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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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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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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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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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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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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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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 사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 이사야가 받은 계시. 이것은 아모쓰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 왕 우찌야, 요담, 아하즈, 히즈키야의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이 어찌 될 것인지를 내다본 것이다. 유다(찬송) 웃시야(여호와는 나의 힘) 요담(여호와는 완전하심) 아하스(그는 붙잡으신다) 히스기야(여호와는 강하심) 이사야의 예언 활동은 웃시야 왕의 치세 말기에서 히스기야 왕에 이르기까지 약 60년간(B.C. 740-680년경) 계속된다. 이 기간은 평화와 전쟁이 교차하는 정치적 격변기이다. 1. 웃시야 이사야 사역의 시작은 웃시야의 사망과 일치한다(6:1). 이러한 점에서 그의 사역은 주전 740년 경에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다는 웃시야 치하에서 괄목할만한 경제적 성과를 이루었으며(대하 26:6-15), 정치적 강국으로서의 재기를 도모했다. 2. 요담 요담은 주전 750년에서 731년까지 유다를 다스렸다. 그는 처음에 부친 웃시야와 공동으로 섭정을 했고, 말년에는 그의 아들 아하스와 공동으로 섭정을 했다. 그는 물질적으로는 부유했지만 신앙과 가치관은 부패한 유다를 물려받았다. 이사야는 이러한 이스라엘과 유다 내의 부정과 탐욕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앗시리아는 디글랏 빌레셀 3세(주전 745-727년, 왕하 15:19에서 \"불\"로 언급됨) 때에 니느웨에서 다메섹(주전 732년)에 이르는 도시들을 정복했다. 요담이 죽은 후에 폭풍우의 구름은 유다 지평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유다 역시 곧 국제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서 결국 앗시리아의 속국으로 전락할 운명에 놓여 있었다. 3. 아하스(여호아하스)(1) 주전 735년-715년에는 악한 왕 아하스가 유다를 통치했다(왕하 16:3). 역대기 저자는 아하스가 제도화 한 좋지못한 관습들을 열거하고, 이로 인해 그가 국제적인 곤란을 겪게되었다고 말하고 있다(대하 28:2-4). 아하스는 어려움을 겪을 때에 하나님의 약속보다 정치적인 해결에 더 의존했다. 앗시리아의 영토 확장 야욕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협했다. 그 때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는 반 앗수르 동맹을 맺고 유다도 이에 합류하기를 원했다. 그때에 아하스는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았다. 그는 앗수르를 두려워하여 아람-이스라엘 동맹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아람과 이스라엘은 군사 동맹을 맺고 유다를 공격했다. 그들은 동맹에 참여하지 않는 아하스를 폐위하고 그들에게 동조할 사람을 왕으로 세울 계획을 세웠다. 아람-이스라엘의 공격을 받게된 아하스 왕은 크게 당황했다(왕하 16:5, 사 7:5-6).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아하스왕에게 보내셨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아하스 왕에게 아람-이스라엘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만을 의지하도록 권면했다(사 7:8-10). 그러나 아하스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원군을 요청했다(왕하 16:7). 디글랏 빌레셀은 아람-이스라엘 동맹이 서부 지역으로 확장되지 않도록 신속히 대처했다. 그들은 베니게를 지나 블레셋까지 진군하면서(주전 734년),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을 멸망시키고(주전 732년), 계속해서 이스라엘도 정복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에게 원군을 요청했던 유다도 자기의 속국으로 만들었다(왕하 15:29, 16:7-9, 대하 28:19, 사 8:7-8). 후에 이스라엘 왕 호세아는 앗시리아에 반기를 들고 그들에게 공물을 바치기를 거부했다. 이에 분노한 살만에셀(주전 727-722년)은 주전 722년에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로 진군하여 그 성을 파괴하고 거민들을 사로잡아 갔다. 이때에 아하스는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았으며, 앗수르만을 믿고 따랐다. 이러한 그의 정책은 살멘에셀 5세와 사르곤 2세가 앗수르를 통치하는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4. 히스기야 아하스의 뒤를 이은 왕은 히스기야(주전 729-686년)였다. 그는 모든 면에서 아하스와는 대조되는 선한 왕이었다. 그는 주전 715년부터 686년까지 독자적으로 유다를 통치했으며. 국가적, 개인적으로 비극을 맞았을 때에 선지자 이사야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부패한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과감한 종교개혁을 시도했다(왕하 18:4,22). 그는 호전적인 강국 앗시리아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앗시리아 왕 사르곤 2세(주전 722-705년)는 전쟁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동쪽(엘람, 바벨론)과 서쪽(수리아-에브라임)의 여러 나라를 비롯해서, 유다 남서부 국경에 접한 와디엘 아리쉬까지 정복했다(주전 715년). 이러한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영토 확장 정책에 적절히 대처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앗수르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그는 나라를 개혁하고 유다의 이익을 증진시켜 나갔다. 그는 유월절 행사에 북왕국의 남은 자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주전 712년에 앗수르 왕 사르곤은 블레셋을 정복하고 히스기야에게 공물을 요구했다. 그리고 사르곤이 죽은 후에(주전 705년) 산헤립(주전 705-681년)이 앗수르의 왕이 되었다. 산헤립은 이집트와 블레셋과 유다의 연합 세력에 강하게 맞서 싸웠다(왕하 18:7). 그는 그 전쟁에서 46개나 되는 도시를 점령했다(사 10;28-32, 미 1:10-16에 나열된 도시들은 그 일부로 보인다). 마침내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기에 이르렀고, 히스기야는 성에 갇히고 말았다. 그때에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항복을 요구했다(주전 701년).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 예루살렘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날 밤에 천사들을 보내서 앗수르 군대를 치셨다. 이로 인해 산헤립은 거의 대부분의 군사들을 잃고 빈 손으로 퇴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구원을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왕하 19:35-36). 그 후에 히스기야는 병이 들고 말았다. 그는 병이 낫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으며,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해 주셨다(왕하 20:1-19, 대하 32:24-26, 사 38:1-22). 히스기야는 앗수르에 대한 승리에 우쭐했다. 그래서 그는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그가 가진 모든 보물과 무기고들을 보여주고 말았다. 그 때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서 장차 유다가 바벨론에게 점령당하고, 그가 보여준 모든 보물을 빼앗길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사 39:6). 그러나 이사야는 장차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되어 포로로 잡혀갔다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다시 귀환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이사야 40-48장).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 아모스(무거운 짐지는 사람) 이사야(여호와의 구원) \'아모스\'는 히브리어로 \'아모츠\'(* )라고 발음되며, 선지자 아모스(* )와는 다른 사람이다. 델리취(Delitzsch)는 선지자의 아버지의 이름이 표기된 것은 그 역시 선지자였음을 나타내는 한 증거라고 말한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유다(찬송) 예루살렘(평화의 터) 선지자의 예언은 주로 남왕국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사마리아를 비롯한 앗수르와 바벧론 등의 주변 열국들까지도 예언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13-27장, 34장). 이상(異像)이라 - \'이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존\'은 본래 엑스터시한 상태에서의 시각적 경험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확대되어 후에는 예언 일반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구약 예언서 가운데 본서외에 오바댜와 나훔에서 이와 동일한 명칭을 붙이고 있다(옵 1:1;나 1:1, \'묵시\'). 사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자식이라 기르고 키웠더니 도리어 나에게 반항하는구나. 하늘(천사들) 땅(사람들) 여호와는 하늘과 땅을 향해 크게 탄식하셨다. 여기서 선지자는 특별히 하늘과 땅을 지목해서 부른다. 그 까닭은 하늘과 땅이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 걸쳐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하면서 그 백성에 대한 여호와의 부성적(父性的)인 사랑과 보살핌을 목격하였을 뿐 아니라 더욱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그 증인으로 참여한 바 있기 때문이다(신 4:26, 36;30:19;31:28;시 50:4, 5). 내가 지식을 양육하였거늘 -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관계가 부자(父子) 관계에 비유된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자식이었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셨다(출4:22;호 11:1). 이러한 관계성은 약속의 씨앗이라는 형태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말씀에서 암시되었다(창 15:4). 그 씨앗은 자라서 출애굽의 감격과 더불어 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탄생이라는 탐스러운 결실로 이어진다. 여호와는 갓태어난 이스라엘을 \'자기 눈동자같이\' 보호하고 인도했으며 온갖 향기로운 것들로 먹게 하셨다(신 32:8-14). 그 결과, 이스라엘은 장성한 성년이 되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신 26:19;28:1) 이름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에 가장 잘 부합되는 시대를 찾는다면 다윗과 솔로몬 시대, 그리고 웃시야와 요담의 시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거역하다\'로 번역된 \'파솨\'(* )는 본래 \'도망치다\', \'달아나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외적인 행위와 내적인 의지에서 여호와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등을 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없이 구는구나. 소는 그 임자를 알고 - 짐승 중에서도 가장 힘이 있고 순종적인 종류이다. 그러고 소는 그 주인을 알고 섬기며 그 멍에에 복종하여 그 멍에를 멜 정도로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 나귀는 자기가 먹이를 먹고 머물던 장소인 그 주인의 구유나 여물통을 알 정도로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 나귀는 풀어놓아졌을 때에도, 자발적으로 그곳으로 돌아 갈 것이다. 그들은 짐승 보다도 못했다. 소와 나귀도 자기 주인을 알고 자기의 구유를 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거역했다.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이스라엘은 지각이나 통찰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알다\'와 \'깨닫다\'의 두 동사는 모두 경험에서 직접 취해진 말이다. 여호와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식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출애굽과 같은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주어졌다. 언약 관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여호와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많은 지식을 소유할 수 있었다(출 6:7). 그러나 그 지식이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였다는 데 이스라엘의 문제가 있다. 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아! 탈선한 민족, 불의로 가득 찬 백성, 사악한 종자, 부패한 자식들. 야훼를 떠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기고 그를 배반하여 돌아섰구나. 슬프다 - 여호와의 기소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것만큼 이를 반향(反響)이라고 하듯 그 뒤를 따르는 화답은 \'슬프다\'는 감탄사로 시작된다. \'슬프다\'로 번역된 \'호\'(* )는 장례식의 애도를 표시하는 비탄의 감탄사(렘 22:18)로서 탄식이나 저주의 표현에 자주 쓰인다(G.E. Wright). 이 말은 다른 곳에서 \'화로다\' 혹은 \'화있을진저\'등으로도 번역되었다(5:8;6:5;10:5;28:1 등등).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 - 이스라엘은 정치적, 민족적 공동체로서 자신을 여호와의 나라(백성)라고 이해할 뿐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초자연적 약속에 근거하여 자기를 여호와의 자녀(종자)라고 이해하였다. 자기 정체성(identity)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이해는 이스라엘의 삶을 실제적으로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서 항상 작용하였다. 여호와의 나라로서 이스라엘은 당연히 \'거룩한 나라\'(* , 고이 카도쉬, 출 19:6)가 되도록 기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범죄한 나라\'(* , 고이 호테)로 전락하였다. \'호테\'는 \'과녁을 빗나가다\'(miss the mark)는 뜻을 가진 동사 \'하타\'(* )의 능동 분사형으로, 이스라엘이 습관적으로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 - 여호와의 자녀로서 이스라엘은 \'거룩한 씨\'(* , 제라 코데쉬, 6:13)가 되도록 기대되었으나,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로 \'행악의 종자\'(* , 제라 메레임)로 변질되고 말았다. 여호와께서 양육한 \'자식\'(* , 바님)은 어찌되었는가 ? 그는 \'행위가 부패한 자식\'(* , 바님 마쉬히팀)이 되었다. \'마쉬히팀\'은 \'타락한\'(Gesenius, Henderson), \'남들을 부패시키는\'(Leupold), \'파괴적으로 행동하는\'(Lange), \'변질된\'(Calvin) 등으로 번역된다. 시적 평행법으로 구성된 이러한 묘사들은 이스라엘이 상습적이고도 계속적인 범죄 행위로 인하여 스스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악해졌을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파괴적인 결과만을 산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물러갔도다 - 먼저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렸다. 나아가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경멸하고 업신여겼다. 병행하는 두 구절에서 각기 \'버리다\'와 \'경멸하다\'로 번역된 \'아자브\'(* )와 \'나아츠\'(* )는 동이가어로서, 두 단어 모두 언약과 관련하여 여호와를 배반하고 이방 신들에게 전향하는 행위를 나타낸다(민 14:11;신 31:16, 20;32:19;삿 2:12 등). 랑게(Lange)는 \'버렸다\'를 소극적 죄악으로, \'경멸하였다\'를 적극적 죄악으로 분류하였다. 사1: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아직도 덜 맞아서 엇나가기만 하는가? 머리는 상처투성이고 속은 온통 병이 들었으며 너희가 어찌하여...패역하느냐 - 주께서는 이스라엘을 회개케 할 목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치들을 취하셨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조치들을 취할 때마다 그 결과는 더욱더 악화되었다:\'더욱더 패역하느냐.\' 실로 극한점에 이른 저들의 죄악 때문에 주의 징계로써도 돌이키게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패역하다\'(* , 사라)는 \'진실에서 이탈하다\'는 뜻이며, 여기서는 여호와를 배신하고 등을 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온 머리는...온 마음은 - \'머리\'(* , 로쉬)와 \'마음\'(* , 레바브)이란 명사에 관사가 수반되지 않았으므로 \'모든 머리와 모든 마음\'(every head and every heart)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Hitzig, Lange). 그러나 관사의 생략은 시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자주 허용되었으며(9:12 참조), 또한 이 말이 인간의 신체에서 취해진 비유임을 고려할 때, \'온 머리와 온 마음\'(the whole head and the whole heart)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Alexander). 이것들은 일부 주석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각각 다른 사회적 계층들(Hendewerk)이나 공동체의 내외적 상태(Umbreit)를 상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신체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도 치명적인 두 부분을 의미한다. 사1: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이 상하고 멍들고 맞아 터졌는데도 짜내고 싸매고 약을 발라주는 이도 없구나.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 머리와 마음이 병들고 지친 이스라엘의 내적인 황폐함은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가를 좀더 인상적으로 보여주려는 선지자의 의도에 따라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는 처절한 모습으로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 - 오래된 상처는 고름을 짜내야 하고 출혈을 막기 위해서는 붕대를 싸매야 한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부드럽게 하고 치료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기름을 발라주어야 한다(눅 10:34 참조). 그러나 이러한 통상적인 치료조차받지 못했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피폐함은 심각했다. 사1:7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 너희의 땅은 쑥밭이 되었고 도시들은 잿더미가 되었으며 애써 농사지은 것을 남이 약탈해 가도 보고만 있어야 하니 아, 허물어진 소돔처럼 쑥밭이 되고 말았구나. 이스라엘의 황폐한 정경에서 율법의 저주를 본다.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한 자에 대해서 일찍이 율법은 경고하기를, \'그 땅과 성읍이 황폐할 것\'(레 26:33)이며, \'알지 못하는 민족이 그 토지 소산을 먹을 것\'(신 28:33)이라고 하였다.이스라엘에 임한 일이 과연 그러하였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돌이키게 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그들을 징계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 아버지의 책망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1: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수도 시온은 포도밭의 초막, 참외밭의 원두막, 파수꾼의 망대처럼 외로이 남았구나.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이것은 오이나 참외밭을 지키기 위하여 세워진 가건물인데 선택된 백성의 영광의 상징인 딸 시온산이 이처럼 처참한 몰골로 비하된것은 곧 택한 백성이 더 이상 낮아질 수도 없는 수치에 빠진 것을 드러낸다. 사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만군의 야훼께서 조금이라도 살려두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모두 소돔같이, 고모라같이 되고 말았으리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패역했으며,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는 황무지가 되고 말았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벌써 멸망하고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사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소돔 고관들아, 야훼의 말씀을 들어보아라. 고모라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보아라.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 2절과 같은 동사가 사용된다. 그러나 그 대상은 다르다. 죄악의 측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죄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와 거의 동일하다. 그 죄는 겔 16:49에서 \'불의와 탐욕과 힘없는 자에 대한 착취\'로 규정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소돔과 고모라의 관원과 백성\"이라고 부르셨다. 그들은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백성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사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이 많은 제물들을 나에게 바치느냐? 나 이제 숫양의 번제물에는 물렸고 살진 짐승의 기름기에는 지쳤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는 보기도 싫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 - \'제물\'로 번역된 \'제바힘\'(* )은 \'살해된 동물의 고기,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피뿌리는 제물에 대한 포괄적인 명칭으로 언급되었다 (19:21;삼상2:29;3:14).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심의 가책을 없애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종교 행위를 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이 드리는 가증한 제물과 제사에 신물이 나셨다.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이 드리는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 사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너희가 나를 보러오는데 도대체 누가 너희에게 내 집 뜰을 짓밟으라고 하더냐?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 \'너희에게\'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너희의 손에서\'이다. 에발트(Ewald)는 \'너희에게\'에 강조점을 두어 \'그것을 누가 너 같은 사람에게 요구하였느뇨\'로 해석한다. 반면에 알렉산더(Alexander)는 \'그것을\'에 강조점을 두어 \'그따위 헛된 출석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로 해석한다.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 여기서 \'마당\'은 솔로몬 성전 주변의 경내를 가리킨다. 에스겔은 안뜰과 바깥뜰이 있다고 말한다(겔 8:16;10:5). 사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이제 제물 타는 냄새에는 구역질이 난다. 초하루와 안식일과 축제의 마감날에 모여서 하는 헛된 짓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헛된:원뜻은 \"황폐한\".\"도덕적으로 교활한\".\"무익한\"임. 유대인들의 제사가 경건 생활을 기반하지 않고 형식적인을 강조.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 이 말은 첫째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제사를 혐오하시는 까닭을 설명해준다. 그것은 그들이 제사와 더불어 악을 행하기 때문이다. 이말은 둘째 여호아가께서 혐오하시는 대상이 무엇임을 밝히 보여준다. 그것은 제사 행위 자체가 아니라 제사의 근본 정신에서 이탈된 외식적인 행위이다. 사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지키는 초하루 행사와 축제들이 나는 정말로 싫다. 귀찮다, 이제는 참지 못하겠구나. 사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두 손 모아 아무리 빌어보아라. 내가 보지 아니하리라. 빌고 또 빌어보아라.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손은 피투성이, 손을 펼 때에 - 문자적으로는 \'손을 뻗칠 때\'이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는 것은 구약 시대에 가장 일반화된 기도 자세였다. 그것은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접근하고자 하는 내적인 열망의 가시적 표현이라고 믿어졌다. 많이 기도할지라도 - 혹자는 이 말을 \'중언 부언\'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으로는 \'큰소리로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는 헛된 몸짓과 공허한 울림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경멸하시는 이유가 명시되어 있다. 붉은 \'피\'(* , 다밈)는 \'악을 행한다\'(13절)의 시각적 표현이다. 즉, 이 \'피\'는 희생 제물의 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 혹은 상징적 의미에서의 악행을 의미하는 것이다(Calvin). 사해 사본의 이사야서는 이 말 뒤에 \'너희 손가락은 불법으로 물들었다\'는 구절을 첨가하였다. 사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 몸을 씻어 정결케 하여라. 내 앞에서 악한 행실을 버려라. 깨끗이 악에서 손을 떼어라.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사랑을 기억하셔서 그들에게 당신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교훈하신다. 그것은 먼저 악에서 떠나라는 말로 제시된다. \'스스로 씻으라\'(* , 라하추)는 말은 원래 신체적, 의학적 의미에서 자신을 세척하라는 말이며, \'스스로 깨끗케 하라\'(* , 하자쿠)는 도덕적 의미에서 자신을 성결케 하라는 말이다. 이 두 말의 상관 관계에 대해 델리취(Delitzsch)는 앞의 씻음은 단번의 회개요, 뒤의 씻음은 날마다의 점진적인 성화라고 하였다. 사1: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착한 길을 익히고 바른 삶을 찾아라. 억눌린 자를 풀어주고, 고아의 인권을 찾아주며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선행을 배우며 - 악을 그치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그 필요 충분 조건에 응하기 위해서는 선을 행해야 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영적으로 너무나 무지해서 선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초등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처럼 이제라도 선행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도와주며 :\"구조하다\".\"안내하다\".\"행복하다\"의 강조형.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변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공식 법정 용어로서. 논쟁을 통하여 어떤 사건의 판결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야카\"이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양털같이 되리라 - 이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그들에게 간절하게 회개를 촉구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순종한다면, 피와 같이 붉은 그들의 죄를 양털과 흰눈처럼 희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사1:19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 너희가 기꺼이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좋은 것을 먹게 되리라. 아담이 범죄했을 때 그는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창 3:18)는 저주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가인이 그 아우를 죽였을 때 그는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주지 아니할 것이라\'(창 4:12)는 저주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사1: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기어이 거역하면 칼에 맞아 죽으리라.\" 이는 야훼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사1: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 어쩌다가 성실하던 마을이 창녀가 되었는가! 법이 살아 있고 정의가 깃들이던 곳이 살인자들의 천지가 되었는가! 신실하던 성읍이...창기가 되었는고 - 원문대로 읽으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 가, 신실하던 성읍이\'이다. 2절에서 부자 관계로 표현되었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여기서 부부 관계로 표현되었다. 부부 관계의 기초는 \'신실함\'(* , 네에마나)이다. \'네에마나\'는 \'받치다\', \'기초하다\', \'기대다\'는 뜻을 가진 \'아만\'(* )이란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이다(성도들이 기도 끝에 낭송하는 \'아멘\'이란 말도 이 말에서 비롯된 것임). 어찌하여(* , 예카). 이 말은 애가(elegy)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이다. 예레미야 애가는 이 말로 시작하고 이 말로 표제를 삼았다(애 1:1;2:1;4:2). 선지자의 탄식은, 이스라엘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의 확인이다.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 과거의 아름다움과 현재의 추함이 \'이제는\'(* , 아타)이란 말에서 극적으로 대비된다.\'살인자들\'(* , 메라츠힘)은 공의를 가장하여 부정직한 방법으로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의 소유를 착취하는 자를 의미한다(엠 2:34;요일 3:15). 사1:22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두주에는 - 너의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는 물이 섞여 싱거워졌구나. 전에 그들은 순은과 좋은 포도주처럼 순수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온갖 이방 사상과 행동으로 인해 불순물 찌꺼기와 물 탄 포도주처럼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사1: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 너의 지도자들은 반역자요, 도둑의 무리가 되었다. 모두들 뇌물에만 마음이 있고 선물에만 생각이 있어 고아의 인권을 짓밟고 과부의 송사를 외면한다. 지도자들은 뇌물을 받고 공의를 무너뜨렸고, 연약한 자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었다. \'방백들\'(* , 사림)과 \'패역함\'(* , 소레림)은 두운법에 맞춘 것이다. 선지자는 두운법을 사용함으로써 방백들과 그들의 패역함을 한층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방백들이야말로 글자 그대로 패역한 사람들이다\'이다.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 \'사랑하며\'(* , 오헤브)와 \'구하며\'(* , 로데프)는 모두 분사로 쓰여 그들의 행위가 계속 지속되며 습관적으로 자행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구하다\'는 동사는 원어상 \'따라가다\', \'열심히 추구하다\'는 뜻을 갖는다. 그들이 그처럼 열심히 추구하고 흠모해 마지 않았던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뇌물\'(* , 솰르모님)이었다. \'뇌물\'은 \'평화\'를 뜻하는 \'솰롬\'(* )과 발음이 비슷하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구한 것은 \'평화\'가 아니라 자기들의 탐욕을 채워주는 \'뇌물\'이었다. 사1: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그런즉, 이스라엘의 강하신 이, 주 만군의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아! 내가 원수들을 속시원히 물리치고, 적에게 보복하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 - 하나님의 성호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이처럼 한데 모아 놓은 곳은 이곳 외에 없다. \'주\'(* , 하아돈)라는 명칭은 본서에서 \'만군의 여호와\'와 결합되어 위협과 징벌을 가하는 경우에 쓰인다(3:1;10:16, 33;19:4). 말씀하시되 - \'네움\'은 비밀스럽고 중요한 사실을 말할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보응하여:\"강하게 숨쉬다\"의 \"나함\"에서 유래. \"보수하다\"와 연관하여 복수를 위한 굳은 의지를 표명. 사1:25 나의 손을 내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 그리고 손을 돌려 너의 찌꺼기는 용광로에 녹여내고 납은 모두 걷어내어 너를 순결하게 하리라. \'손을 되돌린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히 개입, 간섭하실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렘 6:9;겔 38:12;암 1:8). 하나님의 간섭은 찌끼를 태우고 혼잡물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몇몇 주석가들은 이것을 징벌의 차원에서만 바라본다. 그러나 \'아쉬바\'(* )라는 동일한 동사로 시작되는 26절과 비교해 볼 때 회복의 의미가 더 강한 듯하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 문자적으로는 \'잿물처럼 너의 찌끼를 녹이고\'이다. 하나님은 마치 잿물을 가지고 은에서 납 성분을 녹이듯이, 예루살렘의 경건치 못한 자들을 쓸어버리시겠다는 것이다. 사1:26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본래와 같이 - 내가 너의 재판관들을 그 옛날처럼 다시 세워주고 너의 고문관들을 처음과 같이 다시 일으켜주리라. 그제야 너는 \'정의의 도시, 성실한 마을\'이라 불릴 것이다. \'사사들\'과 \'모사들\'은 권력을 쥐고 있는 관원들과 방백들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정화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불순물이 제거된 뒤에 예루살렘은 21절 상반절에 기록된 대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평화의 구현기요 메시아적 통치의 예표로서 상징된다. 사1:27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 시온은 그 기틀이 바로잡히고 주민은 마음이 바로잡혀 다시 살게 되리라. 귀정(歸正)한 자 - KJV는 이것을 범죄로부터 돌아선 자라는 뜻의 \'개종자들(converts)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랑게(Lange)는 \'포로에서 귀환하느 자들\'에게 이것을 적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이것을 이중적 전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즉 가까운 미래에서는 \'포로에서 풀려난 자들\', 그리고 먼 미래에서는 \'죄로부터 구속된 성도들\'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1: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멸망할 것이라 - 패역무도한 죄인들은 모조리 거꾸러지고 야훼를 저버리는 자들은 멸망하리라. 25절과 관련하여 정련 과정의 반대 측면, 즉 찌끼와 혼잡물의 운명이 제시된다(Lange). 그들의 운명을 강조하는 듯이 \'패망\' (* , 쉐베르)이란 명사가 문장의 맨 앞에 나온다. 히브리어 원문대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파멸, 패역한 자들과 죄인들은 모두 함께. (그리고) 여호와를 버린 자들은 종말에 이르리라.\' 사1:29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 너희는 상수리나무에 기대를 걸었던 일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그렇게도 좋아하던 동산에 실망하리라. 상수리나무...동산 - 선지자는 부분을 들어 전체를 나타내는 수법으로 \'상수리나무\'(* , 엘림)와 \'동산\'(* , 가노트)을 들어 당시에 편만해 있던 모든 유(類)의 거짓된 우상 숭배를 표현한다. 류폴드(Leupold)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기를, 이것들은 두 가지 방식의 우상 숭배, 즉 나무 숭배 의식(tree-cult)과 동산 숭배 의식(garden-cult)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1:30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물 없는 동산 - 너희는 잎이 시든 상수리나무같이, 물 없는 동산같이 되리라. 늘 푸른 나무와 물기 어린 동산처럼 그렇게 번성하기를 꿈구면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 달려간 그들은 허무한 우상의 결국만큼이나 자신들도 헛되이 비참함에 이르고야 말 것이다(Alexander). 그러나 생명의 원천이신 여호와를 택하고 그로 즐거워하는 자들의 운명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할\'(시1:3) 것이다. 사1: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힘센 사람은 삼오라기가 되고, 그가 만든 것은 불티가 되어 다 함께 타는데도 그 불을 꺼줄 사람 또한 없으리라.\" 강한 자는...그의 행위는 - \'강한 자\'(* , 헤하손)는 불법한 통치자(아마도\'우상 숭배를 조성한 지도자\', Leupold)이며, \'그의 행위\'(* , 포알로)는 인간의 손으로 빚어진 우상(혹은 \'안녕을 도모하는 그 수단과 고안물\', Vitringa;\'우상 숭배하는 행위\', Lange)을 의미한다. 우상은 불티와 같아서 그것을 따라가는 자에게 재앙만을 야기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