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강헤

히브리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히브리서 강해

·기록한 사람 : 사도 바울

·기록한 연대 : 주후 60-85년경

·기록한 장소 : 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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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히브리서 1장

제 1 장 성자 예수

(대 지)

一. 성자 소개(1-3)

二. 성자와 천사의 비교(4-14)

(본문 강해)

一. 성자 소개(1-3)

. 1:1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구약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말한 것이다.

여러 부분 구약 성경은 모세 오경과 역사서, 시가서, 선지서 등의 여러 부분으로 되어 있다.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 말씀을 주실 때에 음성, 꿈, 환상, 비의적 현상(秘儀的現像), 혹은 우림과 둠밈의 여러 모양으로 계시하여 주셨다.

.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 모든 날 마지막은 말세, 혹은 말일을 말하며,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말세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벧전 1:20, 히 9:26). 또 이 세상의 끝을 말세라고도 하는데 그때에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약 계시가 주어진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여러 모양으로 계시를 주셨으나,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다 나타내 주셨다. 구약의 율법은 그림자요, 그리스도는 실체이다(히 10:1).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계시의 최고 절정이요, 완성이요, 종결이다.

요한복음 1:17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계시는 최고 절정이요, 최종적인 진리이다. 이것을 사도들과 그 수종자들에 의하여 문서로 기록한 것이 곧 신약 성경이다. 이 성경 외에 다른 표준 계시가 또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들로 말미암아 주신 계시는 모든 날 마지막에 최종적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만일 이 성경 이외에 다른 계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는 죄가 된다. 요한계시록 22:18-19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였다.

오늘날 신신학자들은 성경 말씀을 인간의 이성에 맞지 않는 부분은 제하고 믿으려 하고, 신비주의자들은 신구약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추가하여 믿으려 한다. 예를 들면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셨다", "자기가 예언한다"고 하여 성경에 없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가하는 죄가 된다. 에베소서 3:5에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하였다. 표준 계시는 신구약 66권뿐이다. 신구약 성경 외에 다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만유의 후사"는 원어로 - (클레로노몬 판톤)인데 "모든 것들을 기업으로 소유한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유의 후사로 세워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하게 하셨고, 모든 권세를 그에게 주셨다. 마태복음 28:18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였다.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존재되고, 보호되고, 유지되어 나간다. 나중에는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구속하고 회복하여(행 3:21) 완전히 복종시키고(고전 15:28), 자기에게 귀속시키신다(롬 11:36).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그것들을 완전히 돌리실 것이다.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는 물질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하늘의 것과 땅의 것, 금생과 내세의 모든 것을 다 창조하셨고, 또한 천국과 지옥까지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우주와 만물들을 창조하실 때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하셨다.(잠 8:22-30).

.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어 내보내는 빛이라는 뜻이다. "광채"는 빛의 반영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에게 반영되어 인간에게 비치고 있으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친교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영광의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는다(출 33:20).

본체의 형상이시라 본체의 모양을 나타내 준다는 뜻이다. 본체는 하나님을 가리키는데, 그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께서 다 나타내 주셨다는 뜻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나타났다.

요한복음 1:18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이다(요 14:9).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과 같다. 하나님의 속성은 열 두 가지가 있는데, 특수한 것 네 가지와 보편적인 것 여덟 가지가 있다. 특수한 속성은 ① 독립성, ② 불변성, ③ 무한성, ④ 단순성이고, 보편적 속성은 ① 지식, ② 지혜, ③ 선, ④ 사랑, ⑤ 거룩, ⑥ 의, ⑦ 진실, ⑧ 능력이다. 이 하나님의 12속성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나타내 보여 주셨다.

우리가 보지 못한 하나님의 본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내 보여 주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 신가를 알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인간들이 알지 못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큰 사랑을 나타내 주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하나님의 본체를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으로 생명과 능력을 삼고, 그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며,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닮아 나아가야 한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만능이시다. 그러므로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다. 창세기 1:9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고 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한다. 바닷물도 말씀으로 붙들어 놓았기 때문에 한계 이상은 올라오지 못한다. 해와 달과 별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정 궤도를 돌며 제 위치에 있게 해 놓으셨다. 하나님께서 만물에게 명하여 각각 자기 위치에 두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에 붙들려서 질서있게 운행되며 보존되어 나간다. 춘하추동 사계절이 질서있게 변화되는 것이나 모든 동식물과 무생물이 생성 소멸되는 모든 변화가 말씀대로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한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그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그 말씀의 권위를 깨달아 전적으로 그 말씀을 순종해 나가면 모든 것이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정결케 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또 본체의 형상이시며,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 위대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그의 피로 다 씻어서 정결케 해주셨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성도는, ① 법적으로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의인이 되었고, ② 영이 중생하여 깨끗하고, 거룩한 영이 되었다. 요한복음 15:3에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고 했다. 중생한 영은 깨끗하고 거룩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고. 하나님과 그 말씀만 좋아하고 기뻐한다.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 "위엄의 우편"은 하나님께서 요긴하게 사용하시는 자리요, 존귀하고 영광된 자리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자리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복종케 하셔서 당신의 형상을 입어 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후까지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자들은 심판하신다.

二. 성자와 천사의 비교(4-14)

. 1:4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당시 유대인들은 천사를 아주 높이고 숭상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성자 예수를 그 천사와 비교하여 그 천사보다 얼마나 더 위대하신가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 천사는 피조된 영물로서 모든 선지자보다 우월하다고 사람들이 알고 있었으므로 성자 예수는 모든 선지자나 천사보다 우월하고, 또 모세보다도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여 보여 준다. 성자 예수께서 천사보다 우월한 증거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천사는 부리는 영(사환)이므로 아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그리스도는 인성으로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받았다는 뜻이다. 성자 예수는 그의 신성에 있어서는 영원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성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의 일을 완성하셨다.

. 1: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하나님께서 천사에게는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은 적이 없으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내 아들"이라고 하셨다.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기업으로 물려받을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은 더욱 아름답고 존귀하다.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이 구절은 시편 2:7의 인용이며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신성으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요, "오늘날"은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날을 가리키며, "너를 낳았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道成人身)할 것과(요 1:14), 불가항력적인 절대대권(絶對大權)을 가지신 왕으로 세움을 입을 것과, 마귀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할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성부께로부터 영원히 나시고 태초부터 하나님과 같이 계셨다(요 1:1). 성령은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 이것은 삼위일체 내의 신적 역사이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요 삼위가 일체이시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사무엘하 7:14의 인용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 아들 솔로몬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며, 또한 이것은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다.

. 1:6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 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맏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맏아들이라고 한 것이다.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전, 구약 시대 성도들도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므로 그리스도는 맏아들이시다. 또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이기 때문에 맏아들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맏아들이요, 모든 기독교 신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아들의 권세를 받았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와 같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 아들이라는 이름 속에는 권세가 있고,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을 기업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은 영광스러운 지위와 권세를 가진 자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의 이름을 성도에게 주신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축복이다.

어떤 왕국에서 왕이 한 사람은 총리로 세우고, 한 사람은 아들(양자)로 삼았다고 하면 총리의 명예와 권세도 크지만 왕의 아들의 영광과 권세에는 가히 비교할 바가 못된다. 왜냐하면, 총리는 단지 왕의 명을 수행하는 자에 불과하지만 아들은 왕의 계대를 이어서 왕위를 계승할 뿐 아니라 그 기업을 물려받을 자이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왕의 아들의 권세도 이렇거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는 얼마나 크시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 자체가 큰 기업이다. 우리가 이처럼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자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큰 기업을 받은 우리가 이 세상의 작은 일을 가지고 싸우거나 다툴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하늘 나라의 영광스러운 기업을 바라보면서 어떤 환난이나 멸시도 잘 참고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시편 97:7인용이며 그리스도께서 천사보다 위대한 또 한가지 이유를 말해 준다. 천사들은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섬길 자이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경배를 받을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천사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 1:7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는 말씀은 시편 104:4을 70인역 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천사들을 바람이나 불꽃처럼 부리신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천사보다 우월하다는 또 한가지 이유이다.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봉사자요,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고, 그리스도는 그들을 부리시는 절대자이시다.

. 1: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이 구절은 시편 45:6이하의 인용이다.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송영으로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하나님이여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천사와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성자에게 '하나님이여'라고 하셨으니 성자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보좌는 왕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그 왕위는 영원하며, 그 나라의 홀, 즉 왕권도 영원하다. 이 세상 나라 는 잠깐 지나가고, 세상 나라의 왕권도 잠깐 지나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며, 그 왕권도 영원하다. 우리는 영원한 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서 이루어 나간다. 그것은 영적 구원 운동이다. 장차 천년 왕국 시대에 그 나라가 실현될 것이며, 또한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 실현되어 영원 무궁토록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 잠깐 있다가 없어질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그 나라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 일하며 수고해야 한다.

주기도문에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성도들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원하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말씀대로 순종한 것은 절대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다. 또한 그로 인하여 자라난 성도의 영도 영원히 그대로 존재한다. 이렇게 하늘 나라는 현재에도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고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는 우리를 통해서 건설되어 나가고 있다. 이것이 하늘 나라에 그대로 옮겨져 거기서 영원히 계속된다.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홀은 지배권과 통치권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공평한 나라요 도덕적인 나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올바로 해야 된다. 모든 일을 말씀에 맞게 하고, 선한 양심을 써서 진실하게 해야 한다. 성도들이 모든 것을 옳게 해 나가면 핍박하는 자들이 핍박을 하면서도 양심으로는 성도의 행위가 옳다고 인정한다. 다니엘을 죽이고자 모함한 자들도 양심으로는 다니엘의 옳은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도 모든 일을 옳게 해야 한다. 옳게 행하다가 죽으면 죽어도 사는 것이요, 져도 이긴 것이다. 그러나 불의의 길을 걸으며 사는 것은 살아도 죽은 것이요 이겨도 진 것이다.

. 1:9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하였고

그리스도는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이 불법을 미워하여 제거하고, 의를 사랑하여 세우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다. 죄는 불법인데, 그리스도께서는 피 흘리기까지 죄(불법)와 싸우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대속적인 죽음이요, 의의 완성을 위한 죽음이다.

의 하나가 천하보다 귀하고 육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의를 생명보다 더 사랑하셨으므로 생명을 내놓고 의를 세우셨고, 죄를 미워하시되 피 흘리기까지 미워하셨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생명보다 의를 더 귀히 여기고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의를 세워 나가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낮아지고 희생할 때 의를 이루어 나아갈 수가 있다.

즐거움의 기름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 주심을 가리킨다(요 3:34). 성도들에게는 부분적 직무를 맡겼기 때문에 거기에 합당한 성령을 한량없이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는 전체적인 큰 직무를 맡겼으므로 성령을 한량없이 주신 것이다. 또 그리스도께서 완전 복종하여 큰 직무를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하셨기 때문에 그 진리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으로 인한 즐거움이 모든 동류 즉 모든 선지자나 성도들보다 크고 모든 천사들보다도 더욱 큰 것이다.

. 1:10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본 절에서 12절까지는 시편 102:25-27의 인용이다.

주여 태초에 주께서 여기서 주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창조자가 되어 땅과 하늘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잠 8:22-31). 그러므로 만물은 천사까지도 피조물이요, 그리스도는 창조자이시므로 천사나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족히 비교할 바가 못된다는 것이다.

. 1:11-12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땅과 그 위에 만물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고 변하므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러나 주는 절대 불변하시고 영원히 동일하시다(히 13:8). 그러므로 성도는 주와 연합된 생명으로 살고, 그 영원 불변의 말씀대로 자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영원히 불변하고, 주와 같이 영존(永存)한다.

. 1: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시편 110:1인용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모든 원수들을 그리스도께 정복당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발아래 밟히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원수가 발등상이 되어 그 발등상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더욱 높아지고 영광스럽게 되시는 것이다. 시편 20:8에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라고 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통하여 모든 원수들을 정복해 나가신다. 성도가 믿음에 서서 말씀대로 걸어 나가면 그리스도께서 원수들을 성도의 발아래 밟히게 하여 발등상이 되게 하시고, 성도는 그 발등상으로 인하여 더욱더 존귀해진다. 발등상을 디디고 올라서면 그만큼 더 높아진다. 발등상 한 개 위에 올라서면 그만큼 높아지고 두 개나 세 개면 그만큼 더 높아지는 것이다.

또 낮은 발등상 위에 올라선 사람보다 높은 발등상 위에 올라 선 사람이 더 존귀하다. 올림픽에서 동메달 딴 사람의 발등상보다 은메달 딴 사람의 발등상이 높고, 금메달 딴 사람의 발등상은 그보다 더 높다. 성도도 큰 시험, 큰 원수를 이기면 그만큼 더 존귀해진다. 또 많은 환난을 받고, 많은 시험과 많을 원수를 이긴 성도는 그만큼 큰 자가 되고 존귀와 영광이 크다. 그 원수가 정복이 되면 그 원수가 발등상이 되어 그 발등상으로 인해서 더 존귀해지고, 더 큰 인격자가 되고, 더 큰 능력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나가는 자에게는 원수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더 낫다. 또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원수를 이기게 해주시고, 큰 환난 중에서도 그 말씀이 보호해 주고 하나님이 만능으로 붙들어서 승리하게 해주신다.

내 우편에 앉았으라 우편은 요긴한 자리요, 능력의 자리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요긴하게 사용하시는 자리에 앉아 능력을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능력으로 요긴하게 사용하셔서 원수를 발등상이 되게 해주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를 이용하여 원수를 정복해 나가시는 것이다.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하신 것은 모든 원수가 완전 정복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서 평안히 안식을 누리시면서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요 5:17). 그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면서 쉬지 않고 주의 명령(말씀)대로 일해야 한다. 쉬지 말고 기도하고. 쉬지 말고 죄와 싸우고, 쉬지 말고 구원 운동을 위해서 일해야 된다. 그리하여 원수를 정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야 한다. 최후의 승리는 그리스도께 있고 또한 그 안에 있는 우리에게 있다. 그 날을 바라보며 선한 싸움을 계속하여야 한다.

다니엘이 사자굴 시험이 닥쳤을 때 자기를 죽이려고 음모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어려움이 닥쳐도 생명 있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담대히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갔으나 거기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 보호하심을 입어 죽지 않고 살아 나왔으며, 다니엘을 모함한 원수들은 다니엘의 발등상이 되었다. 그 발등상 때문에 다니엘이 높아졌다. 그 원수들이 없었다면 다니엘이 그렇게 높아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원수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 원수가 왔을 때에 기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찾아야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해 나가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조급하면 실패한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의 장중에 붙들려서 일했지만 조급하게 나가다가 낙망에 빠져 실패했다.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되 언제나 주님이 일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출애굽기 14:13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 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천사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부리는 영이다. 그들은 구원 얻을 후사가 되는 성도들을 봉사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이다. 마태복음 18:10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믿는 아이들까지 천사를 보내서 보호해 주신다. 특히 믿음을 지키다가 위태한 일을 당한 성도를 하나님께서 특별히 천사를 보내어 보호해 주시고 도와주신다.

시편 91:11-12에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천사)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구원 얻을 후사들이 믿음을 잘 지키며 구원을 이루어 나 가다가 위태한 일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반드시 지켜 주실 것이니 두려워할 것이 없고 오히려 담대해야 한다. 산 믿음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음박질하며 전진하는 성도는 천사의 봉사를 경험한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런 역사가 없다.

믿음으로 용맹 있게 나가는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사자 입을 봉하여 주셨다(단 6:22). 앗수르 군대가 유대 나라를 침략하기 위하여 왔을 때 히스기야왕과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기도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그 앗수르 군대 십 팔만 오천명을 멸망시키고 유다를 구원해 내셨다(사 37:36).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서 여러 모로 수종들도록 천사를 보내서 도와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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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장

제 2 장 인자(人子) 예수

(대 지)

一. 구원을 경히 여기지 말라(1-4)

二. 인자의 존귀와 영광(5-8)

三. 성자의 낮아지심(9)

四. 성자의 체휼과 구속(10-18)

(본문 강해)

一. 구원을 경히 여기지 말라(1-4)

. 2:1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천사보다 높으시므로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에게 들은 말씀이 참으로 귀중하다는 것이다.

모든 들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한 구원의 도리를 가리킨다. 말씀을 들은 자는 더욱 간절히 삼가지 않으면 그 말씀대로 결심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 그 말씀이 심령에 뿌리를 박고,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자라나고, 결실하도록 잘 간직하고, 새김질하고(말씀을 되새기며 기도하는 것), 그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약1:21-22참조).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거나 잘 간직하지 않으면 흘러 떠내려가기 쉽다. 흘러 떠내려간다는 것은 유실(流失)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말씀을 받은 자가 그 말씀을 흘러 떠내려보내면 자기에게 아무 유익이 없고. 음식을 먹고 토하거나 설사하는 것과 같아서 차라리 말씀을 받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 또한 잉태한 여인이 유산시키는 것과 같아서 오히려 몸에 해가 되고, 하나님께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은 자들은 자신을 그 말씀에 화합시켜 그 말씀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도록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갈 4:19 참조). 또, 그 말씀을 즐거워하고 새김질하여 그 말씀이 자기 생명이 되고 열매를 맺도록 힘을 써야 한다. 많은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흘러 떠내려보낸 사람은 하나님께 반드시 보응을 받는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아서 지키지 않으면 받지 않은 사람보다 못하며(벧후 2:21), 하나님 앞에 책망이 더 크다(눅 12:47-48 참조).

성도가 말씀을 흘려 떠내려보내는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삼가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삼가 조심하지 아니하고 방심 부주의하면 말씀을 흘러 떠내려보내게 된다. 삼가 조심하지 아니하여 말씀을 흘러 떠내려보낸 것은 말씀을 귀중히 여기지 않은 것이요, 잘 보존하지 않은 증거이다. 보배를 가지고 있는 자는 그 보배를 참으로 조심하여 잘 간수한다.

둘째, 말씀에 착념치 않았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6:3-5에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 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고 하였다.

"착념"이란 오직 한가지에 마음을 두고 줄곧 주의 깊게 생각하며, 그것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착념하는 자는 항상 그 마음속에 말씀이 떠나지 않고 그 말씀이 역사하며 그 말씀을 즐거워한다. 기도할 때에도 말씀을 새김질하여 기도하고, 길을 가면서도 말씀을 묵상하고 언제나 말씀에 착념하여 그 말씀대로 자기가 만들어지려고 힘을 써야 말씀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는다.

셋째, 큰 구원을 등한히 여겼기 때문이다(3절). 고귀한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등한히 여기면 그 말씀이 흘러 떠내려가게 된다.

넷째, 주께서 직접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사야 66:2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를 하나님이 권고하신다고 하였다.

다섯째, 성령의 감동을 소멸했기 때문이다.

. 2: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천사들로 하신 말씀은 율법을 가리킨다(갈 3:19). 율법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자인 모세의 손을 빌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행 7:53).

견고하게 되어 율법도 신적 권위로 견고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범한 자들이 공변된 온당한 보응을 받았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고 율법을 범하다가 광야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쓰러져 죽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요, 심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공의로 심판하신다.

.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큰 구원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가리킨다. 왜 복음을 큰 구원이라고 했는가?

① 율법은 천사를 통해서 주었지만, 복음은 천사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주셨기 때문이다.

②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나(롬 3:20),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죄를 사해 주기 때문이다.

③ 율법은 죄인들을 정죄하고 심판하였으나, 복음은 죄인들을 구원하여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④ 율법은 두려워하는 종을 낳게 하나, 복음은 양자를 삼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기 때문이다(롬 8:15).

복음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친히 말씀해 주셨고, 또 당신의 살과 피를(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주셨다. 이같이 친히 말씀해 주시고, 살과 피를 직접 주셨으니 복음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그런데 이같이 큰 복음을 등한히 여긴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들은 자들, 즉 사도들이 성령으로 인하여 확증하여 주었고, 그 내용을 성경책에 기록해 주었다. 이 큰 구원을 귀중히 여기지 않고 등한히 여기면 더 큰 심판을 하나님께 받게 될 것이다.

.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큰 구원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증거했고, 하나님께서도 표적과 기사와 여러 가지 능력의 역사로 증거하여 주셨다. 표적 중에 제일 큰 표적은 요나의 표적이다. 요나가 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 나온 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마 16:1-4). 만물을 창조하신 성자께서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에게 사죄와 영생을 주셨으니 이것보다 더 큰 표적이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속 사역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표적이다. 예수님은 또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과 오병이어(五餠그魚)의 표적과 바다 위로 걸어가시고 변화산에서 변화하신 일 등 많은 기사와 표적으로 복음적 큰 구원을 확증해 주셨다.

여러 가지 능력 갈릴리 바다의 풍파를 잔잔케 한 것이나,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불러 주신 일,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회개시키고 헤롯과 가룟유다를 심판하신 일 등 여러 가지 능력을 나타내어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을 확증하여 주셨다.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사도들과 여러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주셔서 복음으로 말미암는 큰 구원을 증거 하셨다.

고린도전서 12:8-11에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 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나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 했다(방언에 대한 해석은 고린도전서 강해서 14장 참조).

여기서 특별히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주시는 것이지 사람의 요구대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 구하기만 하면 성령의 은사를 다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이 성경 말씀에 위반된다. 고린도전서 12:29-30에는 성령의 은사를 구한다고 다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자기 주권대로 나누어주시는 대로만 받는 것이다.

二. 인자의 존귀와 영광(5-8)

. 2:5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 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우리의 말한 바 3-4절에 말한 큰 구원에 대한 것을 말한다.

장차 오는 세상 구원의 세계를 가리키는데, 초림하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고,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어 영원히 계속될 영적 구원의 세계와 천국을 가리킨다. 그 세계는 천사들에게 복종시킨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킨 것이다. 그 내용은 6절 이하에 설명한다.

. 2:6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본 절부터 8절까지는 시편 8:4-6의 인용이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아담의 자손되는 모든 인류는 피조물로서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니며(욥 25:2-6 참조), 범죄하여 더러워졌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 가운데서 멸망할 자들이다. 이러한 우리 인간이 무엇이관대 주 하나님께서 생각해 주시고, 권고하여 구원해 주시는지 그 은혜와 그 사랑을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서 구속해 주신 자체가 우리를 생각해 주시고 권고해 주신 것이다.

인자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보통 사람을 가리키고 있으나, 또한 인류의 대표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본절의 궁극적 뜻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생각해 주시고 권고해 주셨다는 뜻이다.

. 2:7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다는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받으신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로서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활동하며 고난이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육신을 입으셨고, 시공의 제한을 받으셨고, 여러 가지 고난을 받으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된 점이다.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여 영광스러운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온전케 되셨고(히 5:8-9), 그로 인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실 자격이 만들어졌다. 빌립보서 2:6-11에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가져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도들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 주실 것이다. 그 이유는 베드로전서 2:21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이미 영광스럽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믿음을 잘 지키면 더욱 영광스러운 면류관 상급을 받는다.

. 2:8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먼저 하나님께 복종하셔서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 능력으로 역사하여 만물을 점점 복종시켜 나가신다. 에베소서 1:22에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고 했다. 또 마태복음 28:18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리스도께 반드시 복종하게 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만물이 그리스도께 복종하기로 되어 있으나 지금은 아직 만물이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것도 있고, 그 말씀을 복종치 않고 불순종하는 것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복종시킬 능력을 가지시고 점점 복종시켜 나가시다가 마지막에는 완전히 복종시킬 때가 올 것이다. 고린도전서 15:27-28에 "만물을 저의 발 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 했다.

사도행전 3:21에는 만유가 회복할 날이 온다고 했다. 그 때가 만물이 그리스도께 완전 복종하는 때이다. 로마서 8:21에는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고 했다. 이것이 만물 구속이요, 만물이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하는 때이다. 만물이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할 때에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엡 1:10).

만물 통일이란 하나님의 명령과 통치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에게 미치고 만물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케 되고, 만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에게 이용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때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통하여 만물을 그 말씀과 통치에 복종시켜 나가는 도중에 있다.

三. 성자의 낮아지심(9)

.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위에서 인용한 시편 8:5의 말씀은 그리스도에게 먼저 이루어졌는데,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받는 동안은 천사보다 못하게 되었다가 부활 승천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게 된 것이다(빌 2:6-11 참조).

그 관을 쓰게 된 것은 그리스도가 고난받으심으로 하나님을 완전 복종했기 때문이며 고난으로 온전케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고난받으신 목적은 모든 택한 백성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심으로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라야만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으므로 인성을 입으셨고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릴 수 있기 때문에 신성으로는 참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요(죄는 없으심) 신성으로는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택한 백성들을 죄로 인한 사망 가운데서 건져내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택한 백성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다 치루신 것이다.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고 한 것은 죽음을 체험했다는 뜻이다.

四. 성자의 체휼과 구속(10-18)

. 2: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만물이 인(因)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시요 만물의 심판주시다. 로마서 11:36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라고 했다. 이것은 성도의 구원을 시작(예정)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성도의 구원을 성취하시고 완성하실 분도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많은 택한 백성을 영광에 들어가도록 예정하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구원의 주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고, 그리스도가 본을 보여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신 것이다.

구원의 주의 원어는 (알케곤 테스 소테리아스)인데 히브리서 12:2에 있는 "믿음의 주"와 같은 말이며 믿음의 창시자, 지도자, 인도자, 개척자라는 뜻이다.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 그리스도께서 고난으로 온전케 되었은즉 모든 성도들도 주를 위하여 그 말씀을 복종하다가 고난을 받음으로 점점 온전케 되어질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자는 그리스도요,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성도들이다. 그리스도는 참 감람나무요 성도들은 그 가지이다. 성도들이 원래는 돌감람나무였으나 참감람나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입어 참감람나무 가지가 되었다(롬 11:17-18).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은 자이다.

하나에서 난지라 하나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도 하나님께로부터 낳았고, 성도도 중생할 때 물과 성령으로 새 생명을 받았으니 곧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다. 성도를 영적으로 볼 때에 그리스도께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신다. 이는 성도들도 하나님께로부터 낳았고(고전 1:30), 양자의 영이 있고(롬 8:15), 영원한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요일 5:13).

. 2: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시편 22:22에서 인용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성도들과 형제가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모형(模型)된 다윗이 예언한 말인데, 그 뜻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성도들(내 형제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의 머리가 되어 성도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성도가 형제의 관계에 있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 2: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이사야 8:17의 인용으로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계실 때에 연약에 싸여 주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히 5:7) 이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형제요 동류(同類)라는 것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 이사야 8:18의 인용으로 선지자가 그리스도의 모형적 위치에서 그리스도께 대하여 예언한 말씀으로서 "나"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내게 주신 자녀"는 제자들, 즉 성도들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자녀라고 하셨으니 성도들과 동류임을 증명하며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으로 볼 때에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시며, 우리와 똑같은 혈육에 속해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혈육에 속한 것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며, 마귀를 이기기 위함이었다. 인간의 죄로 사망이 왔고, 마귀는 사망의 권세를 잡고 있으므로 이 사망과 마귀의 세력에서 우리를 건져내려면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께서 대속해야 한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던 것이다.

.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 동안 죄와 마귀의 종노릇을 한다. 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잡고(14절)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아 자기의 종으로 부린다. 죽이겠다고 위협하면 모든 사람이 무서워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불의하고 사악한 일을 행하게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종살이하는 죄인들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셔서 믿는 자들을 죄에서 해방시켰고, 사망과 마귀의 세력을 멸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과 마귀를 이긴 것이다. 그것들이 다시는 성도에게 왕노릇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벌써 영생을 얻은 자요(요 5:24) 사망에서 승리한자이다(고전 15:55-57).

성도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새 생명을 받았고(요일 5:13), 예수님께서 자유와 해방을 주셔서 그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죽기를 무서워하고 종살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성도 중 아직도 죽기를 무서워하여 악한 일과 불의한 일에 종살이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믿음이 부족한 때문이요,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 때문이다. 또 영으로 살지 않고 육으로 살아서 육신의 생명이 우상이 되어 있는 까닭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망과 마귀에게서 건져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요 11:25-26). 이것은 중생한 영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이 영적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죽음을 초월해서 살게 된다. 로마서 8:2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믿는 사람을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놓았으므로 이제는 죄와 사망의 포로가 아니고 종도 아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사망과 죄와 마귀를 이긴 생명과 능력이 있으므로 다시는 죽기를 무서워하여 종살이하는데 빠지지 말고 담대히 믿음으로 나가야 한다.

. 2:16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신 것은 천사를 붙들어 주시고자 하심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자손, 즉 택한 백성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었다.

붙들어 주려 하심은 취(取)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택한 백성의 죄를 속죄해 주려 하심이 분명하다.

. 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는 윗절에 말한 바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취하고자 하였으므로"의 뜻이다.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그리스도께서 성도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사람이라야 사람의 죄를 대속하겠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된 것은 택한 백성의 죄를 속죄해 주는 대제사장이 되기 위함이었다.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취하는 법이다(히 5:1, 5, 7).

. 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다 당하셨다. 이는 우리가 당할 모든 고난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당하시고 만능으로 그 고난을 다 이겨서 정복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아무리 큰 고난이 온다 해도 그것은 벌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것이요 또한 그 이기신 능력을 우리에게 주어서 우리도 믿음으로 걸어가면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이길 능력이 우리에게 있고, 그리스도께서 도와주시는데 왜 못 이기겠는가! 어떠한 시험과 고난이 와도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이겨 놓은 줄 알고 주님의 능력(이미 이긴 능력)을 가지고 나가면 넉넉히 이기고도 남는다. 이기는 방법은 예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는 것이다. 말씀대로 나갈 때에 고난이 와도 참고, 위협하지 않으며, 욕을 받아도 대신 욕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그것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인 줄 알고 달게 받고 죽기까지 순종해 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승리의 비결이다. 그렇게 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도와 주셔서 이기게 하신다.

그러므로 진리를 양보하지 말고 나아가자. 또 못하겠다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에게 능력을 주셨으므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빌립보서 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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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3장

제 3 장 구주 예수

(대 지)

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1-6)

二. 마음이 강퍅케 되어 믿음에서 떨어질까 염려하라(7-14)

三. 불순종의 결과(15-19)

(본문 강해)

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1-6)

.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은 성도를 가리킨다. 성도는 자원해서 성도가 된 것이 아니며, 사람으로 말미암아 된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였다. 누가복음 10:20에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름을 하늘에 기록해 놓으셨다.

로마서 1:6에는 성도를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다. 디모데전서 6:11이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하였다. 이것은 디모데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교역자에게 해당되는 말이며 모든 성도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창세 전에 예정해 놓으셨다가 때가 되매 불러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혀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이다.

거룩한 거룩한의 원어 (하기오이)는 구별(區別)의 뜻으로 성도는 세상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 놓은 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한 것이다. 예배당을 성전(거룩한 집)이라고 하는 것도 예배당이 다른 건물보다 좋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구별한 처소요,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임을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을 육체적으로만 보면 불신자와 다름이 없으나, 하나님이 불러내어 구별하였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임을 받는 자가 되었고, 중생한 영이 있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자라고 한 것이다(고전 6:19). 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했다(고전 3:17).

형제 저자인 사도는 존귀한 위치에 있으나 모든 성도들을 형제라고 불렀다. 그리스도의 피로 동일하게 구속을 받았고,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한 아버지를 섬기기 때문에 형제라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한 피로 생명을 받았고, 한 아버지를 섬기는 자는 모두 한 형제이다.

믿는 도리 성도가 믿는 참된 진리를 가리킨다.

사도 사도의 원어 (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입은 자"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우리가 믿어야 될 모든 진리를 온전히 나타내 주시고, 성취시키고, 적용시켜서 구원 운동을 이루어 나가신다.

대제사장은 인간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제사하며, 인간의 죄를 정결케 하는 직분을 가진 자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택한 백성의 대제사장으로서 택한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당신의 몸을 하나님께 속죄 제물로 바쳐 모든 성도의 죄를 대속해 주셨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하늘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우리를 정결케 하는 대제사장의 일을 계속해 나가신다.

깊이 생각하라의 원어 (카타노에사테)의 뜻은 계속적 착념(着念)을 의미한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을 계속 착념하여 깊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깊이 생각할 때 예수님이 가까워지고, 새 힘을 얻고, 기쁨과 소망이 넘치며 신앙이 견고해진다.

우리의 마음속에 옳지 않은 생각이나 육신의 생각 등 마귀가 주는 여러 가지 생각을 내어버리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헛된 생각에 빠져 여러 가지 욕심과 시험과 올무에 걸리게 되고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세상 염려와 모든 욕심과 악한 생각을 다 버리게 되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자기와 세상과 마귀를 이기며, 항상 빛 가운데로 걸어갈 수가 있다.

. 3:2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세우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리의 사도로 세워서 성도에게 말씀을 주시고 구속을 이루어 주셨다.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하나님의 온 집"은 교회를 가리킨다. 디모데전서 3:15에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하였다. 구약 시대 교회나 신약 시대 교회는 다 하나이다. 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모세는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예수님은 아들로 충성한 것이다.

. 3:3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예수님은 집 즉 교회를 세운 분이시요, 모세는 집(교회)을 맡아 봉사한 일꾼인 동시에 그 집(교회)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모세보다 훨씬 더 영광을 받으실 분이다. 그 이유는 집보다 집을 지은이가 더욱 존귀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더욱 영광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 3:4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집마다 지은 자가 있다. 그와 같이 만물도 지은이가 있으며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세운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요 주인이시요 주장자이시다.

. 3: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장래에 말할 것은 그리스도가 장래에 오셔서 말씀하실 복음을 가리킨다. 모세는 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심부름꾼)으로 충성하였으나, 그리스도는 아들로 충성하셨다. 그리스도는 집을 세우신 이시요, 집을 맡은 자시요, 집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성도의 구주시요, 생명이시요, 보배요, 자랑이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자랑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고전 2:2, 갈 6:14). 그리하여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세계 만방에 자랑한 것이다.

. 3:6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이시다. 그리스도는 믿는 도리의 사도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다 계시해 주셨고, 친히 성취해 주셨다. 또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정결케 하셨고 계속하여 정결케 해 나가는 일을 하고 계신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점점 더 하나님을 배우며, 점점 더 정결케 되어 하나님을 닮아 나가야 한다.

이 소망의 담대함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 집(성전)이 완성되어 나간다. 그리하여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견고한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二. 마음이 강퍅케 되어 믿음에서 떨어질까 염려하라(7-14)

. 3: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본 절로 11절까지는 시편 95:7-11의 인용이다.

성령이 이르신 바 구약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성령의 이르신 말씀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구약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3:16에는 모든 성경(신구약 전체)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역사적으로는 다윗이 시편을 기록하던 때를 가리키나 예언적으로는 신약 시대를 가리킨다.

. 3: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시에 광야에서 사십 년간 지낼 때에 하나님을 여러 번 시험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즉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까? 구원해 주시지 않을까?"하고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을 시험한 죄로 인하여서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었다.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강퍅"의 원어 (스클레뤼네테)는 마음이 굳어진다는 뜻이다. 마음이 굳어지는 것은 큰일이다. 병중에 무서운 병의 하나가 간이 굳어지는 간경화증인데, 마음이 굳어지는 것은 간이 굳어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병이다. 마음이 굳어져서 완악해지면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해져서 자기 주장과 고집대로만 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영적 생명에서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온유한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다(마 11:29). 어린아이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8:1-4). 성도의 마음이 온유하지 않고 굳어진 사람은 영적 생명의 세계에서 떠나 있고 천국 밖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도 외부적으로만 믿는 자요 속에 내적 생명은 없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진 자이다(히 3:12).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고 했다(민 12:3).

. 3: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할 때에 하나님을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다.

나를 시험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광야에서 망하였다. 민수기 14:22에는 이스라엘 백성은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거역했다고 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①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②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에 주시겠는가? 이루어 주시지 않겠는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시험한 것은 마음이 강퍅해져서 신앙에서 떠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다 쓰러지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다. 하나님께서 많은 능력과 이적을 행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많은 증거를 보여 주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일시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대단히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도 하였으나, 잠시 후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험하였다.

나의 행사란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쓴 물을 달게 해주신 것과 만나를 내려 주신 것과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고 원수를 이기게 해주신 것 등을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도록 하기 위해 믿을 만한 증거로써 보여 주신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들이 믿게 하려고 여러 번 이적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시험하실 때에 처음에 합격이 되었더면 그 다음에는 그 시험이 필요가 없었을 것이나 번번이 불합격했으므로 반복하여 시험을 치르고 그때마다 이적을 행하여 증험하게 하시기를 사십 년간 계속하였다. 그들이 사십 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도 신앙에 서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쌓다가 마침내는 광야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쓰러진 사람 가운데 많은 성도가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갔다. 그들이 가나안에는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죽었으나 그 영혼만은 구원을 받았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간음죄와 같은 큰 죄를 범하고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이 징계를 하여 육신은 멸하고 영혼은 구원받는 것과 같다. 고린도전서 5:5에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이들은 불붙은 집에서 벌거벗고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얻은 것이다(고전 3:15). 모세와 아론은 광야에서 쓰러졌으나 특별한 구원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성도는 영광스러운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다.

증험하고 증험의 원어 (도키마시아)는 시험하여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을 뜻한다.

. 3: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믿음 없는 세대를 진노하신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행사를 많이 보고도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이 노하시고 징계하실 것이다.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마음이 미혹되어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에 끌려가고, 유혹을 받아 세상에 빠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멀지 않다. 로마서 2:4-6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라고 했다.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의 진리의 길을 바로 알지 못하고, 진리대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는 자들을 책망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의 바른 진리를 배우고 깨달아 그 진리대로 섬겨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잘 이루어져 나간다.

. 3: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행사를 사십년 동안이나 보고도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길로 걸어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셔서 안식처 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가 성경대로 바로 믿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주시는 안식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따라서 성경대로 믿음을 잘 지키는 자는 슬픔과 고난이 많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의 축복을 받아 영적 평안(안식)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권고하실 때 그 권고를 잘 받고, 징계하실 때 바로 서야 한다. 또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고 항상 안식에 참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 3: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악심 믿지 않는 것은 악한 마음이다. 성도가 말씀대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지 않고 불순종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지게 된다. 성도들이 이렇게 되지 않도록 두려워해야 한다.

.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은 7절에서 언급된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날, 즉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날을 말한다. 오늘은 또한 은혜의 날과 구원의 날(고후 6:2 참조)을 가리킨다. 이 은혜의 날이 지나가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은혜의 날이 지나가기 전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강퍅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성도의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은 그 마음속에 죄의 유혹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모든 교인들은 한 몸이요 한 지체이다. 한 지체가 아프면 전신(全身)이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이상이 생기면 전신이 온전치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자기 혼자만 잘되면 좋다는 생각이나 자기 교회 하나만 잘되면 괜찮다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믿는 형제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며 위하여 기도해 주고, 한 성도라도 죄의 유혹을 받아 강퍅케 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권면해야 한다.

매일 피차 권면 죄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매일 살피며 부지런히 권면하라는 것이다.

.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 처음 믿음, 처음 사랑을 가리킨다. 처음에 받은 바른 진리와 처음 사랑을 끝까지 붙잡고 나가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게 된다. 여러 가지 환난과 유혹으로 인하여 처음 받은 바른 진리를 흘러 떠내려보내거나(히 2:1)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지 못한다.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으므로 주께서 촛대를 옮기겠다고 경고하셨다(계 2:1-7).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에 참여한 자를 가리킨다(고후 3:10-11, 빌 3:10-11).

三. 불순종의 결과(15-19)

. 3: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시편 95:7의 인용으로 "오늘날"은 시편을 기록할 때를 가리키나 예언적으로는 신약 시대, 즉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때를 가리킨다. 복음을 들을 때에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 믿고 순종해야 생명이 살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약 1:21).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을 강퍅케 하여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일이며 반드시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온유하고 상한 심령으로 말씀을 인하여 떨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다(사 66:2).

. 3:16-17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쫓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광야에서 하나님을 격노케 하던 자들도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었고, 범죄하여 광야에서 엎드러진 자도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었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고,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오늘날 교회 생활을 상징한다(행 7:38).

성도가 애굽과 같은 이 세상을 떠나서 신령한 가나안(천국)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데, 그 생활은 광야 생활과 같아 환난과 고통이 많고 대적과 유혹도 많다. 거기에는 마음이 강퍅케 되어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자도 많이 있고, 범죄하여 광야에 쓰러지는 자도 많이 있다(행 5:1-10, 고전 11:29-30, 5:5). 광야에서 쓰러진 자들 가운데 두 가지 종류가 있다. ① 믿지 않고 지옥 간 자가 있고, ② 믿었으나 범죄하여 쓰러져 죽은 자가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가룟 유다와 같이 믿지 않고 있다가 지옥에 갈 사람도 있고, 예수를 믿으나 시험과 유혹에 넘어가 범죄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병든 자, 약한 자, 죽는 자도 많이 있다(고전 11:29-30).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벌을 받았으나 그 영혼은 구원을 받는다(고전 5:5).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구원을 받았으나 영광스러운 구원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불 가운데서 벌거벗고 나온 자와 같이 겨우 그 영혼만 구원 얻는다(고전 3:15).

. 3: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순종치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오늘날 교회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순종하여 따라가지 않으면 영적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롬 14:17). 즉 성령으로 인한 영혼의 화평과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빼앗긴다. 그리하여 그들은 흑암을 만나고 심령에 고통이 들어온다. 이사야 42:22에 옥에 갇힌다는 것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심령의 자유가 없고, 흑암을 만나고, 고통을 당할 것을 가리킨다. 오늘날 성도가 순종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다 이런 상태에 빠진다.

. 3: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에도 믿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모세, 아론 기타). 그들이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천국에는 들어갔다. 모세가 변화산에 나타난 것을 보면 구원받은 것이 분명하다. 모세와 아론 같은 사람이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을까? 산 믿음을 끝까지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므리바에서 반석을 칠 때 범죄하여 산 믿음을 쓰지 못했다.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할 때에는 그 즉시 영적 안식을 빼앗기게 되고(롬 14:17 참조)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 이것이 세상에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여 영적 안식 세계에 들어가고 역사하는 능력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어떠한 난관에 부딪혀도 담대하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나갈 때 산 믿음이 있으므로 여호와의 이름만 의지하고 담대히 나아갔다. 우리 성도가 산 믿음을 가지고 달음박질을 잘하면 그 생명의 역사가 점점 커져서 자신의 구원 운동이 잘되는 것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을 많이 살려 내어 하나님의 전체 구원 운동이 잘되게 되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안식을 누리고, 천국에 가서도 큰 영광을 받는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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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히브리서 4장

제 4 장 안 식

(대 지)

一. 안식 약속(1-3)

二. 여러 종류의 안식(4-9)

三. 안식에 들어간 자의 행복(10)

四.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것(11-16)

(본문 강해)

一. 안식 약속(1-3)

.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우리 믿는 자에게는 영적 안식과 내세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다. 영적 안식이란 성도가 하나님 말씀을 잘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 때 하나님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평강을 누리고 마음이 항상 화평하며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믿는 자가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면 영적 안식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또 성도가 믿음 지키는 일에 실패하면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천국에는 가되 칭찬과 존귀와 영광 받는 자리에는 이르지 못한다(벧전 1:7, 고전 3:15 참조). 그러므로 성도가 이렇게 되지 않도록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믿음을 잘 지키고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라는 것이다(빌 2:12).

. 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라

우리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을 듣기만 하고, 믿음으로 화합치 아니했으므로 그 말씀이 유익이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듣는 것이 귀하지만 그 복음을 믿음으로 화합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복음을 믿음으로 화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① 마음 그릇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마음속에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들이 들어 있으면 복음을 들어도 믿음으로 화합하지 못한다. 악독, 교만, 시기, 방탕, 음란한 것 등이 다 세상의 더러운 것들이다. 콘크리트 할 때 흙이나 쓰레기 같은 이물질이 들어가면 콘크리트가 잘 화합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의 더러운 것이 마음속에 들어 있으면 복음을 들어도 믿음으로 화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을 내어버리고 회개하여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② 하나님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약 1:21) 그대로 믿고 착념하여야 한다.

말씀을 듣고도 자기 생각에 맞지 않거나 자기에게 손해될까봐 거부하면 안 된다. 어린아이와 같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 믿으면 그 말씀이 자기에게 힘이 되고 생명이 된다. 또 그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시 1:2).

③ 몸으로 화합해야 한다.

마음으로 화합한 후에는 몸으로 화합이 되어야 열매를 맺는다. 복음이 몸으로 화합이 안 되는 것은 마음으로 화합이 안되었기 때문이요, 또 몸으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그 말씀을 따라 떠났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할 때에는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이 마음으로 화합하는 것이요 실제로 떠나는 것은 몸으로 화합하는 것이다.

옳지 않은 것을 끊어 버리라고 할 때에 마음속에 그 말씀을 받아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몸으로 끊어 버리는 것이 참된 화합이다. 마음으로 화합이 된 사람은 몸으로도 화합이 되어서 전인격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으나 믿음으로 화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식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했다.

. 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장차 천국(내세)의 안식에 들어간다.

저 안식은 하늘 나라의 안식을 가리킨다. 믿는 자는 누구나 다 천국의 안식에 들어간다.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것은 시편 95:11 말씀의 인용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사십 년간 광야 생활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으므로 그들이 가나안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육일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안식을 누리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누리신 안식은 창조 사역을 끝마치시고 휴식하시는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완성된 만물을 기뻐하시며, 교통하시며, 하나님의 사랑과 모든 것을 만물에게 충만케 하시며, 그 만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며, 만족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을 인간에게도 주시기를 원하신다.

二. 여러 종류의 안식(4-9)

. 4:4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들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본 절은 제 칠일 안식에 관한 말씀이다.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이것은 창세기 2:2의 인용으로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칠 일째 되는 날에는 안식하셨다는 뜻이다. 그 칠일 안식을 영적 안식과 영원한 안식의 상징과 예표로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

. 4:5-6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것은 시편 95:11의 인용으로 순종하지 아니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가나안 안식도 영적 안식과 영원한 안식의 예표이다. 출애굽 당시 순종치 않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어느 시대 사람이나 순종치 않으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믿는 자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자들이다. 그러나 믿는 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범죄하면 영적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쫄딱 망하고, 그 영혼만 천국에 간다(고전 5:5).

. 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오랜 후에 다윗의 글은 시편 95:7 하반절에 인용된 말씀이다.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 본 절은 4절에서부터 제 칠일 안식론에 대한 연속으로써 다시 어느 날을 정한다는 것은 제 칠일 안식일 외에 다시 다른 안식일, 즉 주일날을 안식일로 정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로 인하여 제 칠일 안식일(토요일)이 주일(일요일)로 변경된 것이다.

히브리서 7:18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했다. 옛 계명 되는 제 칠일 안식일(토요일)은 폐하고, 예수님 부활하신 날인 주일이 안식일이 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새 세계(구원의 세계, 영적 생명의 세계)와 새 안식이 시작된 것이다. 신약 시대는 새 언약 시대이므로 신령한 새 세계에서 살아야 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되고(요 4:23), 새 안식일인 주일을 지켜야 된다. 첫 것은 낡아지고 쇠해지고 없어지는 것이다(히 8:13), 그러므로 사도들도 주일을 지켰다.

사도행전 20:7에 바울이 안식 후 첫날 곧 주일에 예배드리며 밤이 깊도록 강론할 때에 유두고가 삼층 누에서 떨어져 죽었다. 고린도전서 16:2에 주일날 예배 드릴 때마다 연보하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20:19에는 주일날 제자들이 모인 곳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서 말씀해 주셨다. 사도행전 2:1에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는데 그 오순절은 부활 후 일곱번째 주일날이다. 요한계시록 1:10에는 주일날 성부께서 계시를 주셨다. 주일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합동하여 은혜 주시는 날이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합당하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시편 95:7-8뜻을 인용한 것이다. 어느 시대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마음을 강퍅케 하면 안 된다. 마음이 강퍅케 되면 말씀이 그 마음에 뿌리를 박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 한다.

오늘날은 예언적으로 그리스도 시대, 즉 신약시대를 가리킨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되고, 들을 때에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고, 믿어야 될 것을 권하는 말씀이다.

. 4:8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준 안식은 가나안 안식을 가리키는데, 그 가나안 안식 외에 또 다른 안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 후에 다른 날 그 후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안식을 준 후를 가리키고, 다른 날은 가나안 안식 외에 다른 안식을 가리킨다. 그 다른 안식은 주일과 영적 안식과 영원한 안식을 가리킨다.

. 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 안식과 영원한 안식이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가 주일을 지키면서 영적 안식을 찾아야 된다. 주일은 영적 안식을 받는 날이요 신령한 양식을 받는 날이다.

한 주일 동안 세상에 나가 살면서 피곤하고 지친 영혼이 주일날에 주께서 주시는 안식에 참여하여 힘을 얻고, 신령한 양식을 받아야 그 힘으로 또 한 주간 자신과 죄와 싸우며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주일날 주님의 안식(영적 안식)에 참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주일날에 이 안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신자는 그 믿음이 죽은 신자이다. 생명 있는 성도는 주일을 잘 지켜서 영적 안식에 들어가고,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고, 그 세계에서 그대로 사는 생활을 해야 한다.

三. 안식에 들어간 자의 행복(10)

.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안식에 들어간 자를 가리키며, 또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자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영적 안식을 누릴 수 있고, 세상을 떠날 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하나님이 육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쉬신 것은 만물과 교통하며 즐거워함을 가리킨다. 성도들도 주일에 모든 일을 쉬며 영적 안식에 들어가면 하나님과 교통하며 즐거워하게 된다. 참된 성도는 주일에 자기 육신도 쉬어야 하고(일하면 범죄하는 것이므로 벌받는다), 또 영적 안식을 누려야 참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된다. 하늘 나라에 간 사람은 세상에서 하던 모든 일을 끝마치고 쉰다. 요한계시록 14:13에 보면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四.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것(11-16)

.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영적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이다. 영적 안식에 들어간 자는 영원한 안식의 영광과 복이 크다.

순종치 아니하는 본(本)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시에 광야에서 순종치 않다가 멸망한 것을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순종치 않으면 영적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누구든지 힘써야 영적 안식을 소유할 수 있다. 마태복음 11:12에 천국은 침노하는 자(힘쓰는 자)가 빼앗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순종하기를 힘쓰고 영적 안식에 들어가기를 더욱 힘써야 한다. 힘쓰는 자가 신령한 안식의 복을 많이 누릴 수 있고, 또 왕권을 소유할 수가 있다.

요한계시록 20:4에 왕노릇할 자의 자격을 말했는데, ① 주를 위해서 말씀을 지키다가 목 베임을 받은 자, ② 우상과 짐승(적 기독국가나 그 세력)에게 절하지 않는 자, ③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순종치 않는 본에 빠질까 항상 두려워하고, 더욱 더 순종하기를 힘써야 한다.

.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역사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므로 그 말씀도 살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교훈이나 가르침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 말씀대로 역사하신다.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다.

운동력이 있어 말씀 속에는 능력이 있어서 그 능력으로 말씀을 다 성취시켜 나가신다. 히브리서 1:3에는 능력의 말씀이라 했고, 로마서 1:16에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고 하였다. 말씀에는 생명을 살려 내는 능력이 있고, 또 심판하는 능력이 있다. 또 말씀 속에 말씀을 실현시키는 운동력이 있다. 그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만능이시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이 서 있는 검보다도 예리하고 날카로워서 어느 면으로 베어도 베어지고 어떤 것이나 찔러 쪼갤 수 있다.

은 이성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이성 깊은 곳(마음과 뜻)까지 찔러 쪼개서 그 속에 있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심판하신다.

은 영혼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 깊은 곳까지 다 해부한다.

관절과 골수 하나님의 말씀은 옛사람의 깊은 곳까지 찔러 쪼개서 죄와 부패성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낸다. 또 순종함에 부족한 것도 찔러 쪼개어 드러내고 책망하고 베어 내고 제거시키는 역사를 하고 심판하는 역사를 한다.

감찰은 살피고 검사하고 심판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이성과 영혼 속 깊은 곳까지 감찰하여 죽은 영혼을 살려 내고 부패한 부분을 제거시키고 수술하여 병을 고쳐 주고, 또 생명이 되고, 온 육체에도 건강이 된다(잠 3:8, 18, 4:22).

.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 만물도 그 말씀대로 심판 받고 모든 사람들도 그 말씀 앞에 마음과 영과 깊은 데 있는 것까지 다 드러나서 심판을 받게 된다.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과 심판으로 상관하신다. 하나님의 눈앞에 만물과 만민이 벌거벗은 것 같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심판을 받게 된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복종할 때는 징계하여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입혀 길러 나가고 그 성도를 통해서 만물에게까지 하나님의 안식을 확장시켜 나가는 일을 하신다.

이와 같이 만물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켜 나가다가 최후에 모든 만물이 완전히 복종할 때에 이 땅 위에 안식 세계가 임하면, 그것이 천년 왕국이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루어 나가시는 것이다. 천년 왕국 시대에는 만물도 하나님 말씀대로 완전히 복종하게 되고(고전 15:25-28), 천년 왕국 후에는 영원한 안식이 있다.

.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그러므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대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속죄제를 드려 주시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며 우리를 그 말씀대로 복종시키는 일을 해나가며 구원을 완성시켜 나가시므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이 구속의 도리를 굳게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세상과 마귀와 모든 시험을 다 이겨 나가야 한다.

얕은 도리만 붙잡지 말고 깊은 도리까지 붙잡아야 한다. 여러 면에 원만하게 배우고 깨닫고 체험하고 그 도리 속에 깊이 들어가서 굳게 잡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깨닫지 못한 자는 망한다고 하였다(호 4:14).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굳게 붙잡은 사람은 반석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이 반석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운다. 이러한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한다. 또 참된 진리를 깊이 깨달은 사람은 그 말씀을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고 그 말씀에 어긋난 모든 것을 떠나고, 그 말씀만 붙잡고 따라가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한다. 참된 진리를 굳게 붙들고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시고 능력으로 함께 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깊은 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 도리를 굳게 잡고 그 도리대로 교회를 세우고 그 진리를 세워 나가야 한다.

.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체휼의 원어 (쉼파데사이)는 "같이 고난받음"의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고난받음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처럼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우리와 같이 모든 고난을 당하시면서 우리의 연약함과 시험과 고난에 동참하시고 경험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신다. 그리고, 우리 모든 연약과 시험과 고난을 대신 지시고(마 8:17),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죄값을 지불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광야의 시험, 유대인의 고난, 빌라도의 무법한 재판, 십자가의 죽음 등 여러 가지 고난과 시험을 다 받으시면서 체휼하여 주셨다. 우리는 죄값으로 고난을 받아도 마땅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다.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모든 시험을 다 이기셨고,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실 수가 있었다.

. 4:16 그러므로 무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에 동참해 주셨고,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고, 그것을 다 이기셨고, 그 능력으로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서 살 수 있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언제나 받을 수 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성도는 연약할 때나 시험과 환난과 고통이 올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돕는 은혜를 받아야만 이긴다. 그때마다 그 은혜를 받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 모든 사정을 다 아시고 능력으로 도와 주셔서 이기게 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이 올 때나 연약할 때, 환난 당할 때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겠다. 옳은 진리를 붙들고 그 진리를 이루어 나아가려고 할 때에도 돕는 은혜를 받아야 된다. 말씀대로 순종해야 되겠으나 순종할 힘이 없을 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한다.

히스기야왕은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했으므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도와 주셔서 승리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기도하셨고,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써 기도하셨다.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승리하시고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 할 때에 홍해 바다가 가로막힌 난관, 물과 양식이 없는 시험, 아말렉이 대적하는 시험, 원망과 비방을 받는 시험 등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기도하였으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승리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떠한 일을 당할 때마다 우리를 체휼하시고 이기게 해주시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간구해야 되겠다. 그러면 체휼하시고, 이기신 승리의 능력으로 도와 주셔서 모든 것을 다 이기게 해주시고, 앞길을 열어 주시고,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게 해주셔서 하나님의 일이 성공이 되도록 하여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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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히브리서 5장

제 5 장 대제사장

(대 지)

一. 대제사장의 특징(1-4)

二.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 된 경위(5-10)

三. 어린 신자(11-13)

四. 장성한 신자(14)

(본문 강해)

一. 대제사장의 특징(1-4)

. 5:1-2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하는 직분이다. 대제사장은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사람 가운데서 취한다. 사람이라야 사람을 대표하여 일할 수 있고, 자기도 연약에 처해 있기 때문에 모든 연약한 사람, 무식한 사람, 미혹한 사람을 용납하고 체휼하고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 5:3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둘째,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속죄 제사를 드린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먼저 자기의 죄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해서 속죄 제사를 드렸다. 왜냐하면 자기의 죄를 사함 받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릴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된 자는 먼저 자기의 죄를 위하여 속죄 제사를 드려 죄 사함을 받고, 그 후에야 백성을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릴 수 있다.

. 5:4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셋째, 하나님이 불러서 세운 자라야 한다. 구약의 대제사장도 아무나 자기 스스로 원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사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도 아니었다. 구약 시대에는 오직 아론과 그 자손 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운 자만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대제사장은 하나님이 불러 세우셨기 때문에 존귀한 직분이었고, 앞으로 오실 참 제사장(그리스도)의 모형이었기 때문에 더욱 존귀한 직분이었다. 타락한 인간 사회에서 이보다 더 존귀한 직분은 없다.

二.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 된 경위(5-10)

. 5: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심도 앞에서(1-4절) 언급한 삼대 특징을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르셔서(보내셔서) 대제사장이 되었다.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시편 2:7의 인용으로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메시야로서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메시야직을 직접 임명하셨다. 메시야에게는 제사장직과 선지자직과 왕직의 세 가지 직분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대제사장직을 임명받은 것이다.

. 5: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시편 110:4의 인용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으로 세우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셨다(멜기세덱에 대한 해석은 7:11-15해석을 참조할 것).

.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정황(情況)을 나타낸 말씀이다.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오셨는데, 정작 십자가를 앞에 놓고 죽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였을 리가 없다. 예수께서 모든 택한 백성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형벌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크다. 세상의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의 죄값을 다 짊어지시고, 모든 사람이 죽을 고통을 혼자서 다 받으셨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크고 중했겠는가! 그러므로, 그 큰 고통을 인하여 마음이 빼앗겨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져 하나님 앞에 흠 있는 제사가 될까봐 십자가의 고통을 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마 26:39-44).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 주셔서 그 고통을 이길 만한 힘을 주셨다(눅 22:42-43).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경외하심"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공경하고 순종하는 태도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기도의 모본이다. 그 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이 이와 같은 신앙으로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도와주시고, 앞길을 열어 주신다.

.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으로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시다. 따라서 인성으로는 순종을 배워서 온전케 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온전하게 되셨는가? 예수님은 죄는 없으셨지만 연약함이 있었다(히 4:15). 누가복음 2:52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하였다. 그 지혜가 자랐다는 것은 예수님의 영이 자랐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 속에서 순종을 배워 그 인성이 온전하게 된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 26:39-42)라고 기도하신 것은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는 기도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러한 기도를 세 번 하셨는데 세 번째는 완전히 순종하기로 결심하신 기도였다. 이렇게 예수님은 순종을 배워 나가셨다.

. 5: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온전하게 되었은즉 예수님의 인성이 순종함으로 온전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죄가 있거나 불완전한데서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연약한 것과 시험받는 것에서 온전하게 되었다는 뜻이다(히 4:15, 5:2). 이것은 또 자라남으로 온전하게 되었다는 뜻도 있다. 누가복음 2:52에 예수님의 지혜가 자라났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지혜가 자라난 것은 자라기 전보다 온전하게 된 것이다.

어린이가 완전한 사람이지만 점점 자라나서 어른이 되고, 어린 나무가 완전하지만 점점 자라나서 열매맺는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무슨 결함이나 죄가 없지만, 자라나심으로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 직분을 행하실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케 된 그것이 우리 믿는 성도에게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근원과 원동력이 되고 표본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점점 자라나며 온전하게 되어 나가야 한다. 온전하게 되는 것은 우리 영혼이 자라나고,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에베소서 4:15에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을 죄에서 건져 주시기 위하여 자기 몸으로 속죄 제사를 드려 주셨고,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하여 우리를 길러 나가시려고 친히 고난의 길을 걸어 가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워서 온전한 데로 나아가야 한다.

. 5:10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는 제사장의 세 가지 특징으로서 ① 인성(人性)을 입고 오셨고, ②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제사장으로 세우셨고, ③ 백성을 위하여 속죄 제사를 드렸으므로 완전한 제사장이시다. 그리스도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처럼 레위 지파에서 나시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특별한 제사장이시다(멜기세덱에 대한 해석은 7장 강해 참조).

三. 어린 신자(11-13)

. 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신앙이 초보에 머물고, 영이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듣는 것이 둔하다. 성도가 자라나는 것만큼 지혜가 생기고, 영의 귀(靈耳)와 영의 눈(靈眼)이 밝아져서 성경의 신령한 뜻을 알 수 있고, 깊이 깨달을 수 있다. 영이 자라나지 못한 성도가 성경을 억지로 풀면 안 된다. 베드로후서 3:16에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확실하지 않고, 해석하기 어려운 것은 억지로 해석을 하지 말고, 자라나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자라나면 깨달을 때가 온다. 자라나지 못하고 해석하다가 성경을 잘못 해석하면 자기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심판이 크다. 영이 점점 자라날수록 영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가 밝아지고, 넓어지고 확실히 깨닫게 된다.

가령 한 계단 정도 자라난 신자는 한 계단의 진리를 알 수 있고 두 계단 정도 자라난 자는 두 계단의 진리를 알 수 있고, 일곱 계단 자라난 신자는 일곱 계단의 진리를 알 수 있다. 다니엘이 열흘 시험을 승리적으로 통과하고(단 1:12-15) 삼 년 동안 채식을 먹으며 연단 받아서 많이 자라났기 때문에 갈대아 모든 박사보다 열 배나 나아졌고, 성경 해석도 특출하게 잘하게 되었다(단 1:17-21).

.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때가 오래므로 예수 믿은 때가 오래 되었다는 말이다. 예수를 믿고 신앙 생활한 연조가 오랜 것으로 보아서는 마땅히 선생이 되어서 남을 가르쳐야 할 터인데, 영이 자라지 못하고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고 있으므로 아직도 누구에게 초보적인 진리를 배워야 할 정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 젖은 초보적인 진리를 가리키고, 단단한 식물은 고상한 진리, 성경의 신령하고 깊은 뜻을 가리킨다. 영이 자라나지 못하고, 어린 신자는 초보적인 진리, 즉 성경의 얕은 해석만 좋아한다. 고린도전서 3:1-2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하였다. 영이 어린 신자는 단단한 식물(성경의 신령하고 깊은 뜻)을 먹지 못한다. 이러한 자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감당하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항상 초보적인 성경 해석만 좋아하고, 그 세계에서만 살기 때문에 자라나지 못한다.

. 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말씀을 가리킨다. 성도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마태복음 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다. 또 예레미야 5:1에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城)을 사(赦)하리라"고 하였다.

성도가 성경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아가려면 많은 핍박과 환난을 당하게 된다. 그 환난과 핍박 속에서 참고, 시련을 받아 연단이 되면 그 성도의 영이 자라난다. 성도가 항상 초보적인 신앙에만 머물고 있으면 영이 자라나지 못하고 신앙에 진보가 없다. 그러한 성도는 하나님께 걱정거리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도록(유 1:20) 결심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하더라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 말씀만 순종하며 하나님의 의를 세워나가야 한다.

四. 장성한 신자(14)

. 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단단한 식물은 성경의 신령하고 깊은 진리를 가리킨다. 성도가 오랜 신앙의 경험 속에서 선한 싸움을 싸워 연단을 받고, 깊은 기도와 신앙 체험과 성경을 깊이 연구하므로 깨닫게 되는 진리이다.

이 깊은 진리의 말씀을 단단한 식물이라고 한 것은, ① 단단하여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요, ② 들어도 깨닫기 힘들기 때문이요, ③ 알아도 실행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다. 장성한 자는 젖이나 먹어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힘을 얻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신·구약 성경을 전부 젖(초보적인 진리)으로 해석할 수 있고 단단한 식물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노아 방주에 들어간 자는 믿는 자요, 안 들어간 자는 불신자라고 하여 누구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초보적인 진리이다. 좀더 단단한 식물로 해석하면 노아 방주에 들어간 자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신앙의 실력을 길러 나간 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는 앞으로 홍수와 같은 환난이 올 때에 그 환난에 빠지지 않고 승리로 통과 할 수 있다. 영이 어린 신자는 단단한 식물을 잘 먹지 못하고, 먹어도 소화하지 못한다.

지각 여기 지각은 지적인 감각이 아니고, 심령의 감각을 가리킨다(렘 4:19 참조). 심령의 감각은 육을 좇아 살지 않고 영을 좇아 산다. 말씀을 순종할 때에 영이 자라나고, 영이 자라난 것만큼 지각이 자라난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영적 지각을 사용해야 연단을 받게 되고, 선악을 잘 분별하게 된다.

선악을 분변하는 자 마귀는 언제나 사이비한 것으로 유혹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마귀의 유혹과 하나님의 말씀을 분변하기 어렵다. 대개의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으면 마귀의 유혹을 이기게 된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유혹한다(마 4:6, 갈 1:6-7). 또 어떤 때는 성령의 역사와 비슷하게 영으로 유혹한다(요일 4:1).

그러므로 선악을 바로 분별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며 고도의 영적 지각이 있어야 바로 분별할 수 있고,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선악을 분변하는 분별력은 어떻게 얻는가? 그것은 영이 자라나야 한다. 우리 영혼이 자라나려면 단단한 식물을 먹고, 그 말씀을 새김질하고, 그 말씀대로 의를 이루어 나가며, 선한 싸움을 싸워 나아감으로 연단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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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6장

제 6 장 휘장 안에 들어가신 예수님

(대 지)

一. 도의 초보에서 완전한 데 나아가라(1-3)

二. 타락과 회개(4-8)

三. 믿음을 지키는 자를 하나님이 기억해 주심(9-12)

四. 약속을 믿고 전진하라(13-20)

(본문 강해)]

一. 도의 초보에서 완전한 데 나아가라(1-3)

.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도의 초보를 버리고는 2절 하반절에 있는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라는 말과 연결되어 있다. 곧 도의 초보를 버리고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도의 초보를 버리지도 말고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도 말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어떤 부모가 자녀에게 아버지의 교훈을 버리고 불량한 길을 가지 말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은 곧 아버지의 교훈을 버리지도 말고, 불량한 길을 가지도 말라는 뜻으로 말씀한 것과 같다.

도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도의 초보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되는 말씀이다. 우리 성도의 신앙 인격이 도의 초보 위에서 점점 건설되어 완전한 데에 나아가야 한다. 도의 초보를 버리고, 터를 다시 닦는 것은 집을 지을 때에 기초 공사를 한 후 그것을 파괴하고, 다시 기초 공사를 하곤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사람은 평생 집을 완성할 수 없다.

도의 초보는 무엇인가? ①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 ② 하나님께 대한 신앙, ③ 세례, ④ 안수, ⑤ 죽은 자의 부활, ⑥ 영원한 심판이다.

죽은 행실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때의 행실이다(엡 2:1). 우리 성도가 믿기 전에 행하던 모든 행실은 죽은 행실이다. 베드로전서 4:3에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라고 했다.

에베소서 2:3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했다. 성도가 전에는 죽은 행실(죄)을 행하였으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회개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죄사함 받을 줄로 알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믿는 것이니, 이는 기본 회개이다. ② 믿은 후에 연약하여 범죄한 것을 그때마다 회개하는 것은 중복 회개이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성도가 예수를 구주로 믿은 다음, 말씀을 받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또 점점 더 깊은 진리를 배워서 그 진리대로 신앙이 자라나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다.

. 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세례들 세례는 성령 세례와 물세례가 있는데, 성령 세례는 중생할 때에 받는다. 예수가 구주로 믿어지는 것은 성령 세례를 받은 증거이다. 세례는 씻는다는 뜻인데, 성령으로 예수를 믿어 죄 씻음을 받은 것을 성령 세례라고 한다. 물세례는 예 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아 깨끗케 된 자에게 인치는 표로 베푸는 것이다.

세례도 역시 도의 초보에 속한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이름으로 한 번 세례 받은 자는 다시 받으면 안 된다. 침례 교회에서, 장로 교회에서나 기타 교회에서 받은 적수 세례를 무시하고,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세례는 일생에 단 한 번만 받아야 한다.

안수는 성직의 임직시에 받는 안수를 가리킨다(딤전 4:14). 하나님의 진리와 사명을 깨닫고, 교회에서 성직자로 안수를 받았으면 그 직분을 하나님이 주신 줄 믿고, 생명을 바치는데 까지 충성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4:2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고, 한문에 충즉진명(忠則盡命; 충성에는 목숨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에 하나님께 서약하고 받은 안수를 무시하고, 다시 안수를 받으면 거짓 맹세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에 죽은 성도들이 모두 부활하게 된다. 이러한 기본적 교리를 버리고,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거나 몸의 부활을 부인하고, 부활만 믿는 것은 도의 초보를 버리는 자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영원한 심판 히브리서 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영생을 얻을 자도 있고, 영벌을 받을 자도 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천년 왕국이 있고, 천년 왕국이 지나간 후에는 백보좌 심판이 있다(마 25:31-46).

이상 몇 가지의 기본 교리(기독교의 기초되는 교리)의 터를 다시 닦으면 안 된다. 그것을 헐었다 쌓았다 하지 말고 거기서부터 자기를 건축하여 완전한 데 나아가야 한다. 성도는 도의 초보로부터 시작하여 완전을 향해 계속 전진해 나가며,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했다.

. 6: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완전한 데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능이시니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따라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막 9:23).

이것은 윗절 끝에 있는 완전한 데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써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자신은 연약하고 부족하여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이루어 주시는 것을 믿고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二. 타락과 회개(4-8)

. 6:4-6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여기서 타락한 자는 예수를 믿고 중생한 자가 교리적인 타락을 한 것을 가리킨다. 교리적인 타락이라고 한 이유는 본 장 1-2절에 도의 초보를 버리고 다른 터를 닦지 말라고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보인다는 것을 보아 믿는 자가 타락한 것이 분명하다. 만일 불신자의 타락이라고 하면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8절)는 말이 마태복음 13:22에 있는 가시밭에 떨어진 씨와 동일함을 증명한다. 가시밭에 떨어진 씨는 그 생명이 살아 있으나 결실은 하지 못했다. 또 저주받았다고도 하지 않았다. 8절 하반 절에 불사름이 된다는 말은 믿고 중생한 자가 타락하여 불 가운데서 벌거벗고 나온 자와 같은 구원을 받은 자를 가리키는 것이다(고전 3:15). 중생한 자가 아니면 영적 빛이 비취어질 수 없고, 하늘의 은사도 맛볼 수 없고, 내세의 능력과 선한 말씀도 맛볼 수 없다. 영혼이 죽은 자가 어떻게 그러한 신령한 것을 맛볼 수 있겠는가!

한 번 비췸을 얻고 신령한 영적 빛이 영혼에게 비취어진 것을 가리킨다. 불신자는 그 영이 죽은 자요, 흑암에 있으므로 이러한 빛이 비취지 않는다. 오직 중생한 영에게만 이 신령한 빛으로 내적 조명(內的照明)이 될 수 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하늘의 은사는 영으로 맛보는 것이니, 중생한 자라야 맛볼 수 있다. 죽은 영(불신자의 영)은 아무 것도 맛볼 수가 없다.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성령은 진리와 믿음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성령에 참여한 것은 믿음에 참여하고 진리에 참여한 것이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선한 것을 인정하고, 그 맛을 본 것은 그 사람 속에 중생한 영이 있기 때문이다. 중생한 자에게는 말씀이 꿀과 꿀송이보다 더 달다(시 19:10, 계 10:9-10). 그러나 죽은 영은 진리의 맛을 모른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내세를 믿는 성도는 진리 안에서 이미 그 능력을 맛보고, 그 능력으로 인하여 승리의 길을 걸어간다. 빌립보서 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다.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기본 교리를 의식적(意識的)으로 버리고, 잘못된 교리를 옳게 여겨 따라간 자는 다시 회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 잘못된 교리에 대해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적으로나 교리적으로 타락된 자라도 구원을 얻되 많은 징계를 받고 불 가운데서 나온 것과 같은 구원(고전 3:15 참조)을 얻을 것이다.

하나남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이다. 이 교리를 의식적으로 버리고 다른 복음(다른 교리)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욕보이는 행위이다. 이러한 자는 과거에 받았던 바른 진리를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였으므로 회개케 할 수 없는 것이다.

. 6: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킨다.

자주 내리는 비는 하나님께서 자주 내려 주시는 은혜를 가리킨다.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신앙의 열매를 맺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자주 내려 주시는 은혜를 받아 신앙의 열매를 맺으면 복 받는다는 의미이다.

. 6: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초보적인 교리를 버리고, 잘못된 다른 교훈의 터를 닦아 그 잘못된 교훈대로 나아가면 그 열매는 가시와 엉겅퀴가 난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의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된다.

불사름이 되리라는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내버리고, 자신은 말라지고, 다른 사람은 주워다가 불사르는 것을 가리킨다(요 15:6 참조). 불사른다는 것은 환난 가운데 던진다는 뜻이다. 신신학이나 해방신학을 따라가는 자들도 초보적인 진리의 터를 버리고 다른 터를 닦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신신학이나 해방 신학 사상은 정통 기독교 교리에서 벗어난 잘못된 사상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회개하지 못하고, 마지막은 저주함에 가까와 불사름이 될 뿐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해도 예수님은 변하지 않고, 진리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하나님의 말씀) 위에 교회를 바로 세워야 한다(엡 2:20).

三. 믿음을 지키는 자를 하나님이 기억해 주심(9-12)

. 6: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이같이 말하나 이상 6-8절에 언급한 기본 교리를 버리고 타락한 자는 저주와 불사름이 된다는 말을 가리킨다.

너희에게 이보다 나은 것은 위에서 말한 저주와 불사름이 되는 자보다 나은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원에 가까운 줄을 확신한다는 말이다.

. 6:10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이하에 언급하는 성도의 신앙의 행위를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갚아 주신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시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이 사랑을 나타내어 과거와 현재에 성도를 섬긴 것은 자기를 위함이 아니요, 성도를 위함도 아니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섬겼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도에게 주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도들을 섬긴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봉사는 참으로 주님을 섬긴 것이 된다(마 25:35-40 참조). 이것은 인간적인 사랑과 봉사가 아니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대접하는 신앙의 행위이니 산 믿음의 증거이다(약 2:26).

. 6: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전 절에는 히브리 신자들이 사랑의 봉사를 잘 하는데 대해서 칭찬했으나 본 절에는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기를 힘쓰라고 권한다. 내세와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랑은 인본주의의 사랑으로 전락되고 만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세와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도록 항상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

내세의 소망은 닻과 같아서(19절) 이 세상 모든 유혹과 환난을 이기고도 남는다. 또 성도는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와 같이 될 소망을 가져야 한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했다. 요한일서 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 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다.

이 소망에 도달하려면, 첫째는 소망을 품어야 되고, 둘째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믿음을 지켜야 한다. 셋째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환난과 고통을 오래 참고 견뎌야한다. 그러면 소망에 도달하게 되고, 소망이 점점 더 풍성해진다.

. 6: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앞에서 사랑을 말하고(10절)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라고 전한 저자가 본 절에서는 믿음에 대해 권면한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성도가 구원 이루어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 과거에 앞서 간 성도들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고, 오래 참고 기업으로 받은 것처럼 히브리 성도들도 선진들을 본받아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고 오래 참고 기다리라는 뜻이다. 이것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고, 부지런히 믿는 일을 하면서 기다리라는 말이다.

노아가 방주를 부지런히 지으면서 홍수와 구원에 대한 약속을 기다린 것과 같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을 약속을 믿고 애굽을 떠나 홍해와 광야의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기면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 광야 길을 통과한 것과 같이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시험이 와도 참고, 말씀대로 부지런히 순종해 나가야 한다.

四. 약속을 믿고 전진하라(13-20)

. 6: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맹세하는 자는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한다(16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당신보다 더 큰 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다. 이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는 절대 변치 않는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맹세는 아브라함에게만 한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신 것이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신 것이다.

. 6: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 하신 약속과 맹세의 내용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는 것이다(창 15:5, 22:16-17). 아브라함은 믿는 자의 조상이므로 이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분만 아니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복 주고 번성케 해주겠다고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약속하신 것이다.

. 6: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을(창 15:5)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음으로 오래 참아 이삭을 받았다(롬 4:18-21). 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많아지게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삭을 바쳐 드렸다(창 15:5). 그때 이삭을 다시 얻었다(히 11:17-19). 또 아브라함이 믿음의 자손을 많이 얻었다.

오래 참아 성도의 인내는 가만히 앉아서 참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오래 참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면서 참았고, 노아도 방주를 예비하면서 오래 참아 약속을 기업으로 받았다. 성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거저 받는 것이 있고, 또 믿고 순종하여 말씀을 실행하면서 오래 참고 기다려야 받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고 하신 말씀을 그가 믿을 때에 즉시 의인이 되었고,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으므로 이삭을 다시 받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믿음으로 거저 받는 것이 있고 아브라함같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며 오래 참아야 받는 것이 있다.

. 6: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사람들이 맹세할 때에 자기보다 큰 자 즉 신을 가리켜 맹세하는 것이 통례이다. 맹세는 모든 다투는 일의 최후 확정이다. 일단 맹세를 하면 반대하는 것과 부정하는 것이 중지되고, 절대적으로 그것을 신임하게 된다.

. 6: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사실이 변치 아니함을 확증하기 위하여 맹세로 보증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영원 불변하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과 약속하신 것도 변치 않으신다. 그 약속이 변치 않으실 것을 보증하시기 위하여 맹세해 주신 것이다.

. 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은 약속과 맹세이다. 약속의 내용은 복 주고 복 주며 번성케 하며 번성케 하시겠다는 것이고(14절), 이것을 변치 않기 위해서 보증한 것이 맹세이다. 성도에게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이 있으므로 환난 중에도 큰 안위를 얻고 산 소망을 가지고 순종하며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앞에 있는 소망은 ① 약속하여 맹세로 보증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소망, ②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 ③ 예수님과 같이 될 소망이다(요일 3:2-3). 성도에게는 이 세 가지 소망이 있다.

피하여 가는 것은 ①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가며(벧후 1:3-4), ②환난, 고통, 어지러움의 세상을 피하여 간다는 의미이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간 것처럼 성도는 이 세상의 모든 썩어질 것을 피하여 약속하신 기업을 얻으려고 천성을 향해 가는 자이다. 이렇게 피하여 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기업을 약속으로 주셨고 또 맹세하여 확실한 보증을 주셨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환난과 고통과 핍박 중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그 소망 중에 달음박질을 해 나아간다. 이것은 마치 들에서 폭풍과 큰 비와 뇌성벽력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피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 6: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큰 풍랑이 일어 날 때에 배가 닻을 바다에 내리면 밀려 나가지 않고 안전하게 그 풍랑을 이겨낼 수가 있다.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에 대한 성도의 소망은 영혼의 닻과 같아서 아무리 환난풍파가 많고 어려움이 많은 이 세상이지만 그 소망의 닻이 견고하기 때문에 밀려 나가거나 파선되지 않고 안전하게 휘장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엡 4:14 참조).

하나님의 말씀에 닻을 내린 사람은 그 말씀이 붙들어 주기 때문에 죄악이나 철학이나 잘못된 교리(신신학, 신비주의, 현실주의, 상업주의)의 풍조에 밀려가지 않는다.

휘장 안은 지성소를 가리키며(히 9:24), 지성소는 영원한 하늘 나라의 모형이다. 그러므로 휘장 안은 첫째,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둘째, 영적인 신령한 세계를 가리킨다. 셋째, 소망에 도달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성도는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성도는 소망의 닻을 든든히 붙들고 그 말씀 속으로 들어가서 그 말씀에서 생명을 얻고, 주님을 발견하여 깊이 사귀며,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주님을 닳아 나아가다가 주님이 오라 하실 때에 영원히 천국으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휘장 안에 들어가는 것이요, 휘장 안에서 사는 생활이다.

. 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님이 앞서서 먼저 휘장 안으로 들어가셔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도 휘장 안 생활을 하다가 부활 승천하여 휘장 안(하늘 나라)에 들어가신 것이다. 예수님이 앞서 가시면서 성도들을 인도하신다(요 10:4). 그러므로 성도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멜기세덱은 특별한 제사장이다(7장 해석 참조).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도 대제사장으로 당신의 몸을 제물로 드려 속죄해 주셨고, 부활 승천 후에도 대제사장직을 가지시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하나님이 받으실 만 하도록 만들어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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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

제 7 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 예수

(대 지)

一. 멜기세덱에 대하여(1-3)

二. 제사직분이 변역함(4-13)

三.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 됨(14-25)

四. 이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함(26-28)

(본문 강해)

一. 멜기세덱에 대하여(1-3)

. 7:1-2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창세기 14:4-20에 기록된 내용으로써 소돔과 고모라를 침략한 그돌라오멜의 사대 연합군을 아브라함이 추격하여 격파하고 그 노략물과 소돔 고모라의 인민들을 다시 탈환하여 돌아올 때 멜기세덱 제사장이 나타나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주었다. 그 때 아브라함이 그 노략물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쳤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멜기세덱을 제사장으로 알았는가에 대하여는 성경에 나타난 기록이 없으나 아브라함이 아마 전부터 멜기세덱을 제사장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십일조를 바치는 원리가 여기에서부터 생겨났고, 모세의 율법에서도 십일조를 바치도록 가르치고 있다. 신약 시대인 오늘날에도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바치라고 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3:23에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였다. 성도가 의와 인과 신을 마땅히 행하여야 되고, 또 십일조를 드리는 제도도 버리지 말고 실행하라는 것이다.

멜기세덱의 이름의 뜻은 의의 왕이다. 즉 멜기의 뜻은 왕, 세덱의 뜻은 의(義)이다.

살렘 왕 살렘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며, 그 뜻은 평강이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라는 뜻이다.

멜기세덱은 참 제사장인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다(마 21:5, 슥 9:9).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호 9:9, 사 11:4, 고전 1:30),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고(사 9:6, 마 5:4), 또 왕으로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시고 우리를 통치하시고 인도하며 그 나라를 이루어 나가신다.

. 7: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구약 성경에 나타난 멜기세덱의 기사에는 그의 부모나 족보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창 14:14-20 참조).

시작한 날도 없고 멜기세덱이 제사장직을 맡아 그 직무를 시작한 날이 구약 성경에 기록이 없다는 의미이다.

생명의 끝도 없어 그가 언제 죽었다는 기록도 구약 성경에 없다는 뜻이다. 성경에 기록한 대로는 멜기세덱은 갑자기 나타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주고 십일조를 받은 것뿐이다(창 14:14-20).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제사장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시작과 끝이 없는 점에서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하고 특별한 제사장이 되실 것을 예표적(豫表的)으로 보여 주기 위하여 멜기세덱의 부모나 제사장 직분의 시작과 죽음에 대하여 말하지 않은 것이다. 시편 110:4에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이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초인간이 아니고, 아담의 후손으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그 이유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야 제사장이 되기 때문이다(히 5:1). 그러므로 그는 부모가 있고, 출생일이 있고, 제사장 직무를 시작한 날과 사망한 날이 있으나 그것을 성경에 기록하지 않은 것뿐이다.

二. 제사 직분이 변역함(4-13)

. 7:4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본 절에서 10절까지는 멜기세덱 제사장의 우월성에 대하여 논증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존경하는 아브라함보다 멜기세덱이 높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노략물(전리품(戰利品))중에서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리고 복 빎을 받았기 때문이다. 축복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하는 법이다.

. 7: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레위 지파에서만 제사장이 나게 되어 있고 그 제사장들은 다른 지파 형제들에게서 십일조를 받으라고 율법에 명령하였다(민 18:20-22). 이로써 레위 지파가 다른 지파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다음 절들에서는 레위 지파에서 난 제사장보다 멜기세덱은 더욱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 7:6-7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멜기세덱은 레위 족보에 들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취하고 축복해 주었다. 이것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고, 또 아브라함의 손자 레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는 법이다.

. 7: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다른 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았으나 얼마 후에 다 죽었다.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는 멜기세덱을 가리킨다. 시편 110:4에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고 하였다. 멜기세덱의 제사장 반차를 그리스도가 계승하여 영원한 제사장이 되었으니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은 죽은 것이 아니고 산 것이다. 그러므로 멜기세덱 제사장은 산다고 증거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으니 레위 지파 제사장보다 얼마나 더 우월한가!

. 7:9-10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바칠 때에 레위도 바쳤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증손자인 레위가 아직 출생하지도 않았지만 증조부인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영혼 유전설의 근거가 된다. 영혼 유전설이란 사람이 출생할 때에 그 영혼이 부모에게로부터 유전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촛불을 다른 초에 붙여 나가는 것과 같다. 한 개의 촛불을 수십 개나 수억 만개 붙여나가도 처음 것이나 마지막 것이 똑같다.

유전설 주장자는 하나님께서 아담의 영혼은 창조했으나 하와의 영혼을 창조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 육일 동안에 모든 창조가 끝났다는 것,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거기서 유전되고 번식하게 하였다는 것, 사람이 출생시에 죽은 영혼으로 출생하는 것, 만일 새 창조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왜 죽은 영혼을 창조했겠는가 하는 것 등을 근거로 이 설을 주장한다.

창조설은 인간이 출생할 때에 하나님이 그 영혼을 직접 창조해 주신다는 것이다. 창조설과 유전설 둘 다 성경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창조설은 전 12:7, 사 42:5, 슥 12:1, 히 12:9 등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유전설은 창 1:28, 2:2, 7, 23, 46:26, 고전 11:8, 히 7:9-10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창조설의 난해점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태어날 때마다 영혼을 창조한다고 하면 왜 죽은 영혼을 창조하여 주는가 하는 점과, 또 하나님께서 아주 미워하는 음란, 방탕, 간음할 때에 잉태하는 아이까지도 왜 영혼을 창조해 주는가 하는 점이 문제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전설이 옳다고 믿는다.

.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체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 계통 제사장과 관련되어 그 제사를 기초로 해서 율법을 받았다. 그러나 그 레위 계통 제사장의 제사로는 백성의 죄를 사하여 정결케 할 수 없었다. 만일 그 제사로 백성의 죄를 사하고 온전케 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을 세우겠다고 하셨다(시 110:4). 레위 계통 제사장의 직분으로는 백성을 온전하게 사할 수 없기 때문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특별 제사장을 세운 것이다.

. 7:12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레위 계통에서만 제사장이 나야 되는 것이 구약 율법인데(출 29:9) 레위 계통이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제사장을 세우신다면 레위 계통 제사장 제도를 주신 율법도 변역(變譯)될 것은 필연적(必然的)이다.

. 7: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별다른 제사장을 세우신다는 것은(11, 시 110:4)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은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제사장으로 세울 것을 말한 것이다.

三.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 됨(14-25)

. 7:14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서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에 속했고,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 지파에서는 제사장이 나올 수 없다.

. 7: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전 절과 같이 제사장이 날 수 없는 유다 지파에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세워 백성의 죄를 속하게 하신 것을 보니, 예수 그리스도는 별다른 제사장이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된 특별 제사장임이 분명하다.

. 7:16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위에서 증거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육체와 상관된 율법을 좇아 된 것이 아니다.

육체에 상관된 계명 계명은 율법의 요긴할 부분을 가리킨다. 모든 율법은 의식과 제도와 증서로서 영적 면보다 외적 육체에 상관된 명령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그러한 외적 육체적 상관으로 된 것이 아니고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다.

생명의 능력 능력은 법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것은 생명의 법, 영의 법, 성령의 법을 나타낸다. 생명의 세계, 중생한 영의 세계, 성령의 세계는 모두 같은 것이다. 법에는 ① 일반법이 있고 ② 도덕법이 있고 ③ 율법이 있고 ④ 영의 법이 있다. 일반법보다 도덕법이 높고 도덕법보다 율법이 더 고상하며, 율법보다 영의 법이 더욱더 고상하다.

율법에 가책이 되지 않는 것이 영의 법에 가책되는 것이 많다. 야고보서 2:13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한 것은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고 영의 법(긍휼)에 의해서 심판 받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법, 즉 하나님의 생명의 명령에 의해서 된 것이다. 이 명령은 율법에 구애를 받지 않고 오히려 초월한다.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율법의 의문에는 부합하지 않으나(레위 지파가 아니므로) 오히려 율법의 깊은 요소인 생명의 법에는 부합하며, 또 시편 110:4의 성구에 부합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능력으로 제사장이 되었고, 또 생명의 능력을 나타내 주셨고(십자가와 부활로) 지금도 그 생명의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믿음을 지키는 모든 성도에게 생명의 능력으로 역사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무궁한 하나님의 생명력을 가지시고 우리의 생명을 살려 내고, 또 계속해서 살려 내는 제사장이 되셨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을 좇아 레위 지파에서 난 제사장은 의식만 행하고 영적 생명을 살펴 내지는 못하였다.

. 7:17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이 구절은 시편 110:4의 인용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주님은 이 예언대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특별한 제사장이 되었다.

. 7:18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전엣 계명은 모세의 율법이다.

연약하며 모세의 계명이 연약한 이유는 ①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 계약이 너무 두터운 의식과 의문과 제도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② 그로 인하여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역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은 진리대로 역사하시는 영이므로 진리 면이 약하면 성령의 역사도 그만큼 약하다.

③ 인간의 육체가 죄에 대하여 약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8:3-4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무익하므로 율법은 의문이요, 그림자(히 10:1, 골 2:16-17)이기 때문에 죄를 사해 주는데 무익하다. 율법과 의문의 실체인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대로 구속을 완성하신 후에는 그 율법의 의문과 의식과 증서가 완전히 폐하고 도말되었다. 골로새서 2:14-15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하였다.

본 절은 안식일이 주일로 바꾸어진 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율법을 폐했으니 안식일도 폐한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여 새 생명의 세계와 안식을 주셨으니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일을 지키는 것이 합당하다.

.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 구절에 괄호가 있는 것은 원문에 있는 괄호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율법이 우리를 온전케 못하는 이유는 율법이 연약하기 때문이요(18절), 그 율법의 제사로는 제사 드리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좋은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긴 소망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능력을 좇아 제사장이 되어 속죄제를 드려 주셨으므로 우리를 영원히 정결케 해주시고 우리 생명을 살려 주셨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해주셨다(요일 3:2-3). 또 하나님의 나라를 기쁨으로 주실 것이다(눅 12:32). 이것이 더 좋은 소망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다. 아무나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다.

. 7:20-21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맹세로 되었다. 시편 110:4에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장차 오셔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맹세대로 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레위의 자손들이 제사장이 된 것은 맹세로 된 것이 아니고 율법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이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레위 자손들의 제사장보다 우월하다.

저희는 레위 계통 제사장들을 가리킨다.

.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더 좋은 언약은 신약을 가리킨다.

신약은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대제사장이 되어 당신의 피로 단번에 제사를 드려 영원히 우리를 온전케 하였으니 구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 보증( ; 엥귀오스)은 법적으로 재산 또는 생명까지 책임지는 것을 뜻한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형벌을 받으셔서 율법의 요구를 채워 주셨다. 그러므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시고, 구주가 되신 것이다.

. 7:23-24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잊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신 고로 그 제사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시므로 레위 자손 제사장보다 훨씬 우월하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으면 또 다른 사람이 제사장이 되어 자주 교체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죽지 않고 항상 살아서 역사해 주시는 제사장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다.

.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힘 입어의 원어 (디아)는 통하여, 말미암아의 뜻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제사장 직분은 백성의 죄를 정결케 하여 죄에서 건져 주는 일을 하는 직분이다. 율법으로 세움을 받은 레위 자손 제사장들이 드리는 율법에 의한 제사로는 죄인을 온전히 정결케 할 수도 없고, 죄인들을 살려 낼 수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맹세로 되신 특별한 제사장이요, 영원한 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몸으로 온전한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려 죄를 완전히 정결케 할 수 있었다. 그는 또 영원히 살아 계셔서 그 직분을 수행하셨기 때문에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온전히 정결케 하고 구원해 주신다. 또 그리스도는 오늘날도 자기를 힘입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날마다 간구해 주시고,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고, 생명의 능력을 계속해서 공급해 주셔서 성도로 하여금 죄 가운데서 온전히 나오게 해주시는 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연약하고 부족하다고 하여 주저하지 말고, 원수가 강함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온전히 건져 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신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산 생명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四. 이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함(26-28)

.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합당한 제사장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① 거룩하고, ② 악이 없고, ③ 더러움이 없고, ④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⑤ 하늘보다 높이 되신 제사장이시기 때문이다. 만일 제사장이 이와 반대로 거룩하지 못하고, 악이 있고, 더러운 마음과 행위가 나타나고, 죄인들과 함께 죄를 짓고 세상에 속하여 세속화된 자라고 하면 합당한 제사장이 될 수 없다.

하늘 보다 높이 되신 자라는 것은 천체(天 ) 만물보다 높은 신령한 곳, 즉 하나님 우편에 앉은 것을 가리킨다.

. 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구약의 레위 계통 제사장들은 자기도 죄인이므로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제사 드렸다. 또 소나 양으로 드리는 제사는 제사장 자신과 백성을 온전케 할 수 없으므로(11절) 날마다 제사를 반복해 드렸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 제사를 드렸고(9:7) 보통 제사장이 매일 드렸다. 본 절에도 이 둘을 합해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므로 자기를 위해서는 제사 드릴 필요가 없었고, 다만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자기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 단번에 속죄를 완성하셨으므로 또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 7: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레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고, 또 제물도 소나 양으로 드리는 불완전한 것이었으므로 그 제사로는 죄 사함을 받아 구원 얻을 수가 없다. 그러나 율법 후에 맹세로 세우신 대제사장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으므로 우리 성도의 죄를 완전히 사해 주시고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닮아가며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에 더욱더 참여하여 나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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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히브리서 8장

제 8 장 새 언약

(대 지)

一. 참 장막에서 봉사하는 예수(1-5)

二. 더 좋은 중보자(6)

三. 구약과 신약(7-9)

四. 신약의 축복(10-12)

五. 구약의 쇠퇴(13)

(본문 강해)

一. 참 장막에서 봉사하는 예수(1-5)

. 8:1 이제 한 말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이제 한 말에 중요한 것 지금까지 앞에서 언급한 말의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좇아 된 제사장이 아니고,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영원한 대제사장이므로, 우리의 더 좋은 소망과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그 대제사장이 지금도 우리에게 있다는 점이다.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 하나님의 보좌는 위엄(威嚴)의 보좌이며, 우편은 요긴하고 능력있는 자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 즉 요긴한 자리에 앉아서 우리를 위하여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 8:2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그곳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고, 하나님이 베푸신 참 장막이니, 곧 하늘의 성소이다. 그리스도는 그곳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며, 우리를 죄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일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며 날마다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 8: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대제사장들마다 하나님 앞에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움을 입었으니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고귀한 자기의 몸(하나님의 독생자의 몸)을 제물로 드렸다(7:27, 9:14, 26). 이렇게 하여 예수님은 자기 몸으로 죄인을 위해 단번에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렸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영원히 죄 사함을 받아 깨끗하게 된다.

. 8: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다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예수께서 만일 항상 땅에 계시는 제사장이라고 하면 제사장이 되실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땅에는 이미 율법에 속한 제사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에 속한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로는 죄인을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늘에 속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다.

. 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섬기는 것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가리킨다. 구약의 율법과 의식과 제사 제도는 참 것의 모형과 그림자요, 그 실체(實 )는 그리스도이시다(골2:16-17).

하늘에 있는 것은 신령과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구약의 율법과 의식과 제사 제도는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참 제사를 드려 주실 것을 상징하며 모형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모형의 원어 (휘포데익마티)는 원형을 모방하여 보인 형상을 가리킨다.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 성막을 지었다(출 25:40).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구약의 성막과 제사 제도가 하늘의 것을 모방해서 한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하나님 이 산에서 보인 본을 좇아 모세가 그 모든 것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 하늘에서 보인 본(本)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그 모든 것의 실체(實 )이시다.

二. 더 좋은 중보자(6)

. 8: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더 아름다운 직분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었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구약의 제사장들은 하늘의 것의 모형인 성막에 들어가 그림자적(모형적)인 제사를 드렸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참된 제사장이 되어 하늘 성소에 들어가(9:24) 참된 제물 되는 당신의 몸으로써 하나님께 완전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더 좋은 약속 구약보다 신약이 더 좋은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구약의 율법과 제도와 제사 제도는 그림자와 모형으로써 구속의 도리(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받는 도리)를 희미하게 보여 주었으나 신약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셔서 모든 진리를 나타내 주시고, 구속을 완성하시고, 그것을 성령으로 적용시켜 믿게 하여 구원해 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은 구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

더 좋은 언약의 중보 중보는 두 언약자의 중간에서 그 관계를 정하고 보증하는 것이다. 구약 율법의 중보는 모세요(갈 3:19), 신약의 중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9:15, 12:24). 구약의 율법을 주실 때에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중간에서 그 관계가 정해진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신약)의 중보가 되어 하나님과 택한 백성 사이에서 그 새로운 언약 관계를 성립시킨 것이다. 그 언약의 내용은 십자가의 구속의 피를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다. 상세한 내용은 8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三. 구약과 신약(7-9)

. 8: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첫 언약은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을 가리키는데, 그 율법 자체가 불완전하다거나 흠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지만,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롬 8:3) 죄인을 구원해 내는데 무능하고(롬 7:12-13), 율법의 제사는 모형(그림자)이므로 온전한 제사가 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7:11, 18, 5). 그러므로 둘째 언약, 곧 새로운 언약(신약)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 새 언약의 내용은 다음 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 8:8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본 절부터 12절까지는 예레미야 31:31-34의 뜻의 인용인데, 예레미야 선지자가 장래에 여호와께서 새 언약을 세우실 것과 그 새 언약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가 하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저희를 허물하여 구약의 언약(율법)과 그 언약을 좇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새 언약은 신약을 가리키고,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은 전세계 모든 택한 백성을 가리킨다.

. 8:9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이스라엘 열조가 하나님께서 그들과 세운 언약(율법)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불순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돌보지 않고 심판하셨다. 그러나 주님이 새로 세운 언약은 그 언약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四. 신약의 축복(10-12)

. 8:10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으로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새 언약이 구약의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임을 설명한다. ① 구약은 인간이 완악하여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고 순종치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 ② 신약은 구속의 도리(법)를 저희 생각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여 믿고 따라오게 하신다. 즉, 택한 백성들의 마음 문을 열어 그 말씀을 받게 하고(행 16:14), 말씀과 성령으로 그 영혼을 중생시켜 단 마음으로 신종(信從)케 한다는 것이다.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는 것은 말씀으로 중생할 것(약 1:18)과 중생한 자의 심령 속에는 말씀이 항상 내주할 것을 가리킨다. 성도를 성령으로 감동시켜 그 말씀을 깨닫게 하고, 심령에 말씀의 인을 쳐서 마음판에 기록할 것을 가리킨다. 로마서 10:8에는,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했다.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온전히 다 구원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그들 가운데 계셔서 그들과 교제하며 그들을 통치하며 신령한 양식을 공급하며, 그들을 떠나지 않고 보호하며, 연단시켜 하늘 나라로 데려갈 것을 약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은 더 좋은 언약이다.

. 8: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신약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시대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써 구속을 완성하시고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여 누구든지 와서 구원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도록 하여 놓았기 때문이다(마 22:1-10). 본 절의 궁극적 성취는 천년 왕국 시대에 성취될 것이다. 이사야 11:9에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했고, 스가랴 14:20에 "그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라고 했다. 또 미가 4:1-2에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고 했다.

천년 왕국 시대에는 모든 열방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그때는 물이 바다에 충만한 것처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넘칠 것이며, 모든 열방이 주께로 돌아와서 주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기록하고 다닌다고 했다.

. 8:12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예수께서는 우리 불의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 불의에 대한 형벌을 주님께서 대신 받으시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으므로 우리 성도의 죄를 다시 기억치도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가 복이 있다. 로마서 4:7에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라고 했다. 또 네 죄를 등뒤에 버리고 다시 기억치 않겠다고 했다(사 38:17).

五. 구약의 쇠퇴(13)

. 8: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

새 언약 앞에서 예레미야서를 인용하여 새 언약을 세울 것을 확증하였다.

첫 것은 옛 언약 즉 구약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다.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이것은 구약인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고, 구약의 의문과 증서가 도말되고 없어진다는 뜻이다(골 2:14). 신약 시대에는 구약의 의문과 증서만 도말된 것이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진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구약의 진리도 영원 불변한 진리이며, 신약의 진리와 동일하고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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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히브리서 9장

제 9 장 성 막

(대 지)

一. 구약 성소와 봉사(1-10)

二. 신약 성소의 설정과 봉사(11-22)

三. 하늘의 성소(23-28)

(본문 강해)

一. 구약 성소와 봉사(1-10)

. 9: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첫 언약은 구약을 가리킨다.

섬기는 예법 구약에 하나님을 섬기는 여러 가지 예법이 있는데 제사법도 그 중의 하나이다.

세상에 속한 성소 모세가 지은 성막의 성소를 가리킨다. 모세가 만든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고, 휘장으로 그 경계를 만들었다.

그 첫 장막인 성소는 세상 교회를 상징하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성소라고 하였으며, 지성소는 하늘에 속한 성소, 즉 신령한 성소를 상징하기 때문에 하늘의 성소라고 하였다(9:23-24).

. 9: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첫 장막(첫 성소) 안에는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떡(진설병)을 상(床)에 항상 진설하되 한 주일에 한번씩 새로운 떡으로 바꾸어 드렸다.

등대에는 매일 저녁에 불을 켜서 밤새도록 비취게 하고, 아침에는 껐다(출 27:20-21, 레 24:2-4참조). 진설병은 생명의 떡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등불은 성령을 상징한다(레 24:2-5).

. 9: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성막 중간에 휘장을 치고, 그 휘장 앞에 있는 성소와 휘장 뒤에 있는 지성소를 구분했다.

. 9:4-5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지성소 안에는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었으며 그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이 있었다. 또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었고,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었다.

금향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도들의 기도와 그리스도의 향기가 성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계 8:3, 고후 2:14-15 참조). 구약 성경에는 첫 장막 안에 금향단이 있다고 했고(출 30:6, 40:26), 본문에는 금향로가 둘째 장막, 즉 지성소 안에 있다고 했다. 전자는 금향단이라고 했고, 후자는 금향로라고 했다. 향단과 향로는 다른 것 같다. 향단은 휘장 밖에 있었고, 향로는 대제사장들이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드릴 때에 분향하기 위해 지성소에 둔 것 같다.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민수기 17:10에는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에 두라고 했고, 출애굽기 16:33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는 여호와 앞에 두라고 했다. 아마 그 후에 그것들을 언약궤 안에 넣었는지 모른다. 열왕기상 8:9에는 언약궤 안에는 두 돌비석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열왕기 시대는 출애굽 후 약 오백 여년이 지난 때이었으므로 아마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는 분실하여 없어지고 두 돌비석만 남은 것 같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인데,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떡이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믿는 성도에게 생명의 떡이 되실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만나를 금항아리에 담아 두게 하신 것이다. 돌비석 두 개에 기록된 십계명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속죄소는 언약궤 위에 금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 속죄소 위에 희생의 피를 뿌려 속죄의 제사를 드렸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속죄해 주실 것을 가리킨다.

속죄소 위에 금으로 만들어 놓은 두 그룹은 두 천사의 형상인데, 날개를 펴서 그 속죄소를 덮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천사가 수종든다는 것을 가리킨다. 히브리서 1:14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고 하였다.

. 9:6-7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이 모든 것은 성막의 첫 장막과 둘째 장막 안에 설비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제사장들이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매 안식일과 절기에 드리는 제사를 항상 첫 장막에서 드렸다. 둘째 장막(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씩 들어가 제사를 드렸으며 반드시 생축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했다. 그 피는 자기의 죄와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드리는 속죄의 피이다.

이 첫 장막들은 모형과 그림자이다(8:5, 9:23). 첫 장막은 가견적(可見的), 제도적(制度的)교회를 가리키고, 둘째 장막, 즉 지성소는 불가견적(不可見的), 영적 교회를 가리킨다. 성도가 첫 장막에 들어가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지성소에까지 들어가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제도적, 의식적 예배만 드리는데 그치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요한복음 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였다. 의식적인 예배는 산 제사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그 예배를 통해서는 영이 살지 못한다.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영이 새 생명을 얻어 나가며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릴 수가 있다. 이것이 없이 의식적인 예배만 드리는 것은 죽은 제사요 생명의 역사가 없다.

. 9: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 첫 장막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의식적, 제도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람은 둘째 장막인 영적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

. 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 장막은 의식과 제도적인 예배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첫 장막을 말하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그 양심으로 온전케 할 수 없다.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은 심령이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성도가 영적인 산 제사를 드려 영이 날마다 살아 역사해야 양심이 온전케 된다. 그러나, 성도가 의식적인 예배에만 참여하면 어느 정도 마음에 감동을 받아 기쁨과 위로가 있고 어느 정도 정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나, 영이 살고, 생명을 얻는 자리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영이 사는 예배는 지성소에 깊이 들어가서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한다.

성도가 예배 시간에 받는 감동에도 두 가지가 있다.

① 육신의 감정에 속한 감동이다. 이러한 감동은 불신자들도 받을 수 있다. 불신자들이 시국 강연에 참여하여 감동을 받고 자기의 모든 재산을 다 바치고, 생명까지 바치는 일이 있다. 육신의 감정에 속한 감동은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올림픽 대회에서 우리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그 장면을 TV로 본 사람이 너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다. 성도가 예배 시간에 육신의 감정에 속한 감동을 아무리 크게 받아도 그것으로는 영적 생명의 역사에 참여하지 못한다.

② 영적 감동이 있다. 이것은 내적 생명의 역사로 주어지는 것이며 중생한 영혼이 받는 감동이다. 성도들 가운데 의식적인 예배에만 참여하고 육신의 감정에 속한 감동을 받아 열심히 봉사하고, 물질도 바치고 봉사와 희생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의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힘써야겠다. 성경 말씀을 듣는데 그치지 말고, 듣고 깨달아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하나님과 영적 교통이 이루어져 영이 살고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 9: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 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구약의 제도와 의식에 속한 것(음식에 관한 규례, 씻는 의식)은 양심을 정결케 하고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다.

개혁할 때까지 그리스도가 와서 구속을 성취할 때까지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성전 휘장이 찢어져서 누구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율법의 의문과 증서를 폐했고(골 2:14-15),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게 한 것이다.

맡겨 둔 것이란 새 언약이 성취될 때까지 그들에게 맡겨서 시행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二. 신약 성소의 설정과 봉사 (11-22)

. 9: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장래 좋은 일은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베풀어주실 모든 은혜들을 가리킨다.

① 성도를 죄에서 구원해 내는 일

②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임하게 하는 일(구원 운동)

③ 성도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일

④ 천년 왕국을 건설하는 일

⑤ 영원한 천국을 유업으로 주는 일 등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좋은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대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여 손으로 짓지 아니하고, 이 창조에 속하지 않는 성소에 들어가셔서 제사를 드려 주셨다.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란 하늘의 성소(24절), 즉 영적 성소를 가리킨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고 창조에 속하지 않은 하늘의 성소(신령한 성소)에서 당신의 몸을 제물로 바쳐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려 주셨다. 이 성소는 구약 성소보다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다. "신령한 성소"란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 영역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4:22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곳이 장소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을 가리킴과 같다.

.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구약 시대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제물로 드렸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피를 바쳤으므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렸고, 그 공로가 만세 만대의 모든 택한 백성에게 유효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즉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단번에 사함 받는다.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단 한번 드린 제사로 구속을 완성하시고, 영원한 하늘 성소에 들어 가셨다는 뜻이다. 성소에 들어가셨다는 것은 영적 성소에 들어가셨다는 의미로써 신령한 제사를 드렸다는 것과, 또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 것을 가리킨다.

.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짐승을 잡아 드리는 구약의 제사로는 사람의 죄를 사해 주지 못하며, 또 죄책을 제거하지 못하고,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시키지도 못하며, 영생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구약 제사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제사는 육체를 정결케 하며 거룩케 하는 일을 하였다. "육체를 정결케 하고 거룩케 했다"는 것은 육체에 속한 마음을 정결케 하고 거룩케 했다는 의미이다.

.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제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영원하신 성령 여기서 성령은 (프뉴마)로서 영이라는 뜻이다. 전후관계를 보아 본 절의 성령은 그리스도의 신성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신성과 인성으로 하나님께 완전한 속죄 제사를 드렸다.

11절과 12절에서는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하여 총론적으로 말하였으나, 본 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드린 속죄 제사가 하나님께 완전한 제사가 되어 우리 죄를 온전히 대속해 주었고, 또 하나님의 진노를 다 풀어 주셨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단번에 드린 제사가 하나님 앞에 완전한 속죄 제사가 된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으로 말미암아 드린 제사이기 때문이다. 성자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릴 수 있고, 무흠한 사람이라야(그리스도의 인성)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가 있다.

흠 없는 자기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흠이 있었다면 그가 죽었어도 자기 죄 값으로 죽은 것이 되고,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가 있는 사람은 마땅히 자기 죄 값으로 죽는 것이며 남의 죄를 대속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인성을 입으셨으나 죄와 흠이 없으시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성령(신성)으로 말미암아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고 하나님께 만족을 드렸다. 그 제사로 인하여 모든 성도의 죽은 영혼을 살려 내고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케 해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해주셨다.

양심으로 죽은 행실은 영혼이 죽은 데서 나오는 행실을 가리킨다. 양심은 모든 것을 판단해서 옳은 것을 따라가게 하는 기관이다. 이 양심을 중생한 영이 사용할 때는 산 생명의 행실이 나타난다. 그러나 영혼이 죽은 자(미중생자)는 그 양심으로 죽은 행실(새 생명이 없는 행실)이 나타나게 된다. 불신자는 조상의 제사나 우상을 섬기는 일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죽은 행실이다. 그러나 영이 산 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여 순종하고 그 하나님을 본받아 나아간다.

. 9: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를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믿는 자의 양심을 정결케 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참으로 새 언약의 중보이시다.

중보 양쪽의 의견을 전달하고 조정하여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시켜 주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중보의 역할이다.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는 구약 시대 율법 아래서 살며 율법을 범한 죄를 가리킨다. 그들의 죄도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다 사함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드린 속죄 제사가 신·구약 시대의 모든 성도의 죄를 사해 주셨다. 구약 시대의 성도는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바라보고 믿어 구원받았고(죄 사함 받았고), 신약 시대의 모든 성도는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았다. 율법을 범한 모든 죄가 율법의 의식과 제도에 속한 제사로는 사함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의해서만 사함을 받을 수 있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믿는 자, 즉 택한 자를 가리킨다.

영원한 기업의 약속 신령한 기업에 대한 약속이다. 성도의 기업은 하늘에 있다. 베드로전서 1:4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라고 했다. 우리 성도는 그 기업에 대한 약속을 벌써 얻어 가지고 즐거워하며 그것을 누릴 자격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 9: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의 원어 (디아데케)는 언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윗절에서 언급한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언약의 중보로서 그 언약을 실현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그가 죽으신 후에는 그 언약이 유언과 같이 유효하게 된 것이다.

. 9: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유언은 그 유언한 자가 죽은 후에야 견고한 것이 되고 효력이 있으며, 유언한 자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효력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언약 성취를 위해 죽으시고 그 언약을 유언으로 남기셨으므로 그 언약은 확실하고 견고하며 효력이 있는 것이다.

. 9: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윗 절에서 유언(언약)과 죽음의 관계를 말하고 본 절에서는 언약과 피의 관계를 말한다. 15절에 언급한 새 언약은 그 유언(언약)한 자가 죽어야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고(17), 본 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대로 죽으셨다는 것과 그 피로 사죄함을 주었다는 것이다. 피가 없이는 속죄의 언약이 성취될 수 없다.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첫 언약은 구약을 가리킨다. 구약 율법을 주실 때에도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뿌려 정결케 하였다(출 29:20-21 참조).

. 9:19-21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모세가 율법을 백성에게 고하고 피로써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한 것이다.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그 책은 율법서(언약서)를 가리킨다(출 24:7). 모세가 율법을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단과 모든 백성에 게 뿌리면서, 이것은 언약의 피라고 하였다. 언약의 피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흘리실 피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6:28에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했다.

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여 뿌린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깨끗케 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벧전 1:22). 출애굽기 24:5이하에도 모세가 피 뿌린 사실이 있는데, 거기에는 본문의 사실과 조금 다르나 그 사실을 성령께서 좀더 세밀히 가르쳐 주신 줄로 안다.

.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율법의 의식에 있어서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케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로써만 죄 사함을 받을 것을 나타내 준 예식이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대속의 원리를 가르쳐 준다. 죄로 더렵혀진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깨끗케 할 수 없다. 구스인이 그 피부색을 변하게 할 수 없고, 표범이 그 반점을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이 죄인이 스스로 자기의 죄를 씻을 수 없다. 인간의 영혼은 허물과 죄로 죽었으므로 죄에서 벗어져 나올 수도 없고, 하나님께 대한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전적 부패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죄인이 어떤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공을 세워 그 죄를 사유함 받는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불교나 유교, 및 다른 종교에서 주장하는 대로, 자기가 스스로 선을 행하고, 도를 닦아 마음을 깨끗이 하고, 자비와 선을 베풀어서 그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음으로만 죄 사유함을 받을 수가 있다. 구약 시대에 양이나 소를 잡아 그 피를 뿌려 정결케 하는 예식을 행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오셔서 피 흘려 속죄해 주실 것을 상징하였다. 구약시대 성도들도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이다.

三. 하늘의 성소(23-28)

.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구약의 제사 제도와 정결케 하는 의식 등은 모형이요 비유요 그림자이다(히 8:5, 10:1). 그것으로는, ① 죄를 속하지 못하고, ② 죄책과 형벌을 제거하지 못하고. ③ 죄인으로 하나님과 화목시키지 못하고, ④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지 못하고, ⑤ 양심을 정결케 하지 못한다.

그러나, ① 죄를 생각나게 하고(히 10:3), ② 육체(이성)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고(히 9:13), ③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가져야 할 것을 알게 하고, ④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게 했다. 구약시대는 이런 것들로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그 실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그런 것들로 할 필요가 없다. 구약 제사와 의식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늘에 있는 것들은 신령한 것들을 가리키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제사 드려 주신 것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속죄제를 드려 주신 것이 참된 제사요, 완전한 제사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주신 신약의 제사는, ① 하나님의 공법을 만족시켰고, ② 신자의 죄를 대속해 주었고, ③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었고, ④ 새 생명을 주었고(중생), ⑤ 하나님과 화목시켜 주었고, ⑥ 하나님을 닮아 가게 해주셨으며, ⑦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주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드리신 속죄 제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큰 유익을 주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사가 구약의 실체요, 신령하고 완전한 제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좋은 제물이라고 했다.

.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는 구약의 성소를 가리킨다. 그 구약 성소는 하늘 성소의 모형이요 그림자이다(히 8:5).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제사 드린 것을 가리킨다. 하늘 성소란 신령한 성소를 가리키고, 또 하늘 나라 즉 하나님 앞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드린 제사는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서 드린 제사가 아니고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서 드린 제사이므로 우리의 죄를 완전히 속해 줄 수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으로 드린 제사는 영적으로 드린 제사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까지 상달하는 제사였다. 또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앞에 가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대제사장으로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시는 것을 가리킨다.

. 9: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해마다 생축의 피로써 제사를 드렸으나 그리스도는 자기 몸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자주 드릴 필요가 없었다. 그 이유는 소나 양 같은 짐승의 제물과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린 제물은 너무 차이가 심하여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 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드린 제사가 구약 대제사장들이 드린 제물과 같은 효과의 제물이라고 하면 그리스도는 자주 고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구약 대제사장들이 드리는 제물은 자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그러한 정도의 가치밖에 되지 못하는 제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죄가 없고 완전하여 무흠하시며 삼위일체 성자의 몸이시므로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만세 만대의 모든 택한 백성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단번에 완전히 사하여 주신 것이다.

세상 끝은 여기서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를 가리킨다(벧전 1:20, 행 2:17 참조). 성경 말씀 중 다른 곳에서는 세상 종말을 가리키기도 한다(마 24:3, 마 13:40, 49).

. 9:27-28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죽게된 것은 죄 때문이다. 로마서 6:23에 "죄 값은 사망"이라고 했고, 로마서 5:12에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된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일반적 원칙이다.

그러면 죄 없으신 예수님은 왜 죽으셨는가? 그것은 많은 사람이 죄로 인하여 죽게 된 것을 대신해서 그 죄를 담당하시려고 죽으신 것이다. "죄인은 죽는다"고 하는 하나님의 공법은 어길 수가 없다. 그 공법에 의해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는데 그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린 것이다.

죄와 상관없이 예수께서 초림하실 때에는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 죄 값으로 죽으셨지만 재림하실 때에는 죄와 상관없이 오셔서 우리를 데려 가시는 것이다.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고 기다리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오랜 후에 주님이 재림할 것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주의 재림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더딘 것이 아니고 도적과 같이 이른다고 했다(벧후3:9-10).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오늘 주께서 재림하시지 않을까 하고 준비하고 기다리며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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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0장

제 10 장 제 사

(대 지)

一. 궁극적 제사(1-18)

二. 신망애(信望愛) 권면(19-25)

三. 범죄자에 대한 경고(26-31)

四. 구원을 이루라(32-39)

(본문 강해)

一. 궁극적 제사(1-18)

.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며 참 형상이 아니므로 율법의 제사로는 그 제사 드리는 자를 언제든지 온전케 하지 못했다.

장차 오는 좋은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의식과 제도의 실체, 즉 참 형상이다. 골로새서 2:16-17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하였다. 구약의 제사는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해마다 제사를 드린다고 해도 제사 드리는 그 사람을 죄에서 온전케 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그림 속의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을 배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 10: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렇지 아니하면 앞에서 말한 내용과 반대로 "율법의 제사가 제사 드리는 자를 온전케 할 수 있었다고 하면"의 뜻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고 하면 그 제사가 한번으로 끝났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제사 드리는 자가 그 드리는 제사로 온전히 깨끗함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후에는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었을 것이며,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의 제사가 해마다 계속된 것은 그 제사가 제사 드리는 자를 온전케 하지 못한 증거이다.

. 10: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구약의 제사로는 사람을 죄에서 온전케 할 수 없는데 왜 그 제사를 그치지 않고 드렸어야 했는가?

첫째, 해마다 죄를 생각나게 하여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로마서 3:20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피 흘리심으로 죄를 사함 받게 될 것을 알게 해주고,

셋째, 오실 그리스도를 믿도록 지시해 주고,

넷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져야 됨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 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구약 율법의 제사는 윗 절에서 해석한 것과 같은 이유로 필요하였으나 그 드리는바 황소와 양과 염소의 피가 능히 드리는 자들의 죄를 없게 하지 못했다. 만일 그 제사가 죄를 없게 하여 깨끗하게 하였다면 그리스도가 오셔서 피 흘려주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10: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세상에 임하실 때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실 때를 가리킨다. 5-7절의 내용은 시편 40:6-8의 인용으로 구약의 짐승으로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당신을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다는 것이다.

한 몸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속죄 제물이 되실 것을 가리킨다.

. 10:6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구약 율법의 제사를 가리키며 소나 양을 잡아 그것을 전체로 변제나 속죄제를 드리는 것을 말한다. 번제는 제물 전체를 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이다. 이러한 구약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 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선지자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한 말씀으로 곧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다.

두루마리 책은 구약 성경을 가리킨다. 구약 성경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과 그의 사역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사 9:6-7, 11:1-5, 신 18:15). 그리스도는 구약 성경이 예언한 대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사 7:14) 성경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속죄 제사를 드리러 오실 것을 말한다.

. 10:8-9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5-6절에 말한 것을 가리킨다. 그 내용은 율법을 따라 드리는 구약의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 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러 왔다는 것이다.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첫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제사를 말하며, 둘째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기 피로 속죄 제사를 드려 주실 것을 가리킨다. 구약의 제사와 예물(첫 것)은 하나님께서 원치도 않으시고 기뻐하시지도 않는다고 하였으니 폐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내(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로운 언약(둘째 것)을 세우실 것이 분명하다.

.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첫 것은 폐하고, 둘째 것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단번에 드려 완전한 속죄 제사를 이루어서 우리가 믿고 죄 사함과 거룩함을 얻도록 하셨다. 성도가 거룩함을 입은 것은, ① 법적으로 거룩해진 것이고, ② 물과 성령으로 중생한 영이 거룩해진 것이고, ③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거룩해진 것이다.

. 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구약의 율법을 따라 드리는 제사는 제사장이 매일 서서 섬기며 같은 제사를 반복하여 자주 드리되 드리는 자들의 죄를 없이 하지는 못했다.

.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자기 몸을 단번에 드려 영원한 속죄 제사(영원히 효력 있는 제사)를 드렸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되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하나님 우편은 요긴한 자리를 말하며,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지금도 늘 기도해 주시며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고 계신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혀 달라는 기도와, 죄를 이기게 해 달라는 기도와, 하나님을 순종하여 정결케 해 달라는 기도와,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해 달라는 기도를 계속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능히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가 있다.

. 10: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원수가 발등상 되기까지 기다리시는 예수님이시다.

그 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불활 승천하신 후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써 마귀의 권세를 다 이겨 놓으셨다. 이로 말미암아 마귀는 패잔병들처럼 되었다. 지금 각 처에서 역사하는 마귀들은 다 패잔병과 같이 된 자들이다. 이 패잔병들을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통하여 점점 멸하여 나아가는 중에 있으며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마지막에는 완전히 멸하게 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15:24-26에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하여 그 마귀의 패잔병들과 싸워 이겨 나아가게 하신 것은 성도들에게는 연단을 받아 믿음의 실력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요, 원수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발등상이 되게 하며, 승리한 성도의 발등상도 되게 하려는 것이다(발등상이 되게 하는데 대한 해석은 1:13 해석 참조).

.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한 제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제물로 드린 것을 가리킨다. 이 제사로 성도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성도가 믿을 때에 법적으로 온전케 되었고, 또 성도의 중생한 영이 영원히 온전케 되었다. 그 영을 써서 말씀을 순종하여 몸의 구속을 이루어 나아가는데 그 구속을 이룬 것은 영원히 온전하다(롬 8:23 참조). 이와 같이 구속의 세계는 언제나 영원한 것이다.

. 10:15-16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서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예레미야 31:33-34의 인용으로 히브리서 8:10-12에서도 인용한 바 있다. 성령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증거한 것이며,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세우실 새 언약이다.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나님의 구속의 말씀(내 법)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마음에 두고 생각에 기록하겠다는 뜻이다. 성도의 심령에는 언제나 복음의 말씀이 새겨져 있다. 고린도후서 3:3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 했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성도들이 행한 모든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치 않겠다는 언약을 세우셨다.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치 않겠다고 하였으니 그 죄와 불법을 완전히 사함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 죄를 위하여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으로 단번에 드린 제사가 영원히 효력 있게 된 증거이다.

二. 신망애(信望愛) 권면(19-25)

.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로 온전케 된 우리 성도는 그의 피를 힘입어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마귀는 우리가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밤낮 참소한다(계 12:10). 그러할지라도 "나는 예수의 피로 구속받았다, 나는 예수의 피를 믿는다, 사단아 물러가라"하면 마귀가 꼼짝 못하고 물러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간다.

성소는 지성소이며, 하나님이 계신 곳을 뜻한다. 그러므로 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에베소서 3:12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하였다.

.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구약의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를 막는 휘장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그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다(마 27:50-51).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지성소(하나님 앞)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은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다.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셨다는 것은 성전 휘장이 찢어져서 그 가운데로 길이 열려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완전한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누구나 예수님의 구속을 믿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롭고 산 길은 새 언약(신약)이요 생명의 길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구약 율법과 같지 않고 새로운 길이다. 구약의 율법은 종살이하는 길이요(갈 4:24, 롬 8:15), 생명이 없는 의식뿐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자유와 생명의 길이다.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창에 찔려 찢긴 것을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에 비유한 것이다. 구약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을 상징한 것이다.

. 10:21-22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구약 성전(하나님의 집)에는 다스리는 대제사장이 있었다. 신약 시대의 하나님의 집은 교회이며, 신약 교회의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하나님의 집(교회)을 다스리는 일을 하신다.

마음에 뿌림을 받아 신약 성도들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아 죄로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난 것을 가리킨다(벧전 1:2).

양심의 악을 깨닫고 여기 양심은 진리와 영감으로 중생한 영에게 사용되는 양심을 가리키며, 그 양심의 깨달음은 곧 중생한 영의 깨달음으로써 죄악을 바로 깨닫고 참된 회개를 하였다는 뜻이다.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믿음으로 이미 깨끗해진 것과(요 15:3), 또 진리를 순종하므로 점점 깨끗한 데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벧전 1:22). "물"은 "진리"를 가리킨다(엡 5:26). 믿음으로 깨끗케 된 성도가(행 15:9) 성경 말씀을 계속 순종하여 의의 길로 걸어 나아가 자기를 점점 깨끗케 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성도의 믿음이 온전케 되어 나아가는 길이요(약 2:22), 믿음이 온전케 된 것만큼 하나님께 더욱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하나님은 신실하시므로 그가 세우신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성취시켜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약속(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고,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고 달음박질을 하여야 한다.

믿는 도리의 소망이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속과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소망을 가리킨다. 성도는 그 소망을 굳게 잡고 흔들림이 없이 전진하여야 한다.

.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자신이 먼저 진리에 굳게 선 다음이라야 다른 사람을 돌보아 줄 수 있다. 성도는 자신의 신앙을 잘 지킬 뿐 아니라 다른 성도를 돌보아 주고 격려하여 하나님의 전체적인 구원 운동이 잘 되도록 해야 한다.

.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 어느 시대에나 신자들 가운데 교회에 모이기를 폐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모이기를 폐하려는 사람들의 종류는 몇 가지가 있다. ① 환난과 핍박이 두려워서 은신책으로 모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핍박과 환난을 받지 않고 평안하게 신앙 생활을 하려는 자이며, 이러한 사람은 영이 자라나지 못한다. ② 게으르고 태만하기 때문에 모이지 않는 자가 많다. 이러한 사람은 모이는 것이 좋은 줄은 알지만 믿는 일에 힘쓰지 않고 나태하므로 교회에 잘 나가지 못한다. 이런 자는 가시밭에 떨어진 씨와 같아서 결실을 잘 못한다. ③ 교회의 지배를 받기 싫어하여 모이지 않는 자가 있다. 이러한 자는 자기 주장대로만 하려는 자이다. 이들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많은 은혜를 받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고, 연단을 받지 못하며,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은 마귀 시험에 든 자이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8:20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였다. 성도가 모일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주어 영적 생명을 살려 나아가신다. 특별히 공 예배(주일·삼일 예배)에 빠지지 말고 힘써 참여해야 한다. 삼일 예배드리는 것은 성경 말씀에 없다 하여 오늘날 이를 등한히 여기는 사람이 있으나 삼일 예배는 신실한 믿음의 선진들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오랫동안 계속해 온 거룩한 규례이다(살후 3:6, 갈 6:16). 그러므로 이것을 소홀히 하고 등한히 하는 것은 성령이 세운 제도를 버리는 것이다.

또한 사경회 모임과 같은 대 집회시에도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서 많은 무리를 모아서 말씀으로 양육하며 은혜 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모임을 갖게 한 것이므로 거기에 참여하면 많은 은혜를 받고 영적 유익이 많이 있다. 사경회에 참여하면 많은 진리를 깨닫고 영적 힘을 얻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난다. 모여서 말씀을 배우는 사람도 복이 있고, 가르치는 사람도 복이 있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의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더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三. 범죄자에 대한 경고(26-31)

. 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본 절에서부터 31절까지는 진리를 버린 자의 죄와 그 결과가 비참한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여기 진리를 알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를 알았다는 뜻이다. 짐짓 죄를 범한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를 중심으로(의식적으로) 버리거나 반대하는 죄를 가리킨다. 그 죄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를 버린 것이라는 증거는 29절에 그 죄 범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밟았다고 하였고, 자기를 거룩케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짐짓 짓는 죄"의 원어 (헤쿠시오스 갈 하말타논톤)은 현재 분사로 되어 있으므로 계속적으로 범하는 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짐짓 짓는 죄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여야 된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의 도리를 중심(심령)으로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버리는 죄이다. 그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도리를 불신하여 버리고 의식적으로 다른 교리(다른 복음, 갈 1:6)나 교훈을 따라갔으니 회개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죄는 불택자가 짓는 죄이다. 이 죄는 성령 훼방죄와 같이 회개 할 수 없는 죄이다.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를 부인했으니, 다시 다른 속죄 제사가 있을 수가 없다.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다.

이런 자는 무서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릴 것뿐이다.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 진리를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이런 자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로 나타난다(히 12:29).

. 10:28-29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구약 율법을 범한 자를 두 세 명의 증인으로서 죽이는 일이 있었다. 하나님을 훼방한 죄나(레 24:13-17) 간음죄나(신 22:22-30), 위증죄(신 19:15-21) 같은 죄를 범했을 때, 두 세 명의 증언으로 죽인 것이다. 모세의 율법을 범한 자도 반드시 형벌을 받았다고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구속의 도리를 거역하고 나간 자의 받을 형벌은 얼마나 크겠는가!

그것은 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발로 밟는 일이요, ② 그의 피를 더럽게 여기는 것이며, ③ 성령의 감동을 소멸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욕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께 중한 형벌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 10:30-31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구속의 진리를 버리고 대적한 자가 중한 형벌을 받게 됨을 신명기 32:35-36의 말씀을 인용하여 증거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발로 밟고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행위대로 보수한다는 의미이다.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이것은 신명기 32:36의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을 공의(公義)대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택한 백성은 그리스도께서 대신 그 심판을 받으셨으므로 영멸(永滅)의 형벌 가운데 빠져 들어가지는 않는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간다는 것은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을 가리킨다. 26절 이하의 범죄자는 하나님의 심판 의 손에 빠져 반드시 멸망할 것을 가리킨다. 참된 진리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손이 붙들어 주시나 진리를 짐짓 버리는 자는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四. 구원을 이루라(32-39)

. 10:32-35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가 빛을 받은 후라는 것은 신령한 믿음을 받았다는 뜻인데, 처음 믿음, 처음 사랑, 처음 받은 은혜와 진리를 가리킨다. 그 당시에 처음 받은 믿음이란 초대교회의 신앙을 잃지 말고 항상 그 신앙으로 전진하라는 것이다. 그 처음 신앙은 많은 환난과 많은 고난을 단 마음으로 받고 이겨 나아갔으며, 또 환난 받는 자를 잘 돌보아 주며 믿음을 격려해 나갔다.

오늘날 우리도 처음 믿음, 처음 사랑, 처음 받은 진리를 붙들고 그것을 늘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현재의 신앙이 타락된 자리에 있다고 하면 전의 믿음과 진리를 처음 받을 때에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하였는가를 생각해 보며 처음 믿음, 처음 사랑을 다시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처음 주를 믿을 때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워 주를 위해 핍박도 단 마음으로 받고 멸시와 천대도 달게 받았다. 우리가 항상 그 믿음, 그 사랑에 붙잡혀 있어야 한다. 요한계시록3:3에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했다.

비방과 환난 처음 믿음과 처음 사랑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는 주를 위하여 비방과 많은 환난을 받았으나 단 마음으로 받고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였다.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믿음 지키는 일 때문에 비천해지고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을 말한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으므로 하만과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했고 마침내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환난이 온 것과 같다.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믿음으로 박해받는 자를 사귀며 돌봐 준 것을 가리킨다. 박해받는 자를 돌보아 주면 자기도 같이 박해를 받는다. 그러나 처음 믿음, 처음 사랑이 있을 때에는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박해받는 자들을 잘 돌보아 주고 위로해 주었다는 것이다. 일제 시대 때 신사 참배 거부 문제로 주기철 목사가 감옥에 갇히고, 그 가족들이 어려운 가운데 빠졌을 때에 그 가족을 돌보아주는 사람도 같이 핍박을 당했으나, 신앙이 독실한 성도들은 끝까지 그 가족을 돌보아 주고 그 가정에 가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러한 성도들은 천국에서 주기철 목사가 받은 상급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10:41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했다.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은 하늘 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말한다. 믿음을 지킨 성도에게 하늘 나라의 기업을 상급으로 풍성하게 주신다. 성도는 하늘 나라에서 받을 영구한 기업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지키다가 육신의 산업을 다 빼앗기며 환난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기뻐한다. 주를 위해 말씀을 지키다가 물질적인 것을 빼앗기면 하나님이 영적인 것으로 더욱 풍성히 채워 주신다. 야고보서 1:9에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라고 했다. 이것은 믿는 일하다가 낮아진 자는 영적으로 그만큼 높아졌으므로 기뻐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핍박을 당하고 산업을 빼앗기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해도 생명의 말씀을 양보하지 말고 생명까지 내놓고 끝까지 말씀을 지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하늘의 상급이 크다.

.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받기 위해서는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내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가면서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면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이 오므로 인내가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켜 나아갈 수 없다. 디모데후서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다. 인내로써 말씀을 끝까지 지켜 나아가면 마침내 신령한 복을 하나님께서 주시고, 덤으로 세상의 것도 풍성히 주신다.

. 10: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이것은 하박국 2:3의 인용이며, 역사적으로는 갈대아 군대가 와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정벌할 것을 말하는 동시에 예언적으로는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의인을 구원해 주실 것을 말한 것이다.

잠시 잠깐 후 그리스도의 재림이 잠시 잠깐 후에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주님의 재림은 결코 더딘 것이 아니며 속히 이루어 질 것이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성도는 구원하시고, 죄악 세상은 심판하신다. 우리 성도는 주님의 재림이 잠시 잠깐 후에 이루어 질 것으로 믿고 믿음으로 준비를 잘 해 나가야 한다.

. 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성경에 네 번 나온다(히 10:38, 합 2:4, 롬 1:17, 갈 3:11).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되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는 의인이 되지 못하고 믿음으로만 의인이 된다(롬 3:20-21 참조). 기술자는 기술로 살고, 학자는 학문으로 살고, 정치가는 정치로 살고, 장사꾼은 장사로 살고, 믿는 자는 믿음으로 산다. 이 세상의 것을 전공한 자도 그것으로 사는데, 하물며 절대 완전하시고 대주재가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그 믿음으로 살지 못할 리가 없다.

믿는 자가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다. 고린도후서 4:8-10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자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이와 같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자는 강한 자요, 항상 기뻐하는 자요, 모든 것을 소유한 자요,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자이다. 성도가 힘이 없어 못한다, 무엇이 없어 못한다고 하지 말고 믿음이 없어서 못하는 줄 알아야 한다. 아무 것도 없어도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되고 영이 살고 육신도 살며 영원히 살 수 있다.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가 어려운 일(환난, 핍박)이 생겨 용기를 잃고 뒤로 돌아가는 것과 실족하는 것을 말한다. 신앙은 계속 전진하는 것이지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다가 뒤로 물러가는 것은 마귀의 시험에 든 증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고 마귀가 기뻐한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마귀의 종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진리의 말씀을 깨달았으면 모든 환난과 궁핍과 멸시가 와도 끝까지 참고 견디며 그 진리를 붙잡고 달음박질하여야 한다.

.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산 믿음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뒤로 물러가지 않는다. 뒤로 물러가는 자는 침륜에 빠진다.

침륜의 원어 (아포레이안)은 멸망을 의미한다. 성도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영혼의 구원을 이루어 나아갈 자이다.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이란 영혼이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믿음, 즉 영혼이 자라나는 믿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끝까지 인내해 나가는 자는(36절) 그 영혼이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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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제 11 장 믿 음

(대 지)

一. 믿음의 결과(1-3)

二. 믿음의 증거(4-12)

三. 믿음의 실상(13-16)

四. 믿음의 발걸음(17-31)

五. 믿음의 능력(32-40)

(본문 강해)

一. 믿음의 결과(1-3)

.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본 절은 믿음의 정의를 말한 것이 아니고, 믿음의 결과를 말한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정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몸으로 행하여야 온전한 믿음이 된다는 뜻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고 순종하면 그 말씀이 이루어져서 실상이 된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성경 말씀에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바라보고 즐거워하였다(요 8:56). 그 약속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가 오셨으므로 말씀이 실상이 된 것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살며 하나님의 말씀에 허락한 가나안을 늘 바라보았다. 그러므로 그 약속의 말씀이 마침내 실상이 되어(이루어져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갔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말씀도 헛되게 돌아가지 않고 반드시 그대로 다 이루어져서 실상이 되는 것이다.

실상의 원어 (휘포스타시스)는 기초, 바쳐 주는 것, 실체, 실상의 뜻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믿고, 몸으로 순종할 때에 그 말씀이 실현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해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몸으로 순종하여 성을 칠일간 돌 때에 마침내 성이 무너져서 그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실상이 된 것이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말씀의 내용은 보지 못하지만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순종해 나가면 그 증거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창세기 21:1-2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권고하시고 말씀대로 행하셔서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그 말씀의 내용을 보지 못하고 순종했지만 그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증거가 생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을 처음에는 보지 못하고 믿지만 그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면 그 말씀의 내용이 이루어짐으로 증거가 된다. 이것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손에 대한 약속을 받을 때에 그의 나이 구십 구세요 사라의 나이 팔십 구세로서 이미 몸이 죽은 나무와 같이 된 상태이었으나 그 말씀대로 될 것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순종할 때에 마침내 사라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은 아브라함이 보지 못하고 그 말씀을 믿은데 대한 증거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바라보고 순종해 나아가면 그 말씀이 실상이 되고 증거가 생긴다. 장차 우리에게 주실 하늘나라도 지금은 믿음으로 바라만 보지만 천국에 들어가면 그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음으로 바라만 보지만 주의 재림 때에 홀연히 부활하고 변화되어 들려 올라갈 때는 그것이 실상이 된다. 그러므로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순종해 나아가면 그 말씀에 대한 실상이 나타나고, 증거도 얻게 된다. 이것은 자기가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말씀대로 행하셔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각으로 두려워하거나 염려하면 안 된다. 우리의 장래 일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다 이루어 주실 것이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말씀대로 성취시켜 말씀의 실상과 증거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가 장래에 이루어 질 것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 이루어질 것만 믿고 순종해 나아가면 그 결과가 나타난다. 찬송가에도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고 했다. 참으로 믿는 성도는 하나님 말씀의 증거가 많이 나타나고 실상도 많이 이루어진다.

.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선진들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가리키며 특히 믿음의 모본이 될 만한 조상들을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걸어가서 많은 증거를 얻었다.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믿음이었다. 말씀에 허락하신 것을 바라보고 떠나야 할 것은 떠나고 참아야 될 것은 참고 고쳐야 할 것은 고치면서 전진해 나아갔다. 이것이 산 믿음이다. 우리도 성경 말씀에 약속하신 것을 믿고, 바라보며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며(벧전 2:11),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말씀대로 걸어 나아가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셔서 많은 증거를 얻게 된다.

.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사실을 아는 것은 오직 믿음뿐이다. 말씀을 믿는 자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창조한 것을 알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모든 세계는 이 세계를 말하는 것인데 인간의 세계, 동물의 세계, 식물의 세계, 영계(靈界), 내세, 영원한 천계 등을 가리킨다. 이 모든 세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보이는 현실 세계는 보이지 않는데서 나온 것이다. 즉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은 말씀으로 지어진 이 세계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맹렬히 타오르면서도 사위지 않는 태양 자기들의 궤도를 돌면서 아름답게 빛나는 수많은 별들, 늘 한 곳에 담겨져 있으면서도 지구 밖으로 흘러 나가거나 말라붙지 않고 항상 창일한 바닷물, 하늘을 향하여 치솟아 있는 높은 산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졌다.

보이는 모든 물질 세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실현이요, 아멘이요, 능력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창조의 능력이 역사한다.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아가며,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이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이다.

특별히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도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세워진다. 지렁이와 같고 벌레와 구더기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한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여 금촛대와 같이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 나아가는 일도 말씀을 믿음(순종)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二. 믿음의 증거(4-12)

.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아벨은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으나 가인은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벨이 믿음으로 드린 제사는 어떤 제사인가?

① 하나님 말씀에 맞는 제사였다. 말씀대로 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아담이 범죄한 다음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는 복음을 주셨다(창 3:15).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가 여인의 후손으로 오셔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릴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해 입히셨다. 이 가죽옷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인들을 위하여 대속해 주실 것을 예표한 것이다.

이로 보건대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갈 때에는 희생의 피를 가지고 나가야만 된다는 것을 아담이 그 아들에게 가르쳐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아벨은 부모가 전해 준 복음을 믿고 순종하여 양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 것이다. 이때 아벨은 단순히 양의 피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사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양과 소의 피로 제사를 드렸으나 하나님이 그것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이다(사 1:13).

② 아벨은 양의 피를 가지고 나올 때 양의 피가 예표하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가 오셔서 피 흘려 구속해 줄 것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여 영으로 교통하면서 제사를 드렸다. 그러므로 아벨의 제사는 성경적이요 영적인 제사였다. 이러한 영적 제사가 산 제사이다(롬 12:1).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요 4:23). 오늘날 우리들도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여 제사를 드려야 되고, 또 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으로 교통하는 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다(요 4:24).

가인은 자기가 농사한 농작물 중에서 좋은 것으로 정성을 다 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나 받지 않으셨다. 가인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이유는?

①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았다. 가인은 희생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해야 된다고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겨 말씀을 어기고 제사하였으므로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 것이다.

②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치 않고 제사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자기 재물을 아낌없이 바치고 아무리 정성껏 하나님께 예배드렸다고 해도 성경에 맞지 않는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고, 또 영으로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영적인 제사가 아니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우리는 성경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영으로 교통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의로운 자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된다.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양의 피를 드릴 때에 그 피가 상징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은 것이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벨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다.

증거 믿는 자에게는 증거가 있다(요일 5:10). 자기 영혼이 중생하여 살아 있는 증거,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구원해 주신 증거,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증거가 있다. 오늘날 우리도 산 제사를 드릴 때에는 이러한 증거가 있다. 그러나 가인과 같이 죽은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는 아무 증거가 없다.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증거하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인과 아벨이 모두 알 수 있도록 증거하신 것이 분명하다. 아벨은 그 증거를 보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송하였을 것이고, 가인은 자기 제물을 받지 않는 증거가 나타났으므로 불쾌함과 불안과 불만 불평이 가득하였을 것이다. 그 결과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죽이기까지 한 것이다. 아벨은 말씀대로 바로 하나님을 섬기다가 형의 시기로 죽임을 당하여 인류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그의 육신은 죽었으나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증거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아벨의 신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창세기 4:10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했다. 핏소리가 땅에서 호소한다는 것은 아벨의 의로운 피, 즉 순교의 피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보시고 기억하시고 그 핏값을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순교자들을 사람은 몰라주어도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이 그 원수를 갚아 주신다.

. 11:5-6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에녹은 믿음으로 삼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승천하였다. 에녹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인가?

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은 믿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증거도 주신다.

② 산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산 믿음이라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야고보 2:26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산 믿음은 생명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새 생명의 역사가 있는 믿음이다(살전 1:3). 이 믿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우리도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여야겠다.

③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 믿음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마음과 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하는 자를 의미한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나 마음은 멀리 떠났으므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책망했다(사 29:13).

④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 서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장하시며 성도의 구원이 되시고, 방패와 피난처가 되시며 상급이 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이 모든 축복을 다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 말씀을 떠나는 자는 앙화와 저주를 받는다. 우리 성도가 어떠한 역경과 환난이 올지라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며,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동행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죽지 않고 승천케 하신 것은 모든 성도의 영혼이 천국에 올라갈 것을 표본으로 보여 주고 죽은 성도가 부활하여 몸으로 천국에 올라가게 될 것을 예표로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죽어도 그 영혼이 즉시 천국에 들어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죽은 성도가 부활하여 신령한 몸으로 천국에 올라간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산에 가서 기도만 한 것이 아니고, 가정 생활을 하며, 자녀를 낳아 기르며.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우리도 에녹과 같이 자기가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여야겠다.

.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보지 못하는 일은 장차 홍수로 세상을 심판할 것을 가리킨다. 노아가 홍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받을 그 당시에는 그 물 심판은 아직 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예비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할 때에 구원을 받았다. 이것이 바라는 것의 실상이 된 것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가 된 것이다. 우리도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사람의 생각으로는 안될 것 같아도 그 말씀이 반드시 성취되어 실상이 된다.

노아 방주에 대한 신령한 뜻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것을 가리킨다.

둘째. 홍수는 대환난을 가리키고, 방주는 예수 믿는 성도가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은 영적 실력을 길러 나아가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노아가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다가 오랜 세월 동안 방주를 지은 것같이 성도들도 계속하여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순종함으로 자기를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장차 환난이 올 때에 그 실력으로 그 환난을 승리적으로 통과할 수 있다.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노아로 말미암아 세상이 정죄를 받았다는 의미이다. 노아가 앞으로 홍수(심판)가 올 것과 방주에 들어가야 산다고 오랫동안 전도했다. 또 마지막에는 일주일 후에 홍수가 내린다고 알려 주었으나 그 당시 사람들이 듣지 않고 순종치 않다가 멸망했고, 말씀을 순종한 노아는 구원받은 사실이 그 세대를 정죄한 것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순종한 자가 구원받은 사실 그 자체가 순종치 않는 것은 죄요, 멸망 받은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 노아는 믿음으로 의인이 된 것이다(창 6:9).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와 똑같은 것이다(롬 3:22, 4:5, 13).

"후사"의 원어 (클레로노모스)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계승(繼承)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후세의 모든 성도들도 노아와 같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계승하여 받을 것을 가리킨다. 신구약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게 되는 것이다(롬 3:22).

.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본 절에서 19절까지는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의 신앙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즉시 그 명령대로 순종하여 의지하고 살던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다 버리고, 혈혈단신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여 믿음으로 나아갔으므로 의롭다함을 얻었고(창 15:6),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창 17:5 참조),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약 2:23).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

오늘날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도와 그 말씀만 따라가면 반드시 기업으로 주시는 아름다운 복지에 들어갈 수가 있다. 초막이든지 궁궐이든지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그곳이 하늘나라요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복된 곳이 된다(고전 3:21-23).

. 11:9-10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아브라함은 장래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가서 살 때에 그곳에 애착심을 두고 견고한 집을 짓고 살지 않고 마치 일시 외국에 가서 우거(禹居)하는 사람처럼 그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다. 우거의 원어 (파로케센)은 시민권이 없이 타국에서 임시 붙여 사는 것을 가리킨다.

동일한 약속은 공동 상속인(共同相續人)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뿐 아니라 이삭과 야곱에게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삭과 야곱은 공동 상속자이다. 아브라함은 장수하였기 때문에 그 손자 야곱 때까지 생존하였다. 그런데 이 땅을 약속 받은 그들이 재산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서 장구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좋은 집을 짓지 않고 외국에서 우거하는 자와 같이 장막 생활을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들은 하늘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가 자기들이 영원히 살 나라인 줄 믿었기 때문이다.

성도가 참으로 영원히 살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니고 하늘에 있다(빌 3:20-21).

경영하시고 지으실 하늘 나라를 설계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지으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터가 있는 성은 하늘 나라를 가리키는데 하늘 나라는 영원히 진동(霞動)치 않는 만세 반석되는 견고한 터 위에 세워 놓은 나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진동될 것들이고(히 12:27-28), 낡아져서 없어질 것뿐이다(히 1:11-12). 그러므로 성도는 영원히 살 하늘 나라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재림을 영접할 준비와 그 나라에 가서 면류관 받을 준비를 잘해야 한다. 모든 것을 거기에 투자하고, 이 세상 생활은 아브라함과 같이 일시 우거하는 것으로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 애착심을 두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절제하고 영원한 하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 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아브라함의 나이 구십 구세, 그 아내 사라의 나이 팔십 구세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명년 이때에 네 아내 사라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그 아내 사라가 단산(斷産)하여 마른나무와 같이 되었으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시고 말씀대로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는 힘을 얻어 늙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다. 하나님은 진실하셔서 그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사라도 확신했다. 이것은 사라가 그 바라는 말씀이 실상이 된 것이고, 그 말씀의 내용(아들)을 보지 못하였으나 믿고 순종하므로 증거가 된 것이다(1절).

. 11: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구십 세가 되어 죽은 자와 다름없는 사라가 믿음으로 잉태하여 후사인 이삭을 낳았는데, 그 후사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겠다한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후사가 이와 같이 많아지겠다는 뜻이다. 갈라디아서 3:16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약속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사람은 실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게 되었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이다(갈 3:29).

三. 믿음의 실상(13-16)

.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가리킨다(9절). 이들은 죽을 때까지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죽었다. 그들의 신앙은,

첫째,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믿는 신앙이다. 그들은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피 흘려 구속해 주시고 영생을 주실 것을 믿고,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바라보고 환영하였다. 그들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이미 오신 것처럼(이미 받은 것처럼) 환영하였다(요 8:56). 또 실제로 그리스도를 영으로 영접하고 기쁨으로 산 것이다(벧전 1:10-11, 단 3:25, 창 48:15, 벧전 3:19-20).

둘째, 하늘에 있는 도성, 즉 천국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믿음을 가졌다. 그들은 이 세상을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고, 임시로 외국에서 우거하는 자와 같이 본향인 하늘 나라를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는 임시로 머무르는 생활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항상 그 본향(천국)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며 그곳에 가서 살 준비를 한 것이다. 베드로전서 2:11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다.

나그네는 며칠 유하고 떠나가는 자요, 행인은 잠시 길을 지나가는 자이다. 외국인은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임시로 우거하는 자이다. 신앙의 선진들은 이와 같이 본향되는 하늘 나라를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행인과 외국인으로 살았다. 우리도 항상 이 신앙을 본받아서 하늘 나라를 바라보고 그곳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겠다. 세상을 자기 본향으로 삼고 하늘 나라를 바라보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자요, 주님의 재림과 하늘 나라에 대한 준비를 잘하지 못하는 자이다.

. 11:14-15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 세상에 있는 본향을 찾으려하지 않고 오직 하늘에 있는 본향을 찾으려고 힘쓰고 늘 그 본향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준비하였다.

저희가 나온바 본향은 이 세상에 있는 본향(갈대아 우르)을 가리킨다. 저들은 이 세상에 있는 자기 본향을 찾아가려면 찾아 갈 수가 있었으나 찾아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고, 하늘에 있는 본향이 참 본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본향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그 본향에 들어 갈 준비를 잘하도록 힘썼다.

.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땅에 있는 본향은 잠시 살다가 이 세상 떠날 때 영원히 떠나게 되나 하늘에 있는 우리의 본향은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릴 곳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본향을 더 나은 본향이라고 했다. 신앙의 선진들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바라보고 사모하며 살았으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했다.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이라는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칭하였다는 의미이다.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고까지 칭함을 받았다(약 2:23).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한 성"은 하늘 나라를 가리킨다. 하늘 나라를 본향으로 믿고 바라보며 사모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하늘 나라를 준비했다는 뜻이다. 언제 준비하셨는가? 그리스도를 믿고 하늘 나라를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 나라를 예비해 두신 것이다(마 25:34).

요한복음 14:1-3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속을 이루시겠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성취로 인하여 창세 전에 예비하신 하늘 나라에 성도들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四. 믿음의 발걸음(17-31)

.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약속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악으로 사람을 시험하지도 않으시고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신다(약 1:13).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한 것은 아브라함의 심중에 있는 신앙을 드러나게 하여 거기에 대해 복을 주려 하심이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데에는 독자(獨子)에 대한 애착심보다 더 큰 신앙상의 문제가 있었다. 그 신앙상의 문제란 이삭은 약속을 받은 자이므로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약속을 받은 자라는 것은 창세기 21:12에 여호와께서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고 한 것이다. 즉 이삭의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삭을 결혼도 하기 전에 번제(죽여서 전체를 불로 태우는 제사)로 드린다고 하면 전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상반(相反)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 좋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서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으로 믿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게 되었다.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모리아 산에 가서 제단을 쌓고 나무를 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그 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고 이삭을 죽이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급히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시고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고 했다. 그때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매 한 수양이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이삭을 대신하여 그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다.

이것은 이삭을 죽은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때 아브라함이 마음으로는 이삭을 완전히 주께 바친 것이요, 하나님은 이삭을 완전히 제물로 받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삭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친 자요 비유컨대 죽은 가운데서 도로 받은 자이다.

.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대로(창 26:3-4) 장차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후손 가운데서 날 것을 믿었다. 그리하여 그 아들들에게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축복해 주었다.

장차 오는 일은 장래 되어질 일을 말하는데 특별히 그의 후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가리킨다. 이 일을 믿고 자기 아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축복을 해 주었다. 이삭이 인간의 생각으로 처음에는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려 했으나 실패하고,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었다. 이삭이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려고 한 것이 잘못된 이유는,

① 그 아들들이 나기 전 복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는데(창 25:23), 그 말씀을 생각하지 않고 큰아들에게 축복해주려 했기 때문이다.

② 통속적인 관습을 따라 맏아들이므로 장자의 축복을 해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③ 별미를 먹고 나서 축복하고자 한 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와 야곱에게 속아서 작은아들에겐 장자의 축복을 해주게 되었다.

야곱이 부친을 속인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 죄 값으로 야곱이 자기 장인에게 열 번이나 속았고(창 31:7), 자기 아들들에게 속았다. 또 형 에서를 무서워하여 망명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국 이삭이 믿음으로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준 것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이다. 그 축복을 받은 야곱의 자손 중에서 그 축복한 대로 그리스도가 나시게 되었다. 에서에게도 장차 칼을 믿고 살 것과 강해질 때는 멍에를 벗게 될 것을 축복해 주었다(창 27:39-40).

. 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야곱이 임종시에, 요셉으로 하여금 그 두 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그때 요셉은 자기 맏아들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편에 서게 하고 작은아들 에브라임을 야곱의 왼편에 서게 하였으나 야곱은 손을 어긋맞겨 오른손을 차자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은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에 얹고 축복하여 차자인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다. 하나님이 그렇게 예정하시고 인도하시므로 야곱이 순종하여 손을 어긋맞겨 축복한 것이다. 이것이 곧 믿음으로 축복한 것이다.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창세기 49:10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고 했다. 거기 "치리자의 지팡이"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본 절에 야곱이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했다는 것은 장차 야곱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예언의 말씀을 믿고 그 예언의 말씀(지팡이)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하였다는 의미이다.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말씀을 바라보고 그 말씀을 의지하며 그 말씀에 의해서 경배하며 세상을 떠났다. 야곱은 죽을 때에도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 의지해서 하나님을 경배하였고 말씀에 허락된 복을 바라보면서 죽었다. 이것이 믿음이다. 우리 성도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사는 자는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자요, 말씀을 붙들고 죽으면 죽어도 산 것이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 자루를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농부는 굶어 죽을지라도 곡식 종자는 먹지 않고 남겨둔다는 뜻이다. 하물며 성도가 죽을지언정 하나님의 허락하신 약속의 말씀을 버릴 수가 있겠는가? 그 말씀을 붙들고 죽는 것이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길이다. 말씀을 붙들었으니 벌써 영이 산 것이요, 그 산 영 즉 자라난 영은 천국에 그대로 가서 영광과 존귀를 얻고 큰 상급을 얻는다.

야곱이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한데 대한 또 한 가지 뜻은 야곱이 나이 많아 늙어서 침상 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죽었다는 것이다. 지팡이는 침상의 뜻이 있다고 한다. 성도가 늙기까지 하나님을 잘 섬기고 경건을 지키고 깨어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가는 것은 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시편 71:18에,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했다.

.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요셉이 애굽에서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너희를 권고하여 가나안으로 반드시 인도하여 주실 때 자기의 해골을 메고 나가도록 명령했다. 이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약속(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확신한 증거이다. 그가 가나안 땅에 갈 것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이렇게 확실한 증거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었다.

. 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모세가 출생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그 아이에게 있었으므로 아름답게 보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역사가 있을 때에는 아름답다. 그러한 사람은 노인도 아름답고 어린아이도 아름답다.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어릴 때부터 있었으므로 아름다웠던 것이다. 사도행전 7:20에, "모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라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장차 모세를 귀히 쓰시려고 어릴 때부터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아들을 낳으면 하수에 던져 죽이라고 바로 왕이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숨겨 기른 것이다. 어린 모세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을 모세의 부모가 믿음으로 알고, 바로의 명령을 두려워 아니하고 석달 동안 숨겨서 길렀다. 그 부모가 목숨을 내어놓고 석달 동안 숨겨 키운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행한 것이다.

석달 후 더 이상 모세를 숨겨서 키울 수 없게 되자 갈 상자에 담아 나일강 갈대 사이에 두었는데 마침 바로의 공주에게 발견되어 공주가 모세를 아들로 삼았고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의 유모가 되어 모세를 길렀다.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기르는 동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반드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후 공주에게 가서 애굽 궁중에서 사십 여년 동안 애굽의 학술을 배우며 공주의 아들로 자라났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 생활에 동화되거나, 학술이나 향락에 도취되지 않고, 믿음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자랐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사모하였다.

. 11:24-25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가 장성하여 사십 세 되던 때에 믿음으로 공주의 아들의 지위를 포기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택하였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살면 고난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①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는 백성이요, ② 하나님의 권고가 있는 백성이다. 신명기 11:12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했다. ③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백성이다. ④ 장차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백성이다.

모세는 이 모든 것을 좋게 여기고 사모하여 공주의 아들의 지위와 애굽의 모든 것을 단마음으로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택했다. 공주의 아들의 자리는 육신적으로 볼 때에 현재는 좋은 것 같으나 그 낙은 죄악의 낙이요 잠시 후에는 썩어질 낙이다. 인간의 일생은 아침 안개와 같이 잠깐 동안이다(약 4:14).

죄악의 낙 ① 믿음을 쓰지 않고 육신의 사욕을 좇아 방탕과 향락주의로 나가는 세상의 낙은 모두 죄악의 낙이다. ②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육신의 낙을 추구하는 것이 죄악의 낙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여 모든 고난을 같이 참으며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을 하지 않고 세상의 낙만 누리는 것은 큰 죄악이다. 로마서 14:23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했다. 또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은 죄라고 했다(약 4:17). 잠시 잠깐이면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고 청춘도 가고 건강도 가고 명예, 영광, 권세도 다 간다.

잠깐 지나가는 세상인데 일시적인 죄악의 낙을 누리고 살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고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에 참여하면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므로 복이 되고, 영이 살고,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며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의 지위와 애굽의 재물을 헌신짝같이 다 내버리고 믿음으로 그 고난의 길을 자원하여 나아간 것이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죄악의 낙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함으로 신령하고 영원한 복을 받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길로 나아갔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모세 당시에는 그리스도가 나기 전인데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을 받았는가? 장차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모세가 바라보고 믿었으며 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에게 참여하였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다. 고린도전서 10:4에 "그리스도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이라고 했다. 그때 그리스도는 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가시며 당신을 계시해 주셨다.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한 것은 그리스도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근원이 되심을, 알게 하고 만나를 내려 주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떡이 되심을 상징적으로 계시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그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애굽의 재물을 버리고 그리스도만 따라가기 위해 능욕과 멸시와 핍박을 받으면 ① 하나님을 모시게 되고, ② 자기 영이 살고, ③ 자기 영이 자라나서 장성한 자가 되고, ④ 그리스도를 얻게 되고, ⑤ 그리스도께 참여하게 되고, ⑥ 만물이 다 그 사람의 것이 되고(고전 3:21). ⑦ 내세에서 큰 상을 받는다. 이것이야말로 영원한 보화이며 잠시 후에 썩어 없어질 애굽의 보화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 그리하여 모세는 이 길을 걸어갔다.

. 11: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모세는 어떠한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는가?

① 하나님께서 애굽을 떠나라고 하신 말씀을 믿었다.

②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었다.

③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여 주시는 것을 믿었다.

④ 하나님께서 가나안까지 인도해 주실 것을 믿었다.

그리하여 모세가 애굽 왕 바로의 노(怒)를 무서워 아니하고 담대히 애굽에서 나왔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믿고, 의뢰하며, 모든 시험과 난관을 참고 견디며 나아간 것이다.

. 11: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모세는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 등을 정했다. 이스라엘 백성 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애굽의 모든 장자와 가축의 첫 새끼를 죽일 때에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

. 11:29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을까? ① 홍해를 건너게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 ②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능히 갈라서 건너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었다. ③ 하나님이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었다. ④ 하나님께서 원수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을 믿었다.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애굽 사람들은 홍해가 갈라진 것이 ① 하나님이 하신 것인 줄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않고 홍해가 우연히 갈라진 것으로 알고 자기들도 건너보려고 시험하여 건넜다. ② 그들이 건너면서 이 갈라진 물이 다시 합하여 지지 않을까 하고 의심하고 염려한 것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다 물에 빠져 죽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시험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다 멸망한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이 붙들어서 구원해 주시고 믿지 않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는 하나님이 붙들어 주지 않고, 내버려둠으로 멸망하고 만다.

. 11:30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 40년을 마치고 요단을 건너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정복하라고 하셨다. 여리고 성을 하루 한 바퀴씩 육일 동안 돌고, 제 칠일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명하셨다. 그때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리고 성이 무너질 것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다. 그때에 그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여리고 성이 삽시간에 무너졌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요 결과요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대로 역사하여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것이다. 이것이 산 믿음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리고 성과 같이 견고한 성을 점령해야 할 일이 때때로 있다. 우리를 대적하는 원수들이 사회적,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세력들을 이용하여 여리고 성과 같이 견고한 성을 쌓아놓고 신앙의 앞길을 막아서 믿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담대히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무너뜨려 주시고, 정복할 수가 있게 하여 주신다.

하루 한 바퀴씩 돈 것은 매일 그날 그날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가리키고 마지막 날에 일곱 바퀴 돈 것은 완전 순종을 가리킨다.

.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①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붙인 것을 믿었고(수 2:9), ② 하나님은 천상천하 모든 것을 홀로 주관하시는 대 주재 이심을 믿었고(수 2:11), ③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이심을 믿었고 ④ 이스라엘 백성을 영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고 복 주실 것을 믿었다(수 2:12-13). 그 믿음으로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군들을 잘 영접하여 보호해 주고 평안히 돌려보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바로 알고 거기에 믿음으로 참가해야 한다. 기생 라합은 자기 본향이요, 본토인 여리고 성과 그의 육신의 동족과 친척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믿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백성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자들이 멸망 할 때에 구원을 받았다.

五. 믿음의 능력(32-40)

.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기드온은 삼백 명의 군대로 미디안의 대군을 격파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이다. 그가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부름을 입었을 때 자신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 제일 작은 므낫세 지파에 속했고, 그 중에 극히 약하고 제일 작은 자라고 했다(삿 6:15). 그러나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 부르심을 따랐으며 군대를 모집하라는 명을 통하여 처음에는 삼만 이천 명을 모집하였으나 주의 명대로 두려워하는 자를 돌려보내니 만 명이 남았다. 그때에 또 하나님의 명령대로 물가에 내려가서 물을 먹게 하고 입을 물에 대고 들이마시는 자는 돌려보내고, 손으로 물을 떠서 핥아먹은 삼백 명만 데리고 전쟁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물을 마실 때에도 적군을 살핀 자요, 자기 사명감을 잊지 않고 충성하는 자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창이나 검이 아닌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을 가지고 싸움에 나갔다.

이 모든 것이 기드온이 믿음으로 행한 증거이다. 전쟁의 승패가 무기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것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한 것이다. 그리하여 밤에 미디안 군대를 기습하여 일제히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밝히며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는 함성과 함께 나팔을 부니 미디안 군대가 혼비백산하여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고 남은 자는 도망하였다. 이리하여 기드온이 믿음으로 그 전쟁을 승리하였다.

바락은 여선지 드보라와 함께 가나안왕 야빈과 그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 군대를 쳐서 이기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이다.

삼손은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사용하여 블레셋 백성을 여러 번 쳐서 많이 죽였다. 삼손은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명령과 포도주와 독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이스라엘을 건져내었다.

그가 나중에 정욕에 빠져 블레셋 여인 들릴라에게 자기의 신앙의 비밀을 토로하여 머리털을 밀리우고 블레셋의 포로가 되어 두 눈이 뽑히고 블레셋인들의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 그때 그가 회개하였고, 그 후에 다곤 신상 앞에서 삼손의 재주를 구경하고자 많은 블레셋 귀인과 방백들이 모였을 때에 삼손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이번만 강하게 하여 원수를 갚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두 기둥을 껴안고 몸을 굽히니 기둥이 쓰러지며 그 집이 무너져 많은 사람이 죽었고 삼손도 함께 죽었다. 그가 처음에 믿음으로 나아갈 때는 승리하였으나 신앙을 양보하므로 결국 비참하게 죽었다(삿 16:28-30).

입다는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원수 암몬 자손들을 쳐서 이기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이다(삿 11:31-33).

다윗은 믿음으로 골리앗을 이기고 이스라엘을 블레셋 나라에서 구원했고(삼상 17:46-49),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뢰하고 낙심치 않았으며,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 나라를 견고하게 세웠다.

사무엘은 기도로 블레셋 군대를 물리쳤다(삼상 12:23).

선지자들은 모든 반대 세력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자기 사명을 다한 것이다.

. 11: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여기는 구약 시대의 사사들과 왕들과 선지자들의 믿음의 역사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저들은 애굽과 아비멜렉의 세력, 블레셋 나라의 세력, 미디안의 세력을 다 믿음으로 이겼다.

의를 행하기도 하며 다윗은 사울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고 끝까지 무저항으로 대했다. 또 사무엘이 의로운 도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다윗왕도 의로운 정치로 이스라엘을 통치했다(삼상 12:23, 7:14-17, 12:3-5참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약속의 아들 이삭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믿음으로 받았다.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다니엘이 믿음으로 사자 입을 막았고(단 6:7-23), 다윗과 삼손도 사자의 입을 막았다(삼상 17:34, 삿 14:6).

. 11: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죽지 않고 나왔다(단3:19-30).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의 칼날을 믿음으로 피했고(삼상 23:27), 애굽 왕이 모세를 죽이려고 추병을 보냈으나 그 칼날을 모세가 믿음으로 피했다(출 14:6-7). 엘리야도 아합왕의 칼날을 피했다(왕상 19:3).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엘리야는 연약하여 로뎀나무 아래 쓰러졌으나 믿음으로 용기를 얻어 호렙산에 가서 여호와의 세미한 소리를 듣고 승리의 길을 걸었다(왕상 19:12). 히스기야왕도 앗수르군의 내침으로 연약한 중에 있었으나 믿음으로 강하게 되어 승리했다(사 37:33-36참조).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기드온이 믿음으로 미디안의 진을 파했고(삿 7:22-23) 다윗이 믿음으로 블레셋 진을 파했다(삼상 17:51).

.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사렙다 과부는 죽은 자기 아들을 엘리야가 기도해 줌으로 다시 살림을 받았고(왕상 17:21-22) 수넴 여자도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사를 모셔다가 기도함으로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났다(왕하 4:34).

더 좋은 부활을 얻고 더 좋은 부활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죽은 성도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을 가리킨다. 믿음으로 많은 환난과 악형을 이긴 자들과 순교자들은 부활할 때에 영광과 존귀와 상급이 크고 더 좋은 면류관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선진들은 악형을 받을 때에 진리를 양보하거나 구차하게 살려고 하지 않고 생명을 내놓고 싸워 나갔다.

. 11:36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환난과 핍박 때에 진리를 지킨 자들과 순교자들이 채찍에 많이 맞기도 하고 희롱도 많이 당했다(마 10:17, 렘 20:2참조).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 큰 핍박 때 결박당하여 끌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성도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믿음으로 다 이겼다.

. 11: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돌로 치는 것과 구약의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돌에 맞아 죽은 자가 있는데 스가랴 선지자와 나봇과 예레미야도 돌에 맞아 순교 당했다(왕상 21:1-14, 대하 24:21, 마 21:35-44, 행 7:57-60 참조).

톱으로 켜는 것 이사야 선지자가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하여 순교했다는 전설이 있으나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시험과 이 시험은 큰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는 성도에게 원수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압박하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하여 그 신앙을 양보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제사장 아히멜렉을 사울왕이 칼로 죽였다(삼상 22:11-19).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큰 핍박 때에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다닌 성도들이 있었다. 엘리야나 엘리사도 이런 털가죽 옷을 입고 피해 다닌 것 같다.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큰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가산이나 직장을 빼앗겨 궁핍을 당하였으나 믿음으로 신앙의 정조를 끝까지 지켰다.

.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의 원어 (혼 우크 엔 앝시오스 호 코스모스)는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면서 환난 가운데서 신앙의 정조를 지키며 믿음으로만 사는 성도에게는 이 세상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이러한 성도는 육으로 살지 않고 영으로 살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늘나라를 본향으로 삼고 그 나라를 바라보고 즐거워하기 때문이며, 이 세상은 잠시후 불로 심판 받아 멸망할 것이므로 아무 소망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성도는 핍박을 받아 광야와 산중과 토굴에 유리하면서도 믿음으로 주님을 발견하고, 교제하며, 하늘 나라를 사모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상급과 면류관을 받을 것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긴다(빌 3:8).

. 11:39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상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구약 시대 성도들이 믿음으로 여러 가지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은 받지 못하였다.

약속이란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말한다. 약속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신 것(초림)을 보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멀리 바라보며 믿고 즐거워하여 그 큰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믿음을 잘 지켜 많은 증거를 얻었다.

. 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신약 시대 성도들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였다는 뜻이다. 더 좋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하여 오셔서 모든 진리를 나타내 주시고, 십자가에서 구속해 주시고 부활 승천하신 것을 말한다. 구약 시대에는 모든 진리를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계시하여 주셨다. 그러나 신약 시대는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오셔서 하나님과 진리에 대하여 밝히 나타내 주시고,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속을 완성해 주시고, 부활로 생명을 주셨으니 구약 시대 성도보다 얼마나 더 좋은가?

또한 그 생명의 도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귀로 들은 사도들이 확실하게 전하여 주었고(요일 1:1), 이제는 그 진리를 믿음으로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것을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힘을 쓰면 얼마든지 구약 시대의 성도들보다 잘할 수 있다.

구약 시대 성도들이 깨닫지 못하던 진리를 우리에게 많이 주셨다. 또 그것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주시고, 보혜사 성령을 오순절에 보내 주셔서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그 진리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이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경 말씀을 깊이 깨달아 순종만 하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갈 수가 있다.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하심이니라 저희는 구약 시대 성도이다. 구약 시대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 나간 것은 그리스도가 앞으로 오셔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할 것을 위해서 기초 공사한 것이고,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구원을 잘 이루어 나아가면 그 기초 위에다 집을 잘 짓는 것이 된다.

건물의 기초나 지하실 위에 집을 짓지 않으면 그 기초나 지하실도 온전치 못하나 그 위에 건물을 잘 지으면 그 기초와 지하실도 온전하여지고 가치가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신약 시대 성도들이 구원을 잘 이루어서 영적 성전을 잘 지어 나아가면 구약 시대 성도들도 온전해진다. 구약 시대 성도들이 쌓은 기초와 지하실 위에 영적 성전이 아름답고 빛나고 영광스럽게 잘 지어져 나아가면 구약 시대에 기초를 한 것도 빛나는 것이다.

선진들도 천국에서 우리에게 영적 성전을 잘 지으라고 응원하고 있다(12:1). 그러므로 우리에게 더 좋은 진리의 재료도 주셨고 부활의 능력과 오순절 보혜사 성령의 능력도 주셨으니 영적 성전을 더욱 잘 지어 나아가야 하겠다. 또한 우리는 이 영적 구원 운동을 위해서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힘과 정력과 건강을 다 바쳐서 죽도록 충성해 나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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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장

제 12 장 경주(달음박질)

(대 지)

一. 달음박질하라(1-4)

二. 주의 사랑의 징계(5-13)

三. 교회 생활에 대한 권면(14-17)

四. 신약 성도의 이룰 것(18-24)

五. 경건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라(25-29)

(본문 강해)

一. 달음박질하라(1-4)

.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11장에서 말한 구약 시대에 믿음을 지킨 신앙의 선진들을 말한다. 구약 시대에 믿음을 지킨 신앙의 선진들이 지금은 친국에 가 있으나 그들의 신앙 경험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큰 격려가 된다. 우리도 앞서 간 신앙의 선진들을 본받아 믿음의 정로로 달음박질을 잘 해야겠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의 달음박질을 하고 있는데 신앙의 선진들은 하늘 나라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고, 그들이 믿음 지킨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면서 "이것이 믿음을 지킨 결과요 상급이다"라고 세세토록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의 달음박질을 잘 하려면

첫째, 무거운 것을 벗어 버려야 한다. 경주하면서 무거운 것을 들거나 지고서는 잘 달릴 수 없다. 무거운 것은

① 죄짐이다.

시편 32:4에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죄를 날마다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한다.

②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이나 자기가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면 무거운 짐이 된다. 이 무거운 짐을 지고서는 달음박질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짐을 벗어 버려야 하는데 그것은 주께 그 짐을 다 맡겨 버리는 것이다. 시편 55:22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고, 또 마태복음 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5:7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고, 시편 68:19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잘 되든지 못 되든지, 우리 앞에 당한 모든 일을 다 주께 맡겨 버리고 믿음 지키기 위하여 오늘 하루 괴로움 당하는 것으로 족한 생활을 해야겠다(마 6:34).

둘째,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한다.

얽매이기 쉬운 죄란 사람 속에 있는 욕심을 가리킨다. 야고보서 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다. 욕심을 내어버려야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 할 수 있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명예 영광심)을 다 내어버려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있다. 욕심에 사로잡힌 자는 닻을 내린 배와 같아서 전진할 수가 없다.

우리 앞에 당한 경주 성도는 각각 자기 앞에 당한 경주(달음박질)가 있다. 우리 성도가 마땅히 달려가야 할 길이 있고, 마땅히 이겨야 될 시험이 있다. 우리가 시대적으로 지켜야 될 말씀이 있고, 세워 나가야 할 진리가 있고, 이겨야 할 시험이 있다. 이것이 우리 앞에 당한 경주이다. 성도의 경주는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승리한다. 요한복음 10:9에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신령한 꼴을 끌어 그 힘으로 달음박질하여야 한다. 그리스도 안은 영적인 세계이며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신령한 교통이 이루어지는 자리이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달음박질을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하였다. 하나님께 사명을 받지 않은 자는 하나도 없다(마 25:15). 우리의 달음박질은 그 받은바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는 것이다. 이 사명을 감당하려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기울여야 한다.

달음박질하는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다. 빌립보서 3:14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기 위한 달음박질이요, 영이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기 위한 달음박질이다(엡 4:15 참조). 성도의 영이 자라난 것만큼 그의 영광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상급을 받아 영광을 누릴 수 있다.

달음박질을 끝까지 잘 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인내가 없는 자는 도중에 실패하고 만다. 야고보서 1:3-4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달음박질하는 모본을 보여 주셨고 또 우리의 달음박질을 주장하고 인도하고 계신다. 믿음의 주는 믿음의 주장자 또는 인도하시는 스승이라는 뜻이다. 경기하는 자들에게 코치(지도자)가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을 지도하는 선생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잘 받아야 한다. 먼저 양 무리를 인도하는 교역자가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는데 앞장서야 되고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양떼들에게 나누어주어 양떼들이 주의 인도를 잘 받도록 해야 한다.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의 믿음과 인격을 온전케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의 인도를 잘 받으면 우리의 믿음이 점점 온전케 되고 우리의 영이 자라나 예수님을 닳아가게 되고, 인격이 점점 온전케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힘과 용기가 나오고, 어떠한 환난과 역경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믿음의 달음박질을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을 바라보면 우리가 두려움과 낙심과 실망에 빠지기 쉽다. 베드로가 예수님만 바라보고 갈 때는 물위로 걸어갔으나 바람을 볼 때 바다에 빠졌다(마 14:28-29).

성도가 영의 눈으로 예수님만 바라볼 때 언제나 기쁨과 소망이 넘치고 용기와 힘이 나며 주의 능력의 역사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모든 것을 얻게 되고, 세상의 것을 바라보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그것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잘 참으셨다.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첫째, 부활의 영광과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즐거움이다. 둘째, 많은 택한 백성의 생명을 살려내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즐거움이다. 시편 22:22-23에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는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짐으로 많은 죽은 영혼이 살아나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이리와 타조 같은 자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질 것을 내다보면서 즐거움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즐거움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순종을 하신 것이다. 이렇게 순종하는 자에게는, ① 말씀을 순종하는 즐거움이 있고, ② 하나님과 깊이 사귀는 즐거움이 있고, ③ 자기 영이 자라나는 즐거움이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은 신성이 있었고 사람과 똑같은 몸과 영혼이 있었다. 예수님의 영혼도 자라났다. 예수님의 지혜가 자라난 것(눅 2:52)은 영혼이 자라난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영혼이 자라나기 전에도 완전한 영혼이며 불완전한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가 완전한 사람이지만 큰 사람으로 자라나는 것과 같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현재에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진다고 할지라도 잘 참고 나아가야겠다. 예수님이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면서 쓰리고 아픈 십자가를 잘 감당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셨고,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모든 무릎을 그리스도 앞에 끓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복종하게 하셨다(빌 2:8-11). 우리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단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달음박질을 잘 해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된다.

.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성도들 중에 무거운 짐을 벗어놓지 않은 사람도 있고 힘써 달음박질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거역하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이 당장 징벌하지 않고 참으신다. 왜냐하면 그들도 회개하여 달음박질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것을 악용하여 하나님을 거역해도 하나님이 아무 징벌을 내리지 않으신다 하여 방종하고 고집하여 회개치 않고 여전히 욕심을 따라 죄의 길로 나아가는 자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긍휼을 무시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이다. 로마서 2:4-5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써 회개하고 돌이켜 믿음의 달음박질을 잘해야 한다.

.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성도가 죄를 용납하면 예수님이 책망하시고(계 2:20), 성도가 죄와 싸우지 않는 것도 책망하신다. 또한 죄와 싸우되 생명을 내어놓고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는 것도 책망하신다. 성도가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으면 입에서 토하여 버린다고 하였다(계 3:15-16). 졸고 잠자는 상태에 빠져 신령한 달음박질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 내려온다. 이사야 66:2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라고 하였다.

二. 주의 사랑의 징계(5-13)

.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본문은 잠언 3:11-12을 인용한 말씀으로 성도가 징계를 받을 때에 성경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하여 돌아서라는 권면이다.

내 아들아 하나님은 성도를 아들로 삼아 사랑으로 징계하고 권면하신다.

경히 여기지 말며 범죄한 까닭에 범죄한 본인에게 주님께서 징계를 내리기도 하고, 본인과 가까운 사람에게 내리기도 하신다. 출애굽기 4:24에 보면 모세의 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 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징계한 일이 있다.

또 단체나 국가에 전쟁이나 기근 같은 재해를 주어 징계하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올 때에 그 징계를 경히 여기면 안 된다. 경히 여긴다는 것은 그것을 하나님의 징계로 알지 아니하고 우연한 재앙으로 여기며 회개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더 큰 징계가 내려오고, 끝까지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내어버리신다.

낙심하지 말라 성도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큰 고통에 빠졌을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소망을 가져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여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징계하시기 때문이다.

.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징계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징계를 받을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히 사랑해 주시는 것이요 아들로 대우해 주시는 증거임을 깨닫고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직 자격이 부족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고쳐서 좋은 아들로 만들어 복을 주시려고 징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육신의 것, 물질적인 것을 쳐서 징계하시는 것은 회개시켜 더 좋은 신령한 것을 주시려는 것이요, 현세의 것을 쳐서 징계하시는 것은 보이지 않는 내세의 영원한 것을 주시려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징계를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고 크게 기뻐하고 감사하여야 한다.

.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 받을 때에 참은 것이 중요하다. 욥기 5:17-19에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고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라고 하였다. 또 신명기 8:16에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하였다.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아버지는 아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에 바로 고쳐 주려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서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사람이 악할지라도 자기 아들이 바로 되기를 위하여 징계하는데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이 어찌 그 사랑하는 아들(성도)을 징계하지 않으랴!

.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참 아들은 다 징계를 받는 것이므로 징계를 받지 않는 아들이 있다면 그는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징계가 올 때에 경히 여기지 말고 자기를 하나님의 참 아들로 대우해 주시고 더 좋은 아들로 만들어 마침내 복 주려 하시는 것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그 징계를 받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오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내어버린 사생자요 하나님의 참 아들이 아니다.

. 12: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우리 육체가 살아 있을 동안만 잠시 관계를 갖는 육체의 아버지가 잠깐 있는 이 세상에서 잘되게 하고자 우리를 징계하여도 우리가 공경하였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의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 잘되게 하려고 징계하실 때에 우리가 더욱 더 공경하고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본 절에서도 육체의 아버지의 징계와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징계를 대조시켜서, 하나님의 징계가 더욱 값지고 순종할 때에 그 유익이 크다는 것을 설명한다. 육체의 아버지는 잠시 자기 뜻대로 징계하나 하나님은 성도의 일생 동만 죽을 때까지 징계하신다. 또한 육체의 아버지는 불완전하므로 아들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자기 감정에 치우쳐서 징계하기 쉬우나 영의 아버지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므로 우리 영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기 위해서 징계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으로(엡 4:24)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소망이요 또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소망이다.

.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고통스럽고 슬퍼 보이지만 잘 참고 연단 받으면 불로 단련한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 된다. 욥기 23:10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다. 성도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연단을 받으면 어그러지고 그릇 행하던 것에서 바로 돌이키게 되고, 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이 제거되어 정결하고 의롭고 거룩해진다. 그때에 심령에 평강이 온다.

. 12: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은 징계를 받는 중에 피곤해지고 연약해진 것을 가리킨다. 그러할 때에도 낙심하지 말고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회개하여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가면 소망이 있다.

. 12: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곧은길을 만들어 징계가 올 때에 곧은 길, 즉 바른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에서부터 탈선이 되었나 찾아서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한다(계 2:5, 3:3 참조).

저는 다리는 징계 받아 불완전한 몸이 된 것을 말하며 야곱이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난 것과 같다(창 32:25, 31). 이것을 고치려면 신앙의 저는 다리부터 고쳐야 한다. 신앙의 저는 다리는 ① 예배시간에 가끔 빠지는 것, ② 성경을 매일 읽다가 가끔 중단하는 것, ③매일 기도를 하다가 가끔 하지 않는 것, ④ 믿는 일에 어떤 때에는 열심을 내고 어떤 때에는 그 열심히 식어지는 것 등이다. 우리 성도가 과거에 절름발이와 같은 신앙 생활을 하였던 것을 회개하고 옳은 진리, 곧은길을 따라 시종일관(始終一貫) 계속해서 달음박질하는 신앙을 가져야겠다.

三. 교회 생활에 대한 권면(14-17)

.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성도의 특징은 화평과 거룩이다. 모든 환난과 시험을 잘 참고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싸우고 다투며 속되고 불결한 행동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가 내적 생명력이 있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여해 나가는 동시에 도덕면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고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 내보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 가운데 단 한사람과 불화하거나 막혀도 하나님과 막힌다. 그 막힌 것을 헐고 화목해야 하나님과도 막히지 않게 된다. 마태복음 5:23-24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다.

거룩함을 좇으라 거룩함이 없는 화평은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루어 질 수 있다. 교회는 거룩한 화평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화목을 위해 진리를 양보하고 거룩을 상실하는 것은 교회가 타락하고 세속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화평하도록 노력하면서 동시에 교회의 성결과 순수성을 보존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단체이므로 거룩을 잃으면 교회가 아니다. 성도 개개인 속에 있는 더러운 마음을 정결케 하고 교회 안에 누룩적인 요소가 들어 올 때에 그것을 다스리고 제거해야 한다. 교회가 죄를 다스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타락하여 성결과 진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화목하지 못하는 것은 교만과 이기주의 때문이요 사랑의 세계에서 떠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자인데 거룩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을 거룩한 하나 님에게서 떠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평과 거룩함이 없는 자는 주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영적 교통이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은 거룩하신 주님이시므로 더러운 사람과 교제하지 못하고 불화하는 사람과 교통할 수 없다.

. 12: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성도가 두려워해야 할 것 네 가지를 언급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거져 주신 선물로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에 속한 모든 것을 말한다. 이 은혜는 하나님 말씀 안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이 은혜를 받는 것이다. 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 자가 가장 불쌍한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항상 그리스도의 신령한 복음을 받아서 그 안에 거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둘째, 교회 안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할까 두려워해야 한다. 쓴 뿌리는

① 구원 운동을 방해하고 손해주는 자이다. 이런 자가 어느 시대에나 교회 안에 들어오려고 한다. 요한3서 1:9의 "디오드레베"와 같은 자가 쓴 뿌리이다. 그는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자로서 자신이 으뜸 되지 못하므로 바울을 접대하지 아니하고 접대하려는 사람도 접대하지 못하게 막았다. 하나님께서 종들을 세워서 구원 운동을 이루어 나가시는데 그 주의 종에게 가시 노릇하고 협력하지 않고 비방하고 다른 사람이 은혜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자는 쓴 뿌리이다.

② 잘못된 신앙 사상을 전파하는 자이다. 이러한 자는 바다 속에 있는 암초와 같다. 배가 이 암초에 부딪히면 파손되고 큰 손해를 입는 것처럼 쓴 뿌리는 교회에 큰 손해를 준다. 그러므로 교회에 쓴 뿌리가 나면 성도들이 모두 합심하여 뽑아내야 한다. 거짓 선지자는 쓴 물을 냈으며(계 8:10-11), 참 선지자 모세는 쓴 물을 달게 만들었다(출 15:23-25). 쓴 물을 달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참된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가르쳐서 영적 생명을 살려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 말씀을 듣는 자는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더 단 말씀으로 받는다. 이는 쓴 뿌리와 반대되는 단 뿌리이다.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도 단 뿌리가 되어 그 사람이 어디에 가나 다른 사람을 달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 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장자의 명분을 판에서와 같이 망령된 작 있을까 두려워하라

셋째, 음행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자신이 음행죄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되고, 교회 안에 음행죄가 들어오지 않도록 항상 잘 다스려야 한다. 고린도전서 6:18-19에 음행하는 자는 망한다고 했다. 고린도전서 5:1-5에 음행죄를 제거시키지 않는 것을 책망했다. 고린도전서 6:18에 음행죄는 피하라고 했으므로 음란죄를 이기려면 기회를 주지 말고 피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넷째,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망령된 자의 원어 (베벨로스)는 신성을 모독한 불신앙적인 자 혹은 경건치 않은 자를 가리킨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보다 물질을 더 중히 여겨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 장자의 명분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계통에 참여하는 것이다. 에서가 하나님의 약속보다 물질을 더 중히 여겨 그 명분을 팔아먹는 것은 불신앙이요 망령된 행위이다.

. 12: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에서가 나중에 눈물을 흘리면서 장자의 축복받기를 구했으나 기회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왜냐하면 야곱이 이미 장자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 기회가 지나간 뒤에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소용이 없다. 에서에게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 전까지가 회개할 기회였다. 그러나 그 기회가 지난 다음에는 다시 회개할 수가 없다. 사울왕도 회개할 기회를 잃어 버렸으므로 나중에 기도했으나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했다(삼상 15:33-3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에 회개하는 자가 복이 있다.

四. 신약 성도의 이를 것(18-24)

. 12:18-21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너희의 이른 곳은 신약 시대 성도가 이른 곳을 가리키는데, 즉 신약 시대 성도의 위치와 가지고 있는 복음과 하나님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만질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나타난 모든 현상들이다(출 19:16-19). 그것은 율법을 주실 때 나타내신 하나님의 율법과 위엄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만큼 두렵고 떨리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출 20:19).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짐승이라도 그 산에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을 침범하면 죽게 된다고 하였다(출 19:12-13). 그러나 신약 시대 성도는 율법적 위치에 있지 않다. 따라서 신약 시대(복음을 주실 때)는 그렇게 영위하시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내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구원해 주셨다.

.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신약 시대 성도가 처(處)해 있는 곳은 시온산과 하나님의 도성과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시온산이나 하나님의 도성이나 하늘의 예루살렘은 모두 같은 세계와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에베소서 2:6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으시니"라고 하였다. 이것도 택한 백성을 중생시켜 영적 세계에(하늘에) 앉히셨다는 뜻이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신령한 자리, 즉 하늘에 앉아 있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4:26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하였다. 우리 성도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영적 세계에 속해 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은 종의 위치에 있는 자이며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다. 그러나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해 있으며 신령한 세계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천만 천사가 성도들을 수종들며 섬기고 있다. 히브리서 1:14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고 했다.

. 12:23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장자들의 총회 출애굽기 4:22에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했다. 장자는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을 상속권이 있는 자이다(신 21:16).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물려받는 의미에서 성도들을 가리켜 장자라고 하였다(마 25:34). 또 야곱이 받은 장자의 축복에는 그리스도의 계통에 참여하는 의미가 있다(창 27:29). 그러므로 장자의 총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것을 상속받는 모든 성도들의 총회를 가리킨다.

하늘에 기록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가리킨다(눅 10:20).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의 유기체(有機 )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가 교회의 구성원이 된다.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세상 만민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을 구원하여 주신다.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 성도들의 영혼들을 말하나 특히 아벨과 같이 순교 당한 자의 영혼들과 믿음을 잘 지켜 의를 이루어 간 성도들을 가리킨다.

. 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우리는 새 언약의 중보이신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고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예수의 피에 참여해 있다.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한다는 것은 아벨의 피는 자기의 의에 대하여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으나(창 4:10),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모든 택한 성도들의 사죄와 칭의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니 아벨의 피에 비할 수 없는 무한한 효능이 있는 것이다.

五. 경건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라(25-29)

. 12:25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성도가 귀한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여 구원을 받았으니 삼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역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세 당시에 땅에서 경고하신 율법을 거역하는 자도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멸망했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주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께 받을 벌이 더욱 크지 않겠는가! 율법을 땅에서 경고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시내산에 찾아 오셔서 율법을 주신 것을 가리키고 또 율법은 육신과 땅에 속한 것임을 의미한다(갈 4:22-26 참조). 복음은 하늘로 좇아 경고하셨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그리스도를 보내서 직접 구속을 이루어 주신 것을 가리키고 또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령한 세계의 것을 말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거역하는 자는 더욱 큰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을 범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와서 경고한 신령한 복음을 배반하는 자가 얼마나 더 큰 심판을 받겠는가!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구원해 주시고, 장자의 총회에 참여케 하여 주시고, 시온산에 참여하게 하고 또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의인의 영혼에 참여하게 했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나라 즉 신령한 나라에 참여하게 하여 주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맛보고 그 신령한 세계와 은혜의 성령에 참여하게 해주었음에도 복음을 순종치 않고 거역한다면 심판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은 사람은 더욱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을 순종하여 믿음으로 달음박질을 잘 해야 한다.

. 12:26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에는 땅만 진동했다(출 19:18). 그러나 말세에 복음을 거역한 자들을 심판할 때에는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한다(학 2:6, 21, 벧후 3:7-10). 말세에는 하늘과 땅을 다 진동시켜 불사르고 육신과 물질에 속한 모든 것을 심판한다.

요한계시록 6:12-17에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 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과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우리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고 했다.

. 12:27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이 변동 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또 한번은 최후 심판 때를 가리킨다.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진동치 않을 것은 신령한 것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어 나간 것(영이 자라난 것)과 하나님께서 진리대로 이루어 놓은 하나님의 나라 등을 가리킨다. 이런 것은 진동치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 그러나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지 아니한 것들은 다 변동되어 낡아지고 쇠해지고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복음 진리를 거부하는 자와 환난으로 인하여 진리를 양보하거나 세상 향락과 죄의 유혹을 받아 산 신앙에서 타락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모든 것이 불타버리고 무한하고 영원한 영광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성도들은 이미 진동치 못할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를 받았다(눅 12:32, 계 1:6). 또 성도의 중생한 영혼과 세마포 입은 것과 하나님의 형상을 닳아 나아간 것은 영원히 진동치 않는다. 우리 영이 말씀을 받아 그 말씀대로 자라난 것과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놓은 것도 영원히 진동치 않는다. 고린도전서 15:58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고 했다. 주를 위해서 했다고 해도 나무, 풀, 짚으로 지은 것은 진동되고 없어지며 금, 은, 보석으로 지은 것만 영원히 진동되지 않는다(고전 3:12-15 해석 참조).

은혜를 받자는 "감사하자"라는 뜻이 있다. 성도가 진동치 못 할 나라를 받은 데 대하여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 은혜를 받아서 그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성도는 항상 경건하여 세속에서 떠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태도이다(빌 2:12 참조). 옛날에는 세상나라의 왕도 그 백성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섬겼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은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므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아들이 되셨다(빌 2:8, 마 3:17). 하나님의 뜻은 ① 성경에서 찾고 ② 신앙양심에서 찾고 ③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고 ④ 성령의 감동과 인도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부합 되어야 한다. 성경에 위반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하나님은 불과 같이 진노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불의한 것들을 모두 불에 태워 멸하신다. 그러므로 성경적이 아닌 것과 하나님의 역사로 한 것이 아닌 것은 다 소멸되어 없어진다.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고 육신의 생명도 간다. 세상의 부귀 영화도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소멸된다. 진동치 아니할 것들을 쌓아 놓는 것만 영원히 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십자가를 자원해서 지고, 진동치 아니할 나라를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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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3장

제 13 장 사 랑

(대 지)

一. 형제를 사랑하라(1-3)

二. 욕심을 버리라(4-6)

三.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7-9)

四.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0-14)

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라(15-16)

六. 인도자에게 복종하라(17)

七. 간구와 축복(18-21)

八. 권면과 문안(22-25)

(본문 강해)

一. 형제를 사랑하라(1-3)

. 13: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하나님께서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하셨다. 좋은 일을 시작하였으면 중단하지 말고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형제가 사랑 받을만한 일을 하였을 때 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할 때에도 그 형제를 계속하여 사랑해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성도의 본질이다. 왜냐하면 중생한 영혼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이다(요일 5:1). 성도가 영으로 살 때에는 형제를 계속 사랑하게 된다. 참된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므로(고전 13:6), 형제를 사랑한다하여 진리를 양보하거나 신앙을 양보하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니며 오히려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 안에서 믿음을 지키면서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또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거하는 자요 사망에 거하는 자이다(요일 3:14-15).

.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아브라함이 손님 대접을 잘 하다가 천사를 대접하였다(창 18:3). 수넴 여인도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잘 대접하여 복을 받았다(왕하 4:8). 예수께서 친히 마태복음 7:12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25:34-36에는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했다. 마태복음 10:41-42에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손님 대접을 잘하는 자가 복 있는 자이다. 그러나 일하기 싫어서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도움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성도일지라도 대접하지 말고, 스스로 일하여 먹도록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러한 사람을 도와주면 점점 더 나쁜 버릇을 길러 주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게 된다.

믿음을 지키다가 핍박받아 유리하는 성도들과 주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종들을 잘 대접하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 되며,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길 선주 목사님이 눈이 어두워 앞을 잘 보지 못할 때에 그 목사님을 잘 모시고 다니던 청년이 하나님께 복을 받아 나중에 훌륭한 교역자가 되었다고 한다. 엘리야를 잘 대접한 사렙다 과부도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아 삼 년 육 개월 동안 흉년이 들었을 때에 그 집에 기름과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그 아들이 죽었을 때 다시 살림을 받았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함이라"고 하셨다(마 20:28 참조).

. 13:3 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초대 교회 당시에는 많은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학대를 받고 감옥에 갇히는 자도 많이 있었다. 이러한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가 있으면 자기가 당한 것처럼 생각하고, 그와 그의 가정을 잘 돌보아 주어야 한다. 이것은 곧 주님을 돕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힘을 얻어 신앙을 잘 지키게 되면 진리가 승리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잘 이루어져 나아가기 때문이다.

二. 욕심을 버리라(4-6)

. 13: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혼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이기 때문에 신성한 것이다. 누구든지 혼인을 경히 여겨 자기들 임의로 부부가 되기도 하고, 이혼을 하면 하나님 앞에 옳지 않다. 또 결혼 전이나 후에나 항상 부부의 정조를 지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부부가 이 분수를 넘어서, 음행이나 간음을 하는 것은 아주 큰 죄악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4-6에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고 했다.

소돔 고모라 시대나 노아 시대가 하나님을 떠나 음행과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인을 귀히 여겨서 정당한 부부 생활을 하며, 음행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남녀간에 혼인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다가 정욕으로 인하여 간음죄에 빠지면 자신도 망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게 되므로 특별한 은사를 받지 않았으면 정당하게 결혼하여 생활하는 것이 좋다.

. 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은 물욕에서 기인한 것이다. 정당하게 벌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좋으나 돈을 사랑하는 것은 죄악이다. 디모데전서 6:9-10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하였다. 이 같은 죄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아무리 부자일지라도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지 못하면 항상 걱정과 고통에 빠지게 된다. 성도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오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하게 여기고 주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도록 힘써야 한다. 성도가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믿는 일을 못하고,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된다. 예수께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31)고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이다(마 6:8).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새가 공중에 날아다니는 것처럼 열심히 활동하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하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해 주신다(마 6:33).

.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 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성도가 생활 문제와 기타 어려운 문제들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것을 시편 118:6을 인용하여 권면하고 있다. 성도가 믿는 일만 잘하고, 무슨 일이나 부지런히 하면 주님께서 먹을 것도 주시고, 또 보호해 주시고, 도와 주셔서 아무 염려 없도록 앞길을 형통하게 열어 주신다. 그러므로 아무 일에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담대히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신다. 사람이 가축을 길러도 그 가축에게 먹을 것을 주고, 추울 때는 춥지 않도록 해주는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녀들을 돌보아 주시지 않겠는가!

三.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7-9)

.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본 절은 진리의 말씀을 바로 가르쳐 주고, 바로 인도해 주던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본받으며, 거짓 선지자들을 본받지 말라고 경계하는 것이다.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동일하시고(8절) 참 선지자도 변함이 없으나, 거짓 선지자는 그 교리나 행동이 잘 변하고, 성경에서 잘 이탈되므로 그 교리나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참된 인도자들을 본받아 나아가며, 거짓 선지자들을 떠나야 한다.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방법은

첫째,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성경에 맞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그가 누구에게서 배웠는가, 어느 계통에 속한 사람인가 알아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하였다. 사람은 배운 대로 만들어지며 배운 대로 가르치게 된다. 그러므로 뉘게서 배웠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행위의 열매를 살펴보아야 한다. 미혹시키는 자도 일시적으로는 바른 말을 할 수 있고, 선한 행위를 할 수 있으나 얼마 후에는 그 본색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령한 신앙의 열매를 맺혀 나가지 못하고, 육신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드러나고, 잎만 무성하고, 내적 신앙의 열매가 없는 것이 드러난다. 성도는 항상 바른 지도자를 따라가며 그 신앙을 본받아야 된다.

.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시다. 구약 시대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었고, 신약 시대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그러므로 진리와 신앙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옛날에는 성경대로 믿었으나 지금은 성경대로 하지 않는다면 참 신앙이 아니다. 과거에는 신자들이 성경대로 주일을 잘 지켰으나 지금은 성경 말씀을 내어놓고 주일을 지키지 않는다. 이것도 잘못된 신앙이다.

성경을 현대어로 맞추어 번역한다고 하여 공동 번역 성경이 나왔으나 내용이 변질된 점이 많이 있다. 신신학자들은 성경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해방신학자들은 성경을 사회 해방의 도구로 사용한다. 또 신비주의자들은 성경 말씀보다 주관적인 경험(꿈과 환상)을 더 중히 여기고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말씀했다고 하여 성경에 없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며 따라간다. 이는 다 잘못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진리도 동일하며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에 위반되는 교훈은 다 거짓 선지자의 교훈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는 신앙이 참된 신앙이다. 성경 말씀에서 변질된 것은 참 복음이 아니다. 그것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갈 1:6-8).

. 13: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여러 가지 잘못된 교훈이 많이 나왔으므로 성도가 그것에 미혹되면 안 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바른 진리에 서 있어야 한다.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이다.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받는 것이 곧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마음에 확신이 생기고, 신앙이 견고해진다.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당시에 유대주의 그리스도교인들은 구약 레위기 11장 등에 금지했던 식물을 먹지 않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자가 있었다. 거기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 14:1-23에 그런 것은 먹어도 좋고, 먹지 않아도 좋다고 답변했다(골 2:16-23 참조). 또 금욕주의자들이 나와서 육식(肉食)을 하면 죄라고 하여 채식을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거기에 대해서 바울이 디모데전서 4:3-5에 답변한 바 있다. 다음절을 보면 하나님의 제단에 놓았던 제물을 먹는 일에도 논란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음식 문제들에 대해서 본서 저자는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다. 참된 신앙은 식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지는 은혜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식물 문제들은 의식적인 문제일 뿐이며, 마음을 굳게 하거나 은혜 받는 데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四.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0-14)

. 13:10-12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구약 제사 제도를 들어서 예수의 신령한 제사를 설명하고, 성도들의 신앙을 권면한 것이다. 구약 시대에 일년 일차씩 대속죄 일에 속죄 제사를 드릴 때 그 제물을 제단에서 섬기는 자(대제사장)가 먹을 수 없다. 그 속죄 제물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고 그 생축의 육체는 불살랐다(레 16:27). 그와 같이 예수께서도 성도를 거룩하게 하려고 자기의 피를 신령한 성소에 드리고 그 육체는 영문(예루살렘성)밖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고난을 받아 죽으셨다.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께 참여하려면 그 피를 믿고 영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곳은 고난의 곳이요,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곳이요, 동시에 신령한 장소이다. 예수님은 속죄 제사를 드릴 때에 손으로 만든 예루살렘 성소(영문 안)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영문 밖 즉 신령한 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렸다(히 9:12, 24).

. 13:13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영문 밖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능욕을 받으며 쫓겨난 곳이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은 곳이며, 신령한 성소이다(히 9:12, 24).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능욕과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 되는 신령한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성도가 종교 의식과 제도에만 얽매여 의식적인 예배를 드리면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다. 영문 밖은 능욕과 고난이 있으나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여 새 생명이 살아나가는 곳이다.

. 13:14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이 세상의 도성과 하늘의 도성을 비교해서 말하고 있다. 하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은 영원한 도성이요 우리 성도가 들어가서 살 나라이다. 빌립보서 3:20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했다. 이 세상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도성이요 장망성(將亡城)이다. 요한일서 2:17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다.

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라(15-16)

. 13:15-16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영문 밖에서(구약의 율법과 의식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에 참여한 자(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령한 세계에 들어간 자)들은 항상 드릴 두 가지 제사가 있다.

첫째, 찬미의 제사이다.

이것은 구약 제사와 다르다. 구약 제사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생축으로 제사를 드렸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이미 죄 사함을 받았으므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찬송으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 찬송은 심령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 입술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입술의 열매라고 한다(호 14:2 참조). 그리스도에게 참여하여 심령이 새롭게 되어 찬송하는 것은 새 노래가 된다. 이 새 노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이다. 시온산에 올라가 서 있는 십 사만 사천명은 항상 새 노래를 부른다고 하였다(계 14:1-3).

둘째,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주는 제사이다.

이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감사와 감격에 넘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행실의 열매이다. 고린도전서 14:15에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 하였다. 심령의 열매가 입술로 나타났고, 입술의 열매가 행동으로 나타나서 선을 행하고 남을 도와주는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찬미가 있어야한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남을 성기고 도와주는 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려야 한다. 여기에는 구원 운동과 교회를 위한 봉사와 물질로 드리는 제사도 포함된다.

고린도전서 9:9에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였다. 감사와 믿음으로 구제하고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선한 제사가 된다. 믿음으로 교회에 봉사하고, 복음 전도에 봉사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에 수고하는 주의 종을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① 영구한 도성을 찾아 바라보고 ② 찬미의 제사를 드리고 ③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는 제사를 드려야 한다.

六. 인도자에게 복종하라(17)

.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교인들의 영적인 문제를 교역자에게 맡겼다(벧전 5:3 참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요 21:15). "내 양을 치라"(요 21:16)고 했다. 하나님께서 교역자에게 양을 먹이고 치는 직무를 맡겼고, 신령한 영적 문제를 맡겨 교인들을 인도하게 하신 것이다. 교역자는 교인들이 회개하고 바로 서면 기뻐하고, 잘못되면 근심하고 애타는 심정이 된다(고후 2:5, 13, 7:9-10). 그러므로 교인들은 인도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여 그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그 일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교역자를 근심하게 하는 것은 교인들 자신의 손해이다.

순종의 원어 (페이데스데)는 교훈과 지도에 따르는 것을 가리키고, 복종의 원어 (휘페이케테)는 경계를 받을 때, 자기 마음에 이해가 안되고 불만이 있어도 순종하는 것을 가리킨다.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이 밤에도 자지 않고 경성하여 눈을 들어 살피는 것과 같이 교역자들은 교인들을 위하여 항상 깨어 살피며 보호하고 양육하려고 힘써야 한다. 교역자들은 교인들의 잘못된 것은 자기가 잘못된 것같이 생각해서 걱정하고, 교인들이 바로 서면 자기가 바로 된 것처럼 기뻐한다.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나님 앞에 계산하고 진술(陳述)할 자인 것 같다는 뜻이다. 교역자는 교인들의 신령한 문제에 대하여 자기가 책임을 지고 하나님 앞에 진술하여,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상도 받고 책망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역자(인도자)는 교인들의 신령한 문제를 자기 문제처럼 여기고, 주야로 애쓰며 수고한다. 교인들은 이것을 알고 바로 가르치며 인도해 주는 인도자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잘 도와주어야 한다.

스가랴 4:12에 감람나무와 촛대를 연결하는 금관(金管)이 있는데 그 감람나무는 예수를 상징하고, 촛대는 교회를 상징하며, 금관은 교역자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진리가 교역자를 통해서 교인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교역자가 이와 같이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교역자에게 즐거움으로 그 일을 하게 해야 은혜와 진리가 많이 공급되고, 근심으로 하게 하면 그 은혜와 진리가 잘 공급되지 못한다. 또 교역자와 막히면 그를 통하여 오는 은혜를 받지 못한다.

七. 간구와 축복(18-21)

. 13: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성도가 교역자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한다. 성도가 교역자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교역자를 통해서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일이 잘되어 나간다.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돕는 것이요, 그 유익이 자기에게 돌아온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우리가 모든 일을 선하게 행하려 하여야만 선한 양심이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행하려 하는 자에게 선한 양심을 주신다. 구하는 자가 얻고, 찾는 자가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 선하게 행하려 하지 않는 자는 선한 양심을 버리게 된다. 디모데전서 1:19에 선한 양심을 버린 자는 그 믿음이 파선한 것이라고 했다. 잘 믿어 보려고 힘써야 잘 믿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고 사모해야 그 능력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려고 하지만 자기가 받으려고 하지 않으면 그 은혜를 받을 수 없다.

. 13:19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

바울은 다시 본서를 보내는 교회에 속히 가기를 갈망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인들에게 신령한 것을 나누어주어 신앙을 견고케 하고, 그들의 영혼을 길러 나가기 위함이다.

속히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일을 속히 하려고 애썼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속히 이루어 드리도록 힘써야 한다.

. 13:20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양의 큰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평강의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의 피를 흘려 죽으셨고, 그 죽은 가운데서 하나님이 능력으로 부활시켜 성도에게 구원과 평강을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시다.

. 13: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에서는 우리를 온전케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다시 건져내신 그 능력으로 우리를 사망과 죄악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온전케 만들어 나가신다.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선한 일을 온전히 행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온전히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성도에게 주사 성도로 하여금 그 능력으로 선한 일을 온전히 행하게 하셨다.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우리에게 역사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힘써야 한다. 힘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도록 해주신다.

그 앞에 즐거운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가 잘 이루어지려면 성도가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잘 받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려면 그를 본받아 그를 닮아 나아가야 한다. 자녀가 못된 행실을 버리고 선한 아버지를 닮아 나아가는 것을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닮아 나아가는 자를 기뻐하신다. 또 우리 성도의 인격과 생활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다.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영광은 하나님께만 있다. 하나님은 영광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지 않는다(사 42:8, 48:11).

八. 권면과 문안(22-25)

. 13:22-23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저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권면을 잘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권면할 때에 그 권면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권면을 했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권면은 효과가 없다. 인도자의 바른 권면을 잘 받아 들여 그 권면대로 바로 서는 자라야 희망이 있고, 복이 있는 자이다.

디모데가 감옥에 갇혔다가 놓였다는 소식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디모데가 감옥에 갇혔다가 놓였으나 아직도 바울에게로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가 오면 디모데와 같이 속히 저희에게 가서 저희를 보고 피차 안위를 받고,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려는 것이었다.

. 13:24 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한다고 했다.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달리야에서 온 성도들도 본서를 받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문안했다. 서로 문안하는 것이 성도의 진정한 사랑이요 교통이다. 인도하는 자에게도 문안하고, 모든 성도에게도 문안하는 이것은 귀한 일이다.

. 13: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항상 은혜 가운데 있어야 강건해지겠는 고로(딤후 2:1)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축복하였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살아야 되는 것처럼 성도는 항상 은혜 가운데 있어야 심령이 살고, 모든 시험과 세상을 다 이기며 영이 자라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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