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을 잃지말자


비젼을 잃지 말자 /수1:2-4

<本文>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수1:2-4)


<序言>
지난 주간에 서울에 갔다가 차를 타고 지나오면서 남대문(숭례문)을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 남대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놀던 생각이 났습니다. \'남남남대문을 열어라~\' 하면서 말입니다. 국보 1호인 남대문이 불타서 한국민 모두가 슬퍼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국화 꽃을 갖다 놓기도 합니다. 그 슬픔을 이용해서 불탄 다음날 60대 할머니가 잔디밭에 제사 상을 차려 놓고 부조 돈을 받다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화재범은 60대 할아버지였습니다.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고 남대문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심리 전문가들은 개인의 분노를 불특정다수의 사회에 표출한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힘들면 특별한 이유없이 남의 자동차나 집이나 산이나 공공건물에 불을 지르기도 합니다. 요즈음에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면 모두 살기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본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위기감은 더욱 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 동안 헤매다가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꿈에 그리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그런데 지도자 모세가 죽었습니다 (1절, 신34:5-6).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에서 40년동안 인도하던 지도자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고 하나님과 대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고 하나님의 진노를 중재하기도 한 지도자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요단강이 건너 바로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강한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38년 전에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던 정탐꾼들에 의하면 아낙 자손의 후손 곧 전설적인 용사들 \'네피림\'도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 선 이스라엘 족장들은 스스로 메뚜기와 같이 여길 정도였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광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가나안을 향해 진격하기도 망설여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일어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本論>
1. 비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평택기도연합회에서 주관한 금요연합집회에 명성훈 목사가 강사로 왔습니다. 이 분은 한국교회에 목회자로보다는 목회성장연구소 소장으로 더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그 분이 설교 중에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한 것을 들었습니다. 개구리 두마리가 있었습니다. 한마리는 부정적인 개구리이고 한마리는 긍정적인 개구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마리가 같이 우유통에 빠졌습니다. 부정적인 개구리는 \'아이구 이제 나는 죽었구나\' 하면서 삶을 포기하고 죽었습니다. 긍정적인 개구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헤엄을 쳤습니다. 밤새 헤엄을 치다 보니 위에 우유가 점점 굳어져 버터가 되었다고 합니다.

래서 개구리는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성훈 목사님은 이 개구리를 \'할렐루야 개구리\'로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죽을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자는 살게 되고 그 꿈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비젼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고 계속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2-4절).

이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미 주셨다는 것입니다.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이미 주기로 결정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남쪽으로 신 광야로 불리는 아라비아 광야에서부터 북쪽으로 레바논에 이르고 동쪽으로 유브라데 강에서 서쪽으로 대해라 불리는 지중해에 이르는 광활한 땅을 이미 주셨다는 것입니다.

430년 전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한 이상적인 국경입니다 (창15:15-18). 또한 모세에게 약속한 땅입니다 (민34:1-14, 신11:24). 그 땅에서 살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아 주시겠다는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는 약속이었습니다 (신11:12).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목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이스라엘 곧 참된 언약민(言約民)입니다 (롬2:28-29).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된 복음 사역을 맡기시고 영광된 하나님 나라를 허락하시고 영광된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고 꿈이고 비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젼은 우리가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큽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큰 비젼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음에 그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세기13:14-17에서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11:1-2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바라본 대로 됩니다. 추구한대로 됩니다. 소원대로 됩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비전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2. 비젼을 실천해야 합니다.

\'마시멜로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햇살이 뜨거운 어느 여름날 오후, 개구리 세 마리가 나뭇잎에 올라탄 채 유유히 강물에 떠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나뭇잎이 강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그 중 한 마리가 갑자기 일어나 결심했다는 듯이 단호하게 외쳤다. 너무 더워 난 물 속으로 뛰어들 테야! 다른 개구리들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독자에게 질문합니다.

\'자 이제 나뭇잎에는 몇 마리의 개구리가 남았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마리라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틀렸다는 것입니다. 나뭇잎 위에는 여전히 세 마리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한 마리가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아직 뛰어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마리가 정말로 뛰어들었을지 아니면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다시 앉았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결심과 실천은 다른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비젼을 가졌으면 그 비젼을 이루기 위한 실천을 해야 합니다. 원대한 비젼을 이루기 위해 발을 한 걸음 내딛기 시작해야 합니다.

정서가 불안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기만 하면 종이를 찢었습니다. 어떤 병원에 갔는데 그 병원에서는 과거의 상처 문제로 접근했습니다. \"혹시 어렸을 때 종이 뭉치를 맞은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른 병원에 갔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환경문제로 접근했습니다. \"혹시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종이 공장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특별한 방도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신병원을 찾았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저는 정서가 불안해서 앉기만 하면 종이를 찢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종이 찢지마!\" 그는 종이를 찢지 않았습니다. 분석이 중요하지만 때론 실천이 더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계획과 분석이 중요한 것이지만 분석만하고 있다가 정작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비젼을 이룰 수 없습니다. 비젼을 가지는 것과 이루는 것은 믿음에 속한 것입니다. 믿음은 분석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3절에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광활한 가나안 땅을 주셨을지라도 그것을 발로 밟는 것만이 이스라엘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도 아브라함이 들어가 발로 밟는 곳만이 아브라함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허락한 가나안 땅도 정복해 들어가 취한 것만이 이스라엘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때에 하나님이 허락한 딸을 다 취한 것이 아니고 솔로몬 왕 때에 완전히 취하게 됩니다 (왕상4:21).

영적으로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육적으로 지혜와 재능과 물질 등을 허락했습니다. 그 복은 바라보고 정복해 들어가는 자의 것입니다. 정복해 들어간 만큼 자기의 것이 됩니다. 마태복음11:12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비전을 바라본 만큼, 믿음으로 하나님을 순종한 만큼 그 비전이 실상이 됩니다 (히11:1-2).


<結言>
아무리 개인적으로 힘들어도, 가정적으로 힘들어도, 교회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비젼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목적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합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비젼을 향해 발을 내 딛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바라고 비젼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수1:9). 이사야에게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했습니다 (사4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