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제7강

기롱하는 자들

기롱하는 자들~벧후3:1-9절
본문:베드로후서 3장 1-9절
제목:

이제 우리나라도 7월이면 위성방송시대를 열게 됩니다. 작년에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궁화 위성 1,2호가 발사되었고 그로인해 대망의 위성시대를 열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우리나라가 세계최초로 CDMA 기술을 개발해서 상용화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실로 놀라운 과학의 발전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의 발전은 우리의 생활을 점점 편리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과학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피부로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이 발전이 되면 될수록 언제나 뒤따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입니다.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믿지를 않습니다. 또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서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유한한 지식의 소산인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존재를 과학으로 증명을 하려고 해도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증명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당연히 존재하시는 분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관한한 우리들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을 볼수 있게하고 그 존재를 확인시켜줍니다.

그런데 거짓선생들은 하나님을 믿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일에는 철저한 삶의 개혁이 요구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는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 그분을 믿고자 한다면 철저한 삶의 개혁이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거에 죄와 더불어 세상과 즐기며 살았던 그 삶을 청산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대왕으로 전세계를 제패했던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일화는 참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화들이 우리들의 삶에 주는 교훈들도 많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휘하에는 이름이 똑같은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사의 생활은 한마디로 엉망이었습니다. 술주정꾼에다가, 성격이 난폭하고, 병사들 사이에 평판이 너무도 나빴습니다. 하루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 사람의 얘기를 전해듣고 그 병사가 머물고 있는 막사로 찾아갔습니다. 갑짝스런 대왕의 행차에 모두 긴장을 했습니다. 그 때 알렉산더 대왕이 그 병사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자네가 알렉산더인가?\" \"네 폐하 그렇습니다\" \"오늘부터 자네의 삶을 당장 바꾸게, 만약 그렇지 않게 하지 못하면 자네의 이름을 바꾸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면 철저한 삶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삶이 요구되어집니다. 만약 우리의 삶의 스타일이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이 된다면 우리의 생활을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고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을 고치려고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짓선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려고 시도합니다. 자신의 삶을 바꾸기 싫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게 될 때,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바꾸어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해석하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보아도 이러한 현상은 확연히 드러납니다. 예수를 전했을 때 그들이 거부감을 갖는것 중에 하나는 예수를 믿으면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 싫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것이 싫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것도 싫습니다. 여러가지 제약을 받는 것이 많습니다. \"얼마되지 않는 인생인데, 적당하게 즐기면서 살아도 모자라는 인생인데, 뭐 그렇게 살 필요가 있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간혹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바꾸기 싫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술먹지 말라\"는 말이 없는데 하면서 술을 마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에 소가 구덩이에 빠지면 그 소를 구하는 것을 먼저하라고 하셨는데 주일날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 일부터 먼저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안식일만 주의 날이냐? 일주일 모두가 주의 날이지\" 하면서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분하신 주의날을 구분해서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자신에게 편리하게 말씀을 요리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말씀을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거짓선생들, 기롱하는자들의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고치기 싫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킵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의 날이고, 멸망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심판이 임하고, 멸망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나쁜일이 있을 때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습관들이 있습니다. 가령예를 든다면 어느날 몸이 몹씨 피곤하고 컨디션이 좋지 못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더니 \'암\'이라고 말합니다. 그 얘기를 듣는 대부분의 사랍들은 \'설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그 의사 돌팔이야!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건강하게 살았는데 암이라니 말도 안돼\'하면서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마찬가지로 거짓선생들, 기롱하는 자들도 그들에게 다가올 임박한 심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합니다. 여기 본문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 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그들은 그들에게 다가올 심판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심판의 날인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설득력이 있기 위해서는 이 말을 논리적으로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이 지금까지 했던 말들이 틀렸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노아의 홍수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과거에 대홍수가 일어 났다는 증거가 어디있으며 장래에도 그런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있던 그대론데 큰 변화가 있었다는 증거가 어디있느냐?\"라고 말합니다. 기롱하는 자들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을 했습니다. 증거가 확보가 되고 검증되어져서 원인을 분석하고, 그것을 가지고 결과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증거들은 단지 \"일부러 잊으려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논리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이토록 노아시대때 홍수를 부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당시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노아시대때 비로소 심판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에녹시대때 부터 심판을 선포하고 계셨습니다.

에녹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창 5:21절을 보면 그가 65세가 되던 해에 므두셀라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창을 던지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란 의미입니다.

이 당시 마을과 마을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게 되면 한 마을을 정복하기 위해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지키는 므두셀라 즉 창을 던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싸우는 사람들은 언제나 \"창을 던지는 저 므두셀라만 없어지면 저 마을을 우리가 깨끗이 소탕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의미에서 므두셀라라는 이름에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라는 의미가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느날 에녹을 부르시고 그의 아들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짓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하나의 사인이었습니다. \'네 아들이 죽으면 심판이 올 것이다\'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는 969세로 성경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대로라면 그가 죽은 969세가 되던해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어야 했습니다.우리가 알고 있기로 홍수심판이 있었던 노아의 때는 노아의 나이가 600세가 되던해 입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노아는 므두셀라의 손자입니다. 창5:25절을 보면 므두셀라가 187세에 라멕이라는 아들을 낳았고, 28절을 보면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므두셀라가 손자 노아를 얻은 때는 그의 나이 369세가 되던때입니다. 그리고 600년이 지나 노아의 나이 600세, 므두셀라의 나이 969세 되던 그 해, 므두셀라가 죽으면서 하나님의 홍수심판이 정확하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노아시대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에녹의 시대때 예견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시대때부터 심판을 말씀하셨습니까?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생각하는 것과 계획하는 것들이 모두 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녹을 통해서 예견하셨던 심판을 노아시대때 행하신 것입니다.

노아 이전의 거짓된 사람들과, 또한 기롱하는자들은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있던 그대로다 따라서 특별한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비다운 비도 제대로 구경못했는데 홍수가 왠말이냐? 절대 그런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경험과 과학적인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 사실을 부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일은 터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에녹을 통하여 예언하시고, 노아에게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노아시대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홍수심판이 있었듯이, 그것이 너무도 분명하고 정확한 사실이기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리라는 사실도 너무도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때의 심판은 어떤 심판입니까? 7절에 보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된 심판\"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노아 홍수심판 직후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물로 심판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의 심판은 불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죄악으로 타락해 가던 소돔과 고모라 성에 유황불을 내리셨습니다.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의 심판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너무도 명백한 이 사실앞에서 왜 기롱하는 자들은 예수의 재림에 의한 심판이 없다고 우기는 것입니까? 사실 노아 홍수 이후 롯 시대 소돔과 고모라 성에 유황불이 떨어진 이후 너무 오랜시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신다고 하셨는데 오랜시간을 거쳐도 예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더 예수의 재림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여러분!
혹 여러분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의심하거나 혹은 그 재림이 지연되어지리라 생각하는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초대교회때부터 예수님의 재림을 말해왔는데 지금 벌써 2000여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재림이 없는 것을 보면 재림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을 왜 지연시키고 계십니까? 8-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읽을 것)
기롱하는자들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일을 성취시키지 못한다고 주장을 했을 것입니다. \"만약 자기의 약속을 이행하려고 했다면 벌써 옛날에 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실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토록 오랫동안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 않느냐\"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토록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더딘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같이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행하실 능력이 없거나 우리들의 삶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직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는 천년이 하루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계산에 의하면 우리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지내온 시간도 단 며칠에 불과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처럼 시간에 제한을 받거나 인간들이 가진 기준에 따라 시간을 측정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만의 때를 가지시고 일을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더디게 일을 하시는 분도 아니며, 서두르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실 때 단번에, 순식간에 창조하실 수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엿새의 기간에 이를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해내실 때에도 단번에 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통하여 구원하시려고 모세 나이 80이 될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도 단번에 모든 일을 일사분란하게 처리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가 찰때까지 기다리셔서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때입니다. 기롱하는 자들은 더디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날은 정확한 하나님의 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은 분명히 임합니다. 기롱하는 자들은 지금 이 때가 \"평안하다 안전하다\"말하지만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임할 것이고 결단코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날이 오기까지 하나님은 참고 인내하시고 계실 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바꾸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의 심판이 임하는 날 기롱하던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대앞에 서서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이 심판대앞에 어떻게 서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대로 바꾸어서 살다가 기롱하는 자들과 같이 이 준엄한 심판대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시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서 영원토록 멸망치않는 구원에 이르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기롱하는자들에 관해 말하기에 앞서서 두번씩이나 강조하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말한 것에 관해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롱하는 자들의 거짓된 말로 부터 우리자신이 유혹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선지자와 사도들로 하신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견고하게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이 다가올 수록 많은 유혹들이 있습니다. 그 유혹으로 부터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붙들어 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말씀으로 견고하게 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선지자들과 사도들로 하신 말씀위에 굳건하게 서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심판의 날에 주님앞에 담대하게 서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