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제3강


믿음의 열매

믿음의 열매~벧후1:8-11절
본문:베드로후서 1:8-11절
제목
어느 교회 부흥사경회 도중에 강사 목사님이 한 성도에게 물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누가 무너뜨렸습니까?\" 그러자 그 성도가 대답하기를 \"목사님! 저는 절대로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 교회 한 집사님께 말했습니다. \"방금 저 성도님은 여리고 성을 누가 무너뜨렸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절대로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그러자 그 집사님은 \"목사님! 그 사람이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절대 그 일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분은 믿을만한 분이거든요.\"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이번엔 그 교회 장로님께 말했습니다. \"장로님 어떤 교인은 여리고 성을 자신이 절대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어떤 집사님은 그 말을 믿을 수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일입니까?\" 그러자 장로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누가 무너뜨렸는지 걱정하실 필요없습니다. 제 직업이 건축인데 무너졌으면 또 쌓으면 될 것 아닙니까? 제가 공짜로 쌓아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지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물론 이 얘기는 짤막한 예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하지 않았는지를 깊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은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아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서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없다면 신앙의 참된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처음 운전을 배울 때 사실 저는 제 자신이 차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첫날 등록을 하고 그 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저는 집에 와서 제 아내에게 막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차를 운전한다는 것이 단지 앞으로 가고 뒤로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침내 면허증을 따고 그 때 중고 프라이드를 사서 타고 다녔는데 문제는 주차 시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주차시키는 것이 늘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학원에서 주차시키는 것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 멀치감치 주차하기 쉬운 곳에 차를 세워 두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주차하는 것에 조금 익숙해지니까 이제는 차에 고장이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한 것도 모두 카센타에 수리를 맡겼습니다.

한번은 백밀러가 깨어져서 카센타에 수리를 맡겼는데 그것 갈아주고는 만오천원을 주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자동차 부품가게에서 직접 사서 갈아끼우면 5천원 밖에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기술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부품을 갈아 끼우는 정도면 제가 직접 사서 갈아 끼우기 시작했습니다.

운전연습을 할 때는 면허증만 따면 다 될 것 같았는데 막상 면허증을 딴 후에도 운전을 하면서 적응하고,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았습니다. 보통 차를 운전하면 한 2-3개월 운전을 하고 나면 초보운전이라는 딱지를 떼 버립니다. 물론 요즘은 법적으로 일년동안 그 딱지를 붙이고 다니도록 의무화 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년정도, 즉 운전을 하면서 4계절을 다 경험해 보아야 운전에 익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단지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그 정도로는 운전의 묘미랄까 그런 것을 알지 못합니다. 초보 딱지를 떼고 고속도로도 다닐 수 있고, 좁은 공간에서도 주차를 할 수 있고, 겨울 빙판길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차를 운전할 수 있고, 또 왠만한 것은 수리센타에 가지 않고도 고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운전의 맛이랄까 묘미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수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거나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하는 초보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자신이 오히려 더 괴롭습니다. 간혹 부모님때 부터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자신도 어렸을 적 부터 예수를 믿은 사람중에, 여전히 믿음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을 만나면 대부분 하는 얘기가 마음이 괴롭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잘 안된다고 호소합니다.

제가 생각건대 그것은 잘 안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초보의 딱지를 떼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 후서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우리 믿음의 성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주에 그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고 둘째는 기도생활을 해야 하고 세째는 헌신을 해야 하고 네째는 덕스러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함께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말하기를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면 열매를 맺게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합니까?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안다고 말할 때, 이름만 아는 경우가 있고, 또 얼굴정도만 아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의 생활정도나 태도에 대해서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옛말에 \'열 길되는 물길 속은 알아도 한 길 되는 사람 속은 알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때때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참 호감을 가졌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처음 볼 때는 주는 것 없이 미워보이던 사람도 사귀어 보면 사귀어 볼 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 사람과 깊은 인격적인 만남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기 전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그 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그 분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 분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괜히 내 생활을 얽매게 하고, 내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분으로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면 할 수록 예수가 얼마나 귀한 분인지 압니다. 예수가 내 인생에 어떤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압니다. 그리고 예수없이 한시도 살 수 없다는 고백이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 분 때문에 여러분의 삶이 새로와지고 그 분때문에 여러분의 인생이 변화되어졌습니까? 그 분이 여러분의 인생에 어떤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둘째는 실족치 않는다고 했습니다.(10절)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실족치 않을 이유는 그 분이 내 인생을 늘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그 분이 우리를 지키시되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자들이 자주 실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보기 때문입니다. 환경만 보면 우리가 실족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면 우리의 시선이 환경으로 쏠리지 않고 하나님께로 집중되어 집니다.

아마도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베드로가 이 부분을 기록하면서 지난날 자신이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주변환경을 바라보았다가 실패했던 경험을 머리에 떠올렸을는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큰 풍랑속에서 바다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목격했습니다. 기쁜 마음에 주님을 바라보며 바다위로 뛰어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바다위를 걸어 주님께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빰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무서운 생각에 시선이 바다 밑으로 향했습니다. 시퍼런 바다물이 자신을 삼킬려고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님께로 향했던 시선이 주변환경으로 돌아서는 순간 베드로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힘있게 할 수 있는 것도 자신이 이렇게 실족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서 마침내 항상 주님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결코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초대교회 교부 폴리갑이 화형을 당하는 현장에서 \"주님은 내 인생 80여년 동안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일이 없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결코 우리를 실족치 않게 하실 것입니다.

세째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11절)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 삶을 산 사람들은 그 나라에 넉넉하게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넉넉하게 들어간다는 것은 \'천국에서 상급\'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원래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환영할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우리는 운동 선수들이 아닐 뿐 아니라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 본일이 없기 때문에 경기에서 우승하고 돌아올 때 사람들이 거리에서 환영을 해 줄 때 그 기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날이 운동선수들에게 있어서는 생애 최고의 날일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메달을 따지 못했을 때 그들은 항상 쓸쓸하게 고국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하나 꽃다발을 선사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취재하는 기자들도 별로 없습니다. 공항 뒷문을 도망치듯 빠져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우리 가운데서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고 초보에 머물러 있으면 하늘나라에는 들어갈수는 있겠지만 이와같이 아무런 상급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는 이런 모습을 가리켜서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성장을 통해 열매를 맺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소경이 된다고 합니다.(9절)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아니하고, 기도하지 아니하고, 헌신의 생활이 없고, 생활속에서 덕을 쌓아가지 아니하면, 그의 영혼이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가 없는 영적 맹인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믿음의 생활 속에서 아무 열매도 나타나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안경을 착용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시력이 좋은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시력이 나쁜 분들은 생활에 불편함을 많이 느낍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부터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했는데 안경을 착용하기 전까지는 버스를 제대로 타지 못했습니다. 몇대나 놓치고,그래서 옆사람에게 앞에 오는 차 번호가 몇번인지 물어보고 탔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비가 오는 날이나 바깥 온도와 실내온도가 차이가 나면 안경에 서리가 내려 앞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안경을 벗어서 닦아야 하고 그 동안은 내가 가는 길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시력이 나빠도 불편한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하물며 우리 믿음의 생활이 소경이라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물론 우리들 중에는 내가 믿음에 있어서 소경이라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두번째는 원시치 못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멀리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많은 사람들은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근시안적인 행동을 함으로 오히려 자신에게 더 큰 해가 돌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제직회를 거쳐서 교회 승합차를 한대 더 샀습니다. 처음 승합차를 베스타로 샀을 때 잔 고장이 있었습니다. 또 창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습니다. 여름에는 그것을 못 느꼈는데 겨울이 되니 너무 추웠습니다. 그래서 서비스 센타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여기서는 못고치니까 수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차를 끌고 수원까지 갔습니다. 그랬더니 창문을 열어보더니 바람들어오는 구멍에 청 테이프를 한조각 붙이더니 다 되었으니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제대로 고쳐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청 테이프는 떨어지면 또 바람이 세어 들어올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요구를 해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 마음에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는가 하면 \"다시는 이 회사 승합차를 안 사겠다\"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회사차가 아닌 다른 회사 승합차를 사게 된 것입니다.

물론 큰 회사의 승합차를 우리가 한대 더 사고 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타격이 있겠습니까만 결국 그것이 누적이 되면 자신들에게 치명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차를 파는 데만 급급해서 그 뒷일을 처리해 주지 않은 근시안적인 결과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신앙도 매우 근시안적일 때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조금 편하면 그것으로 만족해 하거나, 지금 당장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일을 빠트린다든지 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여러분 가운데 이와같이 근시안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분은 안 계시는지요? 우리의 신앙은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먼 미래를 바라보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세번째는 옛죄를 깨끗케 하심을 잃어 버립니다.

즉 말씀의 생활, 기도의 생활, 헌신의 생활, 그리고 덕을 세우는 생활을 떠나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서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한 중국청년이 저희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그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 분의 모든 것을 여기서 얘기할 수 없지만 한가지 그 분이 교회를 찾아오게 된 것은 중국에 있을 때 가정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 친구들과 어울렸던 일들이 미치도록 그리워서 교회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감격이 있다면 그 신앙이 살아서 꿈틀 꿈틀 거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의 감격을 잃어버린다면 그 신앙은 무미건조해 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교회 가운데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려서 우리 주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세시대 수도사였던 버나드는 이런 감격이 있었기에 주님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노래를 했습니다.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만민의 구주 예수여 귀하신 이름은 천지에 온갖 이름 중 비할 데 없으랴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와 또 한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고, 믿음의 역사를 이루고, 성령의 열매가 생활 가운데 주렁주렁 맺힐때, 우리가 비록 현실 속에서 살지만 현실에 집착하지 않고서 저 영원한 곳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구원의 은총에 날마다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기쁨의 찬송을 부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열매를 많이 맺어 더욱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