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교리
1. 서론적 개관
1) 성경적 근거
성경에 기록된 삼위일체적 표현들이 구속사적 성경관에 의해서 기초적이고 지배적인 사상으로 등장하게 된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나누일 수 없으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요:1:1~5의 내용이나 하나님의 형상(고후4:4, 골1:15)의 내용과 하나님의 본체(빌 2:6)등에서 증거하고 예수님이 성육신 이전에 선재적으로 존재했으며 하나님과 하나로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과 동등하시다(요5:18)는 표현들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있기 때문이라(요14:9~10) 등에서 예수님이 본질적인 하나 됨보다 능력 면에서 동일하며 하나라는 점을 많이 강조한 것이다.
또한 (요16:14-15)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라고 하므로 아버지의 능력을 아들이 부여받았으므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듯이 아들이 가진 것을 또한 성령이 가졌으므로 성령도 아버지와 동일하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적 표현은 신으로서의 본질적 동일성으로 접근하였다고 보고 삼위일체를 언급하려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28:20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혹은 고후 13:13절의 축도에 나타난 내용을 삼위일체의 근거로 삼고자 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구절이다.
2) 서언적 접근
이러한 성경에 근거하여 초대교회에서 세례의식문 가운데서 무의식적으로 이미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곧 교회 전체의 긴급한 문제가 되었다.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것이다. 변증론자들과 오리겐의 경우 철학적 관심과 종교적 관심이 혼합되기도 했고 아다나시우스는 철학자가 아닌 순수한 성직자였고 철학자요 변증가였던 어거스틴도 사변적 관심보다는 종교적 관심에 의해서 보게 된다. 결국 동방에서는 다메섹 요한과 서방에서는 어거스틴에 의해서 잠정적 결론을 내려놓았지만 고대 교회사 말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논의되고 더 격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삼위일체는 하나의 신비이며 더 적절한 표현을 위해서 모든 세대의 교회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삼위일체론적 신개념의 최초의 발전단계
1) 사도 후 교부들
원시 기독교의 초기 저작들은 세례의식문에 대하여 교리적 사색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삼위일체론적 형식을 갖추기는 하였지만 큰 자극은 주지 않았다. 성부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고 홀로 하나님께만 돌릴 수 있는 모든 속성을 그에게도 부여했다. 대개의 경우 성부와 성자와 함께 성령을 언급했다.
그러나 초대 교부는 이일신론적인 경향을 가졌다. 성령은 고린도 후서 3장 17절에서와 같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성자와 성령을 실제로 동일시 여기지도 않았다. 성령을 한 인격적 존재로 표현하기에는 자연적으로 곤란이 있었다.
2) 초기 변증론자들
초기 변증론자들이 기독교 신학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대하여 다소 논의를 하게 된다. 기원 180년경에 데오필루스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천제가 생기기 이전에 있던 사흘의 시일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그의 지혜의 셋 한 쌍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그는 “아버지와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로고스를 보려는 욕심을 버려라. 아들과 아버지의 연합은 무엇인가? 아버지와 아들의 교제는 무엇인가? 성령은 무엇인가? 이렇게 연합하여 계시는 분들의 연합과 상이점은 무엇인가? -성령과 아들과 아버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라고 하였다.
변증신학자들은 아데나고라스의 말을 인용했는데 “변증론자들은 성부와 성자와 일치란 무엇인가? 성부와 성자의 사귐은 어떤 것인가? 성령은 무엇인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통일은 무엇이며 차이는 무엇인가? 같은 주로 하나님과 로고스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변증론자는 요한의 로고스와 필로의 로고스를 동일시하는 위엄성을 가졌다. 창조 이전에도 성부와 고로스가 인격적으로 구별되어 있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아들을 아버지에게 종속시킨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변증론자들이 이런 위험성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성부와 성자를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못하였다. 마음속의 이성과 방성된 말을 구별하는 필로의 이론을 사용해서 그리스도의 격체화를 세계 창조 때에 처음 시작된 것으로 간주하였으며 또 그것을 하나님 안에 있는 필연적이고 영원한 원리의 결과라고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의지의 자유롭고 잠정적인 행위라고 보았다.
3) 이레니우스
그는 노스틱주의와의 논쟁에 있어서 사색함이 없이 단순히 신앙의 표준에 근거하여 가르치기를 성자와 성령은 다같이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한다고 하였다. 사실 초대 기독교의 삼위일체 논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노스틱주의의 그리스도와 창조주 하나님(데미우르고스)을 구별하고 오히려 창조주의 하나님이 더 저급한 신이라 하는데 대하여 교회에서 문제화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터툴리안
하나님의 존재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삼위로 명확하게 정의하였다. 그는 이 사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trinitas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는 프락세아스 독재론(단일실론)에 대항하여 삼위격체론을 옹호하였다. “나는 셋이 결합된 하나의 본질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삼위는 본질의 통일에 의하여 모두 일체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단일체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순서로 된 삼위일체로 구분하는 신비는 그대로 보존된다. 그러나 삼위는 그 본질이 셋이 아니라 양식이 셋이며 그 능력이 셋이 아니라 표현이 셋이다. 왜냐하면 삼위는 모두 한 본질, 한 실재, 한 능력이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해되는 이러한 차서와 양식과 모양은 모두 한 분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삼위의 세 인격을 명백히 말하며 그 세인격의 실질적 통일성을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아직도 종속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버지는 온전한 본질이며 아들은 아버지보다 낮은 정도로 신적 본질을 갖고 있는 파생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희랍적 변증론자들의 경우와 같이 아들이 로고스로서 격체화된 것은 창조 때에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5) 문제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해결해야 할 긴급한 문제는 첫째 교회는 종속설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혹은 그리스도를 일종의 제 2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보는 견해에서 어떻게 떠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둘째 기독교적 유일신 신앙을 희생시킴이 없이 어떻게 삼위의 일체됨을 보존할 수 가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종속설은 계속해서 유일신 신앙을 수호해 왔다는 사실이다.
6) 오리겐의 공헌
오리겐은 터툴리안과 마찬가지로 삼위 격체론까지도 배격하는 유일신 신앙을 강조한 독재론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영원적 출생설 : 그는 로고스가 창조 때에 비로소 인격이 되었다는 터툴리안의 견해를 버리고 로고스는 태초로부터 한 인격이었다고 선언한다. “아들의 출생은 마치 태양이 광채를 낳은 것처럼 영원하고 영속적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았거나 또는 낳은 후에 자유롭게 버려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항상 아들을 낳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므로 영원적 출생의 개념이 중요한 공헌을 이루게 되었다. 이런 개념은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한 영원성의 개념을 지향하는 제일보가 되었던 것이다.
삼위와 관계 : 그는 성부와 성자가 다같이 신적 실체 혹은 인격적 실체라는 것을 말했으나 본체에 대하여는 제 2위가 제 1위에게 예속된다고 정의하였다. 성부는 제 2차적인 형식의 신성만을 성자에게 전달하였는데 이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는 있으나 그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성자를 제 2신이라고 불렀다. 성령은 성자에 예속된 것으로 볼 뿐 아니라 성자가 창조한 피조물 중의 하나로 성령을 간주했다.
3. 독재론 제거
1) 개관
독재론자(Monarchian)라는 말은 하나님의 獨裁(獨裁) 즉 홀로 독점적 지배 혹은 홀로 일한다는 의미로 터툴리안이 그들을 지칭한 이름으로 최초 사용했다. 그들은 격체론과 삼신론을 배격함으로써 하나님의 단일성(즉 유일성)을 보전코저 하였다. 이 이론은 이교신앙에 비교한 기독교의 가장 값비싼 보물이던 유일신 신앙을 제 2의 하나님이라는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조화시켜 보려고 노력했다.
2) 동적 독재론(Dynamistic Monarchian)
혹자는 양자론적 독재론이라고도 하고 인성론적 독재론이라고도 불리웠는데 그리스도의 안에 있는 신성을 단순한 능력 혹은 세력으로 간주했다. 그들의 출발점이 된 것은 예수의 인성이었으며 그러한 인성은 결국 신격화되었다고 보았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에 의하여 선택되고 영감 되고 높임을 받은 단순한 인간이었다고 주장한 에비온파의 개념과 매우 근사했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성격의 탁월성을 강조하고 그리스도를 양자라는 점에서만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인간적이고 사복음서적인 그리스도에 집중하여 그리스도는 동정녀에게서 나서 세례를 받을 때에 영이 임하여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으며 부활함으로 높임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안디옥 감독인 사모사타 바울은 하나님은 온전한 한 인격이라고 생각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로고스 혹은 아들 지혜 혹은 성령은 하나님의 속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신적 이성 로고스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에게 속해 있던 것이며 비인격적인 세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예수는 하나님의 로고스적 세력을 충만히 받은 한 인간이었다. 이처럼 위로부터 신적 지혜의 내주로 말미암아 인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한다.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도덕적 결합을 나타내는데 불과한 것으로 성령의 감화와 의지의 일치에 의해서 확고하게 하나님과 긴밀한 연합을 이루었으며 그리하여 기적을 행하는 능력과 구속자로서의 자격을 확보하였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의 항구적인 일치에 도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런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찬송을 제거하기에 이르러 반감을 불러일으키므로 264-269년 사이에 세 차례의 종교회의가 개최되는 동안에도 정죄를 면하고 존속되다가 세 번째 종교회의에 말키온과 공개적인 논쟁에서 하나님과 로고스를 한 인격으로 지칭하는데 사용한 동질이란 말을 배격하게 되었다. 이 사모사타 바울이 배격되므로 구속자의 인격적 독립적 선재를 부정하는 기독론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3) 양식적 독재론(adoptionistic)
양식론적 독재론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양식(mode) 혹은 현현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상은 교회의 일반 신도들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며 양식론은 이방종교의 다신론을 떠나서 한 분 하나님에게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참된 유일신 신앙의 수호자라고 생각되었다.
양식론의 주된 관심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희생시키지 않고 기독교적 유일신 신앙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양식론자들은 그리스도를 성부와 동일시하거나 하나님의 자기 현현의 한 양식으로 간주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성부 수난설에 이르게 되었고 가현설에 이르게 되었는데 노스틱주의 가현설보다 더 높은 형태의 것이었다.
사벨리우스 : 215년경에 로마에서 가르쳤는데 그는 “하나님은 단일한 실체이다. 하나님의 존재 안에는 구별이 없으며, 단일체인 하나님은 세 가지의 상이한 양식 혹은 형태로 자기를 나타내신다. 자기를 창조주로 나타내신 것은 아버지요, 구속자로 나타내신 것은 아들이며, 정결케 하는 자로 나타내신 것은 성령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 실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한 인격에 의해서 행하여진 세 가지 역할이었다고 하겠다. 다른 말로 하면 이들 삼자는 모두가 하나이며 동일한 인격인 것이다. 하나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가지 명칭을 가지고 있으나 오직 한 인격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단일한 실체 단일한 인격으로 하나님의 인격은 율법을 수여하는 일을 마친 후에는 다시 본래의 상태로 환원되었으며 그것은 다시 화육을 통하여 아들로서 나타났으나 승천함으로서 절대적 실체로 돌아갔으며 마침내 그것은 성령으로 나타났으나 교회의 온전한 성화를 확보한 후에는 또 다시 구별을 모르는 단일한 실체로 복원되어서 영원토록 거기에 거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사벨리우스도 배격되었지만 후에 전통적 기독론에서 동질의 개념을 위해서 길을 예비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 두형태의 기독론은 모두 로고스 기독론을 노스틱주의라 하여 배격하였고 동적 독재론은 역사적 혹은 사복음서적 그리스도를 강조하였고 양식적 독재론은 그리스도의 독재 혹은 신성을 강조하였다.
토마시우스는 이 두 사상을 고차원적인 형태의 에비온주의와 가현설이라 부르며 전자는 역사적 그리스도의 인격성을 보존하고 그의 본질적인 신성을 희생시켰으며 후자는 그리스도와 성부의 본질적 통일성을 보존하고 그의 인격적 구별을 희생시켰다. 전자는 그리스도의 역사적 인간적 인격으로부터 출발하여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간으로 전락시켰으며 후자는 자신 속에 완전한 신성을 가지고 있는 천상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그의 참된 인간성을 위태롭게 하였다.
4) 빅톨로부터 칼리스투스의 수정된 독재론
당시 로마교회의 사정은 결체론과 종속설을 옹호하는 히폴리투스가 세력을 잡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사벨리우스가 세력을 잡고 있었다. 그래서 감독 칼리스투스는 둘 다 배격하고 절충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나누일 수 없는 한 영의 내주하기 때문에 아들이라고 불리어져야 한다. 그러한 하나님의 영이 인간 예수를 신이 되게 하였다”고 가르쳤다. 그는 성부가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다만 아들과 함께 고난을 당하였다고 가르쳤다. 이는 장차 동질론적 격체론으로 건너가게 하는 교량역할을 하였고 인간 예수를 신격화 한 것은 양자론과도 흡사하였지만 하나님과 유사한 격체를 성자에게도 인정하였으며 이것이 후에 니케아신학에 큰 도움을 주었다.
4. 한층 진전된 논쟁
이런 양식론도 로고스 기독론에 압도당하기 시작하여 오리겐과 터툴리안 사상에 굴복하게 되었지만 종속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져온다.
1) 노바시안 사상
로마교회의 장로였던 그는 코넬리우스가 로마 감독이 된 후에 타락한 자들을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의 영도자가 되었다. 그의 저작 De Trinitate에서 독재론을 단호히 반대하고 삼위일체 개념을 옹호하였다. “아들은 항상 아버지 안에 있었으니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로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성자는 시작이 있었고 성부는 어떤 의미에서 성자보다 앞섰다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홀로 아버지만이 영원하고 출생되지 않은 존재이며 아들은 그에게서 파생된 존재”라는 것이다. 이처럼 종속설은 아직도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정당하게 삼위 격체론에 입각해 있으며 또한 성령이 삼위일체의 셋째 인격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2)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
알렉산드리아 감독 디오니시우는 오리겐의 제자로 교리문답학교 교장이었다. 그는 로고스 기독론을 따랐으며 성부와 성자의 인격적 구별을 믿었다. 격체론을 주장한 그는 사벨리우스 양식론을 배격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피조자이며 아버지와는 본질을 달리한다. 이는 마치 농부가 포도나무와는 다르게 조선가가 선박과는 구별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자인 아들은 창조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사상은 그리스도를 영원적 존재 혹은 출생을 믿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의 이지적인 기독교도에게 반감을 사게 되었다.
3) 로마의 감독 디오니시우스
로마의 디오니시우스는 하나님의 독재를 파괴하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자기 입장을 선언하면서 성자와 성령은 성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로고스는 하나님과 결합되어 있으며, 성령은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보아야 한다.” 고 하였다.
5. 아리우스주의와 아다나시우스주의 대결
아리우스 주의 논쟁에 있어서 양측의 주동인물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인 알렉산더의 수행집사이며 후에 정통주의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게 된 아다나시우스와 알렉산드리아 장로인 아리우스였다. 그들의 가르침은 피차간에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근본적인 개념에서 피차간에 타협의 여지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가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 아리우스주의
(1) 아리우스주의 기원
아리우스는 사모사타 바울에 힘입었고 그의 실제적인 스승은 그의 부친과 절친한 안디옥의 루시안이었다.그들은 양식적 독재론에 반대하였으며 종속론적 형태의 격체론을 강력히 옹호하였다.
다른 한편에 아리우스는 그의 개념 일부를 오리겐의 진술에서 끌어왔는데 켈서스에 대한 오리겐의 답변에서 “로고스는 창조되지 않은 자의 본성과 창조된 만물의 성질 사이의 중보자”라고 한 부분이다.
(2) 아리우스주의 목적
그의 목적은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교회와 더불어 ‘로고스 그리스도’를 독립적 존재로 인정함과 동시에 독재론자들과 더불어 기독교의 유일신교적 원리를 보존하고자 하였다. 이 두 가지 의도를 결합시킴에 있어서 그는 종속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로 교회는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던 사실 즉 성자를 성부에게 절대적으로 종속시키는 관념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충분히 나타내는 개념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3) 아리우스주의 사상
그리스도를 노스틱주의의 창조신과도 같은 한 신화적 표상 -반신 반인간의 존재-으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만은 아니었다. 그는 반신 반인간적 존재였다. 그는 참으로 신적이지만 그러나 성부와 동등하지는 않았다. 사실상 이런 가르침은 변증론자들이나 터툴리안과 같은 과거의 종속론자들에 의해서도 제시된 바 있었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성부와 성자 사이에 진정한 본질의 차이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홀로 아버지만이 진정한 신적 존재이며 아들은 피조자에 지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다고 보는 관념이 배제되었고 아들은 존재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피조물에게 속하는 모든 속성들이 아들에게도 주어진다.
그는 성부와 성자 사이에 본질의 구별을 인정하고 계속하여 성자와 다른 피조물과의 구별을 지적하며 세상에서 아들의 사명은 세계의 창조를 중재하기 위하여 그리고 세상에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하여 시간과 공간이 있기 전에 창조되었다. 이런 목적을 위하여 그는 특별히 신적 영광이 미리 주어졌는데 이러한 영광은 그가 장차 영위하게 될 덕 있는 생활에 합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신적 존재였다.
(4) 아리우스주의의 평가
사모사타 바울은 인간이신 예수가 신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았다. 아리우스는 아들 혹은 로고스가 유한한 존재이며 하나님이 그의 장차의 윤리적 선행을 예견하였기 때문에 그에게 신성이 주어졌다고 한다. 이런 신 개념은 추상적인 것이다. 즉 하나님은 절대적인 실체적 단일체이며 그 안에는 구별이 없고 따라서 최고의 피조적 존재의 중개가 없이는 세계를 창조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신화적인 요소가 기독교에 도입되었으며 순수한 유일신 신앙은 신적 인간과 반인간적 신들을 믿는 다신교로 전락되었다고 제베르크는 평가했다.
2) 최초의 세계 종교회의(니케아회의)
(1) 배경
알렉산드리아 감독인 알렉산더는 아리우스 견해를 단호히 배격하였다. 321년에 알렉산드리아에 대규모 종교회의를 열어 아리우스를 파문하고 추방해 버렸다. 그런데 아리우스를 추종한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를 위시해 많은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그를 지지하고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아리우스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으나 묵인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형편에 콘스탄틴 황제가 사소한 교회 분쟁으로 처리하려고 하는데 그의 고문 감독이었던 코르도바의 호시우스가 논쟁의 중대성을 인식시키므로 325년에 콘스탄틴 황제가 니케아에 최초의 세계적 종교회의를 소집하게 되었다. 이때 300명에 달하는 감독들과 많은 수행원이 참가하였다.
(2) 전개과정
회의가 시작되자 감독들이 세 파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하나는 동질론자들로 숫자적으로 약세였으나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알렉산더와 아다나시우스에 영도되었고 다음은 아리우스파로 미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에 의해 영도되었고 마지막으로 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화평을 주장한 중도파로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가 영도하였다.
(3) 진행내용
알렉산더는 성자의 영원적 출생이라는 개념이 확고히 서 있었다. 아버지로부터의 그리스도의 출생에는 시작이 없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아버지의 빛의 영원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아들됨은 영원한 것이며 인간들과 다른 것이다. 아들은 참으로 아버지의 존재의 필요한 일부분이다”라고 생각했다.
니고케디아의 유세비우스는 아리우스파의 신조를 회의에 제출하였으나 부결되었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그리스도가 창조된 형상이라고 불리워진 신조를 제출하였다. 그래서 아리우스파는 물론 대다수 감독들에게 만족할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다나시우스와 알렉산더가 반대하여 호시우스의 제의로 ‘동질’이란 말을 사용하게 되고 합의를 봄으로서 니케아신조가 생겨났다. 이 신조의 특징은 ‘지음을 받지 않고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났으며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이신’ 등이다. 이 신조의 마지막에 저주구절이 첨가되었다.
3) 아다나시우스 주의
(1) 아다나시우스 생애
그는 종교와 신학에 있어서의 실천적 요소를 간파하였고 구속의 종교에 대한 교회의 근본적 관심을 체계화 하였다. 그는 순수한 철학적 관심(오리겐의 추종자들)을 배제하고 교회의 구속자이신 그리스도 위에 확립하였다. 그의 동질론에 대한 확립에 의한 신앙에 순수성 뿐 아니라 여러 박해생활 가운데서도 굽히지 않고 자기 의견을 주장하였다. 그는 다섯 번의 추방을 당했으나 결국에는 승리하였다.
(2) 아다나시우스의 중심사상
첫째 : 아리우스 주의는 결국 다신교에 이른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즉 아리우스가 그리스도가 성부와 동등한 영원성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고 또 진정한 인간도 아니라면 그는 노스틱주의의 창조신과도 비교할 수 있는 중간적 존재 혹은 반신 반인간의 존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피조물을 경배하는 결과가 된다. 중간적 존재 없이 세계를 창조할 수 없었다면 중간적 존재 없이 아들의 창조하는 일도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라고 반문한다. 이후로 철학적인 로고스 교리는 이때부터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둘째 :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가 아리우스의 주의의 말대로 어떤 의미에서든 신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분리될 수 없고 나누일 수 없는 하나님의 실체에 속하는 것이라 하였다. 아들은 태초로부터 인격으로 존재하였다. 그러나 삼위의 격체는 피차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부와 동등한 영원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셋째 : 성부와 성자의 동등한 본질인 것이다. 만일 성부와 동질이며 격체에 있어서만 성부와 다르다. 아들은 창조되었다고 볼 수가 없다. 그는 출생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들은 영원 전부터 아들이었다.
넷째 :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강조하고 유일신 신앙을 나타내는 진정한 삼위일체의 교리를 주장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 대한 기도, 세례의 집행, 죄의 용서와 부활의 소망을 가진 기독교의 구속적 성격 등의 근거를 이러한 사상의 기초위에 두었다.
다섯째 : 그는 아리우스주의의 성경에 그런 용어가 없다는 것에 대한 반론으로 그리스도와 구속에 관한 성서적 교훈에 비추어서 성경을 해석하므로 그런 용어가 성서적 교훈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4) 니케아회의의 결과
(1) 동질론의 일시적 패배
니케아 회의에서 동질론에 대하여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 대부분이 바르게 이해하여 투철한 사상에 의한 상태가 아니라 이후 60년간 분쟁이 야기되었다.
아다나시우는 328년 알렉산드리아 감독이 되었으나 335년 두로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는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가 황제에게 아다나시우스를 고소하였고 파면을 당한다. 이후 여러 차례 추방을 당하였다가 돌아왔는데 373년 아다나시우가 죽던 때에는 그가 평생을 바쳐 옹호해 오던 주장은 완전히 패배한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2) 동질론의 궁극적 승리
니케아 신조의 반대파는 소수의 아리우스파였고 다른 하나는 보수적인 다수파(중도파)였다. 특히 후자는 동질(homoousios)이란 말이 사벨리우스주의적 색채가 있다고 인정하여 유질(homoiousios)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비슷한 본질의 의미가 아니다.) 이들은 양식론의 주장에 반대하여 성자의 진정한 격체를 옹호하고자 하였다. 이들 두 파의 사상의 일치(동질에 반대)와 피차간에 적대관계(적의 적이면 동지)에서 일치하여 아다나시우스를 고발하게 되었는데 아리우스는 점점 급진적인 경향을 띠었고 유질론자들은 점점 더 보수적 경향을 띠게 되고 발렌스 황제 때 동질론자들과 유질론자들이 제휴하기에 이른다. 교회가 아다나시우스주의로 향하게 된 이유는 이 때로부터 시작되었다.
동방에서는 세 가파도기아의 교부들(가이샤라의 바질, 나지안주의 그레고리, 닛사의 그레고리)와 서방의 암브로스의 영향이 이에 미쳤다.
아다나시우스는 한 분 하나님이 삼중의 인격적 존재로 나타나며 그것으로써 자기를 계시한다고 가르쳤고 가파도기아의 교부들은 세 격체가 동일한 영광과 하나님의 본질을 소유한다고 생각했다. 아다나시우는 한 본질이 삼중 인격적 존재로 나타난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는데 가파도기아 교부들은 세 격체 혹은 프로소폰(인격)이 한 본질이라는 데 출발점을 삼았다. 그래서 아다나시우스는 삼위일체에 중심이 있었다면 세 가파도기아 교부들은 단일체에 있었다.
(3) 성령에 관한 견해가 확정됨
성령에 대한 아리우스 주의는 성령도 아들을 통해서 생겨난 최초의 피조자라고 보았다. 325년 니케아 신조에는 ‘우리는 성신을 믿으며’만 표현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에 의하면 초기 성령에 관한 신학자들의 견해는 ‘힘’ 혹은 ‘세력’ ‘피조자’ ‘천사와 같은 존재’ 로 간주하는 이가 있었다. 이들은 성령에 관하여 아무런 정의를 내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연로한 아다나시우스는 세례의식문에 비추어 성령을 피조물일 수 없으며 만일 피조자라면 하나님 안에는 다른 성질의 어떤 것이 있는 셈이며 따라서 하나님은 삼위일체라고 볼 수 없다. 성령은 아들과 마찬가지로 동질이어야 한다. 그는 성령이 행하시는 성화의 역사(役事)로 증명하려고 하였다.
성령은 이제 성부 성자와 같이 한 격체라고 생각되었다.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완성하고 적용하는 일이라고 해석되었다. 아들과 성령의 차이는 아들은 출생되어 보냄을 받았는데 성령은 나왔다는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마케도니우스는 이런 입장에 반대하여 성령은 아들에게 종속된 피조자라고 선언하였다.
(4) 서방교회의 결정
라틴 신학자들은 항상 아다나시우스 편이었다. 빅톨로부터 칼리스투스에 이르기까지 로마 감독들의 수정된 독재론에서 본 바와 같이 서방교회의 신학은 양식적 독재론에 의하여 제시된 진리의 요소를 인정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아들의 동등한 영원성 및 동등한 자격과는 상충되는 로고스 교리에 의존함이 없이 삼위의 격체를 구별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장과 이러한 하나님의 단일성의 개념을 결합시켰다.
힐러리는 삼위의 인격적 독립성과 그 존재의 통일성을 주장하였으며 동질과 함께 유질을 허용함으로써 동방과 서방의 결합을 도모하였다.
아브로스는 카파도기아 교부들을 따라서 삼위의 격체가 그 실체, 신성, 의지, 기능에 있어서 하나라고 생각했다.
5) 삼위일체 교리의 완성
(1) 다메섹의 요한
그는 동방교회의 삼위일체 교리를 요약한 신학자로 하나님을 한 실체인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의 세격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격체 상호간의 관계는 세 사람의 인간의 관계와는 다르다. “이들 세 격체는 그들이 각각 출생되지 아니한 자, 출생된 자, 나온 자라고 구별되는 경우 이외에는 모든 점에 있어서 하나이며 그들의 관계는 결코 혼합됨이 없는 상호 충만 또는 상호 침투의 관계이다. 요한은 종속설을 거부하였으나 성부를 하나님의 존재의 근원으로 보았으며 성령은 로고스를 통하여 아버지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결국 낡은 희랍적 종속설의 잔재를 드러내게 되었다.
(2) 어거스틴
그는 하나님의 단일성에 강조점을 두었다. 삼위일체는 한 하나님이다. 실체, 본질, 능력, 의지에 있어서 하나님은 한 분이다. 아들은 그 자신의 파견과 화육에 참여하였다. 삼위일체의 각 인격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완전한 신적 실체라는 점에서 그들은 피차간에 동일하다. 이런 의미로 동질이란 말을 사용했다. 성자와 성령이 보내심을 받은 것은 아버지보다 열등하거나 또는 아버지에게 종속되어서가 아니다. 세 인격은 각각 전체의 삼위일체와 동등하여 전체의 삼위일체는 세 인격 중의 어느 하나보다 더 크지 못하다. 결국 어거스틴은 교회의 전통과 일치하여 삼위일체 안에 세 인격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어거스틴의 관심은 구속의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의 형식을 생각하지 않는 모든 개념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단일성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각 격체를 신적 실체 안에 있는 상관적인 삼위일체론적 구별이라고 보게 되었다.
6) 래틴신학의 삼위일체 교리
(1) 로셀리누스의 삼위일체관
그는 보편은 단순히 주관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명론의 개념을 도입하여 신격 안에 있는 삼위를 본질적으로 다른 삼개체로 보고 이것을 총칭적으로나 명목상으로나 하나라고 하였다. 삼위의 통일은 의지와 능력의 통일뿐이라고 하였다.
(2) 길버트 삼위일체관
길버트는 보편이 개물 내에 존재한다는 실재론에 입각하여 신적 본체와 하나님을 구별하고 그들의 관계를 인성과 구체적인 인간과의 관계로 비교하여 신적 본체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떤 형태 혹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그것이다. 본체 혹은 형태는 삼위에 다같이 공통하며 이런 점에서 삼위일체라 하여 사신론을 가르쳤다.
7) 종교개혁기의 삼위일체 교리
(1) 칼빈의 삼위일체관
그는 신격 안에 있는 삼위의 절대적 동등을 주장하고 발생된 것은 성자의 본질이 아니라 그의 인격적 실체라 하여 성자의 자존까지 말한다. 성자와 성령의 본체는 출생되지 않는다. 성자는 하나님으로서 그의 위는 독립적이며 지존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는 성자로서 성부로부터 오신다. 그래서 그의 본체는 비기원이나 그의 위의 기원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2) 소씨니안파와 알미니안파 삼위일체관
소씨니안파는 삼위가 공통된 본질을 가졌다는 교리는 이성에 모순 된다 하여 아리우스파를 넘어서 성자의 선재를 부정하였다. 또 그리스도는 그가 비록 특별한 성령을 충만히 받으시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으며 승천 후에도 만물의 지배권을 받았지만 본질적인 성질로 보아 단순한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알미니안파는 삼위는 다 같이 신성을 소유하나 순서상 성부의 우월하고 위엄과 능력과 권세의 우위에 있다고 예속설을 말한다. 이들은 삼위를 동등하다고 믿는 것은 결정적으로 삼신론에 이른다고 평가하였다.
8) 종교개혁기 이후의 삼위일체 교리
(1) 클락의 삼위일체관
아리우스 주의의 예속설에 접근하여 성부를 최고 유일의 하나님이시며 만유와 권능과 권세의 유일한 기원리라 하였다. 태초로부터 성자라고 불리우는 제 2의 신적 위가 있었으니 이 성자는 그의 존재와 모든 석성을 성부에게서부터 받았다고 하였다.
(2) 뉴 일글렌드 신학자들의 삼위일체관
이들은 영원발생 교리를 비평하여 영원한 넌센스라 하며 언어의 명백한 모순이라 하였다. 그들은 성부, 성자, 성령은 구속의 경륜에서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셨던 신격의 구별을 가르치는 말씀들이요, 하나님의 영원한 관계를 나타내려는 뜻은 아니라고 하였다.
(3) 현대의 삼위일체관
임마누엘 쉐덴붉은 본질적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영원한 신인 안에 구별뿐이다. 이 신인이 성자로 육신을 입으시고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슐라이에르마허는 만물의 기초가 되는 미지의 통일체로서의 하나님은 성부요, 인간 안에 특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의식적 인격으로 오시는 하나님은 성자요, 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교회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성령이라 하였다.
6. 결론
삼위일체 논쟁은 독재론에서 삼위 격체론으로 이어지며 로고스 기독론에 입각한 아리우스주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상이본질론과 유사본질론과 동일본질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런 논쟁이 이단에 대한 대항으로 출발하여 구속사관에 합당한 사상을 도출하기 위하여 성경을 도입하나 철학적 사유을 통하여 논쟁했으나 정치적 상화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종교적 관점에서 열정을 보였으나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 성경신학의 삼위일체관
우리는 여기서 간략하게 성경신학의 삼위일체관을 언급하며 앞으로 많은 연구를 요한다. 성경신학의 삼위일체 연구의 출발은 하나님 자기계시에서 출발한다. 즉 성경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기 위한 섭리라는 것에 근거를 두고 성경 전체의 논리 구조가 어떻게 증거 하는지를 통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또한 정치적 상황이나 교권에 입각해서가 아닌 진리의 증거 자체에만 목적을 둔다.
삼위일체란 용어를 써야 한다면 영원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시, 공, 형의 세계에 계시하시는 방식이 삼위의 형식이었다. 그러므로 시, 공, 형을 벗겨 놓으며 본체이신 영원하신 하나님이 증거 된다. 즉 시, 공, 형의 내재적 초월이 영원의 개념에서 삼위일체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원개념에서는 홀로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지만 역시 시, 공, 형을 초월해 존재하기에 숫자를 초월해 계신다. 그러나 시, 공, 형의 관점에서는 삼위의 하나님으로 증거하고 계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