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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흉벽과 칼을 막아
-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와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 시체로 이 성에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을 인하여 나의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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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로 돌아와서 처음과 같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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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절에 포함되어 있음)
-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던 이 곳과 그 모든 성읍에 다시 목자의 거할 곳이 있으리니 그 양무리를 눕게 할 것이라
- 산지 성읍들과 평지 성읍들과 남방의 성읍들과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면과 유다 성읍들에서 양 무리가 다시 계수하는 자의 손 아래로 지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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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 집 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할것이며
-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약정과 밤에 대한 나의 약정을 파하여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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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파하여 그로 그 위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라
-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 택하신 두 족속을 버리셨다 한 것을 네가 생각지 아니하느냐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치 아니하도다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주야의 약정이 서지 아니할 수 있다든지 천지의 규례가 정한대로 되지 아니할 수 있다 할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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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 33: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예레미야가...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 - 본장의 사건 역시 32장과 같은 해에 일어났던 것으로 짐작된다.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아마 이곳은 장로들이나 왕의 관리들이 예레미야에게 조언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한편 본장은 일려의 \'회복과 위로의 메시지\'(30-33장)의 결론부에 해당하며, 최대의 민족적 위기를 맞은 유다 백성에게 다시 한번 소망의 빛을 확신시키고자 하는 내용이다. 33: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여기서는 여호와를 가리켜 \'일을 행하는 자\'(오사흐), \'그것을 짓는 자\'(요제르)로 지칭하고 있는데,이는 창 1장의 내용으로 소급되어 올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기서는 \'아사\'(만들다),\'야차르\'(짓다),\'바라\'(창조하다) 등의 동사가 쓰이고 있다. 이런 동사들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묘사하는 데 쓰였다(Thompson).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내게 부르짖으라...응답하겠고 - 이는 미래의 모든 일을 주관하며 계시하시는 이는오직 여호와뿐이므로, 그분께 간절히 매어달려야 함을 상기시킨다. 특히 \'부르짖으라\'의 히브리어 \'카라\'는 \'절규하다\'는 의미로서, 심한 갈증속에서 물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던 삼손의 모습이나 자식의 잉태를 위해 간구하던 한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삿 15:18;삼상 1:10-16). 33: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흉벽과 칼을 막아- 여기서는 예루살렘을 구하려는 모든 인위적 노력들이 무용함을 밝히고 있다. 성읍의 가옥과 왕궁은 폐허화될 것인데, 그것은 대적의 파괴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포위당한 예루살렘 백성들 자신에 의해서 그렇게 될 것으로 묘사된다(4절). 즉, 백성들은 자기 집과 왕궁을 헐어서라도 포위 공격하는 갈대아 군대를 막아 보고자 애쓰지만, 이러한 자구책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패망할 수 밖에 없는것은 여호와의 도우시는 손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5절). 33:5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와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 시체로 이 성에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을 인하여 나의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33: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 \'치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루카\'는 원래 상처 부위에 돋아나는 새 살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범죄로 인해 심한 상처를 입게 되지만, 그들을 연단시켜 새로이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치 피부에 새 살이 돋듯이 치유함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33: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본절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갇혀 언급되고 있는데, 이로 보아서 이곳의 회복의 약속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해당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이것은 이전에 멸망한 북이스라엘 왕국과 앞으로 멸망할 남유다 왕국 모두에 대한 미래의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Nicholson). 33: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사할 것이라 - 여기에는 회복의 날에 있을 가장중요한 양상이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범하였던 죄를 용서하고 악한 죄에서 정하게 할 것이란 사실이다(겔 36:25, 26 참조). 이는 결국 이스라엘이 당한 파멸과 시련의 근본 원인이 바로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으며 따라서 사죄의 은총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한 근원적 처방임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는 복음 시대의 새언약을 향한 암시적 언급으로도 이해될 수 있겠다(31:34;50:20 참조). 33: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이 성읍이...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 그때가 되면 예루살렘은 열방들 앞에서 기쁨과 찬양의 원천이 될 것이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곳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이처럼 여호와 앞에 바르게 서는 것은 전세계적인 의미를 띠는 것이다. 즉, 지상 모든민족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신 그 모든 선한 일들을 듣고는, 그들의엄청난 축복을 부러워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모든 열방들 위에서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우주적 통치에 대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33: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로 돌아와서 처음과 같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7:34;16:9;25:10 등에서는 심판 때에 즐거움과 기쁨의 소리와 신랑, 신부의 소리가 끊어질 것에 대해 언급되었으나, 여기서는 정반대로 회복의 때에 이러한 소리들이 다시 들리게 될 것을 말한다. 한편 11절의 후렴구는 시 100:5;106:1;107:1;136편 등과 대단히 유사하다. 33:12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던 이 곳과 그 모든 성읍에 다시 목자의 거할 곳이 있으리니 그 양무리를 눕게 할 것이라- 모든 성읍에 다시 목자의 거할 곳이 있으리니 - 이는 31:24의 약속과 비슷한 말씀으로서(Nicholson), 평화와 안정과 번영의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 33:13 산지 성읍들과 평지 성읍들과 남방의 성읍들과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면과 유다 성읍들에서 양 무리가 다시 계수하는 자의 손 아래로 지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양무리가 다시 계수하는 자의 손 아래로 지나리라 - 이는 날이 저물 때 그들이 울타리로 돌아오는지 그리고 혹시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하는 것을 목자가 세는 장면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탈굼역(Targum)은 본절을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예언으로 보고 \'계수하는 자\'를 아예 \'메시야\'라는 말로 대체하였다. 그러나 본절은 일차적으로, 바벨론의 압제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리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이라는 점에서 탈굼 역의 단도 직입적인 번역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33: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여기서부터 마지막적까지는 칠십인역(LXX)에서 누락되었으며 많은 주석가들에 의해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즉 이 부분은 예레미야의 저작이 아니라 후대의 편집자에 의해 삽입되었다는 것이다(Hyatt). 그러나 이 부분은 23장, 30:1-33:13장에 수록된 내용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음에 분명하다. 여기 수록된 바, 다윗 왕조와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의 영원한 존속에 대한 약속은 포로 귀환으로 말미암아 부분적으로 성취될것이며(스 1:8;2:2, 40-54;8:15-20), 궁극적으로는 메시야의 사역을 통해 온전히 성취 될 것이다(Feinberg). 33: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 본절과 16절은 23:5, 6의 내용과 유사하다. 여기서 \'의로운 가지\'란 다양하게 번역되기도 하나 분명히 정의롭고 바르게 다스릴 이상적인 왕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싹\'(사 4:2), \'순\'(슥 6:12), \'뜨인 돌\'(단2:34), \'머릿돌\'(벧전 2:7) 등으로 묘사되기도 하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가리킨다. 메시야의 통치가 도래하면 유다는 구속함을 입을 것이고 예루살렘은 안전하게 거할 것이다(Thompson). 33: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 23:6에서는 메시야에게 주어졌던 \'여호와 우리의 의\'(* , 야훼 치드케누)라는 이름이 여기서는 예루살렘에게 주어지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어떤 역본은 \'그 성\'을 \'그에게\'로 번역함으로써 23:6과 일치시키고자 한다(Aramaic, Vulgate, Syriac 등). 그러나 개역 성경처럼 번역해도 별다른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온전히 새로워질 예루살렘은 메시야의 의를 반영할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칭함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Bewer, 고후 5:21 참조). 33:17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 집 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할것이며- 33:18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는 다윗 왕조와 레위계통의 제사장직이 영구히 존속될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이를 단순히 역사적 안목에서만 보면 이 예언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포로 귀환 후에도 다윗 왕조가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 역시 줄곧 이어져 갔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왕적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에 의해 온전히 성취되어짐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물론 그리스도는 레위 계통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히7:11). 그렇다면 레위 계통에 관한 언급은 민 25:13에서의 비느하스에 대한 약속과 마찬가지고 제사장직의 영원한 존속에 대한 말씀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겠다. 33:2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약정과 밤에 대한 나의 약정을 파하여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찐대- 33:21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파하여 그로 그 위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새 언약에 대한 확실한 보증으로 사용했던 31:35-37의 내용을 여기서 재차 언급하여 확신을 더해 주고 있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 낮과 밤은 하나님에 의해 태초에 설정되었다(창 1:5;8:22). 여기서는 낮과 밤의 교차가 하나님과의 계약과 관련되어 표현되고 있다(Bright). 이런 표현은 여호와 약속의 신뢰성과 영속성을 입증하기 위해 쓰였다. 낮과 밤이 규칙적으로 계속되는 것은 자연 질서의 일부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 질서가 파괴되고 낮과 밤의 기능이 제때에 작용하지 않는다면, 여호와께서 자기 종 다윗과 레위 제사장직에 대해 맺으신 언약이 파괴될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는 것이다(Thompson). 33:22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라-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 자손을 셀 수 없이 많게 해주리란 약속은 아브라함을 위시한 족장들에게 주어진 바 있다(창 13:16;15:5;22:17 등). 그런데 이제 이것이 다윗 자손들의 숫자와 레위 지파 제사장들의 숫자에 적용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구절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성취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이스라엘로서 모두 다 왕같은 제사장들이기 때문이다(벧전2:5, 9;계 1:6;5:9, 10). 33:24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 택하신 두 족속을 버리셨다 한 것을 네가 생각지 아니하느냐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치 아니하도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결론적으로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두 족속에 대해서는 (1)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2) 야곱과 다윗(26절 참조) 혹은 (3) 야곱과 레위(왕직과 제사장직을 염두에 둔 구분) 등으로 보는 견해로 갈리지만, (1)이 가장 무난할 듯하다. 그리고 또한 24절 초반에 나오는 \'이 백성\'이란 여호와를 믿지 않는 유다인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Bright). 민족의 절망적 현실에 부딪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선포된 미세지를 믿지 못하는 자들은 공포에 질려 완전한 파멸만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획은 그들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33:2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주야의 약정이 서지 아니할 수 있다든지 천지의 규례가 정한대로 되지 아니할 수 있다 할찐대- 33:26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B.C.597년의 포로 사건이 있은 이후, 그리고 B.C.722년의 사마리아 함락이라는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다고 믿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다 B.C.586년의 예루살렘 함락 사건은 그들의 비관적인 태도를 더욱더 분명하게 해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다시 야곱 자손들의 통치자로서 다윗 자손 통치자를 세우시는 데 실패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것이 실패하게 될진대 차라리 낮과 밤이 바뀌고 말 것이다. 한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고 하는 족장들에 대한 삼중적 언급은 그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졌던 모든 언약들을 강조하여 지칭하기 위함이다(Feinber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