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진노하시는 하나님)
1장 -북 이스라엘의 멸망 후 유다만 남은 상황에서 그들의 멸망과 회복, 그리고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본서는, 그 내용에 있어서 예레미야서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그 첫머리를 여는 본문은 바벨론의 제2차 유다 침공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에스겔이 포로된 지 5년째(BC.593년)에 그발 강가에서 본 환상의 내용이다. 에스겔이 본 난해한 환상은 온 우주에 편만해 계시면서 천지 만물을 주장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환상을 바벨론의 포로민인 에스겔에게 보여 주심으로 하나님이 아직도 자신의 택한 백성과 함께하심을 깨닫도록 하셨다.
1장 에스겔서에는 바벨론 포로 사건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드러나 있다. 본장은 소명을 받기 전 에스겔에게 보여진 놀라운 환상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본장의 내용은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소명 받은 자로서 자신을 소개한 전반부(1-3절), 네 생물의 이상(4-14절), 네 바퀴의 이상(15-21절), 궁창의 이상(22-25절),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26-28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냄으로써 이후에 선포되는 계시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순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2장 -본장은 하나님이 에스겔을 부르셔서 사명을 부여하신 데 대한 기록이다.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을 목도한 에스겔은 하나님의 소명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런 에스겔에게 우선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으셨다. 그런 후 안팎으로 재앙의 말이 기록된 책을 에스겔에게 주시면서 받아먹으라고 명하셨다. 이는 곧 에스겔이 1차적으로 전해야 할 말씀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라는 사실과 패역한 유다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러 준다.
2장에는 환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체험한 에스겔이 선지자로서의 소명을 부여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본장에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인자\'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용어는 구약 성경에서 다른 예언자들에게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고, 오직 다니엘과 에스겔에게만 사용되었다. 본서에서의 \'인자\'의 의미는 에스겔이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자로 부름받았음을 알려 주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강조하고 더욱 겸손하게 소명을 감당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에스겔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언급하는 전반부(1-3절), 하나님의 말씀 전파의 위임을 기술하는 중반부(4-7절), 에스겔 선지자가 전해야 할 말씀의 내용을 전달해 주는 후반부(8-10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3장 -본장은 하나님의 소명에 응한 에스겔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두루마리 책(2;8-10)을 받아먹은 사실은 말씀을 전하는 자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잠시 벙어리가 되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명할 때에만 입을 열도록 하신 것은 그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만을 가감 없이 선포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에 덧붙여 하나님은 에스겔을 파수꾼에 비유하면서 선지자로서의 중차대(重且大)한 사명과 책임을 일깨워 주셨다. 이와 관련하여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과거 선지자들이 받아 사명과 책임이 오늘날에는 복음의 진리를 믿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점이다(딤후4;2).
3장에는 에스겔이 강퍅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말씀을 전하도록 파송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본장은 에스겔이 두루마리를 먹는 모습을 드러내는 부분(1-3절), 에스겔이 말씀을 전할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설명하는 부분(4-11절), 에스겔이 성령에 이끌리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부분(12-15절), 선지자로서 에스겔의 임무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16-21절),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잠시 동안의 침묵을 명하시는 부분(22-27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4장 -4-24장은 패역한 유다 백성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다. 그 중 본문에는 유다에 임할 심판을 예고하는 에스겔의 세 가지 상징적 행동이 기록되어 있다. 첫째, 박석(薄石)을 통한 상징적 행동은 예루살렘의 포위와 함락을 예고하는 것이다(왕하25장). 둘째, 일정 기간 동안 좌우로 돌아누운 것은 남북 이스라엘 전 민족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는 날수를 나타내는 것이다. 셋째, 부족한 물과 부정한 떡은 예루살렘이 포위당할 때 백성들이 당할 고통과 비참한 상태를 예고하는 것이다.
4장은 예루살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본장은 에스겔이 본격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도입부에 해당되며, 선지자는 다가올 심판을 더욱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박석 위에 그린 예루살렘 성에 포위 공격을 가하는 행동(1-3절), 이스라엘의 포로 됨을 알리기 위해 한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행동(4-8절), 예루살렘의 기근을 나타내기 위해 음식을 조금씩 먹는 행동(9-17절)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시각적 표현을 통해 선지자는 백성들의 무관심과 냉담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환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지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된다. 에스겔은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를 활용하였고, 음식의 절제와 좌우편으로 눕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였다. 또한 때때로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거나 시를 낭송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쓸 수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함을 나타내 주고 있다.
5장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전반부는 에스겔이 행한 네 번째 상징적 행동을 보여 준다. 그가 머리털과 수염을 갖고서 행해 보인 것은 예루살렘의 완전한 파멸과 백성들의 흩어짐에 대한 예고였다. 이어서 후반부는 유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 침상이 어떠할지를 밝히는 부분이다. 즉, 하나님의 언약을 준수해야 할 언약 백성이 도리어 하나님을 경홀히 여겨 그분의 법을 어기고 행악을 일삼았기 때문에 이방인들의 조롱거리고 전략할 지경에 처한 것이다.
5장은 에스겔의 네번째 행위 예언으로서 유다 민족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완전히 멸망될 것을 상징한다. 특별히 여기에 사용된 불과 칼과 바람에 대한 언급은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준엄하게 시행됨을 보여 준 것이다. 본장은 에스겔의 드라마틱한 시각 행위가 드러나 있는데, 이미 전장에서도 세 가지 연극적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효과적으로 제시한 선지자는 여기서도 상징적인 행동으로 유다의 패망을 알려 준다. 즉 머리털을 깎는 행위를 통해 유다의 포로 됨을, 머리털을 불사르는 행위를 통해 영광스런 성읍이 기근과 질병으로 훼파됨을, 칼로 치는 행위를 통해 시드기야 왕과 신하들이 도망하다 붙잡혀 죽게 됨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예루살렘 심판에 대한 에스겔의 비유적인 행동을 묘사하는 전반부(1-4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패망케 하시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중반부(5-12절), 예루살렘이 패망케 된 이후 당하게 되는 비극적인 현상을 알려 주는 후반부(13-17절)로 구성되어 있다.
6장 -앞장에 이어 여기서는 유다의 멸망 원인이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의 죄이다. 사실 우상 숭배란 인간이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을 더 의지하고 위하는 인본주의적 자세의 발로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정립될 수가 없다(마6;24). 때문에 하나님은 징계를 내려서라도 그들로 하여금 잘못을 깨닫고 돌아서게 하려 하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유다의 멸망 중에도 하나님이 남은 자들을 보호하사 결국에는 다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신 점에서도 분명히 드려나고 있다.
6장에서 에스겔은 평이한 어투로 심판의 원인이 된 우상 숭배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유다는 전지역에 산당을 짓고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며 분향했다. 그들은 아세라, 몰렉, 일월성신 등을 섬기며 점쟁이를 우대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쟁을 통하여 유다의 죄악을 심판하고 정화하시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의 파멸을 선언하고 있는 전반부(1-7절),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회개할 것임을 드러내고 있는 중반부(8-10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재앙을 슬퍼하라고 명하시는 후반부(11-14절) 등으로 구분된다. 특별히 본장은 이스라엘의 산악 지대 및 땅에 대한 심판이 예언적으로 선포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중심 지역, 즉 예루살렘에서 바깥 외곽 지역으로 점차 확산되어 가는 경향을 암시해 주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역에 있는 산당과 우상을 파괴하실 것임을 알 수 있다.
7장 -본장에는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위하던 유다 백성이 당하게 될 멸망의 참상이 묘사되어 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으며 결단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네 차례나 강조된 까닭은 당시 유다 백성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낙관주의 때문이다. 즉, 그들은 에스겔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결코 예루살렘 성전의 파멸을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은 긍휼히 여기실지라도 죄는 간과하지 않는 분이시다. 자신을 돌아보아 악은 그 모양이라도 멀리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살전5;22).
7장에는 임박한 종말의 원인과 심판의 형태, 그리고 심판의 결과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본장은 심판의 임박성과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반복적인 단어나 어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끝\'이라는 단어를 6번, \'오고 있다\'라는 단어를 7번, \'이제\'라는 표현을 2번씩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심판의 임박성과 포괄성을 기술하고 있는 전반부(1-13절), 심판의 결과에 대해 묘사하는 후반부(14-27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인내하지만,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자를 심판하시는 분임이 다시 한번 나타난다.
8장 -8-11장은 에스겔이 첫 번째 환상(1장)에 이어 두 번째로 본 환상들로서, 유다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게 되었음을 계시해 주는 것들이다. 그 중 본문은 에스겔이 환상 중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목격한 유다 동족의 타락상이다. 성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로서 그분의 백성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할 자리이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도리어 그곳에서 가증한 우상들을 숭배함으로써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8장은 성전에서 우상 숭배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건립된 예루살렘 성전에서 투기의 우상, 은밀한 장소에 있는 우상, 담무스, 태양신 등을 경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의 사악성과 심판의 필연성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러한 본장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이상(1-4절), 우상들로 더럽혀진 성전(5-18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악한 행동으로 사회를 더럽히고 심지어 가증한 우상을 성전에 들여와서 성전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를 저질렀다.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고, 울부짖으며 기도할지라도 듣지 않으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이와 같이 본장에서 우리는 성전에 거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앙을 보증해 주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형식적인 예배에 함몰되어 위선적인 허위의식으로 가득 차게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9장 -앞에서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우상 숭배를 자행하는 환상을 본 에스겔은, 유다백성이 그 같은 죄악으로 인해 멸망당하게 되었음을 다시금 환상 중에 목격하였다. 본문은 먼저 하나님이 심판을 집행하는 자들을 시켜 범죄한 자들을 살육하라고 명하셨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을 단행하기에 앞서 자신의 신실한 백성들에게는 구별된 표를 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죄만큼은 결코 용납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선 에스겔의 중보기도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의 백성들을 묵과하지 않으셨다.
9장은 성전에서의 우상 숭배 행위를 신랄하게 고발하는 전장에 이어서 구체적인 심판의 실행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서 잔혹한 살육이 감행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형 집행자들을 부르시는 부분(1-2절), 형 집행에 대한 명령과 수행을 묘사하는 부분(3-7절), 에스겔 선지자의 탄원과 하나님의 응답이 드러나는 부분(8-10절), 중보 천사가 복명하는 부분(11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호와의 살육이 제일 먼저 이루어지는 장소는 성전이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곳으로서 참된 회개가 일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한 반역 행위가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악이 절정에 달한 성전부터 처벌하심으로써 자신의 심판 의도를 강력히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다가올 심판을 기억하며 내적으로는 성령 충만하고, 외적으로는 경건을 유지해야 한다.
10장 -앞장에 이어 계속해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는 환상이다. 에스겔은 환상 중에 먼저 예루살렘에 숯불 재앙이 임하는 것을 보았다. 이는 곧 거룩한 도성이어야 할 예루살렘이 더 이상 거룩하지 않으므로 그 성읍이 불타 멸망할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에스겔은 1장에서 환상 중에 본 바퀴달린 네 짐승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임재하시지 않을 것을 뜻한다. 이상의 사실에서 하나님은 죄악이 관영한 곳에 함께 계실 수 없으며 죄악은 그 모양이라도 미워하심을 알 수 있다.
10장은 전장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루살렘 멸망의 명백한 징조를 환상으로 보여 준다. 본장에서 행해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는 하나의 상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4장에서 예루살렘 포위 장면은 비유적인 것일지라도 실제로 바벨론 군대에 의해 일어날 일에 대한 예시이며, 5장의 온역과 기근과 칼에 의한 심판도 비유적인 행동을 통해 묘사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바벨론 군대에 의해 성취되었다. 그러나 본장에서 나타난 바 하나님께서 불을 흩게 하신 행위는 실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총체적으로 상징하는 표현이다. 이러한 본장은 예루살렘 성읍이 불로 심판받는 장면을 묘사한 전반부(1-8절). 네 그룹의 모습과 이동 원칙에 대해 기술하는 중반부(9-17절),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는 광경을 언급하는 후반부(18-2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1장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잠시 떠나셨다고 해서 이스라엘과의 언약이 완전 파기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패역한 유다 백성을 심판하신 후에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남은 자들을 반드시 회복시키실 것이다. 본장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 중 전반부는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도 도리어 앞장서서 행악을 일삼은 유다 방백들에 대한 심판 선포이다. 그리고 후반부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새로운 심령과 헌신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겠다는 구원의 약속이다.
11장에는 예루살렘에 남아서 악을 행하고 있는 교만한 자들에 대한 심판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절망 중에 있는 자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실 예루살렘에 남아서 재앙과 사로잡힘을 면한 자들은 포로로 끌려 간 자들과 연대 책임을 느끼며 애통해 하기보다는 포로 된 자들을 멸시하며 업신여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지자는 정반대의 시각을 공포함으로써 새로운 현실 인식과 역사 이해에 도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범죄한 이스라엘 방백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는 전반부(1-13절), 바벨론 포로들의 회복과 구원들 약속하는 중반부(14-21절),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장면을 묘사하는 후반부(22-2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에 대하여 소망을 선포한다. 비록 이스라엘 족속들이 성전을 떠나 이국에서 방황할지라도 하나님은 늘 함께하시며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도록 역사하실 것이다.
12장 -12-24장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마지막으로 예고한다. 그중 본장은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백서들이 이방의 포로가 될 것을 경고하는 에스겔의 두 가지 상징적 행동과 그릇된 속담에 대한 반박이다. 거듭된 심판 예고에도 불구하고 인본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던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였다. 그러나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들이 그분의 진노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음을 엄중히 선포하였다.
12장 유다 백성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거짓된 낙관주의에 함몰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본장에서 일련의 징조와 메시지를 통해 예루살렘의 멸망을 강조하며, 그릇된 희망을 포기하고 현실을 수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구를 옮김으로써 이스라엘 족속의 패주를 예언했으며, 먹고 마시고 떠는 행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할 기근과 궁핍을 미리 알려 주는 선지자의 두 가지 상징적 행위를 기술한 부분과(1-20절) 심판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두 가지 메시지를 소개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21-28절).
13장 -유다 백성들이 패역을 일삼고 잘못된 낙관주의에 빠졌던 이유 중 하나는 거짓 선지자들의 악영향 때문이었다. 즉,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과 영합하여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바벨론 포로들이 속히 귀환하게 될 것이라고 거짓 예언을 하였다. 이런 거짓 예언은 절망적 상태에 처해 있던 포로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의 그 같은 행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경죄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하나님은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에게 멸망을 선포하신 것이다.
13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실상을 폭로하고 그들에게 신랄한 저주와 비난을 선포하고 있음이 기록되어 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들에게 예언의 영이 전달되었다고 뽐내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된 선지자들의 예언을 멸시하였다. 즉 예레미야가 선포한 70년 포로 생활의 기간을 무시하고 백성들의 욕구에 영합하여 조속한 귀국과 예루살렘의 번영을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 공동체를 오염시켜 거짓된 희망을 갖게 만들었으며,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참된 회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본장은 거짓 선지자들의 무책임한 언동을 비난하는 전반부(1-16절), 거짓 여선지자들에 대한 저주를 언급하고 있는 후반부(17-23절)로 구성되어 있다.
14장 -패역한 유다 방백들(11장)과 거짓 예언자들(13장)에 이어 패역한 유다 장로들과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유다 장로들의 가장 큰 죄악은 하나님을 헌신적으로 섬겨야 할 그들이 도리어 앞장서서 우상을 숭배한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위로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극심하게 타락하였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하신 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맹목적으로 진노를 발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4장 에스겔은 본장에서 우상을 섬기는 장로들에 대한 책임과 아울러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회개의 권면을 기록하면서 심판의 불가피성과 남은 자의 구원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본장은 이전과 같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포가 아니라 장로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본장은 우상을 숭배하는 장로들의 거짓된 신앙을 정죄하는 전반부(1-11절), 변경될 수 없는 심판의 절대성을 선포하는 중반부(12-20절), 남은 자에 대한 구원을 약속하는 후반부(21-23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저자는 외적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척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우상을 더욱 믿는 장로들의 가증스러움을 책망하고 있다.
15장 -15~19장에는 유다의 멸망이 필연적인 것임을 시사하는 일련의 비유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예루살렘이 결단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한 유다 백성의 잘못된 낙관주의를 여지없이 질책하는 내용이다. 본장에는 먼저 포도나무 비유가 나와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해 아무 쓸모가 없는 포도나무는 결국 불타는 아궁이에 던져진다. 이처럼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행악만을 일삼는 유다 백성은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구원을 얻었다고 자부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열매를 맺지 않는 포도나무의 비유)
15장 에스겔은 본장에서부터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의 가능성이 없음을 보여 주는 일련의 비유들을 기술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첫 번째 비유에 해당하는 본장은 쓸모없는 포도나무의 비유로서 이스라엘의 우월 의식을 불식시키고 전적으로 무익한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쓸모없는 포도나무가 버려지는 것의 당연함을 기록한 전반부(1-5절), 예루살렘이 포도나무처럼 버려진 것을 예언한 후반부(6-8절)로 구성되어 있다.
16장 -포도나무 비유에 이은 두 번째 음부 비유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은 그분의 영적 신부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푸시며 돌보아 주셨다. 그러나 음욕에 불탄 신부가 신랑을 버리고 외간 남자와 놀아나듯이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영적 간음을 범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간과하지 않고 심판하겠노라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잃지 않는 분이 곧 하나님이시다. 본문 후반부에는 하나님이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셔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만큼은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 담겨 있다.
16장은 하나님과 선민들의 관계를 혼인으로 비유하면서 신랑 되신 하나님이 기대하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처신한 타락한 신부로서의 이스라엘의 배반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은 하나님의 자비(1-14절), 배은망덕한 이스라엘(15-34절), 심판받을 이스라엘(35-59절), 영원한 언약에 대한 약속(60-63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성경의 제자들은 혼인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연합에 대한 비유로 자주 사용하였다. 이 비유에서 우선 강조된 것은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친밀한 교제로서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신뢰하는 인격적인 관계이다.
17장 -본장에는 두 가지 비유가 수록되어 있다. 첫째, 두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이다. 이 비유의 역사적 배경은 바벨론이 시드기야를 유다의 왕로 세워 유다를 대리 통치하려 하였으나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어 바벨론에 대항하려 한 사건이다(왕하24장). 하나님은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유다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고 경고하셨다. (렘27;11). 그러나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경고를 거스르므로 멸망을 자초한 것이다. 둘째, 백향목 비유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은 백향목이 새로운 순을 내고 무성하여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곧 1차적으로 유다의 회복,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야 왕국의 도래에 관한 예언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들을 권념하셔서 결국 자신의 구속사적 뜻을 성취하시고야말 것임을 분명히 드러내 준다(롬11;11-12).
17장은 두 독수리 비유를 통하여 시드기야가 하나님 대신에 외세를 의지한 것이 멸망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패망을 자초한 이스라엘의 말기 상황을 두 독수리 비유로 묘사하는 전반부(1-10절)와 비유에 대한 설명으로 시드기야가 바벨론과 맺은 언약을 배반하고 애굽에게 도움을 청했음을 정죄하는 중반부(11-21절), 그리고 전반부와 동일한 비유를 사용하여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궁극적으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전하는 후반부(22-24절)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이 본장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열방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서도 한가닥 회복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18장 -본장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부당한 것이라고 불평한 자들의 잘못을 논박한 내용이다. 성경은 죄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도 강조하고 있지만 개인적 책임 역시 중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유다 백성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이 자신들의 죄가 아닌 조상들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불평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시릴 수는 없다는 점을 들어 저들의 무지와 완악함을 경책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아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단속하는 것만이 영원토록 살길임을 깨닫게 해준다.
1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 각 개인에 대한 책임의 막중함을 강조하고 아울러 회개를 촉구한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 포로 생활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각 개인의 죄로 인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응분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은 죄에 대한 책임은 당사자가 지지만, 아들을 구원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음을 밝히는 부분(1-13절), 아버지가 악을 행하더라도 아들이 의를 행하면 살 수 있음을 묘사하는 부분(14-20절) 회개하면 죄에 대한 책임이 없어지나 현재 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면 과거의 의로운 생활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밝히는 부분(21-29절), 회개를 촉구하는 부분(30-32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19장 -17장의 비유에 이은 사자와 포도나무비유이다. 이중 사자 비유는 유다의 두 왕,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이 하나님의 율례를 따라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이방의 군왕들처럼 압제와 포악을 자행하다가 결국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을 경고한 내용이다. 그리고 포도나무 비유는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역시 돌이켜 회개할 줄 모르고 행악하다가 결국 유다 백성들과 함께 멸망당하게 될 것을 경고한 것이다. 이 같은 본문은 유다 백성이 자신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19장은 이스라엘 왕들의 근본적인 죄악을 애가의 형태로 지적하고 있다. 전장이 이스라엘 백성들 각 개개인의 죄를 지적하는 것이라면, 본장은 이스라엘의 상층부, 즉 지도자들의 죄를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본장에는 상징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저자는 다윗 왕가를 암사자에, 왕들을 젊은 사자에 비유한다.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다윗 왕가를 포도나무에, 왕들을 가지에 빗대어 묘사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 관계를 실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은 여호아하스 왕이 애굽의 포로로 잡혀 간 사실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4절),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간 사실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중반부(5-9절),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 단 사실에 대한 애가를 소개하고 있는 후반부(10-14절)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저자는 유다 왕들의 죽음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도록 촉구하고, 평온에 대한 헛된 소망을 갖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있다.
20장 -20-24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을 지적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최종 선포하는 내용이다. 그중 본장은 출애굽에서부터 예루살렘 멸망 직전까지의 이스라엘 민족의 지난 역사를 회고함으로써 유다의 멸망이 필연적인 것임을 밝히는 부분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하나님은 그들의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거듭해서 긍휼을 베푸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불순종의 길을 걸으므로 멸망을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완악한 자들을 심판하심은 의로운 자들을 구원하시는 방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본문에서도 남은 자들의 회복을 약속하셨다.
20장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역사를 심도 있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범죄의 역사를 아브라함 시대부터 폭넓게 서술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현재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배경을 기술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자는 이스라엘의 패역의 역사와 하나님의 끊임없는 자비의 역사가 대조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드러내 주고 있다. 본장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진술하면서 언약 신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에스겔은 과거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아브라함의 언약과 모세 언약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왜냐하면 이 두 언약은 이스라엘 전역사의 핵심적인 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승 내용이자 신앙 고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중심으로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계속되는 반역과 배도에 역사하심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본장은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다루는 부분(1-9절), 광야 생활 속에서의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다루고 있는 부분(10-26절), 가나안 땅에서의 불순종(27-29절), 에스겔 당대의 이스라엘의 불순종(30-44절), 남방에 불을 보낼 것을 예언하는 부분(45-49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21장 -본장은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당해 멸망당하고 유다 최후의 왕인 시드기야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을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선포하고 있다. 유다를 징계할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바벨론이 삼림을 사르는 맹렬한 불과 진해하는 칼에 비유되어 있음은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컷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유다의 멸망 이후 다윗 가문의 세속적 왕권은 영원히 끊어지고 말았으니 범죄하고도 회개할 줄 모는 자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대상이 될 뿐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본문 후반부에는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할 때에 암몬도 아울러 멸망당할 것임이 예언되어 있다.
21장 전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받아야 되는 근거를 밝히고 있는 장이라면, 본장은 그 심판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을 보여 주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심판 예언을 들고 회개하기는커녕 불평하는 포로민들에게 삼림에 일어나는 불처럼 파괴와 살육이 전개될 것임을 밝혔다. 이러한 본장은 남방에 대한 심판을 해석하고 있는 부분(1-7절), 하나님의 심판을 칼에 의한 살육으로 비유하고 있는 부분(8-17절), 바벨론에 의한 절박한 심판을 예언하는 부분(18-27절), 암몬 족속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는 부분(28-32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22장 -본장에는 유다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명시되어 있다. 그 이유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홀히 여겨 우상을 숭배하였음은 물론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다가 풀무 속에 든 찌끼로 비유되었음은 범죄하고도 도무지 돌이킬 줄 모르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있어 아무런 쓸모가 없는 자들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유다를 열방에 흩어버림으로 그들의 죄악을 보응하시고 부정한 것들을 제거한 후, 남은 자들을 회복시키려 하신 것이다.
22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본장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신학적인 특징은 심판의 이유를 밝히는 데 있어서 모세 언약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본장은 심판의 원인(1-12절), 심판의 필연성(13-16절), 심판의 목적(17-22절) 심판의 대상(23-31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이 총체적 부패로 확산되어 국가의 존립에 타격을 주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23장 -16장과 마찬가지로 타락한 이스라엘 민족을 음부에 비유하여 죄악상을 지적하고 있는 장이다. 여기서 언니인 오홀라는 이미 멸망당한 이스라엘을, 그리고 동생인 오흘리바는 유다를 상징한다.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열방과 동맹을 맺었으며, 그들의 우상을 들여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런 죄를 범했다.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앗수르의 손에 붙여 멸하신 것이다. 북 이스라엘의 이 같은 최후를 목격한 유다는 마땅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들어서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에 하나님은 유다 역시 북 이스라엘처럼 철저하게 멸망당할 것을 엄중하게 경고하셨다.
23장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죄를 두 여인의 행음 사건으로 비유하고 있다. 에스겔은 행음 사건을 소재로 채택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묘사함으로써 그들의 범죄가 얼마나 더럽고 수치스러운 범죄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비유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간의 관계가 신랑과 신부의 관계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사랑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역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음하는 여인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에스겔은 비유를 통하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우상 숭배와 배교로 물들었으며, 그로 인해 심판이 필연적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특히 남유다는 북왕국의 멸망의 현장을 목격하고서도 동일한 전철을 밟았다는 점에서 음행의 정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두 여인의 정체를 밝히는 부분(1-4절), 사마리아의 행음을 밝히는 부분(5-10절), 예루살렘의 행음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11-35절), 행음에 대한 심판을 진술하고 있는 부분(36-49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4장 -20장에서부터 계속된 유다의 타락상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선고는 본장으로 끝이 난다. 본장에는 패역하기 그지없어 하나님 앞에서 존재 이유를 상실한 유다가 끓는 가마와 같은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을 당해 결국 멸망할 것이 예언되어 있다. 이어 에스겔은 아내를 잃고도 슬픔을 토로할 수 없었음을 통해 유다의 멸망과 그로인한 하나님의 참담한 심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눈동자처럼 아끼시지만 타락하여 온 지체를 부패케하는 자들은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환부를 도려내듯 제거하심을 알 수 있다(마3;10).
24장은 예루살렘의 죄악만을 언급하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에 대하여 \'끓는 가마\'로 비유하고 있는 바, 이런 비유를 채택함으로써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끓는 가마의 비유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와(1-14절), 에스겔의 부인의 죽음에 대한 표징을 그리고 있는 중반부(15-24절), 그리고 선지자의 말을 기꺼이 듣는 청중들에 대한 표징을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25-27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5장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데이어 25-32장에는 열방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되어 있다. 이는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그 누구라도 범죄하면 결단코 간과치 않으심을 보여 준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은 열방에 대한 심판이 곧 남은 자들을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라는 점이다. 한편, 본장에는 암몬과 모압, 에돔과 불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어 있다. 이들이 멸망당하게 된 근본이유는 일찍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대적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기뻐함으로써 실상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는 하나님을 경멸한 탓이다.
25장부터 겔32장까지에는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이방 국가들의 심판이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이방 국가에 대한 심판이 이스라엘의 운명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과 아울러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전과정 속에서 이방 국가와 이스라엘이 서로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이 전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참된 통치자임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암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하는 부분(1-7절),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부분(8-11절), 에돔에 대한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12-14절), 블레셋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밝히고 있는 부분(15-17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방 나라들은 이스라엘이 처음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에 멸시하고 조롱했던 당사자들이었다. 그러am로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만방에 선포하는 것이다.
26장 -26장 1절-28장 19절에는 암몬, 모압,에돔, 블레셋에 이어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되어 있다. 그중 본문은 두로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해 멸망하게 된 원인과 심판의 결과, 폐허가 될 두로의 참상이 묘사된다. 두로의 죄악은 유다의 멸망을 목격하고서도 돌이켜 스스로를 되돌아볼 줄 모르고 오히려 유다의 멸망으로 인해 자신들이 차지하게 된 상업적 이익만을 헤아린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해상 무역을 통해 번영을 구가하던 두로가 멸망당해 철저하게 황폐케되리라는 심판을 선고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예언은 BC.333년에 알렉산더가 두로를 완전 멸망시킴으로 성취되었다.
26장은 북쪽에 위치해 있는 두로에 대한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을 다른 이방 국가들보다 길게 언급하였는데 이는 이 도시가 정치적,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함을 암시한다. 전장에서 암몬이나 모압, 블레셋에 대한 심판 예언을 포괄적으로 묘사한 데 반해, 본장에서는 두로에 대한 예언을 상세하고 치밀하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두로에 대한 심판을 신탁의 형식을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는 전반부(1-14절), 두로의 멸망에 대한 이웃 국가들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은 중반부(15-18절),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을 기술하고 있는 후반부(19-21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로는 베니게의 중요한 성읍 중의 하나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기에, 다른 이방 족속들과 같이 적개심 과 증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자 경제적 이익을 생각하며 대단히 기뻐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업신여기는 태도이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되는 것이다.
27장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할 줄 모르던 두로의 멸망에 대한 애가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며 영광을 누렸던 두로의 멸망을 진심으로 애도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당해 결국 망하게 되었음을 조소한 것이다. 이러한 본문은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한 인간의 부귀영화는 헛것이며 교만한 자는 결국 하나님의 내팽개침을 당할 뿐임을 교훈해 준다.
27장에는 두로의 멸망을 슬퍼하는 애도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다. 에스겔은 두로의 영광과 아름다움과 강한 군사력을 먼저 찬양하고 난 후에 성읍의 몰락에 대해 애도한다. 이것은 두로의 멸망에 대한 우호적 연민이 아니라 멸망의 비참함과 확실성을 대조적으로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본장은 두로의 영광과 힘에 대해 격찬하고 있는 전반부와(1-11절) 두로가 국제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실에 대해 설명하는 중반부(12-25절), 그리고 자신의 영광에 도취되어 있다가 결국 멸망하는 두로의 모습을 보여 주는 후반부(26-36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8장 -본장은 두로가 멸망당하게 된 원인이 자신들의 번영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교만히 행한 탓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리고 두로와 이웃한 국가인 시돈도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본문에는 비록 시돈의 멸망 이유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그들 역시 두로와 동일한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선고받았을 것이다. 한편, 본장 후반부에는 두로의 시돈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이 예언되어 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열방을 심판하시는 것과 달리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는 것은 곧 초달을 위한 징계임을 일깨워 준다(잠13;24).
28장은 두로 왕 개인에 대한 책망과 시돈의 멸망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두로 왕은 자신의 경제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이방의 명성을 얻자 신으로 자처하면서 하나님을 무시했다. 이러한 두로 왕의 교만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발하실 것이다. 그리고 시돈 또한 부정한 무역 거래와 우상 숭배로 인해 범죄했기에 그들 역시도 똑같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두로 왕의 멸망과 그 원인에 대해 선포하는 전반부와(1-19절), 시돈의 멸망을 예언하는 중반부(20-24질)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고 있는 후반부(25-26절)로 구성되어 있다.
29장 -29-32장은 암몬, 모압, 에돔, 불레셋, 그리고 두로에 이어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고 있다. 그중 본장은 애굽이 바벨론의 침락을 당해 멸망당하리라는 예언이다. 애굽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된 이유는 애굽 왕 바로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세상의 주관자로 군립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애굽을 황폐케 하시므로 바로는 애굽과 온 세상이 자신의 주권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이 애굽을 치시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더 이상 애굽을 의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29장부터 겔32장까지는 애굽의 몰락과 함께 애굽에 대한 애가가 기록되어 있다. 특별히 본장은 애굽 왕 바로와 관련하여 애굽의 멸망을 설명하고 있다. 바로는 자신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도록 강요하는 교만을 저질렀고, 유다는 이러한 애굽 왕을 하나님보다 더욱 의지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 주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 얼마나 무지하였는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애굽 왕을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애굽의 파멸과 황폐에 대해 예언하는 전반부와(1-12절), 애굽의 회복에 대해 예언하는 중반부(13-16절), 그리고 느부갓네살의 분깃과 이스라엘을 향한 긍휼을 약속하는 후반부(17-21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한 애굽의 심판을 선언함으로써 인간적인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신뢰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30장 -앞장에 이어 계속해서 애굽의 멸망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에스겔은 본장에서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음을 선포하면서 애굽과 그 동맹국들이 하나님의 권세 앞에서 무너질 것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아직도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경고하였다. 이러한 본문은 국가의 장례나 개인의 생사화복이 권력자나 우주의 자연 법칙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뜻에 따라 인간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서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분명히 가르쳐 준다.
30장은 애굽과 동맹국들에게 임할 파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특별히 애굽의 파멸을 \'여호와의 날\'로 말하고 있다. 원래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된 여호와의 날은 우주적인 격변을 포함하는 종말론적 의미이지만, 본장에서는 단지 애굽과 애굽의 동맹국들이 멸망하는 날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에스겔은 이방에 대한 진멸을 골자로 하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당시 세상 세력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애굽의 파멸을 설명함으로써, 하나님에서 친히 바벨론을 일으켜서 교만한 국가를 처벌하고 계심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애굽에 대한 심판과(1-19절), 애굽의 몰락(20-26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31장 -한때 근동일대의 패권을 장악할 정도로 부강하였던 앗수르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사실을 들어 애굽의 멸망역시 필연적임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에스겔이 이같은 사실을 예언할 당시, 예루살렘은 바벨론에게 포위를 당해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예언을 접한 유다 백성은 하나님이 각 나라뿐 아니라, 온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는 분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무릎 끓고 회개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들은 깨달을 줄도 모르고 회개할 줄도 몰라 결국 BC.586년에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