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주석

로마서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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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기록한 사람 : 사도 바울

·기록한 연대 : 주후 58년 경

·기록한 장소 : 고린도

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로마서 1장

제 1 장 복음

(대 지)

一. 복음의 정의(1-4)

二. 성도 축복(5-7)

三. 복음 감사(8-15)

四. 복음 능력(16-17)

五. 이방인의 죄(18-32)

1. 대신 범죄(對神犯罪)(18-23)

2. 대기 범죄(對己犯罪)(24-27)

3. 대인 범죄(對人犯罪)(28-32)

(본문강해)

一. 복음의 정의(1-4)

.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언제나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였다. 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자신을 위하지 않고 주인을 위해서 사는 자이다.

② 자기 뜻대로 살지 않고 주인의 뜻대로만 사는 자이다.

③ 자기의 소유권이 없고 모든 소유가 주인의 것이다.

사도 바울이 항상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에서 살았다. 모든 교역자와 성도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놓고 하나님을 위하여 그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도란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서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하나님이 복음을 위하여 바울을 특별히 택하여 종으로 보내셨다. 갈라디아서 1:1에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자기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며 사람으로 말미암아 된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복음에 대한 특별한 사명과 그 직분에 대한 권위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택정함을 입었으니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는 뜻이다.

.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복음 원어 (유앙겔리온)의 뜻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이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소식이 제일 기쁜 소식이다. 그리스도 즉 메시야를 통한 구원 문제는 오래 전 구약시대부터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성도에게 미리 약속하신 것이 성취된 것이다. 그러므로 갑자기 만들어 낸 공교한 이야기가 아니다.

. 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여기서 복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곧 복음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영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믿는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주시고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 놓은 것이야말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제일 기쁜 소식(복음)이다.

육신으로는 육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했는데 그 성구와 같은 내용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을 입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 절의 육신도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리킨다.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하나님이 다윗에게 네 자손에게서 그리스도가 나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다. 마리아는 다윗의 혈통이었다.

.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성결의 영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리킨다. 앞절에서 예수님의 인성을 말했으므로 본 절에서는 신성을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행하신 의를 근거로 하여 그의 신성의 능력으로 부활하셨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께서 계시므로 그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에베소서 1:20에는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한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사망을 이길 자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죄를 멸하고, 마귀를 이기고, 사망을 정복하고 부활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것이다. 인정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완성한 것으로 인정된 것이고, 사람에게는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믿을 만한 증거를 주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선포한 것이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믿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요나의 표적의 중요성을 말씀한 것과 같은 것이다.

마태복음 16:4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사흘 동안 있다가 살아서 다시 나온 것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여 살아나실 것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요나의 표적밖에 다른 표적을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신 것은 십자가와 부활이 가장 큰 표적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으나 그것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게 하는 보조적인 표적에 불과하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른 표적을 아무리 많이 보여주어도 아무 유익이 없다. 누구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므로 사죄와 영생을 얻는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만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가 된 확실하고도 유일한 증거이다.

二. 성도의 축복(5-7)

.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불러 많은 은혜를 주시고 사도의 직분을 맡겨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다. 이것은 바울이 전파하는 그 복음을 택한 백성들이 듣고 믿어 하나님을 순종케 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원운동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것이요 바울은 그 일을 수종드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어 택한 백성이 복음을 순종하도록 감동시키실 때에 순종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믿음은 곧 순종이다. 바울은 특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이었다.

. 1: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것이다(고전 6:20).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를 위해 살지 말고 주를 위해 살아야 한다(롬 14:7).

부르심을 입은 자 신자는 자기가 믿은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 부르심을 입은 자이다.

요한복음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였다. 에베소서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한 백성을 하나님의 것으로 예정해 놓으시고 때가 되매 불러 믿게 하신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므로 몸과 생명과 가족과 모든 소유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 인줄 알고 자기 소욕대로 이것들을 사용하지 말고 주를 위해서 주의 뜻대로 사용하여야 한다.

.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축복한다. 바울은 그들이 자신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요, 하나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한 형제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생명으로 살기 때문에 그들을 직접 보지 못했으나 사랑과 우애가 넘쳐흐르고 있다.

은혜와 평강 은혜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구속의 모든 선물인데 그 내용은 하나님의 선택, 구속, 사죄, 칭의, 새 생명, 양자, 영화 등이다. 평강은 영적 평강이며 은혜 가운데 사는 열매이다. 구속받은 성도가 그 은혜와 평강 가운데 사는 것이 큰 축복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참된 은혜와 평강에 대하여 그 근원과 출처를 말하고 있다. 성부와 성자로 말미암지 않는 은혜와 평강은 참된 것이 아니다. 성부, 성자로 말미암아 오는 은혜와 평강은 참되고 생명적이며 영원하다.

三. 복음 감사(8-15)

. 1: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첫째라고 한 것은 모든 것 중에 첫째가 될 만한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며 순서적으로 둘째, 세째를 열거하기 위함이 아니다. 바울은 로마에서도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것을 생각할 때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지로 정치와 권력과 향락의 도시요 기독교 핍박의 본거지였다. 그 곳에 성도가 생기고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은혜를 생각하며 더욱 큰 감사를 하게 되었다. 어디서나 택한 백성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다. 마귀의 종노릇하다가 영원히 멸망할 그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만큼 그들이 믿음을 잘 지키고 복음을 열심으로 전파한 것 같다. 이것이 또한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원인의 하나이다. 당시 온 세상은 로마제국의 판도와 그 부근 국가들을 가리킨다.

. 1: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란 뜻이며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킨다(1:2-4).

복음 안에서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세계 안에서라는 뜻이다.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심령의 원어 (프뉴마)는 영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섬겨야 되고, 또 진리대로 섬겨야 된다(요 4:24). 하나님을 영으로 섬긴다는 것은 중생한 영이 성령을 힘입어 마음과 몸을 바쳐 섬기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가 육신의 감정과 지식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생명이 없다. 그러한 제사는 산 제사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사야 29:13에"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하였다. 마음과 영으로 하지 아니하는 경배는 헛된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면 회개하여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켜 신령한 세계를 찾고 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기쁘시게 받으시고 하나님의 권고와 생명의 역사가 그 사람에게 오게 된다. 사도행전 20:22에 바울이 환난과 핍박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담대히 올라갈 때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올라갔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바울의 심령을 감동시켜 예루살렘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바울이 그 인도를 따르지 않을 수 없고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해도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워 그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 전진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된다는 말은 그의 생활과 말이 진실하여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만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사람의 증거나 자기 양심의 증거보다 더욱 큰 증거이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바울이 쉬지 않고 로마 교인들을 위해서 항상 기도했다. 이것은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기도만 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니고 기도할 때마다 중단하지 않고 로마교인을 기억하면서 위하여 기도해 주었다는 말이다. 교역자가 교인들의 신앙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 1: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바울이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로마에 가기를 오래 전부터 원하며 기도하였다. 복음전파도 자기의 생각과 뜻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고 이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그의 인도를 받아서 하려고 힘썼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무리 위태한 곳일지라도 갔다(행 20:22-24).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거절해야 되고 하나님의 뜻이면 생명이라도 내놓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은 마태복음 강해서 7:7-8해석 참조).

. 1:11-12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바울이 로마에 가서 로마교인들을 보고자 심히 원한 것은 인정으로 인간적 교제를 하기 위함이 아니고 신령한 은사를 그들에게 나눠주어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의사가 어떤 곳에 가서 병들고 약한 환자들을 고쳐서 건강하게 해주고자 하는 것과 같다. 사도 바울은 어리고 연약한 성도들과 병든 성도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서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도 받은 바 신령한 은사 즉 깨달은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어리고 연약하고 병든 성도들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 어디를 갈 때에도 신령한 복을 가지고 가서 나누어주는 자가 산 신앙을 가진 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는 자와 받는 자들이 피차 은혜를 받고 믿음이 자라나고 안위함을 얻게 된다.

.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바울이 여러번 로마에 가고자 했으나 하나님이 허락치 않아서 가지 못했다. 그 사실을 로마교인들이 알기를 바울이 원한 것은 바울과 로마 교우들 사이에 사랑의 교통을 위함이요 앞으로 만날 때에 더욱 큰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함이다.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열매는 믿음의 열매이며 의와 진리와 거룩의 열매요(엡 4:24), 하나님과 진리 지식의 열매요(골 3:10), 영이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열매이다(갈 4:19). 사람에게 신령한 복을 나누어주므로 그들이 신령한 도리를 깨달아 알게 되고 그 진리대로 순종하면 신령한 열매가 맺혀 나간다.

. 1:14-15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헬라인은 문명인, 야만인은 미개인을 가리킨다. 바울은 문명인이나 미개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복음의 빛을 졌다고 했다.

빚진 자라 빚진 자가 그 빚을 갚을 의무가 있는 것처럼 복음을 받은 자는 복음의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 복음의 빚을 갚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기가 받은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다. 빚진 자는 빚을 갚으면 마음이 평안하고 갚지 않으면 무거운 죄책을 느낀다.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지 않고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국가에서 동민에게 나누어주라고 동장에게 배급한 밀가루를 동장이 자기 혼자서 착복하고 나누어주지 않는 것과 같다. 그 동장은 마땅히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도 자기 혼자만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가 자기 혼자만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 복음을 전해주기 않으면 하나님이 노하신다. 고린도전서 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니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하였다. 로마서 15:27에 보면 이방인들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신령한 것(복음)을 받았으니 육신의 것으로 보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이것도 빛을 갚는 원리이다. 잠언 22:7에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라고 했다.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빛을 갚고자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전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에스겔 3:11에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이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다. 복음을 받고도 전하지 않는 자는 빛을 갚지 않는 자이므로 반드시 화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복음을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우리 나라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전해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四. 복음의 능력(16-17)

.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하였다(고전1:18). 믿지 않는 자들은 복음을 아주 멸시하고 미련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고 도리어 자랑하며 담대하게 전했다. 그 이유는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유명하고 지식 있는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를 구하고 철학을 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들에게는 나사렛 예수가 사형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 것과 저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 아주 어리석게 보여 멸시하고 비웃는 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 세상을 향해 담대히 전하였다. 아무리 훌륭한 철학을 논하고 그것을 통달했다 하여도 그것으로는 자신이나 남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또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하여 새로운 지식과 발명을 했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살려낼 수 없다. 철학은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것인데 대부분이 추상적으로 나온 헛된 말이 많다. 과학은 자연의 원리나 물질에 대한 이치와 법칙을 찾아내어 논증하고 적용하는데 지나지 않고 창조주나 창조의 원리 및 그 목적은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인생의 근본 문제인 영혼이 사는 것과 하나님과 내세에 대하여는 알지 못한다. 복음의 내용을 바로 알면 복음을 부끄러워 하기는 보다 도리어 그 복음을 자랑하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이 복음을 전하는 직분도 영광스러운 직분이다(고후 3:9). 복음 자체가 아름답고 귀하므로 복음을 전하는 직분도 세상의 어떤 직분보다 고귀하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복음을 귀히 여기고 힘써 전하는 생활을 하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은 ①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고 ②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여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한다.

능력이라는 원어 (뒤나미스)는 자연적인 힘이나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힘을 가리킨다. 이 단어에서 다이나마이트(dynamite=화약)라는 말이 나왔다. 즉 복음의 능력은 폭탄과 같은 능력이라는 말이다. 복음 자체에 폭탄과 같은 위대한 능력이 있다. 폭탄을 던지면 강한 힘이 나와 그 위력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또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을 던져 놓으면 마귀의 세력이 깨져 나가고 강퍅한 마음이 녹아져서 택함 받은 자들이 구주를 믿어 구원을 얻게 된다. 이러한 능력이 복음 안에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죄인을 건져낼 수 없고 살려 낼 수도 없으나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큰 능력이 복음과 함께 역사하여 사람들을 살려내고 구원해 내는 것이다. 전도자는 이 능력을 믿고 나가서 전해야 한다. 이 복음의 능력 앞에 세상이 반드시 정복될 것이다. 이 복음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것은 마치 안전핀을 뽑아 던진 수류탄을 개들이 발로 밟고 물어 찢는 것과 같다. 수류탄이 "쾅"하고 터지면 개들이 다 죽고 정복당하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은 폭탄과 같은 능력이 있으므로 아무도 이길 수 없다. 우리가 복음을 세상에 던져 놓기만 하면 믿는 자는 살려낼 것이요, 끝까지 믿지 않고 반대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능력이 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 놓으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일하셔서 건져낼 자를 건져내시고 심판할 자를 심판하신다. 또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에 복음은 이기고 또 이기며 계속해서 이겨 나가는 것이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다는 뜻이다. 유대인은 조상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구약의 말씀)을 받았고 조상들을 통해서 내려오는 생활이 구약 성경화되어 있다. 또 유대인들은 외부적인 계명을 지키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받고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였으며(마 15:24 참조), 또 그 제자들이 유대인에게 먼저 전도했다(마 10:5-6).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게 되면 이미 받은 말씀이 있으므로 먼저 깨닫게 되고 그리스도를 먼저 영접하게 된다. 로마서 9:4에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외부적으로 언약에 참여하여 율법을 지키고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예수를 믿게 되면 더 빨리 영접하게 되고 더 많이 충성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라고 했다.

또한 헬라인에게로라 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모든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주셨으며 그 복음을 믿으므로 구원받도록 축복하셨다.

.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의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 자신의 의로운 성품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행한 의도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도 아니다. 또한 인간이 율법을 행한 의도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선물로 주신 의이다(3:21-22).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다고 간주(看做)되는 의,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할 수 있은 의이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나타났으며(롬 1:17),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1:2-4해석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신구약 성경을 다 지키시고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순종하여 완전한 의를 이루어 놓았다. 이 의는 믿는 자에게 주기 위하여 행하신 의이다(고전1:30). 성도는 믿음으로 그 의를 받아 가졌으므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칭함을 받는다.

믿음으로 믿음에 믿음의 성장과 믿음의 진보를 말한다. 진리의 말씀을 많이 배워 믿음으로 화합하면 믿음이 점점 진보가 되고 자라난다. 처음 믿을 때도 그 믿음 자체는 완전하나 아직 어린 믿음인데 그 믿음이 점점 장성해 나가야 한다. 고린도전서 3:1-2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하셨다. 또 히브리서 5:13-14에 보면 어린 신앙을 가진 자는 젖을 먹고 장성한 자는 단단한 식물을 먹는다고 했다. 에베소서 4:15에는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과 영이 자라나야 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성경에 네 번 나온다(합 2:4, 갈 3:11, 히 10:38참조). 이 말씀은 로마서 전체에 대한 요절이요, 요한 복음 3:16과 같이 성경전체의 요절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야 참 믿는 사람이고 믿음으로 살지 않는 신자는 죽은 믿음이다. 학자는 학(學)으로 살고, 상인은 상업으로 살고 농민은 농사로 살고 기술자는 기술로 산다. 각각 자기의 것을 가지고 산다. 그러므로 신자는 당연히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 것을 가지고 사는데 성도가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참 신자가 아니다. 과거의 성도들을 보면 돈이 없어도 믿음으로 살았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귀향 살이 갔어도 믿음으로 살았고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사자굴과 풀무 불에서도 믿음으로 살았다. 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독자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살았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라 했다(요일 5:4). 그러나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고 세상의 것으로 살려고 힘을 쓰고, 세상 것을 붙잡으려고 오히려 믿음을 버리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다는 뜻이다.

②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다는 뜻이다.

③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4:4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히 11:38).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와 축복을 받는 도구이며 그릇이다. 또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도구가 된다(약 2:22).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음으로 그 말씀을 순종하여 그 말씀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나간다. 하나님의 말씀은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과 그의 뜻을 나타내 보여준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을 알게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죄 사함과 하나님의 의(義)의 새 생명(양자의 영)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한 하나님을 닮아가며 장차 하늘나라의 기업에 참여할 것이다. 또 말씀(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믿는 자에게는 위대한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 그 말씀을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된다. 말씀(복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가 지혜 있게 되고, 약한 자가 강하게 되며, 멸시받는 자가 존귀하게 됨으로 지혜 있고 능한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고전 1:27). 소년 다윗이 약하였으나 믿음으로 사자와 곰을 이겼고 강한 골리앗을 이기었다(삼상 17:34-57). 고린도후서 6:9-10에"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하셨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다. 연약하고 벌레와 같은 우리 성도가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서 썩어질 것이 썩지 아니할 영광의 형체로 변화되어 진다.

살리라 영과 몸 전체가 산다는 것이나 영이 그 주체가 된다. 영이 사는 생활을 하지 못하면 몸은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다.

五. 이방인의 죄(18-32)

1. 대신 범죄(對神犯罪)(18-23)

이것은 주로 이방인들이 범하는 죄이다. 이방인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 즉 성경 말씀을 받지 않았다.

.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불의로 진리를 막는 여기 진리는 19절 이하의 하나님을 알만하게 한 자연계시를 가리킨다. 즉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이는 것과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만물에 분명히 나타난 것(20절) 등이다.

불의는 양심을 어기는 것과 자기 욕심을 따라 사는 것,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하늘로 좇아 하늘은 신령한 영역(領域)을 가리킨다. 성도가 범죄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벌이 내린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은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께서 버려두는 것, ②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께서 떠나는 것, ③ 각종 징벌이 오는 것이다.

. 1: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양심과 영혼을 주어서 하나님을 알게 해주셨다. 짐승은 영혼도 없고 이성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알만하도록 이성과 영혼을 주어서 하나님을 알게 하였으나 범죄하여 영혼이 죽었고(엡 2:1), 이성이 어두워졌지 때문에 특별 계시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되었다.

. 1:20 창세로 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았고 볼 수도 없는 신이시다(딤전 6:16). 그러나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자연 만물에 다 나타내 주셨다. 그것을 자연 계시라고 한다. 자연 만물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지식과 진실하심이 나타나 있으나 사람이 범죄하여 어두워졌으므로 특별 계시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신성은 하나님 자신 곧 그의 본질과 본성을 가리킨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은 천사가 하나님의 대행자로 나타나서 보여준 것이며 이것을 비의적 현상(秘儀的現象)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만물을 보고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해 놓으셨고, 사람 속에 영혼과 이성을 주셔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게 해주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섬기지 않았다고 하나님 앞에서 핑계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더욱 핑계할 수 없다.

.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었다. 진실하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 생각이 허망해졌고, 빛이요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마음이 미련해지고 어두워졌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알려고 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나 바로 찾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감사치도 못한다. 그들은 우상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긴다.

.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스스로 지혜있다 이 지혜는 하나님과 성경을 믿는 데서 나온 지혜가 아니고 인간 스스로의 지혜, 즉 인간의 지혜를 가리킨다.

고린도전서 3:19-20에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 하셨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미련한 것이요 스스로 자기 궤계에 빠지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성도가 범죄할 때 가장 먼저 오는 징계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영적 교통이 끊어지고, 심령이 우둔해지는 것이다. 사울 왕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감동이 풍성하였으나 그가 교만하여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졌다. 그리하여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므로 너무 안타까와서 신접한 여인(무당)을 찾아갔다. 그가 전에는 신접한 자들을 다 죽이도록 명령했으나 이제는 자신이 무당에게 찾아가 자기의 앞일을 물어볼 만큼 답답하고 캄캄한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캄캄하고 어리석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 땅에서 올라온 사무엘의 형상을 실제인 줄 믿고 부복하여 그 마귀의 말을 듣게 되었고 나중에 비참하게 죽어 망하고 말았다.

.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을 떠난 다음에는 우상이 들어온다.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영광의 하나님 대신에 짐승과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섬기게 된 것이다. 우상의 형태가 시대와 사람을 따라 변한다. 돌이나 나무 혹은 금, 은 등으로 형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기도 하고 자연 만물을 숭배하기도 하며, 사람이나 돈이나 권력이나 세상 나라나 단체를 우상으로 섬기기도 한다.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사랑하거나, 하나님의 지배보다 그것들의 지배를 더 받거나, 그것들을 의지하고 살려고 하면 그것들이 우상이 되는 것이다. 골로새서 3:5에는 탐심이 우상이라고 하셨다. 자기 목숨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자기 목숨이 우상이요,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 고집을 더 앞세우면 그 고집이 우상이 된다(삼상 15:23). 또 요즈음 일부 신자들 가운데 새로운 우상이 많이 들어왔다.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고, 그것을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따라가는데 이것도 우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요 자기 주관적인 감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2. 대기 범죄(對己犯罪)(24-27)

.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대해 범죄한 자는 다음에 자기에게 대해서도 범죄한다.

내어 버려두사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욕대로 나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크고 무서운 벌이다. 하나님이 버려두면 흑암 가운데 빠져 욕심으로 죄를 범하다가 망하고 만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정욕대로 살기를 좋아한다.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음란한 죄를 가리킨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음란한 죄이다. 음란죄는 가장 강한 것이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다(고전 6:18).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인데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 멸하신다고 했다(고전 3:16-17). 마귀는 모든 사람을 음행으로 멸하고자 한다.

. 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 자신이 진실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참되시다(고전 1:9).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거짓되고, 사람이 만든 우상을 조물주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긴다. 그러나 우상과 우상 숭배자들은 다 망하고 주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게 될 것이다.

아멘 성취의 뜻으로 이상의 내용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찬양이다.

. 1: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를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함을 인하여 라는 뜻이다.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마침내 저열한 욕심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음란한 죄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죄들이 부끄러운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인간의 변태적 동성애를 가리킨다.

. 1: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정당하게 결혼을 하여 부부생활하며 자녀를 낳는 것은 순리대로 여자를 쓰는 것이다. 이 법칙을 넘어서 한 사람이 여러 여자와 음행 하는 것은 하나님께 상당한 보응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남성간의 변태성 동성애를 가리킨다(레 20:13).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죄가 곧 이 죄였다(창19장 참조).

상당한 보음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음행 죄에 대한 상당한 보응을 그 사람에게 받게 하신다. 예를 들면 성병이나 가정불화와 파탄은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며 그밖에 자녀와 사업에도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보응이 내려오게 된다.

3. 대인관계(對人犯罪)(28-32)

.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지켜주시지 않고 버려 두신다. 하나님의 보호가 떠난 사람에게는 마귀가 들어와서 각양 탐심을 일으켜 모든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합당치 못한 일 도덕적 이념에 합당하지 못한 일에도 사용되는 말이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못한 일들을 가리킨다.

상실한 마음 원어 (아도키몬)는 시험의 결과 불합격으로 인정된 것을 의미한다.

.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하나님이 버려 두면 사람이 모든 죄악을 범하게 된다.

모든 불의 모든 죄악의 총칭이며 의리를 버리고 자기 유익을 취하는 것을 가리킨다.

추악 도덕적 부패로 악이 나타나 남을 해하는 것이다.

탐욕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으로써 불의한 일을 해서라도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다. 골로새서 3:5에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다.

악의 속에 품은 악한 심사이다.

시기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나 더 나아가서 미워하는 것을 말한다. 가인은 시기로 아벨을 죽였고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시기로 예수님을 죽였다. 시기는 살인에 이른다.

살인 남을 죽이는 일이다. 마태복음 5:21-22에 예수님은 남을 미워하는 것과 사람에게 노하는 것과 라가라 하는 것,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하셨다. 마음으로 살인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요한일서 3:15에는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했다.

분쟁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당파를 만들어 다른 사람이나 다른 당파와 싸우는 것이다.

사기 거짓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 거짓된 수법으로 남을 넘어뜨리고 자기 유익을 보려는 것이다.

악독이 가득한 자요 악독은 악한 성질을 가리키는데 자기 욕심대로 되지 않으면 악독이 나와서 남을 해하는 자이다.

수군수군하는 자요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 악평을 하는 자이다. 이것은 남을 해하는 죄이다.

.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 원어 (카타라로스)는 남을 대항하여 악평하는 자이다. 특히 하나님의 참된 종을 비방하는 것은 그 종에게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비방하는 것이 되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에 걸렸다.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원어 (데오스튀게이스)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로도,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로도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역성경 각주에 "혹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라고 했다. 그런데 이들은 이방인들로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미워하는 자가 되었다고 해야 된다.

능욕하는 자 악의를 품고 남을 해하며 남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는 자를 가리킨다.

교만한 자 원어 (휘페레파노스)는 "높이 나타나는 자"라는 뜻으로 자기의 우월감을 나타내어 남을 멸시하는 자들이다. 잠언 18:12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했다. 개인이나 단체나 교만하면 반드시 망한다.

자랑하는 자 자기 육신의 것이나 세상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자기가 우상이 되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수도 없다.

악을 도모하는 자요 악한 일을 발명(發明)하고 계획하고 다른 사람과 공모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하나님을 떠난 다음에는 극도로 자기 중심이 되어, 부모를 위하여야 할 시간에 자기를 위하고 부모를 위해 쓸 돈을 자기를 위해 쓰게 된다. 나아가서는 자기를 위하여 부모를 거역하고 불순종한다.

.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우매한 자요 이해력이 없고 사리를 바로 모르는 자이다.

배약하는 자요 약속을 배반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약속을 헌 신짝처럼 내버린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고 그에게 반드시 화가 미칠 것이다. 성도는 한번 약속한 것은 자기에게 해로울지라도 지켜야 된다(시 15:4). 또 자기가 신세진 사람을 배신하고 배은 망덕하는 것은 그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이요, 큰 죄를 짓는 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무정한 자 애정이 없는 자이다. 즉 부모 자식간, 부부간, 형제간의 애정이 없는 자를 가리킨다.

무자비한 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자비로운 마음이 없는 자이다.

. 1:32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사형에 해당 원어 (앝시오이 다나투)는 "죽음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이방인들도 이상 여러 가지 죄를 지으면 죽음에 해당한다는 것을 양심을 통해서 안다. 공자도 죄악이 차면 하늘이 죽인다(惡 이 若滿이면 天必誅之니라)고 했다. 또 이방 종교도 죄를 지으면 죽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자기들만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범죄자들을 볼 때에 그들을 옳다 하고 찬성한다. 하나님을 떠난 세계는 죄를 범하게 되고 공범자를 찾게 되고 한 걸음 더 나가서 동조자를 찾는 것이다. 이러므로 다 같이 멸망으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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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로마서 2장

제 2 장 심판

(대 지)

一. 심판의 원리(1-16)

1. 심판의 보편성(1-5)

2. 행위에 의해 심판 받음(6-11)

3. 심판의 규범(12-16)

二. 유대인의 죄(17-24)

三.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25-29)

(본문강해)

一. 심판의 원리(1-16)

1. 심판의 보편성(1-5)

.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사람들이 남의 잘못을 판단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결과가 된다.

판단 남을 정죄함을 가리킨다. 이 말씀은 유대인에게나 모든 이방 사람에게나 다 같이 해당되는 일반적 원리이다. 교만하고 외식하는 종교가들은 성경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자기도 곧 그와 같은 일을 행한다. 이것은 자기가 자기를 정죄한 것이 되어 아무 핑계도 할 수 없다.

핑계치 못할 것 말로써 자기 죄에 대한 정당성을 변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남을 정죄하는 데만 이용하면 안 된다. 그 말씀을 통하여 자기의 잘못을 찾아서 회개하고 자기가 바로 서는 자가 복 받는다.

. 2: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 남을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판단은 진리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라고 너그럽게 보아주시는 것이 아니고, 이방인이라고 더 가혹하게 정죄하시는 것도 아니다. 종교적 특권을 가진 자라도 범죄하면 진리대로 정죄를 받고 심판을 받는다.

진리대로 성경말씀대로, 성경에 의하여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의 공의대로 심판 받는다는 뜻도 있다.

. 2: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남을 판단하고 자기도 같은 일을 행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 범죄한 것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자기가 같은 죄를 범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시지 않고 그 행위가 진리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따라 판단하신다. 진리에 어긋나는 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많이 있으나 당장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그 사람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 기간이 다 차도록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하나님께서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으로 우리가 회개하기를 하루가 천년같이 기다리는 줄 알고 즉시 회개하여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없어서 하나님의 징계가 없는 줄로 생각하면 교만한 것이요,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가 된다.

.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신자가 진리와 양심을 거역해도 당장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가 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하여 더욱 담대하여 자기 고집대로 나아가며 회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점점 쌓는 일이며 마침내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이 나타날 때에는 무서운 진노의 형벌이 쏟아져 내려 올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자기가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 양심에 가책되는 것을 찾아 즉시 회개하고 말씀대로 바로 순종해야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있다. 성도가 회개하고 진리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 개인 뿐 아니라 그 사회, 국가, 그 시대 사람 전체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내려오게 된다.

2. 행위에 의한 심판을 받음(6-11)

.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징악상선(懲惡賞善)이 하나님의 일반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하는 것을 구하는 방법은 선을 행하는 것이다. 선을 행하려면 참는 것이 필요하다. 인내가 없이는 선을 행할 수가 없다. 참으면서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영생으로 갚아주신다. 참된 선은 선하신 하나님을 찾고 그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려면 잘 참아야 한다. 참지 못하면 선을 행하지 못하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 우리 성도가 참는 것을 배워 나가야 한다. 참으면 믿는 일을 할 수 있고 참지 못하면 믿는 일을 하지 못한다. 믿음과 참음은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다. 성도가 인내함으로써 연단이 이루어지고 믿음이 자나난다. 참고 견디지 못하면 믿음은 형식적인 것이 되고 열매가 없다(약 1:3-4 참조).

영생으로 하시고 영생은 장차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과 또 자기 영이 날마다 새 생명으로 살아나가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순종해야 날마다 새 생명으로 살아나게 된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을 것을 선물로 주신다.

. 2: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쫓는 자는 반드시 당을 지으려고 한다. 죄는 전염성이 있고 범죄자는 동조자를 구하기 때문이다. 교회나 노회나 총회에서 당을 짓고 당파적으로 움직이는 자들은 벌써 진리를 떠난 자요 사단의 인도를 받아 불의의 길을 걷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주장하는 단체는 불의의 집단이요 사단의 회이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와 분을 쏟으실 것이다. 당을 짓는 자들은 이 사람 저 사람을 격동시키고 악한 말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악평하여 불평과 불만을 품게 하고, 당을 지어 공동으로 죄를 짓는다. 한 사람이 주동이 되어 선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일에 동조하여 악한 세력을 구성한다. 그들은 진리를 따라가며 진리를 세워나가는 일은 하지 않고 권세를 잡아 자기들의 유익을 도모하고 자기들의 고집과 의견을 세워나가는 데만 급급하므로 심령이 어두워지고 부정과 불의한 일을 거침없이 하게 된다(롬 13:12-14 참조).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노와 분으로 갚아서 심판하신다. 요한계시록 16:13에 개구리같이 더러운 영이 나온다고 말했다. 개구리 같은 영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개구리처럼 떠들며 남을 훼방하고 악평하여 격동시키고 작당을 하여 점점 더 악을 행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당파에 가담하는 것은 악에 가담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33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당파를 만들지 말고 악한 일에 가담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도 잘못된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가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도 여럿이 모여 계를 하거나 놀러 다니다가 탈선하여 가정이 파탄되고 신세를 망치는 사람이 많다.

.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악을 행하는 각 사람 악을 행하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하나님께 벌을 받아 환난과 곤고가 있다.

영에게 영의 원어 (프쉬케)는 혼 혹은 목숨의 뜻인데 여기에서는 속 사람을 가리킨다. 악을 행하는 자는 외부적으로만 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속 사람 즉 내적 심령의 고통이 먼저 오게 된다. 신자도 악을 행하면 흑암에 빠져 마음이 답답하고 두려우며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 다윗이 범죄한 다음에 하나님의 손이 그를 주야로 내리누르고 진액이 다 마르고 뼈가 쇠할 만큼 곤고와 환난을 당했다(시 32:3-4).

환난 죄 값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난인데 사람이 피할 수가 없다.

아모스 5:19에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라고 했다.

곤고 하나님과 말씀 안에서 살면 평안과 안식이 있고, 하나님의 명하신 위치에서 떠나면 곤고와 피곤이 닥쳐온다.

전도서 1:8에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만물이 악에게 이용되었으므로 피곤하다는 것이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먼저 알고 진리를 먼저 받았기 때문에 악을 행하면 환난과 곤고와 징벌도 먼저 받는다(1:16 해석 참조). 그러나 헬라인 즉 이방인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성경 말씀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악을 행했으므로 유대인보다 나중에, 또 경(輕)하게 당할 것이다.

누가복음 12:47-48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는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셨다. 다 같이 매 맞을 일을 하였을지라도 알면서 행한 자는 먼저 맞고 많이 맞게 된다.

. 2: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선을 행할 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상급으로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받는다는 것이다.

도덕적, 율법적 선을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복음의 선 즉 신앙적 의와 선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 선의 결과가 영광, 존귀, 평안이기 때문이다.

영광과 존귀와 평강 영생의 상태이다. 믿는 사람이 선을 행한 것은 말씀을 순종하여 믿음을 쓴 결과이므로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평강으로 갚아주신다. 사람이 선을 행하면 그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고 그 인격이 존귀해지고 영광스럽게 된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9절 해석 참조)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알고 순종한 자는 하나님의 축복도 먼저 받고 또 많이 받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를 알고 있어야 그대로 행할 수 있고 진리를 순종한 것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라고 해서 더 관대히 보아주는 것이 아니고 헬라인이라도 해서 더 관대히 보아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하나님은 민족, 유무식, 빈부의 차별이 없이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3. 심판의 규범(12-16)

.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진리대로 심판하시므로 율법이 있는 유대인이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나 범죄하면 다 같이 망한다는 뜻이다.

.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유대인들이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 율법 책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으나 행하지 않았다.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의인이 되지 못하고 행하는 자라야 의인이 된다(약 1:25 참조).

. 2: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율법 없는 이방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본성으로 율법을 행하면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의 율법이 된다.

본성 생래(生來)적으로 받은 본성인데 이성과 양심을 가리킨다. 여기 율법은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사람이 본성으로 율법을 완전히 행할 수 없다. 범죄하기 전의 아담은 본성으로 율법을 다 행할 수 있었으나 범죄한 후에는 사람이 어두워졌고 우준 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율법대로 다 행할 수가 없게 되었다.

. 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양심이 증거가 되어 이 구절은 사람이 양심을 지켜서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우리가 옳게 살지 못한 것을 우리의 양심이 증거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율법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해 양심이 증거하기 때문에 핑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양심을 지켜서 구원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나면서부터 영혼이 죽고 또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양심을 지켜도 죽은 영혼이 살아날 수 없고 원죄를 사함 받을 수가 없다. 사죄와 중생(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양심대로 일생을 살았다고 해도 원죄가 있고 또 하나님의 요구죄가 있다. 요구죄란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미달되는 것을 말한다. 공자와 같은 성인이라도 원죄가 있고 하나님의 원죄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미달한 것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우상 섬긴 것, 주일 지키지 않는 것 등등이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믿지 않으면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그 영혼이 살아나지 못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인류의 구원 역사(歷史)를 일곱 세대로 나눈다. ① 창조주부터 타락까지 에덴 동산에서 살던 시대를 무죄시대, ② 타락부터 노아 홍수까지를 양심을 지켜서 구원받는 시대라 하여 양심시대, ③ 노아 홍수에서 아브라함까지를 인정(人政)시대, ④ 아브라함에서 시내산까지를 약속시대, ⑤ 시내산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까지를 율법시대, ⑥ 십자가부터 재림까지를 은혜시대, ⑦ 재림 후 천년간을 천년시대라고 한다. 세대주의자들이 이와 같이 세대를 구분하면서 시대별로 구원의 방편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창세기 3:15에 벌써 첫 복음을 주어서 여인의 후손 되는 그리스도가 와서 뱀(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 인류를 구속해 줄 것을 약속했으므로 그 때(아담 때)부터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이 구원을 받게 되며 그 때부터 계속적인 은혜시대라고 볼 수 있다. 양심을 지켜서 구원받는 시대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또 양심을 지켜서 구원받은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오직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아브라함도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모세에게 주신 율법도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방편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행위 계약이 아니고 은혜 계약에 속한다. 아브라함 때나 모세 때나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을 수 없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은혜시대인 것이다.

. 2: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다. 그날에는 우리 속에 은밀히 숨겨진 죄가 벌거벗은 것과 같이 낱낱이 다 드러나게 된다. 지금은 사람을 속이면서 죄 지을 수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는 비디오 테이프를 상영하는 것과 같이 각자의 죄가 다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미리 회개하고 바로 서는 자가 복이 있다. 아무리 크고 은밀한 죄를 지었다고 해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 주신다.

二. 유대인의 죄(17-24)

. 2:17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본 절 이하에서부터 본 장 끝까지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율법을 자랑하면서 자기들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이를 어기어 범죄하고 있는 사실을 책망하는 말씀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고 오늘날 그리스도 교인들 중에 하나님과 성경(진리)을 자랑하면서 그 성경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28-29에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6:16에 이방인으로서 예수를 믿는 사람을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자랑하며 자기의 우월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가 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 같으나 마음의 깊은 속에는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를 나타내려는 악한 일이다.

. 2: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유대인이나 기독신자에게는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

. 2:19-20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유대인이나 기독신자들은 진리의 지식과 규모를 가진 자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어두움에 있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빛 가운데 있으므로 하나님에 관해서 말해 줄 수 있고 진리에 대해서 말 해 줄 수 있다. 또 어리석은 자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느 정도 깨우쳐 주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에게 옳은 것을 가르치기도 한다.

. 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자기 자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을 책망한다. 타훈기암(他訓己暗)이라는 말이 있다. 남은 가르치면서 자기는 어두움에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자기를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두움 가운데 있는 불쌍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남은 구원하지만 자기는 버림받을 사람이다.

고린도전서 9:27에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다. 이것은 바울이 남은 가르치고 자기를 가르치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께 버림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한 말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를 가르치고 진리대로 힘써 복종하는 일을 하지 아니하면 남을 가르치고도 자기는 버림을 당한다. 성도가 자기 자신을 먼저 가르치고 그 다음에 남을 가르쳐야 한다.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종교가들 가운데 실제로 남의 것을 훔치거나 사기 횡령하는 자들도 있다. 또 일하지 않고 먹으려 하는 것은 도적의 심보이다.

데살로니가후서 3:10에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다. 또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다(말3:8). 십일조 드릴 때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온전한 십일조는 십분의 일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요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 줄 알아야 한다(시24:1). 자기는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을 사용해야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다.

누가복음 16:9에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했는데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불의의 재물은 세상 재물을 가리킨다. 세상 재물을 불의의 재물이라고 한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자기 것으로 삼고 자기 위해 사용하느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 곧 도적질한 것이다. 또 성도가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날(日)도적이다. 엿새 동안은 사람이 일하는 날이나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요 주의 날이요 안식일이다. 그러므로 이 날에 세상의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날 도적이 된다. 길선주 목사님께서는 토요일에는 결혼 주례를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토요일에 결혼하면 신랑 신부가 주일을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의 권리나 남의 하인을 빼앗는 것도 도적이다. 성경말씀을 가지고 자기 이(利)를 도모하는 자와 성경진리에 맞지 않는 말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자들이다.

예레미야 23:30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자들은 입으로는 도적질 말라고 반포하면서 자기는 도적질하는 자들이다.

. 2: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는 종교가들이 간음한다는 것이다. 간음은 여러 가지가 있다. ① 육체적 간음, ②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것(마5:28), ③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마16:4), ④ 세상과 벗되는 것(약4:4)이 간음하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기독신자들도 이러한 간음을 많이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다(롬2:24 참조).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신사(神祠)는 우상을 섬기는 집이다. 우상은,

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는 것,

②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③ 하나님의 재배보다 더 지배를 받는 것,

④ 탐심이다(엡5:5).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을 탐심으로 취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취하는 것이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또 신앙을 양보하고 번 돈과 평안과 성공은 다 우상의 제물이 되고 신사물건을 도적질한 것이다. 유대인이 자신은 이렇게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면서도 우상을 가증히 여긴다고 스스로 믿고 있으니 어리석은 자요 소경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도 이런 자가 많다.

. 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하나님과 율법을 자랑하는 자가 율법을 범하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자랑하는 일이 헛되고 가증한 일이 되는 것이다.

. 2: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이 구절의 말씀은 이사야 52:5절을 인용한 말씀인데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죄를 많이 범하면 이방인들에게 욕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대인에게만 이 욕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도 이 욕이 돌아간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범죄 사실이 세상에 나타날 때에는 하나님께 욕이 돌아간다. 상기한 여러 죄(21-22)를 범할 때는 더욱 큰 욕이 하나님께 돌아간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우리의 못된 성질과 물질문제에 대하여 바로 하지 못한 것과 서로 시기하고 싸우고 다투고 당파를 짓고 갈라서는 일들은 다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는 일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삼가 조심하고 인내하고 절제하여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고 하나님이 그 가운데에 같이 계신다.

三.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25-29)

. 2:25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할례는 이스라엘인들이 남아(男兒)를 출생한 후 팔일 만에 오늘날 포경수술과 같이 양피(陽皮:성기의 표피)의 끝을 베어버리는 종교의식이다. 할례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① 정욕을 제거한다(렘4:4 참조). ② 하나님의 백성된 표이다(창17:14). ③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한다(창 17:13). 유대인들은 육신의 할례만 행하고 할례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할례를 받은 자가 정욕대로 살고 율법을 범하면 할례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무할례가 되느니라 할례 받지 않은 자와 같다는 뜻이다.

. 2: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것이 아니냐

무할례자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 즉 이방인을 가리킨다.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할례 받은 자와 같이 여긴다는 뜻이다. 종교적 의식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도 율법을 지키면 의식에 참여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외부적인 의문과 제도에 참여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그 의식의 뜻을 깨달아 그 신령한 면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 2: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율법의 의문과 할례를 가진 유대인들이 율법을 범하면 할례 없는 이방인들이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의식과 세례를 받고도 범죄하면 불신자(이방인)들이 판단하게 될 것이다.

. 2: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표면적 유대인 아브라함의 자손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진 자가 참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갈 3:6-7, 29 참조).

표면적 육신의 할례 육신으로 할례를 받았으나 할례의 참뜻에서 떠난 자는 진정한 할례를 받았다고 할 수 없다. 예컨대 콜라 병에 코카콜라 상표는 붙어 있으나 그 병 속에 물이 들어 있는 것과 같다.

.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면적 유대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 없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 이면적 유대인 즉 참 이스라엘이다(롬 4:12-16; 갈 3:6-7, 29).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할례의 참 뜻은 마음가죽(정욕)을 베어 버리는 것과 영적으로 하나님께 속하여 신령한 생활을 하는데 있다(렘 4:4). 유대인들은 신령한 면을 무시하고, 육적 할례만 가지고 자랑했다.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도는 의문, 제도, 의식에 있지 않고 마음으로 죄를 회개하고, 그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말씀을 순종해 나가는데 있다. 이러한 신자는 사람에게 칭찬을 받거나 판단을 받는 일을 매우 적은 일로 여기고(고전 4:3-5),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칭찬 받는 것을 매우 귀중히 여겨 하나님께만 충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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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로마서 3장

제 3 장 현의

(대 지)

一. 유대인의 불신과 하나님의 신실성(1-9)

二. 전무의인(全無義人)(10-18)

三. 율법으로 죄를 깨달음(19-20)

四. 하나님의 의를 믿는 자에게 주심(21-26)

五. 자랑하지 못함(27-31)

(본문강해)

一. 유대인의 불신과 하나님의 신실성(1-9)

1-8에는 문답식으로 몇 가지 진리를 해명한다.

① 유대인이 나음이 무엇이냐?

답 :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다(1-2).

② 유대인 중 어떤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신실성을 폐하겠는가?

답 : 그럴 수 없다. 사람은 거짓되되 하나님께서는 참 되시므로 그 약속하신 말씀대로 반드시 성취하신다(3-4).

③ 사람의 불의로 인하여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다(하나님께서 사람의 불의도 이용하여 당신의 의를 성취하신다)고 하면 그 불의한 자도 하나님께 공로를 세운 것이 아니냐?

: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의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심판하시기 때문이다(5-6).

④ 사람의 거짓말(불의한 일)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거짓말과 불의를 이용하여 당신의 참되신 뜻과 구원계획을 성취하여 영광을 나타낸다고 하면) 그 거짓말(불의)한 사람이 어찌 심판을 받으리요? 예를 들면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판 것으로 인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을 성취하였으니 가룟 유다도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공로를 세운 것이 아닌가 함과 같다(7절).

답 :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8절).

. 3: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그런즉 앞장의 연결로서 "이면적(裏面的) 유대인과 영적 할례만 중요하다고 하면…"라는 뜻이다.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이면적 유대인과 신령한 할례만이 참된 것이라고 하면(2:28-29해석 참조) 표면적 유대인의 나은 것은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다.

. 3:2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유대인의 나은 것이 범사에 많다(9:4-5).

첫째는 유대인의 나은 것 중에 제일 첫째가 될만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다. 유대인은 율법과 구약 전체를 맡았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 있으며 의식과 제도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이 외부적인 축복에 참여하게 되었다. 모든 이방인이 흑암 속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유대민족을 택하여 모든 민족을 구원할 하나님의 말씀을 맡겨 주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청지기와 같으며 농장의 모판과 같다. 모판에서 모를 길러서 모든 논에 이앙(移秧)을 한다. 농사꾼이 처음에는 모판에만 종자를 심어 거름을 주고 모를 정성껏 기른다. 그러나 때가 되면 모판의 모를 뽑아 모든 논에 옮겨 심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유대인에게 맡겼다가 때가 이르매 모든 이방인에게 전파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의 나은 점이다.

. 3: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어떤 자들이 유대인 중의 어떤 자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그 유대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 약속이 폐하여진다고 하면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폐하여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한 말이다. 여기에 대한 답변으로 4절에 "그럴 수 없다"고 하셨다.

. 3: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계획과 구속의 약속은 절대 폐하여질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므로 그 약속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뜻이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사람은 다 거짓되고 부패하여서 하나님을 믿던 자가 믿지 않기도 하고 하나님을 순종하여 포도원에 가겠다고 대답하고도 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마 21:28-29). 이러한 거짓된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하나님의 구원계획)이 폐하여질 것같이 보이나 절대 폐하여지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여 당신의 구원계획을 반드시 성취시키기 때문이다. 거짓된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다른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의 약속(구원계획)대로 성취시키신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고 거역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어린 사람들(이십세미만)과 광야에서 새로 출생한 자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그 약속을 성취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신실성이 확증되었다.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시편 51:4의 말씀을 70인역(七十人譯)대로 인용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범죄한 다윗이 자기는 부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의롭다고 그 의를 찬양한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롭고 그 의로운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천하 모든 사람이 반대하고 또 사람들이 아무리 거짓되고 악하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대로 다 이루어 놓으시고 그 말씀의 의로우심을 세세에 나타내실 것이다.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시편 51:4의 인용인데 원문에는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로 되어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시고 끝까지 듣지 않으면 심판하여서라도 하나님의 의와 순전은 세워나가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참감람나무 가지를 꺾어 버리고 돌감람나무(이방인) 가지를 접붙여서라도 그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 놓으신다. 그런데 본절 에는 "판단 받으실 때"라고 하여 수동태로서 시편과 반대로 되어 있다. 바울이 시편 51:4을 인용할 때에 성령의 감동으로 이렇게 기록했으니 이 내용이 적합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주신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그러면 그 뜻은 무엇인가? 악한 자들과 거짓된 자들이 하나님이 잘못했다고 아무리 판단해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기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불신실과 반대 때문에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지 못하시거나 자신의 신실을 변치 아니하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승리적으로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 3: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유대인이 불순종하므로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서 이방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구원약속을 성취하셨으니 유대인의 불순종이 도리어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도록 한 결과가 되었다. 그렇다고 하면 불의(유대인의 불순종)도 좋은 것이 아니냐 하는 말이다.

무슨 말 하리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불의로 인하여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되었으면 불의에 대하여 잘못이라고 무슨 말할 것이 없지 않느냐? 다시 말하면 불의도 좋은 것이 아니냐? 하는 뜻이다. 예를 들면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판 것으로 인하여 십자가의 구속이 성취되었으니 유다가 구속사업의 공로자가 아니냐 하는 말과 같다.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하나님의 논법(論法)대로 말하지 않고 사람의 논법대로 말한다는 것이다.

진노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하나님은 모든 불의에 대하여 진노를 내리시는 분이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의(유대인의 불순종, 가룟 유다가 예수 판 것)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구역사역을 이루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진노하셔서 벌하셨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한 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털끝만큼도 불의가 없으시다(요일1:5). 하나님이 행하시는 바는 다 의로우시다(4절).

. 3: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윗에 대한 둘째 답변이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신 분이 아니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불순종하므로 인하여 복음이 이방에 나가 이방인들이 구원받았다고 해도 저들의 불순종한 행위는 불의한 것이다. 저들의 불의한 것이 하나님께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들의 불의에 대하여 진노하심이 옳다는 말이다. 만일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하면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가 있겠는가 하는 의미이다.

. 3: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예를 들면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으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이루어져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다. 이로 보면 가룟유다도 구속사업에 공로를 세운 것이 되는데 왜 가룟유다가 죄인으로 취급받아 심판을 받았는가?

. 3: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악을 이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이다.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악도 이용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시는 분이시니(가룟 유다가 예수 판 것을 이용하여 십자가 구속을 이룬 것처럼)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자꾸 행하자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어떤 사람들이 바울이 말한 것을 곡해하고 뒤집어서 억지말로 바울을 비방하셨다. 바울이 말하기를 유대인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가서 이방인들이 많이 구원받았다고 했고 또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롬 5:20).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이 이 말을 악용하여 바울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고 한다고 반박하고 비방했다. 거기에 대하여 바울은 "저희가 정죄받는 것이 옳으니라"고 했다. 그와 같이 비방하며 궤변을 말하는 자들은 정죄받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런 궤변으로 말하면서 옳은 진리 전하는 자를 비방하는 자들은 정죄받아 마땅하고 심판 받는 것이 옳다. 불의한 방편을 써서 선을 행하려 한다는 것은 구실에 지나지 않는 악행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 3: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우리는 나으뇨 본장에서 유대인의 죄를 논하여 오다가 우리 이방인은 나은 것이 있느뇨 하는 말로 질문하고 거기에 대하여 "결코 아니라"고 답변했다. 이는 더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이나 전 세계 인류는 예외 없이 다 죄인이라는 것을 선언한다. 이것을 다음에 구약성경으로 증거 한다.

二. 전무의인(10-18)

.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기록한바 10에서 18절까지의 말씀은 구약 여러 곳에서(시 14:1-3, 5:9, 140:3, 사 59:7, 시 36:1) 인용한 성구들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인간이 하나님께 정죄받았으며 전적으로 부패하셨다(原罪). 그러므로 온 세상에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

이사야 64:6에는 인간의 의는 하나님 앞에 "더러운 옷"과 같다고 하셨다. 인간의 의는, 예(例)컨대, 해적들이 도적질 해다 놓고 그 도적 해 온 물건을 분배할 때에 불공평이 없도록 공정하게 나눠주는 것과 같다. 그 물건 자체가 도적질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공정하게 분배했다고 해도 그 행위가 의가 될 수 없음같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이 행한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아서 하나님 앞에 의가 되지 못한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는 한 언제나 죄인이다.

.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모든 것의 출처(원인)와 목적과 갈 길을 바로 깨닫지 못한다.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한 것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목적과 죄와 심판 아래 있는 것과 갈 길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죄로 어두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먼저 찾아와서 구원해 주기 전에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다 치우쳐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정로로 가지 않고, 치우쳐서 곁길로 가고, 모든 것을 목적대로 바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무익하게 되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만한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10절 해석참조).

. 3: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이 목구멍과 입을 통해 나온다. 마태복음 15:18-19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라고 했다. 무덤을 열어 놓으면 더러운 냄새가 계속 나오는 것 같이 사람의 속에서 모든 더러운 것이 계속 나온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의 전적 부패를 말해주는 것이다.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이것은 언어(言語)로 짓는 죄를 말한다. 간사한 혀로 사람을 속이고 자기 유익을 도모한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사람이 말로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독사와 같이 남에게 해독을 준다는 것이다. 악한 말로 남을 비방하고 훼방하며 정죄하여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죽이는 데까지 나아간다.

.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말로 짓는 죄가 점점 악화되어 말에 악독이 있고 남을 저주하는 일을 거침없이 한다.

. 3: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발은 행동을 가리키고, 피 흘린다는 것은 살인함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살인행위가 많아지고 집단살륙(集團殺戮)도 거침없이 한다.

.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파멸과 고생 윗절들에서 언급한 죄악의 결과로서 파멸과 고생이 온다는 것이다. 죄는 파괴, 멸망, 고생을 초래한다.

.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죄의 결과로 어두워져서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게 되었고 그 길을 떠나게 되었다.

. 3: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모든 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서 나온 것이다. 그들이 죄로 심령이 어두워지고 악독해지고 잔인해졌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위치에서 멀리 떠난 증거이다.

三. 율법으로 죄를 깨달음(19-20)

. 3:19-2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 아래 있는 자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예수 믿지 않는 자)들은 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다. 따라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다 구원 얻지 못할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켜서 의인될 자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그 죄값으로 하나님의 심판 받을 자인 줄 깨달아 그리스도께로 와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갈 3:24).

四. 하나님의 의를 믿는 자에게 주심(21-26)

.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율법을 행해서 의인이 될 사람은 온 천하에 하나도 없다. 율법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다 정죄받아 멸망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를 만들어 놓았다. 죄로 어두워져서 캄캄한 세상에 태양과 같이 밝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이다.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구약 성경을 다 순종하되 죽기까지 완전 복종하였으므로 하나님 앞에 완전무결한 의를 이루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이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전한 의라고 인정할 수 있는 의를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의가 없어서 멸망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서 태양과 같이 온 세상에 비취는 의를 만들어서 이 의를 사람들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이 의는 누구나 와서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된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미련한 자가 다 이 의를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의인이 되는 것이다.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하나님의 의는 오래 전부터 구약성경에 약속했던 의이다. 구약성경에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의를 세우시고 죄사함을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러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 외에 하나님의 나타내신 의가 태양과 같이 온 세상에 비취고 있다. 누구든지 이 의를 받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고 의인이 된다. 이 의는 값없이 거저 주신다. 그러나 받을 그릇은 가지고 와야 받는다. 그 그릇은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의를 받는 공로가 아니고 받는 방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의를 거저 주신다. 여기에는 민족적인 차별이나 유무식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의가 입혀져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인정받아 당당히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게 된다.

에베소서 3:12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하셨다.

.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 아담의 후손 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죄를 범하였으매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벌써 죄를 범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정죄받아 죄인이 된 것이요 속에 부패성이 가득하여 전적부패(全的腐敗)해졌다.

하나님이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하여 영광의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으며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영적 축복에서 떠났다.

.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구속해 주셨으므로 믿는 자는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

.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세워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다. 그 피를 믿는 자는 전에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간과하여 주셨다.

전에 지은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이 성취되기 전에 사람들이 지은 모든 죄를 가리키는 말이나 또한 택한 백성이 구원받아 하나님 앞(천국)에 가기 전에 지은 죄 즉 성도가 일생동안 지은 죄를 다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생동안 지은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신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대속의 피를 흘려주셨기 때문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절대 의로우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마 19:17). ① 의가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②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당신의 의를 나타내 주셨고, ③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성도를 의롭게 하여 주신다. 믿는 자가 자기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입혀서 의롭게 여기어 주신 것이다. 성도의 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입혀주신 것이기 때문에 완전하고 영원 불변한 것이다.

五. 자랑하지 못함(27-31)

.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성도가 의인이 되었다고 해서 자랑할 데가 하나도 없다. 성도가 의인이 된 것은 자기가 율법을 지킴으로 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거저 받은 것이므로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 항상 감사할 것뿐이다.

.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러므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을 지키거나 사람의 무슨 선한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인정하게 되었다.

. 3:29-30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례 받은 자나 무할례자나 차별이 없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도 되시고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데는 아무 차별이 없으시다.

.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앞에서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말했으므로 율법을 폐하고 무용한 것처럼 생각하는 자가 있을까 하여 신앙과 율법에 대해서 확실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해서 율법을 폐하는가? 아니다 도리어 굳게 세운다.

마태복음 5:17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려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하셨다.

첫째는 율법에 내포된 진리를 그리스도께서 다 성취하셨다는 뜻이다. 율법은 그림자이고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실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림자인 율법을 다 성취하였기 때문에 완전케 했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2:16-17에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했다. 구약의 율법과 모든 제도는 그림자이다. 유월에 양을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도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제물로 드려질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구약의 모든 의식과 제도는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로 알게 해준 것이다. 구약의 의식과 제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감추어져 있었고 때가 되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것을 성취시켜 놓으신 것이다. 그러면 믿는 자에게는 율법이 폐한바 된 것인가? 율법의 의식과 제도와 의문과 증서만 폐한 것이고 율법에 내포된 진리는 절대 폐한 것이 아니다(골2:14 참조). 예를 들면 구약은 벼 같고 신약은 쌀과 같다. 벼에서 쌀이 나왔다. 정미소에서 벼를 찧어 겨를 벗겨내고 쌀을 만드는 것과 같이 복음의 껍데기인 율법의 의문과 제도를 십자가로 도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의문과 제도는 폐기되었으나 율법이 가지고 있는 진리는 항상 지켜야 되는 것이다. 구약은 형체로서 그 진리를 가지고 있었고 신약은 그 알맹이이다. 그러므로 신약을 바로 알려면 구약을 알아야 되고 구약을 바로 알려면 신약을 알아야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쌀을 심으면 벼가 나지 않고 벼를 심어야 벼가 나오는 것처럼 율법도 절대로 폐할 수 없다.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룬다고 하셨다(마 5:18).

둘째는, 신자가 믿음을 지키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이 이루어져 나간다는 뜻이다. 믿는 자라야 율법을 바로 알고 지킬 수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율법의 깊은 뜻을 알 수 없고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지킬 수가 없다. 그런데 예수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 때에 율법의 제도가 이루어진다(롬 8:4). 예를 들면 남의 집에서 종살이 할 때에는 종으로서 억지로 일했으나 그가 그 집 며느리가 되면 주인이 시키지 않아도 기쁜 마음으로 전보다 더욱 잘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영의 법대로 살 때에는 율법의 진리를 지키게 된다. 믿음으로 살 때에는 계명을 범하지 않는다. 법에는 세상법과 도덕법, 율법과 영의 법이 있다. 세상 법은 도덕법 아래 있기 때문에 도덕법을 지키면 세상 법은 자연히 지켜진다. 도덕법은 율법 아래 있고 율법은 영의 법 아래 있다. 그러므로 영의 법을 따라 살면 모든 법을 다 지킬 수가 있다.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영으로 살 때에는 율법의 제도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굳게 세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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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

제 4 장 신 앙

(대 지)

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1-8)

二. 아브라함이 신앙의 조상이 됨(9-16)

三. 아브라함의 신앙(17-22)

四. 우리 신앙(23-25)

(본문강해)

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1-8)

. 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육신으로는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 특히 의를 얻지 못했고 은사를 얻지 못했다. 아브라함이 오직 믿음으로 의와 모든 은사를 얻은 것이다.

육신으로는 영으로 또는 믿음으로 사는 것의 반대되는 말로서 육신으로 살 때에는 의를 얻지 못했다는 말이다.

.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아브라함이 자기의 의로운 행실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었으며 그가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거저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다.

.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성경은 구약 성경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나이 많아 늙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주실 때에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믿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여기셨다(창 15:5-6).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인이 된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의인이 된 것이 분명하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한 "네 자손"은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갈 3:1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을 사람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그 약속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입어서 의인이 되었다.

.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은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거저 주시는 것이다.

빚으로 여기거니와 주지 않을 수 없는 보수를 가리킨다. 일한 자에게 삯을 주면 그 사람이 은혜로 여기지 않으나 일을 아니한 자에게 돈을 주면 은혜로 여긴다. 여기서 일한다는 것은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을 가리키고, 삯을 준다는 것은 의를 주는 것을 가리킨다. 선을 행함으로 의인이 된다고 하면 은혜가 아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이 의를 주신다면 그것은 참된 은혜이다.

.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그러나 일한 것(선을 행한 것)이 없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거저 받는 그 의를 은혜로 여겨 감사할 것이다.

. 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일한 것이 없이(선을 행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김을 받는 자는 참으로 행복된 자이다. 이런 자의 행복에 대하여 일찌기 다윗이 시편 32:1에 말하셨다.

. 4:7-8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시편 32:1-2을 칠십인역 대로 인용한 것이다. 다윗이 범죄하고 회개할 때에 사죄 받은 은혜를 찬송하셨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아와서 회개하고 믿음에 설 때에 전에 지은 죄를 하나님이 모두 사해 주시고 의인으로 인정하신다. 그러한 사람은 얼마나 행복된 자인가! 우리의 죄는 너무나 커서 무엇으로도 사함 받을 수 없고 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죄값으로 무거운 형벌 즉 사형을 받아 멸망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으로 값없이 모든 죄를 사함 받았으니 참으로 행복한 자이다.

二. 아브라함이 신앙의 조상이 됨(9-16)

. 4:9-10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앞에서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자의 행복에 대하여 말한 바울은 그 행복이 할례자에게냐 무할례자에게냐 하고 질문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실례를 들어서 답변했다. 즉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고 그 때는 아브라함이 할례 받기 전이었다. 그러므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며 할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 4: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할례의 표 구약 시대에 행하였던 것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표(標)이다. 신약 시대에 신자가 중생하여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표로서 세례를 주는 것과 같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창 15:5-6) 후에 할례를 받았다(창 17:23-27). 이로 보건대 아브라함이 무할례자로서 의롭다 함을 얻고 믿는 자의 조상이 된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할례는 의롭다 함을 받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믿는 모든 자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갈 3:16에서 네 자손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을 사람이 하늘의 별같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아브라함의 신앙을 계승(繼承)한 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 아브라함의 아들이요(갈 3:6-7)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다.

. 4: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그 후에 할례를 받았으니 할례 받은 자도 그리스도를 믿어야 아브라함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할례자로서 믿는 자의 조상이 된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라가는 자(할례 받지 않고 믿는 자)의 조상도 된 것이다.

.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약속하신 그리스도)을 통하여 세상의 후사가 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세상의 후사 세상을 주신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과 그 자손이(그리스도를 믿는 자, 갈 3:16)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져서 세상을 정복할 것을 가리킨다(창 15:5-6). 이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약속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4: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만일 율법을 지켜서 세상의 후사가 된다고 하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진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후사가 되는 것이다.

. 4: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진노를 이루게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법이 없을 때는 죄를 알지 못했으나 법이 이르매 죄를 알게 되었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롬 7:7 참조).

② 율법으로써 범법행위를 금할 때에 부패한 인간에게 반항심이 생겨 더욱 죄를 많이 짓게 된다(롬 7:8, 11 참조).

그러므로 율법은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 많게 한다. 이것은 율법이 악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에도 경우만 따지고 법만 따지면 노를 이루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법이 필요가 없다거나 폐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법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 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 든 사람의 조상이라

앞에 말한대로 율법은 진노만 이루게 함으로 율법으로는 후사가 될 수 없다. 후사가 되는 것은 믿음으로 값없이 거저 받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으로 후사가 되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네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되리라, 창 15:5)을 모든 믿는 자에게 확실히 성취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굳게함의 원어 (베바이오스)는 굳게 하고 확실케 한다는 뜻이다. 만일 율법을 지켜서 후사가 된다면 인간이 율법을 다 행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약속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율법에 속한 자는 율법을 지켜서 후사가 된다는 말이 아니고 할례 받은 유대인을 가리킨다. 율법을 따라 할례 받은 유대인들도 믿음으로 후사가 되고 율법과 할례 없는 이방인들도 아브라함과 같이 믿기만 하면 후사가 된다는 말이다.

三. 아브라함의 신앙(17-22)

. 4: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기록된바 이는 창세기 17:5절의 인용이며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되리라고 약속했다. 이 말씀은 윗에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된다는 것을 성경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칠 때에 하나님이 그 이삭을 다시 살려서 전에 약속하신 것 즉 네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성취시키실 것을 믿었다.

히브리서 11:17-19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데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부활을 믿는 신앙과 같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당시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없었지만 있는 것같이 부르신 것을 아브라함이 믿었고, 열국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우상을 섬기며 죄 가운데 있으나 그리스도로 인하여(갈 3:16) 하나님을 믿고 복 받을 것을 믿었다. 이것이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다.

. 4:18-19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신앙은 육신의 생각으로는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요, 바랄 수 없는 약속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의 출생을 약속하실 때에 아브라함은 구십 구세이었고 사라는 팔십 구세이었다. 그때는 이미 아브라함의 몸이 죽은 것과 같아 자녀를 생산할 능력이 없고 그의 아내 사라의 태(胎)도 죽은 것 같이 되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때였다. 다 말라서 죽은 나무와 같고 진액이 다 마르고 기운이 다 없어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명년 이맘때에 네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는다고 하셨으니 아브라함은 그대로 낳을 것을 믿었다. 하나님은 마른나무에서도 싹이 나고 꽃이 피게 할 수 있는 만능의 하나님이시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말씀대로 이루실 것을 믿었고 인간의 생각으로 인하여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믿었으므로 의심치 않을 뿐 아니라 세월이 흘러가도 도리어 믿음이 견고하여 졌다.

믿음이 견고하여져서 약속의 말씀을 날마다 기억하고 되새기며 믿음을 계속 썼다. 믿음을 쓰면 믿음이 견고해지고 믿음을 안 쓰면 믿음이 약해진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미 받은 줄 믿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 4:21-22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것(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될 것)을 만능으로 이루실 것을 확신하였으니 하나님이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나님이 한번 말씀하신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전혀 불가능해도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성경 말씀에 약속한 것은 다 이루어진 것과 같이 확신하고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만능으로 역사하여 그 말씀대로 성취시킨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인간의 생각으로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생각하지 말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반석에서도 생수가 나게 하시고 황무지도 소생시키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四. 우리의 신앙(23-25)

. 4:23-24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이삭을 다시 살리셔서 약속을 성취시키실 것을 믿는 아브라함의 신앙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우리 신앙이 같다는 뜻이다. 믿음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의로 여기신다. 성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 그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죽은 영혼을 살리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몸도 부활케 하실 것을 믿는다.

.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우리가 범죄함을 인하여 예수님이 자기 몸을 속죄 제물로 내어준 바 되었다.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음에 내어준 바 되었으나 자신이 행하신 의로 인하여 살아나셨다.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의로우심이 증거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당신이 행하신 의를 입혀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고 그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영혼을 살려서 생명을 주신 것이다. 믿는 자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하여 사죄함을 받았고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의와 생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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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장

제 5 장 득의(得義)

(대 지)

一. 득의 결과(得義結果)(1-5)

二. 그리스도를 인하여 구원 얻음(6-11)

三. 아담과 예수(12-21)

1. 득죄 득의(得罪得義)(12-16)

2. 득사 득생(得死得生)(17-21)

(본문강해)

一. 득의 결과(1-5)

.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죄인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화평이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사죄함을 받았고 의롭다 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함을 누리게 되었다.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되었는가?

① 성도가 중생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으므로 화평하다.

②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기 때문에 화평하다.

③ 성령이 내주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기 때문에 화평하다.

.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성도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또한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고 은혜 속에서 살게 되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것처럼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 때 기쁘고 자유롭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므로 성도는 그 아버지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게 된다.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 영광에 참여할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갈 수 있으며(엡 4:24) 그 영광에 도달할 소망을 가지고 크게 즐거워한다.

요한일서 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다. 지렁이와 같고 구더기와 같은 인간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영광 가운데 참여하게 될 것을 바라볼 때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영광이 자기에게 이루어질 소망을 바라볼 때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크겠는가?

.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자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게 한다. 환난을 믿음으로 통과하려면 참고 견디어야 한다. 참고 견디면서 말씀을 지킬 때에 영혼이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성도에게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할 자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격 없는 자에게는 귀중하고 존귀한 것을 줄 수가 없고 준다고 해도 그것을 누릴 수가 없다. 예를 들면 비파를 연주할 수 없는 사람에게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값비싼 비파를 준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아무 자격이 없고 능력도 없고 우준하고 무능한 사람에게는 장관이나 도지사의 직분을 맡긴다고 해도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 사람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말 것이다. 환난 중에서 연단을 잘 받아 자격을 갖춘 성도에게 하나님이 일을 맡기고 존귀와 영광도 주신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건져내는 일을 맡기기 위하여 애굽에서 사십 년간, 시내광야에서 사십 년간(합 팔십 년간)을 연단 시키셨다.

또 하나님께서 요셉을 많이 연단 시키신 후에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그 일도 맡기고 그 영광도 준다. 우리 성도는 환난과 핍박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인 것을 알고 즐거워하면서 믿음으로 통과하여야 한다.

.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티끌과 같고 벌레와 같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그 영광에 참여하고 도달할 수 있을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것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두 가지를 주셨다. 그 첫째는 성령을 주신 것이요, 둘째는 사랑을 마음에 부어 주신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다(고전 12:3). 그 성령이 성도 속에서 역사하시고 또 외부에서 역사하셔서 그 소망을 이루어 나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아 몸을 바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모든 환난을 단 마음으로 받아 죽도록 충성하게 된다(고후 5:14-15). 사람도 사랑하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부어준 자에게 어찌 가장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실 것이 확실하다. 이로 인하여(성령의 역사와 사랑의 강권) 성도의 소망은 실패하지 않고 성취되어 나간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소망이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만일 성도가 소망에 도달하지 못할 때에는 성도가 부끄러움을 당한다.

二. 그리스도를 인하여 구원 얻음(6-11)

.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본에서 8절까지는 윗에서 말한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에게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보여준다.

연약할 때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가졌던 육체적 행습(肉體的行習)을 가리킨다(박윤선).

기약대로 영원 전에 예정한 때를 가리킨다.

경건치 않은 자 육체대로 사는 자 곧 불신자를 가리킨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 죄 가운데서 살다가 멸망 받을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

. 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사람들 가운데는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나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죄인을 위하여 죽는 자는 없다.

.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확증해 주셨다.

확증이라는 말은 나타내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가리키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전체 즉 십자가와 부활 곧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를 주신 것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서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구원받을 것이 더욱 확실하다.

.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인간이 하나님과 맺은 행위계약을 어기고 그 외 모든 율법을 어겼지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이루어 드려야 그 원수된 것이 풀어질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이 법을 다 이루어 드릴 자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법을 다 이루어서 원수된 죄값을 지불케 함으로써 믿는 성도와 화목을 이루신 것이다.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의로 인하여 부활하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 의를 우리에게 입혀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게 하셨고 또 그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를 중생시켜 구원을 받게 하신 것이다.

. 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과 화목한 성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 성도의 즐거움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아버지(하나님)를 찾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아버지 없이 고아처럼 살던 자가 아버지를 찾고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은혜 가운데 살게 되었으니 참으로 즐겁다.

둘째, 장차 아버지의 나라인 천국에 가서 아버지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을 가지고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는 것이다(요일 3:2-3 참조). 성도가 하늘나라에 갈 때에 이 세상에서 영혼이 자라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것만큼 하나님이 영광에 참예하고 상급을 받게 된다. 성도는 이것을 바라보고 즐거워한다. 농부가 봄부터 가을까지 고생하며 수고하는 것은 가을에 자기가 수고한 것만큼 추수할 것을 소망하기 때문인 것과 같다.

셋째, 신령한 세계 안에서 살 때에 영적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시편 43:4에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라고 하셨다.

베드로전서 1:8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했다.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영적 세계(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성도는 언제나 즐거움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도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항상 기뻐하며 감사로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三. 아담과 예수(12-21)

1. 득죄 득의(12-16)

지금까지 논술(論述)한 것은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였다. 본에서부터 5장 말(章末)까지는 모든 사람이 죄인된 근원과 의인이 되는 근원을 밝히고 있다.

.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한 사람은 아담을 가리킨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요 시조이다. 인류의 시조요 대표가 범죄했으니 모든 사람이 범죄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 모두가 하나님 앞에 정죄 받았고 또 부패성이 유전되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죄값은 사망이다(롬 6:23 참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에게 사망이 들어왔다. 아담이 범죄하자 그가 벌을 받아 그의 영혼이 즉시로 죽었다. 영혼이 죽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斷絶)되는 것을 말한다. 왜냐 하면 생명은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참된 생명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과 교통할 때는 산영이요 하나님과 끊어질 때는 죽은 영이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그 후에도 약 900여 년간 더 살다가 죽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선악과를 두고 행위 계약을 할 때에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 언약에 참예했다. 그 대표인 아담이 범죄했기 때문에 그 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轉嫁)되었다. 또 부패성이 아담의 모든 후손에게 유전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 범죄했고 그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들어왔다.

.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율법 있기 전에 아담으로부터 모세(시내산)까지를 가리킨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다. 그 증거는 노아 시대와 소돔 고모라 시대에도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기타 그 외 세대 사람들도 범죄하여 심판 받은 일들이다.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은,

① 죄를 짓고도 죄인 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② 범죄한 일에 대해서 죄책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로마서 7:7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고 하셨다.

③ 법적 제재와 법적 책망이 없었다는 것이다. 로마서 7:9에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라고 하셨다.

.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율법 있기 전을 가리킨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받고 지은 죄를 가리킨다.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을 분명히 받고도 범죄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즉 율법이 없을 때에는 아담처럼 계명을 받고 범죄한 것이 아니고 율법을 잘 모르고(율법이 오기 전이므로) 범죄하셨다. 그러나 그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셨다. 이것을 보면 아담의 죄가 전가되었다는 사실과 모든 사람이 죄인 되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 오실 자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제 이(第二)의 아담이다(고전15:45). 아담이 그리스도의 표상이 된 것은 대표 원리에서 그리스도와 같다는 뜻이다. 아담이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서 그가 범죄함으로 그 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됨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모든 인류(택한 백성)의 대표자로서 의를 행함으로 그 의가 모든 자(믿는 자)에게 미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표상 원어 (튀포스)는 자국, 인적(印蹟), 모형(模型)의 뜻이다.

왕노릇한다는 것은 지배(支配)하는 것을 뜻한다.

.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전 인류에게 정죄와 사망이 들어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는 많은 죄인에게 입혀져서 의인이 되게 하였고 사망에서 구원하셨다.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아담의 죄로 많은 사람이 사망에 이른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많은 사람에게 넘친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아담의 죄는 죄 없는 많은 사람을 죽게 하였고, 예수님의 의는 많은 죄인을 살렸으니 얼마나 더 위대하고 능력이 많은가? 예수의 의로 인하여 많은 죄인이 의롭게된 사실은 그 의(義)의 효능이 아담의 범죄로 인한 죄의 오염보다 몇 억만대나 더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 하수도에서 오염된 물이 흘러 강물을 다 더럽혔다고 하면 그 오염된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재료(材料)는 얼마나 질이 우수하고 효과가 강하겠는가? 그처럼 예수의 의는 아담의 죄로 더럽혀진 죄인들을 능히 깨끗하게 씻어주고도 남을 만큼 능력과 역사가 강하고 크다. 이것이 아담의 범죄와 같지 않은 점이다. 그 의를 힘입어 우리 성도가 깨끗함을 받은 것이다. 예수의 의는 아무리 죄로 더러워지고 악독해져서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도 흉악하고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하여 완전한 의인이 되게 한다. 이와 같이 예수의 의는 질적으로 완전하고 강한 능력이 있다. 예수의 의는 아담의 죄의 오염보다 차원이 높고 질이 아주 다르기 때문에 이 의가 믿는 자에게 미칠 때에 많은 죄에서 깨끗함을 받고 죽은 영혼이 살아나 새 생명을 얻게 된다.

.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이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의를 죄와 사망에 처한 많은 사람에게 분배하여 의와 생명을 주신 것을 가리킨다.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를 받았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의는 많은 범죄를 의롭게 하셨다. 아담의 한 범죄는 하나의 죄가 많은 죄가 되었고(죄의 확산), 예수의 의는 많은 죄를 도말하여 의로 만들었다(많은 죄가 의에 삼키워져 소멸됨). 즉 ① 죄는 하나가 많아진 것이고 의는 많은 죄를 의 하나로 만든 것이 다르고, ② 한 죄가 많은 사람을 죽였고, 한 의가 많은 죽은 사람을 살려낸 사실이 다르다. 아담의 죄와 예수의 의(義)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파괴와 건설의 차이요, 확산과 소멸의 차이요, 죽음과 생명의 차이이다.

2. 득사 득생(得死得生)(17-21)

.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한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하여 아담과 같은 죄를 범치 아니한 많은 사람에게도 사망이 왕노릇하게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와 은사를 풍성히 받은 자들은 죄와 사망에서 해방을 받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게 되었다. 왕노릇한다 함은 왕과 같은 강한 세력과 지배력을 가지고 주장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죄의 종노릇할 때에는 죄의 세력(왕의 세력)이 너무 강해서 죄를 끊어버리고 싶어도 끊어버릴 수 없었다. 이것은 백성이 왕의 명령을 거역할래야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죄의 종이 된 때에는 죄를 범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죄를 거역하지 못하고 그 결과로 사망이 왕노릇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술을 마시는 사람이 조금만 마시려고 하였으나 조금 마신 후에도 "조금만 더 마시자"하고 술이 취한 후에는 술이 술을 먹고 그 다음에는 술이 사람을 먹게 된다. 그 결과는 자신의 건강을 망치고 가정과 사업과 모든 것에 막대한 손해를 가져온다. 그와 같이 죄도 처음에는 작은 것에서 시작이 되지만 죄가 죄를 낳고 나중에는 죄의 세력에 끌려서 죄에 삼키우고, 죄의 종노릇하다가 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은혜와 생명이 왕노릇하고 그 세력이 죄의 세력보다 몇 억만 배 더 강하기 때문에 죄의 굴레와 사망의 세력을 다 물리치고 의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인도하는 데로 나아가는 사람은 어떠한 죄악도 다 이기고, 날마다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것이 은혜와 생명이 왕노릇하는 증거이다.

.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아담의 자손 되는 전세계 인류가 다 정죄 받았다. 그 이유는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 범죄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많은 믿는 사람들이 의롭다 함을 얻고 생명에 이르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받은 성도의 대표(代表)이기 때문이다.

.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이 하나님을 순종치 않고 선악과를 따먹었으므로 그 후손이 죄인이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순종하였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의인이 되었다. 그 이유는 대표원리(代表原理)로써(18절 해석 참조)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그 후손에게 전가되어 그 후손이 죄인이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의(義)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 입혀져서 의인이 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죄를 더하게 함이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13절). 그 때는 죄가 죽은 것이었다(롬 7:8). 그러나 율법이 이르매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죄인인 줄 깨닫게 되었고 율법이 명하는 바를 반항심으로 거역하여 죄를 더 많이 짓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어떤 부모가 일하러 나가면서 아이들에게 "콧구멍에 콩을 넣지 말라"고 주의를 시키고 나갔는데, 아이들이 호기심과 반항심으로 콧구멍에 콩을 넣는 것과 같다. 부모는 콩알이 콧구멍에 들어가면 콧속에서 그 콩이 불어서 나중에는 빼내기 힘들고 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미리 주의를 시킨 것인데 오히려 속에 있는 호기심과 반항심의 충동을 받아 이렇게 사고를 내게 된 것이다. 그 아이들이 차라리 넣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안 넣었을지도 모르는데 넣지 말라는 말을 듣자 왜 넣지 말라 했을까 한번 넣어 보자 하고 넣게 된 것이다. 사람의 심리가 다 그와 같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니까 부패한 인간이 더욱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반항심이 발동하여 더욱 거역하고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계명이 없을 때보다 죄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율법이 가입하여 죄를 더하게 한 것은 없던 죄가 많아진 것이 아니고 과거에는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몰랐으나 율법으로 죄를 깨달았다는 것과 또한 사람의 속에 잠재해 있는 악한 부패성이 계명으로 인하여 발동하고 반항하여 죄를 더 많이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겉으로 나온 것만 알고 속에 있는 것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속에 있는 것을 나오게 만들어서 자신이 죄인인 줄 알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는 목적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죄를 많이 깨달은 자가 은혜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죄를 많이 깨달은 자가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감사도 더 많이 한다(눅 7:41-47 참조). 많이 사함 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하고 적게 사함 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고 했다. 죄를 많이 사함 받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많이 깨닫고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그 은혜에 더욱 감격하고 감사하게 된다. 죄가 없는 줄 아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예수님의 은혜가 크고 귀하지만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옥에 있는 죄수들에게 특사를 베풀어 모두 출감시킨다고 할 때 형기(刑期)가 하루나 이틀 남은 자는 적게 감사하게 되고 몇 십 년이나 무기의 형을 받았던 사람은 그 감사와 기쁨이 참으로 클 것이다. 또한 사형수가 사면을 받고 출감하게 되면 얼마나 큰 은혜로 여기고 감사하겠는가? 이와 같이 죄를 많이 깨닫는 사람이 그리스도께 오면 그 은혜에 많은 감사와 감격이 넘치고 겸손히 주를 섬기게 된다. 이것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 것이다.

.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죄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왕노릇하며 모든 사람을 사망으로 끌고 간다(고전 15:56 참조). 그리하여 죄가 모든 사람을 종으로 삼고 주장하여 죄에 죄를 더하게 하고 멸망으로 이끌어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죄인들에게 사죄와 칭의를 주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그 은혜가 늘 왕노릇하여 날마다 영생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영생은 날마다 영이 새 생명으로 살아나가는 것과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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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장

제 6 장 장사(葬事)

(대 지)

一. 수세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음(1-5)

二. 그리스도와 연합된 결과(6-11)

三.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12-14)

四. 하나님을 순종하라(15-23)

(본문강해)

一. 수세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음(1-5)

. 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5:20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했으므로 그러면 은혜를 많게 하기 위해서 죄에 거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하는 질문을 설정하고 거기에 답하는 것이다. 그 답변의 내용은 다음에 하셨다.

.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5:20)는 것은 죄를 많이 지어야 은혜가 넘친다는 뜻이 아니고, 죄를 많이 깨닫는 자에게 은혜가 많이 넘친다는 뜻이다. 자기 죄를 많이 깨달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더욱 많이 감사하게 되고 다시는 죄 가운데 살지 않으려고 결심하고 노력하게 된다. 그 이유는 신자가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이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나의 죄 값으로 내가 죽어야 할 터인데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내가 죽은 것이며 나는 죄로 인하여 이미 죽은 자이다. 죄로 죽은 자가 어찌 다시 죄 가운데 거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내 죄 때문에 죽으셨는데 내가 또 다시 범죄하여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겠는가? 신자가 죄 가운데 거하는 생활은 주님의 은혜를 배신하는 행위요 그리스도를 다시 못박는 처사이다. 성도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에 다시는 죄 가운데서 살 수 없게 되고, 죄를 미워하게 되며, 죄에서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항상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뜨거운 역사가 일어난다.

. 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세례의 뜻은 "씻어 정결케 한다"는 뜻이다. 물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 받은 표와 인으로서 받은 예식이다. 세례 문답을 통하여 그 사람이 구속을 믿어 죄사함을 받은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에 세례를 주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침례교파에서는 세례의 뜻을 신자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나 세례는 씻어서 깨끗케 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옳다(졸저 마태복음 강해서 3:16-17해석 참조). 세례는 중생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아 생명이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에게 증표(證票)나 인(印)으로서 베푸는 것이다. 그러므로 합당하게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생명과 인격에 연합된 것이다. 이것이 세례 받은 사람의 상태이다. 세례를 받으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한 자요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한 자는 그리스도의 장사와 연합한 자요 그리스도의 장사와 연합한 자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한 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내 죽음이요 예수님의 장사는 나의 장사요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이요 예수님의 승천은 내 승천이요 예수님의 천국은 나의 천국이요 예수님의 영생은 내 영생이 되는 것이다. 세례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예수님의 모든 것에 참예한 자이다.

.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성도가 세례로 예수님과 연합되었으므로 나의 죄는 예수님이 지고, 내가 받을 사형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시고, 내가 장사될 것을 예수님이 대신 장사한 바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의 부활한 생명이 내게로 와서 내 영을 살려 놓고 영생을 주신 것이다.

요한복음 10:28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의 연약하고 병든 것을 대신 짊어지셨고(마8:17), 나의 약하고 좋지 않은 것은 다 예수님께로 가고 예수님의 좋은 것은 다 내게로 왔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예수님께 오고 예수님의 모든 것은 다 내게로 오고 나의 모든 것은 예수님께로 돌아갔다.

二. 그리스도와 연합된 결과(6-11)

.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가 알거니와 경험적으로 안다는 뜻이다. 신자는 옛 사람과 새사람의 경험과 죄의 종노릇하다가 해방된 경험이 있다.

옛 사람 신자는 중생한 새 사람이 있고 옛 사람 즉 부패성의 사람이 있다. 이 옛 사람으로 살면 총명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굳어짐과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22에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하셨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옛 사람은 하나님께 정죄받아 반드시 사형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형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죽은목숨이고 아무 세력이 없다. 성도가 이제 사는 것은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죄의 몸이 멸하여 죄의 몸은 옛 사람이 주장하는 몸을 가리키고, 멸한다는 말은 옛 사람의 지배가 끊어진다는 뜻이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새 사람으로 살 때에 옛 사람의 지배는 끊어지게 된다. 그 때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한다. 중생한 새 생명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죄의 종살이하는 데서 해방되어 새 생명의 길을 걸어갈 능력과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다.

.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죽은 자는 죄에서 벗어난다. 죄를 짓고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아 사형을 받으면 법이 다시는 그 사람을 주장하지 못한다. 그와 같이 우리 옛 사람이 정죄 받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법적 정죄에서 벗어났고 그리스도의 의를 입어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죄에서 벗어난 후에야 의를 입을 수 있다.

.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죽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서 새 생명을 받은 자이다.

.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고 다시 죽지 않은 생명으로 부활하셨으므로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 생명을 받은 성도들도 다시 사망의 주장을 받지 않는다.

. 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었다는 것은 단번에 택한 백성의 죄값을 다 지불했다는 뜻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값을 다 지불했기 때문에 다시 반복하여 죽을 필요가 없다. 단 한번으로 영원히 완전한 효력을 내신 것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은 죄와는 상관이 없고 하나님과만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합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내 죽음이요 그리스도의 산 것은 내가 산 것임을 늘 생각하라는 것이다. 신자는 죄에 대해서는 사형 받아 죽었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새 생명으로 산 자이다. 내 죄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사형 받은 것을 생각하면 또 다시 죄 지을 생각을 할 수 없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것을 믿고 그 생명으로 살면 새 힘과 능력과 지혜와 거룩과 사랑과 선이 나오게 된다.

三.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12-14)

.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몸은 장차 무너질 장막이다(고후 5:1). 그러나 이 몸에 중생한 영이 있고 부패성도 있다(새 사람과 옛 사람). 우리 몸이 중생한 영을 따라 살 때는 의를 행하게 되고 부패성을 따라 살 때는 죄를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몸을 죄가 주장(왕노릇)하지 못하도록 쳐서 복종시키며(고전 9:27), 사욕을 순종치 말고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을 순종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법이다(갈 4:19).

.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성도에게는 아직도 죄의 정욕(부패성)이 남아 있으며 이 정욕대로 우리 지체(몸)가 이용당하게 되면 죄를 짓게 된다. 우리의 몸이 죄를 범하는 데 사용되면 불의의 병기가 되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져 죽은 믿음이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 몸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 우리의 몸이 의의 병기가 되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산 믿음이 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만능으로 도와주신다.

.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신자는 율법에서 정죄받아 죽었으므로(예수님이 대신 죽으심) 법에서 벗어났다. 그러므로 신자는 법 아래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아래 있는 자이다. 은혜 아래 있는 성도는 죄가 주장하지 못하고 은혜가 왕노릇하며 주장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의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四. 하나님을 순종하라(15-23)

.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죄를 지으리요 성도가 율법에서 해방되어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하는 뜻이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그럴 수 없느니라"고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우리 죄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는데 어찌 다시 죄를 지어 죄 가운데서 더 살겠는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다음에 더욱 자세히 그 이유를 설명한다.

.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신자가 더 이상 죄에서 살 수 없는 것은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고 그 결과 사망에 이르기 때문이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종은 순종하는 자를 가리키는데 신자 자신이 불의한 일에 순종하여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고 결과는 사망에 이른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의의 종이 되고 영생을 얻는다. 성도가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 된다는 것은 죄의 세력이 그 사람을 지배하여 점점 죄 가운데로 끌고 가서 멸망시킨다는 뜻이다. 성도가 죄를 지으면 흑암 가운데 빠져 답답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져죽을 고통을 당하며 사망의 세력이 강하게 주장한다.

시편 32:4에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과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하셨다. 이것은 마치 물고기가 육지에 나온 것과 같이 목마르고 고통스러우며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고 점점 말라 죽어가게 된다. 그러나 몸을 하나님께 바쳐서 순종하면 점점 의의 열매가 맺혀 나가고 심령이 평안하고, 즐거우며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이 소생하게 된다.

. 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신자는 순종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앞(16절)에서 강조한 바울이 성도들의 구원을 생각하여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것은 신자들이 믿을 때에 벌써 기본적 순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과 순종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신자들도 믿기 전에는 완전히 죄의 종이었으나 교훈의 본 즉 복음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믿었다. 그러므로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 이제는 죄가 성도에게 왕노릇하지는 못하나 패잔병같이 되어 믿음이 약 할 때에 가끔 들어온다. 성도가 이 죄와 더불어 잘 싸워 이겨야 된다.

디모데전서 6:12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했다. 히브리서 12:4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했다.

.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육신이 연약하여 신령한 진리를 잘 깨닫지 못하므로 사람의 예 즉 주종관계(主從關係)를 들어 신령한 도리를 논술한다는 말이다.

육신이 연약하므로 지식적인 연약과 도덕적인 연약성을 가리킨다. 신자가 믿기 전에는 그 지체(몸)를 부정과 불의에 내어주고 하나님의 법에 대하여 거역하고 나가던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는 몸을 의의 종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거룩함에 이르러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 6: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믿기 전에는 죄의 종노릇을 하였으므로 의에 대하여 자유 하게 되었다. 이것은 의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죄의 종노릇을 할 때는 죄의 지배를 받아 범죄하고 의에 대해서는 지배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의를 거역해도 아무 제재나 가책을 받지 않다. 이것이 의에 대하여 자유 한 것이다.

. 6: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죄의 종노릇할 때에는 좋은 열매가 하나도 없었고 그때 행한 일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부끄러워하나니 죄의 종노릇한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자기 양심에도 부끄러우며 사람 앞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또 죄의 결과는 사망이다. 죄 값은 사망이요 멸망이기 때문이다(롬 6:23). 죄와 불의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 받는다.

.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종이 되고 은혜의 종이 되었으므로 죄의 세력과 지배에서 해방되었고 죄에 대하여 자유 하게 되었다(죄의 지배를 받지 않음).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께 몸을 바치고 그의 명령과 인도대로 순종하여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된다. 이것이 산 믿음이다.

마지막은 영생이라 생명 있는 믿음을 가진 자는 영이 날마다 살아나게 되고 천국에 가서 영생을 얻는다.

.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영생이다.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사망이 들어왔고, 우리 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들을 심판하여 벌하신다(계 19:15, 21). 이것은 죄 값은 사망이라는 뜻이다. 사망은 죄의 대가로 오는 것이요 영생은 하나님의 은사로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영이 살고 천국에 가서 영광 중에 주와 함께 영원히 살며 복락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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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

제 7 장 고난

(대 지)

一. 신자가 율법에서 벗어났음(1-6)

二. 율법과 범죄(7-14)

三. 신자의 내적 투쟁(15-24)

四. 그리스도로 인하여 승리함(25)

(본문강해)

一. 신자가 율법에서 벗어났음(1-6)

. 7: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율법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주관한다. 사람이 죽으면 율법이 그 사람을 주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율법이 세력을 쓰고 정죄하여 죽인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그 법이 세력을 쓸 수 없고 제재를 가할 수 없다.

. 7: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이는 이혼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이혼에 대해서는 졸저 마태복음 강해서 5장 32절 해석 참조) 죽은 자가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부부간의 법적 관계를 예로 든 것이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적으로 남편에게 매인바 되어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면 불법이요 간음한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벗어나게 된다. 전 에는 죽은 자가 율법에서 벗어난다고 했으나 본절 에서는 죽은 자의 아내가 법에서 벗어난다고 했다. 즉,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법적으로 해방 받아 자유 하게 되는 것이다. 그 후에는 아내가 아니고 한 여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부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을 받게 된다.

. 7: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남편 있는 여인이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면 음부(淫婦)라고 정죄되지만 남편이 죽은 다음에는 그 법에서 자유 하게 되므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않는다. 부부에 관한 법적 구속력은 부부 중에 한편이 죽으면 없어지고, 살아 남은 자가 그 법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 일반적 통례이다.

. 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기독 신자들도 죄로 인하여 율법에서 정죄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형을 받아 죽은 자이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벗어났고 자유인이 되었다. 이제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서 그의 신부가 되어 그로 더불어 살 때에는 사망의 열매만 맺혔으나 율법에서 해방되어 부활하신 주님께 나아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 때에는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육신에 있을 때는 그리스도에게 오기 전에 곧 율법대로 살려고 할 때를 말한다. 그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지체 속에 있는 죄의 정욕(옛 사람)이 발동하여 죄를 더 많이 범하게 되고 그 결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예수를 믿고 중생한 사람 속에도 옛 사람 즉 육신의 부패성이 남아 있어서 그 부패성이 율법을 대할 때 반항적 태도를 취한다. 사람이 전적 부패했으므로 선한 율법으로 대할 때 더욱 반발하고 반항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얽매였던 것은 율법을 가리킨다. 신자는 율법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다(2-4 해석 참조).

영의 새로운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중생한 성도의 영을 가리킨다.

의문의 묵은 것은 율법의 의문과 증서를 가리키고 영적 생명이 없는 외형적인 모든 종교 의식과 제도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영으로 섬겨야 되고 외형적인 의식으로 섬기면 안 된다(요 4:24 참조).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성도가 육신을 따라 의식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죽은 예배이다. 이것은 쌀을 버리고 겨(糟)로 밥을 지어서 부모에게 드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영적 생명의 역사는 없고 의식주의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많다. 예배당을 지나치게 크게 지어 장식하고 많은 돈을 써서 강단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나, 예배가 의식에만 치우쳐서 예배 순서를 장황하게 하는 것이나, 구약시대 제사장이 예복을 입듯이 값비싼 가운을 입는 것 등은 의식주의로 나가는 증거이다. 우리는 이런 의식에 치우치지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영적 새 생명의 역사가 있는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영적 역사가 없는 예배는 죽은 예배요, 영적 역사가 없는 신자는 죽은 신자이다. 영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산 제사가 된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산 제사를 드리는 방법은 먼저 회개하고 주님을 찾아 영적 세계를 발견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거기에서 나오는 영의 역사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사야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적 생명의 역사가 없이 외형적으로만 제물을 드리고, 성회로 모이고, 기도하는 일을 하셨다. 그때에 하나님이 그것들을 받지 않으시고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다고 하셨다(사 1:11-15 참조). 하나님은 성도가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진리대로 순종하는 자를 찾으시고 그러한 사람에게 상을 주신다.

二. 율법과 범죄(7-14)

.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니 곧 율법이 탐 내지 말라 하지 아니 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논법으로 보아 율법이 죄처럼 오해할 염려가 있으므로(7:5) "율법이 죄냐"하는 설문을 하고,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답변하셨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율법은 선하고 의로운 것이며 그 율법으로 ① 죄를 짓고도 죄인인 줄 알지 못하던 자에게 죄를 깨닫게 해 주고 ② 잠복(潛伏)해 있는 죄(부패성)가 나타나게 한다. 인간이 전적 부패했기 때문에 선한 율법 앞에 부패성이 반발적으로 발동하여 죄를 많게 한다.

율법에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탐심이 속에 가득하나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고 또 율법이 오기 전에는 사람 속에 자재 되어 있던 탐심이 율법을 들을 때에 반항적으로 발동하여 나타났다는 뜻이다.

. 7: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죄가 기회를 타서 죄가 계명이 온 기회를 타서 더 많아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요약(要約)이요 율법의 대지요, 율법의 축소이다. 십계명의 대지(요약)는 사랑이다. 인간이 전적 부패하여 악하기 때문에 십계명에 "죄짓지 말라"고 한 말을 듣고 반발하여 더욱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이다. 악한 자들은 "하지 말라"고 하면 반항적 심리로 더 하게 된다. 다른 계명은 말하지 않고 탐심만을 말한 것은 탐심이 모든 범죄의 근본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탐심 때문에 모든 계명을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탐심 한 가지만 말했으나 계명 전체를 다 포함한 것이다.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니라 죄는 법이 있어야 세력을 쓰고, 사람을 사로잡아 끌고 가서 죽이고 괴롭게 한다. 율법이 없으면 죄가 있어도 죄인 줄 깨닫지 못하고 속에 있는 죄도 반발적으로 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이 없으면 죄가 세력을 쓰지 못하고 엄한 책망도 못하고 나를 괴롭게 하지도 못하므로 죽은목숨과 같다. 이것을 가리켜서 죄가 죽은 것이라고 한 것이다.

. 7: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내가 살았더니 법을 깨닫기 전에는 자신이 죄인인 줄 알지 못하고 의기양양하고, 정정당당하게 나아갔던 것이다. 이 상태를 가리켜 내가 살았던 것이라고 하셨다.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계명으로 자신의 죄를 발견하게 되고 또 속에 있는 죄악성이 반발적으로 발동하여 나오게 되고 그 죄가 세력을 쓰게 된 것을 말한다. 이것이 죄가 살아난 것이다.

나는 죽었도다 죄를 깨닫고 죄의 가책을 계속 받으므로 나는 하나님 앞에 거꾸러져서 죽은 자같이 되었다는 뜻이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인인 것을 깨닫고 나는 감히 하나님 앞에 나설 수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자와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죄책감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가 사실은 살아나는 때요 복 받은 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달아 회개하여 잘못된 것은 다 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말씀을 받아 순종하면 영이 살고 영원히 사는 새 계명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계명대로 바로 살고자 힘쓰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고 하는 자는 자신의 부족과 죄를 많이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 진다. 이러한 자가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가서 영적 새 생명을 얻게 되고 신령한 은혜를 풍성히 받는다.

. 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계명은 죄를 깨닫게 하고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생명에 이르게 할 목적으로 주신 것인데 우리 속에 있는 죄악성이 계명을 거스려 행하기 때문에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는 것은 그로 인하여 죄를 깨달아 고통을 느끼며 죽을 지경에 빠졌다는 뜻이다.

. 7: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기회를 타서 계명을 준 기회를 타서 죄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계명이 오니까 죄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계명이 없을 때는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몰랐으나 계명이 오므로 그 모든 죄를 깨닫게 되었다.

② 인간이 전적 부패하여 악하기 때문에 계명에 대한 반발심이 생겨서 더욱 죄를 많이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를 속이고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속에서 각양 죄악이 발동하여 나오는 것을 가리킨다. 속에 있는 부패성은 부지중(不知中)에 발동하여 일어나곤 한다.

나를 죽였는지라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죽을 지경에 빠진 상태를 말한다.

. 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구약의 율법은 전체가 613가지라고 하는데 그 중 적극적인(하라고 명령한 것)이 248개요 소극적인 것(하지 말라고 금한 것)이 365개라고 한다. 십계명은 그 율법의 요약이요, 강령이요, 요긴한 것이다. 그 율법과 계명 자체는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다 의롭고 선하다.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올무가 되어 해를 입을 것을 주실 리가 없다.

. 7: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사망이 되었느뇨 계명이 이르매 죄가 많아져서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게 되었으니(7:9-10) 율법과 계명이 죄를 짓게 하고 나를 죽게 만든 것처럼 보여진다. 그것은 결코 그럴 수 없느니 라고 부정하셨다. 사람이 악하기 때문에 그 거룩하고 선한 율법과 계명으로 인하여 죄를 많이 범하게 되었으므로 죽게 된 것이다.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선한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가 죄로 드러났다는 뜻이다.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범하고도 죄인 줄 몰랐는데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 죄를 깨달았고, 율법에 대한 반발심으로 속에 있는 부패성(죄악성)이 외부로 나와 드러나게 되었다. 이것이 죄가 죄로 드러난 것이다.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해 죽을 지경에 빠졌다는 뜻이다(시 32:3-4 참조).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계명이 없을 때는 죄는 희미하고 무능력했으나 계명이 오매 죄가 명백히 드러나고 세력이 강해졌다. 그러므로 죄로 인하여 심한 가책을 받게 되었다. 계명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일을 하지 못하고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할뿐이다.

.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우리가 율법은 거룩하고 선하고 신령한 줄을 안다. 그런데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짓게 되는 이유는 내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기 때문이다.

육신에 속하여 육신의 부패성 즉 죄성에 속하여 그대로 행동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죄 아래 팔렸도다 죄의 종이 되어 죄의 주장을 받는 상태를 가리킨다. 육신의 부패성대로 살면 반드시 죄의 종이 된다.

三. 신자의 내적 투쟁(15-24)

. 7: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본절 에서부터 신자의 내적 투쟁에 대하여 언급한다. 중생한 성도는 누구나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싸우는 내적 투쟁이 있다. 즉 하나님의 법(말씀)을 즐거워하며 선을 행하고자 하는 중생한 영과 악을 행하고자 하는 부패성의 싸움이다. 성령으로 중생한 영은 항상 성령에 붙들려 있으므로 범죄하지 않는다. 박윤선 목사는 요한 일서 주석에서 "새 사람은 거듭난 생명이니 그것은 범죄할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성도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영(새 사람)의 소행이 아니고 옛 사람의 행위이다.

에베소서 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아 하나님을 닮아 나가야 한다.

내가 알지 못하노니 부패성을 따라 범죄하는 것을 중생한 영이 알지 못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중생한 영이 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생한 영은 항상 성령에 붙들려서 선만 좋아하고 선만 행하고자 하고 악은 본질적으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이것이란 중생한 영이 원하는 선을 가리킨다. 중생한 영은 항상 선만 좋아하고 죄는 본질적으로 미워한다.

. 7:16-17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성도가 원치 않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육체의 부패성(옛 사람)으로 인하여 행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중생한 영(새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성도가 범죄하는 것은 옛 사람 즉 부패성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범죄할 때에도 성령에 붙잡혀 있는 중생한 영(새 사람)은 계속하여 반대하고 또 범죄한 후에도 계속 가책을 하며 책망을 한다. 그러므로 고통을 당하다가 마침내 회개에 이르도록 역사한다.

.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이것은 인간의 전적 부패를 가리킨다. 육체의 부패성 즉 옛 사람에게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 전부 악한 것뿐이고 악만 행하고자 한다. 그런데 중생한 영(새 사람)은 언제나 선을 행하기 원하고 그것을 기뻐하며 행하려 한다.

. 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중생한 새 사람이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고 육체의 부패성을 따라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육체의 부패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 7: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중생한 영(새 사람)이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은 부패성 즉 옛 사람의 소행이다.

내 속에 거하는 죄는 성도 속에 있는 부패성을 가리킨다.

.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한 법을 깨달았노니 법은 세력을 가리킨다. 신자의 속에 두 법 즉 두 세력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중생한 영의 새 생명의 세력과 악의 세력인 부패성(옛 사람)의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속 사람 즉 성령으로 중생한 영(새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그대로 살기를 원하고 있다.

.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세력을 말하는 데 육체의 부패성 즉, 옛 사람을 가리킨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성도를 그 옛 사람의 세력 즉 세력이 범죄의 길로 사로잡아 끌고 간다는 것이다.

.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성도가 아무리 죄에서 떠나려고 해도 죄에게 사로잡혀 죄의 종노릇을 하게 되고 아무리 선을 행하고 하나님을 닮아가려고 애써도 그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므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고 탄식을 하게 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죄의 종노릇하며 생명의 길을 걷지 못하는 나를 누가 건져주겠는가 하는 탄식이다.

四. 그리스도로 인하여 승리함(25)

.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의 종에서 해방되고 승리의 길을 걷게 되었으므로 감사하며 찬송하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는 우리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능력은 무한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만 의뢰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는 자는 승리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바울이 본절 에서도 성도의 내적 투쟁의 결론을 지었다. 여기 마음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중생한 영으로 사는 새롭게 된 마음을 가리킨다. 성도가 이 마음으로 살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된다. 마음은 우리 인격의 한 기관으로서 중생한 영을 따라 살 때에는 그 마음이 선한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마음이 된다. 그러나 그 마음이 육신의 부패성을 따라 살 때에는 전적 부패한 마음이요 그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마음은 중생한 영에게 이용될 수도 있고 또 육체의 부패성에게 이용될 수도 있다.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것은 성도가 마음으로만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은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성도가 중생을 했지만 육신의 욕심(부패성)을 따라 살 때에는 죄의 법을 섬기게 되어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항상 육신의 부패성을 이기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중생한 영의 새 생명으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그 때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여 의와 성결을 이루어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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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

제 8 장 승리

(대 지)

一.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사는 생활(1-17)

二. 소망 생활(18-30)

三. 사랑 생활(31-39)

(본문강해)

一.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사는 생활(1-17)

.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앞에서(7:25) 성도가 마음으로 살 때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 살 때는 죄의 법을 섬기게 된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본절 에서 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하여 "그러므로"라는 말을 썼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법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다. 또 영적으로는 성도의 중생한 영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더불어 살고 그를 힘입어 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성도의 영적 생활이요 신령한 생활이다. 이것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정죄함이 없나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법적으로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하나님 앞에 정죄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신령한 뜻은 그리스도 예수 믿는 자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산영이 되었고(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받았음),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더불어 사는 생활이므로 아무 가책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사는 자는 항상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며 아무 가책이나 두려움이 없다(요일 4:18).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가게 된다(엡 3:12).

.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기서 율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법칙, 원리를 뜻하는 것이며 이 법칙이나 원리에는 권세가 있으므로 이것을 권세로 보고 이 구절을 해석하는 것이 좋다.

생명의 성령의 법 성도의 중생한 영의 새 생명은 권능이 있고, 성령의 권능은 무한하다.

죄와 사망의 법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가리킨다. 범죄하면 죄의 권세에 눌려 자유를 잃고 사망의 고통을 당한다(시 32:3-4). 사망의 권세는 모든 사람을 이기고 모든 사람을 정복한다(고전 15:55). 모든 인류가 범죄했으므로 죄와 사망이 인류 위에서 왕노릇하며 큰 권세로 억압하고 멸망으로 끌고 갔다. 죄인으로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거기서 해방될 자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 중생한 새 생명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법)이 그 무서운 죄와 사망의 법과 권세에서 해방을 시켜 주게 되었다. 성도가 영적 생명과 성령의 인도대로 살 때에는 계속하여 죄의 세력을 이기고 구원을 이루어 그리스도를 닮아 나갈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성도의 구원이 점점 완성을 향하여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육신이 약하다는 말이 아니고 율법이 약하다는 말이다. 율법에도 의식과 제도 속에 그리스도의 구속의 도리가 희미하게 계시되어 있다(유월절 양이나 속죄제물, 도피성 등은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음). 그러나 그 복음이 의문(儀文)과 제도 속에 감추어져 그 빛과 능력이 약하므로 죄로 어두워지고 완악해진 사람들을 믿게 하고 살려내는 데는 너무 미약하셨다. 율법은 또 하나님의 의지(意志)를 가르쳐 주고 거기에 복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전적 부패한 인간을 복종시키기에는 너무 미약하셨다. 율법이 연약하다고 해서 불완전하다는 말이 아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법으로서 완전하고 의로우며 거룩하나 육신의 죄악성 때문에 그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시나니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이다. 율법이 연약하여 할 수 없게 되었어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야 만다. 율법의 방법으로 되지 않으므로 다른 방법 즉 독생자를 보내서 구속하는 방법을 사용하셨다.

죄를 인하여 우리 죄 때문에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뜻이다.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하나님이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보내셨다는 것이다. 사람으로만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죄인 된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으나 죄는 없으시다(히 4:15).

육신에 죄를 정하사 예수께서 인성으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정죄받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여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죄사함 받아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육신을 좇지 않는다는 것은 육신의 부패성(욕심)을 따라 행치 않는다는 것이며, 영을 좇아 행한다는 것은 성도가 중생한 영(새 사람)으로 성령의 인도를 좇아 산다는 뜻이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① 객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은 법적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켜 준 것이다.

㉠ 내 죄로 인하여 내가 받을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았으니 형벌에 대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켰다.

㉡ 나를 대신하여 율법을 다 행하여 주셨으니 내게 행하라고 명하신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졌다.

② 주관적으로는 성도가 중생한 영으로(새 사람, 새 생명으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 때는 율법의 요구대로 행하게 된다는 뜻이다.

㉠ 율법은 약해서 못했으나 복음은 강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 복음을 가지고 역사하는 오순절 성령은 강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성령으로 행하면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다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도가 육신을 따라 살 때에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하고 육체의 욕심만 이루었으나 영으로써 성령을 따라 살 때는 육체의 욕심은 떨어져 나가고(갈 5:16)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계속적으로 전진하는 성결 생활이요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가 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부패성을 좇아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을 좇는 자는 중생한 영으로 성령을 좇아 사는 자로 영의 일만 생각한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부패성을 좇아 사는 자이다.

영을 좇는 자는 성도가 중생한 영으로(새 사람으로) 성령을 좇아 사는 자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소원을 가지고 사모하고 추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신자가 육신의 생각대로 살면 심령의 역사가 끊어지고 흑암의 세계를 만나게 되며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지게 된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성도가 중생한 영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 때에는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생명의 산 역사가 있어 날마다 새 생명으로 창성해 나아가고 참된 평안과 안식이 있다.

.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육신의 욕심(부패성)을 따라 육신중심으로 하는 생각이며 이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육신의 생각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법인 성경 말씀에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또 굴복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을 반대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과 전연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반항을 일으킨다.

.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에 있는 자는 전 에 언급한 육신의 생각대로 사는 자인데 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육신의 소욕은 항상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기 때문이다. 육의 사람으로서는 아무리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영의 사람으로 바꾸어져야 한다. 중생한 영을 찾아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영적 새 사람으로 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자기 적성에 맞고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 이러한 생활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영의 사람으로 바꾸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된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옛 사람을 부인하고 자기 중심이나 자기를 위하는 것도 부인하고 회개하여 돌이켜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사모하여 간절히 찾아야 한다.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만나 주신다고 했다(렘 29:13).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으로 생명을 삼아야 한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달고 꿀송이 보다 달게 되어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는 자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이다.

.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은 하반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영"과 같은 것이며 성령을 가리킨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수 없다(고전 12:3). 성령은 만물 위에 초월해 계시고 또 만물 안에 계시고 특히 성도 안에 내재하여 계신다. 성령이 내재하지 않는 자는 중생하지 못한 자요 참신자가 아니다. 누구나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그 사람 속에는 성령이 항상 내주하여 계신다. 신자라도 일시적으로 영적 감동이 없을 수 있으나 그 때에도 성령은 떠나지 않고 내주하여 계신다. 그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으므로 성령의 감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것뿐이다. 그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간절히 찾으면 성령의 감동이 다시 임하게 된다.

요한복음 6:37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좇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성도들과 같이 계시겠다고 하셨다(마 28:20).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성도의 몸은 아직도 죄 아래 있고 사망 아래 있다는 뜻이다.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여기 영은 성도의 영은 중생한 영으로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칭의) 산 영이 되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성도의 영이 죽은 영이었으나 믿을 때에는 중생하여 산 영이 되었다.

"중생"이란 죽었던 영이 살아난 것을 말한다. 성도의 영은 의로 인하여 중생하여 살아났으나 육은 아직도 죄와 사망 아래 있다. 요한복음 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했고 또한 베드로전서 3:21에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성도의 영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고 몸은 아직도 죄와 사망 아래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도의 산 영이 성령과 합력하여 죄와 사망 아래에 있는 몸을 구속해 내는 일을 하는 것이 몸의 구속을 이루는 것이다(8:23).

.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은 성령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도의 몸이 죄로 인하여 사망 하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가 자기 몸을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는 데서 점점 건져내어야 그리스도의 형상이 입혀지고 성화를 이루어 나가며 영적 새 생명이 점점 자라난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4에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장막"은 육신을 가리키는데 육신의 장막을 쓰고 사는 우리가 영적 생명에 삼키워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육신이 영적 생활에 이용당할 때에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이다. 바울은 장막 같은 육신을 벗어 놓고 빨리 천국 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어서 하나님 앞에 가기를 간절히 소원하셨다. 바울이 이것을 위하여 짐 진 것같이 탄식을 하면서 힘써 이루어 나가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은 것이다(13절).

.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우리가 빚진 자로되 잠언 22:7에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고 했다. 빚을 지면 반드시 갚을 의무가 있다. 갚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죄가 된다. 우리는 육신에게 빚진 종이 된 것이 아니므로 육신대로 살 의무가 없고, 오직 예수님께 은혜의 빚을 졌으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선을 행할 의무가 있다.

.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육신의 정욕(부패성)대로 사는 것이다. 즉 주를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육신 중심으로 사는 것을 가리킨다. 이 생활은 영의 생활이 아니므로 반드시 죽을 것이다.

죽을 것이로되 성도가 영으로 살지 않고 육신대로 살면 영적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고 죽은 믿음이 된다(약2:17). 육신의 욕심대로 살고 정욕대로 사는 생활은 다 썩어져 없어질 것이다. 베드로후서 1:4에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하셨다. 육신대로 사는 생활은 반드시 죽을 것이요, 육신의 정욕대로 사는 생활은 다 썩어질 것이고 망할 것이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여기 "영"이란 성령으로 중생한 성도의 영(속 사람)을 가리킨다. 성도의 영이 성령을 힘입어서 몸의 행실을 죽이고 악행을 떠날수록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새 생명의 역사가 커진다. 이것이 영의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성령께서 중생한 영혼 속에 내주하셔서 감동하시고 또 외부에서도 감동을 하시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도하시며 말씀대로 순종시켜 영으로 살게 하시려고 애를 쓰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성령의 인도를 힘써 순종해야 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9:27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라고 하셨다. 골로새서 1:29에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성령의 감동과 주장을 받아 주의 뜻대로 살기를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영은 성령을 가리키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 이유는 물과 성령으로 영이 중생한 자라야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없다.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잘 받아 순종해 나가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고(갈 5:16)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들이 된다.

.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무서워하는 종의 영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율법대로 다 행하지 못하면 벌을 받을 것이므로 항상 두려워 떨며 무서워한다. 갈라디아서 4:24-25에 율법은 종을 낳은 자로서 자녀(율법에 속한 자)로 더불어 종노릇한다고 했다. 성령이 율법을 가지고 역사할 때에는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지 못했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지 못했으며 무서워하는 종의 위치에 두었다. 그러나 성령이 복음을 가지고 역사할 때는 믿는 자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고 양자로 삼았다.

양자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우리의 영이 연합된 영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연합된 자이다(롬 6:4-5). 갈라디아서 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중생한 사람은 누구나 양자의 영이 있어서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성도는 다 하나님의 양자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다. 양자의 영과 독생자의 영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인성(영혼과 몸)과 신성(그리스도의 영)이 결합되어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곧 그리스도요 하나님이신다. 이것이 독생자의 영이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이 내주하시지만 연합만 되고 그리스도와 영적 교통만 한다. 성도의 인성이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가 된 것은 아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접붙임을 입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영과 신자의 영이 연합되었으나 그리스도의 영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영이고 신자의 영은 언제나 신자의 영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살고 있으나 내가 그리스도가 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므로 자기가 예수라고 말하고, 자기 속에 하나님이 계시니까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것은 양자의 영과 독생자의 영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귀의 미혹에 빠진 것이다. 그러한 사랑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간 참람된 자이며 하나님 앞에 큰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영이 내주하여 계시지만 그리스도의 영과 우리의 영은 연합된 것뿐이고, 하나로 결합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언제나 그리스도요 우리는 언제나 사람이다.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언제나 사람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앙망하고 경배할 뿐이다.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아바"는 아람어로 "아버지"라는 말이고, "아버지"는 헬라어로 아버지를 부르는 말인데 오늘날 자기 나라 말로 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다. "아바"라는 말은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부르는 말이고, "아버지"는 혈친(血親)과 신뢰심으로 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본능적으로 "아바"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 처음에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면서 "아바"라고 하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누가 가르쳐 주어서 하는 말이 아니며 연습해서 하는 말도 아니고 본능적으로 하는 말이다. 여러 나라 어린아이들이 발음은 약간 다르지만 아버지를 "아바"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우리 나라 아이들은 "아빠"라고 하고 일본 아이들은 "빠빠"라고 하고 미국 아이들은"파파"라고 하며 아랍아이들은 "아바"라고 한다. 거의 비슷하다. 이것은 아마 에덴동산 말인 듯하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부를 때에 나오는 말이다. 성도도 중생한 영이 있으므로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아버지라고 불러야 심령이 평안하고 아버지가 기뻐하고 아버지와 친근해진다. 성도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양자의 영이 있는 증거이다.

.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성령과 우리 영이 같이 증거한다.

우리 영이란 죽었던 영이 중생하여 다시 살아난 영을 가리킨다. 우리가 거리낌없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므로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은 것을 우리 영이 증거하는 것이고 또 성령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감동시키고 인도하시니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성령이 증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나님은 성도가 믿을 때에 법적으로나 생명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계속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이루게 하여(권능과 지혜와 도덕 면에서) 하나님의 후사를 삼아 당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려고 하시는 것이다.

후사라는 말은 "기업을 물려받는 자"라는 뜻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소유 뿐 아니라 영광과 능력과 지혜와 성결까지 그 자녀들에게 물려주기를 원하고 있다.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께서 벌써 당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셨고 양자인 성도에게도 자격을 이루어 그리스도와 함께 물려주시려고 한다.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성도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업을 물려주기 위하여 성도들을 합당한 자격자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 자격은 고난 중에서 믿음을 지키므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고난을 받게 하신 것이다.

로마서 5:3-4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했다.

야고보서 1:2-4에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환난과 고난 가운데 믿음을 지켜야 그 인격과 실력이 만들어져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기업으로 받아 감당할 수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받음으로써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받았다(마 28:18).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는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 것만큼 후사가 된다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것만큼 하나님이 것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많이 참예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많이 이루어서 하나님의 영광의 기업을 많이 받는 자가 되도록 힘써야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 것만큼 기업으로 받을 영광도 크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깨달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기 위하여 그 고난에 참예하기를 힘썼다(빌 3:10). 사도 요한도 예수님의 환난에 참예함으로 그 나라와 영광에 참예했다(계 1:9).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고난의 잔을 다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부활의 권능에 참예했다. 성도들도 고난을 통과하며 연단을 받아야 영광의 기업을 받을 자격이 이루어진다(딤후 2:10-12). 현대에는 기독교인들이 고난 없이 예수를 믿고 고난보다 영광을 취하려고 한다. 이것은 마치 농부가 농사짓는 고난 없이 열매를 얻고자 하는 것과 같다. 교역자들도 강단에서 교인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도록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육신의 욕구를 채워주며 듣기 좋아하는 설교를 많이 한다. 이것은 농부에게 농사의 방법과 농사하는 수고와 고난을 가르쳐 주지 않고 가을에 오곡백과를 풍성히 추수하여 그것을 먹으면 즐겁고 건강해지고 좋다는 것만 가르치는 것과 같다. 교역자가 성도에게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길, 즉 모든 고난을 겪어야 될 것과(행14:22), 믿음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아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법을 바로 가르쳐 주어야 참된 교역자이다.

二. 소망의 생활(18-30)

.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성도가 현재에 고난받는 것은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할 인격과 그 자격(실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야고보서 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이 고난은 현재 믿음을 지키는 고난이요, 말씀을 지키면서 당하는 고난이며,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하는 고난이다(고전 9:26-27). 이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지극히 적은 것이다. 이 고난은 육신적으로 잠시 받는 것이지만 이 고난을 받으므로 신령하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환난 중에서 연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이 만들어진 것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받는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난 가운데서 장차 영광을 받기 위한 자격을 만드는 것이다. 세상의 운동 선수나 각종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자들도 많은 고난을 받으면서 자격을 만들어 나간다. 그들은 썩어지고 없어질 것을 위해서 그만큼 수고와 노력을 하며 고난을 당하는데 우리 성도가 썩지 안고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영광과 존귀와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받는 고난을 마다 할 수 있겠는가? 성도가 세상에서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4:17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하셨다. 여기서 이룬다는 것은 자격을 만들어 영광이 오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현재 말씀을 위해 받는 고난은 큰 유익이다. 모세는 장차 받을 영광을 바라보고 애굽의 모든 낙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하셨다고 했다(히 11:25). 성도가 현재 말씀을 순종하면서 고난을 당하고 주를 위하여 수고하며 희생하는 것은 영원하고 귀중한 영광을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알고 즐거워하여야 한다(롬 5:3-4).

. 8: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은 자연 만물을 가리키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성도를 가리킨다. 자연 만물도 성도가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그 이유는 만물도 원래의 목적대로 성도에게 바로 이용당하여 자기들을 통하여(피조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피조물의 원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되었고 또 하나님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만물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고 또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한다. 하나님은 영이므로 물질이 직접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고 물질(몸)과 영을 소유한 성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가게 된다. 성도에게는 하나님과 통한 영이 있고, 육체라는 물질이 있다. 그러므로 만물이 성도에게 이용되어 그 물질과 그 물질의 소모되는 힘(Energy)으로써 영적 일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일을 하게 되면 그 피조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최 권능 목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느 성도의 가정에서 닭을 잡아 최 목사를 대접했는데 그 때에 최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닭이 하나님의 종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얼마나 복이 있나"라고 했다고 한다. 그 닭이 하나님의 종에게 음식으로 이용되어 영양분과 힘을 공급하므로 주의 종이 그 힘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결국 하나님께 그 영광이 돌아가게 된 것이다. 만일 그 닭이 우상 섬기는 제사상에 놓이게 되었다면 하나님께 저주받을 일에 이용당하므로 탄식을 하게 될 것이다. 피조물이 바로 사용되지 못할 때에 탄식하며 고통 당한다(22절 참조).

. 8: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피조물도 저주를 받았고(창 3:17),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이용당하지 못하고 범죄하는 일과 불의한 일에 이용당하게 되었다. 이것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이다. 우상 섬기는 일과 불의한 일에 이용되는 모든 물질과 동물은 다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이다.

자기 뜻이 아니요 불의한 일에 이용당하는 것은 피조물의 본래의 뜻(원목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인간의 죄를 심판할 때에 만물도 저주와 파멸과 멸망을 당한다.

.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앞 에 말한 바 피조물도 인간의 죄로 인하여 허무한데 굴복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곧 죄와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것이다. 피조물이 불의한 일에 이용당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종과 같이 억지로 끌려서 이용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썩어질 것이요 파멸과 멸망이다.

해방되어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불의한 일에 이용되지 않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도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용당하여 자녀의 영광에 참예하는 일과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당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자기의 소원이라는 것이다.

자유에 이르는 것은 자기의 자원하는 소원에 도달하는 것을 가리킨다. 피조물의 자유로운 소원 즉 자원하는 소원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용됨으로써 자녀들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피조물의 구속이요 만유의 회복이며(행 3:21), 만물의 복종이다(고전 15:28).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택한 백성을 구원하는 동시에 만물도 저주와 불의와 파멸에서 구출하여 완전히 하나님께 복종케 함으로 세세토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시는 것이다(계 11:15; 21:5). 이것이 에베소서 1:10에 말한 만물 통일이다. 만물 통일이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이 성도를 통하여 만물에게 충만히 이르고 만물은 성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충만히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에베소서 1:23에서 말한 만물 충만이다. 이 만물 충만이 참된 구원완성의 세계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나 더러운 것이 하나도 없다.

.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인간의 죄 때문에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바로 이용당하지 못하고, 불의한 일에 이용당하므로 탄식하고 고통 한다. 예를 들면, 나무가 하나님이 주시는 환경 속에서 잘 자라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 이용된다면 그 나무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한 것이다. 그러나 절이나 신당을 짓는 데 이용되고 범죄하는데 이용된다고 하면 탄식을 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서 1:8에는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했다. 만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이용당하지 못할 때에 피곤하고 고통이 온다. 우리 마음과 몸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게 사용하면 피곤이 오고 고통이 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하나님을 위하여 바로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될 경우에 사용하지 않고 자기 집에 쌓아 놓으면 그 물질이 탄식한다. 수전노(守錢奴)가 되어 돈을 아까워하고 사용하여야 할 때에 사용하지 않고 쌓아 놓으면 그 돈이 탄식을 하고 하나님이 전대에 구멍을 뚫어 놓아 다 새어나가게 하신다. 성도가 믿는 일 하지 않고 재산을 모아서 전대에 넣어 놓으면 그 전대에 구멍이 뚫려 다 빠져나간다. 예를 들면 부도가 나고, 각종 사고가 나고, 병이 나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요 자기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다. 만물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탄식하는데 사람이 그것을 막으면 만물이 고통하고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전대에 구멍을 뚫어 놓는다. 김현봉 목사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목적을,

① 먹고살기 위해

②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기 위해 주셨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 몸과 마음과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해야 탄식이나 피곤이 없어지고 기쁨과 평안이 있으며 육체도 건강해질 수 있다(잠 4:20-22).

.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출애굽기 23:19에 처음 익은 열매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성도가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드렸기 때문에 처음 익은 열매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샀고 성령으로 믿게 했고 하나님께 바친바 된 자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이다.

양자 될 것 15절에는 성도가 이미 양자의 영을 받아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고 했는데 본절에는 양자 될 것을 기다린다고 했다. 성도가 물과 성령으로 중생하였기 때문에 법적으로나 영적 생명으로는 벌써 양자가 되었다. 그러나 양자의 자격이 아직 구비되지 못했으므로 그 자격이 성취되기를 속으로 탄식하면서 기다린 것이다.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10절에 성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중생하여 살아났으나 몸은 아직 죄와 사망 아래에 있다고 했다. 죄와 사망아래에 있는 몸을 성령과 중생한 영혼이 합력하여 건져내는 것이 몸의 구속이다. 다시 말하면 육신의 부패성을 점점 벗어버리고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 성도가 탄식한다(롬 7:24). 성도는 중생한 영과 성령이 합작하여(협력하여)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육신의 부패성을 이기고 하나님을 순종한 것만큼 새 사람을 입어 나간다. 그러므로 우리 몸을 쳐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키는 일을 힘써야 한다. 바울은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는 일을 힘썼다(고전 9:27). 죄를 점점 벗어버리고 점점 깨끗하고 거룩하고 의롭게 만들어져 나가는 것이 몸의 구속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생명의 길을 걷는 성도는 탄식하면서 이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 고린도후서 5:4에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소망으로 구원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로마서 5:2-4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거기에 도달하기를 소망하던 성도가 환난과 인내를 통과하여(연단이 되어) 자격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이것이 구원 성취이다. 성도가 구원 완성을 소망하고, 그것을 목표로 하여 계속 구원을 이루어 나갈 때에 점점 구원이 이루어지게 된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성도의 소망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신령한 것이며 현세의 것이 아니고 내세의 것이다. 성도는 이 보이지 않는 고귀하고도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고 모든 환난과 고난을 참고 인내로써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4:17-18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다.

. 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도의 소망은 보이지 아니하는 것 즉 신령한 것과 내세의 영광스럽고 영원한 것이다. 성도가 이 소망을 바라보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하여 즐거움으로 달음박질하며 모든 고난을 참고 연단을 받아 나가는 것이다. 기독교 현실주의자들은 이 보이지 않는 소망보다 세상 주의로 기울어져서 현세의 것을 추구하고 육신이 잘 되며 평안하고 세상에서 잘사는 것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이며 참 소망이 아니다. 성도가 잠시 후에 없어질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보이지 않는 내세의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인내로써 그 소망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앞 절(23-25)에서 몸의 구속 성취와 소망에 도달하기 위하여 탄식하는 성도를 돕기 위하여 성령께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며 도와주신다. 성도가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탄식할 때에 성령께서도 같이 탄식하시며 협력해 주신다. 성도 자신은 연약하며 그 일(구원을 이루는 일)이 힘들고 어려우나 성령께서 도와주시므로 그 능력을 힘입어 이루어 나간다.

.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도가 연약하고 무지하여 갈 길도 알지 못하고 행할 능력도 없는 모든 사정을 성령께서 대신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여 주시고,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나가도록 감동시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성도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또한 그 성도를 붙들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원을 성취하려고 탄식하는 성령의 생각도 아신다. 성도가 성령과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그 일을 성취하도록 지혜와 진리와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는 것은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나가기를 위해서 기도하신다. 우리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이루어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여야 된다(마 26:42). 우리가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이 뜻대로 되기를 구하지 않고 우리 생각대로 육신의 욕심을 따라 구하는 것은 잘못된 기도이다. 자기 욕심과 자기 중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간구해야 한다.

에베소서 4:30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다. 성도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지 않고 자기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시키는 일이요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다. 또한 물질을 하나님께 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로 사용하지 못하면, 이것도 성령을 근심시키는 일이 된다. 언제나 우리는 기도와 성경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순종하며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바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 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이 성령이 성도를 붙드시고 기도하며 성취시키는 일이다.

.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을 자도 성도를 가리킨다. 율법주의자들은 종의 영을 받아 종의 처지에서 무서워하며 하나님을 섬기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양자의 영을 받아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을 사랑한다(15절 해석 참조). 그러므로 성도의 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또 여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을 지키는 자(믿음을 지키는 자)를 가리킨다(요일 5:3-4). 믿음을 지키는 자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 모든 것이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유익하고 된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같이 일한다는 뜻이다. 구역(舊譯) 성경에는 "합동하여 유익하게 된다"고 했다. 믿음 지키는 성도에게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합동하여 유익하게 된다. 각주(脚註)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해서 선을 이루어 나가신다. 성도가 무슨 일을 당할 때에 한 가지만 보거나 육신적인 면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것과 합하여 보고 영적인 면과 영원한 내세의 것을 합하여 보면 반드시 유익한 것이 된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애굽에 가서 종살이한 것과 보디발의 처에게 무고를 당하여 감옥에 갇힌 것과 술 감독에게 배신당한 것 등을 보면 손해가 된 것 같으나 바로의 꿈을 해석한 것과 총리 된 것을 합해놓고 보면 그것들이 큰 유익이었다. 욥이 시험받을 때에 재산이 하루에 다 없어지고 열 자녀가 하루아침에 다 죽고 몸에 악한 병이 들고 아내의 멸시를 받을 때는 유익이 없는 것 같으나 인격이 연단 된 것과 후에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시고 축복해 주신 것을 합하면 그 모든 것이 다 유익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손해 되는 것이나 유익 되지 않는 것, 복되지 않는 것을 주시지 않다. 믿음 지키는 성도에게는 전부가 다 유익 될 것이요, 복이 될 것이며 은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제일 좋은 것으로 성도에게 주신다. 한 사건만 볼 때는 잘못된 것 같고, 화를 만난 것 같고, 저주받은 것 같아 낙망할 수밖에 없으나 좀 더 지나서 다른 것들과 합해 놓고 보면 유익한 것이요 영적인 면과 내세까지 합하여 보면 전부가 다 큰 유익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의 시기와 가룟유다의 배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일만 생각하면 말할 수 없는 큰 불의를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 같았으나 구속 성취와 영광의 부활과 합하여 볼 때 얼마나 선을 이루었으며 얼마나 유익이 되었는가?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진리이다.

선을 이루느니라 선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뜻이다. 또 영적 구원이 된다는 뜻이다. 성도가 당하는 모든 것의 전체가 합력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고 영적 구원역사를 이루게 된다.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난을 많이 당하나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게 되고 회개하게 되며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서게 되어 영적으로 큰 유익을 보게 된다. 다윗은 시편 119:71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다. 고난 당할 때 하나님을 찾게 되고 자신의 잘못을 찾아 회개하고, 말씀에 바로 서게 되니 유익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어떤 것을 주어도 그것을 믿음으로 통과하여 감사하며 인내로써 자신의 구원성취와 하나님의 구원사업이 잘 되어 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또 현세의 환난이 내세의 영광을 이루고 육신의 환난과 고통이 영적 생명의 면류관을 만들어 나간다.

.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 이는 하나님이 알아주었다는 뜻이고 알아주었다는 것은 사랑했다는 뜻이다.

아모스 3:2에 여호와께서 땅의 모든 족속 중에 이스라엘 백성만 알았다고 하셨다. 그것은 모든 족속 중에 이스라엘 족속만 사랑했다는 뜻이다. 본절 에 미리 아신 자를 미리 정하셨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알아준 자 즉 사랑한 자를 예정했다는 뜻이고 예지 예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리 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예정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나서 예수를 믿을 것을 예지(豫知)하시고 택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자로 예정해 좋고 예지하신 것이다. 예지 예정이 아니고 예정 예지이다. 예지 예정이 잘못된 이유는 사람이 앞으로 태어나서 예수를 믿을 것을 하나님이 예지하고 그 사람을 택했다고 하는 것이므로 ① 하나님의 주권이 무시되고 ② 구원의 원인이 사람에게 있게 되고 ③ 하나님께서 사람을 따라온 것이 된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역사하시고 우리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므로 예정 예지(豫定豫知)가 분명하다. 예지는 예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정해져 있기 때문에 예지 할 수 있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은 것만큼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복을 받고 영광이 된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려면 교역자와 교인들이 함께 해산하는 수고를 하여야 한다(갈 4:19 참조).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그리스도께서 맏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많은 성도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아들이 될 때에 그리스도는 그 모든 아들 중에 맏아들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동생이라고 했다(요 20:17). ①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후에 믿음으로 양자 된 자들에 대하여 맏아들이다.

②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이기 때문에 다음에 부활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맏아들이다.

③ 그리스도는 구원완성의 첫 열매이기 때문에 후에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형제들에 대해서 맏아들이다.

.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정한 사람만 부르시고 부르심을 받은 자만 예수를 믿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는 다 예정된 자요 택한 백성이다. 자기 자신이 택한 백성인 것을 아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로 믿어지는 것이다(요일 5: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로 믿어지는 사람은 다 택한 백성인 것이다.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다(엡 2:8).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입혀서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다.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요한복음 17:22에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사죄와 칭의를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고 자녀의 권세와 영광을 주셨다. 또 미래의 큰 영광에 참예할 자격을 만들어 나가게 하신다.

三. 사랑 생활(31-39)

.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런즉 이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예정해 주시고, 불러주시고, 믿게 해 주시고, 의롭다 해 주시고, 영화롭게 해 주신 일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할 뿐이다. 여기에 대하여 우리가 감히 무슨 말을 할 처지가 못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면 우리를 대적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뜻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은혜로 주신 것인데 누가 대적하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역사를 막거나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대적할 자가 없는 이상 성도의 구원운동을 대적할 자가 절대 없다는 뜻이다. 우리 구원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정하시고 독생자를 보내어 구속하시고 전체 구원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나가시는 것이기 때문에 대적할 자가 없고, 하나님의 구원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며 반드시 승리하고 성공할 것이 확실하다.

.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내어 주셨는데 무엇을 아끼시겠는가!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끼지 않고 모두 주신다.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나라와 의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은사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성도의 구원사역을 위하여 필요할 때는 만물과 모든 사람과 모든 사건을 은사로 주신다. 고린도전서 3:23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것이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평안한 것과 부요한 것도 은사로 주시고, 환난과 고통도 은사로 주신다(빌 1:29). 성도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그것이 아들의 형상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롬 5:3-4, 8:18, 약 1:2-4). 환난과 고통이 그 자체는 쓴 것이요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인내와 연단을 이루어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은사로 그것들을 주신 줄 알고, 감사히 받아 믿음으로 참고 하나님을 의뢰하여 그의 능력으로 이겨 나가야 된다.

.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 믿음을 주셨고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사죄해 주었고, 그리스도의 의를 입혀서 의롭다고 선언하셨다. 최고 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성도를 의롭다고 하셨으므로 아무도 성도를 정죄할 수 없다. 국가에서도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하여 석방한 자는 아무도 정죄하지 못한다.

.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성도를 정죄할 자가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지시고 대신 죽으셨기 때문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의를 완전히 이루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우리에게 그 의를 입혀 의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③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그 공로를 가지고 중재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우편은 장소적으로 우편이라는 뜻이 아니고 요긴한 자리, 즉 능력을 행사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 영적 성장과 우리 몸의 구속과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나가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요긴한 자리에서 하나님께 기도해 주시며 그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주야로 지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를 누가 대적하거나 정죄하거나 생명의 역사를 중단시킬 자가 절대로 없을 것이 확실하다.

.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이 사랑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폭포수와 같이 쏟아 부어주시는 사랑이다. 사람의 사랑은 변하기 쉽고 중단되기 쉬우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이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고 끊어지지 않다. 이 사랑으로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늘영광을 내놓고 낮고 천한 이 땅 위에 찾아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셨고, 성령은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주님은 지금도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여 주시며, 보호해 주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궁극적 책임을 지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 같이 무한하며, 나이아가라 폭포수와 같이 내려 부어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무도 막을래야 막을 수 없고,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

요한일서 5:18에 악한 마귀도 손을 대지 못한다고 했다. 환난과 곤고, 핍박, 기근, 적신(벌거벗은 몸), 위험과 칼이라도 우리 성도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주후(主後) 2세기 경 서머나교회의 감독 폴리갑은 로마 정권의 박해를 받아 형장에 끌려가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을 당하기 직전에 로마 관리들이 예수님을 한번만 모른다고 하면 살려주겠다고 할 때에 "예수님은 나를 86년 동안 사랑하며 한번도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예수님을 한번이라도 모른다고 하리요"하고 순교 당했다고 한다. 폴리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깨닫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삼키어져서 말씀을 지키며 순교한 사람이다.

. 8: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시편 44:22를 인용한 말씀인데 구약시대 성도들도 많은 고난을 당하여 도살한 양같이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성도가 고난받는 것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상례(常例)이다. 이 구절의 말씀은 성도가 세상에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은 성도들이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으나 그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진 증거가 아니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증거이다(히 2:10). 그 모든 환난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여 영광의 상급을 주시려고 당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에 더욱 더 깊이 들어가게 하고, 성도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시 119:67,71).

.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모든 일은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과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다. 구역(舊譯) 성경에는 "이기고도 남는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무 커서 그 모든 것을 이기고도 남음이 있다.

.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내가 확신하노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에게 넘치고 있으므로 모든 것을 이길 것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이것은 인생 전체를 가리킨다. 죽음의 공포와 생의 애착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 오히려 생명도 버리며 죽음도 사양치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 끌려 주님만 따라 간다.

천사들이나 천사는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마귀)(엡 1:21; 6:12)가 있는데 선한 천사나 마귀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

권세자들 복음을 거역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세상 모든 권세자들 즉 개인의 권세와 국가의 권세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시간 전체를 가리킨다.

능력 세상과 우주에 있는 능력 전체를 가리킨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영광과 치욕, 존귀와 멸시, 순경(順境)과 역경(逆境), 번영과 쇠약, 높아짐과 낮아짐을 가리킨다.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

다른 아무 피조물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피조물 즉 피조물 전체를 가리킨다. 우주의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같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다.

고린도후서 5:14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했다. 그의 사랑이 우리를 강제로 끌고 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랑에 끌려서 나가는 것이다. 이 사랑에 끌려서 고생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고 모든 것을 단 마음으로 희생하고 생명까지 바치며 순교의 길로 나아간다. 마지못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참 순교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무 커서 그 사랑에 감격하여 단 마음으로 죽는 것이 참 순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자기 모든 것과 생명까지 다 희생하며 어디든지 그리스도만 따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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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9장

제 9 장 선택

(대 지)

一. 이스라엘을 위한 애통(1-5)

二.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ALE음과 선택으로 됨(6-13)

三.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14-18)

四. 하나님의 예정에 항거치 못함(19-23)

五. 택자만 구원 얻음(24-33)

(본문강해)

一. 이스라엘을 위한 애통(1-5)

. 9: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바울이 앞장에서 하나님이 구원운동의 절대적 승리를 언급하셨다. 그런데 본 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불신을 언급하고자 하기 때문에 본 장의 내용이 앞장의 내용과 모순된 것처럼 여겨질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9장에서 언급하는 내용이 거짓이 아니고 참말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거짓말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언제나 진실하게 사실 그대로 말하는 것이 가치가 있고 다른 사람도 인정하게 된다. 우리는 모든 사실을 가감이 없이 그대로 말해야 한다. 과장을 한다든지 사실보다 조금 어긋나게 말하는 것은 진실하지 못한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다. 그 당시에는 거짓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속지만 얼마 후에는 사실대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신용하지 않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들어서 바울이 자기민족을 위해 애통하였으니 민족주의자요 애국자라고 한다. 또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눈물 흘린 것을 보아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애국자라고 한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을 위해서 눈물 흘린 것도 그가 자기 민족을 위한 민족운동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예수님의 구원 운동은 민족적 차별이 없고 국경을 초월한다. 하나님은 어떤 민족은 더 사랑하고 어떤 민족은 조금 사랑하거나 국가에 따라 차등을 두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다 같이 사랑하고 공의대로 심판한다(마5:45). 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했다(딤전2:4).

고린도후서 7:10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다. 근심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요 다른 하나는 세상근심이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벧전 5:7).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영적 문제, 신앙 문제, 교회 문제, 구원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할 수 있을까 하고 근심하는 것이다. 이러한 근심은 회개함에 이르는 열매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열매를 맺게 한다. 바울의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 즉 형제, 골육, 친척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리스도께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애통하며 근심한 것이다. 예수님과 예레미야도 이러한 근심이었다. 이것은 민족주의나 애국심에 근거한 근심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민족이나 국자의 구별이 없고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은 민족이나 국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민족주의자였다면 왜 이방의 사도가 되었겠는가? 바울이 말하기를 참 이스라엘은 영적인 것이요 육적인 것이나 혈통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6-13, 2:28-29, 갈 3:7). 그러면 바울이 본 장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근심과 고통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해답은 4-5에 언급하였는데 즉 이스라엘에는 언약과 율법이 있고 예배와 약속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것은 오늘날 참된 교역자가 교회를 위하는 근심이나 애통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위하여 흘리신 눈물도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한 눈물이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신정 국가로서 교회라고 했다(행 7:38). 선지자들의 눈물은 신정 국가인 그 교회를 위한 눈물이었다. 신약 시대에는 자기 민족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이방인이요 이방인도 그리스도를 믿으면 형제가 된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증거하노니 양심은 선악을 판단하여 악을 금하고 선으로 인도하는 마음의 기관이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는 영혼이 죽었고 양심도 어두워졌으므로 양심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생한 영에게 사용되는 양심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고 진리를 받은 것만큼 하나님의 뜻을 찾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의 양심이 증거하는 것은 진실한 것이다.

.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은 자기 형제, 골육, 친척 즉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했다. 이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 즉 교회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데서 나온 말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저주받게 된 것을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끊어져 저주받게 된 것처럼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 증거이다. 우리가 교회를 진정으로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다. 교회의 어려운 문제는 자기가 당한 문제인 줄 알고 교회 일을 자기 일로 알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가운데 들어가야 참된 신앙이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고 교회를 위하여 친히 피 흘려주셨다. 바울이 예수님의 신앙과 심정을 본 받은 것이다. 우리 성도는 자기 집 짓는 것보다 예배당 짓는 것을 더중히 여겨야 하며, 교회에 대한 정성이 자기 집에 대한 정성보다 커야 된다. 또 교회가 부패하고 속화되면 자기가 그렇게 된 것처럼 안타까워하여야 한다. 교회 문제와 구원 운동에 대해서 무관심한 자는 그 마음이 믿음에서 떠난 것이고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고 교회가 타락되어 하나님과 그 말씀을 떠나는 것을 근심하며 안타까워하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김으로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진멸코자 하실 때에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기를 간구하면서 사해 주지 않으려면 주의 기록한 책에서 자기의 이름을 지워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출 32:32). 이름을 지워 달라고 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여 하나님에게서 끊어지게 된 것을 자기가 끊어진 것과 같이 생각한 데서 나온 기도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다. 생명책에 한번 기록된 이름은 다시 지울 수 없다. 창세 전에 한번 기록해 놓은 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범죄하면 지워버린다고 하신 뜻은 무엇인가? 성도의 믿음 지킨 행위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데 믿음을 잘 지키던 성도가 범죄하면 그 믿음 지킨 공력이 도말된다는 뜻이다.

. 9:4-5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본 절들은 바울이 골육, 친척 즉 이스라엘을 위하여 근심하며 고통한 이유를 보여줍니다. 바울의 고통은 민족주의나 애국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양자인 까닭이요 하나님의 영광과 메시야에 대한 언약(약속)과 율법과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특징들은 오늘날 교회에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오늘날 교회에 해당된다. 또 다음 6-7에 이스라엘에서 난 자가 다 이스라엘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고 한 것을 보아도 육적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영적 이스라엘 즉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자기 민족이라도 불신자는 이방인이요 이방인이라도 신자는 한 형제요 그리스도의 한 나라 백성이다(벧전 2:10).

二.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과 선택으로 됨(6-13)

. 9:6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바울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고통하고 근심한 것은 육적 이스라엘을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다시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것은 약속(말씀)을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않기 때문에 바울이 근심하고 고통하였으나 그들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언약이 폐하여 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수의 다과(多寡)를 무론하고 선택자가 있고 믿을 자가 있기 때문이다.

. 9: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해서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 즉 아브라함의 후사요 참 이스라엘 백성이다.

아브라함의 씨라는 뜻은 장차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나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참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참 이스라엘 백성이다(갈3:7, 16, 29).

. 9: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육신의 자녀는 아브라함이 육신을 따라 낳은 아들 이스마엘을 가리키는데 이 아들은 참 이스라엘이 아니다.

약속의 자녀 아브라함이 약속을 따라 낳은 이삭을 가리킨다. 이 이삭으로 말미암아 난 자라야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은 자가 참 이스라엘이요 영적 이스라엘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서 있는 교회가 참 교회이고 진리의 말씀에서 떠난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니다. 참 교회의 삼대 징표(三大徵表)는, 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고, ② 성례를 거행하고, ③ 권징(勸懲)을 부지런히 행하는 것(부패를 제거시키고 성결을 보장함)이다. 이상 세 가지가 있어야 참 교회이다. 참 교회는 반드시 말씀이 살아 역사하고 그로 말미암는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죽은 교회이다.

야고보서 2:17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다.

. 9: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은 창세기 18:10절의 인용이며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신 약속이다. 이삭은 이렇게 약속으로 낳은 아들이다.

. 9: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 하였는데

본 장에서 13절까지는 야곱과 에서에 대한 사실을 들어서 하나님의 선택원리를 설명한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인데 그가 이삭으로 말미암아 쌍동이를 잉태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 9:11-12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리브가가 쌍동이를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않고 복중에서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할 수 없을 때에 리브가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신 것을 보면 모든 것은 사람의 행위로 인하여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택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분명하다는 의미이다. 후에 그 쌍동이가 출생하니 큰 자는 형 에서요, 작은 자는 동생 야곱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장자의 명분과 축복은 동생 야곱이 받았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택했기 때문에 약속의 자녀가 되었고, 에서는 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속의 자녀가 되지 못했다.

. 9: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 구절의 말씀은 말라기 1:2-3의 인용인데 하나님이 야곱을 택했기 때문에 사랑하여 신령한 축복을 많이 해 주셨고 에서는 불택자이므로 신령한 축복에서 떠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사실로 보아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고 행위로 인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위로 보면 야곱이 에서보다 나은 것이 없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또 자기 장인의 양을 빼앗으려고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다 썼다. 그러나 에서는 자기 부모를 공경하려고 애를 많이 쓴 사람이다. 끝까지 부모를 모셨고 가나안 사람인 아내가 부모 공경을 잘하지 못하므로 부모 공경 잘하기 위해서 이스마엘 여자를 아내로 맞아 들었다. 이것을 보면 부모를 공경하는데 얼마나 힘을 많이 썼는지 알 수 있다. 또 자기 동생 야곱의 잘못을 용서해 준 것을 보아도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장자의 축복은 에서가 받지 못하고 야곱이 받았다. 이것이 곧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로 된 증거이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없고 오직 하나님께 감사할 것뿐이다.

三.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14-18)

. 9: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바울이 상술한 바 아무 조건과 이유 없이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않느냐 하는 반론이 나올 것을 예상하여 거기에 대한 답변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이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즉 하나님께 불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다음절부터 구약 성경을 들어서 증명하고 있다.

.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나 상태를 보아서 긍휼이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자유의지로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과도 같다는 뜻으로 출애굽기 33:19절을 인용한 것이다.

긍휼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인휼(仁恤)의 정을 베푸는 것으로 외부적인 면이다.

불쌍히 여김 내적인 동정심의 역사이다.

.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은 사람의 청원이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으로 말미암아 된다는 것을 다시 증거한다.

원함은 인간의 요구, 소원, 청원을 가리키고 달음박질은 인간의 노력과 행위를 가리킨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긍휼과 은혜를 베푸는 것은 하나님 혼자서 단독적인 역사로 행하시는 일이라는 뜻이다.

. 9: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앞의 두절(15-16절)에서는 택자에 대해 증거했으나 본 절에서는 불택자를 내신 일에 대해서 구약에서 바로의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이것은 출애굽기 9:16절의 인용인데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며 하나님이 하시는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게 하셨다. 그 때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바로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셨다. 또 다시 하나님이 바로를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까지 추격하게 하였고 하나님은 크신 능력으로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바로의 군대는 홍해에서 전멸시킴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고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퍼지게 했다.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고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강퍅한 바로도 필요했던 것이다.

"강퍅케 함"은 완고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잠언 16:4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셨다.

.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되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이 영광을 위한 계획과 당신을 계시하시는 목적이 있다.

四. 하나님의 예정에 항거치 못함(19-23)

. 9: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앞에서 말한 바 하나님께서 원하는 대로 바로와 같은 사람을 강퍅케 한다고 하면 하나님이 어찌 바로를 허물(책망)하시고 진노하시는가? 하나님이 강퍅케 하시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하고 당연히 반론이 나오게 될 것이다. 바울은 먼저 이 반론을 말하고 거기에 대하여 다음에서부터 답변을 하려는 것이다.

. 9: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이 사람아 윗절들에서 말한 택자와 불택자를 하나님이 내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또는 하나님께서 바로를 강퍅케 해 놓으시고 왜 바로를 책망하시고 심판하시는가?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답변을 해 주려고 한다.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인생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조물주인데 피조물은 조물주가 하는 일의 뜻을 다 알지도 못하고 차이가 너무 심하므로 감히 항거(抗拒)할 권리도 없고 실력도 없다는 의미이다.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말할 정도가 못된다는 것이다.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자의 계획과 목적을 다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지혜를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 피조물은 창조자가 하시는 대로 되는 것뿐이고, 아무 것도 말할 정도나 처지가 못된다.

.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를 가지고 필요에 따라 조금 떼어서 귀한 식기(食器)를 만들고, 또 조금 때어서 변기(便器)를 만들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변기(便器)가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들었는가? 하고 그의 불공평함을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귀히 쓰는 그릇과 천히 쓰는 그릇을 만든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필요에 따라 택한 백성도 내고 불택자도 낸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피조물은 항거(抗拒)할 수 없는 것이다. 항거하는 것은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동등으로 생각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을 비교할 때 너무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왜 이렇게 만들었는가 불공평하다는 말을 전혀 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 생일날 물고기나 닭을 잡아 반찬을 해서 생일 잔치를 해주었을 때 자기 아들은 생일이라고 즐거워하는 반면 닭과 물고기는 희생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자비하다든가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닭은 잡아먹으려고 길렀고 물고기도 잡아먹을 수 있는 것으로 전혀 잘못이 없고 따질만한 것도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사람과 물고기는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혹 자기 생일날 남의 아이를 잡아먹었다고 하면 그것은 문제가 되고 무자비하다고 할 것이고 불공평하다고 할 것이다. 사람이 걸어가다가 개미 한 마리를 밟아 죽였다거나 파리를 잡아 죽였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자비하다거나 불공평하다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도 창조자와 피조물의 차이인데 그 차이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깨달으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욥은 하나님 앞에 인생은 벌레와 같고 구더기와 같다고 했다(욥 25:5-6).

. 9: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본 절은 불택자의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한다. 불택자는 하나님이 그렇게 낸 것이 아니고 그들 스스로가 불순종하고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이 유기했다(버려 두었다)고 하는 학설이 있다. 이 학설은 하나님께 죄책을 안 돌리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학설도 답변하지 못할 점이 많다.

① 창세 전에 하나님이 왜 전인류를 다 택하지 않고 일부만 택했는가?

②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으려고 할 때나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할 때 하나님이 왜 막지 않았는가?

③ 가룟유다가 예수 팔 것을 구약에 왜 예언했는가? 하나님이 그것을 미리 알고 불택자로 정했다고 하면 택자도 예지예정이 되지 않는가? 예지예정은 하나님이 사람을 따라 온 것이요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④ 어린아이가 강이나 불이나 죽을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부모가 막지 않고 있다가 그 아이가 거기 들어가 죽었다면 부모에게 책임이 없겠는가? 막지 않은 것도 책임이 있다.

⑤ 바로 왕을 강퍅케 한 분은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는가(17-18). 그러므로 불택자도 하나님이 냈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죄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므로 털끝만큼도 어두움이 없기 때문이다(요일 1:5).

진노의 그릇 불택자는 불의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을 나타내시고자 진노의 그릇으로 내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와 진노의 하나님이신다. 하나님이 불택자를 내시고 강퍅케 하여 이용하시고(바로와 같이, 가룟유다와 같이) 노아 시대와 같이 큰 능력으로 심판하여 지옥에 보냄으로 세세토록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데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토기장이가 사람의 필요를 따라 천히 쓰는 그릇 즉 난로나 용광로의 도구들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과 같다. 또 사람이 어떤 나무로는 책상과 같은 가재도구를 만들고 다른 것은 장작으로 불을 때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사람에게 힐문하거나 불의하다고 운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무와 인간은 너무나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오래 참으시므로 관용하시고 불택자가 악을 행할 때에 당장에 멸망시키지 않고 심판 날까지 참고 기다리신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11:29-30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했다. 베드로전서 3:20에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고 했다.

. 9: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하리요

본 절은 택한 백성에 대한 설명이다.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긍휼의 그릇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의 풍성함을 나타내고 또 당신이 영광을 받기 위한 그릇이다. 하나님께서 택자와 불택자를 냈다. 택자는 곡식이고 불택자는 가라지라 했고(마 13:24-30), 택자는 양이고 불택자는 염소라 했다(마25:31-46). 택자와 불택자는 그 종류가 다르다. 염소가 양이 될 수 없고 가라지가 곡식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야곱은 택자이기 때문에 사랑하시고 에서는 불택자이므로 미워하셨다(13절). 택한 백성에게는 많은 긍휼을 베풀어 독생자를 주어서 구원하여 천국 영광의 자리로 데려감으로 세세토록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택자를 예정해 놓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세세토록 그 사람을 줄 대상자가 필요했고,

② 세세토록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자가 필요했고,

③ 하나님의 풍성한 영광을 나타낼 자가 필요했고,

④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창세 전에 택한 백성을 예정하신 것이다(엡1:4).

무슨 말하리요 하나님께서 택자와 불택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원한 목적 아래 당신을 위하여 내신 일에 대하여 피조물된 인간으로서는 아무 말할 권리가 없다는 뜻이다.

五. 택자만 구원 얻음(24-33)

. 9: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이 그릇은 우리니 택자는 "믿는 우리"라는 것이다.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부르심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세세토록 하나님의 사랑을 주며 그 사랑을 나타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할 복 받은 그릇이라는 뜻이다.

. 9:25-26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것은 호세아 2:23절과 1:10절의 인용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을 찾을 것을 가리키는데 바울은 이 원리대로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선택으로 된다는 것을 증거한다.

.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이 구절은 이사야 10:22절의 인용인데 육적(표면적) 유대인이 아무리 많아도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남은 자 즉 택함을 받은 자만 구원을 얻을 것을 증거한 것이다. 마태복음 7:21-23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했다.

. 9: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땅 위에서 완전히 이루시고 끝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신다고 했다(마 5:18).

. 9: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이것은 이사야 1:9의 인용이며 만군의 여호와께서 유대민족을 죄로 인하여 벌하실 때에 조금 남겨 놓았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같이 아주 전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택한 백성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씨를 남겨두었다는 말은 택한 백성을 남겨 두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다 구원받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택함 받은 자가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구원을 받는다고 앞에서 말하였으므로 택자가 이방인 중에도 있고 유대인 중에도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 9: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이방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몰랐으니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던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다.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자랑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모세의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의를 얻으려던 이스라엘 백성은 의를 못 얻었고 도리어 이방인이 의를 얻었기 때문이다.

. 9: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이스라엘은 의에 이르기 위하여 의에 이르는 법인 모세의 법을 열심히 좇아갔으나 종래 그것을 성취하지 못하셨다는 것이다.

의의 법은 모세의 율법이다.

법에 이르지 못하셨다는 것은 의의 법에 도달하지 못하셨다는 뜻이다.

. 9: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어찌 그러하뇨 의의 법을 쫓아간 이스라엘이 의를 얻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뇨 하는 말이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행위에 의지하여 자력으로 의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므로 그리스도에게 심판 받을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반대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 부딪혀 깨어지고 망한다. 그것은 계란으로 돌을 치면 계란이 깨어지는 것과 같다.

. 9: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본 절은 이사야 28:16절, 8:14절의 의역적(意譯的) 인용으로 그리스도가 믿지 않는 자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어 그 돌에 부딪히는 자는 깨어지고 거치는 자는 넘어진다는 것과 그들이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대적하다가 망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그리스도가 보배로운 산 돌이 되어(벧전2:4-5), 생명이 되고, 보배가 되고 만세반석이 되어 견고한 보호처가 된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한다. 다시 말하면 실패하지 않고 영원히 부끄러움 없이 영광 중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며 믿음을 지키는 자는 만세반석 안에 숨어 있으므로 원수 마귀가 손 못 대고(요일 5:18),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됨으로(롬 8:28), 무슨 일을 당하든지 구원을 이루어 언제나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고 영광에서 영광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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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0장

제 10 장 구원

(대 지)

一. 이스라엘의 열심(1-3)

二. 믿음으로 의와 구원을 얻음(4-12)

三. 구원에 이르는 순서(13-15)

四.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구원이 이방에 나감(16-21)

(본문강해)

一. 이스라엘의 열심(1-3)

. 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바울이 마음에 간절히 원하며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구원받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동족애 때문이 아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 기관이요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9:1-3해석 참조).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였으나 먼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갈망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6)"고 하셨다. 바울은 언제나 이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힘을 썼다(행 18:5,28:17- 28 참조)

.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있어서 구약의 의식과 규례와 율법의 세칙까지 지키며(마23:23 참조), 조상들의 유전까지 지키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막 7:3-5 참조). 그러나 그 열심은 바른 지식을 쫓아 한 것이 아니었다.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바로 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께 바로 하는 길(바른 지식)은 율법의 의식과 규례의 실체인 그리스도(골 2:16-17)를 믿는 것이다.

.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자기 힘으로 율법을 지켜서 의인이 되려고 열심을 내었다. 그러므로 도리어 하나님의 의를 더욱 복종치 않는 결과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의를 세우려는 열심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의 의에서 점점 멀리 떠나게 된 것이다. 바울도 믿기 전에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특심하여 성도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열심히 도리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열심이 도리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이 없는 열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큰 손해를 주고 자신도 손해를 보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믿는 자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많으나 바른 진리의 지식을 따르지 않고 신신학과 신비주의(감정주의)와 인본주의와 사업주의로 나가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잘못된 일에 열심을 내므로 점점 더 바른 진리에서 떠나게 되고, 또 다른 진리로 나가는 자들을 비방하고 핍박하게 된다. 신비주의자들은 열심으로 기도를 많이 하나 주관적 감정에서 나온 느낌이나 방언, 환상, 꿈, 자기 스스로 본 계시(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 겔 13:2, 17)를 성경처럼 귀히 여기고 따라간다. 그들은 또 그것들을 받기 위해서 열심으로 소란을 피워 사회에 많은 부덕을 끼치기도 한다. 신신학자들은 성경보다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을 더 중히 여기고 따라가는 일에 열심이다. 그리하여 사회 구원이나 사회 해방 운동을 하나님의 구원 운동인양 착각하고 그 일에 열심을 내어 폭동과 투쟁도 서슴치 않으므로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그런 일을 하고 있으나, 사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참진리를 거스리며, 참된 구원운동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먼저 바른 진리를 배워서 바른 진리의 지식을 따라가도록 열심을 내어야 한다.

二. 믿음으로 의와 구원을 얻음(4-12)

.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

바른 진리 지식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주기 위하여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주시고, 신구약 성경을 다 행하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어 주신 것을 마음으로 받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나가는 것이다.

율법의 마침 율법은 몽학 선생으로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갈 3:23-25). 그러므로 율법의 마침은 그리스도이다. "마침"이란 종국, 성취의 뜻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다 성취하셨다.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 율법의 본래의 사명이다.

. 10: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본 에서 10절까지는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얻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대조하여 논술한 것이다.

모세가 기록하되 레위기 18:5의 인용으로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 율법을 행함으로써 산다는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행하여 의를 이루어 그것으로 살려고 열심 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셨다. 왜냐하면 율법을 다 행한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2:10-11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했다.

. 10: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본 절과 7절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자기 의를 세우려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은 "의"이다.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신명기 30:12절의 인용으로서 구원의 도를 얻기 위하여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셔서 구원을 완성해 놓았으므로 그것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모셔다가 구원의 도를 받겠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셔서 우리 구속을 완성해 주셨으므로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늘에 올라가서 구원의 도(道)를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을 성취하여 주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니 옳치 않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어 놓으신 그 구속을 믿기만 하면 된다.

. 10: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구원의 도를 가져오려고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음부의 권세를 다 이기고 부활하여 우리 구원을 완성해 놓았으므로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구원의 도를 가져오려고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여 우리 구속을 완성하신 것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다시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이제는 누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기만 하면 의를 얻고 구원을 얻는다. 다시 말하면 자기 의를 세우려고 갈팡질팡(하늘에 올라가겠느냐 음부에 내려가겠느냐)하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믿기만 하면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 10: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의를 완성해 주셨고 또 부활로 음부의 권세를 다 이겨 주신 사실을 믿음으로 얻는 의를 말한다.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는 이 진리의 말씀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고 네가 이미 들은 것이요,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고 구원을 받게 되는 복음의 말씀을 가리킨다.

.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시며 이것은 신앙 고백(信仰告白)을 가리킨다. 예수를 입으로 증거하는 믿음이 산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생활을 할 때에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10절 참조).

.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는 것이다.

입으로 시인하여 신앙고백을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입으로 증거하는 것은 행위의 첫 걸음이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시인하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아서 곧 말라죽고 만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고백은 마음으로 믿는 그 믿음의 역사에서 나오는 시인(是認) 즉, 증거 생활을 가리킨다. 이런 성도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된다는 뜻이다. 마음으로 믿어서 그 말씀이 자기에게 의가 되었고 그 말씀을 증거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게 되면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이다.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성도가 죄악에서 점점 벗어져 나오고, 영이 점점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 인격에 점점 이루어져서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갈4:19, 롬13:14, 8:23). 성도가 이 세상에서 구원을 잘 이루어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가 처음 믿을 때는 신앙도 어리고, 영도 어려서 어린아이와 같다가 점점 자라나서 장성한 자와 같이 된다.

히브리서 5:13-14에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다. 에베소서 4:15에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했다. 마태복음 5:19에 말씀을 행하지 못하고 믿는 자는 천국에서 작은 자라 했고 말씀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라고 했다. 성도가 이 세상의 여러 가지 환난 속에서 말씀을 지키며 연단을 받아야 구원이 이루어지고 영이 자라난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진리에서 떠나 말씀을 지키지 못한 성도는 자라나지 못하여 어린아이와 같다. 일생 동안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 천국에 간 사도바울과 일생 동안 죄만 짓다가 죽을 때에 겨우 회개하고 믿고 천국에 간 사람과 같을 리가 없다. 만일 같다고 하면 세상에서 힘을 다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가고 믿음을 지킬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하늘 나라에 가면 세상에서 많이 자라나서 간 성도와 자라나지 못하고 간 성도 사이에 차이가 있고(마 5:19) 상급도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전심전력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기 사명을 다하고, 말씀을 지켜서 자라도록 힘써야 한다.

. 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것은 이사야 28:16절의 인용이며 로마서 9:33에서도 인용한 바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가 있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성도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절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한다.

.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하나님 앞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은 물론 어떤 민족도 차별이 없으며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는다.

三. 구원에 이르는 순서(13-15)

.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본절 에서부터 택자가 구원받는 방편과 순서를 언급하셨다. 하나님께서 택자가 구원받도록 택할 때에 그 방편까지 예정한 것이다. 그 구원의 첫째 방편은 그 사람이 주의 이름을 부르므로 구원을 얻게 예정하신 것이다.

.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구원 예정의 둘째 방편은 택한 백성에게 믿음을 주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그리고 셋째 방편은 택한 백성에게 복음을 듣게 예정하셨고 넷째 방편은 그 사람이 복음 전함을 받도록 예정하신 것이다.

.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구원의 다섯째 방편은 복음 전파하는 자를 그 사람에게 보내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이사야 52:7에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하신 말씀이 증거하고 있다. 이 좋은 소식은 복음을 가리킨다. 이상 언급한 택자의 구원 방편에 대하여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택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함에 있어서 그 택자에게 ① 전도자를 보내고 ② 전도자가 그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고 ③ 그 택자는 복음을 듣고 ④ 믿게 하여 ⑤ 그가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받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자는 구원받도록 예정했으니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것이고, 불택자는 복음을 아무리 들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므로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잘못된 말을 하는 자가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택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할 때에 구원의 방편으로 전도하는 것까지 예정하신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9:16에도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 했다. 불택자에게 전도하는 것은 심판 날에 증거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듣든지 아니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기를 항상 힘써야 한다(딤후 4:2). 성도는 누구나 전도의 사명을 다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이를 위하여 오셨다고 했다(막 1:38-39). 전도는 성도에게 주신 주님의 지상명령이요(마 28:19-20), 신자의 책임이다(롬 1:14). 전도하는 것은 전도하는 자 자신의 영적 성장의 비결이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의 실천이다. 이렇게 복음 운동에 참예하는 사람은 아주 아름다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며 그의 발걸음은 아름다운 발걸음이 된다.

四.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구원이 이방에 나감(16-21)

. 10:16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순종치 않고 거역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대로 되었다.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이것은 이사야 53:1의 인용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전하는 복음을 이스라엘이 순종치 않을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 예언대로 그 당시에도 믿지 않았고 예수님 당시나 그 후에도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반대하고 믿지 않았다.

.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난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은 곧 믿음을 받는 것이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있어도 바른 믿음이 되지 못한다. 말씀을 받아 마음으로 믿고 그 다음에는 그 말씀을 순종하여야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믿고, 그 말씀을 순종해야 온전한 믿음이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었으나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받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잘못된 길로 가게 된 것이다(2절). 신자에게 열심히 있다고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슨 선행을 하거나 교회 봉사를 잘한다고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바른 진리의 말씀을 받지 않고 열광적으로 떠들거나 예언하는 것은 일종의 샤머니즘(무당과 같음)이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오직 바른 진리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한 복음 진리의 말씀을 가리킨다. 신약 성경 전체가 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한 진리의 말씀이요 또 구약에도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진리가 중추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성경 안에는 무궁무진한 진리가 감추어져 있다(요 21:25, 마 13:52 참조).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많이 연구하고 배워서 진리를 많이 깨달아 진리(말씀)에 입각한 신앙을 가져야 된다. 성도가 진리의 말씀을 많이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고 했다(딤후 3:14). 어떤 사람은 "다 행하지도 못하는데 진리를 배우기만 하면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진리를 마음으로 받아 믿는 것이 "의"이기 때문에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믿은 것은 이미 그에게 의가 되어 있다. 또한 그 진리를 받은 사람이 그대로 행하지 못할 때에 항상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성령께서 그대로 행하도록 감동하며 인도하시기 때문에 나중에는 회개에 이르게 될 것이다. 배우지 못한 자는 행하지 못해도 양심에 가책이 없고 그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는 성령의 인도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령은 대언자요(요 14:16), 진리 가운데로 역사하는 영이기 때문이다(요 16:13 참조). 그러므로 진리를 받지 못한 자는 그만큼 회개하지 못하고 바로 설 수도 없다. 호세아 4: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라고 했다.

. 10: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앞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셨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믿지 않은 것은 듣지 못한 때문인가?"하는 질문을 하고 거기에 대한 답변은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다음에 언급한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렀도다 이 말씀은 시편 19:4의 인용인데 자연계가 무언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널리 전파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여러 선지자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을 듣게 하였고 사도들과 전도자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까지 복음의 말씀을 전파했다.

. 10: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 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앞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온 땅에 펴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도 그 말씀을 들었고 알고 있으나 그 말씀과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신명기 32:21의 인용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공경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보고 시기 나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다(11:11-14 참조). 이것은 마치 어떤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불순종할 때 남의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면 자기 아이가 시기 나서 돌아오게 하는 것과 같다.

. 10:20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이 말씀은 이사야 65:1절의 인용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났으므로 본래부터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찾지 않던 이방 사람에게 구원의 복음이 나가게 될 것을 가리킨다. "구하지 아니하는 자,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는 이방사람들을 가리킨다. 신약 시대에 그 말씀이 이루어져서 구원이 이방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 10:21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치 않고 거스려 말하셨다. 그러나 이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는 이사야 65:2절의 인용인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고 하신 말씀이 증거한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불순종하고 거스려 말하고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아오라고 종일 팔을 벌리고 권면하면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불신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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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로마서 11장

제 11 장 이스라엘

(대 지)

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음(1-6)

二.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므로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나감(7-12)

三. 이방 신자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자랑하지 못함(13-24)

四. 이방인의 수가 차면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음(25-32)

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측량할 자 없음(33-36)

(본문강해)

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음(1-6)

.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앞장 19-20에 이스라엘이 순종치 않으므로 구원이 이방으로 나갔다고 하였으므로, "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신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거기에 대하여 "그럴 수 없느니라"고 답변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 증거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라고 하셨다. 바울은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베냐민 지파인데 하나님께서 바울을 버리지 않고 택하신 것을 보아서 이스라엘을 다 버리지 아니하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 11: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미리 아셨다"는 것은 "사랑했다"는 뜻이다. 아모스 3:2에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라고 했다. 이것은 "모든 족속 중에 이스라엘만 사랑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사랑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그것은 엘리야가 하나님께 송사 할 때에 하나님이 답변하신 내용이 증거하고 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송사한 것과 하나님의 답변은 다음 두에 나타났다(3-4절 참조).

. 11: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아합 왕의 핍박 때, 모든 선지자가 다 죽임을 당하고 엘리야 혼자만 남은 줄 알고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라고 하셨다. 아합 왕도 이스라엘의 모든 선자자를 다 죽인 줄 알고 하나 남은 엘리야를 죽이려고 사방으로 찾은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답변이 나타났는데 그 내용은 다음에 있다(4절 참조).

. 11:4-5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 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호소(3절)에 대하여 답변하시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 천을 남겨두었다"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는 증거이다. 핍박과 환난이 극심하여 모든 선지자가 죽임을 당하고, 모든 백성이 믿음에서 떠난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믿음을 지킨 칠 천인을 남겨두신 것이다. 사람 보기에는 하나님이 버린 것 같고, 다 죽은 것 같으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참 성도와 선지자들을 숨겨두고 보호하여 두신 것이다. 이와 같이 어느 시대나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남겨두시는 것이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국가나 악한 왕이 일어나서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잡아죽일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지킨 자기 성도를 남겨두시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세속화되어 가고 신신학과 신비주의로 기울어져서 진리의 빛이 가리워지고 진리의 기근이 심한 시대이지만 하나님은 성경대로 믿고 말씀대로 신앙의 길을 걸어나가는 자들을 많이 숨겨두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지키며 바른 말씀을 세워나가려고 힘쓰는 사람을 계속하여 일어나도록 해 주실 것이다. 이세벨과 같이 종교적인 탄압을 하고 선지자들을 다 잡아죽이고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시대에도 엘리야는 믿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 천명이 남아 있었다. 바른 신앙을 지키려는 자를 그 신앙대로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의 팔로 보호하셔서 믿음을 지키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에는 안될 것 같아도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시고, 그 계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가 이기게 되고 진리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엘리야 당시에는 네 종류의 성도가 나타났다.

① 적극적으로 나서서 거짓 선지자와 싸우고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고 백성을 바른 대로 인도한 엘리야가 있었다.

② 순교자가 있었다. 많은 선지자와 성도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순교를 당했다.

③ 핍박이 두려워 바알에게 무릎을 꿇은 자도 많이 있었다.

④ 숨어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개인 신앙을 지킨 성도와 선지자가 칠 천명이나 있었다(왕상 19:18). 이 네 종류 중에 어느 종류의 성도가 제일 많겠는가? 신앙을 양보하고 바알에게 무릎을 꿇은 사람이 제일 많았을 것 같다. 그 다음에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숨어서 믿음 지킨 자인데 이런 성도는 칠 천명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순교 당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끝까지 진리를 사수하며 왕과 이세벨과 거짓 선지자와 싸우며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증거한 엘리야는 한 사람뿐이었다. 이런 자의 수는 극소수이다. 일정 말기(日政末期)에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에 한국에서 일본 정부와 싸우며 진리를 증거하다가 옥중에서 신앙으로 승리한 자가 소수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도나 선지자를 가장 기뻐하신다. 그 다음으로는 순교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순교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특별 반열에 참예한다. 셋째 번으로 하나님이 기뻐한 성도는 숨어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자기 신앙이나 지키는 성도이다. 이런 성도는 진리를 밝히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도 못하고 거짓 선지자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백성을 바른 데로 인도하지도 못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신앙 지킨 것은 잘했지만 소극적이고 자기 신앙이나 겨우 지키고 신앙의 빛을 비추어 내보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적극적으로 마귀의 세력을 대항하여 싸우고 정복해 나가고 진리의 빛을 밝히고 어두운데 있는 백성에게 빛을 비취어 주고 하나님께로 인도하셨다. 엘리야의 한 일이 굉장히 크다. 하나님 앞에 가면 상급이 대단히 클 것이다. 또 순교 당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면 순교자의 특별한 보좌에 앉게 되고 상급이 크다. 순교자는 죽어도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한다고 했다.

히브리서 11:4에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했다. 예수 믿는 사람의 대목장은 순교 당하는 날이다. 대목장이란 장사꾼이 연말에 물건을 제일 많이 팔아 이익을 많이 남기는 때이다. 일년 내내 장사가 잘 안되어도 대목장만 잘 보면 그 동안 손해를 보충하고도 남는다. 그와 같이 성도가 순교 당하는 것은 대목장을 잘 보는 것과 같다. 만일 스데반이 순교 당해야 할 때 죽음이 두려워 신앙을 양보하고 몇 십 년 더 살았다고 하면 순교 당함으로 받는 영광과 상급은 다 잃어버렸을 것이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주를 위해 순교를 당하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워져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므로 참으로 큰 영광과 면류관이 있다(고후 5:4 참조). 우리는 순교 당할 시기가 올 때에 기쁘고 즐거움으로 순교할 수 있도록 믿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육신의 생명을 좀 더 연장하려고 신앙을 양보한다면 그 삶이 욕된 생활이다. 일정시(日政時) 순교를 당한 박관준 장로는 時來 死不死면 生樂이 不如死라 花落에 結成實하고 人死에 人天國이라(죽을 때가 왔는데 죽지 아니하면 살아 즐거워하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고 꽃은 떨어져야 열매를 맺고 사람은 죽어야 천국에 가느니라)는 시를 지어 읊었다고 한다. 신앙 지키다가 죽는 것은 도리어 그 영혼이 사는 것이요 죽어도 진리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며 하늘나라에 가서 큰 영광과 상급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양보하고, 신앙을 지키지 못하며 사는 자는 신앙을 양보하는 그 시간부터 영적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고 영적 흑암을 만나 마귀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저주 아래 들어간다. 그 사람은 다른 성도에게도 손해를 주고 자기 자손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게 만든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이나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택하셔서 그러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엘리야는 생명을 내놓고 거짓 선지자와 싸우면서 진리를 증거했고 숨어 있는 칠 천명도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 바알 우상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는데 왜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은혜로 말미암았다고 했는가? 그 이유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그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이다. 말씀을 지킬 신앙을 하나님께서 주셨고(엡 2:8 참조), 생명을 내놓고 그 말씀을 지킬 힘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다. 승리적 신앙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니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것 뿐이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만 자랑해야 한다.

二.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므로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나감 (7-12)

. 11: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의 행위로 구원 얻기를 구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의를 얻지 못하고, 구원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에 이르게 되었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 누구나 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택한 자만 믿을 수 있다(행 13:48).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남은 자는 이스라엘 백성 중 택함을 받지 못한 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완악하여졌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의와 구원을 얻으려고 힘썼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능을 깨닫고 자기가 깨어진 다음에야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힘쓰면 하나님의 의에서 멀어지고 마음이 완악하여진다.

. 11:8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들은 이사야 29:10절, 신명기 29:4절의 뜻을 인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신 것은 저들이 불택자인 까닭이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신령한 은혜를 주시지 않은 까닭이다. 불택자는 구원받을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진로의 그릇이다(9:20-23). 그러므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 11:9-10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이 구절들은 시편 69:22-23절의 뜻을 따라 인용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윗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언(代言)한 것이다.

밥상은 성찬상과 같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삿상 즉 종교적 의식, 예배 의식, 종교 사업 등을 가리킨다. 교만한 자는 외부적인 제도와 종교의식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영적 식탁 즉 신령한 양식은 찾지 않다. 그러므로 자기 밥상 즉 그들의 종교적 의식과 제도와 사업주의가 올무와 덫과 거리끼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2-23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라고 했다.

.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가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넘어짐은 엎드러진 것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위치에서 떨어져 나감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졌으나 아주 타락하여 멸망하는 데까지 나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1-4절의 내용대로 부분적으로 버림받은 것이고 전체가 버림받은 것이 아니며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 넘어져서 구원이 이방에 나갔다가 나중에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겠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에 나가게 되었다(행 13:4-6, 18:6, 28:25-28).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배척한 것이 이방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방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이 시기가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시기 이 시기는 악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구원에 대하여 나보다 부요(富饒)한 것을 보고 부러워하는 마음이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믿지 않으므로 그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나가게 되고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시기가 나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떠나서 제 마음대로 행동하며 어머니가 불러도 오지 않을 때에 그 어머니가 남의 아이를 안아주면 그 아이가 시기가 나서 자기 어머니를 빨리 찾아와 안기우는 것과 같다.

. 11: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 넘어지고 실패했으나 그로 인하여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믿고 부요하게 되었다.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이스라엘이 넘어졌기 때문에 구원이 이방인에게 나가서 부요함이 되었다고 하면 본래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얼마나 더 충만했겠느냐하는 의미이다. 넘어질 때에 쏟아져 흩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가진 사람이 부요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 본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이야 얼마나 더 부요하겠는가?

三. 이방신자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자랑하지 못함(13-24)

. 11:13-14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게 되었다(행 13:4-6, 18:6, 28:25-28).

바울이 이방의 사도가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면서 이방인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셨다. 거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 이방인을 구원하려는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을 시기 나게 해서 아무쪼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젖 먹는 아이가 어머니를 떠나서 달아날 때에 그 어머니가 다른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면 자기 아이가 시기가 나서 돌아오는 것과 같다.

내 골육은 바울의 골육 곧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 11: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이스라엘이 믿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내버렸고 복음이 이방으로 가서 세상 사람들이 그 복음을 믿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시기가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는 이스라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과 같을 것이다. 하나님을 떠날 때 죽고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과 연합될 때 산다.

.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 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민수기 15:20에 보면 그 해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로 만든 떡을 하나님께 바쳐서 그 해 모든 수확을 하나님께 다 바친 것으로 대표하게 했다. 본 절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는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의미한다. 떡덩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의미하고 뿌리는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의미하며 가지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같은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 거룩하였으니 그 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도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 족장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렸는데 하나님 앞에 드려진 것은 다 거룩하다. 그러므로 그 뿌리에서 난 이스라엘 자손들도 당연히 거룩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거룩하다는 말이 아니고 그들이 마침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다는 뜻이다. 조상들이 좋은 신앙을 가지면 그 자손들이 그 신앙을 본 받게 된다. 또 일시적으로 타락되어 불순종하는 자식들이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자기 조상의 신앙을 본 받아 잘 믿게 되는 사람이 많다. 야곱이 거짓말로 아버지를 속였고, 형의 배고픈 약점을 이용하여 장자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샀으며 그 결과 밧단아람으로 도망가서 20년간 타락생활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브라함과 자기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셔서 축복해준 줄 믿고(창 31:42), 그 하나님께로 돌아 왔다. 야곱이 자기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긴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이것은 보통 접붙이는 원리와 반대이다. 세상 농부는 참감람나무 가지를 돌감람나무에 접붙여서 참감람나무 열매가 맺히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돌감람나무 가지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서 참감람나무 열매를 맺히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나쁜 가지에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고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마 3:9). 참감람나무는 유대인을 가리키고 돌감람나무는 이방인을 가리킨다. 유대인이 믿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은 돌감람나무 같은 이방인을 불러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셨다. 참감람나무의 근본은 이스라엘에게 언약했던 그리스도이다. 유대인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므로 그 나무에서 꺾여져 나갔고 이방인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얻어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액을 받아 신앙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된 것이다.

. 11: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유대인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졌고, 이방인은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아 은혜와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방인이 유대인을 행하여 자랑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네가 뿌리를 보전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 뜻은 그리스도의 언약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가지고 있었고 그리스도의 구원운동은 유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 11:19-21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게 되어 이방이 믿게 되었다는 뜻이다.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믿지 않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난 것을 가리킨다.

나로 접붙임을 받게 이방인이 믿고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아 구원받게 된 것을 가리킨다. 이에 대하여 이방인이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여야 한다(20절). 그 이유는 하나님이 원 가지(이스라엘 사람)도 아끼지 않고 꺾었은즉 이방인도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아끼지 않고 꺾을 것이기 때문이다(21절). 그러므로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빌 2:12).

. 11: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하나님은 인자와 엄위의 양면이 있다. 인자는 사랑과 친절한 행위이며 엄위는 공의대로 처벌하는 엄격한 성품이신다.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인자로 대하시고, 불순종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엄위로 대하신다.

넘어지는 자는 불신앙으로 넘어지는 자를 말한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대로 심판하여 엄위를 나타내신다.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산 믿음에 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산 믿음에 거하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 거기에도 하나님의 인자가 한량없이 임하여 있다.

베드로전서 2:3에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했다. 성도가 생명 있는 산 믿음에 거하면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와 평강과 권고와 안식과 즐거움과 보호와 능력을 맛보게 된다. 이것이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것이다. 이것을 맛본 성도는 항상 그 산 믿음의 자리를 떠나지 않아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하나님의 처음 사랑에 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겨 버린다고 했다. 이 산 믿음에 거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엄위가 나타나서 무서운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 11:23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저희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하나님께 꺾이운 바 된 이스라엘 백성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접붙임이 된다는 것이다. 버림받은 이스라엘을 다시 접붙일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 11: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이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거든 하물며 원래 참감람나무 가지인 이스라엘이야 얼마나 잘 접붙임을 받겠는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더욱 잘 영접해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잃었던 한 마리 양을 찾았을 때 더욱 즐거워하신다(눅15:3-6). 오늘날에도 타락한 신자가 돌아올 때에 하나님은 이렇게 기뻐하시며 더욱 친절하게 영접해주신다.

四. 이방인의 수가 차면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음(25-32)

.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신자들이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고 인간이 생각과 판단으로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들어서 말한 것이다. 그 오묘한 하나님의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의 자리에 들어오기 가지 이스라엘은 완악하여 그리스도를 믿지 않다가 이방인의 수가 찰 때에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지식에 뛰어난 역사로 구원운동을 성공시켜 나가신다.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문이 열린 때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을 이루신 후부터 오늘날까지 약 2천년동안 유대에는 구원의 문이 닫혀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세계 각처로 흩어져 핍박을 받고 유리방황하며, 고아와 같이 외롭게 지내며, 세계 모든 민족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하며 많은 환난과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 그 동안에 이방에 복음의 문이 열려 본래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받아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위로부터 내리시는 신령한 복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말세에는 유대교회 말년같이 세계 기독교가 속화되고, 의식주의, 물질주의, 사업주의, 인본주의 세상주의로 기울어지므로 하나님이 적기독세력을 보내서 이방교회를 크게 핍박하여 복음의 문이 닫히게 할 것이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다시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대비밀(一大秘密)이다.

. 11:26-27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전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을 확신하고 그 증거로서 구약 이사야 59:20-21,27:9절을 인용했다. 그 성구에 야곱, 즉 이스라엘의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킬 것과 저의 죄를 제하여 주겠다고 했으니 마침내 그 언약이 이루어져 전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키고 야곱은 전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 11:28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원수가 되었으나 본래부터 사랑을 입을 자이다. 이스라엘은 복음을 거역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원수가 되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이다.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는 것은 택하심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조상 적부터 택한 백성이다. 조상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죄로 인하여 여러 번 멸망하게 되었으나 멸망치 않고 보존된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그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 때문에 나중에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일단 택하시고 부르시고 은사를 주신 이상 사람이 잘못한다고 해서 후회하거나 취소하는 법이 절대로 없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택함 받은 자들은 최종에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 11:30-31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방인이 전에는 하나님을 순종치 않았으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게 되었고, 이방인이 그 복음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되었다. 지금 순종치 않는 이스라엘도 이것을 보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로 돌아와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여기 모든 사람은 이스라엘과 이방을 다 가리킨다. 처음엔 이방이 순종치 않았고 하나님 없이 살았고,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순종치 않고 복음을 거역했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순종치 않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 이스라엘이 교만하여 복음을 거역하므로 그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 이방이 믿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방이 믿음을 지켜 복 받는 것을 이스라엘이 보고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느 시대나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겨 복 받은 성도가 교만하여 믿음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징계하여 많은 환난과 고통 중에 버려 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복음을 다른 사람 즉 가난하고 비천한 자에게 전하여 그들이 큰복을 받게 하신다. 비천한 자가 믿음을 지켜 복 받는 것을 보고 교만하여 징계 받던 성도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된다. 비천하던 자가 하나님께 복 받은 후에 다시 교만하여져서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들도 역시 징계하고 내어 버려 많은 환난과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 그 때에 그들이 깨닫고 겸손히 회개하여 다시 믿음을 찾고 순종하면 마침내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측량할 자 없음(33-36)

.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하나님께서 이방과 이스라엘의 구원계획에 대한 지혜와 지식이 너무 부요하여 측량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복음을 믿지 않고 불순종할 때에 내에 버려두고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여 이방인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것과 그것을 보고 이스라엘이 시기가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복음을 믿고 순종하여 긍휼을 입도록 하신 것이다. 이 하나님의 구원 설계는 너무 깊고 오묘하여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기 전에는 사람이 헤아릴 수도 없고 그 길을 찾을 수도 없다.

.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하나님의 오묘한 구원섭리에 대하여 미리 그 마음을 안 자도 없고 그의 모사(謀士)가 되어 같이 의논한 사람도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설계하셨고 당신의 원하시는 대로만 하신 것이다.

.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먼저 드렸거나 무슨 공로를 세워서 거기에 대한 보수(報酬)나 보상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기로 설계하신 것이 아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크신 긍휼을 베풀어서 구원설계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설계에 있어서는 인간의 공로나 인간의 의견이 털끝만큼도 참고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을 바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바치는 것뿐이다(대상29:14).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먼저 주셨으니 바치는 것뿐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엿을 사다 주었는데 그 아들이 엿을 먹다가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께 드릴 생각이 나서 침이 묻고 코가 묻은 엿을 조금 떼어 아버지에게 드리면 아버지가 기뻐서 그것을 받아먹는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인데(대상 29:14),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신다.

.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 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앞에서(30-35)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너무 깊어서 사람은 가히 측량할 수도 없고 주의 마음을 알 수도 없다고 했는데 본 절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계획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주로 말미암고 만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배와 섭리에 의하여 성취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만물의 원어 (타 판타)는 모든 것을 뜻한다.

주께로 돌아감이라 하나님께서는 만물과 모든 것의 결말을 지으시는 분이시고 당신을 위하여 사용하시는 분이신다.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구원도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하나님이 성취해 나가시고 하나님이 완성하셔서 당신의 영광을 세세에 나타내실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을 측량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다른 것에게 빼앗기지 아니하신다(사 48:11). 마귀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다 이기시고 당신의 계획하신 대로 모든 것을 성취하셔서 반드시 영광을 받으시고야 말 것이다. 영광은 오직 그에게만 세세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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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

제 12 장 산 제사

(대 지)

一. 산 제사를 드리라 (1-2)

二. 각자의 본분을 지키라(各守本分) (3-8)

三. 악은 미워하고 형제는 사랑하라 (9-13)

四. 선으로써 악을 이기라(以善勝惡) (14-21)

(본문강해)

一. 산 제사를 드리라(1-2)

.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교리적 부분 전체를 두고 하는 말인데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의 그릇으로 택하여 주시고, 불러 주시고, 하나님의 의를 입혀 주시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영혼이 중생하고, 새 생명을 받아 양자가 되게 하셨으므로 성도가 어떻게 하여야 되겠는가 하는 뜻이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우리의 구원은 행함으로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은혜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므로 성도는 항상 그 은혜에 감격하여 그 사랑 안에서 권면을 받아 모든 믿는 일을 하여야 한다(고후 5:14).

너희 몸을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이므로(고전 6:19) 몸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몸으로 제사를 드리고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여기 몸은 육신적인 몸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성령과 중생한 영에게 이용된 마음과 몸을 가리킨다(살전 5:23).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과 마음을 드리지 않는 물질(육신)만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사 29:13).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몸으로 산 제사 드리기를 원하고 계신다.

산 제사로 드리라 산 제사는 생명적인 제사요 영이 새롭게 살아나고 자라나는 제사요 그리스도의 생명에 더욱 참예하는 제사이다. 제사에는 산 제사와 죽은 제사가 있다. 가인의 제사는 죽은 제사요 아벨의 제사는 산 제사였다. 아벨은 그 아버지 아담에게서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는 희생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그 말씀대로 양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셨고, 가인은 그 말씀대로 하지 않고 농작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산 제사의 첫째 요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아무리 값진 제물을 많이 바치고, 굉장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해도 성경에 맞지 않는 제사는 죽은 제사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제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바로 배워서 그 진리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산 제사의 또 한가지 요건은 영적으로 드리는 것이다. 본 절 하반부에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4:24에도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했다.

이사야 1:13에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했다. 이사야시대 사람들이 양이나 소의 피를 가지고 제사 드림으로 성경에는 맞는 제사를 드렸으나 그 피가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통이 없이 의식적으로만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 것이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성경에 맞는 예배를 드려야 되고, 또 영적으로 드려야 참 예배가 된다. 산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죽은 제사는 기뻐하지 않으시고, 받지도 않으신다.

.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산 제사를 드리려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이 세대"란 진리에 맞지 않는 모든 세상적인 생활 상태를 가리킨다. 이 세대를 가리켜 빌립보서 2:15에는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라고 했으며 마태복음 16:4에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했고 사도행전 2:40에는 "패역한 세대"라고 했다.

요한일서 2:16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쫓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세대를 본받는 자는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릴 수 없다. 바울은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셨다(갈 6:14). 바울은 세상을 십자가에 못박고 십자가만 바라보고, 자랑하며 달음박질한 것이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이상근 목사는 "마음(νο ζ)은 영(πνε μα)과는 달리 선악의 분별력·사고력들을 표시한다"고 하셨다. 마음은 영에 속한 것이 아니고 영과 별개의 기관인데 영이 사용하는 기관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새로운 결심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중생한 영으로 살아야 한다. 또 진리와 영감으로 영적 새 생명의 역사가 있을 때에 마음이 새로워진다. 영의 새로운 역사가 마음에 이루어질 때에 마음이 새롭게 되고 그 영으로 진리의 역사가 있을 때에 마음이 더욱 새로워진다. 데살로니가전서 5:19-20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라고 했다. 이것을 멸시하는 자는 마음이 새로워 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영감과 예언의 말씀(진리)을 따라서 날마다 마음이 새로워지며 그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가 된다.

변화를 받아 이것은 근본적이고 내부적인 변화를 가리킨다. 성도의 변화는 심령으로부터 변화를 받아 전인격과 외부적 생활에까지 변화가 일어나야 된다. 그리고 모든 면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성도가 마음이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은 후에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 성도가 이 세대를 본받으면 마음이 새로워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치 못한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다는 의미이다.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그대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고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된다.

온전하신 뜻 하나님의 뜻은 절대 완전하기 때문에 털끝 만한 결함도 없으시고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다. 성도가 그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찾아서 그대로 걸어가야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점점 닮아가게 된다(마 5:48).

분별하라 원어 (도키마조)는 시험하여 갈라놓는 다는 뜻인데 우리는 참진리와 비진리를 시험하여 갈라놓고 비진리는 떠나고 참진리를 따라가야 된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에서 찾아야 된다.

둘째, 신앙 양심에서 찾아야 된다.

셋째, 성령의 감동으로 찾아야 된다.

넷째,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된다.

이상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바로 인도할 수 있는 신앙의 선배에게 문의하여서 찾을 수 있다. 성도는 범사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잘 찾아서 옳은 것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되 희생을 각오하고 몸을 바쳐 나가야 된다.

二. 각자의 본분을 지키라(3-8)

.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바울이 큰 은혜를 받았고 바른 진리를 깨달았으므로 사도의 권위로서 권면하는 것이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모든 성도는 교회 생활에 있어서 자기 분량과 직무와 위치를 바로 알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 된다.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것은 교만이며 교만한 자는 망한다(잠 18:12). 성도가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데 처해야 한다. 예수님은 낮아져서 겸손하였고 섬기는 자리에 있었다(마 20:25-28). 시편 131:1에 다윗은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셨다. 높은데 뜻을 두고 큰 일하겠다는 생각은 욕심에서 나온 것이요, 허영심이며 교만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영적 신앙의 자리에서 떠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 은사는 자기가 원해서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서 주권적으로 나눠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각 성도가 은사도 다르고 직임도 다르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사와 분량을 바로 깨달아 그 일에만 충성하고 전체에 대한 일비지역(一臂之力)을 감당하여야 한다. 이것이 지혜 있는 성도이다. 이에서 지나친 생각은 교만이요 마귀의 시험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눠주신 목적은 모든 성도가 서로 협력하고 봉사하여 교회가 장성해 나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 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바울이 교회에 대한 성도 각 사람을 몸의 지체에 비유하셨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다 같은 것이 아니고 맡은 바 직임도 다르다. 여러 지체가 다 귀하고 그 모든 지체가 몸을 위하여 다 필요하다.

고린도전서 12:22-24에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오히려 요긴하고, 덜 귀히 여기는 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도록 하여 몸을 고르게 한다고 하셨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있어서도 필요 없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될 점은 몸이 지체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지체가 몸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즉 성도 각자가 전체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교회를 위하여 겸손히 자기 분량을 잘 감당하여 몸을 세우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감당할 만한 사명과 은사를 주셨다. 만일 한 지체가 자기 할 일을 감당하지 못하면 몸이 병이 나거나 불구자가 된다. 또 한 지체가 자기 할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지체의 일을 하려고 하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몸에 이상이 생긴다. 그러므로 각 지체가 자기 할 일만 하고, 서로 협력하여 몸을 세워나가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교회에서도 각 성도가 지기 할 일만 하고 협력하고 희생하여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

.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은사가 각각 다르니 은사의 원어 (카리스마)는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는 뜻이다. 이 은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인데 각 자에게 다르게 주셨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을 가리킨다.

디모데전서 1:18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라고 하였는데, 이 예언은 성경 말씀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1:3에 말한 예언도 성경 말씀을 가리킨다.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은 자신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예언한다고 하여 사람의 앞일을 점치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것은 자주 잘못된 것이다. 신구약 성경만이 유일한 예언의 말씀이다. 이 외에 더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한 재앙을 받는다고 했다(계 22:18-19). 어떤 사람이 예언한 대로 맞았다고 해도 그것을 따라가서는 안된다(신 13:1-3 참조).

믿음의 분수대로 믿음에 맞추어서 하라는 뜻인데 예언, 즉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믿음으로 하라는 것이요, 신앙 교리(敎理)에 맞추어서 하라는 것이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라는 것이다.

.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낮아져서 섬기는 일을 잘하고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부지런히 가르치는 일을 충성되이 하여야 한다.

. 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교회에서 약한 자나 병든 자, 시험에 든 자를 권위(勸慰)하는 일은 중요하다. 권위하는 은사와 직책을 맡은 자(전도 부인이나 집사나 권찰 등)는 부지런히 권위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또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권면하는 것은 더욱 귀하다(딤후 2:25-26). 권위하는 자는 성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권면해 주고 위로해 주며 자기 자신도 말씀으로 권면을 받으면서 하여야 한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구제하는 자가 불성실하게 성의 없이 하면 마귀가 틈타게 된다. 자기 명예나 유익을 위하여 구제하지 말고 순전한 마음으로 구제하여야 된다는 뜻이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의 교회는 다스리는 일과 권징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어지러워지고 마귀가 틈탄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자는 그 일을 부지런히 하여 교회의 순결을 지키고 복음이 발전되며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남을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는 자가 인색한 마음으로나 부득이(不得已)하여 도와주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한다. 그러므로 즐거움으로 긍휼을 베풀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도록 해야 한다. 친구에게 인색한 마음으로 떡을 주면 떡도 잃고 친구도 잃어버린다.

三. 악은 미워하고 형제는 사랑하라 (9-13)

. 12: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성도의 참사랑은 중생한 영에서부터 나온다. 중생한 영의 본질이 진리와 영감으로 되었고, 선하기 때문에 영적 사랑은 진실하며 거짓이 없다(벧전 1:22 참조). 성도가 영적 신앙으로 살 때에 악을 미워하고 선을 좋아하며, 선을 행하게 된다. 그러나 성도가 방심부주의 하여 육신의 정욕대로 살 때에는 선을 떠나서 악을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육신의 부패성을 쳐서 복종시키고 영으로 살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악을 미워한다고 하셨다(잠 8:13, 시 97:10). 또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살전 5:22). 사랑의 원인도 선이어야 하고, 방법도 선하여야 하고, 그 결과도 선하여야 된다.

.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우애는 형제애(兄弟愛)를 가리키는데 모든 성도는 한 피로 중생한 영적 생명에 이끌려 서로 사랑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형제애와 같이 친밀한 사랑이다. 성도는 영적 본능에서 나오는 아가페( ) 사랑과 형제 우애적인 필로스톨고이( )의 사랑도 있어야 한다.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다른 사람이 내게 인사하지 않는다. 나를 멸시한다 할지라도 내가 먼저 인사하고 존경하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7:12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셨다.

.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성도가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악한 것이다. 게으른 자는 은혜도 못 받고 자기 직무도 잘 감당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된다(마 25:26-28 참조).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열심 있는 성도와 전심으로 하나님을 순종하려는 성도를 붙들고 당신의 뜻을 다 이루신다(왕상 19:10; 14:8 참조). 성도가 성령을 힘입어 중생한 영으로 살 때에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뜨거운 사랑으로 주를 섬기게 된다.

.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의 소망은 보이는 소망이 아니고(롬 8:24) 보이지 않는 소망, 즉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는 소망이다(롬 5:2). 이 소망이 있는 자는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고, 거기에서 인내를 배우고 연단을 받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게 된다(롬 5:3-4).

기도에 항상 힘쓰며 기도에 힘쓰지 않으면 기도할 시간과 모든 여건과 환경을 다른 일에 빼앗기게 된다. 마귀는 성도의 신앙과 열심과 봉사와 충성하는 것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고 기도 시간을 빼앗으려고 한다. 성도가 기도시간을 빼앗기면 참된 신앙과 봉사와 충성은 자연히 상실되고 만다. 기도하지 않고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막 9:29). 성도가 기도를 항상 힘써 하지 않으면 자신과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없고, 신앙의 달음박질을 하지 못하며 신앙의 진보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기도시간을 귀중히 여기고 시간을 많이 들여서 기도해야 한다. 루터는 하루 두 시간 이상 기도하지 못한 날은 마귀에게 지는 날이라고 했다고 한다. 기도시간에 회개하고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라야 주님이 가까워지고 새 힘을 얻어 독수리처럼 신령한 세계로 올라간다(사 40:30-31). 그 사람은 영적 세계가 점점 발견되고 거기에서 모든 것을 밝히 보고 분별하며 빛 가운데로 걸어가게 된다.

.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성도를 여러 면으로 도와주는 일과 궁핍한 자를 물질로 구제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고린도후서 9:9에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으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다.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초대 교회 당시는 신앙 문제로 핍박을 받아 사업과 직장을 빼앗기고, 혹은 축출을 당하여 유리하는 성도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한 성도들을 손님으로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들을 영접치 않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치 않는 것이 된다(마 25:33-45). 히브리서 13:2에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라고 했다.

四. 선으로써 악을 이기라(14-21)

. 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해 주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자요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만들어 가는 것이 된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끊어지고 흑암을 만나게 된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원수 사랑하는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열렸던 하늘 문이 닫혔을 것이요, 천사와 같은 그의 얼굴이 고통과 괴로움의 얼굴로 변하였을 것이다.

마태복음 5:44-45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고 했다.

. 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성도는 서로 동고동락(同苦同樂)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로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성도가 당한 일을 자기가 당한 일같이 여기는 체휼(體恤)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히 4:15). 다른 성도가 즐거워할 때에 같이 즐거워하고 울 때 같이 울어주는 것이 성도의 체휼이요 사랑이며 그를 진정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이 사람의 마음대로 해도 같은 마음이 되지 않고 저 사람의 마음대로 해도 같은 마음이 될 수 없다. 마음을 같이 하는 방법은 피차가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자기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지위를 다 내어놓고 낮아져서 종살이하는 마음이다(빌 2:5-8 참조). 피차 종의 자리에서 상대방을 존경하고 섬기면 마음이 하나로 될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 부부간에 마음이 하나 되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부부가 서로 낮아져서 종살이하면 마음이 하나가 되어 화목하고,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갈 것이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 데 처하며 낮은 데 처하는 마음이 예수의 마음이요 낮은 데 처하기를 배우는 것이 예수님을 배워 나가는 것이다(마 11:29). 높은 데 마음을 주는 것은 마귀의 시험에 든 것이다(마 4:8-9, 유 1:6). 높은 데 마음을 두는 것은 욕심이요 허영심이다. 욕심 때문에 고통이 들어오고 시험이 들어온다. 그로 인해서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모든 사고가 나게 되고 육신의 병도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낮은 데 처해서 자기가 마땅히 행할 바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마태복음 11:25에 "이것(하나님의 일)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했다. 또 고린도전서 3:19-20에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 했고, 고린도전서 8:2에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라고 했다.

그러므로 자기가 스스로 아는 것으로 판단하고 자기 지혜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거역하는 경우가 많다. 성도는 누구나 겸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많은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자기의 직무를 감당하며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악으로 악을 갚으면 이 세상에 악이 점점 많아지게 되고 자기도 악하게 됨으로 믿음에서 떠나고 하나님이 죄악을 심판하실 때에 다 같이 망하게 된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모든 사람 특히 악으로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까지라도 선을 도모하는 것이 성도의 참 사람이다.

도모하라 미리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라는 뜻이다. 마귀의 나라는 악으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는 선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사람 앞에 선을 이루기를 힘써야 한다.

.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화평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요(마 5:9), 불목(不睦)케 하는 자는 마귀의 자식이다. 성도는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기를 힘쓰며 원수까지도 화목하여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성도가 원심(怨心)을 품거나 원수를 갚으려고 하면 영감(靈感)을 받는 온유한 마음을 상실케 되며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 원수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니 성도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화목하기를 힘써야 한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이것은 신명기 32:35절의 인용이다. 사람이 원수를 갚지 않아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악을 가차없이 징벌하신다.

. 12:20-21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그리스도께서 원수 되었던 우리들을 위해 죽으심으로(롬 5:8)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놓으셨다. 성도들도 원수를 사랑하여 원수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면서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 선지자 엘리사 때에 엘리사를 잡으러 온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에게 포위 당하여 도리어 죽게 되었을 때에 아람 군대들을 죽이지 않고 도리어 떡과 물을 주어 그 나라로 돌려보냈다. 이로부터 아람 군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셨다(왕하6:14-23). 이스라엘이 선으로써 악한 아람 나라를 이긴 것이다. 선으로써 악을 이기는 것은 그들과 그 가족과 그 민족의 마음을 정복한 것이 된다. 이것이 참으로 승리한 것이다. 선으로 승리하면 진자도 감심(甘心)으로 승복할 것이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둘 다 악해진다. 그러면 이 세상에 악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고 죄악이 들어차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옛 글에 악이 들어차면 하나님이 반드시 죽인다고 했다(惡 諾滿天必誅之 : 악관약만천필주지). 그러나 선으로써 악을 이기면 악이 점점 없어지고 악이 없어지면 하나님께 복 받는 세상이 된다. 성도가 항상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말고 악한 자라도 어떻게 하든지 그 사람을 잘 대접하고 사랑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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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장

제 13 장 권세

(대 지)

一. 권세 굴복(1-7)

二. 인애 부채(仁愛負債)(8-10)

三. 재림준비(11-14)

(본문강해)

一. 권세 굴복(1-7)

.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모든 사람이 국가의 권세에 굴복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악을 제어하며,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권세자들(왕과 관리들)을 세웠기 때문이다(단2:21, 4:25, 사 10:5-6 참조).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21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이것은 국가에 대한 의무도 바로 하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도 다 하라는 것이다. 단 만일 국가의 명령이 하나님의 뜻에 거스릴 때에는 국가의 명령을 순종할 수 없다. 그러나 국가의 명령일 성경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한 그 명령을 잘 순종해야 옳다.

.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국가의 권세를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그 권세를 대항하거나 거스리는 것은 하나님을 대항하고 거스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국가의 권세를 거스리면 국가의 심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도 받게 된다.

. 13: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본절은 하나님께서 국가에게 주신 권세의 목적과 한계를 말해 주고 있다. 그 목적은 악을 제어하고 다스리며, 선을 포상하고 장려하려는 것이다. 국가가 만일 성경에 위반되는 일을 강요하거나 하나님 섬기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국가에 주신 권세의 목적에 어긋나며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악용하여 악을 행하기 때문에 성도가 당연히 그 명령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여야 된다. 이것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성도가 권세자들에게 징벌이나 핍박을 받게 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므로 하늘에서 상급이 클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그 핍박이나 환난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잘 참아야 된다.

. 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국가의 권세자들은 악한 자를 징벌하고, 선한 자를 장려하여 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그들의 명령이 성경을 위반하지 않는 한 그들을 순종하며 잘 도와주어야 한다. 루터는 폭군의 정치도 폭도의 무법 행위보다 낫다고 했다.

. 13: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 권세를 세우시고 그 권세에 굴복하도록 하셨다. 국가의 권세에 굴복하는 자에게는 평안과 보호를 받게 되고, 굴복하지 않는 자에게는 벌이 온다. 성도가 그 벌받을 것을 두려워해서만 국가의 권세에 굴복할 것이 아니고 양심에 그것이 옳은 줄 알고(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한)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여야 된다.

. 13: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이를 인함이라는 앞에서 말한 "복종을 인함이라"는 뜻이다. 국가에 세금을 바치는 것도 권세에게 복종하는 열매이다. 하나님께서 관원들을 세워 백성의 안녕 질서와 번영을 위하여 일하게 하셨으므로 거기에 필요한 세금을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국민의 도리에도 옳은 일이다.

공세는 인구세(人口稅)에 해당되며 인구 거주에 대한 세금을 가리킨다. 또 피 지배국이 지배국에게 바치는 세금도 가리킨다.

. 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국세는 물품에 대하여 부과하는 세와 기타 행정비 등의 세금을 가리킨다. 세금을 바치는 것은 국민의 의무이다.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두려워함과 존경"은 지배자에게 지불할 부채(負債)요 의무이다. 두려워하라는 것은 더욱 큰 존경을 가리킨다. 이렇게 할 때에 관리들이 그 맡은 일을 더욱 잘해 나갈 수 있고, 그 혜택이 온 국민에게 돌아온다.

성도들이 기독교 이름으로 정치 운동을 하면 안 된다. 교회가 국가의 어용 기관(御用機關)이 되어도 안되고, 반국가 운동을 하여도 안 된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는 언제나 교정분리(敎政分離)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교회는 국가의 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국가는 교회를 간섭하거나 지배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요, 영적 구원 운동을 하는 기관이며, 하나님의 사람을 양육하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세우심을 입고 그의 지배와 통치만을 받는 기관이다. 국가는 자연 은총의 영역에 속하여 국민을 다스리는 세상 나라요, 교회는 특별 은총의 영역에 속한 하나님의 기관이다. 에베소서 1:22에 보면 교회는 만물 위에 있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라고 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 있으나 모든 세상 나라들을 초월해 있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지배만 받는다.

二. 인애 부채(8 - 10)

.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를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본절부터는 사람에 대한 의무로서 피차 사랑하라고 말한다.

사랑의 빚 이것은 우리가 복음의 빚을 모든 사람에게 지고 있는 것과 같다(롬 1:14).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할 부채를 가지고 있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빚진 자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이것이 사랑의 빚이다. 우리는 사랑의 빚 외에 다른 빚, 즉 물질적인 빚은 지지 않아야 된다.

잠언 22:7에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고 하였고 종이 되면 자유가 없다. 빚진 자는 언제나 구속을 받게 되고 물질이나 생활 면에 있어서 떳떳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물질의 빚을 지지 말아야 하고, 만일 빚을 졌으면 최저 생활을 하면서라도 빨리 빚을 갚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의 빚을 지고도 갚는 것을 게을리 하는 자는 양심을 쓰지 않는 것이요 불의한 일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빚진 죄인"이라고 하였으니 남에게 빚진 것을 죄인이 된 것처럼 부끄럽게 생각하고 빨리 갚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종과 같이(마 18:24-34) 사랑의 빚을 진자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무제한적으로 이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사랑의 빚을 갚아 나가면 기쁨이 충만하고 힘이 나고 생명이 소생하는 생활이 된다. 사랑의 빚을 갚을 때에 나에게 잘해 주는 자에게만 갚으려고 하면 안 된다. 이 사랑의 빚은 원수에게까지 무제한적으로 갚아 나가야 한다. 서로 사랑의 빚을 갚으면 사랑이 점점 풍성해지고, 화평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피차 사랑하는 세계에는 하나님이 그 가운데 함께 계시고 영이 새 생명을 얻어 자라난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율법의 근본 정신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인륜에 대한 계명(5계명에서 10계명)을 범할 수 없으며, 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천륜(天倫)에 대한 계명(1계명에서 4계명)을 범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의 강령은 사랑이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간음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과 간음하면 그 사람을 범죄하게 하는 것이요,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남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을 죽일 수(殺人) 없고, 그 사람의 것을 도적질 할 수 없으며, 그 사람의 것을 탐낼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륜에 대한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 가운데 다 포함되어 있다.

.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이웃에게 악을 행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웃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그 이웃에게 해를 주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어떻게 손해를 입힐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진정으로 사랑하면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속이고, 간음하고, 거짓 증거하고, 탐내고, 살인하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三. 재림 준비(11 - 14)

.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때와 시기를 분별할 줄 아는 자가 지혜 있는 자이다. 예수님께서 책망하시기를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하셨다(마 16:3). 성도가 시대를 분별치 못하면 믿음을 바로 지킬 수가 없다. 노아는 그 시대를 바로 분별했기 때문에 방주를 준비하여 구원을 받았다. 오늘날도 성경에 예언한 말세의 징조가 다 이루어진 것을 보고 지금이 말세이며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고 대환난이 임박한 줄을 알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잔다"는 것은 심령이 잠든 것을 가리킨다. 성도가 영으로 살지 않고 육신에 속하여 육신의 정욕대로 살 때에 심령이 잠자게 된다. "깬다"는 것은 육신을 좇아 살지 않고 영을 쫓아 사는 것을 가리킨다(8:5-7). 성도가 세상의 것에 부요하고, 평안 무사하고, 심판과 구원의 때를 분별치 못할 때에 잠들기 쉽다. 요한계시록 10:6에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라고 하셨다. 이것은 남은 때가 얼마 없다는 뜻이다. 지금은 남은 때가 얼마 되지 않은 때인 줄 알고 마땅히 깨어서 앞으로 올 대환난을 믿음으로 승리하여 예수님의 재림을 잘 영접할 수 있는 준비를 하여야 되겠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가 구원받아 공중으로 올라갈 때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빌 3:20-21). 우리의 구원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서 주님을 영접할 준비도 점점 완성해 나가야 한다.

.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남은 때가 없는 것은 밤이 깊은 것을 보아서 안다. 밤이 깊다는 것은 죄악의 밤이 깊어졌다는 의미이다. 요한계시록 18:7에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고 하셨다. 이 세상이 점점 악하여지고 처처에 지진과 같은 폭동이 일어나고 살인, 간음, 사기, 방탕, 호색, 술취함,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며, 종교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생명과 능력이 없는 의식주의와 세속주의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 이것이 밤이 깊어진 증거이다(딤후 3:1-5 참조).

낮이 가까왔으니 성도의 구원이 가까웠다는 것이다. 밤이 깊어지면 낮이 가까워지는 것처럼 죄악이 관영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와지고, 심판 후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법이다. 노아시대에도 죄악이 관영하매 심판이 왔고 그 후에 구원이 왔다(노아의 여덟식구). 이스라엘에도 죄악이 관영하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하시고 그 후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셨다(이스라엘이 칠십년 후에 구출됨).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말세에도 죄악이 가득 차게 되고(마 24:12, 21, 29 ; 계 13:6-7, 15, 22:11 ; 단 11:31-34), 악한 자는 점점 더 악해지고 그 악한 자가 세력을 얻어 성도를 핍박하게 된다. 그때에 예수께서 구름 타고 재림하여 악한 자들을 심판하고 성도는 구름 속으로 끌어올린 바 되어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낮이 가까왔다"는 것은 또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이 죄악이 깊은 때인 줄 알아야 되고,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인 줄 알아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잘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성도가 이 시기를 바로 분별하고 죄악의 일을 벗어버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빛의 갑옷을 입자 빛의 갑옷은 의와 진실과 성결(엡 4:24)등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을 갑옷이라고 한 이유는 이것으로 마귀의 화전(火箭)을 막고 어두움의 세력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가 이 빛의 갑옷을 계속 입어 나가야 마귀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잘 영접할 수 있다.

.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낮에는 사람들이 비교적 단정히 행하는 때요, 밤에는 사람들이 방탕과 추악한 행동을 많이 하는 때이다. 성도는 낮에 속한 자이므로(살전 5:5-8), 잠자거나 술 취하지 말고 깨어서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분별하여 하나님의 나라(예수님의 재림)를 바라보며 항상 하나님 앞에 단정히 행하여야 된다.

단정은 신앙 양심에서부터 나오는 바른 언행심사(言行心思)이다. 성도가 어두움의 옷을 입고 있으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일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다. 성도가 어두움의 옷을 입고 있으면 어떻게 환난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 어떻게 그 앞에 설 수 있겠는가? 또 이 시간에 하나님이 우리를 데려가시면 내가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두움의 옷은 다 벗고 빛의 갑옷을 날마다 입고 빛 가운데서 살다가 주님이 오라고 하실 때에 부끄러움이 없이 기쁨으로 주님 앞에 설 준비를 하여야 한다. 어두움의 옷은 방탕, 술취함, 음란, 호색, 쟁투, 시기의 여섯 가지로 나타나 있다.

방탕 성도가 방종한 생활을 하고, 육욕의 무절제한 심사와 행위로써 쾌락주의로 나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근신과 깨어 있는 생활의 반대로 자유 방종의 생활이다.

술 취하지 말며 이 성구를 보아서도 성도가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성도가 술 마시는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금하셨다(엡 5:18 ; 잠 23:31-34). 성도가 술을 마셔도 안되며 담배도 피워서는 안 된다(사 55:2). 성도가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고 신앙 생활에 부덕이 되고 자기 몸에도 큰 해가 된다.

누가복음 21:34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17:2에 보면 땅에 거하는 자들이 음녀의 포도주에 취하셨다고 하셨다. 이 음녀의 포도주에 취한 것은 세상에 취한 것을 가리킨다(졸저 계시록 강해서 참조). 성도가 예수님께 마음을 두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생활을 하지 않고 세상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시간과 정력을 다 빼앗기고 세상적으로 사는 것은 술 취한 것과 같다. 돈벌이에 취하고 사치와 향락과 오락과 운동에 취하는 것이 음녀의 포도주에 취한 것과 같다. 성도는 이 세상무엇에든 취한 생활을 하면 안 된다. 취하면 졸며 잠자게 된다. 이런 사람은 주의 재림을 영접할 준비를 하지 못하여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게 된다.

음란과 호색 이것은 남녀 이성간에 범하는 성적인 죄이다. 음란은 불법하고 난잡하게 성적 욕심을 채우는 악행이다. 호색은 색을 탐하는 마음과 행위인데 불결한 언행 심사까지 포함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호색과 음란한 생각과 말, 음란한 행동을 다 끊어 버려야 한다. 음란죄는 자신도 망하게 하고 남도 망하게 하는 죄이다. 이 죄에 빠지면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 말세에도 소돔 고모라 시대와 같이 음란과 호색과 방탕이 가득하게 되어 심판을 받게 된다(마 24:37-39 ; 눅 17:26-29).

쟁투와 시기 이 두 가지는 대인 관계에 대한 죄이다. 쟁투는 서로 싸우고 다투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세상의 것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하여, ② 자기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③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려고, ④ 낮아지지 않으려고, ⑤ 멸시받지 않으려고, ⑥ 권세를 잡으려고, ⑦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싸운다. 그러나 싸운다고 하여 자기 욕심대로 이루어지는가? 그렇지 않다.

야고보서 4:1-3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다.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얻지 못한다. 얻지 못하는 것은 그 나라와 그 의와 그리스도의 형상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께서 다른 것도 잘되게 하여 주신다. 성도는 쟁투와 시기를 버리고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점 온전하게 만들어지고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만물을 사람에게 맡기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면 만물이 그에게서 다 떠나가고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면 만물이 다 따라온다. 자기가 무엇을 얻으려고 싸우거나 싸워서라도 빼앗기지 않겠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왼뺨을 치면 오른뺨까지 돌려대고, 겉옷을 취하고자 하면 속옷까지 주고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면 십리까지 동행하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기를 힘 쓸 때 영의 사람이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다른 것도 풍성히 주실 것이다.

마가복음 10:29-30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다. 주님을 바로 섬기고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낮아져서 고난을 당하면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백배나 더 나은 것을 주신다.

.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성도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야 될 것을 말한다. 갈라디아서 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의와 선과 거룩과 사랑과 지혜와 지식과 진실과 능력과 기타 하나님의 속성 전체를 말한다.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다. 성경대로 순종하며 교역자도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하고 교인들도 같이 해산하는 수고를 하여야 그리스도의 형상이 조금씩 이루어진다.

요한일서 3:3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셨다. 성도의 영이 믿음으로 이미 깨끗함을 받았으나 깨끗함에서 더욱 깨끗함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빛도 작은 빛이 있고 큰 빛이 있다. 등잔불보다 촛불이 더 밝고 촛불보다 전깃불이 더 밝고 또 전깃불보다 태양 빛이 더 밝다. 그와 같이 깨끗함에서 더 깨끗함으로 빛에서 더 큰 빛으로 자라나야 한다. 성도의 거룩과 능력도 이와 같이 자라나야 한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능력도 무한하신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야 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감동과 역사를 더 많이 받아서 그리스도의 역사가 점점 커나가야 되고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점점 커나가야 된다. 우리의 영적 생명이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사는데 그 생명이 점점 자라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나가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생활이 점점 자라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나가는 것이다.

빌립보서 3:10-12에 보면 바울이 예수님의 능력의 옷을 좀 더 입기 위하여 날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려고 힘을 썼다. 이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 것만큼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정욕은 욕심을 가리키고 욕심에는 물욕(物慾)과 정욕(情慾)과 사욕(私慾) 등이 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은 믿음에서 떠나 죄의 종으로 전락되는 것이요 마귀 시험에 빠진 것이다.

도모의 원어 (프로노이아)는 미리 생각한다는 뜻으로 계획과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고 그리스도로 옷 입기를 힘써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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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로마서 14장

제 14 장 폄론(貶論)

(대 지)

一. 성도간에 꺼리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1-9)

二. 형제에 대하여 잘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10-12)

三. 형제의 신앙 양심에 손상을 주지 말 것(13-21)

四.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22-23)

(본문강해)

一. 성도간에 꺼리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1-9)

.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교회 안에는 믿음이 강한 자도 있고 연약한 자도 있다.

믿음이 연약한 자라는 것은 진리를 깊이 깨닫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믿음이 강한 자는 연약한 자가 잘 깨닫지 못하여 의심하고 있는 문제(성경에 금기된 문제가 아닌 것)를 비판하거나 멸시하지 말고 받아 주라는 것이다.

받아 주라는 것은 유화(宥和)한 마음으로 용납해 주고 정당한 교회원으로 영접하라는 것이다. 교회가 이렇게 연약한 사람을 용납하여 믿음이 자라나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 14:2-3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초대교회 안에는 유대인 기독교인과 이방인 기독교인 사이에 율법적인 문제로 융합이 잘 되지 않았다. 특히 음식 문제와 날(日)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 부작용이 있었다. 여기 말한 음식은 우상의 제물이 아니며(본 장에는 우상의 제물이라는 말이 한마디도 없다.) 구약 시대에 금한 식물을 가리킨다. 특히 레위기 11장에 언급한 새김질하지 않거나 쪽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의 고기 혹은 비늘이나 지느러미 없는 물고기와 같은 것들을 말하고 있다. 구약의 의식과 제도는 예수께서 십자가로 도말(塗抹)하시고 제하여 버리셨으므로(골 2:14-17) 신약시대에는 그것들이 완전히 해제된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 기독교 신자 중에는 어려서부터 그것을 먹지 않는 습관이 있어서 그러한 음식을 꺼려하여 먹지 않고 채소를 먹었다. 그러나 믿음이 강한 신자는 그러한 음식을 믿음으로 다 먹었다. 거기에 대하여 바울은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믿음이 없다고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가 구약 성경을 어겼다고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는 구약의 의식과 제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도말하고 제거하여 버렸기 때문이다(골2:14-15). 그러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자가 사실은 진리의 지식이 부족하고, 믿음이 연약하기 때문이다. 신약 시대에 있어서는 그러한 음식을 먹어도 괜찮은 것이요 먹지 않는다고 해도 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이며 그런 의식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 진리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성도간에 진리문제가 아닌 것을 인하여 다투며 남을 판단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믿음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관용하여 붙들어 주고 약한 자는 강한 자를 판단하거나 정죄하면 안 된다.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진리문제가 아닌 의식적 차별(儀式的差別) 문제를 가지고 남을 범법자(犯法者)로 정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 14: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본절 에서 12절까지는 각자가 신앙양심(信仰良心)대로 자유로이 행하여도 좋은 문제(진리 문제가 아닌 것)를 가지고 서로 폄론(貶論)하면 안 된다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남의 하인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인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주님께 있다. 또 주님은 성도를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주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능히 그를 세울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겸손히 주님의 심부름만 하여야 한다.

. 14:5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이날은 이레 중 첫날인 주일(일요일)이요 저날은 이레 중 제칠일 안식일(토요일)이다. 초대교회에서 주일 지키는 문제와 안식일 지키는 문제로 약간의 논쟁(論爭)이 일어난 듯하다.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으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일을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안식일을 지켜오던 유대인 신자들 가운데 안식일을 지키는 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피차 논쟁이 생겨서 어떤 자는 이 날이 저 날보다 낫다고 했고 어떤 자는 모든 날이 같다고 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이것은 각자가 주일이나 안식일이나 자기 마음대로 정하라는 말이 아니고 각자가 옳은 날(주일)을 찾아서 마음에 확정하여 지키라는 것이다. 옳은 날은 안식일이 아니고 주일이다. 그 이유는 구약의 안식일은 그림자요 실체(몸)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골 2:16-1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날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안식일에서 주일로 변경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그리스도께서 주일날 부활하셔서 안식을 주셨다(요 20:19).

② 그 다음 주일에도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서 평강을 주셨다(요 20:26).

③ 오순에 성령이 강림한 것도 주일날이며 성부께서 계시를 주셨다(행 2:1-4).

④ 주일날에 성부께서 계시를 주셨다(계 1:10).

⑤ 사도들이 주일날을 지켰다(행 20:7).

⑥ 초대 교회에서 주일에 예배드리며 연보 하셨다(고전 16:2).

⑦ 히브리서 7:18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여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했으니 전엣 계명에 속한 안식일을 폐한 것이 분명하다.

⑧ 히브리서 4:4-7에 제칠일 안식일 이외에 다시 다른 날을 정해준다고 했는데(히 4:7) 다시 정해준 날이 주일이다. 주일을 정해준 증거는 이상 ①번에서 ⑥번까지 내용이다. 1-4절의 음식문제는 진리문제가 아니므로 먹어도 괜찮고 먹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주일문제는 진리문제이다. 토요일을 지키거나 또는 아무 날이나 하루를 정해 놓고 지키는 것은 옳지 않는다. 옳은 진리를 바로 찾아서 확정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 옳은 진리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다. 주일은 성부·성자·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안식과 은혜와 복을 주시는 날이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 성경적이다. 우리가 진리 문제에 대해서는 진리를 바로 찾아 확정해야 된다. 거기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혼동하면 안 된다. 진리를 찾아서 확정한 다음에는 그 진리에 순종하며 그 진리를 세워나가고 그 진리를 반대하는 세력과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옳은 진리인 줄 알고도 확정하지 않고 따라 가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바른 진리를 성경에서 깨달아 확정하고 힘써 그 진리를 세워 나가야 한다.

. 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모든 것을 다 주를 위하여 하라는 것이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주님의 뜻인 줄 알고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다. 무슨 문제나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중히 여기며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귀중히 보시는 것이다. 진리 문제가 아니고 각자의 신앙양심에 따른 문제도 주를 위하여 각자의 양심대로 지키는 것이 역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다.

.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조고 사신 몸이므로(고전 6:19-20) 자기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하여 살 권리가 없고 오로지 그리스도만 위하여 살아야 한다. 성도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 또 성도의 모든 소유도 자기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며 다만 주님의 청지기로서 그것들을 맡아 가지고 있는 것뿐이다. 만일 그것들을 자기 것인 줄 알고 자기 뜻대로 사용하면 불의한 청지기가 된다(눅 16:8-9).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성도가 자기를 위하여 살려고 하는 것은 믿음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이사를 한다고 해도 자기를 위하여 하지 말고 주를 위하여 뜻을 따라 해야 한다. 성도가 무엇을 하든지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은 믿음에서 떠난 행동이다.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성도는 주를 위하는 일이면 죽음의 자리에도 단 마음으로 순종하고 가야 한다. 주를 위하여 마땅히 죽어야 될 때가 왔는데도 죽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믿음을 떠난 것이요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믿음을 떠난 생활은 도리어 죽는 것만 못한다. 교역자들이 대접을 잘 받는 도시교회나 평안한 곳에서 목회 하려고 하면 믿음을 떠나 자기를 위하여 살려는 생각이다. 주님이 고난을 받게 하면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게 하면 핍박을 받고 죽으라 하면 단 마음으로 죽는 자라야 주님을 위한 교역자요 참된 목자이다. 재산도 주께서 필요하시다고 하면 다 내어놓고 자녀들과 가족도 주님이 원하시면 다 내어놓고 주를 위하여 살다가 주를 위하여 죽는 자가 하나님 앞에 가장 복된 자이다. 주님이 원할 때에 내어놓지 않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내놓더라도 조금만 내놓는 자는 믿음이 적은 자요 그리스도의 옷을 그만큼 밖에 입지 못하는 자이다.

마태복음 16:24-25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내가 하겠다는 것과 내가 애쓰던 것을 다 버려야 한다.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되고 내놓아야만 하나님께서 일해 주신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놓고 주를 위해서 살면 주님이 모든 것을 다 맡아서 잘 되게 해 주시고 제일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

.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목적은 우리를 그 피로 값 주고 사서(구원하여)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게 하시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게 하시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속 사업을 실현시키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주 우리가 살았을 때에도 그리스도가 주요, 죽은 후에도 주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할 것뿐이다.

二. 형제에 대하여 잘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10-12)

.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본절 에서 12절까지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므로 다른 형제를 업신여기거나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 14: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이사야 45:23의 인용이다.

내가 살았노니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전능하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앞에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게 되고 모든 혀(모든 입)가 그 앞에 자백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 14: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성도들이 각각 하나님 앞에 가서 자기 일을 하나님 앞에 직고하여 그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고후 5:10).

三. 형제의 신앙 양심에 손상을 주지 말 것 (13-21)

. 14: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신앙이 강한 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렇지 않은 일도 신앙이 약한 자는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 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진리 문제가 아니라고 하여 함부로 행동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약한 형제가 걸려 넘어질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강한 자가 자기를 표준하여 형제가 거리끼는 것을 행하면 믿음이 약한 형제에게 부딪히는 것이나 거칠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믿음이 약한 형제가 넘어지고 믿음에 손해를 보게 된다. 우리가 넘어진 자도 사랑으로 붙들어 주고 도와주어 일으켜 세워야 될 터인데 오히려 그 형제를 넘어지게 하면 하나님의 책망이 얼마나 크겠는가?

. 14: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신앙으로 볼 때에 구약의 의식은 제거되었으니 구약에 금한 음식을 속되게 여겨 먹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선하다고 하셨기 때문이다(창 1:25, 31).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믿음이 약한 성도가 기존 지식과 풍속과 습성에 끌려 어떤 음식물이 속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자기에게 속된 것이 된다. 이는 그 식물 자체가 속된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주관적 관념(觀念)과 양심에서 그 식물을 속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때 그것을 먹으면 양심을 어기는 과오가 된다. 그것은 곧 주님께도 합당치 않다.

. 14: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믿음이 강한 자가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하여 믿음이 약한 자가 꺼려하는 식물을 먹으면 약한 자의 양심은 그로 인하여 근심하게 되고 상하게 되어 마침내 그 형제가 넘어지고 망하게 되기 쉽다. 이것은 그 형제에게 사랑으로 행치 않는 일이며 잘못된 것이다. 그 형제는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인데 사랑으로 행치 아니하여 그를 실족케 하면 하나님의 책망이 클 것이다.

. 14: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너희의 선한 것은 각각 자기가 옳다고 깨달은 것을 말하며 식물문제(구약 특히 레위기 11장에 금기했던 음식을 먹는 문제)에 대하여 자기가 깨달은 것이 옳다고 해도 그것으로 인하여 형제의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

.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 복음운동, 구원운동, 영적 생명운동을 가리킨다. 이 위대한 구원운동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의와 영적 평강과 희락을 누리면서 항상 기뻐하는 생활에 있다. 성령과 의와 평강과 희락이 없는 자는 하늘나라 밖에서 사는 사람이다.

. 14:18-19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윗절에서 말한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사는 신령한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를 가리킨다. 이와 같이 신령한 신앙을 소유한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덕을 세운다. 일제 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감옥에 갇혔던 이기선 목사님이 일본 경관들을 순종하여 신사 마당에까지는 끌려갔으나 신사에 절하라고 할 때에는 절하지 않았다. 그러자 경관이 절하지 않으려면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느냐고 물었을 때에 이기선 목사님이 대답하기를 국가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이곳에 왔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절하지 않았다고 했다고 한다. 또 이기선 목사님은 경관들에게 順天順國(순천순국)이 眞順天(진순천)이요 天保國贊(천보국찬)이 信上級(신상급)이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을 순종하고 나라를 순종하는 것이 참순종이요 하나님이 보호하고 나라가 칭찬하는 것이 상급(上級)의 믿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사람들에게 바로 행하지 못하여 비난을 받는 것은 신앙이 바로 되지 못한 증거이다. 또 사람에게 욕먹고 핍박받는 것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는 것은 인본주의요 불신앙이다.

. 14:20-21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신약시대에는 구약에 금지했던 식물들(레11장)이 해제가 되었으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아직도 전통과 습성에 젖어 그 식물들을 꺼리고 먹지 않았다. 그러나 믿음이 강한 자들은 거리낌없이 그것들을 먹으므로 믿음이 약한 형제에게 상처를 주고 넘어지게 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것이 식물로 인하여 그 형제를 넘어뜨리고,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다 선하고 정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취하지 않고 신앙양심에 거리끼는 것을 먹으면 악이 된다. 그 이유는 선한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선하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1:19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했다. 여기 말한 음식은 우상의 제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서는 사도행전 15:29과 고린도전서 10:20에 먹지 말라고 했다.

四.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22-23)

. 14: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네게 있는 믿음이란 자기 신앙양심에 옳다고 깨달은 대로 믿는 믿음을 가리킨다. 자기가 옳다고 깨달은 것을 어기므로 양심에 가책 받은 일을 하면 안 된다. 양심에 가책 받는 일을 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 진리와 신앙양심을 지켜서 양심에 가책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산 믿음이 있는 자요 복 받는 자이다.

.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 음식물을 먹으면 하나님께 죄가 되지 않을까 하고 의심하는 자는 그것을 먹지 말아야 한다. 또 어떤 행사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지는 데 있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이 생기면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때 그것을 취하거나 행하면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믿음을 좇아 하지 아니한 것은 죄가 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믿음이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좇아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이니 곧 죄가 된다. 그러므로 신앙 양심에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행하는 것은 모든 것이 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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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장

제 15 장 도덕

(대 지)

一. 서로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13)

二. 바울이 이방인을 위하여 희생함(14-21)

三. 서바나 전도를 원함(22-24)

四. 성도 봉사(25-29)

五. 기도 권면(30-33)

(본문강해)

一. 서로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13)

.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본장 1절에서 13절까지는 앞장의 음식 먹는 문제에 대한 내용의 연속이다. 여기서 강한 자란 구약의 금지된 모든 음식물을 먹는 자를 가리키고, 연약한 자는 그 음식물을 먹지 못하는 자를 가리킨다. 구약 시대에 금지했던 음식물은 그리스도께서 해제시켜 주셨으므로(골 2:14 참조), 신약 시대에는 먹어도 괜찮다. 구약 시대에 금지되었던 음식을 먹는 자는 먹지 못하는 자를 용납해야 한다.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믿음이 강한 자가 양보하여 믿음이 약한 자를 용납하고 융화(融化)하라는 것이다.

담당하고는 짐을 지라는 뜻이다. 진리를 잘 깨닫지 못한 약한 자의 그 약점을 강한 자가 자기의 빚(채무)처럼 여기고 대신 지라는 뜻이다. 교회에서 강한 자는 약한 자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융화하며, 약한 자를 육성해 나가야 한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란 자기를 표준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요 교만한 행동이다. 누구나 교만하면 망한다(잠 18:12).

고린도전서 10:12에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다. 누구든지 "섰다"하면 벌써 넘어진 자이다. 참된 신앙은, 자기가 무엇을 했다고 해도 그것을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으로 믿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심부름을 했을 뿐이고 일을 성취시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믿어야 한다.

.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참 신앙은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음에 사람에게 선을 행하며 덕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양보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안 된다(갈 1:10 ; 엡 6:6 ; 살전 2:4 참조). 무슨 일이나 하나님께 바로 하는 자는 사람에게도 바로 한다. 성도는 자기 중심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남을 위하는 정신을 가지고 선을 행하여야 한다.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베드로후서 1:5에 믿음에 덕을 더하라고 했다. 덕이 없는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나 자기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 자기가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라도 남에게 덕이 되지 않는 것은(진리 문제가 아닌 한) 하지 말며, 덕을 세우는 일에는 자기가 손해를 볼지라도 하여야 한다.

. 15: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남을 위하면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예로 예수 그리스도를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내주어 비방과 멸시를 받으시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이 말씀은 시편 69:9의 인용인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고 많은 비방을 받으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주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내게 미쳤다는 것은 성도에게 미쳤다는 뜻인데 궁극적으로는 성도의 대표되는 그리스도에게 그 비방이 미쳤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선을 행하는 성도에게 미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선을 행하면서도 비방 받을 각오를 하여야 한다.

.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전에 기록한 바는 구약 성경을 가리킨다. 모든 성경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성경에서 교훈과 위안을 받고, 성경대로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면서 끝까지 참고 나가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경대로 권고하시고 성경대로 이루어 주신다.

. 15: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앞절에서 말한 성경의 안위와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성경과 하나님으로부터 안위와 인내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고 특히 믿음이 약한 형제를 사랑으로 용납하고 포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서로 뜻을 같이 하여 교회의 일치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는 교만한 자요 교회의 일치를 파괴하는 자이다.

. 15: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성도가 서로 주를 위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여 그 교회를 세워나가는 데 목표를 두면 서로 한 마음이 되고, 한 입의 말(같은 말)이 나오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 15: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다시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했다. 성도는 어떠한 경우에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나가야 한다. 여기서는 믿음이 약한 형제를 받아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것이다. 나(자기)와 같은 죄인의 괴수(악독과 허물이 가득한 자)를 그리스도께서 받으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것을 생각하고 나도 부족하고 약한 형제를 용납하고 받아(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죄인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사랑으로 연단 시켜 하나님께 드리셨다. 예수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신 것처럼 우리도 아무리 부족한 형제라도 다 받아주어야 한다. 믿음이 약한 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로 자라나기까지는 강한 자가 많은 수고와 해산하는 고통을 해야 된다(갈 4:19). 연약한 자가 강한 자로 말미암아 자라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면 강한 자에게도 더욱 큰 하나님의 위로와 상급이 주어질 것이다.

. 15: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느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내가 말하노니 이것은 어조를 높여서 다음의 내용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하나님은 진실하시므로(롬 3:4)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지켜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셔서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그 약속을 모두 성취하셨다.

할례의 수종자는 유대인의 수종자란 뜻이다. 그 이유는 할례는 유대인만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조상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셔서 먼저 유대인들의 수종자가 되셨다.

. 15:9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이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바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희생하신 것은 유대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육체로 무할례자요, 약속의 언약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이 살던 자들이었다(엡 2:11-12).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것이다.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이는 시편 18:49의 인용인데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릴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인종, 계급, 빈부, 유무식(有無識)의 차별을 하거나 부족한 자를 멸시하지 말고, 서로 받아서 구원을 이루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 15:10 또 가로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이는 신명기 32:43의 인용으로 열방에 있는 택한 백성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 본래 주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할 것을 노래한 것이다.

. 15: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시편 117:1의 인용으로서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말한다.

. 15:12 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이것은 이사야 11:1의 인용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뜻이다. 이새의 뿌리에서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이다.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열방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 소망을 둘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열방의 소망이요 인류의 소망이다.

.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소망의 하나님 하나님은,

① 우리의 소망의 대상이다.

② 우리에게 하늘의 모든 소망을 주신다.

③ 하늘의 소망을 이루어지게 해주신다. 바울은 소망의 하나님께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기쁨과 평강과 소망이 충만케 하시기를 기도한다. 참된 기쁨과 평강은 믿음 안에서만 얻을 수 있고, 참되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이루어 나갈 수가 있다(롬 5:5).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 안에 거하면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고 시기와 분쟁을 떠나 항상 평강을 누릴 수 있다.

二. 바울이 이방인을 위하여 희생함(14-21)

. 15: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선함이 가득하고, 신앙 생활에 대한 지식이 풍성하여 서로 권하는 것을 바울이 확신하고 있다. 교역자는 성도들이 깨달은 진리 지식의 정도와 신앙 생활의 형편을 잘 알아야 하며 그들의 봉사와 충성을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 15: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알고 있는 것이지만 다시 권면하고 가르쳐서 생각나게 하고, 각성시켜 바로 길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바울이 본서를 기록하는 데 있어서 겸손의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바울이 진리를 밝히고 권면하는 데는 담대했다. 우리도 이 점을 배워야 한다.

.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를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주신 은혜는 무엇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여 이방인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교역자와 성도가 다른 사람을 제물로 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하나님 앞에 산 제사로 드리되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드려야 한다.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물은 성령 안에서 회개하고, 믿음으로 말씀을 받아 순종하므로 거룩하게 되어 그 몸 전체를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제물로 바치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

. 15: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 바울은 자기에 대하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으나 자기를 통하여(사도직 행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구원 운동의 성취를 자랑하는 것이며 곧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교만이 아니고 겸손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찬송함이다. 성도는 자기를 자랑하지 말고 예수님만 자랑해야 된다(고전1:31 ; 갈 6:14).

. 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에게 성령이 함께 하여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셨다. 바울에게 지혜로운 말도 주시고 여러 가지 일을 도와주셔서 성취되게 하며, 이적, 기사도 나타나게 해주시고 성령의 큰 능력의 역사도 나타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외에는 말하지 않기로 작정했다(고전 2:2). 그 이유는 자기를 나타내거나 자랑하지 않고 그리스도만 나타내고 그리스도만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표적과 기사 표적은 자연 법칙을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요, 기사는 자연 법칙을 동원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병 고치는 것, 귀신을 내쫓는 것도 표적에 속한다. 기독교에 있어서 제일 큰 표적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요 그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둘째로 큰 표적은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다(성도의 중생). 셋째는 산과 같이 큰 세력들이 하나님의 역사로 깨어져 나가고 돌과 같이 완고한 마음들이 녹아져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들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이적 기사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먼저 자신을 주께 바치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에게 말하는 권능도 주시고, 표적과 기사도 나타나게 하시고, 성령의 큰 능력으로 역사해 주신다. 데살로니가전서 1:5에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라고 했다. 아무리 부족하고 말할 줄 모르는 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순종하고 그만 의뢰하며 그로 말미암아 말씀을 전파하면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여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도록 해주신다. 이렇게 순종하여 나가는 길은 내가(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친히 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에 우리가 순종하여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 자신이 살고 남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여 살려나가게 된다.

. 15: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이 일로 인하여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이방인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출발하여 이방을 두루 돌며 일루리곤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했다.

일루리곤은 마게도냐 북부 즉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의 서북쪽에 있는 지방이다. 바울이 그 곳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우리도 한곳에서만 복음을 전하려고 하지 말고 여러 곳에 복음을 전하도록 힘써야 되겠다. 복음을 전할 때에 영혼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아무쪼록 몇몇 사람에게 더 전하고 몇 사람이라도 더 얻으려고 힘써야 된다(고전 9:22).

. 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할 수 있는 대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전하지 않고 복음을 받지 않은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 바울이 다른 전도자가 전도하는 곳에서는 전도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늘날 이미 세워진 교회 옆에다가 교회를 또 세우는 일은 잘못된 것이다. 교회를 세우려고 할 때에는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교회와 거리를 두고 설립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미국 북장로교에서 정통 장로교가 분리하여 나왔을 때 북장로교회 옆에 세운 교회는 실패했고, 다른 교회와 상당히 떨어진 곳에 세운 교회는 크게 성공했다고 한다. 이웃 교회간에 서로 교인을 많이 모으고자 교인 쟁탈을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먼 장래를 보면 몇 사람 더 빼앗아 왔다 해서 잘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교회를 크게 하려고 무조건 교인 쟁탈을 하는 것은 욕심이요 성경과 믿음에서 떠난 행동이다.

. 15:21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등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사야 52:15의 인용으로 바울은 이 말씀을 믿고, 이 말씀을 이루어 드리려고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힘썼다. 하나님은 이러한 바울에게 같이 하시고 친히 역사 하셔서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신 것이다.

三. 서바나 전도를 원함(22-24)

. 15: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번 막혔더니

그러므로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에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하였으므로(20-21절) 로마에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으나(1:15), 아직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그 곳(로마)에 전도하기 위하여 가는 길이 막혔다는 뜻이다.

. 15: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서바나로 갈 때에 서바나는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칼 지방이다. 바울은 서바나에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서바나는 당시 로마 세계로서는 끝에 있는 지방이다. 바울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의 명령을 따라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하려고 한 것이다. 이제는 전절의 로마행을 방해하는 일이 제거되었으므로(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음으로) 서바나와 로마에 가려는 심정을 가진 것이다.

. 15: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사도 바울이 서바나로 가는 길에 로마에 들러서 로마 교인들을 만나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신령한 은사를 나눠줌으로(1:11) 영적 위안과 만족을 약간 받은 후에 서바나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약간의 만족 바울이 서바나로 가려는 것이 원목적이므로 로마에 가서 약간의 기간만 머물고자 하는 것을 가리킨다.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이것은 그들의 안내를 받는 일과 기도로 성원해 주는 일과 전도 여비를 도와주는 일 등을 가리킨다. 바울은 이와 같이 여러 성도의 협력과 도움으로 복음을 널리 전하려 한 것이다.

四. 성도 봉사(25-29)

. 15:25-26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그러나 지금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려 한다. 그것은 아가야와 마게도냐 교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기쁘게 구제 연보를 해주었기 때문에 그 연보를 전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가고자 한 것이다.

.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연보는 믿음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후 9:7).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성도들이 기쁨으로 연보한 것은 믿음을 쓴 증거요 믿음의 열매이다.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이방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대하여 빚진 자이다. 신령한 말씀을 전해 받았으면 전해 준 자에게 빚을 진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방 교회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으니 이방 교회는 예루살렘에 신령한 빚을 진 것이다. 그 빚을 물질로 갚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므로 이방 교회가 기쁨으로 연보하여 예루살렘 교회로 보내게 된 것이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6:6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씀의 실천이다. 말씀을 가르침 받는 사람은 자기를 가르쳐 주는 사람에게 물질로 공궤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빚진 것을 갚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것을 억지로 하지 말고 기쁨으로 하고 감사함으로 하여야 믿음이 자라나고 복을 받는다.

. 15: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교인들이 보낸 연보를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 주고 로마를 지나 서바나로 가고자 계획한 것이다. 바울이 연보를 취급함에 있어서 항상 신중히 하셨다. 고린도후서 8:20-21에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교회가 물질을 신중히 취급하지 않으면 시험이 들어오기 쉽다.

. 15:29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바울이 로마에 갈 때에 제일 좋은 선물을 가지고 가려고 한다. 제일 좋은 선물은 금은 보화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이다. 이것은 바울이 깨달은 진리, 바울이 발견한 그리스도(빌3:8-10)를 큰 영권으로 전해 주어 성도들의 영을 설려내고 길러 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인격을 이루어 나가게 하는 것이다.

五. 기도 권면(30-33)

. 15:30-32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쫓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이 구절들은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기도해 주기를 권한 말이다. 바울이 권면할 때에 성령의 사랑으로 하셨다. 이는 성령에 의하여 마음에 품은 사랑으로 권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무슨 권면을 할 때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하여야 한다. 여기 권면한 내용은 세 가지이다.

① 유대인들의 많은 핍박 속에서 자신을 구원하여 달라는 기도이다.

② 이방 교회에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구제하는 일이 아무 시험이나 지장이 없도록 하여 성도들에게 은혜가 되게 하여 달라는 기도이다. 당시 예루살렘 교인 중에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아직 율법의 제도와 규례를 열심히 좇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바울이 이방 성도들에게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을 주장하고, 율법의 제도나 규례를 지키게 하지 않는다고 좋지 않게 생각하셨다. 그러므로 바울이 구제하는 일을 그들이 반대할 염려가 있었다. 이러한 형편이므로 바울의 구제하는 일이 원만히 잘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셨다. 무슨 일이나 기도하고 하여야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어려운 시험도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게 된다.

③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을 기쁨으로 심방할 수 있게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 모든 기도를 힘을 합하여 하자고 한 것이다. 이것은 분투 노력하며 뜻을 같이 하여 기도하자는 것이다. 전심전력을 기울여 기도해야 되고, 또 합심하여 힘써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여 주신다.

. 15: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축복한 것이다.

평강의 하나님 성도가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있으므로 평강의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에게 항상 함께 계셔서 심령의 평강을 주셔서 승리의 생활하기를 축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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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6장

제 16 장 문안

(대 지)

一. 일꾼 영접(1-4)

二. 문안 권면(5-16)

三. 교훈 거역자를 떠날 것(17-20)

四. 문안 축복(21-24)

五. 복음 귀영(25-27)

(본문강해)

一. 일꾼 영접(1-4)

. 16:1 내가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겐그레아 고린도 동쪽 14.4㎞에 있는 고린도의 외항 도시이다. 바울이 전에 겐그레아에 가서 전도한 일이 있다(행18:18 참조). 그 때에 이 교회가 설립된 것 같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고 했다. 일꾼의 원어 (디아코노스)는 집사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한역 성경 각주에는 집사라고 했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여 집사로서 바울이 전도하는 일을 많이 도와주고 바울을 잘 대접하였으며, 여러 성도를 위해서도 많이 봉사하고, 물질적 원조와 구제를 많이 한 집사이다. 이 뵈뵈가 금번에 바울의 천거를 받아 본서를 가지고 로마교회에 가게된 것이다.

. 16: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바울은 뵈뵈를 천거하여 보내면서 교회에서 그를 도와주도록 부탁하고 있다.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은 성도다운 태도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위치에서 믿음과 존경과 사랑과 친절로써 대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하나님의 일꾼을 영접하고 도와주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일을 돕는 것이다. 주의 일을 하는 일꾼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일은 주의 일을 돕는 일이며 하나님의 일꾼과 함께 하나님의 상급에 참여하게 된다(마 10:41 참조).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들어줄 때에 이스라엘이 승리했고 이스라엘이 승리하므로 모세는 물론 아론과 훌도 같은 축복에 참여했다.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뵈뵈는 겐그레아 지방에서 유력하고 부요한 자로서 바울과 다른 성도를 많이 도와주었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보호자가 된 것 같다. 이러한 사람을 교회가 알아주고 대접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 16:3-4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부부로서 브리스가는 아내이고, 아굴라가 남편이다. 바울이 아내의 이름을 먼저 기록한 것은 아내의 믿음이 더 줘은 까닭이며 아내가 믿음의 호주였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전에 바울을 많이 도와준 사람들이다(행 18:2-3, 18, 26). 바울이 핍박을 받을 때에 이 부부가 바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들의 목숨을 내놓은 자였다. 그들은 바울이 하는 하나님의 일이 귀중하기 때문에 자기들의 생명을 내놓고 바울을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이 부부는 바울의 은인이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충성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방 교회들도 이 부부에 대하여 감사하셨다. 이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본서를 보낼 때에는 로마에 있었다. 로마 성도들도 이런 사람에게 문안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므로 그들에게 문안하라고 바울이 권면한 것이다.

二. 문안 권면(5-16)

. 16: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저의 교회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이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바울을 통해서 하는 하나님의 일을 잘 도와주었고, 자기의 집을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장소로 제공하셨다. 초대교회는 가정집에서 모이는 교회가 많았다(고전 16:19 ; 골4:15 ; 몬 1:2 참조). 이 부부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물질과 몸과 모든 것을 바쳐 적극적으로 봉사하셨다.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 에배네도는 바울이 아시아 전도시에 처음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으로서 바울이 그를 늘 기억하며 사랑했다.

아시아는 지금의 소아시아의 서쪽에 있는 하나의 주(州)를 가리킨다. 본절 이하에서 바울이 한사람 한사람의 정황, 신앙상태, 주를 위하여 봉사한 사실을 낱낱히 소개하면서 문안하라고 했다. 교회는 언제나 성도들의 형편과 신앙상태와 봉사한 사실을 잘 알고 대우하는 것이 합당하다.

. 16: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많이 수고한 마리아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아니고 다른 마리아이다. 그가 성도들을 위해 많이 수고하셨다. 그 수고를 로마교회와 바울이 알아주었다. 주의 이름으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준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 상급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마 10:42).

. 16: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친척 이 말은 동족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말이며 여기서는 9:3, 11:14에 있는 골육이라는 말과 같은 말로서 동족을 가리킨다.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이 두 사람은 바울보다 먼저 믿은 자요 또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던 자이다. 그들이 주를 위하여 갇혔으며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는 자였다. 주를 위하여 수고한 것과 지도자들이 어떻게 대우한 것을 알아야 그 사람을 바로 대우하고 교제하며 하나님의 일을 잘 받들어 나갈 수 있다.

. 16:8 또 주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암블리아 노예들의 이름인데 그는 노예로서 예수를 믿은 듯하다. 초대교회에는 노예들이 많이 예수를 믿었다고 한다. 빌레몬서 1:10에 있는 오네시모도 노예였다.

. 16: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우르바노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을 많이 도와주고 주의 일을 잘 수종든 자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를 알아주고 문안하는 것이 마땅하다.

스다구는 바울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자이며 그도 바울을 많이 도와준 것 같다.

. 16: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인정함의 원어 (도키모스)는 시험하여 인정받은 것을 말한다. 아벨레는 어떤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에 믿음으로 잘 이겼으므로 많은 성도에게 인정을 받은 자이다. 이런 자를 교회에서도 알아주어야 한다. 성도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하여 선을 행하는 것은 외식이며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하나님이 주시는 여러 가지 시험을 믿음으로 이기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 인정을 받게 된다.

아리스도불로의 권속 아리스도불로는 대헤롯의 손자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는 로마에서 죽었고 그의 권속들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므로 문안하라고 했다.

권속이란 가족이나 집에 속한 자들을 가리킨다.

. 16: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헤로디온은 바울의 친척 즉 동족인 유대인이다. 나깃수는 헤로디온과 같이 여자로서 자매인 듯하다.

. 16:12 주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버시는 주안에서 주와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자라고 했다. 교회를 위하여 수고를 하므로 연단을 받아 영이 자라났고 복음운동에 많은 유익을 주었다. 또 그 수고는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주 앞에 가는 날 영광스러운 상급으로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이다.

. 16:13 주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루포는 마가복음 15:21에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라고 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사람이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으나 그로 인하여 그 아들 루포와 그 부인(루포의 모친)이 복을 받았다.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인 것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믿은 것 같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보고 그의 수고에 동참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요 1:39, 46 참조). 구레네 시몬은 그 믿음을 부인과 아들에게 전해 주었을 것이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것이다.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으나 그로 인하여 그와 그 집이 다 복을 받았다. 그후 구레네 시몬이 세상을 떠났으나 부인과 아들이 좋은 신자가 되어 하나님의 교회에 충성했으므로 바울이 그것을 알아주었다. 우리도 억지로라도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배워야 되겠다. 하나님의 구속사업에 억지로라도 참여하여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 마침내 신앙의 길로 걸어가는 자가 많다.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루포의 어머니를 바울이 자신의 어머니로 모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많이 도와주었고 바울이 하는 일도 많이 도운 때문일 것이다.

. 16:14-15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여기에서 두 집회가 나타난다. 그것은 14절에 "함께 있는 형제들"과 15절에 "함께 있는 모든 성도"이다. 이들은 아마 집에서 모이는 교회들인 듯하나 일정한 집이 아니고 이 집 저 집으로 돌아가며 모이는 두 교회인 듯하다.

. 16: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초대 교회에서 예배가 끝난 후에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입맞추는 예가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풍습으로는 입맞추는 것이 가장 친절한 인사였다. 현대에는 각 나라마다 가장 친절한 인사방법으로 인사해야 한다.

三. 교훈 거역자를 떠날 것(17-20)

. 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앞절들에서 성도가 서로 사랑하며 친교를 가지라고 가르쳤으나 본 에서는 바른 진리를 거스리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를 떠나라고 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을 용납하면 온 교회가 다 부패하고 탈선되겠기 때문이다(갈 5:9 참조).

어느 시대나 바른 교훈을 거스리며 잘못된 교훈을 퍼뜨려 진리를 무너뜨리고 순진한 교인들을 미혹하여 넘어뜨리려는 역사가 있다. 그들의 교훈은 누룩과 같아서 곧 온 덩이에 퍼져 다 썩게 만든다. 그러므로 잘 살피고 경계하여 잘못된 것을 드러내고, 그 교훈에서 떠나 바른 진리만 세워나가야 된다.

. 16: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자기 배만 섬기나니 자기 사욕을 좇는다는 뜻이다.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미명 아래 자기들의 유익만 구하고 자기 욕심만 채운다. 저들은 공교하게 그럴듯한 말로 속임수를 써서 겉으로는 예수님을 위하나 그 속에는 탐욕이 가득하고 물질중심과 자기중심으로 행하는 것이 분명하다.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 여기 순진한 자는 비판력이 부족하여 속기 쉬운 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진리 지식과 분별력이 부족하여 비진리에 미혹되기 쉬운 자이다. 마귀는 또 신앙양심을 쓰지 않고 성경진리를 전적으로 믿지 않는 자들을 미혹시킨다.

데살로니가후서 2:11-12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 16:19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로마는 그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으므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순종함이 여러 지방에 퍼져 나갔다. 순종은 곧 믿음이다. 진리를 순종치 않고 진리를 사랑치 않는 자들을 마귀가 미혹시킨다(살후2:9-12 참조). 로마의 성도들은 진리를 순종하기 때문에 미혹시키는 자가 미혹시키지 못할 것을 바울이 확신하고 기뻐하셨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더욱 소원을 가지고 권면한다.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선에 대해서는 지혜를 써서 탐구하고 실천하여 선을 건설하여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선이다. 성도는 항상 힘써 그 나라와 그 의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미련함의 원어 (아켈라이오스)는 "순수한"이라는 뜻이다. 마태복음 10:16에서는 같은 말을 순결하라(비둘기 같이)고 번역했다. 여기서는 악을 혼합하지 말라. 즉 악을 조금도 용납하지 말고 즉각 배제하라는 뜻이다. 성도가 비진리와 타협하면 빛을 잃어버리고 흑암에 빠져 생명의 길에서 떠나게 된다.

. 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평강의 하나님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영적 평강을 주실 뿐 아니라, 사단을 심판하여 평화의 나라(천년왕국)를 지상에 건설할 것이며, 최후에는 영원 무궁한 평화의 나라(천국)로 인도할 것이다.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핍박하는 자들과 미혹시키는 자들과 자기 배만 위하는 자들(18절)과 참 진리를 반대하는 자들은 사단의 종들이요, 그들 속에서는 사단이 역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사랑하며 선을 세워나가는 성도들의 발 아래 그들을 속히 상하게 하여 주실 것을 예언하셨다. 이것은 창세기 3:15에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는 예언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써 뱀 곧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고 그 후에는 재림시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써 모든 마귀의 궤휼과 권세를 발로 밟아 상하게 하고 재림할 때에는 사단을 무저갱에 던지고 완전한 평화를 주실 것을 약속한 것이다. 사단의 역사는 반드시 심판 받고 최후의 승리는 성도에게 있다.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사단을 발아래 밟은 주 예수의 은혜가 성도에게 늘 있어서 승리하기를 축원한 것이다. 성도는 은혜 속에서 힘을 얻어 선을 건설해 나가고 사단을 멸하여 나간다. 즉 사단을 이기고 그 나라와 의를 세워 나간다.

四. 문안 축복(21-24)

. 16: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1-23절은 바울과 같이 있는 성도들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문안이다.

디모데 바울의 제자요, 믿음의 아들로서 바울을 가장 잘 받들어 준 사람이다(빌2:19-23, 딤전1:2).

누기오 사도행전 13:1에 바울과 같이 안디옥교회에서 봉사하는 루기오인 듯하다.

야손은 사도행전 17:5-7에 데살로니가 전도시에 바울과 같이 핍박받은 야손일 것이다.

소시바더 사도행전 20:4에 마게도냐에서 아시아까지 바울과 같이 있으면서 복음운동을 도운 것 같다.

. 16:22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 바울이 여러 편지를 친히 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불러주어 대서하도록 했다(고전16:21 ; 갈6:11 ; 골4:18 ; 살후3:17 참조). 본서는 더디오를 시켜서 대서하면서 끝에 가서는 바울이 더디오에게 너도 문안하라고 하였으므로 더디오가 문안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아랫사람을 인격적으로 사용한 점이다.

. 16:23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식주인 가이오 가이오는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가이오 같다(고전 1:14). 그는 바울을 자기 집에 모시고 대접한 성도인데 그가 부요 하여 자기 사유재산으로 멀리서 교회를 찾아오는 교회 손님들을 늘 대접하였으므로 교회의 식주인으로 인정받은 것 같다.

재무 에라스도 재무의 원어 (오이코노모스)는 청지기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한역 성경 각주에는 청지기라고 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시의 재무를 맡고 있었던 것 같다.

. 16:24 없음

五. 복음 귀영(25-27)

. 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전부터 감취었다가

나의 복음 사도 바울이 깨닫고 전한 복음을 가리킨다.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바울이 전한 복음은 없던 것이 나타난 것이 아니고 영세 전부터 하나님이 예정했던 것이나 그것이 감취어져 있다가 때가 되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내신 것이다.

. 16:26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이 복음은 구약성경 안에 나타나 있다.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계시로써 복음을 알게 하셨고 선지자들은 그것을 예고하셨다(벧전 1:11-12). 그들은 또한 그 복음을 기록하여(구약성경) 전해 주었다. 그 목적은 모든 민족으로 그 복음을 믿고 순종케 하여 구원하려는 것이다.

비밀의 계시 비밀은 복음이며, 계시는 열어서 보여준다는 뜻으로 바울이 받은 복음을 가리킨다. 골로새서 2:2에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곧 복음이다(롬 1:2-4).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이 복음을 믿음으로 영혼이 중생하고 중생한 영은 이 복음으로 점점 장성하여 견고해진다.

. 16: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지혜로우신 하나님 전 절 끝에는 능력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으며 본 에는 지혜로우신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능력과 지혜는 하나님께만 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로 영세 전에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계획을 세우시고 그 비밀을 감추어 두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고하셨다.

하나님의 정한 때가 차매 그리스도를 보내서 그 비밀(복음)을 나타내시고 모든 족속이 그 복음을 믿어 순종케 하여 구원을 얻게 하시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그 복음으로 성도의 영을 살리고 장성케 하여 성도를 견고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이다. 이러한 지혜와 능력으로 구원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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