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강해

야고보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서론

一. 기록한 사람

본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아우 야고보라고 본다. 주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요 초대 교회의 기둥의 역할을 하였다(마 13:55; 갈 2:9; 행 15:13; 12:17; 21:18; 고전 15:7 참조).

이 야고보는 주후 62년에 안나스의 아들 대제사장 아나너스의 시기를 받아 율법 파괴자의 죄명으로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고 한다.

일설에 본서의 저자를 사도 야고보라고 하는 설도 있고, 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 증거가 확실치 못하고 주의 동생 야고보가 기록한 증거가 제일 유력하므로 본서의 저자를 주의 동생 야고보라고 본다.

二. 기록한 연대

주후 62년 경으로 보는 이도 있고 44년으로 보는 이도 있다. 저자를 주의 동생 야고보로 보면 주후 62년경에 기록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三. 기록한 장소

본서를 기록한 장소는 예루살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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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야고보서 1장

제 1 장 시 험

一.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1-4)

二. 시험이 올 때 기도하라(5-8)

三. 도에 거하는 자가 되라(9-11)

四. 시험을 이기라(12-18)

五. 도를 받는 자가 되라(19-21)

六. 도를 행하는 자가 되라 (22-27)

(본문강해)

一.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 (1-4)

.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아니고 주의 동생 야고보로서(마 13:53-55)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한 것은 그가 예수를 잘 믿고 언제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 되었으며, 초대 교회의 기등과 같이 되었다. 초대 교회의 기등을 말할 때 야고보를 게바보다 먼저 말한 것도 그만큼 종의 심부름을 잘하였다는 증거이다(갈 2:9). 그러면 어떤 자가 종인가?

그 세 가지 특징은

① 자기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뜻대로만 하는 자이다. 곧 자기 뜻은 다 버리고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하는 자이다.

②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주인을 위해서 사는 자이다.

③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지 않고 주인의 것으로 삼는 자이다. 자기의 몸까지도 주인의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성도는 종의 세 가지 특징을 바로 알고 언제나 종의 자리에서 주님을 섬겨야 한다.

흘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이 야고보서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보낸 것이다. 이는 각처에 홑어져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킨 것인데, 궁극적으로는 세계 각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본서의 본론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로 시작했다. 이는 성도가 이 세상에 살면서 벼러 가지 많은 시험에 부딪힐 때 슬퍼하거나 낙망하지 말고 오히려 온전히 기뻐 하라는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면으로 여러 종류의 시험을 당하게 된다. 가령 신체적으로 죽을 병에 걸리든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많은 시험이 오게되고, 혹은 믿음을 지켜 나아가려면 가정이나 단체, 또는 국가적으로 많은 시험이 오게 된다. 그럴 때 잘 참고 승리적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낙망하는 사람도 있고, 시험이 너무 커서 견딜 수 없어 쓰러지는 사람도 생긴다. 예를 들면 생활이 곤난하므로 자녀들도 죽이고 자기도 죽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하셨다. 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든지, 병신이 되었든지, 죽게 될지라도 너희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이다.

왜 기쁘게 여겨야 하는가? 보통 사람은 시험이 있다가 끝나고 없어져야 비로소 "아 ! 참 기쁘다"라고 하는데 성경에는 시험이 없다가 생길 때 기뻐하라고 하였다. 기뻐하되 보통 기뻐하라는 것이 아니고 온전히 기뻐하라고 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 나와 있다.

. 1:3-4 이는 너회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려고 은혜와 복으로 모든 시험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복이 아니면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다. 시험은 우리의 신앙 인격을 만들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이 올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쁘게 여겨야 된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실 때 성도를 망하게 하려고 주시는 것이 아니며, 또 하나님께서 성도를 저주하려고 주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시험을 주신 것은 어떻게 하든지 나를 바로 만들고, 바로 세우려고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시는 근본 이유는 우리 성도를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4:5에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고 했다. 이는 성령께서 우리를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만 향하게 하려고 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뜻한다.

우리가 다 길 잃은 양과 같고 탕자와 같은 자이지만 독생자의 피를 흘려 우리를 값으로 사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놓으셨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쳐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므로 하나님은 너무 안타까와 탄식하시며,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시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려고 시험을 주지 않을 수 없어 여러 가지 시험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를 바로 세우려고 시험을 주시는 것이므로 이것을 생각할 때,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고, 찬송하는 마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믿음에는 시련이 있어야되고, 시련에는 인내가 있어야 된다. 그렇게 하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된다. 시험이 들어을 때, 첫째는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되고, 둘째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세째는 말씀에 바로 서서 그대로 걸어가야 되고, 네째는 끝까지 참아야 된다.

시험은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으로 주시는 것인 줄 알고 기뻐하고, 그 사랑에 감사하여야 되고,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사모하고,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는 데까지 나아가야 된다. 시험이 올 때 사람의 모든 방책은 쓸데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찾아다니며 물어 보아도 소용이 없다. 다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가서 옛날의 제단을 다시 쌓아야 된다(창 35:1-5 참조).

여기 시련이란 몇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그 시련을 통하여 더러운 찌꺼기를 내어 버려야 된다는 것이다. 곧 쇠를 불에 녹여서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과 같이 쓰지 못할 것이 나에게 있는 것을 찾아서 제거함을 말한다. 둘째는 그 시련을 통하여 약한 데서 강하게 된다는 것이다. 약한 것을 불에 여러번 넣으면 강하게 된다. 잘 못 된줄 알면서도 끊어 버리지 못하고, 옳은 줄 알면서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약한 것을 강하게 만들어 나아가야된다. 세째는 그 시련을 통하여 쓸 만한 그룻을 만든다는 것이다. 곧 건설하는 면을 말한다. 이것이 좋은 사람이 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연단을 받아 점점 온전한 인격이 되어 나아간다.

연단이 없는 성도는 숯덩이와 같아서 일을 당해 내지도 못하고 가치도 없다(히 5:13-14). 연단을 많이 받아야 찌꺼기가 제거되고 강하게 되고 바로 건설되어 장성한 신앙이 되어 나온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합당한 신자가 되어지는 것이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여러 가지 시험이 들어오는 것은 연단을 시키려 함이다. 이 연단을 받는 데는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 참고 견디는 이것이 중요하다.

김 현봉 목사님은 어떤 사람이 "기독교의 가장 요긴한 점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참고 견디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둘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세째는 무엇입니까?" "세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참고 견디는 것이 없이는 도저히 신앙의 연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험이 들어오면 참고 견디어야 한다. 첫째도 참고, 둘째도 참고, 세째도 참아야 한다.

참을 때 어떻게 참아야 하는가? 믿음으로 참고 나아가면 더 좋은 것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면서 참아야 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서 참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을 회개하면서 참아야 하고, 말씀대로 걸어 가면서 참아야 된다. 이렇게 열 번, 백 번, 천 번 계속하여 참고 나아가야 된다.

시험이 들어을 때는 고통이 따라온다. 그러나 그 고통을 참아야 한다. 참는 데서 구원이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이다. 십자가 없는 세계를 구하지 말고 십자가가 있는 세계를 기뻐하여야 된다.

바울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골로새서 1:24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하였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지 않고 살려면 많은 사람을 상종하지 말고 혼자 사는 것이 좋으며, 집이 있는 사람보다 집이 없는 사람이 더 낫다. 그는 불이 나도 걱정이 없고, 홍수가 나도 걱정이 없다. 또 혼자 사는 것보다 죽은 사람이 고통이 없고, 죽은 사람보다 나지 않은 사람이 고통이 없다. 그러나 나지 않은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니 가치란 나지 않은 사람보다 나서 죽은 사람이 더 있고,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이 더 있고, 산 사람 중에서도 일하지 않는 사람보다 일하며 활동하는 사람이 더 있고, 그 중에서도 큰 일을 맡아 고통을 받으면서 참고 나아가는 사람이 더 가치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하여 나아가며 참는 것은 더욱 가치가 있다.

성도가 주를 위하여 고난 당하는 것은 은혜인 줄을 알아야 된다(빌 1:29). 하나님께서 여런 가지 시험으로 고통을 주시는 것은 복으로 주시는 것인 줄 알고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며 오히려 시험중에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해야 된다. 가까이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으며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짐을 다 져주신다. 시편 68:19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천하의 고통이 다 닥쳐와도 걱정되지 않고 도리어 시원하도록 하나님이 해 주신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실 때에 만대 만민의 죄악의 고통이 다 왔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겠는가? 그러나 예수께서 은밀한 가운데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내려와서 그에게 힘을 주고 도와 주었다(눅 22:41-44).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마주보며 찬미하면서 나아가실 수 있었다(마 26:30).

하루에 안되면 이틀, 이틀에 안되면 열흘, 열흘에 안되면 한 달, 한 달에 안되면 일년, 일년에 안되면 십년이라도 참고 나아가야 된다.

이 기선 목사님은 일본 통치하에서 신사 참배 문제로 7년간 감옥에서 참고 견디었다. 7년 후에 하나님께서 일본을 망하게 하시고 감옥에서 나오게 하셨다. 고통스런 생활 속에서도 진리의 말씀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잘 참고 나아갔다. 고통은 이 진리의 말씀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하려고 오는 것이므로 절대 양보하지 말고 자기 신앙 양심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붙들고 나아가야 산다. 양보하면 죽는다. 매를 맞아도, 굶어도, 내어 쫓겨도 끝까지 참고 나아가면 강하여 진다. 거스리는 강력한 세력을 참고 이겨 나아가면 그보다 더욱 강하여 진다. 일본 군국주의의 강한 탄압 세력에서 끝까지 참고 믿음을 지켜 나아가므로 일본의 세력보다 강하여졌고, 바벨론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말씀 하나를 붙들교 그 시험을 참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그 강한 세력을 이기게 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신앙에서 인내를 떼어낼 수 없다. 말씀을 붙들고 참고 나가면 약한 것이 강해지고, 미련한 것이 지혜로와져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사람, 곧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나아가게 된다.

二. 시험이 올 때 기도하라(5-8)

. 1:5 너회 중엔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는 시험을 이기는 지혜를 가리킨다. 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여야 된다. 시험을 이길 만한 능력인 있다고 하여도 지혜가 없으면 실패한다. 그러므로 시험과 싸워서 이기기 전에 먼저 하여야 할것은 지혜를 구하는 일이다. 이 지혜가 없이는 자기가 잘 할 것 같아도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하게 되면 실패할 뿐이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그 힘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면 실패한다. 마귀가 예수께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였을 때 예수님은 돌로 떡이 되게 하실 능력이 있었고, 또 마귀와 싸워 이길 능력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다.

또 두번째는 마귀가 성전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그러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여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신다는 성경말씀(시 91:11-12)을 가지고 예수를 시험하였다(마 4:6). 이 성구는 그렇게 사용할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도록 하는 것으로서 성경을 오용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성도가 믿음의 길로 걸어 가다가 위험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시어 붙들어 주신다는 뜻인데, 마귀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성경대로 되나 안되나 시험해 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마귀가 성경을 가지고 나을 때 자칫하면 마귀에게 넘어가기 쉽다. 성경을 가지고 말해도 그 성경의 본 뜻을 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험이 들어을 때에 마음이 뒤숭숭하여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방황하게 된다. 그럴 때는 성경을 상고하고 깊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된다. 하나님의 뜻을 찾되 정확히 찾아 붙들어야 된다.

예수님은 세 가지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40일간 금식기도 하셨다. 진리 하나를 바로 붙들면 그것이 성공이다. 바로 붙든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영적인 세계에 깊이 들어가야만 된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연구해도 안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그 진리를 붙들어야 된다.

일반적으로 시험이 들어을 때 마음이 복잡하고, 뒤숭숭하고, 평안치 않다. 그럴 때 덮어놓고 이기게 해 달라고 하지 않고 기도를 깊이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하루, 이틀, 여러 날 동안 기도하면 하나님과 점점 가까와지고 마침내 "이것이다" 하고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다. 바로 이것을 붙들어야만 된다. 붙들기만 하면 용기가 나고, 자신이 생기고,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신다. 이것이 곧 성공이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느냐고 하실 때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 재판할 지혜를 간구했다.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어 주시어 많고 어려운 재판을 공평하게 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는 영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리 육적인 지혜가 있어도 소용이 없으며 다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라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기도하기를 기다리시며 성도의 부르짖는 음성을 듣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해서 부르짖으면 세상과 자기는 점점 없어지고 주님의 뜻만 나타나서 우리로 그 뜻을 알게 하신다. 또 구하면 주시되 넉넉하게 주신다.

.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믿음으로 구하고라는 것은 첫째, 내가 만난 시험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이요, 또 나를 바로 세우시려고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 것이며, 은혜와 복으로 주신 것으로 믿고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죽을 것 같고, 소망이 없는 것 같고, 모든 일이 다 잘못 된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만들기 위하여 주시는 시험인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야 한다.

둘째, 반드시 감당할 시험만 주시는 것을 믿고 구하라는 것이다(고전 10:13).

세째,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실 줄 믿고 구하라는 것이다.

네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고자 하는 각오를 갖고 구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주시든지 단 마음으로 받겠다는 결심으로 기도하여야 된다. 좋은 것만, 큰 것만 구하지 말고 작은 것을 주셔도 고맙게 받으며, 비천한데 처하게 하셔도 달게 받아야 된다. 예를들어 자기 아이가 병이 들었으면 살려 달라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바로 세우려고 하시는 것인 줄 믿어야 하며, 또 아이의 병을 고쳐주지든지 데려가시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로 하읍소서 하는 것이 믿음의 기도이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당면하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이 믿음으로 하는 기도이다. 신자들이 기도할 때 대개는 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면서 "축복하여 주읍소서"하고 큰 것, 좋은 것 만을 구한다. 이것이 미신적인 신앙이다. 기독신문에 의하면 어떤 선교사가 "한국의 기독교는 샤마니즘(Shamanism)이 되어간다"고 평하였는데 이것은 무당에게 복받게해 달라는 식의 기독교로 변하여 가는 경향을 말한다.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살려 주십시오.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만 받겠다고 기도하였다.

예수께서 한 면만 기도하시면 열 두 영이 넘는 천사가 내려 와서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무리를 다 잡아 없이 할 수도 있었으나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순종하여 잡혀가셨다.

다섯째, 아버지의 명령대로 걸어 가겠다고 하는 기도이다.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쫓겨나거나, 죽게 되어도 인도하시는 그 길로 걸어 가겠다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며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첫째, 육신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을 가지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이것은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죽어도 좋다고 기도해 놓고,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 또는 아나니아 부부와 같이 하나님께 다 바치겠다고 토지 전부를 판 후에, 다 바치고 나면 무엇을 먹고 살까 염려가 되어, 부부간에 다시 의논하여 얼마만 바치고 나머지는 감춘 것이 육신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베드로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할 때에는 대 사도의 자격이 있었다(마 16:16). 그때 주님은 칭찬하여 "반석"이라고 하셨고, 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며 그 위에다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조금후에는 주님에게 "십자가를 멀리 하읍소서"라고 하였다. 이것은 육신의 생각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꾸짖으셨다(마 16:23). 이것이 의심하는 것이다.

시험에는 걱정, 근심, 두려움, 낙망 등이 따라 온다. 평안할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시험이 들어을 때 그런 생각이 따라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마귀가 넣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주께 부르짖어서 물리쳐야 된다. "주여 ! "하면 마귀가 다 도망치게 된다. 그러나 한 마디 해서 달아나는 마귀도 있지만 기회를 보아 다시 노리려고 얼마동안만 물러서는 마귀도 있다. 이 때는 계속하여 주께 부르짖어서 완전히 물리쳐야 한다. "주여 ! "를 부르짖되 입으로만하지 말고 마음 속으로 한결 같이 위를 향하여 나아가면서 부르짖어야 한다.

둘째, 믿음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세째, 말씀대로 될까 안될까 하여 두 마음을 품지 말라는 것이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요동하게 되면 어지러워지고 무너지고 파괴된다. 건설도 전진도 하지못한다. 그러므로 믿음에 섰다가 세상으로 돌아섰다가 하면 안된다.

.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요동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을 수가 없다. 이것은 마치 밭에 곡식을 심었다가 며칠 후에 또 밭을 갈고 또 심었다가 며칠 후에 또 다시 가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면 어찌 농사를 할 수 있겠으며 어찌 열매를 거둘 수 있겠는가?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다.

.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전적으로 믿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믿는 마음과 안믿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자신의 마음과 인격이 정함이 없는 사람이 되며, 하나님이 싫어 하시고, 하나님의 신령한 선물은 하나도 받을 수 없다.

三. 도에 거하는 자가 되라(9-11)

.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낮은 형제는 믿음을 지켜 나아가는 일 때문에 재산, 높은 지위, 친척, 재물, 명예, 영광 등을 다 빼앗긴 자를 말한다. 고귀하고 평안한 자리에서 쫓겨나니 자연히 비천한 자리에 떨어져 고난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벌써 영적으로 높아졌고 부요해진 것이다. 믿음을 지키는 까닭에 없어진 것은 외부적인 것이므로 그것만 생각하지 말고 영적으로 부요해진 것을 생각하여야 된다. 다 빼앗기고 감옥에 갇혔어도 믿음을 지켰으므로 영적으로 부요한 자이며 주 앞에 존귀한 자가 되었으니 그것을 자랑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서머나 교회는 믿음을 지키다가 큰 환난과 궁핍을 당하였다(계 2:9).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믿음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재산을 빼앗기고, 집을 빼앗기고, 직장과 산업을 빼앗기고, 쫓겨나서 산중으로 유리하는 비천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하셨다. 영이 자라나서 부요하여졌고, 하나님이 기뻐하여 쓸 만한 사람으로 자라났다. 과거에는 세상의 존귀한 것으로 살았고, 부유한 것으로 살았고, 많은 사람의 대접을 받는 것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다 없어지고 누구 하나 도와 주는 사람도 없고, 무엇 하나 붙잡을 것도 없어졌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말씀을 지킴으로 영적으로 부요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높아지고 장성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자랑하라는 것이다.

. 1:10-11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부자 중에는 돈의 부자도 있고. 지식의 부자, 명예, 권세의 부자등 여러 가지 부자가 있다. 이런 것들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며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면 그 아름다움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붙들고 의지하고 살지 말라는 것이다.

자랑할지니 이것은 기뻐하라는 뜻이며 그 생명이 살게 된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자랑할 것인가?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여야 된다. 여기에 낮아진 것은 ① 진리를 붙잡기 위하여 회개하며 낮아진 것을 가리키며, ② 세상 사람이 무시하고 멸시하는 영적 신앙의 자리에서 겸손히 사는 것을 뜻한다. ③ 또 진리와 영의 길을 걸어가므로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의 위치에 서게 된다. 이것이 낮아진 것이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려면(왕상 19:11-12)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은밀하고 고요하며 지극히 낮은 자리에 처하여야 한다. 그 음성(말씀)을 따라 갈 때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고 생명이 살게 된다. 이것만이 영원한 것이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가리킨다.

우리가 기도하러 다니던 삼각산 제일기도원 노천 강단도 철거를 당한다. 이렇게 잘 건설해 놓았어도 없어진다. 많은 사람이 따라다녀도 다 지나간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실 때는 오천명, 만여명이 몰려 와서 따랐지만 그것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지나갔다. 사업을 아무리 크게 하여도 지나간다. 아무리 큰 권세를 가져도 지나간다. 헤롯 왕의 권세, 나폴레옹의 권세, 히틀러의 권세, 가까이는 이승만 박사의 권세도 다 지나갔다.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세상의 것과 육의 것은 다 꽃과 같이 떨어지고 풀과 같이 쇠잔하고 마는 것이니, 그것이 없어지는 날에 수치를 당하지 말고 처음부터 낮은 것을 자랑하고, 낮은 사람은 높아진 것을 자랑하고 즐거워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된다.

四. 시험을 이기라(12-18)

.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핍박과 시험이 많다(딤후 3:12). 시험이 들어을 때에 중요한 것은 참는 것이다. 참을 때에 하나님을 붙들고 참아야 된다. 하나님과 말씀을 붙들지 않고 참는 것은 소용이 없다. 기도할 때 세미한 음성으로 "이것이다"라고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면서 참아야 된다.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뒤에는 애굽 추병이,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히고, 또 나아가다가 아말렉을 만나고, 배고픔과 목마름이 오고, 불뱀이 나와도 낙심하지 않고 말씀 하나만을 붙들고 끝까지 나아갔다. 이 때에 뒤를 돌아보아도 안되고 중간에 머물러서도 안된다 이것은 생명줄이므로 놓치면 죽는다. 그러므로 어려움과 핍박의 역경 속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참으면서 계속해서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 시험을 참는 것이며 이런 사람이 복이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참으며 진리를 붙드는 것이다. 예수께서 시험을 당하셨을 때 광야에 나가서 기도하시며 말씀을 붙들고 40일을 참으셨고, 또한 그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셨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 기도를 깊이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된다. 그러면 그 말씀이 하늘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만능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말씀을 붙들되 바로 붙들어야 되며, 바로 붙들려면 많은 기도와 싸움이 있어야 된다. 그러나 내게 욕심이 있으면 바로 붙잡지 못하게 된다. 오직 "나" 라는 존재는 무(無)와 공(空)이 되어 하나님께만 돌아가며 그에게 바로 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된다.

말씀을 바로 붙든 후에는 참고 나아가야 된다. 그러면 언제까지 참고 나아가야 되는가? 모든 시험은 기한이 있어 끝날 때가 있다. 주님이 보시기에 그 정도이면 "합격"이라고 인정될 때 시험이 끝난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옳다고 인정하실 때까지 참고 나아가야 된다. "옳다"고 인정할 때까지 나아가면 주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

생명의 면류관 면류관은 상급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명의 면류괸이란 상급으로 생명을 주신다는 뜻이다. 시험이 올 때 합격될 때까지 참으면 "옳다"고 인정되어 생명이 자라나게 된다. 이 자라난 생명이 곧 영광이요 상급이다.

참고 견디는 데는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여 "옳다"고 인정함을 받을 때까지 참고 나아가야 된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라는 풀무불에 들어가기까지 참았다. 이때까지 기다려 주님께서 건져 주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여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데리고 나무와 불과 칼을 준비하여 사흘 길 되는 모리아산을 향하여 떠났다. 사흘 길을 가는 사이에 마귀가 시험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참으며 이겼다. 사랑하는 외아들을 죽일 수 있을까? 아버지를 사랑하고 순종하며 이야기하면서 따라가는 외아들 이삭을 죽일 수 있을까?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붙들고 나아가는 길이었기에 참으면서 끝까지 나아갔다. 참으면서 모리아산에 올라갔고, 참으면서 제단을 쌓았고, 참으면서 이삭을 결박하였고, 참으면서 칼로 이삭을 찌르려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 때, 하나님께서 급히 아브라함을 부르면서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고 하셨다. 비로소 합격이 되었다. 이것이 "옳다"고 인정함을 받는 데까지 나아간 표본이다. 곧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하실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하여 순종해 나아가면 합격이 되어 생명이 자라나고 상급인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

.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흔히 사람들이 시험이 들어올때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시험을 주시는가? 왜 못살게 하시고, 비천하게 하시고 고통을 당하게 하시고, 궁핍을 당하게 하시고, 심지어 자식까지 죽게 하실까?"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하지 않으시며, 또한 악에게 시험 받지도 아니하신다. 하라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은(창 22:1-2) 악으로 하신 것이 아니요 복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그 사람을 연단시켜 복 주시려고 시험을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모두 선이요 복이다. 그에게 악은 털 끝만큼도 없으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하지도 않으시며, 또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신다. 악한 것이 아무리 하나님을 시험하려 하여도 악한 것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며 악이 소멸된다. 오직 하나님의 의와 선하신 뜻만 이루어져 나아간다(시 2:1-6).

.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흑됨이니

시험은 유혹이라는 뜻이 있다. 사람들이 유혹에 드는 것은 자기의 욕심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족하게 여겨 감사하지 않고 더 많이 가지겠다, 더 좋은 것을 가지겠다, 자기 것을 만들겠다, 자기가 주장 하겠다, 자기가 하겠다, 자기가 커지고 높아지겠다, 자기에게 들어온 것은 놓지 않겠다, 더 살겠다는 등의 욕심 때문에 시험에 든다. 위와 같은 욕심이 없으면 여러 가지 시험이 와도 넘어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셔도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리라(롬 14:7-8)는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만 만족하고 하나님으로만 사는 사람은 시험에 들지 않는다.

욥은 여러 가지 큰 시험을 당하였지만 시험에 들지 않았고,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지만 시험에 들지 않고 승리하셨다.

.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 잉태한즉 하는 것은 욕심을 마음에 품었다는 뜻이다. 욕심을 마음에 품으면 진리와 영감의 빛이 가리워져서 마음이 어두워지고 그 욕심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 그 인격 전채를 주장하여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 콩을 심으면 콩을,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둔다. 욕심이 잉태되면 반드시 욕심의 열매인 죄를 낳는다.

욕심에 끌리기 시작하면 머지 않아 진리를 따르는 마음은 없어지고 욕심의 주장을 받아 그 욕심의 행위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욕심의 소생인 죄이다. 이 죄악이 점점 자라면 징악 상선(懲惡賞善)의 법칙에 의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 결과는 멸망이다.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되지 않도록 경계하여야 된다. 악한 사람들의 핍박과 대적을 겁낼 것이 아니라 그보다 욕심이 내 속에 들어와서 자리 잡는 것을 무서워하여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모르고 자기 혼자만이 알고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욕심이 들어와 잉태된 것이면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얼마 안가서 사망의 결과를 가져 오게된다.

다른 사람이 잘되게 해준다고 해서 잘되는 것이 아니고, 못되게 방해한다고 해서 못되는 것이 아니다. 욕심이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망하게 된다. 마귀는 계속하여 욕심을 우리 마음 속에 넣어 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욕심을 제어하고 말씀을 붙들고 주님만 바라 보고 나아가며 빛의 세계를 떠나지 않도록 해야된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날마다 창성하게 하여 주신다. 천하가 다 대적하고 사탄이 와서 방해할지라도 기고 나아갈 수 있는 빛과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므로 반드시 창성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몇 사람만 나타나도 위대한 역사가 나타날 것이요, 열 사람만 나와도 한국을 구원 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이 나타나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현 세계는 다 마귀에게 사로잡혀 노아의 시대 같이 되었다. 대다수의 교회가 신신학과 신비주의, 현실주의로 기울어졌고, 생명이 없어졌다. 여기에 생명을 불어 넣을 자는 욕심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생명과 빛의 세계를 걸어가며 주만 위하여 충성 하는 자이다.

.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욕심으로 얻을 줄 아는 생각과 욕심으로 얻으려는 것은 속는 일이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고 믿음으로 구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각종 좋은 은사와 선물이 다 위에서부터 내려 온다고 하였다.

옛날부터 이런 이야기가 있다. 멧돼지가 하루는 도토리를 주워먹었다. 보이는 것을 다 주워 먹고 발로 낙엽을 헤치니 그 속에서 도토리가 나왔다. 다 먹고 나서 또 헤치니 또 나왔다. 미련한 멧돼지는 도토리가 땅 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고 땅을 깊이깊이 팠다. 마침내 그 나무가 멧돼지 위에 넘어져 멧돼지가 갈려 죽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위에서 오는 것을 모르고 사람들이 자력으로 되는 것인 줄 알고 나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위에서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성사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돈을 따라 간다고 하여 돈을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돈이 사람을 따라 와야 돈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때를 주시고, 환경을 주시고, 또 은사를 주셔서 성취시켜 주어야 모든 일이 되는 것이다.

빛들의 아버지 하나님은 빛과 생명과 의와 선과 신령한 세계에 계신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모든 것이 내려오는 것으로 알지 못하고, 자기가 한 것으로 알거나 욕심으로 하려면 잘못이다. 모든 일을 자기가 성사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욕심으로 하려는 것은 다 어리석은 짓이다. 어떤 때는 무엇이 좀 되는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꼼짝 할 수 없게 되며, 결국 할 수없다는 것을 자백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좋은 은사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알고 위를 바라보고 빛에 거하여야겠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란 첫째, 빛과 생명과 의와 선에 속한 것들로서 그 나라와 그 의이다. 둘째, 빛들의 아버지를 모시고 순종하는 자에게 더하여 주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다. 세째, 믿음을 지키려는 자에게 필요해서 주시는 여러 가지 시험과 그것을 참고 이기는 은사 등이다.

성도가 빛의 세계의 것을 받으면 영혼이 살게 되고, 영이 살아 나아가면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며,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즐거워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살 수 있게 된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이 세상의 것도 더하여 주신다. 또 이런 자를 더 연단시키기 위하여 여러가지 시험을 주시고, 그것을 이길 능력을 주어 이기게 하여 당신의 형상대로 만들어 나아가신다.

그리스도는 빛과 생명의 세계에서 나에게 온전할 선물이요, 좋은 은사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고전 1:30). 또,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된다(요14:6).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있어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 생명이 속에서 역사한다. 그가 동하면 우리가 동하고, 그가 정하면 우리가 정하는 그것이 가장 좋은 선물인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그리스도 한 분을 잃으면 가장 귀한 선물을 잃는 것이요 온전한 선물을 잃는 것이다.

천당이라도 예수 한 분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비록 지옥일지라도 예수 한 분 계시면 천당으로 변한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들어간 풀무불 속에서도 예수님 한 분 계시므로 가장 좋은 곳으로 변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 한 분이면 족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선물을 받았다. 대속의 은혜와 의롭다 하심과 하나님의 아들됨과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받았다. 또 하나님께서 진정한 사랑을 폭포수 같이 부어 주신 것, 보혜사 성령을 주시사 중생시켜 주신 것, 능력으로 보호하여 주신 것, 이것들이 다 위로부터 온 은사요 선물이다.

또 온전한 선물은 진리이다. 진리 하나 깨달은 것이 또한 좋은 선물이다. 진리 하나가 세계보다 귀한 것이다. 이 진리로 세계를 심판할 수 있다. 세상은 없어져도 진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진리는 영원한 것을 이루어 나아간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들은 땅의 것만 얻으려고 노력하고 싸우며 다툰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마 6:33).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위로부터 오는 은사와 선물은 불변의 은사요 다시 거두어 가지 않는 영원한 은사이다. 하나님께서 변함이 없으심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이 은사도 변함이 없으시다. 덤으로 주셨던 세상 것은 필요에 따라 더 주기도 하시고 거두어 가기도 하시나 그것으로(여러 가지 시험) 말미암아 이루어 놓으신 빛의 세계의 것과 생명의 세계의 것은 영원 불멸, 불변의 것이다.

.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중생시켰다는 것이다(벧전 1:23). 첫 열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난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다. 출애굽기 22:29에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라고 하였다. 그와같이 우리 영혼을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중생시켜 하나님께 드렸으므로 첫 열매가 된 것이다. 성도의 영과 몸은 하나님께 바쳐진 첫 열매이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아야 한다.

五 . 도를 받는 자가 되라(19-21)

.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듣기는 속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 있어서 속히 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갈망하고 사모하여 이 도를 받기에 힘을 써서 자기 자신의 문제와 모든 문제를 이 말씀으로 해결하며 자신의 생명을 삼아 나아가야 한다.

말하기는 더디하며 발표하는 일은 더디하라는 것이다. 잘못 발표하여 많은 사람이 그 영향을 받아 해독을 입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 그 책임은 가르친 사람에게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확실하고 진리의 원리원칙에 맞게하여야 된다. 확실치 않은 것을 말하며, 잘못 가르치면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큰 심판을 받게 된다. 남을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먼저 가르침을 받아 자기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자기가 먼저 이 도를 학습하여 도의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고 남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은 자신의 진보가 없고 나중에는 버림을 받게 된다(고전 9:26-27 참조).

성내는 것과 분노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성내는 것은 벌써 시험에 넘어간 것이다. 성전 때는 기도가 안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온유하고 화평하여야 된다. 제 마음대로 안된다고하여 성내지 말며 남이 잘못할 때에도 성내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기다려야 된다. 제가 하겠다는 생각과 조급한 마음으로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한다.

성내기도 더디하라 함은 성도가 성을 내지 않아야 되겠지만 부지중에 실수하여 성이 나도 해가 질 때까지 품지 말라는 것이다(엡 4:26).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케 하여야 된다. 아무리 성낼 일이 있어도 성을 내지 말고 참고 견디어 나아가야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 나아간다.

또한 성내기를 더디하라는 것은 무슨 일이나 감정으로 하지 말라는 뜻이다. 즉, "다시는 상종치 않는다"는 식의 감정으로 하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직장에서 웃사람에게 책망을 받았다고 즉석에서 사표를 내고 다른 직장으로 옳기는 것과 같이 기분이나 감정에 의하여 모든 일을 처리해서는 안된다. 모든 일을 신중히 생각하여 원리에 맞도록 바로 처리하여야 된다. 이것이 하나님앞에 옳은 것이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기를 은 삼십에 쏟고 잡으러 오는 무리와 함께 왔을 때 "친구여 ! 네 할 일을 하라"고 하셨다(마 26:50).

이와 같이 예수님은 모든 일을 감정적으로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불쌍히 여기셨다. 사도 요한에게는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성격이 있었다. 사마리아를 지나실 때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니까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달라고 하였다(눅 9:51-56). 이것은 감정적인 말이다.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은 벼락을 받아도 마땅하지만 그렇게 감정적으로 벼락을 내린다면 의로운 일이 못된다.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한 그 자체가 벌써 벼락을 받은 것이고 또 앞으로도 형벌 받을 날이 올 것인데, 구태여 "벼락 맞아라"하고 감정적으로 저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도리어 그런 사람을 불쌍히여기고 축복해 주어야 된다.

. 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성내는 자체가 벌써 마귀의 충동을 받은 것이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를 수 없으며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 성나서 감정적으로하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하나님의 의는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온유하고 화평하게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우리 속에는 넘치는 악독이 있다. 이것을 내어 버리는 데 힘을 써야 된다.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음란, 도적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광패등이라고 하였다(막 7:21-22).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이 넘쳐서 밖으로 홀러 나오므로 넘치는 악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더러운 것과 악한 것이 우리 속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매일매일 쉬지 않고 내어버리는데 있어서 먼저 자기 자신의 죄악을 제거하고 또 자기 자신의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노력하여 야 된다.

타락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문제만 해결하려고 한다. 이것은 믿음에 선 것이 아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다른 사람은 가르치면서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고, 도적질하지 말라 하면서도 자기는 도적질하는 것과 같다(롬 2:19-24).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믿는 자는 도가 벌써 마음에 심기워져 있는데 이들로 하여금 더욱 더 많은 도를 받아 나아가라고 권함이다. 이 도는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받을 수 있으며 목이 곧고 완악하고 교만한 자는 받을 수없다. 회개하여 자기 생각, 자기 지식, 자기 주장을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이 도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라야 받을 수 있으며 또 이 양식을 꿀보다 더 달게, 금보다 더 귀하게 여기게 된다.

온유는 온유로써 통한다. 말씀은 온유한 것인데 마음이 강팍하고 뻣뻣하면 말씀이 튕겨 나오며 생명이 없게 된다. 상한 심령을 가지면 마음이 온유하여진다.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인 줄 알고 자기를 부인하여 무(無)요 공(空)이 된 자가 온유한 자이다. 주린 자가 먹을 것을 찾음과 같이 은유한 마음으로 사모하고 애쓰고 찾아야 이 도를 받을 수 있다. 주리를 목마를 때에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잘 소화시켜 피와 살이 되고 힘이 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이 말씀을 사모하여 어떻게 하면 한마디 얻어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주리고 목말라 허덕일 때에 말씀 하나를 얻으면 금덩이보다 더 귀하게 받고 꿀보다 더 달게 먹어 소화가 잘 되어 자기에게 생명이 되는 것이다.

六. 도를 행하는 자가 되라(22-27)

. 1:22-24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 버리거니와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면 자신을 속이는 자이다. 거울을 볼때 자기의 얼굴이 드러났지만 거울을 떠나면 곧 잊어버리게 됨과 같이 성경 말씀을 들을 때는 자기의 정체가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내가 부족하구나 내가 이렇게 믿어야 되겠구나 하고서도 나가서 살때는 말씀을 떠나 제 마음대로 행하니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식으로 아무리 오래 믿어도 아무 것도 되어지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거울을 볼 때 얼굴에 무엇이 묻었으면 닦아야 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자기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때 자기의 결점을 발견하여 고치고 죄에서 떠나야 된다. 또한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은 잘 간직하여 그대로 자식이 걸어가야 한다.

자신이 그 도에 거하지 못하면 자기의 생명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과거에 일곱 번 넘어졌어도 다시 한 번 일어서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비추어 줄 때 이전에는 못하였지만 지금은 이 말씀을 붙들고 일어서서 거기에 거하며 그대로 행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붙들어 주신다. 이것이 산 믿음인 것이다.

.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받으리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은, ① 영이 자유하는 법칙이다. ② 영이 빛과 산 생명으로 자유로이 살아 나아가며 전진하고 향상하는 세계의 법칙이다. ③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신 복음이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그것이 좋으므로 그대로 살게 된다. 그리하면 복을 받는다. 전깃불을 본 사람은 등잔불을 버리고 전기를 가설할 생각이 든다. 좋은 것을 보았으므로 그대로 그것을 가지고 살려고 한다.

자유의 맛을 본 사람은 그 자유의 세계를 좋아하여 거기에 들어가려고 애를 쓴다.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하였다(마 11:12). 천국을 본 사람은 침노하지 않을 수 없어 기어이 들어가려고 애를 쓴다. 그리하면 마침내 들어가게 된다. 예를 들면 깊은 산중에 살던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 문화 시설을 보고 나서는 서울에 살 결심을 하고 시골의 모든 것을 팔아서 기어코 서울에 올라오는 것과 같다. 우리도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들여다 보려면 영이 열려야 된다. 영이 열려야 그 세계를 들여다 보며 그 세계의 자유를 알게 된다. 그 세계는 영이 평안하고 아무 제재나 두려움이 없고 생명과 평화가 가득찬 아름다운 빛의 세계요, 무한히 향상하고 전진하는 영의 세계이다. 이 세계를 들여다 보고 나면 기어이 그 곳에 들어갈 마음이생겨 흠모하게 되고, 사모하게 되고, 그 세계에서 살려고 노력하게 되어 마침내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실행하는 자이다.

요한복음 8:32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였다. 복된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그 안에서 영으로 살려고 노력하므로 마침내 진리 가운데 들어가 그 진리대로 인격이 만들어지고 영이 자라나서 복을 받게 된다.

.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라

경건이란 신앙 생활 면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스스로 잘 믿고 잘 섬긴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로 외부적 행위 면에서 어느 정도 경건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자를 가리킨다. 이 사람은 자기가 참으로 하나님을 잘 믿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혀를 함부로 놀리는 까닭에 그 경건이 헛되게 된다.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이런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는 자이니, 자기의 잘 하는 것을 말하고, 남을 정죄하는 말을 하며, 스스로 잘 믿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또 자기를 자랑하고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이다.

자기 마음을 속이면 자기 속에 있는 죄악과 싸우지 않는 자로서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자이다. 자기 마음 속 깊이 옛사람의 부패성이 있는데 이것을 개닫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아 탄식하지 아니하고 외부적으로 몇 가지 잘한 것을 가지고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폄론하는 일을 거침없이 하면 자기 마음을 속이고 외식하는 자가 된다.

베드로전서 3:10-11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하였다. 참으로 생명을 하랑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야 된다. 말에게 재갈을 물려서 함부로 입을 벌리지 못하게 함과 같이 사람의 입술에 재갈을 물려서 함부로 입을 벌리지 못하게 하여야 된다. 신자가 함부로 입을 여는 것은 신앙을 버리는 것이다. 이 입으로 은혜가 다 새어 나가 자신이 손해를 보고 남에게도 해독을 주게 된다. 또 말을 많이 하면 실수가 많다고 하였다(잠 10:19). 그러므로 필요한 말만 하여야 된다.

.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란 우리를 구속하여 주시고 사랑하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라는 뜻이다. 구원을 받은 감격에 넘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이 신본주의 신앙이다.

사람 앞에서만 사는 생활은 인본주의 신앙이다. 사람 앞에 옳게 보이려고 하여서는 안되며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려고 하는 것이 바른 경건이며 바른 신앙이다. 사람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만은 못 속인다. 사람 앞에서는 의인으로 나타날 수 있어도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므로 속일 수가 없다. 주일에 장사하고 일하고, 십일조를 잘라 먹고도 예배당에 나와 사람 앞에서는 면면스럽게 다닐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책망과 형벌을 받는다. 또 탐심을 품고 하는 것을 사람은 모르고 속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아신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경건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요 마음에 있고, 말을 조심하는 데 있으며 고아나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는 데 있다. 곧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다. 교회에서는 무의무탁한 60세 이상의 과부를 등록시켜 돌아보아야 하며(딤전 5:9), 또 고아를 돌아보아야 된다.

또 속화된 세상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 참된 경건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세상이 극도로 타락되고 사람들이 방탕하여도 신자들은 방탕하여서는 안된다. 또한 교역자는 양떼를 바로 기르고,양떼들을 이 진리의 길로 바로 이끌고, 세상을 이기며, 속화된 세상에서 떠나야 된다. 또 주님을 위하여 희생하려 할 뿐만 아니라 희생하는 생활을 하여야 된다. 이방과 이스라엘을 유브라데 강으로 갈라 놓음과 같이(수 1:4) 세상과 교회, 세인과 친국 백성은 갈라 놓아야 된다. 서로 십자가에 못박으려 하므로 같이 가려고 하여도 갈 수 없다(갈 6:14). 그러나 말세때는 유브라데 강이 마른다고 하였다(계 16:12). 세상과 교회와의 경계선이 없어져서 세상이 교회에 들어와 세상과 교회를 구분할 수 없도록 혼돈하게 한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세상에 물들지 않음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힘든 것이다. 그러나 싸워서 이겨야 된다. 세상은 짐승이요(계 13:1), 음녀라고 하였다(계 17:1). 인본주의 세상문화는 음녀와 같이 아름답게 단장하여 성도를 미혹하고 세상에 속화되게 하려고 한다. 이것이 모두 마귀의 미혹하는 역사이다. 여기에 미혹되지 않고 광야의 길을 걸어 가면서(계 12:14) 신앙을 지킴이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이 참된 경건이며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찾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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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

제 2 장 구 원

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1-4)

二. 세상의 빈부와 신앙에 대하여(5-7)

三.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하라(8-13)

四. 완전한 신앙을 가져라(14-26)

(본문강해)

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1-4)

. 2:1-4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을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않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아니냐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영광의 주님을 믿음으로 영접한 자는 큰 영광이 있다는 뜻이다. 주님은 신자에게 영광이므로, 그 주님을 믿는 것이 영광이며, 또한 믿는 자는 영광스러운 가운데 있는 자이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가운데 있는 자가 믿음으로 모든 것을 행할 때 사람에 대한 차별이 나올 수가 없다. 성도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면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오면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고 하면, 이것은 믿음을 버린 행위이요 주님을 떠난 행위이다.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영광의 주를 떠나 서로 구별하고 판단하는 악한 생각과 행동을 말한다. 성도는 주님과 함께 그 안에서 그 뜻대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된다. 주님을 떠나 저희끼리 구별하는 것은 믿음을 떠난 것이요 악한 일이다

二. 세상의 빈부와 신앙에 대하여(5-7)

.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고 사랑으로 권면하고 있다. 권면하는 일을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을 불러서 믿게 하시는 일이 많다(고전 1:26-29).

하나님께 부름 받은 신자를 살펴 보면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나, 능한 자나,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육체를 가진 자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게 하실 뿐만 아니라 또 믿음이 부요하게 하신다. 가난한 자는 진리를 사모하고 그 받은 진리로 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부자는 교만하기 쉽고 돈을 사랑하기 쉬운데 그것은 일만악(一萬惡)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물리치신다.

가난한 자가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 참으로 친국은 이런 가난한 자의 것이다. 그러나 부자라도 마음이 낮아져서 심령이 가난해 지면 믿음이 부요해진다.

. 2: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어찌하여 가난한 자를 괄시하느냐고 책망했다. 이것은 하나님께 합당치 않기 때문이다. 부자는 자기의 재물과 권세를 의지하여 참된 신앙의 길을 걸으려는 신자들을 압제하는 때가 많고, 법정으로 끌고 가는 때도 있다. 실제로 기독교 역사를 보면 참 신자들이 권세자들과 부자들에게 압제를 당하고, 법정으로 끌려가 투옥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한 일이 많다.

. 2:7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권세자들과 부요한 자들이 성도의 아름다운 이름을 함부로 훼방하여 몰락시켜서 민심을 자기들에게로 돌려 자기들의 권좌를 유지하는 데 이용하려고 한다.

三. 이웃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하라(8-13)

. 2:8-9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범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법이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22:37-40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였다. 요한일서 3:14-15에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하였다. 형제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람 속에 빛과 생명이 없으며 형제를 미워하면,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마귀가 거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여야 한다. 모든 형제를 사랑할 때 하나님도 그 가운데 계신다.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외모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사랑과 믿음이 없는 증거요,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인격을 저버린 것으로 율법의 범죄자로 정함을 받게된다. 그러므로 사랑과 믿음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고, 사람의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대하는 것은 큰 죄이다.

.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이것은 마치 여러 개의 작은 고리로 연결된 큰 원(동그라미)이그 중의 작은 고리 하나가 끊어지면 전체의 원이 끊어지고 마는 것과 같이 율법도 전체를 다 지키다가 그 중의 하나라도 범하면 범죄자로 인정 받게 된다는 것이다.

. 2: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여러 율법을 주신 이는 하나님 한 분이시니 간음하지 않았어도 살인하면 하나님의 명령(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 살인한 자가 간음하지 않았다고 하여 의인이 될 수 없고, 살인한 그것으로 하나님앞에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 2: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자유의 율법은 영의 법이요, 중생한 영이 자유하는 법이다. 신자의 영은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하였기 때문에 본질과 본성품이 하나님을 좋아하고 사모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만족해한다. 그러므로 영의 자유하는 법은 성령의 인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중생한 영은 진정으로 자원해서 사람을 사랑하며 말씀대로 행하게 된다. 이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을 받게 되므로 성도는 영으로 살아야 된다.

세상 국가의 법에 위반되지 않는 사건이 도덕법에 위반되는 것이있고(부모 공경하지 않는 것 등), 도덕법에 위반되지 않는 것이 율법에 위반되는 것이 있고(안식일 범하는 문제 등), 율법에 위반되지 않는 것이 자유의 법 곧 영의 법에 위반되는 것이 있다. 예컨대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 연보를 하되 단 마음으로 하지 못하는 것, 구제를 하되 사랑으로 하지 못하는 것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유의 율법은 십계명과 구약의 모든 율법보다 더 크고 고상한 것이다. 믿는 자는 이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을 받을 줄 알고 범사를 행하여야 된다.

. 2:13 긍흘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흘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흘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긍흘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믿지 않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요 믿는 자에게 하는 말이다. 그 이유는 야고보서 전체가 믿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며 믿지 않는 자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12절에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라고 한 말씀 중에서 '너희'란 말도 믿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는다는 말과 긍흘 없는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같은 뜻이다(12절과 13절에는 같은 말을 계속한 것이다). 신자가 긍흘 없이 사람을 대하면 하나님께서도 긍흘 없이 대하신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서 기도하면 기도가 되지 않으며 은혜를 받으려 하여도 은혜가 없다. 이것이 긍흘 없는 심판을 받는 것이다.

긍흘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이 말을 지옥에 간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마태복음 5:25-26에 "옥에 갇히는 것"도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다. 지옥에 간 후에는 호리라도 남김없이 갚을 수도 없고 갚는다고 하여도 나올 수가 없다. 또 산상보훈도 믿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마태복음 18:23-35에 일만 달란트 빛을 탕감 받은 자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빛진 동관을 탕감하여 주지 않았으므로 왕이 그 말을 듣고 노하여 일만 달란트 탕감해 주었던 자를 다시 끌어다가 옥에 가두었다고 하였는데 이것도 지옥에 간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이미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한 번 죄 사함 받은 사람을 다시 죄를 범하였다고 하여 지옥에 보내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이 감옥은 심령의 감옥이다.

본문의 긍흘 없논 심판도 심령의 자유가 없고 하나님의 긍흘을 받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긍흘을 베풀지 않으면 참된 하나님의 긍흘을 받지 못하게 되며 다른 사람에게 긍흘을 베풀어야만 하나님의 참된 긍흘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긍흘을 받아서 사람에게 그 긍흘을 베풀면 자기의 긍휼의 그룻이 커진다. 그 커진 그릇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큰 긍흘을 다시 받게 된다. 그 큰 긍흘을 사람들에게 또 나누어 주면 긍휼의 그룻이 더욱 커진다. 그 더욱 커진 그룻을 가지고 또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더 큰 긍휼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이 계속해서 반복하면 영이 자라고 인격이 자라게 되는 것이다.

긍흘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항상 긍휼을 전유하고, 긍흘을 베풀고, 긍흘의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 앞에 가책이나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하나님 앞에 책망받을 것이 없다. 어떤 어려운 구렁텅이에 빠져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을 붙잡고 올라올 수가 있다. 이것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는 것이다. 또 사람들이 잘못 되었을 때에 그들에게 긍흘을 계속 베풀면 그 사람들을 살려 낼 수가 있고 건져낼 수가 있다. 이것이 긍흘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는 것이다.

四. 완전한 신앙을 가져라(14-26)

.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행함은 신앙의 열매로 나타나는 행위를 가리키며 인간의 도덕적 선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을 말함이 아니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가 행함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벧전 2:1-2;빌 2:12). 신자가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구원을 이루어 나아갈 수 없으니 아무 이익이 없다. 믿음을 써서 말씀대로 행하며 나아가야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게 되고 유익이 많다.

. 2:15-16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형제나 자매가 먹을 것이 없어 굻어 죽게 되었는데 "이 사람아 집에 가서 잘 먹고 배부르게 하라, 잘 입고 따뜻하게 하라"고 하면서 필요한 것을 조금도 주지 않으면 아무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곧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은 자기가 입을 것이 없는데 누가 주지 않을까? 연탄이 없는데 누가 사 주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언제나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며 자기의 짐을 남에게 지우지 말아야 한다(갈 6:5). 또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하였다(살후 3:10). 남에게 도움을 받겠다는 정신이 없어져야 그 사람의 신앙이 바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남을 의뢰하는 정신을 버려야 된다. 그리고 일하기 싫어하고, 게을러서 먹을 것 없는 그런 사람은 도와 주지 않아도 좋으며, 이런 사람을 도와 주면 도리어 못된 버릇만 길러 주는것이 된다. 이런 사람에게는 일을 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된다.

참으로 도와 줄 만한 사람은 무의무탁(無依無托)한 노인 같은 분들이다. 일하려고 하여도 늙어서 일할 수 없는 이, 병들어서 일할수 없는 이, 재난을 만난 사람, 아무리 일을 하려고 노력하여도 할수 없는 이들을 도와 주고, 또 마음에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참된 긍흘을 베푸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긍흘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는 것은 믿음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 긍흘을 받지 못하고 사회에나 또는 자기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

.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함이 없는 신자를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행함이 없는 것은 그 믿음 자체가 죽은 증거이다. 행함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믿음 자체가 죽은 것이 문제이다. 그 믿음이 살았다고 하면 거기에서 반드시 행함이 나을 것이다.

. 2: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행함이 없는 믿음을 사람에게 나타내 보일 수가 없고, 속에 있는 믿음을 행함으로써 만이 나타내 보일 수가 있는 것이다. 속에 참 믿음이 있으면 행함이 나오게 된다.

.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도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으며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을 믿고 떤다. 믿음이란 덮어 놓고 믿사오니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말씀 없이 그냥 믿사오니 하는 신앙은 미신이요 맹신이다.

택한 백성에게는 구원의 복음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말씀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엡 1:4-4, 롬 8:29-30).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신 성경을 믿어서 죄 사함을 받고(마 26:27-28, 롬 5:8-9),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성경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요 1:12), 영생 얻는다는 성경을 믿어서 영생을 얻었다(요일 5:13).

그러나 성경에 마귀에게 준 복음은 없다. 마귀에게 대하여는 다만 공의대로 심판한다(계 20:2, 마 25:41)는 말씀이 있을 뿐이다. 믿음이란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귀들은 자기들에게 준 공의대로 심판한다는 말씀을 믿고 떨 뿐이다. 십자가의 구속과 구원의 말씀은 택한 자들에게만 주신 복음이며 마귀에게 주신 것이아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마귀들은 심판에 대한 말씀을 인하여 떨게 된다.

. 2:20 아 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생명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호홉하고 활동하는 것처럼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행함이 나온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속에 생명이 없는 증거이다. 곧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속에 알맹이가 없고 껍데기뿐이므로 헛 것이요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자랑하는 자는 허탄한 사람이다.

.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을 면제로 드리라고 할 때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꼭 실행해야 되는 말씀으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였다. 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창 15:5, 6)고하신 하나님께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이삭을 죽이라고 하셨다. 만약 이삭을 죽이면 전에 말씀하신 그 자손의 번성은 불가능하므로 이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같이 많아지리라고 하신 언약의 말씀도 믿었고 또 이삭을 변제로 바치라는 말씀도 믿고 순종했다.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이 만능으로 다시 살려서 약속을 이루어 주실 줄로 생각했다(히 11:19).

만약 아브라함이 언약을 믿고 그 아들 이삭을 드리는 일이 없었다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죽은 믿음에 대하여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참으로 생명 있는 산 믿음에 대하여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다. 그 의롭다함을 받은 산 믿음은 외아들을 바치는 데서 나타났고 외아들을 바친 것이 산 믿음이 있는 증거요 그러한 산 믿음이 전부터 있어서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다.

.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고 하였다(롬 10:17). 말씀이 없이 믿는다는 것은 미신이요 맹신이다.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또 몸으로 순종하여야 온전한 믿음이 된다.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의 반쪽이요(특수한 것은 그렇지 않다) 몸으로 행하는 것(순종)이 믿음의 반쪽이다. 이 둘이 합쳐야 비로소 온전한 믿음이 된다. 마음에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하면 반드시 몸으로 순종하는 행함이 나오게 된다.

속에 산 믿음이 없기 때문에 행함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만일 산 믿음이 있다면 행함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덮어놓고 "믿사옵니다"하지 말고 먼저 성경 말씀에 무엇이라고 하였는가를 살펴서 성경에 없는 것은 모두 버리고 성경에 있는 것은 어떠한 장애가 와도 곧 고난과 죽음이 와도 그대로 믿고 나아가는 것이 산 믿음이다. 모세가 어떤 믿음으로 홍해를 갈라 놓았는가. "홍해를 갈라지게 하여주소서 꼭 갈라질 것을 믿습니다" 한 것이 아니고,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홍해로 가서 지팡이로 가리켜라 그리하면 갈라진다고 하셨다(출 14:15-16).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순종하여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키니 홍해가 갈라졌다. 이것이 온전한 믿음이다.

만일 건넌 다음에 모세가 다시 홍해가 갈라지게 하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믿사옵니다"하면서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켰다고 해도 홍해는 갈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의심하여서도 아니요 믿음이 부족하여서도 아니다. 아무리 의심하지 않고 믿음이 있었다고 하여도 갈라지지 않는 것은 또 다시 홍해가 갈라지게 해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말씀대로 믿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이다.

십일조를 드리면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고 하였으나(말 3:10) 많은 신자들이 이 말씀을 믿지 않는다. 그 말씀을 참으로 믿으면 그 복이 올 것을 확신하므로 즐거움으로 십일조를 드릴 것이다. 그리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존귀히 여기고 즐겁게 여기면 하나님이 높여 주겠다고 하셨다(사 58:13-14). 이 말씀을 믿으면 주일을 즐겁게, 존귀히 여기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으며 또 오락을 즐기지 않으며, 이 날을 거룩히 지켜 참으로 복을 받을것이다. 그러나 주일에 오락하러 다니고 사사로운 말을 하면 마음은 흩어져서 껍데기만 다니는 것이다. 이것은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증거요 그 믿음 자체가 죽었기 때문이다.

. 2:23-24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롭다 함을 얻었다(창 15:5). 이는 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외아들을 바치는 행함이 나왔고 행함이 나온 것을 보니 산 믿음을 가진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온전한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벗이라고 칭하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행함이 나을 수 있는 산 믿음을 가졌으므로 된 것이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으로 된 것이 아니다.

. 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기생 라합은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줄을 믿었고(수 2:11-13), 그 믿음으로 정탐군을 접대하게 되었다. 마음으로 믿은 믿음과 행함이 합하여 온전한 믿음이 되었다.

. 2:26 영흔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영혼이 없으면 몸은 죽은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이다. 속에 산 믿음이 없는 까닮에 행함이 나오지 않는다.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으므로 신앙 행동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내적 생명이 있어야만 그 곳에서 행동이 나오게 마련이다. 주와 그 말씀을 붙잡고 영이 살아서 주와 교통하고 동행하며,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주님께 이용당하여 나아가는 것이 산 믿음이다. 이와 같이 그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이 참된 행함이다.

자기 힘으로 몇 가지 행하고 된 줄로 알면 크게 잘못 된 것이다. 자기 생각대로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어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 가운데서 벗어나게 되고 이 산 믿음으로 나아갈 때 모든 일이 형통하게 잘 이루어져 나아가 창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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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장

제 3 장 화 평

一. 선생된 자가 더 큰 심판을 받음(1)

二. 말에 허물이 없는 자가 되라(2-l2)

三. 세상 지혜(13-16)

四. 위로부터 온 지혜(17-18)

(본문강해)

一. 선생된 자가 더 큰 심판을 받음(1)

.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사람을 잘못 가르쳐서 그 가르침 받은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게 되면 그 책임이 가르친 자에게 있다. 선생이 한번 잘못 가르치면 수많은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 선생된 자는 이 죄가 얼마나 큰 것과, 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더 큰 심판 받을 줄 알고 참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바른 것을 찾아서 가르쳐야 된다. 잘못된 것을 가르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바로 인도하지 못하면 그 죄가 크며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한번 잘못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바른 것을 가르쳐 주어도 잘 받아 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잘못 가르치는 것은 많은 사람의 바로 가는 길을 막는 것이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선생되지 말라고 하셨다. 차라리 선생이 안된다면 그 큰 심판은 면하게 될 것이다. 말씀을 새로 연구하여 깨달았다고 하여도 분명하지 않은 것은 함부로 발표하지 말아야 된다. 참으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여야 된다. 사람을 잘못 가르친 자와 잘못 가르침을 받은자들은 모두 같이 망한다. 이사야 9:16에"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라고 하였다.

二. 말에 허물이 없는 자가 되라(2-12)

.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나 그 중에서도 말에 실수가 더욱 많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신다. 말에 실수가 있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예수의 피로 값주고 사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고, 또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아서 흠이 없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시는데 이것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고 말에 실수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하며, 하나님의 의를 무너뜨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말에 실수가 없는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말은 의사 표시이며, 마음에 있는 것을 표시하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말에 온전하려면 그 마음이 온전하여야 되고 마음이 온전하려면 그 인격 전체가 온전하여야 된다. 그러므로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다. 말에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된다. 말하기 좋다고 다 하지 말고 말 없는 자가 되고 꼭 필요한 말만 하여야된다.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말에 실수가 없어야 온 몸을 잘 제어하여 실수 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말에 실수가 많은 사람은 자기 몸을 자기의 원하는 대로 이끌고 나아갈 수 없게 된다.

. 3:3-4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 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말(馬)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물려 온 몸을 어거(禦拒)하는 것 같이 우리도 입에 재갈 물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야 온 몸을 하나님의 뜻대로 어거해 나아갈 수가 있다. 혀는 또 배의 키와 같다. 키는 비록 작은 것이지만 큰 배를 사공의 뜻대로 어거하며 운전하게 한다. 혀도 작은 것이지만 이것을 잘 사용하면 온몸을 운전해서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배가 광풍에 밀려갈 때 그 작은 키로 잘 운전하여 사공의 뜻대로 운전해 나아가는 것 같이 혀도 잘 사용하여 필요한 말만 하고 잠잠하면 실패하지 않고 그 풍랑을 인연하여서 더욱 빨리 갈 수 있다.

. 3:5-6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혀는 작은 지체 이지만 큰 것, 곧 온 몸 전체를 잘 되게도 하고 못 되게도 한다. 작은 혀가 큰 몸 전체를 잘 되게 하니 이것이 큰 것을 자랑함이다. 그런데 아무리 온 몸 전체가 잘되어 나아가도 혀를 잘못 놀리면 다 망치게 된다. 혀는 또 불과 같다. 성냥 한 개비의 불로 많은 나무를 태을 수 있고 큰 집도 태울 수 있음과 같이 혀도 작은 것이지만 큰 것들을 다 소멸시킬 수 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혀를 제어하지 않아 부패성에게 이용당하게 되면 불의한 것이 거침없이 나오게 되어 온 몸도 더럽히고 다른 사람도 더럽히고 하나님의 영광도 더럽히고, 자기의 생의 전도(前途)도 불태우는 것처럼 다 소멸시켜 버리고 만다.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지옥의 사자인 마귀에게 혀가 이용당할 때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도구가 된다. 이것이 불의의 병기로 이용될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기도 하고 사람을 미혹시켜서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치기도 한다. 이 혀 때문에 온 몸 전체가 지옥 고통을 당하게 되며 사망의 골짜기를 만나게 된다. 특히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큰 일들을 혀 하나 잘못 놀림으로 인하여 모두 파괴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되는일이 많다.

. 3:7-8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여러 종류의 새와 짐승은 길들일 수 있어도 혀는 길들이지 못한다. 혀가 어떤 때는 부패성과 마귀에게 이용당하기 때문이다. 이것들(부패성과 마귀)에게서는 쉬지 않고 악이 나오고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혀가 거기에 이용당할 때에는 악과 독이 나오고 독사의 독이 있다(롬 3:13 참조).

.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혀가 중생한 영혼과 성령에게 이용당할 때에는 주 아버지를 찬송하게 되고, 부패성과 마귀에게 이용당할 때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저주하게 된다.

. 3:10-12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성도의 입에서 찬송도 나오고 저주도 나오는 것은 마땅치 않다. 성도가 영으로 살 때에는 찬송이 나오게 되고 육신의 소욕으로 살 때에는 저주가 나오게 된다. 이것은 마치 샘이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겸하여 내는 것과 같다. 입은 하나지만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단 물과 쓴 물이 나온다. 두 마음을 품은 자는 하나님께 합당치 않으니 성도는 항상 하나님께 향한 마음을 가져야 되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마음 곧 영으로 사는 마음을 가져야 단 물만 내고 쓴 물을 내지 않게 된다.

三. 세상 지혜(13-16)

. 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지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고 총명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사물과 사건을 밝히 아는 것이다. 지혜와 총명이 있는자는 마귀에게 속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며, 선행이 나오게 되고,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선행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다. 그러나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미련하게 본다(고전 1:18; 2:14). 시기와 다툼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다.

. 3: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마음 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아직도 육에 속한 신자이다(고전3:3). 시기와 다툼으로 하는 자는 아무리 잘 되어도 자랑할 것이 없다. 이런 자가 자랑을 하면 자기의 속은 만들지 못하고 겉만 꾸미는 것이니 진리를 거스리는 것이요 외식하는 것이다.

.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이렇게 시기와 다툼으로 하는 것은 아무리 자기에게 있는 지혜를 다하여 그 경영하는 일이 크게 되었다고 하여도 하나님께로부터 온것이 아니고 세상적인 것이다. 또 욕심을 채우려고 한 것이니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이다. 이것은 정욕과 마귀의 충동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시기와 다툼으로 하는 일은 허영심과 욕심과 마귀의 인도를 받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진리를 거스리는 일을 하게 되고 악한 일도하게 되며 때로는 요란한 일도 나타나게 된다.

四. 위로부터 온 지혜(17-18)

.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흘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이다. 곧 세속적, 인간적, 이기적인 데서 떠나 하나님께 붙잡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며 위에 있는 것을 찾아 위엣것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므로 성결과 화켱이 있다. 이런 자는 모든 사람을 긍흘히 여기고 원수도 사랑하여 화평을 이루어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단점과 허물에 관용할 마음을 하나님께로서 받았으므로 모든 면에 양순함과 진실한 성품이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섭리를 믿고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할 때 선한 열매가 날이 갈수록 가득하게 된다.

. 3: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화평케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마 5:9). 성도들이 화평을 심어 서로 화평하게 되면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다(요일 4:12, 히 12:14). 이렇게 성도가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면 의(義)의 열매를 많이 거둘 수가 있고,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는 가운데 합심하고,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어 나아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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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장

제 4 장 재 천

一. 싸우지 말고 구하라(1-5)

二. 큰 은혜와 영받는 방법 (6-10)

三. 피차 비방하지 말라(11 -l2)

四. 부귀가 하나님께 있다(13-17)

(본문강해)

一. 싸우지 말고 구하라(1-5)

.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인간의 모든 싸움과 다툼은 정욕으로 좇아 난다고 하였다. 진리를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는 신자는 상대방과 더불어 싸우고 다투는 일을 하지 않는다. 진리의 길을 걸어 나아가는데 그 길을 막고 못가게 하여도 대항하지 않고 계속하여 그 길을 걸어 나아가는 것 뿐이다. 어떠한 방해와 핍박이 있어도 달게 받으며 굴하지 않고 오직 그 진리의 길을 끝까지 걸어 나아가야 된다. 싸우고 다투는 것은 정욕으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다 잘못 된 것이다.

. 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무엇이나 욕심을 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투고 싸운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또 시기하고 살인한다고 하여 이루어 지고 얻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공연히 싸우고 다투며 남을 죽인다. 오히려 싸우고 다투면 잃어 버리게 된다. 욕심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남을 죽이면 자기도 죽게 되며 또,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게 된다.

살인에는 육신의 생명을 죽이는 살인이 있고 혀로써 사람을 죽이는 살인도 있다. 즉 혀로 남을 함부로 훼방하여 몹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싸을 만한 일, 다툴 만한 일, 억울한 일이 있어도 싸우거나 다투지 말아야 된다. 싸우고 다투는 일은 얻는 일이 아니라 도리어 더 중요한 것과 더 많은 것을 잃어 버리게 된다. 곧, 싸우면 믿음과 사랑과 긍흘을 잃어버리게 되고 영감과 은사와 말씀을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자동차 하나를 서로 가지겠다고 싸운다고 하면 싸움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말씀의 역사와, 모든 신령한 은사와 도덕과 인격을 다 잃어 버리게 되므로 그 손해가 말할 수 없이 크다. 비록 싸워서 자동차 하나를 빼앗아 차지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을 빼앗기 위하여 싸우고 다투느라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영원한 보배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니 손해가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며,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되는 것이다.

혹 싸우고 다툴 만한 일이 생기고 자기 소유를 다 빼앗기고 인권을 유린당하고 명예를 훼손당하고 매장되어도 싸우고 다투지 말아야 된다. 싸우고 다투는 것은 마귀에게 지는 것이다. 싸우고 다툴만한 때에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면 된다. 마태복음 5:39-41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싸우지 말고, 원수를 갚지 말고, 악한 자를 대항치 말라는 교훈이다. 이 말씀은 싸우지 않고도 큰 유익과 승리를 얻는 비결이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인권과 위신을 다 빼앗겨도 믿음을 빼앗기지 않고, 사랑과 긍흘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 생활을 빼앗기지 않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빼앗기지 않는다고 하면 이에서 더 큰 승리와 유익은 없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싸우고 다투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연히 싸우고 다투고 시기하고 살인하고 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 함이요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얻게 된다. 무엇을 구하여야 되느냐? 첫째, 하나님을 구하여야 된다. 하나님을 구하면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만물이 따라오게 된다.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물질부터 구하여 얻겠다고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구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을 만나고 또 영의 세계가 열린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둘째,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야 된다. 하나님 앞에 옳게 하고 바로 하겠다는 정신이 있어야 된다.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의의 나라이다. 만물도 의를 좋아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는 사람을 만물도 다 좋아하고(롬8:19-21), 만사가 다 형통하게 된다(시1:1-3).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의를 위하고,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만 자랑하고, 하나님께만 굴복하려 하고,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 드리려 하고, 자기 자신은 돌보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진리만 따라가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다. 만물은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사람을 좋아 하고 사모하고 따라가므로 모든 것이 넘치게 된다. 진실로 얻지 못함은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다. 욕심은 죄요 하나님의 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사람이 욕심으로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다고 하면 그 사람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의를 무너뜨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이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들어주시지 않는다. 성도가 하나님께 구할 때에 정욕으로 구하면 안된다. 예를 들면 경기를 하는데 일등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나, 일류 학교에 꼭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등은 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이다. 서로 일등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누구의 기도를 들어 주시겠는가 ?

기도할 때에는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본받아 하여야 된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여야 되며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함받기 위하여 기도하여야 된다. 또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여야 된다. 곧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고 구하여야 된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순종하여 나아가는 것과 힘을 얻기 위하여 구하여야 된다. 사사로운 욕심으로 구하는 것과 이기주의로 구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며, 그것을 안들어 주는 것이 우리에게 참복이다.

.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하나님 한 분만 유일한 신앙의 대상자로 삼아야 되며, 하나님에게만 모든 것을 다 기울이며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대한 정조를 지켜 나아가야 된다. 세상과 벗이 되면 하나님께 대한 정조가 깨어져서 간음하는 여인과 같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과 스스로 원수된 것이다. 신자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사랑하면 안된다.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세상에도 마음을 둔다면 이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께 합당치 않으며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요, 영적으로는 간음한 것이다.

인본주의적 세상이 큰 음녀인데 음녀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포도주에 취하게 한다고 하였다(계 17:1-2). 세상주의에 취하게 되면, 전심(全心)을 하나님께 기울이지 못한다. 현대는 세상 문화가 최고로 발달하는 때이다. 세상이 음녀와 같이 아름답게 꾸미고 하늘에까지 높아져서 모든 사람을 세상주의(포도주)에 도취시키고 있다. 거기에 많은 사람이 빠져 들어간다. 이 세상주의에 빠지면 간음한 여자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이 세상주의에 빠져 믿음에서 떠나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있다. 회개하고 바로 서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올 것이다.

.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성령이 우리를 향하여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고 하셨다. 성령은 우리를 극진히 사모하고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하나님에게로만 향하게 만들고, 한 시라도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시어 안타까와 하고, 질투하기까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출애굽기 20:5에 "나 여호와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라고 하였다.

아무리 못되고 죄가 많고, 하나님 앞에 불충성하고 가증하지만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에게로만 전적으로 향하기를 요구하고 계신다.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돌이키면 하나님이 질투하시고 성령이 시기하신다. 끝까지 돌아 오지 않으면 마침내 손을 대시어 징계하여 돌아오게 하신다. 이 징계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다(히 12:5-6 참조).

二. 큰 은혜와 복받는 방법(6-10)

.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다(벧전 5:5). 교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를 남보다 낫게 여기고 남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자기가 하겠다는 것이다. 자기가 제일이라고 말하지 않고, 성품이 착하고 온순하며,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다는 칭찬을 받을지라도 "내가 하겠다" "내 것이다"하는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다. 이것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빠졌던 교만죄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나"라는 소리 세 번 하고 망하였다(단 4:30). 곧

(1)내 가 하였다.

(2)내 것 이 다.

(3)나를 위한 것이다.

하늘과 땅에 충만한 모든 것이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하였다(시24:1). 내 것은 하나도 없고 다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교만이요 내가 하겠다는 것도 교만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에 이용당하고 수종드는 것 뿐이다. 또 자기를 영광되게 하고 자기를 위하는 것이 교만이다. 이런 교만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많지 않다.

주께서 시키는 대로만 하고, 주를 위하여서만 하고, 주의 영광이되지 않는 것은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오로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만 하는 사람이 되어야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 수 있게 된다.

잠언 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교만은 본인이 알지도 못하게 들어온다. 특히 교만은 실력을 배경으로하여 들어오며 그 실력에 정비례한다. 돈, 인물, 학식, 권력, 지위, 은혜 받은 것, 언변, 기술, 능력 등 이런 실력의 크기만큼 교만이 따라오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우리는 항상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교만하지 않고 더욱 겸손해지도록 힘써야 된다.

.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마귀를 이기려면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배워 나가야 한다. 심 을철 목사님 말씀에 "마귀는 개와 같아서 엎드리면 달아난다."고 하였다. 개가 사람이 엎드리면 돌을 주워 때리려는 줄 알고 달아나듯이 마귀는 신자들이 하나님께 순복하고 엎드려 기도하면 달아난다는 말이다. 신자들이 엎드려 기도를 많이 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순복하며 늘 깨어 있을때 마귀를 분별하고 승리하게 된다.

둘째는 마귀를 이기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

세째는 마귀가 들어오는 길과 수단을 잘 알아야 된다.

네째는 성경 말씀을 확실하게 믿고 거기에 굳게 서야 된다.

다섯째는 마귀를 대적하여 물리쳐야 된다. 하와에게 들어온 마귀는 에덴 동산의 들짐승들 중에서 가장 간교한 뱀의 속에 들어가 그 뱀을 이용하여 나타났다. 뱀이 왔지만 실제로는 마귀가 온 것이다. 하와는 마귀가 온 것을 몰랐고 마귀가 미혹시키는 말인줄도 모르고 단순히 뱀의 말인 줄만 알고 대화하다가 마귀에게 유혹되어 죽는 길을 걷게 되었다.

마귀가 이용한 뱀은 간교하여 이상하리만큼 친절하고 가까이 하였다. 이것은 마귀가 벌써 농락하고 있는 증거이다. 뱀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하와 사이를 이간 붙이는 말을 하였다. 그 때에 하와가 심령이 깨어 있었더라면 분별하였을 것이지만 깨어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미혹되고 말았다. 또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붙들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미혹되고 말았다. 또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붙들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바로 말하지 못하였다. "만지지 말라"는 말은 더하고 "정녕 죽으리라"하는 말씀은 빼고 "죽을까 하노라"하는 말로 바꾸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거나, 고치면 분명히 마귀의 밥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인간 중심으로 하는 것 등은 모두 마귀의 역사이다.

예수님은 항상 깨어 마귀와 대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예수께 십자가를 멀리하라고 할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마귀가 들어간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베드로가 예수께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한것은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뜻만을 생각한 것으로 이것이 마귀가 들어간 증거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단번에 물리치 셨다.

마귀는 또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에게 들어가서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고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을 참인 줄로 알고 예수님을 붙들러왔다. 이와 같이 마귀는 부모 형제들 속에도 들어가서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하고 말씀대로 걸어 나아가는 길을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일을 한다. 예수께서는 벌써 사단이 그들 속에 들어간 것을 아시고 모친과 동생들을 만나지도 않으시고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 3:21-35)고 하셨다. 그러므로 먼저 심령이 깨어서 마귀의 역사를 분별할 줄 알아야 되고, 그 후에는 힘있게 끊어 버려야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할 때에 하나님께서 힘 주시고 도와 주셔서 이기게 되고 마귀는 물러가게 된다.

. 4:8-9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하나님은 간절히 찾는 자에게 만나 주신다(렘 29:13).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애써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해 주신다. 그러므로 전심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애써 찾는 자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동행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동행 동거하는 것은 마치 젖먹는 아이가 어머니를 찾아서 그 품 속에서 양육을 받는 것이 복됨과 같이 가장 큰 복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동거하는 것은 언제나 낙원 생활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먼저 회개하여야 되고, 둘째는 믿어야 되고, 세째는 자기를 낮추어야 된다.

손을 깨끗이는 회개하라는 것이요, 두 마음을 품은 자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를 말한다. 마음을 성결케 하려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믿고, 순복하여 나아가야 된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속 사람이 완전하지 못한 것을 인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된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바꿀지어다 세상 것과 외부적인 것만 보고 웃고 즐거워 하는 자는 자기의 심령 상태가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것을 볼 줄 알아야 되고(계 3:17) 그것을 위하여 애통하며 근심하여야 된다는것이다.

.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스스로 섰다 생각하지 말고,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지 말고, 나다 하는 자만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망하는 길이다. 항상 주 앞에서 자기의 약한 것과 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낮은 데 처하여야 된다. 자신은 잠시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신령한 젖을 받아 먹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자인 줄 알아야 하며, 힘써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영이 살아나가면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 주께서 높여 주신다

三. 피차 비방하지 말라(11-12)

. 4:11-12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안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형제를 비방하거나 형제를 판단하지 말아야 된다.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다는 따위의 남을 비방하는 말이나 판단하는 말은 모두 악한 것이다. 다만 성경에 잘못 되었을 때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지 성경에 어긋난 길로 갈 때 그것은 잘못 되었으니 그대로 나아가면 안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진리를 밝혀서 그로 하여금 잘못된 것을 깨닫고 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하는 선한 뜻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므로 좋은 것이다. 이 때도 조심하여 지나치지 않도록 하여야 된다. 분수를 넘어서 남을 판단하면 죄를 짓는 것이 된다. 남의 단점이나 흠을 찾아서 말을 돌림으로 남을 비방하고 정죄하는 일은 모두 악한 일이다.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그 사람은 율법을 준행하여 믿는 일을 하려는 자가 아니요 율법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는데 이용하는 자이다.

본래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믿는 자가 율법을 준행하여 믿는 일을 하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들려고 주신 것이다. 이것을 준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재판하시어 정죄하신다. 우리가 하여야 할 중대한 것은 율법을 준행하여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 뿐이시니 그가 모든 것을 세밀하게 아시고 공평하게 재판하시어 정죄할 자는 정죄하고, 구원할 자는 구원하시고, 멸할 자는 멸하실 것이다.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자는 자기도 하나님에게 판단 받고 정죄받는다(마 7:1).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죄값을 받을 줄 알아야 된다(마 18:23-25; 약 2:13).

四. 부귀가 하나님께 있다(13-17)

.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도모하는 자는 ①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려고 하지않고 자기가 하려고 하고, ② 주의 뜻을 따라 가지 않고 이(利)를 따라 가고, ③ 주를 위하여 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계획한다. 이것을 그 정한 기간에 달성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며 또 이것만을 위하여 움직이려고 한다. 이것은 믿음에서 떠난 계획이며 어리석은 행동이다. 믿는 자는 하나님과 그의 의를 구하여 그를 따라가야 되며 자기의 이(利)를 따라가서는 안된다.

.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내일 무슨 일이 생길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주권자시요, 주재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을 당하게 하시려는지, 또 우리의 하는 모든 일이 어떻게 되어지게 하시려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가 예정하신 대로, 이루어 주시는 대로 성취될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利)를 탐하지 말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만들어 나아가는 데 전심 전력을 기울여야 된다.

또 우리 생명이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아침 안개와 같아서 언제 하나님이 데려 가시려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고, 믿음을 지킴으로 당하는 한 날의 괴로움을 족한줄 알아야 되며, 오늘에 믿는 일을 바로 하다가 주 앞에 갈 생각을 가지고, 오늘에 할일을 하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여야 겠다.

.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여야 된다. 모든 것이 주의 뜻대로만 되는 줄 알고 자기 뜻, 자기 계획대로 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주의 뜻이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만이 참된 성공인 줄 알고 그의 뜻에 절대 복종하여야 된다. 그가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날마다 충성하여야 한다.

. 4:1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허탄한 자랑은 주의 뜻에 불순종하고 스스로 성공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어기고 얻은 것은 우상을 섬기고 그 우상에게서 얻은 것이며 또 자기를 팔아서 얻은 것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을 떠나 저주 아래 있는 것이요 생명도 없고, 하나님의 보호도 없는 허탄한 것 뿐이다.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며 아무리 큰 성공일지라도 악한 것이다.

.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선을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가 된다.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실행하여야 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그 길로 가지 않고 딴 길로 가는 것이 곧 죄이다. 진리인 줄 알고,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양심에 옳다고 깨달아진 것은 즉시 따라가고 실행하여야 된다. 주일 지키는 것, 십일조 바치는 것, 형제를 사랑하는 것, 순종하는 것, 부모를 공경하는 것, 양심을 쓰는것 등이 옳은 것인 줄 알면서 실행하지 않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다. 죄가 들어 오면 영의 길이 막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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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장

제 5 장 재 림

(대 지)

一. 부자가 통곡함(1-6)

二. 인내로 믿음을 지키라(7-12)

三. 교회생활 (13-20)

1. 동고동락(13)

3. 병자를 돌아보라(14-18)

3. 진리떠난 자를 돌아오게 하라(19-20)

(본문강해)

一. 부자가 통곡함(1-6)

. 5:1-3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회 재물은 썩었고 2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3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부자들은 고생하지 않고 호화롭게 잘살고 그 자손들도 잘 자라서 출세하고, 고생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할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부자들에게 고생이 임하여 울고 통곡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오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였다(살전 5:3). 세계 평화가 성취되고 안전하고 튼튼한 때가 된 것 같아서 세상에다 소망을 두고 세상에 재물을 쌓아 놓고 살려고 하지만 멸망이 출연히 임한다고 하였으니, 어느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올는지 모른다.

세상의 부자들이 아무리 재물을 많이 쌓아 놓고, 옷을 많이 만들어 놓고, 금과 은을 저장해 놓고 오래도록 평안히 잘 살고 자손에게까지 물려 주어 잘 살게 하려고 하나,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날에 그것들은 하루 아침에 다 멸망되어 없어지고 말 것이다. 에스겔 7:19에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 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지는 것이 됨이로다"라고 하였고, 에스겔 7:10에 "볼지어다 그날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정한 재앙이 이르렀으니 몽등이가 꽃피며 교만이 싹났도다"라고 하였다. 부자들이 쌓아놓은 은과금은 능히 자기를 건지지 못 할뿐만 아니라 그것이 일시에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슬피 울며 통곡하고 불 같이 살을 먹게 될것이다. 곧 그것 때문에 고통당하고 마음과 몸이 상하여 살이 다 빠지고 병이 나서 죽게 된다.

해방 후 북한에서 부자들이 공산당에게 숙청 당할 때 가옥과 모든 재산을 몰수 당하여 하루 아침에 다 없어졌다. 그 많은 재산, 그 많은 의복을 하나도 쓰지 못하게 되고, 입거나 남에게 주지도 못하게 되고 화려하게 지은 집에 살지도 못하고 쫓겨나게 되었다. 그 때에 슬피 울며 통곡하고 마음이 상하여 병이 나서 죽은 부자들도 많았다.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그 심판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① 원수된 국가를 동원하여 침략하게 하기도 하고,

② 도적에게 붙여 빼앗아 가게 하기도 하고(사 42:24),

③ 공산당에게 붙여 숙청 당하게도 하고,

④ 화재나 수재(水災)를 당하게도 하고,

⑤ 사업에 실패하게도 하고,

⑥ 사기 당하게도 하고,

⑦ 친근한 사람에게서 손상을 입게도 하고,

⑧ 여러 가지 사고가 나게도 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이 올 때는 부자들은 하루 아침에 그 부한 것이 다 없어지며 이로 말미암아 슬피 울며 통곡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자 되기를 힘쓰지 말고 믿는 일 하는 데 힘써야 된다.

디모데전서 6:17-19에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 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6:9에는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잠언 23:4에는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라고 하였다.

부자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재물의 부자도 있고, 사업의 부자도 있고, 지위의 부자도 있고, 명예의 부자도 있다. 이 모든 종류의 부자는 다 마찬간지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을 알아야 된다. 그 날에 어떠한 부자든지 그 부한 것이 일시에 썩고, 좀먹고1 녹슬어서 못쓰게 되어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슬피 울며 애통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부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된다. 다만 예수님께만 마음을 기울이고 진리에 마음을 두어 믿음을 지키는 데 전력을 다하며 믿음 지키는 것을 첫째로 삼고 본업으로 삼아야 된다.

이와 같이 믿음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부자가 되게 한 자는 슬피 울고 통곡하는 부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런 자는 마음을 부한 데 두지 않고 신령한 데 두며,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며, 그 부한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청지기로서 보관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는 까닭에 그것이 없어질 때에도 슬퍼하거나 통곡하지 않고 도리어 감사한다.

욥은 동방에서 제일 큰 부자였고 칠남 삼녀가 있었다. 그러나 욥은 그것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으로 살았는데 그 많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도적 맞았고 아들 일곱, 딸 셋이 하루 아침에 다 죽었을때에도 욥은 통곡하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하였다.

주의 말씀을 듣고지키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아서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부딪히되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였다(마 7:24-25). 우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신령한 집을 지어야겠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겠다(마 6:20). 하늘에 보물을 쌓는 방법은 주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주의 뜻대로 주께 이용 당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늘에 쌓은 것은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므로 영원한 자기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 5:4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부자들이 품군을 고용하여 밭에서 추수하여 이득을 많이 보고도 그 추수한 품군에게 지불할 품값을 제대로 주지 아니하였다.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제대로 주지 않고 모으고 쌓아서 부자가 되었다.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른다고 하였다. 이러한 부자는 그 돈을 평안히 쓰지 못하고 그 돈 때문에 사고가 나게 된다. 그 때에는 그 돈들이 잠잠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게 된다.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추수한 자들이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울고 있다.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아니하고, 내놓아야 할 것을 내놓지 않으니 한 편에서는 그것을 받지 못하여 울고 있는 자들이 생기게 된다. 그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그러므로 하나닢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품군의 것은 품군에게 돌려 보내어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된다. 자기의 할 일을 하지 않고, 줄 것을 주지 않고, 쓸 것을 쓰지 않으며, 마땅히 하여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이 원리에 어긋났어도 못본체하고, 부유한 생활만 하려는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징계하시게 된다.

. 5: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는 신자들을 가리킨다. 신자들이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면 믿는 일을 못하게 된다. 도살의 날에라고 한 것은 선을 죽이는 날, 의를 죽이는 날, 신앙 양심을 죽이는 날, 의리를 죽이는 날을 뜻한다.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한 것은 마음이 살졌으니 둔하여졌고 굳어져서 뻣뻣하고 완악하여진 것을 뜻한다. 에베소서 4:18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 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3:15에는 "마음을 강팍케 말라"고 하였고, 누가복음 21:34에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하였다. 방탕과 술 취함과 사치와 연락은 마음을 살지게 만들고 둔하게 만든다. 성도의 마음은 언제나 연(軟)하여야 되고(왕하 22:19) 상한 심령이어야 되고(시 51:17) 가난하여야 된다(마 5:3).

. 5:6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옳은 자를 정죄하고 죽인 죄는 이 세대가 다 당하게 된다(마 23:34-36). 그러나 옳은 자를 정죄하고 죽이는 일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권리를 위하여 거침 없이 옳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

그는 너회애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옳은 사람들은 대항하지 않고 자기의 의를 지켜 죽기까지 옳은 길을 걸어 나아간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었어도 그들의 의는 영원히 살아서 빛나게 된다. 옳은자들이 무고히 정죄 받아 죽임을 당할 때에 대항하여 싸우고 다투었다면 그 의에 손상을 입혔을 것이며 그 빛이 비추이는데 큰 장애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대항하지 않은 것이 승리요, 성공이다. 옳은 자를 정죄하고 죽인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二. 인내로 믿음을 지키라(7-12)

. 5: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주의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이므로 주님이 강림하실 그 때까지 길이 참으라고 권면하셨다. 말세에 신자가 믿음을 지켜 나아가는데는 시험과 환난과 핍박과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이 오게 된다(딤후 3:12). 이 모든 시험과 환난 속에서 믿음을 지켜 나아가면서 참아야 된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농부는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보고 여러 가지 재난과 난관이 닥쳐와도 길이 참고 계속 농사를 지어 나아간다. 이와 같이 성도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와도 나중 열매를 바라보고 소망 중에서 기름으로 참고 견디어야 된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며 농사를 짓는다. 비가 잘 오지 않아도 다음 비를 기다리면서 참고 농사를 계속한다. '이른 비'는 속히 은히를 베풀어서 건져 주는 것을 뜻하며 '늦은 비 '는 곡식이 다 시들고 잎사귀가 마를 때에비가 내리듯이 속히 건져 주지 않고 오랫 동안 지난 후에 은혜 주심을 뜻한다. 신자들이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 속히 도와서 건져 주시는 때도 있지만 오래도록 건져 주시지 않아 기진 맥진하여 이제는 다 쓰러져서 죽게 되었고 소생할 가망이 안 보일 때에 가서야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고 건져 주시는 때가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속히 도와 주시거나 늦게 도와 주시거나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믿는 일을 계속해 나아가야 된다.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참고 견디면 주님께서 반드시 도와 주신다.

말세에는 세상이 점점 악해지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인내가 중요하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주의, 돈을 사랑하는 황금 만능주의, 쾌락을 사랑하는 향락주의 등이 가득하고 교만하고 경건의 모양만 갖추는 의식주의 시대가 된다(딤후 3:1-5 참조). 또 유물주의 사상이 나와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성도를 핍박하고(계 13:6-10 참조) 불법이 성함으로 사랑이 다 식어져서 서로 잡아 주고 서로 죽이는 시대가 된다(마 24:9-13 참조). 이런 때에 믿음을 지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믿음을 지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 주시고 건져 주신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마음을 굳게 하여 흔들리지 않아야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나아갈 수 있다. 히브리서 13 : 9에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라고 했다. 마음은 은혜를 받아야 굳게 할 수 있으므로 항상 은혜 가운데 거하도록 힘을 써야 되고, 주의 강림이 가까운 것을 믿고 인내하면서 주의 앞에 설 준비를 잘 갖추도록 하여야 된다.

.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시험과 환난이 들어올 때 서로 원망하기 쉽다. 그 때에 원망하지 않아야 믿음을 지키는 것이 된다.

시험이 들어을 때에 원망하지 않으려면

①그 시험과 환난을 아버지께서 주신 잔인 줄 믿고(요 18:11),

② 책임을 자기가 지고,

③ 나를 만들어서 복 주시려고 은혜로 주신 것임을 믿고,

④ 잘 참고 견디어야 된다.

원망하는 것은 믿음에서 떠나 육신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또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거역하고 방해하고 파괴하는 일이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심판하신다.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심판자가 심판하기 위하여 문 밖에 가까이 오셨고 즉시 심판하기 위하여 서 계신다고 하였다. 원망하는 자는 급속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서 계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일어섰다는 뜻이다. 그와 반대로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에는 예수님께서 도와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계셨다(행 7:55).

. 5: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모든 선지자들도 굅박과 비방과 고난을 받고(마5 : 11-12 참조), 참아 나아가면서 믿음을 잘 지켰다. 우리도 선지자들이 걸어간 길을 본 받아서 어떠한 고난이 와도 오래 참음으로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해 나아가야 된다.

.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회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흘히 여기는 자시니라

시험을 받지 않는 자가 복 있는 자가 아니요 시험을 받고 참는 자가 복이 있다. 적게 참으면 복이 적고 많이 참으면 복이 크다.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욥은 하루 아침에 재산이 다 없어지고 자녀들도 함께 다 죽었다. 또 몸은 병이 들고 아내가 시험하고 친구들도 시험하였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참으며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으며 믿음을 잘 지켰다. 그러므로 결말에는 하나님께서 갑절의 복을 주셨고 또 자신이 연단을 받아서 훌륭한 인격을 형성하여 금과 같이 빛나게 되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흘히 여기는 자시니라 주는 자비하시고 긍흘히 여기시는 분이므로 그 주님을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끝까지 참고 지켜 나아가는 자는 내어버리지 않으시고 반드시 상으로 갚아 주시고 자비와 긍흘을 베풀어 주신다.

. 5: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마태복음 5:34-37에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맹세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고 하였다. 하늘과 땅은 사람이 능히 변동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가 어떤 일을 해 나아가다가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깨달으면 즉시 고쳐야 된다. 그런데 맹세해 놓은 것은 고칠 수가 없기 때문에 맹세하지 말라고 하였나,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아가는데 있어서 맹세해 놓은 것이 있으면 방해물이 된다. 오늘은 이것이 옳은 줄 알고 맹세하였다가 얼마 후에는 저것이 옳다고 깨달아 질 때가 있다. 예컨대 장사한다고 맹세했다가 하다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깨달아져서 전도를 하려면 장사한다고 맹세해 놓은 것이 장애물이 된다. 그 맹세한것 때문에 전도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일호(一毫)라도 변동시킬 수 없는 존재이므로 아무 맹세도 할 수 없는것이다. 그렇다 할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할 것은 아니라 하여야된다.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여 하나님의 뜻만 찾아 나아갈 뿐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할 권리가 없다. 다만 주권이 하나님에게만 있으므로 하나님께서시키시는 대로 순종하여 나아가야만 된다. 맹세하지 말고 신앙 양심을 날카롭게 써서 옳은 것은 옳다 하며 따라가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며 물리쳐야 된다.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나아가는 대로 전진하여야 된다. 베드로전서 3:21에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포도나무가 새 싹이 나오므로 자라날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음과 같이 양심의 첨단이 연(軟)하고 또 예리(銳利)하여야 새 싹이 나와서 새 세계를 향하여 전진한다. 우리의 신앙도 신앙 양심을 날카롭게 쓰고 성경 해석도 날카롭게 하여 새로운 싹이 나와야 새로운 세계와 감취었던 만나를 발견하게 되고, 성경에 대한 새 방언을 말하게 된다(새 방언이란, 성경에 감추어졌던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여 자기 나라 말로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 까닭은 그 진리의 내용이 처음 듣는 새로운 말이기 때문이다).

신앙 양심을 날카롭게 써서 옳은 것을 따르고, 잘못된 것은 떠나야 영혼이 살게 된다. 곧 천하가 다 옳다고 해도 아닌 것은 떠나야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비추어 양심에 옳다는 것은 핍박을 받아도 옳다고 하여야 된다. 이것을 못하면 새 생명의 역사가 없어지고 죽은 믿음이 된다. 우리는 생명 있는 산 신앙 양심을 날카롭게 써서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며 전진하고 장성하여야 된다.

디모데전서 1:18-19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하였다. '전에 지도하여 준 예언'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성경 말씀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지도 받은 예언의 말씀을 따라가야 하나님께서 빛으로 인도하여 주신다. 그리고 선한 양심(신앙 양심)을 가지고 등불과 샛별과 같이 환한 예언의 말씀을 따라가지 않으면 믿음이 파선된다. 믿음의 배가 파선되면 침몰당하며 세상을 항해할 수가 없게 된다. 신앙양심을 날카롭게 써서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하지 못하며 그 예언의 말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악이요 믿음이 파선되는것 이 다.

三. 교회생활(13-20)

1. 동고 동락(13)

. 5:13 너회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고난 당하는 자는 기도하여야 된다. 이 길밖에 좋은 길이 없다.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찾아가서 기도하면 붙들어 주시고, 위로하여 주시고, 건져 주시고, 안식을 주신다.

즐거울 때는 그 즐거움을 하나님께서 주신 줄 알고 감사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된다.

고난 당할 때도 하나님이요, 즐거을 때도 하나님이요, 아침에도, 저녁에도, 젊었을 때도, 늙었을 때도, 먹을 때도, 굶을 때도 하나님이다. 항상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생활을 하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더불어 해결하고 하나님과 동고 등락하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2. 병자를 돌아보라(14-18)

. 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병든 자가 있을 때에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하라고 하였다. 교역자나 장로나 혹 교우 중에서 믿음이 독실한 분을 청하여 기도하면 심령이 힘을 얻어 일어나게 된다. 그리하면 육신의 병도 아울러 고쳐지는 때가 많다.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영적 면을 도와 주며 기도하라는 뜻이다. 요한일서 2:27에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하였다. 여기에 '기름 부음'은 진리와 영감을 가리킨다. 중생한 영혼속에 진리와 성령이 내재하시고, 외부에서 진리와 성령이 감동시키고 있다. 이것이 우리 속에 기름 부음 받은 것이다. 병자의 영이 진리와 영감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나도록 기도하는 것이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환자의 영혼이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하는 자들이 먼저 은혜를 받아 같이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환자의 영이 힘을 얻어 얼굴에 기름이 나타나고 마음과 성품이 부드러워지고 힘이 생기고 하나님이 가까와진다. 이것이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는 것이며 옳은 기도이다.

.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유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믿음의 기도는 무조건 병이 나을 줄 믿사오니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을 믿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병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나을 줄로 믿는 것이 참 믿음이다. 덮어놓고 나을 줄로 믿고 간절히 기도한다고 아무 병이나 다 낫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 낫기로 작정된 자만이 낫는다. 죽기로 작정된 자는 아무리 나을 줄믿고 기도하여도 죽게 된다. 덮어놓고 믿고 기도만 해서 다 낫는다면 죽을 만하면 기도하고, 또 죽을 만하면 기도하고, 이를 반복하면 몇 백년이라도 살지 않겠는가? 그러나 현재 몇 백년을 계속 살고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는 것이지, 기도한다고 그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바른 기도는 순종하는 기도이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는 기도를 하여야 된다. 예수께서 이런 기도를 하셨다(마 26:39-42 히 5:7-8). 욕심으로 하는 기도는 바른 기도가 아니며 덮어놓고 살려만 달라고 하는 것은 욕심으로 하는 기도이다. 병이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 낫는다. 그렇다면 기도가 필요 없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병이 낫기로 예정된 자 중에는 기도해서 낫기로 예정된 자가 있으므로 이런 자에게는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겔 36:35-37).

또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까와지고 은혜를 받게 된다. 은혜를 받으면 심령의 병이 낫게 되고 영이 힘을 얻고 새 생명을 얻게 된다. 이것이 육신의 병이 낫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심령을 구원하고 심령을 일으키는 것이 중점이요 육신의 병은 그 심령이 일어남에 따라 필요하면 하나님이 건져 주시고 일으켜 주실 것이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함을 얻는다.

① 믿음으로 기도해 주면, 믿지 않는 환자가 믿음을 얻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② 믿는 환자의 경우는 믿음이 약하여 죄를 이기지 못하고 죄 중에서 사는 상태에서 은혜를 받게 되고, 힘을 얻어 능력있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어 그 죄에서 벗어나오게 된다. 이러한 모든 죄를 주께서 사하여 주시는 것이다.

. 5:16 이러므로 너회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죄에서 건져 내어 바로 세우려고 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된다(요 5:14 참조).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죄가 있으므로 그 가족들을 회개시켜 바로 세우려는 경우도 있다. 모세의 처가 잘못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출 4:24-26).

또 교우 중에 병든 자가 있을 때 병들지 않은 교우도 자기의 죄를 회개하기를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계심을 깨닫고 같이 회개하며 기도하여야 된다.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회개하며 사랑으로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어 은혜를 더욱 많이 베풀어 주신다. 병들었을 때에 서로 회개하며 기도하고 사랑하며 은혜받는 기회로 삼고 바로 서는 기회로 삼아야 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의인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를 가리킨다. 믿고 순종하는 자의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많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그에게 붙들리워 있는 사람이 그 명령에 순종하는 기도 곧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 위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크게 역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찾아가서 복종하려는 기도가 아니고 자기의 정욕대로 하려는 기도는 아무 힘이 없고 역사도없다.

. 5: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우리와 본성이나 인체의 구조가 같다는 말이다. 엘리야는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이나 초인이 아니고 보통 사람이다. 엘리야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다시 기도한즉 비가 내렸으니 이 기도는 자기의 뜻대로 구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간절히 기도하면 아무리 큰 일이라도 하나님의 만능으로 다 이루어 주신다. 자연계를 움직이는 이적보다 사람의 영혼을 살려 내는 이적이 더 큰 것이다.

3. 진리 떠난 자를 돌아오게 하라(19-20)

. 5:19 내 형제들아 너회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하면

미흑되어 진리에서 떠난 사람은 독한 병에 걸린 사람과 같고 새가 그물에 싸여 끌려가는 것과 같다. 이것을 성령께서 매우 안타까와하시며 탄식하신다. 이런 자를 하나라도 바른 곳으로 돌아서게하면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신다. 곧 그 사람의 영혼을 그물 속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고 택한 백성은 주께서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자녀이니 이들을 미흑된 길에서 건져내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일이다.

. 5: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일은 그 미혹되었던 자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일이다.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그 미혹되었던 자의 허다한 죄를 하나님 앞에 덮는 일(사함 받는 일)이다. 이것은 그 미혹된 자를 돌아서도록 가르쳐 주고 권면하여 준의 영혼이 구원 받는다는 뜻이 아니요 돌아 서게 하는 자의 죄가 사함 받는다는 뜻도 아니다. 여기서 건져 준 자는 하나님께 상을 받을 것이라는 뜻이요, 건짐을 받은 자가 얼마나 큰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구원을 받는 것과, 큰 죄에서 나와서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다. 미혹된 자리에서 돌아서는 자는 참으로 말할수 없는 큰 복을 받은 것이며 복된 자리에 들어간 자이다.

그러나 말세에는 미혹이 많아져 많은 사람이 미혹에 빠지게 된다고 하였고, 또 택한 백성도 많이 미혹에 빠진다고 하였다(마 24:24 참조). 그들은 미혹에 빠진 줄도 모르고 나아간다. 이와 같이 미혹에 빠진 자를 바른 진리로 돌아서게 하는 자는 주님이 오실 때에 복을 받게 된다(마 24:45-46 참조). 그 미혹된 길에서 옳은 권면을 받고 돌아선 자는 무서운 사망의 골짜기에서 나왔으며 큰 죄에서 건짐을 받은 것을 참으로 감사하여야 된다.

<참고서적>

1. 이 기선 목사의 성경 대소지

2. 김 의홍 목사의 성경 신앙상식론

3. 박 윤선 목사의 공동서한 주석

4. 黑崎幸吉의 야고보서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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