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제9장

 
* 이사야강해
○ 이사야9장
 

  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1.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2.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3.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4.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5.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2.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찌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3.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4.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5.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1.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2.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3. 대저 악행은 불 태우는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4.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5.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1.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 본문은 히브리어 원문에는 8:23로 매
겨져 있다. 비록 \'흑암\', \'고통\' 등의 어두운 단어들이 연속되고 있지만 내용은 정반대이다. 흑암이 걷히고 빛이 다시 비췬다. 이 모든 변화는 한 아이의 출생과 더불어 비롯된다(6,7절). 흠정역은 문장 첫머리에 나오는 불변사 \'키\'(* )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번역함으로써(nevertheless) 이러한 변화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본절에 언급된 지역들은 사사 시대 이래로 주변 열국들의 침입으로 항상 시달림을 받아왔으며, 이방 민족들과 접경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하여 팔레스틴의 다른 지역들보다도 이방적 색채가 더 짙었다. 게다가 최근에 자행된 앗수르 군대의 침략(B.C. 733,732년)으로 이 근방은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하였다. 이런 정치적, 문화적, 인종적 요인들 때문에 갈릴리 지역은 같은 유대인들로부터도 멸시를 받아왔던 것이다(요 1:46;7:41,52;행 2:7). 그러나 새 날이 밝을 때, 흑암이 가장 깊은 이 땅에 빛이 가장 먼저 비췰 것이다.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올 것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빛이 비취도다 - \'흑암에 행하던 백성\'은 앞에 언급된 갈릴리 지역에 거주하는 백성들을 가리키며,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와 평행을 이룬다. \'흑암\'은 슬픔 혹은 재난으로 바꿔 말할 수 있으며, 더 넓게는 죄와 그로 말미암는 총체적인 불행을 비유한다고 할 수 있다(시 107:10,11). \'큰 빛\'은 세상의 빛이요(요 8:12) 참된 빛이며(요 1:9) 의의 태양이신(말 4:2)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한다. 마태에 의하면, 이 빛은 맨 먼저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의 해변 마을에서 부터 비취기 시작했다(마 4:13). 그가 처음 이적을 베푸신 곳도 갈릴리였으며(요2:11), 맨처음 가르치신 곳도 그가 자라나신 갈릴리의 나사렛 회당이었다(눅4:14-17). 천국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곳도 바로 갈릴리 해변가였다(마 4:17;막1:14,15). 이로써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본다는 선지자의 예언은 신약에 이르
러 완전하게 응하였다.
9: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당신께서 주시는 무한한 기쁨, 넘치는 즐거움이 곡식을 거둘 때의 즐거움 같고, 전리품을 나눌 때의 기쁨 같아 그들이 당신 앞에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 내용은 주께 대한 찬양과 감사로 바뀐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베풀어 주신 일 가운데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는, 나라를 창성케 해주신 것이다. \'창성케 함\'은 백성의 수를 많게 함이다. 둘째는, 즐거움을 더하게 해주신 것이다. 백성의 수의 증가와 즐거움의 증가는 모두 메시야 시대를 특징짓는 주도적인 현상들로 간주된다(26:15;66:8;슥
14:10,11).
9: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당신께서는 그들이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를 부러뜨리시고 혹사하는 자의 채찍을 꺾으실 것입니다. 미디안을 쳐부수시던 날처럼, 꺾으실 것입니다.
멍에와...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였음이니이다 - 본문의 \'멍에\'와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는 모두 노예를 다룰 때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이 가운데 특히 \'멍에\'(* , 수발로)와 \'그 압제자\'(* , 하노게스 보)는 애굽에서의 속박을 연상시킨다(출 2:11). 성경적 표상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을 속박하는 어두움의 세력을 대표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해방 사건은 애굽에서의 구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가 \'미디안의 날\'을 말하는 것은, 지극히 적은 수효로 많은 대적들을 물리친 그 사건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이 가장 분명하게
현시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삿 7:2, Oswalt, Calvin).
9: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마구 짓밟던 군화, 피투성이 된 군복은 불에 타 사라질 것입니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살라지리니 - 구원은 압박받는 백성에게는 해방으로 경험되지만, 압제하는 군대에게는 패망 이외 다름 아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사상은 기드온의 승리(Junius)나 앗수르의 전멸(Delitzsch) 보다 더 크다. 전쟁을 위한 무장들인 \'갑옷\'(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을 \'군화\'로 번역함)과 \'군복\'이 불에 태워지리라는 표현은 적들의 패망이라는 일차적인 의미 외에 더 나아가 전쟁 자체의 소멸이라는 종말론적인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절에서 평
강의 왕이신 메시야가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 \'정사\'로 번역된 \'미스라\'(* )는 \'지도자가 되다\'는 뜻의 \'사라\'(* )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통치\'를 의미한다. \'정사를 어깨에 멘다\'는 말은 권위의 상징으로 주어진 금고리나 열쇠를 어깨에 걸친 데서 연유한 듯하다(22:22 참조).     기묘자라, 모사라 - \'기묘\'(wonder)와 \'모사\'(counsellor)를 구분하여 해석할 수도 있으나(Gesenius, Rosenmuller, Delitzsch), \'기묘한 모사\'(Wonderful counsellor) 라는 해석도 가능하다(28:29, Gray, Oswalt). 그는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계획을 세우실 것이며 그일을 이루실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 신적인 계획의 수립과 성취라는 측면에서 첫째 이름과 둘째 이름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엘 깁보르\'(* )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와 부를 하나님의 이름이며 (10:21), 구약에서 자주 사용되는 하나님의 이름이다(신 10:17;느 9:32;시 24:8;렘32:18). 따라서 이 아이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성(神性)을 소유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영존(永存)하시는 아버지라 - \'영존함\'은 신성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점은 \'아버지\'에 놓인다. 히브리식 사고에서 아버지는 아들과 상관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부양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후원자, 보호자 등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22:21;욥29:16;시 103:13). 따라서 \'아비 아드\'(* )는 그의 백성들, 더 넓게는 피조물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평강의 왕이라 - 마지막으로 그는 백성들을 돌보고 책임지는 자로서 \'왕\'이라 불리운다.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평화의 나라이며, 그의 다스림 역시 평화로울 것이다(시72:3,7;렘 33:6;미 5:4;슥 9:10 등).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다윗의 왕좌에 앉아 주권을 행사하여 그 국권을 강대하게 하고 끝없는 평화를 이루며 그 나라를 법과 정의 위에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만군의 야훼께서 정열을 쏟으시어 이제부터 영원까지 이루실 일이옵니다.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와 그의 자손이 영원토록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고 확약하셨다(삼하 7:13,16). 사실 다윗 왕국은 구약 역사에서 백성들이 동경하던 하나님 왕국의 실체임과 동시에 장차 메시야에 의해 건설될 항구적인 평화의 왕국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O.Robertson).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 그 나라의 영속성은 다윗 언약에 기초하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내부 구조는 \'공평\'(* , 미쉬파트)과 \'정의\'(* , 체다카)이다. \'공평\'과 \'정의\'야말로 메시야 왕국을 지상의 나라와 구별짓는 결정적인
표지인 셈이다. \'보존하다\'(* , 사아드)는 \'떠받치다\', \'유지하다\'는 뜻이다.
9:8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주께서 야곱을 책망하시니 그 말씀이 이스라엘에 떨어지네.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 본문에서 \'말씀\'(* , 다바르)은 보냄을 받은 자는 사자와 동일시되고 있다(시 107:20;147:15,18). 이 말씀은 여호와로부터 보내졌기 때문에 일점 일획의 어김도 없이 성취되기 전까지는 보내신 자에게로 헛되이
돌아가지 않는다(55:11).
9:9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에브라임과 사마리아의 주민, 그 모든 백성이 이것을 알고도 교만하여 부푼 마음으로 말하는구나.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 것이어늘 -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5:3)과 대조되는 표현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그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미루어 충분히 알 수 있음에
도 불구하고 그 앞에서 겸손하기보다는 교만으로 일관한다.
9:10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흙벽돌이 무너지면 다듬은 돌로 쌓고 돌무화과나무가 찍혀 넘어지면 송백을 심으리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대신하리라 하도다 - 자만으로 가득 찬 에브라임의 말이다. 벽돌과 뽕나무는 둘 다 값싼 건축 자재들인데, 빈약한 건물이나 서민들의 집을 지을 때 주로 사용되었다. 이에 반해서 다듬은 돌과 백향목은 고급품들로서 권세자들의 거처나 호화로운 건물을 지을 때 주로 이용되었다(왕상 5:6;대하 1:15;2:3;스 3:7;암 5:11).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들이 외국 군대의 침공을 받아 손상을 입을지라도 자신들의 힘으로 이전보다 더 강성해진다고 호언하고 있는 것이다.
9:11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 에브라임은 그들의 교만의 대가를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르신의 대적\'(* , 차레 레친)은 언어 유희를 이용한 수법으로 앗수르인들을 가리킨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르신과 동맹을 체결했었다. 그러나 르신이 죽고 앗수르에 의해 수리아(아람)가 정복된 이후(왕하 16:9) 에브라임은 앗수르의 종속국으로 전락한 아람에 의해 침략을 당하게
된다(12절-\'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9:12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찌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동에서는 시리아, 서에서는 불레셋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마구 집어삼키게 하시네. 그래도 그의 분노는 가시지 않아 그 드신 손을 아직도 내리시지 아니하시네.
9:13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이 백성은 매 드신 이에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만군의 야훼를 찾지도 않는구나.
이 백성이...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 \'돌아오다\'(* , 슈브)는 완전한 전환을 뜻하며, \'찾다\'(* , 다라쉬)는 \'문제를 풀기 위해 물어 옴, 혹은 전심으로 구함\'을 뜻한다(출 18:15;신 4:29). 그러나 이들 동사 위에 부정사(不定詞) \'로\'(* )가 놓인 데서 알 수 있듯이, 그 백성은 반역적인 태도를 고집하였다.
9:14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야훼께서 괘씸하게 여기시어 이스라엘의 머리와 꼬리를 자르시고 종려나무와 갈대를 하루아침에 찍어내시니
종려가지와 갈대 - \'종려가지\'(* , 키파)는 그 아름다움과 유익함으로 인해 대단히 고귀한 식물로 평가되었으며, 후일 로마 동전에 유대의 상징으로 새겨지기도 하였다(시 92:12;아 7:7,8, Alexander). 이와 대조적인 이미지로 사용된 \'갈대\'(* , 아그몬)는 \'습지\', \'늪\', 혹은 \'시궁창\'(* , 아감)에서 자라는 식물(풀)로, 대단히 천하게 여겨졌다. 이 둘은 아마도 고귀한 자와 천한 자를 암시하는 듯하다
(19:15).
9:15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그 머리란 장로와 잘난 체하는 자들이요 그 꼬리란 거짓을 가르치는 예언자라.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 이사야가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들을 가리켜 \'꼬리\'라고 부르는 까닭은 - \'꼬리\'(* , 자나브)에는 본래 사악하고 가증 스러운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들이 마치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권세있는 자들의 편에 빌붙어 부끄러운 말과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E.J.Young). 
9: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이 백성의 지도자가 잘못 인도하니 그 인도를 받는 자들이 망하는구나.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하니 - 3:12의 탄핵과 유사하다. 지도자들의 범죄는 특히 무겁게 취급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잘못은 자신에게 한정되지 않고 그를 바라보고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9:17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주께서는 그 정예 부대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들은 모두 불경하여 악을 행하는 자요, 입으로는 야비한 소리만 뱉으니, 그의 분노가 어찌 사라지며 그 드신 손이 어찌 내려지겠는가!
이 백성이 각기 설만(褻慢)하며 - 원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이는\'(* , 키)이란 말이 첨가되어 있다. 하나님이 이토록 진노하시며 그들을 버릴 수밖에 없는 까닭을 설명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들 모두가 부패했다. \'설만하다\'(* , 하네프)는 \'모독하다\', \'불경건하다\'는 뜻이니,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높이는 신앙심 대신 오히려 하나님을 비웃고 모독하는 불경건만이 가득함을 나타낸다(시 14:3).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 \'고아와 과부\'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대상이었다(1:17;출 22:22;신 10:18;14:29). 그러나 그들에게까지도 주께서 평상시 베푸시던 긍휼이 거절될 것이다. 이는 주의 진노하심과 크기가 어느 정도이며 또한 백성들의 죄악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준다. 전자는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후자는 이어지는 진술에서 명확히 표현되고 있다.
9:18 대저 악행은 불 태우는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불의가 불처럼 타올라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사르고 무성한 숲을 활활 태우니 연기가 휘말려 올라가는구나. 
대저 악행은 불태우는 것 같으니 - 죄악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 선지자는 그것을 \'불\'에 비유한다. 이 불은 인간의 내면에서 끝없이 타오른다(창 4:7 참조). 물을 부어 꺼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없으면 아무도 이 불을 끄지 못한다. 따라서 성경은 끝없이 타오르는 악행의 불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결과라고 말한다(롬1:28-32).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같은 것이라 - 선지자의 묘사는 거세게 타오르는 산불을 연상시킨다. 죄악의 불길은 먼저 가시나무를 삼키고 - 질려와 형극은 보통 사악한 사람의 상징어로 자주 쓰인다(삼하 23:6;미 7:4) - 이어서 큰 삼림에까지 옮겨 붙어 - 혹자는 이를 죄악의 집단에 참여한 온 백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Delitzsch, Vitringa) - 대 초원 위에 지천으로 타올라 마침내 온 하늘을 연기로 가득 채운다. 이러한 일련의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선지자는 지도자들의 타락과 부패가 어떻게 온 나라를 파멸로 이끄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16절).
9:19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만군의 야훼께서 분노하시어 땅이 타오르니 백성은 불길 속에서 사라지는구나. 골육 형제마저 아껴주는 사람 없어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 죄악의 불길 위에 또 하나의 불길 곧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의 불길이 오버랩 된다. 이 둘은 다르지 않다. 대초원을 태웠던 죄악의 불길 그 자체가 이미 여호와의 진노의 불길임을 알게 된다. 화마(火魔)가 핥고 지나간 그 땅은 검게 그을은 보기 흉한 모습으로 변한다. \'소화된다\'(* , 네으탐)는 말은 \'빨갛게 달아 오르다\', \'타서 검게 되다\'는 뜻이다(Luther, Calvin, Virtringa, Lowth).
9:20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모두들 제 이웃의 살을 뜯어먹네. 오른쪽에서 뜯어먹어도 성에 차지 아니하고 왼쪽에서 뜯어먹어도 양에 차지 않아
우편으로 움킬지라도...먹을 것이며 - 무정부 상태하의 내란, 즉 동족간의 무자비 한 살육은 자기 살을 뜯어먹는 굶주림에 비교되고 있다. 그들은 탐욕에 지배되고 있으며 아무것도 그들을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이런 자기 파멸적인 탐욕은 선지자의 다음 말, 곧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는 표현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팔\'(* , 제로아)은 비유적으로 \'힘\', \'원조\', \'도움\'을 뜻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상부상조해야 할 이웃을 가리킨다(Gesenius, Rosenmuller, Maurer).
9:21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므나쎄와 에브라임이 서로 뜯어먹는구나. 그러고도 시원치 않아 함께 유다를 덮치니 그의 분노가 어찌 사라지며 그 드신 손이 어찌 내려지겠는가!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 서로 보호하고 위해 주어야 할 이웃(혹은 지체)이 오히려 서로 물고 뜯는 원수로 변할 때 거기에는 \'완전한 파멸\' 밖에 남지 않는다(갈 5:15). 범죄한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간 길이 바로 그 길이었다. 북왕국 안에서 두 형제 지파,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서로를 질시하고 다툼으로 일관하더니(삼상 10:27;삼하 20:1;왕상 12:16;15:27;16:21;왕하 9:14 참조),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남유다를 공격하여 동족 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빚기에 이르른 것이다(왕하 15:13-16,2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