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사(2)

교리 형성 준비기는 사도 후부터 에큐메니칼 신조가 형성되기 전까지로 구분한다.)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요일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1. 속사도 교부들의 사상

1) 문헌

초대 기독교 저작가들을 교부들의 저서로 구분하는데 주후 90년에서 140년까지로 본다.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얼마 안되는 저작들이 그 당시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보다 광범한 문헌의 표본이 되었다. 어떤 것은 신약의 정경 속에 거의 용납될 정도까지 존중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속사도로서 로마의 클레멘트와 이그나시우스를 인정했다.)

 

(1) 클레멘트의 서신

로마의 클레멘트는 공식적인 교황의 목록으로 베드로--리누스--클레투스--클레멘트가 올라가 있는 교부이다. 96년에서 97년경에 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 교회에 써 보낸 편지로서 일반적인 교훈과 교리적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다. 바울의 고린도전후서를 받고도 변화되지 않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장로들과 일부 반항적인 성도 사이에 벌어진 분쟁에 관한 특별한 훈계가 주어졌다. 그는 바울의 교훈을 받아들이긴 했으나 율법주의에 빠졌다.

클레멘트의 둘째 편지 : 현재까지 보존된 가장 오래된 설교이며 강한 율법주의적 어조로 쓰여있다.

(2) 헤르마스의 목양자

로마 교회의 한 신도에 의하여 기록된 것으로 주로 회개를 권고한 교훈이며 다섯 개의 환상과 열두개의 명령과 열개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는 고대의 숙녀로 묘사되고 회개의 천사는 목양자로 표현됨(고대교회에서는 정경과 같이 인정되기도 함)

(3) 안디옥 감독 이그나시우스의 일곱 개의 편지

이그나시우스가 에베소, 마그네시아, 트랄레스, 로마, 필라델피아, 서머나 등의 교회와 서머나 감독에게각 각 써 보낸 것(110-115년경)으로 그리스도의 선재(참된 신성), 화육(참된 물질성과 인간적 고통), 하나님과 결합된 자로서의 그리스도인, 교회, 가현설 부정, 교회의 통일성의 상징이 되는 감독(교회 일치 강조) 등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4) 폴리캅(서머나 감독)의 편지

폴리캅이 빌립보의 교회에 보낸 편지 ===> 탐욕의 죄에 대하여

(5) 바나바의 편지(바울의 동역자)

유대교에 대해 강력히 반대함 -- 율법은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 (구약해석에 대하여)

(6) 주의 예언의 해설

히에라폴리스 감독 파피우스에 의해 기록(125년경) : 유대교의 묵시 문학적 저작에서 유래된 천년왕국설을 나타내고 있다.

(7) 디다케 (12사도의 교훈)

이 서신은 60년에서 10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교리문답형식으로 세례받기 위하여 문답하는 자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첫째 부분은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라는 형식으로 도덕적 교훈, 둘째 부분은 교회의 예배에 대한 가르침과 교회 생활의 규칙을 기록하고 있다.

2) 교부들의 교훈의 형식적 특성

(1) 독창성, 심오성, 명백성의 결여

성경처럼 생생함과 독창성과 심오함과 명백성이 결여되었다. 무오하게 영감된 진리가 유오한 개척자들에게 의해 다시 재생되는 과정에서 온 변화이기에 이상하지 않는 내용으로 말한다. 그들의 교훈은 보다 엄격하게 성경에 의존하고 있으나 오히려 심오한 종교적 진리보다는 신앙의 초보적 원리에 더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문제는 당시대에 성경이 제대로 확증(정경으로)되지 않는 상황에서 주어진 쪽복음이나 서신서에 의해서 그것을 근거로 기록한 것으로 가치를 가진다고 하겠다.

 

(2) 교훈의 빈약성

그 교훈이 일반적으로 성경과 일치하며 흔히 성경 말씀을 그대로 따랐으나 거의 설명은 첨가하지 않았고 또한 체계적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 여러 책의 정경성과 완전성을 증거 하여 주었으며 신약성경과 제 2세기 변증가들의 사색적인 문헌 사이에 교리적인 연결을 만들어 주었다.

 

(3) 명확성의 결여

예수님과 사도들의 교훈의 참된 가치를 깨닫고 그 계시의 진리를 정의하려 하지 않고 그들이 이해한대로 재 진술하려고 힘썼지만 일반적으로 이방철학과 이방종교와 유대-헬라주의적 경건에 영향을 받았기에 명확성이 결여되었다.

 

3) 교부들의 신앙과 교훈의 구체적 내용

(1) 하나님

초대 기독교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인격적 관계에서 얻은 강한 인상 즉 그의 생애와 수난에서 받은 깊은 감명에 의하여 지배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감명에 맞서서 교리적 진술을 만들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방의 다신교에 반대하여 유일신 사상에 집요하게 집착하였다. 헤르마스의 책에 “무엇보다도 우선 한 분 하나님이 있음을 믿으라. 그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운행을 정해 놓으신 자이며, 없는 가운데서 만물을 있게 하신 자이며 만물을 포괄하나 그 자신은 파악될 수 없는 자시니라.”라고 하여 창조주, 전능자, 만물의 통치자, 자신은 창조되지 아니하고 영원하고 죄인을 사랑하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로 증거 하였다. ====> 여호와로 알려지지 않았고 그냥 유일신관에 기초하였다.

 

(2)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신성은 사도 후 교부들에게 있어서 기정사실로 인정되었다. 이그나시우스는 나의 하나님 또는 우리의 하나님이라 말했고 클레멘트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산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다케에서는 “예수는 다만 하나님의 택하신 자, 사랑하시는 자, 하나님의 종으로 묘사하고 이그나시우는 마리아에게서 나신 자. 다윗의 후손”으로 말했고 클레멘트는 “주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신 자이며 원래는 영이었으나 육이 되사 우리를 부르셨다”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선재성과 화육에 대하여 헤르마스는 하나님의 아들과 성령을 동일시하는 이위일체론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3) 구원관

당시의 구원관은 두 형태로 증거가 되었다. 그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인한 속죄였다.

클레멘트는 “주께서 자기 몸을 죽는데 까지 내어 주신 것을 우리들로 하여금 죄의 사면을 받아 즉 다시 말하면 그의 흘리신 피를 힘입어서 성결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였다. 또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를 위하여 그의 피를 주셨고 우리의 육을 위하여 그의 육을 내어 주셨으며 우리 영혼을 위하여 자기의 영혼을 주신 것이다”고 말하였다. 폴리캅이나 저스틴, 이레니우스 그 밖에 여러 교부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적 수난에 대하여 말한다.

 

둘째로 율법적 도덕적 행위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폴리캅은 “선한 일을 행할 수 있으면 지체 말고 행하라. 자선은 죽음을 면케 하는 능력이 있다” 바나바스는 “선한 일을 행하여 네 죄를 속량하라.” 클레멘트도 “자선은 참회의 으뜸이 된다. 금식은 기도보다 낫지만 그러나 자선은 그 둘보다 더 나은 것이다. 왜냐하면 자선은 죄의 짐을 가볍게 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주의의 오류는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하기도 하고 유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도 하는데 제베르크는 헬라철학과 스토아철학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당시에 헬라철학을 하는 자들을 지성인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당시 교부들도 지성인들에게 접근하여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4) 교회관

교부들은 교회에 대하여 최고의 존칭을 써서 존재하였다. 그래서 중세 카톨릭의 배경을 형성하게 된다. 클레멘트는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 그리스도의 양떼, 하나님 자신의 소유”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의 선재를 말하면서 해와 달이 있기 전에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교회는 실로 창조의 진정한 목표이며 그리스도와 교회는 몸과 영혼의 관계만큼이나 긴밀한 관계로 맺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그나시우스는 그리스도와 믿는 자 사이에 인격적 결합을 감독과 교회에 비유하였다. 감독을 교회의 구심점으로 보고 “마치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어디든지 보편적 교회가 있는 것처럼 감독이 나타나는 곳에서 어디든지 백성들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하며 감독은 이단을 막아내는 최선의 무기요 보루라 하였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따른 것처럼 너희는 감독들 따르라 하고 교회의 분열을 경계하라 이는 모든 악의 시작이라”고 하므로 교회의 보편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카톨릭이란 말을 최초로 사용하므로 로마 카톨릭의 근거되는 사상을 주장한다.

 

(5) 성경의 정경화

구약성경 : 교부들은 구약성경을 그대로 받아 들여 절대적 권위로 인정하였다. 교부들이 말하는 성경이나 “기록된 바와 같이”로 시작하는 인용구는 구약성경을 염두에 두었다. 구약을 주로 기독교와 그들의 현재에 비추어서 해석하였다.

신약성경 : 예수의 말씀이 높은 권위적 지위를 차지했다. 정경에 대하여 초대 교부들에게 있어서 헤르마스의 목양자, 바나바와 클레멘트의 서신, 베드로의 묵시록, 바울의 행적 등은 사도들의 저작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오히려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후서등은 정경 가운데 들지 못하였다. 그런데 정경 논의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말시온의 정경, 무라토리오 단편, 페쉬토(2세기경 시리아 교회 정경), 신령한 자들이 일어나 자신의 계시라고 하므로 정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엇다.

정경성의 기준 : 가. 역사적 기준 : 저자가 사도나 사도적 인물인가?

나. 내적 기준 : 사도들의 문서와 동등한 가치의 성격, 영성, 품위가 있는가?

오리겐 : 동의문서 : 사복음서, 바울의 13개 서신, 베드로전서, 요한1서, 사도행전, 요한계시록

의심문서 : 베드로 후서, 요한 2,3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배격문서 : 애굽복음서, 도마복음서, 바실리데스복음서, 맛디아복음서

유세비우스 : 동의문서 : 사복음서, 사도행전, 배드로전서, 요한 일서, 바울의 13개 서신서

의심문서 : 히브리서, 계시록, 베드로후서, 요한2,3서 야고보서, 유다서

배격문서 : 바나바의 서신, 로마의 클레멘트의 고린도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폴리캅이 빌리보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마스의 목자, 베드로의 묵시서. 히브리복음서

어거스틴이 참석한 가르타고 회의(397년)에서 27권이 정경으로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는데 동방교회에서는 요한 계시록을 부정했다.

 

이런 정경화 작업으로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신약성경의 하나님 사이의 통일성,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연속성을 확인하는 작업(노스틱 사상과 말시온주의의 배격을 중심으로)이 되었고 사도적 저작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였고 다른 문서는 사도적 저작성을 인정받을 만한 책이 없음을 확정지었다.

(6) 성례전

가. 세례

처음은 예수의 이름으로 하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헤르마스는 “우리가 물 속에 내려가서 지난 모든 죄를 용서받는 길 외에는 다른 회개의 길이 없다.” 라고 하여 죄 용서와 성령의 받은 보증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세례 후에 지은 중대한 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어서 재차 회개의 기회가 주어진다고도 하였다. 혹은 죽기 전에 세례를 받아야 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 이런 문제는 세례를 죄 용서의 근거로 구원의 확증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나. 성만찬

이그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의 살로 보았고 “우리는 불멸의 약이며 죽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토록 살게 하는 해독제인 한 떡을 뗀다” 하였다. 이런 문제로 인하여 로마 정부로부터 기독교인은 인육을 먹는 것으로 박해가 주어졌다.

 

(7) 종말론

임박한 예수 재림을 기대하면서 자기들이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가졌다. 그래서 다가올 종말을 주시하면서 도덕적 선행을 힘쓰는 것이 지상 과제로 삼았다. 기본적인 천년왕국설과 마지막 심판으로 선한 자와 악한자의 분리에 대하여 부활은 육체의 부활 등의 사상을 지녔다.

 

2. 철학에 대한 교부들의 반응

 

1) 옹호파

(1) 변증신학자 : 저스틴

가. 동기

로마정부가 언제나 조직적으로 박해를 가한 것이 아니고 정권교체 시기나 민심 수습 차원에서 기독교를 박해했다. 이로 인해서 일단의기독교 지성인들 사이에서 기독교를 로마의 통치자들이나 지성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또한 당시 유대교와 노스틱의 도전, 로마의 이교사상에 기독교를 변호하고 반감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저스틴(순교자)이었다.

 

나. 사상

하나님은 이름을 붙일 수 없으나 인간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활동하시는 모습에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 창조자, 주, 선생이라는 칭호를 부여할 수 있다. 아들에 대해서도 이름을 붙일 수 없으나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다. 이것은 아들의 표현할 수 없는 실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적 본성으로 오신 원래적인 속성이다. 하나님은 인간들과 절대적으로 동떨어져 계시지만 동시에 인간들을 위해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들과 만나기 위해서 창조 이전부터 선재적 상태에서 이성적 기관으로써 아들이시며 말씀이신 로고스를 낳으셨다. (하나님을 아들보다도 훨씬 상위에 있는 우월한 신으로 보았고 아들은 저급한 신으로 보았다.--종속론)

로고스로서 아들은 인간과 접촉점을 갖고서 만날 수 있다. 모든 인간들에게는 신적인 로고스의 씨앗이 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스토아 철학자들도 로고스의 전달자로 인정할 뿐 아니라 시인과 문장가마저도 동일한 전달자로 인정함으로써 기독교와 문화와의 만남을 찾으려 하였다.

또한 사람들은 아들이 계시해 주시는 로고스에 따라서 경건하고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면 불멸을 선물로 받지만 악하게 살면 사단의 유혹에 빠져서 영벌을 받는다고 했다.

 

다. 평가

첫째로 하나님을 아들보다 더 높은 우월의 신으로 말하고 아들을 종속론에 빠뜨렸다.

둘째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전에도 소크라테스, 헤라클레이토스, 아브라함, 아나니아, 미사엘, 엘리야 등 다 같이 로고스를 가진 기독교인이라고 함으로써 성육신의 유일성을 부정하였다.

셋째 인간이 본래적으로 로고스를 지니고 있기에 도덕적으로 살면 구원에 이른다는 결론에 도달하므로 기독교 외에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윈주의 사상의 주장했다.

넷째 박해받는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의 도덕적 엄정성을 말하므로 윤리주의에 들어갔다.

다섯째 신앙의 합리성을 말하려 하므로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에서 나타난 이신론의 바탕이 되었다. 인간에게 합리적인 이성을 주신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 예배의 의무, 도덕적 성화, 죄에 대한 회개, 내세의 보상과 처벌 등의 기독교 근본적인 진리를 신비적으로 특별한 계시에 의해서 몇 사람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자연 종교에서도 알 수 있도록 보편적인 합리성으로 가지고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2) 알렉산드리아 학파

알렉산드리아는 B.C 320년 알렉산더 대왕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도시로 알렉산더 대왕이 아테네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수모를 갚기 위해서 아테네의 모든 문화적 유산을 옮겨서 세운 도시로 헬라철학과 기독교의 혼합주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가. 클레멘트 사상

클레멘트(알렉산드리아)는 철학을 두고 “헬라인의 의를 위하여 필요했다. 지금도 논증의 방식으로 믿음에 도달하는 사람들에게 일조의 예비 훈련으로서 참 신앙의 발전에 유용하다. 율법이 히브리인들에게 몽학선생이었다면 철학은 헬레니즘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므로 철학을 통하여 신학에 이르는 것으로 신학에 적용했다.

그의 사상적인 부분에서도 이런 철학의 도입으로 구원에 대한 부분을 “아들이 아버지의 권능으로 세상에 오셔서 모든 뜻을 이루셨는데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모든 부분을 구석구석 면밀히 고찰하고 통제 하셨다. 이 고찰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의 뜻대로 만물을 다스리는 온 우주의 최고 통치자에게 도달한다.” 그래서 유출설과 노스틱의 구원설을 도입하기도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는 가현설을 말하는데 “그의 육체는 땅에 체류하는 데 필요한 이런 일들을 요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구주는 음식을 드셨으나 그이 육체는 거룩한 능력으로 지지를 받았으므로 육체적인 필요 때문에 드신 것이 아니라 따르는 무리가 지신에 관한 그릇된 개념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드셨다”고 하였다.

구원관에 대하여서는 “우리가 구원의 훈련으로 그릇된 행위의 결과로 겪는 모든 징벌과 징계에서 자유로워질 때 하나님과 연합하여 누릴 생명, 신들과 함께 누릴 생명에 대해서 가르친다. 마음이 청결해지고 주님과 아주 친밀해져서 영원한 명상을 회복할 날에 그들은 구주 바로 다음의 서열을 지닌 다른 신들(goods)과 함께 보좌에 앉게 될 것이므로 신들이란 칭호를 받았다”고 하였다.

 

나. 오리겐 사상

신플라톤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모든 요소를 그의 신학에 반영 시켰다. 신플라톤 철학의 혼합주의적 성격, 계층구조적 성격, 신과의 초월적인 합일에서 구원을 찾는 신비성까지 받아들였다. 그의 우주관에서 두드러지는데 물질적 창조 이전의 선재적 영적 세계의 창조를 말하면서 이 영적 세계에서의 영들이 타락으로 물질세계가 창조되었다고 한다. 이런 구도는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설적인 창조론을 반영한 것이고 영지주의 우주관과 흡사한 점이다. 구원은 영적인 원래의 세계로의 복귀를 말했고 인간 행위를 강조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당시 고대 기독교 교부들이 철학을 이용하고 철학적 사고로 기독교 신앙을 정리하고 교리화한 것을 보게 한다.

 

2) 반대파

(1) 터툴리안

로마의 법률적 용어를 동원해서 기독교의 신학적 용어를 정립한 후에 기독교로부터 철학적 요소를 배격할 것을 선언했다. 왜냐하면 철학은 이단의 조상이고 또한 이단들이 철학을 받아들여 기독교 진리를 왜곡시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철학은 이 세상의 지혜로서 영혼의 귀를 가렵게 하는 사람과 마귀의 이론이다. 우화와 끝없는 탄생설화, 무익한 질문들과 암과 같이 퍼져나가는 말들이 철학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3. 복음의 곡해(기독교 이단종파운동)

 

1) 유대주의적 기독교

(1) 나사렛파

복음서중 히브리어 마태복음만 사용하고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였으며 예수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믿었음에도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고 실행하였으나 이방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요구하지 않았다.

(2) 에비온파

바울의 사도직을 인정하지 않고 바울의 세계 전도와 율법을 초월한 복음을 반대하고 오직 유대교 중개를 통해서만 구원이 확보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이방인에게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고 신성을 부인하였으며 기묘하게도 여성으로 생각되었던 성령이 예수께서 세례를 받을 때 처음으로 그에게 임하였다고 가르치며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사명은 예언자나 가르치는 자의 사명과 같은 것으로 그 사명에 의해서 기적을 행하였고 보다 더 엄격한 교훈으로 율법을 더 부연하였다고 한다.

 

(3) 엘크사이트파

접신론적 사색(마술)과 점성술, 엄격한 금욕주의자로서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고 단순히 한 인간이라고 보았으며 그리스도는 이상적 아담의 성육신으로 보았으며 최고의 천사장으로 불리웠다. 율법은 지속되어야 하며 희생의 제도는 폐지하고 온갖 종류의 정결과 금욕적 생활방식에 의해서 대치되었다.

 

2) 영지주의

(1) 기원과 발생

신약시대 교회가 생기기 전에 일어난 종교적 혼합주의가 기독교를 흡수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기독교가 당시 정신적 자원의 고갈과 내세 구원에 대한 소망을 주지만 그리스도의 신성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어리석은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당시 철학을 이지적이고 개화된 사상으로 보는 그런 자들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였다. 또한 예배가 신비적이고 의식적인 종교의식에 길들인 당시대 사람들 눈에는 무미건조하고 아무런 효험도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당시 고대의 모든 사상을 혼합한 그래서 자기들 중심으로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고자 탄생하게 되었다.

(2) 영지주의 사사의 여러 가지 요소

우주론적 신화, 희랍과 동양의 이교적 철학사상, 기독교의 진리, 바빌로니아 시리아, 소아시아, 페르시아, 인도의 모든 종교, 유대교가 융합되었다.

(3) 지식 대 신앙

노스틱에서 지식은 정신적 활동에 의하여 획득한 이성적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적 계시와 계몽에 의해서 주어진 초자연적 지식을 의미한다. (신비주의 사상)

 

(4) 창조론

완전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에온(Aeon)인 부토스는 불가시적이며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고 비출생적이고 영원한 존재로서 만물의 시작이다. 부토스는 짝인 여성 에온인 시게를 가지게 되고 두 에온이 결합하여 누스(nous-정신)과 알레데이아(aletheia-진리)가 나왔다. 이 네 개의 에온이 다른 에온 네 개를 출산하게 되는데 로고스, 조에, 안트로포스, 에클레시아가 나왔고 로고스와 조에가 결합하여 10개의 에온이 나오고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가 결합하여 12개 에온이 나와서 총 30개 에온이 나오는데 소피아가 상대편 짝인 셀레토스의 품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서 부토스를 그리워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부토스에게 뛰어들었다. 소피아로부터 욕정을 분리시켜서 새로운 개체적 존재 혹은 저급한 소피아를 만들어 아키모트를 만들었고 이에 아키모트는 고뇌 두려움 당황함 충격 회개의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고뇌 두려움의 감정의 농도가 짙어지므로 공허해지면서 물질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악한 물질은 소피아의 욕정으로부터 나왔고 소피아가 정화된 다음에는 구세주의 빛을 보게 된데서 영이 나왔다고 한다.

창조는 영적 세계의 선재적 창조와 선재적 상태의 타락의 결과로서 물질세계가 창조되었다고 보고 구원은 이런 물질세계에 속한 인간 안에 갇혀 있는 영을 영적 세계로 복귀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철저히 이원론이며 물질은 악하고 정신(영, 에온)은 선한 것이라고 보았다.

 

(5) 구원론

인간은 물질에 쌓여있는 영혼의 감옥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알지 못하는 무지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지의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가르쳐 줌으로 무지가 점점 없어지게 된다. 이것이 복음이다. 즉 순전히 인간의 내적인 본래적 상태를 아는 것이며 아버지에 대한 지식을 가짐으로써 인간의 무지 혹은 망각이 없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에온의 본래적인 짝과 결합하게 되는 것이 신비적 연합이고 이로 인해서 신의 경지에까지 상승해서 신과 하나가 된다. 또한 물질은 악한 것인데 선한 인간 영혼이 악한 물질에 구속되었으므로 물질 세계에서 벗어나 빛의 세계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이고 구속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금욕주의의 실천에 의해서 혹은 신령한 지식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6) 기독론

인간에게 신비스러운 지식을 전달해 줄 에온이 그리스도와 성령이기에 영적인 존재이고 이원론적 구조에서 물질로 이루어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수 없다. 예수가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가 성령을 대동하고 인간에게 임했다고 하는 주장이 많다. 일단 성육신이 부정되고 예수의 일생 동안 삶도 부정되고 물질로 이루어진 인간이 아니기에 십자가의 고난도 받을 수 없다. 죽음도 없고 부활도 없고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입은 에온이라고 하므로 가현설을 주장한다.

 

(7) 윤리

구원을 영적인 면에 두었기에 철저히 물질적인 것을 멀리해야 한다는 금욕주의가 있었고 반대로 물질로부터 자유롭다고 보는 자유방임주의가 있었다.

금욕주의는 결혼과 음식도 금하는가 하면 교회 내에서 성적인 유희를 구원받은 자들의 징표로 보는 극단적인 대립 현상이 나타났다.

성도를 구분하여 구원받은 영적인 자와 가능성이 있는 혼적인 자와 구원 가능성이 없는 육적인 자로 구분하여 영적인 자들은 따로 집회를 가지고 말씀을 보고 설교가 있지 않고 영의 인도함을 받은 자가 무작위적으로 말하고 각종 은사 시전이 있다가 갑자기 성적인 혼음주의로 발전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이들의 사상은 이원론적 세계관에 의해서 빛과 어둠의 대결, 물질과 영적인 것의 대결로 정의되는 이원론 사상이었다. 또한 창조를 최고 아이온에서 유출되어 나왔다고 하는 유출설과 창조는 물질을 창조한 신들 계보 중에는 가장 저급한 신이고 예수는 신령한 지식을 전달할 최고 아이온으로 말했고 마법적 행위와 인간도 신화가 된다는 사상과 가현설을 주장하고 구약성경도 노스틱 사상과 부합되도록 우화적으로 해석하므로 초대 기독교에 최고의 사단의 사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8) 교회에 미친 영향

가. 노스틱주의가 스스로 보편 종교임을 주장하므로 자신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 노스틱주의가 구약성경과 사도들의 저작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므로 구약성경의 영감과 신약 정경의 내용을 영구적으로 확정해 놓아야 할 긴급한 과제가 되었다.

다. 기독교 교리에 도전하는 이단 사상으로 인하여 교리를 변증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라. 기독교 신조를 세우는 기회가 됨===> 기독론(양성론)에 이어 삼위일체론에 이르는 연구 기회가 됨

마. 노스틱주의가 확대되므로 교회가 그들과 싸워야 할 수호자로서 교회 감독을 세워 교회를 견고히 하는데 이바지했다.

바. 금욕주의 운동과 신비주의 운동이 교회에 들어오는 결과를 가져왔다.

 

4. 교회 안에서 개혁운동

 

1) 말시온의 개혁운동

 

(1) 말시온의 위치

말시온이 노스틱주의자인가 아닌가에 대한 견해는 둘로 나뉜다. 이원론적인 하나님이 선의 하나님과 공의의 하나님으로 구분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화육을 부정하는 것은 노스틱주의라는 견해다. 사실 노스틱주의인 케르도에게 영향을 받았다.

하르낙은 말시온은 형이상학적인 관심에서가 아니라 오직 구원론적 관심으로 시종일관하였고 구원이 영지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신앙을 통해서 주어진다고 하고 유출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죄의 기원에서도 노스틱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여 노스틱주의가 아니라고 한다.

 

(2) 사상

가. 구약의 하나님은 세계의 창조주로서 이스라엘 민족만을 돌보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자기 백성을 엄격한 공의로 다스렸고 율법으로 혹사하였다.

나. 신약의 하나님은 선의 하나님 즉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 즉 최고의 하나님, 복음을 가져온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라 하였다.

공의의 하나님과 자비의 하나님이 다르듯이 율법과 복음이 별개의 것이라고 하여 분리하였다.

다. 그리스도의 개념

그리스도는 단지 칭호에 의해서만 성부와 구별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서 자기 자신을 통하여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의 하나님과 동일시되었는데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하였으며 그 보복으로 공의의 하나님은 그를 유대인들의 손에 붙여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였다. 그리스도는 환상적인 몸을 입었기 때문에 실제로 죽은 것은 아니고 단지 음부에 내려가서 이방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었을 뿐이다.

라. 인간 구원

인간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어떤 결과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선의 하나님에 대하여 바울이 가르친 바를 믿음으로서만 구원을 받게 된다. 이런 신앙에 의해서 사랑이 불붙게 되며 사랑은 금욕주의의 생활로 이끌어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마. 말시온의 정경

구약 성서 전부를 폐기 하였고 신약도 일부 삭제된 누가복음과 교정된 바울 서신만 용납하고 목회서신과 히브리적 색체를 나타낸 서신을 제외함 (A.D160년경 정경편집)

바. 교회에 미친 영향

창조주와 구속주는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것과 하나님 안에 있어서는 공의와 자비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확정했다.

 

2) 몬타누스 신비주의 운동

 

원래 이교 사제였으나 156년경에 개종하였고 자신이 예언자의 영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맥시밀라와 프리스킬라라는 두 여선지자가 남편을 떠나 이 운동에 동참함

(1) 사상

가. 신비주의

요한복음 14장에 약속한 성령이 자신에게 임하였고 자기가 특별한 형식의 예언을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함

나. 극단적 종말론

계시의 시한이 다 되었으며 그 계시의 단절과 더불어 종말이 올 것이라고 하였다. 여선지의 한 사람은 주장하기를 나 이후에는 더 예언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세상의 종말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다. 윤리관

보혜사 성령이 할 일은 윤리적인 면에 있어서의 결함을 온전케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육의 연약함을 참작하여 명하지 않았던 바를 이제 제정하게 된다. 새 예언은 계율을 강화함으로서 새로운 율법을 온전케 할 것이다. 그래서 신약성경보다 더 엄격하여졌고 재혼과 혼인도 반대하고 엄격한 금식과 철저한 순교의 각오와 세상으로부터의 성별을 명하고 이러한 성령의 요구를 감당해야 신령한 자들이라고 하였다.

라. 교회관

윤리적으로 완전한 자들로 교회라고 하고 이 교회만이 죄를 사면해 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소유하였고 수많은 감독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행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바. 교회에 미친 영향

교회의 세속화에 항거하였고 교회를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고자 하였으며 엄격하고 철저한 윤리적 실천을 요구하고 성결한 자들로 교회를 이루고자 한 것은 그 뒤 노바시안, 도나투스파, 발덴스파와 종교개혁의 광신자들, 현대의 성결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5. 신앙의 규범화 작업

 

영지주의와 말시온과 몬타누스의 영향으로 교회에서는 정경확정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정경이 확정짓게 되자 비전적 전승에 속한 문서나 신앙행습은 모조리 이단시 되었다. 비전적인 비밀전승이 사라지고 공개전승만 올바른 전승으로 인정됨으로서 교회가 성경 전체의 내용을 체계화하고 간소화해서 누구든지 쉽게 이해하고 구별할 수 있게 했다. 성경 전체를 다 외울 수 없고 성경을 신학적으로 체계화시키지 못하였던 일반 평신도까지 이단들의 속임수를 즉각적으로 구별해 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신앙 규범화 즉 신조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1) 로마신조

처음 형식은 세례문답 형식이었다. 첫째로 구약성경의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면서 그 분이 신앙의 대상이라고 선포 했고 둘째로 아들 예수의 독생자이심과 그리스도임심을 고백했다. 셋째로 부활을 강조했다.

 

2) 사도신조

로마신조보다 더 확대시킨 세례문답으로 215년경에 로마 감독이었던 히폴리투스가 정리했다. 의문문 형식의 신조를 340년 마르켈리누스 신조에서 긍정문 형식으로 바뀌었으며 이 형식을 사도신조라고 공식적으로 명칭을 붙인 사람은 390년 암브로스에 의해서였고 서방교회에서 오늘날과 같은 형식으로 개정되고 널리 사용된 것은 700년경에 확정된 후 사를마뉴 때에 범교회적으로 범국가적으로 사용되었다.

 

3) 이레니우스의 신앙요약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이 사도신조를 구성하는데 공헌하였는데 그의 신앙요약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능성과 창조성을 강조하였고 아들에 대해서는 성령에 의한 탄생과 성육신과 고난과 죽으심, 부활과 승천, 심판주로서 재림을 말했다. 이런 내용은 영지주의와 유사한 이단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부정, 아들 예수의 성육신 부정,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과 심판주로서 재림을 부정함에 대한 좋은 도구가 되었다.

 

6. 감독의 권위 강화

 

이단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싸울 주체가 필요했고 로마의 클레멘트가 서신을 쓰게 된 동기에서 밝혔듯이 교회가 아직도 분쟁과 혼란이 생겼는데 이유는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못하게 됨에서 온다. 그러므로 당시대에 유대주의와 영지주의가 등장하고 말시온과 몬타누스 등 여러 사람들이 교회에 영향을 미치면서 누구를 따르고 추종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래서 교부들이 감독의 권한을 강화하고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을 주장하므로 교회를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중세 로마 카톨릭의 교권강화의 길을 열게 되었다.

 

1) 성경의 교직제도와 감독의 권위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전통에 의한 열두 사도와 장로, 집사제도였고 안디옥 교회의 전승에 의한 사도와 감독, 집사를 중심으로 한 제도였다. 엡4:11〜12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였다. 사도는 순교 및 자연사로 사라지고 선지자와 복음전하는 자는 초대교회 활동 중 많은 문제를 일으킴으로서 역시 점차적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목사는 교사의 직능까지 겸하므로 교회의 지도자는 목사와 집사로 집약되었다.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장로, 집사제도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안디옥 중심적인 감독, 집사의 제도로 발전하게 된다. 251년 로마교회의 조직을 보면 1명의 대감독, 46명의 감독, 7명의 집사, 7명의 서리집사, 42명의 보미사, 52명의 귀신 쫓는 자, 낭독자들, 수위와 묘지기를 유지했고 1500명의 과부들과 가난한 자를 돌보고 있었다.

 

2) 군주적 감독제도

 

이그나티우스는 안디옥의 감독으로 110년경에 순교한 교부로 교회의 분열과 이단적 사상의 침투에 염려하여 가시적으로 공개적 전승에 의해서 세워진 보편적(카톨릭)교회라는 개념을 말했다. 그의 감독 중심으로 교회 일치론은 군주적인 감독제도로 발전하였다. 그는 “분명하게 밝히지만 감독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라. 감독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장로는 사도단의 대리자로서, 집사는 예수 그리스로부터 봉사를 위임받은 자로 알라.” 그래서 감독을 정점으로 해서 장로와 집사를 서열적으로 나열하는 교권제도를 확립시킨 최초 사람이다. 세례와 성체성사와 애찬식도 감독이 없으면 집행해서는 안된다고 하며 감독이 없는 상황에서 교회에 속한 어떠한 일이라도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로마교회는 로마신조에 의하여 다른 교회보다 이단에 대처하는 힘이 강했고 그로 인하여 교회 통일의 수호자가 되었다. 칼리스투스 감독(217〜222년)은 스스로 대사교 또는 감독 중의 감독이라고 교회에 임하였고 터툴리안도 로마 교회를 카톨릭교회의 뿌리이며 어머니라고 말하므로 로마교회 감독이 모든 교회의 감독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된다.

이어 사이프리안은 마태복음 16:18-19의 내용을 근거로 베드로가 사도직의 대표이고 로마가 베드로가 사도직을 수행한 교회라고 하여 로마 교회의 교황권을 강화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3) 사도적 전승

이단과 투쟁하기 위하여 신약성경의 정경화와 신앙의 규범화, 감독의 권위 강화를 하게 되었는데 이런 것은 사도적 전승에 기초를 두었다. 사도적 전승에 문제는 비밀전승과 공개전승이었다. 이단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비밀스럽게 사도직을 전승해 주었다고 하여 문제가 되므로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자와 주님의 부활 신앙을 소유한 자로 구분하였다. 왜냐하면 주에 대한 부활의 신앙은 이단과 정통을 가르는 척도였다. 바울의 환상체험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었지만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상의 예수님과 동일하며 계속성을 갖는다고 고백하므로서 너희 제자들에게 부활을 증거 할 권한을 위임하여 사도로 부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도적 전승에 충실한 것만이 오로지 교권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게 되어서 사도적이란 표현은 규범적이며 합법적이며 입법적인 효과를 갖게 된다. 이러한 교회만이 신앙규범과 전승을 수여받았으며, 성경의 올바른 해석권을 갖는다고 이레니우스는 말한다.

 

결론적으로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의 여러 문제에 대하여 답변을 하면서 내가 복음을 전하고 그 대가로 먹을 권이 있지만 그 권을 다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고 에베소서에서도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고 직분을 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주어진 문제에 봉착하여 오히려 중세 카톨릭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교리는 성경을 해석하여 신앙하고 신앙의 조항인 신조를 형성하게 되며 거기서 교리가 나오는데 성경이 397년에야 정경으로 확정되었고 그 확정되기 전에 교리를 낳고 그것으로 성경을 해석하는데 또한 철학이 영향을 끼쳐서 잘못된 해석을 가져온다. 또한 신앙을 순수히 성경해석으로 얻지 못하고 당시 문화적 상황에 따라 얻게 되었으며 신조가 형성되는데 있어서 당시 정치적 힘이 작용하게 되었다. 이런 교리가 성경해석에 영향을 끼친 그런 순환을 하게 되므로 성경과 먼 철학적 해석으로 인한 인본주의적인 교리와 로마 캐톨릭적인 교리와 구속사적인 교리를 낳게 된 것이다.

 

(엡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分量)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