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하나님)

1장 -서신서의 일반적인 순서를 따라 바울은 로마 교회에 대한 안부와 축복으로 머리말을 대신하고 있다(1-7절). 그는 로마 교회에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조만간 그곳을 찾아갈 것임을 밝힌다(8-15절). 그러므로 본서의 본론은 16절부터 시작된다. 한편 16,17절은 복음 중의 복음, 또는 복음의 핵심이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성경진리를 핵심적으로 간추리고 있다. 이신 득의 교리로 해석되는 이 주제는 로마서 전편을 걸쳐 반복 강조된다(3;21-24). 본서와 서신서 전체를 통해 바울이 주지시키고자 한 것은 바로 믿음을 통한 구원(의) 사상이었던 것이다.

 

1장 -바울은 다른 서신서에서처럼, 먼저 자기의 권위에 대하여 말함으로써 이 서신의 내용이 그의 개인적 통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로 쓴 신적 권위의 글임을 밝힌다(1-7절). 한편 바울은 로마 교회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다. 로마 교회의 신자들을 만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고 그들에게 은혜를 나누어 주려고 힘썼다(8-15절). 이 로마서 전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복음의 작용에 대하여 바울은 언급한다. 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의를 얻는 방법이 이 로마서의 주제이다(16-17절). 바울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기에 복음 이외에는 어떤 구원의 길도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인 인류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으며, 온갖 죄악을 범하였다(18-32절).

 

 

2장 -16절까지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진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을 진리와(2절) 행위(6-11절). 그리고 본성(12-15절)이라는 원칙에 의해 판단(심판)하신다. 바울이 이처럼 자세하게 하나님의 공의를 설명하고 있는 까닭은 유대인들의 죄악을 논증하기 위해서이다. 즉, 유대인들은 그릇된 특권 의식에 집착했을 뿐, 진리(율법)대로 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육신적인 할례와 유대인으로서의 혈연을 자랑으로 여겼으나 실제 중요한 것은 그들의 내적인 마음의 상태였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만이 참유대인이요 성령의 할례자인 것이다.

 

2장 -사도 바울은 종교적으로 교만해져서 남들을 판단하는 유대인들의 잘못을 책망한다(1-5절). 그리고 나서 종교적으로 강팍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다. 율법을 받은 자들에게는 율법의 표준대로 심판하고,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는 양심대로 심판한다(6-16절). 한편, 바울은 유대인의 우월감을 공격한다. 종교적으로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들의 표본인 유대인들은 천국에서 가장 큰 원수로 지목될 것을 말하고 있다(17-29절).

 

 

3장 -본문의 전체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의라고 할 수 있다. 먼저 8절까지는 2장 17-29절에서 언급된 내용의 연장선으로 유대인들이 당할 심판의 당위성을 변증하고 있다. 그런 다음 바울은 기독교의 근본 진리 가운데 하나인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는 진리를 언급한다(10-12절). 이 구절은 자연스럽게 ‘그러면 어떻게 죄인이 구원(의)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야기한다. 바울은 이에 대한 해답을 21-31절에서 제공한다. 즉, 율법(행위)을 통한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방법,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인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다. 구원에 이르는 오직 한 길은 예수를 믿는 것이다.

 

3장 -바울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마침내 심판을 받고 망하게 되는 것이 결코 그들의 종교적 특권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망하게 된 것은 그들이 거짓되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은 까닭이다(1-8절). 그리고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고 결론 짓고(9-20절), 율법은 우리 죄를 지적하여 우리로 하여금 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지만, 은혜는 그런 죄인 의식 있는 자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1-31절).

 

4장 -전장 말미에서 율법이 아닌 믿음을 통한 칭의를 밝힌 바울은 그 연장선상에서 아브라함의 칭의를 설명한다. 아브라함은 행위(율법)가아닌 순종(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되었다. 특히 그의 칭의는 구속 언약적인 의미를 가진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언약)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인정된 것이다. 요컨대 칭의의 관건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도 못하고 구원을 얻지도 못한다. 신약 시대의 우리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실체요, 성취자인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 의로워진다(23-25절).

 

4장 -바울은 아브라함이 칭의받은 실례를 들어 칭의의 원리를 보여 준다(1-3절). 칭의란 구원을 받음에 있어 우리의 의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칭의를 받았다는 것은 지극히 행복한 일임을 말한다(4-9절). 아브라함이 칭의 받은 사실은 계약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그가 칭의를 받은 시기는 할례 받기 이전이었고(10절), 이 시간으로 아브라함은 할례자나 무할례자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믿음의 조상이 된다. 아브라함이 할례받기 전에 칭의를 얻는 사실도 사람이 공로 없이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사실을 예언한 셈이 된다(11-25절).

 

 

5장 -앞의 두 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논증했다. 그리고 우리가 의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본장에서는 칭의의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화목이다(1-11절). 죄(인)는 하나님과 적대감을 형성하기 마련인데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화평이 이룩된 것이다. 다음으로 바울은 아담과 예수님을 비교함으로써 칭의의 결과를 자세하게 말해 주고 있다.(12-21절). 요약하면 아담=불순종과 사망, 예수=순종과 생명이라고 하겠다.

 

5장 -바울은 신자가 믿음으로 의를 얻으면, 결과적으로 화평과 기쁨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다(1-4절). 이 칭의는 신자에게 구원을 보장하는 것으로 칭의를 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대신 죽어 주신 사랑을 받았으며(5-8절), 이 사랑을 느끼는 자도 구원의 확실성을 느낀다. 즉, 하나님 앞에 원수 되었던 자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칭의를 받았으니, 이렇게 칭의를 받은 의인이 영광의 구원을 받을 것이 명백함을 바울은 강하게 역설한다(9-11절). 마지막으로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시켜 한 사람으로 인해 죽음이, 다른 한 사람으로는 생명이 들어온 사실을 계약 사상적 입장에서 밝힌다(12-21절).

 

 

6장 -5장이 칭의의 결과를 설명했다면 본장은 의롭다고 인정된 자, 곧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는 죄인(6절)으로서 죄에 종노릇 하였다(6절). 그리고 법(율법)에 얽매여 (15절)결국 영적 사망을 당해야 할 형편이었다(21절),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의인으로서 우리는 죄에 대해 죽은 순종의 종이다(16절). 나아가 율법의 저주가 아닌 은혜 아래서(14절) 영생을 누릴 것이다(22.23절). 이같은 대 변화는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될 때 비로소 얻어진다(1-11절).

 

6장 -바울은 사람이 중보자 그리스도와의 연합함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와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고 말한다. 특히 사람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연합하는 데 있어서 방편으로는 세례를 말하고 있다(1-11절). 그리고 죄에서 해방된 신자는 의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을 말한다. 즉 기독교 신자는 죄에 대하여 죽었던 만큼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야 할 처지에 있음을 뜻한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때부터 객관적으로 영원한 정죄를 면했을 뿐만 아니라 주관적으로도 죄를 미워하는 새 생명을 받은 사실을 가리킨다(12-23절).

 

 

7장 -전장에서 신자와 율법의 관계를 잠시 언급한 바울은 여기서 본격적으로 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율법은 마치 남편과 같다. 남편이 살아 있을 동안에 아내를 주장하듯, 율법은 과거에 우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그의 주권에서 벗어나듯, 이제 신자도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셨기 때문이다. 율법의 역할은 결국 죄를 드러내는 것인데(7-13절), 그것은 율법 자체가 약해서가 아니고 죄를 짓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다(14-25절). 이러한 바울의 논증은 율법 폐기론의 오류를 염두에 둔 것이다.

7장 -바울은 신자가 율법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정죄를 면했다는 것과 성령 안에서 점점 성화되어 마침내 죄를 완전히 떠나게 된 다는 것임을 말한다(1-6절). 율법은 다만 인간의 마음이 악한 것이 율법으로 드러난 것뿐이다(7-13절).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가 나타남은 율법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고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다(14-25절).

 

 

8장 -지금까지의 바울의 선포는 본장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바울은 여기서 구원의 확신과 성령 안에서의 승리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먼저 성령을 통한 구원의 기쁨을 노래(1-11절)한 후, 성화의 삶의 본질을 규명하고(12-17절) 장차 하나님의 자녀에게 임할 축복을 선포한다(18-30절). 마지막으로 구원의 확실성을 강한 어조로 설명하고 있다(31-39절). 구원과 그로 인한 기쁨, 성령의 도우심과 내세의 소망, 이렇게 보면 본장이 로마서의 주제일 뿐 아니라 바울 신학의 압축판임을 알 수 있다.

 

8장 -바울은 본장에서 구원의 영원성을 길게 논한다. 구원은 그리스도가 속죄하여 주신 은총과 거기 따르는 성령의 살리는 역사로 이루어진다. 이 구원의 성취는 하나님 자신의 희생으로 된 것인 만큼, 그것은 하나님과 같이 영원하다(1-17절). 그러므로 이 구원은 고난 때문에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 중에서 완성되어 간다(18-26절). 그러나 모든 고난은 신자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고 도리어 합동하여 유익을 준다. 그렇게 되는 원인은, 신자가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실에 있다(27-30절). 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끊는 방해물은 없다.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하나님의 예정에 근거된 것이므로 영원한 것이다(31-39절).

 

 

9장 -흔히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만 인식하여 동족 구원에 무관심했던 자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1-5절은 그가 동족의 구원을 얼마나 애타게 염원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는 실로 모든 사람을 위한 전도자였던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역사가 선택된 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음을 밝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남은 자 사상으로 이어지는데(27-33절) 오늘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들이 곧 남은 자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과 행위에 의한 자기 의를 고집함으로써 그 반열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9장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민족은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음에 있어서 이스라엘보다 이방이 우세를 보였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다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아니었다(1-13절). 인류의 구원 운동은 하나님의 선택 행위에서 비로소 일어났다. 그 선택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불변의 결정으로 되어지며(14-16절), 유기될 자를 동반한다. 이 유기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어떤 자들을 구원하시지 않기로 작정하신 사실을 가리킨다(17-33절).

 

 

10장 -내용상 앞장에 이어지는 부분이다. 앞장에서 선미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설명한 바울이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질책하고 있다. 바울은 또다시 유대인들의 구원을 간절히 원했으나(1절) 그들은 영적무지로 인해서 구원의 길을 벗어나 버렸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5-13절)를 대조시킴은 유대인들의 그릇된 구원관을 꼬집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선지자를 통한 구원의 요청을 뿌리친 것은(16-21절) 그들이 당한 심판의 당위성을 확증해 준다. 예나 지금이나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편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13절)일이다.

 

10장 -바울은 이스라엘이 의에 이르지 못하고 실패한 것을 지적함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1절).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힘으로 의를 얻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는 무식한 행동이라고 지적한다(2-4절).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대조하고(5-13절), 믿음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며, 이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기인한다(14-18절). 이스라엘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전도를 많이 들었다. 그것은 구약의 예언대로 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치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믿지 않게 된 책임은 그들 자신이 져야 한다. 이스라엘은 결코 핑계할 수 없다(19-21절).

11장 -“이스라엘은 왜 버림당했는가?” 전장 말미에 잠깐 언급된 이 주제는 매우 흥미롭다. 여기에 대해 바울은 자신을 예로 들면서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 자신도 유대인으로서 사도로까지 택함을 입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항상 의로운 남은 자를 찾아 구원하실 뿐, 어떤 혈연이나 민족적인 테두리로 구원을 정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셨으나 그들이 거부함으로써 복음이 이방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은 그들을 받을 것이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구원의 기회는 만인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11장 -바울은 본장에서 자신처럼 이스라엘 가운데 구원 얻은 자들도 있다고 말한다(1-10절).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패로 인하여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로 가게 되었다. 이방인들은 돌감람나무와 같이 소망이 없었지만 참감람나무의 뿌리, 곧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이 되었다. 이들이 자긍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먼저 입었던 이스라엘도 교만하므로 버림당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접붙임을 받는 것이 겸손히 주님을 믿는 데만 달려 있기 때문이다(11-24절). 이방인 가운데 구원받을 자들의 수가 찰 때에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할 기회가 이른다(25-30절). 또한 바울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지혜를 찬송한다(33-36절).

 

 

12장 -9-11장까지 계속되었던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주제가 일단락되고 여기서부터는 성도의 실생활에 관련된 문제가 등장한다. 즉, ‘구원 얻은 자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편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그것이 곧 성도의 영적 예배라고 서두에서 결론짓는다(1,2절). 여기서 말하는 예배는 교회라는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과 전인격을 포함한 뜻한다. 이는 성도가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예배하는 자세로 살아야 함을 말해 준다.

 

12장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사신 것이니 하나님께 바쳐야 마땅하다. 따라서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는 억지나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감사의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뼈하시는 참된 예배이다(1-2절). 신자는 각자 받은 은혜를 지혜롭게 생각하여 그의 받은 은혜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그것으로 교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한편 바울은 사랑에 책임이 따른다고 말한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하고 뜨거운 가족적 애정과 서로 먼저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또한 부지런히 주님을 섬기고 소망 중에도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 참고 기도에 항상 힘을 쓰며 가난한 자를 돌보고 동고동락(同苦同樂)하여 하나가 되며, 악으로 악을 갚지 말아야 한다(3-21절). 이와 같이 모든 삶에 있어서 선과 사랑의 행동 방침을 강조하는 본장은 기독교인의 행동 강령의 대전제를 보여 주고 있다.

 

 

13장 -어떤 독재자는 모든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은 하나님이 모든 권력의 주권자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따라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며 폐하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권력자는 최고 권력자인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공의로 다스려야 한다. 또 성도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통치자에게 복종하여야 한다. 이같이 성도는 시민 생활의 원리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범사를 사랑으로 대하고, 경성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며 종말을 대비해야 한다(8-14절).

 

13장 -바울은 본장에서 기독자가 정권에 순종해야 할 것을 가르친다. 정권에 대한 순종의 이유는 모든 권세를 다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의 권력자가 공의를 행하고 공동체의 평안함을 위해서 일할 때는 그의 권위에 순종하고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그를 도와야 한다(1-7절). 사랑은 율법의 완성으로 무겁고 괴로운 율법을 기쁘고 즐겁게 지킬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아갈 때 자신만을 돌아보지 말고 항상 이웃의 형편을 돌아보고 사랑을 베풀기에 힘써야 한다(8-10절). 또한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삶 속에서도 성도는 깨어서 살아야 한다. 여기서 깨어 있다는 것은 말씀의 빛으로 갑옷을 입음과 그리스도로 옷 입음을 말한다(11-14절). 이와 같이 성도들은 믿음과 삶이 온전히 말씀 가운데 일치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14장 -초대 교회에 있었던 실제적인 여러 문제에 대한 논평과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당시 교회는 믿음이 강한 자와 연약한 자가 혼재(婚材)된 상황에 있었는데 이 양자사이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일례로 믿음이 강한 자는 음식 문제에 있어서 고기나 채소를 무론하고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고 했으나, 믿음 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었다(2절). 바울은 전자와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믿음이 강한 자가 양보와 관용의 미덕을 발휘하여 약한 자를 용납하며 자신에 주의할 것을 요구한다. 어쨌든 양자는 피차 서로를 인정하면서 덕을 세우는 일에 전력해야 했다. 사실 바울과 오늘 의 우리에게는 이런 지엽적인 문제보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17절)이 무엇인가를 아는 일이 더 중요하다.

 

14장 -본장에서 바울은 기독교 신자의 양심의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고기를 먹는 문제, 종교적으로 지키는 절일의 날짜 문제 같은 것이 특히 논제로 나오는데, 바울은 이때에 각자의 양심에 맡겨 각자가 자유할 것이고 서로 비평하지 말 것을 여러 가지로 가르친다(1-13절). 바울은 양심의 자유 문제로 인해 형제를 비평하면 그 형제를 망케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음식물 문제로 비판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지 말 것을 권고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성령 안에 평강과 희락을 추구하라고 말하고 있다(14-23절).

 

 

15장 -13절까지는 전장에 이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다시 한 번 성도간의 화합과 관용을 요구하였다. 교회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조화와 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든 지체가 유기적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이다(4;3,4). 14절부터는 로마교회에 대한 바울의 애정 어린 권면과 부탁, 그리고 로마 방문 계획이 나타나 있다. 후일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당도하여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 염원을 이루게 된다(행28;23-30).

 

15장 -바울은 본장에서 성도의 신앙의 양심 자유 문제로 서로 나누이지 말고 용납하여 단합할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기독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행위를 본받아야 한다고 명한다(1-13절). 한편 바울은 이방을 위한 사도 였기 때문에 자신이 로마의 교회에 편지할 권한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14-21절). 그는 서바나로 가던 도중에 로마 교회를 잠시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로마 교회에게 자신의 중보 기도를 부탁한다(22-33절).

 

 

16장 -몇몇 개인적인 문안과 교회에 대한 문안인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서신의 말미를 장식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곧 바울이 사도라는 공적 직함 외에 그들의 삶과 밀접히 연관된 한 개인으로서 교제를 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성도와 교회를 훈계하고 복음을 전하는 등의 아버지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그들의 사정을 어루만지고 결려하는 어머니로서의 임무도 감당했던 것이다. 이처럼 교회와 성도는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사랑 안에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17-20절은 이단 사상으로부터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려는 바울의 마지막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16장 -본장에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구체적인 이름과 그들의 행위에 대한 감사의 글을 쓰고 있다(1-16절). 그리고 이 서신서의 마지막 권고로 교훈을 거스르는 자가 있는지를 돌볼 것을 말한다. 순종하는 성도는 선한 일에 지혜롭고 악한 일에는 미련할 줄 아는 자임을 밝힌다(17-20절). 한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문안을 로마의 교회에 전하고(21-23절), 마지막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의 송영을 드린다(25-27절).

 

 

고린도전서(하나 되게 하시고 은사 주시는 하나님)

1장 -문안과 감사의 말은 바울서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서두의 한 형식이다(1-3절). 이것은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변증하고 흩어진 각 교회에 대한 애정을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을 떠나기 직전 고린도 교회의 분쟁 소식을 접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밝히려고 본 서신을 작성하였다. 고린도 교회 분쟁의 원인은 일부 지도자들의 공명심에 있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분파를 형성하여 교회 분열을 초래하였다. 여기에 대해 바울은 직접적인 비난을 삼가고 그 대신 십자가의 도를 내세운다(18절). 이는 곧 분열의 원인이 주의 십자가를 잘못 해석한 그들의 무지에서 나왔음을 암시한다.

 

1장 -본장은 본서의 서론부에 해당하는 내용으로서 발신자의 이름 명기, 수신자의 이름 명기, 수신자에 대한 문안 인사가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와 그들에게 주는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본장을 내용상 구분하면 영적 혼란과 분쟁을 겪었던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문안 인사와 감사의 말이 기록된 부분(1-9절), 특정 지도자를 따라 형성된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다루는 부분(10-17절),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서 세상의 지혜와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지혜, 곧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가져오는 십자가의 도를 소개하는 부분(18-31절)으로 나눌 수 있다.

 

 

2장 -앞장에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참 지혜의 근원임을 밝힌 바 있다. 본장은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능력(지혜)에 의해 얻어지는 것임을 역설한다. 진정한 지혜는 복음이고(6-9절), 그 안에는 하나님의 심오한 구원의 진리가 계시되어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를 성령의 사역과 연관시키고 있다(10-16절). 요컨대 구원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성취되는 것으로서 육에 속한 사람은 그 비밀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14절).

 

2장 -본장에서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서의 성령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이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다른 두 위, 즉 성부 하나님과 성자 그리스도와의 삼위 일체론적 구조 속에서 조화롭게 나타나기에, 바울이 본장에서 구체화시키는 주제는 성령과 십자가 사이의 밀접한 관계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 속에 나타났으며, 이 지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본질적 의미와 증언으로 밝혀지고 전해진다는 것이다. 본장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전도(1-5절), 신령한 것으로 분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6-13절),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가 곧 신령한 자임을 밝히는 부분(14-16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을 통하여 구원의 문제가 결코 인간의 관점에서 다루어 져서는 안 되며, 우리의 지혜를 초월한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지혜는 성경과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3장 -분파주의 내지는 개인의 공명심을 내세우는 처사는 하나님보다 인간을 앞세우는 일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바울은 구원이 어느 한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역사임을 내세워 고린도 교회의 분파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모름지기 복음 사역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에 일조한다는 청지기 의식과 서로를 존중하는 지체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편, 10-15절에 나타나는 건축자의 비유는 최후 심판 때에 주어질 상급과 심판을 언급함으로써 현재의 삶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8-23절은 1장 말미(19-25절)와 같은 맥락에서 신령한 지혜의 본질을 밝히고 있다.

 

3장 -본장에서는 고린도 교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고린도 교회의 분쟁이 신앙의 미성숙과 세상 지혜를 자랑하는 인간적 교만으로 인해 발생한 것임을 밝힌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복음 전도자와 신자들의 관계를 밝히 드러냄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화합을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다. 또한 본장의 내용 속에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견책, 교훈, 격려, 호소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 감동과 영감을 주며, 고린도 교인을 향한 바울의 진한 애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본장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이 영적 미성숙에서 비롯됨을 지적하고 있는 부분(1-9절), 하나님의 성령을 간직한 성도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봉사와 충성 및 성결의 삶을 견지해야 한다는 적극적 신앙 자세를 강조한 부분(10-17절), 인간의 지혜는 거짓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역설한 부분(18-23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4장 -교역자와 신자와의 관계는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 만큼 이 문제를 둘러싸고 시비가 늘 있어왔다. 고린도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울은 교역자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사함으로써 이 문제에 접근하였다. 즉, 교역자를 판단하는 진정한 기준은 충성이며, 하나님만이 궁극적인 평가를 내리신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교역자들을 인간적인 잣대로 평가한 고린도 교인들은 교만의 죄를 지은 셈이다(6-13절), 바울은 일평생 주를 본받는 삶을 실천해 왔기에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을 좇으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14-21절).

 

4장 -본장에서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비롯한 모든 다른 지도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이에는 지나칠 때에 교회에는 시기와 분쟁이 생기게 됨을 가르치고 있다. 이때 일을 맡기신 이가 일을 맡은 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충성뿐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저들을 판단하실 이든 오직 주님밖에 다른 이가 없음을 밝힘으로써 고린도 교회의 당파 싸움에 대한 논의를 끝내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권위 있는 어조로써 심판자와 보상자로서의 주님을 선포하는 부분(1-5절), 풍자적인 어투로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꾸짖는 부분(6-13절), 따뜻하고 간절한 어조로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 하는 사랑의 권면(14-21절)이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본장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일꾼에 불과하므로 겸손해야 한다고 교훈함으로써 교회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5장 -본장을 이해하려면 고린도지방의 상황을 알아야 한다. 당시 고린도 지방은 성적으로 매우 타락한 상태였는데 그 같은 풍조가 교회 내에까지 스며들었던 것이다. 근친상간이라는 극도의 타락한 성풍조가 교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자행되었으며, 이 소식을 접한 바울은 이들을 사단의 무리로 규정하여 강경한 어조로 경고하고 있다(1-8절). 바울은 부패한 누룩이 가루 전부를 못쓰게 한다는 진리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9-13절은 믿지 않는 자와 사귀지 말며(고후6;14)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는(살전5;22) 말씀과 연관된다.

 

5장 -본장은 고린도 교회의 성적 부도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당시 고린도 시는 오늘날의 도덕적 수준보다도 더 타락한 지역으로 성적 문란과 방종한 생활로 유명한 곳이었다. 고린도 지역의 이러한 풍조는 교회 내까지 침입하여 근친 상간이라는 패륜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따라서 바울은 근친 상간의 죄와 이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무관심과 침묵을 단호하게 책망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순결한 생활을 유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본장은 특별히 성적 타락의 치명적인 죄 상과 파급적인 영향력, 신앙의 미성숙과 인간적인 교만은 육체적 방종과 부덕을 초래한다는 점, 그리고 도덕적 순결이 신앙 공동체 형성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잘 보여 준다. 본장은 성적 부도덕에 대한 책망을 기록한 부분(1-5절)과 성도들이 지녀야 할 순결한 삶을 유월절 절기 때 먹는 누룩 없는 떡에 비유한 부분(6-8절)과 교회가 성적 부도적자를 징계함으로써 교인들을 보호해야 하지만, 불신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님을 교훈하는 부분(9-13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6장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들여다보면 마치 현대의 교회 문제를 집약시켜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고린도 교회는 매우 실제적이면서 광범위한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본장에는 또 하나의 문제 곧 소송 문제가 나타나 있다. 고린도 교인들은 소송을 가지고 세상 법정에까지 나가는 추태를 보였다. 세상을 판단하고 심판하여야 할 신자가 죄악된 세상의 법정에 서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모름지기 교회 내의 분쟁은 주님의 사랑과 말씀 안에서 지혜롭게 해결하여야 한다. 12-20절은 음행을 다시 한 번 경고하고 있는데, 성도의 육체가 곧 성전이라는 진리(19절)는 방탕과 향락을 일삼는 오늘날의 세태에 경종을 올린다.

6장 -본장은 소송 및 성 문제에 관한 성도의 자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성도들간의 소송의 부당성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유를 남용하는 자들이 초래하는 도덕적 타락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죄악들은 기독교 공동체에 내재해 있는 상호간의 불신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배은망덕이며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의 거룩성을 실추시키는 것이 된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본장에서 어떤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라기보다는 신앙인들의 삶의 기본적인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즉 주님은 우리 몸을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셨으므로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몸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처럼 우리들을 살리시는데, 몸을 버리고 영만 살리시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의 영이 깨끗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몸도 깨끗해야 한다는 것 이다. 본장의 내용은 신자들간의 소송 문제를 다룬 전반부(1-11절)와 성적 부도덕에 대한 경고를 다룬 후반부(12-20절)로 구성되어 있다.

 

 

7장 -여기서는 혼인 문제의 다양한 측면이 다뤄지고 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주장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대립되어 있었다. 바울은 이 두 주장이 모두 그릇 되었음을 전제한 뒤, 혼인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결국 주님의 영광을 위해 실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10;31)라는 그의 일관된 주장이 다시 한 번 확인될 것이다. 한편, 후반부는 처녀의 결혼 문제와(25-38절) 과부의 재가(39,40절)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대원칙은 혼인 문제와 동일하다.

 

7장 -본장부터는 고린도 교인들이 편지로 질문했던 여러 가지 신앙적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 내용이 기록되기 시작한다. 본장에는 혼인에 대한 바울 자신의 생각과 권면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고린도 교회의 몇몇 사람들은 모든 육체적 본능과 욕망을 완전히 억제할 것을 가르쳤는데, 바울은 권면하기를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결혼하는 것보다 낫기는 하나 이 둘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기에, 독신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필수적 조건은 아니라고 교훈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결혼에 대한 권고(1-16절),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라는 권면(17-25절), 처녀의 결혼에 대한 교훈(26-38절), 과부의 재혼에 대한 교훈(39-40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8장 -당시 고린도에는 수십여 개의 신전이 있었으며 시중에서는 우상의 제물이 공공연히 팔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서는 우상의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바울은 원론적으로 신자가 우상의 제물에 대해 자유하다고 천명하였다. 이것은 베드로의 환상에서도 암시된 바이다(행10;9-16).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사항은 믿음이 약한 자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를 남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려 깊은 처사가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된다.

 

8장 -본장은 우상에 대한 성도의 태도를 언급하고 있다. 희랍 아가야의 수도 고린도는 우상 숭배가 성행한 도시였다. 당시 고린도에서는 사람들의 모임이 주로 신전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들의 종교 생활에서 필수적인 부분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이었다. 만약에 누구라도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생계의 위협을 당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방 법정에 호소하지 않고도 살 수가 있었으나 고린도와 같은 도시에서는 이교의 생활권을 벗어날 수 없었다. 시장에서 팔고 있는 모든 고기는 각종 이교 신전에서 제물로 바쳤던 것들이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사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바울이 제기하고 있는 삶의 원칙은 바로 사랑이다. 강한 믿음의 소유자나 약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서로 사랑으로 각자의 연약함을 나누어 짊어지라고 권고하고 있다. 본장의 내용 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행위(1-6절), 그리스도인의 자유(7-13절)에 대한 언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9장 -고린도 교회 일부에서는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비난과 의문을 표시해왔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의 정통성을 변호하고(1-3절) 곧이어 사도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논하고 있다(7-18절). 그는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전제한 다음, 그러나 복음 전파라는 대의를 위해 그것을 포기한다고 천명하였다. 대의를 위해 자유와 권리를 남용하지 않는 그의 성숙한 자세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편, 19-27절에는 한 영혼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어떤 고난과 절제까지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그의 전도 열정이 강하게 배어 있다.

 

9장 -본장에서 바울은 주로 복음을 위하여 자유의 행사를 절제한 자신의 모범에 관하여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목적은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자유와 권리를 절제하고 복음을 위하여 종의 자세를 취할 것을 교훈하기 위함이다. 또한 본장에서는 바울의 사도권에 관한 문제도 부각되어 있다. 당시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바울의 사도권을 의문시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를 뵙고 그리스도로부터 이방 선교에 대한 직접적인 계시의 명령을 받았음과, 자신을 통하여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 점을 들어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의 내용은 사도의 권리(1-11절), 사도의 의무(12-18절), 바울의 복종과 절제(19-27절)로 구성되어 있다.

 

 

10장 -바울 당시의 고린도 교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도 이방 제단에 참석하며 우상을 숭배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바울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실례를 들어 우상 숭배의 결과를 경고하고 있다. 특히 바알브올 사건과 고라 자손의 패역 등 구체적인 사건을 언급한 것은(7-10절)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전철을 고린도 교인들이 따르지 않도록 권고하기 위해서 이다. 한편, 8절에서 이미 다루어진 바 있는 우상 제물에 대한 문제가 23-33절에 다시 한 번 거론되는데, 여기서도 바울은 이전과 동일한 결론을 맺고 있다. 즉, 우상제물을 먹을 수 있으나 믿음이 연약한 자를 위해 신중하게 처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10장 -본장은 8장에서 취급하였던 우상의 제물에 관한 교훈이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하여 다시 진지하게 다뤄지고 있다. 바울은 본장에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를 실례로 들어 고린도 교인들의 불신앙을 경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함을 받은 것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것과 같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며 반석의 물을 마신 것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할 것을 예시하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는 본 장에 이르러 우상 숭배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결되고 있다. 음식 자체는 깨끗하다거나 더럽다거나 하는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고, 그것이 신상에 미치는 영향에 주의를 기울여야 됨을 교훈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1-13절),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14-22절),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언급(23-33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11장 -여기서는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두 가지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두 문제는 모두 예배와 관련된 것이다. 즉 예배 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는 문제와 성만찬에 관련된 것이었다. 바울은 남녀가 평등하다는 성경의 기본적인 원리를 전제한 다음, 예배상의 질서를 위해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은 당시의 특별한 교회 사정을 염두에 둔 권고로서 오늘날은 문자적인 의미가 없다. 한편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적과 죄악 된 심신의 상태로 주의 만찬에 참석하였는데 이것은 주의 몸을 더럽히는 죄악 중의 죄악이었다. 그들은 성만찬의 본래 취지가 주의 구속의 은총에 참여하여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것임을 깨달아야 했다.

 

11장 -본장은 올바른 공중 예배와 성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앞장까지는 주로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한 고린도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바울이 답변하였거니와 본장에서부터는 교회의 예배에 관한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 이어진다. 바울은 새로운 권면에 앞서 자신이 그들에게 유전을 전하여 준 자라는 점을 확인시키고 있으며, 고린도 교회가 자신이 전해 준 유전을 기억하고 잘 실시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칭찬하고 있다. 바울은 그의 선배 신앙인으로부터 전해 받은 유전을 자신이 가는 곳마다 전해 주었다. 본장은 성도들이 지켜야 할 유전과 그 것의 참된 의미를 설명하고 있으며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1-16절), 성만찬을 우롱하는 문제(17-22절), 성만찬에 대한 교훈(23-34절)으로 이루어져 있다.

 

 

12장 -현대 교회는 은사와 관련하여 많은 문제를 노출시키고 있는데, 고린도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은사에 대한 명확한 지침과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는 먼저 은사의 기원과 종류를 설명하고(1-11절) 그것의 사용 원칙을 밝히고 있다. 은사는 그 종류를 불문하고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각 지체가 서로 연합하여 하나의 몸을 이루듯 성도들은 은사를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건덕(健德)을 위해 상호보완하며 협력하는 데 써야 한다. 바울이 은사를 몸에 비유한 것도 이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12-31절). 은사의 남용과 기원을 둘러싸고 분란이 그치지 않는 현대 교회가 다시 한 번 명심해 볼 사항이다.

 

12장 -본장에서는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은사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본장을 \'은사의 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초대교회의 특색인 성령의 역사가 강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참된 것들도 있었던 반면 거짓된 것들도 있었다. 고린도 교회에는 자칭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어떤 이들은 흥분과 망상에 빠져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분쟁을 조장함으로써 교회 내에 대립 상황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바울은 본장을 통하여 은사의 참된 본질을 규명함으로써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영적 은사들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이러한 본 장은 성령의 은사에 대한 총괄적 설명(1-11절), 지체의 통일성(12-20절), 각 지체의 상호 보완성(21-26절), 직분과 은사(27-31절)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13장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 한다면 그 사랑이 가장 시적이고 웅혼(雄渾)하게 표현된 부분이 바로 본장이다. 흔히 ‘사랑의 장’으로 알려진 본문에서 바울은 사랑의 절대적 우위성(1-3절)과 속성(8-13절)을 아름다운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그런 다음 성령의 다른 은사와 비교하여 사랑의 영원성을 노래함으로써 본장을 끝맺고 있다. 여기서는 사랑의 속성 중 ‘인내’ 가 강조되고 있음에 유의하여야 하며(4,7절), 사랑의 긍정적 실천 덕목(-해야 한다)과 부정적 실천 덕목(-하지 말아야 한다)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13장 -본장은 \'신약의 황금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장으로서, 영적 은사의 문제 앞에서 분쟁과 반목을 일삼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은사의 근원과 목적을 논의하던 바울은 본장에서 영적 은사 중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의 은사\'를 언급하고 있다. 바울에 의하면 본질적인 문제는 참된 그리스도의 영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며,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령으로부터 주어진 영적 은사들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쟁을 일삼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의 은사였다. 이러한 본장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특성을 언급한 전반부(1-7절)와 사랑의 영원성을 언급한 후반부(8-13절)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이 결여된 모든 영적 은사는 거짓이며 공동체에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사랑을 매개로 하여 그리스도인의 모든 영적 은사들은 비로소 그 빛을 발휘하게 되며, 모든 은사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것이 바울의 결론이다.

 

 

14장 -12장에서 바울은 은사에 대해 논했다. 그리고 13장에서는 가장 탁월한 은사인 사랑에 대해 설명하였다. 본장에서는 성령의 다른 은사 가운데 하나인 방언과 예언을 다루고 있다. 그는 먼저 예언이 방언보다 더 우월함을 논증하는데, 그 이유는 예언이 성도와 교회의 건덕을 위해 활용될 수 있는 반면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도리어 분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은사를 교회(예배)에서 사용할 때에는 분명한 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정해진 질서에 따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분별하여 사용하는 것, 그것이 바울의 결론이다(39,40절).

 

14장 -본장은 예언과 방언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12장에서부터 계속되던 성령의 은사에 대한 교훈은 본장에 이르러 그 막을 내리고 있다. 당시 고린도 교회 내에 성행하고 있던 방언은 통역의 은사가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것이었으며, 지나치게 방언의 신비함에 몰두하다가 성령의 다른 은사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발생한 정도였다. 그리하여 교회의 질서까지 위태롭게 된 것이다. 이에 바울은 본장을 통하여 방언의 올바른 의미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본장은 예언과 방언의 은사(1-6절), 방언의 올바른 사용(7-19절), 방언에 대한 불신자들의 태도(20-25절), 질서 있는 예배(26-40절)로 구분할 수 있다.

 

 

15장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을 구약 성경과 목격자들의 목격담을 통해 실증해 보인다(1-11절). 이것은 당시 주의 부활을 의심하는 고린도 교인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주의 부활은 자연스럽게 신자들의 부활로 연결된다(12-34절).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이다. 부활시 성도의 육체는 영광스러운 형체를 입을 것이다(35-49절). 이처럼 바울이 부활에 대해 세세히 논증하고 있는 것은 부활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요, 성도의 소망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헛것이요 우리의 믿음도 거짓이다.

 

15장 -본장은 부활의 교리를 전개 입증함으로써 바울의 치밀한 논리성과 조직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곳이라 할 수 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죽으면 음부에 들어간다고 믿어 육신의 부활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특히 유대교 분파인 사두개인들은 영혼 불멸과 육체의 부활을 모두 부인하였다. 헬라인들은 영혼 불멸은 믿었으나 육신의 부활은 믿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영생이란 육신을 벗어버리고 영혼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대교와 헬라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고린도 교회에는 육신의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본장을 통해 육신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예수의 부활 사건을 부인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복음의 진리와 신앙의 근본에 대한 부정이라고 지적하면서 참된 부활의 의미와 신앙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본장은 그리스도의 부활 (1-11절), 성도의 부활(12-19절), 부활의 보증인 그리스도(20-28절), 부활 신앙 (29-34절), 부활한 몸의 상태(35-49절), 부활의 승리(50-58절)로 구성되어 있다.

 

 

16장 -바울 서신의 특징은 신앙, 또는 교회 운영의 기본 원리와 실제적 지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바울은 교회 행정에 관한 실제적인 지침을 밝히고 있다. 즉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연보를 하라는 구체적인 당부를 하고 있다. 추상적인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적인 행위를 통해서 교회간의 협력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디모데와 아볼로를 선대할 것을 부탁하며(10-14절). 권면과 인사로 본서를 끝맺고 있는 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성도를 향한 그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16장 -본장은 본서의 결론부로서 실제적인 교회 행정 곧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고린도 교인들의 연보와 몇 가지 부탁, 문안 인사로 이루어져 있다. 본장은 특히 추상적인 말이나 사상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삶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바울의 신앙적 자세를 잘 보여 주며,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타교회의 형제애적 관심과 헌금은 극도의 이기주위와 개교회 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오늘날의 교회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바울은 헌금 모금을 통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웃에 대한 사랑과 덕을 실천할 기회를 주려고 하였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교회의 단일성을 고취시키기 위함이었다. 즉 바울은 헌금을 통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인종이 다르거나 사는 지역이 다르더라도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이기에 서로 돌보고 도울 책임이 있음을 깨우치려 한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1-4절),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계획(5-12절), 마지막 부탁과 작별 인사(13-24절)로 구성되어 있다.

고린도후서(위로하시는 하나님)

1장 -서신서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사말을 한 후, 바울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다소 길게 언급하고 있다(3-11절). 여기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고난의 구체적인 실례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고난 중에 주어진 하나님의 위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바울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전도 여행을 했으나 그때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는 고난 그 자체보다 그 고난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한편, 12-22절은 고린도 방문 계획 변경에 대한 해명인데, 이것은 그의 방문 변경(연기)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오해를 풀기위한 것이었다.

 

1장 -본서는 고린도전서나 기타 서신들과 비교해 볼 때 바울 자신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타나 있는 개인적 성격이 두드러진 편지이다. 주로 고린도 교회와 바울 자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의 사도직을 변증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 장은 이러한 내용의 바울의 두번째 서신의 서두 부분으로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문단은 문안 인사와 함께 사망과 환난에서 자신을 구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1-11절), 둘째 문단은 바울의 여행 변경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비난에 대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밝히는 사도다운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12-24절). 본장을 통해 교회 전체의 유익과 성도들의 신앙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바울의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2장 -앞장 후반부(12-22절)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 변경에 대한 추가 해명을 하고 있다(1-4절). 바울이 고린도 교회 방문을 변경한 것은 그 곳 교회의 분란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와중에 방문을 했더라면 그는 사랑하는 교인을 직접 징계해야 했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문제가 자체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방문을 연기하였다. 징계보다는 용서와 사랑을 우선시하는 그의 면모는 자신의 대적자를 용서해 주라는 부분에서 더 뚜렷이 나타난다(5-11절). 한편, 복음 전도자를 향기로 비유한 대목은 바울의 전도 자세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인데 오늘날 말씀을 맡은 자들이 유념해야 할 점이다(12-17절).

 

 

2장 -바울이 본서를 기록한 동기 중의 하나는 자신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오해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본장에서도 여행 계획을 변경한 것에 대한 설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 때문이며, 여정 변경 사실을 악용하여 바울을 비방하려는 시도를 제거하려고 의도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바울은 화제를 바꾸어 고린도 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문제의 사람을 용서하라는 권면을 한다. 교회에서의 징벌의 목적은 심안이나 형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간을 이용하여 바울은 자신이 눈물의 편지를 보낸 후에 디도를 만나기 위하여 마게노냐로 떠났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한다. 이러한 본장은 내용상 여정 변경의 이유(1-4절), 잘못한 자에 대한 용서(5-11절), 그리스도의 향기(12-17절)로 구분된다.

 

 

3장 -본문은 사도 바울의 사도직 변호라는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당시 고린도 교인 중 일부는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였다. 그들은 추천장(천거서)이 없는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복음의 열매(고린도 교회)가 곧 명백한 추천서임을 밝힌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그 열매 맺음에 있다. 계속해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옛 언약과의 비교를 통해 확증하고 있다. 의문(6-8절), 정죄의 직분(9절). 사라질 것(10,11절)이 옛 연약이라면 새 언약은 영, 의의 직분,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에 기초한 바울의 사도권은 어느 누구도 시비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여전히 구약의 율법 사상에 묶여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12-18절).

 

3장 -앞장에서 눈물의 편지를 쓰게 된 경위를 설명한 바울은 본장에서 고린도 교회의 회복에 대한 기쁨과 승리감을 가지고, 자신의 사도로서의 사역과 그가 믿는 바를 심도 있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본장에서는 사도권에 관한 문제가 심각하게 다루어진다. 사도란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그리스도께로부터 파송된 인물을 말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사역으로써 더욱더 사도임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또한 대적자들과의 논쟁에 있어서 여러 번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의 편지를 통하여 그들의 신앙을 각성시키고 더욱 견고케 하기 위하여 거짓 사도들의 주장과 대립되는 기독교의 진수를 다시 한번 본장에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다. 본장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 단락에서는 바울의 추천서 문제가 다루어져 있으며 옛 언약의 사역과 새 언약의 사역이 대조되어 설명되고 있다(1-6절). 둘째 단락에서 바울은 모세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대립하여 묘사함으로써 새 언약의 탁월성을 강조하고 있다(7-18절).

 

 

4장 -전장에서 사도직의 본질을 설명한 데 이어 사도된 자의 자세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이중에서, 복음 전파의 핵심 내용이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고 복음 전파자는 단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구절은 전도 사역의 대 철칙이라 할 수 있다(5절). 질그릇 비유(7-18절)는 인간의 연약성과 복음의 능력을 극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다. 바울은 거듭되는 전도 여행으로 인해 심신이 핍절(乏絶)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속에 있는 보배(복음)로 인해 새 힘을 얻었다. 진리의 생명력, 그리고 부활의 소망(16절)만이 세파에 탈진한 우리를 보듬어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4장 -바울이 자신이 지닌 사도직의 영광스러움과 신성함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까닭은 그의 사역에 있어서 유난히 고난과 시련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의 서신들을 통하여 볼 때 바울은 복음 사역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많은 환난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장에서는 사도직이 갖는 영광과 고난을 탁월한 문학적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복음 사역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셨던 것처럼 고난을 당하였다. 아울러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넘친다는 메시지를 선포했는데, 이는 고난이 단지 고난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대한 복음의 핵심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된다. 첫째 단락에서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의 영광을 계속해서 변호하고 있으며(1-6절), 둘째 단락에서는 고난을 통해 성도들이 참여하게 될 영원한 영광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7-18절).

 

 

5장 -‘뒤틀리고, 고난에 찬 이세상의 터널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바울은 내세를 소망하며 이 땅에 영원한 의미를 두지 말 것을 권고한다. 사실 육신의 삶은 잠깐이며 새 하늘에서의 삶은 영원하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보증 하에서 천국을 맛보며 현세를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한편, 11절부터는 주제가 바뀌어 사도의 역할과 직분이 설명되어 있다. 사도는 하나님의 강한 사랑에 의해 부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전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특히 주님의 사역에 의해 성취된 하나님과 성도, 성도 상호간의 화목을 도모하는 직책을 수행해야 한다.

 

5장 -본장에서는 바울이 장막 집과 영원한 집의 비유를 통하여 현세와 내세의 삶을 비교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사도직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해의 직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본장은 \'부활 장\' 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전15장을 논리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거기에서 바울은 죽음과 부활의 문제를 토의하고 있거니와, 부활이란 죽음이 지배하는 옛 존재를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새 창조를 경험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본장 후반부에서는 주제가 좀 바뀌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화해의 직분에 관하여 자세히 논의되고 있다. 본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에서 바울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현재 당하는 고난을 이기고 오로지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을 당부하고(1-10절), 둘째 단락에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해를 경험한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됨과 동시에 화해의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사신이라는 영적 진리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11-21절).

 

 

6장 -본장 서두에는 바울이 경험한 고난이 시적인 문제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바울이 자신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도권을 변증하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이 부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역설적 진리’ 라고도 할 수 있다. 즉, 복음 전도자는 세속적 기준과는 전혀 다른 원리 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죽음이 곧 삶이고 고난이 기쁨의 원천이 된다. 한편, 바울은 자기를 대적하던 고린도 교인과의 화해를 요청한 후, 결론으로서 신자와 불신자간의 구별을 강조한다. 이 말은 불신자와의 접촉을 일절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구별되는 거룩한 생활을 하라는 의미이다.

 

6장 -본장에서 바울은 복음 사역의 수행을 위해 자신이 겪은 수난들을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사도권의 참됨과 신적 기원을 적극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서로 화해하라는 권면과, 불신자들과 서로 분리하고 합하지 말라는 권면을 한다. 이 두 가지 권면은 얼핏보기에 극히 배타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며 판용하고 화해하는 것은 죄로부터 떠나 성결한 삶을 경주하며 영적 순결을 지키는 것과 뗄래야 뗄 수 없는 필요 불가결의 요구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충심을 다해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이 두 가지 권면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하는 부분(1-2절)과 화목케하는 직책으로써 부끄러움이 없이 일할 뿐임을 밝히는 부분(3-10절)과 고린도 교인에 대해 부모와도 같은 관용으로 서로 화해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부분(11-18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7장 -1절은 전장11-17절의 연속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바울은 성도의 구별된 생활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2-4절은 6장 11-13절의 후반부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도 바울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고린도 교인과의 화해를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디도로부터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6절). 바울은 넘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간 자신의 염려와 근심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밝히며 고린도 교인들을 칭찬하고 있다. 이 부분은 흩어진 교회와 성도를 위한 바울의 사랑이 어떠했는가를 가늠케 해준다.

 

7장 -본장은 한마디로 기쁨의 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2:1에 나타나는 바울의 가슴 아픈 고린도 방문 이후에도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던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통해 \'눈물의 편지\'로도 알려진 \'준엄한 편지\'를 전해 받고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함으로 인해 걱정과 근심 속에 있던 바울에게 기쁨을 전해 주는 장면이 본장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본장에서 이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게 된 이유에 관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근심은 절망과 불안, 초조로 결국 사망을 이루는 세상 근심과는 달리 고린도 교인들에게 죄에 대한 무관심에선 벗어나 죄로부터 자신들을 깨끗케 하는 순결 운동을 전개하게 했으며,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했다. 본장의 내용은 화해를 요청하는 전반부(1-4절)와 화해로 인한 기쁨을 표현한 후반부(5- 16절)로 구성되어 있다.

 

 

8장 -본장과 9장은 본서의 또 다른 한 부분이다. 여기서는 연보 문제가 등장한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비교적 가난한 지역 특성과 가뭄으로 인해서 재정적인 곤핍을 당하고 있었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를 예로 제시하면서 아낌없는 연보를 고린도 교회에 부탁하고 있다. 연보의 원칙은 자원하는 심령이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는 형제(교회)의 어려움에 흔쾌히 동참해야 한다. 자기의 유익만을 위하여 쌓아 두는 재물은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만나처럼 썩을 것이다(출16;19-20). 모름지기 모든 교회는 상호 부조 속에서 균형적인 성장을 하여야 한다.

 

8장 -본장에는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구제 헌금에 대한 권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 권면은 본장과 9장에 걸쳐서 계속된다. 이 두 장에서 사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에 대해 설명하며 권면한다. 이 연보의 배경은 행 11:27-30과 관련되어 있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풍성한 헌금을 한 사실을 고린도 교회에 알려 그들도 헌금에 기꺼이 동참하기를 권고했고, 헌금의 모금을 위해 디도와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한 형제를 고린도로 보내기로 하고, 특별히 디도의 신앙과 사람됨을 언급하고 있다. 본장을 통해 헌금의 본질적인 중요성은 물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간의 일치와 사랑의 교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장은 마게도냐 교회의 구제 모범(1-5절), 연보의 원리 및 목적(6-15절), 동역자 디도에 대한 소개(16-24절)로 구성되어 있다.

 

 

9장 -앞장에 이어서 연보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이 설명되고 있다. 바울은 디도를 비롯한 세 명의 동역자를 고린도 교회에 보내어 연보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것은 연보를 둘러싼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처였다(1-5절;8;16-24). 또 다른 이유는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바울은 심는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내세워 연보에 있어서 인색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6-15절). 모든 성도는 자신의 능력의 범위 안에서 관대하게 바쳐야 한다. 두 렙돈을 바친 과부(막12;42)와 향유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자세(막14;3)가 바로 참다운 연보의 자세이다.

 

9장 -전장에 이어 본장에서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헌금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하고 있다. 즉 파송자들이 고린도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헌금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후하게 낼 것을 권면한다. 이와 같은 자신의 의도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본장을 기록하였다. 바울은 이미 고린도 교인들의 열심을 여러 교회에 자랑하였다. 따라서 파송자들이 도착하였는데도 헌금이 준비되지 않았으면 큰 낭패가 되기 때문에 본장을 기록한 것이다. 더욱이 바울은 헌금을 전해 받을 마게도냐인들이 자기와 함께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을 때 아직 헌금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심히 큰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바울은, 헌금은 자기 헌신이 선행이어야 하는 것이며 이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따름을 교훈하고 있다. 본장의 내용은 준비된 연보(1-5절), 연보의 유익(6-15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10장 -본장에서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변호가 주 내용을 이루고 있다. 특히 그는 이 부분에서 고린도 교회 내에 잔존하고 있던 이교주의자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래서 흔히 “준엄한 편지” 라고도 한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논조와는 달리 다분히 공격적이고 사적인 어조로 적대자들을 힐난(詰難)하고 있다. 적대자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고 그의 인격까지 문제 삼았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다시 한 번 조목조목 변호하고 있다. 일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이 같은 변호는 불의에 굴하지 않고자 하는 그의 용기와 복음 전파를 위한 열정 때문이다.

 

10장 -바울은 본장에서부터 13장까지 자신의 사도직을 옹호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바울은 이러한 해명이 필요한 이유를 13장에서 솔직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고후13:3), 물론 고린도 교인 모두가 바울을 그렇게 의심하고 적대시한 것은 아니다. 사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바울과 함께 있었고, 여러모로 그의 사역을 도와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바울의 반대파들은 이와 달리 바울과 교제가 없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충성하지 못하도록 유혹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교회 내에 이런 가시가 있을 때 바울은 온 힘을 다해 그것과 그것이 위협하던 곪은 곳을 제거하곤 하였다. 본장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은 바울의 변호로서 자신의 우유부단(優柔不斷)에 대해 변명한 후 사도권의 참 목적이 성도를 바로 세우는 데 있음을 보여 주고(1-11절), 둘째 단락은 바울이 자신의 자랑과 적대자들의 자랑을 비교 대조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부분이다(12-18절).

 

 

11장 -앞장에서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격렬한 경고를 한 바울이 본장에서는 그런 이단자들을 용납한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질책을 하고 있다. 바울은 갖가지 모함을 받으면서도 고린도 교인들을 정결한 신부로 보전시켜 그리스도께 중매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이단자들의 미혹에 빠져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정체를 폭로함으로써(1-15절)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했다. 바울이 이단자를 격하하고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16-33절) 사도권과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11장 -전장에서 적대자들의 비난에 대해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한 바울은 이제 적극적이고 격렬한 어조로 거짓 교사들을 용납한 고린도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고 적대자들에 대한 자신의 사도직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있다. 바울의 이 증명은 단순히 개인적인 자랑이나 이득을 위한 벗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의 바른 신앙을 위한 것이었다. 바울은 적대자들과 자기 자신 모두가 한 분 그리스도에게 붙은 지체이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형제가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들의 즐거움, 저들의 약함을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적대자들의 교만과 불손함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권위 침해와 자기 자랑에 대하여 보여 주는 자신의 참 자랑은 자신이 복음 사역을 위해 당한 고난과 자신의 약함이었다. 본장의 내용은 거짓 사도들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는 전반부(1-15 절)와 바울의 수고와 열심을 언급한 후반부(16-33절)로 구성되어 있다.

 

 

12장 -내용상 앞장에 연속되는 부분이다.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체험과 계시(1-13절), 그리고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을 밝히고 있다. 모세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하나님의 환상과 계시를 직접 체험하였다. 그가 이러한 개인 체험을 밝히는 이유는 자기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거짓 교사들의 반박을 원천 봉쇄하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서였다. 실제로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 변호성의 언급을 많이 했지만 그 모두가 ‘주 안에서’ 교회의 건덕을 위해 한 것이었다. 한편, 고린도 교회를 세 번째로 방문할 계획을 밝히면서도 바울은 일절 물질적인 부담을 그들에게 주지 않으려 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성도의 바른 믿음의 회복에 있었다.

 

12장 -바울은 본장에서 자신이 본 환상과 계시에 대해 언급한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종교적 체험이며 사도로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것을 내세우고 자랑하면서 사도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사도의 증거로서 내세울 만한 것은 그런 것보다도 연약한 가운데 참는 것이며 약한 중에 힘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었다. 그러나 거짓 사도들이 환상과 묵시를 받았다고 하며 교인들을 신비적인 황홀경에 쏠리게 하니 바울도 부득불 그런 일이 자기에게도 없지 않았다고 자랑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본장에서 바울이 자신의 체험을 자랑한 것은 단순히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첫째는, 자신의 사도성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과 계시의 위대성을 자랑하기 위함이며, 셋째는 교회의 건덕과 질서 유지를 위함이었다. 이러한 본장의 내용은 바울의 환상과 육체의 가시(1-10절), 사도의 표(11-13절), 자급 전도 원칙의 고수(14-18절), 바울의 염려 (19-21절)로 구성되어 있다.

 

 

13장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끝까지 거부하는 자는 심판하신다. 고린도 교인들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벌을 피할 수 없다. 바울은 그들에게 회개를 권면함과 동시에 범죄자를 강력히 처벌할 것을 암시한다. 실로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가 조화된 분이시다. 바울이 이처럼 강한 경고성 발언을 한 것은 자신의 손으로 그들을 징계하는 불행한 일을 사전에 피하기 위해서이다. 자신은 저주를 받아 끊어질지라도 동족을 구원하기 원하는(롬9;3) 그의 애절한 사랑이 여기서도 발견된다(7절). 고린도 교회는 그 자신이 세운 영적 자녀와 같은 것이었다.

 

13장 -전장에서 영적 체험을 자랑하여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고린도 방문 계획을 밝힌 바울은 본장에서 회개에의 권면과 더불어 징계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이 사도적 권위와 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그들이 미리 회개함으로써 그 교회 방문시 실제로 징계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람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징계의 목적은 회개이며, 참된 회개는 하나님의 징계와 형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본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문단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1-10절). 이제는 그들의 죄악과 반대를 더 이강 눈감아 주거나 덮어 두지 않겠다고 과감하게 확언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다시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다. 두번째 문단은 바울이 그들이 온전해지고 교회가 평강 하며 서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바랄 뿐임을 나타내고 있다(11-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