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 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1. 교의사의 정의
1) 어원적 정의
(1) 교의의 유래
교의(Dogma)란 말은 헬라어 도케인(δοκειη)에서 유래된 말로 δοκειη은 δοκειη μοι라는 표현으로 “내 생각에도 그럴 듯 하다” “나는 무엇을 명확히 결정하였으니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확정적 사실이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교의란 결정적 의미, 혹은 공인된 결의나 자명한 과학의 진리들, 잘 확립 되고 명백하며 타당한 철학적 확신, 정부의 법령, 공적으로 제정된 종교적 의미 등을 나타낼 때 쓰였다.
구약에서는 정부의 법령과 의식에 사용되었고 신약에서 예루살렘 회의(행15:)에서 당시에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 사도의 말씀을 듣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 의한다는 진리를 전파 받고 복음 신앙에 서있는 상황에서 유대에서 온 율법주의자들의 말에 의하여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도전이 들어왔고 이에 바울의 권위까지 도전을 받아서 해결이 되지 않아서 예루살렘 교회에 문의하기로 하여 예루살렘에 사도들의 회의가 열려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게 하되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메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는 가하리라고 결의하여 보내게 된다. 이것이 최초 교리적인 논쟁이라고 하겠다.
신학상으로 종교적 교의는 권위에 기초를 둔 종교적 진리이며, 어떤 교회 회의에서 공적으로 제정된 것이다. 철학적으로 어떤 제안이나 원리를 나타내는 철학적 용법으로 사용된 것을 교부들이 교리의 본질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성경신학에서는 교의는 이미 계시된 성경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의하여 신앙이 형성되고 신앙에 따른 교회의 교회에서 공적으로 작성한 신조가 결정되며 신조를 가르치는 내용으로서 교리를 말한다.
이러한 어원적인 정의나 신학적 정의에서는 교리란 의미를 “이미 공적으로 작식된 진리, 혹은 결의”를 말하는데 이런 의미라면 신조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교리사에 대한 많은 책들을 살펴보면 많은 신학자들의 사상들을 언급하고 있어서 기독교 사상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리사의 범위는 어떻게 되는가? 교리사는 신조의 역사와 기독교 사상사의 가운데 서있는 것이 교리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교리의 근거가 되는 신조의 역사와 신조를 형성하게 했던 당시 신학자들의 사상들을 아울러 살펴보면서 당시대마다 신조에 근거한 어떠한 신학적 진리를 교회에서 가르쳤는지를 살펴 보고자 한다.
(2) 교의의 연구 방법
가. 수평적 방법
벌코프 박사는 총괄적으로 교리 발전사를 시대적으로 취급하여 각 시대의 여러 교의들의 기원을 추구하되 그 시대 말에 미완성인 체로 남겨두었다가 다음 시대에 가서 적당한 때에 다시 계속 발전된 것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신론전개는 중세기 초까지 연구하다 중단되고 이어서 기독론이 중세기에 연구되다 중단되고 죄론과 은총론에 관한 점진적이 연구가 고찰되었다고 한다.
이 방법은 교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시대마다 주어졌던 신학논의를 중심으로 연구하되 중심 되는 논의가 무엇이었고 그 결과 어떻게 신조가 형성되었는가를 살펴보는 방식이다.
이 연구방법에 대한 문제는 다음 시대나 전 시대에 이러한 신학적 주제에 대하여 논의하고 증거한 일들이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요 논쟁을 통해서 신조를 형성하게 되었지만 그 주제를 초대교회에서 지금까지 신학자들의 논의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수직적 방법
이 방법은 현 교의신학의 한 주제를 두고 시대마다 어떻게 논의가 되어왔고 그 결과 현재 최종적인 결과로 확증된 교리는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방법으로서 주제를 따라 연구하는 방법이다.
벌코프 박사는 이에 대하여 수직적 방법이라 명하면서 교회에서 관심이 중심이 되고 있는 순서에 따라 개별적으로 교의들을 연구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신론이 맨 처음 취급된 것은 교회의 관심이 제일 먼저였기 때문이다. 이런 비슷한 방법으로 기독론, 죄론, 은총론, 속죄론 등도 다양한 성장 단계를 따라 그 최종적인 공적 형태를 이루기까지 연구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 연구방법에 대한 장점은 한 주제에 대하여 사상의 정상적인 흐름을 처음서부터 마지막까지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고 교리 발전을 추적할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방법도 문제가 있는 것은 교회사 전 시대에 중점 되는 논의가 무엇인가를 주지 못하는 것이다.
다. 종합적 방법
이 방법은 시대적으로 중심적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가장 중점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던 내용을 중심으로 전 교회사에서 논의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방법이다. 즉 논의 순서는 수평적 방법을 취택하고 논의 방식은 수직적 방법을 택하고자 하는 것이다. 본인은 여기서 이 방법으로 살펴 나가려고 한다.
(3) 교리사의 임무
가. 로마 캐톨릭의 교의사관
로마 캐톨릭은 교의의 불변성(교황 무오성에 근거를 둠)을 역설한다. 기본스는 교회 신경은 오늘의 것이나 과거의 것이나 다 같이 동일하다고 말하고 윌머스는 “기독교의 모든 계시된 교리들 - 만민을 위한 교훈과 법도는 불변적인 것이라고 한다. 신앙의 어떠한 항목도 더 가하거나 감할 수 없으며 어떠한 교의도 그리스도가 주신 이외의 다른 뜻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교회는 새로운 교의를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오직 교회에 맡겨진 거룩한 유산을 전승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교의는 최초의 공탁물과 성도들에게 한번 주신 신앙 속에 벌써 주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것이 성경과 사도적 전통 속에 내포되어 있기에 결코 교의는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의는 발전도 없고 역사도 갖지 않는다. 다만 주관적인 이해에만 발전을 가져온다.”고 한다. 본의 헬메스(Hermes of Bonn)는 교의사가 변화의 발전을 전제한다는 이유로 교의사를 특수 연구 분야로 취급하는 것은, 캐톨릭 교회에 대한 항거라고 주장하고 그 이유 때문에 교의사 강의하기를 주저했다고 한다. 즉 로마 캐톨릭에서의 교리사 연구에 대한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묄러와 뉴만이 페타비우스의 교리 발전설을 옹호하여 말하기를 “교회의 많은 교리가 근원적으로는 최초의 공탁에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 교리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훌륭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교회의 마음 밭에 심어진 씨앗과 같아서 역사의 과정에서 만발한 교리들로 나타났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훈적 교회 곧 교권 계급이 새로운 교리 발전의 결과를 시도했고 그 중 어떤 교리들은 신적 계시의 진리임을 선언하므로서 그 교리들의 무오함을 시인하였다고는 것을 말하므로 교리 발전을 인정하였지만 역시 교황 무오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 개신교의 교의사관
교의가 유기적인 체계에 따라 발전했다는 것으로 교회 지도자들이 진리를 이해하려다가 잘못된 마귀의 뜻을 좇으며 다른 요소들과 접촉하여 막다른 골목에서 방황하기도 하였지만 계속적인 발전이 있었다고 한다. “특별계시란 하나님에 관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속사상에 관한 원지식의 점진적인 표현으로 모든 부분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유기적인 총체, 곧 신적 사상의 포괄적인 표현이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교의는 외적인 역사 기록으로 남긴 연대기일수만 아니고 오히려 교회 정신의 내적 활동과 유기적 성장의 역사”라고 보았다.
또한 교리를 두고 “과거의 교회가 종교생활의 변화에 따라 시대마다 그 나름의 교의를 만들어 그 시대의 영적 상황을 더 잘 조화되는 교의로 대치해야 한다.”고 말하므로 시대마다 점진적으로 진리를 이해하고 중대한 종교적 격변에서도 과거의 교리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기에 교의사는 연구 과제라고 하였다.
이러한 개신교의 교리사에 대한 관점은 구속사적인 교리가 발전하게 되었고 또 시대마다 종교 생활의 변화를 따라 발전해야 한다는 내용은 성경의 절대진리를 진리로 표출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적으로 변개되어야 할 것을 말하므로 인본주의화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 교리사 연구 내용
교리사는 당시의 신학논쟁에서 결과 되었다. 그러므로 당시의 교회의 인정은 받지 못하였으나 일반적으로 흐르던 교의 이전의 사상들과 자료들을 고려하고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교리가 형성되기 위한 논쟁점과 논쟁에 동참했던 신학자들의 사상들, 그리고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과 그 결과로 형성된 신조들, 그리고 그 신조를 중심으로 교회에 증거 되는 가르침들과 그 신조에 의해서 다음 신조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과거 교의가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표출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4) 교의사의 사명
가. 철학적 영향력에 가미된 교리의 근거
교리사는 당시대에 신학이 형성되는 사상사와 밀접한 연관이 되었다. 교회의 교리 자체를 부정하려는 하르낙은 교의를 “헬라철학과 기독교 진리의 괴상한 혼합물이라고 보고 그 속에 이교철학이 압도적으로 차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즉 “복음을 지식인들의 호감을 사려는 유혹에 빠져 신앙을 지적인 개념 곧 교의로 변화했고 이것이 교회사의 주축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하르낙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신학자들이 시대마다 철학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그 철학을 근간으로 하여 성경 내용에 주어진 신학 사상을 재조합하려고 하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교리사의 첫째 사명은 철학의 영향을 받은 교리의 실체를 확인하고 그 결과 어떤 철학적 사고와 영향으로 교리가 성경 진리에서 변질되었음을 발견하며 이를 배격하고 바른 신학을 정립하고자 함에 있다.
나. 이단과 논쟁
교리가 형성하게 된 직접적인 문제가 당시대에 이단이 등장하여 교회를 흔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단에 대항하기 위하여 바른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리의 필요성이 생겨났다. 그런데 박형룡 박사는 교의 필요성에서 이단이 발발하자 “성경 말씀 자체가 다른 무엇을 의미하도록 곡해되는 곳에서 그저 성경 말씀에 호소한다는 것은 충족하지 않다. 외해 사상의 전체계가 성경의 사신에 밀수입된 곳에는 그 전 체계에 대항해서 성경의 본래적 의미를 조직적으로 배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므로 교회를 인도하여 교의의 체계들을 작성케 한 것은 악변하는 이단 운동들이다. 이런 이단에 대한 저항에서 초대교회의 교의들이 일어났고 성경의 순수한 사신을 로마 카톨릭의 오류들로부터 보전하려는 투쟁에서 종교개혁기 교리가 나타났다” 고 한다.
여기서의 문제는 이단에 대항하기 위하여 일어난 것은 시대적으로 진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일이나 성경 내용으로는 부족하기에 논리적 재배열을 이룬다는 것은 성경이 진리로서 충족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교리는 성경이 증거 하는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여 그 진리를 증거 함에 있는 것이다.
또한 문제는 이단과의 논쟁에서 교리가 형성되므로 성경의 총제적인 진리를 표현하지 못하고 이단에 대한 반동으로서 교리를 형성하므로 완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경신학에서는 이단과 관계없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총체적으로 증거 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단사상이 말하는 논리와 전혀 다른 차원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다. 성경의 해석에 의한 교리 형성
교리는 성경의 해석에 의하여 신앙이 생겨났고 신앙의 조항인 신조를 결의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가르치기 위하여 형성된 사상이다. 그런데 교회가 어떻게 성경해석을 했으며 어떻게 재조합을 하면서 성경해석에 오류를 범하고 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당시대마다 이단이 존재했고 철학이 성경해석에 파고 들어와 교리 형성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또한 기독교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는 율법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 등이 교회에 영향을 미쳤다.(고대에는 헬라철학, 중세에는 로마의 정신, 종교개혁기에는 독일정신과 영국유형의 사상) 그 외에도 시대마다 일어나는 교회의 상황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일들과 문화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런 시대의 여러 영향을 받아서 교회가 성경해석에 있어서 얼마나 자의적이고 철학적이고 또한 육체의 욕망에 지배를 당하여 성경이 해석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 폐단을 확인한 후 성경이 말하는 바른 해석에 의해서 성경이 증거 하고자 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계시의 원리에 따라서 바르게 전개해 나가려는 것이 사명이라고 하겠다. 결국 성경에 바른 해석으로 바른 진리를 창출하므로 증거된 성경신학의 우월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2. 사상적 배경
1) 희랍 로마의 철학
고대 교회에 영향을 미친 소크라테스, 플라톤, 스토아주의 및 신플라톤 사상이며 중세에 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실재론을 주장하는 스콜라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근세에 와서는 실존주의 철학이 기독교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을 보게 한다.
(1) 스크라테스 사상
그는 참된 지식과 참된 선을 결부시켰는데 명확한 지식은 선한 행위를 낳게 마련이며 악한 행위는 무지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모든 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인간이 본래부터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깨우쳐 나타나게 하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은 비록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인간 속에 있는 덕의 근원이 된다. 그는 자연을 다스리는 것과 같이 모든 환경 가운데서 인간을 이끌어 주기도 한다.
인간 영혼은 오직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신전 존재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때에 비로소 불멸적인 존재가 된다.
(초대 저스틴, 도덕주의 모본을 삼은 초대교회,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
(2) 플라톤의 사상
가. 세계관
이원적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로 구분하고 진정한 실재의 세계는 오직 관념의 세계 뿐이다. 변전 무상한 현상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이데아의 세계에 참여하는 한에 있어서만 실재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데아의 세계는 선의 세계이고 현상계는 악이며 이데아 즉 선의 세계의 정점이 하나님이라 본다.
나. 신 개념
하나님은 선이며 모든 선하고 유익한 사물의 근원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악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고통의 원인을 다른데서 찾아야 한다.
하나님은 변치 않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선의와 아름다움과 우월의 완성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어떤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은 곧 그보다 나쁜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영원한 모형에 따라서 우주를 만든 창조주 아버지 및 장인 등으로 불리운다.
다. 인간의 영혼
선재적인 것이라 본다. 이데아의 세계에서 죄를 범했기 때문에 속죄와 정화를 위하여 현상의 세계에 보내져서 육체와 결합되었다. 그러므로 영혼은 교정의 집인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서 순수한 정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일이다. 이를 위하여 신중심적 명상과 신비적 금욕주의의 실천이 구원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즉 영혼이 전에 있었던 이데아의 세계를 상기하고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뜨거운 열망에 사로잡히게 되는 열광적이고 연연한 향수는 영혼을 승화시켜 주고 이데아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 이런 영혼의 정신적 상승에 육체를 꺽고 제어하는 금욕주의를 통하여 감각적 욕망이 이성적 능력에 굴복하게 된다.
이러한 영혼과 육체가 조화를 이루든지 영혼에 육체가 굴복하게 되는 과정에서 지혜와 용기와 절제, 공정의 네가지 기본적이 덕이 생겨난다. (인간은 가능한 한 세상에서 벗어나야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
라. 선재적인 영혼
본래 이데아의 세계에 속한 것이며 불멸적이 것으로 그 근거를 영혼은 비 물질성, 단순성, 생명력, 영원적 이데아를 파악하는 능력이라 했다. 인간의 영혼은 신적 존재를 꼭 닮았으며 불멸적이고 이성적이며 균일적이고 불가분리적이며 변함이 없는 것이다.
마. 구원관
영혼이 자기 구원을 성공적으로 이루게 되면 영원한 미와 선으로 빛나는 축복의 환상에 도달하게 된다. 악한 영혼을 장차 형벌을 받게 되지만 그 형벌은 오랜 세대에 걸쳐 끝나게 된다. (연옥설과 만물 회복설 ---> 오리겐 사상의 모체)
(3) 스토아주의(제노 Zeno of Citium)
고대의 이교적 윤리체계 중에서 가장 고상한 전형으로 기독교의 윤리와 닮아서 초기 기독교에 영향을 주었다.
가. 유물론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진 이 세계는 두 원리의 결과라고 한다. 능동적 원리로서의 정신은 원동자(原動者) 수동적 원리로서의 물질은 피동자(被動者)이다. 이 두 원리는 한 궁극적 실재의 서로 다른 면이다. 이러한 궁극적 실재는 물질적이며 실체적이다. 순수한 정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에는 조잡한 상태와 우미한 상태가 있다. 마음이 물질의 우미한 상태이며 육체는 물질의 열등한 상태이다. 하나님도 형체적이므로 세계는 실로 하나님의 몸인 것이다. ---(터툴리안 사상의 기초가 됨)
나. 범신론
하나님과 세계와의 관계는 마치 영혼과 육체의 관계와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위대한 세계혼이며 물질의 운동이며 물질을 덥게 하고 생기를 주는 불이며 물질을 이끌어 나가는 지성이며 물질을 다스리는 법칙이며 로고스 혹 이성이다. 우리 이성은 그 일부분이다. 생명과 발전의 모든 근원이 로고스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씨앗이 되는 로고스라고 한다. 이처럼 하나님과 산 우주를 동일시 한 것으로 범신론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기계적 필연성이요 만물을 결정짓는 숙명이다.
다. 유신론적 양상을 띠고 있다.
범신론과 유신론을 결합시킨 일종의 절충으로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목적에 따라서 이끌어 나가는 자비한 섭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만물이 선한 왕이며 참되 아버지이다. 그는 완전하며 친절하며 선하고 자비하며 인류를 사랑한다. 그는 덕 있는 자를 보상해 주며 악한 자에게 형벌을 준다.
라. 최고 선
최고선을 덕이라고 하고 윤리적 좌우명은 덕을 위해서 덕을 행하라. 행복은 삶의 주된 목적이 아니라 단지 부수적 산물인데 덕 있는 자가 곧 행복한 사람이다. 삶의 위대한 법칙은 자연을 따라서 사는 것이며 이성을 좇아서 사는 일이다.
마. 죄 혹은 악의 근원
소크라테스는 무지라고 했고 이성의 결핍에 있다고 했는데 스토아학파도 선한 것을 참되게 아는 자는 그것을 사랑하게 될 것이며 또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감각적인 것은 인간에게 최악의 적이며 그것을 억제하는 일이 인간의 첫째 의무이다. 죄는 인류의 보편적 상태라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바. 세계동포주의
세상에는 유일한 신적 이성이 있어서 온 우주에 충만해 있고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는 모든 한 형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법칙도 하나뿐이요 도덕적 행위의 표준도 하나뿐이다. 우리는 모두 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노예나 제왕이나 같다. 모든 인간은 최고 선을 위하여 협력해야 하며 전체의 복리를 위하려 힘을 합해야 한다.
(4) 신플라톤주의 (Neo Platonsm)
신플라톤주의는 희랍철학과 고대 종교의 종착지이다. 플라톤철학의 근본적 경향, 후기 스토아주의의 종교적 도덕론, 필로의 사상 그리고 일번적인 동양 사상의 영향 등이 나타나 있다. 기독교 초기 지도자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으며 후기에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플로티누스(204-269)
가. 유출설 혹은 범람
하나님은 단순하고 완전하고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는 오직 한 분이며 그 안에는 복수성이나 다양성이 없다. 그는 만물과 지식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우리는 그가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혹은 하고자 하는 것에 관해서도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학적이든 철학적이건 간에 인간의 지식에 관한 한 하나님은 접근할 수 없는 존재이며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비록 만물의 근원이지만 그것을 창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는 세계를 필요로 하지는 않고 또 세계를 창조할 뜻도 없었다. 이 세계는 하나님에게서 유출 혹은 범람의 과정에서 넘쳐흐른 것이다. 이런 유출 혹은 범람의 과정에서 일자에게서 첫째 : 누우스(Nous),정신 혹은 순수한 마음, 정신에게서 프쉬케 혹은 영혼, 영혼에게서 물질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물질은 악한 것이 된다. 그래서 악은 선의 결핍인데 악이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 하였다.
영혼이 물질과 결합해서 현상의 세계가 생겨났으며 , 그 결과로 영혼은 가사적(加死的)이고 악한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다. 영혼이 인간의 육체 속에 들어온 것은 진정한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는 영혼이 그 주목의 초점을 신에게 두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에 두기 때문이다. 육체는 근본적으로 악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육체의 장막에 거하는 기간을 통해서 악을 인식하게 되고 자신의 힘을 이용할 줄 알게 되고 신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길을 떠나게 되므로 유익한 것이라고 한다.
나. 회귀 (흡수)
발전의 과정은 이제 정반대의 방향이 되어서 낮은데로부터 시작하여 높은 데로 향하게 된다. 영혼의 임무는 둔중한 육체의 속박을 견디어 내고 차츰 높은 단계로 상승함으로서 신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다. 이런 임무를 수행하는데 실패한 영혼은 그 죄의 성질과 정도에 따라서 사후에 다시 인간이나 짐승이나 혹은 식물의 몸으로 태어나게 도리 것이다. 순결한 영혼들은 별들의 세계에 살게 될 것이며 오직 완전히 성숙한 영혼만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 이 상태에서 영혼은 그 자신을 초월하고 이데아의 세계로 상승하게 되어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깨닫게 될 뿐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다. 신플라톤주의의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
기독교 이단 종파와 교부들의 가르침에서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초월성, 불가지성, 영성, 무시간성의 개념은 디오니시우스나 어거스틴에게 영향을 주었고 (마니교의 이원론적인 것을 버리고 일원론으로 돌아서는 길잡이가 됨) 일원론과 이원론의 적합한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세계로 세계에서 하나님에게로의 발전이라는 개념의 결함은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5) 아리스토텔레스 (B.C 384-322)
마케도니아 왕 주치의의 아들로 태어나서 B.C 368년에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메이아에 입학하여 공부함
그의 논리학에 의하여 형이상학에서 개념을 질료와 형상으로 말하는데 질료는 형상을 찾아서 위로 상승운동을 하면서 꾸준히 올라가면 최상류의 순수형상을 만나게 된다. 이 순수 형상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하위의 질료들이 상승운동을 하게 만드는 운동의 제일 원리이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부동의 동자이다. 이 같은 운동을 목적론적 운동이라 부르며 중세 신존재 증명에서 목적론적 증명을 여기에 근거로 두고 하게 된다. 이 부동의 동자가 순수운동으로서 신을 말하지만 이 신은 형이상학적 신이다. (보에티우스를 거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게 됨)
이러한 철학들은 당시 기독교의 교부들과 지성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철학에 의한 교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들이 전개하는 용어나 사상이 철학적 용어를 빌려서 표현하고자 하였고 성경의 진리를 철학적 체계를 빌려 재 조직화하려는 시도가 주어졌고 그것이 현재 교리에 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보게 한다.
2) 유대교
초대 교회 교리가 형성되는 사상적 배경으로서 유대교의 율법주의가 영향을 끼친다. 그 당시 유대주의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바리새파와 에세네파, 그리고 정치적 배경으로서 사두개파를 여기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1) 바리새파
가. 말의 뜻
구별한다. 자기네들이 완전히 구별되었다는 의미로 쓰여졌다. 남은 더럽고 추악하고 자기는 거룩하게 성별된 족속이다. 자신을 고고한 존재로 여기고 성전 앞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금식을 하고 성문 앞에서 문안을 받고 안식을 지키고 옷을 길게 늘여뜨려서 자신을 구별하게 되었지만 외식을 하게 된다.
나. 기원
에스라 이전의 예언자와 성직제도에서 유래 된다.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가 될 때(B.C587년) 성전이 훼파되고 제사제도도 없어지며 레위지파 제사장도 포로로 잡혀간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 기간 중에 율법만 남게 되었고 그 율법이 생활의 틀이 되었고 귀국 후에도 율법은 유대교의 생명이 되었다.
저들이 귀국 후 제사장과 의식이 있는 성직제도가 부활되었지만 율법학자와 서기관이 새로운 권위체계로 등장하게 된다. 전에는 제사장이 율법을 해석하여 가르쳤는데 이제 서기관과 율법학자들이 그 일을 하므로 백성들로부터 새로이 인정을 받게 된다. (파사 말엽?헬라시대 초엽)
그런 상황의 변화로 인하여 포로 이전에는 성전만이 저들의 유일한 신앙을 위한 곳이었으나 이제 회당에서 율법을 가르치므로 양분화 되었다.
그 후 마카비 시대 후기에 제사장들이 수리아에 동조을 하게 되므로 인하여 백성들의 존경이 율법학자들에게 돌아간다.
또한 헬라가 통지하는 기간에 게루시아라는 원로원과 같은 국가 되고 기관이 생겨났는데 이때 평신도 서기관이 여기에 동참하게 되므로 특권층의 계층이 허물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평신도 서기관들이 바리새파의 핵심이 되었고 여기에 여러 파당이 가세하며 유대교의 기성종교 단체들로부터 분리주의자라는 의미로 바리새파로 불리우게 된 것이다.
다. 사상
저들은 율법해석상의 철저한 정확성과 율법의 세부적으로 지키는 그런 자들로 유명했다. 자신의 몸과 의식용 비품 및 기구에 관해 의식적인 정결과 분리를 특히 강조했고 율법의 엄격주의였으며 형식주의에 속한다.
①바리새인은 하나님에 의해서 전 세계가 통제되고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서 다스려진다고 믿었으나 사두개파는 이를 믿지 않았다.
②부활과 내세를 믿었다. 그리고 고도로 발달한 천사를 믿었다.(행23:8)
③ 저들은 자신들만 참되고 경건한 이스라엘인이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천사를 통한 바른 교제를 누리고 있다고 믿었다.
④메시야관 : 기름부음 받은 주 곧 다윗의 아들로 오셔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방민족을 진멸하고 오히려 저들을 노예로 삼게 되어 유대는 형통하게 되고 온 세계가 다 보는 가운데 이스라엘집이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을 믿었다.
(2) 사두개파
가. 유래
유대인의 종교적 정치적 제사장으로 구성된 귀족단체사독이란 다윗시대의 제사장의 이름에서 유래 되었으리라고 본다. (솔로몬의 제사장)
바벨론의 포로 귀환 후(B.C539년) 수룹바벨 때 군주정치의 재건하려는 잘못된 시도 이후에 권력이 제사장에게 집중이 되었다.
헬라시대 셀루커스 왕가의 안티오커스 4세의에 의하여 유대에 극심한 박해가 내려져서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피로 제사를 지내고 대제사장을 자기가 임으로 임명하게 된다.
그 후 유다지파의 마카비가 헬라의 셀루커스 왕과 투쟁하여 죽고 넷째아들 요나단이 셀루커스와 화친을 맺은 후 하스모네의 가문임을 내세워 유대의 대제사장 직책을 겸임하므로 유다지파에서 정치와 제사직을 독식하게 된다. 그 후신으로 형성된 세력이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특권계층으로서 사두개파가 형성되었다.
나. 사상
이들의 교리는 자연주의자였고 현실주의자였다. 그래서 이성적이고 내세를 부인하고 부활도 부인했으며 결국 인본주의 신학자들과 비슷했다.
(3) 에세네파
거룩하다는 의미에서 부른 이름으로 금욕주의자들이다. 그래서 하얀 옷을 입고 다녔으며 독신을 강조했다. 저들은 수도원생활처럼 산속에 은거하기를 좋아했고 명상했으며 또한 수도자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수도원 운동, 신부의 하얀 까운, 명상, 금욕주의 등에 영향을 끼침)
율법주의는 바리새파와 더욱 강화하여 지키려고 했고 채식과 금욕주의 혹은 공동체 생활을 했다. (쿰란 공동체도 이 에센파의 일종으로 본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절대적 신뢰를 얻은 경건한 사람들로 알려 졌다.
이러한 유대주의의 사상들이 초대교회에 성별된 율례의 체계와 장로들의 구전을 포함한 율법을 수행하고 결국 형식주의 종교를 주입시키고자 한다. 사도들에 의해서도 배격을 하게 되었지만 교회가 세워지는 곳에는 어디든 저들이 가서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하므로 율법주의와 윤리 도덕적 구원관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골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골2: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골2:22)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골2: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