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제14강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 받는 자
본문: 베드로전서 4:12-19
서론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받는 자는 즉 의인의 고난을 의미한다.
본론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받는 자는
1. 주어진 불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않는다(12절)
고난은 성도에게 반드시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그네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반드시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막상 내 자신이 그런 고난중에 처하게 되면 의아해하게 되고 이상하게 여기고 두려워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내가 주님을 열심히 사랑하는데, 열심히 선을 행하면서 살아가는데 왜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고난을 주는가? 라고 이상히 여길 수 도 있습니다.
물론 고난이 내 과오 때문에, 잘못 때문에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고난은 진정한 의미에서 고난이 아닙니다. 마땅히 자신이 행한 대로 받는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사도는 본문 15절에서 이런 고난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그러나 또 한가지의 고난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 때문에, 신앙 때문에 주어지는 고난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이러한 고난을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고난 중에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성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고난이 과연 어떤 종류의 고난인지를 파악해야합니다. 만약 그 고난이 내 과오 때문에, 잘못 때문에 받는 대가라면, 우리는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그 고난이 믿음으로 인한 고난이거든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나에게 믿음의 성장할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고난은 특별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상히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의 과오 때문에 주어지도 하며, 때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의 믿음의 연단을 위해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이미 1장 7절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시련의 시간, 불 시험의 어두운 시간은 순금과 찌꺼기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시간입니다. 핍박이 올 때, 박해가 올 때, 고난이 찾아올 때, 이 고난 앞에서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고난은 그리스도인들을 순화시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세례와 성찬식에 이어서 고난을 제3의 성례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이 우리의 삶을 순수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욥기 23장 10절을 보십시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내가 걸어가는 삶의 모든 길을 그분은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의 풀무 불 속에서 우리의 삶과 인격이 제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일찍이 우리에게 잘 경고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7절 이하를 보면,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요15:17-19).` 즉, 우리가 세상에 속하였다면 세상이, 우리가 세상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할 터이나 우리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예수님의 택함을 입은 자이므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2. 고난을 즐거워한다(13절)-Why: 그리스도의 고난의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함.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받는 자들은 고난이 올 때 그 고난 중에서 즐거워합니다. 13절에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도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합니다.
고난 중에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살아있는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난 중에도 즐거워해야 이유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면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인 내가 고난은 당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어떤 고난입니까? 2장 19절에 보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19-20절). 바로 이 말씀을 이어서 21절에 바로 예수님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으신 분,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신 분,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게 될 때, 첫째, 우리가 주님의 심정을 알게 되는 유익이 있게됩니다. 내가 그런 애매한 고난을 받을 때, 참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그런 아픔을 당할 때 우리는 주님의 깊은 심정을 알게 됩니다. 둘째, 주님과 같은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내가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 나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대화 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와의 고난의 교제 속에 감히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날에 받을 상급이 크기 때문입니다.
13절에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지금 고난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장차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그 영광 속에 같이 참여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 대신에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난을 지나야만 영광이 옵니다. 이것은 마치 어머니들이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아름다운 아기를 상급으로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0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20,21절)
고통스럽게 아이를 낳으면서 절대로 다시는 안 낳겠다고 결심하던 여인들이 또 다시 낳을 수 있는 용기, 그것은 낳은 후의 보람의 영광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영광의 날에 받을 상급이 크므로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성령님의 특별하신 임재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맞이할 때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계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분을 위해서 고난받는 나를 어떻게 그대로 버려두시겠습니까? 그분은 반드시 찾아오십니다.
고난은 아픈 것이지만 고난 속의 위로는 참으로 큽니다. 성령님의 놀라운 임재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죽음의 순간에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는 영광스러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스데판을 능히 순교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시련의 때는 주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나타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16절에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3. 고난중에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14절)
4. 고난중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16절)
5. 고난중에 선을 행하면서 자신을 주님께 부탁한다(19절)
첫째,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롬12:21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악을 선으로 이겨야 합니다. 나에게 억울한 고난이 다가올 때 그때에도 선을 행하십시오.
둘째, 우리의 영혼을 미쁘신 하나님께 부탁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면서 혹시 육체가 죽임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네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하라.\" 바로 예수께서 이것에 대한 모본을 보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스데반이 죽을 때에도 어떻게 했습니까?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
내가 고난을 당한다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성실하십니다. 내가 당장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경륜이 있습니다. 그 성실하신 주님 앞에 당신의 영혼의 문제를 온전히 부탁하십시오. 자신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이 최후의 헌신은 최후의 고난을 최후의 승리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