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본문: 베드로전서 4:1-6 본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우리가 용기와 능력을 얻도록,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실제적인 신앙생활에서 실존적인 능력으로 사용하도록 권면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3:17까지 선행 중에 고난당하는 신자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권면하다가 3:18-22에 그리스도의 고난 모델을 제시한 다음 다시 신자들에 대한 권면으로 돌아온 것이다. 베드로는 3:18-22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우주적 주권 및 기독교 세례등을 거론했는데 본문에서는 이런 면에서 직접적으로 교훈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3:18상반절의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들을 위하여 고난당하셨다\"는 핵심적인 말씀에서 교훈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3:18-22에서 거론된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승천 주권등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고난을 통해서 죄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를 하셨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베드로는 4:1-6에서 바로 이점, 즉 그리스도께서 고난으로 죄에 대해서 결정적인 승리를 하신 점을 우리의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서 죄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를 하셨는데, 우리도 고난을 통해서 죄에 대한 승리에 동참하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Ⅰ.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무장하라(4:1-2) 1. 고난의 각오로 무장하라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권면하낟. 위에서 말한 대로 베드로는 3:18-22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파노라마를 보여준 다음 그 전체에서 결론을 이끌어내지 않고 다만 3:18상반절, 즉 \'그리스도도 고난당하셨다\'는 사실에서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원문은 \'사르키\'로 여격) 고난받으셨다\"는 구절은 3:18의 \"그리스도도... 고난받으셨다...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라는 구절과 연결된 것이다. 이 구절에서 \"육체로\"(사르키)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하다. 4:1에 이어지는 말씀에도 \"육체로(사르키) 고난당한 자\"란 구절이 있고 4:2에 \"육체 안의(엔 사르키) 남은 때\"란 구절도 있으며, 4:6에 \"육체로(사르키) 사람들처럼 심판받으나\"는 구절도 있다. 그리스도도 육체로 고난당하셨고 우리도 육체로 고난당하고 남은 때도 육체안의 기간이고 심판도 육체로 당하는 것이라면, 육체론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고난당하셨다는 것은 그분의 지상생활 전체가 고난의 삶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3:18과 연결하면 그분의 고난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스도는 심자가에서 대속적 죽음을 당하신 것으로 절정을 이룬 고난을 통해서 죄 문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하셨다. (EX) 여러분의 아들이 예리한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면 여러분은 아들을 죽인 그 칼을 기념품으로 보관하겠는가? 여러분은 아들을 죽인 그 칼이 보기도 싫어질 것이다. 여러분은 그 칼을 영원히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 버릴 것이다. 우리들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형으로 몰고갔는데, 우리는 죄를 보물처럼 간직하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죄를 청산하는 것이 천번만번 마땅한 것이다. 베드로가 우리들의 죄 때문에 고난당하신 그리스도의 태도로 신자들이 무장할 것을 권면한 것은 이런 뜻이 있다.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는 말씀에서 \"갑옷을 삼는다\"는 말은 적절한 도구나 무기로 무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은 생각, 사고방식, 태도, 기질 등을 의미한다. 신자들이 죄와 고난에 대해서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로 무장한다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처럼 죄를 증오하되 소극적으로는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는 의를 위하여 고난당하겠다는 태도를 갖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동일한 고난각오를 가지면 죄성을 억누를 수 있는 무적의 무기로 무장하게 된다. 죄 속에 사는 신자는 사단의 손 안에 든 무서운 무기이다. 신자는 죄에 대적해서 싸우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태도(outlook)가 결과(outcome)를 결정한다. 어둠 속에 계속 머물면 어둠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죄악 세상에 살면 죄에 익숙해지기 쉽다. 죄와 타협하고 죄에 익숙해지기 쉬운 세상에서 우리는 죄와 싸우면서 고난을 당하겠다는 각오를 해야한다. 2. 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고난을 무장해야 하는가?(고난무장의 이유) 베드로는 고난당할 각오로 무장해야 할 이유를 \"육체의 고난을 당한자가 죄를 그쳤다\"는 데서 찾았다. 이 구절의 의미가 무엇인가? \"육체로 고난당한 자\"는 누구이고, 죄를 그쳤다(이미 그쳤다)는 것은 무엇인가? \"육체로 고난당한 자가 죄를 그쳤다\"는 구절의 의미를 바르게 파악하기 위하여 4:1-2을 뭔문대로 직역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고난당하셨으니 너희도 동일한 태도로 무장하라- 왜냐하면 육체로 고난당한 자가 죄를 크쳤으므로- 육체 안의 남은 기간에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들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살기 위하여\"위에서 와 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과 직결된 구절이고 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직결된 구절이다. 문제는 이 의 그리스도의 고난과 관계된 것이냐, 아니면 의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관계된 것이냐 하는 것이다. 3. 고난무장의 목적은 무엇인가? 베드로는 우리가 고난의 그리스도와 동일한 각오로 무장하는 목적은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베드로는 \"육체로 고난당한 자가 죄를 그쳤다\"는 것을 괄호로 말했다. 따라서 4:1-2 전체는 \"더이상 사람들의 정욕들로 살지 않고 육체 안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으로 살기 위하여...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무장하라\"가 된다. 베드로는 우리가 고난각오로 무장하는 목적을 두 가지로 제시했다. (1) 소극적인 목적 우리가 고난각오로 무장하는 소극적인 목적은 \"육체 안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들로 살지 않는\"데 있다. \"육체 안의 남은 때\"라는 구절은 우리에게 할당된 지상생활이 짧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람들의 정욕들로 산다\"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모순되는 \'사람들의\' 악한 욕망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는 것을 말한다. \"정욕들\"이란 성적인 욕망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3절에 열거된 성적인 죄악과 음주와 관련된 죄악, 그리고 우상숭배 등을 포함하는 말이다. \"정욕들\"은 요한의 표현대로 하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등 성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요일 2:15) (2) 적극적인 목적 우리가 고난각오로 무장하는 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뜻으로 육체의 남은 때를 사는\"데 있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다음절인 3절에 나오는 \"이방인의 뜻\", 즉 주색과 우상숭배 행위로 표출되는 불신자의 뜻과 대조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것\"은 죄와 결별하고 사람들의 정욕들을 청산하고 주색과 우상숭배등, 이방인들이 좋아서 행하는 것들과 담을 쌓고 사는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가 선택된 나그네로서 하늘소망을 바라보고 선행(2:5, 17)에 힘쓸뿐더러 선행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고난각오로 무장한 신자들은 인본적인 욕망에 따라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양자택일을 한다. 중립지대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 인간적인 정욕에 지배받는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뜻에 지배받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EX) 그리스 연대기에는 아니고누스 밑에 심한 병이 들어 언제 무덤속으로 들어갈지 모르는 한 병사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병사는 항상 가장 용감한 용사로 전선 맨 앞에 서서 싸왔다. 그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너무 심해서 그 고통을 잊기 위해서 앞서서 싸운 것이다. 그는 곧 죽을 몸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안티고누스는 그 병사의 용맹을 크게 치하하던 중 그가 병들었다는 것을 알고 당시 최고의 명의를 시켜 그를 치료해 주게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병을 고친 순간부터 전선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자기의 안일을 추구한 것이다. 그가 친구에게 한 말에 의하면 그는 이제 무언가를 위해서 살 가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건강, 가정, 가족 등을 위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전처럼 생명을 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고난을 당하면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이유와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게 된다. 그리고 다가올 세상의 희망에 사로잡혀서 자기부인과 열정과 근면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인본적인 욕망과 하나님의 뜻-앞으로 남은 때를 이 중 어느것에 맞추어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은 사활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인본적인 욕망대로 사는 삶은 매력적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은 짐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최선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무엇을 하시고 계시는지를 모른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우리의 최선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무엇을 하시고 계시는지를 모른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우리의 최선을 의해서 일하시는 것만은 분명히 믿어야 한다. 우리는 설명에 의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약속에 의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현재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할당하신 풍성한 삶을 극대화하는 비결이다. 조셉 파커 박사는 사랑하는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 거의 미친 사람처럼 되었다. 그러나 런던의 시성전(City Temple)에서 그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은 그 참혹한 사건 이후에 파커 박사는 과거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영력이 더 강하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더 예민하고 설교자와 목회자로 실력을 더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자는 고난 속에서 더욱 깊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은 미래적인 시각으로도 최고의 삶이다. 우리가 인본적인 욕망에 따라 사는 것은 \'육체의 남은 때\'를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다. Ⅱ. 신자들의 과거와 현재(4:3-4) 1. 과거는 과거로 족하다(4:3) 2. 달라진 현재 (ex) 전선에 감연된 모자 한 소녀가 전선을 끌어서 그 스파이크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즐기고 있었다. 전선에 감전. 현장에 도착한 엄마에게 \"엄마, 나를 살려줘요!\" 어머니도 감전. 마침내 어떤 남자가 도끼를 들고와서 전선을 끊었다. 그 결과 소녀의 생명은 간신히 건졌으나 심한 화상으로 몸이 말이 아니었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이러한 비극이 계속 빚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방탕의 전선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다. 방탕의 전선에서 나오는 전류가 마침내 그들의 인생 전체를 망가지게 할 것을 알지도 못한채 괘락의 스파이크와 스릴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신자들은 마치 도끼로 전선을 끊은 것처럼 극한 방탕의 줄을 끊고 사는 자들이다. 이런 신자들을 보고 불신자들은 이상히 여기고 있다. Ⅲ. 격려: 하나님의 심판(4:5-6) 베드로는 방탕한 과거와 단절된 신자들의 현재생활을 언급한 다음 아직도 방탕의 홍수에 몸을 던지면서 바로 사는 신자들을 비방하는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것이 불신자들에게는 경고가 되고 신자들에게는 격려가 된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신원의 진리는 에다 이리드(Eda A. Reid)의 \'후에(After)라는 시가 잘 묘사하고 있다. 십자가 후에 생명의 면류관 울음 후에 노래 슬픔의 밤 후에 밝고 영과스러운 새벽 가슴앓이 후에 위로 폭풍 후에 고요 고통과 한숨 후에 하나님의 사랑은 치료하는 유향 사모 후에 현실 방황 후에 정로 이별의 아픔후에 해후의 기쁨 통곡 후에 기쁨의 기름 어둠 후에 빛 땅 위의 수고와 시련 후에 그리스도의 복된 얼굴 |
| [경배 찬양] 예수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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