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제11강


성경적인 가정생활의 원리

11강.
본문: 베드로전서 3:1-7
주제: 가정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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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2:11-12에 불신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것인가에 관한 대원리를 제시한 다음, 구체적으로 2:13-17에서는 국민으로서 위정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고, 2:18-25에서는 사환으로서 주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3:1-7의 본문에서는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해야 할 것을 제시했다. 본문은 주로 아내가 남편, 특히 불신자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룬 다음 남편이 아내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

\"고난받는 시대 속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모습의 가정 생활을 해야 하는가?\"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삶을 누려야 하는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모셨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저절로, 자동적으로 행복한 가정 생활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행복한 가정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아무런 노력 없이 복된 가정 생활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가정이 파괴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고 깊은 상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것이 더 이상 세상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성도이면서도 불행한 가정 생활, 깨어진 가정 생활로 인하여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 더욱이 불신자 남편과 사는 믿는 아내의 고통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본문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베드로사도가 이 편지를 쓴 당시, 로마 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사회적인 지위는 말이 아니었다. 당시 로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아내는 빌려줄지언정 돈을 빌려주지 말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남편에 대한 아내의 태도와 아내에 대한 남편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예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교회가 주님에게 복종하듯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가정생활에 대한 신약의 윤리이다.
(엡 5:22-33, 골 3:18-19, 딤전 2:9-15, 딛 2:3-8)

1.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여 합니다(1-2).
\"아내된 자들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되\"라는 말씀에서 \"이와같이\"는 \'역시, 또한\'의 의미가 있다. 국민이 위정자에게 복종하고(2:13), 사환이 주인에게 복종하듯이(2:18), 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억울하게, 애매한 고난을 받으시면서도 원망치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했듯이 이처럼 아내들도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의미이다.
\"순복\"이란 말은 \"...지위 아래, 위치 아래 자신을 둔다\"는 뜻이다. 이 순복이란 말은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성을 향해서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질서를 사랑하시고 남편과 아내의 심리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아내의 순복을 강조한 것이다. 순복이란 말은 남자와 여자의 일반적인 관계에 대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부부관계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왜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복하여야 하는가?
첫째, 순복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순복은 남편들이 아내에게 하는 명령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명령이다. 주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명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순복해야 한다. 결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은 권한을 주셨으며, 모두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동일한 권한을 부여하셨다(창1:27-28-창조명령/문화명령).
갈라디아서 3:28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나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하면서 결코 성경은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성경은 \"질서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남편을 한 가정의 머리고 세웠다는 것이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의 독재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한 가정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이 가정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담을 히 가정의 지도자로 삼기를 원하셨을 뿐이다.
남편과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받는 일에 있어서도 전혀 차별이 없다. 7절에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아아 귀히 여기라...\"
하나님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남편의 지도력을 요구하신다.



둘째, 불신 남편을 구원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도를 순종치 않는 자\"에서 \"순종치 않는다\"는 믿는 남편이 아닌 불신 남편을 말한다. 당시 사회는 아내는 남편의 종교를 따르기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남편의 종교를 따르지 않고 나름대로 기독교를 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불순종하는 아내로 낙인찍힐 만할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불신남편은 아내가 예수 믿기 때문에 무고하게 아내를 비방할 수 있었는데, 아내가 남편의 종교를 따라야 한다는 당시의 사회풍습이 불신남편의 비방에 부체질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비방과 핍박과 박해속에서 불신남편에 순복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고통을 받으면 잘해줄 마음이 없어진다. 믿는 아내가 안믿는 남편에게 당하는 고통 때문에 순종할 마음이 없어질 가능서이 많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순종할 마음이 없을 수 있다 하더라도, 순종할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믿는 아내는 남편에게 더욱이 핍박하는 불신남편에게 순복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한다. 남편이 핍박이 두려9워서 순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로 순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는 아내의 순복하는 태도를 불신남편을 볼것이며, 그 행위를 통해서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말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아니라, 남편에 대한 태도로서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다.
불신 남편들은 아내의 똑똑한 말에 의해서 바뀌지 않는다. 아내의 성경지식과 교리지식에 의해서 남편들이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는다. 남편들은 아내의 행동을 통해서 영향을 받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으로써 예수를 만나는 것이다.

마라벨 몰간 여사가 쓴 [완전한 여성]에 다음의 내용이 있다.
몰간 여사는 불행히도 자신은 본성상 바가지 일뿐아니라, 아이들의 어머니라는 직업상 \'종일 바가지\'라는 것을 고백했다. \"네 옷은 네가 치워라. 양치질 해라. 숙제해라.\"-이렇게 아이들에게 늘 지시하던 버릇이 남편에게도 습관적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쓰레기좀 밖에 내어 놓으세요. 우리 어머니에게 친절하세요. 사람들을 보면 웃으세요.\" 몰간 여사는 6년간 날이면 날마다 남편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남편은 마침내 어느날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이제 바가지 그만 긁을 수 없소. 나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 당신의 남편이요!\"라고 항변을 했다는 것이다. \"당신은 오늘밤 쓰레기 내다 놓으라는 말을 네 번이나 했소. 나는 당신이 잔소리 그칠 때까지 쓰레기를 일부러 버리지 않은 거요.\"
몰간 여사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남편은 바가지포에 의해 구석에 몰린 상태에서 자기가 남편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고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몰간 여사가 하라는 것과 반대의 것을 고집하는 것은 남편 자신이 리더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몰간 여사는 자신이 남편에게 계모처럼 잔소리꾼이 되어있다는 걸을 발견했다. 남편이 계모에게 로멘스를 느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자기 집을 왕궁으로 생각하고 거기서는 최소한 왕으로 군림하려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바가지가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하면 나오지 못하도록 입술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날 저녁 쓰레기가 깨끗이 치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바가지는 결혼생활을 죽인다. 순복은 남편을 살린다.

남편들은 아내들의 행동을 본다. 아내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보고 아내로 하여금 그런 행위를 하게 하신 주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두려워하며\"는 남편을 두려워하는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말한다. \"정결한 태도\"는 순수성을 말한다. 이것은 결혼생활에서의 정조와 신의를 의미한다.
우리 성도들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순화한 자들이기 때문에(1:22), 이것이 결혼생활에서 정조와 신의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깊이 겨외하는 아내는 남편에게 신의를 지키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평생토록 안 믿는 남편 파트리키우스에게 미덕을 보여 마침내 남편을 주님에게로 인도하였다고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에서 고백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녀의 주인으로 섬겼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당신에게로 인도하는 일에 근면하셨습니다. 아버지에게 당신을 행동으로 설교하셨습니다. 당신의 저의 어머니로 하여금 남편에게 존경과 친절을 베풀게 하심으로써 저의 어머니를 치장하셨습니다.\"
평생 모니카를 괴롭해왔던 파트리키우스를 주님으로 인도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2. 겉 사람이 아닌 속 사람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3-4).
3:1에서는 \"아내의 행위\"란 일반적인 말이 사용되었고 그것이 3:2에서
화장은 여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화장을 하는 이유는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함이다.
3:3의 \"단장\"은 헬라어로 \'코스모스\'이다. 이것은 세상, 질서, 조화란 뜻이 있다.
영어로 화장을 cosmetics이라 하는데 바로 헬라어에서 온 것이다.
여인의 치장 혹은 화장은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뭇 여인의 최고의 관심사일 것이다. 20대= 화장
30대= 치장
40대= 분장
50대= 변장
60대= 환장
그러나 진정으로 여인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속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온유한 심정
거칠고 성급하고 짜증부리는 성격과 대조되는 성격
남들에게 상냥하고 부드러운 것
남들이 나를 공격하고 괴롭힐떼 반격하거나 복수하지 않는 것
내게 가해진 악을 쓰라린 앙심이 없이 견디는 성품
온유는 예수님의 성품이고 신자들이 예수님에게서 배우게 되는 성품이다
둘째, 안정한 심정
불안하고 반역하고 혼란하고 거역하는 성격에 대조되는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정된 성품을 묘사한다.

이것들은 썩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것으로 치장하는 것은 모두 썩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온유, 안정은 썩지않는 것이다.

3. 믿음의 여인들을 본받아서 순복해야 합니다(5-6).

4. 아내에 대한 남편의 태도(7).
지식에 따라 동거하라
사려깊게
존중하라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경배 찬양] 예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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