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도덕적인 과오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1장 -다른 대부분의 선지서들이 이스라엘의 죄악과 심판을 주 내용으로 하는 데 비해 본서는 에돔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다루고 있다. 에돔은 이스라엘과 친척관계에 있으면서도 이방 열국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침략하였다. 오바댜는 에돔에게 임할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의 택한 족속을 대적하는 세력은 반드시 파멸될 것임을 교훈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타나는 에돔은 단순한 이스라엘의 대적국이 아니라 오늘날 성도를 대적하는 사단의 세력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에돔의 멸망이 이스라엘의 회복과 직결되는 내용에서 확연히 증명된다.
오바다서는 구약의 선지서 중에서 가장 짧은 책이다. 하나님은 본서를 통해 에돔 족속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고 있다. 에돔은 이삭의 장자인 에서의 후손으로 이스라엘과는 사실상 형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이스라엘과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그들은 세일 산을 거점으로 하여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여 왔다. 그런데 그들은 원래부터 하나님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했으며 자신들의 강력한 군사적, 경제적인 힘만을 의지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심판을 선언하신 것이다(1-9절).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스라엘과는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른 국가들보다 이스라엘을 더욱 핍박하고 심지어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의해 침략 당할 때는 그것을 기뻐하고 같이 노략질까지 일삼았다. 하나님은 이로 인해 그들을 심판하시기 로 한 것이다(10-16절). 그러나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선민인 이스라엘의 구원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에돔의 심판과 함께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17-21절).
요나(이방인과 육축도 아끼시는 하나님)
1장 -구약에서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방 민족이 완전히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되지는 않았다. 하나님은 언제나 구원의 문을 열어 놓고 만민을 초청하고 계신다. 요나가 니느웨에 전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도망한 것은 바로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행위는 당시의 역사적, 정치적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나친 베타주의와 고질적인 선민사상이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하는 것임을 요나는 깨달아야 했다.
1장 -구약의 대다수의 선지자들이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예언했다면, 요나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들 예언하고 있다. 특히 요나는 본서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객관화시키는 특별한 이야기식 서술을 통해 이스라엘의 왜곡된 선민의식을 질타하고 있다. 선지자 요나는 선지자적 사명을 무시하고 이방 전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스로 도망하는 요나를 들어서 기어이 이방 전도자로 삼으셨다. 이러한 본 장은 다시스로 도망하는 요나의 의도가 나타나는 전반부(1-3절), 바다의 풍랑으로 인하여 선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요나(4-10절), 그리고 바다에 던져지는 요나로 인해 풍랑이 잔잔해짐을 기록하는 후반부(11-17절)로 구성되어 있다.
2장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긍휼히 여기기도 하시고 강팍케도 하신다. 일단 사명자로 부르시면 그를 끝까지 책임지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 삼키게 함으로써 그의 불순종을 한번에 무력화시키셨다. 당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일종의 비상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요나는 고난의 현장에서 철저한 회개를 실행하였다. 바로 여기에 요나의 신앙적 면모가 드러나 있다. 죄인은 하나님의 징계에 처하여 더 사악해지나 하나님의 사람은 심령을 찢음으로 주를 의지한다.
2장은 물고기 뱃속에서의 요나의 기도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특히 본장은 요나의 개인적 경험일 뿐만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본장은 요나의 고난과 구원받음에 대해(1-4절), 그리고 그 구원에 대한 감사로 구성되어 있다(5-10절).
3장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요나는 다시 한 번 사명을 부여받는다. 그것은 이전에 받았던 사명과 동일하였다. 하나님은 죄인을 일으키실 뿐 아니라 사명자의 임무까지 주심으로써 그를 또다시 신임하셨다. 이에 요나는 충성으로 화답하였다. 그의 전도로 니느웨 성은 국가적인 회개를 하였다. 니느웨 성의 최고 치리자에서부터 일개 평민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으로 회개하였다는 것은 ‘기적’과 다름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으며 그 능력은 모든 사람을 무릎 끓게 만든다.
3장은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받은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촉구함으로써 그들이 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 전체가 회개하자 그들에게 내리시려고 했던 재앙도 철회하신다. 이런 사실을 통하여 볼 때 하나님께서는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의 회개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푸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담고 있는 본장은 하나님으로부터 재차 사명을 받고 있는 사건을 묘사하는 전반부(1-4절)와 요나의 선포를 통해서 니느웨가 회개하는 장면을 담고 있는 후반부(5-10절)로 나눌 수 있다.
4장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요나는 여기서 이같은 왜곡된 인간 심성을 표출한다. 그는 국가적인 회개를 통해 심판이 연기된 니느웨 성을 탐탁치않게 여기고 이스라엘의 대적국인 니느웨에 은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아직도 만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 계획을 깨닫지 못하고 편협한 국가 이기주의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은 박 넝쿨을 통해서 요나의 오해를 지적하였다.
4장을 통해 그릇된 선민의식을 가진 요나와, 공평하게 이방인에게까지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크게 대조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니느웨의 회개에 불평하는 요나의 모습을 그린 전반부(1-4절)와 그릇된 요나의 생각을 바꾸려는 하나님의 다양한 노력들이 등장하는 후반부(5-11절)로 구성된다.
미가(경제 정의 부르짖는 하나님)
1장 -본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심판인데 그 같은 주제가 첫 장에서부터 두드러진다. 즉 미가는 본서의 기록 시기와 대상을 간략히 밝힌 후에(1절). 곧이어 사마리아(북 이스라엘)와 남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하고 있다. 두 왕국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우상 숭배를 자행했다는 점에서 동일했다. 하나님은 모세 법령을 통해서 산당을 폐할 것을 거듭 명령했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정복 후, 특히 분열 왕국 후 이곳에서 괴악한 우상 숭배를 자행하였다. 성도인 예루살렘까지 이 죄악이 미쳤다는 것은 그들에게 임할 심판의 필연성을 확증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1장 유다 출신의 선지자 미가가 이스라엘의 남북 왕조의 수도인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특히 본장은 본서 전체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보여 주는 서론부에 해당되는데, 마가 선지자의 주된 메시지는 이스라엘 두 왕국 전체에 만연해 있던 부패와 타락의 근본 원인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를 행했기 때둔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본장은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될 것을 예언하는 초반부(1-7절)와 이 심판에 대한 선지자 자신의 반응을 보여 주는 중간부(8-9절), 마지막으로 백성들을 향한 경고를 예언하는 후반부(10-16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장 -1장이 이스라엘의 종교적 부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본장은 사회 지도자들의 타락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유한 대지주는 가난한 자를 억압했으며, 권력자들은 힘없는 자들을 강탈하였다. 부녀자, 나그네, 어린아이 같은 자들은 강자의 부른 배를 더 불러 주는 수탈의 대상일 뿐이었다. 사회 정의가 가장 엄정히 실현되어야 할 신국에서 이런 해괴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당시의 종교, 사회적 타락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심으로 당신의 긍휼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으셨다(12,13절).
2장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죄악상이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특히 사회적 범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종교적 범죄는 사회적 범죄를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이렇게 범죄를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마음대로 행동하고 사고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장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아울러 인간의 패역상을 함께 대조함으로써 그들의 죄악상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본장은 이스라엘의 권력자들이 백성들에게 어떻게 착취를 하고 있는지를 다루는 전반부(1-5절)와 거짓 예언자들의 잘못된 주장을 나타내고 있는 후반부(6-13절)로 나눌 수 있다.
3장 -건전한 사회는 각 계층간의 조화와 질서가 확립되어 있다. 역으로, 타락한 사회는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그 모든 영역이 왜곡되는 뒤틀려져 있다. 미가 당시의 이스라엘이 바로 그러했다. 종교(1장)와 사회 지도층(2장)뿐만 아니라 정치.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타락했음을 본장은 보여 준다. 통치자는 백성의 피를 빨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선지자는 거짓 예언을 선포하기에 바빴다. 꿀에 탐닉한 파리가 자기의 다리가 빠져드는 것을 모르듯,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인식하지 못한 데에 그들의 진정한 불행이 있었다(12절).
3장 앞장들이 이스라엘이나 유다에 대해 전체적으로 그들의 죄악상을 고발한 것이었다면 본장은 그들의 그러한 죄를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본장도 이스라엘과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서 그들이 어떠한 죄 가운데 빠져 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죄악들이 모여 전체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으로 발전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특히 앞장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해 무지하였다. 대체적으로 본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의 부류는 두령, 치리자, 선지자, 선견자, 술객, 제사장으로서 죄악이 여러 계층에 두루 퍼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을 다루고 있는 본장은 개괄적으로 볼 때에 정치 지도자들이 범하고 있는 죄악상에 대해 전반부에서(1-4절),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이 범하고 있는 죄악상에 대해 중반부에서(5-8절), 다루고 있고 결론적으로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후반부로(9-12절), 나눌 수 있다.
4장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의 죄악과 멸망을 언급하는 데 주력한 반면, 본장은 예루살렘의 회복과 최후 승리를 기록하고 있다. 이 예언은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로 인한 메시야 왕국에 대한 설명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의와 평강이 지배하는 완전한 이 상황은 하나님 나라에서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심판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이렇듯 희망에 찬 예언이 주어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할 나위없는 위로가 되었음에 분명하다.
4장 전장까지가 주로 심판과 멸망에 관한 메시지라면 본장은 주로 회복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전장이 예루살렘의 현재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본장은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미래상을 다루고 있다. 또한 본장은 시온 산을 등장시켜 하나님의 임재를 상기시키며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구원의 회복을 다루고 있다. 본장에 소개되고 있는 시온의 회복이 이방 세계에까지 미칠 것임을 밝힘으로써 하나짐의 전 우주적 구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장은 회복된 시온에 만국 백성들이 모이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전반부(1-5절)와 남은 자의 회복과 여호와의 통치를 예언하고 있는 중반부(6-8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적대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예언하고 있는 후반부(9-13절)로 구성되어 있다.
5장 -본장 전체는 약속된 메시야, 즉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예언으로 파악하여야 한다. 4장에서 메시야 왕국의 실상을 언급한 데 이어 본장은 그 왕국의 설립자인 그리스도의 탄생과 성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의 탄생지(베들레헴)와 고난(3절). 그리고 구원 사역(4-9절)과 심판 사역(10-15절)에 대한 묘사는 신약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행적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같은 메시야에 대한 약속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 효과를 주었다. 먼저, 오늘의 고난을 극복할 위로와 용기를 주었고 다음으로 죄악에 대한 경고를 주었다.
5장은 전장이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 도래한 나라의 통치자, 즉 왕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본장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전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봄으로써 투쟁적 성격임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현재 문제도 함께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미래가 현재와도 깊은 관계가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본장은 장차 나타날 시온의 왕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4절)와 이 시온의 왕이 모든 대적을 물리칠 것이라는 언급을 하고 있는 중반부(5-9절),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의지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심판을 가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있는 후반부(10-15절)로 나눌 수 있다.
6장 -본장에서부터 7장 10절까지는 법정에서 논고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과 성품을 설명하는 변호사로, 그리고 이스라엘의 죄악을 추궁하는 검사로 묘사되어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추궁에 답하는 피고로 설정되어 있다. 소송의 주제는 단연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이다. 하나님은 과거의 구속사역을 변론하심으로 이스라엘의 현재 죄악이 배은망덕한 것임을 폭로하셨다. 이것은 그들에게 심판의 필연성을 증명하는 역할 이외에 간접적으로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역할도 한다.
6장은 미가서의 처음 부분으로 다시 돌아가는 듯한 인상을 보여 주는데, 그것은 본장이 처음의 1-2장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의 죄악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지자는 형식적인 의식 행위와 삶 사이의 깊은 괴리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선지자는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어기며 사는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드러냄으로써 죄악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백성들의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전반부(1-5절), 그리고 하나님 원하시는 것은 진정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는 중반부(6-9절), 나아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심판을 열거하고 있는 후반부(10-16절)로 나눌 수 있다
7장 -6장에 나타난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법정공방은 본장 10절까지 계속되고 있다. 본문은 하나님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답인데, 여기서 미가는 자기 고백적으로 동족의 범죄를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가 바라본 것은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회복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었다. 찢으시기도 하지만 싸매시고, 심판하시기도 하지만 회개하면 반드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상 이것이 바로 그가 그리고자 했던 하나님의 모습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이토록 오묘하므로 우리는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하고 외치지 않을 수 없다(18절).
7장은 본서의 결론부에 해당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다루었던 이스라엘의 죄악상, 이에 따른 심판, 그리고 미래의 소망과 남은 자들의 구원에 관하여 종합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선지자는 본장에서 하나님처럼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탄식하면서 임박한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남은 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미리 예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미래가 희망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들추어서 그들로 하여금 죄악을 고백하고 돌아오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궁극적인 의미인 구원과 축복을 주고자 하였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실패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이다. 이렇듯 우리에게 소망을 주심은 여호와의 속죄의 은총과 언약의 신실하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본장은 철저하게 타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전반부(1-6절)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미래의 소망을 동시에 밝히고 있는 후반부(7-20절)로 구성되어 있다.
나훔(원수에게 보복하시는 하나님)
1장 -하나님은 회개한 자에게는 심판을 연기하신다. 그러나 또다시 범죄하여 회개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자에게는 여지없이 심판의 비수를 들이대신다. 니느웨(앗수르)가 바로 그런 운명이었다. 요나의 전도로 말미암아 국민적인 회개를 하였으나(욘3;5-9), 앗수르는 다시 이전의 악을 자행함으로써 최종적인 심판을 선고받게 된다. 이것은 죄악을 오래 참으시지만 결코 그것을 간과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자연스런 결과였다. 원수의 멸망이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소식이 되는데, 이것은 사단의 파멸이 성도에겐 기쁨의 소식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1장은 죄악으로 가득 찬 니느웨에 멸망을 선포하면서 심판주이신 하나님의 권능과 선민 유다 민족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특히 본장에서는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면서, 죄악을 행하는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강렬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유다에 평화의 소식이 전하여진다는 메시지로 본장을 마무리 짓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진 본장은 자연계와 이방 백성에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보여주는 전반부(1-8절)와 니느웨에는 심판을 행하시지만 반면에 유다에는 구원을 베푸실 것임을 보여 주는 후반부(9-15절)로 나눌 수 있다.
2장 -앗수르의 멸망의 침상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실제 앗수르는 본장의 예언대로 바벨론 연합군에 의해 역사상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당했다. 한때, 하나님의 도구로 쓰였던 그들이 심판의 칼날에 베어지는 모습은 실로 아이러니칼하다. 의인이라도 죄를 돌이키기를 거부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길이 없다. 사울이 그러했고(삼상31;4), 바벨론에 멸망당한 이스라엘이 그러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외형적 특권이 아니라 그 행실의 신실성에 있다. 바울은 이런 맥락에서 표면적 유대인이 아닌 이면적 유대인이 참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갈파했다(롬2;28-29).
2장은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니느웨가 멸망당할 것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니느웨가 타국의 침략으로 철저하게 노략당하고 멸망당하는 모습을 생생하고도 박진감 있게 증거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마지막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까지도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갖고 있는 본장은 그토록 당당한 세력으로 세계를 다스리던 니느웨가 적군의 침입으로 인하여 왕궁이 파괴되고 존귀한 자들이 수치를 당하는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을 예고하는 전반부에 이어(1-7절), 위세를 당당하게 떨치던 니느웨가 그들이 자랑하던 젊은 용사들까지도 모두 적들에 의해 살해되고 다시는 소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가 될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서 선지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는 누구도 멸망을 피할 수 없음을 니느웨를 통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다(8-13절).
3장 -2장에 언급된 니느웨의 멸망이 여러 각도에서 언급되고 있다. 나훔은 니느웨의 멸망 원인을 수탈, 포악, 살육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도구인 줄 모르고 이스라엘과 주변국을 압제한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대목은 앗수르를 매춘부로 비유한 것이다. 부정한 여인이 몸을 팔며 음행을 이식시키듯, 앗수르는 주변국, 특히 신정국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를 전염시켰다(왕하16;10-18).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멸망한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다. 죄인은 생전에 찾는 이가 많으나 그 죽음 앞에는 슬퍼하는 자가 없다(19절).
3장은 니느웨가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바로 죄 때문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본장에서 나훔은 니느웨의 죄악을 폭로하고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본장은 니느웨의 심판이 그들의 가득 찬 죄악 때문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전반부(1-11절)와 하나님의 심판이 악인들에게 반드시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후반부(12-19절)로 나눌 수 있다.
하박국(응답하시는 하나님)
1장 -다른 선지자들처럼 하박국은 자신의 출생 배경이나, 기록 연대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그가 요시아 말기 또는 여호야김 초기에 활동하였으며, 본서도 그때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할 따름이다. 신앙인은 항상 현실의 죄악 세력으로 인해 고뇌하며 살아가기 마련인데, 하박국이 고민한 것도 바로 이 점이었다. 그는 이세상의 불의와(2-11절) 악인의 발흥(12-17절)에 대해 하나님께 신앙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신정론 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주제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고뇌이기도 하다.
1장은 하박국이 하나님의 공의와 선하심 그리고 그의 절대 주권적이고도 전능하심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의인이 압제를 당하거나 악이 번성함에 대해서 하나님께 질문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토록 타락하여 온갖 불의가 행해지고 오히려 의인이 악인에게 핍박받고 불치한 자가 공의한 자보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현실에 대해 하나님께 항의를 하고 있다. 이는 선지자가 생각하는 공의의 하나님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1-4절). 이에 대해 하나님은 자신이 결코 악을 묵과하는 자가 아니라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며 선지자의 항의 이전에 이미 패역한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심판의 도구로 갈대아를 준비해 두셨다고 밝힘으로써 자신의 공의를 나타내신다(5-11절). 그러나 선지자는 계속해서 항의를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죄악을 심판하시지만 어떻게 더 큰 죄로 물들어 있는 이방 족속인 갈대아를 사용하시는지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12-17절). 이런 본장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형태를 계시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2장 -1장에서 제기한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은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악의 발흥이나 도처에 횡행하는 불의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참고 기다리며(2,3절). 믿음으로 말미암은 삶을 경주할 것을 요구하셨다(4절). 사실 우리는 악의 원인과 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에 대해 하나님이 침묵하시기 때문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불확실성의 세상을 이길 힘은 오직 믿음뿐이다.
2장 하박국은 유다가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이의가 없었으나 하필이면 왜 그것이 바벨론이냐 하는 것이 전장에서의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이다. 하박국이 제기한 그 두번째 물음은 본장에서 시작하고 있는 하나님의 두번째 대답에서 해결되고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을 심판하시므로 그의 의로움을 드러내신다. 그리하여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가득하게 되고 온 천하는 그의 앞에서 잠잠해야 하며 의인은 하나님은 믿는 믿음으로 살게 될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왜 하필이면 바벨론인가 하는 하박국의 질문에 하나님은 바벨론 역시 죄로 인해 심판받게 되지만 그 가운데 유다도 심판당하나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하셨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크게 여호와의 두번째 대답을 담고 있는 전반부(1-5절)와 다섯 가지 재앙(6-20절)을 보여 주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3장 -하박국은 두 번에 걸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자신의 의문을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는 장차 오실 하나님이 만물의 질서를 바로잡고 선악간에 심판할 것임을 찬양하고 있다(1-15절). 이것은 그가 역사의 종말에 강림하실 메시야를 대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다윗처럼 다가올 그리스도를 소망하여 산 믿음의 위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6-19절은 지금까지 불만을 토로하던 이전 모습과는 전혀 다른 하박국의 면모가 부각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굳건한 신앙을 아름다운 필치로 표출하고 있다.
3장은 일종의 시로서 뛰어난 운율을 갖추고 있다. 하박국은 하나님과의 질의응답(質疑應答)을 통해 모든 의문이 다 풀린 상태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이 찬양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해(1-3절),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4-7절),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8-16절), 그리고 믿음의 축복에 대한 찬양(17-19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에서는 특히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주요 핵심부이다. 무엇보다 본서는 의인이 악인에게 핍박과 고난을 받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참 믿음으로 사는 삶이 바로 진정한 신앙의 삶과 길임을 가르쳐 줌과 동시에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기도함으로써 참된 믿음에 이르는 길을 지도하며 신앙으로 말미암는 참된 기쁨을 밝히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다.
스바냐(숨겨주시는 하나님)
1장 -노아 홍수때, 하나님은 물로써 세상을 심판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불로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18절). 스바냐는 하나님의 우주적 심판을 먼저 언급한 다음(2,3절), 유다의 심판을 언급하고 있다. 유다가 심판당하는 원인은 우상 숭배에 있다. 사실 스바냐 선지자가 살았던 므낫세 왕 때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가 극도에 달했었다. 왕족 출신답게 스바냐는 그들의 죄악을 거침없는 어조로 강력히 질책하고 있다. 이 예언은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에 굴복함으로써 실제 성취되었다.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는 자와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1장을 통해 스바냐 선지자는 각종 우상 숭배와 죄악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면서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보편성에 대해 보여 주고 있는데 심판이 온 지면에서부터 시작될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전반부(1-6절)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의 양상을 언급하고 있는 중반부(7-13절), 그리고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기록하고 있는 후반부(14-18절)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본장에서는 심판이 유다에 집중되어 있음과 아울러 하나님의 심판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촉구하고 있다.
2장 -하나님은 심판의 와중에서도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다. 스바냐는 이 같은 하나님의 긍휼을 붙잡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어 불레셋(4-7절), 모압과 암몬(8-11절), 구스와 앗수르(12-15절)등에 대한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악인은 어느 누구라도 심판의 그물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본문은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 풍성하시지만 그 사랑이 공의에 근거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2장 유다에 대한 혹독한 심판의 심각성을 알린 전장에 이어 본장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일찍부터 대적하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스스로 교만하여진 이방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본장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전반부(1-3절)와 이방 민족들에 대해 심판을 선언하는 후반부(4-15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장에 등장하는 이방 민족들은 블레셋, 모압과 암몬, 구스와 앗수르 등이다. 본장에서 스바냐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전망을 세계적으로 확대하여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높이고 있다.
3장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두 중심측은 심판과 구원(회복)이다. 스바냐 선지자도 본장에서 이 두 가지 축을 완벽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그는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한 다음(1-8절),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하고 있다. 못된 자식을 매로 다스려 새 사람으로 만들듯, 하나님은 패역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여 새 이스라엘로 만드실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예언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에서의 회복을, 궁극적으로는 복음으로 형성될 영적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있다.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3장은 하나님의 재앙과 심판이, 그리고 그의 구원과 이에 대한 찬양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선지자는 본장을 통해 예루살렘의 패역과 탐욕에 대해 신랄하게 꾸짖고 있으며 동시에 심판의 필연성을 대두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구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양면성이 잘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본장은 예루살렘과 열방에 대한 심판을 언급하고 있는 전반부(1-8절)와 미래에 임할 이방과 유다의 축복을 선포하고 있는 후반부(9-20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을 통해 저자는 유다의 멸망을 거듭 확인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학개(책망하시고 격려하시는 하나님)
1장 -세상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운명의 탓으로 돌리거나 외부적인 요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성도는 신앙적 견지에서 그것을 파악해야 한다. 학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핍절한 생활의 원인으로 성전 건립의 태만을 꼽았다. 즉, 종교 생활의 실패가 삶을 곤고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진단은 정확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성전 건립을 마치자 모든 면에서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2;19). 우리는 삶에 있어서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를 결단하며 살아야 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1장은 학개의 첫 번째 설교로서 포로 귀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성전 재건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다. 당시에 그들에게 있어서 심각한 문제는 여호와를 사모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정이 식고 무기력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데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영적 각성 운동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인 성전을 재건하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가진 본장은 성전을 재건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전하는 전반부(1-11절)와 그 지시에 백성들이 순종하였음을 보여 주는 후반부(12-15절)로 나눌 수 있다.
1: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2장 -성전 재건을 독려한 학개의 설교로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공사를 개시하였다. 그러나 서로 건축되는 성전은 이전의 솔로몬 성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였다. 자연히 그 외양에 실망하는 부류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성전 재건 이후의 축복을 약속하심으로 그들을 위로하셨다(10-19절). 자고로 중요한 것은 성전의 규모나 화려함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자의 자세이다. 아무리 웅장한 성전이라도 그곳에 형식적인 예배자들만 들락거린다면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끝으로 하나님은 스룹바벨에 대한 축복을 약속하심으로 순종한 유대인, 나아가 복음을 받은 성도의 구원을 약속하셨다.
2장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재건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공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못 되어 공사는 또다시 중단되었다. 그것은 이 성전의 위세가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초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다시 학개를 통하여 비록 지금 짓고 있는 성전만큼은 못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더 크게 빛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계속 재건해 나가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학개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법이 어떤 외형적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진실한 믿음에 있으므로 낙심치 말고, 실망치 말고 계속 성전을 재건해 나가라는 데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판단은 그 대상의 외모를 기준 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룹바벨 성전의 기초석이 놓여질 때 이전 솔로몬 성전의 위용을 기억하고 있던 많은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큰 슬픔과 실망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나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학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9절)고 하는 이 메시지는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 구속사의 관점에서 희망찬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장차 성전에 임할 하나님의 영광을 알려 주며 성전 재건을 촉구하는 전반부(1-9절)와 이스라엘의 불순한 믿음을 지적하며 결국은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것을 전하는 후반부(10-23절)로 나눌 수 있다.
2: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기억하시는 하나님)
1장 -스가랴는 학개, 말라기와 더불어 포로 후기의 선지자이다. 그는 귀환한 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고 여호와 종교를 부흥시키는 사역을 주로 감당하였다. 본서 역시 그러한 취지로 저술되었다. 그러나 성전 재건이 초반부터 순조롭지는 않았다. 사마리아를 비롯한 주변 국가의 거듭된 방해로 성전 건축이 지연되자 백성들은 실의에 빠져 성전 건축의 의욕을 상실하였다. 스가랴는 그 같은 백성들의 나태를 책망하며(1-6절) 다시금 성전 건축에 매진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한편, 7절부터 6장까지는 8개의 환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본장에 나타난 두 환상은 성전 재건 후의 영광(7-17절)과 열방에 대한 심판(18-21절)을 의미한다.
1장 하나님의 말씀이 스가랴에 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신다. 스가랴는 바벨론에서 돌아올 백성들이 아직 회개를 깨끗이 하지 못했기에 그들의 조상들이 받았던 벌을 다시는 받지 말 것을 권면한다(1-6절). 스가랴는 곧 이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여덟 가지의 이상을 보게 되는데, 그중 첫 번째 이상이 본장 에 나타난다. 말탄 자들의 이상을 본 스가랴에게 하나님은 이들이 땅에 보내신 사자로서 이들로 인해 땅의 평안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하신다(7-11절). 주의 사자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간구하는데, 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하시어 예루살렘 성읍의 회복을 약속하신다(12-17절). 이후에 두 번째 이상을 보는데 네 뿔과 네 농장이다. 이 뿔들은 유다를 헤친 뿔임을 알게 된다(18-21절).
2장 -1장 7절부터 시작된 환상중 세 번째 것에 해당한다. 구성상 환상(1-5절)과 그것에 대한 해석(6-13절)으로 나뉠 수 있다. 환상에 나타난 ‘측량줄’은 수직, 또는 수평을 잡기 위한 건축 도구이다. 그러므로 이 환상은 예루살렘의 재건과 그로 인한 영광을 의미한다. 당시 성전 건축이 이방인들의 방해로 지지부진하고 있었음에 비추어 볼 때, 이 같은 환상은 백성들에게 위로와 도전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편, 여기에 나타난 재건될 성전에 대한 환상은 종말론적으로 볼 때 주의 강림으로 완성될 새 예루살렘, 즉 하늘 성소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2장 스가랴에게 세 번째의 이상이 나타난다. 척량줄 잡은 자의 계시로서 이는 예루살렘이 왕성할 것을 보여준다(1-2절). 그 후에 환상을 설명함으로써 예루살렘의 복구와 그의 안전과 명예에 대한 예견을 제시하고 있다(3-5절). 그 해석은, 아직 바벨론에 머물러 있던 유대인들에게 훈계하여 그들을 재촉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을 서두르게 하는 것이다(6-9절). 또한 그 이상을 해석함으로 돌아온 자들에 게 위안을 주고 그들이 겪어야 할 많은 곤란들과 어려움들을 알려 준다(10-12절). 그리고 하나님을 규정하거나 그를 제한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모두에게 영적 이스라엘 곧 복음을 믿는 자들이 각국에서 하나님 백성과 압류하여 천국 운동이 크게 전개될 것을 예언하다(13절).
3장 -본장은 네 번째 환상으로서 여호수아 개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제1차 포로 귀환 때 대제사장이었다. 그의 부정한 옷이 하나님 앞에서 벗겨지고, 정하고 아름다운 의복으로 단장되는 모습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먼저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권위를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다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의 지도하에 성전 건축이 원만히 진행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셨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뜻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의 출현과 그로 인한 인류의 죄사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학1:1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3장 전장의 이상은 유다 민족의 권세와 재건에 대한 확신을 주었고 그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제 본장도 교회와 교회의 권세를 취급하는데 다시금 훌륭한 모습으로 변모될 것을 확신시킨다. 여호수아와 관련된 이상이 언급되고 있다. 그는 그의 시대의 교회의 대표자이다. 그는 사단에 의해 고소되지만 그리스도에 의해 건져진다(1-2절). 또한 그는 더러운 옷을 입고 나타나지만, 그것이 여호와에 명에 의해 아름다운 옷으로 바뀐다(3-5절).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잘 처신하면 그의 직임이 확고히 세워지리라는 확신을 준다(6-7절). 한편, \'순(가지)\'이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에 관련된 예언이 나타난다. 그는 착수하는 일이 무엇이든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을 힘입을 것이며, 그것을 승리로 이끌어 그로 인해 우리가 용서와 평화를 누릴 것이다(8-10절).
4장 -다섯 번째 환상으로서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에 대한 환상이 기록되어 있다. 순금 등대는 재건될 성전을, 두 감람나무(또는 기름 바리운자 둘, 14절)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본 환상은 당시의 정치 지도자였던 스룹바벨에게 주신 하나님의 격려의 말씀인 것이다. 즉, 그로 하여금 여호수아와 합심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진력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한편, 본서에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많은 구절들이 있는데, 본장 12절은 대제사장직과 왕권을 갖고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4장에서는 위로가 되는 또 하나의 환상을 보는데, 이는 예언자에게 설명되었듯이 그 안에는 현재 곤궁에 처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는 격려가 많이 들어 있다. 그들의 현재 고통이 너무도 커서 그들은 자신의 경우를 소망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그들의 성전은 재건될 수 없고 그들의 성읍이 회복될 수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환상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힘에 의해 그 일을 행하실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환상을 보기 위해 스가랴 선지자가 깨어 일어난다(1절). 그 내용은 기름을 공급받고 계속 타는 일곱 등잔이 있는 촛대는 양옆에 자라나는 두 감람나무로부터 기름을 직접 공급받고 있다는 것이다(2-3절). 또한 성전의 건축자들에게 주어져서 그 선한 사업을 해 나가게 하면, 그것이 완수될 것이라는 확신과 그 실증이 나타난다(4-14절).
5장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환상이 기록되어 있다. 두루마리 환상(1-4절)과 여인에 대한 환상(5-11절) 모두 ‘심판’이라는 동일 주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두루마리 환상은 성전 건축을 태만히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히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 그리고 여인에 대한 환상은 죄인에 대한 종말본적 심판을 가리킨다. 특히 여인의 환상에 등장하는 ‘에바’는 곡식 측량에 사용되는 기구인데, 이는 하나님 심판의 정밀성을 의미한다.
5장에서는 두 개의 이상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예언자들은 평화의 대사일 뿐만 아니라 전쟁을 기뻐하고 반란을 지속하는 자들에 대한 선포의 고지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악하고 속되며 이 개혁의 시대에 개혁되기를 혐오하는 몇몇 사람들을 엄격하게 대하신다. 하나님께서 열방에게 친절을 보이시며 그의 축복을 내려 주고 있으나,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그것에도 불구하고 예언자가 날아가는 두루마리에서 보듯이 저주 아래 놓일 것이다(1-4절). 만일 열방이 이제부터 타락하며 사악이 지배하게 되면, 에바의 아구리 위의 납 조각으로 상징되고, 또한 어디 있는지 모르는 날개 위에 운반되는 하나님의 진노가 누르는 무게 아래 급한 파멸과 함께 쓰러지고 망할 것이다(5-11절).
6장 -여덟 번째 환상으로서 본서의 마지막 환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네 마리의 말은 이스라엘의 대적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승리를 상징하는데, 계시록에 나타나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계6;1-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을 전멸시킴으로 당시 백성을 위로하셨듯, 종말에도 사단을 결박하심으로 성도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다. 한편, 여호수아의 대관식장면은(9-15절) 지금까지 보여진 환상들의 결론으로서, 그를 통해 왕권과 대제사장권이 일치할 것임을 보여 준다. 더불어 이것은 곧 오실 메시야의 권능을 상징한다.
6장 스가랴는 본장에서 네 병거에 대한 이상을 보게 된다. 하나님 곧 열방의 왕이 천사의 사역에 의해 세계를 통치하시는 것이 네 수레의 환상에서 나타난다(1-8절). 하나님 곧 성도들의 왕이 그리스도의 중재에 의하여 교회를 다스리시는 것이, 면류관을 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모습 속에 또 그가 수행하는 의식 속에 나타나며,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해 설명된다(9-15절) .
7장 -본서의 두 번째 단락이 시작되고 있다. 8장 23절까지 이어지는 이 부분은 그릇된 종교 생활에 대한 책망과 위로를 주 내용으로 한다. 먼저 본장은 형식적인 금식 자세를 강한 어조로 책망한 다음, 참된 금식의 원리를 가르친다. 금식이란 원래 전적 헌신과 의뢰의 순수한 종교심의 발로이다. 그런데 당시 백성들은 인간적 규례에 얽매여 불필요한 금식을 준수하였다. 금식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형식으로 전락시켰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스가랴는 잡다한 금식제도의 중지를 명하고 그 대신 의의 생활을 촉구하고 있다.
7장 스가랴 선지자는 이전에 본 이상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 그는 금식에 관해 포로 된 자들의 자녀들의 질문을 받는다. 그들은 포로 생활 70년 동안 종교적으로 지켜 왔던 엄격한 금식을 계속할 것인가에 관해서 묻는다(1-3절). 이 질문에 스가랴 선지자는 금식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그들을 날카롭게 비난하고(4-7절), 그들의 생활을 개혁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금식이 최선의 길이 될 것이며, 이 금식을 지켰던 그들에게 심판을 가져왔던 저 죄악들을 주의하라고 권면한다(8-14절).
8장 -이사야서(사65;17-25)와 계시록(22장)에 언급된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스가랴는 여기서 회복될 예루살렘의 영광과 평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 나라는 정치(안정), 사회(정의), 군사(평화), 종교(하나님경배) 등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룰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의 결과이다. 즉, 범죄로 말미암아 깨어졌던 언약 관계를 하나님께서 새롭게 갱신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새 언약의 주체자로 오신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의 영광을 예표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8장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돌아온 백성을 계속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개혁되며 복구되어(1-8절), 그 나라가 부요할 것이며, 나라의 일들이 성공적일 것이며, 그들의 명성이 회복되고 그들의 상태가 모든 면에서 과거 수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것의 반대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9-15절). 그러면서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백성들이 실천해 야할 진실과 화평의 규범을 강조하신다(16-17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지키던 슬픔과 탄식의 금식을 그만 두고 즐거움의 금식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18-19절). 그렇게 될 때 이스라엘은 다시 부요하게 되며 강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시고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오게 된다고 말씀하신다(20-23절).
9장 -하나님은 택한 자에게는 회복의 은총을 허락하시지만 이방인에게는 심판을 집행하신다. 1장에 나타난 예루살렘의 영광과 비교해 볼 때, 본장에 나타난 이방의 멸망상은 더 두드러진다. 수리아(1,2절). 베니게(2-4절), 블레셋(5-7절)등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나라는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사실 이들 나라는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으로 모두 멸망하였다. 한편, 이방의 멸망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메시야의 도래로 이어짐에 유의해야 한다. 택한 자에게 더 큰 축복을 가져오는 전주곡이 되는 셈이다.
9장에서는 여호와의 경고가 나타나는데, 특히 유대인의 불의한 이웃들인 수리아인들, 두로인들, 블레셋인들, 그리고 그 밖의 이웃들을 치는 예언이 나타난다(1-6절). 그러나 그들 중 회개하는 몇몇에 대한 긍휼도 암시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의 약속이 있다(7-8절). 한편 그들의 의로운 왕 메시야 에 대한 예언과 메시야의 강림에 대한 서술, 그리고 메시야의 왕국과 그 왕국의 성격에 대한 서술이 나온다(9-10절).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하여 짊어지게 된 의무에 대한 설명과(11-13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큰 구원 예표로 허락하신 이스라엘의 승리와 성공에 대한 예언이 나타난다(13-15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위해 풍부한 기쁨의 약속들을 마지막 부분에 제시하고 계신다(16-17절).
10장 -9장 후반부에서 메시야의 강림을 예언(9;9-17)한 데 이어 본장에서는 그의 통치를 보다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는 거짓 목자를 패하고 우상을 제거하실 것이다. 이 같은 종교적 성결 사역 외에도 흩어진 유대인들을 모으고, 대적을 궤멸시킬 것이다. 바야흐로 그의 출현으로 정의와 평화가 강같이 흐르는 새 왕국이 건설될 것이다. 이러한 예언은 역사상의 어느 왕국에서 실현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공평과의 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강림으로 성취될 것이었다. 본문에는 그 같은 그리스도를 ‘모통잇돌’, ‘싸우는 활’, ‘권세잡은 자’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4절).
10장은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에게 선을 베푸시고, 안으로는 번영을 밖으로는 승리를 보장하심으로 귀환한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대 백성들은 자기들이 관여한 모든 사건 속에서 위대한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겪은 모든 재앙과 위로에서부터 나온 것이다(1-4절). 이스라엘이 모든 대적들과 싸울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과 성취에 대한 기대를 통해 용기를 얻게 되었고, 이후에도 모든 난관 후에 영광이 있다는 희망을 통해 옛 이스라엘의 회복을 보장한다는 예언이 나타난다(5-12절).
11장 -주님은 충성하는 백성에게 은혜를 내리시되 소낙비처럼 내리신다(10;1). 그러나 분순종한 자에게는 심판을 내리시는데, 그것은 폭풍우처럼 맹렬하다. 10장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할 하나님의 축복을 언급한 반면, 본장은 그들이 받을 심판을 언급하고 있다, 이 같은 상반된 내용은 하나님의 은혜를 약용하여 죄를 범한 일부 사람들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실제 이스라엘은 포로 이후 한때 성전을 재건하는 등 회개의 조짐을 보였으나 메시야를 배척하는 죄악을 범했다(12,13절). 그 결과 또다시 성전이 로마군에 유린되는 참회를 겪어야 한다.
11장에서는 극도에 이를 유대인들의 죄 즉, 유대인들의 그리스도를 거절한 죄와 그 죄 때문에 그들에게 격심하게 내려질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 먼저 유대 나라에서 일어날 파괴에 대한 예언이 나타난다(1-3절). 그 후에 유대가 메시야의 손에 붙여지는데, 그가 남은 무리들에 대하여 후견인의 책임을 맡게 된다(4-9절). 그리고 메시야가 유대의 책임을 떠맡게 되고 돌보게 된다. 그 메시야는 그 나라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포기하시며, 그의 지팡이를 꺾어 버리시며(10-13절), 또한 그의 다른 막대기까지 잘라 버리신다(14절). 그 메시야는 멸망을 막아내는 대신에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킬 목자들에게 보내신다(15-17절).
12장 -본장에서부터 본서의 마지막 단락이 시작되고 있다. 14장까지 이어지는 이 부분은 전체적으로 메시야 왕국의 승리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시간적 배경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미래로 설정되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먼저 본장은 예루살렘의 승리(1-9절)와 회개 운동을 다루고 있다. 이는 신약 교회(성도)를 비유한 것이다. 결국 교회는 사단의 공격하에서도 승리할 것인데, 그 지체인 성도는 성령의 작용으로 죄를 자복하는 심령을 소유해야 한다(10절).
12장에서는 열국이 예루살렘과 유다를 침공하지만, 하나님께서 유다의 지도자들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힘을 주어 이기게 하신다는 내용이 소개된다. 교회를 망치려는 원수들의 노력은 자신들의 파멸을 초래할 뿐, 교회에 아무런 피해를 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1-4절). 또한, 성전을 지으려는 후원자들의 노력은 경건하며 규칙적이고 성공적으로 되고(5-6절),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에 속한 비천한 자와 연약한 자들에게 힘 주시고 보호하시며 구원을 행하실 것이다(7-8절). 이러한 모든 자비에 대한 준비와 서약으로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전반적이면서도 가장 구체적인 효과인 기도와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9-14절).
13장 -새 예루살렘은 철저한 영적 왕국이다. 그것은 성도의 회개와 의의 새 행실이라는 토대 위에서 설립될 것이다. 스가랴가 회개와 그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을 서두에 언급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이다(1-6절). 주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마5;4)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뜻에서였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 나라가 주의 희생적 죽음 위에 세워진다는 것이다(7-9절). 이런 의미에서 주님은 교회(새 예루살렘)의 주춧돌이자 머리가 되시며 우리는 그에 연합된 가지(요15;5)인 셈이다.
13장에서는 복음 시대에 관련된 약속들과 예언이 나타난다. 먼저, 죄에 대한 격멸과 용서에 대한 약속들이 나온다(1-6절). 그리고 유다 나라가 멸망할 것과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성결케 하신다는 약속이 나온다(7-9절).
14장 -기독교의 역사는 분명한 시발과 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주의 강림으로 종결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고난의 역사가 주의 출현으로 막을 내리듯, 인류 역사도 주의 재림으로 끝맺음한다. 그날이 의인(이스라엘)에게는 승리의 날이겠으나, 악인(이방 열국)에게는 최후의 파멸의 때이다(12-15절). 스가랴는 만민이 새 왕국을 중심으로 모일 것을 예언함으로 본서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난에 처한 성도에게 위로를 줌과 동시에 주의 강림을 확신하며 살아가라는 권고이기도 하다.
14장에서는 \'여호와가 오시는 날\' 즉, 그의 심판의 날에 대해여 말하고 있다. 이 여호와의 날에는 심판과 자비를 가져올 것인데, 교회에 대하여는 자비를 줄 것이며 교회의 대적자와 박해자들에게는 심판을 줄 것이라는 내용이 그 전반에 흐른다. 예루살렘을 치러 온 적국들의 파멸이 있은 후에(1-3절),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 은혜의 왕국이 설립된다(4-11절). 또한 예루살렘에서 적국들이 당하는 재앙과(12-15절), 전후의 열국 중에서 남은 백성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오고(16-19절), 모든 것이 아 거룩한 영광의 세계가 된다(20-21절).
말라기(기가 막혀 말을 못하시는 하나님)
1장 -말라기 선지자가 본서의 서두에서 하나님의 언약(사랑)을 강력히 선포하고 나선 것은 당시의 상황과 깊은 연관이 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늦어지고 기근과 흉작이 덮치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당시 사정에 통달했던 말라기는 야곱(이스라엘)에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을 재확인시킴으로써 그들을 위로하고자했다. 동시에 이것은 언약을 저버리고 타락된 예배 의식을 좇은 백성들에 대한 자연스런 경고(6-13절)의 뜻도 담고 있다.
1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주 배은망덕하여, 그들이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고 있기에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신다(1-5절). 저들은 매우 부주의했으며, 제사 제도를 지킴에 있어서 태만했다. 제사장들이 특별히 그러했는데 눈먼 희생 제물과 병 든 제물을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는 불경건을 자행하였다(6-11절). 또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거룩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상을 더럽히고 토색한 물건과 병 든 것을 가져오는 일에 꾸짖고 계신다(12-14절).
2장 -어느 단체나 사회든지 지도자의 위치는 중요하다. 특히 종교 지도자는 일반인의 종교 생활과 도덕적 영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제사장을 두심으로써 백성들을 여호와 신앙으로 인도할 책임을 그들에게 부여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에 대한 종교적 의무를 태만히 함은 물론이고 파렴치하게도 악을 조장하는 역할까지 하였다(1-9절). 많은 특권을 받은 자가 실패할 경우 그것에 대한 책임 추궁도 그만큼 더 가혹하다. 백성들의 타락(10-16절)은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2장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두 가지 커다란 규례가 있는데 이스라엘은 이것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장들을 준엄하게 책망하고 계신다. 먼저, 성직의 임무를 맡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더럽혔다. 그래서 저들의 죄는 그만큼 깊어졌고, 그 일로 인해 심히 경고를 받았다(1-9절). 다음으로 혼인 규례를 어긴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이 나온다. 이스라엘은, 이방인들과 혼인하고 아내를 부당하게 대하며 내쫓아 버리고 아내를 의심스럽게 여겼던 사람들과 제사장들에 의하여 더럽혀졌다(10-16절). 이렇게 하나님을 모독한 실제 원인은, 하나님을 완전히 자기 인간들처럼 여기며, 사실상 하나님은 안 계시다고 말하는 뚜렷한 무신론 때문이다(17절).
3장 -악인은 죄를 저지르면서도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2;17). 이에 대한 해답으로 말라기는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 날을 선포한다. 그날에, 악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이 홀연히 임하여 공의로 판결하실 것이다. 본문의 ‘내 사자’는 세례 요한을 ‘주’는 그리스도를 각각 지칭한다. 그러므로 말라기는 신약적 견지에서 본문의 예언을 저술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주의 강림에 대비한 자가 갖출 태도는 무엇인가? 그 해답은 종교적 규례(십일조, 헌물)를 충실히 준수하며 주를 경외하는 것이다. 말라기는 다른 선지자와는 달리 종교 생활에 있어서 외적 규례의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3장에는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에게 먼저 메시야의 길을 닦는 하나님의 사자가 올 것과, 메시야의 오심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계신다(1-6절). 그리고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타락시킨 것에 대해 책망하면서, 그 문제를 시정하라고 당부하신다. 특히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한 죄악을 책망하시는데, 올바르게 규례를 지킬 경우 하나님이 다시금 자비롭게 돌아가리라고 약속하신다(7-12절). 그 후에 이스라엘의 배교적 행위에 대해 책망하신 하나님은(13-15절),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자들에게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16-18절).
4장 -본장은 본서의 결론으로서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을 언급한다. 그날에 악인은 뿌리까지 잘리는 멸절을 당할 것이지만(1절) 의인은 참 기쁨과 자유를 향유할 것이다. 2절에 나타나는 ‘의로운 해’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치료하는 광선’은 그분의 해방(치유)의 능력을 의미한다. 실제 주님은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요1;4,5)영육간의 치료를 감당해 주신 분이다. 한편, 말라기는 본장의 말미에서 엘리야의 출현을 예언함으로써 구약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세대(신약)의 막을 열고 있다.
4장 하나님께서는 악인에 대한 심판과 의인들이 장차 누릴 축복에 대하여 말씀하신다(1-3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극복하라고 지시하신 다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하고(4절), 예언자 엘리야 즉, 메시야의 선구자 세례 요한이 전해 줄 하나님의 비밀을 기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5-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