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장에서 동족 상잔의 위기에 직면하였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면한 다윗의 위기는 본장에서도 계속된다. 전에 다윗에 의해 침공을 당하였던 아말렉이 다윗의 거처인 시글락을 공격하여 약탈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사로잡아 갔다(1-6절). 시글락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던 애굽 소년의 안내로 아말렉을 추격하였다(7-15절). 다윗은 승리를 자축하고 있는 아말렉을 새벽에 습격하여 대피하고 탈취하였던 가축과 여자들을 모두 되찾게 되었다(16-20절).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은 획득한 전리품을 모든 병사와 자신과 관계된 성읍들에 공평하게 분배하였다(21-30절).
31장 -길보아 전투의 결과 이스라엘이 참패를 당하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죽음을 맞게 되었다. 이로써 사울 왕정은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되고 사무엘하에서는 다윗의 통치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블레셋 인들은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 갑옷을 벗겨 블레셋 지역내에 두루 보내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던 사울은 죽어서까지 이방인들에 의해 큰 모욕을 당하였던 것이다. 한편, 길르앗 아베스 사람들은 예전에 사울이 암몬 족속으로부터 그들을 구해준 사실(11;1-11)을 기억하고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지내었다.
31장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죽음을 통해 이스라엘에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졌고 결국 이스라엘이 대패하고 말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사울을 버리셨으므로 결코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전쟁에서 패하여 도망가다 세 아들마저 죽음을 당한 사울은 상황이 절망적인 것을 깨닫고 자신의 칼 위에 엎드러져 자살하고 말았다(1-6절).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라는 영광의 자리에 앉은 사울은 스스로 교만하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을 물리친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목을 베고 그 갑옷을 아스다롯 신당에 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길르앗 사람들이 사울 가족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하고 칠 일을 금식하며 슬퍼하였다(7-13절). 이로서 사울의 시대가 가고 다윗을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사무엘하(감찰하시는 하나님)
1장 -본서는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던 다윗에 관한 기록이다. 사무엘상과 본서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본장에는 다윗이 초대 왕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듣고 크게 슬퍼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울의 전사 소식을 가지고 온 아말렉 인은 다윗에게서 큰 상금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자신이 사울을 죽였노라고 자랑했다.
1장은 사울 일가의 죽음을 알게 된 다윗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다. 아말렉을 진멸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온 다윗은 이틀 후에 사울을 자신이 죽였다고 자처하는 아말렉 소년으로부터 사울 일가의 죽음을 듣게 되었다(1-10절). 이에 다윗은 자신의 옷을 찢고 심히 슬퍼하며 아말렉 소년을 죽였다(11-16절). 비록 정직이었던 사울이지만 그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는 모습은 다윗의 인격을 잘 드러내 준다. 그리고 다윗은 비록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으나 용사였던 사울과 믿음의 친구 요나단을 찬양하는 노래를 직접 지어 책에 기록하고 후세에 남기도록 하였다(17-27절).
2장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즉위하자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다윗과 대치했다. 얼핏 생각하면, 사울 왕가를 이으려고 했던 아브넬의 행동은 너무도 당연한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정면으로 거스리는 행위였다. 기브온 옷을 사이에 두고 다윗 군대와 이스보셋 군대 간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는 마침내 다윗 군대의 승리로 마감되지만, 그 과정에서 아브넬이 요압의 아우인 아사헬을 살해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2장 사울은 죽었지만 남아 있는 사울의 추종자들로 인해 다윗은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많은 진통을 겪어야 했다. 본장은 사울의 남은 세력과 다윗 사이에 벌어진 내전을 기록하고 있다. 사울이 죽은 후 하나님의 명령으로 헤브론에 올라간 다윗은 거기서 유다의 왕으로 세워졌다(1-7절). 그러나 사울의 추종자들은 다윗을 반대하며 이스라엘 족속을 중심으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였다. 다윗과 전쟁을 벌인 이스라엘은 결국 대패하였고(8-17절), 도망가던 이스라엘의 군장 아브넬은 다윗의 신하인 아사헬을 전사시켰다(18-23절). 아브넬은 베냐민 족속을 모아 마하나임으로 도피하고 요압을 비롯한 다윗의 군대는 헤브론으로 돌아갔다(24-32절).
3장 -다윗가와 사울가 사이에 오랜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사울가는 더욱 몰락해 갔던 반면에 다윗가는 점점 강성해졌다. 2-5절에 언급된 바 다윗 아들들의 출생 기사는 다윗가의 강성함을 보여 주려는 의도에서 소개 되었다. 다윗이 여러 아내들을 거느린 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통념으로 받아들어졌지만, 성경의 가르침과는 어긋나는 일이었다(창2;24,신24;1-4), 한편, 사울가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은 사울의 첩과 통간함으로써 이스보셋의 분노를 유발하였다. 그래서 기회주의자 아브넬은 다윗 편으로 전향하였다. 다윗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급적 억제하고 통일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아브넬에게 관대하게 대했으며, 이로 인해 요압이 불만을 품고서 마침내 아브넬을 살해하고 말았다.
3장은 오랜 내전을 통하여 드디어 사울 일가가 점점 쇠퇴해 가고 다윗은 전국에 걸쳐 강력한 통치권을 구축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오랜 내전 동안 다윗은 헤브론에서 많은 자식을 생산하였고 이스라엘의 권력을 잡은 아브넬은 마음대로 행동하며 악을 행하였다(1-11절). 그러다가 이스보셋이 자신의 죄를 질책하자 아브넬은 다윗에게 밀사를 보내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넘기고자 하였다(12-16절). 다윗의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아브넬은 종자를 데리고 헤브론으로 가 다윗에게 투항해 버렸다(17-21절). 그러나 전에 동생인 아사헬을 아브넬의 손에 잃은 요압은 다윗이 아브넬을 사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계략을 써서 죽였다(22-30절). 이는 신의를 배반하고 권력 야욕에 빠진 자의 비참한 말로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다윗은 야욕가인 아브넬의 죽음마저 진심으로 슬퍼하며 성대한 장사를 지내 줌으로 통치자로서의 덕스러운 품성을 나타내었다(31-39절).
4장 -사울가의 내분과 몰락은 가속화되었고, 마침내 이스보셋은 레갑과 바아나라고 하는 두 측근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그들은 다윗에게 인정받으려는 속셈에서 이스보셋의 머리를 베어 다윗을 찾아갔다. 하지만 다윗은 그들의 간교한 저의를 간파하고서 그들을 처단하였다. 이는 통일 왕국을 이룩함에 있어 사람의 권모술수나 폭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를 바탕으로 삼고자 했던 다윗의 의중을 표현한 것이다. 4절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극적으로 도망하는 중에 절뚝발이가 된 상황을 잠시 소개하고 있다.
4장은 아브넬의 배신과 죽음을 계기로 드디어 오랜 기간 다윗과 사울 일가 사이에 벌어졌던 내전이 종결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아브겔이 헤브론에서 죽음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이스라엘 왕 이스보셋은 자포자기의 상태에 놓이고 말았다(1-3절). 한편 본장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소개함으로, 후에 다윗이 므비보셋을 보살핌으로 요나단과의 우정을 지켜 가게 되는 장면의 연결 고리를 제공해 준다(4절). 사울 일가의 종말이 임박하자 이스라엘의 군장이었던 레갑과 바아나는 이스보셋을 죽이고 다윗에게 투항하였다(5-8절). 그러나 다윗은 왕을 배신하고 자신들만 생명을 건지려고 한 두 사람을 죽이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헤브론에 있는 아브넬의 무덤에 장사하였다(9-12절). 이로써 다윗은 파란만장했던 고난의 시절을 넘어서서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새로운 출발의 기초를 확고히 하였다.
5장 -마침내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의 명실상부한 왕이 되었다. 이로써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이 마침내 성취되었다. 다윗은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분이 여호와시라는 사실과 자신에게 주어진 왕권이 결국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어서 그는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도움으로 삼았으며, 이스라엘에게 오랫동안 가시와 같은 존재였던 블레셋을 물리침으로써 통일 왕국의 기반을 점차로 다져나갔다.
5장은 사울 일가와의 오랜 내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다윗이 마침내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보셋의 죽음을 끝으로 사울 일가의 종말을 보게 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하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1-5절). 다윗은 왕으로 추대된 후 그의 첫 업적으로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여부스 족속을 격멸시키고 그들의 성읍인 예루살렘에 성을 세우고 다윗 성이라 명하고 그 곳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6-16멀). 한편 다윗의 즉위 소식을 들은 블레셋 족속들은 불안을 느끼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지만 오히려 다윗에 의해 크게 패하고 말았다(17-25절).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첫 전쟁에서부터 승리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확실히 보여 주신 것이다.
6장 -다윗은 자신의 왕권을 물론이고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가 바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데에 있음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왕위에 오른 후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을 추진했다. 언약궤는 블레셋에 의해 빼앗겼다가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진 이후부터 수십 년동안 계속 그곳에 있었다. 언약궤를 옮기는 첫 번째 시도는 그 방법을 잘 알지 못한 탓에 실패 하였다. 나중에는 레위인이 어깨로 메어 운반함으로써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다윗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마치 어린 아이처럼 뛰놀며 춤추었다. 그의 아내 미갈은 이러한 행동을 업신여기다가 자식을 갖지 못하는 벌을 받았다.
6장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온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다윗은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구심점이었던 법궤를 새로운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의 생존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인식한 다윗의 신앙적 행동이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손으로 들어서 옮기게 되어 있는 법궤를 수레로 운반하려다가 웃사가 죽는 사고가 발생하자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여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를 두었다(1-11절). 그 후 하나님이 법궤로 인해 오벧에돔의 집에 축복하심을 들을 다윗은 율법이 명한 대로 제사장으로 하여금 법궤를 어깨에 메게 하고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모셔 왔다. 이로 인해 기쁨에 찬 다윗은 화목제와 번제를 드리고 맥 성들과 함께 잔치를 배설하였다(12-19절). 한편 자신의 옷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법궤를 맞이한 기쁨으로 인해 춤추었던 다윗을 비난하던 미갈은 하나님에 의해 자식 을 못 낳는 징계를 당하게 되었다(20-23절).
7장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자 여호와를 위해 성전을 건립하기로 결심하고 선지자 나단에게 말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나단에게 나타나사 다윗을 향한 메시지를 전해 주셨다. 이 메시지의 내용이 그 유명한 다윗 언약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세 가지를 약속하셨다. 첫째, 항상 다윗과 함께 하사 그를 존귀케 하시리라는 약속이고(9절) 둘째, 다윗의 아들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케 하실 것이라는 약속이다(13절). 셋째, 다윗가의 그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약속이다(16절), 특히 세 번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 18절 이하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해 다윗이 감사드리며 소원을 간구한 내용이다.
7장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소개하고 있다. 통일 왕국을 안정된 기반 위에 올려 놓은 다윗은 이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은 이를 허락지 않으셨다(1-7절). 그러나 대신 나간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 게 영원한 축복의 언약을 주셨다(8-17절). 하나님은 이 언약을 통해 다윗의 후손인 솔로몬이 얻을 번영을 약속하시며 그 속에서 장차 인류의 메시야이며 구속자로 오실 그리스도를 계시하셨다. 이에 다윗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오직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라고 서약하였다(18-29절).
8장 -본장의 기록은 다윗 언약에 관한 내용인 7장 사건의 전후에 관한 것으로서, 다윗 왕국이 확정되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다윗은 서쪽으로는 블레셋(1절), 동쪽으로는 모압(2절), 북쪽으로는 소바와 다메섹과 하맛(3-12절), 그리고 남쪽으로는 에돔(13-14절)을 복속시킴으로써 국경을 한층 확장시켰다. 이처럼 밖을 향한 정복 사업과 아울러, 다윗은 내치에도 힘썼다. 그의 통치 원칙은 바로 공과 의였다. 16-18절은 당시 다윗의 통치와 정복을 튼튼히 뒷받침하였던 중요한 신하들을 소개한 내용이다.
8장 새로운 도성의 건립을 통해 북이스라엘 지파들과 유다를 화해시키고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 옴으로써 종교적 구심점을 확립한 다윗은 이제 본격적으로 주변 국가의 정복에 나섰다. 이 정복 전쟁에서 다윗은 가장 적대적인 블레셋 족속을 위시하여 모압과 소바, 아람, 암몬, 아말렉, 에돔 등을 정복하여 노획물을 취하고 그들을 이스라엘의 종으로 삼았다(1-14절). 이로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땅의 축복은 역사 속에서 실현되어 가고 있었다. 한편 다윗은 강력한 통일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 행정 조직을 개편하였다(15-18절). 이런 점에서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왕정 시대를 열었다면 다윗은 본격적인 왕정의 정치, 군사, 제도적인 틀을 확고히 제정한 인물이었다.
9장 -다윗이 사울가에 은총을 베푼 사실이 소개된다. 애당초 다윗으로서는 사울가와 대립할 의사가 없었고, 특히 요나단의 깊은 우정에 대해 각별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살려 주었었다. 그리고 사울가에 대해 은혜를 베풀기로 약속하였다(삼상20;42, 24;21). 그리하여 안팎으로 나라를 튼튼하게 다진 시점에 이르러 다윗은 사울가를 돌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수소문 끝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은 그는,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발을 모두 돌려 주었으며 평생 자신의 상에서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9장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만이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인물이었다. 본장은 그런 다윗의 아름다운 성품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상 내전을 통해 새로 왕이 된 자들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전왕의 일족을 모조리 죽이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진정한 우정을 나누었던 요나단을 기억하여 그 후손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였다. 과거에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로부터 요나단의 아들인 절뚝 발이 므비보셋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그를 데려와 사울의 영토를 다 그에게 주고 자신과 같은 상에서 먹는 은혜를 베풀었다(1-8절). 또한 그에게 종을 주고 시바로 하여금 온 가족이 므비보셋을 섬기도록 명하였다. 그 이후로 다윗은 므비보셋을 자신의 아들인 왕자와 같이 대우하였다(9-13절).
10장 -다윗은 암몬과 아람 등의 연합군과의 두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그들을 물리쳤다. 이 전쟁의 발단은, 암몬 왕 나하스를 조문하러 간 다윗의 신하들을 암몬 왕 하눈이 모욕한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다윗 왕국에 대한 암몬의 경계심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1차 전투에서 요압이 인솔하는 이스라엘 군대가 암몬 연합군을 격퇴하였다. 이에 아람의 하닷에셀 왕이 도처에서 아람 군대를 증원하였다. 그리하여 벌어진 2차 전투에서는 다윗이 몸소 전투에 참여하여 그 연합군을 물리치고 그 들을 복속시켰다.
10장은 다윗과 암몬, 모압 동맹군 사이에 벌어진 전쟁 기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전쟁은 삼하 8장에 나타난 정복 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가나안 족속의 연합군이 먼저 다윗에게 대항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하였다. 암몬 왕이 죽자 다윗은 진심으로 조문 사절을 보냈으나 암몬 왕 하눈은 진의를 의심하여 조문 사절을 모욕하고 돌려보냈다. 이 일 후에 하눈은 다윗의 분노를 두려워하여 용병을 규합하고 먼저 전쟁을 걸었다(1-8절). 그러나 오히려 다윗이 파견한 요압 군대에게 대패하고 말았다(9-14절). 1차 전투에서 패한 아람 군대는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전투에 임했으나 이번에는 다윗이 직접 이끈 군대에 의해 격파당하고 말았다(15-19절).
11장 -본장에는 다윗이 일생의 큰 과오를 저지르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때는 암몬과의 3차 전투 중이었다. 다윗은 목욕하는 밧세바의 외모에 반하여 그녀를 불러 동침하였고, 나중에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고는 그 남편 우리아를 전장에서 불러들여 밧세바와 동침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충직한 신하였던 우리아는 자신만 편히 집으로 가기를 거부하였으며, 곧장 전쟁터로 향했다. 이에 다윗은 요압에게 전갈을 보내어 우리아를 전사시키게 했다. 간음과 살인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신정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대죄였다.
11장은 유명한 다윗과 밧세바의 간음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요압을 필두로 이스라엘 군대를 암몬 정복 전쟁에 보내고 왕궁에 남은 다윗은 마침 목욕하던 밧세바를 발견하고 그를 데려다가 동침하였다(1-5절). 그 후에 밧세바가 잉태하자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전장에 나간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불러 동침케 하였다. 그러나 우리아가 이를 거절하자(6-13절)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 전장에서 전사하도록 만들라고 명하였다(14-21절). 결국 요압의 간계로 우리아는 전사하였고 다윗은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았다(22-27절). 본장은 성군인 다윗의 범죄를 통해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죄인임을 보여 주고 있다.
12장 -여호와께서는 대죄를 지은 다윗을 책망하기 위해 선지자 나단을 보내셨다. 나단은 비유를 통해 다윗에게 죄를 깨우쳤으며,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 집안에 재난이 닥칠 것을 예언하였다. 그 재난의 하나로서, 밧세바의 몸에서 난 아들이 죽었다. 이때 다윗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아들이 죽은 데 대해 가슴이 찢어질 듯하였으나, 여호와의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서 슬픔을 거두며 여호와께 경배하였다. 이시기에 지은 것이 바로 시편 51편이다. 이 시편을 통해 우리는, 일시적으로 정욕의 노예가 되어 범죄 하였으나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서는 한 인간의 진실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12장은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인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질책을 받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나단 선지자는 비유를 통해 다윗의 범죄에 대해 책망하였다(1-12절). 이에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았다. 그러나 범죄에 대한 징벌로 밧세바 사이에 낳은 첫 아들을 잃고 말았다. 그 후에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솔로몬을 낳게 하셨다(13-25절). 이처럼 비록 범죄하였으나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습이야말로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근거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그 동안 요압은 암몬 족속의 수도 랍바를 정복함으로써 2차 정복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26-31절).
13장 -계속해서 다윗의 집안에 임한 재난들이 소개된다. 다윗의 장자 암논은 이복 누이 다말에게 음욕을 품고서 기어이 강간하였다. 이는 다윗이 많은 처첩들을 거느리고 그 자녀에게 신앙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데서 초래된 비극이기도 하다. 그 소식을 들은 압살롬은 자기 친누이의 고통에 격분하여 암논에게 복수하였다. 만일 다윗이 장자 암논에게 적절한 징벌만 가했더라면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하고 또한 압살롬이 장차 모반을 꾀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편, 암논을 죽인 압살롬은 외조부의 나라인 그술 땅으로 도피하였다.
13장부터 다윗 가문에 계속되는 불행이 시작되고 있다. 이 뿌린 죄의 결과를 거두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본장은 죄에 대해서는 한호리라도 갚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보여 준다. 다윗의 장자인 암논의 이복 누이 다말로 인해 상사병을 얻었다. 마침 이를 알게 된 친구 요나답의 간계로 암논은 다말을 강간하였다(1-14절). 암논은 다말을 범한 후에 미워하며 버리고 말았다. 이에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은 은밀한 중에 복수를 도모하였다(15-22절). 이 년 후 압살롬은 양털 깎는 날 모든 왕자들을 초청하고는 미리 계획한 대로 암논을 살해하였다(23-29절).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통곡하였고 압살롬은 다윗의 분노를 피해 그 술로 도망가 삼 년 동안 숨어 지냈다(30-39절).
14장 -요압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말미암아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사실이 나온다. 압살롬 때문에 고민하는 다윗의 심정을 간파한 요압은 드고아의 한 여인을 보내어 다윗을 설득케 하였다. 그 여인은 다윗 앞에서 자신의 딱한 처지를 호소하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가, 압살롬을 돌아오게 해야 된다는 요지의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다윗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실을 은근히 상기시키면서 압살롬을 용서하는 것이 좋다고 설득하였다(14절). 그래서 왕은 압살롬의 귀환을 허락하였지만, 2년 간이나 그와 대면하지 않았다. 압살롬의 모반 계획이 이시기에 싹텄을 것으로 짐작된다.
14장 요압이 그술로 도피한 압살롬을 지혜로 귀환시킨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다윗이 암논을 살해하고 도망간 압살롬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요압은 드고아 여인을 이용해 다윗이 압살롬을 용서하도록 도모하였다(1-11절). 드고아 여인의 청원을 들은 다윗은 그것이 요압이 꾸민 일임을 알고 압살롬의 귀환을 허락하였다(12-24절).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 이 년이 지나도록 다윗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가 요압에게 강권하여 부왕을 만나게 되고 부자간에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지게 된다(25-33절).
15장 -요압의 중재로 다윗과 대면하고 나온 압살롬은 어전 재판에 관여하는 등 백성들의 환심을 사는 데에 몰두하였으며, 마침내 4년 후에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그의 나이는 약 30세 가랑이었다. 그 소식을 접한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동족상잔의 피를 흘리기 원치 않았던 까닭에 전략상 도피하는 쪽을 택하였다. 자기 아들의 반역을 피해 달아나는 아비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시련과 고통의 책임이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이미 통감하고 있었다(26절), 또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다면 자신이 환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서, 제사장 사독과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되돌려 보내었다.
15장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가정의 환난으로 끝나지 않았다. 본장 부터는 다윗의 통치 기간 중 최대의 위기를 초래한 압살롬의 반역 사건이 시작된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압살롬은 은밀히 세력을 규합하여 반역을 도모하였다. 그리고 백성들의 재판을 가로채서 민심을 얻은 후, 다윗을 속이고 헤브론으로 가서 본격적인 반역을 일으켰다(1-12절).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신하들과 함께 도망 길에 오르고 가드 사람 잇대도 다윗과 합류하였다(13-23절). 한편 사독을 비롯을 레위인들이 언약궤를 메고 다윗을 따르려고 하자 다윗은 그들을 만류하고 언약궤를 다시 예루살렘에 안치하도록 명하였다. 이는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다윗의 믿음을 드러내 준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따르려는 친구 후새를 만류하고 압살롬에게 남아 정보를 파악해서 자신에게 알려 줄 것을 요청하였다(24-37절).
16장 -본장은 다윗이 피난 길에서 당한 몇 가지 일들을 소개한다. 므비보셋의 종 시바는 다윗을 만나 므비보셋을 모함하고서 그 소유를 자신이 차지하였다. 또 사울가 출신인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하였으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겸허하게 돌아보면서 인내하였다. 한편,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압살롬은 당대의 모략가였던 아히도벨의 계략을 받아들여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하였다. 아히도벨의 이 계략은 압살롬으로 하여금 왕위 찬탈 의지를 더욱 확고히 갖게 하려는 의도를 내포한 것이었다. 또한 이로써 다윗이 저지른 밧세바 사건에 대한 나단의 예언이 성취된 셈이었다(12;11).
16장 압살롬의 반역으토 인한 다윗의 고난이 본장에서도 계속된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피난길에 오르는 동안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의 사환인 시바는 다윗을 속이고 므비보셋을 모략하여 그의 재산을 가로챘다(1-4절). 뿐만 아니라 사울 족속의 하나인 시므이는 다윗과 신하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조롱하며 저주하였다. 이에 대해 분격한 신하들은 그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다윗은 그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여기며 인내하였다(5-14절). 한편 다윗의 부탁으로 예루살렘에 남은 후새는 거짓으로 압살롬에게 투항하고,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함으로써 권력 장악을 공식화하도록 하였다(15-23절). 이로써 다윗의 고난은 가정에서 권력으로 마침내 인간적인 배신과 모멸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17장 -당대 최고의 모략가 아히도벨이 압살롬에 가담하고 있었던 까닭에 압살롬의 모반은 성공을 거두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은 다윗을 향해 있었다. 아히도벨은 지친 다윗 군대를 기습 공격하여 전멸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과연 그의 모략은 탁월한 것이었다. 이때 다윗의 친구이자 심복으로서 압살롬 진영에 가담하는 척하고 있었던 후새는 아히도벨과 정반대되는 모략을 제시했다. 그것인즉, 다윗은 뛰어난 방법가요, 그 신하들 중에는 탁월한 용사들이 많으므로 섣불리 기습 공격을 할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모은 다음 공격하자고 하는 지연 작전이었다. 압살롬이 후세의 모략을 받아들이자 아히도벨은 스스로 자결하였다.
17장 도성인 예루살렘을 점령함으로써 압살롬의 반역은 성공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악한 압살롬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그를 위한 심판을 시작하셨다. 압살롬의 모사인 아히도벨은 도망가는 다윗을 죽임으로 후환을 완전히 없애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새의 지략으로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략을 따르지 않았다(1-14절). 이는 다윗을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또한 후새는 이 사실을 다윗에게 알리고 빨리 피하게 하여 위기를 모면시켰다(15-22절). 이로 인해 아히도벨은 반역이 실패로 돌아갈 것을 예상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는다. 그리고 압살롬은 다윗을 추격하지만 백성들은 다윗을 환대하며 위로하였다(23-29절).
18장 -압살롬의 반역은 실패로 마감되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내어 쫓긴 신세였지만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전투 과정에서 요압은 상수리나무에 달린 압살롬을 자기 손으로 찔러 죽였다. 이 비보를 접한 다윗은 크게 슬퍼하며 울었다. 한편, 요압은 승전보를 전하려는 아히마아스를 제지했다. 왜냐하면 그는 압살롬의 사망 소식을 접한 다윗의 심정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윗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반역을 잠재우는 첩경이 그 우두머리인 압살롬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왕의 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자기 소신대로 행했다. 이외에도 요압은 여러 차례에 걸쳐 다윗의 뜻과는 반대되는 일을 행했다(3;39;18;5.14;왕상2;5,6).
18장은 그토록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하고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이 결국 거사를 실패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요단을 건너 마하나임에 도착한 다윗은 드디어 전열을 정비하고 요압을 앞세워 압살롬과의 본격적인 전투를 개시하였다(1-5절). 그 결과 모사 아히도벨을 잃은 압살롬의 군대는 대패하게 된다. 그리고 도망가다 상수리나무에 걸린 압살롬은 요압과 그의 병사들에게 죽음을 당하였다(6-15절). 다윗의 군사들은 압살롬의 시신을 구덩이에 던지고 그 위에 심히 큰 돌무더기를 쌓았다. 그 후에 두 전령으로부터 압살롬의 죽음을 들은 다윗은 크게 애통하며 슬퍼하였다(16-33절). 결국 아버지에게 반역한 압살롬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고 범죄한 다윗은 그 대가로 세 아들을 잃고 말았다. 본장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보여 주고 있다.
19장 -압살롬 반역 사건이 남긴 상처는 너무도 컸다. 이로 인해 다윗은 아들을 잃었고 이스라엘 지파와의 관계가 소원(疏遠)해졌으며, 군대 장관 요압과의 감정도 극히 나빠졌다. 다윗으로서는 더 이상 자식 잃은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왕위 복귀 문제와 관련하여 유다 지파에게 주도권을 주었지만, 그다지 지혜로운 처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치는 다른 지파들의 시기심을 유발했기 때문이었다(41-42절). 한편, 다윗은 도피 시절에 자신을 모함했던 시므이를 너그럽게 용서하였으며 주인의 소유를 가로채려 했던 시바도 용서했다. 하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뉘우쳤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반면에, 다윗의 피신 시절에 그를 도왔던 바르실래는 함께 왕궁으로 가자는 왕의 권면을 겸손히 사양하는 충실한 사람이었다.
19장 압살롬의 죽음으로 반역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그 후유증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본장은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하고 뒷수습을 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반란을 진압한 요압은 다윗이 압살롬으로 인해 슬픔에 빠진 것을 보고 기운을 회복하여 민심을 수습하도록 권고하였다(1-8절). 이에 이스라엘 온 지파들도 다윗을 맞이하기로 합의하고 유다 지파가 앞장서서 길갈로 나아가 다윗을 맞이하였다(9-15절). 한편 다윗이 도망갈 때 그를 조롱하며 저주하였던 시므이는 목숨이 위험하게 되자 다윗에게 사죄하였고 다윗은 그를 용서하였다. 또한 므비보셋은 그의 종 시바의 간계를 고함으로써 다윗의 오해를 풀게 되었다(16-30절). 마지막으로 마하나임에서 다윗을 공궤하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와 작별한 다윗은 길갈로 돌아왔으나 아직까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 사이의 깊은 감정은 풀리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었다(31-43절).
20장 -베냐민 지파 출신의 세바가 이스라엘 백성을 충동질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한 사건이 수록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요압은 아마사를 살해했다. 이는 다윗이 요압 대신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임명한 데 따른 질투와 적개심의 표출이었다. 아마사를 죽인 요압은 군대를 이끌고 세바의 거점이었던 아벨 성으로 갔다. 그리고는 그 성을 에워싸고 함락시킬 준비를 했다. 이때 그 성의 한 지혜로운 여인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세바가 체포되고 그의 머리가 요압에게 인계됨으로써, 피비린내 나는 살육극이 예방되었다.
20장은 다윗의 예루살렘 귀환을 계기로 나타난 유다와 이스라엘 지파 사이의 불화가 마침내 세바의 난으로 터진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환궁한 다윗은 압살롬과 동침한 후궁들을 별실에 가두었다. 그리고 마침 발생한 세바의 반역을 진압하기 위해 아비새를 파견하였다(1-7절). 한편 이 와중에서 요압은 자기를 대신하여 다윗의 군장이 된 아마사를 죽이고 말았다. 다윗의 경솔한 처사로 인해 빚어진 참극이었다(8-13절). 그 후 세바를 추격하여 아벨 성을 포위한 요압은 지혜로운 딴 여인의 도움으로 전투를 벌이지 않고 세바를 죽임으로써 반란을 진압하였다. 그리고 다윗은 이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행정 조직을 갖추었다(14-26절).
21장 -여기서부터 본서 마지막까지는 사무엘서에 붙은 부록으로서, 역사적 순서와 상관없이 다윗통치와 관련하여 첨가된 내용을 포함. 기록한 자료이다. 먼저, 본장 1-14절에서는 다윗 시대에 있었던 3년 기근에 관한 내용이다. 다윗은 이 기근이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고서 그 원인은 사울 왕이 기브온 사람들을 무고히 죽인데 있었다. 즉, 사울은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브온 사람들과 맺은 언약을 무시했었던 것이다(수9;15,26,27). 다윗이 이를 잘 파악하고서 적절히 조처함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는 그쳤다. 이어지는 내용(15-22절)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다윗의 용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한 것이다.
21장은 이스라엘에 닥친 삼 년 기근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내용상 압살롬의 반란 이전에 발생하였다. 사울이 과거에 여호수아의 약속을 어기고(참조, 수9:3-27) 기브온 족족을 격멸한 죄로 다윗 시대에 삼 년의 기근이 발생하였다. 이에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제외한 사울 일가를 그들에게 내어 주어 죽이게 함으로써 기브온의 원한을 풀어 주었다(1-9절). 그리고 다윗은 그 동안 방치된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취해서 베냐민 땅 셀라에 장사지냈다(10-14절). 그 후 블레셋과의 전쟁이 발생하였고 다윗은 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본장은 이 전투에서 용맹을 발휘한 여러 장수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15-22절).
22장 -시편 18편과 유사한 내용인 본장의 노래는, 다윗이 지난 날을 회고하며 여호와의 크신 구원을 찬양한 시이다. 작시연대는 대략 다윗이 이방대적들을 정복한 후 밧세바와 더불어 범죄 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다윗은 현재 다다른 자신의 위치와 이스라엘의 번영이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의 은혜 덕분임을 절감하였다. 그리고 향후로도 오직 그분의 주권에 순종함으로써 대적들을 능히 물리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였다. 특히, 2,3절에서는 구원의 하나님을 가리켜 반석, 요새, 바위, 뿔등으로 표현하였다.
22장은 누구보다도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다윗이 그의 삶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는 노래를 싣고 있다. 먼저 다윗은 자신의 참된 반석이며 구원자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였다(1-7절). 그리고 그런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권능이 있고 우주를 창조하신 분임을 고백한다(8-16절). 그러나 그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라고 무조건 위하시는 분이 아니라 공의로 행하시는 분이다(17-28절). 마지막으로 다윗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인도하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회상하며(29-46절), 하나님께 영원한 찬양을 돌리고 있다(47-51절).
23장 -1-7절에 수록된 다윗의 마지막 말은, 그가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교훈과 당부를 베풀던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자로서의 합당한 자세와 이에 따른 축복을 노래하고, 이어 사악한 자에게 임할 징벌을 경고하고 있다. 실제적인 내용은 매우 짧지만, 이 구절들 속에는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는 다윗의 심경이 요약되어 있다. 무명의 목자가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 그 과정에서 무수한 시련을 당한 일, 이방 세력 정복, 그리고 저주스러운 범죄와 회개 등, 이 모든 사건들을 통해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롭고 은혜로우신 섭리를 절감하였을 것이다. 한편, 8절 이하는 다윗을 도와 이스라엘을 일으켜 세운 탁월한 용사들의 명단과 그들의 업적에 관한 기록이다.
23장의 노래가 다윗이 통치 초기에 지어진 것이라면 본장은 말년에 그의 삶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지은 노래와 회고를 기록하고 있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영원한 언약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였다(1-7절).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부흥에 대한 소망이지만, 장차 있을 메시야 왕국에 대한 소망도 동시에 바라본 고백이었다. 그리고 다윗은 지금까지 자신을 도와 왕국을 건설하고 발전시킨 용사들을 소개한다.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은 요셉밧세벳과 엘르아살, 삼마와 블레쳇을 격파한 일등 공신들이었다(8-21절). 그 외에 희생적으로 다윗을 섬긴 아비새, 브나야와 또한 명의 용사(22-23절)와 30인의 용사를 회고하고 있다(24-39절).
24장 -하나님이 징계를 통해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 각성에 이르게 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다. 다윗은 한때 자만에 빠져 영적으로 둔감해져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였다. 인구조사를 시킨 것도 다윗의 이러한 자만심을 반영한 것이다. 즉, 그는 인구 조사를 통해 자신의 영예와 막강한 국방력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이 일의 과오를 스스로 인정했을 때, 하나님은 세 가지 징벌을 제시하면서 그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셨다. 결국 온역으로 인해 칠만 명이 죽었다. 한편, 다윗은 여호와의 메시지를 대언한 선지자 갓의 권면대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림으로써 죄 사함 받는 의식을 거행했다.
24장은 다윗이 통치 기간 중 범한 두번째의 심각한 죄와 그 결과로 빚어진 재앙을 기록하고 있다. 다윗은 요압으로 하여금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남자를 기준으로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명하였다(1-9절). 이는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였던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고 다윗은 회개하였다(10-14절). 그러나 결국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전역에 3일 동안 온역이 임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였다(15-17절). 그 후에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서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비로소 이스라엘에서 재앙이 그쳤다(18-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