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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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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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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찌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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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 대저 악행은 불 태우는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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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 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 본문은 히브리어 원문에는 8:23로 매 겨져 있다. 비록 \'흑암\', \'고통\' 등의 어두운 단어들이 연속되고 있지만 내용은 정반대이다. 흑암이 걷히고 빛이 다시 비췬다. 이 모든 변화는 한 아이의 출생과 더불어 비롯된다(6,7절). 흠정역은 문장 첫머리에 나오는 불변사 \'키\'(* )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번역함으로써(nevertheless) 이러한 변화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본절에 언급된 지역들은 사사 시대 이래로 주변 열국들의 침입으로 항상 시달림을 받아왔으며, 이방 민족들과 접경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하여 팔레스틴의 다른 지역들보다도 이방적 색채가 더 짙었다. 게다가 최근에 자행된 앗수르 군대의 침략(B.C. 733,732년)으로 이 근방은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하였다. 이런 정치적, 문화적, 인종적 요인들 때문에 갈릴리 지역은 같은 유대인들로부터도 멸시를 받아왔던 것이다(요 1:46;7:41,52;행 2:7). 그러나 새 날이 밝을 때, 흑암이 가장 깊은 이 땅에 빛이 가장 먼저 비췰 것이다.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올 것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빛이 비취도다 - \'흑암에 행하던 백성\'은 앞에 언급된 갈릴리 지역에 거주하는 백성들을 가리키며,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와 평행을 이룬다. \'흑암\'은 슬픔 혹은 재난으로 바꿔 말할 수 있으며, 더 넓게는 죄와 그로 말미암는 총체적인 불행을 비유한다고 할 수 있다(시 107:10,11). \'큰 빛\'은 세상의 빛이요(요 8:12) 참된 빛이며(요 1:9) 의의 태양이신(말 4:2)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한다. 마태에 의하면, 이 빛은 맨 먼저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의 해변 마을에서 부터 비취기 시작했다(마 4:13). 그가 처음 이적을 베푸신 곳도 갈릴리였으며(요2:11), 맨처음 가르치신 곳도 그가 자라나신 갈릴리의 나사렛 회당이었다(눅4:14-17). 천국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곳도 바로 갈릴리 해변가였다(마 4:17;막1:14,15). 이로써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본다는 선지자의 예언은 신약에 이르러 완전하게 응하였다. 9: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당신께서 주시는 무한한 기쁨, 넘치는 즐거움이 곡식을 거둘 때의 즐거움 같고, 전리품을 나눌 때의 기쁨 같아 그들이 당신 앞에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 내용은 주께 대한 찬양과 감사로 바뀐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베풀어 주신 일 가운데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는, 나라를 창성케 해주신 것이다. \'창성케 함\'은 백성의 수를 많게 함이다. 둘째는, 즐거움을 더하게 해주신 것이다. 백성의 수의 증가와 즐거움의 증가는 모두 메시야 시대를 특징짓는 주도적인 현상들로 간주된다(26:15;66:8;슥14:10,11). 9: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당신께서는 그들이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를 부러뜨리시고 혹사하는 자의 채찍을 꺾으실 것입니다. 미디안을 쳐부수시던 날처럼, 꺾으실 것입니다. 멍에와...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였음이니이다 - 본문의 \'멍에\'와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는 모두 노예를 다룰 때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이 가운데 특히 \'멍에\'(* , 수발로)와 \'그 압제자\'(* , 하노게스 보)는 애굽에서의 속박을 연상시킨다(출 2:11). 성경적 표상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을 속박하는 어두움의 세력을 대표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해방 사건은 애굽에서의 구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가 \'미디안의 날\'을 말하는 것은, 지극히 적은 수효로 많은 대적들을 물리친 그 사건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이 가장 분명하게 현시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삿 7:2, Oswalt, Calvin). 9: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마구 짓밟던 군화, 피투성이 된 군복은 불에 타 사라질 것입니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살라지리니 - 구원은 압박받는 백성에게는 해방으로 경험되지만, 압제하는 군대에게는 패망 이외 다름 아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사상은 기드온의 승리(Junius)나 앗수르의 전멸(Delitzsch) 보다 더 크다. 전쟁을 위한 무장들인 \'갑옷\'(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을 \'군화\'로 번역함)과 \'군복\'이 불에 태워지리라는 표현은 적들의 패망이라는 일차적인 의미 외에 더 나아가 전쟁 자체의 소멸이라는 종말론적인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절에서 평강의 왕이신 메시야가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 \'정사\'로 번역된 \'미스라\'(* )는 \'지도자가 되다\'는 뜻의 \'사라\'(* )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통치\'를 의미한다. \'정사를 어깨에 멘다\'는 말은 권위의 상징으로 주어진 금고리나 열쇠를 어깨에 걸친 데서 연유한 듯하다(22:22 참조). 기묘자라, 모사라 - \'기묘\'(wonder)와 \'모사\'(counsellor)를 구분하여 해석할 수도 있으나(Gesenius, Rosenmuller, Delitzsch), \'기묘한 모사\'(Wonderful counsellor) 라는 해석도 가능하다(28:29, Gray, Oswalt). 그는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계획을 세우실 것이며 그일을 이루실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 신적인 계획의 수립과 성취라는 측면에서 첫째 이름과 둘째 이름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엘 깁보르\'(* )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와 부를 하나님의 이름이며 (10:21), 구약에서 자주 사용되는 하나님의 이름이다(신 10:17;느 9:32;시 24:8;렘32:18). 따라서 이 아이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성(神性)을 소유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영존(永存)하시는 아버지라 - \'영존함\'은 신성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점은 \'아버지\'에 놓인다. 히브리식 사고에서 아버지는 아들과 상관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부양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후원자, 보호자 등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22:21;욥29:16;시 103:13). 따라서 \'아비 아드\'(* )는 그의 백성들, 더 넓게는 피조물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평강의 왕이라 - 마지막으로 그는 백성들을 돌보고 책임지는 자로서 \'왕\'이라 불리운다.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평화의 나라이며, 그의 다스림 역시 평화로울 것이다(시72:3,7;렘 33:6;미 5:4;슥 9:10 등).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다윗의 왕좌에 앉아 주권을 행사하여 그 국권을 강대하게 하고 끝없는 평화를 이루며 그 나라를 법과 정의 위에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만군의 야훼께서 정열을 쏟으시어 이제부터 영원까지 이루실 일이옵니다.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와 그의 자손이 영원토록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고 확약하셨다(삼하 7:13,16). 사실 다윗 왕국은 구약 역사에서 백성들이 동경하던 하나님 왕국의 실체임과 동시에 장차 메시야에 의해 건설될 항구적인 평화의 왕국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O.Robertson).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 그 나라의 영속성은 다윗 언약에 기초하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내부 구조는 \'공평\'(* , 미쉬파트)과 \'정의\'(* , 체다카)이다. \'공평\'과 \'정의\'야말로 메시야 왕국을 지상의 나라와 구별짓는 결정적인 표지인 셈이다. \'보존하다\'(* , 사아드)는 \'떠받치다\', \'유지하다\'는 뜻이다. 9:8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주께서 야곱을 책망하시니 그 말씀이 이스라엘에 떨어지네.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 본문에서 \'말씀\'(* , 다바르)은 보냄을 받은 자는 사자와 동일시되고 있다(시 107:20;147:15,18). 이 말씀은 여호와로부터 보내졌기 때문에 일점 일획의 어김도 없이 성취되기 전까지는 보내신 자에게로 헛되이 돌아가지 않는다(55:11). 9:9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에브라임과 사마리아의 주민, 그 모든 백성이 이것을 알고도 교만하여 부푼 마음으로 말하는구나.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 것이어늘 -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5:3)과 대조되는 표현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그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미루어 충분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서 겸손하기보다는 교만으로 일관한다. 9:10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흙벽돌이 무너지면 다듬은 돌로 쌓고 돌무화과나무가 찍혀 넘어지면 송백을 심으리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대신하리라 하도다 - 자만으로 가득 찬 에브라임의 말이다. 벽돌과 뽕나무는 둘 다 값싼 건축 자재들인데, 빈약한 건물이나 서민들의 집을 지을 때 주로 사용되었다. 이에 반해서 다듬은 돌과 백향목은 고급품들로서 권세자들의 거처나 호화로운 건물을 지을 때 주로 이용되었다(왕상 5:6;대하 1:15;2:3;스 3:7;암 5:11).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들이 외국 군대의 침공을 받아 손상을 입을지라도 자신들의 힘으로 이전보다 더 강성해진다고 호언하고 있는 것이다. 9:11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 에브라임은 그들의 교만의 대가를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르신의 대적\'(* , 차레 레친)은 언어 유희를 이용한 수법으로 앗수르인들을 가리킨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르신과 동맹을 체결했었다. 그러나 르신이 죽고 앗수르에 의해 수리아(아람)가 정복된 이후(왕하 16:9) 에브라임은 앗수르의 종속국으로 전락한 아람에 의해 침략을 당하게 된다(12절-\'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9:12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찌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동에서는 시리아, 서에서는 불레셋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마구 집어삼키게 하시네. 그래도 그의 분노는 가시지 않아 그 드신 손을 아직도 내리시지 아니하시네. 9:13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이 백성은 매 드신 이에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만군의 야훼를 찾지도 않는구나. 이 백성이...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 \'돌아오다\'(* , 슈브)는 완전한 전환을 뜻하며, \'찾다\'(* , 다라쉬)는 \'문제를 풀기 위해 물어 옴, 혹은 전심으로 구함\'을 뜻한다(출 18:15;신 4:29). 그러나 이들 동사 위에 부정사(不定詞) \'로\'(* )가 놓인 데서 알 수 있듯이, 그 백성은 반역적인 태도를 고집하였다. 9:14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야훼께서 괘씸하게 여기시어 이스라엘의 머리와 꼬리를 자르시고 종려나무와 갈대를 하루아침에 찍어내시니 종려가지와 갈대 - \'종려가지\'(* , 키파)는 그 아름다움과 유익함으로 인해 대단히 고귀한 식물로 평가되었으며, 후일 로마 동전에 유대의 상징으로 새겨지기도 하였다(시 92:12;아 7:7,8, Alexander). 이와 대조적인 이미지로 사용된 \'갈대\'(* , 아그몬)는 \'습지\', \'늪\', 혹은 \'시궁창\'(* , 아감)에서 자라는 식물(풀)로, 대단히 천하게 여겨졌다. 이 둘은 아마도 고귀한 자와 천한 자를 암시하는 듯하다 (19:15). 9:15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그 머리란 장로와 잘난 체하는 자들이요 그 꼬리란 거짓을 가르치는 예언자라.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 이사야가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들을 가리켜 \'꼬리\'라고 부르는 까닭은 - \'꼬리\'(* , 자나브)에는 본래 사악하고 가증 스러운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들이 마치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권세있는 자들의 편에 빌붙어 부끄러운 말과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E.J.Young). 9: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이 백성의 지도자가 잘못 인도하니 그 인도를 받는 자들이 망하는구나.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하니 - 3:12의 탄핵과 유사하다. 지도자들의 범죄는 특히 무겁게 취급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잘못은 자신에게 한정되지 않고 그를 바라보고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9:17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주께서는 그 정예 부대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들은 모두 불경하여 악을 행하는 자요, 입으로는 야비한 소리만 뱉으니, 그의 분노가 어찌 사라지며 그 드신 손이 어찌 내려지겠는가! 이 백성이 각기 설만(褻慢)하며 - 원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이는\'(* , 키)이란 말이 첨가되어 있다. 하나님이 이토록 진노하시며 그들을 버릴 수밖에 없는 까닭을 설명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들 모두가 부패했다. \'설만하다\'(* , 하네프)는 \'모독하다\', \'불경건하다\'는 뜻이니,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높이는 신앙심 대신 오히려 하나님을 비웃고 모독하는 불경건만이 가득함을 나타낸다(시 14:3).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 \'고아와 과부\'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대상이었다(1:17;출 22:22;신 10:18;14:29). 그러나 그들에게까지도 주께서 평상시 베푸시던 긍휼이 거절될 것이다. 이는 주의 진노하심과 크기가 어느 정도이며 또한 백성들의 죄악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준다. 전자는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후자는 이어지는 진술에서 명확히 표현되고 있다. 9:18 대저 악행은 불 태우는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불의가 불처럼 타올라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사르고 무성한 숲을 활활 태우니 연기가 휘말려 올라가는구나. 대저 악행은 불태우는 것 같으니 - 죄악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 선지자는 그것을 \'불\'에 비유한다. 이 불은 인간의 내면에서 끝없이 타오른다(창 4:7 참조). 물을 부어 꺼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없으면 아무도 이 불을 끄지 못한다. 따라서 성경은 끝없이 타오르는 악행의 불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결과라고 말한다(롬1:28-32).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같은 것이라 - 선지자의 묘사는 거세게 타오르는 산불을 연상시킨다. 죄악의 불길은 먼저 가시나무를 삼키고 - 질려와 형극은 보통 사악한 사람의 상징어로 자주 쓰인다(삼하 23:6;미 7:4) - 이어서 큰 삼림에까지 옮겨 붙어 - 혹자는 이를 죄악의 집단에 참여한 온 백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Delitzsch, Vitringa) - 대 초원 위에 지천으로 타올라 마침내 온 하늘을 연기로 가득 채운다. 이러한 일련의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선지자는 지도자들의 타락과 부패가 어떻게 온 나라를 파멸로 이끄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16절). 9:19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만군의 야훼께서 분노하시어 땅이 타오르니 백성은 불길 속에서 사라지는구나. 골육 형제마저 아껴주는 사람 없어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 죄악의 불길 위에 또 하나의 불길 곧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의 불길이 오버랩 된다. 이 둘은 다르지 않다. 대초원을 태웠던 죄악의 불길 그 자체가 이미 여호와의 진노의 불길임을 알게 된다. 화마(火魔)가 핥고 지나간 그 땅은 검게 그을은 보기 흉한 모습으로 변한다. \'소화된다\'(* , 네으탐)는 말은 \'빨갛게 달아 오르다\', \'타서 검게 되다\'는 뜻이다(Luther, Calvin, Virtringa, Lowth). 9:20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모두들 제 이웃의 살을 뜯어먹네. 오른쪽에서 뜯어먹어도 성에 차지 아니하고 왼쪽에서 뜯어먹어도 양에 차지 않아 우편으로 움킬지라도...먹을 것이며 - 무정부 상태하의 내란, 즉 동족간의 무자비 한 살육은 자기 살을 뜯어먹는 굶주림에 비교되고 있다. 그들은 탐욕에 지배되고 있으며 아무것도 그들을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이런 자기 파멸적인 탐욕은 선지자의 다음 말, 곧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는 표현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팔\'(* , 제로아)은 비유적으로 \'힘\', \'원조\', \'도움\'을 뜻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상부상조해야 할 이웃을 가리킨다(Gesenius, Rosenmuller, Maurer). 9:21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므나쎄와 에브라임이 서로 뜯어먹는구나. 그러고도 시원치 않아 함께 유다를 덮치니 그의 분노가 어찌 사라지며 그 드신 손이 어찌 내려지겠는가!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 서로 보호하고 위해 주어야 할 이웃(혹은 지체)이 오히려 서로 물고 뜯는 원수로 변할 때 거기에는 \'완전한 파멸\' 밖에 남지 않는다(갈 5:15). 범죄한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간 길이 바로 그 길이었다. 북왕국 안에서 두 형제 지파,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서로를 질시하고 다툼으로 일관하더니(삼상 10:27;삼하 20:1;왕상 12:16;15:27;16:21;왕하 9:14 참조),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남유다를 공격하여 동족 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빚기에 이르른 것이다(왕하 15:13-16,2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