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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서(聖文書)
역사서-역대상.하
(1) 책 명
히브리 성경에서 이 책명은 ‘디브레 하이야밈’(the things of the days:시대의 사건들, 그 날에 생긴 일들:)인데 계속적인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다는 뜻.
70인역의 책명은 ‘파라레이포메나(παραλειπομέυωυ, Things Omitted,생략된 일들)로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왕들에 관해 생략한 것들을 보충하기 위하여 기록한 책이란 뜻.
벌게이트 역에서는 라틴어성경‘Chronicon totius historioe divinoe\'(chronicle of the whole of sacred history,거룩한 역사의 전체적 연대, 역대기 전서)라 고 불렀다. 오늘날 영어나 한국어 성경은 여기서 연대 또는 역대(歷代)만을 따 서 붙인 것이다.
원래 히브리 성경에서는 역대상.하를 단권의 책으로 다루었는데 70인역에서 상하를 나누었고, 그 후 현대 히브리 성경이 이를 따라 1517년에 출판된 다니 엘 봄버그(Daniel Bomberg)판 때부터 분류하여 내었다.
(2) 정경상 위치
역대기는 대체적으로 열왕기 상하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포함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가 전체적으로 빠져 있다. 저자의 관심은
순전히 남왕국에 관한 것 만이다.
본서는 에스라, 느혜미야 보다도 늦게 정경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
성경은 영어 성경에따라 에스라, 느혜미야 앞에다 두었다.(역사관점에서 배열)
본서는 성질상 역사서이기 때문에 열왕기 다음에 오는 것이 정당한 순서이나 이 역사서가 케투빔의 맨 마지막 책이 되었다는 것은 이 책이 정경으로 제일 늦게 인정 받았다는 것을 암시한다.(히브리인의 유대적 사고인 율법중심 배열)
(3) 기록목적
인류의 조상 아담 이후부터 유다 백성이 포로에서 돌아올 때까지 언약 백성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계약을 지킬 때 이스라엘 백성이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계약을 어길 때 그들이 저주와 채찍을 맞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특별히 예루살렘의 성전과 예배에 대해 강조점을 두며,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들, 레위인들, 제사장들의 기능과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우상 숭배에 대한 반대와 함께 하나님의 계약에 충성하여 예배를 드리려 했던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아 왕의 행적을 찬양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복을 강조한다.(구약개론-정규남 저)
※성경은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자기계시라는 계시관점에서만 해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내신다. 인간은 타락하여 중보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를 바로 접할 수 없다. 따라서 구약을 이야기하든 신약을 이야기하든지 그 역사적 사건에서 언제나 그리스도가 전달되어야 한 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보자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 성 사이에서 맺으신 언약의 우두머리이시다. 즉, 그리스도는 그의 언약백성의 머리시오, 둘째 아담으로서 우리와 독특한 관계를 가지신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 안에서 제 시해야 한다. 구.신약 성경은 이 하나님의 역동적 통치로써 그 나라를 말하고 있기 때 문이다. 이 하나님 나라는 ‘비록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할지라도 인류와의 인격 적 교제 가운데서, 말씀에 의하여 역사 안에서 그리고 역사를 통하여 절대적 통치를 하 시는 주권적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성경에서 사건, 인물 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 인간에게 계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사건 자체를 나타내시려는 것보다도 하나님자신이 어떠한 분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 인물의 행위(좋은 점, 나쁜점)등이 초점이 되고 만다. 하나님은 초점이 되지 못하고 밀려나 가끔씩 그 이 야기에 나타나셔서 선과 악(행위)을 보응하며 간섭하시는 존재정도의 조역을 담당하게 된다. 결국 이야기 자체가 도덕과 윤리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성경이야기 나 세상의 위인전 이야기나 별 차이가 없게 된다. 또한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행위에 따라 보응하시는 신으로만 보고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이해가 굳어진다면 일반 종교에서 말하는 잡신(a god)과도 큰 차이가 없게 되고 그렇게 전락시키는 결과를 낳고 만다.
성경은 예언이다, 이때 예언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말씀하신다는 뜻이 중요 하다. 예언이라고 할 때 우리는 장래 일을 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데 이는 예언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성경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작정과 계획안에 있는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의 일면을 보여 주신다. 모든 역사적 기사에서 하나님께서는 주인공 이 되신다. 절대주권자로서 당신의 나라를 위해 당신의 언약백성을 구속의 방편으로 자 기를 계시하신다.
본서의 기록 목적은 하나님께서 언약 자손에게 왕조를 세우시는 여호와를 계시하 여 알게 하여 경외케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약 자손에게 세 번째 언약을 이루어 주시려고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신다. 그리고 그 역대(歷代)왕들을 보호하시고 그 왕조를 번영(繁榮)케 해서 세워 주시려고 그들로 포로에서 돌아와 회복하게 하 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 섭리를 통하여 그들에게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 나님을 계시해서 알게 하여 경외케 하신다.(본인의 견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열조는 물론 다윗과 세운 언약을 이루어 주시려고 부패한 백성을 아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계시하시는데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왕에게 약속을 하셨지만 나라가 솔로몬 말기에 분국이 되면서 북쪽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과 남쪽 유다가 망하는 것을 얘기해 준 것이 열왕기상‧하였다.
그럼 왜 망했는가?
북쪽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죄 때문에 망했고 남쪽 유다도 결국 직접적으로는 죄 때문에 망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우상 섬기고 하나님 멀리했으니까, 너희들을 치겠다. 해서 남쪽 유다가 망하는 것으로 끝내고 북쪽 이스라엘도 망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런데 둘 다 망했지만 포로 70년 시대를 지나서 에스라가 역대기상‧하를 기록한다. 에스라가 역대기상‧ 하를 기록할 수 밖에 없는게 뭐냐면 자기 시대에 확인이 되었다.
뭐가 확인이 되었는가?
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70년만에 돌아오게 하신 것이 확인이 되었기 때문 에 에스라는 너무도 감격해서 기록한 것이다. 그러니까 에스라는, 예레미야가 열왕기상‧하를 기록할 때에는 북쪽 이스라엘이 망한 것처럼 너희들도 망한다. 라고 예레미야가 말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너희들의 행위대로 하나님은 진노해서 멸망시킨다.
즉 공의의 하나님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기록했는데, 역대기상‧하에서는 에스라가 공의의 하나님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행위가 더럽고 추악해서 멸망시켰지만 하나님이 아주 멸망시 키지 않고 다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그래서 소위 은혜의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해서........ 우리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다. 때리시는 것으로 끝내시면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때리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싸 메시는 것으로 끝내신다.
그걸 에스라가 확인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열왕기상‧하는 주로 북쪽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서 강조를 한다. 그러면서 남쪽유다도 이들의 죄와 같이 아주 사악하게 범죄 하다가 결국 하나님께서 이렇게 멸망시켰다. 그런데 역대기상‧하는 다윗왕 부터 나와서 남 쪽 유다의 부패를 클로즈업시킨다. 왜냐하면 이렇게 죄를 많이 짓고 범죄 했는데에도 하나 님은 잠깐 70년 동안 포로 생활 시켜 때리신 다음 다시 고토로 돌아오게 해서 회복해 주셨 다. 이러한 은혜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 그리고 약속대로 이루시는 신실 하신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그래서 역대기상‧하는 은혜의 하나님을 계시하 시기 위한 것이 역대기상‧하의 주요한 기록 목적이다.
※역대기상‧하를 볼 때에는 역대기상‧하만 봐서는 않되며, 앞의 열왕기상‧하와 대비해서 이해하면 아주 쉽다. 그런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면
열왕기상‧하는 북쪽 이스라엘의 죄를 강조하면서 그런 죄가 대로 북쪽 이스라엘이 망했다.
그런데 남쪽 유다도 북쪽 이스라엘을 닮아서 그렇게 범죄를 했는데 하나님이 남쪽 유다도 때리셨 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범죄할 때에 그냥 놔두지 아니하시고 때리시는 공의의 하나님이 소개된다.
그런데 에스라가 70년 만에 포로에서 돌아와서 생각하니까 돌아왔을 때에 너무도 거창했다 바벨 론에서 돌아오는데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애굽이 쳐들어와서 요시아를 죽여 버리고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을 때에 바벨론을 반대하니까 바벨론이 쳐들어와 엘리야김때에 포로로 잡아간다. 그 때에 성전 다 헐어 버리고 또 나중 시드기 야때에 보물까지 다 가져가 버리고 성전을 불질러 폐허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70년후에 에스라 가 돌아올 때에 상상을 못했던 것이다. 물론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을 해서 소망은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상황이 너무도 급박하니까 예루살렘이 완전히 불타버리고 폐허가 되어버리고 그 리고 강대한 바벨론제국에게 유다백성들이 모두가 포로가 되어버렸으니까 우리가 무슨 힘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느냐고 반신반의했을 것이다. 다니엘 선지자가 나와서 사자굴 속에 들어가서 살아 나오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속에 들어가서 살아 나오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또 에스더 시대에 다 죽을 줄 알았는데 127도에 흩어 진 유다 자손들이 다 살아나니까 하나님이 지키시는구나 그러면 우리가 70년만에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소망 중에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돌아오는데 상상 못할 정도로 돌아온다. 고레스 가 나와서 바벨론을 치고 바벨론이 망하면서 고레스가 너희자손들 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해서 유다 자손들이 에스라을 따라서 돌아왔다. 돌아오는데 그냥 돌아오는게 아니다 빼앗겼던 예루살렘의 보물을 전부 가지고 돌아온것이다. 이런 놀라운 사실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그 보물 다 가지고 돌아올 뿐 아니라 돌아오는데 지도상으로 보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 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다 지금이야 승용차도 있고 기차도 있으니까 쉽지만, 그 당시에는 엄청난 거리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하다가 그냥 자기들끼리 가다가 중간에 다른 족속들 만나 서 당하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고레스 왕이 나타나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사이 일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스라엘백성들이 돌아가는데 도와주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앞으로는 상납을 바벨론으로 할 것이 아니라 유다에게 하라고 한다. 왜? 유다백성들이 성막을 다시 지어야 되고 건설작업을 해야 하며 유다 자손들이 돈이 많이 필요함으로 그러니까 고레스왕, 파샤 제국에 바 쳐야될 조공들을 전부 유다에게로 바치게 한 것이다. 그래가지고 서편 국가들이 전부 조공을 유 다에게 바치게 된 것이다.
그때 에스라가 첫 귀환자로 일차 귀환해서 에스라가 지도자로써 예루살렘성전을 보수하게 되 는데 그 상황을 몸소 겪다가 보니까, 진짜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임을 알 고 유다자손들에게 오고 오는 세월 동안 계속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롭고 은혜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인가를 전달해 주려고 역대기상‧하를 기록한 것이다. 이런 전체적인 역사적 배경을 모르면 역대기상‧하는 단지 이스라엘역사 정도로 밖에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나 배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배우려는 것이다. 열왕기상‧하에도 역사를 배우려는 것이 아니다 그 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을 배운 것이다. 역대기상‧하를 에스라가 기록할 때 에는 우리의 하나님이 은혜의 하나님이 아니냐, 우리가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었느냐 다윗 왕부터....... 그러니까 은혜의 하나님을 강조하려면 백 성들의 죄를 많이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고 한 것 이다. 그래서 에스라는 남쪽 유다의 죄를 클로즈업 시킨다. 이제 우리가 역대기상‧하를 잘 살펴 보면 안다. 그래서 역대기상‧에는 은혜의 복음이 듬뿍 듬뿍 담겨져 있다.
(4) 내용 분해
● 성경 전체적인 분해 도식표 (열왕기상.하와 역대기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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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권 여호와의 언약 (구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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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섭리를 통한 언약 (창세기~에스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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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통치언약 성취섭리 (룻~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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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다윗 왕국의 창건 (룻~삼하) |
제2절 이탈왕조의 멸망 (왕상․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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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윗왕의
출생족보
(룻기) |
2.다윗왕국 의 준비
(삼상1:~15:) |
3.다윗왕국 의 건립
(삼상:16~삼하10:) |
4.다윗왕국 의 보호
(삼하11:~24:) |
1.왕조이탈의
과정
(왕상1:~11:) |
2.왕조이탈의
결과
(왕상12:~16:) |
3. 왕조에 대한
교훈
(왕상17:~왕하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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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윗의
출생준비
(1:~2:)
(1)유다자손 의 수난
( 1 : )
(2)유다자손
의 보호
( 2 : ) |
1) 마지막
사사의 등장
(1:~7:)
(1) 사무엘
의 출생
(1:~2:11)
(2) 사무엘
의 성장
(2:12~36)
(3) 사무엘
의 소명
( 3 : )
(4) 엘리가문
의 패망
(4 : )
(5) 사무엘
의 승리
(5:~7:) |
1) 다윗왕
의 시련
(16:~31:)
(1)첫번째
시련
(16:~20:)
(2)두번째
시련
(21:~25:)
(3)세번째
시련
(26:~31:) |
1)왕가의
타락과비극
(11:~18:)
(1) 왕가의
타락
(11:~14:)
(2) 왕가의
비극
(15:~18:) |
1) 솔로몬의
왕권수립
(1:~4:)
(1) 솔로몬왕의
즉위
(1:1~2:12)
(2 )반역자숙청
(2:13~46)
(3) 솔로몬의
번영
(3:~4:) |
1) 이탈초기의
부패
(12:~14:20)
(1) 르호보암의
부패
(12:1~24)
(2) 여로보암의
부패
(12:25~14:20) |
1) 표적의 교훈
(17:~19:)
(1)사르밧에서의 표적 (17:)
(2)아합왕에게의
표적 (18:)
(3)엘리야의
피신 (19:) |
|
2) 예언으로
교훈
(20:~22:40)
(1)승리를 예언함
(20:1~34)
(2)저주를 예언함
(20:35~21:)
(3)거짓을 예언함
(22:1~40) |
|
2)다윗의
출생과정
(3:~4:)
(1) 유다기업
을 요청
( 3 : )
(2) 유다기업
의 계승
( 4 : ) |
|
2) 왕국의
회복과교훈
(19:~24:)
(1)다윗왕국
의 회복
(19:~22:)
(2)왕국에
대한교훈
(23:~24:) |
|
2) 유다왕조의
부패
(14:21~15:24)
(1) 르호보암의
부패
(14:21~31)
(2) 아이얌과
아사의 부패
(15:1~24) |
|
2) 솔로몬의
성전건축
(5:~8:)
(1) 성전건축
준비 (5:)
(2) 성전건축
준공 (6:)
(3) 기타시설
( 7 : )
(4) 솔로몬왕의
기도
( 8 : ) |
|
2) 다윗왕국
의 형통
(1:~10:)
(1)반역자
들의 진멸
(1:~4:)
(2)다윗왕국
의 번창
(5:~10:) |
|
3)교훈의 결과
(왕상22:41~
왕하1:)
(1) 남북왕조의
부패
(왕상22:41~53)
(2) 이탈왕조의
저주(왕하1:) |
|
2) 사울왕
의 치세
(8:~15:)
(1) 사울왕
의 즉위
(8:~10:)
(2) 사울왕
의 치적
(11:~15:) |
|
4)표적으로교훈
(2:~8:15)
(1)요단을 가르는
표적 (2:)
(2)물이 솟아나는
표적 (3:)
(3)백성에게행한
표적 (4:)
(4)문둥병을고친
표적 (5:)
(5)대적에게행한
표적 (6:)
(6)백성에게행한
표적
(7:~8:15) |
|
3) 왕권수립의
결과
(9:~11:)
(1) 솔로몬의
영화 ( 9 : )
(2) 솔로몬의
타락
(10:~11:8)
(3) 솔로몬의
종말
(11:9~43) |
3) 이탈왕조의
부패
(15:25~16:)
(1) 나답과
바아사의 부패
(15:25~16:8)
(2) 왕들과
아합의 부패
(16: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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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권 여호와의 언약 (구약) |
|
제 1편 섭리를 통한 언약 (창세기 ~ 에스더) |
|
제4장 통치언약 성취섭리 (룻~에) |
|
제2절 이탈왕조의 멸망
(왕상․하) |
제3절 다윗 왕조의 계승
(대상․하) |
제4절 다윗 왕조의회복
(에스라~에스더) |
|
4. 북왕조
패망과정
(왕하8:16~17:) |
5.다윗왕조 의 보호
(왕하18:~25) |
1. 다윗 왕조의 수립
(대상) |
2. 다윗 왕조의
보호
(대하) |
1.성전제사의 회복(에스라) |
2.유다왕국의 회복(느헤미야) |
3.유다자손의 보호(에스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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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남북왕조
의 부패
(8:16~15:7)
(1)남왕조의 부패
(8:16~29)
(2)북왕조의 부패
(9:~10:)
(3)남왕조의
부패
(11:~12:)
(4)북왕조의 부패
( 13 : )
(5)남왕조의 부패
(14:~15:7)
2)북왕조의 패망
(15:8~17:)
(1)북왕조의 혼란
(15:8~31)
(2)남왕조의 혼란
(15:32~16:)
(3)북왕조의 멸망
( 17 : )
|
1)다윗왕조 의 존속
(18:~23:30)
(1)히스기야
의 통치
(18:~20:)
(2)므낫세와 아몬의 통치
( 21 : )
(3)요시야의 통치
(22:~23:30)
2)다윗왕조 의 시련
(23:31~25:)
(1)다윗왕조 의 혼란
(23:31~24:)
(2)유다백성 의 포로
( 25 : ) |
1)다윗왕국의 계보 (1:~9:)
(1)다윗이전의
계보 (1:~2:)
(2)다윗이후의
계보 (3:~4:23)
(3)세 지파들의
계보 (4:24~5:)
(4)레위지파의
계보 ( 6 : )
(5)기타지파의
계보 (7:~8:)
(6)귀환한지파의 계보 ( 9 : )
2) 다윗왕의즉위
(10:~17:)
(1)즉위의 경위
(10:~11:9)
(2)왕위의 위용
(11:10~12)
(3)통치의준비
(13:~15:)
(4)찬송과감사
(16:~17:)
3)다윗왕의 치적 (18:~29:)
(1) 대적의진멸
(18:~20:)
(2) 다윗의 실수
( 21 : )
(3) 성전건축 준비
( 22 : )
(4)왕국의 재정비
(23:~27:)
(5)유언과 찬양
(28:~29:)
|
1)솔로몬왕의번영
(1:~9:)
(1)성전건축준비
(1:~2:)
(2)성전건축과공사
(3:~4:)
(3)찬송과기도
(5:~6:)
(4)기도와응답
( 7 : )
(5)솔로몬의 형통
( 8 : )
(6)솔로몬의 명성
( 9 : )
2)분국시대의
보호 (10:~28:)
(1)르호보암의
치정시대
(10:~12:)
(2)아비야와
아사시대
(13:~16:)
(3)여호사밧의
전기시대
(17:~18:)
(4)여호사밧의
후기시대
(19:~20:)
(5)여호람,아하시야시대 (21:~22:)
(6)요아스의
치정시대(23:~24:)
(7)아마샤와
웃시야시대(25:~26:)
(8)요담과 아하스
시대(27:~28:)
3)다윗왕의 존속
(29:~36:)
(1)히스기야의
개혁 (29:~31:)
(2)히스기야의
번영 ( 32 : )
(3)므낫세와
아몬의 타락
( 33 : )
(4)요시야의 혁신
(34:~35:)
(5)포로와 귀환
( 36 : ) |
1)귀환과
성전재건
(1:~6:)
(1)유다
백성의귀환
(1:~2:)
(2)성전
재건공사
(3:~4:)
(3)성전재건 완공(5:~6:)
|
1)귀환과
성곽중건
(1:~6:)
(1)느헤미야 의 귀환
(1:~2:)
(2)성곽의
중건공사
(3:~5:13)
(3)성곽공사 의완공
(5:14~6:)
|
1)유다인
보호준비
(1:~2:)
(1)와스디
의 폐위
( 1 : )
(2)에스더
의 즉위
( 2 : ) |
|
2)살해음모
실패
(3:~6:)
(1)유다인
살해 음모
(3:~4:)
(2)살해음모 의 실패
(5:~6:) |
|
2)왕국의
통치회복
(7:~13:)
(1)치리자세운 백성
( 7 : )
(2) 말씀에의한 통치
( 8 : )
(3)왕국에
세운 언약
(9:~10:)
(4)왕국의
인구조사
(11:~12:)
(5)왕국백성의 성별( 13 : )
|
|
2)귀환과 제사회복
(7:~10:)
(1)레위족
귀환과번제 (7:~8:)
(2)레위자손 들의성별
(9:~10:)
|
|
3)유다인
완전보호
(7:~10:)
(1)유다인
살해모면
(7:~8:)
(2)유다인
대적진멸
(9:~10:) |
(5) 기록자와 연대
본문에서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바바바드라 15a\'에 의하여 에스라라고
언급하고 일반적으로 복음주의 신학자들(영,영거,아처,올브라잇 등)도 동일하게 주장함.
역대기 기록을 에스라라고 할 수 있는 이유
◎역대기 내용을 볼 때, 아담부터 유다 포로들의 예루살렘 귀환 때까지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순수한 예배를 강조한 점, 제사장과 레위인의 임무 와 활동을 상세히 설명한 점, 우상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축복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에게 저주와 형벌을 준다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고,
◎에스라가 유다 포로들의 예루살렘 귀환 백성 중의 한 사람이었고 아론의 자손인 레위 지파였 으며, 모세의 율법에 능한 학자였고(스 7:1~10), 에스라 당시 예루살렘의 총독이었던 느혜미 야의 많은 장서를 사용하여(멕카비 후서 2:13~15)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쓸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기 때문임.
에스라 당시에 역대기가 쓰여졌다는 이론에 가장 반론을 펴는 이유
◎역대상 3;19~24에서 스룹바벨(BC520경)의 6대손까지 기록되었기 때문에, 역대기의 연대는
주전 350년경 이전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드라버는 역대기가 쓰여질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는 주전 333년 좀 지나서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대상 3:19~24에서 스룹바벨의 6대손 까지 기록되었다.고 볼수없다. 영(YOUNG) 이 지적한대로 19~24절을 자세히 보면 스룹바벨의 족보는 다만 그후 두 세대까지만 언급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스룹바벨의 아들은 므술람, 하나냐, 하수바, 오헬,베레갸, 하사댜, 유삽헤셋이요 (19절-21절), 하나냐의 아들은 블라댜와 여사야이다(21절). 그리고 다윗의 혈 통에 관계되는 다른 4가족들이 언급된다. 이와 같은 본문의 내용은 결코 스룹바벨 후에 6세 대를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70인역과 벌게이트역이 히브리 본문과 차이가 있어, 많은 구 약학자 들이 히브리 본문을 고치려 하지만 히브리 본문이 잘못된 것이라는 분명한 이유가 없는데 고치려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취급하는 과오를 범하게 될 것이다.
◎역대상 29:17에 “금 다릭 일만”을 성전 역사를 위해 다윗 때에 바쳤다고 했는데, 다릭 (DARIC)은 페르시아의 다리오 1세 (BC. 520~486) 를 따라 부른 동전으로서 다윗 때에 벌 써 다릭의 동전을 썼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서, 역대기가 포로 후기에 쓰여진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다릭이 다리오 1세를 따라 작명된 것이 확실치 않으며, 또한 다리오1세를 따라 작명 되었다 할지라도 에스라는 다윗 왕 때 성전 건축을 위해 바친 금을 계산하여 에스라 당시의 금 단위인 다릭으로 환산하여 기록함으로써 에스라 당대의 사람들에게, 보다 잘 이해하게 했 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구태어 이것 때문에 역대기가 에스라 때보다 훨씬 뒤에 기록 되었 다고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6) 역대기의 자료
역대기의 기록을 볼때, 저자는 전에 있던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고 하나님의 영감 가운데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구약 가운데 창세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의 내용과 이스라엘 족보, 다윗의 통치, 솔로몬의 통치 등을 기술 함에 있어서 많은 비슷한 면을 보여 주지만 그 내용이 어떤 경우에는 보다 상 세하고, 자료의 순서나 배열이 다른 정경의 책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역 대기의 저자는 정경의 책들과 다른 자료들을 사용하되 예루살렘 성전과 이스 라엘의 예배 의식을 강조하면서 새롭게 아담부터 고레스왕의 칙령까지의 역사 를 기록하고 있다. 역대기 내에서 언급되는 많은 자료들은 저자 자신이 기록 하면서 사용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들은 다음 과 같다.
- 이스라엘 열왕기(대상 9:1, 대하 20:3)
- 유다와 이스라엘 영왕기 (대하16:11, 25:26, 28:26, 32:32)
-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 (대하27:7, 35:27, 36:8)
- 이스라엘 열왕기 행장 (대하33:18)
- 열왕기 주석 (대하24:27)
-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 및 선견자 갓의 글 (대상 29:29)
- 선지자 나단의 글과,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과, 선지자 잇도의 묵시책
(대하9:29)
-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 (대하12:15)
- 선지자 잇도의 주석책 (대하 16:22)
-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글 (대하20:34)
- 아모쓰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묵시책 (대하 32:32)
- 호새의 사기(史記) (대하33:19)
위와 같은 많은 자료들이 언급되는 가운데 역대기 저자가 직접 인용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으나 위의 자료들을 참조했음을 시사하고 있 다. 예로서, 역대상 9:1을 보면 “온 이스라엘이 그 보계대로 계수되고, 이스라 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 니”라고 말하면서 역대 저자는 자기가 기록하는 내용이 이스라엘 열왕기에도 기록되어 있는 내용임을 밝혀 주면서 자기가 참조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가 지금 알 수 없는 기록, 일기, 공문서를 참고하였다. 그는
또한 이전의 구약성경을 참고하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집필하는 목적에 따라 기록하므로 따라서 구약성경은 이 부분에서 중복되어 있다.
중복된 의미 : 반복은 중요함을 의미한다, 적어도 성경의 이 부분을 무시하지는 말라고 주의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열왕기나 역대기를 아무런 뜻이 없는 부분 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취급하신 이 야기가 기록되어 있어 이따금 성경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7)역대기 상.하 요절 및 주제
본서의 요절은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대하21:7)는 말씀이며, 주제는 “왕조를 세우시는 여호와”라는 말이다.
다윗의 집하면 유다를 말하는데 이 유다 백성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한 이유가 뭐냐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언약한 약속 때문에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이 말씀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가 멸망 받지 아니하고 구원 얻는 것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영원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약속, 예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지옥 보내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신다. 똑같은 이치로 남쪽 유다를 하나님이 멸망시키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즐겨하지 아니하는 이유는 유다 백성들이 의롭게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착하게 잘 살기 때문에 멸망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다윗과의 약속 때문이다. 이것이 성경전체의 맥락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을 모르니까, 자꾸만 당신 그러다가는 하나님 미움 받는다, 그렇게 행동해 가지고 하나님의 복을 받겠느냐,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지옥에 간다... 이렇게 쉽게 말을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은 성경과는 거리가 먼말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남쭉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은혜를 더 많이 깨닫게 하려고 많은 죄에 거하게 한 것이다.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은 죄 가운데 거하게 하신다고 사도 바울이 하니까 사도바울이 미리 고약한 사람들의 질문을 알고 그러면 은혜를 더 많게 하려고 죄를 더 지으리요 하고,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자기가 묻고 자기가 대답을 한다. 죄에서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에 더 거 하리요, 하면서 사도 바울이 말을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죄 가운데 거하게 하셨다.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게 하실 수 있는데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도록 하나님은 버려두셨는가?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이 고난 많은 세상에서 산다. 그럼 이 세상이 나쁜 세상인가? 좋은 세상인가? 그런데 좋은 세상이다, 라고만 말하면 사람들이 못 알아 듣는다 나쁜 세상이지만 좋은 세상이다, 라고 해야 분명하다.
죄 많고 더럽고 저주가 덥힌 세상이니까 나쁜 세상이다. 그러나 이런 세상을 삶으로 우리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더 깨닫고 은혜를 영광을 찬미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쁜 세상도 좋은 세상이다. 이게 말 되는 것 같지만 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쁘지만 좋은 세상이기 때문에 범사를 감사하라는 것이다. 망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망하는 것 다 싫다 그러나 망함으로 하나님을 더 깨달을 수 있다면 망하는 것도 나쁘지만 좋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하게 하셔야 된다. 그러니까 이사야서 마지막부분에 보아도 하나님이여 이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마음을 허락해 달라고, 돌아가게 하시면‧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해 주시면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나이다 라는 기도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게해 줘야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지 하나님이 돌이키게해 주지 않으면 못 돌아가는 것이다. 죄도 자기 마음대로 지은 줄로 안다. 죄도 자기 마음대로 못 짓는다 하나님이 죄 짓도록 버려두어야 죄도 짓는다. 생각해 보라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따 먹었는데 하나님께서 따 먹도록 버려둬 버렸으니까, 따 먹지 하나님이 옆에 서 가지고 있는데 뱀이란 놈이 와서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고 하더냐’하니까 하와가 ‘먹는 날에는 죽는다고 그러더라’하니까 뱀이 ‘결단코 안 죽는다’고 할 때 하나님이 옆에 있다가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죽는다고 했는데...’ 이러고 얘기했으면 안 따 먹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은 따 먹도록 내 버려 두어 버린다.
그럼 하나님이 몰라서 버려두었겠는가? 아니다. 다 알면서도 버려두셨다 따 먹도록.... 그래서 따 먹은 것이다. 하나님이 못 따 먹도록 붙들면 못 따 먹는다. 따 먹을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따 먹을려고 하는 손목을 쳐서 부러뜨리시던가, 넘어가는 목을 하나님이 막아 버리던가... 그러면 못 먹었을 것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이 버려두는 것이다. 버려 두어야 죄를 짓는 것이지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는데 어떻게 죄를 짓겠는가! 그러니까 죄를 범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나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것이 확실한데 그걸 모르니까 자꾸만 남쪽 유다가 죄를 더 많이 짓고 살았다 이것이 무엇을 위하는 것이냐?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도 북쪽 이스라엘 멸망당하는 것을 남쪽 유다로 보게 해서 ‘ “봐라, 북쪽 이스라엘은 너희들보다는 죄를 덜 지었지만 완전히 멸망했고’ 북쪽 이스라엘은 남쪽 유다보다 죄가 적었다. 그런데 죄가 덜한 북쪽 이스라엘은 일찍히 완전히 나라가 멸망당해 버렸고 남쪽 유다는 북쪽 이스라엘보다 죄가 더 많은 데에도 아주 멸망시키지 않고 잠시 하나님께 매 맞는 것이다. 북쪽 이스라엘은 회복이 없는 멸망이고 남쪽 유다의 멸망은 회복이 전제된 멸망이다. 그러니까 죄가 더 많은 나라가 하나님께 은혜를 더 많이 입은 것이다. 그래서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는 말이다.
빚 많이 진 사람이 탕감 받았을 때에 그 사람이 은혜를 더 많이 받은 것이다. 천만원 빚진 사람하고 백 만원 빚진 사람하고 둘다 탕감받았는데 누가 더 은혜를 더 입었는가? 천 만원 빚진 사람이 은혜를 더 입은 것이다. 성경에도 나온다.
역대기상‧하는 은혜의 하나님을 밝혀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남쪽 유다 다윗의 집을 멸망시키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는 이유는 선하고 깨끗해서 즐겨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항상 등불 주시겠다고 다윗과 약속하시고 허락하셨기 때문에 멸망시키기를 싫어하셨다는 것이 역대기하21:7절에 나오는 요절인 것이다
그 다음 본서의 주제는 ‘약속을 이루시는 은혜의 하나님’ 이다.
‘ 다윗과의 약속을 이루시는 은혜의 하나님 ’ 이것이 역대기상‧의 주요한 주제이다.
(8)역대기 상.하 내용의 개요
본서의 내용 개요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세워주시고 끝까지 보호해 주시는 내용인데, 상1장에서 29장까지는 다윗 왕조의 수립에 대한 내용이고, 하1장에서 36장까지는 다윗 왕조의 보호에 대한 내용이다.
내용을 보면 크게 상‧하로 연결이 되어 있다. 그런데 원래는 역대기상‧하도 그렇고 열왕기상‧하도 그렇고 상‧하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중간에 성경학자들이 상과 하로 분리해 놨다. 성경을 연구할 때에 성경제목 창세기니, 출애굽기니 이런 것 들은 없다. 라고 생각하고 그냥 하나의 책으로 통일성 있는 내용으로 봐야 된다.
역대기상에는 역대기상1:에서 29장까지는 다윗왕국을 세우는 것이 나와 있고 하에는 다윗왕국의 보호가 나와 있다. 즉 하나님이 다윗왕국을 세워서 지켜 주신다는 것이다.
즉 역대기는 다윗 왕국을 하나님이 세워 주시고 그 왕국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 왜? 은혜의 하나님이니까. 하나 더 덧붙인다면 다윗왕국이 아무리 부패하고 타락하여도 하나님은 다윗왕국만은 보호 하신다. 왜? 다윗과의 언약 때문이다.
솔로몬은 첩을 천명이나 얻었다 이렇게 더럽고 추악하고 가증해도 그 왕국을 하나님이 보호하고 지키셨다. 이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가 믿고 천국에 갈 소망을 가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앞에 나타나는 공의의 하나님으로만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자신이 없다 그래 일찍 포기해 버리고 기왕 천국에 못 갈 바에야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하고 싶은 짓이나 실컷 해서 세상에서의 원이라도 없앨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제일 불쌍한 자라고 했다.
솔로몬은 그만 두더라도 다윗도 하나님이 아내 주었으면 족한 줄 알고 살아야 할 터인데 세상에 자기를 위해서 전쟁터에 가서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그 아내를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적진 속에 집어넣어서 죽이는 이런 고약한 인간이 어떻게 천국을 가겠는가?
이런 인간은 공의의 하나님만이라면 다윗과 같은 이런 얌체 같은 인간은 지옥을 보내도 보통 미적지근한데 보내면 않된다 최고로 뜨거운 아랫목으로 보내야한다. 솔로몬도 마찬가지로 다윗이 그래 놓으니까 조상 닮아가지고 밑으로 후손들이 형편없이 행하는 것이 이제 자세히 나온다. 이렇게 다윗의 죄, 솔로몬의 죄를 부각을 시키면서 북쪽 이스라엘 왕들의 죄도 간간히 이야기를 하지만 남쪽 유다 왕들의 죄를 모조리 들어낸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다시 나라를 회복해 주셨다. 그러니까 죄 많은 너도 안심하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다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가 있다.
모든 사람들은 구약은 율법이라고 생각을 한다. 아니다 얼마나 농도 짙은 복음이 이 구약 속에 담겨져 있는지 모른다. 그걸 자세히 설명해 보면 우선 계보, 즉위, 치적, 이렇게 다윗왕의 모습이 다 나온다. 다시 말해 29장이나 되는 이 많은 분량에서 다윗이야기만 한다.
그럼 다윗이 잘한 얘기를 하는 건가? 아니다. 다윗이 못된 짓을 한 것 자세히 다 말을 한다. 왜? 이런데도 내가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 아니한다. 이유는? 약속 때문이다. 그만큼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시면 아무리 다윗이 더럽고 추악한 일을 해도 그 약속 변치 아니하신다.
우리 인간은 영원한 친구하자고 해 놓고도 좋을 때에야 친구이지 조금만 서운하게 하면 헐뜯고 비난하고 멀리하고 다시 안 만나고 이게 인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무조건 사랑스러우니까 기쁘신 뜻대로 다윗을 택해서 내가 너로 하여금 이스라엘 왕가를 세워서 너의 왕위가 끊이지 않고 영원하도록 왕의 등불을 주겠다고 하나님이 무조건 약속한 것이다. 그걸 아가페 사랑이라고 한다. 아무 조건 없은 하나님의 사랑은 언약적인 사랑이다....... 영어로 실패하지 않는 사랑(Unfailing love)
이렇게 한 번 언약을 해 놓으면 이유가 없다. 어떠한 잘못이 있어도 그 언약은 하나님이 지키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곳이 아가서이다.
아가서에 보면 술람미 여자와 솔로몬의 꿈속에서의 사랑의 노래인데 술람미가 솔로몬과 약혼을 했는데 그 형제들이 그녀를 미워한 나머지 술람미를 내몰아서 들판에 가서 양떼를 먹이게 된다. 그러니 햇빛에 그을리고 들바람에 그을려가지고 얼굴도 새까맣게 타 버리고 손도 거칠어져 버렸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죽고 못 산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묘사이다.
바로 이것이다. 다윗이 저렇게 더럽고 추악했어도 하나님은 다윗과 한번 맺은 언약, 사랑의 언약을 변함없이 지키시면서 그 다윗왕국을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신다.
이래야 믿을만한 대상이 되지 않겠는가?
그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면 역대기상에는 다윗의 계보를 말한다. 계보는 왜 말하는가?
야곱의 아들 유다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야곱이 늙어서 죽을 무렵에 열두 아들들에게 전부 복을 비는데 그 때 유다에게는 네게서는 왕의 홀이 끊이지 않는다고 야곱이 죽을 무렵에 유다를 향해서 이미 약속을 했다. 그러니까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가는 유다지파에서 나와야한다. 그거 하나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계보를 말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다윗의 계보를 밝혀줌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 계속 읽어보면 유다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 야곱, 이삭, 아브라함, 셈, 노아, 아벨, 아담, 하나님까지 여기서는 또 아담과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해 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계보를 말해주면서 봐라!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유다지파에서 다윗이 나오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이 세워 주신 하나님의 왕가이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려는 것이다.
그 다음 두 번째는 다윗이 왕이 되는 데에도 자기가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다윗에게 왕의 기름을 부으라고 해서 선지자가 왕의 기름을 부으려고 이새의 아들들 중 채택을 하는데 준수하게 생긴 여섯 아들을 다 보여 주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를 않는다. 그래 제일 못생긴 다윗을 불러 왔는데 하나님은 그 때서야 제일 못난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신다. 그런데 다윗 앞에 사울이라는 왕이 나온다. 이 사울 왕이 얼마나 강성한지 다윗을 몇 차례나 죽이려고 한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지켜 가지고 결국은 하나님이 다윗을 왕위의 등극하도록 섭리해 가신다. 이유는 역시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미 약속대로 유다를 통해서 왕 준다는 약속대로 유다지파에서 다윗이 나왔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것도 하나님이 오르게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윗이 정치하는 것이 나온다. 그렇게 하나님이 다윗을 세워가지고 나라를 견고하게 하신다.
다윗이 왕위에 오르니까 사울이 왕 되었을 때에만 해도 주변 이방군대들이 들어 와 가지고, 특히 불레셋 장군 골리앗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나라가 완전히 망했다. 사울도 도망가 버리고 싸울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초동목동 다윗이 가서 블레셋 장군을 무너뜨려 승리를 거두어 다윗이 왕위에 올랐다하니, 이 소문이 나니까 주변 국가에서 조공이 들어오는데 다윗이 40년 통치기간에 최대의 부강국이 되어 버렸다. 이게 치적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출생케 해서 세워가지고 나라를 평안하게 해 주셨다. 이것이 역대기상에 기록된 말씀이다.
그 다음 역대기하는 솔로몬왕의 번영과 분국시대의 보존, 다윗왕조의 보호가 나온다.
그러니까 역대기상에는 다윗시대를 말하고 하에는 솔로몬왕의 통치 후 분국시대에 하나님께서 보존해서 다윗왕조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그러니까 상에는 다윗왕만 얘기하고 하에는 솔로몬왕, 그 다음 나라가 갈라진 다음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데 까지. 왜 돌아온데 까지 말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려니까.
하나님이 이처럼 은혜로 다윗왕조를 세워서 부강하고 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었지만 이스라엘은 솔로몬때로 부터 부패하고 타락해서 나라가 갈라져 버리고 온갖 이방신들이 범람하고 타락하고 더럽고 추악한 민족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왕조를 이탈한 북쪽 이스라엘은 전부 멸망시켜버리고 남쪽 유다는 다윗과의 약속 때문에 다윗왕가를 멸망시키기를 즐겨 아니하고 다시 때리시고 싸 메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역대기하에서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역대기상‧하가 말하는 간략한 요지이고 이게 근본 원리이다.
역대기상‧하를 다 모르면 이런 논리가 안 빠져 나온다. 전체를 파악해야 이 논리가 빠져 나온다.
하나님이 야곱을 통한 약속대로 유다지파에서 다윗이 출생케 해서 왕이 되게 만들어 가지고 왕가가 평안하도록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셨다. 그런데 솔로몬이 타락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번영하게 해 주셨고 나라가 갈라져서 부패했는데에도 하나님은 그 나라를 보존하고 지켜 주셨다. 급기야는 하나님이 때리셔서 진노하셨지만 다윗왕조만은 다시 회복해 주셨다. 이유는 약속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성경에서 이 논리가 사실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면 된다. 그러니까 성경을 살펴볼 때 정말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한대로 유다지파 자손인 다윗을 세우는 것을 확인하고 인정하면 된다. 다윗 세우는 장면도 룻기서를 다시 한번 상기하시면 된다.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다윗을 출생시키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훤히 내다보이도록 섭리하신다. 인간이 볼 때는 어렵다, 절망이다 이렇게까지 하나님이 내려가게 만드신다. 그런 다음 전연 인간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에 하나님은 가능한 쪽으로 이끌어 가심으로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줄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이걸 우리가 성경에서도 누누이 찾아 볼 수 있다.
(9)역대기 상.하 신학적 의미
역대기상‧하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 나가는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가?
약속의 백성은 절대로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
잠시는 망한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하나님의 진노는 삼사대까지 이르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수천대 이르게 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삼사대, 잠깐 이른다. 70년 이건 잠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수천대라는 말은 영원히라는 말이라는 말과 통하는 말이다. 이것이 구약이다.
그러니까 약속의 백성인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이다 그리고 자비와 긍휼은 영원하다. 이런 하나님이 역대기상‧하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삼사대 이르는 진노를 영원한 멸망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약속의 백성에게는 절대 영원한 진노는 없다. 잠깐의 진노는 있다 그래서 그것을 채찍이라고 한다. 그것은 사라의 채찍이지 멸망이 아니다. 잠시 때리시고 다시 싸 메어주시는 하나님이 역대기상‧하에 기록이 되어 있다.
신학적 의미를 다시 한 번 말하면.
‘ 약속의 백성은 절대로 영원히 멸하지 않으신다 ’
이것이 역대기상‧하에 계시한 하나님의 본성이시고 속성이시다.
여기서 ‘절대로’, ‘영원히’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영원히 멸하지 않으신다. 결국 구원 얻고 못 얻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에 달려 있고 그 작정 속에 예정과 예정 속에 선택과 유기에 의해서 이미 하나님의 구원은 확정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역대기상‧하에서 확실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는데 역대기상 1:-29장까지는 다윗왕조의 수립, 다윗왕조가 세워지는 내용을 밝혀 준다.
그럼 다윗왕조가 세워지는 것이 우리와 무슨 중요한 관계가 있는가
한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나의 신앙을 좌우하는 생명의 말씀이 되어질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냥 역사적으로만 보면 아무 관계가 없다. 다윗왕조가 세워지는 일이나 대한민국이 세워지는 일이나 다 역사상에서 나타나는 일들이므로 단순하게 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큰 의미는 다윗왕조의 수립 내용이 역대기상1장부터 29장까지에서 밝혀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히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번 언약하시면 그 언약대로 반드시 이루시고 그 언약 자손을 반드시 보호하신다. 이것을 밝혀 주려고 역대기상에서 다윗왕조의 수립내용을 밝혀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열조와의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약속대로 유다지파인 다윗왕조를 수립하고 번창케하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여기에서 보여 준다.
그러니 1장에서 29장까지 살펴보면서 우리 마음속에 다시 확증이 되어지고 확인이 되어지고 확신이 와야될 확신있는 내용은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이것만 확인이 떨어지면 된다.
역대기에 나오는 이름을 외운다거나 사건을 구체적으로 외운다거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역대기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불변하시고 약속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만 우리가 알아야 한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은 이처럼 단조롭다 또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하는 메세지의 중심 내용도 아주 단조롭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니까 성경은 복잡한 것 같고 성경은 어려운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성경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또 우리가 얻어야할 교훈도 아주 간단하다.
하나님은 이처럼 신실하시다는 그 하나님을 계시하시려고 역대기상을 기록한 것이다.
(10) 열왕기와 역대기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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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 |
열 왕 기 |
역 대 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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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자 |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인 선자 예레미아 |
요사닥의 아들이며 제사장으로서 모세의 율법에 통달한 에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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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록
연 대 |
주로 예레미아가 활동하던 시기인
유다의 바벨론포로 전후인
주전600~550년경 |
에스라가 주로 활동하던 시기인 주전 450~400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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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절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왕하17:18) |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으로 더불 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 자손에 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 하셨음
이더라.”(대하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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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
이탈왕조를 멸하시는 여호와 |
언약(다윗)왕조를 보호하고 세우시는
여호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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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록
목 적 |
하나님께서 언약자손에게 이탈자를 멸 하시는 여호와를 계시해서 알게 하여 경외케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자손에게 세 번째 언 약을 이루어 주시려고 다윗왕조를 이탈 하여 범죄한 북쪽 이스라엘은 아주 멸 망시키신다. 그러나 이탈하지 아니한 남쪽 유다 왕조는 아주 멸망시키지 아 니하시고 이방 포로 중에도 유다의 왕 족을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섭리를 통하여 그들에게 언약을 이 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계시해서 알게 하여 경외케 하신다.
●이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의 통치 아래 있지 아니하는 자는 멸망하도록 하시는 섭리에 대한 예 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계19:11~21) |
하나님께서 언약자손에게 왕조를 세우시 는 여호와를 계시하여 알게 하여 경외케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자손에게 세 번째 언약 을 이루어 주시려고 유다지파에 속한 다 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신다. 그리고 그 역대왕들을 보호하시고 그 왕 조를 번영케 해서 세워 주시려고 그들로 포로에서 돌아와 회복하게 하시는 것이 다. 이와같은 역사섭리를 통하여 그들에 게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계 시해서 알게 하여 경외케 하신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 수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어 종의 형 체를 가져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실 것에 대한 것(빌2:7~8)과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영원할것에 대한 예표로써의 모형과 그림자다.(계11:15) | ●열왕기는 북쪽왕국과 남쪽왕국이 함께 기록되어 있지만, 다윗왕조를 이탈한 북 이스라엘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고 역대기는 주로 다윗왕을 취급하고 그의 자손(역대 왕)들에 대한 보호하시는 남 유다 중심으로 기록한 것임.
※각주
언약사(언약-성취사)적 성경관으로 본 성경해석 : 언약사의 방법은 선민(예정된 택자)의 구속이며 언약의 내용은 언약한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주신다는 성취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언약사적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약성경의 핵심적인 중심 내용(주제)은 하나님께서 스스로가 여호와이심을 계시하신 것이다.
실제로 구약의 모든 내용은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계시하는 데 초점을 모으고 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으로서 그 뜻은 ‘언약대로 이루시는 자’라는 것이다(출6:2~7).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로 계시하시려고 메시야(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언약하시는 것이 구약성경인데, 그 언약 방법으로서의 주된 내용은 초기 인류를 비롯한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언약자손들의 찬양과 선지자들의 예언들이다. 여기에서 언약이라는 말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의미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구약에서 ‘언약’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뻬리트(ת)’라고 한다. 그 언어의 용법에 대한 뜻은 당사자들 사이의 상호협정을 의미한다. 그 어원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빠랗(ה)’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 뜻은 ‘베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언약제물 사이로 통과하는 의식을 가르친다(창15:17). 그러나 ‘언약’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의미는 언어나 어원에 의하여 결정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 관계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하나님의 계시 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뻬리트’라는 말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사용될 때에는 서로의 동의가 전제되어 이루어지는 결과로 이해된다. 그러나 주권자이신 하나님과 피동자인 사람 사이에서 사용될 때에는 하나님의 단독적인 처리의 결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하여 언약의 주체자이신 하나님께 인간 편에서 동의를 한다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없는 일방적인 성질을 가진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인간은 그의 피조물로서 지배를 받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약은 언제나 인간에게 하나님의 ‘명령’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신약에서 ‘언약’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디아데케(διαθἠκη)’라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 언어의 뜻은 ‘처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는 ‘유언’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이같은 용어는 일반적으로 언약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은 ‘순데케(συνθἠκη)’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보통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서로의 동의를 전제로 한 협약의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띠아데케’라는 말은 ‘처리’ 또는 ‘유언’이라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서 모두가 일방적인 성질을 가진 것이다. ‘처리’라는 말은 상대방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일을 진행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유언’이라는 말도 사람이 마지막 죽을 때에 남기는 말로서 역시 상대방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아니하는 용어이다. 신약에서 ‘띠아데케’라는 말로 ‘언약’을 표현한 것은 ‘순데케’와 구별되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언약’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에 따라 인간에게 명령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로 계시하시려고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이루시는 섭리를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실체적인 언약을 세우신 첫 아담이 타락을 하였어도 그와 관계없이 둘째 아담 예수를 보내셔서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확실하게 증거하여 주시려고 이스라엘 선민의 열조에게 아담의 실체적인 언약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적인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그 열조의 후손을 통하여 이루어 주시는 역사섭리를 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 열조에게 세우신 모형적인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의 속성을 언약자손으로 찬양하게 하시며, 그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의 사역을 선지자들로 예언하게 하신다. 그런데 이같은 모형적인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언약자손의 찬양과 선지자들의 예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첫 아담에게 세우신 실체적인 언약을 둘째 아담인 메시야(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루어 주실 것을 언약하시는 계시내용인 것이다.
구약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창세기에서 에스더까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초기 인류와 선민의 역사섭리를 통하여 메시야를 언약하시는 섭리 내용이다. 그 내용을 세분하면, 창세기 1∼36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류의 시조와 선민의 열조에게 삼대언약을 세우시는 역사섭리 내용이다. 그리고 창세기 37장에서 에스더까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의 열조에게 세우신 삼대언약을 성취하여 주시는 역사섭리 내용인데, 창세기 37장∼민수기 30장은 삼대언약 가운데서 자손언약을 성취하여 주시는 역사섭리 내용이며, 민수기 31장에서 사사기까지는 삼대언약 가운데서 땅 언약을 성취하여 주시는 역사섭리 내용이며, 룻기에서 에스더까지는 삼대언약 가운데서 통치언약을 성취하여 주시는 역사섭리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첫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그들에게 자손 번창과 땅 정복과 만물 통치에 대한 실체적(實體的)인 삼대언약을 세워 주신다(창1:28). 그런데 그들이 금과(禁果)를 따 먹고 범죄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타락과 아무런 관계없이 둘째 아담 예수를 메시야로 보내셔서 첫 아담에게 세우신 삼대언약을 이루어 주실 것을 역사섭리로서 언약하여 주신다. 그 언약 방법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의 후손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특별히 택하여 부르셔서 모형적(模型的)인 삼대언약을 세우신다. 그리고 그 언약에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번창하게 하시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시고, 다윗 왕국을 세워 통치하게 하셔서 그 왕국을 끝까지 보호하여 주시는 역사섭리를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첫 아담에게 세우신 실체적인 삼대언약을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 주실 것을 역사섭리를 통하여 언약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여 주시는 목적은 스스로가 여호와이심을 계시하시려는 데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계시하시려고 역사섭리를 통하여 언약하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민의 열조에게 모형적인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 주시는 방법으로 첫 아담에게 세우신 실체적인 언약을 둘째 아담으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언약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것은 첫 아담이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메시야)의 표상이라는 말씀이 이를 잘 말하여 주고 있으며(롬5:14), 예수 그리스도가 선민의 열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것도 이를 분명하게 증거하여 준다.(마1:1)
(11) 역대기 사건의 성경에서 언약(예언)의 근거내용
성경에서의 예언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고, 언약은 하나님의 영원전 작정(예정. 계획)에 근거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작정섭리는 예외 없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현하고 이루어 나가신다. 마찬가지로 역대기에서의 모든 사건도 하나님의 작정. 계획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진행하여 이루어 가시는데 구체적으로 성경에서 그러한
근거를 찾아보고자 한다.
여호와께서 이방 민족을 들어서 북왕조를 멸망시키시는 것은, 그왕조가 여호와의 언약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쪽 다윗왕조를 보호하여 주시는 것은, 그 왕조가 여호와의 언약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일찍이 야곱을 통하여 유다에게 그 지파에서 왕의 홀(笏)이나 치리자의 지팡이가 떠나지 아나할 것을 언약하신 바가 있다.(창49:10)
바벨론에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후손의 계보 내용(대상4:1~23)은 일찍이 여호와께서 모 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의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 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신30:4)고 언약하 신 말씀을 비롯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유다 족속으로 하여 금 다시 고토인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으로 돌아와 거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을 이 루어 주신 섭리이다.(렘32:36~44) 이는 여호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택한 백성 을 죄의 포로에서 구출해서 본향으로 인도하실 섭리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 이다.(마1:21, 벧전1:23, 히11:16)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사울과 세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은 전에 여호 와께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 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삼상13:14)고 예언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섭리이다. 곧 유다지파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즉위케 하시려는 계시섭리이다.
여호와께서 다윗왕으로 하여금 모든 이방 대적을 쳐서 진멸하도록 섭리하는 역사적 사실 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열조와 세우신 언약을 이루어 주신 계시섭리다. 일찍이 여호와께 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 노니”(창15:18)라고 언약하신 말씀을 비롯하여,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울지라” (대상 17:10)고 언약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시는 계시섭리다. 이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 리스도께서 세상 나라를 치고 승리하실 것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다.
(계19:15~16)
솔로몬이 성전 건축 공사를 마치고 회중에게 여호와의 언약이 성취됨을 선포하는 내용은 (대하6:3~11)솔로몬의 의사와 관계없이 ‘여호와께서는 일방적으로 언약하신 말씀대로, 즉 스스로의 기쁘신 뜻대로 정하신 뜻을 따라 일방적으로 언약하고 그 언약대로 이루어 주신 다. 이는 여호와 스스로가 언약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 되심을 계시하시려는 데 근본 목 적이 있다. 이는 일찍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저는 내 이름을 위하 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삼하7:13)라고 언약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셨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신 계시섭리다.
여호와께서 르호보암으로 나라가 나누어지게 하는 섭리내용(10:12~15)인 르호보암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으로서, 여호와께서 전 에 시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는 계시섭리 다. 곧 여호와께서 전에 여로보암에게 선지자 아히야로 “내가 그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왕상11:35~12:15)”라고 예고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 시려는 섭리라는 뜻이다. 얼른 보면, 백성에 대한 여로보암의 포악한 행위가 표면적으로 는 르호보암과 소년들 사이에서 결정되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여 호와께서 스스로 작정하신 뜻을 따라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배후에서 섭 리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께서 스스로 작정 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 하여 르호보암과 소년들의 마음을 주관하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만사와 만물을 스스로 작정 하신 뜻대로 이루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작정하신 뜻을 따라 주관하여 섭리 하신다. 여기에는 선한 일이나 악한 일 또는 아름다운 것이나 추한 것을 막론하고 어느 것 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작정하신 뜻에 따라 택한 백성에 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대로 이루심으로 스스로의 전능성과 신실성의 영광을 선포하 신다.
남쪽 유다왕조나 북쪽 이스라엘왕조가 모두 부패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일찍이 여 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5~6)”고 언약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시려고, 모세에게 “너 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신들을 음 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신31:16~21))”고 언약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시는 계시섭리이다. 곧 여호와께서 북쪽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미워하는 죄를 그 왕가 자손에게 삼, 사대까지 갚아 주시고, 남쪽 유다는 부패함에도 불구하고 평 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다윗을 위하여 그 왕가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려고 남북 왕조가 부패하도록 섭리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 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는 섭리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 이다.(롬9:18)
남쪽 유다 백성에게 시련을 주시려고 바벨론에 포로가 되도록 하는 역사적 사실은 여호와 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가시리니(신28:36~37, 63~64)”라고 예고하신 말씀과,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분한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던져 보내심이 오늘날과 같다 하리라(신29:28,)”와 다윗왕조가 혼란을 겪는 역사적 사실 은 모두가 여호와의 언약의 의해 예언하신 말씀(레26:14~45, 신28:~31:)을 이루어 주시 는 계시섭리이다.
또한 남쪽 유다왕조의 회복은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유다 자손 다윗에게“네 집과 네 나라 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와 그리고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에게 “그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왕상 11:36)고 언약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시는 섭리이며 이는 다윗의 자손이시며 만왕의 왕 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영원할 것에 대한 예표로써의 모형과 그림자다.(계 11:15)
(12) 에스라, 느혜미야와의 공통성
역대기, 에스라, 느혜미야는 본래 한 권의 책으로 꾸며져 있었기 때문에 한사 람의 손에 의하여 편집된 것임을 주장하여 이 세책에서의 다음과 같은 공통성 을 찾을 수 있다고함.
◎역대기하 36:22~23에는 고레스 왕의 조서의 처음 구절이 나오는데 이것은 에스라서(1:1~3) 처음에 다시 반복되어 있다. 그러므로 서로의 연락을 가질 만큼 공통성을 가짐.
◎세책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표준을 보아도 공통성이 있다. 이 표준은 독특한 것으로 예배를 중심한 성전, 제사직과 관계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공통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각 책에 꼭 같이 족보와 통계적 기사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 세 책의 편자는(비록 그 속에 후대 사람의 첨가도 있지만) 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강하게 그 공통성을 보여 주는 것은 세책에 사용된 언어와 문장이 동 일하다는 점이다.
이상과 같이 ‘(6)역대기 자료’들를 사용하여 편집한 것으로 보고 있다.(올브라 잇은 본서의 편집자는 에스라였다고 말함)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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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사가의 신학, 장일선 저,(한국신학연구소 출판부),1981
구약성경의 9가지 핵심, Ronald Youngblood 저, 차학순 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