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사(4)

기독론 논쟁

 

1. 서론적 개관

 

기독론과 삼위일체론은 서로 별개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삼위일체 논쟁에 이어서 기독론 논쟁은 필연적으로 올 수 밖에 없는 논리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1) 성경적 근거

신약성경에 마태복음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증거를 하였다. 또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고백을 통해서 그의 신성을 간접적 증거를 하였다. 혹은 동정녀 탄생이 신성의 근거로 보는 신학자도 있었다. (롬1:2-4)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 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기서 육신의 혈통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데서 인성과 신성을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인용 자체가 성경의 구조 속에서 보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보는데서 오는 것이다.

 

2) 서언적 접근

진정한 기독론적 발전의 첫 단계는 삼위일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즉 ‘만일 그리스도가 진정 우리의 구속자라면 그는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구속사적 전제 속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다신론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그리스도 혹은 로고스와 한 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밝혀 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토론으로 인하여 삼위일체 교리가 형성되었다. 한 분 하나님의 존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인격으로 구별되며 그들은 모두 동일한 신적 본질에 참여하고 단지 기능에 있어서만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위일체 논쟁에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성에 대하여 규명해 놓은 상태였다.

두 번째 단계는 사람들의 관심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쏠리게 되었다. 가현설과 싸우는데 있어서 교회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인성을 주장하게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육체성을 나타내는 표현을 썼다. 그 후 기독론 논쟁을 촉발시킨 사람은 아폴리날리스였다.

세 번째 단계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을 때에 시작되었다. 터툴리안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중 품성을 본다. 그것은 서로 혼합되지 않고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의 한 인격 안에 결합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선재와 신적 성질은 삼위일체에서 다루었기에 이제 그리스도의 역사적 존재 즉 화육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존재, 신적 성질과 마리아의 아들의 인간적 성질과의 결합으로서의 존재, 그리고 두 성질 상호간의 관계 등을 다루는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2. 기독론 논쟁의 전개

 

1) 사도 후 교부들

(1) 문제의 발단

 

사도시대가 끝나고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면서 예수님에 대한 견해가 몇 가지로 나타나게 되었다. 내부에 재림에 대한 확신이 상실되는 신앙적 공백기와 외부로부터 박해가 일어나게 되므로 교회는 내적으로 이단을 막기 위해서 체제 지향적이며 이론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첫째 : 예수님의 신적인 면을 완전히 부정하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요셉과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보통 사람으로서 처녀탄생을 부인하는 자들로서 에비온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기독교 유대인 계열의 기독교도들이었다.

둘째 예수는 보통 사람보다도 특출한 재능을 지닌 보통 이상의 사람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헬라적 배경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철학적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성행했다.

셋째 : 예수의 인간성을 제거해 버리고서 오로지 신성만 남겨 놓았던 가현설주의자였다. 예수의 성육신, 수난, 죽으심, 부활 등을 모조리 부인하였다.

 

②(2) 변증신학자들의 이론

 

멜리토는 예수 그리스도가 “본성상 하나님이시고 인간이셨다”고 하였다. 저스틴은 “전에도 로고스로 선재하였다가 때로는 불의 모양으로, 때로는 빗물체적 방식으로 나타났으나 그 분이 마지막에 하나님의 뜻으로 인류를 위해서 사람이 되셨다”고 하였다. 이 이론은 스토아적 씨앗적 로고스에 근거하여 구약성경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로고스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도 얼마든지 태어날 수 있음을 말하였다. 그는 로고스를 그리스도와 연결시켜 “기독교는 다른 모든 인간적 가르침보다도 명백하게 우월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몸과 로고스와 영혼을 가진 온전한 이성적 존재가 되셨기 때문이다.” 로고스는 사람이며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 안에서 지배적 원리라는 뜻으로 후에 말씀-육신(Word-Flesh)기독론의 선구적 언급을 하였다. 이 기독론을 로고스 기독론이라 부르며 오리겐과 아리우스에 이르는 하나의 흐름으로 남는다.

 

(3)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

 

이레니우스는 그리스도를 조직적으로 상고하기 보다는 영지주의에 반대하여 성육신적 대속을 말하려는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 그는 성경에 근거하여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타락을 말하는데 그 결과로서 인간은 성장이 저지당하였으며 사단의 두 가지 권력, 즉 죄와 사망에 붙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타락까지도 선하게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선하심을 찬양하게 할 수 있는 기회로 사용하였다. 인간에게 구속계획을 알리셨는데 첫째는 아담에게서 노아홍수까지, 둘째는 노아의 계약으로부터 출애굽까지, 셋째는 모세의 계약으로서 그리스도이 강림으로 끝났으며 넷째는 그리스도의 계약으로서 시간의 마지막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 셋째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따른 자유를 얻을 수 없었기에 오히려 성육신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구약의 율법은 성육신과 더불어 폐지되었다. 그런데 성육신적 구속을 복원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첫 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마귀에게 넘겨주었던 자유를 둘째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총괄적으로 회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과거사에 대한 요약이며 앞으로를 향한 새 출발이었다. 그의 주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사단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주된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기독론적인 도식에 따라서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4) 터툴리안

 

형태론적 군주신론주의자들을 맞이해서 삼위일체 이론과 기독론을 전개하였다. “말씀이 어떻게 육신이 되었는가? 소위 말하는 육체로 변형되셨다는 말인가? 아니면 참으로 육신을 입으셨다는 말인가? 변형이란 변형되기 이전의 존재는 파괴되었음을 말한다. 말씀이 변형에 의해서 육신을 입었다면 그것은 본질의 변화를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가 육체와 영을 가진 두개의 본질의 복합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분명하게 이중적인 상태를 본다. 한 개체 안에 혼합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예수 즉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그 분을 본다”고 하였다.

그는 한 개체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속하는 신성과 사람에 속하는 인성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여기에 대하여 속성의 교류라는 이론을 말한다. 기능의 전달에 의해서 영은 육이 감당해야 할 일을 하였으며 육도 이와 같이 영이 감당해야할 일을 하였다고 하였고 한 개체 두 본성이라는 도식으로 정립시킬 수 있으며 서방 교회의 대표적인 이론으로 칼케톤 신경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5) 오리겐

오리겐의 기독론은 극히 사변적이어서 영지주의적인 색체를 완전히 벗지 못하였다. 그는 예수께서 인간적 영을 가졌다고 주장하면서도 영적 존재이며 선재했었다고 이중적으로 말했다. 다른 영들은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지만 예수의 영은 이미 선재적 상태에서 로고스와 연합하였으므로 죄를 짓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성육신 때에도 이 영이 로고스와 연합하여서 예수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영은 영원한 로고스와 예수의 한정적인 몸 안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한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는 신적인 로고스와 인간적인 몸이 영의 중재로 인해서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두 본성은 교류에 의해서 하나됨 혹은 연합을 이룬다. 그러나 오리겐은 항상 신성과 육신이 본질적으로 연합되어 있으나 신. 인의 구조 가운데서는 언제나 신성이 실재적인 요소라고 보았다.

 

(6) 기독론의 두가지 논점

 

신인 구조 가운데서 신성과 인간의 영혼과 관점에 대한 견해로서 두 가지로 주장해 왔다.

첫째는 플라톤의 인간론에 근거한 논리로서 사람이란 영 혹은 정신에 의해서 활력을 부여받은 몸이라고 보는 인간론에 입각해서 그리스도의 인간성이 인간적 영혼을 전혀 포함하지 않고 그 분의 구성 속에 있는 영혼의 모든 기능은 성육신하신 말씀이 행하였다고 주장한다. 즉 그리스도의 몸은 껍질에 불과하였으며 오로지 그 안에 있는 영혼이 몸을 움직이게 하였다는 주장으로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성행하였고 “말씀-육신 기독론”이라 불리운다.

 

둘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론에 근거하여 몸과 영이 더불어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참으로 사람이 되심으로써 신. 인의 구조 안에 두 요소 즉 말씀과 육신이 있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서 성육신의 효과로서 그 몸이 기적적인 방식으로 로고스의 거처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안디옥을 중심으로 성행했는데 교리사는 이 사상을 “말씀-인간 기독론”이라 명명했다.

 

2) 기독론 문제 발발

(1) 역사적 문제

 

삼위일체 논쟁처럼 기독론논쟁도 영지주의, 아리우스주의, 군주신론 등 이단에 예수님을 그릇되게 말하므로 그것을 배격하려는 기본 문제에서 출발하게 된다. 그러나 기독론쟁은 이와 더불어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의 기독론을 이용해서 자파의 정치적 세력을 확보하려는데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동방교회에서 전면으로 표출된 논쟁이 서방교회의 기독론 도식으로 확립되었다. 이외에도 니케아회의에서 동일본질(알렉산드리아)과 유사본질(안디옥)의 세력다툼이 계속되는 연장선상에서 진행되어 온 것이다.

 

(2) 안디옥 학파의 유스타티우스

 

말씀-인간 유형의 기독론을 주장한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은 비인격적이라고 하므로 인성을 무시해 버릴 정도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은 인성의 의지가 신성의 의지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인성의 의지는 신성의 의지와 항상 동일하게 의지한다고 하였다. 동시에 예수는 인간적 영과 인간적 몸을 지닌 참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과 같이 성장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비인격적인 지혜가 성전 안에 거주하지만 그리스도의 인격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성전이론이라 부르며 안디옥학파의 가장 주된 이론이 되었다.

 

(3)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아폴리나리스

 

① 주장한 내용

기독론의 문제를 최초로 진지하게 제기한 사람이 라오디게아의 감독 아폴리나리스였다. 그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이 인간의 죄된 가멸적 존재를 죄 없는 불멸적 존재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시종 구속사상에 입각해 있던 그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며 만일 그리스도가 인간만이라면 세상을 구원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만일 그리스도가 인간만이거나 하나님이었다면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이 어떻게 한 인격 안에 유지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였다.

“만일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인간과 결합되었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두개의 주체 즉 본성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인격과 양자에 의해 취해진 아들이 된 인격이 있을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격적 통일은 유지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강조한다면 그의 무죄함은 보증될 수 없으며 두 의지 사이의 조화를 이룰 길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죄를 범하기 쉽고 변하기 쉬운 존재가 될 것이며 구속사업을 수행하는데 적합하지 못할 것이다.

 

② 주장하는 사상

①항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는 인간의 구성 요소를 육과 영혼과 이성으로 삼분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고린도 전서 5:23의 말씀을 근거로 자신의 사상을 추론해 나간다. 즉 그리스도의 인성은 육체와 영혼과 인간의 이성 대신인 로고스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육체에 있어서만 인간이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은 마리아의 아들의 몸으로 나타났다가 그것을 자기의 신성 안으로 흡수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게 되고 인성을 거부한 결과가 되었고 단성론의 길을 열어 놓았다.

 

③ 그릇된 점

카파도기아 교부들에 의해서 지적된 사항은 첫째 : 진정한 그리스도의 인성을 무너지게 만들었기에 그리스도의 전지하심이 결여되었다거나 신적 의지와 인간적 의지의 갈등이라든가 하는 사실들 이 조화될 수 없으며 결국 가현설에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둘째 : 아폴리나리스가 주장한 그리스도는 구속을 성취할 능력이 없다고 반박하였다. 죄는 우리의 육체와 영혼과 이성까지도 침범했기에 그의 완전한 구속은 자신의 육체로 우리의 육체를, 자신의 영혼으로 우리 영혼을, 자신의 이성으로 우리의 이성을 구속하는 하나님인 동시에 우리와 완전히 같은 인간성을 지닌 완전한 이간이어야 한다.

④ 역사적 의의

그가 그리스도의 두 성질에 관한 기독론 문제를 교회 안에 제기하였고 그로 인해 680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의 결론이 떨어질 때까지 300여 년간 토론을 가져오게 하였다.

⑤ 역사적 전개과정

377년 로마회의에서, 378년 안디옥 종교회의에서, 381년 콘스탄티노플 제2차 세계종교회의에서, 382년 로마회의에서 정죄를 받게 되었다. 451년 칼케톤 신조에서 “그리스도는 이성적 영혼과 육체를 가진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이간이신 분이라”고 하였다. 691년 퀴니섹스툼 종교회의에서 “주는 영혼과 이성을 가진 몸으로 나지 않았다고 불신앙적으로 선언하는 악한 지도자 아폴리나리스를 정죄 한다”고 하였다.

 

3. 기독론 논쟁의 발전

 

1)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 두 학파에 의해서 제기된 문제

 

이 두 학파는 각 각 기독교 교리의 한 면의 진리를 제시하므로 교회가 이들 둘을 합하여 완전한 진리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한 쪽은 그리스도의 두 성질을 분리시켰고 한쪽은 두 성질을 혼동시킨 것이었다.

 

(1) 안디옥 학파

 

후기 안디옥 학파로서 몹쉬스티아의 데오도레와 그 후에 데오도렛으로 이어지는데 특징은 형이상학적인 사변과 신비적 요소를 배격한 점이다. 성경을 우의적 해석 방법을 배격하고 문법적 역사적 해석 방법을 채택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특별히 그의 인간적 도덕적 발전을 연구한 주석가였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가현설과 아폴리나리스주의를 반대하고 신성을 부정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인간성을 강조 하였다.

 

① 주장하는 내용

그리스도는 실로 육체와 이성적 영혼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인간성의 소유자였다. 그에게 자유로운 의지 혹은 자기 결정의 능력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의 인간성은 가변성과 육체적 연약성과 죄된 성질에 예속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 의지를 사용해서 유혹과 죄와 온갖 육의 정욕을 이겨냈으며 마침내 완전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의 인간성에서 이루어진 신격화 과정은 그와 결합된 모든 인간에게 구원과 성화의 결과를 가져다준다. 즉 “신 인간의 역사적 발전은 인류의 역사적 구속의 견본이요 모형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죄된 속성을 지니셨고 죄된 성질과 경향성을 정복하였고 부단한 투쟁과 승리를 통해서 인간적 본성을 절대적 완전에까지 높였으며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성령의 사귐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신다.”

 

②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의 관계

그리스도는 신적인 동시에 인간적이므로 신성이 인성 안에 거주한다. 로고스는 성소인 인간 예수 안에 거주한다. 이런 내주는 믿는 자의 마음속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내주와 비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는 본질의 결합이나 능력의 결합이 아닌 은총에 있어서의 결합이고 도덕적 결합이다. 로고스는 장차 인간 예수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서 동정녀 마리아의 모태에서 그의 인격과 사귐을 맺었고 인간 예수가 죄악과의 투쟁에서 점점 성공을 거두고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거룩하여짐에 따라서 그 사귐은 점점 더 밀접하게 되어 갔고 마침내 예수의 부활과 승천에서 최고의 절정에 이르렀다고 한다.

 

③ 두 성질 관계 속에서 인격에 대한 문제

②항의 내용으로 인하여 두 인격이 있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 그래서 데오도레는 “두 성질이 구별되어 있으면서도 항상 인격의 통일을 유지하고 있기에 아들은 한 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 인격으로 통일되어 의지의 일치를 주장하게 된다. “두 성질의 구별할 때에는 신성과 인성이 각각 완전하며 그 인격도 완전한 것으로 오직 한 인격만이 존재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인격이란 말은 한 존재의 모향 즉 로고스와 인간 예수의 공통된 존재를 나타내는 얼굴(프로소폰)을 의미한다. 이런 견해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요1:14의 로고스의 진정한 화육이란 내용에 위배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은 문자적으로 해석되면 안 되고 로고스는 예수의 육체를 단순히 그의 거처로 채용했다고 해석했다.

이들의 견해는 그리스도의 인간적 성질은 신성과는 독립적으로 발전된 것이었다. 따라서 신성이 인간 생활의 경험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일이 용납될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있는 두 성질의 진정한 결합을 파괴하게 되었고 마리아는 신모가 아닌 인간의 어머니가 되었다.

 

(1) 알렉산드리아 학파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로고스의 화육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게 된다.

① 아다나시우스의 가르침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성을 강조하고 그 인간성은 로고스의 신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상태를 말하는데 고난을 당하고 높임을 받는 것은 이 인간성에만 해당한다고 하였다. 로고스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영혼과 육체를 취하여 자기 것을 삼음으로써 진정으로 육이 되었다(요1:14) 그 결과 신성과 인성의 두 성질은 항구적 결합에 의해서 한 인격이 되었다. 화육으로 이와 같은 결합에서 진정한 주체가 된 것은 육을 자기의 계시와 사역의 기관으로 삼은 로고스였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은 신성과 인성이 다 같이 참여하는데 모두 한 주체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수난을 받은 것은 인성이나 몸의 수난이 로고스에도 전달되어 신성도 수난에 참여한 것이다.

 

② 카파도기아 교부들의 사상

카파도기아 교부인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와 니사의 그레고리에 의해서 체계화 되었다가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에 의해서 완성되고 후에 유티커스와 단성론에 이르러 이단적으로 빠진다.

이 학파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타당성을 보호하는 수단으로서 두 성질의 결합과 인격을 강조하였다.

첫째 나지안주스 그레고리는 화육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인성이 혼합의 과정에 의하여 신성 안에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고 하였다. 태양과 별들의 비유로 태양은 별들의 빛을 무색하게 한다고 했다.

둘째 : 닛사의 그레고리는 그리스도의 수동적인 육체는 그의 능동적인 신성과 혼합되었으며 신성으로 변화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는 바다와 한 방울의 식초로 비유하여 식초 한 방울이 바다에 완전히 휩싸여 흡수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그러한 자유의지는 그의 신성의 의지에 의하여 인도되고 결정된다고 하였다.

 

2) 네스토리우스와 시릴에 의해서 논의된 문제

 

(1) 네스토리우스

 

428년 콘스탄티노플의 대감독이 된 네스토리우스는 안디옥 학파의 한 인물이었다. 그는 정통주의에 대한 열심히 아리우스파와 노바시안파, 아폴리나리스파등을 박해하고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토벌하기 시작 했다.

 

① 주장하는 내용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지 신모가 아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어머니가 로고스에게 신적 본성을 줄 수 없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신성은 마리아에게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성의 특성과 로고스와의 융합을 반대하였다. 로고스는 잉태할 때부터 한 완전한 인간과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 관계는 매우 밀접한 관계여서 결국에는 한 인격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로고스는 성소 안에 거하는 것과 같이 인간 예수 안에 거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두 성질은 각각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항상 창조된 것과 창조되지 않는 것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인간적 성질만 탄생되고 고난을 당하고 죽고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고 등등의 일을 할 수 있으며 오직 신적 성질만이 영원하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두 성질을 구별해서 생각해야 한다. 결국 그리스도를 진정한 ‘신 인간’이 아닌 ‘하나님을 지닌 인간’나타나게 만들었다. 이렇게 두 성질을 구별하므로 속성의 교류를 배격했다.

그의 이런 주장의 진정한 이유는 로고스가 탄생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인간적인 것은 아무것도 신성의 속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② 결과

결국 그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두 인격 혹은 두 격체로 나누었다는 이유로 431년 에베소에서 열린 제 3차 세계 종교회의에서 정죄를 당했다.

 

(2) 알렉산드리아 시릴

네스토리우스와 몹쉬스티아의 데오도레를 반대한 그는 431년에 에베소에서 열린 제 3차 세계회의에서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플간의 교권싸움으로 나타났는데 당시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하는 황제가 시릴을 정죄하려고 하였지만 시릴은 형세를 역전시켜 콘스탄티노플 대감독을 고소하고 폭력을 사용했다.

① 주장하는 내용

역사적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아다나시우스나 나지안주스 그레고리와 같이 인간이 되신 로고스로서의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러한 불변적인 로고스-하나님은 이성을 포함한 비인격적인 인간의 본성을 취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로고스-하나님 자신은 아무것도 희생한 것이 없었다. “하나님에게는 변화가 없다.” 이 결합에서 로고스가 주체가 되었다. 즉 비인격적인 인성과 두 성질의 주체가 되는 신성을 채택함으로서 카파도기아 교부들이 말하는 혼합이란 말을 피했다.

그는 신 인간의 두 성질의 인격적 결합을 강조하였다. 화육 이전에는 이론상으로 두 성질이 있었으나 화육 이후에는 오직 하나의 성질 즉 신적인 동시에 인간적인 한 성질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스도는 두 성질을 가진 한 분이었다. 즉 화육 이후에는 하나의 신적 - 인간적 성질만 있다.

이런 기초 위에 속성의 교류가 주장되었다. 로고스 자신은 고난을 받을 수 없지만 화육을 통해서 자기의 것이 된 인간적 성질로 고난을 당하였다. 이런 주장으로 시릴은 신성을 유한자의 영역으로 끌어 들였다고 네스토리우스에게 고소를 당한다.

 

결론적으로 두 성질이 단일체로 결합되었다는 것인데 두 성질은 서로 교체될 수도 없으며 서로 혼합될 수도 없다. 또한 성질이 다른 한 성질을 병합하는 것도 아니며 신성이 인성 가운데에 내주하는 것도 아니다. 두 성질은 각각 속성을 보유하며 그 속성이 서로 교류한다.

 

4. 기독론 논쟁의 최종적 확정

 

1) 유티케스의 주장

 

(1) 상황

 

네스토리우스 논쟁에서 시릴과 네스토리우스는 다 같이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에게 공직에서 파면을 당하였다.(431년) 그러나 433년 안디옥 학파가 마련한 신조에 시릴이 서명하므로 두 학파가 휴전하게 되므로 시릴은 복귀하게 되고 교회에서 유력한 위치를 다시 찾게 되었다. 444년에 시릴이 죽은 후에 디오커러스가 계승하여 알렉산드리아의 대 감독을 동방에서 지배적 위치로 만들고자 하여 안디옥학파를 억압하고 두 성질의 개념을 배제하고자 하고 아폴리나리스주의적 경향을 가진 신조를 옹호하기 시작한다.

 

(2) 유티케스의 주장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찬동자이며 콘스탄티노플 근처의 수도원의 수도사였던 유티케스(Eutyches)는 알렉산드리아 사상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므로 이단적 요소를 가지게 된다. 즉 “화육 이후에 그리스도는 오직 한 성질만을 가지게 되었다. 두 성질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성질의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즉 두 성질로 이루어진 그리스도는 한 분이라고 한 시릴의 주장을 그릇되게 강조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몸인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몸과 동일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3) 정치적 결정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448년)파면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 때 대감독 플라비안이 주관하였다. 레오 1세는 플라비안의 편을 들었는데 레오 1세가 플라비안에게 편지로 그리스도의 한 인격과 두 성질에 관한 교리를 강조했다. 그 해 8월에 황제가 에베소에 종교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때 회의를 알렉산드리아의 디오스커러스가 주관하여 난폭한 수단을 써서 안디옥 학파의 기독론의 잔재를 교회로부터 제거했다. 이 때 레오 1세 황제의 의견서 낭독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로 그리스도의 두 성질에 관한 교리는 정죄를 당하게 되고 유티케스는 회복되고 플라비안과 유세비우스와 데오도렛은 파면을 당하였다.

레오 1세는 이 회의를 도적회의라 선언하고 회의의 결정을 정죄하며 로마 대감독의 주재 하에 새로운 회의를 열게 하였다. 450년에 레오 1세가 죽고 그 누이 펠케리아와 그의 부군 말시아누스가 계승하여 알렉산드리아의 디오스커러스를 반대하여 451년에 니케아에서 새로운 종교회의를 소집하였으나 황제의 희망에 따라 회의 장소를 칼케톤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 회의에서 디오스커러스가 파면되고 그리스도의 두 인격에 관한 교리와 그 옹호자들은 축출을 당하였다. 데오도렛은 다시 복권이 되고 시릴이 정통이라고 선언하였다. 이 회의에서 레오의 서신에 근거한 기독론 교리가 형성되었는데 칼케톤 신조를 낳게 된다.

 

(2) 단성론과 단의론의 도전

 

① 단성론

단성론은 칼케톤 종교회의가 있은 직후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두 성질을 인정한 칼케톤 신조를 반대한 사람들이 모여 단성론자라고 불리어졌다. 애굽과 팔레스타인에서 큰 소동이 일어나고 교회 전체가 흥분 가운데 휩싸였다. 이들은 애굽과 시리아와 아르메니아에 각각 종파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두 성질을 강력히 반대하고 유티케스를 배격하고 시릴의 가르침에 호소함으로서 자기들의 입장을 옹호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분열이 일어났는데 한쪽은 그리스도의 두 성질의 대조적 구별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몸이 부활하기 전에 부패되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쪽은 이와 반대하였으며 또 다른 쪽은 시릴의 입장에서 해석한 칼케톤의 결정을 인정했다.

 

② 단의론

칼케톤 신조의 두 번째 도전은 단의론 논쟁에서 행해졌다.(633-680년) 황제 헤라클리우스는 아르메니아와 시리아의 단성론자들인 감독들에게 충동을 받아 “그리스도는 신적인 동시에 인간적인 한 의지의 작용에 의하여 그 구속사업을 성취하였다”고 말하므로 양파간의 조정을 꾀했다. 한분이신 그리스도는 신적이며 인간적인 능력을 통해서 모든 신적이며 인간적인 일들을 행하였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여러 층의 지지를 받게 되었지만 후에 예루살렘 대감독이 된 수도사 소르포니우스가 반대 의견을 제기하여 새로운 논쟁이 시작되었다. 교황 데오도레 1세과 그 후계자는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지지하고 공포한 단의론의 교리를 배격하였고 서방교회는 동방교회와의 우호관계를 단절해 버렸다. 마침내 680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제 6차 세계종교회의에서는 로마의 대감독 아가도의 서신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이 교리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두 자연적 의지 혹은 의지 작용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서로 반대되지 않는다. ...... 그의 인간적 의지는 전능하신 신적 의지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속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3) 동서방 기독론

 

(1) 다메섹 요한

 

로고스가 인성을 입으셨고 인간 예수가 로고스를 입은 것이 아니었다. 이성을 통일하는데 있어서 로고스가 형성적이며 지배적인 주체가 된다. 이 로고스가 취한 인성은 한 인격으로 발전되지 못한 인성을 취했다. 즉 마리아의 몸에서 이 가능한 인간과 연합함으로써 후자는 한 개체적 실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독립적 인성을 갖지 못하고 로고스 안에서, 로고스를 통하여 인격적 실재를 갖게 된 것이다.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결합함으로서 이성의 연합을 설명했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 속성들이 인성에 전달됨으로 인성이 신화되었으며 또 하나님이 육신으로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므로 완전한 인성을 지닌 신자라고 하였다.

 

(2) 양자론

 

7-8세기에 스페인에서 양자설 논쟁이 일어났다. 양자설은 675년 톨레도 회의에서 그리스도는 본래 신자이고 양자로 된 것이 아니라고 선언된 이래 스페인의 우르겔라 감독 휄릭스에 의해 옹호되었다. 그는 그리스도는 로고스인 신성으로는 본래적 의미의 하나님의 독생자였으나 인성 편에서는 양자의 형식으로 아들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인자가 잉태될 때부터 시자의 인격과 연합하였다고 하므로 인격의 통일성을 보존하려 하였다. 본래적 자격은 신성에 속하였고 양자적 자격은 인성에 속하였다고 설명하였다.또한 그리스도의 베들레헴의 자연적 출생과 세례 받으실 때 시작하여 부활 때에 완성된 그의 영적 출생을 구별하여 이 영적 출생이 마침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양자로 되게 하였다고 한다.

 

5. 결론

 

1) 교리논쟁의 결과

 

니케아 종교회의(325년)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콘스탄티노플회의(381년)에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시다. 에베소공회의(431년)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은 하나이다. 칼케톤 회의(451년) 그리스도의 본성은 둘이다. 라는 사항을 확정했다.

 

2) 결론적 문제

 

이상이 종교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고 오늘날에 와서도 정통으로 인정하고 있는 현장이다. 우리는 여기서 삼위일체론과 아울러 기독론에서 문제의 출발점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영원하신 하나님이 성경에 어떻게 그리스도로 계시하고 있는가? 하는 접근에서 출발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교회가 구원에 관한 진리를 살피기 위하여 전개하게 된 부산물인 것임을 보았다. 그리고 교회가 교리를 결정함에 있어서 당시 정치적 상황(황제는 다수의 편을 들어서 정치를 안정시키고자 함)과 혹은 교권쟁투를 위하여 교리를 거론하게 되기도 하였고 또한 뇌물이 작용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황제의 마음에 변하기도 하였다는 것을 본다.

 

3) 성경신학의 결론

 

성경신학에서 과연 기독론은 무엇인가? 성경에 계시하신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고 무엇이 목적인가? 우리는 복음서에서 잘 증거해 주고 있음을 본다. 즉 구약에 약속한 그리스도가 예수이심을 직임을 통해서 신분을 통해서 사역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본성을 통해서 증거해 주었다. 이것이 사실 결론인데 우리는 이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 양성론과 인격과 의지에 대한 부분을 정립할 부분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공형의 세계에 자신을 구약에 약속한 대로 그리스도로 계시하였다. 그가 계시하신 형태가 시공형의 세계이므로 시, 공, 형으로 나타내심이 인성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고 육신을 입고 우리 죄를 짊어지셨다. 그러나 그 분은 영원의 개념으로 들어가면 즉 시, 공, 형을 벗기우면 신성이 드러난다. 내재적 초월이라는 용어에서 영원은 시, 공, 형에 내재되고 있고 초월된 상황이다. 현상세계에서 시공형의 요소를 제하면 영원이다. 그 개념으로 이해하면 영원의 관점에서는 그리스도의 본성인 신성이 계시된다. 요한복음에서 영원하신 본성을 시공형의 세계에 있는 우리를 향하여 자신을 계시하고 있다. 말씀으로 생명의 양식으로 혹은 빛으로 계시해 주셨다. 성경대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신학이다.