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서(도우시는 하나님)
1장 -바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함으로써, 예루살렘 멸망 이래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렸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섭리 덕분에 고레스가 포로들의 본국 귀환을 허용하는 조서를 내렸기 때문이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언약 관계를 맺으셨다(출24;1-8). 그러나 이후 그들이 계속해서 언약을 거스르자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셨다. 하지만 이제 남은 자를 회복시키심으로 다윗 가문을 영구히 보존하겠다고 하신 언약(삼하7;16)을 성취하신 것이다. 이로써 다윗의 혈통을 좇아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내시려한 하나님의 구속사도 연속될 수 있었고 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도 증명되었다.
1장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심으로 인하여 고레스 왕은 포로 되었던 유대 백성들을 본국으로 귀환시킬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1-4절). 그리하여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와 레위 사람들과 다른 지파의 몇몇 열심 있는 사람들은 많은 보물들과 짐승들과 약탈당했던 성전 기명들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5-11절).
2장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1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이다. 귀환자들의 수와 혈통, 신분 등이 상세히 나와 있는 이 같은 기록은 포로 귀환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임을 증거해 준다. 한편, 이 명단은 느헤미야 7장의 명단과 거의 같다. 그러나 귀환민들의 종족과 계보가 중요하게 다루어진 장은 유다 왕 구그이 정통성, 제사장과 레위 인의 직분의 거룩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2장은 제1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을 소개한다. 지도자들의 이름(1-2절), 귀환자들의 가계별 계수(3-20절), 귀환자들의 지역별 계수(21-35절), 제사장들의 계수(36-39절), 레위인들의 계수(40-42절), 느디님 사람들의 계보(43-54절), 솔로몬의 신복들의 계보(55-58절), 종족과 보계가 불분명한 사람들(59-63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총합계가 나오고(64-67절), 많은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위하여 즐거이 예물 드리는 모습이 묘사된다(68-70절).
3장 -고국으로 귀환한 지 약3개월 후에 유대인들은 제단을 쌓아 초막절을 지키고 날마다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해 이 월에 성전 재건 작업에 착수하여 지대를 놓았다. 이때의 상황은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는 언약궤도 없고 솔로몬 성전의 옛 영화도 남아 있지 않은 형편이었다. 그러나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몸소 체험한 백성들의 입에선 감격적인 감사의 찬송이 넘쳐 흘렸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포로 귀환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3장 포로 귀환 후 3개월 만인 제칠월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예루살렘에 모여서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으며, 또 규례에 따라 칠월 십도일부터 일주일간을 초막절로 지켰다(1-6절). 그 후 성전 재건을 위하여 각종 건축 자재들을 모았고, 포로 귀환 다음 해부터 본격적인 성전 건축이 시작되었다(7-9절). 성전 건축 착공 예배시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불었으며 성가대의 찬양이 울려 퍼졌다. 어떤 노인들은 감격에 벅차서 울고, 다른 많은 백성들은 기뻐하며 즐거워하였다(10-13절).
4장 -본문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성벽 복구 사업을 방해한 자들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전자는 고레스와 아하수에로 때에 일어난 사건이고 후자는 아닥사스다 1세 때에 일어난 사건이다. 성전 건축을 방해한 자들은 사마리아 인들이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그들의 성전 재건 동참 의사를 거절하자 그들은 도리어 방해 공작을 편 것이다. 백성의 지도자가 사마리아 인들의 참여를 거절한 이유는 그들의 종교적 혼합주의 사상이 유대인들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사단의 세력은 항상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방해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한시라도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
4장 성전 건축의 대역사를 시작할 무렵 우상과 여호와를 함께 섬기던 혼합주의자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함께 성전을 건축하자고 제의해 왔으나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1-6절). 그러자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의 성전 건축을 방해하려고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에게 상소를 올린다. 그 내용은, 유대인들이 옛날에도 주변 강대국에게 항거한 적이 많았으니 성전 건축과 성읍 건설을 마치면 바사를 배신하여 조공과 세금을 바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7-16절). 결국 아닥사스다 왕은 성전 건축 금지를 명하였고, 사마리아인들은 횡포를 부려서 거의 14년 간 성전 건축이 중단되고 말았다(17-24절).
5장 -사마리아 인들의 방해 공작으로 인해 성전재건 작업은 한동안 중단되었다. 그러나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한 끝에 작업은 재개될 수 있었다. 본문은 이러한 상황에서 유다에 새로 부임한 총독 닷드내가 성전 재건 사역의 합법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리오 왕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그가 유대인들의 성전 재건을 무조건 제지하지 않고 사실여부를 알아보려 한 것은 공정한 사건 처리였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유대인들은 또 다시 실의에 빠져 더 이상 성전을 재건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5장 포로 귀환 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던 열정이 식어 버리고, 성전 건축이 14년간이나 중단된 상태에서 두 명의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일어나서 성전 건축을 속히 재개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예언을 들은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백성들을 모아 성전 재건의 역사를 감행했다(1-2절). 이틀 본 사마리아 사람들은 건축을 중지시키기 위하여 다리오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3-5절). 그 상소의 내용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허락한 사람이 바사 왕 고레스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다리오 왕이 왕궁의 서류들을 조사하여 사실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것이었다(6-17절).
6장 -조사 결과, 성전 재건의 합법성을 안 다리오 왕은 닷드내에게 성전 건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조속히 완공토록 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때문에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성전은 완공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해준다. 한편, 성전이 완공되자 온 백성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왕상8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봉헌식을 거행하고 유월절을 지켰다.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과 새 출발이라는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6장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 및 아바삭 사람들의 상소를 받고 다리오 왕은 고레스의 조서를 찾아냈는데, 그 내용은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1-5절). 이에 다리오 왕은 유다인들의 성전 재건의 역사를 방해하지 말고, 오히려 예산 중의 일부를 성전 건축 경비로 사용하게끔 하였다(6-12절). 총독의 물질적 지원과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권면과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지도력으로 인하여 신속하게 성전이 완공되었다(13-15절). 성전이 완공된 후 유다 백성들은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였고, 정월 십사일부터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켰다(16-22절).
7장 -본서의 저자인 에스라의 족보와 그가 2차 포로 귀환인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경위를 밝히는 부분이다. 에스라의 족보에는 몇몇 이름들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이 족보가 중요한 이유는 에스라가 아론의 혈통을 지닌 제사장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율법에 정통한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이 2차 포로 귀환을 허용한 덕분에 귀환 길에 오를 수 있었다. 본문에는 그가 율법을 연구한 끝에 포로 귀환이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임을 깨닫고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과 은혜에 감격하여 드린 감사와 찬양이 나와 있다.
7장 에스라의 족보가 서술되어 에스라가 아론의 후손임을 강조한다(1-6절).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칠년 제2차 포로 귀환 시에 약 4개월의 여정 끝에 유다로 돌아왔다(7-10절).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를 비롯한 여러 유다 백성들의 포로 귀환을 허락하고 재정적 원조를 명령하는 조서를 내렸다(11-26절). 에스라는 제2차 포로 귀환의 전과정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감사하고 찬양 드린다(27-38절).
8장 -본문은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2차 귀환자들의 명단과 귀환 길에 오르기 전에 에스라가 취한 준비 조처 및 도착 후 하나님께 대한 경배 행위를 보여 준다. 2차 귀환자들의 명단을 보면 1차 귀환자들의 명단과 마찬가지로 혈통과 가계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 중에도 민족적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한편, 에스라가 귀환 길에 오르기 전과 도착 후에 각기 금식을 선포하고 성전 봉사를 담당할 레위 인들을 챙긴 사실은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모든 일이 헛것이며,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8장 제2차 포로 귀환자의 명단이 소개된다. 인원은 남자만 1773명으로서 제1차 포로 귀환 시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1-14절). 에스라는 백성들과 함께 9일 동안 여행한 후 잠시 진군을 멈추고 성전 제사를 감당할 레위인들과 느디님 사람들을 불러모았다(15-20절). 그 후 금식 기도를 하고 제사장들에게 성전에서 쓸 은과 금과 각종 기명들을 넘겨주었다(21-34절). 유다 본토로 돌아온 후 에스라 일행은 맨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35-36절).
9장 -1차포로 귀환 후부터 2차포로 귀환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몇십년이라는 기간이 경과하였다. 그동안 마땅한 영적 지도자가 없던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혼인을 맺고 그들의 우상을 숭배하는 죄악에 빠져 있었다. 본문은 고국으로 귀환하여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에스라가 하나님께 드린 회개 기도이다. 에스라는 자신이 범죄자들과는 무관하다는 순수성을 주장하지 않고 자신 뿐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범죄 하였음을 거듭 고백하였다. 이는 한 지체가 다쳤을 때에 온몸이 함께 고통당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도 그러해야 한다는 공동체적 연대 의식과 책임감을 일깨워 준다.
9장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당시 이스라엘의 부패 상황을 보고하였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레위 사람들, 심지어 제사장들까지도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이방인들이 가져 온 우상들을 섬기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1-2절). 이런 보고를 받은 에스라는 옷을 찢고 머리와 수염을 뜯으며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올렸다(3-5절). 에스라의 회개의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6-15절). 열조들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죄악을 저질러 왔으나,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사랑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예루살렘으로 모으셨는데 다시금 이렇게 엄청난 우상 숭배의 죄악을 저지른 민족적 현실 앞에서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다는 내용이다.
10장 -자신의 기도를 들은 백성들이 통회하자 에스라는 철저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즉, 그는 이방 여인과 혼인한 자들을 조사하여 그 명단을 공개하고 관계 청산을 요구하였다. 이 명단을 보면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이 백성들의 범죄를 부추겼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인간의 사사로운 정을 떠나 이방인 아내는 물론 이미 태어난 자식과도 헤어지는 뼈를 깎는 거듭남이 요구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회개도 입술만의 통회가 아닌 과거의 죄악을 철저히 내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
10장 에스라는 백성을 직접 꾸짖거나 타이르기 전에 스스로가 먼저 회개하며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통곡하였고, 이 모습을 본 백성들은 찔림을 받아 회개에 동참케 되었다(1-4절). 그런 후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모아 문제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였다(5-8절). 먼저, 이스라엘 온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아서 차분하게 범국민적인 동의를 얻어 가면서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9-17절). 이하에서는 이방인과 결혼한 사람들의 명단이 소개되는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성전 봉사자들과 일반 백성들의 순서로 기록되었다(18-44절).
느혜미야(위로하시는 하나님)
1장 -느혜미야는 유다 멸망 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자들 중에서 드물게 바사의 고위 관리로 임명된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유다에서 자신을 방문한 하나니로 부터 동족들이 고난당하며 예루살렘 성이 크게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금식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다. 그는 먼저 동족들과 자신을 하나의 신앙 공동체로 보고 그들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고백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간구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영적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엿볼 수 있다.
1장 느헤미야의 형제인 하나니와 몇몇 사람들이 수산 궁에 있는 느헤미야를 방문하여서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어 백성들이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1-3절). 이러한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슬픔에 잠겨서 울고 금식하며 기도하였다(4절). 느헤미야의 기도는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중보의 기도였다. 그는, 범죄하면 열국으로 흩을 것이요 순종하면 하늘 끝에 있는 자들까지도 불러모아서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는 모세와 맺은 언약에 의거하여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모아 주기를 간구하였던 것이다(5-11절).
2장 -느혜미야가 기도한지 넉 달만에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즉, 그는 예루살렘 성벽재건과 필요한 물자 공급을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허락받은 것이다. 이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비밀리에 성벽 재건을 위한 사전 답사를 행했다. 이는 재건 사역을 반대하는 무리의 훼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그는 인간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언약의 궁극적 성취자이신 하나님의 도움만을 믿고 의지하며 일을 추진해 나갔다. 이 사실은 그가 자신의 명예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언약 백성의 성읍을 재건하려 했음을 시사한다.
2장 아닥사스다 왕이 근심에 차 있는 느헤미야에게 이유를 묻자 느헤미야는 조국의 수도 예루살렘이 황폐해진 사실 때문이라고 답변하고 성벽을 중건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였다(1-5절). 이에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간청을 허락하고, 성벽 건축을 위한 자재를 확보할 수 있는 조서를 작성해 주었다. 또한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귀환 길을 무장 경호해 주었다(6-10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 삼 일 만에 야간 암행으로 성벽을 둘러보고 조사한 후에(11-16절),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지도층 인사들을 모아서 성벽 중건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17-18절). 암몬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들은 이 일들을 조롱했으나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선언했다(19-20절).
3장 -당시 예루살렘 성은 10개의 문과 4개의 망대가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본문은 이러한 성벽 재건 작업이 담당 공사 구간별로 나뉘어 약40명의 책임자의 감독하여 진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점에서 느혜미야는 탁월한 행정가이자 유능한 감독자이기도 했다. 한편 공사 책임자들의 명단을 보면 그들이 주로 사회 중산층 계급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다소 여유가 있었으므로 성벽재건 작업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3장 성벽 중건 작업은 양문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각 지역별로 분할하여 해당 지역의 거주자들이 자기 지역을 맡아서 성벽 중건 작업을 책임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부 미온적인 사람들이 있었으나 대체로 자기가 맡은 일들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였다. 본장은 성벽 중건 사업에 동참한 사람들의 명단과 그들이 맡은 관할 구역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4장 -유대인과 사마리아 인물간의 마찰은 이미 예루살렘 성전 재건 때부터 있었다(스4장). 느혜미야가 성벽 재건 공사를 잘 진행해 나가자 이번에도 산발랏 일당이 방해해 왔다. 이 같은 그들의 훼방은 단순한 세력 다툼의 일환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도전 행위였다. 그러나 믿음의 인물 느혜미야는 하나님의 뜻대로 재건 공사가 시작된 것처럼 하나님의 권념하심 덕분에 공사가 완료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이에 그는 백성들을 독려하여 한 손으로 무기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일하는 철저한 방어 자세로 공사를 진행토록 하였다.
4장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는 처음에 유대인의 성벽 건축 소식을 들었을 때 불가능한 일을 한다고 비웃었다(1-3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신앙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건축 공사를 하여 상당한 진척을 이루었다(4-6절). 이에 산발랏과 암몬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은 당황하여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저지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침공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이러한 원수들의 위협과 책동으로 유대의 건축 담당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유대인들의 마음은 조금씩 분열되기 시작했다(7-12절). 그러나 느헤미야는 용기를 잃지 않고 백성들을 격려하고 주를 기억할 것을 강력히 권면했다(13-14절). 그리하여 온 백성들이 다시금 힘을 얻고 신앙 안에서 한마음이 되어서,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한 손에는 연장을 들어 외적에 대한 방비와 성벽 건축의 일을 동시에 진행해 나갔다(15-23절).
5장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외부의 적대 세력을 효과적으로 방어하자 이번에는 내부적인 문제가 뒤따랐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즉, 백성들이 성벽 재건을 위한 부역에 동원되다 보니 생계가 곤란하게 된 것이다. 이에 그들은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토지를 저당 잡히고 바사 제국에 바칠 세금 때문에 높은 이자 돈을 빌리자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유층과 지도층의 사람들이 사리사욕만 채우지 않고 동족의 어려움을 함께 나눈다면 문제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었다. 그래서 느혜미야는 그들에게 폭리로 토색한 것과 저당 잡은 것들을 돌려주고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개혁조치를 단행하였다. 이는 믿음의 공동체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것을 각성시켜 준다.
5장 성벽 중건 공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이스라엘의 내부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흉년으로 인한 식량난과 과중한 세금 부담의 위협이었다(1-5절). 느헤미야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각 지역의 관리들과 유지들이 고리 대금업을 하여 동족들을 착취하고 심지어 노예로 매매하기까지 하는 사실에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관리들과 유지들의 그러한 행동에 대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가난한 동족들을 조건 없이 도와주고자 제안하였다. 이러한 그의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민족적인 대운동이 전개되었다(6-13절). 느헤미야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엄격한 개혁 정책을 심한 반발 없이 잘 진행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느헤미야 자신이 평소에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지 않고 자신이 거느린 식솔들이 생활할 만큼의 양식만을 취하고 백성들을 착취하지 않고 주를 위해 열심으로 일하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14-19절).
6장 -하나님과 성도들을 대적하려는 불의한 세력의 역사는 이 세상 끝 날까지 집요하게 계속될 것이다. 본문 역시 이런 사실을 증거해 준다. 성벽 재건 공사의 완공을 앞두고 산발랏 일당은 느혜미야를 성밖으로 유인하여 암살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계략을 눈치채고 지혜롭게 대치하여 위기를 넘긴 느혜미야는 더욱더 하나님만을 굳건히 의지하였다. 한편, 종교 지도자들이 매수되어 느혜미야 제거라는 정치적인 약한 목적에 이용당한 것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서도 안 되지만 서로 영합하여 시대 조류에 편승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
6장 산발랏과 도비야 등의 대적들은 여러 가지 방해 공작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거짓 회담을 제안하여 느헤미야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의 음모를 미리 알고 회담 제의를 거부했다(1-4절). 산발랏이 네 번이나 사신을 보내어 회담을 제의했으나 번번히 거절당하자 다섯번째는 밀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느헤미야가 모반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편지를 밀봉치 않은 것은 소문을 내려는 음모였으나 느헤미야는 개의치 않고 담대히 산발랏의 편지를 무시하였다(5-9절). 이 일 후에 다시 산발랏은 스마야라는 거짓 선지자에게 뇌물을 주고 거짓 예언을 하게 하여 느헤미야가 제사장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성전에 들어가는 범죄를 저지르도록 음모를 꾸몄으나 느헤미야는 지혜롭게 판단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치 않았다(10-14절). 모든 유혹과 난관을 이기고 52일 만에 성벽 중 건의 역사가 무사히 마쳤다(15-19절).
7장 -성벽에 문을 다는 것으로써 재건 공사는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대적들의 위협이 계속되었으므로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느혜미야는 경비 책임자들을 세워 방비케 하고, 귀환하여 외곽 지역에 흩어져 살던 백성들을 불러 모아 예루살렘 성읍에 정착하도록 하였다. 본문에 나와 있는 귀환민들의 명단은 이러한 이주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를 정리,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읍이 재거뇌고 유대인들이 그곳에 정착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사44;26)대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회복되었음을 뜻한다.
7장 예루살렘 성벽 수축이 완공된 후에 느헤미야는 성벽 수비를 하도록 조처했다(1-4절). 그리고 포로 귀환민들에 대한 인구 조사에 착수하여 각 가계별과 지역별로 통계를 내었다(5-69절). 이 일 후에 족장들은 많은 재산을 헌납했으며 일반 백성들도 자기들의 헌금을 모아서 드렸다(70-73절).
8장 -예루살렘성을 재건하고 백성들을 정착시키는 일이 일단락되자 느혜미야는 대성회를 열었다. 이는 백성들을 영적으로 재각성 시키며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다짐토록 하기 위해서였다. 율법낭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깨달은 백성들은 기록된 말씀대로 순종하여 초막절을 지켰다. 초막절은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생활하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다시금 이같은 절기를 지키게 된 유대인들의 감회는 실로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8장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의 지도 아래 성경 중심의 부흥 운동이 일어난다. 온 백성이 광장에 모여 에스라가 율법을 낭송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에스라 휘하의 중간 지도자들은 백성들이 율법의 의미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해석해 주고 가르쳐 주었다. 율법을 깨달은 백성들 사이에서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고 참 기쁨이 흘러 넘쳤다(1-12절). 이러한 대대적인 부흥 운동이 일어나던 때는 칠월이었다. 백성들은 율법을 묵상하다가 칠월 절기에 초막절이 있음을 알고 산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취하여 지붕 위와 뜰안과 광장에다 초막을 짓고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회고하기를 칠 일 동안 시행한 후에 제팔일에는 규례를 따라 성으로 모였다(13-18절).
9장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삶의 터전을 복구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죄악된 삶을 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으로 성취된다. 율법의 말씀을 밝히 깨달은 유대인들이 초막절을 지킨 데 이어 금식하여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도 불구하고 거듭 패역을 일삼은 자신들을 하나님이 궁휼히 여기사 아주 멸하지 않고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도 우리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이니 감사 찬양을 잊어서는 안 된다.
9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낸 후인 칠월 이십사일을 거국적인 대회 개시일로 잡고 율법책을 낭송하고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1-5절). 이어서 에스라의 가르침을 받는 중간 지도자격인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 등의 레위인들이 백성들의 회개와 헌신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의 내용이 나온다. 기도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언약의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심을 감사하고 이제 포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리라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10장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써 새 출발을 다짐한 영적 대각성 운동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절정을 이루었다(9;38). 본문에는 그 언약에 인친 대표자들의 명단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율법에 순종함은 단순한 법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따라 마땅히 살아야 할 삶 그 자체였다. 마찬가지로 영육이 합쳐 하나의 완전한 전인격체를 이루고 있는 우리는 신앙 따로, 일상생활 따로라는 이원론적 삶이 아닌 일치된 삶을 살아야 한다.
10장 에스라의 율법 중심의 부흥 운동이 고조되면서 백성의 대표들이 하나님 앞에 인을 치고 순종과 헌신을 서약하였다(1-27절). 모든 백성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킬 것을 저주로써 맹세하였다. 그 맹세에 따라서 백성들은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하였고 안식일에 매매하지 않았고 안식년을 지켰으며 정기적인 성전세를 바쳤고,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고, 십일조도 드렸다. 즉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28-39절).
11장 -예루살렘은 성 둘fp가 총 6키로미터가 넘는다. 따라서 소수의 인구인으로는 성읍을 방비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느혜미야는 1차 정착민들(7장)에 이어 2차로 이주민들을 모집. 예루살렘에 정착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은 예루살렘 성내에 들어와 살게 된 사람들의 명단에서 뒷받침된다. 즉, 이 명단을 7장의 명단과 비교해 보면 보다 많은 주민들이 성내로 들어온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이 예루살렘 외의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점은, 당시 바사 제국의 지배 하에서도 유대인들이 거주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11장 당시 예루살렘의 거주자가 너무 적었기 때문에 인구를 증가시킬 필요가 있었다. 예루살렘 성벽의 둘레는 꽤 넓었기 때문에 유사시의 방어를 위해서는 적정 인원이 거주해야만 했다. 그래서 자원하는 자들과 제비 뽑힌 자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되었다(1-2절). 예루살렘 거주민 중 대표적인 자들의 명단이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와 레위 사람들을 중심하여 소개되고 있다(3-24절). 다음으로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주요 거주지에 거하는 사람들의 명단도 소개되고 있다(25-36절).
12장 -본문의 제사장과 레위 인들의 명단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유다로 귀환한 자들의 목록이다. 이들은 예루살렘은 물론 전국 각자의 유대인들 거주자에 흩어져 거하면서 백성들을 지도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도왔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단순한 민족 공동체가 아닌 신앙 공동체로서의 가능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한편, 후반부의 성벽 낙성식 기사는 시간상 7장에 이어진 내용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성공리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백성들은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기쁨으로 성벽을 봉헌하는 감사 제사를 드렸다.
12장 예루살렘의 인구 재정착 사업이 끝난 후 이제는 종교 제도의 재정비 사업을 시도한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가계를 조사했는데, 먼저 스룹바벨과 함께 1차 귀환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명단이 기록되었고(1-11절), 다음으로 예수아의 아들 요아김 당시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명단이 기록되었다(12-26절). 이 일 후에 드디어 성곽 봉헌식을 드린다.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고 악기로 찬양하였고 성곽을 따라서 행진하였고 마음으로 기뻐하였다(27-43절). 그리고 제사 장들과 레위인들의 생활 보장을 위하여 십일조 제도 등을 확립하였다(44-47절).
13장 -바사의 관리인 느혜미야는 예루살렘 성읍을 재건한 후 바사로 돌아갔다가 1년 후 다시 유다로 귀환하였다. 그 사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성전을 더럽히며 안식일을 여기고 이방인과 혼인하는 등의 죄를 범하였다. 이에 느혜미야는 백성들의 죄악을 척결하고 바로잡는 재개혁을 단행하였다. 유대인들이 선민으로서의 순수 혈통을 유지해야 하는 근본 이유는 여호와 신앙을 수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조차 그러지 못한 것은 당시의 심각한 타락성을 보여 준다. 그래서 느혜미야는 철저한 개혁을 단행하고서 하나님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달라는 중보 기도를 드렸다. 이는 인간의 근본적 부패성을 증거해 주는 것으로 우리 역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참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없이는 멸망당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해준다.
13장은 느헤미야를 중심한 재개혁 운동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느헤미야는 모세의 율법책을 낭송하고 모압과 암몬 사람들을 축출시켰다(1-3절). 엘리아십 제사장이 암몬 사람 도비야와 교제하고 성전의 골방에서 거주하도록 한 범죄 사실을 뒤늦게 안 느헤미야는 도비야를 내쫓았다(4-9절). 백성들이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지 않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생계 유지를 위해 성전을 떠나는 현상을 보였으나 느헤미야가 이들을 다시 불러모으고 백성들이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도록 권면했다(10-14절). 그리고 안식일이 거룩하게 지켜지도록 힘썼고(15-22절) 이방인들과의 혼인을 징책하고 회개를 촉구했다(23-31절).
에스더(전화위복을 이루시는 하나님)
1장 -에스더가 바사 왕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되게 된 배경이다. 6개월 동안 신하들을 위해 향연을 베푼 왕은 왕비 히스다의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선보임으로 자신의 권세와 영광을 자랑하려 하였다. 그러나 와스다가 왕의 분부를 거역하자 신하들이 왕의 권위를 수호하고 나라의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고 상소하는 바람에 그녀는 그만 폐위되었다. 독재적 성격과 허영이 빚어낸 사건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는 후일 바사에 거주하고 있던 유다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1장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백팔십 일에 이르는 성대한 잔치를 열어 모든 귀족들이 먹고 마시며 놀았다. 이로써 왕은 자신의 능력과 위엄을 과시하였다(1-4절). 다음에는 일반 백성들을 위하여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어 자신들의 기분대로 먹고 마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5-8절). 잔치 마지막 날에 왕은 아름다운 왕비를 사람들에게 자랑하려고 초대했으나 왕후 와스디는 이를 거절하였고, 아하수에로 왕은 심히 노하였다(9-12절). 왕은 박사들의 의견을 듣고 온 나라의 부인들이 남편의 말에 순종치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교훈을 남기기 위하여 왕후 와스디를 폐위시키고 다시는 왕 앞에 나아오지 못하게 하였다(13-22절).
2장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되고 그녀의 후광을 입어 관직에 오른 모르드개가 왕의 목숨을 구하는 공로를 세운 데 대한 기록이다. 분노가 풀린 아하수에로는 자신이 와스디를 폐위시킨 것에 대해 후회하였다. 그러자 와스디가 복권되면 자신들에게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한 신하들은 황급히 전국 도처의 처녀들중 가장 미모가 뛰어난 여인을 새로운 왕비로 맞이하도록 소청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모르드개가 삼촌의 딸 에스더를 궁궐로 들여보낸 것은 동족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의 눈에 들어 마침내 왕비가 된 것은 전적으로 인간 만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덕뿐이었다.
2장 아하수에로 왕의 진노가 가라앉은 후에 신하들이 새로 왕후를 선출하자고 간언하여 그대로 시행하기로 하였다(1-4절). 그때에 수산 성에 모르드개와 에스더란 유대인이 살았는데 에스더는 아름다운 처녀였다(5-7절). 왕의 왕후 간택 선포 이후 전국의 처녀들이 수산 왕궁으로 모여들었는데 에스더도 후보로 선출되었다. 에스더는 사촌 오빠 모르드개의 가르침대로 자기 민족을 밝히지 않고 왕궁으로 들어갔다(8-11절). 수많은 처녀들을 거부하던 왕은 에스더의 미모에 반하여 왕후로 삼고 큰 잔치를 배설하였다(12-18절). 그 후 모르드개는 우연히 내시들의 왕 살해 음모를 알고 에스더에게 연락하여 왕의 위기를 모면케 해주었다(19-23절).
3장 -출애굽 당시부터 이스라엘을 괴롭힌 아말렉 족(출17;8-16)은 역사상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적대하였다. 본문에는 그러한 아일렉 족의 후예인 하만으로 인해 바사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모르드개가 바사의 제2인자인 하만에게 무릎 끓지 않은 이유는 아마 그가 우상 숭배자였기 때문인 것 같다. 무릎 끓지 않은 그가 유다인인 것을 안 하만은 교묘한 술수로 아하수에로의 허락을 얻어 모르드개뿐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라는 조서를 전국 각지에 반포한 것이다.
3장 아각 사람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의 신임을 얻어 왕국의 제이인자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하만에게 꿇어 절하였으나, 모르드개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히고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하만은 심히 노하여 모르드개의 민족인 유대 사람들을 멸절하려고 마음먹었다(1-6절). 그는 왕에게 유대인들의 실상을 허위 보고함으로써 유대인들을 멸절시켜도 좋다는 왕의 허락을 받아 내었다(7-11절). 하만은 각 지방에 왕의 도장으로 인친 조서를 보내어 모든 유대인들을 남녀 노소 불문하고 죽이고 재산을 몰수하라고 명령했다. 이러한 하만의 명령이 너무 가혹하여 수산 성내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12-15절).
4장 -유대인을 죽이라는 아하수에로 왕의 조서가 공포되자 바사 전역의 유대인들은 큰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때 모르드개는 동족과 함께 슬픔을 토로하며 금식하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에스더에게 사람을 보내 왕에게 호소함으로 동족을 구하라고 요청하였다. 당시 왕실 법도에 의하면 누구든지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그 앞에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처형당하였다. 그러나 모르드개의 독려를 받은 에스더는 마침내 “죽으면 죽으리라”는 용단을 내리게 되었다. 본문에는 하나님이란 말은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민족적 위기에 직면한 유대인들이 금식한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구원을 호소한 신앙적인 행위였다.
4장 모든 유대인들을 멸절하라는 내용의 왕의 조서가 반포되자 모르드개를 비롯한 각 도의 유대인들은 애통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1-3절). 에스더는 베옷을 입은 모르드개를 보고 무슨 일인가 알아보도록 내시 하닥에게 명령했다. 내시 하닥의 중재로 에스더와 모르드개 사이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하만의 음모를 설명해 주고 유다인을 멸절하라는 내용의 조서를 보여 주면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서 유다 민족을 구원해 주기를 간구하라고 말했다. 에스더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갈 터이니, 수산 성의 모든 유다인들은 이 일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 주기를 모르드개에게 부탁하였다(4-17절).
5장 -일사 각오의 신앙으로 왕 앞에 나아간 에스더는 죽음의 고비를 넘겼을 뿐 아니라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즉석에서 위기에 처한 동족을 위해 간구하지 않고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하였다. 그 결과 에스더는 그녀의 소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왕의 약속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실로 하나님이 당신께 모든 것을 의탁한 자를 권념하시기 때문이다. 한편, 왕비의 초청을 받고서 왕과 함께 연회에 참석하고 다음날의 잔치에도 초대받은 하만은 자신이 득세한 줄로 착각하여 크게 기뻐하였다. 이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한치 앞도 내다볼 줄 모르는 악인의 어리석음을 잘 보여 준다.
5장 에스더는 사흘 금식을 마치고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갔다. 왕이 에스더를 보고 심히 사랑스러워 금 홀을 내밀고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에스더는 왕을 위한 잔치를 베풀었으니 하만과 함께 참석하도록 부탁했다(1-4절). 왕이 에스더의 부탁대로 하만과 함께 잔치에 참석했고, 또 에스더의 소원을 물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했으나 에스더는 한 번 더 왕을 위한 잔치를 베풀겠으니 하만과 함께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5-8절). 하만은 왕과 단 둘이서만 왕후의 잔치에 초대받은 것을 대단히 기뻐하고 아내와 친구들에게 자랑하였다. 그리고 아내와 친구들이 잔치에서 왕에게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죽이기를 구하라고 주장하자, 하만은 잔치 참석 전에 나무를 구하여 뜰에다 세워 두었다(9-14절).
6장 -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한 아하수에로는 우연히 왕실의 역대 일기를 보다가 모르드개가 일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하였으면서도 포상을 받지 못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날 왕이 하만에게 자문을 구하자 그는 자기 꾀에 빠져 자신이 죽이려고 한 모르드개를 스스로 드높이는 일에 앞장서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간계를 파하시고 성도들을 위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신다는 진리(롬8;28)를 밝히 보여 준다.
6장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역대 일기를 읽던 중에 모르드개가 왕의 암살 음모를 고발함으로써 왕의 생명을 구한 사실과, 왕의 생명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상급을 받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1-3절). 왕은 마침 궁중에 하만이 있음을 알고 불러서 왕의 기뻐하는 자에게 어떤 상을 주면 좋겠느냐고 물었고, 하만은 왕의 기뻐하는 자란 바로 하만 자신일 것이라고 착각하여 왕복과 왕관과 왕의 말을 취하게 하여 온 백성에게 알리는 것이 좋다고 대답하였다(4-9절). 왕이 하만에게 명하여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여 온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라고 했다. 하만은 왕의 명령대로 시행한 후에 모르드개를 죽이려던 자기의 계획에 중대한 차질이 생겼음을 알고 고민에 빠졌다. 하만의 아내와 친구들은 하만이 유다 족속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였고, 이야기 도중에 왕의 내시들이 와서 하만을 에스더 왕후의 잔치에 데리고 갔다(10-14절).
7장 -하만이 마침내 죽임당한데 대한 기록이다. 에스더가 다시금 베푼 연회에 참석한 왕은 그녀의 소청이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거듭하였다. 이때 비로소 에스더는 자신과 동족이 하만의 약한 계략 때문에 몰살당할 위기에 처하였음을 소상히 밝혔다. 이에 분노한 왕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아 매려고한 나무에 도리어 그를 처형하였다. 이와 같이 극적으로 악인을 멸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그저 놀라운 뿐이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돌보심 때문이다(시23;4).
7장 왕이 하만과 함께 왕후 에스더가 베푼 두번째 잔치에 참석했다.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왕은 에스더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테니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드디어 에스더는 자신과 자기 민족의 생명을 구해 달하는 소원을 말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히고 유대인 멸절 계획의 주동자는 하만임을 고하였다. 그러자 하만은 심히 두려워하였다(1-6절). 사건 경위를 들은 왕은 노하여 후원으로 나가 버렸고, 하만은 왕후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려서 생명을 구해 주기를 빌었다. 다시 잔치 자리로 돌아온 왕은 이 광경을 보고 하만이 에스더를 강간하려 하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그래서 왕의 진노는 더욱 증폭되었으며, 결국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고 세워 누었던 나무에 자기 자신이 달려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7-10절).
8장 -공의로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때문에 사태는 완전히 반전되었다. 아하수에로는 처형당한 하만을 대신하여 모르드개를 바사의 제2인자로 임명하였으며 유대인들이 오히려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들을 진멸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조서를 전국 각 도에 하달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성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애매히 고난당할 수 있으나 결국에는 구원을 얻게 되고 대신 악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8장 왕은 처형당한 하만의 모든 재산을 에스더에게 주었고,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관계를 안 후에 하만이 가졌던 직위를 모르드개에 하사했다. 이로써 모르드개는 제국 내의 이인자의 위치에 올라섰다(1-2절). 한편 하만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멸절시키라는 창의 조서는 여전히 효력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안전은 큰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에스더는 다시 한번 왕에게 유대인을 멸절시키라는 내용의 조서를 취소해 줄 것을 부탁했고, 왕은 에스더의 부탁을 들어주었다(3-8절). 이로써 유대인의 대적들을 살육하라는 왕의 도장이 찍힌 조서가 꾸며져 제국의 모든 지방에 반포됨으로써 유대인들은 모든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9-14절). 모르드개는 고급 관리의 복장인 푸르고 흰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썼고, 모르드개의 임직을 많은 백성들이 기뻐하였다(15-17절).
9장 -아달 월 십삼 일은 하만의 계락에 의해 바사 제국의 전역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진멸당하기로 되어 있던 날이다.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하고 아하수에로 왕의 새로 새로운 조서가 공포된 덕분에 유다인들은 대적들을 도륙하고 자신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 날을 기념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선민으로서의 연대 의식을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동족들을 구제함으로 절대 절명의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