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시험하시는 하나님)
1장 -당대의 의인이라 할 수 있었던 욥에 대한 소개와 그가 고난에 직면하게 된 배경 및 사단의 1차 시험이 언급된다. 그는 하나님이 ‘내 종’ 이라고 인정하실 정도로 경건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범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사단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기 때문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고, 사단은 욥의 재물과 자녀들을 멸하였다. 하지만 욥은 창졸간에 끔찍한 재앙을 당하고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순전한 믿음을 보여 주었으며,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고백하였다.
1장 욥기는 한 의인의 성결, 고난, 번민, 회의를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갈등 그리고 이에 관련되는 신정론을 부각시킨 책이다. 본장은 욥이 시련을 당하게 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경건한 사람으로서 부를 누리는 욥과(1-5절) 욥에 대해 시험할 것을 획책하는 사단과 그 시험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이 기록되어 있고(6-12절),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도 혀의 죄를 짓지 않는 욥의 비장함이 기록되어 있다(13-22절). 사단의 교활한 간계와 하나님의 제한적인 묵계가 묘사되는 본장은 앞으로 욥이 당할 시련의 배경을 전체적으로 제시해 준 것이며, 이를 극복한 욥에게 더 큰 축복을 내려주실 하나님의 공의를 암시해 주고 있다. 인간의 삶 속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역사하는 사단의 간계가 삽입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사단의 간계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2장 -욥의 순전한 신앙이 입증되자, 사단은 거기서 물러서지 않고 이제 욥에게 질병을 내리겠다고 하나님께 제의 했다. 그리하여 욥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단에 의해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그의 온몸에 악창이 났고, 아내조차 그를 조롱하며 떠났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조용히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런 상황에서 욥의 소문을 듣고 세 친구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너무도 끔찍한 욥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칠 일 동안 밤낮 욥과 함께 땅에 앉아 있었다.
2장 전장에서는 욥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이를 깨뜨리려는 사단의 계교가 인간 욥을 통하여 첨예하게 대립되는 장면이 기록된 것에 반하여, 본장에서는 사단의 새로운 계교가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욥에게 고통을 주어 욥의 신앙을 본질적으로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욥의 육체를 공격하여 악창이 나게 하는 사단의 두번째 공격은 욥을 극심한 고통으로 처하게 했고, 게다가 친구들까지 등장시켜 욥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본장에는 욥의 일차적인 승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1-6절), 욥에게 악창을 줌으로써 육체적 고통으로 인한 불신을 획책하는 사단의 간계가 기록되었다(7-8절). 또 욥의 아내와 친구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주위 사람들을 통해 욥에게 혼란을 조장하려는 사단의 교활함이 기록되어 있다(9-13절).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저자는 사단의 파괴적인 속성을 알림과 동시에 깊숙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부각시키고 있다.
3장 -극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욥이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그것은 자신의 출생을 한탄하고 저주하는 내용이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아내를 꾸짖은 그였지만(2;9). 계속되는 고통 앞에서 자신의 태어난 날을 저주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극심한 고투를 벌이는 한 경건한 의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본장 내용은 온통 한탄과 저주로 가득하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직접 욕하지 않으며,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항변하고 있지도 않다. 욥이 이처럼 말문을 연 것은 문병은 친구들로부터 위로를 받으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다.
3장은 갑자기 엄청난 재난을 당한 욥이 마침내 긴 침묵을 깨고 자신의 심정을 노도 같은 탄식으로 토로하는 장이다. 본장은 앞장들의 산문적인 서술 형태와는 달리 시적 운율을 띠는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본장을 \'욥의 애가\'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애가를 통해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한다. 엄청난 고난에 시달린 욥은 생이란 결코 죽음보다 낫지 못하다는 비통한 말을 함으로써 심리적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대목과(1-10절) 죽음의 세계를 동경하는 대목(11-19절), 그리고 죽을 수조차 없이 희망이 끊긴 자신의 상태를 묘사하는 대목이다(20-26절). 그러나 극심한 고난이 욥으로 하여금 염세주의적인 발언을 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살 가능성을 인정치 않고 있다. 그것은, 적어도 생은 비극이지만 출생도 자기 의사가 아니었듯이 죽음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임을 욥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장 -욥의 한탄에 대해 제일 먼저 엘리바스가 말을 받았다. 그의 말투는 책망조였으며, 그 요지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징벌이 임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고난이 죄의 결과라고 보는 전통적인 교리와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논리였다. 이어서 엘리바스는 환상 가운데서 받은 여호와의 계시를 언급한다. 하지만 그 계시 내용은 고난당하는 자를 위해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된 인간 본성에 관한 보편적인 교훈이었다. 따라서 엘리바스는 모든 인간이 죄악 가운데 있고 그 결과 누구에게나 고난이 임할 수 있으므로 욥이 자신의 운명을 탓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전하고자 하였다.
엘리바스는 환상 가운데서 받은 여호와의 계시를 언급-4:12 무슨 말씀이 내게 가만히 임하고 그 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13 곧 사람이 깊이 잠들 때쯤 하여 서니라 내가 그 밤의 이상으로 하여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15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었느니라/16 그 영이 서는데 그 형상을 분변치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 내가 종용한 중에 목소리를 들으니 이르기를/17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18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20 조석 사이에 멸한 바 되며 영원히 망하되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21 장막줄을 그들에게서 뽑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이 죽나니 지혜가 없느니라
4장은 욥의 고난과 그의 탄식에 대한 엘리바스의 충고가 계속되는 시의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엘리바스의 주요 논지는 전통적인 \'신상필벌\'의 응보 관념이다. 그리고 저자는 욥과 엘리바스의 변론을 통하여 당대의 일반적인 지혜 철학과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대립시키고자 하였던 것 같다. 본장은 질책으로 시작하는 엘리바스의 충고와(1-6절), 악인에게만 임하는 심판(7-11절), 그리고 환상으로 깨닫는 진리가(12-21절) 기록되어 있다. 엘리바스는 인간의 본질적 모습인 죄성, 우매성, 연약성, 유한성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 속에는 하나님 한 분만이 완전하시며, 또한 욥이 주장하는 \'자기의\'는 인간적 교만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한 회개만이 고난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엘리바스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주장은 사랑의 결여와 진실의 잘못된 적용으로 인하여 오히려 욥에게 번민을 가중시키게 하였다.
5장 -본장에서도 엘리바스의 책망이 계속 이어진다. 그는 욥에게 한탄과 원망조의 말을 그치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종용했다. 비록 범죄로 인해 징계를 받더라도 하나님을 의뢰한다면 하나님이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 이유인즉,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이 세상을 아무렇게나 버려두시지 않으시며 인간사에 직접 개입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난을 죄의 결과라고 여기는 엘리바스의 책망은 오히려 욥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5장 전장에서 엘리바스의 논지는 욥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서 욥이 당한 고난의 근거가 과거의 범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본장에서는 그러한 논지가 더욱 구체화되어 확고한 신념으로 서술된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충고가 수용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회개를 촉구하며, 자기 의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신 의존적 신앙으로 돌아오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바스의 주장 속에는 다음과 같은 모순이 숨겨져 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섭리의 일면만을 증거한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빠져 있는 것이다. 본 장은 미련한 자가 당하는 멸망과(1-2절) 악인의 비참한 운명(3-5절), 그리고 고난 그 자체인 인생(6-7절)을 나타내고 있으며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과(8-16절) 주의 징계를 인정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내용이(17-27절) 기록되어 제4장에 이어 제5장에서도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가 기록되어 있다.
6장 -엘리바스의 책망에 대해 욥이 대답하였다. 먼저 욥은 자신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하고서,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다고 했다. 욥은 그 고통의 원인이 자신의 범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초지종을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 있었다고 믿었다. 또한 욥은 위로하기는커녕 논리만 앞세워 책망을 일삼았던 엘리바스에 대해 섭섭하다 못해 화를 내었다. 아울러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면서 구체적인 범죄를 지적해 보라고 반박하였다. 결과적으로, 엘리바스의 책망조의 조언은 욥의 반발심을 더욱 부채질 하는 셈이 되었다.
6장에는 엘리바스의 충고에 대한 욥의 답변이 기록되어 있다. 전반부에는 욥이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나타내는데, 결백을 주장하는 욥과(1-7절) 죽음을 원하는 욥이 기록되어 있다(8-13절). 후반부에는 친구를 질책하는 욥(14-23절), 그리고 권면의 허점을 지적하는 욥이 기록되어 있어(24-30절) 엘리바스의 충고에 대한 욥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3장에서는 욥 자신이 혼자서 탄식했지만, 본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친구들과의 논쟁이 시작됨으로써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본장에서는 욥의 최종적 관심을 알 수 있다. 욥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건강을 회복하는 것과 막대한 소유물을 다시 획득하는 것, 그리고 자손의 축복을 다시 받는 것 등은 모두 2차적 관심의 대상일 뿐 궁극적 관심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최종적 질문은 현재의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섭리에 대한 것이었다. 현재 자신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혼란에 빠졌는데,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 관심이었다.
7장 -엘리바스에게 반박한 후에, 욥은 이제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처지를 호소한다. 극심한 육체의 고통은 정신의 고뇌까지 동반하였고, 그래서 그는 자기 존재가 차라리 사라지기를 소원하였다. 믿었던 친구에게서 마음의 상처만 받았던 욥이기에 하나님을 향한 탄식의 정도는 한층 더 비통했다. 욥이 외치는 절규의 소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하는 전형적인 탄원이 아니었다. 오히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동정하고 계신다면, 이 보잘것없는 인생을 풀어 달라고 호소하였다.
7장에는 엘리바스의 충고에 대한 욥의 두번째 논쟁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욥이 갖고 있는 인생관과 그의 탄원적인 기도가 언급되어 있다. 인간의 보편적인 상황으로부터 욥의 특별한 경험이 유추된 본장은 욥이 자신의 허무한 인생관을 토로한 전반부와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곧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욥과(1-10절) 하나님께 호소하는 욥이 기록되어 있는데(11-21절), 욥은 본장에서 인생이 엘리바스가 생각한 것처럼 단순히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는 인간의 삶을 군인의 격렬한 전투나 농부의 고된 노역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욥은 곤고하고 수고로운 밤과 뒤척이는 밤, 소망 없는 날의 묘사를 통해 자신의 인생에도 또한 희망이 없음을 언급하고 있다. 본서 저자는 이와 같은 인생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인간들의 생명과 연한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의도적으로 알리고자 했을 것이다.
8장 -욥의 반박과 호소를 듣고 있던 빌닷이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엘리바스처럼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을 내세웠다. 자신의 결백성을 주장한 욥(6;29,30)에게 일침이라도 가하려는 듯 단도직입(單刀直入)적인 어투로 그를 몰아 붙였다. 그의 주장은 간단했다. 욥의 자녀들이 범죄했기 때문에 창졸간에 죽음을 당했으며, 욥 역시 죄로 인한 징벌을 받고 있으므로 솔직히 죄악을 고백하고 지금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악인의 결국은 패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음을 장황하게 설명함으로써(11절이하) 은근히 욥을 향해 압박을 가했다. 이렇게 하여 욥과 친구들간의 대립은 점차 그 도를 더해 갔다.
8장 지금까지는 엘리바스의 충고와 권면을 기록했지만, 본문부터는 빌닷의 충고가 기록되어 있다.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추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한 엘리바스의 충고와는 달리, 빌닷은 처음부터 비난하는 투의 변론을 시작하고 있다. 빌닷은 이러한 투의 충고를 통해서 엘리바스와 같이 욥이 죄인이라고 단언함으로써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공의와(1-7절), 사곡한 자에 대한 교훈(8-19절), 무죄한 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20-22절). 빌닷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릇된 일을 행하실 수 없는 분이며 욥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 재난을 당한 것은 그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빌닷의 주장 속에는 부당한 고난에 관계된 문제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으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 신 이 세상에 왜 비극과 고난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도 다루고있지 않다. 빌닷의 충고는 시의 형태로서 주로 대구적 형태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9장 -앞에서 엘리바스와 발닷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공의를 주장하였고 욥의 범죄 사실을 시인케 하려고 애를 썼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의 결백성을 주장하는 욥이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욥은 그들의 dif팍한 생각을 정면으로 논박하고자 했다. 즉, 그는 하나님이 의로우시며 그분 앞에서는 아무리 의로운 인간이라도 자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도 잘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자신은 까닭모를 징벌을 당하여 고통당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주권하에서는 악인뿐만 아니라 순전한 자도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현실을 실감한다고 말했다(22절). 그러한 현실 속에서 욥이 원하는 것은 주의 징벌의 막대기가 떠나가는 것뿐이었다.
9장은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을 기록하고 있다. 욥은 친구들의 변론을 향해서는 인간을 상대적으로 구분한 사실을 들어 반론하였고, 하나님을 향하여는 선악간의 행실을 상대적으로 헤아려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였다. 이처럼 끊이지 않는 고난과 친구들의 냉정한 질책 속에서 욥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인간과(1-3절)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어(4-14절), 하나님 앞에서의 칭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욥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의 욥의 태도와(15-20절) 욥이 말하는 자신의 처지(21-24절), 그리고 생명이 짧음에 대한 탄식이 기록되어(25-26절) 하나님 앞에서 욥의 불평적 태도가 표현되어 있다. 이어 인간 수고의 헛됨에 대한 고백과(27-31절)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인정이 기록되어 있다(32-35절). 욥은 인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말함으로써 빌닷의 논리에 공박하고 있는 것이다.
10장 -친구들을 향한 논박을 마친 욥은 또다시 하나님을 향해 호소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을 이토록 큰 고통에 처하게 하신 하나님께 그 이유를 가르쳐 달라고 애원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 누구도 의를 내세울 수 없음을 분명히 인정하면서도(15절) 자신의 결백성에 대해 하나님이 더 잘 아시지 않느냐고 반문하였다(7절). 욥으로서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고통 가운데서 살아가기보다는 차라리 무덤에 들어가는 편이 더 낫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육체를 지으신 하나님께 고통을 그치게 해달라고 간구하였다.
10장에는 하나님을 향한 욥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다. 욥은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하기보다는 단순히 자비를 구하며 역설적기고 풍자적인 탄원을 하고 있다. 전장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심정을 과격하지 않게, 그리고 친구들의 충고나 변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탄원조의 기도문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 욥 자신의 역경에 대한 항변이 언급된 전반부와(1-7절) 창조주에 대한 욥의 고백(8-13절), 하나님의 엄정한 다스림에 대한 탄원이(14-19절) 기록되어 있고, 후반부에는 죽기 전에 안식을 간구하는 욥의 기도가(20-22절) 기록되어 있다. 본서의 기자는 욥의 이러한 탄식적인 기도 내용을 통해 고통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불평 또는 인간적 원망에 대한 위험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대한 정면적인 도전의 자세보다는 하나님의 자비에다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함으로써 자신의 고난의 근원을 해결하고 삶의 본래적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11장 -세 친구들 중 최연소자로 추정되는 소발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말수가 적었으나. 그 역시 원칙론적 범위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의 주장은 이러하다. 죽,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이 감히 단정할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하며,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은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욥이 결백을 주장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심각한 죄악을 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고 단정했다(6절). 결국, 소발의 견해는 앞의 두 친구의 생각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11장은 소발의 충고가 기록되어 있다. 엘리바스의 충고는 종교적 경험이 토대가 된 것이었고, 빌닷의 충고는 옛 시대의 교훈에 근거한 것인 반면, 소발의 충고는 추론 방식을 사용한 것이었다. 그래서 소발은 개인의 직감이나 상식에 근거를 두고 흑백 논리적인 사고 방식으로 욥을 무조건 죄인이라고 규정 짓고 있다. 본장은 욥에 대한 소발의 질책이 기록되어 있는데(1-6절) 욥이 말이 많고 교만하며,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정죄를 당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 소발의 신관을 기록하고 있는데(7-12절), 소발은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힘으로는 항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엘리바스의 권고나 빌닷의 변론보다는 훨씬 더 냉혹하게 욥의 회개를 촉구하는 소발의 권고가 기록되어 있다(13-20절). 소발의 권고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는 사상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는 반드시 회복시켜 주시지만, 그렇지 않는 자는 벌을 주신다는 단순한 흑백 논리이다.
12장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여 설교조로 책망하려 드는 친구들의 말을 듣자 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욥은 친구들의 독선적인 태도를 비난하고 나섰다. 욥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혜가 친구들의 지혜에 비해 조금도 못할 것이 없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친구들은 원칙론적인 논리만 장황하게 설명한 반면에 욥은 논리로써는 납득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현실을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욥은 자신의 고난의 원인과 의미를 알고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라고 생각했다. 그가 13절 이하에서 측량할 길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언급한 이유도 그런 생각에서였다.
12장은 소발의 변론에 대한 욥의 답변이 기록되어 있다. 욥이 악인들의 흥왕을 예시하여 소발의 인과응보적 사고에 반박하는 전반부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그리고 절대 주권을 설명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욥은 친구들의 지적 교만에 대한 비난을 하면서(1-3절), 자신과 같이 허물없이 비난당하는 처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4-6절). 이는 세상을 지배하시는 하나님(7-12절),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면서(13-24절)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본문에서 욥은 친구들의 자만을 비웃으면서 인간이 다른 인간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피조된 인간은 모두 제한적인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특별히 더 나은 사람 없이 다 동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13장 -본장에서 욥은 변론을 하고 있다가보다는 이른바 공판에 앞선 진술 또한 예비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는 친구들의 거만하고 독선적인 자세를 나무라고 침묵을 명한 후에, 자신은 오직 하나님께 억울함을 송사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까닭은, 하나님이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신다는 확신과 자신은 결백하다고 하는 자신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다. 따라서 욥은 목숨을 걸고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던 셈이다.
13장은 욥이 하나님의 속성에 관해 친구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본장에서 시작하여 14장까지 계속되는 욥의 논지 속에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인간적인 호소를 제기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대한 욥의 믿음이 점차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본장은 먼저 친구들의 독선을 질책함으로 자신의 지혜를 강조하는 전반부와(1-12절), 하나님께 대한 욥의 굳은 확인이 언급된 중반부(13-19절), 그리고 자신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는 후반부로(20-28절) 구성되어 있다. 본장을 통해 욥은 친구들의 지식이 피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임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물론 욥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한 근본 진리에 대해서는 친구들의 견해에 찬성하였지만, 그들이 이끌어 낸 결론에는 찬성하지 아니했다. 그러기에 욥은 마치 법정에서 자기 입장을 변론하듯이 친구들에게 항의하며,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벌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를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14장 -여기서 욥은 덧없는 인생의 무상함과 연약함을 노래하둣 읊조린다. 그리고 이토록 덧없는 인생에게 어찌하여 견디기 힘든 시련을 굳이 허락하시는가 하고 하나님께 반문하였다. 본문은 전통주의적 염세주의 인생관과는 다소 상이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왜냐하면 인생이 스올에서 다시 나올 수 있다고 하는 낙관적이고 소망적인 인생관의 여운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13절). 하지만 그러한 일말의 소망을 간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현실은 욥의 내면을 탄식과 절규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14장 전장에 이어 본장에서도 욥의 논쟁은 계속된다. 본장에서는 인간의 연약함과 유한성으로 말미암아 슬플 수밖에 없는 인생에 대해 호소하고 있다. 그래서 슬픈 인생에게는 하나님의 구원밖에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욥의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이 현재 당하고 있는 역경을 탄원할 때의 모습과는 대조되는 고백이다. 본장은 소발에 대한 답변으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용별로 분석하면 고난에 대한 욥의 탄원(1-6절), 짧은 인생에 대한 고백(7-12절), 내세에 대한 욥의 신앙(13-15절), 하나님의 간섭에 대한 욥의 호소(16-17절), 자신의 죽음에 대한 욥의 예견(18-22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에서 욥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것과는 다른 통찰을 보이고 있지만, 욥의 이러한 고백 속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인생의 유익한 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허점이 있다.
15장 -친구들의 책망이 욥으로 하여금 더욱 자기변호에 몰두하게 만들었듯이, 욥의 반박을 들은 친구들은 더욱 욥을 공박하고 나섰다. 본장에서 엘리바스는 욥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는 의문문을 연속적으로 나열하여 욥을 직접 고발하기도 하고(7-16절), 3인칭에게 말하는 수법으로 완곡하게 빗대기도 했다(2,3절). 또한 그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가증하고 부패한 존재임을 주장하면서도(16절), 욥에게 닥친 재난을 특정한 죄와 연결시키려는 생각은 결코 철회하려 들지 않았다.
15장은 엘리바스의 두번째 변론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엘리바스는 첫번째 변론에 비해 훨씬 적대적이며 난폭한 어조로 변론을 하고 있다. 욥과 두번째 변론을 하는 모든 친구들이 이제는 욥을 악인으로 간주하고 악인의 궁극적인 최후에 대해 변론을 통해 부각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읍은 절망적인 상황, 죽음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증인이 하늘에 있고, 자신의 소망이 하늘에 있음을 한층 더 강력하게 선포하며 끝까지 희망과 생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본장을 내용별로 구분하면 욥의 발언에 대한 엘리바스의 비난(1-6절), 짧은 지식과 경험을 탓하는 엘리바스(7-10 절), 욥의 의로움에 대한 엘리바스의 책망(11-16절), 악인의 종말에 대한 엘리바스의 설명(17-35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16장 -엘리바스의 책망을 들은 욥은 곧장 엘리바스를 위시한 친구들에게 조소를 보낸다. 그의 조롱은 ‘번뇌케 하는 안위자’ 라는 표현 속에 집약되어 있다. 친구들이 아무리 자신을 몰아붙여도 욥의 귀에는 안위자를 가장한 그들의 책망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을 곤고케 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믿었다. 자신에게 어떻게 하여 그토록 끔찍한 재앙이 임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욥은 이 재앙을 겪게 하신 분도, 또 그것을 벗어나게 하실 분도 여호와시라고 생각했다. 또한 욥은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헤아려 주실 것이라 믿었다.
16장은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두번째 변론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욥은 엘리바스가 위로했던 말들이 욥 자신이 처한 삶의 정황을 전혀 이해하지 않은 데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 지으며, 엘리바스의 논지였던 고난과 죄의 상관관계(相關關係)를 비판하고 있다. 엘리바스의 위로는 자신의 의로움만 강조하고, 욥 자신을 근심 속에 빠뜨리는 것이었기에, 욥은 변론의 보이지 않는 청중이신 하나님께 직접적인 개입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본장은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질책(1-5절), 고난에 대한 욥의 고백(6-16절), 무죄를 위한 욥의 변증(17-22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장에 나타난 욥의 모습은 다음의 두 가지 내용과 같이 상반된 모습이다. 첫째, 욥은 자신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 두번째로 진리에 대한 소망을 여전히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욥은 비록 자신의 무죄가 밝혀지지 않고 죽게 될지라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당함을 변호해 줄 것이라는 강력한 소망을 본문에서 표현하고 있다.
17장 -욥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말미암아 기진맥진한 상태에 처했다. 육신의 상처가 점점 더 심해졌으며, 친구들의 책망도 그 도를 더해 갔다. 그는 친구들의 가시 돋친 조언을 듣느니 차라리 혼자 고독하게 버림받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욥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결백을 입증 받는 일이었다. 이 일을 위해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증인이 되어 주시기를 소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한 소망과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그의 목전에는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무덤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17장에는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두번째 답변이 계속되고 있다. 본장은 욥16장 후반부의 호소적 분위기와는 달리, 욥이 다시 고뇌스런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욥의 고뇌에 찬 격한 감정들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태를 한탄함은 물론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악용한 친구들을 비난하는 상황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본장의 전반부는 욥이 처한 상태가 묘사되어 있고, 후반부에는 친구들에 대한 책망이 나타나 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욥의 생각(1-2절)에 이어 하나님의 중보에 대한 욥의 호소(3-5절)가 기록되어 있고, 욥의 처지와 의인들의 형편(6-9절)을 비교하고 있다. 끝으로 소망 없는 삶에 대한 욥의 탄식(10-16절)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격을 바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고난 또한 욥의 경우처럼 \'하나님 바로 앎\'의 신앙으로 볼 수 있다면 욥과 같은 은혜 속에 거할 수 있을 것이다.
18장 -빌닷이 두 번째로 입을 열었다. 그의 논조는 한층 더 단호하고 냉혹하다. 처음에는 욥의 가족에게 닥친 재난이 죄 때문이라고 말하면서도 고통당하는 친구에 대한 동정심도 표하였었다(8장). 하지만 서로간의 감정이 상해버린 지금은 동정심이 모두 사라져 버린 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욥이 말장난이나 하는 자요, 스스로 파멸을 향해 치닫는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그리고 악인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장황하게 설명함으로써(5-21절), 욥의 현재 처지가 바로 그러하다는 것을 암시하고자 했다.
18장은 빌닷의 두번째 변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된 빌닷의 첫번째 변론과 비교해 볼 때(참조, 욥8장) 별로 개선되지 못한 비슷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첫번째 변론보다 두번째 변론에서 더 위협적인 분위기가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빌닷이 많은 말로 변명한 욥을 변론 선두에서 비난하고 있는 점에 있어서 본변론은 처음 변론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첫 변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순전한 자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기대와 소망을 제공했던 빌닷은, 븐장 후반부에서는 욥과 그의 가족이 땅에서 없어지리라는 위협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본장을 내용별로 구분하면 욥의 경박성을 공격하는 빌닷(1-4절), 악인들의 재앙에 패한 빌닷의 견해(5-19절), 악인들의 패망 원인 과 그 영향(20-21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에서 빌닷은 악인의 일반적인 운명을 말하면서 이것을 욥의 개인적 상황에 적용시키려 하고 있다.
19장 -친구들에 대한 욥의 반박 역시 그 도를 더해 갔다. 앞에서 그는 친구들을 가리켜 ‘번뇌케 하는 안위자’ 라고 불렀고(16;1), 여기서는 자신을 번뇌케 하고 학대하는 자라고 부른다. 욥의 입장에서는, 설사 자신에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고통에 처한 자를 그토록 신랄하게 몰아붙이는 친구들의 행위는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욥은 하나님이시라면 자신에게 이렇듯 까닭 모를 고난을 허용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들이 덩달아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을 경고하였다. 한편, 26, 27절에서는 희미하게나마 부활에 대한 신앙을 피력하였다.
19장은 빌닷에 대한 욥의 답변이 기록되어 있다. 엘리바스와 빌닷의 어투는 위로나 동정어린 마음으로 회개를 권면하던 표현들이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논리적이고 변쟁적인 말씨로 욥이 죄인임을 강하게 주장하는 묘사들로 대화가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욥의 답변도 자신의 상황을 하소연하며 항변하는 논체에서 체념과 아득한 회복을 소망하는 바람으로 바뀌어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본서의 흐름에서 볼 때 본장은 욥의 어둡고 절망적인 참담함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부분이다. 이와 같이 욥의 심리적 갈등상태가 치밀하게 언급되어 있는 본장은 친구들의 불친절한 태도를 불평하는 부분(1-6절)과 하나님과 친구들, 그리고 친척들에게 소외당함을 묘사한 대목(7-22절), 그리고 곤경과 절망의 밑바닥에서 하나님의 판결을 기대하는 장면(23-29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본문 속에는 욥이 철저한 소외와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본서 저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20장 -빌닷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발의 두 번째 공박 역시 냉혹하기 짝이 없고 욥을 악인으로 몰아붙이기에 급급한 인상을 준다. 그는 약자 필명이라는 논리를 고통당하고 있는 욥에게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욥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의 주장에는 악인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다는 암시조차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욥의 비참한 처지에 대해 조금도 동정심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쯤되면, 소발은 욥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욥의 파멸을 재촉이라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20장은 소발의 두번째 진술로서, 악인이 결국 멸망한다는 그의 변론이 기록되어 있다. 소발의 변론 역시 격렬해진 비난과 논쟁으로 일관되는 두번째 변론들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본장에 나온 소발의 변론은 욥에 대한 그의 마지막 통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세번째 대화 주기에서 소발은 아무런 진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장은 사곡한 자의 일시적이고 덧없는 번영을 기록한 전반부(1-11절)와 악한 자의 번영은 오히려 그에게 해가 됨을 언급한 중반부(12-19절),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 찬 악인의 생활을 단언한 후반부(20-29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로 볼 때 소발 역시 욥을 악인으로 간주하여 결국에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소발은 악인의 멸망을 물질적인 번영의 쇠퇴와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욥의 쇠퇴가 곧 악인의 최후라고 주장하고 있다.
21장 -이제껏 친구들은 악인에게는 필히 징벌이 임하며 비참한 종국이 도래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일관된 논리로써 욥을 공격했다. 이에 욥은 그들과 전혀 상반된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 즉, 이 세상에서는 악인이 번영을 누리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욥이 이처럼 악인의 번영 사례들을 나열한 것은, 악인의 사례와 욥의 사례를 동일시하는 친구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함이었다. 욥은 자신의 처한 현실을 볼 때, 이 세상에서 인과응보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 된다고 볼 수 없었다.
21장은 소발에 대한 욥의 답변이 기록되어 있다. 엘리바스의 변론을 필두로 시작되었던 2차 대화는 결국 소발의 변론에 대해 욥이 답변하는 본장에서 그 소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흐름에서 볼 때 본장은 소발의 변론에 대한 욥의 항변인 동시에 세 친구 모두에 대한 결론적인 답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본장에서 욥은 소발이 제기한 문제에만 답변을 한 것이 아니라 앞선 변론에서 친구들이 주장한 논지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장은 악한 자가 오히려 행복하게 사는 현실을 언급한 전반부(1-16절)와 악인과 의인이 똑같이 멸망하는 현실을 묘사한 중반부(17-26절), 그리고 욥이 친구들의 이론을 잘못된 것으로 반박하는 결론적인 답변을 기록한 후반부(27-3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악인의 번영이라는 신학적인 문제를 본장에서 제기하여 인과 응보의 논리에 집착해 있는 친구들의 사상에 반대하고 있다.
22장 -욥의 친구들의 변론은 점점 격양된 어조를 띠면서 이제 세 번째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이제 엘리바스는 욥의 죄악들을 목격하기라도 한 것인 양 조목조목 나열해가며 정죄한다. 결국, 위로자가 되어야 할 친구 엘리바스는 독설적인 고소자가 되어, 욥을 인간성을 상실한 범죄자요 하나님의 법도를 무시한 죄인으로 고소하고 있다. 또한 엘리바스는 욥에게 마지막으로 회개를 촉구하였지만, 그의 충고는 욥을 악인으로 전제한 것이었기에 반발심만 초례할 뿐이었다.
22장은 엘리바스의 세번째 변론이 기록되어 있다. 세번째 변론은 두 번째 변론에 비해 내용이나 어조 면에서 이전의 변론을 포함하여 더 발전되고 극단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본장을 내용별로 구분하면 욥이 당한 환난의 불행을 욥의 죄 때문이라고 정죄하는 부분(1-11절)과, 악인들은 필히 멸망한다는 사실을 교훈 삼아 욥이 심각한 징벌에 처하지 않기를 경고하는 대목(12-20절)이 기록되어 있고, 끝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과 화목케 되기를 종용하는 장면(21-30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에서 엘리바스는 욥을 단적으로 \'죄인\'이라고 지칭하여 정죄하고 그의 죄를 일일이 나열하는 데에까지 자신의 비난을 밀어붙인다. 그러나 욥을 정죄하는 엘리바스의 비난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닌 자신의 사상에서 유추해 낸 결과론적인 해석임을 볼 때, 엘리바스가 여전히 \'인과응보\'하는 자연계 법칙에 근거해서 욥의 현실적 고난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3장 -욥은 이제 더 이상 친구들과 변론을 벌여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엘리바스의 공박에 대해 직접 대답하는 대신 하나님 앞에 서기를 바랐다. 욥은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볼 때, 자신에게 임한 고난을 죄에 대한 심판으로 여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담대히 하나님의 법정에 서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침묵은 계속되었고 어디서 그분께 호소해야 할지도 모르는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그분의 선하신 뜻을 의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통해 더욱 영광스러워질 자신의 미래를 소망 가운데서 기대해 보기도 하였다.(10절).
23장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세번째 답변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본장은 본서 전체로 볼 때 욥의 일곱번째 답변의 첫 부분으로서, 욥이 자신에게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불평하는 내용을 담아 욥 자신의 깊은 심중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욥이 이제는 친구들에 대해 반박론을 펼치기보다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 직접 항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장에서 욥은 엘리바스가 던지는 무정한 비난과, 회개를 간구하는 그의 논조에 대해 비논쟁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독백에 가까운 달변을 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변론하기를 열망하는 욥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는 욥의 갈망(1-5절), 용서를 확신하는 욥(6-7절),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욥의 탄식(8-9절)이 기록되어 있고, 자신의 의에 대해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욥에 대해 묘사하는 후반부는 욥의 신앙 고백(10-14절)과, 욥이 설명하는 자신의 모습(15-17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24장 -하나님을 의지하며 장래의 소망을 기대했던 욥이지만,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의 현실 앞에서 그의 마음은 조바심이 났다. 한시바삐 하나님이 개입하사 악인이 기승을 부리는 날들과 고통 받는 자들의 비참한 나날들을 신속히 그치게 해 주시기를 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 속에는 필경은 악의 세력이 멸절 되리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 친구들은 고난이 악인에게만 닥친다고 주장했지만, 욥의 입장은 의인도 악인도 고난에 처할 수 있지만, 그 최종적인 결말에 있어서는 판이하다는 것이었다.
24장은 엘리바스의 세번째 변론에 대한 욥의 답변의 두번째 장이다. 욥은 본장을 통해 세상에서 행악자들이 멸망치 않고 번영을 누리는 사실에 대해서 비난함과 동시에 그 사실에 대해 침묵하고 계신다고 하나님께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실 악인이 멸망치 않고 오히려 번성한다는 이론은 욥이 앞에서 소발의 변론에 답하면서 주장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내용을 다시한번 언급한 것은 엘리바스를 비롯한 모든 친구들이 인과 응보의 논리에 입각해서 욥의 재난을 죄의 결과로 단정지어 악인이 징벌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친구들의 인과 응보적인 이론에 대한 답변을 기술하고 있는 본장은 내용상 하나님의 때에 관한 욥의 관심(1절), 악인을 벌하지 않음에 대한 항의(2-12절), 악한 자들의 여러 악행들(13-17절), 악인들이 당할 결과(18-21절), 악인의 편함에 대한 욥의 의문(22-25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25장 -앞에서와는 달리, 빌닷은 악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인간간의 확연한 차이점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설명한다. 빌닷으로서도 욥에 대해 지금까지 할 말은 다했으며 이제 자신의 입장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마감하려한 듯한 인상을 준다. 얼핏 보면,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부정한 존재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가 피력되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결백을 주장하는 욥을 반박하고 욥의 범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25장은 그 내용상 하나님의 거룩하신 위엄과 권능을 찬양하는 부분(1-3절)과 인간의 의롭지 못함과 나약성을 말하는 대목(4-6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으로 빌닷은 이처럼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초월하심을 내세워 욥의 이론을 논박하고 있는 것이다.
26장 -빌닷의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및 하나님과 피조물들간의 차이등에 대한 원칙론적 입장표명을 들은 욥은, 자신도 빌닷에 못지않게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답변하였다. 먼저 그는 빌닷의 거만한 태도에 대해 조롱조로 비아냥거린 후에,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위엄을 하나하나 설명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 무한한 지혜로써, 음부의 세계와 이 땅의 세계와 하늘의 세계를 지으신 사실을 찬양하였다. 이처럼, 욥은 빌닷의 원론적인 지식과는 달리 하나님의 사역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26장은 빌닷의 세번째 변론에 대한 욥의 답변이다. 본서 초반부에서 시작된 욥과 세 친구들과의 대화는 1,2차 주기를 진행하면서 계속 고조되어 왔다. 그러나 3차 주기에서는 팽팽하게 대립되어 오던 대화의 일정한 형식이 깨어지고 간략하게 답변하거나 또는 변론을 하지 않는 등 친구들의 궁색한 모습이 드러나는 반면 변론을 길게 하고 있는 욥의 자신감 있는 행동이 나타나고 있다. 본장은 빌닷에게 반문하는 욥(1-4절)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욥의 설명(5-14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에서 빌닷이 주장한 피상적인 변론의 허위성을 논박기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욥의 변론은 친구들에 대한 총괄적인 답변으로 연장되어 새로운 변론자 엘리후가 무대에 등장하기까지 계속된다. 특히 본장에서 시작된 욥의 가장 긴 변론은 본 서에서 중심적이고 의미 있는 부분이다.
27장 -친구들의 반박이 그치자 욥은 자기 번호에 더욱 열을 올렸다. 그는 자신의 결백함을 재천명하고, 악인들의 절망적인 파국을 갖가지 사례들을 통해 나열하였다. 여기서 악인들이란 욥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들도 포함되었다. 한편, 많은 학자들은 본문을 소발의 변론으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이 내용이 ‘악인의 멸망’ 을 강조한 소발의 견해와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다지 신빙성이 없는 견해이다. 왜냐하면 욥도 악인들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이미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24;18-24).
27장은 세 친구들과의 변론을 종결하는 욥의 결론적 항변이 기록되어 있다. 본서 저자는 자신의 무고함을 끝까지 내세우는 욥의 모습과 악인은 필히 망하리라는 욥의 진술을 한 장에서 다룸으로써 자신은 그와 같이 멸망치 않을 것이 라는 욥의 확신을 구체화시켜 주고 있다. 본장은 순결에 대한 주장(1굴절), 적대자를 향한 저주(7-12절), 악인들의 미래에 대한 예견(13-23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에는 욥에게 나타난 주목할 만한 몇 가지의 변화가 기록되어 있다. 욥은 앞에서부터 친구들의 위로가 헛되며 그들의 대답이 거짓뿐이라고 지적하면서 도리어 자신의 정당성을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께 비난과 원망의 불평들을 던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본장에서는 욥이 하나님을 비난하는 일 없이 자신의 정당성을 변호하면서 계속 자기의 입장만을 견지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욥이 자신의 문제와 하나님의 관계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28장 -본장에서 욥은 지혜의 가치를 한껏 찬양하고 있다. 지혜는 그 어떤 값진 보배로도 바꿀 수 없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인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 있다. 욥이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친구들이 내세우는 지혜의 허상을 반박함과 아울러 참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혜의 송가라고 일컫는 본장이 본서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의미심장하다. 이제껏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이 욥과 친구들간의 지루한 변론이 되풀이되었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뒤 엘리후의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