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야고보서,벧전,후서, 요일,이,삼서, 유다서

히브리서(모든 것보다 우월하신 하나님)

1장 -본서의 전체적인 주체는 그리스도의 탁월성(우월성)이다. 이 같은 주제를 전개시키기 위해 저자는 본장에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먼저 다루고 있다. 즉 그리스도는 선지자들(1-3절)과 천사(4-14절)보다 우월한 분이시다. 먼저, 구약 선지자들은 불완전한 사람으로서(불완전성)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할 뿐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무흠한 자로서 계시 그 자체였다. 그리고 저자는 천사보다 뛰어난 그리스도의 풍성을 논증하기 위해 구약 성경 일곱 부분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주님이 하나님과의 유일한 중보자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천사를 피조물의 으뜸으로 생각하여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개자로 여긴 것에 대한 반박이다.

 

1장 -히브리서 기자는 옛적에는 하나님께서 선자자들을 보내사 말씀을 선포케 하셨으나 종말에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아들을 보내사 능력의 말씀을 선포케 하셨다고 말한다(1-3절). 다음으로 기자는 구약 성경의 일곱 부분을 인용하여 천사와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보다 훨씬 위대하신 분임을 역설한다(4-14절).

 

 

2장 -천사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접한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는 단호한 결단으로써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구원의 비밀이 큰 만큼 성도의 책임도 커지는 것이다. 한편, 초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두고, 그가 천사보다 낮아졌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었다. 그러나 본문은 그리스도의 비하(성육신)가 결코 그의 신분상의 낮아지심이 아님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즉 성육신은 죄인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자발적 순종의 결과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잠시 동안의 비하였던 것이다.

 

2장 -저자는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복음을 지키기에 힘쓸 것을 권면한다(1-4절). 또한 저자는 사람의 현재 상태는 천사보다 못하지만 그것은 잠깐 동안의 일일 뿐이고 나중에는 천사보다 귀한 존재가 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사람들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천사보다 귀한 존재로 삼으시려 함이었다고 논증한다. 결국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영원한 비하가 아니라 성육신을 통하여 다른 인간들까지도 천사 보다 높은 지위에 이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5-18절).

 

 

3장 -본장에서부터 다음 장까지는 그리스도와 모세를 비교하고 있다. 물론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우월한 풍성을 논증하기 위해서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과 대면했으며(출33;1) 율법을 직접 수여받기도 한 자였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모세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로 흠모하였다. 그러나 그는 인격과(1-3절) 사역(4-6절)이라는 측면에서 그리스도와 비교가 안 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것을 거부한 자는 모세의 율법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전철을 되밟는 꼴을 당하게 마련이다(7-19절).

 

3장 -히브리서 기자는 본장에서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의 위대성을 역설하고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사환으로 충성하였으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의 아들로서 충성하였다(1-6절). 모세의 충성과 베푼 많은 이적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던 사실을 깨우쳐 준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독자들에게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끝까지 견고히 설 것을 권면한다(7-19절).

 

 

4장 -이곳의 핵심단어는 안식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받았으나 불순종으로 인해서 그 축복을 향유하지 못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와 동일한 안식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그것을 소유하고 못하고는 전적으로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다. 불순종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상속하지 못했듯, 복음을 거부하는 자는 안식(하나님 나라)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한편, 14절부터는 그리스도의 신적 성품을 논증한 지금까지의 주제가 일단락되고 그분의 신적 사역이 10장 18절까지 계속된다.

4장 -하나님께서는 안식의 약속을 주셨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였으나 참된 안식에의 인도는 아니었다. 참된 안식의 때는 아직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1-10절).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케 하며, 자신의 추한 모습을 깨닫게 해준다(11-13절).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우리의 큰 대제사장으로 선포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제사장 기독론을 전개하려고 한다(14-16절).

 

 

5장 -구약의 제사장은 인간의 죄를 사하는 중보자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는 기름부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사역하였다. 여기까지는 그리스도와 공통점을 가진다(1-4절). 그러나 그리스도는 죄없는 자로서, 인간적인 연약함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제사장들과는 본질적인 차이점을 가진다. 주님은 아론의 반차를 따른 지상의 어떤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과 같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셨다. 그러나 이 진리가 심오한 까닭에 초보적인 신자는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11-14절). 그러므로 영적 유아기에 있는 신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신앙에 이르고자 전력해야 하는 것이다.

 

5장 -제사장은 사람들의 대표로서 사람들 가운데서 뽑고, 하나님의 임명을 받는다. 제사장은 사람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린다. 그런데 제사장도 사람이므로 제사장 자신을 위한 속죄 제사도 드려야 한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대제사장보다 우월한 분으로서 철저한 순종의 사람이다(1-10절).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에 관한 설명을 하기에 앞서 신앙의 성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11-14절).

 

 

6장 -신자는 영적 지식에 있어서 성장해야 한다. 이것이 신앙의 법칙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영적 성숙에 게으른 자는 배교의 위험에 빠질 확률이 많다(6-8절). 과거에 아무리 심오한 신앙체험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현재 나의 신앙이 미숙하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범죄로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선줄로 생각하지 말고(고전10;12). 온전한 신앙의 분량에 이르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여(19,20절) 인내하는 것을 들 수 있다.

 

6장 -히브리서 기자는 연약한 신앙의 초보에 머무르지 말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것을 권면한다. 한편으로는 배교자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1-8절). 히브리서 기자는 배교자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한 다음에 자신의 독자들에게 구원에 가까이 있는 자들이라는 따뜻한 위로의 말과 소망 중에 인내하라는 격려의 말을 해준다(9-12절). 히브리서 기자는 소망과 인내의 모범으로서 아브라함의 예를 든다. 그리고 예수께서 델기세덱의 반차를 좇아서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셨음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준다(13-20절).

 

 

7장 -앞장 끝에서 기자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그리스도의 품성을 간략히 언급한 바 있다(20절). 그런데 여기서는 그 사상을 발전시켜 멜기세덱의 사역과 풍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아론 계통의 제사장 직분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에서이다. 내용을 세분해서 보면 역사적(1-10절). 교리적(11-24절). 실제적(25-28절)으로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레위 족속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이 논증되어 있다. 결국 이것은 옛 종교(유대교)로 돌아가고자 시도했던 개종한 유대인들의 배교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암시한다.

7장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고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고 아비도, 어미도, 족보도 없는 자이다(1-3절).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자기 형제들에게서 십일조를 취한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레위 계통이 아닌데도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다. 그러므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자기 조상인 아브라함을 인하여 자기들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바쳤다고 할 수 있다(4-10절).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 직제가 온전치 못하였으므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을 세웠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히브리서 기자는 역설한다(11-28절).

 

 

8장 -기자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직분의 우월함을 논증함에 있어서 멜기세덱이라는 대제사장을 내세웠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언약을 주요 테마로 내세워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확증하고 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옛 언약 하에서 여러 가지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구속 제사의 모형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는 새 언약에 근거한 것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완전하고 충족스러운 희생이었다. 그러므로 더 이상의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 주님은 율법의 마침이요 친히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다. (율법의 마침=제사의 마침)

 

8장 -그리스도는 땅에서 제사장이 될 수 없는 분이시다. 땅의 제사는 불완전한 제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땅의 임시적 성소가 아닌 하늘의 참 성소에 계시면서 제사장이 되신 분이다(1-6절). 첫 언약이 무흠하였으면 둘째 언약을 요구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 언약을 제시하셨다. 새 언약은 옛 언약을 폐기시켰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새 언약 아래서 섬기는 분이시다(7-13절).

 

 

9장 -옛 언약하에서의 제사의 불완전성이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논증된다. 그것은 사람의 죄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9,10절)는 치명적인 결합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완전하고 유효한 제사의 등장이 필연적으로 요청되었다. 구약의 모든 경건한 사람들이 소망한 이 같은 제사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그분의 제사는 유일성(16-23절). 유효성(12-15절)이라는 측면에서 구약 제사와 비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구약의 제사가 모형이었다면 주님의 제사는 원형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우월성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이다.

 

9장 -히브리서 기자는 새 언약의 큰 영광을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폐기된 옛 언약의 의식의 일부를 설명한다. 옛 언약의 제사는 반복되었으나 새 언약의 제사는 하늘 성소에서 예수 자신의 피로써 단번에 드려졌기에 반복됨이 없다(1-14절).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 영원한 대제사장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보이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합법적인 유언의 유추로써 설명한다. 유언은 유언자의 죽음으로만 유효하게 된다(15-22절). 그리고 그리스도의 희생의 무시간성과 죄를 없애 주는 효과를 강조하기 위하여 그 독특성을 다시 한번 더 반복 설명한다(23-28절).

 

 

10장 -구약의 제사는 제사장은 물론이거니와 그 제물의 불완전성 때문에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흠 있는 동물의 피가 사람의 죄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는 죄의 청산이 아닌 죄를 유예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성과 신성을 지닌 자로서 자신을 흠 없는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 결과 죄 문제가 완전한 해결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마땅한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위대함을 깨닫고(11-18절). 주님의 희생의 가치가 큰 것만큼 그것을 거부하는 자가 받을 형벌 또한 준엄함을 기억하자(26-31절).

 

10장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의 우월성을 레위적인 체계와 비교하면서 요약 한다(1-8절).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사 현재에도 활동 하고 계심을 강조한다(9-18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이 대제사장을 믿는 믿음이며 이 믿음은 서로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로 격려하는 일이 필수적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중요시되어야 한다(19-25절). 한편 배교의 위험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엄중한 경고를 한다(26-31절). 저자는 과거 그들의 인내를 기억할 것을 권고하면서 확신을 잃어버리지 말 것을 강조하였다(32-39절).

 

 

11장 -소망장(롬8장). 사랑장(고전13장). 부활장(고전15장). 등과 함께 신약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분으로서, 흔히 믿음장이라고도 불린다. 저자는 서두에서 믿음의 본질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비가시적인 대상을 우리 눈에 분명하게 보여 주는 효과를 가진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전적인 신뢰에 기반을 둔다. 아벨과 노아 그리고 에녹 등은 자신들의 삶에서 이러한 믿음을 실천한 의인들이다(4-7절). 족장들(8-22절), 모세(23-29절), 여호수아와 라합(30,31절), 그 외 이름 없는 여러 선진들 역시 믿음으로 일생을 경주한 자들이다. 이처럼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킨 것은 그들의, 모범적인 삶을 오늘에 조명함으로써 우리들도 그 같은 삶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11장 -본장에서는 믿음의 승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역사상의 인내를 예증한다. 전 장의 후반부에서는 인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여기서는 그 예증을 드는 것이다. 이 믿음은 바울적인 의미의 믿음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믿음은 소망과 용기라는 강력한 요소를 지닌 신뢰의 태도이다. 거의 대부분 족장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편이지만, 과거의 모든 역사 속에서 그러한 믿음의 발자취를 찾아 볼 수 있다(1-40절).

 

 

12장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는 자신의 믿음을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전장에서 믿음의 속성과 믿음의 의인들을 열거한 기자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그 믿음을 삶 속에서 역사하게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신앙성숙을 위한 노력(1-13절). 경건훈련(14-17절). 그리고 신자의 특권에 합당한 생활(18-29절)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푯대를 향하는 경주자의 삶과 방불하다(1절;빌3;14). 그리고 신앙의 진리란 현실 생활전반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

 

12장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경주할 것을 권면 한다. 십자가상에서 인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훈련해야 함을 역설한다(1-11절). 옳은 길을 따르는 데는 결단이 필요하다. 음행과 악행과 부도덕을 피할 것을 명령한다(12-17절). 이제 다시 한번 새 언약의 우월성을 말한다. 새 언약의 큰 영광과 큰 중보자와 큰 안정을 모두 말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새로운 길을 이용할 것을 권면한다(18-29절).

 

 

13장 -성도의 마땅한 생활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형제(1절). 배우자(4절). 영적 지도자(7,8,17-21절)에 대해 사랑으로 대하고 질서를 따라 복종하여야 한다. 참된 신앙은 대신 관계와 대인관계가 공히 진실해야 한다. 한편, 당시 유대교 개종자들 중에 또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고자 하는 부류가 있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를 다시 욕보이는 행위와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의 생명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9-17절). 수신자들의 영적 안녕을 기원하고 작별인사를 함으로 본서가 마무리 되고 있다(18-25절).

 

13장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신앙의 실천적 열매들을 강조한다. 사회 생활(1-3절)과 개인 생활(4-6절)과 신앙 생활(7-9절)에 대해서 권면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제단을 설명하는 교리적인 부분을 첨가한다(10-17절). 그 후 결론을 맺는다. 저자는 자신을 위한 기도, 특히 수신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하고 감동적인 축복 기도와 영광의 찬송을 드린다. 그리고 수신자들에 대한 마지막 호소와 디모데에 관한 언급과 이달리야의 어떤 성도들의 문안과 간단한 축복 기도로 서신을 끝맺는다(18-25절).

 

야고보서(참 믿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1장 -본서가 집필될 무렵 초대 교회 성도들은 여러 고난에 봉착해 있었다. 그러므로 시련의 목적과 의미 그리고 그 결과를 설명한 본서 서두는 당시의 상황에 매우 적절한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같은 내용을 통해서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고자 했을 것이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다’. 마찬가지로 의를 위한 핍박 없이 생명의 면류관이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어질 수 없다. 한편, 신자의 연단을 위한 시련과는 의미가 다른 유혹을 신자는 극구 멀리해야 한다(13-18절).

 

1장 -야고보서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인사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시련은 인격을 연마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시련을 기쁘게 맞이해야 한다(1-4절). 참된 지혜는 하나님께부터 나오며 믿음으로 반응할 때 받을 수 있다(5-8절). 부는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9-11절). 시련은 하나님께서 인내를 가르치시려고 주시는 것이지만, 시험은 사람의 악한 욕심으로 말미암는다(12-15절). 하나님은 시련을 주실 뿐만 아니라 좋은 선물들을 주신다(16-18절). 말씀을 듣고 받았을 때에는 하나님의 의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 말씀을 듣는 자가 행함으로 순종치 않을 때에 당하게 되는 위험을 경고하고 헛된 경건과 순수한 경건의 차이를 설명해 준다(19-27절).

 

 

2장 -서두에서 교회 내의 형제 차별의 부당성을 강한 어조로 책망하고 있는데(1-13절) 이것은 행위가 동반된 참된 믿음의 본질을 설명하는 다음 대목으로 자연스럽게 넘어 간다(14-26절). 교회는 세상적인 기준(재물, 권력 등)으로 성도를 차별 대우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한 자의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행위와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것은 삶의 구체적인 면면을 통해서 신실성의 여부가 검증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이란 단순한 지적 승인만이 아니라 의지적 순종까지 동반함을 알 수 있다.

 

2장 -야고보서 저자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여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부한 자들을 환대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가난한 자들을 차별하는 것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신 주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주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1-13절). 그리고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수반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유명한 선언을 한다. 야고보서 저자는 자신의 이 말을 입증하기 위하여 구약의 아브라함과 라합을 예로 들어서 그 들이 자신의 믿음을 행함으로 증거했던 사실을 강조한다(14-26절).

 

 

3장 -인간은 언어의 존재이다. 언어로써 사고하고 교제하며 생각을 표출한다. 혀는 곧 언어이다. 이처럼 작지만 실로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혀를 어떻게 잘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본장은 제공해 준다. 야고보는 먼저 혀의 폐해를 지적하고(4,5절). 강한 의지를 통해서 아름답고 덕을 세우는 말만을 할 것을 요청한다. 예나 지금이나 혀를 통한 분란과 범죄가 끊이지 않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같은 권고는 깊이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편, 후반부는 참된 지혜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긴 하나, 그것 역시 행위로써 증명된다고 밝힘으로써 믿음(지혜)과 행위의 일치라는 본서의 주제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3장 -야고보서 저자는 선생이 되려는 자들에게 두 가지의 교훈을 언급한다. 첫째는 말을 조심하라는 교훈이다. 선생은 말의 능력을 올바로 깨닫고 통제되지 않는 말의 위험성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혀는 우리의 신체 가운데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부분일 뿐만 아니라 혀로 인한 결과는 온 신체에 영향을 준다. 야고보서 저자는 여러 가지 예증을 통하여 길들여지지 않은 말의 치명적인 위험과, 동일한 입술로 축복과 저주를 빌 수 있는 모순을 설명한다(1-12절). 둘째는 참된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질서를 깨뜨리고 시기와 분쟁을 유발시키는 지혜는 거짓된 지혜이다. 오직 위로부터 내려온 참된 지혜는 거룩하고 관용하고 평화를 이루고 선한 열매를 맺는 지혜이다(13-18절).

 

 

4장 -전장에서 야고보는 혀로 말미암은 불의한 행실을 논한 바 있는데 여기서는 정욕으로 인한 죄악된 생활이 어떠한 것인지를 기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범죄와 실패의 원인을 외부의 환경이나 일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야고보의 시각은 다르다. 그는 모든 범죄함의 근거를 영적인 문제에서 보고 있다. 즉 영적인 간음과 교만이 곧 죄악된 생활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밖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안(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중심을 지키고자 노력하여야 한다.

 

4장 -야고보서 저자는 인간의 정욕을 온갖 죄악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 정욕으로 인하여 분쟁이 일어나고, 정욕으로 인하여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정욕으로 인하여 세상과 벗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1-5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고 마귀를 대적하고 회개하고 손과 마음을 깨끗케 하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은혜를 주신다(6-10절). 이어서 야고보서 저자는 남을 비판하는 태도를 버릴 것을 강력하게 권면한다(11-12절). 그리고 자기 확신에 찬 상인들을 예로 들어서 하나님을 떠난 자의 삶은 불확실하고 허무하고 어리석은 삶일 뿐임을 경고한다(13-17절).

 

 

5장 -본서는 신자의 개인 윤리뿐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까지도 주제로 삼고 있는데 본장이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특히 1-6절은 주종간에 야기되는 불공평한 소득 분배와 착취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다. 이것은 종에 대한 인권이 전무하다시피한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획기적인 선언이었다. 더불어 오늘날의 뒤틀린 노사 관계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말씀이다. 이어서 야고보는 말세를 사는 성도들의 인내를 강조한 다음(7-12절). 사랑을 중심으로 상호 보조 하는 삶을 살 것을 역설함으로써 본서를 마무리 짓고 있다.

 

5장 -야고보서 저자는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부자들의 악행을 신랄하게 비판한다(1-6절). 그리고 독자들에게 고난 중에서도 인내하고 재림의 소망을 품도록 권면한다(7-11절). 그리스도인의 말은 맹세가 필요없을 정도로 분명해야 한다(12절). 마지막으로 기도의 능력을 언급한다.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하고 기쁨이 있는 자는 찬송할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중에 병 든 자가 있으면 교회의 장로들에게 부탁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하면서, 엘리야의 기도가 일으킨 기적을 상기시킴으로써 믿음의 기도는 능력 있음을 선언한다(13-18절). 미혹당하여 진리를 떠난 자들이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크게 칭찬함으로써 글을 맺는다(19-20절).

베드로전서(우리의 소망되시는 하나님)

1장 -격려의 편지라는 일컬음에 걸맞게 베드로는 간단한 문안 인사를 마친 후, 고난 중에 있는 성도를 위한 위로에 거의 전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당시 소아시아 여러 지역 교회들은 이미 고난을 체험했을 뿐 아니라 큰 환난(네로 박해)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종말에 맡게 될 영화로운 유업을 제시함으로써 현재의 고난을 극복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렇게 될 때 고난은 단순한 시련이 아니라 더 큰 축복을 얻기 위한 신적 도구가 된다. 이 같은 진리를 깨달은 자는 고난 중에서도 성화된 삶을 추구하게 된다(13-25절).

 

1장 -저자는 먼저 문안 인사를 한 후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복음을 축복을 선포한다. 미래의 구원의 소망은 현재의 고난과 시련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 고난은 믿음을 정금같이 단련시켜서 미래의 구원을 확실하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해준다(1-12절). 믿음과 소망 중에 거하는 성도들은 개인적인 정욕을 좇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13-16절).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가 아닌 삶의 열매로 판단하신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성도들은 거룩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17-21절). 구원받은 성도들은 피차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22-25절).

 

 

2장 -전장 후반부가 성화된 삶에 대한 당부였다면(1;13-25) 본장 전반부는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1-12). 즉 성도는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주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까지 자라가야 한다. 여기서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5절) 이 같은 영적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는데서 부터 신앙 성숙이 시작된다. 한편 11절부터는 국가와 주인(고용주)에 대한 개인의 윤리를 다루고 있다. 성도는 복음 전파라는 대업과 질서유지라는 차원에서 그들이 악을 저지르지 않는 한 복종하여야 한다.

 

2장 -저자는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를 권면한다(1-3절). 성도들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4-10절). 성도들은 나그네와 같은 존재들이므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선행을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11-12절). 그리스도인은 천국 시민이지만 지상적인 삶의 질서를 전면 부정해서는 안 된다(13-17절). 사환들은 주인에게 순복해야 하고 애매히 고난받는 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자취를 바라보면서 인내해야 한다.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참는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다(18-25절).

 

 

3장 -2장에서 언급된 성도의 생활 윤리가 계속된다. 먼저 불신자 남편을 둔 아내는 그 남편에게 순종의 미덕을 보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그를 복음으로 이끄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 역시 아내의 연약성을 인식하고 그를 사랑하여야 한다. 한편 성도 간에는 지체 의식이 다른 어떤 것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이것이 전제되어야만 비로소 성도간의 다섯 가지 덕목(체휼, 사랑, 겸손, 등‘8,9절)이 실천될 수 있다. 고난당하는 신자는 핍박(자)에 대해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믿음으로 담대히 이겨내야 한다. 수난 당하신 그리스도의 모범(18-22절)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큰 소망과 위로가 된다.

 

3장 -저자는 성도들의 가정생활에 관해 말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외모보다는 마음을 다듬어야 하고, 남편은 아내가 더 연약한 그릇임을 알고 소중하게 여길 것을 권면한다(1-7절). 그리고 성도들 상호간에는 사랑하고 서로 불쌍히 여기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어 주라고 권면 한다(8-12절). 한편, 악행으로 인한 고난보다는 선행으로 인한 고난을 받게 된 것이 복인 줄 알고 감사할 것을 권면한다. 고난을 받을 때에는 인내하고 믿음과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은 자에게는 대답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3-17절).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신 사건을 언급하고 세례의 참 뜻이 전인격의 변화임을 강조한다(18-22절). -

 

4장 -구원받은 자는 고난 중에서도 성화된 살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그는 신앙의 빛이 환난 때에 더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매사를 근신과 인내로 경주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역경에서든 순경에서든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변화된 생활상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12-19절은 성도와 고난과의 관계가 또다시 함축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요약하면, 고난은 신자의 세상 생활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을 회피하려는 소극적인 자세를 벗어나 그것을 신앙 연단의 호기로, 천국 상급의 상속기회로 삼아야 한다.

4장 -육체의 고난과 육체의 정욕을 대조시킨다.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본보기를 따를 것이며, 음란과 방탕과 술 취함 등의 정욕을 멀리할 것을 엄히 경고한다(1-6절). 종말이 가까웠음을 알고 깨어 있어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봉사하는 거룩한 삶을 살 것을 권면한다(7-11절). 그리고 저자는 특별한 고난의 상황을 예견하고 여러 가지로 격려한다. 불같은 시험이 있음을 알고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까지도 함께 나누게 될 것이라고 격려한다. 또 그리스도인과 그를 고난에 빠뜨린 일반적 죄인들 사이를 확실히 구별해 준다. 만약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욕을 받는다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고 신뢰해야 한다(12-19절).

 

 

5장 -나라가 어려우면 충신이 생각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교회(성고)가 고난에 처했을 때 그들을 위로하고 인도할 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교회 지도자들이다. 베드로는 이미 국지적인 환난이 도래했고, 조만간 대환난이 닥칠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을 언급하고 있다. 지도자(장로)는 고난의 증인이라는 자기 신분을 명심하여, 흠 없는 생활로 회중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회중은 이들에게 순복의 미덕을 보여야 한다. 한편, 성도는 사단과의 영적 전투 중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여 근신과(8,9절) 소망(10절)의 생활에 전력해야 한다.

 

5장 -본장은 그리스도인들의 협동적인 훈련과 개인적인 훈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장로들은 무리를 돌봐야 하는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저들의 영혼을 살펴야 한다.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하며 양쪽 모두는 겸손의 은혜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하는 유일한 올바른 태도이다(1-6절). 신자는 자신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하며 원수인 마귀의 악한 계교에 대해 항상 경계하여야 한다. 이것은 고난의 주제를 다시 상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목적은 오직 고난받은 자로 하여금 미래의 영광을 쌓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려는 것이다(7-11절). 끝으로 저자는 자신의 동역자인 실라와 바벨론의 교회와 마가의 인사를 전한 후 간단한 축사로 서신을 맺는다(12-14절)

 

 

베드로후서(성장과 성숙을 바라시는 하나님)

1장 -베드로전서가 외적인 환난에 대한 성도의 자세를 다룬 반면, 본서는 당시 교회 내부의 문제 특히, 이단 사상과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가 주 내용을 이룬다. 어떻게 보면 이 같은 것이야말로 교회의 순결을 저해하고 성도를 타락시키는 주요인이었다. 베드로는 영적 성숙(믿음)이야말로(1-11절)이단을 배격하는 원동력이 됨을 역설하고 있다. 그런데 그 믿음은 반드시 말씀에 근거한 것이라야 한다(12-21절). 말씀의 권위를 붙잡는 자만이 난무하는 이단 사상의 올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베드로가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장 -저자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로 소개하면서 간단한 인사를 한다(1-2절).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이 썩어 가는 세상에서 거룩한 성품에 이르러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덕목은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이다. 이러한 순서를 통하여 저자는 기독교의 덕목이 지식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맺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했다(3-11절). 저자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생존시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자신의 저작을 통하여 복음의 진리를 생각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증거하는 실제적인 사건인 변화난 사건의 목격자였음을 강조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자신과 동료들이 증거하고 있는 예언적 말씀에 귀기울일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지 말도록 경고한다(12-21절).

 

 

2장 -거짓 선지자들의 특성과 분별법을 하나님은 이미 구약 율법에서 가르쳐 주셨다(신13;1-11). 베드로는 당시 교회에 암약하고 있던 거짓 선지자들의 유래와 일반적 성격, 그리고 그들이 받을 심판을 분명하게 언급함으로써 교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거짓 교사의 특성은 한 마디로 ‘불법의 종’(살후2;3)이라는 데 있다. 그들은 진리를 왜곡하고 부도덕한 쾌락주의를 조장하여 성도를 사망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는 물론이거니와 그들에게 미혹되어 배교한 자에게는 그 어떤 자보다 더 엄중한 심판이 내려진다.

 

2장 -본장은 거짓 선지자들에 관한 언급이다.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은 은밀하다. 그들은 주를 부인하고 다른 사람들을 부도덕한 생활로 미혹케 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탐심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기만적인 방법으로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파멸은 확실하다(1-3절). 이러한 진리의 적들의 운명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의 심판의 사례들이 인용되고 있다. 타락한 천사들의 운명과 대홍수 사건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 등을 통하여 심판의 확실성을 보여 준다(4-10절). 저자는 거짓 선지자들의 도덕적 부패를 고발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 중에서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서 죄악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강력한 어조로 경고하고 단식한다. 그들은 복음을 모르는 것이 오히려 나았다(11-22절).

 

 

3장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사약한 것 중의 하나는 재림에 관계된 것이다. 그들은 재림의 급박성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아예 재림 자체를 부인한다. 재림을 부인하는 사람은 자연히 방종과 부도덕한 생활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예기치 않는 시기에 재림하사(10-12절), 악인과 선인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실 것이다(·13절). 그러므로 성도에게 요구되는 것은 거짓 선지자의 교설(巧說)을 물리치고 종말에 이르기까지 순결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

 

3장 -본 서신의 기록 목적은 선지자들의 예언과 예수의 가르침을 일깨워 줌으로써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항하도록 하기 위함이다(1-2절). 주의 재림의 지연으로 인해 재림 자체를 부인하고 재림을 소망하는 성도들을 조롱하는 거짓 교사들은 천지 창조가 하나님의 사역이고 세상 끝 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한 아들이다. 재림의 지연은 하나님의 자비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며 주의 날은 반드시 임할 것이다(3-10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최후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거룩하고 신실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기를 다시한번 당부하고 독자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라 가기를 기도한다(11-18절).

 

 

 

요한 일서(사랑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1장 -요한은 본서 전체의 서론격이라 할 수 있는 1-4절에서 본서의 인사말과 기록 목적을 밝히고 있다. 즉, 선재하시고(1절), 실제 역사상에 성육신하신(2절)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분과의 교제를 증진하기 위해서 본서를 썼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인성(육체)을 부인한 당시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배격할 의도로 본서가 저술되었음을 암시해 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의 참된 교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를 구주로 인정하고(8-10절) 도덕적 성결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5-7절). 요컨대 성도의 내적 변화가 동반되어야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하다.

 

1장 -저자는 통상적인 인사와 수신자에 대한 언급을 생략한다. 대신에 저자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직접 듣고 보고 알고 있음을 주장하고, 이 메시지의 기본적인 내용이 성도간의 교제와 하나님과의 교제에 관한 것임을 암시해 준다(1-4절). 하나님은 빛이시므로 성도들은 그에 어울리게 순결하고 투명한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눌 수 없다. 이 순결한 삶은 성도들의 항구적인 대언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행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항상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미쁘고 의로우신 주님의 총서를 체험해야 한다(5-10절).

 

 

2장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먼저 계명을 준수한다(1-7절). 주님께서도 ‘너희가 나의 제자이면 계명을 지키라’ (요14;15)고 훈계하셨다. 다음으로 사랑의 실천이다(8-11절). 이렇게 볼 때, 성도의 생활이란 바른 교리(계명)와 실천적 삶(사랑)이 조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성도는 원론적인 측면에서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되며(12-17절). 오직 주님만을 바라는 신앙을 견지해야 한다(18-29절). 자신의 영적 신분을 깨닫는 자만이 그에 합당한 실천적 삶을 구가할 수 있다.

 

2장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1-6절). 새 계명은 사랑의 실천을 요구한다. 어두움과 증오가 함께 존재하듯이 빛과 사랑도 함께 존재한다(7-11절). 이러한 교제의 삶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다 해당된다(12-14절). 성도들은 세상을 사랑치 않아야 한다(15-17절). 이미 많은 적그리스도가 출현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의 약속을 믿고 의를 행해야 한다(18-29절).

 

 

3장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교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요한은 이 같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서두에 언급함으로써 신자 상호간의 형제애가 필요함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 있다. 열매를 통해 수종을 알듯, 사랑의 실천 여부를 통해서 신자와 비신자를 판별할 수 있다(1-10절). 사랑은 자기 회생을 전제로 하는데 그 완벽한 모범은 그리스도이시다(16절). 본장에서 요한은 사랑의 신적 기원과 당위성을 강도 높게 밝히고 있다(16,17-19절).

 

3장 -신자들의 특권이 제시된다. 특권의 핵심 내용은 그리스도를 닮게 되리라는 보증이다(1-3절). 다음으로 죄가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만 하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들의 삶에는 마음의 습관적인 태도라는 측면에서의 죄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귀의 자녀들과는 대조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올바른 행동을 하고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4-10절). 가인과 아벨을 대조시킴으로써 서로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설명한다. 살인이나 마찬가지인 미움과는 대조적으로 사랑은 본질상 희생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행위 없는 신앙 고백은 잘못된 것이다(11-18절).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누려야 한다. 만약 마음이 그를 정죄하지 않는다면 확신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자책이 있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위로를 주시겠지만 신자도 다시 사랑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19-24절).

 

4장 -하나님의 자녀임을 판별하는 또 다른 기준으로 영분별 능력을 제시하고 있다(1-6절). 사랑이 실천적 기준이라면 영분별 능력은 교리적인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영분별의 능력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영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이는 참된 신앙으로 자랄 수 없고, 따라서 주님과의 교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는 사악한 영에 미혹되어 신앙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주의 영이 없으면 성도가 아니라고 하셨다(롬8;9). 한편 13절부터는 논의의 주제가 바뀌어 사랑의 실천적 자세를 성령의 사역과 연관하여 거론하고 있다.

 

4장 -거짓 가르침들이 활개칠 때에는 진리의 확실한 시금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금석들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참된 것으로 인정하고 믿는 태도이다. 이것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이다(1-6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러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예는 우리 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보내신 사건 속에 나타난다. 이 숭고한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모범이다(7-12절).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신앙 고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도 사랑 안에서 온전해 가야 한다. 완전해진 사랑은 두려움을 물리칠 것이다. 그리고 형제 사랑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강력한 시금석이다(13-21절).

 

 

5장 -믿음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형제를 사랑한다. 참된 사랑은 믿음에 기초한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형제를 사랑하지 않거나, 반대로 사랑한다 하면서도 믿음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은 성도의 취할 바가 아니다(1-5절). 이 두 가지 덕목을 갖춘 자는 구원의 확신 속에서(6-13절). 악과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14-21절). 결국 믿음과 사랑의 힘이 험한 세상에서 이길 힘을 주는 것이다. 마치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십자가의 예수님을 일으켜 세웠듯이!

 

5장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무거운 짐이 아니다. 그것은 기쁨에서 우러나는 순종이다. 이 새 계명의 순종의 의무는 신앙과 연결될 때 승리를 얻을 수 있다(1-5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는 성령과 물과 씨의 셋이니 이 증거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다(6-12절). 저자는 본 서신의 결론 부분에 이르러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확신을 보여 주기 위하여 많은 확신의 말들을 한다. 저자의 저작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영생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중생한 자들을 보호하시므로, 중생한 자들은 죄 짓는 습관에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알고 있고, 예수께서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심을 알고 있다. 끝으로 우상 숭배를 경고함으로 서신을 맺는다(13-21절).

 

 

요한이서(이단을 경계하시는 하나님)

1장 -본서는 계명(진리)에 대한 사랑과 이단에 대한 경고라는 두 주제를 축으로 하여 형성되어 있다. 먼저 요한은 하나님의 계명 안에 거할 것을 권면한다(1-6절). 이것은 결국 사랑이 진리에 기초해야 하며 참다운 진리는 형제 사랑이라는 구체적인 생활로 표현됨을 뜻한다. 요컨대 사랑은 지식적인 측면에만 기울어서도 안 되며, 더불어 진리가 결여된 맹목적인 것이어서도 안 된다. 다음으로, 요한은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고를 강한 어조로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단은 영지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체(인성)를 거부하였다. 그들을 집안에라도 들이지 말라(10절)는 말은 그들과의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저자는 인사말에서부터 진리라는 말을 세 번씩이나 사용함으로써 본 서신의 주제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은혜와 평강과 긍휼의 삼중 축복은 진리와 사랑에 근거한다(1-3절). 사랑을 새 계명같이 쓰지 않고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임 을 강조한다(4-6절).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 것을 명령한다. 그들의 거짓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고 자기 점검을 통해 이미 배운 기독교의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한다. 그리고 거짓 가르침을 가르치는 자들을 환대하지 말아야 한다(7-11절). 끝으로 저자는 곧 독자들을 대면하리하는 계획을 말하고 인사말을 전한다(12-13절).

 

 

요한삼서(나그네(전도자)를 생각 하시는 하나님)

1장 요한의 다른 서신과는 달리 본서는 가이오라는 개인에게 보낸 사신이다. 요한은 이곳에서 복음 전도자에 대한 두 사람(가이오, 디오드레베)의 태도를 대조함으로써 도처에서 복음을 위해 애쓰는 순회 사역자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즉 복음 전도자를 선대한 가이오의 행위를 칭찬함으로써 교인들이 주의 사역자들을 정성껏 예우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의 사도권을 부정하고 순회 전도자를 박대한 디오드레베의 악행에 대해서는 강하게 경책하였다.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함이 주님께 행하는 선행과 다름없다(마10;42).

 

저자는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편지를 보낸다(1절). 저자는 가이오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가 진리를 따르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고 있다(2-4절). 또한 저자는 가이오가 순회 전도를 위하여 나그네 된 자들을 선대하고 많은 도움을 준 일에 대하여 칭찬한다(5-8절). 이제 저자는 논조를 바꾸어 순 회 전도를 위하여 나그네 된 자들을 핍박하고 그들을 접대하는 자들까지도 내어 쫓는 디오드레베를 비판한다(9-10절). 그리고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을 칭찬한다. 그는 뭇사람과 진리와 저자가 증거하는 선한 사람이다(11-12절). 조만간 만나기를 바란다는 말과 간단한 문안 인사를 함으로써 서신을 맺는다(13-15절).

 

 

유다서(이단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1장 -서두에는 본서의 기록 목적이 분명히 밝혀져 있다(1-4절). 즉 유다는 당시 초대 교회의 가장 골칫거리 중의 하나였던 영자주의 이단을 격퇴하기 위해 본서를 집필한 것이다. 거짓 교사들을 다룬 본론에 들어가서는 이단의 죄상과 심판을 준엄한 어조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구약의 가인, 발람, 고라의 실례와 외경의 기록까지 동원하여 이단자들의 심판이 필연적임을 논증하고 있다. 이것은 이단을 경계하고, 신자의 신앙을 공고히 하는 이중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17-25절).

 

유다는 부르심을 받고 사랑을 얻고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한다. 그는 원래 일간 교리에 관하여 쓰려고 하였으나 교회의 사정상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도덕적 타락을 일삼는 자들을 비판하기로 마음먹었다(1-4절). 유다서의 독자들의 교회 공동체는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유다는 그들에게 징벌이 확실히 임함을 보여 주기 위하여 구약에서의 여러 가지 예를 든다. 그들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타락한 천사들과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과 가인과 발람 등이다(5-19절). 불경건한 자들에 관해 충분히 언급한 후에 유다는 보다 건설적인 교훈을 주려고 한다. 신자들은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고 성령으로 기도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20-23절). 끝으로 영광의 하나님께 드린다(24-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