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제12강
고난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선한 삶
본문:3:8-17
주제: 그리스도인의 삶. 선한양심
서론
베드로사도는 3:1-7의 말씀을 통해서 고난의 시대에서의 가정생활, 고난을 예견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고난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인 아내들이 가정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특별히 믿지 아니하는 남편과의 관계속에서 어떻게 가정 생활을 해야만 하는가 또 그리스도인 남편은 아내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가정을 형성해 나가야하는가에 대해서 말했다.
계속해서 베드로사도는 3:8-17에서 고난중에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난에 직면한 성도들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며, 우리에게 닥친 고난을 어떻게 이기면서 축복받은 산 소망을 가진 성도로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다. 고난을 맞이할 때 우리모두는 힘들고 때로는 인생의 쓰라린 맛을 보지만, 그 고난을 우리가 신앙안에서 이겨낼 때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처럼 밝히 솟아오를 것이다.
베드로는 사도는 고난을 이기는 생활이 어떠한 생활인지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본론
1. 형제를 사랑하는 삶(8절-12절)
(1) 형제를 사랑하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덕목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해서 물어온 청년에게 사랑의 덕목으로서 모든 율법을 종합하셨다. 위로는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밑으로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 22:37-40)
사도바울도 사랑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요한33사도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1서 4:8).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1서 4:11)
사람을 사랑하는 삶은 아름답다. 특히 남을 사랑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베풀어지는 사랑, 사랑할 형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삶은 수많은 감동을 주며 도전을 준다.
고난이 올 때 우리의 마음이 냉각되기가 쉽다. 잘못하면 우리는 고난 속에서 증오의 화신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고난속에서도 계속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베드로사도는 고난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말하노니\"라고 말하면서 사랑의 삶이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면서 강조하고 있다.
8절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가?
첫째로, 마음을 같이 해야한다.
근본적인 것에 있어서 일치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한 형제들이라면 우리는 가장 본질적인 것에 관해서 적어도 이의가 없어야 한다.
어떤 복음 전도자가 유명한 무디 목사님을 찾아와서 무디 목사님의 전도 방법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 비판하는 말을 다 듣고 난 무디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좀더 나은 전도 방법이 있다면 언제든지 개선하겠다는 의향이 있답니다. 제 전도 방법에 관해서 여러 가지 좋은 충고를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의 전도 방법은 어떠합니까? 제가 지금까지 저의 전도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말만을 들었는데 선생님의 전도 방법이 궁금하군요.\"
그 사람이 대답을 못하고 얼버무리자 무디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제 전도 방법에 대해서 비판은 하셨지만 더 좋은 전도 방법은 아직까지 생각하지 못하셨군요. 그러면 부족한 대로 제가 지금가지 해온 방법대로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방법\"의 문제를 가지고 불필요한 시비를 가리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의 원칙에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그리고 \'왜\'라는 문제에 관해서는 절대로 이의가 없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 있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정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우리 사이에 불일치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왜냐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너무나 명백한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의견을 달리할 수 있기때문이다.
둘째로, 체휼하여야 한다.
체휼은 같이 느낀다는 뜻이다. 즉 이웃의 기쁨과 이웃의 슬픔, 이웃의 모든 삶의 장에 동참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셋째로, 불쌍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가운데 제일 강조된 것이 바로 불쌍히 여기시는 속성이다.
우리 중 아마도 실수 하나 하지 않고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이 불쌍히 여기는 삶의 태도가 없이는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언제나 깨질 수 있는 긴장이 있다.
넷째로, 겸손하여야 한다.
겸손이란 어떠한 태도인가? 한마디로 경손의 정신은 종의 정신이다. 종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섬기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향해서 섬기는 태도를 가지는 그 순간 나는 저절로 겸손해진다.
(중국선교사 말린의 예)중국선교희망. 선교위원회 거부. 종노릇하게 해달라. 파송. 허드슨 테일러를 도와 중국선교의 한 역사적인 획을 그은 사람.
이처럼 종노릇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다 받으려고만 하고 지배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주려고 하고 또 섬기려는 태도를 가지면 아무것도 읿어버릴 것이 없다. 형제 사랑의 정신의 핵심은 바로 이 섬기고자 하는 마음 곧 겸손이다.
(2) 원수까지도 사랑하라(핍박자까지도 사랑하라)
9절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악하게 대하는 사람, 또 나에게 욕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옳을까? 우리가 그런 사람을 용서하고 참으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태도로써 그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로, 원수를 갚지 말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롬 12:19)
우리 스스로 원수 갚으려고 하는 것은 주께 대한 월권행위이다.
둘째로, 원수가 행한 일을 잊어야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 행한 일들을 잊어야 한다. 정말 우리가 상대방을 용서했다면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어야 한다.
미가서 7장 19절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발로 밟으신 다음에 깊은 바다속에 던져 버리셨다. 그래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하셨다.
이사야 38장 17절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주님의 우리의 죄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를 자신의 등뒤에 던지셨기 때문이다
시편 103편 12절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이 동서간의 거리 만큼이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셋째로,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야 한다.
상대방의 복을 빌어 주어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기도로 시작해야 한다. 베드로를 이를 위하여 우리가 부르심을 잆었다고 말하고 있다.
(3) 좋은 날 보기를 원하라
10절에 \"그로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좋은 인생이 당신 앞에 전개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웃과의 바른 인간관계이다. 이웃과의 바른 인간관계없이 우리의 삶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인생의 행복을 깨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이 바로 인간 관계의 균열과 갈등이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가? 당신의 인생의 아름답기를 원하는가? 베드로사도는 바른 인관관계를 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바른 인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첫째로, 혀를 금해야 한다.
둘째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여야 한다.
셋째로, 화평을 구해야 한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리켜서 \"저들은 참 하나님의 사람들이다\"라고 감탄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밤새 철야기도를 하는 모습에서 그런 감동을 받는가? \"아 저 사람 진짜 신자로구나\"라고 말하는가? 아니다. 오히려 \"저것들 다 미쳤구나\"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은 우리가 이 화평의 삶을 실천할 때이다.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할 때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우엇인가 다르구나!\"
2. 그리스도를 나의 인생의 참된 주로 여기는 삶(13절-15절)
주님이라는 말은 역사를 통해서 두 가지로 쓰여져왔다. 구약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킬 때 쓰였다. 사도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쓰더 당시에는 로마의 황제를 향해서 주님이라는 말을 썼다.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
단순히 이것은 도덕적인 거룩함만을 강조한 단어가 아니다. 이것은 어떤 목적을 향해서 내 삶을 구별해서 내 존재를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복음 증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고난이 와도 내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삼는 이 분명한 삶위에 서게되면 그 고난은 오히려 복음을 증거하는 가장 위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
3.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을 행하는 삶(16절-17절)
16절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양심은 두 가지 단어가 결합된 것이다. \"함께\"라는 단어와 \"진리나 진실을 안다\"는 단어가 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이란 \"내가 알고 있는 진리나 혹은 진실을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양심\'을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신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정의 했다. 양심이 맑으면 영혼의 창이 맑아진다. 이 맑은 창을 통해서 진리의 빛이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믿음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양심이다.
믿음은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확고하게 맺어준다. 그리고 양심은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
1521년 4월 18일은 위대한 날이다. 마르틴 루터의 양심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고백된 때이기 때문이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Here I stand). 달리는 어떻게 할 수가 없나이다. 나를 도우소서.\"
그의 양심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만 매여 있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부패한 교회의 온잦 제도가 이 한 사람 루터를 흔들 수 없었다. 그의 양심은 하나님 앞에만, 하나님의 말씀에만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한 양심을 가지면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를 비방하는 자들이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한다. 그들의 잔소리가 얼마나 의미없는 것인가가 금방 확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양심을 선하게 지키는 것은 결코 쉽지않다. 특히 고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이 선한 양심으로 생활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않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으며, 지킬수 있을까?
첫째로, 죄가 들어오면 즉각적으로 죄를 토하여 버리야 한다.
죄를 자백해야 한다. 죄를 자백해야 우리의 양심을 보호할 수 있다. 죄를 자백해야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고로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성실하게 계속해야 한다.
둘째로, 성경과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해야한다.
양심은 진리의 지식에 기초한다. 이 진리의 지식으로 내 마음이 채워지는 것만큼 내 양심도 민감하게 된다.
셋째로, 내 삶이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에 성령님이 우리의 양심을 민감하게 건드리신다. 그때 우리의 양심은 우리 양심을 통해서 들여
오는 성령님의 거룩한 음성을 민감하게 분별할 수 있다.
결론
사도 베드로가 예언했던 고난의 시대, 그것은 우리 앞에도 다가오고 있는 고난의 시대일지 모른다. 아니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미 찌들린 삶의 고난 한가운데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 나를 욕하고 나를 비웃고 나에게 침을 뱉는 사람을 뜨겁게 사랑해 보자. 그리고 그리스도를 우리 인생의 주인이로 섬기자. 그리고 내 영혼의 창에 우리 주님의 아름다운 얼굴이 비췰 수 있도록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