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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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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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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 6:1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 우찌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야훼께서 드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의 옷자락은 성소를 덮고 있었다.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 웃시야(여호와는 나의 힘) 웃시야 왕의 치세 때 유다는 전성기 때의 국력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대하 26장) 백성들은 태평 성대(太平聖代)를 향유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외적인 번영의 이면에는 종교적 부패의 상처가 점차 그 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정규적인 제사는 있었으나 이미 그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식어갔으며 물질적 풍요로 향락과 사치 풍조가 더욱 번져갔다. 그러던 차에 웃시야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주변국들의 거대한 군사력 앞에 나라의 미래가 풍전등화 처럼 예측 불허의 어두운 상황속에 놓이게 되었다 내가 본즉 - 이 말이 선지자가 실제로 눈을 뜨고 보았음을 말하는 것인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요4:24).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 환상 속에서 선지자는 지상의 예루살렘으로부터 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하늘의 성전으로 옮겨진다. 선지자가 본,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하늘의 왕이시다. \'높이 들린 보좌\'는 아마도 여섯 계단의 꼭 대기에 놓여져 있는 솔로몬의 보좌에서 연상된 듯하다(왕상 10:18). 하나님의 통치는 지상의 왕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쉼없이 계속된다.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 왕들은 보통 흘러 내리는 긴 옷을 입고 있었다. 이는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차 있었으니 지상의 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왕되신 하나님의 장엄하신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Calvin). \'성전\'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헤칼\'(* )은 웅장하게 건축된 궁전(잠 30:28;단 1:4) 혹은 여호와의 성전(왕하 24:13;시 29:9)을 뜻한다. 6: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날개가 여섯씩 달린 스랍들이 그를 모시고 있었는데, 날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 훨훨 날아다녔다.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 \"스랍\"은 문자적 의미는 \"불타는 자들\" 이들은 하나님의 보좌에 둘러서서 봉사하는 천사로서 \"정결의 대행자들\"이다. \'모셔 섰다\'(* , 오메딤 밈마알 로)는 문자적으로는 \'그의 위에 섰다\'이다. 이것은 봉사하는 자세를 나타낸다(왕상22:19;욥 1:6;슥 6:5). \'스랍들\'(* , 세라핌)은 성경에서 오직 여기에만 나온다. \'세라핌\'은 복수형으로서 그 단수는 \'뱀\'을 뜻하는 \'사라프\'(* )이다 (14:29;30:6;민 21:6,8;신 8:15). \'사라프\'는 본래 \'태우다\'는 뜻의 동사에서 파생된 말인데, 불타는 모습이 기어가는 뱀의 모양과 흡사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세라핌\'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불타는 자들\'이 된다.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그 둘로는...그 둘로는 날며 - 이 스랍들은 여섯 날개를 가졌으며 얼굴과 발이라는 묘사에서 미루어 볼 때 사람의 형상을 한 듯하다. 천상의 존재인 스랍들이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린 것은 주의 거룩하심과 그 영광을 직접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두 날개로 발을 가린 것은 먼지에 자주 더럽혀지는 발의 상대적 불경건성 때문이다. 남은 두 날개만이 본래의 목적대로 날기 위해서 준비 되었는데, 이는 주의 명령을 신속히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Leupold). 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 그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 \'서로\'(* , 제 엘 제)라는 말은 스랍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노래 부르는 방식(교송)을 나타낸다. \'창화하다\'(* , 카라)는 목소리를 드높여 찬양함을 뜻한다. 천상의 존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들로는 욥 38:7;시 29:1,2;계 4:8;7:11 등이 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 \"영광\"은 \"무겁다\".\"풍부하다\"의 \"카바드\"에서 파생. 스랍들이 부른 찬양의 주제는 만군의 여호와의 \'거룩\'(* , 카도쉬)과 \'영광\'(* , 카보드)이었다. 6:4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 그 외침으로 문설주들이 흔들렸고 성전은 연기가 자욱하였다.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 여호와가 강림하실 때 시내 산이 진동했던 것처럼(출19:18) 여호와의 거룩과 영광을 찬미하는 스랍들의 드높은 노랫소리에 선지자가 서 있는 문지방의 터가 흔들렸다고 하니, 이는 스랍들의 찬양이 얼마나 힘있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 \"연기\"는 \"분노하다\"는 상징적 의미도 가짐. 연기는 스랍들의 찬양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이 연기는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한다(4:5;왕상 8:10;겔 10:4, Gray, Knobel).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 내가 부르짖었다. \"큰일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 틈에 끼여 살면서 만군의 야훼, 나의 왕을 눈으로 뵙다니…….\"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 직역하면 , \'나에게 화로다. 왜냐하면 나는 끝장났기 때문이다\'이다. 선지자가 이렇게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호와의 완전 무결하신 거룩과 영광 앞에서 그 자신의 죄인됨과 그 백성의 죄악됨을 깊이 깨우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죄악을 삼키는 불과 같아서(33:14) 부패한 인간이 그 앞에 설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을 본 자는 그 누구도 살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출 33:20;삿 13:22). 환상 가운데 여호와를 목도한 선지자는 실제로는 죽지 않았지 만 의식 속에서는 자기가 벌써 죽은 것처럼 느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 선지자는 자신의 죄 가운데 특별히 부정한 입술을 지목해서 말한다. 이는 첫째로 정결한 입술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스랍들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대조할 때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마음으로 범죄한 것이 입으로 표출된다는 점에서(마 15:11) 부정한 입술이 모든 죄악을 총체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었다(약 3:2 참조).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 선지자는 백성의 죄악에 대하여 깊은 연대 의식(혹은 책임 의식)을 느꼈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 그 자신과 민족의 깊은 절망 가운데서 선지자가 뵈온 하나님은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었다. 성전 가득 뒤덮인 긴 옷자락, 주변에서 쉼없이 찬미하는 스랍들의 모습에서(1,2절) 선지자는 이 같은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죄의 고백에 이어 하나님의 사죄 의식(儀式)이 뒤따른다. 6: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러자 스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뜨거운 돌을 불집게로 집어가지고 날아와서 화저(火著)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내 입에 대며 - \'단\'은 제단이니 모세에게 지시하신 제단을 가리킨다. \'핀 숯\'은 불타는 숯 혹은 뜨거운 돌을 뜻한다. 천상에서 거행된 죄사함의 성례는 스랍 중 하나가 단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정금으로 만든 화저(불집게)를 가지고 핀 숯을 취하여 선지자에게로 날아가 그가 부정하다고 탄식한 입술을 거기에 댐으로써 이루어졌다. 6: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보아라, 이제 너의 입술에 이것이 닿았으니 너의 악은 가시고 너의 죄는 사라졌다.\" 보라...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 \"사하여졌느니라\"는 \"덮다\"의 \"카파르\"에서 파생. 스랍들의 말로 앞절의 신비한 행동의 의미가 밝혀진다.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다\'는 평행법은 선지자에게 사죄의 확신을 더욱 강력하게 전달해 주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 때 주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거룩과 그 영광을 뵈었던 선지자는 이제 사죄함을 받은 이후에 영적인 귀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러나 그 음성은 직접적으로 선지자를 향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Jerome).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 선지자는 하늘의 어전(御前) 회의에서 그곳에 참여한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왕상 22:19,20 참조). 그것은 헌신의 열정에 의해 자원하여 일하러 갈 사람을 구하는 음성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는 천상의 존재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하나님과의 밀접한 연관으로 인하여 \'엘로힘\'(* )이라고까지 불리웠다(창 6:2;시 8:5).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입술이 정결케 됨으로써 죄에서 자유함을 입은 선지자는 여호와의 음성을 듣자마자 그 가슴의 뜨거움만큼이나 불타는 정열로 이렇게 소리친다:\'나를 보십시오. 나를 보내십시오.\' \'나를 보내십시오\'(* . 히네니)란 말은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 따라서 \'나는 준비되어 있습니다\'와 같은 말이다(Alexander, Michaelis). 죄씻음을 받은 감격이 헌신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경우로는 시 51:12-15에 언급되어 있다. 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주께서 이르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일러라. \'듣기는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보기는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마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는 못할 것이요 - 백성들은 \'깨닫지 못할 것이며\', \'알지도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무감각(혹은 영적인 불감증)은 예레미야가 말한 바 \'마음이 강퍅하고 목이 곧은\'(렘 7:24-26) 백성들의 상태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 말씀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 자신에 의해 그의 사역의 결과를 묘사한 말로 4복음서에서 인용되었으며(마 13:13;막 4:12;눅 8:10;요 12:39), 바울에 의해서 두번 인용되었다(행 28:26,27;롬 11:8). 6: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를 어둡게 하며 눈을 뜨지 못하게 하여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서 성해지면 어찌 하겠느냐?\"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 선지자의 사역으로 인해 오히려 백성들의 마음이 둔해지고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된다는 말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 비밀을 이렇게 묘사한다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칼빈(Calvin)이 잘 말한 것처럼, 눈이 어두운 사람이 빛을 볼 수 없다 하여 원망할 수 없는 일이며, 귀가 막힌 사람이 맑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하여 불평할 수 없는 일이며, 지각이 둔한 사람이 자기가 이해 못하는 문제의 어려움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심판의 제1차적인 원인은 늘 죄인에게 있다. 6:11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나는 \"주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하고 여쭈었다. 주께서 대답하셨다. \"도시들은 헐려 주민이 없고 집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농토는 짓밟혀 황무지가 될 때까지다.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아니하는 백성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고 마침내는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일 수 없다는 것을 선지자는 알고 있다. 그래서 묻는다:\"주여, 이 백성들의 눈 먼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 되겠습니까?\"(시 90:13 참조). 이 같은 물음의 배후에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즉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들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지 아니하신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대답하시되...많을 때까지니라 - 선지자의 물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백성들의 완악함이 너무 깊어서 완전한 파멸을 목도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아니할 것이라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백성들의 완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참으로 엄위한 것이어서 그것은 온 나라가 황폐되고 백성들은 이방 민족에게 포로로 잡혀가는 전국가적인 재난으로 실현되어지리라는 사실이다. 6:12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야훼께서 사람을 멀리 쫓아내시고 나면 이 곳엔 버려진 땅이 많으리라. 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 주민의 십분의 일이 그 땅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들마저 상수리나무, 참나무가 찍히듯이 쓰러지리라. 이렇듯 찍혀도 그루터기는 남을 것인데 그 그루터기가 곧 거룩한 씨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 본문은 내용상 앞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심판을 확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설혹 심판에서 살아 남은 자가 있다 할지라도 - 1/10은 극히 적은 수를 가리킨다 - 그마저 계속되는 파멸의 와류에 삼키우고 말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절망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궁극적인 마침 이 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절망에서 솟아오르는 하나님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베임을 당한 나무의 표상에서 이러한 사상이 암시되고 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남아 있는 것같이 - 밤나무와 상수리나무는 상록수에 가까우며 완전히 베임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돋는 강인한 속성 때문에 이스라엘의 상징으로서 선택된 듯하다(Delitzsch). \'그루터기\'라고 번역된 \'마체베트\'(* )는 \'뿌리\'(De Wette), \'줄기\'(Gesenius), \'기둥\'(Leupold)을 뜻하는 말로서, 원초적인 생명력을 담지하고 있는 부분을 가리킨다 (Alexander).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 최후까지 보존되어질 이 그루터기는 \'거룩한씨\'(* , 제라 코데쉬)이다. \'거룩한 씨\'는 \'행악의 종자\'(* , 제라 메레임)와 대조되는 것으로서(1:4), 거듭되는 심판을 겪고서도 끝까지 살아 남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롬 11:5). 이들은 성장을 거듭하여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어\'(37:31) 거대한 나무를 이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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