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장별요약

이사야서(구원하시는 하나님)

1장 -본서는 유다 왕 웃시아 때부터 므낫세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전반부(1-35장)는 열방들에 대해서는 물론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한다. 그러나 후반부는 장차 메시아가 도래할 때에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다. 그 첫머리인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의 활동 연대와 남왕국 유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시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라도 당신의 택한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사야는 이에 근거해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다. 이처럼 본서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회개의 촉구,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경고라는 주제가 반복되고 있다.

 

1장 히스기야의 통치의 중간 시대에 만연한 유다의 죄악상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으로 본장이 시작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유다가 어떠한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시에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된 상태였으며 유다도 바벨론의 침입을 받아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 갔으며 예루살렘만이 남아 있든 비참한 지경이었다. 이사야는 먼저 유다의 비참한 상황을 애통해 하고 있으며(1-9절)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진데 대한 유다 백성들의 신앙적 타락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10-17절).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사랑하시며 구원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18-23절).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패역함에서 돌아오지 않는 백성에게는 심판을 예언하고 있기도 하다(24-31).

 

 

2장 -본서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심판의 메시지에 이어 항상 회복할 왕국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타락하여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는 백성들에게 회개하는 길만이 진정으로 살 길임을 깨우치기 위해서이다. 본문 첫머리에 나오는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은 바로 이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교만히 행하여 계속해서 행악하는 자들은 메시야의 도래 시에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후반부에서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거듭 회개를 촉구하였다.

 

2장은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특별히 \'말일\', \'여호와의 날\'로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사야는 말일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모든 나라 위에 군림하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상의 왕으로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실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1-4절). 따라서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며 겸손히 살아가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5-11절).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모든 우상들과 우상 숭배자들, 특히 교만한 자들에게 임하여 그 모든 것들을 파괴하시기 때문이다. 유다가 저지른 모든 죄들이 우상으로 비롯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많은 구절들이 나타나며, 이사야는 이러한 유다 백성들에게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12-22절).

 

 

3장 -이사야는 2장에 이어 본장에서도 계속해서 타락한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백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본문은 유다의 죄악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사회 정의가 땅에 떨어져 불의가 성행하며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히 행하여 영적간음 행위인 우상 숭배를 일삼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하나님의 징계의 궁극적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징계를 통해 택한 백성들을 다시 정결케 하시려는 데 있다는 점이다(잠13;24).

3장의 초반부는 사2:22의 말씀과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는데, 인생을 의지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장차 유다가 의지하는 인생들을 모두 제하여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멸망당할 대상 중에는 복술자들과 우상을 만드는 장인들이 그 선두에 있을 만큼 종교적인 타락이 있었다(1-3절). 또한 통치자들의 권위와 정통성이 사라지고 윤리성의 타락은 사회적인 혼란을 가중시키며, 결국은 유다의 멸망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4-12절). 뒤이어 특권을 남용하는 지도자들의 폭력적인 행사가 나타나고 이것은 모든 유다 백성들의 타락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13-26절).

 

 

4장 -3장에서 이사야는 타락한 유다 백성에게 임할 하나님의 징계를 경고하였다. 그러나 본장에서는 징계를 받고서 유다가 장차 회복될 것임을 예언한다. 하지만 이 같은 회복의 영광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자들과 죄악이 만연한 세상 가운데서도 믿음을 굳게 지키는 자들인 ‘남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다. 한편, 이러한 회복이 예언은 바벨론 포로 귀환시에 1차적으로 성취되었다(스1,2장). 그러나 온전하고도 최종적인 성취는 이 세상 끝 날에 주가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는 날에 이루어질 것이다(계21장).

 

4장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에 의해 멸망당하고 유다 역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이 많았었다. 이제 유다는 또 한번 바벨론의 침략을 받은 결과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많은 남자들이 생명을 잃고 일곱 여자들이 한 남자를 취하게 될 남자 빈곤 현상이 그것이다(1절). 이것은 윤리 의식의 파괴와 더불어 가족 관계의 장기적인 파괴를 암시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으며 오랜 전쟁이 끝난 뒤의 참혹한 결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심판의 경고 뒤에 남은 자들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심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파멸이 아니라 영광과 구원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사야는 다윗의 후손이 결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고 말하면서 그 위업을 시온의 남은 자들이 이어갈 것임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다(2-4절). 이것은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5-6절).

 

 

5장 -이사야는 본서에서 탁월한 비유적 표현을 잘 구사하고 있다. 본문은 그 중 첫 번째 것으로 ‘포도원 비유’ 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농부로, 이스라엘을 포도밭으로 비유하여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타락하여 죄악의 열매만을 가득 맺은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징계를 경고하였다.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용서하시고 영적 이스라엘 자손으로 삼으신 것도 우리로 하여금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시기 위함이다(요15;1-5). 그런데도 이러한 뜻을 거스른다면 그 결국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5장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위해 부른 이른바 포도원의 노래로 일컬어진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저버린 백성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징계를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즉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하나님을 선한 농부로 비유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타락상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징벌이 묘사되어 있다. 이 포도원의 노래는 먼저 포도원에 대한 하나님의 애정과 실망이 나타나고(1-7절), 뒤이어 포도원이 만들어 내는 구체적인 죄악상과 그에 따른 당연한 보응을 언급하고 있다(8-25절). 마지막으로 선한 농부는 이방 사람들의 힘을 빌어 포도원을 징벌한다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26-30절).

 

 

6장 -본장은 이사야가 자신의 소명에 대해 밝히는 부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실을 첫머리에 밝히지 않고 중간에서 언급하고 있는 점도 본서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나 중대한 것이어서 우선 그것에 관해 경고하고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님이 환상 중에 이사야를 부른 까닭은 그로 하여금 암담한 세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사야가 받은 첫 번째 사명은 유다 백성의 죄악을 그들 스스로에게 확인 시켜 주는 일이었다.

 

6장은 이사야가 소명을 받는 기록이다. 다른 선지서들이 소명에 대한 기사를 서두에 기록하는 것이 보편적인 데 비해 이사야서는 본장에 그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유다에 내려진 하나님의 징벌이 너무나도 중차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하여 소명 기사는 뒤로 미룬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모습을 이상을 통해 보게 되고(1-5절),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선지자가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6-13절).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유다의 심판을 선포하는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7장 -7장~10장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한다는 내용이다. 그 중 본장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해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하나를 시사해 준다. 이스라엘은 아람과 연합하여 남왕국 유다를 침략하였고 이는 다윗 왕조를 영원히 지켜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삼하7장)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한편, 복왕국의 침공 때문에 온 유다 백성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러자 하나님은 ‘임마누엘 약속을 주시면서 자신만을 굳게 의지하면 친히 대적을 물리쳐 주겠다고 하셨다. 이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으로 곧 메시야 예언이다(마1;18-23).

 

7장 왕하15-왕하20장 또는 대하26장의 요약이라 할 수 있는 본장은 앗수르에 의해 유다가 당할 멸망을 기록하고 있다. 아하스 때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베가와 아람의 왕 르신이 동맹하여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침공하였다(1-2절). 이 때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이 결코 유다를 이길 수 없으며, 나아가 에브라임은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한다고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3-9절).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에게도 말씀하시기를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으나 아하스가 불신앙으로 그것을 구하지 않자 처녀 잉태에 대한 징조를 보이시면서 아하스를 격려하셨던 것이다(10-17절). 이러한 일련의 예언은 유다가 강대국의 손에 의해서는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는 하나님의 구원 선포임을 나타낸다(18-25절).

 

 

8장 -하나님께서 주신 보호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유다 왕 아하스는 북왕국의 침략에 직면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앗수르를 의지하는 불신앙적 태도를 보였다, 본문은 이에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주신 책망과 경고이다. 즉, 이사야는 하나님의 보호를 경사한 유다가 도리어 앗수르에 의해 환난을 당할 것을 선포하면서 아울러 열방을 향해서도 본받지 말라고 촉구하였다. 신분과 혈통,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의뢰치 않고 순복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면치 못한다.

 

8장 이사야 선지자는 한편으로는 앗수르의 침공이 심판으로 곧 임하게 될 것을 언급하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오직 그분만을 의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아하스에게 임마누엘의 예언이 임한 후에 곧바로 이스라엘의 장래에 관한 3번째 징조로서, 이사야는 마헬살랄하스바스가 태어난 지 3일 후에 사마리아가 멸망될 것이라는 예언을 접하게 된다(1-4절). 또한 이사야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보다 흉포한 앗수르를 의지하는 유다의 행위를 통렬히 경고하고 있다(5-8절). 아무리 이방 나라가 강하다 할지라도 유다를 영원히 멸망시킬 수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유다에 대한 신앙 회복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9-15절).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하여 율법의 봉함과 불신앙을 조장하는 자들에 대한 단호한 처치가 나타나고 있다(16-22절).

9장 -전반부는 심판의 경고 후에 주시는 하나님의 소망의 메시지로서, 장차 평강의 나라를 세우고 공의로 영원히 다스리실 메시야의 탄생 예언이다. 그리고 후반부는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는 북이스라엘이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심판의 메시지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겸손히 행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만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는 그 집을 허무신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잠15;25).

 

9장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이 경고를 주던 나라에 변화를 가져올 구원자가 오심을 말하고 있다. 백성들은 흑암 속에 있었고 죽음의 그림자에 가려 있었는데 그 대 그들은 한 큰 빛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인 아기를 보냄으로써 백성들을 영적인 어두움에서 빛으로 이끄실 것이다(1-5절). 오실 메시야는 어린 아기로 탄생하시며 하나님의 백성들과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는 놀라운 모사,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으로 불려지여 다윗의 왕좌에 앉아 정의로 통치하실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데 그것은 그들의 교만 때문임을 알 수 있다(6-17절). 하나님의 심판은 이방 나라로 확대되어 그들의 사악함을 질타하고 계신다(18-21절).

 

 

10장 -본장에서 이사야는 먼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수 밖에 없는 북이스라엘의 죄악상을 낱낱이 지적한 후, 이어서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도구로 사용하여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징치하셨으나 그렇다고 해서 앗수르가 그들보다 의로운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교만히 행하는 앗수르에 대해 심판을 선고하신 것이다. 한편, 앗수르의 멸망은 곧 유다의 구원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우리는 앗수르를 통해서 유다를 징계한 근본 목적이 진멸이 아닌 정결과 구원에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10장은 이스라엘의 불의한 자들에 대한 경고로 시작하고 있다. 부패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메시야의 정의와 공평과는 반대로 왜곡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 때문에 포로로 잡혀갔던 것이다(1-4절).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에게 자신의 진노의 막대기이자 분노의 몽둥이로써 이스라엘을 징벌하는 임무를 맡기셨다. 그러나 앗수르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좋아하지 않으셨다(5-11절). 예루살렘을 벌하는 데 앗수르를 사용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의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신다고 말씀하신다(12-19절).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들이 그 땅에 돌아와 하나님을 믿을 것이다. 이에 앗수르는 예루살렘을 취하려는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만다(20-34절).

 

 

11장 -하나님은 범죄한 백성들을 징계하고 심판하지만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외하고 의뢰하는 ‘남은 자들’은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을 본장에서도 명확히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메시야의 도래로 인해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이사야는 먼저 이새의 후손으로 나실 메시야의 그분이 다스리는 나라가 어떠한 것인지를 묘사한다. 그리고는 남은 자들이 메시야 왕국으로 귀환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향유하게 될 것임을 예언한다. 이러한 예언은 바벨론의 포로귀환으로 1차 성취되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초림 이후 최종적 완성을 위해 지금도 계속 진행 중에 있다.

 

11장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왕국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강한 나무들 즉 외국의 군사와 지도자들을 넘어뜨리지만, 하나님의 왕국은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에 의해 건설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재 하시는 메시야는 세상을 그분의 공의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1-5절). 또한 메시야가 건설할 공의의 왕국은 저주가 사라지고 평화와 조화가 깃들 것이다(6-9절). 여기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면서 시작될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 퍼지게 될 것이다(10-16절).

12장 -본문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서 멸망당하지만 그 같은 징계를 통해 도리어 정결케 되어 다시금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지금까지의 내용을 마무리 짓는 결론부이다. 즉,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찬양을 드리고 아울러 하나님의 구원의 도를 만민에게 알리어 그들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희구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 시대부터 이미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었음을 알 수 있다(롬1;16).

 

12장은 남은 자들이 모두 돌아와서 기뻐하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날에는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영원한 기쁨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1-3절). 또한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남은 자들이 돌아와 온 천하에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며 선포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보여 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4-6절).

 

 

13장 -본장에서부터 28장까지는 예언의 대상이 하나님의 선민에서 열방들로 바뀌어 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닌 온 세상과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알려 주는 것이다. 한편, 13,14장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BC 7세기경, 바벨론은 앗수르를 쳐부수고 근동 지방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남 유다도 바로 이 바벨론에 의해 BC 586년에 멸망당했다. 그러나 본문은 이러한 바벨론이 장차 메대에 의해 멸망당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13장에 나타나는 이사야의 경고는 바벨론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군대는 바벨론에 대한 구분의 노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들은 전쟁을 위해서 먼 나라에서 모였으며 이것은 하나님의 군대가 많은 나라에서 몰려올 것임을 예견하는 것이다(1-5절). 주님의 날은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과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말한다. 주심의 날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분노가 표출되며 세상의 악과 하나님께 거만한 자들은 벌을 받게 된다. 하늘이 떨리고 땅이 흔들리는 것은 모든 곳에 가득 찬 악이 파괴되는 것을 암시한다(6-13절). 하나님의 군대에 의한 공격은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으며 그 상황은 참으로 잔인함의 극치를 이룬다. 결국 교만하던 바벨론의 성읍이 파괴되는 지경까지 이르는 것이다(14-22절).

 

 

14장 -이사야는 본장에서 바벨론의 멸망 결과, 그들의 도로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본토로 귀환 하게 될 것임을 예언한다. 그리고 바벨론의 멸망 원인이 그들의 교만 때문이었음을 지적한다. 여기서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온갖 죄악을 일삼는 자들을 상징한다. 따라서 공의의 하나님이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곧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구원 역사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본문 후반부에는 바벨론 외에 앗수르와 블레셋 역시 그들의 죄악 때문에 멸망당하리라는 예언이 수록되어 있다.

 

14장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임을 확인시키는 사건이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시내 산에서 택하셨던 것처럼 자신의 백성으로 다시금 택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섬기는 것으로 바뀌게 될 것임을 예견하는 것이다(1-2절). 여기에는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의 멸망이 그 증거가 된다. 바벨론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강대국을 조롱하게 될 것이며, 바벨론은 메대에 의해 영원한 멸망을 당하는 비참한 존재가 될 것이다(3-23절). 이후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되었던 앗스루와 블레셋도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나라가 된다(24-32절).

 

 

15장 -본장과 16장은 모압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손들로서 이스라엘과는 친척 관계이다. 그러나 역사상 그들은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혀 왔다. 본문은 모압이 그 같은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허탄한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매우 교만히 행하는 죄를 더한 탓에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을 더 절대시하며 최고의 소망으로 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중한 경고가 된다(눅12;16-21).

 

15장에서 이사야는 모압의 성읍과 마을 이름들을 열거하고 있다. 알과 길은 이사야가 이 경고의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파괴되었다. 머리를 깎고 털을 자른다는 것과 베옷을 입는다는 것은 치욕을 당하거나 마음이 상심된다는 표시이다. 모압인들은 그들 성읍의 최후를 보면서 슬퍼하고 있다(1-4절). 또한 모압인들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남쪽 에돔으로 피난한다. 니므림의 물은 마르고 살아남은 자들도 사자에게 쫓기듯이 죽음의 공포에서 헤어날 줄을 모르고 있다. 또한 모압의 군인들도 그들의 성읍을 지킬 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5-9절). 이러한 광경을 보고 이사야의 마음도 격정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이것은 그 모습이 흡사 이스라엘이 당할 고난을 예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6장 -모압에 대한 최종적 멸망선포로서, 먼저전반부는 멸망으로 방황하게 될 모압 인들에게 주는 권면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인 다윗에게 순복함으로 구원을 얻으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후반부는 이사야의 권고를 무시한 모압에게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이 다윗 왕권의 영원한 계승자인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는 복음의 진리(행4;12)를 찾아볼 수 있다.

 

16장에는 모압의 멸망과 비교되어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다. 모압에 밀어닥친 파괴 중에서도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다. 모압의 여인들은 새처럼 두려워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쉴 곳과 도움을 구했다(1-5절). 이사야는 모압이 당하는 고통이 자신들의 교만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모압 백성들은 앗수르 군대 앞에 자신들의 무력함을 깨닫고 그들의 이웃인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들의 자만으로 인하여 그들의 땅에는 소출이 없을 것임을 이사야는 말하고 있다(6-12절). 모압은 이미 많은 파괴를 경험했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한 끝내 멸망당할 것임을 이사야로 다시금 선포하고 있다(13-14절).

 

 

17장 -아람과 북이스라엘, 그리고 앗수르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당시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동맹을 맺고서 유다를 창공하였다. 이사야는 이처럼 이방 나라와 결탁하여 형제국을 대적한 이스라엘이 먼저 멸망당할 것임을 예언한다. 그리고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앗수르 역시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해 멸망할 것임을 예언한다. 한편, 본문에는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징벌하시면서도 그들 중에 ‘남은 자’를 남겨 두어 구원을 얻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이 비록 죄는 미워하셔도 죄인은 긍휼히 여기심을 여실히 증거해 준다.

 

17장의 경고는 아람의수도인 다메섹을 향한 것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공격에 대비해서 아람과 연합했다.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아람과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패망하리라는 것을 주지시킨다. 다메섹 근처의 버려진 도시에서 동물들이 폐허 속에 집을 만들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도 앗수르의 침략에 의해서 살찐 몸이 파리해지듯이 두려움을 당하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다메섹을 폐허의 도시로 만들 고 만다(1-11절). 소동하는 나라는 바다에서 파도가 뛰어 놀듯이 크게 소동할 것이라고 예견되어 있다. 그 백성들은 앗수르인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벌하는 데 사용하셨지만, 마침내 그들도 멸망시키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2-14절).

18장 -본장은 구스에 대한 예언이다. 지금까지 열방에 대한 예언은 멸망의 선포였다. 그러나 구스에 대한 예언은 심판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구원의 약속이다. 아는 그들이 당시 앗수르의 침략으로부터 유다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목격하고서 깨우쳐 하나님께 순복하게 된 탓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이미 구약 시대부터 성취되어 오고 있음을 잘 나타내 준다(잠12;3).

 

18장의 메시지는 구스 땅에게 주는 것이다. 구스인들이 빠른 갈대 배에 사자들을 보내어 앗수르에 대항해 연합하자고 이스라엘에게 요청했음이 분명하다. 이사야 선지자는 구스 사람으로 하여금 연맹을 체결하지 않기를 권고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적절한 시기에 적을 물리쳐 주시기 때문이다(1-3절). 하나님의 계획은 여름의 일광 같고 가을의 이슬같이 오래 머문다. 따라서 앗수르의 멸망 기한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르고 있는 것이다. 앗수르의 멸망이 이른 후 구스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시온 산에서 하나님의 선물을 받게 된다(4-7절).

 

 

19장 -본장과 20장의 예언의 주된 대상은 애굽이다. 이사야는 본문에서 먼저 애굽의 급속한 쇠퇴에 대해 예언한다. 신앙적 관점에서 볼 때 애굽은 역사상 근동 지역,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 각국에 우상 숭배의 악영향을 미쳤다. 하나님은 이러한 악영향을 일소하기 위해 심판을 단행하려 하신 것이다. 그러나 본문 후반부에서는 심판의 메시지에 이어 다시금 소망의 메시지가 주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심판 날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애굽과 앗수르 같은 열방들 가운데서도 나아와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것이다.

 

19장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은 애굽이 앗수르의 위협에 대해서 보호해 줄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애굽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애굽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자연을 황폐화시키며 어떠한 애굽의 현자라도 그 나라의 백성들을 구할 수 없음을 이사야 선지자는 지적하고 있다(1-15절). 결국 애굽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의 참된 뜻을 이해하며 나아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백성이 될 것이다(16-25절).

 

 

20장 -본장은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의 침략을 당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 여기서 구스는 애굽의 통치자로 애굽의 제25대 왕조를 이루고 있었던 세력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의 구스는 애굽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된다. 한편, 당시 애굽은 앗수르의 위헙에 자극받아 주변국들과 반 앗수르 동맹체제를 결성하고 있었다. 이때 유다는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의지하여 이 동맹에 가입하였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애굽의 패배를 예언함으로 유다가 애굽을 의지하는 것이 헛됨을 경고하셨다.

 

20장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이스라엘의 동맹국들이 당할 최후를 예언하고 있다(1-3절). 즉 애굽과 구스는 이스라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앗수르에게 비참하게 멸망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들을 통해 구원받으려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안겨 주게 되는 것이다(4-6절).

 

21장 -바벨론과, 에돔, 아라비아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13,14장에 이어 바벨론의 멸망이 다시금 선포되고 있음은 그들이 유다를 징계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행악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사이는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의 공격으로 갑자기 멸망당할 것을 예언하였다, 그 예언대로 과연 바벨론은 최고 전성기 때에 비사에 의해 멸망당했다(단5장). 한편, 에돔에 관해서는 그들이 앗수르의 지배에서 벗어나겠지만 다시금 바벨론의 지배를 당할 것으로 예언되었다. 그리고 주변국들을 자주 약탈하였던 아라비아는 그들 스스로가 바벨론의 침략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21장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해변 사막에 사막 폭풍이 밀어닥치듯이 임할 심판에 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과 앗수르의 전쟁을 지켜볼 파수꾼을 세우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백성들을 경성시키고 계신다(1-10절). 에서의 후손인 에돔 즉 세일에게도 하나님의 예언이 나타나고 있다. 그 예언은 아침이 오는 듯하지만 곧 밤이 다가옴을 말하고 있다(11-12절). 아라비아 반도에 대해서도 앗수르의 위협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라비아 사람들이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멸망을 당하고 고통을 받게 되며 칼을 피해 달아나는 신세가 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신다(13-17절).

 

 

22장 -13장부터 열방들의 멸망에 대해 예언해오던 이사야는 본장에서 다시금 유다의 멸망에 눈을 돌린다. 이는 하나님의 경고에고 불구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수 밖에 없음을 선포하기 위해서이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유다의 타락성, 특히 지도자들이 도리어 더 부패하여 유다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였음을 고발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일반 백성에서부터 위정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의를 수호하라고 노력하지 않는 한 그 사회가 올바로 존립할 수 없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22장에 나타나는 경고는 하나님의 선민이 사는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예언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이상의 골짜기로 불려진다. 그 이상의 골짜기에는 앗수르의 침입을 받아 많은 백성들이 죽음을 당하게 된다(1-7절). 그러나 유다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성읍의 보수에만 급급하는 어리석음을 보였던 것이다. 멸망의 순간에도 유다의 백성들은 자신의 소욕만을 채웠던 것이다(8-14절). 셉나와 엘리아김이 소개되고 있다. 셉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함으로 자신도 버려짐을 당하였고 엘리아김은 현명한 판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켰기 때문에 인정을 받았다(15 25절).

 

 

23장 -13장부터 계속된 열방에 대한 예언은 두로의 몰락과 회복에 관한 본문의 예언으로 잠시 일단락된다. 당시 두로는 원근 각지의 여러 나라들과의 무역 거래를 통해 부와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이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사실은 아무리 부강한 나라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그 결국이 어떠한지를 교훈해 준다. 한편, 본문 후반부는 두로가 장차 회개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 예언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수님 당시, 두로에 복음이 전파됨으로써 성취되었다(마11;20-22).

 

23장에 나타나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압장의 다른 예언과 마찬 가지로 앗수르의 침략과 관계되는 것이다. 이 경고는 지중해에서 무역 항해를 하는 상선들이 고통 중에 슬피 울게 되리라고 상선단을 부르는데서 시작한다. 시돈과 두로가 소유한 부는 주변 나라들과의 무역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다. 따라서 두로의 멸망은 주변 나라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1-5절). 다시스와 구브로 사람들도 그들의 경제적인 손실로 말미암아 역시 슬퍼할 것이다(6-14절). 이후 두로는 다시금 무역의 활성화를 이루게 되고 이번에는 그러한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득이 될 것임이 나타나 있다(15-18절).

24장 -열방의 각 나라들이 멸망당하게 되리라는 예언(13-23장)에 이은 24-27장은 ‘여호와의 날’ 곧 온 세상에 하나님의 징벌과 축복이 주어질 최후 심판 날에 대한 예언이다. 여기에는 이 세상의 모든 죄악 세력을 징벌하심으로 최후의 승리를 거두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중 본문은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날에 도리어 기뻐할 자들이 있으니 곧 악인이 심판 당하므로 구원을 얻게 되는 의인들이다(계18;20).

 

24장 앗수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전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의 배경이 됨을 본장은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높은 지위를 가진 자가 낮은 지위에 있는 자보다 결코 이득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쇠퇴하기 때문이다(1-4절). 땅이 쇠퇴하는 이유는 그 나라의 거민들이 그 땅을 더럽혔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더러운 땅이 태워질 것이다(5-13절).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그 소리는 현실의 소리가 아닌 심판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소리이다. 현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크나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14-20절). 그 심판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며 심판 이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가 임하게 된다.(21-23절).

 

 

25장 -본장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장차 들어가 영원토록 거하게 될 메시야 왕국에 대한 찬양이다. 하나님의 심판 날은 온갖 환난 중에도 인내함으로 믿음을 지킨 자들과 죄악에서 돌이킨 자들이 최종적 구원을 얻는 날이다. 이에 이사야는 택한 백성을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며 원수들의 위협에서부터 해방되는 자들의 기쁨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께 순복하는 자들은 장차 구원의 감격을 영원토록 누릴 것이지만 그러지 않는 자들은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될 것이다.(마24;32-51).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하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에 영적으로 더욱 깨달아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25장에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을 구하신 것에 대한 찬양이 나타나 있다. 일인칭 시점으로 말하면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진 후의 상황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구원과 심판을 접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면서 변화될 여러 가지 모습들도 보여 준다(1-5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은 인간의 죽음을 제하시고 원수들을 심판하심으로 택한 백성들의 환희를 받게 된다. 만군의 여호와의 산에서 벌어지는 잔치로 묘사된 하나님의 구원은 죽은 자의 면박을 벗겨내신다(6-8절). 또한 교만한 나라를 심판하시며 남은 자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9-12절).

 

 

26장 -25장 이 메시야 왕국에 대한 찬양이라면 본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장차 그 나라에서 부르게 될 찬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본문에서 이사야는 두 가지 사실을 주로 강조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분이므로 현실적으로 숱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으로써 인내를 하는 자들은 마침내 다 구원을 얻고 기쁜 노래를 부를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하나님의 최후 심판 날이 이르면 의인과 악인이 구분되어 제각기 응분의 보응을 받으리라는 점이다. 이처럼 고난과 시련은 결국 “남은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가려내는 시금석이다. 우리가 끝까지 찬양의 인내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벧전4;12,13).

 

26장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이 회복된 당에서 남은 자들과 하나님께 감사와 신뢰를 외치는 것을 들으며 서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유다 땅에서 불려지는 이 노래는 운명의 역전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낮은 자는 높아지고 핍박을 받는 자는 사라질 것이다. 파괴된 성읍과 대조적으로 남은 자들은 강한 성읍을 갖게 될 것이다. 의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없이 열려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은 낮아질 것이다(1-6절). 이사야 선지자는 신앙을 고백하며 의롭게 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평화가 깃든다고 확언한다. 사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의를 알게 된다(7-11절).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은 견디기가 힘들지만 그 시련을 딛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크나큰 은혜가 넘치게 된다(12-21절).

 

 

27장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24-27장)의 결론부로 하나님 나라의 번영과 세상 나라의 몰락에 대한 언급이다. 이사야는 여기서 먼저 포도원과 포도원지기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묘사한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대적들이 멸망당하는 날에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결국 돌아오게 된다는 회복의 소망을 밝힌다. 이러한 예언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때에 1차로 성취되었다(스1,2장). 그러나 이는 궁극적으로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이 새 예루살렘에 입성하는‘여호와의 날’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계21;1-8).

 

27장에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구원을 예언하고 있다. 그날에 하나님의 심판은 절정에 다다른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 질서를 깨뜨리는 바다 괴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처단되어지는 엄청난 사건을 보게 된다. 혼란한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바로 구원을 통한 질서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으로 알 수 있다.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서들은 하나님을 다시금 찾으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1-6절).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포로가 되게 하심으로 자신의 구원의 섭리를 나타내신다(7-11절). 결국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다시금 모으시기 위하여 넓은 지역의 이방 나라를 하나씩 심판해 가시는 것이다(12-13절).

 

 

28장 -본장에서부터 34장까지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그리고 열방을 통틀어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남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는 부분이다. 그 중 본문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이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돌이켜 죄악의 길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유다 역시 북왕국에 못지않게 타락한 상태였다. 이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경고를 주심으로 그들 모두가 회개하여 구원을 얻도록 촉구하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긍휼을 잃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증거해 준다.

 

28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심판은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유다 백성들의 회개를 위한 것임이 본장에 나타난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을 비참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면류관으로 자처하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 것이다(1-8절). 그러나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심판이 주는 교훈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끝내 포기하고 만다(9-13절). 유다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심판을 목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해 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또한 인간의 힘으로 이겨내려는 교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행위가 어리석음을 질타하신다(14-22절). 중요한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심판 예언 안에는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포함되어 유다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23-29절).

 

29장 -본문에서는 유다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와 소망의 메시지가 동시에 언급된다. 이사야는 먼저 하나님을 배신한 유다가 열방의 침략을 당하게 될 것을 선포하였다. 이어서 비록 그들이 징계를 당했을지라도 하나님이 다시금 그들을 회복시켜 주셔서 이전의 영광을 되찾게 될 것을 언급하였다. 결국 본문의 메시지는 범죄한 백성이 진정으로 살 수 있는 길이 곧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각성시켜 회개케 하는 데 그 근본 목적이 있다.

 

29장에는 예루살렘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묘사되어 있다. 예루살렘이 비록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는 곳이지만 이 성읍은 이방 나라에 점령이 되어 피 흘림이 있게 된다(1-4절). 하나님의 주권의 간섭만이 예루살렘을 구할 수 있다(5-8절). 예루살렘 백성들의 영적인 무감각성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것은 예루살렘이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보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하셨다(9-16절). 그러나 미래의 일은 달라질 것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의 태도는 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