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이불을 덮어도 다듯하지 아니한 인생
이불을 덮어도 따뜻치 아니한 인생 /왕상1:1-4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어 밤에 침소에서 자려고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젊은 처녀를 구하여 왕과 같이 동침하면 춥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어린 동녀 수넴여인 아비삭을 뽑아서 왕께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인 다윗은 신하들의 충성스런 마음은 이해하지만 늙은 자기로 인하여 젊은 처녀의 희생을 달갑게 여기지 아니하여 그녀의 공궤는 받았지만 그녀와 동침하지 아니하고 마지막 노년을 깨끗하게 보내고 하나님 나라로 갔습니다.
올 겨울도 참 추운 날이었습니다. 정말 다윗이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 형편을 이해할 그런 환경 속에 겨울을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날씨의 추움보다 더 추위를 느끼는 것은 삶의 목마름으로 인한 추위일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비교하면 날마다 감사하고 지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우리는 감사를 상실하고 원망과 불평과 마음의 헛헛함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일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바로 이런 다윗의 추위는 많은 교훈을 남겨줍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이불을 덮어도 따뜻치 않은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말씀을 듣는 여러분에게 강하게 임하셔서 참 삶의 깨달음과 충만한 은혜가 사랑하는 북실교회 성도들에게 임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인생은 언제나 부족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왕상1:1)
사람은 나이가 많으면 기력이 쇠하여집니다. 그래서 건강의 원천이 되는 심장의 박동이 약하여지고 혈관에는 혈액을 원활하게 흐르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많은 노폐물로 인하여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되지 못합니다. 그로 인하여 몸의 체온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혈액의 순환이 안되기 때문에 심장에서 가장 먼 부분인 손과 발이 차게되고 체온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같이 부족할 것이 없는 이에게도 이불을 덮어도 따뜻치 않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열왕기 서는 이스라엘의 역대 왕의 치적과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당시에 왕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권력과 부와 영광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정말 모자랄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권력으로 부족한 것을 얼마든지 메울 수 있고 남이 갖지 못한 부귀도 영광도 존귀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만 기록된 열왕기서의 첫머리가 이런 왕들의 부귀와, 왕들의 권세와, 왕들의 치적을 이야기 하지 않고 이불을 덮어도 따뜻치 않은 다윗의 부족함을 제일 첫머리에 기록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누구든지, 심지어 절대권력과 부를 가진, 그중에도 최고의 치적과 대제국을 건설한 다윗 왕조차도 이렇게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북실교회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모르면 우리는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게되고 그 욕심이 차지 않을 때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리고 옳지 않는 일을 행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하여 사람답지 못한 행동이나 자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정력에 좋다고 하면 못하고 못 먹는 음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동남아로 뱀을 먹으러 가거나 곰 발바닥 요리 먹으러 가는 여행을 하게되고 곰의 쓸개에 빨대를 꽃아 놓고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행동과 삶을 서슴없이 행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인생은 어느 자리에 있든지 부족하다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입니다.
다윗 왕에게 아도니아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이 진리를 모르는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권력을 추구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아버지 다윗이 살아 있는데도 사람들을 선동하여 세력을 만들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육의 소욕을 따라가는 이 아도니아를 하나님이 축복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도니아는 솔로몬에게 패하여 죽을 위기에 들어갔는데 성전 제단을 뿔을 붙들고 애원해서 목숨을 겨우 건졌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처지를 알고 욕심 부리지 말고 겸손한 자리에 가야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육욕의 욕심이 그를 지배합니다. 왕위를 동생에게 양보했으니 대신 뭔가 보상을 받아야겠다 생각하고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찾아가서 동녀 아비삭을 자신의 아내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물론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 아니했으니 처녀입니다. 그러나 비록 몸은 처녀라도 다윗의 아내로 간택된 사람이니 자신의 어머니의 서열에 있는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아도니아도 총각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런 요구는 옳지 않은 요구였고 바라서는 안 되는 욕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아는 내가 왕이 되지 못하였으니 다른 것으로라도 만족을 얻어야 되겠다는 욕심이 이런 잘못된 요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밧세바는 마음이 상한 아도니아를 위로하여 나라의 평안을 얻기 위하여 솔로몬에게 이 아도니아의 요청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 악한 요구를 들은 솔로몬은 진노하여 장군 브나야를 보내어 그를 체포하는 즉시 처형하게 하여 그는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다가 한칼에 인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제가 결혼할때에 가구점에 간적이 있습니다
벌써 15년 전인데 100만원은 주어야 장롱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좋고 싼 것을 찾아 여러 가구점을 다니다가 한 가구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맘에 드는 장롱이 잇어서 물었더니 천만 원이랍니다. 제가 입을 벌리고 깜짝 놀라니까 “애개 천만원짜리 가지고 뭘 그리 놀라세요 이천만원짜리도 있고 오늘도 두 개나 팔았는데요” 합니다. 저는 너무도 놀라서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며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천만원짜리 장롱을 사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습니다. 장롱이 있으면 감사하지 이천만원짜리가 되면 옷도 저절로 다려지고 이불도 넣어놓으면 자동으로 세탁되고 따뜻해집니까?
사랑하는 북실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아무리 부자이고 권세 있는 왕이라고 늙으면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 부족한 삶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사람 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여러분들이 되지 말고 오히려 부족하게 해주셔서 우리 삶을 바르게 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하신 말씀같이 사시기를 바랍니다.
2. 영원한 것을 소망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인생은 부족한 것이고 그 부족을 지나치게 추구하며 살면 아도니아처럼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고 결국은 스스로를 멸망하게 만든다는 진리를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육의 소욕을 따라 살지 말고 영적인 것을 소망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다윗은 이 진리를 바로 깨달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신하들이 자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동녀 아비삭을 간택하여 올렸지만 그녀와 동침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정결을 유지했습니다.
당시는 왕이 하는 일은 모두 옳은 일이었고 좀 잘못해도 왕이기 때문에 넘어가는 시대였습니다. 더구나 다윗은 늙어서 여색을 탐하여 동녀를 구한 것이 아니고 밤에 추워서 따뜻한 살을 맞대고 지내기 위한 조처였으니 얼마든지 합리화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불을 덮어도 따뜻치 아니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인생은 모든 것이 부족함 속에 사는 것이구나!
주변 나라를 평정해 대 제국을 만든 나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구나!
그러니 하나님이 부족함이 없는 영원한 곳으로 오라고 하시는 구나!
이제 남은 삶을 잘 정리하고 바르게 살아 그 부족함이 없는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야겠구나!
하고 깨달아 깨끗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동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 저가 왕을 봉양하며 수종 하였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왕상1:4)
사랑하는 북실교회 성도여러분!
육을 위하여 살지 말고 영원한 것, 영을 위하여 살 줄 아는 다윗 같은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그런 삶을 살기를 이렇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8-10)
삭개오는 돈이면 모든 부족함이 해결될 줄 아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을 따돌려도 저들은 가진 것이 없으니까 가진 나를 질투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토색하고 협박해서 돈이 든 돈궤는 나날이 무거워지는데 이상하게 삭개오의 마음은 나날이 비어가고 공허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육만 가진 존재가 아니고 영혼의 존재이기 때문에 영혼이 비어가면 육의 것이 아무데도 소용없다는 삶의 진리를 삭개오는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은 자기 같은 사람도 따돌리거나 미워하지 않고 사랑해 주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만나기를 소원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 날이 왔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사는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러 나아갔습니다. 그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려서 도저히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눈에 띄이게 되고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비어가던 그의 마음이 채워지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결론을 내립니다. 돈이 인생을 윤택하고 넉넉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나누며 쓰는 삶이 될 때에 삶이 윤택해지고 더 넉넉해진다는 영의 눈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생명처럼 여겼던 물질이 지금 내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주님의 말씀과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판단과 결단이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께 주저함 없이 자신의 결심을 고백합니다.
“내가 가진 것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토색한 것은 네 배로 갚겠습니다.”
영원한것을 소망하고 사는 영의 눈을 가진 사람의 위대한 결단을 삭개오에게서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북실교회 성도여러분!
아무리 채우려고 애를 써도 채워지지 않는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나한 인생을 욕망하지 마시고 다윗과 삭개오가 가졌던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영의 눈을 가지시고 그 길을 힘차게 달려가는 능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영원한 것을 위하여 살면 그와 후손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다윗은 육의 잠시 따뜻함을 취하기 위하여 죄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것을 소망하며 육의 삶을 모자람으로 접는 용기 있는 행동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습을 보시고 그에게 복을 내리셨습니다.
1) 그의 이름을 복되게 해주셨습니다.
다윗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이름입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스라엘 국기에 별이 하나 그려 있는데 그 별이 다윗의 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가장 존경하여 부를 때에 ‘다윗의 아들 예수여’ 이었습니다.
2)자녀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아들 솔로몬에게 전에도 후에도 가지지 못한 지혜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손을 통하여 평강의 왕으로 축복하시고 그를 통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 축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자손들 중에 참 옳지 못한 죄를 범한 왕들이 많았지만 무려 24대에 이르도록 그의 혈통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왕위에 오르는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북실교회 성도여러분!
갊이 힘들고 신앙생활이 어려워 대강 하거나 아무렇게나 신앙 생활할 유혹이 여러분을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다윗의 축복과 그의 자손이 누린 복을 생각하시고 다윗처럼 영원한 것을 위하여 살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가지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국교회의 훌륭한 목사님 가운데 김창인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의 아버지가 4형제 가운데 셋째 아들인데 유일하게 예수를 잘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 믿는 일로 인해 안 믿는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예수를 믿으면 제사를 안 지나니까 나를 위하여 제사를 안 지내 나를 박대할 놈이라고 유난히 미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재산을 상속할 때에 큰 아들에게는 집과 돈과 논을 물려주고 둘째에는 논과 돈을 물려주고 막내에게는 밭과 돈을 물려주고는 셋째에게는 애비 제사도 안 지낼 놈에게 줄 이유가 없다고 단돈 5원을 유산으로 주어서 빈손으로 분가해 나왔습니다. 동생도 재산과 밭을 물려받는데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빈손으로 쫓겨나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하고 낙심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가족 눈치 안보고 마음대로 신앙 생활할 수 있고 마음대로 찬송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그래서 없는 중에도 항상 감사함으로 일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교회와 주님의 종을 받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신실한 가정을 축복하였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많이 물려받은 다른 형제들보다 더 부유하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 대에 가서는 더 큰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와 박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한국교회의 별과 같은 김창인목사님 같은 아들을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북실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진짜이고 영원하고 확실합니다. 사람이 주는 것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 소유 못해서 이불을 덮어도 춥다고 원망하고 신세 한탄하고 불평하고 낙심하지 맙시다. 예수 믿어 북실교회 성도된 것만으로도 일꾼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감사한 삶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영원한 것을 더 크고 더 깊이 사모하고 바라며 사시는 참 영적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