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선교 신학
\"
선교의 성서적 근거에 있어서 바울의 중요성은 과장되지 않았다(사실 그대로다). 바울은 비(非)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유일한 사람이며 최초의 사람은 아니었다. 바울 이전에 그리스도교 선교활동은 이미 제국을 가로질러 퍼졌었다(최소한 로마까지). 우리가 주목할 수 있듯이, 바울은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과 유대이즘 모두에 빛을 지고있는 초대교회의 선교 설교의 창시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연과 섭리를 통해, 바울의 사상은 신약성서 저작의 거의 3분의 1을 채운다. 신약성서 기자들 중 유일하게 바울은 보편적인 그리스도교 비전을 가장 심오하고 조직적으로 제시하고있다. 바울의 언어의 힘과 인격(개성)과 선교적 위임의 능력은 사도 바울의 편지가 끊임없이 교회의 자기 이해에 강력하게 도전하도록 지속한다.
POSING THE QUESTIONS
바울의 선교에 대해서 묻는다는 것은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선교신학이 바울의 사상과 어울리지 않다거나 바울의 사상 속에서 선교신학이란 희박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명백하게 그렇지 않음), 선교신학이 실제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끼친 바울의 경외로운 영향의 전체성과 동일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의 중요한 요소들을 정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음이 당연하다 할지라도 또 다른 바울의 소개나 그의 신학을 종합하는 것은 아직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가능한 한 명확하게 바울에 관하여 단지 지금의 연구를 안내하는 질문들만을 묻고자한다. 이러한 제한된 초점의 결과 때문에, 몇 가지 중요한 사도 바울의 관심들이 주변으로 밀릴지도 모른다(예를 들어, 몇 가지 바울의 윤리적인 관심들, 그의 생애의 연대기, 그의 교회론에 대한 관점 등등).
우리가 바울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다음의 두 가지 물음으로 정리될 수 있다.
1. 바울의 선교에 있어서 신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어떤 확신들이 \"바리새인들 중에 바리새인\"(빌3:4-5; 갈1:4)인 그를 \"이방인들의 사도\"가 되도록 하였는가? 여기서 우리가 \"신학적 근거\" 내지는 \"확신들\"이라고 말을 할 때, 그것은 바울이 순전히 교리적인 입장에 입각하여 그의 선교를 발전시켰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이러한 것과 결부해 볼 때, 바울의 숙고는 그의 신학을 형성했던 경험이며 역동성이다. 이러한 것은 그의 신학을 명료하게 표현하려고 시도할 때 대충 볼 수 없는 것이다.
2. 바울의 선교 활동의 내용과 유형에 관해서 우리는 어떤 것을 배울 수 있겠는가? 중요한 점은 현대 복음전도에 관한 성급한 결론들을 끌어내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 선교의 전략전술의 분석은 -우리가 가지고있는 부분적인 증거의 토대 위에서- 그의 신학을 한층 더 잘 통찰할 수 있도록 한다. 만약 그 이상의 파급효과가 현대 선교 사역을 위한 교훈 내지는 통찰로 이른다면, 그것은 더더욱 좋은 일이다.
THE SOURCES
이러한 두 가지 물음을 바울의 작품에 가져오기 전에, 몇 가지 예비 단계를 확인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자료들의 성질과 우리가 제기했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그 자료들의 가능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사도바울을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다음의 서신들이 바울의 진정서신이라는 일반적인 일치가 있다. 즉, 로마서, 고리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가 바로 그것이다. 소수의 학자들이 빌립보서의 진정성 문제를 숙고하였지만, 빌립보서를 진정서신에서 배제한 이유는 이 서신이 진정서신이 되기에는 아주 불충분하였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후서와 골로새서도 보다 더욱 진정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우리는 과연 이 서신들이 사도 바울의 진정서신들인지 고려해보아야만 한다. 우리의 관점으로 볼 때, 목회서신과 에베소서는 확실한 사도바울의 전통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 서신들은 사도 바울의 사상을 그려내고는 있으나 그것을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상황에 대하여 재해석하고 있는 즉, 사도 바울 이후에 쓰여진 것 같다. 따라서 이러한 서신들의 선교신학은 8장과 12장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바울을 다룰 때, 우리는 오로지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묘사한 바울의 전거를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한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의심할 나위 없이 확실한 전통 위에 근거를 두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그 자신의 신학 안에서 이러한 전통들을 재해석한다. 따라서 제 2의 바울서신과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은 누가 신학의 문맥에서 분리하여 다룰 가치가있다.
어떤 서신을 숙고해야 할지 결정하자마자, 서문에서 언급한 예비단계에 있어서의 목록은 여전히 완전하지 못하다. 바울 서신의 성격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서신들은 형식을 갖춘 서간들이며 엄격한 의미에서 선교 본문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 서신들은 바울이 최초로 비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설교한 사본들이 아니며, 이 서신들이 우리가 위에서 제기하였던 바울 선교의 근거에 관한 질문들을 직접적으로 말해주지도 않는다. 이 서신들은 복음(그리스도의 교의)에 관한 바울의 전체적인 관점을 검토하는 신학 논문들도 아니다. 로마서가 포괄적인 해설(주해)에 가장 근접하지만 이 역시 궁극적으로 특별한 경우를 위한 하나의 편지이며 바울 전체 신학의 체계적인 소개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바울의 서신들은 특정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속에 나타난 특정한 목회적인 문제들에 응답하는 목회서신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였고 아직 방문하지 못하였던 로마서의 경우를 제외하고, 바울은 그가 세운 교회들과 그와 깊은 관계를 맺고있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썼다. 따라서 그 서신들 속에는 가정되고 말해지지 않은 내용이 상당히 있다. Leander Keck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신을 읽는 것은 전화로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항상 대화의 상황뿐만이 아니라 막다른 편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을 추측해야만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바울 서신에 대한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특징이 있다. 비록 특정한 청중을 위해 쓰여진 서신이라 하더라도, 그 서신들은 대중적인 읽기와 함께 다른 공동체들에게 전달되기를 의도하고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우리가 바울의 급상승하는 사상을 결합시킨다면, 이 서신들은 특별한 경우를 위한 서신 그 이상의 서신이 되며 바울이 특정한 목회적 결론들을 해결하는 보다 폭 넓은 신학적 틀에 우리가 접근하도록 한다. 이처럼 특정과 일반 그리고 목회와 교리사이의 감질나게 하는 혼합은 사도바울의 해석을 선교에 대한 물음 내지는 흥미롭고 섬세한 어떤 다른 주제로 주목하게 한다.
비록 바울의 서신이 엄밀한 의미에서 선교문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서신들이 바울의 가장 왕성한 선교 활동기간 동안 쓰여진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비록 로마서라 하더라도, 그가 편지를 쓴 대부분의 이유는 선교 물음 때문이었으며, 로마서가 직접적으로 바울의 전체 선교신학과 결합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에 대한 구원의 문제였던 것 같다. 따라서 바울 서신의 특정한 상황들이 존중되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그 서신들을 선교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하나의 이질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인 주제를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INFLUENCES ON PAUL
현대의 사도 바울에 대한 해석은 그가 사도의 신학에 끼친 형성적인 영향들을 결정하는데 많은 노력을 소비하였었다. 바울은 팔레스타인 전통에서 훈련받고 그리스와 소아시아의 이방사회의 환경에서 활동하였으며, 그리스어를 말하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다양한 사상 세계들을 접촉하였다. 따라서 어떠한 영향들 내지는 배경의 결합도 바울의 신학을 결정짓지 못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해하기 위해 스토아 철학으로부터 그의 대부분의 개념과 언어를 차용했을지도 모른다.
바울의 선교신학을 토론할 때, 그것이 궁극적으로 결정적 요인은 아니더라도 바울의 사상 형성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한 확실히 중요한 영향들이 있다.
Judaism
비록 그리스도교 선교에 대한 바울의 관점이 이따금씩 유대이즘의 어떤 관점과 함께 놓여져 있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이러한 형성의 모형과 같은 즉, 특정한 선교 물음에 관해서 조차 많은 신념들을 공유한다. 우리는 여기서 짧은 목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즉, (a)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으로써 히브리 성서를 받아들였으며 지속적으로 유대이즘으로부터 획득한 랍비 기술을 사용하면서 성서와 대화하며 그의 신학을 풀어나갔다. (b) 그 자신의 교회론을 조직적으로 세울 때, 바울은 비록 그가 굳건히 구원에 대한 이방인의 허락을 주장하였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의 특별한 역할에 대해 잊지 않고 있었다. (c) 그가 이방세계를 평가하는 속에서 그리고 그가 선교 설교하는 어떤 기본 주제들 속에서, 바울은 유대교의 선교 설교의 평범한 주제들을 사용하였다.
Early Christian Tradition
바울의 창조성과 그의 신학의 상당부분의 고유한 성격을 거의 부정할 수는 없다할지라도, 바울은 그리스도교의 \"제 2의 설립자\"는 아니었다. 그는 초대 공동체 사람들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했다-비록 (갈 1:11-17에서 그의 회심 경험을 말할 때처럼) 바울 자신이 그들로부터 자유롭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중요한 지점에서, 바울은 명백하게 그 자신의 설교를 전통을 물려받은 것으로써 동일시하였고(고전11:23; 15:3), 완강하게 그는 그의 선교의 진실성(정당성)을 방어하였다(예를 들어, 갈2:2-10). 바울의 선교 설교를 연구하면서 Bussmann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바울]은... 초대 그리스도교 선언과 대립 속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선언과 함께 총체적으로 동일시하려고 의식하였으며, 케리그마를 어긋나게 하고 대립하는 공식화를 전하지도 않았다. Bussmann의 평가는 다른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들과 바울의 동질성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연속성에 대한 강조는 단순한 이단자로써 바울을 취하는 것 보다 더 정확하다.
Hellenism
로마 시민으로서 그리고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바울은 확실히, 그리스-로마 문화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현재의 연구들이 강조하고 있는바와 같이, B.C. 4세기 초엽부터 헬레니즘 문화가 이스라엘 속으로 깊이 침식해온 이후로, 심지어 엄격한 팔레스타인 유대인조차도 그 문화적 영향에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학자들은 결코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디아스포라 유대문화 사이에 엄격한 분열을 그렇게 확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에게 끼친 특정한 헬레니즘적 영향을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신비 의식과 세례와 성만찬에 관한 바울의 견해 사이의 강력한 연관성을 찾기 위한 시도는 점점 회의를 경험하게된다. 종종 강력히 주장되는 또 다른 영향은 사도바울의 구원론에 토대를 이루는 영지주의적인 \"구세주 신화\"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의 가정된 신화의 재구성은 바울 보다 훨씬 더 후기의 자료들을 의존하고 있다. 이방인의 문제와 헬라 공동체가 바울의 생각에 상당부분 영향을 주었고, 헬레니즘 철학으로부터 온 개념과 언어들을 그의 서신들에 사용하긴 하였지만, 그의 신학에 미친 가장 결정적인 영향은 그리스-로마 세계로부터 직접적으로 왔다기보다는 오히려 초대 그리스도교와 유대주의로부터 온 것 같다.
THE STARING POINT : PAUL\'S CONVERSON
바울의 신학에 대하여 논리적인 출발점을 결정하는 것은 계속적인 문제였다. 바울의 선교신학이 실제로 그의 전체 그리스도교 비전과 같은 시간(공간)에 걸쳐져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동일한 해석의 문제가 우리를 향한다(직면한다). 출발점의 물음은 단순히 학문적인 것이 아니다. 바울의 최초의 통찰력에 관하여 결정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바울 신학의 중심 주제에 관한 결정으로 이끌며 그의 신학의 전체종합의 형태로 이끈다. E. Sander가 지적한바와 같이, 도전은 \"바울이 시작한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바울의 그리스도교 비전 이른바, 그 자신의 회심이라는 구체적이고도 연대순의 출발점이 있다. 바울 자신이 명백하게 그 자신의 선교적 사명을 그리스도 경험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에서 우리는 그의 선교신학에 대한 우리의 구성을정당화 할 수 있다. J. Fitzmyer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의 신학은 거의 대부분 다메섹 도상에서의 체험한 그의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경험으로부터 발전한 믿음 즉, 하나님의 아들인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향을 받았다.\"
바울 자신은 몇 개의 중대한 본문에서 그의 그리스도 경험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이야기와는 대조적으로,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우리에게 그 사건 자체에 대한 묘사는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메섹 도상에서의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의 사실에 대한 강조와 예수 안에있는 바울의 신앙에 대한 중요성 그리고 특별히 사도로서의 그의 역할이 있다.
갈라디아서 1:11-17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이 장에서의 바울의 직접적인 목적은 갈라디아 공동체에 그의 복음이 진정한 것임을 확신시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갈 1:12)\"를 따라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의 복음과 어긋나는 어떠한 복음도 그것은 거짓 복음이었다. 바울은 어떤 세부항목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이전의 유대주의 안에서의 삶\"과\"조상들의 전통에 대한 그의 열심(갈 1:14)\"으로부터 그를 \"신앙의 설교자(갈 1:23)\"로 변형시켰던 중대한 사건 속에서 복음의 계시를 위치시킨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아들의 계시\"로써 기술한다. \"계시\"라는 말은 바울이 \"나사렛의 예수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이심을 확신하였던 계시적인 경험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바울은 이러한 경험을 이방인들 속에서 예수를 전하라는 하나의 소명(참고 1:16)으로써 생각하였으며, 바로 그 소명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예언자적 소명의 모델속에 있는 소명이다. 갈 1:15-16에 있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그가 나를 택정하셨을 때\"라는 바울의 말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위임은 렘1:4-5와 사49:6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바울이 그의 회심 의 경험과 소명에 관하여 말을 할 때는 언제나 그것들이 하나님의 중대한 행위 속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명확하게 한다.
고린도전서 15:8-11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바울의 사도직의 대한 정당성과 그의 복음의 확실성이 의문시되고 있는 또 다른 상황에서, 우리는 그의 회심에 대한 더 나은 전거를 가지게된다. 여기서 그 의문은 고리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부활의 의미에 대한 혼동으로부터 제기된다(참고 고전 15:12-58). 바울의 변명(방어)은 그가 전하였던 전통의 기본적인 내용을 상기시키는 것이었으며, 시간이 많이 지나긴 하였지만, 그 권위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경험 속에 있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에 위치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권위는 베드로와 열 두 제자의 권위만큼 정당한 것이다.
여기서 그 용어는 \"내게도 보이셨다\"로 사용된다. 그리고 그것은 갈라디아서 2장의 바울이 경험한 계시적 성격보다 더욱 강조가 된다. 교회의 박해자로부터 복음의 설교자로 바뀐 그의 변화가 갈라디아서만큼 강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여전히 사도권에 대한 그의 소명을 이 사건과 더불어 동일시한다(고전 15:9-10).
고린도전서 9: 1-2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여기서 그의 회심에 대한 전거는 대강 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하다. 여기서 바울의 변명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용한 동일한 어원을 가진 말 즉, 그가 \"주 예수를 바라본다는 사실\"과 \"사도로서 그가 임명을 받았다\"는 사실 모두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바울의 사상 속에서, 이 두 가지 요소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만난 사건과 사도직의 소명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이러한 해결의 열쇠가 되는 본문들로부터, 우리가 바울의 회심에 관하여 무엇을 알 수 있을지를 요약 해보도록 하자.
1. 회심 이전에 바울이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갈라디아서 1:13-14에서 바울은 분명하게 회심 이전에 자신의 종교적 지위를 언급한다. 즉,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이러한 사실은 바울에게 있어서 당혹스러움의 이유가 아니었다. 빌립보서 3:4-6에서 그는 대담하게 유대인 혈통을 연결시킨다. 즉,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바울이 자랑스럽게 유대인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내용이 나오는 동일한 본문들이 고린도후서 2:22과 로마서 3:1-2; 9:1-5에서 발견된다.
유대이즘에 대한 바울의 충성은 그를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박해하는 현장으로 이끌었다. 바울 자신의 진술과 사도행전에서의 기술들은 이 점을 나타낸다.
어떤 이유로 바울이 그리스도교 운동에 그처럼 반대하였는가에 대해서는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그 운동의 메시아적 주장 즉,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주장이 다른 유대인 그룹들에게 하나의 자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후 70년 이전의 유대주의 안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상대적으로(비교적) 관용이 있었던 것 같다. W. D. Davies는 다음과 같이 그럴듯하게 주장한다. 즉, \"바울의 율법에 대한 지나친 열정과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적대행위는 유대주의 속에서 진행 된 이방인들의 운명에 대한 첨예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자신이 벌인 개인적인 투쟁의 전조였을 것이다.\"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그는 그의 이방인 동료 시민들에게 무관심할 수 없었다. 바리새파 유대인으로서 그는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에 대한 강력한 확신을 견지하였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율법에 대한 뚜렷한 상대화와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의 첨예한 구별의 둔감화는 Gordian Knot의 위험한 조각처럼 바울을 충돌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W. D. Davies가 말한바와 같이 \"율법에 대한 그의 지나친 애착은 율법이 없는 그들에게서 그가 느꼈던 심한 고통의 투영이었는지도 모른다. 즉, 그의 인간적인 동정심이 그의 신조와 함께 충돌하였을 것이다.\"
2. 바울의 경험은 그의 생애와 세계관에 있어서 급진적인 개정을 초래했던 그러한 것이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박해자가 되고 나서부터, 바울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수장 중의 한 사람이 된다. \"선조들의 전통에 대해 열광적인\" 사람이 되고 나서부터 그는 \"이방인의 사도\"가 된다. 율법에 대한 결백한 파수꾼이 되고 나서부터, 그는 이방인들을 위해 율법의 가치를 전적으로 감소시키는 사람이 된다.
이러한 변화의 급진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Krister Stendahl와 다른 현대 주석가들은 바울의 경험을 하나의 \"개종\"으로써 부르는 것을 반대하였다. Stendahl가 주장하기를 \"개종\"은 바울이 \"그의 종교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즉, 유대인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여기서 바울 자신이 사용하는 전문술어가 오히려 더 바람직하게 고려된다. 즉, \"그 박해자는 아주 특별한 선교를 이루는 사도가 되도록 불려졌으며 선택되었다. 그 선교는 어떻게 하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선교이다.\"
Stendahl는 \"부르심\"의 기치 아래서 어떤 중요한 점을 주시한다. 확실히 바울은 \"유대교 종교\"로부터 \"그리스도교 종교\"로 전환(개종)하지 않았다. 유대주의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유기적인 관계성은 이러한 불연속적인 모델이 시대착오적임을 상기시킨다. Stendahl는 또한 루터교 전통에서 대표하는 일종의 종교적인 경험을 바울이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은혜로운 하나님에게 개종하는 죄에 지배된 죄인들의 종교 경험).
이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바울에게 일어났던 일을 기술하기 위해 \"개종\"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게 보인다. \"부르심\"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순간에 받은 위임인 사도로서의 위임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부르심\"은 바울에게 발생한 유일한 변화는 아니다. 그는 그의 의식 속에서 분명하게 나사렛 예수에 대한 급진적인 개정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차례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율법의 역할, 구원의 역사 속에 있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위치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변화시켰다(이 모든 것들은 아래에서 언급될 것이다). \"부르심\"은 너무나 관대하고 직업적으로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의 경험에 대한 지배적인 이미지로써, 부르심은 실제로는 유일하게 갈라디아서에서 발견되며 로마서 1:5에 있는 함의에 의해 발견된다. 오역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 속에서 바울이 경험했던 강력한 전환점으로 \"개종\"을 묘사하는 것이 보다 적당한 것 같다.
3. 바울이 경험한 성격을 정확하게 결정짓기란 쉽지 않다. 갈라디아서 1:12, 16에서 바울은 \"계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울이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말로 \"보다\"와 \"나타나다\"를 사용한 고린도전서 9:1과 15:8을 고려해볼 때, 사도 바울은 그의 계시적 경험을 고린도전서 15:5-7과 관련 있는 부활 후 나타나신 또 다른 사도들의 이야기들과 동일한 성질의 계시적 경험으로 언급하고있는 것 같다. H. D. Betz가 주장하는바와 같이, 우리는 위에서 인용한 그의 회심 경험에 대한 세 가지 전거 가운데서 바울이 어떤 모순을 보이고있다고 가정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다음의 사실을 의미할 수 있다. 즉, 바울의 경험은 성격상 황홀경이었으며 이러한 황홀경의 과정에서, 그는 하나의 비전을 보았다\".
4. 바울이 받았던 계시의 기본적인 내용 내지는 최소한 그 경험이 야기시켰던 직접적인 통찰은 다음과 같이 진술될 수 있다.
a. 바울은 유죄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던 나사렛 예수가 실제로 그리스도시며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높임을 받은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울이 경험한 주체가 예수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의 계시적 경험은 이처럼 놀라울만한 깨달음을 납득시켰다. 즉,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고전 9:1)\"; \"나에게 그의 아들을 나타내시기를 [하나님]이 기뻐하셨다(갈 1:16)\"; 바울이 받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왔다(갈 1:12)\"
b. 바울은 또한 이처럼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통해, 하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방어한 \"복음\"의 핵심이다(갈1:12-12). 동일한 함의가 고린도전서15:8-11에서 발견된다. 바울은 그의 사도적 권위와 이방인들에 대한 그의 선교의 성공을 뿌리박는다. 그 다음으로, 이러한 사도적 역할은 고린도전서 15:3-4에 요약된 구원에 대한 그의 복음의 권위를 굳건히 한다.
c. 비록 회심 본문 자체 내에서는 분명한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점은 역사과장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철저히 바꾸어버렸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구원이 이방세계에 전해졌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에게 마지막 시대가 사실상 시작했음을 의미할 수 있었다.
d. 바울은 또한 그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알리도록 소명을 받은 구약의 예언자들의 방식으로 소명을 받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위에서 인용한 회심의 사건을 나타내는 세 개의 본문들, 특별히 갈라디아서 1장에서는 그의 소명이 이방인들에게 선교하라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음을 보여준다. 바울 자신의 생활 스타일과 자기 이미지에 있어, 이러한 확신은 중요한 영향을 지니고있다. 중요한 서신의 대부분에서 바울은 자기 신분증명을 \"사도\"로서 시작한다(롬 1:1, 고전 1:1, 고후 1:1, 골 1:1, 갈 1:1). 비록 바울이 그의 회심과 그의 선교적 소명에 관하여 주장한다 할지라도, 어떤 방법으로 그가 그렇게 분명하고 신속하게 그의 회심의 순간에 이러한 모든 것을 붙잡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의 선교적 노력의 가장 왕성한 부분은 그가 다메섹에서 그리스도의 현현을 경험한 이후 몇 년 동안 시작되지 못했다. 그리고 만약 사도행전의 설명을 받아들인다면, 바울의 회당 설교를 거부한 유대인들 역시 독단적으로 이방인 선교에로 방향을 돌린 바울의 결정에 기만적으로 행동하였다(행 13:4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교하는 그의 소명이 곧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험의 일부였다는 바울의 반복된 주장, 이것이 그의 계시의 중심이었다는 것은 의심에 여지가 없다.
바울의 경험을 \"회심\"으로써 숙고할 때, 우리는 보다 더 나은 입장에서 그의 보편적 선교의 신학적 기초를 규명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바울은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유대이즘과 그것의 율법에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선교의 방향을 돌린 것이다. 이것은 현대 사도 바울의 해석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향상된 해석 중의 하나이다. 아마도 율법에 충실하려는 쓸데없는 시도 속에서 죄에 지배되고 그것을 번민하는 자로서 바울을 묘사하는 것은 시대착오이다. Krirter Stendahl는 \"바울과 서구의 내성적인(자기 반성적인) 양심\"이라는 그가 쓴 고전 에세이에서, 이러한 하나의 이미지는 어거스틴과 루터, 종교개혁 이후에 서구신학의 초점이 되어왔던 죄로 둘러싸인 개인적인 양심의 투쟁을 바울에게 부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분명하게 바울은 자기 반성적인 양심의 유형을 가지고있지 않다.
Stendahl는 유대이즘 속에서 살았던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를 숙고하며 율법을 죄의 무거운 짐으로써 암시하는 부분이 없는 빌립보서 3:6의 본문을 지적한다. 바울이 회심 전까지 율법의 열광적인 방어자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은 바울을 율법에 매이고 율법을 실천하는 것을 번민하는 이미지로 해석하는 것과 모순된다. 바울을 새롭게 바라보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은 분명, 로마서 7:8의 자기 반성적인 내용의 본문이다.
그러나 로마서 7장의 이러한 자서전적인 해석은 의심스럽게 보인다. Sander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마서 7장이 행동하는 유대인으로서 바울이 그의 생애에서 느꼈던 좌절를 보여 준다는 논쟁은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7장)이 그러한 방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올바르고 안전하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서 7장의 보다 큰 상황은 바울이 율법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율법의 본래적인 선함을 방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롬7:7,13). 죄는 율법이나 그 자신이 아니라, 율법에 대한 구원의 가능성을 공허하게 만드는 \"율법\"에 대한 또 다른 유형이 죄임을 그는 계속해서 보여준다. stendahl가 주목한 것처럼, 바울의 논쟁의 목적은 율법이나 그 자신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의 우주적인 힘을 비판함으로써 그 둘을 면죄시키려는 것이었다.
바울 서신의 보다 폭넓은 상황은 그가 자신의 개인적안 경험의 세부사항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비기독교인 또는 기독교 이전(Pre-christain)사람들의 곤궁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소급해서 기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예수가 유일한 길이라고 보는 유일한 관점에서부터 왜 율법이 궁극적으로 부적당한지를 신학적으로 분석하였다. 바울은 그에게 그리스도교의 신앙 안에서 구원을 찾기 위해 율법 아래에서 고통받는 존재를 버리도록 한 실제적인 개인적 역동성을 기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바울이 인간의 상태에 대한 고민에 찬 분석으로 인한 개종을 추진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유대주의 안에서의 그의 삶은 성공적인 충분히 위임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방인의 상황에 대한 바울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후에 우리가 주목할만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우상숭배를하는 이교적인 죄, 그리고 이런 무지로부터 기인된 다른 악덕들(vices)에 대한 그의 전거들은 이방인들에게 끼친 유대주의의 영향에 대한 논거를 축적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방인들의 운명에 대한 바울의 관심은 그리스도교의 방향으로 그를 자극시켰다. 결국 바울은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하였고, 우리는 그가 비유대인에 대한 그들의 개방성에 동의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가정할 수 있다. 바울에게 있어 내지는 그의 시대의 많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유대주의로 개종하는 것은 이방인의 문제에 대한 적당한 해결책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우리는 바울이 거의 보편주의적 관점에 대한 고통스런 수행 속에서 그의 전통적인 신앙을 버렸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바울의 선교신학에 대한 시작점과 기폭제는 그의 그리스도교 이전의 경험이 아니었다.( 율법에 대한 가정된 죄나 비유대인의 운명을 지닌 당혹함도 아니다) 회심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기폭제가 \"밖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제시한다.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의 본성을 향한 놀라운 통찰을 주었던 종교적인 경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경험은 바울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해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따라서 율법으로부터 분리된 참 하나님임을 깨닫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똑같이 \"공평한\"분이시며, 더 나아가 자비로운 분이시다.
그래서 Sanders가 말한 것처럼, 바울은 해결을 위한 맹세로부터가 아닌 맹세를 위한 해결로터 그의 선교신학을 이해했다. Leander Keck가 말한 것처럼, \"[바울의]. .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그로 하여금 바닥에서부터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도록 강요했다. . . . 바울은 그가 비성공적으로 씨름해왔던 문제들의 해결책으로 그의 신학을 이해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보편적 구원의 조명 아래서, 이것은(신학) 그가 인간문제의 진정한 성격을 분별하는 십자가/부활에 의해 완성되었다.
앞서 우리는 이것이 바울의 시작점이 순수하게 교의적 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해야만 한다. 바울신학의 기폭제로서 감소하는 주체적인 죄 또는 인간 환경에 대한 존재론적인 평가는 바울이 보편적인 원리를 열정 없이 바라보는 그리고 추상적인 시작점으로부터 일련의 추론을 계속하는 신학적 수학자를 줄여야만 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보편적 성격에 대한 그의 첫 통찰은 종교적 경험, 즉 그가 숙고한 하나님의 행위(그의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심)인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우리가 밑에서 살펴 볼 듯이, 율법의 한계(특히 이방인에 대한)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변화하는 구원의 힘에 대한 바울의 더 나아간 결론은 그와 그의 이방인 개종자들의 경험 안에 모든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바울의 선교신학은 보편적인 원리와 결합되지 않는 추상적인 구성이 아니라, 바울에게 새로운 세상을 주었던 첫 경험에 의해 세워진 실재의 분석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유의 시작점과 바울 신학의 지배적인 주제는 구원론적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부활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신다. 대부분의 바울 신학적인 영향은 속죄의 과정과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함축의 역동성을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