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수1:1-9 할렐루야! 1월 셋째 주일입니다. 성전건축의 일이 여러 가지로 지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오늘 본문을 보면 1절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모세가 죽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절대적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마다 그를 향해 불평과 원망을 했지만, 이것은 그만큼 모세를 믿고 의지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의지하던 모세가 죽었다는 것은 큰 충격이요, 어려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울까요? 사실 우리는 사람들을 많이 의지하고, 바라보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의지하면 결국 상처만 남게 됩니다. 우리도 믿었던 사람이 죽거나 우리 곁을 떠나거나 충성하는 교인이 교회를 떠나면 “이제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도 사는 법이 있습니다. 큰 말이 나가면 작은 말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인도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분명히 그 때는 위기의 때였습니다. 위기라는 말은 “위험은 또한 기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고난의 때를 잘 활용하면 성공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현대그룹 고 정주영회장의 빈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주영회장이 가난할 때 인천 부두 하역장에서 일하는데, 밤마다 잠을 자려면 빈대에게 물려서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 고민 하다가 머리를 써서 큰 상을 펴놓고 각 상 다리 밑에 물그릇을 놓아 빈대가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해 놓고 잠을 자는데 일단은 성공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 자다 보니 또 빈대가 극성스럽게 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을 켜고 보니 빈대들이 벽을 타고 올라가서 천장에서 떨어져서 공격을 해 오는 것입니다. 이 빈대를 보면서 큰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은 힘들고 불가능해 보일 때마다 이 빈대를 생각하면서 극복을 했다고 한다. 여러분 조그만 어려움으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빈대의 도전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길은 있습니다. 1. 난관의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오늘 성경은 2절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일어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참 이해가 안갑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잠시 전열을 정비하라!” 아니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잠시 쉬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모세가 죽었으니 “일어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려움을 당할 때는 모든 것을 포기 할 때가 아니고 새 일을 도모할 때라는 말입니다. 어려운 순간을 만나면 그때 새롭게 일어날 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 신앙적 싸인입니다. 일반적인 것과는 너무 다릅니다. 여러분,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은 참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한 알콜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견디다 못해 가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는데, 두 자녀는 엄마 없이 어렵게 자라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20년 후에 첫째 아들은 대학교수가 되어 “금주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똑같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한 기자가 금주운동을 하는 첫째 아들에게 어떻게 그 일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으니까 그 교수는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알코올 중독자에게 가서 어떻게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느냐고 물으니까 역시 똑같이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똑같이 어려움을 당했는데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정반대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고통을 도약의 기회로 삼느냐, 절망의 변명거리로 삼느냐는 본인의 문제입니다. 혹시 부모 잘못 만난 것에 대해 원망하는 분은 없습니까? 내 행복을 누가 어떤 사람이 망쳤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습니까? 핑계하지 마십시오. 긍정적으로 반응하십시오. 어려움을 당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그리고 희망의 눈을 들어서 약속의 땅을 바라볼 때입니다. 거기서 희망을 다시 찾을 때입니다. 최대의 지도자 모세의 죽음만을 바라보며 슬퍼하면 주저앉아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셔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새로운 위로와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만날 때는 당황하며 주저앉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어나서 전진하면 하나님이 분명히 도우시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12:1-2)고 했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이 새로운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강철 왕으로 알려진 카네기의 사무실에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 아닙니다. 예술품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그림도 아닙니다. 그러나 카네기는 이를 가장 소중하게 보관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바다에서 썰물이 빠질 때 함께 밀려나가 모래사장에 아무렇게 던져져 있는 나룻배 한 척과 그 옆에 노가 그려진, 무척 어둡고 썰렁하고 처량한 느낌을 주는 그림입니다. 그 밑에는 “밀물은 반드시 온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사무실을 방문했던 한 사람이 그림에 대하여 물었답니다. 이때 카네기는 “나는 젊었을 때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습니다. 하루는 어떤 노인 집을 방문하면서 이 그림과 그 밑에 있는 글귀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노인께 다시 찾아가 정중히 부탁을 했고 그분은 나에게 그림을 주셨습니다.”라고 . . . . 이 그림을 언제나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고 평생을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이 밀려와 내게서 무엇인가를 휩쓸어 가져갈 때마다 그림을 보면서 내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습니다. “밀물은 반드시 다시 몰려온다.” 그렇습니다. 썰물처럼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다 밀려나갈 때,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나룻배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와주실 때 인생의 밀물이 오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히려 승리의 때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회사에서 판매실적이 오르지 않아 긴급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세미나에서 영업 사원들은 각자 나름대로 그 원인을 분석해 내 놓았습니다. 사장이 다 듣고 있다가 손수건을 꺼내 그 위에 매직으로 점 하나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이 손수건을 자세히 보십시오. 여기에 무엇이 보입니까?” 사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습니다. “까만 점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다시 자세히 보십시오. 여기에 무엇이 보입니까?”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말합니다. “여러분! 왜 점만 보고 흰 바탕은 보지 않습니까? 항상 까만 점보다는 보다 큰 흰 바탕을 보는 눈과 자신감을 가져보십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른 안목과 자신감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검은 작은 점을 보고 낙담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얀 넓은 바탕을 보고 희망을 가지는 사람에게 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문제를 바라보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 하나님의 일은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2절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라고 합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협력 정신’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함께 하는 것을 잘 못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자기의 이름이 나타나는 일이라면 목숨걸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일이라면 무관심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아무리 지식이 많고 능력이 많고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기러기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기러기는 언제나 함께 날아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할 때 힘을 70%나 덜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잘 되려면 똑똑한 사람이 많은 것 보다 협력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레스턴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똑똑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번영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너무 똑똑하고, 잘난 분들만 많으면 그 공동체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도 주안에서 바보같이 순종하는 협력자들이 많으면 일이 빠릅니다. 그리고 일이 잘됩니다. 형통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 서로 겸손한 협력정신을 가지고 뭉쳐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사는 것입니다. 함경도 사람이 부산으로 피난 가서 이상한 물건을 보고 “이것이 무시기?”하고 부산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부산 사람이 “무시기가 뭐꼬?”하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함경도 사람이 “뭐꼬가 무시기?”하고 묻습니다. 그런 식으로 같은 말을 하면서 한 동안 설전을 하더랍니다. 자기의 소리를 조금만 낮추면 우리는 잘 협력하며 살 수 있습니다. 자동차가 가는데 좌측 바퀴와 우측 바퀴가 다르면 제대로 가겠습니까? 한쪽 바퀴가 지나치게 크면 그 자동차는 빙글빙글 돌기만 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중요한 비결도 여기에 있습니다. 호흡이 맞아야 합니다. 만일 자동차의 네 바퀴가 각각 따로 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앞으로 갈 수도 없고, 사고의 위험도 클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온 백성들이 협력한 것처럼, 우리 교회도 서로가 사랑으로 협력할 때 호흡이 잘 맞아 하모니를 이루어서 즐겁게 주의 일이 잘 될 줄 믿습니다. 이런 성도가 복을 받고, 이런 교회가 성장하게 될 줄 믿습니다. 3. 발바닥으로 밟을 때 하나님은 주신다. 3절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수1:3). 이 본문의 말씀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아무리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라도 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된 땅이라고 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얻을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정복해야 할 땅 입니다. 정복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땅입니다.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구체적으로 땀 흘림이 필요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생각은 반듯하고, 논리적이고, 대단히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실천이 약합니다. 헌신은 더욱 약합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없습니다. 어떤 21세기를 지향한다는 한 회사가 어떤 슬로건을 세웠습니다. “가자! 현장으로!” 그래서 중역들의 책상을 없애 버렸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약점은 현장성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전도도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현장으로 가지를 못합니다. 기도도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기도하자고 하면 안합니다. 말은 잘합니다만 그래가지고는 아무런 승리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리스에 한 유대인 노파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유대인 노파가 하는 일은 일정한 거리를 정해 놓고 매일 그 거리를 돌면서 중얼중얼 거리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할머니, 무엇을 하십니까?” 물었습니다. 할머니의 대답이 “내가 우리 민족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겠는데 나이 많고 가진 것이 없어서 별로 할 것이 없습니다. 여호수아서를 보니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했는데 이 땅을 밟으면서 이 땅을 우리 민족에게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몇 년 기도하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유대인 할머니가 밟으며 기도하는 거리에 유대인 상점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거리가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상권을 잡고, 유대인 구의원, 시의원이 뽑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여호수아에게만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 줄 믿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오는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표적만 구하는 자 되지 말고 실제적으로 뛰어드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극대화시키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 .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책임을 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최대한 책임을 져 주는 삶!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런 사람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성전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검소하게 사는 것입니다. 최대한 헌신해야 합니다. 헌금해야 합니다.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확신하라. 5절에 “너의 평생에 너를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우리가 무조건 무턱대고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순종은 해야겠지만 실제로 가나안의 사람들에게 비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군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오합지졸이기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약속한 대로 다시 힘을 실어주시고 계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여호수아를 당할 수 없도록 그와 함께 해 주시고, 결코 그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낙심하고 있는 여호수아를 만나 다시 용기를 주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가치가 다되었다고 폐기처분 하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다시 고치시고, 회복하시고, 다시 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 피조물을 만드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하나님은 항상 새롭게 회복시키십니다. 여호수아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확신에서 온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사람을 의지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처음에는 좋다가도 싫어지면 버리고 맙니다. 늙은 아버지를 버리는 자식, 또 자식을 버리는 부모 . . 아내를 버리는 남편, 남편을 버리는 아내 .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 즉, 사랑하는 자녀 된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5)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곁에서 늘 이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하나의 도구이며 하나님께서 그 도구를 들고 쓰심을 보았습니다. 여호수아도 “모세를 들고 쓰시던 그 하나님, 저도 붙들고 쓰시옵소서. 나는 하나님께서 저를 붙들고 계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런 기도와 확신, 고백을 늘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확신을 가진 여호수아를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쓰신 것 처럼 쓰신 것입니다. 이 확신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무작정 도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뜻을 이루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에 사람이 보기에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일도 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홍해 바다에서 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이 여리고 성 앞에서도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고 행동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믿는 자에게는 표적과 기적이 따르는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 하시던 하나님,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던 그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을 붙들고 있음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5. 강하고 담대하라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1:6, 7, 9> 어떤 사람이 강하고 담대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과 동거하는 사람은 강하고 담대합니다. 창6장에 보면, 에녹, 그리고 노아입니다. 9절에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가 의로운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방주를 지었고 구원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조롱한다하여도 주님께서 인정하시면 강하고 담대하고 만사 형통한줄 믿습니다. 만사가 다 믿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히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보는 사람, 손에 잡히지 않아도 잡는 사람, 이런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고 강하고 담대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큰 일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말씀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강하고 담대합니다. 말씀따라 사는 신앙인은 어떠한 환경에 구애되지 아니하고 흔들리지 아니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다니엘과 같은 사람입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끓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얼마나 담대합니까? 6. 말씀을 지켜 행하라 7-8절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롯유다는 은30냥에 눈이 어두워 스승이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팔아먹고 멸망하고 자살해서 비참하게 죽는 최후를 맞이 하게 된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께 자기의 밭을 다 바치겠다고 해놓고 아까워서 재물을 탐내다가 그 자리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치우치다가 망한 사람들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약점들을 잘 알고 있어서 그 약점을 통하여 유혹합니다. 재물의 유혹에 . . 권세나 명예의 유혹에 . . .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려면 말씀위 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대는 혼돈의 시대입니다. 가치관이 끊임없이 변하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황금만능주의, 물량주의, 외모 지상주의적인 가치관이 온통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요즘 천국과 지옥에서 비상이 걸렸답니다. 천국에서는 이름하고 본래의 얼굴이 달라서 천사들이 알아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전부 성형수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지옥에서는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랍니다. 사우나에서 뜨거운 훈련을 받아서 웬만한 뜨거움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변할 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영원불변하신 그 말씀에 기초하지 않으면 성도들의 가치관과 마음중심도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으시고 흔들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헬라어로 ‘말씀’을 뜻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로고스’이고, 또 하나는 ‘레마’입니다. ‘로고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성경 말씀, 66권의 말씀을 가르킵니다. 그에 반하여 ‘레마’는 이 로고스의 말씀가운데서 특별히 내가 처한 현실에서 오늘 내가 꼭 들어야 될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레마의 말씀을 들으면 담대해 지고, 삶이 풍성해 집니다. 야곱은 형을 속이고 형의 보복을 피해서 정들었던 집을 떠나서 먼 타향으로 갈 때 그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무엇을 붙들어야 될 지 몰랐고 어디에 기대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꼭 붙들 수 있는 레마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단비와 같았습니다. 이 말씀을 꼭 붙들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이십 년 동안 머슴 같은 삶을 살면서도 지칠 줄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레마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팔십 노구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야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리라”는 하나님의 레마의 말씀을 듣고 그 백성들을 이끌고 사십 년 광야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성경 공부를 하면 자랑하지 말고 말씀에서 배운 지식을 삶에 적용해서 지키십시오.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안지키는 사람은 대부분 교만하기 때문에 안지킵니다. 이런 교만한 사람들은 교만해서 도무지 다른 사람의 충고의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이스라엘 2대 왕이 되었으나 순종의 2년을 지난 후 하나님 없는 왕으로 살다가 말년에 비참한 최후로 실패의 인생으로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될 때는 출세했다고, 성공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가지 않고 자기의 고집대로 자만 하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율법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삼으실 때에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만 하시지 않고, 율법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살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행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 난관의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혼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발바닥으로 밟을 때 하나님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확신하십시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말씀을 지켜 행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