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목사님 주석

마가복음

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마가복음 강해

기록한 사람 : 마가

기록한 연대 : 주후57-58년경

기록한 장소 : 로마

123456 78910111213141516171819202122232425문서의 처음으로성경색인

마가복음1장

제 1 장 세례요한

[대 지]

一. 세례 요한의 전도(1-8)

1. 그리스도의 선구자(1-3)

2 대중인도(4-5)

3. 자기처리(6)

4. 구주명증(明證)(7-8)

二. 예수님이 세례 받으심(9-11)

三. 예수님의 금식과 시험받으심(12-13)

四. 예수님이 전도하심(14-15)

五. 네 제자를 부르심(16-20)

六. 안식일에 가르치고 귀신을 쫓아내심(21-28)

七. 시몬의 장모와 여러 병자를 고치심(29-34)

八. 새벽에 기도하고 여러 곳에 전도하심(35-39)

九. 문둥병자를 고치심(40-45)

[본문강해]

一. 세래 요한의 전도(1-8)

1. 그리스도의 선구자(1-3)

.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구약 시대에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은 기름 부음을 받아야 그 직분에 위임되었다.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세 직분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자서 죄인들을 구원하신 구속주이시다.

복음의 헬라 원어 (유앙겔리온)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와(롬1:2-4참조) 그를 통한 구원의 도리가 복음이다.

. 1:2-3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록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부터 기록하였다. 2절은 말라기3:1의 인용이며, 3절은 이사야40:3을 인용한 말씀이다. 마가가 초두에 이사야의 글이라고 소개하면서 왜 말라기3:1의 말씀을 인용했을까? 마가는 이사야40:3의 글을 소개하려는 것이 목적이었고, 다만 2절에서 말라기3:1의 말씀을 인용한 것은 서론으로 삽입한 것 같다. 그러므로 마가의 의도한 바는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와서 주의 길을 예비한다는 것을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증거 한 것이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세례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였다(요1:23). 사람의 소리는 말을 나타내고 사라지는 것과 같이 세레 요한은 말씀되시는 그리스도만 나타내 놓고 사라져야 될 자임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종들은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내고 자신은 사라져서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다(요3:30).

첩경을 평탄케 하라 첩경의 헬라 원어 (트리보스)는 다져진 길을 뜻한다. 따라서 이 말씀은 주께로 가는 길을 평탄케 하라는 것이다. 죄인들이 죄를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 첩경을 평탄케 하는 것이다.

2. 대중 인도(4-5)

. 1:4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 세례 요한의 세례를 가리킨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그 자체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고 죄를 뉘우치고 자복하며 그리스도께 나아가서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역할을 한다. 죄 사함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를 영접할 수 없다. 세례 요한의 세례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한 회개운동으로서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 1: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 온 유대 사람은 예루살렘 이외의 여러 지방에서 온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다 나아가 많은 사람이 나아갔다는 뜻이고.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전부 나아갔다는 뜻은 아니다. 유대 백성 중 겸손하고 순전한 사람들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교만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세례를 받지 않고 도리어 비방하였다(눅7:29,33).

3. 자기 처리(6)

. 1:6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요한의 의복은 약대 털옷이요, 의식(衣食)에 제재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였다. 세례 요한이 자기 직무를 감당하는데 있어서 적당한 음식과 의복을 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약대 털옷은 광야 생활에 적당한 옷이다. 밤에 입은 채로 자면 한편은 이불이 되고, 한편은 요가 된다. 또한 기도하고 일어나서 먼지가 묻었으면 털면 된다. 누구나 자기 직무에 적당한 옷을 입는 것이 좋다. 우리성도는 자기 분수에 적당하고 아담한 옷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은 의식에 제재를 받지 말고, 의식을 초월하여 살아가야 한다.

사도 바울도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다(빌4:11-12). 특히 교역자는 의식 문제에 얽매이면 하나님의 참된 종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풍부한 가운데 두시면 풍부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고, 가난한 가운데 두시면 그 가운데에서도 물질에 구애받지 말고 믿음을 지켜 나아가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모두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풍부하든 가난하든 마음을 물질에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의지하며,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 기선 목사님은 교역자의 의식에 대하여 중등(보통)으로 취하면 좋다고 말씀하셨다. 의복이 너무 고급스럽고 차려해도 복음 전하는데 방해가 된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자연스럽게 메뚜기를 잡아먹고 들에 있는 꿀(석청:야생꿀)을 취하여 먹었다.

이것이 의식에 제재를 받지 않는 생활이요 의식을 초월한 생활이다. 메뚜기와 석청은 광야에서 얻기 쉬운 음식들이다. 교역자는 의식주를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말고, 또 남에게 누(累)를 끼치지 않는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다.

4. 구주명증(明證)(7-8)

. 1:7-8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세례 요한은 자기를 바로 알았고, 예수님을 라로 알아 전파하였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자기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으로 알았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자신은 감히 그의 신들메도 풀 수가 없는 죄인임을 알았다. 부족한 인간이 어떻게 지극히 거룩하시고 성결하신 하나님을 수종들 수 있겠는가!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세례는 정결케 한다는 뜻이다(마태복음 강해서 3:11, 16-17절 해석 참조).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죄인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 받아 정결케 될 것을 말한다.

二. 예수님이 세례 받으심(9-11)

. 1:9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으신 이유가 무엇인가?

①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③ 모든 택한 백성을 대신하여 세례 받기 위함이다.

④ 모든 성도의 모본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 신구약 성경 말씀을 다 지켜야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려면 세례 받는 일까지 순종하여야 된다. 이것이 의를 이루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세례를 주도록 하나님이 보내셨으므로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하나님을 순종하여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된다. 따라서 예수님은 세례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의가 되고, 세례요한은 세례를 주는 것이 하나님 앞에 의가 되는 것이다.

. 1:10-11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물에서 올라오실새 예수님께서 물(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 없는 데(육지)로 올라오셨다는 말이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 물 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물위로 올라온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말이 없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어떻게 물에 잠갔다가 꺼낼 수 있겠는가! 물을 떠서 끼얹는 것이 경건하고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세례의 원 뜻에 맞는다.

"세례주다"의 헬라 원어는 (배티조)로서 그 뜻은 "잠그다, 적시다, 씻다, 씻어서 정결케 하다"는 뜻이 있다. 침례교파에서는 "잠그다"는 의미로만 해석하여 침례를 주장한다. 그러나 "세례 주다"라는 헬라 원어 (배티조)는 변형되어 (배티스모스), (배티스마), (배티스테스)등으로 성경 여러 곳에 사용되었다.

누가복음11:38에 "장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 하심을"의 손 씻지( )나, 요한복음13:26의 "한 조각을 찍으셔 다가"의 찍는다( )의 의미가 모두 (배티조)라는 말이 변형된 말이다. 침례교파에서는 잠그다는 뜻에만 국한시키고 다른 뜻을 무시한 것은 헬라 원어를 올바로 해석한 것이 못된다. 물론 "잠그다"라는 뜻도 있다. 그러나 원문의 뜻만 가지고는 잠그는 것인지, 씻는 것인지, 적시는 것인지 확실히 나타낼 수 없다. 그런데 침례교파에서는 일방적으로 "잠근다"는 뜻으로만 해석하여 침례만이 참된 세례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체를 무시하고 의식에 치우쳐 침례를 고집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줄 때 사람들을 물에 잠갔다가 꺼냈을까? 아니면 물을 떠서 머리에 끼얹었을까? 세례의 기원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시작 된 것이 아니다. 전에 있던 세례를 요한이 새로이 시행하였다고 하면 백성들이 당연히 세례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느냐고 물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세례는 구약시대부터 유래한 것인데, 세례 요한이 특별히 많이 행한 것뿐이다. 세례의 참된 근원이 무엇인가?

① 모세가 송아지의 피를 뿌려 성소를 정결케 하였다(출29:16).

② 에스겔36:25에 "맑은 물로 너희에게 부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라고 하였다.

③ 문둥병에 걸렸다가 정결케 된 자는 살아있는 새 두 마리를 제사장에게 가져가면 제사장이 한 마리는 죽여서 그 피를 산 새의 날개로 찍어서 문둥병 걸렸다가 나은 사람에게 하는 의식을 행했다(레14:5-6).

이와 같이 구약시대의 모든 정결케 하는 예식이 모두 물이나 피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도 뿌려서 정결케 하는 예식이 분명하다. 베드로가 하루에 삼천 명이나 세례를 주었는데, 그 삼천 명을 모두 물에 잠그었다가 꺼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겠는가! 물에 잠그었다가 꺼린다면 철야하여 24시간 동안 세례를 베푼다고 하여도 삼천 명을 다 세례 주지 못한다. 바울이 다메섹에 가서 금식 기도하다가 아나니아에게 안수 기도를 받고 일어나 세례를 받았다고 했고 물에 나가서 바울이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 않았다. 이로 보건대 바울이 방에서 기도하다가 일어나 세례를 받은 것이 확실하다(행9:18).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행16:33 참조). 강에 가서 세례를 준 것도 아니요, 목욕통을 만들어서 세례를 준 것도 아니었다. 즉시 머리에 물을 끼얹어 세례를 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다(고전10:1-2 참조).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물 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나왔는가?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고 바다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그것을 곧 세례라고 하였다.

침례교파에서는 세례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즉 물 속에 들어간 것은 옛 사람이 죽어서 장사지변 것을 상징하고, 물 속에서 올라오는 것은 새사람이 살아 올라오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례의 참 들쓴 "씻어서 정결케 한다"고 해야 성경 전체의 사상에 맞는다. 그러므로 세례 받을 때 꼭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적수(滴水) 세례가 옳다고 본다. 침례 교파에서 적수 세례를 받은 자라도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미 삼위의 이름으로 건전하게 세례를 받은 것은 피차 인정하는 것이 옳다.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것은 취소하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독선적인 의식주의이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성령의 모양이 비둘기 같이 생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한 분이시요,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형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임한 것에는 상징적인 뜻이 있다. 비둘기는 하나님께 제물로 이용되는 새이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제물로 드렸다. 그러므로 성령이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임하신 것은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시고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도록 역사 하는 성령임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내 아들이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예수님이 아들로서 다 받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계시를 다 받아 은혜와 진리를 우리에게 전부 전달하여 주신다.

기뻐하노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완전히 다 이루어 드리심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다.

三. 예수님의 금식과 시험받으심(12-13)

. 1:12-13 성령이 곧 예수를 황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께서 사십 일 동안 계속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고 볼 수 있다. 이 시험 문제 때문에 예수님이 기도를 많이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죄가 없는데 왜 시험을 받으셨을까?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이겨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성을 입으셨기 때문에 우리와 꼭 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그러나 죄는 없으시다(히4:15 참조). 예수님이 인성으로는 연단을 받아 자라나야 하므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힘입어야 했다. 이를 위해 광야에 나가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셨고 사십 일 동안 기도를 하셨다.

예수님께서 시험받는 기간 동안 여러 가지 들짐승이 많이 왔으나 하나님이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고, 모든 시험을 다 이길 수 있도록 하여 주셨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주신 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셨다.

"광야 생활"은 아무 의지할 데도 얼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쓸쓸하고 거친 지경에 처하는 것이다. 성도가 시험받을 때에도 영적 광야가 된다. 그리하여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들짐승과 같이 된다.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모두 짐승과 같이 해하려고 하고 물어뜯고 잡아먹으려고 하는 때가 많다. 그때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손해 받지 않게 해주시고 망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다. 그러므로 시험받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말씀대로 걸어가면서 그 시험을 이겨야 한다. 마귀가 예수님께 세 가지 시험을 했으나(마4:4-11 참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다 이기셨다.

四. 예수님이 전도하심(14-15)

. 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본절부터 갈릴리 전도의 시작이다.

요한이 잡힌 후 세례 요한이 헤롯왕의 악행을 면책하였기 때문에 헤롯왕이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막6:17-18).

. 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때가 찬 것을 가리킨다. 그때가 차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를 받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회개해야 하고 둘째, 복음을 믿어야 한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을 가리킨다.

五. 네 제자를 부르심(16-20)

. 1:16-20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예수님의 성역 중 첫째는 제자를 택하여 연단시키며 길러 나가는 일이었다. 오늘날 복음 운동에도 일꾼을 택하고 연단시키며 길러나가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예수님은 제자를 택할 때에 제사장이나 학자 중에서 택하지 아니하고 무식한 어부들을 택하였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고전1:26-29 참조).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이 네 제자는 본래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나 세례 요한의 소개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요1:35-42 참조).

六. 안식일에 가르치고 귀신을 쫓아내심(21-28)

. 1:21-22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 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집이 있는 동네이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큰 권세와 능력으로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교훈에는 이러한 권세와 능력이 따랐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따르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가버나움 사람들은 놀라기만 하고 믿지는 않은 것 같다.

. 1:23-24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귀신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일 줄을 알았다. 야고보서2:19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다. 귀신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귀신들을 위하여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으셨고 택한 백성만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귀신들을 제어하고 심판하여 멸하실 뿐이다.

. 1:25-26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귀신을 꾸짖어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귀신들은 사람을 해하고 괴롭게 하나 예수님은 그 사람을 귀신에게서 해방시켜 주시고 구원해주셨다. 귀신들은 주님의 명령 한마디에 벌벌 떨며 쫓겨났다. 인간을 해롭게 하는 귀신들도 예수의 능력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님의 명령 한마디에 귀신이 쫓겨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세와 교훈에 다 놀라며 새 교훈이라고 하였다. 새 교훈은 그 내용이 새 것이요, 그 교훈의 역사가 새롭게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로운 교훈이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1: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예수의 소문은 점점 퍼져서 갈릴리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七. 시몬의 장모와 여러 병자를 고치심(29-34)

. 1:29-31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나아 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병이 나은 다음에 예수님께 수종들었다. 예수님은 심령의 병을 고쳐 주시는 표적으로 육신의 병을 때때로 고쳐 주셨다.

. 1:32-34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예수님이 심령의 병을 고쳐 주실 뿐만 아니라, 마귀의 모든 역사도 물리쳐 주시는 것을 알게 해주시려고 병도 고쳐 주고 귀신도 쫓아내 주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셨으나 병 고치는 것을 위주로 하지 않으셨다. 영적인 정을 고치고 그 표적으로 가끔 육신의 병을 고치신 것뿐이다.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인 이적도 예수님이 자신의 살을 생명의 떡으로 주실 것을 알게 하기 위해 한 두 번 행한 것이고 먹을 것이 없을 때마다 늘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다.*

八. 새벽에 기도하고 여러 곳에 전도하심(35-39)

. 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항상 기도하셨다. 우리도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아 바르게 기도하기를 배우고 실천해야겠다.

첫째,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다. 새벽 시간은 가장 고요하고 심령이 맑아 기도하기 좋은 시간이다.

둘째, 일어나 나가서 기도하셨다. 누워 자던 자리에서 기도하게되면 손을 모으고 기도하다가 다시 눕게 되기 쉽다(잠6:10). 그러므로 부득이 하여 집에서 기도할 경우에도 자던 방에서 하지 말고 다른 방에서나 마루나 다락이나 뜰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이 좋다. 기도하는 장소가 중요하다. 자던 방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다른 방이나 밖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이 좋고 예배당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이 더 좋다. 또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것이 더욱 좋다. 산도 늘 가는 산보다는 높은 산이나, 전에 가보지 않은 깊은 산에 가서 기도하면 더욱 깊은 기도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힘쓰고 사모하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많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광야에 나가서 기도하셨고 자주 산에 가서 기도하셨으며 제일 높은 헤르몬 산에도 올라가서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늘 새벽에 한적한 곳에 나가서 기도하셨다.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신 것은 뒤숭숭하고 복잡한 곳을 떠나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시기 위함이다. 복잡한 곳에서는 깊은 기도를 할 수가 없다. 복잡하고 뒤숭숭하면 마귀가 들어오기 쉽다. 장날같이 복잡한 날에 마귀가 잘 들어온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성도는 은밀한 생활을 하며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고 언제나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안정된 심령을 갖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성도가 부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부하려 하는 생각을 갖게 되면 안정되고 고요한 심령을 잃어버리고, 마귀의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빠진다. 기도는 새벽 시간에 고요한곳에 나가서 하는 것이 좋다. 새벽 기도 후에 세상일을 시작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세상을 잘 이길 수 있다. 다니엘은 포로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하루 세 번씩 기도했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부르짖는 생활을 계속하였으며, 고넬료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다(행10:3).

믿는 사람에게는 기도 생활이 더없이 중요하다. 마가복음9:29에"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했다. 이런 유는 마귀를 가리킨다. 기도 없이는 마귀를 이길 수 없고, 마귀의 종노릇을 면할 수가 없다. 또 믿는 사람이 참으로 영적 신앙으로 산다고 하면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도는 영적 호흡과 같아서 멈추게 되면 영적 교통이 막혀 그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만일 기도하는 일이 억지가 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이 평안하다고 하면 그것은 죽은 심령이다.

현대인들이 말하기를 피곤해서 기도를 못한다고 한다. 왜 피곤한가? 절제하지 않고 세상과 육신 중심으로 살고 영적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정력과 물질을 절제하여 믿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 대개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이다. 게으른 생활은 썩어진 생활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데 힘쓰고 공책을 많이 들여 마음을 기울이고 피땀이 들어가야 된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피땀을 흘리면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다(눅22:44).

. 1:36-39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업으시더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으며 환영할 때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접을 잘 받으며 평안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고 "다른 곳에도 가서 가르쳐야 한다"고 하시면서 환영하는 그들을 떠나 다른 동네로 가서 복음을 전하셨다. 오늘날매도 교회와 전도자들이 복음을 여러 곳에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교역자가 환영받는 곳에서만 안일하게 목회 생활하려고 하지 말고, 또 다른 곳에 가서 복음 전하기를 힘써야 예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다.

九. 문둥병자를 고치심(40-45)

. 1:40-42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증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문둥병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절하며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하고 자기의 문둥병을 고쳐 주기를 간청하였다. 예수님이 그에게 손을 대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실 때에 즉시 문둥병이 깨끗하여졌다. 문둥병은 인간의 심령을 썩게 하는 죄를 상징하고 있다. 사람이 문둥병에 걸리게 되면 육체가 썩어져 들어가 마침내 생명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것처럼 죄는 그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고 멸망하게 한다. 이 문둥병자는 주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믿고 겸손히 간주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그 문둥병을 깨끗이 고쳐 주셨다.

사람들이 자기 육신에 병든 것은 잘 알 수 있으나 심령에 병든 것은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다. 요한계시록 3장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심령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었으나 그 수치를 알지 못하고 외부적인 면, 즉 교회 사업적인 면만 보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다가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심령에 병든 것을 발견하여 예수님께 고침을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간구 할 때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어루만져 주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는 위로와 응답이 오게 된다.

우리가 문중병자와 같은 심정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가면 예수님이 우리를 만져 주시고, 건져 주시고, 낫게 하여 주신다.

. 1:43-44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것은 은혜 받은 다음에 그것을 자랑하거나 방심하지 말고 성경대로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자기의 외무와 책임을 다하며 순종하여 나가라는 뜻이다.

모세의 명한 것 레위기14:2-13에는 문중병자가 나은 다음에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에 필요한 예물, 즉 정한 산 새 두 마리,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 흠 없는 어린 수양 둘,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암 양 하나,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삼에 기름 섞은 소제들과 기름 한 록을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라고 했다.

예수를 믿고 죄에서 깨끗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 해야 될 의무가 있고 자기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 있다. 문중병과 같이 더러운 죄에서 깨끗함을 받은 성도는 이제 성경대로 바로 생활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살면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받쳐야 한다.

. 1: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문둥형 나은 자에게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히 경계했으나(43절) 그 사람이 나가서 그 사실을 계속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 사람은 나가서 기쁨으로 전했을 것이나 그 일이 도리어 예수님께 큰 방해가 되었다.

고린도전서6:12에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문둥병 나은 소문을 듣고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복잡하게 되겠으므로 동네에 들어가지 못했다.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예수님은 복잡한 곳을 피하여 한적한 곳에서 고요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사귀는 것을 기뻐하셨다. 이것이 영적 양식을 먹는 것이요 새 생명이 사는 길이다. 그러나 군중들은 그곳까지 찾아와서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기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그 진리가 있는 곳에는 성도들과 구원받을 자들이 항상 모여들게 마련이다.

제 2 장 레위 마태

[대 지]

一. 반신불수가 온전해짐(1-12)

二. 레위 마태를 부르심(13-17)

三. 의식과 새 생명 운동(18-22)

四. 안식일에 대한 교훈(23-28)

[본문강해]

一. 반신불수가 온전해짐(1-12)

. 2:1-2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예수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전도를 마치시고 가버나움에 들어가셨다. 예수님이 집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다. 예수께서 그 사람들에게 도를 가르치셨다. 예수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생명의 도를 가르치고 전파하셨다. 오늘날 우리들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증거하기를 힘써야 한다.

. 2:3-4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일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고치려고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님이 계신 집에까지 왔으나 사람이 많아 예수님 앞에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아니하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와를 벗기고,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병자를 침상채 달아 내렸다.

이것은 난관을 돌파하는 신앙이다. 예수께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자에게는 난관이 있다. 그 난관을 돌파하고 끝까지 나아갈 길을 찾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다. 그러나 찰 수 없다고 도중에 포기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도 길을 열어 주시지 않는다. 잠언26:13-14에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고 했다. 게으른 자는 이런 저런 핑계를 하면서 예수님 앞에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은 예수님께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찾게 해주시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게 해주신다.

. 2: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 라"고 말씀하셨다.

저희의 믿음 중풍병자와 그를 메고 온 네 사람의 믿음을 말한다. 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으며 예수님께 나아가면 반드시 예수님이 구원해 줄 것을 확신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께 나아가기를 힘쓰고 난관이 있을 때 끝까지 그 난관을 돌파하고 나아갔다.

그 난관은 사람이 많이 둘러 있어서 예수께 접근할 수 없는 것이고, 지붕 위에 올라가서 지붕을 뜯고 병자를 달아 내리운 것은 난관을 돌파하는 신앙이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아무리 방해물이 많고, 길이 막혔을지라도 잘 찾아보면 반드시 나아갈 길이 있다. 그 길을 연구하고 힘써 찾으면 찾을 수 있다. 그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힘써 찾을 때에 마침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지붕을 뚫고 그 병자를 침상에 달아 내림으로 예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기의 피로 구속을 이루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는 권세가 있다. 예수께 나아갈 때에 이 중풍병자는 몸만 나아간 것이 아니고 마음도 나아갔다. 그러므로 예수 앞에 나아가서 예수님을 볼 때에 마음이 서로 통하고 심령이 예수님과 더불어 교통하게 되었다.

그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그리스토로 믿고 사모하며 그에게 나아가면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다. 그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이다. 히브리서11:6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다. 중풍병자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고 예수님이 주시는 새 생명을 얻었다. 이 새 생명은 죄 사함을 받은 결과로 얻은 것이다.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으면 영적 평안과 즐거움이 넘치게 된다. 누구나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면 예수님께서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풍성하게 주신다.

중풍병자가 세상에는 소망이 없는 것을 알고 오직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나아갔다. 중풍병자는 그 병 때문에 좋은 신앙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병이 들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찾을 마음도 생겼고, 어떠한 난관이 와도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믿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또 자기 혼자 힘으로 나아가지 못하여 여러 사람이 협력하여 나아갔다. 이 네 사람은 자기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거나 친척, 혹은 친구들일 것이다. 그 네 사람들도 이 중풍병자를 고쳐 보려는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다른 방법으로는 고칠 길이 없었으므로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8:17)라고 하였으므로 그리스도가 오시면 병을 고쳐 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도 그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귀한 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중풍병자 때문에 그의 가까운 사람들(메고 온 사람들)까지 믿음을 갖게 되었다.*

. 2:6-8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않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참람하도다 참람이란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언동을 하거나 하나님께만 합당한 언동을 피조물에게 돌리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신 말을 들었을 때에 하나님 외에는 죄 사하는 권세가 없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주제 넘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 2: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말보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이 더 어렵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 본문의 내용은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보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이 더 쉬운 말이다. 왜냐하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려고 중풍병자를 일어나 걸어가게 했기 때문이다. 걸어가게 하는 것은 인자가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는 증거이다. 만일 걸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면 쉬운 양은 했지만 어려운 것은 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것(걸어가는 것)을 하면 쉬운 것(죄 사함)은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가 병이 나아서 "일어'나 걸어간 것"은 죄의 문제가 해결된 증거이고 죄 사함을 받은 결과이다.

병은 대개 죄 때문에 난다고 볼 수 있다. 삼십 팔 년 된 병자는 죄 때문에 병이 들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 준 후에 더 중한 병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였기 때문이다(요5:14 참조). 그러나 요한복음 9장에 예수님께서 고쳐 주신 소경은 죄 때문에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까닭이라고 했다. 이 경우는 특별한 예외이며, 대개는 죄 때문에 영이 난다고 보아야 한다. 야고보서5:3-16에 죄 때문에 병든 줄 알고 병든 자를 위하여 서로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였다. 벌든 자는 자기 죄로 인하여 병이 난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을 찾아 회개하고 그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들도 그를 위해 기도할 때 서로 자기 죄를 고하면서 기도해야한다.

. 2:10-11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길 걸_어가라" 하실 때에 그 사람이 순종하여 벌떡 일어나 집으로 걸어갔다. 이것을 보면 중풍병자가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 38년 된 병자에게도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다(요5:8). 병이 나서 누워 있던 침상을 그대로 놓아두면 그 자리에 다시 누울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병이 나서 누워 있던 침상을 가지고 가서 버려야 한다.

이는 예수 믿는 사람이 과거에 병자 노릇하던 그 환경과 분위기를 정리 정돈하여, 끊어 버릴 것은 끊어 버리고 없애야 할 것은 없애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그러한 자리에 들어 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과거에 심령이 병들었을 때에 사귀었던 친구나 나쁜 습관들을 다 내어 버려야 은혜 가운데서 계속 달음질 칠 수 있다.

. 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너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하실 때 중풍병자가 반드시 그대로 될 것을 믿고 순종하니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겨서 일어났다. 이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세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고, 기쁘고 즐거운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큰 권세를 하나님이 주셨다"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을 보면 어려운 일(걸어가는 일)을 하였으니 쉬운 일(죄 사하는 일)도 예수께서 능히 하실 수 있음을 친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二. 레위 마태를 부르심(13-17)

. 2: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나아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가르치시니라

예수께서 어디에 계시든지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친국 복음을 가르쳐 주셨고 영적 형을 고쳐주는 표적으로 육신의 병을 고쳐 주셨다.

.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마태복음9:9에는 레위를 마태라고 하였다. 마태가 예수 믿기 전의 이름은 레위이고, 믿은 다음에는 마태라고 불리운 것 같다. 베드로도 예수 믿기 전에는 시몬이었으나 믿은 후에는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가졌다. 마태는 당시에 그 지방의 세금을 받는 세리였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좋은 직장을 가졌으나 예수님께서 "나를 좇으라"고 하실 때에 그 직장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아가 제자가 되었다. 이렇게 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마태가 예수님의 우수한 제자가 되어 마태복음을 기록할 수 있었다.

. 2: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

*부름 받은 레위는 너무 기뻐서 자기 집에서 잔치를 하였다. 예수님을 손님으로 청하고, 또 자기 친구들도 많이 청하였다. 마태의 친구들은 대개가 세리였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마태 한 사람이 회개하고 따라오는 것을 기뻐하셔서 초대에 응하여 같이 음식을 잡수셨다.

. 2: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질문하였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창기와 같은 죄인으로 취급하였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참 도를 말하는 선한 선생님(예수님)이 어찌하여 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힐문한 것이다.

.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쏠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의원은 병자의 병을 치료하여 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병이 없고 깨끗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다. 의원이 병든 자에게 필요한 것 같이 예수님은 죄인에게 필요한 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죄를 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三. 의식과 새 생명 운동(18-22)

. 2: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을 자주 한 모양이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식하는 절기를 정해 놓고 일년에 네 번씩 금식하였다(슥8:19 참조).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므로 그 이유를 예수님께 물어 보았다.

. 2:19-20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신랑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혼인집 손님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신랑을 빼앗길 날은 신자가 예수님을 빼앗길 때를 가리킨다. 금식을 의식주의로 자주 하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 금식하는 목적은 자기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다(사58:3-5 참조). 그러므로 이 목적을 떠나서 절기마다 금식하고, 또 남이 금식하므로 자기도 금식하는 것은 의식주의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신랑과 같이 즐거워하고 교제하며 새 생명의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금식할 필요가 없으며 신랑을 빼앗길 때에는 금식하면서 신랑을 다시 찾아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자기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할 때에는 부르짖으면서 금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필요가 없다.

. 2:21-22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금식에 대한 답변을 하시면서 두 가지 예를 들어서 말씀하셨다.

①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욱 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②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 한다고 하였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새 포도주가 팽창할 때에 부대가 터져서 부대도 버리고 포도주도 버린다. 낡은 옷과 낡은 가죽부대는 의문과 의식주의를 가리킨다. 로마서7:6에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 할지니라"고하였다. 그러므로 의문과 의식주의는 묵은 것이다.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는 진리와 영감으로 하는 새 생명 운동으로 성도들의 영혼을 살려 나가는 신령한 운동이다. 영을 살리는 영적 역사는 새 것이므로 이것을 묵은 의식주의 속에 넣으면 안 된다. 요한복음6:63에"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하였다. 영의 운동을 의문과 의식주의 속에 넣어 두면 영적 운동이 실패되고 의식주의도 제대로 안 된다.

교회는 영을 살려 나가는 일을 하는 곳인데, 교회가 세상주의와 인본주의와 의식주의로 나아가게 되면 영의 운동도 되지 않고, 세상주의나 의식주의 운동도 되지 않는다. 교회가 의식주의 속에 빠지면 영적 운동을 할 수 없다. 영이 의식에 얽매어 제재를 받는다면 영의 역사가 중단된다. 영이 자유롭게 진리와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날마다 장성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새 부대는 진리의 말씀을 가리킨다(롬7:6, 히8:13 참조). 우리의 중생한 영이 말씀과 영감 속으로 들어가야 우리의 영적 생명이 점점 창성하고 생명의 역사가 커 나간다. 교회를 외부적으로 부흥시키기 위하여 의식주의와 인본주의로 나아가면 영적 생명 운동이 안 된다. 교인이야 많든지 적든지 진리를 바로 밝히고 한 사람이라도 바로 세우고 영을 살려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참 빛의 등대가 되는 것이다.*

四. 안식일에 대한 교훈(23-28)

. 2:23-24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실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먹은 일로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따져 물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대한 세칙을 정하여 지키고 있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오리(2㎞) 이상 걸어가면 죄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밀 이삭 잘라먹는 일까지 정죄하고 나선 것이다.

*안식일에는 식물을 준비할 수 있다고 했고(출12:16), 또한 신명기23:25에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시장하여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은 율법에 어긋남이 없으나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 2: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들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성경으로 답변하였다. 다원과 그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하여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 외에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었다. 이는 대제사장 아히멜렉이 여호와께 묻고 허락을 얻어먹게 한 것이다(삼상22:3-6).

. 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랑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어 지키라고 하신 것은 사람에게 모든 복을 주기 위함이다. ①하나님의 신령한 안식에 참여하는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요, ②장차 올 안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며 그 세계에 들어갈 준비를 시키기 위함이다. ③안식일을 지정으로 그리스도와 깊이 사귀며 영적 평안을 얻고 영적 양식을 공급받아 영을 살려 나가기 위함이다. 이러한 자리에서 터나 사람이 안식일 규례에 종노릇만 하는 것은 안식일을 주신 참된 목적에서 이탈된 것이다.

. 2:26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은 예수님은 안식일을 주장하신다는 뜻이요 그리스도 안에만 참된 안식이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는 분이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을 받아 그 안식 세계에서 예수를 믿는 것이 바로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안식을 받지 못한 자는 아직도 안식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다.

성도가 영적 안식을 누리면서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한다. 김 현봉 목사님은 어떤 과부 교인이 찾아 왔을 때에 그 과부에게 "요사이 하나님께 위로를 받으며 사느냐"고 물어 보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안식을 누리고 있느냐는 말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고 있으면 과부일지라도 남편보다 더 좋은 것을 소유하고 낙원에서 사는 사람이다(사56:3-7).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면 아무리 세상에서 모든 것을 풍성히 가지고 일평생에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할지라도 헛되고 헛된 것이다. 솔로몬이 왕이 되어 부귀와 영화가 극치에 달하였으나 지내고 보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라고 했고,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5:10)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에서 수고하는 중에서 영적 안식을 누리는 것이 참된 복이다. 전도서5:18에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 복이로다"라고 했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에서 부요하게 살든지 가난하게 살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안식을 누리며 영적 낙원에서 사는 생활을 해야겠다. 만일 현재 영적인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면 영원한 실패이다.

성도가 영적인 안식만 주장하여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면 잘못된 것이다. 성도는 영적 안식에 참여하는 동시에 안식일의 규례도 지켜야 한다.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이 토요일이었으나 신약 시대에는 주일로 변경되었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는 쉬셨다. 구약 시대에는 칠일 안식일을 지켰으나 오랜 후에 다시 다른 날을 정하여 이레 중 첫날에 안식을 지키게 하였다(히4:7-10 참조). 토요일에 지키던 옛 계명이 연약하여 폐했다고 하였다(히7:18).

새 계명이 되는 주일에 예수님이 부활하셨고(마28:1), 부활 후에 7차 주일인 오순절 날(부활 후 49일째) 즉, 주일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셨고(행2:1), 주일에 성부께서 묵시를 주셨다(계1:10). 그러므로 주일은 성부, 성자, 성령이 합하여 새로운 생명과 말씀과 은혜를 주시는 날이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는 구약 시대에 지키던 안식일(토요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주일(일요일)을 지켜야만 제 4 계명을 바로 지키는 것이다.

구약의 안식일이나 월삭, 절기들을 그림자요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다(골2:16 참조), 구약의 모든 제도는 그림자이고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어 놓은 것은 실체이다. 예수님이 주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다. 사도들도 주일을 지켰다(고전16:2, 행20:7).

"주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안식의 표징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려고 강제로 주일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더 좋은 안식 세계를 예비하여 놓고 그 안식을 주기 위하여 주일을 지키라는 것이다(출31:13 참조). 따라서 주일에 일하면 안 된다. 네 자녀나 남종이나 여종도 일하지 말며 문안에 유하는 객일지라도 일하지 말라고 했다(출20:8-11 참조). 이 날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쉬신 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영적 안식을 받기 위하여 지키는 것이다.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심령 속에 안식을 받고 생명의 말씀을 받아 한 주일 동안 안식을 누리면서 그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또 앞으로 영원한 안식이 올 것을 보여 주는 날이다. 현재에도 주님이 주시는 영적 안식에 참여해야 하고 동시에 앞으로 천년 왕국과 영원한 하늘 나라가 우리 앞에 있는 것을 믿고 그 세계를 바라보며 그 소망을 이루어 나아가면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성도가 주일에 교회에 나오면서 돈을 내고 버스를 타면 죄인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한 방편으로써 버스를 타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주일에 사사로운 일을 보기 위하여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은 죄이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심방하거나 구제하거나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는 일은 주일에도 할 수가 있다. 그 외에는 주일에 일하면 죄이다.

주일을 지키는데 있어서 외부적인 면과 내적인 면이 합하여 조화를 이루어야 완전하다. 나무가 살려면 나무 껍질도 성하여야 되고 나무의 속도 살아야 한다. 만일 나무의 속만 중히 여기고 껍질은 필요 없다고 하여 벗겨 버리면 그 나무는 죽고 만다. 영적 안식만 중히 여기고 외부적인 면을 무시하면 안 된다.

성도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하여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율법 폐기론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나무 껍질은 필요 없다고 다 벗겨 버리는 사람과 같다. 내적인 안식 세계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율법적으로 외부적 면만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면 그것도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나무의 속은 다 죽어 생명이 없는데 껍데기만 잘 유지하겠다는 사람과 같다.

주일은 육신이 쉬는 날이 아니고 영혼이 쉬는 날이다. 어떤 사람은 주일에 쉬어야 되겠는데 예배당에 나가면 여러 시간 예배드리기 때문에 피곤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영적인 안식 세계에 들어가면 그 심령이 기쁘고 즐겁고 위로가 와서 육신의 피곤함도 없어진다. 토요일까지 죽어가던 사람이 주일날 교회 나와서 은혜 받고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여 영이 살고 육체도 건강해지는 수가 많이 있다. 주일은 하나님이 특별히 안식의 은혜를 주시는 날이다. 그래서 십계명의 중심 계명이 안식일에 관한 계명인 네 째 계명이다. 그러므로 주일을 범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과 거기에 관한 모든 은사를 내어버리는 사람이요, 진주를 발로 밟는 돼지와 같은 사람이다.

제 3 장 열 두 제자

[대 지]

一,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심(1-6)

二. 낙은 사람이 예수를 따르며 병 고침을 받음(7-12)

三. 열 두 제자를 세우시고 권능을 주심(13-19)

四. 전속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옴(20-22)

五. 예수님 훼방과 성령 훼방죄(23-30)

六. 주의 참된 모친과 동생들(31-35)

[본문강해]

一.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심(1-6)

. 3: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 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시고 정을 고쳐 주시는 일을 부지런히 하셨다.

. 3:2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엿보거늘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하시는 귀한 새 생명 운동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안식일에 대한 장로들의 유전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송사하려고 예수님을 엿보고 있었다.

. 3:3-4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고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반대하는 자들이 송사하려고 엿보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 일에 개의치 않으시고 한편 손 마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모든 사람에게 안식일에 대한 근본 정신을 가르쳐 주셨다.

안식일에도 다음과 같은 일은 할 수 있다.

①선을 행하는 일, ②생명을 구원하는 일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영적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바리새인들은 의식적으로만 안식일을 지키면서 이러한 일까지 반대하였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이외의 육신을 위한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성도가 오늘날 주일을 지키는 것도 구약 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으로 지켜야 한다.

하나님이 주일에 성도들에게 공동으로 영적 안식을 주신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우리 성도가 모든 육신의 일을 그치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가 주시는 영적 안식에 참여하도록 힘써야 한다. 주일에 신령한 안식을 받아서 한 주간 그 안식 세계에서 살아야 하고, 주일에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한 주간 그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주일날은 사람의 날이 아니고 하나님의 날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하는 어떠한 일도 하면 안 된다.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에 자기를 위해 일한 사람을 죽였다(출35:2). 그러나 그 날에 음식 해 먹는 것은 괜찮다(출12:16). 또 선한 목적으로(돈벌려는 목적이 아닌) 병 고치는 일이나 다른 선을 행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이 성전에서 안식 규례를 범했을지라도 그것은 정죄하지 않았다. 즉 안식일에 제사장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을 한 것은 죄로 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일에 생명에 관계되는 일과 하나님을 위하는 일을 해도 괜찮다. 그러나 자기를 위한 일이나 육신에 관한 일은 작은 것 하나라도 행하면 죄가 된다. 처음에 작은 것을 양보하면 나중에는 전체가 무너져 전혀 지킬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마귀가 물밀듯이 들어와서 영적 생명의 역사가 다 파괴된다. 신앙의 정조이든, 육신의 정조이든 처음 한 번을 양보하지 않는데 힘이 있다. 경계선에서 한 곳이 터지면 다른 곳도 다 터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명의 경계선을 확실히 알고 그것을 지켜 나아가야 생명이 산다.

. 3: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질문하셨으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성령의 감동과 양심의 역사를 누르고 대답치 않으므로, 예수님이 노하시며 손 마른 사람의 손을 내밀게 하여 고쳐주셨다. 하나님께서 관악한 자는 책망하시고 겸손히 사모하는 자에게는 은혜와 구원을 베푸신다.

. 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 하니라

악한 자들이 예수님의 구원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강퍅해져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하였다.

二. 많은 사람이 예수를 따르며 병 고침을 받음(7-12)

. 3: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좇으며

예수님은 핍박자들과 군중들을 피하여 고요하고 한적한 곳으로 가시기 위해 바다로 물러 가셨다. 고요한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귀한 일이다. 그러나 온 갈릴리에서 많은 군중들이 그 곳까지 찾아왔다.

. 3: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의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이두매는 예루살렘 서남쪽 약 30km지점에 있는 지방이다. 요단강 건너편은 베뢰아 지방으로 헤롯 안디바스의 통치 구역이었다.

두로와 시돈은 베니게의 주요 도시들이다. 먼데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계신 곳으로 찾아 나아왔다. 병자는 병을 고치려고 왔고, 굶주린 심령들은 생명의 꼴을 얻어먹으려고 찾아 온 것이다.

. 3:9-10 예수께서 무리의 에워싸 미는 것을 면키 위하여 작은 배를 등대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에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함이더라

예수께서 많은 병자를 고치셨으므로 더욱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예수님은 작은 배를 준비하여 타셨다. 그래도 군중들은 여전히 밀려왔다.

. 3:11-12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귀신들린 자들도 고침을 받으려고 많이 왔으며 귀신들도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질렀다. 야고보서2:19에 귀신들도 믿고 떤다고 했다. 예수님은 그 귀신들에게 그런 말을 못하게 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귀신들과 같은 종류로 취급받겠기 때문이다. 귀신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목적은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기 위함이다.

三. 열 두 제자를 세우시고 권능을 주심(13-19)

. 3:13-15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좇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누가복음6:12에는 예수님이 밤이 맞도록 산에 가서 기도하시고 내려와서 열 두 제자를 택하셨다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제자들을 택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택하여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정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이러한 권능을 주신다. 우리 성도가 약하고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권능을 입혀 주셔서 귀신을 내어쫓기도 하고 병 고치는 권능도 행하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자신도 강하여지고, 다른 사람의 약한 것을 고쳐서 강하게 만들어 나가는 권능이 있게 된다.

최 봉석 목사님이 하나님의 복음을 힘있게 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권능을 입혀 주셔서 권능의 사람이 되었으므로 최 권능 목사라는 절명이 붙여졌다. 하나님이 권능을 주실 때에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야 자기의 능력이 되고 자기의 인격이 된다. 그러나 그 권능을 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권능을 거두어 가신다. 그러므로 누구나 능력이 없고 말할 줄 몰라서 전도를 못한다고 핑계하면 안 된다. 예레미야가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1:6-7)고 하였다.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실 것이므로 사람은 순종만 하라는 것이다. 모세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4:10)라고 말할 때에 하나님께서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라고 하셨다(출4:11). 나 여호와가 네 입을 지었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주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만 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말할 줄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나아가면 하나님이 입도 열어 주시고 능력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이 성공되어 가도록 하신다.

. 3:16-19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 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주에는 학자나 선비나 문벌 좋은 사람이 없다. 또 제사장이나 서기관처럼 명성 있는 종교 지도자도 없으며, 다만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던 어부나 세리와 같은 중류 이하의 사람들이었다. 가룟 유다 한 사람만 유대인이고 그 외의 열 한 사람은 모두 천한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 왜 제자들을 유명한 학자나 선비나 지혜 있고 통달할 사람 가운데서 택하지 않으셨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고린도전서1:26-29에 잘 나타나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자기의 지혜나 능력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려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택하여 제자로 삼은 것이다. 자기의 지혜와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자연히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어린아이처럼 겸손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고린도후서4:7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인격은 질그릇과 같이 약하고 보잘 것 없으나 하나님이 우리 속에 보배를 주셨다. 이 보배는 복음이요 복음 전하는 직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고 복음만 자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를 유다는 불택자인데 왜 예수님이 그를 제자로 택하셨는가?

① 후대 교역자 중에도 불택자가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② 불택자도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③ 택자와 불택자를 추수(심판)때까지 함께 두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④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다(요13:18, 시41:9 참조).

⑤ 범죄자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상과 같은 목적에서 예수님은 가론 유다가 불택자이며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미리 알면서도 제자로 택한 것이다.

四. 친속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옴(20-22)

. 3: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점점 많아져서 식사할 겨를도 없게 되었다.

. 3:21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수의 친속들은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로서(3:31, 6:3) 그들은 예수님이 미쳤다 하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붙들려고 찾아 왔다(요8:52). 그들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받들고 충성해야 할 사람들이었으나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비방과 악평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예수님을 붙들러 나왔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고 예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한 비방과 악평하는 말이 돌아갈 때에 무조건 곧이 듣지 말고 사실을 확실히 알아보고 바로 처신해야 한다.

예수님의 친속들이 마귀에게 속아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가 보지도 않고,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하셨다(33-35).

. 3: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바알세불 귀신의 왕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수님이 귀신을 많이 쫓아내는 것과 또 귀신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지르며 나오는 것을 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생명 운동을 방해하고 비방할 목적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하나님의 역사)을 귀신의 역사로 비방하고 악평했다.

五. 예수님 훼방과 성령 훼방죄 (23-30)

. 3:23-26 예수께서 저희를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단이 어찌 사단을 발아 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단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이에 망하느니라

사단이 어씨 사단을 쫓아 낼 수 있느냐 귀신이 귀신을 쫓아낸다면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이 된다. 나라가 서로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듯이 귀신이 귀신을 좇아낸다면 마귀의 나라가 설 수 없고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의 왕이 귀신을 쫓아낼 리가 없다. 따라서 바리새인의 말은 이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귀신, 악귀, 사귀, 악령, 사단 등은 다같이 마귀들의 일종이다.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국가에 내분이 생겨 서로 싸우면 그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다. 사단도 그들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다투지 않는데 하물며 성도가 다투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나가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이나 단체나 국가 안에서 사랑으로 용서해 주고 서로 돕고, 참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 단체, 국가를 세워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 3: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강한 자는 사단을 가리킨다. 결박한 후에야 마귀를 굴복시켜 결박한 후에 그 마귀에게 붙잡힌 생명을 살려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세간을 늑탈한다는 것은 사단에게 붙들린 사람의 영을 살려내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강한 자인 귀신들을 쫓아내신 것은 마귀를 굴복시키고 그 마귀에게 붙들린 사람의 영혼을 살려낸 것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우리도 마귀를 이겨야만 자기 영이 살고 다른 사람의 영을 살려낼 수 있다.

고린도후서10:4-6에 "우리의 싸우는 정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 하였다.

여기 견고한 진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대적하는 모든 이론과 사상과 단체와 권세와 능력 등을 가리킨다. 전도자는 그것들을 복음과 성령의 능력(능력)으로 파하여야만 사람의 영을 구원해 낼 수 있다.

. 3:28-2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과 인자를 거역한 죄는 사함을 받으나 성령을 훼방한 죄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 성령 훼방죄는 죽을 때까지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죄이다. 이 죄가 왜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가? 성령으로라야 예수를 믿을 수 있고 예수를 믿어야 죄 사함을 받는다. 그런데 성령을 훼방하므로 그리스도를 믿을 수가 없고 따라서 죄사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거나 성령 받은 사람을 훼방했다해도 나중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성령 훼방죄가 아니다. 그 이유는 죽을 때까지 성령을 훼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성령을 훼방하던 악한 자가 회개하고 성자가 되었으면 그 사람은 악한 자가 아니고 성자이다. 마태복음21:38 이하에 두 아들의 비유가 있는데 맏아들은 포도원에 가겠다고 하고 후에 가지 않았고, 작은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말한 후에 뉘우치고 갔다. 작은 아들은 처음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후에 뉘우치고 갔으므로 포도원에 가지 않은 자로 취급받지 않고 간 자로 취급을 받는다. 이와 같이 성령을 훼방한 자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을 훼방한 자로 취급받지 않고 성령을 훼방하지 않는 자로 취급받는다. 성(聖)어거스틴도 처음에는 불량한 사람이었으나 나중에 회개하고 성자가 되었다. 그후에는 어거스틴은 불량자가 아니다.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성령 받은 스데반을 죽일 때 가편 투표를 하였고, 주의 일을 훼방하고 핍박한 자이었으나 회개하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사도가 되었다. 그후부터는 훼방자가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다. 어떤 신비주의 교파의 교역자가 자기는 성령으로 일하므로 자기를 훼방한 자는 성령을 훼방한 자이다. 그러므로 그 죄는 사함 받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내 죄가 사함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대단히 염려하고 근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에 그러한 죄를 지었다고 해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다 사함 받는다. 회개한 후에는 성령 훼방한 사람이 아니다. 또한 우리가 전에 성령 받은 사람을 욕하고 성령을 훼방했다고 할지라도 오늘날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다 용서받고 그 죄가 흰눈보다 더 희게 씻음을 받는다. 그러므로 성령 훼방치는 죽을 때까지 성령을 훼방한 죄를 가리킨다. 그는 회개할 기회와 믿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는 불택자가 짓는 죄이다.

. 3:30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고 끝까지 성령으로 하시는 예수의 역사를 악평하였다.

六. 주의 참된 모친과 동생들 (31-35)

. 3:31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말하고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의왕 바알세불을 지폈다고 하므로(21-22)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온 것이다.

. 3:32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예수님을 찾는다고 예수님께 전했다. 동생들은 야고보, 요세(요셉),시몬, 유다이다(막6:3 참조).

. 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으나 예수님은 나가 보시지도 않고 면회를 거절하셨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들어(3:21-22 참조) 그대로 믿고, 마귀 시험에 빠져 예수님을 붙들러 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아가게 되면 여러 가지 변론과 소란이 일어나 마귀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에 많은 지장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마귀의 시험에 빠져 하나님의 일을 막고, 방해하려고 온 사람은 육신적으로는 모친과 형제요 누이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마귀의 종인 것이다. 갈릴리 가나 혼인집에서 포도주에 대해서 언급한 모친에게 대해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의 구원 사업에 있어서는 어머니도 하나의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누가복음14:26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했다. 예수님을 따라가고 구속 운동을 이루어나가는데 방해하는 자는 사단의 종인 것이다. 형제나 친척이나 친구가 과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방해하면 사단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므로 그 사람들에게 협력하면 안 된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십자가를 멀리하라고 할 때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사단의 역사를 단호히 물리치지 않으면 생명 길을 걸어 갈 수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 모친과 형제에 대한 자기의 의무를 다 하셨다. 부모에게 순종하여 받드셨고(눅2:51), 십자가상에서 모친을 요한에게 부탁하셨다(요19:26-27). 디모데전서5:8에 "누구든지 자기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하는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다. 이 말씀은 성도가 마땅히 모친과 가정과 친척을 돌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 3:34-35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맺어진 형제 관계는 육신적인 혈연 관계에 의해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진리와 영적 관계에 의해서 맺어지는 것이다. 복음을 믿고 중생한 자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동일하게 받았으니 영적으로 참된 형제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한 피로 중생을 하였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같이 받았고, 한 아버지를 섬기며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 되어 있으므로 영적으로는 참 형제이다. 믿지 않는 육신의 형제들은 영적 면에 있어서는 외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인 면에 있어서 그들의 아버지는 마귀요, 그들의 영은 죽어 있으며 그리스도밖에 있기 때문이다.

제4장 비 유

[대 지]

一. 씨뿌리는 비유(1-9)

二. 비유로 교훈 하는 이유(10-12)

三. 씨 뿌리는 비유 해석(13-20)

四.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라(21-35)

五. 천국은 싹이 자라는 것과 같음(26-29)

六. 겨자씨 비유(30-32)

七. 신령한 도리를 비유로 가르치심(33-34)

八.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35-41)

[본문강해]

一. 씨뿌리는 비유 (1-9)

. 4: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 바다에 나 않으시고 온 무리는 바다 대 육지에 있더라

*예수님이 바닷가에 앉으시매 많은 무리가 모여들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무리들은 해변에서 있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을 말씀하실 때에도 앉아서 가르치셨다.

. 4:2-4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실 때에 그 첫째 비유는 씨뿌리는 비유였다.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시다. 전도자들은 예수님이 씨를 부리는데 수종드는 사람들이다.

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눅8:11 참조).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씨이다.

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완고하여 받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다(15절 참조). 마음이 길가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그 사람은 말씀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마귀가 와서 그 말씀을 빼앗아 간다. 는 악한 자 즉 마귀를 상징한다(마13:19).

. 4:5-6 더러는 흙이 점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돌밭은 돌 위에 흙이 얇게 덮여 있어서 떨어진 씨가 그 흙에 묻혀서 싹이 나지만 돌 때문에 뿌리가 제대로 박히지 못하고 해가 돋으면 곧 말라죽는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받아 얼마 동안 좋아하다가 그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과 핍박이 들어올 때에 말씀을 포기해 버리는 자이다. 싹이 말라죽은 것을 보니 영혼이 중생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도를 즐거워한 것에 불과하다.

또 돌은 완강하게 박힌 인간의 지혜와 세상적인 지식과 전통, 고집 같은 것을 가리킨다. 이런 것들을 제거하지 않고 말씀을 받아들이면 부리가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

. 4: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

가시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일락이다. 가시밭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이다(18-19절 참조). 누가복음8:14에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람은 성경 말씀을 들을 때에 기씀으로 받고 참으로 믿는다. 교회에도 잘 출석하고 봉사도 잘한다. 그러나 지나는 동안에 생활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욕심과 향락주의 때문에 기운이 그리로 다 빠져나가 온전히 결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농사할 때에 씨가 가시밭에 떨어지면 가시가 영양분을 다 흡수하여 곡식이 잘되지 못한다. 비료를 주어도 가시에게 영양소를 다 빼앗겨 곡식은 잘 자라지 못하여 변변히 결실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곡식이 말라죽지는 않았으므로 중생한 사람이지만 믿음의 진보가 없고 신앙의 열매가 별로 없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은 믿는 일에는 힘쓰지 아니하고, 세상 걱정과 돈 버는 일과 향락을 즐기는 일에 시간과 정력과 재산을 다 소모해 버리는 자이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 앞에 가지만 신앙의 열매가 별로 없으므로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 4: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 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좋은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확실히 깨닫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는 그 말씀대로 실행하게 된다. 누가복음8:15에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 하는 자니라"고 하였다. 말씀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은 그 말씀대로 실행한다. 그리하여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많은 열매가 맺힌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령 양잿물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절대로 양잿물을 먹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깨달은 사람은 그 말씀을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이것이 좋은 땅이다. 성도의 마음이 옥토와 같이 되어야 신앙의 열매가 잘 맺힌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묵은 밭을 기경하라"고 했다(렘4:3참조). 가시가 나고 잡초가 난 묵은 밭을 갈아 좋은 밭으로 만들라는 뜻이다.

길가와 같이 완고한 고집을 가진 자는 그 고집을 버리고 회개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한다. 돌 짝 밭과 같은 사람은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뿌리가 깊이 박히도록 해야 한다. 인간적인 기존 지식과 지혜 위에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부리가 박히지 못하며 환난과 핍박이 올 때에는 넘어지게 된다. 예를 들면 유교 사상이 강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성경 말씀을 유교 사상과 비교하여, 유교사상에 맞으면 옳고 맞지 않으면 틀렸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이 그 사람의 마음에 뿌리를 박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자기의 지식과 지혜를 다 내어버리고 세상 염려와 재리의 욕심과 일락을 버려야 한다. 믿는 사람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면 그것이 가시가 되어 그리로 기운이 빠져나간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너희 친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될 것을 다 아신다고 하였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며 내일 일은 내일에 가보면 무슨 대책이 나온다. 그러므로 장래 문제를 가지고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했다(마6:33-34).

또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부하려는 자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털어진다(딤전6:9-10). 돈을 많이 벌어 놓고, 좀 더 부자가 된 다음에 예수를 잘 믿겠다는 사람은 벌써 시험과 올무에 빠진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며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면 항상 염려와 근심을 면하지 못하고 믿음을 지킬 수 없다.

또 성도가 안일주의와 향락주의에 빠지게 되면 믿는 일하는 기운이 그리로 다 빠져나가 기도할 마음도 없어지고 충성할 마음도 없어진다. 방탕하며 향락주의로 나아가면 기도를 하여도 기도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예배당에 열심히 나와도 열매가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다 끊어 버리고 생명 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 힘써 은밀한 골방을 찾아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말씀대로만 순종하는 자리에서야 한다.

주일날 교회에 나와 의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과거에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순종하므로 자기 영이 자라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가시가 제거되고 옥토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 4: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영의 귀가 있는 자라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가 있다.

二. 비유로 교훈하는 이유(10-12)

. 4:10-11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 두 제자로 더불어 그 비유들을 묻자오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복음이다. 이 복음을 아는 것이 너희(택한 백성)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외인(불택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복음은 택한 백성에게만 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 4: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육신의 눈은 표면적인 것은 볼 수 있으나 영적 진리의 세계는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육신의 귀로는 비유의 말씀을 들으나 영의 귀가 열리지 못하였으므로 그 비유의 신령한 뜻은 듣지 못한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택한 백성을 위한 것이며 불택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택자는 듣기는 들어도 영의 귀가 없어 깨닫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므로 돌이키지 못하고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

三. 써 뿌리는 비유 해석(13-20)

. 4:13-15 또 가라사대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이 구절들의 내용은 3-4절에 기록된 씨 부리는 비유의 설명이다(여기에 대한 해설은 3-4절 강해 참조할 것).*

. 4:16-17 또 이와 같이 돌발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나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이 구절들은 5-6절의 돌발에 대한 설명이다(여기에 대한 해석은5-6절 강해 참조할 것).

. 4:18-19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이 구절들은 7절의 가시밭에 대한 설명이다(여기에 대한 해석은7절 강해 참조할 것).

. 4:20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녀라

이 구절은 8절의 좋은 땅에 대한 설명이다(8절 해석 참조할 것).

四.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라(21-25)

. 4:2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마5:14)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5:16). 사람이 등불을 켜는 목적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 두려 함이 아니고 등경 위에 놓아 모든 사람들에게 비취게 하려 함이다. 성도를 왜 빛이라고 하였는가?

① 중생한 영이 있기 때문이다.

② 중생한 영 속에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③ 성령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빛이 성도를 통해서 세상에 비취어 나감으로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잔들에게 하나님과 그 말씀의 빛이 비취어 나가게 한 것이다. 그러나 등불을 켜서 평상 아래나 말 아래 두면 그 빛이 비추어 나가지 못한다. 성도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는데 왜 빛을 비추어 내보내지 못하는가?

첫째, 빛을 말 아래 두었기 때문이다.

말은 곡식이나 물질을 되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말 아래 둔다"는 것은 물질 아래 둔다는 의미이다. 즉, 성도가 물질의 지배 아래 들어간 것을 가리킨다. 성도가 물욕으로 기울어져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그 말씀보다 물질의 지배를 더 받게 되면 그로 인하여 성도가 심령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 나가지 못한다.

둘째, 평상아래에 두었기 때문이다. "평상"은 침대와 같은 것으로 성도가 평안히 누어서 잠자며 안일주의에 바진 것을 가리킨다.

성도가 게을러서 신앙적으로 잠자는 생활을 하고 일락을 사랑하며 안일주의로 나아가면 심령이 깨어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빛이 비추어 나가지 못한다. 디모데전서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 라"고 말했다.

세째, 그릇으로 덮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8:16에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지 않는다고 했다. 그릇을 영어 성경에는 container라고 했다. 컨테이너는 물건을 넣어 자동차나 배로 운반하기 위하여만든 육면체로 된 대형 버스의 크기 만한 큰 상자이다. 이것은 성도가 통을 짜놓고 그 속에 들어가 자기나 자기 당파만 위하는 사욕에 빠진 상태를 말한다. 성도의 마음이 이러한 상태가 되면 흑암 속에 갇히게 되어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어 들어갈 수 없고, 밖으로 비취어 나갈 수도 없다.

성도의 빛이 비취어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이 세 가지 장애물들을 우리가 다 제거해 버려야 우리 성도 속에 있는 하나님의 빛이 밝히 비추어 나가게 된다. 이 빛이 비추어 나가야 자기가 살고, 어두운세상도 밝아지고,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려 낼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성령의 인도와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 감으로 빛을 잘 비추어 내보내야 한다.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등불을 등경 위에 두어야 그 빛이 잘 비취어 나가게 된다. 등불을 등경 위에 둔다는 것은 믿음 지키는 것을 세상의 것 위에 두라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등경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위로 걸어가야 한다. 베드로가 바다위로 걸어간 것처럼 성도가 세상을 발아래 두고 예수님만 바라보고하나님 말씀대로 나아가야 성도에게 있는 빛이 멀리까지 크게 비취어 나가게 된다.

또 자기가 낮아지고 희생되면서 주와 그 말씀만 높이라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되겠고 나는 쇠하여야 되리라"고했다(요3:30). 세례 요한이 자기는 낮아지고 희생하면서 주님과 그 복음만 높였으므로 그 빛이 크게 비취어 나갔다. 요한복음5:35에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라고 했다. 성도 자신도 말씀을 위해 희생하면 등경이 될 수 있다. 그 등경 때문에 등불이 높아지고 멀리까지 비취여 나간다. 자기가 등경이 되어서 진리의 빛이 비취여 나가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살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부족해도 생명 내놓고 희생할 때, 힘이 있고 등경이 높아진다. 또 등경이 높아진 것만큼 빛이 넓게 멀리까지 비추어 나가게 된다.

. 4:22-23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나님께서 등불을 켜서 빛을 비추어 나가게 하시려고 성도 속에 빛을 숨겨두고 감추어 둔 것이다. 누가복음8 : 17의 숨은 것이나 감추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마태복음10:26-27에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고 했다.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은밀한 가운데서 신령한 귀로 듣고 깨닫게 해주신 것이 어두운 가운데서 들은 것이다. 이것은 감추어 두고 숨겨 두려함이 아니고 그 빛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

우리가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은 귀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하늘의 비밀이요 하늘 나라의 새 소식이다. 그것은 감추었던 만나이며 질그릇에 담긴 보배이다. 그 말씀을 성령께서 은밀한 가운데서 영의 귓속에 들려주시고 깨닫게 해 주셨다. 그 귀하고 보배로운 진리를 받았으면 광명한데서 드러내고 지붕 위에서 많은 사람에게 전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말(두)과 침상과 그릇을 다 깨뜨려 내버리고 세상과 우리의 몸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있는 빛을 드러내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했다.

. 4:24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여기 헤아린다는 것은 마태복음7:2에 있는 헤아린다는 것과는 뜻이 다르다. 마태복음7:2의 것은 사람을 헤아리는 것을 가리키고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여기고 귀하게 여긴 것만큼 하나님께 은혜와 진리를 더 많이 받게 되고 그 사람도 존귀하게 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작게 헤아려 그 말씀을 작게 평가하고 작게 여기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도 작게 받고 그 사람의 인격도 작아진다. 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은혜와 진리도 작게 받고 그 사람의 인격도 작아진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은혜와 진리를 받지 못하고 그 사람도 하나님께 무시당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작게 헤아리지 말고 크게 여기고 귀한 보배로 여기고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야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많이 받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

더 받으리니 덤으로 더 주신다는 뜻이다. 성경 말씀을 받을 때에 두렵고 떨림으로 귀히 여겨 보배로 받는 자는 그 만큼 모든 것을 받게 되고, 덤으로 그 이상의 것을 받는다는 뜻이다. 열왕기하22:11에 요시야왕은 잃어 버렸던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 책을 찾아서 읽을 때에 그 말씀에 너무 놀라서 옷을 찢고 통곡을 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요시야왕에게 그 만큼 큰복을 주시고 또 덤으로 더 많은 것을 주셨다.

. 4: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빛을 비추어 내보내는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 빛을 비추어 내보내지 못하는 사람은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는 뜻이다. 또 크게 헤아리는 헤아림이 속에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받고 크게 헤아림이 없는 사람은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긴다는 말이다. 말씀을 귀하게 여건 사모하고 순종하여 그 말씀의 빛을 비추어 내보내는 성도는 더욱 더 은혜와 진리와 신령한 복을 많이 받게 된다.

五. 천국은 싹이 자라는 것과 같음(26-29)

. 4:26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이 비유는 마가복음에만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신 것 같다. 마태복음에는 이 말씀은 안 쓰고 가라지 비유만 썼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와 주장을 받는 나라이며 신약 교회를 가리킨다.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하나님의 나라인 지상 교회가 성장 발전되어 나아가는 것이 마치 땅에 씨를 뿌림과 같다는 것이다.

. 4:27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씨를 뿌려 놓으면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씨가 움이 트고 싹이 나서 자라난다. 영적 생명의 역사도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라난다. 하나님께서 신적 역사로 은밀한 가운데서 자라나게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는 것이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씨를 뿌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씨를 뿌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비가 오지 아니할까 염려하지 말고 뿌리기만 하면 된다. 전도할 때에도 이 사람이 예수 믿겠나 믿지 않겠나 염려하지 말고 부지런히 말씀을 전해야 한다. 도저히 싹이 나지 않을 것 같아도 씨를 뿌려 놓으면, 하나님이 나게 해 주신다. 씨를 뿌려 놓은 후 빨리 싹이 나오지 않더라도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씨를 뿌린 다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나게 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싹이 나게 하시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자라게 하신다.

싹이 나서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나 또 사람이 물을 주고 돌봐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사람이 할 일을 바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해주어도 그 일이 잘 되지 않는다. 잠언27:23에"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고 했다.

.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사람이 할 일을 잘하면 하나님이 열매를 많이 맺게 해 주신다. 처음에는 싹이요 사람이 할 바를 하면 하나님이 싹이 나게 해주시고 또 자라나게 하시고 열매가 맺혀 충실한 곡식이 되게 해주신다. 사람은 곡식을 해하는 짐승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곡식이 익어갈 때에는 새가 오지 못하도록 잘 돌보고 지켜야 한다. 처음에 싹이 나온다는 것은 말씀을 받은 자 속에서 그 말씀이 생명이 되는 것, 즉 영적 생명이 살아 기뻐하며 그 말씀으로 힘을 얻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말한다.

다음에는 이삭이요 싹이 나서 자라나면 이삭이 나온다는 말이다. 그 다음에는 그 이삭이 충실한 곡식으로 된다. 처음에는 새로 나온 이삭이 여물지 않아 알맹이가 없어도 시일이 지나면서 비와 햇빛을 받아 연단을 받으면 알맹이가 생겨 여물어서 충실한 열매가 맺게된다. 우리의 신앙도 중생한 다음에 많은 시일이 걸려 시련과 연단을 받아야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가 맺힌다. 성도가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은 마음 밭에 종자를 심은 것이며 그 말씀이 생명이 된 것은 싹이 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걸어간 것은 이삭이 된 것이고 걸어갈 때 여러 가지 시험과 연단을 통과하는 것은 충실한 열매로 결실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 4: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말세에는 곡식도 익고 포도(악인)도 익는 때이다(계14:14-20). 말세에는 포도가 익는 것과 같이 악이 익어서 그 악이 하늘에 사무친다. 성도는 그 가운데서 많은 환난과 핍박과 연단을 받아 희게되며 정결케 된다(단11:35). 그 때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셔서 택한 백성인 곡식을 거두어 하늘로 올려 간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곡식을 거두어 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열매를 잘 맺혀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六. 겨자씨 비유(30-32)

. 4:30-32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 운동을 가리킨다. 지상 교회 운동은 겨자씨 한 알을 심어 놓은 것과 같다. 겨자씨는 작아도 생명이 있어 심긴 후에 싹이 나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 복음의 씨는 이와 같이 위력이 있고 창성해 나가는 생명력이 있다. 복음의 한 말씀은 미미하고 아무 보잘것없는 것 같으나 점점 자라서 나무와 같이 커지고 큰 세력이 된다. 세상 사람들이 와서 의지하고 살려고 한다는 뜻이다. 처음에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믿고 순종해 나아가면 그 생명이 점점 커지고 믿음이 점점 자라나서 그 인격이 점점 커진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영적 생명 운동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이렇게 하여 생명 운동이 커지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잘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과 교회를 의지하여 살려고 모여든다. 이것이 새가 깃들이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의 조상인 청교도들이 처음에는 지극히 작은 세력이었으나 하나님을 잘 섬겨서 세계적으로 강대국이 되었고 세계의 많은 나라가 미국을 의지하며 혜택을 받고 있다.

어린 아이 하나가 예배당에 나오는 것이 작은 일 같으나 그 아이가 말씀을 받아 믿으면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나타나고, 나중에는 믿지 않는 친척과 친구와 많은 사람이 그 사람을 의지하며 혜택을 받을 때가 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힘써 전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믿는 일을 잘하는 것이 제일 귀한 일이며, 모든 사람이 복 받는 일이다.

七. 신령한 도리를 비유로 가르치심(33-34)

. 4:33-34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예수께서 비유가 아닌 것도 많이 말씀하셨으나 본문에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신령한 도리를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신령한 도리를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 비유가 아니면 알지 못하겠으므로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또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다. 마태복음13:34-35에 "예수께서 이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 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또 마태복음13:10-13에는 친국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지만(즉 믿는 사람에게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허락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비유로 말씀하심은 천국비밀을 믿는 자에게만 알게 하기 위함이다. 외인들은 비유로 말해주면 그 비유만 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그 비유의 신령한 뜻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八.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35-41)

. 4:35-38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치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광풍이 일어나서 물결이 배에 부딪혀 배 안에 물이 많이 들어오므로 대단히 위태하게되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다. 제자들은 풍랑 때문에 죽을까봐 벌벌 떨면서 무서워하였으나 예수님은 평안히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의 말이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38절)라고 하였다.

같은 배를 타고 가면서 같은 풍랑을 만났으나 제자들은 죽을까봐 벌벌 떨었고 예수님은 평안히 주무셨다. 예수님은 믿음이 크기 때문이며 제자들은 믿음이 적은 연고였다. 풍랑을 만나고 죽을 지경을 당해 보아야 큰 믿음을 가진 자와 믿음 없는 자가 드러난다. 예수님의 믿음은 왜 큰 믿음인가?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다. 죽이고 살리는 권세가 하나님께 있으니 풍랑이 아무리 심해도 하나님이 죽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을 믿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으면 아무리 위태한 지경을 만나도 죽을까봐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려면 평소부터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적은 일에서부터 연단을 많이 받아 믿음이 자라나야 한다. 믿음이 자라나면 큰 환난을 만날 때에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둘째, 육신 중심으로 살지 않고 영의 생명으로 살았다. 육신이 죽는다고 해도 영의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울도 빌립보서1:21에서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다. 성도의 중생한영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사는 세계에 들어가면 항상 담대하고 평안하여 믿음을 잘 지킬 수 있다.

우리의 육신이 죽는 것은 영혼이 쓰고 살던 장막 집을 벗어 놓고 더 좋은 집으로 가는 것이다(고후5:1 참조), 예수님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 참조)라고 하였다. 다니엘도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감사 기도를 드렸다. 이것은 다니엘이 하나님으로 생명을 삼고 살았기 때문에 몸이 죽는다 해도 영은 영원히 죽지 않게 될 것을 믿고 감사한 것이다.

세째,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다.

아무리 풍랑이 심해도 그 물결이 능히 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능력으로 지켜줄 것을 믿은 것이다. 하나님은 사자의 입도 막아 주시고, 풀무 불 가운데서도 타지 않게 해 주시고, 홍해 바다나 요단강도 갈라서 육지와 같이 건너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네째,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을 믿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전 목적은 죄인들의 구속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 사업을 이루기 전에는 하나님이 데려가시지 않을 것을 믿은 것이다. 제자들도 자기들의 사명을 깨달았다고 하면 죽을까봐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택하여 구원 운동에 이용하려고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중에 있는데 왜 도중에 죽도록 내버려두겠는가! 제자들이 자기들의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에 죽을까봐 두려워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사명 때문에 하나님께서 살려두신 것이다.

.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 하라 고요 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시험이 지나간 다음에는 잔잔하여진다. 문제는 그 시험을 믿음으로 합격하였느냐 불합격하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시험에 불합격되면 믿음이 적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원통한 마음을 가지고 통회하며 회개해야 한다.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서 분한 마음과 억울한 마음이 가득하여 가슴을 치면서 대성통곡하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너희가 왜 죄에 대하여 통한히 여기지 않았느냐고 책망하였다(고전5:2 참조).

우리에게 시험이 들어왔을 때에 그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하면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고 실패하면 억울하고 분하며 부끄럽기 짝이 없다. 또 자기 자신이 밉고 원수처럼 여겨진다. 그때에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며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여 다시는 그러한 자리에 바지지 않도록 결심해야 한다.

.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어찌 믿음이 없느냐 풍랑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적은 증거이다. 누가복음8:25에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과 영적 생명으로 사는 믿음이 적었다(35-38절해석 참조).*

. 4: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예수님의 은혜로 물결이 잔잔하여진 다음에는 "아하 좋다"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지 못한 것을 붙들고 통곡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제자들이 원통히 여기거나 통곡을 하지 않고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아직도 예수님을 잘 깨닫지 못하고 신앙이 연약한 가운데 있었다.

제 5 장 야이로의 딸

[대 지]

一. 귀신의 해독(1-13)

二. 거라사인들의 배척(14-20)

三. 야이로가 딸을 위해 간구함(21-24)

四. 혈루증을 고치심(25-34)

五.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35-43)

[본문강해]

一. 귀신의 해독(1-13)

. 5: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좇아내신 이적은 공관 복음에 다 같이 기록되어 있다(마8:28-34, 눅8:26-39).

거라사인의 지방 마태복음8:28에는 이곳을 가다라 지방이라고 했다. 이 지방은 갈릴리 바다 동남편에 있는 데가볼리 지방의 도시이다.

. 5: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예수님이 배를 타고 건너와서 배에서 나오시자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 5:3-4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유대인의 무덤은 동굴 형식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귀신들린 자가 거기에 거한 것 같다. 귀신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여 그 더러운 곳으로 가서 살게 하였다. 귀신은 이와 같이 사람을 더러운 곳으로 끌고 간다.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그 동안 여러 번 쇠사슬과 고랑을 채워 매어 두었으나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사람이 귀신의 힘에 의해서 이렇게 큰 힘을 낼 수 있었다. 귀신은 사람보다 강하다. 그러나 하나님보다는 약하다. 귀신, 사귀 등은 다 같은 악령이며 사단의 졸도(卒徒)들이다. 그것들을 총칭하여 마귀라고도 한다. 마귀는 사람 안에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마태복음12:43-45에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그 사람에게 다시 와 보니 깨끗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했다고 하였다. 귀신 가운데 더 악한 귀신도 있다. 귀신들린 사람은 정신병자와 다르다. 정신병자는 생리적으로 생긴 병이고, 귀신들린 사람은 귀신이 접한 자이다. 그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 5: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역사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더러운 무덤사이와 산에서 늘 소리지르고 제 몸을 돌로 상하게 하였다. 귀신은 사람을 괴롭게 하고 심신(心身)에 막대한 손해를 준다.

. 5: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귀신은 예수님의 능력에 굴복하며 항상 두려워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경배하지는 않는다.

. 5:7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귀신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바로 알고 떨었다. 그러나 귀신이 예수를 믿어 구원 받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① 예수님은 택한 백성을 구속해 주셨지 귀신을 구속해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마1:21). ② 예수님은 마귀를 심판하러 오셨기 때문이다(요일3:8). 그러므로 귀신은 예수님 앞에서는 항상 떨고 있을 따름이다(약2:19 참조).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마귀가 예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여 벌벌 떠는 상태이다.

. 5:8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사람은 연약하여 귀신을 이기지 못하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므로 말씀 한마디로 귀신을 나가게 할 수 있다. 그 귀신이 예수님께 부르짖기 전에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이미 명하신 것이다.

. 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군대의 헬라 원어 (레기온)은 육친 명으로 된 로마 군단의 명칭인데, 이것은 귀신의 수가 많은 것을 가리킨다. 그 사람에게는 이와 같이 많은 귀신이 들어가 있었다. 그것들은 다 사단의 졸도(卒徒)들이다. 이렇게 많은 귀신들도 예수님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벌벌 떨었다.

. 5:10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누가복음8:31에는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라고 하였다. 그 귀신들은 그 지방에서 사는 것을 원했고, 그 사람에게 들어간 것을 좋게 여겼다. 거기에서 쫓겨나 무저갱에 들어가게 될 것을 심히 두려워한 것이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마귀에게 거처를 주지 않도록 계속 믿음으로 마귀를 물리쳐야 한다.

. 5:11-12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말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음을 보고 귀신이 돼지에게 보내어 들어가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하였다. 귀신들은 예수님(하나님)의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 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예수께서 귀신들을 돼지 떼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하셨으므로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이천 마리의 돼지 떼에게로 들어갔다. 귀신들이 들어가자 돼지 떼가 비탈길을 달려 내려가 바다에 들어가 몰사하였다. 예수께서 이와 같이 허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귀신은 반드시 해독을 준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귀신은 사람에게 해독을 주지 않으면 짐승에게라도 해독을 주고야 만다. '그러므로 성도가 마귀에게 한 번 걸려들면 막심한 해독을 받게 되므로 마귀에게 걸려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한 번 마귀의 시험에 들면 회개하여도 악심한 타격과 해독을 받아 그 상처가 오래 간다. 성도가 마귀의 해독을 받지 않아야 영혼이 자라나고 믿는 일이 잘된다.

세째, 한 사람의 생명이 돼지 이친 마리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에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는 것을 예수님이 허락하셨다.

네째, 사람보다 귀신이 강하고, 귀신보다 예수님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는 귀신을 이기지 못한다. 사람이 귀신을 이기려면 예수님에게 나아가 그의 능력을 힘입어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야 한다.

다섯째, 욕심으로 하는 사업은 예수님이 심판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구약 시대에 돼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지 못하는 부정한 짐승이었다(레11:7 참조). 왜냐하면 돼지는, 쪽발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돼지를 많이 기른 것은 분명히 성경을 어기고 욕심으로 돈을 벌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욕심으로 하는 사업은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해 돼지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二. 거라사인들의 배척(14-20)

. 5:14-17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이에 귀신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고하매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돼지 치던 자들이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도 예수를 믿지 않고 시내로 들어간 것은 시내에 있는 돼지들이 전부 죽을까봐 알려 주려고 급히 들어간 것 같다. 이 동네는 사람보다 돼지를 더 중하게 여긴 동네이다. 구주가 오셔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영접 하기는 커녕 그 동네에서 떠나가시기를 간구 하였다. 그들은 사람보다 돼지를 더 중히 여기고, 예수님 보다도 돼지를 더 중히 여겼으므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였다. 그 사람들은 사람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돼지 즉 돈만 아는 사람들이다.

그 동네는 참으로 불쌍한 동네이다. 그 동네에 모처럼 예수님이 가셔서 귀신을 쫓아내고 생명을 살려내는 이적을 보여 주셨으나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눈이 어두워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께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영접하지도 못하였으며 도리어 예수님을 배척하는 죄악에 빠졌다. 그러므로 이 동네는 재물과 함께 망할 수밖에 없는 동네이다.

. 5:18-19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귀신들렸다 나은 사람이 너무 감사하여 예수님을 따라 다니기를 간구 할 때에 예수님이 허락치 않으시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네 친척과 여러 사람에게 고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사람 가운데에는 예수님을 따라다닐 사람도 필요하고, 집에 돌아가서 친척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도할 사람도 필요하다. 각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다르다.

. 5: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귀신들려서 비참하게 되었던 자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나았다는 것을 그 지방에 전파하였다. 그 지방 사람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눈으로 보면서 기이긴 여겼으나 믿지는 않았다. 믿는 자가 하나님께 복 받는 자이다.

三. 야이로가 딸을 위해 간구함(21-24)

. 5: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다시 저편으로 건너 가시매 예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을 떠나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마태복음9:1에는 본 동네 가버나움으로 가셨다고 하였다. 거기서도 많은 무리가 모여들었다. 이렇게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큰 무리가 모여들었다.

. 5:22-24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모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하거늘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 회당장은 회당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 회당장 중 한 사람인 야이로가 예수께 와서 병들어 죽게 된 자기의 어린 딸을 고쳐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예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그와 함께 가시는데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고 따라갔다.

四. 혈루중을 고치심(25-34)

. 5:25-26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 졌던 차에

혈루증은 피가 계속 흘러나오는 형으로 일종의 출혈성 자궁병이다(레15:19-27 참조), 이 여인은 열 두 해를 이 병으로 앓아 오면서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그 여인이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많은 의원에게 보였으나 재물만 다 허비하고, 괴로움만 당했을 뿐 병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거의 절망 상태에 빠져있었을 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께로 오게 되었다. 이와 같이 사람이 힘이 진(盡)할 때에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 5:27-32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그 여자가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자기의 병이 나을 줄 믿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여자는 병이 나은 후 가만히 숨겨 두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내게 손을 전 자가 누구냐"고 물으셨으며, 베드로는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대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하는 뜻이다. 그 때에 예수님은 "내게 손을 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눅8:4546).

예수님이 그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 능력으로 혈루증을 고쳐 주셨으나 그 여자는 그것을 숨겨 두려고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여자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줄 알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고백하였다. 이것은 은혜를 받은 다음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은혜를 받고도 가만히 있으면 배은망덕한 것이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믿음을 써서 주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증거하여야 하며, 또 변화된 생활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한다. 변화된 생활은 사랑하지 못하던 사람을 사랑하고, 원수도 용서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충성하며, 자기 위하던 모든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 등이다. 이렇게 성도는 하나님 앞에 은혜 받은 대로 믿음을 써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다. 믿음을 써야 그 믿음이 자라나고, 열매가 맺히고 더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다.

. 5:33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두려워하여 떨며 신적 능력을 나타내신 예수님을 경외하는 태도에서 나온 두려움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복이 있다. 마음으로 뿐 아니라 몸으로도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한다.

.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

그 여자의 믿음은 참으로 좋은 믿음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길 옷만 만져도 자기의 병이 나을 줄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 여자는 자기의 혈루증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자기의 병을 고쳐 줄 분이 없음을 믿고 그를 사모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예수님께 나아가 그 옷을 만진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예수님의 깊은 면을 점점 더 알게 된다. 사람은 깊이 사귀어 들어가면 점점 결점이 드러나기 쉬운데 예수님은 깊이 사귀면 사귈수록 점점 더 능력이 많고 사랑이 충만하고 완전무결하고 생명이 넘치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을 좀더 깊이 생각하고 좀더 깊이 사귀도록 힘써야 한다.

이 여자가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찾을 때에 자기 심령 속에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발견하고 보니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능력이 무한하시고, 사랑과 공출이 무한하시고 생명이 넘치는 분이심을 알았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옷깃만 만져도 자기의병이 나을 것을 확신하여 예수님의 뒤를 좇아가서 예수님의 겉옷을 만진 것이다. 과연 만지는 순간 그 여자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 그리하여 이 여자의 믿음을 예수님이 알아 주셨고, .예수님의 딸이 되었고(과거에는 마귀의 딸이었음), 영적 평안과 육신의 건강의 축복을 받았다.

五.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35-43)

. 5:35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회당장의 집에서 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딸이 이미 죽었으니 예수님을 모셔 오는 것은 오히려 선생을 괴롭히는 일밖에 되지 않으니 모셔 오는 일을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성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믿기만 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좋은 선물을 다 받는다는 것이다.

. 5: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사람만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신 까닭은 여럿을 데리고 들어가면 오히려 복잡하여져서 기도하시는 일에 방해가 되므로 필요한 사람만 데리고 들어가신 것이다. 또 그 세 제자를 특별히 훈련시켜서 장차 좀더 귀히 쓰시고자함이었다. 그 부모는 간절히 기도하겠는고로 같이 들어갔다.

. 5:38-40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야이로의 딸이 이미 죽은 후에 예수님이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 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피리를 부는 풍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피리를 불고 슬퍼하는 가운데 있었으나 예수님은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은 무리들은 소녀가 죽은 것이 확실하므로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은 성도가죽은 것을 진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생명이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고 영이 살아있다는 뜻이고, 또 자는 사람은 반드시 잠에서 깨어나듯이 육신이 다시 살아날 것(부활)을 가리킨다.

. 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달리다굼 은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로"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이다. (탈리타)는 아람어로 "소녀"라는 뜻이고, (쿰)은 히브리어로 "일어나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어서 그 한마디로 죽은 자가 살아났다. 이것은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보여 준 것이요,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의 명령으로 모든 택한 백성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킬 것을 보여 주는 표적이다. 주님의 명령은 심판의 권세와 생명의 권세가 있어서 사망과 마귀를 물리치고 생명을 살려 내신다.

. 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발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소녀가 즉시 일어나 걸었다. 누가복음8:55에는 먹을 것을 주라고 예수께서 명령하셨다. 살려 놓은 다음에는 먹을 것을 주어야 계속하여 살아나갈 수 있다. 하나님이 살려 놓았으면 먹을 것은 너희들이 주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네가 할 일은 네가 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님의 역사가 너무 큰데 대하여 부모와 사람들이 다 놀랐다. 성도는 외부적인 표적을 보고 놀라는데만 그치지 말고, 예수님을 부활이요 생명의 주로 믿는 신앙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 5: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알지 못하게 하라 이것은 메시야 은닉을 위해서이다.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속 사역이 완성된 후에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공적으로 알리고자 하신 것이요, 또 군중들이 이러한 이적만 예수님께 요구하게 되면 전도에 방해가 되겠기 때문에 이렇게 하신 것이다.

제 6 장 요한 순교

[대 지]

一.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받으실(1-6)

二.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견함(7-13)

三. 헤롯의 방탕과 요한의 순교(14-29)

四. 오병이어의 이적(30-44)

五. 바다 위로 걸어오심(45-52)

六. 병자들을 고치심(53-56)

[본문강해]

一.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받으심(1-6)

. 6:1-2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않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예수님이 고향에서 안식일에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셨다. 누가복음4:16-22에는 예수께서 나사렛의 회당에 들어가 이사야 선지의 글을 읽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회당은 헬라 원어로 (쉬나고게)인데 이것은 "모아들이다, 모으다, 모이게 하다"는 뜻이 있다. 당시 이스라엘의 성전은 예루살렘에만 있었고, 거기에서만 제사를 드렸다. 회당은 성전과는 달리 여러 동네에 분포해 있었으며 회당은 구약 성경을 읽기로 하고, 가르치기도 하는 장소이었다. 예수께서 고향의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그 지혜와 권능에 대단히 놀랐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씀을 가르치셨고, 신령한 지혜로써 성경의 참 뜻을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6:3-4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세와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마리아의 아들 목수 누가복음4:22에는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했다. 본절에서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한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요셉이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목수가 아니냐고 한 것은 그 당시 목수의 직업을 천한 직업으로 여겼기 때문에 예수님을 멸시하는 투로 한 말인 것 같다.

야고보와 요세와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마태복음13:55에 주의 형제 네 사람을 기록할 때에 '요세 '를 '요셉 '이라고 한 것은 그의 이름이 둘이기 때문인 것 같다.

예수를 배척한지라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그들이 예수님의 육신적인 면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예수님의 가족에 대하여도 외부적 생활 면을 많이 보고 잘 알기 때문에 그 육신적인 선입관념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신령한 면과 그가 가르치신 진리의 교훈이 가리워져 보지 못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종들을 대찰 때 그 종의 외부적인 면과 육신적인 면만을 보게 되면 그 종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와 진리가 가리워져 보지 못하게 된다. 특히 그 사람과 친분이 깊고, 그의 육신적인 면을 잘 아는 경우일수록 더욱 배척하기 쉽다. 선지자들도 자기 고향과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육신적인 면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들의 신적인 역사가 나타나는 면과 그를 통해서 주시는 진리의 말씀만 받아서 믿었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고 영접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의 육신적인 면을 보지 말고 그를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만 보고 존경하며 받들어 나아가야 한다.

둘째, 그들의 그리스도관(基督觀)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올 때에는 어디로부터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요7:27).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잘못 가르쳤으므로 진리를 잘못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에는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과(미5:2), 나사렛 사람이라 칭할 것과 십자간에서 고난받으실 것 등이 모두 예언되어 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없는 말로 잘못 가르쳤다. 일반 신자는 지도자가 가르치는 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가르치는 자의 책임이 크며 성도는 성경을 바로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6:5-6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불신앙으로 마음이 굳어진 자들은 하나님의 큰 권능이 나타나도 믿지 않을 것이므로 예수님이 권능을 행치 않았다. 이것은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않은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고향 사람들이 참 진리를 받지 않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이상히 여기시며 다른 동네로 가셔서 전도하셨다.

二.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견함(7-13)

. 6:7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열 두 제자를 둘씩 파견하였다. 둘씩 둘은 증거자의 숫자이다(계11:3). 전도하러 나갈 때에 혼자 나갈 수도 있고 여럿이 나갈 수도 있으나 둘 씩 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요 능률적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기 위해 보내실 때에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그들에게 주셨다 마태복음10:1에는 귀신을 좇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고 했다. 이는 육신의 병과 약한 것을 고쳐서 굉장한 이적을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복음으로 죽은 영혼을 살려내며, 영적 모든 병을 고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그러한 표적을 행하게 하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전하는 복음 자체에도 능력이 있고(롬1:16), 또 복음 전하는 자에게 이러한 능력을 주셔서 복음을 전하면 마귀에게 붙들린 심령이 자유케 되며, 병든 심령과 연약한 심령이 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는 이 능력을 써서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한다.

. 6:8-9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주머니 여행할 때에 방이나 다른 것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자루와 같은 것이다. 전도자가 전도할 때에 현재 입은 옷과 신고 있는 신 외에 다른 것은 준비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사람을 통해서나 혹은 까마귀를 통해서라도 필요한 것을 주신다.

전대는 돈을 넣는 것이다. 전대의 돈을 가지지 말라고 한 것은 의식주(衣食住)에 대한 염려를 하지 말고 하나님만 믿고 나가라는 것이다. 의식주에 대한 염려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이다. 또 물질이 풍성하여 그것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며 결국 실패하고 만다. "지팡이를 가지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나가라는 것이다. 여기 지팡이는 능력의 상징으로 취급했다. 마태복음10:10에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한 것은 어떤 유력한 사람이나 세력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 6:10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충성 되이 복음을 전하면 믿는 사람이 나오게 되고 믿는 사람이 나오면 그 중 합당한 자를 찾아서 그 집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전도할 때에 유력한 자나 돈 많은 사람을 찾아 들어가지 말고 합당한 자를 찾아서 그 집에 머물러야 한다. 합당한 자는 어떤 사람인가? 전도자를 믿음으로 영접하여 협력하고 받드는 사람이다. 어느 곳에서나 전도자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일심전력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면 그 복음을 영접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나오게된다. 복음을 영접하는 자는 자연히 전도자를 영접하여 그에게 협력하고 도와주게 된다. 그가 곧 합당한 자이다.

전도자가 합당한 자를 만나 그 집에 머물면서 복음 전하는 일을 하다가 더 좋은 곳이 있다고 그 곳으로 옮기면 안 된다. 또 조금 불편하거나 섭섭한 일이 생겼다고 하여 다른 데로 옮겨도 안 된다. 복음 안에서 사귀고 복음 안에서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참고 변함이 없이 나아가야 한다.

. 6: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복음을 전할 때에 두 종류의 사람이 나타난다.

첫째, 일꾼을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다. 둘째, 복음을 반대하고 전도자를 영접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이 둘째 사람에 대하여는 작은 것 한 가지라도 얻거나 신세지지 말고 먼지까지 떨어버리라는 뜻이다. 전도자가 양심을 쓰지 않고 떳떳하지 못하게 행동하면 복음이 가리워 진다. 전도자는 특히 물질 문제에 있어서 깨끗해야 한다. 먹어서 안될 것은 주어도 먹지 말고, 받아서 안될 것은 주어도 받지 말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 진다.

이에 대한 또한 가지 뜻은 복음을 거절하므로 멸망하는 책임을 그들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전도자는 복음 전하는 책임을 다했으므로 그들이 멸망하는 일에 대해서 깨끗하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다 (행13:51, 18:6참조).

. 6:12-13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 할 때에 주님이 주신 권능을 써서 많은 귀신을 좇아내며 병을 고쳐주었다.

기름을 발라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그 당시에는 기름과 포도주를 약(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약5:14, 딤전5:23참조). 따라서 이것은 약을 사용하며 기도하라는 뜻이 있다. 히스기야왕이 병들어 기도할 때에 이사야 선지자가 무화과 반죽을 종처에 놓으라고 했다(왕하20:7). 그러므로 성도가 병들었을 때 약을 사용하며 기도하는 것이 합당하다. 또 한 가지 신령한 뜻은 기름이 성령의 은혜를 상징하므로 신령한 은혜를 받으면서 기도하라는 뜻이다.

三. 헤롯의 방탕과 요한의 순교(14-29)

. 6:14-15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왕이 듣고 가로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느니라 하고 어떤 이는 이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이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예수님의 능력 있는 역사와 큰 표적들이 나타나므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또 제자들의 전도에 의해서도 많은 사람에게 주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 예수께서 행하신 능력의 역사를 전해들은 헤롯은 말하기를 세례 요한이 살아나 그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했으며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 라고도 했다(마16:14 참조).

. 6:16 헤롯은 듣고 가로되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헤롯이 예수님의 능력의 역사를 듣고 자기가 목베어 죽인 세례요한이 살아났다고 하며 두려워했다. 헤롯은 자기가 범한 죄로 인하여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에 싸여서 다른 사건이라도 자기와 연관시켜 생각하므로 놀란 것이다.

. 6:17-18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말림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본절에서 29절까지는 헤롯이 세례 요한을 죽인 내용이다.

헤롯은 대헤롯의 아들인 헤롯 안디바스를 가리킨다. 그는 자기이복(異腹)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데리고 살았다. 헤로디아는 대헤롯 왕의 아들 아리스토보르의 딸로 빌립과 헤롯 안디바스 왕의 조카딸이다. 그녀는 처음에 자기 삼촌 빌립에게 시집갔고, 다음에 다른 삼촌인 헤롯 안디바스 왕에게 시집갔다. 헤롯 집안의 혼인 관계는 불륜과 추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례 요한이 헤롯왕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생명을 내놓고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헤롯왕을 면책했다. 그 일로 인하여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 감옥은 사해 동편 베뢰아의 남단 마케루스 성중의 감옥이라고 한다.

. 6:19-20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

헤로디아는 음란하고 잔인한 여자였다. 세례 요한의 책망을 받아 자신의 수치가 드러나게 되자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세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헤롯은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자로 여겨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하면서도 달게 들었다. 헤롯왕은 그때가 회개할 좋은 기회였으나 오히려 그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여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다. 이것은 그가 죄의 종과 마귀의 종이 된 증거이다. 누구든지 옳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길을 버리고 죄의 길로 걸어가는 자는 죄의 종이요 마귀의 종이다.

여기에 세례 요한의 노선과 헤롯의 노선이 나타나 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의만 세워 나가다가 순교했다. 그러나 헤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죄 가운데서 괴로워하면서도 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큰 죄를 범했다. 세례 요한은 의를 위해서 생명 내어놓고 나가서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마태복음11:7-8에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라고 했다.

세례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사람의 의견이나 풍조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며 또 요한은 부드러운 옷을 입고 안일한 생활을 하기 위해 권세에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고 의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고 나가는 극강 담대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헤롯이 요한에게 책망을 받은 것은 어두운 가운데에 빛이 비추어 들어간 것과 같다. 에베소서5:13에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책망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빛(생명의 빛)이 비추어 들어가는 것이다.

헤롯왕이 요한의 책망을 받아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빛을 마음에 받아들여 그 여자를 내어버렸다면 생명의 빛 가운데로 걸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헤롯왕은 그 빛을 버리고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다. 이리하여 자신은 영적 감옥에 더 깊이 갇힌 것이다. 요한복음8:34에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라고 하였다. 헤롯왕은 죄의 종이 되어 죄가 시키는 대로 따라갔다.

. 6:21 마침 기회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헤롯이 자기의 생일을 당하여 음식을 많이 준비하고 많은 사람을 초청하여 먹고 마시고 춤추면서 호화로이 연락하며 방탕했다. 이와 같이 연락주의에 빠져 방탕하는 것이 헤롯의 노선이다. 다니엘5:1-9에 벨사살왕이 귀인들과 여러 사람을 불러모아 잔치하다가 망했다. 디모데전서5:5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다. 헤롯이 이렇게 잔치하고 연락하고 방탕할 때에 마귀가 헤로디아의 딸을 통해서 들어왔다. 마귀는 이렇게 복잡하고 마음이 뒤숭숭할 때에 잘 들어온다. 그와 반면에 세례 요한은 감옥에서 순교할 때가 가까운 줄 알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따라서 육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영적 생명이 사는 길로 나아간 것이 세례 요한의 신앙 노선이다. 그때에 영의 자유, 영의 생명, 영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 6:22-25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및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여아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너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되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저가 나가서 그 어미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미가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저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한대

헤롯이 헤로디아의 딸이 춤추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네가 구하는 것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는 요한을 원수로 여기는 헤로디아에게 마침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 기회를 이용하여 헤로디아는 자기 딸에게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고 시켰다. 헤롯이 나라 절반까지라도 주겠다고 맹세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 여아가 일시적으로 즐겁게 해준다고 해서 어떻게 나라절반을 줄 수 있겠는가! 또 그 여아 뒤에는 그 어미 헤로디아가 있고 헤로디아의 마음에는 요한을 죽이려는 앙심(마귀)이 있지 않은가! 방심 방탕하는 중에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허황된 맹세를 하였고 그로 인하여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게 된 것이다.

. 6:26-28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저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 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여아에게 주니 여아가 이것을 그 어미에게 주니라

헤롯은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심히 근심했으나 자기의 맹세한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여아가구한대로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그 여아에게 주게 했다. 이로 인하여 헤롯은 영원히 큰 죄인이 된 것이다. 그는 그 자신과 자기 지위가 우상이 되어 옳은 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하여 잘못된 줄 알면서도 양심을 속이긴 세례 요한을 죽였다. 헤롯은 죄의 종이 되어 옳은 것을 따라가지 못한 사람이다.

오늘날 기독교인 중에도 성경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양심을 어기며 나아가는 것은 다 죄의 종이 된 증거이다. 헤롯이 많은 사람 앞에서 맹세했다하더라도 세례 요한을 죽이지 않을 수 있다. 자기가 낮아져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의를 세워 나가고자 했다면 세례 요한을 죽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자신의 명예가 떨어지고 낮아져도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므로 헤롯이 하나님께 영원한 복을 받았을 것이요 또 하나님이 높여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세례 요한을 죽여 불의의 길로 나아가다가 멸망했다.

. 6: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요한이 영광스러운 순교를 당하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체를 장사했다. 이로써 세례 요한은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다간 것이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운 바 된 것이다(고후5:4). 그러므로 그는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영광스러운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四. 오병이어의 이적(30-44)

. 6: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사도들이 돌아와 예수께 낱낱이 보고 할 때 세례 요한이 순교 당한 것도 보고하였다. 우리도 우리의 모든 일을 예수님께 바로 고하는 기도 시간을 가져야 한다.

. 6:31-32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와서 쉬라고 하셨다.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며 쉬는 생활은 영적 활력을 주입하는 것이다(막1:35, 눅5:16). 복잡하고 뒤숭숭한 곳에서는 마귀가 들어오기 쉬우므로 예수님 자신이 복잡한 곳을 피해 늘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마태복음6:6에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했다. 우리는 언제나 한적한 곳, 은밀한 골방을 찾아서 늘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 6:33-34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께서 큰 무리가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는 것을 볼 때에 불쌍히 여기셨다. 우리도 이세 대에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는 양 떼를 볼 줄 알아야 하고 거기에 대한 사명감을 깨달아야 한다.

. 6:35-36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큰 무리가 예수께 나아와 도(道)를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저녁이 되니 제자들은 이 큰 무리들의 먹을 것 때문에 걱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 무리를 마을로 보내어 먹을 것을 사 먹게 하라고 말씀드렸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셔서 그들을 먹일 것은 전연 생각하지 못했다.

. 6:37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그때제자들이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하고 반문했다. 한 데나리온은 장정이 하루 일한 품삯에 해당되므로 이백 데나리온은 상당히 많은 돈이었다. 따라서 이 대답은 우리에게는 그러한 돈이 없는데 어떻게 떡을 사다가 이 무리를 먹이겠읍니까 하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것은 줄 수 있기 때문에 주라고 하신 것이다.

. 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예수께서 너희에게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셨다. 그때에 무리 중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자가 있어 그 사실을 예수님께 보고하니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적다 하시지 않고 그것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없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시지 않고 있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신다. 아무리 적고 보잘것없는 보리떡일지라도 현재에 네게 있는 그것을 가지고 오라고 하신다.

. 6:39-40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예수께서 가져 오라 할 때 그 아이는 자기도 먹지 않고 예수께 바쳤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앉게 하라고 명하셨다. 제자들이 순종하여 백 명씩 오십 명씩 떼를 지어 앉히었다. 언제나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

. 6:41-44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보리떡은 떡 중에 좋지 못한 하급 떡이요 물고기도 작은 것(큰 멸치 만한 것 )이지만, 예수님이 가져 오라 하실 때에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여 바쳤고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축사하신 후 제자들에게 떼어 .주면서 무리에게 나누어 주도록 명하셨다. 이에 제자들이 순종하였고 무리들도 순종하여 백명씩 오십명씩 떼를 지어 앉았다. 그때에 큰 이적이 나타나 그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나 되었다.

남은 조각을 거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을 부스러기 하나라도 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부스러기라도 필요하게 쓸 때가 있다. 먹은 사람이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명이나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한 아이가 한 끼 먹을 분량이었으나 예수님께 바치고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능력을 베풀어 크게도 하시고 많게도 하셔서 큰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을 열 두 바구니나 거두었다.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벌어 하나님의 일을 잘 하겠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자기가 아무리 부족해도 현재 가진 그것을 많든지 적든지 하나님께 바쳐서 충성을 다 하는 것이 귀한 믿음이요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바이다. 부족하고 적더라도 말씀을 순종하여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바치고 충성하여 일할 때 하나님의 만능의 역사가 나타나고, 큰 일이 성취되어 나아간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하면 인간 지각에 지어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일이 성공되어 나가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없는 좋은 떡을 구하여 내놓으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보리떡 같이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있는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능력으로 일하셔서 그것으로 많은 죽어 가는 생명들을 살려내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법이다. 자기의 적은 정성, 적은 물질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칠 때에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난다. 자기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지 아니하고, 자기 먹을 것은 제해 놓고 남는 것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께 바칠 수도 없고, 바쳐도 하나님의 일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너희에게 있는 것을 가져 오라" 그리고 "나눠 주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현재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해야 한다. 바칠 것을 바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해서 하나님의 일이 잘되도록 하시는 것이다. 치 오병이어의 표적의 참 뜻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몸을 찢어 우리에게 영적 양식으로 주셔서 우리 영혼을 살려나가실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영적 양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주셨다.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이 몸을 바치고 모든 것을 바쳐서 희생하면 우리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어 나갈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 운동의 비결은 보잘 것 없는 보리떡과 같은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바치는데 있다. 순종하고 바치면 여기에 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 희 바구니에 차게 된 것은 생명의 역사는 모자람이 없고 언제나 차고 넘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항상 이기고 계속해서 장성해 나가는 것이 영적 생명의 역사이다. 이사야 54:2에 "네 장막 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일이 창성해 나아가므로 좁지 않도록 장막 터를 넓히며 처소의 휘장을 널리 펴고 줄을 길게 하고 말뚝을 견고히 하라는 것이다.

五. 바다 위로 걸어오심(45-52)

. 6:45-47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 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예수님은 큰 역사를 나타내며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 후에는 자신의 영적 수입(靈的收入)을 위하여 홀로 고요히 하나님을 찾아 기도하곤 하셨다. 요한복음6:15에는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난 다음에는 마귀의 시험도 크게 온다. 많은 사람이 따르면서 높여 주는 일은 마귀의 시험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한 것도 큰 시험이었다.

예수님이 세상나라의 왕이 되면 하나님의 구속 사업이 실패하고 만다. 왜냐하면 세상 명예와 영광주의로 나아가고, 세상의 권세를 잡아 세상일을 하면 영적 일을 하지 못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시험을 이기려고 산으로 올라가서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예수님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일하시고 초 일이 끝난 다음에도 기도하셨다. 우리도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그 일을 하고, 일을 마친 다음에도 기도해야 된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없다. 마귀는 언제나 성도로 하여금 교만하게 하고 세상적으로 높여주고 명예 영광심을 넣어주어 망하게 하려고 한다.

성도는 고난 당할 때보다 세상적으로 높아질 때가 더 위험한 때인 줄 알아야 한다. 벳새다는 가버나움의 서편 지역을 가리킨다.

. 6:48-49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

그 밤에 제자들이 배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다가 바람이 거스리므로 괴로이 노를 저으며 고난 당하는 상태를 예수님이 산에서 보셨다. 예수님이 그것을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영으로 보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도 보셨다고 했다(요1:48 참조).

물결이 거세게 배에 부딪혀 올 때에 제자들이 죽을까봐 두려워한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이용하여 구원(생명)운동을 해나가시려고 하시는데 왜 죽게 내버려두시겠는가! 제자들이 죽으면 그들을 통하여 이루어나가는 구원 운동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 아닌가 ! 제자들은 사명이 있기 때문에 존재의 가치가있고 결코 죽지 않는다. 그처럼 우리에게도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환난 중에도 돌봐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명에 살다가 사명에 죽어야 한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천년의 갑절을 산다고 할지라도 아무 가치가 없다. 사명에 살다가 사명에 죽으신 예수님은 삼십 삼 년의 짧은 생애를 사셨으나 영원히 가치 있는 삶을 사셨고, 영원히 가치가 있는 죽음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도와주시려고 바다 위로 걸어 오셨으나 제자들은 자기들을 죽이려고 오는 유령인 줄 알고 전리를 지르면서 무서워하였다. 살려주려고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오는 줄 알고 두려워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살려주려고 오신다. 예수님은 모든 시험, 모든 환난, 고통 가운데서 우리를 살펴주시려고 찾아오시는 것이다.

밤 사경 그 당시 밤을 사경으로 나누어서 오후 육시부터 구시를 일경, 구시부터 십이시를 이경, 십이시부터 삼시를 삼경, 상시부터 육시를 사경이라고 했다. 유령의 헬라 원어 (판타스마)는 변화한 자란 뜻이 있는데 실체의 몸이 아닌 환상 혹은 영물 같은 것이다.

. 6:50 저희가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더불어 말씀하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고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하시고 안심을 주셨다.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안심을 주는 것은 급선무였다. 그때 제자들은 평소에 듣던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예수님이신 줄을 깨달았으며 그 말씀을 받아 안심하게 되었다.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마음에 안식과 평안이 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믿을 때에 평안하고 마음이 안정되고, 감사가 나온다. 그때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낙원으로 변화된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믿으면 그 말씀치 우리 속에서 사실이 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다(히11:1).

. 6:51-52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잔잔해졌다. 요한복음6:21에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고 했다. 예수님을 배에 모시면 바람과 물결도 문제가 없다. 바람과 물결이 주님 말씀에 즉시로 복종하여 바람이 그치고 물결은 잔잔해지고 배는 목적지까지 쉽게 갔다. 예수님을 모시기 전에는 아무리 힘을 써도 그 배가 가지 못하고 고생만 했으나 이제 주님을 모시고 나니 배는 홀연히 건너편까지 가게 된 것이다. 우리는 범사에 예수님을 모시고 주의 뜻대로 해야 형통한다.

예수님이 바다 위로 오시고 바람과 물결도 주장하시는 것을 본 제자들이 심히 놀란 것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다고 하면 놀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못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얼마 전에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고도 마음이 둔하여져서 믿음에 서 있지 못한 것이다.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마음이 둔하여지면 믿음에서 떠나게된다. 누가복음21:34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하였다. 마음이 둔하여지는 것은 방탕함과 술 취함 때문이요 또 생활의 염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3:8에는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했다. 강퍅이란 굳어졌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하나님의 이적을 보고도 마음을 강퍅케 했으므로 깨닫지 못하고 가나안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제자들이 얼마 전에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을 직접 보았을 때에, 만물을 주관하시고 운행 (運行)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심을 깨달았더라면 바다가 잔잔해지는 것, 물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조금도 놀랄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심히 놀란 것을 보면 마음이 둔하여져서 예수님을 바로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제자들의 마음이 둔해진 이유는 주의 역사와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고 경흘히 여겼기 때문이며, 말씀을 착념치 않고 흘러 떠내려보내고, 믿음으로 화합치 않고 육신 중심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六. 병자들을 고치심(53-56)

. 6:53-56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 신 줄을 알고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 채로 메고 나아 오니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예수님이 탄 배는 게네사렛 땅에 도착했다. 게네사렛 땅은 갈릴리 바다 서안, 가버나움 남쪽에 있는 평야이다. 그 지방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병자들을 침상채 메고 와서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고 많은 병자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의 옷에라도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받았다. 이는 예수님이 육신의 병만 고쳐주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심령의 병을 고쳐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표적을 행하신 것이다.

제 7 장 고르반

[대 지]

一, 유전과 하나님의 말씀(1-13)

二. 밖의 것과 속에서 나오는 것(14-23)

三,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14-30)

四, 귀먹은 벙어리를 고쳐 주심(31-37)

[본문강해]

一. 유전과 하나님의 말씀(1-13)

. 7: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몇이 예루살렘에서 북쪽 갈릴리로 먼길을 온 목적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시는 일을 엿보아 책잡으려는 것이었다.

. 7:2-4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예수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그들이 보았다. 제자들의 행위가 바리새인들의 유전에 맞지 않았으므로 걸림이 된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오래 전부터 성경에도 없는 장로들의 유전을 지켜왔다. 그 유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되 팔뚝까지 씻어야 된다.

② 시장에서 돌아오면 물을 부리거나 혹 목욕을 아니하면 음식을 먹지 않는다.

③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규례들은 본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항상 정결한 생활을 하게 하려고 정해 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후대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지나치게 중요시하여 종교 의식화하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경을 제쳐놓고 그것만 지키는 경향으로 기울어졌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절대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해 놓은 정결케 하는 의식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켜도 좋고 지키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성경 말씀의 교훈은 영적인 문제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또 자기의 인격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나 손을 씻고 깨끗이 하는 것은 육신의 위생에 관계 될 뿐이다.

바리새인들이 유전과 의식을 성경과 같이 중요시하거나 또는 성경보다 더 중요시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손을 씻지 않고 먹으면 큰 죄나 지은 것처럼 여기고, 성경을 어긴 것보다 더 큰 죄로 여겼다. 그들은 크고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작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작은 것을 크게 여겨 세워 나아가려고 하다가 큰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우리는 성경과 유전, 영적인 것과 의식주의를 잘 분별하여 성경말씀과 신령한 것을 따라가야 한다. 그것을 잘 분별하지 못하면 진리에서 탈선된다. 죄에도 큰 죄가 있고, 작은 죄가 있으며, 지옥의 형벌에도 큰 형벌이 있고 작은 형벌이 있다. 마태복음 23:15에"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 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도다"라고 하였다. 또 마태복음11:22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절하여 중요한 것을 앞세워 나아가야 한다. 사람도 웃사람과 아랫사람이 있고, 배나 더 존경할 사람이 있다. 디모데전서 5:17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 7: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의식과 유전, 즉 육신적인 면에 치우쳤으므로 영적인 면과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예수님께 따져 물었다.

. 7:6-7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이사야의 책망은 다음과 같다.

①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하나 마음은 멀리 떠나 있다.

②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

③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또 제도와 의식 적으로만 섬기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형식과 제도가 아무리 훌륭하고 입술로 주여, 주여 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하나님께 바치고 정력을 기울여 심령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은밀한 교제를 하여야 한다.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성기고 의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겼다.

손이 깨끗한 것보다 마음이 청결해야 되고, 몸만 하나님 앞에 나가지 말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의식적으로만 예배를 드리지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로 말미암는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헛되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의 참 뜻을 찾아 진리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오늘날에도 신자들이 목사나 장로들의 말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내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주일날 아침 일찍 일부(一部) 예배만 드리는 것을 주일 지킨 것으로 여기고 예배 후에는 놀러 가거나 세상일을 하여도 편찮은 것처럼 가르치는 교회가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아무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을 헛되이 공경하는 것이다.

. 7:8-13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 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페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고 반문하였다. 하나님의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고(출20:12 참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였다(출21:17 참조),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아비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여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치 아니하였다.

그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기 위하여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고르반 사상이다.

이 사상은 ①하나님께만 바치고 사람에게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②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교훈을 더 크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사람의 교훈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라고 책망하셨다. 우리가 부모를 마땅히 공경하되, 부모가 잘하여 줄 때뿐만 아니라 잘하여 주지 못할 때에도 부모를 잘 공경하여야 된다. 또한 부모가 설사 악을 행한다고 하여도 악은 따라가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여야 한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악한 죄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고르반 사상에 빠져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도 바로 하고, 사람에게 대해서도 바로 하도록 교훈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에 대해서나 스승에 대해서나 형제에 대해서 자기가 해야 할 본분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사람에게 대한 일을 무시하여 의리를 지키지 아니하고 도덕을 파괴하며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또 사람 앞에 바로 하기 위해서는 부모를 공경하고, 성도로서 행위를 바로 하고, 형제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웃사람에게나 아랫사람에게, 그리고 동료에게 모든 것을 바로 해야 한다. 또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도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바로 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책임 가운데에는 복음을 전해 주는 것도 포함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어도 믿지 않고 망하는 것은 우리에게 책임이 없으나, 전하여 주지 않아 믿지 않고 지옥에 가면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겔3:18-19 참조).

바리새인들은 사람의 유전을 지키는데 치중하였으므로 의식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져 성경 말씀을 경히 여기고 말씀을 순종하지 못했다. 성경 말씀을 위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로들의 유전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하고 나아갔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二. 밖의 것과 속에서 나오는 것(14-23)

. 7: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시편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다. 호세아4:14에도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고 하였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바로 순종할 수 있다.

. 7:15-20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사람을 깨끗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밖에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즉,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속사람은 더러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을 때에 더러워진다. 밖으로 나오는 것은 속에 있는 부패성을 가리키며,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더럽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유전이나 의식을 지켰다고 해서 속사람이 깨끗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학개 선지는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학2:12). 이것은 거룩한 예식을 행했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그 사람의 인격이 거룩해지고 깨끗해진다.

.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은 옛사람 즉 부패성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이다.

부패성에서 나오는 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음란은 이성간에 이루어지는 그릇된 관계를 말한다. 도적질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물질을 취하는 것이다. 살인은 남을 미워하는 것이다(요일3:15). 또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살인이다. 간음 정당한 배우자가 아닌 이성과 동침하는 것이다. 마태복음5:28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했다.

탐욕 사람 속에는 다 욕심이 있으나 그 욕심을 버려야 믿음에 바로 설 수 있다.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마귀의 유혹에 바지고 믿음에서 떠난다. 신자는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자족을 배우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디모데전서6:6-8에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다.

악독 누구에게나 속에 악독이 있으므로 그 악독을 이기기 위하여 극기(克己) 생활을 해야된다. 속임 사기, 거짓말, 거짓 증거 등을 말한다. 성도는 언제나 진실해야 한다. 진실하지 않으면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

음탕 이성적인 문란한 행동들이다. 훼방 남을 헐뜯고 방해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교만은 하나님과 남을 무시하는 것이며, 자기를 높이는 것과 자기가 하겠다는 것도 교만이다. 성도는 항상 교만하지 않도록 힘써야 된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벧전5:5). 우리 성도는 언제나 예수님을 본받아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마11:29).

광패는 난폭한 것을 가리킨다. 성도는 기도를 많이 하여 난폭한 성격을 다스리고,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을 소유하여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죄악이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하고 해독을 준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것들을 다 빼어 내버리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아름다운 신앙 인격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三.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24-30)

. 7:24-30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발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이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었다. 이 여자는 자기 딸이 귀신들렸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와서 부르짖었고, 그 믿음으로 자기 딸이 나음을 얻었다. 마태복음 15:22에는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였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뜻이다. 이 여자는 예수님을 메시야(그리스도)로 믿고 자기 딸이 흉악히 귀신 들린 것을 고쳐 달라고 호소하였으나 예수님은 한 말씀도 안 하시고 그냥 길을 가셨다(마15:23). 이 여자의 신앙은,

첫째, 예수님의 대답이 없어도 따라갔다. 예수님이 전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셨으나 가나안 여자는 계속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부르짖었다.

둘째, 상관이 없다고 하여도 따라갔다.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고 하셨다(마15:24). 이 말씀은 가나안 여인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므로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나안 여자는 여전히 예수님을 좇아와서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절히 구했다.

세째, 개라고 하여도 따라갔다. 예수님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셨다(27절). 유대인은 이방인을 개나 돼지처럼 여겼다. 에베소서 2:11-12에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언약 밖에서 사는 사람은 개나 다름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의 상태를 예수님이 그대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여자는 조금도 실망함이 없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며 다시 애원하였다. 가나안 여자는 참으로 겸손하였다. "개"라고 취급받아도 "옳소이다"하는 자리에까지 낮아져서 주님을 따라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자기를 부인하며 기어코 은혜를 받겠다는 심정으로 간절히 은혜를 사모하였다.

네째, 누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상주실 것을 믿었다(히11:6).

다섯째, 부스러기 하나라도 주시면 만족하겠다는 겸손한 믿음을 가졌다. 큰 것을 바라보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다.

예수님이 그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 라"고 하셨다. 마태복음15:28에는"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다.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다. 가나안 여자가 이렇게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온 것은 예수님을 자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예수님이 전능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셔서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며, 마귀를 쫓아내어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는 분이심을 확실히 깨달아 믿었다. 그러므로 어떤 비난과 멸시를 받더라도 예수님을 떠날 수가 없고 주님의 은혜에 참여하기 위하여 끝까지 따라갔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자의 신앙을 미리 다 아셨으나 그 신앙을 드러낸 후에 그 딸을 고쳐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상관이 없다"하시고 개와 같이 취급한 것은 가나안 여자로 하여금 믿음을 쓰도록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을 바로 깨닫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참된 신앙이 나을 수 없다. 진리를 바로 깨달은 다음에는 끝까지 진리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 끝까지 따라가려면 참고 견디어야 한다. 멸시와 천대를 받고 개와 같이 취급을 당하더라도 불평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참고 끝까지 따라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고가 온다. 진리를 따라간다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권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과 함께 가시면서도 예수님은 자기를 나타내시지 않고 그냥 지나가시려고 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예수님이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고 개와 같은자리에 처해 있어도 계속 예수님을 따라가야 마침내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 이렇게 끝까지 따라가는 신앙이 큰 믿음이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의 구원과 큰복을 받게 된다.

四. 귀먹은 벙어리를 고쳐 주심(31-37)

. 7:31-35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사람들이 귀먹고 말이 어눌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안수 해 주시기를 구했다.

어눌한 자 말을 분명하게 못하는 말더듬이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갔다. 이것은 무리들이 많은 데서는 복잡하여 기도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고요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기도해 주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손가락을 그의 양귀에 넣고, 또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하시니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풀려서 말이 분명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특이한 방식으로 고치셨다. 창조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가락을 양 귀에 넣었다는 것은 재창조 역사의 의의가 있는 것 같다. 창조의 능력이 있는 주님의 손가락을 귀에 넣은 것은 그 사람에게 감각을 주어 믿음을 일으키기 위함이었을 것 같다. 또는 주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직접 역사하여 고쳐 주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침, 즉 진액이 오고 손을 전 것은 얼마나 큰 은혜요 역사인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것은 죄 값으로 이런 병들이 들린 것을 생각하시면서 탄식하였을 것이다. 보통은 병이 죄로 말미암아 온다. 그러나 요한복음 9:1-3의 소경은 죄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소경이 되었다고 했다.

. 7:36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 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계한 것은

① 아직 그리스도의 사역이 성취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부활, 승천으로라야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성된다. 그 때에 공적으로 선포하기 위함이다.

② 전도하는데 방해가 되겠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할수록 바리새인들은 더욱 시기하여 예수님에 대한 반대가 커졌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비유로 가르치시고 조용할 때에 제자들에게 그 뜻을 풀어 주시곤 하셨다(마13:10-11).

. 7: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 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며 믿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바리새교 지도자들은 더욱 더 시기하여 핍박하였다.

제 8 장 사천명

[대 지]

一. 사천명을 먹이심(1-10)

二. 표적을 주지 않으심(11-13)

三.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삼가라(14-21)

四.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22-26)

五. 베드로의 신앙 고백(27-30)

六. 베드로가 사단의 종이 됨(31-33)

七. 주님을 따르는 방법(34-38)

[본문강해]

一. 사천명을 먹이심(1-10)

. 8:1 그 즈음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그 즈음에 예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병자를 고치시고 천국 복음을 가르치신지 사흘쯤 될 즈음이다.

. 8:2-3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느니라

큰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흘 동안이나 계속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 받는데 열중하여 자신들의 먹을 것이나 기력이 진해지는 것은 생각치 않고 있었다. 이처럼 열심히 예수님과 말씀을 사모하여 따라오는 자를 예수님이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의 먹을 것과 육체의 기력이 진하여질 것을 친히 염려해 주셨다.

이와 같이 주님은 언제나 성도들의 어려운 형편과 사정을 다 알아주신다. 마태복음6:31-32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주를 찾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육신의 먹을 것도 주신다. 시편37:25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하였다. 시편34:10에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를 주께 맡기고 주와 그 말씀을 사모하며 주만 따라가야 한다.

. 8: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황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제자들은 얼마 전에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오천 명을 먹인 것을 보았으나 여전히 현실적인 타산에만 빠져 있었다. 그리하여 이 곳은 광야이기 때문에 떡을 먹을 수 없다고 하였다.*

. 8: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주님은 언제나 성도에게 있는 것을 다치게 하여 그것으로 일을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는 창조자이시며,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먹을 것을 내어 그 무리를 능히 먹이실 수 있으나 성도에게 있는 것을 바치게 하여 일하시고자 떡 가진 것을 찾으셨다. 비록 가진 것이 보잘것없고 변변치 않은 보리떡이라도 성도가 그것을 바칠 때에 하나님은 그것으로 역사하여 많은 생명을 살려 나아가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성도들이 바치는 것을 받아서 일하시는 것은 성도들이 믿음을 쓰게 하여 그 믿음이 자라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도 성도들이 가진 것을 바쳐서 교회를 세우며 진리 운동을 해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다 해주신다고 하여 성도가 마땅히 행할 의무를 감당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성도가 마땅히 바칠 것을 바치고, 행할 것을 힘써 해 나아갈 때 주님께서 만능으로 일해 주신다.

. 8: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그 앞에 놓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 앞에 놓더라

앉게 하시고 그들을 서서 먹게 할 수도 있으나 예수님이 앉게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신 것이다. 순종하는 자에게 주의 능력을 보이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순종하여 그들이 앉은 후에 주님께서 축사하시고 떡을 때어 나누어주게 하였다.

주님이 기도하심으로 주의 능력이 나타났다. 주님께서 하나님이시라도 기도로써 모든 일을 시작하시고 끝마치셨다. 주체서도 이렇게 기도로써 모든 일을 이루어 나가셨는데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주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를 본받아 항상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 8: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그 앞에 놓게 하시니

작은 생선 두어 마리 점심 반찬으로 가져왔던 것이니 큰 멸치 정도일 것 같다.

. 8: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니 일곱 광주리가 되었다. 주께서는 자기 소유를 바치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넘치도록 풍성히 주신다. 남은 조각을 거두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은 부스러기라도 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광주리는 고기나 과실이나 여러 가지를 담는 그릇으로 6:43의 바구니에 비해 큰 것이다. 이 표적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주님만 따라가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먹을 것을 주신다.

② 성도가 자기에게 있는 것이 적고 변변치 않더라도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일하셔서 구원 운동을 하신다.

③ 예수께서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여 많은 사람에게 생명의 떡으로 주실 것을 보여 준 것이다.

. 8:9-10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흩어 보내시고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사람은 약 사천 명 마태복음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친 명이었다(마15:38)고 했다. 어린아이와 여자를 합하면 만 명이 넘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많은 무리를 먹이신 후 흩어 보내시고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다.

二. 표적을 주지 않으심(11-13)

. 8:11-12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께서 마음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과 떡 일곱 개와 생선 두어 마리로 사친 명을 먹이신 일을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으나, 믿지 않고, 또 표적을 구하였다. 그들의 불신앙을 예수님이 길이 탄식하시고 다른 표적을 보여 주지 않은 채 그 지방을 떠나셨다. 그 이유는 이미 행한 오병이어나 칠병이어의 표적들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되심과, 당신의 몸을 생명의 떡으로 세상에 나누어주실 것을 보여 준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지자 요나의 표적과 같은 뜻으로 예수님은 이 표적밖에 다른 것을 보여 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마16:4 참조).

三. 바리세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삼가라(14-21)

. 8:14-15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저희에게 없더라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누룩은 부풀게 하고, 부패케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누룩

①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교훈이다(마l6:11-l2).

② 바리새인들의 외식이다(마6:16). 외식은 속에 없는 것을 겉만 꾸미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속에 내적 생명은 없으면서 외부적인 의식에만 치중하였다.

③ 바리새인들의 이적주의이다. 8:12에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 주기를 구하였다. 그들은 이적을 존중히 여기며 추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표적이 중한 것이 아니라 참된 진리와 내적 생명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들이 없으면 아무리 표적을 많이 보아도 소용이 없다. 오늘날 신비주의자들이 표적을 추구하며 육체의 형 나은 것과 방언 등을 크게 여기는 것도 일종의 누룩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병이 나을 수도 있으나, 그것을 위주로 하면 참된 진리와 신령한 생명 운동에서 떠나게 된다.

④ 바리새인들의 의식주의이다. 마태복음6:3-4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하였다. 그들은 의식을 존중히 여겨 엄수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내적 생명은 떠나 있었다. 오늘날 교회들이 예배 의식과 교회 행사에만 치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은 일종의 누룩이다(마16:5-12 참조).

⑤ 고르반 사상이다. 바리새인들은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만 하면 부모에게 아무 것도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을 지키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성경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자들은 다 이와 같은 자들이다.

헤롯의 누룩 마태복음16:11-12에는 바리새인과 사주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했다. 헤롯 당원 가운데 사두개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 같다. 헤롯의 누룩은 정부의 세력을 의지하여 종교 사업을 크게 하여 출세하겠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헤롯 당파가 있었는데(마22:16, 막3:6),그들은 헤롯의 정권을 배경으로 하여 종교 활동을 하며 출세와 성공을 위해 헤롯의 정권과 야합한 단체이다. 이 당은 종교와 세상이 짝한 당파이다. 그들의 머리는 헤롯의 정권이요 그 머리는 헤롯이요 헤롯의 머리는 마귀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귀의 인도와 주장을 받고 있었다.

참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교회가 정치 세력과 야합하게 되면, 그 정권을 잡은 자가 교회의 머리가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주장을 받지 못하고 진리대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과 짝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약4:4, 요일4:5-6, 요12:25, 15:19-). 얼핏 생각하면 헤롯당이 정치 세력의 도움을 받으므로 종교 사업에 큰 유익이 되고, 외부적으로는 큰 발전이 있을 것 같이 생각되나 그 당파의 머리는 헤롯이요 헤롯의 머리는 마귀이므로 그 당은 마귀가 주장하는 단체요 진리와 영적 운동이 되지 않고 도리어 큰 손해만 입게 된다. 이는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한 것과 같다.

요한계시록2:20에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라고 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아내로서 아합의 정권을 배경으로 하여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 교회가 세상정권과 합하면 다 이와 같이 된다. 행음했다는 것은 교회가 세상과 벗된 것을 가리키고(약4:4), 우상의 제물은 성경을 어기고 얻은 모든 것을 가리킨다.

제2차 세계 대전시에 일본이 기독 교단을 조직하여 거기에 일본과 한국에 있는 모든 교회를 가입시키고, 일본 정부가 교회를 주장하였다. 교회가 정부와 야합하여 그 정권을 배경으로 하여 유익을 보고자 하는 것은 다 헤롯의 누룩인 줄 알고 주의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와 정권은 분리되어야 한다. 고린도전서5:7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온 그리스도께서 회생이 되셨느니라"고 했다.

참 교회는 누룩적인 요소를 용납하지 말고, 누룩 없는 순전하고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가는 새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새 덩어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합된 새 생명이요 영적 생명체이다. 누룩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속에도 있다. 신자의 속에 있는 부패성에서 나온 생각과 사상도 누룩이다. 이러한 누룩을 내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새 덩어리가 되어 말씀대로 걸어가야 한다.

. 8:16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을 제자들이 듣고 자기들에게 떡이 없음으로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줄 알고 수군거렸다.

. 8:17-21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니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멎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함을 보시고 그들의 보지 못함과 알지 못함과 듣지 못함과 기억치 못함을 탄식하시며 책망하셨다.

첫째, 물질 문제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을 책망하셨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셨다.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인 것이 그 증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한 것이 아님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으로 너희들이 오늘까지 살아 나온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셨다.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온 것이다. 까마귀를 시켜서 엘리야를 먹여 주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마시게 해주셨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능력의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살려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고 먹을 것만 염려하느냐고 책망하신 것이다. 성도가 먹을 것을 인하여 염려하고 걱정하면 마귀의 시험에 넘어간 것이다.

세째, 신령한 진리를 왜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셨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모든 것은 영적인 문제요 천국의 일이요 신령한 진리이다. 이것이 귀중하다고 항상 가르쳐 주었으나 왜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먹을 것만 생각하느냐고 탄식하시며 책망한 것이다. 우리는 신령한 진리와 영이 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四.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22-26)

. 8: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벳새다 갈릴리 바다 동북에 있는 벳새다 율리어스를 가리킨다.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대개의 경우 정자 자신이 예수님께 와서 고쳐 주시기를 구했으나 이 소경은 올 때에도 다른 사람이 데려 왔고 데리고 온 사람들이 소경을 고쳐 주시도록 예수님께 구했다. 이렇게 한 것은 이 소경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바나 믿음도 없이 단지 다른 사람들이 예수께 가자고 하므로 따라 온 것 같다.

. 8:23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이렇게 믿음이 없는 소경을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사 손을 잡고동네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복잡하고 소란한 곳을 피하여 조용하고 은밀한 곳에서 역사하신다. 예수께서 이 소경을 데리고 동네 밖으로 나가신 것은 고요한 곳에서 기도하며 그에게 믿음을 넣어 주신 후 고쳐 주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께서 그의 손을 붙들고 갈 때에 그가 믿음이 생겼을 것 같다. 예수가 누구이길래 나 같은 소경의 손을 붙들고 가실까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길에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났을 것이고, 그 큰사랑을 힘입어 어느 정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것 같다.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침을 그 눈에 뱉으신 것은 예수면의 진맥이 그에게 미치게 함이고, 안수하신 것은 예수님과 접촉이 되게 하신 것이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피와 진액을 받고, 예수님과 연합하여 교통하는 자는 복 있는 자이다. 요한복음 6 : 5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다.

. 8:24 우러러 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소경에게 믿음이 생겼을 때에 소경의 눈에 희미하게 무엇인가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확실하고 분명하게 밝아진 상태는 아니었다. 그 눈이 완전히 다 밟아지지 않은 것은 그의 믿음이 그만큼 약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 8: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예수께서 그 눈에 재차 안수할 때에 그의 믿음이 더욱 생기고, 그가 예수님을 앙앙하고 주목하여 볼 때에 그 눈이 완전히 밝아져서 만물을 밝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여러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으나 이 전경은 다른 사람의 경우와는 좀 다르게 고치셨다. 다른 전경은 말씀만으로 단번에 고치기도 하셨고, 흙을 발라 실로암 물에 씻게 하여 고치기도 하셨다. 그런데 이 소경에게는 침을 뱉고 두 번이나 안수하여 고치셨다. 이것은 예수의 능력이 약화되었거나, 형세가 중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소경이 믿음이 없는 자이므로 믿음을 넣어 주시고, 그 믿음이 있는 것만큼 병이 낫게 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 소경이 예수님과 가까이 정하므로 믿음이 생겼다. 이 소경이 예수님의 손에 붙들려 따라가고 침이 자기 눈에 와 닿고, 예수님의 손으로 두 번 안수하심으로 그와 접촉이 이루어질 때 예수님을 깨닫고 믿음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예수님을 가까이 하여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고 교통이 이루어질 때 생명이 살고 영안이 밝아지는 진리를 보여 주신 것이다.

. 8: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가라사대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고 하신 것은 여러 사람에게 병 나은 것을 자랑하며 육신의 병 나은 것만 귀중히 여기지 말고, 그 병 나을 때에 깨달은 주님을 심령에 모시고 영적 신앙의 길을 걸어가며 심령의 눈이 점점 밝아져서 좀더 신령한 복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五. 베드로의 신앙 고백(27-30)

. 8:27-28 예수와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노중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여짜와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의 여러 마을로 가실새 노중에서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다.

거기에 대하여 제자들이 답변하기를 "어떤 이는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에 하나라"하나이다 라고 했다. 마태복음16:14에는 예레미야라고 하는 자들도 있었다.

세례 요한이라고 한 자는 헤롯왕이었다. 헤롯왕은 세례 요한을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알았으나, 헤로디아의 간계와 자기가 맹세한 것 때문에 세례 요한을 잔인하게 목베어 죽인 일(6:16-29)이 늘 마음에 가책이 되어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에 세례요한이 살아나 그런 능력을 행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헤롯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례 요한"이라 한 말을 제자들이 예수님께 먼저 말하게 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죽인 죄책을 늘 느끼고 가책을 받아 제일 강하게 말하였으므로 제자들에게 그 말이 깊게 남아 있어서 제일 먼저 세례 요한이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죄책을 느낀 것만큼 강하게 말하는 법이다. 따라서 자기 죄를 철저하게 회개한 사람, 예수님이 자기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깊이 깨달은 사람이 그만큼 힘있게 복음을 받고 전할 수 있다.

더러는 엘리야 말라기4:5에 말세에 엘리야를 보내신다는 말씀을 가지고 유대인들이 엘리야가 와야 그리스도가 온다고 믿고 엘리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권능의 역사를 엘리야가 와서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마음에 두고 사모하는 말은 언제나 나오게 마련이다. 자기 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모하는 자는 예수님에 대한 말을 아니할 수 없으며 전하지 않을 수 없다.

. 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처음부터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누구라고 하는가를 알려고 하셨던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예수님 자신을 누구로 생각하는가를 알려고 하신데에 목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어떻게 깨닫고 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일과 상관이 없고 제자들이 주님의 일을 계승할 자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구원 운동을 계승할 제자들의 깨달음에 예수님은 관심이 있었던 것 이 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마태복음16:16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다. *구약의 여러 성도들이 소망하면서 고대하던 메시야라는 말이다. 메시야는 그리스도와 동일한 의미인데 '메시야'는 히브리어요 '그리스도'는 헬라어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구약 시대에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 3직이 있어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자기 백성에게 계시하셨고, 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서 속죄제를 드려 자기 백성을 구속하여 정결케 하셨고, 왕으로서 모든 원수를 정복하고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여 통치하며 절대적인 주권으로 영원토록 만물을 주장하고 복종케 하실 것이다.

여러 세대에 여러 성도들이 그리스도(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렸으나(벧전1:10 참조), 그들은 그 때를 보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그리스도)가 오셨으니, 예수님이 바로 그 분이심을 베드로가 깨달은 것이다. 요한복음8:56에"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은 것은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요, 도성인신하여 임마누엘로 오신 하나님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바로 깨달아 믿어야겠다. 말과 지식으로만 그리스도라고 하지 말고 실제로 예수님을 만왕의 왕이시요, 영원한 왕으로 영접하여 그의 통치와 인도를 잘 받고,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피 흘려주셨고, 지금도 우리를 죄에서 건져 주시며 정결케 해나가시는 것을 믿고 그에게 나아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회개하고 사유하심을 받아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점점 거룩한 데로 나아가야겠다. 또 선지자로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진리)을 다 계시해 주시고, 영적 지혜와 지식을 주셔서 점점 자라나게 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지식에까지 자라나야 하겠다(골3:10).

이 진리는 베드로가 제일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과거로부터 그 때까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확실히 깨달은 사람이 없었고 다른 제자들도 그렇게 깨닫고 있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렇게 귀한 진리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렇게 확실하게 깨달은 진리에 굳게 서 나가는 것이 바른 신앙이다. 마태복음 16:17에 그것을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베드로가 깨달은 그 진리(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실 것과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다. 또 베드로에게 친국 열쇠를 준다고도 하였다. 그러므로 진리를 바로 깨닫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 8: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계하시고

이것은 '메시야 은닉'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기 이전이므로 공식적으로 공포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①시기하는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친국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하겠기 때문에 그 방해를 받지 않고 복음 전하는 기회를 더 많이 갖기 위하여 그리스도이신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②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십자가와 부활로서 완성될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직무를 완성한 후에 공적으로 공포하기 위함이었다. 즉 진리를 다 이루어 놓은 다음에 진리를 전파하려는 것이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복음을 방해하는 자들에게는 비밀로 하시고 조용할 때에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마13:10-11). 우리도 전도하는데 비방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런 방편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진리를 개와 돼지에게 던지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六. 베드로가 사단의 종이 됨(31-33)

.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말씀해 주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아야 될 것과 부활하게 될 것을 말해 주어 그 신앙을 한층 더 전진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깨달은 진리에서 전진하여 좀더 깨달아 나아가야 영혼과 인격이 자라난다. 또 십자가와 부활을 미리 알려 줌으로써 다음에 그 일이 이루어질 때에 낙심치 않고 소망을 가지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 8:32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마태복음16:22에는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인정으로 기울어져서 예수님께 "죽임을 당하는 일을 멀리 하옵소서 이런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않도록 하옵소서"라고 한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여 이렇게 간하였다. 예수님에게 십자가가 오는 것을 반대하고 자기도 십자가 없이 예수님을 따라가고자 한 것이다.

.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베드로가 예수님께 간(諫)한 말은 사단의 충동을 받아 한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베드로가 사단의 종이 되어 사단이 시키는 대로 말한 증거는

첫째, 십자가를 없게 해 달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를 따라가려 고 하는 것은 벌써 그 속에 마귀가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코는 마귀의 종이고, 진리의 도(복음)를 무너뜨리는 자이다.

둘째, 하나님의 일을 생각치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치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이 잘 되는 길을 찾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여 자기가 잘 되고 평안한 길을 찾아가는 자는 사단의 인도를 따라가는 자이다. 그러한 자는 예수님을 넘어뜨리는 자요 주님의 구원 운동을 파괴하는 자가 된다.

七. 주님을 따르는 방법(34-38)

.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뜻을 거절하고 인정치 않는 것을 말한다. 자기는 없어져서 무(無)요 공(空)이 되고 빈 마음으로 예수를 따라가며 그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 그대로 믿고 순종하여 야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바로 따라가려면 반드시 십자가가 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고난을 각오하고, 고난이 올 때에 당연한 것인 줄 알고 달게 받아야 한다. 예수를 바로 따라가려면 마귀의 세력들이 방해를 많이 하고, 불신 가족이나 친척들이 핍박과 방해를 많이 한다.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모든 세상이 핍박과 방해를 하기 때문에 고난을 많이 받게 되어 있다.

. 8: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육신의 목숨을 중히 여겨 그 목숨을 위해 주님 따라가기를 중지하면 영적 생명의 역사를 잃게 된다. 영적 생명의 역사를 소유하려면 자기 육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어떠한 환난이 와도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마귀의 시험에 든 사람은 육신 중심이기 때문에 영적 생명보다 육신의 생명을 더 귀히 여긴다. 그것은 육신의 생명이 우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예수님을 위하여 육신의 목숨을 잃으면 영적 생명을 찾는다는 뜻이다. 육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기도 하지만 영적 생명은 새롭게 살아가며 새 생명의 역사가 더욱더 커 나간다. 이것이 참으로 산 것이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려면

① 베드로와 같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지 못한다. 과거에 아는 진리만 가지고 믿는 것이 아니고, 새로이 진리를 깨달아 그 깨달은 진리를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②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된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라야만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된다.

③ 십자가를 각오하고 나가야 한다.

④ 사람의 일을 생각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일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가야 한다.

⑤ 육신의 목숨으로 살지 않고 영의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육의 사람으로만 사는 사람은 사단의 종이다.

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대 앞에 설 준비를 잘 해 나가야 한다(38절).

. 8:36-37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온 천하를 다 주고도 영의 생명을 바꿀 수는 없다. 제일 귀한 것이 영의 생명이다. 육신의 생명은 잠깐이요 영의 생명은 영원하다. 천하를 다 얻고도 영적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하고, 영의 생명이 살아나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천하를 얻었어도 잠시 후에 육신의 목숨이 없어질 때 그것들이 모두 남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이 세대는 육적 음란과 죄가 가득 찬 세대이다.

음란 실제적 음란 행위와 영적으로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약4:4). 세상 끝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큰 영광 중에 천사들과 같이 공중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이 세상에서 주님과 그 복음을 부끄러워서 전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불신자는 공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대로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이다.

제 9 장 변화산

[대 지]

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예고하심(1)

二. 예수께서 변화하심(2-8)

三. 엘리야가 오는 일에 대한 문답(9-13)

四. 귀신을 내쫓는데 대한 교훈(14-29)

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에 대해 교훈 하심(30-32)

六. 어린아이와 천국에서 큰 자(33-37)

七. 반대하지 않는 자는 위하는 자이다(38-40)

八. 믿는 소자 하나를 영접하는 자와 실족케 하는 자(41-42)

九. 불구자로 영생을 얻는 것이 온전한 몸으로 지옥 형벌을 받는 것보다 낫다(43-50)

[본문강해]

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예고하심(1)

. 9: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가리킨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하나님의 나라(복음 운동)가 큰 권능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제자들이 죽기 전에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하늘 나라 운동(복음 운동)을 강한 능력으로 이루어 나가게 될 것을 가리킨 것이다. 사도행전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누가복음24:49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고 했다.

신약시대의 복음 운동은 하나님 나라 운동이며, 성령이 임할 때에 권능으로 이루어져 나간다. 마태복음13장에 천국을 나타낸 일곱 가지 비유가 있는데 그 친국은 하나님 나라 운동, 즉 신약 교회를 가리킨다. 그 운동이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큰 권능으로 이루어져나갈 것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또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은 예수님이 심판주로 임하신 것이다.

二. 예수께서 변화하심(2-8)

.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높은 산 이스라엘 북방에 있는 해발 9100척의 유다에서 제일 높은 헤르몬산(Hermon)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그 높은 산에 가신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기도하시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자주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기도하셨고, 습관적으로 감람산에 가셔서도 기도하셨다(눅22:39-40). 엘리야도 갈멜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였고, 모세도 호렙산(시내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였다.

둘째, 변화하실 목적에서였다. 누가복음9:28-30에는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었다고 하였다.

세째, 세상을 멀리 떠나 은밀한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네째,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올라가셨다. 즉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려는 정신으로 올라가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는 높고 신령한 하나님의 세계를 사모하고 앙앙하여 그 세계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가까이 찾아가 만나 주신다. 성도가 마음으로 산에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멀리 떠나 신령한 세계로 높이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시간을 말이 들여 기도해야 한다. 성도가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려고 힘을 써야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그 때에 영적 시온산에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성도가 올라가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힘쓰지 않으면하나님께서도 도와주시지 않는다.

. 9: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예수님이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실 때에 변화되었다. 이 변화는 속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이 외부에까지 나타난 것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항상 심령이 깨어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며, 하나남 안에서 성령으로 기뻐하고, 하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었다.

옷이 광채가 나며 예수님의 심령이 변화되니 옷까지 빛나 보였다. 또, 땅까지 빛나고 아름답게 보였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살으셨으나 여기에서만 특별히 변화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서 성도에게 변화된 세계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위하여 돌에 맞아 죽기까지 순종할 때에 심령이 변화되고, 기쁨이 충만한 하나님의 역사가 속에서부터 외부에까지 나타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되었다. 이것이 성도의 변화이다. 믿는 사람이 예수를 잘 믿어 고 심령이 변화되면 얼굴까지도 변화되며 의복이나 그 거처도 아름다와 보인다.

. 9: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세 제자들에게 보였다. 그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일이었다(눅9:31). 변화된 자리에는 변화한 사람만 참여했다. 엘리야는 죽지 아니하고 승천한 자이며, 모세는 육신이 죽어 장사되었으나 두 사람이 모두 변화되어 나타났다. 모세와 엘리야가 왜 나타났을까?

모세는 율법의 대표로,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로 왔다. 모세가 오경(율법)을 기록하였으므로 율법의 대표이며, 엘리야는 선지자의대표이다.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한다. 구약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구속이다. 예수님은 모세 오경과 선지서에 예언된 대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계시해 주기 위하여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이다.

또 모세는 예수를 믿고 죽은 성도가 주님 재림시에 부활할 것을 예표하는 것이고, 엘리야는 살아서 믿는 성도가 주님 재림 시에 변화될 것을 예표한다고 하는 해석도 있다.

. 9: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누가복음9:32-33에는 베드로가 곤하여 졸다가 갑자기 눈을 떠서 변화의 세계를 볼 때에 너무 당황해서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모르고 실수한 것이다. 기도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 산에 갔던 제자들이 비록 졸기는 하였으나 큰 은혜를 받았다. 기도하기 위해 힘쓰는 성도는 기도 중에 연약하여 졸다가도 은혜를 받는 때가 있다. 기도하다가 졸더라도 기도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유익이 있다. 제자들이 졸지 않았으면 물론 더 큰 은혜를 받았을 것이다.

베드로는 그 변화의 세계가 너무 좋아서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고 하였다. 그러나 초막 셋을 짓자고 말한 것은 큰 실수를 범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①예수님이 초막에 계셔야 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셔서 구원 운동을 하시고 속죄 제물이 되어야 할 분이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인간이 만든 초막집에다 모시려고 한 베드로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어떤 장소에 머물러 계셔야 할 예수님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어디서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그 사람에게 같이 하신다. 그러므로 인위적이고 제도적인 제한된 테두리에 예수님을 모시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복종하고 따라가야 한다.

②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과 동등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이다.

③임시로 보여 준 변화의 세계를 영원히 붙들어 두려고 했기 때문이다.

④자기의 사명, 즉 주님을 증거하고 구속 운동을 해야 할 것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⑤산 아래에 있는 아홉 제자와 또 불쌍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 9:6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심히 무서워하므로 부족한 인간은 지극히 엄위하신 하나님이 임재(臨在) 하실 때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서 예수님의 성상(聖像)을 발견할 때에 무서워서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계1:17).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변화산에 나타난 영광스러운 세계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위엄을 볼 때에 제자들은 자신들이 너무 미천하고 부족함을 발견하고 감히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하였다.

. 9:7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구름 마태복음17:5에는 빛난 구름이라고 했다. 이것은 영광의 구름이요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이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그 아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것을 모두 소유했고, 그것을 또 우리에게 주신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변화산의 영광을 붙잡아 두려고 하거나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만 들으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독생자의 영광이 충만하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므로 그 말씀을 순종해야 친국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고 예수님을 영원히 모실 수 있다.

. 9: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이에 변화의 현상도 사라지고, 모세도 엘리야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남았다. 성도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그 예수님만 따라가야 바른 신앙이 된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이 아무리 좋게 보여도 그것을 붙잡으면 신앙이 탈선된다.

三. 엘리야가 오는 일에 대한 문답(9-13)

. 9:9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계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예수께서 메시아직을 완성하려면 반드시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하여야 된다. 완성되기 전에는 숨기는 것이 그 일을 이루는데 유리하고, 또 완성된 다음에 공적으로 전하는 것이 원칙이다.

. 9:10 저희가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제자들은 아직 부활에 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진리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은 그 일이 이를 때에 믿게 하려 함이었다(요14:29).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 말씀 중에 깨닫지 못하는 말씀이 있더라도 그대로 받아야 되고 그대로 믿어야 된다. 그러면 그 사실이 이루어질 때에 깨닫게 될 것이다.

. 9:11-12 이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엘리야가 나타난 것을 보고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된다고 하던 말이 생각나서 이같이 예수님께 물어 본 것이다. 서기관들이 말라기4:5-6을 가지고 엘리야가 먼저와야 그리스도가 온다고 가르쳤으며 그 엘리야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그리스도도 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거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두 가지로 답변하셨다. ① 엘리야가 과연 벌써 와서 회개 운동을 일으켜 모든 것을 회복하여 그리스도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② 그리스도가 이미 와 있다. 이사야53:1 이하에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그 성경대로 고난을 받아야 될 것이다. 엘리야가 왔다는 것은 세례요한을 가리킨다. 마태복음17:13에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고 했다.

엘리야가 온다는 것은 ① 엘리야와 같은 역할(役割)을 하는 사람을 보낸다는 것이요 ②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다는 것이요(눅1:17참조) ③ 엘리야와 같이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백성들 간에 윤리를 바로 세운다는 것이요 ④ 죄를 미워하여 회개하게 하고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회복한다는 것은 말라기4:5에 예언된 말씀대로 엘리야가 와서 아비들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들에게로 돌이키게 한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와서 그 일을 다 이루었다.

. 9: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임의로 대우하였다는 것은 엘리야의 역할을 하는 세례 요한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접하지 않고 임의대로 학대하고 핍박했다는 뜻이다. 어느 시대에나 참 선지자를 임의로 대접하여 핍박하고 배척한다. 이것은 그리스도도 그들에게 핍박과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四. 귀신을 내쫓는데 대한 교훈(14-29)

. 9:14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산아래 있던 아홉 제자들이 서기관들과 더불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데 대하여 변론하였다(18절). 무슨 변론인지 확실치 않으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것을 본 서기관들이 제자들의 무능력한 것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언사에 대한 변론인 것 같다.

. 9: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고난 당하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무리들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놀라며 기쁨으로 달려와서 문안했다.

. 9:16-17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변론의 진상을 물으니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가 그 진상을 말하였다.

. 9:18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그 아이가 귀신의 역사로 간질환자와 같이 발작을 일으켜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고, 또 귀신이 그 아이를 거꾸러뜨리기도 하고, 거품을 흘리게도 하며, 점점 파리하여 갔다. 귀신은 이와 같이 악독하여 사람에게 많은 해를 주고 죽이려고 한다.

. 9:19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 오라 하시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마태복음17:17에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했다. 제자들이 믿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는데 무슨 믿음이 없다고 하였을까 ?

①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는 믿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② 생명 있는 믿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생명만 있으면 태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했다(마17:19-20).

③ 능력 있는 믿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하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전4:20).

④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는 믿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예수께서 이미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제자들에게 주셨다(마10:1; 막6:7). 그러나 그들이 그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은 지 오래되었으므로 믿음이 생겼어야 했다. 히브리서5:12에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라고 했다. 믿은 지 오랜 자가 믿음이 자라나지 못하였으면 책망을 받아야 마땅하다.

. 9: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그 아이로 하여금 다시 발작을 일으키게 하여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게 했다. 마귀는 예수님께 쫓겨날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발악을 한 것이다. 말세에도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벧전5:8).

. 9:21-22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그 병의 근원을 물으시매 그 아버지가 근원과 증세를 자세히 보고했다. 우리도 마귀 역사를 근원부터 바로 알고 주님께 직고하여야 한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병이 너무 오래되어 고질화된 것과 예수의 만능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였다.

.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예수님은 만능의 주님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 자를 책망하신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은 만능이라는 뜻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난다(롬10:17). 그러므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다(약2:22). 말씀이 없이 믿사오니 하는 것은 미신이요 맹신이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구상하는 목표(理想)를 세워 놓고 그대로 될 것을 믿고, 계속 기도하며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바른 신앙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순종해 나가는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이 만능으로 도와 주셔서 반드시 그것이 이루어진다. 이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큰 일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 말씀을 믿고 순종해 나갈 때에 홍해도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도 나오고, 사자의 입도 봉하고, 풀무불 속에서도 타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 9: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내가 믿나이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책망을 받을 때에 자기가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것을 회개하며 이제는 내가 믿나이다 하고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의 책망을 받는 즉시정신을 차리고 심령이 깨어 믿음에 서게 된 것이다. 에베소서5:13-14에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책망을 받을 때에 빛이 들어오고 심령이 깨어난다. 그러므로 책망 받을 때에 변명만 하고 회개하려고 힘쓰지 않는 자는 바로 설 수가 없다.

다음에 그 아비가 자기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간구 했다.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에게나 요구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내가 전적으로 믿나이다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주옵소서"하고 간구하며 나아가야 한다. 믿음이 약한 자리에 머물러도 안되고, 이제는 내가 믿으므로 예수님이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 하여 "스스로 섰다"해도 안 된다. 겸손히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하고 주님만 의뢰하고 주의 능력으로 걸어나가야 한다.

. 9:25-27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오랫동안 사람을 괴롭게 하던 귀신이 주님의 명령 한마디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 귀신이 나갈 때에 최후의 발악을 하여 그 아이를 죽은 것 같이 만들어 놓고 나갔다. 귀신은 언제나 사람을 망하게 하려고 한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어떤 사람은 귀신의 말을 녹음하여 들려준다고 한다. 사람이 귀신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녹음할 수 있겠는가? 원칙적으로 귀신이 사람의 말을 할 수 없다. 또 귀신의 말을 육신의 귀로 들을 수 없다. 본절에서 귀신이 소리 질렀다는 것은 귀신이 그 아이에게 들어가 그 아이를 주장하고 그 아이를 통해서 소리지른 것을 말한다. 즉 그 아이가 귀신이 시키는 대로 말한 것이다.

죽은 것 같이 되어 귀신은 그 아이를 죽이려고 했으나 예수님은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서 살려 놓았다. 마귀는 언제나 사람을 죽이려는 악한 자요, 예수님은 사람을 살려 내는 분이시다.

. 9:28-29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노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귀신들렸다 나은 아이와 그 아버지가 돌아가고, 그때 모여서 떠들석하던 사람도 다 돌아간 다음 예수님이 조용히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집에 들어가셨다. 그때 제자들이 자기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진지하게 물어 보았다. 이것은 자기들의 결함이 어디 있는지, 또 무엇을 하여야 되겠는지 배우고자 하며 물어 본 것이다.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깨달아 고치려고 하는 성도는 희망이 있다. 그때 예수님이

① 기도하지 않아서 쫓아내지 못했다고 가르쳐 주셨다. 기도해야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다(행1:8, 눅24:49). 기도를 많이 하지 않으면 능력이 떠나고 점점 약해져서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

②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19절). 제자들은 믿음이 없으므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산 믿음, 능력 있는 믿음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19절 해석참조),

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에 대해 교훈 하심(30-32)

. 9:30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시고, 갈릴리 지방으로 지나오실 때에 이렇게 은밀히 행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었다.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을 가르치시기도 하고, 특별히 제자들만 가르치실 때도 있었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이 모일 때는 표적과 능력을 행하며, 비유로 가르치고 조용한 때는 제자들에게 그 뜻을 풀어 가르치시곤 하였다(마13:11).

. 9:31-32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그 때 예수님이 가르치신 내용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가르칠 수 없다. 마가복음8:31에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허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라고 했다. 본절에서는 두 번째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 중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믿음이 어리기 때문에 이 중대한 진리를 깨달을 만한 정도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그 진리를 말해 주신 것은 그것을 미리 알게 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고 그 말씀에 서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지금은 깨닫지 못하나, 때가 오면 깨닫게 될 것이므로 예수님이 소망 가운데 계속 가르치신 것이다.

六. 어린아이와 천국에서 큰 자(33-37)

.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집에 계실새 이 집은 예수님의 집이다.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여 그곳에 예수님의 집이 있었던 것 같다.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제자들이 노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을 한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그들을 가르쳐 바로 세우기 위해서 이렇게 물으신 것이다.

. 9:34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제자들이 노중에서 누가 크냐 하고 서로 다투었으므로 부끄러워 답변하지 못하였다. 서로 높아지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 운 일이다.

.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뭇사람의 끝이 되며 사람들은 보통 끝이 되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끝이 되어야 첫째가 된다는 것이다. 누가복음16:15에는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칭찬하고 높여 주면 교만해져서 믿음에서 떨어지기 쉽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벧전5:5).

그러므로 가장 낮은 자리(끝자리)에 처하여 사람들에게 묻혀 살며, 나다나엘과 같이 은밀히 기도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며 종살이하는 자가 하늘 나라에서 큰 자이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섬기고 봉사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만대 만민의 모든 택한 백성을 목욕시켜 정하게 해주시고(그리스도의 피로 중생 시켜 주심), 발을 씻어 주셨다(회개시켜 정결케 해주는 일). 그러므로 예수님이 천국에서 제일 크고 존귀한 분이시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권세를 잡으려 하고, 임의로 남을 주관하고, 남을 누르고 올라가려고 한다(마20:25).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세상 나라와 반대로 낮아져서 섬기는 종이 되어야 큰 자가 되고 으뜸이 된다.

. 9:36-37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마태복음18:2-4에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친국에서 큰 자니라"고 했다. 왜 어린아이와 같은 자라야 친국에 들어가고 큰 자가 되는가? 어린아이는 자기를 낮추고 순진하여 젖을 사모하며(벧전2:2), 말씀을 전적으로 잘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는다. 천국 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하는 자가 친국을 소유하게 되고, 큰 자가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성도를 영접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시고 말씀의 생명의 역사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천국을 소유한 자를 영접하는 자는 친국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있는 자를 영접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七. 반대하지 않는 자는 위하는 자이다(38-40)

. 9: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자는 예수를 믿는 자였다. 그러나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을 따라다니지 않았다. 요한은 그 사람이 자기들과 같이 다니지 않는다고 하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 내쫓는 것을 금하였다.

. 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그가 제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를 통하여 어느 정도주의 이름이 전파되어 나가고, 예수님을 비방하지 않고 측면에서 협조하기 때문에 구원 운동에 유익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열 두 제자에게 맡겨 주신 사명과 일은 특별한 것으로 그가 행하는 것과 같지 않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복음 사역은 원래 열 두 제자를 통해서 이루어 나가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한 단체, 한 교파에 있지 않는 자라도 신앙만 같으면 배척하지 말고 서로 인정해 주는 것이 옳다.

. 9: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진리 운동에 대하여 찬성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며, 찬성도 하지 않고 반대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은 진리 운동을 위하는 자이다. 또 비진리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 자는 그 비진리 운동을 도와주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성도가 성경과 반대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된다.

八. 믿는 소자 하나를 영접하는 자와 실족케 하는 자(41-42)

. 9:41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물 한 그릇만큼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반드시 상급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운동, 진리 운동에 물 한 그릇이라도 도와주는 자리에서 있어야 복을 받는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받들어 도와주었고, 사렙다 과부는 엘리야를 공궤하며 도와주었다. 또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공궤하여 도와주었으므로 하나님께 많은 은혜와 복을 받았다. 우리도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도와주는 위치에 서 있어야 복을 받는다.

. 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윗절과 반대로 어린 아이 하나라도 실족케 하고 손해를 주면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걸이 낫다고 했다. 성도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고, 그 신앙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주면 그 죄가 크고, 큰 벌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이라도 구원 운동에 손해를 주지 말고 냉수 한 그릇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도, 정욕도, 재산도, 건강도, 청춘도 다 지나가지만 주를 위해서 도와 준 것은 그것이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늘 나라에서 반드시 상급을 받게 된다. 고린도전서15:58에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했다. 이것은 주안에서 주를 위하여 수고한 것은 전부 하늘 나라에 남아있으므로 힘써 주를 위해 수고한 것만큼 상급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 다.

九. 불구자로 영생을 얻는 것이 온전한 몸으로 지옥 형벌을 받는 것보다 낫다(43-50)

. 9:43-47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없음)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없음)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것은 실제로 손, 발을 찍어 버리거나 눈을 빼어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이 말씀은 손과 같이 귀하고, 발과 같이 필요하고, 눈과 같이 요긴한 것들이 라도 범죄케 찰 때에 그것들을 끊어 버리라는 것이다. 자기에게 없어서 안될 사람이나 재물이나 사업체나 지위나 명예나 직장이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게 되고 범죄케 될 때에는 그것을 단호히 끊어 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잘라 버리지 않고도 신앙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을 때는 그것들을 하나님의 일에 이용하는 것이 좋다. 그것들 때문에 성도가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생명 길을 걷지 못할 경우에만 단호히 그것들을 끊어 버리고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다. 물 속에 사는 게는 사람에게 발 하나를 붙잡히면 스스로 그 발을 끊어 버리고 도망간다. 도마뱀도 꼬리가 붙들리면 꼬리를 스스로 잘라 버리고 도망간다. 성도가 두 눈, 두 손, 두 발이 다 있는 것이 좋으나 그것들이 마귀에게 붙잡혀 생명 길을 걷지'못하고 범죄의 자리로 끌려갈 때는 끊어 버리고 영생 길을 걷는 것이 낫다.

지옥에 던지우는 것은 현재 흑암을 만나 지옥 고통에 빠지고 하나님의 교통이 끊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또 믿지 않는 자는 장차 지옥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요한계시록13:10에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라고 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면 자기가 붙잡힌다. 불의한 길을 걷게 하는 것들을 잘라 버리지 않으면 거기에 붙잡혀서 영적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마귀의 종이 되어 사망과 고통의 길로 간다.

.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거기는 지옥을 가리키며, 영적으로는 고통, 흑암, 또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지옥에 구더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구더기는 추하고 미약한 미물인데 아무리 미약하고 비천한 목숨이라도 일단 지옥에 던지우면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옥은 한번 가면 결코 죽지 않고 세세에 고통만 당하는 곳이다. 세상에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일단 지옥에 던지우면 구더기와 같이 다 천하고 미약한 생명이 된다. 아무리 유력한 장군들도 적군에게 포로 되어 포로 수용소에 들어가면 다 미천한 죄인으로 취급받는 것과 같다. 세상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자주자라도 지옥에 가면 천하고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여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 상태가 얼마나 처참하겠는가 ! 성도가 범죄 할 경우에는 영적으로 혹암을 만나고 고통이 들어오고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며 각종 징계를 받는다. 그 때에는 비천한 칙지에 빠지고 죽으려고 해도 죽음이 그를 피한다(계9:6).

. 9:49 사람마다 여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불로써 소금 치듯 함 소금 치듯 골고루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소금 칠 때 한 쪽만 치는 것이 아니고 골고루 다 친다. 그와 같이 지옥에는 고통이 골고루 미친다는 뜻이다. 또 소금에 절여지면 힘을 쓰지 못하고 기운이 빠지는 것처럼 지옥에서 불의 세력에 잡혀서 기운을 쓰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채소 같은 것이 소금에 절여지면 모든 생기가 다 죽고 힘이 없어진다. 지옥에 간 자들도 그 불로 인하여 거의 죽다시피 되나 죽지는 않고 계속 고통만 당하게 된다. 그리하여 구더기와 같이 미천한 생명이 된다.

.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녹아져서 화목하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완악하고 무자비하고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자이었으나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녹아져서 온유하고 겸손하고 사랑으로 희생 봉사하며 화목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써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여 화목해야 한다. 화목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뻣뻣한 채소가 소금을 치면 부드러워지듯이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면 자신이 다 죽어지고 겸손히 낮아져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며 봉사하게 되고 사랑으로 화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어떤 경우에서라도 서로 화목할 수 있게된다.

제 10장 부 자

[대 지]

一. 이혼 문제에 대하여(1-12)

二.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축복하심(13-16)

三. 영생 문답(17-22)

四. 부자와 천국(23-31)

五. 십자가와 부활을 전함(32-34)

六. 요한 형제의 간구와 주의 나라에서 큰 자가 되는 방법(35-45)

七. 소경이 눈을 뜨게 됨(46-52)

[본문강해]

一. 이혼 문제에 대하여(1-12)

. 10:1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셨다. 거기서도 많은 무리가 예수께 모여 왔으므로 예수님이 전례대로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 10: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시험하여 묻되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좋은 뜻으로 한 질문이 아니고, 예수님의 답변 속에서 책장을 만한 것을 찾아내기 위한 질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어 본 것은 이혼 문제였다. 이는 이혼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이 모세의 가르친 것과 같이 답변하면 "모세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다"하여 예수님을 무시하고자 함이요, 반대로 모세의 계명과 다르게 답변하면 "모세의 계명을 어기는 자라"하여 예수님을 정죄할 목적이었다.

. 10:3 대답하여 가라사대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명한 것에 대해서 잘못 알곤 있는 것을 바로 고쳐 주시려고 그들에게 반문하셨다.

. 10:4 가로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 주어 내어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모세가 기록한 신명기24:1에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라온 후에 수치 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라고 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라는 조건을 빼어버리고 무조건 이혼 증서만 써 주면 이혼할 수 있다고 잘못 가르쳤다. "수치 되는 일"은 간음죄를 가리킨다. 모세는 아내가 간음죄를 범했을 때는 이혼 증서를 써 주어 내어 보내라고 하였으나, 바리새인들은 이 조건을 빼어버리고 이혼 증서만 써 주면 이혼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친 것이다.

. 10: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미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예수께서 성경의 원리적인 해석을 해주셨다.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모세의 율법에서 이혼을 허락한 것은 이혼을 권장함이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인하여 "수치 되는 일이 있을 경우"에 한하여 허락하신 것이다.

. 10:6-9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이혼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답변하셨다. 첫째, 창조의 원리상 이혼이 불가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들어 짝지어 주셨다. 둘째, 부부는 한 몸이기 때문에 이혼이 불가하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된 사실은 비밀이라고 했다(엡5:31-32). 세째,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셨으므로 사람이 임의로 나누지 못한다.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갈라 주기 전에는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하나님이 갈라 주는 경우는 다음절 해석 참조).

. 10:10-12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묻자온대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부부 중 한 편이 음행한 일이 있을 때 이혼할 수가 있다. 음행은 부부 계약이 해약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마19:8-9). 음행한 연고로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므로 가능하다. 그러나 호세아 선지자처럼 음행한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도 가한 일이다. 또 부부간에 한 런이 죽었을 경우에 살아남은 쪽은 자연히 부부 계약이 해약되어 자유로이 재혼할 수 있다(롬7:2-3). 부부 중 한편이 죽은 것도 하나님이 갈라 주신 것이다.

고린도전서7:15에 보면 신앙 문제 때문에 갈라지지 않을 수 없는 경우(혹 축출 당하든지)에 갈라질 수 있다. 부부 중 한편은 믿고 다른 한 편은 믿지 않는 경우, 믿지 않는 쪽에서 신앙 문제 때문에 이혼을 강요할 때는 이혼할 수 있다.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제24장 6항에 간음이 아니라도 교회로나 법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고의적인 부부 동서(同棲) 거절은 결혼의 약속을 취소할 충분한 원인이 된다고 기록했다.

이혼을 할 때에는 공식적으로 제정된 수속을 밟아서 해야 한다. 장로교 정치 문답 조례 166 문답에는 음행이 있거나 오랫동안 집을 버리고 멀리 가서 관리의 처분으로 재결합(再結合)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이혼하는 것이 가하다고 하였다. 또한 예레미야 29:4-6에는 바빌론에 포로 잡혀가서 부부가 갈라진 경우에도 재혼하는 것이 가하다고 하였다.

二.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축복하심(13-16)

. 10: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을 훌륭한 사람이 만져 주는 것을 축복으로 안다. 더우기 예수님이 한 번 만져 주는 것을 최상의 축복으로 여길 것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아이들을 만져 주기를 예수님께 요구하였다. 그때 제자들이 그것을 꾸짖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도와주려 함이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많은데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서 복잡하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지장을 초래할까봐 꾸짖은 것이다.

. 10:14-16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일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분히 여겨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것과 어린아이의 영혼도 귀하여 어른과 동일함을 생각지 못하고 그들을 물리치려 하므로 예수님이 신적 진노를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의 것이라는 뜻이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다(마18:4).

②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나라는 순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그대로 잘 받아들이는 자의 것이다.

③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자이다(15절). 하나님의 나라를 잘 받드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커져 나간다.

④ 어린아이는 신령한 젖을 사모한다(벧전2:2). 신령한 젖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받아먹고 계속하여 사모하는 자는 자라나서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

⑤ 어린아이는 잘 배운다.

⑥ 배운 대로 행한다. 어린아이와 같이 지극히 낮아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고, 말씀을 사모하여 부지런히 배우고, 배운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잘 받드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요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가 된다.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잘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반대로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친국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와 같은 자를 영접해 주시고 축복해 주신다. 참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축복을 받으려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三. 영생 문답(17-22)

. 10: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한 사람 마태복음에는 청년이라고 하였고(마19:20), 누가복음에는 관원이요 큰 부자라고 하였다(눅18:18, 23). 세상적으로 볼 때에 부족함이 없는 그가 예수님께 나아와 기어 앉아 영생 문제를 배우고자 한 것을 보아 그 사람이 아주 겸손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다 지키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나 아직 영생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여 고민하다가 예수께 나아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질문하였다.

선한 선생님이여 그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으로만 알았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요 그리스도이신 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예수님의 대답은 인간의 선한 행위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며, 선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영접하고(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뜻대로 바로 행하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다. 임마누엘로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데 왜 선한 선생을 찾으며 선한 일을 하여서 영생을 얻으려고 하느냐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다.

. 10: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십계명 중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말하지 않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만 말씀해 주신 까닭은 그는 도덕적으로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지금까지 행한 것을 고백하게 하여 거기에 대해서 바로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었다.

살인하지 말라 도덕적인 면의 행위로서 제일 큰 쬐는 살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말씀했다. 간음 둘째로 큰 죄는 간음한 죄이다. 도적질 셋째 번 죄는 도적질한 것이다. 그 다음은 거짓 증거한 죄이고 그 다음은 속여 취하는 죄이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이나 간음은 밖으로 명백하게 나타나는 죄요, 양심에 가책을 많이 받는 죄이며, 많은 사람이 큰 죄로 인정하는 죄이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외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다. 같은 경우에서도 부모를 공경했다고 찰 수 있고 안했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계명에 대한 가책은 많이 받지 않기 쉽다. 그러므로 이 5계명을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이다. 또 1계명에서 4계명까지 말하지 않으신 것은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신령한 진리를 알지 못하고, 말해 주어도 그것을 알 만한 정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초보적으로서 인간 면에 대한 도덕 윤리이기 때문에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정도에 맞게 말씀하신 것이다.

. 10:20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이 사람은 외부적으로는 그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으므로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계명의 신령한 뜻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만일 그 계명의 신령한 뜻을 바로 알고 있었더라면 다 행했다고 대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남-제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요(요일3:15), 형제에게 노하는 것도 살인이기 때문이다(마5:21-22). 그가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겠는가! 또, 한번도 사람에게 노한 일이 없었겠는가!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이 이미 간음한 것인데(마5:28), 그가 한번도 음욕을 품은 일이 없었을까! 또 세상과 벗된 것이 음행인데 (약4:4) 그가 세상과 벗된 일이 없었겠는가!

.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세상에서 별로 부족함이 없는 젊은 사람이 현실주의에 빠지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고자 애썼고 예수님께 찾아와 겸손히 기어 앉아 영생 문제를 묻는 것을 볼 때에 예수님께서 그를 귀히 여기셔서 사랑하신 것이다. 영생 문제에 대해서 많이 힘쓰는 자를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또 겸손한자와 예수님께 간구 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은 회개하고 주님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있는 것을 팔아 구제하라는 것은 회개하라는 뜻이다. 그 사람은 자기의 재물이 우상이 되었으므로 회개하고 그 우상을 버려야만 예수님을 따를 수가 있다. 그 사람이 영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있는 것(재물)이 많아 그것이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네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명하신 것이다.

네 있는 것은 ① 재물을 가리킨다. 마태복음6:24에 하나님과 재물을 경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했다. ② 자기가 귀히 여기고 의지하고 자랑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리킨다. 즉, 학문·지식·경험·지혜 등이다. 이것들을 의지하고 자랑하는 자는 그것들이 우상이 된다. ③ 그가 자랑하는 종교상의 외부적 의식과 도덕적 행위(20절)이다. 이것도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예수를 찾는 데는 방해가 되었다.

빌립보서3:8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정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정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했다. 바울은 과거에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자랑하던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발견하고 소유하는 데는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팔아 판다는 것은 앞에 말한 그것들을 버리려고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것을 가리킨다. 즉 버리려고 힘쓰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기도하며 공력을 들이지 않으면 그것들이 버려지지 않는다. 가난한자들을 주라는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라는 뜻이다. 가난한 자는 재물이 필요한 사람이다. 재물은 쌓아두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주의 뜻대로 필요할 때에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다. 우리가 주를 위하여 사용한 재물은 그것이 하늘에 보화로 쌓여 진다. 자기에게 우상이 된 것을 다 버려야 그 사람이 예수를 알게 되고, 예수를 따라가야 영생을 얻는다.

. 10: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그 재물을 버릴 수가 없었다. 적은 것은 버리기가 쉬우나 많은 것은 버리기가 힘들다. 그 사람은 예수님과 영생의 도를 버리고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다. 가난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감동을 전적으로 받아 어디든지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과 재물, 세상의 것과 신령한 것을 둘 다 붙잡으려고 하면 두 주인을 섬기는 자이며 결국 진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참 진리를 오랜 기간 배웠어도 마침내 근심하며 돌아갈 날이 온다. 진리 하나만 귀히 여겨야 할 터인데 이것 저것 다 붙잡고자 하면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한다. 진리인가 비진리인가, 인본주의인가 신본주의인가를 분별하여 옳은 것을 따라가야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고 영생을 소유할 수 있다.

四. 부자와 천국(23-31)

. 10:23-25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 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마음의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부자일지라도 마음으로는 다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가난한 심령이 되면 괜찮다.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으로 전부 하나님께 바쳐 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필요한 곳에 쓰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자이다. 부한 마음을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여기 부자는 재물로 인하여 마음이 부자 된 자를 말하는 것이다. 대개는 돈과 지식과 권세가 많은 사람이 마음도 부해지기 쉽다. 반대로 그런 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있다. 가난한 자라도 그러한 것을 사모하며 붙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일은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 10:26-27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께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시므로 제자들이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하였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부자가 친국에 들어가는 일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함과 같이 사람으로서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부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난한 심령이 되게 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으로서는 그 부요한 마음을 내어놓을 수 없으나 믿음으로 살려고 힘을 쓰고 주의 말씀과 주의 인도를 따라가려 고 힘을 쓰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여 세상의 것을 마음에서 포기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가난하게 되어 그 시간부터 그리스도의생명이 그 사람의 속에서 역사하고 생명에서 생명으로 계속하여 달음박질을 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다는 뜻이다.*

. 10:28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신 말씀을 베드로가 듣고 두려워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는 우리들은 어떻게 되겠읍니까?" 하고 물어 보았다.

. 1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예수님과 그 말씀을 따라갈 때에 부모와 형제 자매와 기업을 버리고 따라가는 자가 많이 있다. 베드로 형제는 그물을 버려주고 예수를 좇아갔고(마4:18-20), 요한의 형제는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좇아갔다(마4:21-22).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말씀을 좇아갔으며(창12:1-3), 모세는 애굽의 모든 권세와 재물을 버리고 주와 그 약속의 말씀을 좇아갔다(히11:24-25).

. 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점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금세에 있어 믿음을 지키며 말씀을 따라가기 위해서 버린 모든 것들은 금세에서 백 배나 되어 돌아오고 내세에서 영생의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백 배나 받되 형제, 부모, 자식을 어떻게 백 배나 받겠는가! 여기에 대해서 심 을철 목사는 자기 모친이 백 배 이상 나아졌다는 경험담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심목사가 일정 말기에 신사참배 거부 문제로 감옥에 갇혔을 때에 자기 모친이 면회를 와서 말하기를 "신사참배를 한 면만 하면 출감할 것이니 한 면만 하고 나오너라. 그러면 나도 예수 믿겠다. 같이 천국에 가자 너 혼자만 가겠느냐"고 간청을 했다고 한다. 그 때에 심목사가 마음에 잠깐 고통을 당하다가 말하기를 "어머니 제가 다른 것은 어머니 말씀을 다 순종하겠읍니다. 그러나 이 신사참배 문제는 성경 문제이니 이것만은 순종할 수가 없읍니다"고 거절하자 어머니는 슬피 울며 "나는 지옥 간다 너 혼자 천당 가거라"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심목사는 일본 경찰에게 더욱더 고난을 받으며 옥중 생활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되어 출감하였다.

심목사가 감옥에서 나오자 심목사 모친이 "하나님을 대적하던 일본이 망하고 네가 감옥에서 승리하고 나온 것을 보니 하나님이 참으로 계신 줄을 이제야 알겠다. 나도 이제부터 예수를 믿겠다."고 작정하고 집안의 우상을 다 철폐하고 진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이렇게 성도가 된 심목사의 모친은 전에 우상 숭배하던 모친보다 백 배나 나은 모친이 되었다고 한다. 그 때에 심목사가 감사하여 모친에게 묻기를 전에 감옥에 와서 "신사참배하고 네가 나오면 나도 믿겠다고 하신 말씀이 진정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하고 여쭈어보았더니 "믿기는 뭘 믿어 너를 옥에서 나오게 하려고 그렇게 말한 것뿐이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와 그 말씀을 따라가면 그 참 신앙과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그 부모나 형제나 자식이 언젠가는 예수를 믿게된다. 그러면 믿기 전보다 백 배나 나아진다. 그들이 믿기 전에는 죽은 영혼이요, 마귀의 자녀요, 지옥의 자녀이었으나 믿음으로 영이 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천국 백성이 되면 백 배나 나아지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또 전토와 같은 재산도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기도 하고, 또는 믿음 지키며 궁핍한 중에 살아도 예수와 같이 사는 생활은 천국 생활을 하니 예수 없이 부요한 생활보다 백 배나 좋다.

핍박을 겸하여 받고 말씀을 지키며 예수를 따라가려는 자에게는 핍박이 온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예수를 모셨고 영이 살아나가는 새 생명의 역사가 있으니 이미 친국을 소유한 자요 친국에서 받을 상급이 크다. 베드로전서4:14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했고, 마태복음5:11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했다.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영생은 이 세상에서 영이 살아나가는 것이요 또 내세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말씀을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자식보다 더 귀히 여기며 자기의 생명까지 내어 놓고 따라가면 영이 날마다 살아나가고 하늘 나라에서 큰 자가 된다(마5:19).

. 10: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영의 세계는 먼저 믿었다고 큰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는 자가 큰 자가 된다. 그러므로 나중에 믿은 자라도 자기의 모든 소유나 가족이나 자기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며 지키는 자가 영이 많이 자라나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엡4:15; 마5:19).

五. 십자가와 부활을 전함(32-34)

. 10: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예수께서 마지막 상경하시는 길이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수님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할 것을 아셨다. 또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결안하고 있는 것을 모든 사람들도 알았고 예루살렘은 공기가 험악하였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놀라며 올라가기를 꺼려하였다. 그때에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앞장서서 올라가신 것이다. 이에 제자들이 두려웠지만 앞서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 10:33-34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고 삼 일만에 살아날 것을 다시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다. 이것이 세 번째이다.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히 마주 나아가신 예수님의 믿음은 ① 하나님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요 ② 육신은 죽어도 죽지 않는 영적 생명이 있는 까닭이요 ③ 십자가 후에 부활의 영광과 승리가 있기 때문이요 ④ 십자가의 구속 성취로 많은 사람의 생명이 구원을 받는 승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육신이 죽는 것만 바라보고 두려워하였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명령을 주셨고, 또 죽지 않는 생명(중생한 영)을 주셨고, 또 부활의 약속을 주셨고, 십자가를 지고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의 승리를 약속해 주셨다. 우리가 주를 위해 죽으면 거기에서 많은 생명이 살아난다. 밀 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힌다(요12:24). 말씀을 순종해서 죽어야 많은 열매가 맺힌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승리의 신앙을 본받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십자가를 향해 마주 올라가는 신앙을 가져야겠다.

六. 요한 형제의 간구와 주의 나라에서 큰 자가 되는 방법(35-45)

. 10:35-36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본서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직접 예수님께 요구했고, 마태복음에는 어머니를 내세워서 요구했다(마20:20). 먼저 어머니를 내세워 말하고 그 다음에 야고보와 요한도 직접 말한 것 같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들을 위해 예수님께 구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바로 구하지 못했다. 열심도 좋고 정성도 좋으나 간구를 바로 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그 어머니가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구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은 바로 배워야 한다. 성경을 배우지 못하면 간구를 바로 하지 못하고 신앙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성경에 맞도록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

성경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을 섬겨도 헛되이 섬기는 것이다. 성경에 맞지 않으면 연보 하는 것도 헛되이 하고,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해도 헛되이 하고, 주를 위해 죽는다고 해도 헛되이 죽는 수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해방 직후 목사들이 정치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고 죽은 사람이 많았다. 그것은 주를 위해 죽은 것도 아니고, 순교도 아니다. 세상 나라를 위해서 죽은 것이다. 진리대로 이루어진 것만 하늘 나라에 남아 있고, 진리대로 되지 않은 것은 불에 타서 없어진다. 고린도전서3:12-l5에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은 영원히 남아 있게 되고,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것은다 불에 타서 없어진다고 했다.

.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영광 중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영광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임할 줄로 알았다(눅19:11참조).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이 되시면 자기들을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하여 달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다음의 권세를 자기들에게 달라는 말이었다.

. 10: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여 잘못 구하고 있다고 예수님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다. 저희가 구할 것은 낮아져서 하늘나라를 위해 봉사할 일인데, 그들은 높아질 것을 구하였으며, 봉 초들이 구할 것은 주의 잔을 합당하게 마시어 그 인격을 만들어 나아가는 일인데 권세와 영광을 구하였다.

나의 마시는 잔 예수께서 마실 고난의 잔이다. 나의 받는 세례는 십자가의 고난을 가리킨다. 누가복음12:50에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고 하였다. 예수의 고난에 맏이 참여한 자라야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

. 10: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할 수 있나이다 야보고와 요한이 알지 못하고 이렇게 쉽게 대답하였다. 그 잔이 무엇인지 여쭈어 본 후 마신다든지 못 마신다든지 대답해야할 터인데 무턱대고 마실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권세를 얻는 것이 목적이므로 마신다고 해야 그 소원을 이루어질 줄 알고,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앞으로 요한의 형제가 주를 위하여 주님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자는 하나님이 예정한 자라야 한다. 그 사람에게는 합당한 일을 시키고 그 일로 인하여 오는 고난의 잔을 마시게 하여 자격을 만들어 그 자리에 앉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늘 나라의 상급을 주시기로 예정한 자에게는 그 시험을 통과하게 하여 자격을 만든 다음에 주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독자를 바치라는 시험을 주신 것도, 그 시험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가서 하나님께 바치는 시험을 통과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시고 복을 주셨다.

. 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 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존귀하고 중요한 자리인 예수님의 좌우편에는 하나님이 예정한자가 앉게 될 것이며 그 사람은 예수님이 마시는 잔을 마시어 합당한 자격을 만든 후에 앉게 될 것이다. 현재에 우리가 당한 모든 시험(환난, 고통, 평안, 슬픔, 궁핍, 풍부)은 전부 우리가 하늘 나라에서 복을 받도록 그 자격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것이다. 하늘 나라에서 존귀한 자리에 앓을 사람은 예수님이 마시는 잔을 마셔야 하며 그 잔을 마시는 차는 하늘 나라에 가서 큰 자가된다. 예수님이 마시는 잔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다가 당하는 고난이다. 예수님은 말씀을 순종하여 죽기까지 고난을 받으셨다.

우리 성도가 구원 운동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그 나라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예수님의 잔을 마시는 것이며 하늘 나라에서 큰 자가 된다. 그러므로 평안하게 예수 믿는 것보다 말씀을 순종하면서 핍박을 많이 받는 자가 복 있는 자이다. 주를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면 하늘 나라에서 아주 큰 자가 된다. 그러므로 순교자는 하늘 나라에 가서 특별한 좌석에 앉게 된다. 사도 바울이 내가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갈6:17). 그것은 주를 위하여 많은 고난을 당한 흔적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친국에서 대단히 큰 자로 있을 것이 분명하다.

. 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요한의 형제가 예수께 구하는 것을 열 제자가 듣고 분히 여겼다. 왜 분히 여겼는가? 예수님의 열 제자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기를 원하고 있는데 요한의 형제가 자기들에게 그 자리를 달라고 구하므로 분히 여겼다. 제자들이 삼 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도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했다. 제자들이 아직도 신앙이 자라나지 못하여 세상에 속했고, 육에 속했기 때문에 세상 것을 구하며 서로 싸우고 다투는 자리에 빠져 있었다. 고린도전서3:3에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하였다. 신령한 자리에서 위엣 것을 구하면 분한 마음이 나오지 않는다.

. 10: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풀을 너희가 알거니와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그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대인들은 권세를 남용하며 사람들을 무시한다.

. 10:43-44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하늘 나라에서 크고자 하는 자는 남을 섬겨야 하고 종살이를 많이 해야 한다. 하늘 나라를 위하여 봉사를 많이 한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 큰 자가 된다. 예수님은 모든 택한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자기 목숨까지 버려 대속해 주셨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예수님이 제일 큰 분이시다. 성도가 진리를 세워 나가며, 영적 나라를 건설해 나가기 위해 많이 희생하고 봉사한 자가 하늘 나라에 가서 큰 자가 된다.

.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당신의 피와 몸을 희생하여 주시는 이것이 예수님이 받는 세례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하겠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과 종은 어디에서나 필요하며 환영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에 가든지 지극히 낮아져서, 남을 섬기며 종살이 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디에서나 필요한 사람이 되고 큰 사람이 될 것이다.

七. 소경이 눈을 뜨게 됨(46-52)

. 10:46-48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않았다가 나사렛 예수 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원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원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바디매오라는 소경을 고쳐 주셨다. 마태복음20:29에는 소경 둘을 고쳤다고 했다. 예수님이 여리고 성에 들어가실 때에 한 소경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부르짖었고, 여리고 성에서 나가실 때에 또 한 소경이 함께 따라오면서 부르짖었다. 그때에 예수님이 그들을 고쳐 주셨다. 본서와 누가복음에는 처음 한 사람이 따라올 때를 기준하여 기록한 것이고, 마태복음은 두 사람이 따라와 부르짖을 때에 예수님이 고쳐 주신 일을 중점으로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은 육신의 병 낫는 것을 통하여 심령의 병이 고침 받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다원의 자손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므로 소경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라간 것을 알 수 있다.

. 10: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부르짖으며 따라오는 사람을 예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그리하여 그 바쁘신 중에도 머물러 서서 소경을 불러 주셨다.

. 10: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겉옷을 내어버리고 소경은 예수님이 불러 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겉옷을 버리고 따라갔다. 이것은 그 소경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찾아간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주님을 열심히 따라가는 자는 반드시 은혜를 받는다.

. 10:51-52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소경이 예수님께 보기를 원한다고 간절히 자기의 전원을 고백했다. 그때 예수님이 그 소경을 고쳐 주셨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소경 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 눈뜨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간구하면 주님이 신령한 눈을 뜨게 해주신다.

길에서 좇으니라 고침을 받은 전경이 길에서 즉시 예수님을 따라갔다. 우리도 심령적 병이 나은 다음에 즉시 예수님을 좇아가는 생활이 필요하다.

제11장 입성(入城)

[대 지]

一. 예수께서 나귀 타고 입성하심(1-11)

二.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12-14)

三. 성전을 정결케 하심(15-19)

四. 무화과나무가 마른 데 대한 교훈(20-26)

五. 예수님의 교권 문제(27-33)

[본문강해]

一. 예수께서 나귀 타고 입성하심(1-11)

. 11:1-6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사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섰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가로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벳바게는 감람산 기슭에 있으며 예루살렘과 베다니에서 가까운 동네이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두 제자를 맞은편 마을로 보내면서"너희가 가면 나귀 새끼가 매인 것을 볼 터인데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러면 보내줄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다 아시고 나귀 임자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를 사랑하는 마음과 주께 바치고자 하는 마음을 주어 준비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주를 위하여 무엇이나 바쳐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 받기로 예정된 사람이다.

. 11:7-10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은 자기 겉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원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백성들이 예수님의 가시는 길에 옷을 벗어서 편 것은 예수님이 왕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한 것이다. 옷을 벗어 펴는 것은 왕으로 대접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왕하9:13참조). 다른 사람들은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며 "호산나"라고 찬송하였다. 이 나무 가지는 종려나무 가지이며(요12:13) 승리를 상징한다.

호산나 "원컨대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이 얼마나 장엄한 모습인가! 많은 사람이 몰려 나와 예수님을 앞뒤에서 호위하며 호산나를 부르고, 예수님은 왕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다. 이 날은 고난 주간의 첫째 날이며, 니산월 8일(일요일)이었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직분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에게는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의 세 직분이 있다. 예수께서 일찍부터 진리를 계시하시고 가르쳐 주신 것은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신 것이요, 나귀 타고 입성하신 것은 왕의 직분을 행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우주의 왕이시오 영적 왕이시며 진리의 왕이시다. 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는가?

첫째,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짐승이요, 말은 전쟁을 상징하는 짐승이다. 요한계시록19:11 이하에 예수님이 말을 타고 나온 것은 복음 전쟁을 상징하는 것이다.

둘째, 겸손한 왕이시기 때문이다. 마태복음21:5에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라고 했다. 예수님은 겸손하여 하나님께서 맡기신 멍에를 메시고 순종하셨다. 이사야53:2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했다. 나귀는 짐승 중 아무 보잘것없는 짐승이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것은 예수님이 겸손한 왕이요 진실한 왕이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세째,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스가랴9:9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고 했다. 이 성경말씀을 성취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찬송한 것이다. 이 때는 예수께서 공적으로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그 반면에 적그리스도 운동도 극도에 달하여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아죽이려고 계획하였다. 마가복음10:32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고 하였으니 적기독 운동도 극도에 달한 것을 알 수 있다.

세상 끝에는 곡식도 익고 포도도 익어서 둘 다 거두게 된다(계14:14-20 참조). 곡식은 성도를 가리키고 포도는 악한 자들을 가리킨다. 말세에는 성도의 믿음이 성숙해지므로 열매가 맺히고 영이 자라나는 반면에, 악의 세력도 포도가 익는 것처럼 점점 극에 달하여 적기독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말세가 된 이 때에 우리는 많은 신앙의 열매를 맺혀 잘 익은 곡식이 되도록 해야 하겠다.

. 11: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 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첫날에는 성전을 둘러보시고 예루살렘에서 나와 베다니로 가셔서 주무셨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2km쯤 떨어진 동네이며 그곳에 예수님의 숙소가 있었다.

二.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12-14)

. 11:12-14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흑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고난 주간의 둘째 날에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

시장하신지라 예수께서 시장하셔서 열매를 얻을까 하여 무화과나무에 가까이 가서 보신즉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 나무를 저주하셨다. 여기에 신령한 교훈이 있다. 무화과나무는 유대 나라(유대교)를 가리킨다(렘24:2-6 참조).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만 무성한 것처럼 당시 유대교가 외부적인 의식만 굉장하였고, 내적인 열매가 없었으므로 유대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무화과의 열매를 거둘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무화과의 수확기가 되었다면 그 열매를 다른 사람이 따내었으므로 무화과 열매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무화과를 딸 때가 아님에도 열매가 없는 것을 보면 그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기독교에 대한 교훈이거도 하다. 잎사귀만 무성한 것처럼 기독교가 양적으로 크게 부흥되고, 외부적으로 예배당을 아름답게 꾸미고 의식과 제도 면이 발전되어도 신앙의 열매가 없다고 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교회가 양적으로 늘어나고 외부적으로는 발전하더라도 내적 열매인 생명의 역사가 없으면 반드시 예수님이 심판하신다. 예수님은 교회에 대하여 언제나 잎사귀와 같은 외부적인 면보다 내적(영적) 열매를 요구하고 계신다. 교회의 교인이 많아지고, 세력이 커지고, 여러 가지 사업을 잘하는 것은 잎사귀가 무성하게 된 것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잎사귀 뿐 아니라 충실한 열매를 많이 맺혀야 한다.

그 열매는 다음과 같다.

① 도덕적인 열매이다. 도덕적인 열매는 의로움과 진실함이 다(엡5:9). 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다(갈5:22-23). 이러한 것들은 모두 도덕적인 열매이다.

② 지적인 열매이다. 골로새서3:10에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하였다. 신령한 지혜와 지식은 귀한 열매이다.

어떤 성도가 성경대로 바로 가르치는 교회에 출석하여 오랫동안귀한 진리를 많이 배웠으나 자신이 그 진리대로 만들어진 것이 없어 오히려 신신학주의로 나아가는 대회의 신자보다도 도덕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껴 현실주의로 나가는 교회에 나가 보니 그곳에서는 또 성경 말씀에 어긋난 것이 너무 많아 도저히 신앙에 맞지 않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교회에서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것을 분별한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는 부족하나 신령한눈과 신령한 귀가 열린 것을 알 수 있다.

바른 진리를 배우는 동안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귀가 열리고, 눈이 터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도덕적인 면은 신신학자만 못하다고 해도 지혜와 지식 면에서는 그 사람들보다 앞서 있다. 도덕적인 면만 보면 신신학자 중에도 성자가 맏이 있다. 슈바이처는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않는 신신학자이지만 세계적으로 성자의 칭호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영의 눈이 떠지고 영적 귀가 열려서 진리를 옳게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지적인 열매이다.

③ 능력의 열매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영권이 커지는 열매가 맺혀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고자 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려고 갈망하며 힘썼다(빌3:10). 오늘날 교회 안에 많은 사람이 모이고 큰 교회들이 늘어나고 큰 교단을 이루어 외부적인 잎은 무성하지만 과연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열매를 얼마나 맺혔는가 반성해 보아야 할 때이다. 만일 주님이 요구하시는 열매가 없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三. 성전을 정결케 하심(15-19)

. 11:15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 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예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일이 두 번 있었다. 예수님이 성역(聖役) 초기에 한 번 하셨고(요2:13-16), 본문의 것은 성역 말기 고난 주간에 하신 두 번째 일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왕이 될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궁으로 가시지 않고 성전으로 들어가셨다. 이는 성경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말라기3:1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성전으로 들어 가셨으므로 예수님을 환영하던 사람들이 실망을 하였다. 그리하여 며칠 후 군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칠 때에 그들도 찬성을 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 보니 돈 바꾸는 사람과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가이사의 화상이 그려져 있는 "데나리온"이라는 돈이었다. 바리새인들은 가이사의 화상이 있는 이 돈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 않는다 하여 성전에서 사용하는 "세겔"이라는 돈으로 바꾸어 하나님께 바치도록 가르쳤다. 그리하여 성전에서 데나리온을 세겔로 바꾸는 일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돈을 바꾸어주면서 얼마씩의 환전료를 받아 그 돈이 종교 지도자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렇게 돈을 바꾸어서 하나님 앞에 다치게 하여 겉으로는 하나님 앞에 거룩한 것을 바치도록 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 그 이면에는 타락한 종교가들이 돈을 벌어 탐욕을 채우는 데 목적이 있었다.

또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시장에서 사다가 하나님께 바치면 좋지 않고 어려서부터 구별하여 잘 기른 것으로 하나님께 바쳐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고 가르쳤다. 그렇게 기른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성전에서 팔면서 시장보다 비싸게 쏟아 그 이득이 종교 지도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일반 백성들은 이러한 내막을 알지 못하고 종교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양이나 소나 자기가 기른 것 중에서 흠 없는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면 된다고 했다(레5:15-18; 6:6 참조).

소나 양 중에서 십일조를 바칠 때에도 막대기를 갖다 놓고 소나 양들이 그 아래로 한 마리씩 통과하게 하여 열 번째마다 한 마리씩 취하여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다(레27:32-33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에 제사를 드릴 때에는 자기가 먹이는 것 중에서 흠 없는 것을 바치는 것이 성경적이다. 또 멀리서 오는 사람은 양을 가지고 올 수 없으므로 돈을 가지고 와서 시장에서 흠 없는 것을 사다가 바쳐도 된다(신14:24-26).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시장에서 사온 것은 더럽다고 하여 그들이 직접 구별하여 깨끗하게 잘 기른 것으로 하나님께 바쳐야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의식을 좀더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의식주의의 전산이다. 또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보기 위한 탐욕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또 종교 지도자들이 그러한 일을 교권으로서 강행하였으므로 교권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이스라엘의 종교가 의식면으로는 깨끗하고 거룩한 모습을 갖추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고 생명이 없었다. 이와 같이 종교가 의식주의와 탐욕주의와 교권주의로 기울어지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성전을 돈벌이의 장소로 이용하고, 백성들에게서 돈을 빼앗는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 놓았으므로 예수님이 정결케 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유대교가 의식주의와 탐욕주의와 교권주의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것을 심판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외모를 깨끗하게 하고, 제도를 엄중하게 한다고 해서 잘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되며(요4:24 참조),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섬겨야 하고, 신령한(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지도자들이 교인들에게 돈을 많이 내게 하려고 여러 가지 수단을 맏이 쓰고 있다. 예를 들면 돈만 많이 내면 주일을 잘 지키지 않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도 집사, 장로의 직분을 주는 일이다. 지금 교회 안에 이러한 장로, 집사가 많이 있다.

. 11: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이 내용은 4복음 중 마가복음에만 있는 독특한 기사이다. 그들이 의식과 제도를 복잡하게 만들어 거기에 맞추느라고 성전 기구를 가지고 소란하게 다니므로 예수님이 권위로 그것을 금하신 것이다.

.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수님은 두 곳의 성경을 들어서 그들을 책망하시며 교훈 하셨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이 말씀은 이사야56:7을 인용한 말씀으로 성전은 누구나 와서 기도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이것은 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누구나 믿기만 하면 만민이 부담 없이 나와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뜻이다. 교회는 믿음 안에서 만민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며 그들이 부담 없이 하나님을 섬기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을 한다든지 당파를 만드는 것은 악한 일이다. 또 교회 지도자들이 축복 받는다는 미명하에 교인들을 속여 연보를 강요하고 그것으로 자기들의 탐욕을 채우는 것은 강도와 같은 행위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교회가 있다면 교회가 아니라 강도의 굴혈이며, 예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강도의 굴혈 종교 지도자들이 성전을 이용하여 그들의 탐욕을 채우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 11: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교권자들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책망과 교훈을 듣고 오히려 마음을 강퍅케 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였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그 모든 일을 기이히 여기며 좋아하였으므로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게 된다.

. 11:19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밖으로 나가더라

그날이 저물었으므로 예수님은 성밖으로 나가 베다니에서 주무셨다.

四. 무화과나무가 마른데 대한 교훈(20-26)

. 11:20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아침에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다가 본즉 전날 예수님이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 있었다. 마태복음21 : 19에는 저주하신 즉시로 말랐다고 했다. 아가복음의 것이 더 자세하다. 그 이튿날 마른 것도 즉시로 말랐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저주받고 그 이튿날 죽었다고 해도 그 사람은 저주받아 즉시 죽었다고 할 수 있다. 뿌리부터 마른 것은 그 나무가 아주 소망이 없게 된 것을 가리킨다.

. 11:21-22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예수께서 능력 있는 신앙과 능력 있는 기도에 대하여 교훈 해 주셨다.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화과나무에게 되어진 일분만 아니라 산이 들려 바다에 던지우는 일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무엇이나 믿고 구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의 자른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한 말이다. 이 말씀의 바른 뜻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 다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바른 믿음이요, 말씀을 믿으면 그 말씀이 만능으로 성취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그 저 믿사오니 하는 것은 미신이요 맹신이다.

.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사람의 마음대로 한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말한 것을 가리킨다. 산이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에 그 말씀을 순종하여 산이 옮겨질 것을 믿고 명령하는 것은 다 이루어진다.

.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구하는 것 말씀대로 기도하며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을 때에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도가 의심하거나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받지 못한다(약4:1-3).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도한 것은 반드시 그 말씀대로 성취될 것이므로 이미 받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치 아이 없던 집에 아이가 잉태되었으면 그 집은 이미 아이 있는 집이 된 것과 같다.

. 11:25-26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엔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없음)

이 말씀은 기도할 때에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를 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지 아니하면 그 사람과 막히게 되고 사람과 막히면 하나님과도 막힌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무슨 허물이 있으면 용서해 주고 기도해야 하나님과 교통이 되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를 해야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

五. 예수님의 교권문제(27-33)

. 11:27-28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 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성전을 정결케 하신 권세에 대하여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두 가지로 질문하였다. 첫째, 그것이 무슨 권세이냐 하는 것이다. 둘째, 그 권세를 누가 주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은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인정하여 준 권세만 참된 권세로 인정했다. 산헤드린 공의회에서는 예수님에게 그러한 권세를 준 일이 없었으므로 그들이 이렇게 질문하였다.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이었다. 산헤드린 공의회는 재판권이 있는 유대 나라 최고 의결 기관이었다. 이공의회는 한 지파에서 6명씩 72명으로 구성되어 이스라엘 종교에 대한 모든 것을 결정하였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이 성전을 정결케 하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죽게 하며, 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아 들어오실 때에 많은 사람이 "호산나 다원의 자손이여"하고 찬송한 일들을 보고 들었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났기 때문에 그 권세를 무시할 수는 없었으므로 무슨 권세로 이렇게 하는가를 따져 물은 것이다.

. 11: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예수께서도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먼저 너희가 나의 묻는 말에 대답하면 나도 너희에게 대답하여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 11: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 서냐 사람에게로 서냐 내게 대답하라

예수님이 이렇게 물으신 것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을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을 인정하게 되면 예수님의 권세가 하늘로부터 온 것을 당연히 알게 되며 또한 예수님의 권세는 ① 영적 왕의 권세이며 ② 진리의 권세이며 ③ 생명을 살리는 권세이며 ④ 성전을 정결케 하는 권세요 ⑤ 죄를 심판하는 권세인 것도 알게 될 것이다.

. 11:31-33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그러면 사람에게로 서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저희가 백성을 무서워하는지라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질문에 대하여 그 사람들이 사실(아는)대로 대답하려면 하늘로서 왔다고 대답해야 한다. 이는 온 백성이 다 그렇게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례 요한이 헤롯왕을 면책하다가 순교 당한 다음이므로 요한의 권세가 하늘로서 온 것이 확실히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왜냐하면 만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 왔다고 말하면 요한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였으므로 그 말씀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하기 때문이요, 만일 요한의 세례가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모든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기 때문에 백성들이 자기들을 돌로 칠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정치적인 답변이었다. 실제로 알지 못해서가 아니고 안다고 하면 결과가 자기들에게 불리하므로 치밀하게 계산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펀을 택하여 답변한 것이다. 정치적인 답변은 언제나 양심을 버리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대답하는 것이다. 누구나 선한 양심을 버리고 자기 유익을 따라가는 것은 신앙과 하나님을 버린 사람이다. 종교인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멀리 떠난 세상 정치가들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외식이다.

세상 정치가들이야 자기들 입장이 곤란하면 아는 것도 모른다고 대답하고, 또 자기에게 유리하면 모르는 것도 안다고 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하여 옳은 것은 옳다 하여 따라가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여 따라가지 않아야 한다. 성도가 양심을 쓰지 아니하면 믿음이 파선된다(딤전1:19 참조). 무슨 일에 있어서나 목적과 방편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한다.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맞더라도 방편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업는다면 그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하여도 결국 마귀의 일을 해 준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적과 방편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해야한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일이 되어 지도록 하여야 한다. 따라서 무슨 일이나 하나님 앞에서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분별하여 옳은 일만 행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양심을 버리고, 자기들의 유리한 쪽을 택하여 거짓말로 답변하였으므로 예수님이"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말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그들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셨다. 예수님이 모른다고 하지 않으시고, 이르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예수께서 모른다고 하시면 예수님도 거짓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예수님의 권세의 출처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지 않은 것은 그들이 양심을 버리고, 욕심만 따라가므로 진리를 말하여 주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진리를 말해주는 것은 마치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결과가 되어 그들이 진리를 물고 찢어 손해만 줄 것이므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지 않았다.

제12장 문 답

[대 지]

一. 농부의 비유(1-12)

二.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13-17)

三. 부활을 부인하는데 대한 문답(18-27)

四. 큰 계명에 대한 문답(28-34)

五. 다윗의 자손에 대한 문답(35-37)

六. 바리새인을 본받지 말라(38-40)

七. 부하의 연보와 과부의 연보(41-44)

[본문강해]

一. 농부의 비유(1-12)

. 12:1 예수께서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물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 자리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포도원은 이스라엘이요, 또한 교회를 가리킨다. 농부들은 이스라엘 백성이요, 성도들을 의미한다. 포도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산울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 자리를 파고, 망대를 지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주셨다는 것이다(사5:2-4참조). 타국은 친국을 가리킨다.

. 12:2-5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총을 보내니 저희가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또 다른 종을 보내니 저희가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흑은 때리고 흑은 죽인지라

은 선지자나 예언자들을 가리킨다. 포도원 주인이 소출의 얼마를 받기 위해 종들을 여러 차례 포도원에 보냈으나 처음에는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려서 보냈고(2절), 다음에 보전 종은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으며(4절), 그 다음에 보전 종은 죽였다(5절). 그 후에도 많은 종들을 보내었으나 농부들이 여전히 혹은 때리고 혹은 죽였다. 농부들이 이처럼 주인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하였다.

. 12:6-8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 던졌느니라

*포도원 주인이 "내 아들을 보내면 공경하리라"하고 보내었더니, 농부들은 서로 말하되 "이 아들은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의 것이 되리라" 하고 그 아들을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 버렸다. 이 농부들의 죄악상을 살펴보자.

① 주인을 무시했다. 주인을 조금이라도 공경했더라면 감히 이러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② 주인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삼고자 했다(7절). 그들은 주인의 것을 주인에게 돌려 드리지 않을 뿐더러 포도원마저 지기들의 소유로 만들려고 했다.

③ 주인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다. 그러므로 그 아들까지 죽여서 내어 버렸다.

. 12: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뇨 와서 그 농부들을 진열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포도원 주인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진노하셔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에게 세로 주실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배척하였으므로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게 되었으며, 구원 운동이 이방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 12: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 말씀은 시편118:22의 인용이다. 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건축자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모퉁이의 머릿돌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집을 건축할 때 머릿돌에 기초해서 집을 지어 나가므로 머릿돌이 가장 중요하다. 건축자들이 왜 모퉁이의 머릿돌을 버렸는가?

① 자기들의 요구와 척도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쓰는 사람의 요구에 맞지 않으면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만다. 그들이 만일 성경 말씀을 바로 알고 믿었다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을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오셨고, 성경대로 증거 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척도대로 집을 짓는 자들이었으므로 예수님을 불필요하게 여겨 내어버린 것이다.

②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인간 면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는 진리와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외부적인 면만을 보았다. 요한복음5:36에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 하는 것이요" 라고 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고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는 면을 보아 바로 판단해야 한다.

. 12:11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주로 말미암아 된 것 유대인들이 버린 돌(예수)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그것이 믿는 사람의 눈에는 기이한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건축자들에게는 숨기셔서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내어 버렸으나, 믿는 자들의 눈에는 요긴한 돌로 발견되어 그 돌로 인하여 생명을 얻고 성전 건축을 해 나아가게 되었다.

마태복음11:25에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했다. 지혜 있고 슬기 있는 건축자들은 자기의 지혜와 슬기에 맞추려하므로 하나님이 숨기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여 복음과 하나님의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나타내 주셔서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를 요긴한 모퉁이 돌로 삼아 그를 힘입어 영적 성전을 건축해나가게 하시는 것이다.

. 12:12 저희가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버려 두고 가니라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한 말씀인 줄을 알았으나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예수를 죽이려는 생각만 하였다. 예수님이 비유로 책망하신 것은 그들에게 회개하고 살길을 주신 것인데 그들은 강퍅해져서 도리어 죽을 길로 들어간 것이다. 무리를 두려워하여 타락된 종교가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한다.

二. 가이사의 것과 하니님의 것(13-17)

. 12:13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본래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교리가 서로 맞지 않았다. 헤롯당은 헤롯의 정권을 배경으로 정치적인 활동을 하여 출세하려는 당파이고, 바리새인들은 율법대로 살려고 하는 보수주의 교파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정죄하여 죽이려는 일에 있어서는 두 당파가 서로 협력했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는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않고 야합하는 자들이었다.

. 12:14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그들은 예수님이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며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참되게 나아가시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질문에 서슴지 않고 대답하게 하여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만일 예수님이 가하다고 대답하면 로마 나라에 세금을 바치라고 한 것을 보니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자가 못되므로 그리스도의 자격이 없다고 비장하며 선전할 것이요, 만일 불가하다고 대답하면 가이사 황제를 반역한 자로 몰아서 헤롯당이 고발할 것이다. 그들의 질문은 예수님이 피해 나갈 길이 없는 아주 교활한 질문이었다.

. 12: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그 외식함을 아시고 마태복음22:18에는 이들에게 "외식하는 자들" 이라고 책망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외식하는 것과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을 다 아신다. 데나리온은 당시 로마 나라의 화폐로서 가이사 황제의 화상이 그려진 은전이다.

. 12:16-17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화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예수께 대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 말씀은 성도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바로 하라는 뜻이다. 세금을 바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감당하는 일이다. 국가에서는 외부적으로 원수를 막아 주고, 국내의 악한 자를 다스려서 안녕 질서를 유지해 주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준다. 그러므로 국민은 이에 대한 마땅한 의무와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감당하는 것은 빛 진 것을 갚는 것과 같다. 세금도 그런 의미에서 바치는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제자가 선생에 대해서, 사원이 회사에 대해서 감당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뜻도 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 말씀도 성도가 하나님께 대한의무와 책임을 다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것은 무엇인가? ① 십일조이다. 말라기3:8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현물이라"고 하였다. 성도는 마땅히 십일조를 바쳐야 된다.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죄가 된다.

②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다(계1:10, 출20:8). 그러므로 이 날에 세상일을 하거나 사사로운 일을 하면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한 죄가 된다. 따라서 그 사람은 날(日)도적이 된다.

③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시편24:1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의 재산이나 모든 소유가 모두 주님의 것이다. 우리는 청지기로서 그것을 맡아 가지고 있을 분이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명령만 하시면 모든 것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일이 잘 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이'주신 재물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 놓으면 불의의 재물이 된다.

또 우리의 몸과 생명도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고린도전서6:19-20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다. 우리의 가족이나 목숨까지 하나님께 바쳐 놓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을 성기다가 그 뜻대로 죽어야 한다.

④ 하나님께 바칠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요4:24). 로마서12:1에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고 그 말씀대로 복종해 나가며 영적 새 생명의 역사에 우리 몸이 희생되는 것이 영적 예배인데, 이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신다. 신명기10:12-13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성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했다.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그들은 사람의 지혜로는 피해 나갈 수 없는 질문을 예수님께 하였으나 예수님이 인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지혜로 바르고 명쾌하게 대답하심에 놀랐고, 심히 기이히 여겼다. 예수님의 지혜로운 대답은 신령한 세계에서 진리를 바로 깨달은 데서 나온 것이다.

三. 부활을 부인하는데 대한 문답(18-27)

. 12:18-19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사두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았다. 사도행전23:8에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국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함이라"고 했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는 주장을 증거하기 위하여 한 여자를 칠 형제가 아내로 맞았던 사건을 예로 들어 질문했다.

. 12:20-23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세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후사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저희가 살아날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한 여자를 칠 형제가 차례로 아내로 취하여 살았으니 부활 때는 어느 사람의 아내가 되겠는가 하는 질문을 했다. 이렇게 곤란한 문제들이 있으니 부활이 있을 수 없다고 그들은 자신 만만하게 질문하였다.

. 12: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성도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신앙 문제를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떠나서 해결하려고 하면 전부가 잘못된다.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것을 바로 해결해 주는 열쇠이다. 이 기선 목사님은 무슨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받을 때에 "성경에 무어라고 했는가?"하고 거기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읽어 주고, 그대로 하라고 가르치시곤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시 시험 당할 때마다 뒤를 돌아보고 원망한 것은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성경 말씀이라면 그대로 믿어야한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더라도 성경에 된다고 했으면 반드시 되는 것이다. 그것을 "되겠나 안 되겠나" 하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행하는 것이다. 성경에 부활한다고 했으므로 부활할 것을 믿어야 한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여도 하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할 것이 없으니 반드시 이루어지게 된다.

. 12: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믿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영혼은 즉시 천당에 가고, 육신은 썩어서 없어지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영원히 죽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부활 때에는 예수님의 부활체와 같이 신령한 몸이 되어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된다.

. 12:26-27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 여호와께서 가시나무 떨기에 불꽃으로 나타난 것을 기록한 말씀을 말한다. 출애굽기3:6에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아브라함보다 오 백년쯤 후의 사람이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 죽어서 없어졌다고 하면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음의 하나님 이 라고 하였겠는가!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없어진다고 하면 아브라함이 죽음과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 끊어지고 종결되어 버렸을 것이고, 따라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죽은지 사 오 백년이 지난 후에도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그 때에도 아브라함의 영혼이 살아 있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 가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현재에도 살아서 아브라함과 교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四. 큰 계명에 대한 문답(28-34)

.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질문과 부활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예수께서 지혜 있게 대답 잘하신 것을 보고,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자기도 중요한 문제를 질문할 생각이 나서 질문했다. 예수님이 그 서기관에게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다고 칭찬한 것을 보아(34절)그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한 것이 아니고, 좋은 뜻으로 질문한 것 같다. 마태복음22:34-40과 누가복음10:25-27에는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물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본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인 듯하다.

. 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하나님은 유일하시니 하나님 한 분밖에는 참된 신이 없으며, 하나님 한 분만이 섬겨야 된다는 뜻이다. 사람이 다른 신이나 우상을 섬겨서는 안되고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첫째가 되는 제일 큰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이다. 순종하되 마을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순종해야 한다.

. 12: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둘째로 중요한 계명은 사람에게 대한 계명인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남이 나를 사랑하든지 사랑하지 않든지 주의 말씀에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으므로 사랑해야 된다. 또 성도가 주의 크신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으로써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 12:32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그 서기관은 예수님의 대답이 자기의 생각과 같으므로 기쁘게 생각하며 찬동을 했다. 이 사람은 그렇게 믿고 그대로 하려고 힘을 많이 쓴 것 같다.

.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서기관이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하면서 목숨을 다하라는 말 대신 지혜를 다하라는 말을 했다. 이것은 자신이 배우고 힘쓰는 대로 답변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사간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라고 지혜 있는 대답을 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제사 드리는 것 보다 중요하다.

. 12:34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고 그에게 말씀하신 것은 그가 ① 요긴한 진리를 바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첫째와 둘째 되는 계명을 가르쳐 줄 때 그가 "옳소이다 참이니이다"라고 대답한 것을 보면 이미 요긴한 진리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② 그 서기관이 겸손히 예수님께 찾아와 바로 배우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수님께 찾아와서 겸손히 배우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자이다. ③ 이 서기관은 하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33절에 지혜를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한 것을 보아 자기가 지혜를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힘쓴 것이 나타났다.

④ 참된 것, 옳은 것을 분별할 줄 알았다. 그는 분별해서 옳은 것과 참된 것을 찾아 그대로 살려고 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있다. 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였다.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은 천국에서 멀지 않다.

五. 다원의 자손에 대한 문답(35-37)

. 12: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새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원의 자손이라 하느뇨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원의 자손이라고 가르치면서도 그 뜻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였다.

. 12:36-37 다원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예수님이 시편110:1의 말씀을 들어 그리스도와 다윗과의 관계를 가르쳐 주셨다.

주께서 내 주께 "주께서"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내 주께"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내 주"라고 했으니 그리스도가 어찌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의 신령한 뜻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았으므로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다원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신령한 구속 사역 면을 깨달아 말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육신으로는 다원의 혈통에서 나셨기 때문이다(롬1:3-4 참조).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신령한 진리를 가르쳐 줄 때에 백성들이 그 진리를 다 깨닫지는 못했으나 어린아이 와 같이 잘 받아들였으므로 즐거워한 것이다. 이처럼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사람은 주의 말씀을 받아 즐거워하게 된다

六. 바리새인을 본받지 말라 (38-40)

. 12: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사람들에게 대접받고 높임 받는 것을 좋아하여 사람에게 잘 보이도록 노력하였다.

긴 옷을 입고 그들이 거룩하고 권위 있게 보이기 위해 긴 옷을 입은 것이다. 내적(영적) 권위가 떨어진 종교가들은 옷과 음성으로써 권위를 나타내려고 한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 12:38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서기관들은 어디를 가나 "상좌와 상석"만 원했다. 이것은 높임을 받고자 하는데서 나온 것이다. 누가복음16:15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고 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늘 나라에서 큰 자가된다고 했다(막9:35). 예수님은 보통 백성들이 입는 옷을 입고 다니면서 전도하였다. 오늘날 교회 건물을 꾸미고 목사들이 외모를 꾸미는 것은 속에 영적 권위와 진리가 없는 증거이다.

. 12:40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당시 서기관들은 과부의 재산을 거침없이 삼켰다. 성경에는 과부를 도와주라고 했으나 그들은 오히려 과부의 재산을 삼킬 만큼 몰인정하고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진 자들이었다. 오늘날도 별미 축복이라고 하여 자기에게 특별 대접을 하여야(돈을 주어야) 축복해 준다고 하는 교역자들이 있다고 한다. 이삭이 그 아들에게 축복해 줄 때에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하여 그 별미를 먹고 축복해 주었으니 자기도 별미의 대접을 받고 축복해 주는 것이 성 경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별미를 먹고서 축복해 주겠다고 한 것은 이삭의 실수였다. 이 별미 축복을 주장하는 자나 물질을 바쳐야 축복 받는다고 강조하는 자들은 다 과부의 재산을 삼키는 자들이다. 이와 같은 자들을 삼가 떠나야 한다.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참된 기도는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 보기에 기도 잘하는 것을 나타내려고 아름다운 말로 길게 기도하는 것은 외식이다. 외식하는 자는 예수님이 미워하신다.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선을 가장하고 악을 행하는 것이나, 종교 의식적으로 의를 가장해서 악을 행하는 것을 하나님은 더욱 진노하시고, 그 벌이 더욱 크다.

七. 부자의 연보와 과부의 연보(41-44)

. 12:41-42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당시 성전에는 연보궤를 놓고 거기에 연보를 넣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연보궤를 놓고 연보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부자는 많은 돈을 넣었고, 과부는 렙돈 두 개를 넣는 것을 예수님이 보셨다. 램들은 히브리 동전의 명칭인데, 이 돈은 로마 화폐 한 고드란트에 해당된다. 고드란트는 로마화폐 중 가장 낮은 단위의 화폐이다.

. 12:43-44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예수님은 부자가 많은 돈을 넣은 것보다 과부가 두 렙돈 넣은 것을 더 많이 넣었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 과부의 마음과 정성과 희생의 제물을 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풍족한 가운데서 그 일부를 넣었으나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자기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정성과 힘쓰는 면을 보신다.

그러므로 연보 할 때 부득이 함으로나 인색한 마음으로 하지 말고 ① 자원함으로 해야 한다(고후8:3). ②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③ 내게 속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바쳐야 한다. ④ 하나님이 감동시키는 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힘을 다하여 바쳐야 한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뜻대로 바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물질도 더 풍성하게 주신다.

제 13 장 말 세

[대 지]

一. 말세 징조(1-13)

二. 산으로 도망하라(14-23)

三. 예수 재림(24-27)

四. 말세 준비(28-37)

[본문강해]

一. 말세 징조(1-13)

. 13:1-2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 성전은 미석(美石)으로 아름답게 꾸며 있었다(눅21:5). 그리하여 제자들이 외부가 아름답게 잘 꾸며진 성전을 예수님께 자랑삼아 말하였다. 이 성전은 헤롯이 주전 19년부터 유대인의민심을 얻기 위해 건축하기 시작하여 주후 27년경까지 46년이 지났으나 완성되지 못한 채로 있었고(요2:20 참조), 주후 63년경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82년간의 긴 세월 동안 굉장히 아름답게 잘 건축해 놓은 이 성전이 후에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의 침공을 받아 주후 70년에 완전히 훼파되고 말았다.

이 성전은 유대 종교의 중심이요 유대인의 큰 자랑거리었다. 그 성전 안에서 제사장들이 긴 옷을 입고 하나님께 분향하며 많은 생축을 번제로 드릴 때에 그 연기가 하늘에 충천하였다. 성전에서 제사하는 의식이 굉장하고 어마어마하였으므로 유대인들은 그 성전을 자랑하며 의지하고 나아갔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그 성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 같다. 그들은 성전이 크고, 아름다우며, 예배 의식이 굉장하고, 많은 사람이 모이고, 긴 옷을 입은 제사장들이 엄숙한 태도로 제사하는 것을 크게 여기며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이면(裏面)을 보셨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 대해서도 회칠한 무덤같이 겉은 깨끗하나 그 속에는 탐욕과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책망하셨다.

종교가 내적 생명이 없어지면 자연히 외부를 꾸미게 된다. 교회의 건물이 크고 아름다우며, 사람이 많이 모이고, 예배 의식이 훌륭하여도 진리와 영감의 역사로 말미암는 내적 생명력이 없다면 그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이다. 유대 종교가 내적 생명은 없고 외부만 아름답게 꾸미고 의식주의로 나아가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졌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① 제자들은 외부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면만 보았으나 예수님은 그 이면(裏面), 즉 성전 내부에서 행해지는 타락과 죄악상을 보셨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의식주의로 기울어지고, 탐욕주의로 기울어져 소와 비둘기를 팔고, 돈을 바꾸는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탄식하셨다. ② 제자들은 현재 눈앞에 있는 것만 보았으나 예수님은 먼 장래 일, 즉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보시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질 것을 경고하셨다. 우리도 외부만 보지 말고 예수님과 같이 그 이면을 볼 줄 알아야 하며 현재만 보지 말고 먼 장래를 바라볼 줄 아는 믿음을 가져야하겠다.

. 13:3-4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않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성전을 향하여 앉으셨을 때에 가장 가까이에서 배우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네 제자가 하나님의 심판과 세상 끝에 있을 징조에 대하여 종용히 여쭈어 보았다. 그들이 참으로 요긴한 것을 질문하였다.

. 13:5-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예수님의 대답 가운데 제일 첫마디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 말세에는 많은 사람이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와서 사람을 미혹하므로 거기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하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신 신학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이 성도들을 미혹하여 바른 신앙에 서지 못하게 한다. 근래 몇 십 년 동안에 많은 교회들이 신신학으로 넘어갔고, 신비주의로 넘어갔다. 보수 교파라고 하면서 신비주의에 빠진 교회들이 많이 있다. 보수 교단이라고 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용납하고, 신비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이미 보수의 자리를 떠난 것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석이는 것처럼 오늘날 많은 교회를 부패시켜 망치고 있는 것이 신비주의와 현실주의이다. 그러므로 누룩과 같은 잘못된 사상이 교회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하고 만일 들어오는 경우에는 제거하고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 교회 안에 들어온 누룩을 제거하고 다스리지 못하면 마침내 교회 전체가 썩어져 참 교회가 되지 못한다.

마귀가 사람을 통해서 들어온다.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한 자도 가장 가까운 그의 아내 하와였다. 대개 사람의 미혹을 받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인정과 욕심에 끌려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한 친구의 인정과 욕심에 끌려서 미혹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고린도전서15:33에 "속지 말라 악한 동부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하였다.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①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에 끌리면 미혹을 받게 된다. 마귀는 물욕과 정욕과 사욕으로써 미혹을 시킨다. 하와가 선악과를 볼 때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하나님께서 금한 선악과를 따먹었다. 먹음직한 것은 물욕이며, 보암직하다는 것은 안목의 정욕이요,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다는 것은 이생의 자랑 즉 사욕이다. 디모데후서3:6-7에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잤기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② 성경 말씀을 표준으로 하여 따라가야 한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성경이 유일한 판단의 표준이요 바른 길이다. 예수님께서도 마귀의 유혹을 성경 말씀으로 이기셨다.

③ 신앙 양심을 써야 한다. 신앙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선되기 때문에 마귀를 이길 수 없다(딤전1:19).

. 13:7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세상 끝의 둘째 징조는 난리와 난리가 많이 일어나 세상이 어지럽게 되는 것이다.

난리와 난리 여기 난리라는 것은 조직이나 체계가 없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분쟁이나 소요를 가리킨다. 이러한 것들이 많이 일어나되 세상의 끝은 아니라고 하였다.

. 13: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이것은 조직적으로, 단체 적으로 분쟁을 일으키고, 폭동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사건들이 처처에 일어나면 재난이 시작될 줄을 알라고 하였다. 처처에 지진은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폭동은 지진파 갈이 갑자기 일어난다. 세계 각처에서 폭동과 소란이 일어나는 것은 재난의 시작이요 말세가 된 증거이다.

기근 ① 세상 끝에는 원자재의 기근이 든다는 것이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구는 계속 팽창되므로 모든 원자재가 모자라서 기근을 당하게 될 것은 필연적 사실이다.

② 말세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 아모스8:11에"양식이 얼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 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할 기갈이라"고 했다. 신령한 생명의 말씀을 받으려해도 받을 수 없는 때가 온다. 말씀의 기근을 당하는 데는 두 가지원인이 있다. 첫째, 말세에는 교회들이 타락되므로 신령한 영의 양식을 먹을 수 없게 된다. 둘째, 큰 환난과 핍박이 일어나서 참 복음을 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13:9-12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 되려함이라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말세에는 말씀대로 바로 믿는 사람은 환난을 당한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양보하고 믿는 사람에게는 환난이 없고 평안하다. 성경 말씀을 양보하고 믿는 사람은 마귀가 가만히 놓아두지 만, 성경대로 바로 믿는 사람은 마귀가 환난에 넘겨주고, 미워하여 잡아죽이기까지 한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세에 환난 받을 각오와 미움 받을 각오와 죽을 각오까지 하고 나가야 한다.

말세에 전무후무한 대 환난이 반드시 오는데 그 환난 때에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서 성도를 잡아 주고 죽는데 넘겨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성도를 잡아 주고 환난에 내어 주는 그 사람은 반드시 앙화와 저주를 받게 된다. 예수께서 가룟유다를 향하여 인자는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자는 차라리 나지 않았다면 제게 좋을 뻔하였다고 하셨다(막14:21 참조). 환난 때에 왜 성도가 성도를 잡아 주는가?

첫째, 시험에 넘어 간 신자는 인기가 떨어지고, 시험을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은 빛이 나기 때문에 그것을 시기하여 잡아 준다. 일제시대에 신사 참배를 한 목사가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은 목사를 잡아주어 죽게 했다.

둘째, 잡아 주지 않으면 자기가 죽게 되기 때문에 잡아 준다. 가령 핍박자가 신자에게 다른 신자를 잡아내지 않으면 너를 죽이겠다고 하면 자기가 죽지 않으려고 다른 신자를 잡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때에는 자기가 죽을 각오를 해야만 다른 성도를 잡아 주지 않을 수 있다. 잡혀가는 성도는 하나님의 예정대로 가지만 성도를 잡아 주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앙화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반드시 한 번 죽을 터인데 그 죽을 육신의 목숨을 위해서 성도를 잡아 주면 영원히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성도를 잡아 주는 죄는 예수님을 잡아 주는 죄와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이 올 때에 순교의 정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성도가 죽을 때에 바로 죽어야 한다. 믿음을 지키다가 가치 있게 죽으면 영원히 살게되고 색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어 하늘 나라에 가서 영원히 큰 자가 된다.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환난과 핍박이 와도 신앙 양심을 써서 믿음을 지켜 나아가면 성령께서 그때 그때에 필요한 말씀을 주신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환난과 위험이 닥쳐와도 그것을 두려워 말고, 시종일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끌려갈 때에도 믿음으로 끌려가고 대답할 때에도 믿음으로 하라. 사람의 생각을 따라 지혜로운 말을 하여 위험을 모면해 보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

. 13:13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세에는 성도가 예수 믿는 일과 성경 말씀을 지키는 일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아가면서 참고 견디는 자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야고보서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다. 만일 성도가 시험이 무서워서 말씀 지키는 것을 양보하던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요 영적 생명의역사가 끊어져 흑암을 만나고 마귀의 종이 된다.

二. 산으로 도망하라(14-23)

. 13: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멸망의 가증한 것 다니엘이 예언한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성전에 서게 되는 것을 말한다(단9:27: 11: 31: 12: 11). 역사적으로는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에 로마 국기를 꽃아 놓은 것을 말한다. 이것은 로마 국가의 권세가 예루살렘 성전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시대에나 국가의 권세가 교회를 점령할 때에는 끝이다. 국가의 권세가 종교를 지배하고, 종교가 국가의 권세 아래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심판이 오기 때문이다. 일제 말기에도 일본이 일본 기독 교단을 조직하여 일본, 한국, 만주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일본 국가의 세력 밑에 두어 기독교를 일본 국가의 한 보조 기관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교회에서 연보하여 비행기 헌납금으로 하치고, 찬송가 가사를 고쳐서 "믿는 사람들아 큰 일 났으니…"라고 하였으며, 요한계시록은 요한의 꿈이며, 구약은 유대인의 역사라고 가르치게 했다. 일본 제국이 이렇게 나아가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했다.

하나님의 교회를 믿지 않는 세상 나라가 주장하면 그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에 생명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오게 된다. 말세에는 세계적으로 국가 세력이 교회를 점령하여 교회를 자기의 어용기관(御用機關)으로 삼는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된다.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때가 어느 때인지 깨달아 알라는 뜻이다. 모든 징조를 보아 세대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한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망하기 때문이다(시49:20, 호4:14참조),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이 성경을 보고 산으로 도망친 기독교인들은 화를 면했다고 한다. 신령한 뜻은 모든 성도들이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시온산 정봉을 향하여 도망치라는 것이다(갈4:26; 계14:1참조). 말세가 되어 교회가 세속화되어 갈 때에도 성도가 시온산을 향하여 도망을 치면 그의 심령이 산다. 그러므로 국가의 세력이 종교를 지배하고 교회가 맛 잃은 소금이 될 때에도 성도는 하나님이 계신 신령한 시온산을 향하여 올라가도록 계속 힘을 써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여 신앙이 잠자거나, 앉은뱅이처럼 앉아 있으면 마귀의 종이 될 수밖에 없다.

. 13:15-16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 지붕 위에 올라갔던 사람이 집안의 물건을 가지러 내려갔다가 피난을 가지 못하고, 또 밭에 있는 사람도 겉옷을 가지러 집에 들어갔다가 피난 갈 길이 막혀서 피난을 가지 못하고 죽은 자가 많았다고 한다.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가 로마 왕궁에서 무슨 일이 생겨 일시적으로 후퇴하였다고 한다. 그 때에 이 성경을 믿고 산으로 도망친 사람은 괜찮았으나 도망하지 않은 사람은 며칠 후에 다시 디도(Titus) 장군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예루살렘을 함락시켜 다 멸망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다음과 같다.

지붕 위에 있는 자 기도 생활하는 자와 신령한 생활하는 자이다. 유대 나라의 지붕은 평평하여 기도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행10:9참조). 내려가지, 말라고 한 것은 후퇴하지 말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지붕만큼 올라간 영적 생활이나 기도하는 생활을 하다가 생활의 염려와 물질 문제 때문에 내려가는 생활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누가복음9:62에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였다. 롯의 처는 소돔 성에서 나갈 때에 천사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으나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성도는 계속해서 신앙으로 전진하고 독수리 같이 위로 올라가야 한다. 성도가 가옥이나 친척이나 재물이나 명예나 영광을 붙잡으려고 하면 신앙의 달음박질을 하지 못한다. 세상의 것과 육신의 것은 다 뒤에 두고 푯대 되는 예수 그리스도만 향하여 달음박질을 하여야한다.

은 성도의 마음이다(마13:19, 렘4:3참조). 자기 마음 밭의 잡초(죄)를 제거하여 복음의 씨를 뿌리고(눅8:11, 마13:18-19참조), 그것을 길러 나아가며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모두 밭에서 일하는 것이다.

겉옷은 한국의 두루마기와 같은 것으로서 없어도 편찮은 것이다. 누가복음22:36에 "검 없는 자는 겉옷을 늪아 살지어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없어도 될 것을 팔아 말씀으로 무장하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없어도 될 것은 무엇이고 없어서 안될 것은 무엇인가? 없어서 안될 것은 하나인데,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누가복음10:42에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인생 생활에 없어서 안될 것은 몇 가지 안되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있어도 족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다 없어도 될 것들이다. 내게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생명까지도 다 내어놓고 말씀 하나만 따라가는 것이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않는 생활이다.

. 13: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 로마 군인들이 아이 밴 여인들의 배를 찔러 죽였고, 젖 먹는 아이의 다리를 잡고 돌에 아이를 메어치어 머리를 깨뜨려 죽였다고 한다. 신령한 뜻은 "아이 썬 자"는 욕심을 품고 다니는 사람을 가리킨다. 야고보서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다. 욕심을 잉태한 자는 죄를 짓게 되므로 화가 있다. 자기를 사람들 앞에 나타내려는 것은 명예욕이요, 사업을 크게 하겠다는 것은 사업욕심이며,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아 큰 일 하겠다는 것도 욕심이다. 성도가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내어버리고 "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하는 정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젖 먹이는 자 욕심을 잉태하였다가 낳으면 그것은 욕심의 아이이다. 욕심으로 얻은 기업체나 명예나 모든 소유는 다 잉태했던 욕심이 낳은 아이이다. 그 아이에게 젖 먹인다는 것은 욕심으로 이루어놓은 모든 것에 마음, 시간, 정력, 재산, 환경 등을 빼앗기는 것을 가리킨다. 마음과 시간과 정력과 재물과 환경은 구원을 이루어 나아갈 요소, 즉 영양소들이다. 이것들을 다 빼앗기면 화를 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이용하여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야 주님 재림하실 때에 복이 있다.

. 13:18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 일은 신앙의 달음박질을 가리킨다. 겨울은 만물이 얼어 붙은 때이다. 아가2:11-13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라고 하였다. 여기 "겨울이 지났다"는 것은 땅이 꽁꽁 얼어붙어서 초목이 자라지 못하던 때가 지났다는 뜻이다. 양춘가절(陽春佳節)이 되어서 모든 얼었던 것이 녹고, 훈훈한 봄바람에 만상초목이 싹이 나고, 비둘기 전리가 들리고, 각종 새 소리가 들려오는 좋은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신령한 뜻은, 겨울은 영적 감동이 없는 때요, 봄은 성령의 감동이 충만한 은혜의 때이다. 비둘기 소리는 성령의 감화와 역사이다. 성령의 감동을 멸시하여 겨울과 같이 완악한 마음이 되지 않도록 하고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온유한 마음으로 성령의 감화와 은혜를 받아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하라는 뜻이다. 달음박질할 때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 달음박질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달음박질해야 한다. 성령의 감동을 멸시하면 겨울이 된다. 그리하여 무슨 일에나 힘이 없고 마음이 완고하여지며 기쁨이 없어진다. 이러한 겨울이 닥치지 않도록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자기의 웅변술이나 자기의 지식으로 하지 아니하고 순전히 성령과 능력으로 하였다(고전2:2-5).

마태복음24:20에는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이라고 하였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도망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붙들고 도망해야 한다. 즉 신앙의 달음박질을 말씀대로 하라는 뜻이다. 진리가 무엇인가 바로 찾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받아 그 힘으로 말미암아 순종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지도 말고 뒤지지도 말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달음박질을 하여야 한다. 성경에 맞지 않는 열심과 노력은 무익한 일일 뿐더러 도리어 손해만 준다(롬10:2-3; 갈4:17 참조).

. 13:19 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앞으로 전무후무한 대환난이 올 것이다. 우리 성도가 대환난이 올 것을 각오하고 항상 대비해야 한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에 환난이 갑자기 닥치면 감당하지 못한다. 미리 준비를 잘해 놓아야 환난이 와도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 인도인들은 영상 9℃에도 얼어죽은 사람이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인도 사람들이 추위에 연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은 환난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 대환난이 올 채에 이기지 못한다. 우리는 앞으로 올 대환난을 미리 예상하면서 지금부터 작은 환난을 믿음으로 통과하여 연단을 받아야 한다. 현재에 날마다 오는 작은 환난을 믿음으로 이겨 나가지 못하면 큰 환난이 올 때에 승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평안할 때에도 평안을 다 취하지 말고 앞으로 올 환난을 준비해야 한다.

. 13: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대환난의 날에 그 고난을 다 받게 되면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구원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위해 환난의 일부를 감해 준다. 말세에 성도가 칠 년 대환난을 다 받는 것이 아니고 전반기 삼 년 반에서 조금만 더 지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게 된다. 그 나머지는 감해 주시게 된다.

신령한 뜻은 환난 중에 말씀을 순종하여 믿음을 지켜 나아가는 자가 힘이 모자라서 쓰러지려 할 때에 예수님이 대신 감당해 주시고, 성령이 힘을 주어서 감당하게 하신다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힘이 약하여 못하겠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아가면 주님이 만능으로 도와주신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큰 환난을 만나 풀무불 가운데에 들어갔으나 예수님이 그 가운데 오셔서 큰 환난을 감해 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주님께서 그 환난을 능히 감당하도록 힘을 주시고 지켜 주신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순종하여 나아가면 환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위로가 있게 된다.

. 13:21-22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복음은 세계를 다 통하고 있는 빛이기 때문에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다. 공명 정대하게 드러 내놓지 못하고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번쩍하여 서편에까지 비취는 것처럼 복음이 전 세계를 비취고 있다는 것이다. 마귀가 이적과 기사로 사람들을 미혹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시험하여 말씀을 사랑치 않고 순종치 않는 자를 심판하기 위함이다(신13:1-3; 살후2:9-12 참조).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아무리 거짓 그리스도가 이적과 기사를 많이 행한다고 할지라도 따라가지 않는다.

거짓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다. 자기가 재림주라고 직접 말하는 자도 있고, 직접 예수라고는 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대명사를 자기에게 붙여서 행세하는 자도 있다. 자기를 가리켜 감람나무, 흑은 인뗀 자, 심판자, 전권대사라고 하는 자들과 자기를 따라가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 그리스도이다.

또 자기가 횐 돌을 받은 자, 예수의 피를 육체에 받은 자, 예수의 영이 자기 속에 있기 때문에 자기는 절대로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는 자, 말세에 나오는 의인, 죄 사해 주는 권세가 있는 자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모두 거짓 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가 아닌데 그리스도의 자리에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는 자들이 다(살후2:4).

거짓 선지자 성경을 잘못 가르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사람을 미혹하는 마귀의 종들이다. 이러한 자가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라도 미혹하려고 한다. 택한 자도 미혹을 받으면 일생 동안 낭패를 당하다가 죽을 때에야 회개하고 죽는 수가 있다.

. 13: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예수님이 미라 말씀해 주신 목적은 그 말씀을 명심하여 말세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말세의 교훈에서 사람의 미혹을 받지 말라는 것이 예수님의 제일 첫마디이다(5절).

三. 예수재림(24-27)

. 13:24-25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해가 어두워지며 "해"는 진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진리가 어두워진다는 뜻이다. 환난이 심하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밝히지 못하는 시대가 온다.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달"은 교회를 가리킨다. 달이 햇빛을 받아 반사하듯이 교회는 진리의 빛을 받아서 반사한다. 말세에는 환난이 크고, 교회는 현실주의로 기울어져 세속화됨으로 빛을 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별들"은 지혜 있는 자나 교역자를 가리킨다(계1:20: 단12:3참조). 말세에 환난이 너무 심하므로 많은 교역자와 성도들이 타락하게 될 것이다.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견고하고 큰 세력들이 흔들릴 것을 가리킨다. 하늘 같이 큰 세력들이 이동되고 떨어지고 몰락이 된다. 교회 내의 세력들도 마찬가지이다.* 또 실제로 이와 같은 천체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오정으로부터 오후 3시까지 해가 어두워졌으며, 애굽에 내린 열 재앙 가운데에도 애굽 온 땅이 어두워지는 재앙이 있었다.

. 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을 모든 사람이 직접 육신의 눈으로 보게될 것이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예수님이 타고 오시는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이 같이 하며 특별히 빛나는 구름이다(마17:5 참조).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심판의 능력과 성도에게 구원을 주는 큰 영광의 주로 오신다(빌3:20-21 참조).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오신다.

. 13:27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하나님의 나팔과 천사장의 소리로 주님이 재림하신다(살전4:16). 그 때에 택한 자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아 공중으로 끌어 올려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신다.

四. 말세 준비(28-37)

. 13:28-29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무화과나무는 운대 나라를 가리킨다. 예레미야24:1-3에 이스라엘을 무화과 두 광주리로 비유했다. 또 예수님이 잎사귀만 장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것도 유대교가 열매 없이 의식만 왕성하기 때문에 유대 나라가 저주받을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진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회복된다는 뜻이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유대민족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나라 없는 민족으로 약 1900여 년 동안 지내오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을 하자 세계 각처에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것이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로마서 11:25-26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이 말씀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인의 수가 차면,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말세의 징조가 여러 가지인데 유대 나라의 회복은 하나밖에 없는 고유한 징조이다. 전쟁은 그 전에도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복음이 현재 세계적으로 다 전파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앞으로 좀더 전파되어야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고유의 징조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독립되고 유대 민족이 본토로 돌아온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왔다는 유력한 징조이다.

또 신령한 뜻은 무화과나무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 면을 가리킨다. 세계 어디서나 누구나 신앙면에 있어서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나서 회복이 되면 주님의 구속이 그 사람에게 가까운 것이다. 삭개오도 신앙면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날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사모하여 뽕나무에 올라간 것은 신앙면에 싹이 트고 가지가 연하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삭개오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가 머물게 된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구속이 그 집에 가깝게 임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삭개오에게"속히 내려 오라 오늘날 구원이 네 집에 임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누구나 회개하는 마음이 생기어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고 말씀대로 바로 살기를 힘쓰게 되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난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이 온 것이다. 반대로 세상일은 잘되는데 신앙면에 있어서 잎사귀가 떨어지고 가지가 굳어져서 영적 감동이 없고 말씀을 사모하는 바가 없으면 그 집에서 예수님이 떠날 날이 가까왔고 하나님의 축복이 떠난다. 그리하여 그 집은 어두움의 세력이 주장하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오게 된다.

교회가 겸손하여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 말씀을 지키면 그 교회에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 그러나 말씀을 떠나 인본주의와 의식주의로 나아가고 신령한 면이 없다면 그 교회는 이미 예수님이 떠난 것이며 머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될 것이다. 사람이 연약하여 일시 범죄 할지라도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나는 자리에서야 한다.

마음이 연해서 책망을 달게 받고 회개하는 자리에 나아가는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요시야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에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도 요시야왕의 말을 들어 주셨다(대하34:27). 르호보암왕도 범죄 했으나 마음이 연하여 회개할 때에 용서함을 받았다(대하12:5-8). 그러나 여로보암왕은 책망을 받고도 돌이키지 않다가 망하였다(왕상13:33-34).

. 13: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루어질 일은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아니하고 다 무너뜨리우게 될 것과 기타 말세의 모든 징조들을 가리킨다.

. 13: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친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 받아 없어질 것이다. 히브리서11:3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5:2에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고 했다. 이는 예수님이 언제 오시리라는 예고 없이 오신다는 뜻이다.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이것은 삼위일체의 관계로서 성자는 성부와 종속관계(從屬關係)에 있음을 보이신 것이다. 전지(全知)하신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 알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께 복종하기 위함이다. 모든 일을 성부께서 예정하시고, 성자는 성취하시고, 성령은 적용시키신다. 예수 재림 일에 대해서는 성부가 예정했으나 성자가 실현할 때가 아직 안되었으므로 성자께 아직 알려 주시지 않고 성부만 알고 계시는 것이다.

성부께서 알려 주시지 않은 것은 모르는 것이 성자의 위치요 성부께서 시키지 않는 것은 못하는 것이 성자의 위치이다(요5:19,30 참조). 그리스도께서 전지(全知) 전능(全能)하시지만 성부께서 행하시는 것과 명하시는 대로만 하시는 것이 성자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부자(父子).관계는 영원히 유지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오늘이 시간에라도 주님이 재림하실지 모른다는 심정으로 매일 매시간주님을 기다리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 13: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깨어 있으라 영적 생존을 하라는 것이다. 육신대로 살면 심령이 잠자게 된다. 그러므로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영적인 생활을 하며 진리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순종해야 된다.

. 13:34-36 가령 사람이 집을 나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흑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가령 예를 들어 어떤 사실이나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집주인은 예수님, 타국은 천국, 종들은 성토들을 가리킨다.

각각 사무를 맡기며 성도에게 직책과 사명을 맡긴 것을 말한다. 성도는 주님이 맡겨 주신 직무와 사명을 다 감당하여야 한다. 즉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겨야 하고,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남겨야 한다.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이것은 예수님이 언제 재림 하실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보다 짧지만 다른 복음보다 사건을 세밀하게 기록한 것이 많이 있다. 여기서는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것을 세밀히 기록했다. 밤은 환난을 가리키는데 예수께서 환난 때에 오실 것을 가리킨다. 또 이것은 성도가 당하는 모든 환난을 가리키기도 한다. 환난이 조금 올 때는 저녁, 환난이 많이 올 때에는 밤중, 닭이 울 때는 지나갈 기미가 보이는 때이고, 새벽은 훤히 밝아지는 때이므로 환난이 끝나는 때이다.

모든 환난은 시작이 있고 깊어지는 때가 있고 끝날 때가 온다. 예를 들면 다니엘에게 기도하지 말라는 조서가 내릴 때는 초저녁이고, 잡혀서 사자 굴에 떨어지는 때는 밤중이고, 왕이 찾아와서 다니엘을 부를 때는 닭이 울 때이고, 굴에서 나을 때는 새벽으로 볼 수 있다. 그 어느 때에도 이젠 되었다하고 마음을 놓으면 사자가 잡아먹는다. 환난 받는 동안 시종일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 말씀을 지켜 나가야 한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고가 온다. 말세 대환난 때도 이렇게 깨어 주님을 기다리면 주님이 홀연히 오시지 않을 것이요, 주님의 기뻐하는 종이 될 것이다. 만일 주님이 더디 오리라 하고 세상에 취하고, 심령이 잠들어 있으면 주님이 홀연히 와서 책망하실 것이다.

. 13: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주께서 당시 열 두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하는 말은 그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제14장 잡 히 심

[대 지]

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함(1-2)

二.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음(3-9)

三. 예수님을 은 삼십에 매매함(10-11)

四. 유월절 잔치(12-16)

五. 예수를 판 가룟 유다를 내어 보냄(17-21)

六. 성찬 예식을 창설함(11-25)

七.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릴 것을 예언함(26-31)

八.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31-42)

九. 예수께서 잡히심(43-50)

十. 베 홑이불을 버리고 도망침(51-51)

十一. 예수께서 가야바에게 심문을 받으심(53-65)

十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함(66-72)

[본문강해]

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함(1-2)

. 14:1-2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죽일 방책을 구하며 가로되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유월절은 정월(아빕월) 14일이고, 그 날부터 무교절이 시작된다. 예수님이 유월절 전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유월절 다음날 살아나셨다.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유월절 이틀 전이므로 예수께서 잡히시기 하루 전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잡아죽이려고 방책을 구하였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백성들이 반발하고 소요가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명절(유월절)을 피하자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에 계획한 것보다 빨리 예수님을 잡아죽이게 되었다.

二.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음(3-9)

. 14: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예수께서 고난 주간에 밤에는 베다니에 가서 주무시고, 낮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시를 하였다. 이 날은 예수님이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거기에 나사로도 함께 있었고, 그 누이 마르다는 일을 보고 있었다(요12:2).

한 여자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이다(요12:3).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요한복음에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씻었다고 했다. 이것은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이 발에 흘러내린 것을 마리아가 자기의 머리털로 닦은 것을 말한다. 마리아가 자기의 머리털로 닦은 것은 자기의 가장 귀한 것으로 닦기 위해서였다. 고린도전서11:15에 "만일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 했다.

"나드유"라는 것은 나드 나무의 뿌리에서 뽑아낸 향유로서 아주 고급 향유였다. 이 향유는 300 데나리온에 팔 수 있는 아주 값비싼 것이었다. 한 데나리온은 장정이 하루 일한 품삯에 해당되므로 300데나리온은 장정 삼백 명의 품삯에 해당되는 많은 금액이다. 이렇게 값지고 귀한 기름을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어 드리고, 예수님의 발에 묻은 기름을 자기의 소중한 머리털로 닦아 드릴 때에 그 집안에는 향기가 가득하였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대단히 좋게 여기셨다.

. 14:4-5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제자들은 "어찌하여 그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늪아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지 아니하고 허비하느냐"고 불평하였다. 가룟 유다가 먼저 불평을 시작했고 제자들도 동조하였다.대개의 경우 한사람이 불평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이 곧 동조하여 불평하게 된다. 불평은 언제나 불평 분자로부터 시작이 되지만 나중에는 많은 사람이 거기에 동조하고 불평이 커지게 된다. 가룟 유다가 먼저 불평을 시작한 것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궤를 맡고 있으면서 가끔 훔쳐 가곤 하였다(요12:4-6). 그러므로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면 거기에서도 얼마쯤 훔쳐 갈 수 있을 터인데 예수님께 부어 드렸으므로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평한 것이다.

사람들이 불평하는 근본 원인은 자기 중심과 자기의 유익을 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평할 때에 외부적으로는 이것이 틀렸다, 저것이 틀렸다 하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가룟 유다도 왜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느냐는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불평했다. 그러므로 다른 제자들도 쉽게 동조하여 불평한 것이다. 사울 왕도 아말렉과 싸울 때에 자기가 먹으려고 살찐 짐승을 가져왔으나 대의명분은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끌어왔다고 하였다.

우리 성도는 언제든지 불평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모든 것을 성경 원리에 맞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이 그 여자를 나무라지 않는데 어떻게 제자들이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그 여자의 행위를 기쁘게 생각하시는데 제자들이 그 여자를 비난한 것은 결국 예수님을 비난한 셈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자들보다도 못한 분이신가? 제자들이 조금만 생각하여 보면 모든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을 터인데,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

분내어 제자들이 더욱 분이 난 것은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책망하기를 바랬으나 도리어 기뻐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불평은 예수님께 대한 불평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예수님께 반항하고 불평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 된 것은 예수님의 뜻과 제자들의 신앙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희생하고 바쳐 드리는 것보다 가난한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더 큰 일인 줄로 알았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영적인 면보다 도덕적인 면을 더 크게 여겼고, 예수님을 위해서 물질을 바쳐 드리는 것보다 그것으로 기독교 사업과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더 크게 여겼다. 제자들의 이러한 사상은 기독교 사회주의요 기독교 도덕주의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향유를 부어 드리는 것을 허비하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러한 일을 하는 자를 어리석게 보아 분히 여겼다.

그러나 마리아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위해바쳐 드리는 것을 더욱 귀한 일로 믿었다. 물론 마리아는 구제하는 것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마리아가 제자들보다 더 많이 구제했는지도 모른다.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위로해 준 것을 보면 마리아가 여러 사람에게 선을 많이 베풀고 덕을 세운 것 같다. 그러나 마리아는 도덕적인 선을 베풀어 구제하는 일보다 예수님을 더 귀히 여기고 사랑하여,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다 바쳐 드리며, 자기를 희생하여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를 간절히 원했다. 마리아는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예수님과 깊이 사귀며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 첫째이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에 대해서 깊이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희생하며 바쳐드리는 정성이 부족하였다. 그들은 오히려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여 선을 베풀고 기독교 사업을 크게 하여 많은 사람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의 속죄의 죽음을 바로 알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거기에 합당한 예물을 드리려고 자기에게 있는 가장 귀하고 값진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린 것이다.

예수님의 구속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기쁘게 하여 드린 사람은 마리아뿐이었고, 마리아의 영적 신앙을 바로 알아 준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었다. 마리아가 기름을 붓는 것을 다른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예수님이 인정해 주셨다. 성인(聖人)이라야 성인(聖人)을 안다고 하는 말이 있다. 신령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야 신령한 성도를 알 수 있다. 제자들의 신앙은 아직 마리아의 신앙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름 붓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분히 여겼다.

.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마리아를 괴롭게 하였다. 언제나 신앙이 깊지 못한 사람은 신앙이 깊은 사람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람을 도리어 괴롭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일 계단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이 계단이나 삼 계단의 신앙으로 걸어나가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비방하며 괴롭게 하는 일이 많다. 제자들은 향유를 팔아 구제하고 싶은데 마리아는 그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볶아 붓고있으니 신앙상 보조가 맞지 않는다.

신앙의 정도에 차이가 생기면 신앙이 낮은 사람은 신앙이 높은 사람을 비방하고 마지막에는 죽이기도 한다. 그들은 높은 신앙을 깨닫지 못하므로 그것이 잘못된 줄로 알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회당에서 쫓아내고 잡아죽이게 된다(요16:2). 환난 때에는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잡아 주고 목사가 목사를 잡아 준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성도는 자기 자녀들을 부모의 신앙에 도달할 수 있도록 힘을 써서 인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부모의 신앙과 자녀의 신앙에 차이가 생기고,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을 옳지 않게 생각하여 점점 빗나갈 염려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바로 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을 길러 나아가야 한다. 주일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아니하고 육신의 귀에 즐겁도록 가르치면 아이들의 신앙이 자라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유년부 학생들에게도 성경만 가르쳐야 한다. 육신의 귀에 즐겁게, 인간의 이성에 맞도록 가르치면 몇 십년을 배워도 신령한 신자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면 나중에 신령한 귀가 열려 참 진리를 깨닫게 되고, 그 신앙이 말씀에 뿌리를 박고 반석 위에 굳게 서게 된다.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리아가 예수께 부은 것은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8절). 그러므로 그 일은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방책을 구하고 있는 때였으므로 마리아는 예수님이 곧 죽으실 것을 알았다. 또 예수님의 죽음은 죄인들을 위한 속죄의 죽음임을 믿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죽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 여자는 죽음이 임박한 예수님에게 무엇을 바쳐 드려야 가장 합당할까 하고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 때에 십자가에서 죽으실 예수님을 위해서는 옷이나 음식보다도 향유를 붓는 것이 가장 합당한 것임을 성령으로 깨달은 것 같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다음에 향유를 붓는 것보다 살아 계실 때 부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깨달아 자기의 모든 것을 회생하고 다 팔아서 제일 비싸고 좋은 나드 향유한 근을 구하여 예수님께 부어 드린 것이다. 이 향유는 마리아가 경제적인 힘을 다 기울여 사온 것이다(8절).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것은,

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였다.

② 십자가의 구속의 향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믿음으로 하였다.

③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드리는 마음으로 하였다.

④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기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되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하였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정성과 믿음을 예수님이 좋게 여기셨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바로 알고 그 죽음의 향기에 참여하기 위해 힘을 다하여 희생적으로 향유를 부어드린 일은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 14: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세상에 가난한 자는 항상 있을 것이므로 제자들이 가난한 자 구제하는 일은 언제나 할 수 있다.

나는 너회와 찰상 할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 헌신하고 바칠 기회는 항상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사회 사업할 기회는 언제나 있으나 예수님을 위해 봉사할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을 때 주님을 위해 바치고 봉사하고 희생해야 한다. 그 기회가 지나가면 봉사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돈다. 건강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니며 물질도 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위해 봉사할 기회가 있을 때에 힘써 봉사하지 않으면 그 기회가 지나가 버린다.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아무리 힘을 썼어도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으셨다. 그러나 솔로몬에게는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성전 짓는 것도 하나님이 기회 주실 때 전적으로 바쳐서 건축해야 된다. 기회가 지나가면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물질과 시간과 환경과 건강을 주실 때, 또 하나님께서 일감을 주었을 때에 모든 것을 희생하여 일하여야 한다.

. 14: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힘을 다하여 마리아가 경제적인 힘을 다하여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렸다. 있는 힘을 다하지 않고 어느 정도만 바치는 것은 안 된다. 마리아는 향유를 부어드릴 때에 자기 마음, 정성, 물질, 몸과 모든 것을 바치는 마음으로 부은 것이다.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바로 알고 주님을 사랑하며 물질적으로도 힘을 다하여 희생하고 바쳐 드려야겠다.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장사할 때에 향유를 붓는 것은 한 예식이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왔을 때에 니고데모가 침향 섞은 것 백 근쯤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체에 넣고 장사하였다(요19:39).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에 나귀를 타고 왕의 의식과 거동으로 올라가신 것도 영적 왕으로서 외부적인 의식을 거행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영적인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의식적인 기름부음이 있었다.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것도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의식이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잠시 후에 예수님께서 구속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될 것을 믿고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향유를 부어 드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구속 사업은 영적인 면이 있는 동시에 바른 의식적인 면이 있다. 인본주의와 의식주의적인 의식은 필요 없으나 참된 의식은 필요하다. 예수님을 위하여 영적인 면과 제도적인 면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마리아는 영적으로 예수님의 바른 구속의 도리를 알고 그 구속에 참여하여 향유를 부어드린 것이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터인데 그것을 제자들도 바로 깨닫지 못했으나 마리아가 자로 깨달아 향유를 부어드렸으니 참으로 귀한 일이었다.

. 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마리아의 행위를 기뻐하신 것은 그 향유 때문만이 아니다. 마리아의 중심에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을 믿는 믿음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 정성과 충성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칭찬하셨다. 그리하여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미리아의 믿음을 말하여 본받게 하라고 하셨다.

三. 예수님을 은 삼십에 매매함(10-11)

. 14:10-11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를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제시장들에게 가매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잡아죽이기로 결정해 놓고 죽일 방책을 찾고 있으므로 모든 대세가 기울어 져서 예수님이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을 가룟 유다가 알았다. 가룟 유다는 자기가 살길은 대제사장편에 서야 될 줄 알고 그들에게 찾아가 협력한 것이다. 또 유다는 돈을 좋아하였으므로 예수를 넘겨주고 많은 돈을 받을 생각이 났다. 유다는 예수 일행의 돈궤를 맡고 있으면서 그 돈을 사사로이 얼마씩 빼내어 쓰곤 하였다. 요한복음12:6에"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있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하였다.

유다는 평소에 돈에 대해서 양심을 쓰지 않았다. 돈에 대해서 양심을 쓰지 않는 사람은 돈 때문에 망할 날이 온다. 가룟 유다가 평소에 조금씩 돈을 도적질하여 쓰다가 나중에는 선생인 예수님까지 팔아 넘기게 된 것이다. 가룟 유다가 훔쳐 쓴 돈은 요즈음 교회의 헌금과 같은 것이다. 교회의 돈이나 물건은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자기 개인 것보다 더 아끼고 바로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믿음을 쓰는 것이다. 가룟 유다가 주님을 파는 것은 배신 행위이며, 배신은 불진 사회에서도 큰 패역으로 여긴다.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대제사장들이 기뻐하며 은 삼십을 가룟 유다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은 삼십은 종 하나의 몸값에 해당한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논아 그 돈으로 짤 살아 보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그는 그 돈을 쓰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죽었다.

기회를 찾더라 가룟 유다가 외부적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체하고 따라 다니면서 속으로는 예수님을 넘겨 줄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四. 유월절 잔치(12-16)

. 14:12-16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 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의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유월절 준비를 지시 받기 위해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다. 그 때 예수님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그 집주인에게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잡수실 방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라고 하셨다. 그리하면 그 사람이 예비한 큰 다락방을 보일 것이니 거기서 유월절을 예비하라고 분부하셨다. 이 다락방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이다. 그 집에서 다락방을 즐거이 예수님께 제공했다. 예수님이 사용하시기를 원하실 때에 무엇이나 바쳐 드리는 것이 믿음을 쓰는 것이다. 다락방을 예수님이 필요할 때에 내어놓은 사람은 참으로 복 받을 일을 하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시키신 대로하여 유월절을 예 비 하였다.

五. 예수를 판 가룟 유다를 내어 보냄(17-21)

. 14:17-20 저물매 그 열 둘을 데리시고 와서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저희가 근심하여 하나씩 하나씩 여짜오되 내니이까 이르시되 열 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누가복음22:15에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서 택한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유월절 잡수실 때에 예수님을 팔 자인 가룟 유다도 함께 있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리라"고 알려 주셨다. 악한 가룟 유다를 성찬에 참여시킬 수가 없으므로 예수님이 먼저 떡 한 조각을 찍어 주어서 내어 보내셨다. 예수께서는 배은망덕한 유다에게도 원수처럼 대하거나 분노하여 저주하시지 않고 내보낼 때에도 떡 한 조각을 찍어 먹게 한 후 내어 보냈다. 가룟 유다가 겟세마네 동산으로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에도 예수님은 "친구여 너의 할 일을 하라"고 하여 끝까지 사랑으로 대해 주시고 심령의 평안을 잃지 않으셨다.

. 14:21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유다를 원수로 대하거나 분노하시지 않은 이유이다. 예수님을 가룟 유다가 늪아 넘겼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구약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이다. 만사는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대로 되어지는 것이고 사람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되어지는 모든 일도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어지는 줄 알고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와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요한복음18:11에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다가 미움을 받고, 멸시 천대를 당하며 죽음에 넘기워져도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인 줄 알고 달게 받아야 한다.

인자를 파는 그 사람이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가시지만 유다는 예수님을 판 죄 때문에 앙화와 저주를 받게 된다.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배은 망덕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화가 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버리는 자는 하나님께 화를 당한다. 창세기12:3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팔았으니 그 악명이 이 세상 끝 날까지 갈 것이고, 내세에 지옥 형벌이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언제나 복음 운동을 막는 자는 화가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六. 성찬예식을 창설함(22-25)

. 14:22-24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주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성찬 예식을 창설하셨다.

이것이 내 몸이니라 성찬식의 떡은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이다. 또 포도즙은 예수의 피라고 했다. 떡이나 포도즙이 축복하신 후에 예수님의 살이나 피가 되는 것이 아니며, 그 떡이나 포도즙 가운데 예수님의 살과 피가 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예수님이 영으로 그 떡과 포도즙에 임하여 계시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이 영으로 떡과 포도즙에 공재(共在)한다고 하면 안 믿는 사람이 성찬을 먹어도 예수님을 영으로 영접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혹 불신자가 성찬을 먹는다 해도 예수님과는 영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으므로 떡과 포도즙에 예수님이 영으로 계시지 않는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성찬의 떡은 예수님의 살을, 포도즙은 예수님의 피를 기념하는 것이다(고전11:24). 그러나 성찬을 믿음으로 참여하는 성도에게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임하시므로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는 영으로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이다.

. 14: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① 천년 왕국시대에 부활한 성도들이 새로 나는 포도즙을 마실 것이다. 미가4:4에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고 했다. 이사야65:21에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라고 했다. 천년 왕국 시대에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다. 그 때 예수님도 성도들과 같이 마시게 될 것이다. ② 신약 교회 시대에 생명의 은사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신약 교회를 친국에 비유했고(마13:24), 생명의 은사를 포도주에 비유했다. 이사야55:1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했다. 젖은 하나님의 말씀, 포도주는 생명적 은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 뜻은 성도들이 그 생명의 은사에 참여할 것과 예수님이 영으로 교회에 임하실 것을 가리킨다. 새로운 은사, 새로운 생명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은 새것으로 마시는 것이며 예수님과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七.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릴 것을 예언함(26-31)

. 14:26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

예수께서 성찬 예식을 거행하신 후 찬미하며 감람산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시기 위해 가셨다. 예수께서 그 곳에서 기도하신 후에 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함을 아셨다. 그러므로 그 모든 일을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승리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기도하시러 감람산으로 가신 것이다.

. 14:27-28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고 흩어지리라고 미리 말씀하셨다. 스가랴13:7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고 하신 말씀이 응하게될 것을 예수님이 아셨다. 제자들은 아직도 신앙의 실력이 없기 때문에 환난이 올 때에 예수님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갈릴리로 가서 공적으로 제자들을 만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 14: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버릴지라도 베드로 자신은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였다(31절). 베드로가 자신의 신앙 정도와 실력을 알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이렇게 말했다.

. 14: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자신 있게 말했으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실력과 앞으로 되어질 일을 다 아시고 "닮이 두 번 울기 전아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앞으로 되어질 일을 다 아신다.

마태복음26:34에는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기록되었으나 마가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이라고 하여 좀더 세밀하게 기록했다. 마가복음이 다른 복음보다 분량은 적으나 더 자세히 기록한 면이 많이 있다.

. 14: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는 자기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노라고 호언 장담하고 나서자 다른 제자들도 다 그렇게 말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니라 진정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심문 받는 자리에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다. 그가 주와 함께 죽겠다는 결심과 뜻은 좋았으나 믿음과 실력이 없었으므로 자기가 말한 대로 행하지 못하고 주를 부인하게 된 것이다. 베드로에게 어떤 믿음이 없었는가?

① 영적 신앙에 서 있는 믿음이 없었다. 제자들은 그 때까지도 육신에 속한 자들이었다. 그 증거는 서로 높아지려고 하였고, 시기와 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마20:20-25). 시기와 분쟁은 육신에 속한 증거이다(고전3:1-3). 육신의 생명이 살고자 하면 영적 생명이 죽고 육신의 생명이 죽고자 하면 영적 생명이 산다(마10:39).

②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였다. 빌립보서1:21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생활은 영적 생명으로 사는 생활이다. 제자들은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고, 또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있을 소망을 가지지 못했다(빌1:23).

③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믿음이 없었다. 스데반은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고 그 세계를 사모하여 기쁨으로 순교를 하였다.

④ 육신의 생명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귀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 예수님을 사랑하므로 그 사랑에 삼키워지는 것이 순교이다.

베드로나 제자들은 아직 육신의 생명을 예수님과 그 말씀보다 더 사랑하였다. 그 증거로는 마리아가 향유를 부을 때 불평한 것이다(14:4-5).

八.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32-42)

. 14:32-33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 하사

예수께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기도하실 때에 특별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데리시고 좀더 멀리 깊은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다.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마태복음26:38에는 "심히 민망하여 죽게 되었다"고 했다. 예수님은 앞으로 짊어질 십자가의 고통을 미리 앞당겨 놓고, 그 고통을 마음으로 통과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심히 놀라고 슬퍼하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육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심 때문이 아니고, 십자가를 승리로 통과하는 문제로 인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 제물이 되실 때에 그 큰 고통으로 인하여 아픈 데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순간이라도 중단되면 흠(欠) 있는 제사가 된다. 하나님은 흠 있는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 만일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구속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승리로 통과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십자가의 고난이 아무리 커도 마음을 잠시라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과 계속 교통하면서 통과할 수 있을까 에 대하여 심히 놀라며 슬퍼하며 고민하셨다.

. 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이 너무 크지만 그것을 승리로 통과하기 위하여 깊은 기도와 간구를 드리려고 세 제자에게 깨어 있으라 말씀하신 후 혼자서 좀더 나아가 기도하셨다.

. 14:35-36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이 잔은 십자가의 고난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를 지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십자가를 목표로 걸어왔다. 제자들에게도 여러 번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를 져야 된다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오신 것도 십자가를 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정작 십자가가 당도했을 때에 십자가를 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 된다. 세상의 애국자나 사상가들도 죽음이 올 때에 담대히 받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죽음이 왔을 때에 그 죽음을 면하려고 했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도는 다만 그 고통을 지나가게 해달라는 뜻이다. 즉 고난 없는 십자가를 지게 해달라는 뜻이다. 십자가는 지되 고난을 면케 해 달라는 기도였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였다. 이것은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기를 결심하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바른 기도이다. 자기 요구만 이루어 달라고 하는 기도는 자기 욕심이요 하나님께 가증한 기도이다. 잠언28:9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했다. 예수님은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다고 했다(히5:8).

우리 성도들도 순종하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순종을 배우는 기도가 중요하다. 야고보서4:3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다. 예수께서 그 때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이 아버지의 뜻을 순종함이 요, 겟세마네 동산에 가신 것도 아버지께 순종이요, 기도할 때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는 것도 순종이다. 누가복음22:44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했다.

예수께서 이와 같이 순종의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 도와주시고 십자가를 이길 능력을 주셨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과 그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고난받을 각오를 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길 만한 힘을 주시고 도와주신다.

. 14:37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이 힘쓰고 애써 기도하시는 동안에 제자들은 졸고 있었다. 예수님이 돌아와 졸고 있는 제자들을 책망하셨다. 예수님은 깨어 기도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이길 수 있었고, 제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환난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고 말았다(50절). 어떤 사람이 묻기를 "나는 기도를 아무리 하려고 해도 기도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기도가 안 되는 사람은 기도가 안 된다고 중단하지 말고 하나님께 계속 간구 해야 한다. 마태복음7:7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였다.

기도가 막힐 때 계속 하나님께 간구 하면 기도의 문일 열릴 수 있다. 또 자기의 잘못을 찾아서 회개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가 막히는 것은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막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막히는 것은 죄와(사59:1-2) 자기의 옛 사람이다. 즉 자기의 교만과 고집과 자기를 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죄에서 돌이키고 옛 사람을 다 벗어 버려 주체로 들이켜야 한다. 그렇게 하여도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을 때에는 주기도를 여러 번 반복해서 하면 기도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께서 "한 시간"동안 기도하시고, 제자들이 자고 있는 것을 돌아보시고, 베드로에게 한 시동안도 깨어 있지 못하느냐고 책망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하루에 최소한 한 시간 이상 기도를 하여야겠다. 루터는 매일 두 시간씩 기도를 했으며, 두 시간 이상 기도하지 못한 날은 마귀에게 지는 날이라고 했다고 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기도를 세 번하셨다. 우리들도 한 시간씩 여러 번 기도하며 부르짖으면 기도문이 열리게 된다.

죄를 회개하고자 해도 죄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당겨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앞에 있는 모든 환난을 앞당겨 놓고 그 환난을 통과할 만한 하나님의 능력을 입기 위하여 기도해야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매일 작은 환난과 작은 십자가를 승리로 통과해야 앞날에 올 큰 환난도 승리로 통과할 수 있게 된다.

.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시험에 들지 않고 그 시험을 이기려면 영이 깨어 기도해야 한다. 육신으로 사는 생활은 자는 것이요, 영으로 사는 생활은 깨어 있는 것이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도 이기지 못하고 믿음도 지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도 깨어 기도하셨기 때문에 그 큰 고난의 십자가를 승리로 통과할 수 있었다. 하물며 죄인 된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이것은 제자들이 육신이 연약하여 기도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이 인정해 주시거나 괜찮다는 뜻이 아니다. 영이 깨어서 육신을 쳐 복종시켰으면 기도했을 것인데, 그렇게 기도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될 기도와 을은 일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못한 것을 합리화 시켜서는 안 된다.

. 14:39-40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저희가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은 두 번째 전과 같은 기도(36절)를 하시고 다시 나와 제자들을 보시니 또 자고 있었다. 영이 깨어 기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자다가 깨어 예수님을 보고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 무슨 말을 할 바를 몰랐다.

. 14:41-42 세 번째 오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이제는 자고 쉬라 이것은 육신이 자고 쉬라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절에 예수님께서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했으니 자는 자가 함께 갈 수 없기 때문이요, 또 누가복음21:36에"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깨어 기도하지 못한 사람은 자고 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도 시간에 깨어 기도하지 못한 사람은 깨어 있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환난이 올 때 자고 쉴 수밖에 없고, 기도시간에 깨어 기도한 사람이라야 환난이 올 때에 그 환난을 믿음으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하는 장소에서 성도의 신앙 생활이 결정된다. 제자들은 기도하는 시간에 깨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잡혀 갈 때에도 심령이 자고 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제는 자고 쉬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九. 예수께서 잡히심(43-50)

. 14:43 말씀하실 때에 곧 열 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가장 가까이서 양육 받은 제자 중 하나인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여 예수를 잡고자 하는 자들의 앞잡이가 되어 검과 몽치를 가진 무리들을 인도하여 예수님을 잡으려고 왔다. 이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었으나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성경으로 이겼고, 믿음으로 이 겼다.

. 14:44-46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 라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저희가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가 예수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미리 군호를 짜 가를 유다가 입맞추는 그 사람이 예수님이니 그를 잡으라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였다. 그러면서도 유다는 예수님 앞에 와서 가장 다정한 인사법으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면서 입을 맞추었다. 그 때에 그들이 손을 대어 예수님을 잡았다. 사단의 사자는 사랑의 탈을 쓰고 전사를 가장하여 찾아온다.

. 14:47 곁에 섰는 자 중에 한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곁에 섰는 자 중에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이고, 대제사장의 종은 말고이다(요18:10).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호하고자 한 것은 좋으나 혈기로 대항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 이로 인하여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큰 오점이 생길 뻔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는 "이것까지 참으라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리라"고 하시며(마26:52) 말고의 귀를 만져서 낫게 해주셨다(눅22:51).

. 14:48-49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원수들이 강도를 잡는 것처럼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으나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붙잡히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오직 성경을 이루기 위하여(마26:54) 대항치 않고 순순히 응하셨다. 만일 예수님께서 한 번 기도만 하시면 하늘에서 떨 두 영(열두 사단) 더 되는 천사가 와서 원수들을 일시에 멸할 수 있으나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순순히 잡히셨다.

. 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제자들이 조금 전에 죽을지언정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으나 정작 예수님이 잡히실 때에는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치고 말았다. 주를 위해 죽는 일은 자기의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된다. 순교자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정된 자라야 순교할 수 있다.

十. 베 홑이불을 버리고 도망침(51-52)

. 14:51-52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한 청년은 마가 요한을 가리킨다. 마가는 요한이라고도 한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마가는 자신이 도망한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다른 복음에 이 기사가 없는 것은 마태나 누가, 요한이 마가의 도망한 것을 밤이므로 잘 보지 못했거나 보았다고 해도 중요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은 것 같다.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유월절을 잡수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신 후 가룟 유다가 환도와 몽치를 가진 무리를 데리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예수님을 잡으러 찾아왔던 것 같다. 그때에 집에서 베 홑이불을 덮고 자던 마가가 깨어서 이를 발견하고 그 사실을 빨리 예수님께 알려 드리려고 의복을 입을 시간도 없이 베 홑이불을 몸에 두르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달려간 것이 아닐까!

무리에게 잡히매 가룟 유다와 예수님을 잡으려는 무리가 다락방에서 보았던 베 홑이불을 두른 청년이 겟세마네 동산에 온 것을 보고 연락하기 위해 온 것으로 생각하여 마가를 붙잡으매 그가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한 것 같다. 마가가 예수님께 나아간 것은 잘했으나 너무 믿음이 없어서 도망하고 말았다. 마가는 ① 벗은 몸으로 도망친 비겁한 사람이었다. ② 바울과 전도 여행을 떠났다가 고생이 너무 심하므로 밤빌리아에서 돌아간 배반자였다(행13:13). ③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시 바울과 바나바를 심히 다투게 한 장본인으로 말썽꾸러기요 무익한 자였다(행15:37-38). 그러나 회개한 다음에는 바울을 잘 도와 구원 운동에 유익한 자가되었다(딤후4:11). 마가가 잘못한 것이 많았으나 나중에는 회개하여 좋은 열매가 맺힌 것이다. 처음에는 실수가 많았으나 회개하고 끝까지 복음 운동에 충성을 하므로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이 축복하였다. 누구나 일시적 실수가 있을지라도 부지런히 회개하며 끝까지 복음 운동을 위해서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시고 귀히 쓰신다.

十一. 예수께서 가야바에게 심문을 받으심(53-65)

. 14:53 저희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그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끌고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로 갔다. 그때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심문하기 위해 공의회로 모이게 되었다. 그들은 산헤드린 공의회원이었다. 이 산혜드린 공회는 유대의 최고 의회이며 최고 재판부였다.

. 14: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않아 불을 쬐더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가 요한의 도움으로 대제사장의 뜰 안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요한은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먼저 뜰 안에 들어갔고, 요한이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간 것이다(요18:15-16). 요한과 베드로가 제자의 자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요한은 대제사장의 친척으로, 베드로는 구경꾼의 자각으로 들어갔다. 베드로가 구경꾼인 체하고 하속들과 함께 불을 조이고 있었다.

. 14:55-56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함이라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정죄할 증거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예수님께 대하여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았으나, 그 증거가 서로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닌 것은 서로 일치하기 어렵다. 그들이 예수님을 끌고 첫 번째로 안나스에게로 갔고(요18:13), 두 번째는 가야바에게로 갔고(마26:57), 세 번째는 공의회(눅22:66), 네 번째는 빌라도(막15:1), 다섯 번째는 헤롯(눅23:7-8), 여섯 번째는 다시 빌라도에게 와서 재판을 받게 했다(눅23:11). 죄 없으신 예수님이 이와 같이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았다.

. 14:57-58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예수께서 이와 비슷하게 말씀하신 일이 있다. 요한복음2:19에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몸을 가리켜 하신 말씀으로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도 삼일 후에 그 몸이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거짓 증거자들은 "손으로"라는 말과 "내가"라는 말을 덧붙여서 "이 성전을 내가 헐고"라고 하여 성전을 모독하는 말로 뒤집어 씌웠다. 또 "그 성전을 다시 일으키리라"고 한 말씀을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고 거짓말을 했다. 말씀을 가감하고 뜻을 왜곡시키는 것은 악한 거짓 증거요 예수님을 배반하는 행위이다.

. 14:59 오히려 그 증거도 서로 합하지 않더라

사실과 진리는 언제나 일치하나 거짓 증거는 서로 합하기 어렵다.

. 14:60-62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가로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예수님이 거짓 증인들의 거짓 증거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물을 때에 "내가 그니라"고 분명히 대답하셨다. 또 인자가 권능자의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겠다고 말씀하셨다. 반대하든지 죽이든지 진리는 사실대로 밝혀 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승리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명백하게 진리를 말해 주었으나 그들은 참람한 말로 여겨 "이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더 증인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참람한 말이란 신성을 모독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구름을 타고 오셔서 악한 자는 심판하고 택한 성도는 구원하실 것을 증거 해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지금은 악한 자들에게 불법으로 심문을 받고 있으나 그 때는 그들과 인류를 심판하실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 14: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열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자기 옷을 찢으며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통분함을 나타내는 태도를 보이기 위해 옷을 찢은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거짓으로 정죄하면서 이렇게 가증한 외식을 취했다.

. 14:64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참람하다고 정죄하고 그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참람한 말 하나님께만 돌릴 신성한 것을 사람에게 돌려 신성을 모독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실 그리스도라고 한 것이 참람하다는 것이요 그 죄는 사형에 해당한 죄라는 것이다.

. 14:65 흑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그들(원수들)이 죄 없으신 예수님께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조롱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멸시와 천대와 학대를 받으신 것이다. 이사야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다.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이려고 한 것은 ① 예수님께 대한시기 때문이요 ② 그리스도관이 잘못된 까닭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 어디로부터 오는지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알았고(요7:27), 또 그리스도가 오면 영원히 살 줄 알았다(요12:34). ③ 자기들의 종교적 권세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하속들과 백성들은 그것을 모르고 그들이 사주(使嗾)하는 대로만 행동했다.

十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함(66-72)

. 14:66-68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 하나가 와서 베드로의 불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아래 뜰에 있더니 베드로가 예수께서 심문 받고 계실 때에 그 되어지는 일을 살피기 위해 아래 뜰에서 구경꾼인 체하고 불을 쬐고 있었다. 그 때에 대제사장의 여종이 베드로를 주목하여 보면서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하고 말하자 베드로가 "나는 네 말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였다. 이것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첫 번째 부인한 일이다.

. 14:69-71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또 다른 비자가 베드로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이 사람은 그 당이라"고 말하였다(마26:71). 그 때에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또 부인하였다.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라"고 말할 때에 베드로가 이번에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였다.

저주하며 맹세했다는 것은 "내가 만일 예수를 아는 자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 또는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는 내용일 것이다.

. 14: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점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울었다. 누가복음22:61에는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쳐다보시므로 베드로가 심히 통곡하며 울었다고 했다. 예수님이 쳐다보신 것은 ① "네가 죽을지언정 나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네가 이렇게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하느냐"고 쳐다보신 것이다. ② "너는 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한다"차고 끝까지 사랑하는 눈으로 쳐다보신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데 대해 그 사랑에 감격하여 생명을 내놓고 통곡한 것이다.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었을까?

첫째, 베드로는 영적 생명으로 살지 못하고 육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둘째,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빌1:21). 세째, 육신의 생명을 예수님과 그 말씀보다 더 사랑하고 귀히 여겼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명이 죽고자 할 때에 영의 생명이 살고 육신의 생명이 살고자 하면 영적 생명의 역사가 죽는다(마10:39 참조). 사도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하려 했고, 또 육신을 터나 그리스도와 함께 살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빌1:20-23). 성도는 이 세상을 터나 하나님 앞에 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항상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당시 이 신앙과 소망 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세번씩 부인하게 된 것이다. 참된 신앙이 있어야 생명을 내어놓고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갈 수 있다.

제15장 십 자 가

[대 지]

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줌(1)

二. 빌라도가 예수님을 사형 판결함(2-15)

三. 군병들이 예수님을 희롱함(16-20)

四.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감(21)

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음(22-32)

六. 십자가상의 기도와 운명(33-37)

七. 예수님의 운명 후 되어진 일들(38-41)

八.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장사함(42-47)

[본문강해]

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줌(1)

. 15: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대제사장들이 새벽에 공회를 열어 의논한 후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예수님에 대하여 사형 판결을 해달라는 것이다. 저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죽이려는 생각뿐이었다. '빌라도'는 주후 26년부터 36년까지 유다와 사마리아를 통치한 총독이었다.

二. 빌라도가 예수님을 사형 판결함(2-15)

. 15:2-5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소하는지라 빌라도가 또 물어 가로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저희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소하는가 보라 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기이히 여기더라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하면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을 때에 예수님께서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시므로 이렇게 대답하신 것이다(요18:37). 빌라도가 그 후에도 여러 말로 물었으나 예수님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기를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고 말할 때에 예수님은"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고 말씀하셨다(요19:10-11). 하나님이 빌라도에게 권세를 주셨으나 빌라도가 그 권세를 바로 사용하지 못했다.

'나를 네게 넘겨준 자'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며, 이들의 죄는 빌라도의 죄보다 더 크다고 예수님이 선언하셨다. 빌라도가 예수님을'재판하는 자리에 앉아 있으나 실제로는 예수님이 빌라도와 넘겨준 자들을 심판하셨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면서도 또 담대하게 심판자의 자격으로서 빌라도와 대제사장과 장로들에 대하여 심판하산 것이다. 그러나 택한 백성들을 위하여는 하나님의 예정대로 자기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려고 십자가를 향하여 당당히 나아가신 것이다.

. 15:6-7 명절을 당하면 백성의 구하는 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더니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명절(유월절)에는 백성의 요구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다. 이것은 빌라도가 민심을 얻고자 하여 시행해 오던 전례였다.

바라바는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한 사람으로 정치범이었다.

. 15:8-10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구한대 빌라도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이는 저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앓이러라

빌라도는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기 위하여 "유대인의 왕을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빌라도가 이렇게 물어 본 것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잡아 온 것을 알았고, 예수님이 평소에 평민들에게 많은 은혜를 끼쳤으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놓아 달라고 할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그들이 원하면 죄 없는 예수님을 기꺼이 놓아주려고 했다.

. 15: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대제사장들이 자기들의 앞잡이들을 시켜 군중을 선동하여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라고 아우성치게 만들었다. 군중들은 언제나 대세주의로 기울어지게 된다.

. 15:12-13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시 소리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내가 어떻게 하랴 빌라도의 나약성을 나타낸 말이다. 빌라도는 로마 나라를 대표하는 재판관으로서 법대로 재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란이 일어나면 자기의 정치적 생명에 큰 손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바른 재판을 하지 못하였다. 빌라도가 법대로 재판하지 않고 민중에게 물어 보아 군중의 요구대로 불의하게 재판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죄는 영원히 씻지 못할 큰 죄이다.

. 15:14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빌라도가 예수님께는 악행 한 사실이 없는 것을 알고 너희가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하느냐는 뜻이다. 그러나 빌라도의 말은 그들에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사실을 세 번이나 말했다(요18:38, 19:4, 6참조).

그러면서도 무리들이 십자가에 못박게 해 달라는 소리에 굴복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판결했다.

요한복음19:12에는 무리들이 빌라도를 위협하여 "이 사람을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라고 했다. 그때 빌라도는 예수님 한 사람 희생시켜 민심을 얻고, 자기의 정치적 생명에 손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죄 없는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빌라도는 자기 휘하에 육백 명 가량의 군대가 있었으므로 충분히 백성들의 민란을 억제할 수 있었으나 겁이 많아 불의한 재판을 하였다.

. 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빌라도가 자기의 유익을 위해 백성들의 불의한 요구대로 재판을 하여 바른 재판을 하지 못했다. 로마법은 당시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법이었다. 그러나 그 법대로 하지 않고 자기 유익대로 재판을 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고 세 번씩이나 선언하고(요18:38, 19:4, 6), 빌라도 자신도 놓아주기를 원하면서도 군중의 소리에 눌려 그릇된 판결을 하였다. 이것은 빌라로가 비경하고 나약한 증거이다. 그러나 예수님 입장에서는 이모든 것이 성경을 응하게 하는 것이요(마26:54),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이었다(요18:11).

三. 군병들이 예수님을 희롱함(16-20)

. 15:16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브라이도리온은 라틴어로 관청의 건물이라는 뜻이다. 군병들이 예수님을 끌고 관청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온 군대를 모으고 빌라도에게 속한 군대가 육백명 가량이었으나 그들이 다 모인 것이 아니고 그 중 대부분의 많은 군병이 모인 듯하다.

. 15:17-19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자색 옷은 왕이 입는 좋은 옷을 모방한 것이요 가시 면류관도 왕이 쓰는 금 면류관을 모방한 것이다. 군병들이 예수님을 왕이라고 희롱하기 위해서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비웠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지 못하여 이렇게 조롱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이방인인 로마 군병들에게 희롱을 당하시고 매를 맞으시고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는 모욕을 받으셨다. 예수님이 처음에는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했고, 다음에는 대제사장과 유대인에게 핍박을 받았으며, 그 다음에는 이방인인 빌라도와 군병들에게 능욕을 받았다. 이것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죄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의 죄까지 짊어졌기 때문에 유대인과 모든 이방인에게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 15:20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박으려 고 끌고 나가니라

군병들이 예수님을 마음껏 능욕한 후 십자가에 못박으려 고 끌고 나갔다.

四.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감(21)

. 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구레네 사람 시몬 구레네는 아프리카 동북부에 있는 도시이며, 시몬은 그 지방에 사는 혹인의 한 사람이었다. 십자가에 사형될 사람은 자기가 그 십자가 형틀을 지고 가는 법이므로 예수님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난 주간에 걸친 주림(시장하여 무화과 열매를 따먹으려고 한 점)과 심뇌(心惱), 철야 심문과 고문 등으로 예수님의 기력이 쇠하고 몸이 지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쓰러지곤 했다. 그 때마다 로마 군인들이 채찍으로 때리며 일으켜 세워 끌고 가던 중에 구레네 사람 시몬을 만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에게 억지로 지워 골고다까지 갔다.

이로 인하여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덜어 준 것은 아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고난을 만분지일이라도 덜어 주었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으로 받으실 고난을 온전히 다 받지 못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구속은 불완전한 구속이 되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쓰러질 때까지 우리 대신 받아야 할 고난을 전부 다 받은 것이다. 다만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한 것은 구레네 시몬이 하나님의 일에 이용당한 것뿐이다.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사실 억지로 한 것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고 상급이 없다(고후9:7, 벧전5:2). 그러나 시몬은 억지로 한 것일지라도 복을 받게 되었다. 시몬의 아들은 루포와 알렉산더였다. 바울이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했다. 루포의 어머니는 구레네 시몬의 아내이다. 바울이 다른 부인들은 자기 어머니라고 하지 않았으나 루포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라고 한 것을 보면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바울이 하는 하나님의 일을 신앙으로 맏이 도와 준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루포와 그 어머니는 믿음이 좋은 성도요, 하나님의 교회와 복음 운동에 많이 협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아버지와 그 남편인 구레네 시몬의 신앙을 본받아 좋은 신앙인이 된 것을 넉넉히 알 수 있다.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동안 예수님을 가까이 볼 수 있었고 그 모습과 얼굴에서 무언중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빛을 발견하여 영감을 받았을 것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모습에서 평안과 영광의 광채와 거룩한 모습을 발견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된 것 같다. 이방인 백부장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거룩한 태도와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하였다(막15:39).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진 그 자체는 하나님께 복 받을 만한 일이 되지 못하나 그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그 믿음을 아내와 아들이 본받아 잘 믿었으므로 그 가족이 복을 받았다. 그러므로 억지로라도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것이 복이 있다. 하나님의 일에 억지로라도 참여하여 봉사할 때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고 관심이 생기고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부모의 권유로 교회에 억지로 나온 사람이 예배에 참여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빛을 발견하고 좋은 신앙인이 된 경우가 많이 있다. 기도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기도하고, 성경도 억지로라도 읽고, 교회나 하나님의 일에 억지로라도 봉사하면 하나님의 빛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음(22-32)

. 15: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끌고 예루살렘 성밖에 있는 골고다라 하는 곳으로 갔다. 골고다는 그 당시 사형장으로 사용되었으며 "해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 15: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몰약을 탄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는 자에게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마취제로 제공한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쓸개탄 포도주를 드렸으나 예수께서 맛보시고 받지 않으셨다고 기록했다(마27:34). 예수님이 마취제를 마시고 고통을 조금이라도 면하면 택한 백성의 죄 값으로 받으실 고통을 다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거절하셨다. 예수님은 구속 주로서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기 위하여 죄인들의 죄 값으로 인한 형벌(고통)을 다 받기 위해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거절하신 것이다.

. 15:24 십자가에 못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차지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 예수님의 겉옷은 네 깃으로 나누어 그들이 갖고, 속옷은 통으로 짰으므로 한사람이 갖기 위해 제비뽑은 것이다(요19:23-24). 이는 시편22:18에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라고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 15:25 때가 제 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으니라

제 삼시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유대 나라의 제 3시는 현재 우리 나라 시간으로 오전 9시에 해당된다.

. 15: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있는 죄패에 기록된 것을 본절에서는 "유대인의 왕"이라 했으나, 요한복음19:19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다. 요한복음의 기록이 좀더 자세한 것 같다. 그들은 예수님을 가이사의 반역자로서 죽인다는 의미에서 "유대인의왕"이라는 죄패를 써 붙였으나 예수께서 신령한 영적 유대인의 왕이심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써 붙인 죄패가 예수님을 바로 증거한 결과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임의대로 행한 것과 실수한 것까지도 당신의 뜻을 이루는 데 이용하신다.

. 15:27-28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없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두 강도가 그 좌우편에서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 그 중 한편 강도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다(눅23:42).

. 15:29-30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지나가는 자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모욕하며 비방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라고 비방한 것을 보아 이 사람들이 평소에 예수님을 따라 다녔거나 그 말씀을 들은 자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비방하며 정죄하는 죄를 범했다. 그 사람들 가운데에는 여러 이적도 보고 예수님에게 많은 은혜를 입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쳤대, 못 박힌 다음에도 예수님을 악평하고 모욕했다. 그들이야말로 진주를 밟고 물어뜯는 돼지나 개와 같은 자들이다.

. 15: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귀신들린 사람을 온전케 하여 구원하여 내신 일을 알고 있었다. 옳은 일과 빛의 역사는 원수들도 다 알고 있다. 우리가 생명을 살려 내는 일을 하고 선한 일을 하면 원수들도 다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시기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 주었다.

. 15: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무리가 예수님을 비방하기 위해 한 말이다. 그들의 말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더라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 전에도 예수님이 남을 구원한 것을 알면서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예수님의 양된 강도 중에 한 사람은 믿었고, 한 사람만 욕하였다. 그런데 두 강도가 다 욕한 것 같이 기록된 것은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이 다 예수를 욕하였으므로 두 강도도 다 욕한 것과 같은 표현법을 사용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욕했을 때 욕 안한 사람도 같이 취급받을 수 있다. 이것은 욕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성경은 수학적으로 정확한 수치를 기록한 책이 아니고, 문학적인 표현 방법으로 기록한 구원의 책이다. 예를 들면 제자 중 베드로, 요한은 재판정까지 따라갔었지만 제자들이 다 도망갔다고 한 것과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러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왔다고 한 것(마3:5)과 예수님을 온 세상이 좇는다고 표현한 것과 같은 것이다.

六. 십자가상의 기도와 운명(33-37)

. 15:33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는 제 상시였고(25절), 제 육시부터 제 구시까지 온 땅이 어두워졌다. 현재의 우리 시간으로는 예수님이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이 어두워졌던 것이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대낮에 온 땅이 어두워진 것은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못 박혀 죽으시기 때문에 피조물 전체가 다 빛을 잃고 어두워진 것이다. 또 그리스도는 영적 빛인데, 빛 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때문에 온 세상이 영적 어두움에 처하게 된 것을 가르쳐 준다.

. 15:34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것은 아람어로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르짖는 탄식이 아니고 감사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시편20:1의 말씀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시편 22장 전체를 묵상하면서 그 대표적인 첫 절만을 말씀하신 것이다. 시편22장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16절)과 조롱 당하실 것(시22:6-8)과 옷을 제비뽑는 것(18절) 등이 예언되었으며, 22절 이하에는 그 결과로 야곱의 모든 자손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23절)과 열방 모든 족속이 주 앞에 경배하게 될 것이 예언되어 있다(27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시편 22장의 사실이 이루어지는 것과 그 결과로 이스라엘과 열방이 구원받아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을 묵상하시며 감사하여 찬송하셨다. 또 한가지 뜻은 하나님께서 버릴 수 없는 사랑하는 독생자를 버리시면서 까지 택한 백성들을 구속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에 우리 죄로 인하여 예수님은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버린 바 되었고, 동시에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의로 인하여 계속 하나님과 연결되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 값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끊어지는 동시에, 그가 이루신 온전한 의와 영원히 죽지 않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은 영원히 죽음이 없다.

만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이여 왜 나를 끊어버리십니까?"라고 하여 이 말씀이 끊어버리는 것에 대한 탄식과 부르짖음이었다고 하면 예수님의 제사는 마지못하여 드리는 것이 되고 감사하여 드리는 것이 못된다. 하나님은 마지못하여 드리거나 탄식하며 원망하는 제물은 받지 않으신다. 고린도후서 9:7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 라"고 했다. 하나님은 자원하여 즐거움으로 드리는 것을 받으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십자가의 속죄 제사도 예수님이 감사함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기쁘게 받는 온전한 제사가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일곱마디 말씀을 하셨다. 이것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 라고 한다.

①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②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③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7).

④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막15:34).

⑤ 내 가 목마르다(요19:28).

⑥ 다 이루었다(요19:30).

⑦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 15: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있던 사람들이 "엘리"를 오해하여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던 때였으므로 비슷한 말씀이 나오자 예수님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말한 것이다.

. 15: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제어 마시우고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 주나보자 하더라

신 포도주는 그때 군인들이 음료수로 사용한 것이며, 목마를 것을 생각해서 군인들이 예수님께 드렸다. 이것은 33절의 몰약 탄 포도주처럼 마취제가 아니고 단순한 음료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들의 정성을 받아 주어 마신 것이다. 해융은 스폰지(sponge)와 같이 물을 머금게 하는 바다 풀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상에 높이 달렸으므로 긴 갈대 끝에 해융을 매달아 거기 신 포도주를 찍어 마시게 한 것이다.

. 15: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예수님에게는 우리와 꼭 같은 몸과 영혼이 있다. 그러나 죄가 없으시며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있어 신성과 인성이 결합하여 한 위를 이루고 계신다. 예수님이 자기 영을 하나님께 부탁하시고 운명하셨다. 우리도 이 신앙을 가져야 한다. 즉, 모든 것(몸과 영혼까지)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말씀만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다.

七. 예수님의 운명 후 되어진 일들(38-41)

. 15: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성소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막아 놓은 휘장이다. 일반 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번씩 반드시 지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과 장차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을 가르치기 위한 제도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실 때에 그 진리가 성취되었으므로 성소 휘장이 찢어져서 그 때부터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죄악의 담이 무너진 것이다. 이사야59:1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고 했고, 에베소서2:14-15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 하셨으니"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막혔던 담이 다 무너졌다.

②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함을 성도들에게 입혀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므로 피조물이 가까이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움을 입혀 주셔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하신 것이다. 고린도전서1:30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는 누구나 하나님께 당당히 나갈 수 있게 되었다(엡3:12).

. 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백부장은 로마 군인 백명을 거느린 부대장이다. 이 백부장은 군인들을 거느리고 예수님을 맡아서 끌고 가서 십자가에 못박고 수비하였던 것 같다. 이것은 빌라도가 백부장을 불러서 예수님의 죽은 것을 확인한 것이 증명된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것을 본 백부장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백부장이 전에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죄패도 보았을 것이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거룩한 모습과 얼굴에 빛나는 하나님의 광채와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과, 열두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온 땅이 어두워지고, 지진이 나고 바위가 터지는 사실을 보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즉시 자기 신앙을 고백하였고, 또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였다.

. 15:40-41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좇아 섬기던 자요 또 이 외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 온 여자가 많이 있었더라

이 여인들은 갈릴리 전도시에 예수님을 믿고 따라다니며 봉사한 여자들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으로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다가 예수님에 의해 고침 받은 여자로서 믿음이 좋은 자요 예수님 부활 후에 제일 먼저 예수님을 본 자이다.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3:18), 요세의 어머니를 말한다. 그 여자는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였다(요19:25). 살로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이며(마27:56), 예수님의 이모이다(요19:25). 예수님과 요한, 야고보는 이종간이었다. 이외에도 많은 여성들이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좇아 올라왔다. 요한 외에 열 두 제자들은 다 달아났으나 이 여자들이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가 지켜보고 있었다.

八.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장사함(42-47)

. 15:42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날은 유월절(안식일) 전날이었다.

. 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을 달라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매 장사할 사람이 문제였다. 평소에 따라 다니던 열 두 제자는 다 도망쳤고 단지 예수를 따르던 몇몇 여인들만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때에 아리마대 요셉이 담대히 빌라도 앞에 나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귀였다. 요셉은 부자요 존귀한 공회원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다. 공회원은 오늘의 국회 의원과 비슷한 유대 나라 최고회의 의원이다. 그는 이제까지 숨어서 예수를 믿은 신자였다. 요셉은 이 때 성령의 감동으로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될 것을 깨닫고, 이 때에 나서서 하나님의 일에 크게 한 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는

첫째, 때와 시기와 상황으로 보아 자기가 나서야 될 것을 깨달았다.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도망갔고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있었으나 여인들의 힘으로 빌라도에게 시체를 달라 하여 장사할 만한 처지와 형편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빌라도 앞에 나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는 일은 공회원인 자기가 나서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빌라도 앞에 당돌히 나서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청구한 것이다. 그가 이 때에 나서지 않으면 그와 그 집은 멸망할 것이다.

이때 아리마대 요셉이 "나는 열 두 제자 가운데 속한 사람도 아니며 그를 따라 다니지도 않았으므로 내가 나서서· 장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가만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했다면 ①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는 것이요, ② 신앙 양심을 쓰지 않는 것이요, ③ 믿음 쓰지 않는 것이 되고, ④ 선을 알고 행치 않는 것이며, 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요셉이 망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일을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을 배반한 것이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것이다. 물론 자기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켜 나가신다. 그러나 자신은 주께서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앙화를 받으며,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는다.

모르드개와 유대 백성이 바벨론에서 하만의 모함을 받아 멸망을 당하게 되었을 때, 모르드개가 그의 조카딸로서 왕비가 된 에스더에게 왕 앞에 나아가서 백성을 위하여 간 구하도록 부탁했다. 왕이 부르지 않았을 때 왕 앞에 나아가면 죽는 법이며, 다행히 죽지 않으려면 왕이 가진 홀을 내 밀어야만 된다. 그러므로 에스더가 그 사실을 모르드개에게 말해 주었다. 그 때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너는 왕궁에 있으니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4:13-14)고 했다. 이에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결심을 하고, 왕에게 들어가 유대인을 건져내었다. 자기가 멍에를 메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

이사야 선지자도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 "차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대"할 때에 그곳에 이사야 밖에 없으므로 이사야는 대답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했다(사6:8). 이것이 믿음을 쓴 것이다. 마땅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깨닫고, 믿음을 써서 그 일을 감당해 나아갈 때 그 영이 자라나고, 구원 운동에 귀하게 쓰임을 받으며,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

둘째, 자기의 위치가 빌라도 앞에 나서야 할 입장임을 깨달았다. 만일 열 두 제자가 도망치지 않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제자들은 빌라도 앞에 나서서 부탁할 만한 위치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요셉은공회원의 위치에 있었으므로 빌라도 앞에 나서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할 수가 있었다.

셋째, 요셉은 새 무덤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님을 장사해야 할 입장임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은 준비해 둔 사람이 별로 없었으나 요셉은 자기가 죽으면 장사하려고 미리 준비해 둔 무덤이 있었다. 요셉의 무덤은 많은 돈을 들여 바위를 파서 만든 값진 무덤이었다. 그는 조금도 아낌없이 이 무덤을 주를 위해 바쳐 드렸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산을 주어 무덤을 장만하여 놓았다가 이 때에 쓰도록 하신 것을 깨닫고 바쳐 드린 것이다. 그가 주를 위해 무덤을 바쳤으니 그 무덤이 영원히 하늘 나라에 상급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는 땅 위에 있는 썩어질 것을 바치고 영원히 썩지 않는 보화를 받게 된 것이다.

네째, 생명을 내어놓고 예수님 장사하는 일을 감당했다. 이 때는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만한 살벌한 분위기였다. 또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출교하기로 결의가 되어 있었다(요9:22). 그런데 요셉은 공회원직을 박탈당하게 될 위험이 있었으나 재산과 지위와 권세까지 다 내어놓고 예수님을 장사하였다. 이 때 요셉의 영이 많이 자라났을 것이다.

다섯째, 자기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한 것이다. 그 무덤에 자기가 장사되는 것보다 예수님을 장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자기 일보다 예수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자기보다 예수님과 그 말씀과 주님의 일을 더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자라야 하나님이 끝까지 귀히 쓰신다.

. 15:44-45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 오래냐 묻고 백 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보통 오랫동안 고통을 당한 후에 죽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2-3일 후에 죽기도 하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지 불과 6시간만에 벌써 죽었으므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 양 잡는 유월절 전날 죽게 한 것이다.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한 후에 시체를 내어 주게 했다.

. 15:46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요셉은 세마포를 사오고,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 백근쯤 가지고 와서 예수님을 함께 장사했다. 아리마대 요셉은 처음에는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여 믿었다고 했다(요19:38참조). 그러나 나중에는 담대히 나서서 예수님을 장사하게 되었다. 국난지충신 가빈지현부(國難知忠臣 家貧知賢婦)라는 말이 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충신을 알 수 있고, 집안이 빈곤할 때 어진 부인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아리마대 요셉 때문에 예수님의 장사가 잘 이루어졌다. 그 당시 죄수의 시체는 정중히 취급받지 못했고 죄수의 묘지나 혹은 노천에 버려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셉과 니고데모의 희생적 봉사로 인하여 예수님의 시체가 제일 좋은 곳에 귀중히 장사되었다.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장사에 한 몫 참여하여 하나님의 일이 잘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되었다. 예수님은 평소에 장사지낼 걱정 한 마더도 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나님을 순종만 한 것이다. 이렇게 순종하여 죽으니 하나님이 장사지낼 무덤을 요셉을 통해 준비해 놓으셨고, 장사할 사람도 예비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누구나 세상 떠난 다음의 일에 대해서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믿음만 지키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신다. 요셉이 자기 무덤을 예수님께 바쳤으므로 그에게는 하나님이 더 좋은 무덤을 주셨다. 예수님이 부활한 다음 예수님이 누우셨던 거룩한 무덤에 자기가 장사되면 얼마나 좋은가! 이와 같이 아낌없이 주께 바친 자에게는 더 좋은 것으로 주신다.

. 15:47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이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멀리서 보고 있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의 시체라도 떠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또 안식일 후에 예수님의 시체에 기름을 바르기 위해 보아 두려고 따라갔다는 해석도 있다.

제16장 부 활

[대 지]

一. 여인들이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게됨(1-8)

二.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도고 증거함(3-11)

三. 두 제자가 주님을 도고 증거함(12-13)

四.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믿지 않은 것을 책망하실(14)

五. 제자들에게 사명과 능력의 역사를 주심(15-18)

六. 예수님의 승천과 제자들의 증거(19-20)

[본문강해]

一. 여인들이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게됨(1-8)

.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후 삼 일째 되는 날(안식 후 첫날-주일) 새벽에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일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이셨고(요20:1, 11-18 참조),그 다음에 본문에 있는 여러 여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셨다. 본문의 내용은 마태복음 28장의 사건과 같은 내용이다(마28:1, 9).

막달라 마리아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심으로 온전하게 된 여인이다(16:9).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갔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예수님을 만나 본 여자이다.

살로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요(마27:56), 예수님의 이모였다(요19:25).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누가복음에는 여자들이 안식일 전날에 향품을 사다놓고 안식일에 쉬었다고 기록되었다. 이 향품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기 위하여 그 여자들이 예비한 것이다.

. 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해 돋은 때 여자들이 아침 일찌기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 마태복음 28:1에는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라고 하였다. 이 여자들이 집에서 출발할 때는 새벽 미명이었으나' 무덤에서 천사를 만난 것은 해 돋은 때이었던 것 같다.

. 16: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예수님의 무덤을 큰돌로 막아 놓고 로마 국권으로 인봉까지 했으며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마27:65-66). 따라서 여자들로서는 도저히 그 큰돌을 굴려 내고 무덤에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이었으나,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시체에 향유를 바르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믿고 무덤에 간 것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 같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믿고 행할 때에 하나님이 만능으로 역사하여 형통케 된다.

. 16:4 눈을 들어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여인들이 무덤에 가보니 무덤 문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 돌이 심히 크더라 여자 몇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큰돌이었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그 돌을 누가 굴려 주리요(16:3) 하고 염려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이미 그 돌을 굴려 내었다. 이는 그 여자들에게 빈 무덤을 보여 주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 16:5 무덤에 들어가서 횐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않은 것을 보고 놀라매

횐 옷을 입은 한 청년은 천사이다. 천사가 여자들에게는 보통 사람처럼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태복음28:3-4에는 "그 형상이 번개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고 하였다. 결사가 수직하던 자들에게는 두려운 모습으로 나타났고, 믿는 여인들에게는 보통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여자들에게 무서워하지 않게 하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다.

놀라매 여인들은 무덤 문을 막아 놓은 큰돌이 굴려진 것과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과 무덤 안에 흰옷을 입고 앉아 있는 천사를 보고 너무나 뜻밖의 사태가 벌어진 것에 놀란 것 같다. 마태복음에는 천사가 무덤 밖 돌 위에 앉았다고 했다(마28:2). 파수꾼들이 볼 때는 천사가 두려운 모양으로 돌 위에 앉아 있다가 여인들이 올 때에는 청년의 모양으로 무덤 안에 앉아서 여자들에게 말한 것 같다.

. 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천사가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고 빈 무덤을 보여 주며 그 사실을 확실히 증거 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전 것은 돌을 굴려 내고, 파수꾼들을 두렵게 해서 기절시키고, 여인들에게는 부활의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함이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인들은 살아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었다. 우리는 죽은 예수를 믿지 말고 부활한 예수를 믿어야된다. ① 예수님은 살아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마태복음 28:20에"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하리라" 고 하셨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여 주신다.

②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신다: 성도의 영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되어 있다. 이는 가지를 포도나무에 접붙인 것과 같다.

③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그 부활의 능력을 입혀 주시려고 역사 하신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기를 힘썼다(빌3:10-11).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만큼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여할 수 있다.

.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회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예수께서 베드로를 수제자로 취급하신 것이 여기에서도 나타났다. 이는 베드로의 믿음이 다른 제자들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갈릴리로 가시나니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만나실 장소는 갈릴리였다. 그 전에 예루살렘에서도 여러 번 나타나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것을 증거 해 주셨다.

. 16:8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보고 무서워 떨면서 도망쳐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마태복음28:8-9에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라고 하였다.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가서 그 소식을 전했으나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

二.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증거 함(9-11)

. 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이것은 1-8절 내용보다 먼저 일어난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보여 주셨다.

. 16:10-11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 울고 있는 중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돌아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천사의 말과 자기가 예수님을 만나 본 것을 알려 주었으나 제자들은 믿지 않았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혼자 가서 맨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요20:1), 막달라 마리아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려 줌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빈 무덤을 보고 돌아왔다(요20:2-10). 그 다음에 여러 여인들이 무덤에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 소식을 예수님과 같이 다니던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였으나 믿지 않았다.

三. 두 제자가 주님을 보고 중거함(12-13)

. 16:12-13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이 두 제자는 옘마오로 가는 두 제자이다(눅24:1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 동행하시면서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음을 책망하시고 성경을 풀어 가르쳐 주시며 예수님의 부활을 친히 보여 주어 믿게 해주셨다(눅24:13-31). 그리고 그들은 즉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 사실을 열 한 사도들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에게 말해 주었다(눅24:33-35). 그러나 그 때에도 제자들은 믿지 않았다.

四.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믿지 않은 것을 책망하심(14)

. 16:14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그 후 열 한 사도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꾸짖으시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과 삼 일만에 살아날 것을 가르쳐 주었으나, 제자들이 그 말씀을 믿지 않은 것과 또 부활의 주님을 직접 본 자들이 전하는 말을 믿지 않은 것을 책망하셨다. 예수님은 성경을 더더 믿는 자를 책망하시고 (눅24:25-26), 부활을 보고 전하는 자들의 확실한 증거를 믿지 않는 자를 책망하신다. 그들은 마음이 완악함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다(12:24).또 사람의 생각과 인간의 지식과 경험에 얽매어 그들의 마음이 관악하고 고집스러워 예수님의 부활을 본 자들이 전하는 말도 믿진 않았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의 영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과 연합된다. 그리하여 그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가면서 그 역사가 더욱 커져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五. 제자들에게 사명콰 능력의 역사를 주심(15-18)

.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음 없는 제자들을 책망하시던(14절) 주님께서 이제는 그 제자들을 쓰시려고 사명을 주셨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믿음이 적은 성도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여서라도 그들을 길러서 복음 운동에 충성하게 하신다.

.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세례는 씻어 정결케 한다는 뜻이다. 세례를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자에게 외부적으로 표(標)와 인(印)을 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믿음 없는 자에게는 세례를 주면 안 된다. 예수를 믿는 자는 물세례를 받지 않아도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죄인으로 판결 받아 지옥에 간다.

.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표적이 따르리니 하나님께서 표적을 행하게 하시는 목적은 신령한 진리를 나타내 보여 주기 위함이다. 육신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심령의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요, 오병이어의 표적은 예수의 살을 생명의 떡으로 나누어 주실 것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것이요, 심령의 병을 고치는 것이다. 귀신을 쫓아내며 믿는 자는 마귀를 이긴다. 예수의 이름을 힘입고 나아갈 때는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어쫓기도 하고, 모든 마귀의 역사를 다 이기게 된다. 그러므로 마귀의 종노릇하며 고생하고 있는 모든 자를 해방시켜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수 있다.

새 방언을 말하며( ) 방언의 헬라 원어 (글로싸)는 "혀, 말, 언어"라는 뜻이다. 새 방언은 새말이라는 것이다. 여기 방언은 말의 내용이 새 것이라는 것인데, 즉 새로 깨달은 진리를 자기 나라 말로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심령이 새롭게 되어 성경을 자기 나라 말로 말하는 것도 새 방언이다. 요한계시록14:3에 있는 새 노래도 심령이 새롭게 되어 노래한 것을 가리킨다. 그 노래의 내용이 새 것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심령이 새로워져서 부른 것을 말한다.

방언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①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한 방언은 세상 각국의 말을 배우지 않았으나 성령의 능력으로 말하게 하여 전도한 것이다.

② 고린도전서 14장의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있는데, 이 방언 말하는 것은 교회에 별로 유익이 없는 것처럼 말하였다. 통역이 없이는 말하지 말라 하였고, 예언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고, 일만 마더 방언보다 성경 말씀 다섯 마디 깨닫는 것이 낫다고 했다.

③ 본절의 새 방언은 새로 깨달은 진리를 자기 나라 말로 말하는 것과 심령이 새롭게 되어 성경 말씀을 증거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방언 중에 새 방언이 제일 귀중하고 자기에게나 교회에 큰 유익을 주는 것이다(방언에 대한 해석은 사도행전 강해서2:4 해석 참조). 이 방언을 신령한 뜻으로 해석하지 않고 성도가 실제로 다른 방언을 해야 한다고 해석한다면 다음절에 있는 뱀을 집는 일도 해야 한다. 미국의 어떤 교파에서는 교회에 뱀을 잡아다놓고 예배 시간에 뱀을 서로 집으며 예배 드린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만약 그들의 예배 방법이 옳다고 하면 그들은 또 여러 가지 독(毒)도 마셔야 한다. 왜냐하면 다음절에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 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뱀을 집으며 성도가 믿음의 길을 걸어 나아갈 때에 실제로 뱀에게 물려도 하나님의 보호로 해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행28:3-6참조). 또한 성도가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갈 때에 뱀과 같은 악한 자들이 핍박을 하고 고통을 주어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뜻이다.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이것은 성도가 믿음의 길을 걸어 나아갈 때에 원수들이 독한 욕설과 해독을 주어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로 해를 받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것은 기도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꼭 안수 기도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손을 얹지 않고 기도만 해도 된다.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면 낫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낫지 않는다. 무슨 병이나 기도하면 다 낫는다고 말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교회에도 환자가 있고 죽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면 꼭 나을 것을 믿고 구해야 한다.

六. 예수님의 승천과 제자들의 중거(19-20)

.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않으시니라

예수께서 베다니 앞 산에서 제자들에게 축복하시고 승천하셨다. 하나님 우편에 하나님 우편은 요긴한 자리요 귀한 자리이다. 예수님은 구속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셨으므로 가장 요긴한 자리에 앉게 되었고, 하나님이 가장 귀히 쓰는 영원한 그리스도가 되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전부 책임지고 계신다.

.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분부대로 나가서 복음을 힘써 전파하였고, 예수님은 그 복음 전하는 제자들과 함께 계셔서 친히 역사해 주셨으므로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났다.

따르는 표적으로 초대 교회 때에 많은 표적이 일어났다. 그 모든 표적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성도의 영적 생명이 살아나고, 심령의 병을 고쳐서 강건한 심령으로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하게 하는 데 있다. 이 일만 잘되어 나가면 육신의 병은 나아도 좋고 낫지 않아도 괜찮다. 그 이유는 신령한 참 표적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