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28장-대하36장 요약

28장은 다윗의 생애 중에서 마지막을 정리하는 말년 부문을 기록한 것이다. 본장에는 그가 남긴 유언과 함께 성전 건축을 위해 최후로 헌물하는 장면, 그리고 그가 드린 최후의 감사 기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최후를 맞이하는 다윗의 모습 속에서 인생의 쓸쓸함이나 허탈함은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먼저 다윗은 솔로몬을 자신의 후계자로 세우며 그에게 성전을 힘써 건축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1-10절). 그리고 이어 성전 설계도를 솔로몬에게 넘겨주고(11-19절), 그에게 격려를 한다(20-21절). 본장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다윗 왕의 지고한 신앙을 발견할 수 있다.

 

29장 -앞장에서 성전 건축 양식을 솔로몬에게 설명한 다윗은, 이제 성전 건축을 위한 헌물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있다. 임종을 눈앞에 둔 시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다윗의 굳건한 신앙이 돋보인다. 다윗이 예물을 바치자 이스라엘의 모든 방백들도 자원하는 심정으로 즐거이 예물을 바쳤다. 그리고 나서 다윗은 사후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렸다. 이로써 다윗의 생애는 마감되었으며, 만조백관의 추대를 받는 자리에서 솔로몬이 왕위를 승계하였다. 실제로는 솔로몬의 즉위 과정에서 반대 세력의 모반이 있었으나(왕상1;14-31), 여기서는 그러한 사실이 생략되고 축제 분위기 속에서 즉위식이 진행된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29장 앞장과 본장은 본서를 매듭 짓는 부분인 동시에 다윗 통치 40년의 총결산 대목이다. 먼저 다윗 왕이 성전 건축을 위해 백성들에게 협조와 헌물을 부탁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1-5절). 이어 그러한 다윗 왕의 감동적인 권고에 따라 재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이스라엘 방백들의 모습과(6-9절), 기쁨에 찬 다윗 왕이 감사 기도를 드리고(10-19절), 이에 온 이스라엘이 기쁜 마음으로 제사 드리는 모습이 언급되어 있다(20-22절). 그리고 솔로몬이 다윗을 이어 왕위에 오르는 장면과(23- 25절) 다윗이 임종하는 대목이 언급됨으로 해서(26-30절) 다윗에 관계된 역사가 끝나게 된다. 본서에서는 다윗 왕의 관심이 성전과 여호와 신앙에로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다윗 왕의 정통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대하(회복하시는 하나님)

1장 -솔로몬의 왕위가 점점 견고해져 갈 무렵,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급 인사들을 모두 기브온으로 소집하고 번제를 드렸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원하는 것을 주겠노라고 하셨을 때, 솔로몬은 부귀나 공명이 아닌 지혜를 구했다. 이에 하나님은 지혜는 물론이고 부귀와 존영도 함께 주시겠다고 하셨다. 솔로몬 통치에 있어 핵심적인 사건은 성전 건축이었는데, 그의 지혜는 바로 이 성전 건축을 완수하는 데에 주로 사용되었다. 한편, 14절이하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솔로몬 왕국이 얼마나 부강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1장은 솔로몬의 왕정 역사를 다루고 있는 본서 전반부의 첫장으로서 솔로몬의 왕의 즉위와 그에 관계된 부차적인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솔로몬의 등극과 기브온 산당에서 번제를 드린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반부는 기브온 번제를 통하여 통치 수단으로서의 신적인 지혜를 구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1-12절), 후반부에는 그 결과로 인해 누리는 부귀를 서술하고 있다(13-17절). 본서의 저자는 본서의 기록 목적, 즉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 왕국의 영원성과 유다 왕국의 역사를 긍정적인 면에서 개관하여 앞으로 가져야 할 꿈과 피상을 키워 주고 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먼저 번제를 드렸듯이 우리 성도들도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시 되어야 하며,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앞세워야 한다.

 

 

2장 -본장에서도 솔로몬의 신앙적 관심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역대기 기자의 독특한 사관을 엿볼 수 있다. 솔로몬은 두로왕 후람에게 성전 건축을 위한 기술자와 제목을 요청하였고(11-10절), 후람은 그 요청에 대해 흔쾌히 응답하였다(11-18절), 두로 왕 후람은 다윗에게 복속 되었던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솔로몬에게 보낸 답신을 보면, 그가 단지 정치적으로만 복속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깊은 교화를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방인이 성전 건축에 개입되었다는 사실은,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가 하나님 나라에 편입될 것임을 미리 보여 준다.

 

2장은 통치 수단으로서 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솔로몬의 신앙적 문제로 부각시켜 언급한 앞장의 연속으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성전 건축 사역을 준비하는 솔로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두로 왕 후람에게 기술자와 재목을 요청하는 전반부와(1-10절), 그 요청에 대한 후람의 친절한 응답을 기록한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11-18절). 솔로몬이 적극적으로 이방인을 성전 건축 사역에 참여시킨 것은 바로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다\'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고, 또한 장차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권 속에서 연합될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3장 -마침내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시작하였다. 역대기 기자는 구체적인 성전 건축 과정을 열왕기서에 비해 간략하게 요약하였다. 그 이유를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 역대기의 독자가 성전 건축 내용에 대해 익숙할 것이라고 전제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포로 귀환 후에 재건한 성전이 그 규모나 정교함에 있어서 솔로몬 성전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던 관계로(학2;3)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역대기 기자는 성전기물과 내부 장비에 대해서는 상세히 기술하였다.

 

3장은 성전을 착공한 시간과 장소를 언급했으며(1-2절), 성전의 규모와 지성소와 성전 기둥 건축을 기록하고 있다(3-17절). 그런데 본장은 성전 내의 중요한 두 방인 성소와 지성소를 만드는 일에 관해 중점적으로 언급하고 전 앞에 세운 두 기둥을 서술하고 있어 앞으로 재건될 성전의 특징을 예시하고 있다. 열왕기에서는 성전 건축의 기사를 더 자세하게 말함과 동시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성전 건축의 면모를 세세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반해, 본장에서는 그 성전의 주요 부분과 특징만을 요약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열왕기는 하나님의 약속과 성전 건축 기사를 병행해서 기록하고 있으나 본장에서는 오직 성전 건축 기사만을 언급해 당시 성전 건축의 사역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본장은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 재건에 대한 자료들을 그 특징적으로 예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장 -본장은 성전 내의 기구들과 성전 뜰을 만든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이 기구들의 구체적인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일일이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것들이 모두 성전 제사를 위해 긴요하게 사용되었다. 는 점은 분명하다. 본서기자의 강조점도 여기에 있다. 각 기물들이 나름대로의 용도로 사용되어 제사에 도움을 주었듯이, 오늘날 성도들도 각자 받은 달란트를 최대한 발휘하여 하나님께 귀한 그릇들로 사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성도들의 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이다.

 

4장이 성전의 외형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술한 반면 본장은 성전 내부에 비치되어 제사 드리는 데 필요한 도구인 성전의 기구들에 관해 관심을 갖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의도로 기술된 본장에는 주로 놋과 금으로 만들어진 성전의 기구들이 나타나 있다. 뜰 안에 있는 놋 기구와(1-6절), 금 기구 제작이 기록되었고(7-8절), 그리고 뜰 문 제작과 바닥 배치와(9-10절), 후람이 제작한 기구들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11-18절), 솔로몬이 만든 성전의 기구들을 종합적으로 기록하고 있다(19-22절). 여호와께서는 성전 기구들을 통하여 당신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을 확연히 보여 주셨다. 즉 본장에 언급된 놋 단을 비롯하여 각종 성전 기구들은 당차 세상의 죄를 지고 가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그분의 보혈 공로를 힘입은 성도들의 죄 씻음 받음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5장 -마침내 성전 건축이 완료된 후, 솔로몬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겨 안치시켰다. 이 행사는 성전을 완성시킨 후에 진행된 봉헌 제전의 첫 번째 행사였다. 그리하여 언약궤가 최종 목적지에 이르자, 모세 당시의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처럼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가 구름 가운데 나타났다(출40;34). 이는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 열납 되었음을 의미하는 표시였다. 한편, 성전 건축은 솔로몬 즉위 제4년 이 월 초이일에 시작되어(3;2) 즉위 제11년 8월 곧 BC.959년 8-9월경에 완성되었으니, 만 7년 6개월이 소요된 셈이다.

 

5장 본서 저자는 성전 준공 후에 있었던 성전 봉헌의 사실을 본장에서 시작하여 7장까지 계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본장은 솔로몬 통치의 가장 영광스러운 장면을 언급한 것이다. 이 같은 맥락 속에서 언약궤와 관계된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본장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메워 올려 지성소에 안치하는 장면이다. 즉 본장은 성전이 완공되었음을 재언급하는 것과(1절), 법궤를 내전으로 영입하는 과정(2-10절), 그리고 언약궤가 지성소에 도착하자 하나님이 성전에 임재해 계시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술한 부분으로(11-14절), 구성되어 있어 법궤 안치 사실을 생생히 그리고 있다. 참으로 언약궤를 안치시키는 일은 성전 봉헌에 있어서 핵심이 될 뿐만 아니라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다. 왜냐하면 언약 궤가 온전히 지성소에 안치될 때에야 비로소 그것은 여호와의 전이라고 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장 본장에서 솔로몬은 자기 손으로 성전 건축을 완성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1-11절), 봉헌기도를 들린다(12-42절). 하나님 백성의 최대 소망은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이다. 진정한 행복도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 가운데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솔로몬의 찬양은 성전 완공과 동시에 하나님의 진정한 임재를 확인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편, 장장 30절에 걸친 솔로몬의 봉헌 기도는 열왕기상 8장 22-53절에 언급된 것과 거의 일치한다. 여기서는 역대기 기자의 구원신학의 핵심이 포함되어 있다. 먼저, 솔로몬의 다윗에게 행하신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을 기도하였으며, 이어 성전을 향해 올릴 백성들의 간구를 들어주실 것을 기도하였다.

 

6장에는 성전을 완공해 하나님께 봉헌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통 치자로서 솔로몬의 신앙이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본서의 저자는 전장과 본장을 통해 성전을 매개로 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셨음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성전이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임을 고백하고, 건축의 동기와 배경에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음을 간증하는 솔로몬의 모습을 언급하고 있고(1-11절), 솔로몬의 긴 기도가 기록되어 있다(12-42절). 이 기도는 왕권을 위한 기도와 제사장적 중보 기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먼저 왕권을 위한 기도에서는 성전 건축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찬양과 다윗 왕권의 보전에 대한 간구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제사장적 기도는 서론적 기도와 본론적 기도로 일곱 가지 제목의 기도가 있다. 그리고 결론적 기도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본장을 통해 솔로몬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사용되어진 믿음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7장 -솔로몬이 기도를 마쳤을 때 여호와께서 불로 응답하사 그 기도를 흠향하셨음을 나타내셨다(1-3절). 그러자 왕과 모든 백성은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고(4-7절) 장막절을 지켰으며(8-10절),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에게 친히 나타나사 언약의 말씀을 계시해 주셨다(11-22절), 이 언약의 말씀은 순종과 불순종에 따르는 신명기적 축복과 저주를 그 주제로 하고 있다. 이제까지 하나님이 다윗 왕가를 보살피고 강성케 하시며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 순종한 데 따른 축복이었다. 하지만 향후에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가볍게 이기고 최악의 길로 들어서면, 그 누구도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7장은 그 내용적인 구분과 시간적 추이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질 수 있다. 첫번째는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과 성전 낙성식(1-7절), 두번째는 절기의 준수(8-11절), 마지막으로 기도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으로 구분된다(12-22절). 본장에서는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의 현현과 위대하심이 분명히 선포되었고, 또한 장막절의 제정이 솔로몬의 주도에 의한 것이 아니고 백성들이 주체가 되었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8장 -본장에는 솔로몬 왕의 업적이 요약되어 있다 그가 이룬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성전건축이었으며, 다른 것들은 부차적이었을 뿐이다. 그러기에 여기서는 솔로몬의 기타 업적을 요약해서 수록하고 있는 것이다. 본장을 두 단락으로 나누어 보면, 전부터(1-11절)는 솔로몬이 이룩한 정복사업에 관한 기록이고, 후반부(12-18절)는 종교적, 경제적 측면에서 솔로몬이 이룩한 업적에 관한 내용이다. 특히, 12-16절은 본서에만 나오는 독특한 내용으로서 역대기 기자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으며, 솔로몬의 통치가 언약적 정통성 위에 서 있음을 보여 준다.

 

8장은 솔로몬 왕의 영광스러운 업적으로 국내의 조직을 튼튼히 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솔로몬의 성읍 건설(1-2절), 솔로몬의 건축 사업(3-6절), 솔로몬의 역군(7-10절), 신성시되는 다윗 성(11절)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준수되는 3대 절기가 나타나 있으며(12-13절), 제사 직무 정비(14-15절), 성전의 완공과(16절), 오빌의 금이 기록되어 있다(17-18절). 이와 같이 짧은 본장에 여러 가지 업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역대기 저자는 솔로몬이 자기의 부친 다윗의 규례를 좇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모세의 명\'도 좇아 매일에 합의한 대로 신앙 부흥 운동을 추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본장을 통해 본서 저자는 제사장적 관점을 다시 한번 더 부각시키고 있다. 아울러 말씀에 근거를 둔 신앙적 전통은 지켜져야 된다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고 있다.

 

 

9장 -본장은 솔로몬의 지혜와 부 그리고 영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능히 짐작케 한다. 솔로몬의 명성은 당대의 세계곳곳에 까지 알려졌고, 이스라엘은 이미 근동의 강국으로 부상해 있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한 것은 그의 지혜에 관한 소문을 듣고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 방문의 주된 목적은 상업적인 동기도 내포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편, 솔로몬은 40년 동안의 통치를 끝으로 죽음을 맞게 되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 왕위를 물려받았다. 열왕기서에는 솔로몬의 처첩들이나 통치 말년에 있었던 반란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나(왕상11;1-40),여기서는 삭제됨으로써 솔로몬을 이상적인왕으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본서 기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9장은 솔로몬의 통치에 대한 마감까지를 기록한 장으로서, 그가 누린 부귀와 권세, 그리고 그의 죽음을 언급했다. 본장을 내용적인 측면에서 구분해 보면, 스바 여왕의 방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당대 대외적으로까지 위세를 떨쳤던 솔로몬의 탁월한 지혜와 명예가 그 주제로 부각되어 있고(1-12절), 솔로몬 왕조의 부귀와 번영에 새한 실례로 금, 예물, 군비품 등이 제시되어 있다(13-28절). 끝으로 솔로몬의 죽음과 그의 아들 르호보암의 등극이 기록되어 있다(29-31절). 이는 최고의 왕이었던 솔로몬의 죽음이 이후에 전개될 남북 왕조로의 분열을 여는 서막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본장에 나타난 독특성은, 솔로몬의 지혜, 부, 예배가 열방의 왕들을 통하여 칭송되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여호와의 영광이 온 우주적으로 선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0장 솔로몬의 뒤를 이어 르호보암이 즉위하자마자 왕국 분열이 잇따랐다. 여로보암을 필두로한 온 이스라엘 백성이 노역을 경감시켜 줄 것을 요구했을 때 르호보암은 일언지하에 거부하였다. 이에 여로보암을 위시한 북부 지파들에 속한 온 이스라엘이 반역을 꾀하였고, 르호보암은 유다의 왕으로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열은 우상 숭배를 일삼은 솔로몬왕가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여로보암이 모반을 꾀하여 북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것 자체는, 다윗 왕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10장 지금까지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흥왕했던 시기를 통치한 솔로몬의 사역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폈다. 그러나 본장부터는 이스라엘의 연대기적 관점에서 계속 이어지는 유다 왕들의 통치를 기술하고 있다. 본장에서는 120년 간 계속되던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 시대가 솔로몬의 죽음으로 끝이 나고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로 나누어진 남북조 시대가 막을 올리게 된다. 구성을 보면 르호보암에 대한 백성들의 요구(1-5절), 노인들의 충언과 소년들의 간언(6-11절), 그리고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르호보암(12-15절), 여로보암의 주도로 이루어진 열 지파의 반란이 기록되어 있다(16-19절).

 

 

11장 -분열 왕국사가 열왕기에 비해 역대기에서 한층 짧게 서술되어 있다. 이는 역대기 기자가 남왕국 유다의 역사만을 수록하였기 때문이다. 본장에서는 르호보암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축복을 누린 사실을 소개한다. 열왕기상 12장 21-24절과 병행을 이루는 1-4절은, 르호보암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로보암을 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5절 이하는 본서에만 나오는 내용으로 르호보암이 방어 성벽을 구축한 사실과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를 피해 이주한 자들을 환영한 사실을 언급하며 르호보암의 가족을 소개하고 있다.

 

11장에서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북쪽 열 지파를 잃는 불운을 맞은 르호보암 왕이 어떻게 국난을 타개하고 유다를 번영케 하였는지 보여 주고 있다. 먼저 국토 분열의 책임을 통감한 르호보암은 잃은 영토와 백성들을 회복하기 위하여 정벌에 나서지만, 여호와께서 형제끼리 싸우는 것을 막으심으로 회군하게 되었다(1-4절). 이어 본장은 르호보암이 국방을 강화하고,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월남을 기록하여 초기 3년 동안 남유다의 번영을 나타내 준다(13-17절). 마지막으로 르호보암의 가계가 소개되고 있다(18-23절).

 

 

12장 -앞장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르호보암에게 번영과 평안이 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본장에서는 르호보암이 하나님을 거역함에 따라 애굽 왕 시삭에게 침공을 당한 사실을 볼 수 있다. 열왕기는 시삭의 침공과 약탈 사실만을 수록하고 있으나, 본문은 그 와중에서도 왕과 방백들의 회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거두어진 사실까지 언급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시는 목적은 그들을 멸망시키는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들을 회개시키려 함에 있었다(7절).

 

12장 11장의 주제가 르호보암의 순종으로 인한 축복이라면, 본장은 르호보암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려 징계를 받음으로써 강력했던 유다가 쇠퇴케 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본장은 르호보암의 타락과 애굽 왕 시삭의 예루살렘 약탈이 기록되었고(1-12절), 르호보암의 통치 연도 및 평가가 기록되어 있다(13-14절). 이어 르호보암의 행적과 죽음이 기록되어 있다(15-16절). 르호보암은 하나님으로부터 3년만에 세력이 견고한 나라를 이룩하는 큰 축복을 받았으나 곧 교만하여져서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13장 -아비야의 통치에 관한 기록이다. 열왕기서에서는 아비야의 통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였으나(왕상15;3), 본문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즉, 기자는 아비아와 여로보암간의 전쟁을 기록하면서, 아비야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여로보암을 격퇴시킨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남왕국 유다를 통해 계속 존속되었음을 보여 준다. 한편, 본문에는 열왕기에서 누락된 아비야의 연설이 나타난다(4-12절), 그 내용은 하나님 나라가 다윗 자손들의 공동체를 통해 지속되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13장은 유다의 제2대 왕이 된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B.C.913- 910)가 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전쟁한 사실이 묘사되어 있다. 비록 아비야가 3년밖에 통치하지 않았지만, 역대기 저자는 열왕기 저자와는 달리 아비야의 생애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다윗의 집안과 여호와를 배반한 여로보암을 무너뜨린 왕이 바로 아비야이기 때문일 것이다. 본장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전쟁하기 전의 상황과(1-12절), 전쟁의 경과 및 결과가 기록되어 있고(13-20절), 끝으로 전쟁 후 아비야의 사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21-22절).

 

 

14장 장장 석 장에 걸쳐 유다의 3대 왕 아사의 통치가 소개된다. 기자는 아사의 일대기를 통해, 순종에는 축복이, 불순종에는 심판이 따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 중 본장은 아사 왕의 순종하는 모습과 이에 따른 축복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우상을 타파하고 견고한 성읍을 건축하는 등의 공적을 남겼다. 또한 여호와를 의지함으로써 구스 사람 세라의 침입을 물리쳤다. 사실 이스라엘의 왕국사는 거룩함을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에 대한 투쟁사로서, 우상 숭배 및 불순종과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장은 유다의 3대 왕 아사의 통치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며, 그 내용이 16장까지 계속된다. 본장의 내용은 열왕기에서는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본장의 내용을 분류해 보면, 처음 평화로운 10년 동안에 시행된 아사의 제1차 종교 개혁과(1-8절), 구스 사람 세라의 백만 대군을 믿음으로 무찔렀던 승리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9-15절). 본장에 이어 15장에는 제2차 종교 개혁이, 16장에는 아사의 일련의 종교적 탈선 등으로 이어진다.

 

 

15장 -앞장에 이어 아사의 공적이 계속 언급된다. 선지자 아사랴의 입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계시를 접한 아사 왕은 곧장 신앙 개혁에 착수하여, 우상을 타파하고 언약을 갱신하였다. 특히 그의 개혁운동의 핵심은 우상 숭배의 전파자였던 태후 마아가를 폐위시킨 일이었다. 마아가는 유다 왕국의 초기인 르호보암 당시부터 우상 숭배를 확산시킨 장본인있다. 아사의 과감한 개혁에 대해 하나님은 그 땅에 평화를 허락하심으로써 당신의 언약을 지키셨다(19절). 한편, 열왕기서에서는 아사 왕의 개혁에 관해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을 뿐이다(왕상15;12-15).

 

15장은 구스 군대를 대파하고 개선가를 부르며 예루살렘에 입성한 아사 왕이 아사랴가 선포한 예언의 메시지를 듣고 제2차 종교 개혁을 단행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역대 열왕을 살펴볼 때 아사 왕과 같이 두 번 씩이나 종교 개혁을 단행한 왕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사의 행적은 역사적으로 더욱 큰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본장은 먼저 아사랴의 예언과(1-7절), 이에 따른 아사의 개혁과 언약의 갱신으로 나눌 수 있다(8-19절).

 

 

16장 -본장에서는 아사의 비신앙적인 행적이 열거된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3대 왕인 바아사가 남왕국 유다를 침공했을 때, 아사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아람 왕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의 실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성전 곳간과 왕국 곳간의 은금을 아람 왕 벤하닷에게 예물로 보내는 망령된 죄악을 범하기까지 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이방 세력에게 의지하는 지극히 불신앙적인 처사였다. 이러한 외교 정책을 통해 그가 일시적으로 바아사의 공격을 꾀할 수는 있었지만, 보다 거시적으로 보면 멸망을 자초한 셈이 되고 말았다. 또한 아사는 잘못된 행실을 책망하는 선견자 하나니를 투옥시켰으며,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도 여호와께 간구하지 않고 의원들만 의지하였다.

 

16장 14장과 15장에서는 주로 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한 사실이 중점적으로 기술되었지만, 본장부터는 대조적으로 그가 행한 실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의 통치 말년에 일어난 일련의 부정적 사건으로서, 아사가 여호와보다 사람을 의지하고, 자신의 합리적인 판단에 의거한 방법들을 취해 실수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아사는 바아사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아람 왕 벤하닷을 이용했다(1-6절). 그때 선지자 하나니가 나타나 여호와보다 아람 왕을 의지한 그를 책망했으나, 아사가 도리어 노하여 하나니를 핍박하였다(7-10절). 이어 본장은 아사가 질병에 걸려 위급할 때에도 하나님보다 의원을 더 의지한 사실과 그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11-14절).

 

 

17장 -여기서부터 넉 장에 걸쳐 유다의 제4대 왕인 여호사밧의 통치가 비교적 소상히 언급된다(비교 왕상22;1-50). 여기서도 유다 왕국의 흥망 성쇠가 하나님의 주권과 그 백성의 순종 여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본장은 여호사밧의 공적을 묘사한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 유다 왕국을 안팎으로 견고하게 하였으며, 산당과 아세라 우상을 제거하였다. 또한 각처에 제사장과 레위 인 혹은 방백들을 보내어 율법 교육에 힘썼다. 이에 하나님은 여호사밧 통치 하의 유다 왕국을 축복하사 사면 대적들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17장부터는 남유다의 제4대 왕인 여호사밧의 통치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이 내용은 대하20장까지 계속되어 그의 치적을 비교적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여호사밧은 아사의 아들로 유다의 3대 성군 중의 한 명이며, B.C.872-847년까지 통치했다. 그의 통치는 몇 가지의 과오가 있기는 하였지만 대체적으로 선정으로 일관되었는데, 그의 종교 개혁은 매우 단호하고도 전면적인 것이었다. 본서에 나타난 그의 통치 기록을 보면 먼저 여호사밧의 선정에 대해 요약하고 있고(1-6절), 율법 교사를 파송함이 기록되어 있다(7-9절). 그리고 여호사밧이 계속 강성해지고 있음을 밝힌 다음에(10-12절), 그의 군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13-19절). 한 마디 로 본장은 여호사밧의 제1차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18장 -본장은 여호사밧의 실정에 관한 기록이다. 그는 이스라엘 왕 아합과 결혼 동맹을 맺어 자기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결혼시켰다. 이는 상호간에 경제적, 군사적 이득을 확보하기 위한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후일에 아달랴로 말미암아 유다 왕국에는 심각한 우상 숭배가 도입되었으며, 피비린내 나는 왕위 찬탈극이 벌어졌다. 한편, 아합은 결혼 동맹 관계를 최대한 활용하여, 여호사밧에게 아람을 함께 공격할 것을 제의하였다. 여호사밧은 출전에 앞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그분의 뜻을 먼저 알아볼 것을 제의하였다. 하지만 진실을 전했던 미가야는 옥에 갇히고 거짓 선지자들의 조언이 채택되었다. 그리하여 남북 왕국의 연합군은 아람에게 크게 패하였으며, 아합은 전사당하고 그나마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피신하였다.

 

18장에서는 민족의 최대 과제인 국토 분단과 민족 분열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여호사밧이 분열 왕국 시대 이후 최초로 북왕국 아합과 동맹하여 길르앗라못 전투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양국간의 관계를 쇄신해 보고자 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사밧은 지나치게 아합 왕과의 화합만을 염두에 둔 나머지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청종하기보다는 아합 왕과 400인의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수락하였던 것이다. 본장은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1-3절), 하나님의 뜻을 묻는 두 왕의 기록이 있다(4-11절). 그리고 미가야의 예언과(12-22절) 핍박받는 미가야에 이어(23-27절) 아합의 전사가 기록되어 있다(28-34절).

 

 

19장 -비록 여호사밧이 아합과 동맹을 맺는 실책을 저질렀지만, 그의 신앙은 독실했다. 그는 아합과의 동맹을 책망하는 선견자 예후의 질책을 묵묵히 받아들이고서 다시한번 신앙적, 사법적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는 친히 각처를 순회하면서 여호와 신앙을 권면하였고, 재판관들에게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정하게 행할 것을 명하였다. 또한 제사장들을 위시한 종교 지도자들의 위상를 재정립하고 그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당부하였다. 하나님이 아람과의 전투에서 여호사밧을 살려 주신 것은 바로 이러한 개혁을 위함이었다.

19장에서는 여호사밧이 정비한 사법 개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연합해서 싸운 아람과의 전쟁은 북이스라엘에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아합 왕이 전사했고, 길르앗라못과 트랜스 요르단 북구 지역을 아람의 수중에 넘겨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남유다 또한 이 전쟁으로 인해 큰 후유증을 겪게 되었다. 왜냐하면 여호사밧이 본장에서 사법 제도를 정비하는 등 선정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모압 연합군의 침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여호사밧의 후손들 사이에서 살육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책망과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는 유다 왕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본장에는 여호사밧이 아합과 동맹한 사실에 대한 예후의 책망과(1-3절) 여호사밧의 민간 순행이 기록되어 있다(4절). 또한 성읍 재판관 임명과(5-7절) 예루살렘 재판관의 임명에 대해서 기록되었다(8-11절).

20장 -본장에는 여호사밧이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을 격퇴시킨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연합군의 침입에 직면한 여호사밧은 즉시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도우심을 요청하였다. 이에 하나님이 응답하사 승리를 보장하셨고, 여호와를 의뢰하는 유다 군대는 대승을 거두었다. 기자는 본장의 기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포로 귀환인들에게 있어서도 이방 세력의 침략이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느2;19,4;1-3, 7-9;6;1-4 등). 한편, 31절이하는 여호사밧의 통치에 대한 결론 부분이며, 열왕기에 비해 그의 실정을 더욱 강력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는 곧 신정국의 대리 통치자에 대한 아쉬움을 강하게 피력한 것이다.

 

20장은 먼저 모압과 암몬의 침략을 받은 여호사밧이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자신 또한 성전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내용이 있고(1-13절), 이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승리를 예언하시는 대목이 있다(14-19절) 또한 이 예언이 실제적으로 성취됨이 기록되어 있고(20-30절), 이어서 여호사밧의 행적과 통치 말기를 기술해 여호사밧의 치세를 정리하고 있다(31-37절).

 

 

21장 -여호람의 통치는 죄악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아우들을 몰살시켰다. 절대 권력을 탐하는 정신병적인 야욕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살상극이었다. 또한 그는 아합의 딸 아달랴의 의견을 좇아 산당을 세우는 등 우상 숭배를 조장하였다. 이때 선지자 엘리야는 여호람의 약점을 책망하며 그가 비참한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그 예언은 어김없이 이루어졌다. 물론, 여호람 때 에돔이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난 사건이나(8-10절) 블레셋 인들과 아라비아 인들이 침입하여 여호아하스 와의 모든 아들들을 살해한 일(16,17절) 등도 여호람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21장은 32세에 즉위하여 8년을 치리한 여호람의 통치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본장에 언급된 여호람은 지금까지 기술된 1대부터 4대까지의 남유다 열왕과는 그 통치 성격이 판이한 왕으로서 처음부터 일관되게 악정을 행한 자이다. 그의 악정을 통하여 유다 말기 혼란했던 정치적, 국가적 정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본장은 여호람이 행한 정치적 악정(1-7절), 그에 대한 하나님의 정치적 징계(8-10절),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와(11-15절), 그에 대한 군사적 징계(16-17절), 그리고 예언의 성취로 구성되어 있다(18-20절). 본장을 통해서 역사는 인간의 지략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운행됨을 알 수 있다.

 

 

22장 -여호람의 뒤를 이어 아하시야(혹은 여호아하스)가 즉위하였다. 여호람을 우상 숭배의 길로 미혹하였던 아달랴는 자기 아들 아하시아도 똑같은 길로 인도했다. 이스라엘왕 아합과 결혼 동맹을 맺었던 여호사밧의 대실책의 여파는 이렇듯 대를 이어 큰 화근으로까지 이어졌다. 아하시아는 외삼촌인 이스라엘 왕 요람과 함께 아람 왕 하사엘과의 전투에 참가했고, 이 전투에서 요람은 부상을 당했다. 아하시아가 병문안차 요람을 방문하였을 때, 그들 모두 예후에 의해 살해되었다. (열왕기하 9장에 상세히 보도됨). 이 사건은 아합왕가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일환이었다. 한편, 아하시아가 죽자 그의 어미인 아달랴는 다윗 왕가를 진멸시키고자 끔찍한 살육을 저질렀으며, 그 와중에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아달랴의 그러한 만행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중단시키려는 사단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이었다.

 

22장 여호사밧의 인간적인 행위가 근원이 되어 여호람 때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다윗가의 비극은 이제 아하시야의 이대에 이르러 비극의 절정을 맞이하게 된다. 본장에는 여호람의 말째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에 올라 1년이라는 짧은 통치 기간 동안 악행만 범하다가 살해당하는 장면도 기록되어 있고(1-9절), 그의 모친 아달랴가 왕의 씨를 진멸하는 장면도 기록되어 있다(10-12절). 여호람에 이어 아하시야 때에도 아합의 딸 아달랴의 영향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런데 여호람을 움직여 바알을 숭배케 한 장본인인 이 여인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생존한 것이 매우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죄로 물든 다윗 왕가의 부패를 완전히 제거하시기 위해 잠시 묵과된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본장에는 언약을 파괴하려는 사단의 공작에 대하여 다윗의 씨를 끝까지 보존해 가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사랑이 깔려 있다.

 

 

23장 -여호람의 사위였던 제사장 여호야다의 활약으로 인해, 요아스가 왕위에 오르게 되고 아달라가 제거 당하였다. 이로써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몰렸던 다윗 왕가가 다시 회복된 것이다. 본장에서도 역대기 기자의 독특한 관점(제사장적 관점)이 부각되었다. 즉, 전쟁 기사나 군대 개입 등을 자세히 수록한 열왕기와는 달리 본문에서는 성전 직무와 그 종사자들의 존재를 강조하는 자료들이 추가되어 있는 것이다(2,6,8,13,18,19절).

 

23장은 6년 동안의 아달랴의 통치가 여호야다의 혁명에 의해 종말에 이르고, 유다의 선왕 요아스가 즉위함이 기록되어 있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거사 계획이 기록되어 있고(1-7절), 그 실행과(8-11절), 아달랴의 처형(12-15절), 그리고 요아스의 즉위가 기록되어 있다(16-21절). 본장에는 악의 종말이 드러남과 동시에 여호와께서 이끄시는 역사의 흐름이 드러나 있다. 또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예시한 것이다.

 

 

24장 -제사장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 요아스는 여호와를 섬기며 선정을 베풀었다. 요아스의 업적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성전을 수축한 일이다. 당시 성전 건물은 아달랴의 아들들에 의해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 그래서 요아스는 대대적인 헌금 운동에 온 이스라엘 백성을 참여케 하여, 그 돈으로 성전을 중수하였다. 하지만 여호아다가 죽자마자 요아스는 간신 모리배들의 감언이설을 좇아 우상 숭배로 빠져들었다. 더욱이 충정의 직언을 고하던 스가랴를 성전 뜰 안에서 쳐 죽이게 하였다. 성전에서 대제사장을 살해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자 도전이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일으킨 화근이 되었다. 결국 요아스는 아람군대와의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었고, 자기 신복들에 의해 피살당하고 말았다.

 

24장 여호야다의 혁명을 통해 왕위에 오른 요아스 왕은 지금까지 악행을 일삼은 왕들과는 달리 선정을 베풀었지만 그 역시 말년에는 악을 범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다. 본장은 이러한 요아스 왕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다. 요아스의 선정 (1-3절), 성전 수리를 명하는 요아스(4-7절), 성전 수리를 익한 헌금(8-11절), 성전 수리에 대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12-14절). 이와 같이 요아스 통치의 전반은 선정이 베풀어졌지만, 여호야다가 죽은 이후에는(15-16절) 요아스의 우상 숭배(17-19절), 스가랴의 책망과 죽음(20-22절), 아람의 침략과 요아스의 죽음 등이 기록되어져 있다(23-27절). 즉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아스 통치 말년에는 다시 우상 숭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25장 -아마사의 통치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기술되고 있다. 첫 부분은,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함으로 말미암은 축복과 승리에 관한 묘사이다. 둘째 부분은, 우상 숭배로 말미암은 징벌 곧 패전과 모반 사건에 관한 기록이다(14-28절). 아마사는 다소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는 하였으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세일 자손 일만 명을 죽이는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큰 승리를 거두자 그의 마음은 자만과 교만으로 가득해져서 우상을 섬기는가 하면 이스라엘에 대해 선전 포고를 했다. 이렇게 하여 벌어진 남북 왕국간의 전쟁은 유다의 패배로 마감되었고, 훗날 아마사는 모반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25장은 요아스의 아들로서 유다의 제9대 왕이 된 아마샤의 선정과 그의 실정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아마샤의 통치에 관해서도 역시 본서 저자는 요아스의 치세를 기록한 것과 같은 전형적인 서술 방식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대별하여 기록하였다. 아마샤의 초기 행적은 역시 선정으로 전반부에는 그의 선정과 에돔 정복에 대해 기록되어 있고(1-13절), 후반부에는 아마샤의 우상 숭배(14-16절), 이스라엘에 대한 아마샤(17-24절), 아마샤의 최후 등이 기록되어 있다(25-28절). 아마샤가 이렇게 범죄하게 된 원인은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생긴 교만 때문이다.

 

 

26장 -웃시야의 통치 역시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전반부는 선정에 관한 기록이요(1-15절),후반부는 실정에 관한 기록이다(16-23절), 16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웃시야는 스가랴 선지자의 조언을 받아들여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도움으로 블레셋, 아라비아, 마온 등지를 정벌하고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 또한 막강한 군대와 방어벽이 구축되었다. 그러나 웃시야 역시 강성해지면서 교만한 마음에 사로잡혀 자기 손으로 분향하려 하였다. 이 사건은 결국 여호와의 중징계를 야기 시켰고, 그는 죽음 때까지 별궁에서 문둥병자로 격리 된 생활을 해야 했다.

 

 

26장은 선왕 아마샤가 여호와를 버린 것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살해됨으로, 이어 왕위에 오른 웃시야가 통치하는 장면을 기술한 대목이다. 그의 통치는 하나님께 충실하여 번영을 누린 전반기와 지나친 경제적, 국가적 번영으로 인해 교만해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후반기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웃시야의 혈통과(1-5절), 웃시야의 강성하여짐이 나타나 있다(6-10절). 웃시야의 군대에 대해서와(11-15절) 웃시야의 교만과 문둥병(16-20절), 끝으로 웃시야의 남은 사적에 대해 기록된다(21-23절). 웃시야는 단지 경제적인 번영만으로 제사장 나라를 만들려는 인간적인 욕심을 품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인간적 수단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27장 -요담의 통치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는 도합 16년 동안 통치했으나 약10년가량은 웃시야의 섭정기간이었다. 본장 내용은 병행 부분인 열왕기하 15장 32-38절에 비해, 건축 사업을 좀 더 상세히 다루고 있다. 요담의 통치에 대한 총평은 6절에 잘 나타나 있다. “요담이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전쟁에서의 승리나 번영은 하나님의 법도에 순종할 때 주어진다고 독특한 강조점이다.

 

27장은 교만해져서 제사장의 고유 역할을 침해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웃시야에 이어 왕위에 오른 요담의 사역을 언급한 대목이다. 요담의 통치는 역대기에 언급된 다른 열왕의 치적보다는 비교적 간략히 기술하여 그가 행한 통치상의 특징만을 부각시켰다. 요담이 행한 치적은 요담의 치세(1-2절), 요담의 건축 사업(3-4절), 그리고 요담의 강성(5-6절), 요담의 남은 사적(7-9절) 등이 있다. 특별히 요담의 건축 사업과 암몬 자손과 싸워 승리해 조공을 받은 역사 등의 선한 업적들을 언급함으로 말미암아 다음에 이어지는 아하스의 악정과 선명하게 대비시켜 놓았다. 요담은 문둥이가 된 부왕 웃시야를 대신해서 통치하였는데, 그러면서 그는 조금도 아버지를 경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고 또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도 않고 오직 부친의 선행만을 본받아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단점은 외적인 번영을 추구하여 내적인 안정을 이룩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히려 심각해져 가는 백성들의 사악함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다.

 

 

28장 아하스의 통치에 관한 본장의 기사는 역대기 기자가 부정적으로만 평가한 유일한 예이다. 기자는 아하스 통치하의 남왕국 유다가 북왕국과 똑같이 철저한 배교 상황에 빠져 있었음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아하스는 재위 초기부터 인신 제사를 드리는 등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에 열을 올렸다. 이에 하나님은 아람과 이스라엘로 앗수르를 제지할 목적으로 군사 동맹을 맺고 있던 터였다. 그 외에도 에돔과 블레셋 등의 침입을 당한 아하스는 여호와께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앗수르 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멸시만 받았을 뿐이다. 특히, 우리는, 적대국인 아람 신들의 도움을 받고자 한 그의 행동에서 우상 숭배에 눈먼 가련한 인생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28장은 악만 전적으로 행한 아하스 왕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아하스의 즉위와 우상 숭배와(1-4절),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을 통한 하나님의 징계(5-7절) 및 오뎃의 예언을 들은 이스라엘이 유다 포로를 돌려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