모두 암흑과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四. 사도 사역의 분담(7-10)

. 2:7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베드로는 유대인(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직분을 맡았고 바울은 이방인(무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직분을 맡았다.

. 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베드로에게 역사하셔서 유대인의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이 또한 바울에게 역사하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 맡은 분야는 다르지만 두 사도직의 출처는 한분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다.

. 2: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유명한 사도인 야고보와 요한도 바울을 하나님께서 사도로 세우신 것과 그가 받은 진리를 인정해주고 이방인 전도를 잘하도록 부탁하면서 교제의 악수를 한 것이다. 서로 서로 하나님이 맡긴 분야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서로 협력해서 도와주고 잘 되기를 원하면서 구원운동을 해나가는 것이다.

야고보 주의 동생 야고보이다(갈 1:19). 그 이름이 베드로보다 먼저 기록된 것은 그는 벌써 예루살렘 교회 감독직에 있었으며 권위자였기 때문이다.

기둥 건물을 버티고 있는 요긴한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초대교회의 중심인물을 가리킨다.

. 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것은 구제하는 일이다. 이 일을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 바울에게 부탁했다. 이로서 바울의 사도적의 독립성과 전도의 독립성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유대 지방에는 흉년으로 인하여 가난한 형편이었고 핍박받는 기독교인은 한층 더 가난과 곤고가 심했다. 그러므로 이방 교인들이 때때로 구제 연보를 해서 보내곤 했다(행 11:29,30, 롬 15:26-27, 고전 16:3, 고후 9:1, 행 24:17 참조).

五. 진리의 직행성(11-18)

. 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바울이 베드로를 면책한 사건을 들어서 자기와 베드로 사이는 상하관계가 아니고 완전히 동등의 위치에 있으며 바울의 사도직이 베드로에게 계승받은 것이 아니고 독립적인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 선교의 중심지였다.

.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에 왔을 때에 베드로와 바울과 바나바와 기타 유대인들과 안디옥 교인들이 한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렇게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자리에서 먹게 된 것은 율법에서 해방되어 믿음으로 얻은 자유의 열매였다. 그 때에 예루살렘에서 야고보가 보낸 몇 사람이 안디옥에 내려왔는데 그들은 할례파 기독교인들이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무할례자와 함께 먹었다고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서 안디옥 교인과 함께 음식 먹지 않은 것처럼 하기 위해 떠나서 물러간 것이다. 베드로의 이 행위는 분명히 외식이었다. 베드로는 전에 이방인이 믿음으로 깨끗케 된다는 계시를 받아서 그대로 행동했고(행 10:10-29),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가서 증거했다(행 11:5-17). 또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도 할례와 상관없이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증거했다(행 15:7-11). 이러한 베드로가 안디옥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취한 것이다.

. 2: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베드로의 행동을 보고 남은 유대인들과 바울의 통역자인 바나바도 베드로와 같이 돌아앉았다. 그러므로 할례받지 않고 믿는 안디옥 교인들은 우리도 할례를 받아야만 되겠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이 지금까지 전한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바른 진리가 무너지게 되었다.

. 2: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바울이 베드로의 그 행동에 격분하여 즉석에서 그를 책망했다. 진리에는 선후배나 노소관계로 인한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모든 사람 앞에서 진리를 무너뜨리는 사람은 모든 사람 앞에서 책망하고 진리를 밝혀야 된다. 베드로가 유명한 사도이나 그의 체면보다 진리가 큰 것이다.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베드로가 할례받지 않은 이방 사람과 함께 먹기도 하고 함께 교제한 것을 말한다.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베드로의 행동은 이방인을 억지로 유대인답게 살게 하는 행동이었다. 이는 그가 이방인과 같이 먹지 않는 것처럼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이방 죄인 이방인은 본래 하나님도 없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엡 2:12),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엡 2:3). 이런 의미에서 이방 죄인이라고 했다. 유대인은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게 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롬 3:10,20). 사도들이나 모든 성도들도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믿는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돌아앉는 행위는 그들과 함께 먹은 이방인을 죄인으로 인정하는 행동이요, 함께 먹은 자기 행위도 죄로 인정하는 행위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까닭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먹었으니 그 행위가 죄라고 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한 결과가 된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짓게 하는 분이 아니시다는 뜻이다.

.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헐었던 것은 할례 문제와 같은 의식주의를 말한다. 의식주의를 다 헐어버리고 이방인과 유대인이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가 되었다.

다시 세우면 할례와 같은 율법적 의식을 다시 세운다는 뜻이다. 베드로의 행위라 할례와 같은 율법의 의식을 다시 세우는 결과가 되었다.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할례 의식을 폐했는데 다시 할례의식을 세우게 되면 자기가 자신을 변절자로 만드는 일이요, 그 전에 이방인과 함께 먹은 일이 번법한 일로 인정하는 것이므로 자신을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六.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삶(19-21)

.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율법적으로 볼 때에는 우리가 다 율법대로 행치 못했으므로 죄인이요, 죄 값은 사망이므로 우리 죽음을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향해서는 우리가 죽은 자가 되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 우리가 율법적으로 볼 때는 정죄받고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는 벌써 그리스도와 함께 사형을 받아 죽은 자요 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영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난 것이다.

.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 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이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인하여 내게 사형 언도를 내리셨는데 그 사형 집행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내 죽음이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접붙힌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성도의 생명이 생명적 연합이 되었고 그 생명의 역사로 성도의 영이 사는 것이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 예수를 믿는 자들의 영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세계 안에서 산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서 구속하여 살려 주신 영적 생명으로 산다는 뜻이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살고 있지만 내 영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날마다 먹고 그의 생명에 더욱 더 참여하여 그의 형상이 내게 더욱 더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내게서 더욱 커나가고 영이 날마다 살아나가는 것이 믿음 안에서 사는 생활이다.

.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 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사람이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없고 그리스도의 구속도 필요없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는 것이 되고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은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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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 3장

제 3 장 십자가

[대 지]

一. 뒤로 돌아가지 말 것(1-5)

二. 믿는 자는 아브라함의 아들이 됨(6-9)

三.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함(10-14)

四. 약속과 율법(15-22)

五. 몽학 선생과 그리스도(23-29)

[본문강해]

一. 뒤로 돌아가지 말 것(1-5)

.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에게 바른 복음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성령으로 믿고 구원 받았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적 눈으로 밝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짓 선지자에게 꾀임을 받아 십자가만 바라보고 따라가던 믿음에서 떠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대단히 섭섭한 심정과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망한 것이다.

. 3: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질문한다. 너희가 과거에 성령 받은 것이 율법을 행하여 된 것인지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되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과거에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살펴보면 바른 믿음으로 돌아올 희망이 있다.

.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 느냐

성령으로 진리를 믿고 영으로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이 참 신앙이다. 육체로 돌아서는 것은 참 신앙이 아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들이 할례를 주장하는 것은 육체로 돌아선 것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신령한 신앙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책망한 것이다.

. 3: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갈라디아 교인들이 예수를 바로 믿느라고 많은 핍박과 괴로움을 받았다. 그때에는 복음의 광채가 드러났고 자신의 생명이 되었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였다. 그런데 이제 갈라디아 교인들이 참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을 좇아갔다. 그러므로 과거에 바른 복음적 신앙을 지키느라고 받은 많은 괴로움이 헛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과연 헛되냐 과거에 믿음 지키느라고 고난받은 것이 과연 헛될 것이었나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헛된 것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 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과거에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또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였다. 그때 그 은혜와 그 일이 율법의 행위로서인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서인지, 그 일을 기억하고 생각하여 미혹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二. 믿는 자는 아브라함의 아들이 됨(6-9)

.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창세기 15:5-6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나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믿었다.

그때에 하나님이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은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의인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오직 믿음으로만 의인이 되는 것이다.

.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예수께서 오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믿는 자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이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는데 그 신앙을 받은 자(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믿음의 아들이요 아브라함의 신앙의 계승자가 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육신의 아들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신앙을 받은 자가 아브라함의 아들이다(롬 9:6-7, 2:28-29 참조).

. 3:8-9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창세기 12:3에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방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을 것을 예언한 복음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 사람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三.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함(10-14)

.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신명기 27:26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사람은 누구나 율법대로 완전히 다 행한 자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누구나 저주 아래 있는 자이다. 야고보서 2:10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했다. 율법에는 적극적으로 하라는 것이 248항이며 소극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 365항이다. 모든 합하면 613항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그 중에 하나라도 어기면 다 어긴 것이 된다. 율법은 마치 613개의 고리로 연결된 줄과 같다. 그 줄을 붙잡고 매달려 있는 사람은 613개 중 어느 고리 하나가 끊어지면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613개의 율법을 다 지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따라서 율법으로 구원받으려는 사람은 전부 다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사람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성경에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합 2:4, 롬 1:17, 히 10:38 참조). 율법으로 의인이 될 수 없으므로 믿음으로 의인이 된다고 한 것이다.

.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율법은 그것을 행해야 산다고 했기 때문에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다. 레위기 18:5에 보면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였다.

.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했다. 속량이란 값을 치르고 징벌을 면케 하거나 속박에서 해방시켜 건져내는 것을 뜻한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신명기 21:23의 인용인데 예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저주를 받으셨다. 이렇게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루시고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한 것이다.

.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함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모든 택한 백성을 속량하셨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없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는 ① 사죄와 구원을 받고, ② 약속대로 성령을 받는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한 것이다.

四. 약속과 율법(15-22)

. 3:15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패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약속이라도 한번 정한 다음에는 폐하거나 더해서는 안된다.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진실한 사람이다. 사람도 한번 약속한 것은 손해를 보아도 지키는 것이 당연한데(시 15:4 참조), 하물며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변하거나 헛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하실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① 약속하신 것을 변경시키지 못하고 ② 맹세한 것을 변치 못하시는 것이다(히 6:17 참조).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맹세해 주셨으므로 영원히 변동이 없다.

.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창세기 15:5에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은 육신의 자식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약속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롬 9:7-8 참조).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많은 백성이 구원을 받을 것을 가리켰다.

. 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리스도의 약속을 하시고 사백 삼십 년이 지난 후에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약속은 율법보다 사백 삼십 년 전에 주신 것인데 나중에 온 율법이 먼저 온 언약을 폐하거나 헛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백 삼십년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는 년대에 대하여 본 절과 출애굽기 12:40에는 사백 삼십 년으로 되었으나 창세기 15:13, 사도행전 7:6에는 사백 년으로 되어 있다. 사백 년은 대략적 연대(略述)이고 사백 삼십 년은 자세한 년대이다.

. 3: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유업을 약속으로 주셨다. 약속은 조건이 없는 것이고 율법은 행해야 준다는 조건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그 율법의 조건을 다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유업을 받을 수 없다.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리라"고 한 것은 아무 조건 없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도 그 약속(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 얻는 것)에 아브라함과 함께 참예하는 것이다.

.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약속으로 유업을 얻는다고 하면 하나님이 왜 율법을 주셨는가 하는 질문이 나오게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율법을 주신 목적 ① 죄를 깨닫게 한다(롬 3:20, 5:13). ② 인간의 연약성과 무능함을 알게 한다(롬 7:8). ③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 ④ 믿음으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유업을 받게 한다.

천사들로 말미암아 율법은 천사를 통해서 모세에게 주었다(행 7:53 참조).

중보의 손을 빌어 중보는 모세를 가리킨다.

약속하신 자손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 3:20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율법과 복음을 대조하는 것이다. 중보는 두 당사자 사이에서 쌍방을 다 위하는 자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모세를 중보자로 세우고 주신 율법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 주실 의무가 있고 행하지 않으면 벌받을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중보는 한편만 위하는 자가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약속은 하나님 혼자서 했다는 말이다.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께서 단독적 의사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서 믿는 모든 자에게 유업을 얻게 하겠다고 하신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 혼자서 약속을 하시고(인간과 합의하거나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 혼자서 그 약속을 이행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하나님 혼자서 약속하신 유업을 주시는 것을 가리킨다.

. 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율법이 약속을 거스리지 않고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①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고(10절 참조), ② 그것으로는 구원받지 못하고, 각 율법은 피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사람들을 살게 하거나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갈 3:25 참조).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율법을 다 행하는 자가 없고(10,11절) 죄 값은 사망이므로 율법으로는 살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아니면 인간에게 사죄의 길이 없고,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면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다.

. 3: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여기 말한 성경은 율법을 기록한 성경 즉 율법을 가리킨다. 율법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다(롬 3:19-20 참조). 즉 모든 사람이 율법으로 정죄를 받았다는 뜻이다. 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아브라함과 (약속)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그 약속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구원을 받는 것이다.

五. 몽학선생과 그리스도(23-29)

.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 "그리스도가 오기 전" 또는 "그리스도를 믿기 전"이라는 뜻이다. 그때는 율법에 매인바 되어 죄의 세력에 갇혀있었다.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그리스도를 믿을 때까지 또는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를 가리킨다.

.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몽학선생 주인의 어린아이나 젊은이의 교육을 지도, 감독하는 하인으로 오늘날 가정 교사와 비슷한 사람이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에 오고 갈 때 지도하고 안내해주며 집에서는 공부를 지도하며 그 아이의 도덕적, 지적 성장에 필요한 교육을 책임 맡는다.

몽학선생의 헬라 원어는( 파이다고고스)인데 고린도전서 4:15에는 이 낱말이 스승으로 번역되었다. 주인의 아들이 주인의 기업을 이을 자이지만 어렸을 때에는 그 몽학선생 아래 매여 구속을 받으며 인도를 받다가 장성한 후에는 몽학선생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어 유업을 얻는다. 그러므로 장성한 후에는 몽학선생이 필요없다. 이와 같이 택한 백성들도 그리스도께 인도되기까지는 율법에 메이고 율법의 인도를 받다가 그리스도께 인도된 후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율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와 동고동락하게 되는 것이다.

. 3: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율법으로 인하여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는 몽학선생인 율법 아래 있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도 일시적으로 그리스도를 떠나 범죄하게 되면 몽학 선생인 율법이 다시 정죄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세상 끝날까지 계속한다.

.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성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며 아버지의 모든 소유를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아들이라야 상속권이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상속권에 있어서는 남자나 여자가 다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의 신부의 자격에 있어서는 남자나 여자가 다 같이 그리스도의 신부이다(마25:1-2 참조).

.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 세례는 "씻는다"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 받은 표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사죄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 고로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세례 받은 자이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법적으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 의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았다는 뜻이다. 로마서 13:14의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 것을 가리키는데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속성을 입으라는 뜻이다. 즉 영혼이 자라나고 신앙 인격이 이루어지게 하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은 성도가 힘써야 된다.

.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그리스도를 인하여 영적 일치가 되었다. 차별없이 다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기업을 같이 받게 될 자인 것이다.

.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예수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께 속했으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되고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다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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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 4장

제 4 장 기업

[대 지]

一. 어렸을 때에는 청지기 아래 있음(1-5)

二. 아들의 영을 주심(6-7)

三.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지 말라(8-11)

四. 교역자 영접(12-15)

五. 교역자와의 이간(16-18)

六. 교역자의 수고(19-20)

七. 두 여자의 비유(21-28)

八. 육체의 아들과 영의 아들(29-31)

[본문강해]

一. 어렸을 때에는 청지기 아래 있음(1-5)

. 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주인의 아들은 장차 유업을 이을 자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어떤 보호자의 간섭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은 자도 복음으로 영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때는 율법의 지배 아래서 종처럼 속박을 받는다.

. 4:2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후견인 ① 부친이 사망한 뒤에 그의 어린 자녀를 관리하기 위하여 일정(一定)한 기간까지 세우는 법정 관리인이다. ② 어린아이 뒤를 따라다니며 잘못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선도하는 자이다.

청지기 특별히 재산을 관리하고 돌봐주는 종이다. 후견인과 청지기는 율법을 가리킨다. 기독신자라도 장성한 신앙에 이르기 전에는 율법의 다스림을 받고 영적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우리는 모든 기독 신자들이다. 어렸을 때에 신앙이 어려서 복음적 자유를 누리지 못할 때에는 어떤 형태의 초등 학문 아래서 종노릇한다.

초등 학문 초보적인 기초 학문을 가리킨다. 율법은 초등 학문이다. 종교적 제도와 의식도 초등 학문이다. 신자들도 참된 진리와 영적 자유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러한 초등 학문에 매여 종살이하게 된다.

.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언약하신 때가 차매 그 약속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예수님을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아담의 후손을 구원하려면 아담의 후손인 여자에게서 낳아야만 된다.

둘째 율법 아래 있는 자를 구속하려면 율법 아래서 낳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① 사람을 대신하여 속죄(代贖)할 수 있었고 ② 율법의 요구대로 의를 행하여 의가 되게 하였고 ③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속량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속량 값을 주고 사서 건져냈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피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율법의 속박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어 자유하게 하였다.

二. 아들의 영을 주심(6-7)

.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성도가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에 법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또 아들의 영을 그의 영혼 속에 보내 주었으므로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다.

아들의 영 성도에게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영을 보내어 중생한 영과 연합되게 했다. 그 연합된 영이 양자의 영이다.

아바 아버지 아바는 어린아이가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다. 아버지를 아바 혹은 압바(헬라어 성경에는 (압바)로 기록됨)라고 부르는 나라는 아람어 ·히브리어 ·한국어 등이다.

"아바"는 어느 나라 말이라기보다 아이가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로서 아마 에덴 동산 말일지도 모른다.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된다. 성도의 영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사랑하며 따르게 되고 사모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도가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생명적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증거이다.

. 4:7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종이 아니라 아들이 되었으므로 라는 뜻이다.

유업이란 아버지의 재산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을 말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인 고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물려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마 25:34 참조). 그때에는 성도의 실력대로 그 모든 것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영적 실력(그리스도의 형상)을 길러 가는 것이 중요하다.

三.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지 말라(8-11)

. 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그때는 성도가 믿기 전을 말한다.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성도가 믿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겼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도 믿기 전에는 우상과 초등 학문에 종살이했다(3절 해석 참조).

.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이제 성도가 예수를 구주로 믿는 때를 가리킨다.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또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으며 성도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성도 안에 계셔서 영적 (생명적)교통을 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이란 세상의 초보적인 종교 행위 혹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年)(11절 해석 참조)를 삼가 지키는 율법의 의문과 제도를 말한다(3절 해석 참조), 이것은 약하고 천한 것이요 사람들을 종으로 삼는 것들이다. 믿음으로 영적 생명과 자유를 얻은 성도는 다시 그것들에게 종살이 할 수 없다.

. 4:10-11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은 안식일(토요일) 은 매월 반복되는 월삭이나 중요한 절기가 있는 7월달 절기는 유월절이나 다른 절기, 는 안식년과 희년을 가리킨다.

이것들은 율법의 의문이요 초등 학문의 일종이다. 성도가 이런 것들을 삼가 지키면 초등 학문에 다시 종살이하는 것이 되어 복음을 받은 것이 헛되고 복음을 전해준 자의 수고도 헛된 것이 된다고 바울이 경고했다. 성도가 율법의 의문에 얽매이면 전에 받은 복음의 기초를 무너뜨리고 다시 다른 기초를 닦는 어리석은 자가 된다. 성도가 바른 진리를 받은 후 기초를 다시 닦지 말고 거기서부터 진보하여 전진하고 자라나가야 한다(히 6:1-2 참조).

四. 교역자 영접(12-15)

. 4: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율법의 의식과 의문과 풍습(風習)을 버리고 이방인처럼 되었다는 말이다.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갈라디아 교인(이방 신자)들도 믿음과 사랑 안에서 율법의 의식에 얽매이지 말고 바울 같이 영적 자유를 누리라는 뜻이다.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 하였느니라 갈라디아 교인들 이전에는 바울의 복음을 잘 받아 그대로 믿고 바울을 사랑하며 해롭게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이 할례 문제로 바울을 근심시키고 있다.

. 4: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바울이 육체에 병이 있어서 휴양차 갈라디아 지방에 갔다가 복음을 전하여 갈라디아 교회를 세운 것이라고 한다. 바울의 병이 무슨 병이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눈병인 것 같다(15절 참조).

. 4: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바울이 심한 눈병으로 인하여 보기에 추하고 사람들에게 무시받을 만 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교인들에게도 큰 시험거리가 될 만 하였다. 그러나 그 교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 믿고 감사하면서 심한 눈병을 앓는 바울을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했다. 오히려 그들은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대접했다. 바른 복음 전하는 교역자를 천사와 같이 대접하는 자는 은혜받은 증거요 하나님 앞에 큰 복과 상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참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종은 하나님이 보내셔서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하는 자이므로 그를 영접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다(눅 10:16, 마 10:40 참조). 그러므로 참된 하나님의 종을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교역자를 그리스도 예수와 동일시(同一視)하면 안되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자로서 영접해야 한다. 교역자는 언제나 자신이 죄인 인줄 알고 대접과 영광을 그리스도 예수께 돌려야 자기가 망하지 않는다(행 14:11-15, 10:25-26 참조).

. 4: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을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할 때에는 큰 축복이 있는 때였다. 얼마 후에 그들이 다른 복음에 유혹되어 전에 바울을 존경하고 근접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떠나간 것이다. 교인들이 교역자를 영접하고 존경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때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종을 존경하는 마음이 식어지면 은혜와 복이 떠나는 때요, 이미 떠난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쓰시고, 신령한 말씀으로 성도의 영혼을 살펴나가는 하나님의 종을 비방하고 배척한다면 그 사람이나 그 가정에 앙화와 저주가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도 인간적인 면만 보면 완전하지 못하고 결점이 있다. 모세도 혈기가 있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으며 베드로는 말고의 귀를 베고 변화산에 올라가서 졸았다. 아브라함도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였다. 노아도 술에 취해 벗은 몸으로 누어 있었다. 그러한 결점만 보고 하나님의 종을 비방하고 무시한다면 영접할 만한 하나님의 종이 이 세상에는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바울에게 결점이 많지만 하나님이 쓰시는 것과 바른 진리를 전하는 면이 중요하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이루어져 나가므로 바울은 복의 기관이요, 생명의 기관이다. 그러므로 바울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것이다.

五. 교역자와의 이간(16-18)

. 4: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다른 복음을 옳게 여기는 사람들은 참 복음을 말해주어도 받지 않고 그 잘못된 것을 지적해 주면 오히려 그 사람을 원수로 여긴다.

. 4:17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다른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성도에게 찾아와 그 성도를 열심히 돌봐주고 가르쳐 주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다. 그것은 그 성도를 참 교역자와 이간 붙여 자기들에게 열심 내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성도를 그들에게 소속시키고 그들 자신이 대접을 받으려고 열심을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을 사정없이 끊어 버려야 한다(요二 1:10-11 참조).

. 4: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 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좋은 일에 대해서 열심내는 것은 귀한 것이다. 바른 복음을 사모하고 그 복음 세우기 위하여 열심내고 참 복음을 전하는 종과 참 교회를 위하여 열심내는 것은 언제든지 좋은 일이므로 더욱 더 사모하고 더욱 더 열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고 미지근한 것은 주님이 토하여 내버리겠다"고 했다(계 3:15-16). 그러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에 열심내면 자기의 재산과 영적 생명을 다 빼앗기고 만다.

六. 교역자의 수고(19-20)

.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이 전에 갈라디아 교인들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였다. 그리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이 어느 정도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 졌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다른 복음을 좇아갔으므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잃어버렸으며 바울이 다시 교인들을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그리스도의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과 같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의와 진리와 거룩(엡 4:24), 선과 사랑과 진리 등 도덕적 면이 있고 지혜와 지식(골 3:10)적 면이 있고 또 능력면이 있다. 그리스도는 도덕적으로 완전하며 지혜가 무한하시며 능력이 무한하시다. 성도가 이것을 닮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인데 즉 성도의 영이 자라나는 것이요 그리스도로 옷 입어 나가는 것이다(롬 13:14).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려면 그것을 교인들이 사모해야 되고 교역자가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교역자의 진액위에 세워진다. 교인들을 위하여 피땀을 흘리며 진액을 짜 바치지 않는 교역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그러한 종은 주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

. 4: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바울이 지금까지 책망을 했으나 앞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방문하여 부드러운 음성으로 권면하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의심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고(다른 복음을 따라가는 문제에 대한 의심) 편지로 책망만 해서는 안되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찾아가서 부드러운 사랑의 음성으로 간곡히 권면하려는 것이다.

七. 두 여자의 비유(21-28)

. 4: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다른 복음을 따라가는 것은 결국 율법아래 있고자 하는 태도이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저주받는 길이다. 왜냐하면 율법 아래서 율법으로 의를 얻으려는 자는 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율법을 지켜서 의(義)를 얻으려는 자는 온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하나만 범해도 율법을 범한 것이 되어 저주를 받게 되고 율법을 다 지키는 자는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3:10 해석 참조).

. 4:22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하갈이라는 종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이요, 하나는 그의 아내 사라에게서 낳은 이삭이었다.

. 4:23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 암았느니라

계집종에게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은 육신을 따라 낳았고, 자유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낳은 아들 이삭은 약속으로 말미암아 낳았다. 이삭의 출생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년 이때에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했고 그 약속이 이루어져서 낳은 아들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세, 사라가 구십세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낳은 아들이다. 사람으로서는 죽은 자와 같아서 불가능하였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낳게 한 아들이다.

. 4:24-25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이것은 윗절에 말한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가리킨다.

비유 실제로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 어떠한 신령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역사적인 사실들이 어떤 신령한 것을 증거해 주는 비유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시내산(아라비아에 있는 산)에서 주신 율법과 같다. 이 "하갈"이 자녀로 더불어 종노릇 한 것 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율법의 종노릇만 한다는 뜻이다.

지금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은 지금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고 그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으며 언약궤 안에는 시내 산에서 받은 십계명이 들어 있다. 그 성전에서는 율법대로 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율법의 중심지이다.

. 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우리 어머니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신약적인 언약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을 어머니라고 한 것은 복음으로 우리가 낳음을 입었기 때문이다(고전 4:15).

이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한 이유는 복음은 신령한 진리요 영적 생명과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성도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한 것이다. 이 구원 운동은 땅의 운동이 아니고 하늘의 운동이다. 우리의 구원은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영에 속한 것이요(빌 3:20)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이다.

. 4:27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본절은 이사야 54:1을 70인역에 있는 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한 사실은 이렇다.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고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황폐하여 지겠다는 것이다. 그 상태가 잉태치 못한 자와 구로치 못한 자와 홀로 사는 여자와 같다는 것이다(사37:22에 에루살렘을 여자로 비유한 적이 있다).

잉태치 못한 자, 구로치 못한 자, 홀로 사는 자는 복음을 가리킨다. 그 이유는 복음은 육신을 따라 난 것이 아니고 약속을 따라 낳았기 때문이다. 23절에 언급한 것 같이 사라는 90세까지 잉태치도 구로치도 못한 자였고 육신적으로는 자녀를 낳을 가망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삭을 받은 것이다. 그 이삭의 자손(그리스도를 믿는 자)은 장성하겠다는 것이다.

남편 있는 자 는 율법을 가리킨다. 하갈이 육신을 따라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율법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지키는 유대교보다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교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좀 더 신령한 뜻이 있다. 홀로 산다고 하는 것은 육신의 것이나 세상 것은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과 하나님만 바라보고 영적 자유와 영적 생명의 길만 걸어가는(26절) 신령한 성도를 가리킨다.

영적인 세계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이 홀로 사는 자이다. 남편이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의지할 것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 외에 다른 여러 가지를 붙들고 사는 사람이다. 야고보서 4:4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였다. 하나님 이외의 율법이나 의식과 제도나 다른 육신적인 것을 의지하고 상대로(남편으로) 삼는 것은 간음하는 것과 같다. 홀로 사는 사람은 오직 위에 있는 것과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그 분만 의지하며 따라가고 그에게만 충성하는 사람이다. 이런 성도는 하나님이 점점 잘되게 만들어 주며 창성하게 하신다. 예레미야 15:17에 "내가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아오니"라고 하였다. 이러한 성도가 홀로 사는 여자이다. 홀로 앉아서 주님을 사모하며 좀더 은밀한 골방에 깊이 들어가고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면 능력의 역사가 이루어져 창성해 나간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 영혼이 잘된다.

.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복음을 믿는 자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이므로 윗절에 언급한 율법의 자녀(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더 창성해진다.

八. 육체의 아들과 영의 아들(29-31)

. 4: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아브라함의 종 하갈에게서 육신을 따라 난 아들 이스마엘이 약속과 성령을 따라서 사라에게서 난 이삭을 핍박한 것이다(창 21:9). 율법에 속한 자들이 복음을 믿는 자를 핍박한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육신에 속한 신자가 영에 속한 신자를 핍박한다. 육신에 속한 신자는 예수 믿으면서도 시기와 분쟁과 당파심을 가진 신자들이다(고전 3:1-3). 그런 신자가 바로 믿는 사람을 핍박한다. 아가서에도 육에 속한 신자(예루살렘 여자)가 신령한 신자(술람미 여자)를 핍박하며 자기들에게 돌아오고 돌아오라고 했다. 환난 때가 되면 육에 속한 신자가 영에 속한 신자들을 모략 중상하고 많은 핍박을 가하게 된다. 왜정 때에 최 권능 목사를 잡아준 사람이 오산 교회 목사였다. 육신에 속한 신자가 영에 속한 신자를 핍박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일이다.

. 4: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창세기 21:10,12절의 인용이다. 이삭을 핍박하는 계집 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는 것이다. 그는 자유하는 사라의 아들 이삭과 함께 유업을 얻을 수 없다. 성도가 육에 속한 것과 비진리를 끊어 버려야 신령한 진리의 길을 걸어 갈 수가 있다. 육에 속한 것과 비진리를 붙들고 나가면 마음이 뒤숭숭하고 복잡하여 신령한 유업을 얻는 생명 길을 걸어나가지 못하고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가 없다.

. 4: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 속한 종의 자녀가 아니고 영이 자유하는 복음의 자녀이다. 참 성도는 날마다 복음 진리를 깨달아 그 진리 안에서 영의 자유와 새 생명을 얻어 장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 세계는 참으로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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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 5장

제 5 장 자유

[대 지]

一. 자유와 율법(1-6)

二. 누룩을 제거하라(7-12)

三. 사랑으로 종노릇하라(13-15)

四. 성령을 좇아 행하라(16-18)

五. 육체의 소욕(19-21)

六. 성령의 열매(22-26)

[본문강해]

一. 자유와 율법(1-6)

.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우리가 과거에는 율법의 의식주의나 혹은 이방 종교와 같은 초등학문에 얽매어 종노릇을 하였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에서 해방되어 영적 자유를 얻었다. 그러므로 다시는 율법이나 초등학문의 종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영의 자유를 가져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고 영적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영의 자유는 영이 원하는 대로하고, 영이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중생한 영이 자유하는 세계는 성령이 같이 하신다. 그러므로 영의 자유는 성령 안에 있다.

고린도후서 3:17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하였다. 성도가 영의 자유를 빼앗기면 생명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비록 몸은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하여도 양심과 영은 자유해야 한다. 영의 세계는 진리의 세계요, 사랑의 세계이기 때문에 성도가 진리 안에 서 있고,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야 영의 자유를 빼앗기지 않는다.

. 5: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갈라디아 교인들의 일부(一部)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할례를 받았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된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5:3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한다면 할례뿐만 아니라 다른 율법도 전부 다 지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만 범하면 율법을 모두 범한 자가 되어 불의하기 때문이다(약 2:10, 갈 3:10 참조).

.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된다고 하면 그리스도가 필요없다. 기독 신자로서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으려고 하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모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된다. 기독 신자가 율법을 지키는 것은 구원받기 위함이 아니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받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진정한 의(義)를 얻는 소망은 육체의 행위나 율법을 좇아 되는 것이 아니요,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를 믿음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도 구원 얻는데 지장이 없고, 또 받았다고 하여도 아무 효력이 없다.

오직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 사랑과 믿음의 역사는 산 신앙의 증표이다. 야고보서 2:26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였다. 살아서 역사하는 즉 생명있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산 믿음은 생명의 운동력이 있고 사랑이 넘쳐 나오는 것이다.

二. 누룩을 제거하라(7-12)

. 5: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에게 복음을 처음 받고 믿을 때에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 하였다. 다시 말하면 전심전력으로 믿는 일을 힘써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달음박질하는 것이 얼마 후에 중단되었다. 그들이 달음박질을 중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① 거짓 선지자들이 참소하고 유혹하며 다른 복음을 좇게 하였기 때문이다. ② 영적 신앙에서 떠나 육신 중심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성도가 달음박질을 잘 할 때에 마귀가 참소하여 "예수는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다"라고 유혹하며 다른 복음을 좇게 하므로 성도가 조심하여야 한다. 오늘날에도 신령한 진리로 신앙의 달음박질 잘 하는 성도들을 마귀는 신신학으로, 육체주의로, 신비주의와 현실주의로 유혹하여 달음박질을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마귀의 미혹을 받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

. 5:8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너희를 부르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 하다가 누구의 권면을 받고 잘 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 권면은 마귀에게로부터 온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경대로 달음박질을 시키신다. 성경을 떠난 달음박질은 아무리 열심을 내에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마귀에게로부터 온 것이다.

.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밀가루 한 말에 누룩 한 홉을 갖다 넣고 하룻밤 지나면 그 전체에 퍼져서 온 덩어리가 다 썩는다.

누룩은 이단을 가리킨다. 갈라디아 교회에 율법주의 이단이 들어와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 받는다고 하였다. 그것이 바로 누룩이었다. 마태복음 16:6,12에는 바리새인의 교훈이 누룩이라고 하였다. 이 누룩이 처음에는 지극히 작은 것(몇 사람)이지만 얼마 후에는 전체에 퍼져서 전체가 다 부패해진다. 그러므로 누룩적 요소는 적은 것이라도 용납하면 안되고 속히 제거시켜야 한다. 신신학도 처음에는 한 두 사람에게 들어왔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펴졌다. 인본주의와 그릇된 신비주의도 처음에는 한 두 사람이 주장하였으나 얼마 후에는 많은 교회 많은 교역자와 성도에게 퍼진 것이다.

. 5: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다른 마음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以信得救)는 교리 이외(以外)에 다른 것을 믿는 마음을 가리킨다. 갈라디아교회에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서 교인들을 요동케 하고 있으나 교인들의 다수는 아직 율법주의에 아주 넘어가지 않을 것을 바울은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바울에게 배운 바른 복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교훈을 가르쳐서 교회를 요란하게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을 것이다(마 18:6-7 참조).

. 5: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 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고 하였다. 바울이 만일 다른 복음을 용납하였더라면 핍박을 받지 않고, 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헛된데로 돌아가고 생명의 역사와 구원운동이 중단되고 말 것이다.

십자가의 거치는 것 거치는 것은 돌이나 나무 같은 장애물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른 복음을 좇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고전 1:18), 거치는 것이 된다(고전 1:23, 벧전 2:8).

. 5: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갈라디아 교회에 거짓 선지자들이 들어와서 교인들을 미혹하였다. 그들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여 교인들이 동요되고 교회가 어지럽게 되었다.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교회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다른 복음을 주장하는 자들은 참 교회를 어지럽게 하지 말고 스스로 떨어져 나가서 자기들이나 그대로(다른 복음대로) 행하라는 것이다. 교리나 신앙이 맞지 않으면 한 교회 안에서 싸우며 어지럽게 하지 말고 차라리 갈라져서 자기가 옳다고 하는 대로 나아가는 것이 좋은 것이다.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마 18:6-7 참조).

三. 사랑으로 종노릇하라(13-15)

.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성도가 믿기 전에는 죄와 율법의 종노릇하다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해방을 받아 영적 자유를 얻었다. 그 자유를 가지고 육체의 기회를 삼으면 안된다.

육체의 기회 육체의 욕심을 채우는 기회를 말하며 자기 중심과 이기주의로 나갈 기회 등을 가리킨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하여 그 자유를 이용하여 육체의 기회 즉 육체의 욕심을 따라 죄 짓는 기회를 삼아서는 안된다. 성도가 자기 중심과 이기주의로 나아가고, 자기 고집대로 무슨 일을 하고 자기만 위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복음을 믿음으로 영적 자유를 얻은 자가 율법의 멍에 아래에 있지는 않으나 율법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성도가 율법에서 해방된 자유인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하나님의 뜻인 율법을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행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율법을 행하는 것이다. 성도는 사랑의 동기로 율법을 행하고 노예의 심리로 행하지 않는다. 그가 율법을 행함은 곧 사랑의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박 윤선). 믿음으로 영적 자유를 얻은 자는 율법에 매인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께 종노릇한다. 예를 들면 종노릇하던 여자가 그 집 주인의 아들과 결혼하여 종에서 자유자가 되었다면 이제는 그 여자가 종으로 일하지 않고 자유자로 일을 한다. 그러나 전에 종으로 있을 때보다 더 잘한다. 그것은 남편과 그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들은 서로 종노릇하며 사는데 법에 의해서가 아니고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십계명의 대지(大旨)가 사랑이다. 일계명에서 사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고, 오계명에서 십계명까지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둘 수 없으며(일계명), 우상을 섬길 수 없다(이계명). 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없고(삼계명), 하나님의 거룩한 날(안식일)을 범할 수 없다(사계명).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오계명), 살인할 수 없으며(육계명), 또 간음할 수 없다(칠계명).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간음하는 죄를 어찌 범하겠는가 ! 또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을 도적질 할 수 없고(팔계명), 사랑하는 사람을 모함하는 거짓 증거할 수 없으며(구계명), 사랑하는 사람의 것을 탐낼 수 없다(십계명). 그러므로 사랑하기만 하면 모든 율법을 다 지켜 행하게되고 율법 이상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영의 세계와 사랑의 세계는 율법 이상의 길을 걷는 세계이다.

.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서로 다투고 물고 찢으면 둘 다 멸망한다. 싸우고 물고 찢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마귀 종노릇하는 일이다. 성도는 무슨 문제가 있을 때에 교회에서 합법적으로 해결하고 완력으로 싸우며 물고 찢어서는 안된다.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낫다(고전 6:7 참조).

불의를 당하고 속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지 않고, 자기 심령에 손해를 보지 않고, 복음의 빛이 가리워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고 불의와 손해를 당하더라도 싸우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목말라 하면 마시워서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롬 12:20 참조).

四. 성령을 좇아 행하라(16-18)

.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욕심을 자기 힘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이길 수 없으나, 성령을 좇아 행할 때에는 쉽게 이길 수 있다.

.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의 뜻대로 하면 육체가 거스리고 육체의 소욕대로 하려고 하면 성령이 거스린다.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대적하여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롬 7:24)고 하였다. 이것이 성도의 내적 투쟁이다. 여기서 승리하는 길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려고 힘을 써야 한다.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육체의 욕심은 쉽게 떨어져 나간다.

.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 율법을 초월한다.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 율법에서 법적으로 해방될 뿐 아니라 율법에 얽매인 사람들보다 더 잘 행하게 된다. 그 이유는 성령은 율법 이상의 도덕으로 성도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는 율법적으로 정직할 수 없게 된다.

五. 육체의 소욕(19-21)

. 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육체의 일은 육체의 욕심 즉 부패성을 가리킨다. 그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현저하게 나타난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이 세 가지는 성적죄악(性的罪惡)인데 이 죄는 육체의 부패성 중에 제일 먼저 나오는 죄로서 자기와 타인을 다 같이 망하게 하는 죄악이다. 이 죄는 자기 몸을 더럽히는 죄이며 성전된 몸을 더럽히는 자는 멸망한다고 하였다(고전 3:16-17 참조). 음행 간음을 포함한 음란한 행위이다. 더러운 것 일반적인 성적 불결을 말한다. 호색 색을 탐하는 노골적이고도 불법적이며 방종한 행습이다.

. 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우상 숭배와 술수는 제 이종의 죄로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종교적인 죄악이다. 우상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 섬기거나 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지배보다 더 지배 받는 것, 하나님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사는 것 등이다. 술수는 무당이나 복술자(卜術者)에게 점치고, 할 일과 앞날에 대하여 물어보고, 행운을 묻는 일 같은 것인데 예수 이름을 가지고 기도한다는 사람들도 무당과 같이 기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는 식으로 각종 행운과 사업 성공의 비결과 자기의 할 일을 점치듯이 알아맞히고 사람 속에 있는 것을 안다고 한다. 이런 자는 예수 이름을 가지고 술수하는 무당과 같은 자들이다.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내는 것,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과 투기는 사람에게 대한 죄이다. 사람들이 자기 욕심을 따라가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죄악이다.

원수 맺는 것 성도는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가 잘 되기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한다(마 5:24, 출 23:4-5). 원수를 맺고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자기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한다(약 2:13). 분쟁 원한이 진보되어 패를 나누어 싸우는 것이다. 시기 남이 자기보다 우수하여진 것을 보고 불쾌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사촌(종형제)이 전답(田畓)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성도는 남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하여야 한다. 분냄 야고보서 1:20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하였다.

당 짓는 것 육체의 유익을 따라 단결하는 것이다. 분리함 개인주의에 입각하여 갈라지는 것이다. 이단 중대한 기본 교리를 위반하는 의견을 채택하는 것인데 즉 삼위일체나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믿음으로 구원받지 않고 다른 것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사소한 교리가 다르거나 성경 해석이 조금 다르다고 하여 이단이라고 정죄하면 안된다.

.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투기 시기가 악화되어 나오는 죄인데 남이 소유한 것을 빼앗으려는 것이다. 술 취함과 방탕함은 자기 자신에 대한 죄이며 자유 방종하는 죄악이다. 세상에 도취되는 것도 술 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계 17:2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육체의 소욕대로 나가는 사람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 믿는 사람이 육체의 소욕대로 나가면 하나님의 징계가 와서 고난을 받으나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과 같다(고전 3:15).

六. 성령의 열매(22-26)

.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 속에서는 사랑이 나오고 기쁨과 화평이 있다.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영의 세계에서 살면 마음의 기쁨과 화평을 누리고 사랑이 나온다.

오래 참음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어려운 환난을 참아 나가는 일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떠한 환난이 온다 해도 중도에서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참고 나아간다. 만사에 때가 있으므로 참고 그 일을 계속해 나가면 하나님이 성취시켜 주실 때가 온다. 하나님이 오래 참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자비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양선 자선 행위이다. 충성 성령의 인도대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므로 사람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양심대로 충성을 한다. 충성은 그 맡은 일에 전념하여 그 일을 기어코 성취하려는 마음과 노력이다.

. 5: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온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하나님의 명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절제 자기를 제어하는 생활, 자기를 다스리는 생활을 가리킨다. 성도는 언제나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다스려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금지할 법이 이 세상에 없다. 어느 국가나 어느 지방에 가도 이것을 못하게 하는 나라는 없다. 이것은 세계 어디를 가나 통하는 법이다.

.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 았느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와 함께 법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이다. 그때에 육체와 정과 욕심도 못 박았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자기 대신 예수께서 죽으셨으므로 이는 곧 자기가 죽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가까이 하여 동행한 것만큼 육체의 소욕이 적어지고 정과 욕심이 죽어진다. 그때 예수님은 그 사람 속에서 점점 더 살아서 역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고 성령의 열매 맺는 생활을 잘 하여야 하늘 나라에 가서 상급이 크다.

.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성도는 육체를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의 감동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려고 간구하고 힘써야 된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를 받게되고 성령으로 행하게 된다.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면 낙원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벌써 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님 나라의 것이 점점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이 일은 영원한 것이다.

. 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하늘 영광이 점점 이루어져 나가므로 세상 영광을 붙잡을 생각이 없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잘되겠다고 투기하고 시기할 필요가 없다. 성령으로 사는 세계가 너무 좋고 귀하므로 세상 영광은 시들해지고 분토와 같이 보인다. 우리 영혼이 살고 진리의 말씀으로 영적 인격이 만들어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기에 천국이 이루어져서 초막이나 궁궐이나 하늘나라가 된다. 영원한 하늘나라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은 세상에서 영광을 받는 것보다 몇 억만 배나 더 좋다. 세상에서 권세잡고 영광을 누리려고 투기하는 것은 천국 밖의 일이요 성령을 떠난 증거이다. 하늘나라는 서로 낮아지는 세계요, 서로 종살이하는 세계이다. 격돌하고 투기하며 헛된 영광을 구하는 일을 마귀의 일이요 썩어질 것이며 헛된 것이요, 잠시 잠간 후에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전 1:2). 성도는 영원한 것을 추구하여 그것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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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 6장

제 6 장 성신

[대 지]

一. 남을 도와주라(1-2)

二. 각각 자기의 짐을 지라(3-6)

三. 심은대로 거둔다(6-10)

四. 육체의 모양을 내지 말라(11-13)

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라(14-18)

[본문강해]

一. 남을 도와주라(1-2)

.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범죄한 사람이나 시험에 들어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사람을 정죄하거나 멸시하면 안된다. 도리어 온유한 심령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로 세워 나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을 볼 때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 자기도 같은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나 자신도 그러한 사람이 아닌가? 내 속에도 그러한 죄악의 요소가 없는가? 돌아보고 자기도 같은 시험을 받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시험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하나님의 보호가 없다면 범죄의 자리에 빠지고 만다.

.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짐을 서로 지라는 것은 책임을 서로 지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범죄했을 때에 그 사람에게만 책임을 지우지 말고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책임을 져야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어 나간다.

그리스도의 법 사랑의 법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마귀의 법이고, 책임을 서로 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이요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길이다. 네가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책망하는 것보다 내가 좀 더 잘했으면 괜찮았을 터인데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 하고 겸허한 자세로 책임을 자기가 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사회가 되겠는가? 짐을 서로 지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우고 책임 전가하는 나라는 마귀의 나라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에 책임을 서로 전가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직책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를 친히 짊어지셨다. 큰 잘못이 있다고 해도 서로 짐을 지면 화목하고 더 잘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리스도의 법은 사랑의 법이며 하나님의 의와 구원운동이다. 짐을 서로 질 때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그 가운데에 계셔서 역사하시고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로 다른 사람을 살려낸다.

二. 각각 자기의 짐을 지라(3-5)

. 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어떤 사람이 범죄했을 때에 자기 자신은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하여 자기가 된 줄로 생각하면 안된다. 그러한 죄는 범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면에 있어서 부족한 것이 많은 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완성되기 전에는 누구나 되지 못한 것이 많이 있다. 범죄한 사람을 표준하여 나는 그 죄에 빠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괜찮다고 하는 것은 표준부터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다른 사람 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된 줄로 여기는 것은 스스로 속는 것이다.

. 6: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 는 있지 아니하리니

살피라 시험해 보라는 뜻이다. 자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대로 되었나 안되었나 시험해보면 자기의 되지 못한 것이 많이 발견될 것이다. 자기의 일을 잘 살피는 성도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기 전에 자기 속에 있는 들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그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에게 어떤 잘한 것이 조금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자기 혼자서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것이 곧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다는 뜻이다. 나의 행한 것은 죄 뿐이고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뿐이다(고전 15:10). 그러므로 성도는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자랑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 6: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본절 원문 초두에 왜냐하면( )이라는 말이 있으므로 윗절의 설명이다. 윗절에 말한 것과 자기를 잘 살피는 자는 자기 책임을 자기가 질 것이다. 서로 짐을 지는 것이 좋으나(2절), 자기 짐은 자기가 지도록 해야 한다. 자기 책임은 안하고 남이 도와주기만 기대하는 것은 옳치 않다. 언제나 자기 책임을 자기가 하면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

三. 심은대로 거둔다(6-10)

.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성도는 가르침을 받는 교역자에게 물질면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가르침을 받았으면 대접하는 것이 마땅하고 신령한 것을 받았으니 물질로써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이방인들이 신령한 것을 받았으므로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빚을 진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물질로서 예루살렘 교회를 공궤한는 것은 빚을 갚는 것과 같다(롬 15:27 참조). 교역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물질로서 보답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며 믿음을 쓰는 일이다. 교인들이 교역자를 대접할 줄 모르면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다. 교역자는 세상 사업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일(기도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전무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물질로 잘 대접하여 생활에 곤란이 없도록 해야 그 교역자가 하나님의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 모든 좋은 것은 물질적인 좋은 것을 가리킨다.

.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윗절 말씀에 이어서 교역자를 물질로 대접하는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다. 교역자를 물질로 대접하지 않는 자는 믿음을 쓰지 않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요 스스로 속는 것이 된다. 참교역자를 반대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 교역자를 세웠고 하나님이 붙들고 일을 하는 자를 반대하므로 결국은 하나님을 반대하고 만홀히 여기는 것이 된다. 만홀히 여김은 조롱하는 것을 가리킨다.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윗말의 계속이니 교역자에 대해서 심은 대로 자기가 거둔다는 뜻이다. 교역자를 대접하지 않으면서 은혜만 받겠다고 하면 그것은 심지 않고 거두겠다는 것이다. 교역자를 존경하고 대접해야만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 성도가 교역자를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기도로 도와주고 물질로 대접하며 허물이 있을 때에도 사랑으로 가리워 주는 것이 참 대접이다.

.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육체를 위하여 심는자 육신과 세상을 위하여 일하는 자를 말한다. 이러한 일의 결과는 썩어진 것을 거둘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잠시 후에 이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기 때문이다(요일 2: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여 거기에 마음과 정력과 물질을 다 기울이고 하나님을 위하여는 바치지 않고,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종을 대접하지도 않는다면 썩어진 것을 거두고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다.

성령을 위해 심는 자 성령의 인도를 따라 진리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자이다. 그 일을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며 시간과 마음과 물질을 바치고 희생하는 자를 가리킨다. 성령을 위해 심어 놓으면 반드시 영생을 거둔다. 영생을 거둔다는 것은 ① 성도의 중생한 영이 자라나는 것을 가리키고 ②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을 가리킨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육체를 위하여 돈을 쓰고 세상의 것을 붙잡으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고하지만 그들은 결국 썩을 것을 거두고 영원히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봉사하며 물질과 시간을 바치며 하나님이 원하시면 자기 생명까지 다 바치는 자는 반드시 영생을 거둘 것이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재산과 권력을 포기하고 주를 위해서 고난 당하는 길을 걸어갔다. 이것이 성령을 위해 심는 것이다.

.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은 하나님의 일이다.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에 마귀들이 역사하여 방해하고 대적하기 때문에 낙심한 만한 일이 생긴다. 외부적으로 강한 세력이 반대하더라도 낙심하지 말며, 내적으로 힘이 약하고 피곤할 때에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하여 선을 행하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고 영생의 열매를 거둘 때가 온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루살렘을 중건하려고 할 때에 많은 대적들이 일어나 방해하였다(느 4:10). 그때에 유대인들이 힘든 성전건축으로 인하여 약해졌으나 느헤미야는 낙심하지 않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느 4:20) 하고 믿고 앞장서서 공사를 계속하였다. 백성들도 느헤미야가 권면하는 말을 듣고 피곤한 자리에서 일어나 순종했다. 그때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성이 다 건축되었고, 원수들은 굴복했으며, 하나님의 일이 잘 성공되었다. 하나님의 일은 실패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시작했다가 외부적인 난관에 부딪히고 내부적으로 힘이 약해졌다고 하여 피곤하여 쓰러지지 말고 계속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힘써 일하면 때가 이르러 거두게 된다.

.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성도가 남에게 대하여 착한 일을 하되 먼저 믿는 사람에게 하여야 한다. 믿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하늘나라에 상달된다.

四. 육체의 모양을 내지 말라(11-13)

. 6: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바울이 본서를 기록할 때에 다른 사람을 시켜서 대필하다가 여기서부터 친히 자기 손으로 썼는데 눈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큰 글자로 쓴 것 같다. 바울이 편지 끝 부분에 친히 쓴 것은 자기의 편지인 것을 확증하기 위해 싸인(sign)하는 것 (인 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사도적인 권위로 기록한다는 것을 증거하기도 한다.

. 6: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 뿐이라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는 할례당을 가리킨다. 그들은 육체의 할례 받은 것을 자랑거리로 삼았으니 육체의 모양을 내는 자들이다. 그들이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므로 기독교인들도 할례받는 자가 있었다.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귀한 진리를 받았고 체험한 바도 많았는데(3:1-5) 또 할례를 받은 것은 핍박을 면하려 함이었다. 오늘날에도 참 진리를 깨달은 자들이 핍박을 면하기 위해 다른 방편을 취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 6:12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다 지키는 자가 세상에는 하나도 없다.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도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다.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면서 율법을 따라 할례를 받았다고 하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그것은 육체의 모양만을 내는 일이 된다.

육체의 모양을 낸다는 것은 육체로 할례 받은 것을 자랑하는 것이다. 할례를 받는 것은 진리를 지키는 일도 아니요 생명의 일도 아니고 외부적인 의식을 자랑하는 것뿐이다.

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라(14-18)

.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성도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 진리이며 생명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우리 생명이 살아났으니 이것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십자가의 도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해 주신 살과 피를 우리 영이 날마다 먹고 살아나가는 것이다(요 6:53). 이 길을 걸어가면 세상이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다. 못 박는다는 것은 못쓰겠다고 내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게 된다(딤후 3:12). 또 참 성도는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 달린 주님만 사랑하고 십자가의 도(道)만 생명으로 삼고 십자가의 진리대로만 걸어가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나 종교적인 의식이나 외부적인 자랑거리(이스라엘 사람. 팔일 만에 할례 받은 것. 바리새인 등)는 다 배설물로 여긴다(빌 3:8). 이것이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할례가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지 못하고 무할례도 사람의 생명을 살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의식들은 사람을 의롭게 하거나 생명을 살려 나가는데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의식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오직 진리와 영감으로 지음을 받은 영이 중요하고 그 영이 새 생명으로 자라나는 것이 중요하다.

. 6: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이 규례는 위에서 말한 십자가의 도 즉 복음 진리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육적 유대인에 대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가리킨다. 평강 새 사람으로 사는 성도에게 있는 심령의 평강을 가리킨다. 긍휼 하나님이 불쌍히 여김을 가리키는데 우리 구원의 총 밑천이다.

.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바울은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고 간다.

흔적은 증표(證票)를 의미한다. 예수의 흔적이란 예수님을 위해서 매맞은 흔적, 환난 받은 자취, 희생과 고난의 흔적을 가리킨다. 예수를 위해서 이러한 흔적을 받았으니 예수님의 흔적이다.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이 그 흔적을 보고서 상급을 주신다. 이 예수의 흔적이 많은 자는 천국에 가서 상급이 크다.

. 6: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 성령이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지 않고 마음을 하나님께 두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성도가 은혜 속에서 살면 심령이 강건해진다. 아멘 성취의 뜻으로 그대로 성취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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