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강해

요한계시록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기록한 사람 : 사도 요한

·기록한 연대 : 주후 95년경

·기록한 장소 : 밧모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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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장

제 1 장 계시총론

(대 지)

一. 계시 서론(1-3)

二. 우리의 구원을 삼위 하나님께서 성취시키심(4-5上)

三. 하나님의 나라 건설(5下-8)

四. 요한이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함(9)

五. 삼대 발견(10-17)

六. 요한을 붙드시고 사명을 주심(18-20)

(본문강해)

一. 계시 서론(1-3)

.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계시의 원어 (아포칼륑시스) 는 "열어 보인다"는 뜻인데 곧, 가리워져 있던 것을 열어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계시에는 특별계시와 자연계시가 있다. 특별계시는 신구약 성경말씀 전체를 가리키는데 성령께서 그 말씀을 가지고 일하시는 면을 가리키고. 자연계시는 자연 만물과 인간의 역사와 사람의 양심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본문의 "계시"는 특별계시 가운데서도 특별히 요한계시록을 가리킨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다는 뜻이다 (마1:21).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에게는 세 가지 직분이 있는데 곧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져내어(구속하여) 도덕과 능력과 지혜를 온전케 만들어 나가시는 분이다. 그리스도의 왕직으로 우리에게 능력을 입혀 나가시고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으로 우리를 점점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들어 나가시고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입혀 나가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져내어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고 지혜와 능력이 있게 만들어 나아가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비밀이었는데 그것을 사도 요한을 통하여 특별계시로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에게 이 계시를 주신 목적은 죄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내어 하나님의 지혜와 도덕과 능력으로 옷 입혀서 우리를 온전케 만들어 나가시기 위한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말씀을 받아 가지고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서 온전케 만들어져 나가게 하는 일을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시험 중에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적으로 통과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하나님께서 구원의 비밀을 그리스도에게 주시었다는 뜻이다. 성도의 구원을 예정하신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실현시키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보존하시고 적용시켜서 완성케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사도 요한에게는 그 계시의 말씀을 주어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시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실 때에 하나님의 종을 이용하여 일하신다. 하나님은 종을 택하시고 불러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의 종 가운데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금그릇과 은그릇과 질그릇과 나무그릇처럼 종들이 쓰이는 면이 여러 종류이다(딤후2:20). 이 네 가지 종류가 다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전부가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하였다.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이라도 자기를 깨끗케 하기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 그러나 종류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그릇이 깨끗하다고 하여 금그릇이 될 수는 없지만 나무그릇이라도 깨끗하기만 하면 나무그릇으로서 하나님이 귀중하게 쓰신다. 예를 들면 엘리야 같은 사람은 금그릇이요 사렙다 과부는 나무 그릇과 같은 자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다섯 달란트 맡을 사람과 두 달란트 맡을 사람과 한 달란트 맡을 사람을 각각 예정하여 놓으신 것이다.

두 달란트 맡은 자는 다섯 달란트 맡은 자에 비하면 작은 그릇이다. 그러나 작은 그릇도 깨끗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귀히 쓰신다. 깨끗하게 되려면 회개하고 믿음을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 그 때에 그 영혼이 자라나고 영혼이 자라나면 깨끗하여 진다.

반드시 속히 될 일 이 계시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이고 속히 될 말씀이다.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는 법이 없고 반드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꼭 이루어 나가시기 때문이다. 세대가 변하고 천지가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지 아니하고 반드시 다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거스리는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속속히 진행되어 나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속속히 이루어져 나아 갈 것이다. 만사가 다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 성경 말씀을 응하게 하려고 세대와 정세와 모든 것이 변동되어 나아가고 있다. 한 시간도 쉬지 않고 전세계와 만물 전체가 속속히 성경대로 이루어져 나아가고 있다.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이 말씀을 주신 것이다. 자기가 주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 말씀을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종의 위치에 있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다.

우리가 종의 직무를 감당하려면 먼저 종의 본분을 바로 알아야 한다. 종은 주권이 없고 소유권이 없고 자유권도 없다. 종의 위치에 있는 자는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며 모든 것을 하나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고 산다. 무슨 일을 자기의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의 심부름만 하려고 한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몸을 바쳐 하나님의 일에만 충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의 위치에 있는 자에게 이 생명의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천사를 요한에게 보내어 이 말씀을 보여 주신 것이다. 율법도 천사의 손을 통하여 모세에게 주셨다고 하였다(갈3:19). 그러므로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천사와 요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특별계시이다.

.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성경의 완전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전부 예수님께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를 통하여 요한에게 다 주시었다. 요한은 또 자기가 받은 것을 성경책에 다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성경만으로 충족하고 완전하며 성경 외에 더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없다. 마태는 마태가 받은 것을 다 기록하고 누가는 누가가 받은 것을 다 기록하였다. 이 성경 말씀이면 완전하고 충족하고 만족한 것이다.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을 믿어야 한다. 신구약 성경 외에 다른 성경이 또 있다고 하면 아주 잘못된 것이다. 이 성경 외에 더하는 말은 마귀의 말이요 이단이다. 그러므로 천주교의 외경은 성경이 아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외에는 절대로 다른 성경이 있을 수 없다. 신구약 66권외에는 아무리 성경이란 표제를 붙여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다 증거하였느니라"에는 요한이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였다는 뜻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후대 만민에게 전하기 위해서 성령의 감동대로 심혈을 다 기울여 기록한 것이다. 요한처럼 자기의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 앞에 가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 사명을 받아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다하고 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7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이 말년에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바울이 주님께 붙잡힌 뒤에 항상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였기 때문이다. 자기가 전할 것을 다 전하고 지켜야 할 것을 다 지키고 가야 한다.

오늘에 할 일을 하나님의 종의 위치에 서서 마땅히 다하여야 한다. 오늘에 할 것을 오늘에 다하고 내일로 미루지 않아야 하나님께 칭찬과 복을 받을 수 있다. 오늘 기도할 것을 오늘에 다하고 오늘 다 지켜야 할 말씀을 오늘에 다 지켜야 한다. 하나님 앞에 마땅히 바칠 것을 다 바치고 세상에서 해야할 일도 마땅히 다해야 한다.

.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예언의 말씀은 요한계시록을 가리키는데 또한 성경말씀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성경 전체가 다 예언이다(딤전1:18). "성경대로 하면 복받는다"는 것도 예언이고 "죄를 지으면 망한다"는 것도 예언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된 역사적인 사실도 예언이 된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실대로 징악상선이 이루어지겠기 때문이다. 복을 받는 방법들이 세 가지로 나타나 있다.

첫째, 이 예언의 말씀(성경)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께 받아 쓴 말씀(딤후 3:16)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도 성령의 감동으로 이 말씀을 읽어야 한다(벧후 1:19-21참조).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가면서 성경 말씀을 읽었다. 그때에 성령께서 빌립을 시켜 가서 가르쳐 주게 하셨고 가르쳐 줄 때에 성령이 역사하여 그 말씀을 깨달았다(행 8:26-39).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면?

①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직접 주신 말씀으로 알고 읽어야 하고, 항상 성경을 읽으려고 힘을 써야 한다.

또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 말씀에 비추어 자기의 죄와 자기가 고쳐야 할 것을 깨달으려고 힘을 써야 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힘을 쓰고, 자기가 걸어갈 길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면서 읽어야 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고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는 자가 복이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으면 말씀이 꿀보다 달고(시19:10)자기를 인도하는 등불이 된다(시 119-105).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는 감동을 받아 기쁘고 즐거우며 꿀보다 단 그 맛을 느껴야 한다. 성경을 읽을 때에 마음과 정성을 들여서 읽고, 그 말씀에 비추어 자기 죄를 회개하며 그 말씀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읽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신령한 영적 양식이 되어야 복이 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사람의 말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살전2:13). 성령의 감동으로 듣고 영의 양식으로 받아야 한다(살전1:6). 온유함으로 받고 마음에 심기도록 받아야 한다(약1:21).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성령과 확신으로 전하여야 하고, 듣는 사람도 자기를 다 부인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받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성령의 감동으로 받고 기쁨으로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받을 때에는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낙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며, 인격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된다. 말씀을 은혜 가운데 받으려면 미리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요즈음 비디오를 틀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곳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그 이유는 예배는 성령께서 예배 인도하는 사람의 영을 감동시키시고 듣는 사람의 영도 성령으로 감동시켜서 영에서 영으로 말씀이 전달되어야 영의 생명이 살아나는데, 비디오는 기계요 영이 아니므로 영적인 산 제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죽은 사람의 비디오를 틀어놓으면 죽은 사람이 그곳에 와서 말하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그것이 우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디오를 틀어놓고 예배드리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이 말씀을 지키는 자는 점점 자신의 신앙 인격이 만들어지고 반석 위에 집을 지은 것처럼 실패가 없이 견고하게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게 된다. 말씀을 지키면 그 말씀이 실상이 된다. 현재는 말씀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지만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힘을 써서 지켜 나아가면 그 말씀이 이루어진다. 말씀을 지키려고 전심전력을 기울이다가 연약하여 넘어졌을 때에는 자기의 연약성을 깨달아 다시 한번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만 붙들고 하나님을 의뢰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임하게 된다. 고린도후서 12:9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하였다.

말씀을 지키려고 힘쓰는 자가 복이 있다. 마태복음 5:19에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며 그 말씀대로 지키려고 힘을 쓰는 사람은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신다.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하여 말씀을 지키고 나아가면 피곤하여 쓰러질 때에도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붙들어 주신다.

말씀을 지켜야 신앙의 열매가 맺히고 하늘나라의 상급이 하나씩 생기게 된다. 말씀을 지키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받은 증거가 많아진다. 히브리서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말씀을 지킬 때에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고 영적 유익이 풍성하며 신앙 인격이 만들어져 나간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만큼 하늘나라가 커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은 받는다. 그러나 상급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받게 되고 지키지 않으면 상급이 없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성도가 일생동안 예수를 믿었다고 하여도 말씀을 지키지 않았으면 모래 위에 집을 지었다가 홍수가 나서 무너진 것과 같이 마지막은 실패요 낙망뿐이다. 그런 사람은 예수를 믿었으므로 천당에는 가는데 불붙는 집에서 벌거벗고 나온 사람과 같은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 것이다(고전 3:15).

二. 우리의 구원을 삼위 하나님께서 성취시키심(4-5상上)

.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는 신약시대의 모든 교회를 대표한다. 신약시대의 교회들이 아시아 일곱 교회의 형편과 비슷하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하나님께서 현재 성도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고 계시는데 그 하나님께서 전부터 성도의 구원을 예정하시고 계획하셨으며 장래에도 성도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실 것이다. 또 그 하나님께서 장차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에게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보좌 앞에 일곱 영"은 하나님의 보좌를 위해서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의 왕국을 가리키는데 천국 건설을 위하여 성령께서 완전한 감동과 능력과 완전한 역사를 하시는 것이다. 일곱 영은 성령을 말한다. "일곱"은 완전수이며 완전하신 성령이라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성도가 어디서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든 완전한 감동을 시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아가려고 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 전면에 걸쳐 완전한 감동으로 성도를 감화시켜 하늘나라를 건설해 나아가신다. 그러면 왜 성도가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는가? 성도가 교만하기 때문에 감동을 받지 못한다. 베드로전서 5:5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하였다. 사울이 겸손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켜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하나님의 종으로 쓰셨다. 그러나 사울이 교만해졌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셔도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사울은 자기 힘으로 무엇이나 해결하려고 하였고 하나님께 바로 하겠다는 마음이 없이 자기가 이스라엘 나라를 유지해 보려고 거기에만 열중하였다. 이스라엘은 신약시대의 교회인데 교회 부흥에만 열중하면서 하나님 앞에 바르게 하겠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은 사울과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다. 사울은 마지막에 아무리 기도해도 교만하여 하나님의 감동을 받지 못하므로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물어 보았다. 그 후 믿음이 타락한 사울은 마침내 길보아산에서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삼상28:4-14. 31:1-6). 성도가 종의 위치에 있지 않을 때에는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한다. 사도 요한과 같이 종의 위치에 있으면 성령의 감동을 충만히 받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높아지고 주인이 되어 있으면 성령께서 아무리 감동을 시켜도 감동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종의 위치를 잘 지켜 성령의 감동을 받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마음속에 죄가 있으면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한다. 죄가 있으면 그 죄가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가로막아서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힘써 죄를 회개하며 깨끗한 심령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예수님만 따라갈 때에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성도와 함께 계시고 또 어떠한 일에나 역사하여 감동시키고 계시므로 성도가 항상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걸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어떤 사람은 "성령이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잘 깨닫지 못한 것이다. 성령은 이미 성도의 마음속에 계시고 또 천지에 충만하며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고 기도하며 힘을 쓸 것뿐이다. 성도가 신령한 길을 걷지 못하고 육에 속하여 있으면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한다. 고린도전서 2:13-14에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 하였다.

성령의 감동을 충만하게 받으려면 예수와 함께 자기가 죽어 무(無)요, 공(空)이 되어야 한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살아 있으면 하나님 나라 일하는데 독소가 된다. 자기(자아)가 죽으면 어린아이와 같이 온유하고 순진하게 되어 하나님을 순종할 마음이 생기고 순종하면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된다(행5:32). 순종한 만큼 성령 감동이 커진다. 전적으로 다 순종하였을 때에는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고 진리가 충만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서 성령 충만을 받으려는 것은 연료 없이 불을 피우려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주시는 목적은 성도를 위하여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잘 되게 하려는데 있다.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하여 그 앞에서 감동을 시키시는 성령님은 결국 하나님 보좌(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성도들을 구원하고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항상 하나님 나라를 중심하여 살고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가 잘 되도록 하여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신다.

성도가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면?

◎ 겸손하여야 한다.

◎ 자기를 부인하고 종의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심령을 가져야 한다.

◎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

. 1:5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충성된 증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예수님께서 선지자의 역할을 다 감당하신 것을 말한다(요1:17-18 참조). 예수님께서 충성된 증인으로서 하나님과 진리를 나타내시고 진리를 친히 몸으로 다 이루시고 죽기까지 하나님 앞에 복종하시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데 예수님께서 제사장의 역할을 다 했다는 뜻이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것은 예수님께서 왕의 직무를 다하신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어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고 지배하시고 계신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가장 존귀한 자로 높여 주셨다. 세상 나라에서 높아지는 것과 하늘나라에서 높아지는 것과는 방법이 다르다. 세상 나라에서는 남을 누르고 자기가 그 위에 올라가야 머리가 되는데 하늘나라에서는 자기가 낮아져서 하나님께 복종한 사람이 큰 자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으나 싸워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복종하여 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종살이는 하지 않고 높아지려고만 하여 서로 싸우고 시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복종하면서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예수를 따르는 자가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된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나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능욕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면서도 대신 위협하거나 욕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시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임금들의 머리가 되도록 만들어 주셨다. 이것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그 권세와 존귀를 받게 된다는 것을 모범적으로 가르쳐 준 것이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은혜와 영적 평강이 성도에게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영적 평강은 영혼이 잘 될 때에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평강이며 영혼이 잘 되면 범사에도 잘 된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받아 순종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풍성하여진다.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에 말씀이 없는 것은 참된 은혜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일시적인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알맹이가 없고 껍데기뿐이다. 말씀으로 감동을 받아야 영이 자라나고 신앙의 열매가 맺혀 나아가는 것이다. 말씀도 점점 더 깊은 진리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도록 힘써야 한다. 어렸을 때에는 젖으로 먹었으나 자라나면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성도의 신앙이 조금 더 자라나면 그만큼 단단한 말씀을 받아먹어야 영이 더욱 자라나고 강건하여진다. 집을 건축할 때에도 재료가 단단하여야 집이 견고하다. 판자로 지은 집은 태풍만 불어도 넘어간다. 그러나 철근 콘크리트로 건축하면 튼튼하고, 철골(아이빔)로 건축하면 더욱 튼튼하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단단한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여야 영이 자라나고 영적 성전을 견고하게 건축하여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초보적인 것부터 높은 단계에까지 계단이 있는 데, 영이 자라날수록 높은 계단의 말씀을 받아먹어야 한다 초보적 단계와 말씀은 알기도 쉽고 감동도 쉽게 받고 지키기도 쉽다. 그러나 초보적인 말씀만 받아먹으면 영이 자라나지 못한다. 영이 자라나서 신령한 성전을 건축해 나가려면 점점 깊은 진리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대로 순종해야 한다. 그것은 고난이 많고 힘이 들고 많은 수고와 희생이 따르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영적 성전은 건축하지 않고 도리어 그 진리(재료)를 팔아먹고 평안히 지내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이다. 영적 성전을 삼층까지 지었으면 사층 지을 재료를 받아 계속하여 지어 나아가야 한다. 사층 지을 재료들을 다 팔아먹으면 편안하고 힘은 안 들지만 성전이 건축되지 못하므로 하나님 앞에 가서 책망을 받게 되는 것이다. 현재에는 고난을 당하더라도 장차 나타날 영광을 위하여 계속하여 영적 성전을 건축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三. 하나님의 나라 건설(5下-8)

. 1:5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성도들을 죄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다. 죄 값으로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모두 치러 주셨고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다. 예수께서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정죄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과거 현재 미래의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죽기까지 복종하여 신구약 성경 다 지키시고 완전한 의를 이루어 그 의(義)를 성도에게 입혀 주신 것이다. 성도가 법적으로는 죄에서 해방이 되었으나 아직도 육체의 소욕(육체의 부패성)이 남아 있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다 못하게 하려함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도가 육체의 부패성을 점점 제거해 나가는 일을 계속하여야 한다. 육체의 부패성을 제하고 성령의 완전한 감동을 받게 하시려고 성도에게 능력을 입혀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 자신이 성령께 완전히 복종하여 영적 성전을 계속하여 건축해 나가면 점점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여지게 된다.

.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 성도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은 거룩한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 5:13-15에 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가까이 왔을 때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 것 보았다. 그때 여호수아가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때 그 사람이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고 대답하였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라는 말은 나는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이지 너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구속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성도가 자기를 위하여 산다는 것은 큰 죄요, 악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면 결과는 자기도 위하게 될 것이고 자기를 위하여 살면 결과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하는 것만 영원히 자기를 위하는 것이 된다. 성도가 무슨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가 아니면 자기를 위하여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기를 위하여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 심판의 대상이요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성도가 언제든지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위하는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성도를 하나님의 "나라"로 삼으신 것은 믿는 사람들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주님의 피 값으로 사서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삼아 놓으시고 그들을 통치하시며 영원한 거처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다.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성도 가운데 계시고 성도는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가 하나님의 인도와 통치를 받아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생활을 하여야 마땅하다.

우리 성도를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은 성도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주셨으니 우리도 자신을 하나님 앞에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신 것을 믿고 우리 몸을 또 하나님 앞에 신령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영적 예배는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롬12:1).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리기 위하여서는 먼저 신령한 세계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영이 성령과 합작하여 신령한 세계를 찾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옳은 뜻을 찾아서 몸을 거기에 복종시키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는 자기 육신은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이 있어야 되며 이것이 산 제사이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바쳐 드리고 또 믿지 않는 다른 사람을 전도하여 그리스도에게 바쳐 드리는 제사장 직분이 성도에게 있는 것이다.

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성도를 죄에서 해방하고 하나님을 위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놓은 결과이다.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하나님께 돌려지도록 하기 위하여 성도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놓으신 것이다.

.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여기에는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신다는 뜻이 있고 성도들의 구원이룬 것, 즉 예수님을 중심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함께 임한다는 뜻도 있다(유1:14 참조).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찌른 자"들이란 그리스도를 찌른 자도 해당되고 교회를 핍박한 자, 즉 하나님의 나라에 손해 준 자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이기 때문이다(엡1:22-23)그리스로의 나라(구원운동)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준 사람은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예수님 재림시에 그대로 나타나므로 애곡하게 된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것이다.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져 가는 것이므로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손상을 입히는 것도 그리스도를 찌르고 상처를 입혀 손해 주는 것이 된다. 자기가 입힌 상처가 그 날에는 숨김없이 나타나고 거기에 대한 심판을 반드시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 날에 그들이 애곡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날에는 자기가 순종하여 이룬 것도 그대로 나타나고 자기가 상처를 준 것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협력하고 도와주고 받들어 주며,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면서 하나님께 이용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여 나아가야 한다. 성도가 세상 일 때문에 자신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그 결과가 주님의 재림하실 때에 는 가차없이 나타날 것이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알파(A)는 헬라어의 첫 문자이고 오메가(Ω)는 맨 마지막 문자이다. 그러므로 "처음과 나중"이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영원성을 잘 나타낸 말이다.

이제도 있고 하나님께서 성도의 구원운동을 현재에 이루어 나가시고 계신다.

전에도 있었고 하나님께서 전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 구원운동을 예정하시고 계획하시고 설계하셨다. 하나님께서 장래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실 것이다.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나님의 나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 나아가시기 때문에 절대로 중단되는 법이 없고 실패가 없다. 마귀가 아무리 강한 힘으로 대적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은 실패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전에도, 지금도, 장래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만능으로 이루어 나아가시는 것이다

四. 요한이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함(9)

. 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이것은 요한의 겸손을 잘 나타낸 말이다. 하나님의 귀히 쓰시는 종들은 언제나 겸손한 자들이었다. 모세도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다고 하였다(민12:3). "형제요"라는 말은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말이다. 우리는 다 형제요 하나님만 높고 위대하신 분이다.

예수의 환난 예수님을 위하여 받는 환난이다. 예수님을 위하지 않는다면 환난도 없고 평안할 터인데 예수를 위하여 살기 때문에 환난을 받는다. 성도가 진리를 양보하면 환난을 받지 않겠으나 진리를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환난을 받게 된다. 예수를 형편 따라 되는대로 믿으면 환난을 받지 않겠지만 성경대로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환난이 따라온다.

주님을 가까이하여 적극적으로 말씀을 따라가면 환난이 오게 되어 있다. 성도가 고난을 당할 때에는 예수님을 더욱 찾게 되고 더욱 가까이하여 예수님을 좀더 발견하고 예수님께 좀더 참여하고 예수님을 좀 더 얻게 된다(시119:67, 71). 육신적으로는 고난을 당하지만 영적으로는 은혜가 풍성하게 된다.

예수의 환난에 참여하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다. 예수의 환난에 참여하려면 참음(인내)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려면 예수님이 당하신 만큼의 고난이 온다. 그때에 예수님과 같은 인내를 가지고 참고 견디어야 예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다. 예수님의 나라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생활이며 예수님과 영적 교통이 이루어져서 예수님으로 즐거워하고 예수님으로 사는 생활이다. 환난과 나라와 참음은 갈라놓을 수가 없다. 예수 믿는 성도가 법적으로는 하늘나라를 얻어 놓았으나 실지로 자기 심령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못하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없고,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져서 능력의 역사가 없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 밖에서 사는 사람이다.

누가복음 18:8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예수 믿는 자를 볼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고기 잡는 비유(마13:47-50)에서 그물에 고기가 가득히 차 있었던 것처럼 교회에 교인들은 가득하나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말씀의 생명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아가는 산 믿음을 가진 자는 많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도 대부분이 육의 사람으로 예수를 믿고 인간적인 사교와 사랑을 기대하며 종교 사업과 인간의 친목적인 활동에 만족하면서 자기를 위해 주기를 바라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것은 산 믿음이 아니다.

五. 삼대 발견(10-17)

.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 을 들으니

주의 날은 안식일(토요일)이 아니고 그 다음 날인 주일(일요일)을 가리킨다. 사도 요한이 자기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한 음성이다. 다른 사람은 함께 있으면서도 잘 듣지 못한다.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여 밧모섬까지 귀양살이를 갈지라도 말씀을 끝까지 지키는 사도 요한에게는 성령의 감동이 크게 임하여 나팔 소리와 같이 들리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심령이 둔해져서 감동을 받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감동은 있으나 너무나 약하고 힘이 없다.

나팔 소리만큼 크게 감동이 되었다는 것은 사도 요한이 영적 세계에 깊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성령의 감동이 약하여진 것은 그만큼 생명의 역사가 약하여진 것이고, 감동이 끊어진 것은 신앙이 벌써 죽은 증거이다. 성령의 감동이 점점 커져야 희망이 있는 사람이고, 영이 자라나는 사람이다. 성도는 누구나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면 감동을 크게 받을 수 있다 또 성령의 감동을 귀하게 여겨서 성령께 순종하고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의 감동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 1: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소아시아 지방에는 당시에 본문의 일곱 교회 외에도 여러 교회가 있었다. 본문의 일곱 교회만 예수님이 대표해서 택하신 것은 신약시대의 교회 전체가 이 일곱 교회의 형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신약시대의 모든 교회들은 이 일곱 교회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 1: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몸을 돌이켜 이것은 회개하였다는 말이고 세상으로 향하였던 것을 온전히 주께로 돌이켰다는 말이다. 온전히 돌이킬 때에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 세상을 향하여 나가고, 사업주의로 나가고, 우상을 찾아 나가고, 자기를 위하여 나가던 자리에서 온전히 그리스도께로 돌이켜서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그리스도가 보이는 것이다.

돌이키지 않으면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없다. 믿는 성도들도 현실 세상 중심으로 살고, 육신 중심으로 살며, 명예 영광을 위하여 나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신령한 세계는 거기에서 볼 수 없다. 우리는 그러한 자리에서 온전히 돌이켜서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를 상징한다. 사도 요한이 돌이킬 때에 금 촛대를 보았다. 금 촛대로 되어 있는 이 교회는 제도적인 교회가 아니고 영적 교회를 가리킨다. 영적 교회는 세계 공동의 유일한 교회( :에클레시아)이다. 이 교회는 지금 건설 도중에 있으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천상 천하에 하나로 되어 있다.

영적 교회는 금 촛대와 같이 아름답다. 예수님이 피 흘려서 값 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생명이 넘치고 금 촛대와 같이 아름답고 보배로운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귀한 보배요 영원 불멸의 존귀한 것이 교회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붙들고 금 촛대를 건설하여 나가는 중에 있는 것이다.

영적 교회는 인간적인 것이나 세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으며 섞은 것이 없이 순수한 것이다. 이러한 교회가 세상에서 이루어져 나가다가 영원히 하늘 나라에까지 그대로 가는 것이다. 이 영적 교회의 기초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이 터 위에다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다. 금 촛대(교회)는 점점 만들어져 성장하여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계셔서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으로 만들어 가신다.

성령의 감동과 중생한 영혼을 써서 일심정력을 다 기울여 말씀과 영감을 순종할 때에 조금씩 금 촛대가 이루어져 나간다. 영적 교회이기 때문에 영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으로 예수 믿는 것과 육으로 예수 믿는 것과는 다르다. 육으로 예수 믿으면 영적 교회를 이루어 나가지 못하고 영으로 예수를 믿어야 영적 교회가 이루어져 나아가게 된다. 육으로 믿는 신자는 중생한 영혼이 자라나지 못하여 항상 어린아이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신령한 신자들이 되지 못하고 육에 속하였다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3:1-3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라고 하였다. 고린도 교회는 신령한 교회로 자라나지 못하였고 따라서 젖이나 먹는 교회이었다. 육에 속한 신자는 믿기는 믿으나 영이 자라나지 못하여 어린아이 상태에 있는 것이다. 지금도 고린도 교회와 같이 육에 속한 교회가 많다. 육의 사람으로 예수를 믿고 육의 사람끼리 모여서 친목하고 육의 사람을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고 기쁘게 하여 준다.

그러므로 육에 속한 교회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고, 교역자도 강단에서 육에 속한 신자가 좋아하는 말씀으로만 가르친다. 모두가 육에 속해서 하나님께서 신령한 말씀을 가르쳐 주어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회는 교인은 많이 모였으나 신령한 면으로는 조금도 커진 것이 아니다. 금 촛대가 아니고 육의 교회만 커진 것이다. 즉 무화과나무에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것과 같아서 교인만 많았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영적 열매는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하신 것도 영에 속한 순금 등대를 이루어 나가는 신앙을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성도가 영에 속한 보배로운 교회를 발견하면 너무 아름답고 보배로워서 어찌 할 줄을 모르며 생명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존귀한 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교회에 손해를 많이 준다. 또 신령한 교회를 육의 교회로 끌고 가는 탈선 행위가 나오게 된다. 참된 영적 교회를 발견하고 또 이루어 나가려면 성도가 먼저 영에 서야 한다. 영적 세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와 교통하여 영적 감동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야 하며 말씀으로 날마다 영적 교회가 건설되어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교회에 주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말씀으로 이겨 나아갈 때 영적인 힘이 길러지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주어지는 시험, 국가적으로 주어지는 시험,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시험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서 영적인 힘과 지혜와 지식을 길러 나아가야 한다. 교회에 시대적으로 오는 시험이 있는데, 항상 말씀을 붙들고 그 시험을 이겨야 순금 촛대가 만들어진다.

감동에는 외부적 감동과 내부적 감동이 있다. 외부적인 감동이란 육신에 속한 감정적인 감동이다.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육의 감정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감동은 설교를 듣는 그 순간은 감동(육의 감동)이 되어도 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성령이 영혼 속 깊은 가운데 역사하여 영적 감동이 일어나야 한다.

힘을 내는 것도 두 가지가 있다. 영으로부터 나오는 힘이 있고 외부적인 것을 받아서 나오는 힘이 있다. 교역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아 강도(講道)할 때는 영이 영에게 말하여 감동을 크게 받는다. 이러한 감동이 참된 감동이다. 영적 감동과 육의 감동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나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반드시 미혹 받을 날이 온다. 감동에 대한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육의 감정에 끌리기 쉽고 그릇된 신비주의에 미혹되기 쉽다.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영적 감동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교회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여야 하는데 그것은 힘이 들고 어려우므로 육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교회가 많다. 참 교회를 위하여 예수님이 피를 흘리셨고 성령께서도 참 교회를 세우시려고 지금 역사하고 계신다. 현대 교회들이 영적 역사는 중단되고 세속화되어 인본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예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말씀이 응해지는 것 같다.

순금 촛대가 이루어져 나아가는 교회가 되려면 말씀 가운데서도 좀 더 단단하고 요긴한 말씀을 받아 영으로 그 말씀을 깨닫고 거기에 도달하려고 힘을 써서 영이 자라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자라난 것은 조금 자라났어도 금보다 귀한 보배이고 하늘나라에서 영원, 무궁하도록 남아 있는 촛대가 되어 영광스러운 것이다. 성도가 순금 촛대로 만들어졌으면 그 인격이 보배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육의 감동과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은 풀이나 나무나 짚으로 만든 것이 되어 주님 재림하실 때에 불에 타서 없어지고 만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만 주의 재림 때에 상급이 있다. 영혼이 하나님말씀과 영적 감동으로 자라난 것은 금 촛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였어도 거기에 인간적인 것이 조금이라도 섞였으면 안 된다. 곧 성경대로 하여도 자기를 위하는 것이나 억지로 하는 것은 금 촛대가 만들어지지 못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 때문에 아니할 수 없어서 하는 것은 순수한 것이다. 자기를 위하는 정신이 온전히 빠져나가고 하나님만 위하는 정신과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해나가야 바로 된 것이다. 또 그 일을 할 때에 인간의 힘과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 하여서는 안 된다.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여야 한다.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자기의 신앙이 바르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 대부분의 교역자들이 하나님께 바로 하는 것은 둘째로 하고 교회를 크게 하겠다는 데에만 마음을 다 쏟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나님께 바로 되기를 힘쓰고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대로 순종하여 나아가면서 하나님께서 교인을 보내 주시는 대로 충성을 하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양보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섞어서 교회를 인도하면 외부적으로는 큰 교회가 만들어질지 모르나 순금 촛대는 만들어지지 못한다. 순금 촛대가 되지 못하는 것은 인본주의요, 인본주의로 만들어진 것은 다 불에 타서 없어지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영이 날마다 자라나며 하나님의 뜻에 피동 되어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영적 교회가 커진 것만 온전한 것이다.

순금 촛대를 만들어 가는 것은 아주 어렵고 까다롭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다. 진리(하나님 말씀)를 조금만 양보하면 많은 사람에게 환영을 받을 터인데 그 진리를 세워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멸시를 받기도 하고 많은 환난과 고통을 당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위로해 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순금 촛대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 1:13-14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같은 이"라고 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에. 부활하기 전의 예수님과 같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신령한 몸으로 교회에 항상 같이 하여 주시며,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신다(마28:20)

발에 끌리는 옷은 제사장의 옷을 상징한 것이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 속죄 제사를 드려 주신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다.

가슴에 금띠 예수님의 왕권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며,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잡으신 만유의 왕이시다. 또한 "금"은 믿음을 상징하는데,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는 것은 믿음으로 모든 것을 단장하였다는 뜻도 있다(엡6:14; 벧전1-7 참조).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이것은 예수님의 완전한 성결을 가리킨다(사1:1참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고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여 완전한 성결을 이루신 것이다.

그의 눈은 불꽃같고 주님은 모든 것을 통찰하신다(요1:4,: 4:18 참조). 사람의 마음, 심령골수까지 다 통찰하시며 과거와 현재의 모든 숨은 죄를 다 살펴보시고 계신다. 예수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같이 다 드러나서 숨길수가 없는 것이다(히4:13).

. 1: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두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걸어가신 발걸음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여 단련한 주석과 같이 빛나는 발걸음이 되었다고 볼 수 있고, 둘째는 단련한 주석과 같은 견고한 발로써 대적들을 밟고 죄인들을 심판하신다는 뜻이 있다(사63:1-6).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예수님의 위엄과 권위를 잘 나타내 준다. 예수님이 한마디 말씀하시면 천하에 있는 것을 일시에 다 망하게 할 수 있는 권위가 있는 것이다.

. 1: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별"은 교회의 사자를 가리키는데 예수님의 오른손에 교회의 사자가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교회의 사자를 붙들고 쓰신다는 뜻이다. 교회의 사자는 주님이 친히 붙들고 쓰시며 교회의 사자가 잘못 나가면 주님이 내버리신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오른손에 붙들고 쓰시다가 나중에는 버리셨다. 사울 왕이 버림받은 것은 ① 자기를 위하고 ② 교만하였기 때문이었다. 자기를 위하고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으므로 내버리신다. 교회의 사자가 종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을 복종하면 하나님께서 오른손에 붙잡고 귀하게 사용하시며,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귀히 여겨 특별히 보호해 주신다.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날선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므로 그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다(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능력이 있다.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을 용납함으로 주님이 날선 검을 가지고 찾아 가셨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여 끊어 버려야 하는데 버가모 교회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주님께서 이러한 버가모 교회 사자에게 "네가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내 입의 검으로 싸우리라"고 책망하셨다. 진리에 굳게 서서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하여야 한다. 말씀에 위반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인간적인 결점이나 실수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말씀에 위반된 것은 용납하면 안 된다. 말씀에 위반된 것을 용납하면 마지막에는 자기가 하나님의 날선 검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 말씀이 아닌 것은 칼로 베는 것처럼 잘라 떼어 나아가야 주님이 아주 기뻐하신다. 가령 음식에 먹지 못할 것이 섞여 있는데 어린아이가 분별없이 그냥 먹으려고 한다면 그 부모가 얼마나 안타까워하겠는가? 그러나 그 집의 종이 먹지 못할 것을 제거한다면 주인이 아주 기뻐할 것이다. 어린아이가 섭섭해 할까봐 그대로 놓아두면 주인이 그 종을 옳다고 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 "진리인가 비진리인가" "인본주의인가 신본주의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가 인간으로부터 온 것인가" "주님을 위한 것인가 사람을 위한 것인가"를 분별하여 갈라놓아야 한다.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예수님의 영광이 충만하여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같이 된 것이다.

. 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사도요한이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볼 때 죄와 허물로 너무 한심하기 때문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 과거에는 괜찮은 줄 알았으나 영광이 충만하고 불꽃같은 눈앞에 자기 정체가 드러나고 빛난 주석 같은 발로 심판하실 것을 깨달았을 때에 주님 앞에서 기절을 하여 거꾸러진 것이다. 사도 요한과 같은 예수님의 제자도 예수님을 다시 발견할 때에 그 앞에서 거꾸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사도 요한은 예수의 환난과 어려움에 동참한 사람이며 믿음을 지키다가 밧모섬에 정배(定配)가지 않았는가!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사랑을 받던 제자인데 예수님의 빛에 자기가 드러날 때 거꾸러져 죽은 상태가 되었다. 거꾸러진 요한을 예수님이 오른손을 얹고 붙들어 주시며 "두려워 말라"고 위로해 주시고 격려하여 주셨다.

처음이요 나중이니 너의 구원의 시작이 예수님이요, 나중까지 너의 구원을 이루어 줄자도 예수님이라는 뜻이다. 요한이 자신의 참 모습을 볼 때 비참하고 한심한 상태임을 깨달아 예수님 앞에 거꾸러졌으나, 요한의 구원을 예수님께서 책임지고 이루어 나갈 것이라고 위로해 주신 것이다.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요한을 붙들어주셨고, 지금도 붙들어 주시며 나중에도 붙들고 쓸 것이니 두려워말고 일어나도록 주님께서 자비로운 음성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六. 요한을 붙드시고 사명을 주심(18-20)

. 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여 항상 살아 계시고 성도들을 산 생명의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예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 자에게는 산 생명을 계속 주시는 것이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다 정복하여 부활로 승리하신 예수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사망과 음부의 세력이 우리 앞에 있을지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 본 것과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로 보여 주신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를 가리킨다(12:16절). 하나님께서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를 이루어 나가시는 일이 중요하므로 그 일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성도가 영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고 나가면 원수를 다 이기고 순금 촛대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순금 촛대를 이루어 나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말씀을 순종한 것만큼 금 촛대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점점 높은 진리의 말씀을 순종하여 점점 크고 아름다운 금 촛대를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성령은 진리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진리가 초보적인 말씀뿐이면 아무리 성령의 역사가 강하다고 하여도 그 이상의 높은 영적 성전은 건설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영적 성전을 건축하여 나아가는데는 점점 높은 진리를 받고 그 진리에 도달하려고 힘을 써서 도달하여야만 아름답고 견고한 영적 성전이 건설되어 가는 것이다. 순종하기 어렵고 도달하기 힘든 말씀도 순종하려고 힘을 쓰고 도달하려고 노력을 하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역사하여 마침내 순종할 힘이 나오고 도달하도록 만들어 주신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말씀대로 자기의 인격을 만들어 갈 때 과거에 없던 것이 많이 생기게 되고 보지 못하던 세계를 발견하게되고 미지의 세계를 점점 개척해 나아가게 된다. 그것이 곧 영적 진보이다.

이제 있는 일 일곱 교회의 형편과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말씀해 주신 모든 사실을 가리킨다.

장차 될 일은 미래의 예언적인 구원과 심판이다. 요한 자신뿐만 아니라 만대에 모든 사람들이 이 계시를 통하여 영적 성전을 잘 이루어 나아가도록 사도 요한에게 이 계시를 주시고 또 기록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 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별의 비밀 별은 교회의 사자(使者), 곧 교역자를 가리키는데, 사자의 비밀은 하나님의 말씀과(엡1:9) 그리스도이다(엡3:3-4 ; 골2:2). 하나님의 종을 비밀이라고 한 것은 교역자를 통해서 천국 비밀의 복음을 전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종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여 주시고 그 일을 하신다(암3:7). 비밀의 복음을 하나님께서 종 된 선지자에게 먼저 알려주시고 그 선지자를 통하여 그 비밀을 가르치게 하신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만들어진 대로 교회가 되어 나간다. 교역자가 잘 만들어지지 못하면 교회가 잘 되지 않고 교역자가 신령한 세계에 들어갔다면 교인들도 신령한 세계에 들어간다. 교역자가 타협주의로 나가면 교회가 타협주의로 나가고 교역자가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믿는 일을 하면 교회도 일심정력을 기울인다. 교역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을 두려워하면 교인들도 하나님과 말씀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이장(二章)과 삼장(三章)을 보면 예수님께서 교회를 직접 책망하거나 칭찬하지 않으시고 교회의 사자를 책망하거나 칭찬하시었다.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교역자이다 교역자가 만들어진 것만큼 교회가 만들어진다. 먼저 교역자가 단단한 식물을 먹고 장성하여 그것을 교인들에게 먹여주면 교인들도 단단한 식물을 먹고 자라난다. 교역자가 불의를 제거하고 의를 세워나가면 교인들도 불의를 제거하고 의를 세워나가려고 힘을 쓴다. 교역자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여 부르짖고 힘을 쓰면 교인들도 교역자를 닮아간다. 교역자가 나태하여지고 세상주의로 나가면 교인들도 나태하여 세상주의로 나간다. 교역자를 보면 그 교회의 정도를 대강 알 수 있다. 교역자는 참으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일반 성도들도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밝히 깨달아 자기가 지금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을 똑바로 알고 나아가야 한다. 말씀에 비추어 믿음으로 "현재"를 통과하면 현재가 구원을 이루는데 이용될 것이고, 말씀대로 "현재"를 살지 못하면 현재가 장차 올 심판의 원인이 될 것이다. 같은 사건을 당하고 같은 현실을 당하였지만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현재를 통과하면 구원을 이루어 하나님께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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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2장

제 2 장 속화와 수난

(대 지)

一. 에베소 교회-처음 사랑을 잃음(1-7)

二. 서머나 교회-환난을 당함(8-11)

三. 버가모 교회-속화됨(12-17)

四. 두아디라 교회-이세벨을 용납함(18-29)

(본문강해)

一. 에베소 교회-처음 사랑을 잃음(1-7)

.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교인들을 상대로 하지 않고 사자를 상대로 편지하였다. 이것은 사자의 신앙 상태대로 교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교역자는 교회의 대표이기 때문에 교역자에게 편지한 것은 교회 전체에게 편지한 것과 같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주님이 나타나신 모양이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이다. 교회의 사자가 복음의 빛을 어두운 세상에 별과 같이 비추고 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사자를 친히 오른손에 붙잡고 주장하신다.

충성스러운 사자에게 은혜를 주시기도 하고 게으르고 악한 사자에게는 징계하기도 속히 하신다. "촛대"는 교회이다. 교회를 옮기고 옮기지 않는 권세가 예수님께 있다. 교회 가운데 예수님이 계셔서 교회를 홀로 주장하신다.

. 2:2-3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에는 칭찬 받을 만한 일이 많이 있었다.

첫째, 행위가 아주 좋아서 칭찬 받을 만 하였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도 행위 면은 아주 좋아서 칭찬을 받았다.

둘째, 하나님의 일을 하느라고 수고를 많이 하였다. 에베소 교회는 교인이나 교역자가 모두 행위가 좋고 주의 사업에 수고를 많이 한 것 같다.

셋째, 잘 참고 견디었다.

넷째,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썩게 하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전5:6). 에베소 교회는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힘을 많이 쓴 것 같다.

자칭 사도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나 자기 스스로 사도라고 하는 자들이다. 거짓 선지자들을 시험하여 드러낸 것은 교회를 순수하게 지켜 나가는데 아주 적절한 조처이었다. 교회는 교역자가 참된 교역자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교역자가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가 잘못 가르치는가를 분별하고, 또 교역자가 신본주의로 나가는가 인본주의로 나가는가를 분별해야 한다. 교역자가 교회를 영으로 인도하는가 육으로 인도하는가를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역자가 성경을 영의 양식이 되도록 올바로 가르치고 영으로 인도하며 모든 것을 성경에 맞도록 해 나가면 좋은 교역자이다. 그러나 교역자가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거나 육으로 교인을 인도하거나 성경 말씀을 어기면서 나가는 교역자는 참된 교역자가 아니다. 이러한 교역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자칭 교역자"라고 볼 수 있다. 성도는 믿음으로 모든 일을 인내하고 나아가야 한다. 환난이 와도 참고, 기쁜 일이 있어도 절제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자제하면서 믿음에 손해 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교역자가 경박하고 경솔하여 조금 기분이 좋으면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고 조금 기분이 나쁘면 왼쪽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꿋꿋하게 나아가야 한다.

.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가 주님께 책망 받은 것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었다. 이것은 참으로 중대하기 때문에 만일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다시 찾지 아니하면 주님께서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 경고하셨다. 촛대를 옮긴다고 하는 것은 교회에서 영적 생명의 역사가 떠난다는 뜻이다. 교회에서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면 예배당 건물이 아무리 훌륭하고 교인이 아무리 많이 모여도 그것은 이미 죽은 교회가 된 것이다. 처음 사랑은 영적 세계의 사랑이다. 사랑의 세계와 영적 세계와 그리스도의 안과 빛의 세계는 모두 하나이다(요일3:14-15; 47-8 참조). 빛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 안에 있으므로 거기 사랑이 있고 영적 생명이 있는 것이다. 사랑의 세계를 잃어버리면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빛과 하나님 안과 영적 세계를 다 잃어버리는 것이다. 처음 사랑은 영적 세계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세계를 맛보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사랑이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처음 사랑은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중생한 영)의 본질에서부터 나오는 사랑이다. 중생한 영의 본질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 있고 사랑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이 역사하여 예수를 사랑하게 되며, 이 중생한 영의 역사를 따라 살 때에 사랑의 역사가 있게 된다. 처음 사랑은 구원받은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믿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고, 주를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라도 바치려는 생각이 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사랑이 있으면 항상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주를 사모하는 마음이 뜨겁고, 성경말씀이 은혜가 되어 꿀보다 달다.

처음 사랑은?

①물질을 초월한 사랑이다(행2:44).

②고난을 초월한 사랑이다(출1:24).

3생명을 초월한 사랑이다(살전2:8).

오늘날 성도들이 처음 믿을 때에 이 사랑 안에서 살다가 얼마쯤 지나면 대개는 잃어버린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영이 자라서 힘(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은 없으나 처음 사랑을 하나님께서 맛보라고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잘못하면 잃어버리기 쉽다. 처음 사랑을 자기 실력으로 소유하였더라면 그 사랑이 계속 유지되고 더욱 커지겠으나 실력은 없이 처음 사랑의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마귀가 그것을 빼앗으려고 역사하여 시험과 유혹이 들어오고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에는 대개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려도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몇 번 주신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나가면 영적 생명의 역사를 다 거두어 가신다. 이것이 촛대를 옮긴 것이다. 그러하더라도 외부적인 교회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모이고 운영이 잘 되어 나갈 수도 있다.

사울 왕을 하나님께서 버린 뒤에도 사울이 오랫동안 왕 노릇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생명의 역사도 없었으나, 사울은 수십 년간 왕 노릇을 계속하였다. 영적 세계와 생명의 세계와 빛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는 하나이기 때문에 사랑을 잃어버리면 영적 세계에서 떠나게 되고 영적 세계에서 떠난 교회는 빈 껍데기만 남는다. 처음 사랑을 찾으려면 먼저 잃은 원인을 찾아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다 떨어졌으면 세상 사랑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기도 안 하다가 떨어졌으면 힘써 기도하고, 사업이나 다른 일에 시간을 많이 빼앗겼으면 그 시간을 하나님께 기울이고, 예배 시간 빠지다 떨어졌으면 예배 시간을 열심히 참여하고,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으면 회개하고 하나님과 진리를 사랑하고, 양심을 쓰지 않다가 떨어졌으면 회개하여 선한 신앙 양심을 쓰며 믿는 일에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옛날의 처음 신앙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더욱 크게 만들어 주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서 먹게 하신다(7절).

. 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니골라당은 2:14-15에 보면 발람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니골라당이나 발람의 죄는 이스라엘 자손 앞에 올무를 놓아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만 잘못된 길로 갈 뿐 아니라 다른 성도들까지 속화시키고(음행) 성경을 어기게(우상의 제물 먹음)하여 세상주의로 나가게 한다. 니골라는 이러한 당파를 만들었다. 이러한 자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은 죄를 미워하는 것이며 죄를 미워하는 것은 주님이 잘했다고 칭찬하시는 것이다. 잠언 8:13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하였고, 시편 97:10에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고 하였다.

.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먹게 하리라

이기는 그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데서 이기고 나와서 처음 사랑을 가지는 자를 가리킨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 교회가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찾으면 곧 생명의 세계를 찾게 되고, 생명의 세계를 찾으면 생명의 역사가 있어서 새 생명이 자라난다. 그때에 의와 기쁨과 평강이 충만하게 된다. 이것이 생명의 과실을 먹는 것이다.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찾으면 자기도 생명의 열매를 먹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생명의 열매를 나누어 줄 수 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가 몇 가지 잘한 행위를 가지고 자랑하다가 처음 사랑이 떨어진 것이다. 기독교 사업은 잘하였으나 사업에 치중하다 보니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시간이 없어졌고, 영적 교통이 끊어짐으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고,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은 것은 좋은 것이지만 죄를 미워하다가 사람까지 미워하여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긍휼이 없는 사람은 사랑의 세계를 잃어버린다. 긍휼이 없는 사람은 긍휼 없는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약2:13). 남을 비판하고 헤아리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비판하고 헤아리게 된다. 죄는 미워하고 사람은 사랑하여야 한다. 처음에는 믿는 일을 잘하다가 나중에 망한 사람이 처음부터 잘하지 못하고 망한 사람보다 더 많다. 잘하면 그것 때문에 교만하여 지기 쉽고 교만해지면 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해짐으로 그때부터 소망이 있다. 잠언 18:12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였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여야 한다(고전10:12) "섰다"하는 생각이 들어오지 않도록 항상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자기를 날마다 쳐서 복종시키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결국에는 망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낱말이 헬라어로 네 가지가 있는데,

1 아가페( ) : 영적인 고상한 사랑

2 스톨게( ) : 동족애, 인연으로 맺어진 사랑.

3 휠리아( ) : 친구간의 사랑(우정).

4 에로스( ) : 이성적(정욕적) 사랑이다.

처음 사랑이란 아가페 사랑을 말한다. 즉 신령한 생명의 세계(영적 세계)로부터 중생한 영의 본능에서 나오는 사랑이요, 하나님의 세계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이것은 영이 깨어서 새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사랑이다. 영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이와 같은 사랑을 할 수 없다. 이 아가페 사랑이 없는 곳에는 인간의 사랑으로 기울어진다. 교회 안에 인본주의 사랑(사교적인 사랑, 육신적인 사랑)이 아무리 흘러 넘친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사랑이 아니다. 영으로부터 나오는 처음 사랑을 가지려면 먼저 영이 살아야 하고 빛의 세계에 들어가서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중생한 영에 생명의 역사가 있을 때는 그 영의 본능에서 사랑이 나오게 되는데 그때에 더욱 사랑을 하려고 힘써야 한다.

베드로전서 1:22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하였다. 영이 살아서 진리를 순종하면 영이 점점 자라난다. 중생한 영이 본능적으로 사랑하지만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기를 힘써야 되는 것이다.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사랑을 하려고 힘써야 한다. 구제 받으려고 하지 말고 구제하려고 해야 한다. 사랑은 샘에서 물을 퍼내 쓰는 것과 같다. 샘에서 물을 자주 퍼내 쓰면 자꾸 새로운 물이 나오게 된다. 물이 적다고 아끼고 퍼내어 쓰지 않으면 물이 썩어서 냄새가 나고 먹을 수 없다. 사랑하지 않는 성도는 이미 자기에게 있는 사랑도 없어지고 만다. 자기에게 있는 사랑을 자꾸 나누어주고 선한 마음을 쓰면 자꾸 사랑이 나오게 된다. "이 교회에는 사랑이 없다"고 하지 말고 자기가 먼저 사랑을 주려고 힘을 써야 한다. 자기가 남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면서 기도하여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여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보는 사람과 같다. 사랑을 받을 생각만 하면 마귀가 역사하여 시험에 빠진다. 사람의 욕심이 땅보다 두껍기 때문에 자기가 도움을 받으려는 기대를 버리지 않으면 열 번 사랑을 받다가 한 번만 못 받아도 불평과 불만이 나오게 된다. 자기의 기대에 만족하지 못하므로 마지막에는 시험에 들게 된다. 사랑은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한다. 성도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다가 가는 것이다.

二. 서머나 교회-환난을 당함(8-11)

.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처음이요 나중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신 분이 주님이시고 나중까지 완성하실 이가 주님이시라는 것이다(1:17-18). 서머나 교회에 처음이요 나중 되신 주님으로 나타나신 이유는 서머나 교회가 현재 큰 환난을 당해서 살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희 구원을 처음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나중까지 구원을 완성시켜 나가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서머나 교회에 큰 위로와 소망을 주신 것이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서머나 교회에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으로 나타나셔서 환난을 당한 서머나 교회를 위로하여 주시었다. 서머나 교회가 지금 환난을 당하여 죽을 지경에 빠졌으나 부활의 소망을 견고히 붙들고 믿음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죽은 것 같으나 다시 살아나고,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서는 생명이 있다. 환난을 당하여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으나, 살려 주시는 주님이 찾아 오셔서 부활의 소망을 주시고 더욱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시는 것이다.

.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서머나 교회는 큰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잘 지켰다. 그리하여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있으나 실상은 부요하다는 주님의 인정을 받았다. 외부적으로는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있으나 영적으로는 부요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서머나 교회가 믿음을 잘 지켰기 때문에 환난과 궁핍을 당한 것이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지 않고 나가면 세상에서 환난과 궁핍을 당하지 않고 평안히 잘 살 수도 있으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에 환난과 궁핍을 당하게 된다. 양심을 한번 속이고 진리를 한번만 양보하면 세상에서는 잘 될 수도 있고 부요해질 수도 있으나 신앙 양심을 지키고 성경 말씀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환난과 궁핍이 온다. 그러나 환난과 궁핍을 당하더라도 신앙 양심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①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2성경에 명문화되어 있지 않는 것은 성경의 원리원칙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성경의 원리원칙에 맞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다. 성경의 원리원칙에 맞으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순종하여야 한다.

3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4신앙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5성령의 감동과 인도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성경을 어기고 성경의 원리원칙을 떠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믿음을 지키지 않고 세상의 것만 잘하여 놓은 사람은 영적인 면은 벌써 망한 것이다. 진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서 높아지고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영적으로는 벌써 망한 것이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려고 요한에게 나가셨을 때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대답하셨다(마3:13-15). 요한의 신분이 예수님보다 높고 낮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요한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것이다. 의(義)가 있는 곳에 하늘나라가 이루어지고 의가 없는 곳은 마귀의 나라가 된다. 환난이 오고 궁핍을 당할지라도 믿음을 지키고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성도가 세상에서 환난과 궁핍을 당하는 것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잠시 잠깐 후에 하늘나라에 가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어 놓은 의(義)가 영원히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곧 순금 촛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요즈음 공무원 채용시험이나 대기업 사원모집 시험을 주일에 실시하여 주일을 지키려는 성도들은 시험을 치를 수도 없고 취직하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주일날 한번만 시험을 치르고 취직한 후부터는 주일을 잘 지키겠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다. 주일날 시험을 치러 좋은 곳에 취직이 되고 많은 월급을 받는다고 하여도 영적으로는 낮아진 것이요, 가련하고 궁핍한 가운데 빠진 것이다. 차라리 육신이 궁핍하고 영이 부요하여지는 것이 훨씬 좋다. 왜냐하면 육신은 잠시 잠깐 후에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갈 것이고 영은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이다. 육은 아침 안개와 같이 잠깐 보이다가 없어질 것이고 믿음을 지킨 의는 영원히 남는 것이다. 예수님은 믿음을 지킨 자를 알아주신다.

아노니하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알아주신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0:32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이것은 사람이 믿음을 지키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앞에서 저를 인정하여 주겠다 는 뜻이고, 사람이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앞에서 저를 부인하겠다는 뜻이다. 환난과 궁핍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키는 자가 있고, 반대로 환난과 궁핍을 당하지 않으려고 믿음을 팔아먹는 사람도 있다.

성도 가운데 영에 속한 성도가 있고, 육에 속한 성도가 있으며, 좁은 길로 가는 성도가 있고, 넓은 길로 가는 성도가 있다. 시험을 이기고 믿음을 지켜 나가는 사람이 있고 시험에 넘어가서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자칭 유대인"이란 자칭 기독교인이란 뜻이다. 하나님은 인정하시지 않는데 자기 스스로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시면 교회는 영적 생명의 역사가 떠나고 껍데기만 남게 되는데 그 껍데기만 붙잡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이다. 성경말씀을 내버리고 신앙양심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칭 유대인이다. 믿음을 지키는 참 성도는 환난과 궁핍을 당하나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칭 유대인은 세상에서 잘 살고 편안할 수 있다. 세상의 것으로 부요하고 세상에서 편안한 자리에 있어 성공한 것 같을지라도 의를 배반하고 믿음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자칭 유대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촛대를 옮겨 놓아 생명의 역사가 떠난 것이다. 자칭 유대인은 참 성도를 훼방한다. 참 성도는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고 신앙양심과 의리를 지키고 항상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다. 참 성도를 핍박하는 사람은 불신자도 있지만 오히려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다. 믿음을 잘 지키지 않는 성도가 믿음 잘 지키는 성도들을 더욱 훼방하고 핍박하는 경우가 많다.

열왕기상 13:11-26에 유다에서 한 젊은 선지자가 벧엘로 올라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외친 후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순종하여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한 늙은 선지자가 그 사람을 꾀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젊은 선지자가 처음에는 강경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고 하였으나 늙은 선지자가 "나도 선지자"라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고 하는 바람에 그 젊은 선지자는 속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자에게 찢겨 죽었다. 예수를 바로 믿으려고 하면 자칭 유대인의 훼방도 많고, 예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여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유혹을 받는 때도 많다. 그때마다 받은 말씀을 기억하고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 디모데후서 3:14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바울이 말하였다 자기가 배우고 확신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말고 굳게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깨닫게 하여 주신 진리를 버리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한번 깨달은 진리는 죽을 때까지 순종하고 도중에 변경시키면 안 된다. 도중에 변질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고 처음이나 나중이나 똑같아야 한다. 처음에 진리가 옳다고 깨달아 붙잡았으면 어떠한 고난이나 훼방이 올지라도 끝까지 그 진리를 붙들고 그 진리를 세워 나가다가 죽어야 한다. 진리를 깨닫고도 세워 나가는 일이 힘이 들기 때문에 도중에 인간의 지혜와 수단을 섞어 변질시키면 안 된다.

.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성도에게 장차 받을 고난이 반드시 있다. 그것을 미리 내다보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면 고난이 올 때에도 예상하였던 고난이 왔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 나갈 수가 있다. 고난이 올 때에 이상히 생각하면 안 된다. 베드로전서 4:12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고 하였다. 여름 날씨는 더웠으나 겨울이 되면 추워서 물이 꽁꽁 언다. 그러나 그 추위는 이미 예상하였던 일이므로 춥다고 하여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겨울이 올 것을 생각지 않고 준비를 안하고 있다가 겨울이 올 때에 벌벌 떨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예수를 성경대로 믿으려고 하면 고난이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고난이 올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에 굳게 서야 한다. 두려워하는 자는 기드온 삼 백 명 용사 중에 들지 못했다(삿7:2-3).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하리니 성도가 전부 옥에 갇히는 것이 아니고 몇 사람만 갇히게 된다. 마귀가 사람을 격동시켜 성도들을 옥에 가두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를 가두는 줄로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 속에 마귀가 들어가서 그렇게 하는 줄을 깨달아 그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된다. 마귀가 성경대로 믿으려는 성도를 훼방하고 거짓으로 비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악감을 품게 만들어 그 성도를 똘똘 몰아 매장하는 일은 곧 감옥에 가두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이 허락해서 된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을까? 그 성도에게 더 좋은 것, 더 큰 은혜를 주시고 영광의 면류관을 주기 위함이다. 왜정 말기에도 신사 참배한 목사님들이 신사참배하지 않는 목사님들을 똘똘 몰아 부쳐서 "별나게 믿고 교만한 자들"이라고 하여 심지어 제명시키고 일본 관헌에게 고발하여 감옥에 갇히게 한 경우가 많았다.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정하여 놓으신 일정한 기간 동안만 환난을 당한다는 뜻이다. 10수는 인간의 완전수이다. 마귀가 무한정으로 성도를 괴롭힐 수는 없고 하나님께서 정하여 놓은 일정한 기간에만 가능한데 그 기간이 결코 긴 기간은 아니다.

십 일 동안은 사람과 사건에 따라서 다르다. 때로는 몇 달 몇 년이 될 수도 있으나 반드시 끝나는 시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정하여 놓은 기간을 다 채워야 환난이 끝난다. 어떤 사람은 9일까지 채우고 마지막 하루를 못 채우는 자가 많다.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다(고전10:13).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다 아시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주신다. 그러므로 무슨 시험을 당하든지 감당할 시험만 주신 줄 알고 죽도록 충성하면 다 이기게 된다. 하나님께서 옳다 인정할 때까지 충성하여야 한다(약1:12). 환난 가운데 믿음을 지키다가 살면 좋고 죽으면 더 좋다. 살면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가고 하나님의 일을 하니 좋은 것이고 죽으면 이 세상보다 더 좋은 천당에 가니 더 좋은 것이다. 환난을 받을 때에 "처음 사랑"과 "영적 생명의 세계"와 "빛의 세계"에 있으면 마귀가 아무리 강하게 역사하여도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서 망하지 않는다. 십 일 동안의 환난을 믿음과 충성으로 통과하면 영적 생명이 많이 자라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환난이 필요한 것이고 환난은 귀한 것이다. 그러나 환난이 없는 사람이 일부러 환난을 찾아가면 안 된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기 위치에서 믿음을 지키어 나가야 한다. 평안한 환경을 주시면 거기에서 믿음을 잘 지키고 환난을 주시면 또 거기에서 믿음으로 환난을 이겨야 한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하나님은 죽도록 충성하는 것을 요구하신다. "충성"은 맡은바 일을 기어코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자기의 맡은 사명과 달란트가 있는데 그것을 위하여 생명을 내놓고 충성해야 한다. 진리 운동하다가 환난과 핍박이 와도 진리대로(성경대로)만 행하고 그것 하나만 하는 것이 충성이다. 진리운동을 하다가 훼방하는 사람이 많고, 진리를 세워 나가는 일이 힘들 때에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써서 진리를 변질시켜 나가면 죽도록 충성을 하지 못한 것이다. 진리에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섞어 인본주의로 나가면 훼방도 없고 외형적인 교회는 잘되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도 없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수단으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한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서서히 촛대를 옮겨 놓으신다. 반대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여 나가는 충성된 종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고 힘과 능력을 입혀 주신다.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죽도록 충성하는 자는 생명이 자라난다. 면류관은 상급이요 "생명의 면류관"은 상급으로 생명이 자라난다는 뜻이다.

.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둘째 사망은 영적 사망, 곧 지옥에 가는 것을 말한다. 환난을 이기고 믿음을 지키면 영이 항상 살고, 생명의 역사가 계속되어 가므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된다.

三. 버가모 교회-속화됨(12-17)

. 2: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버가모 교회는 영적 분별력이 없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날선 검을 가지시고 자르고 쪼개어 진리와 비진리를 갈라놓는 것이다.

. 2: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사단의 위 여기에 대한 해석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버가모 지방에는 노동 조합이 철저하게 조직이 되고 이 조직체에 얽매어 사업을 공동으로 하고 단체적으로 활동하였으므로 개인의 자유가 없었고 신앙을 지키기가 아주 힘이 들었기 때문에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 하였다는 해석. 둘째, 버가모 지방 전체가 가이사 황제에게 예배를 드리도록 강요되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을 우상으로 만들어 예배하도록 강요하고, 안 하면 잡아죽이고 감옥에 가두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기가 아주 힘이 들어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는 해석.

셋째, 버가모 지방은 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전 주민들이 뱀 우상에게 절을 하였다고 한다. 제사를 함께 하지 않으면 다 내어 좇았기 때문에 뱀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려면 내쫓길 각오, 매 맞을 각오를 하여야 하고 그러한 곳에서 믿음을 지키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는 해석이 있다. 사단의 위가 있는 곳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아주 힘이 드는 것이다

안디바는 버가모 교회의 감독이었는데 사단의 위가 있는 곳에서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자이다. 안디바가 순교 당하는 위기에서도 버가모 교회가 믿음을 잘 지키고 굳게 서 있었다. 인도자가 믿음 굳게 서서 마귀에게 굴하지 않고 나아가면 교인들도 믿음을 지키게 된다. 인도자가 굳게 서 있지 못하고 마귀에게 굴복하면 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교역자가 믿음에 굳게 서서 나아가다가 순교를 당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인 가운데서도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 말세에 가서는 성도가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마태복음 16:25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였다. 성도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생명까지 빼앗기게 되는 경우도 있으나 예수를 위해서 세상에서 고난을 많이 당하면 당할수록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크고 생명과 영광과 존귀가 커진다.

세상에서 심고 천국에서 거두는 것이 성도의 생활이다. 요한복음 12:24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 생명을 희생하러 오신 것이다. 세상에서 심고 부활의 세계(영적 세계)에서 거두는 것이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거두고, 죽을 것으로 심고 죽지 않을 것으로 거두고, 욕된 것으로 심고 영화로운 것으로 거두고, 육의 것으로 심고 신령한 것으로 거둘 것을 믿고 성도는 죽도록 충성하여야 한다.

.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의 교훈 버가모 교인들이 발람의 교훈을 지키어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였다. 발람은 하나님의 선지자이었는데, 모압왕(발락)이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강청하며, 저주하면 많은 영광과 많은 상급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발람은 발락이 그 집의 은 금을 가득히 채워 내게 줄지라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절대로 어길 수 없다고 하였다(민 24:1-13). 발람은 모압에 가서도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였다. 그러나 그가 잘못된 것이 있다. 모압 나라 귀족들이 선물을 가지고 발람에게 찾아와서 "청컨대 와서 모압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여 달라"고 하였을 때 발람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보겠다고 대답하였다. 하나님께 기도한 결과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셨고 모압 왕이 보낸 사자들에게 "가지 못하겠다"고 말해 주었다(민22:12-13). 모압 왕이 그 사실을 다 듣고 더 높은 귀족들에게 선물을 더 많이 주어 발람에게 보냈다. 그들이 발람에게 말하기를 "발락의 말씀에 청컨대 아무 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 오라.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그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라고 말했다. 그때 발람이 대답하기를 "발락이 그 집에 은 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 기도하여 보겠다"고 하였다(민22:15-20). 이것이 잘못된 것이다. 전에 기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받았으므로 다시 기도하여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발람이 재차 기도해 본 것은 마음속에 가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다시 기도하여 본 것이다. 하나님이 가도록 허락만 하시면 자기의 유익이 많기 때문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가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었다.

하나님께서 전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이번에는 가라고 하시는가? 발람의 마음이 이미 가고자 하는데 몸뚱이만 붙잡아두어야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것이다. 발람이 가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되겠습니까? 가지 않아야 되겠습니까"하고 기도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자 마음에 결정하고 기도하면 그것이 발람의 기도가 된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는 성경말씀에서 찾아야 된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알았으면 그대로 행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여야 한다. 이방 나라 왕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는데 가야 되겠는가! 전에 가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 있는데 "가야 되겠습니까? 가지 않아야 되겠습니까?" 하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발람이 탈선되었다. 하나님의 선지자이지만 기도를 바로 하지 못하였다. 은, 금의 선물을 많이 주고 높여 주겠다는 바람에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욕심으로 기도한 것이다.

발람은 모압에 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는 않고 말씀대로만 하겠다고 결심하고 갔다. 그러나 발람의 마음은 이미 물질에 사로잡혔고 자기의 유익을 좇아갔다. 많은 물질과 명예와 영광을 탐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이 가라고 허락하시자 발람은 아무런 가책도 없이 갔다. 가는 도중엔 하나님께서 나귀를 통하여 책망을 하였지만 회개는 하지 않고 "가야 합니까? 가지 않아야 합니까?"하고 또 기도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또 가라고 하셨다. 회개를 하면 될 터인데 회개는 하지 않고 "가야 합니까? 가지 않아야 합니까?"만 되풀이하므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것이다.

모압에 가서 발람은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였다. 모압 왕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하였으나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만 하였다. 모압 왕이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하였어도 또 축복하였고, 또 다른 곳에 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하였으나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예언하였다. 모압 왕이 화가 잔뜩 나서 "내가 당신을 데려온 것은 원수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데려왔는데 이스라엘을 축복만 하니 내가 그대를 심히 높여 존귀하게 하려고 마음먹었으나 여호와께서 막으셨다"고하였다. 이때 발람의 수단과 술수가 나왔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한 것이다(민 31:16). 하나님의 선지자가 술수를 베풀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하였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많이 쓰러졌다. 곤궁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뜻을 어기어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곧 발람의 길이다. 발람은 우상의 제물을 먼저 먹여 놓고서 그 후에 행음하게 만들었다.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보다 더 지배를 받는 것들을 말한다. 돈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으면 돈이 우상이요, 인정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으면 인정이 우상이다. 직장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어겼으면 직장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것이요, 하나님 말씀보다 직장이 자기를 더 지배하므로 직장이 곧 우상이 된 것이다.

우상의 제물이란 성경 말씀을 어기어 얻는 것들이다. 성경을 어기고 직장에 나가서 보수를 받으면 그 보수가 우상의 제물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성경을 어기고 어떤 일을 하여서 돈을 벌면 그 돈은 우상의 제물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크고 귀한 것은 없다. 하나님 말씀에 위반되는 것은 개인이나 단체나 직장이나 국가일지라도 따라가면 안된다.

하나님의 종이 꾀이기 때문에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을 어기고 세상적으로만 잘 되도록 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잘되게 만드는 것이 발람의 술수이다. 교역자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성경대로 인도하여야 한다. 말씀을 어기면 신앙의 정조는 다 깨어지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살고 어기면 죽는 줄 알았던 성도가 발람과 같은 거짓선지자의 말을 따라가면 하나님 말씀을 하나씩 둘씩 어기다가 마침내 신앙의 정조가 다 깨어지고 만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가 세상과 벗이 되어 처음 신앙을 내어버리고 타락되어 맥 빠진 종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행음이라는 것은 신앙의 정조가 깨어진 것이다. 신앙의 정조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있다. 성경을 바로 가르치지 못하는 교역자들의 인도를 받으면 성경을 어기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되고 신앙의 정조는 깨어지고 만다. 주일날 일해도 괜찮다고 가르치는 목사는 발람과 같은 목사이다. 발람은 구약시대에만 활동한 것은 아니다. 현재에도 발람과 같은 교역자가 많이 나와 있다.

교회를 망치는 자가 발람과 같은 선지자들이다. 선지자들이 성경을 바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다 부패한다. 하나님의 종은 사람들이 듣든지 말든지 성경 말씀 그대로 전하여야 한다. 성경을 변질시켜서 가르치는 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만드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버가모 교회가 처음에는 순교의 정신으로 신앙 생활을 잘하였으나 발람의 교훈이 들어올 때에 신앙을 다 팔아먹고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

. 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니골라당의 교훈은 발람의 교훈과 같은 것이다. 옛날에는 발람이 있었으나 지금은 니골라당이 있어 순진한 성도를 꾀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과 육체를 따라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한 것이다.

발람과 니골라당은 그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같은 것이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에 니골라당의 잘못된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과거에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면서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의지하여 순교의 정신으로 나아가던 그 때의 신앙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옛길을 찾아 옛길로 나아가는 신앙이다. 신앙은 새로운 길로 가면 안된다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기 때문에 옛날의 신앙을 그대로 보수하고 나가야 한다. 예레미야 6:16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의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적 길로 가는 것을 싫어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방법으로 해야지 옛날 그대로 하여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고 진리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시대는 변하지만 진리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 상태가 같고, 마귀의 궤교가 같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도 같다. 시대가 변한다고 하여서 사람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부패성(죄악성)이 가득하고, 마귀는 쉴 사이 없이 공격하여 오는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니골라당의 교훈이 나와서 성도들을 미혹할 때에도 옛적 길로 가면서 신앙 양심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신신학도 옛적 길이 아니요, 신비주의도 옛적 길이 아니다. 신비주의는 눈으로 보고 음성으로 들리고 육신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중히 여긴다. 그리고 육신의 감정에서 나오는 것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나가기 때문에 영적으로 간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 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거짓 교훈을 좇아가던 자리에서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검(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우겠다고 주님이 경고하신다. 주님은 주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을 반드시 심판하시고 진멸하신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치실 때 처음에는 성도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하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징계를 한다.

.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 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횐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버가모 교회는 진리에 대한 분별력이 없었으므로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분별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믿음으로 발람의 교훈을 이기는 자에게는 예수님께서 감추었던 만나(양식)를 주신다. 발람의 교훈을 이겨 나갈 때에 비로소 성경에 감추어져 있는 생명의 만나를 먹을 수 있게 된다. 발람의 교훈을 이기지 못하는 자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영의 양식을 먹지 못한다.

발람의 교훈을 이겨서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말씀을 생명으로 삼아 영적 생명의 길을 걸어 나가야 성경 말씀을 듣거나 보거나 할 때에 감동이 오고 깨달음이 있게 되며 말씀 속에 감추어져있는 생명의 만나를 먹을 수가 있다.

날마다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는 자에게 성경 말씀이 구구절절 은혜가 되고 생명의 양식이 되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신다. 그러나 이기지 못하는 자는 신구약 성경을 다 보아도 먹을 것이 없다. 그러므로 말씀을 밝히 깨달아 말씀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끊어버리고 옳은데 설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잘하여야 한다.

횐 돌 예수님을 가리키는데(벧전2:4), 성도가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갈 것을 의미한다. 발람의 교훈을 이기면 영혼이 새롭게 자라나서 예수님의 형상이 자기 영 속에 이루어지게 될 것을 뜻한다.

새 이름은 새로운 인격(人格)이다. 영혼이 자라나서 새로워지고 깨끗하게 되어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면 새로운 인격의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새 사람이 되면 노래도 새 노래가 되고 사는 세계도 새 세계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탄식이 변하여 찬송이 되며 아름다운 주님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혼이 자라나고 새로운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은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른다. 자기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고 새 생명의 역사가 있어 감사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 축복을 받는 자 밖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四. 두아디라 교회-이세벨을 용납함(18-29)

. 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양은 눈이 불 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눈이 불꽃같고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사람의 마음속과 심령 골수를 다 살펴서 모든 은밀한 가운데서 지은 죄까지 드러내시는 주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 주님께서 심판의 주님이 되시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속히 임하여 심판을 하실 것이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주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고, 주님만 바라보고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해야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온전히 돌이켜서 예수님만 바라보면 세상과 자기는 간 곳이 없고 구속의 주만 보이게 된다. 기도할 때에 세상의 것이나 자기가 보이면 아직 온전히 돌이키지 못한 것이다. 영적 은밀한 골방을 찾아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여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골방을 찾은 후 문을 닫지 않으면 세상의 것이 자기 마음속으로 들어오고 자기의 마음이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세상의 것"이 들어오면 골방이 뒤숭숭하고 복잡하여져서 마귀가 유혹하게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은밀한 곳에서 역사하시고 뒤숭숭하고 복잡한 곳에서는 마귀가 역사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은밀한 골방을 찾아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복잡하고 뒤숭숭한 마음이 고요해지고 화평을 얻어 영적 안식을 누리게 된다. 영적 안식을 누리면서 예수를 믿어야 복된 사람이다.

. 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두아디라 교회에는 잘한 것이 많이 있다. 사업, 사랑, 믿음, 섬김, 인내를 주님이 아신다고 하였다. 사업을 제일 먼저 기록한 것을 보면 사업을 제일 많이 한 것 같다. 기독교 사업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양로원과 고아원을 세우고 구제사업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러나 사업이 제일 첫째고 둘째가 사랑이고 셋째가 믿음이었다. 믿음이 제일 첫째가 되어야 바로 되겠는데 사업이 제일 첫째가 된 것을 보면 사업주의 교회가 된 것 같다. 또 두아디라 교회에는 사랑도 많아서 친절하고 분위기가 아주 좋은 교회이었던 것 같다. 사랑이 많기는 많은데 처음 사랑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 중심의 사랑이며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하는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자꾸 연습하면 아무에게나 사랑이 나간다. 상점 점원이 손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과 같다. 점원은 자기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서 체면도 없고 염치도 없이 사교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사교적인 사랑은 자꾸 연습하면 풍성해 진다. 두아디라 교회는 믿음도 있고 봉사도 잘하였다. 참고 견디는 것도 잘하였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처음보다 점점 더 많이 일을 해 놓았다. "용두사미"라는 말이 있는데, 처음에는 일을 크게 시작하였으나 차차 작아져서 나중에는 흐지부지 되고 만다는 뜻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와 반대로 나중 행위가 처음보다 더 많았다. 대개는 처음에 잘 해 나가다가 차차 잘못하여 나중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처음보다 나중이 잘 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잘 한 것이 많은 두아디라 교회였으나 주님은 너를 책망할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자칭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한 것이었다.

자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으시나 자기스스로 선지자라고 행세하는 사람이다.

이세벨은 시돈 나라 왕의 딸로서 이스라엘 아합왕의 아내가 되었는데(왕상16:30-31), 올 때에 이방의 우상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또한 그는 음행과 술수가 많은 여자이었다(왕하9-22). "행음" 영적 음행은 세상과 짝하는 것을 가리키고(약4:4), "술수"는 인본주의 세상 방법 등을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곧 이세벨 운동이다. 이세벨이 아합왕 세력과 국가의 권력을 등에 업고 하나님의 백성을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만들었다. 세상 권력을 의지하고 세상 권력과 합작을 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것이 오늘날에도 많이 있다. 오늘날에는 국가의 어용 기관이 된 종교 단체와 거기 가입한 교역자들은 다 이세벨이다. "여자 이세벨"은 남편(아합왕)을 의지하여 출세하고 남편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기의 욕심을 이루어 가는 자이다. 아합왕과 이세벨은 서로 이용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중세기에도 독일 및 불란서의 황제와 교회(카톨릭 교회)들이 짝을 하여 교회가 득세하고 나중에는 교회가 타락하여 부패한 일이 많았다.

왜정 말기에는 일본 기독교단이 일본 국가의 권력을 의지하고 일본 국가의 어용 기관이 되어 교회를 일본 국가의 어용물로 삼았었다. 당시에 한국 교회들도 다 일본 기독교단에 가입을 시켜 일본 기독교단에서 명령하는 대로 교회가 움직여 나가도록 하였다. 만일에 거기에 복종하지 않으면 심한 탄압을 받았었다. 일본 기독교단의 명령으로 찬송가 가사도 마구 바꾸어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를 "믿는 사람들아 큰일 났으니"로 고치게 하였다. 또 구약은 "유대인의 역사"라 하고 요한계시록은 "요한의 꿈"이라고 가르치게 하였다. 또 교회가 신사 참배하도록 강요하고, 교회에서 연보하여 비행기 헌납금을 내게 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다 이세벨 운동이다.

이세벨 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려면 교회가 문을 닫아 없어질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한다. 신앙을 지키다가 없어질지언정 이세벨을 용납하면 안된다. 외부적인 교회를 보존하려고 신앙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하면 안된다. 발람은 우상의 제물을 먹은 것이 먼저이고 음행이 나중이었는데, 이세벨 운동은 음행이 먼저이고 우상의 제물이 나중이다. 음행이 먼저 된 것은 신앙의 정조를 먼저 빼앗는 것이다. 하나님만 섬기고 의지하던 성도들에게 세상을 의지하게 만들고 세상의 것을 섬기게 하므로 영적 음행을 범하게 한다. 이세벨이 나온 목적은 성도들을 세상으로 향하게 하고 세상나라의 이용물로 삼으려는 것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자고하지만 근본 목적은 "세상과 합작"인 것이다. 세상과 벗된 자는 간음하는 사람이다. 하나님만 위하는 영적인 기독교를 세속화 시켜 영적 음행을 저지르게 하는 이세벨 운동에 가담하지 않으려면 생명을 내어놓고 싸워야 한다. 이세벨 운동에 가입하면 육신적으로 편안하고 숫자적으로는 부흥이 되며 겉으로는 교회가 잘 되어 나간다. 왜정 말기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평양 산정현 교회는 문을 닫았는데, 그 이웃 교회는 신사참배를 하고 교회 문을 닫지 않았다. 교인들이 많이 모여서 기도도 열심히 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목사도 열심히 성경을 가르쳤다. 그때에 산정현 교인들이 이웃 교회에라도 나가야 될까하고 망설였었다. 그것을 알고 최권능 목사님이 "죽은 어머니의 젖을 빨면 젖은 나오지 않고 죽은 피만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진리를 떠난 교회에는 차라리 안 나가는 것이 좋다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산정현 교인들은 가정에서 몇 사람씩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주기철 목사님이나 최권능 목사님 같은 분들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순교를 당하고 이기선 목사님은 7, 8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이기선 목사님이 감옥에서 나온 지 몇 달이 안되어 그 교회에 이기선 목사님을 반대하는 파가 생겼다. 어느 시대나 신앙을 바로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신앙을 지켰다고 하여서 많은 사람이 다 환영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환영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목사라고 하여서 교인들이 다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만 순종하고 하나님께만 이용당하고 신령한 천국운동만 해 나가야 한다.

. 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성도가 믿음이 타락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두아디라 교회에도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 회개하는 자가 복이 있다. 이세벨 운동을 용납하던 한국교회는 8.15 해방되었을 때가 회개할 기회였다. 그때에 철저하게 회개하여야 될 터인데 회개는 안하고 해방된 기쁨에만 도취되었었다. 이세벨 운동이 강력하게 나가다가 그 운동이 꺾이어질 때가 있다. 그 때가 회개할 때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른 명칭을 가진 이세벨 운동이 또 계속 나온다. 세상 끝날 때까지 나오게 되며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다

. 2:22-23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이세벨 운동을 회개하지 않고 나가면 하나님의 징계가 세 가지로 임한다. 1 침상에 던진다. 이세벨 운동하는 자는 병에 걸려 신음하는 자리에 있게 한다는 것이다. 2 간음하는 자들은 큰 환난에 던진다. "간음하는 자들"은 잘못된 것을 알고도 따라가는 자들이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도 자기 육신의 생명 때문에 두려워서 이세벨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벌써 마음에 환난이 있고 그 다음에 육신도 큰 환난 가운데 빠지게 될 것이다. 3 자녀들을 사망으로 죽인다. "자녀"는 이세벨의 정체를 모르고 그 교훈에 동화되어 그것이 옳은 줄 알고 따라가는 자이다. 이세벨 운동이 잘못된 줄 모르고 거기에 완전히 동화되어 따라가는 사람이 곧 자녀이다. "죽인다"는 것은 영적인 생명이 죽는다는 것이다. 자기가 잘못된 줄 알고 따라가면 자기와 자기 자손(믿음의 후손)의 심령이 다 죽는다. 우리는 이세벨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바른 진리를 전해주어야 한다. 안 듣는 사람들이 많지만 듣는 사람도 있으므로 바른 진리를 전해서 이세벨 운동에 빠지지 않도록 하며 그 사람을 건져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리스도의 참된 신부를 길러 나갈 수 있는 것이다.

. 2:24-25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사단의 깊은 것은 이세벨 운동을 가리킨다. 마귀의 역사는 언제나 사단의 깊은 것이 있다. 그러므로 한번 빠지면 나오기 힘들다. 술 취한 사람처럼 그 사상에 도취된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 중에 거기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른 진리를 잡고있으니,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부탁하신 것이다.

. 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이세벨을 이기고 세상과 합작한 거짓선지자를 이기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님이 주시는 것이다. 마귀를 대적해서 이겨야 권세가 나오고 세상을 심판할 능력이 생긴다. 작은 이세벨을 이기면 작은 권세가 나오고 큰 이세벨을 이기면 큰 권세가 나온다. 이세벨을 싸워 이기는 것은 만국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이러한 성도가 세상을 심판한다(고전6:2).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심판자의 자격을 만들어 주시려고 이세벨 운동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세벨과 싸워 이겨야 심판자의 자격이 만들어지고 그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심판하게 된다. 이기는 방법은 말씀을 붙들고 신앙 양심을 써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의를 이루어 나가면서 죽기까지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이기게 만들어 주신다. 예수님도 마귀의 세력을 모두 이겨서 하나님 앞에 큰 권세와 영광을 받으신 것이다.

. 2:28-29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새벽 별을 주리라 "새벽 별"은 예수님을 가리킨다(22:16). 이세벨 운동을 밝히 분별하여 이기는 자에게는 예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하여 주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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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3장

제 3 장 타락과 진리를 지킴

(대 지)

一. 사데 교회-실상은 죽음(1-6).

二. 빌라델비아 교회- 문이 열림(開門)(7-13)

三. 라오디게아 교회-차지도 덥지도 않음(14-22)

(본문강해)

一. 사데 교회-실상은 죽음(1-6)

.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예수께서 사데 교회에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셨다.

일곱 영은 완전하신 성령을 뜻한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이다. 예수님께서 완전하신 성령을 통하여 완전한 감동을 시키어 성도의 영을 살려 나가신다. 완전한 성령으로써 전면(全面)에서 완전히 감동시키고 완전한 능력으로 역사하여 모든 성도를 살려 나가시는 주님이시다.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었다"고 책망하셨다. 죽은 것은 신앙이 죽었다는 말이다. 야고보서 2:17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내적 생명의 역사로부터 나오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형식적이고 외부적인 행함이 아니라, 영이 살아서 주님과 교통이 잘되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아가며 날마다 영이 자라나는 것이 내적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행함이다.

영이 살아서 역사하는 것과 내적 생명의 역사로부터 나오는 행위가 없으면서 "살았다"하는 이름만 가지고 나아가기 때문에 주님이 책망하신 것이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교회가 크고, 사람이 많이 모이고, 기독교 사업을 많이 하고, 굉장한 예배 의식이 있고, 훌륭한 제도와 조직을 가진 것을 말한다. 사데 교회는 보수적이며, 사도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받았고 외부적으로나 의식적으로 많이 발전되어 나아가는 교회이었다. 내적 생명의 역사는 끊어졌는데 외부적으로는 발전되고 향상되어 나아가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살았다'하는 이름을 가진 교회이다.

주님께서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태를 살펴보신다면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가 아닐까!" 교회들이 외부적으로 의식적인 면만 발전되고 내적 생명의 역사는 점점 다 끊어지고 중단되어 가는 것을 주님이 안타까워하시고 책망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교인들은 잎사귀만 왕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아서 생명의 열매는 찾아 볼 수가 없다.

. 3:2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사데 교회가 외부적인 의식과 제도 및 사업 면에서는 발전되어가지만, 내적 생명은 거의 죽은 상태에 빠졌으므로 완전히 생명의역사가 끊어지기 전에 회개하고 바로 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실상은 죽은 상태에 빠졌는데 살았다 하는 이름만 붙들고 좋아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내적 생명의 역사가 없다면 마땅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어서야 할 것이다. 생명의 역사가 항상 창성하고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워지고 생명의 세계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갈 때에는 교회에 생명이 있는 것이다. 외부적으로 예배당이 커지고 교인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도의 영이 날마다 소생하여 올라가는 역사가 없고,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지 못하면 외부적으로 열심히 사업을 하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여도 살았다 하는 이름뿐이다. 외부적인 것을 붙들고 살았다하는 이름만 가지고 나아가던 자리에서 돌이켜 영이 깨어서 생명의 역사가 있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행위의 온전한 것은 살아 있는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행위이다. 살아있는 신앙은 하나님을 사모하여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을 힘입어 그리스도의 생명이 속에서 역사하여야 한다. 사데교회는 영의 양식을 받아먹으려고 힘쓰지 않고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힘써 부르짖지도 않은 것 같다.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도 없고. 평안하므로 새벽부터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도 없고,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하여 벌벌 떠는 것이 없는 사람은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자이다. 주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누가복음 6:25에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라고 하였다. 성도가 영의 양식을 얻어먹으려고 간절히 사모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로 하려고 힘을 쓰며 말씀 앞에서 무서워 벌벌 떨면서 그 말씀을 순종해나가지 않으면 실상은 죽은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외부적(도덕적)인 행동은 믿음과 별로 관계없을 수도 있다. 신신학자들이 도덕 면은 더 잘 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의 이성에 맞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켜 나가기 때문에 자기도 망하고 교인들도 망하게 한다.

.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이미 받은 진리를 기억하고 지키면서 회개하여야 한다. 바로 받지 못한 교회에 대하여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지 말라",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지 말라", "이세벨의 교훈을 지키지 말라"고 하였으나 사데 교회는 배우기는 바로 배우고 복음을 바로 받았으므로 그것을 기억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촉구하셨다. 바로 받은 말씀을 흘러 떠내려보내면 주님의 심판이 크다. 히브리서 2:2-3에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라고 하였다. 귀한 말씀을 받았으면 그만큼 책임도 큰 것이다. 귀한 진리를 받았으면 더욱 소중히 여기어 그 말씀대로 자기의 인격을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율법은 천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었고 그것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공변된 보응을 받았다. 율법보다 더 귀하고 보배로운 복음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었는데 이것을 등한히 여기어 흘러 떠내려보낸다면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크겠는가! 금보다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자기의 영적 성전을 건축해 나가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나가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처음 은혜를 받아 처음 사랑을 가지고 산 신앙으로 달음박질하던 때를 기억하여 그때의 신앙을 다시 찾아야 한다. 외부적으로 살았다 하는 이름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자기 영이 살아서 기쁨과 소망이 넘치고, 날마다 새 힘을 얻어 독수리같이 신령한 세계를 향하여 올라가고, 진리(말씀)를 받았으면 그 진리를 붙들고 기도하여 자기 심령이 그 진리 속에 들어가고, 진리가 자기 생명이 되어야한다. 쇳물을 부으면 형(型)틀대로 만들어지듯 자기의 마음, 영, 몸, 인격 전체를 진리 안에 부어 넣으면 그 말씀대로 만들어진다.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하여 받은 그대로 지키려고 힘을 쓰고, 그 말씀 속에 들어가려고 날마다 노력을 하여, 말씀대로 도달하지 못한 것은 회개하고 다시 도달하려고 노력을 하면 비로소 그 말씀이 자기의 힘이 되고, 생명이 점점 자라고 인격이 점점 만들어진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영이 깨어 있지 않으면, 심판의 주님이 생각지 않은 순간에 도적같이 임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나 영이 항상 깨어 있어 하나님과 교통하며 말세의 징조를 보고 깨달아 예수님의 재림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살전5:4). 영이 늘 깨어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데 교회가 회개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주님이 도적같이 이르러 심판을 내리시겠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의 연고라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신앙의 정조를 더럽히지 아니하였다는 뜻이다.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계속하여 성결을 이루어 나가는 일은 아주 귀한 것이다. 마귀는 성도의 신앙을 짓밟고 더럽히려고 성도들의 마음속에 더러운 생각을 집어넣고, 경건하게 살려고 할 때에 환난과 시험을 계속하여 일으킨다. 신앙의 정조를 더럽히지 않으려면, 마귀를 대적하여 모든 더러운 것이 자기 속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환난이 올 때에 신앙의 정조를 지켜 나가는 것은 참으로 힘드는 일이다. 그러나 시험이 들어올 때, 이기지 못하면 신앙의 정조를 지킬 수 없다. 큰 환난과 시험이 올 때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이기게 해 주신다. 평안할 때도 힘을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나아가면 심령이 깨끗하여진다. 믿음으로 깨끗하여지고 순종함으로 더욱 깨끗하여진다(행15:9 벧전1:22). 환난 가운데서 옷을 더럽히지 않는 것도 힘들지만 평안한 데서 옷을 더럽히지 않는 것은 더욱 힘이 든다.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면, 신앙 양심을 굽히지 말고 옳다 인정하는 것은 그대로 순종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여 끊고 나가야한다. 또 의(義)를 찾아 의의 길로 걸어가며 의가 아니면 천하를 다 주어도 갖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옷을 더럽히지 않게 된다.

몇 명이 네게 있어 사데 교회에는 불과 몇 사람만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하였다. 어느 시대나 옷을 더럽히지 않고 신앙의 정조를 잘 지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다. 적은 무리일지라도 신앙의 정조를 지킨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큰 영광과 존귀를 주신다. 누가복음 12:32에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셨다. 엘리야 때에 과부가 많았으나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 과부에게 엘리야가 보냄을 받았으며(눅4:25-27 참조), 엘리사 때에 문둥이가 많았으나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이 가서 깨끗함을 받았다. 교회들이 사업주의와 의식주의에 빠져서 외부적으로만 발전하고 "살았다 하는 이름"만 있을 뿐, 실상은 죽은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영이 살아서 약동하며 새 생명의 길로 걸어가는 교회는 그리 많지 않다. 외부적인 의식이나 형식보다 의와 인과 신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마23:23).

. 3:5-6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횐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흰 옷을 입을 것이요 성결을 입고 거룩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기는 자가 구원을 이루어 나가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간다. 선한 싸움을 싸우다 쓰러졌을지라도 회개하고 다시 힘있게 일어서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흰옷을 입혀 주신다. 희망이 있으니 낙심하지 말고 일어나도록 힘을 써야 한다. 한번 쓰러졌다고 하여서 자포자기하거나, 그것을 합리화시키지 말고 일어나서 다시 이기는 생활을 해야 한다. 다시 일어나서 이기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고 횐 옷을 입혀 주신다.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흰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는 생명의 세계에서 주님의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출애굽기 32:32-33에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하였다. 생명책에 이름을 썼다 지웠다 하는 것이 아니다.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워 버리는 것이 아니고, 범죄한 그 사람의 인격이 주님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름"은 인격을 가리키고 "지워 버리리라"는 것은 인정치 않고 부인한다는 뜻이다(마10:33). 신앙 양심을 지키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아가면 그만큼 영적 생명체가 자라난다. 생명체가 자라났으므로 하나님 앞에도 인정을 받게 된다.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하늘나라에 공책 같은 것이 있어 기록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이 자라났으므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범죄한 사람을 지워버린다"함은 범죄하며 사는 생활은 생명체가 되지 못하고 생명의 역사가 아니므로 아예 생명책에 올라가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믿음으로 중생한 영혼이 자라나지 않으면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다. 중생한 영혼을 써서 영적인 생명체가 자라난 것만 영원히 남는다. "어떻게 하여야 내 영이 자라나며 힘을 얻을 수 있을까"가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과 좀 더 깊은 교제를 하며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바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나아가면 영이 자라나고 자란 것만큼 생명체로 남는다. 영이 자라난 것은 하나님 앞에서나 천사 앞에서나 다 인정을 받아 거기에 합당한 상급을 받고 면류관을 받는다.

二. 빌라델비아 교회-문이 열림(開門)(7-13)

.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빌라델비아 교회은 문이 열린 교회이다.

다윗의 열쇠 "다윗"은 신정국(神政國)의 왕통을 말하고, "열쇠"는 예수님의 권세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 운동의 절대적인 주권의 열쇠를 가지셨다. 예수님이 한번 열어 놓으면 닫을 사람이 없고, 한번 닫아놓으면 열 사람이 없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막을래야 막을 수 없다. 교회 문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면 되고 열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 믿음으로 나가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신다. 인간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전적으로 무능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만능이요, 절대 주권자인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만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을 수 있다. 살아 있는 나무로 집을 지을 수 없고 살아 있는 소를 제단에 올려놓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살아서 무엇을 할 줄 알고 날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쓰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의 능력만 힘입어서 말씀대로 순종하기를 배워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신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놓으면 닫을 자가 없고,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면 열 자가 없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이스라엘 민족을 갖다놓고 문을 닫아 놓으니 칠십 년 동안 꼼짝 못하고 포로 생활을 하였다. 그 후 고레스왕을 통하여 해방의 문을 열어 놓을 때에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사람이 없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하였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면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되지 않게 하시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면 열리고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을 내고 발버둥을 쳐도 열리지 않는다.

.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열린 문을 두었으되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문을 열어 놓았다. 이 문은 어떤 문인가?

첫째, 믿음의 문이다(행14:27). 믿음의 문이 가장 기본적인 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믿음을 가지고 그 말씀을 순종한다면 기본적인 문이 열린 것이다.

둘째, 영의 문이다. 4:1에 "이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고 하였다. 이것은 영의 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셋째, 공효를 이루는 문이다. 고린도전서 16:9에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여도 주님이 공효를 이루는 문을 열어주어야만 열매를 맺고 형통한 길이 열리는 것이다.

넷째, 전도의 문이다. 골로새서 4:3에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고 하였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전도의 문이 열려서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섯째, 하늘에 열린 문이다 . 사도행전 7:55-56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라고 하였다.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살다가 세상 떠날 때에 하늘 문이 열려서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이 소망이다. 하늘 문이 닫히면 심령이 답답하고, 기도가 되지 아니하고, 감사가 나오지 않는다. 교회가 영적 하늘 문이 닫히면 교인이 아무리 많이 모여도 쓸데없다.

무화과나무에 잎사귀만 많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늘 문이 열려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산 교회다. 성도가 육신적으로는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늘문이 닫히면 영적 평강을 잃어버리고 심령이 답답한 가운데 빠지게 된다. 하늘 문이 환하게 열려 있다고 하면 비록 초막에서 살지라도 천국 생활을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하늘 문이 열리고 영적 생명이 약동할 때는 환난과 핍박을 당하여도 즐거운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때 이러한 문을 열어 주시는가? 빌라델비아 교회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할 때에 문을 열어 주셨다.

적은 능력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는 모든 힘을 말한다. 자기에게 있는 힘이 적을지라도 그 모든 힘을 다 기울여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을 배반하지 아니할 때에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신다.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자신이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마음이 주님을 떠나지 아니한 것을 말한다. 마음이 주님을 가까이하여 주님과 교통하므로 영적 세계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데 그 영적 세계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힘을 써서 잠시라도 마음이 여호와를 떠나지 않고 항상 주님을 붙들고 주님만 의뢰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마음이 여호와를 멀리 떠나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 예레미야 17:5에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마음이 여호와를 떠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여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다(왕상1:48 행13:22).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힘있게 의뢰하고 나아가면서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 마음속에 욕심이 가득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고, 육신의 일만 하면 하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바리새인들처럼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음란이나 토색을 하지 않고, 종교적인 의식을 다 행하였다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니다. 참으로 회개하고 심령이 하나님을 의뢰하여 그를 힘입고 의(義) 인(仁) 신(信)을 버리지 말고 지켜야 한다(마 23:23). 영의 문이 열리려면 내 모든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다 기울여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영의 문이 열린 다음에도 마귀는 여전히 여러 가지로 역사하여 그 영적 세계를 빼앗으려고 한다. 안일주의, 향락주의, 방탕... 이런 것들로 마음을 유혹하고, 근심 걱정을 주어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한다. 그래도 말씀에 굳게 서서 방심 부주의하지 말고 삼가 조심하여 영적 세계를 빼앗기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계속하여 영적 세계를 소유하면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적은 능력을 다 기울여 그 뜻을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성도마다 각각 다르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겠느냐?"고 물었을 때 세리에게는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고 말하고 군병들에게는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料)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하였다(눅3:10-14). 베드로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으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을 때 주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다(눅5:1-11).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명령에 자기의 적은 능력을 다 기울여서 순종하면 영의 문이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린다. 예수를 믿는 자는 제일 초보적인 것 세 가지부터 하여야 된다. 첫째,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 둘째,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 일. 셋째, 십일조 드리는 일이다. 이 세 가지부터 순종하고 나서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것을 지켜 나가야 한다. 또한 매일 매사에 자기가 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하나님의 뜻을 다 알기는 힘이 들지만 찾으려고 애를 쓰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마음속에 욕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욕심에 사로잡히면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면 죄를 회개하고 욕심을 버리고 자기가 하겠다는 것도 모두 버려야 한다. 살든지 죽든지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주의 뜻대로만 하기를 원하고 힘써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양심이 깨끗하여지고, 욕심이 다 떨어져 나가고, 마음이 청결하게 되어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마음이 청결해지면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은밀한 교제가 가능하며 성경말씀을 통해서 주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결사 각오하고 순종하여야 한다. 자기 힘을 다 기울이면 모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역사하여 성취케 하여 주신다. 다니엘은 적은 능력을 다 기울여 하루 세 번씩 기도하다가 사자굴에 들어갔다. 사자굴에 들어간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도와 시고 사자의 입을 봉하여 그 가운데서 건져 주시었다. 교역자는 자기의 영이 먼저 살고 양떼의 영을 살려 나가는 일을 위하여 충성하여야 한다. 이러한 목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양떼들을 많이 보내 주신다.

. 3: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자칭유대인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시는데 자칭 예수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진리에서 탈선하여 바르게 믿는 사람들을 거짓말로 비방하며 핍박한다. 비방을 하든 말든 성도가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하여 말씀을 순종하고 예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면 영의 문이 열리고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어, 나중에는 비방하고 핍박하던 자들이 와서 발 앞에 굴복하게 된다. 그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당신들이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이고 예수님께서 당신들을 사랑하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자기 힘으로 자기를 지키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지켜 주시지 않는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꼭 붙잡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지켜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환난을 참고 견디면 그만큼 자기의 신앙 인격이 만들어지고 영적 실력이 늘어난다. 주님의 말씀은 인내가 없이는 지킬 수 없고 인내로 주의 말씀을 지키면 자기의 영이 자라나고 인격이 만들어진다.

. 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네가 가진 것 적은 능력을 다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그 신앙을 굳게 잡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신다.

. 3:12-13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성전의 기둥"은 가장 요긴한 재목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예루살렘 교회는 게바와 야고보와 요한이 기둥이었다(갈2:9). 이기는 자만 성전의 기둥이 되고, 지는 자는 성전의 기둥이 될 수 없다. 많은 고난과 시험 가운데서도 말씀을 붙들고 참고 견디어 끝까지 이겨 나아가는 자는 인격이 만들어져서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고 사람도 인정한다. 그 기둥 위에다가 세 가지 이름을 쓰는데,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한다. "이름"은 인격인데 이기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지게 된다.

둘째,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새롭게 그 사람 심령과 인격에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셋째, 나(예수님)의 새 이름을 기록한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새로운 인격이 그 사람의 심령 속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적은 힘을 남김없이 다 써서 말씀을 순종하고 믿음을 지켜 나가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그 사람에게 머물고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이루어지고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三. 라오디게아 교회-차지도 덥지도 않음(14-22)

.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라오디게아 교회의 특징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않은 점이다. 주님은 이 교회에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분"으로 나타나셨다.

아멘은 성취하신다는 뜻이다.

충성되고 참된 증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비밀을 우리에게 모두 증거하여 주시고 죽기까지 충성함으로 친히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 되는 것이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충성된 증인으로 하나님의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고 나타내 주시면서 그대로 이루어 나아가신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 예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시다(요1:3). 또 새 창조를 하여 나가시는 분이시다(사48:21 참조). 예수님께서 특별계시의 말씀을 보여주시고, 섭리를 보여 주시고, 그 말씀대로 창조하여 나아가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면 심령이 날마다 새로워진다.

.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주님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신다. "더운 것"은 의와 선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요, 하나님을 향해서 열심을 내는 것이다. 로마서 12:11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였다. "찬 것"은 죄를 대적하여 싸우고 죄를 떠나려고 애통하고 힘쓰는 것이다. 시편 51:17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상한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예수님도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마9:12-13). 우리는 죄와 싸우는 생활과 의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 나아가야 된다. 죄를 대적하여 싸웠다고 하여 다 된 것이 아니다. 의를 이루려고 또 싸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대로 도달하려고 힘을 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죄와 더불어 피 흘리기까지 싸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체가 의, 사랑, 진실인데 의와 사랑과 진실에 도달하려고 힘쓰지 않고 바리새인처럼 외형적으로만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음란이나 토색을 하지 않았다고 만족하여서는 안 된다. 말씀대로 믿는다는 것은 "의(義)와 인(仁)과 신(信)"이 있어야 한다. 의를 배반하고도 말씀대로 믿었다고 하는 것은 허탄한 사람이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 앞에 나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날마다 가서 부르짖은 것(눅18:1-8)과 같이 말씀에 도달하기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마침내 도달할 때가 온다. 의를 세워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사람이요, 의를 버리고 나가는 사람은 아무리 믿는다고 하여도 하늘나라를 파괴하는 자이다.

.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주님은 미지근한 것을 아주 싫어하신다. 말씀이면 옳다 하여 순종하려고 힘을 써서 나아가고, 말씀이 아니면 아니라고 하여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 인정이나 사정은 볼 것이 없다. 사람의 허물을 보고 진리의 길을 떠나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사람이 좋다고 하여 진리가 아닌 것을 따라가는 것도 잘못이다.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구속한 주님만 바라보고 말씀만 따라가는 것이 믿음이다. 자기에게 어떠한 희생과 고난이 올지라도 옳으면 따라가고 진리가 아니면 떠나서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죄와 싸울 때에도 자기 개인적으로 싸워야 할 것은 개인적으로 싸워야 하고, 교회적으로 싸워야 할 죄는 교회적으로 싸워야하며, 교단적으로 싸워야 할 죄는 교단적으로 힘을 합해서 싸워야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5:6에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였다. 죄에 대하여 탄식이나 애통함이 없으며 하나님의 의를 알고도 거기에 도달하려고 애쓰지 않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

.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신앙이 미지근한 상태에 빠지면 외부적으로 보면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으나 그 심령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상태가 된다. 만일 이러한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하면 진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외부적으로 잘 되어 간다고 하여 잘 되는 것이 아니다. 목사들도 직분과 책임이 커진 다음에는 실력도 커져야 하고 영도 그만큼 자라나야 한다. 언제나 자기가 되지 못한 줄 알고 더욱 더 배울 생각을 하고 나아가야 하나님께 합당한 목사가 될 수 있다. 항상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말고 일어서야 한다. 잘한 것은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하여 주신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못한 것은 자기가 부족하여 잘못한 줄 알아 회개하고 더욱 힘써야 한다. 죄 지은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부족한 면, 말씀에 도달하진 못한 면을 붙들고 애통하고 탄식하며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야 한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밤새도록 씨름한 것은 에서의 손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그런데 야곱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 고는 하지 않고 밤새도록 살려 달라고만 기도한 것은 바른 기도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셔서 위골되게 하니까 그때서야 회개하고 바로 서게 된 것이다. 성도는 항상 자기가 되지 못한 것을 찾아서 애통하고 탄식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도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탄식하여야한다. 먼저 심령이 잘 되어야 외부적인 것도 유지되어 나갈 수가 있다. 심령이 곤고하고 가련한 상태에 빠지면 영력이 약하여지고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흡족히 받지 못하고 시련이 올 때에는 넘어지게 된다.

눈 먼 것은 신령한 눈이 멀어서 신령한 면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영의 눈이 어두워지면 신령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육의 눈만 밝아진다. 그래서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수단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하나님만 위하다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다음에 자기를 위한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정신이 강해져 영의 눈이 멀게 되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선이고 자기를 위하는 것은 다 죄이다. 자기를 위하는 눈이 밝아진 사람의 생활은 모든 것이 불만이고 고통이다. 신령한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만 위하는 자리에 들어가면 어디서나 천국이요, 낙원이다

벌거벗은 것은 수치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 수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옷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는 세상의 옷을 입고 가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세마포 옷을 입고 가야 한다. 예수 믿고 구원을 얻었으나 불 가운데서 얻는 벌거벗은 것과 같은 구원도 있다(고전3:15).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자기를 위하는 일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수치가 드러나게 된다.

.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불로 연단한 금은 시련받은 믿음이다(벧전1:7). 불같은 시험이 올 때에 그 시련 가운데서 믿음을 지켜 연단 받는 신앙을 가질 때에 영적으로 부요하게 된다. 시험에서 이겨야 연단 받은 신앙이 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4:12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고 하였다. 불같이 뜨겁고 맹렬하여 견디기 어려운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할 때 찌꺼기가 다 빠져나간다. 자기 속에 있는 욕심, 자기 중심주의, 사업주의, 교만한 마음과 허영심은 빠져나가야 할 찌꺼기이다. 자기 중심적 사상이 다 빠져나갈 때에 인내가 만들어지고 신앙 인격이 점점 고상하여진다. 또 시련을 통해서 자기가 낮아지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낮추기 위하여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게 만들었고, 시므이가 저주하게 만들었다. 그때에 다윗이 낮아져서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라고 하여 달게 받았다(삼하15:7-12 16:5-14). 느부갓네살왕도 하나님이 낮추시려고 짐승의 마음을 주어 들판에서 풀을 먹고, 머리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발톱이 새의 발톱이 되어 일곱 때를 지내게 하였다. 그때에 느부갓네살이 낮아지고 하나님께 굴복하여 하늘을 우러러 볼 때에 총명이 다시 돌아왔으며 하나님께서만 천상천하를 홀로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단4:28-37).

하나님이 성도에게 불 시험을 주시는 것은 낮추어서 회개시키고,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더 좋은 신앙 인격을 만들고 더 큰 능력을 주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 시험이 올 때에 낙심하지 말고 잘 참고 견디며 자기 위치를 잘 지켜 나아가야 한다.

시련 받은 신앙은 금같이 좋은 신앙이다. 시련을 많이 겪어서 불로 연단한 금과 같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앙을 가질 때 참으로 부유하고 존귀하고 보배로운 신자가 되는 것이다.

사서 불로 연단한 금은 값을 내고 사야 한다. 그 값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인내와 희생이 있어야 하고, 자기가 낮아져서 전심전력을 다 주께 바쳐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것은 다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나아가면 불같은 시험이 올 때에도 하나님의 만능으로 능히 통과할 수가 있다. 노력과 시간과 힘과 정력과 생명 전체를 다 바쳐 놓고 말씀만 따라가면 마침내 연단한 금과 같은 신앙인격이 만들어진다.

흰옷은 19:8에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고 하였다. 성도가 의롭게 되고 거룩하고 진실하며 선하게 되고 도덕적 인격이 바로 되는 것이 흰옷이다. 중생한 영으로 심령이 새롭게되어 마음이 깨끗하게 되고 또 몸으로 말씀을 순종하여 성화를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다. 이 흰옷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입고 살, 참으로 귀한 옷이다. 그러므로 마귀는 이것을 빼앗으려고 여러 가지 궤교를 베푼다. 성도가 이 귀한 것을 마귀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 물질에 손해가 나고 목숨을 빼앗긴다 하여도 성결(성화)을 입어 나가는 일만은 실패함이 없이 계속해 나아가야 한다.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이것은 도덕적으로 결함이 많다는 것이다. 도덕적 결함으로 인하여 멸시를 받을 만하고 부끄러움 당할 만한 일이 많았으나 이제는 거룩한 옷을 입어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성도가 되라는 것이다. 이 일을 이루는 데에도 그 대가로 희생과 인내와 공력이 들어야 한다. 이것이 사서 입는 것이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안약"이라는 것은 신령한 눈을 뜨게 하는 약이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고전2:13). 신령한 눈이 왜 어두워지는가? 육에 속하고 죄가 들어오면 들보가 눈을 가리워 어두워진다. 욕심. 이기주의, 죄의 부패성이 모두 신령한 눈을 가리우는 들보이다(마7:3-4). 엠마오로 가는 예수님의 두 제자도 저희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면서도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하였다(눅24:16). 사울왕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자기를 위하였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졌다. 발람이나 가룟유다는 돈을 따라가다가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심령의 눈을 밝혀 주는 안약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순종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안약이다. 요한복음 9장에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을 때 눈이 밝아졌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그의 말씀만 따라가면 심령의 눈이 밝아진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바라보고 즐거워하였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영접하여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으므로 신령한 눈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성도가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순종하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분별할 수 있다. 순종하면 그 일이 이루어지므로 받은 증거가 있게되고 샛별이 떠올라서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분명한 증거가 생기게 된다(벧후1:19-21).

신령한 세계에서 순종한 만큼 신령한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뜻을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된다. "사서" 안약도 거져 가지라 하지 않고 사라고 하셨다. 산다는 것은 희생과 수고와 공력이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다. 성도들에게는 능력면(불로 연단한 금)과 도덕면(흰옷)과 지혜면(안약)이 더하여지는 것을 말하는데 이 세 가지를 합하여 바로 해 나가는 것을 주님이 원하신다.

.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은 사랑하는 자를 더욱 책망하여 징계하신다. 하나님의 징계가 성도에게 임할 때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시는 줄 깨달아야한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책망하실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잘못한 것을 찾아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한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음으로 성도가 잘못된 길에서 돌이킬 때가 많다. 사람을 통하여 주는 책망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책망인 줄 알고 잘 받아야 한다. 사무엘하 7:14에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인생 막대기를 들어 때리실 때에 그 막대기에 대하여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 막대기가 때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막대기를 이용하신 것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기가 주인 노릇한 것을 회개하여 하나님의 종이 되고, 자기 힘으로 하려던 것을 회개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하며, 자기 뜻대로 하던 것을 회개하여 주님의 뜻대로 하여야한다. 자기를 위하던 생활에서 회개하고 하나님만 위하는 생활하여야 한다. 회개하는 것도 열심을 품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 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시려고 자꾸 문을 두드리신다. 이 문은 우리의 마음 문이다. 아가 5:2-8에 주님이 성도를 찾아오셔서 문을 열어 달라고 밤이 맞도록 문을 두드리신다. 머리는 이슬에 젖고 머리털에 밤이슬이 가득하도록 두드리시는데 성도가 "나는 옷을 벗고 발을 씻었는데 다시 더럽힐 수 없다"고 말하며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완전히 주님을 잊은 것은 아니다. 마음이 동하여 이대로 있을 것이 아니라 문을 열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잠자고 있다. 신앙이 잠들었고 향락주의와 육신 중심의 세상에 깊이 빠져서 일어 설래야 일어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수님은 계속 두드려서 "나의 누이 사랑하는 자야 문 열어다오"하시며 문을 두드리신다.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은 계속 감동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성도의 마음에 역사하여 감동을 시키고 권고하여 깨닫도록 만드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감동시키실 때 벌떡 일어나서 "주여 들어오시옵소서"하고 주를 영접해야 한다. 예수님을 영접하려면 마음 문을 열어 놓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귀히 여겨 그 말씀 안에서 사는 자가 되어야 예수님이 거기에 계신다. 그리하여 성도는 예수님과 더불어 먹게 되고 예수님은 성도로 더불어 먹게 된다.

더불어 먹으리라는 것은 성도는 예수님으로 만족하고 예수님은 성도로 더불어 만족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된다.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이다(요6:55).

.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기는 사람은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도록 하여 주신다. 그 보좌는 가장 요긴한 자리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것을 다 줄 수 있는 귀한 자리이다. 예수님이 잠시 잠깐 후면 오셔서 성도들을 하늘 보좌에 앉게 하여 주실 것이다. 이 세상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긴 사람은 내세에서도 하나님을 모시고 즐거운 생활을 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것이다. 이기는 자가 되려면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알지 말고 이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도록 새김질하고 그 말씀에서 나오는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 그리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를 버리고 금과 흰옷과 안약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도덕과 지혜가 점차 온전케 되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그 시간부터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된다. 예수님의 보좌는 아름답고 찬란하며 영원히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이다. 예수님의 보좌에 앉으면 피곤이 없고 기쁨이 솟아나고 영광이 넘치게 된다. 예수님과 같이 앉아서 항상 예수님을 대하고 예수님과 교제하는 그 보좌에 앉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 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영의 귀가 열린 자를 말한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교회들에게 주셨는데, 신령한 귀가 열려 있지 않으면 그 성령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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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4장

제 4 장 천상 예배

(대 지)

一. 상제 보좌(1-3)

二. 이십 사 보좌(4)

三. 심판 보좌(5)

四. 유리 바다와 네 생물(6-7)

五. 찬송(8-11)

(본문강해)

一. 상제 보좌(1-3)

.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하늘에 열린 문 신령한 문이 열렸고 하나님의 계시의 문이 열렸다는 뜻이다. 신령한 세계의 문이 열리면 영적 세계를 환히 다 볼 수 있다. 스데반이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하였다(행7:56). 스데반이나 사도 요한은 순교적 신앙을 가지고 말씀을 지키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하늘 문을 열어 주신 것이다.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하나님의 음성(말씀)이 나팔소리처럼 크고 분명하게 들렸다.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고 능력이 있어 두려워 떨릴 만큼 큰소리로 들려진 것이다. 신령한 문이 열려 신령한 세계가 발견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고 능력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나팔소리와 같이 크게 들리고 힘있게 들린다.

.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사도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신령한 세계를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었고, 그 보좌 위에 하나님이 앉아 계셨다. 요한이 본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요 앉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하나님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양도 없으시고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다. 여기에서는 요한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뿐이다. "벽옥"은 푸른 보석으로써 그것의 푸른 것은 생명력을 상징한다. "홍보석"의 홍색은 영광을 상징하며, 보석은 아름답고 견고한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생명의 근원이시며 강하고 견고하며 보배로운 존재이심을 뜻한다.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무지개"는 하나님의 약속을 상징한다(창9:13). "녹보석"은 하나님의 생명력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고 그 계약을 이루어 가시는데 계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보여주신 것이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이요 구원 계약이다. 구약은 주님 오시기 전에 주신 계약이고, 신약은 주님 오신 후에 주신 계약이다. 하나님은 무질서하게 일하시지 않으시고 성도들과 계약을 맺고 그 계약대로 반드시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구원해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계약을 기록하여 놓은 것이 성경이며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다. 하나님은 계약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계약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① 행위 계약(선악과에 나타남). 2 은혜 계약(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함). 3 자연 계약(자연 법칙). ④평화 계약(천년왕국). 5 영원 계약(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계약).

행위 계약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으므로 실패하였다. 하나님은 계약대로 역사하시고 그 계약대로 이루어 가신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 계약은 그 자체가 살아서 생명력이 있고, 택한 백성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二. 이십 사 보좌(4)

.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횐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이십 사 장로들은 모든 성도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받은 성도를 대표한 장로가 열 둘이고, 이방에서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를 대표한 장로가 열 둘이다. 그러므로 이십 사 장로는 이스라엘과 이방민족 중에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전체를 대표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타난 이십 사 장로들의 모습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섬기는 면을 보여준 것이다.

흰옷을 입고 구원받은 성도가 흰옷을 입은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첫째, 예수의 피로 성도가 죄 씻음 받았음을 뜻하고(7:14), 둘째, 성도의 의로운 행위, 즉 세마포를 입은 것을 보여준 것이다(19:8). 예수를 믿음으로 주홍 같은 죄가 흰 눈같이 깨끗해졌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인격이 성결함을 이루어 나가는데 이것이 곧 흰옷이다.

머리에 금 면류관 "금"은 믿음을 상징하며 "면류관"은 영광을 상징한다. 구원받은 성도가 믿음으로 영광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서 빛나게 될 것이다(마19 :28)

三. 심판 보좌(5)

. 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이 나오는 것을 가리킨다. 세상의 모든 전쟁과 환난과 재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에도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었다(출19:16).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은 떨며 부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죄인이 감히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도 없고 가까이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엄위하신 하나님을 사람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마땅하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 떠난 증거요 마음이 완악해져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까닭이다. 하나님은 가까이 할수록 두렵고 엄위하신 분인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살펴보면 자기가 너무 추하고 부족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같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일곱 영은 하나님의 성령이다. "일곱"은 하나님의 완전수로써 완전한 성령을 의미한다. 완전한 성령께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셔서 하나님의 보좌를 완전하게 증거하실 수 있도록 하시며 성도들의 마음속에 완전한 감동과 완전한 역사를 이루신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두움의 세력에 붙잡혀 있으면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한다. 성도가 욕심에 사로잡히고, 마음이 세상으로 기울어지고 자기중심으로 살아갈 때에는 눈이 어두워진다. 이러한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보좌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언제나 어디서나 성령의 완전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또 죄가 있으면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한다.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이 되어야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대하여 밝히 깨달아 알 수 있다.

四. 유리 바다와 네 생물(6-7)

.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수정은 맑고 깨끗하여 투명한 것을 말하고, 유리 바다는 동요가 없고 고정된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21:18, 21).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는 맑고 깨끗하여 요동함이 없고 견고한 것을 뜻한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히 성결하여서 조금도 어두움이나 더러움이 없다. 세상 나라는 시대에 따라 변하며 요동이 많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받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무결하여 영원히 변동이 없다. 히브리서 12 : 28에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고 하였다.

네 생물은 그룹(천사)의 일종이다(겔10:14). 천사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룹도 그 중 하나이다(겔1:10참조). 그룹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도록 창조된 피조물이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속성)대로 지음받은 존재이며,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천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이 아니고, 그저 심부름꾼으로 창조하신 것뿐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천사보다 존귀한 것이다(히1:14).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속에 들어와 하나님의 완전하신 속성이 나타날 수 있도록 창조하시고 천사는 하나님의 속성이 능히 부릴 수 있도록 창조되었으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이다.

. 4:7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사자"는 권세와 강한 능력이 있음을 상징한 것이다. 천사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용될 것을 뜻한다.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송아지"는 온유하고 희생과 봉사하는 면을 상징한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에 온유하여 희생과 봉사로 순종하는 것을 뜻한다.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사람"은 지혜를 상징한다. 천사들이 하나님의 지혜에 사용되고 있음을 뜻한다. 지혜로운 하나님께서 이용하시려고 천사를 지혜롭게 창조하신 것이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서는 천사에게도 지혜가 있어야 한다.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독수리"는 강건하여 높이 올라가는데 신령한 것을 상징하고 또 심판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사야 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하였다. 천사는 강건하여 신령한 세계에서 하나님께 이용당한다. 죄를 미워하시고 공의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심판에도 천사들이 심부름을 하게 된다.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므로 이 네 가지 성격이천사보다 더욱 풍성하게 부여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사자와 같은 능력을 입혀 주시어 모든 원수(마귀)를 대적하여 나갈 수 있게 하셨다. 성도가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면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는 약한 것이 아니고 강력이다(고후10:4).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영의 사람으로 살면 강력한 능력이 나온다. 우리가 영으로 살지 못하면 힘이 없어지고 연약한 가운데 빠지고 만다.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강력한 능력을 힘입어 모든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11:29)라고 하셨다. 또 예수님은 친히 죄인들을 위한 희생의 제물이 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온유한 마음이 되려면 중생한 영을 따라 살아야 한다. 모세가 육신대로 나아갈 때는 혈기가 나서 사람을 죽였으나 중생한 영으로 살 때에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게 되었다(민12:3).

사도 바울도 중생하기 전에는 완악하여서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였으나 중생한 영을 따라 살 때에는 겸손하여지고 성도들을 위하여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하게 되었다. 성도가 영으로 살 때에는 주를 위해서 몸바쳐 살고자 하는 마음이 나오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즐거워진다. 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혜롭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중생한 영이 성령을 힘입어서 살 때에는 신령한 지혜가 있다. 중생한 영으로부터 나오는 신령한 지혜가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

중생한 영을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살지 못하고 육신을 따라 환경에 얽매이고 인정에 얽매어 살면 신령한 지혜는 어두워지는 것이다. 요한일서 2:27에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라고 하였다. "기름부음"은 성령께서 우리 중생한 영혼에 역사(합작)하는 것을 말한다. 중생한 영을 쓰면 성령의 역사가 있게 되고 영이 밝아져서 신령한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영의 인도만 따라가면 모든 것을 밝히 알고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중생한 영의 세계는 신령한 생명의 세계이다. 신령한 생명의 세계는 언제나 살아 올라가는 생활이어야 한다. 중생한 영혼을 쓰면 피곤치 않고 날마다 신령한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 네 생물이 하나님을 섬기는 면을 보고, 중생한 영을 가진 성도는 이들보다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도록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또 성령께서 내재하여 계시기 때문이다.

五. 찬송(8-11)

.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이사야 6:2에 나오는 스랍(천사)들도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았다고 하였다. 얼굴을 가리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얼굴을 내어놓을 수가 없어서 얼굴을 가린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살 때에는 하나님이 너무 거룩하고 엄위하시기 때문에 얼굴을 가리우지 않을 수 없다. 또 둘로 발을 가린 것은 겸손을 나타내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비천한 자기 자신을 내어놓을 수가 없어서 가리운 것이다. 자기가 행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만한 것이 없다는 뜻도 있다. 우리는 항상 겸손하여야 한다. 의를 행한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자기가 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감히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만한 것이 없는 줄로 알아야 한다. 또 두 날개로써 날았다 함은 신속히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천사가 날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순종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에 즉시 순종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네 생물이 여섯 날개로써 이러한 일을 행한 것이다. 영물(靈物)곧 천사는 번개같이 빠르다(겔1:14). 우리 영도 번개같이 빠르다. 우리 마음은 영이 사용하는 기관인데 영이 빠르므로 마음도 빠르다. 영이 사용하는 기관인 마음이 너무 느리다면 영이 사용할 수 없다. 우리 마음이 번개처럼 빠른데 이 마음을 잘 훈련하여 영이 사용하도록 하여야 한다. 영은 하나님께 이용되고, 마음은 영에게 완전히 이용되어야 한다. 천사는 하나님께 이용당해서 하나님의 일을 잘 수행한다. 성도도 마음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당하면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유익하고 육신에 이용당하면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방해가 된다.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통찰력이 밝은 것을 가리킨다. 영물은 통찰력이 밝아서 안 밖과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밝히 보고 안다. 그러므로 성도가 중생한 영을 써서 영의 세계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다. 성도가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은 육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욕심으로 기울어지면 심령의 눈이 캄캄하여져서 멸망의 구렁텅이로 점점 내려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신앙 양심대로 바로 행하며 잘못이 있으면 즉시로 회개하고 바로 서서 영적 세계에 사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네 생물이 하나님을 찬송하였는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송하였다. 세 번 반복해서 거룩하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지극히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성도들의 구원을 계획하셨고 지금도 그 구원을 이루어 가시며 장래의 구원도 이루어 나아가실 터인데, 장차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성도의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다.

. 4: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네 생물들이 영원하신 주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 4: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이십 사 장로들도 자기들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찬송하였다. 면류관은 영광을 상징하며 하나님이 영광을 주실 때에 자기들이 그 영광(면류관)을 받지 않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면류관(상금)을 주셨으나 겸손하여 그것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 돌리는 마음이다. 모든 것이 자기 힘으로 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께서 하여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합당하다. 성도는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마땅하다. 자기가 행한 것은 죄뿐이고 잘한 것이 조금 있다 하여도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나 사람이 영광을 받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성도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여야 하고 자기를 위해서 하면 죄이다(고전10:31).

.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 다 하나님께만 있는 줄을 알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만물이 주의 뜻대로 창조되고 보존되므로 하나님만 만물의 주인이요,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받아야 한다. 자기가 영광을 받는 것은 합당치 않으므로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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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5장

제 5 장 예언칠봉(豫言七封)

(대 지)

一. 개봉자가 없음(1-2)

二. 요한 대곡(3-4)

三. 승리자 예수(5-7)

四. 사대(四大) 찬송(8-14)

(본문강해)

一. 개봉자가 없음(1-2)

. 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이 책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서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실 계획을 능력의 손으로 이루어 가신다. 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서를 제시해 주시려고 오른손에 들고 계신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이 책이 요긴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팎으로 썼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가감할 수 없이 완성된 것을 의미한다. 이 성경 말씀은 완전하고 충만하여 완전 무결하게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것을 요긴하게 취급하사 오른손에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책을 펼 수도 없고 그 내용을 알 수도 없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곱"은 하나님의 완전수를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구원 계획서가 완전히 봉하여졌으므로 그것을 이 땅위에 실현시킬 자도 없고 보여줄 자도 없다는 뜻이다.

. 5: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밝히 알아 그대로 실현시켜 나아가기에 합당한 사람이 누구냐고 천사가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구원 계획서대로 이 세상에서 실현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二. 요한 대곡(3-4)

. 5:3-4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거나 실현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책(구원 계획서)을 펴거나 보기에 합당한 자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중단되어 자기 구원과 다른 사람의 구원도 안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안타까워서 통곡을 한 것이다. 요한과 같이 구원 문제를 위하여 울며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요한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위하여 밧모섬에 귀향 가서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있다. 이처럼 요한이 구원문제 때문에 생명을 내놓고 나아가는 중에 있는데 그 구원 문제가 중단되게 되었으니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구원 문제가 잘 안되어 가는데도 평안한 마음으로 있으면 안 된다. 구원 문제를 위하여 애통하고 안타까워하며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이 구원 문제가 잘되어 가도록 힘써야 한다. 요한은 이 구원 문제를 위하여서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이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문제를 위하여 40년간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사도 바울도 구원 문제를 위하여서 많이 울었다. 로마서 9:2-3절에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하였다. 바울이 이스라엘 사람을 위하여 애통한 것을 민족주의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교회이므로(행7:38 참조) 바울이 이스라엘 사람을 위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 문제 때문에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을 느낀 것이다. 성도들이 세상 문제가 잘 안되면 안타까워하면서도 신령한 문제(구원 문제)에는 무관심하다면 믿음이 죽은 증거이다. 인간은 죄악의 권세와 무능 때문에 그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수가 없다. 죄 있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고 하나님이 친히 인봉한 그 책의 인을 떼어 펴거나 볼 수가 없다. 그 책의 인봉한 진리를 완전히 알고 실현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사람이 구원 문제를 위해서 열심을 낼 때에 성경대로 하지 않으면 마지막에는 불에 타서 없어지고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고전3:12-15).

자기 생각대로 한 것은 전부 불에 타서 없어지고 성경대로 한 것만 남는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애굽의 바로 왕이 꿈을 꾸었는데 술객과 박사들이 해석을 하지 못하였다(창41:1-8). 그들이 자기 생각대로 아무렇게나 해석을 하여도 그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왕이 꾼 꿈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이기 때문에 잘못 해석하면 다 죽게 된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성경)는 해석을 옳게 하여야 바른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당시에는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달았으므로 그 꿈에 대한 해석을 바로 하여 칠 년 흉년에 대한 대책도 바르게 세울 수가 있었다. 요셉이 하나님의 계시를 밝히 깨달았으므로 자신이 살았고, 이스라엘 족속과 애굽의 모든 사람을 살려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약시대의 영적 구원을 가리키고 세상나라 운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세상 나라정치 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

이기선 목사님은 "우리는 예수 믿고 천당에 가는 것이지 세상 정치에 가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가르쳤다. 이기선 목사님이 어디 갔다가 돌아올 때 신의주 역에 하차하니 내무서원(경찰)들이 묻기를 "영감님은 어느 당에 들었습니까?"하고 물어 보았다. 그때 "나는 나사렛 예수당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사람들은 처음 듣는 말이므로 "나사렛 예수당은 뭐 하는 겁니까?"하고 재차 물었다. 그 때 이기선 목사님께서 "회당(예배당)으로 해서 천당에 가는 당입니다"라고 담대하고 자신 있게 말하니까 내무서원이 "됐습니다 어서 가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기독교는 구령 운동(예수를 믿어 영혼이 구원 얻는 운동)이며 세상 운동을 하는 곳이 아니다. 목사가 세상 정치에 가담하면 안 된다. 성경 해석을 바르게 하지 못하면 현세에도 영적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지 못하고 내세에도 상 받는 자리에 이르지 못한다. 또 성경대로 한 것이라고 하여도 "자기가 한 것"과 "자기를 위하여 한 것"은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지고 만다. 가령 어떤 성도가 자기 집을 팔아서 예배당 짓는 데에 바쳤다고 하자 이 사람은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집을 팔아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분명히 깨달아 하나님의 뜻에 피동되어 바쳤다면 상급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성도가 자기 명예와 영광과 권세를 위하여 그렇게 했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는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다. 자기 상을 이미 받은 것이다. 자기 영광과 명예, 체면 때문에 한 것이므로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고 아무리 많은 돈을 바쳤어도 그 행위는 불에 타서 없어질 것이다.

三. 승리자 예수(5-7)

. 5: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유대 지파의 사자 이것은 창세기 49:9-10에 대한 예언 성취의 말씀이다. "사자"는 이기는 자의 표상이요 왕권을 가리키는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시고 유다 지파를 통하여 세상에 오셔서 세상의 모든 죄와 마귀의 세력들을 멸하실 것을 말한다.

다윗의 뿌리 다윗의 왕통을 계승하여 영적 왕으로 나오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사 11:1).

이기었으니 이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다 지파 다윗의 왕통을 계승하여 세상에 오셨고, 그 왕권을 가지시고 모든 것을 이기셨다.

예수님께서

1 죄를 이기셨다(고전15:56-57).

2 마귀를 이기셨다(골2:14-15).

3 세상을 이기셨다(요16:33)

4 음부의 권세를 이기셨다(마16:18).

5 사망을 이기셨다(마28:6, 고전15:55-57).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이러한 것들을 이겨서 완전 승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실현시키시고 그 내용을 우리에게 전부 계시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양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한 희생의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여 구원 계획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어린양이라고 했다.

일곱 뿔 "일곱은" 완전한 수이다. "뿔"은 권세와 능력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만능의 권세를 가지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다 이기셨다. 완전한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모든 마귀의 권세를 다 이기시고 그 권세를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 성도에게 닥쳐오더라도 예수님이 이미 이기셨으므로 우리도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능히 이길 수가 있다. 마귀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성도가 믿고, 자기에게 덧입혀진 그 능력을 쓰면 모든 마귀의 권세를 능히 이겨 나갈 수가 있다.

일곱 눈은 모든 것을 밝히 보고 완전히 아는 성령을 가리킨다.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받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달을 수 있고 지혜를 얻게 된다. 사람이 자기 지혜로 하면 마귀에게 지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나가야 마귀의 세력을 이길 수 있다.

. 5:7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예수님이 책을 취하신 것은 구원 계획을 실현시켜 나가시려고 그 책임을 맡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고 적극적으로 구원을 성취하여 가신다. 구원 계획을 주님이 그대로 실현하여 나아가실 때에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신다. 주님은 성도들을 오른손에 붙들고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신다. 주님께 붙들린바 되어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성도를 붙드시고 하나님께서 예정하여 놓으신 구원계획을 실현하여 나가시는데, 거기에 바로 이용당하여야 복이 있다. 말씀을 배우는데 그치지 말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 나아가며 말씀에 이용당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다 이루어 나아가시므로 성도는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 이용만 당하여 따라가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도하지 않는데 자기 주장대로 가면 안 된다.

사도 바울은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하였다(빌 3:12).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걸어 나아가야 구원을 이루어 가게 된다.

四. 사대(四大) 찬송(8-14)

. 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네 생물은 천사를 가리키고, 이십 사 장로는 구속받은 성도들의 대표인데 이들이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 앞에 엎드린 것이다.

향이 가득한 금 대접 향은 성도의 기도이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께 향과 같이 상달(上達)되는 것이다. 성도가 기도할 때에는 시간과 정력과 마음을 바쳐서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가 잘 안되고 막히는 경우에도 회개하며 마음을 기울여 사모하며 시간과 공력을 많이 들여 기도하면 마침내 기도의 문이 열리게 된다. 또한 향을 피우는 것은 더러운 냄새를 제거하는 목적도 있다. 성도가 기도를 많이 할 때에 부패성이 제거되고 더러운 냄새가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오게 된다.

먼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을 회개하는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기도해야 한다.

. 5:9-10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

새 노래를 노래하여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새 노래이다. 새로 작시를 하고 작곡을 한 것이 새 노래가 아니고 성도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서 새 생명의 역사가 있을 때 늘 부르던 찬송을 불러도 새 노래가 된다. 주님을 찬양한 내용은

첫째, 책을 가지시고 인봉을 떼기에 합당한 이라 하였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도 인봉을 뗄 자가 없는데 우리 주님이 죄와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고 인봉을 떼시어 구원 계획을 실현시켜 나가게 된 것을 감사하여 찬송을 하였다.

둘째,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일지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도들을 보혈로 값 주고 사셔서 하나님께 드린 것을 찬양하였다.

셋째, 택함을 입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된 것과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만 위하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을 찬양하였다.

넷째, 성도들이 땅에서 왕 노릇하게 된 것을 찬양하였다.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성도는 영적 왕권, 우주적 왕권, 천년왕국에서의 왕권, 영원한 나라에서의 왕권을 그리스도로 더불어 갖게 된다.

. 5:11-12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많은 천사와 성도들이 구원을 위하여 죽임을 당한 어린양 예수님을 찬양하였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찬송하였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셨고 부활하여 새 생명을 입혀 주셨다. 성도가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한 것이다.

. 5:13-14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께 있는 만물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찬양한다. 독생자를 보내시어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성취시킨 성부와 성자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 때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크신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항상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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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계시록6장

제 6 장 개인(開印)

(대 지)

一. 복음 운동(백마) (1-2)

二. 적 기독 운동(적마) (3-4)

三. 기근(흑마) (5-6)

四. 혼합주의(청황색마) (7-8)

五. 순교자(교회 환난) (9-11)

六. 대외일(大畏日)(환난) (12-17)

(본문강해)

一. 복음 운동(백마) (1-2)

. 6:1 내가 보매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네 생물은 그룹(천사)들이다(겔10:14 참조). 예수님이 구원운동을 이루어 나아가시는데 천사들이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 6:2 내가 이에 보니 흰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흰말은 복음 운동을 상징한 것이다. 흰 색은 보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색이다. 죄를 회개하면 눈과 같이 희게 하여 주겠다고 하였고(사1:18), 이기는 자에게는 횐 옷을 주겠다고 하였으며(3:5),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옷이 횐 빛으로 변화하였고(마17:1-2), 이십 사 장로가 횐 옷을 입고 있었다(4:4). 그러므로 횐 색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께 속한 운동은 복음 운동이다. "말"은 전쟁을 뜻한다. 스가랴 6:1-5에 네 말이 나왔는데, 그 말들이 바람이라고 하였고, 바람은 전쟁을 상징한다(렘22:22 참조). 그러므로 말은 전쟁이다. 19:11-16에도 예수님이 흰말을 타고 나와서 전쟁을 하였다.

그 탄 자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흰말을 타고 나와서 복음운동을 하시는 것이다. 복음으로 이겨 나아가시는 예수님이시다. 복음 운동은 예수님께서 친히 하시고 전도자는 예수님의 심부름꾼일 뿐이다

활을 가졌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싸우시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화살과 같아서 사람의 심령을 꿰뚫는다. 시편 45:5에 "왕의 살이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전도할 때에 저희가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라고 하였다. 하나님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찌르기 때문에 활로 쏘는 것과 같다.

면류관을 받고 복음 운동을 하면 면류관을 얻는다는 뜻이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위하여 일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면류관을 받는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복음은 실패가 없고 이기고 또 이기어 최후의 승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어디서나 계속 승리할 뿐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 즉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적인 위력이 있는 것이다(롬1:26 참조).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권세를 이기어 인을 떼게 되었으며 계속하여 복음 운동을 승리적으로 전개하여 나가신다. 그러므로 이기고 또 이기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음 운동을 대적하는 흑암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복음의 빛을 이길 수는 없다. 빛이 커지는 만큼 흑암은 점점 사라진다. 복음의 역사가 커지는 만큼 마귀의 세력은 물러가게 되므로 복음의 역사가 점점 커져 나간다. 복음의 역사는 먼저 성도의 마음속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심령 속에서 복음이 역사하여 성도가 점점 능력을 얻고, 복음에 붙잡힌 생활을 하여야 한다. 전에는 자기 생각대로 무슨 일을 하였으나 이제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이 되고 말씀에서 능력을 얻어 그 말씀대로 걸어가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에 올라갔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말씀을 증거하였다(행18:5 ; 20:22).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 감동에 끌리워 예루살렘에 간 것이며, 말씀에 붙잡혀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어 복음을 전한 것이다. 바울이 받은 복음에는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어 복음이 바울을 끌고 간 것이다.

성도가 복음에 정복을 당하여 복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바른 신앙이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복음을 통하여 나타난다. 주님께서 복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 만능으로 이겨나가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택한 자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복음을 받으려고 힘을 쓰고 말씀을 깨달으려고 노력을 하여야 한다. 또 자기가 받은 그 복음이 자기에게 권세와 능력이 되어서 "자기"를 건설해 나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서 그 복음이 다른 사람에게 증거되어져야 한다. 성도가 예수님께 이용당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운동이 자기를 통하여 날마다 이루어져 나가도록 해야 한다. 교역자가 교회를 자기 수단 방법과 자기 생각대로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 이용당하지 못한 증거이다. 예수님께 이용당하는 성도가 복이 있다. 만물도 그리스도께 이용당하면 복이 있다. 만물이 직접 그리스도께 이용당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께 이용당하는 사람에게 이용당하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께 이용당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만물의 본분이다. 성도가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께 이용당하면 그 성도에게 이용당하는 모든 것이 다 복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모든 것이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다(롬8:19-23 참조).

성도와 만물이 주님께 이용당하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시는 복음 운동이 잘 되어 가게 된다. 성도가 주님께 이용을 당하면 자기의 구원이 잘 이루어지고, 자기 영혼이 자라나고, 인격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 면류관과 칭찬을 받는다. 복음이 자기 속(심령)에서 이긴 것만큼 외부에서도 이겨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흰말을 탄 자"가 적 그리스도 혹은 거짓선지자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른 해석이 아니다. 활만 있고 살이 없으니까 거짓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활을 가졌다는 것은 화살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군인들이 총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갔다 하면 총과 탄환을 함께 가지고 간 것과 마찬가지이다.

복음은 언제나 이겨 나가기 때문에 아무 교역자가 나가서 복을 전하여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복음은 전파되어 나간다. 초보적인 진리를 가지고 나가서 전하여도 발전이 되고, 좀 더 높은 진리를 가지고 나가서 전하여도 발전이 되어 나간다. 부족하고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그 사람이 복음에 정복되기만 하면 다른 사람을 복음으로 정복하여 나아갈 수 있다.

二. 적 기독 운동(적마)(3-4)

. 6:3-4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칼을 받았더라

붉은 다른 말은 마귀 운동이며 복음을 반대하는 세력이다. 붉은말을 탄 자가 큰칼을 받아 화평을 제하고 서로 죽인다. 붉은 색은 죄와 마귀에게 속한 빛이다. 12:3에 마귀를 "붉은 용"이라고 하였고, 이사야 1:18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고"하였다. 큰칼을 받았더라 큰칼을 받아 서로 죽이는 것을 보아도 붉은 말은 마귀 운동이 분명하다. 복음 운동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마귀 운동이 있다. 탄 자가 큰칼을 받았으니 분쟁과 전쟁을 일삼고 죽이고 파괴하는 일만 한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에도 헤롯이 노하여 어린아이들을 많이 죽였다. 아벨이 복음 운동을 하매 마귀가 가인을 노하게 하여 아벨을 죽였다. 이 노하는 것이 마귀의 운동이요, 붉은 말 운동이다. 복음이 이기고 또 이기려 하므로 마귀가 그것을 막으려고 모든 술책을 다 쓴다.

현재 세계 도처에서 반 기독 운동이 일어나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붉은 말 운동이다. 붉은 말의 반 기독운동은 국가적인 세력을 업고 나올 때도 있고 단체적인 세력(반 기독교적 종교 단체)을 가지고 나올 때도 있다. 또 자기 가족 중에서도 붉은 말 운동이 나올 수 있다.

성도가 말씀대로 순종하여 바로 믿으려고 하면 마귀의 세력이 여러 가지 궤교로 대적하여 온다. 마귀는 성도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심령에 상처를 주며 낙심하게 만들어 영적 생명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한다. 마귀가 격동을 시켜도 심령에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 아무리 격동을 시켜도 태연 자약하여 심령 속의 화평이 깨어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의뢰하고 말씀을 순종하고 나아가면 화평을 유지할 수 있고 마귀의 운동을 이길 수가 있다.

三. 기근(흑마)(5-6)

. 6:5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검은 말은 기근을 상징한다. 마태복음 24:7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라고 하였다. 말세에는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겠다고 하였다. 말세에는 모든 것이 기근이 들게 된다. 현재에도 모든 원자재가 점점 고갈되어 가는 상태이다. 특별히 진리의 기근이 심하다. 아모스 8:11에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다. 기독교가 세속화되고 형식화되면 신령한 면을 상실하게 되어 영적 생명의 말씀이 기근을 당하게 된다. 성경을 외부적으로 아는데 그치지 말고 신령한 뜻을 깨달아 영의 양식이 되도록 하여야한다. 마귀의 운동이 격렬해지면 마귀의 세력에 눌려 말씀이 기갈상태가 된다. 영이 자유를 누릴 때는 말씀에 은혜가 있고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지만 마귀에게 속아넘어가면 말씀을 받을 수가 없다. 육신을 위한 양식의 기근보다 말씀의 기근이 더욱 심각한 것이다. 말세에는 마귀가 전 세계적으로 세력을 잡아 기독교 반대 운동이 극심하여진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고, 말씀대로 믿는 자는 심히 핍박을 당하여 감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러한 환난과 핍박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 줄 알면서도 따라가지 못하게 되는데, 성도가 말씀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둘째, 자기 생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며 셋째,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귀에게 지면 마귀의 종이 되고 말씀의 기근을 당하여 심령이 곤고한 가운데 빠지게 된다. 영의 양식을 받아먹어야 영이 살 수 있는데 말세에는 영의 양식을 받아먹지 못하도록 마귀가 맹렬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저울은 공평과 심판을 가리킨다. 다니엘 5:27에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함이요"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진리대로 공평하게 심판을 행하실 것을 상징한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더라도 말씀대로 나아가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 6: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 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데나리온"은 은전의 명칭인데 장정이 하루 종일 일한 품삯이다. 성도가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야 자기 영적 양식을 겨우 밀 한 되만큼 받아먹을 것을 뜻한다. 이사야 55:2에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고 하였다. 여기서 "은을 달아 준다"는 것은 정력과 모든 보물을 바치는 것을 뜻한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시간, 마음, 정력, 힘, 제물)을 영의 양식이 되지 못하는 것에 허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밀 한 되, 보리 석 되" 성도가 있는 힘을 다 써서 일하여야 보리와 같은 것은 석 되, 밀과 같이 귀한 것은 한 되 얻는다는 뜻이다. 보리는 하급 곡식으로 보리 석 되는 밀 한 되의 가치밖에 되지 않는다. 세대가 악하여 말씀의 기근을 만나면 있는 힘을 다해 겨우 자기 하나 먹고 살 수 있게 된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한 데나리온)을 다 바치고 힘을 써야 고상한 진리(밀)는 겨우 자기 먹고 살 정도 얻을 수 있으며, 초보적인 진리(보리)는 조금 더 얻을 수 있다. 지금은 시대가 악하며, 세상주의가 마음속에 들어와 있기 때에 이것을 자기 마음속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영의 양식을 받아먹을 수 없다. 말세에는 마귀의 역사가 강하고. 세대가 악하여 영의 양식을 얻어먹기가 힘드는 말씀의 기근을 당하게 되므로 성도가 전심전력을 다하여 믿는 일을 하여야 겨우 자기 영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또 말세에 경제적인 곤란이 올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물가가 폭등하고 여러 면에 기근이 들어서 장정이 하루종일 나가 일해야 밀 한되나 보리 석 되밖에 사지 못한다는 것이다. 밀 한 되나 보리 석 되는 한 사람이 하루 먹을 양식이다. 장정이 힘써 종일 일하여야 겨우 자기 먹을 양식을 얻을 수 있는 뜻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감람유"는 진리와 영감으로 만들어진 영혼을 가리킨다. 이것은 마치 마태복음 25:4에 나오는 슬기 있는 다섯 처녀가 준비한 기름과 같다. 그들이 준비한 기름도 진리와 영감으로 만들어진 영혼을 가리킨다. "포도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킨다. 이사야 55:1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진리와 영감으로 영혼이 자라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도 영원히 남게 된다. 말세에 말씀의 기근을 당하나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힘을 쓰고 깨달으려고 노력하면 자기 먹을 양식은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신다. 도저히 배울 수 없을 때는 이미 배운 말씀을 새김질해서 살아갈 수도 있다. 배울 수가 있을 때에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는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때가 온다. 배울 수 있을 때에 자기의 데나리온을 다 써서 말씀을 배우고 새김질하여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 영혼이 자라나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감람유가 넉넉하여 신랑 맞을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이다. 진리와 영감으로 중생한 영이 자라나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게 되며 마귀가 해할 수 없게 된다. 마귀가 육체의 생명은 죽여도 이것만은 해하지 못하고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四. 혼합주의(청황색마)(7-8)

. 6:7-8 네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네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청황색 청황색은 혼합된 색깔로 타협주의나 혼합주의를 뜻한다. 진리와 비진리, 영의 운동과 육의 운동, 천국 운동과 세상 운동,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섞어 나가는 것이 청황색 말 운동이다. 마귀의 역사는 진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보다 진리에 비진리를 섞어서 진리와 비진리가 서로 타협하도록 유혹하는 경우가 많다.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진리에 비진리를 섞은 혼합주의 운동으로 많은 사람의 심령이 죽게 된다. 붉은 말을 탄 자는 칼을 가지고 나와서 직접 사람을 죽이고 화평을 제하였으나, 청황색 말을 탄 자는 진리에 비진리를 혼합하여 많은 사람의 심령을 죽게 만들어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게 한다. 마귀가 정면적으로 복음 운동을 대적해 올 때는 성도들이 마귀의 역사인 줄 깨달아 경계하고 조심하므로 어느 정도 피해를 면할 수 있다. 그러나 혼합주의는 진리와 비슷하므로 많은 사람이 분별을 못하고 따라가게 되어 결국은 사망에 이른다. 이것은 마치 열왕기상 13장에 젊은 선지자가 늙은 선지자의 말에 미혹되어 따라간 후 사자에게 죽임을 당한 것과 같다. 혼합주의에는 비진리가 섞여 있는데 그 비진리는 날이 갈수록 세력이 강하여지므로 혼합주의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마침내 미혹되어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게 된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사도 바울은 순전하게 진리를 전하였다(고후4:2).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내는 자가 하나님의 참 종이다. 고린도에는 이적을 숭상하며 지혜로운 말을 좋아하는 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십자가의 도만 전하므로 이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고, 지혜를 찾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만 순전하게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권능이다(고전1:22-24). 오늘날도 이적을 구하는 신비주의와 지혜로운 말을 찾는 현대주의가 있다. 이들에게는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미련해 보이고 거리끼는 것이 될지라도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야 한다.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것을 섞으면 인본주의가 되어서 교인의 숫자는 많아질지 모르나 교회가 하나님의 권능을 잃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도 없어진다. 교인의 숫자야 많든 적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야 참 교회가 된다. 교인을 많이 모으려고 인본주의를 쓰면 그것 때문에 교회 안에 인본주의로 나가는 교인이 생기고 마침내는 그들이 말씀대로 나가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교역자가 인본주의를 쓰면 점점 권능과 능력과 지혜를 잃게 된다. 오늘날 교회들이 인본주의를 써서 교인을 많이 모으려고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다. 주일에 야유회를 가고, 음식점에 가서 매식하고, 사회적으로 조금만 유력한 사람이 들어오면 신앙면은 보지 않고 집사, 장로, 권사의 직분을 맡긴다. 믿음을 표준으로 하지 않고 세상적으로 권세가 있고, 돈이 있고 유력하면 그것을 표준으로 직분을 맡겨서 그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 이렇게 직분을 맡기면 그 교인이 연보도 많이 내고 열심도 낸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인본주의 세력이 커지면 나중에는 교역자가 그 세력에 붙잡혀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인도권이 없어지고, 그들의 의향대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청황색 말 운동이 되고, 교인들의 생명의 역사는 죽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방법으로 전도하시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다음 날 많은 사람이 예수께 나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하시며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26,53)고 말씀하셨다. 육신을 위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오, 물질이 명예나 사업을 위해서 교회에 나오면 참 성도가 아니다. 교회에서 인본주의를 써서 육의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사람 비위를 맞추어 주면 사람은 많이 모을 수 있으나 복음 운동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것은 세상 운동이 천국 운동이 아니다. 진리와 비진리는 결단코 혼합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복음 운동에 합당하지 않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W.C. C.에서 주도하는데 모든 종교 단체 교리는 달라도 사업은 협동하여 같이 하자는 것이다. 사업은 행동이며 행동은 교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리가 다르면 행동을 같이 할 수 없다. 교리가 다른데 행동을 같이 하려면 자기 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곧 혼합주의의 청황색 운동이다. 교회가 절반은 하나님 말씀대로 나가고 절반은 인본주의로 나가면 이것은 청황색 말이 된 것이며 다음에는 사망이 들어오고, 생명의 역사가 끊어진다.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섞어 놓으면 인본주의만 커진다. 곡식 밭에 가라지가 섞여 있으면 가라지만 왕성해지고 곡식은 가라지로 인하여 열매를 못 맺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비진리와 화합하거나 타협하면 안 된다. 마태복음 5:37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하였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해서 세워 나가야 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서 끊어 나가야 된다. 적은 누룩을 제거하지 않으면 온 덩어리에 퍼져 다 썩어지게 된다(고전5:6). 성도는 언제나 누룩적인 요소 곧 비진리적인 요소들을 구별하여 끊고 나가야 한다. 비진리를 끊지 못하고 타협하면 자기 생명의 역사가 죽고, 다른 사람의 심령도 죽인다. "음부"란 말에는 세 가지 뜻이 있는데, 1 죽음의 상태 ② 무덤 3 지옥이다. 그 중에 여기서는 죽음의 상태를 말한 것이다.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되면 심령은 죽음의 상태를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전쟁을 뜻한다. 흉년 기근을 당하여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을 가리킨다. 사망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을 말한다(겔14:21 참조).

땅의 짐승 세상 나라의 세력을 상징하며, 세상 나라의 세력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진리를 떠나게 되어 영적 사망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五. 순교자(교회 환난)(9-11)

. 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죽임을 당한 영혼들 말씀을 지키다가 환난 가운데 순교 당한 성도들이다. 성도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을 각오를 하고 나아가야 믿음을 지킬 수 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법인데 주를 위하여 말씀을 지키다가 죽으면 얼마나 복이 있을까 ! 복음을 위해 죽는다면 참으로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복음을 전하며 말씀을 지키다가 죽는 것은 예수를 위해서 죽는 것이며, 하늘나라에 영원한 상급이 있게 된다. 14:13에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고 하였다. 주를 믿고 주 위해 죽는 자들은 제일 복이 있다는 것이다.

공산당도 삼대 각오를 하고 공산주의 운동을 한다고 한다. 1 맞아 죽을 각오 2 굶어 죽을 각오 3 얼어죽을 각오이다. 지옥에 갈 사람들도 이런 각오를 하는데 우리는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받을 자가 순교할 각오도 없이 나아간다면 말이 안 된다. 순교자는 하늘 나라에서 아주 영광스러운 특별 반열에 참여한다. 순교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생명을 바꿔 가진 사람이다. 순교자는 육신의 생명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서 그 사랑에 삼키워져 즐거움으로 순교 당한다. 이런 자는 영혼이 많이 자라나 하늘나라의 것을 많이 소유하고 하나님의 많은 상급을 받는다. 성도의 죽을 때가 제일 큰 대목장(요긴한 때)인데 말씀과 생 을 바꿔 가진다면 가장 큰 수입이 되는 것이다. 죽을 때 많이 회개하면 영이 많이 자라고 자기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썩어질 육신의 목숨을 하나님의 말씀과 바꿔 가진다. 하늘나라에서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칭찬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

. 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순교자들이 원수를 갚아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것뿐이다. 세상에 악의 세력이 가득 차서 공의가 멸시를 당하므로 공의와 의를 사랑하고 사모하여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다.

. 6:11 각각 저희에게 횐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흰 두루마기는 성도가 의를 이루어 갈 때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성결을 말하는 것이다(19:8). 성도가 의를 지키고 순교한 행실이 하나님 앞에 흰 두루마기가 되어 있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 행실은 성결을 이루는 역사가 있다.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순교자의 좌석은 개인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정된 자만 순교 당하고 예정되지 아니한 자는 아무리 원하여도 순교하지 못한다. 순교 당할 사람은 벌써 하나님께서 좌석을 예비해 놓으셨다. 좌석권이 없는 사람은 순교 당하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 성도가 자격도 없으면서 자기가 순교 당할까봐 벌벌 떨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예정이 되어 있어 순교를 당하게 되면 최상의 복을 받은 자이다. 순교자의 자리는 존귀하고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곳이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순교자로 예정해 놓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성도는 순교할 각오로 나아가다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감사함으로 순교의 자리에 참여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번 죽을 것이므로 예수를 위해 순교를 당하고 순교자의 반열에 앉게 되는 것을 사모하고 나가는 믿음을 가져야겠다. 조금 더 살겠다고 믿음을 양보하는 자도 잠시 잠깐 후면 죽을 것이다. 말세에는 환난이 심하고 순교 당하는 사람도 많이 나온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오기 때문에 순교자의 좌석이 빨리 빨리 차게 되는 것이다.

六. 대외일(大畏日)(환난)(12-17)

. 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지진은 폭동을 가리킨다. 말세에는 세계 각처에서 지진과 같은 폭동과 난동이 일어나 안녕 질서가 파괴되고 어지러워진다.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해"는 진리를 상징하고, "총담"은 사람의 머리털이나 말꼬리 털로 노끈을 꼬아서 담요처럼 만든 검은색 요이다. 이것은 말세에 진리가 혹암의 세력에 가리워져서 캄캄해지는 것을 말한다.

달이 피같이 되며 "달"은 교회를 상징한다.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듯이 교회가 예수님의 빛을 받아서 세상에 비추어 내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달이 피처럼 된 것은 교회가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을 뜻한다. 교회가 생명력을 잃을 때 도처에 죄악이 관영하고 진리는 어두워진다.

. 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별"은 교역자와 지혜 있고 믿음 있는 성도를 가리킨다. 다니엘 12:3절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하였다. 여기서 지혜 있는 자는 믿음이 있어 하나님의 진리를 많이 깨달은 자이다. 하나님의 종과 지혜 있는 성도들은 그 시대의 빛이 될만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말세에는 환난이 너무 심해서 많은 교역자와 믿음 있는 성도가 옥에 갇히고 순교를 당하게 된다. 그때에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게 되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도 없게 된다.

. 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하늘과 같이 높은 세력들이 순식간에 없어진다는 뜻이다. 산이나 섬과 같이 견고하며 요지부동하던 세력과 단체들도 쉽게 망하고 만다. 환난이 너무 커서 여러 가지 변동이 생긴다는 뜻이다. 말세에는 기존 질서와 기존 세력이 전부 파괴되고 변동이 생긴다.

. 6:15-17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땅의 견고한 세력들이 추풍 낙엽과 같이 멸망하게 되는데 그들이 너무 두려워서 산과 바위와 언덕에게 말하기를 "우리에게 무너져서 우리를 가리우라"고 한다.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이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인데 크고 두려운 환난의 날이다. 주님 심판의 날이 말세에 반드시 오게 되므로 돈을 많이 벌고 권세 잡아 세상에서 잘 살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주님의 심판이 내리면 세상의 것은 하루아침에 다 몰락이 된다. 그날에는 모든 사람이 낙심하며 통곡하나 건져줄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진노를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감람유 포도주는 해를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6절 참조). 성도는 평소 기름과 포도주를 준비하였다가 환난 때에 그것으로 이겨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성경)를 바르게 해석하면 살 수 있고 해석 잘못하면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망하게 된다. 요셉이 바로 왕 꿈을 바르게 해석하고 7년 흉년 들 때를 잘 대비하여 저축을 많 해 두었으므로 7년 흉년이 들 때도 굶어 죽지 않고 무사히 넘겼다. 요셉이 해석을 바르게 하였으므로 흉년을 잘 대비한 것처럼 성경 해석을 바르게 해야만 환난 때에도 살 길이 생긴다. 성경 해석은 아주 중요하고 함부로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다. 성경 해석은 성경 원리에 맞고, 하나님의 속성에 맞고, 구원 원리에 맞게 해야 한다.

성경 해석을 잘못하여도 사람들은 지지하며 따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여 거기에 대한 보응을 내릴 것이다. 성도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 말세에 올 큰 환난의 날에 미리 대비하여야 한다. 환난이 오기 전에, 준비할 수 있는 시기에 요셉처럼 지혜롭게 준비를 잘 해 놓아야 환난이 와도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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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7장

제 7 장 날인(捺印)

(대 지)

一. 네 천사(1)

二. 동방 천사(2-3)

三. 인 맞은 열 두 지파(4-8)

四. 구원받은 큰 무리 찬송(9-14)

五. 복락(15-17)

(본문강해)

一. 네 천사(1)

.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땅 네 모퉁이 동, 서, 남, 북 사방(세상)을 가리킨다. 바람은 환난, 전쟁(렘51:1-2 참조), 세상 풍파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네 천사를 보내어 세상을 지켜 주시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땅 위에 평화가 유지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이지 사람이 정치를 잘하고 협상을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지 않으면 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야 전쟁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에 위태한 가운데서도 이렇게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이 지켜 주어서 전쟁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네 천사를 보내어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지켜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가 되면 천사를 놓아주어 전쟁을 일으키신다(9:15).

二. 동방 천사(2-3)

. 7:2-3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시는 것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일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이마에 인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일을 마칠 때까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

하나님의 인 하나님의 도장인데 그 새겨진 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인을 찍어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요한복음 3:33에 "말씀의 인"이라고 했으며 에베소서 1:13에 "성령의 인"이라고 하였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택한 자의 심령 속에 찍어 놓아 예수 그리스도가 확실히 믿어지고 그 말씀이 믿어져서 생명이 되어 마음비에 새겨지도록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인쳐 놓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며 인격이 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네 천사를 보내어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붙잡아 놓은 것이다.

해 돋는 데는 하나님의 방향이다. 에스겔 44:1에 동향한 문은 여호와가 들어오는 문이라고 하였고, 동향한 문을 육 일 동안은 닫되 안식일에는 열라고 하였다. 에스겔 43:1-2에는 동향한 문에 이르니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해 돋는 동방을 하나님의 방향으로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해 돋는 데가 한국이라고 해석하나 그것은 옳지 못한 해석이다. 해 돋는 데는 하나님의 방향인 동시에 하나님의 진리가 나타나는 방향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며 진리로 생명을 삼는 사람들로부터 생명 운동, 즉 인치는 운동이 시작될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서부터 생명의 인치는 사업이 시작된다. 이 일이 가장 귀하고 급한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세상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바람을 붙잡고 계신다.

三. 인 맞은 열 두 지파(4-8)

. 7: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 이 십 사만 사천이니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바람을 붙잡아 놓아 잠시 평화롭게 하실 때에 성도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제일 중요하게는 택한 백성의 이마에 인치는 일이다. 그 일이 성공되어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이 인치는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을 것이다. 누가복음 13:6-7에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 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찍어 버리기로 작정하시고 지켜 주시지 않는다면 인간이 별 수단을 다 써도 소용이 없다. 인치는 사업은 첫째, 안 믿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믿게 하여 생명을 살려 나가는 것이요. 둘째, 이미 믿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받아 그 말씀대로 순종하므로 영이 힘을 얻고 창성하여 나가는 것이다. 이 일이 잘 이루어져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악의 세력을 막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바로 하지 못하면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면서 신앙의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하면 하나님께서 머지않아 다 찍어내고 불태우실 것이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심령 속에 심어 그 말씀이 우리의 살과 뼈가 되고 영적 생명이 되어 날마다 영이 소생하여 올라오고, 새 힘을 얻어 강건해지는 것이 인 맞는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이 인치는 사업이 이루어져 나아가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여기 이스라엘 자손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세계 각국에서 예수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로마서 2:28-29에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오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했다. 또 갈라디아서 3:7에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6:16에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은 이방인 갈라디아 교인들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 참 유대인이요 참 이스라엘이다. 5절에 기록한 열 두 지파 이름을 보면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 지파가 먼저 나오지 않고 유다 지파가 제일 먼저 나왔다. 그것은 유다 지파에서 예수가 났으므로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자들을 기록할 때에 유다 지파를 먼저 기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6절에는 단 지파가 빠지고 그 대신 므낫세 지파가 들어갔다(6절 참조). 그 이유는 창세기 49:17에 "단은 뱀"이라고 하여 후에 적그리스도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의 반열에서 단 지파가 빠진 것이다. 이 점을 보아도 여기 열 두 지파는 유대인이 아니고 예수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이다.

인 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십 사만 사천"은 상징적 숫자로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을 자의 총수인데, 이 수는 하나님의 내정 수로써 실제로는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십 사만 사천은 12를 12 배하여 또 1,000배 한 것이다(12×12=144, 144×1000=144,000). 12수는 구원의 만수(滿數)이고 1000은 대단히 많다는 뜻인데, 1,000배 한 것은 구원받은 수가 많다는 뜻이다. 시편 84:10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하였고 베드로후서 3:8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고 하였다. 즉 많은 수를 표현할 때 천으로 표현한 것이다 십 사만 사천은 창세로부터 말세까지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을 사람 전부이다.

. 7:5-8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중에 인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매 지파마다 12.000이다. 이 수도 하나님의 구원의 만수인 12수에 1,000배 한 것이며 구원받은 무리가 많다는 뜻이다.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에게 열 두 지파가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종류가 다른 것을 말한다. 즉 성도들은 깨달은 진리(교리)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 진리(교리)대로 신자의 속 사람과 인격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그대로 하늘나라에 간다. 교파마다 교리가 다른데 교리가 다르면 신앙 생활하는 면이 다르고 영이 자라는 면이 다르게 된다 예를 들어서 진리(성경말씀)를 100가지라고 할 때, 100가지 중 50가지는 바르게 깨닫고 나머지 50은 잘못 깨달은 교파가 있다고 하면, 그 교파에서는 아무리 생명을 내어놓고 구원을 이루어 나간 다고 하여도 50가지밖에는 이루지 못한다. 50가지는 진리 아닌 것을 붙잡았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실제로 해방 후 재건파가 이북에서 공민증(주민등록증)을 짐승의 표라고 하여 받지 않고 많은 고난을 당하였으나 천국에 가면 이루어진 것이 없다. 진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아무리 고생을 하여도 소용이 없다. 진리가 아닌 것 때문에 고생을 당하는 것은 헛된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세우기 위해 고생한 것은 자기가 그대로 만들어지고 천국에서 영광의 상급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100가지 중 70가지를 바르게 깨닫고 나머지 30가지는 잘못 깨달았다고 하면 아무리 힘써 노력해도 잘못 깨달은 30가지는 무효이다. 진리(성경)를 바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루터가 종교 개혁할 때에 천주 교회에서 성경에 위반된 것 95가지를 지적하였다. 천주교인들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구주로 믿으며 사도신경도 믿는다. 그러나 천주교회에는 잘못된 교리가 너무 많음으로 우상숭배를 하는 등 잘못된 신앙생활을 한다 따라서 그들의 속 사람과 신앙 인격도 만들어지지 못한다. 옳은 진리를 붙든 것만 자기 인격과 속 사람을 만들 수 있다.

알미니안은 예정과 선택의 교리를 믿지 않으니 그만큼 헛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며 그만큼 속 사람이 만들어지지 못한다. 예정과 선택을 믿는 성도는 그만큼 더 영적 유익을 얻게 된다. 어느 교파가 진리를 바르게 깨달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천년왕국이 있다고 믿는 성도가 있고 없다고 하는 성도도 있다. 실제로 천년왕국이 있으므로 없다고 하는 자는 헛된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만큼 손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바르게 깨달은 것만큼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기 때문에 교파마다 구원을 이룬 정도가 다르게 된다. 같은 진리를 가지고 있는 교파 안에서도 개인마다 만들어지는 정도가 다르다, 그러므로 열 두 지파는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는 각 교파대로 또 성도들의 종류대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계통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교파나 성도의 종류가 꼭 열 둘이 된다고 할 바는 아니다. 12수는 하나님의 만수요, 내정수이므로 열 둘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천국에 가면 지상 교회의 교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 가지고 있는 진리(교리)대로 만들어진 종류가 다르다는 것이다. 어느 교파이든 모든 진리를 다 깨달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또 깨달은 대로 다 순종하여 인격이 만들어지기도 어렵다. 그러나 성도는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완전한 것을 목표로 하여 달음질하며 나아가는 것뿐이다(빌3:13-14 참조). 아무 교파나 아무 교회에 나가서도 자기만 잘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진리를 바르게 깨달은 교회에 나가서 바른 진리를 배워 예수를 바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순종 해 나아가야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이 크다. 바른 진리를 가지지 못한 교파나 교회에서는 아무리 구원을 바로 이루어 나아가려고 하여도 할 수가 없다. 바르지 못한 교리나 교훈은 헛된 것이므로 하늘 나라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성도가 바른 진리를 붙든 교파의 교회에 소속하여 바른 진리대로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四. 구원받은 큰 무리 찬송(9-14)

.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횐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십 사만 사천이 아닌 별도의 무리가 아니고 이 "큰 무리"가 곧 십 사만 사천 명이다. 인 맞은 자 십 사만 사천이 천국에 올라가서 보좌 앞에 큰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십 사만 사천과 큰 무리는 같은 것인데, 4절에서는 땅에서 인 맞은 자의 수가 십 사만 사천이었으나 그들이 하늘 보좌 앞에 올라가 있을 때에는 큰 무리였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린양의 피에 씻어 희게한 옷을 입고 하나님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예수의 피는 우리 모든 성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서 정결하게 하여 주신다.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종려나무 가지는 "희열" "승리"의 상징이다(요12:13). 구원받은 성도들이 기뻐하며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찬송하게 되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 7: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은 구원받을 만한 자격도 없고 또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아 영생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의 큰 무리가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는 것이다.

. 7:11-12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모든 천사들도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모든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택한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힘을 찬양하며 존귀와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아멘은 성취하신다는 뜻이다. 마귀가 방해하고 환난과 시험이 많이 있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실패함이 없이 모두 성취하는 것을 말해 준다.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만다. 마귀의 세력을 깨뜨리고 구원을 이루시는 능력이 하나님께만 있다. 영광과 존귀와 지혜도 하나님께만 있다.

. 7:13-14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 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횐 옷 입은 자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며 속죄 제물의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피에 죄 사함 받은 자들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 얻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려면 많은 환난이 온다. 이 세상에서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키어 말씀을 순종해야 더욱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다. 디모데후서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많은 환난을 겪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없던 환난도 생긴다. 믿음을 지키려고 할 때에 환난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른 사람은 믿음을 잘 지키지 않아도 평안한데 나는 왜 환난을 당할까"하고 의심하면 안 된다. 믿지 않는 사람이 육신적으로는 더 잘 되고 평안할 수가 있고 이단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는 잘되고 평안할 수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시험이 오는 것이다. 되는대로 형편대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신다. 바로 믿으려는 사람에게는 많은 환난이 온다. 만일 육신의 평안만 바라고 되는대로 나아가면 잠시 동안은 편할지 모르나 나중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된다. 신앙을 떠나서 육신이 편안한 길로 나아가면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믿음을 지키느라고 환난을 당하면 영혼이 연단을 받아 자라나 하늘나라에서 큰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로마서 8:18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수 없도다"라고 하였다. 현재에 조금씩 환난을 받아 연단이 되어 나중에 큰 환난이 와도 통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4:12-13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하였다. 우리가 이 모든 환난들을 믿음으로 잘 통과할 때에 하나님께서 빛나고 깨끗한 흰옷을 입혀주신다.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는 데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성도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을 때에 예수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은 것을 말한다. 이것이 기본 회개인데 이렇게 회개한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받아 깨끗하여진 것이다. 둘째, 날마다 자기가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여야 한다. 이것이 중복 회개이다. 이미 목욕한 자(중생한 자)도 발은 씻어야 한다(요13:10). 중생한 사람은 영원히 죄 사함을 얻었으나 날마다 지은 죄를 또 회개하여야 하는데 이것이 발을 씻는 것이다. 이미 구원을 얻었지만 자기가 지은 죄를 날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나아갈 때 예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영혼이 더욱 자라 간다. 누구나 회개할 것이 있다. 회개하려고만 하면 회개할 것이 너무 많아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된다. 마태복음 23:23에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라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예수님이 책망하셨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한 두 가지 잘한 것만 자랑하나 더욱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이 없었다. 십계명 중 처음 네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요 다음 여섯 계명은 사람에 대한 계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되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사랑하지 못한 것을 마땅히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긴바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도 찾아서 회개해야 한다. 그리함으로 날마다 죄를 씻어 희게 하며 성결을 이루는 생활을 해야 한다. 또 기도를 열심히 하지 못한 것도 회개하여야 한다.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 하였다.(삼상12:23)

五. 복락(15-17)

. 7: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예수 믿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보좌를 떠난 생활은 성도가 세상에 빠진 것이다. 보좌를 떠나서 세상으로 나가지 말고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영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찾아가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찾고 사모하는 자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보좌 앞에 나아가는 생활이다. 또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영이 자라날 때에 보좌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성도가 항상 보좌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 항상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으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깨달아 새 사람이 되어 새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장막을 치시리니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사는 자에게는 주님이 그 사랑의 날개아래 품어 주시고 하나님이 은혜의 장막을 쳐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 장막을 쳐주시면 밤에도 춥지 않고 낮에도 덥지 않으며 아주 평안하다. 하나님의 은혜의 장막 속에서 사는 사람은 평안하고 안전하다. 우리 주님은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아래 품어 보호하듯이 우리를 지켜 보호해 주신다(마23:37).

. 7:16-17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살 때에는 항상 만족하고 모든 은혜가 풍성하며 흡족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사는 자는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 보좌 가운데 계신 예수님께서 목자가 되어 늘 인도해 주시고 보호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그러한 성도는 항상 생명수를 마시며 그 뱃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흘러 나와 새 생명의 역사가 늘 충만하게 된다. 그리하여 항상 기쁘고 항상 편안하고 항상 만족하다.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하나님께서 눈물을 씻어 주시면 큰 위로가 되며 기쁘고 만족하다. 하나님을 위해서 환난을 받고 주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면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씻어 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한량없는 위로와 기쁨과 평안이 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모든 것으로 채워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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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8장

제 8 장 나 팔

(대 지)

一. 반시 고요(1-6)

二. 1차 나팔(7)

三. 2차 나팔(8-9)

四. 3차 나팔(10-11)

五. 4차 나팔(12-13)

(본문강해)

一. 반시 고요(1-6)

. 8:1-2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하늘이 반시 동안쯤 "반시"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즉 하나님께서 짧은 시간 동안 성도들에게 신앙 준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고요하여 신앙 준비하는 기간은 잠깐 후에 끝이 나고 만다. 고요한 기간이 끝나고 나면 일곱 천사가 환난의 일곱 나팔을 분다. 지금은 신앙 생활에 자유가 있어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 아무 어려움이 없으며 복음이 날로 활발하게 전파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잠시 후에 다가올 환난의 전주곡이라고 볼 수 있다. 고요하더니 고요한 때는 성도가 하나님의 성소에 깊이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때이다. 사가랴가 성소에 들어가 분향할 때에 백성들은 밖에서 고요히 기도하였다(눅1:8-10). 이 기간에 성도는 신앙을 잘 준비하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 또 이 고요한 기간은 세상 나라들이 전쟁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우리 성도가 이 고요한 시기에 믿는 일을 잘하여 환난에 대비를 하여야 한다. 세상 나라들은 이 고요한 시기에 전쟁을 준비하지만 우리 성도는 영적 무장을 잘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 한다. 고요한 시기에 영력(靈力)을 길러 놓아야 앞으로 오는 큰 환난을 능히 이겨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애굽에 7년 흉년 들기 전에 7년 풍년을 들게 하여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주신 것처럼 먼저 고요한 시간을 주실 때에 신앙의 준비를 잘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고 전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주셨을 때에 최선을 다하여 준비를 하여야 장차 일곱 나팔의 환난이 올 때에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 8:3-4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금 향로의 금은 믿음을 상징하고 향로는 향을 드리는 기구이다. 천사가 믿음의 향로에 성도들의 믿음 지킨 행위를 담아서 성도의 기도와 함께 보좌 앞 금단(믿음의 제단)에 드리면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시고 기뻐하신다.

많은 향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아름다운 행위를 말한다. 고린도후서 2:14-15에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하였다. 성도가 말씀을 순종하고 믿음을 지킨 아름다운 행위는 성도의 기도와 함께 금 향로에 담겨져서 천사가 보좌 앞 금단에 드리게 된다. 사도들이 믿음을 잘 지킨 행위가 하나님 앞에 향기가 된 것이다. 성도가 말씀대로 순종하여 걸어 나아가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향기가 된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향연은 믿음을 지킨 아름다운 행위와 기도가 합하여져야 한다. 성도가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이다(삼상12:23). 그러므로 성도가 매일 힘써 기도하되 적어도 하루에 2시간 이상은 기도해야 한다. 직장 관계로 시간이 없는 사람도 매일 최소한 1시간 정도는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왜 죄가 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 24시간씩 공급하여 주시는데 세상과 육신을 위해서 다 허비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 즉 하나님께 바쳐야 될 시간을 안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은 죄가 된다. 하나님을 위하여 쓰라고 성도에게 생명과 시간과 환경을 주셨는데 하나님을 위하여 쓰지 않고 자신의 육신만 위하여 쓰면 하나님께 죄이다. 하루 24시간의 십일조인 2시간 24분은 기도하고 성경 보는데 사용하는 것이 좋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 자격 없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아름다운 향연이 되는 것이다. 또 말씀 순종하는 것이 향연이 된다. 기도하는 것부터 순종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 라고 하신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마음이 늘 하나님과 함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사람 앞에서도 사람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잘 이행하여야 한다. 또 하나님께 주신 은혜를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창세기 40장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감옥에 들어갔었다. 며칠 후에 그들이 꿈을 꾸었는데 술 맡은 관원장 꿈은 자기 앞에 있는 포도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으며 그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바로 왕에게 드렸다. 그것은 자기의 할 일을 제대로 다 것이며, 요셉의 해석대로 삼 일 후에 복직이 되었다. 그러나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은 흰 떡 세 광주리가 자기 머리에 있고 그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그것을 먹었다. 이것은 자기의 직무를 마귀에게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요셉의 해석대로 삼 일 후에 나무에 달려 새들이 그 사람의 고기를 뜯어먹었다.

하나님의 주신 바 의무를 하지 못하고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여 마귀에게 빼앗기면 자기 생명도 마귀에게 빼앗기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을 다 기울여 충성하여야 한다. 기도하는 시간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마귀에게 시간을 다 빼앗겼기 때문이다. 시간은 생명과 같이 중요하므로 시간을 아껴서 힘써 기도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향연을 드려야 한다. 요셉은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항상 신앙의 향기를 나타내었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향기를 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8: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성도들의 기도와 믿음 지킨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그 향로에 불을 담아다가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 8:6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나팔"은 경고(警告)를 가리킨다(겔33:3). 하나님께서 심판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16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하였다. 예수님 재림 시에 하나님의 나팔로 오신다고 하였는데 이 하나님의 나팔이 세상을 심판하는 나팔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나팔이 된다.

二. 1차 나팔(7)

. 8: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다는 것은 첫째 경고를 발하였다는 뜻이다. 피 섞인 우박과 불 "피"는 생명을 상징하고, "우박"은 재앙 을 가리키며, "불"은 심판을 상징한다(시18:13, 사30:30). 곧 그 뜻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과 재앙으로 인하여 많은 생명이 죽을 것을 가리킨다. 은 죄인들의 거처를 말하고 수목은 대인들, 즉 유력한 사람들이며 푸른 풀은 평민을 가리킨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었다는 뜻은? 스가랴 13:8-9에는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삼분의 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본문에는 삼분의 일이 불에 탔다고 하였다. "삼분의 이"나 "삼분의 일"이 양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종류를 세 가지로 나누어서, 스가랴 13:8-9에서는 그 두 종류가 망하고 한 종류가 남는다는 뜻이며, 본문에서는 한 종류가 심판을 받는 것을 말한 것이다. 사람은 세 종류가 있는데, ① 신령한 세계를 걷는 성도 2 불신자 3 중간에 있는 성도, 즉 하나님과 세상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자이다. 불신자들은 벌써 마귀의 종이 되었고 신령한 세계의 성도는 마귀의 손이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중간 위치에 있는 자들은 마귀에게 아주 먹힌 것도 아니오 또 완전히 아니기 때문에 마귀가 이 중간에 있는 자들을 잡아먹으려고 한다. 본문에 삼분의 일이 죽는다는 것은 이 중간에 있는 자들을 말하고, 스가랴 13:8-9의 삼분의 이는 이미 죽어 있는 타락한 종류의 중간에 있는 종류를 합해서 삼분의 이가 심판을 받아 멸절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의 삼분의 일이나 스가랴 13:8-9의 삼분의 이나 내용은 마찬가지이다. 신령한 신앙의 길을 걷는 자는 언제나 망하지 않는다. 중간 입장에 있을 때가 예수 믿는 일이 제일 힘이 든다. 불신자는 현재는 아무 짓을 하여도 하나님께서 버려두고 아예 간섭하지 않는다. 또 아주 신령한 세계에서 영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면 마귀의 세력이 미치지 않으므로 항상 기쁘고 평안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므로 믿는 일이 아주 쉽다. 그러나 중간 입장에 있으면 마귀가 쉴 사이 없이 역사하고 죄를 지으면 가책을 느껴 괴로운 것이다. 영의 세계를 걷자니 힘이 들고 죄를 지으면 심한 가책이 오므로 신앙생활하기가 힘이 든 것이다. 사위더라 하나님의 재앙을 받아 불에 타서 없어지는 것을 말하다.

三. 2차 나팔(8-9)

. 8:8-9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불붙는 큰 산은 산과 같이 크고 견고한 세력들을 말한다. 예레미야 51:25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온 세계를 멸한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대적이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 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큰 산과 같은 세력들은 바벨론이나 이방종교의 세력, 양반 세력, 문중 세력, 철학 사상 같은 것들을 말하는데 이것들이 세상에 높이 솟아 견고한 세력을 잡고 세상을 지배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력들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는 세상을 가리킨다(17:15).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된다는 것은 생명을 가진 피조물들이 죽으며 망한다는 뜻이다. 배들 세상 문화의 도구와 기관과 단체들을 가리킨다. 인본주의의 세상 세력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면 모두 변동되고 몰락되어 없어진다. 그들이 살고 있던 물(행복을 누리던 세계)은 사망의 바다(피)가 된다.

四. 3차 나팔(10-11)

. 8:10-11 세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큰 별은 교역자를 상징하며(1:20 참조), 물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엡5:26 참조). 말세에는 교역자가 타락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쓰게 만들며 명을 살리는 진리(眞理)를 변질시켜 많은 사람의 심령을 죽게 만든다. 타락된 교역자들도 성경을 가지고 설교하지만 성경의 진리를 변질시켜서 죄를 "죄가 아니다"하고 죄가 아닌 것을 "죄이다"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이사야 5:20에 "악을 선하라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 진 저"라고 하였다. 타락된 교역자들은 교회에서 심령을 살려 나아가는 일은 중단하고 육에 속한 것(감정, 명예, 욕심, 인기주의, 물질주의, 자기중심) 만 살려 나아가면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비방하고 현대에는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성경을 가르칠 때에 순전한 진리대로 가르치지 않고 세상주의와 육신주의로 가르치는 데 이것은 물이 변하여 쑥이 된 것이며 실제로 그 물을 먹으면 많은 사람들의 심령이 죽게 된다. 이렇게 타락된 교역자가 세속화되어 진리를 변질시켜 가르쳐도 많은 성도들이 깨닫지 못하고 따라간다. 에스겔 13:19에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쓴 물을 달게 만든다 모세는 쓴 물을 달게 만들었다(출15:25). 성도가 교역자를 통해서 자기 영이 장성하며 새 힘을 얻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성도가 바른 진리를 받으면 입에서는 달고 배에서는 쓰다고 하였다(10:10). 진리의 말씀을 영으로 받으면 성령의 감동이 있고 영적 희락이 있어 입에서는 달다. 그러나 그 말씀을 순종하려면 십자가와 고난이 오기 때문에 배에서는 쓴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먹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섞은 것이 없고 순수한 영의 양식으로 먹는 이 말씀이 날마다 우리 영을 소성케 하고 위안과 평화를 주고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 할 수 있게 한다.

五. 4차 나팔(12-13)

. 8:12 네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는 진리를 상징하고 은 교회를 상징한다. 은 교역자 혹은 지혜 있는 성도를 상징한다(1:20, 단12:3). 말세의 환난 때에는 진리가 어두워 빛을 비추지 못하고 교회나 교역자들도 빛을 발하지 못하는 상태에 많이 빠진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어두워지고 어지러운 세상이 된다. 또한 말세에는 실제로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질 수도 있다. 옛날 출애굽 당시에도 어두워진 때가 있었다(출10:21-22). 성도가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심령이 어두워진다. 진리를 사랑하여 그대로 믿고 그 말씀을 생명과 같이 귀중히 여기고 나아간다면 심령이 빛 가운데서 살게 된다. 바르게 깨달은 말씀 하나가 천하보다 귀한 줄 알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내어놓고 따라가야 한다. 종교 개혁을 한 마틴 루터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진리를 깨달아 일생 동안 그 진리를 세워 나가기 위하여 생명을 내어 놓고 천주교와 싸워 나갔다. 이 진리를 위하여 순교 당한 사람이 많이 있다. 순교자들이 한 성구(聖句) 때문에 순교 당하는 것이다. 성구 하나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그것 때문에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렸다. 성구 한 마디가 생명이다. 성구 하나를 양보하면 그 다음에 다른 것도 다 양보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 말씀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많은 재물을 준다거나 좋은 직장이나 명예와 영광을 다 준다고 하여도 양잿물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 실제로 먹어 보지 않았어도 먹으면 죽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요사이 성도들이 성구 하나 버리기를 헌신짝 버리듯 한다. 교역자들도 옳은 교리를 주장하고 나아가다가 그것을 헌신짝 버리듯 한다. 이러한 행위는 물을 변하게 하는 것이요 물을 쓰게 만드는 일이다. 옳은 진리를 깨달았으면 아무리 환난과 핍박과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그 진리를 세워 나아가야 한다. 삼분의 일에 대하여는 7절 해석 참조.

. 8: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독수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 또 앞으로 큰 심판이 있을 것을 예고한다.

화, 화, 화 하나님의 심판과 인간이 받을 재앙이 크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 9:1부터 나오는 다섯째 나팔의 재앙과 9:13부터 나오는 여섯째 나팔의 재앙과 11:15부터 나오는 일곱째 나팔의 재앙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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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9장

제 9 장 무저갱

(대 지)

一. 무저갱을 열다(1-2)

二. 황충의 해독(3-6)

三. 황충의 모양(7-12)

四. 네 천사 석방(13-15)

五. 마병대 재앙(16-21)

(본문강해)

一. 무저갱을 열다(1-2)

. 9: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땅에 떨어진 별 타락한 교역자를 상징하며 특히 배교자들과 이단자들을 가리킨다. 무저갱은 밑이 없는 구렁텅이로 아무리 내려가도 끝이 없는 곳이다. 이것은 마귀를 잡아 가두는 불 구렁텅이를 가리키며 또한 사람의 욕심을 가리킨다. 속담에 사람의 욕심은 땅보다 더 두껍다고 하였는데, 이와 같이 사람의 욕심은 무저갱과 같아서 한정이 없고 끝없이 깊다. 성도가 욕심에 빠져 들어가면 계속 무한정으로 내려간다. 그러므로 욕심에 빠졌을 때에 빨리 회개하고 힘을 써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내려가면 무한정 내려간다. 조금 빠졌을 때에는 조금만 힘을 써도 곧 나을 수 있으나 깊이 빠지면 나오기가 무척 힘이 든다.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내려간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해산하는 수고를 하며 예수님을 의지하면 올라올 수 있다. 예수님은 하늘에까지 닿은 사닥다리이므로(창28:12) 성도가 욕심과 시험에 들어 무저갱에 빠졌으면 그 사닥다리이신 예수를 붙들고 올라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시험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데 성도가 이렇게 되는 것은 자기 욕심 때문이다(약1:14) 욕심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물욕이다. 물질은 사람으로 하여금 시험에 빠지게 하는 올무가 되기 쉽다. 디모데전서 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하였다. 가룟 유다가 돈을 따라가다가 예수님을 팔고 배반하였다. 지금도 돈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 많다. 너무 부요하여 배가 불러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많고 가난하여 예수를 못 믿겠다는 사람도 많다(잠30:8-9). 인간은 대개 연약해서 너무 가난해도 믿음 지키기가 어렵고 너무 부해도 믿음을 지키기가 어렵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1-13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에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항상 자족하는 신앙으로 믿음을 잘 지켜 나가야 한다.

둘째는 정욕이다. 정욕 때문에 믿음에서 떠나 시험에 빠지는 자가 많다. 정욕은 남녀의 이성적인 면, 인정면을 말한다. 이 정욕의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하면 계속 제 정신없이 빠져들어 가게 되므로 속히 회개하고 나오지 않으면 쫄딱 망한다. 인간을 의지하고 인간의 사랑으로 만족하려는 것은 믿음에서 떠난 것이다.

셋째는 사욕이다. 사욕이란 자기의 명예와 영광과 자기 중심에 관한 욕심이다. 자기가 강하면 사욕에 빠지기 쉽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위하여 명예와 영광을 탐내어 자기 일만 구하고 자기가 무엇을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는 사람은 사욕에 빠진 자이다. 하나님의 일도 사욕에 끌려서 하게 되면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결국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것밖에 안된다. 욕심에 끌려 시험에 빠지면 점점 무저갱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리하여 주일날도 한 시간 교회에 갔다가 돈벌러 나가고 또 친구들과 함께 놀러 나간다. 술을 바라보지도 않던 사람이 맥주를 한잔씩 먹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양주를 마시게 된다. 새벽기도를 하려고 애쓰던 사람이 점점 기도 시간이 줄다가 나중에는 아예 기도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예수를 믿는다. 성도가 시험에 빠지는 것은 결국 물욕, 정욕, 사욕 때문이다.

. 9:2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무저갱 속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은 욕심에 빠지고 타락한 사람의 어리석고 어두운 생각들이다. 욕심에 빠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인간적인 생각이 자꾸 떠올라 오는데 이것들은 심령에 해를 주고 마음이 어두워지게 만든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여기서 "해" 는 진리요 "공기"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욕심에 빠져서 타락이 되면 진리에 대해서 희미해지고 심령이 어두워지며 성경을 떠났기 때문에 모든 생각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없고 분별력이 없어진다. 사람이 욕심에 빠지면 아주 딴 사람으로 변한다. 욕심에 빠지기 전에는 선량하고 친절하고 부지런하고 순종 잘하던 사람이 한번 욕심에 들면 악하기 짝이 없고 불친절하고, 일을 해도 마지못하여 하게 되며 순종은커녕 거역만 한다. 욕심에 빠진 사람은 마귀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생각이 바르지 못하다

二. 황충의 해독(3-6)

. 9: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황충 욕심에 빠진 사람들이나 아주 타락되어 배교한 사람들의 인격이다. 사람이 욕심에 빠지면 생각도 잘못될 뿐만 아니라 황충과 같은 인격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많은 해를 끼치게 된다. 성도의 본심이 다 없어지고 이성을 상실하고 짐승이나 벌레 같은 인격으로 돌변하여 자기 욕심을 위하여 못할 짓이 없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귀에게서 전갈과 같은 권세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많은 해를 준다.

. 9: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배교자나 이단자나 욕심이 인격화 된 자들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사람들만 해한다.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새롭게 맞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삼고 나아가는 자는 그런 자들의 해독을 이겨 나아가며 그 해를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정로로만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미 예수를 믿어서 이마에 인 맞은 자라고 할지라도 현재에도 계속하여 인을 맞아나가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인 맞는 생활을 계속하는 때는 마귀가 유혹을 해도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고 담대히 물리칠 수 있다. 인 맞는 생활을 계속하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 9:5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다섯 달 동안 한 달을 30일로 보면 150일이 되며 노아 홍수 때에 물이 창일하게 된 기간과 같다(창7:23-24 ; 8:2-3). 다섯 달(150일)은 시험과 환난의 기간이다. 황충이 전갈의 권세를 가지고 사람을 해하지만 무한정으로 해하지는 못하며 다섯 달 동안만 해할 수 있다. 다섯 달은 숫자적으로 꼭 150일이 아니고 시험과 환난의 기간으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일정한 기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석 달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일 년이 더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환난 기간 동안만 황충이 해할 수 있고 그 기간이 지나면 더 해하지 못한다. 황충이 많은 사람을 해하며 손해를 주고 다닐 때는 굉장한 일이 벌어질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허락한 기간이 지나면 그 다음에는 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귀의 세력이 굉장히 무섭더라도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기간이 지나면 손해 주지 못하는 것을 믿고 시험이 들어올 때에 미리 겁내지 말고 믿음을 잘 지켜야 한다.

. 9:6 그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황충의 해독이 너무 커서 전갈이 쏘는 것처럼 무서운 고통 가운데 빠진다. 괴로움이 너무 심하여 사람들이 죽고 싶은 생각이 들고 죽으려고 하여도 실제로 죽지는 못한다. 하나님께서 죽지 않도록 하시기 때문에 죽지는 않으나 사망의 고통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이다.

三. 황충의 모양(7-12)

. 9: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황충의 모양이 전쟁터에 나선 말과 같이 살기가 등등하여 신호 소리만 나면 금방 앞으로 달려 나아갈 기세이다. 이것은 욕심이 인격화된 자들과 배교자들의 모양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이 황충과 같이 살기가 등등하여 마귀의 종노릇을 힘있게 해 나간다. 기운이 없던 사람도 기운을 내고 열심이 없던 사람도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마귀 역사를 해 나아간다. 주를 위해서는 게으르던 사람이 마귀를 위해서는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처럼 용감하게 행동을 한다.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금"은 믿음을, "면류관"은 영광을 상징한다. 시험에 들어 마귀의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금 같은 것으로 된 면류관 비슷한 것을 쓰고 다니면서 믿음이 있고 영광스러운 체하는 것이다. 금 같지만 금은 아니고 면류관 비슷하지만 면류관도 아니다. 가짜 믿음이요 헛된 영광이다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사람은 지혜를 상징한다. 얼굴이 지혜로운 사람의 얼굴 같다. 얼굴은 그 전의 얼굴이나 마음은 그 전의 마음이 아니다. 베드로가 시험에 들었을 때에 얼굴은 전의 그 얼굴이었으나 마음은 베드로의 마음이 아니고 마귀가 이용하는 마음이었다. 믿음을 써 나갈 때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마음이었으나 시험에 들면 마귀가 그 마음을 주장한다. 시험에 들면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나 인격은 황충의 인격이 되어 버린다.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이 되어 비열하고 먹고 부스러뜨리고 파괴 활동을 하여 많은 해독을 끼치는 자가 된다.

. 9: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여자의 머리털은 영광을 상징한다(고전11:15). 황충은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으니 아주 영광스럽게 된 것처럼 나타난다는 뜻이다. 진리를 버리고 마귀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 영광스러운 길을 가는 줄 알고 자랑하며 다른 사람들을 끌어 들여 막대한 손해를 준다. 시험에 들면 전에 좇아가던 바른 신앙은 우습게 생각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말한다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잔인하고 강포하여 모든 것을 파괴시켜 버리는 것을 말한다. 마귀의 역사는 하나님의 권위를 멸시하고, 기본적인 질서를 모두 파괴하여 나간다. 이단들이 정통 교회를 향하여 비방하고 먹고 부숴뜨리고 파괴하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 9:9 또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철흉갑 같은 것을 가지고 모든 사상과 이론을 대적하며 자기 주장만 세워간다는 것이다. 또한 양심의 가책도 없고 체면이나 염치도 없는 철면피같이 되어 복음을 대적하고 교회를 파괴해 나간다.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용맹 있게 달려들어가서 모든 것을 파괴하고 해하려고 하는 상태이다. 마귀의 세력이 복음 운동을 대적하는 일을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하는 것이다.

. 9: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전갈과 같은 꼬리 비진리를 선전하고 뒤로 다니며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가 곧 꼬리이다. 꼬리를 조심하고 주의하여야 한다. 꼬리가 나타날 때 피하지 않으면 물려서 고통을 당한다. 이사야 9:15에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고 하였다. 한 사람이 마귀의 시험에 들어 타락되면 그 사람 말에 미혹되어 넘어가는 사람이 생긴다. 그러면 그 넘어간 사람이 꼬리 노릇을 한다. 이들은 마귀의 역사를 옳은 줄 알고 선전하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해하고 심령에 고통을 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다섯 달 동안뿐이다. 하나님께서 무한정으로 마귀의 역사를 허용하시지는 않는다. 마귀의 세력이 강하여 전갈과 같은 해독을 끼치고 다녀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간이 지나면 황충이 해하지 못하며 인 맞은 사람은 언제나 해할 수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를 믿는 자는 기본적으로 인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아 매일 인 맞는 생활을 계속하지 아니하면 마귀가 전갈과 같이 쏘아 해독을 주는 것이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혹의 영에게 내어 주어서 미혹을 받게 하신다고 하였다(살후2:10-12).

. 9:11-12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아바돈"과 "아볼루온"은 둘 다 멸망시키는 자라는 뜻이다. 왕의 이름이 멸망시키는 자이므로 그의 부하들도 다른 사람을 망하게 하는 일만 한다. 이들은 파괴를 일삼는데 성도의 신앙을 파괴하려고 끊임없이 미혹하며 하나님의 진리 운동을 파괴하려고 여러 가지로 궤계를 베푼다.

四. 네 천사 석방(13-15)

. 9: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하나님 앞 금단은 믿음의 단이고 거기는 순교자들이 있는 곳이다. 6:9에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라고 하였다.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난 것은 순교자들이 호소하는 데에 대한 응답으로 나오는 말씀이다. 순교자들은 순교 당한 즉시 하나님의 보좌 앞에 가서 기도하고 있다.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또한 성도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 9:14-15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 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윌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유브라데 강" 은 이스라엘과 이방나라와의 이상적인 국경을 가리킨다(신1:7, 수1:4). 이것은 오늘날 교회와 세상과의 경계선을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네 천사가 일으키는 전쟁은 종교전, 사상전이 될 것이다. 순교자들의 호소를 받아 그 응답으로써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라고 하여 네 천사가 놓였다. "네 천사"는 결박당했던 것과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것을 보아 악한 천사이다. 이 악한 자들을 주장하는 천사가 유브라데에 놓여서 전쟁을 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마귀의 세력이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인다. 세 가지 종류 중에 한 종류를 죽인다는 뜻인데, 곧 하늘에 속한 신자는 죽이지 못하고 땅에 속한 자는 이미 마귀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그냥 놓아둔다. 그러나 중간에 있는 신자, 즉 세상과 하늘나라 중간에서 한 발은 세상에 딛고 한 발은 천국에 딛고 있는 자들을 마귀가 싸워서 넘어뜨려 타락시킨다. 어떤 사람은 말세에 유브라데 강이 있는 중동 지방에서 3차대전이 일어나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이 죽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우리의 영적 양식이요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도리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연대적으로나 지방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년, 월, 일, 시는 하나님의 예정하신 때이다. 하나님이 예정한 것은 반드시 그 때가 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네 천사가 활동하여 전쟁을 일으키어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인다.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을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고 막아 놓으셨다가 예정 한 때가 되어 그것을 풀어놓은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3-7 에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감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고 하였다. 그들은 악한 사단의 역사인 능력과 기사와 거짓 표적과 불의의 속임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많은 사람의 심령을 죽게 만든다. 성도들이 생명 있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방해하려고 마귀가 여러 가지로 미혹을 하는데 많은 성도가 거기에 미혹이 되어 생명의 길을 걷지 못한다. 진리를 받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려고 하나님께서 악한 천사를 놓아주는 것이다 (살후2:10-12). 그러므로 현재에도 여러 가지 이단 세력들이 나와 세계 각처에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여 생명의 길에서 떠나게 한다

五. 마병대 재앙(16-21)

. 9:16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마병대는 싸움을 일으킬 때에 이용당한 사람과 단체들이다. "이만만"은 대단히 많은 수를 말한다. 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이렇게 많은 마병대를 일으킨 것이다.

. 9:17-18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니라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흉갑의 색깔이 불빛, 자주빛, 유황빛이다. 빛깔만 보아도 아주 무서운 흉갑이다. 흉갑은 적의 화살이나 칼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는 것으로써 인간의 지식과 욕심과 고집과 완고한 강퍅으로 무장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흉갑으로 무장을 하고 살기가 등등하여 전쟁에 나오는 것이다. 이 전쟁이 얼마나 극심할 것인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사자 머리"는 용맹하여 무서운 것을 말하고,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는 것은 이적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마귀가 이적을 행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시켜 신앙을 죽게 만들 실제로 그 세력이 사자의 머리와 같아서 강한 힘으로 닥치는 대로 물고 찢으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불로 소멸하여 버리는 무시무시한 피해가 있을 것이다.

. 9:19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은 거짓과 악사상을 선전하는 것을 가리키고, 꼬리는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킨다(사9:15). 말들은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기의 소유를 만들어서 전쟁을 시키려고 악사상을 전파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9:20-21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타락한 자들 중 재앙에도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자가 있다. 그들은 이렇게 무서운 재앙을 보고도 자기들의 가증한 행위를 회개하지 않는다. 이들의 가증한 행위란 여러 귀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긴 죄, 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한 죄이다.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떤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 "살인"은 남을 미워한 죄인데 특별히 예수를 바로 믿겠다는 성도를 미워한 죄이다. "복술"은 점치는 식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죄이다. 신앙 생활도 점치는 식으로 하면 안된다. "음행"은 도덕 적인 음행을 범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유일의 신앙 대상자로 삼지 않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죄이다. "도적질"은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삼아 놓고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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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0장

제 1O장 예언 사자(豫言使者)

(대 지)

一. 예언 사자(1-4)

二. 비밀 성취(5-7)

三. 구감복고(口疳腹苦) (8-11)

(본문강해)

一. 예언 사자(1-4)

. 10:1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힘 센 다른 천사는 예언 사자로서 예수님을 상징한다. 이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계시의 내용을 나타내 보여 주기 위하여 온 것이다.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구름 타고 재림하실 것을 보여준다.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무지개는 하나님의 언약(계약)을 상징하는데(창9:13), 예언 사자가 하나님의 구원 언약(계약)을 가지고 와서 거기에 대한 심부름을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언약이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언 사자가 하나님의 심부름으로 그것을 가지고 온 것이다.

얼굴은 해 같고 "해"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킨다. 구원운동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운동이다. 흑암이 아무리 어둡다고 하여도 빛이 들어가면 흑암은 물러가고 밝은 세상이 되듯이 세상에 마귀의 세력(흑암)이 가득 차 있을지라도 해와 같이 빛나는 하나님의 의의 빛, 복음의 빛이 최후의 승리를 하게 될 것을 말한다. 발은 불기둥 같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능력으로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는데 반드시 말씀대로 심판하신다.

. 10:2-3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

작은 책은 하나님의 말씀, 특히 요한계시록을 가리킨다.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작은 책 곧 성경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우주 전체에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물질계, 정신계, 영계가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고 현재도 말씀대로 섭리 보존되며 앞으로도 말씀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 천사가 예수님께서 1:13-16에 나타나신 모양과 비슷하게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즉 그 말씀이 구원 약속의 말씀(무지개)이요, 영광의 말씀(구름)이요, 심판의 말씀(불기둥)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말씀이 세상과 교회와 모든 만물에 다 적용되는 것이다. 택한 백성의 구원과 불신자의 심판이 이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하나님의 말씀이 위대하고 능력이 있어서 사자의 부르짖는 것 같다는 것이다.

. 10:4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 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일곱 우뢰 재앙이 내려오려고 하였는데 그것을 기록하지 말고 인봉하여 두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재앙을 감하여 주시려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과 긍휼로 감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 재앙의 내용을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24:22에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라"고 하였다. 택한 백성을 위하여 재앙을 감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일곱 우뢰의 재앙이 다 내리면 연약한 육체를 가진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겠으므로 감하여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감당할 것만 주시므로 마귀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다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다. 고린도전서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다.

二. 비밀 성취(5-7)

. 10:5-7 내가 본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시간이 다시없다는 뜻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창조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것이다. 반드시 만물의 마지막이 온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심판하여 만물이 종결될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세상 만물도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끝이 나고 종말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깨어 준비를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고린도전서 15:51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을 불게 되면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재림하실 것이고 그때에 예수 믿고 죽은 성도가 먼저 부활하고 살아있는 성도들은 홀연히 변화되어 신령한 몸으로 공중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살전4:13-18). 이 비밀은 불신자들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성도가 복이 있는 사람인 줄 알고 신앙 준비를 잘하여야 한다. 특별히 날마다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을 하루에 한번씩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이 좋다. 재림하시는 주님을 부끄러움 없이 맞이하려면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 우리가 믿음을 잘 지켜 우리의 신앙 인격이 그리스도를 자꾸 닮아 나아가야 한다.

三. 구감복고(口疳腹苦)(8-11)

. 10: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나님의 말씀이 천사를 통하여 성도에게 주어지는데 성도가 그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는 이 계시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 그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어가며 주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를 잘 해야 한다.

. 10:9-10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니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어야 영이 산다. 하나님은 천사의 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 먹으라고 하신다. 천사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려고 내려왔으므로 성도가 달라고 하면 즐거이 준다. 하나님께서는 원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다.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알지 말고 영의 양식으로 받아먹어야 한다.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말씀인 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서 자기의 영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으면 입에서 꿀과 같이 달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단 것은 그 말씀이 은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모하는 가운데서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은혜가 되고 그 맛이 꿀보다 더 달다(시19:10).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의 영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받고, 그 말씀이 영의 양식이 되어 영이 소생하고 새로운 힘을 얻어 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입에서는 꿀과 같이 달지만 배에서는 쓰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할 때에 마음속에서 반대하는 세력(육체의 부패성)이 나와 거스리기 때문에 배에서는 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려면 고통이 오기 때문에 배에서 쓴 것이다. 갈라디아서 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의 인격을 만들어 가려고 하면 힘이 들고 고난이 오기 때문에 배에서는 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상과 자기는 부인하여야 하는데 이것은 참기 어려운 고난이 아닐 수 없다. 성도는 배에서는 쓸지라도 입에서는 꿀과 같이 단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받아먹어야 점점 영이 자라난다. 영이 자라나면 더욱 더 단단한 것을 먹을 수 있다(히5:13-14). 영이 자라날수록 새로운 말씀을 달게 받아 먹고 그 말씀으로 인하여 영이 힘을 얻어야 한다. 그 말씀대로 행하려고 할 때에 고난이 오지만 고난을 참고 순종해야 영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속담에도 "좋은 약은 입에는 쓰나 몸에는 유익하다"고 했다. 고난이 오고 힘이 들더라도 말씀대로 순종하고 나아가야 영이 자라나고 힘을 얻는다.

. 10: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말씀을 받아 자기 영이 힘을 얻고 소생하였으면 나가서 그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야 한다. 성도는 먼저 자기 영이 살고, 자기 영이 자라나는 일을 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사명을 다하여야 한다. 자기의 사명을 다하려면 많은 희생과 수고가 있어야 한다.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말고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책임은 하나님의 비밀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일이다. 이 사명을 감당하려면 많은 고난과 십자가가 온다. 그래도 우리는 죽는 날까지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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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계시록11장

제11장 두 증인

(대 지)

一. 척량(1-2)

二. 두 증거자(3-7)

三. 증인 피살(8-10)

四. 부활 휴거(11-13)

五. 찬송(14-19)

(본문강해)

一. 척량(1-2)

. 11:1-2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과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지팡이 같은 갈대는 측량(測量)에 필요한 자와 같은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 것이다. 성경 말씀이 측량하는 자이다. "정경"을 (카논)이라 하는데 이것은 "자" 혹은 "잼대"라는 뜻이다.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 성전 생활하는 자와 제단 생활하는 자와 경배 생활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돌봐주신 것이다. 즉 1 성전 생활하는 자 ② 제단 생활하는 자 3 경배하는 자가 하나님의 권고권 안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 성전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 섬기는 자이며, 신령한 하나님의 집에서 사는 사람이다. 누가복음 2:49에 "예수께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라고 하였다. 성전을 찾아 언제나 거기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권고하신다. 영적 골방을 찾아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주님과 영적 교제하는 사람이 성전 생활을 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권고하시고 붙들어 주신다. 이러한 성도는 신앙 생활을 조금 잘못해도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며, 징계를 받아 회개하고 바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즉시 붙들어 주신다. 그러나 성전 밖 마당에서 하나님을 멀리 따라가면서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형편에 따라 말씀을 지키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권고하시지 않고 버려 두신다. 주일마다 예배당에 나와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달게 받지 못하고 그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성전 밖 마당에 있는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제단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의 제단을 중심하여서 자기의 모든 것을 산 제사로 드리려고 힘쓰는 성도이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기 원하고 주님께 드리는 것을 가장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려고 힘쓰는 성도가 제단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아까워서 벌벌 떨고 자기를 위하여서는 아까운 줄 모르고 마구 쓰는 사람은 제단 생활을 하지 못한다. 제단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제단에 자기의 마음을 온전히 바치고 물질과 몸과 생명까지도 하나님을 위해서 제물로 바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바칠 것이 없어서 바치지 못한다고 핑계하면 안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시간부터 제단에 바치기를 힘써야 한다. 기도하는 시간, 성경 읽는 시간, 전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에 바치는 가장 귀한 예물이다. 하나님 앞에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바칠 것이 많이 있다. 성도가 제단 생활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항상 권고하시므로 죄를 지으면 회개하도록 징계하신다. 또 갈 길을 모를 때에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며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신다. 원래 산 것은 제물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제단 생활을 하려면 자신을 죽여야 한다. 언제나 자신을 죽여서 하나님께 죽여서 드리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셋째, 경배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경배"는 예배와 같은 말인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권고권 안에 있게 된다(요4:24).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영적 감동으로 말씀을 받아 영이 소생하는 역사가 있고 하나님과 영적 교통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드리는 예배이다. 교회에 영권이 없으면 하나님의 권고가 떠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았다고 하여 다 된 것이 아니다. 말씀을 전하고 받을 때에 영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영이 살아 움직이며 점점 새로운 힘을 얻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4:20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하였다. 말씀을 증거할 때에 영이 움직이고 영이 힘을 얻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 영의 권능이 점점 커 나아가는 것이 천국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또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하는데 "진정"이란 "진리"라는 뜻이다. 진리(말씀)대로 순종하며 진리대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권고가 임하고 영이 힘을 얻는다.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은 그 예배를 통하여 자기의 나아갈 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서 모두 해결 받게 된다. 예배 시간에 자기의 문제가 해결되고 갈 길이 밝히 보여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자기의 잘못된 점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그 말씀에 굳게 서서 나아가면 하나님의 권고가 있어 진리를 더욱 환하게 보여 주신다. 하나님께서 참 도를 보여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그 말씀을 거역하면 나중에는 아주 촛대를 옮겨 버리신다.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죽이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여 주시려고 스데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되어 "하늘문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 서신 것을 본다"고 증거하였으나, 스데반을 죽이려는 무리들 마음이 더욱 강팍하여 성령을 거역하였다. 영의 인도와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야 하나님의 권고가 있어 말씀에 붙들려 말씀이 지시하는 곳으로만 걸어가고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순종하는 것이 귀한 것이다. 역대상 17:1-15에 다윗이 자기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어 드릴 마음이 생겼을 때, 처음에는 나단 선지자도 좋다고 찬성하였다.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겠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이 성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앞으로 다윗의 아들이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여 주셨다. 이튿날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모두 전하니 다윗이 그대로 순종하였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가"를 찾아야 한다.

척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여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권고권 안에 두시고 간섭한다는 뜻이다. 에스겔 42:20에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장과 광이 오 백 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구별하여 권고하시고 간섭하신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척량하지 않은 부분과 척량한 부분이 있다. 성전 밖 마당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권고하지 않으신다. 성전 밖 마당은 지성소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신앙 생활하는 상태인데, 하나님을 멀찍이 하여 영적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전 밖 마당에만 갔다 오는 식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도 마지못하여 체면 유지나 하려고 바친다. 성도가 예수를 믿되 하나님의 권고와 인도하심이 있는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한다. 성도라는 이름은 있으나 성전 밖 마당에 있어서 하나님의 권고와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참으로 가련한 일이다. 성전 밖 마당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권고가 떠나서 죄를 지어도 내버려두신다. 이렇게 되면 죄를 지으면서도 별다른 가책이 없다.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성전 밖 마당은 이방 세력이 짓밟게 된다. 마흔 두 달은 삼 년 반이다. 칠 년 대 환난의 절반까지 짓밟는다는 뜻이다. 칠 년은 하나님의 내정수며 그 절반도 내정수이다. 실제로는 얼마인지 알 수 없다.

二. 두 증거자(3-7)

.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 십일을 예언하리라

두 증인은 교회를 상징한다. 이 두 증인을 두 촛대라고 하였고(4절), 1:20에 촛대는 교회라고 하였으니 두 증인은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둘"은 증거자의 수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낼 때에도 둘씩 둘씩 보내셨다. 또 두 증인은 두 교회인데 유대인 중에서 예수 믿는 교회와 이방인 중에서 예수 믿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로마서 11-12에도 두 감람나무가 나오는데, 내용은 돌 감람나무(이방인 성도)가 참 감람나무(이스라엘) 접붙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 중에서 믿는 성도 이방인 중에서 믿는 성도가 하나가 된 것을 말한다.

굵은 베옷을 입고 겸비하여 회개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일천이백육십 일 한 달을30일로 계산하면 42개월, 즉 삼 년 반이 계시록에는 1260일(삼 년 반)이 두 번(11:3, 12:6)나온다. 둘을 합하면 칠 년이 된다. 그러므로 칠 년 대 환난이라고 한다. 그러나 7수는 하나님의 내정수이며 상징석인 수이어서 실제로는 얼마인지 모른다. 여기 1260일(삼 년 반)도 실제로는 얼마인지는 하나님의 내정수이다. 그러나 이 기간이 말세 대 환난의 절반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예언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다는 뜻이다. 교회는 항상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사명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망한다. 누가복음 13:4-5에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도가 날마다 마음에 있는 죄를 회개하여야 한다.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여도 마음으로 지은 죄가 많이 있다. 죄를 철저히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증거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인 것이다.

. 11: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주 앞에 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섰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22:44에도 하나님을 주라고 하였다.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3절에서 말한 "두 증인"과 같은 뜻으로 교회를 상징한다. "두 감람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스가랴 4:12-14에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감람나무는 기름 발리운 자라고 했으며 다니엘 9:25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결국 하나인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교회의 머리되시기 때문이다(엡 1:22-23). 교회를 촛대로 비유한 것은 교회가 촛대와 같이 세상에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빛(계시의 빛= 영적 빛)을 내보내는 곳이 교회이다. 또 교회를 감람나무로 비유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이 흘러 내려오는 것을 나타낸다. 기름은 진리와 영감을 말하는데, 주님께로부터 이 기름을 받으면 그 촛대에 불이 켜져 널리 빛을 비추어 나간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감람나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기름(진리와 영감)을 받아 세상에 영적 빛을 비추어 나가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 사명을 다하려면 교회가 먼저 베옷을 입고 날마다 회개하며 그리스도께 은혜를 받아야 한다.

. 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는 두 증인이요, 교회이므로 누구든지 교회를 해하고자 하면 저희 입에서 불이 나와서 원수를 소멸한다. 예레미야 5:14에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고 하였다. "불"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말씀대로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교회를 해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심판의 불이 되어 그 말씀대로 심판하고 불사르게 된다.

. 11:6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언하였고. 그 말씀이 성취되어 비가 오지 않고 기근이 나며(마24:7), 또 물이 변하여 피가 되기도 한다(16:4). 이것은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한 것을 보아 하나님의 징계와 재앙이다.

비오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이 중단된다는 뜻이다. 증인들이 말씀을 전할 때에 회개하지 않고 그 말씀을 무시하고 반항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끊어진다. 학개 1:10-11:1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으며, 신명기 28:24에는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고 하였다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물은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은혜와 복으로 주신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순종치 않으면 이미 주신 은혜와 복을 빼앗기고 앙화와 저주를 받아 사망에 이르게 된다. 학개 1:6에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고 하였다. 또 신명기 28:31-33에는 "네 소를 네 목전에서 잡았으나 네가 먹지 못할 것이며 네 나귀를 네 목전에서 빼앗아감을 당하여도 도로 찾지 못할 것이며 네 양을 대적에게 빼앗길 것이나 너를 도와 줄 자가 없을 것이며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알아봄으로 눈이 쇠하여지나 네 손에 능이 없을 것이며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라고 하였다. 모세가 나일강 물을 피가 되게 한 것도 애굽의 모든 행복의 원천을 친 것이다.

.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이것은 적그리스도인데,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죽이는 국가나 단체나 사회적인 세력들을 가리킨다. 이 적그리스도는 세계적으로 권세를 잡고 참 기독교와 더불어 싸우고 기독교를 박해하고 박멸하려고 한다. 저희를 죽일 터인 즉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나와서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데 그 세력이 너무 커서 교회가 감당하지 못한다. 이것은 또한 박해로 인하여 교회의 활동이 정지될 것을 뜻한다.

三. 증인 피살(8-l0)

. 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저희"는 증거자(교회)이다. 말세에는 예배당도 있고 교인들도 있지만 적그리스도가 박해하므로 믿음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많이 나오며 교회가 모이지도 못하고, 제 구실을 못하게 되는데 이것이 교회가 죽어 시체가 된 것 같은 상태에 있게 된다. "큰성 길" 바벨론 성인데 이 세상을 가리킨다. 교회의 죽은 시체를 세상 사람이 다 보고 알게 된다. 소돔은 물질주의와 향락주의로 죄악이 관영한 곳을 상징하며 그러한 곳에서는 기독교의 신앙도 죽고 믿음을 지켜 나가기 힘들다는 뜻이다. 애굽은 악하고 강퍅한 왕이 있어서 기독교를 탄압하여 신앙의 자유를 박탈하고 성도가 생명길을 걷지 못하도록(남자를 낳으면 죽이라)하는 곳이다(출1:15-16 참조). 이러한 곳에 있는 교회는 죽는다는 뜻이다.

소돔과 애굽처럼 사회 전체에 죄가 관영하면 교회에도 죄악의 물이 들어와 부패하고 마지막에는 죽게 되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 때에도 의인 롯이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하였다(벧후2:6-8). 또한 그의 사위들은 불에 타서 죽었고 딸들은 속화되었으며,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말세에도 소돔 고모라와 같이 세상이 악하여지고 믿는 자들이 밖이 타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8 8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들 보겠느냐"고 하시었다.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말세 대 환난 때에는 교회 전체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다. 기독교가 심한 박해로 죽은목숨과 같은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 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사흘 반"은 칠년 대환난의 절반을 가리킨다. 사흘 반도 두 곳(11:9, 11)에 있다. 사흘 반은 칠 일의 절반인데 7수는 만수요 환난을 받기 위한 하나님의 내정수이다(단9:27 참조). 그러므로 칠 년과 내용은 같은 것이다. 적 그리스도의 핍박이 너무 심하므로 성도들이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있는데 그것을 모든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게 된다는 뜻이다.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장사하지 못하니까 아주 없어지지는 않는다. 예배당도 있고 신자도 있으나 핍박이 너무 심하므로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성도들의 신앙이 죽은 상태로 있다는 뜻이다.

. 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교회가 참 신앙을 지키면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므로 괴로워할 때가 많다. 세상이 죄를 짓고 나아갈 때 회개하라고 외치니 괴로워한다. 이것이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하는 행위이다. 자기들을 괴롭히던 선지자가 죽으니 세상은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에스더 9:19에 "그러므로 촌촌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 고을에 거하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 일로 명절을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고 하였다. 예물을 보내는 것은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기뻐하는 일이다.

四. 부활 휴거(11-13)

. 11: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삼 일 반은 칠 년 대환난의 전 삼 년 반이다. 칠 년 대 환난을 절반 씩 나누어서 전 삼 년 반과 후 삼 년 반으로 구분한다. 전 삼 년 반이 지난 다음에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신다. 말세에 교회가 죽어 있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교회에 생기가 들어가서 모든 죽은 성도가 부활하여 공중으로 올라가고 살아 남아 있는 성도는 전화하여 공중으로 올라가 주를 맞게 되는 것이다.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원수들이 놀라서 크게 두려워하게 된다.

. 11: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 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이리로 올라 오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은 변화된 몸으로 들리어 공중으로 올라간다. 주님께서 "올라 오라" 말씀하시므로 성도들이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데 원수들이 그 모습을 구경하게 된다.

. 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성"은 바벨론인데 이 세상을 가리킨다. 예수님 재림시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이 세상 십분의 일이 파괴되고 죽은 사람이 많이 생기게 된다. 10수는 인간의 만수인데 십분의 일이 무너진다는 것은 전부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고 어느 부분만 무너진다는 뜻이다.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 천이라 예수님 재림시에는 큰 지진이 일어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졌듯이(마27:51) 주님 재림 때에도 큰 소동과 큰 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죽은 사람이 칠 천"이라는 것은 7수는 만수이고 천은 많은 수의 상징이므로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을 가리킨다.

五. 찬 송(14-19)

. 11: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8:13에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했는데, 첫째 화는 9:1-11의 다섯째 나팔 재앙이요, 둘째 화는 9:13-11:13의 여섯째 화는 나팔 재앙이며, 셋째 화는 14절에서부터 시작되는 일곱째 나팔 재앙이다. 이 화가 속히 임한다고 하였다. 이때에 예수님이 재림하고, 성도는 공중에 올라가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에 예수님과 같이 세상을 심판한다. 성도는 이미 공중에 올라가 있으므로 이 마지막 일곱째 나팔 재앙을 받지 않는다. 이 날은 성도들의 대 승리의 날이다. 15-19절에는 일곱째 나팔 재앙의 시작이고 15장은 서곡이며 16-18장은 그 재앙의 내용이다

.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이것은 천년 왕국을 말한다. 세상 나라가 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데 그때에 그리스도께서 그 나라에서 왕 노릇 하는 것이다. 그 나라는 평화와 성결이 충만하고, 위로와 안식이 충만하며 전쟁이 다시 없고 죄가 없으며, 의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한 완전 무결한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시고, 무궁 세계까지 올라가서 왕 노릇하신다. 천년왕국이 되면 세상 나라는 전부 망하고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만 건설된다. 그리스도가 왕이요 그 말씀이 법이 된다

. 11:16-17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구원과 심판을 다 이루어 나가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큰 권능을 가지시고 성도의 구원을 옛적에 계획하시고 시방도 그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며, 왕 노릇하시는 것을 이십 사 장로들이 경배하고 찬송하는 것이다.

.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방들이 분노할 때에 주께서 그들을 진노하여 심판하시고 성도들에게는 상주시는 것을 찬송한 것이다.

.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성전이 열린 것은 지성소가 열린 것이며, 언약궤가 보인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모두 실현되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진실 하사 언약하신 대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성도의 구원을 완성하여 언약을 다 이루시는 분이시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번개, 음성, 뇌성, 지진, 우박은 하나님의 위엄성과 심판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악에 대하여는 반드시 심판을 내리 신다. 참으로 하나님은 엄위하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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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2장

제 I2 장 교회와 붉은 용(敎會와 赤龍)

(대 지)

一. 교회 성장(1-2)

二. 붉은 용의 핍박(3-5)

三. 교회 양육(6)

四. 마귀 축출(7-9)

五. 승리 찬송(10-12)

六. 핍박과 시험(13-16)

七. 용이 모래 위에 섬(1-7)

(본문강해)

一. 교회 성장(1-2)

.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큰 이적이 보이니 다음에 나오는 사실, 즉 해를 입은 여자에 대한 것을 가리킨다. 해를 입은 한 여자 "해"는 진리를 가리키고,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고후11:2 참조).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도 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해를 입은 여자라는 것은 교회가 진리의 말씀을 몸에 입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데 이 진리가 빛이다. 시편 119 : 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다. 교회가 진리로 옷을 입고 참 빛이 없는 어두운 세상을 진리의 말씀으로 비추어 가는 것이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비추어 나가는 이 빛은 영적인 빛이다.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달"은 자연계시, 즉 자연 만물을 가리킨다. 자연 만물은 교회 아래에 있고 교회는 만물 위에 있다(엡1:22).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열 두 별"은 열 두 사도를 상징하며 열 두 사도가 특별히 교회의 머리가 되는 면을 말한다(21:14 마19:28).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워진 것이므로(엡2:20) 사도들은 교회의 면류관이요, 교회의 터 되는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 그 터 위에 바른 교회를 세워 나가 늘 하나님의 종들도 교회의 면류관이 된다. 교회는 사자(使者)가 가르치는 대로 만들어지므로 참된 사자(使者)는 그 교회의 면류관이 되는 것이다. 또한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을 밝히는 참 진리를 가진 성도들도 면류관이 된다. 데살로니가전서 2:19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고 하였다.

. 12: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잉태한 것은 창세기 3:15에서부터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이 잉태한 것이다. 창세기 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하였다. 이것은 제일 처음으로 아담에게 주어진 복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하여 줄 것을 가리킨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허락하셨고 구약 교회도 그리스도를 받아 가지고 있었다. 베드로전서 1:10-11에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고 하셨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많은 핍박과 고난이 있음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때에도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하여 많은 환난을 겪었다.

二. 붉은 용의 핍박(3-5)

.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붉은 용은 마귀이다(9절). 붉은빛은 혈기, 분노,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 등을 나타내는데 마귀의 빛깔이다. 마귀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워지는데, 즉 사단, 용, 귀신, 사귀, 악귀 등은 마귀의 명칭이다. 마귀는 악한 영물로서 온 천하를 거짓으로 꾀이며 이와 같이 적색 운동을 일으켜 복음을 대적한다.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머리"는 우두머리 혹은 주장자들을 가리키고, "뿔"은 세력을 가리킨다. 마귀는 세상 세력을 잡고 있다. 7수와 10수는 완전수이므로 세상에 속한 모든 머리들을 주장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 때까지 마귀가 세상 세력을 잡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진리에 속한 머리나 권세는 마귀가 주장하지 못한다.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마귀도 세상에서 일시적 영광을 얻어 권세를 떨치고 다닌다.

. 12: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하늘 별 교회의 사자를 가리킨다(1:20). 붉은 용의 역사는 먼저 교역자를 땅에 던져 타락시키고, 그 다음에 교인들을 타락시키는 운동을 한다.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종류적으로 삼분의 일이며 신령한 성도와 불신자의 중간에 있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면서 한 발은 천국에, 한 발은 세상에 걸치어 놓고 믿는 자들이다. 마귀가 이러한 자들을 끌어다 땅에 던졌다. 마귀는 항상 성도 들을 미혹하고 할 수만 있으면 타락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예수님이 탄생하시자 마자 마귀가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는데, 마귀가 헤롯왕에게 들어가서 그를 격동하여 당시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들을 다 죽였다(마2:16). 또 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마귀가 들어가서 언제나 예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고 파괴하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

아들을 낳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며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 운동이다.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큰 권세를 가지셨는데(2:27), 그 권세는 절대적인 권세요, 하나님의 권세이다. 예수님은 이 권세를 가지고 구원운동을 해 나가신다.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 마귀가 여러 가지 궤교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서 하나님의 구원 사업을 실패하게 하려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라가셨다. 마귀가 예수님의 구원운동을 파괴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썼으나 끝내 실패하고 만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마귀가 성공한 줄 알았으나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심으로 마귀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마귀가 아무리 예수님의 구원 역사를 파괴하려고 하여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결국 마귀는 실패하고 하나님은 승리하신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마귀가 도저히 죽일 수는 없다. 예수님은 지는 것 같아도 이기시고 마귀는 이기는 것 같아도 지는 것이다.

三. 교회 양육(6)

. 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교회가 광야와 같은 피난처로 도망하였다는 뜻이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양육하시기 위하여 예비하신 곳이므로 교회가 광야와 같이 한적하고 고요하며 은밀한 곳에 있어야 생명력이 있다. 먼저 교역자부터 광야로 나가야 한다. 교역자가 먼저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가서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광야 생활이다.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삼 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였고, 모세도 미디안에서 사십 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종의 자격을 만들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셨다.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 가서 교역자가 기도하고 하나님과 영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성도가 도시에 살더라도 마음은 언제나 광야와 같이 고요하고 한적한 상태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양육 받는 비결이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상태에서는 교회가 양육 받지 못한다. 항상 심령이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하며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말씀을 순종해 나아갈 때 성도의 영이 자라나고 교회가 양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키우시려고 광야 생활을 예비하여 놓으신 것이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1260일은 한 달을 30일로 계산하면 42달인데, 곧 삼 년 반이며 7년 대 환난의 절반이다. 7년 대 환난의 절반 동안 교회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야에서 양육을 받아야 한다. 광야는 의지할 데가 없고 사방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바람을 맞는 것과 같이 믿는 사람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하고 핍박을 한다(요15:19). 신약교회 생활은 고난과 여러 가지 환난 풍파가 많고 아무 것도 의탁할 곳이 없다. 그러나 광야는 고요하고 은밀한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귀기에 좋고 기도하기에 좋은 곳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음으로 광야생활을 하면서 양육을 받아 나가야 하며, 교회도 세상과 짝하지 말고 고요한 광야 생활로 하나님을 깊이 사귀며 영적 양육을 받아 나가야 한다. 7수는 완전수요, 하나님의 내정수인데, 이 기간 의 절반은 신약 교회가 양육 받는 기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四. 마귀 축출(7-9)

. 12:7-8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 곧 마귀로 더불어 싸웠는데 마귀와 그의 사자들이 이기지 못하고 하늘에서 내어 쫓기었다. 마귀가 내어 쫓기었으므로 세력을 쓰지 못한다.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에는 마귀가 발을 못 붙인다. 중생한 영혼에는 성령이 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므로 마귀가 침범하지 못한다.

. 12:9 큰 용이 내어 좇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좇기니라

마귀는 항상 사람들을 꾀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고 성도로 하여금 믿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마귀가 하늘 나라에서는 내어 쫓겼으나 죄악이 있는 땅 위에서는 아직 활동을 한다. 진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밝히 드러나면 마귀의 세력은 점점 제거되어 나가 는 것이다.

五. 승리 찬송(10-12)

.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참소"란 사실이 아닌 것을 거짓으로 공사하는 것이다. 마귀는 참소하는 자이므로 성도가 마귀의 참소를 분별하고 이겨야 한다. 마귀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참소 하여 성도들을 낙심하게 만들고 이간 붙이어 믿음의 길을 걷지 못하게 만들려고 한다. 성도가 마귀의 참소에 넘어가면 마귀의 종이 되고 만다. 교회 안에는 참소 마귀와 시기 마귀가 있어 교역자와 성도, 성도와 성도 사이를 이간 붙여 하나님의 의를 무너뜨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마귀가 참소할 때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면 참소에 넘어가지 않게 된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성도는 그날 그날 말씀에 굳게 서서 믿음을 지켜 나아가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한다

.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마귀를 이기려면?

첫째, 어린양의 피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어야 모든 죄에서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둘째,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도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에 말씀으로 이기시었다.

셋째, 죽기까지 충성하여야 한다.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말씀대로 충성하며 나아갈 마귀의 세력은 거꾸러진다. 말씀을 떠나서 육신의 생명을 살리려고 하면 오히려 죽는다.

. 12: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아 크게 발악할 것이고 그 마귀의 횡포로 땅과 바다에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 이들은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 벌써 별세하여 천국에 간 자들이요. 땅과 바다는 땅위의 생존자들 전체를 가리킨다. 신령한 세계에서 사는 성도들은 마귀가 손을 대지 못하나 땅과 바다는 화를 받는다.

六. 핍박과 시험(13-16)

. 12: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남자는 예수님이고, 여자는 교회이다. 용(마귀)이 땅으로 내어 좇긴 것을 분히 여겨 교회를 핍박한다.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안 남고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우므로 발악적으로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다.

.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독수리의 날개"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고 올라가게 하는 기능이다. 이사야 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성도에게 새로운 능력과 기능과 지혜를 주셔서 광야로 가게 하신다. 교회가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서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야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에게 삼키워지게 된다.

자기 곳은 은밀한 곳이요, 그리스도 안이요, 말씀의 보호를 받는 곳이요, 마귀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이곳은 하나님께서 신약교회가 뱀(마귀)의 낯을 피하여 있을 수 있도록 예비해 놓으신 장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뱀의 세력이 다가올 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잦아서 하나님의 예비하신 광야의 신령한 세계로 날아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예레미야 29:13에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였고, 역대하 16:9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였다. 성도가 하나님만 사모하고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찾아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고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신령한 세계로 올라 갈 수 있다. 독수리의 날개를 받은 후에는 광야로 날아가서 고요하고 은밀한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이것은 전부 합하면 세 때 반, 곧 일곱 때의 절반이므로 환란의 절반 기간인 삼 년 반을 가리킨다.

. 12:15-16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은 세상에 속한 물질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을 가리킨다. 마귀가 물질, 돈, 지식. 지위, 명예, 영광을 풍성하게 하여 성도를 세상에 빠뜨려 둥둥 떠내려가게 만들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풍성한 물질 문명 속에서 성도들이 향락주의와 세상주의에 빠져 타락하고 속화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는 물질 문명이 극도로 발랄하고 편리하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 많은 성도들이 이 편안한 세상(세속주의)에 빠져서 떠내려가고 있다. 지금은 성도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가 토하여 내는 물에 떠내려가게 되어 있다. 핍박을 당할 때에는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던 성도도 편안하고 풍성해지면 안일주의에 빠져서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의 진미와 왕의 사랑과 이방 학문과 높은 지위로 잘 대접하여 세상에 빠뜨려 죽이려고 하였을 때에도 뜻을 정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 나가기로 결심하고 세상에 싸지지 않았으므로(단 1:3-8)하나님께서 그를 존귀히 여기고 크게 축복해 주셨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땅이 물을 삼킨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의 역사로 물이 미치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요한복음 3:12에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라고 하였는데 여기 "땅의 일"은 중생의 도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중생한 영을 사용하여 신앙 양심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생명으로 삼고 나가면 강물에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생한 영으로 살면서 나아가는 사람은 그 속에 신앙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므로 아무리 세상 것들을 많이 가져다주어도 방탕하지 않고 향락주의에 빠지지 않고 그 물에 떠내려가지 않는다. 이것이 땅이 입을 벌려 강물을 삼키는 것이다.

七. 용이 모래 위에 섬(17)

.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마귀가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한다.

바다 모래 위 바다는 세상을 가리키는 때가 많다(17:15). "바다 모래 위"는 바다도 아니고 육지도 아닌 중간 지역이다. 성도로 말하면 전적으로 신령한 자도 아니고, 세상에 속한 불신자도 아니다. 즉 신령한 신자와 불신자의 중간에 서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 중간에 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는 하면서도 세상의 것도 겸하여 가지려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신앙 생활이 제대로 안 되고 항상 마귀의 공격 대상이 된다. 많은 사람이 거기에서 넘어진다. 거기에서 조금 더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면 마귀를 이긴다. 그러나 거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마귀에게 지고 마귀의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고, 또 올라가서 승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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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3장

제 13 장 두 짐승

(대 지)

一. 바다에서 나온 짐승(1-6)

二. 성도 핍박(7-10)

三. 새끼양 같은 짐승(11-13)

四. 우상을 만듦(14-15)

五. 짐승의 표를 받게 함(16-18)

(본문강해)

一. 바다에서 나온 짐승(1-6)

.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바다"는 세상이요(17:15), "짐승"은 세상나라인데, 적 기독국가를 가리킨다(단7:17 참조). 그 증거는 7절에 성도들과 싸워 이겼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적 기독국가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핍박한다(6-7절).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뿔"은 권세를 가리키고 "머리"는 두목과 주장자들이다. "열 뿔"의 10수는 완전수이니 여러 권세들을 가리킨다. 일곱 머리의 7수도 완전수이니 세상에는 머리될만한 주장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열 면류관 면류관은 영광을 상징한다. 권세자들은 세상 세력으로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참람된 이름 자기 신분에 해당되지 않는 주제넘은 이름이 참람된 이름이다

.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짐승의 모양은 표범과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 입 같다고 하였다. 다니엘 7장에는 네 짐승(사자, 곰, 표범, 열 뿔 가진 짐승)이 나오는데 본문에는 짐승 하나가 그 네 짐승의 특징을 다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 7장의 네 짐승과 여기 한 짐승의 내용은 같은 것이다. 즉 이 짐승들은 세상 나라들을 상징하고 있다. 세상 나라들이 짐승과 같이 이기주의로 나아가며 잔인하고 포악하여 서로 잡아먹으려고 하는 야수와 같은 것을 말한다. 세상 나라들이 겉으로는 체면도 있고 법도 있으나 자기 나라의 유익을 위해서는 의와 신실을 버리고 이기주의로 나아간다. 자기 배를 채우려고 하는 짐승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세상 나라들이다. 짐승들은 자기 배를 채우는 것이 유일의 목적이므로 자기보다 약한 짐승은 마구 잡아먹는다.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 배만 채우려는 것이 짐승의 마음이다. 이와 같이 세상나라들이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 나라의 유익을 위해서는 국가간의 조약도 의리도 하루아침에 배반한다. 짐승과 같이 자기 배만 생각하는 것이 세상 나라들이요 국제 사회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하여야 살아 나아갈 수 있을까?

하나님이 지켜 주시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 갈 수가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 말씀대로만 걸어 나아가야 한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지켜 주실 것이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용"은 마귀인데 마귀가 능력, 보좌, 권세를 세상 나라에게 주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세상 나라들이 이성 없는 짐승처럼 행동하는 것은 마귀가 그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4:4에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라고 하였다.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은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이므로 불순종의 세상 나라들은 마귀의 주장을 받아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이 마귀의 권세를 받아서 대담하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역사를 주장하고 계시기 때문에 마귀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도 안에서 하나님이 정한 기한까지만 세상 나라에서 역사하는 것이다. 마귀의 권세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도 내에서 활동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간에만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 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하나님께서는 적 기독국가들의 머리가 상하도록 만들어서 세상 나라는 하나님이 심판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다. 그리고 그 상한 머리가 나아서 회복되므로 온 세상이 모두 이상히 여겨 그 짐승을 따르게도 하신다. 인간의 역사에는 세상을 주장하는 큰 세력이 깨어져 거의 다 망하게 되었다가 다시 회복하여 강하게 될 때가 있다. 그때에 온 세상이 그를 이상히 여기며 따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깨닫도록 자주 징계하여도 세상주의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세상만 따라가는 것이다.

. 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다시 회복된 세력이 심히 강대하고 큰 권세를 마귀에게서 받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그 권세에 경배하고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하고 그 짐승이 최고인 줄 알고 따라가며 짐승 이외에는 없는 줄로 안다.

. 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세상의 세력이 강해지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간다.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 세상 세력이 강해지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 참람된 말, 즉 주제넘은 말을 함부로 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위치를 지켜 자기의 직무를 다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일까지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마흔 두 달 동안 밖에 악을 행하지 못한다. "마흔 두 달"은 3년 반인데 7년 대 환난의 절반이다.

. 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마귀가 짐승에게 권세를 주니 교만하여 하나님을 훼방한다. 또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천국을 훼방한다. 하늘에 거하는 자 천사와 구원받은 자들을 말한다. 마귀의 세력은 항상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고 거역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세상 나라들은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마귀의 능력과 권세로 악을 행하고 있다

二. 성도 핍박(7-10)

. 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적 기독국가의 세력이 성도와 싸워 이기고 온 세계를 다스리고 지배하게 된다. 전세계 기독교가 일시적으로 적 기독국가의 핍박을 당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같이 교회는 반드시 부활되고. 적 기독국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시키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지상에 건설되게 된다.

. 13:8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죄에서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예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생명을 받아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자이므로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은 세상 세력을 의지하며 경배하게 된다.

. 13: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신령한 귀가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성도가 죄를 회개하고 말씀을 성령으로 받아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 신령한 귀가 열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게 된다.

. 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세상의 것을 사로잡으려는 자는 자기가 세상의 것에 사로잡힌다. 성도가 세상의 것(권세, 물질, 명예, 사람, 단체, 지위)을 사로잡으려고 하면 그것들에게 사로잡혀서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게 된다. 예수만 붙들고 신앙으로 나아가면 세상의 것들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따라온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을 없는 것같이 여기고 나아 갈 수 있다. 또 그것들이 있다가 없어져도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칼을 쓰면 칼로 망한다는 뜻이다. 성도들의 싸움은 혈육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싸움이요, 비진리와 그릇된 사상과의 싸움이다. 에베소서 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였다. 성도는 마귀가 대적해 올 때에도 혈육으로 싸우지 말고 참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완력으로 싸우면 싸우기 전에 이미 마귀에게 진 것이고 자기의 심령은 죽은 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칼에 죽는 것이다. 마귀가 아무리 격동시키고, 왼뺨을 친다고 하여도 오른뺨을 돌려 대며 믿음으로 참고 나아가야 심령이 산다.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까지 줄지언정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와 믿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혈과 육으로 대적하면 영적 세계를 다 빼앗기게 되므로 세상 것은 다 빼앗기고 양보할지라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그 영적 세계는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서 끝까지 영적 생명운동을 하며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야 한다.

三. 새끼 양 같은 짐승(11-13)

.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바다는 세상이요 하늘은 신령한 곳인데 "땅"은 그 중간으로써 타락되고 세속화된 곳을 말한다. 이 짐승은 땅에 속한 세상주의 기독교에서 나오는 세력이다. 새끼 양 같이 어린양 예수님을 모방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기독교의 이름을 가지고 나오는 세력이다. 두 뿔 뿔은 세력인데, 세속화된 기독교에서 전 세계적인 큰 두 세력이 나올 것이다. 용처럼 말하더라 용(마귀)은 세상 나라와 세상에 대한 말을 하는데, 이 짐승도 세상 나라와 세상에 대한 말을 주로 한다.

. 13: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처음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인데 땅에서 올라온 새끼 양 같은 짐승이 이 짐승과 합작을 한다. 기독교에서 나온 두 세력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 즉 적 기독국가와 합작을 하고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짐승 곧 적 기독국가와 세력을 따르게 한다는 것이다. 참 기독교는 예수만 따라가며 천국운동만 하는 것이다.

. 13: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땅에서 올라온 새끼 양 같은 짐승이 큰 이적을 행하여 불이 하늘에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 참 선지자처럼 큰 이적을 행한다는 뜻인데, 옛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한 선지는 엘리야였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불을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여 자기가 참된 하나님의 종인 것을 알게 하였고(왕상18:30-40), 자기를 잡으러 온 오십부장과 오십인을 살라 버리게 하였다(왕하1:10). 마귀의 세력이 마치 하나님의 참 종과 같은 큰 이적과 큰 역사를 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것이다. 세속화된 기독교가 외부적으로는 깜짝 놀랄만한 큰 일을 행하며 사람들을 미혹하여 우상을 만들게 하고 그 우상을 섬기게 할 것을 가리킨다.

四. 우상을 만듦(14-15)

. 13:14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속화된 기독교 세력이 세상 나라에서 받은 세력으로 큰 일을 행한다.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은 세상 나라이다. 우상을 만들라 세상 국가와 단체가 우상이 되고 그 두목(頭目)들이 우상이 되고 그들의 이상, 이념과 사상이 우상이 되기도 한다. 이것들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보다 세상이 더 높아지고 속화된 기독교도 세상 나라를 우상으로 섬긴다,

. 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세상 나라와 그 두목들이 우상이 되며 하나님 말씀보다 이들의 명령을 더 중하게 여기고 지키게 된다. 이것이 우상이 말하는 것이다. 그것들의 명령은 하나님 말씀보다 더 크므로 그것들의 말은 우상의 말이 된다.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세상 권세가 우상이 되었으므로 이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명령하고 그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죽인다. 여기 죽인다는 것은 생존권을 박탈한다는 의미도 있다

五. 짐승의 표를 받게 함(16-18)

. 13: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오른손"은 행동을 상징하고 "이마"는 사상을 상징한다. "표를 받는 것"은 통일시킨다는 뜻이다. 즉 모든 사람의 사상과 행동을 짐승이 요구하는 대로 통일시킨다. 그것은 짐승이 우상이 된 증거이다.

.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사람들의 사상과 행동이 짐승이 요구하는 대로 통일되지 않으면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한다. "매매를 못하게"한다는 것은 생존권을 박탈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믿음 지키는 기독교인들은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짐승에게 순종하고 짐승이 요구하는 대로 생각과 행동이 일치되면 놓아두지만 성경대로 나가는 기독교는 없애버린다. 그러므로 많은 성도들이 환난과 고통을 당하게 되고 그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성경을 떠나서 짐승의 표를 받아 그의 사상과 행동에 동참한다. 이것은 참된 기독교인의 신앙의 자유를 박탈하고 교회의 문을 닫게 만드는 것이다.

짐승의 이름은 짐승의 사상과 행동을 가리키고 이름의 수는 다음절에 나오는 육백 육십 육이다.

.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지혜"는 성령의 지혜이다. 신령한 하나님의 지혜를 가져야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2:13-14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하였다.

육백 육십 육 6수는 지상 만수이다. 창세 때에 하나님께서 만물을 6 일간에 창조하시고 이레 되는 날에 쉬셨다. 그러므로 7수 하나님의 수이고 6수는 세상 만수이다. 지상의 것이 발전이 되면 일곱이 되는 것이 아니요 여섯이 하나 더붙어 66이 된다. 그것이 더욱 발전되면 6이 또 하나 더 붙어서 666(육백 육십 육)이 된다. 세상 수는 발전되면 될수록 세상 수인 6만 계속 늘어나간다. 그것이 아무리 발전되어도 하나님의 수(7)는 되지 못한다.

교회가 인본주의(세상주의)로 기울어지면 아무리 발전이 되어 신본주의가 되지 못하고 인본주의(세상주의)만 더욱 왕성하고 커지는 것임으로 666이 된다. 이것을 성령의 지혜가 있는 사람 분별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이 666을 바로 분별하여 미혹되지 않도록 하여 신본주의에 서서 영을 살리는 운동을 하여야 한다. 교회사를 보면 참 성도는 언제나 속화된 기독교 운동에 가담하지 않고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였으며 마침내 종교권마저 박탈당하게 된 때가 많았다.

디모데후서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주님께서도 누가복음 18:8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다. 이 말씀은 말세에 참 신앙을 가지고 바로 믿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기독교가 점점 속화되어 가고 또 이 속화된 기독교 운동이 점점 세력을 얻어 창성해 가는데 성도는 이것을 바로 분별하여 믿음에 굳게 서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참 믿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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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4장

제 14장 구원과 심판

(대 지)

一. 십사만 사천(1-5)

二. 영원한 복음(6-7)

三. 세상의 고난(8-11)

四. 주안에서 죽는 자의 복(12-13)

五. 곡식 추수(14-16)

六. 포도 추수(17-20)

(본문강해)

一. 십사만 사천(1-5)

.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어린양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신 것이다. 시온산 하늘에 있는 신령한 나라를 말하며 복음으로 구원받은 영적 세계이다. 십 사만 사천은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 전체를 가리키는데, 이 수는 하나님의 내정수이며 상징적인 수이다. 실제로는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구원받은 성도의 총수를 말한다(7:4해석 참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이마"는 사상을 상징하고 "이름"은 인격을 가리키는데,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 아버지의 인격으로 사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으로 심령 속에 인쳐 놓았기 때문에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과 더불어 살게 되고 예수님의 권능이 성도에게 나타나며 점점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갈 수 있다.

. 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하늘에서 나는 소리가 크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뇌성과도 같아 위엄이 있으며 두려워할 만한 것이었다.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주를 위해 고난을 달게 받고 나아가므로 성령에 감동이 되어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며 하늘에서 나는 소리가 아름다운 음악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다.

. 14: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구원받은 성도들이 시온산에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서서 새 노래를 부른다. 새 노래는 영이 자라나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부르는 노래이다. 영이 자라나지 못하고 부르면 새 노래가 될 수 없다. 어제는 새 노래를 불렀을지라도 오늘 다시 영이 자라나서 심령이 새롭게 되지 않으면 오늘은 새 노래가 되지 못한다. 내일도 오늘보다 좀더 영이 자라나고 새롭게 되어야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매일 시온산에 올라가서 새 노래를 부르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격이 만들어지고 영적 진보가 있어야 한다.

성도는 많지만 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구원받은 성도는 누구나 다 새 노래를 배울 자격이 있으므로 자기가 배우기만 하면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새 노래를 배우려면 영이 자라나서 심령이 날마다 새롭게 되도록 하여야 한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하였다. 천국에는 큰 자와 작은 자가 있듯이 영이 많이 자라난 사람과 자라나지 못한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 마태복음 5:19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천국에 가면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바울과 일평생 죄만 짓다가 죽을 때에 겨우 회개하고 천국에 간 사람과 같다고 하면 공평하지 못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천국에는 모두 가지만 만들어진 인격이 다르므로 상급도 다르다. 그러므로 상은 그 인격에 따라서 받게 되는 것이다.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받을 사람이 있고 받지 못할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지옥에 간 사람도 여러 계층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마10:15 참조).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는 가지만 신앙인격을 금, 은, 보석으로 지은 사람과 나무, 풀, 짚으로 지은 사람의 영광이 분명히 다르다. 고린도전서 3:15에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싸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하였다. 공력은 모두 들어갔으나 마지막 심판 때에 나무, 풀, 짚으로 지은 것은 공력이 불에 타서 없어지고, 금, 은, 보석으로 지은 것은 그대로 남는다. 금, 은, 보석으로 지은 자에게는 상급이 주어지고 나무, 풀, 짚으로 지은 자는 불 가운데서 벌거벗고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얻는다.

영적 성전을 금, 은, 보석으로 지으려면 자기 영이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을 따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대로 순종하면서 그 일을 위하여 공력을 들여야 한다. 성령의 인도와 하나님 말씀을 따라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봉사하고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전심 전력을 기울이면 자기 영이 자라나고 그 공력이 남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열심으로 기도하고 자기의 명예와 영광을 얻기 위하여 교회 봉사를 열심히 했다면 그것은 나무, 풀, 짚으로 지은 것이 되고 자기 영이 자라나지 못한다.

교회 일(헌금, 전도 등)을 열심히 한다고 잘 자라나는 것이 아니며 교역자라고 잘 자라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 순종할 때에 영이 날마다 힘을 얻어서 자라나고 신앙 인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슨 일에나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그 일을 하고, 성령의 인도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한다면 영이 자라나고 하늘 나라에 영원히 상급이 있게 된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교회를 위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욕심을 위하여 하고 사람 체면 때문에 하고, 자기를 위해서 한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욕심을 버리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영적 성전을 잘 건축하여야 한다. 요한복음 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하였다 영이 살아서 시온산에 올라가야 새 노래를 부르게 된다.

. 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여자"는 17:1에 있는 음녀를 가리키는 것인데, 음녀는 인본주의의 세상을 말한다. 즉 여자는 인본주의 세상이므로 세상과 더불어 더럽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야고보서 4:4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출석도 잘하며 교회의 직분을 받았어도 세상과 짝하면 이것이 곧 음행이다.

정절이 있는 자라는 것은 세상과 짝하여 영적 음행을 범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 양심을 지킨 자이다. 성도가 세상에 미혹되어 신앙의 정조를 빼앗겨서는 안된다. 정절이 있는 성도는 세상주의(사치, 향락, 안일)에 빠지지 않고 신앙 양심을 굳게 지켜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는 자이다. 히브리서 11:24-26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며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는 주님이 어느 곳으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이다. 편한 곳이든 불편한 곳이든 주님이 인도하면 즉시 순종하고 따라 가야 한다. 가다가 죽을 만한 위험이 있을지라도 따라가야 한다. 주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놓고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기쁨으로 따라가지 않으면 영이 자라나지 못하고 새 노래도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처음 익은 열매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출애굽기 23:19에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하였다. 몸과 마음과 물질과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여야 한다.

. 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그의 말씀은 참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믿고 바로 증거하는 자는 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말하지 않는 자는 화를 받는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말에 진실하고 행동에도 진실해야 한다. 신앙양심을 지켜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야 한다.

흠이 없는 자 믿음으로 사죄와 칭의를 받은 자인데, 자기 흠을 날마다 찾아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피에 새롭게 씻어 점점 정결함을 입어 나아가는 자이다

二. 영원한 복음(6-7)

. 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 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영원한 복음은 신, 구약 성경 말씀이다. 성경을 영원한 복음이라고 한 이유는 ①성경은 영원히 변치 않기 때문이며 2 영생을 주기 때문이며(요5:39) 3 영원한 하늘 나라를 건설해 나아가는 복음이기 때문이다. 세계 만민이 이 복음을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 성도는 자기 자신이 먼저 이 복음으로 생명을 삼고, 인격이 만들어지고 복음에서 사는 생활을 해야 하며, 또 이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 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인간이 마땅히 두려워해야 한다. 이 세상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날이 온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니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섭리하시다가 마지막에 하나님의 뜻대로 심판하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들어 인생들에게 은혜로 주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마땅하다. 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 안에서만 참 평안이 있고 만족이 있다. 인간이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하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三. 세상의 고난(8-11)

. 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큰 성 바벨론 인본주의 세상을 말한다. 이 세상 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반드시 무너질 날이 온다. 세상은 다 지나가되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하다(벧전1:24-25). 음행은 성도가 세상과 벗됨을 인하여 신앙의 정조를 빼앗긴 것이고 진노의 포도주는 이 세상주의에 성도들을 취하게 만든 것을 가리킨다. 인본주의(세상주의) 는 포도주와 같이 사람들을 도취하게 만드는데, 그 멋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게 되므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라고 한 것이다.

. 14:9-10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나 손에 표를 받은 자(13:16-17 해석 참조)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신다. 진노의 포도주를 마신 자는 불과 유황의 고통을 밤낮 쉬지 않고 받게 된다. 이 고통과 고난은 끝이 없이 세세토록 받아야 한다.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려면 생명을 내어놓고 말씀대로만 나아가야 한다. 그때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하지 못하게 하며 환난과 핍박이 너무 심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우상에게 절하며 짐승의 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우상에게 절하여 짐승의 표를 받으면 일시적으로는 편하지만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었기 때문에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 불과 유황의 고통을 받게 된다. 성도도 우상에게 경배하면 하나님께서 불과 유황으로 징계하신다. 택한 백성도 우상에게 경배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처럼 경계하시는 것이다

.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환난과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우상에게 절한다면 그 수치와 그 고난의 영향이 세세토록 남아 있게 된다.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환난과 핍박을 많이 받은 사람과 순교를 당하면서도 믿음을 잘 지켜 천당에 간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되며 세세토록 그 영광이 남아 있게 된다. 믿음을 잘 지킨 사람은 믿음을 지킨 그것이 세세토록 하나님께 남아 있게 되고 믿음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믿음을 못 지킨 그 흔적이 세세토록 남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잠시 동안 편안히 살겠다고 우상에게 절하고 짐승의 표를 받으면 하나님 앞에서 세세토록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四. 주안에서 죽는 자의 복(12-13)

.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믿는 자가 참 신자요,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는 예수 믿음을 버린 자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믿음을 지키려면 인내가 있어야 하므로 참고 또 참으며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성도들의 믿음 지키는 면과 믿음 지키지 못하는 면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주 안에서 죽는 자 광범위하게는 예수 믿고 죽은 자들 모두를 가리키지만, 협의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죽은 자, 즉 믿음을 지키다가 죽은 자를 가리킨다. 이렇게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었으므로 몸은 죽어도 영은 죽지 않는다. 주 안에서 주를 힘입고 영적 생명과 기쁨으로 사는 사람은 육신이 죽어도 영적 생명과 그 기쁨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다. 믿음 잘 지키다가 죽은 자는 하늘나라에 가서 큰 상급을 받으니 복이 있다.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주를 위해 수고하면서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친 후에 천국에 가서 편히 쉬며 안식하는 것이다.

행한 일이 따름이라 성경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여 행한 것이 헛되지 않고, 하늘 나라에까지 따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전심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를 위해 고난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이렇게 믿음 지킨 것과 수고한 것을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갚아주신다. 고린도전서 15:58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하였다.

五. 곡식 추수(14-16)

. 14:14 또 내가 보니 횐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심판할 때가 다 되었고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가 되었으므로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이다. 흰 구름은 예수님이 타고 오실 영광스러운 구름을 가리킨다.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장차 구름을 타시고 재림하실 것을 말한다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죄와 세상과 마귀를 이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순종하여 구원을 완성해 놓으셨으므로 금 면류관을 쓰신 것이다. 또한 추수 때가 되었으므로 추수하기 위하여 이한 낫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다. "이한 낫"은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다.

. 14: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곡식"은 성도들을 가리키는데, 말세에는 성도들이 연단되고 성숙하여야 하늘나라에 거두어 가신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성도들을 거두어 하늘나라로 데려간 후에 악한 자를 심판하신다. 마태복음 3:12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거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하였다. "다 익었음이로다" 지상(地上) 교회가 여러 가지 환난을 받고 연단이 되었으며 성도들도 정결하게 될 자는 모두 정결하게 되었으므로 믿음이 성숙되었음을 가리킨다.

. 14: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창세 전에 택함을 입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을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시는 것을 말한다. 현재는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지만 주님이 재림하시면 곡식을 먼저 거두어서 창고(천국)에 들이신다.

六. 포도 추수(17-20)

. 14:17-18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포도는 불신자들과 악한 자들을 가리킨다. "포도가 익었다"함은 악한 자들의 악이 가득 찼다는 뜻이다. 악이 가득 차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요엘 3:13에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라고 하였다. 가을이 되면 곡식도 익고 포도도 익듯이 말세가 되면 거룩한 자는 더욱 거룩하여지고 악인(불신자)은 점점 더 악하여져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오게 된다. 그리하여 22:11에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고 하였다.

. 14: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포도를 거두어 악한 자를 심판한다는 뜻이다. 포도주 틀은 전쟁 마당을 상징한 것이며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전쟁을 일으켜서 포도를 포도주 틀에 넣고 밟듯이 악인들을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악인들이 자기의 죄 값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분명한 사실이다.

. 14:20 성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성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성밖"은 불건전한 세상이요, "틀이 밟히는"것은 하나님께서 전쟁을 일으켜 심판하시는 것이다. "피가 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어서 그 피가 큰 강을 이루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한 스다디온은 177.5 m라고 한다. 1600스다디온 즉 284km나 되는 피의 강이 되는데 강의 깊이는 말이 들어가면 말굴레까지 올라올 정도가 된다. 악인들이 악을 행하고도 징벌이 속히 임하지 않으므로 대담하게 죄를 짓고 있지만 악이 가득 차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포도가 익어 갈수록 곡식도 익어야 한다. 악한 자는 점점 악하여지고 성도는 점점 거룩하여져서 악한 자는 포도 열매를 맺고, 성도는 곡식 열매를 맺히게 된다. 그리하여 성도는 주님 앞으로 올라가고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거룩한 시온산에서는 십 사만 사천명의 자격을 만들어 나가며 예수 안에서 죽는 믿음의 준비를 해 나가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기쁨으로 영접하여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의 면류관을 받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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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5장

제 15 장 구원 찬송

(대 지)

一.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짐(1)

二. 승리 찬송(2-4)

三. 성전이 열림(5-8)

(본문강해)

一.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짐(1)

. 15: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일곱 재앙은 일곱 대접의 재앙인데, 이것은 마지막 재앙이며 그 내용에 대하여는 16장에 자세히 나온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모든 재앙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내려온다. 일곱 대접 재앙은 마지막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다.

二. 승리 찬송(2-4)

. 15: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불이 섞인 "불"은 심판을 뜻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이 세상에 내리실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기로 예정하신 대로 세상에 마지막 재앙을 내리게 됐다. 마지막 재앙은 일곱 대접 재앙인데, 일곱 대접에 담은 재앙을 이 세상에 쏟아 부을 때 이 세상은 아주 멸망하게 된다.

유리 바다 같은 것은 맑고 깨끗한 하나님의 공의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과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는 유리 바다와 같이 고정되어 있고, 파도가 없이 언제나 안정된 상태다.

짐승과 그의 우상 "짐승"은 적 기독단체, 국가 등을 가리키고, "우상"은 기독교 박멸주의가 나와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데, 이들이 우상과 같이 될 것을 가리킨다. 이 짐승과 우상에게 굴복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인다고 하였는데 (13:15-17), 이것을 이기는 것이 말세 성도가 할 일이다. 짐승의 세력을 이기고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사람이(12:11) 심판시 바다 건너편에 서서 승리의 찬송을 부르게 된다.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거문고는 하나님의 것인데 승리한 성도들이 새 노래를 부르는 상태를 가리킨다. 승리자가 영으로 늘 부르는 찬송을 부를 때도 하늘의 거문고 소리와 같다. 마지막 재앙을 붓기 전에 성도의 찬송이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 바다를 건너 이편 언덕에 섰고 애굽 사람들은 바다에 빠져서 죽는 상태를 보고 승리의 찬송을 부른 것과 같다. 말세에도 승리한 성도들은 환난 건너편 곧 하나님 나라에 서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 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모세의 노래란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상징하고 어린양의 노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노래, 즉 구속받은 것을 감사하는 노래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잘 지키고 어린양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으므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하나님께서 모든 악을 이기시어 심판하시고 성도를 구원하신 것은 크고도 기이한 일이다. 아무리 대적이 강하고 핍박이 심해도 성도가 생명을 내놓고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그것을 다 이기게 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원하시는 대로 실패함이 없이 모두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의 뜻이면 아무리 어렵고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으로 다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하나님은 만국을 지배하고 다스리시며 심판하신다.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된 증거는 주님이 행하시는 일이 불의를 벌하시고 언약을 지켜서 성도를 구원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 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 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 무한한 능력으로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언약하신 대로 택한 백성의 구원을 성취시켜 가시는 것을 볼 때에 누구나 주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심판과 구원은 주의 의로우신 일이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고 모든 것을 바르게 진리대로 이루어 나아가시기 때문에 죄인을 심판하시고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함을 입은 성도를 구원하시는 일은 주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三. 성전이 열림(5-8)

. 15:5 또 이 일 후에 내가보니 하늘에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구원의 근원 되는 지성소가 열리게 된다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증거하신 구원 계획과 언약의 말씀이 최종적으로 실현될 것을 가리킨다.

. 15: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일곱 천사가 악인을 심판하려고 일곱 재앙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온 것은 그 심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을 가리킨다. 맑고 빛난 세마포는 성결을 가리키고, 가슴에 금띠는 왕권을 가리킨다.

. 15:7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악인을 심판하기 위하여 재앙을 담은 금 대접 일곱을 일곱 천사가 네 생물 중 하나(천사)에게서 받은 것이다. 일곱 천사는 하나님의 악인 심판에 이용되는 천사들이다. 죄가 들어오면 그 세대의 사람들이 공동 책임을 지고 감당해야 한다(마 23:35-3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세대가 역대적(歷代的)으로 쌓아 놓은 죄의 대가를 마지막 때에 한꺼번에 다 갚으실 것인데 그것이 일곱 대접 재앙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결코 죄악을 용서하시지 않고, 죄악에 대하여는 항상 진노하신다.

. 15: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 이사야 6:3-4에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 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고 하였다. 또 출애굽기 19:18에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완성시키시고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임재하신 것을 나타낸 것이다.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심판하시는 고로 누구나 감히 하나님 앞에 가까이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이미 천국에 올라가 유리 바닷가에 서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로 찬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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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6장

제 16 장 종말 재앙

(대 지)

一. 독창 (첫째 대접의 재앙) (1-2)

二. 바다가 피가 됨 (둘째 대접의 재앙) (3)

三. 강과 샘이 피가 됨 (셋째 대접의 재앙) (4-7)

四. 해가 사람을 태움 (넷째 대접의 재앙) (8-9)

五. 어두워짐 (다섯째 대접의 재앙) (10-11)

六. 유브라데 강이 마름 (여섯째 대접의 재앙) (12-16)

七. 지진과 재앙이 임함 (일곱째 대접의 재앙) (17-21)

(본문강해)

一. 독창(첫째 대접의 재앙) (1-2)

. 16: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성전에서 큰 음성으로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일곱 천사에게 진노를 담은 일곱 대접을 쏟으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말세에는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으로 이 세상에 일곱 재앙을 내리게 된다.

. 16:2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첫째 대접의 재앙은 짐승의 포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헌데가 나게 하는 재앙이다. 악하고 독한 헌데 이단 사상, 비진리, 비 복음으로 성도들을 미혹 시켜 신앙에서 떠나게 하고 악영향을 끼쳐 해독을 주는 것을 말한다. 디모데후서 2:16-17에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고 하였다. 기독교가 우상을 섬기고 세상과 벗이 되면 이와 같이 독한 헌데 같은 그릇된 사상과 그릇된 교훈, 그릇된 성경 해석이 거짓선지자를 통하여 들어온다. 교인들의 심령이 그것에 미혹되어 큰 해독을 받게 되는 것이다. 타락한 교회는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가르친다. 많은 성도들이 그 악한 사상에 넘어가서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절을 하게 되며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악한 사상에 빠진 것은 독한 창질과 같아서 그 피해가 크고 잘 낫지도 않는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 불신자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신앙을 지키지 않고 그 우상에게 절하고 적 기독세력을 따라가게 되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재앙을 내리 시는 것이다(우상에 대한 해석은 13:14-16해석 참조).

二. 바다가 피가 됨(둘째 대접의 재앙) (3)

. 16:3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둘째 대접의 재앙은 바다가 피가 되어 모든 생물이 죽는 재앙이다.

바다는 세상 열국을 상징한다. 세상 열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죽은 자의 피 "피"는 생명을 상징하므로, 세상이 생명력이 없고 희망이 보이지 않아 사망의 바다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생물이 죽더라 살 수 없는 세상이 된다는 뜻이다. 세상에 정직과 공의와 선과 도덕이 모두 없어지고 악하여져서 진리를 세워 나갈 수 없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가 된다(미 7:2-6참조). 또 실제로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다가 피와 같이 변하고 모든 생물이 죽게 될 수도 있다.

三. 강과 샘이 피가 됨(셋째 대접의 재앙) (4-7)

. 16:4 세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셋째 대접의 재앙은 강과 물 근원이 피가 되게 하는 것이다.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자연 은총면이 재앙을 받게 되는 것 말한다. 인간적인 행복의 근원이 되는 자연 만물과 물 근원에 재앙이 내린다는 뜻이다.

피가 되더라는 것은 세상이 심판을 받아 사망의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될 것을 말한다. 이 세상과 세상적인 모든 것은 지나가고 말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것들이 도리어 불과 같이 살을 먹을 날이 올 것이다(약5:1-4). 또 말세에는 하나님의 재앙을 받아 실제로 강과 물의 근원이 피가 될 수도 있다. 출애굽 때에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애굽 하수의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이적을 행하셨었다(출7:20).

. 16:5-6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운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한 사상을 좇고 짐승의 표를 받아 우상에게 절하고, 성도와 선지자의 피를 흘린 자에게 심판을 내려 재앙을 받게 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공의로운 분이시다.

. 16: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재단은 순교자가 있는 곳이다(6:9-10 참조). 심판하시는 것 순교자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내린 공의의 심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강과 불 근원을 피가 되게 하시므로 성도와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악한 사람들은 피를 마시는 것과 같은 사망과 고통과 환난 가운데 빠져 비참하게 될 것이다.

四 . 해가 사람을 태움(넷째 대접의 재앙) (8-9)

. 16:8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넷째 대접의 재앙은 태양이 뜨거워져서 사람을 태우는 재앙이다. 실제로 말세에는 태양이 뜨거워져서 그 열에 사람들이 타서 죽을 수도 있고, 또는 첨단 과학을 이용한 핵무기 등으로 뜨거운 열을 일으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신령한 뜻은 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시119:105 참조).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로 세상을 심판하여 사람을 태우는 것과 같이 환난과 고통 속에 빠질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은 아무 권세도 없는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말씀대로 세상을 심판하실 날이 온다. 요한 복음 12:48에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 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하였다. 심판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두렵고 무서운 말씀이 된다. 그날에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어서 그 말씀을 어긴 자는 그 말씀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탄생하셨고, 말씀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말씀대로 부활 승천하신 것처럼 말씀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으면 살려 주는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배척하면 죽이는 말씀이 된다. 예레미야 5:14에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늘을 사르리라"고 하였다.

. 16: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재앙을 받을 때 악한 무리들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한다.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마땅히 자기의 죄를 회개하며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 할 터인데 악한 무리들은 마음이 더욱 강팍하여져서 회개도 하지 않고 영광도 주께 돌리지 않는다. 회개는 성령의 은혜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악한 무리들은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을 때에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에게는 회개할 기회가 다 지나가 버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빛이 없는 어두움의 때요, 회개의 문이 닫힌 때를 만나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五. 어두워짐(다섯째 대접의 재앙) (10-11)

. 16: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다섯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매 세상 나라가 즉시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아파서 혀를 깨물었다. "짐승"은 세상 나라인데 특히 하나님을 훼방하고 대적하는 적 기독국가를 가리킨다. 이들은 하나님의 빛이 있는 때에 그 빛을 받지 않고 도리어 대적하며 훼방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보좌에 어두움의 재앙을 내리신 것이다. 하나님의 빛이 있는 때가 지나가면 반드시 흑암의 세력이 온다. 그러므로 그 나라 정치도 어두워지고 그 나라 사람들의 사상과 마음과 도덕도 모두 어두워져서 모든 일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잘못 처리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흑암과 사망의 고통이 온다. 요한복음 9:4에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당하면서도 말 한 마디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사회 상태이다. 말을 하면 더 큰 고통이 오므로 차라리 혀를 깨물고 참는 것을 가리킨다.

. 16:11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종기"는 악한사상이다(딤후2:16-17). 그 악한 사상자체가 고통이며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와 어두워지니 더욱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악한 무리들은 괴롭고 아픈 종기의 재앙을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훼방한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이 행한 대로 심판을 내렸으나 그들은 자기들의 죄와 그 악한 사상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벌만 크다고 원망한다. 멸망 받을 악한 자가 걸어가는 길은 대개 일정하다. 그들은 자기 죄는 회개하지 않으며 그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六. 유브라데 강이 마름(여섯째 대접의 재앙) (12-16)

. 16: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여섯째 대접은 유브라데 강에 쏟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성구를 실제로 유브라데 강가에서 세계의 모든 나라가 모여서 최후 전쟁을 하게 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성구는 신령한 뜻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의 이상적 국경이다(신1:7 수1:4).

"이스라엘"은 신약 시대의 교회를 상징하고 "이방"은 불신 사회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교회와 세상과의 경계선이 유브라데 강이다. 그런데 유브라데 강이 마르면 교회와 세상간의 경계가 없어지고 교회는 세상과 같이 되고 세상은 교회와 같이 된다. 교회와 세상은 본질적으로 다른 세계인데 교회가 세속화되면 교회와 세상이 합작이 되고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서 세상화 된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교회와 이방의 경계선이 없어져서 교회가 진리를 세워나갈 수 없게 된다.

"현대"야 말로 교회와 세상의 경계선이 말라서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없어지고 교회가 세상과 비슷해져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가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 교회가 사람의 주장대로 움직이고 인간은 수단과 방법을 써서 양적면만 크게 만들고 진리면과 영적면은 점점 쇠퇴하여 가고 있다. 교회가 인본주의와 세상주의와 의식주의로 세속화되어 가면 생명력이 점점 없어진다.

요한복음 15:19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이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하였다. 교회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이 교회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들이 세상과 합작이 되어 교회에서 세상 운동을 하고 세상의 힘과 세상 방법으로 교회를 이끌어 나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말세에는 참 교회와 참 신자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셨다(3:4 ;눅 18:8 참조). 교회는 진리(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워 나가야 하고 하나님의 주장과 인도를 받아서 그 뜻대로 성장되어 나아가야 한다.

. 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 이것은 마귀의 영을 가리키는데, 더럽다는 것은 죄 중에 거하며 하나님을 떠나 물질주의와 향락주의를 좋아하고 추악한 말과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개구리가 물에서도 살고 육지에서도 사는 양서 동물이듯이 개구리 영은 교회에 들어와서도 살고 세상에 나가서도 산다. 세상과 타협주의로 나가면서 하나님의 진리에 진리 아닌 것을 혼합시켜 놓는데, 이것이 더러운 영이 하는 일이다. 오늘날에도 세상에서는 믿지 않는 세상 사람과 같이 행동하고 교회에 들어와서는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개구리 영에 미혹된 사람이다.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 이것들은 다 같은 종류이다. "용"은 마귀요, "짐승"은 용의 주장을 받는 세상 나라요,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짐승과 합작하여 진리 아닌 것을 진리처럼 선전하는 자이다. 또한 이들은 개구리와 같이 시끄럽게 떠들기를 좋아하는데, 개구리는 한 마리가 "개굴 개굴" 하면 다른 것들도 "개굴 개굴"하면서 근방에 있는 개구리들이 온통 다 떠들어댄다. 이와 같이 마귀의 영들은 거짓된 것을 선전하는 일에 개구리처럼 마구 떠들어댄다. 그런데 거짓된 것을 이렇게 선전하여 떠들어대면 쉽게 동요되고 어리석게도 미혹되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

. 16: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거짓되고 더러운 영이 나와서 이적과 같은 큰 일을 갑작스럽게 이루어 놓고 또 많은 사업을 해 나간다. 이적과 같은 굉장한 일들을 해 나가면서 그것을 개구리처럼 선전하고 떠들어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 특히 교인들까지라도 세상 제일주의에 빠뜨려 세상을 따라가게 한다. 개구리 영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와서 천하 임금들을 모아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최후의 결전을 하게 한다. 이 결전장(決戰場)은 아마겟돈인데 이것이 바로 인류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인 것이다(16절). 마귀는 기독교를 파괴하려고 세상 나라의 주장자들을 모아 반 기독전선을 형성하여 싸우게 되나 최후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검 (히4:12)으로 그들을 심판하여 멸망시킨다.

.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도적이 올 때 언제 오는지 알 수 없듯이 예수님의 재림하실 때도 모르게 임할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먼 장래에 올 줄로 알면 안된다. 오늘 이 시간에는 오지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도적같이 오실 것을 믿지 않는 자이다. 주님은 뜻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오신다고 하였으므로 우리는 언제나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이 오실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생활을 하고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준비를 하여야 하는데 이때에 성도들이 준비하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 깨어 있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깨어 있다는 것은 세상에 도취되지 아니하고 영으로 살며 하나님과 영적 교통이 이루어지며 범사에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을 말한다.

둘째, 자기 옷을 지키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선한 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고 나아가야 한다.

셋째,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이것은 의의 옷을 입으라는 뜻이다.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며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사는 생활을 말한다 로마서 13:13-14에 "낯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다. 성도들은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영원히 살 나라는 하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날마다 위엣 것을 찾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세상에 재물을 쌓고 세상을 위하여 살면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이 쏟아 질 때에 다 망하여 없어지게 된다.

. 16:16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아마겟돈 유다 땅에 있는 므깃도라고 하는 곳인데 이스라엘 자손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 왕 야빈과 싸워 이긴 장소이다. 이곳은 세계 최후의 전쟁의 결전장으로 사용되는데 이 전쟁은 이방 여러 왕들과 그리스도(기독교)와의 싸움이다. 개구리 같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성경을 떠나 세속화된 기독교) 세 영이 합하여 그것들이 그리스도(참된 교회)와 더불어 싸울 것이다. 이 싸움이 곧 아마겟돈 전쟁이다.

七. 지진과 재앙이 임함(일곱째 대접의 재앙) (17-21)

. 16:17-18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일곱째 대접은 공기 가운데 쏟았다. 이 재앙으로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일어났고 또 아주 큰 지진이 일어났다. 공기는 사람들의 사상(思想)을 가리키고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은 하나님의 대심판이 나타날 것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큰 지진이 있어 "지진"은 폭동을 가리키는데, 사람의 사상에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와 사상이 서로 분열되고 그 사상 때문에 큰 폭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없던 큰 폭동이다. 사상적 폭동은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파괴적으로 나아가는데, 이와 같이 세상 나라의 정치와 경제 사상이 갈라지게 되고 기독교인들의 교리나 주장이 서로 다르므로 큰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 말세가 된 증거이다. 옛날 바벨탑을 쌓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림으로 사상이 서로 맞지 않고 말이 혼잡해졌다. 말은 사상의 표현이다(창11:6-9참조).

실제로 말세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일어나고 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을런지도 모른다. 또 전쟁으로 말미암아 원자탄이나 수소탄 같은 것들이 떨어져 지진이 나고 성들이 무너져 세상이 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 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큰 성은 바벨론을 가리킨다. 바벨론은 인본주의로 높아진 세력과 단체들이다. 바벨론에는 종교적 바벨론과 정치적 바벨론이 있다. 종교적 바벨론은 인본주의에 바탕을 두어 세계적으로 크게 뭉친 기독교 단체들이다. 정치적 바벨론은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인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뭉친 정치 단체들이다.

세 갈래로 갈라지고 세계 국가들이 세 갈래로 갈라질 것이다 현재의 세계는 우익 단체, 좌익 단체, 비동맹 단체로 삼분되어 있다. 세계 기독교 세력도 세 개의 단체나 세력으로 갈라지는데, 첫째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사람들의 단체요, 둘째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무신론자들의 무리요. 첫째는 그 중간에 있는 자들이다.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세상의 모든 세력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던 사상들이 다 깨어질 것을 가리킨다.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하나님을 거역하고 성도를 미혹한 죄 값으로 심판을 베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억해 두신 것이다.

진노의 포도주 잔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내리시는 심판의 고난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미혹한 마귀의 세력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야 만다.

. 16: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세상 모든 단체와 세력들인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전부 없어지고 만다.

. 16:21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 심히 큼이러라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 한 달란트는 약 34kg의 무게인데 이것은 무거운 징계와 재앙이 내려온다는 뜻이다. 실제로 큰 우박의 재앙이 내릴 수도 있고(출9:24 수10:11), 또 전쟁 때에 사용하는 무기의 피해가 무거운 우박 재앙과 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신령한 뜻은 하나님께서 한 달란트. 되는 무거운 압력으로 내리 누르는 심적 고통을 당하게 할 것을 가리킨다. 시편 32:3-4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하였다. 주의 손이 누르시는 것이 한 달란트 정도 무거워 진액이 다 마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크고 무거운 하나님의 재앙이 내릴 때에 회개하는 자는 복 받기로 작정된 자요,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훼방하는 자들은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이다. 불택자들은 말세에 끝내 회개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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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7장

제 17 장 음녀

(대 지)

一. 음녀의 미혹(1-6)

二. 일곱 짐승과 열 뿔(7-14)

三. 음녀의 멸망(15-18)

(본문강해)

一. 음녀의 미혹(1-6)

.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은 15절에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하였는데, 이것 은 곧 세상 무리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음녀는 인본주의적인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말한다. 요한일서 2 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세상과 벗되는 것이 간음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음녀의 행위이다(약4:4).

음녀가 끊임없이 성도를 유혹하여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짝하게 만들려고 하지만 성도는 이 음녀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아야 시온산에서 새 노래를 부르게 된다(14:3-4).

. 17:2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모든 사람이 세상주의의 달콤한 맛에 도취되었다는 뜻이다. 달콤한 세상에 취하여 모두 제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 중에 임금들이 먼저 음행하였다. 임금들은 세상의 권세와 지위와 영광과 돈이 많은 부자들이다. 하나님 앞에서 종 노릇하지 아니하고 왕 노릇하는 교만한 자들이 제일 먼저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 빠진다. 그것을 보고 많은 백성들도 세상 향락에 도취되어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 돈을 더 사랑한다(딤후3:1-5).

세상의 달콤한 재미에 빠지면 거기에 도취되어 아무 분별을 하지 못하고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을 상실하고 인생이 가야 될 길을 가지 못한다.

. 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광야로 갔을 때 음녀가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광야는 세속화된 세상을 떠난 한적한 곳인데 하나님의 피난처이다(12:6해석 참조). 사도 요한이 광야에 나가서야 음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성도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 신령하고 은밀한 처소에 있으면 음녀의 정체를 알 수가 있다.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광야에 나가지 않은 사람은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 음녀를 좋아하고 따라다니면서도 그 정체를 알지 못하고 음녀와 음행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알지 못한다.

붉은 빛 짐승 "붉은 빛"은 분노와 혈기와 폭력 등을 나타내는 마귀의 빛이고, "짐승"은 세상 나라를 상징한다. 세상 나라는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요일5:19). 세상 나라가 마귀에게 세력을 받아 분노와 폭력으로 싸우고 폭력을 사용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다. 그것들은 참람된 이름들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고 참람된 행동을 하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나아간다.

참람된 이름은 자기에게 주제넘고 합당하지 않은 이름이다.

일곱 머리는 세상 나라의 우두머리 되는 주장자들이다. 7수는 완전수이니 일곱 머리는 세상의 우두머리가 많다는 뜻이다. 한 사회나 국가에는 우두머리 되는 자들이 많이 있다. 각 단체의 장, 회장, 사장, 위원장 같은 이들이 머리되는 자들이다.

열 뿔 뿔은 권세를 상징하며 세상의 모든 권세를 열 뿔로 표현 한 것이다. 10수는 세상의 완전수인데, 세상에는 주장하는 우두머리도 많고 권세도 많은 것을 가리킨다. 정계(政界)에는 정계의 머리가 있고 경제계에는 경제계의 머리가 있다. 또 예술계의 머리, 체육계의 머리, 교육계의 머리, 기술계의 머리 등 세상에는 여러 머리가 많다. 권세에도 정치적인 권세, 돈의 권세, 명예와 영광의 권세, 학문을 근거로 한 권세 등 여러 가지 권세가 있다.

세상에 속한 모든 머리와 권세가 전부 이 짐승에게 붙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짐승의 주장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여자(음녀)가 그 짐승을 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머리와 권세가 짐승에게 붙어 있으므로 짐승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미혹하여 음행하게 만든다.

. 17: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이다.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값지고 귀한 장신구로 몸을 꾸민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주의는 항상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다. 성도는 사치하지 말고 아담한 옷을 입어야 한다. 무엇이나 자기 정도에 지나치면 사치인 것이다.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값지고 귀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잔인데, 이것에 포도주(세상주의)를 부어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다. 겉은 아름답고 귀한 것이나 속은 가증한 것, 음행의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것이 인본주의 운동이요 세상의 문화와 향락이다. 겉으로 보면 번쩍 번쩍 빛이 나고 아름답고 찬란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뿐이다. 이 세상 문화가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고 찬란하고 귀한 것 같으나 그 이면을 보면 가증한 것과 음란한 것, 더러운 것으로 가득한 것이다.

세상이 날마다 발전하고,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문화가 진보되어 간다고 하지만 사회의 죄악상을 보면 극도로 부패하여진 상태이다. 문화가 향상되면 될수록 경제가 성장되어 물질이 풍요해 지면 질수록 그만큼 죄가 더 많아진다. 현 사회상을 보면 소돔 고모라와 노아 시대 같이 되어 간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음란 방탕하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사고 파는 일만 하면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은 생각지 않았다(눅17:27-28). 현대도 마찬가지로 세상주의에 도취되어 음란 방탕하고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들이 주야로 행하여지고 있다. 세상이 점점 발달되어 가는데 속은 점점 더 썩어져 가고 있다. 이것이 음녀가 들고 있는 금 잔과 같은 것이다

. 17: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비밀이라 이 비밀은 마귀의 비밀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7에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고 하였다. 이 비밀을 2:24에서는 "사단의 깊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사치와 향락주의는 사람들을 세상에 빠지게 만드는데 그 속에 있는 가증한 것과 더러운 것을 잘 알지 못하도록 외부를 아름답게 꾸며 놓았기 때문에 비밀인 것이다. 인본주의의 세상 문화와 향락은 아름답고 좋은 것은 보여 주지만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은 보여 주지 않는다.

큰 바벨론은 하나님 없이 인간들끼리 건설하여 커지고 높아진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말한다(창11:3-9 참조).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각종 죄악의 모체요 하나님을 배반하고 인본주의로 나가는 발원지(發源地)라는 의미이다.

. 17: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인본주의의 세상이 많은 성도를 잡아죽이고 예수의 증인들을 많이 잡아 죽였다는 뜻이다. 포도주를 많이 먹으면 취하듯이 이 음녀는 성도들을 많이 죽이고 그 피에 취한 것이다. 세상은 문화와 경제와 과학 등을 대단히 자랑하고 신뢰하나 그 내용은 더럽고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것이다. 이것을 성도가 밝히 깨달아 세상에 빠지지 않도록 힘을 써야 한다. 그러나 성도가 세상밖에 나가서 살라는 뜻은 아니다. 몸은 세상에 살면서도 마음이 세상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살라는 뜻이다.

마음이 주님께로 향하고 주님만 따라가고 예수님만 위하는 생활을 하면 되는 것이다. 주님께로 향하던 그 마음이 세상으로 향하고, 주를 위하여 살던 사람이 세상의 것을 위하여 살면 이것이 음행이다(약4:4).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두 마음을 품어 예수님과 세상을 같이 사랑하면 안된다. 믿는 일은 첫째로 하고 세상의 것은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뜻대로 이용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성도는 아무리 풍요한 세계에서 산다고 할지라도 음녀의 포도주에 취하지 않는다.

포도주는 달콤하고 먹으면 아주 기분이 좋아지듯이 세상에 도취가 되면 달콤하고 기분이 매우 좋다. 그리하여 점점 더 세상으로 빠져들어 가든 것이다. 이것이 음녀의 포도주에 취하는 것이다. 성도는 세상을 발로 밟고 신령한 자리로 올라가 예수님만 붙들고 살아야 한다.

세상이 풍요해지면 풍요해질수록 성도가 더욱 기도를 많이 하고 믿는 일에 더욱 힘써서 영이 올라가야 세상에 빠지지 않는다. 성도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경제적으로 풍요한 생활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풍요해질수록 세상에 빠져 믿음을 지키기가 힘들므로 더욱 믿음을 써서 세상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二. 일곱 짐승과 열 뿔(7-14)

. 17:7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사도 요한이 일곱 머리 및 열 뿔 가진 짐승과 화려하게 단장한 음녀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것을 보고 크게 기이히 여길 때 천사가 여자와 그의 탄바 일곱 머리 및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알려 주겠다고 하였다.

.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짐승은 적 그리스도 국가를 상징한다. 이전에 있었다가 역사를 보면 적 기독국가가 때때로 나와서 기독교를 대적하다가 망하곤 하였다.

시방 없으나 적 기독국가가 한때는 없으나 잠시 후에 다시 나온다. 적 기독국가는 일어났다가 하나님께 심판 받아 멸망하고 얼마 후에 또 일어나서 기독교를 대적하다가 멸망하곤 한다. 이 적 기독국가는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서 그리스도를 대적 하다가 마지막에는 멸망하게 된다. 장차 적 그리스도 세력이나 적 그리스도 국가가 나오면 그 세력이 너무 강하고 그 법이 엄격하기 때문에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기이히 여기고 경배하며 따르게 된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자이다.

. 17: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지혜 있는 뜻은 성령의 지혜를 말한다. 계시의 말씀은 성령의 지혜를 받은 사람이라야 바로 깨달을 수 있다(고전2:13-14).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일곱 머리를 10절에는 일곱 왕이라고 하였는데. "머리"는 우두머리요 "산"은 크고 견고한 단체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여자 곧 세상주의는 모든 단체의 세력과 그 주장자들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뜻한다.

. 17: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동안 계속하리라

다섯은 망하였고 다섯이 역사적으로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 파사, 헬라를 말하며 망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망할 것은 다 망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는 있고 역사적으로는 로마를 가리키나 실제로는 현재에 큰 권세와 실력을 가지고 있는 우두머리를 뜻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세상을 지배하던 큰 세력들은 그 머리가 몇이든 모두 다섯 머리에 해당한다. 일곱은 완전수인데, 그 중 하나는 현재 있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나타날 것이고 나머지는 다 망하였기 때문이다. 다섯은 망한 자의 내정수이다. 현재 큰 권세를 가지고 실력 행사를 하는 머리도 얼마 후에는 망하고 만다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 후에 나을 머리인데 이것이 큰 권세를 가지고 실력 행사를 하는 머리이다. 이 머리의 큰 권력도 잠깐 계속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몰락 당하고 말 것이다. 세상 권력은 일시적으로 세력을 잡고 세상을 지배하게 되나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고 만다. 언제든지 짐승의 머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깨어지고, 깨어지면 또 다른 것이 나와 역사가 변천되어 내려간다.

. 17:11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풍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여덟째 왕은 악독한 적 기독국가이다, 여덟째 왕의 내용은 다니엘 7:20-26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열 왕이 있었는데 다른 한 왕이 나와서 세 왕을 정복하고 자기가 그 자리에 서서 여덟째 왕이 된 자이다. 이 왕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괴롭게 하고 때와 법을 변개하는 자라고 하였다. 여덟째 왕이 성도를 크게 핍박하며 성소를 헐고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적 기독세력이 된다(단8:9-14).

말세에 여덟째 왕이 나올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미리 가르쳐 주신 것은 믿음을 잘 준비하여 환난과 핍박이 올 때에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덟째 왕이 나오면 교회에 말할 수 없는 큰 환난과 핍박이 올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그 때에 예수를 위하여 죽을 각오를 하고 결사적으로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한다. 성경의 한 성구를 양보하여 육신의 생명이 사는 것보다 그 성구를 지키다가 죽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이다. 성도들이 순교의 정신을 갖지 않는다면 믿음을 지킬 수 없다. 성도는 천국에 소망이 있으므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순교자 박관준 장로는 순교당할 때에 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시래사불사 생락불여사 (時來死不死 生樂不如死)

화락결성실 인사입천국 (花落結成實 人死入天國)

죽을 때가 왔을 때 죽지 않으면(時來死不死), 살아 즐거워하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生樂不如死). 꽃은 떨어져야 열매를 맺고(花落結成實), 사람은 죽어야 천국에 간다(人死入天國)는 뜻이다. 천국은 이 세상보다 더욱 좋으니 빨리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성도가 하루에 한번씩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기도하고 주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여덟째 왕은 큰 권력을 가지고 성도를 핍박할 것이나 잠시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성도가 승리하며 최후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건설된다(단7:26-27). 성도는 그때까지만 참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참고 이기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

. 17: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열 뿔은 열 왕이니 열 뿔의 세력이 왕처럼 큰 권세를 가지고 나을 것을 말한다.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열 뿔이 아직 자기의 세력을 얻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열 뿔이 권세를 받으나 그 권세는 일시 동안뿐이다. 세상의 모든 종류의 세력은 일시동안만 권세를 쓰다가 얼마 안가서 몰락 당하고 만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2:17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한 것이다.

. 17:13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사상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반 기독사상으로 통일되는 것이다. 그들이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되는 적 기독국가에 준다. 그러므로 적 기독국가는 더욱 더 교만하여져서 마침내 그리스도와 더불어 싸우려고 한다.

. 17:14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적 그리스도 세력이 한데 뭉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주님의 참 교회를 핍박하여 신앙의 생명을 빼앗으려 한다. 열 뿔과 일곱 머리와 짐승이 다 합하여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게 되는데, 이것은 세상의 모든 머리와 권세가 연합하여 예수님과 기독교를 대적하여 싸우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예수님께서 승리하시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성도들이 승리한다. 예수님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 왕권으로 적 기독세력을 깨뜨려 버리신다. 주님과 함께 있는 성도들이 승리하는 비결은 첫째,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모든 것을 자기 힘이나 자기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오 주님께 피동되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빼내심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아 하나님께 붙들려서 성별된 생활을 하는 것들 말한다(18:4 ; 고후6:17-18). 셋째, 진실하였기 때문이다. 성경말씀대로 신앙 양심을 지키며 진실하게 행하는 사람은 마귀가 당하지 못하고 이기지 못한다. 성도의 특징은 진실이다. 고러므로 진실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고 능력으로 역사해 주신다. 이러한 성도는 하나님을 힘입어 늘 이기게 되는 것이다.

三. 음녀의 멸망(15-18)

. 17: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우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1절 해석 참조.

. 17:16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이 세상 문화가 세상 권세와 세상 나라들의 싸움에 의하여 파괴 될 것을 말한다. 이것도 하나님의 심판이다. 세상 나라와 세상의 주관자들이 인본주의 문화를 건설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였으나 마지막에는 저희끼리 싸워서 스스로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다. 세상 나라가 세상 문화를 모두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불로 살라 버릴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 17:17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하시려고 짐승을 이용하신다. 짐승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놓고 만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주장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한 뜻을 이룬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은 나라를 짐승에게 주게 하신다. 그러므로 짐승이 나라를 얻고 교만하여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성도를 핍박하나 그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하나님께서 그 권세를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짐승의 권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게 될 때는 모든 마귀의 세력이 심판을 받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저자의 성경강해 단8:13-14해석 참조).

. 17:18 또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큰 성은 바벨론을 가리킨다(5절 해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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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계시록18장

제 18 장 바벨론 멸망

(대 지)

一. 바벨론 붕괴(1-3)

二. 내 백성아 나오라(4)

三. 일시(一時)에 재앙이 임함(5-11)

四. 물질 멸망(12-20)

五. 바벨론 멸망과 그 결과(21-24)

(본문강해)

一. 바벨론 붕괴(1-3)

. 18:1-2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한 천사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큰 권세를 가지고 하늘에서 오는데 그의 영광으로 인하여 땅이 환하여졌다. 이 천사가 힘센 음성으로 바벨론이 무너진 것을 외쳤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바벨론은 인본주의의 문화와 세상을 가리킨다. 고대에도 바벨론이 있었는데 창세기 11:1-8에 사람들이 자기들의 힘으로 성(成)과 대(臺)를 쌓아서 앞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잘 살아 보자고 바벨탑을 쌓았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 다니엘 4장에도 바벨론이 있는데 바벨론 왕이 전 세계의 패권을 잡고 세계를 주장하였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이 심판하셨다. 바벨론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정치적 바벨론", "종교적 바벨론" 그리고 "과학적 바벨론" 등이다. 전 세계적으로 단합이 되어 인본주의로 나가는 유엔 총회 같은 것은 정치적인 바벨론이요, 정치적으로 바벨탑을 쌓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모든 교파가 하나가 되어 교리는 다를지라도 사업은 같이 하자는 사업주의적인 종교 단체는 종교적인 바벨탑이다 선진국가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데 경쟁을 하고 있다. 이것이 과학적인 바벨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인본주의이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멸망하고 만다. 본문에 나타난 말세의 바벨론도 물질 문명, 정치 문화, 과학 기술 등이 최고로 발달되어 하나님의 주권자 통치를 무시하고 나간다. 그러나 인본주의 세상은 반드시 망한다.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적막하고 황폐해진 상태를 뜻한다. 인본주의의 바벨론이 멸망하여 지옥과 같은 곳이 되어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끊어지고 마귀의 역사만 있는 상태이다.

. 18: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바벨론이 음행을 많이 하였다.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 도취되어 살았으니 그것이 곧 음행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이다. 세상주의에 빠져 하나님을 떠났던 것은 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 세상주의자들이 인본주의 세상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고 세상 물질과 사치와 향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면할 구가 없게 되는 것이다.

二. 내 백성아 나오라(4)

.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바벨론에 빠지지 말고 거기서 나와야 한다. 비록 몸은 세상에 살지만 마음은 세상에서 나와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사랑하여 믿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여 하나님만 따라가야 한다. 마음이 바벨론을 떠나 새로운 심령으로 살아갈 때에 죄에 빠지지 않으며 죄에 빠지지 않아야 하나님의 재앙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홍수가 임할 때에도 노아와 그 가족들을 죄악 세상에서 나와 방주로 들어가서 구원을 받게 하셨고, 소돔 고모라 멸망 때에도 롯과 그 식구에게 그곳에서 나오라고 하셨다. 고린도후서 6:17-18에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세상주의에 빠져 사치와 향락을 일삼지 말고 거기서 나와 거룩한 생활을 하여야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고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해 주신다

三. 일시(一時)에 재앙이 임함(5-11)

. 18: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 하신지라

인간들이 행한 모든 불의한 일을 하나님께서 전부 기억하고 계신다. 한 번 두 번 죄를 지어도 아무 일이 없고 하나님이 간과(看過)하시기 때문에 인간들이 대담하여 더욱 불의한 일을 행하지만 그 죄가 점점 쌓이면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오게 된다. 노아 시대에도 죄악이 관영 하였으므로 심판하셨다(창6:5-7).

. 18: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여 악인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늘 나라에 손해를 준 그대로 갚아 주고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볍지 않고 무거운 것임을 뜻한다.

섞은 잔 세상주의는 사치와 향락과 물질주의와 우상숭배의 각종 범죄에다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를 섞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심판 할 때도 재앙과 고통의 형벌에다가 하나님이 떠나시는 벌을 섞어 주신다. 하나님이 멀리 떠나시는 벌은 제일 큰 벌이다.

. 18: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자기를 위해서 사치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행한 것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신다. 음녀는 자기를 좀 더 영화롭게 하고 자기 몸을 잘 꾸며서 음란 방탕을 더 잘하여 보려고 밤낮 그것만 일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올 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사치한 것만큼 재앙과 고통이 내려온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쓰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죄 짓는데 이용하므로 그 죄가 하늘에 사무치고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오는 것이다.

여황 인생이나 세상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고 하나님만 의뢰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사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이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가 왕이 되면 이것이 곧 "여황"이다. 하나님이 왕이 되어야 하겠는데 하나님을 외면하고 제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다. 인본주의 세상이 자기가 왕 노릇함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과 애통이 오게 된다.

과부가 아니라 외짝이 아니고 배필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과 물질과 세력들을 배필로 삼고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으로 사치하며 향락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말로는 "여호와 나의 남편"이라고 하며 예수님이 나의 신랑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기가 여황의 자리에 앉아 '나는 여황입니다'하는 신자들이 많이 있다. 성도는 하나님의 주권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행복하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나가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여 자기 주장대로 나아가면서도 하나님이 내 남편이기 때문에 '나는 애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떤 성도들은 세상의 것을 가지고 자기 남편을 삼는다. 사람, 세력, 물질, 등 세상을 자기 남편으로 삼아 거기에 소망을 두고 그것 의지하고 산다.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재산이 넉넉하고 권세가 높아지면 그것을 의지하고 살 수 있는 줄 알고 '앞으로 희망이 있다', '잘될 것이다'라고 하며 교만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일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재앙과 애통을 당하게 된다.

. 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하루 동안 예기치 않은 날 하루 동안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재앙이 온다. 재앙이 내려오면 인간이 의지하고 살던 모든 것이 삽시간에 불에 타서 없어진다.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면서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장담하였으나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은 강하고 능력이 무한하사 그것들을 모두 깨뜨려 버리신다.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다가는 전부 망할 날이 올 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세상의 것을 견고하게 잘 해 놓았다고 하여도 그것을 심판하실 하나님은 하루아침에 다 멸망시켜 버린다. 고대 바벨탑 (창11:1-9)이나 다니엘 당시 바벨론이 아무리 견고하였어도 하나님이 하루 동안에 다 심판하시었다(단4:20-33).

. 18:9-10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땅의 왕들 하나님을 떠나 왕 노릇하던 모든 사람들이 땅의 왕들이다. 세상 문화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을 보고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가슴을 치면서 울게 된다. 또한 일순간에 망하는 큰 성 바벨론을 보고 재앙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애통하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끌지 않는다. 일시간에 하나님의 심판이 갑자기 임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8절 해석 참조). 바벨론은 크고 견고하며 인간들이 의지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순식간에 멸망하고 만다.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면 사람의 생명도 한 시간에 애통과 흉년과 사망으로 변하고 아무리 견고한 성도 한시간에 다 망해 버린다. 사치하고 향락하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일시에 망하고야 마는 것이다.

. 18:11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땅의 장사꾼들도 바벨론이 망할 때 울고 애통한다. 그러나 그들이 우는 동기는 자기의 상품을 팔 수 없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 세력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보던 자들이 세상이 망하므로 자기의 유익을 얻을 수 없게 되어서 우는 것이다.

四. 물질 멸망(12-20)

. 18: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금, 은, 보석, 진주는 보배로운 광물과 보화들이다. 세마포, 자주 옷감, 비단, 붉은 옷감 사치한 옷감들이다. 각종 향목, 각종 상아 기명, 값진 나무, 진유, 철,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 고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기구들이다. 이들 상품은 사치하고 연락하는데 이용되는 것들이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세상의 것으로 부해지며 세상의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 모든 물질들이 멸하게 될 때 자기들의 기대와 소망이 끊어지므로 애통하게 될 것이다.

. 18: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계피, 향료, 향, 향유, 유향 이것들은 각종 향료의 귀중품이다. 소, 양, 말과 수레 가축들과 그 승용물(乘用物)이다. 종들 사람의 인권을 가리킨다. 사람의 영혼 사람의 인격을 가리킨다. 여러 가지 향품으로 사치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귀하고 좋은 음식을 탐하며 배로 하나님을 삼고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인격자라고 뽐내는 자들도 다 한 시간에 망하게 된다.

. 18:14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탐내던 것, 맛있는 것, 즐겨하던 것을 하나님이 다 심판하여 제거하신다. 그것들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음행하고 사치하고 방탕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심판하시는 것이다.

. 18:15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상고들은 이 세상에서 부요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물질주의자들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세상이 망하는 것을 보고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한다.

. 18:16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이 세상 문화는 자주와 붉은 옷을 입은 것처럼 아름답게 꾸몄고, 금과 보석과 진주와 같이 값지고 아름다운 것으로 사치스럽게 꾸며 놓았으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삽시간에 다 망하게 될 것이다. 많은 돈을 들여서 아름답게 꾸며 놓은 세상이 한 시간에 망하게 된 것을 보고 애통을 하며 화가 있다고 부르짖게 된다.

. 18:17-19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 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선장, 선인들은 배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세상의 주장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선객들은 배를 타고 다니며 돈을 벌어 부하려 하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바벨론이 망하는 것을 보고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하면서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며 울고 애통하게 된다.

인간들이 건설해 놓은 인본주의 문화가 아름답게 꾸며졌고, 크고 견고하여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 같으나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일시간에 망하게 된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잘 건설해 놓은 인본주의 문화는 하루아침에 멸망하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애통하며 부르짖게 된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전쟁 무기 등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실는지 또는 초자연적인 재앙을 내려서 심판하실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면 온 세상이 일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할 것이 분명하다.

. 18: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마지막 심판이 내려 올 때에 세상에 속하여 음행하던 자들은 세상 것들이 망하게 되매 애통과 절망과 탄식을 하게 되지만 하늘 에 속한 신령한 성도들에게는 그것이 즐거운 심판이 되는 것이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 이들은 신령한 길을 걸어 간 자들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받는 재앙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신앙의 정조를 지키기 위하여 인본주의 세상에서 나와 있었기 때문에 세상이 망할 때에 즐거워 할 수 있다. 또 이들은 세상에서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였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신원해 주시고 원수를 멸하여 주시므로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이다.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재앙이 내리지 않았다(출8:22 ; 9:6 ; 10:22-23 ; 11:5-7).

五. 바벨론 멸망과 그 결과(21-24)

. 18: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 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맷돌 같은 돌이 바다에 던지우면 완전히 가라앉고 다시 올라올 수 없듯이 인본주의 바벨론은 멸망하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된다.

. 18: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거문고를 타고 퉁소와 나팔을 불며 사치하고 향락하던 자들이 모두 멸망을 받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세공업자 악기나 사치품을 만드는 자들이다. 이들이 모두 멸망을 받아 보이지 않게 된다.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사치와 방탕에 빠져 배로 하나님을 삼던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였으므로 다시 음식을 만들기 위한 맷돌 소리가 나지 않는다.

. 18: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 되었도다

등불 빛 야간 연주를 위해 등불을 켜고 밤늦게까지 연주하고 먹고 마시고 방탕에 빠져 있었으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해 버리고 다시는 불빛을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요즈음도 나이트 클럽 같은 곳에서는 밤늦게까지 먹고, 마시고. 춤추고, 향락주의에 빠져 있지만 이러한 죄악도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날이 온다.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정욕주의로 나가 던 노아 시대와 같이 음란 방탕한 이 세대가 심판을 받아 멸망하면 다시 그런 것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다.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복술"은 세상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면을 말한다. 사람들이 세상에 미혹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데, 성도들도 세상에 미혹이 되면 세상에 빠져서 세상가는 대로 떠내려가게 된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갑자기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므로 성도는 이것을 깨달아 세상에 빠지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

. 18: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이 성중에서는 인본주의 바벨론을 가리킨다. 성도들이 이 바벨론 에서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보시고 신원하여 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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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9장

제 19 장 예수재림

(대 지)

一. 공의로운 심판(1-l0)

二. 말씀으로 심판하심(11-16)

三. 새의 잔치(17-18)

四. 산 채로 불에 던짐(19-21)

(본문강해)

一. 공의로운 심판(1-10)

. 19: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바벨론 심판 후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들어보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였다. 이 "허다한 무리"는 천사들을 가리킨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다. 구원과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는 것이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영광과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악한 자를 심판하셔서 당신의 영광을 취하시고야 만다. 능력이 그 큰 능력의 역사로 성도의 구원을 성취시키시고 원수를 심판하여 영광을 기어코 거두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택한 백성을 건져 주신다. 애굽 왕 바로가 아무리 강팍하게 하나님을 거역해도 하나님은 크신 능력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었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시었다.

때로는 사단의 세력이 너무 강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져 버린 것같이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사단이 활동하도록 허락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이 심판하여 사단은 멸망하고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 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인간의 재판은 불공평하고 잘못되기 쉬우나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다 심판을 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종들이 종노릇을 바로 하다가 세상(음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그 피 값을 하나님께서 신원하시고 세상에게 반드시 갚게 된다.

. 19:3 두 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바벨론이 하나님의 불 심판으로 타서 멸망하는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것이다. 세상주의자들이 죄를 짓게 되면 그 죄 지은 영향이 세세토록 하나님 앞에 올라간다.

. 19:4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하늘에서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소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찬양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이다. 그 때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도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며 "아멘 할렐루야"하고 화답한 것이다.

. 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성도는 세상에서나 하늘나라에서나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것은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있는 생물들의 음성인 것 같다. 공의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성도를 구원해 주시며 그 영광을 홀로 받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 곧 그를 경외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허다한 무리의 음성은 천사의 음성인 것 같다. 성도들의 음성은 아니다. 그 증거는 성도에 대해서는 다음절에 언급하기를 "어린양의 아내가 예비하였다"고 하였고, 또 그에게 깨끗한 세마포를 입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고 의로 세상을 통치하게 되었음을 찬양하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의 왕들이나 정치가들이 이 세상을 통치하지만 최후에는 하나님께서 세상 만국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

.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어린양 예수님이시다.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이 혼인 잔치는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한다고 하나 그것은 옳지 못한 해석이다. 성도가 공중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얼마동안 공중에 있을 때에는 예수님과 더불어 세상을 심판하는 때이다(2:26-27 ; 고전6:2 참조). 세상을 심판하는 동안에 어떻게 혼인 잔치를 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심판이 모두 끝난 다음에 천년 안식 세계에 들어가서 혼인 잔치를 하는 것이 합당하다. 베드로후서 3:8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고 하셨으니 천년 혼인 잔치도 하루와 같은 것이다.

그 아내는 성도들이다. 현세에서는 마귀의 세력이 활개를 치고 성도들이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마귀의 세력을 다 깨뜨려 불로 심판하시고 예수님은 신부 되는 성도들과 혼인 잔치를 하게 된다.

.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성도들이 믿음을 잘 지키면 아름답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된다.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은 하나님 앞에서 세마포가 되는데, 성도가 예수님과 혼인잔치를 하기 위해서는 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어 나아가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2:26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세마포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셔서 입은 것이고 자기가 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힘써 순종하고 믿음을 지키고 나아가는 자에게 입혀 주시는 것이다. 성도가 믿음을 지킨 의로운 행실 하나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빛나는 세마포가 되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날마다 힘써 믿음을 지키면 그 행위에 의하여 세마포가 더욱더욱 깨끗하여지고 빛나게 된다

.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모두 어린양의 신부들인데, 곧 예수 믿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마태복음 22:2-14에 있는 청함 받은 자와는 다르다. 그들은 구원에의 외부적인 초청이었으므로 오지 않은 자가 많았다. 그러나 본 절의 초청은 구원받은 성도를 혼인 잔치의 신부로서 청한 것이며 신랑 되는 예수님과 함께 먹고 함께 즐기는 복락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양의 신부와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가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믿는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지 못할 자도 있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들 모두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하여야 성경 전체에 맞기 때문에 청함 받은 자와 신부는 같은 것으로 보아야 옳다.

. 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사도 요한이 천사에게 엎드려 경배하려고 할 때 그가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천사가 월권을 하지 않고 자기 지위를 바로 지킨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의 경배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므로 다른 사람이나 천사가 경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언의 영은 보혜사를 가리킨다. 천사가 예수님을 증거한 것은 대언의 영 즉 보혜사 성령으로 한 것이다. 천사는 사도 요한이나 다른 형제들과 꼭 같은 대언의 영을 받아 말씀을 증거하는 종이라고 하였다.

二. 말씀으로 심판하심(11-16)

.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본 절은 예수님의 재림시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했는데, "말"은 전쟁을 상징하고 "백색"은 하나님께 속한 빛이니(3:5 ; 7:9 사1:18) 천국 운동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원수들과 싸워 이겨 그들을 심판하시고 천국을 건설할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공의로 심판을 베풀어 성도는 구원하시고 불신자는 지옥 형벌을 받게 하신다. 충신과 진실이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인격인데, 예수님은 충성되고 진실하신 분이시다. 말씀을 온전히 성취시키시고 이루셨으므로 충성되시고, 거짓이나 외식함이 전혀 없으시므로 진실하시다.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예수님의 심판은 공의로와서 조금이라도 치우침이 없이 공변되사,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약대로 성도들을 구원하시고 악의 세력을 하나님의 공의대로 반드시 심판하신다.

. 19:12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그 눈이 불꽃같고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사람의 심령 골수를 모두 감찰하시고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신다. 주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사람들에게 행한 대로 심판하여 상과 벌을 주신다. 마태 복음 16:27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였다. 면류관은 승리의 상급이다. 예수님이 성경을 완전히 지키고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복종하였으므로 많은 면류관을 받게 된 것이다.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이름" 은 인격이다. 예수님은 예수님만이 받은 은사와 사명과 직책과 달려간 길이 있다. 그로 인하여 만들어진 예수님의 인격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예수님만 아신다. 또 예수님에게는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는 비밀의 은사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승리의 길을 걷는 성도들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자기만 아는 은사를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17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피 뿌린 옷 예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여 악인들을 죽이시는 것을 상징하는데, 그들의 선혈이 옷에 튀어 붉어진 것이다(사63:1-3).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다(요1:14).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마지막 날에 심판하신다고 하였다(요12:48).

.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 그들이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것을 보아 성도들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천사들도 예수님 재림시에 같이 온다. 성도들이 백마를 타고 나온 것은 예수님의 천국운동에 동참하여 동역하는 것을 의미한다(유14-15참조).

. 19: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이한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히브리서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국을 심판하시는데 철장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심판은 마치 포도주 틀을 밟듯이 악한 무리들을 발로 밟아 멸망시키시는 것이다(14 : 19 해석 참조).

.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기 때문에 세상 만국의 왕들을 주장하시고 세상 나라와 만물을 통치하시며 마지막에는 세상을 심판하신다. 또한 예수님의 권세는 절대적인 권세요, 만국을 주장하시고 심판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권세이므로 예수님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三. 새의 잔치(17-18)

. 19:17-18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천사가 해에 서서 천사가 빛 가운데 서서 하나님의 심부름을 한다는 뜻이 있는 것 같다. 새들이 하나님의 심판 잔치에 초청을 받아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의 고기와 종들의 고기를 먹게 된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전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되는데 장사할 사람이 없으므로 새들이 그 고기를 먹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죽음이 비참한 상태를 말해 주는 것이다. 새는 마귀를 상징하기도 한다(마13:4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 빠져 세상주의로 살면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내어 주어 마귀의 밥이 되게 한다.

四. 산 채로 불에 던짐(19-21)

. 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세상 나라와 세상 왕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예수님과 그 군대되는 성도를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종교 전쟁이요, 반 기독운동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들이 예수님의 검에 찔려 모두 죽고 예수님과 그 성도들이 승리하는 것이다.

.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 불붙는 못에 던지우고

"짐승"은 세상 나라요 "거짓 선지자"는 세속화된 기독교 지도자이다. 이 거짓 선지자들이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세상을 따라가게 하지만 그들은 갑자기 망하게 된다.

산채로 유황 불붙는 못에 던지우고 "유황 불붙는 못"은 지옥을 가리키는데, 그들이 지옥 불과 같은 고통과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점점 쇠퇴하여져서 망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서 생생하던 것이 갑자기 멸망 받는다는 뜻이다. 거짓 선지자는 짐승의 세력과 합작하여 이적을 행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하여 참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한다.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다가 세상 마지막 때는 아주 큰 전쟁을 일으켜서 참 교회를 크게 핍박하게 된다. 그러나 마침내는 예수님이 그들을 잡아 유황 불 못에 던진다.

.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산채로 유황 불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검 되는 말씀으로 심판을 받아 죽게 된다(요12:48). 그러므로 심판을 받아 죽은 자들의 시체는 모든 새의 밥이 되는 비참한 결과가 된다. 이와 같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받아 짐승을 따라 가던 자들은 마귀의 밥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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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20장

제 20장 천년 왕국

(대 지)

一. 사단을 잡아 무저갱에 던짐(1-3)

二. 성도가 천 년간 왕 노릇함(4-6)

三. 곡과 마곡 전쟁(7-10)

四. 백보좌 심판(11-15)

(본문강해)

一. 사단을 잡아 무저갱에 던짐(1-3)

. 20:1-3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 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까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 마귀를 잡아 일 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는다. 무저갱은 밑이 없는 영적 흑암의 처소인데 마귀를 거기에 던진다. 마귀를 결박하여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가두면 세상에서 마귀의 미혹이 없어지고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게 된다. 모든 죄와 미혹은 마귀로 인하여 있었던 것이므로 마귀를 잡아 가두면 사람들이 범죄를 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천년 왕국이다(6절).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천년이 지나면 마귀가 잠깐 놓이고 다시 세상을 미혹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마귀에게 미혹된 곡과 마곡이 전쟁을 일으킨다(7-8절 참조).

二. 성도가 천 년간 왕 노룻함(4-6)

.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목 베임을 받은 자는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다가 순교 당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게 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항상 하나님만 경배하며 이마와 손, 즉 사상과 행동이 짐승(세상 나라)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만 받아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 천년왕국 시대에는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된다.

본절에서 순교자와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만 기록한 것은 이러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왕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영적 성전을 금, 은, 보석으로 짓지 못하고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사람은 천년왕국에서 왕이 되기는 하지만 왕의 권세와 능력이 없고 면류관도 없다. 제대로 왕 노릇하는 사람은 순교자나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잘 지키어 영이 자라나고 영권이 있는 성도들이다.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예수를 믿고 죽은 자는 모두 부활하여 공중에 들려 올라가고, 살아서 예수 믿는 성도는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에서는 부활한 신령한 몸으로 천년 동안 왕 노릇하게 된다.

그러나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천년 동안 왕 노릇하리니"를 영으로 왕 노릇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즉 부활의 몸을 입지 않은 영혼들이 천당에서 주와 함께 왕 노릇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여기 왕 노릇하는 천년을 천당이라고 하면 천년 후에 사단이 옥에서 놓여 나와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한다고 하였는데(7-8절) 천당에도 사단이 나올 수 있는가?

.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이다. 이들은 천년왕국이 끝날 때까지 부활하지 못한 채로 있다가 천년왕국이 끝날 때 부활한다. 불신자는 천년왕국 후에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 첫째 부활은 성도의 부활인데, 창세 이후로 모든 구원받은 성도는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한다.

.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이니 복이 있고 거룩한 자들이다. 부활하여 영과 육이 완전한 구원을 이루었으므로 둘째 사망이 없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는 것이다.

첫째 부활은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제일차(第一次): 예수님이 부활하셨다(요20:14-17 고전15:20).

제이차(第二次): 예수님 부활 때에 자던 성도들이 부활하였다(마27:52-53).

제삼차(第三次): 예수님 재림 때에 이미 죽은 성도가 부활한다(살전4:16)

제사차(第四次): 예수님 재림 때에 살아 남아 있던 성도가 몸이 변화하여 신령한 부활체가 된다(살전 4:17).

제오차(第五次): 예수님 재림 후부터 천년 세계가 끝날 때까지의 택한 백성들이 부활한다(20:9 ; 21:3 고전15:23-24). 천년 왕국 시대에 새로 출생한 성도들이 부활하는 것이다.

첫째 부활은 이와 같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부활한다. 이들은 다 구원을 받았으므로 복되고 거룩한 자들이다.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부활한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에서 나와 왕 노릇하다가 다시 그리로 들어간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인도하고 다스린 것과 같이 부활한 성도도 육을 가진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하고 다스릴 수 있다. 천년왕국 이 끝날 때에는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여 백 보좌 심판 을 받고 지옥에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년왕국에서 부활한 사람과 부활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같이 살며 부활한 사람이 어떻게 부활하지 못한 사람에게 왕 노릇하는가?

21장 2절에 보면 천년왕국 시대에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부터 이 세상에 내려와 앉는다. 그 성은 장과 광과 고가 같고 열 두 문이 있는 아름다운 성인데, 거기에는 부활한 사람들만 들어간다. 그 성밖에는 부활하지 못한 보통 사람이 사는 세상인데 대 심판 때 살아 남은 사람들이 살면서 아이를 낳아 번성해 나간다. 새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사람은 변화되었기 때문에 장가가거나 시집가지 아니하는 거룩한 천사와 같은 신령한 몸을 가지게 된다.

새 예루살렘 성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한 몸과 같은 몸을 가시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밖에 있는 보통 사람들 (육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으며, 같이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고 살수도 있다.

그러나 육신을 가진 성밖의 백성들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부활한 사람들의 통치를 받고 산다. 혹자는 이 때에 그렇다면 백성보다 왕이 더 많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그러나 왕의 지위와 영광이 있고 그 왕권을 얼마든지 사용하여 왕 노릇할 수만 있으면 왕이 많아도 괜찮다.

※천년왕국설에 대하여

천년왕국설에 대하여는 세 가지 학설이 있는데, 전천년기설과 후천년기설과 무천년기설이 있다.

1. 전천년기설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있다는 설인데, 이것이 성경적으로 가장 합당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악한 자는 심판하고 마귀를 천년 동안 무저갱에 잡아 가두므로 마귀가 세상을 미혹하지 못하게 되어 천년 동안 죄 없는 시대가 된다. 그 때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땅에서 천년 동안 왕 노릇 한다는 것이다. 19:11-21에서 주님의 재림이 있었으니 20장에는 재림 후에 있을 성도의 부활과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 당연하다. 천년왕국은 이 땅 위에 천년 동안만 이루어지는데 죄악의 땅과 죄악의 하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 즉 죄 없는 새 세계가 땅에 이루어진다. 천년왕국 시대에는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안에서 예수님과 부활한 성도들이 살면서 성밖에 나가 왕 노릇도 하고 다시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밖에는 육신을 가진 사람들이 농사하며 포도나무 아래서 사는데 약 천년 동안 죽지 않고 장수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번성하여 땅위에 가득하게 된다. 그러다가 천년왕국이 끝날 무렵에 하나님께서 마귀를 잠깐 놓아준다 그것은 천년왕국 새 예루살렘 성밖에서 새로 출생한 자 가운데 불택자를 골라내기 위해서이다. 그 때에 마귀가 곡과 마곡을 미혹시키는데 불택자는 거기에 가담한다. 그러나 최후에는 하나님께서 곡과 마곡을 심판하시고 믿지 않고 죽은 자들까지 전부 부활(둘째 부활)시켜 공중에서 백 보좌 심판을 하신다. 그리하여 성도는 영원한 천당으로 데려가고 불신자는 끝없는 지옥으로 보낸다(20:12 ; 마25:16-31 참조).

2.후천년기설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후에 있다는 설이다. 복음이 점진적으로 전 세계에 전파되면 전 세계가 복음화 되고 세계 모든 민족이 모두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영적으로 풍요한 축복이 있고 지상 천국이 된다고 한다. 또한 인간의 교육과 계몽에 의하여 죄와 부조리는 없어지고 지상 천국이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학설은 성경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 재림 직전에 배교와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마24:26-31 눅18:8 살후2:3-12 참조). 또 천년왕국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악한 자들을 심판하고 마귀를 무저갱에 가둔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점진적으로 인간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3. 무천년기설

천년왕국이 없다고 부인하는 학설이다. 무천년설 자들은

(1)본장에 기록된 "천년"이란 수는 실제적 숫자가 아니고, 상징적인 숫자라고 주장하는데 혹자는 예수님 초림부터 예수님 재림까지의 영적 하늘나라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예수님 초림부터 적 그리스도의 출현할 때까지의 하늘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천년"을 상징적인 것이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계시록에는 상징적인 숫자가 많이 있으나 계시록에 나오는 숫자가 모두 상징적인 숫자는 아니다. 예를 들면 14만 4천이나 666(육백 육십 육)같은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이다. 그렇지만 소아시아 7교회나, 이스라엘의 12지파나, 12사도는 상징적인 숫자가 아닌 실제의 숫자이다.

(2)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4절의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를 부활의 몸을 입지 않은 영혼들 이 살아서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곧 구원받은 성도의 영이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것을 천년왕국이라고 한다. 그들은 4절의 "살아서"를 영이 살아서 라고 해석하는데, 그 이유 는 살아서의 헬라어 (에쩨산)의 뜻이 영이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원어는 영과 몸에 다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5절의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의 살지의 원어 (아네제산)은 몸의 부활을 뜻한다. 또한 5절 하반절에 "이는 첫째 부활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부활하지 않은 영혼이 살아서 하나님 나라에서 왕 노릇 한다고 하면 이 성경에 위반된다.

3절에 천년이 지나면 마귀가 잠깐 놓이리라고 하였는데 천년왕국을 천국이라고 하면 하늘나라에도 마귀를 놓아주고 마귀가 하늘나라에서도 미혹한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천년왕국을 천국으로 보면 마귀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이 사는 영적 세계에서는 마귀가 활동할 수 없다 7-8절에서는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을 천국이라고 보면 이 성구에 많은 위반이 생긴다. 그것은

첫째, "천년이 차매"라고 하였으니 천국도 기한이 있는가?

둘째, 천국에도 마귀가 나오는가?

셋째, 천국에도 곡과 마곡이 있는가?

넷째, 천국에도 마귀의 미혹이 있는가?

다섯째, 천국에도 싸움이 있는가?

여섯째, 천국에도 심판이 있는가?

그리고 천년세계가 예수님 초림부터 적 그리스도 출현 때까지의 천국 생활이라고 한다면 큰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첫째, 천국은 영원한데 왜 끝이 있는가?

둘째, 성경은 마귀를 무저갱에 결박하여 가두었으므로 천년세계에 미혹이 없다가 천년이 끝날 때에 마귀를 그 세계에 놓아주었다고 하였는데 천국에 마귀를 놓아주는가?

셋째, 예수님 초림부터 적 그리스도 출현 때까지 지상에는 계속 해서 마귀의 미혹이 있는데, 적 그리스도 출현할 때에 마귀를 다시 지상에 놓았다고 하면, 적 그리스도 출현 전에는 마귀가 아닌 어떤 자가 이 세상을 미혹하였는가? 마귀 이외에 또 미혹시키는 자가 있는가?(성경에는 천년 동안만 마귀가 무저갱에 갇혀 미혹하지 못하다가 천년왕국 후에 잠깐 놓인다고 하였다)

넷째, 성도는 천년 세계 전에 부활하고 악한 자는 천년 후에 부활한다고 하였는데, 천년 세계를 예수님 초림부터 적 그리스도 출현까지라고 하면 성도의 부활도 예수님의 초림 때에 있다는 결론이 된다.

다섯째, 성경에는 적 그리스도 출현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여 적 그리스도를 심판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천년왕국이 두 번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되는데, 그들은 예수님 초림부터 적 그리스도 출현까지를 천년왕국이라고 한다. 천국도 몇 기간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또 기한이 있는가?

여섯째, 5:10과 11:15에서 분명히 땅에서 왕 노릇 한다고 하였는데 하늘나라에서 왕 노릇 한다고 하면 이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무천년기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천년이라는 말이 여기 한 곳 밖에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곳에 썼다고 이루어지고 한 곳에만 썼다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탄생한다는 말씀도 이사야 7:14 한 군데 밖에 없으나 동정녀 탄생이 이루어졌다. 성경은 분명히 만물이 회복된다고 하였으며(행 3:20-21참조) 만물 회복은 지상의 천년왕국을 가리킨다(롬8:19-22 참조).

그런데 무천년설 자들은 영적 안식만 주장하고 지상의 천년 안식을 부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도 영혼 구원만 말하고 몸의 구원은 부인해야 된다. 그 이유는 영적 안식만 주장하면 지상에서 육체나 만물의 안식을 부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안식에도 영적 안식이 있고 칠일 안식이 있으며 천년 안식이 있고 무궁세계의 안식이 있으므로 영적 구원만 말하고 몸의 구원과 만물 구원을 무시하는 것은 성경 원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영적 구원이 있다고 믿는다면 몸의 구원과 아울러 이 세상의 만물 구원도 믿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무천년설 자들은 오히려 다음과 같이 전천년설 자들에게 반문한다.

1 성경에 선한 자의 부활과 악한 자의 부활이 동시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 중간에 천년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성경에 동시에 기록했다고 하여 모두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가복음 4:18-19에는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이사야 61:1-2을 읽으시면서 2절은 "은혜의 해"까지 상반절만 읽고 하반절은 읽지 않으셨는데, 상반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원해 주실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그 하반절에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 기록되어 있다.

2 천년왕국에서 육신을 가지고 생산하는 자와 부활해서 변화된 자가 어떻게 동거할 수 있는가라고 한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예수님이 부활하여 제자들과 같이 잡수시고 교훈하시고 인도해 주시고 사명을 맡기시고 다스리신 것과 비슷하게 할 것이다. 부활 한 왕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 성안에 거하면서 성밖에 나가서 왕 노릇도 하고 다시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육을 가진 사람들은 성밖에서 농사하며 산다(사65:21-25 미4:3-4 참조).

3 천년왕국의 무죄시대에 새로 출생한 자에게 왜 마귀를 놓아서 미혹하게 하는가? 그 미혹 받은 자를 위하여 예수님이 다시 십자가에 못 박혀야 되지 않겠는가? 라고 한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천년왕국 시대는 에덴동산의 무죄시대와는 다르기 때문에 새로 출생한 자라고 하여도 아담의 후손으로서 정죄와 유전죄가 있는 인간들의 자손이다. 마귀가 없음으로 자범죄는 짓지 않으나 원죄가 있고 또 그 중에는 불택자가 있다.

아담의 후손에는 택자와 불택자가 섞여 출생하는데, 이런 불택자를 골라내기 위해 마귀를 잠깐 놓아 미혹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는 것이다. 그때 불택자가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반대하다가 불 심판으로 멸망하고 택한 백성은 미혹되지 않고 성도의 진에서 신앙을 지키다가 구원을 얻는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 원리로 보아도 천년 왕국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 원리는 영과 육과 만물이 다 구속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이 중생하고 장차 몸의 부활이 있고 마지막에는 만물도 구속이 된다(롬8:19-23 참조). 교부 이레네오는 6천년 종말설을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6일간에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하루를 천년으로 잡으면 6천 년간 이 세상이 존재하고 마지막 제7일 안식일은 안식 세계인 천년왕국이 된다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아담 후 2천년만에 아브라함이게 그리스도의 약속을 주셨고 아브라함 후 2천년만에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니 그리스도 후 2천년쯤이 되면 종말이 오고 천년왕국이 올 것 같다고 하기도 한다. 꼭 그러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한번 참고해 볼 만하다.

三. 곡과 마곡 전쟁(7-10)

. 20:7-9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천년이 차면 사단이 옥에서 놓여 나와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한다. "곡과 마곡"은 성경에 종종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족속으로 나타나는데(창10:2,겔38:1;39:1참조) 이들은 마귀에게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성도를 대적하는 운동에 참여한 자들이다. 그들은 바다 모래와 같이 많은 수를 모아 그리스도와 성도의 진으로 더불어 싸우다가 하나님의 불 심판으로 멸망한다.

성도들의 진 천년세계 백성 중에서 나중까지 마귀에게 미혹되지 않고 믿음에 굳게 서서 곡과 마곡의 핍박 중에서도 신앙을 잘 지킨 성도들의 유기체인데, 곧 교회를 가리킨다. 곡과 마곡이 이 교회를 핍박하지만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불로 소멸한다.

사랑하시는 성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새 예루살렘이다(21:2 참조).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 세상에 앉았는데 그것을 사단의 세력이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곡과 마곡을 미혹하는 마귀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받아 유황 못에 던지움을 당한다. 불과 유황 못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며 거기에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다 이것이 지옥이다.

四. 백 보좌 심판(11-15)

. 20:11 또 내가 크고 횐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하늘에 크고 횐 보좌를 설치하고 예수님이 그곳에 앉아 재판장으로서 심판을 행하신다. 이것이 백 보좌 심판이며 최후의 심판인 것이다.

.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하나는 생명책이요, 다른 책들은 인간의 죄와 행위가 기록된 책이다. 믿는 자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이 때는 천년 세계가 끝났으므로 믿지 않고 죽은 사람도 전부 부활을 하게 된다. 예수를 믿은 사람은 부활하여 오른편에 서고 믿지 않은 사람들도 부활하여 왼편에 선다(마25:31-33 참조). 창세 이후로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여 성도들은 오른편에 서 있고 불신자들은 왼편에 서 있게 된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오른편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4-36)"고 하신다.

그때 그 오른편에 있는 무리가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였습니까?"하고 물어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대답하신다 예수 믿는 사람이 지극히 작은 사람이지만 예수님 때문에 감옥에 가고, 굶고, 헐벗었을 때 그 사람을 돌보아 준 것은 예수님을 직접 돌보아 준 것이 된다. 그리하여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아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주를 위해 믿음을 지키다가 직장을 빼앗기고 굶주리고 헐벗고 옥에 갇힌 자를 돌보아 준 것은 그들의 고난에 동참한 것이요, 그들의 상급에도 동참하게 된다. 마태복음 10:41-42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다.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아 지옥에 간 사람들이 전부 부활하여 주님의 심판대 앞에 나온 것인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 라"고 하셨다.

그 때에 그들이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마25:44)라고 항의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25:45)고 대답하신다. 그러므로 예수 믿지 않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지옥으로 내려가게 된다. 지옥에 들어가면 너무 너무 뜨겁고 고통이 심하여 죽기를 원하나 죽지도 않는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

. 20:13-14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이 세상에서 최후까지 사람들을 죽인 사망과 음부도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받아 불못에 던지움을 당한다. 그러므로 다시는 사망이 없어진다. 둘째 사망은 지옥 가는 것을 가리킨다. 첫째 사망은 육신의 죽음이요, 둘째 사망은 영혼이 하나님과 아주 단절되어 죽은 상태를 의미한다

.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예수 믿지 않은 자는 죄와 행위가 책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간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자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죄 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받았으므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성도가 날마다 새 생명의 길을 걸어가면 그만큼 생명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이 상급에는 차이가 있으나 하나님 나라를 영원한 유업으로 받아 하나님과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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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21장

제 21장 신천 신지(新天新地)

(대 지)

一. 새 세계 창조(1-6)

二. 악인은 들어가지 못함(7-8)

三. 신부와 거룩한 성(9-27)

(본문강해)

一. 새 세계 창조(1-6)

.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났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근본적으로 없어진 것이 아니고 죄악의 하늘과 죄악의 땅이 없어지고 새롭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3절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라로 하였고 5절에는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이전 것이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고 새롭게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악으로 저주받은 하늘과 땅은 심판을 받고 죄가 없는 새 세상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만물이 새롭게 회복된 것을 가리킨다(행3:21 참조). 이사야 65:17-19에도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하였다. 여기도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 이사야 65:20-25에 그 신천 신지에서 포도 농사도 하고 사자나 뱀이 있는 것을 보아 처음 천지가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고, 죄악의 요소만 없어지고 본래 있던 그 천지가 새롭게 된 것이 분명 하다.

이 신천 신지는 천년왕국을 가리키고 또 성도의 신령한 영의 세계와 또는 천국도 가리킨다. 천년왕국은 현재 있는 천지가 마귀와 죄악이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은 영원한 나라인데 창세로부터 미리 예비 된 것이다(마25:34).

이 새 세계는 아름답고 영광이 충만한 세계이다.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아름답게 꾸며 놓은 곳이며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낙원이다. 이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인데, 예수를 믿어 구원 얻은 성도가 이 복을 누린다.

.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 예루살렘은 네모가 반듯하고 장(長)과 광(廣)과 고(高)가 같고 문이 열 둘인 거룩한 성이다. 이 거룩한 성이 하늘에서부터 인간들에게 내려오는 것이다. 그것은 신령한 세계인데 그 안에서 성도들이 살고 그 성밖에는 보통 인간이 사는 새 세상이다.

.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의 장막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이곳은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계시면서 부르기 전에 대답하고 구하기 전에 모든 것을 주시므로 성도들이 하나님과 같이 즐거워하는 세계이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신천 신지에서는 죄악으로 인한 인간 세계의 모든 비참한 것이 사라지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항상 즐겁고 화평과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이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 구속으로 이루어 놓은 나라이다.

.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이전 것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전에 있던 만물을 다 없애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천년왕국은 만물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있는 것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또 이 말씀은 영적 세계나 천국에도 해당이 되는데,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 인간들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하여 중생시킨 세계가 바로 그 세계이다

.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나는 알파와 오매가요 알파(A)는 헬라어의 첫문자요, 오메가( )는 마지막 문자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원의 처음과 나중이 되신다는 뜻이다. 우리의 구원을 예정하시고 성취하시며 완성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생명수 샘물 요한복음 4:13-14에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생명수 샘물은 곧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진리와 영감으로 주시는 생명의 역사를 가리킨다. 이 생명의 역사는 영원히 끊이지 아니하고 항상 솟아 올라온다. 이것은 세상의 물, 즉 세상이 주는 행복과 평안과는 전혀 다르다. 세상 물은 아무리 마셔도 다시 목마르게 되지만 주님이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는 사람은 위로와 기쁨과 평안이 영원하다. 주님은 어떠한 사람에게 이 생명수 샘물을 주시는가? 목마른 사람과 이기는 사람에게 주신다. 갈급증이 나서 물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생명수를 주시고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는 사람에게 생명수를 주신다.

二.악인은 들어가지 못함(7-8)

.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선한 싸움을 싸워서 이기는 자가 하나님의 축복들을 유업으로 받는다. 마귀의 모든 궤계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본절에 기록된 사람들은 다 지옥에 가게 된다. 이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 죄악을 행한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는 지옥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성도가 이러한 죄에 빠지면 하나님이 징계하시고 회개시킨 후 천국에 가게 하신다.

三. 신부와 거룩한 성 (9-27)

. 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어린양의 신부를 이 때에 보여 준다고 한 것을 보아 천년왕국에서 혼인 잔치하는 것이 분명하다. 혼인 잔치는 공중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천년 동안 하는 것이다. 주께서는 천년 하루 같다고 하였으니 이 혼인 잔치 기간도 하루와 같은 것이다.

. 21:10-12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 성으로 영적 세계이다(2절 참조). 천년왕국은 이 새 예루살렘이 마귀와 죄가 없는 새롭게 된 지상(인간들이 사는 이 세상)에 내려옴으로 이루어진다. 그 안에서는 부활하여 신령한 몸을 가진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다. 또한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열 두 천사가 그 문을 지키고 있다. 문들 위에는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열 두 지파"에 대하여는 7:5-8해석을 참조하시오.

. 21: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새 예루살렘 성은 어느 방향에서나 들어 올 수 있도록 동, 서, 남, 북에 세 문씩 열 두 문이 있다.

. 21:14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새 예루살렘 성에 열 두 기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 열 두 사도의 이름이 있다. 이것은 사도와 선지자가 새 예루살렘 성의 기초가 되어 그 터 위에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이다(엡2:20 참조). 오늘날 우리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이 말씀 위에 하늘나라가 건설되는 것이다.

. 21: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천사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지고 있었다. 금 갈대는 금으로 된 자와 같은 것이다. "금"은 믿음과 불변을 상징한다.

. 2: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일만 이천 스다디온 1스다디온은 177.5 m이며, 1만 2천 스다디온은2,130km이다. 이것은 12를 천 배 한 것인데, 12수는 하나님의 만수이고, 천은 많은 것을 상징하는 수이므로(시84:10 ; 90:4) 실제로는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하나님 나라는 어느 한 면이 더 크거나 작지 아니하고 기울어지지도 않으며 공명정대하고 원만하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 21: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성곽은 성을 보호하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일백 사십 사 규빗 한 규빗은 한자 반(45cm)이므로 144규빗은 6480cm이다. 이것을 척(30cm)수로 환산하면 216척이 된다. 그러나 144는 12x12로 이루어진 숫자요, 12는 하나님의 완전 수이므로 실제로는 얼마인지 알 수 없다.

. 21:18-20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 석이요 "다섯째는 흥마노요 여섯째는 흥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 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흡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

새 예루살렘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곳이다. 세상의 보석보다 더 좋은 것으로 쌓은 것인데, 표현할 수 없으리 만치 아름다우므로 세상의 보석으로 표현한 것이다.

. 21:21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성의 열 두 문은 진주문이고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다. 성도들이 천당에 가면 걸어 다니는 길이 전부 금이요, 문은 진주이고 성의 기초석들은 모두 보석이다. 특별히 금은 믿음을 상징하며 "길이 정금으로 되었다"함은 그 길이 믿음으로 걸어가는 곳임을 뜻한다

. 21:22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새 예루살렘 성안에는 성전이 없다. 왜냐하면 그 성 전부가 다 성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충만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다른 성전이 필요 없다. 하나님 안에서 사는 세계요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세계가 새 예루살렘 성이다.

.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여 어린양 되는 예수님이 태양보다 더 밝은 빛으로 항상 끊임없이 광명하게 비추어 주고 계신다. 거기는 영적 세계이므로 영적 빛이 비취고 있으며 어두움은 털끝만큼도 없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해와 달은 쓸데가 없는 것이다.

.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영적 빛이 어린양과 성도를 통하여 만국에 비취어 나간다. 그러므로 세계 만국이 다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다닌다.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도가 천년왕국에서 예수님과 같이 왕 노릇하는데 각자가 자기 영광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 성 밖에 나가서 왕 노릇하다가 다시 성으로 들어오곤 한다. 성도 각자가 세상에서 만들어진 만큼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20:4해석 참조).

. 21: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성문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거기에는 밤이 없기 때문이다. "밤이 없다는 것"은 어두움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항상 문이 열려져 있는 것이다. 천년왕국에는 악의 세력이 조금도 없고 선만 가득한 세계이기 때문에 문을 닫을 필요가 없다. 참으로 아름답고 좋고 귀한 세계이다.

. 21: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사람들이 구속받은 성도를 가리킨다. 이들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 왕이다. 그 왕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온다. 새 예루살렘 성밖에서는 보통의 육신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데 그들은 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곳에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다. 새 예루살렘은 또한 영원한 천국을 가리키는데, 성도가 사후에 가서 주와 같이 살게 되는 곳이다.

.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천국에는 거짓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다. 거기는 진실과 선이 가득한 곳이다. 그러므로 세속화된 것과 하나님 보시기에 미워하는 것들과 진실하지 못하고 거짓된 자들은 이 새 예루살렘에 결단코 들어갈 수 없다. 회개하고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깨끗함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받은 자들만 새 예루살렘 성에서 사는 것이다. 생명길을 걸으며 새 생명이 장성해 나가는 자는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하늘나라에서 많은 상급으로 갚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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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22장

제 22장 새 세계의 생활

(대 지)

一. 생명수와 생명과를 먹음(1-2)

二. 주와 같이 살게 됨(3-4)

三. 세세에 왕이 됨(5-6)

四. 일곱 가지 부탁(7-20)

1. 예언을 삼가 지키라(7)

2. 예언을 봉하지 말라(8-10)

3. 행한 대로 같아 주리라(11-13)

4. 옷을 씻으라(14-15)

5. 예언을 사모하라(16-17)

6. 예언을 가감하지 말라(18-19)

7. 내가 속히 오리라(20)

五. 축복(21)

(본문강해)

一. 생명수와 생명과를 먹음(1-2)

. 22:1-2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 이 강은 새 생명과 그 역사를 상징하는데 새 생명과 역사는 맑고 깨끗하다. 요한복음 4:14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에 참여하고 또 천년왕국에 가서도 생수를 마실 것이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마실 것이다. 생명수를 마신다는 것은 우리의 영이 진리와 성령으로 소생하여 자라나는 생명의 역사를 의미한다. 생명의 역사가 있을 때에는 심령이 상쾌하고 기쁘고 평안하여 낙원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이 생명의 역사는 하나님과 어린양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부터 나온다.

생명나무는 생명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상징한다.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12수는 만수이니 많은 생명의 열매가 맺힌다는 뜻이다.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성도가 말씀을 붙들고 흑암을 통과할 때마다 생명의 열매가 맺힌다. 이것이 달마다 실과가 맺히는 것이 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살려고 하면 시험이 오는데(딤후3:12) 그 시험은 어두움이므로 달이 없어진 때와 같다. 그러나 그 때에도 시험을 참고 견디며 선한 싸움을 싸워 말씀대로 끝까지 나아가면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광명이 온다. 그 광명이 보름달과 같다.

그러므로 성도가 생명 나무에 열매를 맺으려면 받아서 거기에 도달하도록 힘을 써서 걸어 나가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말씀을 굳게 붙잡아 끝까지 인내하여야 한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닮아가고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이다.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에스겔 47:12에는 잎사귀가 약 재료가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본절의 만국을 소성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나무 잎사귀"는 성도의 믿음 지킨 행실을 가리킨다. 성도의 믿음 지킨 행실(의로운 행실)은 만국을 소성하게 하는 역사가 있고 또한 모든 병든 심령의 약 재료가 된다

二. 주와 같이 살게 됨(3-4)

. 22:3-4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과 예수님의 보좌가 있는 그 곳에는 다시 저주가 없다. 거기는 하나님 안과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축복의 세계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과 긍휼과 의와 거룩이 충만한 곳이므로 다시 저주가 있을 수 없다.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거기에는 하나님의 종노릇을 잘하는 성도들이 있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하나님의 얼굴을 그 어린양이 보고 어린양은 그 얼굴을 성도에게 보여 준다. 성도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직접 교제하고 같이 거하며 같이 즐거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성도의 이마에는 예수님의 이름이 있다. "이마"는 사상을 의미하는데 성도의 심령 속에 말씀이 인쳐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 있는 것을 가리킨다(갈4:19 참조).

三. 세세에 왕이 됨(5-6)

.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새 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밝히 비치는 곳이므로 등불과 햇빛은 쓸데없다. 그 나라에서 성도들이 세세토록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권을 가지고 즐거워하며 산다. 디모데후서 2:11-12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성도가 세상에서 주와 함께 참고 주와 함께 죽으면 왕권이 더욱 커지고 그 권세가 세세토록 있게 된다.

.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신실하고 참되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말한다. 세대가 악하여 성경을 부인하는 사람이 많이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하나님이 성도를 구원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시는 일이 속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깨어 믿음을 지키고 구원을 잘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四. 일곱 가지 부탁(7-20)

1.예언을 삼가 지키라(7)

.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일곱 가지 부탁을 하였는데 첫째는 예언근수(豫言謹守)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키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듣기만 하여 흘러 떠내려보내지 말고 그 말씀대로 지키는 자가 되어야 복이 있는 자이다.

2. 예언을 봉하지 말라(8-10)

. 22:8-10 이것들을 보고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사도 요한이 자기에게 말씀을 들려주고 보여 주는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는데 천사가 "나도 너와 네 선지자들과 이 책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라고 하여 자기의 신분과 위치를 밝혔다. 천사의 존귀성이 여기에 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4:10에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였다. 하나님께만 경배하는 것이 사는 길이다. 그러나 자기 위치를 떠난 천사는 쫓겨나서 마귀가 되었다(유1:6 참조).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바른 예언의 말씀대로 새김질하고 또 마음에 새겨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그 말씀이 인격이 되어 그 빛이 세상에 비취어 나가도록 하고 그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는 것이다. 성도는 예언의 말씀을 봉하여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힘써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4:2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하였고, 고린도전서 9:16에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하였다. 때가 가까우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시켜서 심판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일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3.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11-13)

. 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말세에는 불의한 자는 점점 더 불의하게 나아가고 더러운 자 점점 더 더러워지게 된다. 악이 최고봉으로 올라가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 반면에 의로운 자는 점점 더 의롭게 살려고 하고, 거룩한 자는 정점 더 거룩하게 살려고 한다. 세상에 악이 점점 깊어지는데, 의가 크고 거룩이 크지 못하면 그 악을 이길 수 없으므로 악이 커갈 때에 의와 거룩도 커 나가야 되는 것이다. 신앙도 최고봉으로 올라가야 최고봉의 더러운 죄를 이길 수가 있다.

.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주님이 재림하면 신자가 일한 대로 갚아 주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상 받을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상을 많이 받겠고 상 받을 일을 하지 못한 사람은 상이 없을 것이다. 주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핍박과 고난을 받은 자는 상급이 크다.

.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알파와 오메가는 처음과 나중이라는 뜻이다. 성도의 구원 역사의 시작이 그리스도요, 끝도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니 하나님이 완성하신다는 뜻이다.

4. 옷을 씻으라(14-15)

.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두루마기"는 성도가 성화를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가리키는데, 성도가 회개하고 순종함으로 두루마기가 깨끗하여진다. 이것은 19:8의 성도가 입은 세마포와 같은 것이다.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말씀을 순종함으로 점점 성화를 이루어 나아가기를 주님이 요구하신다. 성도들은 자기의 두루마기가 더럽혀져 있지 않나 살펴보고 더럽혀진 두루마기는 속히 빨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마음가짐과 게을러서 기도하지 않은 것도 두루마기를 더럽힌 것이다.

예수님의 눈은 사람의 심령과 골수를 꿰뚫어 보시며 마음으로 지은 죄까지 모두 아신다. 우리들의 두루마기가 지금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전부 보고 계신다. 자기 두루마기가 더러워진 것을 알았으면 회개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항상 죄를 회개하고 말씀대로 나아갈 때 영이 소생하여 새롭게 되며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된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복이 있고 생명 나무에 참여하며 거룩한 성에 들어갈 권세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새 예루살렘에 입성하지 못할 자의 종류를 여섯 가지로 말씀하셨다. ①개들은 싸우고 다투고 하나님의 것을 물고 찢는 자이다(마7:6 ; 빌3:2). 2 술객들은 점치고 사술을 행하는 자들인데 만사를 점치는 식으로 하고 술수를 베푸는 식으로 하여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는 자들이다. 3 행음자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세상과 짝하며 세상주의로 나아가는 자들이다. 4 살인자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남을 악평하고 헐뜯고 미워하는 자들이다(요일3:15). 5 우상 숭배자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며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다(삼상15:22-23 ; 엡 5:5 참조).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 진실하지 못하며 진리대로 하지 않고 거짓된 것을 주장하는 자들이다.

성밖에 있으리라 여기 "성 밖"은 지옥을 의미한다. 천당 아니면 지옥이요, 천당과 지옥의 중간에는 어떤 장소도 없다. 믿지 않고 죄만 짓던 자들은 지옥에 가서 영영토록 형벌을 받는다. 어떤 사람은 천당과 지옥이 있고 또 성밖이 별도로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못한 주장이다. 성밖은 지옥을 의미하며 불신자들이 가는 곳이다.

5. 예언을 사모하라(16-17)

.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들을 위하여 천사를 보내어 이 증거를 주신 것이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인데 다윗의 왕통을 계승하신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광명한 새벽 별 예수님은 천국을 소개해 주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빛의 역할을 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새벽 별은 날이 밝아 오는 것을 알려주듯이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증거해 주시고 성도를 그곳으로 인도해 주신다.

.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신부"는 성도이다. 성도가 성령님과 함께 증거하기를 "하나님의 생명수를 와서 값없이 받으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배가 불러서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생명수를 주시지 않는다. 그러나 목이 말라서 애타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갈망하며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찾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주신다.

6. 예언을 가감하지 말라(18-19)

.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은 요한계시록을 가리키는 동시에 모든 성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들 외에 더하면 이 성경책 외에 한 마디나 일점 일획이라도 더하면 하나님께 벌받을 죄가 되어 성경에 기록한 재앙들을 받게 된다. 성경 외에 꿈이나 묵시를 받았다 하여 그것을 신기하게 여기고 따라가는 사람들도 마침내는 성경에 기록한 재앙을 받게 된다.

.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성경책에서 한 마디라도 제하고 믿으면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하는 축복에서 제외된다. 생명 나무와 거룩한 성에서 제하여 버린다는 것은 무서운 말씀이다. 이 성경책에서 한 마디라도 제하는 것은 이렇게 중대하고 무서운 벌을 받게 된다. 누구라도 성경은 절대 가감하여서는 안 된다. 신명기 13 : 1-3에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고 하였다. 성경 그대로만 믿고 나가야지 성경에 한 마디라도 가하거나 한 말씀이라도 감하는 자는 멸망한다.

7. 내가 속히 오리라(20)

.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재림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사도 요한에게 알려 주었다. 주님이 더디 오리라고 믿는 자는 이 말씀을 불신하는 죄를 범한다. 오늘이라도 곧 오실 줄 믿고 간절히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10:37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였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사도 요한은 재림의 주님을 맞을 준비가 잘 된 것 같다.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면 "좀더 있다가 오시옵소서"하였을 것인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하였다. 우리 성도가 주님 맞을 준비를 잘하여 언제든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다. 항상 선한 양심을 따라 생활하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날마다 회개하여 두루마기를 빨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되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하여 아닌 것은 떠나고 옳은 것은 날마다 따라가며 영적 새 생명의 길을 길어 나아가 기름과 등불을 준비했다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기쁨으로 주를 맞아 야겠다. 이러한 자가 복이 있다.

五. 축복(21)

.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모든 자들은 성도들이다. 모든 성도에게 주 예수의 은혜가 항상 있기를 축복했다. 고기가 물 속에서만 사는 것같이 성도는 은혜 속에서만 살수가 있다. 신앙의 모든 신령한 일들은 주님의 은혜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이 모든 성도에게 은혜가 있기를 축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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